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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지영 장편소설 「고등어」/연극으로 맛본다

    ◎20일부터 대학로 미리내소극장/암울한 5공시절 20대 고민 그려 소설가 공지영의 장편소설 「고등어」가 연극무대에 오른다. 평범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과 세련되고 속도감있는 문체구사로 두꺼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공지영의 작품세계를 연극을 통해 감상할 기회. 소설의 문학성과 연극의 현장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하는 소설연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극단 춘추가 마련하는 실험성이 강한 무대다. 오는 20일부터 서울 동숭동 대학로 미리내소극장(745­8535)에서 선보일 연극 「고등어」(유근혜 연출)는 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인 명우(조원희 분)가 7년이 지난 어느날 우연히 옛 애인이자 동지인 은림(한경미 분)을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명우와 헤어진뒤 80년대의 희로애락을 간직하며 살아온 은림은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만 지나간 시간속에 침잠해버린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남편으로부터 외면당한다.결국 외로움속에서 얻은 병과 가정파탄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은림은 한권의 일기장을 남긴채 세상을 떠난다.그러나 은림에게는 80년대와 명우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마지막까지 행복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은림이라는 한 여자를 통해 시대가 단절시켜 놓은 우리 청춘의 아픈 기록을 남겨준다.80년대 암울한 시기에 이십대를 보낸 사람들이 가슴에 담아야 했던 고민들이 잘 드러나 있는 것.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80년대 문학이 빠지기 쉬운 허무나 자포자기가 아닌 자기정체성에 대한 긍지이며 독립이라는 점에서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매우 강력하다. 8월20일까지.하오 4시30분·7시30분.〈김재순 기자〉
  • 김건호 건교부 건설지원실장(폴리시 메이커)

    ◎“「제2의 삼풍」 막게 5개 관련법 강화”/건설종사자 안전의식 고취에도 최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주기를 맞아 피해 가족들에게 먼저 조의를 표합니다.사전예보체계만 제대로 됐다면 1천5백여명의 사상자를 모두 구할 수 있었을 텐데…』 건설현장의 안전과 부실시공방지 등을 총 책임진 건설교통부 김건호 건설지원실장(51)은 1년전 삼풍붕괴사고를 떠올리며 말끝을 맺지 못했다. 건설분야의 행정실무자로서,전문가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과 함께 피해가족들의 한을 생각하면 견딜 수 없는 참담함이 밀려 온다고 한다. 그는 『정말 그렇게 허무한 사고는 처음 당했다』며 『사고원인이야 많겠지만 1차적으로 안전불감증에 걸린 관련 건설업체와 백화점 관계자의 책임이고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행정기관도 면책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에서는 사고 직후 재난관리법을 제정,인위적 재난에 대한 사고예방은 물론 긴급구조구난 등 사고수습을 위해 국가차원의 재난관리체계를 확립했습니다』 김실장은 부실한 설계와 시공,감리,유지관리소홀,사용제한 명령불복 등 부실건설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시설안전특별법,건설기술관리법,건설업법 등 5개 관련법의 벌칙을 강화함으로써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두고 있으나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이 아무리 강화돼도 건설업체를 포함한 모든 관련자들이 안전에 대한 신념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의식의 대전환만이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성수대교 및 삼풍사고 이후 국내의 모든 건설업체들이 자체적으로 부실공사 방지와 현장종사자 등 공사 관련자들의 안전의식 고취에 힘쓰고 있어 멀지않아 이같은 안전제일 풍토가 정착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는 국내에서 대형 건설사고가 유난히 많은 것은 그동안 경제발전 제일주의의 영향으로 「빨리 빨리」하려는 졸속주의 의식에도 영향이 있다고 진단했다.공사현장을 지나는 국민들도 불편을 참아 완벽한 시공이 되도록 사회분위기 조성에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김실장은 경기고(64년)와 서울대 토목과(68년)를 졸업한 전형적인 「KS」마크이다.기술고시 5회에 합격한 건설행정 전문가이며 건설부에서 기술개발관·도로국장,제2차관보를 지냈다.젊은 부하직원들과 축구시합을 해도 체력과 투지에서 조금도 뒤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라운드를 누빈다.〈육철수 기자〉
  • 여야중진 정치학회 참석 의견개진(정가초점)

    ◎김상현 의원­“야 지도자 국회상화 결단 필요”/이한동 의원­“야당 무조건 증원외엔 대안없다” 역설/최형우 의원­“특정인이 대권 잡기위해 날새고 진다” 부산 파라다이스비치호텔에서 한국정치학회가 주최한 하계학술대회 이틀째인 28일 여야 중진 초청연사들은 경색정국의 해법을 놓고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신한국당에서는 전날 이홍구 대표위원에 이어 최형우·이한동의원이 조찬과 오찬을 주재했다.이회창 의원은 화환을 보냈다.야당에서는 유일하게 국민회의 김상현의원이 만찬에서 연설했다. 특히 김의원은 국회정상화를 위한 야당지도자들의 결단을 촉구하는 「폭탄발언」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최의원과 이의원은 대권논의를 자제하면서도 국정운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차별화를 시도했다. 조찬을 주재한 최의원은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수평적 정권교체론에 대해 『정책경쟁구도가 실종된 상황에서 21세기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공격했다.국민회의 김총재와 자민련 김종필총재를 겨냥,『특정인이 대권을 잡기 위해날이 새고 진다』면서 『한두분의 대권경쟁의 노예가 돼 옴싹달싹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4·11총선 결과를 언급,『야당지도자도 역사를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꿈과 희망의 비전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행정조직개편과 관련,『식민통치수단이었던 3단계 행정구조를 2단계로 개편해 1년에 9조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며 정부조직구조의 경쟁력강화를 역설했다. 이의원은 오찬에서 『PC통신망에 국회의원의 무노동무임금,국회정상화를 위한 공권력투입,질좋은 외국의원의 수입 등 국민의 질타가 쏟아진다』면서 『불신과 냉소의 차원을 넘어 정치허무주의의 단계에 이르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그리고 『원구성은 의원의 지상책무』라고 전제한뒤 『야당의 무조건 등원과 원구성말고 어떤 방안도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과거 민주화과정의 투쟁적 리더십보다 경영마인드를 갖춘 합리적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이어 노자의 「도덕경」가운데 「천도무친」이란 구절을 인용,지연과 혈연,학연,정,친 불친(을 초월한 인사를 펴야한다고 강조했다. 만찬강연에 나선 김의원은 『김영삼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이라고 조건을 깔고 국회공전의 파장을 극소화하기 위해 야당지도자들이 임시국회회기가 끝나기전 국회정상화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작심한 듯 비장한 어조였다. 공식석상에서의 이같은 발언은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향후 야권내 파장이 예상된다. 특유의 유창한 화법으로 70여분동안 연설한 그는 『DJ가 없다면 차기대선에 나서겠지만 DJ가 있기 때문에 참고 그 분을 대통령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언급하는 등 DJ가 나서지 않을 경우 차기대권에 도전할 의사가 있음을 강력 시사했다. 또 『현재 DJ가 절대적 공감을 얻는데 균열이 생기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를 없애지 않으면 차기대선에 출마해도 집권이 어려울 것』이라면서 『DJ에게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해도 그 반대로 가는 때가 있더라』고 말해 간접적인 불만을 피력했다.국회정상화를 위한 여야 영수회담도 제안했다.〈부산=박찬구기자〉
  • “역사는 시대적 삶의 기록”/공판서 본 전씨 역사관

    ◎이승만­건국·박정희­경제·5공­국위선양 평가해야 12차 공판에서 전두환피고인측은 공판이 시작된 이래 가장 강력한 어조로 「5공식」 역사관을 폈다. 이들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보수 반동의 논리라는 비난을 의식한 듯 지금의 역사진행 상황을 수정주의 역사관이라고 비판하면서 나름대로의 논리를 개진했다. 전피고인측은 「역사는 시대적 삶의 기록」이라는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의 역사관을 인용하면서 자신들은 집권 후 유일하게 전 정권을 매도한 사실이 없었던 정권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정권은 건국 이래 모든 정권을 반민주적이고 부도덕적이라고 매도,국민들은 「역사적 허무주의」에 빠져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대한민국을 좌·우익의 이념적 혼란에서 공산독재화를 막아냈고 공산군의 침략을 격퇴,나라의 기초를 세운 공로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3공화국은 경제개발로 나라의 국력을 배가시켰고 자주국방과 무기체제의 자립화 계기를 만든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공화국은 이른바 「3고」시대에 경제를 파탄의 위험에서 구해냈고 외채를 격감시켰으며 강력범이 횡행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강변했다. 또 노태우 피고인과 함께 6·29을 통해 민주화를 이루었고 88올림픽의 유치로 국위를 선양하는 등의 공로를 세웠다고 주장했다. 6공이 민주화와 개방화로 북방외교에 성공한 것도 치적으로 내세웠다. 5·6공은 건국 이후 한국을 이끌어온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정통성을 잇는 정권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역사관이 보수주의라기보다는 수구주의라고 비판한다. 전피고인 등에 대한 재판이 과거 역사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잘못된 과거의 진실을 밝혀내고 새 도약의 기초를 세우자는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지 좌·우 이념 논쟁의 소산이 아니기 때문이다.〈박상렬 기자〉
  • 문재우 재경원 국제협력담당관(폴리시 메이커)

