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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병무청 오늘부터 특명 검열/국방부

    ◎방위소집 처리등 특혜비리 중점/병무행정 부조리 신고전화 신설 국방부는 오는 25일부터 1주일동안 중앙병무청을 비롯,전국 6개 지방병무청에 대해 병무행정특명 검열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는 최근 병무청관계자 3명이 병무행정 부조리와 관련,청와대 특별사정반에 적발되는등 병무행정이 물의를 빚고 있는데 따른 조치이다. 국방부는 병무행정 부조리를 뿌리뽑아 국민의 의혹을 해소시키기 위해 ▲병역자원선병제도및 특례업무 ▲징병검사및 입영업무 ▲병역기피자및 행방불명자·해외여행자의 처리 ▲방위소집및 전역·병역면제 업무 등을 중점적으로 검열한다고 밝혔다. 한편 국방부는 앞으로 국방부 제1차관보를 위원장으로 하는 병무행정쇄신 대책반을 신설,병무행정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검토 발전시켜 나갈 방침이다. 국방부는 또 병무행정쇄신 업무에 국민여론을 반영하기 위해 병무행정부조리 신고센터를 상설 운영하기로 했다. 신고전화는 (02) 793­7502 754­3878.
  • 광주특위도 해체방침/민자

    민자당은 이번 회기중 광주특위를 본회의 또는 운영위 의결로 해체하는 한편,지역감정특위ㆍ양대선거부정조사특위ㆍ조선대생 변사사건조사특위 등도 특위전체회의 또는 해당 상임위 의결을 통해 해체할 방침이다. 한편 5공특위가 이날 채택한 조사보고서는 일해재단과 관련,자금조성과 기금및 시설의 관리운영에 문제점이 있었음을 지적하고 순수민간연구기관으로의 전환과 부지(20여만평)및 시설규모를 축소,국고에 귀속시킬 방안을 검토토록 건의했다. 또 새세대육영회와 심장재단은 당초 설립의도대로 국민에게 유익한 목적을 위해 사용토록 조치하고 삼청교육대 인권비리보상을 위해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토록 정부및 국회에 촉구했다. 부실기업정리 의혹과 관련,부실기업으로 분류된 기업을 인수한 기업 가운데 규모가 커진 기업은 국민의 이익이 되는 복지사업 등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으로 촉구했으며 5공화국 정부하에서 의문사 또는 행방불명됐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여야가 공동조사토록 촉구했다.
  • 재소한인동포 50명 해방후 북한서 처형/유족들 진상규명 요구

    【내외】 소련거주 한인동포들은 해방직후 북한의 요청에 따라 소련정부가 공식적으로 북한에 파견한 한인동포 50여명이 현재까지 행방불명상태라고 밝히고 이들의 생사및 숙청여부를 즉각 확인해 줄 것을 최근 북한당국에 촉구했다. 한인동포들은 지난해 한인동포들의 청원에 따라 소련정부가 금년 1월3일자로 북한당국(모스크바주재 북한대사관)에 이에관한 해명과 사실여부를 확인해 줄 것을 요구한 바 있으나 5월말 현재까지 북한측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지적하고 북한은 『침묵으로 이를 말살하지 말고 지체없이 사실 그대로를 밝히라』고 촉구했다.
  • 유교적 혈연주의가 이념 초월할 것

