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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저가항공 시대/함혜리 논설위원

    선명한 오렌지색 로고가 트레이드 마크인 이지제트는 유럽 저가 항공사의 선두주자다.1995년 그리스 출신의 청년 실업가 스텔리오스 하지-이오아노가 보잉 737기 두대로 출발한 이 회사는 현재 100여대의 항공기로 유럽내 230개 노선을 운항 중이다. 이 회사의 최대 강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대형 항공사들보다 평균 30% 싼 가격을 제시한다. 노선이나 거리, 예약시기에 따라 최대 80%까지도 할인해 준다. 노하우는 간단하다. 항공사 특유의 허세와 거품을 없애고 이를 원가 절감하는 데 반영해 고객들에게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다. 저가 항공사의 효시는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항공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공동 창업자이자 1978∼2001년 CEO였던 허브 켈러허는 저가항공 업계의 신화적 인물이다. 그는 항공산업의 오랜 ‘게임의 법칙’을 파괴하고 새 규칙을 만들었다. 대륙간 장거리 운항이나 시장점유율에 집착하지 않고 국내 단거리 노선을 집중 공략한다. 비행기는 가격협상 우위와 안정적인 정비 품질 등을 고려해 한가지 기종으로 통일한다. 제2공항을 이용해 비행기의 공항 체류시간을 최소화하면서 높은 수익성에 초점을 맞춘다. 기내식·음료 제공 등의 서비스는 제거하고 단거리 고객이 요구하는 높은 안전성, 정시 발착, 낮은 요금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켈러허의 전략은 저가 항공사들에 금과옥조가 되고 있다. 항공수요가 중산층 가족 단위 여행객으로 확산되면서 세계적으로 저가 항공사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항공시장의 20%를 저가 항공사들이 차지하고 있고, 중국·동남아에서도 확장세를 보인다. 국내에도 저가 항공사가 속속 문을 열고 있다. 기존 한성항공과 제주항공 외에 군산·부산·인천에 연고를 둔 저가 항공사들이 순차적으로 운항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한항공도 이르면 2∼3년내 계열사를 통해 국내선과 일본·중국 등 중·단거리 노선에 저가항공편을 운항한다는 계획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수요자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안전성이다.‘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다면 저가 항공사의 성공은 보증수표를 받은 거나 다름없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과세자료 공유안돼 세금 ‘줄줄’

    지방세 관련 과세자료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지방세가 줄줄 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업을 하면서 지방세를 체납한 이들이 오히려 법인세 등 국세를 환급받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6∼9월 행정자치부와 고양시 등 자치단체들을 대상으로 감사를 벌인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고 26일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서울 강남의 한 주식회사는 지난 1998년 6월∼2006년 2월까지 지방세인 재산세 1700만여원을 체납하고도 2000년 2월∼2006년 8월까지 국세인 법인세 4100만여원을 환급받았다. 지방세 및 국세 환급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서다. 지난해 6월 현재 1000만원 이상의 지방세 체납자 7000여명이 환급받은 국세는 2226억원에 이른다. 지방세인 담배세의 경우 담배 수입업자가 신고를 아예 하지 않거나 축소 신고를 함으로써 고양시 등 27개 시에서 2년간 50억원의 지방세를 걷지 못했다. 수입 담배에 대한 국민 건강증진부담금 9억여원도 부과되지 않았다. 담배 수입업체가 관세청의 통관 자료와 다르게 통관 사실을 지자체에 신고해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이 신축한 건물의 과세 표준을 잘못 적용,36개 시에서 취득세 101억원이 징수되지 못했다.27개 자치단체의 경우 385개 업체가 사업소세 신고를 하지 않거나, 세액을 적게 신고하는 방법으로 모두 20억여원의 사업소세를 누락했다. 지자체가 징수하는 면허세의 경우 면허뿐 아니라 단순 신고나 등록에 대해서도 수수료 성격으로 징수하면서, 면허 수수료를 별도로 받고 있어 납세자에게 이중의 부담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 관계자는 “지방세 세수 규모가 36조원에 이르는데도 행자부의 지도·감독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행자부 장관에게 관세청 등의 지방세 과세 자료를 지자체가 공유할 수 있도록 과세자료 공유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사설] 허세욱씨 사망을 애도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해 분신했던 허세욱씨가 그제 숨을 거뒀다. 한·미 FTA에 대한 평가와 찬반을 떠나 고귀한 목숨이 희생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허씨는 유언장에서 비정규직인 운전기사 동료들의 어려운 처지를 감안, 자신을 위한 모금을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보였다. 정부는 한·미 FTA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을 일일이 보듬는 마음으로 후속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미 FTA는 우리 경제가 미래로 나가기 위한 관문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특정계층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양극화를 극복하고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심어줘야 한다. 그런 설득과 홍보노력이 부족함으로써 허씨 사태와 같은 불행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정부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 FTA 반대진영 역시 자중해야 한다. 허씨의 장례식을 둘러싸고 한·미 FTA저지 범국본과 민노당, 민주노총은 유족측과 갈등을 빚었다. 유족측은 범국본 등의 합동장례 요청을 뿌리치고 어제 서둘러 가족장 형태로 화장 절차를 끝냈다. 범국본 등은 허씨의 영결식과 노제를 자체적으로 치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순수한 애도를 위한 것이라면 말릴 수 없겠지만,FTA 반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뜻이 깔렸다면 자중하는 게 낫다. 반대 진영의 감정을 고조시켜 행여나 또다시 극한 대립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미 FTA의 문제점 지적과 보완 요구는 합리적인 토론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 故허세욱씨 가족장 마쳐 시민단체 “18일 사회장”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반대해 분신한 고 허세욱(53)씨가 유가족들의 뜻에 따라 16일 오전 화장됐다. 허씨 유가족들은 사회장으로 치르자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요청을 거부하고 사망 하루 만인 이날 가족장 형태로 장례식을 진행했다. 허씨 유족들은 이를 위해 경기 안성시 성요셉병원에 있던 시신을 이날 오전 6시30분쯤 경기 성남시 성남영생관리사업소로 옮긴 뒤 11시20분쯤 화장했다. 허씨의 유골은 ‘전국 미군기지에 뿌려달라.’는 그의 유언과 달리 화장장 내에 뿌려졌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은 가족장과는 별도로 18일 대규모 사회장을 강행하기로 했다.‘한·미FTA무효 민족민주노동열사 허세욱 동지 장례대책위원회’는 이날 서울 영등포2가 민주노총 건물 1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허씨의 장례를 가족과 함께 치를 수 없다면 자체적으로라도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장례대책위는 빈소를 고인이 숨진 한강성심병원에 차리고 18일 분신장소인 서울 하얏트 호텔 앞에서 노제를 여는 등 허씨의 장례를 ‘한·미 FTA 무효 민족민주노동열사장’으로 치를 계획이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反FTA’ 분신 허세욱씨 끝내 숨져