    ◎“통남문제 민관합동 대응체제 검토”/농산물 통관기간 최소화로 미와 검역분쟁 풀것 『상대국의 요구가 국제기준이나 관행에 비해 지나치거나 부당하면 국익 차원에서 지킬 것은 꼭 지켜야 합니다.그러나 제도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서둘러 손질하는 것이 통상마찰을 줄이는 첩경입니다』 재정경제원 문재우 국제협력 담당관은 『최근 통상현안이 잇따르는 것은 국내제도의 국제화 수준이 시장개방 속도나 경제규모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우리나라는 미국의 5대 수출시장에 속하는 등 무역규모에 비해 식품 검사검역이나 공산품의 형식승인제 등이 아직은 국제수준에 비해 미흡하기 때문에 통상분쟁이 생길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주요 무역상대국인 미국은 경제실리 우선주의에 의해 각국의 관련 제도를 자국수준에 맞추는 경쟁수준의 평준화를 추구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장벽을 허무는데 주력하기 때문에 통상의 기술화·전문화가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요즘 수입식품의 검사·검역제도나 통신시장 개방 및 한·미자동차 후속협상 등의 통상현안들을 안고 있다.사안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부처간 이견을 조정하고 제도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제 3자 입장에서 개선과제를 발굴,실행에 옮기도록 유도함으로써 통상마찰을 사전예방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그는 통상현안 중에서도 수입농산물의 검사·검역제도와 관련한 미국과의 분쟁을 어떻게 풀어나갈 지에 골몰해 있다.미국이 지난해 4월에 이어 지난 달 24일에도 세계무역기구(WTO)에 다시 제소한데다 패널설치까지 요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리의 제도개선 노력은 이해하면서도 시행시기를 무조건 앞당기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지난해 5월 마련한 제도개선 계획에 의해 올 연말까지는 정밀검사 대상을 샘플채취로 바꾸는 등 통관기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힘쓰고 있기 때문에 이 달 중순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릴 협상에서 이를 집중 부각시킬 계획입니다』 제도개선이 덜 된 부분은 통상마찰을 예방하기 위해 서둘러 고쳐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논리싸움으로 당당하게대응해야 한다는 그의 소신을 뒷받침해 준다. 그는 그러나 통상문제를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게임이나 국가간 마찰로 보는 시각은 옳지 않다고 지적한다.세계무역 및 교역이 늘수록 통상문제는 일상적인 일처럼 많이 생기고 협상의 본질이 적정선에서 타협점을 찾는 주고받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통상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발전전략도 짜고 있다.통상전문 인력의 양성과 통상정책에 대한 지방정부의 협조,민·관합동 대응체제 구축 등을 검토하고 있다.중앙정부의 정책조정기능을 강화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민간기업간 교감을 높임으로써 균형있는 통상정책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행시 19회로 옛 재무부 이재국과 세제실 등을 거쳐 브뤼셀 재무관으로 있다가 지난해 12월 통상협력관실로 자리를 옮겼다.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우리나라와 미국의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오승호 기자〉
  • 정원식 전 국무총리(요즘어떻게 지내십니까)

    ◎“천직인 교육자로 되돌아와 마음 가볍죠“/“특성있는 가정교육이 건강한 사회의 기초”/서울시장 낙선 후유증 딛고 공식활동 재개 정원식(68).그의 함자 뒤에 붙여야할 직함이 마땅치않다.없어서라기 보다는 다채로운 경력 탓이다.전 교육부장관·국무총리,전 대통령직인수위원장,전 민자당 서울시장후보,청소년대화의 광장 이사장,세종연구소이사장,안중근의사 기념관이사장,독서새물결운동 추진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5월 가정의 달을 마감하며 30일 성남에 위치한 세종연구소 이사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5월 들어 조심스럽게 교육과 관계된 공식활동을 재개했다는 얘기를 들은 터이다.지난해 6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한뒤 외부와의 접촉을 자제해 만나기가 쉽지는 않았다. 1주일에 3번 정도 찾는다는 연구소는 공기가 맑고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주변 풍광도 더없이 고왔다.그는 『이제 막 자서전의 에필로그로 준비중인 「낙선의 고배」의 탈고를 끝냈다』며 반갑게 맞았다.『주위에 도움이 될테니 선거때 이야기를 단행본으로 내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독립된 책으로 낼 생각은 없고 자서전이나 회고록의 한 부분에 넣을까 싶다고 했다. 인생의 황혼기에 맞은 예기치 못한 패배는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것 같았다.곳곳에 「허무감」「응어리」「모멸감」과 같은 교육과는 거리가 있는 듯한 낯설은 용어들이 눈에 띄었다. 먼저 『어떤 직함으로 불렸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봤다.그는 『청소년대화의 광장 이사장이나 세종연구소장으로 불렀으면 좋겠다』며 웃었다.국무총리 시절,사석에서 스스로 천직으로 말한 교육자로 돌아와 있었다.오랜 외도 끝의 귀거래라고나 할까. ○낙선 뒷애기 자선전에 수록 ­공식활동을 재개했다고 하던데. ▲공식활동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고….가정의 달을 맞아 김포·평택과 같은 지방도시의 주부들과 만나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얘기하며 다니고 있습니다.일종의 강연이죠.지난주엔 공주에 다녀왔습니다.반응이 아주 좋아요. ­주로 어떤 내용입니까. ▲가정에서의 자녀교육입니다.내 전문분야이기도 하지만,교육은 어린시절 가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오늘의 현상을 진단하고 나름의 치유책을 제시하는 거죠.결론은 가정에서 좀 더 힘써주길 강조하는 것입니다.오늘날 우리사회는 버릇없는 아이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자녀수가 적어 과잉 보호를 하고 있는 탓이죠.그러나 올바른 버릇들이기는 중요합니다.「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잖아요.버릇은 한번 형성되면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심리학에선 이를 「불가역성의 원리」라고 하죠.매를 들땐 들고,칭찬을 할 때는 아낌없이 하고…. ­유태인의 가정교육에 관한 책도 내셨는데,외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모두 다 본받을 수는 없지만,미국 가정교육의 특징은 자립심이나 독립심을 길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일본은 요즈음 신미운동이 한창이예요.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아름답게 하자는 교육이죠.독일은 근검·절약하는 정신을,스위스는 사회에 대한 봉사정신을 키워주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이처럼 선진국들은 어려서부터의 가정교육이 그 나라의 특성을 이루고 있습니다.건강한 가정은 건강한 사회의 기초입니다.우리도학교성적을 올리는 가정교육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지혜로운 인간의 양성,나아가 우리의 특징을 세계에 알리는 교육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그는 『우리 사회는 지식인들로 가득차 있다』며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는 점을 여러차례 강조했다.『지식은 풍부한 정보력을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반면 지혜는 정보를 활용하고 창출하는 능력을 일컫습니다.따라서 지혜는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으로는 결코 길러지지 않습니다.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와 호기심을 적절히 충족시켜 주는 노력을 통해 길러지는 것입니다. ­강연은 현지 주부들의 요청에 따른 것입니까. ▲청소년대화의 광장 교육 프로그램의 하나입니다.이사장 자격으로 2∼3일 계속되는 프로그램의 한 과정에 참여하는 형식이죠.우리사회의 혜택을 누린 사람으로 헌신하고 봉사하고자 하는 소망에서,또 무너져 가는 우리의 여러 가정을 튼튼한 가정으로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게 요청되는 일 같기도 하고 해서 기꺼이 나갑니다. ­독서새물결운동 위원장직도 맡고 계시는데. ▲비슷한 차원의활동이죠.책읽는 사회에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최근 「독서대상」을 제정했습니다.영예의 대상은 일선교사와 해당학교에 줌으로써 학교가 독서운동의 첨병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죠. ­세종연구소 이사장직도 교육과 연관이 있습니까. ○「청소년…」·세종연 출근 ▲인재를 기르는 점에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최근 우리사회의 미래를 이끌어 갈 사무관 또는 서기관급의 공무원과 대기업 차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6개월 과정의 세계화 연구과정을 무료로 신설했습니다.국제정세에 눈뜨게 하고 안목의 확장을 꾀하는 게 주된 목표입니다.처음엔 강의도 없고,간혹 세미나에만 참석하게 하니 1주일 정도는 적응을 못하더군요.이젠 달라졌어요.스스로 어학공부도 하고,밤늦게 까지 남아 관심분야에 대한 연구도 하고…. 그는 현재 단설대학원(학부는 없는 대학원)에 관한 교육법 개정 시행령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그렇게 되면 연구소 내에 「국제 정경대학원」을 설치할 계획이다.국제관계·통상·안보에 역점을 두는 2년의 석사과정이다.『시설,교수요원,자금 등 잠재력을 갖고 있는데…』라며 모두들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여러 일을 하다보면 어떤 일은 소홀히 할 때도 있지 않습니까. ▲일주일을 3일씩 나눠 청소년대화의 광장과 세종연구소 일을 처리합니다.직책상 바쁘진 않아요.아직까지는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담담하게 시장선거 낙선의 뒷얘기를 숨김없이 정리한 것을 보면 그는 이제야 낙선 후유증이라는 긴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온 듯 싶었다.『가끔 만나는 정치인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나는 교육자로 더이상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대답으로 대신했다.우리나라 최초로 카운셀링 이론을 개척한 그는 「낙선의 고배」 에필로그도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평생 몸바치기로 마음먹었던 교육의 아카데미아를 떠나 공직에 발을 들여놓았던 사람으로서 다시 교육자의 자리로 돌아온 데 대해 마음가벼움을 느끼면서 이 글을 마치려 한다』.〈양승현 기자〉
  • 신작시집 「눈사람」출간 최승호씨(인터뷰)

    ◎“자아의 결박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소망 노래” 「거대한 변기의 세계관」에서 「눈사람의 언어」로. 시인 최승호씨가 신작시집 「눈사람」(세계사)을 펴냈다.지난 시기 그의 시에 출몰하던 변기,오물 등 욕망의 찌꺼기 같은 언어 대신 눈사람으로 대표되는 물의 이미지가 새로 나타났다. 〈눈사람이 녹는다는 것은/눈사람이 불탄다는 것,/불탄다는 것은/눈사람이 재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시냇물/하얀 재 흐른다/눈사람들이 둥둥둥 물북을 치며/강으로 바다로 은하수로 흘러간다/흘러간다는 것은/돌아간다는 것,/돌아간다는 것은 그 어디에도//오래 머물 수 없다는 것>(「눈사람의 길」에서) 『이번 시집의 「얼음의 자서전」같은 시에도 썼지만 그간 내 속에 「얼음의 성」이 켜켜이 쌓여 나를 가둬왔어요.이같은 자아의 결박에서 풀려 자유로워지고 싶은 소망으로 견고하지만 녹아버릴 운명의 눈사람을 택했지요』 지은이는 어느 때 보다 불교적 색채가 강한 것으로 이번 시집을 자평한다.있으면서 곧 없어질 눈사람은 곧 색즉시공이 가리키는 허무와맞닿기 때문. 『맺힌 것이 풀리는 노래를 쓰면서 무엇보다 내 자신이 더없이 편안해졌다』는 그는 『허무와 풀림의 문제를 좀더 붙들고 늘어지기 위해 노자·장자를 다시 꺼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손정숙 기자〉
  • 서울신문사 제정 공초문학상 수상 시인 김여정씨

