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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어쇼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갈매기 포착

    ‘에어쇼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갈매기 포착

    아마 한 마리의 갈매기도 에어쇼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최근 영국언론에 소위 '포토밤'이라 불리는 재미있는 사진 한장이 공개돼 화제에 올랐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멋진 비행으로 하늘을 수놓는 세계 최강의 영국 공군 곡예비행단인 '레드 애로우스'(Red Arrows)가 아닌 한 마리의 갈매기.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단어인 포토밤(photobomb)은 다른 사람의 사진 촬영을 방해하는 행위를 뜻한다. 한 가족 사진에 갑자기 동물 한마리가 나타나 절묘하게 포착된 것이 그 예. 이번 포토밤은 곡예 중인 비행단의 사진을 촬영하던 한 카메라에 가까이 지나가던 갈매기가 우연히 잡힌 것이다. 이 사진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영국 웨일스에서 열린 '랜디드노 에어쇼'에서 우연히 포착됐으며 촬영자는 여대생 제이드 콕슨(18)이다. 콕슨은 "정말 절묘한 순간에 갈매기가 포착돼 깜짝 놀랐다" 면서 "다음날 SNS에 사진을 올렸는데 무려 100만 번 이상 공유됐다" 며 기뻐했다. 이어 "이날 사진 속 갈매기는 완벽히 '레드 애로우스'의 한 멤버가 됐다" 면서 "마치 행운을 가져다 준 것 같아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프로야구] ‘강펀치’ 터진 날

    [프로야구] ‘강펀치’ 터진 날

    강민호(롯데)가 연타석 대포를 폭발시키며 홈런 선두를 위협했다. 강민호는 24일 부산 사직에서 벌어진 LG와의 KBO리그에서 6-1로 앞선 5회 1사 1루에서 두 번째 투수 임정우의 3구째 144㎞짜리 직구를 통타해 왼쪽 담장을 넘는 연타석 2점 아치를 그렸다. 앞서 4-0이던 3회 1사에서는 임정우의 직구를 받아 쳐 중월 1점포로 연결했다. 사직구장은 올 시즌 4번째 매진을 기록했다. 전날 시즌 13호포를 날린 강민호는 이날 14, 15호포를 기록해 최형우(삼성)와 홈런 공동 2위에 오르며 선두 나바로(삼성)에게 단 1개 차로 바짝 다가섰다. 강민호의 연타석포는 자신의 올 시즌 3번째이자 개인 통산 6번째다. FA(자유계약선수) 대박을 터뜨린 뒤 지난해 16홈런으로 부진해 ‘먹튀’ 오명까지 썼던 그는 올 시즌 몸값을 해내며 홈런왕 경쟁에 본격 뛰어들었다. 전날 오승택의 3연타석포 등 무려 7홈런을 쏘아 올린 롯데는 이날도 홈런을 폭죽처럼 터뜨리며 일찌감치 리드를 잡았다. 1회 아두치가 선제 2점포를 터뜨린 데 이어 2회 김문호가 시즌 마수걸이 대포를 쏘아 올려 3-0으로 앞서갔다. 롯데는 계속된 2사 1, 3루에서 정훈의 2루타로 1점을 더 보탰다. 이후 강민호의 연타석 대포가 불을 뿜으면서 승기를 굳혔다. LG는 롯데 선발 레일리의 구위에 눌리고 연이어 대포를 맞으면서 맥없이 주저앉았다. 레일리는 7이닝 동안 삼진 9개를 낚으며 6안타 2실점으로 막아 4승째를 수확했다. 롯데는 10-3으로 이겨 2연승했고 LG는 2연패했다. KIA는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서 스틴슨의 눈부신 호투와 필의 홈런을 앞세워 삼성을 2-0으로 연파했다. KIA는 2연승했고 삼성은 2연패를 당했다. 선발 스틴슨은 8이닝 동안 6안타 3볼넷 무실점으로 역투했으나 완봉승을 눈앞에 둔 9회 무사 1, 2루를 허용한 뒤 아쉽게 윤석민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윤석민은 대타 진갑용과 박해민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김상수에게 2루타성 큼직한 타구를 맞았으나 우익수 박준태가 몸을 날리면서 걷어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kt는 경기 수원(2번째 매진)에서 한화를 장단 14안타로 두들겨 13-4로 대파했다. kt는 4연패를 끊었고 한화는 시즌 첫 4연승에 실패했다.kt는 2-4로 뒤진 5회 상대의 볼넷 남발과 적시타 등으로 대거 7득점해 단숨에 승기를 잡았다. 연속 3볼넷의 행운으로 맞은 무사 만루에서 김상현의 2타점 2루타와 장성우의 2타점 적시타 등 5안타 4볼넷으로 7점을 뽑아 9-4로 달아났다. 한화 선발 유먼은 4이닝 동안 2안타만 내줬지만 자신의 한 경기 최다인 볼넷 8개를 남발하는 난조를 보였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황교안 조속 인준 vs 철저 검증” 격돌 예고

    “황교안 조속 인준 vs 철저 검증” 격돌 예고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여야의 본격적인 기 싸움이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황 후보자 지명을 ‘국민통합을 포기한 선전포고’로 규정, 송곳 검증을 예고한 새정치민주연합은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인사청문회 준비에 본격 착수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새달 중순 대통령 방미 전 청문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며 방어막 구축에 나섰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22일 “황 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다음주 화요일(26일)에 제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26일 임명동의안을 제출하기로 한 것은 다음달 중순 대통령 방미에 앞서 인준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임명동의안이 제출된 날부터 15일(6월 9일) 안에 청문회를 마쳐야 한다. 새정치연합은 황 후보자를 사실상 ‘부적격’으로 보고 청문회에 당력을 쏟아부을 태세다. 인사청문 TF팀 간사로 우원식 의원을 선임하는 한편 26일까지 청문특위 위원 인선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문재인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통합을 포기한 두 국민 정치, 명백한 선전포고”라며 날을 세웠다. 설훈 의원도 YTN 라디오에서 “(2013년 법무부 장관 청문회 당시)도저히 될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장관들이 탈락되고 나니까 한꺼번에 다 날리기는 힘들다고 해서 행운으로 통과했다”며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정책 검증’과 ‘조속 인준’을 표방한 새누리당은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이 여당 몫이란 점을 최대한 활용해 방어에 나설 계획이다. 4선 중진인 심재철, 이병석, 이주영, 이한구, 정병국 의원 가운데 법조계 출신 이주영 의원이 위원장으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6명의 청문위원은 ‘대야(對野) 전투력’을 고려해 검사 출신 권성동, 박민식 의원 등이 오르내리고 있다. 한편 황 후보자의 전관예우 논란과 관련, ‘익명 기부’ 여부가 또 한 번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2013년 10월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새정치연합 서영교 의원이 “청문회 당시 (대형로펌에서 받은 16억원 중 상당액을)환원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어떻게 됐는가”라고 묻자 그는 “상당한 금액을 기부했다. 드러내고 싶지 않아 익명으로 했다”고 답변했다. 추후 자료로 소명하겠다고 했지만, 서 의원은 “어떤 형태로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재산공개 내역을 보면 황 후보자는 2013년 21억 5688만원에 이어 지난해 21억 2353만원, 올해는 22억 6556만원을 신고했다. 적어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겠다”던 수준의 기부는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황 후보자는 이날 정부과천청사에 출근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수고하십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란 말만 남기고 집무실로 향했다.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되면 직접 대응하지 않고 공보실로 창구를 일원화하기로 했다. 앞서 이완구 전 총리와 문창극 전 후보자가 불필요한 언행으로 구설에 올랐던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해외여행 | 반전매력 덴버 Denver

