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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조화 속 조화/2004 패션 키워드

    2004년 시작과 함께 패션계는 소비의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하지만 패션의 주체인 소비자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한다면 패션계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합리적이면서도 고급화를 추구하는 고감도 소비자에 대응하기 위해 패션계가 추구하는 올해의 패션 키워드는 어떤 것일까. ●메가 트렌드 ‘스포티즘’ 2003년을 강타한 ‘웰빙’산업,캐주얼과 스포티즘의 진전으로 캐주얼브랜드 뿐아니라 많은 브랜드들에서 스포츠적인 특성을 신설 또는 강화하는 추세다. 올해는 장식적인 요소가 많은 감성 캐주얼에 식상한 소비자가 트래디셔널 감성으로 회귀하면서 전통적인 고급스러움이 현대적으로 해석된 스포티즘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에 이어 트레이닝룩은 한단계 성장하면서 제 2의 전성기를 맞을 전망이다.이미 2003년에 새틴·벨벳 트레이닝복이 계절에 상관없이 일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는 세련된 패션 아이템으로 변신했다.올해는 전형적인 복고의 영향으로 소매의 밑단을 조여주는 니트 트리밍과 어깨선·옆선에 들어가는 선명한 줄무늬를 바탕으로 더욱 세련되고 심플하게 표현될 것으로 보인다. ●업그레이드 ‘로맨틱’ 경기가 나빠지면 여성의 치마는 짧아지고,화장은 더욱 화려해진다는 말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계속되는 경기 위축을 예측한 것일까.올해는 달콤하고 화사한 ‘로맨틱’에 자연주의가 가미된 ‘뉴 로맨틱(New Romantic)’ 스타일이 많다. 지난해 말 부산 프레타포르테나 SFAA 서울컬렉션 등에서 선보였듯 2004년 ‘뉴 로맨틱’은 가볍고 부드러운 소재,달콤하고 화사한 파스텔 컬러,그리고 여성스럽고 로맨틱한 디테일로 표현된다.자연주의 영향으로 코튼,실크,린넨처럼 가벼운 천연 소재들과 시폰,새틴처럼 얇고 부드러운 소재들로 여성스러움을 강조한다.패턴은 화려한 꽃을 비롯하여 은은한 들풀,풍성한 과일,풍경화 등 자연의 이미지를 담은 프린트물이 다수.컬러는 달콤한 셔빗을 닮은 파스텔톤의 컬러가 주목받는다. 프릴·러플 장식은 불규칙적이고 화려하게 레이어드돼 독특하게 표현된다.액세서리로도 작년 하반기부터 주목받았던 리본 벨트가 지속적인 인기를 모을것으로 보인다. ●20·40·50 뉴욕·런던·밀라노·파리의 2004년 봄ㆍ여름 여성복 컬렉션에서는 패션이 본격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한 20년대의 우아한 여성미에 초점을 맞췄다.여기에 40∼50년대 클래식한 여성미를 되살려 볼륨있는 스타일도 많이 선보였다.국내 패션계도 이같은 흐름을 좇아 ‘20·40·50년대’의 클래식한 스타일과 우아한 이미지가 주를 이룬다. 무릎 길이의 스커트는 2003년을 휩쓸었던 미니스커트를 밀어내고,재킷은 내추럴한 스타일의 재킷과 잘록하게 허리가 들어간 테일러드 재킷이 주목받을 전망이다.둥근 어깨,풍성하게 퍼지는 스커트로 대변되는 40년대 대표 스타일인 ‘뉴 룩’과 ‘피트 앤 플레어’(상체는 딱 맞고 아래로 갈수록 퍼지는 스타일) 실루엣이 다시금 글래머러스한 스타일을 부활시킬 것으로 보인다. ●캐주얼 스타일과 럭셔리 룩의 뒤섞임 독특하면서도 고감도의 패션을 창출해 내는 소비자들의 감각이 드러나는 스타일이 유행할 전망. 전체적으로 스포티한 스타일에 고급스러운 재질,소품 등을 함께 코디한 스타일이 패션 테마로 떠오를 것으로 여겨진다.고가의 진(데님),명품,고어텍스와 같은 신소재를 이용한 ‘크로스 코디’가 보다 다양하게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템을 조화하는 ‘매치리스(matchless)’도 개성을 강조하는 젊은 세대가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스타일.정장 재킷에 청바지를 받쳐 입거나,트레이닝복에 정장에나 어울릴 핸드백과 앞코가 뾰족한 구두를 신는 식이다.한창 매장을 늘리고 있는 고가의 국내외 진 브랜드는 매치리스 스타일의 확산을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성 패션의 고감도화 최근 유럽 최대의 광고대행사인 ‘Euro RSCG Worldwide’는 미에 대한 남성의 적극적인 표현을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s)’이라고 설명했다.패션과 미용에 관심이 높은 도시 남성을 가리키는 말로 남녀의 전통적인 성 역할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현상으로 분석하고 있다. 패셔너블한 남성들이 증가하면서 세련된 캐주얼웨어를 선호하며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멋을,스타일을 살리면서도 지나치게 트렌디하지 않은 스타일을 찾는 남성소비자들이 증가하는 것이 이같은 현상을 반영한다. 올해 남성들은 옷,피부관리 뿐만 아니라 메이크업에까지 관심의 영역을 확대하고,패션계에는 남성들을 겨냥한 다양한 남성복 라인과 새로운 화장품을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도움말 베스띠벨리 박성희 디자인실장·지이크 구희경 디자인실장·조이너스 전미향 디자인실장·트루젠 강미덕 디자인실장 최여경기자 kid@
  • ‘희망’을 쏜다

    “우주개발 기술은 정보통신,생명공학과 함께 21세기형 미래 원천기술로 세계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한층 높여주게 될 것입니다.” 전남 고흥군 봉래면 예내리 하반마을 외나로도.한반도 남녘 해안 끝자락의 꼬불꼬불한 지겟길 150만평은 새해 벽두부터 21세기 우주항공 시대를 여는 용틀임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외나로도 우주센터(로켓 발사장) 건설 현장을 지휘하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류정주(53) 박사는 “세계 13번째 로켓 발사장이 들어서면 국가위상이 업그레이드된다.”며 새해 소망을 인공위성에 담았다. 조용하던 오지의 섬마을은 산봉우리와 허리가 잘리면서 집채만 한 바윗돌이 구르고 포클레인과 불도저,덤프트럭이 굉음을 토해냈다.1500억원의 예산으로 지난해 8월8일 시작된 공사는 전체의 6%선으로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연건평 1만 2000여평에 발사대와 조립동,발사통제동,광학장비동,우주체험관 등 13동의 건물이 2005년 말까지 들어선다.먼저 고체 로켓과 인공위성을 맞추는 조립동(5개)을 세우고 있다.공룡이 누운 것 같은 콘크리트 배수로(길이 350m,폭 9m) 위로 4∼5m 두께로 흙 덮기가 한창이다. 조립동 앞쪽 산봉우리는 발사대(2개)를,뒤쪽 봉우리에는 발사통제동을 세우기 위해 기반 다지기를 하고 있다.이곳에 이르는 왕복 2차선 진입로(1.9㎞)도 기초공사를 마쳤다. 토목 분야 설계·시공을 총괄하는 강치광(40·항공우주연구원 선임기술관)씨는 “국내 처음으로 우주센터를 내 손으로 만든다는 자긍심과 책임감으로 일한다.”며 “눈에 밟히는 두 딸(13·11)에게 인공위성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곳 발사장에서는 2005년 말이면 소형 100㎏급 인공위성(KSLV-Ⅰ)을 고도 300㎞대에 쏘아 올린다.항공우주연구원과 인공위성 연구센터가 개발중이다.2015년까지 모두 9기를 우주로 보낸다. 건설 현장에는 우주센터장인 류 박사를 포함해 항공우주연구원 소속 건축·설계 전문가 7명이 상주한다.연구원들은 “우주센터는 다목적 인공위성 로켓의 엔진 연소 시험·발사,과학 관측용 로켓 발사,위성 유도·제어기술 시험·개발의 핵심 무대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현영(50) 감리단장은 “보상(70여가구)이 20%가량 마무리되지 않아 작업에 불만을 품은 주민들에게 멱살을 잡히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지만 ‘오지에 우주센터를 짓는다.’는 자부심으로 버틴다.”고 웃었다. 전남 고흥 외나로도 남기창기자 kcnam@
  • 신나는 건강동호회/철인 3종 ‘아이언윙’

    “올해는 기필코….”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다짐한다.하지만 비장함은 대개 봄볕에 눈 녹듯 사라지고,이런 저런 핑계를 대기 마련이다.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들.하지만 즐거운 이들.‘철인을 따라다니기만 해도 철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철인3종경기 동호회 사람들의 훈련 현장을 가봤다. “국화씨,오늘도 벗고 뛸거야?날도 추운데 참아.”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조정경기장.지난 28일 새벽 6시50분.기온은 영하 7.9도.10명의 남녀가 모여 있는 주차장 곳곳엔 매끄러워 보이는 얼음이 눈에 띄었다.조금 다가가자 들려오는 말소리.“겨울 코트에다 목도리까지 중무장을 하고 있어도 추운데 얇은 운동복만 입은 사람이 그나마 입고 있던 웃옷도 벗는다니….”이들은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동호회 ‘아이언윙’ 회원들이다. ●새벽6시50분 살에는 듯한 추위 철인3종경기는 수영 3.9㎞,사이클 180.2㎞,마라톤 풀코스 42.195㎞를 한꺼번에 완주하는 경기다.러닝머신에서 5㎞ 뛰고도 다리에 알이 박이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 사람들은 말그대로 ‘철인(鐵人)’이다. 회원들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10여분간 이리저리 관절을 움직이다 땀을 낸다고 PT체조까지 한다.오늘은 일요 훈련을 하는 날.25㎞ 마라톤과 사이클 20㎞가 예정되어 있다.다들 모자·귀마개·장갑까지 완전무장을 하고 있다.조정경기장 트랙을 돌아 한강 둑길로 접어드는 코스.미사리 간사 박인석(49)씨가 “오늘은 기자분도 오고 했으니까 살살 가자고.앞에서 너무 빨리 달리지마.”회원들에게 당부를 한다.“은숙씨,목요일에 보니까 수영 잘하던데.동계 훈련만 잘하면 시합나가도 되겠어.”“에에,아직 3㎞도 못 나가요.숨쉰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더니 목도 아프고….”회원들은 달리면서 호흡도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얘기를 나눈다. 30분 정도 됐을까.슬슬 앞사람들과 기자와의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이젠 보이지도 않는다.겨우 4㎞ 정도 뛰었는데 다리가 묵직해졌다. 인터뷰를 핑계로 인석씨와 걷기 시작했다.2번이나 철인 코스를 완주한 인석씨에게 왜 철인3종경기를 하느냐고 물었다.“힘들지만 그 과정을 이기는 것이 트라이애슬론의 묘미”라는 대답이 들려온다.사실 그도 운동을 하기 전 허리 디스크에 시달렸다.무릎관절도 안 좋아 3층 사무실에서 내려오는 것도 힘들었다.그런 그가 어떻게 철인3종경기를 하게 됐을까.“처음엔 마라톤을 했지.그러다가 자연스럽게 트라이애슬론을 하게 되더라고.운동을 하다가 보니까 관절 근육도 튼튼해졌지.내가 낼 모레 오십인데 언제라도 마라톤 풀코스를 뛸 수 있다.”며 자신감 있게 웃어보였다. 인석씨와 함께 한강 둑으로 접어들자 김국화(26)씨가 기어이 웃통을 벗고 달리고 있었다.찬바람에 살이 벌겋게 됐다.“국화씨,그러면 나중에 살이 에려.정 웃통을 벗고 달리려면 토시를 껴.그러면 따뜻해”라고 보다 못한 인석씨가 조언을 했다.텔레비전에서 철인3종경기를 하는 걸 보고 무작정 운동을 시작했다는 국화씨는 1년 만인 지난 8월 철인 코스를 완주했다.“철인3종경기를 하기 전에 헬스를 한 게 전부다.”라며 “경기 한 달 전에 일주일에 마라톤 20㎞,사이클 40㎞를 한 번,수영을 두 번씩 연습했다.”고 말했다.이어 “이런 나도 할수 있었으니까 누구나 다 철인에 도전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반문했다. ●힘들지만 훈련후 성취감에 뿌듯 국화씨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는 최정수(40)씨.땀으로 젖었던 정수씨의 옷이 하얗게 얼었다.얼음을 털어내는 그도 철인3종경기는 초보다.지난 여름에 산악자전거를 타러 갔다 철인대회를 구경하고는 바로 트라이애슬론에 입문했다.“딸하고 철인 대회를 봤는데 ‘저거다.’ 싶더라고요.그래서 바로 그날부터 연습을 했죠.지난 10월에 울진 대회를 나갔죠.성적이요? 준비 없이 대회에 나갔으니까 성적이야 뭐”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는다. 추운 한강변에서 2시간 넘게 달리던 이들이 돌아온 것은 오전 10시가 다 된 시간.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오자 중간에 사라져 다른 이들을 걱정케 했던 임송운(35)·이호정(28)씨가 생강차를 들면서 기다리고 있었다.송운씨는 “호정씨가 감기 때문에 힘들어서 쉬고 있었다.”며 오는 3월에 결혼할 예비신랑의 살가움을 보여줬다.송운씨와 호정씨는 트라이애슬론으로 맺어진 인연. 송운씨는 “수영을 잘 하지 못하는 제가 잠실쪽에서 마라톤을 하고 있었거든요.근데 호정씨가 수영대회에서 3㎞를 쉬지 않고 헤엄치더라고요.비록 4등을 해 순위에 들지는 못했지만 ‘아 저 사람은 체력은 걱정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한눈에 뿅갔죠.”라며 옆에 있는 호정씨와 웃음을 나눴다. 이제 회원들은 하나둘씩 사이클과 MTB 등을 꺼내 자전거 훈련을 준비했다.올 초에 철인경기에 입문한 정은숙(35)씨는 오늘 사이클 클립 연습을 한다. ●동호회서 만나 결혼하는 커플도 “잘 해야 돼.오늘 생일인데 괜히 넘어져서 몸에 상처라도 나면 남편이 화낼 걸.”이라고 말하는 회원들의 농담에 모두 크게 한 번 웃으며 훈련을 하러 나섰다.은숙씨는 잔디밭으로,나머지 회원은 조정경기장 트랙으로 자리를 옮겼다.훈련이 쉽지 않은 듯 은숙씨는 몇번이나 넘어졌다. “내가 수영이나 마라톤은 자신이 있는데 자전거는 영 무서워서….”라며 말문을 연 은숙씨는 “국군체육부대에서 여군 하사관으로 근무를 했죠.그때 여자사이클 선수들하고 방을 같이 썼는데 이 친구들이 시합을 하고 오면 말그대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돼서 들어오곤 했죠.그걸 봐서 그런지 자전거 타는 것을 내 자신이 겁내나 봐요.”라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엔 그럴듯하게 다리를 움직였다.다른 사람들도 슬슬 돌아오고 오늘의 훈련은 점심 무렵에 끝이 났다. 기자가 돌아갈 때 인석씨는 “마라톤 훈련중에 지구력을 향상하는 지속주(持續走) 훈련이 있는데 영어 약자로 LSD라고 해.마약 이름과 같아.그래서 우스갯소리로 트라이애슬론은 마약처럼 끊기가 어렵다고 한다.”며 “트라이애슬론은 절대 어렵지 않은 운동이다.누구나 철인만 따라오면 철인이 될 수 있다.다음 훈련에도 나오지?”라며 환하게 웃었다. 김효섭기자 newworld@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호박(琥珀) - 김효동

