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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이산상봉/ 서울 상봉 이모저모

    서울과 평양에서의 3박4일은 반세기 동안의 ‘긴 이별’에 비해 너무나 ‘짧은 만남’이었다.남과 북으로의 출발을 하루 앞둔 17일 이산가족들은 하룻밤만 자고 나면 또 다시 ‘생이별’을 해야하는 기막힌 현실에 울고 또 울었다.남북이 각각 주최한 환송 만찬에 참석했다숙소로 돌아온 이들은 회한과 상념에 젖어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다시피 했다. ◆박재규 통일부장관이 17일 저녁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마련한 만찬에는 여야 정치인을 포함,300여명이 참석,성황을 이뤘다. 박 장관은 만찬사에서 “짧은 시간이었던 만큼 헤어짐은 더욱 애틋해 잡았던 손을 차마 놓치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접고 다시 만날그 날을 기약하자”며 북측 상봉단과 남측 참석자들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남한의 막내딸 최순애씨(48)씨가 선물한 한복을 입고 나온 류미영북측 단장도 답사에서 “서울에서 보낸 며칠은 격정 속에 흘러간 나날이었다”고 회고한 뒤 “남측의 배려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만찬장에는 정계 뿐 아니라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 때 방북했던강성모 린나이코리아 회장 등 재계 인사와 문화·체육·언론계 대표들이 참석했다.경기대 교수인 전 방송인 차인태씨,전 영화배우 김보애씨,그룹 ‘코리아나’의 여성멤버 홍화자씨 등 낯익은 인사들도 포함됐다. 미국 국적의 인요한(41·본명 존 린튼)연세대 외국인진료소장도 눈길을 끌었다.인씨는 형 세반씨(50·스티브 린튼)와 함께 북한의 결핵 퇴치사업을 펼치고 있는 유진벨 재단 활동으로 북한에도 잘 알려져있다. ◆하얏트호텔측은 북측 상봉단이 고령임을 감안,북어와 더덕구이,갈비와 전복구이,수정과 등 부드러운 음식들로 상을 차렸다. 또 한 테이블에 한명씩 배치하던 서비스 요원을 3명씩 배치해 몸이불편한 상봉단들을 부축하는 등 세심하게 배려했다. ◆약 2시간 동안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만찬은 북측 상봉단과 남측 참석자들간의 뜨거운 악수와 함께 “또 만납시다”“건강하십시오”라는 등의 덕담으로 끝맺었다. ◆서울 체류 3일째인 이날 남북 이산가족들은 “마지막이라는 말은하지 말자”며 짧은 재회의 아쉬움 속에 다시 만날 희망의 날을 기약했다. 상봉 마지막 날인 탓에 “한 번이라도 더,1분이라도 더 만나게 해 달라” “부모님 산소라도 찾게 해 달라” “어머니와 하룻밤이라도 자게 해 달라”는 안타까운 주문도 잇따랐다. ◆북에서 온 김용호씨(72)는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다”면서 “면회소가 생기면 아직 못본 조카들도 만날 것”이라며 다시 만날 날을 확신했다. 김씨를 비롯한 이산가족들은 “연락사무소 설치나 이산가족의 정례적인 만남도 중요하지만 우선 전화 통화와 편지의 상시 교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덕씨(64)는 “형님과 얘기를 해도 해도 끝이 없다”면서 “하룻밤이라도 같이 자면서 밤 새도록 얘기하고,부모님 묘소에 성묘라도한 번 같이 갔어야 하는데…”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북한 평양무용대학 교수이자 최초의 여성박사 김옥배씨(68·여)는“어머니 품에서 잠들고 싶어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면서 “어머니께 밥을 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북측 이산가족 김인수씨(68)는 이날 대한적십자사측에 요청,6·25때 헤어졌던 선린상업중학교 시절단짝 김학모(70·서울 중랑구 망우동)·이창영씨(70·서울 은평구 응암동)를 50년만에 극적으로 만났다.까까머리 중·고교시절의 삼총사가 허연 백발이 돼 재회한 것이다. 김학모씨는 16일 오후 고교 총동창회로부터 50년 전 행방불명된 뒤로 ‘죽었다’는 소문만 나돌았던 친구 인수가 북에서 내려와 자신을애타게 보고 싶어 한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김학모씨는 중학교 5학년 동안 내내 같은 반이었던 삼총사 중 나머지 한명인 이창영씨에게 연락,이날 오전 김인수씨가 머물고 있는 서울 워커힐호텔을 찾았다. ◆신정현씨(86·서울 은평구 불광동)는 이날 창경궁 관람을 마치고나오던 북한의 ‘계관시인’ 오영재씨(64)에게 북한에서 문인으로 활약했다는 오빠 구현씨(89)의 생사를 물었으나 타계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망연자실,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신씨는 46년 충북으로 시집간 뒤 고교 교사였던 오빠와 소식이 끊겼으며 10년전 우연히 오빠가 김일성대 언어문학연구부 교수 등을 역임한 문인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서울만남 이모저모

