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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공대 뺨친 아파트 인질범

    특공대 뺨친 아파트 인질범

    “방위병도 레펠 훈련하나?” 지난달 28일 새벽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15층짜리 아파트 옥상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밧줄을 타고 14층 내연녀의 집으로 뛰어든 김모(44)씨는 단기사병(방위병) 출신이었다. 밧줄에 의지한 채 창문을 깨고 들어가 내연녀의 가족 7명을 인질로 삼은 김씨와 4시간 남짓 대치하던 경찰은 대담하고 전문적인 침입 과정에 놀라 “혹시 군 특수부대나 경찰특공대 출신이 아니냐.”며 잔뜩 긴장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김씨는 대구 50사단에서 근무한 단기사병 출신으로 밝혀져 경찰을 허탈하게 했다. 김씨는 날이 채 밝지도 않은 새벽에 일반인이라면 내려만 봐도 다리가 후들거릴 50m 높이의 옥상에서 밧줄이 풀리지 않도록 매듭을 조정하고,3∼4m가량 허공을 내려갔다. 사건 직후 도착한 경찰특공대가 김씨를 제압하기 위해 택한 것과 똑같은 경로였다. 당시 경찰은 “용의자가 체격이 단단하고 특수 훈련을 받은 것 같아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체포작전을 펴는 데 어느 때보다 신경을 썼다. 붙잡힌 뒤 김씨는 “특수훈련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경찰의 물음에 “평소 고층건물 외벽에서 유리창을 닦거나 페인트를 칠하는 인부들을 유심히 관찰했다.”고 뜻밖의 대답을 했다. 김씨는 범행을 앞두고 지난달 25일 역촌동 집 근처 철물점에서 30m짜리 밧줄을 구입해 이웃한 고양시 서오릉으로 가서 나무에 올라 하강 연습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틈날 때마다 매듭이 풀리지 않게 단단히 묶는 방법을 따로 연구하기도 했다. 김씨는 “평소라면 아파트 옥상에 올라 무서웠겠지만 당시에는 ‘욱’하는 감정 때문에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특공대는 고사하고 일반병도 아닌 방위병 출신이란 얘기에 어이가 없었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경찰은 1일 김씨에 대해 살인예비와 방화미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겨울 그리고 봄,또…/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설 연휴인지라 일주일가량 산중 암자로 가서 여유있는 시간을 보냈다. 근데 도심에 살다가 오랜만에 산으로 가니 정말 추웠다. 지난번에 내린 눈은 아직도 얼어 있는데 그 위로 다시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게다가 상수도마저 꽁꽁 얼어붙어 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추위를 무릅쓰고 털모자를 눌러쓰고서 잰걸음으로 밖으로 나가 물을 바가지로 통에 퍼담아 와서 밥을 해 먹고 세수를 해야 했다. 물을 길어다 먹고 또 데워서 발을 씻으니 별로 산골도 아닌 이곳이 진짜 문명의 혜택이 전혀 없는 오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산속으로 오니 진짜 겨울인 줄 알겠다. 이래서 옛사람들이 참으로 봄을 기다렸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섣달그믐이라 마당의 비질은 평상시와 반대로 했다. 즉 대문 쪽에서 집 안쪽으로 쓸면서 들어왔다. 복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바람을 행동으로 표현한 옛어른의 지혜를 본받기 위함이다. 그러고 나서 방과 부엌·헛간 등 집안 곳곳에 불을 밝혔다. 한 해가 바뀌어 가는 것을 지켜본다는 수세(守歲)의 세시풍습을 이어가기 위한, 어찌 보면 또 다른 역사적인(?) 계승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경청 선사가 말한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복을 여니 만물 모두가 새롭다.’는 덕담으로 한 해를 열고 싶은 내 개인적인 기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절집 말고는 음력을 별로 사용하지도 않는다. 양력으로 보신각 제야 종소리를 기억하고 신년 해맞이로 새해 다짐을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까치설날’이다. 진짜 ‘우리우리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루인 것이다. 하지만 달력은 이미 한 장이 넘어가 버린 상태다. 현실과 이상은 또 이렇게 다른 것이다. 어쨌거나 봄을 기다리긴 하지만 겨울이 없다면 봄의 귀함을 제대로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보리는 얼리는 춘화(春化) 처리를 하지 않으면 싹이 돋지 않는다고 한다. 얼리는 것을 춘화라고 하니 그것도 참으로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이름을 붙여 놓은 것 같다. 사실 추위라고 하는 것은 더위가 모자라는 것일 뿐이다. 어둠은 밝음이 부족한 것일 뿐이다. 고구마는 가을에 거두어 들이면 열매이지만 봄이 되어 밭으로 나가게 되면 씨앗이 된다. 열매이면서 동시에 씨앗인 것이다. 그래서 씨앗 속에 열매가 포함돼 있고 열매 속에 이미 또 씨앗이 들어 있는 것이다. 겨울 속에는 봄이 내재돼 있고 어둠 속에는 이미 밝음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서로가 서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지 각각 분리돼 존재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래서 설날이 지나가면 평범한 사람들도 모두가 겨울 속에서 봄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생활 속에서는 시작의 약속된 출발점은 있어야 한다. 공자님은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있고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있다.’고 했다. 입춘도 거의 설날과 절기가 비슷하다. 모두가 시작의 의미다.‘입춘대길’이라는 큼직한 글씨를 대문에 써붙이는 것도 한 해의 시작을 잘해 보리라는 스스로의 다짐을 밖으로 나타내는 또 다른 삶의 지혜라 할 것이다. 이제 봄이다. 모진 겨울이 길다고는 하지만 때가 되면 부드러운 봄기운에 밀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봄 역시 항상 봄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당나라 때 지현후각 선사는 이런 시를 남겼나 보다. 꽃 피니 가지 가득 붉은색이요 꽃 지니 가지마다 빈허공이네. 꽃 한송이 가지 끝에 남아 있지만 내일이면 바람 따라 어디론지 가리라. 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 마구잡이 운동 ‘무릎 관절염’ 부른다

    마구잡이 운동 ‘무릎 관절염’ 부른다

    무릎 관절염 환자 수가 감기환자를 앞질렀다. 최근의 웰빙 붐에 편승한 무분별한 운동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2003 건강보험 심사평가통계연보’에 따르면 그 해 무릎관절 이상으로 병원을 찾은 50대 이상의 환자는 모두 58만 9000여명으로 2000년의 3.1배나 됐으며, 같은 기간 감기로 병원을 찾은 58만 4000여 명보다 많았다. 우리나라 55세 이상 노인의 80%가 가졌다는 무릎 퇴행성관절염, 예방·치료법을 살핀다. ●체중 1㎏ 늘면 무릎 3㎏ 부담 무릎관절에 감당할 수 없는 체중이 실리면 관절뼈를 감싸고 있는 연골이 빨라 닳을 수밖에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03년 건강검진 수검자 중 체질량지수(BMI)가 23을 넘는 과체중자가 전체의 56.2%나 됐으며,50∼60대의 비만율은 65.6%나 됐다. BMI가 23을 넘으면 질병 위험도가 높은 ‘위험체질’에 해당하며,25가 넘으면 ‘비만 1단계’로 분류한다. 지난달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의 체형조사에서도 50대에 BMI 25 이상인 비만자가 51%나 됐다. 이런 통계는 50대 이후 무릎 관절염 환자 급증과 무관하지 않다. 통상 체중과 무릎이 받은 압력비는 약 1:3. 즉, 체중 1㎏이 늘면 무릎의 부담은 3㎏가 된다. 특히 비만이 진행되면 무릎의 안정을 꾀하려고 체중을 무릎 안쪽에 싣게 되는데 이때 무릎에 과체중이 얹히면서 연골이 빠르게 닳아 ○자 다리가 되며, 이 상태가 되면 정상보다 연골 마모가 훨씬 빠르다. ●운동 전혀 안해도 무릎 빨리 닳아 운동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며 대드는 마구잡이식 운동이 무릎관절질환 증가에 한 몫하고 있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과도한 운동은 무릎 관절을 혹사시켜 연골 마모 등 퇴행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운동을 하지 않는 것도 빠른 퇴행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맨손체조나 산책 등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는 가벼운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게 좋다. 산책·등산 때는 바닥이 너무 얇은 신발보다 두툼하면서 쿠션이 좋은 걸 신어 관절 충격을 줄여야 한다. 다른 운동을 하려면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게 현명하다. 관절에 무리를 주는 자세를 피해야 한다. 무릎꿇고 걸레질하기, 쪼그려 앉아 빨래하기 등은 쉽게 생각하는 가사활동이지만 무릎을 많이 굽혀 관절 마모도가 높다. 특히 걸레질을 할 때는 체중의 6배에 해당되는 무게가 무릎관절에 실리므로 막대걸레 등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낮은 곳의 물건을 꺼내거나 들 때도 무릎을 굽힌 자세보다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꺼내며, 이를 옮길 때는 밀거나 바퀴달린 상자를 이용하도록 한다. 장시간 쪼그려 앉았다 일어서면 일시적인 무릎 통증이 느껴지는데 이는 연골에 윤활액이 공급되지 못해 뻣뻣해진 것으로, 이 상태에서 갑자기 일어서면 연골이 손상되므로 가능한 천천히 일어나야 한다. 음주는 관절 통증을 심하게 하므로 피하는 게 좋으며, 부득이 술을 마신 경우에는 다음날 일찍 미지근한 물로 목욕을 하면 통증이 준다. 관절연골 노화를 지연시키기 위해서 항산화영양소인 비타민A와 베타카로틴이 많은 시금치 당근 등의 녹황색채소와 감귤 등 비타민C가 풍부한 과일이 좋다. ●걸레질 금물… 서서 막대걸레 이용해야 심하지 않은 관절염은 진통소염제나 근육이완제 등의 약물로 완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통증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라면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관절 내에 염증이나 찌꺼기가 있어 무릎 움직임이 매끄럽지 않는 경우라면 간단한 수술로 깨끗하게 씻어주면 된다. 연골이 닳아 얇아진 경우 간단한 수술로 이 부위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연골의 재생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보다 증상이 더 심각하다면 손상된 관절 부위를 제거, 새 관절로 바꾸는 인공관절 수술을 할 수도 있다(그림). 물론 최후의 선택으로, 인공관절의 수명은 대략 20년 안팎이다. ■ 도움말 척추관절전문 나누리병원 정형외과 윤재영 과장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무릎관절염 예방체조 1. 무릎 차기 누워서 허공을 향해 발바닥을 찬다. 한쪽 무릎을 편안하게 가슴 쪽으로 가져온 뒤 발바닥이 천장을 향하도록 무릎을 쭉 펴고 다리를 뻗는다. 양발을 번갈아 한다. 2. 무릎 들기 등을 곧게 펴고 앉아 한쪽 무릎이 곧게 펴질 때까지 위로 든다. 천천히 내린 다음 이번에는 반대쪽 다리로 반복한다. 다리를 뻗을 때 뒤쪽 허벅지 근육에 긴장을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무릎을 곧게 편다. 3. 다리 올리기 무릎을 구부리지 말고 한쪽씩 45도로 들어올려 멈춘다. 매일 하면 한 달쯤 후 효과가 나타난다. 4. 가슴까지 무릎 굽히기 편안하게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다음 가슴 쪽으로 무릎을 최대한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 곳곳에 ‘죽음의 덫’… 야생동물 ‘살육’ 기승

