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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탐방] 전·현직 대통령 생가 르포

    [주말탐방] 전·현직 대통령 생가 르포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 정국이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당들은 당내 예선을 치르느라 바쁘다. 대선 정국인 지금, 대통령들이 꿈을 키웠던 생가(生家)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를 하고 있을까.‘명당(明堂)’으로 불리지만 업적과 인기에 따라 발길 빈도가 엇갈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는 큰 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경선에 나서면서 발길이 크게 잦아졌다고 전해진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는 한창 복원 중이다. 대통령 생가라면 단연 박 전 대통령 집이다. 한국 경제를 발전시킨 최고의 대통령으로, 민주화를 억압한 장본인으로 관심의 중심에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는 경북 구미시 상모동에 있다. 박 대통령 생가를 6년째 청소하고 있다는 김영순(56·구미시 사곡동)씨는 “생가를 찾는 연세 드신 많은 분이 박 전 대통령 영정 앞에서 곡을 한다.”고 소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눈물 쏟는 관람객들 이곳에는 연간 45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다. 생가보존회 김재학(82·전 초등학교장)옹은 “관람객들이 초라한 생가를 보고 ‘이건 아니다.’ ‘너무 했다. 심하다.’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구미시 박 대통령기념사업단 박경하 계장은 “홍보를 안하는데도 찾는 사람이 는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악연(?)이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에도 발길이 잦은 편이다. 전남 신안군 하의도 생가에는 외지인들이 연간 1500∼2000명 가량 찾고 있다. 이승현 하의면사무소 직원은 “여름방학 때는 하루 30∼40명, 방학이 끝나면 10명 안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목포항에서 하의도까지 2시간20분이 걸리는 데다가 배편도 하루 2∼3번밖에 안돼 방문객이 갈수록 줄고 있다. 김 전 대통령과 ‘민주화를 향한 배’에 동승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는 조금 낫다. 요즘 하루 30∼40명이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의 생가를 찾고 있다. 방학 때면 학부모가 자녀들을 동반한다. 지난해 7만 3000명이 다녀갔고 올해 6만 4000여명이 찾았다. ●을씨년스러운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 반면 ‘80년 민주화의 봄’을 짓밟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는 발길이 뜸하고 썰렁하기까지 하다.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도로변 전 전 대통령 생가는 대문을 열어 놓아 오가는 행인들이 간간이 들른다. 대구 동구 신용동에 있는 노 전 대통령 생가는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훼손이 많이 됐다. 전형적인 시골 촌집으로 2∼3년 전만 해도 주민들에 의해 청소 등 관리가 이뤄졌으나 이후에 방치되고 있다. 한 주민은 “관광객이 가끔 찾기는 하나 전직 대통령의 생가 관리에 정부도, 자치단체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전 전 대통령 생가는 84년 경남도가 2800만원에 사들여 합천군으로 소유권을 넘겼다. 군은 매년 11월 이엉을 엮어 초가 지붕을 보수하고 있다. 강원 원주에 있는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생가는 현재 없다. 터만 있었지만 2000년 원주시립박물관이 들어서 흔적조차 사라졌다. 박물관에도 유품이나 생가에 대한 자료가 없어 박물관이 최 전 대통령의 생가 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드물다. 원주에서조차 최 전 대통령은 잊혀져 가고 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는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에 있다. 주민 임승희(54)씨는 “한달에 100명 정도는 구경을 온다.”고 말했다. 특히 풍수가 뛰어난 명당이란 소문이 퍼져 지관 등이 많이 온다고 덧붙였다. 생가는 마을 노인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 年 2000여명 발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구미시는 생가 주변 7만 7600여㎡를 성역화하고 있다.2020년까지 200억원을 들여 추모관과 생가 원형복원, 연대별(1920∼70년) 시대촌, 내자(內子)의 공원 등을 조성한다. 현재 생가에서는 서거일(10월 26일)과 출생일(11월 14일)에 매년 2차례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거제시는 김 전 대통령 생가 옆에 기록전시관을 건립한다.19억원을 들여 738㎡에 2층 규모로 만들어 김 전 대통령의 일대기와 소장품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마당 왼쪽에 청동 흉상이 설치돼 있다. 이 흉상은 김 전 대통령이 2000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허난성 ‘한원비림(翰園碑林)’을 참관한 뒤 휘호를 써준 데 따른 감사의 뜻으로 한원비림이 기증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는 신안군에서 관리인을 두고 제초비와 비품비 등으로 연간 120만∼150만원을 대주고 있다. 추수 후에는 초가지붕 보수비 등으로 700만원을 더 지원한다. 이장 이형열(60)씨는 “대통령 생가가 너무 초라하다는 여론이 있어 생가와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려고 최근에 땅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김 전 대통령이 대선과정에 자주 개입하면서 대선 후보로 오르내리는 정치인들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은 생가보다 묘가 위치한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마을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주민들은 지난달 22일 자발적으로 1000여만원을 모아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윤 전 대통령 탄신 110주년 추모행사를 갖고 ‘대통령 마을’로 선포했다. 마을 이장 이성복씨는 “생전에 1주일에 한번씩 내려와 마을에 나무와 꽃을 심고 주민들과 음식을 나눠 먹는 등 음덕을 많이 베풀었다.”고 말했다. 전국종합·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그들의 생가 형태와 규모 대통령 생가 중 가장 큰 집은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다.‘아흔아홉칸’이라고 하나 안채,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등 4동뿐이다. 기와집에 총건평 352㎡에 이른다. 윤 전 대통령의 부친이 1920년대에 지었다고 전해진다.1984년 중요민속자료 196호로 지정됐다. 전형적인 중부지역 가옥형태로 윤 전 대통령 장남이 소유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는 58㎡의 초가집과 안채(114㎡), 분향소(119㎡)로 돼 있다. 풍수지리학자들은 금오산의 정기가 이어지는 현월봉 아래 자리한 명당 중의 명당으로 ‘대통령이 날 만한 자리’라고 입을 모은다.1993년 2월 경북도기념물 86호로 지정됐다. 이 집은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나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20여년 동안 살았다. 대구사범시절 쓰던 책상과 책꽂이, 호롱불 등이 전시돼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는 본채와 사랑채 2동으로 구성돼 있다. 목조 기와집이지만 본채는 76㎡, 사랑채는 26㎡로 보잘것 없는 규모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초년생때부터 대통령 당선때까지의 기록물이 전시돼 있다.1950년 공비가 침입, 모친을 살해했던 총탄 흔적이 남아 있다. 거제시에서 2명을 배치해 관리하고 있다. 연간 관리비 2000여만원을 지원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가, 관리동, 헛간, 소금전시관, 화염(불에 구운 소금) 제조공장 등 5채로 초가집이다. 김 전 대통령은 4학년 1학기까지 이 집에서 살다가 목포로 전학을 갔다.1999년 김해 김씨 종친회에서 8000여만원을 모아 생가를 복원했다. 대통령 시절 모습을 담은 대형 사진 12개, 붓글씨 액자 2개, 책상과 20여권의 책, 벽시계가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는 안채, 행랑채, 대문 등 초가 건물 3채이다. 총건평은 251.5㎡이다. 당초 5채였으나 2채는 1988년 11월 방화로 소실됐다. 군과 면사무소 직원이 수시로 들러 제초작업 등 보수를 하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는 생가, 우사, 창고로 꾸며져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태어나 경북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국풍’이라고 하는 풍수학자들은 연기산·윗도덕산 등 생가 앞에 큰 산이 많아 인물이 났다고 얘기한다. 전국종합·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한 뒤 머물 사저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지어지고 있다. 생가 뒤편이다. 시공 업체가 공사현장에 펜스를 치고 작업하고 있어 외부에서는 공사현황을 알 수 없다. 김해시 관계자는 “작업현장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아 정확한 진척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준공 예정일을 감안하면 공정률이 90%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이 사저는 다음달 말 준공될 예정이다.3991㎡의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총건평이 933㎡에 이른다. 지난 1월15일 기공식이 열렸다. 노 대통령의 생가는 사저 앞쪽 463㎡의 터에 목조 슬레이트 건물로 지어져 있다. 본채와 20㎡ 남짓한 헛간이 있다. 마당은 40㎡쯤 된다. 이 집에는 하모(65)씨 부부가 살고 있으나 지난 2월 강모(61)씨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하씨는 연말까지 집을 비워 주기로 했다. 강씨는 노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기로 경남 창원에서 자동차부품회사를 경영하는 기업인이다. 강씨가 생가를 매입한 동기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친형인 건평씨가 생가를 매입하려고 했으나 가격이 맞지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저가 생가 바로 뒤에 건립되고 있어 조만간 생가를 복원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퇴임 후 강씨로부터 이 땅을 매입하거나 증여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봉하마을에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 관광객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요즘도 휴일이면 200여명씩 찾고 있다. 훗날 노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업적을 어떻게 평가받고 인기를 얻어 어떤 대통령 생가를 닮아갈지 궁금하다. 김해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사내가 36년간 유리조각을 씹어먹는 속사정

