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기 힘든 나라 한국(G7으로 가는 길:39)
◎고비용 경제구조에 국내외 기업 투자 기피/시장금리 일의 4배… 기업 금융비용 부담 가중/인프라시설 NIES중 최저… 물류비 비중 높아
현대 삼성 대우 등이 올들어 10억달러 이상의 대규모 해외투자계획을 앞다퉈 발표했다.선경 코오롱 등도 대규모 해외투자를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국내에 투자해서는 더이상 수지를 맞출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생산비가 국내보다 적게 먹히는 지역을 찾아 국내기업들의 해외탈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외국인 기업가들에게 한국이 기업하기 힘든 나라로 꼽힌지는 이미 오래다.지난해 인도네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2천억달러로 우리의 절반에 못미치고 1인당 GDP는 1천달러로 우리의 10분의 1 수준.그러나 94년의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2백61억달러로 우리나라(13억달러)의 20배나 됐다.급성장하는 한국시장에 매력을 느끼는 외국기업들은 많다.그러나 투자하는 것은 꺼린다.우리나라보다 생산비가 적게 드는 동남아 국가들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해외투자 전환
국내기업이든 외국기업이든 투자가들에게 한국은 기피대상이다.그 원인은 한국경제의 고비용구조에 있다.여기에는 고임금 이외에 고금리와 고물류비가 상당부분을 차지한다.고금리와 고물류비는 한국기업들의 경쟁력을 잠식하는 최대요인이다.
우리나라의 금리수준은 서방 선진 7개국(G7)과 아시아의 신흥공업국(NICs) 4개국 가운데서 가장 높다.NICs는 현재 우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들이고,G7국가들은 미래의 경쟁상대이다.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현재의 높은 금리수준은 국내기업들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선진국의 거대기업들과 경쟁하라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 적이 있다.금리를 낮추지 않고 우리가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시장금리를 대표하는 지표인 3년만기 회사채 유통수익률은 연 11∼12% 수준이다.반면 일본은 3%대.한국기업들은 일본기업보다 4배나 비싼 이자를 물고 있다.독일은 5%,미국·홍콩·대만 등도 7∼8%로 우리보다 훨씬 싸다.
○물류비 비중 17% 달해
한국은행이 최근 발간한 「96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제조업 분야 국내기업의 차입금 평균금리는 연 11.68%였다.지난 90년의 12.52%보다는 낮아졌지만 93년 11.19%,94년 11.39%에 비해 높아지는 추세다.
고금리는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금융비용 부담률을 높여 기업의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지난해 국내기업들의 금융비용부담률은 5.57%나 됐다.일본기업들은 이 비율이 1.6%였고 대만기업들도 1.7%로 우리의 3분의 1∼4분의 1 수준이다.반면 매출액경상이익률은 우리 기업들이 3.6%로 미국(5.36%·94년 매출액순이익률 기준)이나 대만기업(4.9%)보다 낮다.1백만원짜리 물건을 팔면 한국기업들은 평균 5만5천7백원을 차입금 이자로 내고 3만6천원의 이익을 남기지만 대만기업들은 1만7천원의 이자만 물고 4만9천원의 이익을 남긴 셈이다.
기업의 물류비 부담도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지난 94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물류비는 총 48조원.GDP 3백5조원의 15.7%,제조업 전체 매출액 대비로는 17.1%를 각각 차지했다.산업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제조업 매출액 대비 물류비 비중이 17%로 다소 낮아지긴 했지만 미국의 7%,일본의 11%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물류란 생산된 재화를 포장·수송·보관·하역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경제발전 초기에는 생산시설의 확대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지게 마련이다.그러나 경제규모가 일정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물류시설 부족으로 심한 동맥경화증을 앓게 된다.현재의 우리나라 상황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10년간 전체 물동량은 3.6배,연평균으로는 13.7%가 증가했다.자동차 보유대수는 10년전보다 8배 이상 늘었다.그러나 전체 도로연장은 겨우 1.1배 늘어나는데 그쳤다.그 결과 물류비는 4.2배,연평균 16%씩 늘어 물동량 증가 보다 훨씬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교통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물류비는 89년 21조원에서 90년 26조원,91년 32조원,92년 37조원,93년 41조원,94년 48조원으로 불어났다.95년에는 55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정부의 한해 예산과 맞먹는 막대한 국가재원이 물류비 과잉부담으로 낭비되고 있다.