    북에서 온 아들은 “오마니”를 외치며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았고,남쪽의 어머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열했다.기약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만남은 뜨거운 포옹과 눈물이 되어 분출했다. ◇ 상봉 ■안순환씨(65)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상봉 장소인 서울 삼성동코엑스에 나온 어머니 이덕만씨(87·경기도 하남시 초일동)와 동생들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아냈다.50년 동안 소식도 없던 아들을 만난 어머니 이씨도 아들의 뺨과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는 “며느리에게 갖다 주라”며 미리 준비한 금목걸이를 아들의목에 걸어 준 뒤 연신 아들의 등을 두드렸다.안씨는 “북쪽에 가족이있느냐”는 동생들의 질문에 북한에 있는 가족사진을 꺼내 아내와 자식들을 소개했고, 어머니 이씨는 “며느리가 예뻐 합격”이라며 대견스러워했다. ■북한에서 축산 및 채소 생산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둬 ‘노력영웅’칭호를 받은 백기택씨(68)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딸 신금옥씨(50)를보고 숨이 멎는 듯했다. 옆에 서 있는 낯선 얼굴이 궁금했던 백씨는 여동생 문옥씨(67)로부터 “오빠,오빠가 의용군에 입대한 뒤 태어난 오빠 딸이야.오빠 딸”이라는 말을 듣고 한동안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듯 움직이지 못했다. 유복자라는 이유로 외가에 입적돼 호적상으로는 백씨의 조카로 돼있는 딸 금옥씨가 “아버지,저 금옥이에요.아버지 딸”이라며 아버지품으로 달려들자 주변은 울음바다가 됐다. ■만주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 전북 임실로 건너 온 뒤 전쟁 때 전주북중 입학증까지 받았지만 행방불명됐던 정춘모씨(63)는 계모 최순래씨(78)를 붙잡고 눈물을 쏟았다. 최씨는 “교복 입은 사진만 달랑 남겨 놓고 사라져 꿈같이 살아 왔다”며 울먹였고,여동생 정영자씨(54)는 “김대중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북한에서 돌아올 때 하얀 비둘기가 집 안으로 날아든 뒤꼭 한 달 만에 오빠를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북쪽의 형 문병칠씨(68)의 생존 소식을 전해 들은 뒤사흘 만에 치매를 앓던 어머니 황봉순씨(90)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동생 병호씨(64·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인정리)는“어머니는 형님이살아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치매 환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기력을 회복했는데 사흘 뒤 ‘병칠이가 보고 싶다’고 손을 내저은뒤 갑자기 숨을 거두셨다”며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여동생 정자씨(59)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큰오빠의 손을 꼭 잡고는“오빠가 죽은 줄 알고 절에 위패까지 모셔 놓고 매년 제사를 지내왔다”면서 ”어머니가 한 달만 더 사셨어도 오빠를 만날 수 있었을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신문 논설위원을 거쳐 국회의원을 지낸 주영관씨(72)는 지난 50년 동국대 정치경제학부에 다니다 의용군에 입대한 동생 영훈씨(69)를 만나자 “어머니는 7년 전 지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너를 찾으셨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영관씨는 “헤어진 이듬해 나도 바로 국군 연락장교로 입대해 너를만날 수 있을까 찾아 헤맸단다.서로 적군으로 총부리를 맞대더라도혹시 전쟁터에서라도 만나기를 고대했었는데 이제야 이렇게 만나게됐구나”라며 동생의 얼굴을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인민군이 서울에진입한 바로 그날 중학생으로 의용군에 징집됐던임재혁씨(66)는 휠체어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치매로 듣지도 못하고말도 할 수 없는 아버지 임휘경씨(90·서울 양천구 목동)를 보고 목이 메었다. 재혁씨는 형 창혁씨(71)에게 “어머님,어머님은…”하고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지만 “15년전 돌아가셨어.늘 네 얘기만 하시곤 했는데…”는 말을 듣곤 할 말을 잃었다.. ■박노창씨(69)는 조카들로부터 큰형 원길씨(89·서울 은평구 신사동)가 상봉을 이틀 앞두고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맥이 풀렸다. 노창씨는 지난달만 해도 6남매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다고 통보된큰형의 운구가 이날 오전 8시30분 장지인 경기 파주시 금촌면으로 향했다는 말에 “믿을 수 없다”며 망연자실했다. ■죽은 줄만 알았던 큰아들 조진용씨(69)를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 정선화씨(95)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면서 쓰러져 들것에실려 아들을 만났다.정씨는 고령에다 아들을 만난다는 설렘 때문에아침은 물론 며칠 동안 식사를 제대로 못해 기력이 쇠약해진 것으로알려졌다.■상봉 가족수를 제한해 코엑스에 가지 못하고 8남매 중 맏이인 오빠 김용환씨(68)를 만나러 무작정 쉐라톤워커힐 호텔로 찾아온 용순(50)·용란(43)씨 자매는 오빠 용환씨가 코엑스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기 전 ‘기적’같이 자기 이름이 적힌 피켓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자 “오빠,오빠”를 연호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정태씨(72)를 만나러 온 매부 신현묵(75)씨와 형수 박정우(70),계수 연종술(63)씨도 워커힐호텔 로비에서 ‘환영 김정태’라고 적은종이를 들고 이름을 연호하다 버스에 오르는 이산가족들의 줄이 끝날무렵 김씨를 잠깐 만날 수 있었다. ■남측 이산가족들은 오후 3시쯤 버스 편으로 컨벤션센터 동문에 도착,3시30분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행사장에 들어와 정해진 탁자에앉았으며,4시10분쯤 숙소인 워커힐호텔을 출발한 북측 가족들은 태진아의 ‘어머니’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4시40분쯤 홀에 들어와눈물의 상봉을 했다. 북측 가족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번호표를 들고 홀 입구의 상황판에서 자기 번호와 같은 번호가 적힌 탁자를 확인한 뒤 탁자를 찾아가남측 가족들을 만났다. ◇ 김포공항 ■북측 가족 151명을 태우고 공항에 도착한 북한 고려항공 승무원들은 공개된 자리에서 남측 승무원들과 악수를 나누었다.고려항공 승무원들은 오전 11시30분쯤 북측 가족들이 국제선 2청사 17번 게이트를통해 빠져나간 뒤 게이트 앞에서 10분 간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대한항공 김홍정 사무장(52)과 유은아씨(27) 등 스튜어디스 5명은게이트 앞으로 나온 박승남 기장(46) 등 10여명의 고려항공 승무원들에게 꽃다발과 기념시계를 선물했다. ◇ 워커힐호텔 ■밤 10시쯤 숙소인 워커힐호텔에 돌아온 북측 방문단들은 대부분 상봉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상기된 얼굴로 “내일 다시 만나도 울음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57분 김포공항에 도착한 북측 이산가족들은 숙소인 워커힐호텔로 이동,방 배정을 받은 뒤 여장을 풀고 호텔 식당에서 서울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점심은 갈비찜,은행죽,인삼야채무침,민어삼색전 등이 곁들여진 한정식으로,호텔 관계자는 “상봉단이 대부분 노령층이어서 먹기 좋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준비했다”고 밝혔다.대부분의 북측 이산가족들은 “김치가 제일 맛있다”면서 “같은 조선 사람들인데 달리 맛을느끼겠느냐”며 남북 동포들이 한 입맛임을 강조했다. 북측 가족들의 가슴에는 김일성배지와 함께 인공기와 적십자 표시가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배지가 달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북측 가족들은 신원을 증명하는 명찰도 휴대하고 있었다. ◇ 올림픽파크텔 ■밤 10시30분쯤 올림픽파크텔에 도착한 남쪽 가족들도 북한 방문단과의 상봉의 순간을 다시 되새기며 16∼17일의 개별 상봉시간은 어떻게 보람있게 보낼까 의논했다. 이날 아침 남측 가족들 중에는 잠을 설친데다 50년 만에 가족들을만난다는 기대 때문에 올림피아홀에 마련된 아침 식사를 제대로 들지못하고 남기는 사람이 많았다. 한편 남쪽 가족들은 기자들이 객실로 몰려와 취재 경쟁을 벌이자 가족간 대화 등에 방해가 된다며 기자들의 객실 출입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호텔측은 송파경찰서의 지원으로 이산가족들이 머무는 각 층마다 의경 2명씩을 투입해 객실 접근을 막았다. ◇ 한국종합전시장■북측 방문단과 남측 이산가족은 이날 저녁 대한적십자사가 강남구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COEX) 그랜드볼룸에서 주최한 환영만찬에 나란히 참석,재회의 기쁨을 함께 했다. 만찬은 상봉 시간이 지연되는 바람에 예정보다 1시간여 늦은 오후 7시40분께 시작됐으며 남북 상봉자 600여명과 한적 관계자 100여명 등이 참석했다. 한적 봉두완(奉斗玩) 부총재는 환영사에서 “만나면 이렇게 좋은 것을 왜 50여년동안이나 미뤄왔는가”라면서 “반세기 동안 간직했던회포를 이 자리에서 맘껏 푸시길 바란다”고 축원했다. 특별취재단
  • 반세기만에 띄우는 편지/ 서울 오는 형님께

    “그립고 그리운 형님,아버지께서는 기다리다 지쳐 지병을 얻어 33년전 세상을 뜨셨습니다…”.“형님,저는 50년 전 서울 왕십리에서 형님과 저와 자취하며 학교 다니던 그 때 6·25 한국동란으로 헤어져… (중략) …차제 상봉의 소식을 접하니 꿈인지 생시인지…”. 죽은줄만 알았던 형님에게 드리기 위해 50년만에 쓰는 동생의 편지 첫 머리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린다.그리고 당시를 회상하며 얼마나 많은 날들을 그리움에 보냈는지를 적어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게 한다. 권영택(權寧宅·70·서울 구로구 오류동)씨는 8일 낮 6남매의 큰 형 영규(權寧珪·75)씨가 오는 15일 서울로 오게 됐다는 전화에 연방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감격을 억누르지 못하다가 갑자기 펜을 들어 형님께드리는 편지를 써 내려갔다. 지난 50년 당시 서울대생이었던 존경하는 형님에게 드리는 편지여서인지 한자를 섞어가며 한자 한자 또박 또박 써 내려갔다. “옛날 중학교 시험을 볼때 잘 모르는 수학문제,다정스럽게 알기쉽게 가르쳐 주셨고….” 어린 시절 다정했던 형님 생각이 뇌리를 스쳐가자 편지를 써내려 가던 영택씨는 “형님은 경북 김천고를 수석으로 졸업,지난 50년 당시 서울대 공과대토목공학과에 다니면서 왕십리에 자리잡은 백남공고 교사를 하던 수재였다”면서 “또 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한 장남이기도 했다”고 회상하며잠시 쓰던 펜을 놓고 흐르는 눈물을 훔친다. 이때 막내 동생 영길(寧吉·59)씨의 전화를 받고 감격에 겨운 듯 “그래,그래,응응”하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영규씨는 “사람은 포부를 크게 가져야 하니 발전을 위해 진학하라”면서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큰댁이 있던 충북 옥천에서 초등학교 촉탁교사로 일하던 3남 영택씨를 서울로 불러 왕십리에서 함께 자취를 하며 국립 체신고교에 입학하도록 했다. 6·25가 끝난 뒤 둘째 형 영주(寧周)씨마저 행방불명되자 고향에서 서당 훈장을 하던 아버지 태정(泰晶·67년 작고)옹은 “그눔아가 있어야 집안을 다건질 긴데”하시며 지난 67년 돌아가실 때까지 형님 얘기를 하셨다. 영택씨는 편지를 쓰다가 “부모님과 둘째 형님은 돌아가셨지만 살아남은 4남매가 다시 만난다는 생각을 하니 꿈만 같다”면서 “모스크바와 동독에서유학까지 하고 김일성종합대와 함흥공대 교수를 지낸 자랑스런 형님을 집으로 모셔 좋아하셨던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상봉의 순간을 그려보기도 했다. “형님께서는 동생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셨습니다…(중략)…할 말씀 많으나펜이 떨려 무슨 말을 적을지 생각이 안 납니다.상봉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은 형님의 얼굴을 그리며 편지를 쓰던 영택씨는 “할 말은 많은데 흥분해서인지 손이 떨려 더 이상 못 쓰겠다”면서 또박또박적은 2장의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우리집 대들보인 장남을 6·25가 데려가 버렸다고 늘 말해 왔습니다.형님을 만난다니이것이 생시 맞습니까.”라며 영택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 10월부터 154만명 최저생계비 지원…국무회의 시행령 의결

