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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마항쟁 긴급조치 위반 9명 보상길 열려..검찰 직권혐의없음 처분

    부마민주항쟁 때 긴급조치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시위참가자 9명이국가보상을 받게 됐다. 부산지검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기소유예를 받은 A(61)씨 등 9명을 직권으로 사건을 재기해 ‘혐의없음’ 처분했다고 17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부산대 학생이던 이들은 1979년 10월 부마항쟁 거리 시위를 벌인 혐의(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로 구속돼 30일가량 경찰서에 구금됐다가 풀려났다. 부마항쟁 34년 만인 2013년 3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와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 9호가 국민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부마항쟁 당시 공권력 피해를 당한 이들의 명예회복 길이 열렸다. 긴급조치 9호로 유죄나 불기소 처분을 받은 이들은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받고 국가보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A씨처럼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경우는 형사보상법상 보상 청구자격이 없었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부마항쟁 때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1명을 직권으로 보상 결정을 내린 이후 전수조사를 벌여 유사 사례가 10명 더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이중 연락이 닿은 9명에게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곧 피의자 보상심의회를 열어 9명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보상금은 하루 30만원씩,900만원 정도인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이종수의 헌법 너머] 강사법 파동 유감

    [이종수의 헌법 너머] 강사법 파동 유감

    필자도 유학 후 귀국하고서 한동안 세칭 ‘보따리 장사’로 불리는 시간강사 생활로 딸린 식구들을 건사했기에 그 고달픔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고서 대학에 자리를 잡았으니 어쨌든 운이 좋은 셈이다. 2011년에 고등교육법 개정으로 교원의 구분에서 전임강사 직위가 삭제됐다. 그 즈음에 자살사건 등으로 강사들의 열악한 처지가 사회 내에서 문제로 불거지자 고등교육법이 다시 개정돼 시간강사의 지위를 강화하고 보장하려는 일명 ‘강사법’이 마련됐다. 즉 해당 대학이 강사에게 강의를 맡기려면 1년 이상 계약하고서 4대 보험과 함께 방학 중에도 임금을 지급하고, 이후 재임용 절차까지도 보장하는 내용이다. 비정규교수노조 등에서 이 강사법이 오히려 ‘시간강사 정리해고법’이라며 거세게 반대해 온 까닭에 그간 여러 차례 유예되다가 올가을부터는 시행될 예정이다. 특히 재임용 절차가 보장되는 까닭에 채용된 강사에게는 사실상 전임 교원에 버금가는 법상 신분 보장이 적용되는 셈이다. 얼마 전 어느 대학에서 먼저 강사 공채 공고를 냈는데, 논문 실적 등 전임 교원 채용 수준의 높은 조건을 요구한다며 일부 전업 강사들이 다시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에다가 소위 ‘반값등록금 정책’으로 지난 10년 동안 대학의 등록금액이 묶여 있는지라 특히 사립대학들의 재정난도 만만치가 않아서 또한 문제다. 대학 측이 많은 강사에게 강의를 맡기는 데에는 전임 교원의 부족도 한 이유겠지만, 학문 후속 세대인 신진 연구자들에게 강의 기회를 적극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 게다가 박사 학위 남발도 한편 문제여서 이래저래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실타래를 풀기가 쉽지 않다. 대학의 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오래된 독일 대학에는 ‘프리바트도첸트’(Privatdozent)라는 전통적인 학위 내지는 직위가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사강사’(私講師)쯤 되겠다. 그곳에서는 교수가 되려면 박사 학위에 추가해 수년이 걸려서 ‘하빌리타치온’(Habiltation)이라는 교수 자격 논문을 작성하고서 통과돼야 한다. 따라서 프리바트도첸트라는 명칭은 교수 자격 논문에 뒤따르는 학위와 강의를 담당하는 직위를 함께 뜻한다. 엄정한 심사를 거쳐 교수 자격 논문이 통과되면 해당 학과는 이 프리바트도첸트에게 수년 동안 강의를 맡긴다. 그는 이 기간에 여러 대학에서 공채하는 정규의 교수 자리를 알아보는 구직 활동에 나서게 된다. 실력이나 운이 없다면 결국 원하는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로써 그에게 교수 자격 논문을 통과시킨 해당 대학과 학과는 관련 학계에서 평판과 신뢰를 잃게 마련이다. 게다가 교수 자격 논문을 통과시킨 대학이 해당자를 곧바로 교수로 임용하는 것이 금지되는 독일 대학 특유의 오랜 불문율이 존재한다. 타 대학에 먼저 교수로 임용됐다가는 이후에 모교의 교수로 임용될 수가 있다. 이 같은 오랜 관행은 신진 연구자가 관련 학계에서 최소한의 객관적인 검증을 거치도록 한다는 제도적인 의미에서 긍정적인 전통으로 여겨져 왔다. 이 교수 자격 논문 제도가 연구자에게 오랜 시간을 요구하고, 자리가 제한된 독일 대학의 교수직이 우리와 달리 임용과 동시에 정년 보장인 까닭에 학문 후속 세대 양성에서 심각한 정체 현상이 나타나 독일 사회에서 줄곧 논란이 됐다. 이러한 가운데 2002년 대학기본법 개정과 함께 ‘주니어 교수’ 제도가 새로 도입됐다. 이로써 뛰어난 박사 학위 논문과 연구 업적만으로도 수년 동안 계약직으로 대학에서 전업으로 강의를 맡을 수 있게 바뀌었다. 그러자 2012년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주니어 교수들의 상대적으로 적은 봉급에 대해 다뤘다. 그간 연방헌법재판소는 입법자의 폭넓은 입법권을 존중했는데, 이 사안에서는 이례적으로 주니어 교수의 적은 봉급이 해당직에 상응하는 적절한 생활부양을 요구하는 직업공무원제도의 원칙상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이번 강사법 파동처럼 관련 법령의 개정과 함께 그로 인해 오히려 혼선이 불거지고 이해당사자들 대다수에게서 불만이 제기되는 경우가 그리 흔치가 않다. 비록 입법 취지가 좋을지라도 이상을 좇아 한꺼번에 지나치게 앞서가면서 규율 대상인 대학이 갖는 여러 특수성과 복잡성을 도외시하고서는 ‘좋은 법’이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참에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책임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 [월요 정책마당] 민주평통 자문회의 제19기, 다시 힘찬 출발을 다짐하며/김덕룡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월요 정책마당] 민주평통 자문회의 제19기, 다시 힘찬 출발을 다짐하며/김덕룡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지난 6월 5일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창설 38주년을 맞았다. 그간 관변조직 아니냐는 비판도 많았고 민주평통이 창설되었던 1980년대와는 크게 달라진 통일·안보 상황에 맞게 조직을 전면 재편하거나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러나 일부의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민주평통은 헌법에 기초한 대통령 자문기구로서 통일에 대한 국민여론 수렴과 정책건의, 국민 통일공감대 형성 등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노력해 왔다. 특히 한반도의 전쟁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 9월에 출범한 제18기 자문회의는 ‘핵과 전쟁의 위험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활동목표로 삼고 비상한 각오로 활동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한반도 평화의 전환점으로 만들기 위해 서울이 아닌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18기 출범회의를 개최했으며 국내외 전체 자문위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평화 평창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핵무력 완성 선언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크게 높아진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북한의 올림픽 참가 분위기 조성을 위해 올림픽 기간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할 것을 대통령께 특별 정책건의했고 이를 성사시켰다. 마침내 국민적 여망이 한데 모아져 북한을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도록 이끌었고, 이를 계기로 남북 관계가 복원되고 북미 대화가 시작되었다. 4월 27일 남북 정상이 11년 만에 판문점에서 만나 ‘한반도에 더이상의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했다. 이후에도 우리 자문위원들은 북미 정상회담과 자카르타아시안게임, 그리고 평양 남북정상회담 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중요한 계기마다 자기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폐쇄된 활동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단체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생활현장의 생생한 국민여론을 정책건의에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정부정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기보다는 라운드테이블과 열린 통일포럼을 개최해 민주적 토론문화를 확산시키고, 원탁토론 방식으로 통일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화를 추진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지속가능한 대북·통일정책을 만들기 위한 방안으로 ‘통일국민협약’ 또는 ‘통일대헌장’ 채택운동을 제안했다. 열정과 헌신을 다했던 18기 자문위원들의 노력은 ‘한민족 평화·통일 운동사’에 멋지게 기록될 것이다. 9월에 새롭게 출발하는 제19기 자문회의는 구성단계부터 몇 가지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재외공관 등 기관 추천 외에도 ‘국민참여 공모제’를 크게 확대했다. 청년층을 비롯해 일반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통로를 크게 넓힌 것이다. 직능분야 자문위원의 40%를 여성으로 위촉하고, 청년 비율도 30%로 높여 조직의 역동성과 국민 대표성을 크게 강화할 예정이다. 통일 공공외교에 기여할 해외 자문위원들을 적극 발굴하고, 정치적 중립성 강화 등 국민적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 일상의 평화를 위해 더 노력할 것이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미 대화가 교착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궁극적 목표를 위해 우리는 다시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미중 패권경쟁과 주변 국가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면밀하게 분석·대응해 가면서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가 주도하여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반드시 성공시키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한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그 과정에서 제19기 민주평통도 맡은 바 소임을 다할 것이다. 국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비판이 있기를 바란다.
  • 긴급조치 9호 위반 농민, 사후 27년 만에 무죄

    박정희 정권 때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남성이 사후 27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광주고법 형사1부(부장 김태호)는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백모(1992년 사망 당시 63세)씨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헌법 제53조에 근거해 발령됐으나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 등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무효”라고 설명했다. 백씨는 농업에 종사하며 1975년 9월 21일 오후 10시 30분쯤 전북 옥구군 옥구면 양수장 앞에서 주민들에게 박정희 정권에 대한 왜곡된 사실을 진술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병충해가 발생해 피해를 입자 “논에 나락이 다 죽어도 박정희나 농림부 장관이 한 게 뭐냐. 박정희 XXX 잘한 게 뭐 있느냐, 박 정권은 무너져야 한다”고 말했다. 백씨는 1976년 2월 전주지법 군산지원에서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으며 같은 해 6월 항소심에서 원심의 형이 과중하다는 이유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박정희 한 게 뭐냐” 비판했던 농부, 43년 만의 재심서 무죄

