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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王이 한 일을 알고 계십니까

    王이 한 일을 알고 계십니까

    한국사 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국사편찬위원회가 주관하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하 한국사시험)은 공직 입문이나 취업을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적으로 치러야 하는 시험으로 자리 잡았다. 교원임용시험 및 행정고시, 입법고시, 법원행정고시, 외교관후보자 시험 등 각종 고시뿐 아니라 기업 입사 시, 공무원 승진 시에 한국사가 필수 조건으로 도입됐기 때문이다. 고급(1·2급), 중급(3·4급), 초급(5·6급)으로 나눠 시행되고 있는 한국사시험은 초급이 객관식 40문항, 중·고급은 객관식 50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고급의 경우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 70점 미만이면 2급, 70점 이상이면 1급으로 합격한다. 시험 출제유형은 ▲역사 지식 이해 ▲연대기 파악(역사사건 및 상황의 시대순) ▲역사 상황과 쟁점 인식 ▲역사자료 정보해석 및 분석 ▲역사 탐구 설계·수행 ▲결론 도출과 평가 등이 혼합돼 있다. 급수에 상관없이 출제 범위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다. 높아지는 인기를 반영하는 것처럼 해마다 응시생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시행 첫해인 2006년 1회 시험 응시자가 1만 6500여명이었지만 2012년 15만 7000여명, 지난해에는 34만여명으로 급증한데다 2010년까지 연 3회 치르던 시험이 4회로 확대됐다. 올해는 이미 3번의 시험이 치러졌고, 다음달 25일 올해 마지막으로 제25회 한국사시험이 치러진다. 내년도 교원임용시험, 외교관 선발시험, 5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등에 앞서 미리 한국사 1, 2급을 확보하려는 수험생들을 위해 선우빈 박문각 남부고시학원 강사와 함께 시대별 주요 개념을 표로 정리했다. 선 강사는 “한국사시험은 단순 지엽적인 문제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사고 및 추리력을 요구하는 이해중심의 문제로 출제되고 있다”며 “특히 빈도 높게 출제되는 시대별 왕의 업적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학습을 바탕으로 기출문제를 풀어본다면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서울신문 주최 2014 고시 세미나] “채용 경로 다변화로 우수인재 확보… 순혈주의 병폐도 차단을”

    [서울신문 주최 2014 고시 세미나] “채용 경로 다변화로 우수인재 확보… 순혈주의 병폐도 차단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드러난 공직사회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대국민담화에서 5급공채 선발 규모의 단계적 축소 및 민간경력채용 확대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공직사회 안팎에서는 이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신문은 공직자 채용 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을 심도 있게 살펴보기 위해 23일 ‘5급공채, 민간경력채용의 상호 발전적 방안을 위한 2014 고시세미나’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에서 마련했다. 백종섭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와 김명식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주제발표를 했으며, 진재구 한국인사행정학회장(사회), 조성주 안전행정부 인력기획과장, 유순신 ㈜유앤파트너즈 대표이사, 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등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철휘 서울신문 사장은 세미나 개회사를 통해 “오늘 세미나가 바람직한 공직자 충원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현명한 답을 도출할 수 있는 열띤 논의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5급 공채, 이른바 행정고시를 둘러싼 찬반론과 존폐론은 역사가 짧지 않다. 5급 공채가 공직사회의 폐쇄성과 집단사고, 순혈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은 상당한 공감대를 얻고 있다. 공직에 대한 불신과 비판은 개방형 직위를 비롯해 민간경력자채용(민경채)을 통해 민간 전문가를 받아들여 다양성을 높이자는 실험으로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무능력한 국가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빗발치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16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공직제도 개편을 약속하기도 했다. 대국민 담화에서 공직 채용과 관련해 핵심적인 사안은 5급 공채 축소와 개방형·민경채 확대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5급 공채와 민경채 비율을 5대5로 맞추겠다는 것은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 해묵은 고시 존폐론을 둘러싼 논쟁을 촉발했으며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서울신문이 23일 주최한 세미나에서도 가장 첨예한 논쟁이 벌어진 대목은 5급 공채와 민경채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바람직한 공직 시스템을 위한 채용 방식에 모아졌다. 5급 공채 축소를 찬성하는 입장은 현재 채용 방식이 지나친 암기 위주 시험으로 뽑기 때문에 공직수행 능력을 판별하기 곤란하다는 점, 집단사고와 서열 중심 평가와 승진, 고시 선후배 간 퇴직 후 연결고리 등에 대한 비판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시험제도에 대한 비판은 민경채 확대를 위한 논거는 못 된다는 반론이 나왔다. 특히 민경채나 개방형을 만능열쇠처럼 생각하는 것은 선입견에 기반한 편향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주제 발표를 맡은 백종섭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는 먼저 공채제도 유지는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필기시험 과목과 출제 내용을 개선해 부분적으로 유지한다면 우수한 능력을 가진 다양한 계층에 고위직 진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경채에 대해서도 “점진적 확대와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직무 분석을 전제로 필요한 직위는 비율에 구애받지 말고 해당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해 공직사회 전문화와 다양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명식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민경채 확대가 단순히 외부인력을 늘리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개방형 직위는 공직 내부나 외부와 상관없이 적임자를 뽑아야지 외부에 특혜를 주는 방식이 돼서는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개방형 직위 내부 충원 비율이 64%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과장급 이상을 고위공무원단으로 운영하는 호주도 내부 충원 비율이 70%가 넘는다”고 반박했다. 이날 세미나가 열린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은 제도 변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청중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진행됐다. 특히 종합토론 사회를 맡은 진재구 청주대 행정학과 교수가 “정책대상집단”이라고 지칭한 공직시험 준비생들이 질문과 문제제기를 쏟아내는 등 열띤 분위기였다. 특히 민경채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 방안에 대한 질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 청중은 “민경채도 5급 공채처럼 아예 시험을 보는 방식으로 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는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5급 공채를 준비하는 한 학생은 “민경채가 현대판 음서제도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성주 안전행정부 인력기획과장은 “단순히 학위나 자격증만으로 민경채 채용이 되는 건 아니다”라면서 “민경채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보완책을 시행 중”이라고 답변했다. 민경채를 무조건 늘리는 것에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지만 5급 공채가 초래하는 ‘순혈주의’와 ‘집단사고’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았다. 특히 5급 공채에서 특정 고등학교와 대학교 비중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공채를 ‘신분상승 사다리’로 보는 관점은 이제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집단사고란 조직 구성이 지나치게 동질적이고 폐쇄적인 곳에서 나타나는, 내부 갈등을 최소화하고 의견일치를 추구하며 비판에 귀를 닫게 되는 집단적 심리상태를 가리킨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국토부 기조실장 대기발령… ‘부적절 술자리 의혹’ 조사

