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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일로 창고극장’ 다시 문연다

    ◎극단 창작마을 ‘명동’으로 이름 바꿔/11∼13일 심우성의 ‘결혼굿’으로 재개관/15일부터 한달 단막극 2편 동시 공연/창작극 위주 다양한 장르실험무대 활용 연극 소극장운동의 기수로 70,80년대 우리 연극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했던 삼일로 창고극장이 11일 다시 문을 열게 됐다. 지난 76년 4월22일 첫 개관이후 유달리 폐관과 재개관의 부침이 심했던 이 극장을 극단 창작마을이 11일 ‘명동 창고극장’이란 이름으로 재개관한다. 극단 로얄씨어터가 부동산 활황으로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91년 11월 간판을 내린 이후 7년여만에,네번째 무대를 올리는 것이다. 전체 50평에,객석 100석 규모의 삼일로 창고극장은 사이코드라마 때문에 연극인들과 인연을 맺었던 신경정신과 의사 유석진 박사가 사들여 원로연극인 이원경씨에게 운영을 맡겨 비롯됐다. 당시 삼일로 창고극장은 연중무휴 공연과 프로듀스 시스팀 도입으로 많은 연출가를 길러냈고 창작극 발굴에도 앞장서 젊은 극작가 등장에도 한 몫을 해냈다. 고 추송웅씨가 모노드라마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으로 이 작은 극장에서 1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더욱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83년 건물주가 바뀌면서 폐관할 뻔한 극장을 추씨가 2개월정도 운영하다 건물 신축관계로 이 해 8월31일 문을 닫았다. 그나마 공사 보류로 3년여간 방치돼온 이 극장을 86년 9월12일 극단 한샘이 인수,3차개관을 했으나 우여곡절끝에 극단 로얄씨어터가 맡아 운영하다 결국 5년만에 폐관됐다. 창작마을 대표 김대현씨 등 단원들이 인쇄소,김치공장으로 쓰이던 이 곳이 최근 3개월째 비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창고극장의 재건을 ‘다시한번’ 시도하게 된 것. 현재 객석과 무대를 만들고 조명기구를 설치하는 등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11∼13일 심우성의 1인극 ‘결혼굿’을 개관 축하공연으로 올리고 15일부터 10월18일까지 ‘그림자를 찾아서’ ‘블랙박스’ 등 우수단막극 두편을 동시에 공연한다. 김대현씨는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시절,이 곳에서 연극정신을 실천했던 선배연극인들의 맥을 잇고자 재개관을 결심하게 됐다”면서 극장의 옛날이미지를 살리면서 오늘의 변화를 수용해 새로운 예술을 창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연극 중에서도 창작극 위주의 공연과 함께 마임,그림자극,무용극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으로 실험적인 예술공간으로 활용하겠다고 덧붙였다. 극단 창작마을은 93년 희곡작가들이 주축이 돼 구성된 극단으로 ‘희곡문학상’과 ‘단막극제’를 매년 실시하는 등 창작극 뿌리내리기 운동을 전개해왔다. 새롭게 단장되는 ‘명동 창고극장’은 뒷좌석의 관람객의 경우 천정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시설면에선 빈약하지만,초창기 우리 연극사를 풍미했던 명동시대의 옛 영화와 함께 30대 중반이후의 연극팬들에겐 학창시절의 향수를 누리게 해주는 반가운 소식이 될 것 같다.
  • 정부·재계 5대 그룹 구조조정案 ‘삐걱’

    ◎재계 ‘해명’­“빅딜이다”.“제약속에 최선다한것” 국민상대로 홍보나서.“기업들 몸집키우기가 최근의 구조조정 흐름”/정부‘반발’­백딜이다”.“재분리 잠재된 통합” ‘이면계약설’에 촉각.“자구노력 하지않은채 컨소시엄 등으로 회피” ‘전체적으로 미흡하다. 퇴짜놓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정부) ‘나름의 제약속에서 최선을 다한 안(案)인데,섭섭하다’(재계) 5대 그룹의 구조조정안을 놓고 정부와 재계가 삐걱대고 있다. 난산(難産)조짐이다. 朴智元 청와대 대변인은 7일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공동출자 형식은 문제가 있다”며 5대 그룹 구조조정안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金宇中 전경련 회장대행은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면이 많은 안이다. 대(對)국민홍보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힘겨루기가 팽팽하다.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이 없다=중복·과잉투자 해소를 위해 빅딜로 지분을 정리해야 함에도 지분을 유지하는 컨서시엄이나 공동법인으로 방향을 튼것은 여전히 문어발 경영에 향수를 갖고 있기 때문이란 게정부 시각이다. 朴대변인이 “어느 회사가 누구 것 인지도 모르고 정부가 지원해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한 것은 빅딜이 없었음을 질타한 대목이다. 당국은 현 정권때만 통합하고 나중에 재분리하는 ‘이면계약설’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80년대에는 분사(分社)나 사업교환,리엔지니어링이 구조조정의 흐름이었지만 최근엔 몸집키우기가 대세라고 반박한다. 주인있는 경영보다 책임경영이 중요하며,빅딜이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특혜소지가 높다=정부는 부채탕감같은 특혜성 지원을 곤란하다고 밝힌다. 세제·금융 지원이 5대그룹에 국한돼서는 안되며 기업의 구조조정 촉진차원에서 정부가 전산업에 지원키로 한 것 이상 어렵다는 입장이다. 재계는 부채탕감을 요구한 적은 없다고 항변한다. 다만 5대 그룹에 적용되던 우대금리(프라임레이트)를 10년간 연장해주고 원금은 외자유치로 갚게 해줄 경우 금융기관과 기업이 함께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구노력이 안보인다=5대 그룹이 구조조정안을 발표하면서 자구노력없이 컨서시엄등으로 피해갔다는 게 당국의 생각이다. 이에 대해 金宇中 회장은 “아직 구조조정 원칙만 밝힌 상태며 컨서시엄 구성에 따른 부채규모가 파악되면 당연히 자구노력이 따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쌍용자동차가 대우에 인수되면서 부채를 전액 떠넘기지 않고 일정부분을 스스로 해결하기로 한 전례가 있다”고 강조했다. ■독과점 우려가 높다=공정위는 기업결합 심사지침에 위반될 경우 시정·보완을 요구하겠다는 태도다. 그러나 재계는 “우물안 개구리식 발상”이라며 “시장이 개방되면 국내 독점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미국 보잉과 맥도널더글러스사의 합병에 대해 유럽연합(EU)이 독과점문제를 제기했지만 미 연방공정위원회가 양사의 합병을 승인한 사례를 든다.
  • 전직 언론인 양덕재씨 ‘최신 화장품학’ 출간

    ◎化粧의 역사는 약 1만년/이집트 목동 태양광선 차단이 효시/화장술·향수는 클레오파트라때부터/피부 구조·노화방지 등도 폭넓게 다뤄 화장은 우리 생활과 밀접히 연관돼 있는 생활예술이다.그러나 화장이 언제 생겼고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전직 언론인 梁悳才씨(59)가 ‘최신 화장품학’이라는 방대한 저서를 펴내 눈길을 끌고 있다.상,하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화장의 역사 뿐만아니라 인체의 피부구조와 노화방지,화장품과 피부관리 등 화장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담고 있다.일본 번역서 외에 변변한 관련서가 없는 우리 현실에서 볼 때 ‘화장품학’에 이론적 화장을 입힌 ‘화장학 총론’인 셈이다. 화장은 기원전 7,500년전 이집트에서 시작됐다.당시 사냥꾼과 목동들은 건조한 사막바람과 강렬한 태양광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야생나무 기름을 바르는 등 현실적 목적에서 화장을 했다.현대적 의미의 화장은 이집트 마지막 여왕 클레오파트라에서 유래된다.그녀의 화장술과 염색기술,향수등 화장의 기본 개념은 2,000년이 지난 요즘도 이어져 오고 있다. 화장품이 여성 필수품이 된 것은 20세기 초엽.여성들의 활발한 사회진출에 따른 것이다.화장품에 정부의 통제및 과학이 도입된 것은 1938년 화장품을 사용한 한 여성이 장님이 되는 사건이 계기가 됐다.미국정부는 의약품 및 화장품법을 전면 개정했고 화장품 제조방법에도 과학화가 시도됐다. 화장품사업이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50년대 후반.전후의 베이비 붐과 여성 취업인구의 급속한 증가 때문이며 여성의 허영심을 이용한 고가의 판촉전략도 이때 등장했다.60년 미국의 에스테 로어더는 크림을 무려 115달러에 판매,무모하다는 일반 예상을 뒤엎고 대성공을 거둔다.그러나 20세기 내내 태평성대를 누려온 화장품 업계는 90년대 들어 미용수술이라는 복병을 만난다. 이 책은 또 세계 화장품의 감시자인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불량 및 부정화장품에 대한 규제 및 리콜 시스템 등에 대해서도 소개,미국시장에 진출하려는 국내 업계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저자 梁씨는 70년대 초반까지 서울신문등에서 기자를 지낸 전직 언론인.아내가 외국어로 된 화장품 설명서로 어려움을 겪는 것에 지적 호기심이 발동,화장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91년부터 미국 대도시의 도서관과 대학도서관 등을 발로 뛰며 미술사,문학,역사,복장사 등 관련분야에 대해 폭넓게 공부했다.300여장의 귀중한 사진도 곁들여져 있다. ◎클레오파트라 美 비결/당나귀젖 목욕·화장시녀 수십명 이집트여왕인 클레오파트라는 동서 고금을 통털어 미인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녀는 백인이었을까,구리빛 중동여인이었을까. 정답은 백옥같이 흰 피부를 지닌 백인미녀다. 그녀는 이집트 태생이지만 원주민은 아니다. 그녀의 가계는 미녀가 많은 그리스 마케도니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렉산더대왕은 기원전 332년 이집트를 지배하고 있던 페르시아를 쫓아내고 프톨레메이어스 장군을 통치자로 보내는데 그녀는 프톨레메이어스의 13세 자손이다. 헬레니즘 문명을 만들어낸 그리스인들은 꾸밈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완벽한 여성미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미로의 여신상에서 그들의 탁월한 미적 감각을 엿볼수 있다. 그녀는 당나귀젖으로 목욕하고 화장전문가인 시녀들을 수십명씩 두었다고 전해진다. 이집트의 화장술과 그리스의 미적 감각이 결합했으니 그녀가 역사상의 미인이 된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하겠다.
  • 親日의 군상:3/3·1문화상과 皇國예술인(정직한 역사 되찾기)

