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허공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 눈높이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 취임사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 라이프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 로드킬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954
  • ‘36번 광수’의 분노… 그날 이후 난 최룡해가 됐다

    ‘36번 광수’의 분노… 그날 이후 난 최룡해가 됐다

    “도청 못 지키고 살아남아 평생 죄책감… 5월을 모독하지 말라”“그라믄 내가 쩌기 위에(북한) 있어야 할 거 아니여.” 극우 인사 지만원(77)씨로부터 ‘광수’ 36번, 최룡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으로 지목된 양동남(58)씨는 “내가 광수 중에 서열이 제일 높다. 서열 2위가 뭐 한다고 여기서(한국) 살고 있겠느냐?”며 허탈하게 웃었다. ‘광수’는 ‘광주시민군으로 위장한 북한 특수군’을 지칭하는 지씨의 표현이다. 웃음으로 승화했지만, 그는 39년 전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지난 13일 역사 왜곡에 항의하기 위해 국회를 찾은 그를 만났다. 양씨는 “처음에는 황당해서 사진을 보고 나라고 말도 안 했다”며 “유치한 장난을 계속 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18 유공자에 대한 능멸이 계속되자 양씨는 2016년 말 지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양씨는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서 지씨의 변호사가 “왜 광대뼈가 튀어나왔느냐는 질문을 했다”며 “변호사가 법정에서 그게 물어볼 이야기냐”고 황당해했다. 양씨는 재판정에서 이렇게 성토했다고 한다. “당신들도 잡혀가서 한 5개월 두들겨 맞으면서 조사받아 봐라. 한 끼니에 군용 숟가락으로 세 숟가락 뜨면 식사가 끝났다. 하루에 밥을 열 숟가락도 못 먹었다. 그렇게 하면 당신들도 광대뼈가 나올 것이다.”광주 시민군 제1 기동타격대 소속으로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하다 체포된 양씨는 조사를 받을 때 북한군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담당 수사관은 “김대중이가 만약 대통령이 되면 너에게 광주경찰서 서장 자리 준다고 했지”라는 질문만 했다. 양씨는 “자기들(김영삼 정권)이 5·18 특별법까지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북한군 주장을 하고 있다”며 “지만원이의 뇌 구조를 한번 보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앞서 지씨가 광수로 지목한 이들의 안면 분석을 했던 최창석 명지대 정보통신과 교수는 “딱 봐도 아닌데 아니라고만 할 수 없어서 객관적 비교를 했지만 역시 아니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의 의뢰로 광수 36번, 양씨, 최룡해의 사진을 분석한 최 교수는 “광수 36번과 양씨의 눈썹, 눈, 코밑, 입의 간격이 일치했다”며 “반면 광수 36번의 콧대는 죽어 있는데 최룡해의 콧대는 서 있고, 코도 더 길다”고 전했다. 최 교수는 “광수 36번의 턱이 가려져 있고 두건을 쓰고 있어서 정확하게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러면 최룡해라는 근거도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씨와 함께 이날 국회를 찾은 5·18 관련 단체들도 북한군 개입설을 반박했다. 김후식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회 회장은 “1988년 청문회 당시 군과 정부(자유한국당 전신인 민정당 정부)가 내놓은 자료에도 북한군이 내려왔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군이 개입됐다면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이 가만히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양희승 5·18 구속부상자회 회장도 “북한군이라고 지목한 무명 열사 묘지를 파헤쳐 DNA 검사를 했는데 5세에서 7세로 나타났다”며 “지씨 말대로라면 북한 특수군이 5~7세에 내려왔다는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군 묘지라고 파보면 5~7세 아이들”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은 도청을 장악했다. 새벽 5시쯤 마지막 순간에 시민군 박남선 상황실장은 “니기들이 마지막인 것 같다. 니기들이라도 살아서 최후진술을 해라”고 말한 뒤 총을 빼앗아 복도에 던졌다고 한다. 양씨는 계엄군의 대검에 찔려 체포돼 내란실행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그는 같은 해 12월 29일 군사고등법원에서 형집행정지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그는 “광주와 관련된 일에 절대 가담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석방됐다”며 허공을 쳐다봤다. 양씨에게 80년 광주는 평생의 아픔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자고 다짐했는데, 살아남았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며 고개를 숙였다.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그는 석방 이후 감시를 받으면서도 5·18을 다룬 황석영의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사진, 영상을 들고 전국을 돌며 광주의 진실을 알렸다. 양씨 같은 피해자들의 노력 덕택에 광주의 진실은 역사에 기록됐다. 그러나 양씨는 지금도 5월이 되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는 “취직을 해도 봄이 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몇 번이나 직장을 그만뒀다”며 “1990년 이후까지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씨는 “바라는 게 없다”고 했다. 그냥 5월을 모독하지만 말라는 것이다. 양씨는 “내 주변에서만 2명이 생활고와 트라우마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제대로 일도 못 하고, 빚을 내어 구입한 안정제로 버티는 이들을 모욕하지 마라”고 했다.●“깡패가 막아도 진실 알려… 두렵지 않다” 어두웠던 양씨의 표정은 딸 이야기에 이르자 비로소 밝아졌다. 이날 아침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이 “신나게 싸우고 오라”고 응원을 해 줬다는 것이다. 국회 쪽으로 걸어가니 태극기 부대가 보였다.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저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깡패들이 항쟁 사진전을 막으려고 위협했을 때도 진실을 알렸다”며 웃어 보였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길섶에서] 뒷모습/황수정 논설위원

    식구 누구라도 집을 나서면 나는 베란다 창문을 길게 열어 배웅한다. 오랜 습벽이려니와 공중에 뜬 아파트살이의 단 하나 즐거움이기도 하다. 공원길을 휘돌아 타박타박 멀어지는 뒷등을 바라보는 일. 밥숟갈 던져 놓고라도 눈 배웅을 하지 않으면 끼니를 건너뛴 듯 헛헛하다. 습관이란 무서워서 배웅을 받는 쪽도 마찬가지다. 힐끔 돌아봐 주고는 가던 길을 마저 간다. 허공에서 눈길 한번 비비고 나면 삐죽거리던 뒷등은 거짓말처럼 순해지고. 겨울이 다정해진다. 뒷모습을 실컷 바라보는 데는 시끌벅적 봄꽃, 너풀너풀 초목, 얼룩덜룩 단풍이 훼방꾼이다. 벗은 가지의 여백이 제일이다. 텅 빈 겨울 나무 아래로 집 나선 아이의 뒤태를 따라간다. 멀찍이 내려다보자면 삭정이에 끼었다가 옹이에 걸렸다가 싸목싸목 길 터 가는 모양이 사람 사는 일과 똑 닮아서, 한숨 반 웃음 반. 새로 짓는 아파트들은 어쩌자고 창문들이 손바닥만 한지. 기다려 줄 대문도 없고, 서성거려 줄 마당도 없고, 길게 바라봐 줄 창문마저 없고. 멀리 신발 끄는 소리를 누가 기억해 줄까. 시린 등짝이 구들장 되라고 밥을 먹다 말고 쓸어 주고 데워 줄까. 아무 일도 없다고, 꾹꾹 발자국 눌러서 걸으라고. sjh@seoul.co.kr
  • 해변가에서 축구 기술 뽐내는 여성

    해변가에서 축구 기술 뽐내는 여성

    호주의 해변가에서 한 여성이 축구공으로 멋진 발놀림을 선보였다. 7일 미국 스트리밍 동영상 기업 주킨미디어가 공개한 영상에는 한 여성이 비키니를 입고 해변가에서 축구공을 들고 있다. 모래밭에 축구공을 내려놓은 여성은 손을 쓰지 않고 발을 이용해 공을 허공에 띄운다. 여성은 두 다리로 축구공을 번갈아 차는가 하면 허벅지로 공을 튀기는 등 한 번도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축구 기술을 뽐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진·영상=RM Videos/유튜브 영상부 seoultv@seoul.co.kr
  • [동영상] 버스킹 눈길 끌겠다고 4개월 딸 흔들어댄 러 부부 구금

    [동영상] 버스킹 눈길 끌겠다고 4개월 딸 흔들어댄 러 부부 구금

    난 지 4개월 밖에 안 된 딸이 귀엽다고 벌인 행동이 아니다. 가랑이 사이로 흔들고 한쪽 팔로 흔들고, 머리 위로 들어올리다 허공에 휙 던지기까지 한다. 위험천만이다. 더욱이 이곳은 도덕과 율법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근처 빈탕의 길거리다. 20대 후반의 철딱서니 없는 러시아인 부부는 지난 4일 경찰에 구금됐다. 이들은 동남아를 돌며 버스킹(즉석 길거리 공연)을 벌이는 사람들이었다. 옆에선 유럽인들로 보이는 이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신나게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 겸해서 90초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2만 8000명 이상이 보는 등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이들이 “말 그대로 부상을 부를 수 있는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며 이들을 체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데 따라 경찰이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경찰 관계자는 아이가 다치거나 부상 징후는 없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은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출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이유로 동영상을 삭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영국 BBC는 5일 이 소식을 전하며 이 동영상 옆에는 “어린이나 10대에게 가해지는 폭력” 장면이 비칠 수 있다는 경고가 붙여졌다.댓글을 단 대다수는 부모가 아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한 유저는 어린이 기계체조는 러시아에서 합법적인 일이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러시아인 중에는 이런 행동이 아이의 발육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미주나 유럽인들이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일종의 구걸로 여행 경비를 충당하는 일이 온당한 것이냐는 질문으로 옮겨간다. 보통 배낭여행을 뜻하는‘backpacker’를 살짝 비틀어 ‘begpacker(구걸 여행)’로 부르는데 현지인들을 (구걸인지 공연인지) 혼동하게 하거나 화나게 하는 일이 되고 있다고 방송은 지적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중소·벤처기업 해외 특허 지원, 2022년 지재권 흑자 전환

    중소·벤처기업 해외 특허 지원, 2022년 지재권 흑자 전환

    특허청이 기술력을 갖춘 중소·벤처기업의 성장을 위해 해외 특허 취득을 적극 지원키로 했다. 돈이 되는, 강한 지식재산 창출·활용을 통해 2022년 지재권 무역수지를 흑자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박원주 특허청장은 29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이같은 내용의 ‘지식재산시장 활성화를 위한 국가 지식재산 생태계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중소·벤처기업의 해외 특허 획득 뒷받침이다. 기술 분석과 출원 비용 일부 지원같은 소극적 방식에서 탈피해 기업이 해외 특허 창출·보호 펀드에 투자하고, 특허공제제도를 활용해 해외 시장 선점 및 특허분쟁에 대응토록 했다. 올해 신규 조성하는 IP 창출·보호 펀드는 500억원 규모로, 투자기업의 해외 지식재산 창출과 분쟁 대응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해외 출원을 지원하는 펀드도 지난해 20억원 규모에서 올해 40억원으로 확대한다. 중소기업의 해외 시장 선점 및 특허분쟁 예방, 분쟁 비용을 지원할 ‘특허공제제도’를 도입한다. 기업과 정부가 매칭 형태로 부담하는 데 올해 1040개 기업을 시작으로 2025년 2만 6000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과 제품의 해외진출을 지원한다. 지역 수출유망 중소기업 중 지식재산 역량을 갖춘 글로벌 IP스타기업을 선정해 3년간 지식재산 종합서비스를 제공키로 했다. 공정한 지식재산시장 정착과 시장에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환경 조성을 위한 보호시스템도 강화한다. 오는 3월 특별사법경찰 범위가 특허·디자인·영업비밀 분야로 확대됨에 따라 수사 전문성을 제고할 방침이다. 7월에는 특허·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시행된다. 특허청은 침해자의 이익을 권리자에게 반환하고, 침해자가 입증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과 함께 상표법·디자인보호법 등으로 징벌적 손배를 확대할 계획이다. 박원주 특허청장은 “올해를 지식재산 시장에 꽃을 피우는 첫 해로 삼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 나가겠다”면서 “2017년 20억 달러에 달하는 지재권 무역수지 적자를 2022년 흑자로 전환해 명실상부 지재권 강국으로서 면모를 갖추겠다”고 강조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퍼트 때 캐디가 뒤에 있었다고… 보기로 바뀐 버디

