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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건 그렇구… 그 논다니 창병 얻었단 얘기 밑절미 있는 말인가?” “밑절미가 있던 없던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가랑비에 옷 젖더라고 계집질에 눈이 뒤집혀 허둥지둥 하다보면, 머지않은 장래에 창병 얻어 뼈까지 녹아나서 신세 망치는 날이 오지 않겠나. 창병도 창병 나름일세. 양매창(楊梅瘡)*을 얻으면 그게 바로 악창이어서 약도 없어 목숨 하나 일같잖게 거덜낸다네. 하나뿐인 초라한 육신, 낮에는 부담짐 지우고 밤에는 색탐에 부대끼다보면, 몸가축인들 온전할 리 없지. 초개 같은 목숨 진작 잡도리하지 못하면 지레 죽을 수도 있네. 우리네 행상인들 망하고 나면, 탱자처럼 쭈그러들어 대그락대그락하는 불알 두 쪽만 남을 뿐일세.” 길세만은 잡힌 말꼬리를 떼어버릴 궁리가 없었다. 머뭇머뭇하다가 대꾸할 말미를 놓치고 말았다. 속내가 뒤숭숭한 터에 배고령이 한마디 덧붙인다. “언젠가 행수님 말씀이 생각나네… 매화는 엄동설한을 뚫고 피어나기 때문에 그 진한 향기를 자랑할 수 있는 법이라고… 나 같은 무지렁이가 처음엔 무슨 흰소린가 해서 어리둥절했다네. 그런데 임자를 지켜보자니 그 말씀의 속 깊은 뜻을 얼추 깨닫게 되었다네… 얄팍한 길미나 챙기는 임자가 논다니 밑구멍에 찔러주어야 할 해우채는 오죽했겠나… 주책없다 생각 말고 내 말 새겨듣게. 우리 사이 흉허물 없이 지내니까 이런 말 하는 것일세.” 설피를 꺼내 신어야 할 만큼 한대중으로 내리던 눈은 언제부턴가 씻은 듯이 그쳤다. 산중 날씨란 그래서 짐작할 수 없었다. 말래에서 발행했더라면 너삼밭이 이른 중화 자리가 되었겠지만, 샛재에서 발행했으므로 중화 자리는 빛내골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새벽에 진눈깨비를 만나 지체되었으므로 너삼밭재 밥자리에서 중화를 짓기로 하였다. 그곳에는 안면이 낯설지 않은 어물 저자 차인꾼들 대여섯이 새옹을 걸어놓고 이제 막 한술 뜨고 있었다. 밥자리라고 하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적막강산이긴 매한가지였다. 중화 먹는 말미에도 땀에 젖은 배자와 짚신 감발을 풀어 계곡 자갈 바닥이며 밭둑 위에 널어 말리고 있었다. 그들은 정한조와 조기출 일행 20여 명이 밥자리를 찾아 계곡으로 들이닥치자, 근래에 보기 드물었던 상단의 규모에 기가 질린 나머지 뱀 만난 여치처럼 잽싸게 두렁 위로 몸을 피했다. 그러자 일행들이 나서서 진정을 시켰다. “동고동락하는 터에 그 무슨 해괴한 짓들이오. 얼른 먹던 중화들 드시오.” 너삼밭재에서 들밥을 먹고 허기를 채웠다면, 빛내골과 넓재까지 계속 내달아 광희골 회룡천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당도해야 했다. 넓재에서 광희골까지는 내리막이어서 길 줄이기가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치비재와 성황당이 있는 밭재 지나서 숙소참인 맷재까지는 내리막보다는 꼬불꼬불한 자드락길에 오르막뿐이었다. 맷재는 십이령 중에서 마지막 고개로 꼽는 곳이기도 했다. 맷재에서 막지고개만 넘어가면, 현동저자와 내성저자의 차인꾼들과 만나 건어물 상대들이 등짐을 줄일 수 있었다. 행중이 맷재에 당도했을 때는 호랑이를 만나는 불상사가 있더라도 더이상은 발짝을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먼길 행보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20여 명을 헤아리는 대상대가 함께 걸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나 늦깎이로 상단에 뛰어든 조기출과 같은 사람들은 고단하다 못해 몰골이 파리하고 눈자위가 허옇게 되어 숨을 가다듬기에도 힘겨워 보였다. 정한조가 측은하여 한마디 불쑥 질렀다. “생선 몇 뭇 팔아 하찮은 길미 챙기겠다고 이 고초를 겪는구려. 나물 먹고 물 마시더라도 차라리 옛날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소?” “도감께서는 정곡을 찌르시는군요. 때로는 그런 마음이 들 때도 없지 않지요. 그러나 행중 식구들에 견모*가 된다 하여도 두 번 다시 죽은 놈 발바닥같이 찬 냉골에 들어앉아 좀먹은 탕건은 쓰고 싶지 않소. 도감 입으로도 괭이 든 비렁뱅이는 없어도 책 든 비렁뱅이는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비 오는 날 똥장군을 등짐 대신 지고 길바닥에서 엎어지고 자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감나무 밑에서 홍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짓은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양매창(楊梅瘡): 매독 *견모: 놀림가마리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소금과 미역은 궂은 날씨와는 상극이었다. 습기 먹은 짐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워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해동머리라 질척질척해진 길턱 때문에 발길을 재촉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는 노릇, 누가 일러준 대로 들메끈을 단단히 고쳐 매고 샛재 숫막거리를 나섰다. 고개를 들면 안개 발 같은 진눈깨비가 얼굴에 척척 감기어 모두 목을 쇄골 속으로 감추었다. 그러나 발행한 지 반식경이 지나고부터 휘감기던 눈발이 성기기 시작하여 두런두런 수작들 나눌 만하였다. 뒤따라 걷던 배고령이 입에서 구린내가 났던지 자별하게 지내는 선머리의 길세만에게 바싹 따라붙으면서 불쑥 한마디 던졌다. “임자 보게.” 선머리에 선 길세만은 허리가 끊어질 듯 우려와서 줄곧 끙끙 앓는 소리를 하며 발부리만 내려다보고 걷다가 신둥머리지게 되받았다. “왜 또 그러나?” “말래 숫막거리에 그 암팡진 년 말일세.” “말래 도방 숫막거리에 암팡지다는 평판을 듣는 갈보들이 어디 한둘인가?” “아니… 그 연지골(燕脂溪)* 출신 새침데기 영월댁 말일세.” 시답잖은 농인 줄 알았더니 숫막거리 갈보 얘기가 나오자, 구미가 당겼던 길세만은 비로소 턱만 비틀어 뒤따라오는 배고령을 힐끗 일별했다. 길세만이 구미에 당겨하는 것을 눈치챈 배고령이 가래침을 긁어 계곡 아래 멀리로 내뱉고 나서, “도방이 있는 말래 숫막거리에는 오가는 원상이나 부구 염막 소금꾼 들의 염낭쌈지를 바라고 문을 연 숫막이 열 손가락을 헤아리고 들병이며 떠돌이 논다니 들도 섞여 있지만, 그중에서도 영월댁이 살신도 포르족족한 게 색깨나 쓰게 생겼지. 그 여자 거웃에 손이라도 한 번 넣어보려고 군침을 흘리는 축들이 한둘 아니라더군. 그런데 꼴에 밤똥 싸더라고 그 계집사람이 초면이고 구면이고 가릴 것 없이 사내를 할끔할끔 간색해서 골라가며 살보시를 하는데, 제 눈에 차지 않으면 아예 코대답도 않고 안면을 싹 바꾸고 만다는구먼…. 사내놈을 멧돌치기로 배 위에 올려놓고 한바탕 어진 혼이 나가도록 요분질로 조리를 쳐서 칵 뱉어놓으면, 어지간한 사내는 사흘 동안 자리보전으로 운신을 못 하고 누워 있어야 겨우 기동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도방 대처에 짜하게 퍼져 있다네.” “말 같잖은 소리, 밑절미 없는 소리 그만 하게.” “나도 귀동냥으로 들은 소리지만, 그 계집사람하고 한번 붙으면, 뻣뻣한 사내들도 뼛골이 녹아나서 잠시 동안 저승 구경까지 할 수 있다더군.” “양기가 입으로 오르자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할 나이인데… 음탕한 소리 그만하게.” “헌 갓 쓰고 똥 누기 예사지…. 일 년 열두 달 한둔으로 지내는 우리네가 그런 일도 없다면 명치끝까지 차오른 육허기는 어디다 풀고, 가슴에 쌓인 울화는 어디다 쏟아내겠나.“ “심통이 놀부군.” “왜? 들병이하고 놀아났다는 소문나면, 체면 깎일까 봐 그러나?” “어허, 봉패로세. 자다가 얻은 병이라더니 불각시에 왜 나를 물고 늘어지나.” “임자도 그중 하나가 아닌가?” “예끼 고얀 사람, 넘겨짚지 말게. 내가 매달고 다니는 고기 방망이는 구색으로만 달고 다니는 게야. 임자도 알다시피 물색에는 뜻이 없다네.” “잡아떼지 말고 내 말 귀여겨듣게. 그 여자 창병이라는 소문 있다네.” 굳이 보지 않아도 새파랗게 질린 길세만의 안색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점입가경이군. 창병이라는 말, 그게 정말인가?”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는 것 보았나? 내가 괜한 말 지절거리는 게 아닐세. 내가 임자 앞에 있어서 보이지는 않지만, 보지 않아도 시방 임자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있을 것이야.” “글쎄….” “임자 왜 대꾸가 없나?” “글쎄…. 내가 언제 그 염불 빠진 년과 상종한 일이 있었는지. 생각이 올지갈지해서 그러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임자 알고 보니 말래 숫막거리에 있다는 논다니들 중에 가죽방아 찧어보지 않은 계집이 없구먼. 우리가 봉놋방에 둘러앉아 투전 놀음에 술추렴이나 하고 시시덕거리는 사이, 술 안 마시는 임자는 계집사람들 거처하는 퇴창 밑에 숨어 기회를 엿보아 계집들과 배꼽 맞출 궁리만 트고 있었군. 술추렴할 때마다, 임자는 딴청을 피운 까닭이 거기 있었군.” *연짓골:삼패 기생들이 모여 사는 마을.
  • 욕망의 해방구는 오직 일…당신은 포르노 배우

