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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장공비 침투­정부의 외교적 대응

    ◎유엔총회서 안보차원 대북 압력 모색/미·일 등 주변국과 도발­경원 연계 논의 정부는 북한이 18일 대규모 무장공비를 침투시킨 사건은 중대한 무력도발이라고 판단,국제사회에서의 외교적 대응도 모색하고 있다.정부의 주요한 외교적 대응은 유엔과 한반도주변의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을 상대로 이뤄지게 된다. 정부의 대응수위는 이번 무장공비사건의 성격에 따라 크게 좌우될 전망이다.무장공비의 남파가 테러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 판명난다면 정부는 매우 강경한 대응을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우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북한의 호전적 행위를 보고하고,국제사회가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질타와 압력을 행사하도록 유도한다는 복안이다.외무부는 이와 함께 오는 27일 공로명 외무부장관의 제51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당부할 예정이다.이번 사건과 같은 도발을 막기 위해서도 4자회담이 필요하다고 강조할 방침이다.존 틸럴리 주한유엔군사령관의 안보리에 대한 특별보고서등도 검토되고 있다. 유엔을 통한 외교적 대응은 다분히 명분축적의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실제로 북한에 대한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한반도주변 4국이기 때문에,이들 나라를 상대로 하는 대화도 매우 중요하다.24일부터 시작되는 공로명 장관의 유엔총회 방문기간중 네 나라 외무장관과의 회담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미국은 이번 사건을 가급적 축소하고 싶어한다.오는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미국의 민주당정부는 가급적 북한을 자극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정부는 미국측에 북한을 일방적으로 달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북한측의 도발과 식량지원·경제제재 완화 등 무리한 요구에 대해 확실한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할 방침이다.따라서 앞으로의 한·미간,혹은 한·미·일 3국의 고위정책협의회에서는 단순히 4자회담의 성사나 「연착륙」 유도를 넘어서는 보다 폭넓은 대북정책공조방안이 논의될 수 있을 것 같다. 공로명 장관은 유엔에서 전기침 중국,프리마코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의 안정유지라는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압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북 강경파 득세… 남북관계 먹구름/대북 경협 축소 상응조치 불가피/민간단체 지원활동도 위축될듯 북한 무장공비의 침투는 안 그래도 좋지 않던 남북관계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최근 북한은 나진·선봉투자포럼에 우리측을 선별초청,사실상 참가를 무산시켰고 북한적십자회를 통해 비전향장기수 출소자인 김인서노인을 송환하라고 거듭 정치공세를 펼치는 등 긴장국면을 조성해왔다.또 북·미간 대화에 우리측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정부는 남북관계의 기조에는 변함이 없음을 거듭 밝혀왔으며 북한이 적십자회담 재개 및 4자회담 수용 등 대화에 나서기를 기다려왔다.또 경제인을 통한 경협활동도 꾸준히 계속해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이제까지 있어온 소규모 도발과는 달리 대규모의 무장침투사건이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특히 이같은 무장침투도발이 북한내 군부와 공안당국 등 강경파세력이 주도한 것으로알려져 우리측의 대북경계심과 맞물려 당분간 남북관계의 악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한 북한관계자는 『북한의 대외개방파와 강경파의 알력다툼이 감지되고 있다』면서 『이번 무장공비사건이나 나진·선봉투자포럼에 남한을 배제시킨 것은 북한내 강경세력의 주장이 세를 얻은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그는 무장공비침투로 우리 국민감정이 좋지 않아졌고 남북긴장관계 조성으로 체제붕괴를 막기 위한 북한내 군부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진 만큼 단기적으로는 남북관계가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정부도 19일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이번 무장공비사건을 심각한 정전협정위반사건으로 규정,단호히 대처키로 의견을 모았다.일부에서는 대북경협 축소 등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라는 요구도 있었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의 침투동기·목적이 확실히 드러나면 적절한 수위의 대응책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북한의 테러공격의도가 분명하다면 외교적 조치 이외에도 대북경협 축소 등 가시적인 조치도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그러나 무력도발에 대해서는 강경한 방침을 천명하고 있지만 유엔을 통한 식량지원과 적십자등 우리 민간단체의 인도적 지원활동은 자율에 맡긴다는 방침이다.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민이나 기업의 대북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의 경협이나 인도적 지원활동은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따라서 단기적으로는 남북관계의 악화는 불가피하며 또 기업의 대북투자 분위기도 시기가 미뤄지거나 위축될 것으로 북한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 이 북한 어떻게 해야 하는가(박화진 칼럼)

    『이 북한을 정말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탄식의 소리를 금할수 없다.인내를 거듭하는 우리의 끊임없는 선의와 화해·협력노력에도 불구하고 북은 그것을 외면할 뿐아니라 배신과 악의로 응답하고 있지 않은가.비웃고 즐기며 마음껏 악용하고 있는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떨칠수 없다. 나진·선봉투자포럼에 한국기업도 초청했다가 선별초청으로 배신하고 우리정부가 참여를 거부하자 『앞으로 한국과는 대화를 않겠다』(대외경제협력위원장 김정우)는 적반하장의 책임전가로 나오더니 곧바로 『한국기업인들만을 상대로 설명회를 갖겠다』(대외경제협력위 홍콩연락사무소대표 원호영)는 엇갈린 행태를 보이던 북한이다.그러면서 동시에 잠수함까지 동원한 대규모 무장공비침투를 시도하고 있었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악의의 북한을 상대로 선의의 화해와 협력노력을 계속해야 하는가,깊은 회의를 느끼지 않을수 없게 된다.우리는 그동안 북한의 각종 도발에 대해 지나치게 관용으로만 대해온 것이 아닌가.분쟁을 두려워만 해온 것은아닌가.결과적으로 북으로 하여금 우리를 얕잡아보고 그들 마음대로 도발을 일삼을수 있게 하는 나쁜 버릇을 우리 스스로 길러준 측면은 없는가.반성할 필요성을 심각히 제기하는 사건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작년 여름 제주·임진강 간첩침투,지난 4월 비무장지대 도발,고정간첩 깐수,안승운 목사 납북,최근 드러난 한총련 배후조종 등 북의 안하무인적 대남침투·파괴·분열공작이 계속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북한에 대해 이렇다할 보복다운 보복·제제조치 한번 제대로 가하지 않았다.제재는 커녕 인공기 게양과 선원억류의 뺨을 얻어 맞어가며 식량을 제공하기까지 했다.일방통행적 선의와 가능한한 곤경의 북한을 자극치않고 개방·개혁을 통한 화해·협력의 관계개선에 나서도록 유도해 보겠다는 배려에서였다. 그러한 선의와 배려가 북에는 전혀 통하지 않고있음을 최근의 북한행태와 이번 무장공비 침투 등은 보여준다.과거 남북화해의 제스처를 보이며 동시에 남침땅굴을 구축하는 것 등에서 보았듯이 우리의 선의를 역이용하고 있다.귀순탈북자 증언등에 따르면 저들은 지금 당간부들에게 『남한사회는 패배주의적 사고에 젖어있어 대포 한방이면 혼란에 빠질 것』이란 교육까지 하고있다는 것이다. 선의에 입각한 우리의 유화정책이 이처럼 오해·악용 당하고 있다면 그에대한 보완책을 조속히 강구해야 하는것은 너무도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우리는 그동안 완강히 거부하는 북의 개방·개혁과 관계개선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의 제한성에 큰 어려움을 겪어온 것이 사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싫어도 나오지 않을수 없게 만들수 있는 수단과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인가.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우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범국가적 단합이다.한총련사태와 같은 이적의 국론분열이 더이상 용납되어서는 안될것이다.그 기초위에서 북한의 「사이버(가상)적」 도발가능성을 너무 두려워말고 강·온양면의 확고한 정책을 주도적으로 융통성있게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선의의 호응에 대해선 반드시 이익의 당근을 주고 악의의 역이용에 대해선 철저하고 단호한 불이익의 채찍을 꼭 가해야할 것이다.「북한 길들이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정부의 나진·선봉 투자설명회 한국기업 불참결정이나 비전향장기수 김인서 노인 송환거부 등의 정책결정은 작지만 바람직한 채찍이라 할수있다.17일 개막된 유엔총회와 안보리 등을 통해 북의 시대역행적 침략행위를 규탄하는 것도 북으로선 달가울수 없는 채찍이 될 수 있다.보다 중요한 것은 화해·협력 거부와 대남도발이 결국은 그들에게 현실적인 불이익을 안겨준다는 것을 보여주는 채찍정책의 추구다.협력할 경우 큰이익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당근정책의 추구와 당연히 병행돼야 할 것이다.대북배상과 연계된 일기업의 대북투자 저지 등 미·일·중·러 상대의 채찍외교도 적극 전개할 필요가 있다. 나진·선봉투자의 경우도 우리가 빠지면 성공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우리기업들도 이익의 가능성에 너무 연연하는 경쟁을 지양하고 정부와 적극 협력하는 의연한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외국기업들의 나진·선봉투자를 비롯한 북한경제에의 관심은 결국 한국경제의 보증적 존재를전제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우리의 동의가 없는 외국정부나 기업들의 이제부터의 대북차관이나 투자 또는 부채에 대해서는 만약의 불행한 사태 발생경우 책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선언도 북한에 대해선 위협적인 채찍이자 지렛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김인서 노인 송환/한적,북 요청 거부