    정부는 18일 청와대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오는 10월부터 소득이 4인가족 기준으로 월 93만원의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저소득층은 최저생계비에 부족한 만큼을 정부가 지급하는 등 전 국민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생계비를 지급받는 대상자도 현재 50만명에서 154만명으로 크게늘어난다. 시행령은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기피·거부할 때나 ▲행방불명,징집·소집,교도소 등 시설에 수용됐을 때 ▲해외이주 상태일 때에도 생계비를 지급하도록 했다.다만 근로능력이 있는 대상자는 근로의욕 감퇴를 막기 위해 자활공동체사업과 구직활동,직업훈련 등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생계비가 지급되며 3개월마다 지급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소득수준에 따른 생계비 지급대상 여부는 개별 가구의 근로소득,사업소득,재산소득과 각종 정기수당 및 연금 등 기타소득을 합산해 결정하도록 규정했다. 이와함께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의결,올 회계연도부터 소유지분이적더라도 사실상 지배관계에 있는 회사를 모두 연결재무제표 작성대상에 포함시키도록 했다.증권거래소 상장절차를 간소화해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하는 회계법인으로부터 직전 연도에 회계감사를 받았다면,상장 절차상 필요한 별도의 회계감사를 받지 않도록 했다. 이지운기자 jj@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6)잃어버린 먹거리

    *피란시절 동태탕은 가족 결속시키고... 전쟁 전이나 휴전 뒤에 생활이 다시 안정 되었을 때에 우리가 고기 대신 먹었던 여러 가지 생선들이 생각난다.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사라져버린 물고기들이 많은 것 같다.또한 있다고 하여도 다른 먹거리가 많아서 찾지않게 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침 저녁 무렵이면 동네 골목마다 장사꾼들이 차례로 등장하기 마련이었는데 호객하는 소리도 독특해서 재미가 있었다.콩나물이나 무 배추 따위의 채소장수들에서부터 새우젓 어리굴젓 장수들 그리고 생선장수들은 모두들 팔려는 물건 뒤에다 ‘사료’나 ‘사우’를 부쳐서 목청을 높였다.두부장수는 자루가 달린 놋쇠 요령을 가지고 다니면서 딸랑 딸랑 하고 흔들었다.나중에 쓰레기차가 오면 청소부들이 그런 손 종을 치곤 했다. 비웃드렁 새,하는 소리는 청어를 사라는 생선장수의 소리였다.전쟁 전에는청어가 서울 인근에서는 가장 좋은 비린 반찬이었고 주점에서도 어른들이 제일로 쳐주는 안주감이었다.청어는 생선도 있고 소금에 절인 것도 있으며 꾸덕꾸덕 말린것도 있었다.숯불 풍로에 철사로 얼기설기 엮은 석쇠에다 굵은천연 소금을 뿌려서 구운 청어는 기름이 자르르 하고 고소하며 살집이 푸짐했다.집집마다 담장을 넘어서 골목길에까지 청어 굽는 냄새가 가득찼다.생선은 찌개도 끓이고 찜도 하고 소금에 절인 것은 조리기도 하며 그냥 숯불에굽기도 하고,꾸덕꾸덕 말린 것은 갖은 양념하여 재어 두었다가 북어나 조기처럼 구었다. 아지라는 생선도 많이 먹었는데 나는 무어니 무어니 하여도 어머니가 뼈를발라 간장과 설탕과 양념을 섞어서 장을 내어서는 아지 생선 위에다 바르면서 천천히 구워낸 아지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그 맛이 생선 중의 으뜸이라는 준치도 굽거나 조림이 고작인 셈인데 나는 가시가 많아서인지 별다른 기억이 없다.다만 그 맛이 남도 사람들이 친다는 전어와 비슷하지 않았는지.전어는 소금 뿌려 놓았다가 기름에 지지거나 구어 먹는 것이 제일 좋은데 봄철 나물과 번갈아 먹는 맛이 그럴 듯 하다. 이면수와 가자미는 살이 담백하고 기름지지 않다.이면수는살갗이 꺼칠하고두꺼운 느낌이 들어서 별로 맛들이지 못했고,다만 가자미는 손바닥 두어배되는 큰 놈을 소금 뿌려서 태우지 않고 껍질이 바짝 마를 정도로 숯불에 구워서 통째로 먹는 맛이 기막히다.일본에서 그렇게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전혀 비리지 않고 무슨 바다의 감자를 먹는 느낌이었다.그러나 어려서는 별로맛있는 줄 몰랐다. 소학교 때까지만 하여도 어머니는 해마다 봄철이 되면 인천에서 들어온 조기를 몇판씩 사들여다가 뒷마당에서 이모와 같이 김장 때처럼 법석대며 손질을 했다. 소금에 절이고 자잘한 놈은 젓갈을 담기도 했는데 메주 말리던 넓다란 대나무 채반을 몇 개씩 늘어놓고 소금에 절인 조기를 말렸다.당시에는 집집마다담장에 널어 말리는 조기를 볼 수가 있었다.바싹 마르면 굴비가 되었고 장사꾼들은 굴비의 대가리를 새끼로 줄줄이 꿰어서 팔러 다녔다.요새처럼 ‘영광 굴비’가 특상품이라고 하지는 않고 ‘연평 굴비’라고 외쳤다.연평 굴비는 수백년 동안 서울 사람들의 여름철 반찬이었다.굴비를 두었다가 구어 먹는것이 보통이지만통째로 여러 마리를 고추장에 박아 두었다가 몇 달이 지나서 꺼내어 살을 잘게 찢어서 저장한다.살이 쫄깃하고 암갈색이 되는데 쇠고기 장조림의 열 배는 더 맛이 있었다.무더운 여름날 먼길을 걸어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배가 고픈데도 당장 점심을 먹기도 지겹고 할 적에 어머니가 구운 굴비를 찢어서 열무김치와 함께 밥상을 차려 준다.찬물에 밥을 말아서 굴비와 열무김치로 먹기 시작하면 그제사 식욕이 왕성해지던 것이다. 조기철에 뒤이어 초여름 무렵부터는 꽃게가 들어왔다.꽃게는 어머니와 누나들이 마당의 수돗가에서 손질을 하려면 사방으로 달아나 어떤 놈은 장독대뒤의 독 사이로 숨고 어떤 놈은 판자 담장 아래로 빠져서 행방불명이 되기도 한다. 게장을 담그는데 시골에서는 오종종하게 작은 밤게를 쓰지만 사실은 물산의왕래가 불편하던 옛날의 일이고 기생충도 많고 다리는 살이 적고 몸통마저도 먹잘 것이 없어서 귀찮기만 할 것이다.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나 바닷가에서는 꽃게를 많이 썼다.또 요즈음 식당에 가면 시뻘겋게 양념을 해서 꽃게장을 담아 즉석에서 먹어 치우기에 간편하지만 최근의 남도 식이지 옛날 식은 아니다. 꽃게를 솔로 박박 문지르며 소금물에다 깨끗이 닦아서 털 같은 아가미와 세모의 등딱지며 모래주머니를 모두 떼어내고 발가락 끝을 잘라내어 손질을 한다. 간장에 생강 마늘 고추 등속을 넣고 끓여서 붓는 것은 얼추 같은데 여기에맛의 비방이 첨가 되어야 한다.기름기 없는 쇠고기 다진 것을 넣고 물 대신에 사이다를 부으면 짜지도 않고 깊은 맛이 생겨난다.팔팔 끓인 양념 장을식혀서 손질하여 채곡채곡 항아리에 담은 게 위에 붓는다.사흘쯤 지나서 다시 장을 따라내고 끓여 붓기를 모두 세 차례쯤 하고 나면 먹을 수 있게 된다.알과 내장이 맛깔스러운 게딱지는 물론이고 살이 푸짐하고 쫄깃한 다리와집게발마저 먹을 것이 많다.그리고 남은 간장 또한 밥에 비벼 먹을만 하다. 남도에서는 밤게를 담을 적에 항아리 밑에다 다진 쇠고기를 두고 게를 깨끗이 씻어 넣어 하룻밤 재운다고 하였다.그러면 게들이 밤 사이에 쇠고기를 모두 먹는다는데 여기에다 간장을 붓는다고 한다.중세 유럽의 서민들을 살린 것은 난류와 한류가 합치던 대서양의 대구와 아메리카에서 들어온 감자였다고 한다.당시만 하여도 고기는 특권층의 먹거리였고 대구는 엄청나게 잡혔다.인구의 팽창과 곡물의 흉작은 전쟁과 굶주림으로 이어졌는데 감자가 주식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거의 신의 은총이라고 여겨졌다고도 한다. 우리에게도 다른 맛있는 생선들이 근해에서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거나 희귀해져서 값비싼 생선이 되어갔지만 가난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서민들의 영양을 담보해준 것은 꽁치와 고등어였다.한때 갈치가 많이 잡힐 적에는 그 신세도 많이 졌는데 이전에는 갈치가 탐스럽게 커서 두툼하게 썰어놓은 식빵만했다.역시 소금구이와 조림이 주종이었고 무를 반달형으로 큼직하게 썰어 넣고 풋고추와 고춧가루를 벌겋게 버무려 지진 호남의 갈치 조림은 입맛을 돋군다.나중에 여행지 이야기를 하면서 제주 갈치의 여러 가지 조리법이 소개가되겠지만 지방마다 생선의 조리는 조금씩 다르다. 장에 갔던 가장이 어스름한 달밤에 막걸리 한 잔으로 거나해져서타령 한 소리 읊조리며 영을 넘어올 제 새끼에 꿰어 들고 오던 것이 간고등어 한 손이다.산지가 많은 영남 사람들은 지금도 평야 지방의 그들먹한 한정식 보다도경상도 막장으로 끓인 찌개와 구운 간고등어 한 토막을 더 쳐줄 정도가 아닌가.고등어 역시 생선 조림이나 양념하여 꾸둑꾸둑 말린 것을 무를 넣어 조리거나 굽는다. 꽁치는 또한 그 무렵의 사철 고기반찬이었다.소금 뿌려서 연탄 화덕에 구운것을 질리지도 않고 거의 하루 걸러서 먹었다.나중에 통조림이 쏟아져 나와등산길에서도 군대에서도 콩나물 국에 고기 대신 왕건이가 되어서 다투어 건져 먹곤 했다. 지금은 그러한 신문기사를 찾으려고 눈을 씻고 보아도 없지만 그 시절에는버려진 복어알을 주워다 온 가족이 끓여먹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않게신문에 오르내렸다.전쟁 때 피란 시절에는 어쩌다 먹는 동태 탕이 식구들을따뜻하게 결속 시켰다.당시에는 저 먼 남의 나라 바다에 나가서 잡아오는 참치 같은 맛들일 수 없는 고급 생선은 존재하지 않았다.이제는 허드레가 되었거나 희귀해져서 최고급이 되어버린 생선 대신에,나는 오늘도 지금까지 내가 맛나게 먹은 고등어의 놀란 눈을 떠올리며 슬며시 웃는다. 황석영.
  • 체첸 잇단 테러… 러 165명 死傷