    ◎일 학자의 조망 다케사다 히데시 기고/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남북한 상호불신은 표면적… 내면에선 동포애 흐른다 1990년 6월25일은 한국전쟁이 시작된 40년째의 날이다. 일반의 일본인에게 「올해는 한반도에 어떤 의미가 있는 해인가」를 물어보았자 답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40세이하의 일본인에게는 「특유」라는 어휘가 교과서에 실려있다는 것을 기억할 뿐이다. 6ㆍ25에 대해 당사자와 주변제국의 국민들은 무엇을 생각해 낼 수 있는가. 북한에는 「좀더 용의주도하게 준비했던들 이길 수 있는 전쟁」이라는 기억이 있을 것이다. 미국은 「다수의 행방불명 미군을 생기게 한 전쟁」이라는 견해가 강하다. 소련에는 최근 「북한에 의해 시작된 전쟁」이라는 비공식 레벨의 발언이 계속되고 있음을 생각할때 지금은 「정책의 오류의 결과 발발되고 확대된 전쟁」이라는 평가일 것이다. 중국에 있어서는 전쟁후 일관해서 한반도에서의 전쟁재발방지를 위해 협조해온 것에 비추어 「어쩔 수 없이 의용군을 보냈으나 코스트가 높아 두번다시 있어서는안되는 전쟁」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한국에는 어떠한가. 6ㆍ25는 일요일 아침의 돌연한 포성,남에의 피란행렬,북한에 살고 있는 「육친」이라는 낱말과 관련되는 이미지다. 한국영화의 라스트신에는 혈연관계가 부자연스럽게 되는 장면이 많다. 그것이 관객의 눈물을 가장 많이 유도하기 때문이지만 그것은 국토분단과 한국전에 의해 이산가족이 생겨나고 혈연관계가 이상하게 되는 상태가 되어 유교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여서 「전쟁=이산가족의 발생」이라는 점에서는 당사자인 남과 북과의 사이에 일치한다. 이처럼 6ㆍ25의 이미지는 당사자와 주변제국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으며 이것은 앞으로의 한반도장래를 생각할때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왜 한반도에는 독일과 같은 통일논의가 떠오르지 않는가. 한반도는 독일과는 달라 전쟁책임을 묻기 위해 분단된 것이 아니라 대국의 정치역학에 의해 분단됐다. 그 점에서는 일응 독일보다도 통일을 위한 조건은 정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독일의 경우만큼은 「통일에 의한 영향」에 관해 주변제국과의 조정은 필요로 하지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통일논의가 일어나고 있지않다. 그것은 북한이 동독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동독에 서독의 정보가 유입되며 동독의 서독에의 인구유출이 멈추지 않았다. 또 동독에는 없었던 지도자의 카리스마성이 북한에는 있다. 동구제국의 민주화에 관련해 말한다면 동구변화의 원인이 되었던 이민족국가라는 조건은 북한에는 없으며 북한은 극히 균질적인 사회이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야될 것은 한반도의 내부역학이다. 현해탄 이쪽에서 한반도정세를 보고있으면 남북간에는 낙관론은 있어도 실제로 상호불신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중국 연길의 탈이데올로기,혈연중시의 기질을 생각해 보자. 연길사람들의 한국에의 관심은 강하지만 그들사이에는 북한에 사는 동족의 생활이 고달프다는 것에 대해 걱정은 하고 있어도 북한에의 불신감은 없다. 즉 연길의 한인들은 『북에서 남으로 바꿔탔다』는 것은 아니고 극히 자연스럽게 같은 코리안으로서 한국에 있는 동족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가득차 있을 뿐이다. 남북한은 어떠한가. 주체사상이라 하더라도,한국근대화의 이데올로기라고 하더라도 불과 30년의 역사이다. 코리안의 유교이데올로기는 1천7백년이상의 역사가 있다. 그렇다면 남북한문화의 저류에는 연길의 코리안이 갖고 있는 탈이데올로기ㆍ혈연주의가 흐르고 있는 셈으로 한반도의 남북불신이라는 말은 피상적이라는 것이 된다. 둘째 남북간의 교섭과정을 살펴보자. 1980년대 북한의 한국에 대한 수해구호물자의 지원이 있었으며 한국내에서 북한무드가 급속히 불타올랐다. 남북사이의 교류 및 대화가 갑자기 시작되고 또 돌연중단 되기도 한다. 이같은 한국의 대북자세 및 여론의 변화,대화의 재개ㆍ중단과정은 배경 및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외국인에게는 어렵다. 이것을 상호불신이라는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북한에 체재했던 영화감독의 수기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간부 연회석상에서 한국의 가요곡이 인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지도자도 심정적으로는 탈이데올로기로 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반도를 말할 때의 「남과 북의 불신감」이라는 틀에 박힌 문구는 재검토할 필요는 없는 것일까. 독일문제는 사실상 동독이 서독에 합류하는 형식으로 통일에의 기운이 가속됐다. 한반도의 경우 일단 북한에서 정책변화가 생겼을 때 남북한 상호의 감정에 비추어,독일형 통일이 아니라 감정적이며 혈연중시의 발상을 갖는 남과 북 사이에 구체적인 통일문제가 부상하면 독일문제와 같은 「통일에 대한 구체적 제문제의 검토」같은 절차는 생략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남북한은 독일이상의 템포로 통일의 길을 밟게 되는 것이 아닐까.
  • 행불 50대 병원장부인/6개월만에 암장시로

    【전주=임송학기자】 거액의 증권카드를 갖고 나간채 행방불명됐던 전북 이리시 중앙동 3가 한일산부인과원장 부인 김영조여인(51)이 6개월여만에 살해돼 암매장된 사체로 발견됐다. 김여인은 지난해 11월11일 상오 서울집인 서울시 송파구 잠실우성아파트 15동 1202호실에서 이 아파트에 함께 사는 친정 여동생에게 이리집에 내려간다며 집을 나간후 소식이 끊겼다가 5일 하오1시40분쯤 전북 이리시 현영동 현영부락 박종엽씨(60)의 밭에서 암매장된 시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김여인이 행불된 이후 11일만인 지난해 11월22일 동서증권 이리지점에서 2천8백만원상당의 주식이 빠져나갔는데 매도주문표에 기재한 필적이 전한일산부인과 운전기사 김은종씨(26ㆍ이리시 신동 561)의 필적과 같고 최근 김씨라고 밝힌 남자로부터 이리경찰서에 자수할 뜻을 비친 전화가 3차례나 온점으로 미루어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단정하고 소재수사에 나섰다.
  • 시위 1주 맞아 살펴본 수배자 21명의 근황

    ◎“천안문 함성”… 그날의 리더들 어디에/국외탈출 5명,미ㆍ불서 학업ㆍ투쟁 병행/10명은 감옥으로… 6명은 행방 묘연/「민주여신호」방송 좌절되자 무력감… 활동위축 1년전 1백만 인파가 모인 북경 천안문광장에서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며 민주화요구시위를 주도했던 학생지도자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이들의 정열과 꿈은 사회주의 조국의 냉혹한 정치현실에 의해 산산히 부서졌고 당시 영웅대접을 받던 이 학생지도자들은 중국당국이 무력진압에 나선 6ㆍ4사건이후 긴급지명수배를 받는 정권전복음모자의 신세가 돼 버렸다. 중국당국이 전국에 긴급지명수배령을 내린 학생지도자는 모두 21명. 이들 가운데 현재까지 5명이 해외탈출에 성공,미국ㆍ프랑스ㆍ등지에서 반체제활동등을 하고 있으며 10명은 국내에서 체포돼 감옥생활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나머지 6명은 국내 어딘가로 잠적,행방불명의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6ㆍ4사건후 해외로 탈출한 5명의 긴급 수배자외에도 천안문광장시위때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다른 수십명의 대학생들이당국의 눈을 피해 조국을 떠나 서방세계에서 객지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물론 대부분이 힘을 합쳐 중국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활동에 정성을 쏟고 있다. 그러나 거의 모두가 20대 초반인 이들은 해외활동에 필요한 자금이 넉넉치 못한데다 민주화를 위한 이념무장도 허술한 형편이어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천안문광장 시위를 통해 가장 널리 알려진 오이개희(우얼카이시)군의 경우 현재 파리에 본부를 둔 민주중국진선(FDC)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오이군은 6ㆍ4사건뒤 얼마후 탈출,서방세계에 중국인민해방군에 의한 무력진압의 순간들을 상세하게 폭로했고 발랄한 언동으로 점차 유명인사가 됐다. 그는 또 미하버드대학생이 되는 행운을 잡았으나 시험성적이 너무 나빠 자퇴하고 말았다. 그뒤 FDC부회장으로 세계의 이곳 저곳을 다니며 중국민주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천안문시위의 행동책으로 활약했던 당시 남경대학생 이록은 미국에서 학업을 계속중이고 중국사회과학원출신의 왕초화는 지난4월 로스앤젤레스에 처음 모습을 나타냈다. 이들도 미국의 FDC지부에 몸담고 있으나 자금조달능력이나 조직력이 약해 겨우 중국고위층의 권력투쟁이나 부패에 관한 보고서만을 되풀이해서 찍어낼 뿐이다. 천안문시위현장의 총지휘였던 자령은 6ㆍ4사건후 무려 10개월동안을 국내에서 피신하고 있다가 광주에서 홍콩을 거쳐 파리로 탈출했다. 이들 해외망명 학생지도자들은 최근 6ㆍ4사건 1주년을 맞아 남중국해에서 대륙을 향해 민주화촉구전파를 보내려던 방송선 「민주여신호」가 중국눈치보기에 바쁜 홍콩ㆍ대만ㆍ일본 등 주변국가들의 협조거부로 방송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국제정치의 현실에 다시 한번 그들의 무력함을 통감한 것 같다.
  • 조총련,북송행불자 진상규명 추진/북한체제 비판 움직임속 새파문

