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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일 TV 하이라이트]

    ●생방송 60분-부모(EBS 오전 10시) 나이가 들면서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하는 어머니들에게서 보듯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갖가지 이상 신호를 포착하게 된다. 홀대와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오래 참으며 살림을 꾸리는 수많은 여성의 몸에 대해 이제부터라도 고마움을 전하고, 그 몸을 사랑하는 바른 방법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다.   ●다이아몬드의 눈물(SBS 오후 9시55분) 철종은 진 회장을 찾아와 인하를 버린 남자가 형민이라고 털어놓고, 이석 또한 인하의 유서에 화가 치밀어 형민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다. 형민에 대해 의심하고 있던 사실을 확인한 진 회장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게 한 뒤 회사에서 내쫓아 버리고, 화가 난 형민은 회사의 비밀문서들을 빼돌리려 한다.   ●글로벌 비전(YTN 오후 1시10분) 잠비아는 무료 에이즈 진단센터를 전국적으로 확대, 보급하고 있다. 섹스산업과 마약이 에이즈 확산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우크라이나에서는 매춘 종사자에게 위생적인 주사와 콘돔을 나눠준다.60만명 이상의 에이즈 고아가 있는 잠비아, 에이즈 확산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인 우크라이나의 대책을 알아본다.   ●레인보우 로망스(MBC 오후 6시50분) 재경이와 홍철이가 길거리 캐스팅이 돼 트롯 듀오를 결성한다고 한다. 가수를 시켜주겠다며 이것 저것 요구하는 연예기획사 사장님. 똑똑한 재경이가 그런 사람에게 속을 리 없다는 생각에 은경이는 확인에 나선다. 도대체 사기꾼 연예기획사 사장이 어떤 사람이기에 재경이는 알면서도 속은 것일까?   ●별난 여자 별난 남자(KBS1 오후 8시25분) 나라는 병문안을 온 종남을 대놓고 박대하며 내몰고, 민숙은 재옥이를 통해 종남이 고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석현이 선약이 있어 친구 모임에 빠지게 된 해인은 기웅을 만나 종남이 신경 쓰인다고 말하고, 그 시간 석현은 종남을 만나 나라 대신 사과하고 위로해 주는데….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어느 날 집으로 찾아온 남편의 숨겨진 여자 정애. 남편이 총각인 줄 알고 7년을 만나왔다는 그녀는 순희에게 헤어질 것을 요구하지만, 순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만은 해줄 수 없다고 말한다. 정애는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급기야는 정애의 자살소동으로 사실을 알게 된 시아버지는 충격으로 쓰러진다.
  • [데스크시각] 선생님에 대한 두 가지 기억/임창용 문화부 차장

    교원평가 논란이 불거지면서 떠오르는 기억이 두 가지 있다. 첫번째 기억. 올 2월 딸 아이 초등학교 졸업식날 일이다. 운동장에서 졸업식이 모두 끝나고 담임선생님과 아이들, 학부모들이 교실에 들어왔다. 30대 초반쯤 된 그 여선생님은 “부모님들께선 잠시 나가주세요.”라고 하더니 문을 닫고 TV를 켰다. 화면엔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했던 1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소풍 가서 게임을 즐기던 모습에서부터 발표하는 모습, 운동회 때 젖먹던 힘을 다해 뛰는 모습, 수업 중 조는 모습까지. 선생님은 이 날을 위해 틈틈이 찍어놓았던 사진을 비디오로 편집해 두었다고 했다. 한 장면 한 장면 넘어갈 때마다 아이들은 때로는 웃고, 때로는 생각에 잠기는가 하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아이들과 추억을 공유하고 나서야 선생님은 아이들을 불러내 졸업장을 주었다. 한 사람씩 꼬옥 안아주면서. 키가 선생님보다 큰 남자 아이들은 쑥스러워하면서도 눈가엔 물기가 어려 있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 아이는 지금도 주말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그 선생님을 찾아가 수다를 떤다. 두번째 기억.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들 이야기다. 그 졸업식 며칠 전 날 밤. 퇴근해 보니 5학년이었던 아들이 졸업식에서 ‘송사’를 읽기로 했다며 내일까지 원고를 내야 하니 도와달라고 했다. 자기가 전교 부회장이어서 담임선생님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란다. 아이와 함께 머리를 짜내 새벽 1시까지 원고를 완성했다. 한데 그 다음날 사단이 났다. 퇴근 후 집에 가보니 아이는 기운이 쫙 빠져 있었고, 눈엔 불만이 가득했다.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시길, 학교 방침이 올해부터 바뀌어 다른 아이가 송사를 읽기로 했단다. 졸업식 날, 송사를 읽은 아이는 학교 운영위원회를 맡고 있는 학부모의 아이였다. 그 선생님은 이미 학기 초부터 다른 일로 골머리를 앓게 했었다.3월 한 달 동안 하루 걸러 한 시간씩 책상 위에 무릎을 꿇려 단체기합을 주는가 하면 자신은 그 시간에 잡무를 처리했다. 또 자습을 가장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었다. 지금 6학년인 아들은 어쩌다 학교에서 그 선생님이 보이면 멀찌감치서 돌아간다고 한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선생님이란 위치는 여전히 특별한 자리다. 간혹 못된 학부모로부터 행패를 당하는 선생님 이야기가 뉴스에 오르내리며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개탄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대다수의 학부모에게 선생님은 속된 말로 여전히 ‘갑’의 존재다. 나는 아직 우리 교단에 딸 아이를 맡았던 분 같은 선생님들이 아들 담임이었던 분을 닮은 선생님보다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원 평가는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선생님들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만 수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을 요즘 피부로 느낀다. 직장에서든, 친구들과 만나든, 조용히 이야기하다가도 학교 이야기, 자녀와 선생님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그 상당 부분은 선생님을 ‘성토’하는 소리다. 지금 전교조가 필사적으로 교원평가를 저지하려고 한다. 교원 통제 수단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같은 논리를 주장하기엔 아무런 평가도 받지 않는 선생님들께 아이를 맡길 수 없다는 학부모들의 불만이 너무 크다. 전교조가 내걸고 있는 가장 큰 모토는 참교육이다. 그래서 군사정권 시절, 학교·선생님·학생들을 옥죄고 있던 악습을 깨자며 힘을 모았고, 그 와중에 많은 선생님들이 해직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나는 차라리 전교조가 교원 평가를 적극 수용하고, 오히려 이끌어나감으로써 참교육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아부나 일삼고 전인교육을 방해하는 교사들, 치맛바람에 휘둘리는 교사들, 수업 알기를 아이들 간식쯤으로 여기는 교사들에게 따끔한 회초리를 드는 ‘선생님의 선생님’이 되었으면 한다. 교원을 통제하려는 불순한 의도는 그와 더불어 퇴치해나가도 늦지 않다. 임창용 문화부 차장 sdragon@seoul.co.kr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가출 며느리, 아들 유산 달라는데…

    Q얼마전에 장남(44)이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아들은 시가 5억원 정도인 아파트 한 채를 남겼습니다. 또 생명보험금으로 2억원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3년 전 가출했던 며느리와 손녀가 나타나 장남의 상속재산을 모두 가지겠다고 합니다. 집에는 미혼인 저의 차남과 장손자만 남아 있습니다. 자식까지 버리고 가출했던 며느리에게 장남이 남긴 재산을 모두 주어야 하나요. -고영희(가명·65) A돌아온 며느리와 손녀의 상속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 민법은 배우자와 자녀의 상속인 자격에 대해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다만 피상속인 등의 생명을 위협한 사람과 유언서를 위조하는 등 유언을 방해한 사람을 결격자로 규정해 상속자격을 박탈합니다. 즉 고의로 피상속인이나 상속인인 직계존속·배우자 등을 살해하거나 살해하려고 한 사람들은 모두 상속자격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같은 상속순위의 사람에게 단순히 상처를 입혀 숨지게 했을 때는 상속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부모나 남편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행패를 부리는 등의 행동을 일삼는 ‘패륜’을 저지른다고 상속인 자격을 빼앗지는 않습니다. 상속자격이 없어지는 경우는 ‘고의’로 상속인을 살해하거나 상해치사한 경우로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고의’는 살해나 상해에 대한 의도가 있었는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상속과 관계없는 직계존속을 살해한 경우에도 상속자격이 없어집니다. 손자가 외할머니를 살해하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는 것이 그 사례입니다. 하지만 피상속인 등을 살해하면 자신이 상속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는 인식이 있었는지 여부는 상속인 자격 상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1992년 대법원 판결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음주운전을 하던 남편이 자동차 사고를 내 동승한 아내가 사망했습니다. 고의로 아내를 살해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편은 상속인 자격을 잃지 않았고, 보험금을 청구해 아내의 재산을 상속 받았습니다. 두번째로 유언행위에 대한 부정행위 부분입니다. 피상속인을 속이거나 협박해 유언에 영향을 미치거나 유언서를 위조·변조·파기 또는 은닉하면 상속자격이 없어집니다. 만일 유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면 상속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민법에 열거된 상속 결격사유는 제한적으로 해석됩니다. 앞서 설명한 사유가 아닌 경우라면 가출했거나 불륜행위를 저지른 경우에도 상속 결격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고영희씨 장남의 경우처럼 오래 전에 가출해 이혼한 것과 다름없는 배우자가 상속이 개시된 뒤 나타나 자신의 상속권을 주장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법상 상속인의 자격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설명드렸던 결격자를 용서해 상속인 자격을 회복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국내의 학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피상속인을 살해해 상속 결격이 된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없기 때문에, 용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살해가 미수에 그친 경우나 유언서를 위조한 경우에만 용서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상속재산을 둘러싸고 더 많이 차지하려고 부정행위를 하는 자를 응징하는 차원에서 “결격자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게 다수설입니다.
  • 2세들 ‘성인아이 증후군’ 고통