    월령 29일,그믐이다. 동쪽 하늘에 그믐달이 비껴 떠 있다.망원경 경통에 입을 맞추고 숨을 길게 내쉰다.경통의 옆면을 스치며 부연 입김이 날아간다.파인더에 눈을 들이댄다.그믐달은 파인더의 십자선 중앙에 꼼짝없이 잡혀 있다.접안렌즈로 눈을 옮기고 핀트를 맞추자,달 표면의 크레이터가 또렷이 나타난다.달의 바다인 습기의 바다가 거친 암영을 채워가고 있다.그 주위를 비에타나 티코와 같은 크레이터들이 점점이 두르고 있다.크게 심호흡한다.내뱉은 입김이 옅은 달무리를 만들어내다간 금세 흩어진다.눈을 떼고 고개를 젖뜨린다.금방이라도 화구를 열 듯한 하늘이지만 아직껏 짙은 어둠만 머금고 있을 뿐이다.깊은 바다의 잔잔한 침묵을 그려내는 듯하다.꼭 움켜쥐고 있던 액세서리 호박을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온다.로스토크 연안 부두,김 선배는 독일에 가고 싶어 했다.오래 머물진 않을 거야.어디까지나 여행이니까…….호박이야.발트해를 상징한대.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북두칠성 국자의 머리 부분에 머물러 있던 눈동자가 작은곰자리를 거쳐 북극성으로 옮겨간다.호박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는다.발트해,김 선배가 그곳에서 곤충이 박힌 호박을 캐고 있다면,나는 이곳에서 놈들을 낚아야 한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부딪친다.간들거리는 고목 가지가 그믐달을 콕콕 찌르기 시작한다.할아버지를 지그시 내려다본다.방한복을 여미는 모습이 어줍다.담배는 안 돼요.할아버지는 담배를 먼저대로 담뱃갑 속에 쑤셔 넣는다.할아버지의 등 뒤로 다가가 방한모를 씌우고 요철(凹凸)형 단추를 채워 드린다. 때각! 할아버지의 어깨가 움찔한다.손전등을 입에 물고 점퍼 속에 손을 넣는다.손바닥만한 관측일지가 차가운 공기를 맞는다.9월15일,강원도 횡성,오리온자리가 희미하게 보이다.맨눈 관측,화성이나 황소자리보다는 밝은 편임…….두 달이 훌쩍 지났구나.펜을 꺼내들고 마음을 가다듬는다.11월18일,경북 문경새재.그믐달에 가까워 맨눈으로 3,4등성도 확인 가능.사자자리 부근을 향해실험 촬영.바람이 불지만 촬영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듯……. 망원경 앞으로 돌아온다.파인더를 단단히 고정하고 조심스레 미동나사를 조절한다.망원경의 방향이 찬찬히 천정(天頂)으로 향한다.하늘은 자정을 기해 이전까지의 침묵을 깨뜨릴 것이다.삼십 년을 넘게 만삭이었던 하늘이 자궁을 연다? 굉장히 매혹적이야.놈들을 사냥하는 일은 얼마나 더하겠어! 근사한 녀석들 많이 담아 와.플레이트로 고개를 돌린다.넉 대의 카메라가 좁은 플레이트 위에 빽빽이 올려져 있다.많이 잡아오면 괜찮은 놈으로 한 마리 주는 거지? 나도 꼭 찍고 싶었는데…….작년에 소백산에 갔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한 놈도 찍지 못했잖아.달이 보름달에 가까워서 큰 놈에게 희망을 걸었는데,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아서 그것마저도 물 건너갔지 뭐야.편지하면 그 주소로 보내주는 거 잊지 마.바람에 실려 온 검불이 얼굴을 스친다.망원경의 접안부를 두 손으로 꼭 감싼다.밤하늘 이곳저곳에 빛을 게우고 번뜻 사라질 녀석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은 기필코 대어를낚아야 한다. 문경새재는 초행이다.소백산이나 함백산에서보다 수월한 등반이 될 것이라는 지도교수의 귀띔이 이곳을 선뜻 결정하게 만들었다.잡광(雜光)이 없고 먼지가 적어 촬영이 용이한 곳이라는 정보는 관련 잡지를 통해 앞서 접한 터였다.산꼬대가 심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괜찮은 촬영지다.나무가 많지 않은 나지막한 산언덕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 또한 썩 마음에 든다.고개를 들어올린다.밤하늘에 지독한 정적이 연출되고 있다.바람이 차다.귓불을 스치는 산바람은 가랑이까지 으스스하게 만들 정도다.할아버지가 으레 신경이 쓰인다.차에 계시는 편이 낫겠어요.내려가시겠어요? 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가벼이 손을 올려본다. “괜찮아요.다 늙어서 한 번 찾아온 감기가 그 무슨 대수라고.” 할아버지의 몸 상태가 영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손자를 따라나서야겠다는 얄망궂은 고집을 쉬이 꺾을 수가 없었다.두통 때문에 소다를 댓 수저 퍼먹었거든.어째 머리가 다섯 배는 더 지끈거려요.바람을 쐬면 조금 나아지려나…….할아버지를 향한 불안함이 이제는부모님에 대한 섭섭함으로 옮겨간다.온천 관광을 떠나는 부모님이 홀로 집에 계시기 적적하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와의 동행을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서릿바람에 아이를 업고 밭에 나온 기분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수안보에서 부모님과 헤어지고 내내 말이 없던 할아버지의 입을 트게 한 것이 차가운 기침이었다는 사실을 거슬러 생각하게 된다.화분증 탓에 봄마다 기침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이긴 하지만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은 없는 분이다.성치 않은 오른다리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가슴은 더욱 답답해져 온다.당장 차로 모셔다드릴게요.얼마 버티기 힘드실 거예요.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니까…….그나저나,등나무집 할머니 말이다.왜,너도 알잖아,얼마 전에 네 엄마가 소개시켜준…….” 낚시용 승창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청승궂다.이내 지팡이 끝으로 낙엽 더미를 헤적이기 시작한다.땅 위에 글자를 새기고 있는 듯도 하다.낙엽을 헤치는 소리가 듣기에 좋지 않다.선영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네.경영학을 전공한다고? 수치에 매우 민감하겠군.아,자네도 들어서 알겠지만,난…….찻잔을 내려놓는 종업원의 행동이 거치적거린 모양이었다.남자는 말을 멈추고 김 선배의 어깨를 두드렸다.영문학과 선배야.우리 동아리 회장이었고…….이 년 전에 졸업했어.둘 다 초면이겠지? 나는 김 선배의 재킷에 박힌 장식용 버클에 시선을 고정했다.반갑네.남자는 내 시선을 밀쳐내듯 손을 내밀었다.손이 형편없이 못생겼군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꾹 삼켰다.나는 그가 청하는 악수를 건성으로 받아들였다.형편없기 짝이 없는 그 손 언제까지 잡고 있어야 합니까! “성우라고 했지,아마?” 김 선배가 나를 대신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은 많이 찍어봤나? 사진 속에 별을 담는 것과 정물을 담는 것은 확연히 다르지.쉽사리 덤비지 말아야 할 것이 천체를 담아내는 일이야.한낱 취미 정도로 생각했다간 큰 오산이지.듣자하니 소질이 많다던데…….무엇이든 역량이라는 것이 중요하지.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이 녀석이 찾아왔더라고.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이라고 보여주는데 볼품이 없더군.난 처음에 반딧불 사진인 줄 알았다니까.농담 삼아,개똥벌레의 일주 사진이네,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그랬지.” 남자는 김 선배를 돌아보며 짐짓 미소를 지었다.김 선배의 얼굴로 미소가 이어졌을 때,그녀의 재킷에 달려 있는 버클을 떼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었다.어째서 별을 찍지? 나는 남자의 점잖은 말투가 듣기에 거북했다.글쎄요,뭐든 좋아지기 시작하면 따라가는 법이죠.남자는 한동안 내 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선물을 하나 할까 하는데,어떤가? 남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과장된 걸음으로 카페를 빠져나갔다.그의 뒷모습을 보면서,누군가 카페 바닥에 바나나 껍질을 놓아두었더라면,하고 생각했다.괜찮아,성우야? 불편해 보여.난 너한테 도움이 될까 해서…….나는 김 선배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이 분야에선 알아주는 베테랑이야.물론 지금은 접은 상태지만…….작년엔 외국의 한 천문대가 주최한 천체 사진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어.나이가 많은데도 열정이 대단해.열정이라는 말로 남자의 나이를 짐짓 감추어보려는 그녀의 말투가 왠지 우스꽝스러웠다.저 사람 곧 인도로 떠날 거야.다른 세상을 접해 보고 싶대.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많이 도와줄 거니까,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주 만나봐.남자의 구두 소리가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카페 가득 둔탁한 공명을 일으키며 다가왔다.할머니가 마음에 안 드세요,할아버지? “아니,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할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는가 싶더니 이내 기침을 토해낸다.기침 소리가 밤하늘에 긴 메아리를 긋는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의 안경알에 그믐달이 갇혀 있다.그믐달이 거듭 요람으로 변하는 착각이 든다.할아버지의 심상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다.산록을 오르면서 할아버지는 내내 요람 위에서 쉬고 싶다는 말을 되뇌었다.무릎을 매만지며 번번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요람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의족이 할아버지를 지탱하기엔 무리이지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그에 아랑곳없다는 듯 쉬지 않고 내 뒤를 따랐다.점점 뒤처지는 할아버지를 이곳까지 끌어올린 것은 아마도 달의 이미지가 전하는 느긋한 안주(安住)가 아니었을까.회답이라도 하듯 북극성 주위를 오르내리던 낙엽이 요람 위에 사붓 내려앉고 있다. “할망구가 은근히 피하더구나.어쩐지 아니다 싶었어.미련일랑 한푼 남길 것도 없다.네 엄마도 그렇지,그리 줏대 없는 할망구를…….” 할아버지는 의각이 끼인 다리를 쭉 뻗는다.아닐 거예요.할머니가 일부러 피하기야 하시겠어요? 할아버지의 긴 한숨 소리가 귓가로 날아온다. 플레이트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 한 대를 집어 든다.애지중지하는 펜탁스67 기종이다.노출을 중단하고 필름을 교체한다.노출 시간을 초과한 감이 들지만 유성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될 일은 없다.다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필름이 아까울 뿐이다.대학에 다닐 때 처음으로 장만했던 카메라야.니콘FM2지.선배로서 주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자! 그믐달을 할퀴면서 한참을 꼬박거리던 나뭇가지가 툭 부러진다.배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모양이다.배낭으로 고개를 돌린다.어서 받아,성우야.내년 가을에 유성을 촬영할 거라면서? 이번에 못 찍었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카메라 한 대 더 있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면서.어서 받아.나는 김 선배를 바라보다가 남자가 건네는 카메라를 말없이 받아들었다.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별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상이 끝없이 생기더군.혼자 여행을 선택한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지.가면 갈수록 새로운 걸 찾게 돼.물론 과거가 바탕이 된 새로움이겠지만.인도에 대해 아는 것 좀 있나? 힌두교? 일처다부혼? 아니면,마하트마? 남자와 김 선배가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해해.아,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야,마하트마란.김 선배는 다시 돌아와 그렇게 몇 마디 던지고는 급하게 카페를 빠져나갔다.나는 김 선배가 잠시 우주로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불안감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힘으로 나타났다.그들이 지나간 카페 홀에 문뜩 간디와 마하트마를 외치는 남자가 부딪쳤다가 분산하는 이미지가 그려졌다.커피 리필해 드릴까요? 종업원은 나의 대답을기다리는 투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그녀가 무안해하길 바라면서 그녀의 코밑을 계속해서 쏘아보았다.리필해 드리겠습니다.위대한 영혼 좋아하시네! 잠시 주춤하던 바람이 한달음에 몰려온다.옹그리고 있던 낙엽 더미가 소르르 흩어진다.달빛을 빌려 주위를 둘러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융단이 말리듯 낙엽 더미가 굴러간다.굴러간 낙엽만큼의 양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거년스럽다.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낙엽 한 장이 사부랑삽작 걸터앉는다.아니,어느새 날아간다.할아버지,녹차 드릴까요? “아니,됐다…….애초에 소개를 받는 게 아니었지,여시 같은 할망구!” 배낭에서 녹차 티백과 보온병을 꺼낸다.배낭 옆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힘없이 나동그라져 있다.다만 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웃음이 나온다.플레이트가 놓여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삼각대에 장착한 카메라와 플레이트 위에 올린 넉 대의 카메라가 하늘을 향해 조리개를 가만 열어놓고 있다.적도의 가대에 올린 카메라는 천구의 이동을 따라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가져오지 않은 남자의 카메라가 머릿속에 떠오른다.유성을 담아내기에 카메라가 적은 듯도 하다. 티백을 간닥거리며 망원경의 접안부를 들여다본다.카시오페이아와 페르세우스 사이에 웅그리고 있던 은하단이 어느 틈에 천정(天頂) 부근으로 이동해 있다.별들의 바다를 감상하기에 녹차의 양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없네,부담이 엔간히 드네,민망해서 자식들 볼 면목이 없네,다 늙어서 주책이 아닌가 싶네…….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괸다더니,뭐 그리 둘러댈 것이 많은지.보험 들으랄 때부터 알아봤지,내가! 참말로 사랑은 아무나 하나네 그려.” 녹차를 들이켜다 사레가 들린다.입술을 훔치며 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고개가 하늘로 향한다.나의 시선이 어느새 할아버지의 고개를 따라간다.성도(星圖)를 펴놓은 듯한 밤하늘이다.고개가 각각의 별자리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남쪽 하늘에 고래자리가 자오선 위를 조용히 헤엄치고 있다.서쪽 하늘,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가 말없이 지고 있는 모습이다.달을 품은 동쪽하늘,쌍둥이별의 카스트로와 폴룩스가 드높게 떠 있다.가슴속에 새겨진 성도가 보이지 않는 별마저 또렷이 그려내고 있다.아마 잦은 촬영에서 밴 습관일 것이다.멀리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이 외롭게 반짝인다.별을 본다는 건 말이야…….그건 결코 값싼 센티멘털리즘만으로 되지 않는 거야,적어도 우리 같은 사람에겐.김 선배의 손가락이 작은개자리에 머물렀다.끝내 그 모습만을 유지하는 별은 없어.나 역시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진 않아.프로키온,다른 별들처럼 모여 있지 않고 외롭게 떠 있지.저 별을 보고 있으면…….아니다,값싼 감상은 내가 찾고 있네…….자,봐봐! 김 선배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천천히 움직였다.큰개자리의 시리우스와 베텔게우스를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다시 시리우스로 돌아오면…….김 선배의 손가락이 내 눈앞에 머물렀다.김 선배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어색한 마음에 멀리 횡성군(郡)의 정경을 내려다보았다.그러니까,그렇게 그려보면 겨울의 대삼각형이 이루어지는 거야.네 손으로 한번 그려볼래?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주머니 속의 호박이 얼굴에까지 느껴진다. “생판 모르는 할망구 만나서 뭔 득을 보겠다고.내가 미쳤지!” 할아버지는 두 손을 비비며 몸을 움츠린다.몸 전체가 굼벵이처럼 오그라든다.정말 안 되겠어요,차로 돌아가요.할아버지는 대답이 없다.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눈을 치켜뜨고 달 쪽을 올려다볼 뿐이다.억지를 부리는 어린아이 같아 안쓰럽다.달은 달일 뿐,요람은 그저 값싼 감상인 모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지독한 난시 탓에 할아버지에겐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밤하늘이라는 것마저 이곳에 와야 할 명분을 지우는 것 같아 답답하기까지 하다.어느새 할아버지의 발목까지 낙엽 더미가 덮여 있다.의족으로 낙엽을 헤치는 모습이 곰상스럽다.갑자기 할아버지가 지팡이에 의지해 승창에서 일어선다.차로 가시겠어요?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땅을 꾹 찌른다. “칼을 들었으면 두부라도 썰어야지,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산중턱을 엷게 스친다.등나무집 할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다.칠순을 넘겨보는 할아버지에게 사랑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나에겐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기억도 나지 않는 할머니 얼굴을 등나무집 할머니의 얼굴로 대신하겠다는 생각도 없다.다만,물 건너간 사랑을 되돌리지 못할 때 찾아올 슬픔을 고스란히 할아버지 자신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작년 가을에 콤바인 예취날에 바짓부리가 걸려 발목을 잃은 할아버지에게 사랑은 그 후유증마저 낫게 할 수 있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생각지 못한 섬으로 가로막힐 때가 있다.경우에 따라선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그래서일까? 할아버지의 사랑이 쉽사리 이루어지리란 기대는 들지 않는다.등나무집 할머니는 둘러대는 것이 아니다,어쩌면.할머니도 일부러 그러시는 건 아닐 거예요. “그럼 만나지 말자는 게 진심이라는 게냐?” 아니,그런 것이 아니라,뭔가 사정이…….갑자기 눈 속에 번뜩하며 섬광이 스민다.고개를 젖히자 곧 하늘이다.드디어 화구를 벌린 모양이다.그대로 하늘에 눈을 처박는다.이중성단을 관통하며 희미하게나마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동시에 따라붙는다.단말마와 같은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따라 금세 사라진 녀석이지만 잔상으로나마 눈 속에 남는다.보셨어요? 저기…….손가락을 펴 하늘을 가리키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관심도 없는 투다.대인이 또 세상에서 사라지는구나,하고 말하면서 그 사람 이런 말을 꼭 덧붙였어.자신은 타 없어지는 유성이 아니라,우주에 버려진 별이 되고 싶다고 말이야.그 말이 무슨 뜻일까? 나는 선배가 말하는 남자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더니 결국 혼자가 되어버린 걸까? 그 사람 지금은 인도에 없어.또 다른 낯선 곳을 찾아갔겠지.김 선배는 간헐적으로 딸꾹질을 토해냈다.그러면서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되뇌었다.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어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한 번 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이번엔 네 엄마가 아니라,내가 직접 말해야겠어.만나서 담판을 짓든지…….성우야,두유 좀 가져다 다오.목이 다 탄다.” 배낭으로 다가간다.지퍼를 열고 배낭 속에 손을 넣어 두유를 찾는데 다시 유성이 떨어진다.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린다.큰곰자리 부근으로도 유성이 떨어지고 있다.큰곰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북극성을 오매불망하는 듯한 눈매가 큰곰으로부터 전해져 온다.거듭 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을 마지막으로 삼십 년 후에나 찾아올 사자자리 유성우다.모(母)혜성의 궤도 문제로 삼십 년의 주기마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들은 바 있다.무엇이든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머물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봐.무슨 일이 있어도 유성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온몸을 감싼다.김 선배가 일러주었듯,아니,그녀가 전하는 어느 화백의 말처럼 하늘은 곧 오랜 세월 품어온 정한(情恨)을 차가운 땅덩이를 향해 쏘아댈 것이다.정한이란 비타민E 다음에 아직 나타나지 않은,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비타민F와 같은 인생의 알 수 없는 영양소일지도 모른다고 천경자 화백이 말했지.그 여자,아니,그 화백이 자신의 그림을 참 재미있게 표현했었어.전시회 작품들이 대부분 오로라와 같은 몽롱한 색채로 표현돼 있었거든.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로라를 목격했다는데,글쎄,갓 잡은 등 푸른 생선이 파닥이는 것 같더라나? 화가의 표현치고는 좀 어수선하게 느껴지지 않아? 김 선배는 말을 마치자마자 상념에 사로잡힌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김 선배의 시선은 언제부턴가 내 어깨에 머물러 있었다.또 그 사람 생각하는군요? 김 선배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망원경에 눈을 들이대는 김 선배의 모습이 왠지 어색했다.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표정이었다.그런 식으로 시치미 떼지 말아요! 내뱉지 못한 말이 가슴속에서 빙빙 돌았다.김 선배는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그 사람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나에게서도 머물지 않으려는 걸까? 그녀는 자신의 상념을 자르려는 듯 의외의 말을 던졌다.성우야,횡성에 가자.너도 태기산에 간 적 있지? 나는 한참 뒤에나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렇지 않아도 오리온자리 일주 사진을 찍을 곳을 찾고 있었어요.그래요,가요.김 선배는 바지 주머니 속에서 밀황색 호박을 꺼내 코에 가져다 댔다.그래,가.가보고 싶던 곳이었어.“얘,두유가…….” 느지감치 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린다.옷깃에 달라붙은 검불을 떼어내고 버름한 방한복을 여며드린다.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라이트 버튼을 누르자 액정 화면이 흐릿하게 빛을 발한다.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다.노출 시간을 체크하고 카메라로 다가간다.노출 시간을 또다시 오버한 감이 든다.필름을 새로 갈아끼운다.때마침 희미한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재빨리 카메라를 들어 연속 촬영을 한다. 다시 한 마리가 떨어진다.제법 모양을 갖춘 놈이다.운이 좋으면 긴 유성흔을 잡은 사진을 현상할 수 있을 듯하다. “땃땃하게 데운 베지밀이 최곤데 말씀이야.그,병에 든 거 말이다.” 카메라의 구도를 바꾸어본다.이번엔 복사점을 중심으로 앵글을 잡지 않고 주변의 별자리를 중심으로 구도를 잡을 생각이다.어디서 떨어질지 모르는 놈들이기 때문에 천구가 모두 피사체다.사진으로 태어난 녀석들이 깨알과 같이 작다 하더라도 사진을 현상하는 동안만큼은 현장에서 느꼈던 흥분이 다시 살아나 그야말로 황홀하다.마지막이라는 말이 얼마나유혹적인지 알아? 올해를 마지막으로 그놈들을 잡을 수 있는 해는 아마도 네가 두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거나 손자도 볼 수 있는 시간들을 다 겪고 나서야 올 거야.군침이 돌지 않니? 장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유성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거의가 떨어져서 그다지 훌륭한 사진은 찍을 수 없을 거야.운이지,뭐.노벨이 태어난 해엔 한 시간 동안 무려 만 개 이상이 떨어졌다는데…….성우야? 김 선배가 나직이 내 이름을 불렀다.꼭 갈 건가요? 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를 가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성우야?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선배가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나,인도에 갈까?” 그 사람 인도에 없다면서요? 아직 거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김 선배는 다소 신경질적인 내 물음에 뜬금없이,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나는 그녀의 얼굴빛에서 장난스럽게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나는 내가 말했어야 하는 부분을 모욕적으로 도난당한 느낌이 들었다.널 좋아하는 것 같아.그녀가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을 땐 수치심마저 치밀었다. “젊었을적엔 참 고왔을 얼굴인데…….에이,모르겄다.늙을수록 애가 돼 간다는데 남사시럽게…….이놈의 나이도 이냥저냥 시들어갈 판인가?” 시계를 들여다본다.12시30분.유성은 카메라를 향해 간헐적인 입김만 뿜을 뿐 탄성을 자아낼 만한 모습은 보여주질 않고 있다.어쨌든 물고 늘어져야 한다.새벽 1시에서 2시 사이가 녀석들이 한꺼번에 태어나는 극대 시각이라는 정보를 굳이 믿으라면 아직 3,40분 정도의 터울이 있는 셈이다.그때에 대비해 아껴두었던 커트필름을 꺼낸다. 갑작스레 휴대전화기가 엉덩이를 간질인다.어머니의 전화다.걱정이 되는 모양이다.할아버지를 잘 모시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이미 내 목소리에서 할아버지의 안전을 확인했을 것이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가 나를 따라나선 것에 대한 불만이 가신 것일까.할아버지는 세상을 관조하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다리를 절단하고 병원에 누워 계실 때,이제는 바라만 보며 살란다,하면서 관조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뭐든 간섭하고 살았는데,이젠 좀 앉아서 쉬어야지.늙어서 다리 쓸 일이 뭐가 있겠어.방바닥에 앉아서 창 밖이나 구경하면 됐지.그걸 관조라고 해도 될 거야.할아버지가 관조라는 말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라 말했을 때,사실 너무 우스웠다.세상에는 그저 바라보아야 하는 일보다 시기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법이니까.사학년생들끼리 전시회를 열기로 했어.작년 선배들처럼 여러 가지 테마를 가지고 전시하지는 않을 거야.그만큼 작품이 적다는 얘기겠지.그러고 보면 선배들은 참 대단해.별을 잡아온다는 게 어디 쉬워?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김 선배는 밖을 바라보며 전면 유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뽀드득뽀드득 듣기 싫은 소리가 귓전에 머물렀다.선배는 사진 많이 찍으러 다녔잖아요. “주문하시겠어요?” 검은 에이프런을 입은 여자가 테이블 앞에 섰다. “고작해야 일주 사진이 전부야…….커피 두 잔 주세요…….다른 사람들은 은하며 성단이며 그림 같은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탁자 밑에서 자꾸만 나의 구두코가 그녀의 발을 차고 있었다.그런데도 김 선배는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내가 말을 걸지 않는다면그녀는 그녀의 생각 속에 머물고 말 듯했다. “가끔은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어차피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말이야.아,계획은 세웠니? 유성우 말이야.할아버지 사고 때문에 작년에 찍지 못했잖아.맞다,할아버지는 괜찮으시지?” 플레이트를 돌아본다.아무래도 좁은 플레이트 위에 넉 대의 카메라는 무리이지 싶다.사진 주변에 수차(收差)가 나올 것을 감안해야 할 듯하다.옆 카메라의 릴리즈가 들어올 것도 예상해야 할 판이다.사진 표면에 검은 줄이 생길 것이 뻔하다.필름을 스캔하고 이미지 처리를 한다고 해도 작품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망원경과 카메라를 부착하는 방법을 시도하기로 한다.카메라 한 대를 들어 망원경 앞으로 가져온다.신발 끈을 끄른다.망원경의 접안부와 카메라의 렌즈를 맞대고 신발 끈을 감는다.왜요,필요한 거 있으세요? 할아버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요 좀 보련다.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해요.” 할아버지는 배낭을 걸어 놓았던 나무로 절뚝절뚝 다가간다.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크다.늦었구나! 지도교수가 내 어깨를 치고 홀을 빠져나갔다.몇 작품 전시하지 않은 전시회 치고는 꽤나 엄숙한 분위기였다.선배들의 사진전은 ‘우주의 신비’라는 제목으로 열렸다.‘끝의 향연’이었던 작년의 제목에 비하면 꽤나 성의가 없어 보이는 제목이긴 했다.사진전은 학교 도서관 입구의 홀에서 개방적으로 열렸다.얼마 안 되는 작품이 전시되었다고는 하지만 안드로메다은하나 플라아데스 성단 사진은 그 몇 안 되는 작품들까지 빛내기에 충분했다. “겸연쩍긴 하지만,그래도 차지 않은 달이 더 정이 간다니까.” 달은 고개를 젖힌 할아버지의 코끝에 붙어 있지만 바람에 끄덕이는 나뭇가지 탓에 자꾸만 명멸한다.‘달과 금성의 일주,강원도 횡성군 태기산,올림푸스 OM-1,45㎜ 광각렌즈…….’ 공책 크기만한 사진 속에 지평선을 향해 사선을 내리긋는 달과 금성의 일주가 힘차게 다가왔다.개똥벌레 일주 사진,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 “성우야.” 어느 결에 김 선배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나는 사진 속의 달과 금성을 머릿속에 그려진 반딧불과 견주어 보았다.미친놈!“늦었구나?” 김 선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선배는 자신의 사진을 한번 훑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횡성에 가본 적이 있군요? 나는 물으려다 말았다.실망했지? 사진을 찍을 때도,인화할 때도 온통 딴생각이었으니…….괜찮아요.개똥벌레 같지 않은데요,뭘.정말 괜찮아요.나는 김 선배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입아귀를 부풀렸다. “괜찮으면,너 가질래? 지금 가져가도 돼.” 김 선배가 조용히 물었지만,나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때부터 김 선배의 입도 열리지 않았다.그녀는 홀 주위를 돌기만 할 뿐이었다.나는 김 선배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김 선배는 ‘개똥벌레의 일주’가 놓인 이젤을 무려 다섯 번이나 거치면서도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나는 그런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고 되뇌기만 했다. “더 이상은 못 봐주겠어!” 김 선배가 자신의 사진을 들고 돌연 도서관을 빠져나갔을 때에도 내 입 속에선,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는 말만 반복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바다뱀자리와 큰개자리의경계선 부근에 섬광이 스친다.지평선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진다.한참 만에 나타난 녀석이지만 그다지 반갑지 않다.기대를 많이 한 탓이다.플레이트 앞에 선다.50㎜ 표준렌즈를 광각렌즈로 교체한다.필름을 빼내면서 웬일인지 작품다운 작품이 나올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46도 화각으로 유성을 잡는다는 것이 무리이지 싶었다.새 필름으로 갈아끼운다.이번엔 초점비에 따라 4분에서 8분씩 노출을 주기로 한다.버름했던 앞섶을 단단히 여미고 망원경으로 다가간다.경통에 키스하고 힘겹게 매달려 있는 카메라로 눈을 가져다댄다.잘 보여? 힘없는 목소리로 김 선배가 물었다.오늘따라 잘 잡히지 않네요.횡성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무엇인가가 불안했다.달의 상을 또렷하게 끌어오는 것마저 힘에 부칠 정도로 불안이 온몸을 휘감았다.잘 안 되니? 김 선배는 까치발을 하면서 재킷 주머니에 손을 꼭 찔러 넣었다.천문학도 아닌데 왜 그렇게 쩔쩔매? 천문학이면 괜찮게요? 이건 완전히 막노동이니…….안 되겠어요.카메라 좀 가져다 줄래요? 그냥 찍어야 할 것 같아요. “왜,내가 있어서 그래?” 카메라를 받아들려고 했지만 김 선배는 잠시 악력을 썼다.카메라가 중요해,내가 중요해? 나는 뜬금없는 그녀의 질문에 장난스레 되물었다.선배는 아빠가 좋아요,엄마가 좋아요? 김 선배가 갑자기 카메라를 놓아 버리는 바람에 몸이 뒤로 밀렸다.두 시간 동안 노출할 거니까 지겨워도 참아요.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망원경 접안부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셔터를 누르자,김 선배가 대뜸 딸꾹질을 토해냈다.나 몰래 뭐 훔쳐 먹었어요? 나는 배낭으로 다가가 보온병과 녹차 티백을 꺼냈다.자,마셔요. “자연현상이라는 게 그 자체로 인간에게 많은 감상을 주는 거 같아.” 김 선배에게 녹차가 담긴 잔을 건넸다.안 좋은 부분이 있다면 때론 인간을 징벌하기도 한다는 점이죠.김 선배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래,맞아.때론 징벌하기도 하지.그걸 피하는 방법은 뭘까? 나는 김 선배를 돌아보았다.피할 수 없어요.다만,치유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답일 뿐이죠.감상만 쫓아가지 말아요,제발! 그러다간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징벌을 안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뱉어내고 싶은 말이었지만 긴 한숨으로 대신했다.프로키온,외로운 별이야.김 선배는 감상에 빠지고 있었다.그녀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연거푸 그려댔다. 김 선배의 얼굴에 입술을 가져다 댄 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그녀가 대뜸 일어섰다.우리 그만 내려가자.나 너무 피곤해.나도 모르게 김 선배를 쏘아보고 있었다.피곤하다니요? 올라온 지 고작해야 한 시간 지났는데.노출 끝내려면 적어도…….김 선배는 기필코 가야 한다는 표정이었다.그녀의 눈을 다시 한 번 뚫어지게 쏘아보았다.일단 내려가자.김 선배는 무턱대고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선배님,지금! 김 선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선배,이건 반칙이에요.여기까지 와서 그냥 내려간다는 건…….저따위 별들이야 언제라도 볼 수 있어! 그녀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왜 그래요? 미안해,그냥 내려가자.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성우야,넌 여기가 어디 같니? 아까부터 유심히 살펴봤는데,아무래도 이상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온 할아버지가 묻는다.주위를 둘러본다.내 눈엔 그저 낮은 산언덕으로만 보인다.무슨 겁을 주시려구요? “모르겠니? 난 아무리 봐도…….” 안 갈 거예요? 김 선배는 ‘횡성여관’ 앞에 섰다.그녀는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여관이라는 글자에서 ‘관’자의 네온사인이 끔벅이며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차 있는 곳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돼요.빨리 가요,선배! “나…….나,여기 예약했어.” 예약요? 여관도 예약이 돼요? 응,오래 전에…….할아버지 손끝에서 라이터 불꽃이 번뜩인다.깊은 고랑이 팬 이마 위에 돌연 플라아데스 성단이 나타난다.영묘한 빛을 산란하는 산개성단.할아버지는 담배를 문다.성단이 단박 사라진다.담배! 손전등을 켜고 할아버지를 향해 불빛을 겨눈다.담배요! 나도 모르게 뱉어버린 소리가 맞은편 산허리에 부딪힌다.어이없이 큰 내 목소리에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툭 불거진다.죄송해요,전 다만……. “다시 한 번 비춰보거라…….아무래도 무덤자리 같은데.” 할아버지는 손가락을 펴고 팔을 뻗어 허공에 둥그런 원을 그린다.손전등 불빛이 할아버지의 손끝을 따라간다.어느새 이슬이 맺힌 언덕 주위가 불빛에 번뜩인다. “그래,맞다.무덤자리가 확실해.둔덕이 좀 진 곳이 있잖니? 오래 돼서 다 깎여 내려갔지만 그것이 봉분이고…….” 할아버지는 이번에 두 팔로 허공을 감싸는 시늉을 한다. “양쪽의 활이 엉성하게나마 살아 있잖니.저 봐라,가지가 이리저리 벌어지긴 했지만 묘목도 있잖아.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지.” 다시 주위를 비추어본다.엉성한 이팝나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그루씩 자라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신경을 좀 쓰지,죽어서도 한이겠구먼.” 네,그런 것 같네요.할아버지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가 하늘로 고개를 든다.때를 맞추어 북두칠성의 국자 옆으로 상당히 밝은 유성이 떨어진다.준비해 두었던 커트필름으로 모든 카메라의 필름을 교체한다.하늘은 등갓이 손톱에 찢긴 순간처럼 번쩍 발한다.긴 유성의 꼬리가 눈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긴 궤적을 남긴 유성은 할아버지가 등진 산의 허리춤에 박히면서 소리 없이 부서진다. 망원경 접안부에 맞댄 카메라의 필름도 커트필름으로 교체한다.망원경과 카메라가 불안하게 맞대어져 있다.상이 선명하지 않잖아! 자,다시 해보자.김 선배가 내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처음엔 다 그런 거야.심호흡하고 다시 해봐! 천천히! 여자 다루어본 적 있을 거 아니야! 그래,천천히 렌즈를 돌리면서…….상을 잡아야 사진이든 뭐든 나올 거 아니야! 다시,다시! 신발 끈을 다시 단단히 매고 상이 선명해지도록 접안렌즈를 천천히 조정한다.무한대를 응시해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피하려면 파인더를 보면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그래,그래야 한다.파인더에 들이댄 눈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아랫입술을 꼭 깨문다.다시 상이 가능한 한 선명할 때까지 망원경 접안렌즈의 초점을 맞춘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댄다.전망이 별로 감동적이지 못하다.다시 망원경의 초점을 정밀하게 맞춘다.들어온다.선명해진다.조리개를 최대한 개방하고 최대한의 노출을 유도한다.긴장이 밀려온다.검지에 힘을 주고 셔터를 누른다.순간 내 행동에 대한 반감 섞인 생각이 스친다.우주는 가만히 있어도 가슴에 소지할 수 있다는.그것 봐,하면 되잖아.어,언제 왔어요? 김 선배가 남자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나는 스스로 거역하고 있었다. “가만,그러고 보니,내가 죽은 이 위에 버릇없이 앉아 있었네 그려.” 할아버지는 승창을 들고 망원경 쪽으로 다가와 앉는다.배낭으로 다가가 녹차 티백과 두유를 꺼낸다.할아버지 옆으로 다가간다.꼭 다시 한 번 만나보세요.좋으신 할머니 같던데.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차갑지만 폭신한 낙엽방석이다.녹차가 담긴 컵을 가볍게 감싸쥐고 하늘을 올려다본다.영묘하게 빛나는 큰개자리의 시리우스가 동쪽 하늘을 호령하면서 지평선 위에 드높이 떠 있다.궁수자리의 남은 마지막 밝은 별들이 서서히 지고 있다.켄타우루스와 남십자가자리의 별들 그리고 에라다누스강자리의 아케르나르가 남쪽 하늘에 깊이 박혀 있다.할아버지,돌아가는 길에 온천욕이라도 하시겠어요? “아니다.온천은 무슨…….” 들추어진 할아버지의 바짓부리를 정리해드린다.차갑고 딱딱한 의족이 손끝에 느껴진다.할아버지가 내 어깨 위에 천천히 손을 얹는다. “힘들여서 만나봐야 게 잡아 물에 넣는 꼬락서니지.안 그러냐,성우야?” 죄송하지만,삼백이호실로 방 하나 더 주세요.돈을 지불하고 김 선배의 뒤를 따랐다.층계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벌건 융단을 뒤덮고 지루하게 이어졌다.관측장비가 무거운 탓인지도 몰랐다.삼층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김 선배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냈다.미안해,괜찮아질 거야.나에겐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나는 그녀가 괜한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 선배와 나는 삼백일호와 삼백이호 앞에 나란히 섰다.선배의 옆얼굴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그녀는 문을 향해 다시 한 번 딸꾹질을 토해냈다.괜찮아,정말이야.그녀에게 열쇠를 건네고 문손잡이를 돌렸다.꼭 자고 가야겠어요?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잖아요.더군다나 차도 있는데…….김 선배는 몸을 틀어 나를 바라보았다.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목에 걸린 호박을 떼어 내 앞에 들이밀었다.짐짓 어색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깔려 있었다.미안해…….오래 머물 것 같지는 않아.무엇이든 오래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기억이든뭐든…….그녀는 내 손바닥 위에 호박을 얹어놓고 꼭 쥐어주었다.호박이야.발트해의 상징이래.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직접 가서 캐보려구…….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독일 북동부에 있는 발트해 연안 도시라는데.주 이름이…….아주 긴 이름이었는데……. 무척이나 밝은 대화구가 눈에 들어온다.사방이 일순 밝아진다.느낌이 좋다.큰곰자리의 꼬리 부분으로 다시 여러 개의 유성이 빗금을 그으며 떨어진다.곧 큰곰의 머리 부분으로도 유성이 떨어진다.유영하는 연어의 등지느러미처럼 은빛을 산란하며 하늘을 가른다.제법 공격적이다.머리카락이 설 정도로 쾌감이 전해진다.맞아,포어포메른주였어.독일의 북동부,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주! 망원경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대자 동전 크기의 유성이 망원경 안으로 날아온다.몸이 반사적으로 꺾인다.조금만 참으세요,할아버지.이것만 찍으면 다 되니까.잠잠했던 바람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한다.카메라에 키스한다.너만 믿으마.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할아버지 등뒤로 다가간다. “그놈의 미련이 문제라지…….성우야,등나무집 할머니가 만나는 주겠지?” 나는 할아버지 등뒤에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때마침 유성의 꼬리가 할아버지의 긴 하품 소리를 따라 하늘에 은회색 칼날을 하늘에 긋는다.뒤이어 서너 개가 더 떨어진다.지평선 어딘가에 떨어졌을 유성의 잔상이 오래도록 눈 속에 남는다.무덤 주위를 둘러본다.하필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를 모르겠군요.나는 손바닥 위에 놓인 호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그곳이 한때는 슬라브족의 요새였다는 거야.맞아,슬라브족의 요새.한자동맹이란 것도 그곳에서…….엉터리 수작 말아요! 입이 열릴 뻔했지만 참았다.내 손으로 호박을 채취하고 싶은 게 꿈이야.고대 생물이 들어 있는 호박 말이야.난…….김 선배는 말을 멈추고 문손잡이를 잡았다.잠깐만요! 김 선배는 여관 복도가 울릴 만큼의 내 부름에도 놀라지 않은 듯했다.김 선배는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녀의 눈망울에 작은 프로키온이 나타났다.우는 거예요,지금? 그녀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이거요,잘 구경했어요.아무리 찾아도 개똥벌레는 없던데요.나는 돌돌 만 ‘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을 점퍼에서 빼내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나,잠깐 약국에 좀 다녀올게.기다리지 말고 자.” 김 선배는 사진을 받지 않았다.나는 호박과 돌돌 만 사진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말해줘요! 아니야,내가 갔다 올게.먼저 자고 있어.그녀는 이미 층계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나는 슬라브족도 한자동맹도 아닌,김 선배가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만을 알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기침이 다시 시작이다.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낙엽 더미가 굴러가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흡사 융단이 말리는 듯하다.굴러간 양만큼의 낙엽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할아버지의 발 아래 펼쳐진다.그믐달로 날아간 낙엽들이 한점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진다.주머니에 손을 넣는다.호박이 느껴진다.호박 속에 갇혀버린 것은 나일지 모른다.손님,삼백일호 손님,안에 있어요? 복도 끝,창유리를 통해 어슷하게 비쳐든 새벽의 푸른 기운이 물 위에 떠가고 있었다.발트해,삼백일호 문 아래로 차가운 해수가 밀려나오고,나는 그 위에 밤새 쥐고 있던 호박을 떨어뜨렸다.점벙! 발끝으로 밀려온 해수를 나는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다.김 선배는 결국 호박을 캐러 떠났다.손님,손님! 이봐요! 하늘을 올려다본다.동쪽 끝에 겨우 고개를 내민 시리우스에 손가락을 찍는다.천천히 베텔게우스와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 옮긴다.다시 시리우스로 손가락이 이동하지만 그만 손가락은 가던 길을 멈추고 만다.나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그릴 수 없는 모양이다.곧 겨울이 찾아올 테지만 그때에도 삼각형을 그릴 수 없을 것이다.관측일지를 꺼내든다.11월19일,사자자리 감마성 부근을 복사점으로 20여 개의 유성 출현.30년 후에는…….호박을 꺼내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간다.로스토크,그녀는 결국 그곳에 가고 없다.
  • 100세를 사는 사람들/“채식·소식이 장수 비결이제”

