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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덴’ 박해진 “드라마 마다 대박? 행운이죠”

    ‘에덴’ 박해진 “드라마 마다 대박? 행운이죠”

    ‘소문난 칠공주’ ‘하늘만큼 땅만큼’ ‘에덴의 동쪽’. 공통점 없어 보이는 이들 드라마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배우 박해진이 출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드라마 모두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소문난 칠공주’에서 연하남을 시작으로 스타덤에 오른 박해진은 이후 출연하는 드라마마다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는 영광을 안았다. 현재 출연 중인 ‘에덴의 동쪽’ 역시 기존 연하남의 이미지를 벗고 정의와 악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신명훈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사고 있다. 지난 3일 MBC 일산 드림센터에서 진행된 ‘에덴의 동쪽’ 촬영현장에서 만난 박해진은 “출연하는 드라마 마다 모두 잘 된 것 같다.”는 기자의 칭찬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던 것 같다.”며 겸손한 자세를 보였다. 이어 박해진은 “50부작의 ‘에덴의 동쪽’이 벌써 반환점을 돌았다.”며 “앞으로 연정훈과 얽히는 출생의 비밀에도 많은 기대 부탁 드린다.”고 전했다. 또한 박해진은 “다음 출연 드라마는 좀 더 가벼운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서울신문NTN 서미연 기자 miyoun@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집중분석] 기성용 ‘가치있는 골’ 비결은?

    [집중분석] 기성용 ‘가치있는 골’ 비결은?

    29일 수원을 무너뜨린 ‘무서운 10대’ 기성용(19·서울)의 결승골이 K리그에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K리그 최고 빅카드로 꼽히는 수도권 더비에서, 더구나 후반 인저리타임에 터진 기성용의 골에는 드라마틱한 구성까지 겹쳤다. 기성용은 베이징올림픽 후 K리그 후반기에만 4골, A매치에서는 2골을 기록했다. 그의 골엔 무엇이 담겨 있을까. ◇고난도 골이 많다 수원전 골은 동료 이청용의 긴 크로스에 이은 수원 수비수 양상민의 헤딩 실수에서 나와 행운이 깃들었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달려들면서 상대의 머리를 맞고 흐르는 볼의 궤적을 좇아 박자를 맞추고, 전진하는 상대 문지기의 키를 넘기는 오른발 논스톱 로빙슛을 날리기는 쉽지 않다. 침착과 재치가 빛났다. 기성용은 고난도 골을 많이 넣었다. 지난 11일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오른쪽 크로스를 아크에서 왼발 논스톱슛으로 연결했고, 지난달 10일 북한전에서도 직선 침투 패스를 아크에서 가슴으로 받은 뒤 그대로 오른발로 쏘았다. 감각적인 터치가 돋보였다. 8월 이후 터진 6골은 발리슛, 중거리슛, 골키퍼 키를 넘기는 재치슛, 골지역에서 밀어넣기 등 다양한 과정에서 나왔다. ◇승부를 바꾸는 골이 많다 그의 골은 승부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올시즌 6골 중 결승골이 4차례나 된다. 또 북한전 동점골은 패색이 짙은 가운데 나온 극적인 골이었다. 골잡이는 아니지만 해결사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위기 상황을 헤쳐나가고, 지리멸렬한 경기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힘은 골에 대한 집중력의 소산이다. ◇’기성용 존’이 생겼다 ’기성용 존’의 탄생도 주목할 부분이다. 6골 중 아크 부근에서 나온 슛이 4골이나 된다. 또 3골이 발리슛이었다. 아크에서 승부를 가르는 골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슛 능력이 좋다는 방증이다. 과거 K리그에서 아크 부근에 하석주(경남 코치)와 고종수(대전) 존이 회자됐다. 모두 프리킥 상황에서 나온 ‘존’이었다. 기성용의 골은 모두 필드골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거리슛으로 골을 만들어내는 잉글랜드 리버풀의 미드필더 제라드를 연상시킨다. 이름 앞에 붙은 ‘기라드’라는 이름은 설득력이 있다. ◇왜 골이 늘어났나 후반기 들어 골이 늘어난 데는, 팀내에서 공격적인 역할이 늘었기 때문이다. 소속팀에서 중앙미드필더로 뛰는 그는 수비적인 임무가 많은 김한윤의 뒷받침 덕에 공격에 자유롭게 가세하고 있다. 이영진 서울 코치는 골비중이 높아지는 이유에 대해 “프로무대에 2년째 서면서 1군에 완전히 적응했다. 8월말 후반기 개막경기였던 대구전에서 프로 첫 골을 넣으면서 부담을 털어내고 자신감을 찾는 계기가 됐다. 요즘엔 좀 더 공격적인 선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기성용도 더 가다듬어야 할 게 있다. 큰 키에 비해 헤딩골은 전무하다. 이 코치는 “힘이 안 붙어서 점프와 헤딩이 좋지 못했는데 점점 나아지고 있다”며 “미드필더로서 플레이메이커 역할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경기 상황에 따라 팀을 리딩하고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내 책을 말한다] 독일통일과 문학

    베를린 장벽이 개방되던 1989년 11월 9일에 나는 마침 독일에 있었다. 그날 밤 텔레비전을 통해 동서독인들이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바라보며 나 또한 감동에 몸이 떨렸다. 그전까지는 막연히 상상만 하던 일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지고 있었으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생각해 보라. 어느 날 갑자기 휴전선이 열려서 남북한 사람들이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는 상황을! 이후에도 놀라운 사건은 계속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열린지 11개월 만에 독일이 통일된 것이다. 그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내겐 행운이었다. 언젠가 우리도 가야할 길이라는 생각이었기에 독일의 통일과정은 더욱 내 관심을 끌었다. 그래서 나는 귀국 후에도 꾸준히 통일 이후 독일사회의 변화와 통합과정을 지켜보았다. 이 책은 그렇듯 내가 지난 18년간 독일통일을 때로는 부러워하며, 때로는 고개를 저으며 바라본 성찰의 기록이다. 통일된 지 18년이 지났지만 독일 사회는 아직도 많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이질적인 두 사회가 하나로 합쳐짐으로써 제도적 통일은 완수되었지만 동서독 주민들간의 머릿속 장벽은 여전하고, 양쪽 지역의 격차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된 원인은 독일통일이 서독 주도로 이루어진 흡수통일이었기 때문이다. 서독의 제도나 체제는 하나도 바뀌지 않은 채 동독의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완전히 새로운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동독인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것을 보며 나는 경제나 정치적 통합만으로는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고 심리적, 문화적 통일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독일통일을 연구하면서 주로 제도적 통합에만 초점을 맞춘 것을 보완하기 위해 나는 이 책에서 통일독일 사회의 내적 통합, 즉 문화적 통합에 중심을 두었다. 동서독인들이 왜 아직까지도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하는지 분석하는데 문학만큼 좋은 소재도 없다. 문학은 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드러나는 공간이자 많은 사람들의 절망과 희망이 투사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통일과정에서 그리고 통일 이후의 독일 사회에서 동서독인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문학 작품에는 녹아 들어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통일과 관련한 다양한 세대의 문학작품과 언론에서의 논쟁들은 독일 사회의 내적 통합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 독일통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모범이자 반면교사이다. 독일통일의 경험에서 우리는 원용할 점과 애써 피해야 할 점을 찾아야 하고 그들이 겪은 문제점을 피해갈 지혜를 배워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 하에 나는 책의 말미에 독일통일에 비추어본 한반도 통일방안을 넣었다. 어떠한 단계와 과정을 거쳐 한반도 통일을 어떻게 완성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자는 뜻이다.(창비 펴냄) 김용민 연세대 독문과 교수
  • [이용원 칼럼] 아테네의 김경자씨,이스탄불 조미열씨

