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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선체 수색 중 사람 추정 뼈 2점 발견

    세월호 선체수색 과정에서 사람 뼈로 추정되는 뼛조각 2점이 발견됐다. 지난 5일 세월호 침몰 해역인 진도 앞바다에서 사람 뼈 추정 유해가 수습된 지 6일 만이다. 선내 수색에서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18일 선내수색을 시작한 지 22일 만이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10일 오전 8시 10분쯤 세월호 선체 수색 중 4층 선미 좌현쪽(4-11 구역)에서 뼈 2점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진입로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8시 10분쯤 1점, 9시 25분쯤 1점이 발견됐다. 내부 지장물이 쏟아져 내리면서 뼛조각이 진흙에 섞여 나왔다. 현장에 있는 국과수 전문가가 육안으로 감식한 결과 사람 뼈로 추정했다. 수습본부는 강원 원주에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에 뼈를 보내 정밀 감식을 의뢰했다. DNA 감정 결과는 소금기 등을 없애야 해 한 달 가량 걸린다. 수습본부는 미수습자 가족들의 요청으로 뼈 크기와 추정 부위 등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유해 2점이 발견된 지점은 지난 8일 오후 수습본부가 세월호 선미쪽 4층 객실 수색을 위해 진입구 확보작업을 시작한 부분이다. 그동안의 수중수색에서도 잠수사들이 제대로 진입하지 못한 공간이다. 단원고 미수습자인 허다윤 양과 조은화 양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장소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는 2014년 10월 28일 세월호 4층 중앙 여자화장실에서 찾은 단원고 황모양 이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날 오전 목포신항 북문 앞에서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47) 씨는 가족들을 대표해 ‘대통령께 부탁드리는 글’을 통해 “세월호 선체와 사고해역에서 미수습자를 수색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가족들은 “선체조사위원회와 해양수산부, 코리아샐비지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안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이런 상황을 정리하고 통합할 수 있는 분은 이젠 대통령 밖에 없다”고 눈물을 떨꿨다. 조카와 동생을 기다리는 권오복(63) 씨는 “이곳 미수습자 가족들은 사람 흔적만이라도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게 소원이다”고 고개를 숙였다.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1115일 만에… 세월호 침몰 해역서 사람 뼈 첫 발견

    34㎝ 정강이뼈… 정밀분석에 1개월 항로변경 원인 찾아 조타실 재수색 세월호 침몰 해역에서 수중 수색을 하던 도중 사람 뼈로 추정되는 유해가 처음 발견됐다. 2014년 4월 16일 참사가 발생한 지 1115일 만이다. 5일 세월호 현장수습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36분쯤 세월호 침몰 지점인 전남 진도군 병풍도 북쪽 3㎞ 지점에서 수중 수색 중이던 중국 상하이 샐비지 소속 잠수사가 길이 34㎝의 뼈 한 조각을 발견했다. 현장에 파견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요원이 뼛조각을 보고 사람의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뼛조각은 사람의 정강이뼈로 추정된다. 뼛조각은 국과수 본원으로 보내졌다. DNA 확인 및 정밀검사를 거쳐 1개월 뒤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뼛조각이 발견된 곳은 유실 방지를 위해 설치한 펜스 구역 내로, 침몰한 세월호 선미 객실과 맞닿아 특별수색이 이뤄진 곳이다. 수습본부는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앉았을 당시 유해가 유실될 가능성에 대비해 가로 200m, 세로 160m, 높이 3m의 펜스를 쳐 놨다. 세월호 인양 이후 펜스 구역 내에서 수중 수색이 이뤄졌으며 그동안 동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뼛조각이 계속 나왔다. 다만 유실 방지망 등을 설치했음에도 실제 유해가 선체 밖으로 빠져나옴에 따라 유실 우려도 현실화됐다. 선체 수색 18일째인 이날 단원고 조은화, 허다윤양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4층 선미 여학생 방 수색을 위한 5층 전시실 천장 절단 작업이 95%(420㎡)까지 완료됐다. 나머지는 수습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절단할 예정이다. 한편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세월호의 급격한 항로 변경을 밝혀 줄 선박용 위성항법장치인 GPS플로터를 찾기 위해 세월호 조타실에 재진입하기로 했다. GPS플로터는 인공위성이 보낸 신호를 전자해도에 입력하면 해도상에 선박의 정확한 위치가 표시되는 장치로, 선체의 움직임을 숫자로 보여 준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세월호 ‘미수습자 수색’ 위해 4층 객실 진입로 확보 작업 시작

    세월호 ‘미수습자 수색’ 위해 4층 객실 진입로 확보 작업 시작

    세월호 미수습자 9명(단원고 학생 허다윤·남현철·박영인·조은화, 단원고 교사 양승진·고창석, 일반인 권혁규·권재근·이영숙) 중 일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4층 선미 쪽 객실에 진입하기 위한 작업이 30일 시작됐다. 정부 합동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이날 오전 8시부터 세월호가 거치된 전남 목포신항에서 4층 선미 쪽 객실로 향한 진입로 확보를 위해 5층 전시실 절단 작업에 돌입했다. 전시실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해저에 부딪혀 현재 4층 객실과 짓눌려져 있는 상태다. 4층 선미 객실은 경기 안산 단원고의 여학생들이 이용했던 공간으로, 허다윤양과 조은화양 등 미수습자 2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습본부는 지난 18일부터 진행한 세월호 내부 수색 과정에서 4층 선미 객실에는 아직 들어가지 못했다. 5층 전시실 절단 작업은 우선 전시실 천장을 벗겨낸 뒤, 전시실 바닥에서 4층 객실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새로 뚫는 ‘부분 절개’ 방식으로 진행된다. 수습본부는 전시실 절단 작업과 함께 기존에 해왔던 3·4층 객실에 대한 수색 작업도 병행할 계획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4층 객실에는 단원고 학생들이 머물렀다. 선수 쪽 객실에는 남학생, 선미(배꼬리) 쪽 객실에는 여학생들이 있었다. 3층 객실은 단원고 학생을 제외한 일반 승객 및 승무원·기사 등이 머물던 곳이다. 앞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전시실 부분 절개가 선체 구조 안전성에 미치는 큰 영향은 없다며 절단 계획에 동의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서울포토] ‘함께 여는 봄’