    삶을 좀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는 없을까.누구나 바라는 소망이지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그렇다면 우리나라 장수벨트인 전북 순창,전남 담양·곡성·구례군에서 100세를 넘긴 초장수인들의 삶은 어떤가.“100살은 살아야제.”라는 우스개 말처럼,1세기를 살고도 치매는 커녕 총총한 기력을 과시하는 이들의 남다른 모습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지난달 15일 전북 순창군 팔덕면 창덕리 동고마을을 찾았다.마을 앞 표지석에 장수마을이라는 글씨가 반긴다.설양님(102) 할머니는 막내 딸 이금옥(68)씨와 외손자 부부 등 3대가 함께 살고있다.이미 고손자를 봤다.딸은 “어머니가 3년 전부터 눈이 안보이신다.하지만 하루 세끼도 양은 적지만 꼬박꼬박 챙겨 드신다.”고 했다.“일평생 뭘 많이 드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딸의 말에,할머니는 “괴기(고기)보다는 두릅이나 취 같은 산나물을 뜯어다 섞어서 많이 묵었제라.”라며 거들었다.할머니는 거동만 불편할 뿐 귀도 밝고 듬성듬성하나마 이도 남아 있고 혈색도 좋아 잔병치레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지금껏 술·담배와는 남이다.할머니는 친정 동기간 6남매 중 80살이 넘은 막내와 둘만 남았다. ●푸성귀 반찬에도 세끼 밥은 꼭 먹어 전남 곡성군 입면 금산 4구 택촌마을 이숙영(103) 할머니는 기자가 방안에 들어서 사진 좀 찍겠다고 하자,며느리 양정순(82)씨 한테 “사진 찍을라먼 빗 가져오니라.쉐타(스웨터)도 좋은 놈으로 가져오고”라며 언성을 높였다.16살에 시집 온 며느리는 웃으면서 “엄니하고 고부간에 좋게 지냈어요.바깥양반 살아 있을 때도 한방에서 둘이 자곤 했는디”라며 빗을 찾았다.할머니의 유일한 낙은 담배다.요즘도 1갑을 해 치운다.가끔 술도 한잔씩 한다.“가슴애피(답답증)가 올라오먼 담배라도 피워야 내려간다.”고 며느리가 해명했다.보고 듣고 말하는 데 불편함이 별로 없었다.푸성귀 반찬에 세끼를 거르지 않고 집앞 텃밭도 가꿀 만큼 정정하다. 구례군 구례읍 원방리 이복덕(100) 할머니가 사는 양옥의 현관 초인종을 몇번 누르자 증손자인 박승연(4)군이 쪼르르 달려 나왔다.할머니를 찾자 “할무니병원 갔는디”라고 맞받았다.되돌아 서려는 데 방안에서 할머니가 나왔다.손자는 “아아 우리 상할머니”라며 웃었다. 할머니는 큰 소리로 가까이서 말해야 알아듣는 것 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맵시있고 고왔다.식사도 잘하고 치아도 거의 완벽했고 얼굴색도 갓 60을 넘었을 정도로 보일만큼 밝았다.“따뜻하먼 밭도 메고 힘 안들고 하는 가벼운 일은 하제”라고 힘줘 말했다.먹는 것 입는 것 탓하지 않고 “그러려니.”하고 살았다고 한다.반대로 며느리(68)는 요즘 위가 안좋아 병원 출입이 잦다.“어머니는 뭐든 잘 드시지만 돼지고기는 중풍에 좋지 않다며 젊어서부터 안드셨다.요새도 양말을 신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시다.”고 자랑했다.할머니 동기간도 수를 누리는 장수집안이었다.4남 1녀 중 남은 남동생(97)과 여동생(80)도 건강하단다. 대대로 장수마을인 담양군 대전면 태목리에 사는 이도음(103) 할머니는 취재한 100세인들 가운데 단연코 으뜸이었다.6남매 자식들과 떨어져 홀로 살면서 손수 연탄 갈고 전기밥솥에 밥도 지었다.가난의 굴레가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아 건강을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살며 밥 짓고 밭일도 ‘척척' 마당 한쪽 20여평에 기른 마늘이 한뼘 이상 올라와 싱싱했다.허리가 구부정할 뿐 눈·귀가 밝고 군수가 준 지팡이도 걸어두고 쓰지 않았다.할머니는 “그때는 먹을 것이 없었어라.젊어서도 괴기만 묵으면 몸뗑이에 두드러기가 났응께.태어나 처음으로 작년에 병원이란 데를 가봤당께”라며 또박또박 설명했다.허리 한번 맘놓고 펼 시간없이 힘든 일평생이었다.일할 때 텁텁한 막걸리는 허기도 채워주고 힘도 나게 했다.먹고 자고 입는 것 등 어느 하나 변변한 게 없었다.친정 동기간도 비교적 젊은 나이에 먼저 갔다고 한다. 이곳에서 30리 떨어진 봉산면 기곡리 연산마을 양덕술(103) 할머니는 청력을 완전히 잃었으나 꼿꼿한 자세만큼은 여전했다.전주이씨 종갓집 6대 종부이니 오죽했겠는가.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었다.지금도 스스로 화장실 가고 거동할 수 있다.며느리 최미순(73)씨는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아무리 아파도 절대 죽을 드시지 않고 적게 드시더라도 꼭 밥을 달라고 하셨다.”고 건강비결을 들었다. 이처럼 100세인들은 보통사람들의 삶과 사뭇 다르지 않았다.허리춤이 시릴 정도로 배고프고 춥던 시절을 몸으로 부대끼며 살았다.입에 풀칠하느라 자식들 교육시키느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길쌈질에 논·밭일에 시달렸다.잠도 충분치 못했다.하지만 한결같이 소찬에 꽁보리밥이었지만 가리지 않고 맛있게 이웃들과 나눠가며 먹었다.오늘날 장수법의 공식으로 여겨지는 소식(小食)처럼 적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또 이들은 맘이 넉넉하고 성질이 유순했다.장수벨트에 사는 100세인 28명 가운데 할아버지는 단 한명도 없었다.대대로 장수하는 이복덕 할머니를 빼고는 가족중에 특별한 장수인도 없었다. 전남 곡성·구례·담양,전북 순창 남기창기자 kcnam@ ■담양 오계1리 주민들의 ‘건강한 삶' 장수마을인 전남 담양군 담양읍 오계 1리는 39가구에 주민 106명으로 65세 이상이 27명이고 80세 이상이 11명이다. 65세 이상부터 80세 이상 비율이 40.7%나 돼 군 전체(19.4%)보다 두배 이상 높다. 오계 1리는인동 장(張)씨 집성촌이다.이웃간에 성님(형님) 동생하며 정답게 산다. 담양읍이지만 더 이상 못가는 막장이어서 지형상 ‘소쿠리 속 같다.’는 마을이다.때문에 한국동란 때 피란민들이 들끓었다고 한다.농토가 풍족지 않아 농한기에는 대바구니와 베짜기로 생계를 꾸려온 전형적인 농촌이다. 80세 이상자 가운데 남자는 장문열(90)씨 등 2명뿐이다.겨울에는 마을회관에 모두 모여서 고구마를 쪄 먹으며 하루를 보낸다. 마을 내력을 소상히 알고 있는 노인회 장규환(71) 총무는 “우리 마을은 대대로 장수마을인데 소나무 우거진 산으로 둘러쳐진 형상이 옥녀가 가야금을 타는 ‘옥녀탄금(玉女彈琴)’ ”이라며 명당자리임을 강조했다.이어 “마을이 삿갓봉 아래에 자리해 배수가 잘되는 배산임수형”이며 “장수하는 데 따로 방법이 있는 게 아니고 자연에 맡기고 살아야 수를 누린다.”고 진단했다. 며칠 전 마을회관에 모인 70세 이상 노인 14명은 입을 맞춘 듯 장수비결로 마을 앞 공동샘을 들었다.바가지나 두레박으로 퍼올리는 샘이 아니고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이 사시사철 넘쳐나는 샘이다.어려서부터 마시기 시작했는 데 지금도 그 물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장금례(89) 할머니는 도움없이 걸어다니고 식사도 곧잘 한다.진정임(88) 할머니는 “시집 올 적부터 물맛이 꿀맛 같았제.”라고 회고했다.김묘례(81) 할머니는 “피부가 새색시처럼 뽀얗다라는 말을 듣는 디 물 때문이 아닌가 싶구만요.”라고도 했다. 김봉이(85)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닐 때 뒤뚱거릴 뿐 다른 데는 별달리 아픈데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14명 가운데 흡연자는 5명이었다.하루 1갑을 피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10개피 이내였다.일할 때 이외에는 막걸리도 입에 대지 않았다.이들 가운데 속이 아프거나 지병 등으로 식사를 못하는 노인은 한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유달리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것도 아니었다.그저 나물과 야채 등 소찬에다 꽁보리밥에도 감사했다고 한다.평생 동안 논·밭일, 집안일에 매달렸다. 연세가 높은 이들이었지만 느닷없는 낯선이의 방문에도 회관 방바닥을 걸레질하며 자리를 비켜줬고 몸둘 바를 몰라 할 정도로 순수한 맘을 간직하고 있었다. 1시간 넘게 취재하는 동안 담배 한모금은 커녕 다리 한번 뻗질 못하고 눈치만 보는 겸손의 미덕을 간직하고 있었다. 담양 남기창기자
  • “힘 닿는데까지 함께 나누며 사는게야”공동체운동 실천하는 원경선옹