    “박정희 한 게 뭐냐” 비판했던 농부, 43년 만의 재심서 무죄

    박정희 정권 집권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가 확정된 고인에 대해 법원이 재심 절차를 통해 43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광주고법 형사1부(부장 김태호)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형이 확정된 백모(1992년 사망 당시 63)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연합뉴스가 16일 전했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목적으로 1972년 10월 17일 국회를 해산하는 등 기존의 헌정 질서를 중단시키고 유신체제를 선포했다. 이후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를 제정해 유신헌법을 부정·반대·왜곡·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했다. 이를 어기면 징역 1년 이상에 처하도록 했다. 농업에 종사했던 백씨는 1975년 9월 21일 밤 10시 30분쯤 전북 옥구군 옥구면 양수장 앞에서 주민들에게 박정희 정권에 대한 왜곡된 사실을 진술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백씨는 병충해가 발생해 피해를 입자 양수장 기사들에게 “논에 나락이 다 죽어도 박정희나 농림부 장관이 한 게 뭐냐”, “박정희 XXX 잘한 게 뭐 있느냐. 박 정권은 무너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일로 백씨는 1976년 2월 전주지법 군산지원에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으며, 같은 해 6월 항소심에서 원심의 형이 과중하다는 이유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헌법에 근거해 발령됐으나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무효”라면서 “백씨에 대한 공소사실은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하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 9호에 대해 2013년 3월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고, 검찰은 2017년 10월 과거사 반성 차원에서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김학의 성범죄 무혐의·신림동 강간 미수…가부장 인식 드러내”

    “김학의 성범죄 무혐의·신림동 강간 미수…가부장 인식 드러내”

    창립 36주년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대표“지금도 2가정 중 1곳꼴로 가정 폭력 발생”“여성문제는 인권 문제…여성만의 것 아냐”“신림동 강간미수 사건과 봉천동 주거침입 범죄, 그리고 김학의·윤중천 사건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적 인식의 방증입니다.” 지난 11일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시민사회단체들은 김학의 사건의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합당한 처벌, 철저한 검찰 개혁을 촉구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 전화 대표와 관계자들은 단체의 36주년 기념행사가 예정돼 있었지만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다. 지금도 우리 사회 어디에선가 고통 받고 있을 여성들 때문이다. ‘고통 받는 여성과 함께 하겠다’는 모토 아래 1983년 출범한 한국여성의 전화가 36주년을 맞았다. 강산이 3번 이상 바뀔 동안 여성에 대한 인식도 크게 개선된데다 지난해 미투운동이 여성운동의 큰 전환점이 됐지만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들은 여전히 목마르다. 지금도 다양한 여성 차별 사건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도 폭력이 허용돼서는 안 된다.” 36년째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다. ‘페미니스트 대통령’, ‘페미니즘 정책’ 등 여성 운동이 낯설지 않은 사회가 됐지만 창립 이전보다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의 범위는 오히려 넓어졌다. 80년대에는 주로 가정 폭력이 주된 문제였다면 2019년에는 성폭력, 성매매, 불법 촬영 문제 등 다양해졌다. 이에 발맞춰 한국 여성의 전화도 저변을 넓혀왔다. 현재는 전국 25개 지부가 함께 활동하는 전국 조직으로 커졌다. 고 대표는 지난 11일 서울 동작구 36주년 기념 행사장에서 서울신문 기자와 만나 “여성 폭력 없는 성평등한 세상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많은 여성과 만나고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운동이 보편화 됐지만 그만큼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 때 나타나는 반발 심리)도 커 분노스럽다”면서 “혐오를 일삼는 분들에게 ‘평등을 믿는다면 당신은 페미니스트’란 말을 해주고 싶다”고 밝혔다.-여성의 전화를 짧게 소개한다면. “처음 출발은 가정폭력 위주였지만 이제는 폭력 상담뿐 아니라 성희롱, 성차별 문제 전반을 다룬다. 폭력의 범위도 넓게 본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불법촬영 문제 등 여성이 당하는 모든 문제를 상담한다. 시대에 따라 활동 범위가 넓어졌지만 우리 활동에는 3가지 일관된 주장이 담겨있다. 첫째, 여성 문제는 인권과 젠더에 관한 문제이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둘째, 가해자에 대한 분명한 처벌이 필요하다. 셋째,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가부장적인 사회문화 인식을 개선하자. 이 3가지를 끊임없이 사회에 요구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30년 간 상담 오는 내용이 많이 바뀌었나. “가정폭력은 80년대나 지금이나 비슷하게 일어난다. 지금도 2곳 중 1곳 가정 꼴로 가정폭력이 발생한다. 생각보다 많지 않나. 다만 지금은 80년대보다 피해 여성들이 훨씬 적극적으로 구조 요청을 보낸다. 이제는 더 이상 가정 내 부끄러운 문제로만 여기거나 덮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구조를 요청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가정폭력을 범죄로 인지하고 신고하는 것이 과거와 큰 차이다. -가정폭력이 줄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정폭력을 처벌하는 법이 있지만 그 법이 아직까지도 가정을 유지하는데 더 큰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을 당했지만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쪽으로 판결이 나는 경우가 많다. 피해 여성은 고려하지 않은 반여성적, 반인권적 판단이다.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하다. 사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 중 상당수가 경제적 자립이 어렵다. 그래서 함부로 신고하지 못하는 경향도 있다. 여성의 자립 지원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최근에는 가정폭력보다 신림동과 봉천동에서 일어난 강간미수 및 스토킹 범죄가 이슈다. 여성에겐 일상조차 공포가 될 수 있는데 이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은 것 같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아 생기는 범죄다. 이런 인식이 있으니 따라와서 어떻게 해보려는 것이다. 우리가 김학의·윤중천 사건 수사에 대해 계속 문제 제기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뇌물 수수 문제가 아니라 피해 여성이 있는 성범죄라고 강조했는데 검찰이 김학의 전 차관의 성범죄를 무혐의 처리됐다. 이 모든 것이 여성을 물화(물적인 상품으로 대하는 것)하는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가부장적 인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실 여성에게는 꼭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물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공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정책들은 이러한 공포를 공감하는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이 부족한 측면이 많다. 또, 처벌을 강화해 스토킹처벌법을 만들어야한다 계속 우리 단체와 여러 시민단체가 주장하는데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여성이 세상의 절반이지만 늘 법안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외면받는다. 헌법에도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 안전할 권리가 있는데 지켜지지 않고 있어 아쉽다.” -여성운동에 관심갖는 사람이 늘었지만 그만큼 ‘백래시’ 등으로 공격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여성운동가로서 기운 빠지는 일 아닌가. “솔직히 분노스럽다. 페미니즘은 남과 여를 갈라서 대결 구도로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철학적 지향이다. 어떻게 하면 성평등의 가치를 남녀 모두가 알기 쉽게, 동의할 수 있게 설명할까 고민되기도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성평등이 하나의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향후 한국여성의전화의 활동 계획은. “여성 폭력 없는 성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성평등한 사회는 여성들만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나은 사회 되기 위해서 좀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앞으로도 많은 여성을 만나고 캠페인도 벌일 예정이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6)] “재판거래 의혹은 비약…물의야기 법관은 관행“ 양승태의 해명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6)] “재판거래 의혹은 비약…물의야기 법관은 관행“ 양승태의 해명