    [서울포토] ‘함께 여는 봄’

    세월호 참사 3주기인 16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참석한 미수습자 허다윤양의 아버지 허흥환씨가 추모 답사를 하고 있다. 진도=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세월호 육상 거치 완료… 다음주 미수습자 수색 본격화

    세월호 육상 거치 완료… 다음주 미수습자 수색 본격화

    가족들 “또다른 희생자 없길” 전국서 추모객 발길 이어져 세월호의 육상 거치가 11일 완료되면서 세월호 인양 작업이 모두 마무리됐다. 2015년 8월 7일 인양 작업에 착수한 지 613일 만이다. 정부는 세척, 방역, 안전도 검사를 거쳐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희생자 수색에 나서기로 했다.이철조 해양수산부 세월호 현장수습본부장은 이날 오후 전남 목포신항에서 브리핑을 열고 “오늘(11일) 오후 3시 58분 세월호 선체 밑에 있던 ‘모듈 트랜스포터’(MT)를 모두 제거하면서 세월호 인양 작업을 끝냈다”고 밝혔다. 세월호가 2014년 4월 16일 맹골수도에 침몰한 지 1091일 만이다. 이 단장은 “연중 유속이 초속 3m에 달하는 맹골수도의 44m 수심에서 세월호를 통째로 인양한 것은 인양사에 유례가 없었다”며 “견고한 퇴적층으로 리프팅빔(인양 받침대) 설치에 8개월이나 걸렸고 본인양에서도 선미 램프(차량 출입구) 제거 등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해수부는 현장수습본부를 미수습자 수습 체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선체 외관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13일부터 세척 작업과 함께 방역과 선체 안전도 조사를 병행할 계획이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그간 함께 세월호 인양을 기다려 준 국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수색 과정에서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미수습자인 단원고 조은화 학생의 어머니 이금희씨는 “세월호 침몰 해역에 대한 수색이 빨리 진행돼야 한다”며 “세월호 때문에 다치는 분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다윤 학생의 아버지 허흥환씨는 “미수습자 9명을 모두 찾는 것이 진짜 (세월호) 인양”이라고 강조했다. 세월호 인양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목포신항에는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추모객들의 위로 발길이 계속됐다. 전국 각지에서 셔틀버스들이 추모객을 실어 날랐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전남지역 교회 소속 500여명은 성찬 예배를 올렸고, 철재부두 앞 도로에서는 ‘잊을 수 없는 그날들’이라는 주제로 세월호 참사 3년 사진전이 오는 30일까지 열린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이날 첫 전원회의를 열어 세월호 선체 조사 방향 등을 논의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목포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저기 내 딸이… 내 딸이 엄마한테 오고 있어요”

    “저기 내 딸이… 내 딸이 엄마한테 오고 있어요”

    허다윤양 어머니, 선체 보이자 “다윤이 찾아야 집 갈 수 있어요” “미수습자 모두 찾기를” 한마음 추모객도 “이제라도 인양 다행”“저기 내 딸이 오고 있어요, 내 딸이 엄마한테 오고 있어요.“ 세월호 참사 3주기(4월 16일)가 불과 1주일 남은 9일 오후 1시쯤, 육상으로 진입하던 세월호 선체 일부가 시야에 들어오자 미수습자 허다윤(단원고)양의 어머니 박은미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마른 울음을 토했다. 그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채 “다윤이를 한번만 안아보고 싶다”며 “다윤이를 찾아야 집에 갈 수 있다. 사람 찾는 일에 집중해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전남 목포신항으로 가는 길목인 목포대교에는 세월호 인양 성공을 염원하는 노란 현수막과 리본이 걸려 있었다. 신항 한쪽에 있는 세월호 유가족 천막 옆 칠판에는 ‘오늘 꼭 세월호, 엄마 아빠가 기다리는 땅으로’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길이 146m, 폭 23m의 거대한 세월호가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말린호 선미 끝에서 부두에 들어서는 순간 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은 또다시 오열하며 서로 껴안았다. 세월호를 들어 올린 모듈 트랜스포터(MT)의 마지막 바퀴가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완전히 통과하기까지는 약 4시간이 걸렸다. 세월호를 실은 MT가 잠시 멈춰 섰을 때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오후 5시 30분. 세월호는 화이트말린호를 완전히 빠져나와 육지에 올랐다. 딸 진윤희(단원고)양을 세월호 참사로 잃은 유가족 김순길씨는 “미수습자 찾는 일이 1순위”라며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팀이 꾸려졌는데, 정부가 방해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진실을 찾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미수습자 조은화(단원고)양의 어머니 이금희씨는 “(미수습자) 9명 모두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마지막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정부에 현장 작업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달라고도 했다. 그는 “국가는 마지막 한 명까지 책임져 달라”며 “대한민국에서 세월호 때문에 가슴 아픈 분들을 치유할 수 있게 9명 다 찾아달라. 저희를 집에 보내 달라”고 호소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유경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충돌설이나 과다적재설 등 의혹을 없애는 게 목적이 아니라 미수습자 9명을 찾는 게 우선”이라며 “조사 방향을 정해놓지 말고 정밀하게 침몰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참사의 근본 발생 배경은 정부가 구조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족인 정성욱 4·16가족협의회 인양분과장도 “우선 미수습자 9명을 찾고 그다음에는 조타실, 기관실, 화물칸, 블랙박스 등을 조사해, 침몰 원인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목포 신항 주변에는 많은 추모객이 모여 스마트폰으로 인양 과정을 지켜보며 가슴을 졸였다. 신항에서 만난 박설희(29)씨는 “세월호가 이제라도 인양돼 다행이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더이상 숨기지 말고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규명해 뒤늦게나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목포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세월호 전체 육지로 올라와…거치작업은 10일 재개

