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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혼굿’ 나빌레라… 이애주 이사장 영면

    ‘진혼굿’ 나빌레라… 이애주 이사장 영면

    ‘진혼굿’으로 유명한 춤꾼 이애주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이 10일 별세했다. 74세. 고인은 지난해 10월쯤 암 진단을 받고 경기 성남시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해 오다 이날 오후 5시 20분쯤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 보유자로, 서울대 명예교수다. 한국전통춤회 예술감독, 한영숙 춤 보존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3년 만해대상(예술부문), 2013년 옥조근정훈장 대통령상, 2017년 제7회 박헌봉 국악상, 2019년 제1회 대한민국 전통춤 4대명무 한영숙상 등을 수상했다. 2019년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에 취임했다. 당시 “DMZ에 문화예술을 연계해 평화를 상징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다섯 살 때부터 춤을 춘 고인은 우리 전통춤의 태두 한성준과 그 수제자 한영숙으로 이어지는 승무의 적통을 이어 왔다. 그의 춤은 민중과 함께했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시위 때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연세대 이한열 열사 운구 행렬 앞에서 ‘한풀이 춤’을 추며 ‘시국춤’의 상징이 됐다. 1987년 민주화 대행진 출정식 때에는 서울대 후배들의 요청으로 무명옷을 입고 진혼굿을 펼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02)2072-2010.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편견과 한계 깬 완벽한 ‘현의 여인들’

    편견과 한계 깬 완벽한 ‘현의 여인들’

    독일·영국 콩쿠르서 잇단 수상완벽한 테크닉 넘어 완벽한 합오늘·16일 롯데콘서트홀서 무대“‘너희는 너무 완벽하기만 해’라는 혹평을 듣고 충격을 받았죠.” 동양인, 아시아, 여성. 클래식 안에서 비주류로 속했던 모든 조건들을 갖춘 네 명의 현악사중주는 매우 드문 존재인 만큼 편견과 싸워야 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솔로 연주자들은 많지만 꾸준히 오랫동안 활동한 실내악 팀이 흔치 않은 까닭에 클래식 본고장 유럽은 여전히 이 장르에서 콧대를 세운다. 기술적으로,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는 데만 능숙한 연주라며 한 수 내려다보는 시선도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배원희(제1바이올린), 하유나(제2바이올린), 비올리스트 김지원, 첼리스트 허예은이 2016년 꾸린 에스메 콰르텟은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위해 눈빛과 호흡을 맞추고, 부던히 존재 의미를 증명해 왔다. 에스메 콰르텟이 11일과 16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그간의 시간들을 한번에 보여 준다. 결성한 지 1년 반 만인 2018년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 국제 현악사중주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었고 지난해 독일 한스 갈 프라이즈도 수상하며 클래식계를 깜짝 놀라게 한 선율을 한데 모은다. 11일 선보일 첫 곡인 모차르트 현악사중주 19번 C장조 ‘불협화음’은 그들의 시작이자 지금을 보여 준다. 독일 쾰른 음대에서 실내악 수업을 위해 꾸린 팀이 처음 호흡을 맞춘 작품으로 위그모어홀 콩쿠르에서 ‘알랜 브란들리 모차르트상’을 안겨 주기도 했다. “지금 듣기엔 불협화음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모차르트 시대엔 굉장히 충격적이었을 것”(허예은)이라는 설명은 아직은 낯선 에스메 콰르텟의 존재와도 어울린다. 독일이 주인공이었던 현악사중주에 도전장을 내민 드뷔시의 현악사중주 g단조와 차이콥스키 현악사중주 1번 D장조도 연주한다. 16일에는 위그모어홀 콩쿠르 결선에서 우승을 거둔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 15번 G장조를 비롯해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함께 쇼스타코비치 피아노오중주 g단조를 선보인다. 섬세한 현들이 어우러져 웅장하고도 깊은 울림을 내는 현악사중주에 대해 배원희는 “새로운 악기를 연주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각자 잘해서 합을 맞추는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함께 색깔을 칠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얘기다. 쉽지 않은 길에 뛰어든 것도 모자라 “콰르텟을 평생 직업으로 삼겠다”고 입을 모을 수 있는 것은 장르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현들이 합을 딱 맞췄을 때 주는 희열감”(하유나)과 “그야말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느낌”(허예은)이 이미 깊숙이 파고들어 이 짜릿함을 내려놓을 수 없다고도 했다. ‘사랑스럽다’(옛 프랑스어 Esm?는 팀 이름대로 밝고 생기 있는 네 사람은 무대 위에선 국적, 성별 가리지 않고 모든 벽을 뚫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스스로 ‘마라맛’이라고 표현할 만큼 욕심 많고 힘이 넘치는 넷의 연주에 더 많은 관객들을 물들이며 색을 칠해 가고 싶다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한열 한풀이춤‘ 이애주 경기아트센터 이사장 별세

    ‘이한열 한풀이춤‘ 이애주 경기아트센터 이사장 별세

    ‘진혼굿’으로 유명한 춤꾼 이애주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사진)이 10일 별세했다. 74세. 고인은 지난해 10월쯤 암 진단을 받고 경기 성남시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해 오다 이날 오후 5시 20분쯤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 보유자로, 서울대 명예교수다. 한국전통춤회 예술감독, 한영숙 춤 보존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3년 만해대상(예술부문), 2013년 옥조근정훈장 대통령상, 2017년 제7회 박헌봉 국악상, 2019년 제1회 대한민국 전통춤 4대명무 한영숙상 등을 수상했다. 2019년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에 취임했다. 당시 “DMZ에 문화예술을 연계해 평화를 상징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다섯 살 때부터 춤을 춘 고인은 우리 전통춤의 태두 한성준과 그 수제자 한영숙으로 이어지는 승무의 적통을 이어 왔다. 그의 춤은 민중과 함께했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시위 때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연세대 이한열 열사 운구 행렬 앞에서 ‘한풀이 춤’을 추며 ‘시국춤’의 상징이 됐다. 1987년 민주화 대행진 출정식 때에는 서울대 후배들의 요청으로 무명옷을 입고 진혼굿을 펼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02)2072-2010.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현으로 무수한 ‘벽’ 깨는 에스메 콰르텟… “이젠 눈빛만 봐도 다 알아”

    현으로 무수한 ‘벽’ 깨는 에스메 콰르텟… “이젠 눈빛만 봐도 다 알아”

    “‘너희는 너무 완벽하기만 해’라는 혹평을 듣고 충격을 받았죠.” 동양인, 아시아, 여성. 클래식 안에서 비주류로 속했던 모든 조건들을 갖춘 네 명이 꾸린 ‘젊은’ 현악사중주는 매우 드문 존재인 만큼 늘 편견과 싸워야 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솔로 연주자들은 많지만 꾸준히 오랫동안 활동한 실내악 팀이 흔치 않은 까닭에, 클래식 본고장 유럽은 여전히 이 장르에서 콧대를 세운다. 바이올리니스트 배원희(제1바이올린), 하유나(제2바이올린), 비올리스트 김지원, 첼리스트 허예은이 2016년 꾸린 에스메 콰르텟은 부던히 존재 의미를 증명해 왔다. 기술적으로,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는 데만 능숙한 연주라며 한 수 내려다 보는 시선부터 깨고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위해 눈빛과 호흡을 맞췄다. 에스메 콰르텟이 11일과 16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그간 유럽 무대를 깜짝 놀라게 했던 시간들을 한번에 보여 준다. 지난해 11월에 이어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 시리즈’ 무대를 연달아 선보이며 결성한 지 1년 반 만인 2018년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 국제 현악사중주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었고 지난해 독일 한스 갈 프라이즈도 수상하며 ‘테크닉만 완벽할 것’이란 선입견을 깨뜨린 선율을 한데 모은다. 11일 연주할 첫 곡인 모차르트 현악사중주 19번 C장조 ‘불협화음’은 그들의 시작이자 지금을 보여준다. 독일 쾰른 음대에서 실내악 수업을 위해 꾸린 팀이 처음 호흡을 맞춘 작품으로 위그모어홀 콩쿠르에서 ‘알랜 브란들리 모차르트상’을 안겨 주기도 했다. “지금 듣기엔 불협화음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모차르트 시대엔 굉장히 충격적이었을 것”(허예은)이라는 설명은 아직은 낯선 에스메 콰르텟의 존재와도 어울린다. 독일이 주인공이었던 현악사중주에 도전장을 내민 드뷔시의 현악사중주 g단조와 차이콥스키 현악사중주 1번 D장조도 연주한다. 16일에는 위그모어홀 콩쿠르 결선에서 우승을 거둔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 15번 G장조와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함께 쇼스타코비치 피아노오중주 g단조를 선보인다.섬세한 현들이 어우러져 웅장하고도 깊은 울림을 내는 현악사중주에 대해 배원희는 “새로운 악기를 연주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각자 잘해서 맞추는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함께 색깔을 칠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얘기다. 쉽지 않은 길에 뛰어든 것도 모자라 “콰르텟을 평생 직업으로 삼겠다”고 입을 모을 수 있는 것은 장르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현들이 합을 딱 맞췄을 때 주는 희열감”(하유나)과 “그야말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느낌”(허예은)이 이미 깊숙이 파고들어 이 짜릿함을 내려놓을 수 없다고도 했다. “콰르텟은 네 명의 연주자가 결혼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들은 연주를 하지 않을 때도 늘 함께하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눠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모두 읽을 수 있게 됐다고도 자부했다. 팀 활동을 오래 할 수 있도록 결혼과 육아, 장래 계획까지 수다도 구체적으로 나눴다. ‘사랑스럽다’(옛 프랑스어 Esmè)는 팀 이름대로 밝고 생기 있는 네 사람은 무대 위에선 국적, 성별 가리지 않고 모든 벽을 뚫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스스로 ‘마라맛’이라고 표현할 만큼 욕심 많고 힘이 넘치는 넷의 연주에 더 많은 관객들을 물들이며 색을 칠해 가고 싶다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지난해 데뷔 무대에서 작곡가 진은숙의 ‘파라메타스트링’을 연주한 것처럼 훌륭한 여성 작곡가들의 작품들도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에스메 콰르텟은 22일 현악사중주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한 마스터클래스도 연다. 벌써 많은 후배들이 현악사중주 팀으로 활동하는 데 관심을 갖고 물어보기도 한다는데, 이들이 꼭 해주는 조언은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혼자서만 돋보이는 솔로 연주가 아닌 나를 내려놓고 귀와 마음을 열어 다른 이의 소리를 받아들이고 감싸주는 실내악 만의 ‘센스’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내내 호흡이 척척 맞고 웃음이 멈추질 않는 네 사람의 모습에서 그동안 얼마나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나눴는지 엿볼 수 있게 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첼리스트 임희영, 재즈 명곡+영화음악 담아 첫 크로스오버 도전