    ◎“전통적 삶에 매어사신 어머니 그린 사모곡”/해방후 헌책방서 구한 「청록집」에 깊은 감명 『30년 가까이 꾸준히 시를 써왔지만 이처럼 권위있는 상을 받게될줄 몰랐네요.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서울신문사가 제정한 제4회 공초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시인 김여정씨(63·세륜중 교장)는 환한 표정으로 소감을 밝혔다. ­이상은 우리 시단에 특유의 허무주의 시학을 유포한 공초 오상순 선생을 기려 제정됐다.공초선생과 개인적 친분이 있었는지. ▲인사를 나눈 적은 없지만 대학시절 명동의 「갈채」「돌체」다방 등에서 몇번 먼발치로 뵌 적이 있다.항상 앞을 분간못할 자욱한 담배연기에 싸여 자유인을 자처하셨던 그분은 문학소녀들에겐 신비와 선망의 대상이었다.이제 돌아가신지 30여년이 지나 그분의 이름으로 된 상을 타니 감개무량하다. ­문학에 뜻을 둔 계기가 있다면? ▲우리는 국민학교 5학년때 해방을 맞아 한글을 깨치기 시작한 세대다.어느날 헌책방을 뒤지다 너덜너덜한 표지에 종이도 누렇게 바랜 「청록집」을 발견했는데 아,우리말로된 이런 시도 있구나 하는 참으로 기이한 감명을 받았다.이때부터 시를 좋아했고 여학교때 처음으로 「황혼」이라는 시를 써봤다.피난지에서의 감상을 담은 것으로 학교에 제출했는데 당시 국어선생님께서 읽어주시며 많이 써본 세련된 솜씨라 극구 칭찬하시는 것 아닌가.이때 시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여류답지 않게 치열하고 대담하다는 평을 들었던 그간의 시세계에 비해 이번 수상시는 좀 다른 것 같은데… ▲시집 「봉인이후」에선 전통적인 어머니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호박덩이〉도 그 하나다.우리 어머니는 여걸이란 소리를 들었던 분이지만 여성을 옥죄는 그 시대에 전통적 삶의 방식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어머니의 희생으로 시인이 된 딸이 어머니를 노래하지 않으면 빚이 될 것 같아 그동안 비켜서있던 한숨,정한 등 전통여인의 세계를 정면으로 다뤄봤다. ­「시인교장」이라 학교에서 바라보는 것도 좀 다를 것같다. ▲근무시간 외에 선생님들은 내게 교장이라 하지 않는다.나이별로 누님,이모님,언니 등등 부르고 싶은대로 부른다. 자제들을 모두 분가시키고 혼자 사는 김씨는 시를 양식삼고 여행을 취미삼아 『독립자유만세』라고 표현하는 바쁜 노년을 꾸리고 있다.그는 『이제 어머니 얘기는 한매듭 지었으니 신세대 못지않은 새로운 감수성으로 무장하겠다』면서 『이 새로운 도약에 공초문학상이 채찍이 되어줬다』고 거듭 고마워했다.〈손정숙 기자〉 ◇작가연보:▲33년 경남 진주생 ▲성균관대 국문과 및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 졸 ▲68년 「현대문학」에 「화응」「편지」「남해도」등이 추천돼 등단 ▲월탄문학상,한국시협상·동포문학상·대한민국문학상·남명문학상 수상 ▲「봉인이후」(95년)까지 시집 9권,다수의 시선집,수필집 발간 ▲한국문인협회 회원,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한국카톨릭문인회 회원,계간 「문학아카데미」 월간 「문학과 창작」 편집위원 ▲세륜중학교 교장
  • 중기 의무대출 99년 폐지/금융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재경원

    ◎“대기업 탈은행화… 자금조달 문제없어”/2천년까지 금융전산망 통합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의무 대출제도를 포함한 선별 금융제도가 오는 99년까지 폐지된다.현재 5%로 고정돼 있는 한국은행의 재할인 대상 상업어음 할인 금리가 내년까지 완전 자유화되고,은행에 회사채 인수 간사업무가 허용되는 등 금융기관간 업무영역에 대한 제한이 없어지는 겸업주의가 도입된다. 재정경제원은 20일 제일은행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21세기 경제장기 구상의 금융부문 발전전략인 「개방시대의 금융산업 경쟁력 제고방안」에 대해 공청회를 열었다.정부는 2020년까지 추진할 금융부문의 핵심전략 과제를 공청회 등을 거쳐 오는 7월 중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이 방안은 금융정책의 추진 과제로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각종 정책금융의 대상을 연구·기술개발 및 환경보전 등의 부문으로 점차 축소하고,한은의 재할인 대상인 상업어음 할인 금리 및 무역금융 금리를 96∼97년 중 자유화하도록 했다.또 금융기관 별로 총 대출액의일정 비율을 중소기업에 의무적으로 빌려주게 돼 있는 중소기업 의무대출제도 등의 선별금융제도는 98∼99년 중 없애도록 했다.재경원은 중소기업 의무대출제도를 폐지하더라도 대기업의 탈은행화 및 해외금융시장으로부터의 자금조달 증가 추세에 비추어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방안은 금융산업의 개편과 관련,2000년까지 현재 증권사로 제한돼 있는 회사채 인수에 따른 간사업무를 은행에도 허용,은행이 책임지고 회사채를 매각할 수 있게 했다.또 은행에서도 보험상품을 팔 수 있게 하는 등 단기적으로 금융기관간 핵심업무에 대한 진출을 부분 허용한 뒤 2010년까지는 금융기관간 업무의 벽을 완전히 허무는 겸업주의를 도입토록 했다.〈오승호 기자〉
  • 올 연세등 3개대 직선제 폐지 계기로본 실태와 문제점(심층취재)