    세월호 전체 육지로 올라와…거치작업은 10일 재개

    세월호 선체가 9일 오후 전남 목포신항의 부두 위로 완전히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받침대에 올려놓는 최종 거치 작업은 안전상의 이유로 10일 오전 7시부터 재개된다. 해양수산부 세월호현장수습본부는 9일 오후 7시40분 모듈 트랜스포터를 통해 진행하던 세월호 육상 거치 작업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해수부는 당초 세월호의 육상이송이 완료되면 반잠수식 선박 위에 있는 받침대 3개를 부두 위로 옮겨 설치하고, 그 위에 세월호를 내려놓는 작업을 밤 늦게까지 완료할 계획이었지만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야간작업은 무리가 있다고 보고 안정성을 고려해 이날 오후 7시40분 작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육상 거치까지 6~7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할 경우 내일 오전 중 육상 거치 작업은 마무리 될 전망이다. 세월호 육상거치가 완료되면 선체 세척과 방역작업, 안정도 검사 후 미수습자 9명을 찾기 위한 선내 수색이 시작된다. 단원고 남현철·박영인·조은화·허다윤 학생, 단원고 고창석·양승진 교사, 일반 승객 권재근씨와 여섯 살짜리 아들 혁규, 이영숙씨. 해수부와 선체정리 용역을 맡은 코리아쌀베지는 미수습자가 있을 가능성이 큰 구역을 먼저 수색하고, 점차 나머지 객실과 화물칸 등으로 수색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포토] ‘세월호 육상 거치’ 입장 밝히는 미수습자 가족들

    [서울포토] ‘세월호 육상 거치’ 입장 밝히는 미수습자 가족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인 허다윤양 어머니 박은미씨(오른쪽)와 조은화양 어머니 이금희씨가 4일 오전 전남 목포신항 앞에 마련된 미수습자 가족 컨테이너 앞에서 세월호 육상 거치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또다시 주저앉은 엄마 “매일 선체 보며 기다리는 것도 고통”

    또다시 주저앉은 엄마 “매일 선체 보며 기다리는 것도 고통”

    새벽부터 위패 들고 마지막 항해 뒤따라… 해수부, 보안시설 이유로 항만 참관 제지 “세월호 선체가 들어오는데 역한 냄새가 진동하더라고요. 무슨 냄새인가 기억을 더듬어 보니 참사 2개월 후 선체에서 발견했다는 내 아들 영만이 캐리어에서 나던 뻘 냄새였습니다. 그걸 붙잡고 주저앉아 울었던 그때가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습니다.”세월호 희생자 이영만(단원고)군의 어머니 이미경씨는 31일 낮 12시 30분쯤, 반잠수선 ‘화이트말린호’에 실려 전남 목포신항 부두로 다가오는 세월호 선체를 바라보며 말 없이 눈물을 흘리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참사 후 1080일 만의 귀환이었다. 유가족들의 오열과 통곡은 오후 1시 30분쯤 반잠수선이 무사히 접안을 마친 이후에도 계속됐다. 울며 악을 쓰다 지친 일부는 실신해 응급조치를 받기도 했다. “녹이 많이 슬고 구멍도 이곳저곳 나 있어 너무 처참하지만, 상상하던 것보다 세월호 선체가 거대하고 위압적입니다. 이런 큰 배에 갇혔던 아이들이 얼마나 큰 고통에 시달렸는지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3년간 묻혀 있던 세월호 선체가 진도 동거차도 앞바다에서 벗어나 목포신항으로 향하던 이날, 출발 2시간 전인 오전 5시 10분 미수습자 조은화(단원고)양의 어머니 이금희씨, 허다윤(단원고)양의 어머니 박은미씨, 양승진(단원고 교사)씨의 부인 유백형씨, 희생자 제세호(단원고)군의 아버지의 제삼열씨는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를 뒤따르기 위해 진도 서망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한잠도 이루지 못한 듯 초췌한 얼굴로 미수습자 9명의 위패를 들고 어업지도선에 올랐다. 이금희씨는 “우리는 아직 2014년 4월 16일에 살고 있다”며 “아직 그 자리에 9명의 가족이 남아 있으니 찾으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배로 세월호를 뒤따르는 동안 다른 미수습자 가족들은 팽목항에서 짐을 정리해 육로를 통해 목포신항으로 이동했다. 허다윤양의 아버지 허흥환씨는 “장소만 옮길 뿐 기다림은 계속된다는 생각에 담담하면서도 엄혹하다는 느낌이 든다”며 “선체 가까운 곳으로 가 아이를 찾아야 하지만, 선체를 매일 직접 보면서 기다릴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저희를 가족처럼 보듬어 준 진도군과 주민들, 국민들께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남겼다. 아침 일찍 목포신항에 모인 유가족 60여명은 텐트를 치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앉았다. 해양수산부는 항만이 보안시설이라는 이유로 유가족들의 참관을 제지했다. 낮 12시 35분쯤 세월호 선체가 예정보다 일찍 목포신항에 모습을 드러내자 유가족들은 철제 펜스를 붙잡고 참관을 허용해 달라며 거세게 항의했고 그제야 유가족들은 부두에서 선체를 맞이할 수 있었다. 몇몇은 “도대체 왜 죽어야 한 거냐”며 진실을 알고 싶다고 외치며 오열했다. 시민들도 항만을 찾았다. 세월호가 부두로 진입하자 시민들은 낮은 탄식을 냈다. 20대 두 딸과 함께 검은 상복을 입고 나온 주부 이영화(51)씨는 “유가족과 조금이라도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발길을 했다”면서” “같은 또래 아이들의 엄마로 유가족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데 이번에는 미수습자 모두를 찾았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진도·목포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돌아온 세월호…미수습자 가족들 “이제 우리 딸 찾으러…집에 가자”