    피고인으로 법정에 들어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꼿꼿하다. 빳빳한 흰색 와이셔츠의 깃이 그의 목을 가려 더욱 고개가 꼿꼿해 보인다. 혼자 구속 피고인 대기실에서 나와 미리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옆에 앉는다. 아주 가끔씩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세 사람의 모습은 그야말로 제각각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자주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을 모아 얼굴을 괴는 모습을 보인다. 세 사람 중 가운데 앉은 박 전 대법관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앞에 놓여진 서류들을 살펴본다. 고 전 대법관은 특유의 엷은 미소 띤 얼굴이다. 미세하게나마 다른 자세와 표정들이 다른 세 사람은 한 자리에 모여 재판을 받고 있지만 사건에 관여한 정도나 역할, 입장이 모두 다르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세 사람의 5회 공판에서는 지난 재판에 이어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의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일부가 공개됐다. 지난 재판에서는 검찰이 피의자신문조서 가운데 혐의와 관련된 핵심 부분들을 설명하며 증거조사를 했고, 이날 재판은 변호인들이 검찰의 증거조사에 대한 의견을 반박하거나 피의자신문조서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설명하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인 변은석 변호사가 먼저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검찰 증거는 외교부에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공관에서 회의를 갖고 있다는 점과 법관의 재외공관 파견을 연결시켜 묻고 있는데 피고인(양 전 대법원장)의 답변은 ‘이건 지나친 비약’이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가 해외 공관에 법관들을 파견시키기 위해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의 재상고심을 이른바 ‘거래‘라고 지적했다.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는 ‘BH(청와대) 협조요청사항. 재외공관 법관 파견에 적극 협조, 외교부의 긍정적·전향적 태도 유도’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2010년 중단된 해외공관 법관 파견은 2013년 주 유엔 대표부와 네덜란드 대사관 등에서 재개됐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해외공관 파견하는 걸 어떻게 재판으로 연결시키겠느냐. 법관의 자질이나 인격을 모욕하는 것이다. 안 보냈으면 안 보냈지 어떻게 재판을 가지고…(그런 거래를 하느냐)”라며 혐의를 부인했다는 것이다. ●양승태 “법관 해외공관 파견 안 보내면 안 보냈지 어떻게 재판을” 앞서 지난 4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서도 임 전 차장은 검찰 쪽 서류증거 의견을 반박하며 관련 혐의에 대해 “저와 외교부 관계자 모두 강제동원 사건과 법관 재외공관 파견 문제를 대가관계로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두 가지를 연계해서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외교부 인사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반박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주장은) 남녀 간에 썸만 타고 있는데 확대해석해서 불륜관계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발끈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4회 공판에서 검찰이 제시한 양 전 대법원장의 피의자신문조서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임 전 차장이 청와대와 외교부 관계자들과 접촉한 것은 그가 ‘유능한 사람’이어서, 알아서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관들에 대한 인사 불이익 조치에 대해서도 양 전 대법원장은 거듭 부인하는 입장을 반복했다. 2015년 9월 지금은 헌법재판관이 된 김기영 당시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대법원 판례와 달리 긴급조치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하자 징계가 검토됐다. 이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짧게 축약을 하니 전체 뜻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것 같다. 내 취지는 당시 이런 사안에 관한 여러 하급심 판결이 엇갈려 혼선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쪽으로 통일하는 대법원 선고가 되고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급심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대법원 판결 취지에 반하는 선고를 한다면 혼선은 여전히 계속되어 법적 안정성이 위협받고 법령 해석의 통일이라는 대법원의 기능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대법원의 일방적 기능은 법적 안정성을 위한 통일 등 기능적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지 간섭한 것은 전혀 아니다. ”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강화 방안에 대해서는 이렇게 반박했다. “물의야기 법관 인사 방침은 제가 취임하기 전부터 내려오던 관행이었다. 처음에는 저는 물의야기 법관이라고 해서 인사심의관이 인사안을 만들어온 것을 보고 ‘인사는 일방적으로 행정처에서 다 하면서 이렇게 어려운 것은 나보고 다 하라는 것인가’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 공판에서 검찰이 이 부분에 대해 강조한 양 전 대법원장의 답변은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방안에 대해) 설명을 듣고 결재는 내가 한 게 맞다”면서도 “결재를 했다고 해서 (내용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었다. ●“물의야기 법관은 취임 전부터 내려오던 관행” 변호인은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에 대한 양 전 대법원장의 설명을 덧붙였다. “인사안에 대해서는 제가 거의 다 행정처에서 올린 의견대로 결정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은 이런 문서가 있으니까 전부 대법원장이 결정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런 내용은 행정처에서 제가 이렇게 만들어오라고 지시하거나 행정처가 만들어온 안에 제가 고치라고 지시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인사안에 대해 대법원장이 실질적으로 강행하거나 결정할 권한이 전혀 없다. 제가 관여한 게 거의 없다”, “어떤 사람을 이 자리에 배치하느냐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대법원장이 하나 하나 알아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행정처에서 만들어 오는 것이지 어떤 사람을 특정해서 한 적이 없다.”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사건의 재상고심과 관련, 일본 전범기업의 소송 대리를 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한상호 변호사에 대해서도 다른 언급이 공개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한 변호사와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면서도 한 변호사가 이 사건의 소송대리를 맡은 것은 몰랐다고 했다. 이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2016년 말쯤에는 사건 대리를 한다는 걸 알았겠지만 그 전에는 언제 알았는지 기억할 수 없다. 처음에는 몰랐다고 진술한 것은 사건 접수 후 상당 기간 동안은 몰랐고 적어도 2016년 말쯤 전원합의체 들어갔을 때는 알고 있었다는 의미”라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을 바꿨다. 다만 한 변호사와 사건과 관련된 협의를 했다는 의혹은 여전히 부인했다. “그러면 한 변호사는 전원합의체로 회부하는 데 대법원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닌지 저는 되묻고 싶다. 전원합의체 회부는 대법원장 권한이 전혀 아니다” 변호인은 이게 양 전 대법원장의 일관된 주장이라며 만약 전원합의체 회부가 대법원장의 권한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대법원의 사건 처리 방향을 모르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이어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이 차례로 검찰 측 증거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오전 재판이 더딘 속도를 이어갔다.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가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의 의견서를 토대로 검찰에 석명을 요구했다. 변호인은 검찰의 기준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에 넘겨진 범행의 수가 129개라며 이게 맞는지 검찰에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했다. ●변호인들 “휴정기엔 재판 하지 말아달라…재판부도 쉬셔야” 박 전 대법관은 증인신문 일정에 대한 재판부의 검토를 요청했다.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는 휴정기에도 재판을 할지 검찰과 변호인들에 의견을 물었다. 법원은 7월 마지막 주와 8월 첫째 주 2주간 휴정기를 갖는다. 이 기간 동안 재판은 진행하지 않지만 일부 시급한 사건이나 중요한 경우 재판이 열리기도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재판은 휴정기에도 재판을 이어갔다. 검찰은 “저희가 알고 있는 전례로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하계 휴정기에도 공판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공판이 많이 늦어졌다는 생각을 저희는 누누이 말씀드렸고 휴정기에 만약 재판을 진행하기 어렵다면 그 전에라도 보충해서 재판을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며 재판을 쉬지 않고 열어 달라고 호소했다. 오는 8월 10일이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기간이 끝나는 만큼 검찰은 재판이 늦어지는 데 대한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반면 변호인들은 휴정기에 재판을 하지 말아달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구속된 피고인이 있는 경우에 구속기간을 어느 정도 존중해서 재판을 하는 건 사실이기 때문에 감안이 되는 게 맞지만, 구속 기간 안에 기일 진행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돼 사건이 끝나지 않는 상황이라면 다시 일반 원칙으로 돌아가 휴정기 지침에 따른 기일 지정을 해주시면 감사하겠다”(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 “여름에 하계 휴정기를 갖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의 오래된 관습법에 해당한다. 재판부도 쉬셔야 되고 증인도 쉬어야 한다. 일주일에 두 번 재판하는 게 고군분투, 악전고투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다가 좀 기간을 주시면 저희가 정리할 시간도 가질 수 있다”(박 전 대법관 변호인), “증인신문에 들어간 뒤에는 3~4주 일정을 소화한 뒤 한 주 쉴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재판부도 좀 쉬시고 정리하실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한다”(고 전 대법관 변호인) 매주 두 차례씩 온종일 재판을 진행하는 재판부에 대한 걱정도 새삼스레 잇따랐다. 그러나 정작 이날 재판은 오후 9시 23분이 돼서야 끝이 났다. 임 전 차장의 이동식 저장장치(USB)에서 확보된 각종 파일들과 검찰이 증거로 낸 출력물이 같은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박 전 대법관 변호인 측 요구에 따라서다. 오후 2시 20분부터 시작된 검증기일이 7시간 이어져 1142건의 파일을 일일이 열어 임 전 차장의 USB 속 파일과 검찰의 출력물과 내용과 형식이 같은지 확인됐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강동길 서울시의원, 지방분권 역행하는 행정안전부의 행태 지적

    강동길 서울시의원, 지방분권 역행하는 행정안전부의 행태 지적

    강동길 의원(더불어민주당, 성북구 제3선거구)은 지난 13일 서울시의회 제287회 정례회 시정 질문에서 행정안전부의 한국지방세연구원의 운영, 서울시세입정보시스템의 폐지 및 전국적 지방세정보시스템의 구축 등 재정분권을 약화시키는 중앙정부의 행태에 대한 개선을 강력히 촉구했다. 먼저 강 의원은 서울시가 연간 20억원이라는 막대한 출연금을 부담하면서도 한국지방세연구원에 대한 관리·감독권이 전혀 없어 과도한 금액의 청사매입, 지자체 공무원들의 해외연수 자금 지원 등 설립 본래의 취지에 벗어난 조직 확장 및 방만한 운영에 대해 통제수단이 없는 모순을 비판했다. 이는 지자체의 출연기관으로서 당연히 적용되어야 할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아닌「지방세기본법」에 규정함으로써 출연 지자체의 지도·감독권을 회피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연구원의 설립 근거인「지방세기본법」제151조의 삭제 및 법 개정을 강력히 요청했다. 또한 지난 2011년 연구원이 설립된 이래 서울시가 출연한 금액이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출연한 총 금액의 24%(총 688억원 중 168억원)에 달하고, 그 액수는 서울시의 세입규모와 동반상승으로 재정부담이 가중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어 「지방세기본법」이 강제하고 있는 지자체의 법정출연금비율을 단계적으로 인하하거나, 실제 사업계획에 따른 지자체별 출연금을 안분하도록 개선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이어진 질의에서 행안부가 올해 2월 훈령개정(지방세입정보시스템 운영 및 관리규정)을 통해 20년간 인정해 오던 서울시 지방세입시스템을 폐지하고, 2021년까지 1668억원을 들여 전국 통합적 차세대 지방세입정보시스템 구축하는 것은 각 지자체의 상황과 특수성을 무시한 것으로 지자체의 고유권한인 지방세의 부과·징수권의 침해이며 더 나아가 헌법이 보장하는 재정분권의 핵심인 과세자주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강 의원은 “행정안전부가 지방자치단체를 통합적으로 지원한다면서 지방자치단체에 재정부담을 주는 기관을 설립한다”고 언급하며 “한번 설립되면 그 기관들의 조직 확장 논리에 따라 신규 사업과 분담금을 부담시키는 행태는 지방분권 시대에는 지양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진정한 지방분권은 과감하게 중앙에서 하는 일과 재원을 지방으로 이양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의 책임과 권한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강 의원은 박 시장에게 전국 지방자치단체 맏형인 서울시장으로서 행정안전부에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여 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해 줄 것을 거듭 촉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00자 인터뷰 18]임재성 “강제동원 日 기업, 피해자 화해하도록 정부가 외교력 발휘해야”

    [2000자 인터뷰 18]임재성 “강제동원 日 기업, 피해자 화해하도록 정부가 외교력 발휘해야”

