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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쌓았지만, 정작 그 결과물에 비해 주인공이 알려지지 않은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유도 다양하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기록이 갖는 한계 때문에, 패망한 국가의 군주는 승자가 지워버렸기 때문에 그렇다. 히틀러가 폴크스바겐의 스테디셀러 ‘비틀’을 만든 주역이라든가, 그가 얼마나 문학적인 인물이었는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은 것은 누구도 말하기 꺼려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자연과학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다만 인류의 삶을 바꿀 만한 발견이나 발명을 해낸 과학자들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천재이거나, 은둔형 외톨이여서 앞으로 나서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17세기의 아마추어 수학자였던 피에르 드 페르마다. 그는 짧은 수식을 적은 후 “나는 이 문제를 풀 놀라운 증명을 찾아냈지만, 여백이 부족해 적지 않는다.”라고 썼다. 인류가 흔히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불리는 이 문제를 푸는 데는 그 후로 무려 357년이 걸렸다. 이 밖에도 “다 알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결과만 내놓거나 “이걸 어떻게 풀었는지 내가 왜 설명해야 하나.”라는 식으로 잠적해버린 천재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남긴 업적과 함께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생물학자들은 교과서에 등장하는 과학자 중 업적에 비해 본인이 가장 알려지지 않은 사람으로 ‘그레고어 요한 멘델(1822~1884)’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근대 유전학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그는 왜 그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됐을까.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주 주인공은 지난달부터 전 세계 네티즌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주목받고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전학자이자 수도사 멘델이다. 놀라운 발견을 한 그는 왜 철저하게 ‘재야의 과학자’로 머물러야 했을까. 그리고 최근 불고 있는 멘델에 대한 관심은 무엇 때문일까. 인터뷰가 진행되자 멘델은 오히려 “오늘날 내가 받고 있는 존경은 사실 어이없는 행운 덕분”이라고 털어놓았는데…. →중·고등학교 생물교과서를 덮은 이후 사실 처음으로 당신을 만나는 것 같다. 최근 전 세계 포털의 과학자 검색 순위에서 당신이 급상승했다. 완두콩도 검색어에 오르고 말이다. -나도 이상해서 좀 알아봤더니, 구글이 깜찍한 짓을 했더구먼. 지난달 20일이 내 생일이었는데 그날 구글이 로고를 ‘완두콩’으로 만들었더라고. 뭐 탄생 189주년이니 딱히 기념할 만한 시점도 아닌데, 워낙 엉뚱한 짓을 많이 하는 애들이니. →거 참 질문에 비해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한 답변이다. 검색어 덕분에 당신에 대해서 좀 찾아봤는데 의외로 알려진 게 없더라. 뉴턴이나 다윈 같은 과학자들은 몇 페이지가 모자랄 정도인데 말이다. 검색창에 당신 이름을 넣으면 ‘멘델의 법칙’이나 나오지 당신 얘기는 ‘수도사였다’ ‘유전학의 창시자다’ ‘완두콩을 가지고 실험했다’ 이 정도가 고작이던데. 궁금한 점 위주로 개인 신상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자. 무엇보다 수도사가 왜 과학실험을 한 건가. -그게 사실은 거꾸로란 말이지. 난 과수원집에서 태어났거든. 어렸을 때부터 나무 품종을 개량하면서 유전학자의 꿈을 키웠고 아버지도 내 교육에 열성적이었어. 문제는 집에서 내 뒷바라지를 해 줄 수 있는 처지가 안됐다는 거였지. 심지어 여동생 결혼자금까지 다 써버릴 정도였으니. 근데 대학 교수가 나보고 수도원에 들어가 신부가 되면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별로 망설임도 없이 사제 시험을 보고 수도사가 됐지. 마침 내가 있던 성 토마스 수도원 원장은 신학 외에 과학이나 예술을 공부하도록 장려하는 사람이라 다행이었어. →근데 사실 당신 낙제생이었다는, 그것도 생물에서 망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수도사들은 근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했는데, 부끄러운 얘기지만 중학교 교사 자격시험에서 생물과목 과락을 해서 자격증을 못 땄다. 착한 원장님께서 날 밀어준다고 빈 대학에서 특별 과외까지 시켜 줬는데, 또다시 떨어져서 아예 교사의 꿈은 접었어. 근데 대학을 다니면서 당시 유행하던 다윈의 학설을 접했고 그게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은 계기가 됐지. →아 당신보다 유명한 과학자와 동시대를 살았군. 다윈이 당신에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다윈이 주장하는 진화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인지 확인해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곧바로 실천에 옮겼어. 수도원 안쪽 뜰에 있는 작은 정원에 완두를 심고, 만 그루 넘게 심고 키우고를 반복하면서 하나하나 결과를 기록해나갔어. 생색을 좀 내자면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거든. 완두 꽃가루를 모두 손으로 수분시켰고, 내가 원하는 종끼리 수분시키기 위해서 일일이 다 봉지를 씌웠지. 그 실험만 무려 8년을 꾸준하게 계속했고. 그 결과 1865년에 대를 물려도 변하지 않는 형질이 있다는 것, 형질 사이에 우성과 열성이 있다는 것, 독립적으로 유전이 되는 형질이 있다는 것 등을 밝혀낼 수 있었지.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부모의 형질이 왜 잡종인 자손에게 나타나는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내가 그걸 알아낸 거다. 청출어람이라고 해야 하나. →왜 하필 완두였나. -뭐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완두콩이 번식이 잘되고 하나의 가지에 콩이 많아서였다고 해야 하나. 물론 실험이 망하면 먹을 수도 있었고. 근데 결과를 보면, 정말 운 좋게도 유전형질이 딱 갈라지는 재료를 우연찮게 선택했던 것 같다. →근데 당신은 동네 학회에서도 무참히 밟혔다. 허무하지 않았나. -조그마한 소도시에 있는 자연과학협회 회원들이 내 연구결과를 이해나 했겠나. 딱히 큰 학회에 발표하지도 않았고, 다윈한테만 우편으로 보낸 정도였는데 그 이상을 바라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사실 더 열받는 건 내가 다윈한테 보낸 논문이, 다윈이 죽은 후에 방에서 뜯지도 않은 채 발견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였지. 만약에 다윈이 그걸 뜯어봤다면 창조론자들과 맞설 강력한 무기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자기 복이 그 정도였구나 하고 생각해야지 뭐. 근데 나도 몇 년 뒤에 수도원장이 되고, 수도원이 세금 때문에 정부랑 싸우는데 앞장서면서 딱히 과학에 관심을 쓸 시간이 없어졌어. 결국 내 연구는 내 시대에는 개인적인 만족으로 끝난 셈이지. →당신 연구의 존재감이 얼마나 없었으면 당신이 죽은 후에 당신 동료들이 논문하고 연구 자료까지 아무 생각없이 불태웠을까. 근데 이쯤에서 핵심적인 질문을 해야겠다. 당신의 논문에는 ‘유전’이나 ‘법칙’이라는 말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도대체 ‘멘델의 법칙’은 어디서 나온 건가. -그게 사람 운인 것 같다. 내가 했던 연구가 한 35년 정도 아무도 모르게 묻혀 있었는데 말이지. 과학자들도 생각하는 게 다 비슷한지 1900년쯤에 과학자 세명이 나랑 비슷한 실험을 했거든. 그래서 결과를 얻었는데, 누가 먼저인지 당장 싸워야 할 판이 된 거야. 사실 과학자들이 ‘최초’ 어지간히 좋아하잖아. 그 와중에 어이없게 내가 예전에 썼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논문 ‘식물 잡종에 관한 실험’이 도서관에서 발견된 거지. 싸우기 귀찮으니까 그 영예는 전부 이미 죽은 나한테 돌려버리기로 합의를 본 거고. 하긴 내용도 거기서 거기였다고 하더구먼. →당신이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에 뒤늦게 빛을 본 건가. -근데 그건 또 아니고. 난 잘 몰랐는데, 내가 좀 글을 못 썼던 모양이야. 후대 학자들이 심지어 “멘델은 시대를 앞서간 게 아니고, 19세기의 학자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한 건 글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라고 했겠느냐고. →그래도 당신은 오늘날 위대한 유전학자로 좋은 점만 부각되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영국의 생물학자 윌리엄 베이트슨에게 감사하고 있다고 전하고 싶어. 베이트슨은 내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불명확한 대목은 손질하고, 원문도 좀 바꿔놓았지. 그 결과 당시 과학계를 주도하던 영국이나 미국의 연구자들은 절대적으로 시대를 앞서간 것으로 보이는 멘델만을 만나고 칭송하게 된 거지. 오히려 내가 사용한 독일어권에서는 인정받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 이를 입증하지. →불운한 학자로 당신을 골랐는데, 듣다 보니 정작 엄청난 행운아 아닌가. -완두콩 1만 그루를 8년 동안 기른 정성은 보답받을 만하다고 생각해. 공부하기 위해서 수도사가 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런 노력을 하고도 내가 그 결과를 인정받기 위해서 애쓰지 않고 스스로 만족했기 때문에 중학교 교사자격시험조차 떨어진 내가 교과서에 길이 남게 된 것이 아닐까 싶어.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참고문헌 -교과서를 만든 과학자들(손영운/글담)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에른스트 페터 피셔·전대호/해나무) -멘델이 들려주는 유전이야기(황신영/자음과모음) -멘델, 현대 유전학의 창시자(비체슬라프 오렐·한국유전학회/전파과학사) -유전학의 탄생과 멘델(에드워드 에델슨·최돈찬/바다출판사)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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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주 기술자 아닌 사회와 소통하는 음악인 키워”

    “연주 기술자 아닌 사회와 소통하는 음악인 키워”