    [이용원 칼럼] 아테네의 김경자씨,이스탄불 조미열씨

    지난주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만난 현지 관광가이드 김경자씨는 박학다식하고 열정 또한 넘쳤다.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파르테논 신전, 디오니소스 극장, 페리클레스 음악당 등 유적을 둘러보는 동안 그녀의 입담은 거침이 없었다. 시대 배경이 되는 서양고대사는 물론이고 민주주의의 함의(含意), 종교·사상의 전개, 건축술의 특성에 이르기까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었다. 올해로 쉰셋. 그리스에 들어와 산 지 20년이 넘었다지만 그 내공은 단순히 연륜에만 의지한 게 아니었다. 우리 일행은 곧 그녀를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아테네에 앞서 방문한 터키의 이스탄불에서도 한국인 현지 가이드 조미열씨를 만났다.‘교수님’과는 달리 한창 활력 넘치는 28세 아가씨이다. 그러나 나이가 어리다고 내공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자신이 안내하는 유적지에 관한 지식이 해박했다. 또 젊은이 특유의 감각으로 터키 사회를 분석한 내용을 틈틈이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프로’였다. 아테네와 이스탄불은 둘 다 서울과 시차가 6시간이나 된다. 인천공항에서 이스탄불까지 항공편으로 직항해도 11시간 안팎 걸리는 머나먼 이역(異域)인 것이다. 그 땅에 그들이 들어와 살게 된 사연이 궁금했다. ‘교수님’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 그리고 1980년 잠시 들르러 간 고향 광주에서 5·18을 겪었다. 이어지는 ‘80년대적’ 한국 상황은 그녀를 절망케 했고, 게다가 실연까지 겹쳤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전인 1987년 그녀는 그리스를 향해 무조건 한국을 떠났다. 그리스를 택한 까닭이 민주주의의 발상지이기 때문이냐는 객쩍은 질문에 ‘교수님’은 피식 웃으면서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고 했다. 해외 연고라고는 이모 부부가 사는 그리스뿐이었다는 것이다. ‘교수님’은 그리스 남자와 결혼했고 국적도 얻었다면서 그리스에서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절망만을 가득 안고 도망쳐 나온 모국을 이야기하면서 왜 회한이 없을까마는 ‘교수님’의 말투는 담담했다. 조미열씨는 스스로 터키 행을 택한 사람이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지만, 해외에서의 삶은 어릴 때부터의 꿈이어서 영어는 단단히 공부해 두었다.2년 전 어느날 구인란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다 터키에서 가이드할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즉시 응모했다. 터키 말은 한마디도 못하던 이 당찬 아가씨는 이제 현지 대학에 진학해 터키의 언어나 역사를 공부할까 고민 중이다. 대학에 진학할 만큼 저축을 했느냐고 묻자 그녀는 “한달에 250만∼300만원 정도는 버니까 문제없다.”고 대답했다. 오히려 서울에 한번 오가면 “돈이 너무 깨져서” 싫다고 했다. 그녀는 “관광가이드란 원래 노마드(유목민)”라면서 굳이 한국에 돌아가 살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이 시대에 고향이란 언제라도 돌아가 쉴 수 있는 공간일 뿐 생활의 터전일 필요는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국 땅에서 만난 두 한국 여성, 아테네의 김경자씨와 이스탄불의 조미열씨는 삶의 궤적이 너무나 달랐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은 각기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일정부분 반영하는 듯했다. 이역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두 한국여성에게 건강과 행운이 늘 함께하기를 빈다. 이용원 편집국 수석부국장 ywyi@seoul.co.kr
  • 이순재에 대드는 쥬니 “저 미워하지 마세요”

    이순재에 대드는 쥬니 “저 미워하지 마세요”