    ‘反FTA’ 분신 허세욱씨 끝내 숨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막바지 협상이 진행되던 지난 1일 협상장인 서울 하얏트호텔 앞에서 분신을 시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온 허세욱(54)씨가 15일 오전 11시23분쯤 화상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숨졌다. 허씨의 치료를 맡았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성심병원 측은 “허씨가 오전부터 갑자기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결국 숨졌다.”고 밝혔다. ‘한·미 FTA 무효 민족민주노동열사 허세욱 동지 장례대책위원회’(대책위)는 “장례식을 사회장으로 치르기 위해 유가족들과 협의에 나섰지만 허씨의 가족들은 시신을 경기 안성시 성요셉병원으로 옮겨 놓고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기를 원해 장례 절차 등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한강성심병원 앞과 전국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지부에 허씨의 빈소를 차려 놓고 한·미 FTA 무효화와 노무현 정권 퇴진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책위가 이날 공개한 허씨의 유서에서 허씨는 자신이 일했던 서울 H운수 동료들이 넉넉지 않게 생활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한 듯 ‘모금은 하지 말아 주세요. 전부 비정규직이니까.’라고 당부했다. 그는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전국의 미군기지에 뿌려서 밤새도록 미국놈들 괴롭히게 해 주십시오. 효순ㆍ미순 한(恨) 갚고 (미군 기지에 유해를 뿌려서 내게 될) 벌금은 내 돈으로 부탁합니다.”고 적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빨리 일어나 집회 가야죠”

    “빨리 일어나 집회 가야죠”

    지난 1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장 앞에서 분신을 시도해 중태에 빠진 택시기사 허세욱(54)씨는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지 ‘참여사회’의 표지 인물에 선정될 정도로 시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2일 허씨가 입원 중인 서울 여의도 한강성심병원에는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를 비롯한 ‘반 FTA’ 진영 인사들의 문병 행렬이 이어졌다. 지인들은 “그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쾌유를 기원했다. 병원 관계자는 “의식은 돌아왔지만 생명이 위독한 상태”라면서 “피부이식 수술 등 6개월 정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한 만큼 대접받는 사회 만들고 싶다” 허씨는 2004년 1월호에는 표지 인물로, 올 2월호에는 회원 인터뷰로 잡지에 실렸다. 당시 잡지를 편집했던 최인숙 참여연대 간사는 “신년호라서 참여연대 활동에 가장 열심이셨던 분들에게 표지 모델을 부탁드렸다.”면서 “그는 평회원이었지만 각종 행사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고 전했다. 허씨와 함께 표지 인물에 선정됐던 회원 이옥수(59·미용사)씨는 “허씨는 집회나 행사가 있는 날이면 먼저 전화를 걸 정도로 헌신적으로 활동했다.”면서 “그날도 협상장에서 누군가 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먼저 집회장에 가보자며 전화했는데, 통화가 안 돼 혼자 나갔다가 전후 사정을 듣고 가슴이 내려앉았다.”며 눈물을 삼켰다. 허씨는 올 2월호 인터뷰에서 자신의 평소 생각을 구체적으로 밝혔다.“집회장엔 상하도 없고 너와 나도 없습니다. 오직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힘만이 있을 뿐이죠. 일한 만큼 대접받는 사회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집회 빠짐없이 참석… ‘참여사회´ 표지모델로 16년 동안 택시 노동자로 살아온 허씨는 1995년 서울 관악구 봉천동 철거민 시절 지역 주민들의 어려운 삶을 접하면서 시민 운동에 눈을 떴다. 이후 98년 10월부터 참여연대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효순·미선양 추모 촛불집회와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운동,FTA반대 운동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한달 월급이 100만원 남짓에 불과했지만 ‘관악주민연대’,‘관악사회복지’ 등 지역 단체에 참여해 어려운 이웃을 위해 활동했다. 나경채 민노당 관악구위원회 지방자치위원장은 “그는 쉬는 날이면 강연을 찾아가 들으며 FTA에 대해 공부했고, 택시에 홍보물을 가지고 다니며 손님들에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정지인 참여연대 회원참여팀장은 “따로 연락하지 않아도 늘 제자리를 지켰던 분”으로 기억했다. 정 팀장은 “지난달 29일 밤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 위해 택시 일을 마치고 한숨도 못잔 채 천막 농성장에 나와 밤 새워 피켓을 만든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최인숙 간사는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보일러가 낡아 집이 춥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기억하고 보일러 기술자에게 부탁해서 고생하는 간사들 집을 고쳐주겠다고 했다.”며 쾌유를 기원했다. 이날 병원을 찾은 회사 동료는 “산소호흡기를 낀 상태에서도 몸을 일으켜 뭔가를 말하려 했다.”면서 “하루 빨리 나아서 가슴 속에 삭인 절규를 뱉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CEO칼럼] 고통의 가시도 축복/박종원 코리안리 사장

    [CEO칼럼] 고통의 가시도 축복/박종원 코리안리 사장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이 암초에 걸려 있어 이를 극복하고 이겨내기가 힘들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인생의 긴 여정을 걷다 보면 가난, 질병, 실직 등 사람마다 제각기 자기 인생을 힘들고 아프게 하는 고통의 가시를 경험하기 마련이다. 인간의 존재는 나약하므로 그런 고난을 겪을 때마다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이 주어지는가.’하며 불평하거나 낙담하지만, 고난 뒤에는 반드시 축복이 오는 것이 신의 섭리이다. 하나님은 바울 선생의 육신에 가시와 같은 고통을 내려주어 그가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그는 처음에는 육체를 찌르는 그 고통을 힘들어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겸손하게 기도했고 그 과정에서 믿음이 깊어져 나중에는 자기가 겪은 가시의 고통 속에 오히려 축복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이가 열병으로 밤새 부모의 애간장을 녹인 뒤 한 단계 성장하는 것처럼, 고난 속에서 더 겸허한 자세로 인내하여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면 이 고난이야말로 축복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시련이 있어야 자만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더욱 정진한다는 사실은 위인들의 생애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충무공은 과거시험에서 예기치 못한 낙마(落馬)로 낙방했지만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재도전해 32세라는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했다. 당시 군관(軍官)의 문란한 기강 속에서 소인배들의 모함을 받아 번번이 좌천당했지만 그 때마다 의지를 잃지 않고 백의종군해 민족을 구한 영웅이 됐다. 명의 허준 역시 한때는 ‘중인(中人)’이라는 신분상의 제약으로 실의에 빠지기도 했으나, 마음을 다잡고 의술에 전념하여 ‘한(恨)’을 박애의 정신으로 승화함으로써 당대는 물론 오늘날까지 의료인들의 표상이 되고 있다. 만일 그가 신분상의 핸디캡이 없었다면 적당히 공부하여 평범한 양반으로 평생을 살았을 것이며,‘동의보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나 회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헐벗고 굶주리던 신생 국가로 출발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남보다 몇갑절 노력해 전쟁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고 급속한 산업발전을 이뤘다. 그러다가 또다시 교만하고 경솔해져서 허세를 부려 외환위기라는 고난을 겪었지만, 온 국민이 하나가 돼 구조조정 고통을 감내하고 다시금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경제대국(세계 11위)으로 거듭났다. 현재 우리 사회는 경제·양극화·북핵문제 등 사회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청년실업이라는 수렁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은 본질적 위험이 아니라 우리 몸 한 부분에 박힌 가시에 해당하는 고통이자,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한 필연적 성장통이다. 정말 위험한 것은 이러한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열정을 잃는 것이다. 희망을 가지고 남보다 더 창의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반드시 축복이 약속돼 있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워진다는 말이 있다. 밤이 깊을수록 사방은 더 캄캄해지고 어디로 갈지 방향조차 잡기 힘들지만 인내하고 견디면 곧 희망의 새벽 동이 트기 마련이다. 우리의 고난과 고통도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은 해결할 길 없이 앞이 캄캄하지만 희망과 비전을 가지고 극복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축복이 있을 것이다. 고통의 가시가 앞에 있더라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희망의 끈을 붙잡고 나아갈 때 그 가시 위에는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어날 것이다.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
  • [Seoul In] 강북구 장애인 방문 세무상담 서비스