    첼리스트 임희영, 재즈 명곡+영화음악 담아 첫 크로스오버 도전

    첼리스트 임희영이 첫 크로스오버 앨범에 도전했다. 임희영은 7일 소니 클래시컬을 통해 국내 네 번째 정규 음반 ‘As Time Goes By‘를 발매했다. 특히 처음으로 크로스오버에 도전해 오랜 시간 대중에게 사랑받은 스탠다드 재즈와 영화음악을 첼로의 깊은 음색과 화려한 애드리브로 재해석했다. 지난해 11월 두 차례에 걸쳐 녹음한 이번 음반에는 재즈 명곡인 가너의 ‘미스티(Misty)’를 비롯해 ‘문라이트 세레나데(Moonlight Serenade)’,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 ‘더 걸 프롬 이파네마(The girl from Ipanema)’ 등과 영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속 ‘문 리버(Moon River)’, ‘카사블랑카’ OST 중 ‘애즈 타임 고스 바이(As time goes by)’ 등 다채로운 곡들이 담겼다.섬세하고도 카리스마 있는 선율을 선보이는 임희영은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동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첼로 수석을 맡고 지금은 베이징 중앙음악원에서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연주자다. 지난 2018년 11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와 녹음한 데뷔 음반 ‘프랑스 첼로 협주곡’과 지난해 6월 발매한 ‘러시안 첼로 소나타’, 11월 두 대의 첼로로 이뤄진 ‘DUO’ 등 꾸준히 음반도 발매했다. 임희영은 “코로나19로 여러 나라를 오가며 연주를 들려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 제 연주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께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영화 속 음악과 재즈곡들을 들려드리고 싶었다”면서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빛과 따뜻함 좇아간 여성의 삶…시공간 넘나드는 석유 이야기, 연극 ‘오일’

    빛과 따뜻함 좇아간 여성의 삶…시공간 넘나드는 석유 이야기, 연극 ‘오일’

    어둡고 춥고 배고픈 가족들의 날카로운 예민함이 객석까지 그대로 전달됐다. 너무나 당연히 함께하고 있는 ‘빛’이 없는 공간은 그 자체로 불안하고 불편함을 준다. 그렇다면 빛과 연료가 차고 넘치도록 충만하면 행복할까? 풍족하게 누리던 밝고 따뜻함을 다시 잃게 되면 어떻게 될까. 지난 1일 개막해 9일까지 서울 용산구 더줌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연극 ‘오일(OiL)’은 석유의 탄생과 종말을 둘러싼 여러 질문을 객석에 던진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다소 독특하다. 그동안 남성들의 무대가 주를 이뤘던 석유라는 소재를 여성의 이야기로 그려낸다. 메이와 에이미라는 두 모녀가 인류가 본격적으로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쓰기 시작한 19세기 말부터 석유가 고갈되었을 것이라 가정한 21세기 중반까지 약 200년에 달하는 시공간을 넘나든다.1889년 영국 콘월의 한 농장을 배경으로 시작해 1908년 테헤란, 1970년 헴스테드, 2021년 바그다드를 거쳐 2051년 다시 콘월로 시간이 움직이는 동안 어두컴컴하고 차가웠던 무대에도 점점 빛이 더해진다. 그러나 환해지는 공간과 달리 모녀에게는 끊임없이 긴장과 갈등이 이어진다.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던 20세 임신부 메이는 낯선 방문객이 가지고 온 석유 램프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사랑을 버리는 선택을 한다(1889년). 영국 식민지 테헤란에서 딸을 데리고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인다(1908년). 다국적 석유회사 대표로 일하며 많은 부를 거두고 안락한 삶을 누리지만 탐욕에 사로잡힌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딸 에이미와 거듭 갈등한다(1970년). 그리고 엄마를 떠나 바그다드 사막에 머문 에이미(2021년)와 다시 빛을 잃고 어두워진 싱거 농장(2051년) 이야기가 이어진다.석유의 역사라는 방대한 흐름 속에 놓인 두 모녀는 그저 자신의 욕망과 안락,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존재들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와 대화, 주변 인물들과의 상황은 계급주의와 여성주의, 제국주의, 환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논의하고 있다. 국내에서 초연된 영국 극작가 엘라 힉슨의 ‘오일’은 극단 풍경이 ‘작가-작품이 되다 장 주네’, ‘작가‘에 이어 3년간 펼친 ‘작가展’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연출을 맡은 박정희 극단 풍경 대표와의 오랜 인연으로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소리꾼 이자람이 메이로 처음 정극에 도전해 진중한 연기를 보여줬고, 그룹 이날치 프로듀서 겸 베이스 연주자 장영규가 음악을 맡아 극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 넣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내 바이올린, 언젠가는 빛날까” 열등감 내던진 ‘금발의 힙스터’

    “내 바이올린, 언젠가는 빛날까” 열등감 내던진 ‘금발의 힙스터’

    ‘바이올리니스트.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는 9살 강아지 미소의 집사. 낭만적 이성주의자다. 발리에서 한 달 살기를 꿈꾸는 등 자연과 함께 하는 힙스터의 삶을 상상하지만 연습과 연주 때문에 실행하지 못한다.’ 금빛으로 탈색한 머리를 휘날리며 카리스마 있는 연주를 선보이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는 책 맨 앞표지에 자신을 딱 알맞게 소개했다. 이어 너무나 솔직하게 한 장 한 장 속마음을 털어놨다. 오는 7일 펴낼 음악에세이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아웃사이트)에 연주자의 길을 걸으며 갖게 된 고민과 질문들을 꾹꾹 눌러 담았고,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들을 함께 나누려 한다. 4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아트홀에서 기자들과 만난 조진주는 “제가 가진 건 화려한 필력이 아닌 솔직함뿐이라 들추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 숨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책 제목은 더욱 빛날 날을 꿈꾸는 진주의 따뜻한 희망을 담은 것 같지만 사실은 “열등감을 주제로 한 챕터의 제목을 뽑은 것”이다. 그도 많은 연주자들이 그러했듯 아주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고 ‘엄마를 엄마로 부르지 않도록’ 질리는 입시를 거쳐 한계가 안 보일 만큼 과열된 경쟁을 거듭했다. 원하던 학교에 진학하고 2014년 인디애나폴리스 국제콩쿠르에서도 우승했지만 늘 ‘내가 잘하고 있나? 부족한 것 아닌가’ 곱씹게 됐다. 책에는 단순히 자신의 연습과 연주에서 비롯된 자괴감뿐 아니라 어떤 연주자들을 향해 감당할 수 없는 질투심이 솟아나는지 등까지 내밀하게 적었다. 연주자로서 잘하고 싶은 욕심과 비교 대상에게 갖는 질투와 굴욕,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수없이 겪는 좌절 등 누구나 느낄 수 있고 갖고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특히 1988년생 밀레니얼 세대이자 10세에 미국으로 건너간 ‘동양인 여성’으로 맞닥뜨려야 했던 차별과 상처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렇게까지 다 들춰 낼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극복을 했고 계속 딛고 음악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조진주는 지난해부터 자가격리만 일곱 차례 할 정도로 무대라면 어디든 찾아다녔고 앨범과 책, 유튜브 등 여러 통로로 음악을 나눴다. 이달만 해도 에라토 앙상블 10주년 기념 공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협연,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등 다양한 무대에 오른다. 오는 10~11월 생상스 서거 100주년을 맞아 앨범 발매와 전국 투어도 예정됐다. 스스로에게 거듭 되뇐 끝에 얻게 된 음악에 대한 마음을, 그는 바쁜 시간들로 가득 채워 가고 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외인구단’의 엄지처럼 씩씩한 딸”… “이젠 ‘엄지 아빠’ 만들어 줄게요”

