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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노래로 강연 나선 통일운동가 백기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노래로 강연 나선 통일운동가 백기완씨

    ●전국과학기술노조 첫 테이프… 올 100회 목표 살면서 우리에게 유행가는 무슨 의미로 다가올까. 또 어떤 그림자로 남을까. 주로 사랑과 이별, 기다림과 만남, 아픔을 다룬다. 한 시대를 풍미하다 향수와 추억으로도 남는다. 저마다의 다른 의미도 있겠지. 민족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들에겐 특히 각별하다. 한많은 아픔 속에, 멍든 가슴을 때때로 비틀어 쥐어짜며 회한과 통한의 눈물을 펑펑 흘리게 하겠지. 지난 16일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소재의 한국노동교육원 대강당. 이 시대의 통일운동가로 잘 알려진 백기완(73) 통일문제연구소장이 특유의 검정색 두루마기 차림으로 오랜만에 강단에 섰다. 전국과학기술노조에서 초청한 자리였다. 객석에는 전국에서 온 노조 간부 100여명이 앉아 있었다. 연단 한쪽에 ‘노래에 얽힌 인생 이야기’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이날은 백 소장이 ‘노래로 연속 강연’ 첫 테이프를 끊는 날이기도 했다. 모처럼 백 소장의 ‘노래에 얽힌 인생’ 강의를 듣기 위해 일반인들도 소문을 듣고 참석, 눈길을 끌었다. 잠시 후 백 소장이 “여러분은 어렸을 적부터 책을 통해 지식을 얻고 의식을 키웠지요.”라고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여기에 있는 백기완은 그러지 못했어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첫째가 가난, 둘째가 어머니가 들려준 옛날 이야기, 셋째가 우리 민족의 문화, 민중의 문화가 나를 키웠지요.”라고 분위기를 집중시켰다. 이어 문화 가운데서는 노래, 그 중에서도 유행가가 자신을 키우는데 보탬이 됐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노래에 얽힌 한많은 인생사는 이렇게 풀어나갔다.‘세세연년’을 먼저 언급했다. “우리나라에는 노래를 잘 부른 가수가 백년설, 고복수, 남인수 이 세 분입니다.‘세세연년’은 1939년도엔가 백년설씨가 불렀지요. 어쨌든 45년 해방 직전인가 그랬어요. 고향(황해도 은율)에서 조막손인 사촌형과 함께 지낸 시절이지요. 조막손은 양손의 열 손가락이 하나도 없는 것을 말합니다.” 큰아버지의 아들, 즉 사촌형이 조막손이 된 까닭을 설명했다. 어린 백기완의 큰아버지는 독립운동으로 12년동안 감옥을 드나들었다. 이 과정에서 큰아버지는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일본 경찰들은 손바닥을 지지고 다리와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견디다 못한 큰어머니는 어디가서 식모살이라도 해야겠다며 집을 나가버렸다. 추운 겨울날 밤, 사촌형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겠다며 마당으로 뛰어나가다 엎어지면서 그만 모닥불더미에 넘어지고 말았다. 한참만에 누군가에 의해 꺼냈을 땐 이미 열손가락이 다 타버린 상태였다. 이후부터 사촌형은 아예 입을 자물쇠처럼 닫아버렸다. 꼭 할 말이 있으면 어디서 들었는지 ‘너 없는 이 세상은 불꺼진 항구다’라는 노래만 불렀다. 백 소장은 잠시 당시를 회상하더니 허공을 바라본다.“여러분 한번 불러볼까요.”라고 했다. 주저없이 “예”라는 대답이 나왔다. 백 소장은 손으로 마이크 옆의 탁자 위를 손바닥으로 타닥타닥 치면서 반주를 한다.“산홍아 너만 가고 나만 혼자 버리기냐/너 없는 이 세상은 눈 오는 벌판이다/달없는 사막이다 불꺼진 항구다.” 노래를 마친 백 소장의 목소리가 이내 울부짖음으로 격해진다.“내가 초등학교 입학 1년전, 일본 경찰이 찾아와 노력봉사에 안나온다고 행패를 부리자 참다못한 조막손 형님은 손가락 없는 주먹으로 일본 경찰을 때려눕혔어요. 물론 도망을 갔지요. 하지만 조막손 형님은 6·25전쟁때 미군의 폭격을 맞아 그만 두다리를 다 잃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망할놈의 비극이 어디 있습니까.”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두세번 닦는다.“이 노래는 절망속에서 불렀어요. 집나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빼앗긴 나라에 대한 그리움으로 말야.”라고 북받치는 감정을 애써 참았다. 유행가는 절망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그리움의 불꽃이자 저절로 내쉬는 한숨이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요즘 유행가에는 이런 불꽃도 한숨도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절망의 개인사·분단 아픔 유행가로 풀어 ‘비내리는 고모령’에 이르러서는 분단의 비극을 뼈아프게 강조했다. 한맺힌 사연은 이러했다. 6·25 당시 백 소장은 17세였다. 바로 윗형(6·25때 전사)에 이어 자신도 피란길에 징집됐다. 그런데 징집자들을 태운 군용차가 갑자기 논길 옆으로 엎어졌다. 그는 부상당한 채 논두렁에 곤두박질쳤다. 한참만에 깨어보니 주변은 온통 칠흑같은 어둠뿐이었다. 사람들은 온데간데 없고 혼자만 처박혀 있었던 것. 너무 겁이 나 ‘사람 살려달라.’고 아무리 외쳐도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발 닿는대로 산비탈을 막 돌아서 나올 무렵이었다. 어디선가 어억어억 울음섞인 노래가 나지막이 들려왔다.“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 날 밤이 그리웁고나…” 백 소장은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노랫소리가 들리는 집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갔다. 도착해보니 젊은 농민이 이미 숨을 거둔 피투성이의 아내를 안고 ‘비내리는 고모령’만 처절하게 부르고 있었다. 아내가 미군에게 겁탈당하는 광경을 보고 덤벼들었다가 아내는 총에 맞아 죽고 남편은 부상당한 채 피를 흘리며 아내를 부둥켜안고 있었던 것. 남편은 피를 흘려 죽어가면서도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만을 계속 반복하면서 부르다가 피눈물로 쓰러졌다. “여러분 전쟁은 이처럼 죽이고 또 죽이는 일이지요.‘비내리는 고모령’은 바로 우리 민족의 비극을 상징하는 노래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이어 ‘녹슬은 기찻길’을 목놓아 부른다.“휴전선 달빛아래 녹슬은 기찻길, 어이해서 피빛인가 말 좀 하려마. 전해다오. 전해다오. 고향잃은 서러움을. 녹슬은 기찻길아. 어버이 정그리워 우는 이 마음….” 백 소장은 이날 모두 11곡의 노래를 소개할 예정이었으나 7곡밖에 풀어내지 못했다. 이튿날 오후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통일문제연구소를 찾았다.1층짜리 한옥집 대문에 벽시 ‘새해맞이’가 첫눈에 들어온다. “야, 임마/춥고 배고프지/하지만 제 아무리 눈이 캄캄해도/눈깔 있잖아/그것 하나만큼은/펄펄 살아있어야 하는거여 임마/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알가서/마침내 꽝꽝 가로막힌/돌산도 뚫리는 거야 임마/그러시던 우리 아버지의 가래끓는 한말씀/딱 그 한말씀만 쓸어안고 새해를 맞았다.” ●“재기위해 몸부림칠때 민주인사들 외면” 새해 첫날 떡국도 못먹고 굶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해주었던 메시지라고 설명했다.10년전부터 매년 신년초에 연구소 대문에 내건다. 백 소장은 연구소가 어려웠던 시절을 얘기하면서 “입도선매식으로 책을 쓰며 재기를 위해 몸부림칠 때 철거민들은 몇백부씩 사주었지만 정작 민주화를 외쳤던 사람들은 단 한권도 안사주더라.”는 섭섭함을 강하게 표시했다. 아울러 고통이 있을 때마다 ‘한발자욱만 더’(벽시)라는 각오를 다지면 걸어왔단다. 백 소장에게 나머지 4곡, 즉 ‘울고넘는 박달재’‘고향설’‘달도 하나 해도 하나’‘사랑만은 않겠어요’의 사연을 풀어달라고 거듭 요청을 했다. 그러자 “몇가지 조건이 있어. 그걸 들어준다면 하지.”라고 전제했다.‘울고넘는박달재’에서는 땅콩팔이 소녀,‘고향설’에서는 전장에서 보내온 형의 편지,‘사랑만은 않겠어요’에서는 옥살이할 때의 사연 등이었다. 얘기하는 도중 자꾸 그때가 생각나는지 중간에 몇번이나 그만두자며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이봐 김 기자, 내게 남은 것은 눈물 두방울이야. 하나는 한숨의 눈물이요, 다른 하나는 아쉬움의 눈물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울면서 노래하고, 강연하고, 이런 노인이 전세계 어디 있겠어. 서울신문 노조에서 초청하겠다는 내용을 기사에 반드시 넣으라고.” 백 소장은 또 “유행가를 결코 찬양하지 않아. 살다보니 들려왔을 뿐이야. 부정부패에 맞서, 민족 반역자 타도를 위해 용감했던 백기완이 노래에 얽힌 한가닥, 우리 문화의 사연을 얘기하려는 것이야.”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울러 “올해 100회정도 강연할 생각이니 초청을 하려면 통일문제연구소(02-762-0017)로 연락하라고 그래.”하면서 밖으로 쫓아내다시피했다. 주말매거진We팀장 km@seoul.co.kr 사진 광주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최근 펴낸 책 ‘부심이의 엄마 생각’에는 이력을 이렇게 적고 있다. ▲황해도 은율 구월산 밑에서 태어남(1933년). ▲초등학교만 다니고 혼자서 공부함 ▲젊은날엔 농민운동, 나무심기운동, 빈민운동을 함(54∼61년) ▲백범사상연구소를 세움(67년) ▲통일문제연구소로 바꿈(84년∼ ) ▲요즘은 통일문제연구소장, 계절마다 내는 책 ‘노나메기’ 발행인 ■ 저서 ‘항일민족론’‘통일이냐 반통일이냐’ 이외 수필집=‘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나도 한때 사랑을 해본놈 아니요´,‘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여´,‘백기완의 통일 이야기´,‘장산곶매이야기´,‘이심이 이야기´,‘우리겨레 위대한 이야기´,‘그들이 대통령되면 누가 백성 노릇할까´, 시집=‘백두산천지´,‘젊은날´, 영화극본=‘대륙´,‘단돈 만원´,‘쾌지나 칭칭 나네´ 등.
  • [사설] 북 경수로 청산비용 뒤집어 쓰나

    북한 신포 경수로 청산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는 쪽으로 한·미 양국이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부 당국은 일단 “아직 협상 중이며, 결정된 것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석연치 않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유감이 아닐 수 없다.1997년 신포 경수로 착공 이후 우리 정부가 들인 돈은 전체 건설비용의 70%가 넘는 11억 3700만달러다. 그러나 이 돈은 지난해 9월 6자회담에서 신포 경수로 청산이 결정되면서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2억달러 안팎의 청산 비용마저 우리가 떠안는다면 10년 세월을 허비하고 14억달러의 막대한 금액을 허공에 날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 더욱 답답한 것은 이 돈이 이미 날아간 돈이 아니라, 앞으로 국민 세금으로 갚아야 할 돈이라는 점이다. 경수로는 무용지물이 됐는데 경수로 중단의 책임이 없는 남한이 국민세금으로 그 빚잔치를 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예산에서만 경수로 건설비용 원리금 상환에 2000억원을 책정해놓고 있다. 비용부담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듯 하다. 북한이 경수로 중단 책임을 들어 위약금까지 요구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정부는 신포에 남아 있는 455억원 상당의 자재와 중장비를 회수할 방침이라지만, 이마저 북한이 순순히 내어줄지 불확실하다. 이 밖에도 경수로 대안으로 남측이 제시한 200만㎾ 대북송전이 추진된다면 7조∼11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자금이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 우리는 새 경수로 건설보다는 신포 경수로 회생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금이라도 북한이 즉각 6자회담에 복귀, 청산절차를 중단하고 신포 경수로 재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여의치 않다면 정부는 최대한 협상력을 발휘, 청산비용을 몽땅 우리 국민이 떠맡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차세대 16인, 미술에 ‘젊음’ 불어넣다

    규정지워지기를 거부하는 게 요즘 젊은 미술작가들의 성향이라고 한다면 16일 개막,5월16일까지 열리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스펙트럼 2006’이 그 전형이 될 듯싶다. 올해로 3회째인 이번 전시에선 참여작가를 지난 2회의 8명에서 16명으로 크게 늘렸다. 대부분 30대로, 한국 미술계를 이끌어가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만한 작가들을 선정하기 위해 여러 차례 작가를 인터뷰하고 큐레이터와 토론을 거쳤다고 리움측은 밝혔다. 작품들은 평면회화보다는 대부분이 설치나 미디어아트 등이어서 과감한 공간해석과 시간과 존재에 대한 성찰 등 메시지나 독창성이 강하다. 작가들은 작품 하나하나를 통해 가상과 실제라든가 주체와 객체, 나와 타자, 정체성과 차이, 예술과 비예술의 문제 등 상반되는 의미나 그 경계선에서 작업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건축모형 내에 카메라를 설치해 그 렌즈가 포착하는 영상이미지를 통해 실제와 가상세계가 혼재하는 새로운 공간감각을 경험하게 하는 정정주의 설치작업. 뉴욕에 살고 있는 작가의 아파트 방안의 모습과 뉴욕 거리의 풍경을 현란한 고속 영상으로 보여주는 정소연의 작업. 그리고 유명 에니메이션 캐릭터의 형상을 해부학적으로 연구하여 실제 동물에 해당하는 리틴어 학명을 붙이는 방법으로 가상과 실제를 혼돈케 하는 이형구의 ‘아니마투스’ 연작 등. 이런 일련의 작품들은 현실과 허구, 주체와 객체 사이의 구분이 모호하고, 원본은 없고 모사물만 존재하는 이른바 ‘시뮬라크르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모습을 재생해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작곡과 교수인 장재호와 미디어작가 이준이 공동으로 만든 ‘사운드칵테일’은 보는 즐거움과 듣는 즐거움을 동시에 주는 인터랙티브 작품. 깜깜한 방안에 작가들이 설치해 놓은 병이나 그릇 같은 오브제에 관객이 다가서면 센서가 이를 감지해 소리를 들려주고 불이 켜지며 병에 물이 차오른다. 시각과 청각의 통합을 시도하고, 소리의 추상성과 물질성을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작가들은 설명한다. 송상희는 광개토대왕비의 본을 비닐랩으로 만들어 허공에 매단 작품을 통해 아시아 국가 사이에서 벌어진 남성적 패권주의와 남근중심적인 사상에 대한 여성주의적 시각을 보여준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사진가 천경우는 익명인들을 18분간 길게 노출한 사진으로 찍은 작품을 통해 개개인이 갖고 있는 시간 관념의 주관성을 지적한다. 이밖에 박윤영 김성환 지니서 손정은 송상희 임자혁 전경 천경우 최승훈 박선민 등이 총 4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각기 독립된 전시공간에 작품을 설치함으로써 관람객이 각 공간에 발을 들일 때마다 단순한 작품 감상을 넘어 다양한 차원의 세계를 넘나들며 체험하는 느낌을 갖도록 했다. 이준 리움 부관장은 “현대미술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작가를 찾다보니 설치나 미디어 아트쪽 작품들이 많이 포함된 것 같다.”며 “현대미술의 역동적인 변화와 힘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관람료 일반 3000원, 청소년 2000원. 예약 문의 (02)2014-6901.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회갑맞은 강은교 시인 ‘초록 거미의 사랑’ 펴내