    ◎민족 짓밟고 해방후 민족상까지 받아 ‘3·1문화상’이라는 상이 있다.1960년에 제정돼 올해로 39회째 수상자를 냈다.3·1문화재단(이사장 文仁龜)에서 주관하는 이 상은 대한유화 창업자 李庭林(작고)씨가 제정한 것으로 시상분야는 학술·예술·기술 등 세 분야.재단측이 밝힌 이 상의 제정취지는 “조국광복을 지향하여 거족적으로 발양된 위대한 3·1정신을 영원히 기념하여……”다.상 이름에도 ‘3·1’이 들어가고 또 매년 3·1절 당일 시상식을 갖는 것으로 봐 이 상은 3·1정신을 길이 계승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 분명하다.그런데 이 상의 역대 수상자·심사위원 중에는 일제 당시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거나 친일 작품을 남긴 예술가 상당수가 포함돼 있다.예술분야 수상자중 13명,심사위원 중에는 20여명(일부 수상자와 중복됨)이 이에 해당된다.그들의 면면과 구체적인 일제시대 행적을 살펴보자. ◎상받은 예술인 13명의 친일행적은…/문인·화가 등 30여명 ‘위대한 3·1정신’ 왜곡/식민정책 전위대 역할… 청년 징병 내몰아 우선 예술분야 수상자가운데 문학가는 趙演鉉(13회)·安壽吉(14회)·白鐵(17회)·毛允淑(21회)·崔貞熙(24회)·李周洪(28회)등 6명,미술가는 李象範(4회)·金景承(5회)·金殷鎬(6회)·金仁承(9회)·朴泳善(10회)·金基昶(12회)등 6명,음악가는 金聖泰(22회) 1명이다. 문학 분야의 趙演鉉은 대학 재학시절부터 친일 잡지 ‘동양지광’에‘동양에의 향수’(1942년 5월),‘아세아부흥론 서설’(42년 6월)등 친일성향의 평론을 썼다.이중 아세아부흥론 서설은 ‘동양지광’이 현상공모한 ‘지상(紙上)결전 학생웅변대회’에서 3등으로 입선한 작품으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찬양하고 이 땅의 청년학도들이 아시아부흥의 투사로 나설 것을 부추긴 내용이다.‘북간도’로 유명한 소설가 安壽吉은 친일 문학잡지 ‘국민문학’(42년 2월)에 발표한 ‘원각촌’ 이외에도 ‘벼’,‘북향보’등의 친일성향의 작품을 쓴 바 있다. 평론가 白鐵은 작품보다는 친일단체에서 활동이 두드러졌다. 그는 친일 문인단체인 조선문인협회(회장 李光洙) 상무간사,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를 지냈으며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학예부장 시절 친일 미술가 沈亨求(해방후 반민특위에 의해 구속됨)와 함께 조선미술가협회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여류문인으로 이 상을 수상한 사람은 毛允淑,崔貞熙 두 사람이다.이들은 모두 조선문인협회에서 활동하였으며 41년 2월27일 부민관(현재 서울시 의회 건물)에서 개최된 조선임전보국단 주최 ‘결전부인대회’에 참석해 강연을 했다. 아동문학가로 활동한 李周洪 역시 상당수의 친일 작품을 남겼다.그는 친일 잡지인 ‘동양지광’에 수필 ‘청년과 도의’(43년 7월)를 비롯해 단편소설·시 등도 남겼다.그는 유일하게 사후에 이 상을 수상했다. 미술계의 친일논쟁은 해방직후부터 시작됐다.문화예술인의 최초 조직이었던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 조선미술건설본부는 金殷鎬·金基昶·金景承·沈亨求·李象範·尹孝重 등을 친일 미술가로 규정,회원에서 제외시킨 바 있다.이들의 대다수는 41년 2월21일 결성된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황민문화’ 건설을 목적으로 조선문인협회·보도사진협회 등 11개예술단체와 더불어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단체로 활동하면서 전람회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내놓기도 했다.43년 1월9일∼17일 정자옥(丁子屋·일제 당시 현 미도파백화점 자리에 있던 백화점)에서 ‘애국백인일수(愛國百人一首) 전람회’를 열어 그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내놓은 것이 그 예다. 미술가로서 첫 수상자인 李象範(4회)은 沈亨求와 더불어 국민총력연맹 문화부 문화위원을 지냈으며,金景承·金仁承 형제는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평의원을 지냈다. 특히 金仁承은 朴泳善과 함께 선일(鮮日)합작 미술단체인 단광회(丹光會)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단광회는 43년 3월 징병제 실시를 앞두고 회원 21명이 4개월에 걸쳐 공동으로 ‘조선징병제 실시’(100호 규모)를 제작,제1회 단광회 유화전에 출품하였는데 나중에 이 그림은 조선군 애국부를 경유하여 군에 헌납되었다. 순종(純宗)의 초상화를 그린 金殷鎬 역시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하였으며 37년 중일전쟁 무렵에는 조선여성들이 당시 용산 사단사령부 모 일본군 장성에게 금비녀·금반지 등을 바치는내용의 ‘금채봉납도(金釵奉納圖)’를 그리기도 했다.金基昶은 최근까지도 친일논쟁이 있었던 인물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등의 친일성향의 그림을 그린 바 있다. 음악가로는 金聖泰가 유일하다.그는 玄濟明 등과 함께 ‘가창지도대’,‘경성후생실내악단’등 친일 음악단체에서 활동하였다.이 단체들은 ‘음악보국음악회’,‘비행기헌납 음악대연주회’등을 개최,황민음악을 보급하였다. ◎‘역사의 심사’받아야 할 심사위원은… 3·1문화상의 역대 심사위원 중에도 20여 명의 일제 식민정책 협력자들이 포함돼 있다.이들중 申奭鎬와 李丙燾는 총독부·조선사편수회에 근무하면서 조선역사를 왜곡하고 식민사관을 뿌리내린 장본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의료계의 鄭求忠과 尹日善도 학병권유 논설을 쓰고 시국강연회에 참석했다. 白樂濬은 친일 ‘기독교신문’의 산파겸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경제학자 高承濟는 ‘국민문학’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등에 수많은 친일 평론을 남겼다.언론인 高在旭은 경성배영(排英)동지회와 전조선배영동지회연맹에서 상무이사를 지냈으며 여류 교육가 高凰京은 金活蘭·毛允淑 등과 같이 각종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문인중에서는 金八峰·朴鍾和·兪鎭午·郭鍾元 등도 다소 차이는 있으나 모두 친일 논설·작품을 남겼고 극작가 柳致眞·徐恒錫,음악가 金元福(피아니스트) 등도 모두 친일 예술활동을 한 적이 있다.柳致眞의 경우 친일 행적이 문제가 돼 고향 충무에 세워졌던 그의 흉상이 95년 주민들에 의해 철거됐다. ◎“아니! 이럴수가…” 독립유공자 심사까지/‘식민학자’ 등 10여명 18년간 활동 독립유공자에 대한 정부차원의 포상은 지난 62년 군사정부가 6·25 전상자를 위한 ‘군사원호법’을 제정하면서 시작됐다.정부는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세우고 독립유공자들의 공로를 후세에까지 전한다는 취지에서 매년 광복절 등 역사적 기념일에 이들에 대한 포상을 실시해 왔다. 현재까지 독립유공 공로로 포상을 받은 국가유공자는 모두 8,514명(외국인 40명 포함)이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의 독립유공자 포상을 둘러싸고 이런 저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역대 독립유공 서훈자 가운데 ▲친일 기관·단체 등에서 활동한 사람이 포함돼 있다거나 ▲가짜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 ▲서훈자가 서로 뒤바뀐 경우 ▲형평에 어긋난 포상 등의 논란이 있어 왔다.또 이들중 일부 친일 경력자가 국립묘지에 안장돼 민족정기를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역대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중에도 친일 단체나 기관 등에서 활동한 인사가 일부 포함됐었다는 지적도 있다. 첫 포상이 실시된 62년도 이후 80년까지의 역대 심사위원 중에는 10여명(일부 중복자 포함)의 일제 식민정책 협력자가 포함돼 있다. 1962년 문교부 산하 독립유공 공적조사위원회의 위원 7명(위원장 포함)가운데 申奭鎬·李丙燾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申奭鎬는 1930년∼37년의 총독부수사관보(修史官補)를 거쳐 37년부터 수사관으로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으며,李丙燾는 1925년∼27년에 총독부 수사관보,이후는 촉탁으로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다. 1963년에는 내각사무처 독립운동유공자 상훈심의회에서 심사를 맡았는데 심사위원 22명 중에는 4명의 친일인사가 들어 있다.高在旭·申奭鎬·柳光烈·李甲成 등이 그들이다.高在旭은 1937년 7월 12일 결성된 경성배영동지회와 같은 해 8월5일 결성된 전조선배영동지회에서 상무이사를 지냈다.柳光烈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편집국장과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조선언론보국회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친일논설 및 친일 시국해설 다수를 발표한 언론인이다.李甲成은 상해서 밀정노릇을 했다는 주장이 있다. 1968년에는 총무처 독립유공자 상훈심의회가 심사를 맡았는데 심사위원 21명중 高在旭·白樂濬·申奭鎬·柳光烈·李丙燾·李瑄根·洪鍾仁·金聲均 등 8명의 친일 기관·단체 등에서 활동한 인사가 들어 있다.白樂濬은 친일 ‘기독교신문’의 산파겸 편집위원을,李瑄根은 만주국 협화회의 협의원을,洪鍾仁은 ‘매일신보’의 사회부장과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이사를 지낸 사람이다.金聲均은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언론·출판 검열담당)에서 근무한 기록이 있다. 1977년 원호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 11명 가운데도 柳光烈·李殷相 등 2명이 포함돼 있는데 李殷相은 만주에서 발행되던 친일지 ‘만선일보’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에 포함된 친일 경력자 논란은 1980년까지 계속됐다.이 해 원호처의 독립유공자 심사위원 11명 중에는 申奭鎬가 ‘끈질기게’ 포함돼 있다.그는 62년 첫 심사부터 63년,68년,80년도에 걸쳐 독립유공자 심사에 참여했었다. 친일파연구에 일생을 바친 고(故)林鍾國씨는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논하는 자리나 대일(對日)외교 무대 등에는 친일파들이 나서서는 안될 자리”라고 강조한 바 있다.
  • 美 對테러정책 ‘강하게’ ‘부드럽게’