    퍼트 때 캐디가 뒤에 있었다고… 보기로 바뀐 버디

    3위서 12위… 1억 넘는 상금 허공에2019년 골프룰 가운데 가장 많이 바뀐 것은 그린에서 플레이할 때다. 최근 ‘괴짜 골퍼’ 브라이슨 디섐보(미국)는 홀에서 깃대(핀)를 뽑지 않은 상태에서 퍼트를 해 화제가 됐다. 그는 지난해 ‘깃대를 제거하지 않고 퍼트를 해도 (2)벌타를 받지 않는다’는 새 골프규칙이 예고될 당시 “새해 첫 대회에서 이를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고, 실제로 올해 첫 대회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센트리 토너먼트에서 이를 실행에 옮겨 짭짤한 재미를 봤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바뀐 ‘룰’을 알고도 순발력 있게 대처하지 못한 경우다. 28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에미리츠 골프클럽에서 끝난 유러피언프로골프(EPGA) 투어 오메가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 4라운드 마지막 18번홀(파5). 디섐보와 챔피언 조에서 라운드를 치른 디펜딩 챔피언 리하오퉁(중국)은 세 번 만에 ‘온 그린’한 뒤 1m도 안 되는 짧은 거리의 버디 퍼트를 남겨 뒀다. 가볍게 버디 퍼트를 홀에 떨군 리하오퉁은 만족한 듯 공을 꺼내 들고 박수를 보낸 갤러리에게 답례했다. 최종합계는 16언더파 272타.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 이언 폴터(잉글랜드) 등과 함께 공동 3위로 대회를 마치는 듯했던 리하오퉁은 그러나 경기위원으로부터 2벌타를 부여받고 순식간에 공동 12위로 내려앉았다. 퍼트 당시 캐디가 그의 뒤에 서 있던 것이 화근이었다. 캐디가 쪼그려 앉은 선수 바로 뒤에 서서 공의 정렬 상태를 봐 주는 모습은 지난해까지 흔히 볼 수 있던 모습이었지만 새 규정에선 허용되지 않는다. 새 골프규칙은 “선수가 스탠스를 취하기 시작하고 스트로크를 할 때까지 캐디는 어떤 이유에서든 퍼트라인 후방 연장선상이나 그 선 가까이에 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적고 있다. 선수 뒤에 서 있던 캐디는 리하오퉁이 퍼트 자세를 잡으려고 하자 바로 옆으로 비켜섰지만 경기위원은 이미 리하오퉁의 퍼트 얼라인먼트에 도움을 줬다고 판단했다. 18번홀 버디가 보기로 바뀌어 최종 14언더파가 된 리하오퉁은 1억원이 넘는 상금도 허공으로 날렸다. 공동 3위 상금은 13만 5774유로(약 1억 7300만원), 리하오퉁에게 돌아온 건 4만 5234유로(약 5764만원)뿐이었다. 미국 USA투데이는 “리하오퉁이 2019년 변경된 규정으로 벌타를 받은 첫 선수가 됐다”고 전했다. 한편 디섐보가 2위 매트 월레스(잉글랜드)에게 7타나 앞선 합계 24언더파 264타로 일방적인 우승을 차지한 가운데 미국 샌디에이고의 토리파인스 골프클럽(파72)에서 끝난 PGA 투어 파머스 인슈어런스오픈에서는 세계랭킹 1위 저스틴 로즈가 시즌 첫 승이자 개인 통산 10승째를 신고했다. 잉글랜드 선수로는 닉 팔도(9승) 이후 PGA 투어 최다승의 주인공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손흥민 빠진 토트넘, 승부차기 끝에 첼시에 결승 진출 양보

    손흥민 빠진 토트넘, 승부차기 끝에 첼시에 결승 진출 양보

    손흥민과 해리 케인, 델리 알리가 빠진 토트넘이 승부차기 끝에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이끄는 토트넘은 25일(이하 한국시간) 런던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열린 잉글랜드 풋볼리그(EFL) 카라바오컵 준결승 2차전을 1-2로 졌지만 1, 2차전 합계 2-2가 돼 승부차기에 들어가 2-4로 졌다. 주전 공격수들이 줄줄이 빠진 토트넘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전반 27분 은골로 캉테가 과감하게 시도한 벼락 중거리 슈팅이 골문으로 빨려들어가 첼시가 앞서갔다. 토트넘은 6분 뒤 벤 데이비스를 부상으로 빼고 대니 로즈를 투입하는 악재까지 덮쳤다. 결국 38분 페드로의 컷백 패스를 아자르가 밀어넣었다. 전반 내내 유효 슈팅이 하나도 없었던 토트넘은 후반 5분 첫 번째 유효 슈팅을 만회 골로 만들었다. 로즈의 크로스를 페르난도 요렌테가 두 수비수의 방해를 뿌리치고 그로테스크하게 머리로 받아 넣었다. 그 뒤 두 팀 모두 서너 차례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고, 결국 연장전도, 원정 다득점 원칙도 없는 대회 규정에 따라 곧바로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토트넘은 세 번째 키커 에릭 다이어가 허공으로 공을 날려 보낸 데 이어 네 번째 키커 루카스 모우라의 슈팅이 수문장 케파에게 막히면서 첼시의 결승 진출을 망연자실 바라봤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건조기·공기 청정기 더 갖고 싶은데… 쌓아서 공간 늘려주는 ‘3차원 가전’

    건조기·공기 청정기 더 갖고 싶은데… 쌓아서 공간 늘려주는 ‘3차원 가전’

    ‘집은 좁지만 건조기는 갖고 싶어.’ TV, 냉장고, 세탁기 등으로 한정됐던 필수 가전의 가짓수가 늘고 있다. 세탁기의 기능을 보완, 대체한 건조기나 의류관리기를 들이는 집이 늘었다. 심각한 미세먼지 문제는 전문가용 가전으로 취급되던 공기청정기를 한 집에 2~3대씩 두는 생활 가전의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문제는 공간이다. 늘어나는 가전의 가짓수가 사는 집의 면적 변화와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가전업체들은 가전 위 허공, 3차원 공간을 주목했다. 가전 위에 가전을 올리는 이른바 ‘적층(積層) 가전’이 탄생했다. ●삼성 큐브 공기청정기, 모듈 2개 ‘따로 또 같이’ 2015년 세계 최초로 드럼 세탁기 하단에 미니 통돌이 세탁기를 결합한 LG전자의 ‘트롬 트윈워시’가 적층 가전의 시초다. 드럼 세탁기와 통돌이 세탁기 중 하나만 사용하거나 동시에 두 대를 사용할 수 있어 공간과 시간을 모두 줄인 제품이다. 삼성전자의 ‘플렉스워시’ 역시 드럼 세탁기와 통돌이 세탁기를 합친 모델인데, 플렉스워시에선 통돌이 세탁기가 위쪽에 있다. 상황과 용도에 따라 분리 또는 결합해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모듈형 공기청정기’도 속속 나오는 중이다. 삼성전자의 ‘삼성 큐브’는 2개의 모듈 제품을 따로 또는 같이 쓸 수 있다. 낮에는 넓은 거실에서 2개 제품을 위아래로 쌓아 대용량으로 사용하고, 밤에는 방마다 하나씩 분리해 개별로 사용하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미세먼지 농도가 짙은 날 2개의 제품을 함께 쌓아 돌릴 수도 있다. ‘LG 퓨리케어 360 공기청정기’ 역시 면적에 따라 1단 제품(62㎡) 혹은 2단 제품(100㎡)으로 선택해 쓸 수 있다. 또 다른 미세먼지 관련 가전인 전기형 건조기는 전원 코드를 꽂을 공간이 있으면 집 안 어디에나 설치할 수 있지만, 좁더라도 용도에 맞게 세탁실에 설치하고 싶다면 세탁기 위에 올릴 수 있다.●LG 트롬 세탁기 위에 건조기 설치 가능 LG전자는 “LG 트롬 세탁기를 사용하던 고객들은 세탁기 위에 건조기를 설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LG가 아닌 다른 회사 세탁기를 쓰던 가구라도 설치 전용 키트를 구입해 건조기를 위로 올려 설치할 수 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저울 하나로 지구 무게를 단 천재의 이야기

    [이광식의 천문학+] 저울 하나로 지구 무게를 단 천재의 이야기

    기괴한 성격의 천재 과학자 지구의 무게를 최초로 측정함으로써 과학사에 불멸의 이름을 남긴 영국의 헨리 캐번디시(1731-1810)는 과학자로서는 아주 특이한 캐릭터의 소유자였다. 우선 그는 역사상 어떤 과학자보다 부유했다. 데본셔 공작 가문 출신으로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아 당시 영국 은행의 최대 예금주였다고 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그의 성격인데, 지독하게 수줍음을 타는 성격으로 상대와 눈을 맞추고 대화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모임에서도 늘 구석자리만 찾아다녔으며, 누가 질문이라도 하면 늘 허공을 본 채 몇 마디 중얼거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수줍음은 특히 여성에 대해 더욱 심했다. 심지어 그는 집안의 하인들과 접촉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가 테이블에 저녁식사 메뉴를 적은 쪽지를 올려놓으면 그것을 보고 저녁을 준비할 정도였으며, 특히 하녀와의 만남을 피하기 위해 저택 내에 따로 전용 계단을 만들었을 정도다. 만약 하녀가 실수로 그와 마주치기라도 했다면 바로 해고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성격에 대한 현대의 설명은 자폐증의 하나인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을 의심하고 있다. 캐번디시의 유일한 사회적 활동은 왕립학회 참여였는데, 여기서는 매주 모임 전에 회원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 캐번디시는 이 모임을 빠진 적이 거의 없으며, 동료 과학자들에게 깊은 존경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캐번디시는 비사교적인 성향으로 인해 종종 자신의 업적을 출판하는 것을 피했고, 자신의 연구 결과를 동료 과학자들에게도 거의 알리지 않았다. 많은 실험과 여러 논문을 남겼으나, 그 3/4은 미발표였다. 캐번디시의 선구적인 연구 업적은 약 1세기 후인 19세기 후반, 전자기파 이론을 확립한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그의 유고를 정리하면서 밝혀졌다. 1785년에 발표된 쿨롱의 법칙을 1772∼1773년 사이에 발견했고, 옴이 1826년에 발견한 옴의 법칙을 옴보다 45년 먼저 앞선 1781년에 발견했다. 지구의 무게를 알아낸 캐번디시 실험 이 같은 선구적인 캐번디시의 업적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지구의 무게를 측정한 실험이다. 이미 2100년 전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의 크기를 알아냈지만, 그 질량은 근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수수께끼였다. 캐번디시 실험으로 알려진 이 지구 밀도 측정 실험에서 캐번디시가 사용한 기구는 아주 단순한 장비로, 막대기 양쪽에 둥근 납공을 실로 매달아놓은 비틀림저울이었다. 이것은 저울은 영국 지질학자 존 미첼이 고안한 비틀림 저울을 약간 수정한 것이었다. 미첼 역시 이 저울로 지구 무게를 측정하려다가 실험을 시작하기 전에 사망 하는 바람에 저울은 캐번디시에게로 보내졌고, 캐번디시는 1797-1798년에 실험을 완료하고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실험에 사용된 장치는 막대의 양 끝에 매달린 2개의 큰 고정식 납공(159㎏)에 각각 2개의 작은 납공(0.7㎏)이 또 매달린 비틀림 저울이었다. 이 저울은 수평 방향으로만 회전한다. 막대의 관성 모멘트는 막대가 복원력에 의해 진동하는 주기를 측정하여 알아낼 수 있다. 막대의 한쪽 끝에 다른 공을 가까이 대면 중력에 의해 서로 끌어당기게 되고 막대가 미세하게 회전한 각도를 측정하여 이 힘을 알아낼 수 있다. 이것을 이용해 중력상수를 구하려는 실험이었다. 질량을 갖는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 뉴턴의 이론에 따르면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의 크기는 물체의 질량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중력이란 것이 큰 규모에서는 지구를 공전시키고 물체를 낙하시키는 강한 힘을 보이지만, 사실 자연계에 작용하는 힘 중에서도 가장 약한 것으로, 1m 떨어진 3톤짜리 두 트럭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의 힘은 모래알 하나를 움직일 정도라 한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에 따르면,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은 두 물체의 질량의 곱을 그들 사이의 거리 제곱으로 나눈 값에 비례하며, 그 비례상수는 중력상수 G로 나타낸다. (만유)인력상수라고도 하며 단위거리만큼 떨어진 2개의 단위질량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의 값으로 만유인력법칙에서 비례상수 G를 말한다. 식으로 쓰면 다음과 같다.캐번디시는 작은 두 납공 사이의 중력적인 이끌림을 측정하려 했다. 그는 미첼의 장치가 온도차와 공기 흐름에 아주 민감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는 장치를 분리된 공간에 두고 시험시에는 외부 제어를 통해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방식을 취했다. 캐번디시는 비틀림 저울의 진동주기에서 납공 사이의 인력을 계산한 다음, 이 값을 사용하여 지구 밀도를 계산했다. 그는 이 실험을 무려 29차례나 거듭하고 그 값들을 평균한 결과 지구의 평균 밀도는 물의 평균 밀도보다 5.48배 큰 것으로 나왔다. 캐번디시 실험의 특별한 점은 측정에 개입될 모든 오류 원인을 제거하고 납공 무게의 1 / 50,000,000에 불과한 놀랍도록 작은 인력을 측정해낸 정확성이다. 캐번디시가 구한 지구 밀도 값의 오류 범위는 현재 받아들여지는 수치의 1% 이내이다. 보다 정확한 중력상수 및 시간에 따른 중력상수의 변화를 측정하려는 실험이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캐번디시의 이 실험으로 인해 정확한 중력 상수(G)와 지구 질량이 결정되었다. 이 실험을 토대로 중력 상수 G는 6.754 × 10−11N-m2/kg2로 나타났고, 이는 실제 중력 상수 6.67428 × 10−11N-m2/kg2에 아주 근접한 값임이 밝혀졌다. 캐번디시가 자신의 저택 정원에 있는 별장에서 그 유명한 지구의 밀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할 때, 이웃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그 건물을 가리켜 지구의 무게를 다는 곳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괜히 따라왔어’…PC방 온 허스키의 개지루한 표정

    ‘괜히 따라왔어’…PC방 온 허스키의 개지루한 표정

    “여긴 어디...? 나는 누구...?” PC방에서 열심히 게임을 하는 주인 뒤에 앉아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시베리안 허스키 영상이 화제다.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돼 순식간에 71만 조회 수를 기록한 영상에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일렬로 앉아있는 한 PC방의 모습이 담겼다. 그중에 눈길을 끄는 것은 주인과 의자 등받이 사이에 끼어 앉아있는 허스키다. 주인은 강아지를 집에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어서 PC방에 데리고 온 것으로 보인다. 허스키는 자신을 신경 쓰지 않은 채 게임에만 몰두한 주인 때문에 조용히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던 허스키는 이내 곧 지루한지 등받이에 얼굴을 기대며 무념무상의 표정을 짓는다. ‘개지루한’ 표정의 허스키 영상은 공개된 지 하루 만에 조회 수 71만, 좋아요 1만 8천 개, 공유 7000번 이상을 기록하며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사진·영상=9GAG/페이스북 영상부 seoultv@seoul.co.kr
  • ‘버스 흉기 난동’ 문자 신고자만 찾은 경찰

