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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위공무원단제 살아남을까

    ‘참여정부의 고위공무원단제가 새 정부에서도 살아 남을까.’ 이명박 당선인을 비롯한 인수위에서 연일 정부 조직 축소개편 발언이 쏟아지면서 관가에서는 ‘고위공무원단제’의 존폐 여부에 촉각을 모으고 있다. 정부 조직 슬림화는 현재 1600여명에 이르는 고위공무원단의 축소, 개방형·공모형 직위 운영 등의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위공무원단제는 참여정부가 정부 인사 혁신차원에서 인사패러다임을 계급 중심에서 직무 중심으로 바꾸겠다며 지난 2006년 6월부터 도입한 제도다. 관가에서는 고위공무원단의 향후 운영과 관련,“새 정부의 철학과 뜻을 같이 한다.”는 주장과 “이번 기회에 폐지하거나 대대적인 보완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갈린다. 고위공무원단제의 실무 부처인 중앙인사위원회는 “인수위 업무보고 때 고위공무원단 존폐에 대한 발언이 전혀 없었다.”며 이 제도의 지속 쪽에 무게를 뒀다. 인사위 관계자는 15일 “고위공무원단제는 일 잘하는 정부를 구현하겠다는 새 정부의 국정 운영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밝혔다. 능력 위주의 인사, 부처간 벽을 허무는 인사 교류, 민간에의 공직 개방, 성과 중심의 보상 등을 내세우는 고위공무원단제는 새 정부의 정책 방향과 같다는 설명이다. 중앙 부처의 한 관계자도 “새 정부는 개방형, 공모형 직위 등을 통해 자기 사람을 심을 수 있다.”면서 “인사 재량권이 대통령에게 많이 확보돼 있는 이 제도를 굳이 없애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 제도가 당초 취지와 달리 무늬만 고위공무원단제로 변질된 만큼, 폐지하거나 전면 손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행자부의 관계자는 “과거 1·2·3급인 3단계 고위공무원이 가·나·다·라·마급 등 5단계 고위공무원단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계급제가 더 심화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허만형 건국대 교수는 “정부 조직을 축소한다면 하위직 공무원을 줄일 것이 아니라 고위공무원단부터 줄여야 할 것”이라면서 “정부 개혁을 위해서는 고위공무원단제도 개혁의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중앙인사위측은 “이 제도가 시행된 지 불과 1년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면서 “개방직위, 공모직위 등 공모기간이 길어지면서 업무 공백을 빚는 등 시행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만 보완하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盧 “회의해도 말짱 헛방” 李 “갈라진 사회를 통합”

    “회의해 봤자 말짱 헛방 아니냐.”(노무현 대통령) “통합을 이루는 대통령이 되겠다.”(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권력무대를 떠나는 이와 오르는 이의 심경이 극명하게 교차하는 하루였다. 듣기에 따라서는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기싸움으로도 받아들여진다. 9일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참여정부 마지막 연간 경제점검회의에서 임기를 한 달여 남긴 ‘떠나는 자’의 착잡함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회의에 앞서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올해 경제전망과 경제 운용방향을 설명하려 하자 “우리가 올해 경제운용 방향을 얘기해 봤자 말짱 헛방 아니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노 대통령은 “(회의를)안 하려니까 사보타지하는 것 같고 게으름을 부리는 것 같고, 하려니까 계속 정책을 안 할 사람이 보고받는 게 좀 이상하다. 공부나 하자.”고 푸념했다. 권력의 허무함이 묻어나는 맥빠진 언급으로 들리지만 인수위측이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근간을 뒤흔드는 데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도 해석된다. 노 대통령은 회의 뒤 “정권교체기에 금융과 부동산 시장, 물가 등 경제상황 점검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과 사회보험 통합징수법, 임대주택법 등 참여정부 임기 내 마무리해야 할 주요 정책 입법을 임시국회에서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청와대 홍보수석실도 브리핑 자료를 내고 “인수위측이 ‘참여정부가 부동산 정책에서 유동성 관리와 주택 공급을 소홀히 했다.’며 왜곡된 평가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이 당선인은 새 무대의 주연을 맡는 자신감으로 넘쳐났다. 이 당선인은 이날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주최 당선 축하연에서 “우리 사회가 갈기갈기 찢어져 있다.”면서 “모든 분야에서 하나가 되는 큰 변화가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사회통합을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이 당선인은 “우리 사회는 가를 수 있는 모든 것이 갈라져 있다. 지역적으로도, 세대 간에도, 이념적으로도 도대체 가를 수만 있다면 다 갈라져 있다.”고 전제한 뒤 “그동안 갈라져서, 찢어져서 이익 받는 사람들이 권력을 갖고 권력을 유지했다.”고 참여정부를 평가절하했다. 이어 “모든 것이 갈라져서는 힘을 쓸 수 없고, 갈라져서 힘을 쓰면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고 미래로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로 통칭돼 온 민주개혁정부 10년의 집권기를 싸잡아 비판한 것으로 들린다. 이전 정권이 이념과 지역, 세대 갈등을 통해 권력을 유지해 왔지만 자신은 이를 뛰어넘어 통합을 이루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집권 초기부터 ‘이명박식 패러다임’을 확고히 구축하겠다는 의중도 담겨 있는 것 같다. 이 당선인은 그러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섬기는 마음으로 오셨듯이 국민에게 매우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면서 “제가 장로로서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종교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장로가 대통령이 돼서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스턴트맨 출신 영화감독 원신연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스턴트맨 출신 영화감독 원신연

    흔히 ‘스턴트맨’으로 불린다. 온몸을 던져 각종 위험한 연기와 묘기를 직접 실연한다.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말 그대로 ‘대역 인생’이기 때문. 그래서 목숨 걸고 열연을 해도 빛을 보지 못한 채 그저 그렇게 영화계를 떠나간다. 하지만 여기 예외가 있다. 스턴트맨 출신 영화감독 원신연(40)씨가 바로 주인공. 그는 한국영화가 한참 침체 속에 빠져 있을 지난해 11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븐데이즈’라는 영화를 불쑥 내놓았다.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개봉 한 달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원신연’이라는 이름 석자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세븐데이즈 관객 200만 대박 그럴 것이 최근 네티즌들이 2007년 최고의 작품을 뽑은 결과 ‘화려한 휴가’(18.0%),‘디워’(12.2%),‘밀양’(10.2%)에 이어 ‘세븐데이즈’(8.3%)를 4위에 올려놓았다. 또 기대를 안 했으나 뜻밖에 재미있었던 영화로 ‘세븐데이즈’(5.9%)를 1위로 꼽았다. 아울러 2007년 말 시나리오작가들에 의해 ‘올해의 시나리오’에 뽑혀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새삼 부각시켰다. 평론가들은 ‘세븐데이즈’가 영화적 재미와 작품성을 동시에 절묘하게 배합하는 데 성공했으며 한국 스릴러 장르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탄탄한 시나리오와 함께 침체일로의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관심을 끄는 것은 야간 고등학교를 겨우 나온 스턴트맨 출신이 온갖 역경과 좌절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점. 해외 유학파들조차 여전히 감독 데뷔를 못하고 있을 정도로 고학력 인재들이 많은 충무로 바닥에서 촉망받는 감독으로 어엿하게 자리매김한 것이다. ●고졸출신이 해외파 제치고 충무로 우뚝 원 감독은 이에 대해 “그저 하고 싶었던 일이고, 단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세븐데이즈’는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갈고 닦은 내공을 응집해 ‘발사대’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희망을 쏘아올리는 새로운 길, 즉 나이 마흔에 영화인생 제2막을 시작할 것이라고 새해 포부를 곁들인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지난 12월부터 강화도 마니산 자락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두문불출,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스턴트맨 생활을 해서인지 얼핏 보아도 단단한 몸매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우선 새해를 맞는 소감이 어떤지 물었다. 새로 준비하는 작품이 간단치 않다는 소문을 들어서였다. 그랬더니 “새해 첫날 마니산 정상에 올라 ‘삼고’를 목놓아 외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무슨 삼고? ‘목숨 걸고’‘(시나리오)쓰고’‘(영화를)만들고’ 등 세 가지란다. 준비 중인 영화는 어떤 것이냐고 하자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못지 않다. 한국적인 정서가 충분히 녹아 있는 그런 영화가 될 것”이라면서 기대해도 좋다고 자신했다. 아직 내용을 밝힐 단계는 아니며 예산도 많이 투입되고 또 한국영화의 새로운 위상을 보여줄 것이라고만 했다. 아울러 올 여름에 크랭크인된다는 귀띔이다. ●“올여름 크랭크인… 한국영화 위상 보여줄 것” “관객들의 시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아져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시각적·청각적으로 즐거움과 또 뭔가를 남겨줘야 합니다. 한국영화는 그동안 어떤 틀이나 공식에 얽매여 있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코미디 영화인 경우, 처음에는 웃기다가 나중에 감동을 주는 식이지요. 이제는 좀더 자유로운 의식으로, 자유로운 영화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우리 영화계의 현실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그는 “별로 공들이지 않은 영화들이 400만∼500만 관객이 드는 것을 보고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그러다보니 창의적인 텃밭과 그 밑거름이 무너져 우리 영화계가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 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또 여기에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제작자들도 이런 것에 익숙지 않다는 것. 결국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의성이 고갈되면서 홍콩영화처럼 아류작을 양산하다보니 우리 영화가 스스로 몰락하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다. 관객들이 변하는 것처럼 감독이나 제작자들도 변해야 한국영화가 살아나갈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화제를 돌렸다. 왜 스턴트맨 생활을 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경기도 여주에서 다섯 형제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1976년 부모를 따라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집이 워낙 가난해 서울에 가면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딱히 갈 곳도 없던 식구들은 서울 중랑천 인근에 ‘방공 방첩’이라고 씌여진 빈 초소 등을 떠돌며 살았다. 이런 생활 때문인지 원신연은 초등학생 때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을 자주받았다. 하지만 원신연은 평소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이겨냈다. 도봉중학에 진학하면서 그는 기계체조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 무렵 88서울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따면 포상이 푸짐하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즉, 배고픔을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기계체조를 하게 됐던 것. 하지만 제대로 된 코치한테서 정식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책 보고 응용하면서 철봉과 평행봉 등을 접했다. 마루운동 연습은 아스팔트나 땅바닥이었다. 넘어지고 깨어지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나중에 도봉중학의 대표선수에 뽑히기는 했지만 시합에는 나가지 못했다. 보성고교 야간에 입학하면서 체육관에 다니던 선배들한테 쿵후와 종합무술 등을 익혔다. 그러던 어느날 한 선배의 권유로 스턴트맨 역할을 하게 된다. 때마침 아르바이트 일을 구하던 참이었다. 이때부터 낮에는 영화 촬영장에서, 밤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생활이 연속됐다. 시간이 지나자 공부하기가 싫어 결석하는 날도 많아졌다. 어쩌다가 학교에 가면 담임선생한테 호된 야단과 함께 매맞기 일쑤였다. 한때는 아예 가출까지 해버렸다. 공부도 싫고 충무로에서 스턴트맨 생활이 그저 좋았다. 주위 설득으로 3개월만에 퇴학을 각오하고 다시 학교에 갔지만 다행히 담임 선생의 배려 덕분에 ‘없었던 일’로 됐다. 원신연의 솔직한 대답과 어려운 생활환경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달려오는 자동차에 몸을 던지고 높은 다리에서 떨어졌을 때 다들 박수를 쳤지만 촬영이 끝나 뒤돌아섰을 때 밀려오는 허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요.” ●시나리오도 독학…100여편 탈고 그래서 마음 먹은 것이 시나리오를 쓰는 일이었다. 독학으로 시나리오 작법을 터득하면서 낮에는 촬영현장에서 몸을 굴리고 밤에는 시나리오 작업에 미친 듯이 매달렸다. 그러는 한편, 스턴트맨 일당으로 필름을 사고 카메라를 빌려가며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려 번 돈으로 필름 사고, 돈 떨어지면 다시 뛰어내려 영화를 찍고 또 찍었던 것. 이런 열정으로 각종 단편영화·독립영화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소외계층에서 자랐다고나 할까요. 가난과 질시, 여러 고난이 생길 때마다 제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감자 몇개 들고 도봉산으로 들어가 며칠 밤낮을 견디곤 했지요.” 2003년에 각본 쓰고 감독했던 영화 ‘빵과 우유’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소외계층을 다룬 작품이다. 원 감독은 감성이 여린 편이다. 어려서부터 소외되다보니 희로애락을 잘 흡수하게 됐으며 오히려 영화를 만드는 데 장점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 지금까지 100여편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게 된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2008년 ‘삼고’의 결과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글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8년 경기도 여주 출생 ▲89년 보성고 졸업 ▲87∼98년 ‘49일의 남자’‘여고괴담’ 등 100여편의 영화에 스턴트 출연 ▲90년 ‘꼭지딴’ 단역출연 ▲91년 ‘밥풀데기 형사와 전봇대 형사’ 조연 출연 ▲97년 ‘넘버3’ 무술지도 ▲99년 ‘카라’ 무술감독 ▲2001년 ‘적’‘세탁기’ 감독 ▲02년 ‘자장가’ 감독 ▲03년 ‘빵과 우유’ 감독 각본 ▲05년 ‘가발’ 감독 각본 ▲06년 ‘구타유발자’ 감독 각본 ▲07년 ‘세븐데이즈’ 감독 각색 # 주요 수상 제29회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상, 제2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단편영화상,2004년 영화 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최우수작품 ‘구타유발자’
  • [서울신문 신춘문예-평론당선작] 심사평