    MBC 수목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극본 홍진아 홍자람ㆍ연출 이재규)를 통해 주목 받고 있는 신인 연기자 쥬니. 아직 그의 이름이 낯선 이들도 있겠지만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할아버지 이순재에거 대드는 싸가지 고등학생 ‘하이든’이라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실제 지난 22일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진행된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현장에는 신인 연기자 쥬니를 알아보고 싸인을 요청하는 팬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 이순재에게 거침없는 독설을 내뿜어 때론 시청자들의 미움을 받기도 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예고에 입학하며 음악적 재능을 보이는 엉뚱한 캐릭터 하이든 역의 신인 연기자 쥬니를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 현장에서 만나봤다. # 대선배 이순재, 당근과 채찍으로 연기 지도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대선배 이순재에게 거침없는 행동을 보이는 탓에 신인 연기자 쥬니는 어려움을 호소한다. “극 중에서 이순재 선생님에게 하는 개념 없는 행동 때문에 시청자 게시판에 비판의 글을 남겨 주는 분들이 많아요. 회가 진행될수록 저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실 수 있을테니, 너무 미워하지 마시고 끝까지 좋은 시선으로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데뷔 52년 차에 접어든 배우 이순재와 이제 막 연기의 걸음마를 뗀 신인 연기자 쥬니. 그에게는 대선배 이순재와의 호흡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대선배님과의 호흡을 맞추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도 있어요. 그런데 배울 점이 워낙 많아 제게는 행운이라 생각해요. 제 연기가 부족하다 싶으면 촬영을 중단시키시고 직접 연기를 지도해 주세요. 더욱이 선생님은 당근과 채찍을 함께주셔서 배우는 저는 너무 좋아요.” 때론 많은 이들의 질타에 어려움도 있지만, 쥬니는 자신에게 찾아온 운명의 기회에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한 편의 뮤지컬 출연이 다 인 제게 ‘하이든’의 캐릭터는 쉽지 않았어요. 말투에서부터 고등학생이 되어야 됐기 때문에 초반 감독님에게 지적도 많이 받았죠.” 하지만 어느덧 그의 리얼한 연기에 안티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는 어른들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성격이에요. 더욱이 극 중에서처럼 이야기 할 수 있는 용기는 더욱 없죠. 극 중의 캐릭터는 캐릭터일 뿐이니 시청자 분들이 절 미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 연기 첫 도전 VS 인디밴드 2년 실력파 또한 현재 연기자로 데뷔한 쥬니는 내년 초 가수 데뷔를 앞두고 있다. 2년의 세월동안 홍대에서 인디밴드로 활동해온 그는 4인조 여성 락 밴드 벨라마피아의 멤버로 활약 중이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의 꿈만 키워오다 우연한 기회에 연기자로 데뷔하게 됐죠. 먼저 가수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운명의 기회가 찾아왔고 그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기회가 제게는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우연히 오르게 된 뮤지컬 공연에서 지금의 소속사 관계자의 눈에 띄어 연기자로 데뷔한 쥬니는 현재 이병헌, 한채영, 진구, 배수빈 등과 한솥밥을 먹으며 연기 연습에 한 창이다. 더욱이 그는 가수 데뷔와 연기자로서 각각의 활동을 도와주는 소속사의 도움을 받는 행운도 거머쥐었다. “어린 시절에는 플룻을 연주했어요. 학교에서 음악을 전공 중이고, 가수 데뷔를 위해 20대를 보냈죠. 연기자로 먼저 데뷔했지만, 내년 초에는 가수로 데뷔할 예정이에요. 어느 한 곳을 선택하지 않고 가수, 연기자 모두 할 수 있게 되어 기뻐요.” 연예계에 첫 발을 내딛은 신인 연기자 쥬니. 아직 보여줄 것이 많은 그는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와중에도 가수 데뷔를 위해 오늘도 피나는 노력 중이다. 서울신문NTN 서미연 기자 miyoun@soeulntn.co.kr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비, 美언론 인터뷰 “한국에도 닌자 있다”

    비, 美언론 인터뷰 “한국에도 닌자 있다”

    ”내가 일본 캐릭터를 연기했다고?” 가수 겸 배우 비(정지훈)가 할리우드 첫 주연작인 ‘닌자 어쌔신’(Ninja Assassin)에서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는 ‘일본 닌자’가 아니라고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비는 미국의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사이트 ‘크레이브 온라인’(craveonline.com)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인으로서 일본 닌자를 연기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 “전형적인 일본 닌자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길에 버려졌던 아기가 한 집단에 의해 키워진다는 내용상 전통적인 의미의 닌자라기 보다는 동양인 국제 고아와 더 비슷하다.”라고 설명했다. 또 “한국에도 닌자가 있느냐.”는 질문에 비는 “한국 닌자가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말하는 닌자와는 매우 다르다. (한국에서 닌자는) 전통무예의 한 계파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비는 이번 배역의 개인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어려서부터 액션 영웅이 되고 싶었다. 언제나 액션 스타를 꿈꿨었는데 이제 그 꿈을 이루게 됐다.”고 설명하며 닌자 캐릭터 보다는 ‘액션 영웅’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밝혔다. 이 인터뷰에서 비는 한국에서의 인기를 묻는 질문에 “1집 앨범에서부터 행운이 따랐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한국에 와 보면 내가 얼마나 유명한지(how big I am)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어 “아시아에서는 성공을 거뒀다. 이제는 닌자 어쌔신을 통해 이 곳(미국)에서도 더 많은 사람에게 나를 알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크레이브 온라인은 이 인터뷰를 실으면서 비를 “아마도 지금까지 인터뷰한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일 것”이라고 소개해 비에 대한 현지의 높은 관심을 짐작케 했다. 비는 다음 달 아시아 스페셜 앨범을 발표하고 국내 무대에 컴백할 예정이다. 지난 6월 촬영을 마친 영화 ‘닌자 어쌔신’은 내년 3월 개봉한다. 사진=영화 ‘닌자어쌔신’ 스틸사진 (EW.com/Comic con)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베이징 패럴림픽] 18㎏ 뼈를 깎는 감량 메달약속 지킨 ‘전설’

    요행으로 따낸 동메달이라 할 수도 있지만 살인적인 감량이 없었더라면 결코 일굴 수 없는 값진 메달이었다. 1984년 LA대회부터 이번 대회까지 7회 ‘개근’한 정금종(43·서울시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은 장애인역도의 전설같은 선수. 그는 지난달 29일 베이징패럴림픽 한국선수단 결단식에서 자신이 참가했던 대회 숫자만큼 메달을 따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약속을 기어이 지켰다. 정금종은 11일 베이징 항공항천대 체육관에서 열린 역도 남자 56㎏급 경기에서 자신과 똑같은 무게의 바벨을 들어올린 선수가 실격처리되는 행운에 힘입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금종은 1차시기 180㎏을 가볍게 들어올린 뒤 2차시기 185㎏으로 올렸지만 실패했다.3차시기를 맞아 187.5㎏으로 올렸지만 끝내 이마저 성공하지 못했다. 자신보다 체중이 0.25㎏ 가벼운 제이슨 어빙(영국)이 3차시기에서 180㎏을 들었던 터라 기록이 같을 경우 체중이 가벼운 선수가 승리하는 규칙에 따라 동메달은 어빙의 몫이었다. 정금종은 낙담한 채 도핑테스트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고 전광판에는 4위라고 표시됐다. 이때 어빙이 3차시기에서 2분 안에 경기를 끝내지 못해 뒤늦게 실격 처리되면서 같은 무게의 바벨을 든 선수 3명 중 정금종이 이마라스리 통사(33·태국)보다 10g이 덜 나가 그토록 바라던 메달의 꿈을 이뤘다. 평소 체중 73㎏을 유지하던 그가 경쟁자가 부쩍 늘어난 체급을 포기하고 56㎏급에 출전하기 위해 무려 18㎏이나 감량하는 초인적인 노력이 없었더라면 찾아올 수 없는 행운이었다. 그는 사흘 전인 8일까지도 한계체중보다 2㎏이나 더 나가 이를 빼느라 어려움을 겪어왔다. 3세때 소아마비를 앓은 그는 1980년 삼육재활원에서 선생님의 권유로 역도를 시작했으며 온갖 스포츠에 만능이지만 선수로서는 역도 외길을 걸어왔다. 정금종은 “행운의 동메달이 마지막 올림픽에 의미를 더하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하다.”며 “선수 생활만 30년 가까이 한 만큼 이젠 장애인체육행정 분야에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24년 젊음을 바쳤던 패럴림픽에 안녕을 고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폭풍의 화가’ 변시지를 아시지요

