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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급 스타’ 사카이 노리코 아들과 행방불명…日 열도 충격

    ‘국보급 스타’ 사카이 노리코 아들과 행방불명…日 열도 충격

    일본의 국보급 스타 사카이 노리코(酒井法子)가 그의 아들과 행방불명돼 일본 열도가 충격에 휩싸였다. 5일 일본 현지 언론보도에 따르면 일본스타 사카이 노리코의 소속사가 지난 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에 실종신고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소속사 측은 기자회견에서 “다들 걱정하고 있으니 빨리 연락해주길 바랄 뿐이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카이 노리코의 실종이 단순한 연락두절인지 실종인지 일본 경찰과 관계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실 사카이 노리코가 실종되기 앞서 지난 3일 새벽에는 그녀의 남편이 각성제 소지 혐의로 체포됐었다. 소속사는 남편의 체포와 관련해 사카이 노리코와 연락을 취했으나 연결되지 않아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고, 경찰 역시 남편의 체포와 사건이 관련 있는 지 조사하고 있다. 사카이 노리코는 일본의 원조 아이돌 출신으로 연예계 데뷔해 국보급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일본의 미소’로 불릴 정도로 국민적 사랑을 받아온 스타 사카이 노리코의 실종에 일본 국민들이 비탄에 빠져있다. 사진출처 = 사카이 노리코 앨범 재킷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위구르사태로 1만명 실종”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을 방문 중인 위구르 독립운동의 ‘대모’ 레비야 카디르는 29일 기자회견을 갖고 중국 신장 위구르 사태 이후 1만여명에 이르는 위구르인들이 행방불명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녀는 중국 정부의 강경진압에 불만을 표시하고 미국의 미온적인 반응을 비난했다. 카디르는 “우루무치에서 하룻밤 새 1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라졌다. 이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간 것인가.”라며 “중국 정부가 위구르인들을 말살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평화로운 시위가 폭동으로 바뀐 것은 중국 정부의 책임”이라며 “위구르인들에게는 시위에 참가하는 것이 자살 행위와 다름없었다.”고 덧붙였다. 카디르는 또 위구르 사태에 대한 미국의 냉담한 반응에 혼란스럽고 실망했다면서도 미국이 계속 침묵을 지키지는 않을 것이며 “적절한 방법으로 대응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카디르는 자민당 중앙본부를 방문, 도 세이치 참의원 의원 등과 회담했다. 이번 방문은 집행부가 카디르의 요청을 수용해서 이뤄졌다. 카디르는 이날 회담에서 “탄압이 계속되는 위구르족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이어“구속된 위구르족의 석방을 중국 측에 요청해 달라.”고 당부했다. 카디르가 일본을 방문하자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이번 방문에 대한 중국의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베이징 주재 일본 대사를 소환했다고 외교부 성명을 통해 밝혔다. hkpark@seoul.co.kr
  • “정부, 베트남전 납북포로 총살 알고도 33년동안 월북자로 분류”

    국방부가 베트남전 실종자인 안학수 하사를 지난달 ‘납북 국군포로 추정자’로 공식 인정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그러나 정부는 1976년 안 하사가 북한에서 총살됐다는 유력 증언을 확보하고도 33년 동안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월북자로 분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는 21일 “지난달 열린 제90차 국군포로대책위원회에서 안 하사를 북한에 끌려간 국군포로 추정자로 공식 인정하고 가족들에게 이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안 하사를 계기로 미귀환 베트남전 국군포로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변경한 전향적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인정한 베트남전 국군포로 추정자는 안 하사가 유일하다. 역시 베트남전에서 실종된 김인식 대위, 정준택 하사, 박성열 병장 등 3명은 구체적 물증이 없어 병적기록상 탈영으로 분류되고 있다. 국방부는 박 병장은 북한방송에 출연한 사실을 파악했고 김 대위는 북한에 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 하사는 행방불명으로 처리된 상태이다. 안 하사의 동생 안용수씨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무사령부가 형이 1975년 12월쯤 북한을 탈출하다 붙잡혀 총살됐다고 기록한 문서를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해 명예회복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북한을 탈출하려던 형이 사망한 사실을 파악하고도 ‘탈영·월북자’로 기록된 병적기록을 수정하지 않아 가족들도 남파간첩 접선 대상자로 분류돼 고통을 겪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이 문서에는 1976년 남파했다 자수한 간첩 김용규씨의 진술 내용이 들어 있다. 안 하사가 북·중 국경선에서 체포돼 평양으로 압송됐고 ‘간첩죄’로 총살형을 당했다는 진술이다. 정부는 안 하사의 유족들이 2000년부터 제기한 민원에 지난해 11월에야 합동조사단을 베트남에 파견, 현지 조사를 벌였다. 당시 조사단은 안 하사가 강압적으로 납북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안 하사는 1964년 9월 입대, 베트남 붕따우 외과병원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하다 1966년 9월9일 사이공에서 실종됐다. 국방부는 안 하사가 이듬해 3월 북한 평양방송 라디오에 출연하자 월북자로 분류했다. 안 하사는 지난 4월 통일부 심의에서 납북자로 결정됐고 5월에는 ‘탈영·월북자’에서 ‘납북자’로 병적기록이 정정됐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은평, 실직당한 주민 눈물 닦아준다