    [서울신문 신춘문예-평론당선작] 심사평

    예년에 비해 올해 평론 응모작의 편수가 급증하였고, 응모작 하나하나에 문학에 대한 열정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소중한 글들을 심사하면서 다음 측면에 주목하였다. 먼저 왜 이 작품을 비평 대상으로 선정했는가이다. 작품이 우리 시대 문학에 있어서 문제적인가 아닌가에 따라 글의 품격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다음 비평 정신이 뚜렷한가이다. 우리 시대의 문학과 사회 문제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들 문제를 어떻게 돌파하려고 하는가를 문제 삼았다. 마지막으로, 비평 안목이 어떤 수준인가이다. 작품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에 그치고 있느냐, 아니면 작품 속으로 파고들어 ‘진리 개념’에까지 도달했느냐에 주목하였다. 이에 따라, 최종 논의의 대상으로 남은 것이 ‘역사 해부학과 허무의 응시-김훈론’(박건우),‘물의 에피파니 혹은 부조리한 생의 원형적 상징-한강론’(이학영),‘여수에서 식물성의 세계로, 그 타자 찾기-한강론’(주지영)이다. ‘김훈론’은 김훈의 역사소설을 대상으로 뚜렷한 논지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속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어 아쉬웠다. 이학영의 ‘한강론’은 한강 작품을 정밀하게 파고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을 놓치고 한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주지영의 ‘한강론’은, 뚜렷한 문제의식과 비평정신, 작품 전체를 꿰뚫어보면서 그 심층으로까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안목, 논리 정연하면서도 일목요연한 글의 흐름 등, 비평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덕목을 갖추고 있는 수작이다. 특히 작가의 글쓰기의 욕망으로까지 나아간 자리는 신인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 오랜만에 좋은 신예 비평가를 발굴했다는 생각으로 심사자들은 주지영씨의 글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아무 머뭇거림이 없었다. 앞으로 주지영씨의 패기 넘치는 비평 행보가 기대된다. 황현산·문흥술
  • [최태환칼럼] 품격 있는 정부를 위해

    [최태환칼럼] 품격 있는 정부를 위해

    다시 새해다. 혹한이 매섭다. 하지만 새해맞이는 너나없이 각별하다. 지난 연말 갈채가 환청처럼 들린다. 선거는 역시 선거였다. 많은 국민들은 폭죽 같은 열기를 쏟아냈다. 모처럼 환호작약했다.386의 위세에 가위눌렸던 40·50대의 표심은 2002년 대선의 ‘노사모’를 연상케 했다. 국민들은 지금 승자의 레토릭에 취해 있다. 패자의 목소리는 승자를 향한 축배의 노래에 묻혔다. 장밋빛 소망이, 미래가 넘친다. 겨울밤 동화처럼 다가오는 서울시청 광장의 루체비스타 만큼 현란하다. 새해는 진정 희망의 해가 될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다. 희망을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5년 동안 똑같은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가겠다.”고 했다. 초심의 약속이다. 국민들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약속대로라면 새 대통령은 “대통령 못해먹겠다.”며 국민을 꾸짖지 않을 것 같다. 권력 측근들이 “국민이 정권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며 타박하는 일도 없지 않을까 싶다. 10년만의 정권교체다. 많은 사람들이 들떠 있다. 국민의 80%가 이명박 정권의 성공을 예상했다. 노무현 정권 피로감에서 해방된 듯하다. 새로 만날 정권과 국민의 덕담이 새삼 살갑다. 하지만 덕담은 덕담이다. 새 정권 현안은 산더미다. 경제는 세계적으로 올해가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북핵은 새해 벽두부터 꼬이고 있다. 부동산, 교육개혁, 공공개혁, 국책사업 바로잡기 등 현안 역시 혹독한 교정비용 지불을 기다리고 있다. 말만으로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새 정권의 성과 지표는 더디고, 미미할 수 있다. 앞선 정권의 반대 방향 컨셉트와 역모드로 세몰이하는 것으로 인기를 끌던 시대는 지났다. 정권 주변의 부박한 말의 화살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줄었다 해서, 삶의 질이 나아지진 않는다. 환상으로 경제가 회복되고, 교육환경이 나아질 수는 없다. 실용정권이 새로운 포퓰리즘, 지향성 없는 널뛰기로 흐른다면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뿐이다. 기대 과잉은 허무함만 남긴다. 국민 마음을 더욱 피폐하게 할지 모른다. 선진화가 새 정권의 화두다. 산업화·민주화가 물질적·절차적 진보였다면, 선진화는 의식의 진보가 뒷받침돼야 성공할 수 있다. 자신을 속이고 남도 속이는 ‘자기기인’(自欺欺人)의 집단최면으론 선진화에 다가가기 어렵다. 이 당선인은 법과 원칙을 강조했다. 떼법, 정서법의 추방을 제시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정부가 먼저다. 불법·폭력시위가 일상화되고, 집단이기가 난무하는 ‘나밖에 모르는 사회’에서 선진화는 구두선에 불과하다. 집단·사회·정부에 떼쓰는 국민, 그리고 눈가림·감언이설로 국민을 달래고 현혹하는 정부는 미래가 없다. 또 다른 위선만 양산할 뿐이다. 이제 정부와 국민이 같이 가야 한다. 정부가 원칙을 잃고, 집단이 금도를 잃으면, 국민도 흔들린다. 진정한 선진화를 지향한다면 정부나 국민이 반듯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앞서야 한다. 국민 몫 역시 중요하다. 정권·정부에 주문하기에 앞서, 국민 개개인이 자신을 먼저 살펴보는 새 해가 됐으면 한다. 품위있는 국민이 반듯한 정권, 품위있는 나라를 만든다. 이명박 당선인은 “5년이 금방 간다는 것을 잘 안다.”고 했다. 괜히 폼 잡다 망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항심을 기대한다. 임기 말에 이르러 정권과 국민이 서로 손가락질하는 민망한 풍경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길 소망한다.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19살 여승(女僧)얻어 7순(旬)에 득남(得男)하니

    19살 여승(女僧)얻어 7순(旬)에 득남(得男)하니

    71년 봄은 고목에 꽃이 피는 상서로운 해인지도 모를 일이다. 73살 4대독자 할아버지가 50살 아래의 23살된 꽃다운 처녀에게 장가들어 만월같은 아들을 본 것. 소백(小白)·태백(太白)산맥이 마주쳐 갈라지는 충북 풍기(豊基)군 풍기(豊基)면 금계(金鷄)동 험준한 산골짜기 동네에 찾아든 이 「얼씨구 지화자 경사났네」의 초특급(超特級) 희소식. 겨우 조상체면 세웠다며 “뭣보다 건강이 제일이죠” 『자, 이렇게 앉으면 되겠소? 잘좀 찍어 주구려. 이녀석 보게, 예쁘게 보여야지 사진이 잘 찍혀요. 그렇지, 옳지, 웃어야지…』 소문만 듣고 찾아간 기자는 이 천의무봉(天衣無縫)으로 천진난만(?)한 노인앞에 우선 기가 죽었다. 완강한 체구에 이글거리는 눈동자, 탄탄한 피부가 아직도 젊음(?)을 안고 있는 듯. 『쌀 한가마 쯤은 문제없이 들고 다닐 수 있지. 건강이 제일이요, 건강』 하면서 노인은 호탕하게 웃는다. 『성생활문제? 그것도 걱정않지. 1주일에 3번쯤은 저분에게(아내를 가리킴)가는데 「수명을 재촉하는 짓」이라고 단호히 거부해서 할 수 없이 1개월에 3번쯤 허락해주지. 자세하게 얘기해 드릴까?』하며 노인은 심술궂은 웃음. 이 세계적인 기록이라해도 좋을 정력적인 노인은 황해(黃海)도 백천(白天) 조(趙)씨 종직(宗直)옹(73). 종직옹보다 50살 아래인 부인 임자원(任子元)씨는 23살. 조노인은 이조(李朝)개국공신 조반옹의 18대손으로 현재 4대독자로서 1점혈육 아들을 기적적으로 보아 겨우 조상들에게 체면을 세우게 됐다. 『정감록(鄭監錄)에 보면 풍기면 금계동이 십승지지(十勝之地)가운데 하나로서 피난처로 가장 좋다고 돼있지. 이곳 갈미봉 밑에는 신라(新羅)시대 사고(史庫)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어. 고향 황해도 백천읍 북리에서 땅마지기깨나 짓던 팔자였는데 공산당놈들 등쌀에 월남하여 이곳에 오게 된거요. 물론 그땐 처 자식들 모두 있었지』 이곳 금계동에 정착한 뒤로 3년만에 아내가 죽고, 10년만에 아들이 죽어 버렸다. 딸 근화씨(29)만이 살아남아 현재 강원(江原)도 영월(寧越)에서 홍(洪)일성씨(34)와 단란히 살고있을 뿐 홀몸이 됐다.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며 유랑생활을 하던 조노인은 불문에 귀의 독실한 신자가 됐다. 현재의 아기를 본것은 지난 1월 23일 밤12시. 30여가구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금계동 부락민들은 밤잠을 자지못하고 손에 땀을 쥐며 조노인댁의 출산을 기다렸다. 임여인의 끈덕진 구애에 처음엔 놀린다고 꾸지람 『아들이다』 느닷없는 조노인의 고함소리가 터지자 모였던 부락민들은 『만세』를 연거푸 부르며 『얼씨구! 지화자』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쌀됫박과 미역더미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조노인 개인의 경사만이 아니라 그것은 온통 부락의 잔치였다. 동네 젊은 이들은 애초 조노인의 결혼을 두고 『아이를 낳는다』『못 낳는다』설왕설래하던 끝에 내기까지 건 일도 있었을 만큼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며 조노인은 그의 굳센 아래쪽 힘을 젊은이들이 부끄러울만큼 뽐내고 만 것이다. 도대체 「괴테」를 무색하게 한 이 희한한 결합은 어떻게 해서 시작됐는가를 들어보자. 지난 68년 봄. 풍기면사무소가 있는 영전사(靈田寺)에서였다. 초파일 행사를 앞두고 조노인은 조화(造花)를 만들고 있었다. 이 작업을 옆에서 거들어 주었던 여승이 당시 19살 임여인. 신도와 다른 스님들은 범상스럽게 이들의 작업을 보아 넘겼으나 이때 이들은 사랑의 신호를 피차 보내고 있었다. 먼저 신호를 발신(?)한건 임여인쪽. 『할아버지, 아들이 없어 쓸쓸하지 않아요? 다른 신도들은 부처님께 아들을 보게해달라고 비는데 할아버지도 한번 빌어보세요. 할아버지가 돌아 가시면 절손(絶孫)이 될거 아녜요?』 『글쎄 낸들 왜 섭섭하지 않겠나? 그러나 이젠 다 틀렸어. 내 나이가 69살. 무슨 힘으로 아들을 볼수 있으며 씨는 또 어디다 뿌리누?』『저는 세상에 태어났다가 하나의 씨도 뿌리지 못하고 저 세상엘 간다는건 너무나 허무하게 생각이 되어요. 파계의 생각인지 모르나 저는 꼭 씨를 뿌려놓고 가기를 결심했어요?』『그길이 좋을지도 모르겠군…나이가 아직도 한창이니까 차차 있노라면 좋은 젊은사람이 나타날게요』 부처님 앞에서 이들의 얘기는 강론아닌 속세의 얘기로 꽃을 피웠다. 첫닭이 울고 법당에는 여명을 알리는 새벽의 흰빛이 비칠 무렵, 여승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며 눈에는 광채가 번뜩였다. 『할아버지, 제가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드리겠어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상관하지 않겠어요. 아들을 낳으면 훌륭한 불제자를 만들겠어요. 부처님도 저의 파계를 용서하겠지요』 조노인은 어안이 벙벙해서 『늙은 이를 놀리느냐』고 꾸지람. 그러나 신도와 여승의 관계는 차차 사랑하는 연인들의 관계로 변하여 갔다. 그러기에는 임여인의 끈덕진 구애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놀라운 정력…환속 1개월만에 태기있어 이 별난 부부의 정사가 소문이 나면서 내용을 알길이 없는 사람들은 빈정거렸다. 임여인이 10일도 못살고 도망가리라는 것. 그러나 임여인은 13년동안 입었던 승복과 염주를 내던지고 지금의 금계동에 있는 조노인의 초가로 환속해 버렸다. 조노인 살림이라야 쓰러져가는 초가집 한간에 토끼궁둥이 같은 산전 3백평. 여기서 거둬 들이는 좁쌀과 구호곡(구호대상자임)으로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는 어려운 살림이었다. 그러나 「늦게 배운 도둑질이 밤새는줄 모른다」던가? 햇살이 두둥실 비치고난 뒤에도 한참 있다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기미로 미루어 아주 신혼살림 재미에 깨가 쏟아진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환속 1개월만에 태기가 있었던 것. 점점 배가 불러가는 임여인의 모습에 부락민들은 고개를 수그리게 됐다. 10개월 채우고 난 자식이 딸 인희(仁熙)양(3). 온 동네가 이 기막힌 출산에 떠들썩하니 잔치기분으로 들떴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월에는 아들을 보기에 이르렀다. 이 소문은 군내에 꼬리를 치고 퍼져 이 험한 산골짜기에 구경을 겸한 출산축하객들이 줄지어 미역과 쌀을 가져왔다. 부인 임여인의 과거도 기구하다. 6살되던 해 여름, 부모가 무슨 병인지 1개월 사이를 두고 모두 세상을 하직했다. 천애고아가 된 임여인, 즉 딱한 어린애를 거둬 먹이고 입히며 기른것이 주지스님. 주지 이운각(李雲覺)스님에게 천자부터 배우기 시작, 「초심」「발심」도 익히고 독경도 배웠다. 15살때 어엿한 여승이 된 그녀는 17살때 영전사로 다시 옮겨 오늘의 남편을 만났던것. 『금년안으로 냉수라도 떠놓고 혼례식을 거행해야지요. 그때도 꼭 오슈』하며 껄껄거리는 노인은 작명가에게 아들이름이나 짓게 해달라며 사주를 적어준다. 음력으로 경술(庚戌), 기해(己亥), 무신인자(戊申寅子)라는 것 -. <영주(榮州)=이태호(李泰浩)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4월 25일호 제4권 16호 통권 제 133호]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우유의식/홍희정