    해외여행 | 반전매력 덴버 Denver

    Unexpected Denver 미국 로키산맥 위 해발 1,600m에 둥지를 튼 도시, 덴버Denver를 만났다. 로키의 웅장함만 기대하며 찾아갔다가 통통 튀는 젊은 도시의 반전매력에 무장 해제되고 말았다. 풍선껌의 추억으로 시작한 여행 나에게 ‘덴버’라는 이름은 어릴 적 즐겨 씹었던 ‘내 친구 덴버’ 풍선껌으로 익숙하다. 귀여운 공룡 판박이 스티커로 포장된 풍선껌 하나에 50원이었다. 콜로라도주관광청 마이클Michael Driver에게 이 이야길 했더니 실제로 미국에 ‘마지막 공룡 덴버Denver, the Last Dinosaur’라는 만화영화가 있었고 덴버가 공룡 화석으로 유명한 지역이라고 알려준다. 그게 내가 실제 덴버에 대해 처음으로 접한 정보다. 그 정도로 생소했단 이야기다. 덴버는 미국 서부 콜로라도주의 주도다. 해발 1,600m(1마일)에 자리해 있다. 1마일 높이에 있다는 의미로 ‘마일하이시티Mile High City’라고 부른다. 이 높은 곳에 도시가 생길 수 있었던 건 금 때문이다. 1858년 금광 캠프가 설립된 뒤 행운을 캐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신흥도시로 발달했다. 오늘날 덴버는 개성 있는 미술관과 수제맥주 브루어리, 화려한 나이트라이프가 가득 채웠다. 덴버와 그 옆 도시 포트콜린스Fort Collins의 통통 튀는 매력을 만나고 돌아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덴버의 놀이터 Life Style 덴버 유행 따라잡기, 여기서 시작 오늘날 덴버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한눈에 보려면 유니온스테이션Union Station을 찾아가면 된다. “유니온스테이션은 1881년부터 100년 넘게 덴버 교통의 허브 역할을 해 왔어요. 작년 여름부턴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죠.” 콜로라도주관광청 리디아Lydia Cheng가 설명했다. ‘기차역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라고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선 순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딱 봐도 특색 있는 상점들과 세련된 인테리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금빛 조명과 푹신한 갈색 소파, 클래식한 소품들로 꾸며진 라운지는 몇 시간이고 앉아 책을 읽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큼지막한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역 안 가득 따뜻한 분위기를 더했다. “새롭게 문을 연 유니온스테이션의 2~4층엔 112개의 객실로 구성된 크로포드호텔The Crawford Hotel이 들어섰어요. 1층엔 콜로라도 출신 셰프 소유의 레스토랑들과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 디저트가게, 커피숍, 꽃집, 로컬상점 등이 입점했고요.” 그렇다고 유니온스테이션이 ‘교통 허브’ 기능을 버린 건 아니다. 암트랙Amtrack, RTD 등 버스·기차 노선과 무료 셔틀버스 등이 여전히 유니온스테이션을 지나고 있다. 2016년엔 덴버국제공항과 유니온스테이션을 30분 만에 주파하는 철도 서비스도 시작될 예정이다. 덴버의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하는 또 한 곳, 16번가 쇼핑몰 거리다. 노천카페와 레스토랑, 다양한 상점들이 16km 넘게 죽 늘어서 있다. 놀라운 점은 매일 새벽 5시부터 이튿날 새벽 1시까지 무료셔틀버스16th Street Free Mall Ride를 운행한다는 사실. 무료셔틀버스 외 다른 차량은 16번가 도로에 진입이 금지되어 있어 길이 막힐 일도 없다. 공원도 스케일이 달라 서울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러 한강을 찾듯, 덴버 사람들이 찾는 곳이 있다. 바로 레드록스공원 & 공연장Red Rocks Park & Amphitheater이다. 거대한 붉은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이곳은 덴버 시민들의 운동 장소로 인기다. 관중석으로 쓰이는 계단을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좌우로 달리며 하체 근육 단련을 하는 사람들의 진풍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자전거를 타고 공원까지 달려와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람들, 나란히 앉아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그 속에 섞여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넋 놓고 보고 있는데 마이클이 말을 걸었다. “기회가 된다면 여름철에 다시 와요.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세계적인 록그룹과 오페라,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즐길 수 있거든요.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지 않나요?” 1900년대부터 비틀즈, 존 덴버, 스눕독 등 다양한 장르의 세계 정상급 가수들이 이곳에서 공연했다고. 레드록스 홈페이지에 1년 치 공연 스케줄이 모두 나와 있으니 꼭 보고 싶은 공연이 있다면 미리 예약하는 것이 현명하다. 밤새도록 깨어 있어도 좋아 이태원 인근으로 이사한 뒤부터 클럽의 재미를 알았다. 덴버에서의 밤을 호텔방에서 맥주만 홀짝이며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이유다. 금요일 밤 11시, 덴버 다운타운 거리는 서울처럼 환했고 여기저기서 신나는 음악과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덴버는 나이트라이프Night Life로 유명해요. 밤늦도록 문을 여는 바, 클럽이 많으니 한번 경험해 보세요!” 리디아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을 꼬드겨 클럽행을 감행했다. 가장 ‘핫’하다는 클럽에선 여권을 챙겨가지 않아 퇴짜 맞고, 대충 보아 사람이 많아 보이는 다른 클럽에 입장했다. 한참 놀다가 알았지만 거긴 한국의 8090 추억의 가요 클럽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누가 봐도 여행자 몰골(?)인 우리를 여권 없이 입장시켜 주었는지도. 어찌되었든 덴버에 갔다면 클럽도 좋고 바도 좋으니 나이트라이프를 경험해 보기를 권한다. 댄스, 코미디, 라이브음악 등 선택지도 다양하다. 단 클럽 입구에서 퇴짜 맞지 않으려면 여권과 클럽용(?) 복장을 갖추시길. 유니온스테이션 1701 Wynkoop, Denver unionstationindenver.com 레드록스공원 & 공연장 Red Rocks Amphitheatre, 18300 West Alameda Parkway, Morrison www.redrocksonline.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맥주의 나파밸리 Craft Beer “어서 와, ‘맥주의 나파밸리’는 처음이지?” 콜로라도주는 미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맥주 애호가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1860년대부터 시작된 ‘브루잉Brewing’ 문화는 수많은 브루어리를 탄생시키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1980년대부터는 소규모 수제맥주 브루어리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맥주의 종류와 특색도 더욱 다양해졌다. “덴버 시내에서만 매일 200가지 넘는 종류의 크래프트 비어가 만들어져요. 매주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가 탄생하고 있죠. 거리마다 탭하우스, 브루펍, 개스트로펍 등이 넘쳐나요. 콜로라도를 ‘맥주의 나파밸리Napa Valley of Beer’라고 부르는 이유예요.” 덴버도 좋지만 사실 콜로라도주에서 크래프트 비어로 가장 유명한 도시는 따로 있다. 덴버에서 자동차로 1시간 15분 거리에 있는 포트콜린스Fort Collins다. 인구 15만의 아기자기한 이 도시에서 콜로라도주 전체 맥주 생산량의 70%가 만들어진다. “콜로라도주에 약 300개의 브루어리가 있고, 그중 포트콜린스에 있는 건 약 16개뿐이에요. 적은 브루어리 숫자에 비해 생산량이 많은 건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브루어리가 2개나 있기 때문이죠.” 뉴벨지움브루어리New Belgium Brewery는 미국에서 3위, 오델브루잉컴퍼니Odell Brewing Company는 미국에서 5위 규모라고. 포트콜린스는 CNN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0위권에 꾸준히 들어 온 도시이기도 하다. 자전거 문화가 발달해 어딜 가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포트콜린스를 찾아간 첫날 저녁, 핑크빛 석양이 아름답게 내려앉은 ‘올드타운Old Town’을 걸었다.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랜드의 영감을 받았다는 하늘색 지붕 건물과 로컬디자이너들의 의류·액세서리·인테리어소품숍, 80년 역사의 베이커리 카페와 캐주얼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이 오밀조밀 모여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New Belgium Brewery ‘뉴 벨기에’에서 맛보는 11가지 맥주 ‘뉴벨지움브루어리’의 첫인상은 이랬다. 야외 테라스 옆에 일렬로 주차된 자전거, 맥주잔 하나씩 손에 들고 대화삼매경에 빠진 젊은이들, 아이를 데려와 맥주를 즐기는 가족, 빨간 푸드트럭과 손 글씨 메뉴판, 얼굴에 함박웃음을 띤 채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 미국 소도시의 즐거운 맥주 문화가 한 장면에 다 녹아 있었다. 뉴벨지움은 포트콜린스에서 가장 인기 있고 규모가 큰 브루어리다. 미국 전체에서 3위에 꼽히는 생산량을 자랑한다. 이 브루어리의 이름이 ‘새로운 벨기에New Belgium’가 된 배경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우리의 브루어리 투어 가이드로 나선 케빈Kevin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뉴벨지움브루어리의 설립자 제프Jeff의 원래 직업은 전기엔지니어였어요. 여가시간에 집에서 맥주 만드는 것을 즐기던 그는 1988년 산악자전거 한 대를 가지고 벨기에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3주 동안 자전거를 타고 맥주로 유명한 마을의 브루어리와 펍을 찾아다니며 ‘맥주 투어’를 했어요. 제프는 여행을 마친 뒤 다시 엔지니어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의 아내 킴Kim이 그를 설득했죠. ‘당신은 엔지니어 일을 할 때보다 맥주를 만들 때 훨씬 행복해 보여요. 당신의 훌륭한 맥주를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브루어리 사업을 해 보는 게 어때요?’라고요. 제프는 엔지니어를 그만두고 맥주 양조에만 전념하기 시작했고 1991년 6월29일 정부에서 브루어리 사업 자격을 취득했죠. 그날이 뉴벨지움브루어리가 탄생한 날입니다.” 이 브루어리의 이름이 ‘뉴벨지움’인 것, 로고가 자전거인 것, 최고 인기 맥주의 이름이 ‘팻 타이어Fat Tire’인 것은 그 배경에 이러한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뉴벨지움브루어리에서는 하루 11회(1회당 정원 약 25명)의 퍼블릭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투어에 참가하면 이곳에서 만든 수제맥주를 마음껏 맛보고, 직접 탭을 당겨 맥주를 따라 보고, 맥주 양조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뉴벨지움의 역사와 경영 철학에 대한 실감나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맥주를 즐기러 온 사람들과 투어 참가자들을 합해 매일 400~500명이 이곳을 찾아온다고. 뉴벨지움브루어리 500 Linden Street, Fort Collins newbelgium.com 맥주 테스터 USD1.50, 16온스 1잔 USD4 ●친근한 거리예술의 도시 Art 16색 물감 팔레트 같은 도시 덴버에서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을 만나기 위해선 특별한 운이 따르지 않아도 된다. 365일 중 300일 맑은 날씨가 이어지기 때문. 이 도시의 파란 하늘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건 거리 곳곳의 공공예술작품들이다. 곰, 말, 버팔로 등 동물을 모티브로 한 색색의 개성 있는 작품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덴버는 시 예산의 일부를 공공예술에 투자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어요. 모든 공공건물은 의무적으로 옥외 예술작품을 설치해야 하죠. 덴버의 명물이 된 블루베어작품명 ‘I See What You Mean’도 그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죠.” 덴버의 예술을 대표하는 장소는 ‘덴버미술관Denver Art Museum’이다. 1893년 문을 연 이 미술관은 세계 최대 규모의 아메리칸인디언 예술품 컬렉션을 포함해 6만8,000여 점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로키마운틴의 뾰족한 산봉우리를 본뜬 미술관 건물도 볼거리다. ‘히스토리콜로라도센터History Colorado Center’에선 콜로라도 역사 관련 전시품을 직접 만지고 눌러 보고 올라타 보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다. 또 세계적 추상화가 클리포드 스틸Clyfford Still의 작품 2,400여 점을 볼 수 있는 ‘클리포드스틸미술관Clyfford Still Museum’, 1,600여 마리의 나비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덴버보태닉가든Denver Botanic Gardens’ 등이 각기 다른 매력으로 여행자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마일하이컬처패스Mile High Culture Pass’를 이용하면 할인된 요금으로 관람할 수 있다. 덴버미술관 Denver Art Museum, 100 W 14th Ave Pkwy, Denver www.denverartmuseum.org 화·수·목·토·일요일 10:00~17:00, 금요일 10:00~20:00, 월요일 휴관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히스토리콜로라도센터 History Colorado, 1200 Broadway, Denver www.historycolorado.org 매일 10:00~17:00 마일하이컬처패스Mile High Culure Pass 덴버의 7개 어트랙션 중 원하는 것을 골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패스. 3일 동안 3개 어트랙션을 이용할 수 있는 ‘3일 패스’는 USD25(USD12 할인). 5일 동안 7개 어트랙션을 이용할 수 있는 ‘5일 패스’는 USD52.80(USD25 할인). 클리포드 스틸 뮤지엄Clyfford Still Museum, 덴버미술관Denver Art Museum, 덴버보태닉가든Denver Botanic Gardens, 덴버자연사박물관Denver Museum of Nature & Science, 덴버동물원Denver Zoo, 히스토리콜로라도History Colorado Center, 커클랜드미술관Kirkland Museum of Fine & Decorative Art에서 이용 가능하다. www.MileHighCulturePass.com ▶travel info Denver AIRLINE 우동 한 그릇 ‘뚝딱’ 하고 드림라이너, 어때? 현재 한국에서 덴버로 가는 직항은 없다. 가장 빠른 길은 유나이티드항공UA의 인천-나리타-덴버 노선이다. 나리타에서의 경유 시간은 약 2시간. 일본에서 먹어야 가장 맛있다는 우동 한 그릇 ‘뚝딱’ 하고 면세점에서 일본 생초콜릿 몇 개 사고 나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나리타-덴버 노선에선 보잉사 항공기종 중 으뜸이라는 ‘B787 드림라이너’가 운항한다. 드림라이너는 쾌적한 기내환경을 제공하는 기재로 알려져 있는데, 창문 크기가 타 항공기보다 30% 더 크고 천장 높이도 15~20cm 높다. 타 항공기보다 기내 압력이 낮고 습도가 높아 피곤함과 건조함이 덜한 것도 장점이다. 비행 소요 시간은 인천에서 나리타까지 2시간 15분, 나리타에서 덴버까지 10시간 35분. www.kr.united.com Hotel ‘팝아트’ 같은 호텔 커티스The Curtis 덴버 다운타운 심장부에 위치한 개성 강한 호텔. 알록달록한 인테리어와 독특한 그림, 소품들이 ‘팝아트’ 속에 들어간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체크인 할 때 달달한 초콜릿쿠키와 호텔 근처 스타벅스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료 커피 쿠폰을 하나씩 나눠 준다. 근처에 밤 늦게까지 문을 여는 펍과 클럽이 많아 교통편 걱정 없이 놀 수 있다. 1405 Curtis Street, Denver www.thecurtis.com 캠핑 온 듯 즐겨 봐 캔들우드 스위트Candlewood Suites 모든 객실이 스위트로 구성된 콘도형 호텔이다. 부엌에는 큼지막한 냉장고와 널찍한 조리 공간, 식탁, 각종 조리도구와 식기가 깔끔하게 갖춰져 있다. 호텔 바로 앞에 대형 마트가 있어 장을 보기도 쉽다. 객실에 갖춰진 물품 외에 보드게임, 믹서기, 바비큐 시설 등을 호텔에서 대여할 수 있다. 2014년 12월2일에 문을 연 따끈따끈한 신상 호텔이라 더 깨끗하다. 314 Pavillion Lane, Fort Collins CandlewoodSuites.com Restaurant ‘핫’한 멕시칸 레스토랑 타마요Tamayo 요즘 덴버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멕시코 퓨전 레스토랑. 멕시코에서 성장한 미국의 유명 셰프 리차드Richard Sandoval의 여러 레스토랑 중 하나다. 감칠맛 나는 아보카도소스, 살사소스에 찍어 먹는 나초가 일품이다. 마가리타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1400 Larimer Street, In Larimer Square, Denver www.richardsandoval.com/tamayo 스테이크와 함께 수제맥주 한잔 메인라인Mainline 포트콜린스 올드타운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맛있는 수제맥주와 함께 스테이크, 베이비백립, 감자튀김 등 전형적인 미국음식을 맛볼 수 있다. 가격도 참 착하다. ‘라지 플레이트’에 속하는 메뉴인 뉴욕스트립 스테이크가 USD22, 베이비백립 하프사이즈 USD12 등이다. 다양한 종류의 생맥주는 1잔당 USD5. 125 South College Ave, Fort Collins www.mainlinefoco.com Shopping 명품부터 미국 브랜드까지 한곳에 체리 크릭Cherry Creek 세포라, 아베크롬비, 코치, 갭 등 인기 미국 브랜드부터 오메가, 루이비통, 티파니, 버버리 등 명품까지 160개 매장이 한곳에 모인 대형 쇼핑센터다. 여행객들에게 제공하는 ‘쇼핑 패스포트Passport to Shopping’를 이용하면 60여 개 매장에서 추가 할인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 3000 East First Avenue, Denver 월~토요일 10:00~21:00 일요일 11:00~18:00 shopcherrycreek.com 글·사진 고서령 기자 취재협조 유나이티드항공 www.kr.united.com, 콜로라도관광청 www.colorado.com
  • 자고 나면 신세계 ‘뱃길 6500리’

    자고 나면 신세계 ‘뱃길 6500리’

