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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세 결손처리 급증

    납세자의 부도나 행방불명 등 각종 이유로 지방세 결손처리율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어 성실 납세자와의 형평성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세법 등에 따라 무재산 등으로 납세자에 대한 재산 압류 등의 조치를못한 상태에서 5년이 지나면 징수권이 없어져 결손처리한다. 인천시의 경우 지난해 결손액은 모두 175억3,200만원으로99년도의 66억9,000만원에 비해 2.6배, 4년전인 96년도의1억3,700만원보다는 무려 128배나 늘어났다.경기도 31개시·군이 징수를 포기한 지방세은 98년 169억원에서 99년414억원,지난해 622억원,올해는 지난 6월 현재 246억원이다. 광주시의 경우 결손액은 98년 1만9,000여건 69억여원,99년 3만3,000여건 97억여원,지난해 2만1,000여건 78억여원에 이어 올 상반기 현재 1만4,000여건 57억여원의 지방세가 결손 처리됐다. 그러나 조세 전문가들과 성실 납부자들은 이 제도가 세법상 부득이한 조치일지라도 행정기관이 사전에 이를 막을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김모씨(40·자영업·광주시 북구 양산동)는 “세금을 꼬박꼬박납부하는 사람들만 바보”라며 “징수포기한 세금이 정말받을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한 검증절차가 있어야 한다”고지적했다. 특히 지방세 징수율이 떨어질 경우 중앙 정부의 교부세산정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돼 해당 자치단체가 행정 편의에 따라 무작위 결손처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자치단체는 지방세를 체납한 부도업체의 채권을 뒤늦게 확보하는 바람에 지방세 30억원을 받지 못하고 지난해 전액 결손처리했다. 이에 대해 광주시 관계자는 “현행법으로는 사업자 개인명의로 재산이 없을 경우 압류 조치 등을 할 수 없어 어려움이 많다”며 “매분기 행정전산망을 통한 재산 조회 등사후 추적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전국 종합 cbchoi@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4)식민지 저항적 지식인