    #지난 6월 생활고에 시달리던 김모씨는 은평구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4인 가구의 가장인 김씨는 올해 초 정보기술(IT) 관련 회사에서 퇴사한 뒤 반년 넘게 직장을 구했지만, 불황 탓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아내는 몸이 좋지 않아, 이 가구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이에 구는 김씨 가구를 긴급복지 대상자로 결정하고 4인 가구 기준 생계지원금에 해당하는 90만 8700원을 지원했다.은평구가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긴급복지 지원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긴급복지 지원사업으로 ▲식료품비·의복비 등을 지원하는 생계지원 31가구 2776만원 ▲각종 검사 및 치료 등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는 의료지원 112가구 2억 1916만원 ▲연료비·전기요금 등 기타 지원 2가구 99만 3000원 등을 지원했다. 긴급복지 지원사업의 대상은 ▲주 소득자가 사망, 가출, 행방불명, 구금 시설 수용 등의 사유로 소득을 상실한 경우 ▲중한 질병 또는 부상을 당한 때 ▲가구 구성원으로부터 방임·유기되거나 학대 등을 당한 때 ▲화재 등으로 생활하기 곤란할 때 ▲휴·폐업 영세 자영업자로 생계유지가 곤란한 자 등이다.은평구는 위기상황에 처한 긴급지원 대상가구의 초·중·고등학생 자녀가 학업의 중단없이 계속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교육지원과 주소득자의 휴·실직으로 인해 생계유지가 어려워진 가구에 대한 생계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위기상황에 처한 가구는 국번없이 129(보건복지콜센터)나 구청 주민생활지원과, 각 주민센터로 신고하면 된다.안정순 주민생활지원과장은 “이번 조치로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저소득 주민의 복지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행방불명 소동’ 美주지사 밀월여행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워싱턴 정가에 잇단 섹스 스캔들로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닷새 동안 행방불명됐던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마크 샌퍼드(49) 주지사가 애인과 함께 아르헨티나에 밀월여행을 다녀 왔다며 혼외정사를 시인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 때 탄핵을 주도하며 윤리적 강경론자로 불렸던 네바다주의 존 엔자인 상원의원이 혼외정사 문제로 정치위원회 위원장직을 사퇴한 지 일주일 만이다. 보수적이고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샌퍼드 주지사는 2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애팔래치아 하이킹’에 갔다고 측근에게 말한 것은 거짓이었다고 시인하고, 혼외정사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지난 8년 동안 부인 몰래 이 여성과 혼외정사를 가져 왔다면서, 부인과 네 아들, 자신의 참모진과 지역주민들에게 사과했다. 그는 부인이 혼외정사 사실을 몇달 전에 알게 됐다며 현재 별거 중이라고 덧붙였다. 샌퍼드 주지사는 이날 자신이 맡고 있는 공화당 주지사협의회 의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지사직은 계속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샌퍼드 주지사는 엔자인 상원의원과 마찬가지로 오는 2012년 미 대선의 공화당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히던 인물로 이번 섹스 스캔들로 대통령의 꿈은 날아가게 됐다. 샌퍼드 주지사는 20분 동안 자신의 혼외정사 사실 등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 놓았으며, 간간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는 지난 19일부터 휴대전화를 끈 채 사무실이나 집, 가까운 측근들과 연락을 끊어 버렸고, 주 의회 지도자들은 주지사 권한을 잠정적으로 부지사에게 이양하는 방안까지 논의했다. CNN 등 미 언론들은 샌퍼드 주지사가 애인과 아르헨티나에 갈 때 주민들 세금을 썼는지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그럴 경우 주지사직 유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엔자인 파문’에 이어 ‘샌퍼드 파문’까지 터지면서 지난해 대선과 총선에서 패배한 공화당의 재건 노력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더욱이 잇단 성추문 파문은 ‘가족의 가치’를 최우선 순위로 둬 왔던 공화당의 정책 노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회의를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kmkim@seoul.co.kr
  • 55년만에 화랑무공훈장 파편박힌 가슴위서 반짝

    55년만에 화랑무공훈장 파편박힌 가슴위서 반짝

    “진작 전해 드렸어야 했는데 이렇게 늦어 국가를 대신해 제가 사죄드리겠습니다. 정말 자랑스럽니다.” 6·25전쟁 59주년인 25일 경기 용인 제3군사령부. 이상의(육군대장) 3군사령관이 여든을 바라보는 하사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며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노인은 6·25 전쟁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기록되는 백마고지 전투에 제9보병사단 하사로 참전했던 최영학(78·경기 구리시 인창동)씨. 19살 되던 해인 1950년 12월 덕수궁에 소집된 그는 이날 백마고지 전투 공적으로 수여됐던 화랑무공훈장을 55년 만에 되찾았다. 반세기를 훌쩍 넘어 주인의 품으로 돌아온 무공훈장은 당시 전투에서 맞은 포탄 파편이 아직 남아있는 왼쪽 가슴에서 반짝거렸다. 육군본부 기록에 남은 최씨의 훈장 수여일은 1954년 4월2일. 그러나 최씨는 당시 전시 상훈법에 따라 교부받은 약식 증서도 전투 중 전달받지 못했고 전후 혼란 상황에서 훈장 수여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반세기를 넘게 보냈다. 최씨에게 백마고지는 삶과 죽음이 무의미한 사선(死線)이었다. 그는 “중공군이 백마산으로 새까맣게 밀려왔지. 정말 살고 싶었어. 숱한 전우들이 죽고 나중에는 눈물도 나지 않더구먼.“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덕수궁에서 함께 입대했던 고향친구 둘도 거기에서 잠들었어.” 라고 말했다. 백마고지는 1952년 10월6~15일 중공군 38군단 4만 4000여명과 국군 제9사단 병력 2만여명이 대접전을 벌인 곳이다. 9일 동안 12차례 전투가 벌어져 7차례 고지 주인이 바뀌었다. 국군 전사자 3500여명 중 상당수가 행방불명 상태이다. 그동안 유해 발굴 작업을 통해 1200여명의 전사자가 확인됐다. 포탄 파편은 당시 벙커에서 나오던 최씨의 왼쪽 다리를 관통했다. 최씨의 왼쪽 가슴에 파편이 박혔다. 최씨는 “당시 왼쪽 가슴 부위에 파편이 박힌 줄도 모른 채 서울 3육군병원으로 후송된 지 2주 만에 전투에 복귀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무공훈장의 존재도, 반세기가 넘도록 가슴팍에 박힌 파편의 존재도 최근에야 알게 됐다. 최씨 가족들이 국가보훈처에 상이용사 판정을 신청하면서 찍은 엑스레이 사진에서 파편이 드러난 것이다. 최씨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다친 다리와 가슴의 통증을 파스와 진통제에 의지하면서 60년 가까이 살아왔다.”며 “전장에 나가 싸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단 한번도 국가를 원망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육군에 따르면 아직도 주인을 찾지 못한 무공훈장은 7만 8658개나 된다. 1955년부터 훈장 수여 대상자 16만 2950명 가운데 8만 4292명에게만 전달됐다. 육군 본부는 1000만건이나 되는 방대한 병적기록을 전산화해 마지막 한명까지 훈장을 되찾아줄 계획이다. 무공훈장자에게는 국립현충원 안장 자격과 함께 60세 이상은 영예수당 월 14만원이 지급된다. 보훈병원 진료비는 무료이거나 감면된다. 훈장을 찾지 못한 대상자나 유족은 육군본부 홈페이지(army.mil.kr)나 육본 인사처리과 유가족찾기 담당관(042-550-7333)에 문의하면 된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클릭! New 생활법률] (7) 날씨사업 11월부터 민간개방