    “‘외인구단’의 엄지처럼 씩씩한 딸”… “이젠 ‘엄지 아빠’ 만들어 줄게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아버지와 딸들의 이야기로 많은 공감을 얻으며 오랜 시간 사랑받은 작품이다. 가난하지만 진심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자상한 아버지가 자신의 신념을 흔드는 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뭉클하게 그렸다. 서울시뮤지컬단이 창단 60주년을 맞아 선보인 이번 공연에 좀더 특별한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무대에 담겼다. 무대 디자인을 맡은 이엄지(39)씨가 아버지와의 시간을 곳곳에 녹였는데, 그 아버지가 만화가 이현세(65) 작가다. 대표작 ‘공포의 외인구단’ 속 사랑스러운 소녀의 이름을 딸에게 지어준 아버지와 늘 그림 그리던 아버지 등을 바라보며 자란 뒤 무대에서 세상을 그리고 있는 딸. 종이와 무대에, 방법은 다르지만 그림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꾸며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부녀의 이야기를 최근 서울 서초구에 있는 이현세씨의 작업실에서 들었다.‘우리 아빠네….’ 엄지씨가 ‘지붕 위의 바이올린’ 대본을 읽고 떠올린 생각이다. “그동안 고전 작품은 잘 안 들어왔는데 신기하게 이 작품이 저를 찾아왔어요. 아빠와 제 이야기 같아 금방 감정이입도 됐죠.” 러시아의 작은 유대인 마을을 배경으로 한 극에서 아버지 테비예는 땅도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다. 가난하지만 억척스럽게 일하며 아내, 다섯 딸들과 행복한 삶을 일군다. 삶은 지붕 위 바이올린처럼 위태롭지만 전통의 힘으로 굳게 지탱한다. 그러나 딸들은 줄줄이 중매결혼이라는 전통에 어긋나는 사랑을 택한다. 그것도 매우 험난해 보이는 길을 나서겠다는 딸들에게 번번이 화를 내고 배신감을 토로하지만 테비예는 결국 “전통도 바뀔 수 있다”며 평생 지킨 신념마저 뒤집고 진정한 사랑과 포용으로 딸들을 감싼다. 이 작가와 엄지씨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몇 차례나 있었다. “엄지가 진로를 정할 때와 결혼을 할 때 특히 많이 부딪쳤다”고 이 작가가 먼저 기억을 꺼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미국으로 유학 간 엄지씨가 전공을 조소로 바꾸겠다고 한 일이다. “힘이 많이 필요하고 외로운 작업”이라는 게 진로 변경을 말린 이유였다. 그는 “평생 혼자 만화를 그려 온 외로움을 권하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후에 무대 디자인을 하겠다는 데 마음이 놓였다. “무엇보다 무대 디자인은 여럿이 함께하는 작업이니 걱정이 덜 됐죠.”엄지씨가 비슷한 일을 하는 짝과 가정을 꾸리겠다고 했을 때도 이 작가는 몇 번이고 만류했다. 그러나 결국 등산길을 조용히 따라와 응원을 구하는 딸의 손을 잡았다. “딸을 믿는 마음이 더 크기도 하고, 딸을 잃기 싫으니까 져 주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담담하지만 깊었다. “아버지들은 험한 세상을 살아왔으니 가능하면 딸이 편하게 출발하길 바라요. 내가 10리를 뛰어야 했다면 딸은 자동차를 태워서 보내고 싶죠. 그런데 딸들은 비바람 맞으며 달려가 보겠대요. 그 길이 훤히 보이지만 눈에 불을 켜고 자신 있다는 씩씩한 딸을 믿고 지켜볼 수밖에 없죠.” 사랑을 찾아 떠나는 딸들의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보는 테비예를 두고 엄지씨는 ‘내가 아빠에게 이런 무게감을 드렸구나. 이럴 때 상처받으셨겠구나’라며 그 마음을 더욱 헤아리게 됐다고 했다. 늘 자신을 믿어 준 아버지의 감정을 비로소 제대로 읽게 된 것이다. 엄지씨가 ‘엄지’였기에 부녀의 애달픈 감정이 훨씬 촘촘하게 짜이기도 했다. “만화를 시작한 때부터 딸 이름을 엄지로 짓겠다고 결심했다”는 이 작가는 “가장으로서 전통을 지키려는 마음과 작가로서의 신념이 부딪친 결과”라고 부연했다. 그는 ‘공포의 외인구단’ 등장인물 작명 이야기를 꺼냈다. “청소년 성장 만화의 기본 덕목을 캐릭터에 담았어요. 까치는 도전, 엄지는 사랑, 백두산은 우정, 승리는 꿈인 거죠.” 특히 엄지에겐 엄지공주처럼 작은 소녀가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기며 모험을 떠난다는 의미를 주었다. “딸이 태어나서 부딪힐 세상이 결국 모험의 여정이니 잘 이겨내고 성장해야 한다는 뜻으로 같은 이름을 지으려 했죠.” 그러나 4대가 함께 살던 대가족 안에서 첫 손주 이름을 직접 짓겠다는 큰할머니 뜻을 거스를 순 없었다. 그래서 첫째는 주명, 둘째는 엄지가 됐다. 찬찬히 설명하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엄지씨는 “할머니 때문인 건 알았지만 제 이름에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실 엄지씨에겐 달갑기만 한 이름이 아니었다. 특히 학창 시절에 많이 버거웠다. “선생님들의 관심은 차라리 감사했어요. 학기 초마다 모르는 친구들에게 ‘이현세 딸이래’, ‘이현세 딸이 저것도 못해?’ 등 눈길을 많이 받았죠. 한 학기가 지나서야 저도 ‘보통 친구’가 될 수 있었고요.” 그 곤혹스러움을 아버지가 모를 리 없었다. 유난히 ‘잘해야지, 욕먹지 말아야지’ 애쓰는 모습이 보여 안쓰럽기도 했다. “어딜 가나 ‘네가 엄지냐?’라는 관심을 받으니 늘 실수하지 않으려고 고생을 많이 했을 거예요. 다 알고 있었지만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무대 디자이너가 된 뒤에도 한동안 따라붙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엄지씨에겐 당연히 부담이 됐다. 다만 어린 시절과 달리 아버지와의 시간이 한참 쌓인 뒤부턴 생각을 서서히 바꿨다. “그늘을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좀더 잘해서 아빠가 ‘이엄지 아빠’라는 말을 들으실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어릴 때 본 ‘외인구단’ 속 인물들이 성인이 된 뒤 다르게 와닿듯, 엄지씨는 성장할수록 그동안 자신을 든든하게 지켜준 아버지 그늘이 얼마나 크고 넉넉했는지 새삼 알아갔다. “돌아보니 아빠는 굉장히 개방된 분이고 항상 제 이야기를 들어 주려고 노력하셨다”면서 “특히 어떤 고민을 할 때 ‘아빠로선 이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인생 멘토로서의 의견은 이렇다’며 구분을 해서 조언을 해 주셨다”고 엄지씨는 말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니 내 뒤엔 아빠가 언제나 든든하게 지켜주시고, 앞에선 인생 멘토가 끌어주는 것 같아 많은 힘을 얻었어요.” 엄지씨는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 이 무대에 아버지를 듬뿍 담았다. 우선 검은색 선들로 배경을 그렸다. “예전 아빠 그림이 오로지 선으로 모든 감정이 표현됐 던 것처럼 무대도 입체가 아닌 평면으로 흑과 백, 선의 굵기와 질감 차이를 드러냈다”는 설명이다. 검은 선 위에는 빛과 영상으로 쨍한 원색을 비췄다. 아버지와 함께 떠올린 샤갈 그림 때문이었다. “샤갈은 무거운 색을 썼지만 꿈같이 따뜻하고 낭만적인 느낌이 들거든요. 아버지도 무겁지만 큰 그늘이 되어 저를 포근하게 감싸 주셨어요.” 속마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서로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는 부녀의 얼굴이 그간 두 사람의 대화 시간을 가늠케 했다. 엄지씨는 대화 도중 이 작가의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자 “아빠 쉬는 시간”이라고 살뜰하게 챙겼다. 종일 책상에 앉아서 만화를 그리는 이 작가가 한 시간에 한 번씩은 일어나 몸을 움직이도록 알람을 설정해 둔 것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에 울림을 준 그림을 그린 부녀가 다시 서로를 다독이며 건넨 말들은 아마도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많은 아버지와 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로도 들린다. “가족도 결국은 흔들리는 나무 꼭대기에 지은 까치둥지 같습니다. 그 안에서 만사 해결되는 것 같지만 밑에서 보기엔 위태롭기 그지없죠. 딸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볼 때마다 짠한 게 있어요. 부모 둥지를 떠나 새로운 둥지를 만들겠다는데 독수리처럼 튼튼하게 시작하는 딸들이 얼마나 될까요. 다 외풍 심한 까치집이죠. 그래도 굳세게 버티고 있는 게 대견해요.” 이 작가는 유독 애틋한 눈길로 엄지씨를 바라봤다. “큰 둥지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자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신념과 가치, 예술로 든든히 둥지를 지키며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잘 지내겠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 거야’란 테비예 대사에 많이 뭉클했다는 엄지씨는 “매일 바쁘고 치열한 내가 얼마나 궁금하셨을지 그 마음을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면서 “많이 어렵겠지만 더도 덜도 말고 아빠처럼 늘 옆에서 기다리고 지켜주는 부모가 되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했다. “아빠가 큰 나무로 만들어 주신 그늘 덕분에 시원하고 편하게 잘 자랐어요. 이제 제가 힘이 되어 드리고 싶어요. ‘이엄지 아빠’가 되실 수 있게 열심히 달릴 테니 지금처럼 옆에서 든든히 계셔 주세요.”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만화로, 무대에서, 그림으로 세상 만나는 아빠와 딸