    회갑맞은 강은교 시인 ‘초록 거미의 사랑’ 펴내

    지난달 회갑을 맞은 강은교(동아대 교수) 시인이 열한번째 시집 ‘초록 거미의 사랑’(창비)을 펴냈다.1968년 ‘사상계’로 등단한 시인은 초창기 허무와 고독의 시대를 거쳐 민중적인 정서가 담긴 시들을 발표했고,1990년대 이후에는 작고 힘없는 사람들의 중얼거림, 소소한 일상의 소리에 귀기울여 왔다.4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 역시 작고 사소한 사물들의 소리에 반응하는 시인의 내면을 담은 시들과 가야를 소재로 한 연작시, 시의 주술성을 드러내는 굿시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드러낸다. 표제작 ‘초록 거미의 노래’는 작은 몸뚱이를 강물에 흘리며 끝없이 흘러가는 초록 거미에 시선을 맞춘 시다.‘초록 거미 한 마리, 지나가는, 강가의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 예쁜, 예쁜, 초록의 배, 허공에 엎드려…초록 거미 한 마리, 눈물 글썽이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 저 잠자리를 보아, 비단 흰 실로 뭉게뭉게 감긴 저 잠자리 한 마리를 보아, 잠자리를 그만 죽여버렸네,(후략)’(‘초록거미의 노래’중) 3부 가야소리집과 4부 굿시는 ‘시가 곧 노래이기를 꿈꾸는’시인의 작품 경향을 보여준다. 특히 가야소리집은 지난 10년간 박물관을 수십차례 드나들며 가야의 사람들과 사물들, 상황들을 시인의 언어로 복원시킨 서사시다.‘우리 엄마는 왕비가 못 됐지/우리 엄마는 종/물을 가져오라면 물을 가져오고/배를 내밀라면 배를 내밀던 종/꿈은 사라져/신데렐라의 금빛 마차처럼/꿈은 사라져/어둠 잎들의 꿈은 사라져’(‘아직 태어나지 못한 아이의 편지2’중) 또한 ‘열어주소 열어주소/이 말문 열어주소/동해용왕님 워어이 워어이/남해용왕님 워어이 워어이’로 주술을 거는 굿시들은 리듬감만으로도 어깨가 들썩인다. 그는 얼마 전 유성호 등 평론가 15명으로부터 비평집 ‘강은교의 시세계’(천년의시작)를 헌정받았다. 예순 고개를 넘기가 쉽지 않았는데 회갑 잔치를 겸한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더란다. 40년 가까이 시를 써왔지만 “갈수록 시가 어렵고, 뭔지 모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내 이야기지만 나를 넘어섰을 때 보편성을 갖는 것이 시다. 그런 시를 얻으려고 평생을 노력했다.”는 대목에선 시인의 강한 자존심이 느껴졌다. 요즘 그가 관심을 쏟는 건 시낭송 모임 ‘시바다’ 활동이다. 시 치료를 목적으로 한 모임으로 처음엔 평범한 낭송회로 출발했으나 횟수를 거듭하면서 퍼포먼스가 합쳐진 흥건한 잔치판으로 변했다. 지난 주말엔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지은 밀양연극촌에서 행사를 가졌다. “인쇄문자의 시대가 지난 지금,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가 문제다. 시인들끼리만 시를 읽는 것은 곤란하지 않으냐.”는 시인은 앞으로 계절마다 대학생들을 참가시켜 본격적인 쌍방 교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시 모음집 형식의 시집은 이제 그만 낼 생각”이라며 “가야소리집처럼 테마시집에 힘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6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儒林(530)-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0)

    儒林(530)-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0)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0) 그러나 율곡은 노승이 갈긴 한 방망이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면서 크게 할(喝)하여 말하였다. “이미 말에 표현이 있으면 그것이 곧 대상의 경계가 되거늘 그것이 어찌 본체라 하겠습니까.” 율곡은 노승이 말하였던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닌 것이 진여(眞如)의 본체라오.’라는 말을 붙들고 늘어진 것이었다. 즉 색이니 공이니 진여니 하는 것의 말의 표현은 결국 공허한 말장난의 경계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 율곡의 반격이었다. 그러고 나서 율곡은 직격탄을 날린다. “…만약 그렇다면 유가의 묘한 것은 말로써 전해질 수 없는데, 불가의 도는 문자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자 안에 있다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율곡의 직격탄은 부처가 남긴 말에서 비롯된다. 어느날 부처는 영산에 앉아서 설법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허공에서 꽃잎이 눈처럼 흩어져 내렸다. 허공에서 흩어져 내린 꽃은 연꽃. 설법도중에 부처는 갑자기 말을 끊고 한 송이 꽃을 주워 들고 가만히 여러 대중들에게 그 꽃을 보일 뿐이었다. 이 장면은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라고 하여 이를 흔히 불가에서는 선의 시원점으로 삼고 있다. 그 자리에 모였던 수천의 대중들은 갑작스러운 부처의 침묵과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 꽃 한 송이를 들어올린 부처의 뜻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 있었는데, 유독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가섭존자의 ‘파안미소(破顔微笑)’를 본 순간 부처는 자신의 가르침이 문자나 교리로가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제자에게 전해졌음을 깨닫게 되었으며,8만의 설법으로도 표현해 낼 수 없는 진리, 즉 부처의 마음을 가섭존자가 그대로 이어받았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이 통한다.’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고사성어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말. 이때 부처는 다음과 같은 수수께끼의 말을 남기는 것이다. “나에게는 더할 수 없는 바른 진리의 가르침 ‘정법안장(正法眼藏)’과 끝없는 진리의 자유로운 경계 ‘열반묘심(涅槃妙心)’, 모든 것이 있으면서도 또한 모든 것이 없는 불변의 진리인 ‘실상무상(實相無相)’과 오묘한 불법으로 들어가는 깊고 묘한 길 ‘미묘법문(微妙法門)’, 그리고 문자나 경전의 가르침과 같은 글자로 표현될 수 없이 오직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오묘한 진리인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이 있다. 이를 바로 마하가섭에게 전한다.” 부처의 이 말에서 부처의 가르침 이외에 심법(心法)이 따로 전해지게 되었으며, 이를 최초로 전해받은 사람이 바로 마하가섭. 그러므로 불가에서는 마하가섭을 불조법맥(佛祖法脈)의 제1조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율곡은 바로 이러한 부처의 수수께끼의 말을 인용하여 노승을 향해 결정타를 날린 것이었다.
  • [호주오픈 테니스] 힝기스 “다시 일어설테야”

    호주 멜버른의 로드레이버코트는 마르티나 힝기스(25·스위스)의 텃밭이었다. 지난 1997∼99년까지 호주오픈 타이틀을 세 차례 연속 품에 안았고, 이후에도 은퇴한 2002년까지 내리 결승 무대를 밟았다.4년만에 다시 그 코트에 돌아온 힝기스의 모습은 그 때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동안의 공백이 아쉬울 뿐이었다. ‘돌아온 알프스 소녀’ 마르티나 힝기스가 25일 호주오픈테니스(총상금 2919만달러) 여자 단식 8강전에서 지난해 US오픈에 이어 메이저대회 2연속 우승을 벼르는 ‘붉은 마녀’ 킴 클리스터스(2번시드·벨기에)에 1-2로 패해 탈락했다. 지난해 말 코트 복귀를 선언한 뒤 와일드카드를 받고 시즌 첫 메이저대회에 나선 힝기스는 1회전에서 베라 즈보나레바(30번시드·러시아)를 시작으로 비교적 하위 랭킹의 선수들을 상대로 8강까지 올랐지만 이날 클리스터스의 강력한 스트로크와 패싱샷 등에 발이 묶여 결국 무릎을 꿇었다. 힝기스의 돌풍을 잠재운 클리스터스는 앞서 패티 슈나이더(7번시드·스위스)를 2-0으로 간단히 제압하고 지난 1999년 준우승 이후 7년만에 4강에 오른 프랑스의 자존심 아멜리에 모레스모(3번시드)와 결승 티켓을 다투게 됐다. 남자부 8강전에서는 니콜라스 키퍼(21번시드·독일)가 ‘반칙 논란’ 속에 세바스티앙 그로장(25번시드·프랑스)을 4시간 48분간의 대접전 끝에 가까스로 물리치고 4강에 합류했다.그러나 키퍼는 게임스코어 6-5로 앞선 5세트 12번째 게임에서 그로장의 시야를 막기 위해 라켓을 허공에 던지는 등 비신사적인 플레이로 35경기만에 처음 오른 메이저 4강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세금루머’ 투매에 증시 또 폭락

    ‘세금루머’ 투매에 증시 또 폭락

    투자심리가 급랭하면서 주식시장이 또다시 폭락했다. 코스피지수는 1300선대가 위협받고 있으며, 특히 코스닥시장은 4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지며 날개없는 추락장세를 연출했다. 20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35.86포인트(2.64%) 급락한 1324.78까지 수직하강했다. 이틀 전 ‘검은 수요일’(36.67포인트)에 버금가는 하락폭이다. 코스닥지수는 무려 40.26포인트(5.71%) 급락한 665.31로 마감했다. 나흘 연속 하락해 지난해 11월22일 이후 2개월여 만에 지수가 670선 아래로 떨어졌다. 이날 하락폭은 2002년 6월26일 52.50포인트 이후 최대치다. 이로써 지난 나흘 동안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시가총액은 753조 330억원에서 698조 7820억원으로 줄어 무려 54조 2510억원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 기간에 코스피지수는 6.82%, 코스닥지수는 11.87% 각각 하락했다. 이날 증시는 개장 직후 반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오름세로 출발했으나 프로그램 매도 주문이 쏟아지면서 맥없이 무너졌다. 특히 소득세 포괄주의 도입설 등 근거없는 소문이 나돌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투매마저 급증, 지수가 수직하락했다. 재정경제부는 “모든 소득을 파악할 수 있는 과세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아 아직 도입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지수 하락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외국인들이 4498억원어치를 순매수했으나 기관과 개인이 각각 2286억원,1326억원의 매도 우위를 보였다. 업종별로 증권(-8.17%), 의료정밀(-7.45%), 운수창고(-7.14%) 등이 크게 빠졌다. 전문가들은 주식형펀드의 환매 문의가 쇄도하고 있으나 대세상승 추세는 여전한 만큼 ‘묻지마 환매’는 금물이라고 충고했다. 한화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주 들어 시작된 조정의 연장선”이라며 “매도 욕구가 강한 시기에 프로그램 매물이 쏟아지면서 연쇄적인 매도세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춤으로 마음치료 ‘춤세라피’

    춤으로 마음치료 ‘춤세라피’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춤, 춤세라피를 추세요. 춤을 추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물론 마음의 상처도 치료할 수 있답니다. 여기에 푹 빠진 마니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실직과 이혼 등 누구나 살면서 겪게 되는 아픔과 기억을 춤으로 치료했다고 합니다. 마니아들은 한번만이라도 정신과 몸에 집중하고 자연의 리듬에 맞춰 흔들어보라고 권합니다. 춤 추는 방법이 특별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마음가는 대로 흔들어보세요. 그럼 준비됐습니까.‘셸 위 댄스….’ 글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둥두둥∼딱딱딱 둥두둥∼딱딱딱”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화이트댄스 센터. 경쾌한 북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10명의 춤꾼들이 유별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신경랑(36·교사)씨는 여기저기 주먹을 날렸다. 박재나(35·댄스강사)씨는 손날로 칼질을 하는 춤을 췄다. 갑자기 털썩 눕더니 “엉엉∼앙앙∼” 울기 시작했다. 강모(48·주부)씨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는 아픈 듯 “윽윽∼”신음소리를 냈다. 모두들 특이한 동작들을 이어갔다. 하지만 주변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완전히 몰입된 상태였다. 이들은 춤세라피 마니아들이다. 춤세라피는 춤과 ‘치료’를 뜻하는 세라피(therapy)의 합성어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춤이다. 이들은 매주 한 차례, 한 달에 한 차례 합숙까지 하며 춤을 춘다. 심리 상담치료 워크숍 등을 통해 춤세라피를 알게 된 이들은 춤세라피를 한 뒤 아픈 상처가 잊혀졌고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바닥에 누워서 몸을 떠는 춤을 추던 양모(34·상담원)씨. 그는 지난해 이혼한 뒤 생긴 우울증을 춤으로 극복했다.“8년 동안 남편은 심한 간섭을 했어요. 매일 만난 사람을 캐묻고 주말에 외출도 못하게 했죠. 지난해 이혼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어려웠는데 이 곳에서 춤을 추고 안정을 되찾고 성격이 밝아졌어요.” 김모(48·주부)씨는 실직 때문에 폐쇄적인 성격이 됐지만 최근 밝아졌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고 했다.“10년간 다녔던 회사를 반강제적으로 그만두고 회사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예민해지고 때론 우울하기도 했는데 춤세라피 덕분에 긍정적으로 변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춤세라피는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무용심리치료를 변형시킨 심리치료 프로그램이다. 무용심리치료와 달리 안내자가 언어로 유도하지 않고 혼자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과거 기억속으로 빠져든다. 박선영 화이트댄스 센터장은 “누구나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다. 환자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의 마음도 춤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에 춤세라피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춤세라피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무용심리치료는 안 좋은 일이 생겼던 당시의 기억속으로 유도, 잠재의식 속에 억눌려 있던 말과 행동을 하게 합니다. 성폭행을 당했던 환자는 그때의 기억에 몰입되면서 갑자기 때리고 욕을 하죠. 그러나 춤세라피는 땅과 물, 불, 바람 등 자연 특성이 담긴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면서 무의식에 빠져 과거를 떠올립니다. 그러면 그때 못했던 말과 행동을 하면서 안 좋은 감정이 해소됩니다. 자신을 괴롭혔던 상사한테 큰소리를 지르는 식으로….” 그는 1995년 영국에서 무용심리치료를 전공하던 중 마음의 병이 심각한 일반인도 적지 않다고 생각해 춤세라피를 만들었다고 한다.“무대에서 춤 추면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는데 신경을 써 몸 속으로 빠지지 못 합니다. 하지만 몸에만 집중하고 추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자기 안에 빠집니다. 이런 춤의 성질과 무용심리치료를 응용했습니다.” 이 곳 춤세라피 마니아들은 마음의 상처만 치료하는 데 힘쓰는 건 아니다. 이 가운데는 상대적으로 마음의 병이 더 깊은 소외된 자들을 위해 각자 춤세라피 워크숍을 하는 이도 적지 않다. 장동현(39·상업)씨는 일주일에 한 차례 서울 송파구의 한 장애인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춤세라피를 가르친다. 장씨는 “한 장애인 친구로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경우 마음 속에 억눌린 감정이 많다는 걸 알았다.”면서 “장애인들이 춤세라피를 하면 가슴이 후련해진다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강순옥(47·주부)씨는 “노숙인 쉼터에서 가끔 워크숍을 갖는데 남편의 폭력을 못 견뎌 집을 나온 여성 노숙인이 춤세라피를 하자 그의 아들이 ‘우리 엄마가 행복한 표정을 짓는 걸 아주 오랜만에 봤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수녀인 노은주(40)씨는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춤세라피 워크숍에 함께 참여하기도 하는 등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춤을 통해 치료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그곳에선 이름대신 별명으로 통한다 춤세라피 마니아들의 점심시간.“바람님은 뭐 좋아하세요.”“김치찌개”, “사랑님은요”“저도 같은 것”,“붕붕님은”“나는 보쌈”,“박 기자님은요.”“…” 서로의 호칭을 ‘바람님’‘붕붕님’ 등으로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소외감을 느겼다. 춤세라피 마니아들은 서로를 별칭으로 부른다. 별칭은 서로 친숙함의 표현이라고 한다.‘햇빛’‘바람’‘감동’ 등 별칭도 다양하다. 그럼, 별칭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별칭은 스스로 소망 혹은 이상 등을 담는다고 한다. 또 쉽게 부를 수 있고, 빨리 친해질 수 있는 이름도 사용한다. 휴일인 8일 점심으로 삼계탕을 함께 먹은 남숙영(25)씨 별칭은 ‘맑음’이다. 남씨는 ‘맑음’이라고 한 이유에 대해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맑음’이라고 지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람들이 돈돈돈 하는 게 싫더라고요.”라며 웃었다. 주로 청소년 대상의 춤세라피 워크숍을 하는 ‘붕붕’의 원래 이름은 신차선(34). 신씨는 ‘차선’이라는 이름 때문에 학생들에게 놀림을 자주 받았다. 가령 “선생님은 차선을 잘 지키세요?”“1차선 좋아해요, 아니면 2차선 좋아해요.”라는 식이다. 한 학생한테 “선생님 아침에 버스가 차선을 안 지키고 붕붕붕 가버렸어요.”라고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때 학생들은 배꼽을 잡았고, 그 뒤 신씨는 학생들이 좋아할 수 있는 ‘붕붕’을 별칭으로 삼았다고 했다. ‘수녀님’ 노은주(40)씨는 ‘보름달’. 그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보름달을 별칭으로 삼았다. 먼저 “얼굴과 눈, 코가 보름달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주변에서 이름을 까먹지 않도록 지었다.”고 말했다. 다른 이유에 대해선 “한가위나 대보름날, 여성들이 강강술래를 하며 갈등을 풀었는데 사람들이 갈등을 해소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보름달로 했다.”고 말했다. 어느 덧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면서 박선영 센터장은 “박 기자님도 이름 하나 지으라.”고 농을 건넸다.“저는 바다요. 그런데 같은 이름이 많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박 센터장은 “그럼 푸른 바다나 넓은 바다처럼 앞에 수식어를 붙이면 된다.”고 해 “나는 제주도를 좋아하니까 ‘제주바다’로 하겠다.”고 했다. 별칭이 생기면서 동질감이 느껴졌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프로그램이 궁금하다 춤세라피는 ‘춤과 마음’‘춤과 셀프(self)’‘춤과 에고(ego)’등 모두 3단계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2단계까지 배우면 혼자 집에서도 할 수 있다. 1단계는 춤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춤에 어색한 사람이 적지 않다. 동작이 생각처럼 안 되고, 주변 사람이 신경 쓰인다. 먼저 작은 동작부터 한다. 손가락으로 허공에 여러가지 사물을 그림으로 그려본다. 다시 팔로, 어깨로, 머리로 그린다. 또 바닥 위에 큰 전화번호판을 상상한 뒤 집 번호나 친구 번호를 발로 번호판을 누른다. 이 방법 등을 포함해 20여가지 방식으로 춤을 추는 법을 배운다. 2단계는 몸 속에 의식을 빠지게 하는 훈련이다. 몰입이 잘 되면 잠재의식에 있는 과거 기억과 일찍 만난다. 이 단계에서 춤 출 때 음악이 필요하다. 물(水), 땅(地), 불(火), 바람(風)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든다. 물 리듬은 흘러가는 리듬이고, 땅 리듬은 끊기는 리듬. 불 리듬은 폭발하는 리듬. 바람 리듬은 고요한 리듬이다. 각 리듬은 순서대로 일정시간 들린다. 춤을 출 때 몸에 집중, 전념하면 마음이 평온해진다.3단계는 메시지가 나온다.“유아기로 돌아가라.”혹은 “청년기로 돌아가라.”는 등의 메시지에 의해 특정 시간대로 돌아가는 적극적 명상이다. 명상을 통해 과거를 떠올린다. 1∼2단계를 배운 뒤 물, 땅, 불, 바람리듬을 틀어놓고 혼자서도 춤세라피를 할 수 있지만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전문가의 지도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자료 참고 한국화이트댄스 홈페이지(www.whitedance.net)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당선작] 블랙홀/김미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당선작] 블랙홀/김미정