    일제 시기 강제동원 피해자 측이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매각 신청(5월 1일)을 법원에 낸지 한 달 반 가량 지났다. 또한 일본 정부가 5월 20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2018년 10월 30일)과 관련해 제3국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한 기한(6월 18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이후 악화된 한일관계의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6월28, 29일)에서 한일 정상회담 개최 전망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대리인으로 일본제철과 후지코시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온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는 “정치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일본 기업이 과거 행위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화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변호사는 2015년부터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면서 일제 시기 강제동원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에 참가했다. 제주 4·3 사건 군사재판 생존자 18명을 대리해 재심, 형사보상 청구,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다음은 임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내용. 매각신청->감정->매각명령->송달->집행에 3개월 이상 Q: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들은 대구지법 포항지원과 울산지법에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과 후지코시로부터 압류한 자산을 매각해 달라는 신청을 냈다. 한 달 이상 경과됐는데 지금은 어떤 상황이고, 실제 자산 매각까지는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며, 시간은 얼마나 소요되는가. A: 5월 1일 보도자료를 냈을 때 ‘최소 3개월’이라고 했다. 법원이 매각 명령을 내리고, 일본 기업에 송달되어서 그 명령이 확정되는 순간까지를 계산한 것이다. 실제 현금화는 그 이후에 이루어진다. 절차를 얘기하자면 먼저 압류한 자산에 대한 감정이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압류된 일본제철과 후지코시의 자산은 비상장 주식인데, 액면가만 있을 뿐 시장 거래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법원은 감정을 통해 이 주식을 매각하면 집행 비용을 빼고서도 채권자(원고측)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를 판단한 이후, 매각명령결정을 일본 기업에 송달시킬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한국 법원행정처가 매각명령결정서를 일본 외무성으로 보내고, 일본 외무성이 일본 기업에게 송달시키는 방식인데, 일본 외무성이 사인 간의 민사소송에서 이 송달절차를 거부한 적은 없었다. 일본 기업들은 매각명령결정서를 송달받고 즉시항고 절차를 통해 다툴 수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유효한 이의제기 사유가 없는 상황이기에 매각명령결정이 그대로 확정될 것으로 본다. 이후 절차에서는 집행관의 재량권이 큰데, 집행관이 일본제철에게 자신의 주식을 사갈지 의사를 물어볼 수도 있고, 경매에 부칠 수도 있다. 법원, 일본제철에 의견서 기회 줘 기간 늘어날 듯 최근 법원으로부터 대리인 측에 통보가 온 게 있다. 민사집행법에 따라 매각명령 과정에 심문기일이 필수적이지만 채무자(일본 기업들)가 외국에 있는 경우라면 심문기일을 생략할 수 있다. 그런데 포항지원에서 심문기일을 열지 않으나, 일본제철에게 의견서를 제출할 기회를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주목을 많이 받는 사건이라 법원으로서도 방어권 행사를 꼼꼼하게 보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나쁜 일은 아닌 듯하다. 일본 기업들의 의견서 제출 절차가 이루어지게 되면, 매각명령결정이 확정되기까지의 기간이 다소 늘어날 수 있다. Q: 그렇다면 여전히 시간이 남아 있다. 이들 일본 기업 자산(일본제철 소유 PNR 주식 19만 4794주 9억 7400만원 상당, 후지코시 보유 대성나찌유압공업 주식 7만 6500주 7억 6500만원 상당)이 실제로 매각되기 전까지 대리인단이 그간 시도해 온 일본 기업과의 협의를 통한 화해 가능성은 있는가.이춘식 할아버지, 연내 해결 희망 A: 대법원 판결 이후 소송대리인단, 지원단은 일관되게 일본 기업에게 합의를 요청해왔다.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사과의 의사표시를 하고, 자발적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요청이었다. 현실적으로 지금 국면에서 합의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 기업들 본사에 수차례 방문하였지만 면담은커녕, 책임있는 답변도 듣지 못했다. 그 상황에서 법이 정한 집행 절차를 계속 늦출 수 없었다. 그동안 피해자분들에게 ‘일본 기업으로부터 사과를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씀을 드리면서 집행 절차를 미루는 것에 대한 동의를 구했다. 피해자분들 역시 일본 기업들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어 하셨기에 우리를 믿어주셨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이 사과는커녕 판결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고령의 피해자분들에게 기다려달라는 말씀을 드릴 수 없었다.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께서는 연내에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신다고 명시적으로 말씀하셨다. 대리인으로서 당사자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Q: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 이전까지 대리인들은 일본 기업과 화해를 위한 어떤 일들을 해왔는가. A: 광주 근로정신대 소송대리인단과 미쓰비시중공업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도쿄와 나고야에서 16차례 협상을 진행했다. 일본제철도 일본 내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대리인과 논의하는 과정이 있었다. 물론 이들 협상에서 어떤 결론을 내지는 못했지만, 일본 기업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의에 나섰던 역사가 존재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2010년을 전후로 일본 사회가 그래도 유연성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월급조차 주지 않고 노동을 강요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 확정 이후 일본 기업의 태도는 강경 일변도이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일본 기업 강경한 태도 배후에 일본 정부 있는 듯 Q: 일본 기업의 강경한 태도의 배후에는 일본 정부가 있다고 보는가. A: 그럴 것으로 추측한다. 판결 전에도 16차례 협상을 했던 기업이 판결 이후에는 일절 만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2012년 일본제철 주주총회에서는 한국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발언도 나왔다. 화해 통해, 사과와 배상 받는 게 최선의 길 Q: 지금의 한일관계는 사상 최악이라고들 한다. 그 배경에는 강제동원 판결을 꼽는다. 한일관계 타개책으로서 1)피해자 구제를 위한 2+2(한국 정부·기업+일본 정부·기업) 혹은 2+1(한국 정부·기업+일본 기업) 등에 의한 기금 방식 2)국제사법재판소(ICJ)에 대법원 판결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어겼다는 일본 주장이 맞는지를 가려보자 3)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전면적인 외교전쟁을 선언하고 국민들에게도 피해를 감수해 줄 것을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이런 논의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 ICJ에서 가리자는 방안은 부적절 A: 2, 3번은 정치가 없는 방식이다. 2번은 제3자에게 사법적 판결을 하라는 것인데 정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피해자의 권리구제에도 효과적이지 않다.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한쪽 정부는 감당할 수 없는 결과일 것이다. 일본에서도 강제동원이라는 역사적 사실 자체에 대해 인정한 것은 드물지 않다. 일본 내 소송에서 하급심 법원들은 일본 기업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후지코시 사건의 경우 “면학 기회가 있는 것처럼 기망하고 근로정신대로 권유해서 참가시킨 행위는 충분한 판단능력을 가지지 못하고 진학 기회가 제한돼 있던 어린 나이의 여성에 대해 이른바 그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고, 더불어 10대 여성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메이지헌법 하의 법제에서도 위법이라고 평가되는 권유방법”이라고 판시했다. 식민지 조선사람들을 속여서 일본으로 끌고 가 노예와 같은 강제노동을 시켰다는 점에 대한 양국의 공통된 인식이 존재한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ICJ로 가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양국 사회의 합의를 증진시키는 것이 아닌, 사법적 판단에만 목을 매달게 할 것이다. 판단을 받기까지 시간과 비용 역시 상당할 수밖에 없다. 외교전쟁 불사 주장은 이해 안돼  3번 같은 외교적 전쟁 주장은 그 자체로 의문이다. 일부 전문가의 주장으로 알고 있는데, 수사에 불과할 뿐이다. 민주화 이후 어떤 정권이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일본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나. 사실상 한국의 민주화 이후 피해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조직해가면서, 식민지 시기 과거사 문제가 상수가 된 상황에서 외교적 전쟁을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공방 속에서 결국 피해자들의 권리실현은 또다시 지연될 수밖에 없다. 싸울 필요가 있다면 싸워야겠지만, 목적이 무엇인지는 명확해야 하지 않겠나. 화해 통한 기금 조성, 초창기부터 논의된 방식  1번은 새로운 방식이 아니다. 강제동원 문제가 등장하였던 초창기부터 이야기되어 왔다. 독일 정부와 독일 기업들이 2차 대전에서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에게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을 설립하여 보상한 사례가 존재하며, 일본 기업이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중국 적십자 등을 통한 기금방식으로 배상금을 지급한 전례도 있다. 2010년 12월 11일 대한변협과 일본변호사연합회가 공동선언을 내고 기금방식의 해결에 대한 선호를 천명한 적도 있다. 기금방식이라고 하더라도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일본 기업이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전제 위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의사표시를 하고, 배상금을 출연하는 것이다. 이 원칙이 지켜진다면, 기금에 다른 주체들의 참여는 탄력적일 수 있을 것이다.  소송이 아닌 기금을 통한 해결이 더욱 적절한 이유는, 소송에 참여하기 어려운 많은 피해자들의 권리까지 구제할 수 있으며, 강제동원이라는 역사적 불법행위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의사표시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송에서는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연금기록 등 관련 자료가 대부분 일본에 있는 상황에서 엄격한 사법적 입증 책임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피해자가 많지 않다. 또한 판결을 통해서는 손해배상금 지급만을 강제할 수 있을 뿐인데, 피해자들께서는 자신을 끌고 갔던 기업들의 사과를 원하신다. Q: 중국에서는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 기업이 개별 사안에서 화해를 했는데 왜 다른가. A: 남한과 일본, 중국와 일본이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각 체결한 협정이 다르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중국은 일본의 교전국이라는 차이도 존재한다. 그러나 피해자 규모로 인하여 일본의 대응이 다른 것이 아닌가 의심도 있다. 한국은 피해자 숫자는 강제동원위원회에서 파악된 것만 17만명이고 범위를 넓히면 104만명까지 된다는 통계치가 있다. 화해 없으면 강제동원 소송 꾸준히 늘어날 것 Q: 현재 진행 중인 강제동원 피해 관련 소송은 몇 건 정도이고, 향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가. A: 2018년 10월30일 판결 이전까지 제기됐던 것과 그 이후를 비교해보면, 판결 이전까지 소송 건수로는 16건이었다. 소송 1건에 피해자 숫자는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이 경우도 있으나 모든 소송을 대리하는 것이 아니어서 정확한 확인은 어렵다. 판결 이후에는 피해자 기준으로 광주 대리인단이 54명, 서울 대리인단이 30여명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日, 협정 아닌 인권 시각으로 강제동원 봐야 Q: 대리인으로서 일본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A: 1965년 협정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라고 반복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도, 일본 기업들에 의해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청구권협정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양국 정부가 온전히 인식하고, 이들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적절한 합의를 체결하지 못했다는 정황들이 다수 확인되었다. 또한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사회는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시기 피해자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 사법부 역시 일본 기업의 불법행위는 존재했고, 청구권협정을 통해서도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다만, 소송을 제기할 소권이 소멸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배보다 배꼽 더 큰 日기업 소송비용  그렇다면 일본 정부로서는 1965년의 협정만을 주문처럼 되뇌일 것이 아니라, 1990년 이후 비로소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며 사회적으로 등장한 식민지 시기 여러 조선인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졌는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청구권에서 인권으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청구권협정에 대한 일본 정부의 기존 해석을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시기 피해자에게 온전한 배상과 사과가 이루어졌는지를 살피는 방식이야말로 진정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의 자산을 압류하는 등의 집행절차로 나아가면서 한일관계가 파탄나고 있다고 보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그렇다면 20년 가까이 소송에서 싸워 비로소 승소한 피해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침묵해왔던 피해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무너지는 양국관계라면, 그 관계는 문제다.  우스개소리를 하나 하자면 일본 기업들이 강제동원 소송에 대응하면서 국내 대형 법무법인에 막대한 변호사비용을 지불했을 것인데, 이 돈이 실제 피해자들이 청구한 손해배상금보다 클 것이다. 일본 정부든, 일본 기업이든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실질적으로 더 손해일 수 있다. ‘국제법 무시한 대법 판결 잘못’ 日 시각이 잘못 Q: 일본에서는 한일협정이란 국제법이 한국 법률보다 상위에 있는데 한국 대법원이 그걸 무시한 판결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A: 비법률적인 주장이고, 사실 왜곡이기도 하다. 한국이나 일본은 국제법, 즉 국가 간 협정이나 조약을 체결하면, 그에 따른 별도의 국내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원론적 법체계가 아니다. 협정을 맺고 국회 비준이 이루어지면 곧바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는 일원론을 취하고 있다. 즉,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1965년 청구권협정은 그 자체로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지닌다. 국제인권법의 경우 국내법보다 상위 효력을 지녀야 한다는 논의가 있지만, 청구권협정은 인권협정도 아니다.  청구권협정이 법률의 효력을 지닌다면, 법률에 대한 최종해석의 권한이 사법부에 있다는 3권 분립의 원칙에 따라 청구권협정의 해석권한 역시 각 국가의 법원이 가진다. 즉 한국 내에서 청구권협정에 대한 배타적이고 최종적인 해석권한은 한국 대법원이 가진다. 한국 대법원은 그 권한을 행사하여 청구권협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반인도적 불법행위 손해배상채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해석한 것이다. 해석권한을 가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통해 13명 대법관 모두가 의견을 내며 치열하게 해석한 판결에 대해, 일본이 “한국 대법원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라는 부당한 비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서울, 대구, 광주 3개 지역에서 소송 진행돼 Q: 대리인단 구성은 어떻게 돼있나. A: 지역을 기준으로 할 때 서울과 대구, 광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는 법무법인 해마루가 대리인으로,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가 지원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구에서는 법무법인 삼일의 최봉태 변호사님이 이 소송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다. 광주에서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등이 지원단체로, 이상갑, 김정희 변호사님들이 대리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8년 10월 대법원 선고 이후 추가소송을 위해 대리인단 규모가 확대되었는데, 서울에서는 민변 공익변론센터, 광주에서는 광주 민변지부를 중심으로 대리인단이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한국보다 먼저 일본서 소송 이끈 일본인 지원에 감사 Q: 일본 측 지원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A: 한국에서의 소송 이전, 1990년대 일본에서 강제동원과 관련한 소송이 있었다. 모두 패소하고 2000년대에 한국에서 소송이 제기되어 결국 대법원 판결까지 내려진 것이다. 일본 소송 당시 결합하였던 일본 변호사들과 시민단체들은 한국 소송 과정에서도 많은 조력을 보냈다. 대법원 판결 이후의 방향에 대해서도 한일 시민사회가 함께 논의 중이다. 특히 일본 측 활동가들은 강제동원 문제를 일본 내에서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금요행동’이 대표적이다.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 앞에서 진행되는 캠페인인데,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일본 대사관 앞 ‘수요집회’는 많이 알지만, 정작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금요행동’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일본에서 일본 기업의 책임을 묻는 활동을 그 오랜 시간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 상상해보면 고개가 숙여진다.피해자 목소리 누군가 대변해야 Q: 대리인으로서 이번 소송에 임하는 자세라고 할까, 마음가짐은. A: 중압감이 크다. 같은 사무실에서 강제동원 사건을 같이 대리하고 있는 김세은 변호사는 ‘살얼음을 걷는 것 같다’고 한다. 집행절차에 나가가는 과정이 특히 그러했다. 일본 정부의 맹공격과 거대한 일본 기업들의 의도적인 침묵이 있다. 우리 대리인의 역할은 거대한 주체들이 서로 소리지르는 판 속에서 또 다시 배제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한일관계 파탄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여기 피해자의 고통도 좀 보아달라고 이야기하는 역할 말이다. 피해자분들이 정말 고령이시다. 판결에 이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죽기 전에 일본 기업에게 사과를 받고 배상을 받으시는 것, 누군가는 그걸 목표로 삼아야 하지 않겠나.   [강제동원 소송 관련 일지]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에 강제동원 근로자 1인당 1억원 배상 판결  12월 31일: 피해자 대리인, 일본제철 한국 자산 강제집행 신청 -2019년-  1월 3일: 대구지법 포항지원, 일본제철 한국 자산 압류 신청 승인  1월 9일: 일본 정부, 한일청구권협정에 근거, 한국에 협의 요청  3월 7일: 강제동원 피해자, 대전지법에 미쓰비시중공업 국내 자산 압류 신청  3월 15일: 울산지법, 후지코시 소유 국내 자산 압류 신청 승인  3월 22일: 대전지법, 미쓰비시중공업 국내 자산 압류 신청 승인  4월 4일: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 서울중앙지법에 일본제철, 후지코시, 미쓰비시중공업, 일본코크스공업을 대상으로 추가 손해배상청구소송  5월 1일: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 각 지방법원에 일본제철, 후지코시 국내 자산 매각 신청  5월 20일: 일본 정부, 대법원 판결과 관련한 제3국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설치 한국에 요청 6월 28, 29일: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서 한일정상회담 불투명 황성기 평화연구소장 marry04@seoul.co.kr
  • 박종문 헌재 사무처장 취임 “제 몫 다하는 헌재 돼야”