    7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잡았다. 전공인 비올라로 전향한 것은 15살 때. 이쯤 되면 늦깎이다. 그런데도 로스트로포비치(내셔널심포니), 오자와 세이지(보스턴심포니), 네빌 마리너(미네소타오케스트라) 같은 거장들이 그를 단원(혹은 수석)으로 선택했다. 미국 커티스음악원 총장까지 맡고 있다.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 단원의 25%는 커티스 출신이란 말이 나올 만큼 철옹성을 구축한 엘리트 음악의 요람에 역대 최연소 총장으로 부임했다. 로베르토 디아즈(51) 총장이 주인공이다. 제8회 대관령국제음악제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달 30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콘서트홀에서 만났다. ●이경숙 연세대 명예교수가 장모 대기실의 비올라 케이스는 온통 아내와 아홉 살짜리 딸 소피아의 사진으로 도배돼 있었다. 사진 속 얼굴이 묘하게 동양적이다. 아내 엘리사 리 콜조넨은 한국과 핀란드의 피가 반씩 섞였단다. 국내 1세대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이경숙 연세대 명예교수가 그의 장모다. 주목받는 피아니스트 김규연이 처제다. 한국과는 각별한 인연인 셈이다. 그는 “불고기나 김치를 너무 좋아한다. 한식을 좋아하지 않으면 집에서 아내와 큰 갈등을 겪을 수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보통 2년 전에 연주 스케줄이 결정되는 그가 빡빡한 여름 일정을 조정하면서까지 대관령을 처음 방문한 것도 한국에 대한 애정이 밴 결정이다. 디아즈 총장은 이번 축제에서 3번의 공연과 더불어 음악학교 교수진으로도 참여한다. 그는 “연주와 가르치는 일 모두 사랑스럽고 흥미로운데 대관령에선 두 가지 일을 모두 할 수 있어 아주 좋다.”면서 “물론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은 언제나 연주”라고 말했다. 1924년 세워진 커티스음악원은 교수진이 95명, 학생은 160명 안팎이다. 교수 한 명에 학생이 두 명 꼴도 채 안 된다. 모든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작곡과 피아노, 지휘전공 학생에게는 재학 중 명품 피아노 스타인웨이를 공짜로 빌려준다. 음악 영재들이 커티스를 선망하는 이유다. ●“음악은 동시대 환경의 산물” 물론 커티스 출신들이 잘나가는 이유는 따로 있다. 연주만 잘하는 기술자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악보에 담기지 않은 시대적 공기까지 꿰뚫어 보도록 교육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아즈 총장은 “단지 유명해지려고 하거나 세계적 수준의 연주 실력을 갖추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면서 “음악은 동시대 환경의 산물이다. 베토벤이 살았던 시대를, 말러가 숨 쉬던 당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곡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미술과 시, 문학, 정치, 사회,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도록 유도한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 가르칠 수 있는 건 행운” 커티스음악원 재학생 가운데 아시아 학생 비중은 10%를 웃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를 뺀 외국 출신 중 가장 많은 게 한국 학생이다. 디아즈 총장은 “(한국 학생이) 12~15명쯤 된다.”고 설명했다. 총정원이 12명인 비올라 부문에는 내년에 4명의 한국인 학생이 입학할 예정이다. 그는 “한국 학생들은 믿을 수 없는 재능들을 갖고 있다.”면서 “그들을 가르칠 수 있는 내가 운이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음악 영재들이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로 몰리는 ‘쏠림 현상’이 심각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내 오케스트라들이 관악기 파트가 부실한 것도 같은 이유일 터. 디아즈 총장은 “피아노나 바이올린, 첼로 연주자들이 노출되는 일이 많으니 어린 학생들이 선망하는 건 당연하다.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다. 점점 작곡이나 지휘, 타악기 같은 분야에서도 훌륭한 인재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관령축제 예술감독(정명화, 정경화)이나 남동생(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도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 연주자가 아니냐.”면서 “슈퍼스타들이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부정적으로 볼 건 없다.”고 덧붙였다. 평창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W&W]수도사 멘델의 고백...“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W&W]수도사 멘델의 고백...“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쌓았지만, 정작 그 결과물에 비해 주인공이 알려지지 않은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유도 다양하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기록이 갖는 한계 때문에, 패망한 국가의 군주는 승자가 지워버렸기 때문에 그렇다. 히틀러가 폴크스바겐의 스테디셀러 ‘비틀’을 만든 주역이라든가, 그가 얼마나 문학적인 인물이었는지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은 것은 누구도 말하기 꺼려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자연과학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다만 인류의 삶을 바꿀 만한 발견이나 발명을 해낸 과학자들은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천재이거나, 은둔형 외톨이여서 앞으로 나서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17세기의 아마추어 수학자였던 피에르 드 페르마다. 그는 짧은 수식을 적은 후 “나는 이 문제를 풀 놀라운 증명을 찾아냈지만, 여백이 부족해 적지 않는다.”라고 썼다. 인류가 흔히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불리는 이 문제를 푸는 데는 그 후로 무려 357년이 걸렸다. 이 밖에도 “다 알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결과만 내놓거나 “이걸 왜 풀었는지 내가 왜 설명해야 하나.”는 식으로 잠적해버린 천재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남긴 업적과 함께 전설처럼 전해내려온다. 생물학자들은 교과서에 등장하는 과학자 중 업적에 비해 본인이 가장 알려지지 않은 사람으로 그레고어 요한 멘델(1822~1884)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근대 유전학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그는 왜 그같은 이미지를 갖게 됐을까.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주 주인공은 지난달부터 전 세계 네티즌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주목받고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전학자이자 수도사인 멘델이다. 놀라운 발견을 한 그는 왜 철저하게 ‘재야의 과학자’로 머물러야 했을까. 그리고 최근 불고 있는 멘델에 대한 관심은 무엇 때문일까. 인터뷰가 진행되자 멘델은 오히려 “오늘날 내가 받고 있는 존경은 사실 어이없는 행운 덕분”이라고 털어놓았는데?   중·고등학교 생물교과서를 덮은 이후 사실 처음으로 당신을 만나는 것 같다. 최근 전 세계 포털의 과학자 검색 순위에서 당신이 급상승했다. 완두콩도 검색어에 오르고 말이다. -나도 이상해서 좀 알아봤더니, 구글이 깜찍한 짓을 했더구만. 지난달 20일이 내 생일이었는데 그날 구글이 로고를 ‘완두콩’으로 만들었더라고. 뭐 탄생 189주년이니 딱히 기념할 만한 시점도 아닌데, 워낙 엉뚱한 짓을 많이 하는 애들이니. 거참 질문에 비해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한 답변이다. 검색어 덕분에 당신에 대해서 좀 찾아봤는데 의외로 알려진 게 없더라. 뉴턴이나 다윈 같은 과학자들은 몇 페이지가 모자랄 정도인데 말이다. 검색창에 당신 이름을 넣으면 ‘멘델의 법칙’이나 나오지 당신 얘기는 ‘수도사였다’‘유전학의 창시자다’‘완두콩을 가지고 실험했다’ 이 정도가 고작이던데. 궁금한 점 위주로 개인 신상에 대해 몇가지 물어보자. 무엇보다 수도사가 왜 과학실험을 한건가 -그게 사실은 거꾸로란 말이지. 난 과수원집에서 태어났거든. 어렸을때부터 나무 품종을 개량하면서 유전학자의 꿈을 키웠고 아버지도 내 교육에 열성적이었어. 문제는 집에서 내 뒷바라지를 해 줄 수 있는 처지가 안됐다는 거였지. 심지어 여동생 결혼자금까지 다 써버릴 정도였으니. 근데 대학교수가 나보고 수도원에 들어가 신부가 되면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별 망설임 없이 사제 시험을 보고 수도사가 됐지. 마침 내가 있던 성 토마스 수도원 원장은 신학 외에 과학이나 예술을 공부하도록 장려하는 사람이라 다행이었어. 근데 사실 당신은 낙제생이었다는, 그것도 생물에서 망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수도사들은 근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했는데, 부끄러운 얘기지만 중학교 교사 자격시험에서 생물과목을 과락해서 자격증을 못 땄지. 착한 원장님께서 날 밀어준다고 빈 대학에서 특별 과외까지 시켜줬는데, 또다시 떨어져서 아예 교사의 꿈은 접었어. 근데 대학을 다니면서 당시 유행하던 다윈의 학설을 접했고 그게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은 계기가 됐지. 아, 당신보다 유명한 과학자와 동시대를 살았군. 다윈이 당신에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다윈이 주장하는 진화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인지 확인해봐야 겠다고 마음먹고 곧바로 실천에 옮겼어. 수도원 안쪽 뜰에 있는 작은 정원에 완두를 심고, 1만 그루 넘게 심고 키우고를 반복하면서 하나하나 결과를 기록해나갔지. 생색을 좀 내자면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거든. 완두 꽃가루를 모두 손으로 수분시켰고, 내가 원하는 종끼리 수분시키기 위해서 일일이 다 봉지를 씌웠으니까. 그 실험만 무려 8년을 꾸준하게 계속했고. 그 결과 1865년에 대를 물려도 변하지 않는 형질이 있다는 것, 형질 사이에 우성과 열성이 있다는 것, 독립적으로 유전이 되는 형질이 있다는 것 등을 밝혀낼 수 있었지.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부모의 형질이 왜 잡종인 자손에게 나타나는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내가 그걸 알아낸거야. 청출어람이라고 해야하나. 왜 하필 완두였나.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완두콩이 번식이 잘되고 하나의 가지에 콩이 많아서였다고 해야하나. 물론 실험이 망하면 먹을 수도 있었고. 근데 결과를 보면, 정말 운 좋게도 유전형질이 딱 갈라지는 재료를 우연찮게 선택했던 것 같다. 근데 당신은 동네 학회에서도 무참히 밟혔다. 허무하지 않았나. -조그마한 소도시에 있는 자연과학협회 회원들이 내 연구결과를 이해나 했겠나. 딱히 큰 학회에 발표하지도 않았고, 다윈한테만 우편으로 보낸 정도였는데 그 이상을 바라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어. 사실 더 열받는 건 내가 다윈한테 보낸 논문이, 다윈이 죽은 후에 방에서 뜯지도 않은채 발견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였지. 만약에 다윈이 그걸 뜯어봤다면 창조론자들과 맞설 강력한 무기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자기 복이 그 정도였구나 라고 생각해야지 뭐. 근데 나도 몇 년 뒤에 수도원장이 되고, 수도원이 세금 때문에 정부랑 싸우는 데 앞장서면서 딱히 과학에 관심을 쓸 시간이 없어졌다. 결국 내 연구는 내 시대에는 개인적인 만족으로 끝난 셈이지. 얼마나 당신 연구의 존재감이 없었으면 당신이 죽은 후에 당신 동료들이 논문하고 연구 자료까지 아무 생각없이 불태웠다는 얘기는 들었다. 근데 이쯤에서 핵심적인 질문을 해야겠다. 당신의 논문에는 ‘유전’이나 ‘법칙’이라는 말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도대체 ‘멘델의 법칙’은 어디서 나온건가. -그게 사람 운인 것 같다. 내가 했던 연구가 35년 정도 아무도 모르게 묻혀 있었는데 말이지, 과학자들도 생각하는 게 다 비슷한지 1900년쯤에 과학자 세명이 나랑 비슷한 실험을 했거든. 그래서 결과를 얻었는데, 누가 먼저인지 당장 싸워야 할 판인 된거야. 사실 과학자들이 ‘최초’ 어지간히 좋아하잖는가. 그 와중에 어이없게 내가 예전에 썼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논문 ‘식물 잡종에 관한 실험’이 도서관에서 발견된거지. 싸우기 귀찮으니까 그 영예는 전부 이미 죽은 나한테 돌려버리기로 합의를 본거고. 사실 내용도 거기서 거기였다고 하더만. 당신이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에 뒤늦게 빛을 본건가. -근데 그건 또 아니고. 난 잘 몰랐는데, 내가 좀 글을 못 썼던 모양이야. 후대 학자들이 심지어 “멘델은 시대를 앞서간 게 아니고, 19세기의 학자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한 건 글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라고 했겠냐고. 그래도 당신은 오늘날 위대한 유전학자로 좋은 점만 부각되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영국의 생물학자 윌리엄 베이트슨에게 감사하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 베이트슨은 내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불명확한 대목은 손질하고, 원문도 좀 바꿔놓았다. 그 결과 당시 과학계를 주도하던 영국이나 미국의 연구자들은 절대적으로 시대를 앞서간 것으로 보이는 멘델만을 만나고 칭송하게 된거지. 오히려 내가 사용한 독일어권에서는 인정받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불운한 학자로 당신을 골랐는데, 듣다보니 정작 엄청난 행운아 아닌가. -완두콩 1만 그루를 8년 동안 기른 정성은 보답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공부하기 위해서 수도사가 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 노력을 하고도 내가 그 결과를 인정받기 위해서 애쓰지 않고 스스로 만족했기 때문에 중학교 교사자격시험조차 떨어진 내가 교과서에 길이 남게된 것이 아닐까 싶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교과서를 만든 과학자들(손영운/글담)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에른스트 페터 피셔·전대호/해나무) 멘델이 들려주는 유전이야기(황신영/자음과모음) 멘델, 현대 유전학의 창시자(비체슬라프 오렐·한국유전학회/전파과학사) 유전학의 탄생과 멘델(에드워드 에델슨·최돈찬/바다출판사)
  • 안혜경 로또 2주연속 당첨…당첨금 ○만원 행운은 만원

    안혜경 로또 2주연속 당첨…당첨금 ○만원 행운은 만원

    안혜경이 2주 연속 로또 당첨에 미소를 지었다. 안혜경의 소속사 코스타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안혜경은 7월 4째주와 5째주 2주 연속 로또 4등에 당첨됐다. 4등 당첨금은 5만원선에 불과하지만, 쉽지 않은 2주 연속 행운에 하는 일이 잘 풀릴 징조가 아닐까 기대하고 있다고. 최근 배우 박진희의 소속사인 코스타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한 안혜경은 영화 ‘네버엔딩 스토리’ 출연을 앞두고 있다. 안혜경 로또 당첨 소식에 네티즌들은 “네버엔딩 스토리 대박 조짐”, “2주연속 당첨 비법 공개를”, “이번 주에도 꼭 사시길”, “안혜경 기상예보 미래 날씨 맑음” 등의 댓글로 반가움을 전했다. 사진 = 코스타 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국토부 또 비리

