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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삶의 지혜가 아쉽다/이승훈(일요일아침에)

    개방과 경쟁의 시대를 맞으면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낡은 의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일개 백면서생이 무얼 알겠는가마는 최근 쌀을 비롯한 농산물의 개방문제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2분법적 사고,혹은 어느 하나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고 다른 하나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쌀의 개방을 절대적으로 막아야한다는 것은 국민 누구나 느끼는 심정이고 또 그래야 한다.그렇지만 외국의 개방 압력이 과연 어느정도인지 알수도 없으며,그런 압력을 버텨낼 능력이 있는지,혹시 없다고 하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그 방면 전문인들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민족적 슬기 필요 개방 절대 불가라는 주장에는 누구나 공감한다.그러나 나같은 글쟁이가 아쉽게 느끼는 것은 이런 주장과 함께,아니 그런 주장을 뛰어넘는 좀더 슬기로운 주장이 없다는 점이다.쌀 개방 문제만이 아니라 최근 우리나라가 마주치고 있는 개방과 관련된 절박한 현안들을 놓고 볼 때 더욱 그렇다. 이런 시기일수록 민족적 감정만을 앞세우기보다는 민족적 이성,혹은 민족적 슬기가 필요하다고 본다.개방이 세계적 추세이며,우리나라도 결국은 세계속의 한 나라로 존재해야 한다면 흑백 논리보다는 그런 논리를 초월하는 좀더 대국적인 논리가 필요하다.굳이 논리라고 할 수만도 없다.의식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한마디로 그것은 인습적 사고의 해체를 지향한다. 따라서 쌀 개방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개방할 것인가 아닌가라는 논의를 감싸는 또 하나의 논리이다.쌀 개방 문제가 안고 있는 딜레머가 여기 있다고 본다.UR의 원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입장에서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능력과 대안도 제시해야 할 것이 아닌가.의식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런 대목에서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2분법적 사고체계가 아니라고 본다.그런 사고체계를 뛰어넘는 일이 필요하다.그렇다면 모두 허무주의자가 되자는거냐고 하겠지만 천만에 말씀이다.선이 아니면 악,삶이 아니면 죽음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대국적인 논리를 우리 옛 조상들은 집에 담을 쌓아도 요즘처럼 안과 밖의 공간을 확연히 나누지 않는 그런 방식으로 쌓았다.어른들의 허리정도 높이로 쌓은 담은 담이라고 하기에는 허술한 것 같다.그렇다고 담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엄연히 그런 담은 집의 안과 밖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요즘처럼 어른들의 키를 넘는 높이가 아니다. 옛 조상들이 보여주는 이런 담은 밖에서 안을 넘겨다 볼 수도 있고 거꾸로 안에서 밖을 넘겨다 볼 수도 있다.하기야 옛날은 시대가 달랐다고 할 수도 있다.그러나 조상들의 이런 풍속에서 우리는 배울것이 있다고 생각한다.그것은 이런 담이 안과 밖이라는 2분법적 대립성을 초월하는 삶의 슬기를 암시한다는 점이다.이런 담은 안이면서 동시에 밖인 그런 세계이다.그렇다고 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밖이 없는 것도 아니다. ○유연히 사태 처리 개방의 시대를 맞으면서 떠오르는 것은 이런 삶의 지혜이다.국가의 담을 허물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그렇다고 국가의 담을 하늘 높이 쌓아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문제는 담을 쌓되 얼마나 슬기롭게 쌓는가에 있다.이런 담을 쌓기 위해서는 우선 2분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좀더 유연하게 사태를 처리하는 의식의 개혁이 요구된다.
  • UR/국제수지45억불 개선효과/산업연「우리경제 미치는 영향」세미나

    ◎관세 낮아져 공산품수출 늘어/농산물 타격… 전체적으로 유리 쌀시장 개방문제 등으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UR(우루과이라운드)협상이 오는 15일 최종타결 시한을 앞두고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UR협상은 쌀시장뿐 아니라 모든 공산품의 시장개방,금융·서비스 등 GATT(관세무역일반협정)에서 다루지 않는 새로운 협상분야도 담고 있어 협상이 타결되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쌀 등 농산물 분야는 피해가 예상되나 공산품은 관세인하로 수출증대가 기대된다.2일 산업연구원에서 열린 「UR타결이 국내산업에 미칠 영향과 정책대응」세미나에서는 UR가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부정적인 측면이 거론돼 관심을 끌었다. 김적교 한양대교수 주재로 열린 세미나에서 최락균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주제발표를 했고 이윤호 럭키금성경제연구소장,유정호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최세형 무협 상무이사,변정구 한국금속가구협동조합 이사장,김종희 상공자원부 국제협력관이 토론자로 참석했다.주제발표와 토론내용을 싣는다. ◆최낙균 부연구위원=계량분석 결과 UR협상이 타결되면 공산품의 경우 수입증대보다 수출증대 효과가 크다.UR타결내용의 이행이 완료되는 시점에 가서 45억달러의 국제수지 개선효과가 있다.즉 UR는 부정적 효과도 있지만 제조업 부문의 긍정적 효과 또한 적지 않다.UR의 참여는 국제경제 교류질서에 합류한다는 소극적 의미를 넘어 국익에 크게 보탬이 된다는 인식을 갖고 적극 참여해야 한다.농산물 등 비제조업 분야는 엄밀한 손익계산을 전제로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하며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정치적 대응은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최세형 무협상무=일본은 오래전부터 UR를 공론화해 여론수렴을 거쳐왔는 데 우리는 최근에서야 여론수렴 작업을 시작한 느낌이다.늦은 감이 있다.UR협상은 쌀시장 개방이 초미의 관심사인 만큼 유예기간을 늘리기만 한다면 우리의 농업구조조정이 가능하다고 본다. ◆유정호 연구위원=계량화하는 자료가 나와야 감이 잡힌다.그동안 UR논의는 감위주였던 게 사실이다.계량화 작업은 UR관련 논의를 바로 잡는데 필요하다.비관세 장벽의 인하가 가져올파급효과에 대한 계량분석도 있어야 될 것이다.무역장벽의 철폐로 우리산업이 얻는 것이 크다는 것은 우리가 세계 무역장벽을 허무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외국을 개방시키려면 우리도 개방해야 한다.이번 계량분석은 일반 상식으로 예상하기 어려운 결과여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내수시장의 침식없는 시장개방은 없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이윤호 소장=재미있는 계량분석이다.그러나 UR가 국내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려면 농업부문과 서비스분야에 대한 계량분석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변정구 이사장=농업이 개방되면 우리나라가 피해를 본다는 것은 외국보다 불리하기 때문이다.문제는 우리가 내실이 돼있지 않다는데 있다.실질적으로 중소기업들도 국제 경쟁에서 살아나기는 어렵다.그러나 우려되지만 개방화를 피할 수는 없다. ◆김종희 국제협력관=쌀문제때문에 UR가 쌀로 인식돼 있다.UR협상은 공산품,서비스,농산물의 관세협상 분야가 있고 규범분야와 다자간 무역기구,분쟁해결절차 등 제도분야가 있다.규범이행을 둘러싸고 반덤핑 등 분쟁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이 분야의 협상도 우리업계에 영향이 적지 않다.UR타결이 피해만 주는 것은 아니다.다른 나라도 같은 규범의 적용을 받게 돼 플러스,마이너스 요인은 섞여 있다.국제규범을 활용하는 쪽으로 정책이 가야한다. ◆김적교 교수=우리나라 제조업의 자유화는 99%쯤 된다.그러나 수입선다변화를 고려하면 이보다 낮다.UR가 타결되면 수입선다변화를 유지하기 어렵다.한가지 지적할 점은 한때 수입을 자유화하면 망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적이 있다.단계적으로 수용,오늘날 이 정도가 됐지만 자유화라는 게 시장경제의 꽃을 피우는 일이다.세계 교역장벽을 철폐함으로써 기업경영의 합리화와 기술개발에 기여할 것이다.독일 경제가 부흥할 수 있었던 것도 경쟁원리를 도입했기 때문이다.농업은 물론 예외다.그 부문에는 정부가 보상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 서릿발 법집행… “공중분해 우려”/김승연한화회장 전격구속의 뜻

    ◎“불구속수사 하면 형평성 훼손” 판단/불법실명전환 혐의는 기소때 추가 검찰이 30일 한화그룹 김승연회장을 전격 구속한 것은 실정법위반행위에 대한 사정활동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달 3일 경실련의 고발에 따라 김회장이 검찰에 1차로 소환될 당시만 하더라도 불구속수사로 매듭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김회장이 혐의를 극구 부인한 이유도 있었지만 매출액 9위의 재벌그룹 총수인만큼 구속될 경우 경제계에 미칠 파장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그러나 지난 3일 2차 소환조사이후 검찰의 관련자수사와 증거보강작업으로 김회장의 외화유출혐의가 가닥이 잡혀가기 시작했고 지난주 외국환관리법위반혐의를 확인하면서 방향은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액을 해외에 빼돌린 사실이 맹백한데도 불구,불구속 수사를 할 경우 법의 공평성을 크게 훼손시켜 정부의 사정의지를 크게 퇴색시킬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구속수감의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김회장의주변에서 꼬리를 물던 무절제한 사생활에 관한 소문들도 전격구속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회장의 혐의는 일단 회사공금을 외국으로 빼돌려 외국부동산을 매입했다는 것이지만 검찰의 변칙실명전환사건 수사과정에서 한화그룹이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 돈을 실명제 실시이후 사채업자들을 통해 불법으로 실명전환한 사실까지 드러났다고 수사관계자는 밝히고 있다. 비자금조성과 불법실명전환은 그동안 이 사건에 관련된 그룹 경영기획실 간부등에 대한 조사에서 현재 대부분의 혐의사실이 드러나 있기는 하지만 마무리 수사를 거쳐 기소단계에서 혐의를 추가할 방침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수사는 비자금을 어떤 수법으로 조성했으며 가명계좌에 들어있던 이 돈을 어떻게 실명으로 조성했는지,또 김회장이 개인용도로 사용한 액수가 얼마인지를 정확히 밝혀내는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비자금조성의 과정은 대부분 드러나 있다고 검찰은 밝히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쓴 돈이 얼마인지와 법적용문제를 놓고 고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드러난 것은 한화그룹의 경영기획실에서 49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4개 증권사에 예치시켜두었다가 사채업자들에게 3억원의 수수료를 주고 증권카드자체를 팔았고 비서실에서도 34억원을 관리해오다 7억원의 수수료를 떼고 불법으로 실명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49억원 부분은 거의 모두 보관중인 것으로 확인됐지만 34억원 부분은 10억원 가까운 돈이 김회장의 변호사 비용등 개인용도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같은 혐의에대해 어떤 법조항을 적용할지는 검찰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다. 현대중공업이 14대 대통령선거과정에서 비자금을 선거비용으로 유용,처벌을 받은 전례가 있지만 이번 경우도 과연 횡령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와 변칙실명전환을 업무방해로 처벌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또 사채업자의 명의를 빌어 실명으로 바꿨지만 차명도 허무인이 아닌 이상 실명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김 회장 구속」 그룹·재계의 표정/설마→심상찮다→경악→비상대책회의로/구룹/긍정… 충격… 경제계에 미칠 파장에 촉각/재계 ◎…김승연 회장의 전격 구속에 한화그룹측은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침통해하는 빛이 역력하다.검찰쪽으로부터 「심상치 않다」는 연락을 간간이 전해들으면서도 「설마」하던 분위기가 하오 6시를 전후해 구속쪽으로 기울자 당황하는 모습. 30일 하오 7시 TV를 통해 김회장의 구속 소식이 알려지자 『재벌 총수를 구속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손을 놓은채 그룹의 앞날을 걱정하는 초상집같은 분위기.일부 직원들은 지난 5공때 국제그룹처럼 그룹이 공중분해되는 것이 아닌가 노심초사. ◎…김회장의 구속이 전해지자 (주)한화,한양화학,경인에너지 등 그룹 24개 계열사는 하오 7시10분부터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대책마련에 부심.이날 긴급회의에서 사장단은 『전 계열사의 임직원은 비상근무에 들어가고 한치의 동요없이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고 신신당부.한편 이날 긴급회의에서 성락정 경인에너지 회장,오재덕 (주)한화 부회장,남욱 한국국토개발 회장 등 회장단 3명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그룹경영을 당분간 집단체제로 전환. ◎…김회장의 구속으로 앞으로 한화그룹의 중장기 계획이 상당히 차질을 빚을 전망.지난 10월28일 김회장이 직접 발표하려던 카자흐스탄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상당기간 보류될 것으로 예상.또 김회장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던 그리스 국영 정유공장의 인수건은 백지화 되고 헝가리 라면공장의 준공 등 대부분 해외 사업이 중지될 전망.국내 자금조달도 경색될 것으로 그룹 관계자는 진단. ◎…김회장과 법정투쟁을 불사하던 동생 김호연 회장의 빙그레측도 뜻밖이라며 예상과는 달리 침묵으로 일관.한화그룹의 지난해 총 매출액은 4조5천억원 규모로 재계 11위,자산 규모로는 8위에 랭크. ◎…재계는 이번 사태를 충격으로 받아들인다.그러나 경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론 생각하지는 않는다.김회장이 명백히 실정법을 위반했고 도덕성을 강조하는 신정부가 이를 법대로 집행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동안 김회장의 구속문제를 놓고 정부내에서는 경제계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고려,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원칙」에 입각해 처리했다는 반응이다.불과 1주일 전까지만 해도 김회장이 불구속처리 될 것으로 예상했다.따라서 구속사태로 반전된 것은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탓이라고 풀이한다. ◎…한화그룹의 장래에 대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6개월여 가량 그룹을 「방치」했어도 괜찮았다』고 전제,『이번 사태가 그룹의 흥망과는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그는 『김회장이 그간의 검찰수사 과정에서 전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구속사유가 비록 외환관리법 위반혐의이지만 실질적으론 불법 실명전환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화 김회장 구속영장 요지 피의자는 한화그룹회장으로 그룹계열사인 태평양건설이 79년부터 83년사이에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수주한 해외공사관련,공사 수수료중 회사가 되돌려 받아야할 미화 6백50만달러를 국내에 반입하지않고 재무부장관 허가없이 홍콩소재 수개은행에 예치시켰다. 피의자는 그 무렵분산예치된 가명계좌를 이용,92년 2월13일 미국 LA에서 실베스터스탤론소유의 캘리포니아 사우스앤옥스 히로벨리 로드 1523소재 호화주택 1동을 4백70만달러에 매입,외국부동산을 취득함으로써 외국환관리법을 위반했다. 피의자는 또 83년 5월1일 미국 뉴저지주 에디슨가 메트로파크 플라자 미들랜틱 내셔널 은행과 수표·예금계약을 체결하고 그 무렵 예금계좌에 2차례에 걸쳐 미화 1백20만달러를 예금한 다음 그 계좌에서 90년 8월8일 미화 5천만달러를,91년 9월10일 미화 4만달러를 인출하는등 89년 1월13일부터 93년 6월22일까지 사이에 미화 1백10만5천9달러를 인출함으로써 예금채권을 소멸시켜 외국환관리법을 위반했다.
  • UR협상에의 영향/미 입지강화로 「타결」 청신호/EC·일 명분 양