    ●블랙홀/김미정 등장인물 광식 정애 남자 가인 등을 들고 있는 아이 인철 그 밖의 배우들 각 에피소드들의 시간적 배경은 같다. 에피소드 1 전체 무대는 1,2층의 구조로 되어 있다.2층은 오랜 병원생활을 했음을 짐작하게 해 주는 병실의 내부가 있다. 병실에는 환자용 침대와 보호자용 침대가 있고 침대를 바라보며 유리창이 있다. 유리창 밖으로는 도시의 풍경이 보인다. 양끝으로는 줄을 연결해서 빨래를 걸어 놓았다. 한쪽에는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있고 그것은 병원 비상계단의 모습이다. 침대 옆에는 인공호흡기와 심장모니터기가 놓여져 있다.1층은 어느 산동네를 연상케 하는 배경들이 있고 계단의 정반대쪽에는 지하철 입구의 표시가 그려져 있다. 계단의 앞쪽으로는 벤치가 있고 그 벤치 옆에는 어느 노숙자가 놓고 간 듯한 신문지들과 소주병들이 나뒹군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 얼핏 들으면 기차소리와도 같은 규칙적인 소리.2층의 무대가 조금 밝아지면서 기차소리는 심장 모니터기의 소리로 바뀐다.2층의 무대가 완전히 밝아지면 모니터의 소리는 잦아들고 보호자용 침대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광식의 모습이 보인다. 유리창 밖에는 어깨에 끈을 매단 남자가 유리창을 닦는다. 유리창을 닦다가 소주를 꺼내어 마신다. 광식의 앞에는 먹던 중이었던 김치그릇과 밑반찬 그릇들 그리고 밥그릇이 있다. 나머지 두 침대는 비어있다. 광식:(입맛을 다시며)거 참 맛있겠네. 저 양반 저거 세상을 아는 양반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소주 한 병 사오는 건데.(혼잣말로)거 혼자만 잡숫지 말고 나눠 먹읍시다.(먹던 밥을 계속 먹는다.) 남자가 유리창을 두드리더니 소주병을 내민다. 광식:한 잔 주시게요?아이고 그럼 나야 고맙지요. 유리창 남자가 소주를 따르는 시늉을 한다. 광식이 술잔을 받는 시늉을 한다. 광식:(마시는 시늉)원샷! 캬! 안주는? 안주도 줘야지. 남자가 씩 웃는다. 광식:사람 참 싱겁소. 남자도 하!웃는 모양. 그러고는 유리창을 닦는다. 광식:하, 취한다.(침대의 이불을 젖히니 아이가 반듯이 누워 있다. 광식이 아이의 몸을 옆으로 돌려서 등을 문지른다)우리 딸입니다. 예쁘죠?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이 예수님 귀 빠진 날이래요. 뭐 대단한 양반인지는 몰라도 병원 전체가 들썩들썩 합니다. 우리 병실 환자들은 모두 외출을 나갑디다. 세상을 구원하신 독생자 그리스님인지 놈인지 덕분에 오랜만에 조용하고 좋수.(등을 문지르다가 손을 동그랗게 하고 두드린다.)하나요, 할머니가 지팡이 들고서 달달달, 둘이요, 두부장수 두부를 판다고 달달달, 셋이요, 새 각시가 빨래를 한다고 달달달. 광식이 부르는 노래의 반주와 함께 빨간 등을 든 여자아이가 등장해서 1층의 무대를 돌아다닌다. 아이가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남자가 내려다보고 있다. 아이:(가만히 서서)아빠!일곱은 뭐라고 그랬죠? 남자가 뭔가를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유리창을 두드린다. 광식이 쳐다본다. 남자가 손가락 일곱 개를 유리창에다 댄다. 광식:일곱이요. 일본 놈이 순찰을 돈다고 달달달! 아이:아!(아이가 다시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를 돌아다니다가 퇴장한다.) 광식:(아이의 등에 베개를 대주고 이불을 덮어주면서 남자를 빤히 쳐다본다.)우리가 언제 한 번 본 적이 있죠?(유리창에 입김을 불어서 글씨를 쓴다.‘나 몰라요?’큰 소리로 입 모양이 보이게)초등학교 어디? 난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공주에서 살다가 중학교 올라가면서 서울로 이사 왔는데…. 고향이 공주?아닌가?아무튼 형씨 인상 한 번 좋수다. 어쩌다 이런 일…. 뭐 오해는 마슈. 위험하니까. 이런 일 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잘 될 거요. 인상 보면 알지.(아이를 쳐다보며)우리 애는 십 년째 이러고 누워 있어요.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거든.(사이)원무과에서는 석 달에 한 번씩 청구서가 나옵니다. 일년 만에 집 날리고 벌써 팔 년 짼데 뭐가 남았겠습니까?지금은 월세 낼 돈도 없어서 병원에서 살아요. 뭐 그런 얘기를 밥 먹으면서 하냐고 그러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이게 현실인걸. 만날 울고 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그냥 하루하루 간신히 넘기는 거죠. 하루의 끝은 웃으면서 보내려고 해요.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죠.(한숨을 쉬며)그래도 하루에도 몇 번씩 울화가 치밀어요.(조금 작은 소리로)이건 형씨한테만 하는 말인데요. 처음에는 살아준 것만으로도 고맙더니 딱 일년이 지나니까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길어야 삼년이겠지. 웃기죠?딱 일년 만에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우리 마누라가 알면 난리 날 겁니다. 긴병에 효자 없죠?맞습니다. 부모라면 벌써 포기했을 겁니다. 자식이니까 붙들고 있는 겁니다.(큰소리로)진짜 나 몰라요?(한참의 사이 후 고개를 숙인다. 어깨를 들썩인다. 다시 한참의 사이를 두고 고개를 든다.)제길, 소주 한잔에 취했네. 다 잘 될 거요.(사이)그거 하면 하루 얼마나 줍 니까? 남자가 유리창에다 손가락을 대고는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를 세더니 칼을 꺼내어서 줄을 끊는다. 순식간에 남자가 사라진다. 광식:어?(광식은 잠시 아무 움직임이 없다가 주머니에서 전화를 찾는다.)씨!지가 왜 죽어. 죽을 놈이 누군데.(한참 만에 전화를 찾는다. 떨리는 목소리로)저 여기 13층인데요.(사이)네?병원(사이)한영병원요. 사람이 떨어졌어요.(사이)아니 안이 아니고 밖인데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누구냐면…유리창을 닦는 사람인데…. 인상이 좋고…. 어디서 많이 본 것도 같고…. 저 위 동네에 사는…. 헉!(갑자기 입을 막는다. 전화를 놓친다.) 광식이 정신없이 병실을 빠져나가 비상계단으로 내려간다. 머리를 벽에다 반복해서 박는다. 무언가 모를 괴로움에 몸부림을 친다. 그러다가 미친 듯이 웃는다. 한참 만에 다시 병실로 돌아온다. 아이를 바라보고 유리창 밖을 바라본다. 두 손바닥을 유리창에다 댄다. 이제부터는 모든 행동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아이의 호흡기 전원을 끈다. 호흡기 소리가 점점 잦아들다가 멈춘다. 침대 위 아이의 몸이 위로 한 번 뛰었다가 털썩 내려앉는다. 심장모니터의 박동소리가 완전히 멈춘다. 광식의 몸이 털썩 밑으로 내려간다. 무대가 서서히 어두워진다. 광식의 손바닥 자국이 드러난다. 소리:2005년 12월25일 서울의 모 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생명을 유지하던 15세 김모 양의 아버지가 아이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김모 씨는 병원 소각장에서 아이의 신발을 태우다가 붙들렸습니다. 김모 양은 지난 1998년 교통사고를 당해 그 이후로 계속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살아왔던 걸로 밝혀졌습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아이의 목숨마저 끊어버리게 된 김모 씨는 현재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씨의 다른 가족으로는 아이의 어머니 최모 씨와 8세의 아들이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김씨는 아내 최모 씨에 의해 경찰에 신고 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날 김모 양의 병실 밖에서는 병원의 유리창을 닦는 강모 씨의 추락사가 있었습니다. 강모 씨의 주머니에는 마시다 만 소주병이 있었고 리프트의 한 쪽에는 분골함으로 보이는 상 자에 하얀 재가 반쯤 들어 있었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아 한층 들뜬 분 위기의 한 쪽에는 이런 어두운…. 암전 에피소드 2 빗소리와 함께 무대가 밝아진다.2층 무대의 소품들은 여전하다. 정애가 지하철 입구를 통해 밀고 다니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들고 등장하고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그냥 그 자리에 선다.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어서 닦는다. 남자가 벤치에 앉아 있다가 정애가 있는 곳으로 온다. 정애:(남자를 힐끗 보더니)크리스마스에 눈이 안 오고 비가 오네요. 남자가 쭈그리고 앉는다. 정애도 쭈그리고 앉는다. 정애:(남자를 바라보며)묘한 기분이 들어요. 남자:…. 정애:(천천히 고개를 돌리며)나 좀 봐 주책이야. 남자가 담배를 피운다. 정애:(가방에서 칫솔을 꺼낸다. 혼잣말로 연습한다.)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공부하시느라 살림하시느라 일하시느라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으십니까. 오늘 제가 가지고 나온 물건은 여러분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해소시킬 수 있는 건강 칫솔입니다. 이 건강 칫솔은 아이에스오 9002 인준을 받은 칫솔모를 사용한 칫솔로서 여러분의 이와 잇몸의 구석구석까지 들어가서 찌꺼기와 치석을 제거해 줄 것입니다. 몇 달이 지나도 칫솔모가 상하지 않아 칫솔을 자주 바꾸실 필요가 없습니다.(남자를 쳐다보며)한영병원 1002호에 입원해 있는 가인이를 아시죠? 제 딸이에요. 남자:(그제서야 고개를 돌려서 정애를 본다) 정애:그동안 잘 지냈어요? 남자:…. 정애:당신, 많이 늙었네요. 남자:…. 정애:먹고 살만 하시면 칫솔 두 개만 사주세요.5천원이에요. 이 칫솔은 아이에스오 9002를 인정받았어요. 그게 뭔지 아시죠? 남자가 주머니에서 5천원을 꺼내서 정애에게 준다. 정애가 남자에게 칫솔을 준다. 정애:우리 가인이는 저 혼자 이빨도 못 닦아요. 그래서 칫솔도 필요 없죠.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대 가운데로 간다. 뒤돌아서 정애를 바라본다. 남자:봉천동 산27번지에 사는 소영이는 어제 바다에 뿌려졌습니다. 며칠 전에 돌에 깔려서 죽었거든요. 그 아이도 이제 칫솔은 필요없을 겁니다. 정애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남자:가인이는 오래오래 살길 바랍니다. 정애가 남자에게 달려들어 옷을 잡고 흔든다. 남자와 정애의 몸싸움. 슬프고도 정열적인 음악이 흐른다. 얼핏 보면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 같다.2층 병실로 검은 옷을 입은 조폭이 등장한다. 쇠방망이를 들었다. 조폭:으메 씨벌, 병실 한 번 좋구마잉, 으메 씨벌, 돈 빌려준 놈은 지 엄니 병원비도 없어서 집구석에서 다 돌아가시게 생겼는디 돈 빌려간 놈은 지 자식을 번듯하니 이런 큰 병원에다 모셔두고 있어 잉?니들이 사람이여?개, 돼지만도 못한 것들 아녀 이것!씨발!(방망이를 한 번 내리친다) 정애:병원비가 없어서 사채를 썼어. 갚은 이자만으로도 원금을 까고도 남는데 이 새끼들이 이자가 한달만 밀려도 병실로 찾아오네. 아이의 아빠가 작업복을 입고 1층으로 등장한다. 같은 복장의 배우들이 방망이를 들었다. 광식:이 집은 재개발 지역 내에 있습니다. 나 난 이, 이렇게까지 하긴 싫어요. 어서 어서들 나가세요. 안, 안 그러면 가만 두지 않겠어. 어, 어서 나가!셋을 셀 거야. 하나!둘!씨발 나가요!셋!(방망이를 치켜든다.) 배우들이 같이 치켜든다. 남자:봉천동 산 27번지 재개발 지역.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 조폭:울 엄니도 몇 년째 똥오줌 받아내고 있다니까. 니 자식만 자식이고 울 엄니는 늙었응께 고만 돌아가시라 이거여 뭐여!잔말 말고 돈 내놔!안 그러면 자식이고 뭐고 없응께. 인철이가 피에로 분장을 하고 등장한다. 남자와 정애는 본격적으로 춤을 춘다. 광식:인철아!이 자식 여기 있었구나. 나 좀 살려주라!이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난 못 하겠다. 내가 그 돈은 꼭 갚을게. 인철아. 나 좀 놔 주라. 내 이 손으로 우리 엄니같은 노인네 허리를 치고 머리를 잡고 집에다 불을 지르고 그랬다. 야!인철아!나 좀 ! 인철:아직 먹고 살 만한가 보구나, 니가. 알아서 해. 광식:야, 우리가 불알친구 아니냐. 이 자식아. 인철: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생각해. 자식을 생각하라고. 광식:인철아. 나 이제 이 짓 못하겠다. 나 좀 봐주라. 인철:야 이 자식아. 일할 사람은 많아. 너 당장 돈 갚을 수 있어? 광식:내가 벌어서 갚을게. 인철:오다가 떨어져서 말이야. 니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도 곤란해져. 이쪽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지는 알지? 광식:그래도 난, 난 못해. 인철:이 자식아. 그럼 돈을 가져와. 광식:으으으으으! 인철:쉽게 생각해. 아이의 호흡기 소리가 거칠어진다. 음악이 고조되면서 2층 병실의 조폭과 1층의 광식과 다른 배우들이 방망이를 휘두르고 정애와 남자가 무대를 빙글빙글 돈다. 배우들의 모습은 마치 무협영화의 한 장면 같다. 정애:있는데 안 주는 것 아닌데. 조폭:그려? 갚을 능력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아줌니 아직 탱탱하구마잉. 남자:일곱 살 난 딸이 집 마당으로 뛰어들다가 돌에 깔려 죽었네. 정애:그럴게요, 그럴게요, 제가 가서 일해 드릴게요. 빚만큼 일해 드릴게요. 제발 가주세요. 조폭:오메, 이렇게 쉬운 길이 있었는데 괜히 힘써 부렀네. 현란한 조명이 무대 전체를 채우고 이어서 공사장의 먼지 같은 희뿌연 연기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무대에 탬버린 소리가 울린다. 연기가 걷힌다. 화려한 옷을 입은 정애가 탬버린을 치고 있다. 정애는 노래를 부른다.2층의 유리창 밖으로 어깨에 끈을 매단 남자가 유골함에서 하얀 재를 허공에 뿌린다.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에피소드 3 웨딩마치 흐르면서 무대가 밝아지면 2층의 무대에는 하얀 천이 내려와져 있다. 무대의 곳곳에는 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단들이 있고 단위에 사람들이 둘씩 앉아 있다. 그들은 모두 광식과 정애다. 첫번째 단 광식:오늘은 입질이 영 시원찮네. 정애:아이 재미없어. 광식:그러게 왜 따라왔어. 정애:집에 있어도 재미없어. 광식:그러셔?가인이는? 정애:아까부터 곯아 떨어졌어. 텐트 치고 잔다고 좋아하더니. 당신은 낚시가 그렇게 좋아? 광식:그러엄. 정애:우리보다도? 광식:그러엄. 정애:치, 그럼 왜 결혼했냐? 평생 혼자 낚시나 하고 살지. 광식:니가 결혼해 달라고 하도 쫓아 다녀서 할 수 없이 했다. 정애:뭐야?내가 언제? 광식:물고기 머리냐? 정애:하이구 그러셔?그래서, 그래서 후회해? 광식:글쎄에. 정애:이이가 정말.(광식을 꼬집는다.) 광식:아야!조용히해. 물고기들 다 도망간다. 정애:똑바로 말하란 말야.(또 꼬집는다.) 광식:아야. 왜 이래 마누라. 똑바로 말하면 잡아먹으려고? 정애:뭐야? 광식:하하하. 두번째 단 정애:방송국에서 우리 가인이를 찍어간대. 광식:그래?방송국에서 어떻게 알고? 정애:간호사들이 편지를 써 줬대. 광식:정말? 세번째 단의 배우들이 플래시를 터트린다. 정애: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광식:가끔씩 눈을 맞추고 울기도 합니다. 정애:가인아. 어서 일어나서 엄마랑 밖에 나가 놀아야지. 광식:(얼굴을 찌그러트리고 입을 크게 벌려서 운다.) 정애:그럴 땐 우리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요. 그럼 가인이가 곧 일어날 것 같아요. 광식:(정애의 등을 두드린다.)두 시간에 한 번씩 체위를 바꿔주고 등을 이렇게 두드려 줘야 합니다. 정애:가래도 뽑아줘야 하고요. 낮에는 어머니가 와 계시고 밤에는 우리가 교대로 하죠. 낮에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정애와 광식의 역할을 바꾸어 정애가 광식의 등을 두드린다. 광식:가장 필요한 거는 역시…. 정애:(얼른)아이의 병원비를 석 달에 한 번씩 계산해야 해요. 셋째 단의 배우들이 플래시를 터트린다. 세번째 단 정애:밑 빠진 독에 물붓기지. 벌써 통장이 바닥났어. 광식:인수가 걱정이야. 정애:왜? 광식:장모님이 병원으로 데리고 왔어. 정애:그래서? 광식:데리고 가서 자장면을 사줬는데, 아이가 이상했어. 정애:이상해? 광식:자장면을 먹다가도 눈을 깜빡하고 얘기도 잘 하지 않고 그저 눈만 깜빡거렸어. 정애:하도 오랜만에 보니까 낯설어서 그랬겠지. 광식:그게 아니야. 정애:그럼, 아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광식:장모님이 그러는데 신경증 증세가 있대. 정애:뭐? 광식:우리가 잘 돌봐주지 못해서 그래. 태어나고 얼마 있지 않아 가인이가 그렇게 되고…. 아무리 장모님이 신경 써 줘도. 정애:그래서 엄마가 잘 못 돌봐서 그런단 거야? 광식:이 사람이!누가 그렇대? 정애:그럼 뭐야, 그럼 뭐냐고. 광식:으이구, 왜 억질 부려. 내가 뭐라고 했다고. 정애:몰라. 정말 미치겠다. 다른 배우들이 세번째 단을 쳐다본다. 네번째 단 광식:당신 저녁마다 어디를 나가는 거야. 정애:내가 말했잖아. 친구 식당일 도와준다고. 광식:당신 정말! 정애:어서 밥이나 먹어. 광식:…. 정애:유리창 닦는 아저씨가 죽었어. 광식:뭐? 정애:집이 재개발돼서 다 부숴지고 식구들이 다 뿔뿔이 흩어지고 그랬대. 광식:그래서, 죽었어? 정애:줄을 끊었어. 광식:다, 당신이 봤어? 정애:아니, 들었어. 깡패들이 와서 집을 다 부쉈대. 참 기분이 묘해. 그 아저씬 우리 가인이가 바깥세상을 잘 볼 수 있게 유리창을 깨끗하게 잘 닦아줬는데. 광식:…. 정애:불쌍하다. 그치?그런 거 보면 우리만 힘든 것도 아냐. 가인이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도……. 광식: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그게 어울리는 말이니? 정애:왜 이래?오늘?짜증이 컨셉트야? 광식:힘들겠다. 자기는. 정애:새삼스럽게 왜 이래. 광식:밤마다 춤추고 노래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 정애:뭐? 광식:…. 정애:어, 어떻게 알았어? 광식:더럽다. 정애:누가? 광식:내가. 정애: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당신이 사채만 안 썼어도. 광식:당신이 다른 남자들 앞에서 웃고 있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쏠려. 정애:그럼 가서 일억만 벌어와. 광식:제길! 정애:당신이 신체 포기각서도 썼다며. 콩팥하나 떼어줬는데 이번에는 뭘 주려고?눈?간?심장?그럼 우리 가인이는?당신이 죽으면 가인이도 죽어. 광식:개새끼들한테 돈을 빌리는 게 아니었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정애:허풍 떨지 마. 광식:뭐? 정애:어렵지 않아. 그냥 노래만 불러. 광식:거기가 그런 데냐?노래만 부르는 데냐고. 정애:정 못 믿겠으면 따라와서 보면 되잖아. 광식:꿈에도 생각 못했어. 당신이…. 정애:아까 어머니가 호박죽 끓여 오셨던데 먹을래? 광식:…. 정애:총각김치도 있어. 광식:개새끼. 정애:애 듣는 데서 왜 자꾸 욕을 하고 그래. 광식:듣긴 누가 듣는다고 그래. 병신이! 정애:(광식의 뺨을 친다.) 광식:인생이 억울하다. 정애:…. 광식:…. 정애:가인이가 다 들어. 세 단의 배우들이 일어나서 계단으로 올라가서 하얀 천을 내린다. 침대위의 아이가 호흡기를 단 채 침대에 앉아있다. 빨래가 매달려 있는 줄 사이에는 등이 여러 개 걸려 있다. 등이 하나둘씩 켜지면서 정애의 얼굴 몽환적이 된다. 무대에는 등의 불빛만이 있다. 정애:이상하지. 유리창 아저씨가 우리 병실 앞에서 하얀 재를 뿌리는 꿈을 꿨어. 그게 우리 가인이가 죽어서 태운 재 같아서 가슴이 저려 죽는 줄 알았어.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당신 얼굴이랑 똑같이 생긴 거야. 광식:그 사람. 자기 아이가, 무너지는 집에 깔려서 죽었어. 정애:어떻게 알아? 광식:나도 꿈을 꿨어. 둘이서 장난삼아 주거니 받거니 소주 한 잔 하는데 그 사람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 거야. 초등학교 동창인가 중학교 동창인가 물어보려는 참에 줄을 끊더라. 그러고 나니까 생각이 나는 거야. 죽은 그 아이를 많이 닮았더라. 내가 그 사람을 닮고 죽은 아이가 가인이를 닮고 ……. 정애:꿈을 꾸는 것 같다가 일어나보면 꿈이랑 별 차이가 없는 현실이 돌아와. 광식:내가 거기 있었어. 아이가 죽을 때 내가 거기 있었어. 죄책감 때문에 미칠 것 같다. 배우들이 등 앞에 서있다. 하나의 등에 하나의 광식과 정애. 두 사람이 조금 더 몽환적인 상태가 된다. 정애:지금도 꿈을 꾸는 것 같아. 광식:꿈에서 보면 우리의 머리맡에 등이 하나씩 걸려 있어. 정애:예쁘다. 광식:등이 하나씩 꺼져. 정애:슬프다. 배우들이 등을 차례로 끈다. 광식:가인이 머리위의 등은 아직 켜져 있어. 정애:다행이다. 광식:(두 팔을 천천히 들어올린다)나는 꺼진 내 등을 부여잡고 울어. 당신 등을 부여잡고 울어.(울음을 터트린다.) 정애:부모란 게 그런 거야. 자식이란 게 그런 거야. 광식:저기 아직 꺼지지 않았지만 많이 희미해진 등들이 있네. 정애:그건 누구의 등일까? 광식:인수. 정애:저게 우리 인수 등이야?어머, 정말 빨갛고 작은 등이네. 광식:그 아이, 그 아이 아빠. 정애:어쩜, 저렇게 예쁜 등을 가진 아이였어. 광식:(손을 원을 그리며 돌린다.)나는 가인이의 등을 꺼. 정애:어?그럼 안돼. 광식:천천히, 조금씩 심지를 줄여.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배우가 가인이의 등을 끈다. 앉아있던 아이의 눈이 무섭게 커진다. 호흡을 거칠게 쉰다. 그러다 점점 잦아든다. 앉은 채로 숨을 멈춘다. 정애가 광식의 목을 조른다. 남아 있는 등들이 무대를 비춘다. 숨을 멈춘 가인의 눈이 등불처럼 떠져 있다. 암전. 에피소드 4 1층 무대의 한곳에 햇빛처럼 조명이 드리우고 광식이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광식의 그림자가 무대 전체에 비추어지면서 광식의 외로움이 극대화된다. 정애가 계단을 통해 내려와서 무대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간다. 소복을 입고 있다. 광식의 그림자에 정애의 모습이 겹친다. 정애:(허공에 손을 대본다.)크리스마스에 눈이 오면 뭐라고 그러지? 광식:메리 크리스마스. 정애:치,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냐? 광식:알면서 왜 물어봐? 정애:어서 일어나서 이리로 와. 집에 가야지. 광식:왜 이래? 당신이 이쪽으로 와야 해. 병원으로 가는 길은 이쪽이야. 정애가 광식의 쪽으로 걸어오다가 멈춘다. 정애가 당황해하며 멈춰 서서 양쪽을 바라본다. 정애:어디로 가지?가인이가 죽었는데. 광식:(놀라며)무슨 소리야?가인이가 죽어? 정애:균에 감염이 돼서 열이 40도까지 올라갔어. 누가 때리지 않았어도 온몸에 멍이 들고 입과 항문으로 피가 줄줄 나왔어. 당신이 없는 동안에 가인이가 죽었어. 지금 가면 볼 수 있어. 광식:(가슴을 쥐어짜며)아! 정애:죽는 건 너무 순간이라 처음엔 나도 믿을 수가 없었어. 집으로 데려와서 씻기고 옷을 입히고 당신을 기다렸어. 오늘쯤 당신이 병원으로 올까봐 이리로 왔어. 광식:우리한테 집이 있었나? 정애:가인이를 보내려고 집을 구했어. 며칠동안만이라도 있을 수 있었어. 오늘 나가야 해. 주인이 죽은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걸 보고는 당장 나가라고 그러는데 며칠만 봐달라고 빌었어. 광식:난 꿈을 꾸는 것 같아. 정애:다른 병실 아이도 죽었어. 아이 아빠가 호흡기를 껐어. 뉴스에도 나왔어. 그 아이 아버지는 잡혀 갔어. 나도 꿈을 꾸는 것 같아. 아니 잘 모르겠어. 지난 8년이 꿈인지, 아니면 지금이 꿈인지. 광식이 운다. 그림자가 흐느낀다. 정애의 몸에 겹쳐져서 두 사람의 흐느낌이 된다. 광식:장례비는? 정애:아이 옷하고, 염할 것 하고, 화장터 가서 화장할 것 하고 집세 내고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무대 위를 비추는 조명이 시간이 흘러감을 알게 해준다. 그림자가 점점 작아진다. 광식:하나요, 할머니가 지팡이 들고서 달달달…. 정애:차내에 계시는 승객 여러분, 여기를 잠시 봐 주십시오. 우리가 흔히 쓰는 칫솔은 한달만 써도 칫솔모가 쉽게 닳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칫솔로는 치석까지 제거되지 않습니다. 광식:둘이요, 두부장수. 정애:여기 새로운 칫솔이 나왔습니다. 몇 달을 써도 칫솔모가 손상되지 않는 칫솔입니다. 이를 닦으면 부드러운 칫솔모가 이의 구석구석까지 파고 들어가 찌꺼기와 치석을 제거해 줍니다. 광식:낙원으로 갔니? 정애:이를 닦는 동안 여러분을 낙원으로 데리고 가줄 칫솔이 두개에 오천원입니다. 광식:정말 하루저녁이 꿈같다. 아이들이 죽고 어른들은 자살하고 마치 블랙홀에 빠진 것 같아. 정애:하얀 옷을 입어서 니 모습이 성모 마리아처럼 성스럽고 숨소리는 너무나 고요해서 세상의 모든 소음을 덮어주었어. 엄마는 꿈을 꾼다. 니가 등불을 들고 나타나 아빠를 위로해주고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선하게 해주는 꿈을……. 죽은 이들이 등불을 들고 등장한다. 자신의 영정사진을 들었다. 환하게 웃고 있다.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 당선소감 “수술후 벅찬 소식… ‘이런게 인생이구나’ 느껴” 갑자기 배에 기형종이 생겨 수술을 받게 되었고 수술 직후 당선 소식을 들었다. 통증과 전신마취 후의 몽롱함 속에서 들은 가슴 벅찬 소식이었다.‘이런 게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대전여민회’라는 여성운동단체의 연극 소모임 ‘돼지꿈’에서 활동을 해 왔다.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여성 문제를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을 하면서 ‘연극’이라는 것이 사람의 다친 마음을 치료해주고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최고의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호사로서 막연히 연극에 대한 동경만 가지고 있던 나를 연극판으로 이끌어주고 몇 년을 한결같이 믿어준 대전여민회의 언니와 동생들 그리고 진연 언니에게 가장 먼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나와 같이 몇 년을 울고 웃으며 연극을 했던 모든 돼지꿈 단원들과도 술 한 잔 하면서 기쁨을 나누고 싶다.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다. 단 몇 평의 무대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김상열 교수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부모님, 대전대의 모든 교수님들과, 같이 스터디했던 동료들, 그밖에 작품을 열심히 읽어주고 평을 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아 주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과 함께 개인이나 가족의 병이 아닌 사회의 병으로 인식해 같이 치료할 날을 바라며 당선 소감을 마친다. 김미정 ●약력 1971년 대전 출생 충남대학교 간호학과 졸업, 대전대 문예창작대학원 수료 대전여민회 문회위원장(연극모임 ‘돼지꿈’ 연출 및 극작 활동) ■ 심사평 “꿈·현실 넘나들며 존재의 불가사의 부각 돋보여” 신춘문예에도 유행은 있는가 보다. 올해 응모작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심사를 하면서 그 작품이 그 작품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개성 있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의식과 관념이 과잉되어 작가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작품들, 고통의 아우성만 보여주고 고통의 근원을 성찰하지 않으려는 엄살과 감상(感傷)덩어리의 작품들, 무뇌아적 형식실험에 진부한 소재를 안이하게 결합한 작품들, 존재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보이려는 도살의 욕망은 보이나 존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나 깨달음은 보이지 않는 작품들 등. 개성이나 독창성의 기준을 떠나 극작의 기본기를 중심으로 작품을 선별하려고도 해보았으나 단편희곡이 지녀야 할 덕목을 지닌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소한 소재를 의미심장하게 구성해내는 능력, 압축적이면서 오랜 울림을 줄 수 있는 내공, 존재의 심연을 깊고 섬세하게 응시하는 통찰력을 지닌 신인을 만날 수 없었다. 정말 심사를 하는 입장에서 독창성보다 기본기에 충실한 신인을 기대했다. 그 이유는 대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이 등단과 함께 사라져가는 경우가 너무나 허다하기 때문이다. 등단은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 시작과 동시에 끝을 내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미정의 작품과 박재원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거론되었다. 박재원의 희곡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서라운드(surround), 다시 말해 삶의 조건에 대한 성찰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러나 형식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삶의 조건에 대한 중심인물의 대응이 자폐적이라는 지적 또한 면할 수 없었다. 김미정의 ‘블랙홀’은 공간, 인물, 사건의 혼재와 병치, 꿈과 현실의 넘나듦을 통해 존재의 불가사의한 면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연극 공간의 활용과 극적 이미지의 연결이 돋보였고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와중에도 코믹함을 잃지 않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철리 김태웅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23)한국 차문화의 다양성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23)한국 차문화의 다양성

