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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멜로에서 역사물까지… 만화원작 드라마가 대세

    멜로에서 역사물까지… 만화원작 드라마가 대세

    ‘하얀거탑’, ‘꽃보다 남자’, ‘대물’, ‘풀하우스’, ‘궁’….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인기 드라마의 원작은 다름 아닌 만화. 가벼운 멜로부터 역사의 비극을 담은 대작까지 드라마의 콘텐츠를 구성하는 작품들은 일정한 시청자층을 확보하면서 요즘 방송가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최근 종영된 MBC 주말드라마 ‘닥터진’은 일본 만화가 무라카미 모토가의 만화 원작을 한국 현실에 맞게 바꿨다. 대한민국 최고의 외과의사가 시공을 초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흥선대원군을 돕는다는 내용이다. 원작인 ‘타임슬립 닥터진’은 일본 개항기를 배경으로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무사 사카모토 료마를 돕는 이야기다. 대형기획사인 SM의 자회사인 SM C&C가 제작한 SBS의 ‘아름다운 그대에게’는 일본에서 무려 1700만부의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린 같은 이름의 만화가 원작이다. 높은 인기 덕분에 일본에서는 무려 두 차례나 드라마로 제작됐다. KBS의 ‘각시탈’은 지금의 40대가 유년기에 즐겨봤던 허영만씨의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한국형 슈퍼히어로를 등장시켜 관심을 끌고 있다. 만화의 드라마화는 멜로 일색이던 국내 드라마 장르에 다양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다. 상상력에 기반한 무궁무진한 소재로 판타지, 미스터리 스릴러, 액션 등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던 색다른 드라마를 만들게 했다. 만화원작 드라마는 일본에서 1990년대에 봇물을 이뤘다. 국내에선 2000년대에 시작됐다. 일본 드라마가 만화의 대사까지 그대로 옮겨놓아 유치하기조차 하지만 국내에선 일정 부분 각색한다는 게 차이점이다. 국내에선 2008년 ‘꽃보다 남자’가 이같은 흐름을 이끌었다. 대상은 주로 학원물이다. 다만 SBS의 ‘아름다운 그대에게’는 원작과 달리 전반적인 극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일본만화의 드라마화 배경에는 투자 대비 수익이 보장된다는 경제논리가 작용한다. 한 방송인은 “인기 일본만화를 원작으로 할 경우 이미 국내에 형성된 탄탄한 팬층을 시청자로 확보할 수 있다.”면서 “각색을 거쳐 ‘한국화’한 다음 일본, 중국 등에 다시 수출하기도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방송사 입장에선 위험부담이 많이 줄고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 정서적 동질감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제작 흐름은 제작비가 한정된 케이블채널이나 종합편성채널에서 두드러진다.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만화 원작에 매달리다 보면 드라마 작가의 부족과 빈약한 아이디어라는 제작풍토를 쉽게 걷어내지 못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만화 의존 현상이 고착하면 국내 드라마의 콘텐츠 창작집단은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본만화로의 쏠림 현상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안방극장에 부는 ‘일류’(日流)에 대한 위기의식은 자동차·전자 산업이 흥하고도 핵심부품은 여전히 일제를 써 ‘남 좋은 일만 시킨다’는 논리와 비슷하다. 무엇보다 일본 만화에 의존한 채 한국 작가를 양성하지 않는다면 ‘한류’ 드라마의 활성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의 거대한 시장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중국사무소에 따르면 2006년부터 한국 드라마는 중국 시장에서 조금씩 비중이 줄고 있다. 베트남과 태국, 필리핀 등에서 한국 드라마가 인기라지만, 가깝고 큰 중국시장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블루오션이다. 한편, 국내 만화 육성 차원에서 만화원작에 접근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대중문화평론가인 정덕현씨는 “최근 웹툰이 활성화돼 국내 만화의 저변이 넓어졌고, 드라마 원작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졌다.”면서 “일본만화에 대한 과도한 콘텐츠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 만화를 육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갤러리로 들어온 ‘뒷골목 그래피티’

    갤러리로 들어온 ‘뒷골목 그래피티’

    그래피티와 캔버스. 어째 궁합이 안 맞아보인다. 그래피티라면 아무래도 ‘작품만 봐주세요.’라고 하얗게 속삭이는 화이트 큐브보다는 어디 한구석에 쥐똥도 굴러다니고 파리 좀 날아다니는 후미진 뒷골목에 있어야 어울릴 성 싶다. 서울 방배동 갤러리토스트는 이런 그래피티 작품을 갤러리에다 끌어다놓은 이색적인 연속 전시를 선보인다. 장 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 앤디 워홀 같은 이들로 낙서화니 팝아트니 하는 말로 유명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그래피티가 크게 인정받는 분위기는 아닌 상황에서 마련된 전시다. 홍삼, 반달, 제이플로우, 후디니의 전시가 10월까지 이어진다. 4인 릴레이 전시에서 1번 타자로 19일까지 ‘스트리트 보이’(Street Boy)전을 여는 홍삼(29)을 만났다. ●“스프레이 작업땐 해방감 느껴” 아니나 다를까 “기분이 묘했다.”고 했다.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한다. “굵은 마커나 스프레이 작업은 해 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알 수 있어요. 해방감이랄까, 그런 기분. 그런데 캔버스 위에다 하려니까 그림 그리는 작업하는 사람처럼 얌전해지더라고요.” 그 느낌은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어떤 작품은 스프레이 느낌이 충만한데, 다른 작품에서는 스프레이가 양념 정도로만 쓰였다. 이 묘한 기분은 작가의 정체성과도 관련있다 했다. 원래 어릴 적 꿈은 이현세, 허영만 같은 정통 만화가. 그래피티엔 고등학교 때 홀딱 빠졌다. 홍익대 애니메이션과로 갔지만 그때 재밌게 했던 것은 교내 힙합동아리였다. 노홍철, 다이나믹 듀오와 함께 어울렸던 시간이다. ‘홍삼’이란 이름도 그때 얻었다. “본명이 김홍식인데 형들이 장난삼아 부르던 이름이 홍삼이었어요. 작가 이름으로 굳어버린 거죠.” 최종 진로는 미술로 정했다. 그래피티계에선 드물게도 가장 한국적인 정규 미술교육을 확실하게 받은 셈이다. “심지어는 어릴 적에 미술학원도 착실하게 다녔어요. 하하하.” 그래서인지 그가 내놓은 캐릭터 ‘스트리트 보이’에서는 그래피티하면 떠올리는 반항이나 정치적 풍자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예술이란 게 세상 얘기라 정치가 빠질 순 없겠지만 자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의미를 과하게 찾으시더라고요. 정치적인 것도 있을 수 있는데, 저는 그것보다는 하나의 놀이문화처럼 봐 줬으면 해요.” 놀다 보니 문화가 됐고 문화가 되다 보니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생겨났던 것이지 처음부터 정치적인 것을 의도하진 않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의 스트리트 보이는 빨강 후드티에 파란 바지를 입고 흰 모자를 눌러쓰고 있지만 얼굴은 텅 비워뒀다. 작가 스스로도 “아마 전 세계적으로 그래피티 작가들 가운데 자기 캐릭터에서 얼굴을 지워버린 건” 자신뿐이라고 말한다. 그걸 작가는 “슬픔”이라 불렀다. ●“한글 응용한 작품 선보이고 싶어” “그래피티에도 역사성이 있죠. 제가 선보이는 건 1970~80년대 풍의 작업이에요. 한국에서 그래피티가 널리 퍼지면서 다양하게 분화됐는데 최근 일부 작가들의 경우 유행에 부합한 상업적인 분위기로 일러스트레이션처럼 흘러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한국의 그래피티는 이런 거라고 얘기를 만들어낼 수 없어요. 그래서 뿌리부터 밟고 나가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몇몇 분들은 왜 요즘 같은 시대에 옛날 풍으로 작업하느냐는 말도 많이 하세요.” 좀 재수 없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고 물었더니 “먹물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고 흔쾌히 인정했다. 그래도 그래피티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작업, 한글을 응용한 작업을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그의 작업을 길거리에서 만날 수는 없을까. 홍대 앞에서 제법 작업했는데 개발물결에 통째로 사라져버렸단다. 대신 압구정 굴다리를 가보라 했다. 길거리 작업에도 룰은 있다. 원래 있던 그래피티 위에다 덧대 그릴 수 있다. 단, 더 잘 그린다는 보장이 있어야만 한다. 재미, 놀이의 요소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작품 가운데서도 ‘I B T Y’라는 문구가 보인다. 아이 베터 댄 유(I Better Than You), 너보다는 내가 낫다는 말이다. 이번 전시는 19일까지. (02)532-646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동국대 故박영석 도전정신 기린다

    지난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고(故) 박영석 대장의 도전 정신을 가르치는 강의가 개설된다. 동국대는 동문인 박 대장의 삶과 도전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올 2학기부터 ‘산악인 박영석의 탐험과 도전’이라는 교양강좌를 개설한다고 5일 밝혔다. 강좌 내용은 산악 탐험의 정의와 역사, 인류의 주요 탐험 업적, 박 대장이 세계 최초의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과정 등으로 구성된다. 남산과 북한산, 설악산 등지에서 실제 산행을 통해 안전수칙, 비상사태 대처법과 장비사용법 등 등반의 기초를 배우는 현장교육도 병행한다. 박 대장의 대학시절 산악부 동기인 김진성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상임이사가 책임 교수를 맡고 이인정 대학산악연맹 회장, 배경미 아시아산악연맹 사무총장, 허영만 화백 등 평소 그와 가까웠던 지인들이 강의에 참여할 예정이다. 김진성 상임이사는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히말라야와 세계 오지에 끝없이 도전한 박 대장의 정신이 젊은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줘 자신과의 싸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14) 만화 수출을 말하다(상)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14) 만화 수출을 말하다(상)