    사내가 36년간 유리조각을 씹어먹는 속사정

    지난달 22일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핑딩산(平定山)시 시내 중심가.머리가 히끗히끗한 50대 중반의 한 사내가 길이 10㎝,폭 2㎝,두께 0.3㎝ 가량의 유리 조각을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었다.2분도 채 안돼 그 유리조각은 모두 그의 입 속으로 사라져버렸다.이를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은 너무나 놀랍고 충격적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 한동안 우두망찰하고만 있었다. 중국 대륙에 아주 기쁘거나 외로울 때,아니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유리조각이나 벽돌조각,돌멩이 등을 우적우적 씹어먹는 ‘유리 기인(奇人)’이 등장,화제를 모으고 있다. 중국 대하보(大河報)에 따르면 그 화제의 주인공은 허난성 핑딩산시에 살고 있는 둥시안(董西安·55)씨.핑딩산 석탄공사 채탄부로 일하다 최근에야 명예퇴직했다.고아 출신인 그는 어릴 때부터 무술을 연마해 체구는 그리 크지 않지만 아주 단단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부인 한아이지(韓愛枝)씨는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남편이 유리조각이나 벽돌,돌멩이 등을 씹어먹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랍고 무서웠다.”면서 “남편이 유리조각을 씹어먹을 때는 기쁠 때나 외로울 때,스트레스를 받을 때”라고 말했다.하지만 둥씨는 유리조각이나 벽돌조각 등을 씹어먹는 것 때문에 지금까지 불편이나 이상을 느끼거나 병을 앓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둥씨가 유리조각 등을 처음 씹어먹기 시작한 것은 1971년쯤이다.당시 탄광 채탄부로 일하던 그가 하루는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아무런 생각없이 안주삼아 창틀의 깨어진 유리조각을 씹어먹은 것이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벽(奇癖)이 돼온 것이다. “TV 등에 나와 유리조각 등을 씹어먹는 사람들의 경우 상당히 오랜기간 수련을 거친 것으로 들었는데 내 경우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 버렸습니다.” 자신이 유리조각 등을 씹어먹는 것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린 둥씨는 “처음으로 유리조각을 씹어먹은 뒤 다음날이 돼도 배속에서 아무 이상도 없어 그 다음부터 계속적으로 유리조각 등을 씹어먹는 습관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둥씨는 요즘 들어서도 이틀에 한번씩 유리조각 등을 씹어먹는다.특히 술을 먹을 때 안주 삼아 유리조각 등을 씹어먹는 것을 좋아한다.이때 보통 50∼100g의 유리조각을 먹는다고 한다.가끔 별식 삼아 조그마한 돌멩이나 벽돌 조각 등도 씹어 먹는다고. “저는 위가 보통 사람보다 좀 큰 편입니다.” 혹시나 몸에 이상이 있을까 해서 진찰을 받아본 결과 둥씨의 위는 보통 사람보다 60% 정도 더 크고 치아는 더 단단했고 내장기관도 모두 일반인들보다 튼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유리조각 등을 먹기 시작한 이후 몸과 마음은 더욱 편하고 강해졌다.”며 “젊었을 때는 100㎏의 시멘트 부대 등도 가볍게 들어올랐다.”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와 관련해 해방군 제152의원으 한 전문가는 “유리조각·시멘트조각·종이조각·돌멩이 등을 씹어먹는 둥씨가 일종의 ‘이식벽(異食癖)’에 걸린 것같다.”며 “아직까지 이 ‘이식벽’의 유발 원인에 대해 학계의 공인된 학설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심리적 요소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특히 “둥씨가 유리조각 등을 씹어먹는 것은 구강기관과 내장기관 손상 등의 위험한 행위”라며 “특히 사람에 따라 몸이 다 다른 만큼 일반인들은 절대로 따라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내 개 죽게했다” 애견센터에 4100만원 소송

    최근 중국에서 한 남자가 자신의 개를 숨지게 했다며 고액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한 사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허난성 정저우시 일간지 정저우완바오(郑州晚报)는 23일 “한 애견센터가 중국 황실개로 유명한 ‘차우차우’를 목욕시키다 숨지게 한 댓가로 33만 8천위안(한화 약 41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 당했다.” 고 보도했다. 사고사를 당한 차우차우는 올해 1살인 ‘라오후(老虎)’. 주인 노씨는 작년 겨울 33만 8천위안(한화 약 4100만원)을 주고 생후 6개월 된 라오후를 데려왔다. 최근 노씨는 라오후를 목욕시키기 위해 근처 애견센터에 맡겼고 2시간 후에 데리러 간 노씨는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노씨는 “라오후가 머리가 늘어진 채 철장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며 “황급히 의사를 불러 응급처치를 했지만 숨을 거두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노씨가 동물병원에 부검을 의뢰한 결과 사인은 ‘열사병’인 것으로 드러났다. 애견센터는 노씨에게 동종의 개로 배상할 것을 제안했으나 노씨는 “마음의 상처가 너무 크다. 다시는 개를 기르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하며 24일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관련기사] ‘사자개’ 차우차우는 어떤개?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남자친구 찾아 천리 길 떠나는 70대 할머니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천리길은 그다지 멀지는 않죠.” 중국 대륙에 한 70대 할머니가 60대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천리길을 떠나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는 바람에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동방금보(東方今報)에 따르면 ‘화제의 인물’은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 중산(中山)시에 살고 있는 정차이진(鄭彩珍·70) 할머니이다.그녀는 어릴 때 배운 ‘곰의 웅담을 절묘하게 빼내는 기술’이 워낙 출중해 돈벌이가 좋아 셈평도 펴이고 남편과의 금실도 꽤나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잘 나가던 정씨 부부에게 불행의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지난 1988년 정씨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통에 얼굴을 많이 다쳐 망가지고 왼쪽 팔마저 잃은 장애인이 됐다.이 사품에 돈이 많은 남편은 자연스레 바깥 쪽으로 눈을 돌려 외박이 잦아지는 등 정씨의 품을 떠나버렸다. 이에 정씨도 남편과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으나 결혼한지 20년이 지난 만큼 남편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없었다.하루하루가 재미도 없고 심드렁해져 만사가 귀찮아졌다. 그러던 중 2004년 8월 어느날.정씨의 눈앞에 ‘왕루이우(王瑞武)’라는 헌헌장부가 나타났다.왕씨의 키꼴이 껑충하고 부드럽고 세련된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한 그녀는 다시 생활의 활력이 샘 솟았다.당시 왕씨는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살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정씨는 은근히 그에게 접근했다.그녀는 “그는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특히 나의 추해진 내 얼굴 모습도 결코 싫어하지 않아 나를 감동시켰다.”고 털어놨다. 이들이 사귄지 얼마되지 않아 왕씨는 광둥성 중산시를 떠나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시로 홀연히 떠나는 바람에 두 사람의 연락은 끊어져버렸다. 해서 정씨 할머니는 남자친구를 찾기 위해 허난성 정저우로 출발했다.그것도 교통편을 이용하지 않고 두 발로 걸어서….하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은 왕씨의 옛날 전화번호.그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면 ‘없는 번호이니 확인하고 다시 걸어라.’는 메시지만 되돌아왔다. 정씨 할머니는 “남자친구를 만나든 못만나든 무조건 정저우로 가겠다.”며 “정저우로 찾아가면 분명히 만날 것을 확신한다”며 기대감이 넘쳤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서울광장] 상하이, 왠지 어설픈 미래의 중국/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상하이, 왠지 어설픈 미래의 중국/함혜리 논설위원

