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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사폭력」 개입/폭력배 5명 검거

    서울경찰청형사기동대는 11일 신흥 조직폭력배인 「나주동아파」 두목 윤호석씨(25·폭력등 전과6범·전남 나주군 남평리)와 행동대원 남승태씨(20·특수강도등 전과3범·성동구 성수2가)등 일당 5명을 붙잡아 조사중이다. 윤씨등은 지난 3월29일 와해된 「광주동아파」 김금남씨(30·구속중)의 부탁을 받고 서울 조계사 폭력사태에 적극 가담한뒤 그 대가로 3백만원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 백정기 의사/흑색공포단 결성…일밀정 제거 앞장(이달의 독립운동가)

    ◎상해서 학도병 구출 등 항일투쟁/일군 회의장 폭파하려다 체포돼 『나의 구국일념은 강도 일제로부터 주권과 독립을 쟁취함이요,…공생공사의 맹우 여러분,대륙침략의 왜적 거두의 몰살은 나에게 맡겨 주시오,겨레에 바치는 마지막 소원을』 독립투사 구파 백정기의사(1896년 1월19일∼1934년 6월5일)가 1933년 3월17일 중국 상해의 한요릿집에 모인 일제 군간부와 중국의 친일분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비장한 결의로 떠나면서 남긴 유서다. 의사는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요리사등으로 가장해 숨어있던 일경과 일제헌병들에게 붙잡혀 1년3개월여 옥고를 치르다 끝내 조국해방의 제단에 목숨을 바쳤다. 이 거사는 비록 미수로 끝났으나 한국인과 중국인의 항일의식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후대에 평가되고 있다. 의사는 명성황후가 일제에게 시해되고 고종이 아관파천하던 해 전북 정읍군 영원면 은선리 농가에서 태어났다. 편모슬하에서 어렵게 성장하면서 독학으로 글을 익힌 의사는 일찍이 소년기부터 민족의식에 눈을 떴으며 23세 인 1919년 2월 상경,독립투사의 길을 믿아 나섰다. 서울에 도착한 의사는 사람들로부터 고종이 일제에 의해 독살됐으며 곧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고향으로 내려가 만세운동을 벌였다. 의사는 그 뒤 인천등지에서 무장독립활동을 펼치기 위한 준비를 하다 일제의 주목을 받게 되자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당시 북경에는 이회영,유자명,이을규,신채호등이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었다. 이들은 신채호가 1923년 발표한 「조선혁명선언」에 크게 영향을 받아 무정부주의를 행동강령으로 채택하고 이를 통해 독립을 관철할 것을 다짐하고 있었다. 이들이 표방한 무정부주의의 내용은 무지배,무권력의 민족혁명으로 독립을 쟁취하자는 것이었다. 의사는 이들과 만나면서 자연스레 무정부주의에 심취,한때 호남성 동정호부근에서 이상적 농촌사회 건설을 위해 애썼다. 의사는 다음해인 1924년 일본 조천수력공사장을 폭파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도쿄에 잠입했다가 관동대지진이 일어나는 바람에 계획을 포기하고 다시 북경으로 돌아온다. 북경에서 곧바로 상해로 옮긴 의사는 영국인이 운영하는 철공장에 들어가 폭탄제조기술을 익힌 뒤 1925년 상해에서 5·30총파업이 실시되자 중국인 무정부주의자들과 노동조합을 결성,독립운동의 기반으로 활용할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1927년 복건성 천주시에서 중국인 동료들과 함께 무정부주의자 양성소인 민단훈련소를 설립,농민 3천5백여명을 모아 농민자위대를 조직했다. 의사는 1930년 상해에서 동료 무정부주의자들을 규합,일본침략세력 저지작전과 밀정제거작전을 주임무로 삼는 「남화한인청년연맹」을 조직하기에 이른다. 이 조직은 나중 일제에 징용된 한인학도병 귀순작전과 포로구출작전,항일전쟁참가등 많은 공을 세웠다. 의사는 또 이 조직등을 골간으로 1931년 항일구국연맹을 조직하고 기관지로 「자유신문」을 발행,결사항일투쟁의지를 북돋우는데 힘을 기울였다. 의사는 제1차 상해사변이 일어나자 중국동지와 함께 파괴암살을 주목적으로 하는 비밀단체 「흑색공포단」을 결성,일본기관 파괴와 침략원흉의 처단활동에 나섰다. 이 흑색공포단은 결성되자마자 일제 밀정들을 다수 처형하는등 맹활약을 펼쳐 일제를 긴장시켰다. 일제는 이처럼 비정규적인 유격전이 펼쳐지자 이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상해의 고급음식점 「육삼정」에서 군간부등이 참가한 가운데 비밀회의를 개최키로 했으며 이 정보를 흑색공포단이 입수,의사가 이 음식점을 폭파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의사를 비롯한 흑색공포단원들은 이 거사를 서로 자기가 적임이라고 주장,추첨으로 의사와 동료 이강훈이 행동대원에 선정됐다. 의사등 행동대원 2명은 거사일인 1933년 3월17일 육삼정 비밀회의가 시작되기 2시간전인 하오 6시쯤 폭탄과 권총,수류탄등으로 무장을 하고 현장에 도착해 정세를 살피기 시작했다.그러나 이들은 변절한 일본인 무정부주의자로부터 사전정보를 입수한 일제가 인력거꾼·요리사등으로 변장하고 수십여명이 현장주변에 숨어 있는 것을 알아 채지 못해 그 자리에서 체포돼 거사는 불발로 끝났다. 의사등은 바로 일본으로 압송됐으며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의사는 1년3개월여 복역하다 지병인 폐결핵으로 천추의 한을 가슴에 품고 옥중에서 순국했다. 백의사의 유해는 적지 일본에 묻혔다가 광복 1년 뒤인 1946년 7월 이봉창·윤봉길의사의 유해와 함께 조국에 봉환됐으며 국민장으로 천묘의식을 치른 뒤 효창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의사의 공을 기려 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고향인 전북 영원면에는 도민의 성금을 모아 건립한 순국기념비가 서 있다.
  • 국교생 앞세운 반핵시위/최암 전국부 부장급(오늘의 눈)

