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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리뷰] 극단 간다 ‘끝방’

    “사랑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이야기….”나란히 앉아 조용필의 ‘허공’을 부르는 엄마·아빠를 두고 선호는 집을 상자 속에 봉인한다. 가난했지만 뭉클했던, 가슴 터지게 울어도 보았지만 벅차게 웃어도 보았던 ‘끝방’은 그렇게 간직된다. 극단 간다의 연극 ‘끝방’(7월20일까지·대학로 나온씨어터·연출 이재준)은 이렇게 닫힌다.‘끝방’의 무대는 커다란 골판지 상자 안. 인물들이 하나씩 들고 오는 상자와 이야기가 방 안과 극을 어느새 채워 나간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모시고 요양원에 온 선호. 엄마는 선호에게 문득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른다. 어릴 적 선호에게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해진다.’고 타박했던 기억도 잊은 모양이다. 끝방에 얽힌 추억은 그렇게 풀려나온다. 엄마가 아빠에게 단박에 콩깍지가 씌웠던 곳. 이모가 가난한 헬스트레이너 연인을 잊지 못해 목놓아 울었던 곳. 밤마다 요정옷을 입고 나가던 순옥이 누나에게 ‘사랑밖엔 난 몰라’를 배우던 곳. 영어사전을 씹어 먹으며 공부하던 소아마비 지훈형을 흉내내다 엄마한테 두드려맞은 곳.‘끝방’은 그래서 선호에게 가족사이자 성장통이다. 극은 살 부비고 살던 시절의 향수를 객석에 흩뿌린다.‘추리닝맨’ 이모 남친은 선호에게 1980년대 권투 챔피언 ‘장정구의 기술’을 전수한다.‘신데렐라는 어려서∼’‘우리집에 왜 왔니’ 등의 노래가 정감을 더한다. 재기발랄한 무대와 소품 활용이 돋보이는 극단 간다의 손재주는 이번에도 발휘됐다. 상자는 옷장과 화장대가 되었다가 책상도 되고, 나중엔 무대 전체를 감싼다. 최루성 눈물과 아릿함 섞인 웃음도 주지만 ‘끝방’은 시종 잔잔한 단막극으로 엮여 간다. 그래서 기승전결 뚜렷한 드라마나 허를 찌르는 반전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초반부 밋밋한 전개를 감내해야 할 듯. 그러나 끝방의 역할은 ‘위로’로 충분하다.‘미안하다’는 아빠에게 건네는 엄마의 말처럼.“어차피 인생이란 게 힘들고 부끄러운 일들로 가득한데 뭐, 결국엔 다 지나가잖아요. 됐어요.”(02)3675-3677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월드컵예선] 남북형제 함께 웃었다

    서울에서 처음 인공기와 북한 국가가 울려 퍼진 가운데 열린 남북 형제의 첫 공식 A매치에서 모두 웃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 축구팀은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아공월드컵 3차예선 6차전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지만 0-0으로 비겼다.1990년 미국월드컵 예선에서 3-0으로 이긴 뒤 네 차례 연속 무승부. 남과 북은 나란히 3승3무로 승점 12를 기록했지만 골득실에서 한국(+7)이 북한(+4)에 앞서 조 1위로 3차예선을 마쳤다. 최종예선에 동반 진출한 남북은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아시아축구연맹(AFC)본부에서 열리는 조추첨 결과를 주목하게 된다. 열두 번째 남북의 A매치에선 한국이 5승6무1패의 우위를 지켜냈다. 2005년 8월 이 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 이래 2년 10개월 만에 맞선 두 팀의 우열을 가리긴 쉽지 않았다. 허정무호로선 그동안 답답했던 흐름을 끊고 안정환(부산)과 이청용(서울)을 좌우날개로, 최전방에는 고기구(전남)를 내세운 새로운 공격 옵션을 시험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선 김두현(웨스트브롬)을 비롯, 김남일(빗셀 고베)과 조원희(수원) 대신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선 김정우(성남)와 오장은(울산)도 지난 두 경기의 답답함을 털어내는 원활한 패스워크와 유기적인 협력 플레이를 선보였다. 김치우(전남)와 최효진(포항)이 좌우 윙백을, 이정수(수원)와 강민수(전남)가 중앙을 맡은 수비진도 우려를 씻어내고 정대세(가와사키)와 홍영조(FK베자니아)를 앞세운 북한의 공세를 잘 막아냈다. 한국은 전반 12분 김정우가 김두현과 2대1 패스로 수비진을 무너뜨린 뒤 수비수를 한 번 제치고 슛을 날렸지만 공이 수비 발에 맞고 굴절되는 바람에 아까운 찬스를 놓쳤다. 북한은 37분 오른쪽에서 날카롭게 올라온 크로스를 홍영조가 반대편에서 곧바로 왼발슛으로 연결했지만 골키퍼 정성룡(성남) 앞으로 향해 무위에 그쳤다. 후반에 안정환과 김정우, 오장은 대신 박주영(서울)과 김남일, 이근호(대구)를 들여보내 공격력을 보강한 허정무호는 후반 8분 김두현이 날린 회심의 슛이 수비 몸에 맞고 골문을 향했지만 골키퍼 리명국이 몸을 날려 걷어내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또 29분 박주영이 이청용의 패스를 이어받아 리명국과 마주선 상황에서 날린 슛이 터무니없이 허공을 가른 것은 최종예선을 앞두고 북한의 기를 꺾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셈. 김정훈 북한 감독은 “속공으로 연결하려는 전술적 의도가 잘 먹혀들었다.”고 자평했다.허정무 감독은 “김치우, 최효진, 고기구 등 새 얼굴들이 포지션 경쟁에서 자신감을 보인 점이 최종예선에 희망을 걸게 한다.”며 “다만 득점을 못한 부분은 보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북한 팀은 23일 오후 1시5분 베이징을 거쳐 돌아간다.임병선 박록삼기자 bsnim@seoul.co.kr
  • [서울의 풍경] 상암DMC ‘디지털컬처오픈’

    [서울의 풍경] 상암DMC ‘디지털컬처오픈’

    현재와 미래의 디지털 세상을 미리 맛본다. 게다가 평소에 볼 수 없는 곳을 들여다볼 수 있고, 모든 행사가 무료이다. 빠르게 진화하는 디지털세상 속에 사는 우리에게 이런 순간은 더 이상 매력적일 수 없다. 오는 17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서울디지털컬처오픈(SeDCO)’이라면 가능한 기회이다. 디지털 미디어 문화산업의 중심지로 모습을 갖춘 서울 마포구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서 열리는 이 축제에는 서울시가 ‘문화의 미래’를 주제로 엄선한 20여개의 이벤트가 6일 동안 줄줄이 이어진다. 어떤 일들이 어떻게 펼쳐질지, 미리 경험해 보자. ●미래 보여주는 ‘디지털파빌리온´ 눈길 많은 주옥같은 행사 중에서도 꼭 경험해야 할 것으로 ‘디지털파빌리온’이 꼽힌다. 지금, 혹은 20년 후에 생활 속에 녹아든 디지털 기술이 총망라된 곳이다. 2층 탐구관에 들어서면 오감 멀티미디어 세상이 열린다. 작곡가와 악기를 직접 선택해 듣는 음악, 선 없이 울리는 하프와 발로 연주하는 색소폰, 허공에서 즐기는 도미노 등 손 끝 하나로 문화 공간이 만들어진다. 미래의 생활상을 알고 싶다면 3층 상상관으로 올라가 보자. 웰빙건강부스 안에 들어서면 체온과 비만도를 측정해주고, 디지털 주치의가 운동요법과 식단을 진단한다. 상상관 한 가운데 ‘물없는 연못’에 사는 디지털생명체는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낮에도 노을이 지고, 도시에서도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창밖의 풍경은 내가 선택해 연출한다. 영화에서만 보던 미래 생활을 현재에 경험하는 시간이다. 영상에 따라 바람, 비, 향기 등의 효과가 느껴지는 수준 높은 입체영화 ‘화첩몽’을 보는 코스까지 2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지루할 새가 없다. 평소에는 1500∼30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이 기간은 무료이다. 문화콘텐츠센터에서 열리는 DMC영화제도 빼놓으면 아쉽다. 한국영상자료원은 국내영화 100년사를 짜임새있게 풀어놓은 상설전시와 영화 속 연산군을 비교한 기획전시를 준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을 재현한 ‘원각사’에서는 변사가 옛 영화를 소개한다. 독특한 소재와 뛰어난 심리묘사를 영화에 담아낸 고(故) 김기영 감독 10주기 기념 전작전(20∼29일)은 벌써부터 영화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음악, 미디어, 예술 행사가 줄줄이 이번 행사에서만 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많다.KGIT센터 전시실과 야외광장 2곳에서 열리는 ‘서울 디지털아트 축제’에서 다양한 장르의 디지털아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디지털파빌리온과 문화콘텐츠센터 가운데 놓인 임시전시실에는 독특한 디지털 미로가 만들어져 있고, 미디어보드에 송출된 환상적인 영상을 느낄 수 있다. 직접 UCC(사용자제작물)를 만드는 과정을 배우는 시간도 마련했다. 사전 신청이나 현장 참여로 전문강사에게 간단한 촬영기법과 편집기술을 익힐 수 있는 기회다. 아울러 학생들과 인디밴드들의 참신함과 열정을 맛보는 ‘디지털 음악회’, 휴스퀘어에 설치될 대형 하프파이프에서 진행되는 ‘아마추어 인라인 하프대회’, 시민 모델이 무대에 올라 ‘대장금’과 ‘주몽’의 사극 의상을 선보이는 ‘드라마 패션쇼’ 등도 열린다. 서울산업통상진흥원 심일보 대표이사는 13일 “DMC에서는 언제라도 디지털세상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전하기 위해 행사를 준비했다.”면서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DMC가 세계적인 디지털도시로 자리잡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설명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檢, 공기업 수사 ‘용두사미’ 되나