    강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17일 북한적십자회 이성호 위원장대리에게 전화통지문을 보내 비전향장기수 출신 출소자 김인서씨(70)를 송환해 달라는 북한측의 요청을 거부했다.
  • 밀입북 대학생 대남 선전도구 이용/유세홍·도종화씨 친북활동 계속

    ◎한총련사태와 연계 비난전 가속 북한에 밀입북한 한총련 학생대표 유세홍군과 도종화군이 당분간 귀환을 시도하지 않고 북한에 머물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지난 8월10일 한총련 남측대표로 한총련이 서울에서 주도하는 「제6차 청년학생 통일대축전」에 북측대표를 영접하기 위해 밀입북했다.이들은 지난 8월15일 판문점을 통해 1차귀환을 시도했다.당국에서는 이들도 과거 밀입북한 학생처럼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난 후 판문점이나 제3국을 통해 귀환할 것으로 예상했다.북한측도 충분히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후 이들을 남으로 보낼 작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울 연세대 한총련 좌경폭력시위가 국민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우리 정부가 좌경세력을 뿌리뽑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내자 북한측은 대대적인 비난과 선동공세를 강화했다.밀입북 학생들이 귀환을 연기한 것도 북한당국의 선전공세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남공세강화의 일환으로 최고인민회의 양형섭이 「조평통」부위원장 명의로 발표한 담화를 보면 한총련의 행동을 「통일애국의 충정」등으로 정당화하면서 우리 정부의 한총련사태 강경진압과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남북대결선언으로 규정하고 있다.이러한 상황에서는 남북간에 그 어떤 대화나 화해가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이 우리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 비난과 투쟁선동의 강도를 더욱 높이고 있는 것은 한총련의 연세대점거·폭력시위가 국내외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자 이같은 소요사태를 확대·연장시켜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국자는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지난 8월12일 강영훈 대한적십자사총재가 북적에 대해 이산가족재회를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재개하자는 제안을 거부했다.오히려 느닷없이 비전향장기수 출신 출소자인 김인서씨(70)송환문제를 들고 나와 쟁점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의도를 보였다.즉 북한은 김씨 송환문제가 불가능할 때는 마치 한국정부가 비인도적인 것처럼 국제적으로 비방중상하려는 것이었다.이미 북한측은 우리가 93년 인도적 차원에서 송환한 이인모 노인을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와 북한체제 선전에 철저하게 악용했고 올해 치료목적으로 뉴욕까지 보내 김정일선전도구로 이용하기도 했다.우리 정부가 김씨의 송환불가입장을 밝히자 북한은 간병을 위해 의료진과 북에 살고 있는 김씨의 두 딸을 파견하겠다고까지 역공세를 펼치고 있다. 결국 북한이 밀입북한 도군과 유군의 귀환을 미룬 것이나 김씨의 송환요구,연일 대남비방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한총련 폭력좌경시위사태를 남한사회의 국론분열이나 사회혼란조성에 이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또 북한의 식량난등 대내적인 불안을 무마하기 위해 주민통합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당분간 한총련사태와 도종화·유세홍군을 내세운 대남비난선동을 계속해 나갈 것으로 북한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미 밀입북한 유군과 도군은 입북 직후 김일성동상에 꽃다발을 증정하고 그의 영생을 기원했으며 지난달 30일 평양 만수대의 애국열사릉을 방문,「인민을 위한 투쟁은 조국과 더불어 영원한다.선배들이 간 길을 따라 끝까지 투쟁하리라」는 방문록을 남기는 등 친북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 나는 중고차 사서 500만원 벌었다(새로 나온 책)

    ◎자동차 1천만대 시대 중고차 고르기 “총정보” 지난 85년 1백만대를 돌파한 국내 자동차 수가 올들어 9백만대를 넘어섰다.자동차는 이제 더이상 부와 신분의 상징이 아닌,생활을 위한 실용품이 된 것이다.자동차가 실용적 도구라면 그것은 마땅히 경제적이어야 한다.경제성의 원칙을 배반한다면 자동차는 존재가치를 잃는 셈이다. 최근 출간된 「나는 중고차 사서 500만원 벌었다」(도서출판 부키)는 자동차에 대해 철저한 「비용­편익 분석」을 함으로써 중고차가 새 차보다 여러모로 경제적임을 밝혀 관심을 끌고 있다.저자는 출판기획가 박재홍씨(36). 지금까지 중고차에 관한 정보는 자동차 잡지나 PC통신 등에서 단편적으로로 소개된 것이 고작이었다.때문에 대부분의 중고차 구매자들은 뚜렷한 판별기준 없이 자동차를 선택해 피해를 입기 일쑤였다.「나는 중고차…」는 이런 점을 감안,중고차의 구입 및 관리요령·자동차 구조에 대한 기본지식 등을 폭넓게 다뤄 일종의 자동차 재테크 책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꾸몄다. 특히 중고차를 고를때 반드시 점검해야할 사항들을 조목조목 다루고 있어 주목된다. 자동차를 구성하는 부품은 모두 2만 5천개가 넘는다.하지만 이 가운데 주요한 기능은 달리고,멈추고,방향전환을 하는 데 쓰이는 것들이다.지은이는 우선 중고차를 고르는 요령으로 엔진 오일을 비롯한 각종 오일류,디스크,라이닝,타이어,배터리,발전기,점화 플러그 등 소모성 부품에는 신경을 쓰지 말 것을 권한다.대신 엔진,조향장치,동력전달장치,제동장치,프레임 등 반 내구성 장치와 부품에 보다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모성 부품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어차피 바꿔야 하는 것이지만 반 내구적인 부품에 문제가 생기면 그야말로 「생돈」이 날아가게 된다는 것. 자동차의 실용성을 강조하는 이 책은 뜻밖에도 차의 도장상태,곧 외관의 중요성을 역설한다.자동차 표면에 칠하는 도료는 단순히 멋을 내기 위한 페인트가 아니라 소음방지 기능과 사고차 여부를 판단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차의 색깔 특히 보닛부분의 색깔이 다른 부분과 뭔가 다른 것은 일단 사고차로 간주해야 한다는 게 지은이의 설명이다. 차의 외양을 확인한 후에는 알루미늄 휠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지 눈여겨 봐야 한다.중고차의 경우 알루미늄 휠의 정상 여부는 안전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점검해야할 것은 서스펜션이라고 불리는 현가장치의 이상여부.이 작업은 차체 전체가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현가장치는 단순히 승차감에만 관계될 뿐 아니라 주행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지나치게 소음이 심하거나 좌우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그 차는 포기하라는 것이 지은이의 충고. 이밖에 이 책은 중고차·신차 가격일람,비상사태시 자동차 진단법,자가 운전자를 위한 자동차 상식 등 다양한 내용을 부록으로 실어 실용서로서의 할일를 다하고 있다.
  • 적십자회담부터 받아라(사설)

    대한적십자사는 지난 12일 이산가족재회와 북한의 홍수피해극복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재개를 북한측에 제의했고 우리는 순수한 인도주의와 동포애를 바탕으로 한 이 제의를 북한측이 흔쾌하게 받아들일 것을 촉구한 바 있다.그런데도 이 제의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던 북한적십자회가 30일 느닷없이 비전향장기수였다가 출소한 김인서노인의 송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앞뒤가 뒤바뀐 일방적이고 도발적인 요구가 아닐 수 없다.북한당국이 김노인의 송환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먼저 남북적십자회담재개를 수락하고 이 회담에서 논의해야 할 것이다.김노인도 이산가족의 한사람인 만큼 적십자회담에서 그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당연하고 합리적이기 때문이다.우리 정부는 93년 비전향장기수이던 이인모노인을 인도적인 입장에서 북한으로 돌려보낸 바 있다.북한당국은 김노인도 조건 없이 돌려보내주기를 바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사정이 다르다. 대한적십자사가 남북적십자회담재개를 제의해놓은 상황이므로 그것을 우선 받아들이는 것이 순서다.그런데도 순서와 절차는 무시한 채 느닷없이 일방적인 요구만 내세우고 있는 북한당국의 도발적 자세를 우리는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김노인의 송환요구에 저의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우리의 적십자회담제의에 호응해야 한다. 이 회담이 열리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쪽은 북한이다.북한은 지난해와 올해의 홍수로 최악의 식량난에 직면해 있다.지금 우리 종교계와 민단단체들은 북한동포를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정부도 추가식량제공을 포함,대북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때문에 북한당국이 적십자회담에 진지하게 응해온다면 식량난은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우리는 본다. 현단계의 남북관계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대화를 통한 신뢰회복이다.이를 위해서도 적십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는 바람직하다.북한당국의 호흥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 민간대화 재개… 남북협력 다리놓기/대북적십자회담 제의 배경