    나흘째 계속되고 있는 경북 울진지역 주민들의 핵폐기물 저장시설 설치반대 시위는 예정된 스케줄 모양으로 도로점거,폐타이어 방화,쇠파이프 화염병 벽돌 등이 난무하는 과격시위로 치달았다. 그리고 예외없이 학생들의 등교거부가 이어졌다. 그 학생들의 일부는 시위대의 앞장에 서서 행동대원으로 국도를 점거,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과 맞서 투석전을 벌이기도 했다.유치 찬성주민들의 집에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들 속에도 어김없이 청소년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핵폐기물 저장시설 설치문제에 대해 해당지역 주민들은 물론 어느 누구라도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다. 그러나 방법이 문제이다.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시위는 어느 경우이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특히 자녀들의 「등교」를 자기주장 관철을 위한 볼모로 삼는 행위는 지각있는 학부모들이 할일이 아니다. 어른들이 앞장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가로막아 어린손에 연필 대신 돌멩이와와 각목을 쥐어준뒤 시위에 가담시키고 있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깝다못해 허탈하게 하고 있다. 철부지 국민학생들까지 어른들의 싸움판에 끌어들인 행동은 어떠한 명분을 붙여도 설득력이 없다.어른들의 그러한 모습이 그대로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전달되어 우리의 전통과 미래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 부모들을 보고 자란 어린이들의 장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부모를 무참하게 살해한 패륜아를 보며 인성교육이나 도덕교육문제가 크게 논의되고 있는 시점이다.잘못된 교육은 부모의 가슴에 서슴없이 칼을 꽂는 패륜으로 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안겨주고 있다. 자녀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특히 무엇이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인지를 가르쳐야 할 기성세대가 『우리 뒤뜰에는 안된다』는 극도의 님비의식과 덜 성숙된 민주시민의식이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전통윤리관을 좀먹게 하는게 아닐까하는 안타까움이었다.
  • 안동 폭력배 53명 적발/2억대 술값 외상·폭력 행사

    【안동=한찬규기자】 경북 안동경찰서는 27일 안동시내 유흥가를 무대로 폭력을 행사해온 「대명회」소속 조직폭력배 53명을 적발,행동대원 권태용씨(24)등 7명을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범죄단체 조직죄)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지난 90년부터 지금까지 안동 파크호텔 숙박비 7천만원을 지불하지 않는등 안동시내 유흥가등지에서 무전취식을 일삼으며 폭력을 행사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의 외상값 만도 M룸살롱 술값 8천여만원등 2억여원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지난 2월25일 M룸살롱에서 검찰간부를 폭행하는가 하면 대구지검 안동지청장의 승용차의 뒷유리창를 부수고 협박성 경고문을 써붙인 혐의도 받고 있다.
  • 폭력배75명 조기 검거령/경찰청/출소자들 새조직 결성 차단