    檢, 공기업 수사 ‘용두사미’ 되나

    검찰의 공기업 수사가 한 달째로 접어들면서 수사의 진정성을 두고 왈가왈부 말들이 많다.“구조적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검찰의 공언과는 달리 뚜렷한 성과를 내지 내지 못하자 공기업들 사이에선 “검찰이 감사원, 금감원, 국세청 등과 함께 구 정권 인사 청산 작업에 동원된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반면 검찰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면서 섣부른 예단을 경계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수사 착수를 선언한 직후 산업은행, 증권선물거래소, 자산관리공사, 석유공사, 수출입은행, 관광공사, 공항공사 등이 수사 대상으로 공개되고 가스공사, 마사회 등 20여개 공기업이 수사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오는 8월까지 예정된 이번 수사가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구 정권 인사 청산이 수사 초점?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지난달 14일 그랜드백화점을 압수수색했다. 이 회사 사모사채 1860억원어치를 사들였던 산업은행 관계자 등이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매입을 담당했던 최모 전 팀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수사에 빨간불이 켜졌다. 공소 시효도 얼마남지 않아 최 전 팀장이 실제로 수십억원대 리베이트를 받았는지, 이 돈이 윗선으로 전달됐는가를 밝혀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역시 특수3부가 맡고 있는 석탄공사의 M건설 부당지원 의혹 역시 비리의 단서를 포착하는데 난항을 겪고 있다. 당초 김원창 사장의 개입 여부를 가리는 게 최대 관건이었지만 김 사장이 결재 과정에 관여했다는 뚜렷한 물증을 찾아내지 못하면서 실무자급을 배임 혐의로 처벌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 입증 할 물증 못찾아 난항 또 금융조세조사2부의 자산관리공사 리베이트 수수 의혹,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의 도로공사 국유지 매각 비리 의혹 등도 실무자 한두명을 처벌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게다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의 증권선물거래소 수사 역시 요란했던 수사 착수에 비해선 그다지 시원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검찰 수사에 몸을 사렸던 공기업들 사이에선 “거악 척결을 위해 갈아온 칼로 허공만 가르는 격”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특히 이정환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은 지난달 15일 검찰 압수수색 직후 “다른 무언가를 얻으려는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 모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라면서 수사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런 반기류와는 달리 검찰의 수사에 기대를 걸게 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검찰 “압수수색이 수사 끝 아니다” 관광공사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레저의 카지노 사업 비리 의혹 수사에선 정치권에 대한 수십억원대 로비설이 구체화할 조짐이다. 또 2년 만에 칼자루를 손에 쥐고 나선 중수부의 수사에 거는 기대도 만만치 않다. 두 수사 모두 지난 정권 핵심 인사들과의 관련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만큼 결과가 주목된다. 게다가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수사의 진정성에 의심을 받고 있는 다른 수사들에 대해서도 검찰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면서 성급히 판단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이 수사의 끝이라고 보는 시각은 틀렸다.”면서 첩보→확인→압수수색→분석의 작업을 거쳐야만 비로소 수사가 본격 착수된다는 공식을 설명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의혹과 수사 필요성이 있어 수사를 계속하고 있는 만큼 결과를 미리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이다. 다른 검찰 관계자도 “구조적 비리든 개인 비리든 국민의 혈세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착복하고 낭비했다면 검찰 수사 대상인 부패 범죄가 아니냐.”면서 수사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첫 번째 사정(司正) 대상으로 공기업 비리를 꼽은 검찰이 수사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벗겨내고, 공기업 투명 경영의 발판을 다져낼 수 있을지는 거악 척결이라는 임무를 부여 받은 검찰의 명예와도 직결될 일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이용원 칼럼] MB ‘노 맨’을 키워라

    [이용원 칼럼] MB ‘노 맨’을 키워라

    중국 춘추시대(서기전 722∼481년)에 천하를 번갈아 호령한 다섯 군주를 일러 춘추오패(五覇)라 한다. 그 가운데 두번째로 꼽히는 이가 진(晉)나라의 문공(文公)으로, 결국 큰 명성을 얻었으되 삶의 여정은 험난했다. 아버지인 헌공의 말년에 벌어진 이복형제 간 승계 다툼을 피해 망명길에 나섰을 때 43세였고, 귀국해 권좌에 올랐을 때는 62세였다. 그 19년 동안 진문공은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때로는 암살 위협에 시달렸고, 먹을 것을 구걸했고,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때마다 그에게 초심을 잃지 않도록 깨우치고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준 이들은 망명길을 함께한 측근들이었다. 진문공이 첫 망명지인 적(翟)나라에 있을 때 일이다. 본국에서 암살단을 보낸다는 소식에 황급히 이웃나라로 피신하는 도중에 재물을 몽땅 잃었다. 굶어죽게 된 일행은 농민들에게 밥을 구걸했지만 돌아온 건 그릇에 담긴 흙이었다. 진문공이 벌컥 화를 내자 측근인 호언은 조용히 달랬다. 흙은 국가의 근본이니 밥보다 얻기 어렵다, 그러니 장차 나라를 얻을 징조라고. 진문공은 농부들 앞에 나아가 절하고 흙 한그릇을 더 얻었다.10리쯤 더 가자 개자추가 고깃국을 진문공에게 바쳤다. 허겁지겁 그릇을 비운 진문공이 어디서 얻었느냐고 묻자 개자추는 제 허벅지 살을 베어 국을 끓였다고 실토했다. 진문공은 제(齊)나라에선, 군주의 딸을 부인으로 얻는 등 환대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고국에 돌아갈 뜻을 잃은 듯했다. 걱정이 된 측근들은 어느날 밤 술에 곯아떨어진 진문공을 이불째 수레에 싣고 길을 떠났다. 뒤늦게 사태를 안 진문공은 ‘주범’인 호언에게 “내 진나라를 얻지 못하면 너를 죽이리라.”라고 원망했다. 이에 호언은 공이 실패하면 우리 모두는 어차피 허공을 떠도는 원혼이 될 것이라고 대꾸했다. 진문공의 고사를 길게 늘어놓은 까닭은 요즘 이명박 정부를 바라보며 느끼는 답답함 때문이다.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난 오늘까지 이명박 정부에서 눈에 띄는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 본인뿐이다.‘강부자’니 ‘고소영’이니 여론의 질타를 받은 청와대수석·장관 임명에서 이번 쇠고기수입 협정 후폭풍에 이르기까지, 그 많은 측근은 도대체 무얼 했을까. 진문공의 호언·개자추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제 자리를 걸고, 또는 이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한다는 각오로 ‘노(no)’라고 제동 걸려 한 측근이 있기나 한 걸까. 한·미 간 재협상 추진과는 별개로 인적 쇄신은 이뤄야 한다. 그리고 새로 발탁할 사람들은 ‘노 맨(no-man)’ 위주여야 한다.‘예스 맨(yes-man)’은 이미 넘치도록 많아 보이기에 하는 말이다. 지금은 비록 20% 안팎으로 지지율이 떨어졌지만 이명박 정부가 실정을 만회할 시간은 앞으로 넉넉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들로 진용을 짜느냐이다. 1993년 6월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은 그룹 수뇌부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러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면서 ‘신경영 선언’을 했다. 이제 그 말은 이명박 대통령이 실천해야 한다. 대통령 본인을 제외한 모든 자리를 바꾼다는 각오로 물갈이를 단행하기 바란다. 측근 없이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만 보이면, 유능하고 도덕적이면서 이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해줄 인물은 쌔고 쌨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측근이다. 이용원 편집국 수석부국장 ywyi@seoul.co.kr
  • 천연소재·파워 ‘UP’ 타이어 ‘위풍당당’

    천연소재·파워 ‘UP’ 타이어 ‘위풍당당’