    강북구(구청장 김현풍) 움직임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해 가정방문 세무상담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상담은 경험이 풍부한 팀장급 6명이 분야별로 맡고 있다. 서비스 콜 전화는 주택·건물·토지 재산세 901-6347. 부동산 취·등록세 901-6348. 자동차세 901-6354. 주민세, 면허세, 사업소세 901-6353. 지방세 체납 901-6351. 개별주택가격 901-2203 등이다. 서비스 대상은 부동산 등을 보유한 장애인 6000여명이다.
  • [03일 TV 하이라이트]

    ●라이프n조이(YTN 오전 11시35분) 하늘과 땅이 맞닿는 지평선의 고장, 전북 김제. 너른 들판의 김제평야를 지나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사찰, 망해사를 둘러본다.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에 올라 땅과 바다와 하늘이 한점으로 만나는 광경을 감상한다. 모악산 기슭에 위치한 금산사를 찾아 미륵전과 주변의 석탑도 둘러본다.   ●스페이스-공감(EBS 오후 10시) 세상과의 대화, 소통을 갈망하는 음악 ‘오소영’과 ‘이다오’. 이 둘의 공통점은 조동익, 조동진, 장필순 등이 함께했던 포크음악 공동체인 ‘하나뮤직’의 멤버. 조동익의 프로듀싱으로 첫 앨범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확연히 다르다. 이들의 새로운 곡들을 감상해본다.   ●그것이 알고 싶다〈혼테크의 그늘, 혼수파혼〉(SBS 오후 11시5분) ‘결혼은 투자다.’ 혼수 갈등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혼수에 대한 부담감으로 차라리 혼자 살겠다는 예비신부부터 아예 재혼시장에서 좋은 상대를 만나겠다는 여성들도 있다. 허세와 거품, 사치로 물든 혼수문화의 실태를 들여다 본다.   ●누나(MBC 오후 7시55분) 지나 할머니는 승주 아버지에게 아들 민준기와 형제의 연을 맺어 한 가족처럼 우애있게 지내자고 한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승주네 식구들은 놀라지만 승주 아버지는 자신도 평생 어머니처럼 모시겠다며 흔쾌히 대답한다. 병원에서 돌아온 수아는 주스 두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가루약을 털어넣는다.   ●행복한 여자(KBS2 오후 7시55분) 하영은 준호에게 미국에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하고, 두 사람은 기한을 정해 놓은 시한부 연애에 빠져든다. 닥터 고와 함께 교외에 나갔던 선영은 준호와 하영이 함께 모텔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한다. 태섭은 세종이와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입양기관에 보내지만 마음을 잡지 못한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KBS1 오전 10시) 적도 아래편 1만 7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섬, 인도네시아. 동부에 자리한 아름다운 섬 발리는 세계 모든 여행자들이 한번쯤 여행을 꿈꾸는 휴양지다. 발리는 휴양지, 관광지의 모습 외에도 이 섬만의 독특한 문화를 품고 있는 섬이다. 인도네시아의 작은 보석, 발리로 떠나본다.
  • [OUR STORY] 섬마을 남해 자전거 하이킹