    자고 나면 날마다 낯선 곳, 낯선 나라다. 이동할 때마다 짐을 싸고 푸는 번거로움도 없다. 기항지에 도착하면 빈손으로 내렸다가 출항하기 전까지만 다시 올라타면 된다. 새 기항지를 돌아볼 의사가 없으면 내리지 않아도 된다. 선실에서 쉬거나, 수영을 즐기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만끽하면 그뿐이다. 그게 크루즈(Cruise) 여행이다. 여행에 앞서 두 가지를 꿈꿨다. 거대한 혹등고래든, 돌고래떼든 먼바다를 유영하는 바다 생물들과 나란히 달려보는 것, 그리고 쏟아지는 별빛 맞으며 수영을 즐기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꿈은 꿈으로 끝났다. 혹등고래는 신기루와 같았고, 구름 낀 하늘은 별빛을 가렸다. 그렇다고 아쉬울 건 없다. 가슴 짠하게 만드는 풍경은 이뿐 아니었으니까. 선상에서의 첫 아침. 게슴츠레 눈 뜨니 발코니 너머로 물새 한 마리가 난다. 꿈결 같은, 그로테스크한 풍경이다. 저 새는 이 먼바다까지 어떻게 날아왔을까. 일어나보니 배 아래로 수십 마리의 바닷새가 날고 있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바닷새들의 목적은 자명했다. 거대한 배가 바다를 헤칠 때마다 놀라 이리저리 달아나는 물고기들을 노리는 것이다. 물새들의 자맥질 솜씨는 현란했다. 기류를 따라 힘들이지 않고 비행하다 먹잇감이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싶으면 총알처럼 물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바다 위 여정은 그렇게 바닷새들과의 동행으로 시작됐다. 여정의 출발지는 중국 상하이다. 전체 운항일정은 중국 톈진에서 인천과 상하이, 일본 오키나와, 대만 등을 거쳐 홍콩까지 가는 14박 15일짜리다. 한데 앞부분은 생략하고 중간 기항지인 상하이에서 승선, 오키나와, 타이베이(지룽), 가오슝을 거쳐 홍콩에서 하선하는 6박 7일 일정으로 여정에 합류했다. 애초 일정은 오후 9시 30분에 상하이 크루즈터미널에서 출항하는 것이었다. 여유 있게 한 시간 전에 승선한다 쳐도 오후 8시 30분까지는 여유가 있다. 예컨대 오전 열 시쯤 상하이에 도착하도록 항공 편을 조정한다면 10시간 30분 정도 상하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심한 교통정체를 고려해, 상하이 푸동공항에서 크루즈터미널까지는 1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여기에 복잡한 승선절차까지 포함하면 여유 있게 2시간은 제외하는 게 좋다. 그리고 남은 8시간 정도 알차게 상하이를 돌아볼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면 된다. 한데 돌발변수가 생겼다. 상하이 해안에 짙은 안개가 끼어 항구가 잠정 폐쇄된 것이다. 출항일도 이튿날로 미뤄졌다. 상하이에서 승선하려던 승객은 물론, 하선 승객에게도 날벼락이다. 꼼짝없이 상하이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이런 경우 선사에서 시내 숙소까지 왕복 교통 편과 숙박비를 제공하고 승객은 식사와 관광을 해결하는 게 일반적이다. 여기에 선사 측에서 사과 겸 식사비 조로 100달러의 온 보드 크레디트까지 추가 제공했다. 뭍에서는 소용없는 온 보드 크레디트이지만, 배 위에서는 현금이나 다름없으니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느닷없이 맞게 된 상하이의 밤. 최고의 밤나들이 코스는 단연 와이탄(外灘)이다. 상하이 야경 감상의 최적지라는 곳. 와이탄은 상하이 현대사의 상징적 장소다. 아편전쟁 패배로 상하이가 개항하면서부터 와이탄 일대에 외국인들이 세운 고층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때 세워진 석조 건물들은 아직도 호텔이나 은행, 공공기관의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와이탄 맞은 편, 그러니까 황푸(?浦) 강 건너는 푸동지구다. 저 유명한 동팡밍주뎬스타(東方明珠電視塔), 궈지후이중신(國際會議中心) 등의 마천루들이 빼곡하게 서 있다. 밤이 되면 건물마다 조명을 켜 더없이 현란한 풍경을 펼쳐낸다. 이튿날 종일 항해다. 이른바 시 데이(sea day)다. 심심할 듯도 하지만, 선내 여러 시설들을 돌다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3일째 오후 사파이어호가 일본 최남단의 오키나와 나하항에 도착했다. 얼추 20층 가까운 ‘집채만한’ 배가 작은 항구에 정박하는 장면은 승객이나 현지인에게나 꽤나 볼 만한 구경거리다. 하지만 아쉽게도 기항지 관광은 할 수 없었다. 상하이에서 일정이 뒤엉킨 탓이다. 밤을 도와 달린 사파이어호는 4일째 되던 날 대만 지룽(基隆)항에 닿았다. 대만 5대 항구 중 하나로, 수도 타이베이에서 북쪽으로 40분 거리다. 16세기 일본 해적의 본거지였다가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그리고 다시 일본이 점령하기를 반복한 항구도시다. 여기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쓸 수 있는 시간은 6시간 남짓. 수도 타이베이나 지질공원 예류 등 유명 여행지가 퍼뜩 떠오른다. 요즘 한창 타이베이 근교 여행지로 각광받는 지우펀도 유력한 카드다. 지우펀은 일제강점기인 1920~1930년대 금광 채굴로 번성을 누리던 도시다. 광산 폐광 후 쇠락한 시골 마을로 전락했지만 대만 영화 ‘비정성시’에 이어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거푸 소개되면서 단박에 관광명소로 발돋움했다. 지우펀 들머리는 ‘지산제’(基山街)’라는 골목길이다. 구불구불 비탈길을 따라 예스러운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지산제의 건물 대부분은 땅콩아이스크림이나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들이다. 추억의 향기는 온데간데없고, 골목 여기저기서 돈 냄새만 진동하는 듯하다. 외려 지우펀까지 오는 동안 만나는 시골마을의 풍경이 더 정겹다. 지우펀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수치루’(竪崎路)다. 좁고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전망 좋고 분위기 좋은 찻집들이 줄지어 있다. 광부 동상이 세워진 곳도 바로 여기다. 지우펀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지만, 관광객 대부분은 찻집에만 시선을 둘 뿐, 볼품없는 광부상은 스쳐 지나고 만다. 지우펀을 찾는 가장 좋은 시간대는 저녁 무렵이다. 오후 6시 30분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찻집마다 홍등을 켠다. 이 시간이면 수많은 인파가 몰려 발 디딜 틈 없이 북새통을 이룬다. 5일째 기항한 곳은 가오슝(高雄)이다. 대만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도시로 경제, 무역의 중심지다. 우리의 부산과 비슷하다. 현지인들은 가오슝을 흔히 ‘사랑의 도시’라 부른다. 아이허(愛河)라는 로맨틱한 이름의 강이 빌딩 숲 사이를 유유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밤만 되면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고 서로를 품에 안는 이벤트가 강 곳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부디 ‘솔로’들은 피하시길. 가오슝에서 가장 이름난 관광지는 리엔츠탄(蓮池潭) 풍경구다. 시내 북쪽에 있는 호수로, 농경을 목적으로 조성됐다. 리엔츠탄 풍경구의 명물은 7층 높이의 쌍둥이 탑, 용호탑(龍虎塔)이다. 각각의 탑 입구엔 용과 호랑이 조각상이 입을 벌리고 있다. 꼭 기억할 건 용의 입으로 들어가서 호랑이 입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행운이 오고 화를 피할 수 있다는 ‘전설’ 때문이다. 가오슝의 랜드마크인 85빌딩, 옛 기차역 자리에 조성한 보얼예술특구 등도 돌아볼 만하다. 리우허(六合) 야시장도 빼놓을 수 없다. 야시장 문화가 발달한 대만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명소다. 샤오츠(小吃, 주전부리)를 입에 물고 설렁설렁 걷기 좋다. 홍콩은 크게 홍콩 섬과 침사추이, 카우롱 반도로 나눌 수 있다. 스타의 거리, 최고의 전망대 빅토리아 파크, 노천시장 레이디스 마켓, 그림 같은 산책로 침사추이 해안, 식식위엔 윙타이신 사원, 홍콩 식민시대의 유산 시계탑, 대형 해양 테마파크 홍콩오션파크 등이 명소로 꼽힌다. 마지막 날 아침 크레이그 스트리트(영국) 선장이 여행 통계를 전했다. 상하이에서 홍콩까지의 총거리는 1378해리(nautical mile)였다. 1해리는 1852m이니 총 2552여㎞를 항해한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상하이~오키나와 461해리(약 854㎞), 오키나와~지룽(대만) 333해리(약 617㎞), 지룽~가오슝(대만) 243해리(450여㎞), 가오슝~홍콩 341해리(약 632㎞)였다. 우리 전통 단위로는 약 6498.3리(里)다. 이 먼 길을 최저 10.8 노트(시속 20㎞), 최대 20.4 노트(시속 약 37㎞)의 속도로 달렸다. 글 사진 오키나와·지룽·가오슝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팽창, 이렇게 발견됐다! -문제적 엄친아 ‘허블’​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팽창, 이렇게 발견됐다! -문제적 엄친아 ‘허블’​