    ‘나눔의 삶에 멈춤은 없다.’ ‘생명운동 전도사’인 유기농부 원경선(元敬善·90·환경정의시민연대이사장)옹.그는 요즘 28년간을 꾸려온 경기 양주시 회천읍 4만평의 공동체 ‘한삶회’를 정리하고 내년 3월 충북 괴산 청천면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느라 분주하다. “IMF때 현미식혜를 개발했다가 소비위축과 재벌그룹 일반 식혜 덤핑으로 큰 손해를 본 후부터 공동체 이전을 준비해 왔어요.” 양주에선 유기농재배와 함께 현미식혜·두부·야채효소 등의 농산물 가공공장도 운영했지만,괴산에서는 전체부지 7만평중 대부분을 자신이 설립한 풀무원식품의 농장으로 쓰고 6000여평에 20여명의 공동체 식구들이 벼농사와 채소·감자·고구마 등 ‘소금만을 뺀’ 필요한 먹을거리 모두를 농약과 비료를 안 쓰는 유기농으로 경작할 예정이다. ●아직도 트랙터 모는 아흔의 유기농부 원옹은 최근 괴산에서 함께 살 20여명의 공동체 식구들을 선발했다.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이들은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필요한 것은 나눠쓰고 몫은 따로 챙기지 않는다.’는데 동의했다.자녀들은 고등학교까지 공동체에서 보내준다. “새롭게 시작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아직도 트랙터를 몰 수 있어요.자신 있습니다.” 성성한 백발,동안(童顔)의 미소에 괭이를 둘러맨 그의 모습은 언제나 편안한 느낌을 준다.지난 98년 서서영 화백이 그려준 캐리커처에도 이같은 그의 이미지가 잘 표현돼 있다. “공동체운동은 힘이 있는 한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나누며 사는 거지요.도둑과 다툼이 없고 전쟁이 없는 세계를 지향하는 평화운동입니다.” 1914년 평안남도 중화의 극빈 가정에서 태어난 원옹은 초등학교를 16살에 간신히 졸업하고 그해 아버지를 여의었다.18살 때 기독교를 알게 된 후 “평생을 전도인의 자세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23살 때 홀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와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에서 광복 때까지 인쇄소를 운영했고,45년 귀국해 미군부대 공사청부업으로 재산을 모았다.53년 부천 미군비행장 미군 군목의 권유로 떠돌이 전쟁고아나 비행청소년들을 모아 ‘풀무원농장’ 공동체를 만들었다.그대로는쓸모없는 쇳덩어리를 연장으로 만드는 풀무처럼 새 사람으로 만드는 곳이란 뜻을 담았다. ●현미 주식으로 하면서 건강 되찾아 회갑을 넘긴 76년 양주에 터를 잡고 친환경 유기농 공동체를 만들었다.당시만 해도 생소한 유기농법은 처음엔 경험부족 등으로 실패했지만 78년부터 매스컴의 각광을 받고 일반인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해 부인 지명희(86) 여사와의 사이에 얻은 2남 5녀중 맞아들인 혜영(전 부천시장)씨가 서울대총학생회장을 하다 시국사건으로 복역 후 출소,사업에 동참했고 풀무원식품을 설립했다. 원 전 부천시장은 지난 96년 풀무원 경영수익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현재 기금이 22억원으로 불었다. 양주에서 유기농사를 지으면서부터 원옹은 100%의 현미만을 먹었고 주위에 현미를 ‘완전식품’으로 권했다. 현미를 주식으로 하면서 어린시절 간디스토마에 걸려 객혈까지 한 이후 그를 괴롭혀온 악성 빈혈증세도 모두 사라졌다.“쌀에 비해 단백질이 조금 모자랄 뿐 부족한 엽록소를 콩류로 보강하면 최고의 건강식이지요.” 원옹은 5개월 전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다.수술을 집도한 서울 강남의 U정형외과 의사는 원옹의 전반적인 건강과 특히 골밀도가 젊은이 못지않게 높은 데 놀랐다.그래서 젊은이들도 힘들다는 인공관절 요추 삽입수술을 했다. 원옹은 환경과 생명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95년 유엔환경계획(UNEP)의 ‘글로벌 500상’을 수상했고 인촌상과 국민훈장도 받았다.요즘도 일주일에 한 두 차례는 풀무원식품과 이사장을 맡고 있는 환경정의시민연대,경실련(고문),국제기아대책회의(이사),거창고교(이사장) 등에서 종교·사회사업·교육 관련 강의에 나선다. ●“유기농은 땅과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 서울 나들이에 나설 때면 교통편이 마땅치 않은 양주 ‘한삶회’ 거처에서 의정부까지만 승용차를 타고 나머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지난 2월엔 금강산 시범육로관광단에 최고령으로 참가해 북한을 다녀오기도 했다. 원옹이 이사장인 환경정의시민연대는 지난해 제1회 ‘올해의 나쁜 광고 대상’으로 ‘맥도널드 해피밀’을 선정한 데 이어 지난달엔 제2회 대상으로 화학물질 남용과 친환경 방법을 부정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P&G의 ‘페브리즈’를 선정했다. “농사지어 먹고 살기 힘들게 된 건 사실이지.그러나 유기농은 포기할 수 없어요.신이 주시고 만든,땅과 인간을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니까.” 불혹(不惑)에서부터 반세기,힘든 사람들과 함께하며 든든한 어깨가 되어 준 ‘인간상록수’ 원옹의 겨울은 그래서 미리 다가선 봄날처럼 따듯하다. 글·사진 양주 한만교기자 mghann@
  • 되돌아본 한국영화 50년/‘자유부인’서 ‘친구’까지 54편 회고전