    [OUR STORY] 섬마을 남해 자전거 하이킹

    우리나라 남해안의 섬은 그 빼어난 풍광으로 무척 아름답다. 또한 여기저기 흩어져 연결되는 섬마다 사연도 많아 일년내내 찾아도 그 느낌이 각각 다르다. 특히 화가의 눈에 비쳐진 남해 섬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가는 곳마다 캔버스의 그림처럼 예술작품으로 다가오며 미적 카타르시스를 빚어낸다. 앞으로 3회에 걸쳐 한려수도와 경남 남해의 섬을 돌아볼 예정이다. 이번 주는 첫회로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읍에서 1박, 남해도 서쪽 해안선을 따라 ‘다랭이 마을’로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두번째는 남해도에서 ‘창선도’를 거쳐 2006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뽑힌 길을 따라 늑도 대교, 창선교, 삼천포 대교를 지나 삼천포 항을 거쳐 통영으로 간다. 마지막에는 통영에서 거제교를 지나 장승포 남쪽 해안선을 따라 ‘해금강’으로 가는 아름다운 해변 길을 느껴볼 예정이다. 글·그림 화가 남궁문 artistdiary@hanmail.net 섬이 커서였을까. 남해도는 산도 높아 보였고 그만큼 길도 험했다. 그러기에 여기저기 계단식 논들 역시 눈에 많이 띄었다. 길은 산과 언덕을 따라 계속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그럴 때마다 마을이 하나씩 등장했다. 처음엔 이리저리 둘러 보며 관심을 가졌지만, 내리막길에선 마주치는 바람 때문에 추위에 진저리를 쳐야 했다. 이제 길은 바다 쪽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는데, 해도 맑아서 겨울바다는 계속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언덕 길 몇 굽이를 돌다 보니 시야도 서서히 터지기 시작했다. #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의 비탈마을 섬의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하늘은 왜 이다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하기만 한가. 사실,1년을 살아도 오늘 같이 이렇게 맑은 날이 그다지 많지 않음을, 나이 50줄에 접어들면서야 깨닫게 된 일이다. 날씨가 이렇게 티 없이 깨끗하다는 건, 그만큼 내가 운이 좋다는 얘기이다. 게다가 점점 바다는 넓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 깨끗한 바다, 수평선, 맑은 하늘.. 자전거로 달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여행은 행복하지 않을까. 여기는 남녘이라 바람도 온화해서, 마을마다 이른 봄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따사로와 보이기도 했다. 굳이 서둘러 갈 일도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걷는 것은(오르막이라 자전거를 끌면서 걷고 있었기에), 그리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니니 최대한 즐기면서 천천히 가도 될 것이다. 그렇게 또 한 굽이를 도는데, 아, 거기가 바로 내가 오고 싶었던 ‘다랭이 마을’이었다. 산 중턱에 옹기종기 마을이 형성되어, 척박한 주변 환경의 농지는 다 계단식(다랭이) 논인데다 그 앞에는 너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는 아늑한 마을.45도 비탈에 108층이나 되는 계단식 논은 마치 신이 빚은 모습이었다. 옛 사람들은 이 척박한 땅에 농사를 지으려고 저렇게 계단식인 다랭이 논을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게다. 그리곤 또 저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왔으리라. 그런 이 지역의 특수성을 간직한 채, 그동안 오랜 세월을 조용하고 이름 없이 견뎌왔을 한 가난한 어촌 마을.‘다랭이 마을’이란 이름 속엔, 그런 모든 속뜻도 다 포함돼 있을 듯 싶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런 곳을 와 보고 싶다는 꿈을 꾸곤 했었다. 한 나그네가 되어, 바다와 수평선이 보이는 이런 평화로운 언덕길이 있는 마을을 그저 지나가 보고 싶었을 뿐이다. 정말, 천혜의 조건이었다. 어쩌면, 비밀의 요새 같기도 한, 그러면서도 어쩐지 신비스럽기까지 한 마을의 모습은 저절로 감탄사가 튀어 나온다. 여름이거나 가을 같은 경우엔 다랭이 논의 색깔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좀 자세히 보니, 최근에 지었을 법한(아니면 개축을 했을 법한) 새로운 사각의 콘크리트 집들도 몇 채 눈에 띄었다. 게다가 이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을 이상한 형태의 집들도 건설되고 있었다. 아, 그 건 ‘불협화음’이었고, 크나큰 아쉬움이었다. 이미 저 마을도 저런 현대식 집이거나 마을 뒤 도로 쪽의 이런저런 관광시설 등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난 조금 실망하고 말았다. 저렇게 현대화 바람이 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체념만 하기엔 이 아름다운 자연조건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다랭이 마을은 다랭이 마을일 때에만 그 가치가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내가 저 사람들에게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가난하게만 살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 얻어 먹었던 ‘하얀 고구마´의 추억 초가집이었을 때 와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그렇게 터무니없는 꿈을 꾸고 있었다. 이렇게 따스한 날에는 저런 어떤 한 집의 마루에 걸터앉아, 시원한 동치미에 따끈한 고구마를 먹어도 좋으리라. 그래 나는 어제 밤에도 고구마를 먹었었지. 바로 이 섬, 남해도로 들어오다가 얻어 먹었던(?) ‘하얀 고구마’에 얽힌 기분 좋은 꿈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미 어둠이 내렸고, 남해대교를 건넌 뒤 조금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는데,‘배 직판’이란 등이 켜진 간판이 보였다. 그런 일이 있으려고 그랬을까. 내 마음은 그 곳으로 끌리고 있었다. 시원한 뱃물이 입 속 가득 담기는 환상에 젖어,‘저기 가서 배를 두어 개 깎아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전거를 끌었다. 그 가게는 컨테이너 박스로 되어 있었는데, 안에 여자가 있어 보였다. # 넉넉한 인심에 배부른 길손 “아주머니! 저, 배 좀 먹고 갈 수 있을까요?”하고 불렀더니,“예, 들어 오세요.”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나오는 사람은 어린 티가 나는 여학생이었다. 좀 의아했지만 나는 “내가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중이라, 배를 사러 온 건 아니고. 지금 너무나 목이 타서 들른 것이니 배 한 두개만 깎아 먹고 가도 될까요?” 하고 물으니,“그러세요.”하면서도, 그 여학생은 유심히 나를 살피는 기색이었다.“그럼, 조금 기다리세요.” 하더니, 배를 가져 오려는지 그 뒤에 있던 집 쪽으로 나갔다. 그러더니 곧 이어 그리 크지 않으면서 볼품도 없는 배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여행을 다니세요?” 하고 조심스럽게 묻는 것이었다. “그러게나 말이오.” 하면서 나는 그 배를 받아 깎으려는데,“아니라예. 제가 깎아 드리께예.” 하면서 자신이 들고 있던 배를 직접 깎기 시작했다. 그 것도 괜찮은 방법 같았다. 어차피 내 장갑을 꼈던 손이야 하루 종일 여행에 절은 땀내가 배어 있을 테니까. 학생은 고등학생인 줄 알았는데, 방학을 맞아 집에 와서 부모님을 돕고 있는 대학생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이렇게 추운데 여행 다니시려면, 힘들지 않으세요?” 하고 다시 물었다. “힘이야 들지요.. 이렇게 목도 타고.” 그러는 사이에 그 학생이 배를 다 깎은 것 같아 빼앗듯이 받아, 입을 크게 벌려 통째로 베어 먹으려는데,“아저씨, 안돼예! 