    인류의 오랜 과학사에서 최대의 과학적 발견 하나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우주팽창'을 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우주팽창의 증거를 발견하여 인류에 고함으로써 20세기 천문학의 최고 영웅이 된 사람은 허블 우주망원경, 허블 법칙 등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미국의 에드윈 허블이다. 그는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적 인물이었다. -허풍스러운 태도의 '20세기 천문학 최고 영웅' 1889년 미국 미주리 주의 마시필드에서 태어난 허블은 한마디로 온갖 행운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변호사이자 보험 대리인이라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부모로부터 높은 지능과 강건한 체질까지 물려받은데다 미남형이라 매력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철철 흘렀다. 허블은 고등학교 시절 육상대표로 7종 경기에서 우승했고, 그밖에도 여러 대회, 여러 종목에서 메달을 수두룩하게 받았다. 공부도 잘했다. 명문 시카고 대학 법학과에 어렵잖게 진학했다. 말하자면 허블은 엄친아 대표선수였다. 대학에서도 발군의 성적을 보인 그는 로즈 장학금을 받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이 유학기간 3년이 허블에게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 이때부터 허블은 늘 정장차림에다 파이프를 입에 물고 멋을 내며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풍스러운 영국식 억양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버릇은 평생 바뀌지 않았다. 천문학 하는 사람 중에 괴짜가 많긴 하지만, 허블도 그런 면에서는 전혀 꿀리지 않는 등급이었다. 아무튼 그런 허블이 어떻게 20세기 천문학계에서 최고의 영웅으로 등극하는 영예를 거머쥐게 되었을까? 가끔 세상에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손대는 일마다 떡 먹듯이 성공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있는 법이다. 불공평하게 보이고 배 아픈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허블이 바로 그런 인간형이었다. 1913년 귀국해서 잠시 변호사 협회에 이름을 걸어놓은 허블은 얼마 후 돌연 하던 일을 접고 시카고 대학 천문학과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훗날 허블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문학은 성직과도 같다. 소명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루이스빌에서 1년 동안 법률업무에 종사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 소명을 받았다.” 뒤늦게 시작한 천문학이었지만 그는 뛰어난 머리와 약간의 노력으로 밀린 공부를 따라잡아 1917년 천문학 박사학위를 손에 쥐었다. 졸업 후 은사인 조지 헤일의 추천으로 윌슨 산 천문대에서 일하려던 허블의 계획은 뜻하지 않은 일로 취소되었다. 미국이 뒤늦게 1차대전에 뛰어들었던 탓이다. 육군 장교로 지원한 허블은 전투에서 오른팔에 부상을 입은 덕으로 소령으로 특진되었다. 그 역시 허블에게는 자랑거리였다. 평생 소령 칭호를 입에 달고 살았다니까. -무시받던 '희미한 빛뭉치'에 꽂히다 전선에서 돌아온 허블은 1919년 30살 때 짐을 꾸려서 윌슨 산으로 들어갔다. 말 그대로 입산이었다. 해발 1,800m 산꼭대기에 있는 윌슨 산 천문대에는 당시 세계 최대인 2.5m 후커 반사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노새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한나절이나 걸려서야 도착할 수 있는 외진 곳이라 생활은 고행이었고, 일과는 고달팠다. 그럼에도 수십 명의 천문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그들은 추운 겨울에도 관측대 위에 앉아 온밤을 지새웠다. 거대한 반사망원경을 조그마한 손잡이를 돌려 조절하며, 렌즈의 십자선을 응시하면서 최고 12시간을 버텨야 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도, 난방기구를 이용할 수도 없었다. 망원경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연구원 숙소에 여자가 머무는 것은 금지되었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그곳을 수도원이라 불렀다. '수도원 원장'인 조지 헤일은 천체물리학은 모든 잡념을 버린 남자만이 전념할 수 있는 분야라고 일찍이 설파했다. 윌슨 산 꼭대기에서 허블은 먼 우주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성운들을 향해서 망원경의 주경을 겨누고는, 사진을 찍고 스펙트럼을 찍기 시작했다. 그것은 때로는 열흘 밤을 꼬박 지새워야 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허블은 소년 시절에 할아버지의 망원경으로 별보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퍼시벌 로웰의 화성 이야기를 들으며 우주로의 꿈을 키워왔다. 허블의 박사논문 주제는 ‘희미한 성운’이었다. 주류 천문학자들은 밝은 별과 행성, 혜성에 연구할 주제가 얼마든지 있는데 무엇하러 그런 희미한 빛뭉치를 연구한다 말인가 하고 의아해했다. 하지만 허블의 깊은 관심은 늘 그 희미한 빛뭉치인 성운에 있었다. ‘저 가스 구름들은 과연 우리 은하 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은하 바깥을 떠도는 별들의 도시인가?’ 라틴 어로 '안개'를 뜻하는 성운(nebula)은 20세기 초만 해도 정말 안개에 가려진 천체였다. 허블의 머리속에는 늘 성운에 대한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허블이 윌슨 산에 오자마자 대망원경의 주경을 성운 쪽으로 돌린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건달에 가까운 노새 몰이꾼 휴메이슨 이 대목에서 우리는 또 한 사나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허블의 조수였던 그 사내 역시 천문학사에서는 전설이 되어 있는 존재이다. 그는 원래 노새 몰이꾼이었다. 이름은 밀턴 휴메이슨, 나이는 허블보다 2살 아래였다. 윌슨 산 천문대로 장비나 생필품을 운반하는 잡일꾼으로 일했던 휴메이슨은 학교는 일찌감치 중2 때 때려치우고, 당구와 도박, 여자 후리기에 한가락하는 사내로, 좋게 말하면 한량, 나쁘게 말하면 건달이었다. 그런데 머리가 영리하고 호기심도 풍부한데다, 도박으로 다져진 눈썰미와 손재주, 머리회전에 힘입어, 천문대의 각종 장비와 기계에 대해 질문하고 익히고 하는 새에 어느덧 엔지니어 비슷한 수준까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야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휴메이슨의 놀라운 변신이 펼쳐진다. 야간 관측 보조원이 병결했는데, 대타로 투입할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귀한 망원경을 놀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천문대에서는 하룻밤 공칠 요량을 하고 휴메이슨에게 대타로 뛰어볼 용의가 없느냐고 제안했다. 그 업무는 거대한 덩치인 망원경을 다룰 뿐만 아니라 천체사진까지 찍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날 밤 휴메이슨은 임시직 관측 보조원이 되어 왕년에 트럼프 장 다루듯이 거대 망원경을 능숙하게 다루는 솜씨를 자랑했다. 그뿐인가, 천문대 연구원들은 휴메이슨이 찍어놓은 은하 스펙트럼들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선명한 화질이 일급 전문가의 솜씨였던 것이다. 이 일로 그는 천문대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어 허블의 조수가 되었다. 중학 중퇴로 천문대에 정식직원이 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 중학 중퇴 건달과 허풍기 있는 천문학 박사는 만나자마자 악동들처럼 서로 죽이 잘 맞았다. 휴메이슨은 일을 시작하자 이내 양질의 은하 스펙트럼을 얻는 데 어떤 천문학자보다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고, 나중엔 '휴메이슨 혜성'을 발견하는 등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겨 완벽한 천문학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건달에서 천문학자로의 놀라운 변신이었다. 1923년 10월 어느 날 밤, 마침내 허블은 생애 최고의 사진을 찍었다. 그는 2.5m 반사망원경을 이용해 안드로메다 대성운으로 알려진 M31과 삼각형자리 나선은하 M33의 사진을 찍었다. 며칠 후 안드로메다 성운 사진 건판을 분석하던 허블은 갑자기 “유레카!” 하고 크게 외쳤다. 성운 안에 찍혀 있는 변광성을 발견한 것이다. 1912년 헨리에타 리빗이 변광성의 주기와 밝기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우주를 재는 표준 촛불로 삼아,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하늘의 잣대를 제공한 바 있었다. 리빗의 발견을 잘 알고 있던 허블은 안드로메다 변광성의 주기를 측정해본 결과 31.4일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여기에다 리빗의 자를 들이대어 지구까지의 거리를 계산해보니 놀랍게도 93만 광년이란 답이 나왔다. 우리 은하 크기보다 10배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단순히 나선 모양의 성운으로 알고 있었던 안드로메다는 사실 우리 은하를 까마득히 넘어선 곳에 있는 독립된 나선은하였다. 칸트의 섬우주론이 200 년 만에 완벽히 증명된 셈이었다. 이로써 인류 역사상 가장 먼 거리를 측정했던 허블은 새로운 우주공간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던 것이다. 당시 천문학계는 우리은하의 크기를 놓고 '대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은하가 우주 전체다', '우리은하 외에도 많은 은하들이 있을 것이다'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뒤늦게 나타난 신출내기 천문학자가 그 판정을 내려주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 하나의 발견으로 허블은 일약 천문학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허블의 계산은 참값보다 큰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현재 알려진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는 그 두 배가 넘는 250만 광년이다. 밤하늘에서 빛나는 모든 것들이 우리 은하 안에 속해 있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발견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갑자기 우리 태양계는 조그만 웅덩이 정도로 축소되어버리고, 태양은 우주라는 드넓은 바닷가의 한 알갱이 모래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되었다. 허블의 발견 이후 은하들 뒤에 다시 무수한 은하들이 늘어서 있는 무한에 가까운 우주임이 드러났다. 인류에게 이것은 근본적인 계시였다. -하늘도 불안정하다! 은하를 추적하는 허블의 망원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후 6년 동안 허블과 그의 조수 휴메이슨은 은하들의 거리에 관한 데이터들을 모으느라 춥고 긴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과학자들은 은하들이 제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12년, 로웰 천문대의 베스토 슬라이퍼는 은하 스펙트럼에서 적색이동을 발견하고, 은하들이 엄청난 속도로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허블은 슬라이퍼의 연구를 기초로 삼고, 그 동안 24개의 은하를 집요하게 추적해서 얻은 자신의 관측자료를 정리하여 거리와 속도를 반비례시킨 표에다가 은하들을 집어넣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하나 드러났다.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은하는 후퇴하고 있다. 먼 은하일수록 후퇴속도는 더 빠르다. 그리고 은하의 이동속도를 거리로 나눈 값은 항상 일정하다. 이것이 허블 법칙이다.(사실 허블-휴메이슨 법칙이라 불러야 공평하다) 훗날 이 상수는 허블 상수로 불리며, 'H'로 표시된다. 허블 상수는 우주의 팽창속도를 알려주는 지표로서, 이것만 정확히 알아낸다면 우주의 크기와 나이를 구할 수 있다. 그래서 허블 상수는 우주의 로제타 석에 비유되기도 한다. 허블과 휴메이슨의 발견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여러 세기 동안 과학자들을 괴롭혀왔던 올베르스의 역설도 이로써 우주팽창이라는 정답을 얻은 셈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허블 자신까지 포함해서 이것이 우주의 기원과 연관되어 있으며, 모든 것의 근본을 건드리는 심오한 문제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묘하게도 죽이 잘 맞았던 이 덤앤더머 커플이 인류를 우주 기원의 순간으로 데려갈 이론적 토대를 닦았던 것이다. 이는 20세기 천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받아들여졌다. 1929년, 이 사실이 발표되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사람들에게 던져주었다. 이 우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으며,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 세상에 고정되어 있는 거라곤 하나도 없다는 이 현기증 나는 사실에 사람들은 황망해했다. 최초로 인류가 지구상을 걸어다닌 이래 우리 인간사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는 하늘조차도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대우주였다. -허블의 유해는 어디에? 허블은 죽을 때까지 열성적으로 은하를 관측했다. 1953년 허블은 팔로마 산 천문대의 지름 5m의 거대 망원경 앞에서 며칠 밤을 새워 관측할 준비를 하던 중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졌다. 대천문학자다운 열반이었다. 향년 64세. 코페르니쿠스 이후 천문학의 발전에 최대의 공헌을 한 허블의 업적은 노벨 상을 뛰어넘는 것이지만, 허블은 상을 받지 못했다. 노벨 물리학상이 천문학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늦게 규정이 바뀌어 허블에게도 상을 주기로 결정했지만, 이번엔 상을 받을 사람이 없었다. 허블이 죽은 지 3개월 뒤였던 것이다. 노벨 상은 고인이 된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상을 받으려면 업적 못지않게 수명도 중요한 변수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죽은 뒤에도 허블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허블의 유언에 따른 거라는 설도 있지만, 그의 부인 그레이스는 장례식과 추도회를 모두 거부했다. 그리고 남편의 유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서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천문학자였던 허블의 행방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되는 바람에 허블을 추념하려면 우주공간에 떠 있는 허블 망원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1990년 우주 공간으로 쏘아올려진 우주망원경에 허블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그의 이름이 붙여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구 중심 궤도를 95분마다 한 바퀴씩 돌며 먼 우주를 담아 보내고 있는 허블 우주망원경은 지난 4월 24일로 관측 25주년을 맞았으며, 2018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발사될 때까지 계속 운용될 전망이다. 마지막 허블의 말로 이 글을 접기로 하자. “오감만 잘 갖춰져 있으면 인간은 우주가 무엇인지 탐험할 수 있으며, 그걸 모험과학이라 부른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오바마인데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어머니의 날 맞아 ‘위로의 깜짝 전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어머니의 날’을 맞아 평범한 어머니 3명에게 ‘깜짝’ 전화를 걸어 노고를 위로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이들 어머니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자신의 사연을 담은 편지를 지속적으로 보냈다가 오바마 대통령의 격려 전화를 받는 행운을 안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들에게 1995년 작고한 자신의 모친을 언급하며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며 “나도 어머니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들은 가장 중요한 일을 했다”고 말했다. 미네소타주 쿤래피즈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스테파니 타르가 오바마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자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이 맞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고 했다. 두 아들을 둔 타르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최저임금을 올려 달라고 지속적으로 건의해 백악관의 눈길을 끌었다는 후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두 번째 주인공은 애리조나주 투선에서 교화공무원으로 일하는 다운 밀러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방울뱀에 물린 22세 아들이 ‘오바마케어’ 덕분에 보험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썼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화에서 “어머니의 날에 편지를 써준 어머니들에게 ‘위대한 어머니’가 돼 줘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어머니는 플로리다주 올먼드비치에 사는 싱글맘 패트리샤 처치로, 세 아들을 키웠고 그중 한 명이 해병대원이 됐다. 그는 편지에서 싱글맘의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화에서 “세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한 모든 일이 자랑스럽다. 아이들은 모두 잘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종이 2만2000장’으로 만든 친환경 다리, 어때요?

    ‘종이 2만2000장’으로 만든 친환경 다리, 어때요?

    영국의 한 호숫가에 붉은색의 작은 다리가 등장했다. 언뜻 보면 그저 ‘컬러만’ 강렬한 평범한 다리로 보이지만, 놀랍게도 이 다리는 나사나 못 등 다리를 지탱하는 어떤 공구도 사용되지 않은 ‘완벽한 종이다리’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0일자 보도에 소개된 이것은 무려 2만 2000장의 종이로 만든 친환경 다리로, 자전거를 탄 사람이나 덩치가 큰 개가 지나가도 끄떡하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 이 다리는 일명 ‘페이퍼 브릿지’라 부르며, 친환경 아티스트로 손꼽히는 스티브 메썸이 잉글랜드 북서부 레이크 지방 정부의 승인을 받아 3년에 걸쳐 완성했다. 길이는 5m 정도다. 그는 종이 전문 제작업체와 손잡고 무거운 무게나 눈과 비에도 견딜 수 있는 견고한 종이를 제작한 뒤 이것으로 다리를 만들었다. 재료로 사용된 강렬한 붉은색의 종이들은 받침대가 될 아치형의 나무 위에 차곡차곡 쌓아졌으며, ‘페이퍼 브릿지’ 건설을 위해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다리를 구성하는 종이 무게만 4.5t에 달하기 때문에 참나무 보다 더 단단한 ‘효과’가 있는 이것은 실용적인 측면이나 예술적인 측면 모두에서 모두 유익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다리를 최초로 건너는 행운을 거머쥔 산악인 알란은 “종이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다리를 건너는 것이 약간 두려웠다”면서 “하지만 비가 온 뒤에도 훼손의 흔적이 전혀 없이 견고한 모습에 매우 놀랐다”고 소감을 전했다. ‘페이퍼 브릿지’를 제작한 스티브 메썸은 “2000년 전 돌로 아치형 다리를 만들 때 사용하는 방식을 이용하되, 돌이 아닌 종이를 주재료로 썼다는 점이 특징”이라면서 “자연과의 조화를 잃지 않는 친환경적 면을 강조하는 동시에 예술적인 부분을 함께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이퍼 브릿지’는 현지시간으로 오는 18일부터 일반인에게 오픈되며, 일정기간 뒤 다리 건설에 사용된 종이는 재활용 될 예정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수천억 좌지우지 하는 금융사 CEO… 그들만의 행운의 부적은

    수천억 좌지우지 하는 금융사 CEO… 그들만의 행운의 부적은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는 의사결정 하나만으로 수천억원의 자금 흐름이 좌지우지되는 중책을 맡고 있다. 전직 금융사 CEO는 “새벽에 눈을 떠 잠자리에 들기까지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다”며 당시를 떠올릴 정도로 금융사 CEO들이 느끼는 심적 부담감은 적지 않다. 자고 일어나면 영업 순위가 뒤바뀌는 치열한 경쟁 구도 탓에 시장 흐름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은 물론 합리적인 판단을 가져올 수 있는 경험과 감각은 CEO에게 필수다. 이렇게 매일 피를 말리는 긴장의 연속이더라도 CEO들마다 심리적인 안식처는 하나씩 있다. 돈을 만지는 직업 특성상 각자 방식대로 ‘돈을 불러오는 행운의 부적(습관)’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지난 연말 우리은행장 자리를 꿰찬 이광구 행장은 풍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행장은 부행장 시절이던 지난해 11월 초 평소 알고 지내던 지관이 집무실을 찾아와 “책상 밑에 수맥이 흐른다”고 했다. 이에 이 행장은 책상 위치를 재배치했다. 이 행장은 10일 “우연의 일치겠지만 책상 위치를 바꾸고 정확히 한 달 뒤 차기 행장에 내정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 행장은 취임 이후 행장실의 사무실 집기는 재배치하지 않았다. 풍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은행에서 이 행장뿐만이 아니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한 우리은행에선 아직도 풍수를 언급하는 행원이 적지 않다. 현재 한국은행이 별관으로 쓰고 있는 서울 중구 소공동 옛 상업은행 본점은 지관들 사이에서 ‘터가 좋지 않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상업은행은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 6월 한일은행과 합병해 한빛은행(우리은행의 전신)이 됐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중요한 날에는 빨간색 넥타이를 맨다. 증권가 사람들이 주가 상승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붉은색 넥타이를 선호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김 회장은 2012년 3월 본인의 회장 취임식과 올해 2월 김병호 하나은행장 취임식에도 붉은색 계열의 넥타이를 맸다. 지난해 임원들이 참석한 신년 하례회에서도 붉은 넥타이를 매고 단상에 오른 김 회장은 “올 한 해 실적을 크게 올려 주가가 뛰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붉은색 넥타이를 맸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장 중 유일한 여성인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중요한 의사 결정을 앞두고 꼭 손을 씻는 습관이 있다. “머리를 맑게 하고 (중요한 일에) 부정(不淨)을 타지 않게 하겠다는 의미”라는 것이 기업은행 측 설명이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스트레스 해소법도 비슷하다. 윤 회장은 “중요한 의사 결정을 앞두고 그 전날엔 꼭 음악을 들으며 반신욕을 한다”며 “집중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라고 말했다. 윤 회장은 지난해 10월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최종 면접을 하루 앞두고도 잠자리에 들기 전 반신욕을 하며 최종 점검을 했다고 한다. 성세환 BNK금융지주 회장은 숫자 11을 ‘행운의 숫자’로 여긴다. 성 회장은 유독 숫자 11과 인연이 많다. 그는 1979년 1월 11일 공채 11기로 부산은행에 입행했다. 이듬해인 1980년 10월 11일 결혼식을 올렸다. 2012년 3월에는 부산은행 11대 행장에 취임했다. 이 때문에 성 회장은 이메일 주소에도 숫자 11을 넣었다. 성 회장은 “11이란 숫자는 두 다리를 뜻한다”며 “머리로 살지 말고 (발로 뛰며) 몸으로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포토] ‘종이 2만2000장’으로 만든 친환경 다리