    근대 여성작가 중 가장 치마폭이 넓었던 최정희는 유파와연령을 초월하여 문우들과 교유했는데 그 중 소중한 것으로는 국제 입찰에 부칠만한 중량급 서간문도 포함되어 있다. 바로 김사량(金史良,본명 時昌,1914∼1950)의 편지이다.일본에서 더 유명한 김사량은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이 어떻게 살아야 했던가를 일깨워 준 근대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한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평양에서 1914년에 태어난 그는 평양고보 재학 중 배속장교와 일본인 교사 및 그들에 동조하는 조선인 교사 배척을 위한 동맹휴학을 주도해 퇴학처분을 받고는 형 시명(時明,교토제대 법학부 졸업 후 사법·행정 양과 합격,홍천·평창 군수,조선인 최초의 전매국장,8·15 후에는 중앙산림조합연합회 이사장 등을 지냄)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밀항했다.학창시절에는 연극에 관심이 많아 신협(新協)극단과 연계,장혁주(張赫宙)가 각색한 ‘춘향전’의모국 순회공연에도 참여하는 등 많은 활동을 펼치다 여러이유로 경찰에 자주 구금 당했다. 결혼 직후 하이네에 관한 논문으로 도쿄제대 독문학과를졸업(1939)한 그는 잠시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서울의 하숙집에서 출세작 ‘빛 속에서’를 썼다.이 무렵에 아마 서울의 잡지사와 문인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을것인데,최정희와의 인연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도쿄제대 대학원 입학허가를 받은 그는 6월 아내와 도일,일본과 한국 문단을 잇는 가교 역할을 맡게 된다.편지에서 김사량은 매우 조심스럽게 최정희의 ‘지맥’을 추천했으면 싶었으나,이미 일본의 다른 출판사(赤塚書房)가 추진하고 있던조선문학 선집에 관여하는 장혁주가 손을 댔기에 ‘흉가’로 하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몇 차례 오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편지는 최정희가 자신의 소설을 일본에 소개되기를 희망한데 대한 답신 내용이 대부분이다. 장혁주는 누구였던가.김사량보다 먼저 등단한 그는 잡지사,문인 등을 후배에게 소개시켜 주는 역할을 했던 재일조선인 문단의 대선배였다.1905년 대구에서 출생한 그의 본명은 은중(恩重),창씨개명은 노구치 가쿠주(野口赫宙,첫 창씨명은 野口이었음)로,불륜사건에 연루되어 도일,본처와 이혼,일본여자와 재혼,8·15후 아예 일본으로 귀화해 버린 인물이다. 그는 초기의 민족적인 성향과는 달리 친일화 정도가아니라 아예 혈통까지도 일본인화 해야된다는 각오로 일본여자와 결혼을 감행한 친일문학인 가운데서도 발군의 활약을 보여주었다.1952년 10월,6·25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변장한 채 일본 ‘부인구락부’ 특파원 신분으로 입국하여 취재활동을 한 뒤 일본으로 돌아가 한국을 힐난하는 글을 써서 당시 문학단체가 법석을 떨게 했던 장본인이다.그는 아예 일본문학보국회에 가입하여 활동에 열을 올렸던 인물로한국을 영원히 등진 조국상실자가 되었다. 최정희의 ‘지맥’은 평론가 한식(韓植)이 번역을 맡은 것으로 드러나며,편지에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김사량은 ‘모던 일본’에다 이광수의 ‘무정’을 번역했는데,아마 이 사실은 고의로 언급하지 않은 것 같다.김사량은 ‘조광’에장편 ‘낙조’(1940.2∼1941.1)를 연재하면서 모국어 문제에 대하여 매우 겸허하게 최정희의 조언을 구하고 있지만사실 그는 ‘양국어 작가’로 손색이 없었다.그가 ‘삼천리’에 발표한 글로는 잡문 ‘조선문학과 언어문제’(1941.1)와 소설 ‘지기미’(1941.4)인데,이 두 사실을 편지에 대입해 읽으면 그와 최정희의 교유가 대략 1939∼1941년임을 알 수 있다.중요한 사실 한가지를 짚고 넘어가자.‘문예춘추’는 1935년 일본최고의 아쿠다가와 (芥川)문학상을 제정했는데,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김사량이 이 상의 후보작으로 뽑혀 일약 일본문단의 유망주가 되었다(1940.2).1941년12월 9일 새벽 진주만 기습에 따른 사상범예방구금법으로감금당했고,유명세만큼 그에게 부하되는 역사적인 책무도커서 친일을 강요받았으나 거절했다. 일본 문학인들의 구명운동으로 이듬해 1월29일 석방된 그는 이내 귀향,조용히 지내려 했지만 강제동원을 피할 수 없었다.이효석(1942년 작고)이 있었던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사가 된 건 1944년 4월.강제 친일에 동원되면서도 일본문인들과의 술자리에서 격렬하게 식민통치를 비판하던 이투사는 1945년 2월 조선출신학도병 위문단으로 중국에 파견,일정을 마친 뒤 탈출,화북조선독립동맹에 참여하여 떳떳하게 해방을 맞았다.이때의 탈출 투쟁기는 ‘노마만리(駑馬萬里)’란 제목으로 남아있다. 1945년 11월 서울에서 그의 희곡 ‘호접’이 단성사에서 공연되는 등 광복 후 한국 좌익문단의 정화에 일조했던 그는이듬해 평양으로 돌아가 6·25때 종군작가로 참가,후퇴 도중 원주 부근에서 지병인 심장병으로 낙오된 채 행방불명된 게 그의 최후다(안우식 지음,심원섭 옮김 ‘김사량 평전’ 참고).김사량은 자신의 친일행각이 강제에 의한 것임을 문학인들에게 공공연하게 실토했던 점과 모험을 무릅쓴 극적인 탈출로 민족해방투쟁에 나섰던 문학인이었다는 점에서식민지시대 저항적 지식인의 전형으로 세계 저항문학사에손색이 없는 작가이다. 극적인 생애는 한설야(韓雪野)도 마찬가지다.기생 이름 같은 낭만적인 필명과는 달리 1900년 함주(함흥)에서 태어난그는 1976년 북한에서 사망할 때까지 영욕을 두루 겪은 비극적인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인물인데,유명한 한의학자 이제마(李濟馬)의 제자로,홍범도(洪範圖)등의 의병활동을 무마시키라는 일제의 강요를 거절코 고향을 떠나 피신했다.한설야는 경성제일고보에다니다가 서모(庶母)와 불화로 귀향,함흥고보로 전학,3·1운동에 관련되어 구금 체험을 한다.중국,일본 등지를 떠돌거나 유학 한 뒤 ‘조선문단’으로 등단한 그는 서울에 머물렀다가(1925∼1926),아버지가 많은 빚을 남기고 죽자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주했다가 이듬해(1927) 귀국하여 카프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문학과 사상 연구회,‘한설야 문학의 재인식’).한설야가 조선일보에 입사한 것은 1932년경인데 함남지역에 특파됐다가 본사에 왔을 때는 경영권 문제로 매우 복잡 미묘할 때였다.창간 초기부터 경영진의 시국 순응 성향과 편집진의 민족의식 지향이 갈등관계를 유지했던조선일보는 계속 사주가 바뀌면서도 반일논조 때문에 정간과 필화가 잇따랐다.신간회(新幹會)운동으로 안재홍(安在鴻)사장이 구속되는 등 혼란을 틈타 고리대금업을 하던 채권자 임경래(林景來)가 조선일보 경영권을 주장하여 조병옥(趙炳玉)·주요한(朱耀翰)의 정통 편집팀과 대결,두 개의 조선일보 발행이라는 희극이 연출되다가 방응모(方應謨)가 참여,부사장을 거쳐 발행인이 된 것이 1933년 7월(사장은 조만식).이 혼란 속에서 한설야는 학예부에 근무하며 노동 현장소설의 신기원이란 평가를 받은 이북명(李北鳴)을 발굴하여 ‘질소비료공장’을 연재 중단 당하는 등 카프노선에 충실한 언론인으로 활동한 것 같다. 당시 정황을 한설야는 단편 ‘세로(世路)’에서 너무나 자세히 언급하여 한국언론사의 충실한 증인 역할을 해주고 있다.소설은 자신이 회사로부터 해직 통고서를 받는 장면부터 시작하여 왜 그렇게 됐는가에 대한 자초지종을 회상하고있다.등장인물은 모두 실명이지만 사정상 이니셜을 썼는데,쉽게 알만한 인물들이 그대로 나온다.새 경영진은 기구와인사 개편을 통하여 그때까지 신문사의 주류였던 M일파(투옥 경력자 등으로 묘사)를 약화 시키는데,이 과정에서 인간적인 배신감과 사회적인 공분이 폭발한 한설야는 술자리에서 변절한 동료의 뺨을 후려친 게 화근이 되어 권고 사직을 당했다. 조선일보 사사(社史)에 의하면,1934년 1월 1일자로 대폭적인 인사이동이 있었는데,특히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가된 M(문석준)의 좌천도 바로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미뤄 볼 때 한설야의 퇴직도 이 무렵일 것이다.이 문석준은 1943년 함흥에서 한설야와 함께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한설야는 1944년 5월 석방) 당하는 주인공이다.1934년은 그에게 매우 불행한 한 해였다.해직 후 8월 그는 카프 2차사건으로 구속됐기 때문이다.달필인 한설야의 편지는 함흥에서보낸 것인데,아마 1941∼2년초 경 ‘삼천리’가 ‘대동아’로 개제하기 직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최정희가 한설야에게 잡지에 재수록할만한 짧은 작품을 추천해 달라는 청탁에 대한 회답 형식인 이 편지에서 그는 ‘강아지’와 ‘능금’을 천거했다.앞의 작품은 ‘한설야 단편집’에 실려 있는데,그게 1941년 7월에 나왔으며,뒤의 것은 1940년 간행 단편집 ‘귀향’에 게재된 것으로 볼 때,그리고 ‘대동아’개제가 1942년 3월부터였음을 감안하면 이 편지가 씌어졌던 시기는 밝혀질 것이다.이 무렵 그는 함흥에서 서점·극장·인쇄소 등에 손을 대는 등 생업과 창작에 전념하면서 해방의 날을 준비하고 지냈다.여담이지만 한설야는 광복 후북한에서 ‘김일성장군 전기’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쓴 한편 소련(1947),평화옹호 세계대회 참석차 프랑스(1949) 등지를 방문하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하다가 1962년 비판당한 후 불행한 최후를 마치고 작품도 판금,아직도 전면적인 해금이 안된 상태에 있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북파공작원 국가유공자 예우