    ◎군사적 응징 통해 ‘세계 경찰’ 위상 강화/반미세력 결집땐 ‘냉전향수’ 확산 우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수단에 대한 폭격과 관련,‘강·온 양면작전’으로 선회했다.테러에 대한 미국의 논리를 효과적으로 설파하기 위한 조치로 여겨진다.테러의 주범인 회교근본주의자들을 온건 이슬람권을 비롯,지구촌으로부터 고립시켜 효과적으로 공략하려는 전략 같다. 현재 드러난 상황은 강경이 주류를 이룬 것처럼 보인다.보복조치 직후 테러기지에 2∼3차례 정도의 추가 폭격을 강력하게 시사한 데 이어,23일 미 대사관의 담장을 넘으려던 알바니아 경찰을 그 자리에서 사살했다.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은 “빈 라덴이 선전포고하고 테러조직을 통제·지휘하고 있다면 죽더라도 유감스럽지 않다”며 대사관 폭탄테러의 주범으로 거론되는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기 위해 나설 것임을 내비쳤다. 또 리비아가 지난 88년 발생한 팬암기 폭파 용의자로 지목된 리비아인 2명에 대한 국제재판 회부를 거부하면 리비아에 금수(禁輸)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미국이 강경책을 먼저 내세우는 데는 세계 초강대국의 위치를 확고히 굳혔다는 자신감과 세계 여론이 테러에 대해서는 등을 돌리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 같다. 그러나 수단의 화학공장에 대한 유엔 진상조사단 파견 반대를 고수해오다가,유엔의 공식조사가 결정되면 협조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일방적인 강경책은 피하겠다는 의도다. 군사적 응징 일변도는 장기적으로는 비효과적이라는 판단과 비서방세계의 러시아에 대한 ‘초강대국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이슬람권의 결속을 더욱 야기시켜 이란 쿠웨이트 파키스탄 등 친미 이슬람권의 입지를 난처하게 만든 대목도 유화정책을 병행할 수 밖에 없도록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끝나지 않은 노래/李啓弘 논설위원(外言內言)

    서울신문이 시리즈‘민주열사 열전’에서 張俊河를 다룬데 이어 며칠 전 KBS TV가 ‘광복군 張俊河의 끝나지 않은 노래’를 방영했다. 정부수립 50돌 기념으로 내보낸 이 다큐멘터리는 한동안 방송에서 금기시해왔던 재야인사의 일생을 심도있게 다뤘다는 점에서 감회를 새롭게 했다. 그리고 근래 일부 언론들이 역대지도자 여론조사라는 이름으로 의도적이든 아니든 특정인 신화만들기작업을 벌인 것과 대비돼 이 프로에 대한 관심이 더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수개월 사이 일부 언론들이 역대 지도자 평가작업을 벌인 결과 1위는 언제나 朴正熙 전 대통령이 차지했다.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그때의 상황논리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자 한계라면 한계다. 현재 IMF관리체제의 경제난 때문에 과거 절대빈곤을 해결한 朴전대통령에 대한 향수는 어쩌면 자연스럽다. 저돌적인 성장드라이브정책을 가동하면서 산업화라는 과실을 안겨주어 요즘 살기가 팍팍한 사람들은 그가 그리울 것은 당연해보인다. 하지만 폭압정치의 폐해는 그의 공적을 몇겹 덧씌우고도 남는다는 평가도 있다. 그의 업적을 외면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한때의 상황적 논리로 신화를 만들어 가는 것은 위험하다. 아직 해방공간의 지도자에 대한 평가작업도 실험단계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적, 공간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역사적 평가’를 내리기에는 여전히 부적절한 사람을 여론조사라는 이름으로,그것도 일방적으로 영웅으로 몰아가는 모습은 어딘가 어설프고,또다른 대중조작으로 비쳐진다. 그리고 어떤의도가 숨어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떨치지 못하게 한다. 지금은 여러가지 검증과 논의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때 정치적 반대자라고 해서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것조차 금기시해놓고,그래서 국민들이 정당한 평가를 내릴 정보도 상당부분 차단되어있는 사람과 모든 정보매체를 독점,국민을 세뇌하다시피 한 인물을 동일 선상에 놓고 평가하라는 것은 마치 슈퍼헤비급 선수와 플라이급 선수를 나란히 세워놓고 체격비교를 하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는 관전자 입장에서도 재미가 없을 것이고,또 이를 게임이랍시고 붙인 사람도 도덕성과 공정성을 비판받기 십상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얼마전 KBS가 방영한 ‘광복군 張俊河의 끝나지 않은 노래’는 의미가 있다. 개발독재와 민주적 가치가 부딪쳤을 때 朴正熙의 대칭점에 서있던 인물을 등장시켜 평가의 마당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묻혀있는 인물에게 기회를 자주 제공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민이 상황논리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인물의 정당한 평가를 하는 데 잣대로 작용하리라고 본다.
  • 학전,영국 뮤지컬 ‘의형제’ 각색

    ◎쌍둥이 형제 삶 통해 본 현대사 질곡/라이브 연주로 공연… 신예 대거 등장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 ‘개똥이’ 등을 통해 한국적 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온 학전이 이번엔 영국식 뮤지컬 ‘의형제’를 올린다. 9월1일부터 학전그린 소극장(평일 하오 7시30분,토 하오 4시·7시30분,일·공휴일 하오 3시·7시,월 쉼). 윌리 러셀의 ‘Blood Brothers’를 김민기가 번안 연출한 작품으로 ‘개똥이’ 이후 3년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원작은 오일쇼크와 파운드화의 몰락 등으로 1976년 IMF관리하에 들어가게 된 항구도시 리버풀을 배경으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정반대의 환경에서 자라난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 이를 동란중 피난시절부터 70년대 유신말기까지의 한국적 상황으로 옮겼다.전쟁통에 피난지 부산에서 영도다리를 사이에 두고 빈민촌과 부촌에서 따로 자라게 된 쌍둥이 형제 무남과 현민의 삶을 통해 우리시대 질곡의 모습을 투영한다. 언뜻 ‘왕자와 거지’를 연상시키는 이야기 얼개에,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형제간의 갈등,가난으로 한 아이를 다른 집에 보내는 어머니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모님 등 멜로드라마에 주로 등장하는 통속적인 요소들이 많아 뮤지컬 멜로드라마라고 불리기도 하는 작품이다. 이같이 어둡고 다소 무거운 줄거리를 지남철 딱총 새총 등 50,6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낱말들과 놀이,그리고 김민기 특유의 음악적 감각으로 상쇄하고 있다.6인조밴드의 라이브 연주로 공연될 이번 작품은 따라서 강한 비트위주의 종전의 학전 뮤지컬과는 달리 서정적이고 잔잔한 선율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번 무대엔 오디션을 통해 뽑힌 신인들이 대거 등장한다.주인공 ‘간난’ 역에 캐스팅된 배해선 문정희와 김선영(사모님) 김학준(현민) 등이 학전 뮤지컬에 처음 내미는 얼굴들.여기에 ‘지하철 1호선’ ‘개똥이’ 등에서 호연했던 김효숙 이미옥 권형준 등이 가세해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꾸민다.763­8233
  • 귀순자들의 대화/北의 가족 그리움에 애간장(탈북 그 이후:5)