    만화로, 무대에서, 그림으로 세상 만나는 아빠와 딸

    만화 거장 이현세 작가와 무대 디자이너 엄지씨“아빠 떠올리며 ‘지붕 위의 바이올린’ 무대 그려”아버지와 극 중 테비예 연결지은 특별한 무대“험한 세상에서 굳세게 버티고 선 딸 대견해”‘기다리고 지켜주는 부모 되고파…아빠처럼“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아버지와 딸들의 이야기로 많은 공감을 얻으며 오랜 시간 사랑받은 작품이다. 가난하지만 진심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자상한 아버지가 자신의 신념을 흔드는 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뭉클하게 그렸다. 서울시뮤지컬단이 창단 60주년을 맞아 선보인 이번 공연에 좀더 특별한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무대에 담겼다. 무대 디자인을 맡은 이엄지(39)씨가 아버지와의 시간을 곳곳에 녹였는데, 그 아버지가 만화가 이현세(65) 작가다. 대표작 ‘공포의 외인구단’ 속 사랑스러운 소녀의 이름을 딸에게 지어준 아버지와 늘 그림 그리던 아버지 등을 바라보며 자란 뒤 무대에서 세상을 그리고 있는 딸. 종이와 무대에, 방법은 다르지만 그림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꾸며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부녀의 이야기를 최근 서울 서초구에 있는 이현세씨의 작업실에서 들었다. “이거 우리 아빠인데….” 엄지씨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 대본을 읽자마자 이 작가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동안 고전 작품은 잘 안 들어왔는데 신기하게 이 작품이 저를 찾아왔어요. 아빠와 제 이야기 같아 금방 감정이입도 됐죠.”러시아의 작은 유대인 마을을 배경으로 한 극에서 아버지 테비예는 땅도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다. 가난하고 소박하지만 억척스럽게 일하며 아내, 다섯 딸들과 행복한 삶을 일군다. 그에게 지붕 위 바이올린처럼 위태로운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힘은 바로 전통이었다. 대대로 내려온 길을 따라야만 삶의 균형이 맞춰진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딸들은 줄줄이 중매결혼이라는 전통에 어긋나는 사랑을 택한다. 그것도 매우 험난해 보이는 길을 나서겠다는 딸들에게 번번이 화를 내고 배신감을 토로하지만 테비예는 결국 그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한다. “전통도 바뀔 수 있다”며 평생 지킨 신념마저 뒤집고 진정한 사랑과 포용으로 딸들을 감싼다. 이 작가와 엄지씨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몇 차례나 있었다. “엄지가 진로를 정할 때와 결혼을 할 때 특히 많이 부딪쳤다”고 이 작가가 먼저 기억을 꺼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미국으로 유학 간 엄지씨가 전공을 조소로 바꾸겠다고 한 일이다. “조각은 힘이 많이 필요하고 외로운 작업이라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한참 말렸다”는 그는 “평생 혼자 만화를 그려 온 외로움을 권하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후에 무대 디자인을 하겠다는 데 마음이 놓였다. “무엇보다 무대 디자인은 여럿이 함께하는 작업이니 걱정이 덜 됐죠.”엄지씨가 비슷한 일을 하는 짝과 가정을 꾸리겠다고 했을 때도 이 작가는 몇 번이고 딸을 만류했다. 그러나 결국 등산길을 조용히 따라와 응원을 구하는 딸의 손을 잡았다. “딸을 믿는 마음이 더 크기도 하고, 딸을 잃기 싫으니까 져 주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담담하지만 깊었다. “아버지들은 험한 세상을 살아왔으니 가능하면 딸이 편하게 출발하길 바랍니다. 내가 10리를 뛰어야 했다면 딸은 자동차를 태워서 보내고 싶죠. 그런데 딸들은 비바람 맞으며 달려가 보겠대요. 내 눈에는 그 길이 어떨지 훤히 보이지만, 눈에 불을 켜고 자신 있다는 씩씩한 딸을 믿고 지켜볼 수밖에 없죠.” 사랑을 찾아 떠나는 딸들의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보는 테비예를 두고 엄지씨는 ‘내가 아빠에게 이런 무게감을 드렸구나. 이럴 때 상처받으셨겠구나’라며 그 마음을 더욱 헤아리게 됐다고 했다. 지난해 딸을 낳은 뒤 하루하루 부모 마음에 가까워지기도 했지만 늘 자신을 믿어 준 아버지의 감정을 비로소 제대로 읽게 된 것이다.엄지씨가 ‘엄지’였기에 부녀의 애달픈 감정이 훨씬 촘촘하게 짜이기도 했다. 위로 언니,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는 엄지씨에게 이토록 특별한 이름이 붙은 데 대해 이 작가는 “가장으로서 전통을 지키려는 마음과 작가로서의 신념이 부딪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만화를 시작한 때부터 딸에게 엄지라는 이름을 지어 주기로 결심했다”는 그는 ‘공포의 외인구단’ 등장인물 작명 이야기를 꺼냈다. “청소년 성장 만화의 기본 덕목을 캐릭터에 담았어요. 까치는 도전, 엄지는 사랑, 백두산은 우정, 승리는 꿈인 거죠.” 특히 엄지에겐 엄지공주처럼 작은 소녀가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기며 모험을 떠난다는 의미를 주었다. “딸이 태어나서 부딪힐 세상이 결국 모험의 여정이니 잘 이겨내고 성장해야 한다는 뜻으로 같은 이름을 지으려 했죠.” 그러나 4대가 함께 살던 대가족 안에서 첫 손주 이름을 직접 짓겠다는 큰할머니 뜻을 거스를 순 없었다. 그래서 첫째는 주명, 둘째는 엄지가 됐다. “당시 꼬맹이들에게 사랑보다 우정이 앞섰다면 우리 세대는 가족이 사랑을 앞섰던 것”이라고 말한 이 작가를 보며 엄지씨는 “할머니 때문인 건 알았지만 제 이름에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사실 엄지씨에겐 달갑기만 한 이름이 아니었다. 특히 학창 시절에 많이 버거웠다. “선생님들의 관심은 차라리 감사했어요. 학기 초마다 모르는 친구들에게 ‘이현세 딸이래‘, ‘이현세 딸이 저것도 못해?’ 등 눈길을 많이 받았죠. 한 학기가 지나서야 저도 ‘보통 친구’가 될 수 있었고요.” 그 곤혹스러움을 아버지가 모를 리 없었다. 유난히 ‘잘해야지, 욕먹지 말아야지’ 애쓰는 모습이 보여 안쓰럽기도 했다. “어딜 가나 ‘네가 엄지냐?’라는 관심을 받으니 늘 실수하지 않으려고 고생을 많이 했을 거예요. 다 알고 있었지만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대 디자이너가 된 뒤에도 한동안 따라붙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엄지씨에겐 당연히 부담이 됐다. 다만 어린 시절과 달리 아버지와의 시간이 한참 쌓인 뒤부턴 생각을 서서히 바꿨다. “그늘을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좀더 잘해서 아빠가 ‘이엄지 아빠’라는 말을 들으실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죠.”어릴 때 본 ‘외인구단’ 속 인물들이 성인이 된 뒤 다르게 와닿듯, 엄지씨는 성장할수록 그동안 자신을 든든하게 지켜준 아버지 그늘이 얼마나 크고 넉넉했는지 새삼 알아갔다. “돌아보니 아빠는 굉장히 개방된 분이고 항상 제 이야기를 들어 주려고 노력하셨다”면서 “특히 어떤 고민을 할 때 ‘아빠로선 이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인생 멘토로서의 의견은 이렇다’며 구분을 해서 조언을 해 주셨다”고 엄지씨는 말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니 내 뒤엔 아빠가 언제나 든든하게 지켜주시고, 앞에선 인생 멘토가 끌어주는 것 같아 많은 힘을 얻었어요.” 엄지씨는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 이 무대에 아버지를 듬뿍 담았다. 우선 검은색 선들로 배경을 그렸다. “예전 아빠 그림이 오로지 선으로 모든 감정이 표현됐던 것처럼 무대도 입체가 아닌 평면으로 흑과 백, 선의 굵기와 질감 차이를 드러냈다”는 설명이다. 검은 선 위에는 빛과 영상으로 쨍한 원색을 비췄다. 아버지와 함께 떠올린 샤갈 그림 때문이었다. “샤갈은 무거운 색을 썼지만 꿈같이 따뜻하고 낭만적인 느낌이 들거든요. 아버지도 무겁지만 큰 그늘이 되어 저를 포근하게 감싸 주셨어요.”속마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서로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는 부녀의 얼굴이 그간 두 사람의 대화 시간을 가늠케 했다. 엄지씨는 대화 도중 이 작가의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자 “아빠 쉬는 시간”이라고 살뜰하게 챙겼다. 종일 책상에 앉아서 만화를 그리는 이 작가가 한 시간에 한 번씩은 일어나 몸을 움직이도록 알람을 설정해 둔 것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에 울림을 준 그림을 그린 부녀가 다시 서로를 다독이며 건넨 말들은 아마도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많은 아버지와 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로도 들린다. “가족도 결국은 흔들리는 나무 꼭대기에 지은 까치둥지 같습니다. 그 안에서 만사 해결되는 것 같지만 밑에서 보기엔 위태롭기 그지없죠. 딸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볼 때마다 짠한 게 있어요. 부모 둥지를 떠나 새로운 둥지를 만들겠다는데 독수리처럼 튼튼하게 시작하는 딸들이 얼마나 될까요. 다 외풍 심한 까치집이죠. 그래도 굳세게 버티고 있는 게 대견해요.” 이 작가는 유독 애틋한 눈길로 엄지씨를 바라봤다. “큰 둥지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자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신념과 가치, 예술로 든든히 둥지를 지키며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잘 지내겠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 거야’란 테비예 대사에 많이 뭉클했다는 엄지씨는 “매일 바쁘고 치열한 내가 얼마나 궁금하셨을지 그 마음을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면서 “많이 어렵겠지만 더도 덜도 말고 아빠처럼 늘 옆에서 기다리고 지켜주는 부모가 되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했다. “아빠가 큰 나무로 만들어 주신 그늘 덕분에 시원하고 편하게 잘 자랐어요. 이제 제가 힘이 되어 드리고 싶어요. ‘이엄지 아빠’가 되실 수 있게 열심히 달릴 테니 지금처럼 옆에서 든든히 계셔 주세요.”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뮤지컬 프로듀서가 알려주는 ‘프로듀서 A to Z’