    ‘폭풍의 화가’ 변시지를 아시지요

    ‘제주 서귀포에 화가 변시지(邊時志)가 산다.’ 이 단순한 명제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제주를 알지 못한다. 서귀포에는 이중섭미술관도 있고 이중섭거리도 있다. 그 정도만 안다면 당신은 제주를 보지 못했다. 혹시 이런 뉴스를 들은 적은 있는가? 제주의 화가 변시지의 작품 <이대로 가는 길(100호)>, <난무(100호)>가 세계 최대의 박물관으로 16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의 스미소니언박물관에 2007년 6월부터 향후 10년간 상설전시에 들어갔다는.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생존하는 작가로 자신의 작품을 건 화가는 변시지가 동양인으로는 처음이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도 그의 사후에 전시됐다. 이는 변시지의 작품이 세계적인 작품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1926년 제주 서귀포에서 출생했으니 그의 나이는 한국식으로 83세. 그는 여전히 현역인 제주의 화가다. 변시지는 6살 때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미술대회에 나가 오사카시장상을 받아 신동 소리를 들었던 그는 1948년, 23세 때 일본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광풍회’ 공모전에서 최고상을 수상하고, 회원자격을 얻었다. 광풍회는 일본이 서양화를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진 단체로 광풍회 공모전은 일본에서 일전(日展) 같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고 있다. 일본의 유명 화가들도 여러 차례의 입상을 통해 40이 넘어서 회원자격을 얻는 공모전인데 23세 조선 청년이 광풍처럼 나타나 최고상을 수상하고 회원자격을 얻은 일은 100년이 가까운 광풍회 역사에 지금도 깨어지지 않는 신화로 남아 있다. 변시지는 1957년, 32세 때 서울대 교수직을 제안 받고 일본에서 영구 귀국했다. 그가 귀국하면서 가져온 것은 ‘조센징’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초등학교 때 씨름대회에 나가 다쳐 불구가 된 오른쪽 다리와 조국에서 펼칠 화가의 꿈이었다. 그러나 전후의 혼란스럽고 요란한 한국의 화단은 그를 실망시켰다. 줄서기를 강요하는 화단에 맞서 그는 부정으로 얼룩진 국전개혁운동을 2번이나 주도했다. 그 결과 그에게 돌아온 것은 절망과 자학뿐이었다. 비원(秘苑)을 주제로 극사실주의 화풍으로 비원 시대를 열어갔던 그는 1975년, 지천명의 나이로 제주로 돌아왔다. 서귀포를 떠난 지 44년 만에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그는 제주대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고독한 33년. 아내와 가족을 서울에 두고 스스로 유배자가 되어 고향 제주의 황토 빛을 찾았다. 동시대 화가들이 유럽이나 미국으로 진출을 할 때 그는 고향을 찾아 자신의 색깔을 찾았다. 스미소니언박물관 측은 그의 그림을 전시하며 “제주성(性)을 그린 그의 표현을 보면 그는 지역적인 특성에 의해 영감을 받았다. 한 예로 이것은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고향 제주에서 찾은 색깔로 당당히 세계적인 화가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색깔과 소재가 있다. 누런 해와 누런 바다, 그 사이로 번쩍이는 흰 파도, 문이 닫힌 제주 초가, 소나무, 돛배, 돌담, 조랑말, 화가 자신을 표현한 고독한 사내, 까마귀 그리고 바람이 있다. 서귀포의 한기팔 시인은 변시지 그림의 소재를 “고향 제주의 이미지를 가진 기호”로 말한다. 시인은 “그 기호가 가장 지역적이며 개인적인 출발점에서 가장 세계적이며 우주적인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변시지는 제주에서 1,0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들은 서귀포문화예술회관 내에 자리 잡은 기당미술관 안에 별도의 특별공간에 전시되어 있다. 유명세를 타지 않았지만 그의 그림은 입소문을 타고 고급 매니아들을 가졌고 그 덕에 오래전부터 위작이 떠돌고 있을 정도다. 필자가 몇 년 전 서귀포에서 그의 작품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때 나는 감동에 찬 목소리로 동행에게 외쳤다. 한라산과, 제주와도 바꾸고 싶지 않은 그림을 만났다! 고. 최근 서귀포에서 만난 변시지 화백은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혼자서 생활하며 100호 대작을 그리고 있었다. 예전처럼 집중력을 쏟아내지 못하지만 한 달에 몇 번 집중력의 시간이 찾아오면 ‘폭풍의 바다’를 오일캔버스에 재현하고 있다. 그가 그리는 제주 바다는 오늘의 제주 바다가 아니다. 그의 바다는 신화의 바다며 영원의 바다다. 그 바다에는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 화가에게 물었다. 왜 그 바다엔 바람이 부는가? 화가는 이렇게 답했다. “제주는 바람으로 역사가 이뤄졌다. 바람 때문에 바다로 나간 남자가 죽고 여자만 남았다. 바람 때문에 씨앗은 다 날아가고 돌멩이만 남았다.” 모두(冒頭)의 명제를 바꾼다. ‘제주 서귀포에 세계적인 화가 변시지(邊時志)가 산다.’ 이제 당신도 그 명제에 동의할 것이다. 정일근·《경향신문》과 《문화일보》에서 사회부 기자로 일했다. 기자 시절 많은 특종상을 수상했으며 방송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며 ‘한국방송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주요 일간지 등에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며 한국의 고래를 보호하는 일과 동티모르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 41세 아줌마 美수영대표 토레스 메달 꿈 심어준 자매와 8년만에