    우리나라가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에 시동을 건 것은 1960년대 중반이다. 이후 수십년 동안 우리나라는 차를 만들고 배를 만들고 TV를 만들어 팔아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문화 수출에 있어서만큼은 후진국을 면치 못했다.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의 수익이 한국 자동차 수십만대와 맞먹는 울적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도 문화 수출국 대열에 합류했다. 이제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이 ‘한류’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만화도 차세대 한류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우리 만화의 현주소와 미래, 지속가능한 한류로 도약하기 위한 제언을 2회에 걸쳐 다뤄본다. 지난해 말 발간된 ‘2011 만화산업 백서’에 따르면 세계 만화시장은 최근 5~6년 동안 소폭 성장과 소폭 하락을 반복하며 정체된 흐름을 보였다. 세계적으로 출판 만화 시장이 위축된 상황이지만 디지털 만화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서에 인용된 다국적 회계감사 기업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통계를 보면 2010년 세계 만화시장 규모는 60억 2800만 달러(약 6조 8000억원)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2.4%가량 하락한 수치지만, 2015년에는 63억 9200만 달러로 예측됐다. 디지털 만화시장은 2010년 1억 5400만 달러로 전체 시장의 3%에도 미치지 못했다. 아직까지 시장 규모는 작은 편. 그러나 폭발적인 성장세를 거듭해 2015년에는 6억 6200만 달러로 10% 이상을 점유할 것으로 예상됐다. 세계 만화시장의 권역별 점유율을 살펴보면 ‘만화 왕국’ 일본이 버티고 있는 아시아 지역이 27억 8700만 달러(46.2%)를 기록하며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가 주축인 유럽·아프리카·중동 지역의 24억 3000만 달러(40.4%)를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미국·캐나다 중심의 북미지역이 6억 9000만 달러(11.6%), 브라질 등 남미 지역이 1억 달러(1.8%)로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세계 만화시장에서 우리의 위치는 어느 정도일까. 국내 만화계는 3~4위권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산출한 2010년 우리 만화 매출 규모는 6억 7400만 달러(약 7419억원)다. 반면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출판 만화 를 중심으로 잡은 매출 규모는 3억 1900만 달러. 이 같은 수치를 PwC 자료와 단순 비교하면 콘텐츠진흥원 통계로는 압도적인 1위 일본(19억 6600만 달러)에 이어 2위다. 만화영상진흥원 통계를 대입하면 일본, 미국(6억 3500만 달러), 독일(5억 4800만 달러), 프랑스(5억 1000만 달러)에 이어 5위에 해당한다. 우리 만화의 수출 규모는 1999년 24만 달러에 불과했으나 도약을 거듭해 2000년대 중반 300만~400만 달러대를 유지하다가 2010년 815만 달러로 대폭 증가했다. 어린이 학습 만화의 선전이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지역에서 수출이 늘었는데, 특히 어린이 학습 만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동남아 지역 수출액이 2009년 52만 달러에서 2010년 200만 달러로 수직상승했다. 지역별로는 유럽지역 수출이 225만 달러(27.7%)로 가장 많았다. 반면 해외 만화 수입은 2008년 593만 달러, 2009년 549만 달러, 2010년 528만 달러로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일본 만화 수입 비중이 90% 이상으로 절대적이다. 우리 만화는 언제부터 해외로 나갔을까. 넓은 범위에서 따져보면 근대 만화 초창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09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교민들이 발행하는 신문인 ‘신한민보’에 당시 한·일 관계를 양쪽 시각으로 비교하는 만화가 게재됐다. 이보다 3개월 앞서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이도형의 삽화를 우리 근대 만화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에 한국 만화는 출발과 동시에 해외로 나선 셈이다. 실질적인 해외 진출 사례는 1960년대에 나왔다. 한국형 히어로 만화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로 유명한 김산호가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만화 전문 출판사인 찰튼 코믹스의 전속 작가로 활동하며 700여편의 작품을 그렸다. 서부 활극 ‘샤이언 키드’가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1980년대까지는 해외 진출이 드문드문 이뤄졌다. 1976년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이 일본에서 ‘고바우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 책을 만화가 아니라 이웃 한국을 이해하려는 취지의 사회교양 서적으로 분류됐다. 이후 1985년 방학기의 ‘임꺽정’과 ‘데카메론’, 1986년 이현세의 ‘활’, 1987년 박흥용의 ‘백지’ 등이 일본에서 차례차례 출간됐다. 1990년대 들어 한국 만화의 해외 진출은 보다 활기를 띤다. 먼저 일본의 영향이 있었다. 일본 만화는 1991년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글로벌화를 꾀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 만화도 다양하게 흡수하기 시작했는데, 한국 만화도 그 대상이 됐다. 일본 출판사 고단샤의 경우 자사 잡지를 통해 황미나의 ‘윤희’, 오세호의 ‘낚시’ 등을 연재하기도 했다. 대원 등 국내 만화 전문 출판사들도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국내 만화시장이 커지고, 잡지 시스템이 정착되며 토종 콘텐츠를 다량으로 확보했기 때문이다. 1994년 지상완·소주월의 ‘협객 붉은매’가 타이완 잡지에 연재되는 것을 시작으로 한국 만화는 타이완, 홍콩, 태국 등 일본 이외 아시아 시장을 개척했다. 2001년에는 국내 대명종 출판사가 일본에 법인을 만들어 타이거코믹스라는 브랜드로 김혜린의 ‘비천무’, 허영만의 ‘세일즈 맨’ 등을 출간하며 현지 시장을 직접 공략하기도 했다. 미국 시장에 대한 도전도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 국내 무협 만화의 대가 이재학은 대표작 ‘검신검귀’를 ‘더 데몬 워리어’라는 제목으로 미국 시장에 내놨다. 1997년에는 ‘스폰’으로 유명한 미국 출판사 이미지코믹스는 장태산, 김재환, 김태형 등 국내 작가를 섭외해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2000년 국내 유명 스토리 작가 야설록의 회사 야컴이 미국 현지 법인을 설립해 이태행, 형민우 등의 미국 진출에 징검다리를 놓는다. 한국 만화는 1990년대 후반부터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이탈리아 볼로냐 도서전, 미국 샌디에이고 코믹콘 등에 꾸준히 참여하며 일본 만화의 아류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2003년 프랑스 앙굴렘 축제에 주빈국으로 참여한 뒤에는 이두호, 김동화, 이희재, 박흥용, 박건웅 등 작가주의 작가들의 유럽 진출이 도드라졌다. 같은 해 프랑스에서 ‘도깨비’라는 한국 만화 전문 잡지가 등장하기도 했다. 작품성도 인정을 받았다. 박건웅의 ‘꽃’과 ‘노근리 이야기’는 2007년 앙굴렘 축제에서 프랑스 만화비평가 기자협회가 선정하는 아시아만화상 후보에, 앙꼬의 ‘열아홉’은 2010년 축제 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우리 만화는 아시아, 서유럽, 북미, 동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 순서로 해외시장을 꾸준히 개척해 21개 언어, 45개국으로 뻗어나가 있다. 해외에서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작품은 이명진의 ‘라그나로크’, 형민우의 ‘프리스트’, 박소희의 ‘궁’ 등이 꼽힌다. 그러나 우리 만화의 해외 진출은 2000년대 중후반 들어서는 어린이 학습 만화를 제외하곤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국내 작가가 일본 등 해외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는 편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13) 만화 공정 소비를 말하다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13) 만화 공정 소비를 말하다

    대중음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뮤지션은 물론이고 기획, 제작, 유통 관계자들이 어깨를 겯고 함께 거리로 나와 ‘공정 소비’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정부에 음원 정책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 및 저가 다운로드 패키지 상품 때문에 음악인들에게 정당한 대가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요즘 만화계도 공정 소비가 이슈다. 무료로 제공되던 웹툰에 유료화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것. 대부분 문화 콘텐츠는 독자가 비용을 지불하고 향유한다. 그러나 웹툰은 ‘네이버’, ‘다음’ 등 인터넷 포털업체들이 창작자에게 원고료 형태로 비용을 지불하는 식으로 연재된다. 독자는 이를 무료로 소비한다. 포털은 독자가 일으킨 트래픽을 통해 광고 수익을 얻는다. 만화계는 웹툰의 유료화가 궁극적으로 만화는 공짜라는 인식에 변화를 가져와 국내 시장을 활성화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순정만화’부터 ‘조명가게’까지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제공하는 강풀 작가의 9개 작품이 지난 10일 유료로 전환돼 파장이 일었다. 현재 영화화하고 있는 ‘26년’은 제외됐으나 포털에서 연재된 강풀 작품은 사실상 전작이 유료화된 셈이다. 2003년 ‘순정만화’가 공개되며 본격적인 웹툰 시대가 열린 지 10년 되는 시점이라 더욱 의미심장하다. 만화계에서는 모바일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며 포털의 영향력이 줄고 있는 상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무료 웹툰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있었고, 웹 무료 공개만으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 접어든 가운데 ‘다음’이 대의명분을 선점하며 치고 나갔다는 게 만화계의 시각이다. ‘다음 만화 속 세상’의 박정서 웹툰 PD는 “좀 더 안정적인 창작 환경 즉, 웹툰 창작 생태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인식이 완결작 유료화의 기본 배경”이라면서 “지금 연재를 진행하는 작품을 위한 창작 비용이 아닌 미래 작품을 위한 창작 비용도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풀 작품이 유료화의 첫 사례는 아니다. ‘다음’ 웹툰은 지난해 이맘때 전극진·박진환 작가의 ‘브레이커’ 시리즈를 시작으로, 같은 해 11월 허영만 작가의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말무사), 올해 4월 정연식 작가의 ‘더 파이브’, 이달 초 홍성수·임강혁 작가의 ‘피크’를 차례로 유료화했다. 원수연 작가의 ‘매리는 외박중’은 지난해 10월 웹툰 서비스를 중지하고 아예 유료 만화 서비스로 자리를 옮겼다. 신작까지 아우르는 전면 유료화는 아니다. 연재가 종료됐거나, 연재 중이더라도 오프라인 단행본으로 출간된 분량이 대상이다. 부분 유료화인 셈. 브레이커는 오프라인 단행본 한 권에 해당하는 온라인 분량을 보는 가격이 300원, 강풀 작품은 500원, 피크는 600원, 더 파이브는 1000원, 말무사는 1600원으로 책정됐다. 유료화 여부나, 가격 책정은 전적으로 작가들의 선택이라는 게 ‘다음’ 쪽 설명이다. 또 수익 대부분이 작가들에게 배분된다고 했다. 독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반대 의견의 골자는 광고 효과를 유발하는 독자가 왜 이중으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유료화를 선택한 작가들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난도 나온다. 반면 유료화는 당연한 흐름이라거나 진작에 했어야 했다는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유료화 이전과 이후 히트 수에는 크게 차이가 없다는 점도 주목된다. ‘다음’ 박 PD는 “실제 수익을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작가에게 돌아간 부분이 결코 적지 않다. 유료화가 실제 창작자들의 수익으로 유의미하게 연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료화는 꾸준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강도하·이충호 작가 등 스타급 작가들과도 이미 유료화 일정에 합의했거나 논의중이다. 포털업계 1위 네이버가 동참할지도 관심이다. 네이버는 현재로선 ‘다음’과 유사한 형태의 유료화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만화계는 영화·음악을 유료 서비스하며 성과를 내고 있는 네이버가 무료 전략을 고집할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네이버 웹툰 작가들 사이에서도 이미 유료화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야후코리아가 웹툰 서비스를 중단한 상황과 맞물려 웹툰 시장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웹툰 작가 팟캐스트 방송 ‘부머라디오’의 진행자인 권혁주 작가는 “몇 년 전부터 차근차근 매우 조심스럽게 준비해 온 터라 시장 위축을 걱정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무료로 서비스하던 웹툰을 갑자기 유료화하겠다는 게 아니라 대체적으로 이미 완결된 작품, 그리고 책으로 출판된 작품을 위주로 유료 전환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도 어느 정도 납득하는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독자 반발을 키울 수도 있는 신작 유료화 여부도 관심이다. ‘다음’은 신작 유료화의 가능성을 일축했으나, 만화계는 시간 문제로 보고 있다. 공짜로 보는 웹툰과 연재 초기부터 돈을 내야 볼 수 있는 프리미엄 웹툰이 공존하는 시기가 머지않아 올 것이라는 이야기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는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를 정도로 웹툰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와 피로를 느끼는 시점이라 프리미엄 웹툰은 충분히 통할 수 있다.”면서 “그동안 포털이 벌여 놓은 판에서 작가들이 알아서 활동해 왔지만, 앞으로는 포털이 웹툰을 제대로 팔기 위해 적극적·전략적으로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이번 유료화에 대한 독자의 긍정적인 반응이 작화와 스토리텔링의 퀄리티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B급 취향 웹툰 등이 유료화됐을 때 반응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이러한 것도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웹툰 유료화의 성패는 결제의 간소화에 달려 있다는 게 대부분의 지적이다. 만화계는 웹툰의 유료화가 제대로 뿌리내린다면 그동안 유료 모델 확립에 어려움을 겪어 온 디지털 만화 콘텐츠 시장 전체에 긍정적인 연쇄 반응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 칼럼니스트는 “웹툰 시장이 진짜 시장다운 시장이 되면 기존 페이지 만화도 온라인에서 새 생명을 얻는 등 디지털 만화 시장이 다양하게 활성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웹툰 유료화라는 화두를 통해 보다 깊은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우선 웹툰 작가들이 받고 있는 원고료의 현실화 문제가 있다. 현재 일부 스타 작가를 제외하면 생계를 걱정하며 활동하는 작가들이 부지기수인 게 현실이다. 원고료 현실화를 위해서는 웹툰 작가들이 창출해 내는 트래픽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또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절실하다. 원고료 외에 작품 내 간접 광고나 중간 광고 등을 통해 수익 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개별 작가들의 원고료를 현실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성 확보와 복지를 위한 기금 조성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공정 소비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영화계의 굿다운로더 같은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작가들의 노동과 생계를 아우르는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야만 웹툰이라는 소중한 공간이 더욱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5일간 만화·애니 축제… ‘한여름의 추억’ 만들어요