    홈쇼핑 채널에서는 석류 즙에 대한 소개가 한창이었다. 쇼 호스트는 활기찬 하이 톤의 목소리로 석류의 장점을 연신 강조했다. 중년의 여자 탤런트가 과장된 몸짓으로 와인 잔에 석류 즙을 따라 부었다. 살포시 눈을 감은 채 석류 즙을 마시는 그녀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며 텔레비전 화면에 가득 찼다. 고개까지 젖히며 잔을 비운 그녀는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거꾸로 든 빈 잔을 머리 위로 올리고 흔들어 보였다. 누군가가 입 꼬리를 옆으로 잡아당긴 것처럼 웃는 그녀의 얼굴은 의욕이 넘쳐 보였다. 활기찬 그녀와는 달리 나는 젖은 빨래처럼 팔, 다리를 늘어뜨린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판단력이 사라진 채 멍하니 텔레비전만 바라볼 뿐이었다. 내 머리는 우주를 떠받들고 있는 듯 무거웠다. 눈은 가물가물해서 자꾸만 시야가 흐려졌다. 나는 당장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끄고 나면 그나마 남아 있던 잠의 꼬리마저 도망쳐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꿈을 꾸는 것이 두려워 쉽게 잠들지 못했고, 그것이 불면증으로 이어진 케이스였다. 며칠 전에 들른 병원에서는 언제나 그랬듯이 심리적인 문제일 거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나는 적정량의 수면제로만으로는 잠이 오지 않았고 그나마 처방 받은 수면제도 다 먹어 버린 지 오래였다. 철이 들면서부터 나는 늘 같은 꿈에 시달려 왔다. 사실 그것은 꿈이기 이전에 오래전 내가 겪은 일이었다. 나와 동생은 이불도 깔리지 않은 방에 함께 누워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낮에 비를 너무 많이 맞고 돌아다닌 우리는 온몸이 젖은 채였다. 동생은 어디가 아픈지 자꾸 기침을 했지만 나는 너무나 피곤해서 눈을 뜨지 못했다. 동생을 돌볼 사람이 나뿐이라는 사실도 버겁게만 느껴졌다. 한참 동안 계속되던 동생의 기침 소리가 갑자기 커지더니 이내 작아졌다. 그제서야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방안은 너무 캄캄해서 동생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듬거리며 동생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손끝에 닿는 동생의 얼굴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동생이 죽은 뒤로 나는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방안 구석에 서 있는 지금의 내가, 동생의 얼굴을 더듬는 어린 나를 바라보는 꿈이었다. 그리고 꿈의 마지막에는 항상 어린 내가 지금의 나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그때마다 나는 번뜩이는 어린 나의 시선에 몸이 굳어 버렸다. 잠에서 깨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여 보아도 온몸이 꽁꽁 묶인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꿈속의 장면을 떠올리던 나는 늘어뜨린 팔, 다리가 굳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휴대폰을 열어 화면에 나오는 홈쇼핑 주문 전화번호를 눌렀다. 자동주문 전화는 1번, 상담주문 전화는 2번이라는 안내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2번 버튼을 힘껏 눌렀다. 버튼을 누르는 내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상담원과 연결이 되자 나는 주저하지 않고 상품을 주문했다. 나의 신용카드 번호와 주소를 확인하는 상담원의 목소리에 나의 손은 떨림을 멈추었다. 하지만 주문을 마치고 휴대폰을 닫자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웃음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바닥에 있던 옷가지를 주워 입고 무언가에 도망치듯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새벽 3시의 주택가 골목은 고요했다. 가로등 불빛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건너편 동네의 아파트를 바라보니 드문드문 불이 켜 있는 창문들의 모양이 무표정한 이모티콘처럼 보였다. 나는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평소처럼 집 근처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캄캄한 골목에 내가 신은 슬리퍼 소리가 타박타박 울렸다. 목적지도 없이, 그것도 새벽 3시란 시간에 동네를 어슬렁대는 것은 짝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나의 감정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나는 문득 외롭기도 했다가 갑자기 서럽기도 했다가 느닷없이 의욕이 생기기도 했다가 결국엔 허무하기도 했다가 나중엔 내 자신이 우스워졌다. 괜히 나온 것 같아 후회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운 좋게 잠이 든다 해도 반복될 꿈이 두려웠다. 나는 항상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순간까지 가서야 눈을 뜨곤 했다. 꿈에서 깨고 나면 나는 깨어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늦은 새벽까지 내 전화를 받아주던 친구들도 하나 둘 떨어져 나가 이젠 전화를 걸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홈쇼핑을 보며 상담전화를 걸어 물건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주문하는 물건이 무엇인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깨어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었다. 열 평 남짓한 나의 원룸은 홈쇼핑으로 주문한 물건들이 뜯지도 않은 상자 채 쌓여 가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저만치 불이 켜진 편의점 간판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갑자기 나는 깨어 있는 누군가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슬리퍼 바닥이 땅에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결국 나는 편의점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편의점의 문을 힘주어 열자 전자음의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높은 톤의 음악소리는 단순하지만 날카로웠다. 카운터 쪽을 바라보니 아르바이트 생인 듯한 남자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졸고 있었다. 편의점에는 그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나는 냉장 코너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우유와 삼각 김밥과 오렌지주스를 차례로 한 번씩 들어 올렸다 다시 내려놓았다. 식욕이 없어서인지 머릿속이 멍하기만 했다. 나는 결국 캔 커피를 집어 들고 카운터로 갔다. 잠을 자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언제나처럼 그것밖에는 마시고 싶은 것이 없었다. 나는 계산대로 걸어가 캔 커피를 올려 놓았다. 그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캔 커피를 들었다가 조금 거칠게 카운터에 다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깨어날 줄을 몰랐다. 그가 자는 모습에 나는 자꾸만 불안해졌다. 그를 깨우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캔 커피만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캔 위에 맺힌 물방울이 나의 손을 적셨다. 당장이라도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고 싶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의 어깨가 아닌 나의 가슴께로 젖은 손을 가져갔다. 평소에 나는 누군가가 잠든 모습을 보면 명치끝이 답답해지곤 했다.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 숨마저 얕게 쉬고 죽은 듯이 잠을 잘 때면 동생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뚜껑을 덮어 버린 커다란 항아리에 갇힌 것처럼 두려움에 휩싸였다. 때문에 장소에 상관없이 누군가가 자는 모습을 보면 참지 못하고 깨운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지하철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유독 미동도 하지 않고 잠든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황급히 그들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잠에서 깬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거나 몹시 화를 냈다. 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얼굴을 돌리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아도 어느새 상대의 어깨를 흔드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이번에도 나는 혹시 그가 숨을 쉬지 않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초조한 마음에 그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행이 그의 가슴은 호흡에 따라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 나는 막혔던 숨이 터지듯 안도했다. 나는 그를 조금 더 가까이서 관찰했다.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저절로 반쯤 벌어진 입주변이 하얗게 부르터 있었다. 하지만 유난히 힘차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그의 호흡만은 의욕이 넘치는 듯 활기차게 느껴졌다. 힘차고도 부드럽고도 성실한 호흡이었다. 나는 캔 커피 따위는 잊어버린 채 한참 동안 그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심각한 꿈을 꾸는지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말로 잠꼬대를 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활기차고 부지런한 모습으로 자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카운터에 손을 집고 서서 그의 얼굴 가까이 내 얼굴을 가져갔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코로 공기가 듬뿍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의 코끝에 천천히 손가락을 가져갔다. 들락날락하는 공기가 나의 손끝을 부드럽게 간지럼 태웠다. 그것은 새끼 고양이가 엉킨 실타래를 풀며 장난을 치듯 따뜻하고 평온한 기분이 들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감긴 그의 눈꺼풀 안쪽에서 눈동자가 움직이며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제서야 나는 그에게 너무 가까이 가 있던 자신에게 놀랐다. 그가 갑자기 깨기라도 한다면 곤란한 상황이 될 게 뻔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고였다. 나는 황급히 편의점 문 쪽으로 걸어갔다. 편의점 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곤하게 자고 있는 그가 몹시 부러웠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잡이를 잡은 나의 손끝에 미련이 남아 있었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문을 밀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전자음의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어. 어서 오세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인사말부터 한 그는 들어오는 게 아닌 나가려는 자세의 내 모습을 보고 의아스러워하는 듯했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의심받을 행동을 한 건 없지만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망설이던 나는 그를 향해 말했다. -들어오려던 게 아니라 막 나가려던 참인데…… 별로 살 게 없어서요. 새벽 3시에 일부러 편의점을 찾아온 사람이 하는 말로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듯 그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불필요한 말이 자꾸 나왔다. -캔 커피를 사려고 했는데 자는 모습이 너무 피곤해 보여서요. 그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더니 웃으며 말했다. -깨우셔도 되는데 그랬네요. 지금 계산해 드릴게요. 그제서야 나는 캔 커피를 카운터에 그대로 놔둔 것이 생각났다. 할 수 없이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에게 카운터에 올려져 있던 캔 커피를 건네었다. 그러자 바코드를 찍으며 그가 말했다. -밤에 이런 거 좋지 않아요. 그는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담담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듯한 목소리는 그가 자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돈을 꺼낼 생각은 못하고 그의 정수리만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어 쑥스러운 듯 웃는 그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가 캔 커피의 바코드를 한 번 더 찍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 캔 커피를 가져다 넣고 우유 두 개를 꺼내 왔다. 그는 입구를 조금 연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작동 버튼을 눌렀다. 나는 그가 하는 행동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전자레인지가 멈추었고 그는 따끈해진 우유 팩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는 우유 팩을 손에 쥔 채 편의점에서 함께 아침을 맞았다. 그는 전에도 가끔 캔 커피를 사러 온 나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횟수가 반복될수록 늦은 새벽에 커피를 사는 내가 의아스러웠다고도 했다. 커피를 마시며 편의점을 나가는 내 뒷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쓰였었다며 웃는 그의 얼굴이 성실해 보였다.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그 웃음을 믿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웃는 얼굴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그가 힘차게 숨을 쉬며 자던 모습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는 나에게 밤에 커피를 마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궁금한 것을 순수하게 물어볼 수 있는 그의 태도도 잠든 그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커피와 상관없이 어차피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내 말은 들은 그가 자신은 밤에 실컷 잘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밤에 일하고 낮에 잘 수밖에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가 야간에만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햇빛 알레르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의 햇빛 정도야 괜찮았지만 그때를 제외한 시간에는 피부가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했다. 햇빛을 받으면 피부에 빨간 반점이 생기며 참을 수 없이 따가워져서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나는 주변에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본 적은 있었지만 그만큼 심한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짐작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 뒤로 나는 새벽 3시면 매일 편의점에 들렀다. 그런 시간들이 한 달쯤 지나자 우리는 함께 잠드는 사이가 되었다. 아침 6시에 그는 퇴근을 하면서 항상 우유 두 개를 들고 내가 사는 원룸으로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편한 식사로 차가운 우유를 마시는 시간에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마셨다. 매일 반복되는 행동은 우리에게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것을 ‘우유 의식’이라고 부르며 웃곤 했다. 불면증이었던 나도 그와 함께 ‘우유 의식’을 하고 나면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비록 보통 사람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만이라도 좋으니 죽은 듯이 자고 싶었던 때와 비교하면 호사스러운 시간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잠자리에 누우면 언제나 상대보다 늦게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 상대가 곤하게 자는 모습을 보면 애정이 생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지곤 했다.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느낌에 가슴이 아려왔다. 상대도 언젠가는 사라질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울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그는 언제나 내가 잠들 때까지 깨어 있어 주었다. 싱글 침대 위에서 그와 꼭 붙어 있으면 힘차게 뛰는 그의 심장소리가 나에게 전해졌다. 규칙적인 그의 심장박동과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나는 안도하며 잠이 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잠에서 깬 내가 불안함에 황급히 그를 찾으면 그는 항상 씩씩한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그런 그의 곁에서는 신기하게도 나는 꿈을 꾸지 않고 잘 수 있었다. 가끔 미세한 불안함이 고개를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호흡에 따라 힘차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그의 가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힘차고도 부드럽고도 성실하게 숨을 쉬며 자는 그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가 나의 원룸에 찾아오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나는 백화점에 가서 두 개의 머그잔을 구입했다. 우유팩도 나쁘진 않았지만 머그잔에 담아서 데운 우유는 온기가 더 지속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머그잔에 담긴 우유를 마시며 나는 그에게 아르바이트를 줄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는 웃으며 그러겠다고 했다. 그는 일주일 중 네 번의 밤엔 아르바이트를 했고 세 번의 밤엔 나와 데이트를 했다. 그와 함께 하는 데이트는 해가 없을 때만 가능했으므로 우리가 집을 나설 때는 언제나 밤이었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캄캄한 공원을 걷기도 했고,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은 명동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배가 고프면 24시간 문을 여는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다리가 아프면 비디오 방에 가서 영화를 보았고, 때때로 PC방에서 서로에게 총을 쏘는 게임도 했고, 찜질 방에 가서 구운 계란을 먹기도 했다. 