그렇게 드시면, 입천장 다쳐예.” 하는 핀잔(?)을 들었다. 이어 그 학생은 무슨 생각이었는지,“배 드시면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더니 다시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 학생이 시킨 대로 잘게 자른 배를 포크로 찍어 먹으며, 갈증을 풀고 있었다. 못 생긴 배였음에도 보기보다 물도 많았고 또 시원했다. 그리고 퍽 달았다. 잠시후 그 학생의 손에는 고구마 몇 개가 올려진 쟁반이 들려 있었던 것이다.“좋아하실는지 잘 모르겠는데예. 시장하실 텐데, 이 것 드세예.” 한다. 무척 오랜만에 보는 껍질이 멀건 하얀 물고구마였다. 나는 허기진 배에, 체면이고 염치고 접어두고는 그 고구마 세 개와 배 두 개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해치워 버렸다. 이런 모습을 본 여학생은 “더 갖다 드리까예? 저는 안 좋아하시까봐 쪼금만 가져 왔는데예.”라고 말한다.“아니, 아니.”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 거면 충분해요. 남해읍에 도착하면 또 저녁을 먹어야 하니까.”라고 대꾸했다. 그러면서 “학생, 이 거 얼마면 되까?” 하고 물으니,“아녜예, 돈 안 받으려고 했어예. 그래서 배도 못난 걸로 갖고 왔는데예.”라고 한다. 의외였다. 어쩌면 나에겐 딸 같을 수도 있는 어린 여학생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을 한다. “그래도 받아야 돼. 힘들게 농사짓는 부모님도 생각해야지.” 거의 반강제로 돈을 손에 쥐어 주었다. 그 따뜻한 마음으로만 보면, 정말 돈을 더 주고 싶기도 했다. 하긴 가난한 내가 돈을 준다면 그 아이에게 대체 얼마를 더 준단 말인가. 설사 그렇다 해도 그 건, 그 순수한 마음에 어울리지 않을, 어른의 ‘허세(?)’일 수도 있고, 하찮은 돈으로 마음을 사려는 행위일 것이었다. # 가로등없는 어두운 도로위에 별만 총총 “너무 맛있게, 잘 먹고 가요. 고마워요, 학생!” “근데예. 아저씨! 여기는 교통사고가 자주 나는 위험한 곳이니, 조심해서 가셔야 돼예.” “그래요?” “예, 저 앞에는 1년에도 몇 차례씩 사고가 나는 지점이니 조심하세요.” 그 마음도 무척 예뻤다.‘너는 왜 이리 예쁜 짓만 하고 있는 거냐.’ 나는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론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학생.” “가실 때는 저 쪽, 도로 끝 오른 쪽으로 바짝 붙여서 가세예. 아저씨, 여행 잘 하시고예, 안녕히 가세요.” “그래요. 고마워요. 고구마는 너무 맛있었어요.” 깜깜한 도로로 나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데, 언뜻 뒤를 돌아 보니 아직도 그 학생은 방에 들어가지 않고, 바깥의 전깃불 아래에서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고맙구나. 웃음 띤 그 얼굴이, 그리고 니 마음씨가 너무나 예쁘구나.’ 아까 배를 먹으며 방 안에 있던 시계를 보니, 일곱시가 안 되었던데 읍엔 여덟시 무렵에 도착되겠지. 나는 14~15㎞ 남았던 남해읍까지, 일단 가로등이 없는 어두운 도로를 자전거로 달려야 했다. 남녘이라 그런지, 초저녁부터 하늘엔 오리온 별자리가 총총했다. 주위가 어두워 별은 더 빛나 보였다.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제는 땀도 식어 슬슬 추워올 것도 같은데, 마음은 푸근하기만 했다. ‘아, 하늘에 뜬 저 별들도 아름답다지만, 그 여학생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행복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다음호 계속> ●주변 들러볼 곳 남해 호구산 군립공원, 한려해상 국립공원, 금산 보리암, 남해 상주해수욕장, 미조포구, 독일인 마을
  • [문화마당] 자기 확신범과 거울/김지우 소설가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 할 것 없이 선거 때가 되면 인파가 쏠리는 거리 한복판에 그야말로 대문짝만 하니 사진이 붙나니, 때 빼고 광내고 잘 차린 인물사진이렷다. 아라비아숫자 하나씩 박고 나와 노랑 파랑 초록 하양 껍데기들 속에서 일동 차렷! 흐, 하고 웃고 있겠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웃고 있는 낯짝들은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관상쟁이나 점술가가 아닌 바 저마다의 타고난 인물로 품평회를 할 생각도 없다. 문제는 그들 앞에만 서면 실실 웃음이 난다는 것이다. 어째 허세와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확신범들 전단을 보는 것 같다.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나르시시스트들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실은 섬뜩하다. 그리고 참으로 알지 못하고 이해 못할 의아함이 솟는다. 어떻게 스스로 자기 검증을 하고 나왔을까. 내가 대통령감이다, 국회의원감이다, 무엇으로 자기 확신을 했을까. 어떤 자기규정, 어떤 삶의 방식, 어떤 신념과 가치, 어떤 사상과 이념, 어떤 도덕과 윤리관으로 자신을 그 무서운 시험에 들게 했을까. 어느 날 백설공주네 마녀 새엄마가 거울을 들여다보았겠다. 개 같이 벌었든, 정승 같이 벌었든, 이만하면 학연, 지연, 미모, 권력 다 자신이 있었으렷다. 자신의 집에 내밀히 감춰두고 혼자 보는 거울 앞에서 물었겠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젤 예쁘니?” 고작 얼굴이나 빠끔히 들여다뵈는 손바닥 거울은 고심했다. 사실대로 백설공주요 했다간 한성질하는 마녀 성격에 와장창 작살을 낼 게 아닌가. 숙고 끝에 손바닥 거울은 “주인님요.” 하고 비위 맞춰 주었다. 자신을 얻은 새엄마는 이번엔 윗몸 아랫몸 다 비춰보는 체경에게 물었겠다. 체경도 손바닥 거울처럼 곤혹스러웠으나 질끈 눈감고 “주인님요.” 했다. 러면 그렇지, 새엄마는 대단히 만족스러웠겠다. 세상의 모든 거울들이 자신을 소명의식에 가득 찬 구국의 전사로 비춰줄 것이라고 확신했겠다. 어느덧 새엄마는 이 신자유주의시대에 오로지 나만이 국가와 민족을 구할 수 있다는 절체절명의 순교의식까지 느꼈겠다. 드디어 새엄마는 거울들과 선거대책본부를 구성하고 본격적으로 작전회의에 들어갔겠다. 환경단체가 뭐라 하든, 시민단체가 뭐라 하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뭐라 하든, 자기 확신에 꽉 찬 새엄마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싹 무시했겠다. 새엄마는 그야말로 자신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세상의 다른 거울들이 보고 실실 웃는 것이다. 웃는 얼굴 다정해도 믿을 수 없어요 하며 말이다. 안타깝게도 새엄마는 속내까지 들여다뵈는 거울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요리 보고 저리 보고, 자신의 껍데기는 비춰보았어도 자신의 속마음, 속내까지는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나니 아뿔싸, 그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세상의 거울들은 그, 혹은 그녀의 속을 꿰뚫어 보는 마술 거울이었다. 모름지기 자기 확신범들의 오류는 자기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잘못 파악하고 있는 데서 저질러진다. 자기 자신을 세상의 거울이 아닌, 오로지 자신만의 거울에다만 비춰보는 까닭이다. 때문에 편견과 오만과 독선과 아집으로 점철된 자가당착적 판단착오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그 판단착오는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과 사람살이를 위태롭게 한다. 나아가 생명 붙은 모든 것들을 위험에 빠뜨린다. 나를 규정하는 네가지 요소가 있나니, 나도 알고 남도 아는 나요, 나는 알되 남은 모르는 나요, 나는 모르고 남은 아는 나요,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악마 같은 나, 그 넷이 모여 온전한 나를 구성하나니. 자기 확신범들이여 부디 스스로 인정하고 존중받되 부단히 분별하고 경계할지어다. 김지우 소설가
  • [Seoul In] 면허세 4억7000만원 부과