    ◎“세월이 약이겠지” 무덤덤하게 시름 달래/각종 모임서 ‘두고온 가족’ 얘기가 큰 위안 “이제 와서 얘기하면 뭐 합네까,가슴속에 묻어둔 아픈 사연들이 되살아날까 두려울 뿐이야요” 탈북자들은 북에 두고 온 가족과 친지들에 대한 그리움이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점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도 대개는 ‘세월이 약이겠지’라며 애써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탈북 7년째인 金모씨(32·여)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혈육의 정에 애간장을 태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고향 얘기로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金씨는 “대다수의 탈북자들은 하루빨리 이곳 생활에 익숙해지는 게 죄책감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잡았던 마음도 명절이나 부모의 생일 때가 되면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만다. 향수병이 도지는 탓이다. 이내 눈시울이 촉촉히 젖는다. 감정에 복받쳐 종일 울 때도 있다고 한다. 지난 95년에 탈북한 崔모씨(46·사업)는 “부모님의 생일이 되면 통일전망대로 가 ‘불효자의 한’을 달랜다”면서 “북녘하늘을 쳐다볼 때마다 남겨 두고 온 가족들의 얼굴이 아른거려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올 연말 착한 색시를 만나 결혼할 예정”이라는 柳모씨(31·평양외국어대학 출신)은 “누구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해 줄 수 없는 현실이 그저 야속할 뿐”이라면서 “지난 번 꿈속에서 부모님께 결혼 날짜를 알려드렸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나마 이들에겐 ‘탈북자들의 모임’이 큰 위안이다. 숭의동지회,통일연구회 등을 통해 ‘우리들만의 대화’시간을 갖는다. 지난 연말에는 자유총연맹 주최로 ‘귀순자 망년회’를 처음 갖기도 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자체적으로 만든 ‘미니모임’이 더 활발하다. 탈북자 불교모임을 주도해 온 金명철씨(36·전 남순지장회 회장)는 “정신적·문화적 갈등으로 빚어지는 어려움을 서로 이해하고 북돋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IMF한파 등으로 먹고 살기에 바빠 최근에는 잘 만나지 못한다고 했다. 구소련동구유학생모임의 회장인 金지일씨(35·우크라이나 하리코프 종합대학 출신·컴퓨터소프트웨어개발회사 대표)는 “탈북 8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정신적 고통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면서 “탈북 유학생들끼리 유대관계를 갖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게 큰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사회 적응과 이산의 아픔이라는 이중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탈북자들.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무슨 큰 문제가 되겠느냐”고 반문하면서도 얼굴 한켠에는 감춰지지 않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되새기고 싶지 않은 고향의 사연’을 뒤로 한채 남북이 통일돼 부모 형제를 만날 수 있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새 삶을 가꿔나가고 있다.
  • 高失業 장기화 대비하라/자동화 급속 진전… 일자리 감축 불가피

    ◎미선 81∼91년 일자리 180만개 사라져/우리도 서구모델 따르면 10% 만성실업 경제가 회복되면 다시 고용이 높아질까? 대부분 사람들은 그저 관념적으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경제 회복=실업 해결이란 단순논리는 완전고용 시대의 향수를 떨쳐버리지 못한 발상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일자리 없는 성장’ 논쟁 밖으로 눈을 돌려보자.외국에서는 수년 전부터 ‘일자리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논쟁 대상이 돼 왔다. 세계는 컴퓨터의 보급 확산과 함께 자동화,정보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앞으로는 노동이 필요없는 성장이 이뤄진다는 것이다.성장률이 높아지더라도 고실업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예상은 미국 경제추세재단 이사장인 제레미 리프킨이 95년에 발간한 ‘노동의 종말’(95년 발간)에서 처음 제기했다. ○세계적 실업증대 야기 자동화 기계,로봇과 컴퓨터로 대표되는 새로운 하이테크 혁명은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 시대의 도래를 뜻한다.“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아 전 세계적인 실업증대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1억2,400만명의 노동력 중 900만명을 신기술로 대체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생산성의 급격한 증가는 바로 대대적인 노동력 감축을 의미한다. 미국의 경우 91년까지 10년간 제조업 부문에서 모두 180만개,독일의 경우에는 92∼93년 사이 12개월동안 5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진 것이 이를 뒷받침 한다. 경제학자들과 정치인들은 산업현장에서 쫓겨나는 노동자들을 서비스부문과 화이트칼라 직업이 흡수할 수 있다는 희망을 계속 주장하고 있긴 하다.그러나 리프킨은 “이들의 희망은 좌절될 것”이라고 단언한다.자동화와 리엔지니어링은 이미 광범위한 서비스 관련 분야의 노동력을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국제노동기구(ILO)는 ‘일자리 없는 성장’이론을 반박하고 있다.경제성장과 고용창출간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져왔다고 주장한다. ○서비스분양 노동대체 70년대 오일쇼크 이전의 미국은 연간 2%의 성장률(유럽은 4.3%)이 돼야 고용이 늘기 시작했는데 현재는 0.6%(유럽 2.0%)만되면 고용이 증가한다는 점을 논거로 들고 있다. 어느 주장이 옳은지 현재로서는 판단이 어렵다.그렇다 하더라도 본격적인 대외 개방,구조조정,자동화 혁명 등을 거치면서 우리나라가 서구 모델로 갈때 10%가 넘는 만성적인 실업률을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어쩌면 3% 미만의 완전고용은 서구 대부분의 국가들에서처럼 영영 달성이 어려운 과거의 꿈이 될지도 모른다.이런 점에서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인용한 한 기업컨설턴트 말은 귀담아 들어둘 만하다. “우리는 일자리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어떻게 일자리를 창출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 ‘지구촌시대 한국’ 심포지엄 주제발표/崔章集 고려대 교수·정치학

    ◎근본적·전면적 개혁 필요/IMF 해결 관치금융·부패 고리 청산부터 행정자치부와 한국행정연구원은 건국 50주년을 맞아 11,12일 양일간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지구촌시대의 한국’이라는 주제의 학술심포지움을 갖는다. 다음은 崔章集 고려대 교수(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가 발표한 주제논문 ‘한 어려운 결합,민주주의와 시장경제:金大中의 도전’의 요약. ◇민주적 시장경제의 개념과 의미=민주적 시장경제는 자유주의 이념에 입각한 공정한 시장경쟁원리의 작동을 기본개념으로 한다.하지만 정부가 시장의 원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해야 한다.이것은 전후 독일 기민당 정부의 사회적 시장경제나 1910년대 영국 자유당 정부의 사회협력주의 전통과 비교할 수 있다. ◇민주,시장경제 병행발전의 이론측면=민주화가 오늘의 경제위기를 가져왔다는 주장이 나온다.朴正熙에 대한 향수도 이같은 인식에서 나왔다. 60년대에는 경제발전에 비례해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내용의 립셋의 초기 근대화이론이 주류였다.이런 낙관론은 70년대 경제발전이 오히려 권위주의를 강화한다는 오도넬의 관료권위주의론으로 세대교체됐다.이 이론도 80년대 들어서는 1인당 국민소득이 6천달러가 넘으면 민주주의가 붕괴되지 않는다는 쉐보르스키의 신근대화이론으로 대체됐다.따라서 한국사회는 더 이상 민주주의를 심화시키지 않고는 경제발전도 이룰 수 없는 과도기에 도달했으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발전을 병행해야 한다는 金大中 대통령의 기본노선은 현실적,이론적으로 타당하다. ◇민주적 시장경제론 한국적용의 문제점=朴正熙정권의 권위주의적 경제발전 모델은 민주화와 세계화를 부르짖는 金泳三정권에서 답습됐다.다시 말해 민주정권이었으면서도 민주와 경제발전을 병립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이 과거 한 세대동안 압축적으로 고도성장 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개발독재 때문이 아니라 당시 세계경제질서가 요구하는 필수조건,즉 세계에의 개방이라는 발전전략이 토지개혁,높은 문자 해득률이라는 내부적 요소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이런 조건 하에서 우리가 왜 IMF 위기를 맞게 됐는가 하는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외적으로는 고수익을 추구하는 외국자본의 대량유입,무역수지 적자의 확대,국제 가격경쟁력 약화 등을 들 수 있다.내적 요인으로는 정경유착에 의한 대기업에 대한 대규모 금융융자와 관치금융,‘대마불사(大馬不死)’신화에 사로잡힌 방만한 기업확장 등이라고 볼 수 있다.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방후 미군정 하에 이뤄졌던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일본이나 독일이 미군정 하에서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해 수행했던 개혁,1930년대 미국의 뉴딜정책과 같은 근본적 치유책이 필요하다. 개혁의 핵심은 정경유착을 단절하고 재벌을 개혁하며 관치금융과 부정부패를 청산하고 노동을 이익의 분배와 고통분담의 생산자 주체의 하나로 인정해 정책수행의 파트너로서 체제내로 포용하는 일이다.경제 구조조정이 본격화 하면서 복지체계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됐다.정부가 시장이 아닌 정치적 방법으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 한 실효성 있는 실업대책이나복지정책은 어렵다. ◇노동문제에 대한 민주적 시장경제의 적용=노동문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고 하는 국정이념의 성패를 가르는 시금석이다.노사정위가 진정한 협의기구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실업을 유발하는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의 순응을 얻어내고 노동에게 정치영역을 개방하고 조직력을 강화할수 있는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
  • 폐교 문예산실로 거듭난다/창작 스튜디오로 활용