    ◎수해지원 메시지… 북 변화 유도/“이산가족 더 미룰수 없다” 적극해결 의지 강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12일 조건없는 남북적십자회담 재개를 제의한 것은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우리측 정부와 민간의 합치된 의지를 구체화한 것이다. 여기에는 공신력 있는 민간단체간의 대화를 재개해 당국자간 대화 분위기를 조성해 보겠다는 정부의 희망도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강총재의 이날 대북 성명은 명분과 실리 모두를 겨냥하고 있다.즉 이산가족 문제 해결이 인도적 차원에서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된다는 당위론과 함께 이 문제 논의 과정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는 실리적 측면이 함께 고려된 것이다. 남북적십자회담은 지난 71년 8월부터 25년간 1백여 차례 진행됐다.하지만 85년 한차례 고향방문단을 교환한 이래 회담 자체가 중단상태다. 더욱이 92년 5월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이산가족 노부모방문단 교환 합의가 이뤄지고 같은해 8월 남북교류·협력 부속합의서 채택에 따라 이산가족 문제가 적십자사에위임됐다.그러나 북측의 무성의로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이산가족문제 해결이 답보상태인 근본 원인은 체제동요를 염려하는 북측의 회담 기피증에 기인한다.그럼에도 우리측이 총재 또는 부총재회동이라는 남북적십자사 지도부회담을 거듭 제안한 데는 그 만한 까닭이 있다. 첫째,이산가족 1세대 대부분이 70∼90대 고령자들이라 인도적 차원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탓이다.강총재도 이날 『시간은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간곡하게 호소했다. 둘째,북한적십자회,나아가 북한당국이 다소간의 태도변화가 감지된다는 점이다.북측이 최근 집중호우로 서해상에 떠내려온 북한주민 시신 2구를 인도받기 위한 남북 적십자연락관 접촉에 응한 사실 등이 이를 말해준다.더욱 주목되는 점은 북측 스스로 서해상에서 발견했다는 남한 시신 1구를 6일 같은 방식으로 돌려보낸 사실이다. 이같은 태도변화는 악화일로에 있는 북한의 경제난,특히 2년 연속 수해로 말미암은 최악의 식량난과 무관치 않을 수도 있다.요컨대 수해지원을 요청하는 북한식 SOS일 수 있다는 얘기다. 강총재가 『남과 북의 적십자사 단체가 협력한다면 수재로 인한 북한동포들의 고통을 해소하는 일이 훨씬 더 용이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요컨대 적십자 채널간 대화의 불씨를 되살려 남북당국간 대화와 협력의 큰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게 우리측의 바람인 셈이다. □남북적십자회담 주요일지 ▲71.8.12=한적,남북적십자 회담 제의 성명 ▲71.9∼72.8=판문점 예비회담 25회 개최 ▲72.8∼73.7=남북적십자 회담 본회담 7회 개최 ▲73.8=북한,모든 남북대화 중단 발표 ▲74.7∼77.12=남북적십자 실무회의 25회 개최 ▲77.12=북적,한미 연합군사훈련 「팀스피리트 78」구실로 실무회의 중단 ▲84.9.29∼84.10.4=한적,북적 제공 쌀 시멘트 의약품등 수재물자 인수 ▲85.5∼85.12=적십자 회담 본회담 3회 개최 ▲85.9.20∼85.8.23=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 ▲86.1=북적,「팀스피리트」 군사훈련 구실로 본회담 중단 발표 ▲89.1.24=한적,이산가족 소재확인을 의뢰하는 4천3백46명 명단 전달 ▲89.9∼90.11=남북 적십자 실무대표 판문점 접촉 8회 개최.북측이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 서울 공연 고집해 결렬 ▲91.8.12=한적총재,남북적십자 회담 제의 20주년 성명 통해 제11차 본회담개최 촉구 ▲92.6.5∼92.8.7=남북적십자 실무대표 판문점 접촉 8회 개최.비전향장기수 이인모 송환,북한의 핵사찰 문제거론중지 주장으로 결렬 ▲94.8.12=한적총재,적십자총재 또는 부총재 판문점 회동 제의 ▲95.8.12=한적총재,남북적십자 총재 또는 부총재의 판문점 회동제의에 대한 북측 호응 촉구
  • 꿈을 키우는 조선족(압록강 2천리:37·끝)

    ◎직업교육·장학사업으로 「한민족공동체」 가꿔/사랑나누기 운동전개… 빈곤한 동포 생계 돕고/「김우중」관련 강연회 통해 청년들에 야망심어 한국전쟁 와중에서 단동쪽에 요행히 남은 압록강철교를 따라가다 보면 강 복판쯤에서 빨간 글씨로 「단동」이라고 쓴 시멘트 푯말이 서 있다.반대편에는 「신의주」라고 표시되어 이내 발목이 잡혔다.바로 국경선인 것이다.한 발자국만 더 내디디면 나에게는 고국이다.비록 이주민의 후손일지라도 중국공민권을 가졌기 때문에 그 한 발자국은 비법출경에 해당하는 것은 물론이다. 마음이 착잡했다.한반도에 사는 사람들과 공통된 생활방식과 문화관습을 지닌채 살아온 터라 귀소본능같은 것을 느꼈다.그러나 마음일 뿐 어디까지나 중국공민이었다.이는 다민족이 모여 사는 중국에서 조선족들이 겪은 갈등이기도 했거니와 오늘날까지도 이중적 삶이라는 기묘한 생활방식이 되고 있다.그러한 현상은 조선족들의 못자리판인 두만강유역 연변보다 잡거지구인 압록강유역 요령성 일대가 더욱 심각했다. 그래서 한족들과 더불어 살면서 민족의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도 만만치 않았다. 가난에서 비롯한 산골 농촌의 조선족사회는 공동체기반 붕괴를 막기위해 나름대로 몸부림을 치고있다.그 구체적인 사례가 요령성 조선족 경제교류협회가 펼치는 「사랑 나누기」와 조선족실험직업학교 운영이다.이 협회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린이들을 공부시키는 이른바 「희망공정」이라는 장학사업에도 손을 댔다. 이같은 사업은 조선족의 이농을 막고 무작정 도시로 올라온 조선족들의 직업보도를 위한 것이다.조선족 1백여가구가 사는 요령성 철령시의 한 농촌마을에서는 올들어서 20여명의 젊은 아낙과 처녀들이 마을을 떠났다.땅을 버리고 도시로 간 사람들은 심양시 서탑거리 도문로 노무시장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매일 평균 3백∼4백명,많이 모이는 날이면 5백여명이 들끓는다.행여 품을 사주지나 않을까 하는 눈초리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이중적 생활에 갈등 농촌을 떠나온 조선족 남자들은 건축일과 집수리같은 토역에 고용되고 여자들은 대개 음식점등 서비스업체에서 데려갔다.서비스업체에 들어간 여자들은 돈벌이에 끌려 몸을 팔기도 한다.그러다 잘못 걸리면 감옥아닌 감옥신세를 졌다.심양시가 운영하는 이른바 여성자강학교가 그런 시설인데,주로 매음녀들을 수용했다.수용인원가운데 약 20%를 조선족 여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졸업생이라고 할까,여성자강학교를 거친 조선족 여인들의 숫자는 4백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여성자강학교에 수용되어 있는 몇몇 여인들을 만나보았다.모두 연고지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사연들을 털어놓았다. 고씨네 딸 아무개라는 처녀는 얼굴이 아주 곱살했다.그래서 처음에는 식당 심부름 일을 하다가 아가씨 노릇을 하라는 달콤한 말에 유혹되어 손님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다음 달이면 여성자강학교에서 나올 판이지만 시골농촌으로는 죽어도 가기싫다면서 앞날을 걱정했다. 그리고 홍 아무개라는 여인은 일곱살짜리 아들까지 둔 농촌 유부녀였다.부부간에 금슬도 좋았던 이 여인은 살림이 하도 구차해서 돈을 벌러 심양으로 나왔다.일자리를 손쉽게 잡은데가 식당이다.한달을 뼈 빠지게 고생해도 아가씨 하룻밤 화대도 안되었다.결국 아가씨 대열에 끼여들었다.그러다 막다른 길 여성자강학교로 끌려온 여인은 딱한 처지가 되었다.착한 남편과 비록 나이가 어려 철은 없다 할지라도 아들을 어떻게 대하겠느냐며 후회했다. 이러한 현상을 버려둔 채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뜻있는 조선족들은 더 이상 방관하면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모두가 가난에서 비롯되었다고 인식하면서 여러가지 구급조치들을 강구하고 있다.조선족경제교류협회의 「사랑 나누기」나 장학사업 「희망공정」등은 다 조선족사회가 가난에서 벗어나 삶의 기반을 다시 다지기위한 것이다.「희망공정」에는 요령성 심양시와 무순시 조선족학교 학생들이 결연을 맺었고 기업체들이 후원자로 나섰다. 지난해 여름 심양에서는 참으로 이색적인 강연회가 열렸다.요령조선문보사가 95년 7월20∼22일까지 장장 3일간에 걸쳐 열었던 강연회 주제는 「김우중과 나의 인생」이었다.한국의 대기업가 김우중회장의 저서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의 내용을거울삼아 인생의 나갈 길을 나름대로 제시한 강연회는 대성황을 이루었다.그러니까 조선족들에게 진취적 야망을 심어준 대회라 할수 있다. 김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는 조선족사회에 많은 감명을 불러 일으켰다.특히 청장년층에서 감격했다.심양시 우홍구 대흥조선족향 김재만 향장(35)은 그의 저술을 읽고 소화한 청장년 간부의 한 사람이다.한마디로 인생 교과서라 했다. 『나는 김우중선생의 저술을 단숨에 읽어내려갔디요.우리는 지금 경제체제개혁과 문화형태개선이라는 역사적 전환기에 서 있다고 생각합네다.이러한 시기에 자아를 발견하고 어떻게 우수한 인재로 성장할 것인가를 스스로 성찰하는 일이 중요하디요.그래서리 김우중 선생의 저술에 관심이 가는 겁네다.우리 모두가 김우중 선생처럼 일해서 성공할 때 민족의 경제는 반드시 부흥된다고 확신하디요.역사는 꿈을 꾸는 자의 것이라는 선생의 말씀에 공감을 했습네다.저도 이제부터 연약,안일,절망과 담을 쌓고 조선족향을 잘 꾸려 민족사회 건설에 이바지할 각오를 했수다』 그는 꿈을 꿀 만한 위치에 있다.그가 향장으로 있는 대흥조선족향은 심양에서 6㎞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중국 여러 지역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와 철도가 지나갔다.동북지역에서 가장 큰 철도화물운수참이 1㎞,심양 국제공항이 40분 거리다.요 근래에 기계제조,석유화학,유색금속가공,가죽과 모제품 등의 공장이 이 향에 들어섰다.합자기업 17개소 등 모두 4백59개 기업에서 48억원어치의 생산량을 기록했다. ○김회장 저서는 교과서 조선족 4천3백85명이 거주하는 대흥조선족향의 향장과 부향장 등 주요간부들이 모두 조선족이다.각 기업의 골간도 역시 조선족으로 이루어졌다.향 문화잠은 전국 문화공작잠의 선진이거니와 유치원,소학교,중학교,성인중심학교 등의 교육시설 규모를 자랑했다.최근에는 빈곤한 조선족돕기운동을 벌여 9천여건의 물건과 9천6백원의 돈을 단박에 모았다.그리고 조선족 장학사업 「희망공정」에도 1만4천8백원을 선뜻 보냈다. 꿈을 키우는 조선족들이 존재하는 한 조선족사회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벗겨질 것이다.그 희망은 일부 조선족사회에 현실로 다가와 내일의 태양이 찬란하게 뜰 조짐을 보이고 있다.
  • 카센터 18평 이상만 등록 허용/당정 추진