    “중국의 과거를 알려면 시안으로, 현재를 보려면 베이징으로, 그리고 미래를 보려면 상하이로 가라.”라고 한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국제화 물결을 탔던 상하이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 최대의 경제도시로 재부상했다. 중국의 경제 발전을 대변하는 국제도시, 세계 초일류 다국적 기업들의 자본과 기술을 무섭게 빨아들이는 ‘블랙홀’ 등 상하이를 수식하는 문구들은 너무나 화려하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천지개벽’이라고 표현했다. 제2의 천지개벽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상하이의 실체가 궁금하던 차에 지난 주말 상하이에 여행을 다녀왔다.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듣던 대로 상하이는 엄청났다. 초고층 빌딩과 맨션아파트, 거대한 쇼핑센터, 특급 호텔들이 도시에 그득했다. 푸둥 지역의 화려한 야경은 마치 미래의 도시를 보는 것 같았다. 중국 최대의 소비시장답게 패스트푸드점, 유명 럭셔리브랜드숍 등 없는 게 없었다. 카페와 레스토랑이 그득한 신톈지는 유럽 도시에 와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은 이 도시가 얼마나 관심을 끌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호텔에서 만난 한 프랑스 여성은 “외국이라는 느낌이 안들 때가 많다.”고 했다. 상하이는 활기에 넘쳤다. 그런데 무언가 어설픔이 느껴졌다. 왜일까? 무엇 때문일까? 짧은 여행으로 깊이 있는 분석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나름대로 ‘부조화와 불균형’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경제적 급성장의 부작용일 것이다. 불균형과 부조화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도시의 인프라는 첨단을 달리는데 사람들은 미처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무심하고, 불친절했다. 외국인들의 파트너가 되어 데이트하는 중국 여성들이 자주 눈에 띄고, 식당이나 상점의 점원들은 서양식 이름을 자랑스럽게 명패에 새겨 달고 있었지만 영어로 의사 소통이 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자본주의는 받아들였지만 인적자원의 국제적 경쟁력은 별개였다. 뒷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풍경이 금세 바뀐다. 낡은 아파트 베란다로 기다란 대나무에 옷가지들이 지친 듯 걸려 있다. 건물 입구에는 자전거들이 줄지어 있다. 계단 구석에 거울을 걸고 그 앞에 의자 하나를 놓고 소년의 머리를 깎고 있는 이발사 할아버지, 부채로 파리를 쫓고 있는 만물상 주인 등 뒷골목 풍경은 15년전 중국에서 보았던 그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푸둥의 야경을 찍으려고 밤에 황푸강변으로 갔다. 택시에서 내리는데 할머니 거지가 구걸을 한다. 잔돈을 건넸더니 어느새 거지들이 떼로 몰려와 매달린다. 뿌리치고 오면서 카메라를 꺼내려는데 낯선 손이 가방안으로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귀국길에도 황당한 경험을 했다. 공항의 검색대 앞에 있던 요원이 물병을 가리키면서 한국말로 “안돼!”하는 것이다. 눈깜짝하지 않고 반말을 하는데 무척 불쾌했다. 끝에 ‘요’자 하나 더 붙이면 될 것을…. 비행기 안에서 한국신문을 펼치니 산시성과 허난성 벽돌공장의 현대판 노예사건으로 중국이 발칵 뒤집혔다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 중국 경제를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달리는 자동차’로 비유한다. 공평한 복지분배를 내세우는 사회주의 경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를 지향한다는 것이다.13억 중국인들이 골고루 잘사는 나라가 되려면 아직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줄서주는 서비스’ 사업으로 ‘대박’ 중국 여사장

    중국에는 대신 ‘줄서기’ 해주는 사업도 있다? 중국 신화서(新華社)계열의 일간지 셴다이과이바오(現代快報)는 22일 ‘줄서기 사업’으로 성공신화를 이룬 한 여성을 소개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허난성(河南)성 출신인 장위펑(姜玉鳳)씨. 고등학교 졸업후 그녀는 광저우(廣州)시에서 월급 900위안(한화 12만원가량)을 받는 백화점 청소원으로 취직해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았다. 그러나 2005년 12월 한 사건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에서는 은행을 이용하기 위해 2, 3시간정도 기다리는 것은 흔한 일이다. 12월 어느날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간 장위펑은 189번의 대기표를 받았고 2시간이 지나서야 자기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다른 고객이 “급하다. 30위안(한화 3900원)을 줄테니 번호를 바꿔달라.”는 부탁했다. 하루 힘들게 일해 30위안을 받는데 쉽게 30위안을 벌수 있으니 그녀는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다음날 한 할인마트 ‘반짝세일’에 줄을 선 그녀. 어제의 기억을 되살려 그녀는 큰 소리로 “누가 저와 15위안(한화 1950원)에 자리를 바꾸시겠어요?”라고 외쳤다. 당시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비웃었다. 그러나 줄 뒤쪽에서 한 사내가 자리를 사겠다고 나섰다. 이 두 차례의 사건은 그녀에게 ‘시간은 돈이다’ 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했고 ‘대신 줄서기’를 사업으로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녀는 매일 신문에서 정보를 얻어 여러 할인마트 이벤트시 대신 줄서기를 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1시간 이내는 5위안, 1시간 초과는 10위안(한화 1300원)의 비용으로 그녀가 한주동안 줄서기 서비스를 통해 번 돈은 600위안(한화 7만8천여원)이르렀다. 급기야 작년 9월 그녀는 광저우시에 정식으로 ‘줄서기 서비스 센터’ 사업자등록을 마쳐 중국에서 첫번째로 합법적인 ‘직업 줄서기 사업자’가 되었다. 이후 그녀는 성실과 신용을 바탕으로 사업을 계속 확장해 현재는 2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매달 평균 1만위안(한화 130여만원)의 이윤을 남기는 어엿한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장위펑씨는 “앞으로 은행이나 할인마트 뿐만 아니라 연예인 콘서트, 스포츠경기장 등으로 점차 사업을 확장해 가겠다.”며 활짝 웃었다. 나우뉴스 신청미 기자 qingme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여아 110명 팔아먹은 엽기 중국여성 검거

    여자 아기 110명을 사들여 중국 전역에 팔아먹은 여성이 도피생활 끝에 경찰에 붙잡혔다. 중국 신문들은 20일 허난(河南)성 경찰이 4년여동안의 끈질긴 추적 끝에 주범 지슈란(姬秀蘭)을 검거했다고 보도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씨는 남편 및 아들 부부와 함께 광시(廣西)좡(壯)족자치구에서 여자 유아를 사들여 전국 각지에 팔아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광시좡족자치구 공안국은 빈곤한 가정이 많고 남아 선호사상이 뿌리 깊어 여아들이 태어나면 중개상에 팔아넘긴다고 말했다. 지씨 등은 2003년 3월30일 새벽 4시께 택시로 13명의 유아들을 허난성으로 데리고 오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에 고장이 났다. 지씨 아들 부부는 뒷자리에 타고 있던 유아 4명을 인근 숲속에 숨기고 자동차를 수리하고 왔다 주민들의 신고로 붙잡혔다. 그러나 주범 역할을 해온 지씨는 도주길에 올라 지난 15일 자신의 집 근처 밀밭에 숨어있다 붙잡혔다. 연합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수술이 무서워…” 안경다리를 1년간 몸속에 둔 청년

    “수술하기가 무서워 1년을 고통 속에서...” 14cm나 되는 금속 안경 다리를 삼켰으나 수술이 무서워 1년 동안이나 몸속에 둔 환자가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고 중국 허난성(河南省) 뉴스 사이트인 허난왕(河南網)이 보도했다. 웃지못할 사연의 주인공은 정저우(鄭州) 출생의 판(范)모(30)씨. 1년 전 그는 실수로 금속 안경다리 하나를 잘못 삼켜 참을 수 없는 복통에 시달렸다. 병원에서 X-레이 검사를 해 본 결과 안경다리가 십이지장까지 들어가 있었던 것. 당시 담당의사는 복부 절개를 해 안경다리를 꺼내자고 하였으나 수술이 무서워 판씨는 거절했다. 그 때부터 판씨의 말 못할 고통은 시작되었다. 먹기만 하면 복통에 울렁거림, 구토, 심지어 출혈까지 일어난 판씨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으나 결코 수술은 하지 않았다. 1년을 시달린 그는 결국 의사의 권유로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을 집도한 담당의사는 “내시경으로 검사해 본 결과 안경 다리의 구부러진 부분이 창자 벽에 꽂혀 있었다.”며 “복막염등 더 큰 질병이 될 뻔 했다.”고 밝혔다. 나우뉴스 신청미 기자 qingme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기고] ‘묻지마 中투자’ 이제 그만/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