    국토부 기조실장 대기발령… ‘부적절 술자리 의혹’ 조사

    국토교통부 도태호 기획조정실장이 지난 18일자로 대기발령인 상태에서 자체 감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주 감사실이 도 실장에 대한 비리를 제보받아 이를 확인했다”며 “정밀 조사를 위해 대기발령 상태에서 감사를 벌이고 있다”고 19일 밝혔다. 이어 대기발령 인사를 한 것은 원활한 감사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조실장은 최정호 항공정책실장이 겸임하도록 했다. 다른 관계자는 감사실이 도 실장의 비리를 제보받아 1단계 조사를 벌인 뒤 해외 건설공사 수주 지원을 위해 쿠웨이트와 스페인을 방문 중인 서승환 장관에게 이를 유선으로 보고했고 장관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외부 사정기관도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토부는 도 실장의 구체적인 비리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으나 부처 안팎에서는 도 실장이 국토교통 관련 민간 업자와 부적절한 술자리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도 실장은 행정고시(31회) 출신으로 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주택정책관·도로정책관,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 부단장, 주택토지실장 등 국토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업무 추진 능력이 뛰어나고 일 처리가 매끄러워 정무직까지 승진할 공무원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월에는 청와대 국토교통비서관으로 내정돼 근무하던 중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복귀한 뒤 5월부터 기조실장으로 일했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KB사태’가 남긴 문제점] (중) 정부의 ‘낙하산 근절 의지’ 시험대

    [‘KB사태’가 남긴 문제점] (중) 정부의 ‘낙하산 근절 의지’ 시험대

    KB사태를 가까이서 지켜본 한 금융권 인사는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결사항전을 결심한 데는 (회장후보추천위원인) 사외이사들의 지지를 얻어 정정당당하게 회장으로 뽑혔다는 자존심도 크게 작용했다”면서 “정권이나 현직 모피아(재무부+마피아)들에게 빚진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니까 억울함이 더 컸던 것”이라고 전했다. 임 전 회장은 행정고시 20회로 정통 모피아로 분류된다. 자신을 ‘차원이 다른 모피아’로 생각하는 임 전 회장은 이번 사태를 ‘서로 다른 줄을 잡고 내려온 두 개의 낙하산이 부딪친 결과’라는 세간의 해석에 몹시 불쾌해한다. 하지만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이 정권과 연관이 없었다면 회장에게 그렇게 강하게 반기를 들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KB금융지주 이사회는 19일 서울 중구 명동 KB지주 본사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어 후임 회장 인선 절차 등을 논의했다. 경영 공백 최소화를 위해 최대한 빨리 인선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다음달 중순까지 최종 후보 1명을 추려 오는 11월 14일로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에서 선임할 계획이다. 현직에서 물러난 한 모피아는 “KB사태의 출발점은 정치권에서 다른 사람을 심기 위해 (임 전 회장을) 흔든 데 있다”면서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임 전 회장) 자신도 모피아를 배경으로 그 자리에 앉은 만큼 후배(신제윤 금융위원장)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비켜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낙하산 윤리’라는 희화화된 표현 밑바닥에는 낙하산을 당연하게 여기는 인식이 깊숙이 배어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눈먼 떡고물(주인 없는 금융사 수장 자리)을 먹으려는 정치권과 관료집단의 이런 인식과 행태를 뿌리뽑지 않고서는 KB사태 재발을 막기 어렵다”면서 “낙하산 인사를 원천 차단하는 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하고 정부는 (차기 회장 인선 작업에) 일절 입김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KB회장 후임 인선이 박근혜 정권의 낙하산 근절 의지를 시험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국내 금융지주사 체제는 은행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은행장은 (회장에게) 휘둘리려 하지 않으려 하고 회장은 그룹을 장악하려 한다”면서 “이런 특성을 감안하면 회장이 행장을 겸하는 게 낫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은행 못지않게 증권, 보험 등 비(非)은행업도 균형 있게 키우자며 도입한 게 지주사 체제인데 정착 과정에서 삐걱댄다고 회장과 은행장을 겸직시키는 것은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우리금융과 KDB금융지주가 회장·행장 겸직 체제이지만 ‘민영화’와 ‘무늬만 지주사’라는 각각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윤 교수는 “어차피 국내 지주사들의 규모가 크지 않다는 현실론 측면에서 겸직 체제가 낫다는 것일 뿐, 반드시 그것이 정답이라는 얘기는 아니다”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회장과 행장의) 책임과 권한을 분명하게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회장과 행장을 따로 둘 경우 회장에게 은행장을 포함한 자회사 사장단 인사권을 확실히 주고 그 대신 책임도 철저히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자면 이사회가 ‘경영진 거수기’나 ‘정권 방패막이’ 역할에서 벗어나 경영 감시와 견제라는 제 기능을 해야 한다. 국민은행 노조는 이번 사태의 또 다른 책임자인 사외이사들이 회장 인선 작업을 맡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성낙조 노조위원장은 언론에 거론된 차기 회장 후보들에게 “(낙하산 고리를 끊으려면) 내부 출신이 회장이 돼야 한다”며 회장직을 고사해줄 것을 요청하는 자필 편지를 일일이 보내기도 했다. 안미현 기자 hyun@seoul.co.kr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정권에 맞섰던 금융권 수장들의 말로는?