    곳곳에 ‘죽음의 덫’… 야생동물 ‘살육’ 기승

    #1 지난해 12월 경북 봉화군 태백산맥 자락의 산속. 생후 4년 된 산양(천연기념물 217호, 환경부지정 1급 멸종위기종)은 사정없이 내리치는 몽둥이질에 속수무책이었다. 밀렵꾼 박모(63)씨가 쳐놓은 강력한 덫은 도망도, 반항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숨져간 산양은 입을거리로 쓰기 위해 가죽이 벗겨진 뒤 사람들의 밥상에 올라감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산양은 우리나라에 겨우 수백마리 남아 있을 뿐이다. #2 사진작가 최협(28·돌베개출판사)씨는 두 달 전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 들판을 찾았다. 독수리가 허공 높은 곳에서 빙빙 맴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선 쇠기러기 수십마리가 흰 거품을 문 채 쓰러져 있었다. 사체를 부검하니, 식도엔 갓 삼켜진 듯한 볍씨가 잔뜩 들어있다. 누군가가 볍씨에 독극물을 묻혀 뿌려놓은 것이다. 최씨는 이런 경험이 “흔한 편”이라고 한다. ●“웬만한 산은 야생동물의 지뢰밭” 야생동물의 겨울나기는 힘겹다. 먹잇감이 적어서도 그렇지만 가장 큰 위협은 사람들의 밀렵이다. 동네 야산이든, 깊은 산속이든 올무나 덫·그물·총포·독극물 등 다양한 형태의 밀렵도구들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견된다. 그래서 “야생동물에게 웬만한 산이나 들은 모두 ‘지뢰밭’”(야생동물보호협회 최인봉 부산·경남지회장)이라고 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적발된 밀렵행위는 653건(971명), 밀렵·밀거래된 야생동물의 숫자는 957마리에 이른다. 멧돼지·고라니·너구리 등 포유류와 각종 조류, 양서·파충류 등이 망라돼 있다. 예년보다 다소 줄긴 했지만 밀렵행위 자체가 감소한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밀렵·밀거래가 더욱 은밀해져 적발되는 경우가 줄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지난해 수거한 올무 등 불법엽구(2만 449개)가 예년보다 훨씬 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한번 밀렵도구에 걸려든 야생동물은 용케 구조되더라도 대부분 생사의 고비를 또 한번 넘어야 한다. 덫이나 올무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치다 다리가 부러지거나 살이 어 들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겁이 많고 예민한 고라니 등 초식동물들은 치료하는 과정에서 충격의 여파로 죽기도 한다.”(한국야생동물구조센터 조광일 원장)는 것이다. 수술에 성공해 살아남아도 이전과 같은 야생의 삶을 기대할 순 없다. 한 쪽 다리가 없어진 불구로는 아무래도 자연 도태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무조건 방사하기는 어려운 실정”(조 원장)이라고 한다. ●年 시장규모 1500억… 주로 건강원 통해 거래 밀렵이 성행하는 건 물론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수요는 야생동물의 ‘어느 부위가, 몸에 어떻게 좋다.’는 식의 ‘보신(補身)문화’에서 대부분 비롯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의 밀렵꾼은 1만 6000여명, 연간 시장규모는 1500억원으로 추산될 정도다. 최인봉 지회장은 “밀렵꾼들을 다수 거느리고 있는 건강원을 통해 주로 거래가 이뤄지는데 멧돼지 쓸개와 고기가 각각 50만∼150만원씩, 오소리는 100만원, 고라니는 4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밀렵행위에 대한 단호한 처벌이 뒤따르지 않는 것도 밀렵을 부추기는 요인이다.“대부분 200만원 안팎의 벌금으로 끝나기 때문에 두 번만 밀렵해도 본전을 뽑는 구조가 문제”(야생동물보호협회 최성규 사무국장)라는 지적이다. 야생동물도 삶을 부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대응 능력을 높여가고 있다. 멧돼지처럼 후각이 예민한 야생동물은 올무에 쉬 걸려들지 않을 정도다.“철사로 만든 올무에 녹이 슬거나 비에 젖어 있을 경우 냄새를 맡고 함정을 피해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은 뾰족한 수가 되지 못한다. 언제나 한 술 더 뜨는 인간을 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최 사무국장은 “요즘은 고무로 코팅한 올무나 스프링올무가 나오는 등 밀렵도구가 더 ‘발전’했고, 밀렵단속이 심해지자 등산객으로 가장해 도구를 등산가방에 넣고 다니는 등 갈수록 수법이 교묘해지고 있다.”며 혀를 찼다. 밀렵은 사람에 의한 ‘야생동물 잔혹사’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야생동·식물보호법 문답풀이 지난해 2월 제정돼 1년간의 경과기간을 거친 뒤 오는 10일부터 발효되는 야생동·식물보호법의 주요 내용을 문답으로 간추린다. ●먹는자 처벌 야생동물은 어떤 경우든 먹어선 안되나. -야생동물 32종(표 참조)만 해당한다. 합법적으로 허가를 받아 사육된 동물은 대상이 아니며, 밀렵되거나 밀수된 야생동물을 먹을 때만 처벌을 받는다. 밀렵 여부를 몰랐을 때는 어떻게 되나. -밀렵된 사실을 알면서 먹을 경우에만 처벌한다. 그러나 자라 등 인공증식되는 일부 종(種)을 제외한 나머지 동물의 밀렵 여부는 상식적으로 판단이 가능하다. 식품위생법상 음식점에서 판매가 불가능한 데다, 고가로 은밀히 거래되기 때문이다. 해를 끼치는 멧돼지나 고라니를 잡아서 먹을 경우는. -농작물·과수원에 해를 끼치는 경우 유해동물 포획허가를 받은 뒤 잡아먹는 것은 가능하다. 수렵장에서 수렵허가를 받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것을 스스로 처분해야 하지, 판매·유통시켜서는 안된다. ●포획 금지 모든 종류의 야생동물 포획이 금지되나. -포유류와 조류는 모든 종류가, 양서·파충류는 32종(표 참조)만 금지된다. 국내에 43종의 양서·파충류가 있는데 이 가운데 비교적 흔하거나 보신용으로 쓰이지 않는 11종은 대상이 아니다. 살모사 등 독사도 못 잡나.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므로 이유없이 포획할 수 없다. 그러나 인체에 위해를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는 허가없이 잡아도 된다. 학교에서 개구리 해부를 위해 잡는 것도 금지되나. -학술연구 목적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사육 개구리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장애·비장애 벽 허물었어요”

    “피 고 하 디 아 나?” “난 괜찮아. 네가 힘들지 뭐.” “아 냐 저 마 재 미 어.” 12일 오후 5시. 장애인 1일 체험을 마치며 휠체어를 탄 진권(19·서울 삼육학교 2년)군이 휠체어 손잡이를 꼭 쥔 친구 박인하(19·서울 잠실동)군의 얼굴을 올려보며 환하게 웃었다. 휠체어를 든 채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렸지만 인하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하철 타기 ‘전쟁’ 장애인 1일투어 행사는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3박4일 동안 60여명의 장애·비장애 학생들이 숙식을 함께하며 마음의 문을 여는 ‘제1회 전국고교생장애인리더대회’ 프로그램의 하나다. 목적지는 롯데월드, 서울랜드, 대학로, 명동, 일산호수공원 등 평소 이들이 가고 싶었던 곳. 단, 어른의 도움 없이 서로 힘을 합쳐 찾아가야 한다. 권이 등 지체장애 1급 장애 학생 3명 등 12명으로 구성된 명동팀이 숙소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을 나선 것은 오전 9시20분. 승·하차가 어려운 버스를 타는 것은 아예 포기했다. 겨울바람이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장애 학생들은 또래들과의 ‘외출’에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나들이는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남경우(18·삼육학교 2년)군을 실은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의 휠체어 리프트가 1m도 못 가서 허공에 멈춰섰다. 경우는 추위와 두려움에 순간 눈을 감았다.“이거 왜 이러지. 평소에는 잘 됐는데….”호출 벨을 누른 지 10여분 뒤 올라온 지하철 직원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안 되겠다. 우리가 들고 내려가자.”기다리다 지친 비장애 남학생들이 장애 학생들의 휠체어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장애의 벽을 허문 아이들 이들이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 한바탕 계단과의 힘겨운 싸움을 한 아이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쉴 만한 곳은 없었다.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식당이나 카페를 명동 번화가에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호종(17·서울 마천동)군은 “여전히 장애인을 반기는 곳은 별로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우리 정기적으로 만나자.”“당연히 그래야지.” 장애와 편견의 벽을 넘어선 아이들의 천진한 미소가 석양을 받으며 한껏 빛났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儒林(263)-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儒林(263)-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이처럼 공자 스스로 정하였던 공문십철의 십대제자 중 민자건과 자하(子夏) 두 사람만 빼놓고는 모두 학문을 버리고 정계로 나아가거나 질병으로 중도하차하는 운명을 맞게 된다. 이는 예수의 경우와는 정반대현상인 것이다. 예수도 산에 들어가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한 후 12명의 제자를 뽑는다. 이들 중 예수를 단돈 은전 서른잎에 팔아넘긴 배신자 가롯 유다를 빼놓으면 모든 제자들은 스승이었던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순교하였는데, 이에 비하면 공자의 제자들은 대부분 학문의 길을 버리고 벼슬을 하였던 것이다. 석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석가의 제자들도 스승이 열반하자 제1대 수법제자인 마하가섭(摩詞迦葉)의 사회로 왕사성 밖에 있는 필발라굴에서 500여 성승(聖僧)이 모여 경전을 결집하는 작업에 정진하였던 일과도 대비되는 일인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예수와 석가는 인간을 구원하고, 인간의 미망을 깨우치기 위해 사바세계로 뛰어든 천지창조 이전부터 준비된 영원의 빛이라면 공자는 철저하게 인간 그 자체였던 위대한 인격의 완성자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는 기독교와 불교를 창시한 교주인 예수와 석가와는 달리 철학자이자 사상가였으며, 성인이라기보다는 철인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공자가 예수와 석가와 더불어 세계 3대 성인으로 추앙받으면서도 공자가 창시한 유교가 종교나 신앙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후대의 양명학이나 성리학 같은 인간학의 학문으로 발전된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공자가 스스로 제정한 10대제자 중 말년에 공자가 편저한 경전과 고대문화 연구의 성과를 다시 해석하고 또 후세에 전하여 공자의 학문을 계승하는데 공헌하였던 사람은 복상(卜商)이라고 불리었던 제자가 유일하다. 그의 자는 자하로 위나라 사람이었다. 자하는 공자보다 마흔네 살이나 아래였으니, 마흔다섯 살이나 아래였던 자유와 더불어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막내였다. 다른 제자들이 모두 정계로 나아가 벼슬을 하였던 것에 비해 자하는 주유열국을 끝내고 노나라로 돌아와 73세에 죽을 때까지 6년간 학문에 정진하였던 스승의 곁에서 경전의 편저를 도왔을 뿐 아니라 중국의 옛 문헌 및 고대문화에 대해서 깊은 연구를 하였던 수제자였다. 불교의 경전이 25년간 시자로 있었고, 석가의 사촌아우로 뛰어난 미모와 빼어난 총기로 항상 석가의 곁에서 총애를 받았던 10대 제자 중의 한사람이었던 아난다가 마침내 법상위에 올라 “비구의 여러 권속들이/부처님을 떠나서는/넓고 넓은 허공에 퍼진 별들이 /달(月)을 여윈 것처럼 광범치 못하노라.”하고 노래 부른 후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오서 아무 곳에 계시면서 아무 것을 말씀하셨고 이 말씀을 인간과 하늘이 받들어 행하였다.”라고 말함으로써 경전을 기록하는 제1성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초기 경전의 시작은 아난다가 기억하는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如是我聞)”라는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음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논어의 편찬도 자하의 작품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전해오고 있다.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중요한 유가의 경전들은 모두 그 전승에 있어 자하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들은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자하가 시, 서, 악, 춘추와 같은 경전에 누구보다 깊이 연구하고 박학하였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인 것이다.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빛이 스며든 자리/우승미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빛이 스며든 자리/우승미