    대북 첩보활동을 위해 북한에 파견된 북파공작원 중 사망자 유가족은 내년부터 일시보상금 1억여원과 매달 연금 67만원 가량을 지급받게 됐다. 민주당 김성호(金成鎬) 의원은 19일 정부 국정감사자료를토대로 “정부는 최근 대북첩보활동을 위해 파견된 북파공작원중 사망자와 부상자(상이자)에 대해 국가유공자로 예우키로 하는 한편 비상이 생존자에 대해서도 보상금을 지급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는 최근 국방부와국가보훈처,국가정보원 등 관련부처 회의를 통해 이같이결정,관련 예산을 확보하는 한편 관련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라고 전했다. 국감자료 등에 따르면 국가보훈처는 북파공작원 사망자유족과 상이자 등에게 내년부터 매달 67만원 가량의 연금을 지급키로 하고 이를 위해 내년 예산에 45억원을 책정했다. 이와 함께 국방부는 ▲사망자 1인당 유가족에게 1억여원씩, 상이자에 대해서는 상이등급에 따라 1억원에서 수천만원의 보상금을 일시에 지급키로 하고 ▲북한에서 체포된공작원과 행방불명된 공작원에 대해서도 사망자에 준하는대우를 해주기로 하는 한편 ▲비상이 생존자에 대해서도일시 보상금을 지급키로 하고 이를 위해 내년도 예산으로900억원을 책정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새드라마 ‘보고싶은 얼굴’ “기억상실·삼각관계 또야?”

    삼각관계는 시청자의 눈길을 잡기 쉬운 가장 간편한 소재일까? 아니면 감독의 역량을 평가하는 가장 어려운 소재일까? 끊임없이 드라마 속의 삼각관계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있지만 없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는 20일부터 방영될 MBC 새 아침드라마 ‘보고싶은 얼굴’(월∼금요일 오전 8시25분)또한 기억상실을 소재로 삼각관계가 얽히는 정통 멜로드라마다. 주인공 수경(이응경 분)은 5년전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었다.잃어버린 기억은 공포스러울 수 있는 것.순종적이고 우유분단한 그는 본래의 기억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을 거두어준 대기업 사장 재민과 결혼해 평온한일상을 살아간다.때때로 스치듯이 지나가는 남자와 여자아이의 편린들.그러나 평온한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기억이두렵기만하다. 잃어버린 기억속의 남편 준혁(김주승 분)은사진작가이다. 대학 후배 지수(전혜진 분)의 언니였던 지현(현재의 수경)을 만나 결혼했다.지현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베푸는 그는 행방불명 된지 5년이 넘는 아내를 똑같은 마음으로 기다린다.언니와 결혼하기 전 연정을 품었던지수는 그런 형부를 한없이 지켜보는 또다른 해바라기이다. 대기업 사장인 재민(독고영재 분)는 수경의 현재 남편.이미 교통사고로 쓰러져 있는 수경을 다시한번 들이받은 그는 자신이 사고를 낸 줄 알고 수경을 집에 데리고 온다.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아버지 간병인으로 일하게 한다.5년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수경과 결혼한다.드라마의 내용은다소 작위적이다. 50년전 헤어졌던 사람도 찾아내는 현 경찰의 정보체계에서 기억상실에 걸렸다고 행방불명이 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드라마는 경기도와 서울의 청담동을 드나드는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으로 부족한부분을 채워줄 예정이다. ‘보고싶은 얼굴’은 이형선 PD가 AD꼬리를 뗀 첫작품이다.이PD는 경기도의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앨범 가득 사진을 모으고 드라마 ‘푸른안개’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작곡가 최완희씨와 호흡을 맞췄다.“일일 드라마이지만 세트촬영과 야외 촬영을 반반씩 배합할 예정이다”면서 “삼각관계를 선정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충분히 공감이 가도록아름답게 표현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송하기자 songha@
  • 꼼꼼한 작화로 정평 ‘디알 디지털’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씨가 운영하는 애니메이션 회사인 일본 지브리사와 함께 일하면서많이 배웠습니다.우리도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히트작을 낼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게 가장 큰 소득입니다.” 국내 애니메이션 회사인 디알디지털(디알·전 DR무비)은요즘 기분이 급상승중이다.하야오 감독이 서울 구로동 사무실을 찾아와 직접 감사의 인사말을 건넸기 때문이다.지난 25일 방한해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던 하야오 감독은 사실 이 곳을 들르기 위해 방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는 최근 자신이 처음으로 외국에 주문해 만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일본에서 흥행성공을 거두자,외주를 준이곳을 찾아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다. 디알디지털은 지난 90년 설립된 이후 꼼꼼한 작화로 이름이 나있는 중견 애니메이션 회사다.하야오 감독은 “일본어린이들이 보는 작품은 일본인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철학에 따라 지금까지 해외에 일절 제작주문을 내지 않았다.그런데 하야오 감독은 ‘센…’의 제작일정을 일본내에서는 맞추기어렵게 되자 시험삼아 디알에 외주를 주었다. 디알은 동화와 채색 작업을 맡았다. 하야오 감독은 이례적으로 신작 필름을 갖고와,서울 남산애니메이션 센터에서 디알 직원들만을 위한 시사회를 열기도 했다.당시 영화 끝부분에서 자신들의 이름들이 자막으로 실린 것을 본 디알 직원 40여명은 일제히 환호성을올렸다. 지브리사에서 파견된 4명의 일본 스태프들과 3개월동안함께 작업한 애니메이터 안미경씨(27)는 “거장의 작품을하게 돼서 약간 겁도 났어요.하지만 그동안 워낙 꼼꼼한작화작업을 해왔던터라 일은 전혀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라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
  • 미야자키 하야오 방한 “전쟁 싫었던 어릴적…”