    타이어는 자동차에 있어 사람의 ‘발’과 같은 존재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마도 발바닥쯤이 될 것이다. 둘은 사람들한테 대접받는 것도 비슷하다. 별 탈이 없다면 발바닥의 기능이나 미(美)에 그리 신경쓰지 않듯이 타이어도 바람만 잘 들어 있다면 별로 관심을 쏟지 않는다. 발바닥이 그러하듯 항상 조용히 제 몫을 하는 숨은 일꾼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홀대’를 받아온 타이어가 전반적인 자동차의 고급화 속에 빠르게 지위가 격상되고 있다. 차의 성능은 물론이고 차를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데 있어서도 그 역할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에 맞춰 업계는 고성능·친환경 등 첨단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친환경 ●연비는 높이고 온실가스는 줄인다 금호타이어는 지난달 20일 독일 에센에서 열린 ‘2008 국제 타이어 전시회’에서 친환경 기술을 적용한 ‘솔루스 KH19’와 ‘솔루스 KH17’을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KADAS(구조분석 기술),ESCOT(디자인 최적화 기술),TTIA(노면 마찰분석 기술) 등을 적용해 타이어의 회전저항을 낮추고 내구성을 크게 높였다. 솔루스 KH19의 경우 연비향상으로 연간 2만㎞(대형차) 주행 때 20만원가량 기름값이 덜 든다. 이산화탄소 가스배출은 6% 감소한다. 솔루스 KH17은 천연고무, 천연충전제, 천연오일 등 순수 자연소재를 이용해 생산·사용·폐기 등 각 단계별로 많은 오염물질을 발생시킨다는 타이어의 고정관념을 깼다. 일반에는 7월 출시된다. 한국타이어도 오는 5일 ‘환경의 날’에 맞춰 친환경 타이어 ‘앙프랑(enfren)’을 내놓는다. 제품 이름에서부터 ‘환경친화(environment-friendly)’의 의미를 담았다. 노면과 타이어의 회전저항을 줄여 연간 2만㎞ 주행 때 약 7만원의 연료비 절감효과가 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 주행 때 일반 타이어에 비해 4.1g이 적다. 일본 브리지스톤도 환경을 강조한 ‘에코피아 EP100’을 출시했다. 초고성능 ●부드러우면서도 강하다 고급 차종이 늘면서 초고성능(UHP·Ultra High Perfomance) 타이어 시장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UHP 타이어는 일반 타이어보다 단면폭은 넓은 대신 편평도(단면폭에 대한 타이어의 높이)는 낮다. 지면과 접촉하는 폭은 넓고 타이어의 높이는 낮다보니 노면과의 접지력이 좋아지고 차체가 노면과 가까워져 고속으로 달릴 때 차가 안정적이고 치고 나가는 힘이 뛰어나다. UHP타이어는 육안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바퀴를 정면에서 보았을 때 휠의 크기에 비해 검은 색 타이어 부분이 좁게 보인다. 상대적으로 휠이 훨씬 커져 바퀴가 고급스럽게 보이는 효과도 있다. 일반적으로 ▲편평비 55 이하 ▲타이어 내부지름(림 외경) 16인치 이상 ▲최고 주행속도 시속 240㎞ 이상인 제품을 말한다. 가격은 일반 타이어의 2∼3배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1일 “UHP 타이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올들어 UHP 타이어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35% 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조용한 고속주행 구현한다 프리미엄급 제품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프리미엄 타이어의 핵심은 서로 반비례의 관계에 있는 ‘고속주행 성능’과 ‘정숙성’을 동시에 향상시킨 것이다. 한국타이어는 지난 3월 정숙성을 대폭 높인 최고급 타이어 ‘XQ 옵티모 노바’를 출시했다. 신개념 비대칭 패턴과 신기술로 조용한 주행성능과 편안한 승차감, 우수한 조종 안전성을 실현했으며, 첨단 실리카 고무 소재를 적용해 젖은 노면에서 탁월한 제동력을 낸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특허공법인 ‘벤트리스 몰드’ 기술로 디자인도 크게 개선했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유럽이나 일본과 달리 국내 소비자들은 큰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면서 “국내 시장에서 UHP나 프리미엄 타이어의 수요는 앞으로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26일 TV 하이라이트]

    ●가요무대(KBS1 오후 10시) 5월 가정의 달도 막바지.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신청곡을 보내온 사연들을 만나본다.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며 신청한 조용필의 ‘허공’을 하춘화의 목소리로, 팔순을 맞은 친정어머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신청한 김승덕의 ‘정 주지 않으리’를 현당의 목소리로 각각 들어본다.   ●YTN스페셜(YTN 오전 10시40분) 세계 제일의 고령화 국가 일본의 수도 도쿄 한켠에서 노인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이 등장해 화제이다. 도쿄 외곽 시나가와 구의 나카노부 시장은 그저 노인용 상품을 파는 상가라는 틀에서 벗어나 청소와 철망 수리 등 집안일을 돕는 서비스까지 제공하며 노인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고 있다.   ●사랑해(SBS 오후 9시55분) 은행에 강도가 들고, 강도는 철수를 붙잡고 협박을 한다. 영희는 돼지 저금통을 강도에게 집어 던지고, 강도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영희는 강도를 제압한다. 잠시 후 영희의 사연은 TV와 신문을 통해 알려진다. 철수는 신문에 난 자신에 대한 영희의 인터뷰 내용을 보고는 자신이 무능한 것처럼 비춰졌다며 서운해한다.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했고 국내 입양률을 높이는 데에도 크게 일조한 배우 차인표. 그는 현재도 동남아, 중남미의 불우 어린이 30명을 후원하고 있다. 차인표·신애라 부부가 딸의 입양을 결심하게 된 계기와 공개입양을 선택한 이유, 입양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생각을 들어본다.   ●닥터스(MBC 오후 6시50분) 걸을 때도 잘 때도 펴지지 않는 무릎, 발꿈치가 땅에 닿지 않아 까치발로 걷는 선영. 오랫동안 잘못된 방향으로 틀어지고 굳은 뼈를 되돌리고 짧아진 근육을 늘려주는 수술이 시급한 상태. 드디어 수술은 시작되는데 과연 선영이가 또래 아이들처럼 미니스커트를 입고 구두를 신고 걸어도 아프지 않게 될까?   ●스페이스 공감(EBS 밤 12시10분) ‘라구요’,‘넌 할 수 있어’,‘태극기’,‘명태’,‘와그라노’ 등 평범한 소재에서 진솔한 삶의 모습을 걸쭉하게 풀어내는 한국적 록으로 사랑받아온 가수 강산에. 그가 6년만에 발표한 8집 ‘물수건’을 부르며 무대에 오른다. 눈과 귀, 마음까지 열어주는 강산에의 자유로운 음악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 [中 쓰촨성 대지진] 폭발위험 무릅쓴 구조에 “한국인 고맙다” 눈물

    |스팡 이지운특파원|쓰촨 스팡(什 )시 잉화진을 지나 홍바이진 쪽으로 난 지진 피해현장에 이르러 역한 냄새가 코를 확 찔렀다. 눈과 목에도 심한 따가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굳이 묻지 않더라도 화학공장 붕괴 현장임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주민들의 반응은 아주 뜻밖이었다.“냄새가 다 사라졌다.”는 것이었다.‘도대체 사고 당시는 어땠기에….’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기자에게 다가온 주민 팡(方)씨는 “한국 사람들 너무 고맙다. 이렇게 먼길까지….”라며 묻지도 않은 얘기를 꺼냈다.“유황도 있고 암모니아도 있어 폭발의 위험에다, 무엇보다 냄새를 도저히 견디기 어려웠는데 한국 구조팀이 와서 문제를 해결해줬다.”는 얘기다. 그는 산으로 난 밭을 가리키며 “공장에서 누출된 화학 물질 때문에 모두 누렇게 됐다.”고 말했다. 지진의 2차 피해가 눈으로 확인된 셈이다. 공장 안에 있던 액화 암모니아는 모두 170t. 치명적인 독가스 때문에 아무도 공장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지난 17일 새벽 1시쯤 현지에 도착한 한국의 중앙 119구조대원들이 새벽 4시까지 캠프를 차리고는 쉬는 둥 마는 둥 곧바로 화학 물질 제거작업에 나선 결과였다. 특히 이 작업은 ‘오염’ 문제로 동요하던 이 일대 주민들을 정신적으로 안정시키는 데 공헌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했다. 그럼에도 이날 오후 무너진 공장 지대 안으로 들어가 찾아낸 한국의 중앙 119구조대원들은 쉬지도 못한 채 공장내 아파트에 매몰된 시체를 몇 시간째 발굴하고 있었다. 계단이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게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곳, 워낙 위험했던 데다 생존자 우선 발굴 원칙 때문에 중국 구조대가 포기했던 작업이었다.“작업 도중에도 수차례 여진이 닥쳐 건물이 흔들렸다.”고 대원들은 전했다. 차오(曺)씨의 시신은 한국구조대를 발견하고 무릎까지 꿇어가며 눈물로 읍소한 그의 부인 덕분에 수습됐다. 마침 물품 전달을 위해 현장을 지나던 스팡시 천삐(陳碧) 부비서장도 사연을 듣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엉뚱하게 기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백근흠 지휘팀장은 “사고 뒤 100시간이 넘어서면서 생존확률은 10%미만으로 떨어졌다.”며 “조금만 빨리 왔어도 많은 인명을 구했을 텐데….”라고 말꼬리를 흐렸다.14만평에 이르는 이 공장에만 3000∼4000명 이상 매몰됐을 것으로 주민들은 보고 있다.“거의 모든 주민이 공장 직원이었다.”고 한 생존자는 귀띔했다. 한국구조단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현장에 배치된 것으로 평가된다. 김영석 구조대장은 “구조활동은 결국 장비와 경험에 의해 판가름난다.”면서 “우리는 활동에 필수적인 지중 음향·음파 탐지기 등 최첨단 장비 337점을 싣느라 김치, 침낭 등 ‘필수품’까지 포기하고 왔다.”고 구조활동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jj@seoul.co.kr
  • [거리 미술관 속으로] (60) 여의도 금감원 뒤 ‘활자기둥’