    화… 개방에 성의 보일듯 미하원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비준으로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에 청신호가 켜졌다. 이유는 두가지로 요약된다.첫째는 세계교역질서 확립의 당위성이 주는 상징성이고 두번째 이유는 유럽공동체(EC)의 보호주의에 맞서는 미국의 협상력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NAFTA의 상징성은 특히 선진국과 개도국이 사상 처음 하나의 경제블록을 형성했다는데 있다.이는 곧 보호주의자들의 집단으로 인식됐던 미의회가 다자간 협상을 더 선호한다는 반증인 동시에 UR라는 국제적 룰의 성립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피터 서덜랜드 가트 사무총장은 NAFTA 비준후 기자회견을 통해 NAFTA가 부결됐더라면 보호주의가 심화되고 안정된 세계교역질서 수립에 심각한 타격이 가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상공회의소(ICC)도 NAFTA 비준은 미국 의회가 단견적인 보호주의와 맞서 싸우는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노선을 따르겠다는 의사표시라며 즉각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미국의 협상력이 강화됐다는 점도 UR타결의 전망을 밝게 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미국의 협상력 강화는 미헤리티지재단의 연구보고서가 UR 타결의 최대 걸림돌로 지적한 유럽과 일본의 보호주의 장벽을 허무는데 크게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내에도 NAFTA 비준이 미국경제에 당장의 효과를 가져오지는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많았던게 사실이다.미국내 경제학자들은 NAFTA가 향후 10년간 미국경제에 미칠 영향은 국내총생산(GDP)의 0.1% 성장에 그칠뿐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NAFTA 통과를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여온 미행정부가 홍보전략을 처음의 일자리 창출에서 국제무대에서의 미국의 위상강화쪽으로 바꾼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 할 수 있다. 미행정부는 NAFTA 비준을 위해 비준이 실패할 경우의 손실을 강조하는 「부정적 소구」 전략을 썼다.즉 NAFTA가 부결되면 EC와 일본만 좋아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NAFTA가 의회의 승인을 얻음으로써 EC와 일본은 명분으로 보나 현실여건으로 보나 무역장벽 제거에 보다 성의를 보일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서게 됐다. 특히 EC는NAFTA가 발효되고 여기에 아·태경제협력체(APEC)가 경제블록화할 기미를 보이는 마당에 블록대 블록의 싸움에서도 상대적으로 미국보다 열세에 놓이게 돼 UR 타결을 위해 한결 적극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NAFTA에 쏟았던 정열을 UR로 돌리고 NAFTA 결과를 지켜보느라 본격적인 협상을 미뤄온 EC가 다시 본격적인 대화에 나서게 될 것이 분명한 만큼 이제 UR협상 진행에 한결 속도가 붙을 것은 당연하다. 서덜랜드 GATT 사무총장은 미하원의 NAFTA 비준으로 UR협상은 타결가능한 범위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다.
  • “강도 높은 사과”… 과거사 단락/경주회담과 「진사」의 의미

    ◎“올바른 역사인식 정립의 출발점” 표현/독·불관계 모델로 21세기 청사진 모색 김영삼대통령은 6일의 한일정상회담에서 『과거를 결코 잊어서는 안되지만 이것에만 집착해서도 안될 것』이라고 밝히고 『양국국민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정립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것』이라고 호소카와 총리의 「진사」를 평가했다. 「경주회동」의 의미를 이보다 더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말은 찾기 어려울 것 같다.최소한 김영삼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 총리는 경주회동을 통해 과거사에 흰색 덧칠을 하고 그위에 새로운 무늬를 그려 넣자는데 의기투합했다.물론 양정상의 의기투합이 양국민의 의기투합으로까지 발전할지는 더 두고봐야하거나,시간이 걸릴 일이다.그러나 양정상이 21세기를 향한 한일관계의 새로운 청사진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국민감정의 개선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은 한일관계의 역사적 대전환으로 평가해도 무방할 것 같다. 한일간의 과거사를 극복하기위한 「김­세천」간의 상호협력은 양국의 새정부 출범과 동시에 진행돼 왔다.새정부 출범과 함께 정신대문제에서 「보상」을 떼어내고 「과거사 인정」을 과거사 극복의 요건으로 수위를 낮춰준 점은 김대통령의 노력이었다.이에비해 일본의 과거행위를 처음 「침략」으로 규정,보다 발전된 「과거사인정」의 교두보를 확보한 것은 호소카와 총리측의 협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6일의 정상회담에서 호소카와총리는 이같은 교두보를 바탕으로 식민지시대의 모든 잘못을 명쾌하게 인정하면서 공식적인 사과로 양정상의 몇달에 걸친 노력을 매듭지었다.김대통령은 이에대해 『한일 양국국민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정립해 나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해 해방이후 줄곧 현해탄을 가로막아 온 과거사 장벽을 허무는 결단을 보여주었다.이경재청와대대변인은 『대통령의 이같은 표현은 과거사 문제에대한 만족을 표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양국 정상이 새로운 한일관계로 그려 보인 청사진은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다.「가깝고도 먼 나라」가 이전의 한일관계였다면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는 독일과 프랑스 관계를 모델로 삼고 있다.청와대 관계자는 『프랑스에 있어 독일은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이었다.독일이 과거사를 사과함으로써 두나라는 경쟁적이지만 이웃으로 잘 협조하고 있고,한일관계도 결국 그같은 방식으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일 정상간에 과거사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노태우대통령때도 있었다.90년 당시 일본을 방문한 노대통령은 『과거를 씻고 새 우호시대를 열자』고 말한적이 있다.그러나 당시의 발언은 일본측이 한반도 강점에 대해 「침략」으로 인정치 않았고,우리측의 분위기 역시 이를 완전한 사죄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하나의 시도로만 끝나고 말았었다.두나라의 정치개혁과 한국의 정통성있는 문민정부 출범이 한일관계의 개혁을 가능케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를 구조화시키기 위해 정상회담은 몇개 분야에서 구체적인 실천안을 제시했다. 일·북한 관계와 관련해 호소카와 총리는 북한 핵이 해결되지 않는한 북한과 수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재확인함으로써 한국정부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적극 동참하고있다.비록 그것이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며 또한 핵문제가 일본의 안위에 연관이 있다하더라도 일본 총리의 이같은 명백한 입장재확인은 핵문제해결의 추진력을 한층 높여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양 정상은 사회·문화분야에서는 인력교류를 통한 상호신뢰증진과 이해심화의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밝히면서 구체적 조치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음을 확인했다.사회·문화분야는 신한일관계를 구조화시키는데 필요한 핵심사항이다.앞으로의 구체화될 조치들이 어떤 속도를 갖느냐에 따라 신한일관계의 정착시기가 결정될 것으로 여겨진다. 국제무대 협력과 관련해 두 정상은 「동반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그러면서 APEC가 매우 중요하며 역내협력의 구심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껏 동반자란 용어는 한미 관계에서 정도나 사용돼 온 말이다.이같은 표현과 APEC의 역할강조로 미루어 두정상은 이웃사촌으로서 국제무대에서 또 하나의 신한일관계를 과시해 나갈 것을 점치게 하고 있다. 이번 회담은 경주라는 장소와 공식실무방문이란 형식에서 나타나듯이 격식과 토론보다는 두정상간의 「피부접촉」을 통한 우의증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몇가지 현안에대한 입장조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사람간의 친구맺기의 성과가 더 커보이는 것도 이같은 경주회동의 목표와 형식때문이다.
  • 일 중견건설사 파산 “충격”/무라모토사 5조원 못갚아