    세종문화회관이 진행하는 문화예술을 애호하는 리더들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 과정인 ‘세종ACE-뮤지컬 CEO’ 프로그램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매주 화요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세종예술아카데미에선 뮤지컬 분야 대표 프로듀서들과 전문가들이 특강을 하고, 주제에 따라 뮤지컬 배우들의 시연도 이어진다. 장르 특성상 젊은층도 관심이 높아 다양한 연령대의 여러 분야 종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뮤지컬 CEO’ 과정은 지난달 13일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가 단역 배우에서 뮤지컬 프로듀서가 되기까지 과정과 성공 비결을 설명하며 첫 문을 열었다. 박 대표가 발굴한 뮤지컬 배우 아이비와 김호영이 ‘노래가 있는 뮤지컬 여행’을 주제로 오프닝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달 20일에는 한진섭 서울시뮤지컬단 단장과 예술단원들에게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 장면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오는 6월 15일까지 매주 화요일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 프로듀서, 신동원 에스앤코 대표 프로듀서, 윤홍선 에이콤 대표, 예주열 CJ ENM 공연사업부장,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 프로듀서 등 대작 뮤지컬로 국내 시장을 이끈 프로듀서들이 치열한 공연예술 시장에서 수많은 작품들을 선보여 온 철학과 노하우를 공개한다. 또 박병성 월간 더뮤지컬 국장, 원종원 뮤지컬평론가, 고선웅 극공작소 마방진 예술감독 등 전문가들과 뮤지컬 장르를 다양한 각도로 들여다보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콘텐츠의 비결을 짚는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아이 눈높이에 딱… 클래식·국악, 어렵지 않아요

    아이 눈높이에 딱… 클래식·국악, 어렵지 않아요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 관객들을 위한 음악 여행이 다채롭게 준비됐다. 마스크를 쓰고 찾는 공연장이지만 가족과 함께 좀더 쉽고 재미있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무대들에 매진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KBS교향악단은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어린이 과학 콘서트 ‘홀스트 <행성>’을 연다. 화성부터 해왕성까지 태양계 7개 행성을 테마로 구스타프 홀스트가 작곡한 ‘행성’을 80여명의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웅장하게 연주한다. 서울과학고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뒤 음악에 빠져들어 작곡을 공부하고 지휘자로 변신한 백윤학 영남대 교수가 지휘봉을 잡고 다양한 조명으로 우주여행을 하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서울시립과학관 이정규 관장과 공연 후원사인 배달의민족 서빙 로봇 ‘딜리’가 함께 사회를 맡아 클래식 음악과 행성,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아트센터인천도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인 ‘프렌쥬-클래식 사파리’를 5일 아트센터인천 다목적홀에서 진행한다. ‘현악사중주와 함께 떠나는 홍학의 무도회’를 주제로 뮤지컬 배우 김수현이 ‘도레미 탐험대장’을 맡아 음악 사파리 여행을 이끌고 더클래식그룹 콰르텟이 연주한다. 아이들도 교구를 활용해 퀴즈로 음악을 놀이처럼 접하고 직접 무대에서 지휘를 해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어린이 음악회 ‘엔통이의 동요나라’를 오는 9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한다. 아이들에게 친숙한 동요를 국악관현악 버전으로 새롭게 만나며 국악과 좀더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다.아역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와 어린이들과 같은 눈높이로 국악 여행을 떠나는 공연으로 작품 집필 단계부터 아동심리상담사와 아동극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아이들의 정서에 맞추는 데 주력했다. 인기 만화 ‘뽀로로’ 속 ‘바나나 차차’의 국악관현악 버전도 첫선을 보이고, 5일 어린이날 방문 관객들은 선물도 받을 수 있다. 어린 아이들과의 공연장 나들이가 조금 부담스러운 관객들을 위한 온라인 공연도 마련됐다. 롯데문화재단과 LG유플러스는 ‘콩순이와 친구들의 음악여행’으로 랜선으로 어린이 무대를 꾸민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콩순이가 오르골 속 잃어버린 음악을 찾아 떠나고 시크릿 쥬쥬의 도움으로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를 만나며 다양한 음악을 들어 보는 여정이다. ‘콩순이’ 리듬송, ‘시크릿 쥬쥬’의 대표곡, ‘우주최강 또봇V’ 주제가를 비롯해 슈트라우스 ‘라데츠키 행진곡’, 모차르트 ‘터키행진곡’,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 모차르트 ‘작은별 변주곡’ 등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 이어진다.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따뜻한 가족 사랑 느낄 수 있는 한 편의 동화…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