    [거리 미술관 속으로] (60) 여의도 금감원 뒤 ‘활자기둥’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를 자랑하지만 컴퓨터에 자리를 뺏긴 인쇄술을 부활시킬 방법을 찾을 수는 없을까. 높은 빌딩만큼 조형물들이 많은 서울 여의도에서 노주환(48·성신여대 조소과) 교수의 ‘활자기둥’에서 해답이 엿보인다. ‘활자기둥’을 발견하는 순간 보물을 찾은 듯한 기쁨에 들뜨게 된다. 큰 길가인 금융감독원 건물 앞과 옆에 있는 김선구 작가의 ‘해와 달’이나 엄태정 작가의 작품과 달리 건물 뒤편에 조용하게 서있는 탓에 상대적으로 시선을 덜 받는 조형물이기 때문이다. 조형물을 꼼꼼하게 살필수록 2m 남짓한 높이의 조형물을 하나 만들기 위해 작가가 어느 정도 각고했는지 느껴지면서 다시 한번 흥분에 휩싸이게 된다. 작가는 2000년부터 수만개의 납활자를 이용해 작품 활동을 해왔다. 크고 작은 납활자로 서울의 지형을 표현하고, 책이나 바벨탑 형태로 변신시키기도 한다.2003년에 제작한 ‘활자도시’는 한강이 가로지르는 서울을 허공에서 내려다 보는 착각이 들 정도로 섬세하다. “서울 지역의 인쇄소에서 폐활자를 찾을 수 없어 지방 곳곳을 누비며 활자를 찾고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땀방울이 배어 있다. ‘활자기둥’도 다르지 않다. 납활자로 쌓은 탑의 꼭대기에서 한글, 영어, 기호 등 다양한 글자가 찍힌 네 개의 띠가 유연하게 흘러 내린다. 탑에는 ‘말 한마디로 천냥빚 갚는다.’ ‘부자는 걱정이 많다.’ ‘돈은 주조된 자유이다.’ 등 다양한 옛말들이 숨은 그림처럼 곳곳에 놓여 있다. 이 조형물에서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고, 가장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문자를가진 우리 민족의 자긍심이 느껴졌다면 과장일까. 다만 사라져 가는 과거의 유산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글 사진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속삭임⑤] 고무줄 놀이… 하늘이 깡충깡충 뛴다

    [속삭임⑤] 고무줄 놀이… 하늘이 깡충깡충 뛴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 아지랑이 아물아물 피어오르는 봄날. 눈부신 햇살 아래서 동네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한다. 누렁 강아지 한 마리 영문도 모르는 채 덩달아 꼬리 흔들며 뛰어다니고, 예쁜 종아리가 고무줄을 곡예사처럼 가뿐하게 뛰어 넘는다. 여자아이들의 발이 팽팽한 고무줄에 퉁겨져 하늘 높이 오른다. 한낮의 꿈이다. 마음이 허공중을 난다. 공주가 되었다가, 새가 되었다가, 다시 지상에 내려와 소녀가 되었다가, 풍선처럼 하늘을 떠다니던 아이들. 고무줄놀이는 초등학교 여자 아이들의 유일한 놀이였다. 짓궂은 남자아이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던, 한참 고무줄놀이에 열중하고 있을 때 쏜살같이 고무줄을 낚아채서 도망가는 남자아이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돌려 달라고 애원하다 주저앉아 울어버리던 여자아이들. 학교 운동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지난 시절이 생각날 때마다 그들이 그립다. 고무줄을 빼앗기고는 주저앉아 울기만 하던 순화. 그리고 햇볕 따습던 그 담장. 아직도 고향을 지키고 있는 길수. 바람개비처럼 날래던 그 모습들은 어느새 봉분 높은 시간의 무덤에 묻어두고 오래된 고무줄처럼 맥없이 늘어지는 주름만 잡고 있는지. 한 단계가 끝날 때마다 고무줄은 발목에서 무릎, 그리고 허리로 점점 높아졌다. 고무줄이 높아질수록 타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나이 들수록 힘겨워지는 삶처럼 점점 난해해지는, 풀다가 지쳐버린, 그래도 놓을 수 없는 고무줄이 자꾸 느슨해진다. 그때 고무줄놀이를 하던 아이들, 그리고 심심찮게 훼방을 놓던 그 아이들은 지금 삶의 어디쯤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을까? 유달리 고무줄을 잘하던 여자아이는 어느 나라 왕의 왕비가 되었을까? 아니면 높고 두려운 시멘트 담장 아래서 퇴화된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을 날던 꿈을 꾸고 있을까? 이제 다시 만난다면 그 시절 못다 했던 이야기들 스스럼없이 할 수 있을까? 그 아이들과 마주서면 느슨해진 고무줄도 다시 팽팽해질 것만 같다. 혼자 있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추억을 더듬게 되는 봄날 오후. 글·사진 문근식 시인 월간 <삶과꿈> 2008년 5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한전 ‘활선공법’ 아시아 첫 개발

    한전 ‘활선공법’ 아시아 첫 개발

    한국전력이 전기 작업에 새 장을 열었다. 70만V 이상의 초고압 전류가 흐르는 상태에서 헬기를 동원해 각종 작업을 하는 활선(活線)공법 개발에 성공했다. 지금까지는 감전 등의 위험 때문에 전기를 끊고 작업해야 했다. 연간 30억원의 비용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신흥 개발국 등에 기술을 수출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한전은 15일 전북 고창 전력시험센터에서 활선공법을 처음 시도했다. 전기를 끊지 않고 살려놓은 상태에서 작업한다고 해서 ‘활선’이란 이름이 붙었다. 헬리콥터를 이용해 기술자가 초고압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에 접근해 작업하는 공법이다. 이원걸 한전 사장과 고창군민 등 시연행사를 지켜본 120여명은 허공에서 펼쳐지는 아찔한 모습에 가슴을 졸여야 했다. 고도로 훈련받은 전문 기술자들은 안전밧줄에 기댄 채 고장난 ‘스페이서 댐퍼’(전선 간격을 유지시켜주는 장치)를 교체했다. 철탑과 전선을 분리시켜주는 애자(碍子)도 바꿔 끼웠다. 헬기에 설치된 특수 세척장비로 애자를 청소하기도 했다. 애자가 낙뢰 등으로 파손되거나 먼지 등이 많이 끼면 전기 성능 저하를 초래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보수, 청소해야 한다. 이 모든 작업이 이뤄지는 동안 전깃줄에는 76만 5000V의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한전측은 “70만V 이상의 초고압 선로에서 활선공법을 시행하는 나라는 미국, 캐나다, 러시아 등 세계에서 7개국에 불과하다.”며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76만 5000V의 송전선은 대개 발전소와 연결돼 있다. 따라서 정기점검이나 보수작업이 이뤄질 때면 전기 공급이 중단돼 가스 등 발전단가가 더 높은 에너지원으로 발전소를 돌려야 했다. 여기에 드는 추가비용만 하루 1억 5000만원이다. 하지만 이번에 한전이 활선공법 적용에 성공함으로써 이런 불편과 비용 낭비가 줄게 됐다. 이원걸 사장은 “인력과 장비 이동이 곤란한 산악지역 등에도 적용 가능하다.”며 “기술 수출도 적극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데스크시각] 화성연쇄살인의 추억과 진실/박찬구 사회부 차장