    국토해양부가 다시 금품수수의 여진에 휩싸였다. 29일 국토부에 따르면 국토부 황모 주무관이 2009년 도로공사를 담당한 한 건설업체 현장소장으로부터 4000만원 안팎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수원지검 안산지청에 최근 구속됐다. 당시 간선도로과 소속이던 황씨는 금품 수수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나 검찰은 자금 흐름을 파악한 뒤 기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황씨 외에도 시흥시청 6급 공무원인 이모씨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구속 수사하고 있다. 애초 수도권의 재건축·재개발 비리 내사를 벌이다 돈이 공무원들에게 흘러들어간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직 국토부 직원이 구속된 것은 올 들어 두 번째다. 지난달 부동산 리츠의 인허가를 담당해온 백모 과장이 서울 남부지검에 구속됐고, 담당 사무관 등은 소환조사를 받았다. 이 밖에 지난 13일에는 수백만원짜리 행운의 열쇠와 진주반지 등을 전별금 명목으로 받은 국토부 지방청장과 이를 제공한 과장이 총리실 감찰반에 적발돼 직위해제됐다. 한편 국토부는 이날 금품·향응수수로 징계를 받으면 승진에서 제외한다는 조직문화 선진화 방안을 내놨다. 지난달 20일 ‘더치 페이’, ‘골프 금지’ 등이 담긴 행동준칙을 발표한 뒤 나온 종합대책이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생명의 窓] 휴(休) /차동엽 인천가톨릭대 교수·신부

    [생명의 窓] 휴(休) /차동엽 인천가톨릭대 교수·신부

    레비라는 랍비가 어느 날 길거리에서 달려가는 남자를 보았다. “왜 그렇게 달려가는가?” 랍비가 묻자, 그 사내가 대답했다. “행운을 잡으러요.” 이 말에 랍비는 말했다. “어리석은 자군. 자네의 행운이 자네를 붙잡으려 뒤쫓고 있는데, 자네가 너무 빨리 달리고 있어.” 무엇에 홀린 듯 뛰어다니는 현대인을 위한 한 방이다. 아니 멀리 볼 것 없이 그대로 매일 시간대별로 꽉 찬 일정을 헉헉거리며 소화하던 필자를 향한 꼬집음이다. 올해는 그나마 안식년이라 조금 덜 켕기지만 어쨌거나 한창 활동 중일 때도 1년에 7, 8월은 꼭 비워 두곤 했다. 이 기간 동안 독서와 집필 그리고 기획·방송·녹화에 전념하면서 푹 쉰다. 어찌 보면 이런 것들도 일로 간주될 수 있는 것들이지만 필자에게는 그저 노닥노닥 즐길 수 있는 낙()일 따름이니 가능한 것이다. 휴가철이다.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해 할애할 시간이 없는 삶, 일몰을 감상할 시간이 없는 노역, 의무를 위해 쉴 새 없이 바쁘게 일해야 하는 굴레 등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권리를 만끽할 계절인 것이다. 휴(休)는 단지 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이상의 것이다. 영화에서 극적인 장면에서는 흔히 서서히 크레센도로 음악을 점점 높여 가다가 갑자기 뚝 멈춘다. 그 침묵의 순간에 나오는 대사는 어떤 것이든 보다 분명하고 보다 강력하게 들린다. 침묵을 배경으로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대사에는 특별한 힘이 실리는 것이다. 이는 그대로 음악에도 적용된다. 음악을 들을 때, 포즈 곧 휴지(休止)의 박자를 유념해서 들어 보라. 무언가 심오한 느낌이나 메시지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연설문에서도 마찬가지다. 마틴 루터 킹의 그 유명한 연설문을 보자. 그 박자에 주의를 기울여 보라. “드디어 자유입니다. (휴지) 드디어 자유. (휴지) 전능하신 신께 감사드리나니 우리는 드디어 자유를 찾았습니다.” 요컨대 휴는 삶의 강약과 리듬을 조절하는 결정적인 인자이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반드시 쉬어 가야 할 장소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의 저자 스티브 도나휴는 오아시스에서 쉬어야 할 이유로 다음의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쉬면서 기력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 여정을 되돌아 보고 정정해야 할 것은 정정한다. 셋째, 같은 여행길에 오른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상하게도 멈추어 쉬고 활력을 되찾으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더 많이 쉴수록 더 멀리 갈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잠시 멈추어 있다면 이 기간이야말로 충전의 시간이요, 도끼날을 가는 시간임을 명심하라. 바쁘게 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바쁘다’는 의미의 한자 ‘망’(忙)은 다음과 같은 두 글자의 조합임을 알게 된다. 바로 ‘마음’(心)과 ‘죽음’(亡), 즉 ‘마음을 죽인다.’는 뜻이다.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행동주의와 과로와 스트레스로 자신의 마음을 죽이고 있는가. 휴의 가치를 가장 잘 깨닫고 활용할 줄 알았던 민족은 역시 유대인이다. 그들은 오늘날도 안식일을 글자 그대로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안식일 하루를 온전히 쉬기 위해 모든 가사를 금요일 저녁 이전에 해치운다. 그러고는 안식일에는 일체의 노동을 피하고 미리 준비된 음식을 먹으며 심신을 편안히 쉬게 한다. 안식일에 가장 큰 덕으로 숭앙받는 것은 ‘게으름’인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문화에서는 휴일이나 휴가 문화가 오히려 더 많은 일거리를 양산하는 경향이 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그동안 밀렸던 빚을 받아 내려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블루 먼데이라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쉴 때는 그냥 쉬는 것이다. 한껏 게으름을 부리는 것이다. 황금 같은 휴가철, 게으름의 권리를 누구에게도 양도하지 말 일이다. 휴- 하라! 고단한 몸의 긴장을 풀고 충분히 충전하라. 그래야 더 멀리 갈 수 있고, 더 빠르게 갈 수 있다.
  • 대박복권 3번째 당첨…”세계서 가장 운좋은 가족”

    대박복권 3번째 당첨…”세계서 가장 운좋은 가족”

    뜻밖의 행운을 거머쥐었을 때 흔히 로또에 당첨된 상황과 비교한다. 그만큼 복권에 당첨되는 건 확률상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 하지만 미국에 사는 한 여성과 가족에게 지난 20년 간 복권 당첨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에 사는 여성 킴벌리 맥컬리는 지난 주 편의점에서 산 즉석복권 한 장이 10만 달러(한화 약 1억원)에 당첨됐다. 킴벌리가 더욱 기쁘고 흥분할 수밖에 없었던 일은 이번 당첨이 그녀와 가족에 찾아온 3번째 행운이었기 때문. 킴벌리의 어머니 에이미는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한 복권 애호가였다. 20년 넘게 매주 복권을 구입하는 그녀는 2007년 16만 달러(약 1억 6000만원)에 당첨된 적이 있으며, 이에 앞선 1991년 에이미는 1550만 달러(162억 7000만원)의 대박복권의 주인공이었다. 20년 전과 4년 전 어머니 에이미가 2번이나 대박 복권에 당첨되자 킴벌리는 자신마저 당첨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녀는 “복권 당첨의 행운은 이미 어머니에게 모두 돌아갔다고 생각해 내가 당첨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놀라워했다. 미국 언론매체들은 10만 달러 이상의 복권에 3번이나 당첨된 킴벌리의 가족은 ‘세계에서 가장 운이 좋은 가족’이라고 소개했다. 킴벌리는 하지만 “복권에 특별한 노하우는 없다.”면서 “게다가 큰 금액에 당첨되도 우리 가족의 삶에 별반 달라질 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10원경매’ 베이플, 나에게도 저가낙찰의 행운이?

    ‘10원경매’ 베이플, 나에게도 저가낙찰의 행운이?

    ‘10원경매’는 되는 사람만 된다?’ 10원경매 사이트 ‘베이플’(http://www.bayple.com/)이 새롭게 문을 열어 경매 입찰에 참여한 회원들에 10원경매 저가낙찰의 쏠쏠한 재미를 주고 있다. ‘베이플’은 텐베이, 제로옥션, 예스베이, 대박베이, 럭스텐 등 국내에 자리 잡고 있는 10원경매 사이트에 이은 후발주자. 하지만 베이플은 믿을 수 있는 10원경매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가낙찰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최대한 공정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0원경매는 한 번 입찰할 때마다 10원씩 올라가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페니 옥션(benny auction)이라고도 불린다. 국내에 도입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10원경매의 저가낙찰 매력에 빠진 입찰자들은 점점 경매의 요령을 익히고 있다. 10원경매 과정에서 생기는 피해를 없애려면 10원경매사이트 자체와 이용하는 유저들의 노력이 합쳐져야 하는 건 물론이다. 신생 10원경매 사이트는 저가낙찰을 받기 쉽다. 회원이 적은 만큼 경쟁률이 적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입찰자들이 많이 몰리고 경매에 나온 물건의 입찰가격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베이플’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부분의 입찰품목이 저가낙찰로 고객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이러다가 망하는 것 아니야.’라는 걱정까지 들게 할 정도라고. 현재 베이플에서 경매가 완료된 상품들의 낙찰가는 최저 10원부터 시작된다. 대부분의 경매물품이 99%에 가까운 SAVE율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만족을 높이고 있다. 경매이벤트에서 입찰시 베이골드는 1개당 10원으로 입찰하며 입찰에 성공하면 최대 99%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째깍째깍 시간 가는 소리와 입찰을 할까 말까 눈치게임보다 더한 스릴로 저렴한 쇼핑에 스릴까지 즐길 수 있어 더욱 매력 있다. 신바람 나는 10원 경매는 베이플이 고객들에게 자신 있게 선보이는 쇼핑이벤트다.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쇼핑에 스릴을 더한 것. 성공적인 경매를 한 고객은 최고 99%의 할인을 받을 수 있는 행운의 주인공이 된다. 베이플에서 외장하드를 낙찰 받은 한 회원은 “이번에 낙찰 받은 건 적립 받은 캐쉬로 베이골드 사서 득템했다. 가지고 있던 베이골드 다 자동으로 걸어놓고 아침에 출근했는데 10개만 사용하고 낙찰됐다. 아직도 골드가 남아있어 다른 것도 찔러본다.”라며 10원경매의 재미에 푹 빠져있음을 보여줬다.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쇼핑몰 베이플(bayple)은 bay(항만) + people(사람)의 합성어로써 인터넷 쇼핑하는 사람들의 공간을 의미한다. 최대 99%까지 가격절감을 할 수 있는 베이플 10원경매에서 나의 행운을 시험해보는 건 어떨까. 출처 : 베이플 본 콘텐츠는 해당기관의 보도자료임을 밝혀드립니다.    
  • “부자 삶 지겨워” 학교경비로 돌아온 ‘복권 당첨자’

    “부자 삶 지겨워” 학교경비로 돌아온 ‘복권 당첨자’

    영국의 50대 중년 남성이 복권당첨으로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돼 직장을 떠났으나 3년 만에 다시 학교 경비로 돌아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남성은 “풍요로운 삶보다 열심히 사는 삶이 더 즐거웠다.”고 이유를 밝혔다. 영국 일간 메트로에 따르면 켄트 주에 사는 아더 라이트(51)는 2008년 3월 유럽에서 발행되는 내셔널로터리(National Lottery)에 당첨, 290만 파운드(49억 6000만원)을 거머 쥐었다. 뜻밖의 횡재에 라이트는 “복권 당첨은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라고 즐거워했다. 공장 근로자로 20여년 일했던 라이트는 당첨된 날 바로 직장을 떠났다. 침실 3개짜리 좁은 주택에서 두 아들 내외와 살던 라이트는 꿈에 그리던 큰 집을 샀고 낡은 차를 버리고 고급차도 사들였다. 또 가족을 모두 데리고 미국 디즈니월드로 호화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3년 간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을 살던 라이트는 최근 켄트 주의 한 고등학교의 경비원으로 취업했다. 그는 “일을 하지 않으니 몸은 편했지만 무기력했다.”면서 “부유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돈 쓰는 재미에 빠졌던 적도 있지만 이젠 지겹다.”고 이유를 밝혔다. 라이트는 더 이상 복권을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첨 뒤에도 복권을 계속 사들였던 그는 “더이상 돈이 나의 모든 행복을 책임져 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서 “치열하게 일하면서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대의 행운”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맷 데이먼 “브란젤리나 커플, 죄수같은 생활한다”