    따뜻한 가족 사랑 느낄 수 있는 한 편의 동화…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

    지붕 위에 놓인 위태로운 바이올린처럼, ‘아버지’에게 그 위태로운 삶을 지켜주는 것은 전통이었다. 평생 지켜온 신념과 이전부터 정해진 길을 가는 것으로 폭풍 같은 삶을 단단하게 받쳤다. 그러나 사랑하는 딸들의 행복 앞에서 아버지의 믿음이 흔들리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오랜 시간 굳어진 관습 속에서 가족의 사랑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서울시뮤지컬단이 창단 60주년 기념작으로 2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지방의 작은 유태인 마을 아나테브카를 배경으로 한 따뜻한 이야기다. 나라도 없고 땅도 없이 곳곳을 떠도는 신세이지만 가족들을 사랑하는 자상한 아버지 테비예가 아내와 다섯 딸들과 함께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조들부터 대대로 내려온 전통이었다. 그게 갈 곳 없이 위태로운 자신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테비예는 중매로 결혼을 하는 민족의 전통대로 딸들에게 짝을 지어주려 했지만 번번이 어긋난다. 첫째 딸 자이틀은 부유하지만 나이 많은 정육점 주인에게 시집을 보내려 했지만 이미 가난한 재봉사이자 소꿉친구인 모틀과 사랑에 빠졌다. 둘째 딸 호들은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급진적인 혁명과 페르칙과 사랑을 나누게 됐고, 셋째 딸 하바는 유대인을 탄압하려는 러시아 군인 피에드카와 몰래 결혼식을 올린다. “나 몰래 약혼했다고? 장난해?” 딸들의 통보에 번번이 화를 내고 배신감을 느끼지만 테비예는 이내 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한다. “전통도 바뀔 수 있지”라며 딸들 앞에서 평생 지킨 신념마저 흔드는 진정한 사랑과 포용을 보여준다. 특히 혁명운동을 하던 페르칙이 붙잡혀 시베리아로 유배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 떠나는 둘째 딸을 별 말 없이 떠나 보내는 그의 쓸쓸한 표정은 아버지의 안타까움과 사랑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코 끝이 시큰해진다.샬롬 알레이켐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한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1964년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꾸며졌다. 이후 토니상 11차례, 아카데미상 3개, 골든글로브상 2개를 수상했다. 특히 ‘선라이즈, 선셋(Sunrise, Sunset)’을 비롯해 아름다운 넘버들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국내에선 1985년 서울시뮤지컬단이 초연했고 서울시뮤지컬단이 무려 여섯 차례나 제작하며 창단 60주년 기념 대표작으로 다시 선보였다. 서울시뮤지컬단과 신스웨이브가 공동 제작한 이번 공연은 탄탄한 고전의 깊이와 새로운 색채를 얹어 더욱 매력을 돋보였다. 박성훈, 양준모가 테비예를 맡아 자상하면서 유쾌하고 재치있는, 때로는 인자하고 때로는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한 아버지의 모습을 맛깔나게 연기한다. 서울시뮤지컬단과 함께 한 모든 캐릭터들과 함께 흥겹게 호흡을 맞추는 춤과 노래는 따뜻한 에너지를 선사한다. 샤갈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무대 배경은 짙은 선에 파스텔을 문지른 듯 색채를 넣어 동화 같이 아름답고 정겹다. 무엇보다 서로 지치고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는 가족들이 다함께 공연장을 찾아 따스한 가족 이야기를 나누고 한 움큼 감동을 안고 돌아갈 수 있는 반가운 작품이기도 하다. 공연은 16일까지 이어진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소놀이·오광대·발탈…전통 연희, 극장 무대에서 만난다

    소놀이·오광대·발탈…전통 연희, 극장 무대에서 만난다

    국립국악원이 소놀이와 오광대, 발탈 등 그동안 접하기 어려운 전통 연희의 다양한 종목들을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국립국악원은 전통 국악의 장르별 기획공연으로 선보이는 ‘일이관지(一以貫之)’ 시리즈 공연 중 하나로 다음달 6일부터 13일까지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연희’를 무대에 올린다. 연희는 주로 야외무대에서 많은 인원이 참가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실내용으로 인원과 내용을 재구성했다. 5일간 펼쳐지는 공연에선 연희 종목가운데 굿, 놀이, 발탈, 재담소리 등 국가 및 시·도무형문화재 종목과 평소 공연장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종목들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다음달 6일 양주 소놀이굿보존회가 투박하지만 꾸밈없는 수수함이 매력인 ‘경기도 양주 소놀이굿’(국가무형문화재 70호)로 첫 무대를 열고 7일 진주오광대보존회에서 음양오행의 전통을 계승하며 자신만의 동작으로 액운을 물리치는 전통 그대로의 ‘진주오광대’(경상남도 무형문화재 27호)를 선보인다. 11일에는 촌철살인의 해학으로 사회를 풍자하는 ‘서산 박첨지놀이’(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6호)를 통해 해학미를 전하고, 12일은 발에 탈을 씌우고 재담으로 울고 웃게 하는 ‘발탈’(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과 재치있는 문답을 주고받으며 흥미를 유발하는 ‘재담소리’(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8호)로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무대를 꾸민다. 13일은 남기문(장구놀음), 김운태(채상소고춤), 이희춘(진도북놀이), 박은하(쇠놀음) 등 우리 시대 연희 분야의 최고 뜬쇠(꽹과리를 치면서 농악대 등에서 전체를 지휘하는 사람)들이 모여 깊은 연희의 멋을 알린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리뷰] 피아노 앞 정명훈, 여유와 깊이로 빚어낸 낯선 무대

    [리뷰] 피아노 앞 정명훈, 여유와 깊이로 빚어낸 낯선 무대

    이토록 객석을 향해 말과 시선을 자주 건네는 무대를 최근엔 보기 드물었다. 무대에 나와 피아노 가까이 서자마자 두 손을 눈가에 대고 객석을 두루 살폈다. 얼마나 많은 관객이 왔는지, 아는 사람이 왔는지 확인하듯 휘이 둘러보고 몇 번이고 객석에 쑥스러운 웃음을 건넸다.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정명훈의 피아노 리사이틀은 그렇게 서로 주고받은 작은 웃음들이 번지며 시작됐다. 지휘봉을 잡은 모습이 훨씬 익숙한 그가 텅 빈 무대에 단 둘이 선 장면은 그 자체로 귀했다.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2위를 할 만큼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고 지휘로 세계 무대를 누비면서도 피아노에서 그의 음악이 뿌리내렸음을 알렸지만 독주회는 2014년이 처음, 이번이 두 번째다. 연주자와 관객들이 서로 사뭇 긴장되고 괜시리 어색할 수 있는 무대다. 그러나 거장은 약간은 낯선 모습들로 그의 공간에 초대했다. 각 잡힌 재킷과 와이셔츠가 아닌 부드러운 촉감의 셔츠와 바지를 입고 피아노에 앉아 허리에 손을 짚었다가 깍지끼고 앞으로 쫙 폈다가 마른 세수를 하는 모습들이 긴장을 풀어주었다. 이제 편안하게 음악을 함께 나누자고 살포시 손을 건넨 듯 했다.정명훈은 지난 22일 발매한 앨범과 이번 리사이틀에서 하이든과 베토벤, 브람스의 후기 작품들을 한 데 모았다. 그에게 하이든은 시작, 베토벤은 절정, 브람스는 마무리를 의미한다고 했다. “피아니스트로 하는 게 아니다”라며 거듭 손사레를 쳤던 독주회가 그저 가장 사랑하는 피아노로 음악과 함께 한 삶을 돌아보는 무대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프로그램도 순서대로 이어갔다.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60번에는 유쾌한 재치를 넣었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에는 열의를 녹였다. 브람스 소품들엔 깊이와 여유가 함께 담겼다. 그의 무대가 객석에 일종의 혼돈을 안겨준 것도 맞다. 지난 23일부터 전국투어를 시작해 대구, 군포, 광주, 수원을 거치는 동안 연주에서 실수가 잦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악보를 잊은 것처럼 쳤던 부분을 다시 반복하고 손이 엉킨 듯 건반이 뭉개지는 모습은 관객들을 오히려 불안하게 했다. 이날도 특히 베토벤 소나타 2악장부터 일부 눈에 띄는 엉킴들이 있었다. 그의 피아노 실력이 얼마나 녹슬지 않았는지 기대한 관객들에겐 아쉬움을 줬을 대목이다. 정명훈도 2악장을 마치자마자 “이게 참, 손이…”라며 손을 만지고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릴게요”라며 머쓱해 했다.그런데 더 큰 혼란은 귀에 닿는 어긋남들이 주는 묘한 감정 때문이었다. 분명한 실수들이 있었고 그게 무슨 이유에서일까 궁금하기도 또 안타깝기도 했지만 생경할 만큼 그 시간이 주는 편안함과 공간을 에워싼 공기가 매력적이었다. 단정한 양복 차림에 완벽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젊은 연주자들과의 시간과는 뚜렷하게 달랐다. 얼마나 대단한지 팔짱끼고 듣는 음악이 아닌, 거장의 집 거실 한 가운데 놓인 피아노 앞에 앉아 그가 지나온 날들을 꾸밈 없이 톺아보는 듯한 시간 같았다. 그래서 악보를 얼마나 충실하고 완벽하게 지켜가는지를 생각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된 것일지. 자꾸 말을 건넨 무대 위 거장이 한결 가깝게 느껴져서인지, 그도 실수를 한다는 데 안도감을 느끼는 것인지 복잡했다. 다만 이 순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의 의미가 어떤 기술적인 요소보다 더 크게 와 닿도록 했다. 갸우뚱하며 인터미션을 보내고 마주한 2부에서 연달아 선보인 브람스의 ‘세 개의 간주곡’과 ‘네 개의 피아노 소품’의 완벽하게 정갈하고도 따뜻한 연주는 결국 박수갈채를 불렀다. ‘세 개의 소품’을 끝낸 뒤 객석을 잠시 바라본 그에게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휴대전화 알람음이 또로로롱 울린 것이다. 객석에서 미안한 웃음을 보내자 정명훈은 고개를 갸웃하며 오른손으로 휴대전화음과 똑같은 리듬으로 ‘시 파# 시 라# 파#’을 두드렸다. “여보세요?” 장난도 치며 다시 ‘시 파# 시 라# 파#’, 그리고 ‘시 파# 시, 시 파# 시’하다 ‘네 개의 피아노 소품’ 처음이 바로 연결됐다. 어디서든 만나기 쉽지 않은 여유였다.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고 다시 장난치듯 무대 뒤를 휙휙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객석과 인사한 그는 슈만 ‘아라베스크’와 ‘트로이메라이’를 선물했다. 그런데 앞선 휴대전화 알림음이 다른 자리에서 연달아 이어져 평온함을 무너뜨렸다. 다만 연주자는 동요하지 않고 차분히 음악을 마쳤다. “하이든으로 시작했으니 하이든으로 끝낼게요.” 토크콘서트 같았던 무대의 마무리는 다시 그의 시작으로 돌아갔다.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13번 4악장을 경쾌하고 가볍게 끌고 가며 매듭지으며 그 자체로 귀했던 무대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정명훈은 3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앙코르 무대를 갖고 관객들과 또 만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오페라 속 여성들의 삶의 변주