    정권에 맞섰던 금융권 수장들의 말로는?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직무정지 상태)의 자진사퇴 거부로 KB사태가 ‘정권과 임 회장 간의 힘겨루기’로 옮겨갔다. 이상한 변질이기는 하지만 금융권 수장이 정부와 맞서면 ‘필패’(必敗)라는 것은 누구보다 경제관료 출신인 임 회장(행정고시 20회)이 잘 안다. 그럼에도 임 회장은 ‘직무정지 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정권과 전면전에 들어갔다. 이는 17일 이사회에서 자신의 해임안이 논의되더라도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울것으로 판단한 때문으로 보인다. 정권과 맞섰던 가장 대표적인 이는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다. 행시 17회인 이 전 이사장은 2008년 3월 경제관료 생활을 끝내고 거래소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명박(MB) 정부가 갓 출범한 때였다. 새 정권은 거래소 수장에 ‘대선 공신’을 앉히고 싶어 했다. 알아서 비켜줄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요지부동이었다. 경제관료 선후배들을 총동원해 겁박도 하고 읍소도 해봤지만 이 전 이사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공모를 통해 정정당당하게 뽑혔는데 (새 정권의 입맛에 안맞다고) 왜 물러나야 하느냐”는 항거였다. 정부는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재지정해버린 것이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정부 감사는 차치하고 급여나 채용에 엄격한 제한을 받게 된다. 그에게 동정적이던 임직원들조차 원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결국 이 전 이사장은 ‘억울함’을 뒤로하고 취임 1년 7개월 만인 2009년 10월 물러나야 했다. 올 초 세상을 떠난 김정태 초대 통합 국민은행장도 정권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노무현 정권은 2004년 2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이헌재 전 금융감독위원장을 앉히면서 몇 가지 주문을 전달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김정태를 내쫓으라”는 것이었다. 당시 김 행장이 왜 노무현 정권에 찍혔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주주 가치 극대화를 최우선시했던 고인은 여기에 위배되면 정부를 향해서도 단호히 “노”(NO)라고 했다. 은행 이익만 중시하고 공적인 역할을 경시하는 그의 행태가 ‘386진영’에는 눈엣가시였을 수 있다. 그해 9월 금감위(현 금융위)는 국민은행과 국민카드의 합병 회계 처리과정에서 5500억원이 변칙 처리됐다며 고인에게 중징계(문책경고)를 내렸다. 결국 그는 연임의 꿈을 접고 한 달 뒤 물러나야 했다.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도 정권의 뜻을 거스르고 자리 욕심을 내다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다. 2009년 12월 그가 KB금융 차기 회장에 내정되자 금융감독원은 곧바로 대규모 조사인력을 급파했다. 임직원 컴퓨터는 물론 강 전 행장의 운전기사, 심지어 사생활까지 파헤쳤다. 결국 강 전 행장은 취임도 못해보고 백기를 들어야 했다. 정권과 맞섰지만 막판 대응이 다소 달랐던 사례도 있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이다. 집권 후반부로 가면서 MB정권은 ‘4대 천왕’의 존재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다. 이런 기류를 외면하고 김 전 회장은 2011년 기어코 3연임에 성공한 뒤 이듬해 4연임 도전의사까지 내비쳤다. 정권의 압박 강도가 세졌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집권세력에 부담되는 ‘존재’는 미리 정리하자는 게 정권의 속내였다. ‘역사적인 도전’과 여기에 따를 ‘대가’ 사이에서 갈등하고 번뇌하던 김 전 회장은 4연임 목전에서 미련없이 회장직을 던졌다. 아무리 하나금융이 정부 지분이 별로 없는 사기업이라 할지라도 ‘맞장’ 뜨면 진다는 것을 ‘롬멜’(사막의 여우, 김 전 회장 별명)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통 모피아(옛 재무부 영문약자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로서 이런 역대 사례를 때로는 직접 주도하고 때로는 지켜봤던 임 회장이 정권과 전면전에서 어떤 결과를 끌어낼지 주목된다. 안미현 기자 hyun@seoul.co.kr
  • 靑 신설 재난안전비서관에 방기성씨

    靑 신설 재난안전비서관에 방기성씨

    청와대가 재난안전비서관을 신설키로 하고 초대 비서관에 소방방재청 차장을 지낸 방기성 제주특별자치도 행정부지사를 내정한 것으로 5일 알려졌다. 국가안전처 설치를 규정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가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자 청와대부터 대응 태세를 갖추기로 한 데 따른 결정이다. 또한 청와대는 신임 국가기록원장에 박동훈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자치비서관을 내정했다. 박 비서관은 강원 횡성 출신으로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8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안전행정부 전신인 행안부 대변인, 지방행정국장,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법질서·사회안전분과 전문위원을 거쳐 현 정부 출범 때부터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해 왔다. 국가기록원장은 박경국 전 원장이 지난 2월 안행부 1차관으로 승진한 뒤로 공석이었다. 행정자치비서관 후임으로는 주낙영 경북도 행정부지사가 내정됐다. 경북 경주 출신으로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했으며,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 실무위원, 청와대 선임행정관, 행안부 균형발전기획관·지방분권지원단장·제도정책관 등을 역임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허남식 前부산시장 동아대 석좌교수