    앞으로 날씨 정보도 산업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기상청이 독점하던 날씨 예보가 민간사업자에게도 개방되기 때문이다. 또 저소득이나 재해, 가정폭력 등의 이유로 생계가 곤란한 가정에 지원되는 복지혜택이 한층 강화된다. ●기상산업, 민·관 경쟁체제로 기상이변은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를 불러온다. 날씨 예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다. 지역별·산업별 특성에 따라 맞춤형 예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오는 11월부터 시행되는 기상산업진흥법은 기상 정보의 중요성과 수요 증가에 발맞춰 기상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법에 따라 기상청은 관계 중앙 행정기관과 협의해 5년 단위로 기상산업진흥 기본계획을 세우고, 해마다 시행 계획을 짜야 한다. 기상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민간지원, 투자, 전문가 육성 방안 등도 포함된다. 기상사업도 기상예보업, 기상감정업, 기상장비업, 기상컨설팅업으로 세분화된다. 기상청에 등록해야 관련 영업을 할 수 있다. 기상예보사, 기상감정사라는 전문 자격도 새로 생긴다. 기상예보사는 날씨를 전문으로 예측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기상감정사는 날씨가 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화하는 등 기상 상황을 분석한다. 기상 분야 기술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 기상청장에게 면허를 얻으면 된다. ●생계곤란 가정 지원 폭 확대 가구 구성원 가운데 주소득자의 사망·가출·행방불명·수감·중병이나 가정폭력, 화재 등으로 위기에 빠진 가정에 대한 긴급복지지원 기간이 현행 4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났다. 개정 긴급복지지원법이 지난달 공포, 시행된 데 따른 것이다. 개정법은 우리 국민뿐 아니라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도 긴급복지지원 대상에 포함시킨 게 특징이다. 지원 대상 외국인에는 한국 국적자와 혼인한 사람, 이혼·사별 했더라도 한국 국적을 가진 직계 존비속을 돌보고 있는 사람, 난민, 본인의 책임 없이 화재·범죄·천재지변을 당한 사람 등이 포함된다. 기존의 생계·의료·주거 지원에 교육지원도 새로 보태졌다. 초·중·고 자녀의 수업료, 입학금, 학교운영비, 학용품비 등이다. 당초 이 법은 2005년 12월 제정 당시 5년 한시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개정법은 한시 규정을 없앴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위기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개정법은 지난해 12월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이 한시 규정 삭제를 골자로 발의한 내용,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교육지원을 골자로 발의한 내용,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이 지원기간 확대와 외국인 지원을 골자로 발의한 내용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가 각각의 법률안을 위원회 대안으로 합쳐 처리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메이플스토리: 해적편’ 다운로드 50만 돌파

    ‘메이플스토리: 해적편’ 다운로드 50만 돌파

    모바일게임 ‘메이플스토리: 해적편’이 5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다. 게임업체 넥슨모바일은 3일 ‘메이플스토리: 해적편’이 시리즈 최단 50만 다운로드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 게임의 전체 시리즈 다운로드 수는 약 800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은 올해 연말쯤 천만 다운로드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모바일업계는 천만 다운로드 시대를 눈앞에 두고 올해들어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컴투스의 ‘미니게임천국’ 시리즈, 게임빌의 ‘프로야구’ 시리즈, 넥슨모바일의 ‘메이플스토리’ 시리즈는 올해안에 천만 다운로드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 유력한 후보군이다. 한편 ‘메이플스토리: 해적편’은 시리즈 최초로 여성을 주인공을 채택했다. 게임의 내용은 여해적 ‘카이린’이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한 모험담을 그렸다. 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프리 워크아웃’ 누가 어떤 혜택 보나

    오는 13일부터 금융기관의 빚을 1~3개월간 갚지 못한 단기 연체자를 상대로 빚 부담을 덜어주는 ‘사전채무조정(프리워크아웃)’ 제도가 시행된다.<서울신문 4월 9일자 11면> 과연 누가, 얼마나 혜택을 볼 수 있는지 문답으로 내용을 알아본다. →2개 이상 금융기관 채무액이 5억원을 밑도는 등 5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신청자격이 있는데,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 -자료가 없다. 일주일쯤 시행해 봐야 알 듯하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1개월 미만 연체자는 40만명, 1~3개월 미만 연체자는 20만명 정도 된다. →단기 연체자 이외를 대상으로 하는 프리워크아웃은 이미 2002년부터 시행했는데 몇 명이나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났나. -현재까지 총 신청자는 73만명, 완결자는 8.4%인 6만 1000명 정도다. 신청자 가운데 30%는 파산했거나 행방불명(사망, 연락두절 등)됐다. 현재는 44만명이 프로그램에 가입해 채무를 갚아 나가고 있다. →기준 가운데 ‘자산 6억원 이하’는 너무 높은 조건 아닌가. -채권기관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흔히 부자라고 하면 자산 6억원 이상 정도로 생각했다. 주택경기 침체로 주택담보대출을 연체하는 경우가 많다고 봤다. →프리워크아웃을 신청하고 얼마쯤 지나야 혜택을 볼 수 있나. -45일 정도로 단축하려고 노력 중이다. →워크아웃 도중에 못 갚고 그만둔다면. -이 제도도 최소한의 도움을 주는 것이다. 3개월 이상 연체하면 효력이 상실된다. 바로 개별 금융기관에 통보돼 다음 단계인 법적 구제제도로 넘어간다. →연체이자를 탕감받은 뒤 곧바로 추가 대출 받을 수 있나. -시스템상 그렇게 못한다. 카드사나 대출업체들도 민간 신용정보업체에 정보 조회한다. 대출해 주는 건 자기들 마음이지만 최소한 갚을 수 있는지는 그들도 판단하지 않겠나. 30일 이상 연체하면 사실상 신용등급 재상승은 어렵다. →고의연체자는 어떻게 걸러내나. -의도적으로 가입해서 얻는 이익이 별로 없다. 무엇보다 본인 신용등급에 해가 되는 일이다. 카드조차도 못 만든다. 무리하게 신청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안티’ 달라이 라마 데뷔

    │베이징 박홍환특파원│“농노 해방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전적으로 부합하는 일입니다. 티베트는 50년전 중국 공산당에 의해 농노제가 폐지된 이후 놀랄 만한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11대 판첸 라마인 기알첸 노르부(19)가 중국 정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드디어 세계 무대에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판첸 라마는 27일 중국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에서 열린 제2회 세계불교포럼 개막식에 참석, 유창한 영어 연설로 중국의 티베트 지배를 옹호했다. 그는 이날 포럼에 참석한 50여개국 불교 승려 1000여명 앞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중국을 ‘나의 조국’으로 호칭하기도 했다. 그는 또 연설 대부분을 티베트 농노해방의 의미와 티베트의 발전, 그리고 중국 정부의 종교자유 보장 등에 할애함으로써 달라이 라마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활발한 국제활동에 곤혹스러워하던 중국은 ‘원군’의 등장에 반색했다. 판첸 라마는 티베트에서 달라이 라마에 이은 서열 2위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는 자리. 1989년 10대 판첸 라마가 입적하자 달라이 라마는 1995년 ‘10대 판첸 라마의 환생’이라며 당시 여섯살이던 치에키 니마를 11대 판첸 라마로 지정했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대신 한 살 어린 기알첸 노르부를 11대 판첸 라마로 공표한 후 지금까지 베이징 등에서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교육시켜 왔다. 치에키 니마와 그 가족들은 현재까지도 행방불명 상태다. 한편 중국 정부는 ‘티베트 농노해방 기념일’인 28일 티베트자치구 수도인 라싸(薩)의 포탈라궁 앞 광장에서 티베트인 1만여명을 참석시킨 가운데 대대적인 기념 행사를 열었다. 반면 티베트 망명정부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500여명의 티베트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의 티베트 지배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stinger@seoul.co.kr
  • 건설·조선사 3~4곳 퇴출될 듯