    눈의 향기를 맡아본 적이 있는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에는 아스라한 차 향기처럼 포근한 향기가 넘쳐난다. 허공을 타고 내려오는 눈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해주는 한줌의 눈속에도 생멸이 있다. 멀리서 뚝뚝 끊어지는 설해목의 비명소리가 마치 눈속에 꺾여 비닐하우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하늘을 원망하는 농심(農心)소리 같다. 무너지는 눈의 산(山)이 마치 무너지는 농심 같다. 그래서 아프다. 자연은 늘 인간의 삶속에 고통을 주기도하고, 때로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삶이란, 차의 길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현실의 삶속에서 고통스러운 여정을 다스리고 위안하고 친구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속에는 희망도 있고 절망도 있고 고통스러운 아픔도 있다. 차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고통스러운 길을 가는 중생들의 위안처요 친구인 것이다. 우리곁에 차 문화는 과연 있는가. 있다면 어디까지 와있는가. 매우 궁금한 대목이다. 비공식적이지만 차 인구 700만 시대를 돌파하고 , 차 도구를 만드는 장인들의 전시회는 봇물처럼 이어지고, 차를 생산하는 농가와 다인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차를 애용하고, 차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2000년 초입 한국에는 우후죽순처럼 국적 없는 차 문화가 생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화란 원래 잡식성이 강하다. 여러 갈래와 흐름이 합쳐지고 그 합쳐짐 속에서 어떤 주도권이 생겼을 때 그것은 하나의 문화로 일상에 향유되기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차 문화는 마치 백가쟁명의 시대처럼 다양한 문화적 코드가 생성되고 결합되고 있다. 급속하게 변화되고 있는 디지털시대 차 문화 역시 다양한 문화적 영역과 충돌하고 하나의 문화코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 방향성이 없더라도 정신의 고전이랄 수 있는 차와 현대문화의 버전들이 급속하게 변형·결합되는 것은 너무도 반가운 현실이다. 먼저 가장 큰 변화는 몇몇 대학에 다도학과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나의 학으로서 차 교과목이 개설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냥 일반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점을 이수할 정상적인 교과목으로서 다도학은 차가 중장년층의 문화에서 청장년층의 문화로 학습되기 시작했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디지털대학의 다도학과도 풍요로울 정도로 다양하게 개설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남는다. 급속하게 늘어나는 차 인구를 교육할 교육자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차교육의 핵심은 형식과 내용 그리고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인 정신을 가르치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필수품인 교양의 한 방법론으로서 차 교육은 절대적으로 지향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차 교육자의 양성 역시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제중 하나다. 한 사람의 차인이 교육자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성숙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일상의 차인으로 차의 형식과 내용은 한계가 있다. 결국 궁극적인 지향점은 차인으로서 정신성에 대한 담보가 얼마만큼 확보되어 있는가에 그 관건이 있는 것이다. 미래지향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디지털적인 청년들에게 차는 하나의 호사일 수가 있다. 그같은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정적인 움직임으로 변환 시킬 수 있는 절제의 문화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현대 차인들의 산실일 수 있는 차 대학원과 모임들, 즉 차인회다. 전국을 포괄하고 있는 대규모 차인회 그리고 각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차인회등 전국에는 수천개의 차인회가 존재한다. 뿐만 아니다. 차인회는 오늘 한국차를 있게 한 산증인들이자 산실들이다. 기라성 같은 차인들이 차를 교육하고 제다하고 음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척박한 한국 차문화를 한단계 성숙시킨 원동력들이다.80년대 초반 1세대 차인들의 교육을 받은 이들은 차 생산지를 돌아보고 차인들의 역사를 복원하고 차를 학습하고 교육시키는 데 크게 일조했다. 그들은 1세대들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차에 대한 열정 하나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냈다. 지금 각 지역에서 차인회를 이끌고 있는 이들은 1.5세대 차인들로 불려질 만하다. 다음은 오늘의 차 문화를 이끌고 있는 하나의 힘이 있다. 바로 종교 차인회가 있다. 차의 본산이랄 수 있는 불교를 비롯, 기독교, 천주교 등에서 차회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차는 각 종교에서 명상차원이나 교양차원에서 하나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많은 종교인들의 마음과 손을 사로잡고 있다. 종교차회는 차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을 깊고 깊은 차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차는 또한 문화적 변형을 과감하게 실시하고 있다. 명상, 음악, 공연, 음식 등 젊은이들의 문화적 코드와 결합돼 활발하게 변형이 이루어지고 있다. 먼저 음악분야다. 차음악은 명상음악과 함께 다악(茶樂)이란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수년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다악공연은 설치미술과 만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대중적으로도 많은 관심과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차와 음악의 결합은 아직까지 매우 실험적이다. 하나의 장르로 정착되기에는 아직은 매우 요원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고 있는 행다공연이다. 행다공연은 전국에서 교육의 장을 맡고 있는 차인회의 핵심행사 중 하나다. 접빈다례, 궁중다례, 헌공다례, 들차회 등 다양한 다례를 일반대중들에게 시현하는 것이다. 많은 차인회에서는 행다공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자기 차회(茶會)만의 독특한 행다 아니면 전통적으로 해석된 행다 등 다양한 행다를 일반대중들을 위해 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병폐 또한 만만치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차 문화는 마치 형식만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많은 차인들이 행다공연을 위해 헌신한다. 오랜 시간을 걸쳐 똑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한다. 그러나 그같은 형식은 대중들의 구미를 채워주지 못한다. 행다를 공연수준으로 끌어올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내용의 보완이 절실한 것이다. 공연예술로서 행다를 하기 위해서는 무대, 조명, 음악, 시나리오 등 가장 기본적인 절차나 형식들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형식은 많은 재원과 그에 필요한 스태프들이 필요하다. 동호회나 차인회에서 행다공연은 차 문화의 성장이란 측면에서 볼때 원천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그러나 차인회와 차인회, 아니면 차인회 내의 행다공연이나 겨루기는 장려되어야 마땅하다. 행다는 또한 차 문화의 뿌리를 갖출 수 있는 조건이란 점에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들차회는 행다문화의 새로운 접점을 찾는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할 수 있다. 들차회는 봄과 가을 특정날을 선택해 차인회 내에서 각기 연습한 행다 겨루기를 축제형식으로 치르는 것이다. 물론 그 차인회만 참가할 수 있는 폐쇄된 들차회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열린 차회로서 진행되어야 한다. 1년동안 각자 배웠던 행다를 보여주고, 음식을 함께 나누고, 또한 노래도 함께 부르며 내면에 쌓인 번뇌의 찌꺼기를 대중들 속으로 날려보낼 수 있는 들차회는 그런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행다문화의 새로운 풍속도로 제기되어볼 만하다. 초의차문화연구원의 들차회는 그런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초의차문화연구원의 들차회는 가을에 열린다. 돌부처님이 아름다운 곳인 운주사를 비롯해 전국의 아름다운 사찰을 찾아 들차회를 1년에 한차례씩 갖는다. 서울 광주 부산 대구 등에서 공부해오던 각 지회 차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 자리를 방문한 일반관람객들과 하나가 되어 찻자리를 즐기는 것이다. 노래도 하고 시도 함께 읊고 자신들이 연마한 행다의 기량도 한껏 선보이는 계기가 된다. 열린 공간에서 열리는 차 축제인 들차회는 그런 점에서 향후 차인들의 행다 시연에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 가장 빠르게 응용되고 있는 것은 차의 먹을거리화이다. 한국대중 차를 선도해온 거대기업에서 도심에 만든 차 카페는 매우 중요한 문화적 접점을 시사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거리라는 명동에 자리잡고 있는 이 카페는 젊은층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차 먹을거리와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다. 반응 역시 매우 폭발적이다. 이 카페에서는 차로 만든 케이크, 차로 만든 아이스크림, 차 국수, 차 비누, 차 샴푸 등 다양한 차 관련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심지어 차와 우유의 만남을 통해 차라떼는 젊은이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차의 문화적 상품화의 변형은 한발짝 더나아가고 있다. 차를 이용한 벽지, 차를 이용한 속옷 등 웰빙상품으로서 차는 다양한 영역으로 파고들고 있다. 차와 웰빙은 이제 하나의 문화상품으로서 그 변형의 끝이 어디까지랄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있다. 차는 지금 현대인들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웰빙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차의 기본정신은 인간의 건강한 정신적 삶의 추구를 통한 체용(體用)의 일체화다. 체용이란 정신과 육신의 건강을 함께 추구하고 일상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삶의 문화적 양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같은 차의 본질을 외면하고 하나의 건강상품으로서 차가 일반대중들에게 인식되는 것은 크게 경계해야할 일이다. 세상이 온통 눈이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눈이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다. 앞산도, 뒷산도, 일지암도 온통 눈에 파묻혀버렸다. 바람이 마치 칼처럼 대지를 휩쓸고 지나간다. 눈이 마치 폭풍처럼 일어났다 안개처럼 허공을 감싸며 사라진다. 시끄럽고 활활타는 세상을 식히는 듯하다. 설잠 김시습의 ‘간설’(看雪)이란 시가 생각난다. “여섯 모 가진 꽃이 공중으로부터 내리는데/ 창을 열고 누워서 보니 낮게 맴도누나/ 천상의 향기 없는 꽃을 전해줄줄 알아. 인간에 심지 않은 매화를 피워주네/ 동곽은 가난을 안고 길을 따라 돌아가고/ 자유는 흥겨워서 배를 타고 돌아오네/ 늙어가며 일이 없이 화롯가에 둘러앉아/ 도공의 차 한잔을 달여 마시네” ■ 일상화 된 차 명상 조선시대의 유명한 고승 서산 스님의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스님 대여섯 사람이/내 암자 앞에 집을 지었네/새벽 종 치면 함께 일어나고/저녁 북 울리면 같이 자네/한 시냇물 속의 달 그림자 밟으며/물 길러 차 달이매 그 푸른 연기 나는데/날마다 무슨 일 의논하는가/염불과 참선일세” 차는 자신의 내면을 수행할 수 있는 보조도구로서 매우 훌륭한 도반이기도 하다. 최근들어 차 명상이 많은 대중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차 명상, 이른바 선다(禪茶)는 삶을 풍요롭게 하고 참 행복을 만들어내는 훌륭한 방법이다. 차 명상센터가 서울을 비롯해서 각 지방에서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차 명상은 차의 정신을 통해서 지친 마음에 휴식과 활력을 주고 정서적 평온을 체험하며 차 마시기와 주변 일상생활을 명상화하여 마음을 정화하고 올바른 삶의 자세를 가꾸어주는 일련의 정신훈련과정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다선일미’(茶禪一味),‘중정청경(中正淸境)’ ‘화경청적’(和敬淸寂) 등 차 정신을 실현함과 동시에 참 행복을 열어가는 것이 목표이다. 차 명상은 사념처 팔정도 수행을 기본으로 하여 자각력·집중력·통찰력을 계발하고 강화시키는 데 있어 일상에서 활용하기 쉽도록 차 마시기와 일상생활 속의 친숙한 행위들을 명상의 주요한 실천 도구로 이용한 명상법이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복잡하지 않고 일정하고 체계적인 동작이기 때문에 명상의 도구로 쓰기 좋으며, 적절한 행위 변화가 지속되기 때문에 지루해지지 않고 꾸준히 명상을 이어갈 수 있다. 또한 정신적 긴장속에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쉽게 실습할 수 있으며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원리와 방법을 쉽게 이해하고 터득할 수 있다. 또한 일상 속에서 혹은 다른사람들과의 만남속에서도 명상을 응용할 수 있는 것이 차 명상의 장점이다. 차를 통해서 기본적으로 예와 절제를 배우고 건강을 도모할 수 있으며 동시에 명상으로서 활용하게되면 자기 이해와 발전을 가져오고 육체적·정신적 건강도 함께 도모할 수 있다. 차명상은 차와 일상생활을 통해 명상을 실현하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낼 필요가 없고 익숙한 우리의 행동양식을 활용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부담감을 덜 느끼게 된다. 차뿐만 아니라 커피·음료수·냉수와 같은 것들도 모두 활용되며 일상생활에서는 걷기, 서있기, 청소하기, 씻기, 누워있기, 앉아있기 등 우리가 흔히하는 행동들에서 명상을 체험하게 된다. 차 명상은 일상에서 우리를 괴롭혀온 모든 번뇌 즉, 스트레스를 일상 속에서 해소해낸다는 점에서 권해볼 만한 명상법으로 보여진다. 차뿐만 아니라 차명상 역시 참 행복으로 들어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임을 명심해볼 일이다.
  • 크리스마스 휴전…/미하엘 유르크스 지음