    남편의 알코올중독으로 10여년 전 이혼한 김모(56)씨. 꽤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남편에서 비롯된 질곡은 여전히 그를 옭아맨다. 큰 아들(31)은 허구한 날 술만 마시고 둘째 아들(28)은 매일 밤을 게임에 빠져 지샌다. 셋째 아들은 성격이 극도로 예민해 집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병원에서는 아버지의 알코올중독이 아들 3형제에게 정신적 상처로 남아 ‘성인아이증후군’을 가져왔다고 했다. 세 살배기 아들의 엄마 서모(28)씨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실 날이 없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시도때도 없이 찾아와 행패를 부리기 때문이다. 서씨의 부모는 남편의 알코올중독 때문에 서씨가 중학교 2학년때 이혼했다. 서씨는 “아버지 때문에 삶의 희망을 잃었고 어렵게 이룬 가정마저 깨질 것같다.”고 괴로워했다. 이렇게 알코올중독자 2세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치료하기 위한 전문기관 설립이 국내 최초로 추진된다. 전문가들은 알코올중독 가정의 자녀들을 먼저 치료해야 중독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2세 치료기관 설립추진의 주인공은 사회복지사 신양호(54)씨. 그 역시 알코올중독의 대물림으로 고통받았다. 알코올성 중풍으로 사망한 할아버지, 술 때문에 대학 학장자리에서 물러난 아버지, 술로 인한 간암으로 사망한 작은 아버지를 보고 자란 신씨는 자기도 모르게 알코올중독에 빠지게 됐다.75년 명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0년 동안 전문대 교수로 재직했지만 알코올중독에 빠져 36세에 이혼했다. 재기에 성공한 그는 인천 부평에서 10여년간 알코올중독자 가족들을 상담해 왔다. 현재는 임상심리학자, 가족치료전문가, 의사, 간호사, 목사 20여명과 함께 상담소의 사단법인화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 안에 보건복지부 산하 비영리단체 인가를 받는다는 목표다. 인가를 받는 즉시 강화도 마니산 언덕에 200평 규모의 ‘쉼터’를 설립해 알코올중독 2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이들이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알코올중독 2세들이 겪는 고통은 결코 중독자 자신들보다 덜하지 않다. 최근에는 심리·사회복지 학계에 중독자 2세들이 ‘성인아이(Adult Child)증후군’으로 고통 받는 사례가 알려지면서 치료의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성인아이 증후군´이란‘성인아이’는 몸은 어른이지만 감정표현 방법은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어른이된 뒤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말한다. 부모의 알코올중독, 일중독, 이혼 등을 보며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부모의 불화에 억눌려 아이답게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극동상담심리연구원 박수영 연구원은 “특히 알코올중독 가정에서 자란 성인아이의 경우 아버지의 모습을 끔찍하게 싫어하면서도 아버지 모습이 너무도 익숙해 아버지를 닮아가거나 아버지를 닮은 배우자를 택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가장의 중독에 따른 제2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총리 싸늘한 답변에 독감걸릴라”

    “총리 싸늘한 답변에 독감걸릴라”

    이해찬 국무총리의 답변 태도를 놓고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가 “좌시하지 않겠다.”며 발끈했다. 강 원내대표는 대정부질문 이틀째인 25일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이 총리가 어제 강정구 파문에 대한 질문에 대해 ‘창피해서 답변을 못하겠다.’고 했는데 우리야말로 창피해서 이런 얘기 하고 싶지 않지만…”이라며 운을 뗐다. 강 원내대표는 이어 “대정부질문인지 오히려 정부의 대국회질문인지, 교육인지 오만의 극치”라며 “이 정도 되면 행패라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국민을 위해 상생하고 국회를 파행시키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정부가 이렇게 나간다면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며 “계속 이런 식이라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나아가 이 총리의 냉랭한 답변 태도를 겨냥,“총리의 후덕함이나 재상의 존엄이 있어야 국민을 안심시키는데, 본회의장에 가면 공기가 싸늘해서 독감걸리겠다.”며 “당을 깨고 나온 철새정당이라서 조류독감 걸릴까 주사 한 대 맞고 들어가야겠다.”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그리고는 “권력을 잡고도 아량이 일체 없고 포용력이 없는 것은 국민 지지를 못 받는 데 대한 초조함의 발로인 것 같다.”는 해석을 곁들였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불법체류자 ‘한국女 헌팅’

    불법체류자 ‘한국女 헌팅’

    지난달 아들을 낳은 정신지체 장애인 김모(36·여)씨의 가족들은 최근 아이의 아빠인 방글라데시인을 불법체류자로 당국에 신고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김씨에게 이 방글라데시인이 접근한 이유가 순전히 결혼을 통해 한국에 눌러앉기 위해서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김씨를 임신시킨 뒤 “빨리 혼인신고를 하라.”고 가족들에게 행패를 부려왔다. 경기도 안산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50대 이혼녀 이모씨는 2년 전 25세의 파키스탄인 노동자를 만났다. 거듭되는 구애로 혼인신고를 하고 동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어린 남편은 허구한 날 바람을 피웠고 나중에는 부인을 때리기까지 했다. 결국 올초 이혼을 했고, 남편은 본국으로 추방됐다. 이씨는 “3차례나 이혼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남편이 매달려 무산됐다.”고 말했다. 안모(35·여)씨는 아이들을 빼앗긴 경우. 처음부터 파키스탄인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임신 때문에 결혼했다.1년 전 남편이 한국국적을 취득하면서 구타가 심해졌고,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왔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들을 찾아내 자기 나라로 보낸 뒤 종적을 감췄다. 안씨는 두 자녀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정신지체 장애인 결혼 20% 차지 한국사람과의 결혼을 통해 강제추방을 면해 보려는 일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계산된 결혼’이 증가하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상처입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한국인과 혼인신고만 하면 국내에 머물 수 있다는 점을 악용, 장애인·극빈층·이혼녀 등을 골라 접근하는 지능적 행태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상적으로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근로자들까지 싸잡아 비난받지 않을까 우려된다. 일부에서는 ▲한국여성을 임신시키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 ▲나이 많은 여자나 혼자 사는 여자를 집중공략하라 ▲가장 쉬운 상대는 정신지체자 등 성공률을 높이는 ‘비책’까지 나돌고 있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의정부출장소 관계자는 “외국인 배우자와 한국인 정신지체 장애인이 결혼하는 사례가 많게는 전체의 20%를 차지한다.”고 전했다. 내국인과 결혼해 체류자격을 변경한 외국인은 2002년 2460명,2003년 3466명, 지난해 3126명 규모였으나 올해에는 1∼7월에만 3502명으로 지난해 수준을 이미 크게 넘어섰다. 이런 가운데 지난 26일 법무부는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이 한국인 배우자의 잘못으로 이혼을 하거나 한국인 혈육을 낳아 양육할 경우 국내 체류·취업에 필요한 고용계약서, 신원보증서 등 제출절차를 없애겠다는 지원책을 내놓았다. 외국인들의 편의를 봐주고 딱한 사정 있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뜻이지만 일부에서는 외국인들의 ‘정략결혼’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대책시민연대 박완석 사무국장은 “폭력남편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외국인 여성들은 이번 법무부 조치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위장결혼을 통한 불순한 체류연장 등에 대해서는 당국의 감시가 한층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구잡이식 비난 신중해야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오삼열 사무국장은 “결혼이 사랑을 전제로 이뤄져야 하지만 우리도 체류허가를 받기 위해 1960∼70년대 독일인 등과 결혼을 했던 때가 있었다.”며 마구잡이식 비난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무서운’ 학교급식

    ‘무서운’ 학교급식

    대구시내 한 고등학교가 학생들에게 제공한 급식에서 칼날이 발견되는 등 부실급식을 제공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대구시교육청이 진상조사에 나섰다. 대구 S고등학교 학교운영위원 K(49)씨는 22일 “지난 5월 학교에서 중식으로 나온 반찬에서 믹서 칼날이 발견됐으며 이외에도 그동안 급식에서 철 수세미와 담배꽁초 등 이물질이 다수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이 믹서기용 칼날은 학생들이 반찬으로 나온 고추장볶음을 식판에 담으려다 발견한 것으로 당시 한 학생이 카메라폰으로 이를 촬영했다고 K씨는 밝혔다. K씨는 또 지난달 8일에는 밥 없이 빵과 우유, 만두 등으로 구성된 식단을 제공하는 등 부실한 급식이 잦았으며, 이에 항의하는 자신의 집으로 교직원이 찾아와 가재도구를 부수고 욕설을 하는 등 행패를 부렸다고 주장했다. K씨는 “그동안 부실한 급식과 위생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개선을 요구했지만 학교측은 자격증을 가진 조리사조차 두지 않았다.”면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이같은 사실을 알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S고등학교 관계자는 “밥이 없는 식단을 제공한 것은 갑자기 보일러가 고장나는 바람에 그날 하루 부득이 빵과 우유로 대체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대구 남부경찰서는 최근 학부모 집에 찾아가 행패를 부린 S고등학교 교직원 이모(48)씨를 폭력행위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서울광장] 곽성문 파문과 권력이동/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곽성문 파문과 권력이동/이목희 논설위원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이 고향 기업인들에게 야당 푸대접을 항의하면서 술자리에서 행패를 부렸다. 곽 의원과 두어차례 스치듯 만난 적은 있지만, 성격을 깊이 파악할 만한 자리는 함께 하지 못했다.3자를 통해 들은 바에 의하면 승부욕이 강하다고 한다. 골프를 치면서 캐디의 보조 미숙, 라커열쇠 분실과 배상요구 등으로 이미 화가 나있었던 상태였던 것 같다. 평소 그의 술자리 매너는 그리 난폭하지 않다고 한다. 욱하는 성격은 있으나 아무 자리에서나 실수하는 타입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날은 골프 때문에 열이 오른데다 텃밭인 대구·경북(TK) 기업인들이 무시한다는 불만이 폭탄주와 함께 상승작용해 폭발했을 수 있다. 곽 의원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좋아하는 골프·술까지 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다음 대선에서 이기면 보자.”는 오기가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TK기업인 몇몇이 ‘손볼 대상’에 오를 것이라는 성급한 추측이 나온다. 과거 정권에서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다. 야당시절 동향 혹은 학교 선후배에게 대접받지 못하면 더 서럽다. 영남정권에서 대표적 영남기업이, 호남정권에서 대표적 호남기업이 몰락했던 전례가 있다. 곽 의원은 물론, 한나라당 인사 중에 혹시라도 ‘복수’를 마음에 품고 있다면 털기 바란다. 기업인의 기회주의적 속성에 앞서 큰 틀에서 사회권력 이동의 기운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제 정치인이 기업인에게 노골적으로 돈을 달라고 할 수 있는 시절은 지나갔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이 다시 집권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곽의원 파문과 유사한 사례로 1986년 국방위 회식 사건이 꼽힌다. 국회 국방위원과 10여명의 군장성이 요정에서 난투극을 벌인 사건이다.80년대 중반까지 군인 앞의 정치인은 그야말로 ‘고양이 앞에 쥐’였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유리컵을 던져 군장성을 다치게 했다. 이어 두들겨 맞기는 했지만, 금배지가 별을 누르는 상징적 계기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유리컵을 던진 이는 남재희 전 의원이다. 술자리 추태라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남 전 의원은 새시대를 열었던 반면 곽 의원은 과거로 돌아가려 했다는 점에서 집중비난을 받고 있는 셈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10년 이상은 직업정치인의 전성시대였다. 권력의 원천은 보통 물리적 힘, 돈, 정보 등 3가지로 볼 수 있다. 군인의 힘이 약해지자 정권을 잡은 정치인들에게 힘·돈·정보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하지만 민주화의 축적과 급속한 지식·정보사회화는 정치인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았다. 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힘은 쓰기 어렵게 됐다. 정치권력을 잡았다고 돈이 오는 시스템도 무너졌다. 지식·정보에서 첨단기업이 오히려 정부·정치권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참여정부가 사회주류를 386·좌파 운동권·시민운동가로 바꾸려 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주류교체 논쟁은 곁가지라고 본다. 정치통제력이 급격히 약해지는 상황에서 정권에 관계없이 사회 주도세력은 이제 기업인이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권력이동’이라는 저서에서 21세기에는 지식을 장악하는 계층으로 권력이 이동한다고 내다봤다. 폭력이나 굴뚝산업식의 부(富)에서 컴퓨터로 대변되는 정보·지식계층으로 권력이 이행된다는 설명이다. 정치인과 관료는 더이상 기업인을 윽박지르거나 이끌려해서는 안된다. 기업가에게 주도권을 넘겨 주되,‘천민(賤民) 자본주의’로의 회귀를 막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권력이 느슨해진 틈을 이용,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기업행태를 제어하도록 법·제도·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술과 골프 정도는 제 돈으로 하는 선에서 즐기도록 하자. 그래야 새로운 사회주도층을 육성·견제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mhlee@seoul.co.kr
  • 日파친코회사 ‘마루한’ 한창우 회장