그와 데이트를 하며 나는 밤에도 깨어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예전에도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추상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밤에도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구체적인 느낌을 갖게 되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밤에는 예전에 홈쇼핑에서 주문했던 물건들을 함께 뜯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껍질째 넣어도 무엇이든 주스가 된다던 주서기에 파인애플을 통째로 넣고 갈아보기도 하고, 소나기가 와도 완벽한 방수가 된다던 등산화를 신고 샤워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하루에 한 포씩 먹으면 좋다는 석류 즙을 한꺼번에 누가 더 많이 먹나 내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는 13포째 봉지를 뜯다가 포기를 했다. 그리고 26포의 석류 즙을 마시고 27번째 봉지를 뜯는 나를 필사적으로 말렸다. 말리는 그의 모습이 우스워서 나는 일부러 3포를 더 마셨다. 여름인데도 반팔 옷을 입지 못하는 그가 나를 말리며 진땀을 뺐다. 그는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언제나 긴 팔과 긴 바지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녔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긴 옷을 벗지 않았다. 그런 그가 안쓰러워 나는 원룸에 있는 단 하나의 창문에 까만 도화지를 꼼꼼히 붙였다. 하지만 그는 긴 옷을 입는 게 습관이 되어서 피부를 내놓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저 그가 편하게 자는 걸 바랐으므로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피부끼리 닿는 부드러운 감촉도 좋을 테지만 뽀송한 면 티에서 느껴지는 감촉도 좋았다. 우리가 편히 잠들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감촉이라도 상관없었다. 매일매일이 한결같이 흘러갔다. 그가 퇴근을 하는 아침이면 나는 식탁 위에 두 개의 머그잔을 올려놓고 그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있으면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우유 의식’을 하며 예전에 내가 잠들지 못했던 이유를 말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 더블 침대를 하나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가 편하게 자는 것을 바라면서도 미세하지만 집요하게 느껴지는 불안감에 침대 구입을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나자 그의 귀가가 더욱 기다려졌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벌써 도착했을 그가 오지 않고 있었다. 시계는 6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에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불안했다. 그는 휴대폰이 없어서 내가 연락을 할 방법도 없었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이 지속되자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나 역시 그와 지내는 동안 그에게 전화연락을 할 일 따위는 생긴 적이 없었다. 그는 성실했고 한결같았다. 그런 그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 가볼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별 일 아닐 것이라고 밀려오는 불안감을 외면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사정이 생길 수도 있다고 나 자신을 다독거렸다. 그러나 습관이란 무서웠다.7시까지 깨어 있던 나는 불안함과 나른함에 결국 선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예전에 내가 꾸었던 꿈과는 달랐다. 그와 내가 함께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는 나에게 등을 보인 채 누워 있었다. 항상 내가 잠들 때까지 나를 안아주던 그였는데 이상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동그랗게 구부려진 그의 등에 몸을 꼭 붙이고 그의 겨드랑이 사이로 나의 팔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크고 단단한 그의 등에 귀를 대었다. 나는 숨을 쉴 때마다 커다랗게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그의 등과 가슴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그의 등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딱딱할 뿐이었다. 나는 팔을 좀 더 뻗어 그의 왼쪽 가슴에 손바닥을 대보았다. 힘차게 뛰어야 할 그의 심장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당황스럽고 무서워 그를 깨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 눈에 눈물이 차 올라 그의 모습이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뒤틀려 보였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의 어깨를 잡아 힘껏 내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의 몸이 내 쪽을 향하면서 창백하다 못해 투명해진 얼굴이 툭 하고 침대위로 떨어졌다. 아니 그것은 얼굴이 아니고 가면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표정이 떨어져 버린 그의 얼굴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그의 얼굴이 아닌 동생의 얼굴이 있었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날카로운 괴성이 나의 뱃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다. 잠에서 깬 나는 한참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감긴 눈이 뜨거웠고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흘릴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내가 겨우 눈을 떴을 때 여전히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오전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식탁 위의 머그잔은 아까 내가 놓아둔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편의점에 가보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물에 젖은 듯 무거워진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자꾸만 다리가 휘청거려서 신발을 신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가 디지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평소처럼 그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분명히 내 앞에 서 있었지만 나는 그가 유령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그를 힘껏 밀어버렸다. 무방비 상태였던 그는 휘청거리더니 넘어지고 말았다. 반은 어리둥절하고 반은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많이 걱정했냐고 말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아직 꿈의 잔상에서 깨지 못한 나는 그의 손길을 거칠게 쳐냈다. 교대할 아르바이트 생이 늦게 오는 바람에 편의점을 비울 수가 없어서 늦었다는 그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의심의 독이 내 몸을 가득 채웠다. 나는 식탁으로 걸어가 그의 머그잔을 밀쳐 버렸다. -당신 말 따위 믿지 않아. 그의 머그잔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머그잔의 손잡이가 깨져 버렸다.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말하던 그도 주춤하는 듯했다. 그의 태도가 나를 더욱 동요하게 만들었다. 내 몸은 마비가 되는 것처럼 뻣뻣해져 왔다. -남겨진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당신이 알기나 해! 나도 모르는 말이 내게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그를 향해서 하는 말인지 오랫동안 꿈속에 나타난 동생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식탁을 집고 있는 내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 그가 떨고 있는 나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그의 손은 가을 단풍잎처럼 빨갛게 변해 있었다. 순간 나는 햇빛 알레르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머니에 넣고 달리려니까 빨리 달릴 수가 없어서…… 느릿한 그의 말에 나는 누군가의 농담에 받아칠 말을 찾지 못하는 사람처럼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는 손 때문에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에게 살갗이 찢어지는 아픔은 물론이고 더 큰 상처까지 준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그 일이 있은 뒤에도 그의 생활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일주일의 네 번의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세 번의 밤은 나와 함께 보냈다. 달라진 거라곤 아침 6시가 되어도 누워 있기만 하는 나를 대신해 그가 머그잔에 우유를 담아 데우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작은 침대에 그와 몸을 붙이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그의 면 티에서 더 이상 아무런 촉감도 느낄 수 없었다. 꼭 붙어 있는 우리의 몸 사이로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만 같아 숨이 막혔다. 그가 나를 꼭 안을수록 내 마음은 줄을 놓쳐 버린 풍선처럼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의 품에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그런 나 때문에 그도 잠을 자지 못했다. 그는 점점 야위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새벽 3시의 골목과 같은 침묵이 우리 사이에 계속되고 있었다. 머그잔을 앞에 놓고 마주 보고 있어도 온몸이 땀에 젖도록 서로를 붙인 채 밤을 새 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아르바이트가 없을 땐 예전에 갔던 밤의 장소에 나를 데리고 가기도 했지만 나는 어디를 가도 무표정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번에는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하며 내 앞에 석류 즙이 가득 담긴 상자를 끌고 왔다. 나는 그가 내 손에 쥐여 주는 석류 즙 봉지를 멍청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시작, 이라고 힘차게 외친 그는 정말 누군가와 경쟁이라도 하듯 빠르게 봉지를 비워 가기 시작했다. 그는 봉지를 제대로 뜯을 새도 없이 허겁지겁 석류 즙을 마시기 시작했다. 거칠게 봉지를 뜯는 그의 손에 석류 즙이 이리저리 튀었다. 그가 즐겨 입는 하얀 티 위로 석류 즙이 흘러내렸다. 주변에 쌓이는 빈 봉지가 늘어갈수록 그의 옷이 점점 더 붉어졌다. 나는 그가 쥐여 준 봉지를 손에 쥔 채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석류 즙을 마시던 그가 갑자기 ‘컥’ 하는 소리와 함께 마신 것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석류 즙을 비운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이 쏟아져 나왔다. 방바닥은 물론이고 그의 얼굴과 몸 전체가 붉게 물들어 갔다. 그 모습은 마치 붉은 노을 앞에선 그를 연상하게 했다. 그는 언젠가 나에게 바깥에서 마지막으로 노을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두 팔을 벌린 채 저물어 가는 햇빛을 마음껏 받고 있는 그를 상상했다. 한 번도 본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장면이 내 앞에 있는 그의 모습과 겹쳐졌다. 나는 그의 자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처럼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그것은 얼굴 위로 튄 석류 즙에 섞여 잔인하리만큼 아름답고 투명한 붉은색이 되어 흘렀다. 하지만 그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계속해서 석류 즙을 토해 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그는 더 이상 나를 위해 애쓰지 않았다. 며칠 뒤 출근을 한다고 나간 그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당연한 듯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가 내미는 손을 잡았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는 모습이 성실하기만 한 그에게 차마 내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이야기를 꺼내고 나면 이해 받고 싶어질까 봐 두려웠다. 나는 그에게 그럴 자격이 없었다. 매일 ‘우유 의식’을 함께해 준 그에게 조금도 마음을 열지 않았던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오늘도 같은 꿈이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잡으며 주체할 수 없이 온몸이 떨려 왔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쳐 버리고 싶었다. 떠날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머무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힘껏 내 쪽으로 돌렸다. 수십 번도 넘게 반복한 행동이었지만 나는 숨이 막혀 왔다. 그러자 그의 얼굴, 동생의 얼굴 그리고 어린 나의 얼굴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그것들을 껴안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필사적으로 피할 뿐이었다. 손을 내저으며 최대한 몸을 작게 웅크렸다. 모든 상황이 잔인했다. 하지만 그들이 잔인한 것인지 내가 잔인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깼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캄캄한 방안은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작은 창문 위 까만 도화지는 조금의 틈도 없이 꼼꼼하게 붙어 있었다. 마치 내 자신을 보는 것 같은 생각에 나는 다시 숨이 막혀 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여름 바람이 훅하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저녁 6시였다. 나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한때 이곳에는 머그잔에 담긴 우유처럼 온기가 가득 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없는 일주일간 홈쇼핑에서 주문한 상품들이 방안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뜯지도 않은 상자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공허함은 커지기만 했다. 나는 식탁으로 걸어가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머그잔을 감싸 쥐었다. 손잡이가 없는 그의 머그잔에 담긴 우유가 찰랑거렸다. 아침에 따라놓은 우유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나는 그가 떠난 뒤에도 매일 ‘우유 의식’을 거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몫의 우유를 다 마신 뒤에도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혼자 하는 ‘우유 의식’을 멈출 용기도 나에겐 없었다. 나는 ‘우유 의식’을 하고 나면 억지로라도 침대에 누워 잠이 오길 기다렸다. 그 기다림 끝에 잠이 들면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등을 보이고 누운 그를 꿈속에서 보았는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면서도 매번 두려웠다. 그와 지내는 동안의 ‘우유 의식’은 나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버팀목이었지만 이제 그것은 나의 삶을 조여 오는 올가미가 되어 있었다. 나는 갑자기 방안의 공기마저 쌀쌀하게 느껴졌다. 황급히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에는 두 명의 쇼 호스트와 한 명의 여자 탤런트가 하이 톤의 목소리로 석류 즙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석류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과 폴리페놀 성분이 피부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들이 하는 말 중 몇 가지 반복되는 단어만이 띄엄띄엄 들릴 뿐이었다. 석류, 비타민C, 여성, 남성, 남녀노소, 온 가족, 활기찬, 여성,95%, 에스트로겐, 무이자 3개월, 온 가족, 활기찬, 하루 한 포, 석류, 매일 아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휴대폰을 열어 홈쇼핑의 상담 전화번호를 눌렀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에서 경쾌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음악은 내가 그의 자는 모습을 처음 보았던 날 편의점 문이 열리며 흐르던 음악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상담원이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정성을 다하겠습니다.○○홈쇼핑입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상담원은 잠깐의 시간을 두고 나에게 다시 말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방송중인 석류 즙을 구매하시겠습니까? 나는 간신히 목소리를 짜내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하세요. 나의 인사에 그녀는 반복되는 말을 다시 건네었다.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녀를 향해 질문했다. 석류 즙 한 포에 몇 개의 석류가 들어있나요? 네, 고객님. 한 포에 두 개 정도의 석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녀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물었다. 석류는 국내산인가요? 그녀는 조금 당황하는 듯했지만 일관된 톤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최고급 이란산 석류를 사용합니다. 나는 그녀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한참 동안 질문을 계속했다. 나의 질문이 계속될수록 그녀의 말투는 빨라졌고 대답은 짧아졌다. 나의 마지막 질문에 그녀는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한 상품정보를 참조한 뒤 다시 전화를 달라고 말했다. 더 이상 그녀는 나의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석류 즙을 주문하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나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매우 빠르고 강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와 나 사이의 흐르는 침묵을 견딜 수가 없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저 기억하세요? 여러 번 구매했었는데. 그러자 그녀가 상냥하지만 기계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고객님께서는 석류 즙 재구매 고객이시므로 만원의 할인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상담원의 말에 휴대폰을 놓친 채 일주일간 참아 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 日, 금융 업종간 진입장벽 허문다