    할리우드 스타 맷 데이먼(40)이 절친한 사이인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죄수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맷 데이먼은 최근 독일 TV프로그램에 출연해 “항상 주목 대상인 브란젤리나 커플은 좋아하는 곳에 외출도 하지 못한다.” 며 “심지어 산책을 하는 것만으로도 국제적 뉴스가 된다.” 고 밝혔다. 이어 “브란젤리나 커플은 마치 죄수와 같은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맷 데이먼이 브란젤리나 커플을 언급한 것은 자신의 현재 근황을 비교하면서다. 맷 데이먼은 “나는 관광지에 가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부터 자유롭다.” 며 “뉴욕에서 좋아하는 직업을 가지고 살고 있으니 난 정말 행운아” 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2005년 루치아노 바로수와 결혼한 맷 데이먼은 4명의 딸만 둔 ‘딸부잣집’ 가장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약초 캐려면 마음이 흐르는 물처럼 맑아야”

    “약초 캐려면 마음이 흐르는 물처럼 맑아야”

    약초(藥草)란 말 그대로 질병의 치료와 예방을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식물을 말한다. 따라서 누구나 한번쯤은 관심을 갖거나 눈여겨보게 마련이다. 하지만 재배가 아닌 야생 약초를 쉽게 접하기는 간단치 않다. 그러니까 10년 전이다. 충남 보령에서 식당업을 하던 최원길(58)씨는 이런 생약초를 직접 만나고 싶어 무작정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저 산에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이후 그는 경기, 강원, 충청 등 전국의 산을 대책 없이 떠돌아다녔다. 처음에는 매우 힘들었다. 어느 산에 무슨 약초가 있는지도 모르고 새벽에 떠나 다음 날 새벽에 돌아오는 일이 허다했다. 여름에는 무더위, 모기, 벌, 뱀 등과 사투를 벌이는 일도 많았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야생에서 백하수오와 천마, 토산마, 청머루 등을 만나면서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산삼을 여러 뿌리 캐는 행운도 뒤따랐다. 이제는 약초와 만나는 것이 삶의 유일한 취미이자 즐거움이 됐다. “일주일에 4, 5일은 산에서 지내지요. 하루만 산에 안 가도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캐 온 약초는 어디에다 쓰느냐구요? 모두 술 담갔지요. 그게 보관하는 데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대개의 경우 어렵게 캔 약초를 주위 환자나 아니면 시장에 내다 팔 법도 한데 최씨는 모두 술을 담갔다. 여러 번 물었더니 그냥 취미생활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보령시 동대동에 있는 전시장에 들어가 봤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도 했다. 100년생 가까이 돼 보이는 산삼을 비롯해 백하수오, 봉삼, 진삼, 산도라지, 창출, 야관문, 잔대, 죽순, 우술뿌리, 왕벌집, 야생복숭아, 독배 등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생약초들이 크고 작은 병속에 고스란히 잠겨 있었다. 이렇게 보관된 술병만 1500병은 족히 넘는다. 전국 어디에도 이 같은 규모의 전시장은 없을 듯싶다. 최씨 자신도 “이만한 곳은 없다.”며 웃는다. 그렇게 좋다던 산삼과 백하수오 등 약초가 잔뜩 있는데 판매를 권하는 사람들은 없었을까. 최씨는 단호하게 “좋아서 하는 일을 돈과 거래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래서일까. 주위에서 는 최씨를 ‘약초박사’로 부른다. 지난해 부인이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산에 가서 약초를 캐와 정상으로 되돌린 사연은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북향의 약초는 음지에서 자랍니다. 또 약초를 캐려면 마음이 흐르는 물처럼 맑아야 합니다. 경건해야지요.” 알듯 모를 듯한 말(?)을 하는 최씨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었더니 약초와 함께하는 것이라며 웃는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124억 복권기부’ 할머니, 당첨 1년만에 사망

    1120만 달러(한화 124억원)의 복권당첨 행운을 자신이 아닌 이웃을 위해 온전히 바쳤던 70대 캐나다 여성이 최근 사망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캐나다 CBS에 따르면 노바스코샤 주에 사는 바이올렛 라지(79) 할머니가 난소암으로 지난 18일(현지시간) 세상을 등졌다. 라지 할머니는 지난해 7월 복권에 당첨된 뒤 4개월 만에 대부분의 금액을 자선단체, 교회, 병원 등에 기부해 감동을 준 바 있다. 복권당첨 당시 난소암 말기 항암치료 중이었던 라지 할머니는 “원래 내 돈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쉬움도 전혀 없다.”면서 “이 돈이 도움이 절실한 이웃들에 전해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라며 초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할머니와 38년간 해로한 남편 알렌 역시 기부의 뜻을 같이 한 것으로 전해졌다. 위급한 상황을 대비해 당첨금의 약 2%만 남긴 채 모든 돈을 이웃에 전달하면서도 부부는 “여행을 가거나 좋은 물건을 사는 것보다 행복을 나누는 게 훨씬 더 기쁘다.”고 소감을 전한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브리티시오픈] 폭풍우 심술에 웃고 울었다

    “날씨가 좋아도 버거운 코스인데 이렇게 비바람까지 몰아치니…. 정말이지 이런 날씨는 태어나서 처음이다.” 호주에서 온 매튜 밀라(35)의 원망 섞인 하소연은 이번 브리티시오픈 골프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들이 입을 모아 하고 싶은 말일 터다. 잉글랜드 켄트주 샌드위치의 로열 세인트 조지스 골프장(파70·7211야드)에서 열린 이 대회의 최대 난관은 심술궂은 날씨다. 밀라는 17일 3라운드에서 결국 10오버파 80타를 쳐 69위로 밀렸다. 다른 선수들도 사정이 비슷비슷하다. 3라운드까지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가 단 6명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대런 클라크(북아일랜드)가 3라운드 중간합계 5언더파 205타로 브리티시오픈 생애 첫 우승을 노리고 있다. 클라크는 최종 라운드가 진행되는 17일 밤 12시 현재 7번홀까지 중간합계 7언더파를 기록하며 단독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9번홀까지 무려 5타를 줄이며 무섭게 추격해 온 필 미켈슨(미국)을 두 타 차로 따돌린 것. 3위는 7번홀까지 3언더파를 친 미국의 대표 장타자 더스틴 존슨. 클라크는 대회 3라운드에서 1언더파 69타를 쳐 존슨을 1타 차로 따돌리고 단독 선두에 나섰다. 무엇보다 운이 따라줬다. 폭풍우가 그친 뒤 경기를 시작하는 행운을 잡은 것이다. 이날 오전에는 무려 시속 50㎞에 달하는 강풍과 함께 비가 몰아쳤지만 오후가 되자 비가 그치고 해가 나타났다. 오전에 경기를 시작한 하위권 선수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오후에 나선 상위권 선수들은 날씨 덕을 톡톡히 봤다. 클라크는 “경기를 하다 보면 종종 날씨 덕을 보는데 브리티시오픈에서 이런 행운을 잡은 것은 나중에 큰 차이로 나타난다.”며 행운을 인정했다. 42세의 베테랑 클라크는 유럽프로골프(EPGA) 투어에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2000년 안데르센 컨설팅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결승에서는 타이거 우즈(미국)를 꺾고 우승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클라크에 맞서는 존슨은 27세밖에 되지 않은 미국의 신예지만 평균 비거리 300야드가 넘는 폭발적인 장타를 휘두르는 선수로 미국 골프의 메이저대회 우승 가뭄을 풀어줄 희망으로 떠올랐다. 3라운드에서 ‘코리언 브러더스’들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양용은(39·KB금융그룹)은 3타를 잃으며 공동 22위(3오버파 213타)로 떨어졌다. 노승열(20·타이틀리스트)은 공동 37위(6오버파 216타), 최경주(41·SK텔레콤)는 공동 48위(8오버파 218타), 황중곤(19)은 71위(15오버파 225타)로 밀려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우승 후보로 거론된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는 컷탈락했고,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4오버파 214타를 적어내며 공동 25위로 밀렸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돈 주세요” 기부요청에 2750억 당첨부부 ‘피신’

    역대 유럽복권 사상 최대 당첨금을 얻게 된 영국인 부부가 쏟아지는 기부요청에 부담을 느껴 당첨사실을 밝힌 지 하루 만에 종적은 감췄다. 영국 에어셔의 라그스란 작은 마을에 살던 콜린(64)과 크리스틴 위어(55) 부부가 자녀 2명을 데리고 지난 13일(현지시간) 스페인으로 극비 출국했다. 선데이 타임스 등 현지 언론매체에 따르면 부부가 기부요청 하루 만에 수백 건이 밀려들자 피신한 것으로 보인다. 전직 카메라맨인 콜린과 간호사 출신의 크리스틴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유럽 9개국에서 동시에 판매되는 ‘유로밀리언’ 복권 1등에 뽑혔다. 총상금은 1억 6165만 3000파운드(약 2750억원)으로, 이번 당첨으로 영국 부호서열 420위에 단숨에 뛰어올랐다. 지난 15일 당첨금을 수령한 위어 부부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겁내지 않고 즐기기로 했다.”며 연신 미소를 보였다. 또 “당첨 사실을 알게 된 날 너무나 흥분돼 와인을 마시며 하루를 꼴딱 샜다.”고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위어 부부는 당첨사실을 알린 지 하루 만에 집을 비울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기부 요청이 한꺼번에 쇄도하자 부담감과 신변의 위협을 느껴 해외로 몸을 피한 것. 관할 우체국은 “하루만에 수백 통의 기부요청 편지가 수북이 쌓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관할 경찰서는 위어 부부가 도착할 경우 신변보호를 위해 특별 경계를 할 계획이다. 이웃집에 사는 데이비드 심슨(82)은 “옆집에 살던 이들이 이런 행운을 얻었다는 게 기쁘지만 더 이상 한 동네에 살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58개띠, 세상을 바꾼다] 개띠 4인방 “우린 베이비 부머 세대의 허리”