    돌아온 세월호…미수습자 가족들 “이제 우리 딸 찾으러…집에 가자”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도착한 31일 그동안 미수습자를 기다렸던 가족들은 “이제 집에 가자”고 연신 눈물을 닦았다. 미수습자 허다윤양 어머니 박은미씨는 “다 왔어요! 저기 좀 보세요, 다 왔다고!”라고 소리쳤고, 조은화 어머니 이금희씨는 “목포신항이 보여요. 저희 여기까지 오는 데 너무 힘들었어요”라며 박은미씨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가족들은 이날 오전 7시 세월호가 맹골수도 사고 해역을 떠나 6시간 30분만인 오후 1시 30분 목포신항에 접안을 완료하기까지 작은 어업지도선을 타고 그 뒤를 묵묵히 따랐다. 출발 당시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가족들은 세월호를 향해 “이젠 집에 가자, 집에 가자”라는 말을 읊조렸다. 양승진 교사의 부인 유백형씨는 연신 눈물을 훔치다 인사라도 하듯 배를 향해 손을 흔들기도 했다. 고(故) 제세호군의 아버지인 제삼열씨는 세월호가 이동하는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미처 배에 함께 타지 못한 가족들과 공유했다. 온화한 날씨에 목포신항 도착 시각이 예정보다 빨라질 것이라는 말이 나오자 미수습자 가족들의 얼굴이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박은미씨는 “날씨가 좋아졌네요. 우리 다윤이가 빨리 찾아달라고 해서 그래요. 이제 좋은 일만 있으려나 봐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조은화양 어머니 이금희씨는 “애들이 이제 우리 품으로 온다는데, 당연히 부모가 마중 나가야죠”라며 팽목항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목포신항으로 출발하라고 전화를 걸기도 했다. 웃음을 되찾았던 가족들은 막상 목포신항이 시야에 나타나자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듯 다시 눈물을 쏟았다. 이금희씨는 “이제는 우리 딸을 찾으러 갈 것”이라며 “수습할 때는 작업자들의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방역할 때도 배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도록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바다에서도 건져 올렸는데, 저기 배에서 (미수습자를) 못 찾겠느냐”며 “우리는 안 된다던 인양도 했다. 다 이겨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3년 기다린 가족들 “하루 더 걸려도 9명 다 찾으면 돼”

    “세월호 선체 이송이 하루 연기되는 거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선체만 무사히 목포신항에 거치돼 (미수습자) 9명을 모두 찾기만 하면 됩니다.” 30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만난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가족 권오복(63)씨는 기다림이 일상이 된 듯했다. 세월호 선체 이동이 하루 연기됐다는 소식에도 덤덤했다. 하지만 먼 산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동생 권재근씨와 조카 권혁규군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이 전해졌다. 진도 동거차도 앞바다에서 인양돼 반잠수선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는 이날 목포신항으로 이송될 예정이었지만 높은 파도로 하루 늦어지게 됐다. 팽목항에서 선체 이송을 기다리던 미수습자 가족 중 일부는 직접 배를 타고 나가 이송 준비 상황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시험인양이 시작된 지난 22일 이후 이날까지 가족들은 왕복 5시간이 걸리는 뱃길을 다섯 번째 오갔다. 미수습자 허다윤양(단원고)의 어머니 박은미(47)씨는 “팽목항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바다로 나갔다”면서 “선체에 가까이 가서 다윤이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고 왔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는 “국민들이 힘을 모아 줘 세월호가 올라왔다”며 “어떻게든 9명을 수습해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 준다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세월호가 이송을 시작하면 미수습자 가족들은 지난 3년간 머무르던 팽목항의 컨테이너를 목포신항으로 옮길 계획이다. 이날 팽목항에는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를 지켜보려던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광주에서 왔다는 김종철(63)씨는 “세월호가 오늘 마지막으로 팽목항에 머문다고 해서 찾았다. 비록 오늘 목포로 가지는 못했지만 3년을 기다렸는데 하루 정도는 더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온 김진선(35·여)씨는 “미수습자 가족분들이 잘 버텨서 사랑하는 이들을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며 “세월호 인양과 수습에 복잡한 정치적·경제적 문제가 얽혀 있겠지만 그럼에도 정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수습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진도군청은 지난 23일부터 29일까지 세월호 인양에 따른 기름 유출로 미역·톳을 키우는 양식장 등 1601㏊가 피해를 봤고 피해액은 55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진도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세월호 미수습자 허다윤양 부모 허흥환·박은미씨 “너무 오래 있게 해서 미안”

    세월호 미수습자 허다윤양 부모 허흥환·박은미씨 “너무 오래 있게 해서 미안”