    눈을 떴다. 문밖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일까. 암실에 있으면 의식도 시간도 모두 멎었다. 이곳에 온 후 나는 주로 암실에서 지냈다. 둥글게 몸을 말고 바닥에 누워, 불필요한 감각이 퇴화된 심해의 생물처럼 눈과 귀를 닫았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촉각이었다. 밀폐된 공간의 공기는 아래로 가라앉았다. 공기는 욕조 속의 더운 물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내 몸을 감쌌다. 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 경쾌한 리듬의 허밍이었다. 멜로디가 귀에 익었다. 가게 안으로 누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힘겹게 팔을 들어 몸 마디마디를 주물렀다. 피가 돌면서 눌려있었던 몸 왼쪽이 저려왔다. 암실 문을 열자 빛이 쏟아졌다. 손그늘을 만들고 부신 눈을 떴다. 딱딱한 알루미늄 가방 위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햇빛 속에 앉아있는 여자는 스스로 빛나고 있는 빛 무더기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주변을 감싸고 있던 빛이 스러지면서 여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여자는 얼굴빛이 유달리 희었다. 여자가 내 쪽으로 팔을 뻗어 손을 내밀었다. 여자의 팔은 윤곽이 희미했다. 홀로그램의 영상처럼 반쯤은 투명해보였다. 악수를 청하는 것인지 자신을 일으켜 달라는 것인지 몰라 잠시 주춤거리다가 여자의 손을 맞잡았다. 여자는 손아귀 깊숙이 손을 넣고 힘차게 흔들었다. 자칫하면 못 찾고 그냥 돌아갈 뻔했어요. 초행이라면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도시에서 상가가 가장 발달한 곳이었다고 한다. 다리 건너편으로 버스터미널이 이전하면서 그쪽에 신시가지가 형성된 후로는 죽은 골목이 돼버렸다. 사진관은 옛 번화가의 뒷골목에 위치했다. 원래는 주택가였는데, 주택을 허물고 상업용 건물을 급조해 형성된 상가였다. 지금은 가게를 연 곳이 거의 없어서 대부분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이곳은 구식 양옥의 1층을 개조해 가게로 쓰던 것이어서 밖에서 보면 가정집처럼 보였다. 오기 전에 부동산에 들렀어요. 한 달 전에 이미 매매되었다고 하더군요.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 건데 저에게 세 놓을 생각 없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임대를 목적으로 산 집이 아니었다. 여자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중고로 구입한 17분 컬러 현상기가 한 구석에 놓여있을 뿐, 가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사진관을 하려고 산 건물이지만 한 달째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암실에서 보냈다. 배가 고프면 끼니를 때우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여자는 얼룩져 더러워진 벽을 따라 걷다가 쪼그리고 앉아 바닥의 나뭇결을 들여다보았다. 곳곳의 정경들을 기억 속에 새겨두기라도 하려는 듯 천천히 세밀하게 보았다. 여긴 제가 태어난 곳이에요. 오래전에 아버지가 여기서 사진관을 했어요. 위층에 살림을 차리고요. 여자의 나이를 가늠해봤다. 캐주얼한 옷차림 때문에 언뜻 보면 어려보였지만 눈가에 옅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나와 비슷하거나 한두 살 아래쯤일 것이다. 여기서 함께 지내게 해주세요. 처음엔 그냥 둘러보고만 가려고 했어요. 막상 와보니 여기 있고 싶어지는군요. 세를 놓는 건 싫다고 하셨죠? 대신 일을 하겠어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가게를 열면 가게일도 도와드릴게요. 여자는 눈을 깜박거리며 나를 말끄러미 보았다. 여자의 눈빛 속에는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과 거절할 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한데 섞여 있었다. 어떤 말도 선뜻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어머니가 병중에 있을 때 집안일과 병간을 도맡았던 아주머니와 6개월여를 함께 지내본 적은 있지만, 나는 타인과 함께 생활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여자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점. 자신이 태어난 곳을 찾아와 그곳에 살고 싶어 한다면 무언가 절박한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어딘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가 태어났다는 이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투병 중이었던 어머니와 묏자리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자동차 안에서 손가락으로 도로의 모퉁이에 나 있는 골목을 가리켰다. ―저기가 느이 아버지가 사진관을 하던 자리다. 나는 자동차 속도를 줄이며 어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저녁 어스름이 내린 골목은 동굴의 입구처럼 어두웠다. 가로수에 가려 골목의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무성한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음산한 소리가 났다. ―예전에는 이 길이 번화가였지. 세가 워낙에 비싸서 느이 아버지가 저 골목 끝에 있는 집을 사서 아래층을 가게로 개조했다.2층에다 신접살림을 차렸고, 너도 거기서 낳았어. 아버지가 그렇게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저기서 오래 살았을 게야. 그때는 입구가 보이지 않는 골목 어름을 언뜻 보고 지나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진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어두운 골목 안으로 성큼 들어서고 싶어졌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생전의 아버지처럼 사진관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내 머릿속은 어두운 골목으로 가득 찼다. 그곳에 가면 지금과는 다른 종류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월의 유순한 흐름을 따라 유유히 나의 생을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49재를 치르고 어머니의 무덤에 왔다가 이곳에 들렀다. 이곳은 비어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는지 뽀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무성한 것은 지붕까지 뻗어있는 담쟁이덩굴뿐이었다. 근처의 부동산을 찾아가 가격을 흥정하지 않고 곧장 계약서를 썼다. 다니던 잡지사에 사직서를 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내 사진기자로 일하던 직장이었다. 지구 곳곳의 풍경을 주제로 하는, 사진 중심의 다큐멘터리 잡지였다. 사직서는 그날로 수리되었다. 잡지는 상업성이 강한 잡지들을 출간하는 모(母)기업의 품격을 위해 창간된 것이었다. 전문적인 사진이 실리는 잡지를 다수의 대중은 외면했다. 독자가 많지 않으니 당연 광고도 들어오지 않았다. 경기가 침체되자 모기업은 서서히 경영에 압력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내가 사직서를 내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권고사직을 당할 형편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 동료들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어려 있었다. 내가 사무실 문을 나서자 동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자의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통장으로 입금된 퇴직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아파트를 내놓았지만 매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보험금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내려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남긴 상자에는 어머니의 결혼 예물과 아버지의 사진 그리고 세 장의 보험증서가 있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나는 보험증서를 쥐고 오열했다. 오십 몇 년의 삶의 흔적이라기에는 세 장의 종이는 너무도 가볍고 쓸쓸한 것이었다. 2층의 방을 쓰세요. 저는 여기 암실에서 지내면 되니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을 방해해선 안 됩니다. 어려운 조건은 아니로군요. 여자는 알루미늄 가방을 메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이곳에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처럼 밖으로 나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자연스럽게 밟고 올라갔다.2층에는 방이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반으로 접히는 휴대용 침대를 암실에 갖다놓고, 내 물건들은 거실에 놓았다. 여자가 식사준비를 했다. 여자는 냉장고 뒤쪽 구석에 쑤셔 넣어두었던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여자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자기 집에서 요리를 하는 것처럼 양념통이나 필요한 재료가 있는 곳을 단번에 찾아냈다. 무언가 도와야 할 것 같아서 주위를 서성대던 나는 머쓱해져서 1층으로 내려왔다. 여자가 차린 상은 정갈했다. 냉장고에는 맥주와 인스턴트식품만 가득했었는데, 여자가 차린 밥상에는 찌개에 윤기가 흐르는 밑반찬까지 고루 갖춰져 있었다. 여자의 음식은 어머니가 해주던 것과 맛이 흡사했다. 이 정도면 합격인가요? 여자는 소리를 내지 않고 싱긋 웃었다. 환한 빛이 얼굴 가득 퍼졌다. 이곳에 머무는 대가로는 좀 과분하군요. 시간은 고요하게 흘러갔다. 여자는 늘 조용히 움직였다. 내게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나를 의식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암실에서 보냈다. 여자는 시간에 맞춰 요리를 했다. 거실로 내어 놓은 옷장 속에는 바싹 마른 옷가지들이 반듯하게 개어져 있었다. 여자가 내게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거칠게 그린 가게 구조도와 비용에 관한 세목이 적혀 있었다. 사진관을 열었으면 해요. 여자가 건넨 종이를 건성으로 훑어보았다. 종이 몇 장으로는 가게의 모습이 요연하게 잡히지 않았지만 내 생각보다는 훨씬 구체적이었다. 우선 가게에 있는 17분 현상기는 되팔았으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해왔지만 사진관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다. 증명사진이나 간단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은 스튜디오를 갖추고, 현상·인화 서비스를 하면 되겠다 싶어 17분 컬러 현상기를 중고로 구입한 것이었다. 여자는 내 옆으로 바투 다가와 앉아 손끝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계획을 설명했다. 암실은 공간이 꽤 넓으니까 두 개로 나누었으면 해요. 조명기기와 카메라 장비를 구입해서 작은 스튜디오를 만들고요. 표준화된 QSS방식으로는 사진을 기록물로만 여기는 사람들의 기대만 충족시킬 수 있죠.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돼서 현상만으로는 가게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요. 암실을 개방해서 수작업을 할 수 있게 하고, 차나 맥주를 마시며 자유롭게 지식과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곳, 제가 꿈꾸고 있던 사진관이에요. 암실에서 나와 보니 벽에 호두나무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가게 구석에 있던 자동 현상기는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무릎을 대고 엎드린 채 기름걸레로 바닥의 나무를 닦고 있었다. 여자의 손이 닿는 곳마다 켜켜이 나무의 결이 살아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암실 공사하러 인부들이 올 거예요. 가벽을 세우는 거라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조금 시끄러울 거예요. 어디 잠깐 다녀오는 건 어때요? 카메라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이곳에 내려온 후로는 첫 외출이었다. 나오기는 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종착지를 알 수 없는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SLR 디지털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잡지사에서 일하는 내내 들고 다녔던 것인데, 검은 몸체의 카메라가 낯설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처럼 아니,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카메라가 이물스러워 보였다.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버스에서 내려 몇 컷의 사진을 찍었다. 내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이국의 풍경처럼 주위의 모든 것이 생경스럽게 느껴졌다. 풀조차 자라지 않는 들판에 앉아 서서히 땅에 내리고 있는 어둠을 응시했다. 구릉처럼 낮은 산의 언저리에는 스러진 햇빛이 모여 검붉은 노을로 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도 차도 없었다. 희미하게 보이던 사물의 윤곽이 어둠에 검게 물들어 보이지 않았다. 길을 따라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피로하지 않았다. 끼니를 걸렀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몸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불현듯 여자가 몹시 보고 싶어졌다. 가게에 걸려 있는 간판에 불이 환했다. 간판에는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암실카페 - 빛이 스며든 자리’라고 씌어 있었다. 공사가 끝났는지 가게 안은 조용했다. 출입문을 열자 직사각의 탁자 세 개가 보였다. 한쪽 면을 벽에 붙인 탁자에는 어림잡아 20명 정도는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암실과 스튜디오 사이의 자투리 공간에는 주방이 들어섰다. 주방은 음료와 간단한 안주를 만들 수 있는 바bar 형태였다. 주방 옆에는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여닫이 유리문이 달린 업소용 냉장고 안에는 캔음료와 몇 종류의 맥주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암실 옆의 공간에는 몇 개의 조명기구가 놓여있는 작은 스튜디오가 꾸며졌다. 스튜디오를 제외한 가게의 정경은 카페에 가까웠다. 늦은 시간에 맥주를 마시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겠군요. 사진관보다는 호프집에 더 어울리는 이름이죠. 하지만 저는 이 이름이 썩 마음에 들어요. 어두운 방에 스며든 빛의 흔적, 그게 바로 사진이니까요. 여자는 벽의 진열장을 닦고 있었다. 이곳에 카메라를 진열해 놓았으면 해요. 예전에는 사진관에 카메라 진열대가 있었지요. 집집이 가정용 카메라를 구비해놓기 이전에는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대여했으니까요. 가방 속에 묵혀두는 것보단 가게로 내오면 오래된 사진관 이미지도 풍기고, 손님들에게 쉽게 접할 수 없는 클래식 카메라도 보여주고 좋을 것 같은데요. 진열대는 애초부터 카메라를 놓으려고 만든 것 같았다. 천장에 진열대를 비추는 작은 조명이 있었다. 나무판으로 만든 선반 형식의 진열대에는 유리문이 달려 있었는데, 먼지가 새어들지 않도록 틈새에 실리콘으로 패킹 처리가 되어 있었다. 2층에서 카메라들을 가져왔다. 케이스에 넣어 상자에 보관해왔지만, 오랫동안 손을 타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클래식 카메라를 사용할 기회가 없어졌다. 처음에는 오토포커스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부착해 사용했고, 얼마 전까지는 디지털 카메라를 썼다. 내게는 꽤 많은 카메라가 있었다. 사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여러 대의 카메라를 보유하게 마련이었다. 클래식 카메라는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카메라는 내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되던 해 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내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아버지의 존재는 내게 그리움 따위의 정서적인 것이 아니라 사진첩에 꽂혀있는 사진이나 카메라처럼 정물적인 것이었다. 어머니는 단 한 대의 카메라도 팔지 않았다. 어머니는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카메라를 꺼내 닦았다. 그 일은 어머니에게 지난 일을 추억하게 하는 사진첩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카메라를 닦으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듣기 싫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되풀이되는 추억은, 흐려지지 않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그림자는, 사막에 묻힌 수천 년 전의 미라처럼 영원히 썩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좋은 남자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바랐다. 어머, 이건 콘탁스II네요. 여자의 음성이 높아졌다. 사진 찍는 일을 업으로 삼기 전에는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어요. 처음 사진을 배울 때부터 이걸 썼어요. 사진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주로 갖고 있는 카메라는 니콘FM2였다. 가격에 비해 성능이 꽤 괜찮은 제품이었다. 간혹 클래식 기종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라이카를 들고 다녔다. 콘탁스를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 카메라는 아버지가 월남전에서 돌아올 때 구입한 것이라 들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이 카메라의 각별한 내력을 말했으나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자가 2층으로 올라가 알루미늄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앉아있던 가방이었다. 여자가 가방을 열었다. 거기에는 콘탁스와 똑같은 디자인의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카메라 앞면에는 키릴문자로 киев라는 로고가 각인되어 있었다. 이 카메라는 1949년에 생산된 키예프 카메라예요. 생산지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지방이지만 부품은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왔지요.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자 소비에트는 전쟁배상금으로 콘탁스 카메라의 메이커인 자이스 이콘(Zeiss Ikon)을 요구했어요. 공장의 모든 부품과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우크라이나로 이송됐지요. 파견된 드레스덴의 노동자들이 자이스 이콘의 부품을 조립해서 만들었으니 이 카메라는 콘탁스II와 완전히 똑같은 쌍둥이인 셈이지요. 여자는 수건으로 자신의 카메라를 닦았다. 카메라를 만지는 여자의 손놀림은 병든 육친의 몸을 닦아주는 손길처럼 조심스럽고 애틋해 보였다. 이 카메라는 제게 존재증명과도 같은 거예요. 아버지가 남기신 유일한 유품이거든요.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했었지요. 월남에서 번 돈으로 이 카메라를 샀어요. 지금이야 회사원의 한 달 월급밖에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 돈이면 읍내에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해요. 어렵게 구입한 카메라지요. 아버지가 월남에서 부쳐온 돈을 큰아버지가 들고나갔었다니까요. 장사를 해보겠다고요. 그 사실을 안 어머니가 읍내의 모든 술집을 뒤졌대요. 동생이 목숨 걸고 번 돈인데 술맛이 나더냐고 꾸짖어 모셔왔대요. 정혼한 사이긴 했지만 결혼 전이고 손위 시숙인데, 어머니는 무슨 용기로 그랬을까요. 큰아버지는 하는 일 없이 술과 여자로 평생을 보냈어요. 나쁜 분은 아니에요. 어느 집안에나 그런 무능하고 호방한 큰아들이 있는 법이잖아요. 그때 만약 어머니가 큰아버지를 말리지 못했더라면 제게 유품 같은 건 남지 않았겠지요. 지금은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저 혼자니까요. 이 카메라 외에는 제 존재를 증명해줄 무엇도 남지 않았어요. 같은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일까. 나와 비슷한 삶의 내력을 갖고 있는 이 여자가 오래전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혈육처럼 가깝고도 멀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이 사진관으로 온 것도 여자가 카메라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어머니가 죽고 난 후 나는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그 막연한 불안감은, 이 세상에 나의 존재를 증명해 줄 무엇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회귀성 어류처럼 내가 태어난 이 사진관으로 흘러들었던 것인지도. 사진관에는 손님이 없었다. 몇 차례 늦은 시각에 술에 취한 사람들이 들어와 맥주를 찾았다. 여자는 암실을 이용할 수 있는 사진관이라고 가게에 대해 설명한 후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첫 손님은 세일러복을 입은 여자애였다. 