    5일간 만화·애니 축제… ‘한여름의 추억’ 만들어요

    국내 최대 만화·애니메이션 축제인 ‘제16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2012’가 오는 18~2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와 CGV명동, 서울애니시네마 등지에서 열린다. ‘두근두근 행복 파라다이스’를 메인 테마로 펼쳐지는 이번 행사는 ▲SICAF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만화·애니메이션 전시 ▲만화애니메이션산업마켓(SPP)의 3개 부문으로 구성된다. 세계 5대 애니메이션 영화제로 자리 잡은 ‘SICAF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는 세계 유수의 페스티벌과 평단에서 인정받은 작품들이 대거 선보인다. 30개국 152편의 영화가 공식 경쟁부문 본선 진출작으로 확정됐으며, 올해 개막작으로는 이냐시오 페레라스 감독의 ‘노인들’이 선정됐다.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의 소소한 일상과 우정을 완성도 높은 영상과 따뜻한 감성으로 풀어낸 스페인 애니메이션이다. 국내 최초로 잔혹 스릴러 애니메이션을 표방해 화제를 모았던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과 수족관 속 물고기들을 통해 현대사회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룬 이대희 감독의 ‘파닥파닥’은 장편 부문 본선에 올랐다. 이 밖에 ‘알로이스 네벨’, ‘고슴도치 조지’ 등 국내외 300여편의 작품이 5일 동안 상영된다. 여름방학 특강 시간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신작 ‘메리다와 마법의 숲 Brave’ 제작에 참여한 한국 아티스트들이 들려주는 ‘픽사 이야기’, 월트 디즈니와 워너 브러더스 등에서 다수의 장편 프로젝트에 참여한 애니메이터, 마이크 윙 감독이 전하는 ‘애니메이션 타이밍’ 등 다양한 콘퍼런스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SICAF 전시’ 부문에서는 지난해 SICAF 코믹어워드 수상자인 김산호 화백의 특별전을 비롯해 한국 야구만화의 모든 것을 감상할 수 있는 ‘달려라, 야구만화로!’, 미국의 인기 만화 가필드를 주제로 한 ‘내 이름은 가필드’ 등의 기획 전시가 열린다. ‘라이파이’의 김산호, ‘스바루’의 소다 마사히토 작가 사인회, 이현세와 허영만 등 대표 야구만화 작가의 토크 콘서트 등의 이벤트도 마련된다. SICAF 전시 입장권은 성인 8000원, 중·고생 6000원, 초등학생 및 유아는 3000원이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만화는 내 사랑] (11)만화 비평서 냈던 시인 함성호

    [만화는 내 사랑] (11)만화 비평서 냈던 시인 함성호

    만화에 대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집이나 사무실로 찾아가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면 책장에 어떤 만화책이 꽂혀 있나 눈길을 주게 된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함성호(49) 시인의 집이자 사무실인 소소재(素昭齋)를 찾았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웬걸, 서재에서 만화책을 찾아보기 힘든 게 아닌가. “만화는 만화당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냄새 퀴퀴한 소파, 라면 끓이는 냄새와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이중 책장, 복작복작한 분위기에서 봐야 제맛이죠.” 그런데 만화당이라니? 그가 나고 자란 강원도 속초에서는 만화가게를 만화당으로 불렀다고 했다. 함 시인의 추억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만화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만화책을 뒤적이다 저절로 한글을 깨우쳤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약주를 드신 아버지가 늦게 귀가해 만화책을 빌려 오라고 하면 밤길을 달려 만화당에 갔어요. 영업이 끝난 가게 문을 두드려 주인을 깨우곤 했죠. 하도 꼼꼼하게 고르다 보니 집에 돌아오면 식구들이 모두 잠들어 있던 적도 많아요.” 그는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아버지가 특히 좋아했던 김기태 작가의 칼싸움 만화와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이근철 작가의 전쟁 만화를 꼽았다. “당시에는 만화가들의 그림체가 지금보다 더 개성 넘치고 다양했어요. 이근철 작가는 인물 얼굴을 길쭉하게 그리는 모딜리아니나 뒤뷔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정말 독특한 그림을 보여줬죠.” 함 시인은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로 허영만 작가를 꼽았다. 기본적으로 깊이가 있고 독자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취재가 잘된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이유로 전세훈·전인호 작가의 관상 만화 ‘신의 가면’을 좋은 작품으로 추천했다. “사실 초등학교 교과서는 만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옛날에는 만화가 황당무계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요즘에는 만화만 봐도 웬만한 교양을 다 습득할 수 있잖아요.” 그는 젊은 세대 못지않게 웹툰도 많이 본다. 새로운 표현 방법과 만날 때마다 열광한다고. 그는 정병식 작가의 ‘가족 사진’에 대해서는 스크롤에 따라 변화하는 시선 처리에 정말 감탄했고 난다 작가의 ‘어쿠스틱 라이프’의 경우 처음엔 몰랐던 감동이 해가 갈수록 서서히 생겨나게 하는 진정성이 엿보인다고 소개했다. “요즘 한국 만화는 일본과는 다른 범주로 다양하게 나가고 있어요. 한국만의 독특한 게 있지요. 우리 만화는 한국인의 삶을 기록하는 데 아주 탁월하다고 봐요. 기록화적인 역할을 하는 거죠. 김홍도의 풍속화를 보고 당시 삶을 가늠하듯 요즘 우리 만화가 나중에 대단한 자료가 될 수 있어요. 지금 순수미술이 하지 못하는 일이죠.” 그는 창작에는 비평이 따라 줘야 하는데 우리 만화에 대한 비평이 활발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함 시인은 만화 비평서를 낸 얼마 되지 않는 국내 글쟁이 중 한 명이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회화적인 시각에서 만화를 바라본 ‘만화당 인생’을 2002년에 냈다. 우리 만화를 비롯해 미국, 프랑스, 일본, 말레이시아 작품까지 다뤘다. 잘 안 팔려 ‘저주받은 걸작’이 됐다고 하는 그에게 비평서를 또 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부정적인 반응이다. “평생 즐겁게 만화를 봤는데 만화 보는 자체가 일이 되니까 가끔 짜증도 나더라고요. 올 초 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일주일에 한 번 만화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파업으로 중단하게 되니 너무 좋은 거 있죠. 허허허.” 그 대신 ‘페이퍼’ 등 대중잡지에 그렸던 카툰을 모아 작품집을 하나 낸다고 슬며시 말을 꺼낸다. 어쨌든 역시 만화 사랑 인생이었다.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만화는 내 사랑] (10) 만화 그리는 변호사 이영욱

    [만화는 내 사랑] (10) 만화 그리는 변호사 이영욱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에 붙었다고 하면 왠지 만화와 거리가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이영욱(41·연수원 34기·법무법인 강호) 변호사는 이 말에 고개를 젓는다. “30~40대는 어릴 때 만화를 많이 보며 자란 세대 잖아요. 판사나 검사, 변호사 중에 지금도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요.” 이 변호사는 “하굣길에 만화가게 밖에 붙어 있는 신간 날짜 확인하는 게 일이었다.”며 ‘해왕도의 비밀’(이현세), ‘무당거미’(허영만), ‘검신검귀’(이재학) 등을 떠올렸다. 그는 만화를 보고 또 보는 스타일이다. 명작들을 추려 그림이나 대사를 꼼꼼히 분석하듯 감상하는 취미가 있다. 요즘 파고 있는 작품은 ‘타짜’ 4부작(허영만)과 ‘십팔사략’(고우영). 조훈현의 삶을 다룬 ‘바둑 삼국지’(박기홍·김선희)를 걸작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전부라면 그를 인터뷰에 초대하지 않았을 것. 그는 만화 그리는 변호사다.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 작가다. 명함에 ‘만화가/ 변호사’라고 쓰는 이유다. 원래 그는 사시를 볼 생각이 없었다. 대학 때 공부는 뒷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만화 동아리에 열성을 바쳤다. 한겨레문화센터에 다니며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기도 했다. 당시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데, 결혼식 주례가 시사만화로 유명한 박재동 화백이었다. 졸업 즈음인 1995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에서 애니 단편상·각본상을 받았다. 또 신한새싹만화 공모전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첫 직장이 TV 애니 ‘영혼기병 라젠카’, 극장판 애니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을 만들던 서무비였다.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유명해진 오성윤 감독에게 일을 배웠다. 광고회사로 직장을 옮겼을 때도 캐릭터 사업팀에서 일했고, 집안 권유로 사시에 도전하게 됐을 때도 만화는 그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 고시신문에 고시생의 하루를 담은 만화 ‘고돌이의 고시생 일기’를 3년가량 연재했던 것. 사법연수원 시절에도 홈페이지에 연수생의 하루를 그림으로 풀어 인기를 모았고, 지금은 대한변협신문에 변호사의 일상을 담은 ‘변호사 25시’를 6년째 연재하고 있다. 각종 판례들을 만화로 알기 쉽게 옮기는 작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민법·형법·형사소송법에 이어 조만간 헌법과 관련한 여섯 번째 단행본이 나온다. 이 판례 만화들은 지난달부터 서울중앙지법 홈페이지에도 게재되고 있다. “요즘 법원에서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를 위한 콘텐츠로 만화 쪽을 생각했나 봐요. 원고료요? 판사님이 부탁하시니 어쩌겠어요, 그냥 감사패를 주겠다고 하시던데요. 하하하.” 지적 재산권이 그의 전문 분야다. 만화 저작권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만화 관련 저작권 분쟁 사건을 여러 건 처리해 왔고 강풀·윤태호 등 웹툰 작가가 속해 있는 에이전시 누룩미디어의 자문을 맡고 있다. 이따금 그림 솜씨를 발휘해 법정에서 사건 개요를 만화로 그려 판사에게 보여 주며 변론을 하기도 한다. “작가들은 깨알 같은 글자로 된 계약서를 보기 싫어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함부로 계약서를 썼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죠. 요즘 만화가 각광을 받으며 저작권 침해 사례도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그의 꿈은 순수 창작 만화를 그리는 것이다. 특히 일본 ‘도라에몽’이나 미국 ‘스누피’ 같은 어린이 만화를 그려 보고 싶어 했다. “법조계를 다뤄 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요. 경제·경영 컨설팅 소재에도 관심 있지요. 지금까지가 그림을 다듬는 기간이었다면 이제는 슬슬 하고 싶은 말이 생기고 있는 느낌이네요.”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만화는 내 사랑] (9) 소설가 성석제