    일본 건설업계의 중견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무라모토건설이 1일 파산을 선언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함으로써 이른바 「거품 경제」가 퇴조한 이후 속출한 희생자의 대열에 합류했다.무라모토 건설은 5천9백억엔(미화 55억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부채를 이기지 못해 일본의 파산법에 따른 구제조치를 밟게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회사의 파산은 나카니시 히사요시 사장 스스로가 부동산투자의 실패를 문제점으로 실토하고 있고 데이코쿠데이타은행도 지난 80년대 후반 골프장 건설등에 무리한 투자를 단행한 것이 엄청난 부채를 안게 된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어 거품경제가 초래한 허무한 결과라는 것이 중론이다. 무라모토건설의 파산은 지난 85년 5천2백억엔의 부채를 안고 무너진 산코해운을 훨씬 능가하는,전후 최대의 파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 백제혼의 귀환(외언내언)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망한 것은 서기660년.수도인 사비성(부여)이 함락되면서 6백년의 왕조 백제는 허무한 종언을 고한다.그러나 백제 유민들의 부흥운동은 그뒤 4년이나 계속되어 임존성(대흥)의 흑치상지와 주류성을 근거로 한 왕족 복신은 2백여개성을 함락하고 한때 사비성을 포위공격하는 위세를 보이기도 했다.그러나 역사의 대세는 돌이킬 수 없는듯 강력했던 부흥운동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다. 백제가 멸망한 뒤 당나라는 왕과 종친·귀족 88명및 백성 1만2천8백여명을 포로로 끌고간다.망국의 치욕을 피해 많은 백제의 왕족과 귀족·고관등 유민들이 일본으로 망명한다.백제와 위는 전통적인 우호관계가 유지되어 왔으며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위의 원군이 출병할 정도였다. 백제인들은 일찍부터 일본에 한문과 불교를 전해주는등 미개한 위에 문화와 기술을 전파해준다.7세기 전반 일본이 자랑하는 아스카(비조)문화는 실상 백제문화의 연장 혹은 그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당시 일본에서 「구다라노 모노」(백제의 물건)란 말은 최상품을 지칭하는 말이었다니 백제문물에 대한 일본인들의 동경심을 짐작할만하다. 왜국에 귀화한 백제인들은 정치·학문·예술·기술 분야에서 지도적 위치에서 활약했다.절을 세워주고 불상을 만들어주고 성을 쌓아주었으며 양잠기술도 가르쳐주었다. 최근 일본 미야자키현 남향촌의 주민 1백여명이 백제의 왕족인 정가왕과 복지왕부자의 신위를 모시고 부여를 찾아왔다.실로 1천3백년만의 영혼의 환국이다.백제의 왕릉이 집결된 능산리에서 고유제를 지내고 제사도 올렸다. 또 신위를 모시고 사비성문에서 궁궐터가 있는 시내로,다시 백제를 떠났던 금강 구드래나루까지 행렬을 갖기도 했다.주민들은 왕족이 사용하던 동경과 말방울등 유물도 잘 보존했다가 이번에 엑스포 전시관에 출품했다.1천3백년전 조상의 원혼을 달래주려 한 남향촌 주민들의 집념과 정성이 참으로 돋보인다.
  • 가 차기총리/「북미무역협정」 재협상 선언/덤핑규제 협정포함조건

    ◎첫 기자회견/내주 조각후 미 등과 논의 【오타와 AFP 로이터 연합】 장 크레티앵 차기 캐나다 총리는 28일 자신은 이미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및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멕시코대통령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재협상에 관해 전화협의를 한 바 있다고 밝히면서 정부 보조금 및 저가상품에 대한 덤핑규제가 협정에 포함되지 않는 한 협정이행을 추진치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25일의 총선 승리후 가진 이날 첫 기자회견에서 크레티앵 차기총리는 또 선거공약을 이행키 위해 다음주 조각이 끝나자 마자 전임 브라이언 멀로니총리가 발주한 영국및 이탈리아합작 대잠구조 헬기 EH­101 50대 구매를 취소하겠다고 공표했다. 크레티앵 차기총리는 이어 미국과 멕시코및 캐나다 3국간의 무역장벽을 허무는 NAFTA에 관련된 5개 현안중 환경및 노동문제는 해결됐으나 에너지,정부보조금 지급및 반덤핑문제등 3개사항에 관해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그는 『NAFTA에 관한 한 우리의 입장은 확고하다』고 강조하면서 다음주 조각이 완료되면 이를 미국및 멕시코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 김영현 장편소설 「풋사랑」(이작가 이작품)

    ◎80년대 젊은이 고뇌그린 본격 순수소설/감방살이·강제징집 등 「운동권」작가 체험 소재/작중인물 살아 있는 개성 장점 김영현(38)의 첫 장편소설 「풋사랑」(실천문학사간)이 가을문단에 본격 순수소설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얼마나 먼길을 헤매야 소년들은 어른이 되나/얼마나 먼 바다 건너야 갈매기는 쉴 수가 있나/얼마나 긴 세월 흘러야 사람들은 자유얻나/오,친구여 묻지를 마라.바람만이 아는 대답을」.주인공의 친구가 매번 읊조리는 이 노래에 「풋사랑」의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처럼 보인다.「유신」으로 상징되는 70년대와 「광주」에서 시작된 80년대….이 소설은 그 어두운 터널의 한가운데에 「운동권」으로 굳건하게 서 있던 작가가 투쟁이 아닌 사랑으로 혼돈의 90년대를 부둥켜 안으려는 시도의 산물이다. 지난 90년 첫 창작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김영현논쟁」을 일으켰던 작가가 1년6개월의 감방살이와 강제징집된 군대생활,광주사태이후의 혹독한 고문등 자신이 겪은 「눈물어린 열정없이 바라볼 수 없는 80년대를」,「풋사랑」은 따뜻하고 정겹게 감싸안는다.실천문학 연재당시부터 좋은 반응을 받았던 이 작품은 가장 「김영현적인 소설」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본격문학의 힘과 감동을 느끼게 하는 「풋사랑」은 재수생 경식과 은주,운동권대학생 영훈과 재희를 축으로 그려진다.단순한 줄거리와 다소 진부한 80년대 학생운동이라는 재료에도 불구하고 격동의 시기를 이겨 나가는 젊은이들의 고뇌와 방황 그리고 사랑을 서정어린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제목이 암시하듯 치열한 운동논리보다는 풋풋한 사랑이 밑바닥을 이룬다. 작중인물의 살아 움직이는 개성은 이소설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장점이다.주인공 문경식의 아버지인 문상사,서북청년단출신으로 서울에서 포목점을 경영하는 문경식의 고모부 최덕근,감성적이고 이지적인 허무주의자 최영훈이 그들이다.이중 최영훈은 작가의 애정이 깊이 배어있는 작가의 분신처럼 보인다.다소 작위적이긴 하지만 최영훈이 벌이는 살인은 이 소설을 단순한 애정소설로 머물게 하지 않는다. 『눈을 돌려라,세상은 변하였다』고 속삭이는 많은 청산주의자들에게 작가는 힘주어 말한다.『그래 돌리마,그러나 너희들처럼,너희 기회주의자들처럼,재빨리가 아니라 천천히…천천히…그러나 분명하게,그러나 깊게,눈물이 글썽하게 배인 눈으로 천천히…눈을 돌리마.그러기 전에 나는 먼저,죽은 자들 속에 남아 죽은 자들의 장사부터 지내주어야겠다』고 분명하게 대답한다.김영현소설의 미덕이자 「인간 김영현」의 무서움을 함축한 말이다.
  • 다시 잠긴 여객선/남기창 전국부기자(오늘의 눈)

    17일 밤 서해훼리호가 침몰됐던 위도 앞바다. 공룡같은 모습의 인양선 설악호가 철제로프로 서해훼리호를 붙들고 있었다.거센 파도가 서해훼리호의 선체를 마구 때렸다.파도가 칠때마다 서해훼리호를 붙들고 있는 로프가 흔들거렸다.웬지 불길한 예감이 칠흙같은 바다위로 엄습해 왔다. 시계는 11시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순간,서해훼리호를 지탱하고 있던 두가닥 로프가 서로 엉켜 끊어졌다. 『쏴…철썩…』하는 파도소리와 함께 서해훼리호는 바다로 잠겨버렸다.인양후 12시간만이었다.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힘겨운 작업끝에 건져낸 배가 허무하게 다시 침몰한 것이다. 설악호의 로프는 왜 끊어졌는가. 위도앞바다의 원혼이 모질기도 하다는 다소 미신섞인 한탄에 앞서 서해훼리호의 재침몰은 또하나의 「예견된 사고」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구조대는 선체가 수면 위로 들어올려지자 선체의 물을 빼고 개펄을 제거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이 과정에서 설악호의 크레인이 서해훼리호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절단됐을 가능성이 크다.설악호 기술진들은 『크레인 철제로프가 장시간 장력을 받을 경우 끊어질 위험이 높다』며 『선체를 우선 바지선으로 옮겨 사체인양과 개펄제거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구조대가 많은 시간을 들여 옆으로 누운 선체를 바로세우고 물빼기작업을 강행한 것은 당초 바지선에 올려놓는다는 계획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또 인양후 예인을 위한 사전 준비가 너무 소홀했다. 선실물빼기에 동원된 모터펌프는 고작 2대에 불과,철제로프가 무리한 장력을 받기에 충분할만큼 작업이 더디게 진행됐다. 여기에다 총괄적인 지휘체계 없이 설악호 기술진과 구조대가 따로 작업을 하는 바람에 선체의 하중변화에 따른 대책과 선체내 작업 진행에 손발이 맞지 않았던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 불타는 단풍에 오욕을 태우고서(박갑천칼럼)

    꽃소식은 북상하는데 비해 단풍소식은 남하한다.그게 봄과 가을의 차이인가.지난여름의 저온현상으로 해서 여느해보다 일찍 시작된 단풍의 남행길이다.전국의 산과 들이 붉누런 때때옷을 걸쳐나간다. 『단풍은 연홍이요 황국은 순금이라/신도주 맛시 들고 금은어회 더 죠□라/아희야 거문고 □여라 자작자가 □리라』.요맘때의 정경을 읊은 노가재 김수장의 시조이다.자연에 묻혀 거기 동화하는 삶을 즐기는 가인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자작자가」아닌「대작대가」를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기도 하다. 가을의 단풍은 증자의 말(논어:태백편)을 떠올려보게 한다.그가 오랜병으로 누워있을 때 노나라의 세도가인 맹경자가 찾아오자 그에게 했던 말이다.『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착한말을 한다』(인지장사이 기언야선)고 한 그때의 말은 오늘에도 사람들 입입에 오르내린다. 그렇다.이윽고 땅위에질 이파리들이「착한말」과도 같이 들려주는「원색의 향연」이 단풍 아닌가.죽으려면서 펼쳐보이는 저녁노을의 화려함이다.얼마 남지않은 삶을 곱게 수놓는 자연에의귀의이다.그러기에 아름답다.고개 숙어진다.그 울긋불긋한 색상은 저 초나라의 지효노래자의 오색반란의를 연상해보게도 한다.나이 일흔에 어버이 기쁘게 해드릴양으로 입고서 어린애 재롱을 부렸다던 그옷 말이다.인생의 황혼이 때때옷 입고 어버이 기쁘게 했음은 자연의 황혼이 때때옷 입고 사람들 마음에 기쁨을 심는 것과 같다.인생위에 엮어지는 제상이 실상 그렇게 우습고 허무한 것 아니던가. 고려조의 문신 문진공 이장용의시「단풍」(홍수)에서도 그걸 느낀다.­『한이파리 바스락지는 밤소리(야성)에 깜짝놀라/천산의 숲들 문득 서리내린 갠아침에 상기됐네/가엾어라 푸른산기운 비춰 깨뜨림이여/알지못했네 흰머리카락 재촉할줄을/거친뜰 바라보는 가을회포는 씁쓸한데/먼산에 부딪쳐 타는 눈부신 석양이여/기억도 새로워라 지난해 바로오늘/그병풍 그림속을 거닐던 연연(외몽골에 있는 산이름)길이』(원문생략:손종섭역).나라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을 산「해동현인」의 착잡했던 심경이 단풍과 인생에 엇짜여 드러난다. 오늘내일 단풍구경 떠나는 이들이적지않을 것이다.아름다운 자연의 선물을 아름답게 감상할줄도 알아야겠다.마음속 오욕일랑 불타는 단풍에 태우고서 돌아올 일이다.
  • 당국만 탓하고 끝나선 안된다(김호준 정치평론)