    1·2차세계대전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의 시험대였다.‘같은 처지의 노동자’들이 왜 ‘제국주의 전쟁’ 때문에 서로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가. 독일 시사주간지 ‘슈테른’의 편집장 미하엘 유르크스가 쓴 ‘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김수은 옮김, 예지 펴냄)는 이 구호가 ‘유일하게’ 현실화된 현장에 대한 관찰기다.1914년 12월 1차세계대전 중 서부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던 독일군과 영국군. 양측 군인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서로의 비참한 처지를 알고는 자체적으로 휴전해버린다. 식량도 나눠먹고 기념사진도 같이 찍고 친선축구시합까지 벌이더니, 작전내용과 같은 군사기밀을 서로 슬쩍 흘려주고 아예 허공에다 총을 쏘기도 했다. 책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름없는 병사들의 이런 평화주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들을 ‘악의 무리’로 몰아세우는 권력자의 모습이다. 알려진 대로 1차대전은 깊고 넓은 도랑을 길게 파서 전투를 벌이는 ‘참호전’이었다. 오늘날처럼 무기가 발달해 버튼 하나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해진 시대에, 질척한 참호 속에서 널부러진 동료의 시체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엎어지면 코닿을 곳에 있는 적군 참호 속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시절처럼 ‘우린 쏘지 않겠다, 너희도 쏘지 마라.’는 선언이 가능할까.1만 35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연말엔 얼~쑤~ 우리것에 빠져볼까

    연말엔 얼~쑤~ 우리것에 빠져볼까

    연말을 맞아 재즈와 발레, 오페라 등 서구적인 형태의 공연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럴 때 한국 전통의 춤사위와 판소리에 한번 빠져보면 어떨까? 무형문화재 지원에 앞장서온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14∼16일 서울 한국문화의집 코우스에서 마련한 ‘2005 우리시대의 명인전’은 전통예술 혼이 살아있는 우리 소리와 악기, 춤의 명인들의 공연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첫날인 14일에는 ‘호남가’의 안숙선,‘공명가’의 유지숙,‘한오백년’의 유창 등의 소리명인전이 펼쳐진다.15일에는 ‘대금산조’의 이생강,‘시나위 나들이’의 백인영,‘낙화’의 김해리 등 대금·태평소·거문고·아쟁·판소리·가야금·피리 등을 연주하는 명인들의 산조열전으로 꾸며진다. 마지막날에는 정재만의 ‘살풀이춤’을 비롯, 임이조의 ‘한량무’, 진유림의 ‘승무’, 이정희의 ‘입춤’ 등 명무전을 감상할 수 있다. 출연자들은 마이크를 쓰지 않고 자신들의 개성 있는 소리를 관람객에게 그대로 전달할 예정이다. 특히 첫째날과 셋째날에는 최고의 반주로 정평이 나있는 장덕화와 이철주, 김무경, 김찬섭 등이 특별 반주단으로 출연한다. 문화재보호재단 관계자는 “전통은 끊임 없이 현대의 관객들과 대화할 수 있어야 전통으로서의 의미가 있다.”면서 “어느 시점에 정체되지 않고 연주때마다 새롭게 도전하는 명인들의 공연을 보면 이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장료는 2만∼3만원.(02)567-4055∼6. 앞서 문화재보호재단은 외교통상부와 함께 우리나라와 베트남 수교 13주년을 기념, 지난 9∼10일 베트남 하노이 정보전시장에서 전통문화공연 ‘흥(興)-한국의 신명과 기원’을 개최했다. 허공을 가르는 줄광대의 역동적인 몸짓과 경기민요의 흥겨움, 풍물에 담긴 신명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의 정수를 알리는 자리가 됐다는 평가다. 재단측은 “‘한류’를 주도하는 대중문화 못지않게 전통놀이도 한류를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차를 알 수 있는 책들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차를 알 수 있는 책들