    ◎전ㆍ현직간부,「귀국자문제협」 발족… 본격 활동/북ㆍ일적에 생사 확인,명단공개 등 요구키로 【니가타ㆍ도쿄 연합】 한일양국간의 거센 외교마찰을 무릅쓰고 강행된 재일교포북송을 둘러싸고 최근 조총련내부 일각에서 북송사업의 실상을 폭로하고 북한의 비인도적인 처사를 비판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있다. 「차별과 멸시로부터 해방된 지상낙원」이라는 북한의 선전을 믿고 북송선 만경봉호에 올랐던 교포들이 비참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데다 이들중 상당수가 행방불명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조총련 일부 인사들이 이의 진상규명 및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북한의 철저한 지시와 감시를 받고있는 조총련의 폐쇄적인 성격으로 볼때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특히 조총련 내부에서 북한체제 비판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더욱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현재 북송사업진상규명에 앞장서고 있는 인사들은 당시 북송사업에 직접 간여했던 조총련 전 현직간부와 북송자가족들로 이중 20여명은 이미 도쿄에 「공화국 귀국자문제협의회」(회장 이춘수ㆍ82)를 정식 발족,사무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북한의 북송사업비판과 관련,조종련에서 밀려난 인사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진 이들은 우선 정치성을 배제하고 인도적인 입장에서 활동을 벌여 나간다는 계획아래 행방불명된 교포들의 신고접수 및 북송교포 실상확인 등의 내부작업을 벌여나갈 예정이다. 재일거류민단 본부에 따르면 이들은 행불자 생사확인 및 명단공개를 북한과 일본 적십자측에 요구하는 등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한편 북송교포들의 일본방문을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적십자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59년 12월14일 2백38가구 9백75명의 재일교포가 귀국 제1선을 타고 니가타(신석)항을 출항한 이래 지금까지(84년 현재) 1백87차례에 걸쳐 모두 9만3천3백39명(2천8백48가구)이 북한으로 건너간 것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6천∼7천명의 일본인이 한국인 남편 또는 부인을 따라 북송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이씨 등 전 현직 조총련인사들이 북송사업 실상파악에 나서게 된 것은 북송후 소식이 두절된 교포들이 속출하는데다 일본에 남아있는 이들 가족과 일본인들로부터 생사확인 요청 등 항의가 빗발치면서 당시 북송사업에 관여했던 당사자들로서 심한 고뇌와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 조총련 전직간부들은 행방불명자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최근까지도 생활고를 호소하며 생필품과 엔화를 보내달라는 절규가 담긴 편지들이 일본내 가족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보고 이른바 「귀국운동」의 실상을 알기 시작,북송사업에 대한 새로운 문제점을 제기하다가 조총련에서 밀려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북송교포의 행방불명문제는 조총련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로 돼있으나 북한의 통제와 은폐로 구체적인 숫자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처음부터 줄곧 북송사업에 관여했던 전 조총련 정치간부였던 박동식씨(59ㆍ남ㆍ가명)는 최근 일본의 계간잡지 「민도」에 기고한 「귀국운동,그 실상은」이라는 글에서 『니가타대의 학부를 졸업,북한으로 간 한 동포는 과거 미군관계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했다는 이유로 미국 스파이로 몰려 시달린 듯 자살했다』며 『행방불명자가 지금도 속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씨는 또 『북송교포들의 참상은 조총련 최고간부들을 포함,모두가 알고 있는 공개된 비밀이다』면서 『10만여명에 달하는 북송교포중 소수만이 대접을 받고 있을 뿐 대부분이 비참한 지경에 빠져 있고 행불자가 이유도 없이 속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북송사업 실무책임자로 죄책감과 깊은 고뇌를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재일거류민단 니가타현지부 박영기 부단장(63)은 『조총련으로부터 밀려난 인사들이 주축이 돼 북송문제 진상규명 및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올 민단사업의 하나로 「조총련 내부의 민주화지원」이 설정돼 있는 만큼 이들이 추진하는 일을 적극 도울 방침』이라고 밝혔다.
  • 조총련까지 등돌려 간다(사설)