    욕망의 해방구는 오직 일…당신은 포르노 배우

    에로스냐, 포르노냐.  아주 새로운 얘긴 아니다. 포스트모던 시대 사적 영역이 부각되면서 현대사회 풍경을 군도로 묘사하는 건 낯설지 않다. 가장 극단적 사례는 진정한 대화, 소통, 사랑은 찾아볼 수 없고 이제 남은 건 저마다 홀로 늙어 죽는 것밖에 없다고 토로해 대는, 히키코모리의 나라인 일본의 일부 지식인들이다.  정작 서구 이론가들은 감정을 통한 연대, 진정한 사랑의 가능성을 찾고 있는데 말이다. 이름 좀 있다 싶은 철학자들이 에로스 문제를 다루는 건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이 문제를 제기한 이는 아마 ‘88만원 세대’(레디앙 펴냄)를 낸 우석훈일 게다. 주머니 사정 때문에 친숙한 모든 관계가 유예되는 한국 사회에 짱돌이라도 던지라고 부추기는 책인데, 정작 책의 첫 장은 ‘첫 섹스의 경제학 -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로 시작하니 말이다.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스베냐 플라스푈러 지음, 장혜경, 로도스 펴냄)는 포르노로 전락해 버린 현대사회 에로스 풍경들을 다룬다. 이미 몇몇 사람들 이름이 머릿속을 지나갔을는지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책 끝 부분에 가서 “아마 진실된 사회는 발전을 식상해 하면서 무언가에 쫓기듯 낯선 별을 정복하러 돌진하기보다 가능성들을 다 쓰지 않은 채 남겨둘 것이다”라는 아도르노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냥 놓아두기’, ‘무위’를 통해 에로스를 회복하자고 제안한다.  최근 인물로만 꼽아도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 펴냄)의 한병철, ‘리퀴드 러브’(새물결 펴냄)의 지그문트 바우만이 툭 떠오른다. 동시에 이에 대한 장정일과 진중권의 비판도 떠오른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분석에 이은 내 탓이오를 외치는 해법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건데, 결국 좀 배우고 먹고 살 만한 사람들 얘기 아니냐는 평 말이다.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혁명을 기획 중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평가 또한 자신만은 대중과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식상한 믿음 위에 서 있긴 매한가지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위해 우리 모두 단체로 다 가난해지고 비참해질 필요는 없으니까. 스토리 자체는 뻔한 감이 있음에도 일단 펴들면 쭉 읽게 되는 것은 순전히 저자의 입담 덕이다. 프로이트를 기본에 깔고 오디세우스의 배, 성 안토니우스의 광야,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쏟아지는 아가톤의 집, 하이데거의 오두막 등으로 독자들을 이끌고 다니는데, 무겁지가 않다. 한병철의 책이 종교적 잠언집 냄새를 짙게 풍기고, 바우만의 책에서는 묵직한 연륜의 냄새가 느껴진다면, 38살 여성 철학자가 쓴 이 책은 그냥 친구들끼리 맥주 한 잔 마시며 수다 떠는 느낌이다.  사실 현대사회에서 에로스는 넘쳐나지 않던가. 인터넷만 열면 여신, 베이글, 꿀벅지 등이 넘쳐난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유행이란 천쪼가리로 가리는 아슬아슬한 수준이다. 하기사 조선시대에도 여염집 아낙들이 기생패션 따라해서 골치였다 하니, 21세기에 룸살롱 패션을 천지 사방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게 그리 놀랍다고 하긴 어렵다.  이런 소리 더 늘어놨다간 꼴통 소리만 나올 판이니 일단 여기까지. 저자는 이렇게 광범위한 ‘전 사회의 포르노화 현상’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어쩌면 우리가 근본적으로 더 근엄해지고 더 금욕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속이기 위한 방편이 아닐까.” 금욕을 위해 벗는다. “향락의 극단성은 자유의 증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극단적인 충동포기의 증상”일 수 있다.  이제 하나씩 보자. 웰빙시대다. 골라먹는다. “콜라를 마시고 포르노를 보며 패스트푸드를 소비하는 사회의 하층민들은 탐욕적이다. 그들과 거리를 취하기 위해 고상한 중산층은 품위 있는 금욕을 훈련한다.” 그 결과는? “많은 레스토랑이 고객의 허기를 달래주는 데 주안점을 두기보다 빈약한 먹거리를 엄청나게 큰 접시에 멋지게 담아내는 데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음식은 이제 고객의 위보다는 그의 눈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렇게 음식의 향락은 포르노그래피적 행위로 전락한다. 음식을 먹는 사람은 포르노를 소비할 때처럼 탐욕의 대상과 거리를 두며 음식 자체가 아닌 음식의 모사품을 즐긴다. 이것은 소외다.”  여가도 통제돼야 한다. 금연문화? “물론 건강에는 좋다. 당연하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자신의 더럽고 비합리적인 측면을 공개적이고 분위기 좋은 장소에서 느긋하게 즐길 기회를 점점 잃고 있다.” 퇴근 뒤 맥주 한잔의 여유는 사라지고 “요즘엔 목욕과 운동 이외에 드라마가 이런 기능을 맡는다”. 그렇기에 현대인들은 강박증 환자가 되어 간다. 자기 연출, 자기 관리의 시대. 그러니까 여가 시간도 무언가 생산적인 걸 해야 하는 강박의 시간이다.  욕망의 해방구는 오직 일이다. “워커홀릭은 포르노그래피의 쾌락 기계와 매우 유사하다. 포르노그래피에 등장하는 신체들도 쉬지 않고 쾌락의 국민총생산에 최대한 기여하는 고성능 노동자다. 그렇게 본다면 포르노는 오히려 현대 노동 세계에 대한 상징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언제라도 할 수 있고 아무리 지쳐도 무서우리만큼 다시 의욕을 내는 신체들이다.” 일터에서 자아실현에 몰두하는 당신은 포르노 배우다.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까. 저자는 프로이트의 책 ‘문화의 불안’을 불러낸다. 그는 어린 꼬마들이 불을 오줌으로 끄면서 노는 장면을 일러 “힘이 센 남근 상대와의 경쟁”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불은 끄는 게 아니라 보호해야 한다. “불을 보호하는 자만이 그 불을 운반할 수 있고 자기 뜻대로 이용”할 수 있다. 그게 인간 문명의 시작점이다. “불을 끄고 싶은, 오줌을 누고 싶은, 경쟁을 하고 싶은 유아적 욕망의 포기가 비로소 불의 위대한 문화적 정복을 가져왔다.”  불빛을 보자마자 바지춤을 주섬주섬 내리는 게 포르노라면, 에로스는 불을 끄고자 하는 욕망을 억누른 채 그 일렁이는 불빛과 함께 관능적인 춤을 추는 것이다. 일에 매진하느라 술, 담배 끊고 학원에 요가에 다이어트에 비타민제를 달고 살면서도 늘 우울한, 군도처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다시 음미해봐야 할 삶이다. 1만 4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행중에는 객지를 말똥같이 굴러다녀도 떠나온 고향을 꿈에도 잊지 않으려고 배고령(裵高靈), 최상주(崔尙州), 장안동(張安東), 박원산(朴元山), 권영동(權永同)같이 자신의 태생지를 이름으로 부르는 행중도 없지 않았으나, 곽개천만은 소년 시절에 만났던 포수가 지어준 이름으로 행세하였다. 행수와 곽개천이 겨끔내기로 주고받는 말을 행중은 그다지 귀여겨듣지 않고 술추렴에만 이마를 곤두박고 있었다. 귀틀집 풀막 지붕을 핧고 지나는 해질녘의 바람 소리가 울적할수록 뱃속은 더욱 허전하여 숨바꿈으로 술 사발을 돌리고 있었다. 만기가 지어준 새웅밥으로 얼추 끼니를 때운 정한조는 이웃 숫막에 사처 잡은 조기출을 찾아갔다. 그는 아직 선비 시절 때를 벗지 못해서 자리를 잡고 좌정하였다하면 행탁에 넣고 다니는 필사본을 꺼내 읽곤 하였다. 정한조가 쪽문 바라지를 열고 봉노로 들어서자, 그는 끝동이 너덜너덜하게 해진 저고리를 얼른 수습하면서 정한조에게 아랫목을 내주고 한쪽으로 썩 비켜 앉았다. 손위 손아래의 경계를 구분하는 처신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저녁 요기는 하였소?”  “조밥에 소금국으로 얼추 허기증은 모면했습니다. 마땅한 찬반이 없어 쩔쩔매는 늙은 주모를 보다 못한 행중 식구들이 산에 올라가 눈 속을 헤치고 이제 막 움이 돋는 수리취나 참취 같은 나물을 뜯어 삶아 소금물에 찍어먹은 게 고작이었습니다.”  “이번 행로에는 안동, 상주 거쳐서 상무사 임소가 있는 고령까지 갔다가 회정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자면 얼추 달포는 걸리겠습니다. 행중이 모두 동행입니까?”  건어물 행상들은 보통 흥부장에서 발행하여 말래를 거쳐 샛재를 지나고 곧은재 아래에 있는 검은돌 마을이나 현동 저자, 그리고 내성장에서 물화를 처분하고 회정하는데 보통 팔구 일이 걸렸다. 그들 행중에는 울진 포구 근처에 가솔을 거느린 행상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대여섯은 현동저자나 내성에서 회정할 것입니다.”  “고령까지 다녀오자면 이래저래 달포가 지나야 할 텐데, 그때쯤이면 십이령에도 봄빛이 완연하겠지요. 그때가 되면 드릅이나 고비나물 삽주나물이 비석거리에 지천이겠지요. 이번 행보에는 우리 행중과 내성까지 동행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왜? 무슨 일이 있습니까?”  “별일은 없습니다만, 나귀들도 있고 해동머리라서 비알진 길을 건너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우린 먼동 트기 전에 발행하려 하였습니다.”  “동행으로 고개를 넘읍시다.”  그런 제안을 받기는 오랜만이었으나 그럴만한 내막이 없지 않겠기로 그리하자고 승낙을 하였다. 그렇다면 당장 내일 샛재에서 발행하는 상단의 수효가 20여 명을 헤아릴 것이었다.  “초행일 텐데, 내륙의 저잣거리를 섭렵하다보면, 무뢰배들이나 협잡꾼들과 여러 번 마주칠 것입니다. 그들은 여간한 행내기들이 아닙니다. 