    체첸의 아르군과 구데르메스에서 잇따라 체첸 반군의 자살 폭탄테러로 보이는 폭발사고가 발생,최소한 165명이 숨지거나 다쳤다고 러시아 내무부가 3일밝혔다. 체첸 내 러시아 연방 내무본부는 이날 지난 2일 오후 잇따라 발생한 아르군과 구데르메스 폭탄테러로 44명이 숨지고 120명이 다쳤으며 1명이 실종됐다고 전했다. 2일 오후 아르군에 위치한 러시아 연방 내무부 소속 경찰 기숙사에 폭발물을 실은 ‘카마즈’ 트럭이 돌진,폭발함으로써 건물이 붕괴돼 최소한 31명이숨지고 3∼4명이 매몰돼 있으며 1명은 행방불명이라고 내무부는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3일 오전 11시(한국시간 오후 4시) 총리 및 무력부처장관들과 회동,이 문제를 논의했으며 푸틴은 유가족들에게 조문을 보냈다. 당국은 이와 함께 3일 이반 골루베프 내무 차관을 위원장으로하는 특별 조사위원회를 구성,조사에 착수했다.이와 별도로 체첸내 구데르메스 서부의 연방군 수색대대 부근과 연방군 위수사령부 입구 부근에서 2일 오후 ‘카마즈’ 트럭을 이용한 체첸반군의 자살폭탄테러가 각각 발생,테러에 가담한 반군 2명을 제외하고 7명 이상의 연방 병력이 숨졌다고 내무부가 3일 밝혔다. 모스크바 연합
  • [끊어지지 않는 지구촌 분쟁](4)티베트의 홀로서기