    산이 오랜만에 조용히 쉬고 있다. 마치 구멍이 뚫린 듯 퍼붓던 눈발이 뚝 끊기자 세상은 어마어마한 적막속에 잠겨 있다. 길이 끊어지자 인적도 함께 끊긴 탓이다. 오랜만에 산속의 살림살이도 쉰다. 지난 가을 모아두었던 바짝 마른 장작 몇 개를 아궁이에 넣는다. 그리고 눈을 한 움큼 떠서 돌솥에 넣는다. 이른바 ‘설차’를 마시기 위함이다. 돌솥이 달아오르자 눈을 한 움큼씩 집어 넣는다. 마치 만년설이 허공으로 녹아들 듯 돌솥 속에서 녹아든다. 찻물이 끓고 하이얀 백자찻잔에 붓는다. 이른바 ‘눈백차’다. 부처님과 삼라만상에 그 첫잔을 아련한 그리움으로 바친다. 물이 끓는 소리 그리고 백차 한잔. 삶이란 아주 가끔식 나를 멈추는 행복속에서 사는 것이다. 나를 멈추면 그속에 비로소 완벽한 행복이 존재한다. 그러나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이 과연 나를 멈출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현재 우리 곁에는 차를 공부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다서(茶書)들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차에 관해 다양한 책들이 우리들에게 선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다구에 관한 것, 차에 관한 것, 중국·일본차에 관한 것. 그뿐만 아니다. 차에 관한 잡지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차의 대중화가 불러들인 문화적인 현상이다. 차문화는 현재 급속하게 복원 중이다. 또한 다양한 문화적 경계에 접근중이다. 웰빙 그리고 명상·요가 등 다양한 영역으로 급속하게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에 관한 출발은 육우의 (다경)(茶經)으로부터다. 전문(全文) 약 7000자(字)로 육우가 편찬한 (다경)(780년쯤)은 당대(唐代)와 당대이전의 차에 관한 과학적 지식과 실천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중국 차문화의 기초를 확립했다.1200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온 (다경)은 단순히 차의 종류나 마시는 방법을 말한 표면적인 사항을 정리한 책이라기 보다는 ‘차의 정신’을 중요시하고 있다. 육우가 확립한 다학(茶學), 다예(茶藝), 다도(茶道)의 사상과 그것을 정리한 (다경)은 시대를 초월한 차의 명작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다경)은 3권 10장규모로 1장에는 차의 근원,2장에는 차의 연장,3장에는 차 만들기,4장 찻그릇,5장 차 달이기,6장 차 마시기,7장 차의 옛일,8장 차의 산출,9장 차의 생략,10장 차의 그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3차례 정도의 수정을 거쳐 교연스님과 안진경의 후원으로 간행된 (다경)은 당의 피일휴, 소의 진사도, 명의 노팽, 진문촉, 장예경(발문), 동승서(육우찬), 이유정, 서동기, 청대에는 증원매, 민국시대에는 상락스님등이 후대에 서문을 썼다. 현존하는 (다경)은 4종이 있다. 주(注)가 있는 것으로 이른 것이 남송대 좌규본(左圭本:백천학해본)이고, 주가 없는 것으로는 (백권(百倦)의 설부본)이며 하나의 증본으로 다기권(茶器卷)을 다구도찬(茶具圖讚)에서 추가한 명의 (정화은본(鄭火恩本))(선화당본(宣和堂本))이 있다. 넷째는 원문을 가감한 삭절본(削節本)으로 명대의 (왕기본(王圻本))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다경)이 전해졌거나 간행되었겠지만 그 흔적은 아직까지 없는 상태다.(다경)역시 고대 다서들의 전철을 밟고 있다. 중국에서 발견된 최초의 (다경)간본은 1273년 좌규가 (백천학해(百川學海))의 (임집(任集))에서 다른 다서와 함께 (다경)을 판각한 (백천학해본)이 있는데 주가 첨부되고 있다. 명대의 간본도 있다. 다경선화당본(宣和堂本)은 명대(1368~1644)에는 세종 가정 연간에서 신종만력 연간에 걸쳐 (다경)에 관한 첨삭이 있었다. 원본에 기타자료를 부가한 (다경외편)중 하나로 다기권을 (다구도찬)에서 추가하여 마치 정문(正文)인 것처럼 만든 것이 바로 (선화당본)이다. 육자다경(陸子茶經)과 건안다록 역시 눈여겨볼 만한 다서중 하나다. 청말 서탑사의 주지인 상락스님이 간행한 가장 완비된 (다경)이다.1792년 (당인설회본)에 (다경)이 함께 수록된다. 건륭연간에 경릉서호의 왕자한이 음운을 교정한 (다경)을 증각했다. 건안다록(建安茶錄)은 송나라 정위(962~1033)가 지은 책인데 총 3권으로 되어 있으며 ‘건안 공다소’의 차밭, 차공자, 기구, 차따기, 제다법을 기록해 놓았다. 중국 지배계층과 일반 서민들의 차생활을 알 수 있는 다서들도 있다. 황제의 다도를 자세히 그린 (다록)과 (다소)가 그것이다. 먼저 다록은 송나라때 복건성 건안동쪽에 있는 봉황산의 산록에 ‘북원’이라 부른 차밭을 관리하던 채양에 의해 저술된 것이다. 당시 황제는 차에 관한 의문을 채양에게 하문했다. 채양은 황제의 하문에 답하기 위해 차에 관한 여러 가지 일들을 정리하여 책으로 묶어 바쳤다. 그 책자가 바로 (다록)이다. 채양은 당시 차제법과, 차의 품평 그리고 황제의 다도를 상세하게 저술했다 이에 비해 다소(茶疏)는 명나라 사람 허차서가 17세기 저술한 자신의 차 체험기 성격을 띤 책이다.(다소)에 대해서는 기록된 것이 없어 관련된 이야기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다소)의 서문을 쓴 요소현 글에서 그 기록의 편린들을 엿볼 수 있다. “병신년(1596년)에 나는 허차서(연명)와 함께 용정을 여행하며 약 열흘간 송사에서 침식을 함께 했다. 그때 승사에서 제공해주는 신차(新茶)를 즐기면서 고담(古談)을 나누었다. 몇해가 지나 허차서가 나를 찾아 그가 저술한 (다소)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을 어보고 허차서에게 말했다. 육우의 (다경)이후 그 뒤를 이어받는 것 없이 세월이 흘렀는데 이것이면 육우의 익우(益友)가 되겠다. 군의 문장이 한위의 문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어서 육우가 고개를 숙일 것이다. 허차서가 말을 받아 제멋대로 사는 놈이 자기 멋대로 적어 놓은 것인데 육우의 제자라도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고 말했다.” (다소)의 가치는 자신이 체험한 차에 관해 논(論)한 것이라는 데 있다. 초의스님의 (다신전)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는 만보전서(萬寶全書)도 있다.(만보전서)는 청나라 모환문이 엮은 백과사전으로 초의스님은 1828년 칠불암에서 (만보전서)의 채다론(採茶論)을 필사해 (다신전)이라 붙였다. 만보전서의 채다론은 명나라때 장원이 지은 (다록)을 인용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옛 다서들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초의스님의 (동다송)(다신전), 한재 이목의 (다부),(고려도경)등이 그것이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은 고려 인종원년인 1123년 6월13일 송사 노윤적, 부사 부묵향을 따라 고려에 온 서긍이 한달 동안 고려에 머물면서 지은 견문기행문이다.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고려의 갖가지 풍물을 그림과 문장으로 엮어 냈다. 총28문 3백여항으로 분류되어 있는 (고려도경)은 1226년 금나라가 송나라 수도를 함락시켰을때 정본이 불타 없어졌으나 인하 조씨 소산당에서 인각해 간직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고려도경) 목록 31권 ‘다조’(茶俎)라는 절목에 당시 우리나라 차에 대한 기록이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차는 맛이 쓰고 떫어서 구미에 당기지 않으며, 중국의 납차(臘茶)와 용봉사단차(龍鳳賜團茶)는 중국에서 진상받은 것과 상인이 수입해서 판 것들이 있었는데 차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국의 차들을 즐겨마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차 도구 중 찻잔은 천목(天目)찻잔과 청자찻잔을 쓰고 있는데 청자 찻잔은 비취색과 같다. 또한 은으로 만든 차 화로 등은 중국 것과 비슷하다. 고려 사람들이 차를 어떻게 마시고 사용했는가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먼저 잔치를 할 때다. 먼저 정원에 차를 달여놓는다. 그리고 연꽃모양의 큰 주전자에 차를 담아 손님들에게 “차를 고루 고루 잡수시오. 지금 마시지 않으면 차가 식어 냉차(冷茶)가 됩니다.”라고 안내방송까지 했다. 또한 방안에서 잔치를 할 적에는 홍사포(紅沙布)위에 다구를 놓은 다음 붉은 보로 덮어놓는다. 하루에 세 번씩 차를 마시게 하되 사람이 많아 차가 떨어지면 차관에 탕수만 부어서 차를 마시게 했다는 세밀한 기록도 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제6권에 연영각에서 잔치를 베풀 때는 차와 정자와 청자 찻잔을 갖추었고, 제26권 관회(館會)절목에는 왕궁사연(私宴)에 골동품과 고완·법서·명화·이화와 좋은 차등을 벌여놓게 했다, 제27권 ‘향림정’(香林亭) 절목에는 무더운 여름 향림정에 소풍을 가 갈증을 해소하기위해 달여온 차를 마시고 놀았다는 기록 등이 있다.(고려도경)은 고려시대 우리 차 문화의 일단을 볼 수 있는 희귀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다산 정약용의 저서로 알려진 (동다기)등이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효당 최범술스님의 (한국의 차도), 금당 최규용 선생의 (금당다화), 김운학선생의 (한국의 차문화), 응송 박영희스님의 (동다정통고)등이 있다. 우리 차인들은 모두 다예, 즉 다도에 얽매이는 경향이 있다. 먼저 차에 대한 정확한 공부가 필요하다. 책을 통해, 강의를 통해 차에 대한 개괄적인 인식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그 체(體)에 맞는 용(用)으로써 차의 진정한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일지암 암주 ■ 심안노인의 다구도찬 차를 마시는 행위는 마치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된 종합예술 같은 것이다. 한잔의 차를 마시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매우 많다. 정갈한 마음과 움직임으로 차를 준비하며 행할 때는 마치 바람이 산을 타고 강을 건너듯 완만하고 원융해야 한다. 그럴때 그 찻자리는 훈훈한 향기를 느끼게 한다. 옛날부터 차를 사랑했던 차인들은 많다. 그중 특이한 차인이 있다. 바로 송나라때 심안노인이다.(다구도찬)을 쓴 심안노인은 당시의 점다법에 근거해 12점의 다구를 의인화해 노래하고 있다. 다구 12점을 그림과 함께 그려넣은 특이한 다서를 만든 것이다. 심안노인은 각 다구의 성격에 따라 의인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걸맞은 관직과 이름, 자·호까지 명기하고 있다. 먼저 차를 보관하는 배로(焙爐)다. 배로의 관직은 위홍려, 이름은 성인이 쓰는 솥인 문정, 호는 사창한사다. 심안노인은 “위홍려를 찬양하여 가로되/축융은 여름을 관장하는데/만물을 모두 태운다/그 화염은 곤강의 옥석을 모두 태워 아무도 없게 한다/만약 위홍려를 사용하지 않으면/산과 골짜기의 차는 모두 도탄에 빠지고 말 것이다/도탄에 빠지지 않는 것은/위홍려의 공로다”라고 적고 있다. 탕속의 찻가루를 휘젓는 찻솔은 축부수. 축부수의 이름은 선조, 자는 희점, 호는 눈같이 흰 파도와 같은 공자라는 설도공자라고 했다. 특히 찻솔을 정절을 지키는 의로운 다기로 여겨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있다. “수양산의 백이 숙제는/주무왕이 상나라를 토벌하며/전쟁이 한창일때도 과감하게 간언하였는데/전쟁과 같이 솥에 물이 펄펄 끓을때/그 뜨거움을 가늠하여 간언한 자가 몇 명이나 될까/나는 자네의 청절을 우러러 보며/오직 너만이 홀로이 몸소 실천할 수 있다/이러한 일은 위급에 처하여도/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아니한 자라야 하는데/누가 능히 이루어 낼 수 있는가”라고 칭찬하고 있다. 찻잔에 대해서는 위풍당당한 군자에 비유하고 있다. 찻잔은 검은 독수리가 사는 신비한 누각인 칠조비각이라 했고, 이름은 승지, 자는 하늘을 담고 있다는 역지, 호는 옛 누마루 높은 곳에 앉은 노인이라 하여 고대노인이라고 했다. 물을 따르는 찻주전자에 대해서는 따뜻한 골짜기에 늙음을 버린다는 온곡유노라고 표현했다. 주전자의 이름은 새로운 것을 내놓는다는 발신, 자는 한번 운다, 혹은 소리낸다는 일명이다. “호연지기를 기르고 물 끓는 소리를 내/능히 중용의 도를 지킨다/그는 탕왕을 보필한 덕을 지녀/주객 사이에서 잔을 주고 받으며/주인을 섬기는 공로는 중숙어를 능가한다/그러나 밖으로 뜨거움에 대한 근심이 있고/안으로는 열의 우환이 있으니 어찌하랴”라고 중용의 뜻을 전하고 있다. 말차가루를 곱게 치는 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체는 나추밀로 이름은 고약, 자는 전사, 호는 사은장료다. 나추밀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일을 함에 있어 세밀하지 못하면 해로움이 되나니/큰 것은 골라내고 작은 것은 흩뿌려지게 하는데는/정밀함과 조잡함이 일치하지 않으면 혼란스러워지나니/사람은 그 모든 것이 어려운 것/어찌 섬세함에 옳고 그름을 아끼겠는가” 이밖에도 찻종지는 도보문으로 칭했고(이름은 거월, 자는 자후, 호는 면위상객), 물을 뜨는 표주박은 호원외(이름은 유일, 자는 종허, 호는 달을 긷는 신선인 저월선옹), 차를 가는 맷돌은 석전운으로(이름은 착치, 자는 매행, 호는 언제나 차를 갈아 차향 가득한 누옥에 은거한다는 향옥은거), 떡차를 으깨는 다듬잇돌과 방망이는 목대제(이름은 이제, 자는 망기, 호는 격죽거인), 찻잎을 으깨 가루를 내는 약연은 금법조(이름은 연고, 자는 원개, 호는 화금선생)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 특허청의 논문왕

    “특허공무원이 논문을 쓰는 것은 업무의 연장일 뿐입니다.”‘논문을 많이 쓰는 공무원’으로 알려진 전상우(52) 특허청 차장이 8일 논문집을 출간했다. 논문집 ‘지식재산권법의 제문제’에는 특허청의 주 업무인 심사·심판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특허와 디자인·상표·부정경쟁방지·특허소송 등 11개 편의 논문이 수록됐다. 1998년 국장으로 특허청에 전입한 전 차장은 2001년 국제특허연수부장에 임명되면서 지식재산권법 이론공부를 시작,2002년부터 논문을 작성해 그동안 11편을 발표했다.2004년 심판원장 재식시에는 심판관 교육교재로 ‘상표심판’과 ‘디자인심판’을 직접 저술하기도 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서울戀街](6)신촌거리

