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상고허가제」 필요한가(오늘의 쟁점)
「상고허가제」를 둘러싼 찬반양론이 가열되고 있다. 대법원과 변협은 각각 「국민의 권리보호」를 앞세워 도입여부를 놓고 열띤 논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공방은 급기야 감정싸움으로까지 치닫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소송당사자의 권리를 신속히 구제해주고 대법관들이 법률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업무를 덜어주기 위해 상고허가제를 도입하려는 대법원의 취지가 설득력을 지닌다면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이유로 이를 저지하려는 변협의 주장 역시 간과돼서는 안될 것이다.국민들은 다만 이번 논쟁이 직역다툼 보다는 국민의 편의를 위한 논쟁으로 이어져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양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본다.
◎도입론/남용상고 걸러 보호할 권리 신속구제/대법관 법률심 전념… 실질적 평등 달성/이상훈
소송제도는 무릇 억울한 당사자의 권리를 신속하고 적정하게 보호하는데 그 존재의의가 있다.따라서 소송제도는 악의적인 당사자의 지연책으로 악용되어서는 안되며,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국민은 법관에 의하여 법률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받을 기본권을 가지고 있고,그러한 기본권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법원은 국민의 기본권을어떻게하면 효율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가를 깊이있게 연구하여 실제 재판에 적용할 의무가 있다.바로 여기에서 무익한 상고를 제한하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할 당위성이 발견된다.
대법원은 그 본래적인 임무가 법령해석의 통일을 통하여 법률문화를 창달하고,무엇이 법인가를 최종적으로 선언하며,깊고 넓은 안목으로 국가의 사법정책을 펼쳐나가는 데 있다.국민과 직접 접촉하는 사실심법원과는 다르다.국가의 법집행의 정당성과 적정성을 최고법원으로서 확보하여야 한다.그래서 대법원은 제2의 항소심,제3의 사실심으로 작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법을 어떻게 해석·적용하는 것이 정의에 합당하며,국가적으로 사법은 어떤 역할을 하여야 하는가를 대법원이 밝혀줌으로써 좁게는 고등법원 이하의 사실심법원의 재판을 올바르게 끌고 가며,넓게는 국가와 민족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정당한 당사자의 권리구제는 따로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재판의 근본적인 전제이다.그리고 최고법원으로서의 대법원의 본래적 임무수행과 정당한 당사자의 권리구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무한정 쏟아져 들어오는 모든 상고사건에 대법원이 균등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것은 곧바로 정당한 권리자의 신속하고 적정한 보호와 배치될 수밖에 없다.전자가 형식적 평등의 추구라면 후자는 실질적 평등의 추구이다.상고를 제기한 본인에게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을 뿐더러 비용의 낭비라는 손실을 가져오고,나아가 신속하게 보호받아야 할 국민에게 재판의 확정을 지연시키며 대법관이라는 최고의 재판인력으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배려를 빼앗아가는 남용적인 상고는 제한하여야 한다.
구미의 여러 나라는 오래 전부터 상고를 제한하고 있고,일본에서도 최근 상고를 제한하는 제도의 도입이 거의 확정된 상태이다.무슨 연유로 이처럼 여러 선진국에서 쓸데 없는 상고를 미리 걸러내는 제도를 유지·발전시켜오고 있는지를 살펴서 우리의 법률문화를 발전시키는 데끌어쓰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본다.
◎반대론/“재판권 침해” 위헌 논란끝에 89년폐지/파기율 1%라도 인위적 제한 피해야/최재천
현재 사법제도개선안의 하나로 논의중인 상고허가제도는 이미 지난 81년부터 9년남짓 시행되면서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는 위헌의 논란끝에 폐지 되었던 것이다.이러한 제도가 폐지된지 3년만에 대법원에 의해 다시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대법관의 과중한 업무부담속에서 소송당사자들의 권리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대법원의 주장은 경청할 만하다.
하지만 상고사건에 대한 소송당사자의 수요가 많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소송당사자의 요구에 부응하여 판결로 말하는 것이 바른 길이지 상고사건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려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되고만다.
행정규제에 대한 완화 혹은 철폐가 현재 우리 행정의 기본방향임에도 법원행정은 역으로 선회중이다.
대법원은 대법원의 낮은 파기율을 예시한다.그러나 파기율이 단 1%가 된다하더라도 대법원의 판결은 필요한 것이고판결을 통해 단 한사람의 억울한 소송당사자를 만들어 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인권보장의 최후의 보루로서 대법원의 임무이다.
상고허가제는 헌법상 보장되는 3심제를 사실상 2심제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또한 이미 시행되다 폐지된 전례,특히 지난시절 지나치게 형식적이던 운용의 실태를 검토해보더라도 다시 도입하겠다는 논의는 그 타당성을 잃게된다. 하지만 그 대안은 모색되어야 한다.
상고허가제도의 도입에 앞서 헌법규정대로 대법원의 구성을 이원화하고 대법원 보조인력을 확충하는 방법이 단기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1·2심의 사실심의 강화,민사조정 및 화해제도의 활성화,전문법원의 설치,법관임용자격의 강화,법관수의 확충 등의 방법을 통해 하급심의 심리가 적정·공평하고 타당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소송당사자의 신뢰와 승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현재 마련중인 사법제도 개선안의 내용중 상고허가제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많음에도 여기에만 여론이 집중 되고 반대 논의를 집단이기주의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우리 헌법은 3심제와 상고절차를 보장한다.따라서 대법원에의 상고를 부당하게 제한 하는 것은 단순한 입법정책의 문제가 아니고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