    41세 아줌마 美수영대표 토레스 메달 꿈 심어준 자매와 8년만에

    “제가 메달을 선물했던 퐁 자매를 8년 만에 베이징에서 만난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대되네요.” 41세에 미국 수영 대표로 나서 화제가 된 다라 토레스(사진 가운데)는 2000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열린 어린이 캠프를 찾았다가 당시 10세였던 산드라(왼쪽·18)와 9세였던 다니엘라 퐁(17) 자매를 만난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8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샌타클라라 클럽 국제초청대회에서 여자 자유형 50m 미국기록을 경신했던 직후라 토레스는 어린이들 앞에서 메달을 자랑했는데 그만 이들 자매에게 메달을 건네고 말았다. “퐁 자매의 해맑은 미소가 제 마음을 움직였죠. 그래서 망설임 없이 메달을 선물했어요. 특히 다니엘라는 정말 귀여운 얼굴을 가진 소녀였죠.”자매들은 집으로 돌아와 벽에 메달을 걸어두고 수영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수영은 아니지만, 올림픽 대표가 되겠다는 자매의 꿈은 이뤄졌다. 산드라는 사격 여자 공기소총 50m에 출전하게 됐고 뇌성마비 증세가 있는 다니엘라는 다음달 6일 개막하는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에 출전한다. 퐁 자매가 사격을 하게 된 것은 아버지 유만 퐁 덕분이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아버지는 자매들의 뜻을 따라 처음엔 자매에게 수영을 시켰으나 이들의 키가 160㎝ 이상 자라지 않자 사격으로 방향을 틀었다. 산드라는 얼마 전 전지훈련 중이던 한국에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이번 대회에서 행운이 따르기를 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바로 토레스가 보낸 것이었다. 이메일은 “나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이라고 시작됐지만 산드라는 “토레스를 기억 못할 수 있나요. 영원히 기억할 수밖에요.”라면서 환하게 웃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박성화호 ‘8강 셈법’] +4 자력 8강행 필요 승점

    ‘승점 4점을 추가하라.’ 강호 카메룬과 1-1 무승부를 펼친 한국축구가 8강 진출을 위해 필요한 승점은 얼마일까. 전문가들은 역대 기록을 따져볼 때 1승2무는 해야 안정권이라고 입을 모은다. 남자축구는 16개국이 4개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벌인 뒤 각 조 1·2위가 8강 토너먼트에서 맞붙는다. 승리하면 승점 3, 무승부 때는 승점 1, 패배하면 승점은 0이다. 결국 승점 5점 이상을 챙기는 게 대표팀의 지상과제인 셈이다. 남은 건 4점. 현실적으론 이탈리아전에서 무승부 전략을 펼치고 온두라스전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통계적으로 1996년 이후 세 차례 올림픽에서 8강 진출국의 평균 승점은 5.58점이었다. 물론 승점 4점으로도 8강에 오른 경우도 네 차례 있었지만 이럴 경우 자력 진출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다. 실제로 1996년 가나는 1승1무1패(승점 4점)로 C조 2위를 차지해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물론 이런 결과는 같은 조 다른 팀들과 막판까지 승자승에 골득실까지 따지는 마음고생 끝에 얻은 행운이다. 흥미로운 점은 올림픽 역사상 승점 6을 따고도 8강 진출에 실패한 경우는 있어도, 승점 5를 따고도 예선 탈락한 적은 없다는 점이다.1996년 일본은 브라질, 나이지리아와 나란히 2승1패(6점)를 기록했지만 골득실에서 뒤져 8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만큼 변수는 많다. 4년 뒤 같은 상황은 한국에도 반복됐다.2000년 허정무 감독이 이끈 한국대표팀은 칠레, 스페인과 2승1패(6점)로 동률을 이뤘지만 역시 골득실에서 밀려 3위로 떨어졌다. 반면 김호곤 감독이 이끈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는 1승2무(승점 5)만으로도 8강에 올랐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술먹다 경품권 나오자 칼대고 내놔라 으르릉

    지난 9월25일 포항시 노모씨(54)는 모 주점에서 소주를 마시다가 마침 술집앞으로 지나가던 술친구 이(李)모씨(47)를 불러들여 술자리를 같이 했는데. 공교롭게도 이씨와 마시다 한병 더 청한 소줏병에서 행운의「코로나」당첨권이 나오자 이씨가『같이 마시다 얻은 행운이니 나누어 갖자』고 우기며 심지어 당첨권을 내놓으라고 식칼로 위협까지 했다나. 그래서 노씨는 이 친구를 걸어 협박 및 절도혐의로 경찰에 솟장을 내고. -친구끼리 술도 못마실판. <포항> [선데이서울 71년 10월 24일호 제4권 42호 통권 제 159호]
  • [씨줄날줄] 이청준 단상/우득정 논설위원

    1970년대 중반, 서울 봉천동 하숙집에서는 밤마다 소주와 줄담배를 곁들인 토론이 벌어졌다. 철학도를 꿈꾸던 K형, 법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소설가로 방향 선회한 L형, 이따금 신랄한 촌평을 날리던 Y형…. 항상 안줏감은 최인훈의 ‘광장’,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당시 회자되던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등이었다. K형은 유신이라는 엄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관념의 세계로 도피하는 최인훈과 이청준에 대해 항상 거품을 물며 험담을 퍼부었다. 대학신문에 기고해 소주값을 마련하던 L형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다.‘언어의 유희’가 공격의 주무기였다. 그럴 때면 L형은 하이데거나 칸트, 카뮈, 사르트르를 들먹이며 예봉을 피하곤 했다. 내게 이청준은 그렇게 다가왔다. 지겹도록 관념적이어서 한숨에 읽어내리기에는 엄청난 인내를 요구한다. 화두를 던져놓고 돌에 글을 새기듯 힘겹게 되새김질하며 심연을 향해 다가간다. 그래서 이청준의 소설은 한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수면제가 되기도 하고,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하는 각성제가 되기도 한다. 어느 단편에선가 이청준은 대기업에 취업한 동기생과 비교하면서 아침 9시에 집필실(옆방)로 출근해 저녁 6시 퇴근하기까지 매일 몇십장의 원고를 써야 한다며 고통을 하소연한 것이 기억난다. 이청준의 소설은 그래서 고통스럽다. 스스로 영혼을 학대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천재성이 아니라 장인정신이다.‘향토적’이면서 ‘구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K형은 “문학을 모시고 살았던 세대의 마지막 선비작가”라고 단언한다. 그렇게 많은 작품을 쓰면서도 절대 글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청준은 최인훈과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는 ‘서울대 출신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지적인 오만성이 짙게 배어 있다는 뜻이다. 동시에 시대적 고민을 교묘하게 회피했다는 뉘앙스도 담겨 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출신 작가들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그래도 그 시절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과의 조우는 내겐 행운이었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문단 거목이자 신사 떠나셨다”

    “문단 거목이자 신사 떠나셨다”