    오페라 속 여성들의 삶의 변주

    사랑 앞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아이다부터 슈만과 브람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클라라까지. 다음달 7일 개막하는 제12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이 오페라 여섯 편을 통해 아름다운 선율로 여성들의 삶을 그려 낸다. ●정통 오페라 백미 ‘아이다’로 포문 올해 축제에선 이탈리아 정통 대작부터 원작을 재해석한 작품, 그리고 신작까지 두루 만날 수 있다. 7~9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사단법인 글로리아오페라단의 ‘아이다’가 첫 문을 연다. 아이다와 암네리스, 라다메스 등 세 남녀의 갈등을 사실적인 묘사와 장엄한 음악으로 풀어낸 베르디 작품으로 정통 오페라의 백미를 느낄 수 있다. 스폴레토 메노티극장 상임지휘자이자 페루지아 국립음악원 교수인 카를로 팔레스키와 이탈리아 아시시 시립극장에서 ‘나비부인’으로 데뷔한 연출가 최이순이 합작했다.●치정 얽힌 푸치니 대표작 ‘토스카’ 21~23일 노블아트오페라단은 푸치니의 대표작인 ‘토스카’를 올린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 시대의 로마를 배경으로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다루는 작품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극장 주역 가수인 소프라노 김라희가 토스카를, 뉴욕 메트로폴리탄 주역 테너 신상근이 카바라도시를 맡아 드라마틱한 치정을 노래한다. 라벨라오페라단이 다음달 29~30일 선보이는 도니체티의 ‘안나 볼레나’도 벨칸토 오페라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비련의 여인 안나 볼레나에 소프라노 오희진, 이다미, 헨리 8세 엔리코 역에 베이스바리톤 김대영, 양석진이 이름을 올렸다. ●숙명적 사랑 그린 ‘브람스…’ 첫선 국립오페라단은 13~16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서정오페라 ‘브람스…’를 처음 선보인다. 브람스의 생애를 바탕으로 슈만과 클라라 사이에서의 필연, 영혼을 뒤흔든 숙명적 사랑을 다룬다. 지난해 초연해 호평을 얻은 ‘레드슈즈’에 이어 작곡가 전예은이 작·편곡을 맡아 참신한 무대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원작을 재해석한 소극장 오페라 두 편도 관객들을 기다린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다음달 28~30일 디아뜨소사이어티가 ‘전화&영매’를, 오는 6월 4~6일 코리아아르츠그룹이 체질 오페라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각각 공연한다. 이탈리아 사실주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미국 작곡가 메노티의 ‘전화’(The Telephone)와 ‘영매’(The Medium)를 한 무대에 올려 전화 중독증에 걸린 현 시대 여성과 영혼을 부르는 영매 마담 플로라를 가볍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전자 바이올린을 활용해 원작 속 여러 악기 캐릭터를 표현한 음악도 관심을 모은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은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을 각색해 서양 오페라와 동양의 사상체질을 버무려 작품 속 인물들을 새롭게 해석한 참신한 작품이다. 대사를 말하듯 노래하는 레치타티보뿐 아니라 아리아까지 100% 우리말로 풀어 쉽고 유쾌한 무대를 선사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뮤지컬 ‘비틀쥬스’ 캐스팅 공개…유준상·정성화·신영숙 등 매력만점 캐릭터

    뮤지컬 ‘비틀쥬스’ 캐스팅 공개…유준상·정성화·신영숙 등 매력만점 캐릭터

    오는 6월 1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첫 라이선스 공연을 선보이는 뮤지컬 ‘비틀쥬스’ 전체 캐스팅이 공개됐다. 제작사 CJ ENM은 팀 버튼의 동명 영화(1988)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비틀쥬스’에 유준상과 정성화 등이 출연하게 됐다고 29일 밝혔다. ‘비틀쥬스’는 유령이 된 부부가 자신들의 신혼집에 이사 온 낯선 가족을 쫓아내기 위해 유령 비틀쥬스와 벌이는 독특한 이야기를 다룬다. 유령 비틀쥬스 역에 유준상과 정성화가 캐스팅돼 국내 대표 뮤지컬 배우들이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을 펼친다. 유준상은 “처음 대본을 받아본 순간, 제가 아주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아마도 제 뮤지컬 인생에서 제일 신선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정성화도 “브로드웨이에서 큰 열풍을 몰고 왔던 화제작의 한국 초연에 참여하게 돼 영광”이라면서 “어떻게 하면 저만의 ‘비틀쥬스’를 보여드릴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관객 분들께 유쾌한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캐릭터 그 자체에 녹아 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유령이 보이는 겁없는 10대 소녀 리디아 역에는 신예 홍나현과 장민제가 쟁쟁한 오디션을 뚫고 이름을 올렸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정체불명의 악동 비틀쥬스를 만나 유령 특훈을 받게 되는 겁 많고 소심한 신참 유령 부부 바바라와 아담에는 김지우와 유리아, 이율과 이창용이 각각 호흡을 맞춘다. 리디아의 엄격한 아버지 찰스는 김용수가 맡아 따뜻한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흥이 넘치는 긍정 아이콘이자 리디아의 라이프코치 델리아에는 신영숙과 전수미가 캐스팅돼 다채로운 색깔과 뚜렷한 존재감으로 웃음을 선사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코로나19 확진’ 전동석, 뮤지컬 ‘팬텀’ 조기 하차

    ‘코로나19 확진’ 전동석, 뮤지컬 ‘팬텀’ 조기 하차

    코로나19 양성 진단을 받은 뮤지컬 배우 전동석이 출연 중인 작품 ‘팬텀’에서 조기 하차하기로 했다. ‘팬텀’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는 29일 “전동석 배우와 소속사 빅보스 엔터테인먼트와 상호 협의 끝에 배우의 컨디션 회복을 최우선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무대에서 만나기를 바라며 너무나 안타깝지만 조기 하차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EMK 측은 이어 “정말 행복하게,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연습하고 훌륭한 에릭을 완성해 낸 전동석 배우의 공연을 끝까지 보여드리지 못해 저희 모두 마음이 많이 아프지만 지금은 전동석 배우가 건강히 치료를 끝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관객들의 양해도함께 구했다. ‘팬텀’과 함께 다음달 개막 예정인 ‘드라큘라’를 준비하던 전동석은 지난 23일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상증세를 느껴 지난 27일 재검사를 받았고 다음날 양성 판정을 받아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해 치료 중이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전사와 무희 치명적 사랑… 160분 춤의 향연