    반세기동안 계속되는 티베트의 독립·분리운동은 중국에게는 피하고 싶은아킬레스건이다.티베트내의 인권상황은 중국을 국제사회에서 곤혹스럽게 한다.97년 장쩌민(江澤民) 중국 주석의 미국 방문때 공식거론 여부를 놓고 막판까지 논란이 됐었고 최근 티베트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방한문제로 한-중간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올초에는 티베트 불교계 서열 3위인 카마파 라마(14세)가 인도로 월경,중국-인도관계가 불편해졌다. 비폭력 독립운동을 이끌어온 달라이 라마가 98년 11월 티베트 독립 포기를선언하고 ‘완전 자치’를 요구하면서 티베트 문제는 새 국면에 들어섰다.공은 중국 정부에게로 넘어갔다. [분쟁의 역사] 티베트는 13세기 이후 중국과 영국의 통치를 번갈아가며 받아왔다.1911년 신해혁명이후 한족을 몰아내고 1950년 중국이 지배권을 주장하며 무력 침공할 때까지 독립을 유지해왔다.중국은 1906년 티베트에 대한 권리를 인정한 영국과의 조약을 근거로 티베트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1951년 5월 베이징 정권이 무력을 이용,달라이 라마 정부와 17개조의 ‘티베트 평화해방협정’을 체결했다.정교일치 체제의 존속은 인정하되 토지개혁을 포함한 사회개혁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그러나 1959년 중국의 점령에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중국군에 의해 진압됐다.이후 79년까지 100여만명의 희생자가 생겨났다. 달라이 라마는 59년 추종자 6,000여명을 이끌고인도로 망명했다. 중국 정부는 65년 티베트에 자치구(서장)를 세웠다.67년 문화대혁명(∼1977년)이 시작되면서 역사적 유산이 모조리 파괴됐다.마오쩌둥(毛澤東) 사망을계기로 화해를 시도했지만 티베트 민족주의 저항은 약해지지 않았다.봉기 30주년인 1989년 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결국 90년 5월까지계엄체제가 지속됐다. [분쟁원인]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으로서는 ‘살아있는 부처’인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한 신권정치를 인정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티베트가 갖는 군사적·지리적 요충지로서의 의미도 빼놓을 수 없다.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티베트 고원은 지리적으로 무기배치와 개발에 이상적이다.중국의 로스알라모스(미국 뉴멕시코주에 있는 원자력 연구 중심지)에 해당하는 ‘제 9아카데미’가 티베트 북동부에 주둔하고 있다.중국과 인도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티베트가 미사일 및 핵시설등을 갖춘 중국의 전진 군사기지화되면서인도의 견제가 심화됐다. 중국은 목재·수자원·광물자원과 세계 최대의 우라늄 광산에 대한 개발권도 놓치고 싶지 않다.여기에 티베트의 독립 내지는 완전자치가 다른 소수민족에 미칠 파급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전망] 중국은 헌법에 소수민족의 자치를 인정하고 있다.하지만 티베트에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풍부한 자원개발 및 전략적 요충지인 티베트 고원에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일을중국이 선택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당분간 무리일 것 같다. 김균미기자 kmkim@. *티베트 분쟁 일지. ●1913.1 달라이 라마 13세,티베트 독립 선포. ●1950.10 중국군,티베트 무력 점령. ●1951.5 티베트,중국 서장자치구에 편입. ●1959.3 티베트서 독립요구 대규모 시위, 달라이 라마 인도로 망명. ●1965.9 중국,티베트 자치구 성립 선언. ●1987.9 달라이 라마 ‘평화 5항목’제안,중국 거부. ●1987.10 대규모 독립요구 시위. ●1989.3 59년 독립시위 30주년 대규모 시위로 6명 사망,100여명 부상.중국사상 최초로 계엄령 선포. ●1989.10 달라이 라마,노벨평화상 수상. ●1992.4,1993.10 티베트서 폭동 발생,사원들 폐쇄. ●1998.11 달라이 라마,티베트 독립포기 발표. *열매 맺는 망명정부 외교.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 망명정부는 인도와 네팔 부탄 등에 흩어져 사는 13만여 티베트인들의 중심이 되고 있다. 망명정부는 완전 자치를 쟁취하기 위해 대(對)유엔,미국,유럽 등 국제적인지원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이같은 노력의 결과 미국은 특히 티베트 문제를중국의 민주주의,인권문제에 포함시켜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망명정부는 사법부인 티베트 최고사법위원회와 입법부인 국민대표국회,행정부로 이뤄져있다.내각과 국회는 5년마다 선거로 구성원들을 선출한다.또 뉴델리와 뉴욕 런던파리 등 10여개 도시에 대표사무소를 설치,티베트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는데 활용하고 있다. 현재는 ‘국제 티베트 운동’의 후원 아래 세계 곳곳에 있는 수백개의 ‘티베트 우호회’ 지부들이 티베트 돕기에 나섰다.특히 미국의 영화배우 리처드기어 등 헐리우드 인사들이 티베트 돕기운동에 동참하고 티베트 관련 영화‘쿤둔’과 ‘티베트에서의 7년’이 개봉되면서 티베트에 대한 세계인들의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티베트의 인권보호와 문화를 지키기 위한 ‘세계 티베트의 날’ 행사가 매년 열리는 등 국제적인 지원행사가 끊이질 않고 있다.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운동과는 별개로 티베트 독립운동세력은 한때 미국과타이완의 지원을 받아가며 중국에 무력으로 대항하기도 했다. 하지만 70년대이후 미국과 중국관계가 호전되면서 지원이 끊어졌고 지금은 비조직적인 소요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김균미기자. * 印 다람살라 망명정부 르포. [다람살라(인도) 김성호기자] 인도 동북부 해발 1,900m의 산악지역인 다람살라.망명자들을 비롯,티베트와 인도 전역에 퍼져 사는 티베트인들이 고유의종교와 문화를 잃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자치에의 염원을 이어가는 이색지대다.마치 일제하 상하이 임시정부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중국의 폭압이 한창이던 59년 6,000여명의 측근과 함께 티베트를 탈출한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네루 당시 인도 총리의 주선으로 정착하면서 세계의 이목이 쏠리게 된 망명도시.89년 달라이 라마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뒤 본격적견제에 나선 중국 정부와 이에 맞선 티베트인들의 줄다리기가 오늘도 팽팽히 벌어지고 있다. 망명 티베트인 1만명이 사는 고지대와 인도인 2만명이 거주하는 저지대를합쳐 인구는 총 3만명.소형차 한대가 간신히 통행할 수 있는 비좁은 길을 따라 상가와 집들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다.망명정부 청사가 자리잡은 거리를중심으로 사원과 학교가 산재하며 어느 곳에서든 티베트 승려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거리에는 티베트 불교가 좋아 무작정 찾아든 서방세계의 젊은이들이 불상이며 탱화를 벌여 놓은 좌판 주위에 몰려 있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손님 주위에는 어김없이 인도 걸인들의 구걸이 이어진다. TCV(Tibetian Children’s Village)와 도서관은 티베트의 전통과 종교를 이어가려는 노력이 가장 두드러진 곳.달라이 라마의 누이동생 제툰 페마가 총괄하는 TCV는 일종의 종합학교로 티베트 불교 중심의 9년 과정.인도 전역에7개의 학교가 운영되는데 다람살라에는 700명이 수학중이며 한국 학생도 4명이 있다.59년 망명 때 티베트인들이 등짐을 져 날라온 경전 7,000종이 고스란히 보관된 도서관엔 각국 학생·승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티베트 문화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곳은 역시 사원.조캉사원엔 티베트에 불교를 전한 파드마삼바바와 관세음보살상 옆에 60년대 문화혁명 때 티베트에서 파괴된 불상의 목 2개가 함께 봉안돼 있다.티베트 불교와 티베트인들의비극을 그대로 보여준다.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에 파괴된 티베트 사원은 6,000여개.산꼭대기 달라이 라마의 거처 주변에 자리잡은 중앙대회당에는 1년에한번씩 달라이 라마의 법어가 내려지며 남걀사원 역시 정월 대보름 달라이라마의 법문을 듣기 위해 북새통을 이룬다.사원 곳곳에서 손을 뻗고 엎드려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는 승려와 일반인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예비 비구니들이 10년에 걸친 교육을 통해 사미계를 받는 비구니 강원을 들어서면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예비 승려들이 읽는 독경소리가 신비감을 전한다. 토속 주술신앙과 티베트 불교가 혼합된 독특한 형태를 갖춘 네퉁사원은 신통을 받은 승려가 달라이 라마에게 행동지침을 전하는 신탁의 장소다. 정부 청사거리.달라이라마가 신왕(神王) 위치에 있지만 총리 1명,장관 7명으로 구성된 내각 카샥과 망명 티베트인들이 뽑은 46명의 의원이 모인 의회등 나름대로 자치의 틀을 갖추고 있다.중국 대륙을 통일한 공산당이 50년 티베트를 쳐들어오면서 트기 시작한 비극의 싹이 결국 이곳으로 귀결된 것이다.59년 중국 침공에 맞선 독립시위에는 잔혹한 진압이 따랐고 그때 티베트 전체 인구의 20%인 12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정치적인 이유로 감옥에 갇히거나행방불명된 이들은 헤아릴 수 없다.티베트에서 최근 망명한 전직 경찰관 탐딘 체링씨(56)는“폭압의 잔혹성은 59년 끝난 게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있다”면서 “60년 이후 약 20만명이 더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옛 티베트의 면모를 아스라히 풍기면서도 차츰 현대문명의 물결이 스며들고있는 다람살라가 언제까지 티베트 고유의 문화와 종교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티베트인들이 더이상 달라이 라마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이될 때 나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란 달라이 라마의 말이막연하게나마 다람살라의 앞날을 점쳐볼 수 있게 한다.
  • 美 프로농구 영웅 어빙 “내 아들 찾아주오”

    [샌포드(미플로리다주)AP 연합] 미 프로농구의 전설적 영웅인 줄리어스 어빙이 16일째 행방불명된 아들을 애타게 찾고 있다. 어빙은 14일(한국시간) 전국에 방영된 TV 프로에 출연해 “학습장애와 약물중독증세를 보이고 있는 아들 코리(19)가 지난달 29일 집을 나간 후 소식이끊겼다”고 밝히고 “안전한 귀가를 보장해 주는 사람에게 2만5,000달러를사례하겠다”고 호소했다. 어빙은 NBA 필라델피아 76ers 등에서 16년동안 선수로 활약하면서 환상의 덩크슛으로 팬들을 사로잡았고 올랜도 매직의 부사장을 역임하는 등 프로농구의 산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 해외송금 ‘리얼타임 인출’ 시대

    “해외에 송금할 땐 번개서비스를 이용하세요” 한빛은행과 외환은행이 나란히 ‘번개’처럼 빠른 해외송금 서비스를 선보였다.코레스은행을 거치는 현행 송금방식은 돈을 찾기까지 2∼3일이 걸리는불편이 따르지만 번개서비스를 이용하면 ‘리얼타임 인출’이 가능하다. 급전이 필요한 여행자나 유학생들에게 유익하다.아프리카 오지로도 보낼 수있고, 송금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어 편리하다.현행 송금방식은 중도 분실사고가 아직까지는 빈번한 실정. ‘속도’와 ‘서비스권역’면에서는 미국의 국제송금서비스 전문회사인 머니그램과 손잡은 한빛이 좀 더 앞선다.머니그램 영업소가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서든 10분만에 찾을 수 있다.머니그램은 전세계 130개 국가에 3만여개의 영업점을 두고 있다. 송금 수수료는 2,000달러 미만인 경우 약 4만원으로,일반 송금수수료와 비슷하다.2,000달러가 넘어가면 일반수수료보다 5만∼8만원이 더 비싸다. 자체 전산망을 이용하는 외환은행의 ‘번개서비스’는 우리나라와 시차가비슷한 일본 홍콩 싱가포르 중국 호주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8개국에서만 이용 가능하다.최장 30분안에 찾을 수 있다.수수료는 ‘일반수수료+10달러’. 한빛은행 김종완 차장은 “수수료를 단순 비교하면 머니그램방식이 다소 비싸지만 중도 행방불명 사고나 최근접지에서 돈을 찾을 수 있다는 이점을 감안하면 일반 송금수수료와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안미현기자 hyun@
  • 피노체트 죄값 치른다