    “‘이웃집 토토로’는 어릴 때 일본을 싫어했던 나 자신을 위해 어른이 되어 쓴 편지와 같습니다.” 세계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60)가‘이웃집 토토로’의 개봉에 맞춰 25일 처음으로 방한, 기자회견을 가졌다.지난 20일 일본에서 개봉돼 박스오피스정상을 차지한 최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국내외주제작업체인 DR무비에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서다. 일본 문화 개방이 중단되는 등 미묘한 시기에 방한한 하야오는 “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해온 일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이라며 “민족 자긍심은역사 왜곡이 아니라 ‘이웃집 토토로’와 같은 작품을 통해 나타내고 얻어진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의 첫 인상에대해 “이렇게 닮은 나라가 세상에 또 있구나라고 느꼈다”고 말했다.어린 시절 일본을 싫어한 이유에 대해서는 “일본이 전쟁을 통해 잘못된 생각에 물드는 것이 싫었다”고 설명했다. ‘미래소년 코난’‘천공의 성 라퓨타’‘원령공주’등작품성과 흥행에서 모두 인정받은 걸작을 만들어온 그는애니메이션의 미래에 대해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 위해애니메이션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컴퓨터 디지털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범선 선장이 요트 타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또 38년동안 애니메이션을하면서 “항상 이 작품이 마지막이며 아무리 힘든 일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제작된 지 13년만에 한국에서 개봉하는 ‘이웃집 토토로’는 일본에서 숲 보존운동을 일으키는 등 환경문제에 대한 그의 일관된 생각이 담긴 작품이다. 윤창수기자 geo@
  • [대한포럼] ‘민주화 보상’ 형평성 논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위원장이우정)가 마련한 보상관련법 개정안이 엉뚱한 시비에 휘말렸다.한나라당 일부와 재향군인회,민주화 관련 단체에서도‘보상금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나왔기 때문이다.철권통치에 항거하다 희생당한 사람이나 가족에게 명예회복 및보상을 함으로써 역사적인 정의를 세운다는 취지가 무색케된 셈이다. 지난 10일 심의위가 발표한 개정안중 보상 규정은 1969년 8월7일 3선 개헌 발의일부터 지금까지 민주화운동을 하다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의 유족에게 1억원,부상 및 질병을 앓은 경우 최고 9,000만원,구금된 사람에게는 최고 7,000만원,해직자에게는 최고 5,000만원까지 보상금을 지급하도록했다. 이에 대해 제일 먼저 반발하고 나선 것은 한나라당 일부와재향군인회다.한나라당내‘바른 통일과 튼튼한 안보를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회장 김용갑)은 “정부가 독립유공자와 6·25 참전용사,파월장병 등에게는 보상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민주화운동 관련자만을 위한 법률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국가의 원칙까지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재향군인회(회장 이상훈)도 “민주화 유공자에 대한 파격적인 보상입법 추진은 형평성을 잃은 처사”라고 하면서 “민주화 운동 관련자에 대한 보상이 당연하다면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자유와 평화를 지킨 참전용사들은 그 이상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거들었다. 한편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등 39개 단체로 구성된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상임대표 권오헌)도 “보상금 상한선을 둔 것은 정부가 여론에 떠밀려 졸속으로 보상금액을 정했다는 느낌이 든다”며 “헌신의 정도나 과정을 감안해 보상금에 차이를 두되 상한선을 없애고 각 사안에 대한 기준을선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유가협측도 “광주희생자는 최고 1억4,000만원을 받는 데 비해 다른 민주화운동희생자들은 최고액을 1억원으로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에 상한선을 둔 것은 보상액을 사건 당시 임금을 기준으로 한 호프만식으로 계산하면 1970년대 사망자와 1980년대 사망자의 보상액에엄청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이를테면 1970년 분신자살한 전태일씨는 호프만식으로 계산하면 보상액수가 820만원에 불과하지만 지난 1991년 전남대에서 분신자살한 박승희씨는 무려 2억5,000만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국가유공자나 민주화 희생자들에게 상응한 예우와 보상을하는 것은 당연하다.그래야 후학들에게 정의를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보상이 공평해야 함은 물론이다.그러나 모순의 중첩인 현대사에서 파생된 이 문제를 일률적인 잣대로 판단하기는 너무나 복잡하다.예를 들면 민주화 관련 희생자는 본인의 사망·구금·질병·해직으로 끝나지 않고 본인과 그 가족이 짧게는 10여년,길게는 30년을 사회적 냉대속에서 살았다.이들에 대한 보상을, 국가가 공훈을 인정하고 연금 등 정신적·물질적 우대를 해준 유공자들의 그것과 단순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광주민주화운동보상’과 형평성 문제도 그렇다. 1990년에 관련법이 마련된 ‘광주민주화운동보상’은 국가가 선량한 시민을 학살한 사건으로 배상의 성격이 짙다고 봐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관련 단체들마저 ‘광주’와 비교해 보상액 투정을 하는 것은 보기에 민망하다.민주화 관련 희생자들이 훗날 보상을 염두에 두고 자기 희생의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을테니 말이다.더욱이 직접 가해자는 아니지만 과거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나라당 보수파들이 민주화 피해자들의 보상에 대해 형평성 시비를 하는 것은 자기 분수를 모르는 소리다.교통사고 가해자도 보험금 외에 별도의 예절을 차리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인정(人情)이다.그렇게는 못할망정 이들의 보상에 시비를 거는 것은 사회의 통념에도 어긋난다.아무튼 이 문제는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대의(大義)로 풀어야 할 것이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민주화보상법 개정안 내용