    한국영화 50년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대규모 회고전 ‘열정,대한민국 영화 1954-2004’가 새해 1월1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낙원동 허리우드극장에서 열린다. 회고전에서는 1950년대 ‘자유부인’을 비롯해 60년대 ‘미워도 다시한번’,70년대 ‘겨울여자’,80년대 ‘깊고 푸른밤’,90년대 ‘서편제’,2000년대 ‘친구’ 등 각 시대별 흥행작 총 54편이 상영된다.61년작 ‘오발탄’에서 ‘하녀’‘삼포가는 길’‘아름다운 시절’‘파이란’ 등을 거쳐 2003년작 ‘오구’에 이르기까지 대중적 인기와 평단의 호평을 받은 화제작들도 포함된다. 상영횟수는 모두 96회.허리우드극장 3관(블루관)에서 매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하루 6회씩 상영하며,토요일 밤에는 철야상영도 한다.외국인 관객을 배려해 모든 상영작에 영문자막을 앉혔고 감독ㆍ배우와의 대화도 한국어-영어 동시통역으로 진행한다. 회고전 준비위원회는 영화 스틸사진과 포스터 전시회를 곁들이는 한편 영화관 입구에 각 시대별로 유행하던 음악과 추억의 군것질 거리들을 마련해 분위기를 띄울 계획이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전용택 준비위원은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들을 위해 행사를 기획했으며,장소도 외국인이 많이 찾는 인사동 근처를 고려해 허리우드 극장으로 택했다.”고 밝혔다. 지난 1993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85편의 한국영화가 350여회 상영된 것을 제외하면 한국영화 회고전으로는 이번 행사가 최대 규모다.http://panorama.nkino.com (02)745-4231. 황수정기자
  • 껴입는다는 편견을 버려!/겨울패션 얇게 슬림스타일의 모든것