    日파친코회사 ‘마루한’ 한창우 회장

    |도쿄 이춘규특파원|1945년 10월22일 밤 11시 일본 시모노세키 해안. 얼굴에 보송보송한 솜털이 남아있던 열다섯살 한국 소년이 주위를 살피며 밀항선에서 조심스럽게 내렸다. 손에는 고향의 모친께서 쥐어준 쌀 두 말과 영어사전 뿐이었다. 그것으로 거친 일본생활을 헤쳐가야 했다. ‘일본 파친코 제왕’으로 불리는 재일교포 1세 한창우(75) 마루한 회장의 60년 전 모습은 이랬다. 상전벽해. 일본어판 포브스지는 지난달 순자산 1200억엔(약 1조 2000억원) 이상 되는 일본의 거부 명단을 발표했다. 한국계로는 정보통신(IT) 재벌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순자산 4730억엔으로 8위였고, 한 회장은 1210억엔으로 24위에 랭크됐다. 한 회장은 포브스가 지난 3월 발표한 전세계 갑부 순위에서도 584위를 기록한 바 있다. 지난해 마루한의 매출은 1조 2778억엔, 순이익은 210억엔이었다.2010년 매출목표는 5조엔이다. ●도쿄 한복판에 우뚝 선 밀항소년 스스로를 “한국의 보트피플 1호”라고 말하는 한 회장이 도쿄 한복판에 우뚝 섰다. 도쿄역이 발아래 내려다 보이는 초현대식 빌딩의 28층에 있는 마루한 도쿄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건물 벽면이 대형유리로 돼 있어, 일왕궁도 일부 보이는 요충지다. 임대료가 평당 4만 4000엔인 일본의 심장부에 밀항소년이 우뚝 서있는 것이다. 그의 경상도 사투리는 구수하고, 유창했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지금 고향 삼천포에는 동생이 살고 있다.3남 2녀 중 차남으로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가 벽돌쌓기 일을 했던 형을 따라 밀항선을 탔다. 한때 사천시로 변경됐다가 삼천포라는 옛 지명을 되찾은 것을 모른 그는 “삼천포라는 명칭을 왜 없애냐고 고향의 선·후배들에게 따졌다.‘삼천포로 빠졌다.’는 것보다 ‘삼천포에 가자.’라는 긍정적인 면을 선전하면 오히려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것 아닌가. 그게 내 철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말을 들으며 차별이 심한 일본사회에서 역경을 이겨낸 긍정적 사고방식을 느낄 수 있었다. 밀항 뒤 혼란스러운 일본에서 검정고시로 고졸 자격을 딴 뒤, 호세대학 경제학부를 마쳤다. 호세대학은 당시 일본내 마르크스경제학의 총본산이었다. 그도 마르크스나 엥겔스, 레닌, 마오쩌둥을 접하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귀국해 정치가가 되겠다는 꿈도 있었지만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접어버렸다. 이후 관심도 마르크스에서 패션으로 옮겨갔다. 대학을 졸업한 뒤 취직하려 했지만 안돼 프랑스로 패션 유학을 떠나기 위해 교토의 미네야마에서 파친코를 하던 매형을 찾아간 것이 인생 항로를 바꿔버렸다. 여비를 빌리러 갔다가 매형이 한사코 파친코 일을 돕게 하는 바람에 주저앉았다. 업체간 경쟁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매형이 사업을 그만두려고 하자 “성공하면 두배로 드리겠다.”며 인수했다. 그것이 마루한의 모태가 됐다. 이후 미네야마에서 클래식 음악다방도 개업해 성공했고,1967년에는 당시 인기를 끈 볼링장 사업에도 뛰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시련이 될 줄은 까맣게 몰랐다. ●“매일 자살하려 했었다” “시즈오카에 120레인 볼링장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볼링 열기가 식으면서 경영상태가 악화됐고,5년 뒤에는 60억엔이라는 천문학적인 빚을 지고 말았다. 빚 독촉은 심하고, 갚을 길은 없어 매일 자살을 생각했지만 아이들 얼굴을 보니 못하겠더라.” 마음을 다잡았다. 택시운전이나 라면가게라도 해서 빚을 갚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행히 채권은행측이 “독촉을 안할 테니 천천히 갚아라. 신용·노력을 인정한다.”고 해 인감까지 은행에 맡겨놓고 뛰어다녔다. 새 사업을 물색하던 중 나고야 교외의 수천평 벌판에 주차시설까지 갖춘 파친코를 보고 힌트를 얻어 교외형 대형 파친코를 열기로 했다. 볼링장을 처분한 돈과 사채와 곗돈 등으로 시작했다. 자동차시대 도래를 정확히 예측한 사업 전략 덕분에 히메지, 고베 등에 세운 파친코점에 손님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호사다마일까. 이즈음 미국으로 영어연수를 갔던 당시 고교 2학년이던 장남이 요세미티 국립공원 계곡서 탁류에 휩쓸려 숨지는 액운을 당한다. 충격으로 열흘 정도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하고 울고 또 울었다. 충격은 2년가량 이어졌다. 그래도 사업은 급성장,10년만에 60억엔 부채도 청산했다. 파친코의 선입견을 바꾼 영업전략이 주효했다. 손님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했다. 돈을 많이 잃은 고객에게는 구슬을 융통해주고 담배로 위로했다. 담배냄새 제거시설이나 샤워시설도 갖춰 카페식 분위기를 연출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급성장,1995년에는 도쿄 입성의 꿈을 이루고 현재는 전국 180여개 점포에 종업원만 7000명에 달한다. 이 중 한국인은 100여명.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도 추진 중이다. ●파친코, 이제는 폭력배와 무관 “파친코 하면 폭력조직과 검은돈을 연상한다.20∼30년전만 해도 폭력배들이 귀찮게 했었다. 청소해줄 테니 한 달에 얼마씩 달라는 정도가 있었지만 10여년전 법이 한층 강화되면서 그마저도 없어졌다. 가끔 행패를 부리려는 폭력배가 있지만 즉각 체포된다.” 한 회장은 파친코의 이미지를 바꿔 거대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파친코 사장중 한국계가 70%라고 소개했다. 매년 250∼300명의 신입사원 중 대졸이 200여명에 이르고, 도쿄대 출신도 도쿄 본사에만 3명이 근무하고 있는 것은 파친코의 이미지가 바뀐 방증이란다. 그는 일본내 차별을 뛰어넘기 위해 수익금의 1%는 지역사회 봉사용으로 내놓는다.3년 전 일본에 귀화했지만 ‘한국계 일본인’으로 만족한다. 조국에 대한 끈끈한 정은 여전해 1년에 서너차례는 꼭 한국을 찾는다.22일에는 도쿄 인근 지바에서 한국인 150여명 등 7000∼1만명을 초청해 대규모로 ‘매출 1조엔 돌파 기념행사’를 갖는다. 비용만 15억엔이나 들였다. 7남매를 낳아 현재 딸 둘, 아들 넷인 한 회장은 교토의 저택에서 부인, 막내 아들(31)과 함께 살고 있다. 손주들만 7명으로 다복한 편이다. 파친코 제왕의 파친코 실력은 얼마일까. “7∼8번 가볍게 해 본 경험밖에 없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taein@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火낸들 화 풀리나?