    [58개띠, 세상을 바꾼다] 개띠 4인방 “우린 베이비 부머 세대의 허리”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렇듯 집단적 정체성을 부여받은 전례가 없다. 전쟁이 끝난 뒤 매년 60만~70만을 헤아리던 신생아 울음이 갑자기 80만의 합창으로 증폭됐다. 이렇게 1958년에 태어난 이 땅의 ‘개띠’들은 초등학교 내내 콩나물 교실과 2부제 수업에 시달려야 했고 중학교와 고교 입시제도가 바뀌는 행운(?)을 누렸다. 권력자의 아들 덕을 봤다는 얘기가 평생 따라붙었다. 1977년을 전후해 최고의 경쟁률을 뚫고 대학에 간 이들은 유신과 휴교령에 맞서야 했고, 산업화 진군에 부응해 울산과 포항·마산 등으로 몰려간 이들은 막강한 숫자와 특유의 응집력으로 다른 연령집단의 부러움과 시샘을 받았다. 몇몇의 비아냥에서 시작된 별칭은 스스로 몸을 굴려 영향력을 키웠고 이제 그것이 ‘집단 운명’을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군대에선 운동권으로 ‘찍혀 박박 기어야’ 했고, 1987년 6·10 항쟁에 넥타이 매고 머리띠 두르고 나서 민주화와 민주노조 운동에 함께 나섰던 이들. 이제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 잡나 싶을 즈음, IMF 구제금융 사태로 엄청난 희생을 강요당했다. 어느새 53년, 이제 어쩔 수 없이 제2 또는 제3의 인생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해 기준 712만명으로 추산된 베이비 부머 세대(1955~1963년생)의 ‘허리’인 이들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감히 질문을 던져 본다. 4인의 속내도 들어봤다. 앞선 베이비 부머와도 차별되는 ‘신노년’의 도래가 가시권에 들어왔는데 정부나 사회는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지도 짚어본다. ■ ‘우리가 맏형’ 임영빈 바른몸 상무 서울 청량리에서 버스를 운전하던 이북 출신 아버지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미군이 나눠준 빵을 뜯어먹고 자란 우리에겐 가난과 인내가 ‘DNA’처럼 새겨져 있다. 중학교 진학할 실력이 안 됐는데 박지만 덕분에 추첨제(서울지역 첫 시행은 1969년)로 바뀌어 어렵지 않게 진학했다. 집안이 어려운 데다 동생들 뒷바라지도 해야 할 것 같아 고교 때부터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지.’ 생각하고 컸다. 고교 졸업 뒤 대전에 있는 국방과학연구소에 취직, 당시 삼성보다 훨씬 많은 월급을 받았다. 술 사 먹고, 동생들 학비 보태라고 집에 돈을 보내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곳에서 병역을 해결하면서 지방 대학에 다녔다. 전두환 정권 들어 인력을 절반으로 줄이라는 압력이 거세지자 그만두고 무역회사에 들어갔다. 컴퓨터 설계 장비 등을 주로 취급했는데, 남들은 전에 일하던 회사 제품과 경쟁하는 제품을 거래해 재미를 보곤 했다.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리 세대의 특징이기도 한데 남한테 폐 끼치지 않겠다는 의식이 유달랐다. 그렇게 여러 무역업체를 운영해봤다. 후배를 믿고 사업을 벌였다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현재는 의료 관련 비즈니스를 새로 준비하고 있다. 오랫동안 구축한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큰 수익은 못 내도 힘들지 않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하기 때문에 난 괜찮은 편이다. 항상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변화와 도전을 하면서 살아왔다. 남은 24년 정도를 ‘작게 꾸준히’ 수익을 내면서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 직장에서 한 우물만을 파온 동년배들이 걱정된다. 이들을 위해서 정부와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임금피크제 등 정부 정책이 피부에 와 닿는 뭔가를 전해주지 못하더라. 고교 동창들 모두 부모 봉양과 동생들 뒷바라지에 아이들 부양까지 책임져야 하는 ‘낀 세대’라고 입을 모은다. 일부는 자녀가 노후를 돌보지 않겠느냐는 미련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그런 태도에 대해 구박하는 분위기가 대세다. 유난 떤다고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늘 변화를 선도했다. 우리가 뭉쳐 일자리와 제2의 삶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낸다면 그 열매는 우리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베이비부머 세대의 동생들, 나아가 우리 아이들까지 혜택을 본다. ■ ‘개띠 공돌이’ 김형만 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경남 마산 바닷가 마을에서 5남3녀의 일곱째로 태어나 열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강냉이죽, 이듬해 빵을 학교에서 나눠줬다. 우리만 이런 추억이 유달리 강렬한 건 이전 세대는 아예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골인데도 한 반에 65~70명이나 됐는데 절반만 빵을 먹을 수 있었다. 겨울엔 난로에 들어갈 솔방울 주우러 다녔으니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었나. 1974년에 고입 시험이 추첨제로 바뀌었지만 마산은 시험을 치렀는데 떨어졌다. 2차로 공고에 진학했는데 학생들이 가방에 끌, 대패, 망치 등을 넣어다녔다. 흉악했는데도 의리가 있었다. 공부 잘하던 애들은 시험 보면 정답을 알려주곤 했다. 전국의 공고 학생들이 졸업하면 취업할 데는 널려 있었다. 울산, 포항에 전국의 ‘공돌이’들이 모여들었다. 58년 개띠는 그때 나온 얘기 아닌가 한다. 마산수출자유지역엔 여성 근로자가 엄청 몰리면서 연애 문화도 급변했다. 공고를 졸업한 뒤 포철에 입사해 쇳물 만드는 일을 8년 정도 했다. 장학금 준다고 해 창원대학에 진학한 뒤 1989년부터 서강대 대학원에서 또래 교수들 밑에서 공부하며 박사학위까지 땄다. 1994년에야 사회로 나와 올해로 사회생활 17년째다. 그러니 뭔들 준비가 돼 있겠나. 첫아이가 이제 고2다. 역사와 세월에 맡기고 열심히 사는 것뿐이다. 직장에도 또래가 4명 있는데 잘 뭉친다. (1957년생) 닭띠들도 꼼짝 못한다. 베이비 부머 중에서도 늘 변화의 중심이었다. 숫자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제도가 바뀌지 않았나 싶은데 이런 때 우연히 첫 주자(중학 추첨제가 전국으로 확대된 건 1971년)였을 뿐이다. 우리 뒷세대만 해도 자기 생각에 빠지곤 했는데 우리는 그런 게 없었던 것 같다. 내일 어떻게 될지라도 오늘 끝장을 본다, 뭐 이런 거. 조국이나 집단에 대한 애착에서도 그렇다. 사회 구조가 몇 사람의 의기투합으로 바뀌지 않을 때 방향성을 찾아가는 힘이 뭔지 궁금하다. 그때 개띠란 게 한몫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미래가 확실해서 간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좌절하지도 않고 이겨낼 수 있다고 그냥 생각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그런 게 있다. 분명히 다른 띠에 견줘 또래끼리 얘기가 잘 통하는 것이 있다. 그렇다고 58년 개띠에게 필요 이상의 기대를 할 것도 없다. 과거의 표상일 뿐이지, 하지만 미래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띠를 제쳐두고 개띠만 중심에 놓고 볼 때는 말이 안 되는 구석이 있다. ■ ‘해외에서 본 개띠’ 한주호 GE 헬스케어 전무 일본과 미국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 초등학교 마친 뒤 아버지 직장 때문에 일본에 갔다. 미군이 배급하던 빵의 추억은 공유하고 있다. 박지만 때문에 중학 입시가 바뀌었다는 소식에 ‘그 친구가 뭔데?’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일본에서 고교 2년까지 다녔는데 어느 날, 세살 위 형을 제치고 소집 영장이 나와 귀국했다. 병무청은 사무 착오라 했다. 학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해 고교를 다시 들어가 두 살 아래 동생들과 다녔다. 1979년 입대해 전북 정읍에서 근무하면서 광주항쟁을 지켜 봤다. 이런 비극은 우리 세대에 끝내고 50~100년 뒤 후손들이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면 제대로 민주주의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버드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인터넷이 없어 대학 주소 알아내는 데만 석달 걸려 5년 동안 도전해 입학 허가를 얻었다. 들것에 실려갈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 우등생 졸업했다. 환경미화원 일도 했고 미국 명문가 자제들이 얼마나 겸손하고 겉멋 부리지 않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지 보고 감명받았다. 코넬대학 로스쿨에 진학해 94년 미국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강단에 서겠다는 꿈은 집안 사정 탓에 포기했다. 한국에 돌아와 법무법인 광장에 들어가 일하다 2005년 10월에 지금의 직장으로 옮겼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힘든 시절을 견뎌내며 오늘의 민주주의를 이뤘다. 그리고 이전 세대보다 고등교육을 받았고 컴퓨터와 영어를 할 수 있어 정치와 사회·문화적으로 많은 기여를 했다는 점, 앞으로 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양극화, 부패, ‘SKY’란 표현으로 상징되는 1등주의 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특정한 해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집단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다. 정부나 사회에 요구해 기회를 갖자는 주장에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그로 인해 과도한 ‘파워’를 갖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직장 그만두는 게 은퇴가 될 수 없다. 지금도 나는 미국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의 면접을 본 뒤 따로 시간을 내 그 친구들에게 나의 경험을 들려 주고 있다. 일종의 사회 환원이라고 생각한다. 정년 연장이나 임금피크제, 재취업 등이 목적이 될 수도 없다고 본다. 많은 이들이 그런 고민과 기대를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가정을 꾸리고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준 이 사회, 자녀, 후손에게 뭘 넘겨줄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탤런트를 사회에 환원하고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 ‘여자 58개띠’ 옥선희 영화칼럼니스트 초등학교 3학년까지 수원에서 다니다 서울로 와 부모와 따로 떨어져 학교를 다녔다. ‘마누라는 없어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던 구로동에 인구가 엄청 유입되면서 학교가 둘로 나뉘기도 했다. 고교 진학할 때 재단이 새로 생기면서 담임 교사들이 몇 등부터 몇 등까지는 어느 학교로, 그 아래 점수는 다른 학교로 이런 식으로 배정했고 장학금 몇푼으로 유혹했다. 좋은 학교 간 아이들은 좋은 대학 가는데, 다른 쪽에선 돌멩이 주워 학교 건물 지었다. 그게 싫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도 않았다. 한 번도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고 우연히 시작한 영화 칼럼과 책 쓰는 일이 평생 일이 됐다. 하도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니까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애국하는 길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 정도로 내가 단순하다.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으니 누가 결혼하겠는가. 지금 아이들 취업도 못해 낑낑대는데 정부 등에선 많이 낳아야 한단다.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 때는 성실하게만 일하면 직장 구해 먹고살 수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잖은가. 중학교가 남녀 공학이라 동창들이 많이 모였는데 IMF 외환위기로 인해 고꾸라진 친구들이 많았다. 동창회 시작할 때만 해도 ‘아이들 신경 쓰지 말고 부부가 시골 가서 살자.’고 다짐했는데 요즘은 그런 얘기가 쑥 들어갔다. IMF 이후 요식업을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모두 힘들어하고 미래를 불안해한다. 여자친구들에게 이제 한숨 돌렸으니 시민단체라도 가입해 활동하자고 권하면 젊은 시절, 젖먹이 떼놓고 직장 다녔던 죄의식으로 “손자들이라도 봐야지.” 하더라. 그런 친구들 은근히 많다. 사회에 봉사할 때가 됐는데 손자 보겠다고 하는 것이다. 소모되는 삶을 사는 것 같아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장학금 주는 성공회대 NGO 여성학 대학원에서 공부하느라 고생하고 있다. 중년의 우울을 건강하게 극복하는 방법은 일하는 것과 공부밖에 없다고 하더라. 폴란드에서 공공기관 근무자들이 대부분 머리 희끗한 분들이어서 놀랐다. 왜 우리는 어르신들이 해야 할 일을 젊은이가 하는 등 거꾸로 돼 있는가 많이 생각했다. 거리 청소 같은 건 젊은이들이 하고 체력이 덜 소모되는 일은 어르신들이 하는 게 맞지 않나. 또 경제가 이만큼 됐으니 정부나 사회도 문화를 가꾸는 쪽으로 우리 ‘58년 개띠’들을 유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정리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Republic of South Africa-무지개 빛 이야기가 뜨는 땅, 남아프리카 공화국