    경찰청은 22일 최근 교도소를 출소한 폭력배들이 새로운 폭력조직을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판단,6월말까지 조직폭력배에 대한 수사를 강화하도록 전국 경찰에 지시했다. 경찰은 90년 「범죄와의 전쟁」기간에 구속된 조직폭력배 3천17명 가운데 2천1백여명이 이미 출소,일부가 폭력조직 재건이나 신흥 폭력조직과의 연계를 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에따라 다음달 15일까지 관내 유흥업소등을 점검,활동이 예상되는 폭력배들의 명단을 작성해 폭력사건이 발생할 경우 범인을 즉각 검거할 수 있도록 대비할 계획이다. 경찰은 또 대형유흥업소·안마시술소등을 대상으로 폭력조직의 실태를 파악한뒤 기습단속및 기획수사를 통해 유흥가기생 조직폭력배·영세상인 갈취 폭력배·학교주변 불량배등을 중점 단속하기로 했다. 경찰은 이와함께 수배중인 폭력조직두목및 행동대원 75명에 대해서도 조기검거령을 내렸다.
  • 실종신도 4명 피살 가능성/검찰/영생교 조교주 등 5명 재소환

    영생교 신도 실종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강력부(유창종부장검사)는 21일 탈퇴 신도중 단순가출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수사대상에 올라있는 실종자는 모두 11명이며 이 가운데 4명은 교단에 의해 납치·살해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이 밝힌 실종자 4명은 영생교 기관지 승리신문 전편집국장 전영광씨(50),전총무 이영구씨(53),신도 안경렬(36)·김철순씨(35) 등이다. 검찰조사결과 전씨는 92년2월 교주 조희성씨의 비리를 폭로하는 유인물을 뿌린뒤 실종됐으며 이씨는 7년동안 조교주의 비서역을 해오다 90년11월 영생교 비리에 관한 진정서를 관계기관에 낸 직후 행방불명됐고 안씨도 87년 교단을 이탈한 직후 실종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날 수감중인 교주 조씨,청년회장 김정웅씨(49),행동대장 이광준씨(39) 등 5명을 서울구치소에서 소환,신도 실종사건에의 개입여부를 집중 조사했다. 검찰은 특히 영생교측이 89년부터 열성신도 수십명으로 「교단사수대」를 조직,이탈한 신도들을 감금·폭행해온 혐의를 잡고 지명수배된이 조직의 총책 나경옥씨(52)와 행동대원 김진태씨(55)를 붙잡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 영생교 「신도납치」 확인

    ◎간부 2명 긴급수배/탁씨 살해 개입여부도 수사 영생교 비리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은 19일 영생교가 과거 여러건의 폭력·감금사건에 개입해온 사실을 밝혀내고 이 교단이 18일밤 발생한 종교문제연구가 탁명환씨(56)피살사건에 개입됐는지에 대해 집중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또 영생교신도였다가 탈퇴한 3∼4명이 영생교행동대원들에게 테러를 당한 뒤 실종된 혐의를 잡고 이 교단의 신도납치·감금 등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지난 92년10월 탁씨가 집앞에서 피습됐을 때도 영생교신도를 범인으로 지목했으며 최근에 MBC­TV에서 방영된 「PD수첩」에 출연,영생교를 비판하는 인터뷰를 한 뒤 2차례 협박전화를 받은 점을 중시,영생교가 개입됐을 것으로 보고 배후세력을 캐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지난 89년5월 영생교를 탈퇴한 신모교수 피습사건 ▲같은 해 9월 민주당 제정부의원이 운영하던 경기도 시흥시 소재 재야단체 「한울타리」 피습사건 ▲지난 92년9월 영생교비리를 내사하던 경찰관 감금·폭행사건 등도 영생교신도가 가담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그동안 영생교신도 25명이 실종되거나 살해됐다는 신도가족들의 피해진정서가 접수돼 조사를 벌여왔다』며 『영생교행동대원 10여명의 폭행 및 감금혐의를 확인,추적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에 따라 지난 85년부터 92년까지 실종된 이 교단 신도들을 불법구금·폭행한 영생교총무 나경옥씨(51·충남 아산군)와 「행동대장」 김진태씨(55·경남 마산시 합포동)등 2명을 지명수배하는 한편 긴급구속장을 발부,검거에 나섰다. 검찰조사결과 나씨는 영생교를 탈퇴한 신도들에 대한 테러를 지시하는 등 「배교자처단」의 총책을 맡아왔으며 김씨는 나씨 휘하의 행동대원 20여명중 한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또 이 교단 승사(전도사) 이광준씨(39)와 청년회간부 김병효(38)·김광연(33)씨를 검거,철야조사한 결과 이씨가 신도들로부터 1억7천만원을 사취한 사실을 밝혀내고 20일 이씨를 사기 및 횡령혐의로,이씨와 범행을 도운 두 김씨를 배임 등 혐의로 각각 구속하기로 했다. 한편 지난 1월12일 사기·횡령·감금폭행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영생교교주 조희성피고인(63)은 지난 18일 변호인을 통해 서울형사지법 8단독 김상근판사에게 보석을 신청했다.
  • 이스라엘군 수천명/요르단강서안 증파