    [멕시코시티 연합] 칠레의 전 군부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종신 상원의원의 면책특권 박탈 여부를 심리중인 칠레 산티아고 항소법원은 23일(이하현지시간) 피노체트의 면책특권을 박탈키로 최종 결정했다고 칠레의 유력 일간 엘메르쿠리오가 보도했다. 신문은 법원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이 사건을 심리해 온 항소법원의 24명 재판부는 이날 사전예고없이 전격적으로 회동,피노체트에 대한 면책특권 박탈 여부를 전체합의에 부친 결과,찬성 12,반대 10표로 의결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찬성 13,반대 9표였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루벤 바예스테로스 항소법원장은 합의 결과 공개를 거부한 채 “오늘 아침의원 면책특권 사례를 연구중인 한 법관이 ‘분석작업을 모두 마쳤다’는 연락을 해와 재판부 전원을 소집,전체 합의에 부쳤다”고 말했다. 바예스테로스 법원장은 “재판부 구성원 모두와 사법부 수뇌부가 합의문 초고에 서명하는대로 합의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말했다.법원 관계자들은 합의 결과가 공식발표될 때까지는 약 1∼2주일이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피노체트가 종신 상원의원으로서 면책특권을 잃으면 지금까지 그를 상대로한 100여건의 형사소송의 피고인 자격으로 법정에 서게 되며,군정시절 자행한 각종 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사법처리를 피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피노체트의 면책특권 박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은 1973년 쿠데타 직후 특수부대요원들로 구성된 ‘죽음의 특공대’가 저지른 정치범 19명 납치및 행방불명 사건으로 피노체트는 이 사건을 배후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알바로 가르시아 칠레 대통령 비서실장은 “칠레 정부와 국민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며 어떤 결정을 내리건 이에 따를 방침”이라고 말했다.
  • 5·18 20주년 소설·詩選集 어느 오월 광주의 상념들

    5·18 20주년 기념 소설집 '밤꽃'과 시선집 '꿈,어떤 맑은 날'이 도서출판이룸에서 출간되었다. 소설집(최인석·임철우 엮음)에는 90년대 초까지 발표됐던 중단편 10편이묶어졌다.윤정모의 '밤길'은 최후의 결전을 눈앞에 두고 광주항쟁의 진실을밖으로 알리기 위해 현장을 빠져나와 밤길을 재촉하는 신부와 청년의 번뇌를쓰고 있다.가해자와 피해자를 부부로 등장시켜 항쟁의 비극을 드러내는 한승원의 '어둠꽃',택시부대 일원으로 항쟁에 참여했다가 정신이상으로 넋을 놓아버린 남편에 관한 이야기 '어떤 넋두리',행방불명된 누나를 동생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이삼교의 '그대 고운 시간', 광주항쟁의 주체와 그들의 분열을 집중적으로 탐구한 문제작들인 홍희담의 '깃발'과 공선옥의 '씨앗불' 등이 실려 있다.이밖에 '녹슨 철길'(문순태) '포경선 작살수의 비애'(박양호) '머나먼 광주'(이청해) '어느 오월의 삽화’(채희윤) 등도 수록.시선집(김사인·임동확 엮음)은 주로 90년 이후 쓰여진 100명 시인의 시 101편을 담았다. 5·18 뿐아니라 광주,전라도,민족 등을 다룬 시들이포함되어 있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사투리를 숨기고 표준말로/이야기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또 어떤 부류의 사람을 만나다 보면/당당하게 사투리를강조해서/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숨기는 사람의 가슴속에 들어 있는 공포나/드러내는 사람의 광기를 들여다보면/겁이 난다/사투리가 무섭다///(유용주 '사투리가 무섭다'일부)김재영기자
  • [승화되는 ‘5·18’정신](2)발포명령자 아직도 오리무중

    ◆풀리지 않는 문제. 새 천년에 처음 맞는 5·18 20주년을 용서와 화해를 바탕으로 통일과 국민통합의 원년으로 삼자는 각계의 목소리가 높다. 김동원(金東源)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5·18 20주년은 나눔과 공존을 위한 문화를 창출하고 5·18이 역사 속에 화석화되지 않고 시민들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작용,보편적인 가치로 자리잡게 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5월 정신의 공감대 확산 즉 전국화는 ‘그날의 희생’이 한 지역의 불행했던 사태가 아니라 민주화를 위한 희생,국가를 위한 희생으로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뜻한다.5·18의 전국화는 국민통합과 깊게 연결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화합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우선 발포명령자 및 암매장의 진상이 아직 밝혀지지 않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만큼 이에 상응하는 국가유공자 대우와 국립묘지 승격 등을 통한 완전한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5월 단체들은 ‘5월문제’ 해결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 ▲피해보상 ▲기념사업 등 5대 원칙을 제시해 왔다. 이중 책임자 문제는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이 사법적 심판을 받았고,피해 보상에서도 지난 90년 제정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금까지 3,860명이 모두 2,100억여원의 보상금을 지급받았다. 마지막 4차보상으로 868명이 보상을 신청,심의중이며 5·18묘지 성역화 사업,5.18기념공원,5·18자유공원,사적지 보전사업,전남도청 기념공원 사업 등도 이미 마무리됐거나 추진중이다. 최대 쟁점중 하나인 민간인 사망자 수는 현재 정부의 보상을 기준으로 부상후 사망한 93명을 포함,259명이다. 지금까지 3차 보상을 통해 행불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64명,현재 심의중인 행불자는 43명에 이른다.하지만 이를 근거로 암매장 여부에 대한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가유공자 예우문제는 15대 국회에서 추진된 ‘국가유공자예우 및 지원에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 1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16대 국회로 넘겨진 상태. 이에 대해 5월단체 관계자는 “5·18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놓고도 희생자를 유공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반쪽짜리 명예회복일 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진상규명 문제는 지난 95년말 검찰이 5·18 수사와 재판 등을 통해 80년 당시 신군부의 광주진입 행위가 국헌을 문란케 해 정권을 찬탈하기 위한 내란 또는 내란 목적 살인을 저지른 폭동이라는 법률적 결론을 내린 것으로 사실상 매듭지어졌다. 수많은 인명이 총탄에 맞아 희생됐으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발포명령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5·18국제학술대회에서 글라이스틴 80년 당시 주한미국 대사가 “진압결정은 전두환씨가 하고 최규하 대통령이 형식적으로 재가한 것으로 확신한다”는 발언을 통해 발포명령자를 추론할 수있을 뿐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5·18기념재단 내의 '진실조사위원회' 활동.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는 숙제를 풀고자 나선사람들이 있다.5·18기념재단 내의 ‘진실조사위원회(위원장 姜信錫목사)’. 지지부진한 진상규명 문제에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진정한 명예회복을이루자는 취지로 지난해 10월 구성됐다. 조사위는 ▲행방불명자 추적 ▲암매장 여부 조사 ▲무연고 사망자 가족찾기 ▲발포 명령자 규명 등을 연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5·18 20주년을 맞은 올해의 첫 사업으로는 5·18 후유증으로 정신질환 등을 앓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증언을 채록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의 생활상을 공개해 비도덕적 국가권력이 개인에 미친 참상을 알리기 위함이다. 조사위는 이같은 후유증 환자 채록을 토대로 18일쯤 ‘부서진 풍경’이란제목의 350쪽짜리 책을 펴낸다. 또 올부터 5·18 구묘역에 묻혀 있는 11기의 무연고 사망자 가족찾기 사업을 전개한다.유골에 대한 유전자 감식 등을 통해 이들의 주검을 가족에게 되찾아줄 계획이다. 이와 함께 매년 5월이면 논란이 거듭돼온 암매장 여부에 대한 조사도 편다. 그동안 접수된 50∼70여건의 제보를 토대로 장소가 겹치는 부분에 대해 정밀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조사위 김선미(金善美·35)간사는 “조사위 활동은 책임자를 찾아 법적으로 처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아 시민의 명예를 되찾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 피노체트 사법처리 되나