    ‘버스 흉기 난동’ 문자 신고자만 찾은 경찰

    지난 19일 당산역 버스 흉기 난동 당시 112 신고를 받은 경찰이 난동을 벌인 당사자는 놔두고 신원 노출을 꺼린 신고자만 찾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경찰의 현장 대응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경찰은 112 문자메시지 신고가 40자 이상 접수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지난 13일 암사역 흉기 난동 사건에서의 소극적 대처에 이어 또다시 경찰의 대응 미숙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문자 40자 넘어 내용 접수 안 돼” 해명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10시 30분쯤 당산역 앞을 지나던 마을버스 안에서 한 남성이 흉기를 꺼내 휘둘러 승객이 112에 문자메시지로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관들은 버스에 올라타 신고자가 누구인지 큰소리로 물었고, 겁에 질린 신고자는 나서지 못하다가 경찰이 버스에서 내리자 따라 내려 신고자임을 밝히고 상황을 설명했다. 신고자에 따르면 난동자는 경찰이 오기 전까지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내 허공에 휘두르며 다른 승객들에게 욕설을 했다. 경찰이 내리고 난 뒤 이 남성이 흉기로 다른 승객을 찌를 수도 있었던 셈이다. 신고자는 ‘지금 ○○○에서 ○○쪽으로 출발하려고 정차해 있는 ○○○○ 버스에 파란 패딩 입은 남자가 욕설하며 커터칼 들고 있습니다. 방금 출발한 버스입니다’라는 112 신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대해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112 문자신고 시스템상 40자 이후 내용은 접수되지 않아 흉기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 전달되지 않았다”면서 “출동 경찰관은 누가 소란을 피웠는지 알 수 없어 불가피하게 신고자를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가 지적되자 경찰은 이날 긴급하게 문자 신고 시스템을 보완해 글자 수 제한 없이 접수가 가능하도록 했다. ●신고 시스템 보완 글자 수 제한 없애 지난 13일 서울 지하철 암사역 인근에서도 커터칼을 들고 난동을 부린 10대 남성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소극적 대응 논란이 일었다. 당시 경찰은 “범인을 우선 설득하는 등 매뉴얼대로 처리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경찰이 범인을 빠르게 제압하지 못하면서 대치가 길어졌고 테이저건마저 빗나가면서 범인이 도망갈 빌미를 줬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버스 흉기난동’ 경찰 해명 “문자시스템 오류 있었다”

    ‘버스 흉기난동’ 경찰 해명 “문자시스템 오류 있었다”

    버스 흉기난동 사건 논란 전말 버스 안에서 한 남성이 흉기 난동을 벌인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해당 남성의 흉기 소지 여부를 전달받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한 승객이 몰래 112 신고를 했지만 시스템 오류로 중요한 신고 내용이 누락된 채 경찰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경찰과 신고자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10시 30분쯤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앞을 지나던 마을버스 안에서 한 남성이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내 수차례 허공에 휘둘렀다. 이 남성은 다른 승객들에게 “가까이 오지 마라”며 욕설해 버스 안은 순식간에 공포로 휩싸였다. 버스 승객 A씨는 이 모습을 보고 112에 문자메시지로 “파란 패딩을 입은 남자가 욕설하며 커터칼을 들고 있다”고 신고했다. A씨는 “다음 정류장에서 경찰관들이 버스에 올라 ‘신고자 계십니까?’라고 큰소리로 외쳤다”며 “해당 남성이 자리를 이동해 제 옆자리에 앉아 대답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신고자를 찾지 못한 경찰이 버스에서 내리자 A씨는 뒤따라 내린 뒤 자신이 신고자임을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해당 남성을 버스에서 내리게 한 뒤 간단히 신원 확인만 하고 돌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112 신고 문자시스템에 오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은 A씨의 신고 내용 중 ‘파란 패딩을 입은 남자가 욕?’이라는 내용만 전달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첫 신고 이후 A씨가 ‘우리가 신고한 걸 모르게 해 달라’고 보낸 문자도 현장 경찰관들은 전달받지 못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만약에 흉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출동했다면 현장에서 불심검문을 하는 등 대응이 달랐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버스 흉기 난동’ 신고했는데…이해불가 경찰 대응

    ‘버스 흉기 난동’ 신고했는데…이해불가 경찰 대응

    “신고자 누구냐” 크게 묻고는 그냥 내려경찰 해명 “흉기 소지 제대로 신고 안돼”버스 안에서 벌어진 흉기 난동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피의자 대신 신고자를 찾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대처를 해 논란이 되고 있다. 경찰 측은 112 신고시스템 오류로 흉기 소지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경찰은 신고자가 현장에서 흉기를 든 남성에 대해 설명했는데도 신원 확인만 하고 피의자를 돌려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10시 30분쯤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앞을 지나던 마을버스 안에서 한 남성이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내 수차례 허공에 휘둘렀다. 이 남성은 다른 승객들을 향해 “가까이 오지 마라”며 욕설을 하기도 했다. 버스에 타고 있던 A씨는 이 모습을 보고 “파란 패딩을 입은 남자가 욕설하며 커터칼을 들고 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112에 신고했다. A씨는 “다음 정류장에서 경찰관들이 버스에 올라 ‘신고자 계십니까?’라고 큰소리로 외쳤다”며 “해당 남성이 자리를 이동해 제 옆자리에 앉아 대답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신고자를 찾지 못한 경찰이 버스에서 내리자 A씨는 곧바로 뒤따라 내려 자신이 신고자임을 밝히고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제야 경찰은 해당 남성을 버스에서 내리게 했다. 그러나 간단히 신원 확인만 하고 그대로 돌려보냈다. A씨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 있는 상황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공개적으로 신고자부터 찾아 두려움을 느꼈다”고 경찰의 허술한 대응을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112 신고 문자 시스템의 오류로 ‘남성이 흉기를 들고 있다’는 신고 내용이 현장 경찰관에게 전달이 안 됐다고 해명했다. 현장에 출동한 파출소 측은 A씨의 신고 내용 중 ‘커터칼을 들고 있다’는 뒷부분이 누락된 채 ‘파란 패딩을 입은 남자가 욕?’이라고만 전달됐다고 밝혔다. 또 첫 신고 이후 A씨가 ‘우리가 신고한 걸 모르게 해 달라’고 보낸 문자도 현장 경찰관들은 전달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만약에 흉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출동했다면 현장에서 불심검문을 하는 등 대응이 달랐을 것”이라며 “신고자가 경찰서에 가서 진술하지 않았고 단순 시비로 알고 출동한 경찰관들이 ‘칼이 있다’는 말만으로는 임의동행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해당 남성을 돌려보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두 그림자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두 그림자

    시인 단테(1265~1321)는 ‘신곡’에서 지옥, 연옥, 천국을 거치면서 수많은 인물들을 만난다. 모든 인물들은 (시인에게는 보이는 존재들이지만) 원칙적으로 몸이 없기에 볼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신체를 가진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실은 영혼이며 그림자다. ‘연옥편’ 2곡(74~77)에서 한 그림자가 나타나 반가운 나머지 단테를 껴안으려 하고, 단테 역시 그를 끌어안으려고 한다. 하지만 시인의 팔은 허공을 휘저으며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 “아, 겉모습 말고는 공허한 영혼들이여/그를 세 번이나 껴안으려 했지만/그때마다 손은 내 가슴으로 되돌아왔다” 연옥편 3곡(16~30)에도 그림자 얘기가 나온다. 스승이자 안내자인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태양을 등지고 나란히 걷고 있다. 당연히 두 사람의 그림자는 그들 앞에 드리우게 된다. 단테는 자기 그림자는 보이는데 베르길리우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우리 뒤에서 붉게 타오르는 태양은/내 몸이 그 빛줄기를 막았기 때문에/내 앞의 바닥에서 부서졌다/나는 오직 내 앞에만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보고/혹시 혼자 남은 것이 아닌지 두려워/재빨리 옆을 돌아보았다” 단테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본 베르길리우스는 설명한다. 자신의 물리적 신체는 다른 곳(지상)에 묻혀 있으며, 투명한 영혼은 태양빛을 통과시키므로 그림자도 생기지 않는다고. “나의 위안이신 그분이 나를 보며 말했다/왜 아직도 믿지 못하느냐?/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널 인도하지 않느냐?/지금 내 앞에 아무런 그림자가 없더라도/놀랄 필요는 없다” 베르길리우스(기원전 70~19)는 단테보다 1300년 앞서 살았던 로마의 시인이다. 그의 영혼이 단테를 이끌어 지옥과 연옥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단테는 그림자야말로 살아 있는 사람의 징표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림자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살아 있는 인간의 특질인 것이다. 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둘 다 살아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살아 있음을 감사하자. 물론 사람답게 살아야 할 의무도 뒤따른다. 인간은 제분기(製糞機)가 아니기에. 우석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
  • [씨줄날줄] 423일 굴뚝 농성 노동자/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423일 굴뚝 농성 노동자/박록삼 논설위원

    한낮에도 수은주가 여전히 영하권에 머문 지난 8일. 목동 75m 콘크리트 굴뚝이 초속 4m 바람에 휘청거린다. 위태로운 굴뚝 위에서 423일째 내려오지 않는 두 남자는 지난 6일 아예 곡기까지 끊었다. 홍기탁 파인텍 전 노조지회장, 박준호 사무장.섬유 가공업체 파인텍의 사실상 모회사는 스타플렉스다. 스타플렉스 전무이사(강민표)가 파인텍의 대표를 겸임한다.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는 2010년 이후 고용 승계 및 생계 보장을 약속했음에도 두 차례에 걸쳐 번번이 이를 어겼다. 월 120만원의 실수령액을 받던 노동자들은 협상의 벽을 통감하며 2014년 굴뚝 위로 올라갔다. 당시 408일의 굴뚝 농성 끝에 어렵게 노사 합의를 맺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그리고 2017년 11월 12일 다시 굴뚝 위로 올랐고, 이제 목숨까지 허공에 내걸었다. 노사의 극한 대립 속에서 과연 이들이 목숨을 부지한 채 굴뚝을 내려올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다. 40년 전인 1979년 8월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YH무역에 노조가 만들어지자 사주는 이내 공장을 폐쇄했다. 이른바 ‘YH 여공’들은 몇 달 동안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하지만 권력도, 법도 노조 편이 아니었다. 벼랑 끝 노동자들은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상도동 집을 찾아가 호소했고, 김 총재는 다음날 오전 기꺼이 당사를 내준 뒤 어린 여성 노동자들 앞에서 명연설을 남겼다. “신민당사를 찾아 준 것을 눈물겹게 생각합니다. 신민당은 억울하고 약한 사람의 편에 서서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결과는 알고 있는 대로다. 박정희 정권은 사흘 뒤 새벽 야당에 공권력을 투입, 강제 진압했고 노동자 1명이 숨졌다. 국회는 품위 손상을 이유로 김 총재를 제명했고, 신민당 의원 전원은 의원직 사퇴서 제출로 맞섰다. 10월 부마항쟁 불씨는 그렇게 지펴졌고, 유신 정권은 곧 막을 내렸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몇 해 동안 이를 방관했다. 지난 연말에 국가인권위원회가 농성장을 방문하면서 새 국면이 됐다. 더불어민주당도 노사와 함께 네 차례 협상을 진행했다. 아쉽게도 뾰족한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박홍근 민주당 을지로위원장은 8일 “지난 3일 13시간에 걸친 4차 협상 때 극적 해결의 가능성을 봤지만, 결국 노사 간 상호 불신의 벽과 인식의 간극이 너무도 큼을 재확인했다”면서 “중재 가능성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막막하지만 어떻게든 답을 찾아보겠다”고 상황의 엄중함을 호소했다. 대립과 갈등, 이해관계의 조정은 정치의 핵심 기능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나서서 노사 양측을 적극 설득해 타협의 장에 나서도록 강제해야 한다. youngtan@seoul.co.kr
  •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에 다리 잃은 여성 이번엔 교통사고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에 다리 잃은 여성 이번엔 교통사고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때 다리 한 쪽을 잃은 여성이 지난 5일(현지시간) 자동차에 치여 허공을 날았지만 다행히 또다시 목숨을 건졌다. 6년 전 애드리안느 해슬렛 데이비스는 남편과 함께 달림이들을 응원하려고 결승선 옆줄에 서 있다가 변을 당해 왼쪽 다리 아래를 절단했다. 댄서로서 가장 소중한 다리 한 쪽을 잃었다. 그러나 그녀는 3년 뒤 의족을 한 채 대회에 출전해 많은 감동을 안겼다. 미국프로풋볼(NFL)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쿼터백 톰 브래디와 함께 사진을 찍고 그로부터 응원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런 해슬렛 데이비스가 병상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보스턴의 커먼웰스 애버뉴에 있는 건널목을 건너다 자동차에 치여 붕 날았고 왼쪽 몸이 길바닥에 내다꽂혀 뭉개졌다며 “완전히 부서졌다. 더 많은 수술을 받아야 한다”라고 적었다. 일간 보스턴 헤럴드에 따르면 이날 저녁 7시 15분쯤 운전자가 길을 건너는 그녀를 봤지만 비가 내려 노면 상태가 좋지 못해 제때 정차하는 데 실패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한국, 중국과 첫 특허공동심사