    박종문 헌재 사무처장 취임 “제 몫 다하는 헌재 돼야”

     박종문(60·사법연수원 16기) 신임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이 14일 취임식을 갖고 업무를 시작했다.  박 처장은 취임식에서 ‘신종여시(慎終如始)’라는 사자성어로 다짐을 밝혔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일의 마지막까지 처음과 같이 신중을 기하며 초심을 잃지 말자는 뜻이다. 박 처장은 “시대와 사회에 해야 할 몫을 다하는 헌법재판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재판 중심의 헌법재판소가 되도록 물적 인프라를 확충하고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며 “소통과 공감, 배려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갖춘 사무처장의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장관급인 헌재 사무처장은 헌재 인사와 예산 등 행정업무를 총괄한다. 헌재소장이 지명하는 자리다.  박 처장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내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09년 퇴임해 법무법인 원 대표변호사로 일했다. 2017년 3월부터는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직을 수행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최저임금 인상 시장경제 침해” “영리추구 안 막아”

    “임금은 사용자와 근로자의 합의·계약에 의해 결정되는 게 원칙인데 국가가 직종별 차이나 산업구조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기로 결정한 것은 헌법에 위배됩니다.”(중소상공인협회) “영세 자영업자나 중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은 그에 맞는 정책이 담당하고 최저임금으로는 임금 불평등을 해소하고 저임금 근로자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헌법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고용노동부) 13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공개변론에서 지난해와 올해 확정된 최저임금이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헌법 조항에 위배되는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고용노동부의 ‘2018·2019년 최저임금 고시’가 각각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낸 중소상공인협회의 대리인은 이날 “과거 인상률이 3~8% 범위였던 것에서 두 배 이상 연속으로 대폭 인상돼 중소상공인들의 경영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됐다”고 호소했다. 고용노동부는 2017년 7월에 전년 대비 16.4% 인상된 7530원을 2018년도 최저임금으로 고시했고 지난해 7월 다시 10.9% 오른 8350원을 2019년도 최저임금으로 고시했다. 협회 측은 “국가가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해야 한다는 헌법 123조 3항과 사영기업의 경영을 통제·관리할 수 없다는 126조를 어겼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어 “최저임금제도는 복지정책이 아니다”라면서 “복지를 통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데 국가가 해야 할 일의 부담을 자영업자들에게 넘겼다”고 비판했다. 반면 고용부 측은 “최저임금 결정은 노사 양측이 포함된 사회적 대화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다양한 주장과 경제지표를 모두 조사한 뒤 결정된 매우 기술적인 판단”이라면서 “정부는 2018, 2019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중소기업의 경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여러 지원책을 추진했다”고 반박했다. 또 “최저임금 지급으로 영리 추구라는 사기업 본연의 목적을 포기할 것을 강요받거나 기업 활동의 목표를 전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국가의 사기업 통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용부 측 대리인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정부도 최저임금 인상이 중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치명적이지 않도록 다양한 지원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부족함이 많아 실패나 부작용 지적도 나오지만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협회 측 참고인으로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와 고용부 측 참고인으로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이 참석해 최저임금 인상 효과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의견을 냈다. 이 교수는 “과격한 인상으로 경제적 약자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고 비판한 반면 김 이사장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과 임금 불평등 축소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홍남기 부총리·최태원 회장도… 각계각층 인사 추모 발길

    홍남기 부총리·최태원 회장도… 각계각층 인사 추모 발길

    홍 “민주화 등 헌신 기억 계기 됐으면” 최 “나라의 큰어른 잃은 것 같아 애통” 동교동 자택 경호 경찰도 단체조문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는 13일 조문객의 발길이 사흘째 이어졌다. 이날까지 빈소를 찾아 방명록에 이름을 남긴 조문객은 6000여명이다. 다만 전국적으로 빈소가 마련됐고 방명록에 이름을 적지 않고 조문한 이들을 포함하면 전국적으로 1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장례위측은 설명했다. 전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전달한 조화는 이 여사 영정 바로 오른쪽에 놓였다. 같은 편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보낸 조화가 배치됐다. 영정 왼쪽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놓였다. 지난밤에는 조화가 훼손되거나 분실되는 것을 막고자 오후 11시부터 빈소인 특1호실의 문을 닫아놓기도 했다. 이날도 차분한 분위기 속에 각계각층의 인사가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조문이 시작되는 오전 9시 정각에 맞춰 가장 일찍 빈소를 찾았다. 홍 부총리는 “고인께서 평생 해오셨던 민주화와 여권신장, 남북 평화통일에 대한 헌신과 기여를 이번에 다시 생각하고 기억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다지게 됐다”고 말했다. 뒤이어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의 안내를 받아 이 여사를 애도했다. 최 회장은 “나라의 큰어른을 잃은 것 같아 애통하다”고 밝혔다. 이 여사의 동교동 자택 경호를 담당한 경찰 기동대원 40여명도 정복 차림으로 빈소를 찾았다. 부대 관계자는 “경찰청장도 왔다 가셨고 사저를 지켰던 경호부대로서 다녀가는 게 당연한 도리”라고 조문 이유를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을 수행했던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도 귀국하자마자 장례식장부터 들렀다. 진 장관은 “여가부를 만든 것도 사실 이 여사님이시고 여권신장에 기여해 주신 것을 받들어 성 평등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추모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남인 건호씨도 빈소를 찾아 조용히 고인을 애도했다. 이 밖에도 문희상 국회의장, 이용섭 광주시장, 최문순 강원지사, 박상기 법무부 장관,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윤석헌 금감원장, 더불어민주당 안규백·김상희·금태섭 의원,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 정해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한승수·한명숙 전 국무총리, 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 하승창 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 함세웅 신부, 박영수 전 특검, 배우 추상미씨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곽상도의 반격...문 대통령 ‘직권남용’ 고소