    [만화는 내 사랑] (9) 소설가 성석제

    “제게 고우영과 도스토옙스키, 베토벤은 동급이죠.” 소설가 성석제(52)에게 인생의 책을 꼽으라고 했더니, 고전 명작을 제쳐 두고 고우영의 ‘삼국지’를 골랐다. 고등학생 때 갓 개통한 지하철 1호선에 몸을 싣고 등교하며 스포츠신문을 통해 접했던 고우영의 ‘삼국지’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고 했다. “이전까지 읽었던 만화나 무협지는 모두 제 눈높이였어요. 그런데 고우영 삼국지는 경지가 달랐죠.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이 있었고, 밀도가 높고 문학적이고 창의적이었어요.” 할머니 무릎을 베고 옛날 얘기를 듣는 것도 쉽지않던 어린 시절, 누이가 빌려온 만화책은 성석제에게 세상을 향한 통로가 되어 주었다. 다섯 살 즈음으로 기억한다. 집안 곳곳에 숨겨져 방치됐던 돈 꾸러미들이 귀신이 돼 사람을 괴롭히는 내용의 만화였다. 글도 만화책으로 익혔다. 아홉 살 위 형이 이정문의 ‘설인 알파칸’을 사갖고 왔다. 국내 SF만화 초창기 작품이다. 그림은 알겠는데, 글을 모르니 약이 바짝 올랐다. 오기 때문이었는지 한나절 만에 글을 깨우쳤단다. 초등학교 때는 만화보다 무협지에 빠져 살았지만 곧 만화를 벌컥벌컥 들이켤 기회가 찾아왔다. 중학교 입학 무렵 가족이 경북 상주에서 서울로 이사했다. 다른 형제들은 먼저 가고 성석제만 1년을 더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 남았다. 읍내 만화가게를 싹쓸이하던 시기였다. 10~20원에 하루 종일 만화를 볼 수 있었다. 무협지로 단련한 속독 솜씨를 발휘해 앉은 자리에서 수백권을 읽어 젖혔다. 당시 재미있었던 만화로 2차 세계대전 소재 전쟁물을 주로 그렸던 이근철의 작품 등을 꼽았다. “돈 몇 푼 내고 하루 종일 앉아 있으니 만화가게 주인에겐 밉상이었겠죠. 한 번은 쓰러져 가는 아파트에서 서민들 사이에 일어나는 소동을 다룬 만화를 보다가 큰 소리로 웃었더니 ‘여기가 너네 안방이냐’며 쫓겨날 뻔한 적도 있어요.” 어른이 된 뒤에도 김수정, 허영만, 박재동, 주완수 등의 작품을 만나며 만화의 진화를 계속 확인할 수 있었다. “만화 걸작들을 보면 다른 예술 장르와 견줘도 뒤질 게 없어요. 만화가 갖고 있는 힘과 특성, 이런 게 완성됐다고 봐야 하니까 우열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죠.” 바둑을 좋아하는 그에게 박수동의 ‘만방 아저씨’, 일본의 ‘고스트 바둑왕’ 등 바둑 소재 만화를 읽는 것도 또 다른 재미였다. 그러나 무협 만화들은 아무리 봐도 만족스럽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무협만큼은 만화로 봤을 경우 환상이 덜한 적이 많았다는 것. 50세가 넘은 지금도 성석제는 여전히 만화를 본다. 좋은 만화가 있다는 소문이 산 넘고 물 건너 끊임없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만화를 볼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요즘, 여동생 집은 ‘만화 아지트’ 역할을 한다. 만화를 워낙 좋아하는 매제가 폐업을 앞둔 만화 대여점에서 ㎏당 가격을 매겨 만화책을 수천 권 넘게 구입했다. 무엇이 계기가 되든 한 번 발동이 걸리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읽는다. 최근 인상 깊었던 것은 굽시니스트의 작품. 함부로 흉내내지 못할 자기만의 문법으로 풍자를 넘어서 철학에 가까운 관점을 보여 주는 게 인상 깊다는 설명이다. 그의 소설은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만화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그의 작품이 만화로 그려진다면 어떨까. “그럴 만한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의가 들어오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정말로 감사할 일이죠.”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⑨ 만화의 OSMU를 말하다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⑨ 만화의 OSMU를 말하다

    최근 안방극장에서 사랑받고 있는 드라마 ‘각시탈’은 원래 허영만의 만화가 원작이다. 1974년 만화계에 데뷔한 허영만은 두 번째 작품인 ‘각시탈’을 통해 인기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 이 만화는 1978년 김추련 주연의 ‘각시탈 철면객’이라는 영화로 변신해 스크린에 걸렸다. 1986년에는 일제시대가 배경인 원작과 달리, 북한을 배경으로 한 반공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만화의 ‘원소스 멀티유스’(OSMU·하나의 소재를 여러 장르에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만화가 TV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변신하는 것은 기본. 음악과 공연, 게임, 캐릭터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만화는 여러 콘텐츠 산업 분야에 풍부한 소재와 상상력을 제공한다. ‘각시탈’ 사례에서 보듯 다양한 형태의 재탄생을 통해 만화 자체의 생명력도 길어진다. 만화 창작자에게는 창작 활동을 뒷받침할 수익원의 다변화를 보장한다. 2010년 만화 산업의 OSMU 효과는 3144억원에 이르며, 이를 포함한 전체 전·후방 경제 유발 효과는 1조 3600억원으로 추산된다. 제작과 유통까지 포함하면 2조 1000억원대다. 만화의 영화화에 물꼬를 튼 작품은 1924년 첫선을 보인 노수현의 ‘멍텅구리 헛물켜기’다. 국내 네 컷 만화의 효시로 알려진 이 작품은 1926년에 미국 할리우드 코미디 형식을 빌린 우리 영화 사상 최초의 풍자 희극 영화 ‘헛물켜기’로 만들어졌다. 물꼬는 일찌감치 터졌으나 1970년대까지 스크린으로 옮겨진 만화는 그리 많지 않다. ‘각시탈 철면객’ 외에 김승호 주연 ‘고바우’(1959), 도금봉 주연 ‘왈순 아지매’(1963), 장미희 주연 ‘순악질 여사’(1979) 정도다. 다들 원작이 이야기 만화가 아니라 시사 만화라는 점이 흥미롭다. 각각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 정운경의 ‘왈순 아지매’, 길창덕의 ‘순악질 여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본적으로 원작 인기가 영화화로 이어졌겠지만, 당시까지 이야기 만화는 어린이용이라는 사회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사영화 외에 1967년 만화 원작 애니메이션이 처음 등장한다. 국내 최초 극장판 장편 애니메이션인 ‘홍길동’이다. 동생 신동우의 ‘풍운아 홍길동’을 형 신동헌이 애니메이션으로 옮겼다. 이 작품 이후 2010년 ‘마법 천자문’까지 국내 만화를 원작으로 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으나, 그 숫자는 많지 않다. 1980년대에는 만화 르네상스에 힘입어 이현세의 ‘떠돌이 까치’,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 등이 TV 애니메이션으로 활발하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만화의 영화화는 1980년대 들어 본격화된다. 개봉 당시 서울에서만 28만명을 끌어모은 ‘이장호의 외인구단’이 기폭제가 됐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원작이다. 이후 이현세·박봉성·허영만 작품 등 선 굵은 극화들이 잇달아 영화로 옮겨진다. 1990년대 초반에는 배금택의 ‘변금련’, 한희작의 ‘러브러브’, 강철수의 ‘돈아 돈아 돈아’ 등 농도 짙은 성인 만화들이 스크린 나들이를 하며 또 다른 흐름을 형성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만화 원작 영화가 개봉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 됐다. 이 때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일본 만화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들이 대성공을 거뒀다는 점이다. 바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김용화 감독의 ‘미녀는 괴로워’다. 2006년에 나온 허영만 원작의 ‘타짜’는 관객 680만명을 동원하며 역대 만화 원작 영화 가운데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만화의 영상화는 드라마도 예외가 아니다. 공교롭게 만화 원작 첫 드라마도 시사 만화에서 비롯됐다. 1967년 TBC에서 방송한 ‘왈순 아지매’가 그 주인공. 이후 만화 원작 드라마가 안방극장에 다시 등장한 것은 1987년 허영만 원작의 ‘퇴역전선’이었다. 1990년대는 만화 원작 드라마의 가능성을 확인한 시기였다. 청춘스타 이병헌이 주연을 맡았던 1993년 이현세 원작의 ‘폴리스’와 1995년 허영만 원작의 ‘아스팔트 위의 사나이’가 성공을 거둔다. 특히 1998년 김희선·김민종이 주연을 맡은 허영만 원작의 ‘미스터Q’가 정점을 찍는다. ‘미스터Q’가 세운 최고 시청률 45.3%(평균 35.5%)는 역대 만화 원작 드라마 사상 최고 기록으로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2000년대 들어서는 만화 원작 드라마 제작이 급증한다. 그러면서 2003년 방학기 원작 ‘다모’, 2004년 원수연 원작 ‘풀하우스’, 2005년 강희우 원작 ‘불량주부’, 2006년 박소희 원작 ‘궁’, 2007년 박인권 원작 ‘쩐의 전쟁’, 2009년 일본 만화 원작 ‘꽃보다 남자’ 등이 꾸준히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며 만화의 입지를 넓혔다. 특히 ‘다모’의 경우 팬덤을 형성하며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 만화 영화화의 대세는 웹툰이다. 웹툰에 내러티브를 본격 도입한 강풀 같은 경우 ‘아파트’를 시작으로 많은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 연극,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올해도 ‘이웃사람’과 ‘26년’이 대개 중이다. 강풀 작품을 비롯해 지금까지 영화·드라마로 만들어졌거나 판권 계약을 맺은 웹툰은 20개가 넘는다. 드라마의 경우 ‘꽃보다 남자’ 이후 일본 만화 원작이 크게 늘고 있다. 국내 만화계에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일단 지상파 외에 케이블TV 등 매체가 늘어나며 검증된 원작에 대한 수요가 커졌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아시아 시장, 특히 일본을 겨냥한 드라마 수출도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작품이 해외에서 재탄생하는 사례도 나오기 시작했다. 형민우의 ‘프리스트’는 미국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돼 지난해 개봉했으며, 하일권의 ‘3단합체 김창남’은 영국 제작사와 판권 계약을 맺은 상태다. 만화의 OSMU는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영화계, 방송계의 주축으로 성장하며 만화적인 문법과 아이디어, 클리셰(정형화된 표현)를 차용한 영화, 드라마가 쏟아지고 있다. 간혹 도용 내지 표절 시비가 일기도 한다.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다. 창작자 사이에서 만화와 관련한 지적 재산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는 이유다. 만화 원작자에 대한 권리 보호도 시급하다. 웹툰의 경우 1차적으로 무료이다 보니 저작권료가 저렴하게 책정되기도 한다. 또 만화가들이 계약에 서툴러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기도 한다. 이 때문에 만화가를 위한 매니지먼트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만화의 OSMU는 아직 시작 단계로 볼 수 있다. 미국·일본에 견줘 원작 만화와의 산업적 연결성이 약한 게 아쉽다. 게임, 캐릭터, 패션 등 부수적인 라이선스 사업들이 따라와야 하는데 우리는 대부분 영상화에 그치고 있다. 보다 넓은 영역에서 OSMU가 유기적으로 이뤄지고 그 피드백이 만화 창작 쪽으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백수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략기획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7)리얼리즘을 말하다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7)리얼리즘을 말하다