    【예루살렘 로이터 연합】 이스라엘군은 날로 가열되고 있는 유태정착민과 팔레스타인간의 유혈충돌사태를 막기위해 수천 병력을 점령지인 요르단강 서안에 증강 배치했다고 보안소식통들이 8일 밝혔다. 이스라엘군 라디오방송은 팔레스타인자치협정 이행시점을 닷새 앞두고 이번에 요르단강서안에 배치된 군병력은 지난 몇년사이에 최대 규모라고 보도했다. 소식통들은 또 이스라엘군이 점령지내 유태정착민에 대한 폭력사태와 관련,팔레스타인 과격파 행동대원들을 체포했다고 말했다.
  • PLO 친아라파트계 파타파/대 「이」 무장투쟁 재개 선언

    ◎이스라엘,레바논에 미사일공격 【칸 유네스(가자지구)·카이로·시돈 AFP 로이터 연합】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안의 친야세르 아라파트의장계 행동대인 파타파는 29일 이스라엘측의 거듭된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대이스라엘 무장투쟁을 재기키로 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파타파의 한 행동대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이스라엘이 협정을 깨뜨렸기 때문에 우리가 이같은 발표를 하게 된것』이라면서 28일밤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숨진 팔레스타인 행동대원 아부 리쉬(20)의 복수를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라파트 PLO의장은 지난9월 13일 이스라엘측과 평화자치협정을 체결함에 따라 PLO대원들에게 대이스라엘 휴전을 명령했는데 파타파는 그동안 이 휴전명령에 복종해왔다. 이에앞서 이스라엘군 헬기들이 28일 레바논 남부의 팔레스타인 난민촌내 무장세력 거점들을 미사일로 공격,팔레스타인인 3명이 부상했다고 소식통들이 전했다. 이번 공습은 지난 9월 13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이스라엘이 점령지내 팔레스타인인의 자치를 약속한 평화협정을체결한 이래 레바논 영토내 팔레스타인인을 대상으로 취해진 첫 공격이다.
  • 이진삼씨 구속/검찰/“정보사령관때 정치테러 지시”

    정보사 민간인 테러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조준웅부장검사)는 31일 이진삼전정보사령관(57·전체육청소년부장관)이 86년 당시 양순직 신민당부총재에 대한 테러를 지시한 사실을 밝혀내고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수감했다. 이씨는 정보사령관으로 재직하던 86년 4월초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 박동준씨(55·미국도피중)를 통해 정보사 3처장이었던 한진구씨(54·남성대 골프장 대표)에게 양의원에 대한 테러를 지시한 혐의를 받고있다. 검찰은 이씨가 테러를 지시했거나 사후에 보고를 받은 사실조차 없다고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으나 이미 구속된 이상범중령(44)과 당시 정보사 3처장 한씨등을 군검찰이 조사한 결과 이씨가 테러를 지시한 사실이 명백히 밝혀져 구속수사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수사결과 이전정보사령관­박전정보처장­한전정보사3처장의 경로를 통해 『양의원을 생명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혼내주라』는 지시를 받은 이전중령이 김형두씨(41)등 행동대원 2명을 선발한뒤 3일간의 사전답사를 거쳐 4월 29일 양의원을 주먹으로 때려 상처를 입힌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또 85년 10월 김영삼 당시 민추협의장집 절도사건 역시 한씨에게 박씨를 만나 임무를 부여받아 실행에 옮기도록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이사건은 공소시효가 끝나 공소내용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검찰은 특히 이같은 범행을 지시하는 과정에서 보안사등 다른 정보기관도 개입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구속 수감중인 이종구 당시 보안사령관도 불러 조사 할 계획이다.
  • 이종구씨와 사전모의 여부 초점/이진삼씨 구속의 배경