    속담에 “여름 멋쟁이 떠 죽고,겨울 멋쟁이는 얼어 죽는다.”고 했던가.옷을 두껍게 껴입어 한파를 이겨내야 할 듯한 겨울에 얇게,날씬하게 연출하는 슬림(slim) 스타일이 유행이다.허리는 조이는 코트,얇지만 따뜻하게 연출하는 패딩 점퍼,다리 라인을 따라 흐르는 부츠,간편하면서도 심플하게 두르는 머플러,찬듯 안 찬듯 피부에 밀착되는 시계….슬림 스타일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베스띠벨리 박성희 디자인실장은 “올 겨울 코트는 60년대 모즈룩과 밀리터리룩의 영향으로 심플하고 모던하다.”며 “미니멀한 실루엣,밝은 컬러감,로맨틱한 여성미로 표현되거나 남성 코트나 장교복 등을 변형시켜 매니시한 스타일로 연출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허리 라인을 살리는 벨트 장식이 있는 스타일,A라인의 여성스러운 하프 코트,장교복 스타일을 변형한 매니시한 스타일의 코트가 인기.이중에서도 큰 버튼이 달린 ‘피 코트(pea coat·선원이 입는 유니폼에서 유래한 스타일)’가 주목할 만한 아이템이다. 미니스커트,화려한 컬러의 불투명한 패션 스타킹에 피코트를 매치해 남성미에 여성스러움을 가미한다. 남성 코트는 정장과 캐주얼에 두루 입을 수 있는 ‘더플 코트’는 주춤한 반면 각진 어깨 라인에 심플하게 떨어지는 전형적인 ‘체스터필드 코트’가 다시 인기다. 디자인,색상,소재의 변화로 올해 패딩이 날씬해졌다.꼼빠니아 신남진 디자인실장은 “패딩이 무조건 뚱뚱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정관념”이라며 “보다 슬림해진 디자인에 코디까지 신경쓴다면 추운 겨울,따뜻하면서도 3㎏은 날씬하게 보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양쪽에 세로 절개선을 넣은 후드형(모자 달린) 점퍼는 귀여우면서도 시선을 가운데로 모아 전체적으로 슬림해 보인다.또 겉면 소재는 얇지만 안감이 폴라폴리스로 돼 있어 가볍고 따뜻한 재킷 형태도 좋은 아이템.소매와 허리가 니트 소재로 된 점퍼,후드와 허리끈 부분에 체크 배색을 한 코트,브랜드 로고로 심플하게 포인트를 준 점퍼는 시선을 분산시켜 날씬해 보이는 착시효과를 준다. 구두 끝이 뾰족한 스타일은 슬림한 라인으로 여성스럽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블랙,브라운등의 민무늬나 같은 계열의 색상을 ‘톤온톤’으로 매치한 스타일,버클·리본 장식이 더해져 화려함을 주는 디자인들이 많다.가늘고 섬세한 하이힐은 다리를 길고 슬림해 보이게 하는 데 최고의 아이템.허벅지가 꼭 조이는 ‘스키니 팬츠’나 몸에 달라붙는 스커트에 코디하면 더욱 세련돼 보인다. 다리를 따라 흐르는 라인의 타이트한 부츠와 발목 부분에서는 자연스러운 주름이 잡히는 부츠(‘루스 피트’ 스타일)가 특히 강세를 보인다.또 발목에 슬림하게 달라붙는 디자인은 세련되면서도 슬릿이 들어간 미니 스커트와 함께 섹시함을 준다. 남성 구두는 디지인이나 컬러에서 선택의 폭이 좁지만 장식이나 컬러 등이 점점 다양화되는 추세다.회색·검정 정장에 스티치,버클 등으로 깔끔하게 포인트를 주면서 심플한 구두가 사랑을 받고 있다. 두껍고 답답한 옷차림의 겨울에는 소품 하나도 버겁게 느껴지지만 최근에 나온 소품들은 ‘보다 가늘게,있는 듯 없는 듯’을 컨셉트로 삼은 듯하다. 세계적인 시계업체인 스위스 스와치 그룹은 최근 두께 3.9㎜,무게 12g으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스와치 스킨’을 선보였다.손목에 밀착돼 찬 듯 만 듯한 느낌의 이 시계는 패셔너블하고 섹시한 디자인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겨울 유행한,두 개의 다른 머플러를 친친 감은 ‘배용준 스타일’보다는 목 주위를 편안하게 감싸며 늘어뜨리는 스타일이 스트리트 패션으로 각광받고 있다. 최여경기자 kid@
  • [먹고 사는 이야기]팥죽의 건강학

    밤이 가장 긴 동지가 돌아왔다.예로부터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 풍습이 전해온다.동지 팥죽은 반드시 대문이나 헛간에 뿌린 뒤 이웃끼리 서로 나누어 먹었다.동지 팥죽은 그렇듯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었다.붉은 색이 잡귀를 쫓아주는 벽사축귀의 음식이자 잔병을 없애주는 중요한 겨울철 별식이었다.그러다보니 웬만한 집에서는 두말 정도 들어가는 큰 가마솥인 두말두기로 팥죽을 쑤어서 두고두고 먹을 정도였다. 영양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우리 조상들이 팥죽을 벽사축귀의 음식으로 치켜세우며 겨울철에 집중적으로 먹도록 유도한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단백질 함량이 40%에 달하는 콩과 달리,팥은 단백질이 21%로 적다.대신 전분이 56% 정도를 차지한다.전분이 많다 보니 무더운 날씨에는 쉽게 상하고,그러니 여름철보다는 겨울철에 더 어울릴 수밖에 없다. 팥의 단백질에는 쌀에 부족한 리신이라는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또 트립토판도 많이 들어있어서 쌀과 함께 먹으면 단백질의 보강 효과가 나타난다.게다가 쌀밥을 주로 먹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부족하기 쉬운 티아민이 풍부하니,영양학적으로 매우 우수한 곡물로 평가되고 있다. 팥에 들어있는 사포닌은 영양소는 아니지만 항산화 및 항콜레스테롤 효능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생리 활성물질로 대두되고 있다.팥에는 식이섬유소도 4%정도 들어있어서 대장 기능을 활발하게 하여 변비와 대장암을 막아준다.콜레스테롤이 대장에서 흡수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고지혈증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우리 조상들이 팥죽을 절기식으로 올려놓은 것은 단지 잡귀를 쫓고,잔병을 막아주기 때문만은 아니다.비탈진 산간지대 어디에서나 쉽게 재배할 수 있다는 특성도 고려됐다.팥은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하기 때문에 재배가 쉽고 생육기간이 짧아 윤작도 가능하다.일품만 팔면 얼마든지 수확할 수 있는 곡물로 건조와 저장까지 간편해 기근 시절에 매우 유용한 식량이었다.춘삼월의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쌀은 물론 보리도 최대한 아껴야만 했던 우리 조상들로서는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팥이 겨울철 음식으로는 더 없이 훌륭한 대안이었다.그래서 귀신쫓는 음식으로까지 치켜세우며 팥 소비 확대를 유도했다는 얘기다. 팥죽은 수분함량이 많아 과식의 염려가 없다.열량도 한 그릇에 200㎉ 정도에 불과해 다이어트 음식으로는 그만이다.연말 각종 모임에 찌든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고칼로리 음식으로 늘어난 허리 사이즈를 줄이는데 더 없이 좋은 음식이다. 팥죽은 땅 속에 묻어둔 항아리에서 얼음을 깨고 꺼내 큼직하게 썰어낸 동치미와 먹는 게 일품이다.또 동치미에는 전분 소화를 돕는 아밀라아제가 풍부하니 팥죽을 소화시키는데는 제격이다. 임경숙 수원대 교수 식품영양학과
  • [CEO 칼럼] 송년회문화 이젠 바꾸자

    우리나라에도 서구식 파티문화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해외 유학인사와 해외 여행객이 많아지다 보니 외국에서 경험한 파티문화가 자연스럽게 삶 속으로 스며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파티라고 하면 동양인들에게는 아직까지 낯설고 이질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하지만 놀이문화가 서구화되고 경기침체로 인해 외식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조촐한 파티로 연말 모임을 대체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파티문화가 연말을 맞아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아마도 우리의 연말 송년회 분위기가 변화하기를 바라는 움직임들이 사회 저변에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송년회라고 하면 떠오르는 모습을 생각해 보자.고깃집과 술집을 전전하다가 술에 찌든 몸을 이끌고 노래방에 가고,여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다른 술집을 찾아 밤거리를 배회하는 모습 말이다.몸은 몸대로 힘들고,맑은 정신으로 가족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런 분위기는 이제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파티라고 하면 화려함,사치,까다로운 준비,특별한 의상 등 영화속에서 보던 서구식 문화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그래서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하지만 최근에는 파티문화의 대중화에 맞춰 다양하고 저렴한 각종 홈파티 용품들이 시중에 많아 한결 간편해지는 추세다. 굳이 파티라고 표현할 필요도 없다.가정에서 간편하게 즐기는 ‘연말 가족 모임’ 정도로 이해해도 작금의 파티문화와 큰 차이가 없지 않은가.융숭히 대접하기 위해 음식준비에 허리가 휘는 그런 것 대신 더욱 합리적인 선에서 먹거리와 장식소품들을 알차게 꾸미는 ‘이벤트’를 만들어야 한다. 요즘은 가벼운 홈파티 용품을 판매하기 위한 시중의 움직임도 부산하다.대형 할인점과 백화점들은 쿠키와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베이킹 원료와 기구들을 다양하게 구비해 놓고 있다.모임 분위기를 낭만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는 와인도 고가에서 저가까지 다양하게 나와 있어 취향과 기호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음식 준비의 수고를 덜어주는 파티용 먹거리도 풍성하다.간단히 데우기만하면 곧바로 먹을 수 있는 조리식품과 반조리 식품들이 많고,‘테이크 아웃’할 수 있는 먹거리도 많다.인터넷에서 발품을 조금만 팔면 된다. 홈파티용 장식 소품도 접시,잔,향초,조명,풍선,꽃병 등에 이르기까지 아기자기한 것들이 백화점,할인점,인터넷 쇼핑몰 등에 쌓여 있어 분위기를 돋우는 데 그만이다. 경기 침체와 불황 때문에 요즘 많은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소비 위축이 지속되면서 지갑을 여는 것이 쉽지 않고,주머니 사정도 그다지 넉넉하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흥청망청하는 송년회로 자기자신을 낭비하기보다는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의 따뜻함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 게 어떨까. 남편은 아내의 손을,아내는 남편의 손을 잡고,아이들과 함께 가족 파티를 준비해 보자는 것이다.기회가 된다면 소원했던 먼 친척에게도 연락해 보고,아니면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을 찾아 조촐한 모임을 갖는 것도 괜찮겠다. 서구의 파티문화가 사교적인 색채가 강하다면,우리는 사람간의 정을 찾아 한국적인 가족적 파티문화로 새롭게 변신시켜 보자.가벼운 음식을 함께 장만하면서 가정이란 테두리 안에서 세상 사는 이야기를 펼쳐보면 그 따뜻한 정감에 올 연말이 더없이 훈훈하게 느껴질 것이다. 황 경 규 신세계 이마트부문 대표
  • 권노갑씨 벌금 700만원 궐석 선고

    서울지법 형사항소7부(부장 양인석)는 12일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 대표에게 영수증을 받지 않고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등으로 기소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 대해 원심대로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권씨는 지난 5일 함께 기소됐던 김근태 대표의 선고 공판에 일신상 이유로 불출석한 데 이어 이날도 “허리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라면서 불출석사유를 제출했다.재판부는 “항소심에서 피고인이 선고기일에 두번 연속 불출석할 경우 재판부 직권으로 선고할 수 있어 피고인이 불출석했지만 궐석 선고를 한다.”면서 “원심의 판단과 양형은 적정하므로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정은주기자 ejung@
  • 소녀가장 꿈살린 ‘십시일반’/도봉구청 직원들 성금모아 불우학생 간호학원비 지원

    구청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나서 소녀가장의 꿈을 되살렸다. 11일 도봉구(구청장 최선길)에 따르면 구 직원 10명이 힘을 모아 매월 22만원씩 6개월간 소녀가장 박은영(19·쌍문1동)양의 학원비를 대주기로 했다. 신장과 허리가 좋지 않은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어려운 형편임에도 학업성적이 반에서 5등 안에 들 정도였던 박양은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올초부터 간호전문학원을 다녔다.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40여만원을 쪼개 매월 22만원을 학원비로 내며 열심히 다녔지만 나머지 18만원으로는 도저히 생활을 꾸려가기 어려웠다.결국 6개월만에 학원을 그만 둔 박양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법무사 사무실 보조로 취업,월급 60여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취업과 동시에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자격이 박탈돼 정부보조금은 물론 의료보호도 받지 못하게 됐다.60여만원의 월급으로는 생활비와 학원비를 동시에 해결하기 어려워 간호사의 꿈을 접어야 할 처지였다.박양의 안타까운 사연은 쌍문1동 사회복지담당으로 근무하면서 박양 가족과 인연을 맺은 사회복지과 김미혜씨가 구내전산망 게시판에 “어려운 학생의 미래를 위해 6개월간 매월 2만 2000원을 내줄 열 분이 필요합니다.”라는 호소문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올린 글이었지만 불과 2시간만에 학원비를 내주겠다는 후원자가 10명을 넘어섰다.과장,동장에서 주차단속 여직원까지 직원들의 따뜻한 마음은 식을 줄을 몰랐다. 박양은 15일부터 다시 간호학원에 다닐 예정이다.앞으로 6개월만 더 다니면 간호조무사가 돼 자신의 어머니처럼 병들고 지친 사람들을 돌볼 수 있게 된다. 박양을 돕는 일에 동참한 도봉구 직원 송모씨는 “담뱃값,택시비를 아껴 모은 작은 정성이 한 사람의 절망적인 미래를 희망으로 바꿔줄 수도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이여명의 ‘배 마사지 30분’/우울할때 배꼽 문지르면 ‘싹~’