    ◎총장선거/정치판 보다 더 혼탁/경륜·철학은 뒷전… 중상모략·줄서기 경쟁/반대파 사사건건 꼬투리… 행정 마비 일쑤/외부인사 영입 길 아예 막혀… 학교발전 “뒷걸음” 한 때 대학 민주화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총장 직선제의 폐해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선거로 인한 폐단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줄서기,편가르기로 반목하고 중상,모략이 횡행한다.소송 사태도 잇따른다.때문에 적지 않은 대학들이 총장 직선제를 폐지했고 많은 대학들이 없앨 움직임이다.직선제 없이도 대학을 민주적으로 내실있게 꾸려가는 나라들은 많다.또 직선제를 도입했더라도 우리처럼 고약한 문제들은 나타나지 않는다.총장 직선제의 실태를 해부하고 모범적인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소개한다.〈편집자 주〉 직선제를 없애려는 움직임은 올들어 더욱 거세지고 있다.지난 3월 말 경남대 계명대 아주대 한남대 전주대 관동대 호남대 등 8개 지방 사립대의 총장들이 모여 직선제 폐지를 결의함으로써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후 연세대 국민대 계명대 등 3개대가 직선제를 없앴다.건국대 아주대 울산대 등은 사실상 지난 해 직선제를 폐기했다. 특히 연세대재단 이사회의 폐지결정이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려대를 비롯한 상당수 대학들이 총장선출 방식을 바꾸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높은 학식과 고매한 인격의 대명사인 총장을 더 이상 선거로 뽑아서는 안되겠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폐지” 공감대 확산 지난 88년 목포대에서 첫 직선 총장이 탄생한 후 현재 전국 1백45개의 4년제 대학 중 26개 국·공립대 및 11개 교육대 모두와 1백8개 사립대학의 절반 가량이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 8년만인 지금,초기의 「장미빛 꿈」은 온데간데 없다. 대부분의 대학이 극심한 선거의 홍역을 앓고 있을 뿐이다.직선 총장들마저도 이 선출방식에 커다란 회의를 표한다. 강의와 연구에 몰두해야 할 교수들이 학연과 지연 등으로 얽히고 설킨다.로비도 치열하고 술과 골프 접대 등 향응은 기본이다. 교수사회의 위계질서가 무너진 지는 오래다.갓 임명된 전임강사도 총장후보 앞에서 다리를 꼬고 맞담배질을 한다.전에는상상도 못하던 일이다.이들도 1표를 가졌기 때문이다. 선거판의 중상모략과 투서는 썩은 정치판을 뺨친다.허무맹랑한 공약과 보직약속 남발도 빼놓을 수 없다. 선거가 끝나면 교수들의 편가르기가 더욱 깊어져 지지파는 무조건 총장을 따르고 반대파는 매사에 꼬투리를 잡아 총장을 공격한다. 학사행정은 마비되기 일쑤고 대학발전은 생각도 못한다.덕망있는 외부인사를 총장으로 영입하는 길은 아예 막혔다.표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훌륭한 자격을 갖췄음에도 혼탁한 선거양상이 싫어,끝내 출마를 고사하는 교수도 많다. ○위계질서 무너져 명문 사학인 Y대는 S총장과 반대파간의 알력으로 몇년째 홍역을 앓고 있다.반대파 교수들은 S총장의 2중국적을,S총장은 인격모독과 학교의 명예실추를 걸어 서로 맞고소했다.이 사건은 아직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S총장을 비난하는 진정서가 청와대와 교육부 등에 숱하게 쏟아졌다.총장을 비롯한 보직교수들은 이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대학발전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최근에는 상대 출신인 S총장이 경상대에만 신경을 쓴다며 각 단과대별로 『다음에는 우리도 총장후보를 내자』는 집단 이기주의까지 생겼다.수적으로 열세인 일부 단과대 교수들이 연합을 모색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립 지방대인 K대와 사립 M대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총장 임기 4년이 맞고소,교수들의 농성 등으로 점철됐다.급기야 K대는 교육부의 감사를 받아 총장을 비롯한 1백70여명의 교수가 징계·경고·주의 처분을 받았다.소송의 몸살을 앓는 대학은 10군데가 훨씬 넘는다. 또다른 명문 사학인 K대는 H총장의 임기가 2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2년 후의 총장선거에 나설 예비후보 진영에서 정원조정을 포함한 학사행정 전반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져 정상적인 대학운영이 마비된 상태이다.H총장은 선거 후 화합차원에서 상대 후보진영의 교수를 주요 보직에 임명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지방 국립대인 C대는 L총장이 선거 때 공약으로 제시한 중간평가 때문에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교수협의회는 중간평가를 거듭 요구하며 집단행동도 불사할 태세이다. 최근에는 학생들까지가세해 기성회 예·결산 전문위원회에 학생 참여 등을 요구하며 총장 불신임을 결의했다.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도 했다. ○교수끼리 맞고소 지방의 사립 D대는 한 총장후보가 교수 자녀의 학자금을 대학졸업 때까지 전액 지원하겠다는 얼토당토않은 공약을 제시해 쓴 웃음을 자아냈다.B여대에서는 직원들에게도 투표권을 달라며 교직원 노동조합을 통해 쟁의발생을 신고하기도 했다. 서울의 K대는 재단과 사이가 좋지 않은 총장이 선출되자 재단의 전입금이 크게 삭감됐다.총장이 내세운 학교발전은 엄두조차 낼 수 없다. 지방의 D대는 총장에 반대하는 교수들의 집단 수업거부와 점거농성으로 심각한 학내분규를 겪었고 결국 관선이사가 파견되는 「험한 꼴」을 당했다. 선거를 6개월 가량 남겨둔 국립 S대는 예상후보들이 벌써부터 치열한 사전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지난 총장선거에서는 한 후보의 부인이 총장후보 추천위원회 위원들에게 사과상자를 돌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후보를 판단하는 기준도 학교운영에 관한 경륜이나 철학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선거 때마다 전문 선거꾼으로 변신하는 일부 교수들의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한 교수는 『친목모임에 연고가 전혀없는 교수가 느닷없이 찾아와 인사를 하고 술대접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꼬집었다. 가장 적극적인 총장 직선제 폐지론자는 박재규 경남대 총장이다.지난 94년 직선제의 폐해도 처음으로 제기했다.박총장은 『몇몇 대학의 경우 일부 교수들이 운동권 학생을 부추겨 학교신문에 총장을 비난하는 글을 싣거나 집단행동까지도 사주한다』고 전했다. ○학생 집단행동 사주 구본호 울산대 총장은 『교수사회가 지나치게 정치화되는데다 인기에만 영합하는 총장을 양산,장기적인 발전계획보다는 급여 인상등 단세포적인 공약만 남발한다』고 걱정했다. 김종운 전 서울대총장도 『외부 인사라 하더라도 훌륭한 인물이면 총장으로 영입할 수 있도록 문호개방 차원에서 직선제는 재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한종태 기자〉 □외국에선 어떻게 선출하나 ◎미국/이사진이 주도… 인물 철저히 탐색·검증 미국의 아이비리그 사립명문대학들의 총장선출은 철저하게 소수 이사진의 주도하에 이뤄진다.대신 전세계에 걸친 광범위한 인물탐색과 여론조사를 거치며 거의 1년이 소요된다. 하버드대학의 경우 현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하는 대로 3백여년 전통의 「후임총장물색위」를 즉시 가동시킨다.하버드대의 모든 결정은 총장,감사,5인의 이사로 이뤄진 하버드법인(코포레이션) 소관인데 이 결정은 30명의 동창대표로 구성된 감독위원회의 추인을 얻어야 한다. 총장물색위는 이 법인 7명 및 감독위 3명등 10명으로 구성되는데 90년 5월 보크총장 후임을 고르기 위해 물색위는 하버드와 관련된 인사 25만8천명에게 마땅한 인물을 추천해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했고 3백명의 교수,학생들과 면담했다.배경조사등을 거쳐 10명 정도의 최종추천인물이 가려지자 물색위 위원들은 이들과 개별면담을 가진뒤 91년 3월말 이중 1명의 후보를 추천,법인과 전체 감독위의 승인을 거쳐 10개월만에 26번째의 루덴스타인 새 총장을 선임했다. 예일대와 컬럼비아대 역시 총장이 사직하게 되면 총장직무대행 체제와 함께 후임물색위를 가동한다.물색위는 총장,이사,동창대표등으로 코포레이션을 구성하고 동창들에게 의견요청 서신을 띄운다.현 레빈 예일대총장,소번 컬럼비아총장 역시 이같은 방식으로 지난 93년4월과 93년 2월에 각각 최종 선임됐다. 이런 광범위한 인물탐색과 철저한 검증,훌륭한 인물을 뽑기위한 여러 단계의 절차들이 학연이나 혈연을 떠나 인물위주의 총장을 선출하고,대학은 물론 미국을 초일류국가로 만든 밑거름이 되게 했다.〈워싱턴=김재영 특파원〉 ◎영국/사전선거운동 없이 교수위원회서 뽑아 영국 최고의 명문인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의 경우 총장은 모든 교수들이 직접 뽑는 직선제에 의하지 않고 30여명의 교수들이 구성하는 위원회의 추천에 따라 선출된다.총장은 학식은 물론 폭넓은 경험과 행정력을 인정받는 인물이 되며 사전선거운동이나 조율없이 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총장의 임기는 4년이며 차기 총장은 2년전에 선출된다.취임하기 전 2년동안은 수습기간인 셈이어서 대학운영에 관한 업무를 익히게 된다. 한편 명예총장은 실권이 전혀 없으며 일반행정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들의 업무는 총장을 뽑을때 고작 위원회의 사회를 보는 일정도다. 명예총장은 왕실로부터 경등의 칭호나 작위를 받은 인사들이 주로 맡는다. 옥스퍼드의 현 명예총장인 젠킨스경은 70년대 노동당 당수를 지낸 정계의 거물이다.이처럼 명예총장직은 은퇴한 정치인이나 고위층 인사들이 평생업적을 인정받아 주어지는 말그대로의 명예스런 자리에 불과할 뿐이다. 졸업한 지 5년이 지난 동문들이 모여 모교의 상징적 인물을 명예총장으로 선출하고 있다. ◎불·일/사전조정 제도적 장치마련… 잡음 없어 프랑스의 국립대학과 일본의 대학총장은 직접선거방식에 의해 선출된다.프랑스 국립대학은 85개로 행정위·학술위·연구 및 대학생활위원회등 3개 위원회가 총장선출에 참여한다.각 위원회는 교수·학생·교직원등이 각각 일정비율로 참여하고 있어 대학에 소속된 모든 사람들이 총장선출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5년 임기의 총장을 선출할때는 행정위의 부위원장이 선거위원장을 맡는다.대학총장은 이들3개 위원회의 위원장을 겸하고 있어 권한은 막강하다. 일본의 경우 도쿄대학 총장은 2단계로 선출된다.우선 학부,연구소별로 선출된 대의원들이 후보자 5명을 추천한다.그다음 5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교수 전체회의가 직선으로 1명을 선출한다.이때 본인에게 수락여부를 확인,수락하면 총장으로 확정된다. 그러나 프랑스와 일본에서 총장선출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어나거나 사회적 물의를 빚는 경우는 거의 없다.그것은 사회적 관습이나 문화가 우리와는 달라 사전에 조정이 되도록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첫째 사전협의(네마와시)의 사회문화를 지적할 수 있다.일본의 대학에도 친소관계나 파벌등의 갈래가 존재한다.하지만 파벌 또는 그룹들이 사전협의등을 통해 후보 또는 당선자를 조정함으로써 정면대결의 굉음은 일어나지 않는다.도쿄대의 경우 파벌,그룹조차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로 도쿄대학 총장직은 관료 최고직위인 사무차관보다 높은 대우를 받지만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다.총장이 예산과 인사권을 쥐고 막강한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단과대학(학부)과 전공별로 자치권이 강하기 때문이다. 셋째 총장은 보통 정년이 임박한 교수가 선출돼 4년 임기의 명예직 성격이 짙다.〈파리·도쿄=박정현·강석진 특파원〉
  • 「현대사회의 효」 세미나 박성수 교수 주제발표

    ◎“효는 인류문제 해결할 최고의 윤리”/현대사회 급격한 변화따라 갖가지 문제 야기/효의 「정서적 능력」 개발… 사회적 비극 극복해야 어버이의 날을 맞아 한국청소년연맹이 마련한 「현대사회의 효와 청소년지도」를 주제로 하는 세미나가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박성수서울대 사범대교수(교육학)가 발표하는 「현대사회의 윤리와 효」를 요약한다.〈편집자주〉 20세기의 과학발달은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인류의 생활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너무나 급격한 변화로 윤리적 덕목은 심각하게 파괴·훼손되는 위기를 맞았다.과학의 발달이 전통을 계승·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조치를 소홀히 한 채 이뤄졌기 때문이다. 특히 전통사회에서 절대적 권위를 인정받던 최고의 윤리덕목인 효마저도 현대사회에서는 별도움이 되지 않는 낡은 윤리로 비판받게 됐다.도덕적 허무주의와 도덕성에 대한 불신풍조까지 범람하기에 이르렀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라는 도덕적 명령은 동서양이 공통이다.서양에서는 기독교의 십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고 동양의 유교사상에서는 「물질적으로 부모를 섬기는 양구체의 효와 정신적으로 부모를 섬기는 양지의 효」를 모든 행실의 근본으로 삼았다. 효를 지배이념으로 하던 조선왕조에서는 부모가 살아 있을 동안의 효와 돌아가신 후의 효를 가르쳤다.격몽요결·동몽선습·내훈·계녀서 등에 살아계신 부모에 대한 공경·봉양·대봉·순종·돈목·보신·입신과 돌아가신 부모를 섬기는 상제·제례·양지의 효 등을 적어 부모 섬김을 최대의 윤리덕목으로 삼았다. 이처럼 효는 2천년이 넘게 동양사회를 지배해온 절대적 가치이며,현대사회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효는 인간을 인간답게 할 뿐 아니라 사회가 전통을 계승,발전시키도록 하는 기능도 지녔다.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능력을 배우는 데 가장 좋은 삶의 장치이며 문화적 제도다. 자녀가 부모의 뜻을 받드는 데 그치지 않고,그 스스로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성숙하는 것이 적극적인 효의 의미라 할 수 있다. 20세기는 인식적인 능력을 중심으로 하는 컴퓨터·반도체·통신 등 과학분야의 발전을 이룬 한 세기였다. 그러나 과학발전은 이혼·범죄·정신병·폭력 등 갖가지 인간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도움이 되지 못했다.오히려 청소년·가족교육·노인·윤리문제 등이 과거보다 늘었다. 21세기에는 인지적인 능력을 보완할 정서적인 능력의 개발이 요청된다.인간의 정서적 능력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발달하기 시작한다. 광범한 가족관계,이웃과의 관계,학교에서의 경험,직장과 사회에서의 정서적 능력은 모두 가족관계에서 시작한다.효야말로 사랑과 자비,연민과 공감,헌신과 희생,가치화와 열정,믿음과 애착 같은 모든 가치의 기본이다. 효의 기본정신은 인류의 보편적 도덕성으로서 어느 시대,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소중한 뜻을 담고 있다.과거로부터 전수된 도덕적 가치이면서 미래의 인류문제를 해결하는 창조적 윤리의 가치를 지닌 최대의 윤리덕목이다. 남은 문제는 효의 정서적 능력을 어떻게 개발해 개인·가정·사회·국가의 비극적인 문제를 극복해나가느냐 하는 것이다.효의 정서적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교육을 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실천력 있는 계획이 시급하다.
  • 남북대학교류 실현시키자(사설)