    ◎관련자 진술로 사법처리 자신감/범행지시등 자백 확보가 급선무 정보사의 민간인테러사건은 테러를 직접 지시한 혐의를 받고있는 이진삼전정보사령관이 31일 구속됨으로써 1차 수사가 마무리 됐다. 검찰은 이전사령관이 테러에 개입된 사실을 밝혀낸 군 수사당국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뒤 이씨에 대한 사법처리방침을 굳히고 혐의를 입증할 증거와 관련자 진술을 확보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해왔다. 하지만 사건의 열쇠를 쥐고있는 한진구전정보사3처장(54·예비역준장)과 박동준전보안사정보처장(55·예비역소장)이 잠적하거나 해외로 도피하는 바람에 이들의 직접 진술에 의한 이전사령관의 혐의입증과 사법처리는 사실상 어렵거나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김영삼 당시 민추협공동의장집 절도사건과 양순직의원에 대한 테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한씨 등을 먼저 소환해 이전사령관의 지시여부를 확인한뒤 그것을 토대로 이씨를 사법처리하는 것이 무리없는 수사의 수순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그러나 지명수배된 한씨와 박씨에 대한 조기 신병확보가 어렵게 되자 한씨 등이 군수사당국에서 진술한 내용과 이미 구속된 이상범중령(44)등 행동대원들에 대한 조사결과만으로도 이전사령관의 사법처리가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이씨를 먼저 소환해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이씨의 구속으로 김영삼 민추협공동의장집등 최소 3건의 정치인테러가 5공당시 정보사령부의 사전계획에 따라 실행에 옮겨진 사실이 재확인된 셈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검찰수사에서는 보안사가 어떤 식으로 개입됐는지와 이종구 당시 보안사령관이 이진삼씨와 모의를 했는지는 밝혀지지않아 앞으로의 검찰수사방향도 이 부분에 초점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드러난 보안사의 개입정도는 미국으로 달아난 박동준 당시 정보처장이 한전정보사3처장에게 테러임무를 부여했으며 테러자금중 일부가 보안사에서 흘러나왔다는 정도이다. 따라서 박씨가 귀국해야만 보안사의 개입여부가 명백히 드러나겠지만 자진귀국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이상 율곡사업비리에 연루돼 구속 수감중인 이종구씨를 직접 조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검찰이 이 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철야조사에서 범행을 지시한 적도,테러가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한 이진삼씨의 자백을 받아내는 일이다. 정보사와 보안사가 범행을 공모했다면 직접 지시를 내린 이씨가 그 사실을 몰랐을리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씨가 범행을 시인하더라도 85년 발생한 김영삼 당시 민추협의장집 절도사건은 공소시효 7년이 이미 지나 처벌은 불가능하다. 이씨의 범죄사실에도 이 사건은 제외됐다.
  • 이진삼씨 철야조사/정보사 테러/범행지시여부 등 추궁

    ◎오늘안에 영장 청구/검찰 정보사 민간인 테러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조준웅부장검사)는 30일 지난 86년 양순직신민당 부총재에 대한 테러를 지시한 혐의를 받고있는 당시 정보사령관 이진삼씨(57·전체육부장관)를 소환,철야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씨를 상대로 ▲지난 86년 정보사 3처장이었던 한진구씨(54·남성골프장 사장)에게 양의원의 테러를 지시했는지 여부 ▲이 사건과 관련해 당시 양심선언을 한 뒤 노량진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행동대원 김형두씨(41)의 신병을 인수하도록 지시했는지 여부 ▲보안사 등 다른 정보기관의 개입여부등에 대해 집중추궁했다. 검찰은 이와함께 이미 공소시효(7년)를 넘겨 사법처리가 불가능하게 된 지난 85년 10월의 김영삼 당시 민추협공동의장 집 서류절취 사건에 대해서도 진상규명 차원에서 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이씨의 혐의내용을 확인한뒤 빠르면 31일중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이에 앞서 지난 14일 군검찰부는 당시 정보사 3처장인 한씨를 소환조사한 결과 『이사령관의 지시로 85년 10월10일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 박동준준장(55·예비역 소장·미국 도피중)을 만나 김영삼민추협공동의장 집에서 정보가치가 있는 문건을 훔쳐내라는 임무를 받았으며,86년 4월 양부총재를 폭행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사령관에게 이를 보고하자 그대로 시행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을 받아냈었다. 검찰은 또 구속된 이상범중령(44)을 조사한 결과,『양의원 테러사건과 관련해 김형두씨가 양심선언을 한 뒤 이진삼사령관에게 심한 질책을 받았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군검찰부에서 이미 한씨의 진술을 확보해 둔데다 다른 참고인들도 이씨의 범행지시 사실에 대해 일부 진술하고 있는만큼 잠적한 한씨를 조사하지 않더라도 이씨의 사법처리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씨는 이날 하오 2시35분 승용차편으로 서울지검 청사에 도착,보도진들의 질문에 『테러를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대답한 뒤 11층 특별조사실로 올라가 서울지검 공안1부 황교안검사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 이진삼씨 주내 소환/정보사 테러수사