    “어릴 때 물놀이 사고를 겪어 물을 가장 무서워하는데 그런 다윤이를 3년 동안 바닷속에 둘 수밖에 없어 하루하루가 비참하고 원통해요.”미수습된 안산 단원고 허다윤양의 어머니 박은미(47)씨는 말수가 적었다. 다른 미수습자 가족보다 더 답변이 짧았다. 오래 앉아있기도 버거울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은 박씨. 6개월에 한번씩 서울로 올라가 MRI 검진을 받아야 한다. 29일 정기 검진일이었지만 세월호 인양 현장을 보려고 미뤘다. 5년 전부터 뇌종양 일종으로 희귀병인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다윤이를 찾지 못한 채 3년을 넘기면서 상태가 더 악화되고 있다. 오른쪽 청력을 잃었다. 심한 스트레스로 뇌압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사고 초창기 때 쓰러져서 헬기로 급히 이송되기도 했다. 박씨는 30일 “기다릴 수밖에 없지만 그 기간이 짧았으면 좋겠다. 빨리 아홉 명을 찾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정말 기도 많이 해주시고 힘을 실어주시면 고맙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남편 허흥환(53)씨는 “신경을 누르는 병이서 신경활성화 약을 먹어야 되는데 몸 상태가 좋으면 괜찮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떨어지면 부작용이 심해 약도 끊었다”며 “다윤이를 기다리느라 지금은 몸 상태도 잊고 있고, 잘 버텨줘서 고마운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고 했다. 다윤이는 부모님께 용돈을 달라거나 물건을 사달라고 조른 적이 없었다. 희귀병을 앓는 엄마 걱정이 많았던 딸이다. 다윤이 꿈은 유치원 선생님이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보살피는 봉사활동에도 열심이었다.털털한 성격에 또래들과는 달리 꾸미는 데도 별 관심이 없어 아빠가 로션 등을 사주곤 했다. 이날도 아빠가 직장 다니면서 이용했던 검정 모자를 쓰고 갔다. 시장에 가서 하나 사주겠다고 해도 절대로 싫다고 우겨 할 수 없이 건넨 모자다. 처음엔 수학여행을 안 가겠다고 해 선생님에게 부탁해서 겨우 보냈던 여행이었다. 그런데, 가족사진을 사진관에서 찾는 날이 공교롭게도 참사가 발생했다. 다윤이는 이제 사진으로 남았다. “부모이니까 찾아야 한다는 신념뿐”이라는 박씨는 딸을 찾기 위해서 매일 ‘깡다구’로 버틴다. 박씨는 그저 작업 현장을 지켜만 본다는 것이 고통이다. 인양한 세월호 배수작업에서 혹시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사라지면 안 되는데 하는 불안감 때문에 요즘 밤잠을 이룬다. 얼마 전 ‘동물뼈 소동’이 있지 않았나. “딸은 내 생명을 걸고 찾을 겁니다. 살고 싶지 않은 날이 많았지만, 엄마로서 내 딸을 따뜻한 곳으로 보낼 생각뿐입니다.”아빠 허씨는 그저 감사했다. “아침마다 바다 바라보고 잔잔해지길 바라는 거 말고 다른 염원이 있겠습니까. 인양이 성공할 때 그렇게까지 평온한 바다가 일찍이 없었을 만큼 하늘이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선체 조사도 중요하지만, 내 딸·아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더 빨리 미수습자들을 찾을 수 있도록 국민들이 힘을 더 모아줬으면 좋겠습니다.” 허씨는 눈물을 흘린다. 다윤이 엄마·아빠는 두 평 골방에서 지내지만, 밥 먹고 물 마시고 잠자는 게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수면 위로 세월호가 올라온 지난 23일에는 너무 끔찍했다. 곳곳이 파이고 긁히고 그런데 그 춥고 어두운 곳에 딸이 있다고 상상하니 괴로웠다. 다윤이 엄마·아빠는 “미수습자 9명의 가족은 세월호 안에 우리의 가족들이 있을 거라는 확고한 신념을 안고 살고 있다. 우리는 유가족이 되고 싶은 마음뿐이다”고 했다. 박씨는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고 뽀뽀하는 게 제일 행복하다. 핸드폰에는 꼬맹이 다윤이부터 숙녀 다윤이까지 100여 개의 사진이 있다. 행복하게 활짝 웃는 모습들뿐이다. 다윤이를 살갑게 챙겼던 언니 서윤(23)씨가 그나마 버팀목이 된단다.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동생 찾을 때까지 신경쓰지 말고 엄마 힘내라는 응원 메시지를 보내준단다. 옆에서 위로도 못해주고 챙겨주지도 못하는데 혼자 잘 버텨주고 견뎌줘 고마울 따름이다고 했다. 아빠는 다윤이를 찾으면 제일 좋아했던 민트사탕을 많이 사줄 것이다고 했다.엄마 박씨는 안아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다고 계속 울먹였다. “미안해. 너무 오랫동안 놔둬서 미안해. 딸이지만 엄마 용서하고 곁으로 꼭 와줘. 다윤아 보고 싶다. 다윤아 내 딸 냄새라도 맡고 싶어.” 다윤이 엄마·아빠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정부의 말을 꼭 믿고 있습니다.”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세월호 인양] 미수습자 가족들 “유해 아니라니 천만다행이다”

    [세월호 인양] 미수습자 가족들 “유해 아니라니 천만다행이다”

    “유해가 아니라니 천만다행이다.” 세월호 인양 현장에서 28일 오후 4시쯤 미수습자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전남 진도 팽목항에 모여 있던 미수습자 가족 6명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오후 7시쯤 해경경비정을 타고 사고 해역으로 향했다. 조은화양의 부모, 허다윤양의 부모, 양승진 교사의 부인, 권재근씨 형이자 혁규군의 큰아버지 권오복씨 등이 승선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9시쯤 해양수산부가 수습된 유골이 돼지 뼈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은 현장에서 ‘문제의 유골’이 외관상 돼지뼈일 가능성이 있으며, 정확한 감식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족들은 무너진 하늘에서 솟아날 구멍을 찾은 듯 얼굴과 목소리는 한결 밝아졌다. 5시간 만의 해프닝으로 드러났지만, 국과수 관계자가 동물 뼈라고 확인하는 순간까지 미수습자 가족 6명은 후들거리는 마음과 다리를 가까스로 진정시켜야만 했다. 실종된 동생과 조카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권씨는 이날 미수습자 유골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선수 앞부분이면 내 식구들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기대를 보이기도 했지만, 막상 동물 뼈로 확인되자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정말 다행이 아니냐”고 본심을 털어놓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도 했다. 이에 앞서 미수습자 가족들은 ‘반잠수식 선박 갑판에서 유해 발견’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아 격렬하게 반응했다. 유해와 유류품 유실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요구했음에도 선체 밖에서 유해가 발견됐다고 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가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러 온 윤학배 해수부 차관에게 강력히 항의도 했다. 윤 차관은 “선수 좌측 밑 빔 사이에 6개의 조각 뼈와 신발 등 유류품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실종자 조은화양 어머니 이금희(49)씨는 “우리가 그토록 유실 방지 대책을 요구했는데 결국은 배 선체 밖에서 나왔다”며 “배수 과정에서 또 다른 일이 이미 발생했을지 어떻게 아느냐”고 울부짖었다. 이씨는 “법도 좋고, 선체조사위 구성도 좋지만 사람 찾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빨리 찾아 달라”고 방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조은화양의 아버지 조남성(55)씨는 “세월호 배 인양이 조심스럽게 천천히 올라와야 하는데 너무 빠르게 올라온 것이 걱정스러웠다”며 “말로만 아닌 확실한 대책을 갖고 와라”고 소리쳤다. 세월호 침몰 미수습자는 안산 단원고 학생 조은화양, 허다윤양, 남현철군, 박영인군, 고창석 교사, 양승진 교사와 일반인 권재근씨, 권혁규군, 이영숙씨 등 9명이다.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서울포토]세월호 램프에 끼여 있는 차량들