    日, 금융 업종간 진입장벽 허문다

    ‘저금리에 꽁꽁 묶여 있던 개인의 쌈짓돈을 투자시장으로 끌어낸다.’ ‘은행, 보험, 증권사간 진입장벽을 없앤다.’ ‘외국인들도 투자하기 쉽게 영어로 된 금융서류를 받는다.’ 일본이 적극적인 금융개혁에 나섰다. 홍콩과 싱가포르에 빼앗겼던 아시아 금융 허브(중심)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다. 일본 금융청(FSA) 웹사이트에 따르면 일본은 최근 ‘일본 금융·자본시장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이 금융개혁안을 내놓은 것은 지난 1996년 이후 11년 만이다. 개혁안은 내년 3월 정기국회에 제출된다. 승인을 받으면 내년 여름부터 발효된다. 지난 96년엔 금융개혁이 구조조정에 포커스가 맞춰졌다면 이번 금융개혁안은 지난해까지 거의 완료된 메가뱅크(거대은행) 통폐합을 토대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각종 금융규제를 완화하고 세금을 낮춰 개인과 외국인의 투자를 쉽게 하고 금융 업종간 장벽을 허무는 것이 핵심이다. 우선 은행과 보험, 증권사간 칸막이를 없애기로 했다. 우리나라가 2009년 2월부터 시행할 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과 유사한 부분이다. 국내에서도 자통법이 시행되면 은행, 보험, 증권사간 업종구분이 사라지면서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한 대형 증권사만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금융시장의 전면적인 지각변동이 불가피해진다. 일본도 금융 업종간 장벽을 없애기로 한 것은 앞으로는 대규모 종합금융사를 앞세워야 글로벌시장에서 세계의 거대 금융기관과 맞서 경쟁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 역시 이 부분은 구체화과정에서 업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한국은행 아주경제팀 김진홍 차장은 “일본 정부는 이미 여러 차례 금융개혁방안 의지를 밝힌 바 있다.”면서 “이번에는 관련법을 고쳐 이슬람금융을 다루는 상품을 출시하겠다는 부분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개혁안은 또 1500조엔(약 14조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의 가계자산을 투자시장으로 이끌어낸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일본의 가계자산은 상당부분이 은행의 저금리에 묶여 있었다. 또 일본에서 활동하는 해외펀드의 세금을 면제해 해외자금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로 했다. 외국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일본 금융당국에 내는 서류를 앞으로는 일본어뿐 아니라 영어로 된 것도 받기로 했다. 상품거래소와 증권거래소를 합친 통합거래소의 설립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은 지난 80년대 금융자유화로 인해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이 앞다퉈 진출하는 등 자본·금융시장에서도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금융자유화는 버블(거품)로 이어졌다. 지난 91년엔 거품이 꺼지면서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앞다퉈 사무실을 철수했다. 거품 붕괴 이후 ‘잃어버린 10년’이 이어진 데다 각종 진입장벽은 여전히 남아 글로벌 금융·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도쿄시장의 경쟁력은 뒤떨어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78개의 헤지펀드가 싱가포르에 진출한 반면 일본은 3개에 불과해 홍콩(8개)에도 뒤졌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대선 ‘몰표’ 부산·경남 민심 르포

    대선 ‘몰표’ 부산·경남 민심 르포

    “경제를 살린다 캤으니까 기대가 큽니더. 확 살아났으면 좋겠어예.” 이럴 줄로 예상했다. 그런데 빗나갔다. 실제 반응은 이랬다. “경제 살리는 기 말처럼 쉽습니꺼. 기다려 봐야지예.” ‘지고(至高)한’ 여의도에 앉아 ‘변방’의 민심을 속단했던 기자는 경악했다.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압도적으로 밀어준 부산·경남은 이명박 당선자를 ‘산타클로스’로 여기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새 대통령을 향한 욕심을 자제할 만큼 냉철했고, 냉철했기에 무서웠다. ●“잘하긴 잘할 것” “기대 안해” “기대가 있긴 하지만서도 말같이 잘 되겠나 하는 의심도 있심더. 반신반의라고나 할까예.” 24일 부산 괘법동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김강영(49)씨의 반응이다.“대통령이 무슨 요술방망이라도 갖고 있다고, 그래 성급하면 되겠십니꺼.” 서면의 휴대전화 대리점 사장 최모씨의 얘기다.“그래도 한 1년은 두고봐야 안 되겠십니꺼.” 김해시 진영읍 중앙로에서 풀빵을 굽던 김현태(52)씨의 말이다. “별로 기대 안 한다 아입니꺼. 맨날 처음엔 잘한다 캤다가 나중엔 별로로 끝나니까….” 진영읍에서 마주친 대학생 이금상(20·가야대)씨는 시큰둥하기까지 했다. 이쯤되면 기대와 실망의 반복에서 오는 경험적 허무주의에 가깝다. 이 당선자의 독주로 일관한 탓에 선거에 대한 관심 자체가 적다고 했다.“손님들이 별로 선거 얘기 안 합니더.” 택시기사 양주영(51)씨의 말이다. 그래도 얘기를 끌다 보면 기대감이 새어 나온다.“이명박씨가 잘하긴 잘할낍니더. 정주영씨 밑에서 일을 배웠으니까.” 택시기사 배영한(67)씨의 말이다.“손님들이 이명박씨가 돼서 잘됐다고는 하데예.” 남포동 국밥집 50대 아주머니의 전언이다. ●이왕 된거 도덕성시비 그만 좀 그럼에도 투표를 앞두고 고민이 묵직했음을 짐작할 만했다.“아무래도 이명박씨의 도덕성 문제 때문에 좀 그랬던 것은 사실이지예. 그래도 이왕 된 거니까 이제 (BBK 특검을)그만들 하고 새 출발하면 좋겠심더.” 괘법동 공인중개사 남상락(58)씨의 말이다. 이번 대선에서 충청 다음으로 이 지역에서 많은 득표를 한 이회창씨는 내년 총선에서 선전할 수 있을까.“노년층에서 이회창씨한테 동정심이 좀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어디 되겠십니꺼.” 대학생 채관수(19·동아대)씨 반응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영남 신당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실망이 얼마나 큰데…. 안 될 거라예.” 진영읍에서 만난 택시기사 박진철(45)씨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런 얘기도 들었다.“한나라당이 만약 자기들끼리 싸우면 절대 안 찍어줄 끼라예.” 구두미화원 서영석(39)씨의 얘기다. 풀빵장수에서 구두미화원에 이르기까지 이날 만난 민초들의 정치적 식견은 여의도의 웬만한 정치평론가 뺨칠 만했다. 무슨무슨 시나리오나 쇼에 농락당할 민도(民度)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날 낮 진영읍에서 부산까지 가는 시외버스엔 적지 않은 승객이 타고 있었지만, 수도권의 말쑥한 신도시 광역버스보다 조용했고 승객들은 기품이 있었다. 부산·김해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선택 2007 D-12] “후보 많아 정책비교 역부족”