    얼마전 일본의 한 유수한 일간지에 장명수란 사람의 회견 기사가 실렸다. 「공화국(북조선) 귀국자 문제 대책 협의회사무국 대표」라는 기다란 직함의 인물이었다. 『대단히 곤란한 일을 시작해 버렸습니다』로 그 회견 기사는 시작된다. 직함 그대로 그는 북한으로 간 「재일 조선인」의 실태조사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 자신 재일동포의 북송을 적극 추진했고 그의 부모형제도 이른바 「귀국선」을 탔던 처지이다. 80년에는 「조국 방문단」의 부단장으로서 방북한 바도 있다. 그런 처지의 사람이 어째서 「귀국자 실태 조사」에 나선 것인가. 북송에 관여할 때까지 「지상천국」으로 생각했던 북한이건만 그 후의 사정은 그렇지 못한 곳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돈을 보내 달라,병고에 시달린다는 소식이 전해지는가 하면 행방불명자 또한 속출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했던가 반성하면서 행방불명자 친척들의 호소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악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10만명 가까운 북송 동포의 처지와 그 일의 선봉에 나섰던 자신의 과오를 아프게깨달은 것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북한이 지구상에서 타국땅에 존재하는 가장 강대한 우익으로 쳐오는 것이 일본에 있는 조총련이다. 그들은 조총련을 많이 이용해 왔다. 김부자의 생일이면 강제로 성금을 거둬들이는 대상이 그것이었으며 해외공작을 함에 있어서도 그것이 무대가 되었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다. 더구나 그 세력은 막강했다. 양두구육의 감언이설이 먹혀들었을 때까지 그러했다. 하지만 진실이란 언제까지 가려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벌이는 재일동포 모국방문 사업에 조총련계 동포들이 끼어들면서부터 북의 일방적 메시지가 얼마나 허위에 찬 것인가는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는 이미 북녘땅에 다녀온 사람들도 있었다.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셈이다. 그 위에 북이 자랑스럽게 벌인 북송사업은 결과적으로 자충수가 되어 버렸다. 「낙원」아닌 「지옥」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엊그제 도쿄에서 조총련에 의해 「김일성 타도 재일 조선인 궐기대회」가 열린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다.그동안의 흐름으로 보아 당연히 있어야 할 움직임이 현실화하였다는 것 뿐이다. 그들은 김일성을 조국통일의 「암적 존재」로 규정했다. 성숙한 정치사회에서 사는 그들은 남과 북의 실체를 공정한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들은 KAL기 폭파사건과 김현희의 증언을 들었고 그에 대한 북의 엉뚱한 반응도 보았으며 한필성­필화 남매 관계의 시말도 엄정한 시선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한번 불 댕겨진 그 움직임이 일본전역으로 확산되는 일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나갈 것이다. 노태우대통령의 방일도 그런 움직임의 현실화에 촉매 구실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더구나 노대통령은 교민 리셉션 석상에서 『조총련을 적대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한 형제로 받아들이면서 도와 달라』고 하여 동족으로서의 끈끈한 정의를 환기시킨 바도 있다. 중요한 것은 역시 북한의 자세전환 그것이다. 지구촌의 조류를 직시해야겠건만 그렇지 못하는 그들이 참으로 답답하다. 며칠 전에 열린 최고인민회의도 「체제고수」를 재천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 대미 공식창구 노린 유화책/북한의 미군유해 송환 안팎

    ◎미 의회와 직접 접촉… 관계개선을 모색/남북대화 진전·긴장완화에 「한몫」 기대 북한이 미국의 현충일인 28일 한국전쟁에서 실종된 미군병사 유해 5구를 판문점을 통해 미 의회대표단(단장 GV 몽고메리하원 원호위원장·민주·미시시피주)에게 인도한 것은 시기가 시기인 만큼 외교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북한이 유엔군사령부소속 장병들의 유해를 유엔사에 마지막으로 인도했던 것은 휴전협정이 발효된 1년뒤인 54년 8월17일로 당시 유해는 북한의 한만 국경지역 14개 포로수용소에 수감중 사망한 미군 1천8백69명을 포함한 4천23구로 올해 유해송환은 만 36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유엔군사령부는 휴전이후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공산측과 80여차례나 유엔군장병 유해송환을 위한 협상을 벌였으나 북한측의 무성의로 결실을 보지 못했었다. 미국은 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인 88년 12월6일 북경에서 북한과 외교접촉을 전개하고 지난달 26일까지 8차례의 비공식접촉을 통해 양국간의 현안을 토의해왔다. 미국측은북한과의 접촉에서 ▲남북대화 진전 ▲비무장지대안 긴장완화를 위한 군사적 신뢰구축 ▲실종미군유해 인도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협정 가입 ▲테러포기 ▲대미 비방중지등을 촉구하고,북한측은 ▲주한미군 철수 ▲남북한 상호감군 ▲휴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팀스피리트훈련 중지 ▲한미 정부간 직접대화및 관련개선 ▲실종미군 송환을 위한 양국정부간 협의등을 내세웠다. 지난 1년 5개월동안 수차례에 걸쳐 계속된 북경접촉과 주유엔 북한대표부 허종부대표의 워싱턴에서의 미 정계·관계인사들과 빈번한 접촉끝에 이번 일이 이루어진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유해송환에는 북한측이 미국측에 보내는 상당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전쟁에서 전투중 혹은 포로수용소에서 행방불명된 미군은 모두 8천1백77명이며 이밖에 한국군과 영국·프랑스·터키·캐나다 등 참전 16개국의 유해도 2천2백33구나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만3백여구의 유해중 이번에 인도되는 5구의 유해송환을 시작으로 앞으로 한국군과 참전 16개국의 유해송환문제도 계속 협상이 이루어질 것으로 군사관계자들은 예측하고 있다. 유엔군사령부 대변인 링크대령은 『북한이 어떤 의도로 5구의 유해를 미국측에 인도하는지 알 수 없으나 외교적인 루트를 통하지 않고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판문점을 이용하는 것은 앞으로 남북대화나 긴장완화를 위해서도 긍정적으로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은 당초 미군의 유해발견 사실을 뉴스를 통해 흘린 뒤 군사정전위원회의 유엔군측 대표들의 인도주의적인 인도요구를 무시하고 미국과의 공식대화의 무기로 이용하려는 기도를 보여왔다. 유해반환은 교전 당사국간의 군사적 문제로 정전위원회 소관사항이나 북한이 유해인도계획을 몽고메리의원에게 직접 서한으로 통보한 것은 미 의회와 접촉해 보려는 외교적인 의도가 깔려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측은 처음 미 의회대표단이 직접 평양에 와서 유해를 인수해 가라는 제의를 했었으나 미국이 이를 거부하자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로 인도장소를 바꾸었다. 이번 인도된 5구의 유해는 판문점에서 헬리콥터를 이용,오산 미 공군기지로 이송된 뒤 29일 C141 미 수송기로 미 육군중앙신원감식소(USACIL)에 보내져서 첨단과학 장비를 이용,신원확인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신원감식소에서는 인식표·단추·만년필 등 유류품이 있을 경우 이를 토대로 1차 감정을 하고 2차로 X선·레이저빔·유골의 조직검사 등으로 신원을 최종 확인한 뒤 유가족에게 통보한다. 1975년 월남전쟁이 끝난 뒤 설립된 미 육군신원감식소는 그동안 태평양전쟁이나 월남전에 희생된 유해를 정밀하게 분석,신원파악을 해와 이 방면에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미군 관계자들은 이번의 경우 전쟁이 일어난지 40년이나 지나 유해만 가지고 신원파악이 어려운 데다 설령 신원을 파악한다 하더라도 유족을 찾는 작업이 더 어려워 이들의 대부분이 무명용사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37개월간의 한국전쟁을 통해 미군은 8천1백77명의 실종자이외에 3만3천6백29명의 사망자와 10만3천2백84명의 부상자를 내고 3백89명의 돌아오지 않는 포로를 내었다. 미국이 무명용사의유해반환을 위해 과거의 적이었던 일본이나 베트남·북한과 공개접촉 혹은 비밀접촉을 하는등 끝까지 송환노력을 계속하는 것은 유족들의 슬픔을 달래주려는 인도주의적인 면도 있으나 미국군복을 입고 전사한 장병들의 시신은 끝까지 국가가 신경을 써 응분의 대우를 한다는 것을 보여 국민들의 애국심과 긍지를 높이려는 의도도 짙다. 북한도 그동안 회피해왔던 미군유해 송환에 적극성을 보이면서 생색을 내고 있는 것은 이를통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꾀하려는 계산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전인철외교부부장이 지난 15일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우리는 미군의 유해를 더 발견하는 경우 유해를 모두 반환할 것이나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종류의 협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엔군실종·미귀환포로 현황 (유엔군사령부 집계) 국적 실종 미귀환포로 계 한국군 1,647 1,647 미군 8,177 389 8,566 기타참전국 18 197 215 계8,195 2,233 10,428
  • 뭔가 잘못돼가는 세태/황산성 변호사(서울시론)