주민등록증에 쓸 증명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했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로 즉석에서 사진을 올린다고 말했다. 여자애는 알고 있다며 한 음절씩 힘주어 말했다. “꼭 필름사진이어야 해요.” 여자애는 탁자에 앉았다. 움직일 때마다 유난히 검은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여자애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주었다. 커피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여자애가 중얼거리며 코코아를 홀짝거렸다. 여자애는 기름종이로 이마와 콧등의 유분을 닦고, 콤팩트 퍼프로 꼭꼭 눌렀다. “왜 꼭 필름사진이어야 해요?” “이건 증명사진이니까요. 처음 발급받는 주민등록증이거든요. 원판이 있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사진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주민등록증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숫자와 지명과 이름과 125분의 1초 동안의 모습과 소속된 나라 외에 또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증명이라는 말이 하나의 역설처럼 느껴졌다. 증명이 목적인 플라스틱 카드는 정작 중요한 것은 증명할 수 없었다. “저는 디지털 사진을 좋아하지 않아요. 디지털 사진은 원판이 없잖아요. 디지털 사진은 곧바로 확인할 수 있고, 삭제하는 것도 복사도 고치는 것도 쉽지만, 어쩐지 그것들은 떠도는 이미지들처럼 느껴져요. 상이 음각으로 새겨진 필름의 원판은 이를테면 이미지가 깃드는 집 같은 거죠.” 여자애의 오른쪽 눈 아래에 점이 있었다. 작고 까맣고 윤기가 도는 점이었다. 나는 보정을 원한다면 점을 없애주겠다고 했다. 여자애는 고개를 저었다. “눈 아래에 있는 점은 눈물점이라고 어른들이 빼라는 말을 많이 해요. 하지만 저는 이 점이 좋아요. 점도 제 몸의 일부니까요. 사람들은 이 점 때문에 저를 쉽게 기억해요. 아마 아저씨도 그럴걸요.” “사진은 내일 찾으러 와요. 여기서 직접 현상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려요.” 사진을 담아두는 봉투를 내밀었다. 여자애는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자신의 이름을 썼다. 동글동글한 귀여운 글씨였다. 여자애는 이현아라는 이름 옆에 한쪽이 지나치게 부푼 하트 문양을 그려 넣고, 내게 찡긋 윙크를 했다. 여자애가 지갑을 꺼냈다. 첫 손님이니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여기 암실도 이용할 수 있나요?” “암실에서 직접 현상할 수도 있고, 현상을 맡길 수도 있어요. 스튜디오도 사용할 수 있고요.” “좋은데요.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곧 손님이 늘어날 거예요.” 암실에 누워 있다가 몹시 갈증이 나 밖으로 나갔다. 진열대의 조명등만 켜져 있었다. 여자는 탁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들고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암실은 깊은 바다 속 같아요. 햇빛이 닿지 않아 어둡고 추운 곳. 암실에서는 눈을 감아도 떠도 온통 농밀한 어둠뿐이에요. 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 무서워요. 보이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요. 거기에 있으면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요. 그런데 당신은 왜 그곳에 있나요? 거기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요? 두려움, 고독, 침묵, 약간의 위안, 그리고 나. 암실에 누워 있으면 또 다른 내가 보여요. 조금은 우울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또 하나의 나예요. 수면에 비친 모습처럼 좌우가 바뀐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해요. 암실에 누워있는 나와 나를 응시하는 나 중에 진짜 나는 누구일까. 나는 존재하는 걸까. 당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건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당신의 주변이죠. 당신이 존재할 수 있는 건 당신을 보고 있는 내가 있기 때문이에요. 불빛을 등지고 있어서 여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여자가 조금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주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이 거울 속의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물질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거울에 비친 것과 같은 구조를 가진 반물질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빅뱅 직후 물질과 반물질이 각각 우주와 반우주를 형성했으며, 이 둘은 서로 맹렬한 속도로 멀어져갔다고 추측했다. 반물질은 물질을 만나는 순간 백만 분의 1초보다 빠른 속도로 상쇄되기 때문에 물질계에 있는 우리들은 반물질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맥주잔을 쥐고 있는 여자의 손을 잡고 싶었다. 여자를 향해 뻗은 손을 거두었다. 내 손이 여자에게 닿는 순간, 물질을 만난 반물질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사진관에 온 두 번째 손님은 가게로 들어와서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잡은 손을 경쾌하게 흔들었다. 그는 이현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눈에 그가 이현아의 오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현아의 증명사진이 든 봉투를 건넸다. “현아 오빤 거 어떻게 아셨어요? 신기하네. 남매지만 닮은 데가 별로 없거든요.” 굳이 닮았다고 한다면 이미지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이미지로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현아가 다녀가고 난 후 그 다음 손님이 현재였기 때문이었다. 곧 손님이 늘어날 거라던 현아의 말이 불쑥 떠올랐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예요, 형.” 그는 가방에서 세 통의 필름을 꺼냈다.‘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아마추어 사진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론으로만 접했던 현상·인화 작업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두 개의 필름을 그에게 다시 건넸다. 외형발색 필름이었다. 외형발색 필름은 유제층 안에 발색제가 없어서 필름제조회사에서만 현상할 수 있었다. 암실 수납장 안에는 약품부터 액정에 불이 들어오는 디지털시계, 라텍스 장갑까지 작업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현재가 알고 있는 것은 암실작업의 일반적 과정뿐이었다. “암실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입니다.” “말 놔요, 형.” 현재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암실 작업도 사진 찍는 것과 같아.” 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말을 놓는 편이 아니었다. 막상 말을 놓고 보니 현재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 서글서글한 눈매 때문인지, 웃음기 많은 얼굴 때문인지 현재에게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느껴지는 거리감이 없었다. 세이프라이트를 켜자 현재가 암실 문을 닫았다. 작업을 하며 가능한 한 자세하게 설명했다. 현재는 손바닥만 한 수첩에 꼼꼼히 적었다. “열심히 이론공부를 해도 직접 찍어보기 전에는 실력이 늘지 않잖아. 암실작업도 그래. 온도와 시간을 지킨다고 발색현상이 잘 되는 건 아냐. 날씨나 환경에 따라 그날그날의 기온과 습도가 다르니까. 적절한 온도와 시간은 암기가 아니라 감이야. 감을 잡으려면 결국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어.” 현재는 인화된 사진을 보며 뿌듯해 했다. 그의 사진은 대부분 인물사진이었다. 수준급인 사진도 더러 있었지만 사진의 노출이 대부분 오버돼 있었다. 현재는 다음 동호회 모임은 이곳에서 갖기로 했다며, 이제부터는 손님이 꽤 늘어날 거라고 했다. 동호회 사람들은 현재와 비슷했다. 제일 먼저 현재가 현아와 함께 왔고, 오후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암실에서 작업을 하거나 각자의 사진을 돌려보았고, 더러는 일찌감치 술판을 벌이는 치들도 있었다. 열 명 남짓 되는 인원이었다. 그들은 나이도 직업도 각색인 듯 보였다. 그들은 내 이름을 부르거나 현재처럼 나를 형이라고 부르며 격 없이 대했다. 그들은 원래는 풍경사진을 주로 찍는,‘미라지Mirage’라는 비교적 큰 규모의 동호회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자연 속에 있다고 믿었던 그들은 시야를 좁혔다.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내게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물었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은 밤늦도록 돌아가지 않았다. 끝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은 한 잔 더 해야겠다며 여관방을 잡아 나갔다. 현재가 가게 정리하는 것을 돕겠다고 했지만, 돌려보냈다. 가게 문을 닫고 어질러진 탁자를 그대로 놓아둔 채 암실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신데다가 몸이 몹시 피곤했다. 구석에 접어놓은 침대를 펼치자마자 나는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문소리에 잠이 깼다. 열린 문 사이로 새어든 달빛이 바닥을 은백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침대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여자는 내 쪽으로 몸을 숙였다. 내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고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여자는 내 뺨을 감싸 쥐고 내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 사이로 여자의 혀가 들어왔다. 여자는 혀로 내 잇바디를 훑었다. 여자의 혀는 복족류의 속살처럼 차고 부드럽고 미끈거렸다. 가슴이 더워졌다. 나는 팔로 여자의 등허리를 감고 입을 열어 여자의 혀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잠이 든 체하며 눈을 감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뜨거워진 가슴을 달랬다. 여자는 깊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들어올 때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걸어 나가 문을 닫았다. 늦게야 일어나 암실에서 나왔다. 여자의 둥근 등이 보였다. 여자는 암실을 등지고 탁자에 앉아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가게 안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여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몸속의 색소가 다 바랜 것처럼 여자의 얼굴빛이 창백했다. 당신의 사진에는 색이 없군요. 하나같이 흑백사진뿐이에요. 게다가 당신의 사진은 너무 어두워요. 노출이 부족해요. 노출이 모두 -2스톱이군요. 글쎄요. 저는 적정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슬라이드 필름을 쓸 때에는 노출이 오버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배웠거든요. 카메라는 어두운 방이죠. 무언가를 찍기 위해서는 빛이 들어와야 해요. 조리개를 조금만 더 열고 셔터 속도를 늦춰요. 햇빛 때문일까. 뒷면에 양면테이프를 붙인 사진을 스크랩하는 여자의 손끝이 투명하게 보였다. 물에 떠 있는 한천질의 자포생물처럼 손가락 아래로 사진이 흐릿하게 비쳤다. 여자의 얼굴은 창백한 것이 아니었다. 눈과 코와 입술의 윤곽이 희미해져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여자를 봤다.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을 감았다 뜬 사이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다시 탁자를 보자 여자는 여전히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여자를 보자 여자는 싱긋 웃었다. 여자는 자주 사라졌다. 몇 시간 또는 며칠씩 사라지기도 했다. 돌아온 여자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집안일을 하고 가게를 돌봤다. 손님이 점차 늘어서 가게일이 바빴다. 손님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자가 어딘가로 떠난 것이 아니라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가게 안에 있던 여자가 어느새 연기처럼 희미해져 실루엣으로만 넘늘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여자가 완전히 사라지던 날, 현재가 현아와 함께 찾아와 라이트 페인팅 작업을 했다. 사진 관련 잡지에서 루미노그램(Luminogram,光跡사진)에 대한 글을 보고 실제로 해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끝에 불이 들어오는 펜 모양의 라이트를 들고 온 현아는 이민 간 친구에게 라이트 페인팅으로 편지를 써서 보낼 거라며 몹시 들떠 있었다. 라이트 페인팅은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었다. 암실에서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시키고 릴리즈를 연결한 후 세이프라이트를 껐다. 셔터 속도를 Blub에 놓았다. 현아는 한 자 한 자 소리 내어 읽으며 글씨를 썼다. 제2노출에서 셔터를 Blub에 맞추고 1 스톱 부족의 노출에서 스트로보를 조사하면 글씨를 쓰고 있는 연출자의 모습이 사진에 나온다. 현아의 작업이 끝난 후 여자가 펜라이트를 들었다. 여자는 허공에 대고 천천히 글씨를 썼다. 제2노출에서 스트로보를 켜자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허공에 떠있던 라이트펜이 따닥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손님들은 여전히 가게로 찾아와 암실을 사용하고 차를 마시고 더러 늦게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누구도 여자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여자가 사라진 후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암실로 들어갔다. 암실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나는 무기력하게 어둠 속에 누워있었다. 나는 스스로 어둠 속에 갇혔다. 시간은 여전히 흘렀고, 어두울수록 더욱 명징해지는 의식은 여자에 대한 기억을 쫓고 있었다. 문밖에서 경쾌한 멜로디의 허밍이 들려왔다. 처음 내게로 왔던 날처럼 빛에 둘러싸인 채 여자가 앉아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문을 열었다. 가게 안은 어두웠고 텅 비어 있었다. 여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 외로움이 불러낸 환영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여자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우주의 반대편에서 달려온 또 다른 나는 아니었을까. 내가 마음을 열려는 순간 물질을 만난 반물질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현상한 라이트 페인팅 사진을 꺼내보았다. 필름의 마지막 장에는 서정주의 시구가 씌어 있었다. 물 위에 뜬 유성물감처럼 글씨의 획이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었다.‘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여자가 서 있었을 사진의 오른쪽 모서리 공간은 검은 어둠만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낮은 소리로 시의 남은 구절을 읊조렸다.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바람처럼 사라진 여자는 이 사진 한 장으로 내게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여자가 택한 이별이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것이라면, 나는 조금 더 담담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 언젠가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다시 입 맞춘다면, 거리낌 없이 이를 열어 여자가 내민 혀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여자의 둥근 어깨를 감싸 안아줄 수 있다면, 그것은 꼭 지금이 아니어도 좋았다. 내 몸이 완전히 스러지고 난 후 먼먼 내생의 어느 날이어도 좋았다. 진열대에는 여자가 남기고 간 키예프 카메라가 놓여있었다. 나는 그 옆의 콘탁스를 꺼냈다. 노출을 오버스톱으로 다시 맞추고 뷰파인더에 키예프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여자가 자신의 유일한 존재증명이라고 말했던 키예프 카메라는 내게는 여자에 대한 기억의 증거가 되었다. 이 사진은 어두운 방에 잠시 스며들었던 빛, 그 빛의 흔적을 기록한 한 장의 루미노그램으로 남을 것이다.(끝) ■ 당선소감 제게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셨다는 사진관을 스쳐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평범한 상가 2층 건물이었지요. 그 후부터였습니다. 어찌할 수 없이 사는 일이 힘들어지면 아버지의 사진관이 떠올랐습니다. 그곳에서 예전에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사진관을 열고 싶었습니다. 유리로 된 진열장에 오래된 사진기가 들어있는 곳. 증명사진을 찍으러온 나이 지긋한 노신사가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웃으세요, 한 마디에 어색한 미소를 짓는 곳. 소읍의 탄생과 죽음과 기쁨과 슬픔을 기록하는 곳. 돈을 벌어도 좋고 벌지 못해도 좋은, 그런 사진관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속에 사진관을 넣어두고 저는 수시로 꺼내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일들도 그럭저럭 견딜 만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언젠가부터 사진관 안에는 허약한 식물이 자랐습니다. 제 소설은 결여의 토양에서 결핍의 양분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지닌 게 없어도 너무 지독하게는 살지 말자고 제 마음을 다독일 즈음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약한 소설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구효서 선생님!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릴 수 있어 기뻐요. 한결같이 제게 여여한 미소를 보여주셔서 마음이 든든했어요. 가족과 문우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응오씨, 당신은 제 삶에서 만난 가장 큰 행운입니다. 저를 존재하게 하는 건 당신이에요.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우승미 ●약력 1974년 강원도 양구 출생 2003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 심사평 예심을 통과한 9편의 작품은 각기 그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젊은 문학도들에게 패기와 정열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삶의 이름으로건 예술의 이름으로건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소설 같은 소설’ 한 편을 적당히 꾸려내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 아닐까. 그러나 그 가운데 좋은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이 특별히 주목한 작품은 ‘소년’‘달을 보고 짖는 개’‘펑크로커 실종기’‘빛이 스며든 자리’ 등 4편이었다. ‘소년’은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난 한 소년의 미래없는 삶을 진지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호감을 샀지만,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약점이 있다. 삶에 대한 진실을 움켜 쥘때 문학적 형상화도 함께 따라올 것이다.‘달을 보고 짖는 개’는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솜씨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었지만, 주제와 구성에서 독창성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잘 만든 이야기, 그러나 너무 자주 들었던 이야기다. 반복되는 낡은 이야기에 새로운 진실이 담기기는 어렵다. ‘펑크로커 실종기’는 누아르 서사의 형식 속에 펑크족들의 생활양태를 담은 소설로 문장이 경쾌하고 구성이 치밀했다. 훌륭한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도 그만큼 많았다. 무엇보다도 한 세계의 겉과 속을 심도있게 성찰하려 하기보다는 이미 알려져 있는 문화적 코드들을 조합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펑크족은 펑크족이다.’라는 말 이상의 매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풍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시선에서 온다. ‘빛이 스며든 자리’는 구렁각시의 민담과 피그말리온의 전설을 현대의 사진예술론으로 재해석하는 가운데 현실과 환상을 정교하게 봉합해서 꾸며낸 예술가 소설이다. 새로운 창조의 자리가 아버지의 자리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었다는 주제의 설정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며, 모든 응모자들의 정진을 빈다. 현길언 황현산
  • 같으면서 다른 뮤지컬 ‘두 꼽추’