삭은 바자에 노란 개 주둥이라고 말참견 잘하는 놈에 농간만을 일삼는 놈들을 만나 맹랑한 지경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피가 뜨겁고 세력이 다부지다 한들 그 패거리들을 따돌리기 쉽지 않을 것이니, 눈을 똑바로 뜨고 다녀야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장시의 폐단이 나날이 흉흉해지고 있습니다. 멀리까지 가서 기러기가 되어* 돌아오지 않도록 일행을 닦달하시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기러기가 되어: 손해보지 말라는 뜻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는 줄곧 옷깃을 여미며 걸음을 재촉하였다. 말래 도방 거리에 당도해 보았자, 호들갑스럽게 맞이해줄 호박 갈보가 있다거나 갈롱을 떨며 육허기를 채워줄 동자치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뜨끈뜨끈하게 군불을 지핀 구들장에 허리를 굽고 한잠 늘어지게 자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더라고, 10냥짜리 소금 두 섬을 덧거리로 얻게 된 것도 걸음을 빨리하게 만들었다. 그가 향도하는 행중 식구들은 흉·풍년에 따라서 들쭉날쭉하였지만 대개 4, 50여 명을 헤아렸다. 그 동사하는 식구들을 탈없이 영솔하기 위해선 어떤 경난에도 자신을 지체없이 던지는 희생이 필요했다. 소년 시절부터 행상들에게 익히 보아온 범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시에서 억매흥정으로 뜸베질하는 떠돌이 행상을 부상의 이름으로 엄중하게 징치하고, 신표 없이 부상 행세를 하며 눈먼 돈을 노리는 자들을 찾아내 장시에서 내쫓는 일도 모두 그가 앞장서서 해온 일이었다. 그랬기에 언문밖에 모르는 그가 내성 행상에서 도감의 직책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날씨는 차가워 콧날이 시큰거릴 정도였으나 저녁거미가 내려올 무렵 그는 장대 끝에 내걸린 용수들이 바람에 시달리는 말래 숫막거리에 당도하였다. 거느린 식솔도 없고 정처도 없는 부상들이 묵을 처소라면 조선 팔도 어디서나 숫막뿐이었다. 이토록 스산하게 해질 무렵에는 필경 객회가 쓸쓸하기로, 가랑이 벌리고 앉아 지분이나 다스리는 동자치라도 있다면 먼발치에서 힐끗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심란함을 달랠 수 있으련만, 도방 봉노에는 고린내 등천하는 사내들만 우글거리고 있었다. 마침 문틈으로 조용조용 읊조리는 배고령(裵高靈)의 신세타령이 가만가만 새어나왔다. 주인 주인 나오소 좌사 손님 들어가오 서해안에 사는 사람 서로서로 형제인데 고을 백민끼리 남남 보듯 할 수 있소 산토끼가 죽어가면 여우도 슬퍼하네 금수도 그러한데 한심하다 우리 세상 무거운 등짐 지고 이곳저곳 떠돌면서 아침에는 동녘 하늘 저녁에는 서녘 땅 어쩌다 병이 나면 구완할 이 전혀 없네 사람에게 짓밟히고 텃세한테 괄시 받고 언제나 숨겨두면 까마귀의 밥이 되고 슬프다 우리 인생 이럴 수가 어찌 있소 우리네 산다 한들 몇만 년을 살 것이오 한데 묶어 단결하고 기율로써 다스리면 형도 좋고 아우 좋고 서로서로 도울제면 동네방네 좋을시고 우리 고을 좋을시고…… 문 닫은 봉노에서 살담배들을 어찌나 피워댔는지 매캐한 연기가 샛재 잔허리에 아침 안개 끼듯 하였다. 봉노 한쪽에는 저녁거미 내리는 것을 보고 켜둔 산초 기름등잔이 타고 있었으나 담배 연기 때문에 사람들 얼굴도 분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행수가 들어서자, 호박고누를 두고 있던 축들이나 술푼주를 가운데 놓고 추렴을 하던 동배간들이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두었던 술푼주와 섞박지 그릇을 치우고 윗목으로 썩 비켜 앉았다. 어슥버슥 누웠던 동무들도 벌떡 상반신을 일으키고 앉았다. 봉노 안에는 쉰내와 고린내가 등천하여 코를 들이댈 수 없을 정도였으나 그것을 가지고 고약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무 하나가 벌떡 일어나 시렁에서 목침을 내려 행수에게 건넸다. 내왕 길목에 있는 숫막에는 행수만 차지하는 목침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제법 결기가 있다는 길손도 얼떨결에 행수의 목침을 범접했다간 귀싸대기를 얻어맞는 봉변을 당할 수 있었다. “포주인은 만나보았습니까?” “몇십 년째 염막에 틀어박혀 울 밖 출입도 않는 사람이 어딜 가겠나.” “흥정은 아퀴를 지었습니까?” “소문이 자자한 자린고비가 값을 눅게 잡아줄 리가 없지… 대신 소금 두 섬을 덧거리로 얻었네.” “그만하면 되었습니다.” “임자들 요기는 하였나?” “장떡에 술국으로 얼요기를 하였습니다.” “만기는 어디 갔나?” “아침 선반머리에 곁꾼 둘을 데리고 샛재로 되짚어 갔습니다. 얼추 올 때가 되었는데요……” “그 숫막에 눕혀 두어도 월천댁이 아금받게 구완을 해줄 텐데?” “만기가 의원이 가까운 말래로 업어 와야 하겠다고 아득바득 우기는 통에 만류할 수 없었습니다. 구억터 소동에서 나귀조차 놓아버리는 실수에 미련하게 굴었던 것이 제깐엔 부담이 되었던가 봅니다.” “국에 덴 놈 물 보고 분다더니… 그럴 테지…” “위인이 뉘집 행랑것이나 장물림 같아 보였지만, 얼추 기신을 차리고 나면 그만한 허우대도 찾기 어려워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인즉슨 언중유골이었으나 행수는 귀여겨듣지 않고 슬쩍 넘겼다. “경황중이라 난 간색도 해보지 못했다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머쓱해서 말구멍이 막힐 줄 알았는데, 정한조는 웃지도 않고 되받았다. “어림없는 얘깁니다. 시생과 같이 한둔으로만 지새우며 연명하는 장물림에게 육허기에 시달리는 동자치인들 좋다 하겠습니까.” “갈매기 떼 있는 곳에 고기 떼 있더라고, 사람 많이 모이는 저잣거리에 출입이 잦다 보면 언젠가 육덕 푸짐한 아낙네가 눈에 띄지 않겠나. 마음먹기 달린 게지. 김 날 때 후루룩 들여 마시는 게 임자라지 않던가.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가합한 혼처를 찾아 가솔을 거느리게.” “잘못 덧들였다가 제가 도리어 뒤집어쓰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포주인께서나 저나 동병상련입니다….” “누가 아니라나… 하긴 그뿐만 아닐세. 어제도 질청의 호장이 찾아와서 나를 윽박지르고 돌아갔다네. 그래서 내가 시방 좌불안석이야.” “또 무슨 일입니까?” “어느 놈의 사주를 받았는지… 조만간 염전을 내놓으라고 으름장 놓고 갔네.” “척매(斥賣)를 하라는 것입니까?” “그것들의 속내야 뻔하지 않은가. 방매(放賣)하고 나면, 구전이나 톡톡히 뜯겠다는 수작이겠지. 그들이 노리는 것은 염전뿐만 아닐세. 듣자 하니 고포에서 곽전을 가진 물주들도 질청 것들의 농간으로 고충을 겪고 있다네.” 그로써 어장은 궁가(宮家)나 토호들의 소유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곽전도 진상(進上)과 공상(供上)의 주요 물품인 미역과 김으로 사유화가 진작부터 진행되었다. 미역이 생산되는 터전인 지름 10여 무 정도의 바윗덩이가 200냥이나 400냥의 가격으로 거래되었는데, 거기에 질청의 구실살이들이 끼어들어 농간을 하였다. 특히 곽전인 바위는 매우 정확하게 위치 표기가 가능할 뿐더러 어떤 경우도 변형이 되거나 유실되는 염려가 없는 만큼 가장 확실한 매매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하늘만 쳐다보는 천둥지기 다랑논이나 비탈진 산기슭에 매달리듯 붙어 있는 따비밭 따위 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토지 이상의 가치를 가진 재산으로 인정되었다. 어촌 사회는 중앙의 관부로부터 멀리 떨어진 소외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나라에서 내리는 혜택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가지기 어려웠다. 때문에 무능력한 백성들이 모여 살기에 가장 알맞은 지역이었다. 도망한 노비들이 해안가 염전이나 곽전으로 숨어들어 보잘것없는 삯전으로 가까스로 연명하였다. 그들 역시 거둬들이는 착취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전, 군교는 물론 심지어 관노(官奴), 관예(官隸)까지도 그들 위에 군림하여 가리틀거나 착복을 자행하였다. 수령의 가친(家親) 생신이나 혹은 그들의 빈객을 빙자하여 물품을 강징하고는 그것을 수령에게 상납하는 것이 아니라, 하속 예리들이 빼돌려 착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에 어민들은 저항할 결집력이 없었다. 신분 자체가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패 관리에게 그대로 노출되어 탐학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한조의 입에서도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는 그들의 탐학과 농간을 저지시킬 날이 오겠지요.” “힘에 부치지만,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견뎌야지. 반수와 도감의 훈수만 믿고 있다네.” “농이겠지요.” 겨끔내기로 농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속내로는 벌써 흥정이 무르익고 있었다. 포주인이 농을 부드럽게 주고받으면 흥정은 거의 담판이 난 셈이었다. 속셈으로 점치고 있었듯이 새재 눈밭 사이에 노란 복수초가 얼굴을 내밀더란 봄소식에 포주인 송석호도 한결 마음에 위로를 받아 가벼워졌으니 이번 행보에도 값은 눅게 해서 소금 바리를 넘겨주기로 하였다. 포주인도 등 두드리고 배 문질러 주는 수완이 출중한 행수에게 어느새 희미한 정리를 느꼈다. 정한조가 농담 끝에 불쑥 한마디 던졌다. “가난뱅이 구들장에 물난리가 겹친다더니, 이번 길에는 짐승 한 마리가 절음 나서 내왕길에 경난깨나 겪었습니다. 발새 익은 길이라지만, 십이령 고갯길 10리는 평지 길 20리 맞잡이가 아닙니까… 사정이 그러했으니 이번 파수에는 박하게 그러지 말고 좀 눅게 잡아 주시지요. 원님과 급창의 흥정에도 에누리가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피아말 엉덩이 둘러대듯 잘도 둘러대는구만. 하긴 절음 난 짐승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한고를 겪었다니 숙객*인 임자에게 박절하게 굴 수야 없지.” *숙객: 단골
  • [깔깔깔]