    [서울戀街](6)신촌거리

    신촌(新村)은 대학가와 함께 서울시내에서 가장 ‘젊은 거리’이다. 이름뿐이 아니다. 인근 연세대와 서강대, 이화여대, 홍익대 학생뿐 아니라 서울시내 젊은이들이 ‘청춘’을 향유하는 장소다. 신촌은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문화의 공간이었다. 많은 음악인들과 연극인들은 이곳에서 각박한 현실을 쓴 소주로 달래며 예술의 열정을 불살랐다. 이후 신촌은 ‘소비 공간’으로 바뀌었지만 다양한 문화 공간이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뜻맞는 이들과 겨울밤 추위를 술 한 잔에 날려 버리기에 신촌만 한 곳도 많지 않은 까닭이다. ●신촌수제비 15년 넘게 수제비를 떼어온 집이다. 사골 국물에 감자와 호박, 당근이 들어간 전형적인 수제비 맛이다. 양도 푸짐해 끼니 때면 수십 미터의 긴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다. 함께 먹는 김밥 맛도 괜찮다. 두명이서 수제비와 김밥 1인분씩만 시켜도 든든하다. 가격도 매우 저렴하다. 수제비 3500원 김밥 1500원.334-9252. ●이끼 1990년대 후반 납작한 돈가스만이 전부라고 여겼을 시절 치즈·야채·김치를 속에 채우고 김밥처럼 고기를 말아 만든 ‘롤가스’를 선보였다. 이곳에서 히트를 치자 홍익대·명동·대학로 등지에도 분점이 생겨났다. 김치치즈·카레치즈·고구마치즈 롤가스 등이 있으며 24시간 이내의 생고기를 쓴다. 공예품 같은 접시·사각사각한 무생채·후식으로 나오는 콩알껌은 이끼만의 특징이다. 가격대는 5000∼8000원선.337-1089. ●파스타12 은은한 조명 아래 아기자기한 소품이 놓여 있어 소개팅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고소한 두유에 크림소스의 부드러움을 가미한 두유 카르보나라·두유 버섯크림 스파게티(각각 7500원)가 특이하다. 오전 11시∼오후 5시에는 스파게티를 샐러드·음료와 함께 내놓는 런치세트를 6000∼6500원으로 저렴하게 내놓고 있다. 스파게티는 모든 메뉴에서 선택할 수 있으며 샐러드·음료는 무한정 리필된다. ●복성각 고추기름, 청양고추, 시금치 등의 식재료로 갖가지 색깔의 자장면을 만들어낸다. 이른바 파란 자장, 빨간 자장, 노란 자장 등이다. 밀가루를 넓게 펼쳐 만든 굵은 손칼국수 같은 면에 감자를 썰어넣은 납작자장도 유명하다. 이쯤되면 주인이 메뉴개발을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 읽을 수 있다. 여느 중국집과 달리 젊은층의 기호에 맞게 인테리어를 깔끔하게 했다.5∼10명이 식사할 수 있는 작은 방들도 많아 학생들의 단체 회식장소로 애용된다.364-1522. ●만리향 규모는 아담하지만 중국 분위기를 자아내는 빨간색 간판으로 눈길을 확 끈다. 중국인 아주머니의 서비스에 불만스러운 목소리도 들리지만, 신라호텔 출신의 주방장이 만드는 사천식 요리를 먹기 위해 손님들은 줄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여름에는 땅콩버터를 풀어놓은 시원한 육수에 쫄깃한 면발이 담긴 중국식 냉면이 인기다.393-5863. ●간사이 일본풍의 선술집 분위기가 풍기는 일본 음식 전문점. 신촌 지역에 일본식 라면을 처음 선보인 곳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한국인으로 주인이 바뀌었지만 한동안 일본인이 운영했다. 육수에 일본식 된장을 풀어 숙주를 잔뜩 넣고 편육 두어점을 띄운 미소라면 등 메뉴가 40여가지나 된다.332-1333. ●진미락 도시락 전문점으로 노란색 간판의 허름한 외관만 보고 섣불리 지나치면 안된다. 직접 맛을 보면 진미락이 1985년부터 신촌의 금싸라기 자리를 꾸준하게 지키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도시락 메뉴(4500원짜리)에는 도시락 그릇에 오이무침, 계란말이, 생선튀김, 어묵 등 갖가지 반찬이 정성스레 나와 학창시절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떠올리게 한다. 햄버그스테이크, 돼지 불고기·돈가스 도시락은 각각 4000원. ●완차이 홍콩식 중국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대표 메뉴는 아주매운홍콩홍합. 중국 사천고추와 우리의 청양고추 등이 홍합과 함께 어우러져 놀랄 만큼 매우면서도 고소한 맛을 낸다. 마파두부밥도 ‘강추’ 요리. 특유의 소스 맛과 함께 야들야들한 두부와 고기를 씹는 맛이 일품이다. 자장, 짬뽕, 탕수육 등 중국집 기본 메뉴도 웬만한 곳보다는 낫다. 아주매운홍콩홍합 2만원, 마파두부밥 6000원.392-0302. ●가문의 우동 조개·오징어·낙지 등 갖가지 싱싱한 해물이 들어간 나가사키 짬뽕(6000원)은 추운 겨울에 훅훅 불어먹는 재미가 있다. 먹을수록 매워지지만 속풀이로 먹기에 딱이다. 볶음식인 해물야키우동(5000원)은 매콤달콤한 소스가 독특하다. 무엇보다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가 음식 맛을 돋운다.325-8325. ●면빠리네 서울에서 라면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다시마, 미역, 고추장 등으로 직접 만든 수프로 맛을 낸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해짬라면’. 양은냄비에 조개와 오징어 등의 해물과 다섯가지 야채 등이 어우러지면서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이 예술이다.‘김콩라면’(김치콩나물라면),‘오너라면’(오뎅너구리라면)도 인기다. 가격은 3000∼3300원선.그놈이라면도 식도락가라면 놓쳐서는 안될 곳이다.324-6574. ●송아저씨빈대떡 대나무로 만든 간판에 발길을 멈추게 하는 집. 가게 안과 천장, 벽 등이 모두 나무로 돼 있다. 인기 메뉴는 모둠전. 동그랑땡과 깻잎전, 부추전 등 7가지의 전들이 푸짐하게 나온다. 무척 부드러우면서도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 일품이다. 모둠전과 해물야채전 등이 1만 3000원.338-4919.동래파전도 부산파전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밖에 신촌 먹자거리에 있는 신촌영양센터와 신선설농탕, 현대백화점 후문 맞은편의 함흥냉면도 괜찮다. 특히 신촌영양센터는 젊은 층을 위해 통닭 반마리·빵·수프·샐러드로 된 런치세트를 5500원에 내놓는다. 김유영 이두걸기자 carilips@seoul.co.kr ●섬 신촌이 원래 ‘젊고 활기찬 공간’보다는 시대의 어둠에 고뇌하던 젊은 지성들의 공간이었음을 증명하는 몇 안되는 곳이다. 1981년 고(故) 유향숙씨가 현재 먹자거리 자리에 가게를 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술 한잔과 함께 민주주의를 염원했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과 시인 김정환씨, 소설가 김인숙씨 등 유명인사들도 이곳을 아꼈다. 유씨가 2003년 11월 지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지만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창천교회 뒤편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섬의 새 주인도 이곳 단골출신이다. 국산병맥주 4000원선. 안주는 단출한 편이다.392-7896. ●태 1998년부터 독수리다방 뒤편 지하에 둥지를 튼 술집이다. 네댓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발을 내딛는 순간 향긋한 인도 향과 이국적인 장식품이 손님을 맞는다. 흡사 외국 바에 온 듯한 자유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곳의 가장 큰 미덕은 음악. 70년대 하드록부터 얼터너티브록, 브릿팝, 모던록, 하드코어 등 다양한 록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분위기에 맞는다면 곡 신청도 가능하다. 가격도 무겁지 않다. 맥주는 3000원, 양주는 5만원부터 시작한다.365-3824. ●Studio 70’s 이름처럼 70년대 선술집의 편안한 분위기다. 비틀스와 이글스와 시카고 등 8000여장이 넘는 70년대 명곡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는 간단한 공연 무대도 있다. 신촌블루스 엄인호씨 등 뮤지션들이나 프로급 아마추어 손님들이 가끔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우드스탁 이국적인 분위기에서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기울일 수 있는 곳. 이름처럼 60년대 히피 운동을 선도했던 ‘플라워무브먼트’ 세대 음악과 70년대 하드록을 주로 들을 수 있다. 연세대 어학당에 다니는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다.334-1310. ●벨벳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가볼 만한 곳. 벨벳언더그라운드는 60년대를 풍미했던 록 그룹. 폴 매카트니, 지미 페이지, 지미 헨드릭스 등 시대를 풍미했던 록 스타들의 얼굴이 가게 벽면에 새겨져 있다.336-8635.도어스에서도 ‘빵빵’한 하드록과 헤비메탈을 맘껏 들을 수 있다.334-5463. ●원조껍데기집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대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웬만한 안주가 3000원이 넘지 않을 정도로 싸다. 이름 그대로 이곳은 돼지껍데기가 주 메뉴다. 쫄깃쫄깃하면서도 담백한 껍데기는 비위 약한 사람도 곧잘 먹을 정도로 괜찮다. 새벽까지 가게가 시끌벅적할 정도로 인기다. 껍데기 3장에 3000원.‘가장 비싼’ 소갈비살양념구이와 안창살이 5000원이다. ●미네르바 1975년부터 문을 연 ‘신촌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숍’이다. 특히 지금껏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클래식 전문 커피숍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커피맛 역시 역사만큼이나 그윽하다. 모카, 브라질산토스, 과테말라 등 10여종의 원두커피가 준비돼 있다. 직접 내려먹다 보면 커피향이 온 몸을 감싼다.3500∼4000원 선으로 저렴한 편. 리필은 1000원을 더 내면 된다.3147-1327. ●몽환(夢幻) ‘복합문화놀이공간’을 표방한 클럽. 붉은 색의 어두운 조명 아래 중국풍의 고가구가 몽환적인 음악과 묘하게 어우러진다. 아담한 건물을 통째로 쓰는데 지하는 클럽,1층은 라운지,2층은 갤러리 카페로 쓴다. 친구네 집에 놀러온 것처럼 신발을 벗고 방석에 앉아 푹신한 쿠션에 기대어 술이나 음료수를 마실 수 있다. 때때로 2박3일 동안의 ‘48시간 파티’ 등 독특한 컨셉트의 파티가 열린다.325-6218. ●향음악사 몇 안 남은 음악전문 카페와 함께 신촌이 한때 음악인의 거리였다는 것을 방증하는 곳이다. 바깥에서 보는 매장은 좁은 편이지만 허공과 벽에는 빼곡히 앨범이 쌓여 있다. 이곳만의 특징은 한국 인디음악 등 쉽사리 구하기 힘든 앨범이 거의 다 있다는 점이다. 핫트랙이나 신나라레코드에 없더라도 이곳에서는 구할 수 있어 음악마니아 치고 향레코드를 이용해보지 않은 이는 없다. 인터넷(hyangmusic.com)에서도 주문할 수 있다.337-7598. 이두걸 김기용기자 douzirl@seoul.co.kr
  • “PDP특허 침해” 소송 제기

    삼성SDI는 지난 5일(현지시간) 일본 마쓰시타와 자회사인 파나소닉에 대해 PDP 관련 특허 9건을 침해받았다며 미국 연방법원에 제소했다고 7일 밝혔다. 삼성SDI는 지난 1년간 마쓰시타와 9차례에 걸쳐 특허관련 협상을 진행했지만 최종 협상이 결렬 됐다. 미국 연방법원에 특허소송을 제기한 것은 미국이 디지털 TV시장의 가장 큰 수요처인 동시에 한국과 일본이 아닌 제3국의 판결이 특허침해 여부에 대한 공정성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앞서 삼성SDI는 2003년 PDP 원천기술 침해 문제로 일본 후지쓰를 상대로 미국 연방법원에 특허 무효소송을 제기,‘크로스 라이선스’(상호특허공유)를 체결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지금 대전청사에선] 특허청 국제회의서 ‘망신’

    ●G-7, 상용화 ‘산넘어 산’ 한국철도공사가 호남·전라선에 투입할 고속열차 기종으로 한국형 고속열차(G-7, 제작사 ㈜로템)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것을 놓고 설왕설래. 높은 국산화율과 외국 차량에 뒤지지 않는 성능 등이 심사과정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상용화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산적해 있다는 것. 특히 G-7의 모델이 된 TGV와 KTX 제조사인 프랑스 알스톰사가 2순위 사업자가 되면서 향후 이뤄질 기술협상 등에서 상당한 마찰이 예상. 이에 더해 열차의 안정성과 유지·관리에 대한 우려도 검증이 필요한 부분으로 지적. 한 전문가는 6일 “국산화율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면서 “최종 계약자로 선정되더라도 기술이전이 안된 부분에 대한 로템의 기술료 부담 등이 만만찮을 것”이라고 우려를 제기.●합의 못이룬 `동북아 연합 특허청´ 특허청이 지난 1일 개최된 한·중·일 특허청장 회의에 앞서 동북아 단일특허청 창설을 발표했지만 정작 회의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정정자료를 배포하는 등 한바탕 소동. 특허청은 이날 회의에서 2015년 동북아지역 연합 특허청 설립을 하자는 거창한 로드맵을 제안했던 것. 하지만 이견 끝에 초기단계인 선행기술조사와 심사결과 상호활용 등 3국간 심사 상호인증 방안만 논의하는 데 합의. 그러자 당초 ‘동북아 단일특허청 설립’에서 ‘특허공동체 설립’으로 규모를 축소한 수정자료가 나왔지만 이마저도 오버(?)한 것이었다는 지적. 한 관계자는 “외교·국제관례에서 벗어난 실수”라며 “초기 발표만 듣고 보도가 됐다면 큰 망신을 살 뻔했다.”고 한숨.●빛바랜 인사혁신 최우수기관 조달청이 또다시 인사 논란에 휩싸이면서 지난해 인사혁신 최우수기관 타이틀이 무색. 책임운영기관인 중앙보급창장 1차 공모에서 부적절한 사람이 선정돼 결국 오는 12일까지 2차 공모에 돌입. 손전등·카트리지 사건 등으로 신뢰회복이 절대 필요한 자리인 만큼 혁신·추진력보다는 청렴·도덕성에 비중을 두고 적임자를 선정하겠다는 것.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20) 차와 시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20) 차와 시