    허남식 前부산시장 동아대 석좌교수

    동아대학교는 1일 허남식 전 부산시장을 국제전문대학원 국제중재학과 석좌교수로 임용했다고 밝혔다. 허 전 시장은 1976년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발을 디딘 뒤 2004년 보궐선거를 통해 부산시장에 당선돼 내리 3선 역임했다.
  • [커버스토리] 법과 밥 사이…‘개점휴업’ 변호사

    [커버스토리] 법과 밥 사이…‘개점휴업’ 변호사

    경기 수원시에서 활동 중인 변호사 A(35)씨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집단 소송을 준비하는 각종 인터넷 카페와 소비자 불만 사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공공기관 채용 정보 사이트도 즐겨찾기 목록에 들어 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유명 법대를 나왔다. 사법시험도 통과했다. 2009년 선배와 함께 사무실을 차렸을 때까지만 해도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 같았는데 현실은 냉혹했다. 처음 개업한 곳은 ‘대한민국 법조 1번지’로 통하는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새내기 변호사의 생존 전략은 ‘발품’과 ‘얼굴도장’이었다. 고시 공부로 소홀했던 과 모임은 물론 고교 동창회, 중학교 동창회까지 수소문해 찾아다녔다. 하지만 친인척, 지인의 법률 상담 정도만 있을 뿐 정식으로 사건을 맡기는 의뢰인은 거의 없었다. 소득은 없는데 월세 150만원(전체 300만원을 선배와 양분)은 꾸준히 빠져나갔다. 대출받은 임대보증금 5000만원을 갚는 길도 아득했다. 결국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무실을 닫았다. A 변호사는 “사건은 대형 로펌이나 유명 변호사들에게 집중되고 돈 안 되는 서류 제출 대행 정도만 가끔 들어오는 실정이라 공공기관이나 기업에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다”면서 “변호사업계는 불황 수준이 아니라 이미 사양길에 들어섰다”고 토로했다. ●일반 민사사건 수임료 500만원→300만원으로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전국 변호사의 74%가 몰린 서울은 변호사 1명이 한 달에 사건을 2건 맡기도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2.7건 수준이던 ‘변호사 1인당 월평균 본안 사건 경유 건수’는 2012년 2.3건, 지난해 2.0건까지 떨어졌다. 한 달에 단 1건의 사건도 맡지 못하면서 개인 사무실을 닫고 중소 로펌으로 옮기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개인 사무실은 임대료와 사무장 및 직원 월급, 영업 비용 등 고정 지출이 있어 수익을 남기려면 한 달에 최소 2000만원 이상은 벌어야 한다. 강남 지역에 사무실을 둔 강모(43) 변호사는 “서울에서 영업을 하려면 한 달에 최소 4건은 맡아야 하는데 그건 꿈같은 이야기”라면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 민사사건은 수임료가 500만원대였는데 이미 300만원 선도 무너졌다”고 말했다. 시장은 침체됐는데 변호사는 폭증해 한 달에 200만원도 벌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12년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변호사 3725명 가운데 연간 수입이 2400만원(소득세 면세 한도) 이하라고 신고한 변호사는 640명으로 17.2%에 달했다. 2009년 14.4%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서울을 제외한 지역은 변호사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1인 평균 사건 수임 건수가 많아 보이지만 수임료가 서울보다 낮은 경우가 많고, 지역의 유명 로펌이나 변호사에게 사건이 몰려 상당수 변호사들은 생활고를 호소하고 있다. 설을 앞둔 지난 1월 26일 경기 화성시의 한 아파트에서는 50대 변호사가 목을 매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가족들에게)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수원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이 변호사는 수년 전부터 수임 사건 감소로 생활고를 겪어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 전남 여수에서도 40대 변호사가 생활고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변호사도 늘고 있다. 대검찰청이 지난해 말 발간한 ‘2013 범죄분석’에 따르면 2012년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변호사는 모두 544명으로, 이 중 사기·횡령 등의 재산 범죄로 기소된 사람은 238명에 이른다. 재산 범죄로 기소된 변호사는 2008년 84명, 2010년 123명 등으로 증가세에 있다. 지난 28일에는 행정고시와 법원 행시, 사법시험까지 합격해 ‘고시 3관왕’으로 승승장구하던 변호사가 8억원대 횡령·사기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앞서 2월에는 수감자에게 가석방을 미끼로 1억원을 빌려 달라고 요구한 변호사에게 벌금형이 선고됐다. 그는 수감자에게 “아는 판검사가 많으니 가석방을 도와주겠다”며 1억원을 요구해 실제로 8000만원을 빌렸다. 하지만 신용대출 등으로 빚이 많아 돈을 갚을 능력도, 의지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변회를 비롯한 전국 변호사회의 회비 미납자도 덩달아 늘고 있다. 월 회비 5만원을 받는 서울변회는 올해 1월 기준으로 누적 미납 회비가 3억원을 넘어섰다. 서울의 중견 H로펌 소속의 한 변호사는 “동기 변호사 중 지방에서 활동 중인 개인 변호사는 최근 두 달 동안 사건을 1건도 수임하지 못해 이전에 벌어 놓은 돈을 빼서 직원 월급과 사무실 운영비를 마련했다”면서 “과거에는 관심 없었던 국선 변호 사건에 많이 지원해 이를 주 수입원으로 살아가는 변호사도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5급 변호사’는 옛말… 7급 변호사까지 등장 변호사 공급 과잉에 따른 위상 추락은 지방자치단체와 일반 기업의 대우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5급(사무관) 변호사’는 옛말이 됐다. 6급(주무관) 채용이 일반화된 가운데 급기야 변호사를 7급으로 채용한 지방자치단체까지 생겼다. 초임 검사와 판사가 여전히 3급(부이사관) 대우를 받는 것에 견주면 변호사들의 한숨만 늘어갈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충북도교육청은 ‘학교폭력과 교권 침해 법률 상담 변호사’(6급)를 공개 모집했다. 1명 모집에 17명이 원서를 냈다. 로스쿨 출신은 물론 사법시험 합격자들도 포함됐다. 지난해 일반 임기제 변호사(6급) 채용 공고를 낸 경기 수원시와 광명시는 각각 39대1, 36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부산시는 변호사를 일반직 7급으로 채용하겠다고 공고를 내 로스쿨 학생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해당 자리에는 2명이 응시해 로스쿨 출신 1명이 채용됐다. 부산시는 올해도 변호사 2명을 행정직 7급으로 채용하려 했으나 내부 검토 과정에서 변호사와 로스쿨 등의 반발을 우려해 6급 계약직 채용으로 계획을 바꿨다. 부산의 한 로스쿨에 재학 중인 박모(25·여)씨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에 대한 대우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도 이미 널리 알려졌다”면서 “명문대 로스쿨 출신이 아니라면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해도 취업 자체가 어렵다는 위기감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로스쿨을 나오면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보다 그저 직업 선택의 폭을 넓혀 주는 국가공인자격증을 따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푸념했다. 기업의 변호사 수요도 많지 않아 신규 변호사들의 일반 기업 취직도 바늘구멍이다. 대부분의 대기업에는 사내 변호사가 이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우도 예전만 못하다. 급여는 일반 직원보다 조금 많지만 직급은 과거 과장급에서 대리급으로 떨어졌다. 기업 법무팀으로 입사했더라도 관련 업무보다는 영업 및 관리 부서에 배치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최진녕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기존 변호사조차 사무실을 운영하기 어려운 마당에 연수원 신규 수료자와 로스쿨 졸업생들의 열악한 상황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젊은 변호사들의 생계 보장 차원에서라도 연간 법조인 배출 인원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공직 파워 열전] 기획재정부 (2)경제정책국장