    곽상도의 반격...문 대통령 ‘직권남용’ 고소

    “문 대통령 수사 지시 위법”과거사위 근거 법령도 없어“경찰청장 발언 진실 밝혀야”과거사위 상대로 고소 예정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수사 외압 의혹을 받은 곽상도(전 청와대 민정수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수사 지시가 위법하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곽 의원은 13일 문 대통령과 조국 민정수석, 박상기 법무부 장관, 이광철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 등을 직권남용, 강요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곽 의원은 지난 3월 18일 김 전 차관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수사 지시는 법령에 근거하지 않아 위법하다고 했다. 곽 의원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보도자료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에 의해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으면 피의자가 돼 심문 받지 않도록 규정돼 있다”면서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고 피의자가 돼 심문을 받은 것은 형법상 직권남용 및 강요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곽 의원은 자신을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 권고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도 존립 근거가 법령에 기초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국민의 권리·의무와 관련된 위원회는 행정부 훈령이 아닌 법령에 의해 설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곽 의원은 청와대발 기획 사정이 사실 조작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이는 정황들도 있다고 했다. 과거사위가 지난 3월 25일 수사 권고를 한 근거로 당시 청와대가 내사를 하고 있던 경찰을 질책했다고 했는데, 질책했다는 날짜인 2013년 3월 1일은 수사 권고 대상자 중 한 명인 이중희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청와대에서 근무를 시작하기 전이라는 것이다. 또 당시 민정수석인 곽 의원도 수사팀이나 경찰관을 직접 대면하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갑룡 경찰청장이 지난 3월과 4월 국회에서 이른바 ‘김학의 동영상’과 관련해 한 발언에 대해서도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며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곽 의원은 또 과거사위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무고,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다음주 중 고소를 한다는 방침이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신원철 서울시의회 의장·소병훈 국회의원, 구시대적 ‘지방의회 시민청원제도’ 뜯어고친다

    신원철 서울시의회 의장·소병훈 국회의원, 구시대적 ‘지방의회 시민청원제도’ 뜯어고친다

    13일 소병훈 국회의원(경기 광주시갑, 더불어민주당)은 시민 청원권 확대를 위한 지방자치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번 개정안은 시의원의 소개 없이도 일정한 수 이상의 주민 동의를 받으면 청원 제출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청원에 관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제출·접수·관리가 가능한 전자 청원시스템을 구축하게 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담고 있다. 청원권은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는 기본권으로 지방자치법 시행령에 따라 각 지방의회에서 규칙으로 청원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청원제도는 시의원 소개로만 청원서 제출이 가능한 제한적 구조와 방문 접수를 통한 문서 제출 등의 절차상 번거로움으로 인해 참여 없는 반쪽 청원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소 의원은 “지방의회는 시민의 삶을 가까이에서 근본적으로 변화 시킬 수 있는 곳”이라며 “시민의 참여와 요구가 증가하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 걸맞게 헌법에서 부여한 기본권인 청원권을 확대해야 한다.”라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개정안 발의를 제안한 서울시의회 신원철 의장은 “청원권은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청원권 확대는 시민의 정책 참여 욕구 충족과 권리 구제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라며 제안 취지와 청원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말했다. 또한 신 의장은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2017년 촛불민심을 통해 시민들의 폭발적인 정치 참여 욕구와 민의를 경험했다. 청원권 확대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대한 시민들의 바람과 참여를 독려하고 지원해야 한다”라며 청원권 확대를 위한 서울시의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청원권 확대는 시민이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 정책의 밑그림을 제시할 수 있는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시민과 함께 사회혁신을 이끌어내기 위한 신 의장의 취임 공약 사항이기도 하다. 한편 개정안에는 전자 청원 시스템 구축과 운영에 관한 사항을 조례로 정하도록 되어 있어, 서울시의회는 지방자치법 개정안 통과에 맞춰 ‘서울시의회 시민청원 조례’가 제정될 수 있도록 준비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5)] ‘유능한 후배들이 스스로 알아서’…책임 미루는 양승태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5)] ‘유능한 후배들이 스스로 알아서’…책임 미루는 양승태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수요일, 금요일 두 차례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 중계 합니다. 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사이가 그렇게 지시를 하는 사이가 아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유능한 사람이기에 알아서 하는 것이고 나는 지시한 적이 없다”, “인사심의관실에서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4회 공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조사에서 진술한 피의자신문 조서가 일부 공개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짙어지자 집 옆 놀이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입장을 밝힐 때부터 검찰 수사 과정 내내 양 전 대법원장이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는 것은 알려졌지만 그가 검찰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진술을 했는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공개된 양 전 대법원장의 검찰 진술을 종합하면 “나는 지시하거나 관여하지 않았다”로 모인다. 사법행정의 최종 결재권자이자 책임자인 만큼 각종 문건을 승인한 것은 자신이 맞고 관련 내용을 보고 받은 것도 맞다고는 인정했다. 그러나 그 보고 내용들은 결국 하급자들이 ‘알아서 한 것’이고 자신은 가장 마지막에 보고를 듣기만 했을 뿐이라는 취지다.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의 핵심인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과 관련해서 사법부 고위 관계자들이 청와대, 외교부와 재판 관련 논의를 했다는데도 양 전 대법원장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 “그런 것 하는 데 왜 대법원장 지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2013년 12월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공관에서 열린 이른바 ‘소인수회의’에서 청와대와 대법원, 외교부, 법무부 고위 관계자들이 모여 일제 강제징용 사건을 논의한 데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보고받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회의에 차한성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참석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도 “보고받은 기억이 없다. 들은 적이 있으면 기억하겠지만 전혀 들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2014년 3월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만난 사실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분을 알지 못한다”며 부인했고, 윤 장관에게 법관의 재외공관 파견을 요청한 사실 있냐는 질문에도 마찬가지로 윤 장관을 만난 사실도 없다고 잡아뗐다. 검찰이 외교부 직원의 이메일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윤병세 장관과 조우한 계기에 양 대법원장이 재외공관 확대에 대해 논의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발견됐다고 제시하니 양 전 대법원장은 “조우라는 것은 우연히 만났다는 건데 우연히 만난 것을 일일이 기억할 순 없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2014년 10월 열린 2차 소인수회의에서도 당연히 “몰랐다”는 반응이 나왔다. 양 전 대법원장은 2차 소인수회의에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참석한 사실에 대해 “사후에 보고받아 알게 됐고 사전에는 몰랐다”고 밝혔다. “박 대법관이 다녀와서 얘기한 것 같다. 전혀 사전 보고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박 전 대법관과의 진술이 엇갈린 것이 확인됐다. 박 전 대법관은 검찰 조사에서 “그런 정도의 자리라면 대법원장에게 보고하고 참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거듭 물었다. “박 전 대법관이 2차 회의에 참석하기 전 각급 법원을 상대로 일제 식민지 시대 관련 과거사 사건의 현황을 조사한 뒤 이를 회의에 지참한 사실이 확인되는데 피고인(양 전 대법원장) 지시로 박 전 대법관이 이를 지참하고 회의에 참석 한 것 아닌가”, “피고인의 지시에 따라 박 전 대법관이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챙긴 것 아닌가” 그러자 양 전 대법원장은 오히려 “처장은 업무 하나 하나마다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고 하는 게 아니다. 처장은 대법관이다”, “대법원장과 처장 사이가 그렇게 지시를 하는 사이가 아니다. (처장은) 대법원장이 사건 하나 하나를 갖고 지시를 하는 지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핵심 실행자이자 중간 책임자인 임 전 차장에게도 전혀 지시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이어갔다. 임 전 차장이 2016년 4~5월쯤 청와대 등을 통해 외교부에 강제징용 사건 관련 의견서를 내라고 독촉한 것과 관련, 양 전 대법원장은 “임 차장이 굉장히 유능한 사람이기에 알아서 하는 것이고 나는 지시한 적이 없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굉장히 유능한 사람이어서 챙겨보라고 따로 지시해야 할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들(외교부와 청와대)을 직접 접촉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임 차장이 의견서를 내기로 했는데 왜 안 내냐고 했을 뿐이다. 저와 연관된 사안은 아니다.” 처장도 차장도 대법원장의 지시 없이 ‘알아서’ 청와대와 외교부를 접촉한 뒤 모든 논의가 이뤄진 뒤에 대법원장에게 결과만 보고됐다는 것이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나 법원행정처 심의관을 지낸 후배 법관들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과 관련, 특정 쟁점에 대해 재판연구관에게 검토를 지시한 적이 있나요?”(검찰), “지시한 적 없습니다.”(양 전 대법원장) “정다주 전 기획조정심의관(현 지방법원 부장판사)이 작성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문건을 알고 있나요?”(검찰), “전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양 전 대법원장) “통합진보당 행정소송을 심리하던 재판부에 법원행정처 입장이 담긴 문건을 전달하도록 승인하지 않았나요?”(검찰), “그런 것을 하는데 왜 대법원장이 꼭 지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양 전 대법원장)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전 고등법원 부장판사)이 통진당 소송 현황을 상시적으로 보고했는데, 대법원장의 지시가 있던 것 아닌가요?”(검찰), “제가 시켜서 보고를 한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한 것입니다”, “대법원장이 최고위급 간부에게 그런 식으로 지시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양 전 대법원장)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 결재는 시인···“인사 조치 이유는 인사실이 알아서”당시 사법부의 정책에 반대하거나 정부를 비판하는 의견을 밝힌 법관들을 비롯해 이른바 ‘물의야기 법관’ 리스트를 작성해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와 관련해서는 양 전 대법원장은 최종 결재를 했음은 인정했다. 그는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들이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을 대법원장에게 보고할 때 한 명 한 명에 대해 설명하면서 정책 결정을 받았다고 진술했는데 사실인가”라는 검찰의 질문에 “사실이다”라고 답했다. 인사조치 방안에 승인한다는 뜻으로 문건에 표시된 ‘V’표시에 대해서도 “제가 했다. 제가 했거나 옆 사람에게 체크하라고 했으니 제가 한 게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은 인사조치를 왜 했냐는 질문에는 “인사실에서 왜 그렇게 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면서 “결재를 했다고 해서 이런 내용까지 다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 인사안에 대해서도 “결재는 내가 한 게 맞다”면서도 “행정처에서 올린 의견대로 결정한다. 실질적으로 대법원장이 관여하는 게 거의 없다”고 반박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각종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이 벌어진 가장 핵심적인 원인으로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이 지목됐다. 그러나 정작 그는 ‘유능한’ 후배 법관들이 ‘스스로, 알아서’ 논의하고 처리해 온 일들을 결과만 보고받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앞으로 법정에는 양 전 대법원장이 인정한 유능하고 스스로 일한 후배 법관들이 증인으로 나와 그와 마주하게 된다. 양 전 대법원장의 검찰에서의 진술을 후배 법관들이 어떻게 설명할지 주목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문현웅의 공정사회] 일제강점기 판사와 사법농단 판사