    ●라면 사도신경 구수하사 배고픈 자를 배부르게 하시고 열라면님을 낳아 믿사오되 그 자매품 신라면을 내가 믿사오니, 이는 공장에 의해 태어나시고 찌그러진 냄비에 고난을 받으셔서 끓는 물에 돌아가시고 죽으신 지 3분 만에 수프와 함께 밥상에 환생하시고, 위대하신 저희로써 배고픈 자와 허기진 자를 배부르게 하십니다. 이는 입으로 들어가시며 아래를 통해 나오시는 것을 나는 영원히 믿습니다. 아멘. ●난센스 퀴즈 ▶자기가 말하고도 전혀 모르는 것은? 잠꼬대. ▶허풍쟁이들만 모이는 거리는? 자랑거리.
  • SK-LG 2차전지 특허訴 2라운드서도 SK측 승소

    리튬 2차 전지 분리막 특허를 둘러싸고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사이에 벌어진 법적 분쟁 2라운드에서도 SK이노베이션이 승소했다. 특허법원 제5부는 11일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낸 등록무효심결 취소소송에서 LG화학의 청구를 기각했다. LG화학은 2011년 12월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분리막 특허기술을 도용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특허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이에 맞서 SK이노베이션도 특허심판원에 LG화학의 분리막 특허에 대한 등록무효 심판을 청구했다. 지난해 1심에서 SK이노베이션은 무효 결정을 이끌어냈다. 항소심 성격의 이번 소송을 맡은 재판부도 “LG화학의 분리막 특허는 선행기술과 기술분야가 공통되고 그 구성이나 효과도 동일해 선행기술과 대비할 때 신규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두 사람이 사타구니가 쓰리도록 열불 나게 걸어 당도한 곳은 샛재 턱밑인 비석거리였다. 이름하여 선정비나 공덕비란 것들은 길손들의 내왕이 번다한 길목에 즐비하게 세워두기 마련이었고, 그래서 번화한 곳을 가리켜 비석거리로 불러온 것이었다. 그런 곳에 숫막이 들어서고 간혹 들병이들도 술 단지를 끌어안고 길손들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춘궁기를 앞두고 있는 시절이어서 내왕도 뜸하고, 숫막 경영도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비석거리에는 숫막 세 집이 나란하게 문을 열고 있었고, 허술하기 그지없지만 돌을 쌓아 바람막이를 한 마방도 갖추고 있었다. 마방이 딸린 숫막에는 어림잡아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낙네가 나이가 이팔인 구월이라는 여식과 사팔뜨기에 밤이나 낮이나 눈에 눈곱을 달고 사는 늙은 중노미 한 사람을 데리고 숫막질을 하고 있었는데, 택호가 난데없는 월천댁이었다. 그것은 6, 7년 전에 역병으로 열명길에 오른 남편이 이곳에서 한식경 거리에 있는 말내(두천) 물가에 움집을 짓고 살며 사람을 업어 내를 건네주는 월천꾼이자 길라잡이로 연명했기에 붙여진 택호였다. 월천댁은 여식 하나를 남기고 졸지에 명줄을 놓아버린 아비를 이곳 비석거리 언덕에 묻고 시묘살이를 하더니, 아예 이곳에 숫막을 열어 자리잡고 말았다. 죽은 남편의 무덤을 떠난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으니, 한미한 집 자손이지만 심덕 한 가지는 열녀의 반열에 올려둘 만하였다. 궐녀는 샛재를 오가는 길손들 중에 반명하는 위인이든 상것들이든 층하를 두지 않고 상종하였다. 선비라고 호들갑스럽게 아양 떨며 납죽거리지 않았고, 상것이라고 체면을 깎고 홀대하는 일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 간혹 도포 입고 행세한다는 표객이 궐녀의 숫막에 식주인을 정하고 객고나 풀자 하고 지분거리기도 하였다. “여보게, 술어미. 그냥 두면 곰팡이만 슬고 젓국 냄새만 등천을 한다네. 더러는 뒷물할 일도 생겨야 쓸모가 있는 게 바로 임자 불두덩 아래 붙어 있는 가죽방아가 아닌가. 어떤가? 내 말의 깊은 이치를 알아듣겠지? 임자가 살보시만 질탕하게 해준다면 먼 길 행보, 만리 행역이 싹 가시지 않겠는가. 해우채는 섭섭하지 않게 헤아려줌세.” “길거리에 나와 앉은 본데없는 계집이라고 깔보고, 실없는 언사가 낭자하시구려. 공규를 지키는 하찮은 계집을 상종하여 양반 행티 너무 마시오. 댁이 남행* 부스러기로 벼슬길 맛을 보았는지… 작둣간에서 풀무질이나 하다가 공명첩으로 양반의 직첩을 얻었는지 어느 개 아들놈이 알겠소. 말본새하며 행티 하는 거조가 댁이 겉보기와는 달리 가문 있는 집 자손이 아닌 것은 분명하오. 육허기가 목젖까지 차올랐거든 나보고 지분거리지 말고 봉놋방 외짝문 닫아걸고 혼자 실컷 용두질이나 해서 육허기를 채우시지요. 그러나 해보았자 허망하긴 마찬가질 것이오.” “술어미… 내 잠깐 실언을 했기로서니 면박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집구석이 망하려면 제석 항아리에 말 좆이 들어간다는 말이 있지요. 제가 간구하게 살다보니 댁과 같이 비위짱 사나운 꼴을 보아도 주리 참듯 참고 살아야 하는 신세가 가련하네요.” 그런 꼴같잖은 위인에겐 가차없이 면박을 주지만, 평소에는 범절이 더없이 무던한 아낙네여서 병자를 샛재까지 한달음으로 업고 온 것이었다. 병자를 좁은 툇마루에 내려놓자 파랗게 질린 월천댁은 불당그래를 손에 든 채로 부엌의 널쪽문을 밀치고 엎어질 듯 내달았다. 봉당 쪽마루에 사지를 늘어뜨리고 누운 병자를 이리저리 살피던 월천댁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장독을 입었는지 오장육부를 다쳤는지 알 수 없으나, 우선은 된장밖에 약이 없네요.” 정주간으로 달려가더니 된장을 한 바가지나 떠왔다. 우선 병자를 바로 눕힌 다음 서둘러 된장을 발랐다. 정한조가 말했다. “어성초나 소리쟁이 뿌리 말려둔 것은 없소? 어혈을 풀어주는 데 그만한 갈약*이 없소.” “쑥이나 명아주 말린 것은 있습니다.” “지네 말린 것을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 마시게 하면 그것도 효험이 좋소. 타박상에는 광대나물이 제격이오.” “지네나 광대나물 말린 것은 말내 도방에 당도하면 돌팔이를 불러 구처하시고 우선 된장이나 바릅시다. 된장도 만병통치라 하지 않습니까.” 부러진 다리와 상처에는 쑥을 두드려 발라준 다음, 소나무 껍질을 벗겨 지지대로 싸매주고, 경황중에 끓인 미음을 떠먹였다. 그러나 병자는 미음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다. 병증이 뼈에 사무친 것이었다. 발을 싼 감발을 벗겨보니 이미 오래전부터 동상까지 앓았던 듯 두 발등이 죽장같이 부어올라 있었다. 구완 않고 오래 방치하면 화농되어 썩어들어갈 것이 뻔했다. “어허 이런 야단이 없군.” “한군데도 성한 구석이 없네요. 말린 쑥은 있으니, 싸매주어야 하겠소.” *남행: 음직을 낮추어 부르는 말 *갈약: 상비약
  • [씨줄날줄] 에어 하우스

