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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파 방정환의 동극…‘말:맛’ 들어보셨나요?

    소파 방정환의 동극…‘말:맛’ 들어보셨나요?

    2022년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소파 방정환 선생의 동극 6편이 연극으로 동시대 어린이들을 만난다.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ASSITEJ Korea, 이하 아시테지코리아)는 2022-2023 어린이날 100년, 어린이청소년극 100년을 맞아 ‘방정환의 말:맛 창작소’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으로 100년을 앞서 어린이에 대한 존중과 주체성을 강조한 방정환 선생의 정신이 담긴 동극 6편이 1인극 형태로 제작돼 2일부터 오는 6일까지 초등학교, 지역아동센터 등 다양한 공간으로 찾아갈 예정이다. 어린이극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방정환 선생은 1923년 3월 창간된 ‘어린이’ 잡지에서 ‘토끼의 재판’(1923), ‘노래 주머니’(1923) 등 어린이를 위한 동극을 소개한 바 있다. 우리 옛이야기, 창작극 그리고 명작동화 등을 극으로 꾸민 그의 모든 동극에는 창작자로서의 방정환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 있다.  ‘방정환의 말:맛 창작소’는 1인극 형태로 이야기꾼(배우)이 중심이 되어 한국어의 ‘말:맛’이 살아있는 이야기에 연극 양식을 개발시키는 창·제작에 목적을 두고 기획됐다. 총 6개의 선정 작품은 스토리씨어터, 인형극 등 다양한 양식과 장르로 구성됐다. 방정환 창작극은 2편이다. (주)극단 민들레의 ‘느티나무’는 배우가 700년 가까이 된 느티나무로 분하여 긴 세월 겪었던 굴곡진 이야기를 시종일관 들려준다. 느티나무의 이야기에서 한국의 아픈 역사가 살그머니 배어 나온다. 어린이 관객들이 나무 밑에 둘러앉아 느티나무의 하소연을 듣는 분위기를 연출할 계획이다.  방정환 선생이 각색한 옛이야기 또는 원작 4편도 선보인다. 햇살놀이터의 ‘호랑이와 아이’는 동물원에 놀러온 아이가 우리 속 호랑이를 만난다는 내용을 도입해 현대적으로 재각색했다. 안데르센 원작인 극단 문(門)의 ‘그것 참 좋다!!’는 말 한 필을 암소로, 그리고 오리로, 또 오리에서 보다 더 미천한 것으로 바꾸다 결국 썩은 능금 한 보자기로 바꾼 할아버지와 할머니 노부부의 이야기이다. H작업실의 ‘노래주머니’는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연으로 관람하는 어린이 관객 모두가 공연의 일부가 된다. 한 명의 이야기꾼이 도깨비와 박 서방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린이 관객들은 혹부리 영감이 살고 있는 마을의 도깨비가 되어 상상여행을 하는 구조의 유쾌한 공연이다. 마지막으로 작은극장H의 ‘토끼의 재판’은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뻔한 사람을 꾀를 내어 구해주는 토끼의 이야기가 일상 속 박스를 사용한 놀이와 상상의 무대로 구현된다.  5월 2일을 시작으로 찾아갈 공간은 서울 구립상계1동 지역아동센터, 서울지역아동센터, 다솔지역아동센터, 인천 남동초등학교를 비롯하여 파주어린이책잔치 문발살롱과 메인스테이지 등이다. 특별히 제20회 파주어린이책잔치에서 공연 예정인 ‘토끼의 재판’(5월 5일(목) 16:00 파주어린이책잔치 문발살롱)과 ‘동무를 위하여’(5월 6일(금) 14:00 파주어린이책잔치 메인스테이지)는 누구나 관람할 수 있는 무료 공연으로, 어린이날을 기점으로 파주를 찾은 모든 어린이 및 가족 관객에게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올해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이하여 전국 어린이 관련 문화예술단체에서 ‘어린이날 100주년 사업단’을 발족하고 어린이의 주체성을 높이 세웠던 방정환 선생의 뜻을 이어가고자 다채로운 사업들을 준비하고 있다. 2023년은 어린이해방선언(인권선언) 100년, 어린이청소년극 100년이 되는 해이다. 어린이·청소년 공연예술계에서는 배우이자 극작가, 연출가였던 방정환 선생을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또한 배우의 연기와 한국말의 선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어린이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던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 정신을 실천할 방침이다. 방지영 아시테지코리아 이사장은 “이번을 계기로 배우의 기량과 희곡의 힘이 보이는 방정환의 ‘말:맛’ 공연이 하나의 양식이 되길 희망한다”며 쇼케이스를 본 소감으로 “어린이들에게 상당히 사랑받을 것”이라 예고했다.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체육진흥공단, 어린이날100주년기념사업단이 후원했으며, 자세한 내용은 아시테지코리아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인제 남전리에 산림치유마을…25억 들여 내년 완공