    한국과 중국의 경제협력은 지난 1992년 수교 이래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2005년에 이미 양국간 교역규모는 1000억달러를 넘어섰고, 중국은 한국의 최대교역국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빠른 속도로 교역규모가 확대되었던 것은 지난 10여년간 활발하게 진행된 우리기업의 중국 진출에 힘입은 바 크다. 한국의 대중(對中) 투자는 지난해 말까지 1만 6000여건에 금액으로는 170억달러나 된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해외직접투자 중 건수로는 48%, 금액으로는 25%에 해당한다. 중국의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과 외자기업에 대한 우대정책에 힘입어 전세계의 많은 기업들이 생산기지로 중국을 찾았다. 우리나라의 많은 중소기업들도 새로운 활력을 찾아 인접한 중국 동부 연해지역에 진출하였다. 대기업들도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구축과 중국 내수시장 확보를 위해 중국에 대한 투자를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아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은 최근 여러 면에서 환경변화를 겪고 있다. 기업소득세법 개정 등으로 중국정부의 외자기업에 대한 세제상 우대조치는 축소됐다. 반면 중국의 인건비와 지가(地價)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아울러 환경이나 노무관리 기준이 점차 엄격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 3위의 교역국으로 부상한 중국경제의 자연스러운 질적 전환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에 진출한 중소기업들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어제(26일) 우리 기업들의 애로를 중국 정부에 전달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중국 허난성 정저우에서 산업자원부 장관과 중국의 상무부 장관이 ‘제5차 한·중 투자협력위원회’를 공동 주재했다. 이날 회의에서 우리 정부는 “중국의 경제정책기조가 양적 성장에서 질적 고도화로 전환하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법·제도 개정 시 충분한 홍보와 유예기간, 명확한 집행지침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 투자기업들이 토지사용권 때문에 겪는 애로와 지적재산권 피해사례를 열거하고, 중국정부에 해결책 마련을 요청하였다. 이번 투자협력위원회를 준비하면서, 중국이 2001년 WTO 가입 이후 경제전반의 선진화 노력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음을 곳곳에서 확인했다. 중국은 과거 ‘관시(關係)’가 지배하던 계획경제에서 벗어나 시스템과 제도가 지배하는 시장경제체제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중국투자의 매력도, 저렴한 인건비에서 거대한 구매력 기반으로 옮겨가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도 이런 변화에 적응해 나가고 있으나 범국가적 차원에서 보다 전략적 노력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거시경제에 대한 체계적 분석과 구체적 사업환경에 대한 정보가 풍부해져야 하고, 이 정보들이 개별기업에 원활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앞서 토지사용권 관련 애로를 언급했지만, 풍부한 관련 정보가 있었다면 우리 기업들이 보다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은 이제 더 이상 ‘묻지마식 투자’가 통하는 곳이 아니다. 우리 기업도 중국의 변화된 경영환경을 숙지하고 철저히 대응해 가야 한다. 정부는 중국 진출 기업의 애로를 타개하기 위해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다. 기업과 정부의 시의적절한 노력이 빈틈없이 어우러져야 중국은 여전히 ‘기회의 장’이 될 것이다.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
  • 중국 할머니 청소부서 CEO로 변신 화제

    ‘공공화장실 청소부에서 CEO로’ 중국 대륙에 한 70대 할머니가 불과 4년여만에 공중 화장실 청소부에서 거대한 과학영농 기업 CEO로 변신,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이 기막힌 인생유전의 주인공은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우성밍(吳勝明·여·74)씨.그녀는 50대 초반 경제 범죄 혐의로 영어(囹圄)의 생활을 하다가 고희(古稀·70살)가 돼서야 출옥한 뒤 청소부의 밑바닥 생활을 하다 지금은 수만 위안(수억원) 규모의 거대한 농장을 운영하는 사장으로 변신했다.   ▲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우성밍씨.하남상보  우씨는 52살때 경제사범으로 복역중 남편은 떠나가고 딸이 자살하는 불행을 겪고 감옥에서 풀려난 뒤 공중 화장실 청소부로부터 시작해 착실히 돈을 벌어 수만 위안(수억원) 규모의 과수원 농장을 경영하는 CEO로 변신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하남상보(河南商報)가 23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그녀의 인생은 한마디로 반전이 반복되는 기막힌 한편의 드라마이다.우씨는 22년전인 1985년초까지만 해도 순탄한 생활을 했다.남편과 함께 꾸려가던 농기구을 제작하는 중소기업이 짭짤한 수익을 올린 덕분이다. 하지만 85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녀의 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아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 뒤 제때 받지 못해 회사의 자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겨 부도를 내고 말았다.이 때문에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20년 가까이를 복역했다.복역기간중 남편은 떠나가고 마지막 남은 정신적 지주였던 16살난 딸도 자살하는 바람에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맛봤다. 70살이 되던 해인 2003년 출옥한 그녀는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일했다.매달 월급은 400위안(약 4만 8000원).비록 수입을 적었지만 우씨는 알뜰살뜰 모았다.그 돈으로 20여년전 회사를 할 때 익힌 사업 수완을 발휘,재산을 늘려나갔다.이를 모두 포도밭에 투자했다. 여기에다 그녀의 인생유전 사연과 사회복지사업에 대한 열정 등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중국 대륙 전역에서 돈을 투자하기 위해 달려왔다.상하이(上海)에서 온 천(陳)모씨가 50만 위안(약 6000만원),허난성 카이펑(開封)에서 온 둥(董)모씨가 10만 위안(약 1200만원)을 투자하는 등 투자자가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이 덕분에 조그마하던 포도밭의 규모는 지금 170무(畝·약 1만 7000㎡)로 급성장했다.이를 계기로 우씨는 양링훙양과웨(楊凌紅陽果業) 과기개발유한공사를 설립,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우씨는 “내가 불굴의 투지를 불태우며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딸 때문”이라며 “복역중 자살한 딸이 양노원 등 사회복지사업에 힘써 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보고 이를 따를 뿐이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청소부→CEO’ 70대할머니 기막힌 인생유전!

    ‘청소부→CEO’ 70대할머니 기막힌 인생유전!

    ‘공공화장실 청소부에서 CEO로’ 중국 대륙에 한 70대 할머니가 불과 4년여만에 공중 화장실 청소부에서 거대한 과학영농 기업 CEO로 변신,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이 기막힌 인생유전의 주인공은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우성밍(吳勝明·여·74)씨.그녀는 50대 초반 경제 범죄 혐의로 영어(囹圄)의 생활을 하다가 고희(古稀·70살)가 돼서야 출옥한 뒤 청소부의 밑바닥 생활을 하다 지금은 수만 위안(수억원) 규모의 거대한 농장을 운영하는 사장으로 변신했다. 우씨는 52살때 경제사범으로 복역중 남편은 떠나가고 딸이 자살하는 불행을 겪고 감옥에서 풀려난 뒤 공중 화장실 청소부로부터 시작해 착실히 돈을 벌어 수만 위안(수억원) 규모의 과수원 농장을 경영하는 CEO로 변신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하남상보(河南商報)가 23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그녀의 인생은 한마디로 반전이 반복되는 기막힌 한편의 드라마이다.우씨는 22년전인 1985년초까지만 해도 순탄한 생활을 했다.남편과 함께 꾸려가던 농기구을 제작하는 중소기업이 짭짤한 수익을 올린 덕분이다. 하지만 85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녀의 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아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 뒤 제때 받지 못해 회사의 자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겨 부도를 내고 말았다.이 때문에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20년 가까이를 복역했다.복역기간중 남편은 떠나가고 마지막 남은 정신적 지주였던 16살난 딸도 자살하는 바람에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맛봤다. 70살이 되던 해인 2003년 출옥한 그녀는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일했다.매달 월급은 400위안(약 4만 8000원).비록 수입을 적었지만 우씨는 알뜰살뜰 모았다.그 돈으로 20여년전 회사를 할 때 익힌 사업 수완을 발휘,재산을 늘려나갔다.이를 모두 포도밭에 투자했다. 여기에다 그녀의 인생유전 사연과 사회복지사업에 대한 열정 등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중국 대륙 전역에서 돈을 투자하기 위해 달려왔다.상하이(上海)에서 온 천(陳)모씨가 50만 위안(약 6000만원),허난성 카이펑(開封)에서 온 둥(董)모씨가 10만 위안(약 1200만원)을 투자하는 등 투자자가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이 덕분에 조그마하던 포도밭의 규모는 지금 170무(畝·약 1만 7000㎡)로 급성장했다.이를 계기로 우씨는 양링훙양과웨(楊凌紅陽果業) 과기개발유한공사를 설립,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우씨는 “내가 불굴의 투지를 불태우며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딸 때문”이라며 “복역중 자살한 딸이 양노원 등 사회복지사업에 힘써 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보고 이를 따를 뿐이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유괴→결혼→탈출…10살 소녀의 인생 역정!

    유괴→결혼→탈출…10살 소녀의 인생 역정!