    광진구(구청장 정송학) 올해 정기분 면허세로 4억 7000만원을 부과·고지했다. 대상은 과세기준일인 1월1일 현재 각종 면허를 갖고 있는 개인 또는 법인이다. 부과된 면허세는 면허 종류에 따라 5종으로 나누어 1만 2000∼4만 5000원으로 구분된다. 납부 고지서는 지난 11일 발부했고 납부기간은 이달 31일까지다. 고지서를 받지 못했거나 분실한 경우엔 세무2과 또는 서울시내 모든 동사무소에서 재발급받을 수 있다. 세무2과 450-1350∼4.
  • ‘오프라 윈프리 리더십 여학교’ 아프리카 여성 희망될까

    ‘오프라 윈프리 리더십 여학교’ 아프리카 여성 희망될까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인근의 소웨토는 흑인 마을이다. 과거 악명높던 인종차별정책으로 백인 지역과 분리된 대표적인 빈곤 지역이다. 소웨토의 초등학교 교사인 마샤 모후로는 매년 졸업식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그녀는 제자들에게 닥칠 미래가 빈곤과 폭력, 임신, 에이즈 등 척박한 아프리카의 현실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올해 제자 중 8명이 최근 문을 연 ‘오프라 윈프리 리더십 여학교’ 입학을 통보받자 뛸 듯이 기뻤다. 모후로는 “‘오프라 스쿨’에 입학한 아이들이 적어도 더 나은 삶을 선택할 기회를 얻게 됐다.”고 안도했다. 미국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SM) 인터넷판은 5일 “아프리카의 미래는 여성들을 교육시키는 데 있다.”고 보도했다. 아프리카는 세계 어느 곳보다 여성들에게 척박한 땅이다. 비약적인 경제성장으로 주목받는 남아공에서조차 초등학교를 마치는 여성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빈곤과 혼전 임신, 에이즈, 남성 우위의 문화는 아프리카 여성에게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가로막는 장벽이다. 시골 지역 여자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종일 밭에서 일을 해야 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 수석경제자문역인 진 스펄링 세계교육센터소장은 “아프리카에서 여성에 대한 교육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가져다 주는 사회적 투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왜 아프리카 여성인가. 세계은행은 더 많은 아프리카 여성들이 교육을 받을수록 곡물 수확량이 증가하며 에이즈 감염률과 유아 사망률이 감소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교육 기회가 충분히 제공될수록 국가 전체의 ‘자본소득’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국가들이 초등학교 무상교육으로 전환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교사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CSM은 ‘오프라 스쿨’에 대한 논란도 소개했다. 윈프리가 쏟아부은 4000만달러(약 380억원)가 더 많은 아프리카 여성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쓰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허세’,‘호화 학교’라는 일부의 비난속에서도 중론은 오프라 윈프리의 학교가 ‘아프리카 여성들의 희망’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이 여성들은 그들의 조국, 그들의 가족들에게 자부심이 될 것이며 학교가 이 소녀들의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 소녀들은 아프리카의 미래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오프라 윈프리 개원 연설 중에서)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이 한권의 책] 베이징·상하이 문화差를 말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수인사를 할 때 고향을 묻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지역정치를 불식하겠다는 노력인 줄 안다. 그런데 중국은 안 그렇다. 초면임에도 아무렇지 않게 상대의 고향을 묻고 심지어 나이까지 묻는다. 그만큼 한 사람의 캐릭터나 한 나라의 문화가 종족이나 지리적 환경에 달려 있다는 잠재적인 지혜가 작용된 것이다. 중국은 크다. 그리고 우리에겐 숙명적인 관계다. 꼭 알아야 하고, 등질 수 없는 사이다. 그들을 아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요즘 서점가에 홍수를 이루는 중국 알기의 책들이 그걸 증언한다. 그런데 그 나라와 그 문화를 일구는 주체는 다름 아닌 사람이다. 사람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낱낱이다. 열 사람이면 열 가지다. 그러나 사람은 모여서 살고, 같은 문자와 언어 말고도 같은 지리, 같은 기후로 산다. 그래서 떼를 이루고 떼는 서로를 닮기 마련이다. 중국 춘추 때,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지었다는 ‘중용’이란 경서에는 일찍이 중국에는 남·북이 있고, 남·북 사람이 있다 하면서 북방 사람은 강인하고 남방 사람은 온유하다고 했다. 그 북방의 중심이 베이징이요, 남방의 중심이 지금의 상하이다. 베이징은 춘추 때부터 한 나라의 서울이었지만, 상하이는 한 세기 반 전까지만도 쓸쓸한 어촌이었다. 그럼에도 인근의 항저우와 쑤저우의 양대 문화권, 곧 오월문화의 영향권에서 그 성장이 가속화되다가 동서 교류의 물살을 타고 급성장한 도시다. 우리나라에 남북의 차이가 있고, 일본에 동서의 양립이 있듯 상하이런(上海人)과 베이징런(北京人)은 중국의 남북과 남북문화의 대변자로 충분했다. 상하이가 세속적이고 서구화한 여러 가지 얼굴의 개방적 도시라면 베이징은 철학적이고 귀족적인 단조로운 얼굴의 중국적인 도시다. 상하이런이 똑똑하고 이상적이면서도 자주적이고 실리적인 합리주의자라면 베이징런은 호방하고 의례적이면서도 회고적이고 소박한 사림주의자랄 수 있겠다. 한편 상하이가 공상(工商)을 중심으로 횡적 발전을 거듭한 현대적 도시이면서도 더러는 교활할 정도의 실속 차리기나 돈 벌레가 버글거리는 상하이런을 거느리고 있다면, 베이징은 사농(士農)을 중심으로 종적인 발전을 이룩한 정치적 도시이면서 더러는 후퉁(골목)에 막힌 채 즈(체면)에 급급한 베이징런을 기르고 있다. 그것은 남북문화의 상징일 뿐 아니라 남·북 중국 사람의 전형이기도 했다. 그렇게 중국인·중국문화의 양대 전형은 곧 중국인 전체와 중국문화의 총체를 이해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평택대 중국학과 지세화 교수의 유창하면서도 맛깔 난 번역으로 옮겨진 이 책의 원본은 2001년 중국의 대표적인 출판사인 싼롄(三聯) 서점이 엮은 ‘北京人·上海人’이다. 원본 자체가 잘 엮어졌다. 중국 현대문학의 비조요 문호로 불리는 루쉰이나 린위탕으로부터 현대의 문제작가·첨단학자로 불리는 위추위나 룽잉타이, 왕안이 등이 각각 두 팀으로 나뉘어 상하이와 베이징을 깊게 그리고 넓게 역사적 근거와 체험적 육성을 모았다. 특히 역자는 해박한 중국문학의 바탕 위에 오랜 번역 훈련을 살려 베이징과 상하이의 특이한 풍속과 토속적인 언어에 이르기까지 난도질을 쳐서 재생시킨 느낌이 완연했다. 이제 중국 알기의 책도 가려먹을 때가 되었다. 허세욱 한국외대 초빙교수
  • 재계 ‘휘문 3총사 vs 경복 3총사’

    재계 ‘휘문 3총사 vs 경복 3총사’