    ‘배가 편해야 몸이 편하다.’ 배는 소화·흡수뿐만 아니라 각종 노폐물을 처리하는 곳이다.더불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할 만큼 감정적 스트레스가 쌓이는 곳 역시 배.만약 이런 독소들을 제때에 풀어 주지 않는다면 에너지 순환이 잘 이뤄지지 않아 결국 이런저런 질병으로 이어진다.바꿔 말하면 배 건강을 다스리면 우리 몸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 최초로 기(氣)마사지를 보급한 이여명씨가 쓴 ‘배 마사지 30분’은 배 마사지로 건강 지키는 방법을 제시한다.흔히 ‘기 마사지는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은 사진과 자세한 설명으로 쉽게 풀어내 누구나 따라하기만 하면 된다.여기에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머니와 같은 정성을 더한다면 배 마사지로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다. ●배를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효과 조선의 왕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꼭 손으로 배를 문질렀다고 전해진다.저자는 배 문지르기가 배의 기 순환을 도와 배를 따뜻하게 하고 에너지 조화를 이루는 데 탁월하다고말한다. 방법도 간단하고 무엇보다 혼자 할 수 있어 좋다.양손을 비벼 열이 날 정도로 마찰시킨다.배가 아픈 경우에는 배꼽에 한 손바닥 또는 양 손바닥을 겹쳐 얹은 다음 시계 방향으로 부드럽고 빠르게 문지른다.이때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나선형으로 100회 정도 마사지 한다. 기분이 우울할 때는 배꼽에 손을 얹고 위 아래로 손을 빠르게 움직여 마찰시켜 마사지하면 된다.또 머리가 아프거나 정신이 산만할 때는 손바닥으로 명치 쪽에서 아랫배 쪽으로 강하게 쓸어내리면 된다. ●배꼽은 건강의 핵심 배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배꼽.온몸과 곧바로 연결돼 있어 우리 몸에 독소가 퍼지면 가장 먼저 딱딱하게 굳는다.책은 그래서 배꼽을 풀어주면 장기의 기능을 근본적으로 되살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어설픈 전신 마사지 1∼2시간보다 배꼽 마사지 10분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다. 우선 배꼽 아래 3∼4㎝아래 있는 단전을 양 엄지손가락으로 약 20초 동안 약간 아플 정도로 지압을 해준다.이어 배꼽에 시계가 놓여 있다고 가정한 다음 배꼽 주위 8곳을 눌러주면 된다.3시 방향부터 시작해 90도씩 시계 반대방향으로 이동하며 지압한다.이어서 4시 30분 방향에서 다시 시작해 90도씩 이동한다.각 지점을 엄지손가락으로 약 20초간 누른다.손을 뗄 때는 손가락을 원형으로 돌려 마사지한 다음 천천히 뗀다. ●배꼽호흡 전 풀무호흡부터 배 마시지와 더불어 배꼽으로 숨쉬는 것도 자연 건강법의 하나다. 가슴을 사용하지 않고 어린 아이들처럼 배로 호흡하면 더 많은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다.하지만 배꼽 호흡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따라서 배꼽 호흡을 익히기 전에 예비 운동으로 ‘풀무’ 호흡을 하면 아랫배를 단련시킬 수 있다.먼저 서거나 앉아서 혹은 누워서 양손을 아랫배에 얹는다.숨을 강하게 들이 쉴 때 아랫배를 불룩 내밀고,숨을 강하게 토해낼 때 아랫배가 등에 닿는 기분으로 당겨준다.숨을 내쉬거나 들이 쉬는 시간은 1∼2초 정도로 한다.처음에는 50회 정도로 시작해 점차 횟수를 늘려간다. 책은 이 밖에 장에 좋은 체조도 소개하고 있다.넥서스.1만 5000원. 나길회기자 kkirina@ ■숙변 없애는 대장마사지 많은 사람들이 변비로 고생하면서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하지만 대변은 우리 몸에서 나오는 가장 독한 노폐물.대장에 오래 머물면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숙변의 독소는 대장과 주변의 장기를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혈액을 타고 피로,어깨결림,여드름 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서서 걷기 때문에 장 운동이 원활하지 않다.또 대장은 혈액의 순환이 잘 이뤄지지 않은 곳이다.따라서 변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필요하다.여기에 대장 마사지를 해준다면 숙변 걱정 끝. 마사지에 앞서 대장의 위치와 상태를 파악한다.건강한 장은 부드러우며 전혀 아프지 않다.그러나 가스가 차거나 딱딱한 상태가 되면 누를 경우 아픔을 느끼는 등 압력에 민감해진다. 대장에서는 S결장(아랫배 가운데),맹장(아랫배 오른쪽),간 만곡부(오른쪽 갈비뼈 아래),비장 만곡부(왼쪽 갈비뼈 아래)가 잘 막힌다.따라서 이 부분을 양손 끝으로 지그시 압박을 가해 주무르고 시계방향으로 돌리면서 각각 마사지 해준다.그 다음 양손으로 허리를 감싸안아 등쪽에서 배쪽으로 쓸어준다.특히 허리 쪽의 갈비뼈 아래를 파 들어가 듯이 많이 자극해준다. 장의 각 부분을 풀어 준 뒤 연동 운동을 활성화시킨다.양손 손가락을 나란히 합쳐 맹장에서 시작해 대장 전체를 따라 작은 원을 그리며 주무른다.대장을 따라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리고 몇 차례 쓸어줘 마무리한다. 나길회기자
  • “백제유적 종합전시장”수촌리유적 발굴지도위원회 열려 1호분서 금동허리띠 등 추가 발굴

    무령왕릉 이후 최대의 백제무덤 발굴이라는 충남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 유적의 발굴성과와 앞으로의 조사방향을 점검하는 지도위원회가 10일 현장에서 열렸다.참석자들은 현장과 출토유물을 둘러보고는 “백제유적의 종합전시장”이라고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언론에 보도된 것 이상으로 많은 역사적 사실을 밝혀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표시했다. 지도위원회에는 유적의 중요성을 보여주듯 이강승 충남대 교수 등 지도위원과 이남석 공주대 교수 등 자문위원을 비롯한 고고학 및 역사학자들, 노태섭 문화재청장 등 정부관계자와 보도진 등 20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는 충남역사문화연구소의 강종원 연구위원은 현장설명에 나서 “1호분에서 금동허리띠 한점이 추가로 나오는 등 발굴이 진척됨에 따라 유물이 계속 나오고 있다.”면서 “일단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기 전에 기존에 확인된 유물의 수습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장 책임자인 이훈 문화재연구부장은 “2호분에서는 굽은옥(곡옥)이 달린 목걸이와귀걸이 등 백제시대 귀부인이 어떻게 치장했는지를 알 수 있는 유물이 나왔다.”면서 “특히 피장자의 머리쪽에서 나온 붉은색 구슬들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하나인 동수묘의 여인 모습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주목된다.”고 말했다. 지도위원인 최병현 숭실대 교수는 “이 유적의 가장 큰 의의는 무엇보다 백제왕실이 의탁하여 웅진으로 천도할 만한 세력이 이곳에 존재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라면서 “그동안 일본에서는 다수 나왔지만 국내에서는 출토지가 확실치 않아 일본에서 역수입됐다는 설까지 나왔던 호등(등자)이 나온 것도 큰 성과”라고 밝혔다.들떠있는 분위기를 경계하는 지적도 있었다.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분석하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이 관장은 “고고학자는 고고학적으로 판단해야지 역사와 연결시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면서 “수촌리에서 나온 유물이 중앙의 사여품이니 하는 것은 고고학자가 할 만한 얘기가 아닐 것”이라며 섣부르게 유적의 성격을 판단하려는 분위기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현장에는 주민들도 나와 관심있게 지도위원회를 지켜봤다.한 주민은 “이번에 유물이 나온 문둘기산에는 옛날부터 왕의 무덤이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면서 “40여년 전 이웃한 수촌초등학교를 지을 때도 백제토기가 많이 나왔다.”고 전했다. 한편 공주시청 관계자는 이날 “의당농공단지를 조성하려고 이미 50억원을 들였는데 유적이 발견됐다.”면서 “어려운 지방자치단체의 사정을 감안하여 정부가 이 부지를 매입, 공주시가 농공단지를 다른 곳에 조성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참석자들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공주 서동철기자 dcsuh@
  • [길섶에서] 겨울 가로수

    도시의 열병대오(閱兵隊伍)인 가로수에 겨울이면 채워주던 허리띠(잠복소)가 사라진 지 오래다. 서울 시내의 가로수는 모두 27만 4459그루 있다고 한다.은행나무가 11만 6283그루이고,플라타너스가 11만 3999그루,느티나무와 버드나무 등이 뒤를 잇는다.서울시 조경과 관계자는 잠복소가 미관상 썩 보기가 좋지 않은데다가 흰불나방 피해가 수그러들면서 해충 제거에 큰 효과가 없어졌다고 말한다.그 때문에 1980년대말 90년대 초쯤부터 잠복소 두르기를 중단했단다.인건비나 짚 구하기의 어려움도 중단의 이유가 됐음직하다.다만 공원 등에 심어진 추위에 약한 나무에는 동해 방지용으로 짚을 둘러준다고 말한다. ‘너나없이 춥고 배고프던 시절에도 나무에 겨우살이를 준비해 주었는데…’라는 생각 때문인지,보호막이 없이도 아리고 매운 겨울을 지나 여린 잎으로 도시의 새 봄을 열 가로수의 강골이 새삼 대견해 보인다. 강석진 논설위원
  • ‘철밥통’은 옛말/마포구 공무원들 면학 바람 6급 145명 자치행정 공부

    마포구(구청장 박홍섭) 공무원들의 면학 바람이 거세다.승진이나 인사상의 인센티브를 노린 ‘반짝 공부’가 아니라,지식과 교양을 쌓고 구정(區政) 발전을 위한 실무를 익히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구정의 허리역할을 맡은 6급 직원 145명은 지난 10월부터 매주 2차례에 걸쳐 6시간씩 ‘자치행정연수과정’에 참여하고 있다.이들은 행정법,전략분석기법,건축과 도시,마케팅 등 다양한 교과목을 수강 중이다. 구청 강당에서 진행되는 수업은 자치구가 당면한 과제를 풀어낼 수 있도록 실무적인 내용들로 꾸며져 직원들의 호응도 높다.참가자들은 모두 평가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11일 수료식을 갖는다. 강희천 인사팀장은 “기획이나 건설,토목 등 현장부서에도 여직원들이 배치되고 있는 만큼 여성관리자 과정도 곧 개설하겠다.”고 밝혔다. 내년에는 국립한경대학교 야간대학 과정에 30여명의 직원을 위탁교육시키기로 하고 등록금 50%씩을 지원할 방침이다.방송통신대에 입학하면 등록금 전액을 지원한다.외국어,컴퓨터 공부와 공인중개사·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사설학원에 다니는 경우 월 5만원을 보조하는 등 전 직원들의 재교육을 독려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새롭게 출발하는 9급 직원 19명에 대해 3일간 강도높은 실무교육을 실시했는데,자치구에서는 전례없는 일로 평가되고 있다.박홍섭 구청장은 “본격적인 지방분권화를 맞아 다양한 행정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직원 스스로 자기계발에 힘쓰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 [먹고 사는 이야기] ‘대장금’표 비만

    집집마다 ‘살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난리다.배불뚝이 아빠는 그래도 양반이다.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어린이 비만은 가정의 범주를 넘어 사회 문제로 등장했다.학교에서까지 비만 문제에 신경을 써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은 비만이 인류 건강의 ‘적’으로 인식되고 있지만,배곯는 일이 많았던 30∼40년 전만 해도 비만 자체가 극히 드물었거니와 비만을 걱정해야할 이유도 없었다.선사시대 이래,인류는 끊임없이 찾아드는 기근에 시달렸다.그러다보니 기아로 인류가 도태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체지방 축적은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였다. 또 비만이 부와 건강,풍요와 모성의 상징으로 숭배되던 시대도 있었다.지금도 케냐에서는 뚱뚱한 신부를 선호한다.나이지리아에서는 결혼을 앞둔 처녀의 체중을 불리기 위해 집안에 가두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비만이 건강문제로 부각된 것은 식량 증산으로 기아가 퇴치되면서부터다.고지혈증 당뇨병 고혈압등과 같이 비만의 폐해가 입증된 이후 인류는 비만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급기야 1996년 스페인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유럽비만학회는 비만,그 자체를 적극적으로 치료하여야 할 질병으로 규정했다. 비만은 폭식이나 과식에 의해 주로 발생한다.서울의 한 비만전문 외과의원에 따르면 체중이 100㎏을 넘는 고도 비만자의 경우,평소 식사량은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으나,사나흘에 한번씩 보통사람의 10배 이상 먹어 치우는 폭식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이 정도의 폭식은 보통사람에서 쉽게 관찰되지 않는다. 과식은 어떠할까.일상생활에서 잠시 방심하면 과식하기 쉽다.배가 부른데도 불구하고 한 숟가락 정도 밥이 남으면 대부분은 그냥 먹어치운다.이런 식으로 끼니마다 한 숟가락씩 더 먹으면 어떻게 될까?밥 한 숟가락은 20g,약 30㎉의 칼로리를 가지고 있다.하루 세번 한 숟가락씩 더 먹으면 90㎉,한달이면 2700㎉를 초과 섭취하게 된다.이 에너지를 체지방으로 환산하면 300g,체내 대사에 쓰이고 200g만 저장된다고 하자.실제 체중계에서 200g은 눈금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오차범위라 방심하기 십상이다.그러나 1년간 지속되면 2.4㎏,10년간 누적되면 24㎏의 체지방이 축적된다. 즉 방심하고 먹는 비스켓 한 조각,밥 한 숟가락 등이 바로 과식이며,이러한 무의식적인 과식이 비만을 초래하게 된다. 요즘 TV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이다.다양한 식재료와 정성어린 조리법으로 차려지는 궁중 음식의 진수는 보기에도 매혹적이어서 밤참을 당기게 한다.그 유혹에 넘어가서 ‘대장금표 비만’에 걸리게 되었다는 하소연이 심심찮게 들린다.비만에는 참는 것이 약이다.허리 둘레 1인치는 단 일주일간의 밤참만으로도 늘어나지만,원위치로 돌아가는데는 적어도 두 달간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임경숙 수원대 교수 식품영양학과
  • [나의 건강보감]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