    전국 4년제대학 총·학장들의 자율협의기구인 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남북한 대학교육교류와 협력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남북한 대학총장회담」을 적극 추진키로 한 것은 좋은 발상이다.대교협이 지난 26일 주최한 세미나에서 박홍서강대총장을 통해 제기한 남북대학교육 교류제의는 남북의 실무대표들이 제3국에서 예비접촉을 갖되 본회담은 오는 8월15일 광복절을 전후해 개최하자는 것으로 우리는 이 제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지금으로서는 이 회담의 성사여부는 불투명하다.지난 89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지침이 제정된 이후 지난 2월까지 통일원이 승인한 우리대학 및 학술단체들의 대북교류계획 35건 가운데 북한측이 수용한 것은 단 한건밖에 없기 때문이다.과거의 경험에 비춰 이 회담도 북한당국이 선뜻 허용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그러나 4자회담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한반도 주변정세가 대화분위기 쪽으로 흐르고 있을 뿐아니라 최근 미국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남북학생대표들이 자리를 같이 한 일도 있어 앞으로의 여건변화에 따라서는성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간의 긴장완화와 평화유지를 위해서는 책임있는 당국간 대화가 선행돼야 한다.그러나 지금처럼 당국간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는 민간차원의 대화로 이를 보완할 수밖에 없다.그런 의미에서 남북대학총장회담이 열릴 경우 남북간의 화해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한편 사회·문화적 장벽을 허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회담이 성사된다고 해도 북한측이 정치문제까지 거론하면서 상투적인 통일전선전략을 구사하려 든다면 서로의 사상적인 이질감만 심화시킬 우려도 없지않다.북한당국이 이같은 고식적인 자세를 버리고 이 회담을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면 공동학술연구와 공동답사,자연과학 및 문화·스포츠분야의 교류,남북대학간 자매결연,교수·학생상호교환 등 남북의 대학교육교류는 크게 활성화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에도 기여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북한 당국의 슬기로운 선택을 다시한번 촉구한다.
  • 중견작가 정지권씨 개인전/서울갤러리서 21일까지

    중견서양화가 정지권씨가 16∼21일 서울갤러리(721­5968)에서 인간그림을 위주로 한 개인전을 갖는다. 발표작중 「낙원을 잃을 때부터 낙원을 찾을 때까지」란 작품은 인간의 희로애락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전시장 한 벽면을 꽉 메우는 무려 1천2백호 크기의 대작속에 남녀 일곱쌍의 나상군이 꿈틀거리듯 펼치는 표정과 몸짓은 『인간의 허무와 좌절,질시와 반목,불신과 냉소,참회와 사랑등 함축의 의미가 농축된 일대서사시』(미술평론가 김남수)란 평가를 받았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같은 외국 대작에서 만날 수 있는 웅장함과 생동감을 쫓고있는 이 작품의 인간상들은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특별한 감흥을 안겨준다.
  • 시인 고은/내 기질 꽃피울 곳은 역시 예술(작가를 찾아:5)

    ◎미학으로서의 역사를 미는 나는 정치적 유미주의자/중학 하교길 한하운 시집 주워 읽고 시인 꿈꿔/시집 「만인보」는 고달픈 민중의 삶 기록/통일이 특정세력의 구호였던 시대 끝나 인간을 하나의 소우주라고들 하지만 이 우주라는 비유가 고은(63) 시인에게서 처럼 걸맞는 대상을 만난 경우도 드물다. 어떤 자리에서든 한번이라도 고은과 마주앉아 봤다면,더욱이 그와 술잔이라도 기울여본 이라면 잘 알 것이다.빨아들일듯 이글대다가도 금세 세상잡사를 초개로 돌려버리듯 표연히 돌아앉는 눈초리와 넘실대는 거대한 에너지의 엄청난 감염성을. 시인으로서 그의 생산력은 초신성 터지듯 폭발적이다.그런가하면 블랙홀처럼 바닥을 알 수 없는 허무의식은 젊은시절 그를 잇단 자살기도로 몰아대기도 했다. 그의 세계에서 세인들이 갈라놓은 선악개념은 빛이 바랜다.인간적 가치를 넘어선 곳에서 우주가 불규칙적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듯 그의 내부에서도 늘 낡은 관념에 묶인 자아에 대한 사살이 일어나고 번번이 새 생명이 돋는다.그는 진흙위에서만 화려하게피어나는 연꽃의 미덕을 안다. 어느 때는 천진,제멋대로인 소년이다가 어느 때는 선승의 도통으로 속세를 내려다보는 예술가.민주화의 물결을 앞에서 끌며 감옥을 제집 드나들듯한 이상주의자인가 하면 어느 순간 무정하리만치 매서운 현실분석으로 돌변하는 정치사상가. 이 종잡을 수 없는 카오스 자체이며 마르지 않는 글샘 고은이 최근 왠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1년에 열권의 책을 쉽게 쏟아내던 그가 새책을 내놓지 않은지 어느새 반년. 『이제는 숨도 좀 돌리고 정리를 해가며 쓰려고요.하루 1백60장까지 쓰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많아야 50장이면 족합니다.오래 발효시켜 올 하반기쯤 큰 글을 하나 낼 계획입니다.「만인보」10∼12권도 이때쯤 나올겁니다』 젊은날 시인이 불교며 동양사상에서 받은 세례는 현실문제가 다급했던 80년대 내내 잠복해있다가 근작에 일제히 분출됐다.「화엄경」「선」「뭐냐」 등 소설과 선시집으로 오묘하며 허허로운 도의 세계를 빚어냈던 그는 다음 작품에서도 이를 더욱 파들어가보겠다고 한다. 『동양사상은 서구에서도대접받기 시작한지 오랩니다.보르헤스도 불교에 심취했었고 옥타비오 파스도 노장의 영향을 받았다지 않습니까.미국의 신과학주의 같은 것도 그렇고….종속이론이며 제3세계의 많은 저항적 정치이념이 사양길을 걷는 때에 그 정신문화는 오히려 주목받는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습니까.이것은 제1,2세계 문학이 퇴색했으니 동양사상이 다시 떠올라야 한다는 식의 대항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나는 서구의 것까지 껴안아 넘어서는 더 넓은 대안의 문학을 제시해보고 싶은 겁니다』 진보·저항문인의 대표적 단체로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창립했고 그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까지 지냈던 그로서는 90년대 한국 정치상황의 급변을 매번 눈을 씻고 다시 보아왔다. 『이번 총선 때도 보세요.과거 민주화운동을 같이했던 동지와 후배들이 무소속,민주당,국민회의,신한국당까지 뿔뿔이 흩어져 나왔더군요.과거엔 짐작이나 했던 일입니까.몹쓸 선거역병들이 여전히 들끓었지만 나는 크게 보아 발전이고 적어도 발전을 향해 가고 있다고 봐요.몸살을 실컷 치르고 나면 우리 시민사회가 성큼 무르익겠지요』 그는 우스개삼아 『사실 정치라면 내가 누구보다 기질이 있다』고 덧붙인다. 『정치적 아이디어 풍부하지 선동력,토론능력,싸움꾼 근성까지 어느 출마자에 뒤지지 않지요.하지만 이게 직업정치에만 필요한게 아닙니다.민주주의를 꿈꾸고 독재의 모순과 맞섰던 정치적 인간으로서 나는 더욱 떳떳하니까요.본질적으로 내 기질을 꽃피울 곳은 누가 뭐래도 예술이겠고요』 중학 3학년 때 한시간을 넘게 걸어다녔던 하교길에서 우연히 한하운 시집을 주워 읽은뒤 시인을 꿈꾸기 시작한 그에게 예술혼이란 말은 숙명과도 같은 울림을 띤다.그래서인지 『나는 앎의 궁극목표가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과학으로서의 역사 보다 미학으로서의 역사를 믿는다.나는 정치적 유미주의자다』라는,다른 사람이 했으면 엉뚱했을 호언조차 자연스럽게 들린다. 지난 83년 결혼과 함께 들어앉은 경기도 안성군 대림동산 장미골 집에서 그는 13년째 살고 있다.이곳 2층에 차려진 거대한 서재에서의 세월은 계절병처럼 찾아든 몇번의 구속을 빼곤 생애 처음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문학과의 밀월을 흠뻑 즐긴 기간이었다.이 시절에 그는 고달픈 민중삶에 대한 거대기록인 시집 「만인보」를 쓰기 시작했고 네권짜리 장시집 「백두산」을 맺었다.나이 쉰둘에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딸도 얻었다. 눈앞에 펼쳐진 산맥에서 이름을 딴 그 딸 차령이가 어느덧 국민학교 5학년.자라나는 자식을 보며 노시인은 누구보다 간절히 풍요로운 미래를 꿈꾼다.그때마다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화두는 통일이다. 『통일이 민주화운동 세력들만의 구호이던 시대는 지났지요.이제는 어느 편도 통일이 보편적 염원이라는 것을 부정하진 않아요.저마다 나름의 통일방안을 내세우는 이도 많지만 통일이 어찌 이뤄질지야 운명만이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때를 대비해 민족의 자기동일성을 이뤄나가는 일이에요.저토록 폐쇄적이고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 북한을 그대로 두고 통일이 된다 해도 얼마나 문제가 많겠습니까.북한에 대한 창조적 비판과 민족애로 굳고 맺힌데를 풀어줘야 합니다.이들에게도 통일을 준비시켜야 해요.이런 저런 이유로 통일은 한 20년쯤 걸리지 않겠습니까.나는 그때까진 살 작정이요』〈손정숙 기자〉 □연보 ▲1933년 전북 옥구군 용둔부락(현 군산시 미룡동)에서 고근식·최점례의 3남중 장남으로 출생.본명 고은태 ▲군산중학교 수석입학(47년) ▲전쟁의 참혹상에 충격받고 두차례 자살시도.이 와중에 한쪽 고막이 녹아버림.혜초승려를 만나 출가(50∼51년).법명 일초(52년) ▲조지훈의 천거로 「현대시」에 시 「폐결핵」발표.「현대문학」에 서정주의 단회추천으로 등단(58년) ▲첫시집 「피안감성」발표(60년) 환속(62년) ▲시집 「문의마을에 가서」(74년)「조국의 별」(84년)「네 눈동자」(88년)「만인보」9권(86∼89년) 장시집 「백두산」4권(87∼91년) ▲「이중섭 평전」(73년)「이상평전」(74년)「한용운평전」(75년) ▲기타 소설집·평론집·산문집 등 저서 1백여권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초대 대표간사(74년)국민연합 부위원장(79년) 한국민예총 공동의장(89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90∼91년) ▲83년 함석헌 주례로 이상화(이상화·중대교수)와 결혼 ▲제3회 만해문학상(88년) 등 수상
  • 국민은 「안정속 개혁」 택했다/여 선전 배경과 의미