    2백여명의 고귀한 인명을 앗아간 위도 여객선침몰사건은 우선 교통부장관과 해운항만청장 등에 대한 문책으로 정치적·행정적 수습책을 찾을 모양이다.불과 몇달사이에 육·해·공에서 고루 대형참사가 일어났으니 주무부서로선 그 책임을 모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더구나 새정부 출범후 대형사고가 났을 때마다 국민생명을 중시하는 행정과 안전조치의 철저 점검을 당부했던 대통령으로선 사건의 재발을 막고 행정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서도 마땅히 관계기관의 책임 소재를 가려 응분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지금 시중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말해 어수선하다.다음번 대형사고는 땅속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근거없는 풍문이 나도는가 하면 올해는 역술적으로 볼때 나라의 운세가 험난한 해이기 때문에 대형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는 미신 같은 풍설도 들린다.새정부 출범후 개혁과 사정의 지속으로 사회불안이 진정될 틈이 없었던데다가 냉해와 대형사고가 잇따랐으니 민심이 흔들리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더욱 허무맹랑한 풍설들이 나도는 것같다. 민심이 흔들리고있다면 수습하고 안정시켜야 한다.물론 그런 일도 이젠 문민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인식과 발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민심수습을 위해 필요하다면 각료의 인책이나 개각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문제해결의 시작이어야지 전부가 되어선 안된다.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되풀이했던 적당주의론 아무것도 성취할수가 없다. 이젠 차원높고 진지한 진단을 통해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야 한다. 작금의 잇단 대형사고의 근본원인은 규정무시,적당주의,무질서,부패구조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총체적 후진성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그런 근본적인 틀과 의식구조가 바뀌지 않는한 장관을 몇백명 갈아치우더라도 대형사고는 얼마든지 재발할수 있다.뿌리는 그대로 두고 가지만 치는 식의 적당주의는 문제점만 누적시킬 뿐 근원적인 치유책이 될수 없다. 그동안 우리는 정부나 당국,그리고 권력만 잘하면 만사가 다 잘되는 것으로 여겨왔다.또 책임은 모두 정부나 정치,권력 탓으로 돌리는 고정관념속에 살아왔다.물론 큰「인재」의 경우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이 합리적인 정책수단의 결여라든가 잘못된 정치에 기인하고 있다는 걸 부인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외의 부분,즉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이라든가 국민들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책임에 눈을 감는 것도 정도는 아니다. 이번 여객선 침몰사고에서도 우리는 행정당국의 많은 문제점을 발견한다.여객선의 안전운항을 감독해야 할 행정체계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을 뿐더러 사고발생시 긴급구난체제도 허술하기 짝이 없음이 드러났다.배의 정원도 멋대로 늘려주고 적자 항로에 대한 보조금도 제때에 지급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그렇다고 민쪽에서 반성해야 할 문제가 없는게 아니다.무엇보다도 먼저 머리에 떠올릴수 있는 건 서해훼리호가 무리한 출항을 하지 않았다면 이번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점이다.또한 정원을 지키고 과적하지 않았다면 참사피해도 지금보다 훨씬 작았을 것이다. 서해훼리호가 악천후에 무리한 출항을 감행한 이유도 따져보아야 한다.한푼이라도 더 벌어야한다는 승무원들의 강박관념과 월요일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공무원·군인·경찰관들의 성화가 그 배를 죽음의 격랑으로 밀어넣었는지 모른다.인명과 안전을 중시하고 법과 수칙을 존중하는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렸다면 상황은 크게 달랐을 것이란 얘기다. 만일 위도가 미국이나 일본,프랑스에 속해있었다면 이런 무모한 사고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관은 관대로 감독기능을 다하고 민은 민대로 안전수칙을 준수함으로써 악천후속의 무모한 출항이라든가 갑판장의 미숙한 조타,불법적인 정원초과등이 애초부터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올해 바다에서 우리와 같은 대형참사사고가 난 나라는 방글라데시·필리핀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이땅에 근대화의 기치가 오른지 30년이 넘었는데도 우리가 여전히 후진국형 사고로 시달리고 있다는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고후 유족들이 보이고 있는 행태도 선진국형은 아니다.졸지에 가장이나 자녀를 잃은 그들의 충격과 슬픔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사고수습에 나선 도지사와 군관계자들에게 손찌검을 하고 현지의 국정감사장을 한때나마 난장판으로 만든 처사는유감이 아닐 수 없다.1등국민이 되자면 분노와 슬픔도 절제할줄 알아야 한다. 지금 시대적 과제는 경제성장·정치발전에서 국민의식과 제도의 선진화로 초점이 옮겨졌다.총체적 선진화만이 이 치열한 국제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관도 민도 모두 달라져야 한다.민은 아무런 혁신노력도 하지 않은채 관만 탓하고 행정만능주의에 의존하려는 풍조는 바뀌어야 한다. 윗물맑기운동에 이어 자율적인 국민의식개혁운동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를 다시한번 음미할때가 아닌가 싶다.
  • 시민의식 실종과 쓰레기(사설)

    준플레이오프 3차전이 열린 5일의 잠실구장은 라이벌인 LG와 OB의 숙명적인 대결로 흥분의 도가니를 이루었다.두팀의 연고지가 모두 서울인데다 준플레이오프 전적도 1승1패여서 최종일인 이날 경기에 대한 야구팬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청명하고 드높은 가을하늘아래 펼쳐지는 백구의 향연은 또 얼마나 가슴 설레게 하는 일인가.그러나 밤 9시가 지나서 끝난 야구장 관중석은 그야말로 거대한 쓰레기 집하장이었다.빈 깡통·도시락 용기·음식찌꺼기·종이컵·비닐봉지·담배꽁초 등 온갖 쓰레기가 통로마다 가득히 널려 있는 걸 볼 수 있었다.시민의식의 완전실종을 보여주는 삭막하고 눈살 찌푸려지는 현장이었다. 이날 입장객 3만1천여명이 버린 쓰레기는 50여t,8t 트럭 6대분이 넘는다.65명의 청소원들이 새벽5시까지 7시간동안이나 치워야 했다고 한다.이것이 우리 국민들의 시민의식인가.그리고 공중도덕에 관한 자화상인가 싶어 부끄러움이 앞선다. 잠실구장내에는 1백50개의 쓰레기통이 비치되어 있다.또 2년전에는 입장객에게 쓰레기 수거용 비닐봉지를나누어 준적도 있었으나 아무런 효과를 보지못해 지금은 폐지하고 있다는게 관리사무실측 설명이다.프로야구가 창설된지 올해로 12년째,그러나 경기장의 쓰레기 공해는 조금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지난 추석연휴때 고속도로변이나 국도변에 무작정 버려졌던 쓰레기더미를 보면서 우리는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탄식을 마지 않았다.김영삼대통령이 어제 제창한 쓰레기수거등 「국토대청결운동」도 사라진 시민의식의 복원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는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을 훌륭하게 치러낸 경험을 가지고 있다.그 당시 국민들은 경기장에서 질서를 지키며 수준높은관전태도 로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크게 기여했었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겠다는 국민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서울올림픽에서 보여준 국민의 선진의식은 그뒤 불행하게도 우리 생활속에 침윤·계승되지 못한채 증발하고 말았다. 일본은 64년 도쿄올림픽을 치르고 난뒤 국민의 질서와 공중의식이 확연히 높아졌다고 한다.질서와 공중도덕이란 점에서 우리는 올림픽을 통해 얻은 것을 허무하게 잃어버린 셈이다.응원하는 팀이 지고 있다 해서 응원도구나 심지어 소주병까지 그라운드에 내던지는 관전태도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관전에도 절도와 세련된 매너가 필요한 법이다.경기장의 넘치는 쓰레기­그것은 서울올림픽 정신의 재현으로 충분히 해결될것이다.
  • 올림픽으로 심화되는 미­중 불화/2000년대회 시드니 결정 파장

    ◎“미서 천안문·인권 악선전” 비난/“차기에…” 만만디속 분풀이 관심 중국은 2000년 북경올림픽 유치 실패로 상처받은 국가적인 자존심을 어떻게 치유해갈 것인가. 이곳 신문과 방송들은 풀이 죽은채 45대43으로 아슬아슬하게 시드니에 패배했다는 사실만 간단히 보도할 뿐 패인분석이나 누굴 탓하는 기사는 아직 취급하지 않고 있다.이는 정부 당국에서 올림픽 유치가 불발로 그친다 해도 북경올림픽신청위를 공격하지 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책임을 돌려서도 안되며,당선된 도시를 비판해서도 안된다는 보도지침을 미리 전국 주요 보도매체에 하달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중국정부가 쏟아온 온갖 정성이나 12억 주민을 올림픽 유치작전에 총동원해온 사정들을 감안하면 그대로 넘어갈수 있을지 의문이다.24일 새벽 사마란치 IOC위원장의 『승자는… 시드니』 발표를 위성중계를 통해 지켜보다 허무와 좌절감에 못이겨 밤새도록 딱총을 허공으로 쏘아올린 시민들의 상처받은 마음들을 달래줘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냉정을 되찾고 평상으로 돌아와 패인을 분석하고 보면 가장 원망해야할 대상이 미국인 것만은 분명히 떠오를 것이다.잔칫상에 계속 재를 뿌려온게 미국이기 때문이다.미국은 지난7월 의회에서 『천안문 유혈진압의 피비린내가 아직 가시지 않은 도시에서 지구촌의 축제를 열수 없다』는 이유로 북경올림픽유치 반대결의안을 통과시켰다.그런가 하면 유럽공동체 의회가 비슷한 결의안을 통과시키는데도 영향력을 행사한데다 사사건건 인권문제를 들고 나와 중국을 야만인 취급하고,심지어는 투표 불과 며칠을 앞두고는 『중국이 곧 핵실험을 할 것 같다』고 주장,평화의 제전인 올림픽 행사에 핵을 연계시키는 악선전을 펼쳐왔었다. 이에 대해 미국내에서도 너무 지나쳤다는식의 반성과 함께 중국에서 불어올 역풍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좋지 않은 미중관계가 더욱 불편해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악선전에 관한한 영국도 한 통속이었다고 중국인들은 보고 있다.허드영외무장관이 『중국은 올림픽을 치를 자격이 없다』고 비난한 것은 아무리맨체스터를 후보지로 내세워 서로 경쟁하는 사이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었다.인민일보등 중국신문들이 24일 아침 일제히 지난 82년 등소평이 대처영국총리에게 밝힌 「홍콩문제 기본입장」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것은 영국에 뭔가 분풀이를 하겠다는 신호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북경올림픽 유치를 지지해온 홍콩 한국등 동아시아지역에서도 북경의 패배를 서운해 하며 미국의 행위를 곱지않은 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특히 북경의 올림픽 특수를 잔뜩 기대하고 있었던 업계에서는 수많은 건설사업등 많은 프로젝트가 취소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중국관리들은 이번에 실패하면 2004년도 있지 않느냐며 중국인 특유의 여유를 보여 왔으나 남을 탓하지 않은채 앞으로 4년간을 꾹 참고 지낼 것인지 아니면 미국이나 영국을 향해 분풀이를 하게 될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 민원 1만2천여건 접수… 94% 해결