    같으면서 다른 뮤지컬 ‘두 꼽추’

    지난 23일 신시뮤지컬컴퍼니의 ‘노틀담의 꼽추’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내년 1월23일까지 예정된 무대의 막이 내려지면 아쉬워할 틈도 없이 또 다른 노틀담의 꼽추가 찾아온다.2월25일부터 프랑스 오리지널팀의 내한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노트르담 드 파리’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그 감동을 이어 간다. 한 해의 끝과 시작을 ‘노틀담의 꼽추’가 맡는 셈이다. 연이어 무대를 채우는 두 작품은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1831년 발표했던 ‘노트르 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를 원작으로 했다. 종지기 콰지모도,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 근위대장 푀부스의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는 그대로이지만 색깔은 전혀 다르다. ●노틀담의 꼽추 애니메이션 ‘노틀담의 꼽추(The Hunchback of Notre-Dame)’로 재미를 봤던 디즈니는 99년 뮤지컬까지 만들었다. 독일에서 초연한 이 작품을 신시뮤지컬이 라이선스로 선보이고 있다. 디즈니는 물론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풍미가 짙게 배어 있음은 물론이다. 집시 우두머리 클로팽이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 작품을 더욱 친숙하게 만든다. 노트르담 성당, 종탑, 성당 안, 화형대를 묘사한 세트는 사실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하다. 팝음악의 느낌이 강하게 배어 있는 노래들은 부담스럽지 않게 귀를 감싼다. 애니메이션에 없는 9곡이 새롭게 추가됐다.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를 맡은 이진규, 정선아는 고음역대의 노래를 무난히 소화해낸다. 둘 다 20대 초반. 이들의 풋풋함에 무대는 생기로 가득 찬다. 에스메랄다의 관능적인 춤사위와 집시들의 군무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볼거리는 이 뿐이 아니다. 프롤로의 군대에 쫓긴 에스메랄다는 마술로 감쪽같이 사라지고 화형대에 매인 에스메랄다를 구하기 위해 콰지모도는 허공을 나는 와이어액션(?)까지 펼친다. 외로운 콰지모도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석상들의 맛깔나는 감초 연기도 돋보인다.1588-7890. ●노트르담 드 파리 원작을 충실히 재현한 작품이지만 연출은 다분히 현대적이다. 무대 설치는 노트르담 성당의 성벽과 조각상으로 단순화하고 첨단 조명이 세트를 대신한다. 무대나 음악에서 비장미가 느껴지는 이 작품은 성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디즈니 작품에서 사라졌던 푀부스의 약혼녀 ‘플뢰르 드 리스’를 부활시켜 사랑의 축을 사각으로 만들었다. 1998년 9월 초연돼 프랑스 전역에서 200만명을 동원한 이 작품의 압권은 단연 음악. 대사 없이 진행되며 7명의 배우가 무려 54곡의 노래를 소화한다. 카리스마 넘치고 웅장한 노래들은 무대가 열리는 순간부터 귀를 사로잡는다.‘노트르담‘의 OST는 프랑스 음악 차트에서 17주간 1위에 올랐으며 에스메랄다를 향한 세 남자(콰지모도, 푀부스, 프롤로)의 노래 ‘Belle(아름답도다)’은 프랑스에서 무려 44주간 1위에 머무르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 다른 특징은 춤과 노래가 이원화돼 있다는 점.7명의 배우는 노래만 부르고 16명의 무용가가 현대무용, 브레이크댄스, 아크로바틱까지 녹여낸 역동적이고 현대적인 춤사위로 무대를 압도한다. 콰지모도 역은 캐나다 출신의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인 매트 로랑이, 에스메랄다는 북미 투어의 주역, 나디아 벨이 맡는다. 아시아 최초로 한국 공연을 성사시킨 아트 인 모션측은 공연을 앞두고 DVD 시사회를 열어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02)501-1377.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백수의 제왕’ 주덕한 ‘전백련’대표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백수의 제왕’ 주덕한 ‘전백련’대표