    특허청은 1일 한·중 특허공동심사 프로그램(CSP)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특허공동심사란 두 나라에 동일 발명을 출원한 출원인이 신청하면 양 국 심사관이 선행기술조사결과를 공유해 신속하게 심사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중국이 외국과 공동심사를 진행하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국이자, 2017년 기준 국내 출원인의 전체 해외 특허출원 중 미국에 이어 2번째(19.6%·1만 3180건)를 차지하고 있는 지식재산권 주요 협력국이다. CSP 시행에 따라 양국간 협력심사로 고품질의 동일한 심사결과를 받을 수 있게 돼 중국 사업 진출과 확장을 원하는 국내 기업의 적극적인 지재권 전략 추진이 기대되고 있다. CSP는 2014년 10월 우리나라가 제안한 제도로 한국과 미국, 미국과 일본 간에 시행 중이다. 2015년 9월부터 시행 중인 한·미간 특허공동심사를 분석한 결과 심사처리기간은 평균 7.5개월로 일반심사대비 3.3개월 단축됐고, 양국 심사결과 일치율도 81.9%로 일반 교차출원 특허(68.6%)보다 높았다. 특히 심사결과를 예측가능하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한·미는 지난해 5월 CSP를 정규프로그램화하는데 합의했다. 특허청은 영국·독일·프랑스 등 지재권 선진국뿐 아니라 경제 규모가 큰 브라질·인도·아세안 등으로 공동심사를 확대 추진할 계획이다. 천세창 특허심사기획국장은 “우리나라 무역 대상국 1·2위인 중국·미국과 특허공동심사는 해외 진출 기업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맞춤형 협력 프로그램”이라며 “앞으로 중소기업이 해외 특허권을 확보해 글로벌 IP 강소기업으로 성장해 나가도록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우산그늘/조은희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우산그늘/조은희