    ◎감사원 민원신고센터 운영 6개월 결산/공직부조리 25%,인허가·도시계획순/업무처리 잘못한 공직자 360명 문책 지방도시의 사무관인 김모씨는 지난해말 부동산업자를 상대로 국유지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소송을 담당,어렵게 국가승소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상대업자가 패소한데 앙심을 품고 김씨를 뇌물수수혐의로 고소하는등 모함을 해 사직당국의 조사를 받게됐다. 조사결과 김씨는 아무런 혐의가 없는 사실이 밝혀졌으나 시에서는 공무원의 품위가 손상됐다는 이유로 사직을 종용했다. 김씨가 고민하는 것을 보다못한 부인이 감사원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감사원이 조사한 결과 김씨는 결백했다.그런데도 시가 자체사정활동을 하면서 건수를 올리기 위해 김씨가 물의를 야기했다며 사직서를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감사원은 사직서를 반려하고 공무원법에 의한 신분보장을 철저히 하도록 시장에게 통보했다. 감사원은 이회창원장이 부임한 뒤 지난 3월15일 민원업무를 전담처리할 민원과를 신설했다. 또 광화문의 한국전기통신공사 사옥 1층에민원신고센터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지난 6개월동안 감사원민원실에 접수된 각종민원은 모두 1만2천6백93건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배가 늘어난 수치다. 접수된 민원 가운데 단순문의등을 제외하고 시정등 조치를 취해야할 9천3백89건중 공직자부조리와 관련된 것이 25%인 2천3백5건으로 가장 많았다. 또 인허가 관련사항이 19%인 1천8백22건,구획정리및 도시계획분야가 12%,학원사무와 조세및 국유재산관련이 각각 5%,노사복지와 금융계약이 각각 3%등이었다. 공직자부조리 가운데는 검찰과 경찰의 편파수사가 27%인 6백29건으로 가장 많은 원성을 샀으며 수뢰 11%,직무태만과 월권행위가 각각 9%,공직자 품위손상이 6%등이었다. 이를 기관별로 보면 국가기관 가운데는 검찰청이 6백25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경찰청이 4백70건,건설부가 2백36건,국세청이 2백14건등의 순서였다. 자치단체 가운데는 서울시가 1천4백4건으로 단연 1위를 차지했으며 경기도가 5백5건,경남이 2백34건,부산이 1백45건등이었다 또 각 지방교육청이 모두 1천7백24건의 민원을 야기,교육과 관련한 불만이 국민 사이에 누적 돼 있음을 엿보였다. 감사원은 접수된 민원의 65%를 해당기관에 이첩했으며 현지조사(10%)와 감사자료활용(8%),반려(3%)등을 통해 94%를 해결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 과정에서 위법부당하게 업무를 처리한 공직자 3백60명을 적발,문책하고 범죄혐의가 있는 민간인등 20명을 고발조치했다. 감사원은 또 잘못 징수했거나 보상한 1억7백여만원을 환급하고 탈세등 9억2천5백여만원을 추징,회수보전했다. 감사원은 그러나 무기명·가명으로 접수된 7백44건의 민원은 처리하지 않았다. 주소불명·익명·가명등으로 신고된 사항은 처리하지 않는것이 정부의 민원사무처리규정이기도 하지만 그 내용도 대부분 남을 모함하거나 허무맹랑한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 “「집단이기」 자제해야 선진국 도달”/김영삼대통령 국정연설 전문

    ◎정치개혁엔 자기희생 반드시 필요 존경하는 국회의장,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작년 10월13일 저는 9선의 국회의원으로서 마지막 연설을 마치고 제 정치역정의 애환이 배어 있는 이 국회의사당을 떠났습니다.오늘 저는 의회민주주의를 신봉해온 대통령으로서 여러분과 더불어 국정을 논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저는 그동안 성심을 다해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해 왔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하루하루가 고뇌의 나날이었습니다.중요한 결단을 할 때마다 무서운 책임감으로 더 할 수 없는 고독을 느껴야 했습니다.오직 이 나라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저는 온갖 형태의 권위주의적 규제와 제한을 풀었습니다.안기부와 기무사의 기구를 축소하고,정치사찰을 중지시켰습니다.문민시대에 걸맞게 군의 개혁을 단행했습니다.이제 군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국민의 신뢰받는 군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습니다.이렇게 저는 문민시대의 정치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대통령의 재산을 먼저 국민앞에 공개했습니다.그것이 공직자윤리법의 개정으로 이어져 공직자의 재산공개를 제도화하게 되었습니다.법에 따라 공직자의 재산공개가 이번에 최초로 이루어졌습니다.이제 공직자는 국민앞에 투명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입니다. 공직자의 재산공개는 우리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입니다.저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또 그렇게 실천하고 있습니다.이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참다운 권위와 강력한 지도력은 지도자의 솔선수범과 도덕성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저는 지도자의 도덕성이야말로 건강한 사회,건강한 나라의 밑바탕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저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헌정사의 정통성을 확립했습니다.상해 임시정부 요인 다섯 분의 유해를 봉환하여 국립묘지에 모셨습니다.조선총독부 건물과 그 관저를 철거키로 했습니다.5천년 민족문화의 정수를 보전,전시할 박물관을 새로 짓기로 했습니다. ○나라운명과 직결 새 정부가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4·19,5·18 그리고 6·10 민주항쟁의 연장선위에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그리하여 문화민족의 긍지와 자존심을 회복하고 있습니다.잃어버린 애국심을 되찾아 신한국 창조를 향한 열정으로 승화시켜 나가고 있습니다.선열들의 피가 우리에게 광복을 안겨주었다면,우리는 피와 눈물과 땀으로 제2의 광복,제2의 건국을 이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30년이상 쌓인 부정부패를 척결해 나가고 있습니다.권력으로 재산을 만들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뿌리뽑힐 때까지,그리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관행이 우리의 생활과 의식속에서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우리 자신에 대한 채찍질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것은 우리가 다함께 새로운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겪어야 할 아픔입니다. 저는 지난 8월12일 금융실명제를 실시토록 하는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표했습니다.금융실명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근절하고,깨끗한 사회,맑고 힘있는 사회로 가는데 절대로 필요한 제도입니다.금융실명제 없이는 건강한 민주주의도,활력이 넘치는 자본주의도 꽃피울 수가 없습니다.자유로운 시장경제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금융실명제야 말로 총체적 개혁의 중추요 핵심입니다.개혁중의 개혁입니다. 금융실명제 아래서만 성실한 기업,땀흘려 일한 사람들의 부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깨끗한 부와 땀흘려 모은 재산은 국민의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신성한 노동에 허무감을 안겨주는 놀고 먹는 풍조가 사라질 것입니다.성실하게 일하면,일한 만큼 보상받는 정직한 사회가 이루어질 것입니다.실명제는 나라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우리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도 실명제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합니다.저는 실명제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여러분께서 대통령 긴급명령을 동의해 주신 데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합니다.앞으로도 실명제 정착에 끝까지 협력해 주시기 바랍니다.국민 여러분께서도 다소의 불편이 따르더라도 실명제에 적극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우리 국민의 이익,국가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실명제에 대한 일부의 오해와 염려가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실명제의 진정한 목적은 실명제 문화의 정착에 있습니다.실명제는 미래지향적으로 운영될 것입니다.실명자금의 비밀은 반드시 보장될 것입니다. 국회의원 여러분, 이제까지 대통령의 책임아래 이루어진 변화와 개혁은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에 따른 것이었습니다.대통령으로서 역사와 국민앞에 떳떳하게 그리고 양심에 비추어 한점 부끄러움 없이 내린 결단이었습니다.그리고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저는 국회가 입법기관으로서 개혁의 역사적 소임을 다해 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국회 스스로 일련의 개혁적 입법을 통해,우리의 정치를 일신시켜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정치개혁은 깨끗한 선거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부정선거,타락선거가 발붙일 수 없도록 선거혁명을 이룩해야 합니다. 정당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자생력을 가져야 합니다.정치자금은 투명해야 합니다.이러한 정치개혁을 이룰 때,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이 국민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정치개혁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치지도자 여러분의 자기희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저는 국회의원 여러분이 부정과 타락이 없는 선거제도는 물론 대담한 정치개혁을 통해서 참다운 민주주의를 이 땅에 정착시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국민과 더불어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될것 저는 또한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제 문민시대가 열렸습니다.국력을 소진시키는 대결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정당은 창조와 정의를 위해 경쟁해야 합니다.우리 국민의 생명력과 우수성을 최대한 신장시키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분출하는 집단이기주의에 맞서 당당하게 안될 것은 안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우리는 과거를 청산하되,과거에 매달려서는 안됩니다.지난날의 갈등과 반목으로 세계와 미래를 향한 민족의 진운을 멈추게 해서는 안됩니다.우리는 이제 과거에 대해 화해하고 미래를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국회가 달라져야만 합니다.국회는 국가발전 전략을 수립하고,창조적인 토론을 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세계와 미래를 내다보는큰 정치를 해야만 합니다.저는 30년이상 계속된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대를 정치인으로 살아왔습니다.이제 저는 여와 야를 떠나 우리 공동체의 현실에 대해 함께 고뇌하는 정치,21세기 위대한 신한국의 창조를 향해 함께 달려가는 정치를 해나가자고 제안하는 바입니다.우리 함께 정치다운 정치,멋진 정치를 펴 나갑시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우리에게는 지금부터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안으로 우리사회의 인간화,민주화로 정의로운 화해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밖으로 우리의 활로를 세계와 미래로 넓혀 나가야 합니다.우리는 전진하면서 개혁하고 개혁하면서 전진해야 합니다.우리가 대전엑스포의 성공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앞으로 건설될 고속전철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세계속의 한국」의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영종도 신공항의 건설은 아시아 태평양시대의 중심으로 가는 민족웅비의 대역사입니다. 세계는 지금 냉전의 시대를 지나 경제전쟁,기술전쟁,정보전쟁의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우리는 이 경쟁을 이겨내야만 합니다.세계 문명의 중심 축에 우뚝서야 합니다.우리의 지나온 역정과 현실은,우리가 극복할 과제의 어려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 민족은 새로운 문명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습니다.우리에게는 민족의 독립과 나라의 민주화를 향해 달려온 도덕적 힘이 있습니다.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경제적인 저력이 있습니다.이 두가지 힘을 하나로 합해서 신한국을 창조해야 합니다. 신한국은 선진국의 위상과,도덕국가의 위상을 함께 갖는 조국입니다.부강한 민족국가의 틀과 새로운 문명이 결합된 사회입니다.우리는 자율과 창의의 신경제를 통해 반드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민족정기와 높은 문화로 도덕국가를 이 땅에 건설할 수 있습니다.전통문화와 첨단문명을 창조적으로 결합하여,새로운 문명의 모델을 이 땅에 이룩할 수 있습니다.한국은 분명 새로운 세계문명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시작된 변화와 개혁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미국 대통령을 비롯하여 세계의 정상들이 잇따라 한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며칠전에는 프랑스의 미테랑대통령이 다녀갔습니다.세계인들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개혁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습니다.이제 우리는 도덕적으로,떳떳하게 세계속에서 어깨를 겨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한국인으로 태어난데 대하여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한국은 유엔의 요청에 따라 소말리아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함으로써 세계평화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앞으로도,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더 적극적으로 세계평화와 인류의 안녕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우리 외교는 이러한 자신감에 따라 민주·자유·복지·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신외교로 전환하고 있습니다.우리 외교는 세계속의 한국으로,그리고 미래지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그러나 세계가 변하고 있는데,한반도만이 유일한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습니다.우리는 안보문제에 결코 방심할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평화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화해와 협력을 거쳐 남북연합 그리고 1민족 1국가로 가는 3단계 통일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민주적 절차,공존공영,민족복리라는 세가지 통일정책의 기조를 설정해 놓고 있습니다.북한의 핵 의혹이 해소된다면 우리는 남북사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우리는 이스라엘과 PLO사이의 숙명적 적대가 위대한 평화로 바뀌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왜 우리는 같은 민족으로서 무기를 버리고 화해하지 못하는지 실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저는 북한이 하루속히 민족의 공멸을 가져올 핵 의혹을 씻고,공존공영과 민족복리의 마당으로 나올 것을 촉구해 마지 않습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저는 경제를 살리는 일이 대통령이 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믿고 있습니다.우리는 신경제 5개년 계획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합니다.이를 위해 정부는 재정·금융·행정의 개혁과 더불어 성장잠재력을 강화할 것입니다.국제시장기반을 확충해 나갈 것입니다.성실한 기업이 마음놓고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 보장할 것입니다. ○북 핵의혹 씻어야 저는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말합니다.우리 모두 공동체 의식으로 먼저 경제를 살립시다.근로자가 살아야 기업이 살고,기업이 살아야 근로자가 살 수 있습니다.온 세계가 미래를 향해 뛰는데,우리만 내몫 찾기로 서로 다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내 몫만을 요구하는 집단이기주의야 말로 한국병중의 한국병입니다.이 한국병을 고치지 않고는 결코 선진국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노사분규를 비롯하여 내 몫만을 요구하는 집단이기주의를 자제해 줄 것을 호소합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우리나라는 좀 덜한 편이지만,세계적인 기상이변으로 농사가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냉해 때문에 노심초사하신 농민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우리는 냉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정신으로 농업의 국제경쟁에서 이겨내야 합니다.우리는 오늘의 고통분담으로,내일 꿈과 희망의 신한국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국민여러분,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인간을 필요로 합니다.우리 사회의 병폐를 고치기 위해서는 우리의 교육이 개혁되어야 합니다.인간교육,공동체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창의력을 키우는 교육,과학기술교육이 바로 그것입니다.앞으로 정부는 교육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저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말합니다.여러분은 오늘의 현실에 굳게 서서 세계와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이제 거리에서 학교로 돌아가 도서관의 불을 밝혀야 합니다.여러분이 공부해야만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여러분의 미래와 우리 민족의 미래가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변화와 개혁은 때로 고통스럽고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개혁정책에 기꺼이 협조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우리의 변화와 개혁은 체제의 안정과 강화를 위한 것입니다.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기정비의 과정입니다.제도개혁과 의식개혁으로 자기 정비를 향한 노력이 각계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기를 기대합니다.하루 속히 자기 정비의 기틀을 마련하고,국민과 더불어 이제부터는 오직 전진만을 선언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저는 이 땅에 선진국가,도덕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바랄 뿐입니다.저에게 꿈이 있고 소원이 있다면,오직 자랑스러운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 뿐 입니다. ○교육개혁에 박차 저는 임기 마지막 날까지,헌법에 명시된 대로,「국가를 보위하며,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시키고,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해야 하는」 대통령의 직무를 혼신의 힘을 다하여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조국에 대한 애정과 정열을 남김없이 바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이 나라를 일으켜 세웁시다.큰 이익을 위하여 작은 이익을 양보합시다.우리 모두 꿈과 희망을 가집시다.마침내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집시다.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민족입니다.더 멀리 더 크게 내다봅시다.21세기는 바로 6년 앞에 있습니다.앞으로 몇년이 우리 민족의 진운을 결정할 것입니다.힘을 합하여 세계로 미래로 나아갑시다.새 역사를 창조합시다. 1993년 9월21일 대통령 김영삼
  • “통화량증가 물가자극 없을것”/실명제실시단장 이항균 재무부1차관보