    ●제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아쉬웠다. 후보들이 BBK만 보고 있다가 나온 토론회 같다. 전날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한번에 허무하게 끝나버렸는데도 후보들이 준비를 안 하고 있다가 부랴부랴 나왔다는 느낌이다. 정책도, 토론회 내용도 그랬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마치 대선이 끝났다는 식의 태도, 마치 벌써 대통령이 됐다는 분위기로,“볼 것 다 봤다. 대통령 되는 일만 남았다.”는 식으로 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트집잡고 토론에 나왔는지 모르겠다. 정견을 밝혔어야 한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가장 모호했다. 출마 이유부터가 명확하지 않지 않나. 출마 초기에는 이명박 후보가 깨지면 대타로 나설 것처럼 했는데 이제 BBK가 해결되니까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모르는 것 같다. ●이상철(성균관대 교양학부 교수) 참여 인원이 너무 많아 쟁점의 대립점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혼란스럽고 분산된 느낌이 강했다. 후보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아서 견해를 완벽하게 펼치기 어려웠던 걸로도 보인다. 참여 인원을 조절하는 방안도 생각해야 한다. 주제와 상관 없는 발언이나 선정적 발언이 많았다. 정 후보는 김경준씨의 주장을 그대로 옮겼다. 후보자가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공론의 장에서 재생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만 대북정책에서 확고한 철학이 보였다. 풍부한 경험과 자신감이 돋보였다. 이명박 후보는 정제된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동어 반복이 많고 주제와 겉도는 추상적 발언이 많았다. 논제 파악이 덜된 걸로 보인다. 이회창 후보는 주제에 대한 공부가 잘 된 것으로 보인다. 확고한 키워드를 가지고 집중력 있는 토론 태도를 보였다 ●김종배(시사평론가) 전체적으로 분산된 느낌이었다. 유권자들이 각 후보의 정책과 노선을 비교하면서 판단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치 영역은 개헌 하나에 그쳤고 상대적으로 대북정책(북핵문제)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후보들의 대북정책도 추상적이었다. 굳이 토론회를 봐야 정체성 차이를 알 수 있을 정도로 깊이 있게 논의된 것 같지는 않다. 이회창, 정 후보가 전달력과 응집력에서 앞섰다. 이명박 후보는 다른 후보들에게 공격당할 때 설득력 있게 대처하지 못했다. 전략인가도 싶었다. 권 후보는 이명박 후보와 정 후보를 견제하느라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지 못했다. 이인제 후보는 토론의 진지함이 부족했고 문 후보는 초보로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정리 구혜영 박지연 박창규기자 koohy@seoul.co.kr
  • [열린세상] 낭만 서비스/차동엽 신부· 천주교 인천교구·미래사목 연구소장

    [열린세상] 낭만 서비스/차동엽 신부· 천주교 인천교구·미래사목 연구소장

    엊그제 강의 차 대구엘 갔다가 새삼 가을 끝자락을 밟아봤다. 거리에는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 쓰레기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차량 봉사를 나오신 분의 설명이 재미있었다. “시민들이 낙엽 좀 밟아보라고 시에서 일부러 치우지 않은 겁니다. 시민들이 좋아해예.” “그래요? 거참 멋진 발상이네.” 요즈음 공무원들에게 이런 낭만 서비스 정신이 있다는 것이 여간 대견스럽게(?) 여겨지지 않았다. 하여튼 이렇게 낙엽을 즐기노라니 불현듯 시간의 흐름이 실감되었다. 허무(虛無)가 밀려온 것이었다. 허무가 무엇인가? 허무에도 염세적인 허무가 있고, 예지어린 허무가 있다. 시간의 흐름을 비관적으로 보는 관점이 있고,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는 말이다. 워낙 긍정적인 사고를 즐기는 편인 필자는 당연 후자의 관점으로 산다. 이와 관련하여 딱 어울리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어느 날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 왕이 궁중의 보석 세공인을 불러 이렇게 지시했다. “나를 위해 반지를 하나 만들어라. 그 반지에는 내가 큰 승리를 거둬 그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또한 그 글귀는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도 나를 구해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왕의 명령을 받은 보석 세공인은 곧 아름다운 반지 하나를 만들었지만, 왕이 지시한 적당한 글귀가 생각나지 않아 커다란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석 세공인은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구했다. 이에 왕자는 다음과 같은 글귀를 새겨 넣으라고 조언하였다.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그러면서 솔로몬 왕자는 다음과 같이 이유를 설명했다. “왕께서 승리의 순간에 이 글귀를 보면 곧 자만심이 가라앉을 것이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이 글귀를 보면 이내 표정이 밝아질 것입니다.” 얼마나 기막힌가! 지혜라는 것은 이렇게 맛있다. 어떤 관점에서 맞이하든 허무의 계절임에는 틀림없다. 허무감이 엄습할 때 필자는 역설적으로 ‘사소한 행복을 즐기라.’는 처방을 곧잘 내린다. 독자들께도 좋은 방법을 소개하고 싶다. 작년에 MBC다큐 프로그램 ‘행복’에서 ‘열 가지 행복 실천법’을 제시했다. 이 행복 실천법은 미국과 영국에서 긍정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여러 차례의 실험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고 통계적으로 확인한 것들을 쉬운 실천법으로 바꿔 정리한 것이다. 그 열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매일 저녁, 그 날 일어난 감사한 일 3가지를 일기에 쓴다. 2. 신문에서 감사할 만한 뉴스를 찾아 스크랩한다. 3. 평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사람을 찾아 감사편지를 전한다. 4. 나에게 하루에 한 가지씩 선물을 준다. 5. 하루 한 번씩 거울을 보고 크게 소리내어 웃는다. 6. 남에게 하루에 한 번 친절한 행동을 한다. 7. 아무도 모르게 좋은 일을 한다. 8. 대화하지 않던 이웃에게 말을 건다. 9. 좋은 친구나 배우자와 일주일에 한 시간씩 방해받지 않고 대화한다. 10. 연락이 끊겼던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만난다. 한번 실천해 보시라. 단 한두 가지라도 좋다. 반드시 작은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차동엽 신부· 천주교 인천교구·미래사목 연구소장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5) 무상사 조실 대봉 스님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5) 무상사 조실 대봉 스님

    ● 한국 최고의 해외포교사 ‘숭산´스님 뒤를 잇다 2004년 입적한 전 화계사 조실 숭산 스님은 오랜 기간 해외포교를 통해 숱한 외국인 제자를 낳은 선사이자, 한국 최고의 해외포교사로 꼽힌다.27일 서울 화계사 대적광전서 있을 숭산 스님 3주기 추모제에 참석하는 외국인 제자 스님만도 21개국 170명.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계룡산 자락의 국제선원 무상사를 기자가 찾았을 때도 추모제를 준비하는 스님들의 움직임이 여간 부산한 게 아니었다. 여러 외국인 스님들을 총지휘하느라 바쁜 조실 대봉(大峰·57·미국·속명 로렌스 시컬) 스님을 대면한 것은 한참을 기다린 끝이었다. 바쁜 결에도 단정한 옷차림으로 좌복에 꼿꼿하게 앉은 스님의 감회는 남달라 보였다. 한국의 외국인 스님으론 유일한 숭산 스님 전법(傳法) 제자이자, 숭산의 법맥을 이은 맏형인 때문일까. 전법 제자라 함은 오계와 십계를 받은 제자 중 법사와 지도법사를 거쳐 확실한 공안(화두) 수행을 인정하는 인가를 받은 스님에게만 주는 자격. 숭산 스님 제자 가운데 하버드 출신 현각과 무상사 주지 무심(미국), 그리고 한국 스님 도관 등 세 명이 인가를 받았지만 전법 제자의 반열엔 오르지 못했다. 그러니 숭산의 제자들이 유일한 전법 제자인 대봉 스님에게 깍듯한 예를 갖추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동쪽 끝 필라델피아 근교, 인구 5000명의 작은 마을인 엘킨스 파크 태생인 대봉 스님에게 숭산은 방황의 끝을 매듭짓게 한, 그야말로 큰 산이었다. 코네티컷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에게 삶은 어려서부터 퍽이나 풀기 힘겨운 의문의 점철이었다고 한다.“왜 잘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이들이나 예외없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일찌감치부터 범상치 않은 의심에 매달려 살았던 그가 물리학과에서 1년6개월 만에 심리학과로 전과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대학졸업 후 전공을 살려 취직한 병원에서 환자 심리상담 일을 3년쯤 했을까.‘내가 나를 구제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단 말인가.’ 불현듯 회의를 느껴 그만두고 도자기 굽는 일이며 용접 등 닥치는 대로 막일 터를 전전하다가 잠수함 만드는 공장에 몸을 담았다. 끝 모를 방황의 늪에 깊숙이 빠져들었던 것이다. “잠수함 공장의 단순노동을 하면서 뜻밖에 내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으니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던 중 막연히 불교의 스승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당시 예일대 옆에 2년여 전 문을 연 뉴헤이븐 선원을 찾았다. 뉴헤이븐 선원은 숭산 스님의 제자인 예일대 교수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선원.“며칠 뒤 숭산 스님의 큰 법문이 있다.”는 말에 밤잠을 설치기를 한참 뒤. 마침내 숭산 스님의 법문을 듣고는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30년 전인 1977년 5월의 일이다. ● 30년전 숭산 스님의 법문 듣고 방황의 길 접어 “어떤 게 미친 것이고 어떤 게 미치지 않은 것인가.” 법문을 듣던 한 청중이 불쑥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때까지 끊임없이 의심을 거듭해 왔던 바로 그 화두였다. 숭산 스님의 답은 과연 무엇일까.“네가 많이 집착한다면 많이 미친 것이고, 조금 집착한다면 조금 미친 것이다.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미치지 않은 것이다.” 10여년간 대학 공부와 막노동일을 했지만 터럭만큼도 생각해 보지 못한 답이었다.“모든 사람들이 ‘나’에 집착하기 때문에 모두 미쳐 있다. 헛된 나를 버리고 진실한 ‘참나’를 찾고 싶다면 참선수행을 하라.” 한국불교에 귀의할 마음을 굳혀 잠수함 공장 일을 단박에 그만두었고 한달 뒤 프로비던스 선원으로 출가,30여년째 부처님 제자로 살고 있다.1984년 프로비던스 선원에서 사미계를 받았고 4년 뒤 스페인 바르셀로나 선원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숭산 스님을 처음 만나 자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정했지만 부모들은 맏아들을 불가(佛家)에 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유대인으로 사업에 크게 성공한 CEO 할아버지를 이어 가업을 물려받을 줄 알았던 장남이 속세를 떠난다니 부모의 실망이야 오죽했을까. 숭산 스님을 만난 뒤 1년쯤 지난 때였을까. 가족들이 숭산 스님을 집으로 초대해 스님을 떠보느라 온갖 질문공세를 퍼부었다고 한다.“종교를 빙자한 세일즈맨이 아닌가.”“맞다. 대자대비를 파는 세일즈맨이다.” 마침내 숭산 스님의 그릇을 본 가족이 아들의 길을 인정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완강하던 부모님이 숭산 스님에게 마음을 연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마을의 분위기가 조금 도움이 됐다고나 할까….” 어릴 적의 고향 엘킨스 파크는 여러 종교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독특한 곳이었던 것 같다. 영국계 퀘이커 교도들이 정착해 화합과 평화의 고장으로 일군 펜실베이니아주의 도시답게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남부에서 피신해온 흑인 노예들이며 유대인, 이탈리아인들이 분란 없이 잘 어울려 살았다고 한다. 교회며 성당, 사원들이 모임도 열고 함께 크고 작은 행사도 가졌다고 하니 예사 마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못내 아쉬워하는 부모와 친척들을 뒤로한 채 서울 화계사로 들어온 게 1984년 9월. 당시 숭산 스님은 대봉 스님과 함께 사찰 40여곳을 일일이 돌며 한국 절집들의 구석구석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한국 사찰을 조금 알게 됐을 때 미국 프로비던스에 ‘금강선원’이 문을 열게 됐다. 화계사 생활 한 달 만이었다.‘금강선원’에 마땅한 지도법사가 없어 사실상 주지격인 도감을 맡아 다시 미국으로 가야 했다. 이후 화계사와 미국의 ‘금강선원’을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한국말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한국불교를 택해 자원해서 화계사 국제선원에 들었던 만큼 한국불교에 깊숙이 빠지고 싶었는데…. 그땐 숭산 스님이 야속했지요. 하지만 이것도 길이려니 여기고 매년 동안거는 꼭 한국에 들어와서 났지요.” 한국에서 비구계를 받고 무상사에서 함께 수행 중인 주지 무심 스님이 일찍부터 한국포교에 나섰다면 조실 대봉 스님은 해외 생활에 더 많은 시간들을 보냈다.“무심 스님은 개띠여서 한 곳에 오래 머물렀지만 나는 호랑이띠를 타고나 이곳저곳을 떠돈다.”며 웃는다. 프랑스 파리선원 주지, 캘리포니아 무문선원 주지, 보스턴 케임브리지선원 주지 등 유럽·미국의 선원에서 초심자들을 지도하다가 한국에 정착한 것은 1993년 9월. 무상사 국제선원을 막 짓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지금은 대웅전이며 선원 같은 번듯한 건물들이 들어섰지만 그때만 해도 첩첩산중에 잠자리 겸 법당만 달랑 갖춘 조립식 건물 한 채만 서있었다. 부엌도, 화장실도 물론 없었다. 공양(식사)을 하려면 2㎞쯤 떨어진 절 아래 마을 식당까지 내려가야 했다. 대소변 해결할 시설도 마땅히 없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선원을 짓는다는 기쁨에 참선수행을 빼곤 온통 인부들과 함께 공사에 매달렸다.1999년 가을에야 미국인 명행 스님이 처음 선원으로 들어왔으니 계룡산 자락의 무상사를 6년간이나 홀로 지킨 셈이다. ● “말(言)은 낙엽과도 같아 입 밖에 나면 모두 허무한 것”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되짚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기자를 겨눈다.“너는 누구냐.” 눈앞에 날아든 살에 머뭇거리다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허튼소리로 방패를 삼았다.“아무 것도 아닌데 말은 누가 하는고.” 어차피 거량이 안 될 바에야 일찌감치 입을 닫는 게 상책.‘뻔뻔한 묵언’으로 하늘을 가리자니 기자의 빈 잔을 채우며 말을 잇는다. “말은 떨어지는 낙엽과도 같아 입 밖에 나면 모두 허무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살지요. 수행자들은 말을 안함으로써 힘을 얻고, 속인들은 말을 많이 해야 힘을 쓴다고 하던가요.” 크게 한 방을 맞아 비틀거리다가 “은사 스님(숭산)의 가르침대로 잘 살고 있느냐.”는 허튼소리를 또 한번 뱉고 말았다.“오직 모를 뿐인 마음으로 곧바로 나아갈 따름입니다. 순간순간마다 점검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무상사의 대중들을 이끌며 수행방향을 잡아주고 있는 조실 대봉 스님의 길과 초발심엔 변함이 없어 보였다.“내가 이곳 국제선원 무상사에 있는 것만으로도 외국의 수행자나 한국불교에 귀의할 뜻을 가진 이들에겐 큰 힘이 된다.”는 대봉 스님.“한국불교에서 길을 찾는 눈 푸른 납자들에게 초발심을 잃지 않고 올곧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게 나의 소임”이라며 추모제에 참석할 외국인 스님들의 명단을 챙겼다. 계룡산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김미라 교수의 부모들을 위한 교육특강] (27) 스트레스, 수능 이후가 중요하다