    ◎문화부 내년 시범설치/예술인 창작의욕 부축 폐교가 창작스튜디오로 활용된다. 문화관광부가 창작공간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가들에게 폐교 등 사장된 공간을 제공하기로 한 것. 문화부는 우선 내년까지 수도권과 충청권,영·호남권 등 권역별로 1∼2개소의 창작스튜디오를 시범설치한 뒤 이를 각 시도로 확대해나가는 한편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예술단체,민간기업이 추진중인 창작공간사업도 계속 지원할 방침이다. 창작스튜디오는 작품활동 위주의 창작공간과 전시 및 공연·강좌·세미나 등의 다목적 공간,인터넷 등 정보통신과 비디오 필름 서적 등을 갖춘 자료실,예술체험과 작품제작실습을 위한 학습체험공간,화장실·주방·숙박시설을 갖춘 휴게공간 등으로 꾸며진다. 이들 스튜디오는 3가지 유형으로,작가의 성향과 주민의 문화수요 등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예정이다. A형은 회화실·판화실을 갖춘 평면조형 위주이고,B형은 목조형실·철조형실·단조실로 구성된 입체조형 위주,C형은 유리공예실과 도예실·금속장신구실 등의 창작공간을 갖춘다. 작품제작에 필요한 각종 기기와 기구,설비 등은 공통적으로 갖춰진다. 지금까지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문예단체가 농촌지역의 폐교에 창작실을 운영하고 있으나 시설과 장비 등의 미비로 제구실을 다하지 못했다. 창작스튜디오가 본격 운영되면 창조적인 작품활동의 산실이 될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소중한 예술체험 학습장으로,또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지역 문화예술의 교류장터로,주변 문화공간과 문화유적이 연계된 새로운 문화관광명소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부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폐교 가운데 600개가 활용 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창작스튜디오의 운영은 지자체에 맡기되 관리는 문화예술단체나 스튜디오 입주자들에게 위탁할 예정이다. 현재 문예진흥원이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창작스튜디오는 2곳. 충남 논산시 양촌초등학교의 장원분교,강화군 불은면의 신성초등학교 등에 설치돼 있다. 지금까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되어온 문화예술분야 투자는 도서관 박물관 문예회관 등 주로 주민 문화향수권 확대에집중돼 왔다. 그러나 이번 창작스튜디오는 생산자를 위한 즉,문화예술인들의 창작의욕 고취와 작품활동 여건 조성에 주력하면서 주민들의 문화예술 활동의 참여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이는 지난 76년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한 미국의 비영리 미술공간을 모델로 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매년 4천여명이 활용하는 70여개의 창작스튜디오가 폐교에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에도 3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순명황후의 恨(秘錄 南柯夢:18)

    ◎독수공방 20년 후사 없어 坤宮 미움사/純宗 음양이치 잘몰라 빈궁 침실 발길 끊어/보다못한 嚴妃 영친왕 시켜 억지合房도 허사/종묘 주춧돌 28칸 반… 나라운수 예언한듯/33세에 쓸쓸히 승하하자 四廟에 큰불 조선왕조가 멸망한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일제의 침략 때문이었다.그러나 우연하게 왕실안에 이변이 거듭 일어나고 있었으니 그중의 하나가 조선왕조 최후의 임금인 순종(純宗,1907∼1910)에게 후사가 없었다는 일이다.순종은 명성황후가 어렵게 나은 외아들이었는데,불행히 여자를 몰랐다. 하루는 어린 영친왕이 함녕전으로 뛰어오더니 순종의 옷소매를 잡고 빈궁(嬪宮=순명황후 민씨)한테 가시자고 졸랐다.본시 순종께서는 음양의 이치(남녀관계)를 잘 모르셔 허송세월만 하고 계신지라 엄비(영친왕의 생모)께서 걱정하시던 끝에 어린 영친왕을 시켜 순종을 억지로 빈궁의 침실로 모시게 했던 것이다. 순종은 영친왕이 이끄는대로 따라가다가 빈궁 침실을 두어걸음 남겨두고 돌아서고 말았다.그러자 어린 영친왕이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엄비가 나타나 순종에게 꼭 한번만 빈궁에게 가보시라고 권했다.순종이 난처해서 멈칫거리고 있을 때 빈궁이 직접 나와서 순종을 자기방으로 모셨다. 순종이 방에 앉자마자 미리 준비해뒀던 주안상이 들어왔다.상궁과 나인 모두가 밖으로 나가 일이 잘 되기를 기원했다.그러나 방안에서는 아무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빈궁으로서는 시집온지 20년만인 이날 처음으로 화촉을 밝히는 것이었으니 운우의 기쁨이 얼마나 그리웠겠는가.그러나 순종께서는 앉은 자리가 뜨뜻해지기도 전에 일어나시더니 함녕전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선원계보’에 보면 순명황후 민씨는 민태호의 딸로서 11살(임오 1882년)때 태자비로 간택되어 33살(갑진 1904년)에 승하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그사이 22년 동안을 처녀의 몸으로 지냈다고 하니 그야말로 청상과부보다 못한 쓸쓸한 일생이었다. 이후에도 밤다다 11시경이면 순종이 빈궁의 침소를 찾았으나 아들을 낳을 희망은 전혀 없었다.도대체 우주만물이 모두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람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가 있겠는가. 가령 한 마을에 아리따운 처녀가 있어 향수를 뿌리고 얼굴에 분을 바르고 눈썹을 그린 뒤 웃는 낯으로 남자를 바라본다면 아무리 군왕이라 하더라도 쏠리게 마련이고 여색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인데 어찌 순종께서는 이것을 모르시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순종의 이같은 행동은 국가의 운명과도 관계되는 일이다.왜냐하면 당초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종묘의 주춧돌을 놓을 때 28칸반으로 정했는데,이로 미루어 본다면 이 나라의 운수는 가히 움직이기 어려운 일인가. 조선왕조 건국시에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길 때 무학대사와 정도전의 활약이 컸다.그래서 많은 일화가 남아있는데 그중 하나가 종묘다. 정도전이 종묘의 칸수를 28칸 반으로 정하고,‘창엽문(蒼葉門)’이란 액자를 단 것은 그가 미리 500년 후의 일을 예측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남가몽·8,4월15일자 참조) 최근 장안에 다음같은 동요가 유행하고 있는데 그 가사는 이러하다.‘어제 불고 그저께 분 바람은/러시아 군대의 대포소리요/지금 방금 떨어지는 달은 빈궁전하의 운명이로다’(昨日再昨吹去風 露國軍隊砲聲也 方今時今落來月 嬪宮殿下運命也)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면서 순명황후께서 승하했는데 이때 장안에 위와 같은 동요가 나돌았다는 것이다.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대한제국사의 한 단면이다.그보다 더 재미있는 일화는 순명황후 민씨가 시어머니 명성황후에게 미움을 사 고된 시집살이를 했다는 얘기다.이것 또한 전혀 새로운 사실이다. 본래 곤궁(坤宮=명성황후)이 살아계실 때 며느리인 빈궁과 뜻이 맞지않아 서로 원수보듯 하였다.매일아침 저녁으로 빈궁이 대전과 곤궁께 문안인사를 드릴 때 원삼에 띠를 두르고 사배(四拜)를 올리셨다. 그때 순명황후는 문지방 밖에 서서 물러가라는 명이 떨어질 때까지 서서 기다려야 했다.간혹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서 있거나 밤이 늦도록 서서 벌을 받을 때가 있었다고 하니 그 고통은 형언할 수없는 일이었다.거기다 남편인 순종이 음양의 이치를 알지 못했으니 순명황후의 운명은 기구하기만 했다. 무릇 음식과 남녀의 이성관계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인데독숙공방(獨宿空房)하며 낙을 모르고 지내기를 20년이나 되었으니 그 쓰라린 고초를 무엇으로 다 형용하리.차라리 왕비가 되기보다 사가의 부인이 된 것만 못하지 않았는가.이리하여 1904년(甲辰 고종 41년) 10월 보름 경운궁 강태실(康泰室)에서 승하하셨으니 향년 33세였다. 순명황후 민씨가 죽자 곧바로 계비 윤씨를 태자비로 봉했는데 윤택영(尹澤榮)의 12살난 딸이었다.그러나 동궁(순종)전하께서는 처음에 친영(親迎)을 마친 뒤로는 한번도 들르시지 않았으니 지난 날의 빈궁과 지내듯 담담하게 허송세월하게 되었다.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겠는가.세상사람들이 말하기를 “순종은 고자”라고 했는데 과연 그랬을까.나는 오해라고 생각한다. 정환덕은 순종이 고자가 아닌 이유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하고 있다. 본래 국법에 따르면 동궁의 바지밑에는 소변보는 구멍이 있고 오줌눌 때는 가까이 있는 내시로 하여금 요강(溺器)을 바치게 하였다.그때 내시는 황공하옵게도 동궁의 성기를 엿보게 되고 요즘 소리로 양기가 발동하여 힘이 있는가 없는가를 가늠할수 있었다.또 털이 검고 무성한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도 하였다.그런데 어찌 고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혹시 성기가 미리 발동하는 조루증은 아닌지 모르겠다. ‘마땅히 동해야 할 때 동하지 않고 동하여서는 아니될 때 동했던 것(當動而不動 不當動而動)’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것이다.어찌 되었건 그 생리를 알 수 없다.대저 신하된 도리로 감히 입을 열지 못할 일인 줄 알면서 입을 연 것은 오로지 진실이 그렇다는 것을 밝히고 싶어서이다.누가 감히 순종을 고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순명황후가 나이 설흔세살에 한 맺힌 일생을 마칠 때 또 다른 이변이 일어났다.그것은 서울의 사묘(四廟)에 큰 불이 난 것이었다. 당초 명성황후 생전시 북묘를 세우고 이어 광무 6년(1902년)에 동묘를 세워 서울에는 모두 동서남북 4묘가 있었다.그런데 1904년에 큰불이 일어났고 그때 장안의 시민들이 모두 달려들어 불을 껐던 것이다.그래서 안에 모셔 놓았던 신상(神像)은 무사히 불길을 피했는데 사당은 전소하고 말았다. 지금 동대문밖 숭인동에 사묘중의 하나인 동묘가 남아있다.이것은 본래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4년(선조 32년) 국난극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세운 일종의 무묘(武廟)였다.성균관을 일명 ‘문묘(文廟)’라 했고,사묘는 외침을 막아주는 무신의 사당이었다.하필이면 러일전쟁이 일어나고 순명황후가 돌아가신 1904년에 사묘가 불이 나고 덕수궁에도 불이 났는지,지금도 사람들은 일제가 저지른 방화로 믿고 있다.어찌 되었건 화재사건은 한많은 순명황후가 죽으면 일어난 사건이었고,그래서 모두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던 것이다.
  • 혁명적 정화(金三雄 칼럼)