    ◎자금난 중기 돕게 4조5천억 방출/외국인 주식투자한도 내년초 확대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지 한달이 넘었다.금융권의 자금이탈이나 주가폭락,기업의 연쇄부도 등 당초 우려되던 부작용은 당초 우려에 비해 훨씬 적은 편이다.실명제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와 대책을 금융실명제 실시단장인 재무부 이환균제1차관보를 만나 알아봤다. ­추석과 실명전환마감일을 실명제정착의 고비라고들 하지요. ▲그렇습니다.그래서 추석을 앞두고 영세 및 중소기업에 4천억원 등 예년의 3조원보다 많은 4조5천억원의 통화를 풀 계획입니다.실명전환마감일인 10월12일이후 거액자금의 인출등 혼란을 우려하나 우리의 금융자산규모가 3백조원에 달하는데다 인출된 자금의 갈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반면 지나친 통화팽창을 우려하는 소리도 높습니다. ▲염려할 정도는 아닙니다.통화의 공급이 사금융의 위축과 현금보유증대 등에 따른 시중유동성의 부족을 메우는 데 그치기 때문에 물가에 그렇게 큰 주름은 주지 않을 것입니다.­10월 금융공황설이 끈질기게 나도는데요. ▲전혀 있을 수 없는 허무맹랑한 낭설입니다.인출된 돈이 갈데가 없는데다 부동산이나 실물로 흐를 경우 투기가 얼마나 괴로운지를 맛보도록 강력히 대응할 것입니다.금융시장교란을 목적으로 한 의도적 인출에 대해서도 단호한 대책을 세울 것입니다. ­음성자금을 산업자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무기명장기채나 조세감면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은데요. ▲그동안 많이 검토했습니다.그러나 실명제의 취지에 정면배치되고,실명거래자와의 형평과도 어긋나는 점 때문에 없던 일로 하기로 했습니다.대신 기존의 고수익상품에 대한 세제지원을 늘리고 신상품개발을 통해 지하자금을 금융권으로 흡수할 생각입니다. ­실명제로 2단계 금리자유화일정에 차질이 없을까요. ▲사채자금을 제도권으로 흡수하기 위해 가급적 빨리 단행하자는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10월12일이후 금융시장동향을 봐가며 연내 시행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금융거래자료가 과세자료로 이용될까봐 모두들 불안해 합니다.국세청 통보기간의 연장가능성이 있습니까. ▲절대 연장하지 않습니다.또 국세청에 통보되더라도 투기나 탈세와 무관한 정상적인 경제활동인 경우에는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준율을 낮추는 문제와 내년도 통화공급목표를 생각해보셨나요. ▲외국보다 높은 지준율 11.5%를 내리는 문제는 현재 검토중인데,내년초에나 가능합니다.2단계 금리자유화가 이뤄지면 통화량은 금리수준에 따라 결정되고 총통화(M₂)증가율은 보조지표에 그치기 때문에 목표치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집니다. ­채권 및 증시대책이 있습니까. ▲연내 만기가 돌아와 차환발행해야 하는 회사채 4조5천억원는 기관투자가들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습니다.증시대책으로 내년초 외국인의 주식투자한도를 현 10%보다 높일 계획입니다. ­증시상황을 고려할 때 금융기관의 연내 증자가 이뤄질 수 있을까요. ▲현재 여건에서는 어렵습니다.다만 상업은행등 일부기관의 소폭증자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 가을을 맞으며/김성옥 시인·서림화랑대표(굄돌)