    ‘만화 같다.’는 말이 있다. 좋게 이야기하면 환상적이라는 뜻으로, 나쁘게 이야기하면 황당무계하거나 유치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만화 특유의 상상력이 강조된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근대 만화의 뿌리를 더듬다 보면 18~19세기 유럽 풍자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석판이나 동판에 계몽과 풍자를 담아낸 그림들이다. 원래 만화의 출발점이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근대 만화는 시사만화, 풍자만화라는 이름으로 한반도에 상륙해 우리 만화 역사의 첫 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리얼리즘 만화가 K코믹스의 새로운 흐름으로 주목받고 있다. 상상이 아닌 현실을 이야기해도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리얼리즘 작품들이 줄을 잇고 있다. 물론 리얼리즘 만화는 교양·학습 만화, 웹툰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틈새 시장이다. 하지만 우리 만화 생태계에 다양성의 저변을 넓히고, 오락·상업 위주로 성장한 만화에 예술성을 부여해 다른 예술 장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만들어 줄 분야로 만화계는 기대하고 있다. 서울신문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공동 선정한 ‘한국 만화 명작 100선’ 중엔 허영만의 ‘오! 한강’, 이희재의 ‘간판스타’,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일기’, 장진영의 ‘삽 한자루 달랑 들고’, 최규석의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와 ‘100도씨’, 최호철의 ‘태일이’가 넓은 의미의 리얼리즘 만화로 분류된다. 신문 만평과 네 컷 만화 등 시사 만화가 오랫동안 현실을 반영해 온 것에 비해 긴 이야기 구조를 갖춘 서사 만화에서 리얼리즘이 본격적으로 싹을 틔운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해외에선 퓰리처상에 빛나는 만화 ‘쥐’의 모태인 아트 스피겔먼의 ‘지옥별의 죄수’나 미국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기수 로버트 크럼의 ‘로버트 크럼의 고백’ 등 1970년대 초 작품들을 리얼리즘 만화의 초기 형태로 본다. 이웃 일본 같은 경우에도 히로시마 원폭 피해 경험을 소재로 1973년 연재를 시작한 나카자와 게이지의 ‘맨발의 겐’이 대표적이다. 시기적으로 68혁명이나 전공투 운동 등의 역사 흐름 속에서 리얼리즘 만화가 태동했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가 출발점이다. 큰 갈래 가운데 하나가 1980년대 민중 운동 흐름 속에서 나왔다. 1982년 농촌 문제를 다룬 탁영호의 ‘학마을 사람들 이야기’가 기념비적인 작품. 이후 1980년대 중후반까지 노동 만화, 농민 만화, 빈민 만화 등이 꾸준히 등장했다. 다른 갈래는 제도권 만화의 몫이었다. 1980년대 이후 이현세와 허영만이 두각을 드러내며 표현에 있어 사실성을 가미한 극화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한 발 더 나아가 내용의 사실성과 사회적인 탐구, 현실 비판적인 내용을 담아내려고 하는 흐름이 형성됐다. 대표적인 작가가 이희재, 오세영, 박흥용, 백성민 등이다. 특히 이희재, 오세영 등은 월간 ‘만화광장’ 등 여러 성인 만화 잡지를 통해 사회성 짙은 단편들을 쏟아냈다. 1990년대 중반 단행본으로 출간된 ‘간판스타’와 ‘부자의 그림일기’는 이러한 단편들을 모은 것으로 국내 리얼리즘 만화의 이정표를 세웠다. 오락성에 치우쳤던 기존 만화와 달리 시대와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녹여내고, 한편으로 새로운 만화 문법을 제시해 작가주의 작품, 예술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원래 만화는 고급 엘리트 문화가 아니라 대중 문화로 출발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 내는 것은 애당초 당연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위원석 휴머니스트 편집 주간) 1990년대 들어서는 동구권이 몰락하는 등 사회가 변화하고 상업 만화가 정점을 찍으며 리얼리즘 만화는 흐름을 계속 이어가지 못한다. 대신 해외 리얼리즘 만화 걸작들이 속속 소개되는 한편 만화 예술 운동을 내세운 언더그라운드·독립 만화가 등장하며 다음 시기를 위한 발판을 준비했다. 2000년대, 특히 2000년대 중후반 들어 리얼리즘 만화가 다시 꽃을 피운다. 강풀의 ‘26년’과 최규석의 ‘100도씨’ 등 사실과 허구를 섞은 팩션 만화에서부터 어두운 현대사를 조명하는 역사 만화(정경아 ‘위안부 리포트’, 박건웅 ‘노근리 이야기’ 등),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주는 자전 만화(오영진 ‘보통시민 오씨의 북한체류기’, 고영일 ‘푸른 끝에 서다’ 등) 등으로 범주도 다양해졌다. 김홍모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이 참여한 ‘내가 살던 용산’, 김수박의 ‘사람 냄새’ 등 사회 이슈를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해 만화로 옮기는 다큐멘터리(르포) 만화도 나왔다. 리얼리즘 만화가 재도약하고 있는 이유는 우선 1980년대 우리 만화 붐을 청소년기에 경험했던 세대가 성장해 만화 시장에서 주요 소비층이 됐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제 30~40대가 된 독자 사이에 진지한 만화를 보고자 하는 수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론 2000년대 들어 정치 지형도가 바뀌면서 정치적 피로감과 무력감을 해소하는 미디어들이 예전만큼 다양하지 않은 상황도 한몫했다. 기존 미디어에서 균형감 있는 소통이 부족하다 보니 하위 문화인 만화로 소통에 대한 요구가 쏠렸다. 창작자들의 발언 욕구도 강화됐다. 1980년대 리얼리즘 만화가 일부 선구자들이 이끌고 가는 것이었다면 요즘 리얼리즘 만화의 창작 지형은 보편화됐다. 1인 미디어 시대의 흐름을 타고 창작자들이 만화를 통해 사회에 말하고 싶은 바를 전달하려는 분위기가 이뤄진 것. 가장 신세대적인 분야로 여겨지는 웹툰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동물에 빗댄 윤필의 ‘야옹이와 흰둥이’는 리얼리즘 우화의 수작으로 손꼽힌다. 또 웹툰 특유 ‘병맛’ 작품을 그렸던 이경석도 최근엔 진지한 리얼리즘 단편을 그려내기도 한다. 젊은 작가군도 사회에 대한 인식과 감각이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자본과 기득권의 시선에서 바라본 현실이 많이 유포되고 있는데 이와는 다른 시선에서 사회와 진실을 바라보는 노력들도 필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리얼리즘 만화, 다큐 만화가 지속돼야 한다.”(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리얼리즘 만화의 숙제는 확연하다. 일부 성공 사례들도 있지만 지속 가능한 창작 활동을 담보하기에는 아직 전체 시장이 여물지 않았다. 독자에게 소비되고 또 이를 통해 얻은 이익이 다시 창작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만화계에서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다. 우선 리얼리즘 만화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다. 사회 참여적인 소재나 내용을 유지하되 주요 타깃인 성인 독자층의 정보 교양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역사나 인문 소재와의 접목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또 리얼리즘 만화 자체가 상업·오락 만화의 대안으로 출발한 점을 고려하면 산업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문화 운동, 예술 운동 차원의 협동조합 등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창작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리얼리즘 만화가 새 시장을 만들었지만 아직 만족할 수 있는 시장이 된 것은 아니다. 만화 전체 시장의 위축 속에서 틈새 역할은 충분히 한 만큼 이를 지속시키기 위해 확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석환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팀장·만화 평론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만화는 내 사랑] (4) 이효재 한복디자이너

    [만화는 내 사랑] (4) 이효재 한복디자이너

    “여자들은 대개 예쁜 옷, 예쁜 보석, 예쁜 가방을 갖고 싶어 하잖아요. 모든 사물에 ‘예쁜’이라는 말을 차례로 붙인다면 1순위는 바로 만화예요. 밤하늘의 밝은 별과 맑은 보름달, 낮에 나온 반달은 볼 수는 있지만 가질 수는 없잖아요. 제가 볼 수도 있고 가질 수 있는 1순위, 그것도 바로 만화죠.” 서울 성북동 길상사 맞은편 2층집에는 만화방이 하나 있다. 일반에 공개된 곳은 아니지만 내부 공간이나 장서의 규모가 상당한 수준이다. 한복 디자이너이자 보자기 예술가로 유명한 이효재(54)씨의 만화 서재다. 만화가 좋아 하나둘 사 모으다 보니 어느새 서재 벽면 천장까지 채우게 됐다. 그의 만화 읽기는 남다르다. 우선 손을 깨끗이 씻는다. 책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다. 다른 사람들은 화장실에서도 읽는다지만 그의 만화책들은 좀체 보금자리를 빠져나가는 법이 없다. “책을 몰래 가져가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꽃과 우산, 만화는 가져가도 도둑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 않으냐.”며 웃었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도 매우 느리다. 다른 사람이 예닐곱장을 읽을 시간에 한장을 겨우 읽는다. “그림 한칸 한칸, 대사 한줄 한줄, 캐릭터 표정 하나하나를 곱씹어가며 정독해요. 젊었을 땐 소설도 꽤 읽었는데 나이가 든 지금도 제 곁을 지켜주는 건 만화밖에 없네요.” 그에게 어릴 적 만화방에 대한 추억은 없다. 낯가림이 심하고 결벽증까지 있었던 탓에 만화방에 가지 않았다. 만화와의 첫 만남은 집으로 배달되는 어린이 신문을 통해서였다. 그는 신동우의 ‘풍운아 홍길동’과 몇몇 공상과학(SF) 만화들을 떠올렸다. “어린이 신문을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좋았어요. 만화를 보면서 그때는 불가능해 보였던 우주시대를 꿈꾸곤 했죠. 인간의 상상력을 만화로 그려내기 때문에 결국에는 과학이 만화를 쫓아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만화를 처음 구입한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다. 20년여 전 친구의 부탁이 계기가 됐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너무 보고 싶은데 돈이 없다면서 친한 서점 주인을 통해 빌려 달라고 했다. 그 마음이 너무 절실해 보여 자기 지갑을 열어 통째로 사서 건넸다. 그때부터 틈날 때마다 만화책을 사들였다. 서점에 갈 때마다 차 트렁크를 만화로 한가득 채워 왔다. 마음에 드는 만화를 보면 완결 시리즈를 보관용, 독서용, 대여·선물용 등으로 따로 샀다. 순정 장르와 SF 장르를 즐기는 그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 그림이 예뻐야 하고 음란하거나 폭력적이지 않아야 한다. 직업상 의상이나 디자인을 소재로 한 만화를 좋아하지 않을까 했는데 고개를 가로젓는다. “직업과 취미는 달라야 해요. 직업 외 다른 세계에서는 제가 편해야 하기 때문에 직업적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보지 않아요. 같은 업종 이야기는 외면하게 되죠.” 국내 작품에서는 허영만의 ‘짜장면’과 황미나의 ‘레드문’, 이미라의 ‘은비가 내리는 나라’를 필독서로 추천했다. 외국 작품에선 ‘천재 유 교수의 생활’ ‘캔디 캔디’ ‘마스터 키튼’ ‘팻숍 오브 호러스’를 꼽았다. ‘은비가 내리는 나라’는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고, 그림만 봐도 행복해지는 ‘천재 유 교수의 생활’은 여행길에 꼭 동행시킨다. 그래도 단연 최고는 ‘짜장면’이다. 에피소드와 대사를 줄줄 읊을 정도다. 어깨너머로 같이 보던 남편이 이 작품을 모티브로 곡을 짓기도 했다. 그의 남편은 피아니스트 임동창(56)이다. 세상에는 아직도 만화에 대한 편협한 시선이 많다고 했더니 돌아온 답이 이렇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좋은 점을 발견하겠죠. 그것을 발견하고 안 하고의 차이이기 때문에 독립운동 하듯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요. 만화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무심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만화를 함부로 생각하는 건 아니죠. 해석만 달리하면 세상은 천국이에요.”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만화는 내 사랑] ② 배우 정찬