    정보사 민간인 테러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조준웅부장검사)는 24일 정보사소속 이상범중령(44·구속)을 소환,조사한 결과 이중령이 범행이후 최근까지 김형두씨등 당시 행동대원들을 수차례 만나 용돈명목으로 금품을 제공해온 사실을 밝혀내고 이 돈이 행동대원들의 범행폭로를 막기위해 정보사 차원에서 제공됐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또 잠적한 당시 정보사 3처장 한진구씨(54·남성대골프장 대표)가 특정세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보호되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한씨에 대한 소재수사를 장기수사 체제로 전환키로 했다. 한편 검찰은 한씨에 대한 조사가 계속 지연됨에 따라 당시 정보사령관 이진삼씨를 내주중 불러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 87년 괴한에 당한 폭행/정보사관련 수사의뢰/신정당 김동주씨

    신정당(대표 박찬종)의 김동주대변인은 22일 「민추협」재야협력부장으로 있던 지난 87년 3월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청수빌라앞 골목길에서 괴한 3명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경찰에 신고했으나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김대변인은 사건당시 괴한들이 박찬종 신민당 인권옹호위원장이 발간 준비중이던 박종철고문치사사건 진상보고서등 인권백서 자료일체를 탈취해 간 점등으로 미루어 최근 폭로된 정보사 민간인 테러단의 행동대원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 이진삼씨 테러 개입/백 대령 진술/“행동대원 신병인수 지시”

    ◎정보사테러 3명 환문 정보사 민간인 테러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조준웅부장검사)는 21일 구속된 정보사소속 이상범중령(44)과 당시 정보사 기술지원단장 백모씨(예비역 대령)·행동대원 김영춘씨등 3명을 소환조사한 결과 이진삼 당시 정보사령관이 깊숙이 개입한 혐의를 잡고 이 부분을 집중조사중이다. 백씨는 검찰조사에서 『86년 4월 당시 양순직 신민당부총재 테러사건으로 서울노량진경찰서에 보호유치중이던 행동대원 김형두씨(41)의 신병을 인수한 것은 이진삼 당시 정보사령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며 『김씨가 민간인 신분이었지만 이사령관으로부터 정보사출신 관리대상인물 가운데 사고를 친 놈이 하나 있으니 데려와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 이진삼씨 내주 소환/정보사테러/이종구 보안사령관(당시)도 조사

    ◎행동대원 김형두씨등 4명 출국금지·수배 정보사 민간인 테러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조준웅부장검사)는 15일 이진삼전정보사령관(57·전체육청소년부장관)이 이 사건에 직접 개입한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내주초 이씨를 소환,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이씨의 테러사건 개입혐의가 확인될 경우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등 혐의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한진구전정보사 3처장(54)도 소환 조사하기로 하고 소재파악에 나서는 한편 테러사건을 폭로한 행동대원 김형두씨(41·무직)와 이모·김모·주모씨등 4명에 대해 출국금지조치를 내리고 전국에 수배했다. 검찰은 군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은뒤 행방을 감춘 한씨의 소재가 빠른 시일내에 확인되지 않을 경우 한씨도 지명수배키로 했다. 검찰은 이와함께 한씨가 군수사기관에서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진술한 전 보안사 정보처장 박동준씨(55)가 해외로 달아남에 따라 당시 이종구보안사령관도 율곡사업비리 수사가 마무리되는대로 소환 조사할계획이다. 검찰은 한씨가 군당국의 조사에서 『이진삼사령관으로부터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 박씨를 만나보라는 지시를 받고 85년 10월 10일 박씨를 만나 당시 김영삼 민추협 공동의장 집에서 정보가치가 있는 문건을 훔치라는 임무를 받았다 』고 진술한 점에 비춰 이사령관이 이 사건에 개입했을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검찰은 이와함께 양순직의원 테러사건의 수사기록을 서울지검 남부지청으로부터 넘겨받아 검토중이며 필요할 경우 테러단을 운영하고 상습절도등을 교사한 혐의로 지난 8일 군수사당국에 구속된 당시 정보사소속 이상범중령(44)도 불러 조사키로 했다.
  • 이종구­이진삼씨 사전협의여부 초점/정보사 테러사건 수사전망