    ◎「이·박 카드」 적중… 수도권 예상밖 성과/지역감정의 높은 벽 못넘어 아쉬움도 15대 총선이 안정속의 개혁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신한국당의 사실상 승리로 막을 내렸다.집권여당이 고전하리라던 당초 예상을 깨고 안정적 정국운영이 가능한 의석을 확보한 것이다. 일각에선 이 결과를 놓고 야권의 공천헌금 비리,북한의 판문점 무력시위로 인한 안보위기등 돌발변수들에 힘입은 것으로 주장한다.그러나 장학로 축재사건등 여당의 악재도 있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적은 분석이다. 따라서 안정을 바탕으로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문민정부의 노선을 국민들이 외면치 않았다는 게 적실한 해석일 것이다.즉 다수 국민들이 집권당의 패배로 개혁포기나 과거로의 회귀를 원치 않고 있음이 입증된 셈이다. 물론 김영삼 정부가 지난 3년간 추진해온 개혁작업의 방법론에 기득권세력등 일부 국민이 이의를 제기해온 것은 부인키 어렵다.이번 총선에서도 일부 그같은 여론이 반영됐다. 하지만 국민들이 정부의 개혁노선에 적어도 큰 방향에서는 우호적 태도를 보내고 있음이 선거결과가 뒷받침해준다.특히 전통적으로 야세가 강한 서울에서 여당이 선전함으로써 서민과 젊은층을 포함한 다수 국민들이 사정등 반부패 드라이브와 금융실명제등 경제정의 구현 의지에 지지를 보냈음을 짐작케 한다. 호남과 충청지역에서 여당후보가 당선되는등 지역주의에 반하는 작은 흐름도 눈여겨 볼만하다.국민 소득수준 향상과 함께 합리성을 바탕으로한 새 정치문화가 정착될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거시적 차원에서 G­7 진입과 21세기를 앞둔 유권자 의식이 선진화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다만 이번 총선에서도 3김에 대한 유권자들의 애증과 맞물려 지역감정의 벽이 아직 두텁다는 것을 보여줬다.지역분할구도에 기초한 3김정치가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현실을 재확인시켜 준 것이다. 신한국당,국민회의,자민련등 주요 정당들은 자당 총재의 출신지인 부산·경남과 호남,충청권등에서 다수 의석을 휩쓴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반면 뚜렷한 지역연고가 없는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많은 의석을건지지 못했다. 따라서 수도권과 경기등 중부지역에서의 선전이 여당 승리의 원동력이었다.여당이 철저히 당선위주의 공천을 한 것도 먹혀들었으나 수도권이 지역연고가 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소지가 적은 것도 승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무대를 통해 다수의 정치신인이 등장한 사실은 3김정치가 이제는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한다.특히 대권욕을 앞세운 낡은 정치의 틀을 깨고 새로운 정치질서의 태동을 알리는 신호는 수도권에서 두드러졌다. 신한국당과 국민회의등이 내세운 젊은 정치신인중 일부만 당선됨으로써 정치판의 물갈이가 충분하지는 못했다.하지만 다수 거물이 신인에게 무릎을 꿇음으로써 그 가능성의 싹은 보였다. 물론 선거 막판에 불거져나온 북한의 판문점 무력시위,즉 이른바 DMZ변수가 신한국당의 선전을 어느 정도 도왔다는 관측도 있다.유권자들의 안정희구 성향을 더욱 부추긴 것으로 짐작되는 까닭이다. 전략적으로는 「이회창·박찬종」카드로 야권의 두김씨를 맞서도록 한 점이 적중했다는 분석이다.또 김윤환대표와 이만섭고문등을 통해 새정부 출범 이후 무주공산처럼 떠돌던 대구·경북(TK)정서를 여당지지로 회귀시키는 노력을 편 점도 여당 승리에 일조했다. 역대 총선에 견주어 낮은 투표율에도 서울등에서 신한국당이 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야당성향의 20∼30대 「모래시계 세대」가 대거 기권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수도권의 젊은 유권자들이 야당에 등을 돌린 것은 정치적 허무주의가 심화된 탓으로 풀이된다.고질적인 공천헌금 비리 및 DJ의 정계은퇴선언과 명분없는 복귀,민주당 분당등이 그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도 있다.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은 수도권에서 어필하지 못한데다 경북과 강원지역에서도 목표의석에 미달했다.이는 반드시 「역사 바로세우기」등 신한국당의 개혁노선에 대한 이 지역 유권자들의 심정적 지지를 가리킨다고 보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분명한 것은 자민련이 충청지역당적 이미지를 완전히 불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구본영 기자〉
  • 조선족간부의 어제·오늘(압록강 2천리:28)