    [문현웅의 공정사회] 일제강점기 판사와 사법농단 판사

    “대한민국헌법은 전문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고, 위와 같은 헌법 규정의 취지는 일본제국주의집단의 강점기 동안 시행된 법령은 적어도 항일독립운동의 이념에 배치되는 부분에 한하여는 정당성을 부정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판사의 재판이 일본제국주의집단의 강점기 동안 시행된 법령을 준수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항일독립운동가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것과 같이 항일독립운동의 이념에 배치되는 한 우리 헌법상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김세완 전 대법관(1894~1973)의 후손이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낸 조사 대상자 선정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가 원고 패소판결하면서 선고(2010. 12. 24)한 판결문이다. 김 전 대법관 후손들은 위 소송에서 “판사로서 형사 관련 법규에 따라 기소된 사건에 합당한 법을 적용하고 합의된 결론을 토대로 작성된 판결문에 서명날인한 것을 두고 반민특별법 제2조 제15호 소정의 ‘감금·고문·학대 등의 탄압에 적극 앞장선 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법원은 “판사의 항일독립운동가에 대한 형 선고에 의하여 항일독립운동가는 죽임을 당하거나 일정 기간 교도소에 감금되게 되는데, 사형이나 징역형의 집행은 법집행의 외관을 가지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일본제국주의집단의 강점기에 항일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한 법은 우리 헌법상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정당성이 없는 법에 따른 사형이나 징역형의 집행은 실질상 살해, 감금과 다를 바가 없고, 그로 인해 항일독립운동가 본인이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이고 항일독립운동에도 타격이 가해짐은 자명하므로 이는 무고한 우리 민족 구성원에 대한 감금·고문·학대 등 탄압행위에 해당된다”며 김 전 대법관 유족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그러면서 “대한제국 시절 판사시험에 합격해 판사가 됐으나 경술국치를 지켜본 후 법복을 벗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현행 법관윤리강령은 “법관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정당한 권리행사를 보장함으로써 자유·평등·정의를 실현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을 법과 양심에 따라 엄정하게 행사하여 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를 확립하여야 한다. 법관은 이런 사명을 위해 사법권의 독립과 법관의 명예를 굳게 지키며 국민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법관은 공정하고 청렴하게 직무를 수행하며, 법관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를 갖추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법관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의식에 충실하여 법복을 벗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판사가 있었던 반면 오로지 자신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법관에게 요구되는 직업윤리의식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채 항일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 데 앞장선 판사도 있었던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이어 사법행정권 남용에 가담하거나 지시를 적극적으로 수행한 법관들의 재판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런데 이들 재판에서 경력 15년 내외의 부장판사들이 ‘윗사람’의 지시를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무력하게 수용해 왔는지 낱낱이 공개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우리 사회가 법관들에게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의식이 있을 것이라고, 그리하여 법관들이 정의·공정성·독립성 등에 충실할 것이라고 한 기대는 무참히 무너져 버렸다.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던 판사와 스스로 법복을 벗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판사가 있었던 것처럼 사법농단이 자행되던 전 정권 시절에도 ‘윗사람’의 부당한 지시를 거절하고 그러한 지시를 폭로하면서 스스로 사직을 한 판사가 있었던 반면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하여 ‘윗사람’의 부당한 지시에 충실해 판사로서 하지 말아야 할 업무를 수행한 판사가 있다. 법관윤리강령에 규정된 직업윤리에 충실했던 판사는 법원을 떠났고 그러한 직업윤리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던 판사는 여전히 법원에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형사재판에서 항일독립운동가에게 실형을 선고했던 판사가 법대에서 여전히 판사 봉을 휘두르는 듯하다.
  • “日, 위안부 문제에 무한책임…징용배상 판결 부정도 부적절”

    “日, 위안부 문제에 무한책임…징용배상 판결 부정도 부적절”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무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피해자들이 괜찮다고 할 때까지 항상 사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일본 내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로 알려진 하토야마 유키오(72) 전 일본 총리는 1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서 “일본은 전쟁으로 상처를 받은 한국과 중국 분들이 더는 사죄를 할 필요 없다고 말할 때까지 항상 사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 일본에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었다”면서 “식민지 지배에서 가해자는 피해자 쪽에서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2015년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 적이 있다”면서 “일본에서는 왜 일본 총리가 한국에서 무릎을 꿇냐며 분노했는데, 저는 옳은 행동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1991년 야나이 지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며 “한국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 노역 배상 판결과 관련해서 일본이 부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최근 한국, 중국에 대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강경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베 총리는 방위력과 군사력을 강화해 일본이 강력한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시대착오적인 사고”라면서 “모든 문제는 대화를 통해 마지막까지 노력해야 한다. 군사력으로는 진정한 평화를 결코 쌓아 나갈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평화를 지키려면 자위대를 강화할 것이 아니라 주변국과 어떻게 우호적 관계를 형성해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며 “위협을 줄이려면 상대에게 위협의 의도를 없애 주면 된다. 이것이 외교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자신의 저서 ‘탈대일본주의’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책에서 자신의 지론인 ‘동아시아 공동체론’을 재차 주창하며 “일본 정부가 미국의 비호 아래 군사 대국화를 꿈꾸며 헌법으로 금지돼 있음에도 전쟁에 참가할 수 있는 나라가 돼 미국이 시키는 대로 전쟁에 협력하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썼다. 또 “경제 대국의 여세를 몰아 정치대국(그레이트 파워)으로 도약하겠다는 일본인의 희망은 허망한 꿈”이라면서 “팍스 아메리카나, 팍스 차이나 대신 팍스 아시아나”를 지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2009년 제93대 일본 총리를 역임했다. 총리 시절 부인과 노모가 한류 팬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는 등 한국에 호의적인 일본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총리 퇴임 후에도 꾸준히 한일 위안부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현재 동아시아공동체 연구소 이사장 및 국제아시아공동체학회 명예고문을 맡고 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임지연의 내가갔다, 하와이] 하와이 섬의 숨겨진 비밀, ‘하와이 왕국’의 눈물 ②

    [임지연의 내가갔다, 하와이] 하와이 섬의 숨겨진 비밀, ‘하와이 왕국’의 눈물 ②

    매년 6월 11일, 하와이 섬 중심의 호놀룰루 시 일대에서는 과거 하와이 원주민 왕국의 초대 대왕이었던 ‘카메하메하 데이(King Kamehameha day)’ 기념식이 성대하게 개최된다. 하와이 섬 문화에 대해서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본 이들이라도, 과거 이곳에 ‘하와이 왕국’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리고 오직 ‘여행지’로의 하와이에만 관심있게 지켜보는 많은 이들에게 보란 듯, 하와이에 존재했던 유일한 하와이 왕국의 초대 대왕을 기념하는 이날 하루만큼은 ‘킹 스트리트(King Street, 왕의 동상이 세워진 거리라는 점에서 일직선으로 길게 뻗은 거리명 역시 킹스트리트다.)’에 우뚝 선 킹 하메하메하 동상 위로 색색의 레이(lei) 장식이 등장하며 이 일대에서는 눈에 띄는 화려한 모습의 퍼레이드가 진행된다. 하와이 일부 관광지역을 중심으로 365일 쉬지 않고 실시되는 다채로운 축제에 현지 관광업 종사 업체들과 해외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열광하는 것과 비견해, 킹 하메하메하 데이 행사에는 현지 원주민들의 참여와 관심이 줄을 잇는 다는 것이 눈에 띄는 특징이다. 그런데 이날 하루 들뜬 축제 열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축제에 참여한 이들 중에는 원주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과거 하와이 왕국을 상징했던 깃발을 한 손에 든 이들의 수가 제법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의 시선 속 이들의 모습은 비록 미국의 50번 째 주인 하와이에서 출생, 미국 시민으로 성장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섬의 원래 주인인 ‘원주민’ 출신이라는 의식을 가진 이들로 비춰졌다. 이들에게 어떤 속사정이 있었을까. 하와이 원주민 가운데 필자와 가깝게 지내고 있는 친구 중 한 사람인 A씨는 올해로 31세의 하와이 대학교 마노아 캠퍼스에서 인문학 박사 학위 과정 중인 학생이다. 학생이면서 동시에 현지에서는 시민 운동가로 꾸준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A씨가 꾸는 꿈은 ‘하와이 자치정부 수립’이다. ‘하와이 자치정부설(說)’은 외국에는 널리 알려진 바가 없다는 점에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매우 생소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하와이에는 그와 같은 하와이 자치 정부 수립에 대한 꿈을 가진 이들의 수가 제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과거 하와이대 명예교수인 ‘하우나니 카이 트라스크’(그의 이름 역시 하와이 전통 언어식으로 지어졌다) 박사는 ‘하와이’에 대해서 ‘휴양 천국’이 아닌 ‘미국의 식민지’라고 평가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A씨와 하우나니 카이 트라스크 박사 등을 포함한 하와이 자치정부 수립에 대한 꿈을 가진 이들은 주로 현지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이들로,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그들 스스로 하와이 섬의 주인 의식을 가진 소위 이 땅에 대한 ‘역사적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칭할 때 미국인이라는 테두리 대신 ‘하와이 주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흔히 검은 피부와 제법 큰 덩치의 외모를 가진 그들을 일컬어 미국 사람이라고 에둘러 부를 때마다 그는 ‘나는 하와이 원주민이며,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말과 문자,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소개한다.이 같은 의식에 대해 일각에서는 현존하는 유일한 파라다이스인 하와이에서 무슨 ‘독립운동’이냐며 비판의 목소리를 제기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세계인들이 상상하는 아름다운 지상낙원 하와이와 ‘독립운동’이라는 단어가 가진 ‘투쟁적 이미지’는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하와이 독립국’에 대한 의식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그 역사가 꽤 깊다. 원주민들이 하와이 독립정부 수립에 대한 소망을 거론할 때마다 가장 먼저 불거지는 역사적 사건은 지난 1778년 무렵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섬에 처음으로 상륙한 직후 벌어진 현지 인구의 급감 사건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일명 ‘하올레(haole)’라는 원주민의 언어로 지칭되는 대륙에서 건너온 백인은 그들 자신들에게는 면역력이 있으나, 현지 주민에게는 치명적인 전염병을 섬에 가져오게 되는데 그로 인해 무려 100만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진 인구수가 4만 명으로 급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원주민 몰살 사건이다. 그런데 당시 백인들은 원주민 몰살 사건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종교인 기독교를 전파한다는 명목 하에 하와이 왕국의 왕을 압박,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건설케 한 뒤 백인들을 위주로 한 이들이 스스로 농장주를 칭하고 원주민들을 농장의 노예로 전락시킨 사건이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1875년 무렵에는 백인들에게 참정권을 허용하는 헌법을 추진, 이로 인해 백인들은 섬에서의 정치적인 권력을 원주민들로부터 찬탈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또, 당시 백인들은 자신들이 선거권을 갖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원주민들이 가졌던 선거권을 박탈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소득이 있는 자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법안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대부분이 가난한 소작농이거나 노예 수준에 머물렀던 원주민들은 이로써 섬에서의 완전한 정치력을 상실하게 됐다. 더욱이 ‘하올레’로 불리던 당시의 백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막강한 미군 해병을 동원, 왕조를 전복하고 심지어 자신들의 뜻에 맞는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현지 원주민들은 당시 사건에 대해 미국 해병대가 궁전 앞에 진을 쳤으며, 이름 뿐이었던 원주민 출신의 여왕은 1893년 무렵 미국에 정치력을 포함한 모든 권한을 이양했다고 기억해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다. 하지만 미국은 이날에 대해 ‘평화적인 이양, 합병’이라고 기록해오고 있다. 이는 현지 원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돼 오는 당시 기억과는 반대되는 기록이다. 이 뿐 만일까.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는 원주민들에게 ‘하와이 원주민은 식인 습성을 가진 난폭한 인종이자 영아 살해를 즐겼다’고 가르쳤다. 또, ‘독재 왕권은 하와이 농토를 모두 장악하고 주민들을 노예로 부렸으며, 이를 해방시킨 것은 미국’이라고 교육해왔다고 현지 원주민들은 기억한다. 특히 미국 정부에 의해 주도된 ‘난폭적인’ 내용의 역사 교육은 하와이 국공립 교사과에 그대로 실렸고, 많은 수의 하와이 시민권자들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환경에 놓여졌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문서상으로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원주민들이 기억한 ‘진짜’ 역사적 사실들은 살아있는 하와이 원주민 각 가정에서 입에서 입으로 구전돼 전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하와이 원주민의 수는 전체 인구의 20~25%에 불과하다. 이들은 지속적인 실업률과 낮은 교육 수준(대부분의 현지 거주 학사 학위 수여 이상자는 외지에서 온 백인, 동양인이다, 더욱이 이들은 학사, 석사, 박사 등의 학위 과정 이수 이후에는 섬을 떠나서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저임금으로 고통 받는 ‘2등 국민’으로 전락한 셈이다. 또, 하와이를 떠올리면 항상 함께 기억되는 ‘훌라춤’은 본래 하와이 원주민의 전통 종교 의식 중 하나였으나, 이제는 그 의미를 상실한 채 오직 세계인의 구경거리가 됐다. 여기에 더해, 하와이 주의 8개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의 상당수는 미군의 핵 잠수함이 드나드는 병영 기지로 전락했다. 때문에 실제로 하와이 시정부가 소재한 호놀룰루 도시는 가장 큰 섬이 아닌 그 외의 ‘나머지’ 섬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탓이다. 거주민들 역시 대부분 호놀룰루 시 일대에 밀집해 거주한다. 천해의 자연을 품은 대부분의 섬이 태평양 한 가운데에 있다는 지리적, 군사적 의미로 미군의 요충 기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하와이에서도 가장 번화한 거리이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호놀룰루 시를 여행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하와이국기를 창문 밖으로 자랑스레 걸어 놓은 가정집들을 발견할 수 있다. 폭력적인 투쟁을 할 수 없는 미국 정부에 완전히 통제된 ‘하와이 군도’에서 원주민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평화적인 ‘독립 의지 표명’ 방식이 바로 자신들의 전통 국기를 게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호놀룰루 시에 소재한 시청과 박물관 전시관, 경찰서, 초중고교 등 모든 관공서에는 미국의 성조기와 함께 하와이를 상징하는 전통 국기가 함께 게양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처음 하와이 섬에 도착한 외국인 여행자들은 눈부시게 푸른 바다와 그 곁을 에둘러 싼 와이키키 해변이라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거기에 더해 ‘알라모아나’로 대표되는 거대한 쇼핑센터와 환상적인 여행지의 분위기 등에 취해 현지 원주민들의 이 같은 ‘독립’에 대한 염원을 눈치 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태평양 한 가운데 외떨어져 있는 하와이 섬의 진짜 주인인 원주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다면, 한 때 종교적인 의식을 위해 추었다던 그들의 ‘훌라춤’이 좀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호놀룰루=임지연 통신원 808ddongcho@gmail.com   
  • 미 앨라배마주, 강력한 낙태금지법 이어 아동 성폭행범 ‘화학적 거세법’ 승인