    [서울포토]세월호 램프에 끼여 있는 차량들

    28일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인근 해상에 정박 중인 반잠수식 선박에 올려진 세월호의 왼쪽 램프에 소형포크레인과 승용차가 걸린 채 매달려 있다. 해양수산부는 이날 “미수습자로 추정되는 유해를 선체 외관에서 발견했다”며 “확인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는 단원고 2학년1반 조은화, 2반 허다윤, 6반 남현철·박영인, 단원고 교사 고창석·양승진, 일반승객 권재근·권혁규 부자(父子), 이영숙 등 9명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뭍에 올라오면 최우선 순위는 그 안의 사람 찾는 일”

    “뭍에 올라오면 최우선 순위는 그 안의 사람 찾는 일”

    “9명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 사고 원인 분석 등 할 일 많아” 세월호가 1075일 만에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인양 작업의 어려운 고비들도 어느 정도 넘어섰지만 미수습자 가족과 유가족들은 여전히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다.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은 26일 아침 일찍부터 전남 진도군 팽목항으로 나와 저 멀리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말린호에 올려진 세월호 선체를 지켜봤다. 전날 인근 해역의 선상에서 인양 작업을 지켜보다 나흘(75시간) 만에 육지로 돌아온 터였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완전히 물 밖으로 나온 세월호 선체를 이날 처음 눈으로 확인했다. 미수습자 조은화양의 어머니 이금희(49)씨는 긁히고 녹슨 모습으로 진흙 범벅이 돼 뉘어 있는 세월호 선체를 보자 울음을 터뜨렸다. 이씨는 세월호 선미를 가리키며 “저곳이 은화가 마지막으로 있던 곳”이라고 오열했다. 미수습자 허다윤양의 어머니 박은미(49)씨는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오면 최우선 순위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이 돼야 한다”면서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는 9명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금만 더 도와 달라”고 말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이날 오전 세월호 선체를 확인한 뒤 오후 늦게 목포신항으로 이동했다. 세월호 선체 인양 작업을 24시간 지켜보고 있는 동거차도 초소의 유가족들은 당분간 계속 자리를 지키며 수색 작업을 지켜볼 계획이다. 세월호 선체는 배수 작업을 완료한 뒤 이르면 28일 목포신항으로 출발할 예정이지만 침몰 해역 내에서 유실물 수색 작업이 남아 있는 상태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과 유가족들은 선체가 목포신항에 무사히 도착해 미수습자 수색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면서 당국의 노력과 국민들의 관심을 조금 더 지속해 달라고 호소했다. 세월호 희생자 정동수군의 아버지 정성욱 세월호가족협의회 인양분과장은 “아직 인양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목포까지 선체를 이동시켜야 하고 그 이후에 미수습자 수색과 사고 원인 분석 등 해야 할 일이 많다”면서 “인양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조금 더 관심을 이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월호의 인양 소식이 알려진 이후 첫 주말인 지난 25~26일에는 최근 들어 가장 많은 추모객이 몰렸다. 팽목항 경비 담당 경찰관은 이날 “토요일인 전날과 오늘 이틀간 1만 명은 넘게 온 것 같다”고 말했다. 허다윤양 아버지 허흥환(54)씨는 “이번에 꼭 만나 따뜻한 곳으로 보내 줬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면서 “다윤이가 좋아하는 민트 사탕을 많이 사 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진도공동취재단
  • “저 안에 우리 아이가…” 미수습자 가족들, 상처 난 세월호 보고 오열