    휘문 대(對) 경복 재계에 때아닌 고등학교 세(勢) 대결이 화제다. 오너 3세들 가운데 유난히 서울 휘문고와 경복고 출신이 많은데서 비롯됐다.30대인 이들은 경영권을 사실상 넘겨받았거나 연말 인사에서 잇따라 승진 중용돼 다시 한번 세간의 관심대상에 올랐다. 대부분 국내 명문대학과 미국 ‘아이비 리그’(미국 동부지역의 명문대학들) 출신들로 ‘부모 세대’와는 또 다른 경영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휘문고 3총사의 대표주자는 정의선(36) 기아차 사장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이 나이 마흔이 넘어 얻은 외아들이다. 지난해 3월 최고경영자(CEO)로 전격 발탁됐다. 또래 3·4세들 가운데 가장 먼저 CEO 시험에 들어 무난하게 합격점을 얻었다는 평가다. 지난 13일 GS칼텍스에 합류한 허세홍 상무(싱가포르 부법인장)도 휘문고 출신이다. 허 상무는 LG그룹과의 오랜 동업을 끝내고 홀로서기에 나선 ‘허씨 일가’의 3세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 아버지다. 다국적 기업 셰브론사에 사표를 내고 아버지 회사에 합류했다. 훗날의 경영권 상속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게 지배적 시각이다. 기아차 정 사장보다 한 살 위다. 이보다 며칠 앞서 임원으로 승진한 박세창 금호아시아나그룹 이사는 휘문 출신 막내다.75년생으로 박삼구 그룹 회장이 아버지다. 지난해 10월 금호타이어 기획조정팀 부장으로 입사해 1년도 채 안돼 초고속 승진과 함께 핵심요직(그룹전략경영본부)을 맡았다. 경복고 3총사의 대표주자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다. 사촌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경복 출신이다. 두 사람은 나이(38세)도 같다. 하지만 서로 일이 바빠 자주 어울리지 못한다는 게 정 부회장의 얘기다. 정 부회장은 얼마 전 그룹 인사에서 사장을 건너뛰고 곧바로 부회장으로 ‘특진’하면서 어머니(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후계자로 자리를 굳혔다. 상무 4년차인 이 상무도 내년 1월 그룹 인사에서 승진할 것이 확실시돼 사촌간 경사가 예상된다. 두 사람보다 네 살 어린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도 경복 출신이다. 아버지(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3남인 정몽근 그룹 명예회장)의 경영일선 퇴진으로 사실상 그룹을 이끌게 돼 어깨가 무거워졌다. 대림산업 이해욱 부사장(38)도 경복고 동문이다. 이들 가운데 유난히 연세대 출신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이재용 상무, 정용진 부회장, 정의선 사장을 빼놓고는 모두 연세대다. 이 상무와 정 부회장은 서울대, 정 사장은 고려대를 나왔다. 아이비리그 출신인 점도 닮았다. 하버드대(이재용·정지선), 브라운대(정용진), 스탠퍼드대(허세홍) 등 유학 경력이 화려하다.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은 언젠가 사석에서 “비싼 돈을 들여 일부러라도 해외의 좋은 대학을 나온 인재를 영입할진대 오너 아들딸이라고 해서 안쓸 이유가 없다.”면서 “같은 이유로 실력이 떨어지면 오너 아들딸도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인사]

    ■ 한진해운 ◇승진 △전무 李鍾善△상무 白大鉉 嚴泰晩 鄭世和 陳靖洙△상무보 金泰勳 沈大植 吳武均 李忠一■ SBS미디어넷 ◇승진 △경영본부 광고CP(국장대우급) 金容達△〃 광고팀장(부장급) 兪德濬◇전보△방송본부 총괄CP(국장급) 李準實△〃 편성CP(차장급) 表鍾昊△〃 제작1CP(부장대우급) 鄭在煥△〃 제작2CP(부장급) 裵凍年■ GS칼텍스 ◇부사장 승진△재무본부장 박흥길 ◇전무 승진△전략구매부문장 강송구△자영 주유소 관리 사업부문장 겸 해외담당 김광수△가스·전력 대외협력부문장 이현식△생산공장장 류호일△싱가포르 현지법인장 김응식 ◇상무 승진△생산운영부문장 김진도△생산지원부문장 정남일△생산기획실장 이두희△영업기획실장 장인영△폴리프로필렌 사업부문장 권혁관△고도화 설비 부문장 박경도△변화지원부문장 김기태△싱가포르 현지법인 부법인장 허세홍■ GS EPS ◇승진 △대표이사 사장 鄭鍾秀△프로젝트 부문장 전무 金善翊 ◇신규선임△관리법인장 상무 金碩煥
  • GS칼텍스 ‘3세경영’ 시동

    GS칼텍스 허동수 회장의 장남인 세홍(37)씨가 외국계 회사를 그만두고 경영에 합류했다. 허세홍씨는 13일 이 회사의 싱가포르 현지법인 부법인장(상무)을 맡았다. 후계 체제 구축을 위한 정지작업으로 보인다.GS칼텍스는 이날 ‘현장 기능직 출신 첫 임원’을 배출하는 등 임원인사를 단행했다.신임 허 상무는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땄다. 일본 전기회사와 미국 IBM 등을 거쳐 2003년부터 GS칼텍스 합작사업 파트너인 미국 셰브론사에서 일해왔다. GS칼텍스측은 “허 상무가 셰브론의 미주법인과 싱가포르법인에서 원유 트레이딩을 맡는 등 글로벌 실무 경험이 풍부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허 상무는 GS칼텍스의 지주회사인 GS홀딩스 주식을 약간(0.85%,79만 3654주) 갖고 있다. 허 회장의 차남 자홍씨는 국내에서 별도의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관련인사 29면
  • [국감 하이라이트] “핵우산 포기 주장 누가 했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을 겸직하고 있는 송민순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실장이 19일 국회 국방위 NSC 국정감사에서 여야의 집중 타깃이 됐다. 야당측은 정부가 지난해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핵우산 조항 삭제’를 추진한 사실을 집중적으로 캐물었고, 여당측은 송 실장이 18일 한 포럼에 참석, 북 핵실험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지난해 SCM에서 ‘핵우산 제공’ 조항을 삭제하려고 했던 장본인이 누구냐고 추궁했다. 그는 “외교부나 국방부 실무자들의 의견을 제쳐두고 청와대에서 강력하게 (추진)했다고 하는데, 혹자는 대통령의 지시였다고 한다.”고 몰아붙였다. 같은 당 황진하 의원은 서면 자료를 통해 “NSC가 미국의 핵우산 조항 삭제를 추진한 것은 북한 변화를 유도한다는 구실로 북방한계선(NLL) 재검토, 국가보안법 철폐, 전시작통권 단독행사를 주장하는 것과 같이 대책 없고 경솔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북 핵실험에 대해 정부가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질타도 있었다. 국민중심당 이인제 의원은 “지난해 2월 북한이 핵 보유 선언을 했을 때 블러핑(허세부리기)으로 판단하지 않았느냐. 북핵이 일종의 암덩어리인데 크기 전에 제거해야 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한나라당 김학송 의원은 “야당의 내각총사퇴 주장엔 송 실장도 포함돼 있다. 책임지고 물러날 의사가 없느냐.”고 말했다. 여당 의원들은 송 실장이 18일 ‘21세기 동북아미래포럼’에 참석해 발언한 내용을 비판했다. 안영근 의원은 “발언록을 보면 ‘유엔에 운명을 맡기면 자기운명을 포기하는 것’이란 답변이 있다. 청와대 (외교안보)책임자가 1시간30분 동안 발언하면 오해·곡해될 수 있는 내용이 충분히 나오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근식 의원은 “오해성 발언은 절대 있어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고, 박찬석 의원은 “꼭 해야 될 말만 하고 아껴야 한다.”고 ‘충고’했다.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한·중 시인들 ‘따뜻한 만남’