    2차 신용위험 평가가 일단락된 중·소형 건설사 및 조선사 74개 기업 가운데 3~4곳이 퇴출될 것으로 보인다. 24일 금융계에 따르면 시공능력 101~300위권의 중소형 건설사 70곳 중 2~3곳이, 조선사 중에선 1개사가 최종적으로 D등급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사 가운데 이미 부도난 K사와 사주가 행방불명된 D사 등도 D등급 1순위로 꼽힌다. 이번 심사대상인 4개 조선사 중에서는 회생절차를 신청한 1개사도 D등급이 부여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인 C등급을 포함하면 이번 구조조정 대상은 최대 20개 기업이 넘을 전망이다. 15개 건설사의 주채권은행인 농협은 3~5개 업체에 C등급을 매기는 것을 검토 중이다. 14개 건설사의 주체권은행인 국민과 우리은행도 각각 4~5곳과 1~2곳에 C등급 이하의 판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신한·하나·광주·경남·대구은행 등이 주채권은행인 건설사 중에서도 3~6개 업체가 C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장은 “워크아웃 대상 기업 수가 1차 때보다 다소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 은행가에서 나온다.”면서 “은행마다 부실논란에 휩쓸리기 싫어서라도 다소 엄격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앞서 농협은 1차 신용위험 평가에서 B등급으로 분류한 신창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금감원의 특별검사를 받는 등 부실 평가 논란에 휘말렸다. 채권금융기관과 금융당국은 오는 27일까지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확정하고 4월부터 후속조치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유영규 최재헌기자 whoami@seoul.co.kr
  • 애인 버린 두달만에 뺨맞은 다방아가씨

    18일 하오 부산시 동구 P다방에서 차를 날라온 「레지」아가씨를 느닷없이 철썩 뺨을 후려갈기며 『x같은 x』하고 욕지거리를 퍼부은 20대 청년이 기고만장. 더욱 이상한 것은 따귀 맞은 아가씨가 한마디 말도 못하고 청년 앞에 앉아 훌쩍훌쩍. 사연인즉 이들은 대구에서「뜨거운 관계」였는데 「레지」아가씨가 2개월 전 말 한 마디 없이 행방불명됐다가 우연히 이날 다방에서 애인을 만나 졸경을 치렀었다나-. -따귀는 사랑의 씨앗. <부산(釜山)> [선데이서울 72년 6월 4일호 제5권 23호 통권 제 191호]
  • 노벨상 후보 中인권변호사 가족 美망명

    노벨상 후보 中인권변호사 가족 美망명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지난해 노벨평화상 후보까지 오른 중국의 저명한 인권변호사 가오즈성(사진 오른쪽 두번째·高智晟·44)의 부인 겅허(왼쪽 두번째·耿和)가 딸(15)과 아들(4)을 데리고 중국을 탈출, 미국에 망명했다. 15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에 따르면 겅허는 지난 1월9일 베이징의 자택을 떠나 남부 윈난(雲南)성 산악지대를 거쳐 같은 달 16일 태국에 도착한 뒤 미국 망명신청이 받아들여져 지난 11일 미국으로 떠났다. 겅허와 두 자녀는 현재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머물고 있다. 겅허는 인터뷰에서 “딸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된 지난해 10월 이후 망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남편을 포기했지만 남편도 이해할 것”이라며 “남편은 언제나 감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작별인사도 못한 채 쪽지만 남기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과 미국의 기독교단체 등이 탈출 자금 등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오즈성은 파룬궁 수련자, 지하교회 신도, 농민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 활동에 앞장서온 중국의 대표적 인권변호사로 지난 2006년 말 정부전복 기도 혐의로 투옥됐다 풀려난 뒤 중국 공안 당국의 감시를 받아 왔다. 가오즈성은 지난 1월19일 체포돼 2주 동안 구금돼 있었는데 당시의 구금이 결국 가족들의 탈출 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진 셈이다. 인권단체들은 가오즈성이 지난달 4일 이후 또 다시 행방불명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stinger@seoul.co.kr
  • “실종·가출자 추적시스템 6월까지 구축”

    실종·가출 등 행방불명자를 효과적으로 찾아내기 위한 제도 개선이 추진된다.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양건)는 최근 강호순 연쇄 살인사건을 계기로 행방불명자 위치 추적 시스템 등 제도를 종합 재검토해 6월까지 구체적인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26일 밝혔다. 현재 실종자 문제를 다루는 정부기관은 보건복지가족부 위탁으로 실종 아동문제를 다루는 ‘어린이재단’과 경찰청 산하의 ‘실종아동찾기센터(182센터)’ 등이 있다. 하지만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회장 나주봉) 등 실종자 관련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전담인력과 시스템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개선을 요구해 왔다. 권익위는 오는 4월 말까지 실종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제도개선 의견을 접수(choiks84@acr c.go.kr, 02-360-2879)한다.경찰백서에 따르면 2007년 행방불명자는 총 6만 5000여명으로 이 가운데 1만 2600여명은 지금도 가족과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김하늘ㆍ이준기 인도네시아 빈민촌 3남매 나눔과 사랑 전해