    [공직 파워 열전] 기획재정부 (2)경제정책국장

    기획재정부는 거시경제, 예산, 세금, 물가, 국제금융 등 나라 살림의 전반을 책임지는 명실상부한 한국 경제의 컨트롤타워다. 행정고시를 통과한 인재들 중에서도 최고의 엘리트만 모인다는 기재부 직원들의 자부심이 대단한 이유다. 이런 기재부 내에서도 모두가 인정하는 자리가 있다. 기재부 직원들이 ‘한국 경제의 얼굴’ ‘경제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경제정책국장이다. 기획재정부라는 이름 앞머리에 등장하는 ‘기획’이라는 단어도 경제정책국을 상징한다. 1994년 재무부와 합쳐져 재정경제원으로 이름이 바뀐 경제기획원(EPB)의 경제기획국이 경제정책국의 전신이다. 경제기획국은 1962~1996년 계속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만들어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한강의 기적은 경제기획국장의 손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기재부 직원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경제정책국장으로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꼽는다. 1976년부터 4년 반 동안 국장직을 지킨 김 전 수석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을 민간 주도의 시장경제 체제로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김 전 수석이 입안한 금융실명제, 물가안정 정책, 정보화 정책 등은 현재도 경제정책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한번 하기도 어렵다는 경제기획국장을 2번이나 맡았을 정도로 경제기획원 내에서도 최고의 기획통으로 꼽혔다. 3~6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주도했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16~18대 국회의원으로 3선에 성공했다. 경제정책국으로 이름이 바뀐 뒤 첫 국장을 지낸 최종찬 국장은 합리적인 일 처리로 후배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았던 국장으로 꼽힌다. 기획예산처 차관을 지낸 이후 잠시 공직을 떠나 있었지만 후배들의 잇따른 추천으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복귀해 건설교통부 장관까지 지냈다.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는 3대 경제정책국장이다. 현 전 부총리는 2001년 세무대학장 이후로 공직에서 물러났다가 13년 만에 부총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한성택 5대 경제정책국장은 의리의 사나이로 통했다. ‘돌쇠’라는 별명답게 강한 추진력을 보였지만 국민경제자문회의 기획조정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 7개월 만에 과로에 의한 심장마비로 갑자기 별세했다. 이 사건 이후 기재부 내에서 경제정책국장의 업무 강도가 다소 낮아졌고 건강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도 경제정책국장(9대) 출신이다. 조 수석은 기재부 내에서도 ‘천재’ ‘페이퍼 워킹의 달인’ 등으로 불릴 정도로 업무 능력이 뛰어났다. 국무총리실장을 거쳐 현재 NH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있는 임종룡 전 국장은 사무관 시절부터 ‘국보급 사무관’으로 불렸다. 임 국장은 능력을 인정받아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는 정권 교체기에도 국장 자리를 지켜 MB노믹스의 초석을 다졌다. 이찬우 현 국장은 경제정책국 복지경제과장, 경제분석과장, 종합정책과장, 미래전략정책관, 민생경제정책관 등을 역임한 정책통이다. 온화한 성격과 부하 직원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는 스타일로 선후배 사이에서 신망이 두텁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공직 파워 열전] 안행부 지방행정실장