    한국과 중국 시인들이 양국 수교 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공식 문학교류 행사를 갖는다. 한국현대시인협회(이사장 신규호)와 중국시가학회(비서장 장퉁우)가 마련한 ‘제1회 한·중 시인회의’가 20일 오후 3시 명동 YWCA강당에서 열린다. 지난해 10월 두 단체가 문학 교류에 관한 협약을 맺은 데 따른 첫 결실이다. 한국에서 김남조 문덕수 신세훈, 문효치 성찬경 오세영 등 24명이 참가하며, 중국에서 단장인 장퉁우(張同吾), 우쓰칭(吳思敬) 등 9명이 참가한다.‘동북아 시문학의 길 열기’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는 ‘동아시아와 바다의 문학’(강남주),‘언어환경의 세계화를 위한 중국 시의 반성’(뤄잉),‘한중 시의 회고와 진로’(허세욱) 등 다양한 논제들이 토론된다. 한국 시인 100명, 중국 시인 30명의 시를 한국어와 중국어로 수록한 ‘한중시집’(韓中詩集)도 당일 나눠준다. 중국 시인들은 서울 행사에 이어 22일 오후 경주의 ‘동리·목월문학관’등을 둘러본 뒤 25일 출국한다. 두 단체는 내년 중국에서 두 번째 ‘한중시인회의’를 열기로 했으며, 향후 일본 시인들까지 포함해 한·중·일 3개국을 중심으로 한 연간지 ‘동북아시아 문학’도 창간할 계획이다.한국현대시인협회 신규호 이사장은 “최근 동북공정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지만 이번 행사는 양국 시인의 순수 문학 교류를 위한 행사”라며 “한·중간 역사문제 등 문학 이외 미묘한 사항에 대해서는 일절 다루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한승원 토굴살이] 꼬마 나폴리 연안 이야기

    [한승원 토굴살이] 꼬마 나폴리 연안 이야기

    ㄹ형, 제 토굴 앞에 0자를 가로 눕혀 놓은 듯한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서울을 버리고 온 날부터 ‘연꽃 바다’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 제목으로 장편소설 한 편을 썼습니다. 호수 같은 바다 남쪽에는 고흥반도 산봉우리들이 뻗어나가고, 남서쪽에는 완도의 섬들이 첩첩 떠 있고, 서북쪽에는 장흥과 보성의 산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 콤플렉스가 많은 글쟁이입니다. 그것을 자궁 콤플렉스, 혹은 고향 콤플렉스라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40년 동안 바다 이야기를 써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다 쓰지 못했다 싶어 고향 바닷가로 돌아왔고,‘멍텅구리 배’,‘물보라’,‘바닷가 학교’,‘검은댕기두루미’에 이어, 이 바다에서 생산되는 ‘키조개’ 이야기를 장편으로 쓰고 있습니다. 여성의 음부처럼 생긴 키조개를 통해 우주 시원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마을 앞 연안을 산책하곤 하는 저의 사전 한 구석에는, 그 연안이 꼬마 나폴리라고 적혀 있습니다. 무지개처럼 휘움한 그 연안 동쪽에는, 사자산 엉덩이에 붙어 있는 삼비산에서 흘러온 냇물로 인해 형성된 거무스레한 모래 잔등이 질펀하게 뻗어나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갈매기 청둥오리 해오라기 물떼새들이 찾아오고, 황새와 검은댕기두루미도 한 발로 서 있다가 돌아가곤 합니다. 이사 오던 첫해 한여름에 저는 아침마다 그 연안바다 모래밭을 혼자서 땀 뻘뻘 흘리면서 청소했습니다. 그 모래밭에는 밀려온 쓰레기들이 해전으로 죽어 늘어진 시체들처럼 볼썽사납게 쌓여 있곤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가끔 울력을 하여 그것들을 치우곤 하지만, 다음날 곧바로 불어댄 동남풍으로 인해 쓰레기들은 다시 쌓이곤 합니다. 스티로폼 부표, 헌 그물자락, 페트병, 통발들, 수초들…. 그것들을 제가 혼자서 하루아침에 십m씩 치우곤 한 것입니다. 저혼자서 그 바다를 관리하겠다는 영웅심에서 그런 것도 아니고, 저의 환경 사랑 의지를 만방에 선전하려는 만용이나 허세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유배살이를 자청하고, 스스로를 토굴 속에 가둔 저의 고독과 슬픔과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제 가슴속에 ‘이것은 내 바다’라는 확신을 심고 싶었습니다. 그 바다 한복판에 저의 뿌리를 내리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비지땀 흘리며 하는 저의 도로(徒勞) 같은 몸짓이 보기에 민망했던지 당시의 김면장이 그해 가을부터 공익 요원들을 투입하였고, 이후로 그 바다는 계속 깨끗함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환갑을 두 해 앞둔 때였습니다. 저는 소설 쓰는 틈틈이 저와, 바다와 씨름하며 사는 마을 사람들과 거기에 서식하는 물고기 물새 바람 해 달 별 이슬을 시편에 담았습니다. 그것들을 문학과 지성사에서 세 번째 시집 ‘노을 아래 파도를 줍다’로 펴내 주었습니다. 그 시들은, 토굴에 저를 가두고 기르는 제 자신과 바닷가를 산책할 때마다 저를 늘 환희심에 젖어들게 하는 마을 사람들의 삶과 앞바다와 하늘에 바치는 헌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젊은 조면장이 그 여닫이 연안 모래 언덕 위쪽의 아스팔트길 가장자리 숲에 600m쯤의 소로를 내고 20m 간격으로 저의 시비 30기를 세워 놓았습니다. 저의 시와 짧은 동화와 소설 한 대목들을 새긴 그 비석들은 각기 7t 무게의 바위와 보조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야 할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저의 육중한 흔적들을 그 연안바다 모래 언덕길에 놓아두도록 허락한 것은 저의 허망하고 미련스러운 탐욕이 아닌지, 그 탐욕으로 인해서 나라는 인간이 하나의 상업적인 싸구려가 되고 있지 않은지, 자못 두렵고 부끄럽습니다. 그것을 두려워하고 면목 없어하는 저에게 젊은 면장은 말을 합니다.“이것은 억지로 하고자 하여 된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한 발짝 한 몸짓의 일상이 이 연안 바다 모래밭의 전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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