    미 앨라배마주, 강력한 낙태금지법 이어 아동 성폭행범 ‘화학적 거세법’ 승인

    강간과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에 대해서도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던 미국 앨라배마주가 이번에는 아동 성폭행 범죄 피고인에 대한 화학적 거세법을 승인했다. 11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케이 이베이 앨라베마 주지사는 주의회 상하원을 통과한 화학적 거세법에 전날 서명했다. 이베이 주지사는 “이 법률은 앨라배마의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발걸음”이라고 설명했다.올해 말부터 발효되는 이 법안은 13세 미만 아동을 성폭행한 피고인을 포함해 강간과 근친상간 등 특정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시행된다. 법안에 따르면 피고인은 가석방되기 한 달 전부터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생성을 억제해 성욕을 줄이는 주사제(초산메드록시프로게스테론)를 투입하게 된다. 주사제를 투입하는 비용은 피고인이 부담해야 하며 법원이 투약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판단할 때까지 주사제를 계속 맞아야 한다. 주사제를 맞는다고 해서 불임이 되는 것은 아니며 영구적인 것도 아니다. 주사제를 구입할 여력이 없는 사람에 한해 정부가 주사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 법안을 발의한 스티브 허스트 공화당 소속 주의원은 “혹자는 이 법이 비인도적인 처사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성폭행 당하는 아동을 생각해보라고 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앨라배마 지부는 “화학적 거세는 헌법에 어긋날 수 있는 이례적 처벌”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인권단체는 투약이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서 결정돼야 하는 사적 영역이라며 화학적 거세를 위한 강제 투약에 반대했다. 미국의 화학적 거세법은 1996년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통과됐다. 플로리다와 루이지애나, 위스콘신주도 유사한 법률을 갖고 있다. 해외에서는 인도네시아가 2016년 법을 개정해 화학적 거세가 가능하도록 했다. 미국을 비롯해 여러 연구에 따르면 화학적 거세를 받은 출소자의 재범률은 그렇지 않은 출소자에 비해 낮게 나타났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서울광장] 황교안 vs 이낙연의 ‘종로 빅매치’ 성사될까/이종락 논설위원

    [서울광장] 황교안 vs 이낙연의 ‘종로 빅매치’ 성사될까/이종락 논설위원

    최근 정치권 안팎에서는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달리고 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이낙연 국무총리 간의 내년 4월 총선 ‘종로 빅매치’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의 지지율대로라면 두 사람이 2022년 대선에서 대결하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다. 내년 총선에서 당운을 건 격돌을 준비하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각각의 진영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대선 전에 맞붙어 승기를 잡아 달라는 주문을 쏟아내는 상황이다. 하지만 둘 중 한 사람이 종로에서 패배한다면 대권 가도에서 탈락하는 ‘서든데스’라는 점에서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빅매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사전에 정리돼야 할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김세연 원장은 “황교안 대표가 내년 총선에서 종로에 출마하는 것이 정공법”이라며 황 대표의 종로 출마를 부추기고 있다. 당 선거 전략을 짜는 핵심 축인 여의도연구원장이 사실상 황 대표의 종로 출마를 공개적으로 권유한 것이다. 한 번도 자신의 선거를 치른 적이 없는 황 대표가 대선후보가 되려면 정치 1번지에서 경쟁력을 검증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당 대표가 자기 선거에 묶이게 되면 전체 총선 판이 꼬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비례대표로 출마해 전국 지원 유세를 돌며 총선을 지휘하는 것이 당에 유익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황 대표는 “당이 원하는 일이라고 하면 무슨 일이든 당의 입장에서 결정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은 상황이다. 여권에서도 차기 대선주자 선두인 이낙연 총리 활용법이 거론되고 있다. 이 총리가 경쟁력을 검증받으려면 종로 출마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이 총리는 지난달 ‘총선 역할론’과 관련해 “저도 정부·여당에 속한 일원으로 거기서 뭔가 일을 시키면 합당한 일을 할 것”이라며 지역구 출마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하지만 종로는 정세균 전 국회의장의 지역구로 정 전 의장의 양보가 선결돼야 한다. 정 전 의장에게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 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 총리가 종로에서 출마한다면 차기 총리로 정세균 전 의장이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거론되는 이유다. 이 총리가 종로에 출마하지 않고 다른 지역구를 선택한다면 여권에서는 총선 전 부분 정계개편 차원에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총리 카드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거주지를 종로로 옮긴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임 전 실장은 2016년 총선 때 서울 은평을에 출마했다가 당내 경선에서 떨어진 전례가 있다. ‘정치 1번지’인 종로에서 당선돼 유력한 대선주자의 반열에 올라서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는 터라 이 총리에게 지역구를 양보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이낙연 현직 총리와 황교안 전직 총리가 유력한 대선주자로 떠오름으로써 흑역사로 끝난 ‘총리 대망론’이 실현되지 않겠냐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온다. 역대 총리는 잦은 언론 노출 덕분에 재임 중 높은 지지를 받아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지만, 정치적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다는 한계 때문에 대권까지 쥐지는 못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국무총리를 지낸 인물은 이낙연 총리가 25번째다. 직선제 이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당시 최규하 총리가 10대 대통령에 올랐지만, 유신헌법 체제하에서 ‘체육관 선거’로 뽑힌 간선 대통령이었다. 역대 총리 중에는 이회창 전 총리가 대권에 가장 근접했었다. 대법관, 감사원장 등을 역임한 이 전 총리는 1993년 12월부터 1994년 4월까지 불과 125일만 재임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대드는 ‘대쪽’ 같은 이미지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1997, 2002, 200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끝내 대권을 품진 못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총리 출신이 대통령이 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총리는 2인자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개성 있는 정치활동을 못 하고 반대로 이회창 전 총리처럼 2인자를 넘어 대통령과 맞서면 국민이 너무하다는 평가를 내리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총리직은 ‘주어지는 자리’지만, 대통령은 권력의지의 산물이자 정치적 쟁취의 결과물이다. 총리 이력 자체로 대선 지름길에 올라타긴 어렵다.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이 명운을 건 사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에게 승리를 쟁취해 오라는 요구가 쏟아지면 총리 출신 간의 ‘종로 대혈투’는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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