    ◎정비대상 확대… 주행장치 등 가능/관계법령 개정… 빠르면 9월부터 정부와 신한국당은 전국에 산재해 있는 카센터(자동차 경정비업체)를 도시형 산업으로 분류해 대폭 정리키로 하고 18평이상 규모에 한해 등록을 허용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등록을 마친 업체에 대해서는 오일교환,타이어교환 등 22개 항목으로 제한하고 있는 경정비업소의 정비작업 범위를 확대해 동력전달장치,제동장치,조향장치,주행장치,완충장치 등도 정비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당·정은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자동차관리법 등 관계법령 개정안을 마련,빠르면 오는 9월부터 시행에 들어갈 방침이다. 현재 경정비업체는 서울의 8천5백여 곳을 비롯,전국적으로 3만5천여개가 난립하고 있으며 15∼19평 규모 업소가 전체의 55∼6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박찬구 기자〉
  • 북 이인모 노인 왜 미국 보냈나

    ◎신병치료 빌미 대외선전 등 정치적 속셈/「인도적 면모」 과시 대미 이미지개선 이용 북한당국이 이인모(79)노인을 29일 신병치료차 돌연 미국으로 보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노인은 6·25 때 인민군 문화부 소속 종군기자로 활동한 미전향장기수 출신.그는 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전세가 뒤바뀐 후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 체포됐다. 정부는 지난 93년 인도적 차원에서 그를 북한으로 송환한 바 있다.때문에 현시점에서 북한당국이 그를 가까운 일본을 두고 굳이 미국으로 보낸 데는 치료목적 이외의 대외선전등 다른 정치적 계산까지 고려했다는 게 중론이다.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과 이를 통한 경제지원을 얻어내려고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인 까닭이다.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미국 조야를 겨냥한 이미지 개선용』이라고 설명했다.즉 미국으로부터 테러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북한으로선 그를 치료명목으로 미국에 보내는 「투자」를 통해 북한정권의 「인도적인」면모를 과시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그가 한국에서 오랜수형생활을 한 인물이므로 그같은 반대급부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계산인 셈이다. 북한은 문민정부 출범 직후 우리측의 대북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송환한 이노인을 철저히 김일성 부자체제 유지의 도구로 활용해 왔다.그를 「신념과 의지의 화신」,「통일영웅」등으로 호칭하며 대대적으로 선전해왔다.특히 북한식 사회주의체제 선전을 위해 제작중인 총 50부작 극영화 「민족과 운명」중 한편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루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그의 방미치료도 김정일의 이른바 「광폭정치」(통큰 정치)와 「인덕정치」를 포장하려는 속셈과도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구본영 기자〉
  • 대흥구 중국 심양(세계속 한인촌 탐방:3)