    무대 어두운 파란빛 조명. 조명은 무대 후면만 들어오며 그 빛은 관객석으로 뻗어나간다. 관객들은 소품과, 인물들의 그림자 속에서 무대를 관람한다. 무대 중앙을 제외한 후면의 극 상하수는 조명의 빛이 흐릿하다. 빛이 흐린 어둠 속에서 인물들은 대기를 할 수 있다. 프롤로그, 새미의 학원 앞 / 저녁 빗소리. 그 소리는 폭우같이 거세지만, 바람은 불지 않는다. 조명은 옅고 어두운 파란빛. 무대의 전면 상수에는 연성이 우산을 들고 있다. 무대 전면 하수에는 문준이 우산을 들고 있다. 새미, 등장. 입으로 학생이 할 법한 욕을 중얼거리며, 메고 있던 가방을 머리 위를 가리듯, 든다. 새미는 무대 전면 중앙으로 뛰어온다. 연성과 문준. 동시에 돌아본다. 새미가 중앙에 선다. 웅덩이를 밟은 듯, 첨벙 소리가 난다. 문준과 연성은 동시에 고개를 객석으로 향한다.문준 우새미! 아빠 왔다! 새미, 교복 바지가 젖은 듯. 욕을 하며 발을 들어 확인한다. 문준 아빠 왔다고! 바지 다 버렸네. 아침에 빨래했는데, 또 세탁기 돌려야 해? 연성 새미? 혹시 너가, 우새미 맞지? 새미 예? 맞는데요? 이렇게 비 오는 날. 절 왜요? 연성 나야. 김연성. 새미 누구냐니까요. 연성 네가 처음으로 손가락을 쥔 사람. 새미는 연성을 돌아본다. 새미를 제외한 모두 앞을 보고 있다. 문준의 우산이 눈에 띄게 처지듯, 내려간다. 문준의 얼굴이 우산에 가려진다. 1장, 새미의 집 / 저녁 무대 후면. 옅은 하늘빛 조명과 노란 조명이 무대를 밝힌다. 무대 전면에 소형 테이블과 큐빅 2개가 있다. 문준은 무대 후면에 있다. 문준은 젖은 우산을 펼친 채 조명 앞에 둔다. 우산 모양의 그림자가 바닥에 그려진다. 동시에 무대 상수에 있던 새미가 연성을 어둠 속에 뿌리쳐 놓고, 비교적 밝은 전면으로 들어온다. 문이 닫히는 소리. 연성은 문을 두드리는 손짓을 한다. 연성 (문 두드리며) 새미야! 문 열어! 새미 들어오지 마요! 이런 행동, 불법인 거 아시잖아요? 문준이 손을 소매에 닦으며 무대 전면으로 이동한다. 새미 아빠, 우산 또 저렇게 해놨어? 저러면 바닥에 물 떨어진다니까. 바닥이 원목이라 물 몇 방울이라도 나무가 이리저리 운다고 말했잖아. 문준 잘 기억하네? 내가 그랬었지. 나무라 이리저리 뒤틀린다고. 근데 물이야 닦으면 되는 거고. 우산은 접어서 보관하면 녹슬어. 새미 어차피 내일도 비 오거든요. 추적추적. 약해지겠지만요. 문준 갈색 얼룩보다는 낫지, 녹슬면 흉해지고, 가지고 다니기 싫어지니까. 쾅쾅쾅! 연성 (문 두드리며) 새미야. 김새미. 인터폰 통해서라도. 얘기만 하자. 아니면 얼굴이라도. 문준 이제는 성까지 바꿔버리네. 새미 여기는 우문준, 우새미. 우씨 집안이에요! 잘못 찾아오셨어요! 잠시 잠잠하다. 새미 아빠 밥은? 문준 아까 낮에 햇볕 아래에 누워 있었는데, 배가 금방 찬 것 같더라니. 다시 출출해졌어. 새미 요즘 따라 먹구름이 자주 껴서 그래. 문준 그렇지? 아빠가 이상한 거 아니지? 새미 물을 걸 물어 아빠. 18년간 한 번도 그런 적 없잖아. 문준 한 번은 아니고…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는 아니겠지? 새미 아빠도 수명은 있을 거 아냐. 나 학원에서 꼬부랑 글씨를 너무 봐서 그런가. 배가. 쾅쾅쾅! 연성 새미야! 너가 나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게. 나 기다린다! 문준 (무시하려는 듯) 배고프지. 우리 야식 먹을까? 새미 오랜만에 배달 시켜 먹자! 나 조금만 더 시켜 먹으면 배달 앱에서 아이디 등급 올려준대. 어때 아빠? 피자? 문준 아냐. 내가 해 줄게. 금방이야. 군만두가 냉동실에 한가득이야. 자리 비좁아. 새미 아빠 힘들잖아요. 나도 이제 그것쯤은 알아. 뭐 시켜 먹을까? 그 전에 나 옷 갈아입고 올게. 문준 아빠가 이렇게 해 줄 수 있을 때 먹어. 나 늙으면 해 달라 해도 안 해 준다. 그땐 새미 네가 나한테 해 줘야지. 새미 말을 꼭 할아버지처럼 하네. 아빠 아직 한참 멀었어. 수명 240세 시대야. 120세 하프 세대도 훌쩍 넘은 지 오래구만. 문준 그건 너한테 해당되는 얘기고. 여튼 군만두 개수는 내가 알아서 한다? 다 먹어야 해? 새미 알겠어. 문준 무대 중앙 하수로 간다. 문준은 어둠 속에 있다. 문준은 무대 중앙을 등지고 있다. 문준은 앞치마를 맨다. 문준은 요리하는 시늉을 한다. 지글지글 소리가 난다. 새미는 교복 와이셔츠 단추를 푼다. 단추를 풀자, 반팔티가 나온다. 새미가 교복 바지를 벗는다. 바지를 벗자 체육복이 나온다. 문준 교복 아무데나 벗어두지 말고! 방에 갖다 놔. 새미 개고 있어! 아빠는 맨날 보지도 않고 단정 지어! 새미는 큐빅 위에 교복을 아무렇게나 올려둔다. 새미는 무대 전면 상수로 이동한다. 새미 김이 많이 서렸네. 이러면 아빠가 계속 배고플 텐데. 새미는 호 입김을 분다. 와이셔츠 소매로 창문을 닦는 시늉을 한다. 그 행동은 느리게 진행된다. 그때, 쾅쾅쾅. 이번엔 아무 소리도 없다. 새미는 문준이 있는 무대 하수를 본다. 새미는 연신 눈치를 보며 연성이 있는 문으로 다가간다. 끼이익. 문 열리는 소리. 연성 새미…! 새미 쉿, 아빠 요리하러 갔어요. 여기까지 따라오면 어떡해요. 이 집에 지금 못 들어오는 이유, 제가 보낸 봉투에 다 담겨 있을 텐데요. 연성 사정이 있었어. 네가 모를 사정. 새미 그래요. 그쪽의 유전자를 인공 난자에 넣을 때도 제가 이해해야 될 사정이 있었나요? 몰랐어요. 아직 고등학생이라. 연성 난 연구원이었어. 첫 연구가 성공할 줄 누가 알았겠어. 성공해서…기뻤지만. 그게 널 데려가기 전에는. 새미 말 조심해요. 문 닫기 전에. 연성 지금 말씨름하자고 만난 거 아니야. 난 알고 찾아갔어. 너의 아빠가 널 데리러 온다는 것을 알고. 적어도 내가 엄마라는 건 안 밝혔잖아. 얼굴도 제대로 못 봤을 거야. 우산을 모자마냥 푹 눌러쓰고 있던데. 새미 엄…이란 단어는 내 앞에서 쓰지 마세요. 밝혀주지 않은 덕분에 난 아빠한테 그 쪽이 게임 유저라고 밝힐 거예요. 제가 판 희귀 아이템을 돈 주고 사러 온 게임 유저요. 그러니까, 조용히 가 주세요. 나머지는 서류로 이야기하죠. 새미는 문을 쾅 닫는다. 문준이 프라이팬을 들고 등장한다. 문준 받침대 없어? 받침대. 새미는 받침대를 까는 시늉을 한다. 새미 아빠 잔치 열어? 무슨 만두가 북한산처럼. 문준 그 사람은 갔어? 새미 어? 새미, 군만두를 입에 넣는 시늉. 새미 (후하후하 대며) 아 뜨거! 음 그 사람? 내가 모바일 게임에 현질을 좀 해서, 아이템이 남더라고 그래서 판다고 했는데. 오죽 급했는지 우리 집 현관까지 온 거야. 그래서 돌려보냈어. 요즘 사람들은 왜 이렇게 급한지. 문준 갓 튀긴 만두, 허겁지겁 혀 데면서 먹은 놈이 할 말은 아니네요. 정말 간 거 맞아? 새미 갔어. 뒷모습도 봤는걸. 문준 일부러 그 사람 것도 구웠는데. 그래서 많아졌어. 다 먹을 수 있지? 아들? 둘의 젓가락이 왔다 갔다 하나, 힘이 없다. 새미는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문준 야 우새미. 너 설마 벌써 다 먹은 거야? 새미 …입맛이 없어. 문준 말도 안 돼. 이거 다 어떡해? 아까는 다 해치울 듯이 굴더니. 새미 내일 아침 반찬으로 하면 좋겠다. 그래서 일부러 남기는 거야. 문준 그래 그럼, 아빠가 다 먹는다. 숟가락 줄면 나야 환영이지. 새미 나 먼저 씻을게. 새미 무대 상수로 퇴장. 문준은 젓가락질을 하려다가 내려놓는다. 아까 새미가 서 있던 창문 뒤에 선다. 창문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문준 날이 흐리네. 문준은 새미의 교복을 갠다. 조명이 어두워진다. 2장, 새미의 학원 앞 / 낮 잔잔한 보슬비 소리. 연성이 우비를 입고 있다. 무대 상수에서 문준이 우산을 들고 등장. 연성 어? 문준 (혼잣말로) (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쳐다보듯) 다 큰 어른이 부끄럽지도 않나. 연성 네? 문준 고등학생이랑 거래하는 거 말이에요. 연성 그게 워낙 희귀한 아이템이라. 제 시간, 돈, 다 쏟아붓는 겁니다. 문준 난 그 애의 아빠예요. 계속 이러시면. 연성 새미 말을 진짜 믿네요? 문준 계속 이러시면 신고할 겁니다. 접근금지 신청도 내릴 거고. 연성 내가 걔 본명을 어떻게 알 것 같아요? 문준 보나마나 은행 계좌겠죠. 입금을 하라고 새미가 본명을 알려 줬을 거니까. 연성 난 당신 본명도 알아요. 새미가 이름 하나는 잘 짓네요. 문준 현실 세계로 돌아오세요. 맨날 게임만 하니까 현실과 가상을 분간 못 하잖아요. 문준은 연성의 반대 방향으로 돌아선다. 연성은 문준 쪽으로 돌아선다. 문준 제가 새미 대신 아이템값 배로 환불해 드릴 테니까. 거래 파기하세요. 연성 걔가 먼저 연락했어요. 저한테. 문준 그러니까 배로 쳐드린다구요. 없었던 일로 합시다. 연성 우산부터 위로 올리고, 절 보면서 말하세요. 문준 그쪽 얼굴 보고 싶지 않아요. 연성 새미도 궁금할 겁니다. 항상 비 오는 날만 데리러 오는 당신을요. 아무리 길이 물기로 미끄럽다고 해도요. 문준 내 아들이 유치원생도 아니고, 그냥 산책 겸 데리러 온 거죠. 우산도 따로따로 쓰는 마당에 무슨 소리예요. 연성 우산 그늘 아래 숨어서 아빠 노릇하는 거 지겹지 않아요? 우산이 올려져 완전히 얼굴이 드러난 문준. 연성 쪽으로 돌아선다. 연성 당신은 기호랄 것도 없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새미한테 맞춰서 제작되었으니까. 근데 요즘 좀 지겨울 겁니다. 연성이 문준을 향해 한 발자국 다가간다. 우산끼리 부딪힌다. 연성 내가 당신 버전을 한 칸 올렸거든. 문준 이건 불법이야. 연성 원래 회수 절차예요. 알아요? 문준 새미 몸이 성장이 거의 됐다고 해도 완전한 성인이 아니에요. 회수는 2년도 더 남았다구요. 저는 새미가 대학 가는 거까지만 지켜볼 거예요. 연성 온몸이 뜨거워지지 않나요? 문준 네? 연성 햇빛 쬘 때, 햇빛보다 몸이 더 뜨거워지지 않냐구요. 그러니까 방금 한 따끈따끈한 밥보다 밥을 먹는 인간의 몸이 더 뜨거운 것처럼요. 연성은 문준의 표정을 살핀다. 연성 전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네. 다른 비유를 들어야 하나… 죄송하지만 당신 지능 지수가 몇 점이죠? 문준 예의를 지키세요. 연성 순수하게 묻는 거예요. 이런 질문,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잖아요. 당신 같은 존재를 위한 헌법이 나온 지 겨우 5년도 안 됐어요. 아직 개정 중이고요. 문준 새미가 더 잘 알 거예요. 당신 말대로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새미의 아빠니까. 지금 어떤 위치에서 당신이 일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를 함부로 대할 자격 없습니다. 새미한테도 마찬가지예요. 연성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서, 당신도 인간처럼, 건조해진 거예요. 이유는 당신이 알 테죠. 지금은 몰라도 나중엔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할지도 모릅니다. 문준 인간처럼? (사이) 저는 아버지예요. 우린 잘 살고 있었어요. 아무 탈 없이요. 저는 그렇다 칩시다. 새미는요. 적어도 새미의 의사는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연성은 말이 없다. 문준 알면 돌아가세요. 새미가 어제에 이어 또 당신의 얼굴을 보기 전에요. 연성 정말 입을 떼기가 어렵군요. 문준 그래요. 신고가 두려우시겠죠. 이제야 말이 통하네요. 그때, 무대 하수에 새미가 서 있다. 새미는 어둠 속에 있다. 연성 한 달 전, 새미가 절 찾아왔어요. 새미는 서류 봉투를 들고 있다. 문준 속임수 안 통해요. 연성 거짓말은 벌써 전부터 끝났어요. 새미의 팔이, 연성에게 서류 봉투를 건넨다. 연성, 봉투를 조심스럽게 받는다. 연성 연구실 직원이 조용히 저에게 건네더군요. 새미가 보낸 서류였어요. 저는 그것을 찬찬히 읽고 또 읽었어요. 마치 좋아하는 소설의 구절을 반복해서 읽듯이요. 새미 ‘父 우문준의 소유권을 가진 子 우새미는 출생원의 절차에 따라, 父 우문준을 회수함에 동의한다.’ 연성 회수 담당이 내가 된 거예요. 그 아이가 손을 뻗어 감쌌던 손가락의 주인공인 내가. 엄마인 내가. 드디어 제자리를 찾을 기회가 온 거예요. 새미 엄마, 이제 돌아올 때가 됐어요. 연성 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문준 그걸 저보고 믿으라는 거예요? 새미는 어제도 내가 배고픈지 걱정했던 애예요. 그래서 아무데나 막 서명한 겁니다. 출생원에서 혹시 제 배터리를 갈아주지 않을까 해서요. 연성 도망가지 마세요. 문준 당신이 새미에 대해 무얼 말할 수 있죠? 손가락 하나 쥐어 주었다고 해서. 당신보다 두 마디 더 길어진 새미의 손이 그때와 같을 것 같나요? 빗소리가 거세진다. 문준은 연성에게 달려들 듯이 다가선다. 연성 아빠 노릇해서 얻은 데이터베이스, 하루면 다 읽을 수 있죠. 문준 그 데이터베이스는 하루아침에 쌓인 게 아니에요. 문준은 우산을 바닥에 떨어뜨리듯 내린다. 문준 난 새미가 자라는 모습을 메모리에 18년 동안 차곡차곡 쌓았어요. 결코 무시 못할 세월이에요. 그래서 엄마인 당신도 수없이 망설 였을 겁니다. 그러다 서류를 받자 용기가 났고 여기까지 왔겠죠. 근데 당신이 잊은 것이 있어요. 내 데이터베이스는 읽어도 새미가 쌓은 기억들은 읽을 수 없음을 말이에요. 문준은 우산을 접는다. 문준은 상수로 퇴장한다. 새미, 무대를 돌아 후면 하수에서 전면 중 앙으로 이동한다. 새미는 후드 모자를 쓰고 있다. 새미는 후드 주머니에 손을 꽂고 있다. 연성 새미야. 왜 비를 맞고 다녀. 감기 걸리게. 새미 얼굴이 다 젖은 건 제가 아닌 걸요. 꽤 오래 서 계셨나 봐요. 연성 우비가 그렇지 뭐. 만들 때, 머리는 안중에도 없었나 봐. 