    ◎사회악 추방은 온국민의 합심으로… 도심 한복판에서 자동차의 소음ㆍ공해에 시달리며 사람들의 왁짜지껄이는 잡음을 들으면 황량하고 삭막한 삶을 실감한다. 그러나 시멘트블록 사이로 뚝심좋게 뻗어난 사철나무위에서 재잘거리는 참새소리에 깨어나는 아침의 감격이 뿌듯해진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고 시인 김영랑은 5월은 창엄한 햇살이 퍼지는 달이라고 읊었다. 그 아름다운 5월을 보내면서 어디선가 『더럽다,더럽다. 미쳤다,미쳤다. 망한다,망한다,망한다』하는 탄식소리가 내 귓가를 때리고 있다. 지금 이 때에 만약에 하늘로부터 특명을 받은 예언자가 나타난다면 분명히 이 세마디를 외며 통곡하고 헤매리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탄식소리 들리는 듯 모두가 먹고 마시며 기분내는 놀자판에서 돌팔매질을 당하면서도 그 예언자는 계속 그 말들을 외칠 것이다. 어느 청렴한 젊은 경찰관이 권총자살을 했다. 나는 그의 자살을 무척 안쓰러워 한다. 썩어 문드러져가는 삶의 현장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기가 힘겹고 뿌리칠 유혹은 많다.집안에서 철없는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과 바가지 긁는 소리에 미칠 것 같다. 그 결과 그 집안은 망해버린 것이다. 어느 여고 3학년 학생이 아침 일찍 보충수업 등교길에 집 근처 50m 떨어진 곳에 보온도시락을 버려둔 채 행방불명이 되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그 여학생이 그렇게 깜찍하게 납치극을 위장한 가출극을 벌였다기 보다는 납치로 인정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경찰은 그 여학생을 찾기도 전에 가출이라고 단정하였다. 수사촉각과 현장감각이 뛰어나서 그런 결론을 얻고 있다면 우리국민 모두가 경찰에 대한 신뢰와 존경으로 안심해도 되는 치안만세의 세상이 될 것이다. 이 사건의 실상은 그렇게 평가내릴 수가 없다. 흔히들 중매로 사귀다가 결혼한 경우에 중매반 연애반이라는 말에 비유된다. 그 여학생은 공부가 하기 싫어서 신문에 난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나섰다가 그날로 인신매매단에 넘겨진다. 가출이든 납치든 미성년의 어린 여학생이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가출신고를 받으면 경찰은 열심히 찾는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가출한 지 40일후 내가 출연하는 MBC­TV 프로그램 「여론광장」에서 이 여학생의 실종을 다루게 되었다. 방송 전날밤 하나님께 「잃은 양 한마리를 찾아 헤매신다는 주님이시여. 주님은 이 어린양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겠지요. 방송을 통하여 이 아이를 꼭 찾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간절히 기도드렸다. 그 여학생은 이미 눈쌍꺼풀 수술과 파마머리를 했기 때문에 그 가족들도 알아보기 어려운 얼굴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과거 방식으론 안 통해 기도의 힘은 큰 것이다. 신문보도와는 달리 어느 시민의 제보가 아니었고 여러 손을 거쳐 마지막으로 데리고 있는 포주가 이 방송을 본 것이다. 아이를 찾으려는 열정적 나의 태도에 놀라 이 아이를 데리고 있다가는 골치아프겠다며 경찰에 인계하였다 한다. 경찰은 그 여학생을 인도받은 지 무려 7시간후에 애타는 부모에게 연락하였다. 먼저 신문기자에게 배부할 진술서와 녹음내용을 다 만든 후에 말이다. 그무렵 며칠동안 자칭 인신매매단이다,경찰관이다 하는 남녀들로부터 집으로 사무실로 교회로 협박전화때문에 전화통이 불이 났다. 내가 더러운 곳만 건드리면 미치광이처럼 발작하는 자들이 왕왕거리는 세태에 우리식구들은 이미 익숙하여 그자들로부터 시달리지 않는다. 작년 여름에 가출한 딸을 찾는 부모가 시경에 가출신고를 했더니 YMCA 신고센터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인신매매단에서 활약한 전력있는 사람의 경험에 의하면 경찰이 3일만 집중단속을 하면 인신매매단의 소굴은 뿌리를 뽑을 수 있다고 한다. 올 상반기 가출ㆍ납치사건을 시경에서 3건,대검에서 5건,민주시민운동연합에서 25건을 해결했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공권력에 대한 신뢰성의 도는 가늠할 수 있다. 공직자 비리조사운운으로 다소 퇴폐산업이 기울어지고 있다 한다. 요즘처럼 부조리와 퇴폐문화가 만연되고 있는 때가 또 있었을까. 정부관리나 기업체 임직원들,세도부리는 사람들 치고 뇌물 주고받는 향응과 바이어들이 베푸는 기생파티나 술집에는 으레 여자의 시중이 있어야 한다는 빗나간 접대문화가 우리사회를 이모양 이꼴로 만들지 않았겠는가. 만 16로세부터 29세까지 6백50여만명 여성중 5분의 1이 접객업소에 근무하고 있다 한다. 딸과 아내와 어머니,즉 여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가진다면 이렇게 내버려 둘 수 있는 실태인가. 정말로 바른 삶과 행복한 삶은 도덕관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한편에서는 또 돈이 너무 많아서 미치고 있다. 작년 한해 재벌기업이 사들인 땅이 약 2조4천억원어치라고 한다. 서울에 땅 한평 안가진 사람이 71%인데 애써 모든 국민의 저금으로 기업들이 기술개발이나 기업설비 증설은 하지 않고 부동산투기에만 열을 올렸다. 그래서 미친 여자 널뛰듯이 부동산값은 폭등했다. 덩달아 최근 9년만에 가장 심한 물가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다가 계층간의 갈등을 폭발시켜 끝내 자유민주주의체제,자유경제체제 자체의 붕괴를 초래할 절박한 상황에서 5ㆍ8조치가 나왔다. 지난 80년 9월27일 국보위에서도 비슷한 조치가 있었지만 유야무야 넘어갔다. 정부는 1990년대에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음성ㆍ진천군의 보궐선거의 결과에서 교훈삼아 강력하고 지속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도덕관의 재정립을 국민소득 4천달러의 우리가 국민소득 1천만달러 수준의 국민 이상으로 과소비를 하고 있는 망국의 징조가 보인다. 외신들은 한국에서 다시는 기적을 볼 수 없다고 한다. 이제 우리 모두 씀씀이를 절제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듯 근검절약하는 마음가짐으로 합심하여 노력해야겠다. 하나님께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기도를 하던 중 내 생각,내 염려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알아서 할테니 좀 기다려보라고 하신다. 분명히 곳곳에 숨은 의인들이 있다는 말씀이다.
  • “징용ㆍ징병 한국인명단 정부요청땐 공개용의”