    정부가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법률’을 개정키로 한 것은 그동안 보상 및 명예회복 신청건들을 개별적으로 심의·처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특히 보상의 구체적 기준이 없어 동일한 희생에 대해 지급액의 격차가 심해 형평성에 문제가있다는 우려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이번 개정안의 핵심도 유형별로 단일기준을 정해 보상금 지급의 형평성 확보와 합리화를 도모하는 데 있다. ■보상금= 현행법에는 보상원칙을 ‘관련자와 그 유족에 대해서는 관련자의 희생의 정도에 따라 보상하되,그 생활정도를 고려하여 보상의 정도를 달리할 수 있다’는 원칙론만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에는 ‘관련자와 그 유족에 대해서는 관련자의 희생 및 불이익의 정도에 따라 보상한다’고 일정 기준을 제시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금액을 명시,논란의 소지를 없앴다.개정안에 나타난 보상금액은 사망이나 행방불명자는 유족에게1억원을,부상을 입거나 질병을 앓은 자는 9,000만원에 노동력상실률을 곱한 금액을 주도록 명문화했다. 또 구금된 자는 최초 보상결정연도의 최저임금법상 일급최저임금액의 5배액에 실제 구금일수를 곱한 금액으로 정했다.그러나 최고금액을 7,000만원으로 정했다. 해직자도 최초 보상결정연도의 건설부문 보통인부 임금에실제 해직일수를 곱한 금액을 지급하되,이때도 최고 5,000만원 이내에서 지급하도록 했다. ■위원회 위상= 현행법상 위원회 구성은 ‘위원장 1인을 포함,9인의 위원으로 구성하며,위원은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자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애매하게 규정돼 있다. 그러나 개정안은 인원은 그대로이나 ‘위원장을 포함,3인은 상임위원으로 한다’고 명시,책임성을 부여했다.위원의대우도 위원장은 장관급,상임위원은 차관급으로 격상,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했다. ■기타= 민주화운동의 정의를 좀더 명확히 했다.현행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항거하여…’로 돼있는 ‘항거’조항을 구체화했다.신설된항거 조항은 ‘직접 국가권력에 항거한 경우뿐 아니라 국가권력이 학교·언론·노동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발생한민주화운동을 억압하는 과정에 사용자나 기타의 자에 의해행해진 폭력 등에 항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권력의통치에 항거한 경우를 포함한다’고 결론지었다. 또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더라도 그 후 활동이 민주화운동에 명백히 반한 활동을 했다면 그 자를 제외한다는 조항을 신설,소위 ‘변절자’는 보상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이밖에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경우 명예회복조치로관련자에 대한 특별사면,복권,전과기록 말소,복학·복직등과 함께 직장에서 받을 수 있는 차별대우 등 불이익 행위를 금지하도록 했다.학사징계·구금·강제징집 또는 취업의 거부,수배에 의하여 통상의 활동이 불가능하였던 자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홍성추 최여경기자 sch8@
  •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행불 1억 지급

    민주화운동과 관련,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자의 유족에 대해서는 1억원의 보상금이 지급되는 등 유형별로 단일기준이적용된다. 또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더라도 그후 활동이 민주화운동에 명백히 어긋났다면 보상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부는 10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마련,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minjoo.go.kr)에 공개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부상 혹은 질병자는9,000만원에 노동력상실률을 곱한 금액을 보상하도록 했으며 구금자는 최대 7,000만원,해직자는 최대 5,000만원의 보상을 하도록 규정했다. 이어 현재 총리실 소속인 보상심의위를 대통령 소속으로이전,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3인을 상임화해 업무의 효율성과 실질적 권한을 부여키로 했다.업무처리기간도 현행 ‘90일’(행방불명자인 경우 120일)에서 ‘180일’(행불자 240일)로 연장했다. 개정안은 또 공무원 및 관계자의 출석과 자료제출 등 필요한 협조를 요청할 수 있도록 출석의무를 규정,심의의 실효성과 타당성을 확보키로 했다. 다른 법률에 의한 예우 및 보상을 받았더라도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명예회복 및 보상에 미치지 못했다고 판단이 되면보상을 추가로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개정안은 이밖에 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하되 위원 중 3인은대법원장이 추천하는 자를, 3인은 국회의장이 추천하는 자를 임명토록했다. 심의위원회는 이번에 마련한 개정안을 이르면 이달안에 여·야당에 제출,올해안에 개정안을 확정,시행한다는 계획을세워두고 있다. 홍성추 최여경기자 sch8@
  • 14일 개봉 ‘스파이 키드’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로베르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작정하고 판타지 어드벤처를 만든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스파이 키드’(Spy kids·14일 개봉)는 올해 33세인 ‘악동 감독’이 자신의 세 아이들에게 보여주겠다며 눈높이를 확 끌어내려 만든 가족용 블록버스터. 슈퍼맨을 동경했던 감수성으로 영화를 보기로 한다면,장면장면이 만화경처럼 흥미진진하다. 감독의 장난기는 오프닝신에서부터 넘실댄다.카메라가 바닷가의 동화속 궁전같은 집을 향해 빠르게 초점을 좁혀들어가면 정말 그곳에는 동화같은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그렉(안토니오 반데라스)과 잉그릿(칼라 구기노) 부부는왕년에 서로 총을 겨눴던 적국의 스파이 출신.그런 과거를두 남매에게는 감쪽같이 숨기고 살아왔지만 일이 터진다.9년만에 정부의 특명을 받은 왕년의 스파이 부부가 인간로봇 제작에 혈안인 플룹일당을 막으러 나섰다가 오히려 납치되고 만다. 스파이가 되는 게 꿈이던 꼬마 남매는 행방불명된 부모를찾아 모험극을 벌인다. 만화작가 출신 아니랄까봐,로드리게즈 감독의상상력은 확실히 쓸만하다.수륙양용차,동아줄을 끊어버리는 광선반지,액자 겸용 컴퓨터 등 구석구석에서 아이디어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보인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감독은 굵직한 감동보다는 자잘한재미쪽에 무게를 실었다.‘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 우정을 쌓았던 조지 클루니까지 깜짝출연시켜 뜻밖의 유쾌함을 안긴다.‘마스크 오브 조로’이후 소식이 뜸했던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코믹연기를 보는 것도 즐겁다. 미국에서 3주 연속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으며 이미 속편이 기획될 만큼 흥행했다. 황수정기자
  • 길수가족 입국/ 길수·한길형제 재회까지

    두 갈래로 헤어졌던 장길수군 가족 10명이 지난달 30일 밤 길수군의 탈북 수기 ‘눈물로 그린 무지개’에서 무지개가 뜨는 땅으로 묘사됐던 서울에서 극적으로 재회했다. 99년 1월 일가족 16명이 두만강을 넘어 탈북한 뒤 30개월만의 ‘서울 찬가’였다.하지만 어머니 정순미씨 등 나머지 가족 6명은 북한 수용소에 수감돼 있거나 행방불명인 상태여서 재회장에서는 기쁨과 눈물이 교차했다.서울에 도착하기까지 가슴 졸였던 순간들을 ‘장길수가족구명 운동본부’의 문국한 사무국장을 통해 재구성해 본다. 길수군 가족이 중간 경로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 것은 지난달 중순.결국 중국 랴오닝(遼寧)성 Y시의 은신처에서 ‘제3국행이냐,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행이냐’를 놓고 비밀투표까지 실시했다.투표결과 길수군 외에 나머지 가족들은 제3국행을 희망했지만 문 국장의 설득으로 UNHCR 베이징 사무소로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길수군의 조부모가 “죽은 목숨과 마찬가지이니 이왕 죽을 바에야 전 세계에 우리의 현실을 외치다 죽자”고 말한 것이 결정적인전기가 됐다.그러나 길수군의 형 한길씨(20)등 3명은 끝내 제3국행을 고집,또다시 생이별을 하게 됐다. 나머지 가족 7명은 구명본부에서 지원한 인민폐 1,000원씩을 3명에게 쥐어주고 “꼭 살아서 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눈물어린 다짐을 해야 했다. 한길씨 일행은 지난달 25일 중국 공안당국의 감시를 따돌리며 5시간도 넘게 사막길을 걷는 등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제3국의 국경도시에 도착했다.UNHCR를 택한 나머지 가족들은 북한으로 다시 송환된 길수군 어머니 정선미씨 등 4명과 지난달 초 중국에서 연락이 두절된 나머지 2명 등 6명을 두고 떠나는 게 못내 안타까웠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이들은 26일 오전 9시30분쯤 비상용 밧줄과 구호 피켓,그리고 새로 구입한 의류와 운동화 등을 챙겨들고 은신처를떠나 새로운 세계를 향해 몸을 옮겼고,이후 5일 동안의 투쟁 끝에 서울에서 가족 재상봉의 기쁨을 누렸다. 노주석기자 joo@
  • [사설] 길수네 가족을 한국으로