    ◎황무지를 옥토로… 딴 농촌의 3배 소득/5천여명 정착… 우리말·전통풍습 그대로 간직/된장국·김치 담그기 등 가르쳐 중국인을 조선화/「새마을 공장」 4백여곳 유치… 산업화 앞장도 중국 북동부 3개 성의 심장격인 심양.요령성의 성도이자 우리에겐 봉천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1시간가량 달리다보면 「대흥구육성」이란 큰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초·중학교 우리말 수업 추수가 끝난 텅 빈 논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이 보신탕집 간판으로부터 2차선 찻길을 따라 조선음식점 1백여개가 줄지여 들어서 있다.심양∼대련 사이 고속도로가 곁에 있는 이곳은 심양시 우홍구의 「대흥향」.찻길 따라 음식점과 상점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시 교외의 농촌이다.1만5천여명의 주민 가운데 3분의 1인 5천여명이 조선족인 우리동포 자치지역이다.명칭은 「대흥 조선족자치향」. 『20년대초까지 논은 찾아볼 수 없는 황무지였다.물이 부족해 농사가 어려웠고 극소수 밭농사를 지을 수 있는 지역이 있을 뿐이었다.그런 황무지를 송화강의 지류인 훈하를끌어들여 물길을 낸 뒤 논농사를 시작,궁핍에서 벗어나게 한 게 바로 조선족이었다』고 48년말부터 30여년동안 이곳 공산당간부로 일해온 지역지도자 이성일·67·전당서기)씨는 회고한다.길지 않은 이민역사와 한족에 비해 적은 인구에도 불구,조선족자치지역이 된 것은 『조선족 손으로 이곳을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19세기말∼20세기초 가난과 일제침략을 피해 고향을 등진 사람이 모여 이룬 이곳은 우리말과 생활풍습을 고스란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아이의 백일잔치,노친네의 환갑은 물론 전통양식을 보존한 제사풍습 등등.설날이면 이웃집에 세배다니고 농사일과 궂은 일이 있으면 몰려가 품앗이를 하는 등의 끈끈한 유대의식도 변치 않았다.순 우리말로만 수업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이곳 조선족은 절대로 한족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행여 자식이 한족과 결혼하려 하면 필사적으로 말리는 것도 다른 지역에 사는 동포와는 약간 다른 풍습이다. ○연변 등 외지동포 이주 오히려 중국인을 「조선화」시켰다.노인등 어른에 대한 깍듯한 예절,논농사를 모르는 이들에게 쌀재배법을 전파시켰고 적잖은 이 지역 중국인이 김치를 담그고 된장국을 끓여먹는다는 데서도 대흥 조선족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가옥도 이웃 사이에 담장이 따로 없는 개방형 농가다.아이를 조선식 포대기에 들쳐업고 다니는 새색시.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치마저고리에 면사포를 쓰는 동·서혼합 결혼식.집안에 들어서면 구들방이 보이고 크고 검은 무쇠가마솥이 눈에 띄는 곳.안타까운 것이라면 국가규정 때문에 전통적인 무덤(토장)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문화혁명후 토장이 금지돼 화장한 뒤 죽은 이의 유골을 황해로 흐르는 훈하에 뿌리는 전통이 생겼다.죽어서라도 고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1910년말부터 평안도에서 일가친지 모두가 이주해온 황성출(65·전대흥향 공업책임자)씨는 『처음 이주자들은 몇년만 있다 고향으로 가겠다는 생각이었지만 1917년 오강소학교란 조선학교를,20년엔 기독교 예배당를 세우며 차차 정착하게 됐다』고 말했다.그러나 30년대초까지도 추수때면 한족 지주등에게빚갚고 나면 빗자루 하나만 남는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전했다.허일벽(72·전대흥향 정부농업조리)씨는 한때 1만여명 가까운 조선족이 모여 살기도 했지만 해방직후와 59∼60년 대약진운동의 실패여파로 상당수 북한으로 이주해갔다고 설명한다. 연변지역등의 조선족마을이 최근 도시이주등으로 급속히 붕괴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은 지난해 역시 연변과 흑룡강성등 외지에서 이주해온 동포 가구로 1백호가량 늘었다.이곳 인구는 5천명정도지만 심양시 서탑지역,동릉구 혼하찬지역과 함께 10만 심양지역 조선족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해마다 9월초면 열리는 조선민속·운동절에 약 5만명 대부분이 가족별로 참가한다. 한·중 두 나라의 급격한 관계발전을 타고 이곳도 한국행 열풍엔 예외가 없다.4살때 평안도에서 왔다는 흥성촌의 김응석(69)씨의 세 아들중 두명은 한국에서 3년 넘게 일하고 있다.비자등 법규에 대해 알지 못하는 김씨는 『아이들이 한국에서 돈 많이 번다』며 자랑한다.김씨집은 산업화이전의 초가집이고 부엌엔 무쇠가마솥이 걸려 있다.해질녘에 불쑥 들른 취재진에게 『저녁은 꼭 먹고 가야 한다』며 붙드는 것이 이제는 사라진 우리의 옛 정서를 느끼게 한다. 한집 건너 김미영(33)씨 집 역시 남편이 지난해부터 한국서 일하고 있다.농토는 연변에서 온 조선동포에게 맡겨 임대수입을 받는다는 김씨는 남편을 보러 꼭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공단인접한 교통요지 개혁개방이 진전되면서 대흥향은 농공산업단지로 탈바꿈하려는 안간힘으로 한창이다.동북 최대공업단지 철서공단에 접해 있고 북경∼장춘∼하얼빈을 잇는 교통요지인 점도 산업화를 향한 행보를 재촉한다.우리 새마을공장격인 향진기업은 모두 4백6곳.지난해 공업생산은 4억위안(5천만달러)으로 농업생산액 1억위안을 앞섰다.피혁·의복·방직·장식재료등을 중심으로 외자기업의 유입이 늘고 있다.정명수 향정부 판공실주임은 『지난 91년부터 올해까지 외자기업의 총투자액은 7백60만달러』라며 『총생산액으로 볼 때 외자기업의 비중이 지난해 공업생산의 절반가량인 2억위안에서 올해는 2억8천만위안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밝은 전망을 소개했다. ○종업원지주제 첫 실시 이곳의 월 평균소득은 여타 농촌지역보다 3배가량 높은 7백∼8백위안정도.한 관계자는 한국 가서 일하고 부치는 노무소득·관광객안내비등을 합치면 실제소득은 훨씬 많다고 귀띔한다.향 행정책임자인 김재만 향장은 심양 조선족제1중학(고교과정)과 심양 정법대를 나온 35살의 청년이란 것도 이곳의 활력과 미래를 상징한다.김향장은 투자유치가 자신의 주임무이며 한국기업의 투자를 주민과 함께 기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최근 한국의 삼우금속과 합자로 총자본금 11억규모 심양 흥우금속제품공사설립을 계약했다고 설명한다.중국 공무원하면 경직된 행정관리가 연상되지만 김씨는 자칭타칭 「세일즈맨」임을 자랑으로 여긴다. 김향장은 『대흥향은 내년부터 중국 최초로 기업고정재산의 30%한도내에서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하는 기업개혁실험에 들어간다』며 밝은 대흥향의 미래를 자랑삼아 밝혔다.전통적으로 북한의 영향이 강하던 이곳에서 이들은 이제 한국의 존재는 우리민족의 자랑이라고 말한다.이들은한국을 모델삼아 공업화된 농촌속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경제발전의 꿈에 부풀어 있다. ◎장승균/“조선족은 문화수준 높아”/동북부 지역 벼농사 전파… 개발 한몫 중국 조선족은 역사적으로 항일전쟁 및 해방전쟁(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훌륭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특히 중국 동북부지역을 개간,수도작문화,즉 벼농사를 전파시켜 경제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데 크게 공헌했다. 조선족은 또 교육을 중시,문화수준이 높고 노래와 춤등 예술성이 풍부하며 호방하면서도 엄격히 예절을 지키는 민족으로 정평이 나 있다. 조선족은 60년대까지 대부분 농민이었으나 개혁개방후 각 방면으로의 진출,계층분화현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연변지역등 농촌에 모여 살던 조선족의 도시이주가 최근 늘면서 일부 집성촌의 해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북경상주 조선족은 현재 1만여명에 달하고 임시거주등의 인구까지 따지면 모두 3만여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조선족의 전체인구는 공식통계로는 1백92만3천여명으로 집계돼 있지만 조사연도(90년)와 전중국의 인구증가률 1.4%보다 낮은 1%가량의 인구증가율을 고려할 때 2백만명가량으로 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조선족의 한국방문 및 장기체류는 상대방 국가의 법률만 준수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한국정부가 민족연관성을 배경으로 조선족에 대해 특혜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게 중국정부의 방침이다.
  • 불교 인권위원회 북 접촉 불허 방침/통일원

    정부는 「불교인권위원회」(공동대표 진관 스님)측이 출소공산주의자(비전향장기수)들의 송환문제를 다루기 위해 신청한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위원장 박태호)과의 접촉을 허가치 않기로 했다고 31일 밝혔다. 통일원 김경웅대변인은 이날 불교인권위원회측이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측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판문점회담 개최를 추진하고 있는 점을 중시,불법적 행위임이 인정된다는 공문을 30일 검찰에 보냈다고 공개했다.
  • 길림성 이도강촌(압록강 2천리:4)