    김하늘ㆍ이준기 인도네시아 빈민촌 3남매 나눔과 사랑 전해

    배우 김하늘과 이준기가 인도네시아의 부모없는 빈민촌 삼남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하고 돌아왔다. 김하늘과 이준기는 지난 11일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와 함께 1주일 일정으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 빈민촌을 찾았다. 그들은 집짓기, 요리, 이발, 캠핑, 축제 등으로 빈민촌에 서 부모 없이 살고 있는 삼남매의 가슴 속에 나눔과 사랑을 전파하고 지난 17일 귀국했다. 빈민촌에서도 가장 어렵게 살고 있는 비키(9세, 남) 디마스(7세, 남) 푸뜨리(11세, 여) 3남매는 연로하신 할머니(란테스, Rantes 70세)와 함께 인근 쓰레기장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 팔아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아이들의 엄마는 오래 전 세상을 떠났고 아빠 또한 행방불명된 상태. 이들은 보통 하루 한 끼 식사밖에 못했으며 그것마저도 반찬이 없어 버려진 케첩을 주워 밥에 뿌려먹을 정도였다. 집은 지붕이 깨져 비가 오면 집 안은 물바다가 되기 일쑤라 이들의 의식주 상황은 암담, 그 자체였다. 이에 삼남매를 위해 두 팔 걷어 올리고 나선 이들은 삼남매의 집을 꼼꼼하게 살펴본 후 보수가 필요한 곳과 필요한 물품들을 직접 조사했다. 김하늘과 이준기는 삼남매를 데리고 자카르타 시내 큰 시장에 가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저녁 찬거리를 준비했다. 집으로 돌아온 김하늘과 이준기는 요리솜씨를 한껏 발휘해 불고기 볶음면 요리를 함께 만들어 저녁만찬을 즐겼다. 김하늘은 낡아서 군데군데 구멍이 나있는 바지를 입고다니는 삼남매의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해 직접 청바지를 만들어 선물했다. 또 덥수룩한 동네 아이들의 머리를 깔끔하게 이발해주는 등 관심과 사랑을 전했다. 다음날 이준기와 김하늘은 학교아이들과 함께 운동회를 열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김하늘과 이준기의 팬들이 모아준 성금 750만원으로는 삼남매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 컴퓨터 교실과 농구골대를 설치해줬다. 뿐만 아니라 평소 나들이를 가본 적이 없었던 삼남매를 위해 김하늘과 이준기는 캠핑을 다녀오기도 했다. 삼남매는 김하늘, 이준기와 함께 난생 처음 수영장도 가고 근처 사파리를 다녀오는 등 특별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후문이다. 김하늘과 이준기는 백내장과 류마티즘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할머니를 모시고 인근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봉사활동 이후에도 김하늘과 이준기는 삼남매와 같은 지구촌 빈곤아동을 위해 지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약속했다. 특유의 친화력과 유쾌함으로 아이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한 김하늘은“힘들고 고된 삶이지만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서 꿈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며 “짧은 만남이었지만 소중하고 값진 시간으로 기억 될 것 같다. 앞으로도 소외되고 힘든 아이들을 위해 작은힘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봉사활동에서 포토그래퍼 역할을 맡았던 이준기는 귀국 직 후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통해“아이들을 도우러 갔던 봉사활동였는데 오히려 그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온시간이었다.”며“이번 봉사활동에 그치지않고 앞으로도 지구촌 빈곤아동들이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도록 함께하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김하늘과 이준기가 함께한 아름다운 동행은 tvN 월드스페셜 ‘LOVE’를 통해 3월경 방송될 예정이다. tvN 월드스페셜 ‘LOVE’ 자선과 기부를 주제로 국내 최고스타와 포토그래퍼의 해외 자선봉사 활동, 진솔하고 인간적인 모습의 스타, 그와 교감하는 사진작가가 만들어내는 휴머니티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사한다. 역대 출연자로는 류승번 신현준 배두나 김지수 이보영 이요원 이지아 등으로 아시아 전역에 방문에 사랑을 나눴다. (사진제공 = tvN)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재미만 보고 반응없어 돈을 보관했다는 알쏭달쏭 아가씨들

    재미만 보고 반응없어 돈을 보관했다는 알쏭달쏭 아가씨들

    3일 밤 8시쯤 중(中)구 다(茶)동 S「호텔」「엘리베이터」안. 금년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입시에 실패한 한(韓)모양(18)과 김(金)모양(18)은 「고고」춤을 추기 위해 S「호텔」을 찾아들었다. 이들이 시시덕거리며 웃고 떠들자 옆에 있던 김모씨(32)와 이(李)모씨(34)는 생각이 달라져 아가씨들을 유혹했다. 어렵쇼, 한마디에 『좋다』고 덜컥 쾌락하는 바람에 30대 사나이들이 오히려 어리둥절. 이들은 S「호텔」 옥상의 「나이트·클럽」에 들어가 맥주를 홀짝 거리며 자정이 넘도록 「고고」춤을 추었다. 춤이 끝나자 602호실에 두「커플」이 함께 투숙, 예정된 「스케줄」 대로 일사천리, 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노곤한 몸을 일으켜 옷을 입은 두남자들은 여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부끄러워서 먼저 나간 것』으로 간주했지만 김모씨 주머니를 뒤져보니 자기앞수표 1만원권 2장, 현금 1만원 모두 3만원이 행방불명이었다. 값비싼 오입을 한 것으로 치부한 김씨는 볼 일을 보기 위해 남대문(南大門)시장에 갔다. 그런데 시장에서 「스토킹」을 사려는 두아가씨를 자세히 살펴 본 즉 간 밤에 재미를 봤던 문제의 「행방불명녀」들. 본전 생각이 난 김씨는 두아가씨를 잡고 『왜 돈을 훔쳐 달아났느냐』고 따졌다. 『잘못했다』고 빌기만 했더라면 한모양이 숫처녀였던 점을 생각해서 웃고 넘기려 했지만 『언제 훔쳤느냐』고 오히려 따지는 바람에 화가 치밀어 남대문서로 끌고 갔다. 경찰에서 이들 18살 철부지 아가씨들은 『강제로 당했다』고 주장하며 『재미만 보고 아무 반응이 없어서 돈을 보관하려 했다』고 알쏭달쏭한 해명. [선데이서울 72년 5월 14일호 제5권 20호 통권 제 188호]
  • [용산 철거민 강제진압 참사]아비규환 현장 이모저모