    조선시대 성종은 겨울에도 봄꽃을 감상하고 여름 채소를 먹었다고 한다. 비결은 뛰어난 온실 농업기술에 있었다. 600년 전에 온돌을 이용해 화초와 채소를 재배한 사실이 놀랍다. 당시 의관 전순의는 산가요록(山家要錄)에서 겨울에 채소를 기르는 동절양채(冬節養菜) 기술을 소개했다. 온실은 진흙과 볏짚을 섞어 지었고, 바닥에 구들장을 깐 다음 그 위에 배양토를 쌓아 씨를 뿌렸다고 한다. 온실 내부는 가마솥에 물을 끓여 온·습도를 맞추고 지붕엔 들기름을 바른 한지를 설치해 채광 효과를 높였다니 예사로운 지혜가 아니다. 성종실록에는 1471년 1월, 성종이 장원서(掌苑署·꽃을 가꾸는 기관) 온실에서 키운 영산홍을 선물받고 “겨울철에 핀 꽃은 인위(人爲)에서 나온 것”이라며 기뻐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4~5월에 꽃을 피우는 영산홍이 한겨울에 나왔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장원서의 온실에서는 오이·토란·아욱·가지·부추·상추 등 20여 가지 채소를 가꿔 겨울에도 임금에게 진상했단다. 조선의 독특한 온실기술은 세계 최초로 알려진 독일보다 140년이나 앞선 것이다. 현대식 온실 비닐하우스는 1950년대 유럽에서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1960년대에 도입됐다. 덕분에 지금은 일반인들도 온갖 화채와 과일을 사시사철 즐길 수 있게 됐다. 요즘엔 폭우·폭풍·폭설 등에 취약한 비닐하우스를 보완한 첨단 특허기술이 쏟아져 전천후 재배가 확산 중이다. 폭설에 대비해 비닐하우스에 온수기와 온풍기를 장착하거나, 지붕에 발열기나 태양열 집열장치를 설치한 비닐하우스 등은 이미 상용화됐다. 최근 충주시가 개발한 에어 그린 하우스(Air Green House)는 눈이 30㎝ 쌓이거나 바람이 초속 30m로 불어도 끄떡없다고 한다. 특수비닐을 내피와 외피로 만들고 그 사이에 바람을 넣어 풍선처럼 외형을 유지하는 원리다. 길이·높이에 상관없이 단동(單棟) 설치가 가능해 높이 10m 정도의 야자수도 재배할 수 있다. 시설비도 3.3㎡당 18만원으로 기존 비닐하우스(25만원)보다 저렴하다. 안전성과 생육환경이 좋아 화채와 과일의 품질을 18% 높이고 생산량은 24% 증대 효과가 있다고 한다. 충주시 농업기술센터 김수복 과장은 “전국 4만 5000㏊의 비닐하우스 가운데 해마다 7%가 폭설·폭풍 피해를 본다”면서 “에어하우스는 재해를 최소화하고 농가 소득을 20%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온실 재배의 종주국답게 에어하우스가 특허를 받고 세계로 나가 진가를 발휘하면 좋겠다. 창조경제 대열에서 첨단 농업기술도 열외일 수는 없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멀고 먼 십이령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멀고 먼 십이령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섶다리 아래로 끊임없이 들려오는 여울물 소리가 그윽하고 오묘했다. 그래서 호음교라 부르기도 하는 빛내골(小光里 혹은 召造院) 계곡 위를 가로지르는 행상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갑신년 2월 하순, 시절은 봄빛이라지만 아직은 여우도 눈물을 짜낼 만큼 맵고 짠 추위는 가실 줄 모른다.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의 벼랑을 정이나 자귀로 찍어 겨우 발 디딜 길을 낸 벼룻길(遷道) 역시 꽁꽁 얼어붙었고, 산기슭에 쌓인 눈도 녹지 않아 계곡을 가르는 여울물 소리 듣기는 이른 시절이었다. 눈밭 속으로 바라보이는 소나무둥치는 붓으로 찍어낸 듯 먹빛이었고, 방울나귀들이 벼룻길을 박차고 걸을 때마다, 눈의 무게로 휘어진 나뭇가지들에서 눈덩이들이 떨어져 벼랑 아래로 흩어졌다. 잎을 모두 떨궈 앙상한 활엽수 가지는 새벽바람에 오들오들 떨고 있다. 남쪽 산등성이에 남아 있는 잔설들을 바라보노라면, 흡사 은갈치떼가 산기슭을 따라 서 있는 소나무 가지들 사이를 요리조리 비켜가며 헤엄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겨울철에는 산속에 떨어진 열매나 갈잎으로 주린 배를 채우는 산양떼가 협곡을 가로질러 계곡으로 내려와 눈 속을 뒤지느라 정신이 없는데, 까마귀떼들은 눈 덮인 나뭇가지 사이를 요리조리 옮겨다니며 산양떼를 보고 지악스럽게 짖고 있었다. 일행은 밤마다 호랑이가 내려와 판자문을 긁는다는 빛내골 마방집에서 노루잠으로 눈을 붙이는 시늉만 하고 축시말(丑時末)에 일어나 채비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나귀들을 선머리에 세우고 발행한 지 한식경 남짓, 이마에 와닿을 듯 가파른 자드락길을 피가 짚신을 적시도록 걸음을 재촉하였다. 열서넛을 헤아리는 상단 일행들은 그래서 숨소리만 거칠 뿐 농을 건네는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일행은 신표를 지닌 부상들이 향도하고 있었지만, 짐바리를 장시까지 져다주고 삯전을 받는 차인꾼들도 섞여 있었다. 울진 해안에 흩어진 염전이나 흥부장에서 내륙의 현동 저잣거리를 거쳐 내성장시까지는 줄잡아 160여 리 상거에 내왕 행보에는 눅게 잡아도 8, 9일이 걸린다. 북에서 남으로 뻗은 백두대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십이령 내왕길에는 관원들의 숙소인 원집도 여럿이었다. 일행의 숙소참이었던 그곳 빛내골 숫막거리는 십이령 중에서도 가장 깊은 산속에 자리잡았다. 관원들이 묵는 원집이 있다지만, 일 년 열두 달에 도임하는 현령 일행이 한두 번 지나다닐 뿐 울적하리만큼 적막한 편이었고, 울진 포구 염전에서 현동과 내성장을 오가는 소금짐들과 고포 미역, 그리고 연안에서 거둔 염장품과 건어물 들이 열두 고개로 이름난 이 산협길을 분주하게 오갈 뿐이다. 십이령 고갯길 여기저기에는 샘수골, 시치재, 말래, 샛재, 저진터, 빛내골과 같은 숫막촌이 여럿이지만, 어느 숫막을 막론하고 해 질 녘에 찾아든 길손들에겐 끼니 값만 받을 뿐 봉놋방은 공짜로 내준다. 그래서 일행들 역시 숫막 울바자 곁에서 써늘하게 식은 새웅밥으로 겨우 허기만 모면하고 봉노에 끼어들어 노루잠으로 때운 것이었다. 외양은 잔망스러워 보잘것없었으나 걸음은 잽싼 네 필의 방울나귀 등에는 꽁꽁 묶어 잡도리한 시겟바리와 무명짐이 거북스럽도록 높이 실려 있다. 나귀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자지러지는 듯한 워낭 소리가 가파른 벼랑길 아래로 따뜻한 봄날 나비떼처럼 흩어졌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걸음을 재촉하고 있으나, 언제나 그랬듯이 길은 예상보다 줄어들지 않았다. 내장조차 얼려놓을 듯 사정없이 옥죄고 드는 된추위가 너무나 혹독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상단 일행은 나귀들과 더불어 쉴 참도 두지 않고 걷고 있었다. 문득 고개를 들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등성이를 타고 몰아치는 삭풍 속으로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갈개치는 눈발이 귓불을 할퀴고 볼따구니를 때릴 때마다 깊고 깊은 오한이 오장육부를 타고 핏속까지 파고들어 뼈마디를 얼어붙게 한다. 고개를 쇄골 깊숙이 박고 시선을 내리깔고 발걸음을 옮겨놓지만, 옷깃 속으로 파고드는 서럽고 매서운 설한풍은 막을 길이 없다. 갈 길은 여명 속에 희뿌옇게 깔려 이수(里數)조차 짐작하기 어려운데, 감발 속에 감춘 발은 언제부턴가 돌덩이처럼 얼어붙었다. 그런데 맨 뒤를 따르는 나귀 등에는 작은 부담농 하나만 달랑 얹혀 있다. 자세히 보니 그 나귀는 걸음을 옮겨놓을 때마다 절뚝거리고 있는 절음난 나귀였다. 등에 짐을 실은 채로 앞장 선 암놈 궁둥이에 올라타려 하다가 앞굽 하나를 돌덩이에 짓찧긴 모양인데, 아주 으스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동트기 전에 서둘러 발행할 만큼 여정이 다급한데 나귀 한 마리가 굽통을 다쳐 일행 모두의 심기가 불편하다. 사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숨죽이고 부지런히 걷는다면, 성황사와 비석거리가 있는 샛재까지 산길 30여 리는 아침 선반머리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이었다. 샛재 들머리에 들어서면 깊은 산속인데도 여름에는 자지러질 정도로 차갑고, 겨울에는 김이 무럭무럭 오를 정도로 뜨거운 샘이 있어, 고갯길을 넘나드는 상단들이 부담을 풀고 요기를 하거나 유숙하고 떠나기도 하였다.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항상성’이라는 덫