    26일 베이징 소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들어가난민 지위 인정과 한국 망명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탈북자 장길수군(17) 일가족 7명의 신병 처리문제가 한국과 중국간의 외교 현안으로 등장했다. 정부는 사태가 발생하자 곧바로 주중 한국대사관과 제네바대표부를 통해 중국 정부와 UNHCR측에 이 문제의 인도적 해결을 당부하고 이들 7명의 한국 수용 의사를 밝혔다.27일에는 외교통상부 등 관련 부처들로 긴급 대책반을 구성하는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지난해 초 중국을 거쳐 러시아로 탈출한 탈북자 7명이 한국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이들이 북한에 송환된 낭패를 겪은 바 있는지라 정부는 우선 길수네 일가족이 북한에 강제 송한되지 않도록 하는 데외교적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한다. 길수네 일가족은 현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서 보호를받고 있지만,난민 지위를 인정하는 주체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이 아니라 체류국인 중국 정부다.따라서 사태 해결의열쇠는 중국 정부가 쥐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을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식량난 등 경제적사유로 밀입국한 불법 체류자로 보고 북한과의 ‘변경 지역 관리에 관한 협정’에 따라 탈북자들을 북한에 강제 송환해 왔다.길수네 가족들의 신병 처리와 관련해서 우리가걱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중국 정부로서는 길수네 일가족에 대한 난민 지위 인정이 다른 탈북자들에게 선례가 된다고 판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 정부에 호소한다. 1999년 1월 북한을탈출한 길수네 일가족은 모두 17명이었다.이 가운데 5명은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됐고,그중 2명은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돼 있으며,중국에 있던 가족들 가운데 3명은몽골로 넘어 갔고 나머지는 행방불명 상태에 있다.길수네는한가족으로서 겪을 수 있는 비극을 이미 겪을 대로 겪었다.이들이 북한으로 송환됐을 때 어떤 일을 당할지는 중국 정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길수네 가족들의 사연은 이미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세계는 지금 인권문제와 관련해서 중국의 결정을 주시하고 있다.중국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길수네가족들이 한국으로 올 수 있도록 특단의 결정을 내리기 바란다.
  • 탈북 장길수가족/ 탈북자 北送되면 어떻게

    북한에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은 어떻게 처리될까.장길수군일가족 7명이 망명 신청이 좌절돼 북한에 강제 송환될 경우가혹한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조국에 등을 돌린 ‘반역자’이자 ‘현행범’으로 취급돼북한 형법에 따라 엄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장군 일가족이 북한에 넘겨지면 국가안전보위부에서 5∼6개월 정도 예심을 받을 것”이라며 “그동안탈북동기와 중국 등에서의 행적,탈북 주동자와 동조자 등에대해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달 남짓 재판등의 수순을 거쳐 주모자는 처형되고, 동조자는 정치범 관리소(수용소)로 보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일반 형사범은 공개 처형되지만 정치범은 주민 동요를 막기 위해 주로 비공개 처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으로 송환된 탈북자 중 일부가 1∼2주만에 풀려나는 등 처벌이 완화되고 있지만,이는 식량문제 때문에 탈북했거나 스스로 북한에 다시 돌아가는 주민들에 국한된다는 전언이다. 물론 송환 탈북자의 구체적인처리 사례가 직접 확인된 경우는 거의 없다.탈북자 처리가 북한 인권문제와 직결된다는점에서 북한 당국이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그동안 일부 민간기구나 언론을 통해송환 탈북자 처리 사례가 간간이 소개됐지만,정확한 실상을파악하기가 힘들다”면서 “일부 관련 보도들도 객관적으로검증되지 않은 설(說)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98년 한국에 정착했던 탈북자 유태준씨가 지난해 6월 중국에서 행방불명된 뒤 북한에서 처형당했다는 얘기가 떠돌았으나 아직까지 진위가 파악되고 있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사례라고 이 당국자는 설명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탈북 7명 中서 한국망명 요청

    [베이징 김규환특파원·박찬구기자]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머물러 왔던 북한 주민 7명이 26일 오전 베이징(北京) 차오양취(朝陽區) 소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전격적으로 들어가 난민지위 부여와 한국 망명을 요청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UNHCR 안에서 이 기구와 상담을 진행중이나별 진척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초 이들이 99년 북한을 탈출했을 때는 모두 17명이었으나 5명은 옌지(延吉) 등 동북지방에서 은신중 중국 당국에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됐다가 1명은 재탈북해 13명이 됐으며이중 3명은 몽골로 달아났고,3명은 행방불명인 상태다. 탈북 주민이 북한으로의 강제송환을 우려해 베이징 소재 UNHCR를 찾아가 난민지위 인정과 망명을 요청한 것은 처음이어서 국제적으로 주목된다. 론 레드먼드 UNHCR 대변인은 이날 “탈북자들이 모두 안전하며 현재 중국 정부와 이들의 난민허용 문제 및 망명문제를 논의중”이라고 밝혔다.레드먼드 대변인은 이들이 난민자격을 취득할 자격이 충분하며 이들을 받아줄 정부와 접촉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그간 다롄(大連)에 머물러 있다가 22일 4명,23일 3명이 베이징으로 와서 24일 UNHCR로 들어갔다. 망명을 요청중인 7명은 ▲어머니가 중국에서 강제송환돼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있는 장길수군(17)과 ▲장군의 외할아버지 정태전(69) ▲외할머니 김춘옥(68) ▲정씨 부부의둘째 딸 정순희(44) ▲그 남편 이동학(49) ▲이들 부부의차남 이민철(14) ▲장녀 이화영(17)이다. 길수가족구명운동본부에 따르면 길수군 일가족은 지난 99년 8월 이후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숨어 살던 중 올해 3월이중 5명이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에서 중국 공안당국에붙잡혀 북한에 강제송환됐다. 한편 정부는 이들이 북한으로 강제송환돼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주제네바대표부를 통해 UNHCR에 전달했다. 이와 함께 이들이 희망할 경우 한국행을 수용하겠다는 뜻을밝히는 등 사태해결을 위한 긴급 협의에 나섰다. khkim@
  • 장길수군 탈북서 망명요청까지