    31일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는 오전부터 문단 안팎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이날 빈소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이어령, 김승옥, 정현종, 황동규, 박맹호, 김주영, 김원일 등 문화계 인사들이 온종일 줄을 이었다. 소설가 김승옥씨는 “고등학생 때 각기 다른 학교 학생으로 잠시 만났다 헤어졌던 그를 서울대 동문으로 다시 만나면서 문학적 교감을 나눌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다.”면서 애통해했다.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는 “고인은 김승옥과 더불어 때묻지 않은 모국어로 작품활동을 한 제3세대 문학의 대표주자”라며 “제3세대가 문단 전면에 나선 것이 엊그제 같은데 역사 속에 묻혀가는 것에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가장 존경하는 문인이셨다. 인간적으로도 나무랄 데 없는 신사셨다.”고 안타까워했다. 고인의 대표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실제 모델이었던 조창원 전 소록도병원장도 조문했다. 그는 “묻혀질 수 있는 소록도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줘서 너무 고마웠다.”면서 “지난 3월 만났을 때 ‘5개월밖에 못 산다.’고 말하긴 했지만 이후 연락이 없어서 건강히 잘 지내는 줄만 알았다.”며 슬픔을 참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형오 국회의장, 이용훈 대법원장,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 정·관·재계 인사들도 빈소에 화환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 한편 2일 영결식에서는 김병익 장례위원장이 영결식사, 민득영 한양대 명예교수와 문학평론가 오생근 서울대 교수가 추모사, 김광규 시인이 조시를 각각 낭독할 예정이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황석영의 ‘청춘 기록’

    황석영의 ‘청춘 기록’

    원조 ‘구라’, 소설가 황석영(65)씨가 또 하나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이번에는 자전적 성격이 짙은 성장소설이다. 지난 2월 말부터 5개월간 인터넷 블로그에 연재하면서 화제가 됐던 ‘개밥바라기별’(문학동네)이 한 권의 장편소설로 묶여 나왔다. “언제나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시던 어머니와 상처받은 내 가족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작가는 출간에 맞춰 기자들과 만나 “회한이나 감추고 싶었던 것, 옛날의 상처를 끄집어내는 게 힘들었다.”면서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큰 아픔이 있었던 그때가 내 소설의 사춘기였던 것 같고, 그래서 나에겐 참으로 행운이다.”라고 말했다. 작품은 주인공 ‘준’의 사춘기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 뒀던 작가 자신의 청춘의 기록이기도 하다. ●“어머니와 상처받은 가족들에게 바칩니다” 고등학교 자퇴, 두 번의 가출, 무전여행, 일용직 노동자와 오징어잡이배 선원, 제빵집 종업원, 입산수행, 베트남전 참전, 방북, 망명, 투옥, 출소…. 작가는 이런 파란만장한 개인사 가운데 베트남전 참전길까지의 청춘기를 이번 소설에 담았다. 영길, 인호, 상진, 정수 등 소설속 친구들도 모두 이름만 다를 뿐 지금도 옛일을 회상하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실제 죽마고우들이다. 작가는 청소년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 하지만 전제가 있다.“자기가 작정해 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 작가는 또 “성인이 되는 길은 독립운동처럼 험난하다.”면서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라고 덧붙였다. 개밥바라기별은 금성의 우리 이름. 통상 금성은 새벽에 동쪽에서 많이 보여 ‘샛별’로 불리지만 공전주기상 저녁 무렵 서쪽 하늘에 나타날 때는 ‘개밥바라기별’로 불린다. 식구들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개가 밥을 줬으면 하고 바랄 즈음에 서쪽 하늘에 나타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 결국 작가는 방랑자나 자기 행로가 정해지지 않은 성장기 무렵을 빗대 제목으로 차용한 것은 아닐까. “1989년 11월9일 오후,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의 한 모퉁이에서 장벽이 부서지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아름다운 개인’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인위적으로 만든 장애는 언젠간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다섯 해를 보내면서 일상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과 일상은 그후 제 문학의 중요한 화두가 되어 왔습니다.” 작가는 이번 작품이 자신의 문학적 연대기에서 새로운 ‘표지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전 참전 이후 형성된 자신의 문학세계의 뒤안에 이런 개인적 방황과 잃어버린 내면세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작품은 인터넷 연재 기간에도 적지 않은 화제를 낳았다.5개월 동안 180만명의 네티즌이 접속했고, 매일 100∼200개의 댓글이 붙었다.‘초딩’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네티즌들은 이런 토론광장을 ‘별광장’으로 부르며 촛불집회는 물론 소소한 개인사까지 대화를 그치지 않았다.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블로그 방문객 중에서도 “현실 광장으로 나가자.”고 강력히 선동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이 겹쳐지면서 자연스럽게 ‘별광장’은 중립성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네티즌 180만명 접속… 연재기간 내내 화제 작가는 “투표로 뽑은 대통령에게 퇴진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면서도 “그러나 젊은이들의 이런 행동을 세계화된 문화적 시스템으로 보고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좌우, 진보·보수를 가르는 것도 밥그릇 싸움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10년간은 ‘청년작가’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힌 작가는 지금 ‘강남형성사’라는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그는 이 작품을 더욱더 ‘인터넷적’으로, 또 ‘이미지적’으로 써나갈 작정이다.1만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베이징 2008 D-10] 박주영만 살아나면 박성화호 화룡점정

    이제 박주영(서울)만 살아나면 된다. 많은 축구팬들이 2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코트디부아르 올림픽대표팀의 평가전을 관전하면서 시나브로 끌어올려진 짜임새와 공격적인 경기 내용에 흐뭇한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물론 후반 급격한 체력 저하와 집중력 부족으로 어이없는 실점을 허용한 것은 옥에 티였지만 말이다. 이날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는 행운이 깃든 골키퍼 정성룡(성남)의 선제골 이후 팽팽하던 경기 분위기를 우리쪽으로 끌고온, 감각적인 발뒤꿈치 슛의 주인공 이근호(대구)였다. 한 축구전문지 기자들의 평점 채점 결과, 이근호는 5.0을 얻어 이날 출전한 15명의 선수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정성룡이 행운의 득점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 선방한 공으로 4.0, 왼쪽 윙백으로 수비라인의 안정감을 주도한 김동진(제니트)과 상대 수비진을 헤집은 이청용(서울)이 나란히 3.75로 뒤를 따랐다. 그리고 논란의 인물, 박주영이 3.63을 받았다. 이 평점은 여러 차례 결정적인 찬스를 허공에 날린 값으로는 후하다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카메라 렌즈를 벗어나 그라운드 전체를 조망한다면 그의 활약은 평점을 웃돌았다. 이근호와 함께 전후반 내내 득점 기회를 만들기 위해 쉴새없이 움직였고 예리한 침투패스로 상대 뒷공간을 열었다. 감각적인 패싱 능력 또한 돋보였다. 전반 19분 제대로 맞은 프리킥이 골키퍼 정면으로 향한 것과 후반 28분 오른발 슛이 골키퍼의 기막힌 선방에 막혔던 것은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손색이 없었다. 박성화 감독도 경기 뒤 “이제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고 반색했다. 문제는 화룡점정. 전반 38분 골키퍼와 맞설 수 있는 상황에서 잠시 멈칫하다 슛을 날린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골침묵은 기술적인 것보다 심리적인 데서 찾을 수 있다. 사실 그의 득점 현주소는 ‘천재’란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초라하다.K-리그에선 4월8일 이후 골이 없고 남아공월드컵 3차예선에선 페널티킥으로만 두 골을 얻었고, 올림픽 최종예선에선 부끄럽게도 골을 터뜨리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슛타이밍이 한발짝 늦다는 점을 지적한다. 박주영이 31일 밤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호주 올림픽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속시원한 부활포를 쏘아올릴지 그 답을 낼 수 있는 건 역시 그 자신뿐이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딸애가 준 영감으로 쓴 책이니 중학교 입학 선물로 주려고요”