    아침 저녁 살갗에 와 닿는 한 줄기 바람으로부터 가을은 온다.신선한 바람 한 점이 여름내 땀에 전 우리들의 일상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마음을 맑게 닦아준다. 그저 바쁘기만 하고 아니면 그저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뜻없이 보내기만 하던 나를 되돌아보는 가을이다.가을은 바람도 신선해지지만 그 속에서 내 인생의 신선함도 찾아야 한다.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듣고 내 마음의 깊은 곳에 있는 또 하나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드높은 푸른 하늘만 있을게 아니라 내 마음의 푸르름 또한 가꾸어야 한다. 가을엔 대자연의 법칙 속에 살고 있는 소우주인 「나」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그동안 잊고 있었던 진실된 「나」를 만나는 계절이다.육체적인 것,물질적인 것,보이는 것,일시적인 것에만 몰두해 왔지만 정신과 혼의 문제,영원한 것,소중한 것,보람있는 것,가치있는 것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가을이 되었으면 한다. 유한의 생,무의미의 가을 살고 있는 헛되고 허무한 우리의 나날을 풍요롭고 보람된,살아있는 생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영원한 것을 만나는 일이다.「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들지 않더라도 예술가들은 육체의 짧은 생을 예술작품을 통해 극복하고 그 정신과 혼을 후세에 남김으로써 영원히 살아있다.그들의 드높은 정신과 열정과 혼의 세계를 느낌으로써 우리의 정신도 높아지고 귀해지고 영원해진다.잠시 짬을 내면 찌들고 허무한 나날 속의 내가 아니라 참으로 소중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그저 살아있는 내가 아니라 뜨겁게 살아있는 나를 찾을 것이다. 카미유 클로델과 로댕의 조각들이 지금 서울 시내 한복판에 와 있다.동아갤러리에 가면 두 연인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호암갤러리의 샤갈전도 우리들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현대 중국화 4인전이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다.일요일 가족들과 함께 문화가 산책을 해보는 것도 이 가을을 맞는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 전 전대통령 대 국민 발표 전문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새정부 출범과 함께 국민 모두가 심기일전해서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계신 이때,제가 새삼 재임중의 일에 관해 번거롭게 말씀을 드리게 된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요즘 일기가 불순하여 농사마저 어려워져서 농민 뿐만아니라 많은 국민의 걱정이 더해가고 있는 터에,그동안 정부가 두번이나 바뀐 6∼7년전의 일이 또 다시 시비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대해 그저 민망할 따름입니다. 평화의 댐 건설은 제가 현직에 있을때 대통령으로서 정책판단을 하고 결정했던 일입니다. 평화의 댐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지난 수년간 국회의 본회의와 관련 상임위원회,특히 1988∼89년의 국회특별위원회 등에서 되풀이 다루어졌고 더러는 일부 정당차원에서의 조사도 있었던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평화의 댐 축조에 관계했던 공무원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필요한 자료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답변을 했던 것으로 알고있으며,저 자신도 1989년 12월의 국회증언에서 말슴드린바 있습니다. 그러나 근자에 이르러 정치권과 언론등에 의해 다시 평화의 댐에 관한 의혹들이 잇따라 제기되었고,저 스스로는 침묵으로 일관한 결과 많은 사실들이 왜곡인식되고 있으며,이것이 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우려도 없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안보와 관련된 문제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현상을 전직 대통령으로서 모른척 할 수 만은 없고,또 그것이 저와 관계된 사안인 만큼,이 기회에 평화의 댐 축조를 결정하게 된 경위와 배경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역사를 돌아볼때,조선왕조 선조임금때 일본에 갔던 통신사가 『일본이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고,율곡 이이선생이 10만양병을 제창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다 아는 일입니다. 그때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비록 국고가 다소 축이 나고 민생이 어려워졌을는지는 몰라도 왜적의 침입을 받아 수년간 전국토와 백성이 유린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파적 입장때문에 『침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잘못 보고한 통신부사의 말을 따른 결과 엄청난 국난을 자초한 셈이 된 것입니다. 만일 그때 10만의 군사를 길러 대비했으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침략을 당했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세의 우리들은 어떤 선택이 옳았다고 해야 하겠습니까. 영세중립국도 군대는 갖고 있고,수 백년간 전쟁을 모르고 살아온 나라들도 만일의 외침 가능성에는 철저히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1953년 휴전이래 북한의 전면남침이 없었다고 해서 40년동안 매년 국가예산의 3분의1을 방위비에 투입하여,북한의 전면전도발에 대비하도록 한 역대 대통령들의 정책판단이 단순히 「세금의 낭비」를 가져왔다고 비난할 수가 있겠습니까. 옛말에 『한나절 싸움에 이기기 위해 1천일에 걸쳐 군사를 기른다』(양병천일 용어일일)고 했는데,9백99일동안은 전투가 없었다고 해서 공연한 정성과 시간을 투입했다고 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국방문제는 본질상 그러한 측면이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북한이 금강산주변의 산악지대에 길을 닦고 도수터널 공사를 하는 등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정보를 국내외 관계기관으로부터 처음 입수한 것은 1986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어 같은해 4월에는 북한의 방송이 금강산 발전소계획을 확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뒤 저들이 댐 공사의 착수를 공식 발표한 10월까지 수개월동안 북한의 동향과 의도를 면밀히 주시,분석한 결과 금강산댐이 군사적 목적으로 만드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판단의 근거는 첫째 그들이 전력과 산업용수 확보를 위해 댐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화력발전소를 만들거나 다른 지역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경우와 비교해서 전력생산단위가 3∼4배 높다는 계산이 나온 것입니다. 다음으로 댐이 완공되면 그들 주장대로 산업용수 확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댐 건설로 인해 금강군등의 농경지가 수몰되어 22만t 정도의 미곡감산이 예상되는 바,이것은 채산성이 안맞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처럼 경제성도 채산성도 없는 댐을 만들기 위해 그 험준한 지역에 인민무력부 주도 아래 수만명의 군병력을 동원해서 난공사를 강행하는 뜻은 분명히 군사적 목적 때문이며,그것은 우리에게 곧 수공의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당시 북한은 10만 병력의 상호감축을 제의했는데,이것도 감축된 병력을 댐공사에 투입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했으며,실제 그들은 5만명을 초기공사에 투입했던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북한공산주의자들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집단인가 하는 사실과,또 그들이 우리에게 기상천외 하고 악랄한 도발과 위협을 얼마나 많이 되풀이 해 왔는가 하는 점은 전 세계가 다 아는 일입니다. 6·25는 물론 1·21사태,남침용땅굴,아웅산 암살 폭파사건,KAL기 폭파사건 등 전쟁광이나 할 수 있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 바로 저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수많은 전과가 있는 북한이 우리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인다면,그들의 숨겨진 의도가 무엇인가 따져보고 대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위에 열거한 사건 가운데 그 어느 것 하나도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하기는 커녕,모두가 우리의 자작극이라고 덮어 씌워왔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북한이 서둘러 착공한 금강산댐이 인위적으로 폭파되거나 사고로 무너질 경우 한강수계에 큰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그들의 선의를 믿고 팔짱을 끼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설혹 「수공의도가 전혀 없다」는 그들의 말을 믿어 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이 1백% 확실한 것이 아니고,다만 1%의 의심이라도 남는다면,그리고 그 1%가 우리의 생존권에 위협이 된다면 국가안보를 책임진 대통령으로서는 대응책을 찾아 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그 시기는 북한공산집단이 방송등 그들의 선전매체를 통해 『서울올림픽을 결코 수수방관하지 않겠다』고 되풀이 위협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의 고위당국자들이 「금강산댐을 만들어서 비상시에 문을 열어 놓으면 서울 시내에서 물에 잠기지 않는 아파트는 하나도 없다」「남조선 것들이 올림픽한다고 우쭐대지만 금강산댐만 만들어 놓는 날에는 서울이 물바다가 될것」이라고 공언했다는 사실을 귀순한 북한관리들이 증언한 바 있습니다. 10여일 전에 귀순했다는 북한군 장교도 엊그제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이 인민무력부에 대해 인민군의 전투 준비완성에 큰 몫을 할 금강산댐의 건설을 지시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들이 귀순한 것은 제가 이미 퇴임하고 서울올림픽이 끝난 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정권안보를 위해 금강산댐의 수공가능성을 조작했다」고 비난 받는 저를 변명해주기 위해 없는 말을 만들어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오늘에 와서는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우리가 얻을 수 있었던 여러 이점들을 지난 몇년간 헛되이 흘려 보냈다는 반성이 있지만,어쨌든 서울올림픽이 우리의 국가발전과정에서 선진국 도약의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저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서울올림픽을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당시 우리의 시대적 과제요 국민적 합의였습니다. 아시아 경기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1986년에서 올림픽 때까지의 그 엄청났던 민족적 열의와 고조된분위기가 너무도 허무하게 사그라져 버린 오늘의 시점에서는 실감하기 어렵지만,그때 우리는 올림픽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였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를 연달아 반쪽 올림픽으로 치른 국제올림픽 관계자들도 혹시나 서울올림픽마저 북한의 방해때문에 실패하지 않을까 크게 걱정하고 불안해 했습니다.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소련을 비롯한 동구가 붕괴된 오늘의 상황에서도 북한의 호전적이고 경직된 자세는 변함이 없지만,1986∼87년 당시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승천하는 용」이라는 찬사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던 우리와의 체제경쟁에서 결정적 열세에 몰린 나머지 극도의 초조감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국운이 뻗어 오르던 그 소중한 시기에,만에 하나라도 북한의 침략기도를 사전에 봉쇄하지 못해서 전쟁이 일어날까봐 애를 태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가안보를 확고히 해야 할 대통령으로서 최악의 상황,있을 수 있는 모든 위협의 가능성까지 철저히 점검해야 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정부가금강산댐에 관해 처음 발표할때 2백억t이라고 한 것은 정보입수 초기에 댐건설 현장으로 추정되는 위치의 지형자료등을 토대로 계측한 그 지역의 용적의 최대치라고 이해했으며,나중에 외국전문기관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와도 일치한 것으로 보고 받았습니다. 북한이 겉으로 내세우는 건설목적과 규모야 어쨌든 일방적 댐건설이 공유하천이용에 관한 국제관례에도 어긋나는 일인 만큼 정부로서는 공사를 중단하라고 여러차례 촉구하였습니다. 금강산댐이 그들 주장대로 전력과 산업용수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우리 쪽에서 전력을 공급하는등 충분한 보상을 해 주겠다는 대안도 제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우방 여러나라는 물론 국제연합과 세계 대댐 학회등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의 일방적이고 무모한 댐건설을 중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이러한 모든 제의를 묵살한 채 공사를 강행하였습니다.그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전쟁을 각오하고 금강산댐 공사현장을 폭격할수는 없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불가피하게 정부는 대응댐의 축조를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측이 공사에 관한 사항을 극비에 부치고 있어서 그 시점에서는 댐의 정확한 위치나 규모등을 모두 추정밖에 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따라서 우리측도 대응댐에 관해 실무자사이에 여러가지 다른 의견들이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대응댐 공사를 2단계로 나누어 추진하자는 데는 쉽게 합의를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1단계로는 우선 북한이 3억t 정도 가물막이 공사를 끝냈을때의 위력에 대비하는 규모로 댐을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1984년 홍수때의 수량 9.4억t과 북한의 가물막이댐 3억t을 합쳐 12.4억t 정도의 수량이 될 것인바,이에 대응하는데에는 평화의 댐 5.9억t과 화천댐등 기존댐의 수위조절 저수량 7억t을 합친 12.9억t으로서 최소한의 응급책은 된다고 계산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2단계공사는 금강산댐의 최종적인 규모를 확인해가면서 그들의 공사 진도에 맞추어 추가하여 순차적으로 추진할계획이었던 것입니다. 현재 1단계 공사가 끝난 상태로 있는 평화의 댐이 물을 담고있지 않은 모습으로 있어서,일부에서는 「막대한 국민성금을 삼긴채 쓸모없이 서 있는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이라고 비판적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만,덩그렇게 그런 모습으로 서 있는것 자체가 평화의 댐의 본래의 「쓸모」인 것입니다. 발전을 하거나 산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댐이 아니라 유사시 북으로부터의 수공을 막는 일종의 「방벽」의 성격이 그 1차적 기능인 만큼 일반적인 댐의 모습과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최근 대전 엑스포 현장에서도 몇시간의 호우로 인해 적잖은 지장을 초래했었고,서울의 한강변은 몇년에 한번씩 홍수가 져 큰 물난리를 겪는것이 우리 실정인 것입니다. 1984년 홍수때에는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소양댐이 범람하고 파괴되더라도 수문을 열지않고 버텨야 하느냐,아니면 서울이 물바다가 되더라도 수문을 열어야 하느냐하는 심각한 기로에 섰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서는 2백억t이 아니라 수억t만 더 쏟아져내려와도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금강산댐으로부터 2백억t의 물이 쏟아져 내려오거나 70억t의 물이 쏟아져 내려오거나 서울이 마비될 정도의 피해를 입게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1단계 공사를 조기에 착공한 것은 북한이 초기에는 5만 병력을 투입했으나 1986년 가을에는 15만명의 투입을 결정하는등 공사를 급히 서두르는 징후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이러한 동향은 단기적 군사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았고 그것은 곧 서울 올림픽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하는 우려를 갖게 한 것입니다. 당국의 분석으로는 3억t 정도의 저수량인 가물막이 댐은 북한이 5개월 안에 만들수 있다는 계산이었고 따라서 정부로서는 올림픽이 열리는 1988년 우기이전에 최소한 10억t 안팎의 수공만이라도 막을 수 있는 5.9억t 규모의 1단계 댐을 조기착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일부 잘못 알려져 있듯이 공사를 하다가 흐지부지 중단된 것이 아니고,예정했던 1단계 공사는 당초 계획대로 1988년 6월에 완공된 것이며,현재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북한쪽의 공사진도에 따라서는 2단계 공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계획이 서 있는 것입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화천댐등 우리의 기존댐만으로도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평화의 댐은 불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으나,그것은 비현실적인 얘기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다시 말하면 북한의 수공에 대비해서 우리의 댐들을 모두 비워놓고 있어야 하는데,그로인한 경제적 손실은 평화의 댐을 만드는 비용보다 더 많을 뿐 아니라 화천댐은 수공을 받으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지질학적 분석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제가 듣기로는 지난해에만 해도 김일성과 김정일이 금강산댐에 관한 교시를 발표하고 건설사령관인 인민무력부장에게 군병력의 집중투입을 지시하는등 직접 공사를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금강산댐과 수공위협의 가능성은 분명히 실체가 있는 것입니다. 평화의 댐이 지금은 우리의 시급한 관심사가 아니라고 해서,또 평화의 댐을 건설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지금에 와서는 실감할 수 없다고 해서 그때의 일들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속에 지난 일을 오늘의 상황과 기준에 서서 따질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단임의 실현으로 우리 헌정사상 초유의 평화적 정부이양을 이룩하는 것이 저에게 부하된 최대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신념을 시종일관에서 지켜왔고 또 실천하였습니다. 평화의 댐 건설을 착공할 당시 저로서는 잔여 임기를 불과 1년 남짓 앞둔 시기였습니다. 당시의 시국이 다소 어려웠다고 하더라도,있지도 않은 북한의 위협을 날조해가면서까지 1년 남은 정권을 유지해야 할 만큼 그렇게 허약하고 부도덕한 정부는 아니었다고 저는 믿고 있고 또 주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6·25때 「맥아더」원수가 막료들이 모두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천상륙작전을 결행해서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킨 일도 있듯이,최고결정권자는 국가의 이익과 백년대계등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야하기 때문에 부분적 진실에만 집착하기 쉬운 특정기관이나 특정인의 판단에 구애받아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의 댐과 관련한 사항도,모든 정보보고와 판단자료를 제가 검토하고 심사숙고해서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지시한 것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합니다. 끝으로 한가지 간절히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1988년과 1989년 국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기회에도 호소한 바 있습니다만,지난 날의 허물과 잘못은 모두 저에게 물어 주시고,이제는 밖의 세계로 눈을 돌리고 미래를 지향하면서,보다 살기 좋고 훌륭한 나라를 만드는데 매진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비록 재임중 과오도 많았고 부덕하고 불민한 이 사람이지만 그 점만은 국민 여러분께서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경제성도 없는 금강산댐을 빨리 만들라고 오늘도 인민무력부장을 다그치고 있는 김일성 부자가 그 대응댐을 만든 전직 대통령의 「저의」를 거듭거듭 따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안타깝고 답답해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덧붙여거듭 강조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제가 재임중에 정부와 공직자가 한 모든 일은 그것이 어떤 경로로 입안되어 어떻게 실행되었든,그것은 최종보고받고 결정하고 지시한 것은 대통령이었던 저였습니다. 따라서 그 책임은 비록 퇴임한 후인 지금에 와서도 모두 저에게 귀착된다는 사실입니다. 일부 실무자나 전문가들의 보고,건의와는 다른 내용의 결정을 내린 경우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전두환씨 감사원 회신(전문) 1,본인은 1993년 8월16일자 귀원의 「평화의 댐 감사관련 질문서를」를 받고 본인이 취할 수 있는 합당한 대응방법에 대하여 원로들과도 의견을 교환한 바 있습니다.그런데 법률적 문제에 대하여 조언을 해준 분들은 대통령 소속하에 있는 감사원이 대통령의 정책결정의 배경·경위와 타당성에 대하여 직무감찰을 하는 것은 헌법 제97조와 감사원법 제24조의 규정내용에 비추어 볼때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밝혀 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헌정사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스럽지 못한 선례가 된다는 점을 우려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귀하도주지하고 계시겠지만 대통령의 국법상의 행위는 문서로써 행하여 지는 것이 원칙이며 평화의 댐에 관련된 정책결정 역시 관련 부처에서 작성된 문서로써 행하여 졌습니다. 따라서 귀원의 감찰활동상 필요한 자료와 사실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보관중인 관련문서를 통하여 확인하는 것이 순리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평화의 댐과 관련한 문제에 대하여는 지난 수년간 국회차원에서도 다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자에 이르러 또다시 세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칫 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한 불신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본인은 대통령으로서 평화의 댐 축조를 결정한 배경과 경위에 대하여 모든 국민에게 아는대로 설명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별첨한 「평화의 댐에 관하여」는 이러한 목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한국화가 송수남씨(이세기의 인물탐구:34)