    ◎일 후생성,한국유족회에 밝혀 【도쿄 연합】 일본후생성은 27일 일제의 강제징병으로 끌려간 한국인 군인ㆍ군속자 명부및 행방불명자 명단과 관련,한국정부가 외교적인 채널을 통해 공개를 요청해온다면 이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후생성측은 이날 아오야기(청유돈자)씨 등 「일본국에 대해 공식진사와 보상을 청구하는 재판촉진모임」대표 3명과 국내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 상임이사 양순임씨 등 4명이 지난 20일에 이어 두번째로 후생성을 방문,거듭 징용ㆍ징병ㆍ정신대의 명단공개를 요구한데 대해 『민간단체나 개인에게 명단을 제공할 수는 없으며 이 문제는 양국 정부간의 외교적 차원에서 해결돼야 할 것』이라며 이같이 답변했다.
  • 일,“군징용 한인명단 보관”/후생성

    ◎군속포함/배상 꺼려 45년간 숨겨오다 첫시인/한일 민간단체들 확인 【도쿄 연합】 일본정부는 태평양전쟁 수행을 위해 일제때 군인·군속으로 징집해간 한국인명부를 현재 보관하고 있으면서도 보상기피등을 위해 해방이후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관련문서 유실」을 이유로 명단공개 거부와 이의 대한인도를 외면하는등 비인도적인 처사로 일관해온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한국인에 대한 보상을 촉구하는 일본내 민간단체인 「일본국에 대해 공식진사와 보상을 청구하는 재판촉구모임」 대표4명과 한국내 희생자 유가족들의 모임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양순임상임이사등 5명이 21일 하오 사회당 이토(이동수자)의원의 주선으로 일본 후생성을 방문,강제징용·징병자명단,희생자명부 등을 요구한 데 대한 후생성관리들의 답변과정에서 확인됐다. 후생성측은 이날 한국인 징용자들에 대한 끈질긴 명단공개요구에 대해 처음에는 『관련자료가 없다. 조사가 안됐다』며 발뺌하다 『일본군인·군속의 명단등은 있으면서 유독 한국인 명단만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반박하자 『징용자·정신대 등에 관한 명단은 없으나 군인·군속의 명단은 있다』고 실토했다. 이들 관리들은 그러나 군인·군속중 사망한 사람의 명단공개요구에 대해서는 사망자와 생존자의 분류가 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끝까지 공개를 거부했으며 군인·군속으로 동원된 구체적인 숫자에 대해서도 언급을 피했다. 후생성이 강제징용·징병자명단과 관련,보관유무를 확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정부는 그동안 패전과 함께 대한인력수탈에 관한 자료가 유실됐다는 이유로 한국내 유가족들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명단공개를 거부해 왔다. 일본이 지금까지 공개한 명단은 2만1천9백19명의 군인·군속사망자명부(65년 한일회담시 제공)뿐으로 그이외에는 징용자·징병자 총수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군인·군속으로 끌려간 한국인은 37만여명으로 이중 15만명이 행방불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후생성에는 4만명의 희생자명단이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중학교 여교사 행방불명 20일/경찰,수사나서