    [만화는 내 사랑] ② 배우 정찬

    “만일 헐크가 우리나라에서 탄생했다면 인기도 얻기 전에 금세 사라졌을 거예요. 어린이에게 해로운 녹색괴물이라는 비난을 받고서 말이지요. 앞에서는 만화 한류를 부르짖고, 뒤에서는 검열의 잣대를 들이대는 멍청한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지난 1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가 올해 국내 개봉영화 중 가장 빠르게 관객 200만명을 돌파했다. 미국의 만화전문 출판사 ‘마블 코믹스’의 영웅 캐릭터가 대거 출동하는 영화다. 배우 정찬(41)은 이 영화를 본 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 만화가 처해 있는 답답한 상황이 떠올랐다. 얼마 전 국내 만화계는 웹툰 사전심의 논란에 휩싸였다. 그때 정찬의 머리에는 1990년대 후반 ‘천국의 신화’ 음란물 시비사건이 오버랩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만화를 문화의 주요 축으로 여기지 않는 기성세대의 왜곡된 시각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천국의 신화’에 적용됐던 잣대라면 그리스·로마 신화도 어린이들에겐 유해물이죠.” 정찬은 만화 마니아다. “만화로부터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자양분을 얻었다.”고 자부한다. 또 “다른 장르에서는 결코 담아내지 못하는 입체적 표현력과 파급력이 만화에는 존재한다.”고 정의한다. 그는 전문잡지가 쏟아지며 국내 만화가 르네상스로 치닫던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꺼벙이’(길창덕), ‘로봇 찌빠’(신문수) 등 명랑 만화를 즐겨 봤다.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로봇 만화 ‘철인 캉타우’(이정문)도 기억에 생생하다. 명절에 친척들이 찾아와 용돈을 주면 재빨리 만화방으로 달려갔다. 한창 만화에 빠져 있으면 “엄마 화났다.”며 동생이 찾아오곤 했다. 어른들은 만화방에 드나들면 공부 못한다며 ‘나쁜 곳’으로만 여기던 때다. TV 만화도 오후 6시부터 30분가량 하는 애니메이션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만화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저의 보물섬이었습니다.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준 것도 만화였고 영상문법, 휴머니즘, 풍자, 사랑도 만화를 통해 배우고 깨달았지요.” 영화잡지를 사느라 바빴던 중·고교 시절에도 자투리 돈은 만화를 보는 데 썼다. 허영만 작가는 그의 우상이었다. ‘카멜레온의 시’는 충격적이었다. 문학적 정서가 깔린 복합적인 플롯이 그의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아무리 이론서를 들여다봐도 모호하기만 했던 드라마·영화의 스토리와 플롯이 그때 비로소 손에 잡히기 시작하더군요. 악역이라고 해도 선이냐, 악이냐의 단선적 캐릭터면 답답하고 재미없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오토바이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동체이륙’을 접한 뒤엔 바이크가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죠.” 지금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만화가게에 달려간다. 웹툰을 보는 것도 요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금사리 백봉장군(필명)의 좀비물 ‘산송장’과 재수(필명)의 SF물 ‘파이프 시티’가 그의 추천작이다. “‘산송장’은 은근히 방송 미디어 쪽을 풍자하고 있어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죠. 독특한 소재의 ‘파이프 시티’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어떨까 싶네요.”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만화가 있냐고 했더니 강풀의 ‘26년’을 꼽았다. 얼마 전 영화화 작업이 중단됐다가 다시 추진되고 있는 작품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가며 지켜야 하는 의무, 그리고 무언가를 희망할 수 있는 권리. 이런 것들을 다시금 생각해 보도록 만드는 작품이에요.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은 의무고, 그에 기반해 자기 가치관을 표현하는 것은 권리라고 할 수 있지요.” 올여름 태어날 딸이 아빠처럼 만화를 통해 풍부한 정신의 자양분을 얻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어린 친구들이 볼 수 있는 토종 만화가 제가 자랄 때보다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제가 문화부 장관이라면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 만화를 팍팍 밀어줄 겁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③ 1970~80년대 만화를 말하다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③ 1970~80년대 만화를 말하다

    1970년대 우리 만화는 혹독한 시련의 터널을 지나야만 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검열과 ‘신촌 대통령’ 합동문화사의 독점, 유해물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등이 만화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혹한 속에서도 봄을 부르는 싹은 움을 틔우고 있었다. 주간지와 신문 연재 등 새로운 돌파구의 기반이 마련됐고, 어린이가 아닌 어른을 위한 만화문화가 본격적으로 태동하고 있었다. 결국 1980년대 들어 어린이·성인·순정 만화 잡지들이 봇물을 이루며 한국만화는 바야흐로 ‘르네상스’를 맞게 된다. “1970년대에도 검열이 심했다. 부분수정, 전면수정, 폐기만 있었는데 무사통과는 거의 없었다. 작가들은 만화를 잘 그리는 것보다 검열을 피하는 방법을 연구하기에 바빴다. 합동문화사 체제도 작가들을 옥죄었다. 인기 작가가 마음에 안 들면 이름이 비슷한 작가를 만들어 엇비슷한 작품을 그리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창작 분량을 강제로 할당하기도 했다. 출판사가 만들어 낸 유령 작가의 작품을 대신 그려야 하는 괴상한 착취 구조도 있었다.”(김형배) ●만화에 가해진 군사정권의 분서갱유 사회적으로 만화가 푸대접을 받는 상황은 1970년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린이·청소년 문제가 생길 때마다 만화는 항상 일등으로 몰매를 맞았다.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남산이나 동대문운동장에서 불량만화를 모아 태우는 행사가 열렸다. 만화계에서 특히 잊을 수 없는 사건은 1972년 1월 말 일어난 ‘불량만화 파동’이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이 사고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군사정권과 언론은 “어린이가 만화에서 본 내용을 흉내내다 숨졌다.”며 엉뚱한 곳에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특별단속이 시작됐고 경찰은 곳곳의 만화방을 급습해 수만권의 만화책을 폐기처분했다. 그해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을 선포했다. “교육계 전반이 만화에 적의(敵意)를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혀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모든 문제가 만화에서 비롯된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하지만 현재 30~40대인 내 올드팬 가운데 어렸을 때 만화를 읽어서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김형배) ●새로운 만화의 통로, 잡지 1960년대 만화방 중심의 문화는 1970년대 들어 큰 변화를 맞는다. 바로 만화잡지의 확산이었다. 이 시기 어린이 잡지에 실린 만화들은 이전과 달리 호흡이 길어졌다. 1960년대 중후반에 창간된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 등이 그 중심이었다. 컬러 지면을 도입하고 만화 분량을 대폭 늘린 것이다. 특히 어깨동무는 1972년 사상 처음 별책부록으로 ‘도깨비 감투’(신문수)를 끼워줬다. 본지에 연재하던 만화가 7쪽 안팎이었지만 도깨비 감투는 60쪽이나 됐다. 어린이 잡지의 약진은 서점용 단행본 만화문고 등장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게 새소년을 발행하던 어문각의 ‘클로버 문고’다. 1972년부터 약 12년 동안 429권이 나오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 가운데 389권이 만화였다. ●한국만화의 어두운 과거, 표절 클로버 문고는 다른 한편으로, 일본만화 표절이라는 부끄러운 과거를 갖고 있다. 문고의 첫 작품인 ‘유리의 성’(정영숙)과 최고 히트작인 ‘바벨 2세’(김동명) 등 상당수가 일본작품을 베낀 것이었다. 사실 일본만화 표절은 그 역사가 오래됐다. 1952년 한국전쟁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밀림의 왕자’(서봉재)를 첫 표절 사례로 본다. 1951년 나왔던 일본 작품 ‘소년 케냐’를 그대로 옮긴 작품이다. 이후에도 일본만화 표절 및 복제 작품이 인기를 끄는 사례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바벨 2세의 인기 때문에 우여곡절 끝에 ‘바벨 3세’를 그려야 했던 김형배 화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본만화 표절 문제에서 기성 작가 대부분이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사회가 만화를 창작품이 아닌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등 만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결과다. 출판업자들은 돈벌이에 급급해 작가들에게 베끼기를 강요했고, 작가들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야 했다. 만화가와 우리 사회 모두 피해자다.” ●1970년대의 수확, 성인만화 잡지 문화의 발달은 성인만화 시대를 열어젖혔다. 1968년 성인 주간지 ‘선데이서울’과 1970년 국내 첫 스포츠신문 ‘일간스포츠’가 창간됐다. 1970년대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이 매체들은 성인만화 시대를 연 쌍두마차다. 일간스포츠의 경우 1972년 ‘임꺽정’, ‘수호지’ 등 고우영의 극화를 싣기 시작하며 그해 2만부에 불과했던 발행부수가 1975년 30만부로 늘어났다. 선데이서울은 1974년 박수동의 ‘고인돌’을 게재하며 성인만화 인기에 불을 댕겼다. 선데이서울의 성공으로 각종 주간지가 나오게 되는데 강철수가 ‘주간여성’에 ‘청춘의 낙서’를 연재하며 성인만화 붐을 거들었다. 신문이나 잡지도 심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어린이 만화나 만화방용 만화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누릴 수 있어 성인만화의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후 성인만화들도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과정에서는 대대적으로 수정, 삭제 조치를 당해야 했다. ●한국만화 르네상스의 상징, 보물섬 1982년 10월 기념비적인 일이 일어났다. 어린이 만화 월간지 ‘보물섬’이 창간된 것이다. 오로지 만화만 실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만화 잡지였다.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뒀다. 이현세, 허영만, 김수정 등 수많은 인기 작가들이 작품을 연재했다. 그런데 보물섬을 발간한 곳이 육영재단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육영재단은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가 설립했다. 보물섬이 창간되던 해 박근혜(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만화에 암흑기를 드리운 대통령의 딸이 우리 만화 르네상스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이후 1985년 ‘만화광장’, 1987년 ‘주간만화’, 1988년 ‘만화세계’와 ‘매주만화’가 나오는 등 1980년대 중반 이후 성인만화 잡지가 잇따라 창간되며 만화의 전성시대가 열린다. 하지만 영세한 졸속 저질 만화 잡지가 양산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1988년 ‘아이큐 점프’, 1991년 ‘소년 챔프’ 등 일본식 체계를 그대로 이식한 잡지가 잇따르며 우리 만화잡지는 다시 변화를 맞게 된다. 1970년대에 어린이 잡지의 강세에 힘입어 명랑만화가 도드라졌다면, 1980년대에는 장르를 불문하고 장편극화가 큰 흐름을 형성한다. 순정만화도 다시 도약기를 맞는다. 김동화, 한승원, 황미나 등이 먼저 지평을 넓혔다. 이어 장편 서사 멜로물을 앞세운 김혜린, 강경옥, 김진, 신일숙 등이 걸작들을 대거 선보였다. 특히 1988년 11월 순정만화 월간지 ‘르네상스’가 창간되며 순정만화의 꽃은 활짝 만개한다. “1980년대 들어 만화가가 데뷔하고 작품을 발표할 매체가 훨씬 다양해지며 우리 만화가 정점을 이뤘다. 어린이 잡지와 스포츠 신문 등이 큰 역할을 했다.”(김형배)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이 기사는 김형배(65) 화백 인터뷰를 바탕으로 최열 ‘한국 만화의 역사’, 손상익 ‘한국만화통사㈛’, 박기준 ‘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 박인하·김낙호 ‘한국현대만화사’를 참고해 재구성했습니다.
  • 허영만 화백이 추천하는 여수 토속음식