    ◎“군 핵심세력의 정치개입 사건” 분석/범죄혐의 확연… 법적용땐 신중자세 이진삼전정보사령관(57·전체육청소년부장관·육사15기)이 정보사령부의 정치인 테러사건을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전사령관에 대한 소환 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군검찰로부터 이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지검은 이전사령관이 85년 10월의 김영삼 당시 「민추협」의장집 침입사건과 86년 4월의 양순직 당시 신민당부총재 테러사건에 직접 개입했다는 군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해 적용법률의 검토작업에 들어가는등 본격 수사채비를 갖추고 있다. 검찰은 이전사령관과 한진구 당시 정보사 3처장(54·육사 18기·예비역소장·남성대 골프장대표) 박동준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55·갑종151기·예비역소장)에 대한 1차조사에서 절도와 폭행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진 만큼 사법처리에는 문제가 없다고 보고 내주중 이들을 소환·조사한다는 방침아래 이들의 소재지를 파악하기위한 수사도 함께 벌이고 있다. 또 정보사의 테러사건에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도 개입한 사실이 드러남에따라 당시 보안사의 고위관계자들에 대한 소환도 불가피해져 이 사건 수사는 확대될 조짐이다. 그러나 한씨를 만나 테러임무를 부여한 이 사건의 핵심인물 박전보안사 정보처장이 해외 도피중이어서 보안사 관련부분에 대한 수사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따라서 율곡사업비리로 16일 대검중앙수사부에 소환될 예정인 이종구 당시 보안사령관이 구속되는대로 구치소에서 불러내 이전정보사령관과 테러에 관한 사전협의가 있었는지와 박전보안사 정보처장에게 이전사령관과는 별도로 지시를 했는지,아니면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정보사의 테러와 박전정보처장의 개입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는지를 가려낼 방침이다. 하지만 전정보사 3처장 한씨에 대한 수사가 시작될 무렵 박씨가 도피성 출국을 한 것으로보아 보안사의 개입은 명백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있다. 이같은 정황으로 볼때 결국 정보사의 테러사건은 보안사와 정보사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정치인들에 대한 테러계획을 세우고 민간인 행동대원들을 고용해 폭행과 절도를 저지른 군핵심세력의 정치개입사건으로 검찰은 분석하고 있다. 다만 군당국의 수사과정에서 정보사와 보안사관련자들의 범죄혐의는 이미 확연히 드러났지만 법적용문제에 있어서는 검찰도 신중을 기하고있다. 검찰이 현재 고려하고 있는 죄목은 양순직의원 폭행사건의 경우 상해 또는 폭행죄,김영삼의장집 절도사건은 상습절도죄이며 더불어 교사 또는 공범죄를 적용해 처벌한다는 입장이다. 보다 명확한 혐의와 법조항 확정은 관련자 소환조사가 마무리지어지고 당시 양의원 사건수사를 했던 서울지검남부지청의 수사기록등 관련기록을 넘겨받아 면밀한 법률검토를 한뒤 이뤄질 전망이다.
  • 군정보기관이 주도한“정치공작극”/드러나는「정치인테러」수사 중간점검