    “하느님! 이제 겨우 10년을 살았을 뿐인데….제 인생 살이는 왜 이렇게 팍팍합니까?” 중국 대륙에 아직 10살도 안된 어린 소녀가 차마 귀가 있어도 들 을 수 없고,눈이 있어도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힘든 생활을 하고 있어 주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중국 중부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에 살고 있는 한 어린 소녀는 아직도 어린 나이지만 지난 4년동안 유괴→인신 매매→성폭행→학대→강제 결혼→탈출이라는 인생살이의 험한 맛을 본 얘기가 알려지면서 사람들을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고 서부망(西部網)이 10일 보도했다.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은 올해 10살된 마옌옌(馬艶艶).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역에서 그녀의 험난한 지난 4년의 인생 역정이 널리 알려지면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마양에 따르면 그녀는 4년전인 6살때 유괴되는 바람에 다시는 집 구경을 하지 못했다.이후 유괴,인신 매매,성폭행,강제 결혼,아동학대,극적 탈출….험난한 인생살이의 쓴맛이란 쓴맛은 모두 봤다. “6살때였어요.어느날 아침,밥을 사 먹으러 집 근처 식당에 들렀어요.그때 어른 두 사람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지요.그런데 그 아저씨 두분이 나에게 유탸오(油條·커다란 꽈배기 비슷)와 콩국을 사주면서 같이 따라가자고 했죠.매일 맛있는 것과 예쁜 옷도 사준다고 했어요.영문도 모르고 따라간 것이 고된 인생살이의 출발점이 됐죠.” 지나온 고된 세월에 너무 지친 탓인지 황달기가 있는 듯 얼굴이 부은 마양은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난 생활을 털어놨다.이들 유괴범들은 그녀를 데리고 중국 남부 닝샤(寧夏)지역으로 도망갔다.3일동안 기차를 타고….이후 4년동안 마양은 산시·닝샤·허난성 등 3개성으로 돌아다녔다. 닝샤에서 이들로부터 인신 매매된 그녀는 그곳 주인(양부모)로부터 성폭행까지 당했다.그때 나이가 아직 6살때였다.이 양부는 곧 허난성 중머우(中牟)지역의 어떤 사람에게 팔아넘겼다.이곳에서는 강제 결혼까지 한 뒤 세상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학대를 당했다. 낮에는 소풀베기,농삿일,밥짓기 등의 집안일과 농삿일을 해야 했을 뿐 아니라,밤만 되면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수모를 당하며 무자비하게 몽둥이로 맞아야 했다. 이를 참지 못한 마양은 결국 중머우의 주인(남편)이 잠든 틈을 타 몰래 도망나와 자기 집인 시안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 끝내 ‘자유의 몸’이 됐다. 하지만 앞으로도 걱정이다.4년전 서안시의 집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이에 이날 정저우역 집법 공안을 찾아가 자신의 인생살이를 모두 털어놓는 바람에 그녀의 힘든 인생살이의 실체가 드러났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8번 버려졌다 살아난 6살소녀의 기막힌 사연

    ‘친부모 등으로부터 8번이나 유기(遺棄)→9번째 양어머니와 만남→선천성 심장병 발병→수술→극적 회복!’ 중국 대륙에 8번이나 무참히 내버려졌다가 9번째 양어머니를 만나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받아 이겨내고 극적으로 살아난 6살난 어린 소녀의 기구한 삶의 얘기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난자오(南召)현 윈양(雲陽)진에 살고 있는,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한 어린 소녀는 친부모를 비롯해 양부모까지 모두 8번이 내버려졌다가 9번째 양부모를 만나 수술을 받고 극적으로 살아난 덕분에,주변 사람들로부터 ‘인간승리’라고 뜨거운 박수를 받고 있다고 하남상보(河南商報)가 20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화제의 주인공’은 올해 겨우 6살된 뉴하이윈(牛海雲)양.어린 나이의 그녀는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8전(顚)9기(起)의 끈질긴 삶의 생명력을 보여줘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어린 뉴양의 불행은 지난 2000년 1월초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태어날 때부터 몸이 잔약했던 그녀는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친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그녀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후 7개월새 무려 7번이나 더 내다버려졌을 정도로,그야말로 화불단행(禍不單行)의 연속이었다. 태어난지 8개월째 되던 그해 9월 23일 하늘이 보내준 ‘천사’를 만났다.바로 지금의 양어머니인 당시 76살의 돤칭팡(段慶芳)할머니를 만난 것이다. 이웃 주민에 따르면 돤 할머니는 뉴양이 버리진 것을 보고 처음에는 그냥 모른 체하고 지나치려고 했다.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다가 갑자기 그 애가 내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친부모가 나타날 때까지 맡아 기르기로 작정하고 담요에 쌓인 한살바기 뉴양을 집으로 데려왔다. 막상 집에 데려와보니 그 어리디 어린 소녀는 젖을 제대로 못 먹은 탓인지,몸이 삭정이처럼 마른 데다 입술에 발진이 생기고 열도 높아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이튿날 고대 윈양진 위생의원으로 데려가 진찰을 받았다. 담당 의사는 “이 아이는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다.”며 “지금까지 이미 8번이나 버려졌던 아주 불행한 아이”라고 말해 억장이 무너졌다.이 아이가 더이상 불행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돤 할머니는 애옥살이 셈평이지만 데려다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뉴양을 키우는 동안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선천성 심장병 탓인지 아이는 하루가 멀다하고 몸에 열이 나고,기침을 하거나 감기에 걸리는 등 병을 달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런 까닭에 집 텃밭에서 키운 야채를 팔아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는 그녀에게 커다란 짐이 아닐 수 없었다.그러나 돤 할머니는 묵묵히 야채를 판 돈을 모두 뉴양의 분유값과 치료비로 쏟아부었다. 이런 팍팍한 생활을 해오기를 6년째.그래도 셈평이 풀리지 않아 심장병 수술을 시킬 엄두도 못내고 안타까운 마음에 잠을 못이루던 돤 할머니에게 한줄기 ‘복음’이 날아든 것은 9월 초순이다.허난성 정저우(鄭州)시 제7의원이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뉴양에게 ‘치료비 50% 감면 혜택’을 주겠다는 소식이 날아든 것. 너무나 기쁜 소식을 들은 돤 할머니는 득달같이 달려가 뉴양이 심장병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등록을 마쳤다.등록을 마친지 3개월여가 지난 11일,뉴양은 양어머니의 애타는 마음을 뒤로하고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했다. 특히 이날 어린 그녀가 수술받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한 부동산 사업가가 나머지 수술비도 제공하겠다고 나서 치료비 걱정 없이 무사히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19일 오전 11시,뉴양의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났다.며칠 있으면 퇴원,정상적인 소녀로 돌아간다.돤 할머니는 “무엇보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한시름 놓았다.”며 “하이윈은 나의 친자식”이라며 눈물을 글썽거려 주위를 숙연케 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한전 中 발전사업 첫 ‘결실’

    한전 中 발전사업 첫 ‘결실’

    |자오쭤(중국 허난성) 최용규특파원|한국전력이 중국 발전소사업 교두보를 마련했다. 한전은 29일 중국 허난성(河南省) 자오쭤(焦作)시에서 한준호 사장, 마오차오펑(毛超峰) 자오쭤시장 등 두 나라의 관계자와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우즈(武陟) 열병합발전소’ 준공식을 가졌다. 발전 용량은 5만㎾짜리 2기이다. 이번에 준공한 우즈 열병합발전소는 한전이 중국에 진출한 첫 발전소 사업이다. 이를 계기로 인근 주리산 석탄화력발전소(60㎾짜리 2기) 등 한전이 중국에서 추진하는 발전소 건설사업에 보다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한전은 지난 2003년 8월 중국 우즈현 정부와 발전소 건설에 관한 합자계약을 맺고 중국 정부로부터 사업비준을 받았다.2004년 10월에 착공했다. 총 사업비로 5억 8800만위안(약 700억원)이 투입됐다. 이 중 3억 9100만위안은 중국 농업은행으로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식으로 차입해 조달했다. 한전은 총 자본금 1억 9700만위안의 77%인 1억 5200만위안(약 180억원)을 출자했다. 앞으로 21년간 최대 주주로서 발전소를 직접 운영하게 된다. 운영수익은 연간 430만달러(약 40억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우즈발전소는 상업성이 없어 버려지는 저열량 석탄을 주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높고 황산화물이나 질산화물 같은 오염물질이 발생하지 않는다. 한준호 사장은 준공식에서 “규모는 비록 작지만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궁극적 목표는 중국내에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 관계자는 “환경친화적인 발전소인 만큼 중국 정부로부터 세금감면 등 각종 우대혜택을 받는 발전소”라고 설명했다. ykchoi@seoul.co.kr
  • “뭐요, 파리가 ‘황금알 낳는 거위’라고요?”

    “뭐요, 파리가 ‘황금알 낳는 거위’라고요?”