    [포토] ‘종이 2만2000장’으로 만든 친환경 다리

    영국의 한 호숫가에 붉은색의 작은 다리가 등장했다. 언뜻 보면 그저 ‘컬러만’ 강렬한 평범한 다리로 보이지만, 놀랍게도 이 다리는 나사나 못 등 다리를 지탱하는 어떤 공구도 사용되지 않은 ‘완벽한 종이다리’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0일자 보도에 소개된 이것은 무려 2만 2000장의 종이로 만든 친환경 다리로, 자전거를 탄 사람이나 덩치가 큰 개가 지나가도 끄떡하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 이 다리는 일명 ‘페이퍼 브릿지’라 부르며, 친환경 아티스트로 손꼽히는 스티브 메썸이 잉글랜드 북서부 레이크 지방 정부의 승인을 받아 3년에 걸쳐 완성했다. 길이는 5m 정도다. 그는 종이 전문 제작업체와 손잡고 무거운 무게나 눈과 비에도 견딜 수 있는 견고한 종이를 제작한 뒤 이것으로 다리를 만들었다. 재료로 사용된 강렬한 붉은색의 종이들은 받침대가 될 아치형의 나무 위에 차곡차곡 쌓아졌으며, ‘페이퍼 브릿지’ 건설을 위해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다리를 구성하는 종이 무게만 4.5t에 달하기 때문에 참나무 보다 더 단단한 ‘효과’가 있는 이것은 실용적인 측면이나 예술적인 측면 모두에서 모두 유익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다리를 최초로 건너는 행운을 거머쥔 산악인 알란은 “종이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다리를 건너는 것이 약간 두려웠다”면서 “하지만 비가 온 뒤에도 훼손의 흔적이 전혀 없이 견고한 모습에 매우 놀랐다”고 소감을 전했다. ‘페이퍼 브릿지’를 제작한 스티브 메썸은 “2000년 전 돌로 아치형 다리를 만들 때 사용하는 방식을 이용하되, 돌이 아닌 종이를 주재료로 썼다는 점이 특징”이라면서 “자연과의 조화를 잃지 않는 친환경적 면을 강조하는 동시에 예술적인 부분을 함께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이퍼 브릿지’는 현지시간으로 오는 18일부터 일반인에게 오픈되며, 일정기간 뒤 다리 건설에 사용된 종이는 재활용 될 예정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노사연, 김종환에게 10년 넘게 “곡 하나 부르고 싶다”

    노사연, 김종환에게 10년 넘게 “곡 하나 부르고 싶다”

    노사연, 김종환에게 10년 넘게 “곡 하나 부르고 싶다” ‘노사연 김종환’ 가수 노사연과 김종환 사이의 특별한 사연이 공개돼 화제다. 7일 노사연은 서울 강남구 M콘서트홀에서 쇼케이스를 개최하고 신곡 ‘바램’과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무대를 선보였다. 이날 노사연은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를 들었을 때 멜로디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 이후에 얼굴을 보면 ‘종환아 곡 하나 부르고 싶다’고 10년 넘게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어느 날 곡이 다 됐다고 했다. 기대가 돼서 기쁜 마음에 김종환을 만났다” 덧붙였다. 이에 김종환은 “음악을 만들려면 하루에도 3~4곡을 만들 수 있다”면서 “하지만 그건 음악을 찍어내는 것이다. 노사연이란 가수의 이미지와 색깔, 그동안 살아온 삶의 배경을 파악하는데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또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노사연이란 사람에게 이런 노래를 준 것도 큰 행운이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주팽창, 이렇게 발견됐다! -문제적 엄친아 ‘허블’​ 이야기

    우주팽창, 이렇게 발견됐다! -문제적 엄친아 ‘허블’​ 이야기

    인류의 오랜 과학사에서 최대의 과학적 발견 하나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우주팽창'을 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우주팽창의 증거를 발견하여 인류에 고함으로써 20세기 천문학의 최고 영웅이 된 사람은 허블 우주망원경, 허블 법칙 등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미국의 에드윈 허블이다. 그는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적 인물이었다. -허풍스러운 태도의 '20세기 천문학 최고 영웅' 1889년 미국 미주리 주의 마시필드에서 태어난 허블은 한마디로 온갖 행운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변호사이자 보험 대리인이라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부모로부터 높은 지능과 강건한 체질까지 물려받은데다 미남형이라 매력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철철 흘렀다. 허블은 고등학교 시절 육상대표로 7종 경기에서 우승했고, 그밖에도 여러 대회, 여러 종목에서 메달을 수두룩하게 받았다. 공부도 잘했다. 명문 시카고 대학 법학과에 어렵잖게 진학했다. 말하자면 허블은 엄친아 대표선수였다. 대학에서도 발군의 성적을 보인 그는 로즈 장학금을 받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이 유학기간 3년이 허블에게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 이때부터 허블은 늘 정장차림에다 파이프를 입에 물고 멋을 내며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풍스러운 영국식 억양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버릇은 평생 바뀌지 않았다. 천문학 하는 사람 중에 괴짜가 많긴 하지만, 허블도 그런 면에서는 전혀 꿀리지 않는 등급이었다. 아무튼 그런 허블이 어떻게 20세기 천문학계에서 최고의 영웅으로 등극하는 영예를 거머쥐게 되었을까? 가끔 세상에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손대는 일마다 떡 먹듯이 성공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있는 법이다. 불공평하게 보이고 배 아픈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허블이 바로 그런 인간형이었다. 1913년 귀국해서 잠시 변호사 협회에 이름을 걸어놓은 허블은 얼마 후 돌연 하던 일을 접고 시카고 대학 천문학과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훗날 허블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문학은 성직과도 같다. 소명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루이스빌에서 1년 동안 법률업무에 종사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 소명을 받았다.” 뒤늦게 시작한 천문학이었지만 그는 뛰어난 머리와 약간의 노력으로 밀린 공부를 따라잡아 1917년 천문학 박사학위를 손에 쥐었다. 졸업 후 은사인 조지 헤일의 추천으로 윌슨 산 천문대에서 일하려던 허블의 계획은 뜻하지 않은 일로 취소되었다. 미국이 뒤늦게 1차대전에 뛰어들었던 탓이다. 육군 장교로 지원한 허블은 전투에서 오른팔에 부상을 입은 덕으로 소령으로 특진되었다. 그 역시 허블에게는 자랑거리였다. 평생 소령 칭호를 입에 달고 살았다니까. -무시받던 '희미한 빛뭉치'에 꽂히다 전선에서 돌아온 허블은 1919년 30살 때 짐을 꾸려서 윌슨 산으로 들어갔다. 말 그대로 입산이었다. 해발 1,800m 산꼭대기에 있는 윌슨 산 천문대에는 당시 세계 최대인 2.5m 후커 반사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노새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한나절이나 걸려서야 도착할 수 있는 외진 곳이라 생활은 고행이었고, 일과는 고달팠다. 그럼에도 수십 명의 천문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그들은 추운 겨울에도 관측대 위에 앉아 온밤을 지새웠다. 거대한 반사망원경을 조그마한 손잡이를 돌려 조절하며, 렌즈의 십자선을 응시하면서 최고 12시간을 버텨야 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도, 난방기구를 이용할 수도 없었다. 망원경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연구원 숙소에 여자가 머무는 것은 금지되었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그곳을 수도원이라 불렀다. '수도원 원장'인 조지 헤일은 천체물리학은 모든 잡념을 버린 남자만이 전념할 수 있는 분야라고 일찍이 설파했다. 윌슨 산 꼭대기에서 허블은 먼 우주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성운들을 향해서 망원경의 주경을 겨누고는, 사진을 찍고 스펙트럼을 찍기 시작했다. 그것은 때로는 열흘 밤을 꼬박 지새워야 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허블은 소년 시절에 할아버지의 망원경으로 별보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퍼시벌 로웰의 화성 이야기를 들으며 우주로의 꿈을 키워왔다. 허블의 박사논문 주제는 ‘희미한 성운’이었다. 주류 천문학자들은 밝은 별과 행성, 혜성에 연구할 주제가 얼마든지 있는데 무엇하러 그런 희미한 빛뭉치를 연구한다 말인가 하고 의아해했다. 하지만 허블의 깊은 관심은 늘 그 희미한 빛뭉치인 성운에 있었다. ‘저 가스 구름들은 과연 우리 은하 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은하 바깥을 떠도는 별들의 도시인가?’ 라틴 어로 '안개'를 뜻하는 성운(nebula)은 20세기 초만 해도 정말 안개에 가려진 천체였다. 허블의 머리속에는 늘 성운에 대한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허블이 윌슨 산에 오자마자 대망원경의 주경을 성운 쪽으로 돌린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건달에 가까운 노새 몰이꾼 휴메이슨 이 대목에서 우리는 또 한 사나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허블의 조수였던 그 사내 역시 천문학사에서는 전설이 되어 있는 존재이다. 그는 원래 노새 몰이꾼이었다. 이름은 밀턴 휴메이슨, 나이는 허블보다 2살 아래였다. 윌슨 산 천문대로 장비나 생필품을 운반하는 잡일꾼으로 일했던 휴메이슨은 학교는 일찌감치 중2 때 때려치우고, 당구와 도박, 여자 후리기에 한가락하는 사내로, 좋게 말하면 한량, 나쁘게 말하면 건달이었다. 그런데 머리가 영리하고 호기심도 풍부한데다, 도박으로 다져진 눈썰미와 손재주, 머리회전에 힘입어, 천문대의 각종 장비와 기계에 대해 질문하고 익히고 하는 새에 어느덧 엔지니어 비슷한 수준까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야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휴메이슨의 놀라운 변신이 펼쳐진다. 야간 관측 보조원이 병결했는데, 대타로 투입할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귀한 망원경을 놀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천문대에서는 하룻밤 공칠 요량을 하고 휴메이슨에게 대타로 뛰어볼 용의가 없느냐고 제안했다. 그 업무는 거대한 덩치인 망원경을 다룰 뿐만 아니라 천체사진까지 찍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날 밤 휴메이슨은 임시직 관측 보조원이 되어 왕년에 트럼프 장 다루듯이 거대 망원경을 능숙하게 다루는 솜씨를 자랑했다. 그뿐인가, 천문대 연구원들은 휴메이슨이 찍어놓은 은하 스펙트럼들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선명한 화질이 일급 전문가의 솜씨였던 것이다. 이 일로 그는 천문대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어 허블의 조수가 되었다. 중학 중퇴로 천문대에 정식직원이 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 중학 중퇴 건달과 허풍기 있는 천문학 박사는 만나자마자 악동들처럼 서로 죽이 잘 맞았다. 휴메이슨은 일을 시작하자 이내 양질의 은하 스펙트럼을 얻는 데 어떤 천문학자보다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고, 나중엔 '휴메이슨 혜성'을 발견하는 등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겨 완벽한 천문학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건달에서 천문학자로의 놀라운 변신이었다. 1923년 10월 어느 날 밤, 마침내 허블은 생애 최고의 사진을 찍었다. 그는 2.5m 반사망원경을 이용해 안드로메다 대성운으로 알려진 M31과 삼각형자리 나선은하 M33의 사진을 찍었다. 며칠 후 안드로메다 성운 사진 건판을 분석하던 허블은 갑자기 “유레카!” 하고 크게 외쳤다. 성운 안에 찍혀 있는 변광성을 발견한 것이다. 1912년 헨리에타 리빗이 변광성의 주기와 밝기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우주를 재는 표준 촛불로 삼아,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하늘의 잣대를 제공한 바 있었다. 리빗의 발견을 잘 알고 있던 허블은 안드로메다 변광성의 주기를 측정해본 결과 31.4일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여기에다 리빗의 자를 들이대어 지구까지의 거리를 계산해보니 놀랍게도 93만 광년이란 답이 나왔다. 우리 은하 크기보다 10배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단순히 나선 모양의 성운으로 알고 있었던 안드로메다는 사실 우리 은하를 까마득히 넘어선 곳에 있는 독립된 나선은하였다. 칸트의 섬우주론이 200 년 만에 완벽히 증명된 셈이었다. 이로써 인류 역사상 가장 먼 거리를 측정했던 허블은 새로운 우주공간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던 것이다. 당시 천문학계는 우리은하의 크기를 놓고 '대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은하가 우주 전체다', '우리은하 외에도 많은 은하들이 있을 것이다'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뒤늦게 나타난 신출내기 천문학자가 그 판정을 내려주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 하나의 발견으로 허블은 일약 천문학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허블의 계산은 참값보다 큰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현재 알려진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는 그 두 배가 넘는 250만 광년이다. 밤하늘에서 빛나는 모든 것들이 우리 은하 안에 속해 있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발견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갑자기 우리 태양계는 조그만 웅덩이 정도로 축소되어버리고, 태양은 우주라는 드넓은 바닷가의 한 알갱이 모래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되었다. 허블의 발견 이후 은하들 뒤에 다시 무수한 은하들이 늘어서 있는 무한에 가까운 우주임이 드러났다. 인류에게 이것은 근본적인 계시였다. -하늘도 불안정하다! 은하를 추적하는 허블의 망원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후 6년 동안 허블과 그의 조수 휴메이슨은 은하들의 거리에 관한 데이터들을 모으느라 춥고 긴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과학자들은 은하들이 제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12년, 로웰 천문대의 베스토 슬라이퍼는 은하 스펙트럼에서 적색이동을 발견하고, 은하들이 엄청난 속도로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허블은 슬라이퍼의 연구를 기초로 삼고, 그 동안 24개의 은하를 집요하게 추적해서 얻은 자신의 관측자료를 정리하여 거리와 속도를 반비례시킨 표에다가 은하들을 집어넣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하나 드러났다.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은하는 후퇴하고 있다. 먼 은하일수록 후퇴속도는 더 빠르다. 그리고 은하의 이동속도를 거리로 나눈 값은 항상 일정하다. 이것이 허블 법칙이다.(사실 허블-휴메이슨 법칙이라 불러야 공평하다) 훗날 이 상수는 허블 상수로 불리며, 'H'로 표시된다. 허블 상수는 우주의 팽창속도를 알려주는 지표로서, 이것만 정확히 알아낸다면 우주의 크기와 나이를 구할 수 있다. 그래서 허블 상수는 우주의 로제타 석에 비유되기도 한다. 허블과 휴메이슨의 발견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여러 세기 동안 과학자들을 괴롭혀왔던 올베르스의 역설도 이로써 우주팽창이라는 정답을 얻은 셈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허블 자신까지 포함해서 이것이 우주의 기원과 연관되어 있으며, 모든 것의 근본을 건드리는 심오한 문제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묘하게도 죽이 잘 맞았던 이 덤앤더머 커플이 인류를 우주 기원의 순간으로 데려갈 이론적 토대를 닦았던 것이다. 이는 20세기 천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받아들여졌다. 1929년, 이 사실이 발표되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사람들에게 던져주었다. 이 우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으며,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 세상에 고정되어 있는 거라곤 하나도 없다는 이 현기증 나는 사실에 사람들은 황망해했다. 최초로 인류가 지구상을 걸어다닌 이래 우리 인간사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는 하늘조차도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대우주였다. -허블의 유해는 어디에? 허블은 죽을 때까지 열성적으로 은하를 관측했다. 1953년 허블은 팔로마 산 천문대의 지름 5m의 거대 망원경 앞에서 며칠 밤을 새워 관측할 준비를 하던 중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졌다. 대천문학자다운 열반이었다. 향년 64세. 코페르니쿠스 이후 천문학의 발전에 최대의 공헌을 한 허블의 업적은 노벨 상을 뛰어넘는 것이지만, 허블은 상을 받지 못했다. 노벨 물리학상이 천문학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늦게 규정이 바뀌어 허블에게도 상을 주기로 결정했지만, 이번엔 상을 받을 사람이 없었다. 허블이 죽은 지 3개월 뒤였던 것이다. 노벨 상은 고인이 된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상을 받으려면 업적 못지않게 수명도 중요한 변수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죽은 뒤에도 허블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허블의 유언에 따른 거라는 설도 있지만, 그의 부인 그레이스는 장례식과 추도회를 모두 거부했다. 그리고 남편의 유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서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천문학자였던 허블의 행방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되는 바람에 허블을 추념하려면 우주공간에 떠 있는 허블 망원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1990년 우주 공간으로 쏘아올려진 우주망원경에 허블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그의 이름이 붙여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구 중심 궤도를 95분마다 한 바퀴씩 돌며 먼 우주를 담아 보내고 있는 허블 우주망원경은 지난 4월 24일로 관측 25주년을 맞았으며, 2018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발사될 때까지 계속 운용될 전망이다. 마지막 허블의 말로 이 글을 접기로 하자. “오감만 잘 갖춰져 있으면 인간은 우주가 무엇인지 탐험할 수 있으며, 그걸 모험과학이라 부른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해외 공짜관광’ 내걸고 국내로...정부가 ‘사기’ 캠페인