    [용산 철거민 강제진압 참사]아비규환 현장 이모저모

    20일 새벽 서울 용산로2가는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망루가 올려진 4층 건물 옥상은 시커먼 연기와 지옥 같은 화염으로 뒤덮였고 살수차는 사방에서 물을 뿜어댔다. 시너 냄새는 1층까지 코를 찔렀다. 화염이 치솟는 가운데 농성 중이던 철거민 1명이 경찰들을 향해 다급하게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쳤다. 화재는 1시간여 만에 진압됐으나 날이 밝자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은 창문 70여개가 온통 깨진 처참한 모습을 드러냈다. 계단 쪽 창문은 화염병 투척으로 시커멓게 그을렸고 옥상엔 붕괴된 망루를 지탱하던 슬레이트만 아슬아슬하게 건물 위에 걸쳐져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시체 6구가 모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3구는 경찰 헬멧, 지문, 주민등록증으로 신원을 확인했고, 나머지는 유전자 감식으로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고 와중에 살아남은 부상자들은 용산중앙대병원과 흑석동중앙대병원, 순천향대병원,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지만, 병원은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중대 용산병원으로 옮겨진 시위대 이충연(37)씨 부인은 “건물 건너편에서 맥주집을 하는데 시아버지와 남편이 현장에서 후송됐다. 시아버지는 행방불명이라 병원을 쥐잡듯 뒤졌는데도 경찰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지 않는다.”며 소리치며 헤맸다. 부상한 김명숙(45·여)씨도 “건물 밖에서 지켜보다 위기일발이라 도와주려고 진입을 시도했다. 경찰이 우리를 막고 발걸고 넘어뜨리고 군홧발로 찼다. 사람들이 안에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울음을 터뜨렸다. 현장을 지켰던 경찰 박모(38)씨는 동료 김남훈 경장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 친구가 시너 냄새가 너무 독해 못올라 가겠다고 했는데 재촉해서 올라간 게 결국 못내려 왔다. 그게 마지막이다.”고 울먹였다. 전국철거민연합은 이날 오후 사고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살인폭력진압에 대해 철저히 규명할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은 유족과 철거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주장했다. 남경남(55) 전 의장은 “경찰이 토끼몰이 식으로 위 아래서 밀고 들어오니까 망루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2차로 경찰들이 몰려왔는데 그러자마자 불이 났다.”고 말했다. 흥분한 철거민 20여명은 이날 오후 사고 수습이 이뤄지는 동안 경찰과 간헐적인 충돌을 빚기도 했다. 저녁 7시쯤부터는 민주노총, 진보신당, 사회당 및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 소속 시민 1000여명이 현장 앞에서 촛불시위를 열고 ‘MB정권, 살인경찰은 물러나라.’며 경찰의 폭력진압에 항의했다. 시위대는 한때 서울역 방향으로 진격을 시도하며 경찰과 부분적으로 충돌을 빚었다. 경찰은 14개 중대 800여명을 동원해 시위대를 저지했고 9시쯤 용산역 앞 4거리 부근에서 살수차를 동원해 물대포를 쏘기도 했다. 남은 200여명은 명동 롯데백화점 근처까지 시위를 이어갔고 백병원 근처에서 30여명이 경찰과 격렬한 투석전을 벌여 일부가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박찬종 “‘신동아’ K씨는 미네르바 아니다”

    ’미네르바’로 지목돼 구속된 박모씨에 대한 진위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박씨의 변호를 맡은 박찬종 변호사가 월간 신동아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고 나서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신동아는 발매된 2월호에서 자신이 미네르바라고 주장한 K씨의 인터뷰 기사에서 “박씨는 미네르바가 아니며 미네르바는 금융계 종사자 7명으로 구성된 집단이고 박씨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보도했다.하지만 박 변호사는 19일 평화방송(PBC)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신동아 글은 미네르바 박씨와 관련없는 가짜”라며 이같이 밝혔다.  박 변호사는 “박씨는 자신의 IP주소로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거주지에서만 쓴 것이 280건 정도 된다.”면서 “그 중 2개 글이 문제가 돼 구속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고는 “구속된 박씨 입장은 신동아 글하고 아무 관계가 없다.”며 “쓴 일도 접촉한 일도 없고, 인터뷰한 일도 없다.”고 말했다.  또 박 변호사는 K씨가 “미네르바 그룹 7인 중 연락이 두절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박씨에게 글을 써라고 시켰을 지도 모른다.”고 말한 것에 대해 “전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며 “만약에 그렇다면 신동아도 공공 언론의 입장에서 그 K씨를 완전히 세상에 드러내 놓게 해야 된다.”고 역공을 폈다.  이와 함께 박 변호사는 “(박씨가) 국민들 뇌리에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형성돼 상당히 문제되는 글을 쓴 사람이다.”고 못을 박기도 했다.IP 공유와 도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변호사의 인터뷰 전문  -신동아 2월호에 미네르바와 관련해 보도한 내용이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군요.그 내용을 보니까 감옥에 갇혀있는 미네르바 박씨는 가짜고 진짜 미네르바는 7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이런 주장을 내놨는데 이 보도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선 저는 저의 동료 변호사 몇 사람하고 1월10일 날 구속영장이 발부된 미네르바 박씨의 변호인입니다. 그 미네르바, 현재 구속된 미네르바 박씨가 받고 있는 혐의가 7월30일과 12월29일자 두 차례에 걸쳐서 정부가 외환시장에 직접적이고 현장에서 개입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는데 그것이 공익을 해치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겁니다. 그러니까 그 혐의로 구속된, 필명을 미네르바로 쓴, 박씨를 변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미네르바 박씨는 그 두개의 글만 쓴 게 아니고 자기 주소지, 자기 주소지에서 인터넷 주소를, 말하자면 IP를 미네르바로 사용해서 창천동 거주지에서만 쓴 것이 280 정도의 글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 글 가운데에 리먼브라더스 파산을 예언을 했고 그것이 적중을 했고 그 무렵에 한국 정부는 산업은행이 나서서 리먼 브라더스가 곧 파산될 지경에 이른 모르고 인수 합병을 하겠다는 논의를 했었는데 미네르바가 이것을 곧 파산한다고 예언했다.그것이 사실로 증명이 되었고 그 다음에 환율과 몇 가지 문제에 있어서 정부의 예측과, 장담과는 전혀 별개의 미네르바 예측이 적중을 해서 이 미네르바가 신통하다고 주목을 받게 됐죠.  그래서 그 미네르바가 쓴 두 개의 글 그게 문제가 돼서 구속이 되었는데, 저희들은 그것을 변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짝퉁이 있다, 진짜가 어디 있냐 가짜가 어디 있냐 하는 논쟁은 불필요한 논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구속된 미네르바 박씨의 입장에서는 신동아 글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죠. 쓴 일도 없고, 접촉한 일도 없고, 인터뷰 한 일도 없고.  -그러니까 검찰이 문제시 하고 있는, 지금 구속되어 있는 그 박모씨가 쓴 글이다. 그런 말씀입니까  ▶네.  -지금 신동아 글을 보면, 그 일곱 명 가운데에 현재 연락이 두절된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박씨를 시켜서 글을 올리게 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박대성씨가 쓴 글이 누구를 시키고 말고 할 여지가 없고, 본인 스타일 대로 썼고… 그런 건 본인이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동아가 만약 그런 주장을 한다고 하면 물론 지금 미네르바 박씨가 구속된 이후에도 나도 미네르바다 나도 구속해라 하는 글도 많이 올라오고, 미네르바란 표기도 올라오고 그런 겁니다. 인터넷 상의 필명은 우리가 호적법 상의 호적으로 내 이름을 어떻게 등재하는 거 하고, 그 다음에 무슨 이름을 특허 내거나 이런 것이 아니죠. 임의로 누구든지 남이 썼던 것도 쓸 수 있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진짜냐 가짜냐 굳이 그렇게 따진다면, 국민들 뇌리에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형성돼서 상당히 문제되는 글을 쓴 사람이다, 끝내 이 사람이 허위사실 유포로 구속되었다 하는 것을 본원적이고 진짜 미네르바다라고, 굳이 진짜라고 말을 쓴다면 이게 진짜고. 신동아 글이라든지 이것은 이 미네르바하고 관계가 없으니까 그것이 오히려 가짜다 이러한 논리인데….신동아가 만약 그런 식으로 보도를 했다면… 그 김씨라고 했습니까?  -K라고 되어있죠.  ▶김씨인가. 그 7명 해가지고, 한 사람이 행방불명 됐는데 그 사람이 뭐 구속된 박모씨와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하는데 그건 전혀 터무니없는 이야기고 만약에 그렇다면 신동아도 공공언론의 입장에서 그 김씨를 완전히 세상에 드러내 놓게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불이익을 당하면서 억울하게 구속되어 있거든요. 우리 변호인 입장에서는 절대로 공익을 해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절대로 보지 않습니다. 정부가 구체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했기 때문에 그래서 영장실질심사와 적부심사에서 저희들이 그런 것을 누누이 강조했는데도 계속 구속이 유지되고, 이러한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는데, 이걸 가짜다라고 이야기하려면 그 사람이 나타나야죠. 나타나서 가령, 비슷한 글이 있다고 한다면 똑 같은 고통을 받으면서 문제되는 것을 바로 잡도록,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서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자세를 보여야지. 얼굴 가리고 숨어서, 구속 되어서 심리적으로 열악한 상태에 있고, 우리 변호인입장에서는 분명히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고 보는데, 지금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을 두고 너는 가짜다, 일곱 명중의 하나가 행방불명인데 그 사람의 글을 니가 대신 썼을 지도 모른다. 이거는 예의에도 어긋나고 사리에도 어긋나고….공공언론의 태도가 아닌 거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박씨는 신동아의 이러한 보도를 알고 있습니까?  ▶그것은 저희들이 접견 과정에서 그 객관적 사실은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떻다 라는 것은 우리가 대화를 안 했는데. 자기는 신동아하고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무슨 글을 썼느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는 거죠. 신동아도 인정했죠. 인정하면서도 꼬리를 단 것 같은데 일곱명 중의 하나가 행방불명이고 연결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신동아 2월호 주장이 미네르바 박씨의 앞으로 재판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저는 그거는 별개라고 생각하죠. 별개라고 생각하고. 이 현재 구속된 미네르바 박씨는 저에게, 제가 변론을 담당하고 있으니까, 이게 자기로서는 말하자면 주관적, 자기 명예 감정에 손상을 입고 있는 그런 심정이다 그래서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 그러길래 내가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지금 당신은 구속되어 있고 그러니까 이 사건 해결될 때까지 그거에 대해서 무슨 대응을 한다든지 할 필요는 없다, 지켜보자 이렇게 이야기를 했죠.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여러 명이 같이 쓰거나, 한 쪽에서 도용했을 가능성은 있나요?  ▶뭐 있을 수가 있겠죠.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군포 여대생 18일째 소식 끊겨