    ◎문혁후 거의 복권… 조선족 자립에 앞장/부빈사업 보조금… 인삼재배 등 부업 장려/경제문화교류협 창립… 요령성­남한중기 교량역도/문혁때 간첩누명 옥고… 민족의식 새로이 한국과 같은 나라는 단일민족국가라서 국가와 민족이 공통의 의미를 갖지만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그래서 요직을 차지한 간부들은 자신의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을수 없다.더구나 소수민족의 간부가 자기민족의 이익을 도외시하면 욕보따리를 등에 지니고 다니기 십상이다. ○의사차출 무료진료 요령성 관전현 전 부현장 김창영(67) 선생은 민족문제를 염두에 둔 좌우명까지 가지고 있다.그는 본래 평안북도 초산태생으로 교원을 지내다가 현 공청단위원회 서기로 있을 무렵 문화대혁명을 맞았다.조선간첩의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 터득한 것이 민족문제였다.누명을 벗고 나와 지난 70년대말 현 부현장이 된 그는 조선족을 위해 많은 일을 해냈다. 『관전현은 산골이라 지금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디요.그러니 70년대와 80년대는 오죽했겠습네까.1982년도인가 기래요.영전진 비구촌에 갔더니 조선족 10여호가 사는데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디요.목불인견이란 말이 실감납데다.집이란 거이 비막이 바람걸망도 안되고 옷은 조각보 저리가랄 정도로 남루했디요.병이 나도 약이 있나….물 한모금 제대로 마실 우물 조차 변변하지 않더란 말입네다.소 여물 썰 작두가 없어서 식칼을 썼으니 할말이 없디요』 그는 농촌을 돌아보고 와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부빈사업을 직접 틀어쥐었다.현정부 산하의 각 부서와 향과 진간부들에게 지시하여 가난한 집 몇가구씩을 떠맡겼다.그리고 자신은 비구촌을 손수 챙겼다.비구촌을 책임진 그는 위생국장을 불러 의사를 차출,무료진료는 물론 수리국에서 돈을 대어 상수도를 놓았다.은행 대부금을 끌어 농사 이외의 부업을 장려하는 다종경영을 부추기기도 했다. 진강향 녹강촌에도 조선족 10여가구가 살았는데,찢어지게 가난한 것은 매 한가지였다.털면 먼지밖에 나올 것이 없는 가난 뿐이었다.김창영선생은 당시 부현장 직책을 빌려 1만5천원의 보조금을 내려보냈다.그돈으로 인삼을 재배하고 그물을 사 민물고기를 잡았다.마을 강에서 서식하는 이른바 해방고기라는 지조공어를 일본에 전문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비옥한 땅과 수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화대혁명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사람들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그 격동의 시기가 지나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나름대로 구상했다.단동시 통전부에 있다가 1986년 퇴직한 김인형(69) 선생도 그런 사람이다.한때는 잘나가는 당원으로 승승장구하는 촉망되는 인물이었으나 문화대혁명에 된서리를 맞고서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단동시에 예배당 건립 그는 경상북도 의성 태생으로 1930년 길림성 반석현으로 이주해온 이후 혁명에 참가했다.1950년에는 지원군에 들어가 요동성 재정청 군비관 주임과 원을 맡았고,이후에는 안동지구 당위원회 감장위원 겸 농업감찰과 과장으로 일했다.이 때에 문화대혁명을 만나 졸지에 조선간첩의 누명을 쓰고 꼬박 10개월간 감옥에 갇혔다 나와서는 오늘의 향에 해당하는 양목공사로 쫓겨가 2년간 노동개조를 당했다. 『문화혁명이 끝나서 통전부 부부장을 맡고 보니 오십고개를 넘었더란 말입네다.팔팔한 나이 덧없이 까먹고 일할 시절이라야 칠팔년밖에 안남았습데다.기래서리 지나간 세월보다 곱배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디요.문화혁명이 끝나고 나서 조선족을 위해 큰 일을 세가지 했다고 자부합네다.그거이 보람이라면 보람이디요』 그가 문화혁명 이후 단동시 통전부에 자리를 잡고 처음 한 일은 조선족의 우파 낙인을 벗겨주는 것이었다.그래서 무장부 부부장 직책 이외에 단동시 당위원회 우파평반사무실 주임 자리 하나를 더 맡았다.우파평반이란 우파의 누명을 벗긴다는 뜻인데,그는 우파로 몰려 농촌으로 쫓겨간 사람들을 다시 도시로 불러들였다. 그가 문화대혁명 이전의 제자리로 돌려놓은 사람들은 꽤 많다.조선족학교의 출중한 교원이었던 이철과 오학중,사정부 민족과에 있던 이화의와 단동시 청년단위원회 소년부장 홍두표가 그들이다.이화의의 경우 민족사업을 했다는 이유로 민족분열주의자로 몰려 옥살이와 노동개조를 당했다.허무한 정치투쟁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었던 이들은 다시 단동시로 돌아와 일정한 보상도 받고 옛날의 일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단동시에 예배당을 세우는 데도 공헌했다.단동시로 이름이 바뀌기 이전 단동시내에는 두곳에 예배당이 있었다.역전과 제2중학교 옆에 있던 두 예배당은 문화대혁명 때 건물을 빼앗기고 교인들도 강제 해산되었다.그가 문화대혁명 이후 몸담았던 통전부라는 부서는 통일전선사업부의 준말로 종교및 기타 단체를 관장했기 때문에 이들 예배당을 세워주었다.상급 정부에 건의하여 64만원의 자금을 타내어 예배당을 재건했던 것이다. ○한족에도 우리말 보급 문화대혁명 뒤에 단동시에서 사라진 조선족 고중의 문을 다시 열게 한 사람도 김인형선생이다.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고중이 단동시에 있었으나 문화혁명 때 관전현으로 내몰렸다.이에 따라 단동시와 다른 현에서는 중학교까지는 지방 조선족학교에 보내고 교육의 질이 낮은 산골 관전현 조선족 고중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았다.그래서 조선족 아이들이 한족 고중에들어갔다. 그는 관전현으로 옮긴 조선족 고중을 다시 단동으로 유치하기로 결심했다.결국 시 당무위원회 재가를 받아 지난 1982년 국가로부터 60만원의 자금을 받았다.그리고 압록강 기슭에 3층짜리 교사를 지었다.또 각지에서 실력있는 교원들을 초빙하고 교원들의 주택과 가족들의 일자리도 마련해주었다. 중국의 조선족 제1대 간부들은 비록 나이가 들어 일선에서 물러났다 하더라도 민족을 위해 일하는 이들은 많다.요령성 민족사무위원회 정법처 처장 자리에 있을 때 요령성 조선신문 복간과 조선민족과학기술보급회 창립에 공헌한 우철희(65) 선생은 지금 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상근 부이사장겸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이 협회는 요령성내 1백40개 시와 3천여개 기업과 연계를 맺고 한국의 중소기업과 다리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민간차원에서 발해대학,조선족실험직업학교,심양세종조선어학교 등을 꾸려왔다.심양세종조선어학교에서는 조선어를 모르는 청년과 학생들,외사와 무역부문에서 일하는 한족에게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다.이미 초급반과 고급반을 졸업한 사람이 5백여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 기저귀 법정싸움 “2라운드”/쌍용,샘 방지특허권 공방 일단 승소

    ◎유한킴벌리,판결 불복 항고심 청구 지난해 쌍용제지와 유한킴벌리간의 종이기저귀 특허권을 둘러싼 법정공방은 법원이 쌍용측에 승소판결을 내림으로써 일단락됐다. 그러나 유한킴벌리가 법원의 판결에 근거가 된 특허청의 특허무효심결이 부당하다며 항고심판을 청구하고 쌍용이 새로 출시한 「울트라큐티 뉴파워슬림」에 대해서도 특허권 침해로 가처분신청을 한 상황이어서 불씨는 남아있다.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은 지난해 8월 쌍용제지가 유한킴벌리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내려진 기저귀 제조 및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에 대해 26일 가처분취소 판결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달 15일 특허청이 유한킴벌리의 종이기저귀 특허내용에 대해,알려진 기술로 신규성이 없고 청구범위가 포괄적이라는 이유로 특허무효심결을 내린데 따른 것이다. 두 회사간의 종이기저귀 법정공방은 지난해 쌍용이 샘 방지용 덮개를 단 「큐티무니만」등 2종의 기저귀를 출시하자 유한킴벌리측이 자사가 고안한 기저귀옆 보조날개에 대한 특허와 실용신안권을 침해했다며 법원에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면서 촉발됐다. 이어 쌍용측도 특허청에 유한킴벌리의 특허권에 대한 무효심사신청을 내고 법원에 판매금지 가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을 제출,양사간의 공방이 본격화됐다.
  • 소설가 최인훈(작가를 찾아:2)

    ◎“내소설은 모두 남북문제의 변주”/6·25때 월남… 떠돌이 생활해온 처지가 원형/하지만 그 체험을 「날것」으로 드러내지는 않아/작품통해 끊임없이 질문… 한번도 결론 제시 한적 없어/정말로 문학하겠다면 뭐든지 써 볼수 있어야 해방과 한국전쟁을 통해 남북한을 골고루 살아봐도 마땅치 않자 중립국행을 택했다가 그 중립국행 선상에서 바다에 뛰어든 이명준.한국 소설사에서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처럼 여러겹으로 문제적인 인물도 드물다.자유당 독재가 막을 내린 60년말 발표된 최인훈의 「광장」은 「이도 저도 아니다」는 전면 부정의 이념적 선택을 한국 지성사에 안겨줬다.그 선택은 뿌리뽑힌 4·19세대의 떠돎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이었다.그같은 결말의 바닥엔 작가의 개인사,더 나아가 실존적 허무의식에 부대끼던 분단세대 전체의 의식세계가 깔려있었던 것이다.어느 덧 분단문학의 고전이 돼버린 소설 「광장」.그로부터 36년이 지난 지금 「광장」이 던진 질문,「광장」의 선택은 아직도 유효할까? 『동서냉전이 누그러진 지 오래지만 남북관계의 본질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요.내 작품이 문제삼았던 것이 분단인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또한 갇힌 시대상황에서 인간이 어찌 살아야 할지 다같이 생각해보자는 것이기도 했고요.우리의 자유를 가로막는 제약중에도 분단은 뜻밖에 요지부동으로 굳어가고 있었고 이 사슬은 아직도 쩔그럭대고 있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냉정할이만큼 흐트러짐없는 한마디 한마디로 최인훈씨는 분단의 상처가 현재진행형이라고 못박는다. 『따지고 보면 내 소설은 모두 남북문제의 변주』라는 본인의 얘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분단체험은 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두루 꿰뚫고 있다.작가는 두만강변 회령에서 태어나 해방후 원산으로 이주했고 6·25를 틈타 가족과 월남했다.의식했든 않았든 그는 반쪽 고향에서 떠돌이로 살아온 자신의 처지를 원형으로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그것은 일본 학교에서 히라가나를 깨칠락 말락하자 밀어닥친 해방으로 돌연 미국식교육에 내던져지고 금새 또 6·25에 휩쓸린 지난 세대 청년들 전체의 얘기다.한 평론가가 「피란민 의식」이라고 지적한 민족의 공동상처가 작품을 떠받쳐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번도 체험 그 자체를 날 것으로 드러내놓지 않았다.「광장」「그레이 구락부 전말기」「회색인」「화두」등 작품에도 빈번히 그려지듯이 평생에 걸친 독서편력은 그의 주인공들을 끝없이 사색하고 반성적이 되도록 만들었다.그는 모든 문제에 거리를 두고 되씹어 재구성하는 독특한 스타일로 한국문학에 새롭게만 느껴지는 지식인소설,관념소설을 열었다. 『「화두」를 실험적 전위소설이라고 어려워하는 반응들을 보곤 아주 놀라웠어요.그정도는 20세기 세계문학에선 이미 공유재산이 된 수법 아니요? 미술이며 음악은 난해해도 반기면서 소설만은 한글깨친 사람 다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심심하지요』 『유년시절,창작뒷얘기,독서단상 등을 한데 버무려 역사를 말하려 했다』는 93년작 「화두」는 미묘한 찬반양론을 불러온 게 사실.『한 개인의 체험으로 세기말적 실상을 묘파해냈다』『현란하게 무르익은 대가의 사상』이라는 찬사의 한켠에선 『육질은 없고 앙상한 관념뿐』이라는 비난도 따랐다.『10년넘게 소설을 쓰지 않더니 최인훈의 시대는 역시 갔다』는 고약한 수군거림도 들렸다. 『내 작품들은 끊임없는 질문으로 무언가를 구하려는 자세일 뿐 한번도 결론 자체를 제시한 적이 없소.「화두」라는 말부터 결론·예언·체계화 따위 굳은 자세와 대척되는 우리문화의 귀한 정신자세 아니오.그런데 어떤 이들은 아직도 미완성인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너무 쉽게 결론내 버려요.80년대에 작품을 별로 안썼다지만 「길에 관한 명상」이며 「문학과 이데올로기」 등 산문집도 두툼한데.소설만 정통문학이고 다른 것은 과외라고 치부하는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문학을 하겠다면 뭐든 다 써볼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오』 그간 그의 문학적 갈증은 너무 커서 소설이라는 한 그릇에만 가둬 둘 수 없었던 것은 사실.70년대 써 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둥둥 낙랑둥」 등의 희곡작품으로 그는 지난해 말 프랑스에서 열린 「한국작가포럼」에 소설가가 아닌 극작가 자격으로 초청받았다.우리 연극사를 독식하다시피 해온 사실주의 전통에 대든 이 작품들에서 작가는 그의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운명에 적극 감응하는 생기넘치는 인물들을 창조해냈다.그런가하면 사유깊고 지적인 그의 문장은 한국문학사에 독특한 에세이 문체로 주목받았다. 『산문은 한 작가의 문제의식과 정서의 씨앗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데다 작가의 문장력이며 기본기를 완전히 들통내는 장르지요.따라서 외국에선 고급한 산문작가는 소설가 이상으로 쳐주는데 우리는 정반대로 산문을 너무 푸대접해왔어요.떼밀린듯 개항을 맞은 근대사로 정신문화 자체가 뿌리째 흔들렸기 때문이 아닌가 아쉬워요.비단 문학 뿐 아니라 역사·철학적 소양이 높았던 옛적 선비들에겐 산문이 가장 인기있는 장르였거든요』 산문정신을 도두 말하는 그에게선 영락없는 문학청년의 열정이 엿보인다.아무튼 최인훈과 같은 작가를 가져 한국문학사는 풍요롭다.성마른 사실주의가 소란스럽던 지난시절 천천히 씹어 생각하는 최인훈의 목소리는 한국문학에 숨돌릴 틈을 터줬다.문학평론가 김윤식교수(서울대)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근대 시민사회 인간의 자의식을 탐구하는 수단이라고 할때 그 장르적 특성을 끝까지 밀어붙여 본 이는 우리 문학사에서 이청준을 제외하곤 최인훈이 유일하달 정도』라고 평가한다. 작가는 최근 『정보화 시대에 문학이 어떻게 하면 잡다한 정보들로부터 자신의 위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하는 점을 고민하고 있다.『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만도 못한 것으로 전락하지 않게끔 하는 특성은 역시 높은 정신적 품격이 아닌가 해요.영상시대다 뭐다 하지만 그같은 매력에 끌려 평생 문학에 매달려온 나로서는 문학의 장래를 낙관합니다』 『살아생전 소원이 통일이지만 역사를 누가 예측하겠느냐』는 말엔 이명준을 무턱대고 바다로 몰아넣은 젊음의 혈기는 가라앉고 조심스러운 지혜가 묻어난다. 『돌이켜보면 광장의 주인공은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할일에 너무 조바심을 내고 금새 선택을 해버린 것도 같아요.지금 「광장」을 다시 쓴다면 결론이 같을 수는 없을 겁니다』 □약력 ▲1936년 4월13일 함북 회령에서 목재상인 최국성의 장남으로 탄생 ▲해방통에 원산으로 이주(47년)했다가 6·25때 해군함정 LST편으로 가족과 함께 월남(50년) ▲대표작 소설 「광장」(60년) 「구운몽」(62년)「회색인」(63년)「서유기」(66년)「총독의 소리」연작(67년∼)「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연작(69년∼)「화두」(93년)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70년) 등 ▲단편 「웃음소리」로 동인문학상(66년)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로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77년)희곡 「달아 달아 밝은 달아」로 서울극평가그룹상(79년)등 수상 ▲아이오와 대학 초청으로 도미(73년) 4년간 미국체류.이때의 대폭 개작을 비롯,평생 6회에 걸쳐 「광장」을 개작 ▲문학과 지성사에서 「최인훈 전집」완간(79년) ▲현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교수
  • 서태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이동연문화평론가(기고)