    ‘해외 공짜관광’ 내걸고 국내로...정부가 ‘사기’ 캠페인

    "즐거운 외국여행을 다녀온 줄 알았는데 국경을 넘은 적이 없다면?" 말도 되지 않는 일이지만 실제상황이었다. 남미 에콰도르의 관광부가 최근 이색적인 사기행각을(?) 벌여 화제다.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자국 국내관광 활성화 방안을 고민하던 에콰도르 관광부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무릎을 쳤다. 이른바 코스타리카 둔갑작전이다. 중미 코스타리카는 풍요로운 자연관광지가 많아 매년 에콰도르 여행객이 몰리는 곳이다. 관광부는 코스타리카 관광을 원하는 희망자의 신청을 받아 무료로 해외여행을 시켜주겠다는 광고를 냈다. 물론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민간 단체를 전면에 내세웠다. 신청자 가운데 행운을 거머쥔 사람은 40명. 드디어 여행이 시작되는 날 40명은 들뜬 마음으로 전세기에 올랐다. 항공기는 예정대로 국제공항을 출발했지만 국경을 넘진 않았다. 공중을 빙빙 돌다 항공기가 내려앉은 곳은 완벽하게 코스타리카 공항으로 꾸민 에콰도르의 한 지방 공항이었다. 에콰도르 공무원들이 코스타리카 경찰과 세관원으로 분장하고 연기를 한 덕분에 40명 여행자는 감쪽같이 속아넘어갔다. 여권에는 가짜(?) 입국도장까지 꽝꽝 찍어줬다. 혹시라도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40명의 핸드폰은 통신을 차단했다. 이래서 '가짜 코스타리카'에 입국한 40명은 그림 같이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환경에 감탄했다. 엉터리 해외여행을 만끽한 40명이 사기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된 건 귀국행(?) 항공기가 공항에 내려앉은 후였다. 40명 관광객은 "에콰도르에 그토록 아름다운 곳이 있는 줄 몰랐다"며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너무 멋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입모았다. 사진=에콰도르 관광부 홍보영상 캡처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머릿속 하얘지는 공포·쾌감… 내릴 땐 다리 힘 풀려 ‘후덜덜’

    머릿속 하얘지는 공포·쾌감… 내릴 땐 다리 힘 풀려 ‘후덜덜’

    경주용 자동차의 조수석에서 나는 공포와 쾌감에 몸을 떨었다. 지난해 강원 태백시 태백레이싱파크에서 끝난 자동차 경주 대회 CJ슈퍼레이스 개막전 결선에 앞서 슈퍼1600클래스 레이싱카의 조수석에 앉아 서킷을 돌 기회가 생겼다. 배우 겸 카레이서인 이화선(CJ 레이싱팀) 선수가 모는 배기량 1600㏄짜리 레이싱카에 탔다. 이 선수가 가속페달을 밟자 엔진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차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상체가 좁은 버킷시트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파묻혔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소실점을 향해 시야가 극단적으로 좁아졌다. 풍경이 휙휙 사라졌다. 크게 휘어진 구간을 인지한 순간 차는 이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짧은 곡선을 그리며 코너에 진입했다. 관성이 나를 왼쪽으로 잡아챘다. 척추기립근과 광배근에 온 힘을 줘 저항했다. 보호 헬멧을 쓴 머리가 하릴없이 왼쪽으로 꺾였다. 차가 출발했던 CJ팀 피트에 가까워졌다. 드디어 끝났구나 싶었다. 아니었다. 이 선수는 무심하게 출발 지점을 지나 한 바퀴를 더 달렸다. 차가 코너를 향해 질주했다. 다시 온몸의 근육을 수축시켜 버텼다. 여지없이 고개가 덜렁거렸다. 두 바퀴를 돌고 차가 멈춰 섰다. 내가 직접 문을 열고 내렸는지, 아니면 누가 밖에서 열어 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 발을 딛고 섰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음 체험자를 태운 차가 떠났다. 안경을 차에 두고 내렸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피트에서 차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안경은 시트와 조수석 문짝 사이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처음 슈퍼1600 레이싱카를 탄다고 했을 때는 조금 실망했다. 1600㏄ 자동차는 성에 차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6200㏄ ‘괴물차’ 스톡카의 힘을 느껴 보고 싶었다. 슈퍼레이스 홍보 담당자에게 스톡카를 직접 몰아 볼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출력이 너무 세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렸다. 조수석이 없으니 옆에라도 타게 해 달라고 고집을 부릴 길도 없었다.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슈퍼1600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흥분을 가라앉히는 데 네다섯 시간이 필요했다. 조금 부지런하고 약간의 운이 따라 준다면 누구나 이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다. 슈퍼레이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택시 타임’ 이벤트를 진행한다. 추첨을 통해 라운드별로 행운의 주인공을 대여섯명 뽑는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25년간 130개국 돌며 ‘야생 무역상’ 자처한 전권열씨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25년간 130개국 돌며 ‘야생 무역상’ 자처한 전권열씨