    26일 베이징 주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사무소를찾은 ‘길수 가족’의 지난 4년은 처절했다.주린 배를 채우려고,한 조각 자유를 얻으려 차디 찬 두만강을 건넌 이들은 함께 숨어 살던 피붙이가 체포돼 북한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길수(17) 가족의 탈북행렬이 시작된 것은 지난 97년 3월. 길수의 외할머니 김춘옥씨(68)가 먼저 두만강을 넘었다.이어 99년 1월까지 길수의 어머니 정선미씨(45)와 이모 등 일가족 17명이 중국에 숨어 들었다.이들은 중국 공안과 북한공작원들의 눈을 피해 중국 동북 3개 성(省)을 떠돌며 피말리는 도피 생활에 들어갔다. 이들에게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것은 사연이 국제사회에알려지면서부터다.지난 99년 10월 서울 비정부기구(NGO) 세계대회 그림 전시회에 길수가 북한의 참상을 묘사한 그림을 내보낸 것.중국과 무역업을 하던 문국한씨가 길수 가족의애끓는 사연을 듣고 99년 8월 결성한 ‘길수가족구명운동본부’의 노력 결과였다. 이 그림은 서울뿐 아니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앞에서도전시돼전세계인들에게 북한 난민의 인권문제를 환기시켰다.2000년 5월에는 서울에서 ‘눈물로 그린 무지개’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국내는 물론 뉴스위크,영국 채널 4TV,가디언,텔레그래프 등에 집중 소개됐다.최근에는 북한의공개처형과 인육을 삶은 그림 등이 추가로 공개됐다. 99년 6월 공안에 체포돼 북송된 길수의 이모 정명숙씨(43)가 지난해 1월 재탈출에 성공,가족과 합류했다.그러나 기쁨도 잠시.같은 해 3월 길수의 어머니 정선미씨와 정씨의 조카 김광철씨,외할머니 김춘옥씨 등 5명이 공안에 적발돼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다.정씨와 김광철씨는 지난 5월 ‘해외에 공화국 실상을 폭로한 죄’로 함경북도 정치범 수용소에 이감됐다.이 가운데 외할머니 김춘옥씨가 고령을 이유로,김광철씨의 부인 이성희씨가 젖먹이를 달고 있다는 배려로석방됐다. 지난 5월 김춘옥씨와 이성희씨는 북한 재탈출을 시도했다. 이씨는 실패해 북한 당국에 체포됐다.이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심문 과정에서 중국에 남은 가족의 은신처가 알려지고,나머지 사람도 북한 당국에 의해 반국가 행위자로 지명수배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태는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구명운동본부측은 곧바로 베이징 주재 UNHCR를 재차 방문,강제송환 사실을 알리고 난민지위 인정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가족 가운데 3명은 몽골로 탈출했고,탈출을모색하던 다른 3명은 행방불명 상태다.길수군과 외할아버지 정태전씨(69)와 외할머니 등 남은 가족은 7명.베이징 UNHCR 사무소 문을 두드린 이들은 온몸을 줄로 엮고 ‘송환되면 자결하겠다’고 버티고 있다.난민 요청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길수 가족 구명운동본부 관계자는 “이들에게는 이번이 생존의 기로에 선 마지막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도피일지. ◆1999년 1월 김봉수 일가족 17명 두만강 건너 탈북◆10월11∼15일 ‘99서울 NGO 세계대회’에서 장길수군 그림전시회 개최◆11월13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앞거리 그림 전시회 개최◆2000년 3월20일쯤 길수군 어머니 정선미,김춘옥 등 5명강제 북송◆5월5일 길수군 ‘눈물로 그린 무지개’(문학수첩) 출판◆6월25일∼2001년 4월30일 서울 전쟁기념관 특별전시실에길수군 그림 전시◆9월21일 ‘길수가족구명운동본부’측이 베이징 주재 UNHCR 방문,난민 지위 인정 요구,거부당함◆2001년 3월26일 ‘운동본부’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방문 면담,길수군 일가족 현황보고◆5월15일 정선미,김광철 2인 반국가행위죄로 함경북도 정치범 수용소로 이송◆5월21일 김춘옥 재탈출 성공◆5월22일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서 길수군 가족 소개.‘운동본부’ UNHCR 재차방문,강제송환·중국거주 가족들신변보호 요청◆6월26일 베이징 주재 UNHCR에 난민 신청
  • 제주 4·3 희생자 1만3,000여명 신고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李漢東국무총리)는 지난해 6월부터 31일까지 2차에 걸친희생자 신고 접수를 한 결과 모두 1만3,571명이 4·3사건관련 희생자로 신고했다고 밝혔다.위원회에 따르면 이들 신고 희생자 중 사망 1만379명(76%),행방불명 3,053명(23%),후유장애 139명(1%)이다.희생자 중에는 여자 2,860명(21%),10세 이하와 60세 이상 노약자 1,612명(12%)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거주 지역별로는 제주도내 거주자가 1만2,953명,제주도외국내 거주자 560명,해외동포 58명(미국 4명,일본 54명)인것으로 집계됐다. 위원회는 6월 중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희생자 사실조사방법 및 절차 등을 확정하고,늦어도 7월부터는 본격적인 사실조사에 착수해 내년 말까지는 희생자를 심의,확정한다는방침이다.지난달 29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사실조사에 필요한 인건비,조사경비 등 소요예산 8억1,300만원을 확보했다. 사실조사 작업에는 제주도와 시·군 공무원,조사요원 등모두 220명이 참여할 계획이다. 한편 위원회는 지난해10월부터 국내외 자료를 수집·발굴해 현재 국내 962종 2,766건,미국·일본 등 외국 소장 자료 150여종 300건의 4·3사건 관련 자료를 발굴해 분석하고있다.위령공원 조성사업은 전문 연구기관의 용역결과와 공청회 등에서 제시된 의견을 반영한 기본 구상안을 6월쯤 위원회에 상정해 확정한 뒤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최여경기자 kid@
  • [사설] 의문사 진상규명에 협력하자