    화가 나면 불을 지르는 남자들이 나란히 쇠고랑을 찼다. 11일 인천 남동경찰서는 10일 애인과 다퉈 화가 난다는 이유로 남의 집에 불을 지른 최모(22·배달원)씨에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구속했다. 최씨는 지난 9일 오전 5시30분쯤 인천시 남동구 김모(71·여)씨 집에 불이 붙은 휴지를 던져 500여 만원 상당의 재산 피해를 입히는 등 최근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남의 집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최씨는 경찰에서 “여자 친구와 크게 다투고 난 뒤 화를 삭이지 못해 남에 집에 불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날 대구 중부경찰서는 기름을 팔지 않는다며 주유소에서 불을 지른 혐의로 장모(43)씨를 현주건조물 방화 미수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장씨는 10일 자정쯤 중구 남산동 한 주유소가 영업이 끝나 기름을 판매하지 않자 행패를 부리다 주유기 옆에 있던 휴지통 속 쓰레기에 라이터로 불을 붙인 혐의를 받고 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안귀옥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처가의 행패 더 이상 못참겠어요

    저는 결혼한 지 10년째이고 7살난 딸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저는 공무원으로 12년째 근무 중이고 아내는 외국인회사에서 간부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뿐인 아이마저 거의 얼굴을 볼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제가 경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둘째아이 낳기를 거부했습니다. 아내는 집안 살림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아이의 유치원을 처가 근처로 정하고는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아이를 친정에 데려다 주고 저녁에는 처가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다가 밤 10시가 넘어야 집에 오거나 아예 집에 오지 않고 처가에서 자고 출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희 부부는 이러한 문제로 자주 다투었는데 아내는 말다툼만 일어나면 친정 식구들을 불러들였고 장모는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제가 돈을 많이 못벌기 때문에 딸이 직장을 다니는데 그도 이해를 하지 못하느냐면서 갖은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는 처남과 달려들어 구타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창피해서 다른 데는 이야기도 못하겠고 이제는 이혼마저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가 식구들의 이런 행패도 이혼 사유가 되나요 -장진영(가명)- 정말 마음이 답답하시겠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식을 결혼시키고도 심리적으로 떠나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식을 늘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나 다 있겠지만 일단 성장한 자녀들에게는 특히 혼인까지 시킨 경우라면 스스로 심리적으로 자립을 하도록 떼어놓는 훈련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 것보다는 친정 식구들이 돌보아 주면 안심도 되고 경제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되니까 친정에 더 치우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친정에서 적절히 조절을 해야 하는데 일단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로 생각해서 딸이 직장에 다니는 것도 사위의 잘못이라고만 몰아붙인다면 이는 정말 어려운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우선은 처가 식구들과 화합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서로 마음이 통하면 처가 식구들도 함부로 하지는 않을 것이고 진영씨도 처가에서 하는 것이 간섭으로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가족간의 갈등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부부가 중심이 되는 가정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것이고 두 부부의 마음이 우선 하나가 되어야 친정 식구들에게든 시댁 식구들에게든 대화가 될 것입니다. 진영씨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아내에게 서로 잘 살아보자고 만난 것이 아니냐는 원론적이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두 사람이 이렇게 갈등 상태에 있다가 결국 헤어지게 되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해서나 아이를 위해서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기본적인 문제에 협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합의에는 처가 식구들의 도움이 절실한데 처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이니 우선 어렵더라도 처가 식구들과 자주 대화와 전화로라도 접촉을 하도록 해보세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할 것이나 먼 미래에 진영씨 가족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한번 시도해 보세요. 처가 식구들에게 우선은 아이를 양육해 주어서 고맙다든지, 장모님이 딸에게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주셔서 아이가 건강하다든지, 아내를 직장에 다니게 해서 미안하다든지, 칭찬 거리를 만들어서 장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해보세요. 장모도 어느 정도 마음을 여는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이렇게 처가식구들과 자주 대화를 해서 서로의 마음이 열리게 되면 서로 심리적으로 분리해서 생활을 할 수 있는 요령이나 기회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하신 이혼 문제는 최악의 경우에 선택하실 것이나, 재판상 이혼 사유로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라는 조항과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것’이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따라서 진영씨가 위와 같은 노력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장모나 처남들의 횡포가 계속되고 아내와의 화합도 되지 않는다면 위 조항에 따라 이혼을 하실 수는 있습니다. 가족 갈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상담은 사단법인 한국행복가족상담소(032-862-7119,www.e-happy home.or.kr)에서도 하실 수 있습니다. ●가족클리닉의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2) 호찌민家 사람들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2) 호찌민家 사람들

    1945년, 베트남이 8월혁명을 통해 독립국가를 수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중부 응에안성의 킴리엔 마을로 청년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 청년이 찾아간 집은 오딴(O Tan)이라는 할머니의 집이었다. 오딴 할머니의 원래 이름은 응우옌 티 딴(Nguyen Thi Tan).1884년 태어난 그녀는 젊은 시절, 베트남 중·북부를 누비며 활동한 항불 독립운동가였다. 미모에 키가 훤칠했지만 결혼은 안했다. 프랑스 경찰에게 심한 고문을 당하고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청춘은 지나가버렸다.1916년에 체포됐을 때는 불에 달군 동세숫대를 타고 앉아야 했다. 엉덩이 살이 타들어갔지만 동지들을 팔아넘기지 않았다.1918년 노역형 9년을 선고받고 꽝응아이성에서 출감했을 때 이미 마흔이 훌쩍 넘었다. 감옥에서 나왔지만 여전히 관숙인(보호관찰대상자) 신세였다. 조국은 독립했지만 지나간 그녀의 청춘은 되돌릴 수 없었다. 고문으로 망가진 몸도 마찬가지였다. 하루에도 몇번씩 엄습하는 견디기 어려운 통증에 시달리던 그녀 앞에 청년이 불쑥 내놓은 것은 사진 한 장이었다. 낯익은 사진의 주인은 독립정부의 주석 호찌민이었다. “이 얼굴은 틀림없는 응우옌 탓 딴입니다.” 오딴은 그 청년이 허튼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브엉 툭 오안(Vuong Thuc Oanh), 이 청년 역시 옥살이하다 8월혁명으로 출감한 항불혁명가였다. 그는 자기 동생 딴이 배운 스승의 아들이기도 했다. “사실 제가 1940년 중국의 광저우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거기서 그가 세운 베트남혁명청년회의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왜 제가 모르겠습니까.” “나도 내 동생일 거라고 생각은 했다. 이 눈매는 세월이 흘렀지만 틀림없는 내 동생이다. 그리고 여기 이 귀를 봐.” 오딴은 사진 속 인물의 귀를 가리켰다. “동생 귀는 한 쪽이 유난히 크지. 그렇지만 함부로 말을 꺼내 나라 일에 바쁜 주석을 욕보이게 할까봐 입을 다물고 있었네.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서 자신이 서지 않기도 하고. 외국으로 떠난 뒤 3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까.” 브엉 툭 오안은 오딴의 동생이 고향을 잊지 않았다며 중국에서 만난 이야기를 전했다. 이 얘기를 듣고 오딴은 하노이로 가겠다고 결심했다. 오딴은 평소에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집에서 기르던 오리 두 마리를 광주리에 담아 마을을 출발했다. 동네 사람들은 옷차림이 그게 뭐냐며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누나로서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동생을 만나러 가는 것일 뿐이다. 왕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다.”호찌민이 10살 되던 해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그 뒤 호찌민에게 그녀는 곧 어머니였다. 또 주변에서 가는 동안에 죽고 말 것이라며 놓고 가라던 오리도 기어코 챙겼다. “가져 갈 만한 이유가 있어서 가지고 가는 것이네.” 미국이나 프랑스 연구자들은 오딴이 닭 두 마리와 달걀 20개를 가지고 갔다고 한다. 가난한 시골의 누나라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오리를 챙긴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며칠만에 하노이에 도착한 오딴은 곧바로 주석관저로 바뀐 옛 프랑스 총독부로 갔다. 자신의 이름을 밝힌 뒤 주석에게 동생을 만나러왔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경비원은 오딴을 이상한 눈빛으로 봤다. 경비원이 자신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있음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화가 난 그녀는 경비원을 나무랐다. “내 동생은 어려서부터 착하고 총명했지만 우리 집은 가난했다. 나도 좋은 옷이 있지만 이렇게 가난한 누이를 반겨 맞을 것인지 아닌지 보기 위해서 이렇게 입고 왔다. 당장 연락을 해라. 동생이 나를 맞지 않겠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바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경비원은 비서실에 연락했다. 곧 비서가 나와 오딴에게 어느 집의 주소를 일러주며 그곳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오딴은 발끈해서 오리가 든 광주리를 들고 일어섰다. 늙었다지만 프랑스 경찰의 혹독한 고문에 맞서던 결기가 그대로 나타났다. “나는 돌아가겠네. 수십년 만에 누나가 왔는데 내일 보자는 말인가.” 비서가 당혹스러워하며 오딴을 붙들었다. “사실은 제가 아까 응우옌 티 딴이라는, 누이란 분이 찾아왔다고 말씀드렸을 때 주석께서 눈물을 흘리며 우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주석께서는 장제스군대에 쌀 1만t을 주는 업무를 처리하고 계신 중입니다.” 당시 베트남에는 일본군 무장해제를 핑계로 남쪽에는 영국군, 북쪽에는 장제스군이 들어와 있었다. 이들의 행패는 말할 수 없을 정도였을 뿐 아니라 완전한 독립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이었다. 호찌민은 장제스군을 하루빨리 내보내기 위해 어르고 달래느라 애쓰고 있던 참이었다. 오딴은 비로소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이것이 관리가 백성을 대하는 태도라면 나는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나라 일로 그러하다면 내가 기다리겠다.” 오딴은 당 티 마이 교수 집으로 갔다. 당 티 마이교수는 호찌민과 동향으로 베트남의 전쟁영웅 보 응우옌 잡 장군과 함께 교사생활을 했다. 호찌민정부의 초대 교육부장관을 맡고 있기도 했다. 당 티 마이 교수의 집에 간 오딴은 오리를 내놓으며 요리를 부탁했다. “두 마리 오리를 그대로 삶아서 내주세요. 발 4개도 잘라 버리거나 으깨지 말고 꼭 통째로 내놓아야 합니다.” 다음날 아침 호찌민은 당 티 마이 교수 집에 들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오딴은 벽을 바라본 채 돌아앉지 않았다. 호찌민은 오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슬픈 목소리로 물었다. “찌어이(누나), 이 순간에 누이는 왜 이렇게 동생에게 화를 내고 계세요?” 그제서야 오딴은 돌아서 일어서 호찌민을 부둥켜안고 흐느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오딴은 호찌민의 뺨과 턱을 쓰다듬으며 안쓰러워했다. “왜 이렇게 늙었니. 어릴 때 그렇게 잘 생겼던 내 동생의 볼이 왜 이렇게 홀쭉하니. 그래도 눈빛만큼은 여전히 빛나는구나.” 감격적인 상봉 뒤에 아침식탁이 차려졌다. 물론 식탁 가운데에는 오리 두 마리가 놓여졌다.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오늘 너무 푸짐하게 차렸군요. 그런데 어쩌자고 오리를 이렇게 많이 올렸어요?” 그렇게 묻는 호찌민에게 당 티 마이 교수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오리는 제가 준비한 것이 아니고 누이께서 응에안에서부터 가지고 온 것이랍니다.” 그 말을 듣고 호찌민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오리의 다리를 집어 들었다. “찌어이(누나), 오늘 이렇게 내 잘못이 낱낱이 드러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식탁에 앉았던 당 티 마이 교수의 가족들은 모두 의아한 눈으로 오딴을 쳐다봤다. 한동안 가만히 앉았던 오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오늘 아주 기쁘네. 내 동생이 40여년 동안 세계 각국을 떠돌다 돌아왔는데 우리 집안의 가르침을 잊지 않은 것을 확인했으니, 얼마나 기쁜가.” 호찌민은 어려서 오리발 때문에 외할머니에게 매맞은 적이 있었다. 외할머니댁 제삿날, 외할머니는 제삿상에 올리고 남은 오리발을 오딴의 남자동생들인 키엠과 호찌민에게 하나씩 주었다. 형인 키엠은 자기의 오리발을 들고 동생을 놀렸다. “내 오리발이 더 크∼다.” 약이 오른 호찌민은 자기 오리발은 내려놓고 형의 오리발을 빼앗으려고 달려들었다. 오리발을 마주잡고 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동생들을 오딴이 나무랐다. “키엠, 형인 네가 양보해야지.” 그 말에 키엠은 잡아당기던 오리발을 놓았고 호찌민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바람에 밥상 위에 있던 할머니의 사기 밥그릇이 깨지고 말았다. 평소에 인자하기 그지없던 외할머니가 회초리를 집어 들었다. “깍자우(손자들아), 잘 들어라. 너희들이 아무리 총명하고 학교에 다니며 문자를 배워도 남의 것을 탐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커서 탐관오리밖에 될 것이 없다. 그러니 남의 것을 탐하는 마음은 어려서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종아리를 걷어라.” 누이의 얘기가 끝날 때까지 호찌민은 겸연쩍은 얼굴을 하고 옆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호찌민은 틈틈이 당 티 마이 교수 집에 들러 누나와 식사했다. 열흘 정도 머물던 오딴은 호찌민 비서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내가 그동안 열흘을 지내면서 동생이 식사하고 생활하는 것을 지켜봤다. 주석이면 다른 나라로 치면 대통령이고 왕인데, 비서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식사하는 것을 보니 이제 내가 돌아가도 될 것 같다. 마음의 근본을 잃지 않았으니, 내 동생이 탐관오리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게야.” 당 티 마이 교수가 오딴을 말렸다. “왜 동생을 돌봐주시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세요.” 허리 굽은 시골 노인네는 교육부장관인 교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내 동생은 이미 큰 사람이 됐네. 내가 여기 있으면 내가 동생을 돌보는 게 아니라 동생의 그늘에 내가 기대는 것이 되네. 우리 조국이 프랑스 식민지가 됐을 때 가족들은 찢겨지고, 심지어 왕도 아프리카로 쫓겨났지 않았나.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되찾았고 나는 여한이 없네. 그리고 나는 권력 가까이에서 행세하는 사람이 아닐세. 내 동생은 여기에서 나라를 돌봐야 할 사람이고 나는 고향에 돌아가서 내 집을 돌봐야 할 사람이네.” 당 티 마이 교수는 그래도 한 번 더 오딴을 붙잡았다. “고향에 돌볼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지. 난 자식이 없지. 그렇지만 내 마을 아이들은 모두 내 자식이라네.” 그렇게 킴리엔으로 돌아간 호찌민의 누이는 1954년 7월20일 고향집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다시는 하노이에 발을 디디지 않았다. 호찌민이 형 키엠과 누나 오딴을 챙기지 않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사실, 특히 엄마와 같은 누나 오딴의 장례식에 전보 한 장도 보내지 않은 것을 두고 사가들 사이에는 온갖 억측이 많았다. 특히 호찌민을 비정한 전쟁광으로 묘사하려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강조했다. 그러나 1945년 8월혁명 직후부터 키엠과 오딴의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작가 썬뚱은 전혀 다른 얘기를 들려줬다.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오딴이 죽었을 때 호찌민은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하고 있었어요. 디엔비엔푸에서 승리한 뒤 제네바협정을 두고 주언라이와 입장을 조율했지요.” 호찌민은 중국에서 돌아와서야 누이의 죽음을 전해들었다. 볼펜을 떨어뜨린 채 책상다리를 꽉 움켜쥐고 겨우 몸을 지탱하던 호찌민은 한참 뒤에야 비서에게 조전이라도 보냈는지 물었다. “박(아저씨)이 돌아오면 의견을 여쭈려고 기다렸습니다.” 호찌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고향 킴리엔이 있는 남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자료 사진을 협조해주신 주한베트남대사관과 베트남통신사(VNA)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애써주신 베트남통신사 부 주이 흥 서울지국장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큐! 아름다운 노년] ④ ‘사각지대’ 학대받는 노인