    그는 뭐든 파는 사람이다. 1990년 부산의 태광CMC란 주문자 상표 부착(OEM) 운동화업체에 취직한 것을 시작으로 무역업체 6~7군데를 거치며 해외영업 담당으로 일했다. 5년여 전부터는 프리랜서 무역 중계 및 컨설턴트 일을 하며 2012년 ‘나는 식인종 추장에게 운동화를 팔았다’를 펴낸 전권열(50)씨. ‘야생 무역상’을 자처하며 블로그 ‘지구촌 보부상 개성상인’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외 생산 및 수출업체의 해외영업과 마케팅, 바이어 발굴, 오더 수주 등을 하니 쉽게 말해 오퍼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지도를 펼쳤을 때 안 가본 나라를 꼽기가 더 쉬울 그는 파푸아뉴기니의 식인종 추장에게 운동화를 팔고 아프리카에 뻥튀기 기계도 팔았다. 지난달 17일 서울역의 공항철도 탑승 게이트 앞에서 만났는데 열흘 넘게 동남아와 피지를 방문한다고 했다. 피지에는 슬리퍼에 문양을 새기는 기술이 없어 전사지(轉寫紙·도기나 양철에 인쇄할때 쓰는 인쇄화지)를 팔러 간다고 했다. →지금까지 몇 개국을 다녀왔고, 앞으로 여행 계획은 -3년 전 책을 쓰면서 꼽아보고 최근 기억을 더 더듬으니 비행기 경유지를 포함해 130여개국 300여개 도시를 가봤다. 전 세계에 200여개국이 있으니까 그래도 안 가본 나라가 70여개국은 되는 셈이다. 이제 업무적으로 새로운 나라를 갈 일은 없을 것 같고, 관광 삼아 가보고 싶은 곳으로는 카리브해의 벨리즈, 마틴 제도나 중유럽의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을 꼽고 있다.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골똘히 쳐다본 기억이 있나. -딱 그렇게 한 적은 없지만, 사회와 부도 및 지리 과목에 꽤 흥미가 있어 여러 나라의 수도를 거의 다 외울 정도였고, 세계지도도 어느 정도 그릴 줄 알았던 것 같다. →첫 출장을 1990년 뮌헨으로 떠난 것으로 아는데. -그때 모스크바와 암스테르담, 취리히, 뮌헨, 스트라스부르를 다녀왔는데 직항이 없어 매번 비행기를 갈아탔다. 떠날 때는 옛소련과 서독이었는데 귀국할 때와 얼마 안 있어 각각 러시아와 독일로 바뀌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을 텐데 재미있는 일은. -일주일에 시베리아를 두 차례 왕복한 적이 있다. 영국과 벨기에를 다녀왔다가 귀국한 뒤 이틀 만에 다시 독일과 터키를 다녀왔다. 또 하루에 네덜란드, 스페인, 독일 등 3개국과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뮌헨 등을 여행한 적도 있다. 그리고 유럽에서 업무를 보고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 들러 일 보고, 태평양 건너 일본에서 일 보고 귀국했는데 일주일에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비행기 탑승한 것만 35시간 걸렸더라. →위험한 고비도 많았을 텐데.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납치도 당해봤고, 강도들을 만나 날치기도 당해서 중요한 서류와 돈이 든 가방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 강도 칼에 손도 찔려 봤다(그러면서 그는 오른손의 흉터 자국과 왼손의 관절 부위가 기묘하게 휘어진 것을 보여줬다). 파푸아뉴기니에서는 급한 일 보려다 독사에게 물려 큰일 날 뻔한 적도 있다. →어떤 상품들을 얼마만큼이나 팔았나. -직장 다닐 때는 회사의 데이터로, 그 뒤엔 무역중계 파트너의 데이터로 넘어가기 때문에 정확한 수량과 액수를 산정하기 어렵다. 돈을 제대로 못 받은 적은 없지 않지만 내 실수로 다니던 직장이나 거래하는 회사에 손해를 끼친 적은 없다고 자부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거래는. -남태평양 섬나라의 식인 부족과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맨발에 운동화를 신겨줬던 일이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뻥튀기 기계도 아프리카 나라들에 팔았는데 적은 곡물로 많은 양의 식량을 만들어 식량 개선에 일조했다고 자부한다. 아프리카 시장에 꽃장판과 앙골라칫솔, 물통과 비닐봉지를 판매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경남 합천 출신인데도 전남 무안과 목포, 전북 군산에 인맥이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장사꾼이 어딘들 못 가겠나. 지구촌 어디라도 주소만 있으면 찾아다녔다. 국내에서 군 단위로는 울릉군 외에는 거의 다 가본 것으로 기억한다. 전 세계에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한데, 국내는 그러지 못하다면 균형이 어그러지는 것 아닌가? →책에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과의 인연도 상세히 쓰셨던데. -첫 직장에서 휠라 제품의 생산 및 수출 담당으로 일할 때 휠라코리아의 전신인 라인실업 대표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서울 본사 직원이 6~7명, 부산사무소에 5~6명 일했는데 지금은 거대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셨다. 지금도 윤 회장은 “나도 마흔여덟에 시작했어. 지금도 늦지 않았어. 해봐”라고 말씀하시며 “뭐 도울 일 없어?”라고 물어봐 주신다. 각자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내 마음의 멘토로 여겨왔다. 정말로 자랑스럽고 늘 존경한다. →그런 오랜 경험과 지혜를 코트라 같은 곳에서 활용하지 못하나 아쉬움이 드는데. -우리나라 무역을 대표하는 정부기관이 저처럼 해외 틈새시장만 파고든 사람을 활용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일류 대학 출신에 대기업 영업맨들이 다 차지하고 있을 텐데 저처럼 지방대학 출신에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경험을 활용하기 어렵다. 몇몇 무역 관련 기관과 중소기업의 중장년 해외비즈니스 전문가 특채에 응한 적이 있는데 아직도 우리 기업들은 능력과 경력을 따지지 않는 풍토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미련을 접고, 보람 있게 일하고 있다. →그렇게 고생했으니 큰 기업에 들어가 적당히 편하게 사는 꿈도 있을 텐데. -아무리 돈 많은 회장님도 혼자 사막이나 정글에 못 가지만, 난 세상 어디든 갈 수 있고 회사나 상사의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인맥을 형성하는 비결은. -직장 다닐 때 알게 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필요한 사람을 계속 연결시키다 보니 거미줄처럼 퍼져 나갔다. 보통 해외바이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는데 난 다르다. 비즈니스이건 아니건 수시로 안부 주고받고, 성탄절에 카드나 연하장 보내고 평소 개인적인 일로도 상부상조한다. 세계 어디에서나 돈 잃고 갈 곳 없어도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는 분명 갖고 있다. 그는 늘 ‘길 위의 사람’이지만 첫 출장 때부터 지금까지 다섯 권의 여권을 모두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꼼꼼한 사람이다. 여행에 관해 기록된 것들을 보내달라고 했더니 항공권과 버스, 열차, 배 등의 티켓 사진을 보냈는데 모두 42개나 됐다. 동전 사진 파일만 73개, 지폐 사진 파일만 151개나 됐다. 가이드북과 기념책자, 그림엽서 등도 일일이 모아 사진으로 찍어 놓았다. 그래서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 많은 자료를 어떻게 다 모았나. -사람들이 굉장히 활달한 성품인 줄 아는데 군에 입대하기 전만 해도 대단히 내성적이었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니 적극적으로 바뀌더라. 본래 성격대로 플로피디스켓부터 시작해 컴팩트디스크를 거쳐 지금은 메모리칩까지, 업무 데이터는 물론 여러 나라를 방문한 사진과 영상 등 다양한 자료들을 모두 갖고 있다.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글쎄, 탐내는 이들이 과연 있을까? →한때 우리 경제를 떠받쳤던 상인 정신이 스멀스멀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닌가. -전 여전히 농사도 많이 짓고 제조업도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테크노, 정보기술(IT) 산업이 발달하면서 컴퓨터, 인터넷, 게임 등은 발달되는데 정작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산업들은 정체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요즘 젊은이들은 은근과 끈기도 부족하고 힘든 일은 아예 엄두를 못 내고, 사회생활에 적응력도 떨어져 기업에서는 경력자를 선호하고 그러다 보니 취업이 어렵다는 뉴스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대통령마저 나라가 텅 비어도 좋으니 청년들이 중동에라도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현장을 많이 다녀본 입장에서 얘기한다면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는 것이다. 국내의 좋은 환경에서도 적응하기 어려운 이들이 부지기수인데, 특히 기후와 모든 것이 열악한 중동이라면 글쎄, 많이 어렵다고 본다. →가장 힘들게 한 출장지, 비즈니스 파트너는. -미주지역과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시장을 주로 다녔는데 가장 힘든 곳이 중동이었다. 가장 난감했던 비즈니스 파트너는 의외로 미주지역과 중국인데 사람을 실망시키고 농락하는 일들이 빈번해서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신문 인터넷 홈페이지(www.seoul.co.kr)에 이를 상세히 다룬 별도 기사 게재합니다.>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인격을 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만날 때 원칙이라면. -개인적인 만남일 때는 날 최대한 상세하게 소개하고 비즈니스로 만날 때는 간단명료하게 한다. 상대의 말은 늘 적극적으로, 전부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는 장벽이 되지 않나? 나라별 고객 응대법은. -생활용어는 현지어로 쓰고 비즈니스는 영어로만 하는데 영어의 발음도 북미, 중남미, 아프리카, 유럽, 중동, 아시아, 남태평양에서 제각기 다르게 쓴다. 아랍 상인을 대할 때는 유치원생, 초등학생 대하듯이 해야 되고, 터키 상인은 생각보다 냉정하니까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남미상인은 다혈질이라 인내력이 필요하고, 중국 상인은 이기적이면서도 뭐라도 다 해줄 것처럼 과장하는 일이 많으니까 꼼꼼하게 대하는 것이 좋다. →지금까지의 삶, 후회하지 않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에서 유년을 보내고 오랜 세월 샐러리맨으로 살아 금전적으로 부유하지 않지만, 특별히 남들보다 많이 외국을 돌아다니고,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여러 나라의 소중한 인연과 친구들이 있는 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재산이다. →앞으로 이 나라에서 꼭 팔아보고 싶다는 게 있는지. -배운 거라곤 외국에 장사한 것밖에 없으니까 그것을 밑천으로 해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할 것이다. 아직도 갈 곳도 많고 볼 것도 많으며 뭔가를 팔 곳도 무궁무진하다. 걸어다니는 데 이상이 없을 때까지, 유행가 가사대로 ‘걸어서 하늘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행기나 자동차 타고 걸어서 지구촌 전부는 가봐야 되지 않겠나. 다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해도 지금까지 해온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아프리카와 중동에 가서 곱슬머리를 쉽게 펼 수 있는 고데기를 팔고 싶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25년 동안 135개국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아온 전권열(50)씨는 가장 장사하기 까다로운 지역으로 아랍권을 손꼽았다. 다음은 10년 넘게 아랍권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은 전씨가 정리한 체험담.    1. 알고 떠나야 후회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제일 특이한 국가, 아랍국은 입국할 때부터 힘겹지만, 그만큼 보람이 있다.  제일 어렵고 골치 아프게 입국 심사를 하는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인데, 특히 수도인 리야드의 국제공항은 더욱 까다롭다. 이곳에서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입국장으로 뛰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입국 수속을 위한 대기에만 2~4시간 걸리기 때문이다.  여권과 비자 심사에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 들어오는 노동자들이 엄청 많다. 그래서 리야드를 경유해 국내선으로 갈아 타려면 비행기를 놓치기 일쑤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는 미국인이 1순위다. 미국 여권만 가지고 있으면 입국 심사도 수월하게 지나간다. 걸프전 때 나라를 구해줬기 때문이란다.  우리 국민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현지의 거래처나 지인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아 주한 사우디대사관에 접수하면 대사관에서 확인을 거친 뒤 비자를 발급해준다.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는 최소 일주일은 기본이다. 중국이나 다른 대사관처럼 수수료를 많이 내면 빨리 발급 해주는 ‘특급’도 없다.  그나마 요르단과 쿠웨이트는 공항에서 입국 수속할 때 수수료 20여 달러를 주고 비자피 확인증만 받으면 입국할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비자를 받든지, 현지 거래처를 통해 호텔 도착 비자를 미리 발급받아야 했지만, 지금은 단기 방문은 무비자로 가능하다.  이스라엘은 비자를 별도 용지(보통 A4)에 받아서 방문해야 한다. 그리고 입국 심사 때에는 여권에 스탬프를 찍지 않으며, 일반 용지로 된 비자에 확인을 해준다.  여행자가 이스라엘의 적대국인 아랍국을 방문할 때 여권에 이스라엘 방문 비자나 입국 스탬프가 있으면 입국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여행자를 배려하는 차원이라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항공기 여승무원은 전부가 개방적인 모로코, 레바논, 이집트 등의 여성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입국할 때, 수년 전에는 사우디아항공만 이용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에미레이트항공이나 여러 항공사가 가세하면서 입국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 제다, 담맘으로도 노선이 생겨 비즈니스 여행자들이 많이 편리해졌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찾는 외국인 대다수는 비즈니스맨이거나 노동자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특별히 여행할 만한 곳이 없어서다.  언젠가 싱가포르에서 제다행 사우디아항공을 이용했을 때였다. 입국자가 리야드보다 적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비행기가 제다까지 가지 않고, 제다행 승객에게 리야드에서 내려서 다른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 타라고 말했다. 독점항공사의 횡포이자 승객들에 대한 서비스는 0점이고, 모든 일정은 항공사 마음대로였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리야드에 내려서 악몽 같은 입국 심사를 받고 짐을 찾아 다시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 제다행 수속을 밟고 어렵사리 국내선으로 갈아 탔다.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니 방문 절차가 까다로운 국가를 수월하게 방문하는 요령이 생기더라.  언젠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기 위해 마닐라에서 비행기를 갈아 탔는데 내 자리에 여자 승객들이 죽 앉아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해명도 없이 눈만 끔뻑이면서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항의하니까 승무원이 오더니 제멋대로 날 다른 좌석으로 지정하고는 가버렸다. 아랍의 특성상 여성들이 남성들과 함께 좌석에 앉을 수 없다면, 티케팅할 때 미리 여자 승객들끼리 앉도록 배정하면 될텐데, 이건 열차도 버스도 아니고 엄연히 국제선 비행기인데 승객들을 불편하게 하면 되느냐 싶었다.    2. 비행기 뒤쪽 커튼이 쳐진 뒤에서는  아랍의 비행기를 타보면 가장 뒤쪽에 기도하는 장소를 만들어놓고 커튼을 쳐놓은 곳이 있다. 그곳에서 옷도 갈아 입고 이슬람 성지인 메카를 향해 기도 시간이 되면 하나둘씩 기도한다. 이륙한 뒤나 착륙하기 전에 기장이나 승무원들이 안내방송을 하는데, 아랍 항공기는 제일 먼저 “신을 위하여, 신을 위한, 신에 의해” 안전한 항로가 되기를 기원하는 말부터 한다. 정말로 종교에 심취해 살아가는 것 같다.  아랍국에서 택시를 이용할 때는 미터기를 사용하든 말든 목적지를 말하고 미리 요금을 협의한 뒤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길을 알아둬야 한다. 그래야 택시기사가 엉뚱한 길로 가거나 돌아가는 일이 없다.  아랍국 중에 방문하거나 생활하기가 그나마 자유로운 나라들은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 모로코 정도다. 반면에 정치적으로 폐쇄된 사회여서 불편한 나라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이란 등이므로 이곳을 방문할 때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아랍의 화장실은 정말 깔끔하다. 일단 들어가면 양변기 옆에 세면기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 남자 소변기 옆에는 샤워기 같은 것이 있다. 좌변기 옆에 있는 것은 여성용 비데다. 그리고 소변기 옆의 샤워기는 남성용 세정기다. 무슬림 남녀들은 소변을 본 뒤 반드시 아래를 씻는다. 이런 것이 없다면 주전자에 물을 담아서라도 씻는다. 그것이 이슬람의 성스러움과 신에 대한 예의라고 하니 이해하자. 단, 공공장소 심지어 국제공항 화장실에도 화장지가 없으니 꼭 미리 준비해야 한다.    3.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아랍국 거래처들과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약속 시간을 어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잘 모르는 사람은 짜증이 날 일이지만, 그들의 순수성을 알게 되면 이해하게 된다.  상대방이 약속 시간을 어겨도 난 지켜야 한다. 그래야 소기의 비지니스 목적을 이룰 수 있을니까.  아랍인의 시간 개념은 코리안 타임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특히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아랍 상인들과 일할 때 속이 터질지도 모른다. 나도 성격이 급한 편인데, 10년 이상 아랍 상인들과 비즈니스를 했더니 많이 여유로워졌다.  아랍국에서는 열차도 항상 늦는다. 3~4시간 늦는 것은 예사다. 그런데도 승객들은 불평 한 마디 없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태연하게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다. 또한 비즈니스 서류를 접수해서 다시 돌아오는 데 빠르면 보름이고 한 달 이상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아랍인들은 오랫동안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중시하지 않는다. 또 대다수 무슬림은 다섯 차례 기도 시간을 기준으로 약속을 정한다. 기도 시간은 새벽 4시 반, 정오, 오후 3시 반, 저녁 6시 반, 8시쯤인데 확실히 지킨다.  그러니 아랍 상인들과 일할 때는 가급적 이 시간을 피해야 한다. 미팅을 하다가도 기도 시간이 되면 아무 말 없이 슬그머니 나갔다가 20여분 뒤에나 돌아오기 마련이다. 양해도 구하지 않고, 갔다 와서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란 식이다.  이들의 시간 개념은 ‘부크라’(내일), ‘인샬라’(신의 뜻대로)’로 함축된다. 오더 수주나 대금 결제가 내일 가능한지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하는 법이 없고 항상 ‘인샬라’라고 답한다.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거나 아예 약속 자체를 깨고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뭐라고 할라치면 ‘마알레쉬’(개의치 말라)라고 한마디 할 뿐이다.  이 말은 상당히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말이지만, 불성실한 행동의 책임을 전가하는 말로 즐겨 쓰인다. ‘부크라’는 내일이 아닌 다음 주, 다음 달, 내년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관공서나 거래처에 좀 늦게 방문하면, 아랍인들은 내일 오라고 말한다. ‘바덴’은 나중에, 다음에란 뜻이지만, 진짜 의미는 “지금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랍국 상인들과의 협상은 인내력 테스트나 마찬가지다. 한 바이어와 상담할 때에도 같은 장소를 몇 번씩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그러니 하루에 여러 군데와 상담할 수가 없다. 따라서 아랍국 바이어들과 상담 약속을 할 경우엔 하루나 이틀에 한 업체로 제한해야 할 것이다.    4. 그래도 아랍 비즈니스는 재미있다. 왜?  사막 지역의 나라에서는 대부분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오침 시간이 있다. 관공서를 포함한 모든 사무실이 그 시간에 문을 닫는다. 대신 오침 시간이 끝나는 오후 6시부터 밤늦게, 보통 11시까지 일한다.  아랍국 상인들과 비즈니스 상담을 할 때는 바디 랭귀지를 잘 살펴야 한다. 아랍인은 애매한 것들은 말로 하기보다 제스처로 표현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가볍게 고개를 상하로 끄덕이며 동시에 눈을 끔벅이는 것은 긍정의 뜻이다. 눈썹을 치켜 세우며 입술을 오므리고 혀를 잇몸 가까이 대고 혀 차는 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머리를 위로 약간 쳐들면 부정의 뜻이다.  아랍국 상인들은 질보다 양이 먼저다. 그들은 실제로 그만큼 주문하지도 않으면서, 수량이 얼마나 되냐고 물으면 무조건 컨테이너 단위로 대답한다. 그러면 수출업자가 가격을 싸게 주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에 현혹되면 안 된다. 싸게 가격을 내놓으면 또 내려달라고 덤빈다.  결제 조건이나 가격도 꼼꼼히 따진 뒤에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달콤한 말에 넘어가 요구하는 대로 계약한 뒤 신용장을 받으면, 바이어가 유리한 조항들로만 가득할 것이다. 바이어가 마음에 안 들거나 수출자가 따지면 바로 계약을 취소하고 다른 거래처와 계약해 버린다.  그러니 아랍 상인들은 유치원생 다루듯이 살살 어르고 칭찬하면서 온갖 말로 유혹해야 한다. 세계에서 제일 비즈니스하기 까다로운 것이 아랍인이라고 하지만, 거래를 하다 보면 그들보다 쉬운 거래처가 없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한번은 아랍 상인과 가격 문제로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다. 내 상황에서는 단가를 5센트 인상해야 그나마 조금 남을 형편인데, 아랍 바이어는 막무가내였다. 몇 번이나 설득해도 안 되자 내 말대로 계약하면 지금 현금 200달러를 줄테니 아이한테 과자나 사주라고 했다. 그랬더니 덥석 돈을 받고는 5센트를 올려주었다. 사실 5센트를 인상하면 500달러가 남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200달러를 주었으니 300달러가 남는 흥정이었다.  이처럼 아랍인들은 단순하다. 그 점을 잘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바이어들에겐 그런 식으로 할 필요도 없거니와, 아예 그런 시도는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5. 기본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아랍식 관용어들  아랍인들은 장난스럽고 허물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칫 잘못하면 말재간에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즈니스 상담은 대부분 영어로 진행하지만, 간혹 아랍어가 필요할 때도 있다. 능숙하게는 못하더라도 기본적인 말은 익혀두어야 한다.  아랍에서는 애정 섞인 표현으로 사람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하비비(habibi)’란 말이 있는데, 연장자가 아랫사람을 친밀하게 부르는 말이다.  원래는 이성간에 사용하는 말이다. 같은 식으로 ‘이브니(ibni)’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본래 뜻은 ‘나의 아들’이다. 동년배끼리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농담할 때나 비아냥 거릴 때다. 반면에 ‘야 왈라드’라는 말은 ‘꼬마야’라는 뜻으로 길거리의 신문팔이 아이를 부를 때 쓴다고 한다.  무슬림들의 인사는 꽤나 길다. 상대의 인사말보다 더 나은 인사로 하든지, 적어도 동등한 수준에서 응답해야 한다. 이를테면 ‘싸바훌 카이리(아침 인사 : 안녕하세요?)’란 말이 있는데, ‘카이리’는 행운, 안녕을 뜻한다. 이보다 한 단계 높은 표현이 ‘누르(빛)’이기 때문에 대답으로 ‘싸바한 누르’라고 말하거나 그와 동등한 말로 답해야 한다.  아랍국 무슬림들끼리 만나면 ‘앗쌀라무알라이쿰(안녕하세요?)’이라고 인사하고 ‘와 알라이쿠뭇 쌀람’이라 고 대답하는데, 원래 뜻은 ‘평화가 그대에게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헤어질 때 ‘마앗 쌀라마(안녕히 가세요)’도 무사히 갔다 오라는 뜻이 담겨 있다. 대답은 ‘일랄리까(만날 때까지)’다.  이름 앞에 ‘야 우스타즈(sir)’라고 덧붙이는 것은 대학교수나 변호사, 문인들에게 쓴다.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에게는 ‘독토르’, 정부 고위직에게는 ‘앗사아아다’라고 붙여준다. 일반적으로 존경을 표시하는 말에는 ‘하드리탁(adritak)’, 부인에게는 ‘야 마담’, 잘 모르는 이에게는 ‘야 아크(yaa ‘akh)’라고 한다.  공손하고 예의바른 표현으로는 ‘라우 싸마흐트(실례합니다만)’, ‘민 바아드 아므락(허락하시면)’, ‘타팟달(앉으세요, 들어오세요, 먼저 하세요, 그렇게 하십시오, 드십시오)’ ‘알라히 칼릭’ ‘알라히야 호파작’(신이 지켜주시기를) 등이 있다. 이 밖에 흔히 쓰이는 말로 ‘꾸워이스’(좋다, 건강하다), ‘마아쉬’(천천히), ‘슈웨이야’(조금),‘맙쑤뜨’(기쁘다, 만족한다), ‘슈크란’(감사합니다) 등이 있다.
  • 무한도전 광희, 무도 첫 촬영 인증샷 “귀여운 광희” 박명수 애정폭발