    Republic of South Africa-무지개 빛 이야기가 뜨는 땅,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는 끝났지만 여전히 많은 흑인들이 소위 깡통집에서 살아간다. 150만 채 가량의 만델라 하우스가 지어졌지만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은 도시 한 구석에 여전히 남아 있다. 무지개 빛 이야기가 뜨는 땅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는 끝났지만 여전히 많은 흑인들이 소위 깡통집에서 살아간다. 150만 채 가량의 만델라 하우스가 지어졌지만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은 도시 한 구석에 여전히 남아 있다. 흑인 경제권 강화 제도 BEEBlack Economy Empowerment는 긍정적인 결과와 함께 흑인을 탄압하는 또 다른 흑인을 낳았다. 모든 일이 좋지만은 않다.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은 남아공을 풍부한 자원과 자연을 지닌 축복의 땅이라고 한다. 흑인과 백인은 물론 여러 인종이 모여 만든 무지개 나라Rainbow Nation라고 한다. 어둡지만 않고, 밝지만 않지만 남아공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는 그리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준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진경 취재협조 남아프리카공화국관광청 www.southafrica.net Cape Town 살랑 바람이 피어나는 케이프타운 남아공에서 가장 살기 좋은 땅을 꼽으라면 아마 케이프타운Cape Town일 것이다. 일 년 내내 더울 것 같은 아프리카지만 케이프타운은 예외다. 여름인 1월에도 평균기온이 20.3도이며, 겨울인 7월에도 11.6도를 유지하는 지중해성 기후를 자랑한다. 살랑살랑 항구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도시를 호위하듯 우뚝 선 테이블 마운틴이 있는 케이프타운. 종종 비교되는 샌프란시스코보다 정이 가는 도시다. 보여주는 산, 보기 위한 산 케이프타운에 며칠 머무는 이들 모두가 테이블 마운틴에 오를 수 있는 건 아니다. 비와 바람이 잦은 케이프타운에서는 테이블 마운틴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말한다. 테이블 마운틴. 일반 산처럼 정상이 뾰족하지 않고 테이블처럼 평평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독특한 모양의 산은 케이프타운의 상징이자 랜드마크와 같다. 테이블 마운틴Table Mountain에 오르는 방법은 다양하다. 몇 군데 나 있는 등산로를 이용해도 되고, 케이블카로도 손쉽게 오를 수 있다. 시간 여유가 없는 여행자들은 5분여 만에 정상에 도착하는 케이블카를 주로 이용한다. 테이블 마운틴 케이블카는 1929년에 개통됐으며, 현재 운행되는 둥근 형태의 케이블카는 1997년에 만들어졌다. 360도 회전하며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는 아찔하게도 창문 두 군데가 막혀 있지 않았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아, 탄성이 쏟아진다. 산 아래에서 본 것처럼 정상 일대는 테이블처럼 평평해 사방이 탁 트인 시원한 전망을 자랑한다. 주봉은 해발 1,086m의 매클리어봉이다. 주봉의 북서쪽으로는 669m 높이의 사자 머리Lion’s Head가, 북동쪽으로는 1,001m 높이의 악마의 봉우리Devil’s Peak가 있다. 이들 봉우리와 더불어 테이블 베이, 케이프타운 시내 등 일대가 모두 눈에 담긴다. 케이프타운에서는 테이블 마운틴을, 테이블 마운틴에서는 케이블 마운틴을 보는 셈이다. 정상 일대의 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어느 쪽으로 향해도 한 바퀴를 돌 수 있으니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 케이프타운을 감싸 안은 테이블 마운틴의 모습은 시그널 힐Signal Hill에서 보는 게 아름답다. 석양 무렵, 차와 자전거를 타고 시그널 힐을 찾는 이들이 많다. 저녁이면 케이블카 운행이 중단되는 테이블 마운틴의 여운을 달래기에도 그만이다. 시그널 힐이라는 이름은 매일 오전 12시에 대포를 발포해 얻게 됐다. 이 대포는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대포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테이블 마운틴 케이블카┃ 운행시간 오전 8시30분~오후 5시(마지막 하강 오후 6시) 요금 어른 왕복 R180, 편도 R90 문의 021-424-8181 tablemountain.net 1 케이프타운 시내에서 바라본 테이블마운틴과 라이온스 헤드 2 케이블카를 타고 테이블 마운틴에 오르면 케이프타운 일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3 시그널힐의 일몰 4 케이프타운 일대를 돌아보는 2층 버스가 테이블마운틴을 찾았다 5 테이블마운틴의 절벽위에서 잠든 바위너구리 6 테이블마운틴 산책로 폭풍 속에서 희망을 찾다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이 아니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은 희망봉에서 동남쪽으로 160km 가량 떨어진 아굴라스 곶Cape Agulhas이다. 그럼에도 희망봉을 찾는 이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그 옛날 인도양을 항해하던 선원들이 그랬듯 희망봉에서 희망을 보길 원하는 걸까. 희망봉을 가장 먼저 발견한 이는 바스코 다가마가 아니다.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라는 항해자가 1488년에 이곳을 발견해 폭풍의 곶Cape of Storms이라 이름했다. 9년 후인 1497년, 바스코 다가마가 이 곶을 통과해 인도로 가는 길을 개척하며 폭풍의 곶은 희망의 곶이 됐다. 케이프타운에서 희망봉까지는 약 50km 거리. 잘 닦인 자동차도로를 따라 희망봉으로 향한다. 운이 좋거나 혹은 나쁘다면 도로 위에서 개코원숭이와도 만나게 된다. 한번 먹을 걸 주면 좀체 떨어지지 않는 놈이라 양아치로 통하기도 한다. 그렇게 도착한 희망봉은, 바다다. 희망봉이라는 표지판이 놓인, 육지다. 그래도 거룩한 이름의 희망봉인지라 기념사진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 희망봉이라는 표지판이 놓인 곳은 바스코 다가마가 실제 발을 디딘 곳이다.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당시의 날씨가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여 케이프 포인트Cape Point는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최남단은 아니지만 남아공 남서쪽 끝을 이루는 곶이 있다. 바로 케이프 포인트다. 238m 높이에 등대가 놓여 있으며, 케이블카를 타거나 걸어서 오를 수 있다. 케이블카는 해발 127m에서 출발해 214m 높이의 역에 선다. 케이프 포인트에서는 희망봉은 물론 일대의 바다가 한눈에 조망된다. 세계 도시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 등 소소한 볼거리들이 등대와 함께 있다. 케이프 포인트는 테이블 마운틴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관람시간 10~3월 오전 6시~ 오후 6시, 4~9월 오전 7시~오후 5시 요금 입장료 어른 R80, 어린이 R20, 케이블카 어른 왕복 R45, 편도 R35 문의 www.tmnp.co.za, www.capepoint.co.za 1 한 번 먹을 것을 주면 좀체 떨어지지 않는 개코 원숭이는 케이프타운에서 양아치로 통한다 2 케이프 포인트 케이블카는 해발 127m에서 출발해 해발 214m 역에 선다 3 희망봉을 알리는 표지판 감옥이 된 섬, 유산이 된 감옥 로벤 아일랜드Robben Island로 향하는 길, 배를 다루는 바다가 거칠다. 대서양의 원래 성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바다를 맨몸으로 건너기란 불가능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일 것이다. 섬은 1836년부터 1931년까지는 나병환자를, 1959년부터는 정치범을 가두는 장소로 활용됐다. 워터프론트Victoria & Alfred Waterfront의 넬슨 만델라 게이트웨이에서 1시간여 바닷길을 달리면 로벤 아일랜드에 닿는다. 쇼핑 센터와 카페, 레스토랑 등이 모여 있는 워터프론트는 늘 활기에 넘친다. 가끔 길거리에서 열리는 공연이라도 보고 있자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피셔맨스워프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로벤 아일랜드는 다르다. 텅 빈 섬은 고요하며 엄숙하다. 감옥이 폐쇄된 건 1996년의 일이다. 다음해인 1997년부터 섬은 박물관으로 공개됐고, 199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섬은 버스로 돌아본다. 버스에는 그 옛날 변사를 떠올리게 하는 가이드가 동승해 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버스를 한 장소에 세워두고 투어가 진행돼 조금은 답답하고 지루한 면도 있지만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진지하다. 버스는 섬을 한 바퀴 돈 다음, 참가자들을 감옥에 내려준다. 실제 이 감옥에 수감됐던 이가 안내를 맡아 강제 노역을 했던 장소며, 수십명의 수감자가 지냈던 방과 화장실 등을 보여준다. 당시 뙤약볕에서 노역을 하며 실명을 한 이들도 많았다고 하니 수감 생활의 고단함은 짐작할 만하다. 넬슨 만델라를 포함한 여러 정치범들이 수감됐던 독방 또한 볼 수 있다. 넬슨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27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로벤 아일랜드 투어는 4시간여에 걸쳐 진행된다. 섬에서 보내는 시간보다는 이동하는 시간이 길지만 그들의 성지를 엿본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물개와 가마우지의 터전이 되는 섬 주변의 바다와 섬 안에서 만나는 아프리칸 펭귄도 반갑다. 4 워터프론트의 시계탑 5 로벤 아일랜드에 사는 아프리칸 펭귄 6 워터프론트에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수많은 가게가 자리했다 그 섬에 물개가 산다 네덜란드어로 나무라는 뜻의 호우트Hout.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상당량의 목재를 베기 이전에 이곳은 울창한 숲이었다고 한다. 1652년, 요한 반 리빅Johan van Riebeek은 그의 일기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이곳을 기록했고, 이후 이곳은 호우트 베이Hout Bay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아침, 호우트 베이는 숲이 아닌 기념품을 파는 노점으로 가득하다. 목재 인형에 부부젤라까지, 다양한 상품을 늘어 놓은 노점은 물개 섬으로 향하는 여행자들의 지갑을 열게 한다. 물개 섬Seal Island은 호우트 베이에서 뱃길로 15분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정식 이름은 더커 섬Dulker Island이지만 물개를 보기 위해 찾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물개섬이라 불린다. 커다란 갯바위에 가까운 섬에는 계절에 따라 600마리에서 5,000여 마리의 물개가 살아간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섬을 물개가 온통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여 배는 섬에 다가갈 뿐 정박하지는 않는다. 섬 주위를 천천히 움직이는 배에서 물개를 보는 일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15분여 뱃길을 달려 10분여를 구경하고, 또다시 돌아오는 물개 섬의 여정은 40분 정도로 짧아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희망봉으로 가는 길에 이곳을 잠시 들른다. 호우트 베이를 떠나 희망봉으로 가는 길은 챔프만스 피크 드라이브Champman’s Peak Drive를 따른다. 죄수들을 동원해 7년간 닦은 길로 1922년에 개통됐다. 도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호우트 베이는 하늘의 빛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빛을 담아낸다. 운행시간 오전 8시45분줈, 오전 9시30분, 오전 10시15분, 오전 11시10분줈(줈는 비정기 노선) 요금 어른 R42.50, 어린이 R15 문의 Circe Launches 021-790-1040 www.circelaunches.co.za 작지만 강한 심장의 펭귄들 남아공에도 펭귄이 산다. 아프리카에 사는 놈이라 이름도 아프리칸 펭귄이다. 케이프타운에서 희망봉으로 가는 길에는 보울더스라는 해변이 자리했다. 1982년에 이 해변으로 한 쌍의 펭귄이 들어왔고, 지금은 3,000여 마리의 펭귄이 살아가는 보울더스 펭귄 서식지Boulders Penguin Colony로 탈바꿈했다. 1910년에는 150만 마리 가량의 아프리칸 펭귄이 남아프리카에 서식했다고 한다. 하지만 음식 재료로 펭귄 알을 사용하는 등 여러 이유로 20세기 말에는 개체수의 10% 정도만이 살아남았다. 아프리칸 펭귄은 40~50cm 정도의 귀여운 체구를 자랑한다. 체구는 작지만 심장은 강하다. 보울더스의 해변까지 이어지는 나무 데크에서는 사람을 피하지 않는 펭귄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해변을 벗어나 주차장까지 걸음을 하는 펭귄도 있다. 아프리칸 펭귄은 재캐스 펭귄Jackass Penguin이라고도 불렸다. 당나귀와 울음소리가 비슷해서였는데, 남아메리카의 일부 펭귄도 비슷한 울음소리를 내 아프리칸 펭귄이라 불린다고. 이 펭귄은 1시간에 7km 정도를 수영하고, 2분 정도 잠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보울더스와 차로 5분 이내 거리에 자리한 사이먼스 타운Simon’s Town도 가볼 만하다. 네덜란드 총독이었던 사이먼이 이곳에 항구를 만드는 것을 제안했다는데 곳곳에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들이 많다. 입장요금 어른 R35, 12세 이하 R10 문의 021-786-2329 www.tmnp.co.za 1 챔프만스 피크의 전망대 2 호우트 베이에서 뱃길로 15분 가량 달리면 물개 섬이라 불리는 더커 섬에 닿는다 3 보울더스 해변의 펭귄은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에 익숙하다 Kruger National Park 선한 영혼이 뛰노는 자리 크루거 국립공원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음푸말랑가Mpumalanga 날씨 맑음. 똑똑한 핸드폰의 아름다운 위젯이 크루거의 날씨를 알린다. 케이프타운에서 2시간 가량 하늘 길을 날아 넬스프룻Nelspruit 공항으로, 또다시 차로 2시간을 넘게 달려 크루거 국립공원Kruger National Park의 사설보호구역Private Game Reserve에 들어섰다. 남아공에서 가장 큰 보호구역으로 알려진 크루거는 그 크기만 남북으로 350km, 동서로 60km에 해당한다. 남아공의 음푸말랑가와 림뽀뽀Limpopo주를 포함해 북쪽으로는 짐바브웨, 동쪽으로는 모잠비크와 맞닿아 있다. 이처럼 거대한 크루거의 음푸말랑가 땅, 말라말라 사설보호구역Mala Mala Private Game Reserve에 며칠 머물 예정이다. 똑똑한 핸드폰이 알려준 날씨가 새삼 반갑다. 동물원이 아니랍니다! 새벽부터 숨가쁘게 이어온 여정이건만 쉴 시간은 없다. 해거름이 찾아 들기 전에 야생의 땅으로 안전하게 잠입해야 한다. 샌드위치로 곯은 배를 대충 채우고 랜드로버에 올라탄다. 랜드로버는 크루거 사파리에서 여행자의 발이 된다. 도심의 도로를 달리며 뿜어내던 그의 야성미가 비로소 진정한 멋을 발휘하는 때다. 랜드로버가 발이라면 레인저Ranger는 여행자의 눈이자 보호자다. 레인저들은 매와 같은 눈으로 동물들의 뒤를 쫓는 한편, 안전의식이 미비한 사파리 여행자들을 주의시킨다. “랜드로버에서 엉덩이를 떼지 마세요.” “동물원으로 착각하고 소리치지 마세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장전한 엽총을 지닌 레인저들이 당부에 당부를 거듭한다. 그래야 죽지 않고 사파리를 마칠 수 있다. 워터벅Waterbuck은 사파리가 시작되자마자 모습을 드러냈다. 엉덩이에 Q마크를 예쁘게 새긴 워터벅 한 마리다. 곧 이어 모습을 드러낸 임팔라Impala의 엉덩이에는 M자가 박혀 있다. 사파리가 시작되자마자 웬 횡재냐며 랜드로버의 일행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사실 크루거에는 워터벅이며 임팔라 같은 초식동물은 널려 있다. 찾아내고 뒤를 쫓을 필요도 없다. 그들의 생존 방법이 많이 낳는 것 외에 별다른 게 없어서다. 서쪽 하늘의 석양볕이 열기를 잃고 어둠이 내렸다. 낯설고 먼 소리에 임팔라가 반응을 보인다. 놈의 천적이 근처를 어슬렁거린다는 뜻이다. 또 다른 랜드로버에서 무전을 보내 임팔라의 행동을 확인해 준다. 사자다. 그것도 네 마리의 새끼 사자를 거느린 사자 가족이다. 무전을 주고받은 네 대 가량의 랜드로버가 모여들었다. 사자 가족의 비위를 맞추며 랜드로버 떼가 조심스레 접근을 시도한다.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 카메라 앞에 몇 차례 포즈를 취하던 사자 가족은 초원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네까짓것들은 관심 없다는 듯 시크의 절정을 보여주고는 떠났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흥분했다. “내가, 여기, 크루거, 사파리에서, 사자를, 아니, 사자 가족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1 크루거를 대표하는 초식동물인 임팔라. 뿔 달린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과 함께한다 2 크루거 사파리에서 여행자들의 발이 되는 랜드로버 3 작은 몸집의 새들도 크루거에서는 생존의 법칙에 따라 살아간다. 하루 400km 가량 곡예하듯 비행하는 배틀래 독수리Bateleur Eagle 4 임팔라를 사냥한 표범이 천천히 식사를 즐기고 있다 5 아침, 경비행장 활주로에 나타난 코뿔소 떼 맹수가 사냥을 하는 날 아프리카 사파리 경험이 많은 이들은 초보 사파리 여행자들에게 크루거를 권한다. 짧은 여정으로 쉽게 닿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비교적 손쉽게 동물을 볼 수 있어서다. 초원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 동물을 관찰하는 것도 크루거만의 매력이다. 찻길을 준수하는 여타 사파리와는 달라 크루거에서는 쌍안경이 필요 없다. 의기충천해 범이라도 잡을 태세로 달려가는 길, 진짜 범을 만났다. 호피 코트를 멋지게 뽐내는 표범의 엉덩이가 걸음걸음 실룩거린다. “쉿!” 걷고 쉬기를 반복하는 표범의 발걸음이 외따로 풀을 뜯는 임팔라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사.냥.예.감. 예사롭지 않다. 맹수가 사냥을 하는 날, 사파리를 하는 이에게 필요한 건 인내다. 맹수는 배부른 식사를 위해 초식동물과의 거리를 아주 천천히 좁혀 가며 사냥을 한다. 기다림의 시간, 동물 찾기에만 혈안이 됐던 시선이 어느새 하늘을 향한다. 별은 총총하고, 달은 밝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저 멀리 일렬로 선 목 긴 기린 떼의 실루엣이 들어온다.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는 기다림을 함께하는 친구가 된다. 사냥 시간이 가까워 온다는 생각에 긴장감은 배가 되고, 목구멍으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귀를 아릿하게 적시는 바로 그 순간, 표범이 사라졌다! 임팔라 수놈의 울부짖는 소리를 따라 랜드로버가 초원 안으로 들어선다. 수놈 임팔라와 멀지 않은 곳에는 이미 목을 내어 준 암놈 임팔라가 쓰러져 있다. 이번에는 표범의 기다림이 시작됐다. 임팔라의 목을 문 표범은 몇분간 미동도 않는다. 파다닥. 파다닥. 몇 차례 이어지는 임팔라의 몸부림에도 표범은 굳건하다. 표범의 기다림이 끝났다는 것은 소리로 알게 된다. 사각사각 살과 내장을 뜯어내는 소리가 선명하다. 사냥에 성공한 표범은 위풍당당하게 식사를 즐긴다. 불과 몇 시간 전, 초식동물을 동정했던 우리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 반하고 말았다. 아름답다. 잔인하지만 아름답다. 1 등에 작은 새를 태운 버펄로의 모습. 새는 버펄로가 이동할 때 뛰어오르는 메뚜기와 같은 곤충을 먹고 산다 2 초식동물 임팔라는 작은 소리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빅 파이브’를 만나게 될까 사파리를 하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사자, 표범, 코뿔소, 코끼리, 버펄로를 이르는 ‘빅 파이브 Big 5’다. 사파리를 하는 동안 이들을 모두 보는 건 그야말로 행운이다. 말라말라 사설보호구역에서도 빅 파이브를 모두 보는 이들에게는 증명서를 준다. 이른 아침, 사파리를 시작하자마자 코뿔소가 보인다. 방금 전에 떠오른 해를 등지고는 경비행기 활주로에 단체로 자리를 깔았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버펄로도 아침 사파리에서 만난다. 코뿔소나 코끼리, 버펄로는 새와 함께 다니는 경우가 많다. 등이나 머리 위에 새가 앉아도 그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작은 새들은 큰 동물이 이동할 때 뛰어오르는 메뚜기와 같은 곤충을 먹고 산다. 몸집에 관계 없이 야생에는 생존 법칙이라는 게 존재한다. 크루거의 사설보호구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일출과 일몰 즈음, 두 번의 사파리를 한다. 한낮에는 원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워킹 사파리 Walking Safari 를 진행한다. 초원까지는 랜드로버로 이동을 하고, 짧은 거리를 걸으며 초식동물이나 새, 나무를 관찰하는 프로그램이다. 워킹 사파리까지 참여하면 하루가 빡빡하다. 똑똑한 핸드폰의 날씨가 바뀌었다. 흐림. 그래도 사파리는 어김없이 이어진다. 어둠이 내렸지만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느껴진다. 첫날의 흥분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음침한 분위기에 몸이 절로 움츠러든다. 웬일인지 동물들도 자취를 감췄다. 너무나 빨라 쫓기가 힘든 하이에나만이 어둠 속을 배회한다. 레인저는 “음침한 오늘은 사냥의 날”이라고 했다. 여기저기에서 사냥이 이뤄졌고, 버려진 고기를 먹기 위해 하이에나는 움직였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봤다면 그날은 사냥의 날이자 피의 날이며 음침한 기운을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날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 clip 말라말라 메인 캠프 Mala Mala Main Camp 크루거 국립공원 음푸말랑가 주에 자리한 로지 Lodge 중 하나다. ‘말라말라’와 ‘래트레이스 온 말라말라Rattray’s on Mala Mala’라는 두 개의 로지가 가까이에 있다. 래트레이스 온 말라말라는 전용 풀을 갖춘 풀 빌라. 단 8개의 객실만 운영하며, 16세 이하는 출입을 금하고 있다. 말라말라 캠프에서는 사파리를 하는 시간 외 밥을 먹는 등의 모든 일을 레인저와 함께한다. 심지어 밤에 숙소로 돌아갈 때는 레인저가 문 앞까지 배웅한다. 수영장, 레스토랑, 바 등의 부대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사슴 종류나 코끼리 등은 캠프 안에서 돌아다닐 정도로 보호구역과 경계가 희미하다. 문의 011-442-2267 www.malamala.com Travel to South Africa ▶남아공 찾아가는 길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는 남아프리카의 항공의 허브 도시다. 한국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는 일반적으로 홍콩을 거쳐 간다. 크루거 국립공원이 위치한 넬스프룻 공항은 요하네스버그에서 1시간, 케이프타운에서는 2시간 가량 걸린다. 사우스아프리카항공 서울사무소 02-775-4697. ▶남아공 기본정보 랜드(Rand, 주로 란드라 발음)를 사용한다. R1는 160.41원. 230V 3핀 코드. 대부분의 호텔에는 한국 전자제품의 2핀 코드를 꽂을 수 있는 콘센트가 하나 정도 마련돼 있다. 한국보다 7시간 느리다. 남반구에 자리했으므로 한국과 날씨가 반대다. 7월 최고기온은 17도.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알맞은 기온이지만 최고 기온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자. 아침저녁으로는 아주 춥다. 비가 적은 여름과는 달리 7월 평균 강수량은 82mm로 많은 편이다. ▶Accommodation 케이프타운 추천 호텔 월드컵 때 태어난 페퍼 클럽Pepper Club 케이프타운의 다운타운에 자리한 5성급 호텔로 2010 월드컵 때 문을 열어 시설이 전반적으로 깨끗하다. 객실 분위기는 모던한 편. 스토브와 오븐이 있는 부엌이 마련돼 있으며, 토스트기와 캡슐 커피 머신도 있다. 호텔 바로 옆에 아바나(Havana)라는 유명 클럽이 자리해 일부 객실은 시끄러울 수도 있다. 주소 Cnr Loop and Pepper Street, Cape Town 문의 021-812-8899 www.pepperclub.co.za 고풍스러운 더 테이블 베이 호텔The Table Bay Hotel 워터프론트에 자리한, 케이프타운에서 손에 꼽히는 고급 호텔이다. 로벤 아일랜드와 워터프론트, 테이블 마운틴 전망의 329개의 객실이 다양한 타입으로 마련돼 있다. 객실 분위기는 고풍스럽다. 호텔 분위기를 대변하는 듯한 아틀랜틱 그릴(Atlantic Grill)과 경쾌한 분위기의 유니온 바(Union Bar) 등이 자리했으며, 스파, 수영장 등의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주소 Breakwater Boulevard, Quay 6 Victoria & Alfred Waterfront, Cape Town 문의 021-406-5000 www.tablebayhotel.com ▶Dining Place 케이프타운 추천 레스토랑 보슈운달Boschendal 와이너리 투어 와이너리 투어는 케이프타운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시내에서 20km 정도 떨어진 더반빌을 시작으로 수많은 와이너리가 펼쳐진다. 그중 보슈운달은 1685년부터 명맥을 이어온 와이너리. 케이프타운 시내에서는 차로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곳에 자리했다. 2,250헥타르에 이르는 이곳 와이너리에서는 한 해에 300만 병의 와인이 생산된다. 화이트 와인이 60%, 레드 와인이 40%의 비율을 차지하며 반은 해외로 수출하고, 반은 남아공에서 판매된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수입한 고가의 오크통에서 숙성한 와인 등 종류가 다양하다. 와인 테이스팅을 통해 와인을 맛볼 수 있으며, 와이너리 내에 자리한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주문해 마시는 것도 가능하다. 뷔페로 운영되는 레스토랑의 음식이 아주 훌륭하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와인은 화이트 와인인 1685 샤도네 2009(1685 Chardonnay 2009)와 레드 와인인 1685 시라즈 2009(1685 Shiraz 2009). 각각 R60로 가격도 저렴하다. 문의 www.boschendalwines.com 아프리카의 맛을 담은 마마 아프리카 Mama Africa 아프리카의 분위기를 담은 레스토랑으로 케이프타운 시내에서는 유명한 편이다. 주말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 악어, 스프링복, 타조 고기 등이 함께 나오는 메뉴는 생소하지만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저녁에는 아프리카 전통 공연도 열린다. 주소 178 Long Street, Cape Town 문의 021-424-8634, 021-426-1017 해산물이 싱싱한 벌사스Bertha’s 사이먼스 타운의 항구에 자리한 레스토랑으로 바다가재, 오징어, 라임 피시 등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음식은 전반적으로 짠 편이다. 주소 Quayside Centre 1 Wharf Road, Simons Town, Cape Town 문의 021-786-2138, 021-786-2286 www.berthas.co.za 바다가재 게장이 있는 성북정Taste of Asia 케이프타운에 자리한 몇 안 되는 한식당. 생선초밥 등 일부 메뉴를 뷔페로 즐길 수 있으며, 한식 메뉴를 따로 주문할 수도 있다. 바다가재를 게장처럼 양념해 반찬으로 내어 놓는다. 주소 45 Lower Main Road, Observatory, Cape Town 문의 021-447-1515, 1500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브리티시오픈 또 ‘무명 돌풍’