    “딸애가 준 영감으로 쓴 책이니 중학교 입학 선물로 주려고요”

    “딸이 커서 제 책을 읽을 생각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싱글맘’으로 통하는 방송인 허수경(41). 최근 자전 에세이 ‘빛나라, 세상이 어두울수록’(문학사상 펴냄)을 낸 그녀는 딸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글이 막힐 때마다 자는 아기를 보면서 영감을 얻었고, 책을 쓰고 나서 아이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더 커졌어요.” 지난해 12월31일, 정자를 기증받아 딸 ‘별이’를 낳은 그녀는 당시 우리 사회에 적지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제 개인적인 선택이 그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 줄 몰랐어요. 이제 잠잠해졌는데, 이 책으로 또다시 시끄러워질까봐 두려움이 컸죠. 하지만, 어떤 평가를 받든 남겨볼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딸애의 중학교 입학 선물로 줄 생각입니다.” 책은 자신의 일기를 바탕으로 쓴 에세이와 딸에게 주는 편지글 형식으로 엮었다. 그는 ‘가족’이라는 주제 앞에서 가장 글쓰기가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훗날 유명인의 딸로서 아버지의 부재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아이의 고민이 읽혔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권이 신장되었다고 해도 제가 아버지 흉내까지 낼 수는 없는 거잖아요. 세상에 결핍 없는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아이가 느낄 두려움의 강도도 달라질 거라 생각해요. 아이가 자신의 결핍을 잘 받아들여 상처받지 않도록 제가 도와줄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싱글맘’ 선언을 통해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비슷한 처지의 싱글맘 동지들을 얻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혼을 한 뒤엔 주위 사람을 다 잃은 것처럼 절망했지만, 이젠 홀로 아이를 키우는 같은 경험을 가진 팬들이 늘었어요. 힘들 때 서로 위로가 된 분들이기 때문에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 거예요.”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이라는 삶의 굴곡 속에서도 그가 씩씩하게 인생을 헤쳐가는 힘은 뭘까.“특별히 어떤 사람에게 행운이 더 따르거나 덜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무조건 불평하기보다는 모든 문제는 내 안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절로 편해져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제18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8강전 3국] 박지은,이제 3승만 남았다

    [제18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8강전 3국] 박지은,이제 3승만 남았다

    총보(1∼115) 박지은 9단이 3일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기 지지옥션배 연승대항전에서 서봉수 9단마저 제압하고 3연승을 기록했다. 이제 조훈현 9단, 김일환 9단, 양재호 9단 등 3명의 기사만이 남은 시니어팀으로서도 우승을 장담하기 어려운 입장이 되었다. 과연 여류팀의 희망 박지은 9단이 파죽의 6연승을 거두며 대역전극을 완성하게 될지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지은 9단은 9일 시니어팀의 양재호 9단과 대결을 펼친다. 백이 우변에서 안전하게 살아두었으면 도처에 실리가 많은 만큼 백이 유망한 국면이었다는 것이 국 후 두 기사의 공통된 결론이었다. 초반 포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백40의 날일자가 약간 심했다는 것이 홍민표 6단의 감상이었다. (참고도1) 백1로 찝는 수를 먼저 교환한 뒤 5까지 형태를 갖추는 것이 정수였다는 것. 그러나 백48의 응수타진에 흑49로 늘어서 버틴 것이 흑의 과수. 백50의 호구를 선수한 뒤 52로 준동을 해서는 오히려 국면의 흐름이 백 쪽으로 넘어갔다. 박정환 2단 역시 실전의 진행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실전 흑49를 살며시 집어 들어 (참고도2)의 수순을 늘어놓는다. 이 바둑은 홍민표 6단의 대착각 때문에 싱거운 결말로 막을 내렸지만, 지난번 이용수 5단과의 대국에 이어 박정환 2단에게는 왠지 행운이 따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89…82) 115수 끝, 흑시간승 (제한시간 각10분, 초읽기 40초 3회, 덤6집반)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美, 한미FTA 부시임기내 표결 가능”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상원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심의를 담당할 재무위 공화당 간사인 찰스 그래슬리 의원이 최근 한·미 FTA가 11월 대선 이후 내년 1월 새 정부 출범 이전에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래슬리 의원은 지난달 24일 지역구인 아이오와주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 합의 등을 언급하며 쇠고기 문제가 해결됐으니 이제 자동차 문제 등 한·미 FTA와 관련된 다른 문제들로 시선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통상전문지인 ‘인사이드 US 트레이드’ 인터넷판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래슬리 의원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에 대한 의회 표결이 오는 11월4일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내년 1월20일 새 정부가 출범하기 이전인 ‘레임덕 회기’에 이뤄질 수 있음을 내비쳤다. 그는 “(한·미 FTA에 대한 표결이) 대선을 앞두고는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면서 “선거전에 콜롬비아·파나마 FTA 비준동의안에 대해 투표하면 행운이고, 그리고 나서 선거 후에 한·미 FTA 문제로 옮겨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kmkim@seoul.co.kr
  • [윔블던테니스대회] “네트가 날 살렸네”