    ◎열쇠 쥔 박씨 도미… 물증확보가 과제/이진삼씨 부인… 배후규명도 난제로 5공후반 정보사의 정치인 테러사건은 정보사와 보안사(현 기무사)등 2대 군정보기관이 「합작」한 정치공작극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충격적이다.보안사가 「머리」역할을,정보사가 「수족」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이번 사건은 이진삼당시 정보사령관의 지시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군검찰에서 2회에 걸쳐 참고인 조사를 받은 한진구 당시정보사3처장의 진술에 따른 것이지만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신빙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한씨는 군검찰에서 『당시 이진삼사령관으로부터 보안사 정보처장 박동준준장을 만나보라는 지시를 받고 박준장으로부터 테러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물론 한씨의 진술에 대해 군검찰의 조사를 받은 이씨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하고 있으며 박씨는 한씨가 조사받기 전인 지난 10일 미국으로 출국해버려 대질신문은 하지 못하고 있다.이 때문에 이번 사건은 자칫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정치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미국으로 「도주」한 박씨가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박씨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는 한 이번 사건의 배후를 밝히기는 어렵게 되었다. 군검찰이 현재까지 밝혀낸 부분은 행동대원 총책으로 활동했던 이상범중령(구속)에게 한씨가 범행을 지시했다는 사실일뿐 「정치적 연결고리」등의 배후세력은 전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따라 이번 사건과 관련된 한씨등 민간인 수사를 맡을 서울지검의 수사방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군검찰은 특히 박씨가 한씨의 소환조사가 이루어 지기 불과 4시간 전에 미국으로 뚜렷한 이유도 없이 출국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한씨가 소환되기 전에 「입맞춤」을 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으로 연루된 보안사 조직이 노출될 수도 있다고 판단,도피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당시 보안사의 정보처장직은 대민관련은 물론 각종 정치정보를 역이용,「공작정치」를 자행해 왔다는 비판을 받았던 자리다.박씨는 이 때문에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이종구전국방장관등 「상부선」에 미칠 정치적 파장을 우려,피신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적으로 과거 군사정권의 산물인 공작정치의 한 표본이라 할 수 있다.이 점에서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정치적 의혹이 더욱 증폭되면서 파문을 일으킬 조짐이다.
  • “정치인 테러 지시”/한진구 당시 정보사 3처장 시인

    정보사 정치인 테러사건을 수사중인 국방부 합동조사단(단장 유순곤대령)은 8일 테러가 행해졌던 85년 당시 정보사 3처장이었던 한진구대령(53·육사18기·예비역준장·경기도 성남시 남성대골프장 대표)이 테러단을 운영하면서 범행을 지시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한씨를 7일에 이어 이날 다시 참고인자격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조사에서 한씨는 당시 대통령 직선제 개헌요구등 시국이 불안해지자 개인적 충성차원에서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테러단을 조직한 뒤 이상범중령(44·구속)에게 정치인 테러를 지시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씨는 그러나 범행대상자는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상급자들은 이 사건에 관계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한씨는 85년 10월 당시 행동대원들이 민추협 공동의장이었던 김영삼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에 침입,훔쳐온 명함·달력·녹음테이프등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소각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수사당국은 한씨와 이중령을 대질신문,한씨의 진술 신빙성을 조사한 뒤 한씨가 민간인 점을 감안,금명간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군수사당국은 이날 또 이번 사건에 관계된 것으로 알려진 현역 영관급 장교 3명을 소환,테러단의 조직 및 활동상황등에 대해 집중조사를 벌였다.
  • “군 특수부대,정치테러단 운영”/행동대원 폭로

    ◎“5공말 양순식씨 폭행했다”/85년엔 김대통령집 침입,서류절취 군특수부대가 5공말기인 지난 85∼86년 이 부대 전역자 출신들로 정치테러단을 조직,야당의원 테러를 지시하는등 조직적인 범행을 저질렀다고 이 부대의 한 전역자가 폭로,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이 부대 전역자로 테러단에 가담해 활동해왔다는 김형두씨(41·무직)는 5일 하오 기자들과 만나 『이 부대 이모대령(당시 중령)의 지시로 지난 86년 4월 양순직 신민당 부총재에 대한 테러를 감행했다』고 주장했다.김씨는 테러단은 이모대령이 자신을 포함,이 부대 전역자 출신들을 규합,운영해왔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전역후 막노동등으로 바닥생활을 하던중 평소 알고지내던 같은부대 출신 주모씨의 알선으로 「이부장」으로 불리던 이모대령을 만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테러단에 가담하게 됐다고 밝혔다.김씨는 이후 지난 86년 4월 이모대령과 열흘간에 걸친 합숙끝에 같은부대 출신 이모씨와 함께 양의원 집 앞에서 양의원의 얼굴을 때려 이 두개를 부러뜨렸다는것이다. 김씨는 이와함께 지난 85년 10월 중순 이 부대 출신 4명외에 같은부대 선후배 전역자 주·김·이·정모씨(38·서울K교회전도사)등 4명이 상도동 김영삼 당시 민추협공동의장 집에 침입,서류등을 탈취한 적이 있다는 얘기를 당시 김대통령집 침입에 가담했던 주모씨로부터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대통령집 침입사건에 직접 가담했다는 정모씨도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회견에 불참,김대통령집 침입사건의 자세한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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