    무한도전 광희, 무도 첫 촬영 인증샷 “귀여운 광희” 박명수 애정폭발

    무한도전 광희, 무한도전 첫 촬영 인증샷 “귀여운 광희” 박명수 애정폭발 ‘무한도전 광희 무한도전 박명수’ 개그맨 박명수가 ‘무한도전’ 식스맨으로 선정된 광희와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30일 박명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귀여운 광희”라는 글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에서 박명수는 광희를 번쩍 안고 있다. 사진 속 박명수는 잇몸미소를 짓고 있고, 광희 역시 박명수 품에 안겨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어 훈훈함을 자아냈다. 한편 이날 한 매체는 “광희가 매주 목요일 진행되는 MBC ‘무한도전’ 녹화에 참여, 6번째 멤버로서 첫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고 광희의 무도 첫 촬영 소식을 보도했다. 광희는 장동민, 최시원, 강균성, 홍진경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최종 식스맨으로 뽑혀 최고의 인기 예능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 사진=박명수 인스타그램 김민지 인턴기자 mingk@seoul.co.kr
  • 일산가구단지 본갤러리, 가구배치부터 신혼가구&입주가구 인테리어 팁까지…

    일산가구단지 본갤러리, 가구배치부터 신혼가구&입주가구 인테리어 팁까지…

    오는 5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A씨는 최근 신혼집 인테리어에 푹 빠져있다. 높은 전세값 때문에 마음에 들었던 깔끔한 아파트를 포기한 대신 인테리어와 가구에 힘을 주어 둘만의 취향이 담긴 아늑한 신혼집을 만들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A씨는 “최근에는 디자인과 기능성을 모두 갖춘 가구와 소품이 다양하게 나와있어 이를 잘 활용하면 충분히 원하던 신혼집을 완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가구 배치는 물론 인테리어 노하우까지 배울 수 있는 쇼룸 형태의 매장을 이용해 신혼집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많이 얻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5월 웨딩시즌과 이사철을 앞두고 높은 집값 부담으로 집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대신, 인테리어와 가구를 통해 실용적이고 세련된 집안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가구업체의 쇼룸에는 주말마다 문전성시를 이룬다. 순수 국내생산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랑 받고 있는 본갤러리 일산점 역시 최신 트렌드가 반영된 신혼가구, 입주가구를 둘러보러 나온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북유럽 가구는 물론 모던가구, 엔틱가구, 수입가구 등 다양한 종류의 가구를 쇼룸형태로 만나볼 수 있어 편리하다. SBS 닥터이방인, tvN연애말고결혼, MBC 오자룡이간다 외 다수의 드라마 제작지원에 참여하며 본갤러리만의 트렌디한 가구를 선보여 신혼부부 등 젊은 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일산가구단지에 위치한 본갤러리 일산점을 찾은 예비 신혼부부는 “인터넷이나 해외직구 등 가구를 구입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가 있지만, 오래 사용할 신혼가구인 만큼 직접 눈으로 디자인이나 품질 등을 확인하고 구매하기 위해 본갤러리를 방문하게 됐다. 품질이 유명 수입가구 못지 않은데다가 가격까지 합리적이라 방문하길 잘 한 것 같다.”라고 밝혔다. 본갤러리 일산점 관계자는 “본갤러리는 30년 전통의 가구 브랜드로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과 순수 국내생산을 통한 높은 품질로 한 번 찾은 고객들이 다시 찾는 가구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원하는 경우 고객 맞춤 제작이 가능하며, 체계적인 A/S를 받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장점이다. 봄 웨딩시즌 등 시기별로 진행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더욱 저렴한 가격의 행운까지 누릴 수 있다.”라고 전했다. 한편 본갤러리 일산점에 대한 정보는 홈페이지(www.borngallery.co.kr) 및 전화(031-968-6768)로 문의하면 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45일 만에 또… 네 살배기 어미소, 송아지 연속 출산

    45일 만에 또… 네 살배기 어미소, 송아지 연속 출산

    네 살배기 어미소가 45일 간격으로 송아지 두 마리를 낳아 화제다. 전남 강진군 대구면 수동마을 윤영채(65)씨가 기르는 39개월 된 어미 암소는 지난달 5일 암송아지를 낳은 후 45일 만인 지난 19일 또다시 수송아지를 출산했다. 송아지 2마리 모두 건강한 상태다. 소의 임신 기간은 약 280일로 윤씨는 지난해 7월 4일 인공수정 후 재발정해 1개월 후 재수정을 했다. 어미소가 쌍둥이를 출산하는 일은 종종 있지만 한 어미소가 45일 간격으로 두 마리의 송아지를 출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축산연구소는 어미소의 피와 체모를 채취해 정확한 원인을 가리고 있다. 두 차례 수정이 모두 임신이 돼 송아지 두 마리를 낳은 것으로 보고 있다. 윤씨는 “정말 신비스러운 일로 큰 행운이 올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강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미미박스에서 공개한 ‘나나가 까였다’ 광고 화제…새 애인보다 예뻐지기 위한 방법은?

    미미박스에서 공개한 ‘나나가 까였다’ 광고 화제…새 애인보다 예뻐지기 위한 방법은?

    27일에 공개된 ‘대한민국 미미박스 메이크오버 프로젝트’ 광고 영상이 화제를 낳고 있다. 해당 영상은 남자친구에게 100일 선물로 이별 통보를 받은 나나의 모습으로 시작됐다. 정신줄을 놓아버린 1단계,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2단계, 미련한 여자의 3단계에까지 이른 나나는 새로운 애인이 생겨버린 남자친구의 모습에 전의를 불태우며, 예뻐지기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미미박스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제품을 구매하고 메이크오버를 시작한다. 미미박스의 이번 광고 영상은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이별의 흑역사와 더불어 헤어진 옛 남자친구의 새 애인보다 예뻐지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을 현실적이면서도 매우 코믹하게 그려내 2030여성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낳고 있다. 더욱이 미미박스 메이크업 제품을 통해 아름답게 변신한 영상 속 나나의 모습은 헤어져도 예쁘고 싶은 여자들의 심리까지 반영해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한편, 화제가 되고 있는 나나 X 미미박스 에피소드1 영상과 더불어 미미박스에서는 2가지의 메이크오버 이벤트를 진행한다. 첫 번째 이벤트는 광고 영상 속 나나처럼 인상적인 이별 경험이나 짝사랑 실패 사연을 미미박스 플랫폼을 통해 보내주면, 당첨된 주인공들에게 메이크업 카가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프로 아티스트들과 푸짐한 미미뷰티 상품을 실은 미미 메이크업 카가 어디든지 찾아가 메이크오버를 돕는다. 두 번째 이벤트는 이별 극복 방법을 미미박스에 댓글로 남기면, 미미박스 측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댓글들을 선정해 최대 50만원 상당의 메이크업 제품을 증정하는 방식으로, 5월 15일(금)에 행운의 주인공들이 공개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계기록 도전하는 인도판 라푼젤, 모발 길이는?

    세계기록 도전하는 인도판 라푼젤, 모발 길이는?

    2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기네스 세계 신기록에 도전하고자 머리카락을 기르는 ‘스미타 스리바스타바(Smita Srivastava·37)’라는 인도 여성의 사연을 소개했다.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알라하바드에 사는 스리바스타바의 현재 모발 길이는 2.1미터. 앞서 스리바스타바는 1.8미터의 모발 길이로 인도판 기네스북인 ‘림카 북 오브 레코드(Limca Book of Records)’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스리바스타바는 “쇼핑을 갈 때면 사람들이 몰려와 어떻게 머리를 길게 기를 수 있느냐고 물어온다”며 “내 머리카락을 가짜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다가와 내 머리를 직접 만져보기도 한다. 그러나 진짜라는 것을 곧 알게 된 사람들은 행운아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하지만 스리바스타바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기네스 세계 기록(Guinness World Record)에 이름을 올리고자 계속 머리를 기르고 있다. ‘가장 긴 머리카락 여성(Longest head hair:female)’이라는 타이틀로 현재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된 여성은 중국의 ‘시에 치우핑(Xie Qiuping)’으로, 1973년부터 꾸준히 길러온 머리카락으로 지난 2004년 모발길이 5,627미터의 신기록을 세운 바 있다. 세계 기록에 비하면 스리바스타바의 모발 길이는 매우 짧은 편. 그러나 어릴 때부터 계속된 스리바스타바의 도전과 열정에 가족들 또한 지원을 아끼고 있지 않다고 한다. 한편, 스리바스타바는 석유 제품 홍보대사와 지역 미인대회 심사위원을 겸해 활동하고 있다. 사진·영상=RuptlyTV/유튜브 김형우 인턴기자 hw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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