    【광주=임정용기자】 광주 광덕중 영어담당 여교사 신용숙씨(27ㆍ광주시서구광천동54의21)가 지난달 30일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간뒤 20일째 행방불명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8일 가족들에 따르면 신씨는 대학 4년생인 여동생 신모양(22)과 광주시 서구 광천동에서 자취생활을 해왔는데 지난달 30일 상오8시쯤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갔으나 학교에 출근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는 것이다.
  • “인신매매범에 납치됐나…”/여고생 실종 한달째

    ◎서울S여고3년 김소정양 등교길“증발”/“내딸 어디에…”애타는 부모,눈물의 나날/“도시락만 길바닥에… 피납분명”가족들/“목격자ㆍ증거 없어… 기다려보자”경찰 인신납치매매범들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아침 등교길의 여고생이 집에서 50여m 떨어진 길에서 납치된 뒤 한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 가족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1동 김정배씨(52ㆍ화원경영)의 넷째딸 소정양(가명ㆍ19ㆍS여대부속여고 3년)은 지난달 19일 상오 6시30분쯤 집앞 50여m 길가에 보온도시락을 떨어뜨린채 행방불명 됐다. 소정양의 가족들은 사건당일 아침 소정양이 아침 보충수업을 받기 위해 평소와 다름없이 집을 나간 뒤 바로 납치됐다고 주장했다. 청바지와 같은 윗도리 차림에 흰색 테니스화를 신고 있었던 소정양은 당시 새학기 1기분 등록금으로 10만원짜리 자기앞 수표 1장과 현금 3만5천원등 13만5천원및 책가방과 보온도시락을 지니고 있었다. 소정양의 아버지 김씨와 어머니 신춘자씨(49)는 날마다 하오 10시쯤이면 집으로 돌아오던 딸이 이날밤 11시가 넘고 자정이 지나 날이 새도록 연락도 없자 딸이 괴한들에게 납치된 것으로 여기게 됐다. 가족들은 그러나 행여나 하는 생각으로 소정양의 친구와친척,담임교사 등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딸이 학교에 등교도 하지 않았으며 전혀 본 적이 없다는 대답 뿐이었다. 김씨는 다음날 아침8시쯤 전화로 「182」신고를 한 뒤 다시 관할파출소에 직접 달려가 신고를 했으나 경찰에서는 『목격자도 없고 증거도 없어 가출일 가능성도 있으니 좀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김씨등 가족들은 그러나 『소정이가 최근 학교성적도 오르고 명랑하며 아무런 걱정이나 고민도 없어 가출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소정양이 실종된 이후 김씨 부부와 할머니(77),언니 3명,아들(12ㆍ국교5년),여동생 2명등 가족 9명의 단란했던 생활도 엉망이 됐다. 김씨는 매일밤 대문밖을 서성이며 뜬눈으로 밤을 새고 어머니 신씨는 혹시 소정이와 관계된 전화가 걸려올까봐 하루종일 전화기 앞을 지키고 있다. 전화기 앞에서 밤을 새우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나면 신씨는 『내자식 어디서 무슨 짓을 당하고 있을지 모르는데 이 어미는 마음 편히 잠을 자는구나』싶어 가슴을 쥐어뜯으며 자책한 것도 여러번이다. 소정이가 실종후 김씨 부부는 파출소 직원들을 채근하여 평소 동네 불량소년들이 자주 모이던 집 뒷산을 밤새 뒤져보기도 했다. 한편 이 사건의 수사를 맡고 있는 경찰 또한 혼란에 빠져있다. 학생신분으로는 큰 돈이 든 예금통장과 가출에 필요한 옷가지 등을 그대로 둔채 그날 수업에 필요한 것만 챙겨들고 집을 나선 점으로 미루어 단순한 가출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직업속인 새신랑,신혼여행서 잠적 소동(조약돌)

    ○…직업을 속이고 결혼한 후 제주에 신혼여행왔던 신랑이 신부를 호텔방에 남겨둔 채 잠적했다가 10일만에 빈털터리로 나타난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 지난달 25일 이상준(32ㆍ경남 울산시 남구 화성동 525의 17) 김미자씨(27)부부는 신혼여행차 제주에 와 이틀을 함께 보낸 뒤 27일 아침 신랑 이씨가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한 후 행방불명됐었다는 것. 이에 신부 김씨는 제주시 연동파출소에 가출인신고를 하는 한편 시댁에 연락,신랑 동생 이상옥씨(30)가 달려와 지난 4일 제주경찰서에 수사의뢰원을 제출하는 등 법석. 그러나 신랑 이씨는 호텔에서 나온 뒤 제주시내 여관과 여인숙 등지를 전전하다 6일 낮 제주시 사라봉공원 근처에서 마침 수배전단을 본 주민 김화택씨(51ㆍ제주시 건입동 676의9)에 의해 인근 파출소에 신고돼 신부에게 인계. 신랑 이씨는 경찰에서 『미역양식업을 하는 어부인데 신부와 맞선을 볼 당시 S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라고 속여 계속 고민해왔다』면서 『행방불명돼버리면 신부 혼자 떠나겠지 하는 생각으로 호텔을 나왔었다』고진술.
  • 「광주보상금」 우선 지급 확정/사망ㆍ실종ㆍ중상 3천만원