    [큐! 아름다운 노년] ④ ‘사각지대’ 학대받는 노인

    며칠 전 부산 동래구에 사는 안광순(67·가명) 할머니는 아들의 ‘협박’에 시달리다 결국 병원신세를 졌다. 그동안 전화로 ‘못할 소리’를 하던 아들이 집에 찾아와 재산 명의변경을 요구하며 온갖 협박과 행패를 부렸다. 이에 놀란 안씨는 곧바로 부산 서부 노인학대상담센터 노인 임시보호실로 피신했다. 상담센터에서는 평소 건강이 안 좋은 안씨를 병원으로 인계했다. 산업화, 도시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노인학대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온갖 정성을 기울여 키운 자식들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하는 일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이다. 노인문제 전문가들은 동물과 달리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인간의 윤리·도덕의식이 극도로 엷어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 박재간 소장은 24일 “지금 한국사회는 노인을 부양하는 가족기능이 현저히 약화된 사회”라며 “사회보장제도가 성숙되지 않는 한 이같은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해자 85%이상이 친족 노인학대상담센터 김은주 소장은 “가정폭력과 마찬가지로 노인학대의 가해자도 85% 이상이 친족이다.”고 밝혔다. 아들 며느리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같은 노인학대는 부모가 자녀를 가해자로 신고하는 것을 꺼리고 있어 은폐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실제 상황에 비춰 신고되는 노인학대건수는 일부에 불과한 실정이다. 노인학대상담센터가 밝힌 노인학대 가해자 현황(2004년도)을 보면 1477명의 노인학대 가해자 중 아들(701명)·며느리(403명)가 무려 74%를 차지하고 있다. 딸(146명)과 배우자(103명)가 뒤를 잇고 있다. 이처럼 노인학대가 아들·며느리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이들이 부모를 모시든, 안 모시든 부양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 소장은 “아들과 며느리가 특별히 못된 사람이라기보다는 부모나 다른 형제로부터 기대와 요구가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매 맞는 것만 노인학대가 아니다 노인문제연구소 박 소장은 “구타·내버림만 노인학대가 아니다.”면서 “물질·정신·정서적 학대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인학대는 이외에 언어적, 성적 학대까지도 포함된다. 여성노인은 정서·언어·신체적 학대를, 남성노인은 방임 또는 경제적 학대를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노인들이 농촌노인보다, 질병이 있는 노인이 없는 노인보다 학대에 더 노출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인학대 상담센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총 2038건의 학대유형 가운데 정서·언어적 학대가 신체적 학대보다 훨씬 심각했다. 신체적 학대가 390건인 반면 언어적, 정서적 학대는 각각 440건,463건으로 오히려 더 많았으며 경제적 학대도 232건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소장은 “노인학대를 광의로 해석할 경우 65세 이상 노인 인구 420만명 중 60∼70%가 이런저런 이유로 학대를 받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경제적 독립성을 잃고 자식에게 의지하고 있거나 중풍·치매 등으로 부양을 받고 있을 경우 학대의 위험요소는 더 커진다. 분당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김기웅 교수는 “가족간 역할이 바뀌면서 학대가 자주 발생한다.”면서 “이런 경우 가족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자신이 학대하는 줄 모르고 학대하는 경우도 많다.”며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선진국 높은세금 ‘노후연금’ 으로 인식 노년기에 경험하는 학대는 노인의 삶 자체를 혼란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절망적인 상황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피해 노인들이 심한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해 삶을 포기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박 소장은 “한국은 노인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라며 “이는 노인부양기능이 상실됐고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웨덴·덴마크 등 유럽 국가들은 현재 노인들의 천국이나 다름없지만 30∼40년 전만 해도 노인자살률이 높았다. 완벽에 가까운 사회보장제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자살률을 잡은 것이다. 따라서 노인학대를 예방하는 첩경은 부양문제를 가정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국가사회가 떠맡아야 한다. 박 소장은 “국가가 자녀소득에서 일정 부분을 떼내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면서 ‘사적 부양’에서 ‘공적 부양’으로 제도를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스칸디나비아는 국가가 봉급생활자 소득의 48%, 의사나 변호사는 60%까지 떼고 있으나 조세저항은 거의 없다. 자신의 소득에서 뗀 돈으로 국가가 자신의 부모를 부양해주기 때문이다. 자신도 늙으면 이런 형태로 노후보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한몫하고 있다. ●독립성 유지가 가장 좋은 대안 노인학대는 가정폭력의 하나로 단발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점진적 발전을 보이며 재발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노인들의 보호쉼터나 그룹홈 등 대안적 주거시설에 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노인 스스로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학대를 방지하는 지름길이다. 노인들이 육체적, 경제적 독립성을 가질 때 노인학대는 사회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인들에 대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현재의 노동환경처럼 생산성, 효율성 등으로만 접근하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제는 기업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회적 책임이란 컨셉트로 파트타임 등 노인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월 30만원이면 노인들의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라고 김 소장은 말했다. 노인학대를 전문적으로 담당할 상담센터 확충도 시급한 과제다. 현재 국가에서 지원하는 노인학대예방센터(1389)는 서울과 부산 등 16개 광역자치단체에 1곳씩만 설치돼 있다. 민간단체가 있긴 하지만 폭주하는 노인학대 문제를 상담하고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노인학대는 개인적인 문제나 특정 연령층에만 국한된 지엽적인 문제로 인식해서는 안된다. 고령화·고령사회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전반적인 인권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다. 학대받는 노인들의 의식전환도 필요하다. 자식에게 어떤 피해가 갈까봐 숨기고 속으로 끙끙 앓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 소장은 “학대를 받고 있는 노인들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쉬쉬해서는 안된다.”면서 “신고·상담 등을 통해 밖으로 끄집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려야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신고·상담 어떻게 하나 Q)노인학대 신고 및 상담 긴급전화는. A)노인학대 신고 긴급전화는 1389번으로 24시간 핫라인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번없이 1389번만 누르면 관할 노인학대예방센터 상담원과 연결돼, 즉시 상담 서비스가 이뤄진다. 이동전화를 사용할 경우에는 지역번호+1389번을 눌러야 한다. Q)노인학대 신고는 누가 해야 하나. A)학대 피해노인이 직접 신고하거나 가족 및 친지, 이웃, 관련기관 종사자 등 누구나 신고할 수 있다. 특히 ▲의료인(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 ▲노인복지시설 종사자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장애노인에 대한 상담·치료·훈련 또는 요양을 행하는 자 ▲가정폭력 관련 상담소의 상담원 및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종사자 ▲사회복지전담공무원 등은 노인학대 의심사례를 발견했을 경우 반드시 신고토록 의무화하고 있다. Q)노인학대를 신고하면 어떤 서비스를 받나. A)신고접수된 노인학대 의심사례는 상담원(노인학대행위조사원증 발급)의 현장조사를 거쳐 적정한 보호조치가 이뤄진다. 응급한 사례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12시간내에, 단순 노인학대 사례는 48시간내에 현장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파산선고 후 복권되면 의사면허 회복