새미 이렇게 서 있으면 아빠가 절 데리러 왔다가도 발걸음을 돌리겠어요. 연성 네 아빠가 그렇게 쉽게 돌아서겠니. 새미 혹시 모르죠. 우리 아빠도 제가 이렇게 돌아설 줄은 몰랐겠죠. 그러니까 아빠도, 저도 서로 모르는 거예요. 연성 생각이 많아졌어. 혼란스러워. 새미 아빠가 나가면, 본인이 빈자리를 채울 거라고 기대하시지 않았나요? 연성 오래된 일기도 망설임 없이 찢는 사람들이 있지. 우리 엄마도 그랬어. 새미 너는? 나라고 다를까? 새미 버려진 건 당신이 아니에요. 나라구요. 내가 태어나서 당신이 엄마가 되었잖아요. 근데 당신이 엄마라서 날 태어나게 한 것처럼, 괴로워하지 말란 말이에요. 연성 괴로워할 자격 없는 거 알아. 그땐 엄마라는 생각보다, 실험이 성공한 기쁨, 연구원으로서의 성취감이 날 지배했어. 지금에서야 두려울 뿐이야. 너도 혹시 날… 갈아 끼우듯 버리는 것이 아닌가. 새미 잠시 말이 없다. 새미 비가 점점 그치고 있어요. 빗방울 떨어지는 간격이, 뜸하네요. 연성 지금쯤이면, 네 아빠가 집에 도착했겠지. 새미 데리러 왔었군요. 연성 그래. 너도 알고 있는 것 같았어. 새미 맞아요. 아빠는 왜 비오는 날이면 날 데리러 왔을까요? 전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어요. 비 오는 날에는 우산 아래, 지나가는 사람들이 제 눈에 안 보이거든요. 절 괴롭히던 중학교 동창을 만나도 우산을 앞으로 조금만 더 내리면 대통령도 부러워할 벙커가 돼요. 숨은 거라 해도 좋아요. 근데, 아빠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진 않았어요. 연성 이제 가자. 집으로. 새미 제 선에서 마무리하죠. 연성 너가 부추기겠다고? 새미 네. 아빠는 항상 구름이 없는 날을 좋아했어요. 그런 날에 집에 오면, 아빠는 창가에 서 있었죠. 연성 정말 너가 할 수 있겠어? 새미 내일 봬요. 새미, 후드 모자를 벗고 무대 후면 상수로 간다. 새미는 어둠에 잠긴다. 연성, 무대 하수로 가서 퇴장한다. 조명이 어두워진다. 3장, 아빠의 방 / 밤 드라이어기 소리. 무대가 환해지면, 새미가 문준의 머리를 말려 주고 있다. 새미는 반팔 티셔츠 차림이다. 문준은 비에 젖은 생쥐 꼴이다. 새미는 드라이어기를 내려놓는다. 새미는 수건으로 아빠의 머리카락 나머지를 닦는다. 문준 이러니까 졸리다. 네가 어릴 때 조는 이유가 있었구나. 드라이어기 소리가 시끄러운 데도 휘청휘청. 새미 자, 다 끝났어. 문준 이제 자리 바꾸자. 문준은 드라이어기를 손에 든다. 새미 내가 애야? 문준 다 큰 애다. 다 큰 애. 앉아. 새미 됐어. 나 수학 공부 좀더 하다 자려고. 그리고 나 머리도 안 젖었잖아. 문준 그럼 부엌 불은 네가 꺼라. 아빠 먼저 잔다. 새미 오늘은 안 붙잡네? 맨날 아빠 방에서 자라더니. 문준 너도 이제 다 컸잖아. 새미 일찍도 알아보셨네. 새미 무대 후면 상수로 이동. 스위치 소리. 새미, 베개를 들고 무대 전면 하수로 온다. 새미, 베개를 바닥에 놓고 눕는다. 새미는 관객석과 평행으로, 옆으로 누워 있다. 새미 부엌에 불 껐어. 문준 새미 네가 웬일이야. 달력에다 표시해야 하나. 파란펜으로 동그라미 치고, 아니, 동그라미 두 개. 새미 근데 아빠. 문준 응? 새미 우산은 말려 뒀어? 문준 그러엄. 새미 내일은 비 안 온대. 문준 …. 새미 우산 어디다 놔 뒀어? 거실에 없던데. 문준 저기, 신발장 안쪽에 넣어뒀어. 먼지 쌓이지 말라고. 새미 우산 안 젖은 거 알아. 문준은 말이 없다. 새미 아빠 비 맞는 거 싫어하잖아. 문준 비가 그친 줄 알았는데 계속 온 거뿐이야. 조금씩 맞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어. 새미 우산이 아빠보다 귀해? 우산은 커버까지 씌워서 가져와 놓고, 아빠는 비 쫄딱 맞으면 무슨 소용이야. 문준 그러고 보니 그렇네. 우산을 신주 단지 모시는 거 마냥… 그렇게 품 안에 감싸고 집까지 걸어왔어. 새미 아빠도 아빠 생각 좀 해. 문준 (용기 내어) 이제 우산들 그만 펼쳐 놓고, 접어서 보관할 때가 온 것 같아. 새미, 무대 후면 쪽으로 돌아 눕는다. 새미 비 오는 날이 싫다는 말이야? 문준 그건 아니야. 여전히 좋아. 새미 그럼 내일 만날까. 아빠? 문준 자자, 새미야. 늦었다. 새미 나 아직 잘 생각 없어. 아빠는 항상 내가 잠드는 거 보고 잤잖아. 문준 내일은 맑아? 구름 한 점 없이? 새미 응, 쨍쨍해서 더울 수도 있대. 그래도 목도리는 챙기래. 이게 무슨 말이야? 문준 겉옷도 챙겨. 벗었다가 입을 수도 있는 거. 새미 걷기만 해도 배부를걸. 아빠 오랜만에 포식하겠네. 문준 새미야. 늦었다. 자자. 내일 학교 안 가니? 새미 이런 날 두 번 없어. 밤새도록 얘기하다 잘 줄 알았는데. 내가 다 큰 게 아니라 아빠가 늙은 거 같아. 내가 다시 이 방에서 자나 봐봐. 새미는 일어나서 불을 끈다. 스위치 소리. 조명이 어두워진다. 문준, 새미 머리맡에 간다. 문준은 새미의 베개를 뺀다. 새미 아 씨, 아빠 베개 있잖아! 내 거 돌려줘. 문준 오늘은 아빠 자는 거 봐줘. 먼저 잘게. 문준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서, 새미와 데칼코마니처럼 눕는다. 새미 갈 거야, 말 거야. 문준 너 나 때문에 억지로 가는 거 아니지. 새미 갈 거야 말 거야. 문준은 몸을 일으킨다. 문준 그럼, 돗자리를 준비해 줘. 새미 좋아. 집에 있어. 문준 연두색으로. 새미 아빠가 언제부터 색깔을 신경 썼다고 그래. 우리 집 돗자리는 하얀색이야. 문준 연두색이 산뜻하니까. 그리고,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색이야. 새미 그럼 내일 나 학교 마치면 3시쯤…. 문준 1시 30분. 나날 공원. 새미 나 그때 수업 중인데. 아는 사람이 왜 그래. 문준 조퇴해. 담당 선생님한테 현장 체험 학습이라고 하든가. 아빠가 허락했다고. 새미는 말이 없다. 새미 아빠, 이런 적 처음인 것 같아. 문준 나도 익숙하지 않아. 새미 아빠 말고, 나 학교 조퇴하는 거 처음이라고. 문준 하긴 이때까지 개근상을 훈장처럼 모아 왔었지. 새미 (졸린 목소리로) 아빠는 뭘 모았어. 문준 유치원 졸업장이랑, 중학교 졸업장이랑 이제 고등학교…. 새미 (거의 자는 목소리로) 그건 우새미. 내 거고. 아빠 거 말이야. 문준 내 거? 난 내 서랍장도 없어. 문준은 자리에 앉는다. 문준 우새미. 자? 아들? 새미는 몸을 뒤척인다. 문준 내일 생기겠네. 연두색 돗자리. 그 위에 나는 누워야지. 포만감이 느껴질 정도로. 하늘이 어두워지는 걸 보고. 어두워져서 별이 뜨면, 그제서야 집에 돌아올 거야. 비 오던 날만 외출했던 우리를, 나를 잊고 싶어. 조명이 어두워진다. 연성, 무대 상수 어둠 속 서 있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문준과 새미는 듣지 못한다. 연성은 새미가 주었던 서류 봉투를 안고 있다. 연성은 무대 후면 상수로, 다시 전면의 하수로 왔다 갔다 한다.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연성은 문을 두드리려다가 만다. 그러다 결심했는지, 문 밑으로 서류를 밀어 넣는다. 4장, 새미의 집 / 낮 조명이 밝아지자, 서류 봉투는 사라지고 없다. 문준은 무대 전면에 있다. 문준은 분무기를 허공에 뿌리며, 곱게 접힌 수건으로 창문을 닦는 시늉을 한다. 창문이 잘 닦이지 않는지 인상을 쓴다. 문준 도대체 창문 청소는 언제쯤 하는 거야. 관리비는 누구 콧구멍에 들어갔는지. 원. 새미, 집에 들어온다. 문준 왔어? 새미, 대답 없다. 새미는 가방을 벗는다. 새미는 가방 정리를 한다. 문준 점심은. 새미 공원에서 기다렸어. 문준 아빠는 점심 먹었는데. 새미 아빠랑 점심 먹을 줄 알았어. 그래서 밥 먹기 전에 조퇴했다. 왜. 문준 오늘 날씨 좋은데 공원은 좀 돌아보고 왔어? 새미 응, 덕분에. 문준, 분무기를 뿌린다. 새미 시간 헷갈린 거 아니지? 문준 지금이 몇 신데? 새미 오후 3시. 문준 1시 30분에 만나자며. 새미 나 1시 30분부터 3시까지 공원 정문에서 기다렸어. 그러다가 아빠가 길 잃은 게 아닌가 싶어서 그 넓은 공원을 1시간 반 동안 돌아다녔고. 다리가 아프길래 공원 벤치에서 쉬고 있었는데 공원 시계 보고 알았어. 아, 아빠는 집에 있겠구나. 문준 길을 잃을 리가 없지. 몇 번이나 갔었는데. 새미 아주 오래전이잖아. 문준 오래전은 무슨, 3년도 안 됐어. 새미 미안. 문준, 새미를 돌아본다. 문준은 새미에게 간다. 문준 그거 때문이 아냐. 미안해할 필요 없어. 새미 힘들었어? 문준은 다시 무대 전면으로 와서, 수건으로 창문을 닦는다. 새미 뭐 때문인데? 문준 몰라, 내가 두려웠는지도 모르지. 새미 …사람들이. 문준 응,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 네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말이야. 새미 알아 듣게 설명해 줘. 창문을 닦는 문준의 행동이 멈춘다. 문준 나만 동의하면 돌아갈 수 있다는 거지? 새미가 문준에게 다가간다. 새미 아빠, 난. 문준 돌아가면 난 무엇을 할까 생각 중이야. 새미 회수, 맞아. 돌아가는 건 맞아. 근데 이건 달라. 문준 네가 직접 서류에 서명을 해 놓고, 지금 와서 가지 말라는 거야? 문준은 분무기를 든다. 격하게 분무기를 뿌리다가 수건과 분무기를 힘 없이 늘어뜨린다. 새미 아빠가 달라지게 될 거랬어. 평범하게. 문준 오늘 새벽, 네 손에서 떠났던 서류가 내 손으로 돌아왔어. 나와 반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날 도우려고 한 거야. 새미 그 사람은 내 엄마가 아니야. 유전자만 같지. 문준 인정하긴 싫지만 이걸 돌려주는 순간은 엄마였어. 넌 그걸 알아야 해. 아들. 새미 나는 엄마가 없어! 문준 그 말이 내 가슴도 뚫는다는 걸 아니? 새미 아빠는 구름 없는 날씨를 좋아했지. 나는 그걸 알면서도, 비 오는 날만 아빠가 나갔으면 했어. 아니, 아빠를 숨기고 싶었어! 엄마가 있는 친구들한테서 아빠를 비밀로 하고 싶었어. 문준 내 가슴이 건조해졌다고 그랬는데. 축축하다. 문준이 무대 하수로 가려고 한다. 새미는 아빠를 붙잡는다. 문준 널 뿌리치게 하지 마. 새미 아빠가 창문을 닦을 때조차, 나는 아빠가 맑은 하늘을 보는 게 싫었어. 혹시 나가고 싶은 거 아닐까? 안 돼, 모른 척하자. 난 못 본 거야. 아빠는 그냥 창 밖을 보는 거야. 바깥에 뛰어노는 애들 소리가 시끄러워서 보는 거야. 문준 나는 눈물 날 정도로 햇빛을 쳐다봤어. 새미 떠날까 봐 무서웠어. 문준 떠날까 봐 무서울 정도였으면 날 떠나 보내는 게 아니라 붙잡았어야지. 새미 …. 문준 새미 네 손으로 직접 서명했어. 내가 아빠가 아니게 해 달라고. 새미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붙잡을 수가 없었어. 새미는 문준을 놓는다. 새미의 고개가 내려 간다. 문준 나 집 청소 하는 것 좀 도와줄래? 새미 바닥에 먼지 한 톨 없어. 문준 내 물건, 정리하려고 했는데 정리할 게 없더라고. 새미 도와줄게. 새미, 무대 하수의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새미는 무대 바닥에 앉아, 밝은 전면에 샴푸, 치약, 폼클린징을 옮긴다. 새미 뭐 필요해? 샴푸, 치약, 폼클린징? 문준 이거 다 네 거잖아. 새미 아빠랑 같이 쓰던 거야. 문준 새로 사면 돼. 출생원 앞에도 편의점은 있겠지. 새미 피부에 안 맞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아빠 피부 민감하면서. 문준 그럼 너 뭐 쓸 건데, 만들기라도 할 거야? 새미 그렇네…. 벌써 화장실이 텅 비었다. 안 그럼, 요리 도구는 어때. 프라이팬 전자레 인지. 새미 이번에는 무대 후면 하수로 사라진다. 곧이어 우당탕탕 소리. 문준은 그쪽으로 가려다가 만다. 새미 무대로 돌아온다. 새미 다 가져가 아빠. 문준 주방이 텅 빌 거야. 새미 어차피 난 요리 못 해. 그럼 내 방은? 뭐 가져갈 게 없을까. 종이? 문준 집 텅 비고 싶어? 그만해. 청소하는 법 알려줄 테니까. 새미 이거 봐. 이런데 뭐가 챙길 게 없다는 거야? 아빠가 나한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굴지 마. 이렇게나 많으니까. 새미 이번에는 무대 상수로 향한다. 우산을 들고 나오는 새미. 문준 어릴 적 썼던 우산이네. 새미 이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 녹이 하나도 안 슬었네. 문준 작지. 그때도 잘 말려서 넣었거든. 새미는 우산을 펼쳐 본다. 새미는 문준에게 씌워 본다. 문준이 새미의 우산을 그러쥔다. 새미 하나도 안 가려져. 비에 다 젖겠어. 새미는 문준의 우산을 가져온다. 새미 그럼 이게 아빠 거지? 밝은 색의 우산. 새미가 우산을 펼친다. 새미 아빠 우산…. 문준 크지? 새미 녹이 다 슬어 있었네. 문준 …. 새미 내 것만 말렸었어? 문준 너 건 예쁘게 잘 말렸지. 맑을 때도 넌 우산을 썼으니까. 아들이 매일매일 쓰는 건데. 바싹 말려야 하잖아. 새미 아빠가 가면. (사이) 내 우산도 저렇게 될 거야. 더이상 쓰지 않을 거니까. 아빠가 아닌, 문준으로 돌아오면 그 우산을 보여줄게. 문준 녹슬면, 보기 흉해. 가지고 다니고 싶지 않을 만큼. 새미 갈 거지? 문준 아니. 새미 …. 문준 내가 어딜 가. 여기 전부 있는데. 새미 우산을 손에서 놓아버린다. 전면에서 후면순으로 조명이 밝아진다. 무대가 완전히 환해진다. 문준, 새미 서로 포옹하려다가, 새미가 어깨동무를 한다. 새미 안지 마. 나 다 컸어. 문준 이때 아니면 언제 안아 보냐. 문준은 새미를 포옹한다. 새미도 포옹한다. 암전.
  •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앙상블/채기성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앙상블/채기성