    ◎경상은 5백만∼1천만원 정부는 7일 광주보상관련법 입법이 늦어짐에 따라 중상자이상 행방불명자ㆍ사망자에게는 3천만원씩,경상자에 대해서는 5백만∼1천만원까지 우선 지급키로 확정하고 총1천4백여명에 대한 소요재원 2백억원을 광주시가 기채형식으로 은행융자를 받아 지급하기로 했다. 광주보상금 선지급에 따른 광주시의 기채는 추후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에 반영,갚도록 했으며 나머지 보상액은 광주보상관련입법이 완료된후 정산해 추가지급될 예정이다.
  • “기성회비 인상반대” 학생회간부 2명/괴한에 린치당한후 행방불명

    【창원=이정규기자】 기성회비 인상을 놓고 학내분규가 계속되고 있는 경상대학교(진주시 가좌동) 학생회 간부들이 잇따라 피습당한 뒤 행방을 감춘 사건이 발생,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0일 경남도경에 따르면 지난 16일 하오11시쯤 학교후문옆 골목에서 공대학생회 인권복지위원장 김종국군(건축공학과 4)이 학생들로 보이는 괴한 5명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경상대부속병원에 입원했다가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다. 괴한들은 김군에게 『학생회가 추진하고 있는 기성회비 인상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이유가 뭐냐』며 집단폭행했다는 것이다. 이보다 앞선 15일 하오4시쯤에도 공대학생회 체육부장 진규상군(금속재료과 3)이 인문 사회대 학생으로 보이는 13명에게 학생회관옥상으로 끌려가 3시간동안 감금당했다가 하오7시쯤 풀려났으나 이날 현재까지 소재파악이 안되고 있다. 경찰은 신학기들어 총학생회가 학교측이 요구한 기성회비 9.5%인상을 반대하고 나서자 김군과 진군이 학교측 인상안을 수용해야 한다고주장했던 점으로 미루어 운동권학생들에 의한 보복ㆍ린치일 것으로 추정,수사를 펴고있다.
  • 북의 남편과 말잊는 재회/40년 그리움 고향의 꽃 한다발로 전달

    ◎손경한씨 어머니 【도쿄=강수웅특파원】 김선순씨(62ㆍ부산 동래구 칠산동 195의4) 일가족이 6ㆍ25때 인민군에 입대한뒤 소식이 끊겼던 북한의 남편 손영종씨(62ㆍ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실장)를 40년만에 처음으로 일본 도쿄에서 상봉했다. 손씨의 형 영춘씨(65),여동생 영숙씨(60)와 함께 17일 하오 도쿄에 도착한 김씨는 이날 하오8시50분 도쿄 오테마치(대수정) 팔레스호텔 2층에 마련된 별실에서 남편 손씨와 재회의 감격을 누렸다. 30분쯤 먼저 회견장에 들어온 북한의 손씨는 김씨로부터 고향에서 가져간 꽃다발을 건네받고도 한동안 말문을 열지못한채 눈시울을 붉혔으나 형 영춘씨가 뒤쫓아 들어오며 『너 이놈 살아있어 다행이다』라고 소리치자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며 반가워했다. 북한의 손씨는 6ㆍ25가 일어난 1950년 서울대 문리대 3학년 재학중 부인 김씨에게 『잠시 학교에 다녀올테니까… 』하며 집을 나간채 행방불명된뒤 이번에 아시아 사학회창립총회겸 한ㆍ중ㆍ일 고대사에 관한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하기위해 도쿄에 왔다가 지난16일 아들인 변호사 손경한씨(40ㆍ서울 태평양 법률사무소)와 상봉하게 됐다. 손변호사는 지난 85년 미국유학중 북한학자로부터 아버지가 북한에 생존해 있는 사실을 확인,이번에 정부의 승인을 받고 생후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나기위해 도쿄에 왔었다.
  • 추락 KAL기 동체 일부 발견/미얀마 앞바다서

    【도쿄연합】 지난 87년11월 미얀마(구버마) 앞바다에서 행방불명된 대한항공 858기의 잔해로 보이는 길이 10m,높이 3∼4m의 항공기 동체가 사고해역으로 추정되는 안다만해에서 발견됐다고 일본 아사히(조일)TV가 13일 낮 뉴스에서 보도했다. 아사히TV는 방콕발 기사에서 항공기 동체가 12일 저녁 현지에서 조업중이던 타이어선에 의해 인양됐다고 밝히고 동체부분에 올림픽마크와 「서울 1988」이라는 문자가 씌어진 파편의 사진을 방영했다.
  • 여,「광주」 보상법안 확정/호프만식 계산에 법정이자 추가

    정부와 민자당은 3일 김태호내무 허형구법무장관ㆍ이상연보훈처장과 통합추진위위원 전원이 참석한 당정회의를 갖고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피해자및 유족들에게 수익상실액을 기준으로 한 보상금과 함께 생활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의 「광주 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안」을 확정,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광주사태 관련자 또는 유족에 대한 보상금을 사망자와 행방불명자에는 사망 또는 행방불명 당시의 월급실수령액 또는 평균 임금액에 장래 취업가능기간을 곱한 금액에 연리 5%의 법정 이자율을 적용,90년까지 10년간의 이자 50%를 추가해 산정하도록 했다. 이 법안의 보상 기준에 따를 경우 사망자에 대한 보상금은 최저 3백∼최고 8천3백만원 정도로 추산되며 민자당은 생활지원금을 5천만원쯤 계획하고 있어 사망자 1인당 최고 1억3천3백만원 정도의 보상이 가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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