    “저 안에 우리 아이가…” 미수습자 가족들, 상처 난 세월호 보고 오열

    “저 안에 우리 아이들이 있어요. 9명의 미수습자들이 한 번에 발견돼야 할텐데···.” 단원고 학생 허다윤·남현철·박영인·조은화, 단원고 교사 양승진·고창석, 일반인 권혁규·권재근·이영숙. 304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약 3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9명의 이름이다. 정부가 지난 22일 오후 8시 50분부터 세월호 선체 본인양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 24일 오전 11시 10분 세월호의 ‘해수면 위 13m 인양’ 작업도 완료한 정부는 세월호를 반잠수식 선박에 거치시킨 뒤 배수 작업과 기름 제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수면 위로 완전히 떠오른 세월호의 외형에는 지난 3년 동안 바닷속에서 세월호가 견뎌낸 흔적들이 역력했다. 세월호의 선체 외형은 곳곳이 갈라져 있었다. 구멍도 뚫려 있었다. 세월호의 파란색 페인트는 색이 바랜지 오래였다. 2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참사 현장 인근에 반잠수식 선박에 올라온 세월호를 보기 위해 미수습자 가족 6명이 인양 현장을 찾았다. 애초 계획에 없는 방문이었다. 전날 밤 세월호를 반잠수선에 옮긴 잭킹바지선이 철수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난 세월호의 전체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다시 인양현장을 찾은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 간다”고 말한, 고 조은화양의 어머니 이금희씨는 긁히고, 갈라지고, 색이 바랜 세월호를 보며 주저앉을 듯 오열했다고 연합뉴스가 이날 전했다. 진흙과 녹으로 뒤덮인 세월호 선미의 일부가 침몰 당시 충격으로 찌그러진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저기가 은화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장소다”면서 참던 눈물을 쏟아냈다.고 허다윤양의 어머니 박은미씨도 “저 안에 우리 아이들이 있다. 9명 미수습자들이 한 번에 발견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세월호는 배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아직 안에 있는 한 사람의 생명입니다. 세월호가 수면 위로 부양됐다고 벌써 미수습자 수습이 뒷순위로 밀리는 것 같아요.” 남편과의 결혼기념일에 세월호 인양을 지켜본, 고 양승진 교사의 부인 유백형씨는 “여보 당신에 제 앞에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세월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지금은 울 때가 아니다. 앞으로 미수습자를 찾는 기나긴 싸움이 남았다”면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도 중요하지만, 배 안에 남아있는 사람을 놓치면 안 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도 “가족을 찾는다면 이 싸움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면서 “인양을 안 할까 봐 걱정하는 나날보다는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전하기도 했다. 가족들은 배수 작업과 잔존유 방제 작업이 한창인 세월호를 수백 미터 거리까지 배(지원선)를 타고 접근해 비교적 가까이에서 살펴봤다. 가족들은 세월호 안에 미수습자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생각에 더는 배를 보고 있기 힘들다며 타고 있던 지원선의 선수를 다시 팽목항 쪽으로 돌려 육지로 향했다. 이날 오전 세월호 유가족 중의 한 사람은 은화 어머니에게 “아이를 먼저 찾아 죄인이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은화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 마음으로 우리 가족을 찾는 데 힘을 모아달라”고 답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 선체 보기 위해 다시 바다로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 선체 보기 위해 다시 바다로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를 보기 위해 26일 다시 바다로 향했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 6명은 이날 오전 10시 10분쯤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마린에 선적된 세월호를 보기 위해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출발했다. 세월호는 전날 새벽 반잠수선에 안착했다. 저녁 늦게 해수면에 잠겨있던 9m까지 모두 떠오르며 선체 전부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2일 인양작업이 시작될 때 바다로 나가 나흘 동안 바다에서 작업을 지켜보다가 전날 다시 귀환했던 미수습자 가족들은 완전부상한 세월호 전체 모습은 보지 못했다. 가족들은 세월호 인양 작업과정을 지켜본 뒤, 이날 오후 팽목항으로 돌아와 목포 신항으로 갈 예정이다. 목표 신항의 상태와 미수습자 가족들의 거처가 생기게 될 곳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한편 이날 오전 아침 식사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향후 일정을 논의하며 걱정되는 부분을 공유했다. 미수습자인 단원고 허다윤양 어머니 박은미씨는 “오랜만에 그래도 잠을 잘 잤다면서 빨리 딸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조은화양 어머니 이금희씨도 “밥과 약을 다 챙겨 먹었고, 추모객들이 보내준 홍삼액도 챙겼다”면서 “하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을 찾는 것인데 선체 조사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제 그만 나오너라”… 기억함 304개 소리 없는 외침

    “이제 그만 나오너라”… 기억함 304개 소리 없는 외침

    명예 주민증·명찰 등 생전 소지품 담아 희생자 초상화·기억詩 등 벽면에 걸려 “기록 정리가 참사 재발 막는 힘이 될 것” “그러니 다윤아, 이제 그만 나오너라/ 네가 그토록 무서워했던 물속에서 어찌 이리 오래 있단 말이냐/ 다윤아, 다윤아/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풀리지 않는 문제처럼 답이 없는/ 저 거대한 침묵의 바다 앞에 가만히 무릎을 꿇는다.”세월호 인양 작업이 밤새 힘든 고비를 넘기고 다시 순항을 시작한 24일 늦은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한 연립주택 상가 3층 한쪽에 50여명이 모여 앉았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부터 머리가 희끗한 70대까지 그들의 사이사이를 처연하고 절절한 시가 휘돌았다. 박일환 시인은 자신이 쓴 단원고 2학년 2반 허다윤양의 기억시를 덤덤하게 읽어내려갔다. 이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는 손짓과 울음을 참아내는 훌쩍임만이 좁은 전시관을 가득 메웠다. 이날 참석한 시민들은 아이들을 기리는 시를 차례로 낭송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주축이 된 시민단체 4·16 기억저장소가 운영하는 이곳은 지난 1073일간 세월호를 둘러싼 각종 기억들을 정리하고 전시해 왔다. 세월호를 잊지 않으려는 이들의 몸부림은 이곳에서 수필, 그림, 시 등으로 승화했다. 교사들의 문학단체인 교육문예창작회는 지난해 9월부터 매주 금요일 이곳에서 희생 학생들을 위한 시낭송을 했다. 참사를 기억하는 것이 진실 규명의 출발이라는 취지에서다. 방문자들은 이곳에 들어서면 우선 단원고 미수습자 6명(양승진·고창석·조은화·허다윤·남현철·박영인)의 기억시를 만난다. 참사로 희생된 2학년 8~10반 45명 학생의 초상화와 기억시도 전시관 벽면에 걸려 있다. ‘해마다 4월이 되면 너는 벚꽃으로 피어 꽃비가 되어/ 엄마의 가슴에 내려앉겠구나’라는 시구에서는 사무친 그리움이 묻어나고 ‘나는 네가 신고 싶어 하던/ 축구화를 가져다 놓는다’는 시구에서는 아이들의 생전 모습을 잊지 않으려는 아픈 마음이 드러났다. 145㎡(약 44평) 규모의 전시관 천장에는 별이 된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억함 304개가 있다. 희생자의 이름을 적고 별 모양 스티커를 붙인 기억함에 명예 주민등록증, 학생증, 명찰, 볼펜, 머리끈 등 아이들의 생전 소지품을 담았다. 4반 동수 아버지에게는 수학여행 때 아이에게 쥐여 준 용돈 1만원이 유품으로 남았다. 김나영 4·16 기억저장소 큐레이터는 “희생자 부모들이 생전에 아이들이 사용하던 볼펜이나 시계 등을 기억함에 넣는다”고 설명했다. 전시관 입구에 설치된 방명록에는 ‘늦게 와서 미안해. 잊지 않고 기억할게’, ‘그때 저는 17살이었는데 벌써 20살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잊고 살았던 게 미안해서 찾아왔어요’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희생자 진윤희양의 어머니 김순길 기억저장소 운영위원은 “세월호가 바다 위로 올라오기까지 함께해 준 국민의 힘이 컸다”며 “세월호 참사의 기록을 모으고 전시하는 것이 진실을 밝히는 출발점이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힘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미수습자 수색이 먼저” vs “원인 규명 위해 절단 안 돼”