    허영만 화백이 추천하는 여수 토속음식

    2012년 5월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 전남 여수. 세계박람회 개막을 앞두고 이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거리가 온통 떠들썩하다. 여수 시민들에게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자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3일 오후 7시 30분에 방송되는 KBS 1TV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한려수도의 시작과 끝인 여수의 역사와 문화를 되돌아보고, 제철을 맞은 봄 숭어와 봄 도다리를 비롯해 서대·군평선이 등 바다가 내어 준 여수 토속 음식의 화려한 맛을 따라가 본다. 우리 음식의 역사와 맛을 그려 낸 만화 ‘식객’의 저자인 허영만 화백의 고향은 여수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께서 해 줬던 여수 토속 음식은 ‘식객’의 아이템이 되곤 했다. 매년 5월이면 어머니께서 만들어 줬다는 정어리 쌈밥, 그리고 더운 여름이면 아들의 건강을 위해 끓여 줬다던 어머니표 장어탕이 대표적인 예다. 허영만 화백이 추천하고 여수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아주 특별하고도 추억이 담긴 음식을 만나 본다. 여수시 돌산읍 금천 마을. 어르신들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잔치가 열렸다. 평소에는 귀해서 잘 먹지 못하는 새조개로 국을 끓이고, 갑오징어와 함께 회무침도 만들었다. 잔칫날에는 항상 빠지지 않고 올라온다는 서대를 쪄 양념장에 발라 내기도 한다. 특히 돌산도에서 자란 갓으로 담근 갓김치는 물론 시금치로 만든 겉절이 또한 금천 마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토속 음식이다. 마을 주민들의 단합이 가장 잘되는 곳이라며 자랑을 멈추지 않는 금천 마을의 잔칫날 풍경을 따라가 본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만화는 내 사랑] (1) 최강희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만화는 내 사랑] (1) 최강희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이제 곧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입니다. 만화로 그리면 당연히 8전 전승이겠죠.” 최강희(5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만화 사랑은 유명하다. 어렸을 때 만화가를 꿈꿨다. 흔한 어릴 적 꿈 아니냐 싶기도 하지만 그의 초등학교 때 습작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림체는 좀 떨어지지만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캐릭터가 있고 장면도 잘 연출됐다. 축구, 첩보, 쿵후 등 만화 장르도 다양하다. 그가 만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경기 양평 강하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학교에 배달되던 어린이 신문에서 길창덕(1930~2010)과 이원복(66)의 작품을 만났다. 보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틈만 나면 만화를 그리며 상상의 나래를 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 형들은 전교 1등을 다투는 수재들이었다. 집안에서는 만화에 빠져 공부도 하지 않는 그를 걱정했다. 할머니는 만화만 보러 다니는 손자 잡으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 “밥 먹고, 만화 보고, 만화 그리는 것 밖에 안 했던 것 같아요. 신간은 10원에 6권, 구간은 10원에 하루종일이었는데, 만화가게에서 VIP 대접을 받았어요. 나중에는 만화가게 아주머니가 할머니에게 들키지 말라고 자기집 안방까지 내주더라고요.” 거의 모든 만화를 섭렵했다는 최 감독은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김종래(1927~2001)의 작품들과 이상무(66)의 독고탁 시리즈를 꼽았다. 복싱, 축구 등 스포츠 만화는 물론이고 당시 이소룡 영화가 크게 인기가 있어 쿵후 만화도 빼놓지 않았다고 했다. 우신고 시절에도 축구부 친구들을 모델로 축구 만화를 그렸다. 하지만 점점 운동의 비중이 커지면서 만화는 자연스레 멀어져갔다. 다시 만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프로축구 울산 현대 소속이던 1986년 즈음. 훈련을 마치고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후배가 만화책 10권을 빌려왔다. 이현세(56)의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다. “어렸을 때 봤던 만화와는 차원이 달랐어요. 인물이나 배경이 너무나 사실적이었고 내용도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몰라요.” 최 감독은 ‘오! 한강’에서부터 ‘식객’ 등 허영만(65)의 작품도 자주 접한다고 했다. 만화에 대한 사랑과 동경은 여전하지만 요즘은 시간이 부족한 게 아쉽다. 그는 28세에 늦깎이로 태극마크를 달고 그때부터 올림픽부터 월드컵까지 굵직한 무대들을 누볐다. 지도자로 변신한 뒤에는 만화 같은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로 팀에게 우승을 안겼다. 이제 국가대표 사령탑이다. 고졸 출신으로는 역대 두 번째다. 스스로 삶이 만화 같다는 최 감독은 “인생을 살며 아스팔트를 걸어본 적이 없다. 비탈길, 언덕길만 걸었다.”고 했다. 숱한 역경과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데 만화도 용기와 희망을 준 것은 물론이다. “돌이켜 보면 만화를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직접 만화를 그려본 경험은 지도자 생활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만화를 그리려면 이야기와 인물을 설계해야 하는데 팀을 꾸리는 과정도 비슷하거든요.” 한국 만화계가 침체기라는 이야기에 그는 흐름일 뿐이라고 말했다. “축구 경기에도 흐름이 있죠. 우리 만화도 현재 위치에서 노력하다 보면 흐름이 바뀌어 반드시 좋아질 거예요.”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한국만화 명작 100선] 80년대 주름잡던 ‘공포의 외인구단’ 추억 넘어 전설로