    세계인권선언문 제23조 1항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모든 사람은 근로의 권리, 자유로운 직업 선택권, 공정하고 유리한 근로조건에 관한 권리 및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세계 인권선언일은 12월10일이다. 이보다 6일 앞선 지난 4일 오후.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 흔치 않은 광경이 연출됐다. 우선 귀에 익은 노래가 나온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 펴라/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이어 ‘백수인권선언문’이 낭독됐다.‘백수생활이 궁극에 다라 생존이 여의치 아니할 새, 이런 전차로 어린 백수가 이루고자 할 배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실컷 펴지 못할 노미 하다. 이를 어엿비 여겨 새로 백수인권선언을 맹가노니 백수마다 쉽게 먹고 삶에 편안케 하고저 할 따름이다‘ 참석자는 전국백수연대(전백련)와 전국시민운동가 카페 NGOlove·미디어 몹 회원 100여명. ●대졸자 10명 중 4명이 백수로 사회에 첫발 “대졸자 10명 중 4명이 백수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또 젊은이 두명 중 한명이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요.” 주덕한(35)씨는 전백련의 대표로 ‘백수의 제왕’인 셈이다. 그는 “대한민국 위정자들이 얼마나 위선에 사로잡혀 있는지, 실업자들을 얼마나 기만하고 있는지 아느냐.”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 과제라던 올해 초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사는 이제 언급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허공 속의 외침으로 끝나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실업 관련 정부의 두 위원회(국무총리 산하 ‘일자리 만들기 추진위원회’와 대통령 직속 ‘청년실업해소특위’)는 출범만 요란하게 했을 뿐, 개점휴업 상태임을 아느냐고 거듭 반문했다. 또한 실업대책을 세우거나 일자리를 마련한다면서, 실업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하면 도대체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 작정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는 쉴 새 없이 쏟아냈다. 하지만 일자리가 없어 7년째 고생하는 한 청년실업자의 항변만은 아니었다. 실업문제가 절실한 인간적 고뇌이자 ‘백수의 대표’로 토해내는 사회적 고발이기도 했다. 주씨는 지난 9월14일부터 10월20일까지 약 40일간 ‘백수원정대’를 이끌고 일본 오사카와 도쿄 지역을 다녀왔다. 백수의 눈으로 해외 청년실업의 사례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서다. 일본의 경우도 우리나라와 별반 다름이 없었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프리터’(프리 아르바이터)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주씨는 “이들이 40∼50세가 되면 직업은 둘째치고 세금을 못내는 상황에 이른다.”면서 “일본 정부도 실업은 국가의 위기라는 점을 인식, 지난해부터 적극적인 대처를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시사토론 TV방청 아르바이트 생활 주씨는 내친김에 다음달 백수원정대를 이끌고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지역을 돌아보고 나서 ‘백수 보고서’를 작성할 예정이다. 여비 마련을 위해 닥치는 대로 ‘알바’를 하고 있단다. 인터뷰 도중, 휴대전화 벨이 자주 울렸다. 백수가 뭐 그리 바쁘냐고 농을 건네자 그는 “오늘 시사토론 TV 방청 알바 때문”이라며 웃었다. 얼마를 받느냐고 하자 100분짜리는 4만원이고 시간이 짧은 것은 1만원이라고 귀띔했다. “대부분의 백수들은 마음이 편치 않다는 이유로 집안에 틀어박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동창모임에라도 열심히 나가 부끄러움 없이 명함을 건네야 합니다. 명함에 ‘대한민국 백수 아무개’라고 쓰면 어떻습니까.” ●고등학교땐 전교 5등 실력 주씨는 경기도 포천의 농가에서 2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시골에서 자랐다. 고교 졸업 땐 전교 5등 실력의 촉망받는 학생이었다. 성균관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한 후 인터넷업체에 잠시 근무했으나 1996년 휴직하면서 백수의 길로 들어섰다. 이력서를 수십차례 내밀었으나 아직 인연이 닿지 않고 있다. 부정기 아르바이트로 한달에 30만원 정도 벌어 간신히 교통비를 충당한다고 했다. 그는 백수생활을 하면서 주로 서점에서 시간을 보냈다. 은행도 눈치가 보였다. 하루는 백수들을 위한 가이드는 왜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출판사 여러 곳에 연락을 했고 그 중 한 곳과 인연이 돼 1997년 5월 ‘백수생활 가이드북’을 발간하게 됐다. 하지만 중간서점들이 부도나는 바람에 인세는 한푼도 건지지 못했다. 이무렵 그는 방송에 출연하게 된다. 방송이 끝나자 호출기 ‘삐삐’를 통해 전국의 백수들이 연락이 왔다. 결론은 ‘백수끼리 뭉치자.’였다.‘전백련’은 이렇게 해서 탄성됐다. 주씨는 “연말연시 덕택에 요즘 ‘파티알바’가 뜨고 있다.”면서 “초보백수일수록 방 안에 잊지 말고 만화방에 가서 창의적 아이디어라도 얻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마르코폴로도 전쟁에 휩쓸려 감옥에 갇힌 뒤 빈둥거리다가 ‘동방견문록’을 쓰게 됐다.”며 웃었다. 그는 서울 중곡동 누나집에서 ‘눈치밥’을 먹고 있다. 그의 소박한 꿈은 하루라도 빨리 독립하는 것이다. km@seoul.co.kr ■ 전백련(전국백수연대)은? 요즘 신문과 방송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경기침체와 청년실업이다. 취업 경쟁률은 100대1에 달하며 다섯가구 중 한 가구는 무직가구라는 통계도 있다. 특히 20대의 경우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청년 실업자 모임인 ‘전국백수연대’(전백련)는 백수도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권리장전’을 외친다. 발족된 지 7년째로 회원은 5000여명. 인터넷 다음카페에서 ‘백수회관’을 입력하면 자세한 활동내용을 알 수 있다.‘백수회관’은 시골마을의 ‘마을회관’이나 ‘노인회관’처럼 백수들의 공간을 지어달라는 뜻이며 관철되는 순간까지 다음카페에서 ‘백수회관’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 단체가 세간에 알려진 것은 지난 3월.‘광화문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당시 한나라당의 홍사덕 의원이 대표경선 출마선언을 하면서 “요즘 촛불시위에 나오는 많은 젊은이들,30∼40대가 모두 다 단단한 직장을 갖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전국의 백수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궐기했고 급기야 서울 시청 앞에서 항의시위까지 벌였다. 공교롭게도 홍사덕씨는 최근 전백련의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전백련은 최근 ‘백수 100인 인권선언문’을 통해 ▲정부의 청년실업 대책 점검 및 정책대안 제시 ▲실업자에 대한 건강보험 및 국민연금 납입 일시적인 유예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또 대중교통과 공공시설 이용에 할인혜택이 주어지는 ‘백수증’을 발급해줄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백수원정대’를 출범시켜 해외의 실업대책을 연구하고 있다. ■ 백수의 범위? ‘백수 인권선언문’ 제2조에는 다음과 같이 백수의 범위를 정하고 있다. ‘백수의 범위는 통계에 드러나는 것보다 광범위하므로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구직활동에 여념이 없는 실업자는 물론, 구직단념자, 극히 적은 시간만을 일하는 준실업자, 실업과 취업을 넘나드는 비정규직 근로빈곤층, 파산상태에 놓인 영세자영업자 등을 백수로 칭하는 것이며, 언제 해고될지 모를 상태에 놓인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 등 ‘예비백수’들도 본 선언문의 취지에 포함된다.’ 아울러 제4,5조에는,‘백수는 할 일없이 노는 사람이 아니다. 백수는 비정규직이든, 취업준비생이든 나름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백수는 신문 방송 등에서 ‘무직자’로 매도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백수 또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사회적 천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과 방송에서는 위아래 세트로 갖춰입은 추리닝(트레이닝 복), 재떨이에 가득한 담배꽁초, 씻지 않아 더부룩한 머리, 공짜만 밝히는 근성 등으로 백수의 상을 그려내고 있다. 이는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으며, 백수는 희화화 혹은 동정의 대상이 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 미야자키표 러브스토리 ‘하울의 움직이는 성’

    마녀의 저주로 18살 소녀에서 90살 노파가 된 소피, 비밀에 둘러싸인 꽃미남 마법사 하울, 새 다리를 연상케하는 가냘픈 다리로 이동하는 고철덩어리 마법의 성….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그의 이전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관객을 순식간에 팬터지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매혹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다. 시공간적 배경이 불분명한 유럽의 어느 마을. 모자가게에서 일하는 평범한 소녀 소피는 동생을 만나러가던 길에 우연히 마법사 하울의 도움을 받고, 그 때문에 마녀의 마법에 걸려 폭삭 늙은 할머니가 된다. 남들 눈에 띌까봐 몰래 집을 빠져 나온 소피는 황야를 걷다 마법의 성에 다다르고, 그곳의 주인인 하울과 불꽃 악마 캘시퍼, 꼬마 마법사 마르클과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거대한 만년설과 반짝이는 호수, 생동감있는 바닷가 마을 등 정감넘치는 자연 풍광은 지브리 스튜디오가 그간 축적해온 노하우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온갖 잡동사니로 만들어진 성은 곧 허물어질 듯 볼품없지만 문고리를 돌릴 때마다 전혀 다른 세상으로 연결되는 환상의 공간이다. 하울과 소피가 괴한들을 피해 하늘로 솟구쳐오른 뒤 허공을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황홀한 장면 역시 미야자키표 애니메이션답다. 가장 돋보이는 건 주인공들의 캐릭터. 그중에서도 소피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무채색의 일상에 지루해하던 소피는 할머니로 변하면서 오히려 삶의 활기를 띤다.‘할머니가 되니 잃을 것이 없어 좋다.’는 낙천성과 의연함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소피는 여성의 미에 대한 선입견을 단번에 무너뜨린다. 전쟁에 홀로 맞서는 강건함과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사춘기적 나르시시즘을 동시에 간직한 하울의 캐릭터 또한 인상적이다. 3년간의 기다림,‘미야자키 최초의 러브스토리’라는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면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뛰어넘는 감동과 상상력의 확장을 기대했던 팬들이라면 다소 밋밋하게 느낄 수도 있다. 전체 관람가.23일 개봉.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200여명 ‘無소속’ 전락 우려

    철도청의 공사 전환 시기가 보름밖에 안 남았지만 공무원 잔류 희망자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상태다. 15일 철도청에 따르면 공무원 잔류를 신청한 290명 중 3명이 신청을 포기했고 58명이 타 부처로 전출했다.15명은 현재 협의가 진행 중이다. 더욱이 중앙인사위원회와 행정자치부 등 관련 부처들은 잔류자에 대한 초과 현원 인정이나 총괄전담기관 지정 등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사실상 미전출 잔류자는 공무원 신분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철도청은 오는 18일까지 전·출입 인사를 동결할 방침이다. 또 내년 1월1일 공사 전환에 따른 인사의 차질없는 추진을 위해 공사전환 임용 신청도 다음 주 마감키로 했다. 이로 인해 공사행마저 거부한 공무원 잔류 희망자들은 내년 철도공사 설립 이후 소속없이 허공에 떠 있는 초과인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철도청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무산돼 더 이상 방법이 없다.”면서 “전출입 명령까지는 최소 10일이 소요되고 상대 기관의 절차도 있기 때문에 하염없이 (전출입을)허용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방침에 공무원 잔류 신청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공사전환 후 직렬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일부 소수 직렬에서는 “일자리마저 빼앗고 갈 자리도 마련해 주지 않고 있다.”고 볼멘소리다. 이로 인해 직급을 낮춰서라도 타 부처로 전출하려는 움직임도 가속화되고 있다. 중앙인사위 관계자는 “초과현원 인정시 신규 채용과 임용 대기자 등 인력운영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불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코쟁이/심재억 문화부 차장