    [공직 파워 열전] 안행부 지방행정실장

    ‘지방행정’은 안전행정부를 상징하는 대표 브랜드 중 하나다. 안행부가 조직개편을 통해 명칭이 수차례 바뀌고 여러 기능이 통합·분리되기는 했지만 지방행정을 총괄하는 지방행정실은 굳건히 한자리를 지켰다. 정부조직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안전’과 ‘인사’ 기능이 분리돼 안행부는 다시 지방행정 중심의 부처로 거듭나게 된다. 부서 명칭도 지방행정의 역할을 강조했던 행정자치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차관보(1급)가 수장인 지방행정실장은 지방자치단체의 ‘대변인’ 역할을 맡아 234개 지자체와 중앙정부 간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지자체의 건의 사항과 애로 사항을 중앙정부에 전달하고, 지역 간 갈등을 사전 예방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또 ‘시도지사회의’ 등 4대 협의회를 통해 중앙-지방 간 국정협력 시스템을 강화하는 업무도 한다. 지방행정실장은 내무부 시절은 물론 총무처와 통합돼 1998년 행정자치부로 출범한 뒤에도 내무부 출신 공무원들이 최종 목표로 삼는 자리다. 이 자리를 거쳐 간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지방행정실장의 파워를 실감하게 한다. 지방행정실장은 지방국장(1948년), 지방행정국장(1978년), 지방행정본부장(2005년), 지방행정국장(2008년), 지방행정실장(2013년) 등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역대 지방행정실장을 지낸 사람들은 대부분 차관 이상을 지냈다. 지방행정을 펴는 지역 밀착형 자리이다 보니 자치단체장은 물론 국회의원도 다수 배출했다. 지난 4월 안행부 장관에 임명됐다가 세월호 참사로 자리에서 물러난 강병규 전 장관은 2007년 지방행정본부장과 2009년 제2차관을 지냈다.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조영택 전 민주당 의원은 1999년 자치지원국장과 차관보를 거쳐 2002년 차관, 2005년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을 지냈다. 지난 7·30 충북 충주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종배 새누리당 의원은 2010년 차관보를, 2011년 제2차관을 했다. 권오룡 전 지방분권촉진위원회 위원장은 행정자치부 차관과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을 역임했다. 이 밖에 김재영 전 대한지적공사 사장과 정채융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 등도 차관보를 거쳐 차관을 지냈다. 지방행정실장 산하에는 지방행정정책관과 자치제도정책관, 지역발전정책관 아래 11개 과에 201명이 근무하고 있어 규모도 웬만한 작은 부처와 맞먹는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을 맡은 자치제도과를 비롯해 주민과, 주민투표와 주민소환을 담당하는 선거의회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추진하는 지역경제과, 비영리 민간단체를 지원하는 민간지원과 등이 지방행정실 소속이다. 올해 예산은 지역발전 예산 5474억원, 지방행정 예산 1125억원 등 총 6599억원에 달한다. 예산은 지자체 자율 통합 지원과 지역공동체 일자리, 특수상황지역 개발, 공직선거 관리,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 자원봉사 활성화 지원 등에 사용된다.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기 전 관선 시절에는 공무원들이 자치단체장으로 파견돼 ‘행정고시 합격=군수’로 불렸다. 행시 상위권 합격자들의 지원이 쇄도하면서 행시 합격자의 ‘꽃’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에는 계장·과장급(4~5급)은 기초자치단체장에, 국장급(2~3급)은 광역 시도지사에 임명되기도 했다. 국과장급 공무원 상당수가 지자체장 경력을 1~2개씩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내무부 지방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내무부 장관을 지낸 김종호 전 국회부의장, 총무처 장관을 지낸 이상배 전 서울시장, 행자부 장관을 지낸 최인기 전 국회의원, 국회의원을 지낸 윤한도 전 경남도지사, 행자부 장관을 지낸 김기재 전 국회의원 등이 지방국장을 거쳤다.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 [공직 파워 열전]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공직 파워 열전]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대북 정책 실무를 총괄하는 통일부에서 ‘두뇌’에 해당하는 부서가 통일정책실이다. 남북 교류협력뿐 아니라 북한과의 협상 등 회담의 기조와 방향성, 그리고 전략은 사실상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통일정책실이 조율하는 데서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처 내 핵심이지만 통일정책실이 설립된 건 1969년 통일부가 창설된 후 2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1989년 남북대화사무국에서 정책 업무를 이관하면서 통일정책실이 탄생했다. 통일부가 1990년 부총리 부처(당시 통일원)로 격상되면서 통일정책실은 각 부처의 통일 관련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기능을 갖게 됐고, 정부 대북 정책의 허브 역할을 하게 됐다. 통일부 관료들에게 있어 공직 생활의 최고 정점은 차관이다. 장관의 경우 정치인이나 안보 전문가 등 외부 수혈이 많다는 점에서다. 통일정책실장은 통일부 차관으로 가는 직행 코스다. 2000년대 이후를 보면 이봉조, 신언상, 이관세, 김천식 전 차관에 이어 현재의 김남식 차관까지 5명 모두 통일정책실장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통일부의 마지막 차관을 지낸 김천식 전 실장은 행정고시 28회로 선배인 김남식 차관(행시 26회)보다 먼저 중용돼 주목받은 바 있다. 그는 2000년 6·15 남북공동성명 과정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에 유일하게 배석한 남측 인사이기도 하다. 김남식 차관은 천재형 스타일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빨라 어느 업무를 맡아도 단기간 장악하는 능력을 과시한다는 평가다. 친화력이 뛰어나며 두주불사로 알려졌다. 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 안보전략비서관으로 내정됐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철회된 천해성 현 남북회담본부장도 정책실장을 거친 전형적인 엘리트 관료다. 통일부 정책실장에서 청와대로 옮길 때 대북 강경 일변도의 기류를 완화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좌절돼 아쉬움을 더했다. 김기웅 현 통일정책실장은 치밀하다는 평가가 주다. 1989년 5급 특채로 입부한 비고시 출시인 그는 상대적으로 행시 출신들의 비선호 부처인 통일부에서 회담과 정세분석 업무 등을 두루 맡으며 실장직까지 올랐다. 오디오와 물리학 등에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을 만큼 박학다식하다는 것도 그의 장점이다. 통일정책실 산하에는 부처 내 유일한 국장급인 ‘정책관’ 자리도 있다. 김 실장과 함께 통일정책실을 이끄는 이덕행 통일정책관은 외향적이고 사교적이다. 민간 업체를 다니다 뒤늦게 공직에 투신한 그는 주미 한국대사관 주재관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일한 특수한 전력도 갖고 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국조실 국무2차장 조경규