    군포 여대생 18일째 소식 끊겨

    경기 수원, 화성 등에서 부녀자 실종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군포시에서도 귀가 중이던 20대 여성이 18일째 소식이 없어 경찰이 공개수사에 나섰다. 5일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오후 3시쯤 여대생 A(21·군포시 대야미동)씨가 산본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귀가하다 집에서 1㎞ 떨어진 군포보건소 정류소에 내린 뒤 소식이 끊겼다. 경찰 수사 결과 A씨의 휴대전화 전원이 군포보건소 정류장에서 6~7㎞ 떨어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일대에서 같은 날 오후 3시37분쯤 꺼졌다. 이어 오후 7시28분쯤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 모 금융기관 현금인출기에서 A씨의 신용카드로 현금 70만원이 인출됐고, 인출자는 신원을 알 수 없는 20~30대 남자다. 경찰은 금융기관 패쇄(CC) TV에 찍힌 키 170㎝가량 용의자의 신원을 확인 중이나 마스크를 착용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종된 A씨는 160㎝ 키에 38kg 몸무게인 마른 체형으로 덧니와 긴 생머리를 하고 있으며 실종 당시 카키색 후드 점퍼와 검정 바지, 검정 부츠를 신고 있었다. 한편 경찰은 A씨 실종사건이 지난해 11월 수원 수인산업도로에서 발생한 40대 주부 실종사건과 2년 전 발생한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 실종사건과의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지난해 11월9일 안산에 사는 김모(48·여)씨가 수원시 권선구 입북동 수인산업도로 버스정류장에서 행방불명됐다. 앞서 지난 2006년 12월∼2007년 1월, 노래방 도우미 박모(당시 36세)·배모(당시 45세)씨, 회사원 박모(당시 52세)씨 등 부녀자 3명이 수원과 군포, 화성에서 잇따라 실종됐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읽기] (103) 환향녀의 슬픔, 안추원과 안단의 비극