    인체가 가진 특성 중에 항상성이라는 게 있습니다. 별 것 아닌 듯하지만 이 항상성이 무너지면 병을 얻거나 사망하게 됩니다. 갑자기 체온이 떨어지거나 치솟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답은 뻔하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인체의 산도(pH)가 변하거나 삼투 기능에 문제가 생겨도 생명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항상성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생체 기능을 매우 좁은 범위 안에서 일정하게 유지하게 하는 특성입니다. 그런데 이 항상성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살을 빼려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살에도 항상성이 작용해 아무리 힘들게 살을 빼도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곤 합니다. 이런 항상성의 장난을 ‘요요현상’이라고 말들 하지요. 물론 빠진 살이 저절로 찌는 법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물은 열량이 없으니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가령 운동으로 200㎉의 열량을 소비했다고 칩시다. 이 정도를 태우려면 30분 이상 몸이 보일러처럼 열을 태워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 정도는 쿠키 한두 조각이면 충당되는 열량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허기를 견디는 눈물겨운 노력이 쿠키 한두 개로 헛수고가 된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그걸 아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운동을 단지 식욕을 돋우는 과정으로 여길 뿐입니다. 전국의 등산로 입구에 즐비한 음식점들이 이를 입증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너무 낙담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항상성은 길들이기에 따라 얼마든지 기준이 바뀌니까요. 끼니를 굶으면 보상심리가 발동해 몸은 다른 것으로 그만큼을 보충하려고 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기면 이번에는 몸이 스스로 항상성을 조절합니다. “바보야, 지금은 그 딴 걸 먹을 때가 아니야”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다이어트 실패는 대부분 자신과 타협하는 데서 비롯되는데, 다이어트가 살을 빼는 게 아니라 자기 몸의 항상성을 더 좋은 쪽으로 조절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고통을 이겨내기가 손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살을 빼려고 하기보다 잘못 길들여진 항상성의 사이클을 바꾼다고 믿고 다시 한번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jeshim@seoul.co.kr
  •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3) 통영 도다리쑥국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3) 통영 도다리쑥국

    파닥파닥. 경남 통영 앞바다에 내려앉은 금속성 볕은 사람을 무장해제시키기에 충분했다. 근육을 푼 흙, 툭툭 터져 오르는 기운들. 남녘은 완연한 봄이다. 이즈막, 납작모자에 옷깃을 닭 벼슬처럼 세우고 통영 거리를 어슬렁거린다는 것은 잠시 묻어놓았던 내면의 풍류와 객기를 끌어내는 것이며 가슴속에 낭만을 채우는 일이다. “도다리 쑥국 한 그릇 먹어야지.”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봄은 통영 도다리쑥국에서부터 시작됐다. 된장 살큼 푼 말간 국물에 통영의 그 푸른 기운처럼 동동 뜬 쑥과 도다리의 흰 살점. 국에서 파란 바다냄새가 난다고 해두자. 딱 두 달이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 한 해를 기다려야 하는 애타는 봄 국. 그래서 통영의 봄은 가게마다 폼 잡고 양반글씨로 써 내려간 ‘입춘대길, 도다리쑥국’이 팔자걸음처럼 내걸리며 활기를 얻는다. 첫새벽. 시락국 집은 밤새 다찌에서 술을 마셨거나 서호시장 4시 경매를 끝낸 사람들이 아린 속을 움켜잡고 몰려드는 ‘해장 성지’다. 서성서성 포장마차에서 콩국과 빼대기로 허기를 때우는 모습도 흔히 만난다. 그 먹먹한 서민의 시간. 도다리쑥국과 멍게 비빔밥을 시켜놓고 객지의 아침을 맞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방 노란 냄비에서는 국물이 새벽잠처럼 끓고 토막 친 도다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국물 속으로 던져진다. 쑥을 넣고 한 소큼 끓여 익숙하게 퍼내는 손놀림이 재봉틀 실 땀처럼 빈틈없다. 앞자락에 김 모락모락 오르는 도다리쑥국이 놓였다. 잠시 눈을 감아본다. 향긋한 해쑥 향이 멀미처럼 올라온다. 쑥을 수저로 지그시 누르고 국물부터 떠먹는다. 입 안 가득 향긋한 초록이 넘실댄다. 봄이다.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는 담박함이 온몸을 편안하게 다스려준다. 여린 쑥은 씹히는가 싶더니 목젖으로 넘어가고 수저로 편편하게 뜬 도다리 살점은 달다. 절로 시원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이래서 통영 사내들은 복이 많다. 종일 술독을 끼고 살아도 속 다스려 줄 해장국이 넘쳐나니까. 두부와 무쳐낸 톳나물이며 통멸치 젓갈, 간이 센 남도 김치가 국에 밀려 그대로 남았다. 30년간 맑은 국을 끓여왔다는 사내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음식을 추억하기에 바쁘다. “도다리쑥국은 말 그대로 도다리와 쑥만 들어가야 합니다. 콩나물이나 묵은지를 헹궈서 넣기도 하는데 재료의 향긋한 맛을 즐기는 것이 봄 밥상이잖아요? 쌀뜨물에 된장을 약간 풀기도 하지만 도다리가 비린 생선이 아닌데다 향긋한 쑥이 들어가니 맨 물에 끓여도 비리지 않아요. 바다와 육지의 오묘한 향이 어우러집니다.” 말마따나 통영 도다리쑥국은 바다를 건너온다. 봄이 이른 욕지도나 한산도, 소매물도 등 섬에서 해쑥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격도 제법 나가서 한 그릇에 1만원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맛을 아는 토박이 미식가들은 “2월 쑥국은 이르다”고 말한다. 도다리 살이 얇기 때문이다. 먼 바다 살집 두터운 도다리로 끓여야 국물 맛이 깊은데 2월 도다리는 뼈째 썰어먹는 ‘세꼬시’용이다. 육지에서 늦은 쑥이 나오는 4월 초순 도다리가 더 뭉근한 맛이 나온다는 얘기다. “살갗이 거칠거칠한 옴도다리가 최고지요. 지금은 비싸기도 하거니와 구하기 힘들어요. 바닥부터 싹 쓸어 올리는 고대구리 배로 조업할 때는 싸고 많았는데, 이 옴도다리로 끓인 쑥국의 깊은 맛은 궁중음식 부럽지 않습니다.” 4월로 가야 하는 이유 중 또 하나는 멍게 때문이다. 이때가 돼야 멍게가 속이 차기 시작하니 도다리쑥국과 더불어 멍게 비빔밥을 맛봐야 통영이 시리게 다가올 테니까. 거개는 멍게 비빔밥이 생물인 줄 알지만 제법 알려진 주방에선 속과 향이 그렁그렁한 ‘그해 5월 것만’ 쓴다. 숙성해놓고 1년을 사용한다. 그러지 않으면 특유의 향이 적다. 갓 건져낸 멍게는 미끌미끌하여 밥과 겉돌아 비벼지지 않는다. 간을 하여 숙성시키면 참기름만 얹어 내도 그 향이 몇 시간 입안에 머문다. 멍게 비빔밥에 유곽을 넣는 곳도 있다. 유곽 얘기가 나오자 커피 집에서 만난 최진혁(62)씨의 눈빛이 촉촉해진다. 어머니 손맛이 떠올랐던가 보다. “유곽은 손이 많이 가서 예로부터 제법 사는 집이 아니면 해먹지 못하던 음식이에요. 개조개를 다져 된장에 물기 없게 볶아 내지만 본래는 개조개 외에도 돼지고기나 소고기, 게살을 함께 썰어 넣었어요. 여기에 방아이파리가 들어가야 합니다. 다시 개조개 뚜껑에 담아 숯불에 구워 낸 것이 정통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해내는 집이 없어요.” 도다리쑥국 나오는 집은 어김없이 졸복국을 낸다. 졸복은 크기가 작아 독을 손질하려면 애통 터지는 생선이다. 한 입 크기다. 하지만 속 달래는 데 미나리 넣고 시원하게 끓여낸 졸복국만한 것이 없지 싶다. 또 통영 대표음식 시락국은 장어머리를 푹 고아 시래기와 된장을 넣고 끓여낸 건강식이다. 방아이파리나 부추를 듬뿍 얹어 먹는다. 500원에서 시작한 시장밥상이었으나 지금은 4000원이다. 밥 말아 뚝딱 비우게 되는데, 혼자라도 외롭지 않은 밥상이다. 서호시장의 시락국 전통은 반찬이 뷔페식이다. 찬 통에서 스스로 덜어 먹는데 가짓수가 10여개는 된다. 그 외에도 어부들의 점심이었던 충무김밥이며 우짜, 꿀빵 등 종일 입에 달고 다닐 만한 ‘한 끼형 간식’이 수두룩하다. 먹을 것 천국이다. 배를 꺼트리기 위해 산책을 나선 길은 곳곳이 ‘꽃 편지’다. 통영의 바람은 너무나 달아서, 동백꽃처럼 붉어서 사랑도 피우게 되었으니 먼저 간 풍류객들 동선을 따라 가는 것도 봄날의 애상이지 싶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귤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을 듯’한 그녀 ‘경련’을 기다린 백석의 시가 핀 충렬사 계단이나 청마 유치환이 ‘정운’의 맘을 얻기 위해 5000여통의 시를 부쳤다는 중앙우체국에서 ‘행복’이라는 시비를 읽어보는 일은 애잔한 즐거움이다. 잠시 스쳐간 사랑의 상처로 동네사람들에게 미움을 사 끝내 명정동에 안기지 못한 박경리의 아리고 쓸쓸한 이야기들이 골목마다 숨어있는 곳이 통영이고 보면 도다리쑥국 한 그릇에도 연정이 묻어난다고 우겨도 될 법하다. 해는 길어지고 도다리는 살찌고 있다. 글· 사진 손현주 음식평론가 marrian@naver.com
  • “밥 달라는데 뭐해!” 망치로 부인 살해한 남편