    프랑스오픈 챔피언 아나 이바노비치(세계 1위·세르비아)가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된 네트에 키스로 답례했다. 26일 영국 윔블던 올잉글랜드클럽 센터코트에서 속개된 윔블던테니스대회 여자단식 2회전에서 나탈리 데시(97위·프랑스)와 만나 2세트 게임스코어 4-5로 뒤진 자신의 서브게임에서 30-40으로 매치포인트에 몰렸다. 한 포인트만 더 내주면 탈락이 확정되는 상황에서 때린 스트로크가 네트 상단을 때렸다. 마치 배드민턴의 공격 기술인 ‘헤어핀’과도 같은 모습. 공중으로 잠시 뜬 공은 데시 쪽 코트로 뚝 떨어져 듀스가 됐고, 결국 이바노비치는 2-1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이바노비치는 “네트가 아니었으면 바로 집에 가는 비행기 표를 끊을 뻔했다.”면서 “정말 행운이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3년 만에 돌아온 ‘주부 여왕’ 린제이 대븐포트(25위·미국)는 이날 밤 지셀라 둘코(39위·아르헨티나)와의 2회전을 앞두고 무릎 부상 탓에 경기를 포기했다. 한편 아시아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에 올라 있는 사니아 미르자(32위·인도)는 마리아 호세 마르티네스 산체스(101위·스페인)에 1-2로 져 탈락했다. 반면 지난 주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대회에서 우승을 거둔 상승세를 탄 타마린 타나수가른(60위·태국)은 13번 시드의 베라 즈보나레바(14위·러시아)를 2-1로 물리치고 32강에 올랐다. 지난해 우승자 비너스 윌리엄스(7위·미국)도 안네 키타봉(92위·영국)을 2-0으로 꺾고 3회전에 올라 산체스와 격돌한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양상국 “내 개그 인생 한번 들어볼래?”

    양상국 “내 개그 인생 한번 들어볼래?”

    KBS 2TV ‘개그 콘서트’의 인기 코너 ‘닥터피쉬’에는 여느 아이돌 그룹의 열혈 팬들 못지 않은 오버연기로 시청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은 한 개그맨이 있다. 어정쩡한 길이의 바지에 꽉 끼는 반팔티를 입고 ‘붐치기 붐치기 차차차’를 외치며 스타로 변한 유세윤을 연호하는 그가 바로 KBS 22기 공채 개그맨 양상국이다. “‘닥터 피쉬’에 열혈 팬 역할은 최고의 행운이었다” 지난 3월 2일 첫 선을 보인 ‘닥터피쉬’는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개그콘서트’의 대표적인 코너이고 안정적인 인기 구축의 중심에는 그가 있다. ‘닥터 피쉬’의 열혈팬은 어떻게 탄생됐을까. “사실 ‘닥터피쉬’ 코너에 제가 들어 갈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었어요. 원래 동료 개그맨들과 다른 코너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결국엔 통과되지 못했죠. 그때 유세윤과 이종훈 선배님이 계획하고 있었던 ‘닥터피쉬’ 코너에 팬이 한명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저를 추천해 주셨죠. 무조건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에 오버 연기를 선보였고 지금의 광적인 팬이 탄생한 거죠.” ‘닥터 피쉬’의 열혈팬 역할이 행운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닥터 피쉬’를 함께 이끌어 가는 유세윤과 이종훈 선배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너무 인간적인 분들이세요. 사실 잘 맞지 않는 사람하고 일을 하다 보면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힘들잖아요. 하지만 제가 제일 막내인데도 선배님들이 편하게 대해주셔서 매번 녹화 때마다 너무 즐거워요.” 하지만 ‘열혈팬’으로 3개월이 넘게 살아온 그의 해맑은 웃음 뒤에는 말 못할 고통이 따른다. “녹화를 끝내고 나면 정말 녹초가 돼요. 어쩔 때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예요. 비공개에서 공개 녹화로 전환되면서 수많은 방청객들이 다 같이 소리를 지르다 보니 방청객의 소리를 이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소리를 지르는 거죠. 부모님 걱정 하실까봐 이야기도 안했지만 지난주부터는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병원에 갔더니 성대 결절이 올수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개그맨으로 살 수 있어 행복해요” 양상국은 경남 진영의 평범한 가정에서 2남 중 막내로 자랐다. 대학에 들어 갈 때까지 진영에서만 쭉 살아온 그는 군 제대 후 막연한 꿈이었던 개그맨에 도전하게 됐다. 때마침 개그맨 지망생들이 출연해 심사를 받는 KBS ‘개그사냥’이 눈에 들어왔고 ‘서울 사람 다 됐네’ 라는 코너에 사투리를 이용한 개그를 선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개그 사냥’이 끝나고 막상 소원을 이루고 나니 ‘개그 콘서트’라는 큰 무대가 보였다. 두 번의 시험 끝에 KBS 공채에 합격한 그는 ‘닥터 피쉬’ 의 열혈팬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닥터 피쉬’의 폭발적인 인기로 그에게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지면 CF도 찍었고, 각종 버라이어티 예능물에도 게스트로 얼굴을 내밀었다. “개그맨을 하면서 하루하루가 행복했지만 가장 행복했던 적을 꼽으라면 KBS 1TV ‘아침 마당’ 프로그램에 가족들과 함께 출연했던 적 같아요. 방송이 나가고 제 고향인 진영에서는 한마디로 스타가 된거죠. 부모님한테 아직은 자랑스런 아들은 아니지만 그때는 제 자신이 자랑스러울 정도였으니깐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 하루 하루를 헛되게 보낼 수 없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다음주 녹화 개그 소재를 고민하느라 머릿속이 분주해 보였다. “몸은 쉬고 있어도 머릿 속은 온통 무언가 재미있는 게 없을까하는 생각뿐이예요. 영화를 봐도 다른 사람들은 웃고 울고 하겠지만 ‘아 저걸 개그로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영화를 보죠. 고민의 연속이지만 남들을 즐겁게 하는 개그맨으로 살 수 있어서 행복해요.” “재미 없으면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개그맨 현실 무서워” 개그맨으로서 행복하다는 그는 개그맨들의 웃음 뒤에 숨겨진 안타까운 현실을 털어놨다. “모든 개그맨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더 큰 웃음을 위해 하루에도 수천 번 고민 해요. 시청자들이나 관객들은 더 재미있고 신선한 개그를 원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어지면 외면당하는 게 현실이잖아요.” 재미가 없어지면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현실이 무섭다는 그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한 순간에 사라진다고 해도 열심히 노력하는 개그맨의 가치를 한번이라도 높게 평가해줬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양상국은 존경하는 선배 개그맨으로 김준호와 김대희 꼽았다. “10년 넘게 꾸준히 시청자들에게 사랑 받는 선배 개그맨 김준호와 김대희를 보면 대단하다고 느껴요. 피 땀 흘리는 노력이 있었다는 걸 알기에 선배님들처럼 노력해 꾸준히 사랑 받는 개그맨이 되고 싶어요.” 몸을 사리지 않는 열혈팬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 잡은 신인 개그맨 양상국, 그가 주연으로 나서 보여줄 개그의 세계를 기대해 보자.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 사진 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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