    Q고학으로 의대를 졸업했습니다. 전문의가 되고 가난을 벗어나려 대학에 남으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3억원을 빌려 개업했습니다. 빚을 갚고 안정을 찾을 무렵 분만 중 산모가 사망한 일이 생겼습니다. 불가항력이었다는 항변은 안 통하고 마녀사냥하듯 의사의 책임이 없음을 증명하라는 판결이 나와 대출을 받아 1억 5000만원을 배상했습니다. 그런데, 죽은 환자 남편이 병원에 출근하여 행패를 일삼아 문을 닫고 다른 지역에 병원을 새로 개설하느라 다시 3억원을 빌렸습니다. 그 사이에 나라가 어찌되려는지 출산을 잘 안 하는 쪽으로 풍조가 변해 하루 10만원도 수입을 못올릴 때가 많고,4억 5000만원의 이자도 감당할 수 없게 됐습니다. 파산을 하자니 의사를 계속할 수 없을 것 같고, 안 하자니 빚이 계속 늘어나고, 고민스러울 뿐입니다. -이달건(40)- A 개인회생을 고려해 보기를 권합니다. 개인회생은 비교적 안정적인 소득이 있는 직장인 또는 자영업자가 버는 소득 중에서 생계비를 공제하고 남은 가용소득으로 보통 5년, 최장 8년 동안 기존의 채무를 상환하고 나머지 못 갚은 채무가 있어도 이것은 면제받는 제도입니다. 채권자로서는 채무자가 파산을 택하였을 때에 받을 수 있는 것보다 더 갚는다는 장점이 있고, 채무자로서는 채무를 갚는 범위 내에서 가지고 있는 재산을 지키면서 주거나 기존에 하던 사업을 청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신용대출 금액이 5억원 미만이어야 한다는 제한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만, 이달건씨의 경우에는 이 제한에 걸리지 않으니 다행입니다. 개업을 하여 꾸준히 영업이익을 올리고는 있지만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개인회생을 권합니다. 그런데, 수입을 현 상태에서 기대하기 힘들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병원을 청산하고 다른 곳에 취업하여 급여를 가용소득의 기초로 삼아 개인회생을 하는 방법입니다. 의사라면 비교적 고용이 안정적이라고 보아줄 수 있으니 취업 즉시 개인회생으로 들어가도 무방하리라 봅니다. 둘째는 직접적인 파산신청을 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의료법에는 파산 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자의 면허를 취소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두려울 수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이 파산으로 가기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이고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라면 면책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이 경우 바로 복권되니 새로 시험보지 않고 의사면허는 회복됩니다. 그리고 어차피 빚이 많은 상태에서는 의사 면허가 있어도 제대로 개업의 노릇 하기 힘듭니다. (파산·개인회생 전문 변호사)
  • 상습폭행 아버지살해 여중생 선처 호소

    알코올 중독으로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일삼던 40대 아버지를 목졸라 살해한 여중생 이모(14·강원도 강릉시)양에 대한 네티즌들의 선처 요구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양을 구속한 강릉경찰서 인터넷 홈페이지(http:///kn.kwpolice.go.kr) 자유게시판에는 사건 발생 이후 1500여건이 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네티즌 이정훈씨는 “두 아이의 아빠인 나도 이양 소식을 듣고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어린 아이의 밝은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선처해 달라. 나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세 아이의 엄마라는 정귀례씨는 “법에도 인정이 있다고 했다. 어린 아이니 불구속 수사하고 그 아이의 마음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정신과 상담도 간절히 부탁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밖에 “법에도 눈물이 있다.” “이양은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등 선처를 호소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이양은 지난 15일 오후 10시55분쯤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 이모(40·선원)씨가 술에 취해 할머니(70)와 할아버지(74)에게 행패를 부리자 아버지를 넥타이로 목졸라 살해한 혐의로 17일 구속됐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이양의 일기장에는 “(아버지가)학원에 술먹고 와서 나를 발로 차고 얼굴을 때렸다. 난 잘못도 안 했는데. 너무 창피하다. 내가 너무 불쌍하다.” “도저히 아빠랑 살 수가 없다. 모든 걸 정리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았으면 좋겠다.”는 등 내용이 담겨 있다. 연합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남편 전처의 딸이 돈 요구 행패

    저는 1988년 결혼해 남편과 행복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미국에서 돌아왔다는 20대의 젊은 여성이 남편의 전처 딸이라고 하면서 행패를 부립니다. 한번은 술을 마시고 찾아와 “아버지의 돈을 내놓아라. 그 많은 재산은 다 어떻게 했느냐.”면서 거실의 유리창을 깨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막을 길은 없을까요. 하지만 형사고소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또 이런 것이 남편을 상대로 이혼청구를 할 수 있는 사유가 될 수는 없을까요. -김인숙(가명)- 접근금지가처분 신청을 하는 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신청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일반 민사소송절차로 신청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신청하는 것입니다. 남자대학생이 어떤 여학생을 일방적으로 좋아해 편지나 이메일을 보내고, 계속 전화를 걸고, 뒤를 따라 다닌다든지, 집 앞에서 일정한 시간에 기다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서로 좋아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여학생은 싫어하는데 남학생만 일방적으로 무리하게 좋아해 ‘스토킹’을 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이 경우 그 남자의 친구를 동원하여 말리는 길도 있지만, 역시 어렵다면 민사신청으로 “홍길동은 ○○○에게 100m 이내의 접근을 금지한다.”는 신청을 내면 법원에서는 당사자를 소환합니다. 그리고 담당판사가 신청인의 진술과 상대방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고, 접근금지명령을 내립니다. 이런 결정을 받고도 위반하면 과태료 처분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할머니가 재산이 많아 장남이 자기에게 유리한 유언을 받아내려고 평소와 달리 어머니에게 잘 대하고 나아가 다른 형제자매를 일절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딸들이 “오빠가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게 한다. 나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싶다.”고 호소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면접교섭 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가족간의 접근금지 신청은 가족의 일원이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가정생활의 평온을 깨트릴 때 사용됩니다. 인숙씨의 경우처럼 딸은 인숙씨의 1촌의 인척(배우자의 혈족)이고, 친족이므로 서로에게 일정한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딸은 아버지의 재산에 대하여 현재 청구할 권한은 없지만 생계유지가 곤란하다면 아버지를 상대로 부양청구를 할 수는 있습니다. 만일 같이 살고 있었다면 계모인 인숙씨와 딸 사이에도 서로 부양할 의무가 있습니다. 인숙씨가 남긴 재산에 대하여 그 딸이 상속할 권리는 없고, 딸이 남긴 재산도 인숙씨가 상속할 수 없음은 마찬가지입니다. 인숙씨가 딸을 상대로 접근금지신청을 하려면, 주소지 관할 수사기관에 고소하고 동시에 접근금지를 신청해야 합니다. 신고를 받은 사법경찰관은 폭력행위가 진행되고 있다면, 즉시 현장에 출동해 폭력행위의 제지, 행위자와 피해자 분리, 범죄수사 등을 합니다. 이런 응급조치에도 불구하고 폭력행위가 재발될 염려가 있다고 인정되면, 검사는 가정법원에 임시조치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가정법원은 행위자를 피해자의 집이나 방으로부터 퇴거 등 격리, 피해자의 집·직장 등에서 100m 이내의 접근금지, 병원 등 기타 요양소에 위탁, 경찰서 유치장·구치소에 유치 등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판사로부터 접근금지결정을 받으면 행위자는 피해자와 항상 100m 밖에 있어야 하고 같이 살 수는 없습니다. 이를 위반하면 바로 구속됩니다. 접근금지결정은 사실 상당히 가혹한 최후의 수단인 만큼 가족의 건강, 가정의 평화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신청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딸의 행동이 남편에 대한 이혼사유가 될 수 있는가는 남편이 혼인 당시 전처와 딸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아내에게 알렸다면 이혼사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를 알리지 않고 느닷없이 전처의 딸이 나타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행패를 부리는데도 남편이 수수방관하거나 딸의 편을 든다면 이혼사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족클리닉의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日 독도주권 침해] 1877년 日총리실 “독도, 신라부터 조선땅”

    [日 독도주권 침해] 1877년 日총리실 “독도, 신라부터 조선땅”