    “각종 병원균을 옮기는 파리가 ‘황금알 낳는 거위’로 변신했다구요?” 중국 대륙에 ‘천덕꾸러기’ 파리를 인공적으로 양식해 ‘떼돈’을 벌고 있는 인물이 등장,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 중부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에 살고 있는 한 퇴직 공무원이 파리를 양식하는데 성공했는데,이 파리들이 천세가 나게 팔리고 있다고 화상보(華商報)가 6일 보도했다. 화상보에 따르면 화제의 주인공은 올해 46살의 정린(鄭琳·여)씨.한 기업의 퇴직 공산당 간부 출신이다.현재 시안시 바오지(寶鷄)촌 펑자(馮家) 수산창고 부근에서 파리 500만마리를 인공 양식하고 있는 중소기업 대표이다. 정씨가 파리 인공 양식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이다.작년 10월 TV방송에서 ‘파리의 가치’라는 과학프로그램을 통해 사업 아이디어를 얻어냈다.이 프로그램은 파리가 고단백질 식품일 뿐 아니라 살균 작용 등 의약·보건적인 측면에서도 아주 효과적이어서 일부 연구소 등에서 파리를 인공 양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전까지 파리가 근처에 날아오기만 해도 움찔하던 그녀는 갑자기 파리가 ‘사랑’스러워지면서 인공 양식을 하기로 결심했다.이때부터 파리를 인공 양식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정씨의 파리 인공 양식사업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인공 양식을 위한 전문적 지식이 부족한 탓이다.해서 파리 인공양식 지식을 얻기 위해 전문가인 허난성 진런런(26·여)씨의 파리 인공 양식장을 찾아갔다. 남편 다이푸칭(戴福淸)씨와 함께 파리 인공 양식장을 둘러보던 정씨는 주위에서 보는 파리와 인공 양식하려는 파리와는 크게 달랐다.인분 등을 쫓아 날아다니거나 병원균을 옮기는 파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얘기다. 인공 양식되는 파리는 각종 병원균을 옮기고 지저분한 전통적인 파리와는 달리 매우 위생적이다.먹는 것도 사람들이 먹는 것과 같은,예컨대 설탕과 우유 등이 주요 먹을거리고 알도 아주 깨끗한 환경에서만 낳고 있었다. 파리 인공양식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정씨는 지난 5월 초 파리 인공양식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바오지촌의 간부와 상의,인공 양식장을 건립한 토지를 빌리고 양식사업을 전문적으로 조언해줄 전문가 쑨웨이웨이(孫偉偉·22·여)씨를 초빙,회사를 만들었다. 정씨는 “처음에는 파리를 인공양식을 한다니까 더러운 냄새가 날 것으로 우려한 주변 사람들이 모두 싫어했다.”며 “그런데 막상 파리 양식장을 세워 파리를 길러도 더러운 냄새가 나지 않고 돈도 꽤 버는 것으로 알려지자,요즘은 오히려 사업을 같이 하자고 찾아온다.”고 털어놨다. 파리 양식사업이 생각보다 빨리 제 궤도에 오르자 지난 8월에는 남편 다이부칭씨도 회사를 그만두고 합류했다.여자 혼자 사업을 꾸려가기에는 아무래도 힘든 점이 많기 때문이다.예컨대 파리 양식장의 파리를 나눠 관리하는 파리장(모기장과 비슷함)을 설치하고 겨울을 대비한 난방시설을 설치하는 등등…. 현재 정씨의 파리 인공 양식장에서 하루 생산량은 하루 몇 백㎏나 되며,가격은 ㎏당 20위안(약 2400원)이다. 인공 양식된 파리의 맛을 어떨까.신선로 등에 넣어 끓여 먹으면 맛은 진한 새우 맛과 비슷하며 툭툭한 국물의 그윽한 맛은 일품이다.입안에 쏙 집어넣어 씹으면 처음에는 맛이 없이 무미건조했다가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고소한 맛이 넘친다.특히 볶아먹으면 고소한 맛이 배가(倍加)된다고. 다이씨는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공 양식된 파리는 피를 멎게 하고 상처의 통증을 누그러지게 하며 가려움증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특히 신선한 양식 파리에는 살균작용 등에 탁월해 약품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그가 소녀 17명을 성폭행할 수 있었던 비법은

    ‘나의 사냥감은 오직 10대 어린 영계이다.’ 중국 대륙에 나이 어린 10대 소녀만을 꾀어내 성폭행을 일삼은 희대의 ‘변태 성욕자’가 검거돼 경악케 하고 있다.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출신의 한 40대 사내는 불과 1년여 동안 무려 10여명의 어린 소녀를 성폭행·간음한 혐의로 붙잡혀 충격 속으로 빠뜨리고 있다고 신세계주간(新世界周刊)이 23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변태 성욕’의 용의자로 체포된 장본인은 올해 43살의 덩쥔(鄧軍)씨.덩은 지난 2004년 8월부터 2005년 9월까지 1년여동안 무려 17명의 어린 소녀를 모두 20여차례 성폭행·간음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 17명은 모두 16살 이하였으며,이중 12명은 14살 이하인 중학교 1학년 여학생들이었다.그런데 덩의 피해를 입은 어린 여학생들 가운데 몇 명은 성폭행에 따른 충격으로 가출을 한 탓에,피해자는 이보다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허난성 재무대학을 졸업한 그는 지난 20여년간 국세청 업무를 담당한 뒤,부동산 업체에 스카우트된 엘리트 국가 공무원 출신이어서 일반인들은 더욱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덩이 처음으로 ‘변태 성욕’의 길로 들어선 것은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그는 어린 소녀를 끌어들이기 위해 중학교 1학년 같은 또래의 남자 아이 2명에게 다가가 자신을 도와달라며 약간의 용돈을 쥐어주고 ‘하수인’으로 만들었다. 학교에도 가지 않고 집안에서 핀둥거리던 이들 남자 아이는 고린전 100∼200위안(약 1만 2000∼2만 4000원)에 혹해 덩의 ‘충견(忠犬)’ 역할을 해냈다.나이가 너무 어린 만큼 뭐가 잘못된 일인지도 모르는 이들 남자 아이는 몇푼 안되는 샐닢을 받아쥐자,덩이 눈짓을 하기만 하면 어린 소녀를 납치해오는 등 온갖 나쁜 짓을 스스럼없이 저질를 만큼 길들여졌다. 지난 2004년 8월 16일,덩은 첫번째 작품을 훌륭하게 만들어냈다.그는 이들 두 남자 아이를 봉고차에 태운 뒤 동네 어귀에서 ‘고기’만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첫번째 희생양인 샤오메이(小梅·13·가명)가 나타났다.이들 두 남자 아이는 샤오메이를 납치해 차에 태워주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이때를 놓칠세라 차안에서 살쾡이처럼 눈을 번뜩이며 먹이만을 노리고 있던 덩은 그 자리에서 어린 소녀에게 성폭행을 무자비하게 자행했다. 잠시후 나타난 남자 아이는 그녀에게 400위안(약 4만 8000원)을 주며 “부모님께 얘기를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욱대긴 뒤,“그 아저씨는 공안국장”이라고 말해 어린 소녀들의 입을 틀어막았다.이 때문에 덩의 짐승같은 행위가 이후 지속돼도 비밀로 묻히고 말았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엉뚱한 곳에서 꼬리가 밟혔다.사건이 있은지 1년여가 지난 2005년 9월 21일이었다.샤오메이의 아버지 친궈(秦國)씨는 자신이 돈을 준적이 없는데도 딸이 새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 이에 친씨는 샤오메이를 집중 추궁해 그간의 일을 모두 알게 됐다.이런 일이 자기 딸 뿐이 아닐 것으로 여기고 수소문한 끝에 샤오메이의 같은 반 친구 샤오쉐(小雪)도 성폭행당한 사실을 알아냈다. 샤오쉐의 아버지와 함께 학교로 찾아간 친씨는 담임 교사와 상의한 뒤 고대 공안(경찰)당국에 신고했다.공안당국은 즉시 ‘변태 성욕자’ 체포에 나선 끝에,샤오메이의 인근 학교에서 또다른 ‘먹이’를 노리던 덩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공안당국의 조사결과 덩은 2004년 8월부터 2005년 9월까지 13개월여 동안 16살 이하의 어린 소녀 17명(이중 12명은 14살 이하)과 20여차례에 걸쳐 성폭행 등을 자행한 파렴치한 인 것으로 밝혀졌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儒林(700)-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 (46)