    사실 경희를 만나려고 만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먼저 경희를 봤다면 나는 아마도 버스에 타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J가 그녀의 어머니를 논현동 게장 집으로 퇴근 시간에 맞춰 모셔 오지 않았더라면 굳이 몸을 구겨 가며 버스를 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경희를 만나고 나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체 탓에 긴 행렬로 이어진 차들 사이를 뚫고 버스는 간신히 일 차선으로 빠져나와 정류장 쪽으로 겨우 몸을 돌렸다. 출입문 앞 쪽까지 가득 찬 사람들의 무게를 견디며 몸을 늘어뜨리고 천천히 기어 오는 버스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일찍 나오지 그랬어.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내 문자에 대한 J의 회신에도 한숨이 생략된 것처럼 느껴졌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남들보다 도로 쪽에 위태로울 정도로 바짝 붙어 섰다. 버스 앞문이 열리기는 했지만 입구까지 막아서 있는 사람들을 어깨로 밀어내며 올랐다. 내 바로 뒤에서 어깨로 등을 떠밀던 한 남자는 문이 닫히지 않자 결국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낭패한 표정이 나에게는 왠지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버스 문이 겨우 닫혔다.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몰려들었지만 선택받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근래 들어 가장 운이 좋은 순간이었다.다음 정거장에서 앞쪽으로 몇 사람이 내리면서 문이 열렸다. 출입구 난간에 서 있던 나는 다시 사람들을 밀치고 버스 안쪽으로 올라섰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좁은 버스 출입구로 몰려들었지만 탈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 없었다. 출입구 쪽의 사람들에게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거기에는 퇴근 때보다 더 짙어진 어둠이 있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무표정하게 저마다의 핸드폰을 보며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버스 창에 반사되어 보였다. 차례로 사람들을 훑어보다 버스 중간 즈음에서 나처럼 창밖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낮은 조도의 등 아래에서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경희였다. 오래전부터 나에게 닿아 있었던 것 같은 무거운 시선. 사람들을 비집고 버스에 탈 때부터 나를 알아봤을 것 같은 시선. 아니면 그전부터. 우리가 서로 보지 않았던 시절부터 그래 왔다고 하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경희의 무겁고 오래된 시선에 사로잡혀 나는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무표정한 사람들의 흔들림을 사이에 두고, 경희와 나는 창을 통해 비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 내려도 되죠?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기사 쪽을 향해 몸을 치켜세웠다. 버스 기사는 대답이 없었다. 버스 앞쪽으로 끼어들어 미적거리는 차량 때문에 예민해졌는지 기사는 후미 등을 반복해서 껐다가 켜 댔다. 버스 기사는 앞쪽 출입문은 되도록 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앞쪽으로 내리는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줄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한두 명 탈 수 있는 공간이라도 타기 위해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이 몰리면서 어깨로, 등으로,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을 밀어냈다. 버스 기사는 혼잡을 피하기 위해 뒷문을 먼저 열어 사람들을 그쪽으로 유도한 다음 앞문을 열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뒤쪽이든 앞쪽이든 누군가 탈 만한 공간은 없었다. 일단 버스 앞쪽 난간에 매달린 다음, 문이 닫힐 수 있도록 까치발을 하고 몸을 앞으로 밀어대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위험하다는 기사의 만류로 내려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타겠다며 몸을 구겨 넣다가 버스를 출발조차 못 하게 만들었던 나를 경희가 봤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얼굴에 열이 올랐다. 고개를 쭉 뻗어서 경희가 있는 쪽을 보려고 했지만 그렇게 해서는 경희를 볼 수 없었다. 다시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 움직이지 않고 내게로 향해 있는 경희의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 경희를 마지막으로 봤던 것은 그녀가 독일로 떠나기 바로 전날이었는데, 그날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나는 경희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먼저 연락하지는 않았다. 매년 경희의 생일을 챙겨 온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때만큼은 그녀의 생일을 챙길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연락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경희였다. 독일로 떠나기 전에 꼭 나를 보고 떠나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러마 했다. 신용카드 연체 독촉 전화와 문자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외출을 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 됐다. 수개월간 회사의 급여가 체납된 끝에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다. 밀린 임금과 퇴직금이 언제 들어올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한동안 내지 못했던 월세 비용과 저축, 보험, 통신 요금의 더미에 묻혀 나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그 더미를 뚫고 나가 경희를 만나 웃으며 생일을 챙겨 줄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전혀 없던 것이었다. 그녀를 만나는 시간만큼이나 연체된 카드 대금이 불어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돈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커피 한 잔은 사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비참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오늘은 내가 살게.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을 먹고 나서 경희가 보통 그렇게 얘기하면 나는, 배우가 무슨 돈이 있어, 하고는 늘 그렇듯이 그녀보다 한발 앞서 호기롭게 계산을 하고는 했다. 정말 유명한 배우가 되면, 그때야말로 나를 잊지 말고. 그리고 내가 다짐하듯이 경희의 눈을 보며 얘기하면, 보통 그녀는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한 배우라는 말이 낯간지럽다는 듯이. 오늘은 내가 살게. 경희가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두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나서야 나는 옷을 챙겨서 나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늘 만나던 홍대입구 8번 출구에서 만나 경의선 숲길 쪽으로 걸어가면서 경희는 딱히 어디를 가자거나 뭘 먹고 싶다고 선뜻 말하지 않았다. 둘이 자주 가던,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듣기에 괜찮고, 또 무엇보다도 술이며 안주가 그리 비싸지 않은 익숙한 곳 몇 군데를 얘기해 봤지만 경희는 하나같이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면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와인을 마시고 싶어. 그럼 어디? 뭘 하고 싶은데. 그렇게 물으려던 참이었다. 와인. 경희를 따라 입 밖으로 뱉어진 단어의 모음 두 개가 허공에서 공허하게 떠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두 개의 원 안으로 와인이 무한대로 부어지고 있는 게 떠올려졌다. 경희와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함께 와인을 마셔 본 적이 없었다. 가자, 안 그래도 생일인데. 그건 비싸잖아. 사실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결국 나에게 향한 말일 뿐, 경희에게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경희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가지 않을 수는 없어 나는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와인과 곁들여져 나올 샐러드와 안주 같은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낼게. 와인을 다 마시고 나서 자리를 뜰 때 경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그저 작은 위안이 되었다. 경희가 그 말을 할 때면 아주 단호하고, 무엇보다 진짜 멋있어 보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좋아 보인다며 경희가 앞장서 들어간 곳은 이층짜리 주택을 개조해 만든 건물이었다. 그냥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건물 앞에 주차된 차들은 거의 대형 수입차 세단이었다. 광택이 도는 창문 안쪽으로 와인을 마시며 앞에 앉은 남자를 그윽이 바라보는 여자가 보였다. 푸른색을 띠는 롱 드롭 귀걸이가 여자가 웃을 때마다 흔들렸다. 거기 안쪽에 있는 여자와 양복을 입은 남자,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어쩐지 다른 세상의 사람들 같았는데 그래서 그 안쪽으로 들어간다는 게 여간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진짜인 사람들은 저기에 있는데, 여기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저기 있는데, 그 사람들을 따라 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사람처럼 스스로 여겨져서 그랬다. 와인을 좋아하는 줄 몰랐네. 경희는 그 말을 듣고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옷가지들을 풀지 않고 걸치고 있던 머플러를 더 조여 맸다. 춥기도 하고. 와인을 마시면 몸이 좀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고 경희는 익살스럽게 웃었다. 마음도. 그 말과 동시에 머금고 있던 웃음이 바람에 꺼진 촛불처럼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 순간, 경희의 표정은 차갑고, 두 눈은 아래쪽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일 것이라고 나는 직감했지만 그에 대해서 바로 묻지는 않았다. 경희는 나와 대화 중에도 반복해서 몇 번쯤 웃다가 다시 떠오르는 생각을 제어하지 못하겠는지 허공에 떠 있는 생각들을 겨냥한 채 눈을 겨눴다. 경희는 내가 한 말을 자주 놓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반복해서 물었다. 경희와 나 사이의 대화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계속 어긋나고 있었다. 딱히 서로에게 닿을 만한 대화가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건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내적 요구가 가장 큰 마음속의 것들을 꺼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경희가 와인 한 병을 더 마시자고 하기 전에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고, 경희는 와인을 마실 때마다 잔을 비웠다. 처음에는 와인 잔에 반쯤 따르던 나도 양을 삼분의 일로 줄였다. 와인의 건조한 습기가 그녀의 입술에 붙어 입술 틈 사이로 갈라졌다. 깊숙이 몸 안으로 채워 넣을 것이 필요한 사람처럼 경희는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잔으로 담은 붉은색 와인을 몸속으로 들이부었다. 미처 저어할 틈도 없이 경희는 추가로 와인을 주문했다. 경희처럼 단번에 와인을 마셔 버려도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그곳을 나올 때 경희보다 앞서 나오면서 신용카드로 결제한 금액이 이십오만 원쯤이었는데, 내가 낼게, 라고 경희가 나선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이 정도쯤 괜찮아. 내가 먼저 그렇게 얘기하자 경희는 고맙다는 말을 했다. 평소보다 돈을 더 많이 쓴 게 아니냐며 한 번쯤 얘기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나도 위로받고 싶다고. 와인을 마시는 내내 대화가 엇갈린 경희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마음속에서 웅얼거렸다. 내가 힘들 때도 타인을 챙겨야 한다는 모순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경희가 독일로 떠난 이후, 우리는 만난 적이 없었다. * 팔꿈치로 등을 짓이기는 듯이 세게 문질렀다가 신경질적으로 툭툭 치는 사람은 내 뒤에 서있던 중년의 여성이었다. 등을 마주 보고 서 있었는데 등을 찌르듯이 뾰족한 팔꿈치로 계속 찔러서 나는 최대한 여자의 등과 멀어지려 앞쪽으로 몸을 바짝 당기고는, 등을 활자로 폈다. 상대적으로 배가 앞쪽으로 들이밀어지는 바람에 이번에는 바로 앞에 서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흘겨봤다. 배를 살짝 집어넣자 다시 여자의 팔꿈치 찌르기가 계속됐다. 내가 앞쪽으로 바짝 다가설수록, 그렇게 해서 생긴 빈 공간을 여자가 오히려 좁혀오는 것 같았다. 앞 남자는 몸이 닿는 게 싫은지 어깨춤으로 나를 살짝 밀쳐냈다. 하는 수 없이 활자로 핀 등을 일자로 세우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의 날카롭고 뾰족한 팔꿈치와 닿았다. 왜 자꾸 밀고 그러냐는 여자의 거친 음성과 얼굴이 동시에 나에게 쏟아졌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내 쪽을 쳐다봤다. 저도 계속 밀려서요. 여자에게 따지려 들면 더 싸움이 날까 봐 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젊은 사람이 싸가지가 없긴. 여자는 그렇게 자기 말만 하고는 몸을 획 돌렸다. 결국 그 말을 타인, 상대방에게 던지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의도한 사람처럼 여자는 그 말을 던지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여자의 팔을 붙잡고 지금 뭐라고 한 거냐며 따지며 물었을 텐데 나는 일부러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저 뒤쪽의 경희도 여기를, 지금 나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여자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방어하는 내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었다. 버스에 탈 때부터, 여자가 팔꿈치로 나를 찌르고,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듣고 있는 순간까지 전부 그대로를 경희는 다 보고 있는 것이었다. 경희와 친구로 지내면서 보여 준 적이 없었던 민낯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만 있는 것 같았다. 버스에 타지 말았어야 한다니까. 나를 탓하는 목소리가 뇌에서 진동 주파처럼 반복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거기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아주머니. 경희의 목소리였다. 아주머니, 방금 뒤에 있는 남자한테 소리 지르신 아주머니요. 차들이 밖으로 늘어서 있었다. 옆 차선으로 옮기려는 차들이 켠 주황색 방향지시등이 깜빡이고, 좁은 틈 사이로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거나 끼어드는 차선을 막아서는 차들의 붉은 후미등이 헤드라이트 불빛과 뒤섞여 흔들리고 있었다. 여자는 사람들로 가려진 버스 뒤쪽을 고개를 돌려가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뭐야, 누구야. 방금 전의 격앙된 목소리보다 누그러진 신중한 목소리로 여자는 중얼거렸다. 그런 사람 아니라구요, 아주머니 옆에 있는 남자. 싸가지 없는 사람 아니에요. 김이 서리기 시작한 창 위로 희미하게 얹힌 도로의 풍경이 캔버스에서 흘러내린 물감들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만들어 낸 그림 같았다. 경희의 목소리가 내게는 비현실적으로 들렸기 때문인지 바로 앞의 풍경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뭐야, 누구야. 누군데 그래 지금. 여자는 연신 뒤쪽을 쳐다보다가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아줌마, 이제 조용히 좀 하세요. 여자 앞쪽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가 여자를 향해 말했다. 아니, 내가 괜히 그래요? 여자가 정색을 하고 남자를 내려 봤는데 동시에 여자의 목소리가 버스 기사의 욕설에 묻혔다. 버스 기사는 이제는 참기 힘들다는 듯이 운전석 옆의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버스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싸가지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뚫고 경희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사람들의 고개와 시선이 다시 버스 뒤쪽으로 향했다. 경희의 그 말이 귓속에서 울리더니 가슴으로 내려와 울렸다. * 경희와 만나지 않고 지내던 시간 동안 나는 딱 한번 그녀의 연극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을 시작했다며 한번 보러 오라는 문자를 받고 나서였다. 경희가 독일로 떠난 이후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언제 한국에 돌아왔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이후에도 몇 번쯤 경희가 먼저 연락을 해 왔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한동안 일을 하지 않고 있다가 다시 들어간 직장에서의 일이 절실하기도 했고, 그만큼 일상과 일과 중에는 일보다 중요한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책상 한쪽에서 진동으로 울리고 있는 휴대폰 액정 화면 위에 경희라는 이름이 몇 번인가 떠 있었고,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은 채 나는 그것을 무심하게 지켜보았다. 진동이 그치고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 매번 무표정한 내 얼굴 표정이 비쳐 보였다. 다시 전화가 오면 받아야겠다고, 아마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았다. 그러나 경희가 두 번 연속으로 전화를 하는 일은 없었다. 경희에게 연락도 없이 소극장으로 향한 건, 한 번도 그녀가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시작할 만큼 간절히 원하던 뮤지컬을 떠나 갑작스럽게 다른 장르의 무대로 간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 연극 무대에 선 경희가 어떤 모습인지 멀리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나는 애써 그녀의 변화를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그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독일로 그녀가 떠난 뒤로 내게 몇 번이나 연락했는지, 언제 연락했는지를 모두 세고 있었던 것처럼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회사 휴게실에서 커피를 내릴 때, 누군가 뒤에서 손으로 등을 짚을 때, 차를 운전하다가 커브를 돌 때 같은 평범한 순간들의 틈을 타고 떠올려지는 기억들이었다. 나랑 사귀자. 농담이라며 경희가 무심코 던진 말이 한동안 얼마나 나를 들뜨게 했는지, 처음 뮤지컬 무대에 선 그녀를 단순히 객석에서 바라보던 일이 그렇게나 떨릴 만한 일이었는지를 재차 묻는 것 같은 기억들이었다. 기억들은 금세 사라졌다가 다시 불현듯 나타났다. 그래서 경희와 멀어지기 위해서는 갖고 있던 기억들이 완전히 소진되어 떠올릴 거리가 없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한때 삶의 중심과 사건들을 나누고 공유했던 경희와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이상할 것도 없었다. 어떤 시절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관계의 인과와 고리가 있는 것일 뿐이고, 우리는 지금 막 그 인과를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완전히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그 힘에 저항하는 관습과 기억의 뜨거운 층위를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경희의 연극을 보러 온 것은 그런 생각의 연장이었다. 연극 무대에 선 경희를 확인하면 끝내 그 층위를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내가 그 기억들의 저항에 설득되었기 때문이었다. 중년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된 연극의 삼분의 일이 지나갈 무렵까지도 경희는 무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진한 화장을 하고 등장한 중년 남자의 딸이 경희일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중년 남자의 내연 관계인 직장 후배도 아니었다. 극의 중반 즈음을 지나서 등장한 중년 여성이 경희였다. 