    [데스크시각] 화성연쇄살인의 추억과 진실/박찬구 사회부 차장

    “맞습니다. 경찰도 J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턱, 숨이 막혔다.‘그럼, 왜….’라고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용의자를 다른 지역 경찰에게 빼앗긴 수사본부의 축소·은폐, 고질적인 관할 다툼, 부실한 초동수사, 물증 확보 실패….’ 돌아올 답이란,15년 전 화성사건을 취재한 이후 기자가 줄곧 자문자답한 수준을 벗어나지 않을 터였다. 날선 의구심과 죄책감은 뜻밖의 충격에 오히려 맥이 풀렸다. 맞은쪽에 앉은 경찰청 소속 베테랑 형사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1993년 여름 화성사건의 용의자로 검거된 J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거짓말탐지기 검증에서 양성반응을 보였다는 기사가 서울신문에 실렸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적어도 86년 12월과 87년 1월 두차례의 범행을 J가 자백했다고 밝혔다. 당직 변호사는 J를 단독 면담한 뒤 자백의 임의성과 신빙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J는 경기도경 수사본부로 인계된 직후 풀려났다. 사건 당시 J가 수사본부의 조사 대상에 올랐다가 무혐의 처리된 적이 있으며, 뚜렷한 물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서대문팀의 한 간부는 수사본부가 공조수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기보다 당초 J를 무성의하고 형식적으로 조사한 것에 따른 책임 추궁을 피하고 싶어 한다고 기자에게 푸념했다. 권력기관, 특히 경찰에서 진실은 때로 현실에 묻혀버리고 만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백지장처럼 핏기 없는 손에 쪽지가 놓여 있었다. 날림체로 이름 석자가 적혀 있었다.H는 소스라치며 잠을 깼다. 화성사건을 다룬 신문기사를 뜯어보던 뒤끝이었다. H는 경찰에서 일하는 고향 후배의 도움으로 화성과 수원 인근에서 ‘꿈속의 이름’을 검색했다. 탐정을 자칭하는 H는 기자에게 다른 몇건의 살인사건 수사에 간여하거나, 단서를 제공한 적이 있다며 화성사건에 집착했다.H는 ‘화성사건은 미궁이 아니다’라는 책을 펴냈고, 다음에 회원 2만 7000여명의 관련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H가 꿈 속에서 보고, 서대문팀에 제보한 이름이 바로 J였다. 서대문팀이 H의 꿈에 놀아났다 하더라도, 거짓말탐지기 반응, 당직 변호사에게 자백한 정황, 최근 경찰청 형사의 ‘고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현실은 때로 상식을 일탈하고, 진실은 이성의 바깥에도 존재하는 것인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화성에 경찰서가 새로 생겼다.‘혜진·예슬법’도 만든다고 한다. 제2·제3의 피해자가 줄어든다면,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수사는 전시행정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적어도 강력 사건에서 진실과 현실의 괴리는, 허공 속에서도 범인의 채취를 찾아내는 과학수사와 현장의 담배꽁초 하나도 놓치지 않는 초동수사, 제 몸을 사리지 않는 공조수사가 전제되어야 극복해 나갈 수 있다. 등록금 인상을 자제해 달라는 대학생 행렬에 경찰력을 곱절이나 배치하고, 대통령 행사를 이유로 도심 건물을 철통같이 에워싸는 일에 일선 경찰을 투입하는 전근대적 행태가 되살아난다면 ‘93년 화성’의 오류가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다. 현 정부는 실용을 얘기한다. 공안이나 권위의 부활이 실용은 아닐 것이다. 경찰서 하나 세울 여력으로,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는 그 저돌성으로, 묻혀가는 강력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노력을 보인다면, 그때 민생치안의 실용은 설득력을 지닐 것이다. 다시 화성을 생각한다. 원혼은 누가 무엇으로 달랠 것인가. J, 그는 10년 전 자택에서 돌연사했다. 혹자는 양심의 가책에 따른 것이라 했고, 어떤 이는 누군가의 계획된 살인이라고 했다. 경찰의 강압수사 후유증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진실과 현실 사이에서 화성은 잊혀져 간다. 박찬구 사회부 차장 ckpark@seoul.co.kr
  • ‘2군 굴욕’ 이승엽 ‘잃어버린 장점’ 찾아라

    ‘2군 굴욕’ 이승엽 ‘잃어버린 장점’ 찾아라

    이승엽이 결국 2군으로 떨어졌다. 개막경기에서 당당히 팀의 4번타자로 출전한 이후 거듭된 부진으로 5번, 6번으로 타순이 내려가더니 결국 최악의 상황까지 온것이다. 개막이후 14경기동안 기록한 성적이 1할3푼5리. 그의 전매특허인 홈런은 단 하나도 치지 못했으니 어쩌면 그의 2군행은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올시즌 초반 요미우리는 믿었던 팀 타선이 터지지 않아 연패를 당할때만 하더라도 이승엽의 부진이 팀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것은 아니었다. 다카하시 요시노부를 제외한 팀의 중심타자인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와 알렉스 라미레즈가 이승엽과 동반 부진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변명거리조차 없어져 버렸다. 그동안 잠을 자던 3번타자 오가사와라는 비록 타율은 기대에 못미치고는 있지만 이미 홈런포(3개)의 손맛을 보면서 타격 감각을 되찾아 가고 있는 중이며 개막전까지 4번타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알렉스 라미레즈는 벌써 5홈런을 기록하며 이승엽을 멀치감치 따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팀내 중심타자와의 경쟁이 아닌 이승엽 자신과의 싸움이 되버린 것이다. 그럼 이승엽의 부진은 어떠한 원인에서 비롯된 것일까? 2군행을 통보받은 그가 해야할일 그리고 그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몇가지 원인과 대책을 살펴보자. 하나를 수정하니 전체가 무너져 이승엽은 그동안 자신의 약점인 몸쪽 공에 대한 대비책으로 올시즌 스윙 방법을 바꾸었다. 제구력이 뛰어난 일본투수들의 공을 공략하기 위해 준비자세에서 배트를 수직으로 들며 위에서 밑으로 내리 찍는 다운컷 스윙으로 바꾼 것이다. 현재까지 문제는 여기에 있다. 다운컷은 아주 콤팩트하고 짧게 배트가 돌아나오는게 장점인데 자꾸 몸쪽공을 의식하는 스윙으로 일관한 나머지 그나마 있던 장점마저 사라져 버린것이다. 다운컷은 배트가 스타트가 되어 타자의 중심선까지만 해당되는 상황이다. 히팅 임팩트가 된 후에는 배트모양을 U자 형이 되도록 해야하는데 전혀 이러한 스윙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다. 공을 때리는게 아니라 맞추는데 급급해져 버린 모습을 보인것도 이런 스윙방법의 불일치가 낳은 산물이다. 이렇게 되다 보니 이승엽 특유의 동작인 공을 때린 후 배트를 끝까지 끌고 나오지 못해 홈런이 될듯한 타구도 외야수에게 잡히게 된 것이다. 이승엽 스스로도 자신의 변화된 배팅 방법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감마저 상실해 버렸다. 스윙방법을 바꾼 것이 자신의 타격의 모든것을 무너지게 했던 원인이 된 것이다. 2군에서 이승엽이 신중하게 판단하고 해야할 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타격 코치는 이승엽과 각별한 인연의 끈을 맺고 있는 김기태 코치다. 한때 삼성 라이온스에서 선수로 한솥밥을 먹었던 팀 동료였고 지금은 선수와 코치로 같은 팀에서 서로 의지하는 사이다. 또한 김기태 코치는 누구보다 이승엽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는 코치중 한명이다. 2군행을 통보 받은 이승엽이 스스로 진단한 부진의 원인은 왼손의 스피드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트 컨트롤까지 영향을 받았는데 분명 김기태 코치도 이부분을 잘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 역시 스윙방법에 관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승엽이 한참 페이스가 좋았을때를 기억하고 있는 김기태 코치는 지금부터 운명의 시간을 맞을 각오를 해야한다. 겨울 내내 바뀐 타격동작을 짧은 시일내에 또다시 바꾼 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일이며 선수 스스로도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김기태 코치 그 자신도 타자 출신이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어떠한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 이미 주사위는 허공에 던져져 있다. 왼팔이 나오는 궤적과 배트 컨트롤을 향상시키는 그 모든 해법은 이승엽은 물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고 같이 고쳐 나가야할 김기태의 몫인 것이다. 다행인 것은 김기태가 요미우리 내에서 누구보다 이승엽을 잘알고 있으며 의사소통이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동안 이승엽은 자신의 타격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털어내 놓지 못했다. 선수 스스로 불편하게 느낀 부분이나 타격방법의 부적응에 관한 말을 하면 변명처럼 들릴까봐 시노즈카 1군타격코치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시즌 초반이니 지켜보자 했던 것이 지금까지 와버린 것도 이러한 원인도 분명 작용했을 것이다. 이왕 2군으로 내려간 상황이니 자신의 문제점을 철저하게 파악해서 김기태 코치에게 조언을 듣고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자신에게 맞는 타격폼을 되찾고 1군으로 올라와야 할것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타자라도 지나친 타격폼 수정은 금물 이승엽은 삼성시절부터 지금까지 항상 엘리트 길만 걸어온 대표적인 타자다. 많은 국제대회에서 그가 보여준 활약, 그리고 언제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팀을 구해내는 능력까지 보유한 그에게 ‘국민타자’ 라는 수식어가 낯설어 보이지 않았음은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 이승엽은 자신의 야구 인생에 가장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 그동안 슬럼프가 오더라도 지금처럼 모든것이 망가져 버린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약점으로 지적된 부분이 생기면 항상 그걸 고쳐나가려는 열린 마인드와 또 그걸 자신의 옷으로 맞춰 입을수 있는 능력이 뛰어난 타자였다. 하지만 이승엽 스스로도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타격폼 수정을 했는지 모를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승엽이 한가지 명심해야 될것은 ‘타격은 강점을 극대화 시키려고 해야지 약점만 고치려 들면 허송세월을 보내기 쉽다’ 라는 평범한 격언을 떠올려 봤음은 한다. 제아무리 타격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라도 약점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승엽의 약점으로 지적된 몸쪽 공에 대한 공략법을 고치기 위해 스윙방법을 바꾼 그가 지금 명심해야할 말이다. 약점 하나 고치려다 자신의 장점마저 다 잃어버릴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 부분도 이승엽 스스로 느끼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지금 그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며 장점은 또 무엇인지 정말로 이번 기회에 뼈져리게 느끼고 다시 예전의 좋았을때처럼 돌아간다면 이승엽 자신에게는 보약이 될수도 있는 2군행이다. 보란듯이 다시 일어서는 이승엽을 기대하는,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많은 팬들이 있다는 것을 부담이 아닌 자신감의 원천으로 삼길 바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프로야구통신원 윤석구 rock7304@hanamil.net@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3) 봄날의 과부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3) 봄날의 과부