    칠레의 전군부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면책특권 박탈여부를 심리하기위한 첫 공판이 26일(한국시간) 수도 산티아고 항소법원 법정에서 열렸다. 오는 29일까지 3일 동안 계속될 이번 공판에서 재판부가 칠레 연방법원의후안구스만 판사가 기소한 정치범 19명의 납치 및 행방불명 사건과 관련,배후조종 혐의를 인정할 경우 피노체트는 종신 상원의원으로서의 면책특권을잃게 된다. 피노체트가 면책특권을 잃으면 지금까지 칠레의 인권단체와 군정시절 납치및 고문,살해 희생자 유족들이 제기한 92건의 인권유린 혐의에 대해 본격적인 형사소송 절차가 진행되며,그럴 경우 사법처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피노체트는 이날 공판에 불출석한 채 산티아고 근교 라 데에사의 자택에서가족 및 측근과 함께 머물면서 공판결과를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봤다.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이날 성명에서 “이번 공판은 지난 25년동안 피노체트에 대한 사법단죄를 가로막아 온 걸림돌을 제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주의자인 리카르도 라고스 칠레대통령은 이날 칠레 전역이 평온했다고밝히면서 정의가 구현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논평했다.한편 지금까지 2차례연기된 끝에 첫 공판이 열리자 법정 주변에서는 피노체트 지지세력 및 인권단체와 군정희생자 유족간에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 불상사가 속출했다. 경찰은 시위현장에서 최소한 8명을 체포했다.21명의 법관으로 구성된 항소법원 재판부는 피노체트 변호인단이 고령과 정신쇠약 등을 이유로 정밀 정신감정 등을 요청할 경우 이를 받아들일 것으로 보이며,이 경우 면책특권 박탈여부에 관한 법원의 결정은 당초 예정보다 훨씬 늦은 5월말쯤 나올 것으로보인다. 피노체트는 지난 98년 영국여행중 스페인 사법당국의 요청으로 영국법원에구금됐다가 1년 6개월여만인 지난 3월초 영국정부의 구금해제 결정으로 풀려나 귀국했다. 멕시코시티 AFP AP 연합
  • 전수일감독 ‘허공에∼’ 스위스 프리부르영화제 대상

    [프리부르(스위스) AFP 연합] 한국 전수일 감독의 ‘허공에 멈추는새’가19일 스위스 프리부르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세계 각국에서 72편의 영화가 출품된 가운데 지난 17일까지 1주일간 펼쳐진 이번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허공에 멈추는 새’는 프랑스 영화에 대한사랑을 간직한 채 할리우드 영화에 물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 강사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전 감독은 ‘퐁뇌프의 연인들’을 연출한 프랑스의 레오 카락스 감독과 가까운 친구 사이이며 이번 작품에도 카락스 감독의 86년작 ‘나쁜 피’의 장면들이 사용되고 있다.한편 한 노동자의 일상생활과 그와 아들과의 관계를묘사한 아르헨티나의 신예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의 첫 장편영화 ‘문도 그루아(Mundo Grua)’가 최우수 각본상,영화기자상,심사위원상 및 국제영화 클럽연맹이 수여하는 돈키호테상을 받았다.젊은 영화팬들과 관객이 주는 상은 또다른 아르헨티나 감독인 에두아르도 칼카그노의 ‘예페토’에 돌아갔다. 또 칠레의 전 독재자 피노체트 치하에서 행방불명된 칠레인들의 이야기를다룬 에스테반 라르라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파티오 29,침묵의 이야기(Patio 29.Stories of silences)’는 정치부 기자들이 주는 상을 받았다.스위스 프리부르주(州)의 주도인 프리부르는 86년 이후 모두 14번의 영화제를개최하면서 남반구 출신 감독들의 등용문으로 명성을 쌓아 오고 있다.
  • 북·미 고위급회담 성과와 연계될듯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 등은 14일 북·일 적십자회담 결과를환영하고 4월 재개될 양국 수교협상에 기대를 보였다. 오부치 총리는 “일본인 납치의혹,일본인처 고향방문 등에서 진전이 있었다”면서 인도적 문제해결의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했다.그는 수교협상도“끈기있게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7년반만의 수교협상 길목에 있었던 13일의 적십자회담을 ‘일정한 진전’으로 평가하고 있다. 1998년 8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최고조에 달했던 양측간 불신이 그동안 몇차례의 회담과 접촉을 통해 서서히 걷히고 신뢰를 위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북한이 행방불명자를 발견할 경우 적절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힌데 대해서는 “본인이 원한다면 일본귀국도 인정한다”고 해석하며 북한측이 ‘성의’를 내비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일본은 이와함께 안전을 위협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등에 대해서 한국·미국과 공조하면서 수교협상에서 일정한 성과를 끌어낸다는 속셈이다. 그러나 본회담이 이처럼 수월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는 견해는 적은 것 같다.인도적 문제와 안전보장의 동시해결을 추구하는 일본 정부로선 핵·미사일개발 저지 등의 ‘획기적 양보’를 북한측으로부터 얻어내기 어려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내걸고 있는 식민시대의 사죄와 보상 가운데 50억∼100억달러로 거론되는 보상문제도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되는 대목이다.물론양측은 서로의 요구의 핵심을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어 적절한 협상을 통해명분을 주고 받으며 일정한 선에서 타협할 가능성도 있다.북일 수교협상은같은 시기의 북미 고위급회담의 성과와 연계돼 진행될 공산이 크다. 황성기기자
  • 北·日 적십자회담 합의

    [도쿄 연합]일본과 북한은 13일 베이징에서 적십자회담을 개최하고 일본인 납치 의혹문제와 일본인처 고향 방문, 대북 쌀지원 등 양국간 인도적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일본은 세계식량계획을 통해 10만t의 쌀을 지원하겠다고 정식으로 전했으며 북한은 사의를 표했다. 일본인 납치 의혹문제에 대해 북한은 '일본인 행방불명자'의 조사를 시작했으며 만일 의혹을 받는 사람이 북한에서 발견된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북한에 거주하는 일본인 처의 고향방문을 오늘 4월께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 강화서 어제 첫 합동위령미사

    6일 오전 10시 인천시 강화군 강화천주교 성당에서 6·25 당시 우익청년들에 의해 강화 갯벌에서 무고한 죽음을 당한 양민들에 대한 첫 합동위령미사가 열렸다. 이곳에서는 한 마을 사람들이 좌·우익으로 갈려 상상을 초월한 살육전을벌였던 실상이 49년 만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유족대표 서영선씨(徐玲善·63)는 “1·4후퇴 직후인 51년 1월6일 강화교육청에 근무했던 아버지가 적(敵)치하에서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우익단체인 강화향토방위대원들에 의해 강화읍 옥림리 옥계갯벌에서 살해를 당했다”고 밝혔다. 당시 14세였던 서씨는 복면을 한 방위대원 3명이 어머니 김덕임씨(당시 40세)를 끌고가는 장면을 분명히 목격했다고 한다.서씨 5남매는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데다 할머니마저 방위대원들에게 학살돼 고아 아닌 고아로 자라났다. 다른 유족들도 부녀자 15명을 포함한 60여명이 좌익이거나 부역을 했다는이유로 6일부터 8일 사이 옥계갯벌과 갑곶나루터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증언했다. 유족들은 또다른 피해가 두려워 이같은 사실을 밝히지못하다가 최근노근리 양민학살 등이 규명되고 있어 용기를 내 처음으로 위령미사를 지내게 됐다. 서씨는 “가해자들에 의해 정확한 진상규명이 있어야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화 김학준기자 hjkim@
  • [사설] 민주열사와 의문사

    정쟁에만 매달려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아오던 국회가 신통한 일을 해냈다.28일 국회 본회의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등을 통과시킨 것이다.‘민주열사들’에 관한 이 두 법률안의 국회 통과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420일 동안 천막농성을 벌여온 사실에서 볼수 있듯 그동안 재야단체들의 끈질긴 투쟁과 평생 민주와 인권을 위해 투쟁해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강한 입법의지가 만들어낸 산물이다.비록 보수세력의 완강한 저항으로 당초 법안 내용에서 일부 후퇴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폭압의 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입법이 이뤄진 것은 다행한 일이다. 우리는 지난 97년 12월 헌정 50년사상 최초로 평화적인 여·야 정권교체를이룩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부를 갖게 됐다.길고도 긴 세월에 걸친역대 군사정권의 압제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민주세력은 나라의 민주화와겨레의 하나됨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우리가 오늘날 이나마 자유와민주를 누릴 수 있게 된 것도 그 밑바탕에는 수많은 인사들이 민주·통일의제단에 피와 땀과 눈물을 바쳤기 때문이다.그 험난한 과정에서 많은 민주인사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그러므로 독재정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반국가 사범’ 또는 ‘극렬분자’로 매도당했던 민주인사들의 명예를 회복해주고 의문사의 진상을 규명해서 그희생자들의 넋을 달래주는 작업은 당연히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열사들에 관한 이 두 법률의 제정 노력은 보수·기득권세력의 조직적인 저항과 맞서야만 했다.그러나 역사는 비록 더디긴 하되 앞으로 나아가는 것.마침내 민주열사에 관한 두 법률이 제정되기에 이른 것이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은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되는 심의위의 결정에 따라 박정희 정권의 3선개헌 발의 시점인 69년 8월7일 이후권위주의적 통치에 저항하다가 사망·부상·행방불명이 됐거나,유죄판결·해직·학사징계를 받은 민주화운동 관련자와 유족들이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보상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들의 높은 뜻을 널리현창(顯彰)하는 국가적 사회적 노력도 있어야겠다.‘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은 대통령 산하의 진상규명위가 의문사 사건을 조사해서 위법사실이 있을경우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의뢰를 요청하고,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했음이 인정되면 ‘민주화운동 관련자법’에 따른 보상심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의문사 진상규명 노력에는 가해자들의 집요한 저항이 예상되는 만큼 국민들의 날카로운 감시가 요청된다.
  •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법안 통과] 의미 및 제정까지