    [한국만화 명작 100선] 80년대 주름잡던 ‘공포의 외인구단’ 추억 넘어 전설로

    전문가 100명을 통해 엄선한 ‘한국 만화 명작 100선’은 우리 현대사의 흐름과 삶의 패턴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포함된 가운데 한국 만화의 황금기로 평가되는 1980~1990년대 작품이 절반 이상 차지하고 있다. 황금기에 한몫했던 순정만화와 2000년대 이후 한국 만화를 이끌고 있는 웹툰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 ‘아기공룡 둘리’ 2위에 선정 만화 전문가들에게 최고의 명작으로 꼽힌 작품은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1982)이었다. 당시 사회상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등 억눌린 젊은이들의 감성을 대변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작품이다. 이 만화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뒀고, 그 주제가도 인기를 끌었다.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1983)는 1위를 놓고 끝까지 경합하다 아쉽게 2위로 밀렸다. 전문가들은 허영만 ‘오! 한강’(1987), 고우영 ‘삼국지’(1968), 이두호 ‘임꺽정’(1991), 윤승운 ‘맹꽁이 서당’(1983), 길창덕 ‘꺼벙이’(1970), 양영순 ‘누들누드’(1995), 김산호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1959), 윤태호 ‘이끼’(2007) 등을 시대별로 고르게 10위권에 포진시켰다. 독자들의 선호도는 크게 달랐다. 인기 1위는 여전히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다. 그러나 그 뒤를 허영만 ‘식객’(2002), 박소희 ‘궁’(2002), 강풀 ‘그대를 사랑합니다’(2007), 전극진·양재현 ‘열혈강호’(1994), ‘아기공룡 둘리’, 천계영 ‘오디션’(1998), 조석 ‘마음의 소리’(2006), 허영만 ‘타짜’(1999), 이원복 ‘먼나라 이웃나라’(1987)가 이었다. 비교적 창작 시기가 오래되지 않은 1990년대 이후 작품이 다수 포함되며 톱 10 목록이 달라졌다. 일반 독자 선호도 조사는 전국 15세 이상 49세 이하 남녀 가운데 명작 100선에서 5편 이상 읽은 1000명을 대상으로 올 1월 26~30일 이뤄졌다. 오차범위 ±3.1%로 신뢰수준 95%다. 선호도를 떠나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읽었는지를 뜻하는 열독률에서도 순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1위는 ‘아기공룡 둘리’(67.5%)가 차지했다. ‘먼나라 이웃나라’와 배금택 ‘열네살 영심이’(1988)가 63.1%로 공동 2위였다. 이진주 ‘달려라 하니’(1985), ‘공포의 외인구단’, ‘식객’, 이두호 ‘머털도사님’(1985), ‘꺼벙이’, ‘궁’, ‘타짜’가 뒤를 이었다. 남녀노소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명랑 만화체 작품이 크게 늘어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허영만 다섯 작품 선정돼 최다 영예 명작 100선 선정은 작가가 아니라 작품을 기준으로 진행됐다. 이 때문에 100선에 1편 이상 뽑힌 작가도 16명에 달했다. 이현세와 함께 한국 만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인 허영만이 무려 다섯 작품을 올려 1위를 했다. 초창기 ‘각시탈’(1974)에서부터 ‘오! 한강’과 ‘비트’(1994)를 거쳐 ‘타짜’, ‘식객’까지 포함됐다. 데뷔 40년이 가깝도록 항상 변화를 추구, 여전히 정상을 지켜내며 시대를 뛰어넘는 이야기꾼임을 과시하고 있는 셈이다. 만화는 어린이만 보는 것이라는 편견을 깨뜨린 성인만화의 개척자 고(故) 고우영도 시대를 반영한 해학과 풍자를 섞어 고전을 재해석한 ‘삼국지’와 ‘수호지’, ‘임꺽정’(이상 1974), ‘일지매’(1977) 등 네 편을 올렸다. ‘순정만화 레전드’ 가운데 한 명인 김혜린과 가장 한국적인 작품을 그리며 ‘국보급 작가’로 꼽히는 이두호가 각각 세 편을 100선에 진입시켰다. 이두호는 ‘머털도사님’, ‘객주’(1988), ‘임꺽정’이고 김혜린은 ‘북해의 별’(1983), ‘비천무’(1988), ‘불의 검’(1992)이다. 이 밖에 강풀·권가야·김수정·신문수·신일숙·양영순·윤태호·이상무·이정문·이희재·최규석·황미나도 두 편의 작품을 100선에 진입시켰다. ●1980~90년대 순정만화 14개 ‘약진’ 성별에 따라 선호도가 확연하게 갈리는 순정만화가 대거 포함된 점도 눈에 띈다. 모두 열네 작품이 포함됐다. 김혜린의 작품을 비롯해 황미나의 ‘굿바이 미스터 블랙’(1983)과 ‘레드문’(1994), 이진주 ‘달려라 하니’, 신일숙 ‘아르미안의 네딸들’(1986)과 ‘리니지’(1993), 강경옥 ‘별빛속에’(1987), 김진 ‘바람의 나라’(1992), 원수연 ‘풀하우스’(1993), 박희정 ‘호텔 아프리카’(1995), 천계영 ‘오디션’, 박소희 ‘궁’이다. 각종 만화 잡지가 쏟아지며 한국 만화가 황금기를 이뤘던 1980~90년대에 집중된 점이 눈길을 끈다. 대개 타 장르도 비슷한 상황이긴 하나 순정만화 장르가 잡지 시장이 열악해진 1990년대 후반 이후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2000년대 ‘웹툰’ 주류가 되다 역사는 짧지만 현재 한국 만화를 견인하고 있는 웹툰이 다수 포함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웹툰은 1990년대 후반에 싹을 틔워 2000년대 이후 본격화된 한국의 톡특한 만화 장르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만화와 달리 독자와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졌다. 또 ‘디지털 키즈’를 끌어당기는 스토리텔링과 연출 방식으로 짧은 시간에 전통적인 만화 플랫폼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기성 만화가들은 디지털에 아예 진입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만화 문법에 적응하지 못하며 도태되는 경우가 많아 한국 만화계에 희망과 고민을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강풀의 ‘순정만화’(2003)와 ‘그대를 사랑합니다’, 양영순의 ‘천일야화’(2005),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2006), 조석의 ‘마음의 소리’(2006), 윤태호의 ‘이끼’(2007), 주호민의 ‘신과 함께’(2010) 등 2000년 이후 작품 가운데 절반인 일곱 개가 웹툰이다. 웹툰 고유의 스크롤 방식은 아니지만 온·오프라인 동시 연재를 했거나 온라인에서 먼저 선보였던 허영만 ‘식객’과 최규석 ‘100도씨’(2009)까지 넓은 의미의 웹툰으로 포함한다면 웹툰이 한국 만화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확연해진다. ●이제 만화도 스마트 시대 명작 100선 선호도 조사와 함께 진행된 만화 열독 방식에 대한 조사 결과도 매우 흥미롭다. 만화를 즐기는 방식에 있어서 변화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1000명에게 만화를 보는 주된 방법을 물었더니 노트북이나 데스크톱 컴퓨터 등으로 본다는 응답이 42.7%로 가장 많았다. 주로 스마트폰을 이용한다는 응답자도 21.6%에 달했다. 결국 디지털 방식으로 만화를 즐기는 비중이 64.3%에 이른다는 뜻이다. 반면 전통적인 방식은 크게 위축됐다. 단행본 등 책 형태로 본다는 응답자는 22.9%, 스포츠신문에서 본다는 응답자는 9.4%에 머물렀다. 최근 흐름에서 가장 눈여겨볼 지점은 스마트 기기 부문이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보유한 비중은 79.2%로 집계됐다. 10명 중 8명이 스마트 기기를 보유한 셈이다. 이 가운데 스마트 기기를 통해 ‘매일’ 만화를 본다는 응답자는 16.0%였다. 매일 보는 경우를 포함해 ‘주 2~3회 이상’ 스마트 기기로 만화를 보는 비율은 44.3%에 달했다. 전체적으로 따져보면 스마트 기기 보유자들은 스마트 기기를 통해 만화를 월평균 8.3회 보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만화계가 스마트 기기에 어울리는 만화 콘텐츠를 개발해야 하는 까닭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한국만화 명작 100선] 본지-진흥원 ‘100선 기획’ 어떻게

    [한국만화 명작 100선] 본지-진흥원 ‘100선 기획’ 어떻게

    우리 만화가 치열한 글로벌 문화전쟁 속에 영화·드라마·음악을 잇는 차세대 한류 콘텐츠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만화는 위상에 걸맞은 대접을 받은 적이 없었다. 저급 오락물로 폄하되거나 청소년 유해매체로 배척되기 일쑤였다. 특히 기록의 보전과 가치의 평가에 있어서는 어떤 다른 분야보다 허술하고 하찮게 다뤄졌다. 서울신문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하 진흥원) 공동 ‘한국 만화 명작 100선’ 선정은 바로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서울신문과 진흥원은 지난해 11월 ‘한국 만화 명작 100선’ 기획 추진 협약을 맺고 본격적인 실무작업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전문성과 신뢰성을 두루 갖춘 명망 있는 선정위원단 확보였다. 한국만화가협회, 우리만화연대 등 관련 단체들의 추천을 통해 만화가, 교수, 평론가, 출판인 등 100명의 선정위원단이 구성됐다. 작품 추천이 특정 시대나 장르에 치우치는 것을 막기 위해 직군별, 장르별, 연령별, 성별 등을 세심하게 안배했다. 선정위원들은 한 권이라도 단행본으로 출간된 작품을 1인당 10~20편씩 추천했고, 이를 통해 한국 만화사 103년을 함께해 온 500여편의 주옥같은 우리 만화가 추려졌다. 서울신문과 진흥원은 이 가운데 추천 횟수 상위 100편으로 한국 만화 명작 100선을 확정했다. 진흥원은 이에 더해 올 1월 일반 독자 1000명을 대상으로 100선 개별 작품에 대한 선호도 조사를 했다. 우리 만화 사상 최초의 명작 100선은 이런 과정을 거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신문은 전문가 추천 100선의 개별 순위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고 상위 10편만 공개하기로 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100선 선정 도와주신 분들 강도하 강병한 강인선 고경일 고아라 곽현창 권가야 김낙호 김동범 김동화 김미림 김병수 김성훈 김세영 김수용 김양수 김은권 김준구 김충영 김현국 김형배 김혜린 라상균 문정후 박건웅 박경철 박관형 박기준 박소희 박인하 박재동 박정서 박정훈 박흥용 방학기 백무현 백정숙 백준기 서승택 서찬휘 손기환 손문상 송낙웅 신문수 신일숙 신형빈 얌이 양영순 양재현 오경은 오태엽 원종우 위원석 유승열 유승하 윤기헌 윤태호 이두호 이상무 이우영 이재식 이정문 이정은 이진희 이충호 이해광 이현석 이현세 이희재 임덕영 임청산 장봉군 장정숙 장진영 전극진 전진석 정필원 조관제 조득필 조항리 조희윤 주완수 주재국 주호민 진정식 천강원 천계영 최규석 최민 최재봉 하일권 한상정 한창완 허영만 형민우 홍승우 홍재철 홍종민 황미나 황민호(이상 가나다순)
  • [한국만화 명작 100선] ‘100選 만화방’ 놀러오세요~

    “우리 만화 100선을 어떻게 볼 수 있나요?” 한국 만화 명작 100선 가운데 중장년층이 향수를 느끼는 1980년대까지의 작품은 절판 등으로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다음 달 경기 부천 한국만화박물관 내 만화도서관에 ‘한국 만화 명작 100선 만화방’을 만들기 때문이다. 기존 만화도서관 서가에 100선 개별 작품을 비치하는 특별 코너를 마련해 남녀노소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박물관 수장고에 소장된 희귀 영인본도 복사본 형태로 독자들과 만나게 된다. 진흥원은 또 명작 100선을 번갈아가며 상세하게 소개하는 순서도 마련할 예정이다. 만화도서관은 월요일(정기휴관), 1월 1일, 설 연휴, 추석 연휴를 빼고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중무휴 이용할 수 있다. 도서관 입장은 무료이지만 ‘고우영 기념관’, ‘만화가의 머릿속’ 등 각종 전시·체험 코너가 마련된 만화박물관을 이용하려면 4000~5000원이 필요하다. 진흥원은 23일부터 만화 전문 사이트 ‘디지털 만화규장각’(www.kcomics.net)을 통해 서울신문과 공동으로 선정한 ‘한국 만화 명작 100선’ 목록 전체를 공개하고 상세한 작품 정보도 제공한다. 또 온라인서점 ‘대교 리브로’(www.libro.co.kr)와 함께 한국 만화 응원 이벤트도 진행한다. 25일부터 두 달 동안 리브로 코믹 사이트에 명작 100선 특별 페이지를 만들어 응원 댓글이나 100선에 얽힌 추억 또는 감상 등을 남긴 독자 가운데 10명을 추첨해 최근 복간된 허영만의 ‘각시탈’을 선물한다. 이 밖에 진흥원은 ‘한국 만화 명작 100선’을 기존에 진행하고 있는 만화 복간 사업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한국만화 명작 100選… ‘공포의 외인구단’ 1위

    한국만화 명작 100選… ‘공포의 외인구단’ 1위

    ‘꺼벙이’와 ‘둘리’, ‘오혜성’ 중에 가장 대표적인 한국만화 캐릭터는 무엇일까. 허영만과 이현세, 고우영, 이두호 중에 불멸의 역작을 가장 많이 남긴 작가는 누구일까. ●부천 박물관에 ‘100선 만화방’ 한국 만화역사 100여년을 빛낸 대표작품 100편의 명단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신문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우리 만화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 보고 향후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만화 명작 100선’을 공동으로 선정, 22일 발표했다. 만화는 오랜 세월 한국인의 정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중요한 문화 콘텐츠로 성장해 왔고, 최근에는 ‘K코믹스’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입지도 빠르게 넓혀 가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작품들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분석·평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관심과 조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서울신문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우리 만화사의 주역들을 ‘명예의 전당’으로 초대하기로 했다. 만화가 52명, 평론가 10명, 교수 18명, 출판기획자 20명 등 만화 전문가 100명에게 조언을 구해 ‘한국만화 명작 100편’을 최종 선정했다. 그 결과 1위는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1982)이 차지했다. 서울신문은 앞으로 다양한 기획기사를 오프라인·온라인(www.seoul.co.kr)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새달 경기 부천 한국만화박물관에 ‘명작 100선 만화방’을 설치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유통 포함 생산효과 2조원 만화는 문화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산업적으로도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0년 국내 만화산업의 생산유발 효과는 기획·제작 단계에서만 1조 3597억원에 달하고 유통 부문까지 포함하면 2조 1162억원에 이른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현재 국내 만화계는 K코믹스를 영화, 드라마, 스포츠, 음악에 이은 차세대 한류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한국 만화 명작 100편 선정이 여기에 강한 추진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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