    신윤복의 그림 ‘봄날의 과부’처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그림을 기법 차원에서만 독해한다면 그림을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다. 사실 이 그림은 사회사적 독해를 요한다. 먼저 그림부터 꼼꼼히 챙겨 보자. 이 그림이 만들어내고 있는 공간. 기와를 얹은 담장이 에워싸고 있는 마당이다. 담장은 장방형의 돌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기와를 덮었으니, 예사 집이 아니다. 권세 깨나 있고 돈 좀 주무르는 그런 집안이 분명하다. 그림 왼쪽 상단에는 담장 너머 흰 꽃, 붉은 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다. 배나무 꽃인가, 벚나무 꽃인가, 배롱나무 꽃인가. 어쨌든 좋다. 이런 꽃으로 계절이 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의 짝짓기 그림에 담은 신윤복의 파천황적 발상 봄은 생명의 계절이고, 생식의 계절이다. 곧 봄은 생명을 잉태하는 계절인 것이다. 하여 그림 아래 부분의 마당에서 개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고 있다. 그림에 개의 짝짓기라니, 조선시대에 신윤복이 아니면 불가능한 파천황적인 발상이다. 한데 짝짓기를 하는 것은 개만이 아니다. 개로부터 시선을 조금 위로 올려보면 참새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또 그 위로 참새 한 마리가 더 있어 파닥거린다. 바야흐로 봄은 짝짓기의 계절인 것이다. 식물의 꽃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식물의 성기가 아닌가. 꽃이 피고 수정이 되어 열매를 맺는 것은 식물의 짝짓기 행위다. 생명력이 충만한 봄은 어디서 왔는가. 당연히 담장 밖에서 왔다. 담장을 넘어오는 붉고 푸른 꽃이야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봄은 개구멍에서도 온다. 개 두 마리는 바로 담장 아래의 개구멍으로 들어온 것이다. 참새들이야 저 허공을 통해서 왔을 터이고. 그런데 담장 안은 어떤가. 이제 시선을 오른쪽 두 여인네로 옮겨보자. 두 여자는 비스듬히 누운 나무에 기대어 서 있다. 그런데 그 나무가 문제다. 나무는 소나무로되, 이미 꺾어진 소나무고, 살아 있다는 증거는 아래쪽의 빈약한 잎을 단 가지 둘뿐이다. 소나무는 죽어가고 있다. 집 밖은 생명력이 충만한 봄인데, 여기 돌담 안의 집은 죽어가고 있는 풍경이다. 이제 여자 둘을 보자. 오른쪽 여자는 삼회장저고리를 제대로 차려 입고 있고, 머리를 길게 땋아 댕기를 묶고 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귀한 집의 규수다. 왼쪽 여자는? 구름 같은 가체를 올리고 있는데, 옷은 모두 흰색, 즉 소복이다. 이 여자는 결혼을 한 여자이고, 또 상중에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남편이 죽은 여인이다. 왜 신윤복은 과부를 그림에 배치했는가 궁금하다. 여자 둘의 시선은 개의 짝짓기에 가 있다. 그런데 둘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처녀의 표정은 쌀쌀맞고 차갑고 무심하다. 하지만 과부는 배시시 웃는다. 무언가를 안다는 눈치다. 과부의 웃음에 신윤복의 의도가 있다. 신윤복은 과부의 소외된 성욕을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성적 욕망 철저히 억압한 가부장제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여성은 젊어서 남편이 사망했을 경우, 재혼, 곧 개가의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고려시대에는 남편이 죽어도 여성은 개가, 삼가(三嫁)할 수 있었고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선 건국 이후 성리학의 가부장적 윤리관은 여성의 재혼을 윤리적 타락으로 규정했다. 성종 때 ‘경국대전’의 편찬을 완료하면서, 남성의 가부장제는 마침내 법으로 여성이 개가해서 낳은 자식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좋은 벼슬자리를 얻을 수 없도록 제한하였다. 이런 판국이었으니, 양반가의 여성은 사실상 재혼의 길이 막혔던 것이다. 이런 조치와 함께 남성의 가부장제는 남편이 죽고도 재혼하지 않은 여성을 절부(節婦)라 부르고, 남편을 위해 자기 신체를 자해하거나, 대신 죽거나, 남편이 죽었을 때 즉시 따라죽은 여성을 열녀라고 불러 정문을 내리는 등 사회적 명예를 부여하였다. 이런 정책이 강하게 추진되어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여성의 수절은 양반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퍼졌다. 양반 상인 할 것 없이 남편이 죽으면 예사로 수절하였고, 남편을 따라 목숨을 끊는 경우가 속출하였다. 신윤복의 이 그림은 이런 사회적 배경을 깔고 있는 것이다. 젊은 여성이 수절할 경우 그 내면의 성욕을 처리할 방법이 묘연하였다. 조선조의 가부장제는 여성의 성을 출산과 쾌락으로 분리하고, 후자를 음란함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남편이 죽은 뒤 홀로 남은 여성의 성은 출산이 배제된 성이기에 쾌락만이 남았고, 그것은 자동적으로 음란함이 되었다. 홀로 된 여성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발설할 수가 없었으니, 이것은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가한 가장 큰 폭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성은 이와는 반대로 아내가 죽으면 속현(續絃)이란 그럴 듯한 말로 재혼을 할 수 있었고, 기생제도와 축첩제도 등을 통해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성적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사실 개가를 금지하는 것은, 한 남성이 자신이 죽은 뒤에까지 여성의 성을 독점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곧 조선의 가부장제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억압하고, 남성의 성적 욕망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욕은 사라지지 않고 다만 변형될 뿐 가부장제가 아무리 여성의 성욕을 억압하는 담론을 유포해도 여성의 성욕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성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변형될 뿐이다. 박지원의 ‘열녀함양박씨전’의 서문은 한평생 밤이면 동전을 굴리면서 지새운 과부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과부는 이렇게 말한다.“무릇 사람의 혈기는 음양에 근본을 두고 있고, 정욕은 혈기에 모이며, 생각은 고독한 가운데서 생겨나고, 아프고 슬픈 감정은 생각하는 데서 우러나겠지. 혈기가 때로 왕성하면 어찌 가부라고 정욕이 없겠느냐? 가물거리는 호롱불 아래 그림자를 조문(弔問)하며 외로운 밤 지새기가 괴롭고, 게다가 처마에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든지 창에 달빛이 환히 들어올 때, 오동잎 하나 뜰에 날리고, 외기러기는 하늘에서 울고 가고, 멀리 닭의 울음소리 들리지 않고, 어린 종년은 쿨쿨 코를 고는데 혼자 잠 못 이루는 이 고충을 누구에게 하소연하겠느냐?” 어떤가. 과부의 성욕을 억압하는 것이 어떤 형벌인지 짐작이 가는가. 양반가의 이 여인은 자신의 성욕을 억압하는 데 성공했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았고 별의별 일이 다 벌어졌다. 조선후기의 문헌인 ‘기문’이란 책에는 과부의 이야기가 둘 실려 있는데, 매우 흥미롭다. 한 과부가 계집종을 데리고 수절하며 사는데, 계집종 역시 남편을 잃고 수절하였다. 어느 날 동네에 송이버섯 장수가 왔다. 과부는 송이버섯이 남성의 성기와 같이 생긴 것을 보고는 계집종을 시켜 값을 따지지 않고 모두 사오게 하였다. 용도야 뻔하다. 두 여자는 송이를 ‘덕거동’이라 부르고 욕망이 솟을 때마다 덕거동으로 욕망을 달랬다. 이야기는 이어지지만 여기서 멈추자. 또 다른 이야기 역시 과부의 것이다. 어느 날 과부가 이웃에 사는 기생이 잘 생긴 사내와 온갖 성희(性戱)를 즐기는 것을 보고 치솟아 오르는 욕망을 누를 길이 없어 집으로 돌아와 자위 행위에 빠진다. 이게 너무 심하여 마침내 말을 못하게 되었다. 이웃에 사는 할미가 무슨 일로 찾아왔다가 여자가 벙어리가 된 것을 보고는 한글로 필담을 한 끝에 자초지종을 알아내고는 동네의 장가를 들지 못한 사내를 불러와 짝을 맺어준다. 사내와 한바탕 거창한 방사를 치른 후 과부는 다시 말을 하게 되었다. 적지 않게 전하는 이런 이야기의 존재는 과부의 성적 욕망이 은폐될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조선의 가부장제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억압하고 은폐하는 데 성공했을 뿐, 그 내면의 욕망을 소멸시킬 수는 없었다. 신윤복의 그림은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소복을 입은 과부가 개의 짝짓기를 보고 배시시 웃는 그 장면은 그 젊은 과부의 내부에도 성적 욕망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이야말로 조선시대 최고의 그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이 같은 신윤복의 그림을 베낀 모방작도 더러 남아 있다. 신윤복의 그림의 영향력이 대단했던 것이다. 물론 수준은 원작에 한참 못 미친다. 작자 미상의 ‘봄날의 과부 모방작’만 해도 전반적으로 필치가 원작에 비해 자연스럽지 못하고, 개의 짝짓기 장면이 아주 천박하게 느껴지는 등 전반적인 수준이 확연히 떨어짐을 알 수 있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올 10대그룹 시총 47兆 허공에