    단재 신채호선생은 우리는 ‘혁명적 정화’가 없는 민족이라고 아쉬워했다. 혁명 쿠데타 반정 정변 경장 등 정치상의 모든 방법이 나타났지만 한번도 ‘혁명적 정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해방 후에도 몇차례 기회가 없지 않았다. 건국과 함께 반민특위에서 친일반역자들을 처단하여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정화의 기회가 있었지만 이승만 세력에 의해 좌절되고, 4·19혁명후 독재세력을 청산할 혁명재판이 열렸지만 군사 쿠데타에 짓밟히고 말았다. 6월항쟁후 여소야대 국회의 5공청산 작업은 3당야합으로 역전되고,문민정부의 개혁은 역사의식의 부재와 너무 쉽게 부패하여 스스로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되었다. 金大中 정부의 개혁작업은 지금 심한 도전에 직면했다. 모든 개혁을 좌절 역전시킨 반개혁 수구세력의 도전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최근의 몇가지 사례만 봐도 과연 이들의 도전으로 개혁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다. 첫째,햇볕론에 대한 수구세력의 도전이다. 이들은 동해안 간첩사건을 계기로 햇볕론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과거 햇볕론이 없고 강경일변도로 나갈때도 수차례 공비가 출몰했던 사실을 외면한채 정부의 햇볕 정책때문에 간첩이 나타난 것처럼 비판하면서 왜 응징하지 않느냐고 앙탈이다. 한바탕 붙기라도 하잔 말인지,지난 50년 강풍정책의 결과를 한 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둘째,국민정신을 반개혁 성향으로 오도한다. 반민주와 쿠데타와 양민학살을 일삼아온 독재자들을 영웅으로 추켜세우면서 국민이 개혁보다 강압통치 시대에 향수를 갖도록 여론을 조성한다. 셋째,‘우파는 사정(司正) 좌파엔 화해’란 도식을 만들어 햇볕정책을 색깔론으로,개혁을 우파 또는 특정지역에 대한 탄압으로 비약시키면서 계층과 지역감정을 조장한다. 명백히 드러난 수뢰 정치인의 사정도 표적수사 또는 지역차별이라고 억지를 부려 정치권의 사정과 개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군사독재와 부정부패의 늪지대에서 성장해온 남한의 극우세력과 부자 세습체제에서 성장해온 북한의 극좌세력은 평소 가장 적대적 상대인 듯 하지만 비상시에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적대적 공조관계’가 유지된다. 예컨대,1972년 朴正熙의 유신헌법과 金日成의 주석제헌법 개정이 거의 동시에 단행되고, 87년 야권의 승리가 보이는 듯 할 때 마유미(김현희)의 대한항공 폭파사건,92년 대선때 이선실의 간첩사건,96년 총선때 판문점 무장북한군 출몰사건,97년 대선때 특정세력과 북측의 내통사실 등 개혁세력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면 북한은 어김없이 안보위기나 공안사건을 만들어 수구세력을 도와주었다. 최근 북한의 잠수정침투사건도 햇볕론이 국민의 관심을 모으면서 소떼입북, 금강산관광등 한창 화해무드가 조성될 때 나타나 수구세력의 입지를 도와준 셈이다. 한국의 수구세력은 민주주의와 반공을 내세울 도덕적 자격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학살해온 독재전위 세력이었으며,반공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방편일 뿐이고, 오늘의 국난을 불러온 중심세력이기 때문이다. 독재자를 영웅시하고 화해정책을 용공시하고 사정을 계층과 지역감정으로 몰아가면서 개혁의 발목을 잡는 수구세력에 대한 ‘혁명적 정화’없이는 국난극복은 불가능하다. 50년만의정권교체는 민족모순과 사회모순을 바로 잡으라는 역사의 뜻이고,색깔론과 지역감정을 뛰어넘으라는 국민의 선택이다. 언제까지 이런 해묵은 ‘악령과 괴담’속에서 우리 정치와 사회가 세월을 보내야 하겠는가. 정부는 더 이상 원칙없는 온정주의와 눈치보기로 개혁에 갈팡질팡해서는 안된다. 좀더 과감한 사정과 개혁으로 5,000년 묵은 역사의 찌꺼기들을 퇴출시켜야 한다. 보수라는 이름 아래 역사의 방향과 전진을 가로막는 기득세력의 ‘여론’을 혁파해야 한다. 金大中 대통령은 1917년 러시아혁명의 어려웠던 시절 레닌의 침착함과, 1932년 대공황때 보인 루스벨트 대통령의 밝은 미소,프랑스가 패배한후 국민을 다시 규합한 드골의 리더십,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의 여유와 지략으로 총체적 개혁을 단행할 때이다. ‘혁명적 정화’를 통해 제2 건국을 이뤄야 한다. “태양이 비칠때 풀(草)을 말리라”는 서양격언이 있다.
  • 햇볕정책의 변증법/黃台淵 동국대 교수·정치학(서울광장)

    ‘국민의 정부’는 무력도발 불용의 대전제 위에서 정·경분리 원칙에 기반한 남북화해·협력으로 요약되는 ‘햇볕’정책을 천명,시행하고 있다.이에 대한 북측의 저항은 잠수정사건 및 간첩시신 발견 등으로 볼때 한동안 아주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따라서 북측을 전향시키려면 강력한 안보체제와 대단한 인내심,그리고 고탄력의 정치적 지혜가 필요하다. 이 전향을 촉진하는 지혜 가운데 하나는 햇볕을 ‘안쪽’의 미전향수 등 친북세력에게도 비추는 것이다.서독은 30년전 동방정책과 병행하여 내부정비 차원에서 인권 확장,공산당 합법화 등 일련의 민주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 조치는 동독 공산당을 전향시켜 동서해빙의 물꼬를 열었고,훗날 무혈승공의 평화통일을 가져왔다.1990년 동독 공산당은 통일 이후에도 공산당까지 포용하는 서독의 선진적 민주체제 하에서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까닭에 동독시민들의 통일시위에 대한 무력진압을 단념한 것이다. ○햇볕은 민주체제 강화 우리의 경우에도 미전향수 등 친북세력에 대해 ‘더 강한’ 민주논리로 대처해야 승공할 수 있지 않을까?‘안’을 향한 햇볕은 우리 민주체제를 강화하여 필경 대북 햇볕정책을 돕는 변증법적 상승효과를 낼수 있을 듯하다. 물론 전쟁을 겪은 우리의 처지에서는 공산당의 합법화를 거론할 수 없다.또한 ‘안’을 향한 햇볕은 균형감각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가령 북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전쟁포로의 수와 인권상황의 파악작업,미전향수 및 간첩과의 맞교환과 프라이카우프(Freikauf)도 꺼리지 않는 귀환대책,천신만고 끝에 복귀한 노병들에 대한 특별예우법령 제정 등과 같은 일련의 국가정통성 강화정책이 ‘안쪽’의 햇볕정책을 수반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정통성 강화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우리 내부의 미전향수 등 친북세력에 대한 ‘강풍’정책의 재고는 필수적이다.북측은 이 ‘강풍’을 북에 대한 적대행위로 느껴 전쟁포로 등 친남(親南)세력의 탄압강화로 대응해 왔고 앞으로는 대북 햇볕정책을 방해할 것이다.특히 미전향수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남한에 억류된 ‘북측 전쟁포로’라는데 주목해야 하다. 따라서‘안’을 향한 햇볕은 대북정책에 대한 븍측의 호응을 끌어내고 친남세력의 처지를 개선하는 지렛대이다.이 점에서 양심수 대사면,전향서 폐지 등 정부의 전향적 방침은 중요한 ‘안쪽’의 햇볕조치이다.‘준법서약서’는 분단의 ‘한’에 대한 센서로 보고 시비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미전향수 등에 관용을 나아가 ‘안쪽’의 햇볕이 장차 더 따뜻해졌으면 싶다.이적단체 단순가담자는 관용으로 대하고 한총련의 경우에는 이들이 학생이라는 데 유의해야 한다.또 햇볕으로 기존 이적단체의 점진적 전향을 촉진해야 한다.이 햇볕은 머지않아 이들에 대한 ‘살균효과’를 가져 올 게다.물론 이 대명천지의 햇볕속에서도 스스로 음지로 기어드는 좌익 폭력세력은 논외의 사안이다. ‘안’을 향한 강풍정책은 민주주의를 삭감하는 역효과로 인해 친북세력을 더욱 극렬분자로 만든다.반대로 햇볕은 친북세력을 ‘살균’하여 ‘골동품화’한다.이것이 우리 민주주의를 선진화하고 승공통일을 앞당기는 지혜일 게다.이 ‘골동품화’정책은 훗날 통일의 길목에서 북측으로 하여금 무력저항을 단념하도록 유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인간’ 주제 40년 작업/중진 황용엽 개인전