    儒林(700)-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 (46)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46) 송대의 신유학을 가리키는 ‘성리학’이라는 명칭은 ‘본성이 곧 이(性卽理)’라는 주자의 핵심사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본성으로서의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의 오상(五常)을 계발하여 그것을 사회에 확충시키려 하였던 주자의 사상은 맹자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사단(四端)의 성선설을 발전시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계발하려는 신인간학(新人間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즉리(性卽理)’의 핵심사상은 주자의 독창적인 철학사상이 아니었다. 주자가 내세운 ‘성즉리’사상은 북송초기의 유학자 정호(程顥), 정이(程 ) 두형제가 내세웠던 이기론(理氣論)을 수용해서 이를 더욱더 발전시켰던 것이다. 형 정호는 정명도(程明道)라 불리고 동생 정이는 정이천(程伊川)이라 불리던 한살 터울로 태어난 연년생의 형제였다. 주자보다 100여 년 전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출생의 이 두 형제는 신유학의 개조라고 할 수 있는 주돈이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주돈이는 우주의 근원인 태극(太極:無極)으로부터 만물이 형성되는 과정을 도해하여 그 유명한 ‘태극도설’을 그렸다. 태극은 음양의 이기로 나누어지며 음양은 또한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의 오원소(五元素)로 나누어지고 그 원소는 다시 건(乾)의 남성과 곤(坤)의 여성으로 나누어지며, 남녀는 만물의 순서로 나누어져 우주가 구성되었다고 논하고, 그 만물 중에서 인간만이 가장 우수한 존재(秀靈)이기 때문에 인의의 도를 지키고 마음을 성실히 하여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고 우주생성의 원리와 인간의 도덕원리를 지켜나가는 이론을 제시하였던 신유학의 개척자였던 것이다. 특히 주돈이는 주역(周易)에 바탕을 두고 ‘만물의 근원은 태극이며 태극이 실제로 모든 만물을 형성한다.’는 형이상학을 제시함으로써 성리학의 중심사상인 이학의 바탕을 마련했던 뛰어난 사상가였던 것이다. 정호와 정이의 이정자(二程子)는 특히 스승 주돈이의 사상을 한층더 발전시켜 자연현상의 모든 질서는 우주의 근본원리인 이(理)에서 비롯된다는 ‘성즉리설(性卽理說)’을 주창하였는데, 이 두형제의 성리론에서 주자는 마침내 어렸을 때 아버지 주송으로부터 천자문을 배울 때 주송이 하늘 천(天)을 가르치기 위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저 하늘보다 높고 깊고 넓은 것은 없다.’고 말하였을 때 ‘그렇다면 하늘 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하고 물었던 근원적인 의문점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주송은 주자의 질문에 당황하였을 뿐, 그 어떤 명쾌한 대답도 해주지 못하였는데 주자는 이정자의 성리론을 접한 순간 어렸을 때부터의 수수께끼가 완전히 풀리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즉 유형으로서의 극점인 하늘(天) 위에는 무형으로서의 이(理)가 존재하고 있음을 비로소 각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 소매치기와 첩혈가두를 벌인 여성의 속사정

    소매치기와 첩혈가두를 벌인 여성의 속사정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지나가는 사람들은 힐끗 쳐다보며 구경만 했지,도대체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아요.정말 얼음장처럼 차가운 심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중국 대륙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길거리에서 소매치기와 혈투를 벌이다가 크게 다친 한 연약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가 마치 영웅담처럼 회자되고 있다.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에 살고 있는 한 20대 여성이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 관광을 하며 시내 거리를 둘러보던중 우연히 소매치기하는 장면을 목격,그 소매치기와 사투를 벌이다가 중상을 입은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하남상보(河南商報)가 27일 보도했다. 하남상보에 따르면 화제의 주인공은 올해 23살의 펑눠(馮娜)씨.허난성 출신의 그녀는 관광차 우한에 들른지 4일째를 맞은 날,소매치기를 잡으려다가 꽃다운 젊은 나이에 자칫 잘못됐으면 열명길을 재촉할뻔 했다. 펑씨의 이같은 영웅적 행위는 지난 22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일어났다.그날 오후 7시쯤,그녀는 시내 거리를 한번 둘러보기 위해 장한루(江漢路) 거리를 어슬렁어슬렁거리며 배회하고 있었다. 뭔가 볼만한 일이 없나하고 이러지리 살피던중 한 젊은 남자가 중년 부인의 지갑에 손을 집어넣어 돈을 꺼내는 장면을 목격했다. “소매치기다,소매치기!”“소매치기를 잡아라!” 펑씨가 큰소리로 외치며 소매치기범에게 달려들었다.이 소리를 듣고 당황한 소매치기는 얼른 소매치기한 물품을 중년 부인에게 돌려주고 도망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함께 소매치기범을 뒤쫓아 잡아달라고 호소했다.하지만 부근을 지나던 시민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도 모두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누구 한사람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를 본 소매치기범은 도망가다 말고 뒤돌아와서 주변 사람들에게 “일 났어,무슨 일났느냐구?”라며 험상궂은 표정을 짓자마자 주변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제 갈길을 갔다. 분함을 삭히지 못한 펑씨는 곧바로 소매치기범을 향해 돌진했다.하지만 잔약하고 연약한 처녀의 몸이 어떻게 산전수전을 다 겪은 소매치기범을 당할 수 있겠는가. 그녀가 달려들자마자 소매치기범에게 그대로 제압당하고 발길질에 나가 떨어졌다.펑씨는 다시 한번 주위 사람들에게 살려달라고 호소를 해도 사람들은 눈만 멀뚱히 뜨고 쳐다보기만 할 뿐,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힘을 얻은 소매치기범은 “오늘 일을 오래도록 기억하도록 기념을 남겨주겠다.”며 그녀의 손바닥을 수차례에 걸쳐 칼로 그어버렸다.곧바로 피가 떨어져 거리 바닥은 피로 흥건히 물들었다. 펑씨는 오력을 다해봤지만,소매치기범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다시 한번 큰소리로 “도와달라.”고 외쳤지만 역시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참 뒤 공안(경찰)이 신고를 받고 달려왔으나 소매치기범은 이미 오래전에 유유히 사라진 뒤였다.그녀의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공안은 곧장 펑씨를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도록 했다. 단지 생명은 건졌지만 그녀는 두손에 심한 자상을 입은 것은 물론 갈비뼈가 절단되는 등 중상을 입어 하마터면 황천행을 탈뻔했다. 펑씨 첩혈가두를 벌였어도 시민들은 수수방관만 하고 있었다.중국 대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이는 ‘남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중국인 전통의 ‘사오관셴스(少關閑事)’ 의식이 극명하게 표출된 사례다. 이래서 중국인들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는가 보다. 온라인뉴스부
  • 급부상하는 中내륙 허난성을 가다