    첫눈이 내렸다. 하얀 차꽃을 뿌리듯 대지에 살짝 몸을 올린 눈들이 마냥 한가롭기만 하다. 천둥처럼 섞어치던 바람도 어느새 깊은 잠에 들어가고 온 산은 그냥 적막에 빠져 있다. 너무도 자비로운 평화의 침묵이다. 평화는 내면의 침묵에서부터 시작된다. 침묵은 산란한 마음속에서 살아가는 일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한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삶의 눈을 뜨게 된다. 자비로운 평화와 침묵은 일상의 나를 보고 그속에서 냉철한 지혜의 길이 어디에 있음을 알게 한다. 그것이 바로 차의 마음이요 차의 길이다. 얼마 전 한 차인이 일지암에 찾아왔다. 그 차인은 오랫동안 지리산 화개에서 차 살림살이를 하고 있는 차꾼이다. 한잔의 차를 마시다 말고 깊은 한숨을 쉰 그는 나에게 물었다.“스님 현재 우리나라 차소비의 주류가 어디에 있는 줄 아십니까?” 현재 우리나라 차 소비의 70%는 이른바 대기업이 일상음료로 생산하는 ‘티백’녹차이다. 그리고 나머지 25% 정도는 두물차인 세작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가장 상품의 차라고 말하고 그 차를 마셔야 제대로 된 차를 마시는 것 같은 ‘우전’의 시장가치는 5% 내외다. 차에 대한 소비자의 시각이 많이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우전’은 현재 우리나라 차 시장에서 가장 앞선 브랜드요, 상징성 있는 차 상품으로 차인들뿐만 아니라 일반대중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이른바 최상품의 차로 불리는 ‘우전’을 우리 차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삼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인식이다. 그것은 향후 중국차 시장과의 경쟁에서 우리 차가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이나 여지가 무척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전이란 말은 곡우 전후로 딴 찻잎을 말한다. 여기에서 우전이란 찻잎이 충분히 제다할 수 있을 만큼 자란 시기란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같은 뜻이 와전돼 무조건 곡우 전후로 찻잎을 따야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차상품으로 인식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차를 제다할 수 있을 만큼 자라는 것은 매년 그 기후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어떨 때는 곡우 전에 충분히 자란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너무 어려 비비기도 어려운 상태도 있다. 그러나 차를 제다하는 차인들은 이같은 것을 무시하고 곡우 전후에 차를 억지로 생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경우 찻잎을 따기도 어렵고 차를 제다하기도 어렵다. 또 한 가지 있다. 바로 중국차와의 경쟁력이다. 향후 차 시장이 개방되면 중국차는 그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물밀듯이 한국 차시장을 공략할 것이다. 중국에서 햇차는 우리보다 훨씬 앞선 청명 전에도 생산이 된다. 또한 사계절 내내 햇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곳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전으로 대표되는 우리 차시장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나는 차인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절기에 따른 것이 아니라 차 생산자가 차밭에서 처음 딴 것을 첫물차 두물차 세물차로 나누어 생산하는 것이 매우 좋을 듯하다. 앞서 언급했지만 차의 본성은 고요하고 사색적이고 이지적이다. 찻잔속에 찻잎이 퍼지며 연두색 색깔을 토해내면 그속에는 우주의 순환을 보는 듯한 정신적 심의(心意)가 싹튼다. 그런 점에서 차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키우는 날개와 같은 것이다. 한 잔의 차속에, 한 잎의 찻잎 속에 삶과 죽음의 문제, 심(心)과 색(色)의 문제 등 보다 근원적인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마력이 깃들어 있다. 차인들은 차를 통해 만난 내적 깨달음을 시로 표현한다. 진정한 차인은 차를 통해 자신을 깨우쳐 인격의 완전함을 지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는 차의 마음이요, 노래인 것이다. 옛 차인들은 한 잔의 차를 마시면서 그 마음을 그대로 노래했다. 초의 추사 다산 등 우리나라의 차인들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의 차인들 역시 차의 마음을 시를 통해 마음껏 노래한 것이다. 그같은 노래들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과거의 차를 알 수 있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남기고 있다. 먼저 신라·고려 시대의 차는 곧 잊혀진 우리 차에 대한 복원기록 같은 것이다. 마치 기록할 때처럼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고려시대 문신이었던 김극기의 ‘한송정을 돌아보며’라는 시는 좋은 예이다. “외로운 정자가 바다를 임해 봉래산 같으니/지경이 깨끗하여 먼지 하나 용납 않는다/길에 가득한 흰 모래는 자욱마다 눈인데/솔바람 소리는 구슬 패물을 흔드는 듯하다/여기가 네 신선이 유람하던 곳/지금에도 남은 자취 참으로 기이하여라/주대는 기울어 풀속에 잠겼고/다조는 나뒹굴어 이끼 끼었다/양쪽 언덕 해당화는 헛되이/누굴 위해 지며 누굴 위해 피는가/내가 지금 경치를 찾아 그윽한 흥취대로/종일토록 술잔을 기울이네/앉아서 심기가 고요하며 물(物)을 모두 잊었으니/갈매기들이 사람 곁에 날아 내리네” 김극기는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오던 길에 신라시대 화랑들이 호연지기를 기르며 차를 달여 마셨던 한송정에 들르게 된다. 그리고 묘련사의 석지조를 발견하게 된다. 김극기는 옛 차인들이 유적들을 돌아보며 그 회한을 읊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차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차시들은 충담사, 김지장 스님, 이규보 등 대문장가들의 시선집에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는 이 차시들을 읽으며 당시 차인들의 멋과 풍취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차시의 정수는 바로 차의 마음을 담은 것들이다. 먼저 대각국사 의천의 차시다. “북쪽 동산에서 새로 만든 차를/동쪽 숲에 사는 스님에게 보냈도다/한가로이 차 달일 날 미리 알고/찬 얼음 깨고 샘줄기를 찾는다” 겨우내 차를 그리워했던 차인의 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차시다. 대각국사는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 먼 남쪽에서 한 차인이 보낸 햇차를 선물받는다. 그 기쁨을 대각국사는 미처 녹지 않은 땅을 일궈 물을 찾는 심정으로 햇차를 기다린 심정을 한 편의 시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 희종때 스님인 진정국사의 차시도 눈여겨볼 만하다. “귀한 차는 몽정산의 차 맛을 이었고/샘물은 혜산천에서 길어 온 것 같구나/졸음을 쓸어내고 정신을 맑게 하니/손님을 대하여 다시 여유가 있네/단이슬이 땀구멍에서 솟아나고/공산의 운제상인이/차 자리를 마련했다고 함에/시원한 바람이 겨드랑이를 식혀주네/어찌 영약을 구해서 마셔야만/불그레한 얼굴로 지낼 수 있다 하겠는가” 고려시대 지배계층인 귀족과 스님들은 중국의 명차로 알려진 몽정산의 몽정차를 마셨다는 것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육유가 최고의 물로 인증한 혜산천의 물을 상징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 당시 육우의 다경을 비롯한 중국의 다서들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많은 다인들에게 읽혀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차인 가족으로 알려진 혜거도인 홍현주가의 차시도 볼만하다. 초의 스님의 ‘동다송´을 오늘에 있게 한 주인공인 혜거도인 홍현주가는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 자식들 모두가 차를 즐긴 당대 최고의 세력자 집안이었다. 그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를 마시며 지은 차시가 있다. “비 갠 뒤 갓 돋은 달 밝으니/흐르는 그림자 성긴 발에 어리네/먼 데서 오신 손님은 흥도 많으셔/맑은 빛은 모두 싫어하지 않는구나/허공이 밝으니 하늘은 넓고 넓어/이슬이 내려 옷을 적시네/누각은 허공속에 걸렸는데/산봉우리에 달이 걸렸네/구름으로 들어가면 구름 밖은 고요한데/별들은 나무 사이에 걸렸네/밤을 재촉하여 등을 걸었는데/바람이 읊조리니 호각소리가 짧아지도다/…차는 익어 시정에 젖어드니/거문고 맑은 소리 고운 손에 울린다/참으로 다정하고 즐거운 마음을/가도 가도 버릴 수 없네/머리 들어보니 은하수는 기우는데/이 기쁨 달님에게 물어본다” 먼저 아버지인 족수 거사 홍인모가 운을 뗀 후 그의 어머니인 영수합 서씨, 두 형과 여동생 유한당 홍씨, 그리고 홍현주가 돌아가면서 쓴 연시다. 한가족이 달빛을 풍광삼아 차를 즐기는 향취를 그대로 드러내는 아름다운 차시인 것이다. 차시 가운데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당대 최고의 천재시인 설잠 김시습이다. 설잠 김시습은 앞서 밝혔듯이 직접 차를 가꾸고 제다했던 차인이었다. 그가 차를 마시며 지은 연시 한토막을 소개해 본다. “밤에 듣는 소리는 패옥 같은데/새벽에 물 길으면 빛이 옥 같네/절아이 산차를 달이려/달이 담긴 찬 샘물 길어오누나/새벽해 떠오를 때 금빛 전각 빛나고/차 김 날리는 곳 서린 용이 날개치네/절이 오래되어 솔은 천길이나 자랐고/산 깊어 달이 한 무더기라” 매월당 김시습은 차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차의 마음을 담은 많은 차시들을 남겼다. 매월당은 이시에서 새벽에 물을 길어 돌솥에 끓이는 소리를 마치 아름다운 패옥 같다고 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달이 담긴 샘물 그리고 천길이나 자란 소나무속에 달과 함께 마시는 차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절절히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 다인의 차시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바로 송광사의 다송자 스님이다.“뜰 아래는 차 샘이요, 뜰 위에는 정자 있어/집의 문 넓고 멀어 남쪽바다 눌렀구나/거울속 빛과 소리 천년을 숨어 있고/그림속 강산은 점점이 푸르다/백척난간에 바람이 머무는데/한 잔 뇌소차에 꿈을 깨는구나/책상 앞에 앉아 창랑곡을 떠올리니/물 맑으면 갓끈 씻고 물 흐리면 발 씻으리” 다송자 스님은 근대 차인으로서는 보기드물게 80여편에 이르는 빼어난 차시를 남겨 우리의 마음을 청량하게 한다. 비우고 비워 마침내 허공에 다다른 담백한 차생활을 전해주고 있다. 차는 곧 시며 선이다. 그것은 차를 통해 우리는 내적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심의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깊은 산사에서, 활발한 도심에서 살며 차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차의 효용성이랄 수 있다.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노래하는 즐거움 또한 이 시대 차인들이 회복해야 할 정신사인 것이다. 일지암 암주 ■ 효당 최범술과 차의 길 “육신을 가볍고 쾌하고 부드럽게 하는 것” 웰빙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웰빙이란 글자 그대로 인간의 삶을 자연친화적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마치 값비싼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것으로 환치하는 ‘우’를 범하며 살고 있다. 웰빙이란 앞서 전제했지만 인간의 삶을 자연과 함께 자연스럽게 호흡하며 살게 하는 것이다. 그속에는 삶의 순리와 역리를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존재하며 평범하면서도 편안하게 호흡할 수 있는 삶의 리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의 차 은사인 효당 최범술 스님은 ‘차(茶)의 길’을 이렇게 설파하셨다.‘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차에도 법도가 있다.’는 것이다. 효당 스님은 차를 끓이기 위해 불을 피우고 물을 재우고 법제된 찻잎을 넣어 차를 우려내는 것 하나하나에 그에 따르는 모든 행위가 갖추어져 있는 것을 ‘차를 통하여 생활하는 것’이라고 했다. 효당 스님은 “우리 인간 사회생활 그 어느 것이 그렇지 않음이 없겠으나 모든 인간사회의 복잡다단한 사회생활을 이와 같은 기호 속에서 가볍고 쾌하고 편안하고 부드럽게 조화된 상태에서 등장시켜 고요한 속에서 차생활을 해온 것이다. 이같은 차생활은 차나 무순이나 잎으로 법제된 차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겠으나 위에서 말한 찻잎이 그러한 모든 요소에 적합하다 하겠다. 그러기에 선인들은 차를 인간생활상의 기호면에 등장시켜 그것이 지니는 맛과 멋을 통하여 인간답게 생활해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차란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고 인간문화생활의 생활까지 통틀어서 ‘차생활’이라는 말로 범칭하게 되고 이와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을 차인이라고 부른다.”고 말한다. 효당 스님은 여기에서 차의 맛을 문제삼는다.“차맛을 자세히 음미하면 쓰고 짜고 떫고 시고 단 여러 가지의 맛들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이는 우리 인간들의 일상 생활속에서 있을 수 있는 갖가지 맛을 보면서 살아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동고동감(同苦同甘)한다는 표현처럼, 맛의 말로써 나타내니 모든 인간 사회생활 그곳에서 한껏 묘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리라.”로 정의하고 있다. 차뿐만 아니라 이 세상 많은 것들이 자세히 음미하면 모든 오감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차는 다른 것들보다 더욱더 명징하게 오감을 전해준다. 효당 스님은 함께 고통받고 함께 기쁨을 느낀다는 ‘동고동감’을 통해 차와 인간삶의 절묘한 조화가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우리의 삶이란 곧 번뇌고 환희인 것이다. 번뇌와 환희의 찰나지간 바뀜이 우리의 그날 그날 삶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효당 스님은 차인의 진정한 길은 그같은 동고동감 속에서도 늘 고요하고 평화스럽게 자신을 온 우주와 함께 호흡하라고 권한다. 육신을 가볍고 쾌하고 부드럽게 하는 길이 바로 다도의 길인 것이다. 다도의 길은 또 고인물이 흐르는 물로 말미암아 맑은 여울로 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차 한잔에 한 생각을 모으고 그 모두 어진 생각으로 온 우주와 합일이 되고 그 합일된 바탕 속에서 자신의 내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을 얻는 것이다. 다도의 길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효당 스님은 매일매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권한다.“우리 인간이란 매우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다. 제일 가깝고 쉽고 평범한 큰길이 있음을 잊은 채 멀고 어렵고 까다로운 샛길을 찾는다. 발걸음을 멈춰 다시 한번 돌아보자.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어느 길인가를. 그리고 차와 선이 있는 길이라면 우리 선인들의 슬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걸어가자.”
  • 쉴곳없는 ‘귀’…국민 2명중 1명 소음에 시달려

    쉴곳없는 ‘귀’…국민 2명중 1명 소음에 시달려

    “뒷집 개소리 때문에 정말 스트레스 받아 못살겠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미친 듯 짖어댑니다. 애기가 개소리에 놀라 경기까지 한 적도 있습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머리카락이 빠질 지경이에요.”(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홈페이지) “서울 명동에 가면 호객행위한다고 길거리에 음악을 고래고래 틀어놓습니다. 버스를 타면 라디오 노랫소리는 귀를 피곤하게 하지요. 임자 없는 허공에 음파가 헤집고 다녀 짜증을 불러일으키는데, 환경부는 어찌 생각하는지요.”(환경부 홈페이지) 아파트 층간 소음이나 길거리, 공사장, 도로 등 이른바 ‘생활 소음’이 큰 환경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개인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이웃간의 분쟁 등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치닫기도 한다. 우리나라가 ‘소음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18일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밤시간대(오후 10시∼이튿날 오전 6시)에 법정기준치 이상의 도로교통 소음에 노출된 인구가 무려 2500만명(52%) 안팎인 것으로 추정됐다. 교통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낮시간대(오전 6시∼오후 10시)엔 1000만명(21%) 수준이다. 낮엔 국민 10명 가운데 2명가량이, 밤엔 10명 가운데 5명 이상이 과도한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주거지역의 법정 소음기준은 낮시간대 65㏈(데시벨) 이하, 밤시간대 55㏈ 이하로 규정돼 있다.40㏈부터 수면 깊이가 낮아지고 50㏈은 호흡·맥박수 증가 및 계산력 저하 현상이 나타나는 데 이어 60㏈일 경우 수면장애가 본격화하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국민 절반 이상이 온종일 소음 피해를 겪고 있는 셈이다. 최근 환경부에 ‘생활소음 줄이기 종합대책’ 연구용역 조사보고서를 제출한 홍익대 김정태 교수는 “2002년 이후 도로가 많이 깔렸고 고속철도가 운행되는 등 여건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환경부 생활공해과 전종철 사무관도 “갈수록 소음공해가 심각해져 시급한 대책이 마련돼야 하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층간 소음, 공사장 소음, 확성기 소음 등 각종 생활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도 급증했다. 지난해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접수된 소음민원은 2만 9576건으로,2000년에 비해 4배 가량 증가했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집계 결과,1991년부터 올해 9월까지 제기된 1354건의 환경분쟁 신청 가운데 소음·진동 건수는 86%(1159건)에 달했다. 대기오염 분쟁신청은 8%(115건), 수질오염은 54건(4%)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같은 피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사례가 아직은 극소수다. 시민환경연구소가 최근 전국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이웃간 소음에 어떻게 대응했나.’란 질문에 ‘괴롭지만 참았다.’ 등 63%가 최소한의 항의 표시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음으로 인한 피해는 개인적·사회적 영역에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대화나 수면방해, 청력장애 등 증상은 물론 육체적·정신적 건강도 위협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외국의 경우 거리교통 소음이 심한 지역의 사람들은 심근경색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1.2∼1.3배 가량 높다거나, 소음이 극심한 지역 거주민들은 상대적으로 정신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울산대 의대 산업환경의학교실 이충렬 박사는 “신경성 불만, 두통, 입씨름하기 좋아하는 성향, 성적 무능력, 사회적 갈등 증가 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대책마련에 분주하다. 환경부는 현재 층간 소음이나 항공기, 유흥업소 등의 소음대책과 관련해선 건설교통·국방·보건복지부 등과 부처협의를 진행 중이다. 한 관계자는 “소음공해의 심각성을 감안해 늦어도 올해 안에는 생활소음을 줄이는 종합대책을 내놓을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27일만에 극적 구조

    지난달 8일 발생한 파키스탄 대지진 당시 무너진 집에 매몰됐던 청년이 27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영국 더 타임스가 18일 보도했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젤룸계곡 내 파흘 마을에 사는 칼리드 후세인(20)은 지진 발생 당시 집에서 어머니 및 4명의 형제와 함께 가축을 돌보고 있었다. 지진과 함께 발생한 산사태로 바위와 흙더미가 집을 덮치면서 이들은 모두 매몰되고 말았다. 다른 동네에 있어 화를 피할 수 있었던 아버지와 세 명의 아들은 사고 뒤 집으로 돌아왔다. 마땅한 구조장비도 없이 이들은 잔해를 파헤쳤다.12일 만에 다른 가족들의 시신은 찾았지만 칼리드는 눈에 띄지 않았다. 아버지 무자파르는 “칼리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가족들의 장례식을 치렀다.”고 말했다.하지만 기적은 일어났다. 지난 5일 나머지 잔해를 치우던 아들 자히드(18)가 “형의 손이 보인다.”고 소리쳤다. 무자파르는 “당연히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칼리드가 숨을 쉬고 있었다.”며 “나무기둥과 돌더미 속에 갇혀있던 칼리드의 주변에는 겨우 손을 움직일 만큼의 공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칼리드는 오른쪽 다리가 골절되기는 했지만 큰 부상없이 구출됐다. 인근 도시로 옮길 차량이 없어 5일이 지난 지난 10일에야 겨우 무자파라바드로 이송, 입원했다. 칼리드에게는 외상보다 심각한 정신적 상처가 남았다. 초점없는 눈동자로 허공을 쳐다보며 손으로 계속 땅을 파는 시늉을 하는 칼리드의 모습에서 갇혀있는 동안 얼마나 큰 공포에 시달렸는지 알 수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칼리드의 담당 의사는 “27일 동안 물과 음식없이 버틴 것은 기적”이라며 “다리 치료와 함께 정신과 의사들이 진료하고 있다.”고 말했다.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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