    ◎해발 1,260m… “하늘아래 첫 동네”/일제때 독립군 순병지… 9월말이면 눈발/해방후 조선족 70가구… 현재 1천명 거주 길림성 장백현 용강향 이도강촌은 하늘 아래 첫 동네다.그토록 외지고 높은 고원의 산골이어서 일찍부터 일제에 항거한 독립군의 활동무대였다.1915년에 이미 독립군 군비총단이 들어와 둔병을 마련하고 자리잡은 지역이다.또 1936년에는 항일연군 제2군 제6사가 홍두산에 밀영을 세우고 일본군과 만주군을 호되게 족쳐댔다. 일본도 이에 질세라 서둘러 경찰서와 토벌대,산림경찰대를 만들고 헌병대까지 주둔시켰다.그리고 장백진으로부터 이도강까지 길을 냈다.1945년 이후 이 길을 넓히고 손질했으나 길은 여전히 험로였다.일제가 항일연군을 토벌하기 위해 닦아놓은 길을 버스가 구불부불 기어갔다.장백진에서 고작 28㎞ 밖에 안되는 지척인데도 이도강촌까지 2시간이 실히 걸렸다. ○후천적 고산족으로 장백현에서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사는데가 용강현으로 전체인구 2천6백27명 중에 1천88명이 조선족이다.비교적 낮은 지역이라는 해발 1천2백60m의 이강촌을 중심으로 해발 2천12m나 되는 홍두산자락 여러 골짜기에까지 조선족들이 흩어져 살고있다.그러고 보면 용강현 조선족들은 후천적으로 고산족이 된 셈이다.백두산 천지와는 90㎞가 떨어져 있으나 쾌청한 날씨에는 흰눈을 머리에 인 백두산이 망망한 숲 위로 아련히 떠올랐다. 그런 고산지대인지라 서리가 내리지 않는 무상기래야 1년에 90여일이 고작이다.장백현의 다른 저지대에 비해 철이 한달 이상 차이가 나기때문에 벌써 가을을 느꼈다.눈이 빨리 내리면 9월말께 첫눈이 온다고 했다.마침 점심 때가 되어 향장,당서기와 어울려 간부식당을 찾았다.시금치국 한 사발에 만두와 김치 한 접시가 나왔다.식당 일을 하는 원채봉아주머니가 애써 식단내용을 설명했다. 『그래도 향간부들의 식사는 괜찮은 편이꾸마.이 시금치도 현성에서 사왔디요.아무 집에나 들어가 봅소.이만큼 먹나….고산디대라 옥수수나 콩도 안됩꾸마.봅소,벌써 긴팔 옷을 입고들 있지 않슴둥』 여름이 아무리 빨리 간다한들 설마 했던 것은 오산이었다.그날 밤에 향장의 안내로 마을 터주격인 허용학(73)노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한기를 느꼈다.장백진 여관에 맡긴 짐보따리 속의 두꺼운 옷이 그리웠다.노인의 집에는 이미 군불을 지펴놓아 한기를 녹였다.꿈과 젊음을 고산지대 이도강촌에 묻어둔 노인의 얼굴에는 산골 밭뙈기 이랑 같은 주름이 가득했다. 노인의 본래 고향은 이도강촌에서 멀다 할 수 없는 함경남도 삼수군(현재 북한지명은 양강도 삼수군)자산면이다.세살 때 모친이 세상을 뜨자 부친이 두 형을 데리고 장백현을 들어가면서 본인은 갑산 누이집에 맡겼다.18살 나던 해에 형님이 와서 장백현으로 데리고 와서 곧 바로 남의 집 데릴사위로 주었다.석달을 살고 장인허락을 얻어 조선으로 돈벌러갔다가 징병에 끌려 일본 규슈로 갔는데,해방 석달 전의 일이었다. ○민요 「사냥 아리랑」 구전 『일본에 있을 때 미군 비행기 무서운 꼴 봤꾸마.매일 폭격을 해대서리 부상까지 입었지비.그날이 7월2일인데 미군 비행기 수십대가 가물가물 떠와서 폭탄을 내리 퍼부었다 이거우다.해방 이듬해 3월 일본에 온 함남 대표를 따라고향을 들렀다가 이리 다시 와서 붙박혀 사우다』 해방 후에만 해도 이도강촌에는 조선족 70가구가 살았다고 한다.한족은 2가구 뿐이었는데,지금은 2백가구 중에 절반이 한족이다.모두가 농사랍시고 짓지만 고산지대라 소출은 보잘 것이 없다.보리는 1무(2백평)에 1백근(60㎏),귀밀은 1백50근,밀은 작황이 썩 좋아야 3백근을 먹는다.그러나 감자는 잘되는 편이다.지금은 짐승이 덜 하지만 10여년전만 해도 멧돼지와 곰 등쌀에 애를 먹었다.7월부터 돼지가 감자밭에 덤벼들면 온통 요절을 내버렸다.귀밀과 밀밭은 곰이 압발로 이삭을 끌어안고 훑어먹기 시작하면 잠깐만에 거덜이 났다. 그래서 사냥감 짐승들이 많다.겨울이면 마을 장정들은 너나없이 사냥을 떠나 용강향에는 「사냥 아리랑」이 지금도 구전되고 있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우리 낭군 영을 넘어 사냥 가네/낭군님 무사히 돌아오세요/대보름 달빛 아래 술을 듭시다」라는 민요가 그것이다.허용학노인의 백두산 겨울철 사냥 이야기는 간이 큰 사나이들의 모험담으로 들렸다. 『한번은 돼디(돼지)사냥을 갔는데 모리꾼들이 돼디간다고 소리를 티데우.돼디 여러마리가 곧추내려오는데 던댕판(전쟁판)에 당꾸(탱크)돌격하듯 달려왔지비.다섯마리 사냥개가 걸구(큰돼지)뒷 다리를 물고 늘어지자 속도가 늦어뎠디우다.그 때 최길환이가 꺾음대(화승촌)를 탕 놓았디우.앞 섰던 놈이 쓰러디니까 뒷 놈들은 샛길로 도망쳤으니 말이디 그냥 달려왔으면 다 황천객 됐을 거우다.거 안포수란 사냥꾼은 곰을 쏘았다가 선불을 맞아 끌안았디우.같이 간 다른 포수가 곰의 머리를 쏘아 떼 놓았는데,곰한테 할퀸 안포수 머리가죽이 벗겨뎠디…』 사냥을 갔던 사람들이 돌아오면 마을에는 잔치판이 벌어졌다.아낙네들은 국수를 누르고 남정네들은 잡아온 짐승을 삶았다.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함지물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장단을 맞추었다.중국 전역이 한 장기판이라고 하지만 이도강촌 산골마을은 문화대혁명을 수월하게 맞았다.다른 지역에서는 이른바 대식품이라는 풀뿌리 나무껍질을 먹었지만 이도강촌 사람들은 감자를 갈아 떡도 해먹고 분을 내어 국수도 눌러먹었다는 것이다.○아직도 인정만은 부자 그러다가 조사라도 나오면 겨로 음식을 해서 대접하고 조사 나온 간부들이 돌아가면 감자는 배불리 먹었다.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이도강촌을 20세기의 별천지라고 불렀다.아직도 인정 만큼은 부자다.다만 농사만으로 돈 벌이가 시원치 않아 금전적으로 빈자나 각박한 문명세계와는 다른 삶을 살고있다.흠이라면 입쌀이 없다는 것뿐이다.밀 1근 80전,귀밀 30전,감자 30전에 팔아 1근에 2원하는 입쌀을 사먹기는 사실상 힘이 겨웠다. 그럼에도 교육열은 대단했다.조선족과 한족 아이들이 같이 다니던 한조연합학교가 있었는데 지난 1988년 조선족기숙제소학교 하나를 더 만들었다.기숙생들의 한달식비 90원 중에 20원을 기꺼이 물면서도 조선족기숙제소학교를 세웠던 것이다.
  • 광복절특사 1,780명 가족품에/어제 전국 교도소 등서 풀려나

    ◎김 전해참총장·최장기수 김선명씨 포함 법무부는 광복 50주년을 맞아 단행된 특별사면대상자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던 1천1백55명과 모범수형자 3백52명,모범소년원생 2백25명 등 모두 1천7백80명을 15일 상오10시를 기해 전국 교도소와 구치소·소년원에서 일제히 석방했다. 이날 출소자 가운데는 군인사 및 율곡비리사건과 상무대비리사건으로 각각 징역 3년씩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던 김종호(59)전해군참모총장과 청우종합건설 조기현(57)전회장 등이 잔여형기의 집행면제에 따라 서울 영등포·의정부교도소에서 각각 석방됐다. 특히 43년10개월의 세계 최장기 수감을 기록한 미전향장기수 김선명(70)씨도 이날 수감중이던 대전교도소에서 출소해 가족의 품에 안겼다. 대전교도소에서는 또 42년을 복역한 안학섭(65)씨와 38년을 복역한 한장호(72)씨도 함께 출소했다. 이밖에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8년6개월동안 복역해온 장모씨(53)등 무기수 6명과 형기 10년이상을 복역한 43명을 비롯,각종 기능자격 취득자및 기능대회 입상자 90명이 가석방 및가퇴원대상자에 포함돼 출소했다. ◎전국 교도소 주변 이모저모/김선명씨 등 장기수들 서로 얼싸안고 눈물/환영나온 민가협회원들 경비원과 실랑이 정부의 사면조치로 15일 상오10시를 기해 전국 각 교도소와 구치소,소년원별로 사면대상자들이 일제히 석방됐다. ○…최장기수 김선명씨 등이 풀려난 대전교도소 앞에는 상오8시부터 민가협회원과 대전지역 대학생 등 50여명이 나와 환영.이들은 북한에 밀입북했던 임수경(28·여)씨의 확성기 구호에 맞춰 『김선명선생님 빨리 나오세요』를 연호하며 교도소경비원들과 한때 실랑이. 임씨외에 문익환 목사와 함께 북한을 방문했던 유원호씨,유서대필사건의 강기훈씨 등 재야인사들도 보였다. ○…대전교도소에서는 상오9시15분쯤 42년을 복역한 안학섭(65)씨가 제일 먼저 나왔으며 김선명씨와 38년을 복역한 한장호(72)씨의 순으로 출소. 이들은 이미 출소한 다른 장기수들을 얼싸안고 수십년만에 되찾은 자유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민가협회원들은 이들에게 화환을 걸어주었다. 출소한 장기수들은대부분 초췌했으며 특히 김씨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쇠약한 모습이 역력. ○…김씨 등은 한결같이 『아직도 비전향 장기수들이 많다』며 『이들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함께 노력해줄 것』을 당부. 한씨는 『오로지 통일을 기다리며 살아왔는데 현실은 아직 그렇지 못한 것같다』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 냉전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안씨는 『분단된지 50년이 다 됐지만 땅과 민족이 아직 화합할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며 『현실을 좀 익힌 다음 할 일을 찾겠다』고 설명. ○…전 전대협의장 김종식(28·전 한양대총학생회장)씨는 상오10시 충남 홍성교도소 문을 나섰다.한총련 소속 대학생 30여명과 가족들이 그를 맞이했다. 김씨는 지난 91년3월 전대협의장으로 선출된뒤 각종 반정부시위와 정원식 전 국무총리 밀가루세례사건을 주도하는 등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지난 92년9월부터 홍성교도소에서 복역해 왔다.
  • 미혼여성 화장품 “알뜰구매”/91%가 “상설 할인코너 이용”