    “운동은 필사적으로 합니다.제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그건 바로 조직의 병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보생명 대표이사 회장인 신창재(50)씨는 “정신이 맑고 건강해야 정확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데,그 정신은 건강한 몸에서 비롯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조직 안팎에서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도 건강이 전제돼야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CEO적 건강론이다. ●체력 약하면 남의 얘기 경청 못해 “저는 얘기를 많이 듣는 스타일인데,막상 조직의 책임자가 되니 그게 여간 힘들지 않아요.체력이 약한 사람은 남의 얘기를 진지하게,오래 듣지 못합니다.관심이 없거나 방향이 다른 얘기에는 짜증부터 내거든요.물론 제가 듣는 얘기가 모두 중요한 건 아닙니다.개중에는 허튼 말도 있고,관심없는 소리도 있습니다.그러나 그걸 막으면 여러 계층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장애가 발생하는 거죠.이런 이유로도 건강은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청탁불문(淸濁不問)식으로 운동을 하는 건 아니다.시간을 정해 봐야 어긋나기 일쑤지만 대신 주어진 여분의 시간은 철저하게 운동으로 메운다.“매일 달리기나 계단밟기 같은 유산소운동으로 800㎉ 정도의 열량을 태우니 결코 적은 양은 아니지요.”토막시간을 활용하는 운동이지만 오랫동안 몸에 익힌 ‘유연체조-본운동-근력운동’의 수순은 지킨다.바로 그의 3단계 운동법이다. ●의대 교수 시절,운동부족으로 허리병 앓아 사실,그가 이렇게 자투리 시간에 매달리는 것이 CEO가 된 이후의 변화만은 아니다.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시절,교통체증으로 날리는 시간이 아까워 지하철 출퇴근을 했는가 하면 도시락을 두개씩 싸가지고 다니기도 했다.저녁을 도시락으로 때우고 느지막이 출발하면 체증을 피할 수 있어서였다.이래야 할만큼 의사로서 그가 감당했던 부담은 컸다.“의사 일에 많이 지쳤어요.의대 교수지만 술과 담배에 관대하고,건강을 위해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는 게 현실이거든요.그럭저럭 마흔을 넘겼는데,그때부터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지치기도 했고,허리도 안좋고….내가 뭘 위해 살았으며,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회의가 들어 그만두기로 했죠.그게 의대를 떠난 절반의 이유입니다.” 그는 의사를 그만 둔 것을 두고 ‘도루를 감행했다.’고 했다.그가 느낀 직업적 회의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술에 관한 기억은 엄청 토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술을 과음한 다음날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해 병원 뒷문으로 몰래 출근한 경우도 더러 있었고요.운동 가운데 골프도 좋아했는데,몸이 안좋으니 200야드가 정상인 드라이버 비거리가 160야드에도 못미치더라고요.잘 치는 여자보다 못한 건데,그래서 ‘짤순이’라는 놀림도 많이 받았어요.” ●복근강화 위해 윗몸일으키기는 필수 의사 시절,그는 과로와 운동 부족으로 허리병을 앓았다.운동의 필요성을 느껴 7층 연구실에서 3층 수술실까지 계단을 타기도 했지만 이미 가라앉기 시작한 몸이어선지 좀체 회복되지 않았다.“처음엔 디스크로 알았어요.그래서 진찰해 보니 척추를 둘러싼 근육이 쇠약해지면서 나타난 증상이더군요.아마 사무직 종사자들은 대개 이런 증상을 갖고 있을 거예요.운동 부족으로 복근이 약해지면 척추 뒤쪽 근육이 당기는 힘에 끌려 허리가뒤로 젖혀지는데,이 때문에 배도 나오고 허리에 통증도 느끼게 되는 겁니다.”이를테면 일종의 직업병인 셈인데,그는 이때부터 쿠션 소파나 바퀴 달린 회전의자를 피했다.대신 집무실과 접견실에는 학생들이 쓰는 딱딱한 의자를 놓았다.딱딱한 의자로 척추를 바로잡아줘야 통증이 줄고,디스크로도 발전하지 않기 때문이다.복근을 강화하기 위해 윗몸일으키기가 필수 운동종목이 된 것도 이 무렵이다. 그의 건강은 부친이 암 선고를 받은 1993년부터 더욱 심각해졌다.“술과 담배를 떼어 놓을 수가 없었어요.아버님 돌아가신 충격의 절반을 그때 이미 받았는데,그런 생활이 96년 병원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다가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그때부터 피트니스센터에 나가 운동을 시작한 겁니다.” 지금은 거의 술을 하지 않으며,담배도 골프장에서만 한두대 하는 정도다.그는 본래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다.주변에서는 “돈이 많으니….”라고들 말하지만 “돈이 많다는 건 스트레스가 많다는 뜻이다.내가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은 운동의 상승효과”라며 ‘돈=행복’이라는 시각을 일축한다. 한국의 문예부흥을 이끄는 대산문화재단의 이사장까지 겸하고 있는 그는 여느 창업 2세대처럼 내놓고 경영수업을 받은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의사였다.그렇게 의사의 삶을 살다가 창업자이자 부친인 고 신용호 전 회장의 암 투병으로 ‘자의반 타의반’ 교보의 수장이 됐다.어찌 지금의 부담이 교수 시절의 그것에 못미치랴만 그래도 지금의 그는 건강하다. ●선친 뜻 이어 ‘자의반 타의반’ 경영자의 길로 그는 하루를 10분 단위로 토막내 쓴다.일상적인 면담도 대부분 20분을 넘지 않는다.“혼신을 다하고 있습니다.선친의 유업을 소홀히 할 순 없지요.오죽하면 아내가 바가지 긁는 걸 포기했겠습니까.”라며 밝게 웃었다.그런 그에게서 듣는 건강 담론은,일 한번 해보겠다고 작정한 CEO가 어떻게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전범(典範)이었다. 심재억기자 jeshim@ ■신창재회장의 3단계 운동론 “7년쯤 맘먹고 운동을 했더니 이젠 감기도 잘 안 걸려요.예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죠.이젠 경영에서도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듭니다.” 그를 변화시킨 운동이지만 특별히 남다른 것은 없다.비결이라면 하루도 건너뛰지 않는 규칙성,그리고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조화시키는 정도이다. “보통은 10분쯤 봉체조와 스트레칭을 한 뒤 본운동을 하는데,아무래도 달리기 비중이 크죠.바쁠 땐 계단밟기로 대신하고요.근력운동으로는 윗몸일으키기가 빠지지 않습니다.30∼40분 정도 운동한 뒤 뜨거운 물로 목욕하고 마무리하는 식입니다.”일정이 빠듯해 아침,저녁을 따로 가리지 않지만 ‘유연체조-유산소운동-근력운동’의 3단계 질서는 거의 흐트리지 않는다.“더러는 밤 11∼12시에도 운동을 합니다.셈해 보니 그렇게 매일 800㎉ 정도의 열량을 소모하더군요.” 그가 말하는 800㎉는 적지 않은 열량이다.체중 75㎏인 사람이 시속 9∼10㎞의 속도로 1시간을 뛰어 태우는 열량이 350∼400㎉ 정도이니 그의 운동량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늦은 시간에 운동한 날은 안정제를 먹고 숙면을 취하기도 한다.지방 출장 때는 운동이 가능한 곳을 숙소로 정할 만큼 운동이 일상화돼 있다. 신장 168.5㎝,체중 67㎏의 군더더기 없는 몸매를 가진 그의 건강법은 종합적이고 구체적이어서 체력과 스트레스 해소,섭생,기호 식품,수면 관리 등을 모두 고려한다.예컨대,섭생의 경우 소식 위주에 맵고 짠 음식을 피하는 대신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한다. 아침은 두유와 노른자를 뺀 달걀 부침,점심은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기 위해 밥이나 밀가루 음식을 최소화하는 대신 야채와 고기를 주로 먹는다.이렇게 하면 오후의 식곤증을 덜 수 있다.저녁도 넉넉하게 먹되 포식은 피한다.여기에 종합비타민 한 알이 그가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에게 모든 사람들이 보험없이 건강하게 사는 법을 묻자 “있다.”고 했다.“결국은 운동이 중요합니다.체조 등 유연성 운동과 함께 등산,달리기 등 하체 위주의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며 여기에 적당한 근력 운동을 덧붙인다면 더 바랄 게 없지 않을까요.” 심재억기자
  • 삼국 풍만 고려 우아 조선 요염/그림으로 본 시대별 한국 미인

    한국의 고전적인 미인상이 삼국시대 ‘풍만형’에서 고려시대에는 ‘우아형’,조선시대에는 ‘요염형’으로 변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미의 기준은 남성의 욕구에 따라 형성되고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억압을 받기도 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홍선표 교수는 3일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이 ‘한국인의 신체관’을 주제로 연 학술대회에서 ‘한국 미인화의 신체 이미지’라는 발표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홍 교수는 “고구려 고분벽화와 고려 불화,조선의 풍속화 등을 검토해보면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고대에는 훤하고 퉁퉁한 여성에서 고려 때는 아담하고 품위있어 보이는 여성으로 옮겨갔다.”고 밝혔다.또 “조선시대부터는 정감적이고 염요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성이 미인으로 여겨졌는데 조선 후기 유흥과 향락의 주체가 사대부에서 중인으로 넘어오면서 이런 경향이 더욱 노골화되었다.”고 분석했다. 홍 교수는 특히 “고전적 미인상은 16∼18세 나이의 성적 생식능력이 생기기 시작하는 ‘소녀’를 ‘진미인(眞美人)’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미모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보는 쪽의 감성적 느낌을 중심으로 자연의 주술력이나 신체미에 비유해 형용했던 것 같다고 홍 교수는 설명했다.그는 “맑고 선선하면서 가늘고 긴 눈과 붉고 작은 입술,흰 피부,좁은 어깨,가늘고 유연한 허리 등이 미인의 조건이었다.”고 덧붙였다. 구혜영기자 koohy@
  • 腰痛 급성이면 냉찜질 만성땐 온찜질을/ 북플러스의 ‘허리 맛사지 15분’

    ‘에구 허리야,비가 오려나?’ 허리 부여잡고 통증을 호소하는 것은 노인들만의 얘기가 아니다.요통은 우리나라 인구의 80% 이상이 경험할 정도로 흔하다.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허리가 아파도 그냥 넘겨버리거나 ‘고질병’쯤으로 생각하고 치료하지 않아 후회하기 일쑤다. 북플러스가 노무현 대통령 한방주치의인 경희대 한의학과 신현대 교수의 도움을 받아 펴낸 ‘허리 맛사지 15분’은 이런 무신경함에 제동을 건다.요통을 예방하는 생활습관·운동법과 함께 통증을 덜어주는 방법을 알려준다.날씨 탓하며 허리 두드리기,이젠 그만! ●허리 건강 위해선 뱃심 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리가 아프면 허리 근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원인은 복근(腹筋)에 주로 있다.허리를 받치는 배 근육이 약하면 척추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만성 요통을 앓고 있거나 허리병을 예방하고 싶다면 복근을 강화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운동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다.가벼운 스트레칭만으로도 요통을 예방할 수 있다.똑바로 서서 양손으로 허리를 지지한 다음천천히 허리를 뒤로 젖힌다.10초 가량 유지하다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하루 두세번 정도 반복하면 된다. 만성 요통을 겪는 사람은 손쉬운 체조를 하면 좋다.누운 채로 다리를 위로 곧게 뻗은 뒤 양손으로 바닥을 밀어 엉덩이를 위로 밀어올리는 동작은 복근 강화에 좋다. 주의할 것은 척추를 감싸고 있는 근육을 골고루 운동시켜야 한다는 것.복근 등 특정 근육만 발달하면 되레 균형이 깨져 오히려 요통을 악화시킬 수 있다. ●바른 자세는 요통 예방의 기본 아무리 척추를 지탱하는 근육을 단련시키고 운동을 열심히 해도 평소 자세가 나쁘면 헛일.서 있을 때나 걸을 때 엉덩이를 뒤로 빼거나 가슴을 지나치게 내미는 것은 허리에 나쁘다.바닥에 앉을 때에는 무릎을 꿇고 등을 곧게 펴서 앉는 것이 허리에 가장 좋다.책상다리는 허리에 부담을 주고 옆으로 다리를 모으는 자세는 골반을 변형시키므로 피한다. ●냉·온찜질이나 지압 등으로 아픈 부분 풀어줘야 사람들은 대개 허리가 아플 때 파스를 붙인다.파스는 피부에 닿았을 때 뜨거운 느낌이 나는것과 차가운 것이 있는데 두 가지를 함께 붙이면 효과적이다.가령 오른쪽 허리가 아프다면 그 부위에 냉습포를 붙이고 등골을 축으로 반대쪽인 왼쪽 허리에 온습포를 붙이면 된다.이때 가로·세로 5㎝로 잘라 쓰면 좋다.파스는 염증이 있거나 피부가 약한 경우에는 바르면 안된다.이 경우 얼음 찜질이나 핫 팩 등을 이용하면 된다.급성 요통에는 냉찜질,만성에는 온찜질을 해주면 된다. 지압으로도 요통을 완화할 수 있다.비 오는 날에는 허리 부위가 차가우면서 허리 전체에 통증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엄지손가락으로 뒷목뼈 양옆으로 움푹 들어간 곳을 찾은 다음 이곳에서 좌우로 5㎝ 떨어진 지점을 약하게 눌러주면 한결 낫다. 책은 이외에 허리 건강에 좋은 식이요법도 소개하고 있다.1만 2000원. 나길회기자 kkirina@ ■급성 요통 응급처치법 요통은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운동을 하던 중,심지어 세수를 하다가도 찾아온다.이럴 경우 당황하지 말고 냉정하게 대처해야 증상 악화를 막을 수 있다.우선 통증이 발생하면 몸을 천천히 움직여 가장 가까운 벽이나 물체에 몸을 기댄 후 도움을 청한다.집 밖에서 요통이 발생한다면 가로수나 담 등에 몸을 기대고 통증이 진정될 때까지 움직여선 안된다.부득이하게 움직여야 한다면 게걸음으로 걷는 것이 편하다.추락 등 사고로 인한 통증이라면 척수가 손상될 수 있어 몸을 움직이는 건 절대 금물이다. 누울 여건이 마련되면 옆으로 눕는다.이때 푹신한 침대나 소파가 아닌 딱딱한 매트나 요가 필요하다.베개를 베고 무릎을 약간 굽힌 자세를 취하는 것이 편하다.반듯하게 누울 때에는 무릎을 약간 세우고 무릎 아래 쿠션을 받쳐 허리를 고정시키면 된다.타박상 등으로 허리를 바닥에 댈 수 없으면 배에 쿠션을 받치고 엎드린 자세를 취한다.쿠션을 받치지 않으면 허리가 지나치게 휘어져 통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 편안한 자세로 누운 뒤 환부에 냉찜질을 한다.비닐 주머니에 얼음을 넣어 얼음주머니를 만든다.이때 얼음에 소금을 조금 뿌리면 얼음이 오래간다.환부에 타월을 덮고 그 위에 얼음 주머니를 올린다.통증이 사라지면 따뜻한 타월을 이용해 열찜질을 해준다. 나길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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