    40세의 베테랑 토마스 비외른(덴마크)과 20세 아마추어인 톰 루이스(잉글랜드)가 제140회 브리티시오픈 첫 라운드에서 공동 선두로 나섰다. 둘은 15일 잉글랜드 켄트주 샌드위치의 로열 세인트 조지스 골프장(파70·7211야드)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에서 버디 7개에 보기 2개를 기록하며 5언더파 65타로 공동 선두에 올랐다. 4언더파 66타를 친 미겔 앙헬 히메네스(스페인)와 루카스 글로버, 웹 심슨(이상 미국)이 1타 뒤진 공동 3위. 8년 전 대회에서 아쉽게 역전패를 당한 비요른은 올해 비제이 싱(피지)이 부상으로 기권하는 바람에 뒤늦게 출전권을 얻었다. 강풍이 불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시작된 1라운드에서 비외른은 8년 전 역전패의 발단이 됐던 16번홀에서 행운까지 따랐다. 9번 아이언으로 친 티샷이 벙커로 향하는 듯했으나 둔덕을 맞고 그린 위로 올라갔다. 공이 홀컵 바로 옆에 멈춰 비외른은 가볍게 버디를 잡았다. 비외른은 “많은 사람이 8년 전 역전패를 이야기해 마음고생을 했지만 샷에만 집중했기에 지금까지 골프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루이스도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마흔한 살이나 더 먹은 톰 왓슨(61·미국)과 한때 세계 4위까지 올랐던 헨릭 스텐손(스웨덴)과 동반플레이를 하며 많은 이의 이목을 끌었다. 한국 선수 중에는 황중곤(19)이 2언더파 68타를 쳐 공동 6위에 오르는 선전을 펼쳤다. 2009년 프로에 데뷔한 황중곤은 한국프로골프투어(KGT) 정규대회 시드전을 통과하지 못해 일본 무대로 눈을 돌린 선수로, 지난 6월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미즈노 오픈에서 깜짝 우승해 이번 대회 출전권을 따냈다. 노승열(20·타이틀리스트)은 1언더파 69타를 쳐 공동 18위에 이름을 올렸다. 최경주(41·SK텔레콤)는 버디 3개와 더블보기 1개, 보기 2개를 묶어 1오버파 71타를 기록,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양용은(39·KB금융그룹)과 함께 공동 51위에 머물렀다. 재미교포 케빈 나(28·타이틀리스트)는 공동 107위(4오버파 74타), 김경태(25·신한금융그룹)는 공동 126위(5오버파 75타)로 떨어져 컷 탈락 위기에 놓였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포토다큐 줌인] 대학생 여름방학 아르바이트 전쟁