    ■ 日 영유권주장 근거는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은 독도(일본명 다케시마)를 역사적 실효적으로 지배했다면서 국제법상으로 일본영토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가 지난달 23일 서울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간담회에서 “독도는 역사적·법적으로 명백한 일본 땅”이라고 주장한 대로다. 일본 정부는 1952년 양국간 영토분쟁이 발생한 이후 매년 3월말 이같은 입장을 우리정부에 통보해 왔다. 일본 정부는 그러나 독도를 왜 일본영토라고 하는가에 대한 근거 등은 본격적인 분쟁에 대비, 공개를 꺼리고 있다고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우리측이 반박근거를 준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따라서 일본이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할 국제법상 실효성 있는 중요한 증거들은 아직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일본내 우파학자들이나 언론, 시마네현 등이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근거들을 제시하지만 약하다는 평가다. 시마네현은 일본인들이 1618년 이후 독도와 울릉도에 어로와 벌채를 했던 사실을 들어 “1904년의 주민청원에 따라 1905년 1월 각료회의에서 다케시마로 정식 명명, 시마네현 소관으로 결정한 뒤 2월22일 시마네현 고시 40호를 통해 그 내용을 공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시마네현이 같은 해 관유지대장에 이를 등록, 시마네현 오키섬 관할소의 소관으로 정해 어민들의 조업을 허가, 강치(바다사자라고도 함)와 전복 등의 어업이 행해졌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지사 시찰도 이루어졌고,1906년에는 시마네현 제3부장의 현지 실태조사도 실시하는 등 국제법에서 요구하는 제반 요건을 완전히 충족시켰다는 것이다. 이들은 1849년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독도를 발견, 국제무대에 알린 것도 일본영토의 근거로 삼는다. 아울러 2차대전 패전 때까지 나카이 등의 어부들이 독도와 그 주변에 어부막사를 치고 조업하는 등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한 만큼 국제법상 일본 고유영토임이 틀림없다고 강변한다. 그런데 패전으로 1945년 11월1일 해군성이 소멸하자 다케시마는 소관부서가 당시의 대장성으로 변했다고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1952년 1월18일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영유권을 선언하면서 다케시마도 이승만라인에 포함된다고 주장했고 1978년 4월30일 영해 12해리를 설정, 일본 어선을 몰아낸 뒤 등대와 감시초소, 병영을 설치하고 경비원을 상주시키는 등 불법점령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한다. taein@seoul.co.kr ■ 서울대 백충현교수의 반론 “일본은 독도가 1905년 1월28일 영토 편입됐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영토 편입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가 아니니까 영토로 편입한다는 것 아닙니까.” 국제법 학자인 백충현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16일 “독도가 시마네현 관할로 들어왔다는 조례를 만들 수 있는 전제는 독도가 일본 정부의 영토여야 하는 것”이라면서 “‘다케시마의 날’을 조례로 제정한 것은 중앙정부의 불법조치를 합법조치로 만들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부당하고 불법하고 효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날 전화로 만난 백 명예교수는 “이제까지 독도와 관련한 문제에서 일본과 한국을 제외한 어떤 나라도 영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그렇다면 일본의 것이 아니면 누구 것이냐는 문제를 한번 따져보자.”면서 조목조목 독도가 우리 영토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독도는 왜 한국영토인가 먼저 고문서에 나타나 있다. 서기 512년 신라의 영토로 처음 독도를 포함한 우산국이 등장한 이후 고려와 조선까지 영토 승계가 됐다는 것이 실록이나 한·일 고지도에 다 나타나 있다. 일본은 무주지 선점론을 주장한다. 일본은 1849년 리앙쿠르호라는 프랑스 선박이 독도를 발견하고 마음대로 이름붙인 리앙쿠르 암초(Liancourt Rocks)를 영토로 편입한다는 문서를 만들었다. 이제까지 어느 나라 땅도 아니었던 독도를 선점했다고 우긴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고지도나 일본 문서로 이미 일본은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다수 있다. 즉 독도가 조선의 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영토로 편입한 것은 침략행위이고, 당연히 국제법적 효력이 없다. ●일본 정부도 ‘독도는 한국땅’ 일본에 과거 태정관이라는 우리의 총리실에 해당되는 최고기관이 있었다.1877년에 일본 시마네현에서 어부들이 독도 쪽에 고기잡이를 가려고 하자 태정관은 “‘울릉도와 외 1도’는 조선에서 말하는 우산국의 일부이니 신라에 복속된 이후 계속해서 조선의 영토다. 그러니 일본 사람은 가지말라.”고 명령했다. 이는 일본 정부 차원에서 맨 처음 유권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통항금지시켰다. 이는 일본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막부 시절 다카하시, 이노 등이 만든 지도도 독도를 일본 영토에 포함시킨 것이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조선의 영토라고 표기했다. 보통 일본의 기록 문서나 영토 지도는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거나, 아예 조선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 ●조선의 공도정책에 문제있나 일본은 세종 시대인 1430년부터 우리나라가 300년가량 공도정책을 썼던 것을 문제삼는다. 공도정책이란 전방에 있는 몇몇 섬에 조세 면탈자, 병역기피자들이 몰려가면서 가끔 외적 침탈의 선봉이 되기도 하는 바람에 아예 사람들을 살지 못하게 했던 정책이었다. 그러다 1880년대 일본 사람들이 자꾸 독도로 가고 선박이 와서 지도도 만들고 하는 것을 본 뒤에는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비워둔 사이 왜구들은 나무도 베어가고 행패도 부리고 고기도 잡아갔다. 그래서 1882년 공도정책을 파기했다. 일본은 이 공도정책 자체가 영유권 포기라고 주장하는데 터무니없는 일이다. 공도정책을 실시했다는 것 자체가 바로 통치권을 행사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아닌가. ●국제사법재판소로 간다면 일본은 불리한 문서를 자꾸 감추고 있지만, 우리 외교부는 25년전 일본 아세아역사자료센터에서 입수한 자료를 착실하게 갖추고 있다. 결국 일본이 내심으로는 꿀리니까 큰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일평화조약 등에서 독도 문제가 거론된 것은 본질이 아니다. 대일평화조약은 일본과 연합국과의 조약이지 한국과의 조약이 아니다. 당사국인 우리나라가 관여되지 않은 조약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이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인식을 가졌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았더라도 독도는 우리 땅이기 때문에 2차 대전 관련 평화조약과 독도 문제는 관계없다.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든다는데 국회가 너무 감성적으로 ‘독도 이용 특별법’을 만든다고 하는데 지금의 정세는 이해를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 땅이면 그냥 갔다 오면 되는 것 아니냐. 변방이니까 연평도 등과 같이 국방상의 이유로 쉽지 않을 수는 있지만 제주도에 가는 데도 특별법이 필요한가. 독도를 특별취급하지 말라. 우리는 우리가 할 일만 해두면 된다. 만에 하나, 국제사법재판소에 가게 될 경우를 대비해 아주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영유권에 관한 조사도 하고 충분히 준비하면 일본이 이길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서울대 법대 백충현 명예교수 인터뷰 전문