    올 들어 미국발(發) 신용위기에 따른 조정장세가 이어지면서 10대 그룹의 시가총액이 47조원 이상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증권선물거래소의 ‘주요 그룹 시가총액 및 주가등락 현황’에 따르면 이달 20일 현재 10대 그룹의 시가총액은 381조 3853억원으로 지난해 말(428조 5545억원)보다 11.01%(47조 1692억원) 줄었다.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 가운데 공기업을 제외한 자산총액 상위 10개 기업집단 소속 상장사의 시가총액을 조사한 결과다.10대 그룹의 시가총액 비중은 42.08%로 지난해 말 40.75%보다 조금 올라갔다. 그룹별 시가총액 감소액은 SK그룹이 17조 8411억원(30.52%)으로 가장 많았고, 현대중공업그룹 8조 7600억원(22.23%), 롯데그룹 5조 1355억원(24.62%),GS그룹 3조 9580억원(28.08%), 금호아시아나그룹 2조 8589억원(19.49%) 등의 순이었다. 주가 하락률은 SK가 26.03%로 가장 높았고, 한화그룹 24.64%, 금호아시아나그룹 24.05%, 현대중공업그룹 22.72% 등이 뒤를 이었다. 10대 그룹을 포함한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 시장 전체 상장사의 시가총액도 지난해 말 1051조 7632억원에서 906조 3758억원으로 145조 3874억원(13.82%) 줄었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오늘의 눈] 불필요한 오해 산 KAIST/박건형 미래생활부 기자

    [오늘의 눈] 불필요한 오해 산 KAIST/박건형 미래생활부 기자

    최근 대학가의 화두는 단연 KAIST의 개혁이다.100% 영어강의 및 수업료 징수, 교수 재임용 강화 등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는 서남표 총장을 지켜보다 보면 다음 개혁에 대한 기대감까지 생긴다.KAIST는 13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김태국 교수 논문 조작사건’에 대한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장관 후보 검증에서 보듯 ‘논문’은 한국 대학의 대표적인 취약부분이다. 이 때문에 재빠르게 조치를 취한 KAIST의 행동을 높이 평가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러나 과학계에서 이 사건에 대한 KAIST의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KAIST가 특허소송을 앞두고 언론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논문에서 제시한 ‘매직기술’은 세포노화를 억제할 수 있는 ‘불로약’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이다. 문제는 이 기술의 특허권이 김 교수와 공동연구를 진행한 바이오벤처 CGK에 있다는 점이다.KAIST는 지난해 3월 CGK를 상대로 특허권 반환소송을 냈고,5월에는 CGK가 KAIST에 10억원 규모의 ‘연구용역 불성실 이행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한 논문조작 사건이 아니라 신약이 개발됐을 때 생길 수 있는 막대한 돈을 둘러싼 ‘머니게임’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다. 4월 초 특허공판을 앞둔 시점에서 KAIST는 1년가량 걸리는 논문조작 조사를 이례적으로 2주 사이에 두 차례나 중간발표 형태로 언론에 공개했다. 확실한 결론도 없이 지나치게 서두른다는 느낌이다. 마치 언론이 KAIST의 정당성을 변호해 주기를 바라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이번 소송에서 KAIST의 패소를 점치고 있다. 특허권 이전 계약서가 존재하고, 김 교수의 아이디어가 KAIST내에서 수립됐다는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KAIST가 특허소송에 휘말리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것은 피해야 한다.‘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도 매지 말라.’고 했다. 애써 일궈놓은 개혁에 대한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신중한 대처가 필요하다. 박건형 미래생활부 기자 kitsch@seoul.co.kr
  • 에버랜드 ‘티 익스프레스’ 체험

    에버랜드 ‘티 익스프레스’ 체험

    단언컨대, 이 놀이기구를 타는 3분 내내 차마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고 해서 ‘난 남자도 아냐.´란 자괴감에 빠질 이유는 전혀 없다. 목이 터져라 비명만 질렀다고 창피해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에버랜드에서 14일 선보이는 이 전율스러운 놀이기구의 이름은 티 익스프레스. 육식공룡 티렉스(티라노 사우루스 렉스의 약칭)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녀석은 오금을 펴지 못할 정도의 스릴과 스피드로 ‘사나이 자존심´을 쥐락펴락하곤 했다. # 나무로 만든 롤러코스터… 승차감 “끝내줘요” 티 익스프레스는 철골 구조물로 제작된 일반 롤러 코스터와는 달리 차량의 바퀴와 레일을 제외한 전체가 나무로 만들어진 ‘우든 롤러 코스터(wooden roller coaster)´다.‘빈티지 스타일´의 1세대 롤러 코스터인 셈.‘낙하와 상승´이라는 롤러 코스터의 기본을 충실하게 구현했다. 우든 코스터의 가장 큰 장점은 탁월한 승차감에 있다. 스틸 코스터의 경우 한 번 타고 내려오면 온 몸이 욱신거렸던 것이 사실. 하지만 우든 코스터는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하다. 또 스틸 코스터가 레일을 비꼬거나 뒤집는 등 인공적인 조형미를 강조해 차가운 느낌을 주는 데 비해, 우든 코스터는 부드럽고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전 세계 테마파크 상위 50개 중 22곳에서 우든 코스터를 1개 이상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다. 편안한 승차감을 강조했다고는 하지만 ‘속도와 스릴´만은 결코 녹록지 않다. 나무 구조물 사이를 부딪힐 듯 지나며 느끼는 긴장감도 독특하다. # 세계 최고의 낙하각도 77도 ‘짜릿한 스릴감´ 최고 높이 56m(낙하 높이 46m)에서 날개없이 추락하는 듯한 티 익스프레스의 최초 낙하각도는 77도. 전 세계 170여개의 우든 코스터 중 가장 가파른 각도다. 맨 꼭대기에서 보면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듯하다. 최고시속 104㎞는 이 때 작성된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가장 빠른 기록이다.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동안 g값(중력가속도) 또한 4.5g으로 최고조에 달한다. 바이킹(2g)등 놀이기구의 두 배가 넘고 F-16 전투기 조종사가 느끼는 6g에 맞먹는 수치다. 12번 맛보는 ‘에어타임(air time)´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엉덩이가 잠시 허공에 뜨는 무중력 상태를 이르는 말로, 롤러 코스터가 트랙을 따라 상승하다 꼭짓점에 다다를 때 느껴진다. 직선거리를 낙타의 등처럼 오르락 내리락하는 ‘카멜 백(camel back)코스´ 등에서 발생한다. 정리해보자.‘나이애가라 폭포 꼭대기 높이에서 앙코르와트 천상계단과 같은 각도를 이루며 치타가 먹이를 향해 질주하는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 티 익스프레스다. 녀석을 더 짜릿하게 즐길 수 있는 팁. 절정의 스릴을 맛보려면 맨 뒷자리에 탈 것. 빠른 속도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뒷자리에 앉을수록 길어질 뿐 아니라, 가속도 또한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자신의 담력을 시험해보고 싶다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타볼 것. 어두울수록 속도감이 더해지기 때문에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질 듯하다. # 스위스 인타민사에서 제작…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강조 스위스 인타민사(社)에서 제작한 티 익스프레스는 알프스 산맥의 관광 열차와 산악마을을 컨셉트로 개발됐다. 주변 자연환경과의 조화, 탁월한 경관미 등을 염두에 두고 제작했다는 것이 에버랜드 관계자의 설명이다. 철골 구조물이 아닌 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해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트랙 부분에는 9겹의 얇은 목재를 압축 성형해 특수 제작한 라미네이트 우드(Laminated Wood)라는 신소재를 활용했다. 기존 목재보다 7배의 강도를 지니고 있어 일반 목재와 달리 변형 및 파손이 적고, 소음과 진동이 대폭 줄어 탑승감과 안전성이 높아졌다. 구조물에 사용된 나무의 총 무게는 617t. 일렬로 세우면 110㎞에 달한다. 서울에서 천안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나무를 연결하는 데 들어간 볼트는 5만 개, 사용된 목재 블록 숫자는 4만 5000여개에 달한다. 에버랜드는 티 익스프레스 오픈에 맞춰 기존 알파인 지역을 스위스 풍의 알프스 마을로 리뉴얼한다. 탑승 순간을 찍은 ‘순간포착사진점´,SK 텔레콤 멤버십 고객들을 위한 ‘T 라운지´와 캐릭터 상품점 등도 마련해 놓았다. 승차 대기시간을 줄이려면 대기표를 미리 뽑아둔 다음 해당 시간에 방문해 바로 탑승할 수 있는 ‘큐패스(Q-Pass)´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글 사진 용인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이명박대통령 취임] 연설36분 박수40회