    “밥 달라는데 뭐해!” 망치로 부인 살해한 남편

    황당한 살인사건이 남미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했다. 허기를 참다 짜증이 난 남편이 끔찍한 방법으로 10대 부인을 살해하고 경찰에 체포됐다. 지방도시 오헤다의 엘단테라는 곳에 살고 있는 남자 에두아르 알렉산데르는 사건 당일 집수리를 했다. 닭장을 뜯어고치고 욕실을 개조하는 공사였다. 욕실에서 뜯어낸 폐기물을 내다 팔아 약간의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공사를 한 오후 7시30분쯤 허기를 느낀 그는 부인에게 저녁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어린 부인(19)은 남편의 말을 무시해버렸다. 4시간 가까이 시간이 지나자 남편은 배고픔에 이성을 잃었다. 공사 일에 사용하다 내려놨던 망치를 들고 부인을 무자비하게 내려쳐 살해했다. 이어 칼을 들고 부인을 여러 번 찔렀다. 세 자녀는 남자가 잔인하게 부인을 살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남자가 이성을 찾은 건 잠시 뒤였다. 그는 “부인이 죽어간다.”고 소리치며 도움을 요청했다. 주변에 살고 있던 아버지가 외침을 듣고 달려가자 남자는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부인을 죽였다.”고 말했다. 남자는 아버지와 함께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부인을 들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결국 부인은 사망했다. 남자는 아버지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아버지는 “아들이 끔찍하게 부인을 죽여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아들이 가끔 부인을 때리기도 했지만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사진=라베르다드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삼성·LG 디스플레이분쟁 이르면 주내 첫 협상

    삼성과 LG의 디스플레이 분쟁 해결을 위한 첫 실무협상이 이르면 이번주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실무협상팀 구성에 관한 세부 사항을 조율해 팀 구성을 마쳤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법무팀장인 김광준 전무를 대표로 하는 실무협상팀을 꾸렸고, LG디스플레이는 기술전략그룹장인 송영권 상무가 협상팀을 이끈다. 삼성디스플레이 김기남 사장과 LG디스플레이 한상범 사장은 지난주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정기총회 자리에서 실무협상을 서두르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앞서 1년 가까이 디스플레이 특허기술을 놓고 갈등을 빚어온 두 회사는 지난달 초 지식경제부의 중재로 사장이 만나 협상으로 분쟁을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윗선의 화해는 이뤄졌지만 오랜 기간 분쟁을 겪었던 탓에 실무진 차원의 소통이 쉽지 않아 ‘아이스브레이킹’(서먹함 없애기)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두 회사는 지난해 분쟁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상호 제기한 4건의 소송 가운데 최근 각각 1건을 최근 자진 취하해 현재 2건의 특허소송이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상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양사가 디스플레이 기술 전반에 대한 크로스라이선스(특허공유)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이영탁 미래와 세상] 재미없는 리더십

    [이영탁 미래와 세상] 재미없는 리더십

    사람 사는 게 무언가, 왜 그토록 치열하게 사는가?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다른 말로 하면 재미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다. 일찍이 공자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재미있고 즐겁게 살아야 하는데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사실 먹고살기가 어려울 때는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가 비교적 쉬웠다. 경제적 여유만 나아져도 상당부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우리가 별나서 그런 게 아니라 세계적인 공통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으면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더 높이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까 이것저것 고려할 게 많아지기 때문이리라. 이런 판에 요즘은 정치까지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 같다. 원래 정치는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데 목적이 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중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등 재미있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다른 후보와의 차별을 위해 ‘준비된 대통령’임을 강조했다. 국민의 뜻을 하늘처럼 받들면서 통합·상생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한번 약속하면 반드시 지키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서 보여주는 모습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다. 일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방식에 문제가 있어서다. 국민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재미가 없고 미덥지 못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얼마 안 있어 많은 사람들이 짜증스러워할지 모른다. 새 정부의 출범을 자세히 보면 우선 타이밍을 못 맞추고 있다. 무슨 일이든 늦지 않게 선제적으로 해야 한다. 상황을 리드해 나가야지 끌려 다녀서는 하수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남의 탓을 한다면 무책임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둘째, 일의 내용도 별로다. 부분과 전체의 조화가 부족하다. 따라서 배려와 균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개별 사안도 준비 부족이 많다. 셋째, 일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 지금은 소수가 밀실에 앉아 일하는 시대가 아니다. 리더가 혼자서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시대는 더욱 아니다. 여러 사람의 중지를 모아 분야별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넷째, 더 큰 문제는 소통의 부족이다. 양방향 무제한 소통시대에 일방 소통으로는 안 된다. 답은 밖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이 열어야 한다. 여건 변화에 따라 기왕의 주장을 바꾸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70 인생에 생각도 70번이나 바뀐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처럼 일하다 보면 힘은 힘대로 들고 평가는 별로일 수밖에 없다. 밀실에서 소수가 모여 머리를 짜내서는 좋은 답을 구하기 어렵다. 일의 진도도 잘 나가지 않는다. 더구나 장고 끝에 악수가 나올 수도 있다. 더 나쁜 것은 아랫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하긴 하겠지만 책임지고 일하지 않는다. 지시 받아 하는 일은 열정을 쏟지 않고 건성으로 하기 마련이다. 같은 일을 해도 왜 이렇게 재미없게 하는지 모르겠다. 실망스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다가도 부동의 고집을 보면 짜증이 난다. 나아질 기미도 없다. 대통령 본인도 벌써 표정이 굳어지고 여유가 없어 보인다. 더 푸근한 세상, 더 재미있는 세상을 기대했는데 일찌감치 기대를 접어야 하나. 세상을 움직이는 파워가 소수의 권력 엘리트에서 다수의 개개인으로 옮겨간다는 말이 귀를 울린다. 그렇겠구나! 지도자가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이 모두 우수한 지도자라는 것을 모르는 한 그렇게 되겠구나. 머지않아 직접민주주의가 온다는 말도 머리를 스친다. 그렇겠구나! 200년 대의민주주의가 이제 곧 종말을 고하게 된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구나. 많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낌새도 못 차리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고 안타깝다. 그리고 재미가 없다.
  • 먹이사슬 순환 틀 깨는 오만함 삐뚫어진 채식에 섬뜩한 독설

    “채식은 ‘먹고 먹히는’ 생태계 순환고리를 무시한 오만한 이념이며, 콜레스테롤과 지방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하는 위험한 식단이고, 곡물 기업이 배후를 조종하는 ‘친환경 사기극’이다.” 급진적 환경운동가 리어 키스가 쓴 ‘채식의 배신’(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이 내세운 주장이다. 저자는 20년간 우유조차 마시지 않는 비건(vegan·엄격한 채식주의자) 생활을 해 왔다. 하지만 비건 식사를 한 지 3개월 만에 생리가 멈췄고, 2년 사이 건강을 잃었다. 채식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에 배신감을 느낀 그는 참치캔을 땄고, 잡식으로 돌아서자마자 “살아 있는 느낌”을 되찾는다. 저자는 살육으로 육신의 허기를 더는 사탄의 유혹에서 벗어나 저지방의 낙원으로 드는 채식주의가 되레 악마의 식단이라며 돌직구를 던진다. 대표적인 예가 건강식품으로 알려진 콩이다. 저자에게 콩이란 “산업쓰레기에 불과”하다. 콩 속 아이소플라본은 자궁 내막증 발병 확률을 높이고, 1주일에 2회 이상 두부를 먹은 사람은 두뇌노화가 가속화되며,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을 확률이 2배 이상 높아진다. 어린이들에겐 성조숙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책은 전반적으로 채식주의란 거대 담론의 허구를 파헤치는 데 주력한다. 중간중간 채식주의의 도덕적 바탕, 예컨대 엄마가 있고 생명이 있는 건 먹지 않는다는 신념 같은 지엽적인 문제도 건드린다. 채식주의는 왜 생겼을까. 인간의 오만함 때문이다. 먹이사슬의 맨 위에 인간이 있다는 발상, 인간이 육식을 그만두면 세상은 뭇 생명들로 넘쳐날 것이란 자기중심적 판단 때문이다. 먹이사슬은 선이 아닌 원이다. 피식자가 곧 포식자다. 그런데 그 순환계에서 사람만 쏙 빠지겠단다. 채식주의자들로서는 생명이 그리는 순환의 원을 깨고 싶겠지만, 거기서 빠져나갈 수는 없다. 뿌리가 달렸든, 깃털이 달렸든, 맨살로 오가든, 지구 위 생물 모두는 이미 그 원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거푸 강조하는 건 채식주의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세상을 구하려 시작한 채식주의자들의 시도는 좋았으나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들에 너무 무지한 게 잘못됐다는 거다. 이를 꾸짖는 저자의 독설은 섬뜩하다. “당신이 먹는 곡물과 콩은 유령 고기다. 그 음식에는 사라진 동물 종 전체가 뼛속까지 들어 있다.” 그렇다면 답은 뭔가. 생명은 채식으로만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만 5000원.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111세 피아니스트의 굴곡진 인생악보