    급부상하는 中내륙 허난성을 가다

    최근 한국 정부는 중국의 대형 개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중부 굴기(中部起)’에 대한 투자 타당성 정도를 조사해 그 결과를 내놓기로 했다. 동부 연안에 위치한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중·서부로의 진출을 희망하는 사례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임금 상승 등 동부 연안지역에서의 생산활동 환경이 나빠진 데 따른 현상이다. 중부 굴기의 중심을 도모하는 허난성(河南省)을 찾았다. |정저우시·뤄양시·덩펑시(허난성) 이지운특파원|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소림사 방문차 허난성을 찾았을 때, 리청위(李成玉) 성장으로부터 이같은 얘기를 들었다.“허난성의 역사를 알면 중국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리 성장은 앙소(仰韶)문명의 본고장이며 중국의 숱한 성씨(姓氏)와 활자가 비롯되는 등 허난성이 중국 문명의 산실이라는 점을 자랑한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다른 지역의 중국인은 ‘허난성’에서 ‘빈곤, 낙후, 농민공, 소매치기, 사기 상술’ 등 부정적인 단어들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외국인에게는 여기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까지 겹쳐진다. 그런 허난성이 지금 새로운 비약을 준비하고 있다. 당 중앙이 지난 3월 전인대에서 최종 확정한 ‘중부굴기’를 그 날개로 삼았다. ●외자기업에 특정세금 최대 60% 반환 초여름 따가운 햇살 속에 허난성 성두(省都) 정저우(鄭州)시는 천지개벽 중이었다. 도심 한가운데 철거와 재개발이 한창인 반면, 다른 한편에는 마천루가 세워지고 있었다. 정저우의 상징이자, 허난성의 심벌로 기획된 ‘정둥신(鄭東新)구’는 이미 도시로서의 그 위용을 갖춰가고 있었다. 구(舊)공항을 옮기고 2003년부터 건설을 시작한 곳이다.150만㎢의 면적에 150만명이 생활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둥신구는 호반을 중심으로 유통·물류타운에 대규모 과학·기술단지, 대학타운, 최첨단 비즈니스 센터가 밀집한 꿈의 도시가 될 것으로 허난성은 꿈꾸고 있다. 그 중심에 위치한 ‘국제전람회의센터’는 도시의 상징물이었다.‘기둥 없는’ 건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데 관계자들의 자부심이 작지 않았다. 정저우시 정부는 타이완·일본과 상하이(上海)를 비롯해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 상인들의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고 자랑했다. 시의 한 관계자는 “같은 중부권으로 정저우보다 늘 앞서 있던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을 최근 국내총생산(GDP) 등 몇가지 경제지수에서 앞질렀다.”며 흥분했다. ●정저우시에만 외국투자기업 2800곳 웨쩡푸(岳增浦) 시 상무국장은 “2000년만 해도 800곳이던 외국 투자기업이 2800여개로 늘었다.”면서 “자본유입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근처 뤄양(洛陽)시의 한 공장은 수천년 고도(古都), 중국의 ‘단골 수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퉈(一拖) 국제경제무역주식회사는 중국 최고(最古), 제1의 트랙터 공장답게 쉴새 없이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세계 92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북한과 남한에도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외자기업에 대해서 25%에서 상황에 따라 특정 항목 세금의 최대 60%까지를 반환해 주는 등 개발을 위한 뤄양의 노력은 눈물겹다. 정주∼뤄양 중간에 위치한 덩펑(登封)시 역시 도시 정비와 도로 확충으로 중국 5악(岳)의 하나인 숭산(嵩山)과 소림사, 뤄양 용문석굴(龍門石窟) 등을 잇는 관광자원 확충에 집중하고 있었다. ●AIDS만연·빈곤·낙후 상당부분 치유 허난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사실 구조적 측면에서 비롯된 점이 많다. 허난성의 인구는 1억에 육박해 중국의 전체 성(省)중에서 가장 많다. 또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1차산업에 종사, 낙후성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개혁·개방 이후 다른 성과의 격차는 커져갔고, 많은 유민(流民)들이 양산됐다. 허난성이 AIDS 촌(村)으로 알려진 것도, 피를 팔아 생활을 연명해야 할 만큼 가난한 촌락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리청위 성장은 “38개 현에서 1만 9000명이 발병,4000여명이 숨졌으나 AIDS 사태를 야기한 혈액 채취소는 이미 모두 폐쇄됐다.”면서 “성을 뒤덮은 가난의 상흔이 치유돼 왔다.”고 강조했다. 리 성장은 “베이징∼정저우 구간과 정저우∼우한 구간 고속도로 신설 등 고속도로가 4020㎞까지 연장되면, 정저우를 중심으로 사통팔달 연결된 철도망과 함께 성 발전의 대동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jj@seoul.co.kr ■ 균형발전 바로미터 ‘중부굴기’ 성공할까 |정저우시·뤄양시(허난성) 이지운특파원|중국 보시라이(薄熙來) 상무부장은 지난달 말 통상 교섭차 서울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중부굴기’를 잊지 않았다. 요즘 한국의 주요 인사를 만나는 자리면 “중부굴기에 투자해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하는 그다. 그는 중부굴기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다. 강력한 차세대 영도자급 주자의 하나로 꼽히는 그로서는 반드시 성공의 기틀을 마련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는 1992년부터 10년간 다롄(大連)시장 재직 중 연 10% 이상의 고속 성장 속에서도 다롄을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어냈다. 이후 랴오닝(遼寧) 성장을 지내며 오늘날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중부굴기는 우선 중국의 각종 대개발 공정의 1차적 마침표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2000년 무렵 시작된 ‘서부대개발’과 2003년 본격 가동된 ‘동북진흥’에 바로 뒤이은 또 하나의 역사(役事)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국 4세대 지도부가 이 프로젝트를 주시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가장 중시하는 ‘균형 발전’의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균형발전의 바로미터,‘중원(中原)’ 중국의 중부 지역에는 중국 인구의 28.1%인 3억 6100만명이 산다. 이 가운데 농업인구는 2억 4400만명으로 70%에 이른다. 낙후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게다가 개발 공정의 시작도 상대적으로 늦다 보니 서부와 동부지역보다 뒤떨어진 측면이 많다. 2001∼2003년 중부 6개성의 경제성장률은 동부와 서부지역보다 각각 1.8%포인트와 0.4%포인트 낮았다. 총생산 격차도 갈수록 벌어졌다. 당 중앙이 공들이는 ‘신농촌 건설’과 ‘균형’이 가장 부합되는 지역은 어찌보면 중부지역인 셈이다. ●“그러나, 추동력이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부굴기가 서부대개발이나 동북진흥과 같은 추동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부대개발은 천연가스와 수력전기 등 자원이 풍부하고, 청두(成都)나 시안(西安) 같은 거점 도시가 공정의 주요 원동력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동북진흥은 과거 중국의 최대 중화학 공업 기지요 중공업 단지로, 다소의 구조조정과 현대화 작업만으로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중부지역은 산업적 측면에서 이같은 특징이 크게 부족하다.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이 프로젝트에 관망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선정된 개발 공정”이라는 분석까지 내놓는다. 균형발전이란 명목을 위한 전형적인 ‘끼워넣기식’ 국가 개발사업이라는 얘기다. jj@seoul.co.kr ■ 내수생산의 중심지부상 가능성 |정저우시·뤄양시·덩펑시(허난성) 이지운특파원|중부굴기 프로젝트에는 아직 구체적인 시간표나 청사진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서부대개발이나 동북진흥이 국가발전계획위원회 산하에 별도의 판공실을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아직 전문적인 추진 기구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만큼 앞으로의 진행 방향을 가늠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단 전문가들은 공정의 대상이 되는 산시(山西)·허난(河南)·후베이(湖北)·후난(湖南)·안후이(安徽)·장시(江西)성 등 중부 6개성 일대가 대대적인 수출 전략기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는다. 창(長)강이나 주(珠)강 삼각주 경제지역에서처럼 중심도시가 형성되지 않은 채, 성마다 독자적 경제권을 형성하는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특히 서부와 같은 재정·금융·투자환경 분야의 관련 우대정책을 제정한다는 문서도 없는 상황은 이같은 전망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 지역이 11·5규획 목표에 따라 ‘내수 생산’의 중심지로 가꿔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중국의 중·소 및 중견 제조업체들의 진출이 적합해 보이는 대목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현지 언론들은 상하이, 홍콩 등에서 임금 인상 가속화로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기업들이 내륙지방으로 향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후광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시절 정·관계를 장악했던 ‘상하이방(上海幇)’에 이어 후 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안후이방(安徽幇)’이 부상하고 있다는 홍콩 언론들의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한편 중부지역은 아세안-중국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내수와 물류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돼, 동남아 시장을 겨냥하는 한국 기업에는 전초기지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정부는 일단 한국 중소기업들이 합작 대상으로 삼는 이 지역 중국 기업들의 신용조사를 정부 재원으로 하는 것을 적극 검토키로 했다. 또한 이미 서부지역에서 실시해 효과를 보고 있는 ‘지역별 물류 센터’를 확장, 중부쪽에도 세울 것을 고려하고 있다. jj@seoul.co.kr
  • 정말 친부모 맞아? 아들 마구 때려죽인 사연

    “정말 친부모 맞느냐구요? 양부모라도 그렇지,하물며 친부모가 아들이 숫자를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고 때려죽이기까지 하냐구요.” 중국 대륙에 세살바기 아들이 가르쳐준 숫자를 제대로 못 외운다고 마구 때려 숨지게 한 엽기적이고도 잔인하기 이를데 없는 친부모가 붙잡혀 10년 동안 완전히 사회와 격리됐다. 중국 동중부 저장(浙江)성의 항저우(杭州)시 샤오산(蕭山)구 인민법원은 세살짜리 아들이 가르쳐준 숫자를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고 나무 몽둥이로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붙잡힌 젊은 부부에게 고의상해죄를 적용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고 광주일보(廣州日報)가 30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 엽기적이고 잔인하기가 이를데 없는 친부모는 허난(河南)성 출신의 정하이셴(鄭海現) 부부로 부모로서의 소양을 조금도 갖추지 못한 파렴치한 그자체였다. 돈도 없고 배움도 부족한 이들 부부는 허난성의 한 오지 마을에서 아들 정보(鄭博·3)을 보다 좋은 환경에서 키우기 위해 불원천리 항저우로 이사왔다. 이들 부부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며 어렵게 생활하면서 세살바기 아들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다.그러던중 지난 4월 29일,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들 부부는 너무나 화가 났다.세살바기 아들에게 숫자 세는 법을 아무리 가르쳐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까닭이다.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정씨의 아내는 아들이 정신을 차리도록 회초리로 몇 대 때렸다.이때 아들이 숫자를 외우는 것을 너무너무 싫다며 앙탈을 부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정씨는 아들에게 너무너무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조금 전에 가르쳐준 숫자를 제대로 외우지 못하면 때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들은 점점 소리 높여 울며 이들 부모를 자극시켰다. 참다 못한 이들 부부는 아들에게 뺨을 갈기거나 나무 몽둥이로 사정없이 뭇매를 가했다.이들 부부의 구타는 이웃 주민들이 말리려고 온 저녁 때까지 아들을 두둘겨 팼다.아마 이들 주민들이 달려오지 않았으면 그자리에서 즉사시켰을 것이다. 밤 12시 무렵,아들 정보가 한바탕 기침을 하더니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다.이때서야 정신이 번쩍 든 이들 부부는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아들을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의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티없이 맑은 눈을 가진 세살바기 아들은 부모를 남겨두고 영원히 이 세상을 떠나버렸다.법의학 의사는 아들 정보의 사인을 머리 부분에 두들겨 맞은 충격에 따른 손상,구토물이 기도를 막은데 따른 질식사로 규정했다. 더욱이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 점은 세살짜리 정보의 손·등·사타구니 등 온몸에 두들겨 맞아 생긴 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정씨 부부는 뻔뻔스러워 주변 사람들의 분노케 했다.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반성의 빛을 보이기는 커녕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정말 고의가 아니었다.”는 등의 변명으로 일관,부모로서의 최소한의 혐치도 없는 파렴치한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온라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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