    ◎고통이 있어 삶은 아름답다/우울한 색조 일관 초기화풍 탈피/아픈체험 잊은듯 관조의 美 넘실/무속이미지·민화 차용 독창성 구가 ‘인간’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40여년동안 작업해온 중진 서양화가 황용엽씨(67)가 15일부터 오는 8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화랑(735­8449)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황씨는 앙상한 인간형상과 그것을 둘러싸고 얽히고 설킨 선묘로 인간의 실존상황을 호소력있게 다뤄온 작가. 서구사조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국내 미술계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면을 구축한 많지 않은 구상 작가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평양출신의 실향민으로 6·25 동란의 상흔을 간직하고 있는 작가는 오랜기간 우울한 색조 속의 왜곡된 인간형상을 통해 고통스러운 삶과 존재의 한계 상황을 표현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년 사이 그의 작업에서는 이런 어두운 화풍이 조금씩 변모했다. 과거의 아픈 체험에서 벗어나 삶에 대한 관조와 고통 이전의 아름다웠던 삶에 대한 향수가 은은한 조형언어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이번 전시에서 이같은 경향의 근작들이 선보인다. 특유의 중첩된 선묘에 의한 화면의 밀도를 추구하며 무속적 이미지와 민화적인 형상을 구성적으로 적절히 응용,회화의 깊이와 독창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이번 전시작품의 특징이다. 우리 민족 모두의 서러운 삶의 역사적인 맥락과 작가 개인의 자전적인 삶의 조건들이 중첩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 그의 체험이 이제 보다 원숙한 예술작품의 형태로 그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속 깊이 자리잡은 그리움의 정서가 보는이들에게 커다란 공명으로 다가온다. 황씨는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미술학교를 중퇴하고 월남,홍익대 미대에서 수학했다. 화단에 데뷔한 후 어떠한 단체에도 관여하지 않은 야인적인 작가이지만 그는 개인전 발표를 통해 누구보다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며 지난 90년 조선일보사 제정 제1회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95년 조선일보사 초대전 이후 3년만에 갖는 이번 전시회는 통산 20번째 개인전. 미발표 근작 40점이 전시된다. ‘어느 날’ ‘꾸민 이야기’ ‘삶이야기’ 등12호 미만의 소작 위주로 꾸며지는 이번 전시는 작품들이 주는 친근한 이미지를 통해 그의 예술세계를 보다 가까이서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과대포장 강력 “퇴출”/환경부,포장관련 규칙 개정안

    ◎포장공간비율 표시 의무화/PVC 등은 포장재 사용 불가/위반땐 300만원이하 벌금 앞으로 가공식품 음료 주류 제과류 건강·기호식품 화장품 완구 인형은 물론 문구류 신변잡화류(지갑 허리띠 등) 의류(와이셔츠 내의 등)도 포장공간비율(전체 포장에서 내용물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이 차지하는 비율),포장횟수,재질을 포장 겉면에 표시해야 한다. PVC처럼 재활용이 어려운 복합재질로된 포장재는 사용할 수 없다. 또 색조화장품 액체·분말세제류 뿐 아니라 샴푸 린스 분말커피 물티슈 크레용 물감도 내용물을 재충전해 용기를 반복 사용할 수 있는 리필(Refill)제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환경부는 포장폐기물 감량 및 재활용 촉진을 위해 이같은 내용의 ‘제품의 포장방법 및 포장재 재질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22일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등을 거쳐 8월 중 시행된다. 환경부는 또 ‘자원의 절약 및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을 관계 부처와 협의중이다. 포장기준을 초과할 경우 시정 권고와 6개월 이내의 이행명령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릴 방침이다. 환경부의 이같은 방침은 포장폐기물이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 95년의 경우 포장폐기물은 생활쓰레기 발생량 1,744만t의 32%인 558만t이나 된다. 다른 폐기물은 감소하거나 증가추세가 주춤한 반면 포장쓰레기는 오히려 연 평균 7.8%씩 증가하고 있다. 특히 분해가 잘 안되는 플라스틱 등 합성수지 포장재는 연 평균 12.5%씩 늘고 있다. 과대포장은 폐기물 양산 뿐 아니라 포장재를 만드는 원료물질 낭비,운송비 및 폐기물처리비 증가,환경 오염 등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현재 국내 시판 중인 제품 가운데 한국로슈의 ‘네이춰웨이’ 세트는 포장공간비율이 77.1%,영국제 ‘브로니바디샴푸’ 세트는 60.1%,푸른화장품의 ‘노블리스 UV화이트’ 세트는 56.5%나 된다. 기준 25% 이하를 크게 초과하고 있다. 반면 영국제 ‘버버리’ 향수는 포장공간비율이 19% 밖에 안된다. 최근 63%에서 19%로 크게 줄였다. 환경부는 과대포장을 줄이면 포장폐기물이 30% 가량 감소될 것으로 보고있다. 생활폐기물도 현재 1인당 하루 1.14㎏에서 선진국 수준인 0.9㎏대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간 1,330억원에 이르는 폐기물처리비가 절감되는 것은 물론이다. 환경부는 과대포장을 추방하기 위해 지난 18일부터 서울 삼성동 한국자원재생공사 재활용제품 종합전시관에서 포장상품 비교전시회를 열고 있다. 다음 달 3일까지 계속되는 전시회에는 과대포장 제품 90점,우수포장 제품 60점이선을 보이고 있다.
  • 가족문제 다룬 현대무용

    ‘현대’자 붙은 예술은 왠지 어려울것 같은 두려움.‘댄스 시어터 온’이 전혀 겁낼것 없고 ‘현대’무용을 가족끼리 봐도 즐거울 수 있다며 ‘가족과 함께보는 춤’이라는 무대를 준비했다.19∼21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94년 창단된 ‘댄스 시어터 온’은 예술도 대중적이어야 한다는데 뜻을 모으는 젊은 춤꾼들 단체.공연이름에 걸맞게 네편중 두편이 가족문제를 다룬 몸짓. ‘경로 다방’은 너무 정색하지 않고 노인문제를 살짝 무용 소재로 끌어들여본 작품.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무용가 안은미씨 신작 안무다.‘가고파’는 김동진 가곡에 맞춰 ‘댄스 시어터 온’ 홍승엽 대표가 안무한 작품으로 ‘향수(鄕愁)에 대한 소품’쯤 되겠다. 이밖에 인형극,마임,무용의 테크닉을 섞어 만든 ‘백설공주’는 97년 서울국제무용제에서 주목받았던 작품.카프카의 ‘변신’을 모티브로 한 신작 ‘다섯번째 배역’도 곁들인다.(이상 안무 홍승엽) 금·토 하오 7시30분,일 하오 5시.272­2153,4.
  • 가짜 외제향수 30억원대 시판/업자 2명 구속

    서울지검 남부지청 형사1부(부장검사 鄭振昊)는 17일 가짜 외제 향수 30억원 어치를 만들어 판 鄭善浩씨(44·경기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 등 2명을 상표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鄭씨 등은 지난 4월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에 향수 제조 공장을 차려놓고 프랑스에서 수입한 값싼 향 원료로 가짜 향수 6만여병을 만들어 폴로·버버리·겐조·토미힐 등 외국 유명 상표를 붙여 전국 화장품 대리점에 팔아 30억여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 실향민들,鄭周永씨 訪北 눈물의 전송

    ◎북행길 소떼 한없이 부럽기만…/남북교류 물꼬 트여 고향 갈날 빨리왔으면/통일대교까지 나와 태극기 흔들며 눈시울 “북으로 가는 소떼를 보고 너무 부러워 순간적으로 소가 되고 싶었습니다” 16일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소떼의 북한행을 지켜본 황해도 도민회 金成在 총장(75)의 감회다.金총장은 지난 47년 부모님과 형님을 고향인 황해도 장연에 두고 혼자 월남했다. 鄭 명예회장의 방북을 바라본 실향민들의 마음은 金총장과 같았다.금의환향(錦衣還鄕)하는 鄭 명예회장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소가 되어서라도 북녘의 고향 땅을 밟아 보기를 바랬다. 鄭 명예회장의 고향인 강원도 통천군의 명예군수 劉承鎬씨(67)는 “우리가직접 방문한 것처럼 기쁘다”면서 “鄭 명예회장에게서 꿈에도 그리던 고향소식을 전해들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고 덧붙였다. 강원도 미수복중앙도민회 사무국장 南宮珊씨(65)는 “죽기 전에 고향에 한번 가보는 것이 모든 실향민의 꿈인데 두번째 고향을 방문하는 鄭 명예회장이 무척 부럽다”면서 “남북교류의 물꼬가 트여 자유롭게 고향을 방문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남 순천이 고향인 兪亨穆씨(65·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는 “한동네에 살았던 친척들의 생사를 확인하려 했지만 허사였다”면서 “鄭 명예회장의 북한 방문이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여는 시발점이 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兪씨는 “물고기를 잡던 기억이 생생한 고향의 개울에 형님의 손을 잡고 다시 가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임진각에서 열린 鄭 명예회장 환송 행사에도 수많은 실향민들이 나와 향수를 달랬다.일부 실향민들은 “가서 잘 살아야 된다”면서 소의 등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다.통일대교 입구까지 따라가 북한으로 넘어가는 鄭 명예회장 일행과 소떼를 향해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兪雄錫씨(63·상업)는 “아직도 꿈 속에서 고향 집과 어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린다”면서 “하루 빨리 통일이 돼 고향 땅을 밟아 보는 것이 소원”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 첼리스트 鄭明和(이세기의 인물탐구:173)