    세계 최고령 피아니스트가 누구인지 아시나요. 알리스 헤르츠좀머는 1903년 11월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공한 상공인이었고 교육을 많이 받은 어머니는 유명한 화가 및 작가들과 교류했다. 그중에는 구스타프 말러, 라이너 마리아 릴케,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인물들도 있었다. 알리스는 2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나 부유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브람스, 리스트, 쇼팽 등 불후의 거장들을 사사한 제자들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콘서트를 여러 번 열었고 1931년 사업가이자 음악가인 레오폴트 좀머와 결혼해 아들을 얻었다. 1943년 7월 알리스와 남편, 아들 라파엘은 나치에 의해 테레진 수용소로 보내진다. 테레진은 대규모 수용소로 아우슈비츠 등 동유럽 전역에 있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장으로 가는 환승역이었다. 재능 있는 예술가들과 지성인들이 허기와 질병, 고문에 시달리며 죽어갔고 이곳에 수용된 유대인 15만 6000명 중 1만 7505명만 살아남았다. 테레진에 억류되는 동안 알리스는 동료 수감자들을 위해 100회 이상 연주했으며 어린이들에게 비밀리에 피아노 교습을 했다. 어머니와 남편, 친구들은 나치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알리스와 아들만 살아남아 1949년 이스라엘로 이주한다. 46세에 히브리어를 배우고 새 삶을 개척하면서 하우스 콘서트를 열곤 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와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레너드 번스타인, 아이작 스턴 등 걸출한 음악가들이 참석했다. 한 세기 이상 극한 고통을 겪으며 살았지만 111세가 된 지금도 여전히 바흐, 베토벤, 쇼팽, 슈베르트의 악보를 보며 매일 세 시간씩 연주를 하면서 지나온 자신의 처절했던 삶을 반추한다. 신간 ‘백년의 지혜’(캐롤라인 스토신 지음, 공경희 옮김, 민음인 펴냄)는 세계 최고령 피아니스트이자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인 알리스 헤르츠좀머의 실화를 다룬 책이다. 20세기와 21세기를 살면서 세월과 국가의 경계를 넘고 죽음을 초월한 한 여성의 서사적 여정을 다루고 있다. 음악적 재능으로 테레진 수용소의 동료 수용자들을 위로했던 것처럼, 여전히 피아니스트이자 교사로서 수많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오랜 인터뷰로 얻어낸 알리스의 회고담에서 출발한 이 책은 그가 살아오면서 체득한 인생의 지혜와 충고들이 담겨 있다. 100세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 동영상은 1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 수용소의 삶 등 그가 육성으로 전하는 내용들이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1만 3000원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데스크 시각] 차라리 1억원씩 현금으로 줘라/이동구 메트로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차라리 1억원씩 현금으로 줘라/이동구 메트로부 부장급

    가끔 엉뚱한 상상을 즐긴다. 답답함이나 안타까운 심정이 들 때면 ‘기발한 아이디어’랍시고 실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는 엉뚱한 상상들을 지인들에게 내뱉는다. 물론 지금까지 나의 상상력에 동조해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최근 자치단체들이 부족한 복지예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우리나라에서는 빈곤층이 되면 쉽게 벗어나지 못해 빈곤이 고착화될 우려가 높다’는 보고서를 보면서 다시 한번 엉뚱한 상상력이 발동했다. ‘왜 우리는 한 해 100조원이 넘는 복지예산을 사용하는데도 빈곤층이 줄어들지 않을까’, ‘차라리 복지예산을 각종 지원사업으로 복잡하게 사용하지 말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목돈을 나눠주면 오히려 효과가 커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지금처럼 월 몇십만원 정도의 정부 지원이 아니라 한 가구당 1억원 정도의 거액을 줘야 어려운 이웃들이 자립하는 데 발판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터무니없는 제안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 번쯤은 이런 발상의 전환도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름대로의 제안 이유를 풀어 보면 동조자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올해는 103조원이 복지예산으로 풀린다. 이를 1억원씩 나누면 무려 100만 다발이 넘는다. 한 가구에 1억원씩 나누어 준다고 해도 100만 가구 이상이 혜택을 볼 수 있다. 여기에다 연말 또는 사회적인 이슈가 생길 때마다 불우이웃을 돕자며 각종 성금이 모아진다. 또 기업들과 종교단체들도 불우이웃을 위해 연간 수백억원씩 기부한다. 그런데 정부 수립 이후 매년 이런 엄청난 돈이 사용됐는데도 왜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어려운 이웃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걸까. 물론 복지예산의 사용 범위가 워낙 광범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사용해도 눈에 확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한편으로는 그 많은 복지예산이 인건비를 비롯해 각종 복지관 건립 등 복지인프라 확충에만 집중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사업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업들에 사용된 복지예산은 따져 보면 그 사업을 떠맡은 건설업자, 각종 현물 공급업자들의 수중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진짜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인데, 서비스와 허기를 채우기에 급급한 양식만이 제공됐을 뿐이다. 어려운 정책을 만든다고 고민하지 말고 도움이 절실한 가정의 우선순위만 제대로 정해서 현금 지원을 늘린다면, 시쳇말로 그것이 ‘100% 리얼 복지 정책’이 아닐까. 1억원이 안 되면 한 가구에 5000만원씩 나눠준다고 해도 지금보다는 훨씬 복지정책의 효과가 크지 않을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우리나라 전체 가구 평균 소득의 50% 수준도 안 되는 가구를 빈곤층이라 규정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5637가구를 대상으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 추적·분석한 결과, 빈곤 탈출률이 2005~2006년 35.4%에서 2008~2009년 31.3%로 계속 떨어졌다. 보고서는 “이들의 빈곤 탈출을 위해 장기적인 소득 이동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사다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려운 가구에 1억원씩 지원해 주자는 생뚱맞은 생각이 어쩌면 ‘가장 확실한 사다리’가 되지 않을까? yidonggu@seoul.co.kr
  • 14세에 日 강제노역 끌려가… 70년만에 초교 졸업장 품다

    14세에 日 강제노역 끌려가… 70년만에 초교 졸업장 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동원돼 노역에 시달린 피해 할머니가 70여년 만에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는다. 18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전남 화순 능주초등학교가 19일 열리는 ‘제100회 졸업식’에서 졸업생인 김재림(83) 할머니에게 졸업장을 재발급할 예정이다. 광주에 사는 김 할머니는 “돈도 벌고 공부할 수 있다”는 친척 언니의 말을 믿고 1944년 5월쯤 일본행에 나섰다. 그러나 김 할머니는 군수업체 미쓰비시중공업이 운영하는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 끌려가 어린 나이(14세)에 허기에 지친 몸으로 혹독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또 해방 후 고국에 돌아와서는 “일본군 위안부가 아니었느냐”는 편견 속에 남모를 정신적 고통까지 겪었다. 자신이 학교를 졸업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의 사연을 접한 시민모임은 지난달 11일 사실 확인차 김 할머니와 함께 모교인 능주초등학교를 방문했다. 학교 측과 시민모임 관계자들은 이날 문서고에 있는 일제시대 학적부를 뒤지다가 1944년 3월 31회 졸업생 명단에서 창씨개명된 김 할머니의 이름을 확인했다. 능주초등학교는 올해로 ‘100회’ 졸업생을 배출하는 뜻깊은 해를 맞아 이번 졸업식에서 김 할머니에게 졸업장을 줘 할머니의 고단한 삶에 위로와 용기를 전하기로 했다. 졸업식에는 김희용·김선호 시민모임 공동대표를 비롯해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등도 참석한다. 졸업장을 다시 받게 된 김 할머니는 “고향 역을 지나갈 때 어머니한테 말씀도 제대로 못 드리고 간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라”며 “오늘같이 기쁜 날이 없다. 해방 68년 만에 졸업식에 다시 선다고 하니 새 신부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렌다”고 말했다. 한편 시민모임은 일제강점기 학교 재학 중 어린 나이에 일제에 강제동원돼 학기를 마치지 못한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수(전화 062-365-0815)해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전남 나주초등학교도 앞서 6학년 재학 중 1944년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동원된 양금덕 할머니 등 2명의 강제 동원 위안부 피해자에게 2008년 5월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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