○치솟는 땅값도 한몫
물류비 구성을 보면 수송비가 전체의 65%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나머지는 재고유지관리비(23%),일반관리비(4.1%),물류정보비(3.8%),포장비(2.3%),하역비(1.9%) 등이다.
물류비가 급증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도로 항만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이 부족해 상품의 수송 지체가 가장 심각한 과제다.서울∼부산간 평균 수송시간은 10년전에 비해 2.5배로 길어졌고,철도시설도 거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추가적인 열차투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항만시설 확충도 물동량 증가를 따라잡기에는 미흡하다.
우리나라의 총도로연장은 7만3천8백34㎞.이를 자동차 한대당으로 환산하면 8.7m,국민 1인당으로는 1.7m에 불과하다.자동차 한대당 도로연장은 미국(33m)의 4분의 1,일본(17.9m)의 절반 수준이다.또 국민1인당 도로연장은 미국(25m)의 14분의 1에 불과하고 일본(9.1m)의 5분의 1에도 못미친다.매년 분야별로 각국의 경쟁력을 비교 분석하고 있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보고서는 올해 물류인프라시설의 국별 비교에서 한국을 일본 홍콩 대만싱가포르 등 아시아 경쟁국 가운데 최저수준으로 평가했다.
고비용 구조에는 땅값 상승도 한몫을 하고 있다.주요 공업단지의 땅값은 한국이 평당 25만4천원으로 미국(평당 2만4천원)의 10.5배,싱가포르(평당 3천원)에 비해서는 84.6배나 비싸다.이밖에 번잡한 각종 경제행정규제도 불필요한 비용을 유발,갈길이 먼 국내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꼽혔다.무협이 33개업종 1천개 수출업체를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방문조사 결과 공장입지,조세 및 관세행정,금융·외환,수출입통관,고용·노사관계 분야의 규제완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전문가 인터뷰/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진호씨/불합리한 규제 폐지/금리안정 선결 과제
『우리나라에서 물류비용과 금융비용이 비싼 것은 해당 산업이 낙후됐기 때문입니다.물류 및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불합리한 규제를 풀고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경제의 고비용구조로 인한 1차적인 희생자는 기업들이다.이들 기업을 대변하는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정진호 선임연구위원은고비용 구조 타개책으로 서비스 산업에 대한 인식전환과 정책적인 지원을 제안했다.
『과거 외화획득을 위해 제조업 육성에만 매달리다 보니 제조업을 지원하는 분야인 물류 및 금융서비스 산업이 극도로 낙후됐습니다.서비스산업의 효율성 저하가 물류비와 금융비용을 높이고 이것이 제조업의 발전을 제약하는 상황입니다』 정박사의 고비용 구조에 대한 진단이다.
제조업이 경쟁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에 필요한 각종 물자와 자금을 공급하는 물류산업·금융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다.흔히 물류산업은 도로 항만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시설 투자만 늘리면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그러나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만으로 경쟁력 있는 물류산업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신기술 흡수,경영혁신,사업재구축,고객중심의 시장 형성 등 「소프트웨어」 측면이 보다 강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박사는 옛 소련의 계획경제체제를 예로 들었다.『소련은 계획경제하에서도 도로가 잘 닦여 있었지만 그 위로 물동량이 원활하게 움직일 수있도록 물류산업이 잘 육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방대한 시설들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물류산업의 육성책으로 조세 등 관련 법체계의 정비 및 각종 규제와 진입장벽의 폐지를 역설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금리가 높은 이유에 대해 『정부가 통화증발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국내외 시장에 자금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개방경제체제에서는 당국이 시장을 당국자의 의도대로 움직여갈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자금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지 않고서는 금리를 낮출 수 있는 방안이 없습니다.우리 은행들도 과잉보호만 할 것이 아니라 값싼 자금을 공급하는 해외의 은행들과 경쟁을 시켜야 합니다』 정박사는 금리를 낮추기 위한 몇가지 방안을 제시했다.첫째는 경쟁촉진과 규제완화다.기업이 해외에서 금리가 싼 자금을 이용할 수 있도록 문호를 열어주면 국내은행에 대한 자금수요가 줄고 국내은행들은 고객을 뺏기지 않기 위해 금리를 낮출 것이라는 얘기다.개방확대를 통해 국내 물가수준을 낮춰 개방의이익이 소비자에게 환원되도록 하는 것도 금리안정을 위한 선결과제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