    지난 1월31일,모처럼만에 정답게 내린 함박눈을 뒤로 한채 「서태지와 아이들」은 4년간의 음악활동을 공식적으로 마감했다.그리 길다고 할 수 없는 이들의 음악여정은 해방이후 50년을 걸어온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획을 그으며 가장 충격적인 데뷔에서 가장 극적인 은퇴로 달려와 마침내 가쁜 큰 숨을 내쉰 것이다.한 가수의 잠적과 은퇴에 대해 언론과 대중들이 이처럼 첨예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으며,이미 예견한 일이었지만 공식은퇴의 수순을 밟아 떠나간 그 자리의 공허가 그들을 사랑했던 이들에게 그토록 「슬픈아픔」이 될 줄은 몰랐다.대중스타의 영고성쇠는 어떻게 보면 자연의 이치이겠지만,서태지의 음악적,문화적 존재는 떠나고 난후에 오히려 큰 의미로 다가온다. 돌이켜보면 이들 음악의 파격적인 형식과 스타일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9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92년 데뷔때 들고 나왔던 랩과 힙합댄스는 신세대들의 새로운 감성과 욕망에 부합하면서 우리 일상의 대화에 「랩」이라는 문화적 신드롬을 낳게했고,우리의 전통가락과 랩과 록음악을 결합시킨 「하여가」는 대중가수가 단순한 「딴따라」가 아닌 그의 말대로 「창조적 고통」을 끌어안은 당당한 문화 주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3집에 이르러 서태지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모순이라 할 수 있는 분단과 교육의 문제를 그 문제의 심각성에 걸맞는 파격적인 형식으로 담아냈고,4집의 갱스터랩과 그 형식에서 우러나온 메시지는 표절시비에 휘말리기는 했지만 급격하게 물질화된 도시문화에서 소외된 자를 대변했다.새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그들의 곡과 춤사위와 패션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그들을 모방하려는 아이들은 그들만의 「또래문화」를 만들어냈다.서태지는 음악만이 아닌 매체와 광고와 이미지,그리고 대중의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살아 숨쉰다.말하자면 서태지는 우리 시대의 문화생산과 소비의 중심부에 선 가장 「문제적인」 문화주체인 것이다. 그가 단지 유행을 일으키고 유행에서 끝나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청소년 팬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알 수 있다.그 시선은 감각주의에 정신이팔려있는 여느 그룹들과는 다르게 청소년 자신들의 삶의 문제에 깊게 다가가 있었다.약물중독의 위험을 경고했던 2집의 「죽음의 늪」에서 입시위주의 교육체제를 실날하게 비판했던 「교실 이데아」,그리고 청소년 가출의 심각성을 제기했던 4집의 「컴백홈」에 이르기까지 서태지 음악의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그가 자랑스러워했던 청소년 팬들의 고민과 갈등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지난 4년간 신세대들의 우상으로서 서태지는 좀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대중스타는 대개 스타의 현상적인 이미지를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호소하지만,서태지의 경우는 단지 현상의 이미지만으로 대중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장 고민하는 문제들을 노래하면서 다가간 것이다.그래서 스타와 대중사이에서 야기되는 우상의 신화는 허무한 환상만이 아닌 구체적인 동경의 내용을 갖게 되는 것이다.이것이 그가 김건모와 룰라라는 스타와 다른 점이다. 이제 다시는 그 모습으론 볼 수 없게 된 서태지의 음악적인 열정은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신세대들에게 미래에 대한 자신들의 삶의 태도를 두가지 방향에서 지시해 준다.그것이 바로 「도전의식」과 「실험정신」이다.변화하는 현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는데 두려움이 없는 도전의식과 그 의식을 새로운 형식을 통해 실험하는 창조적인 정신이 서태지 자신의 음악을 추동시킨 두 축이면서,그와 맞닿아 있는 신세대들의 겸비해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떠나는 길목에서 못내 아쉬워 울음을 터뜨리고 길바닥에 주저앉은 어린 학생들을 바라보며 그가 마지막 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도전의식과 실험정신이 아니었을까.『팬들의 기억속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고 싶다』는 그들의 소망이 문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자기의 삶의 창조성을 위해 늘 도전하고 실험하는데 힘이되는 메시지이길 바란다.
  • 위장결혼(외언내언)

    고대의 결혼풍습에 약탈혼이라는 게 있다.신부가 모자라던 시절 신랑이 친구와 작당하여 이웃마을 처녀를 납치해오는 방법이다.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양가댁 과수를 홑이불에 싸서 둘러메고 달아나던 보쌈풍습이 있었다.개가가 여의치 않던 시절,「과부 업어가기」는 수절의 인습을 허무는 인간다움이 깔려 있는 것이다. 요즘엔 어떤 목적을 위해 가짜로 결혼식을 올리는 위장결혼이라는 게 생겨났다.합법적 입국이나 취업을 위해 엉뚱하게 악용된 위장결혼은 60∼70년대 미국이민이나 일본취업용으로 성행했었다.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는 교포와 서류상 부부가 돼 출국한 뒤 현지에서 이혼절차를 밟는다.돈벌이를 위해 일본인과 위장결혼,일본에 입국했다가 이혼을 안해주고 매달 돈만 울거내는 사기꾼에게 시달리는 여성도 많았다. 농촌 총각이 신부기근으로 장가를 못들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었을 때 중국 교포처녀와 우리 농촌 총각의 짝짓기가 성행했었다.외국산 신부를 수입하기보다는 같은 동포 사이의 짝짓기가 훨씬 자연스러운 결합이 아닌가.몇년전까지만 해도 현지 교민회와 농협등 국내단체의 주선으로 「맞선여행」이 성황을 이루었고 그렇게 맺어진 부부가 우리 농촌을 지키며 잘 살고들 있다. 그이후 교포처녀의 사기결혼이 속출하기 시작했다.93년 무렵부터 결혼해 국적을 취득한 뒤 패물등을 챙겨 잠적하거나 3∼4개월만에 일자리를 찾아 가출하는 신부가 늘었다.심지어는 유부녀가 처녀를 가장,시집오는 경우까지 생겼다.가엾은 농촌 총각을 울리던 사기극이었다. 이제는 중국 교포여성에게 위장결혼을 알선,거액을 챙기는 회사까지 등장했다.이들은 내국인 독신자를 모집해 중국으로 데리고 가 결혼식을 올리고 귀국해 초청장을 보내주는 수법을 썼다.그 대가로 1인당 5백만∼7백만원을 받았다니 교포여성의 출혈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 전에는 위장결혼을 미국·일본에 수출했는데 이젠 중국에서 수입하는 꼴이 돼버렸다.이것도 세태의 변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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