    ◎사색을 길어올린 웅숭깊은 음색/선율마다 무르익은 서정성과 넉넉한 여유/테크닉보다 음의 조화 이뤄내는 경지 터득/80년대 음악 멀리하다 “삶의 목적” 깨달아/드로브자크 협주곡 백미… 제자양성에 보람 첼리스트 鄭明和의 손은 남자손보다 크다. 어깨도 남자처럼 넓다. 잘 생긴 용모에다 목소리도 밝고 건강하다. 시원시원하고 밝은 성격때문인지 음악도 스케일이 크고 넓고 심오하다. 단순히 넓고 클뿐만 아니라 톤에는 힘이 살아있고 음의 마디마다엔 유연하고 확고한 뼈대가 꿈틀거린다. 그에게선 발톱을 세운것 같은 독이나 과시감은 찾아볼수 없다. 단지 무르익은 서정성과 육화된 음악의 포도주가 내면에서 출렁거릴 뿐이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는 타인에 대한 포용력과 너그러움으로 남의 잘못을 가려줄 줄 안다. 초면이라도 구면같이 굴고 좋은 환경에서 잘자란 숙녀답게 반듯한 예의와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다. 만사에 대범한 편이지만 음악에 관해서만은 치열성과 철저성이 대단하다. 승부근성이 투철하여 그가 이화여중에 다닐때는 친구 하나도 사귀지 못한채 낮과 밤은 온통 첼로연습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전국남녀음악경연대회에서 첼로부문 1등상, 서울예고 재학중에 이미 두번의 개인독주회를 가졌고 고2때인 60년에는 한국학생문화사절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와 오사카 순회연주등 그의 이름은 ‘첼로의 천재’로서 소녀시절에 음악계의 중앙에 우뚝서는 존재였다. 오랜 연주경력탓에 그의 음악은 언제부턴가 외형보다 내면을 추구하게 되었고 테크닉보다는 음과 음의 연결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내는 능란한 경지를 터득하고 있다. 음악평론가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인 이강숙씨는 ‘정명화의 음악은 팽팽한가 하면 느슨하고 여유로운가 하면 팽팽한 긴장감이 돋보이는 가운데 자신감에 찬 연주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평한다. 그는 과연 무리와 과장이 없이 음악의 ‘순리’를 존중하며 음악의 도리에 순종한다는 자세를 지킨다. 기교에 침몰하거나 장식음으로 청중을 혼도시키기보다 음과 음으로 보석타래를 꾸미듯이 장구하고도 값진 음악을 그때마다 선사해준다. 화사하게꽃가루를 뿌려대는 바이올린의 변화무쌍과는 달리 첼로만의 사색과 철학은 마치 동굴에서 길어올린 갖가지 원석처럼 장중과 비장미마저 풍긴다. 정명화를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다. 서울 명동의 유명한 음식점이었던 고려정의 정준채씨와 이원숙씨 사이의 7남매중 딸로 둘째. 줄리아드음악원에서 첼로의 거장 피아티골스키를 사사했고 60년대 중반 뉴욕 링컨센터에서 첫연주를 가졌을때 뉴욕타임스는 ‘멋과 재능 그리고 기교의 연주가’로 평했고 워싱턴포스트는 ‘가장 보배로운 첼리스트’로 표현하여 지금까지도 이 찬사는 그를 따라다니는 대명사가 되고 있다. 그때까지 동생인 바이올린 정경화나 피아노를 치던 정명훈보다 정명화의 이름은 그들을 리드하고 있었고 그만의 음악적 매력으로 해 세계 첼로계에서도 선두그룹을 달리고 있었다. 파죽지세로 명성을 쌓던 시기인 66년, 고국에 돌아와 첫리사이틀을 열었을때 음악계의 대부이던 평론가 유한철씨는‘예의 타고난 활달함과 연주가다운 낙천성이 몸에 배어 다이내믹한 역성감(力性感)을 실감시켜주는 연주’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세계에 내놓아 자랑할수 있는 젊은이’로 정명화의 장밋빛 미래를 예고한 것도 그 무렵이다. 제네바국제음악콩쿠르에서 첼로부문 1등상을 수상하던 71년에 전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당시 AP통신 기자이던 具三悅씨와 결혼, 부군은 유엔 50주년 총괄국장으로 있다가 최근에는 유니세프총재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자녀는 꽃별과 꽃샘. 장녀 꽃별이 지난주 뉴욕에서 결혼했다. 80년대 로마에 머물던 시기에는 잠깐이지만 첼로연주를 멈춘 적이 있으며 가장 자신있게 연주하던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마저 낯설게 느껴지자 문득 ‘좌절의 시간이 오히려 음악적으로 가장 성숙한 시기’, ‘첼로야말로 무덤까지 끌고갈 동반자이자 삶의 목적 자체임을 깨달을수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94년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교수로 재직하면서 같은해 8월 그는 실로 12년만에 고국에서의 독주회를 가졌고 작곡가 이영조가 그를 위해 작곡한 ‘첼로와 장구를 위한 도드리 1’ 연주는 또한번 음악계에 센세이셔널한 화제와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농현을 뜻하는 피치카토와 글리산도, 높은 음역에서 낮은 음으로 급격히 낙하하는 소리의 대비, 명상적인 지속음과 장식음등 우리만의 얼이 담긴 가야금과 거문고, 해금과 아쟁이 할수 있는 음악적 요소를 첼로로 펼치면서 우리의 소리를 세계음악언어의 반열에 올려놓는 계기를 만들었다. 과연 한국 첼리스트의 자존심과 실력을 마음껏 과시한 자리로 그가 연주를 끝냈을때 객석에서 길게 이어지는 박수갈채는 그칠줄을 몰랐다. 조용하게 데뷔한 연주자가 있는가하면 센세이셔널하게 등장하는 연주자도 있을 것이다. 조용한 강이라고 해서 모두가 깊은 것은 아니며 센세이셔널은 그만한 화제성과 가치성을 지닌다. 일찍이 세계의 매스컴으로부터 ‘발군의 테크닉과 명쾌한 해석, 특히나 그의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은 보헤미아의 향수가 사무친 연주’라는 평과 함께 그의 연주는 지금도 고국의 땅을 밟는 순간의 탄성과 향수와 사랑이 간절하게 얼룩져 듣는 이의 심금을 뜨겁게 울린다. 어릴때는 피아노 성악 바이올린 사이에서 무엇을 전공할 것인가를 방황했고 20대에는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들으면서 자신의 음악성과 장래에 대한 회의에 빠지기도 했으며 30대에 이르자 명성을 지키기에 급급했고 40대가 넘자 비로소 모든 치열성과 명성에서 벗어나 그는 진정한 음악인의 자유로움을 구가하고 있다. 그래선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가 되어 조국과의 연대를 끈끈히 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게된것을 어느때보다 감사하고 행복과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음악을 관조하고 무르익은 예술성을 내면에 삭이는 시기에 서서 그는 물이 흐르는 듯한 유연함과 여유로움으로 그만의 서조와 광채를 여전히 잃지않고 있다 □그의 길 ▲1944년 서울출생 ▲1961년 서울예고 졸업, 도미 ▲1961부터 줄리아드음악원 및 남가주립대졸업, 거장 레오나드 로즈, 그레고르 피아티골스키 사사 ▲1969년 미 닉슨 대통령 초청 백악관연주,로스앤젤레스필하모닉 협연 ▲1971년 제네바국제음악경연대회 최우수연주상 수상 ▲1972년부터 런던 BBC교향악단을 비롯, 런던필, 베를린 R IAS, 스위스로망드, 로테르담 워싱턴교향악단등과 협연(지휘 주빈메타 루돌프 켐페 안탈 도라티 줄리니등) ▲1976년 뉴욕 링컨센터 바이올린 정경화, 피아노 정명훈과 ‘ 3남매’연주,전미순회연주, 파블로 카잘스탄생 100주년기념연주 1982년 KBS교향악단초청 협연(세종문화회관 대강당) ▲1991년부터 정트리오 음악축제 ▲1994년 국악과의 만남독주회 ‘장구와 첼로를 위한 도드리1( 이영조작곡)’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1995년 UN창설 50주년 UN마약퇴치 친선 사절로 세계순회 연주 ▲1997년 뉴욕에서 유니세프주최‘북한 어린이돕기 모금음악회’ ▲1998년 워싱턴 케네디홀 뉴욕 카네기홀서 ‘나라사랑’음악회, 미국 버몬트 국제음악제연주, 이착펄먼 서머프로그램 참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미국 ‘엑설런트 2000’상(92년) 청소년 차이코프스 키콩쿠르 최고지도자상(97년) 아름다운 소리 ‘한·꿈·그리움’(96년 CMI음반레이블 )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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