    ◎“1년에 10만∼20만원어치 산다” 52% 우리나라 미혼여성중 절반가량은 연간 화장품구입비로 10만∼20만원을 쓰며 10명중 9명은 할인코너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태평양(대표 한동근)사외보인 「향장」이 최근 서울시내 미혼여성 1천명을 대상으로 화장품구입 실태를 조사한 결과 연간 화장품구입비로 52.2%는 10만∼20만원을 쓴다고 대답했고 20만∼30만원 22.5%,10만원 미만 15.8%,30만원이상 9.5% 순이었다. 화장품 구입장소로는 90.8%가 할인코너를 들어 연중 할인판매되는 할인코너 이용빈도가 높음을 보여 주었고 백화점 5%,가정방문등 기타 각 2.1% 순으로 조사됐다. 또 화장품 브랜드를 결정하는 요인으로는 TV광고가 33.8%로 가장 높았고 신문·잡지등의 지면광고가 29.2%,가족이나 친구의 권유 22.9%,판매원의 권유 14.1% 순으로 대답했다. 새제품을 구입하게 되는 동기로는「기존 제품을 다 써서」가 36.3%로 가장 많았고 「계절의 변화를 맞추기 위해」25.7%,「쓰던 제품에 싫증을 느껴」21.1%,「유행에 맞추기 위해」16.9% 순으로 응답했다.
  • 새 외교팀/대미외교 목소리 높인다

    ◎세계화 수행과 연계 “외교 다원화” 추진/「대미위주」 탈피… 국력걸맞게 보폭확대 「12·23」개각으로 들어선 새 외교팀의 대미 외교기조가 변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대미외교의 경우 우리 외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기 때문에 대미외교의 기조변화는 크게 주목되는 것이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나 공로명 외무장관의 공식석상에서의 발언등 외형적인 것만을 종합해 보면 아직 딱부러지는 「변화」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그럼에도 내면적으로는 「미국중시」라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조그만 현상들이 곳곳에서 감지된다.새 외교팀이 우리 외교의 자주성을 빈도높게 거론,대미외교에 대한 시각을 교정하려는 움직임의 강도도 무시못할 정도다. 이같은 현상 등은 김대통령이 국정과제로 제시한 「세계화」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외교의 다원화를 꾀하면 자연히 「미국중시」의 틀이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관점에서 당연하다는 시각도 있다. 공 장관은 대미 외교정책의 수정가능성을 질문받을 때마다 『미국은 일본과 함께우리외교의 주축』이라며 그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경제력 수준에 걸맞는 외교를 해야 한다』면서 북핵 문제로 소원해진 다른 나라,다른 외교이슈에도 중점을 두겠다고 강조한다. 공 장관은 취임식에서도 『그동안 북한 핵문제로 일부 부서가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이의 「치유」를 약속했다.치유란 다시말해 국력에 걸맞는 「외교 다변화」를 뜻하는 것이다.김 대통령도 신년 회견에서 『우리 국력에 맞게 세계를 상태로 외교를 해나가겠다』면서 공 장관의 발언을 확인시켜 주었다. 새 외교팀의 대미관을 읽을 수 있는 첫 사건은 「미군 헬기사건」이었다.여기서 새 외교팀은 과거 한승주 장관때와는 다른 몇가지 「미국 길들이기」방법을 선보였다.공 장관은 한국을 찾는 미국관계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장관실을 드나들고 전화를 거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때문에 이 사건 처리를 위해 외무부를 방문한 허바드 미국무부차관보는 우리쪽의 카운터파트너인 미주국장만을 상대해야 했다. 미측이 당초의 약속과 달리 북한측과의 협상에서「남한 미전향장기수」거론에 응해준데 대해서도 즉각 제동을 걸었다.박건우 차관이 카트만 주한 미대리대사를 불러 『우리의 주권사항이므로 깊이 우려한다』고 공개항의를 한 것이다.이를 문민정부이후 우리의 목소리를 미측에 분명히 전달한 일대 「사건」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외교전문가들은 앞으로의 대미외교에서 우리 목소리가 자주 크게 나올 것이며 때에 따라서는 한­미간 갈등으로 비화될 소지도 없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현재 북­미간 경수로·연락사무소협상,한반도 평화체제구축문제,한­미통상문제등 한­미간 갈등요소가 산적해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특히 김대통령이 『남북관계 진전없이 경수로 지원없다』고 회견에서 못박음으로써 경수로협상은 향후 한­미관계를 측정해볼 수 있는 「가늠자」로 등장할 것 같다. 대미외교 한 실무자는 『공 장관의 대미관은 이전의 한장관의 것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면서 『재임기간중 미국측이 껄끄럽게 생각할 부분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기본합의」 바탕 대북 강경드라이브/김덕 외교안보팀의 대평양정책

    ◎「원칙」 고수하며 외교주도권 장악/「후계체제」 안정뒤 관계개선 추진 김덕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은 4일 『보다 현실주의적인 관점에서 대북한 정책을 펼쳐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현실적인 대북정책은 보다 강경한 대북정책으로 유추된다.이는 이상론자로 평가된 한승주전외무부장관이 대표하는 「햇빛론」과는 뚜렷이 대비된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 변화는 새로운 외교안보팀이 구성되는 순간부터 예견되어온 일이다.안기부장 출신의 김덕부총리,부처내의 대표적인 대북 강경론자로 알려진 공로명외무부장관,군출신인 권령해안기부장팀의 등장은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예측하게 한다. 김덕부총리는 이날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현재까지 북한에 대해 상당히 대범하고 관대하게 대해 왔다』고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이에 앞서 공로명장관은 3일 외무부의 시무식에서 6·25전쟁과 민주,공산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적시하며 『남북한간의 화해는 아직도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불확실한 남북관계가 계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공장관은 『남북관계의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쥐는 것이 올해 외교정책의 주요 과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처럼 강성 기류로 흐르는데 대해 통일원과 외무부등 관계부처의 당국자들은 『지난 2년 동안의 북한핵 협상과정에서 우리의 외교력이 너무 무기력했다는 반성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한 당국자는 『앞으로 북한에 대한 정책은 확고하게 정립된 틀에 따라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이 당국자가 설명하는 정립된 틀의 기초는 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를 말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북한이 최근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정전체제의 변화도 남북기본합의서 5조에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교체문제를 남북간에 논의하고 그전까지는 정전협정을 준수한다」고 이미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정부는 평화체제의 논쟁을 피하는 대신 『기본합의서의 틀에서 진지하게 검토해 보자』는 식의 대응을 해나갈 전망이다. 정부는 또 남북관계의 개선을 서두르지도 않을 방침이다.어차피 김정일 체제가 출범하는등 북한의 정권이 안정돼야만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이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한 당국자는 또 『지난해 말에 발생한 미군 헬기사건이 마무리된뒤 정부가 미국측에 비전향장기수 문제의 거론을 항의한 것처럼 미국등 한반도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원칙이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당국자들은 이러한 정책이 「강성」이란 말로 표현되는 것은 꺼려하고 있다.한 고위관계자는 『모든 정책은 강성과 연성의 양면을 포함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정책을 굳이 표현하자면 현실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물론 정책의 유연성을 발휘하겠지만 원칙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새로운 대북한 정책은 6일로 예정된 김영삼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에서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정부는 연두회견에 앞서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어 통합된 의견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취소했다.이심전심(이심전심)이라는 것이다.물론 김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대북정책에 대해 세부적인 언급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대신 매우 「현실적」인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할 것으로 당국자들은 예측하고 있다.
  • 「헬기외교」 한·미갈등 풀기 주력/「조종사 송환」이후 정부 움직임