    [김미라 교수의 부모들을 위한 교육특강] (27) 스트레스, 수능 이후가 중요하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길이 뚫리기만 하염없이 기다려본 적이 있으신지요? 도대체, 얼마나 막혀 있는 건지, 언제 이 정체가 풀릴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느긋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 시간이 얼마나 참고 견디기가 어려운지요.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을 때는 통제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이 떨어질 때입니다. 각 가능성이 하나씩만 줄어도 힘이 들고 둘이 동시에 줄어들 때는 무척이나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차가 막혀 있을 때 스트레스가 큰 것은 교통 정체를 내가 어찌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찌해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얼마쯤 후에 정체가 풀린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참을 만합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하든 정체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정체가 풀릴지도 알 수 없을 때의 스트레스는 엄청납니다. ●수능 직후는 예측·통제가능성 ‘제로´ 시험은 이미 끝났습니다. 이제 와서 시험 성적에 영향을 미칠 행동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통제가능성이 ‘0’인 상황이지요. 뿐더러 최상위권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점수가 전체 점수 분포에서 어디쯤에 있는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설령 예상 점수를 안다고 해도 논술, 면접 등의 또 다른 변수가 예측가능성을 끌어 내립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단순히 신체적 휴식을 취한다거나 마음을 다잡는 것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거한다거나 극복을 위한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방법들이 효과를 발휘하기 전, 한시적인 평안함을 얻기 위한 즉각적 반응들이 나타납니다. 그런 반응들은 적응적일 때도 있고 부적응적일 때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보기에는 부정적 반응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잠시 쉬어가기’의 긍정적 효과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개중에는 의도적인 반응도 있고 비의도적인 반응도 있습니다. ●채점조차 안 하는 것도 ‘탈출구´ 수능이라는 커다란 시험을 보고 난 수험생들 역시 여러 가지 즉각적 반응을 합니다. 먼저 큰 시험을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을 보입니다. 바로 이어서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시작한 12년간의 학교 공부가 단 하루의 평가로 마무리되었다는 허무함, 조금 더 열심히 노력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회한이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허무함과 회한이라는 상태는 그리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이 상태를 벗어나고자 하는 즉각 반응이 뒤따릅니다. 가장 많이 나타나는 반응 중의 하나는 합리화입니다.‘나만 시험을 못 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못 봤을 거야.’하면서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때 부모님들께서는 ‘위는 보지 않고 아래만 본다.´고 꾸중하기 쉽습니다. 부정이나 회피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예 시험에 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하기도 하고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는 채점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주인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신경이 너무나 많이 쓰이기 때문에 아닌 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힘´ 비축할 수 있게 격려를 분노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예측이 될 때 그 화살을 바깥으로 돌립니다.‘교육제도가 잘못되었다.’ 혹은 ‘부모님의 지지가 없었다.’ 등 외부로 탓을 하면서(외부 귀인) 화를 냅니다. 또는 본인이 노력부족이나 능력부족을 탓하는 내부 귀인을 하기도 합니다. 내부 귀인을 하는 경우에는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기 때문에 우울 반응이 뒤따라옵니다. 위축, 의기소침, 슬픔이 마음속에 가득하고 무기력하게 행동합니다. 또는 이번 시험은 망쳤지만 다음번 시험은 잘 볼 수 있다면서 당해 연도 입시를 지레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험생에 따라서는 합리화, 회피, 분노, 우울, 포기 등의 반응을 다 함께 보이기도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반응들을 2주 이상 보이면 부모님들이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야 하지만 시험이 끝난 직후에 단기적으로 보인다면 그냥 보듬어 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남북총리회담] 화기애애한 회담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회담은 없었다.” 1차 남북총리회담을 두고 정부관계자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다. 남북회담에서 으레 있었던 회담 중단이나 결렬은커녕 회의는 예상보다 짧게 끝났다. 오히려 총리회담을 일종의 잔치처럼 즐기는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는 회담 첫날 회의장에서부터 감지됐다. 북측의 요청에 따라 남북이 동시에 입장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번에는 우리 측이 먼저 회담장에 들어가 북측을 맞이했다. 이재정 장관의 파워포인트 설명도 경계의 벽을 허무는 데 일조했다. 남북회담 사상 처음으로 ‘산책 대화’를 나눈 것도 이례적이었다. 남측의 산책 제의에 북측이 마음을 열었다. 양측 총리가 모두 경제 전문가 출신이라는 점에서 마음도 쉽게 통했다. 때문에 회담장에는 ‘산책 대화’에서 이미 대략적인 합의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만찬장에서 폭탄주로 우의를 다진 남북대표단은 호텔로 돌아와서도 분과별로 삼삼오오 모여 못다한 회포를 푸는 모습도 보였다. 북측 대표단이 머무는 호텔방으로 회가 배달되는 모습도 포착됐다. 그러나 ‘개성공단 3통 문제’와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남북이 힘겨운 줄다리기를 벌이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관세 통일부 차관과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은 만찬장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16일 새벽까지 합의문 문안 조율을 했다. 남측이 “3통이 안 되면 아무것도 합의 못한다.”고 북측을 압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도 남측의 끈질긴 설득 끝에 적십자회담에서 다루는 쪽으로 합의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북측이 예전에 비해 확실히 유연해진 감이 있다.”면서 “세 차례 예비접촉을 통해 의견차를 좁혔던 것도 이번 총리회담이 별 탈 없이 진행됐던 큰 요인이었다.”고 평가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김경준 귀국] 긴장속 목청 키우는 정치권

    [김경준 귀국] 긴장속 목청 키우는 정치권

    ■李 “범인 소환인데 뭐 대단하다고” “뭐 그리 대단한 귀국이라고…. 범인 소환 아니냐.”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16일 BBK 주가조작 사건의 김경준씨가 송환된다는 소식에 보인 첫 반응이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아꼈다. 김씨를 ‘사기꾼’ 내지 ‘범죄자’로 규정한 당의 전략과 맥이 닿는다. 그러면서도 이 후보는 이날 오후 잠실에서 열린 ‘국민성공대장정 서울대회’에 참석해 BBK 의혹을 언급하며 “이제 남은 하나의 난관도 우리를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라면서 “어느 누구도 우리를 흔들 수 없다.”고 역설했다. 겁날 게 없으니 동요하지 말라는, 당원과 지지층을 향한 메시지다. 이 후보는 앞서 ‘BBK 대응’을 맡고 있는 클린정치위와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검찰수사가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당이 확보한 BBK 관련 자료를 모두 검찰에 제공하라는 지시도 내렸다고 박형준 대변인이 전했다. 이처럼 이 후보와 한나라당은 “걱정할 게 없다.”며 의연한 자세를 보였지만, 이 사건이 정권교체의 꿈을 앗아가도록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경도 내비쳤다.2002년 대선 때의 ‘김대업 악몽’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 후보와 별도로 주요 당직자들은 ‘김경준=범죄자’라는 전제 아래 법적 대응책을 마련하는 한편 검찰의 엄정 수사를 촉구하며 압박책을 폈다. 강재섭 대표는 “검찰이 오로지 진실을 밝힌다는 역사적 소명의식에 충실해 줄 것을, 오로지 법률에 따라 철저히 보안을 지키며 정당하게 수사해 줄 것을 부탁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은 “(김경준씨는) 이명박 후보에게 생채기를 내면 형량을 낮춰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들어오는 것”이라면서 “대한민국 최고검사였던 제가 책임지고 막겠다.”고 검찰과 김씨를 동시에 압박했다. 박형준 대변인과 부대변인단도 김씨 송환에 대해 이례적으로 논평을 4개씩이나 내며 강공을 폈다. 김씨 주장은 터무니없다는 반박이다. 한나라당은 또 이와 별도로 국정원이 이 후보와 친인척의 개인정보를 조회한 사실과 관련, 김만복 국정원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초강수도 뒀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昌측 “이명박 후보사퇴 고민해야” 무소속 이회창 대선 후보측은 16일 김경준씨 귀국에 맞춰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사퇴까지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어려워서 아는 게 없다.”며 그동안 BBK 사건과 관련해 말을 아끼던 이 후보는 김씨 귀국 소식에 “이번 대선에서 이렇게 큰 이슈가 된 이상 조속하게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며 이명박 후보를 정조준했다. 검찰에 대해서도 “정치적 고려나 정략적 의도에 좌우되지 말고 공정하고 철저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캠프 좌장격인 강삼재 전략기획팀장은 더 강한 어조로 이명박 후보를 공격했다. 그는 “땅투기·돈투기 의혹과 탈세 등으로 얼룩진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도 되는 것인지 국민은 심각한 인식의 혼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강 팀장은 이어 “이 후보는 더 이상 국민을 호도·협박하지 말고 대선후보직 사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강 팀장은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의 ‘민란’ 발언을 겨냥,“한나라당이 진솔한 해명과 사과를 하기는커녕 ‘민란’ ‘공작정치’ ‘규탄대회’ 운운하는 것은 본질을 흐리고 진실을 덮으려는 불순한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사퇴 요구는) 원인 제공자인 이명박 후보가 책임을 지라는 것”이라면서 “대선 전이라도 결백하다면 뒤에서 아니라고 하지 말고 제 발로 나가 조사를 받든지 적극적으로 증거를 제시하고 해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 팀장은 “우리가 공격한다고 보지는 말아달라. 사건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며 이명박 후보 관련 의혹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애써 강조하기도 했다. 보수세력 분열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수위 조절이다. 그러면서도 강 팀장은 “검찰과 한나라당이 정도(正道)가 아니라면 우리 입장을 설명하겠다.”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이회창 후보 캠프는 김경준씨 귀국 뒤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한편으로 혼란한 정국 동안 캠프 내부를 정비할 계획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鄭 “닉슨도 진실은폐 때문에 사퇴”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경준씨 귀국과 관련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부패정치인으로 몰면서 총공세에 나섰다. 김씨 귀국을 계기로 이 후보를 ‘거짓말 후보’ ‘부패 후보’로 규정, 부패 대 반(反)부패 전선을 선명히 함으로써 일대일 구도 형성을 이끌어 내겠다는 포석이다. 정 후보는 16일 ‘몽골기병단’ 민심 대순례 일환으로 대구를 찾아 이 후보의 부패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결기가 느껴질 정도로 격한 감정을 토해냈다. 그는 이날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 후보는 장로님 아니냐.”고 반문한 뒤 “이 후보는 성경책에 손을 얹고 진실을 고백하고 증언하고,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법적·정치적 책임과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당당하게 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미국 닉슨 대통령은 진실 은폐 때문에 사퇴하지 않았느냐. 선진국 정치에서 가장 치명적 오명은 ‘거짓말쟁이’로, 거짓말쟁이는 정치인생의 끝을 의미한다.”면서 “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이 후보 자신으로, 지금이 진실을 밝힐 마지막 순간이며 거짓말로 일관해 왔다면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정 후보는 이어 “이 후보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쇠’로 부인해 왔지만 이제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왔다.”며 “허무맹랑한 ‘민란’ 이야기로 수사를 협박하는 것을 즉각 중단하고 수사에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대통령 후보에게는 추호의 의혹도 용납되지 않는다. 대통령은 법의 수호자로, 국민 앞에 떳떳해야 한다. 이 후보가 어떤 형태로든 연루됐다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면키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주가 조작, 땅투기, 자녀 유령취업, 탈세 등 무슨 짓을 해도, 아무리 부패해도 능력만 있으면 문제가 없다는 가치 전도 현상이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다.”며 이 후보를 겨냥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美대선 70대 이색 후보 눈길