    서울신문은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킨 16일 국제법 전문가인 서울대 법대 백충현 명예교수로 부터 조례의 부당성,우리 영토인 독도의 법적 근거,향후 우리의 대응 등에 대해 인터뷰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영토 문제는 우리나 일본이나 내부에 서 쉽게 하나로 의견이 통일된다.그 러다보니 학술적으로는 국민 감정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먼저 시마네현 조례안 통과에 대해서 말해보자.시마네현 영토편입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지역 차 원에서 할 것이 아니다.시마네현 관할에 들어왔다는 조례를 만들 수 있는 전제는 독도가 일본정부의 영토이어야 하는 것이다.1905년 1월 28일 일본 중앙정부에서 독도를 영토에 편입했다.영토편입이라는 것이 무엇이 냐.이전에는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가 아니었으니까 영토를 편입하는 것 아니겠느냐.즉 당시 1월 28일 영토 편입은 이전까지는 독도가 자신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것을 얘기한다.그러므로 이 문제는 전제가 이미 모순이었고,때문에 시마네현이라는 한 지역에서 따질 문제가 아니다.예전에 일본의 한 학술회의에서 학자들이 당시 현대국제법에 맞게 고치기 위해서 일본 영토로 편입한 것이라고 주장하길래 “그럼 일본은 독도 말고 다른 섬은 없느냐.다른 섬은 왜 당시 영토편입을 논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니 아무 대답도 못했던 적이 있다. -그럼 일본의 것이 아니면 누구의 것이냐는 문제를 따져보자.일본 것이 아니라고 해서 꼭 한국 것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먼저 최소한 제3국의 것은 아니어야 한다.이제까지 독도와 관련한 문제에서 일본과 한국을 제외한 나라는 영토권을 주장하는 나라가 없다.그래서 독도는 일본과 한국의 문제다. -다음은 한국의 영토인 근거에 대해 따져보자.먼저 고문서상의 문제다.서 기 512년 신라의 영토로 처음 독도를 포함한 우산국이 등장한 이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영토 승계가 됐다는 것이 실록이나 한·일 고지도에 적혀 있다.거기에는 양국 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다음은 무주지(無主地) 선점론이다.일본은 1849년 프랑스 선박에 의해서 독도가 발견됐을 때 ‘량꿔(liancourt·1849년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 포경선)도 영토 편입 및 대하원’이라는 문서를 만들었다.즉 당시 독도가 이제까지 어느 나라 땅도 아니었으며 먼저 선점하게 되었으니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이다.하지만 앞서 말했던 고지도나 일본 문서에 이미 일본은 독도가 한국땅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다수 있다.즉 조선의 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영토를 편입한 것은 침략행위가 되고 이는 국제법적인 효력이 없다. -즉 한국의 영토인데 일본이 편입시켰다면 남의 나라 영토를 침략했다는 게 된다.그래서 국제법 위반이다.그럴 때 일본 측이 한국 땅인 줄 몰랐다고 나오는데 우리가 줄기차게 다녔고 지도에도 나왔으니 몰랐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시마네현 영토에 관한 문제를 따져보자.일본에 과거 태정관이라는 우리 총리실에 해당되는 최고기관이 있었다.1877년에 일본 시마네현에서 어부들이 독도 쪽에 어업을 가려한다고 하자 태정관에서 ‘울릉도와 외 1도’는 조선에서 말하는 우산국의 일부이니 신라에 복속된 다음에 계속해서 조선의 영토다.그러니 일본 사람은 가지말라고 명령했다.이는 일본에서 맨 처음으로 유권해석한 것이다.그래서 통항금지시켰다.이는 일본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또 따져봐야 할 문제가 국가가 변할 때는 영토가 같이 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이는 발해가 우리 영토였지만 승계를 못 받아서 지금은 우리 땅이 아닌 것과 같다.하지만 독도는 고려 를 거쳐서 세종실록이라든지 연산군 왕조실록들을 보면 신라시대 때부터 울릉도와 우산이 다같이 우리 영토로서 승계됐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영토로서 증거력을 가지고 왕조실록을 가지고 있다.영토 문제 다루는 비변사에도 기록이 있다.그렇게 이해한다면 우리 조선왕조에는 계속 승계되어 왔다. -일본이 문제삼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1430년 세종 때부터 우리나라가 300년정도 동안 공도정책을 썼던 것이다.공도정책이란 전방에 있는 일부 섬이 조세 면탈자,병역기피자들이 가서 살면서 가끔 외적 침탈의 선봉 이 되기도 해서 아예 그 섬에 사람 들을 살지 못하게 했던 정책이었다.그래서 사람들을 살지 못하게 비워뒀다.당시에는 변방에서 별로 쓸모가 없는 지대였기 때문이다.그러다 1880년대 일본 사람들이 자꾸 거기로 가고 선박이 와서 지도도 만들고 하는 것을 보고선 방치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그러면서 다시 우리 주민들도 많이 들어갔다.우리가 비워 두는 사이에 왜구들이 나무도 베어가고 행패도 부리고 고기도 잡아가고 했었다.그래서 1882년 공도정책을 파기하고 직접 적극적인 관할을 하기로 한다.그래서 적극적으로 관할하려면 도감을 두는 수준보다 격상시켜서 1900년 칙령 41호로 울릉도를 울도로 바꾸고 도감이 관할하지 않고 군수를 두겠다고 한다.울진군과 격상시켜서 독립된 군으로 만든다.이때 독도인 죽도를 석도로 표현한다.일본은 이 공도정책 자체가 영유권 포기라고 주장하는 데 이는 터무니없다.공도정책이라는 정책을 실시했다는 자체가 바로 통치권 행사의 증거다. -또 고종 황제가 우리가 관할하는 지역이니 측량을 하자며 1898년 양지아문을 만든다.서양 지도 전문가를 불러서 지도 전문가 30명을 양성한 뒤 대한여지도와 대한전도를 만든다.1899년 나왔다.그 지도에 울릉도,우산 이렇게 섬이름까지 넣어서 조선 영역을 표시했다.우리 관에서 만든 영토 지도다.고종 황제가 직접 관할하려는 정책으로 전환한 것이다.그래서 우리의 땅을 법령상에 표기한 것이다. -1953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망뀌에 및 에끄레 후(Minquiers and Ecrehos) 영토분쟁이 있었다.당시 영국의 영토로 결정됐는데 서로의 주장을 가른 근거는 국가가 영토로서 그 주권을 행사한 직접 증거로 입법을 했다든지 행정적 조치를 취했다든지 영토지도를 가지고 있다든지 등의 증거였다.우리에겐 대한전도가 대표적인 영토지도였으며,칙령 41호가 입법조치이다.군수 를 파견한 것이 행정조치이다.즉 우리는 이미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측이 자꾸만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영토분쟁 지역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일본은 1905년 영토 편입도 이미 언급했다시피 영토가 아니기때문에 편입한 것이므로 근거가 되지 못하고 고기잡으러 남의 땅에 간 것이 자기 네 땅이라는 증거도 아니므로 근거가 될 수 없다.일본 국가 기록이 있어야 한다.하지만 막부 시절 다카하시,이 노 등이 만든 지도도 독도가 일본의 영토에 포함된 것이 없다.오히려 적극적으로 조선의 영토라고 표기됐다.보통 일본의 기록 문서나 영토 지도를 볼 때는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거나 아예 조선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 -오늘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조 례로 결정한 것은 중앙정부의 불법 조치를 합법조치로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부당하고 불법하고 효력이 없다.시마네현 문제는 국내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일본은 문서 자료를 자꾸 감추고 있지만 우리 외교부는 25년전 일본 아세아 역사 자료센터에서 입수한 자료를 착실하게 갖추고 있다.결국 일본이 내심으로는 꿀리니까 큰소리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면 우 리가 불리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국제 사법재판소 가도 근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그리고 시비건다고 다 국제사법 재판소 가지 않는다.우리는 국제사법 재판소 갈 일이 없다.우리는 100% 우리 것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일본이 센카쿠열도 등 은 죽어도 자기들 것이니까 국제사법재판소 가자고 말하지 않지 않느냐.일본이 독도 문제에선 유독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려고 의도하는 것은 결국 독도 문제에선 우리가 우월하다는 점을 인정 하는 것이다. -2차대전 끝나고 나서 대일평화조약 등에서 독도 문제가 거론된 것은 본질이 아니다.대일평화조약은 일본과 연합국과의 조약이지 한국과의 조약이 아니다.당사국인 우리나라가 관여되지 않은 조약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미국이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인식을 가졌다고 하는 건 문제가 없다.2차대전이 발발하지 않았더라도 독도는 우리 것이기 때문에 2차 대전 관련 평화조약과 독도 문제는 관계없다. -물론 지금 정세를 이해는 하지만 이번에 국회에서 너무 감성적으로 ‘독 도 이용 특별법’ 만든다고 하던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우리 땅이면 그냥 갔다오면 되는 것 아니냐.변방 이니까 연평도 등과 같이 국방상의 이유때문에 못갈 수도 있지만 제주도 가는 데도 특별법이 필요하겠느냐.독도를 특별취급할 필요가 없다. -우리 국민정서는 당연히 이해한다.하 지만 이번에 외교부에서도 반기문 장 관이 독도 문제는 영토 문제고 주권 문제니까 거기에 도전하는 것은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강경하게 천명하고 있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봐야한다. -일본이 자꾸 한마디씩 던지는 것은 분쟁으로 이끌어 내려는 전략에 불과하다.일본 측의 한 마디만 나오면 주한 일본대사관에 가서 화형식하고 하면 NHK 등에서 몇 시간식 방영해서 일본 내에서 이용하는 경향도 있다. 물론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감정적으로만 대응해서는 안된다. -지금 국민적으로 감정이 격앙되고 있는데 물론 그 감정도 어느 정도 필요한 게 사실이다.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일만 해두면 된다.국제사법 재판소에 가게 될 경우를 대비해 아주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국가의 영유권에 관한 조사도 하고 충분히 준비하면 일본이 이길 수 있는 근거는 없다.
  • [세상에 이런일이]그녀마음 훔치려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20일 헤어진 애인이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시가스배관을 타고 애인 집에 침입한 이모(25·전자대리점 직원)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19일 오후 9시쯤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사는 전 애인 최모(24·여·회사원)씨의 2층 단독주택 집을 찾았다. 이씨는 이날 집 앞에서 전화를 하고 문을 두드리는 등 만나 줄 것을 요구했지만 상대는 묵묵부답이었다. 급기야 이씨는 19일 오후 11시25분쯤 최씨의 2층 단독주택의 가스배관을 타고 올라가 방범창을 부수고 집안으로 침입했고, 화가 난 전 애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는 “3개월여를 사귀던 최씨가 지난달 헤어진 후 만나주지 않았다.”면서 “애타게 불러도 나오지 않아 술에 취해 보고 싶은 마음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고 말했다. 담당 경찰은 “기다리는 동안 소리를 지르는 등 행패를 부렸고, 헤어진 후 한 달 이상을 시달린 최씨가 전 애인의 처벌을 원해 사법절차를 밟게 됐다.”고 말했다.
  • [참여정부 2년] “盧대통령 요즘 말조심…마음 놓입니데이”

    [참여정부 2년] “盧대통령 요즘 말조심…마음 놓입니데이”

    “대통령 취임 뒤 첫 해는 가슴이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릅니더. 다행히 작년부터는 말도 좀 조심하시는 것 같고 경제도 신경 쓰시는 같아서 다행입니데이.”지난 2002년 1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후보 찬조연설 방송으로 유명해진 ‘자갈치 아지매’ 이일순(60)씨. 노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찬조연설 이후 숱한 ‘욕지거리 전화’와 행패 등에 시달리면서도 노 대통령 지지를 후회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취임 이후 잇따라 구설에 오르고 경제도 악화되는 것을 보고 실망도 많이 했다는 그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통령의 2년’을 지켜본 소회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재작년에는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더. 특히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등 막말을 자주 해 입방아에 오르내릴 때는 속이 많이 탔습니더.” 게다가 경제난마저 겹쳐 지지도가 가라앉는 것을 볼 때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자갈치시장에서 아귀 도매상을 30년 동안 했는데 최근 2년처럼 힘든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자연스레 정치개혁에 매달리느라 싸움만 하고 경제를 등한시한 대통령에 대한 원망도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씨가 대통령의 업무에 대한 평가를 하는 잣대는 두 가지다. 시장에서 느끼는 체감 경기와 주위나 가게에 들르는 사람들에게서 듣는 대통령에 대한 견해다. 이처럼 철저하게 ‘바닥 정서’에 기대어 나라살림을 바라보는 이씨는 올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불어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나아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재작년은 너무 힘들었는데 올해는 가게 매출도 조금씩 오르네예. 또 올해 졸업한 막내딸이 바로 취업하는 것을 보니 경기가 나아질 모양이지예. 또 타지에서 가끔 제 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대통령을 욕하기보다는 요즘은 ‘잘 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네예.” 소박하지만 생활현장에서 우러나오는 날카로움이 담긴 이씨의 분석은 ‘대통령 통치 스타일 변화론’으로 나아갔다.“지난해부터 파격적인 말수도 많이 줄었고 다른 사람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양보하는 모습도 보여줘서 좋다.”고 말한다. 대통령을 따라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바꾼 이씨지만 여전히 아쉬움도 많이 들려줬다.“제가 아는 사람을 비롯해 많은 중소기업인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걸 보니 가슴 아프다.”면서 “대통령이 이들의 발길을 되돌릴 대책을 마련하고 경제를 빨리 일으켰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런 쓴소리에도 불구하고 이씨가 대통령에 대해 가진 애정은 한결같은 듯 이내 덕담으로 이어졌다. “우예끼나 몸이나 건강하게 챙기시고 임기 마칠 때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더.”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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