    “미수습자 수색이 먼저” vs “원인 규명 위해 절단 안 돼”

    객실만 떼내 수색 땐 시간 절반으로 단축 “수습 작업 효율적” vs “선체 훼손 안 돼” 해수부 “기술적으로 선체 절단 불가피” “미수습자 수색이 먼저다.” vs “사고 원인 규명이 필수다.”세월호 인양 뒤 객실을 조사하는 방법을 두고 희생자 가족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객실 부분만 떼어내 바로 세워 수색하는 게 미수습자 수습에 훨씬 효율적이라는 의견이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선체를 훼손하면 사고 원인 규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8월 ‘세월호 인양선체 정리 기술검토 태스크포스’를 꾸려 희생자 9명의 시신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인양하려면 객실 구역만 분리해 바로 세운 뒤 작업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수부는 눕혀진 세월호 내부는 아파트 9층 높이(22m)의 수직절벽에 해당하고 3년 동안 거센 바닷속에 있던 탓에 곳곳이 붕괴되거나 함몰 우려가 있어 수습 작업을 하기에 매우 열악하다고 봤다. 하지만 ‘416 가족협의회’ 등 세월호 유가족들은 선체 훼손으로 인해 사고 원인 규명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416 가족협의회 인양태스크포스 관계자는 24일 “유가족은 선체 객실 분리에 반대한다”면서 “미수습자 가족들의 의견은 그쪽에 물어봐라”고 말했다. 반면 단원고 조은화·허다윤 학생 등 미수습자 가족들은 “방법은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든 빨리 애들을 찾아 달라”며 필요하다면 객실 분리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배가 누운 상태로 세월호 선체를 훼손하지 않는 이른바 ‘수직진입 방식’으로 수색을 진행할 경우 미수습자를 찾는 데 4개월가량이 걸리는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정부 의견대로 객실을 절단해 세워 진행하면 희생자 수습까지 2개월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해수부 관계자는 “416 가족협의회 요구대로 진행한다면 뒤엉킨 화물을 치우며 수직절벽 상태로 와이어에 매달려 수습해야 해 객실을 떼어내 세웠을 때보다 2~3배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과정에서 시신의 부패 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 윤학배 해수부 차관은 “가장 중요한 건 미수습자 수습으로 수색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선체를 절단해야 한다”면서 “기술적으로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해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세월호 수면 위로] “4시 16분에 멈춘 시계… 친구·선생님 다 돌아오면 움직일 것”

    [세월호 수면 위로] “4시 16분에 멈춘 시계… 친구·선생님 다 돌아오면 움직일 것”

    1073일째 주인 기다리는 미수습자 6명 책걸상 그대로남현철·박영인·조은화·허다윤 학생, 그리고 바로 옆에 나란히 놓인 고창석·양승진 교사의 손때 묻은 책상은 벌써 1073일째 주인이 돌아오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다. 23일 경기 안산 단원고 교장실 한쪽에 나란히 3년째 주인을 기다리는 미수습자들의 흔적이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사용하던 교실 10칸, 교무실 1칸의 ‘기억교실’은 지난해 8월 안산교육지원청으로 임시 이전했다. 그러나 사망이 공식 확인되지 않은 단원고 미수습자 6명(학생 4명, 교사 2명)의 책걸상과 물품은 학교에 그대로 남아 있다. 주인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옮길 수 없다는 가족들의 애타는 바람 때문이다. 책상 위에는 평소 남현철군 등이 좋아하던 초콜릿과 과자, 음료가 형형색색 예쁜 꽃들과 함께 가득 놓여 있었다. 책상 위가 부족해 의자에까지 놓여 있었다. 100년, 1000년보다 더 긴 하루하루가 더해져 흘러가는 동안 눈물로 쓰인 편지들도 켜켜이 쌓여 있었다. 조각조각 붙어 있는 메모에는 눈물로 밤을 지새웠던 가족과 친구들의 애타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허다윤양의 언니는 “얼마나 차가웠을까, 얼마나 추웠을까. 상상도 안 될 만큼 아팠지?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고통스러웠지…미안해 어린 너한테 아픈 상처를 줘서”라는 안타까운 글을 남겼다. 이어 “사랑한단 말, 가는 날까지 단 한 번도 해주지 못해 죄책감이 들어...왜 못했을까. 후회된다. 마음껏 표현해 주고, 마음껏 안아주고, 다 퍼줘도 모자란데…”라는 애끓는 심경을 나타냈다. 누군가는 조은화양에게 “무심코 바라본 시계가 4시 16분 그날에 멈춰 있네요. 은화양과 친구들, 선생님들까지 모두 돌아올 때 저 시계도 움직일 것만 같아요.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꼭 돌아와요. 그때 눈물을 흘리겠습니다”라고 썼다. 지난 3년간 ‘찾을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버텨온 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월호 인양을 통해 이번만큼은 꼭 아이들을 품에 안으리라 다짐하고 있다. 허다윤양의 어머니 박은미씨는 ”다윤이의 옷, 신발이 모두 올라왔는데, 다윤이만 나오지 않았다”며 “세월호를 인양해 우리 딸을 꼭 찾아 달라”며 눈물을 쏟았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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