    눈 덮인 농촌 마을은 적요했다. 졸음 내리는 농한기 오후 무렵, 사람들은 뜻밖의 총성에 화들짝 놀라 장지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맨송맨송 ‘꺼리’를 찾던 꼬맹이들, 한달음에 고샅길을 훑어 소리가 난 뒷산 대숲 어름을 짓쳐올랐다. 그곳에서 나는 ‘코쟁이’ 미국인을 처음 봤다. 엽총을 든 두 명의 미국인, 그들은 옆구리에 꿩 한마리를 대롱대롱 매달고 있었다. 그들은 몰려든 아이들에게 캔디를 던져 주었다. 그러다 우쭐한 기분이 지나쳤는지 그 중 한명이 허공에 대고 냅다 엽총을 갈겼다. 언니 등에 업혀온 두살배기 ‘싯짜’가 놀라 울음을 터뜨린 것은 그 때였다. 어르고 달랬지만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고, 그게 짜증스러웠는지 총을 쏜 미국인이 아이 얼굴에 대고 뭐라 고함을 쳤다. 다들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들이 킥킥거리며 능선 너머로 사라진 그날 이후, 내게 미국은 ‘캔디’와 ‘엽총’ 두 얼굴로 각인됐다. 더러는 악마도 같고, 어찌 보면 천사도 같은 그 중의(重義)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와 남북, 그리고 세계가 지금 헷갈리고 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미국의 완강한 부도덕성이고, 미국이 아닌 모든 존재의 허약한 도덕성이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외국업체 특허공세 공동대응”

    “외국업체 특허공세 공동대응”

    “삼성전자의 올해 특허 관련 비용이 1조 5000억원입니다.2010년이면 2조 5000억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 “올해 디지털TV 1000억원어치를 수출했는데 현재 요구받고 있는 특허료를 다 물어주면 50억원은 특허사용료로 날아갈 판국입니다.”(이레전자 정문식 대표) 사상 첫 2000억달러 수출 신화의 원동력인 한국 전자산업이 선진국의 특허공세에 신음하고 있다. 전자업계 CEO 40여명이 모인 가운데 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특허CEO포럼 발족식’에서는 대·중소기업을 막론하고 특허에 시달리는 전자업계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윤종용 한국전자산업진흥회 회장은 “2010년 수출 4000억달러,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자·IT산업이 버팀목이 돼야 하는데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이 너무 많다.”면서 “특히 2000년 이후 본격화되고 있는 특허분쟁에는 국내업체들이 똘똘 뭉쳐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요즘은 외국 제조업체들이 대행사에 특허를 위임한 뒤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 크로스 라이선스(상호특허인정)로 문제를 풀기도 어렵게 됐다.”면서 “일본 등 선진국들의 특허 압박은 심해지는 반면 우리는 역공을 당할 우려가 있어 타이완이나 중국에 특허 소송을 걸지 못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특허분쟁때문에 회사 경영이 흔들릴 지경이다. 이레전자 정문식 대표는 “중소기업은 특허관련 지식이 부족하고 대응할 만한 전담부서·인력도 없는 데다 소송관련 비용도 큰 부담”이라면서 “중소기업의 특허를 공동관리하고 특허 소송비용을 정부나 유관단체에 지원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이레전자에 걸려 있는 특허 이슈만 해도 TV시청 연령제한에 관련된 V칩 기술(트라이비전), 복제방지기술인 HDCP(인텔), 음향관련 AC3(돌비) 등 10건이 넘는다. 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경우 디지털 TV 수출가가 대당 50∼100달러나 높아져 사실상 경쟁력을 잃게 된다. 디지털전자 중소벤처기업이 지불한 지난해 특허비용만 4억 8700만달러에 달한다. 산업자원부와 전자산업진흥회는 이같은 국내업계의 특허애로를 덜어주기 위해 ‘특허지원센터’를 설립했고 특허출원비용을 연구개발비에 포함시켜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대기업의 특허 노하우와 ‘휴면 특허’를 중소기업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중소기업의 특허풀(Pool)을 만들어 공동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기술개발 못지 않게 개발된 기술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한데 관세법을 개정해 특허위반 상품의 통관까지 보류하는 일본처럼 외국 정부의 공세가 거세다.”면서 “노무현 대통령도 특허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등 정부차원에서 특허관련 제도를 보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특허청 전승우 차장은 “현재 22개월,8개월에 달하는 특허 심사 대기 기간과 처리 기간을 2006년까지 각각 10개월,6개월로 단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구상시인 마음의 고향 ‘왜관’

    [문학이 머문 풍경]구상시인 마음의 고향 ‘왜관’

    강/아침 강에 안개가 자욱 끼어 있다./피안을 저어 가듯/태백의 허공석을 나룻배가 간다./기슭, 백양목 가지에/까치가 한마리/요란을 떨며 날은다.(중략) ●남북 양쪽에서 필화 경험 지난 5월 고인이 된 시인 구상(具常). 시인은 남북 두 체제에서 필화를 경험한 유일한 문인이다. 1946년 함경도 원산에서 동인지 ‘응향’에 ‘밤’ 등 시를 발표하며 데뷔했으나 반인민적인 반동시인으로 몰렸다. 그 체제를 못견뎌 월남한 시인은 65년 8월 희곡 ‘수치’를 무대에 올리려다 등장인물 중 빨치산 군관의 대사가 문제되어 공연 보류조치를 당했다. 시인의 고향을 원산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으나 진짜 고향은 서울 이화동이다.4살 때 독일계 성 베네딕트 수도원의 교육사업을 위촉받은 아버지를 따라 함남 원산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사제가 되기 위해 성 베네딕트 수도원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 종교학과에서 불교를 공부했다. 당시 문예창작과와 종교과를 두고 과 선택문제로 고민했던 시인은 결국 종교과를 선택했다. 이것이 그의 시에 나타난 초월적 종교관의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6·25전쟁 때는 국방부 기관지 ‘승리일보’를 만들었고 군작가단 부단장을 지냈다. ●왜관에서 20여년간 작품활동 전후 이승만 정권에 대해 반독재 투쟁을 벌였던 그는 1952년 승리일보가 폐간되자 부인 서정옥(93년 작고)씨가 병원을 개업한 경북 칠곡군 왜관으로 삶터를 옮겼다. 이곳에서 시인은 53년부터 74년까지 기거하며 작품활동을 했다. 칠곡군은 지난 2002년 구상문학관을 건립했다. 부인이 경영하던 순심의원 자리에 2층짜리 문학관이 들어섰다. 문학관 뒤편에 시인의 거처였던 관수재(觀水齋)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시인과 가까왔던 윤장근(73) 죽순문학회회장은 “설창수 시인이 ‘낙동강이 보인다.’며 관수재라는 이름을 붙였다.”며 “강물과 푸른 풍경이 선생의 가슴에서 시를 우려내기에 지극히 안성맞춤인 장소였다.”고 말했다. 낙동강은 구상 시의 원천이었다.‘강’이란 연작시 100편을 발표했으며, 그의 시에는 늘 퍼내도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강물이 흐르고 있다. 윤 회장은 “구상 선생이 유난히 ‘강’에 집착하는 것은 관수재에서 늘 낙동강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관수재에서 보이는 것은 테니스장에서 공을 치는 아낙네들뿐. 목을 쭉 빼보았으나 강 범람을 예방하기 위해 만든 높은 제방에 가려 강 건너 모텔과 신축아파트 공사장의 기중기만이 눈에 들어왔다. 문학관 2층에 올라가서야 겨우 낙동강이 보였다. 안내하던 문학관 직원은 “당시와 변하지 않은 것은 6·25전쟁 때 폭격돼 두동강 난 낙동강 철교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시인은 관수재에서 윤 회장 등 많은 문인들과 교분을 쌓았다. 영남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할 때 시인이 대구 향촌동 다방에 보이지 않으면 문인들은 관수재로 몰려가 시인과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특히 절친한 친구인 천재화가 이중섭은 관수재의 단골손님이었다. 이중섭은 일본에 있는 자신의 가족을 그리워하며 단란한 구상 시인의 가족을 이따금씩 그렸다고 한다. 한번은 병색이 짙은 구상에게 천도 복숭아를 그린 그림을 주며 쾌유를 기원했다. 시인은 생전에 “그 ‘복숭아 그림’ 때문인지 지병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연명했다.”고 회상하곤 했다. 구상 시인의 본적지는 관수재가 있는 왜관이다. 전쟁중 북에 있는 가족이 내려오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 시와 마음의 고향이었기 때문에 왜관을 본적지로 고집하지 않았을까. 요즘 하루 100여명의 관광객들이 구상문학관을 찾아 시인을 느끼고 있다. 시인의 빈 자리를 구상문학관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칠곡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儒林(230)-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儒林(230)-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자로의 현실적 타협안은 얼핏 보면 현명한 것 같지만 실은 교묘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부정과 타락과 부패는 이런 타협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정치가는 자신의 통치술이 오직 국민을 위한 정도(正道)에 충실하면 그만인 것이다. 여론은 인기에 불과한 하나의 유행인 것. 이는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는 그가 창조하는 작품이, 그림이, 음악이 좋은 씨앗의 역할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것이 좋은 열매를 맺고 못 맺음은 작가의 몫이 아닌 것이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씨앗의 수확까지 책임지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탐욕이며 여론을 조작하는 독재인 것이다. 그것이 누구이든 정치가든 기업이든 예술가이든 그들이 목표로 해야 할 일은 가라지가 아닌 좋은 씨앗을 뿌리는 일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말해 좋은 씨앗을 뿌리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으며, 마찬가지로 좋은 도를 행하면 반드시 그 결과는 좋게 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공자가 자공의 말처럼 도를 낮추어 현실과 타협하였더라면 공자는 천하를 제패하는 재상은 되었을지는 모르나 2500년 동안 내려오는 동양사상의 정수인 유가사상을 탄생시키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예수가 말하였던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것에 비할 수 있다.’라는 비유와 공자가 자로에게 말하였던 ‘훌륭한 농부는 씨를 잘 뿌릴 줄은 아나 반드시 수확을 잘 거둔다는 보장은 없다.’라는 비유는 결국 같은 하나의 진리인 것이다. 두 제자에게 실망한 공자는 마지막으로 안회를 불러들인다. 그리고 두 제자에게 했던 질문을 여전히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던진다. “시경에 보면 ‘외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니거늘 어째서 광야를 헤매고 있는가.’하고 읊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도가 그릇된 것일까. 우리가 어찌하여 그런 지경에 빠졌는가.” 이에 안회는 대답한다. “선생님의 도가 지극히 위대하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생님은 그 도를 계속 밀고 나가셔야 합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받아들이지 않는 다음에야 참된 군자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도가 닦여지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의 결함이요, 도가 이미 크게 닦여졌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들의 치욕일 뿐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십시오. 받아들여지지 않은 다음에야 참된 군자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안회의 대답을 들은 공자의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사기는 그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처음으로 공자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공자는 어째서 처음으로 얼굴에 미소를 떠올렸을까. 안회의 대답이 자신의 비위를 맞춘 위로의 말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것이 아니라 안회의 대답이 옳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안회의 말이 단지 옳았기 때문에 미소를 떠올린 것일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공자는 그토록 곤경에 있으면서도 올바른 분별력과 올바른 지혜를 갖춘 안회가 평소의 가르침과 일치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미소를 띠어 올렸을 것이다. 안회가 공자의 으뜸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안회가 스승을 ‘있는 모습 그대로의 공자’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석가가 자신의 수제자로 초라하고 어리석은 가섭(迦葉)을 지정하였듯이. 일찍이 석가가 영산(靈山)에서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였다. 그때 허공에서 연꽃이 떨어져 내리자 석가는 말없이 연꽃 한 송이를 집어 들어 제자들에게 이를 보였다. 제자들이 모두 그 뜻을 몰라 침묵하고 있었는데, 오직 가섭만이 얼굴을 환하게 펴서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염화미소(拈華微笑)란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것. 석가의 마음을 가섭의 마음이 순간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 [남규철의 DVD폐인]6.1 타고 달리는 글래디에이터