    美대선 70대 이색 후보 눈길

    “힐러리나 줄리아니만 후보냐?우리도 좀 봐달라.” 민주당 마이크 그레이블(77·알래스카)전 상원의원과 공화당 론 폴(72·텍사스) 하원의원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도 유력주자는 아니지만 당당한 대선 예비후보다. 당내에서는 둘다 ‘괴짜’취급을 받는다. 기상천외한 공약으로 표심을 다진다. 둘다 70대 할아버지.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손주뻘인 20대들에게 오히려 인기가 많다. 그레이블 전 의원은 퉁명스럽고 직선적인 말투가 트레이드 마크. 지난달 말 열린 토론회에서는 유력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향해 폭발했다. 그는 힐러리가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법안에 찬성했던 것을 놓고 “힐러리, 나는 당신이 정말 부끄럽소”라며 면전에서 일침을 가했다. 마리화나를 합법화할 것을 주장하는가 하면, 발전(發電)을 위해 미국 전역에 500만개의 풍차를 짓자는 엉뚱한 공약도 내놓고 있다. 유투브를 통해 알려진 선거동영상 광고는 그의 괴팍함을 그대로 드러낸다.2분 50초짜리 광고에서 그는 호수앞에서 1분여를 아무말 없이 뚱한 표정으로 그냥 서있기만 한다. 그리고는 갑자기 뒤돌아서서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주워서 호수에 집어 던지고는 천천히 반대편으로 걸어간다. 이어 ‘gravel 2008 us(2008년엔 그레이블을)’라는 자막이 올라간다.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무슨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아리송하기만 할 뿐. 하지만 젊은 블로거들은 “절묘하다.”,“허무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열광하고 있다. 그러나 1%도 안 되는 지지도로 민주당 예비후보 중 꼴찌를 면치 못하는 게 여전히 그의 고민이다. 산부인과 의사인 공화당 폴 의원도 특이한 성향의 후보다. 공화당원이지만 이라크 전에 반대한다. 그는 자유주의자로, 연방정부의 과도한 역할에도 반대한다. 미국이 유엔이나 나토, 세계무역기구 같은 국제기구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폴 의원 역시 지지율은 2%대. 하지만 대학가나 젊은 네티즌들의 지지는 탄탄하다. 정치기부금으로 무려 800만달러(약 72억원)를 쓸어담았을 정도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 미 대선에서 이들 별난 70대 두 군소 후보가 막판까지 선전을 펼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이인제 “鄭, 국군 모독… 文, 정치허무 유포” 문국현 “鄭·權·李와 단일화할 마음 없어”

    이인제 “鄭, 국군 모독… 文, 정치허무 유포” 문국현 “鄭·權·李와 단일화할 마음 없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한 공세에 집중하던 범여권 대선후보 세 명이 전선(戰線)을 다각화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이인제 대선 후보가 25일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창조한국당(가칭) 문국현 후보를 싸잡아 비난하고, 문 후보는 전날에 이어 이명박 후보와 정 후보를 한데 묶어 공격하고 나섰다. 특히 문 후보는 정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에 대한 거부감을 거듭 나타내 후보 단일화 움직임이 변곡점을 맞은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대전 오정동 농수산물 시장과 관저동 성애 양로원을 잇따라 방문한 이인제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정 후보의 ‘이라크 용병’발언을 맹비난했다. 이 후보는 정 후보가 ‘세계 용병의 공급원이 돼도 좋은지 이명박에게 물어야 한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신성한 국군을 모독한 중대 망언”이라면서 “정 후보는 용병 발언으로 스스로 대통령이 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국군과 국민에게 정중하게 사죄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이에 정 후보측 최재천 대변인은 “세계평화유지가 아닌 오로지 이기적이고 경제적인 이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이명박식 파병 논리를 용병으로 비유한 사실은 맞다.”면서도 “이를 두고 마치 정 후보가 자이툰 부대 장병을 용병이라고 평가했다고 하는 것은 굳이 대응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인제 후보는 전날 문 후보가 범여권 단일화 의사가 없음을 밝힌 것에 대해 “누가 단일화하자고 얘기했느냐. 다국적 기업에서 화장지 만들던 사람이, 반장 선거도 시의원 선거도 안 나와본 사람이 정치 허무주의를 퍼뜨리고 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단일화 대상인 정 후보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도 견제구를 던졌다.“후보 단일화는 중도개혁세력이 결집해 중도개혁 정권을 세우자는 것”이라면서 “민노당은 단일화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비슷한 시각 문 후보는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은 거대하지만 가치가 없는 당이고 국민들이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라면서 “민노당도 길을 잃었다.”고 다른 정당을 일제히 깎아내렸다. 이어 그는 정·이·권 후보와의 단일화 의사에 대해 “단일화는 정치공학자들이 하는 얘기지 그분들도 (단일화할) 마음이 없다.”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대전 나길회·서울 구동회기자 kkirina@seoul.co.kr
  • 클리블랜드 “WS 1승 남았다”

    사상 최악의 월드시리즈(WS)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전통의 명가’ 보스턴 레드삭스에 3연승을 올리며 WS 진출에 1승만을 남겨두자 ‘지역구 WS’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클리블랜드는 17일 제이콥스필드에서 벌어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에서 안정된 마운드와 타선의 응집력을 앞세워 보스턴을 7-3으로 꺾었다.콜로라도의 스윕(싹쓸이)으로 막을 내린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의 미 전역 평균 시청률이 2.6%밖에 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나 폭스TV는 이런 상황에서 클리블랜드마저 WS에 나갈 경우, 보통 때의 13∼16%를 기대하기 어려워 걱정이 태산이다. 이날 승부는 한순간, 허무하게 갈렸다.4회까지 보스턴 선발 팀 웨이크필드의 너클볼에 넋을 잃었던 클리블랜드는 5회 케이시 블레이크의 선제 1점포로 분위기를 바꿨다. 웨이크필드가 흔들리면서 맞은 1사 1·3루의 찬스에서 아스드루발 카브레라와 빅터 마르티네스의 연속 적시타로 3-0으로 달아났다. 계속된 2사 1·2루에서 자니 페랄타가 소방수로 나선 매니 델카르멘로부터 3점포를 쏘아올려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7안타로 7득점. 보스턴은 6회 유킬리스-오티스-라미레스 등 세 타자 연속 홈런으로 3점을 따라붙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보스턴은 19일 5차전(오전 9시) 선발로 1차전 완봉승의 주역 조시 베켓을 내세워 대반전을 노린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프로야구] 두산 리오스 무실점 ‘완벽투’

    다니엘 리오스(35·두산)가 포스트시즌(PS)에서 부진을 털고 다승왕의 위용을 뽐냈다.2002년 국내에 데뷔한 리오스는 PS 7경기에 나와 1승4패, 방어율 4.91에 그쳤었다. 두산은 14일 잠실에서 열린 프로야구 플레이오프(PO·5전3선승제) 한화와의 1차전에서 리오스의 쾌투와 타선의 응집력으로 8-0의 완봉승을 거두며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두산은 2001년 준PO 1차전부터 한화전 PS 6연승을 이어가며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의 꿈을 부풀렸다.86년 시작된 PO는 23차례 열렸으며 1차전 승리 팀이 17차례나 한국시리즈에 진출, 확률이 74%에 이른다. 리오스는 8이닝 동안 6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PS 2연패를 끊었다. 리오스는 최고 146㎞의 직구를 앞세워 날카로운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교묘하게 배합하며 상대 타선을 농락,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삼성과 준PO 3차전을 치르며 기력을 소모한 한화는 무게감이 떨어지는 최영필을 선발로 마운드에 올렸다. 최영필은 2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2실점,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나마 두 번째 투수 유원상이 4와 3분의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게 수확이었다. 두산은 2-0으로 앞선 7회 행운의 3점을 추가, 한화의 추격을 뿌리쳤다. 무사 3루에서 채상병의 좌익수 앞 ‘바가지 안타’로, 이종욱의 타구를 2루수 한상훈이 ‘알까기’한 데 이어 고영민의 2루타로 1점씩을 보탰다. 한화는 0-2로 뒤진 4회 추격 기회를 맞았지만 아쉽게 실패했다. 고동진의 2루타, 연경흠의 안타로 만든 무사 1·3루에서 제이콥 크루즈의 내야 타구 때 3루 주자 고동진이 홈으로 쇄도했지만 포수 채상병의 수비에 막혔다. 계속된 1사 1·2루에서 주포 김태균, 이범호가 좌익수 뜬공으로 허무하게 물러났다. 이날 두산은 4개, 한화는 3개로 PO 최다인 병살 7개를 기록했다.2003년 KIA-SK의 1차전에서 나온 6개가 종전 최다.2차전은 15일 같은 장소에서 열리며 두산은 맷 랜들, 한화는 정민철을 선발로 예고했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플라멩코의 대모’ 요코 고마츠바라 방한

    일본인이면서 플라멩코의 본향인 스페인에서도 플라멩코에 관한한 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요코 고마츠바라가 자신의 고마츠바라무용단을 이끌고 한국을 찾는다. 지난해 2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공연에 이어 두 번째 방한무대.18일 오후 8시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과 19일 오후 8시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 등 두 차례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요코 고마츠바라는 동양 최초의 바일라오라(플라멩코 여자무용수)로 1969년 당시만 해도 플라멩코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일본에 무용단을 만들어 플라멩코를 보급해온 인물.플라멩코 무용수겸 지도자로 널리 이름이 알려졌으며 플라멩코 전파의 공을 인정받아 스페인 정부로부터 ‘이사벨 라 카톨리카’훈장을 받기도 했다. 플라멩코 마니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레퍼토리 위주로 꾸몄다는 게 주최측의 설명. 작곡가 마누엘 드 하랴의 오페라 ‘허무한 인생’에 삽입된 춤곡 ‘라 비다 브레브’를 비롯해 플라멩코 명곡 ‘말라게냐’와 남성 무용수들의 남성미가 압권인 ‘마르티네테’가 무대에 오른다.‘오자파테아도’는 마르케스가 사라사테의 명곡에 발 구르기 기술인 사파테아도를 구사하며 만들어내는 리듬이 독특한 작품이다.(02)518-7343.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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