    ◎북의 평화협정 공세 대응책 모색/외무부/“향후 접촉때 한국참여”계속 요구/국방부 「12·23」개각이후 새 외교안보팀의 대미외교노선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3일 한·미 양국은 북한의 「헬기인질외교」공세로 빚어진 양측의 갈등을 해소하고 한·미간 공조를 새삼 강조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 눈길.외무부는 이번 사건을 놓고 미측에 따질 것은 따지고 협조받을 부분은 협조받는다는 방침아래 후속대응책에 관심을 쏟고 있으며 국방부도 북측의 정전위 무력화기도에 미측의 「맞장구」를 예의주시하는 한편 북·미간 거래에 우리측의 참여방안을 모색. ○…외무부는 「미군헬기사건」으로 대미외교에서 미국과의 균열조짐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냐는 항간의 지적에 대해 『미국은 일본과 함께 전통우방국으로 오히려 공로명장관 취임이후 두 나라 관계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직접적 대응은 자제하는 상황.이런 가운데 「헬기사건」이후 북측의 정전위 무력화공세에 이은 평화협정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분석,대응책마련에 부심.외무부가 생각하는대응책은 91년12월 북한과의 남북기본합의서정신을 살리는 「남북한군사공동위」설치운영,평화협정문제를 미군철수문제와 분리해 추진하되 남북한이 참여하는 방안,북측이 평화협정에 남북한 참여를 보장한다는 전제하의 유엔군사령부 선해체등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외무장관 취임이후 대미외교 「시각교정」의 「첫고동」은 구랍 31일 박건우외무차관이 찰스 카트먼 주한 미대리대사를 불러 미군헬기협상과정을 질타한 부분.이 자리에서 박차관은 『북·미간 합의한 한국의 「미전향장기수 송환문제배려」는 한국의 주권사항』이라고 지적한 뒤 『적절한 시간에 미측이 「이 문제가 한국의 주권사항」이라는 점을 대내외에 천명하라』며 전례없이 강한 톤으로 미측을 「훈계」. ○…「미군헬기사건」이후 공외무장관은 이전의 한승주전장관과는 달리 한·미관계를 다루는 미측인사의 직접적 접촉을 삼가면서 관계관들에게 『꼭 협의할 일이 있으면 카운터 파트만을 상대해주는 방식으로 미국문제를 접근하라』고 강조,이채.한전장관의 경우 갈루치 차관보등 북한핵문제에 관련된 미측인사들은 그동안 한전장관과 「직거래」를 유지해와 빈축을 샀었다. ○…국방부는 미군헬기 조종사 송환문제와 관련,미국측이 군사정전위체제 밖에서 북한측과 접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새해 들어서도 가라앉지 않자 곤혹스런 표정.국방부는 이에따라 북·미접촉이 정전위 틀안에서 이뤄졌음을 강조하면서 언론에서 이를 보도해줄 것을 요청하는등 뒷수습에 골몰. 국방부 조성대정책실장은 『미국측은 북측의 요청에 따라 스미스 소장을 북·미장성급회담 대표로 판문점에 내보낼 당시 비밀리에 스미스 소장을 정전위대표로 발령했다』면서 『그러나 이 사실을 대외비로 분류,대외적으로는 북·미 장성간의 접촉이 정전위 틀 밖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오해를 사고 있다』고 뒤늦게 공식해명.한미연합사는 북·미간 장성접촉이 있기 하루전인 지난해 12월21일 밤 게리 럭 사령관을 통해 와킨스 준장을 스미스 소장으로 교체하고 임명장까지 수여했다는 것. 조실장은 『한국측은 북·미장성급 회담장에서 스미스 소장이 정전위소속임을 밝힐 것을 강력히 요구했었다』고 밝히고 『앞으로 북·미가 한국을 배제하고 접촉을 가진다면 한국 참여를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
  • 대북협상서 장기수문제 거론 “안될 말”

    ◎정부,미에 공식항의·해명 요구/박 외무차관,미대리대사 불러 정부는 31일 「미군헬기사건」과 관련,미국이 북한과의 송환협상과정에서 우리의 국내문제인 미전향장기수 송환문제를 거론한데 대해 외교경로를 통해 공식 항의하고 이에 대한 해명을 요청했다. 박건우 외무차관은 이날 상오 찰스 카트만 주한미대리대사를 외무부로 불러 이같은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새 정부들어 처음인 정부의 이같은 대미 항의입장 표명은 향후 대미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출발점이 아니냐는 조심스런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차관은 『미전향장기수 송환문제는 우리의 실정법과 헌법에 의해 처리돼야할 순수 주권에 관한 문제로 미국측이 개입할 사항이 아니다』고 못박고 『미측이 적절한 기회에 이 문제가 미국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과 북측은 남북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한국과 협의해야 할 것이라는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천명하라』고 요구했다. 박차관은 이어 『미전향장기수 송환문제에 관해 미측이 「한국의 국내문제로서 미국이 간여할 사항이 아니라」고 북측에 대응한 것은 매우 적절한 조치』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미국이 헬기 조종사의 송환에 미칠 영향만을 고려,북한의 입장을 한국에 전달하겠다고 응한 것은 불필요한 오해가능성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카트만 대리대사에게 지적했다.
  • 북한을 다루는 방법/황병선 정치2부장(데스크 시각)

    미군 헬기사건은 30일 생존 조종사가 귀환함으로써 13일만에 일단락 됐다.북에 억류돼 있던 보비 홀 준위가 고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인도적 차원에서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조종사의 귀환이 밝은 뉴스임에 틀림없으나 진행돼온 송환교섭과 그 결과는 한국민에게 여러가지 찜찜한 뒷맛을 남겼다.솔직히 앞으로 미­북 관계가 정상화 됐을 때 남·북한과 미국의 3각관계가 어떻게 전개돼 나갈지 걱정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헬기사건이 핵타결로 북­미간 대화가 공식·본격화하고 있는 국면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그 수습과정과 결과는 한국민의 지대한 관심의 대상일수 밖에 없었다.특히 미­북간 핵협상이 한국측 입장을 충분히 반영치 않은 가운데 서둘러 타결됐다는 불만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있는 실정이어서 한국민의 시선은 날카로울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 헬기사건에 임하는 미국의 모습은 처음부터 무척 저자세인 데다 매우 허둥댄다는 인상을 주었다.물론 실수를 저질러 헬기가 북한 영공으로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는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볼수 있다.그러나 방북중인 하원의원을 통해 대통령이 직접 송환교섭을 벌이는 양태에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쉽사리 잘못을 사과하는 서한을 보내는 모습등 침착한 대응자세와는 거리가 멀었다.끝내는 이제까지 방북했던 미국관리중 가장 고위급인 부차관보가 평양으로 달려가 쩔쩔매다 남북방향조차 제대로 가늠할줄 모르는 조종사 한명을 데리고 돌아온 결과가 됐다. 미­북간 합의사항 이행을 놓고 아쉬운 것이 어느 쪽인가.인도적 차원에서 억류중인 조종사를 하루라도 빨리 송환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일수도 있다.그러나 보다 큰 국익을 생각한다면 냉정한 자세로 비무장의 헬기가 연습비행중 항로를 이탈한 상황인데 충분한 경고조치없이 격추시켜 1명의 귀한 목숨을 앗아간 북한의 잔인성을 먼저 지적한뒤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갔더라면 당당한 송환이 가능했을 것이다. 70년대 카터행정부 때 주한미군철수 문제,남·북한과 미국간 3자회담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도 두드러 졌듯 한반도,특히 북한문제를 다루는 민주당 행정부의 모습은어딘지 어색하고 순진해보여 마음을 놓기 힘든 경우가 적지않다.인권문제 중시등 인도주의를 강조하면서도 그들에게 너무나도 생소한 때문인지 극단적 비인도·권위주의정권과 마주치면 따끔하게 제대로 요리를 해내지 못하는 것 같다. 30일 홀 준위의 송환과 함께 워싱턴과 평양에서 공개된 일부 대목에 차이가 나는 두갈래의 「미­북 양해문」을 보면서 우리의 우려가 단지 기우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미국이 「진정한 유감」이라고 표현하고 북한은 이를 「진심의 사죄」라고 하는 정도의 차이는 이해할만한 일이라고 접어두자. 그러나 북한이 평양방송을 통해 북­미간에 『한반도의 평화과 안전에 위협을 주는 사건을 막기 위해 판문점에서 군부접촉을 계속한다』『남조선에 남아있는 전쟁포로인 비전향장기수들이 빨리 송환되도록 필요한 배려를 하기로 했다』는 등의 내용을 합의사항이라고 밝히자 상황은 복잡해졌다. 미측은 이번에 조종사송환을 위해 판문점에서 있었던 미­북장성회담 정도의 접촉을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충분한 해명이 되지 못한다.북한이 자신들을 침략자로 규정한 유엔과 체결한 정전협정을 미국과의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려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결국 북한은 「양해문」을 통해 남측을 배제한 평화협정에로 한걸음 진전했다고 자평할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비전향장기수문제를,그것도 한국이 배제된 자리에서 조종사 송환문제와 결부시켜 거론했다면 이는 어떤 명분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어불성설이 아닐수 없다. 한­미 양측은 차제에 이같이 논란의 소지가 있는 대목을 포함,북­미핵타결이후 누적돼온 오해의 소지를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또 남북한과 미국 3자관계에 있어 북한의 이간책이 먹혀 들거나 한­미간 오해로 뜻밖의 심각한 상황,「불편한 관계」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경각심도 공유해야 할것 같다. 다만 한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을 다루는데 있어 오랜경험과 노하우로 한국이 「한수위」임을 인정받아 한반도문제 논의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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