앞서 등장한 여성들이 모두 경희가 아닐까 생각했던 탓인지 중년의 여성으로 나타난 경희가 뜻밖에도 낯설게 느껴졌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게 분장을 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동안 경희가 뮤지컬에서 맡아 왔던 역할들에 비하면 지나치게 정적으로 보였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와 유행이 지난 옷들을 차려입은 그 역할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중년의 역할은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적정하게 소화해 낼 수 있는 게 아니냐며, 연극이 끝난 후에 찾아가 경희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런 나이가 되면 말이야, 표현하지 않으려 해도 연기가 자연스러워질 텐데 굳이 왜. 나는 경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거기까지 떠올리다가 멈췄다. 넌 내 말을 들은 적이 없지. 정작 내가 경희에게 하고 싶던 말은 그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사실은 그 말 안에 내가 경희를 미워하는 감정이 얼마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 감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이상하게도 경희가 독백을 할 때마다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일부러 무대 뒤편으로 자리를 잡아 놓기도 했고, 소극장이지만 그래도 무대 조명이 밝아서 어두운 객석의 사람들을 쉽게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음에도, 경희의 시선이 내게로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경희를 외면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 그때 혹시 말없이 소극장을 찾아가 공연을 보고 있던 나를 경희가 알아봤는지, 그리고 그녀가 뮤지컬에서 연극무대로 전향한 이유 중에 어떤 것을 먼저 물어볼지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경희네가 했던 연극 공연을 보러 갔었다고, 차라리 그렇게 말을 시작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경희는 알아, 혹은 그랬어? 그렇게 둘 중에 하나로 대답하고, 나는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먼저 알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다시 관계가 시작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145번 버스는 여전히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정체가 심한 신사동 고개에서부터 가로수길 입구를 거쳐 신사동 사거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차들이 어지럽게 엉켜 있었다. 신사동 고개에서 정차했다가 출발한 버스는 그나마 정체가 덜한 좌회전 차선으로 옮겨 갔다가, 신사역이 가까워오자 사 차선에서 일 차선으로 한 번에 가로질러 갔다. 그사이 각 차선에 겹쳐 있던 차들 몇 대가 신경질적으로 클랙슨을 울려 댔다. 버스 기사의 거친 운전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리에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사람들 모두 금요일 퇴근길의 정체가 지겨운 표정이었다. 이번 정류장에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과 앉으려는 사람, 내리기 쉽도록 문 옆으로 가 있으려는 사람들이 뒤섞이는 동안 사람들에게 밀려났는지 경희의 모습은 창에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느릿하게 가는 동안 나는 자주 버스 뒤편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의 등과 머리 사이 틈새 어딘가에 경희가 목에 두른 파란색과 검은색 도트 무늬가 새겨진 스카프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버스는 신사역 정류장 바로 앞에 차를 대지 못하고, 조금 미치지 못한 곳에 정차한 상태에서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앞 뒤 문 밖으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내리려는 사람들을 먼저 비집고 들어가 버스 뒤편으로 향했다. 이제는 텅 비다시피 한 버스를 아무리 찾고 둘러봐도, 경희는 없었다. * 아마도 신사역에 도착하기 전이나 아니면 그보다 전 정류장에 내렸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혹 다른 사람을 경희로 착각한 것이 아니었는지 의심도 해 보았지만 그건 분명히 아니었다. 그렇게 깊고 말간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은 경희밖에 없었다. 화가 렘브란트는 자신의 연대기에 따라 자화상을 그려 냈는데, 청년기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은 비록 달라졌어도 눈빛만큼은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진다. 육체는 사라져도 눈빛만큼은 영겁의 시간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는 한눈에 경희의 눈빛을 알아볼 수 있었다. 경희의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해도 눈빛 하나로 그녀를 구분해 낼 자신이 있었다. 그녀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 창을 통해서였지만 서로를 알아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랬으므로 버스에서 내려 신사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집에 도착해서도, 날이 지나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며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그녀가 있었으나 사라졌던 자리와 음성을 지우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있었다. 몇 번쯤 핸드폰을 들고 경희의 연락처를 훑다가 말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멈추고를 반복했다. 갑자기 사라진 그녀에게 집중되는 생각의 관성이 오히려 나 자신을 괴롭힐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버스에서 경희를 만나기 이전으로 그저,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그녀와 연결된 세계에 살고 머물게 될 것이었다. 그녀와 단절된 삶으로서의 세계. 그것이 내가 원하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그날의 일을 기억 속에서 정리하기로 했다. 버스에서의 만남과 기억에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버스에서 경희가 사라진 이유도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음먹은 대로 경희가 정리가 된 적은 없었다. 삶의 어디선가 경희는 꼭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145번 버스에서처럼. 전우영씨죠. 굵고 낮은 목소리 톤을 가진 한 남자의 전화를 받은 것은 내가 어느 정도 경희에 관한 일을 어느 정도 잊고 있을 때였다. 회사 연수원에서 승진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받다가 밀려오는 졸음 때문에 잠깐 교육장을 나와 라운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때였다. 그렇습니다만. 차경희씨의 오랜 친구라고 들었습니다. 남자의 입에서 경희의 이름이 불려졌을 때, 그녀를 생각지 않고 지내던 시간들은 금세 증발되고, 애써 한쪽에 치워 놓고 쌓아 두려 했던 경희의 기억들이 눈앞으로 함몰되어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자의 음성에서 느껴진 알 수 없이 무겁고 감당하지 못할 어떤 예감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남자가 전한 것은 경희의 죽음이었다. 그저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우영씨가 가장 친했던 친구라고 해서요. 마지막에 경희는 우영씨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지만요. 제가 대신이나마 한번 만나 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남자의 무거운 목소리는 내 무의식의 심연보다 깊어 그곳에서 나를 끌어내리는 소리 같았다. 온 힘을 다해 끌어내리는 목소리. 반드시 나를 만나야만 한다는 의지와 무게로 나의 목을 끌어안는 목소리였다. 그건 그래서 남자의 목소리라기보다 내 목소리인 것 같았다. 남자를 통해서라도 경희를 알아내야만 한다는 목소리. 그런데 혹시, 전화를 주신 분은 누구시죠. 아, 제 소개를 하지 않았네요.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다듬었다. 경희의 소식이 믿어지지 않았으므로 나는 섣불리 어떤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남자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반쯤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저는 김재철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굵은 톤으로 지금까지의 조심스러운 말투와 다르게 기운차게 자신을 소개했다. 남자의 이름이 상당히 낯익다는 생각이 들어 기억 속 어딘가 존재하는지 떠올려 보고 있었는데, 남자가 이어 꺼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경희와 같은 배우였습니다. 뮤지컬을 오래 같이 했습니다. *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지만 나는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남자의 얘기를 듣고, 동창들이나 친구들을 수소문해 경희가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을 찾아갔다. 그리고 근 한 달 동안 계속 술을 마셨는데 그때마다 경희에 대한 모든 사소한 기억까지 기억해 내려고 애를 썼다. 경희에 대한 기억을 꺼내면 꺼낼수록 그 기억들의 중심에는 어떤 죄책감이 놓여 있었다. 그녀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기억들을 끊어 내려 했던 죄책감을 희석시키고자 나는 끊임없이 그녀의 기억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이상했던 것은, 오 개월 전에 이미 떠난 그녀가 어떻게 불과 이 개월 전에 버스 안에서 나를 마주칠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면서도, 출근을 하면서도 서류 더미 위로 떠올려지는 그 물음에 대해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본 것은 경희, 차경희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남자에게 먼저 연락을 한 것은 그 일에 대해 한 번쯤 말해 보고 싶어서였다. 내가 본 것이 경희에 대한 일종의 환영이었는지, 아니면 착시였는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고백하자면 내가 그녀에게 갖게 된 어떤 죄책감이 버스 안에서의 기억과 강하게 밀착되어 내게서 한시도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음이 괴로워서였다. 남자는 예상대로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경희가 했던 한 뮤지컬 공연에서 수도 없이 그녀를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리던 상대 남자 배우. 남자는 그때처럼 팔 근육이 여전히 우람했다. 콧수염뿐이었던 수염이 턱 밑까지 깊고 거칠게 길러져 있었다. 더 달라진 게 있다면 한데 묵어 허리까지 내렸던 긴 머리를 잘라내 버린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들어 올리기 쉽도록 해야 한다며 경희 스스로 다이어트와 금식을 하면서 몸무게를 조절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히 버스 안에 있었던 겁니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남자는 경희가 버스 안에 있었던 게 분명하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버스에 없었던 게 아니구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어긋난 겁니다. 그런 일이 종종 있어요. 과거의 시간에 놓여 있던 어떤 순간의 지형이 어긋나거나 뒤틀려서 현재의 시간 어딘가에 다시 배치가 된 겁니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우영씨가 본 건 경희가 맞아요. 그럼, 시간의 잘못된 인과다? 그렇다기보다 찢어 붙이기 같은 거죠. 저쪽 시간에서 잘못 끼워진 시간이 현재의 어떤 시간에 다시 조합된 거예요. 껴 맞춰진 거죠. 그런들 어쩔 수가 없어요. 그건, 시간이 하는 일이니까. 깨진 거울의 한쪽 면에 새 거울 조각을 맞추듯이. 가급적 오류를 그런 방식으로 해결해 가면서, 되도록 완벽한 시간성을 구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그러나 모든 것들을 통제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니 우영씨가 본 건 그와 같은 통제에서 벗어난 시간의 왜곡으로 일어난 일이다, 이겁니다. 이 세상에 없는데도 나타날 수 있는? 내가 반문하자 남자는 한쪽 눈으로 윙크를 하며 한 손으로는 엄지와 검지를 ㄴ자로 만들어 나를 쏘는 흉내를 냈다. 쿨.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내가 경희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언젠가부터 그림자처럼 그녀 곁에 붙어있는 남자가 같이 떠올려졌다. 그 남자에 대해 아직도야? 그렇게 물으면 경희는 다른 얘기를 하고 싶어 했다. 왜 대답을 안 해? 그렇게 다시 경희에게 물으며 본론으로 돌아가면, 네가 싫어하잖아. 경희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 깊고 비어 있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런 대화는 경희와 만날 때마다 반복이 됐다. 나 역시 경희가 싫어할 것을 알면서도 그게, 매번 집요하게 그 남자에 대해 물었다. 그 사람. 그 사람 뭐? 취기가 볼에 붉게 오른 경희의 오른쪽 눈가가 엷게 떨렸다. 이런 얘기를 더 이상 주고받고 싶어 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 사람 만나러 가지 말라고, 독일에. 독일로 떠나기 전 만났던 그때를 생각해 보면 그래서, 내가 잔인하게 느껴졌다. 언제까지 아내가 있는 사람을 만날 건데, 너. 그래도 그 정도는 늘 경희에게 하는 얘기였으니 어쩌면 거기까지만 말하고 멈췄어도 괜찮을 법했다. 경희는 내가 연이어 던진 말을 듣고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것 같았다. 너는 그 사람의 아내까지 망치려는 거야. 그때, 경희에게 그렇게 소리치며 화를 내고 짜증스럽게 말한 게, 오랜 실직 상태로 지쳐 있던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는지, 아니면 정말 경희가 나의 상태와 상관없이 자신의 생일만 챙기려 드는 것 같다고 여긴 것 때문이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건 내가 오랫동안 그녀의 편이 돼주기보다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며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어쩌면 경희는 내가 자신을 혐오스럽게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에게 실망하며 마음을 닫아 버리려 노력했던 나와 달리, 이제는 세상에 없는 경희에 대해서도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남자에게서 나는 어떤 종류의 패배감을 느꼈는데, 자세히 그 감정을 살펴보니 더 깊은 안쪽에는 경희에 대한 부채의 감정이 거기 머물러 있었다. 나를 실망스럽게 쳐다보는 것 같은 경희의 얼굴처럼. * 경희는 그즈음 자주 뮤지컬계를 떠나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그럴 때마다 그렇게 사랑하는 뮤지컬을 떠날 수 있겠냐고 농담조로 말하면 경희는 별 말없이 허공을 쳐다보고는 했다. 그제야 그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있다는 듯이. 더 큰 박수를 받는 건 주연급뿐이잖아. 그래서 경희가 그렇게 덜컥 그 얘기를 꺼냈을 때, 정말 그녀에게 뮤지컬에 대한 권태로움이 심각하게 찾아왔구나 싶었다. 경희는 수년째 뮤지컬 무대에서 코러스와 춤을 뒷받침하는 앙상블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했기 때문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출연 배우들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박수를 받는 주연의 뒷모습을 같은 무대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고 했던 그녀였다. 주연에게 기립 박수를 치는 사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처럼 경희가 말했을 때, 경희에게는 뮤지컬을 더 이상 할 수 있는 어떤 동력도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주연을 맡는 사람은 따로 있더라고. 경희의 그 말이 내게는 인생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될 일은 없는 것 같다고 토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자조 섞인 말투로 뮤지컬을 떠나야 하는 이유들을 말하던 끝에, 경희는 그 남자, 김재철이라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는 최근에 막을 내린 뮤지컬에서 경희의 파트너 역할을 했던 남자 배우라고 했다. 경희의 뮤지컬을 빠지지 않고 보던 나에게도 익숙한 남자 배우였다. 한데 묶은 긴 머리와 양 팔의 근육을 드러낸 화려한 의상을 입고 경희와 호흡을 맞추던 강한 인상의 그를 나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무대에서 경희를 몇 번씩이나 어깨 위로 들어 올리고, 경희의 두 손만을 잡고 몸을 쭉 뻗은 경희를 회전시키는 등의 고난도 동작을 소화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남자가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은 서울 공연이 끝나고 시작한 지방 투어 때, 회식이 끝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기 전, 자신에게 입맞춤을 하고 난 다음에야 알았다고 했다.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을 돌리기에는 그때는 이미 늦었었다고 경희는 고백했다. 경희는 남자의 아내가, 그 공연을 주최한 뮤지컬 회사의 안무가라는 사실은 남자와 조금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한 후에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남자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경희는 매일 남자와 공연 연습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묘해. 경희는 남자와 남자의 아내 앞에서 연습을 하고 있던 순간을 그렇게 묘사했다. 미쳤어?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듯이 경희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아내와 나를 부서질 정도로 사랑하는 남자 사이의 중심에 내가 있는 거잖아. 그런 셋을 단원들이 바라보고 있고 말이야. 너와 남자의 관계를 단원들이 알아? 아내도? 알고 있는 것 같아. 경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가 이 극의 주인공이야. * 경희가 뮤지컬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이 한정된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뮤지컬에 대한 권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남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경희를 버스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먼저 그 이유를 묻고 싶었었다. 사실 나는 경희가 뮤지컬을 떠난 이유보다 남자와의 관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지를 묻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걸 더 궁금해할 것이라는 것을 경희는 아마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버스에서 사라진 걸까. 나는 오래 경희의 곁에 머물러 있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의 편에 서있던 순간들은 많지 않았다. 내가 경희에게 던지고 싶던 질문들은 그래서 수거되어야 할 것들이었다. 더 이상 경희에게 닿지 말아야 할 것들이었다. 퇴근 시간 무렵 145번을 탈 때면, 발뒤꿈치를 들고 버스 안쪽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가만히 서서 고개만 돌려가며 사람들 사이 틈으로만 봐서는 경희를 찾아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어 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경희를 다시 만난다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함께 춤을 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버스 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편을 들어 주는 경희의 목소리가 가끔 환영처럼 들렸다.
  • [길섶에서] 시간이란 것/손성진 논설고문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것이 시간이다. 시간은 자꾸 물러선다. 시간을 헤치며 산다고 생각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물러난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이 지금 뒤로 향하고 있다. 시간 한 장이 책갈피처럼 또 넘어간다. 시간을 읽은 책처럼 모아둘 수만 있다면! 한쪽의 책갈피를 넘기더라도 언제든 뒤로 넘겨볼 수 있다면! 시간은 태어나면서 받은 연금이다. 몇십 개 남지 않은 시간이란 연금을 또 빼먹었다. 잔고는 자꾸 줄어드는데 얼마나 남았는지에 무감하다. 시간은 빛과 동의어다. 한순간 명멸하고는 사라져 버리는 빛. 손으로 쥘 수도 없고 언젠가 암흑으로 바뀔 수 있는 빛. 시간은 있는 듯 없는 듯, 허공의 빛처럼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래서 시간, 세월은 허무한 것일까. 시간을 붙잡는 일. 존재를 알 수 없는 시간을 느끼는 일. 새해에 할 일이다. 순간의 가치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겠다. 매 순간 열심히, 즐겁게 살 일이다. 그러면 시간이 물러나는 속도를 조금 조절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책갈피가 다 넘어갔을 때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허무가 아니라 몰입했던 책처럼 지난 시간을 기쁘게 꺼내 읽을 날을 기다리며.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