    국조실 국무2차장 조경규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차관급인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에 조경규(55) 경제조정실장을 임명했다. 조 국무2차장은 기획예산처에서 출발한 정통 경제관료로 사회재정3과장·혁신인사기획관과 기획재정부 공공혁신기획관·공공정책국장 등을 거쳤다. 기재부 사회예산심의관으로 복지·노동 업무 등의 예산 및 조정 업무를 다루다 지난해 4월 기재부에서 손발을 맞췄던 김동연 전 국무조정실장을 따라 사회조정실장으로 왔다. 부인 김갑숙(52)씨와 1남 1녀. ▲경남 진주 ▲진주고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행정고시 29기
  • 전남도립대 총장에 김왕복씨 임명

    전남도립대 총장에 김왕복씨 임명

    전남도립대 총장에 김왕복(59) 전 조선이공대 총장이 지난 4일 선임됐다. 임기 4년이다. 전남 담양 출신으로 광주일고와 성균관대를 졸업, 서울대와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행정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77년 행정고시 21회로, 광주시교육청 부교육감, 교육부 감사관, 교육부 교육자치지원국장을 지냈다.
  • 금융위 증선위원에 서태종씨

    금융위 증선위원에 서태종씨

    금융위원회는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에 서태종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을 임명했다고 11일 밝혔다. 서 상임위원은 전남대 경제학과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행정고시 29회로 금융위 기획조정관과 자본시장국장 등을 지냈다.
  • 감사원 제1사무차장 정길영제2사무차장 문호승

    감사원 제1사무차장 정길영제2사무차장 문호승

    감사원은 제1사무차장에 정길영 제2사무차장을, 제2사무차장에 문호승 기획조정실장을 임명했다고 5일 밝혔다. 제1사무차장은 재정·경제 및 산업·금융, 공공기관의 감사를 총괄하는 감사원의 선임 실장이다. 제2사무차장은 사회·문화, 행정·안전 등을 담당한다. 정 차장은 대전고와 서울대 불문과를 나와 행정고시 28회로 감사원에 들어와 재정경제감사국장, 기획관리실장을 역임했다. 문 차장은 경신고, 연세대 정외과를 나와 행시 28회로 감사원 감사연구원장, 기획조정실장을 거쳤다. 기획조정실장에는 승진설이 무성했던 강경원 사회·문화감사국 국장이 승진 발탁됐다. 강 기조실장은 강화종합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나와 행시 30기로 감사원에 들어와 감사청구조사국장, 공공기관감사국장, 산업금융감사국장 등을 거쳤다. 감사교육원 교육운영부장에는 김흥률 감사교육원 교수가 임명됐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광역단체장 인터뷰] 고시 출신 행정가…전국 첫 ‘민선 6선’ 대기록

    김관용 경북지사는 1942년 경북 구미시 고아면 문성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비 전액을 면제받는 대구사범학교(현 대구교대)를 나와 19세 때 교단에 섰다. 낮엔 교사, 밤엔 학생(영남대 경제학과)으로 주경야독 끝에 1971년 행정고시 10회에 합격했다. 이후 병무청, 세무서, 청와대 민정비서실 등에서 다양한 행정 실무경험을 쌓았다. 처음 정계에 발을 내디딘 1995년 민주자유당 후보로 민선 1기 구미시장에 당선된 후 내리 3선을 했다. 2006년 민선 4기 경북지사에 당선돼 역시 3선에 성공했다. 이로써 전국 최초로 민선 6선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지방자치 역사의 산증인으로 우뚝 섰다. 특히 2006년 선거에서는 전국 1위 득표율(76.8%)을 뽐냈다. 민선 5기와 6기 선거에서도 각각 득표율 75.3%와 77.7%를 기록했다. 포용력과 소탈하고 서민적인 친화력이 장점으로 손꼽힌다. 한번 결정하면 ‘무식할 정도’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밀어붙이는 추진력은 트레이드마크다. 그래서 ‘들이대’라는 말을 줄여 재미있게 빗댄 ‘DRD’란 별명을 달았다. 27년이나 미뤄졌던 경북도청 이전지 문제를 2008년 안동·예천으로 확정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선출직으로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내린 용단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공동회장과 전국 지역균형발전협의체 공동회장, 전국 시·도지사협의회장을 지냈다. ‘남을 대할 땐 봄바람처럼, 자신에겐 가을 서리처럼 하라’는 ‘접인춘풍 임기추상’(接人春風 臨己秋霜)을 좌우명으로 삼는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부산 경제부시장에 김규옥씨 선임

    부산 경제부시장에 김규옥씨 선임

    부산시는 1일 경제부시장에 김규옥(53)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을 내정했다. 신임 김 부시장은 부산 출신으로 혜광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제27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경제기획원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기획예산처 예산총괄과장, 대통령비서실 혁신관리 행정관, 기획재정부 대변인, 기획재정부 예산총괄심의관, 기획조정실장 등 예산 관련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 관료 출신이다. 부산 오성택 기자 fivestar@seoul.co.kr
  • [씨줄날줄] 사카린 허용의 허실/문소영 논설위원