    아직도 홈시어터와 DVD의 대부분은 5.1채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만, 최근에는 6.1채널을 지원하는 기기들과 DVD타이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6.1채널은 5.1채널(정면 좌우, 중앙, 후면 좌우 및 저음)에 리어 센터(후면의 중앙)채널이 추가된 것으로,5.1채널에 비해 좀 더 실감나는 현장감과 부드러운 이동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물론 스피커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하고 기기와 타이틀도 6.1채널을 지원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고, 아파트가 대부분인 일반적인 생활환경으로 볼 때 5.1채널도 버겁다는 의견 등 6.1채널은 아직 빠르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수의 타이틀들이 6.1채널을 지원하고 있고 5.1채널과는 또 다른 현장감과 서라운드를 느낄 수 있으니 한번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타이틀들은 이런 6.1채널 타이틀 중 백미로 꼽히는, 대단히 강렬한 서라운드와 현장감을 경험하게 해주는 타이틀들입니다. ●글래디에이터 6.1채널의 초창기에 만들어진 타이틀중 하나인 글래디에이터는 이미 많은 분들이 손꼽는 명작 DVD 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펼쳐지는 게르만족과의 전투장면들과 콜로세움에서의 검투장면 등에서 들려오는 함성소리와 화살 소리, 창과 검의 소리들은 마치 그곳에 가 있는 듯한 섬뜩한 현장감을 전달해 줍니다. 이렇게 무섭도록 현장감 넘치는 사운드 사이로 들려오는 웅장한 영화음악도 대단히 매력적인 작품입니다.6.1채널로 즐기신다면 영화를 보시다가 어느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오는 칼 소리에 흠칫 놀라게 되는, 좀 더 강렬한 서라운드를 경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웅 현란한 색감의 화면과 환상적인 무술로 잘 알려진 장이머우 감독의 무협대작입니다. 빨강과 노랑, 초록과 파랑 등 화려한 원색이 가득한 화면 위에 펼쳐지는 고수들의 대결장면은 숨이 멎을 만큼 인상적인 서라운드 사운드를 공간 가득히 들려줍니다. 바람을 가르는 검과 화살들, 허공을 내달리는 발자국과 병사들의 묵직한 군화소리 등, 사방의 스피커에서 제각각 들려오는 사운드가 2000년전 중국의 무협세계를 현장감 있게 재현해줍니다. 화질은 조금 아쉬운 타이틀이지만 사운드는 어느 타이틀 못지않은 대단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타이틀입니다. ●블레이드 2 강렬하면서도 역동적인 서라운드와 귀를 찢는 듯한 격정적인 테크노 사운드가 가득한 타이틀입니다. 칼과 총으로 싸우는 주인공의 격투장면은 전후좌우로의 활발한 이동감과 놀랄 만한 리어 채널의 효과음을 들려주며 현란하고 정신없는 테크노 사운드와 둔중한 중저음도 계속해서 스피커를 울려주는 작품입니다. 100% 오락영화의 진수를 맛보게 해주는 박력 만점의 활극과 강력한 사운드, 그리고 깨끗하고 안정적인 화면 등 여러면에서 DVD를 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타이틀입니다.
  • 압바스 팔의장 암살 모면

    내년 1월9일 실시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선거에서 최대 정파인 ‘파타운동’을 대표해 출마하는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신임 의장이 14일(현지시간) 밤 방문한 가자지구내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의 추도식장에서 그에 반대하는 파타운동 내 무장요원과 경호원들간에 총격전이 벌어져 2명이 숨지고 수명이 다쳤다. 총격전은 “아부 마젠(압바스의 별명)은 안된다.”고 외치는 수십명의 무장요원들이 허공에 총을 발사하자 경호원들이 이들에게 사격을 가하면서 일어났다. ●강경·온건파 대립 격화될듯 압바스는 “슬픔을 표할 때 총을 발사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오랜 전통”이라며 이날 사건은 자신을 노린 암살 기도도 아니며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것도 아니라고 의미를 축소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날 발생한 총격전을 간단히 넘기기는 힘들 것 같다. 압바스는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등 강경 무장단체들에 내년 선거 참여를 설득하기 위해 가자지구를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분의 무장단체들은 이스라엘을 파괴하기 위한 무장투쟁을 통해서만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이 가능하며 자신들의 동의 없는 이스라엘과의 타협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팔레스타인 전문가들은 이날의 총격전이 이같은 무장단체의 뜻을 전달하기 위한 경고로 보고 있다. 결국 총격전은 강경파와 온건파간의 대립·투쟁이 앞으로 격화될지 모른다는 우려에 불을 지폈다. 내년 1월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는 과도체제의 안정이 필수적이지만 새 과도체제가 사실상의 무법상태를 통제할 능력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강온파간 격렬한 내분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년 선거의 성공적 실시도 자신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이날 총격전이 갖는 또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테러 근절을 위한 팔레스타인의 무장해제가 사실상 불가능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평화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팔레스타인의 테러 근절과 이를 위한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있다.180만명 정도가 거주하는 가자지구 내에만 100만정 정도의 개인 화기가 유포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팔 무장해제 사실상 불가능 이처럼 팔레스타인의 앞날이 불투명한 가운데 미국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오는 23일 야세르 아라파트 사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요르단강 서안을 방문, 압바스 PLO의장과 쿠레이 총리 등 새 지도부를 만난다고 나빌 샤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이 15일 밝혔다. 파월 장관은 22∼23일 이집트에서 열리는 이라크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팔레스타인을 방문할 예정이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日 도시바, 하이닉스 겨냥 특허침해 제소

    日 도시바, 하이닉스 겨냥 특허침해 제소

    일본 전자업계의 ‘특허공세’가 거세다. 메모리반도체,LCD(액정표시장치),PDP(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 등 일본업체들이 잠시 투자를 미루는 사이 한국기업이 세계 1위로 도약한 산업 전방위에 걸쳐 원천기술을 주장하며 국내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9일 반도체업계와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에 따르면 세계적인 반도체업체인 도시바가 하이닉스반도체를 상대로 난드(NAND)플래시 메모리의 설계 특허를 침해했다며 일본 지방법원에 피해보상과 판매보상을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도시바는 또 조만간 미국 텍사스주 연방법원에 하이닉스 미국 현지법인과 판매 대행사 등을 상대로 D램 특허 3건과 난드플래시 특허 4건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하이닉스 제품의 수입을 중단토록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바는 1996년 8월 하이닉스와 반도체 특허에 대한 상호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으나 2002년 말로 효력이 소멸됐으며 하이닉스가 이 계약을 갱신하는 것을 거절함에 따라 법적 조치를 결단하게 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에 대해 하이닉스측은 “2002년 계약이 끝난 뒤 새로운 조건으로 계약을 갱신하기 위해 협상 중이었는데 도시바가 갑자기 소송을 제기했다.”면서 “소송에는 강력하게 대응하되 협상은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이닉스의 난드플래시 매출은 3·4분기 기준으로 1000억원대에 불과하지만 향후 난드플래시 비중을 매출의 2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도시바로서는 특허협상 카드와 별도로 ‘미래의 경쟁자’가 크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할 필요성을 느낄 만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일에는 일본 마쓰시타가 LG전자의 PDP 모듈에 대해 특허를 침해했다며 수입금지를 신청했고 지난 4월에도 일본 후지쓰가 삼성SDI의 PDP에 특허소송을 제기했다가 양사 합의로 분쟁이 종결된 바 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외제차 소비자 우롱 끝이 없다

    외제차 소비자 우롱 끝이 없다

    외제차 가격이 또 오른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벌써 세 번째다. 국내 수입차는 외국에서 팔리는 가격 보다 이미 20% 이상 비싼데도 업체들은 차값 인상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소비자는 외제차 딜러의 ‘봉’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BMW가 이달 들어 2005년형 모델을 출시하면서 모델별로 가격을 0.5∼4.9% 올렸다. 평균 인상률이 2%다. 벤츠 등 다른 유럽 브랜드들도 유로화 강세 때문에 가격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가격 인상을 준비 중이다. 외제차 가격은 관세(8%)를 빼고도 외국에서 팔리는 가격에 비해 턱없이 비싸다. 호화 객장 꾸미기, 호텔 신차 발표회 등 마케팅 비용이 차값에 포함돼 거품이 커질 수 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다. 서울 강남대로 뱅뱅사거리에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타워는 지하 1층, 지상 6층에 연면적 1300여평. 메르세데스벤츠 단독 전시장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유리성을 연상케 하는 외관 밖에서는 허공에서 각도를 기울여 전시한 차량이 보인다.1층에는 실내 연못이 조성돼 있고 4층 등 옥외 테라스에는 모임과 콘서트를 할 수 있는 이벤트 공간도 있다. BMW 서울 대치 전시장은 가구와 카펫, 조각상 등 인테리어 소품을 세계적인 인테리어 전문업체로부터 직접 주문, 설치했다는 설명이다. 독일의 조명 디자이너 잉고 마오르가 제작한 붉은색 샹들리에와 사진작가 김중만의 작품도 걸려 있다. 또 BMW 차량과 전시장 조감도 등을 보여주는 40대의 모니터도 설치돼 있다. 렉서스, 볼보, 혼다 등의 딜러들도 최근 서초동 일대 대형 아파트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전시장을 경쟁적으로 내고 있다. 유럽차 브랜드의 경우 딜러가 소비자에게 가격을 조정해 주는 재량권이 크다. 딜러가 갖는 마진은 차값의 15%나 된다. 현대차는 4∼5%, 쌍용차는 5~6%선이다. 외제차 관계자는 “외제차는 소량 판매인 만큼 국내 딜러 마진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면서 “차값이 비싼 것은 최고급 옵션을 기본으로 들여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딜러에게 떨어지는 마진이 차량 판매에 따른 사후 서비스보다 호화 마케팅에 들어가고 있어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이득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외제차의 최고급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마케팅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서 “이를 위해 객장 꾸미기, 호텔 발표회 등 호화 마케팅은 필수”라고 밝혔다. 국내 외제차의 최고급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소비자가 마케팅 비용까지 부담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고가 외제차는 외국에서 팔리는 것보다 세금을 빼고도 20% 이상 비싸다. 국내 외제차 시장이 일본과 달리 고가차 위주로 형성돼 있어 딜러 마진도 그만큼 크다. BMW 530i의 국내 판매가는 8870만원이지만 미국에서는 6620만원에 살 수 있다. 관세를 감안해도 20% 이상 가격 차이가 난다. 렉서스 GS300의 국내가는 6860만원이지만 미국에선 4647만원이다. 외제차 업계는 지난해 6월과 12월에 이어 이달에도 가격을 인상했거나 추진 중이다. 관계자는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옵션이 새롭게 변할 경우 가격인상이 동반된다.”면서 “국내에 들어오는 외제차는 소비자 취향에 상관없이 대부분 최고급 옵션을 기본으로 장착해 수입되기 때문에 고가품이라도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2004 美대선] D-4 막판 혼탁… 부정투표 논란

    |워싱턴 이도운특파원|투표일을 나흘 앞둔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혼탁한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부재자 투표용지 수만장이 허공으로 사라지는가 하면, 가짜 선거인 명부가 등장해 당국이 수사에 착수했다. ●사라진 투표용지와 가짜 선거인 명부 유권자의 자격 등과 관련해 이미 9건의 선거 소송이 진행중인 플로리다주에서 부재자 투표 용지 5만 8000장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조지 W 부시의 동생 젭 부시가 주지사인 플로리다에서는 지난 2000년 대선에 이어 부정 투표 논란이 재연됐다. 플로리다주 브로워드 카운티에서 사라진 투표용지는 신청된 부재자 투표수의 절반에 이른다. 이 지역 선거위원회에는 부재자 투표를 신청하고도 투표용지를 받지 못한 유권자들로부터 항의 전화가 빗발쳤으며, 민주당 플로리다주 지부의 다이앤 글래서 부의장은 “공화당원들이 표를 또다시 훔쳐가려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또 네바다와 오하이오, 뉴멕시코 등 일부 접전지역에서는 가짜 유권자의 명단이 기재된 선거명부가 발견돼 당국이 수사에 나섰다고 LA타임스가 보도했다. 최근 새로 등록한 수십만명의 선거인 명부 가운데 단일 필체로 기록된 유권자 등록신청서 뭉치가 나왔고 ▲전화번호부를 통째로 베낀 뒤 사인을 위조한 신청서 ▲기존에 등록된 유권자와 중복된 신규 등록자의 서류 등도 발견됐다는 것이다.LA타임스는 각 정당의 재정지원을 받은 외곽조직들이 유권자를 확보하기 위해 수십만 달러씩을 지출하면서 불법적인 등록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또 이에 따라 이번 대선에서 패한 정당이 소송을 제기, 법정에서 선거에 결함이 있다는 주장을 내놓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조기 투표 부시가 우세 ABC방송은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이미 투표를 한 유권자 24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1%는 부시 대통령에게,47%는 케리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날까지 조기투표한 유권자는 9%이며 대선날까지 20%가 투표를 마칠 것으로 예측된다. da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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