    ‘한국판 진실과 화해위원회’는 과연 열리는가’ 역사의 변방에 몰렸던 민주화 희생자들을 제 위치에 놓기 위한 소중한 작업이 시작됐다.캄캄했던 폭압적 환경 속에서 말 없이 사라졌던 의문사의 주인공들도 이제 희미하나마 진실을 향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8일 국회에서 통과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및 보상 등에 관한 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은 어두웠던 과거의 진실을 밝힘으로써 밝은 미래를 받쳐주는 디딤돌로 삼기 위한 것이다. 이번 법 통과는 대통령의 의지와 정치적 절충점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유가족 관계자들의 피눈물 어린 투쟁의 결정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를 중심으로 이들은 기나긴 투쟁을 벌여왔다. 89년 2월 기독교회관에서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135일간의 농성을 시작으로 대국민 서명운동,의문사 재조사를 위한 청원서 제출,여러 차례에 걸친 민주화 희생자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학술회의 개최,대국민 캠페인 등 10여년간 쉼없이 고단한 싸움을 벌여왔다. 98년 9월에는 마침내 이번에 통과된 두 법의 기초가 된 시안을 발표하고 국회에 입법청원을 냈다.그리고 대통령을 방문해 특별법 제정을 위한 약속을받아내기도 했다.대한매일도 98년 8월부터 독재체제에 저항하다가 민주주의의 꽃으로 산화한 열사들의 진실을 재조명하는 ‘민주열사열전’을 5개월간연재,이들과 뜻을 함께 했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는 번번이 벽에 부닥쳤다.출신 배경이 틀린 공동여당,보수색채를 띤 야당 의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법안 자체가 폐기될 뻔한 적도여러 번.항의 과정에서 유족 일부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유가족들은 마침내 지난해 11월4일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노숙농성을 시작했다.하지만 그들의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을 뿐 결국 소득 없이 해를 넘겼다. 이후 유가족들은 28일까지 장장 420일간 노숙농성을 벌이면서 비상한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그리고 마침내 금세기를 넘기기 전 두 법을 통과시켜 새천년을 새로운 희망과 함께 맞을 수 있게 됐다.하지만 아쉬움도 많다.이상훈 변호사(34)는 “두 법은 이념적으로는 남아프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정신을,법률체계는 기존의 보훈 및 국가유공자 관련 법을 참조해 만들었다”고 밝혔다.하지만 여러 번의 손질을 거치면서 애초의 취지가 다소후퇴한 것이 사실이다. 87년 경찰의 고문치사로 사망한 박종철군의 아버지 박정기씨는 “법안이 손질되면서 ‘민주화운동 유공자’란 명칭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바뀐 게 가장 안타깝다”고 말한다.보훈단체와 참전군인 단체,경찰 관계자들의 반발이 커 절충점을 찾아 수정된 것이다. 의문사를 재조사할 수 있는 권한도 상당히 약해 사실상 재조사가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거기다 2000년 12월까지만 재조사를 위한 진정을 할 수있게 돼 있어 사실상 한시법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도 충분한 조사를 어렵게 할 수 있는 대목이다.박정기씨는 “두 법을 집행하는 과정을 모든 국민이지켜보며 희생자들의 죽음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 ** 법제정 일지 ◆97년 12월 전국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추모연대) 주최 송년회에서 민주화운동 유공자 명예회복 및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법 제정추진 결의◆98년 7월24일 법 제정을 위한 국회의원 초청 간담회◆8월3일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범국민추진위원회 결성(향린교회)◆9월2일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위한 98년도 2차학술대회에서 두 가지 법 시안발표◆9월15일 국회에 특별법 입법청원◆10월20일 유가협 및 추모연대 대표 청와대 방문.대통령과 면담에서 특별법제정 약속받음◆11월4일 유가협,국회 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한 노숙농성 돌입◆12월28일 민주화운동 관련 유공자 명예회복 및 예우 등에 관한 법률안 국회 법사위에 상정◆99년 7월9일 국민회의,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 당안으로 국회에 제출. ◆8월2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여당안으로 국회 제출◆12월17일 두 법안 국회 법사위에서 의결◆12월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 통과◆12월30일 유가협,422일간의노숙농성 풀고 해단식 예정 ** 법안 요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 민주화운동 과정에서희생된 사람과 그 유족에 대해 국가가 명예를 회복시키고 보상을 함으로써민주주의 발전과 국민화합에 기여하기 위해 제정됐다. 법은 ‘민주화운동’을 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민주 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으로 규정했다.3선개헌 발의일인 1969년 8월7일 이후의 활동으로 기간을 제한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상이(傷痍)를 입은 사람,대통령령이 정하는 질병을 앓거나 그 후유증으로사망한 것으로 인정되는 사람,유죄 판결·해직·학사 징계를 받은 사람 등이 포함된다. 국무총리 산하에 심의위원회를 두고 관련자와 유족 등에 해당하는지 여부등을 심사한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망,행방불명된 사람의 유족 등에 대해서는 보상금이 지급된다.액수는 사건 당시를기준으로 월급여,장래 취업가능기간 등을 고려해 산정한다.상이를 당한 사람은 치료와 보호를 받는다.생존자는 생활보조금을 받는다.관련자 등으로 인정된 사람들은 증빙서류를 첨부,심의위원회에신청을 하면 된다.신청기간은 2001년 12월31일까지다.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그동안 민주화운동과 관련,의문의 죽음이많았다는 의혹이 제기돼왔으나 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려거나 명예를 회복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자성에서 발의됐다.‘의문사’는 의문의 죽음으로 사인이 밝혀지지 않고,위법한 공권력의 직·간접적인 행사로 사망했다고인정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죽음이다.진상규명을 위해 대통령 소속으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둔다.위원회는 9명으로 구성되며 10년 이상 재직한 판·검사,군법무관,변호사들과 대학교수 등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의 친족이거나 의문사에 대한 특별한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위원회에 진정할 수 있다.진정은 2000년 12월31일까지 해야 한다. 의문사사건의 진상을 밝히거나 증거,자료 등을 발견 또는 제출한 사람은 보상 또는 지원을 받을 수 있다.위원회가 의문사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을 때에는 직권으로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다. 위원회는 조사 개시 후 6개월 이내에 조사를 마쳐야 하며 한 차례에 한해 3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조사결과 진정내용이 사실로 확인되고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될 때는 검찰총장에게 고발을 의뢰한다.위원회는 조사를 위해동행명령제도를 도입,출석요구에 불응하는 사람에게 동행명령장을 발부할 수있고 이를 거부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
  • 北 日人처 내년봄 訪日

    [도쿄 연합] 북한과 일본적십자사는 21일 북한에 살고 있는‘일본인 처’의 고향방문을 내년 봄 재개하고 일본인 행방불명자에 대해 북한의 해당 기관에 조사를 의뢰하기로 했다.양측은 또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일본의 대북 식량 지원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적십자사가 일본 정부에 대해 가능한 한 빠른시기에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개시하도록 촉구한다는 데 합의했다. 지난 19일 베이징(北京)에서 2년 만에 회담을 재개한 양국 적십자사는 일본인 납치 의혹과 식량 지원문제에 대한 입장차로 난항을 겪은 끝에 일본적십자사 고노헤 다다테루(近衛忠輝)부사장과 북한적십자사 허해룡(許海龍)부위원장이 대표로 참석한 이날 본회의에서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로써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일본인 납치문제 등 인도적 문제에서 진전을 보임에 따라 수교협상을 위한 양국 외무성 국장급 예비회담도 이날 오후 열렸다. 양측은 당초 전날 오전 최종 회의를 갖고 합의문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몇차례 실무 접촉만 이뤄졌을 뿐 본회담이 열리지 못하고연기됐으며,이로 인해 수교협상 예비회담도 함께 늦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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