    [포토다큐 줌인] 대학생 여름방학 아르바이트 전쟁

    여름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 전쟁’이 한창이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다음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힘겨운 방학 나기’를 하는 그들의 일터를 찾았다. “빨리 빨리 던져! 수박 안 깨지게 조심하고.” 중앙대 3학년 배일섭(27)씨의 하루는 학기 때보다 더욱 바쁘다. 방학을 맞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대형 상점에서 농산물 판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루 3000여통의 수박을 매장에 진열하고 파는 일이다. 배씨는 오전 8시부터 9시간 동안 일을 하고, 시간당 5000원씩 총 4만원가량을 번다. 온종일 선 채로 일하고 나면 몸을 가눌 힘조차 없다. “공부는 물론 대학생이면 누구나 하는 스펙을 챙길 시간도 없어요.” 한 해 학교에 내는 등록금만 800만원.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탓에 생활비까지 벌어야 한다. “등록금이 300만원 정도만 해도 어떻게 해볼 수 있을 텐데….” 방학 동안 공부 안 하고 꼬박 일만 해도 등록금을 다 벌지 못할까 봐 걱정인 배씨다. 한국해양대 1학년 서대일(19)씨의 하루 일과는 서울 서초구청에서 시작된다. 구청에서 보존 기록물 정리 업무를 맡은 서씨는 오후 3시까지 빡빡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운이 좋은 편이에요.” 그는 퇴근 후 자신이 번 돈으로 영어학원에 다닌다. 행정 경험도 쌓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관공서 아르바이트 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다. 서초구청은 관내에 사는 대학생 50명을 뽑기로 했는데 500여명이 몰려들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차상위계층 자녀를 우선 선발하고 나머지는 공개 추첨을 통해 선발했다. 평균 10대1의 관문을 뚫어야 관공서에서 잠시 일할 수 있는 ‘행운’을 안는 것이다. 양재천 수영장에서는 전날 폭우로 침수됐던 수영장의 물청소가 한창이다. 뙤약볕 아래 수영복 차림의 대학생들이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며 바닥의 오물을 씻어내고 있다. 이들 중 홍일점인 선문대 4학년 이아름(24)씨. 그녀는 여름방학을 하자마자 야외 수영장에서 일감을 얻었다. “평소 수영에 자신이 있었고 전공(체육학)도 살릴 수 있어서 수상안전요원에 지원했어요.” 검게 그을려가며 손에 쥐는 돈은 하루 5만 5천원. 두달간 벌어도 등록금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 정도면 ‘고액 아르바이트’에 속한다. ‘고액’인 만큼 그녀의 근무 시간은 긴장의 연속이다. 위급 상황이 닥치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방학 중 아르바이트는 필수라고 여길 만큼 많은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의 등록금을 벌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일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전국 대학생 23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3.9%가 ‘등록금을 내고자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밝혔다. 특히 19.5%는 ‘등록금 때문에 휴학하고 일하기도 했다’고 응답했다. 방학이 더 이상 휴식이나 재충전의 시간이 아닌 치열한 삶의 현장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만났던 대학생 대다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청운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맘 놓고 공부하고 싶다.”는 이아름씨는 “반값은 아니라도 조금이라도 내린 등록금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소박한 바람이 이루어지도록 정부와 대학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무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되는 올여름. 이 계절이 지나면 대학생들 모두가 자신들이 흘린 땀의 가치에 대해 실망하지 않는 가을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글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프로축구] 중위권 순위 전쟁 대전·상주가 변수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승부조작 사건이 터진 뒤 프로축구 K리그 경기가 달라졌다. 모든 선수가 죽어라 뛴다. 자기 진영에서 잠그고 있는 팀도 없다. 모든 팀들이 ‘닥공’(닥치고 공격)이다. 전 구단의 ‘전북화’다. 전반에 먼저 몇 골을 넣어도 상관없다. 후반 추가시간이 끝날 때까지 공격 일변도다. 전 세계 어떤 리그보다 전력이 평준화된 K리그다 보니 매 시즌 중위권 싸움이 치열하다. 그런데 이런 K리그에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잠금축구’는 사라지고, ‘공격축구’가 대세가 됐다. 사건 뒤 팬과 관중의 따가운 의심의 눈초리와 더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구단과 선수들의 의무감이 이런 흐름을 가속하고 있다. 물리적인 이유도 있다. 승부조작에는 주로 수비수와 골키퍼가 연루됐다. 팀의 뒷문이 헐거워질 수밖에 없다. 공격만이 답이다. 정규리그 일정의 절반이 지났지만 좀처럼 6강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3위 제주부터 12위 울산까지 승점 차는 6점에 불과하다. 매 주말 중위권은 요동친다. ‘이번 주가 분수령’은 언제부턴가 관용구가 됐다. 이 치열한 허리싸움의 열쇠는 아이러니하게도 승부조작의 직격탄을 맞은 대전과 상주가 쥐고 있다. 시즌 초반 선두경쟁을 벌이던 두 팀은 사건이 터진 뒤 승리가 없다. 각각 15위, 13위로 추락했다. 두 팀을 만나 승리를 챙기는 팀은 순위가 올라간다. 지거나 비기면 그 반대다. 그래서 두 팀의 경기력이 정상궤도로 돌아오기 전에 만나는 팀이 유리하다. 18라운드 그 행운의 주인공은 경남과 부산이다. 둘 다 중위권 싸움의 중심에 있다. 경남은 지난 경기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고, 부산은 3연승 중이라 분위기가 좋다. 기세 좋게 밀어붙일 것이 뻔하다. 그런데 대전과 상주가 외형적으로 망가졌다고는 해도 투지만은 남다르다. 수비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또 뻔한 결론이다. 경기는 해 봐야 안다. 누구든 방심하면 위험하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새끼 구하려 호랑이와 혈투 벌인 엄마곰

    ‘모성의 힘은 강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사진이 영국 더 선에 보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에 위치한 란탐보르 호랑이 보호지역에서 아디트야 싱이 촬영했다. 아디트야 싱에 의하면 처음 2마리의 새끼 곰을 등에 태우고 어미 곰이 물을 먹기 위해 물가로 다가왔다. 이들을 본 호랑이가 슬금슬금 곰 가족에게 다가왔다. 보통 곰과 호랑이는 서로 공격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호랑이의 접근을 발견한 어미 곰이 방어본능으로 호랑이를 향해 포효를 지르기 시작했다. 호랑이도 어미 곰에 반응하여 포효를 지르기 시작했다. 결국 호랑이와 어미 곰의 싸움이 시작됐다. 300kg에 육박하는 호랑이를 향한 어미 곰의 방어는 처절했고 싸움은 3여분 동안 이어졌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어미 곰의 방어에 놀란 호랑이는 결국 꼬리를 내리고는 물가에서 사라졌다.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된 관광객들은 숨을 죽이고 구경하다가 호랑이가 떠나자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아디트야 싱은 “호랑이와 곰의 싸움을 보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라며 “이런 희귀한 장면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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