    전사와 무희 치명적 사랑… 160분 춤의 향연

    고대 인도 세 남녀 얽히고설킨 드라마무용수 120여명·의상 200여벌 ‘대작’불의 제단 앞에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연인도 권력 앞에선 저버리는 남자. 그를 두고 다툼을 벌이는 두 여인과 결국 죽음을 맞는 연인. 국립발레단이 5년 만에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이는 전막 발레 ‘라 바야데르’는 이야기로만 보면 막장 드라마에 가깝다. 이토록 치명적인 사랑과 욕망, 그리고 죽음이 얽히고설킨 드라마를 120여명의 무용수가 200여벌의 의상을 입고 화려한 블록버스터로 꾸며 낸다.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를 뜻하는 ‘라 바야데르’는 고대 인도를 배경으로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무대에서 3막에 걸쳐 쉴 새 없는 춤의 향연이 이어진다. 무려 160분이나 되는 공연이지만 환상적인 무대에 좀처럼 눈을 뗄 수 없다. 1막에선 아름다운 무희 니키아와 그의 연인이면서 권력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전사 솔로르, 세상 모든 권력을 가진 공주 감자티, 니키아를 흠모한 제사장 브라만을 중심으로 복잡한 감정선이 다양한 마임과 함께 그려진다. 솔로르와 감자티의 약혼식이 펼쳐지는 2막에선 다채로운 볼거리가 가득하다. 황금신상부터 무희들의 앵무새춤, 전사들의 북춤, 물동이춤, 부채춤 등 형형색색의 디베르티스망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랑을 빼앗긴 니키아의 독무는 그의 옷 색깔처럼 피를 흘리듯 처절하다. ‘라 바야데르’의 하이라이트는 3막이다. 니키아를 그리워한 솔로르가 ‘망령의 왕국’에 빠져드는 장면은 백색 발레(발레 블랑)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 준다. 어둡고 푸른 조명에서 흰색 튜튜를 입은 32명의 발레리나들이 망령이 돼 차례차례 나오는 장면은 그저 황홀하다. 경사진 무대로 한 명씩 걸어 나오며 온몸을 쭉 뻗고 고개를 앞으로 숙이는 아라베스크 팡세 동작과 두 다리를 쭉 뻗은 탕듀, 팔을 높이 펴 든 앙오를 반복하며 대열을 잇는 시간은 아름다움을 넘어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46차례나 같은 동작을 반복하게 되는 첫 셰이드를 비롯해 가장 마지막 무용수까지 어느 누구도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호흡을 자랑해 함께 숨죽이게 된다. 섬세한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망령 세계에서 재회한 니키아와 솔로르의 애절한 파드되(2인무)와 독무도 마음을 울린다. 인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답게 무용수들의 의상도 볼만하다. 특히 다른 작품들과 달리 발레리나들은 배가 노출되는 의상을 입는다. 섬세한 춤선 아래 단단하게 새겨진 복근이 드러나면서 그 노력의 시간들을 가늠케 한다. 공연은 다음달 2일까지 이어진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조수미, 어버이날 특별 콘서트 ‘나의 어머니’…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과 찬사”

    조수미, 어버이날 특별 콘서트 ‘나의 어머니’…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과 찬사”

    소프라노 조수미가 어버이날을 맞아 특별 콘서트를 갖는다. 예술의전당은 조수미가 다음달 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특별 음악회 ‘나의 어머니’를 연다고 28일 밝혔다. 몇 년 전 치매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비롯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헌정하는 무대다. 올해는 국내를 대표하는 성악가인 조수미가 세계 무대에 데뷔한 지 35주년이기도 하다. 프로그램도 어머니를 위한 노래들로 잇는다. 조수미는 폴란드 민요 ‘마더 디어’와 드보르자크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아돌프 애덤스의 오페라 ‘투우사’ 중 ‘아! 어머님께 말씀드리죠’, 도니체티 오페라 ‘루크레치아 보르자’ 중 ‘어머니를 사랑해’ 등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려질 예정이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 OST 중 ‘바람이 머무는 날’과 뮤지컬 ‘맘마미아’ 속 ‘맘마이아’ 등 다채로운 레퍼토리가 펼쳐진다. 최영선 지휘로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하모니를 꾸미고 뮤지컬 배우이자 테너인 윤영석과 해금 연주자 나리도 함께 무대에 오른다. 조수미 측은 “어머니에 대한 특별하고 애틋한 마음과 세상 모든 어머니에게 존경과 찬사를 담아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클래식, 가요, 크로스오버 등 여러 장르의 곡들로 공연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예술의전당 유인택 사장은 “대한민국 국가 대표 성악가인 조수미의 음악회를 어버이날 선물로 준비했다”며 “부모님들께 효도할 수 있는 모처럼의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음악회에서는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음악인들의 무대를 만드는데 쓰일 ‘예술기부 모금’ 함께 진행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5년 만에 돌아온 ‘라 바야데르’…아름답고 황홀한 160분의 치정극

    5년 만에 돌아온 ‘라 바야데르’…아름답고 황홀한 160분의 치정극

    불의 제단 앞에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연인도 권력 앞에선 저버리는 남자. 그를 두고 다툼을 벌이는 두 여인과 결국 죽음을 맞는 연인. 국립발레단이 5년 만에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이는 전막 발레 ‘라 바야데르’는 이야기로만 보면 막장 드라마에 가깝다. 이토록 치명적인 사랑과 욕망, 그리고 죽음이 얽히고설킨 드라마를 120여명의 무용수가 200여벌의 의상을 입고 화려한 블록버스터로 꾸며 낸다.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를 뜻하는 ‘라 바야데르’는 고대 인도를 배경으로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무대에서 3막에 걸쳐 쉴 새 없는 춤의 향연이 이어진다. 무려 160분이나 되는 공연이지만 환상적인 무대에 좀처럼 눈을 뗄 수 없다.1막에선 아름다운 무희 니키아와 그의 연인이면서 권력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전사 솔로르, 세상 모든 권력을 가진 공주 감자티, 니키아를 흠모한 제사장 브라만을 중심으로 복잡한 감정선이 다양한 마임과 함께 그려진다. 27일 첫 무대를 연 김기완(솔로르)과 박슬기(니키아)는 등장할 때부터 큰 박수를 받으며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연인에게 뜨거운 사랑을 약속했다 돌연 권력을 좇아 공주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나쁜 남자’를 김기완은 하늘을 날듯 펄펄 움직였다가 섬세한 감정 연기를 선보이기도 하며 매력적으로 그렸다. 솔로르와 감자티의 약혼식이 펼쳐지는 2막에선 다채로운 볼거리가 가득하다. 황금신상부터 무희들의 앵무새춤, 전사들의 북춤, 물동이춤, 부채춤 등 형형색색의 디베르티스망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랑을 빼앗긴 니키아의 독무는 그의 옷 색깔처럼 피를 흘리듯 처절하다.‘라 바야데르’의 하이라이트는 3막이다. 니키아를 그리워한 솔로르가 ‘망령의 왕국’에 빠져드는 장면은 백색 발레(발레 블랑)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 준다. 어둡고 푸른 조명에서 흰색 튜튜를 입은 32명의 발레리나들이 망령이 돼 차례차례 나오는 장면은 그저 황홀하다. 경사진 무대로 한 명씩 걸어 나오며 온몸을 쭉 뻗고 고개를 앞으로 숙이는 아라베스크 팡세 동작과 두 다리를 쭉 뻗은 탕듀, 팔을 높이 펴 든 앙오를 반복하며 대열을 잇는 시간은 아름다움을 넘어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46차례나 같은 동작을 반복하게 되는 첫 셰이드를 비롯해 가장 마지막 무용수까지 어느 누구도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호흡을 자랑해 함께 숨죽이게 된다. 섬세한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망령 세계에서 재회한 니키아와 솔로르의 애절한 파드되(2인무)와 독무도 마음을 울린다. 인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답게 무용수들의 의상도 볼만하다. 특히 다른 작품들과 달리 발레리나들은 배가 노출되는 의상을 입는다. 섬세한 춤선 아래 단단하게 새겨진 복근이 드러나면서 그 노력의 시간들을 가늠케 한다. 공연은 다음달 2일까지 이어진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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