    지난 1월부터 조사활동에 들어간 ‘의문사진상규명위’가언론인 장준하씨,최종길 전 서울대 교수 등 굵직굵직한 의문사를 하나도 밝히지 못한채 벽에 부닥쳐 있다.대부분 사건이 공소시효 10년이 지나 자료수집과 증언확보가 거의불가능하다는 것이다.현재 진상규명위원회에 접수된 의문사는 82건.이중 1992년 8월 행방불명된 노동운동가 박태순씨의 행려병 사망처리 확인 외에는 진정인과 참고인측 조사만 돼있을 뿐,피진정인인 공권력기관에 대해서는 손도못대고 있는 형편이다. ‘진상규명위’활동이 이처럼 지지부진한 것은 경찰,검찰,군 등 조사대상 기관의 자발적 협조없이는 진실에 접근하기가 어렵게 돼있는 특별법의 한계 때문이다.수사권이 없는 조사관이 검찰,경찰,군 등을 상대로 실질적인 조사활동을 벌이는 데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특별법은 또 진술인이 거짓말을 해도 아무런 제재수단이 없고 상대방이 동행명령을 거절해도 최고 1,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있으나 그것 마저도 직접 집행권한이 없다.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은 1980년대 135일 농성,국민의 정부 출범후 422일간의 천막농성 등 10여년에 걸친 유가족들의 피나는 투쟁 끝에 만들어졌다.이번 기회에 진상을 규명하지 못하면 불의한 정권에 대항하다 죽어간 이들의 억울한 사연은 영원히 역사속에 묻히고 말 것이다. 의문사의 의문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진상규명위원회와 유가족들이 준비하고 있는 조사기간 연장등을 골자로 하는 특별법 개정이 불가피해 보인다.의문사진상규명은 그 성격상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6개월의 시한에,1회에 한해서만 3개월 연장으로 못박은 것은 사실상 진상규명의 포기나 마찬가지다. 수사권도 그렇다.비사법기관에 수사권 부여가 어려우면 수사요원 파견 등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증인의 양심선언이다.이를 위해서 양심선언자 사면 등 보장도 필요하다고 본다.
  • 조선일보 방상훈사장 피소

    일제시대 '조선거부'로 불렸던 이용문씨의 손자 이모씨(55) 등 4명은 19일 조선일보 전 고문 방일영씨(78)와 사장 방상훈씨(53)를 상대로 소유권보존등기 말소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이씨 등은 소장에서 “경기도 의정부시 가릉동 일대 5만여평의 땅은 원고의 할아버지(사망)가 일제시대때 소유권을 확인받았던 땅으로 지금까지 처분한 적이 없어 자동 상속받은 것이 분명한데도 등기부상 피고들의 소유로 되어있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그 근거로 “방 전 고문의 조부인 방응모씨는 6·25때 행방불명돼 55년 7월7일 생사 불명기간이 만료됐음에도 57년 5월29일 소유권을 획득한 것으로 되어있다”면서 “57년 소유권 보전등기가 행해졌을 때 방응모씨의 주소가 당시 행정구역상 존재하지 않았던 ‘의정부시 가릉리’로 기재되어 있는 등 등기부상 내용도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측은 쟁송 대상인 의정부시 가릉동 산32번지 등 4필지를 조사한 결과 해방 전에 매입해 ▲매도증서 ▲등기권리 증서 ▲등기부등본 등 취득 근거가 모두 갖춰져 있어 원고측 주장은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조태성기자
  • 국내정착 탈북자 실종

    국내에 정착해 살던 탈북자가 북한에 남아있는 아내를 데리러 중국으로 떠난 뒤 9개월 째 행방불명돼 당국이 진상파악에 나섰다. 국가정보원은 18일 “탈북자 유태준씨(33)가 지난해 6월 중국으로 떠난 뒤 9개월째 소식이 끊겨있는 상태”라며 “유씨가 지난해 10월 북한 당국에 체포돼 올 초 공개처형당했다는일부 의혹이 제기돼 진상을 파악중”이라고 밝혔다. 한국국적을 가진 유씨가 북측에 의해 공개처형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함남 함흥 석탄판매소 판매지도원으로 일하던 유씨는 98년11월 당시 3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탈북,다음달 입국해 대구에 살다 다시 중국으로 떠났다.국내에는 그와 다른 경로로탈북,입국한 어머니(59)와 남동생(20)이 살고 있다. 전경하기자 lark3@
  • 北아버지 눈물로 쓴 편지에 끝내 울어버린 남녘 3남매

    “잠시도 잊어본 적이 없는 너희들에게 편지로라도 소식을 전하니 금시라도 너희들을 만난 것 같다.” 인천시 주안2동에 사는 한정구(韓正九·56)씨는 16일 아버지 인기(仁基·84)씨가 보내온 편지를 받는 순간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 끝내 서러운 눈물을 쏟아냈다.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뒤 평생을 눈물로 살아온 어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인기씨는 6·25전쟁 1·4후퇴시 부인 최순례씨와 3남매를 처가인 강화로 먼저 피란보낸 뒤 인천 집에 남아 짐을 꾸리다 인민군에 징집당했다.가장이 갑자기 사라져버리자 최씨는 장사와 공장일을 해가며 어린 자식들을 키워야만 했다. 72년 최씨가 72세로 사망하자 자식들은 한씨도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고 제사를 함께 지내왔다. 인기씨는 편지에서 자신은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새로 결혼해 5남매를 두고 있으며 기업소 직맹위원장을 지내다 퇴직했다고 밝혔다. 인기씨는 “통일이 되면 마주앉아 몇밤이고 지새우며 못다한 얘기를 나누자”며 자식 상봉에 대한 희망을 접지 않은 채 50년만의 편지를 마무리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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