    망고 타르트나 티라미슈와 같이 달콤한 후식은 프랑스나 이탈리아가 원산인 때문에, 또 스페인 등이 16세기 남아메리카 국가에 사탕수수 대규모 경작지를 조성한 때문에 ‘설탕의 엄마’인 사탕수수 원산지를 유럽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탕수수의 원산지는 기원전 2000년의 인도다. 설탕을 뜻하는 영어단어 슈거(sugar)의 어원도 인도의 산스크리트 사르카라(sarkara), 또는 사카라(sakkara)에 두고 있다. 그러니까 ‘사카린’은 설탕, 슈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설탕이 잔뜩 들어간 음식이 유럽에서 시작된 때는 8세기다. 인도를 거쳐 설탕을 확보한 이슬람이 이베리아 반도(현 스페인)를 점령해 이슬람 음식문화를 전파한 덕분이다. 벌꿀이 아닌 단맛은 이렇게 이국적이었고, 이국적인 만큼 비쌌다. 18~19세기 산업혁명기의 설탕은 영국 노동자 가정에서 성인남성만 홍차에 듬뿍 넣어 섭취하는 특별한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30~40년 전만 거슬러가면 설탕물을 한 대접 마시고 기운을 내던 농부가 많았는데 일부에서는 설탕 대용 사카린을 사용했다. 설탕보다 단맛이 300배가 강한 화학감미료인 사카린은 당뇨 환자도 좋았고, 무엇보다 가격이 싸 인기 폭발이었다. 1966년 9월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질 정도였다. 사카린은 1879년 존스 홉킨스 대학의 화학 실험실에서 손을 씻지 않는 게으른 독일인 화학자 콘스탄틴 팔베이크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다. 독일에서 먼저 대량생산됐고, 미국은 현재 몬샌토의 전신에서 생산했다. 초기 ‘설탕 자본’과 경쟁했던 사카린은 위해 논란에 시달렸다. 결국, 실험쥐에 사카린을 먹인 결과 방광염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자 1977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식품첨가제로 금지했다. 그러나 후속 연구에서 사카린의 해악은 부인됐다. 미국은 1991년 사카린 금지법을 폐기했고, 2000년 발암물질 명단에서도 공식적으로 뺐다. 한국은 젓갈, 김치, 시리얼, 잼, 소주 등에 사용해 왔는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빠르면 오는 12월부터 사카린을 아이스크림, 빵, 과자, 초콜릿 등 어린이 기호식품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지난 27일 행정고시를 했다. 사카린 추가 허용이 당뇨환자들에게 좋은 소식일 수 있다. 일종의 규제개혁일 수도 있겠다. 비싼 설탕을 사용하던 제조업체들이 값싼 사카린을 사용하면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으니 말이다.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에 연동하는 국내 물가도 안정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경향은 화학 비료 대신 자연의 퇴비가 아닌가. 소비자로서 찜찜하고, 혹시 이번 사카린 허용이 어린아이 먹을거리에서 빈부격차로 나타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장옥주 복지부 차관, 저출산 고령화 대책 청사진 마련 주역

    장옥주 복지부 차관, 저출산 고령화 대책 청사진 마련 주역

    ‘첫 번째 여성 1급 공무원’ ‘두 번째 여성 행정고시 합격자’ 타이틀을 보유한 대표적 보건복지 행정 전문가다. 1982년 공직에 첫발을 내딛었으며, 복지부 최초의 여성 고시 사무관으로 주목받으며 30년간 핵심 보직을 두루 거쳤다.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밑그림을 마련했다. 변호사 남편 박수복(57)씨와 1남 1녀. ▲충북 제천(55) ▲서문여고 ▲이화여대 법대 ▲행시 25회 ▲보건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사회복지정책실장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 ▲대통령비서실 보건복지비서관
  • “좀 쉬면서 그동안 잘 못했던 엄마 역할 잘 해야죠.”

     “차관 자리보다, 정 들었던 직원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쉽네요.”  여성가족부의 산 증인인 이복실 차관이 25일 이임식을 갖고 여가부로 온 지 꼭 20년 만에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별을 서운해 하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이 전 차관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는 94년 7월 당시 정무2장관실로 왔다. 열정적으로 일해 ‘에너자이저’로 불렸다.  행정고시 28회로 85년 당시 총무처 수습에 이어 문교부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지 만 29년 만에 공직을 일단락 했다. 행시 동기인 정현옥 고용노동부 차관과 나란히 차관으로 왔다가 1년 4개월 만에 함께 나가게 돼 덜 외롭다고나 할까. 여가부 총무과장, 기획관리심의관, 보육정책국장, 권익증진국장, 대변인, 청소년가족정책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일에 파묻혀 살아왔으니 이제는 좀 쉬면서 그동안 잘 못했던 엄마, 아내로서 역할을 잘 해야죠.” 딸이 “집에서 주부 역할을 잘 하라는 메시지”라고 위로 전화를 하더란다.  그는 여성이 여성을 잘 섬기지 못할 것이라는 세간의 시선 때문에 그동안 여성 차관으로서 여성 장관을 보좌하느라 사실 무척 신경이 쓰였다고 한다. 조윤선 전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내정되면서 신임 김희정 장관이 인사 청문회를 거쳐 취임할 때까지 한 달여 동안 장관직무대행을 하기도 했다.  보육정책국장 시절 보육시설평가인증제도와 보육교사 국가자격증제를 마련한 것 등이 가장 큰 보람으로 기억된다고 한다. 차관이 될 때나 그만둘 때나 사전 통보 없이 언론을 보고 알게 되는 것은 관례다. 김주혁 선임기자 happyhom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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