    [병자호란 다시읽기] (103) 환향녀의 슬픔, 안추원과 안단의 비극

    속환이나 도망을 통해 천신만고 끝에 조선으로 돌아온 여인들(還鄕女) 앞에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사족(士族) 부녀자들은 ‘오랑캐에게 실절(失節)한 여자’라는 따가운 시선 때문에 고통받아야 했다.일부 신료들은 ‘속환되어온 며느리에게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할 수는 없다.’며 이혼을 허락하라고 요구했다.출가했던 딸이 환향녀가 되어 돌아온 친정 부모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이혼을 섣불리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론도 있었지만,대부분의 사족 환향녀들은 본래의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말았다.피로(被擄)로 말미암은 슬픔과 비극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환향녀의 이혼 문제를 둘러싼 논란 1638년(인조 16) 3월 조정에는 상반된 내용을 담은 두 개의 호소문이 올라왔다.억울한 사연을 인조에게 호소했던 주인공은 신풍부원군(新豊府院君) 장유(張維)와 전 승지 한이겸(韓履謙)이었다.그들의 호소는 모두 환향녀의 이혼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장유는 자신의 외아들 장선징(張善徵)과 속환되어 돌아온 며느리가 이혼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실절한 며느리에게 선조의 제사를 계속 맡길 수 없으니 아들이 새 장가를 들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요지였다.한이겸의 사연은 장유의 호소 내용과는 정반대였다.그는 ‘자신의 딸이 속환되어 왔는데,사위가 딸을 버리고 새 장가를 들려고 하는 것이 원통하다.’며 인조에게 선처를 호소했다. 한 사람은 시아버지의 입장에서,다른 한 사람은 친정아버지의 입장에서 전혀 상반된 호소를 하고 있는 셈이다.입장이 난처해진 예조는 대신들에게 의견을 물은 뒤 결정해야 한다고 물러섰다. 좌의정 최명길이 나섰다.그는 먼저 임진왜란 이후의 고사를 떠올렸다.‘제가 고로(故老)들에게 들었는데,왜란 뒤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당시 어떤 종실(宗室)이,송환된 아내와의 이혼을 청하자 선조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또 어떤 벼슬아치가 새장가를 든 뒤,본래의 아내가 쇄환(刷還)되자 선조께서는 후취(後娶) 부인을 첩으로 삼으라고 명하시고 본처가 죽은 뒤에야 후취 여인을 비로소 정실부인으로 올렸다고 합니다.그밖에 재상이나 고관들 가운데 쇄환되어 온 처를 그대로 데리고 살면서 자손을 낳아 명문 거족이 된 사람도 왕왕 있습니다.예(禮)는 정(情)에서 나오는 것이니 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한 가지에 구애되어서는 안 됩니다.’ 최명길은 단호했다.이혼을 허락하면 안 된다고 했다.이혼을 허락할 경우,수많은 부녀자들이 속환을 포기하고 이역에서 원귀(寃鬼)가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조, 훈신(勳臣)의 독자 장선징에게만 특별히 이혼 허락 최명길은 또한 ‘속환을 통해 돌아온 부녀자들 모두가 실절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그는 끌려간 조선 여인들 가운데 청인의 회유와 협박에도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결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또 청인들 중에도 그런 조선 여인들의 절조에 감명 받아 함부로 행동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례를 들었다.최명길은 ‘급박한 전쟁 상황에서 몸을 더럽혔다는 누명을 쓰고서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들어 환향녀들을 무조건 ‘실절한 여자’로 매도할 수는 없다고 했던 것이다. ‘인조실록’에는 장유와 한이겸의 상반된 호소 내용에 대해 최명길 이외의 다른 대신들이 어떤 의견을 제시했는지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하지만 최명길의 주장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그것은 ‘인조실록’의 사신(史臣)이 최명길의 주장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었던 것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최명길을 비판했던 사평(史評)의 핵심은 이렇다.‘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포로가 된 부녀자들은,비록 본심은 아니었지만,변을 만나 죽지 않았으니 결국 절개를 잃은 것이다.그러니 억지로 다시 합하게 해서 사대부의 가풍을 더럽힐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사평에 따르면 환향녀들이 포로가 되면서 죽지 않았던 것 자체가 이미 허물이 되고 죄가 되는 셈이다. 사평은 다시 최명길에게 화살을 돌린다.‘실절한 여자를 다시 취해 부모를 섬기고, 종사(宗祀)를 받들며,자손을 낳고 가세(家世)를 잇는다면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최명길은 백년 동안 내려온 나라의 풍속을 무너뜨리고,삼한(三韓)을 들어 오랑캐로 만든 자이니 통분함을 금할 수 있겠는가’.환향녀의 이혼 문제와 관련하여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려 했던 최명길의 주장은 철저히 매도되었다. 장유 집안의 ‘이혼 문제’는 이후에도 다시 논란이 되었다.1640년(인조 18) 9월에는 장유의 아내가 예조에 다시 호소문을 올렸다.이번에는 호소문 속에 ‘며느리의 타고난 성질이 못되어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또 편치 않은 사정이 있으니 이혼시켜 주기를 청한다.’는 내용이 있었다.당시 장유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번에도 대신들의 의견은 일단 신중했다.‘섣불리 이혼을 허락하면,부부 사이에 뜻이 맞지 않는 일이 있을 경우에도 너도나도 이혼하겠다고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인조는 고육책을 내놓았다.‘이혼을 인정할 수는 없지만,장선징이 훈신(勳臣)의 독자임을 고려하여 특별히 그에게만 허락한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그 파장은 컸다.대부분의 사대부 집안들은,청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며느리들을 내쳤고 새로운 며느리를 맞아들였다.사족 출신 환향녀들은 대부분 버림받고 말았다.사책(史冊)에도 이 여인들에 대한 언급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이 가엾은 희생자들의 비극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끌려가던 안단 “나를 죽을 곳에 빠트린다” 울부짖어 환향녀들의 운명은 가혹했지만,포로들 가운데는 끝내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속환해 줄 가족도 없고,가족은 있어도 경제적 능력이 없고,또 도망쳐 돌아올 여건도 되지 않았던 사람들은 청에 그대로 눌러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속환의 가능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던 와중에도 귀향의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났다.현종대에 도망쳐 온 안추원(安秋元)과 숙종대에 도망쳐 온 안단(安端)의 사연이 주목된다. 개성 부근에 살다가 1637년 강화도가 함락되면서 포로가 되었던 안추원은 심양으로 끌려갔다.1644년 청이 입관(入關)에 성공하자 안추원은 주인을 따라 북경으로 흘러들어 갔다.그는 1662년(현종 3) 탈출을 시도했다가 한 번 실패한 뒤 1664년 다시 시도하여 조선으로 들어왔다.산해관을 통과하고 만주를 가로지르는 대모험이었다. 조선 조정은 28년 만에 탈출한 안추원을 고향인 개성으로 보냈다.하지만 개성에는 그를 품어줄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조정 또한 그에게 생계 대책을 마련해 주지 않았다.혈혈단신의 처지에 생계마저 막막해진 안추원은 결국 북경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하지만 그는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책문(柵門)에서 체포되고 말았다. 안단의 사연은 더 기막히다.병자호란 당시 포로가 되었던 그 또한 심양을 거쳐 북경으로 들어가 사역되었다.안단은 1674년(숙종 즉위년) 자신의 주인이 행방불명되자 조선으로 탈출을 시도했다.포로로 붙잡혀 끌려간 지 물경 37년 만이었다.안단은 산해관을 통과하여 봉황성(鳳凰城)을 거쳐 압록강의 중강(中江)까지 오는 데 성공했다.하지만 강을 건너게 해달라는 그의 간청에도 불구하고,의주부윤은 그를 결박하여 봉황성으로 압송했다.청의 힐문을 의식한 조처였다.입국을 거부당하고 봉황성으로 끌려가던 안단은 “고국 땅을 그리는 정이 늙을수록 더욱 간절한데 나를 죽을 곳으로 빠뜨린다.”며 울부짖었다. 안추원과 안단의 사연은 처절하다.각각 28년,37년 만에 탈출에 성공했다.둘 모두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었지만,한 사람은 고국에서 결국 적응하지 못했고 다른 한 사람은 끝내 압록강을 건너지도 못했다.이들의 비극은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할까? 전란의 비극에 휘말렸던 수많은 생령들의 처참한 고통을 생각하면서 오늘 이 전쟁을 다시 성찰해야 할 필연성을 새삼 절감한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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