    [이명박대통령 취임] 연설36분 박수40회

    “대통령께 대하여 받들어 총!” 육·해·공 3군 의장대의 우렁찬 구호가 허공을 흔들었다. 단상의 이명박 대통령은 단호한 거수경례로 답했다. 웅장한 팡파르와 21발의 예포가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미동도 않은 채 비장한 눈초리로 전방을 응시했다. 짧지 않은 1분여간 대통령의 머릿속엔 어떤 상념이 떠올랐을까. 경제? 안보? 실용? 역사? 국민? 이 장엄한 의식(儀式)의 순간에 취임식장 전체가 숨을 죽였다. 까치발을 하고 선 국민들의 눈가에 뜨거운 것이 맺혔다. 뭉클함은 단지 17번째 대통령의 탄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반만년 이어온 겨레의 유구함에 대한 경외, 그리고 역사의 갖은 풍상을 극복하고 당당히 일어선 데 대한 자부심 같은 것들이 감격이라는 상투적 외피로 표출되는 것은 아닐까. 25일 오전 국회의사당 앞뜰에서 거행된 17대 대통령 취임식은 세계 11위권 경제강국의 위상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전통과 첨단, 아날로그와 디지털, 숙연함과 열정 등이 비벼지고 어우러지면서 한바탕 축제를 연출했다. 취임식장 곳곳에 설치된 대형 액정표시장치(LCD)는 정보기술(IT) 강국의 위상을, 전통춤과 연주를 곁들인 ‘시청각 효과’들은 전통국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특히 무대 아래를 가득 메운 4만 3000여명의 국민들이 내뿜는 환호는 추운 날씨를 녹일 만큼 뜨거웠고 단상의 근엄함을 무안하게 할 만큼 열정적이었다. 국민들은 휴대전화 카메라로 시시각각 이 대통령의 동선을 촬영하는 등 역대 어느 취임식보다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였다. ●열정적인 청중 오전 10시52분. 이 대통령 내외를 태운 리무진 차량이 삼엄한 경비 속에 국회 정문 앞에 도착했다. 먼 발치에서나마 대통령을 보려고 건너편 도로변에 서 있던 시민들 몇몇이 “와, 대통령이다.”면서 박수를 쳤다. 취임식 사회를 맡은 행정자치부 의전관이 이 대통령 내외의 도착 사실을 알리자 취임식장은 일순 고요해지면서 기대와 흥분이 교차했다. 양복 코트에 옥색 넥타이 차림의 이 대통령과 옥색 한복 차림의 김윤옥 여사는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의사당을 향해 200m를 걸어 들어갔다. 입장하는 중앙통로를 따라 미래의 길을 연다는 의미를 담은 전통춤 ‘환영무’가 펼쳐졌다. 대통령 내외는 청사초롱을 든 남녀 어린이의 안내를 받아 연단에 올랐다. 미리 앉아 있던 1000명의 국내외 주요인사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이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와 악수하면서 가벼운 인사말을 건넨 뒤 김대중·김영삼·전두환 전 대통령, 주요 내외빈과 차례로 악수를 나눴다. 이윽고 오전 11시. 개식 선언과 함께 의사당 전방 양옆의 의원회관과 국회도서관 옥상에서 전통 취타대의 팡파르가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등 국민의례로 시작해 한덕수 총리의 식사가 이어졌다. ●섬김의 리더십 강조 이어 연단에 선 이 대통령은 엄숙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들어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중략)…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취임 선서를 했다. 곧 이어 군악대 행진과 의장대 사열이 이뤄졌다.21발의 예포 포성이 가라앉자 이 대통령은 T자형 단상의 객석 방향에 설치된 연단으로 이동해 취임사를 시작했다.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모두 40차례 박수가 터졌고 “이명박” “만세” “잘됐다.” 등의 연호가 이어졌다. 당초 25분으로 예정했던 연설 시간도 36분으로 11분이나 길어졌다. 이 대통령은 당초 원고에 없던 부사와 조사, 어미를 가미했고 즉석 애드리브를 하기도 했다. 연설 초반 마치 사회자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 쪽으로 뒤돌아서면서 “특히 지난 5년간 수고한 노무현 대통령께 여러분 박수로 한번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박수를 유도했다. 총 8700여자로 된 연설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대한민국’으로 모두 17번 쓰였다. 이명박 정부의 ‘키워드’인 ‘선진’은 15번,‘경제’는 11번,‘발전’은 10번,‘변화’는 6번,‘실용’은 5번 언급됐다. 이 대통령은 아시아 국가와의 연대와 협력관계 강화를 언급하는 부분에서도 원고와는 다른 애드리브를 선보였고, 당초 원고에 적시됐던 연설 마지막 ‘대통령부터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부분은 “대통령부터 더 열심히 섬기고 일하겠습니다.”라고 수정, 섬김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연설 후 서울시향 연주에 연합합창단이 합창하는 베토벤 9번 교향곡 4악장 ‘환희의 송가’가 9분 동안 이어지면서 새 대통령의 탄생에 기쁨을 표현했다. ●예상보다 21분 길어져 연주가 끝난 뒤 이 대통령 내외는 단상의 주요 내외빈들과 인사를 나눈 뒤 노 전 대통령 내외와 함께 환한 표정으로 연단 중앙계단을 걸어 내려오면서 가벼운 대화를 나눴고, 노 전 대통령이 승용차에 탑승해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로 떠나는 장면을 지켜봤다. 이후 입장할 때와 반대로 중앙통로를 통해 국회 정문까지 행진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참석한 국민들과 적극적으로 악수를 나누는 바람에 경호요원들이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이날 취임식은 연설과 퇴장 시간이 길어져 당초 예상보다 21분 늦은 낮 12시21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인터넷 참여로 취임식에 초청받은 박창희(46)씨는 “광주광역시에서 오늘 새벽 3시에 일어나 올라왔다.”며 “새 대통령이 5년 동안 잘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외국인으로서 취임식에 초청받은 미국 기업 MPRI의 한국지사장 대릴 브룩스씨는 “초대받아 영광”이라며 “이 대통령의 정치·경제적인 입장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김상연 김지훈 한상우기자 carlos@seoul.co.kr
  • 공적자금 8兆 주가폭락에 증발

    공적자금 8兆 주가폭락에 증발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주가 폭락사태로 정부와 공기업들이 부실기업에 투입했다가 회수하지 못한 공적자금 중 8조원가량이 날아간 것으로 파악됐다. 시중에 매물로 나와 있는 공적자금 투입 기업의 보유 지분을 적기에 처분했을 때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이 최대 23조 4000억원인데, 주가폭락으로 15조 4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는 얘기다. 이는 코스피 주가지수가 2000선을 넘어선 지난해 11월1일(지수 2063.14)과 지난 4일(지수 1690.13)의 두 시점 사이의 주가등락을 분석한 수치다. 이는 300조원대로 추정되는 국가 채무를 최대한 축소하고, 신용불량자들을 지원하는 등 공적 기능을 강화할 정부의 자금 여력이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기업들을 인수·합병(M&A)하려는 재벌기업들은 인수 부담이 줄어들겠지만, 공적자금의 주인인 국민들로서는 ‘손실’인 셈이다. 때문에 정부가 공적자금 회수 시기를 놓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경기 둔화와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이 높아 코스피 지수가 2000선을 다시 회복하기까지 1∼2년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공기업인 예금보험공사(예보)나 자산관리공사(캠코),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이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증권, 대우인터내셔널, 하이닉스, 현대건설, 현대종합상사, 쌍용양회, 쌍용건설, 대한통운, 우리금융지주 등 10곳이다. 지난해 코스피 지수가 사상 최초로 2060을 돌파할 무렵에 이 기업들의 시장가치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의 영향으로 증시가 1600선까지 폭락하자 이 기업들의 주가는 4일 현재 최고 49.00%에서 최저 22%까지 하락했다. 코스피 지수는 최고점 대비 17.1% 하락했는데, 이는 거의 폭락 수준이다. 특히 현대상사가 49.0%, 대우조선해양도 46.15% 하락했다. 대우건설과 하이닉스, 우리금융지주, 쌍용건설 등은 각각 36.26%,35%,33.96%,39.20% 떨어졌다. 지난해 이 기업들의 매각을 결정했다면 정부는 우리금융 15조 5860억원을 포함해 대우증권 2조 8201억원, 현대건설 1조 6498억원, 하이닉스 1조 4750억원 등 모두 23조 4030억원을 회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4일 현재 가격으로는 15조 4259억원에 불과하다.7조 9771억원이 허공으로 사라진 것이다. 최대 이익치의 34%가 줄어든 셈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상무는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하려고 한다면 주가가 내릴 때마다 ‘시기를 놓쳤다.’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면서 “공적자금을 투여해 부실기업들의 경영 정상화에 만족하고 빨리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한다. 교보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국가채무가 300조원으로 추정되고, 이에 대한 연간 이자비용도 12조∼15조원에 이른다고 분석되는 만큼 공적자금 회수에 속도를 내 전체 채무 수준을 낮추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그러나 주식시장이 강세일 때 주식을 처분하는 것과 약세일 때 주식을 처분하는 것 사이에는 보유주식에 대한 평가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아쉬움은 남는다.”고 말했다. 때문에 새 정부가 관련 기업들의 민영화를 서두를 경우, 신용불량자 지원과 중소기업 정책자금 마련 등 정책 재원 마련에 차질도 우려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박찬/공명(共鳴)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박찬/공명(共鳴)

    나뭇잎 날리는 걸 보고 그는 제 마음이 흔들리는 거라 했네 고적히 듣는 저 소리 바람소린가 물소린가 허공이 우는 소리인가 창 열고 바라보는 밤하늘에 긴 꼬리 그으며 유성이 지네 길게 긋고 가는 차가운 기운 마음속 소리판 울리고 가네 <박찬 ‘공명(共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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