    ◎화폭에 시정 가득… “시인같은 화가”/수묵현대판화 개척… 「남천산수」는 독보적 경지/유연하면서도 예리한 운필로 화력 30년 빛내/가장 한국적인 소재에 집착… “동서양 넘나드는 화격” 꿈꿔 남천은 시인같은 화가다.그는 그림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그의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다.먼산 먼강 안개 서린 먼동,잔잔한 금강이며 섬진강 얼어붙은 겨울산하까지도 그의 그림속에는 교교한 시정이 담겨있다.공간에 뜬 몇개의 산이 담묵 농묵으로 꿈결같은 원근을 이루거나 또는 보석처럼 빛나는 수묵채색일 때도 아름다운 여백을 살려 화면전체에 서정시가 흐르는 듯한 향수를 품고 있다. 그가 쓰는 먹은 모든 색의 출발이자 모든 색깔을 포함한 색채다.어둠이 흩뿌리는 혼묵,비내리는 잿빛하늘의 회묵일지라도 단순한 검은색인가 하면 전혀 검은 색깔이 아닌 현묘 심묘의 먹색일색이다.그는 눈부시게 하얀 백지위에서 먹으로 백색을 백답게 살리고 먹색을 가장 먹답게 표현할 줄 아는 화가다. 색깔과 색깔을 배합해서 얻어지는 효과와는 달리 물과 먹의 비율은그 농도를 계산할 수는 없으나 모필이 한지에 닿는 순간의 유연성과 날카롭고 경쾌한 선조,그 번짐이 내는 의외의 조형에 흠뻑 빠져든듯 그는 지난 수년간 수묵을 매재로 하는 긴 실험과 모색의 시기를 거쳐왔다. 그리고 수묵추상 발색산수 동양화판화에서 다시 발묵산수로 이어지는 그의 수묵작업은 이제 포만과 방출의 단계를 통과하여 그만의 독자적인 「남천산수」를 이루고 있음을 인정받고 있다. ○충격던진 첫 개인전 그의 이런 실험정신은 그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할 때도 일관되게 지켜지던 그만의 방법이다. 이대입구 신촌 하숙집 골방에 틀어앉아 낙엽이란 낙엽은 모조리 주워다가 수북하게 쌓아놓고는 이를 화면에 이리저리 꼬아 붙이는 나뭇잎 콜라주,켄트지에 유화 한지에 수채화등 그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를 스스로 모색하고 타진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때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고향의 뒷동산」과 「강언덕 버들개지 꽃샘바람에 한바탕 춤추고 나면 온산은 진달래가 물들어」샤갈과 드가를 변주한 듯한 영롱한 색채는 그가 범상치않은 화가로 탄생될 것을 그의 주변에 일찍이 예감시켰다. 화력 30년의 화가로서나 대학교수로서나 그는 이제 중진의 위치다. 그러나 스승의 문하에서 스승의 화풍을 이어받은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혼자서 자신의 세계를 암중모색으로 성취한 편에 속한다.이에대해 그 자신도 「누구에게 배운 적도 영향을 받은 바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초기 「한국화」전이란 타이틀로 그가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는 한지와 먹,탑이나 기와지붕등 동양화재료와 한국적 테마를 택하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의 동양화에서의 설채와 운필을 벗어나 서양추상화를 보는듯한 충격을 던졌다. 원로미술평론가 이경성씨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은 송수남 한국화는 새로운 공간예술을 실천한 예로서 70년대 화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로 우뚝 설것임』을 다짐했었다. 70년대후반 실경산수가 한창 붐 일때도 그의 산은 진채표현의 중량감을 과시하여 적묵산수의 특징을 강조했고 담백한 여운을 느끼게 하는 수묵과는 달리 강렬한 발색산수에서 중성적 느낌을 안겨주는 다채로운 채색과분방한 화풍을 구사해 보였다. 야트막한 구릉과 하천을 부드러운 선과 극도로 절제된 간결한 구성으로 암시하는가 하면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거대한 산봉은 휘염의 범람인듯 화면을 압도하기도 한다. 그곳에는 시의 빛과도 같은 섬세한 장식이 둥우리를 틀고 우뚝한 삼각형,묵취와 묵광,산정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빨갛고 동그랗고 자그마한 해만으로 먹구름같은 화면에 눈시린 청량감을 뿌렸다. ○동양화서 추상 시도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양화가로서는 드물게 「산」을 주제로한 판화를 제작,목판·석판·실크스크린·모노타입등 4종류를 찍어 수묵화의 수묵현대판화로서의 새로운 화경을 열었고 88년 「자연과 도시」전도 빼놓을수 없는 탁발한 전시로 손꼽힌다. 굵거나 묽은 선으로써 시작과 끝을 흐려뜨리면서 드로잉적인 필선과 발묵의 번짐으로 독특한 도시의 서정을 구현,울창한 잡목숲과도 같은 어지러운 도시의 여러 풍경을 특징적으로 묘사해 냈다. 도시나 산하외에 그가 즐겨 그리는 미루나무는 먹으로 화면을 가득채운 동양화의 현대추상을 시도한 선시리즈와 고향으로 가는듯한 휴식을 살린 첨단과 향수의 두면을 대비적으로 선보여주고 있다. 붓끝에 힘을 주어 사군자를 치는듯한 한계를 자유하여 그는 이제 모필만이 갖는 유연성으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그만의 화격을 이루는것이 꿈이다. 남천으로서는 어느구석에도 그 겉모습에선 화가의 티는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그런 「티」는 그에게는 지난 시절의 치기일지도 모른다.문학과 철학에 빠져 세상을 온통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니힐리스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이른바 가난이면 가난, 슬픔이면 슬픔, 외로움이면 외로움이었던 회오리가 한바탕 지난후 거추장스러운 껍질을 훨훨 벗고 「평범」과 「무심」을 과장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굵은테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 그런거지 세상이란 그런거지」털털 웃으면서 술잔을 기울이는 그를 바라보노라면 지난 날이 흔적없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수류운공이 떠오른다. ○단체활동 개입 안해 그러나 그는 여전히 어눌하고 치밀하지 못하여 지난 90년 한 신문사가 주는 예술대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상을 제정해주신 신문사에 감사한다」는 인사말을 여러차례 연습까지 해놓고는 막상 단상에 올라 다른 신문사 이름을 들먹이며 중언부언하는 바람에 관계자와 좌중을 난처하게 했었다. 또 두주불사로 학생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사심없이 놀다가도 갑자기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한국적이란 무엇일까.중국하면 도가 떠오르고 인도하면 명상이 떠오르듯이 「한국」하면 뭐가 먼저 생각나지?』심각하게 추궁하여 주위를 당혹케하기 일쑤다.이런 한국적인데 대한 집착은 75년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박물관 초대전이후 수십차례의 세계미술전에 참가하면서 생긴 징후다. 그는 전북 전주에서 농가 송대석씨의 3남매중 외아들.조부가 쓰던 먹과 벼루가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 일찍이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그의 소원은 언제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을 성취하는 일이었다.소원대로 지금은 서교동 그의 집에 마련된 80여평의 드넓은 화실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바로 이를 이루기 위해 그는 끝없이 노력해왔다고 할 수 있다.가족은 부인 백명희교수(이대사대학장·54)와 1남2녀.그림을 그리는 자녀는 없다. 화가친구보다는 옛날 신촌하숙방에서 함께 뒹굴던 소설가 이제하 시인 강위석 등과 즐겨 어울리고 80년대 수묵화운동을 함께 했던 후배 제자들이 있지만 화단에서의 단체활동등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 화가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남천을 소탈하고 소박하다고 말한다.대체로 자신의 일에만 충실할뿐 그는 만사에 서툴고 머뭇거리는 형이다. 그러나 가까이 화단일부에서 그의 후배들이 말하는 남천은 뚝심과 정열,실험정신이 투철하여 기왕에 있어온 타성을 묵살하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적 욕망이 꿈틀대는 야심파다.또는 감정이 격하고 제스처가 명확하며 일을 벌이면 끝장을 내고 한번 눈밖에 난 사람은 끝끝내 돌아보지않는 독선적인 면이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림의 완성을 설계 어느것이나 화가로서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일면일 것이다.사람이 나이들면 환경과 시대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듯이 아마도 남천 역시 그런 여러 측면을 복합적으로 지닐 수도 있다.그래선지 그는 다른 예술과는 달리 미술은 음악처럼 세계도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서슴없이 긍정한다.그리고 한때 지나치게 탐닉했던 화려한 색채를 단순하게 저버린것이 아니라 이를 오채의 먹으로 종합한다는 의지다. 그는 결국 시와 철학으로 살찌운 마음속에다 그의 수많은 붓들을 담가두었다가 어느날 하얀 한지위에 먹만의 조형으로 세계화단에 발돋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그는 그림의 완성,그의 그림의 끝을 알고있는 이시대 소중한 화가의 한사람임에 틀림없다. □연보 ▲1938년 전북 전주출생 ▲전주중앙국교 서중­공고졸업 ▲1956년 홍대 서양화과 입학 ▲군복무후 1961년 동양화과로 전과 ▲1963년 홍대 졸업 ▲1962년 국전입선후 신광여고­이대부고교사 ▲1967년 제9회 동경국제비엔날레 출품(동경) ▲1969년 송수남 「한국화」전(신문회관화랑) ▲1970년 인도 트리엔날레 출품(뉴델리) ▲1972년 한국현대작가7인전(샌프란시스코 아시아재단화랑) ▲1973년 송수남 개인전(신세계화랑) ▲1973년 상파울루 국제비엔날레(상파울루)한국 동양화10인전(동경) ▲1974년 양지화랑 초대개인전 ▲1974년 현대 화랑 기획전(현대화랑)현대한국동양화전(나고야) ▲1975년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박물관 초대개인전 ▲1976년 한국현대 동양화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77년 한국 미술대상 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78년 맥향화랑 초대전 ▲1978년 뉴욕 한국화랑 초대개인전 ▲1978년 한국미술20연 동향전(국립현대미술관) ▲1979년 한국미술­오늘의 방법전(문예진흥원 미술회관) ▲1980년 하와이대 한국학센터 개관기념 초대전 ▲1981년 백상미술대전 한국현대작가 드로잉전(뉴욕 브루클린미술관) ▲1983년 송수남전(현대화랑) ▲1983년 초대 송수남 개인전(뉴런던 코네티컷대,뉴욕브루클린대 시카고 스코키시립미술관) ▲1984년 송수남 개인전(뉴욕 한국문화원) ▲1985년 송수남 판화전(조선화랑) ▲1986년 한국화,오늘과 내일 전망(워커힐미술관) ▲1986년 한국화 100연전(호암갤러리) ▲1986년 동양화 초대전(강남현대화랑) ▲1986년 송수남 초대전(부산진화랑) ▲1988년 자연과 도시전(동산방화랑) ▲1989년 남천 판화전(청작미술관)해마다 국립현대미술관 주관 현대미술초대전,한국의자연전,서울미술대전,현대작가초대전 등 단체전 수회출품 동아미술제심사위원,문예진흥원 미술대전심사위원,운영위원 역임〔현재〕서울 미술대전 운영위원,서울시 예술위원,홍대교수(홍대박물관장) 중앙예술대상수상 「수묵화」「동양화」「자연과 도시」「남천사군자(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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