    인제 남전리에 산림치유마을…25억 들여 내년 완공

    강원 인제 남면 남전리에 산림치유마을이 조성된다. 인제군은 ‘햇살 산림치유마을 조성사업’ 실시설계용역을 이달 중 마무리 짓고 공사에 들어간다고 1일 밝혔다. 이 사업은 산림치유센터를 조성해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국비 포함 25억원이 투입된다. 산림치유센터는 남전리 499㎡ 부지에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진다. 1층은 다목적체험실과 건강측정실, 2층은 온열체험실과 치유쉼터로 이뤄진다. 완공 및 개장 시기는 내년이다. 김춘모 인제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은 “송이, 능이버섯 등이 자생하는 산촌마을인 남전리에 치유센터가 만들어져 도시민들에게 힐링과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정호연, 이게 사람 허리야?…개미허리에 복근 대박

    정호연, 이게 사람 허리야?…개미허리에 복근 대박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좋은 연기력을 모여 준 모델 겸 배우 정호연이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복근과 함께 잘록한 개미허리를 과감히 드러냈다. 정호연은 27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사진 두 장을 올렸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해외로 보이는 배경에서 정호연이 파마머리를 양 손을 쓸어올린 채 햇살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크롭톱을 입고 군살 없는 허리라인은 물론 탄탄한 복근까지 과시했다. 여기에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몸매 역시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한편 정호연은 지난해 9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출연해 전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최근 조 탈보트 감독의 신작 영화 ‘더 가버니스’(The Governesses)에 주연으로 캐스팅돼, 리우드 스타 릴리 로즈 뎁 및 르나트 제인제브와 함께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 비이커, ‘2022 서머 드레스 캡슐 컬렉션’ 출시… “햇살·자연과의 한때 표현”

    비이커, ‘2022 서머 드레스 캡슐 컬렉션’ 출시… “햇살·자연과의 한때 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컨템포러리 멀티숍 비이커(BEAKER)가 ‘2022 서머 드레스 캡슐 컬렉션’을 출시했다. 이 컬렉션은 블루, 핑크, 옐로, 그린 색상의 ‘패치워크’(여러 가지 색상·무늬·소재·크기·모양의 천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드는 기법) 패턴과 유니크한 자수 모티브를 주로 활용해 디자인했다. 따스한 햇볕, 싱그러운 자연과 함께하는 휴가의 한때를 떠올리도록 표현했다는 게 비이커 관계자의 설명이다. 2022 서머 드레스 캡슐 컬렉션은 드레스를 비롯해 블라우스, 스커트, 티셔츠, 니트, 데님 팬츠 등으로 구성됐다. ▲다양한 색상이 조합된 패치워크 프린트와 입체적인 실루엣을 적용한 민소매 드레스 ▲큼직한 옷깃과 벌룬 소매, 스커트 셔링이 돋보이는 민트 색상의 반팔 드레스 ▲러플 디테일의 비대칭 옷깃이 독특한 미니 원피스 ▲핀턱 디테일로 볼륨감을 준 자수 블라우스와 풀 스커트 등이다. 또한 빈티지한 크로셰 디자인의 니트 베스트와 카디건, 워크웨어 무드의 데님 오버롤 등의 아이템을 조화한 스타일링도 함께 선보였다. 제품들은 한남·청담 플래그십 스토어를 비롯한 전국 매장과 삼성물산 패션부문 패션·라이프스타일 전문몰 SSF샵에서 판매된다. 한편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 아미(AMI)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푸마(PUMA)와 손잡고 스포츠웨어 디자인에 테일러링을 접목한 협업 컬렉션을 출시했다. 아미 관계자는 “미니멀한 브랜딩, 뉴트럴한 색상과 대담한 색상의 조합, 고급스러운 소재를 바탕으로 컬렉션을 구성했다”며 “클래식 스포츠웨어의 실루엣을 한층 업그레이드하는 한편 시그니처 심볼인 아미 하트(Ami de Coeur)와 푸마의 로고를 다양하게 조합해 신선함을 더했다”고 말했다. 이 컬렉션은 티셔츠, 스웻셔츠, 재킷, 후디, 팬츠 등의 의류와 버킷햇, 커브햇, 숄더백, 그립백 등의 액세서리로 구성됐다. 또한 푸마의 풋웨어인 ‘슬립스트림 Lo(Slipstream Lo)’, ‘스웨이드 크레페(Suede Crepe)’, ‘스웨이드 마유(Suede Mayu)’도 내놨다. 송태근 비이커 팀장은 “비이커는 매년 자체 상품인 오리지널 라인을 통해 드레스 컬렉션을 선보이면서 여성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며 “여유로운 휴가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올여름 신상품들로 기분 좋은 스타일링을 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 몸만 오시라, 놀고먹어도 깨우칠지니

    몸만 오시라, 놀고먹어도 깨우칠지니

    “편안하게 온몸을 이완시킵니다. 두둥실 허공으로 올라갑니다. 편안합니다. 고요합니다. 깊이깊이 들어갑니다.” 각산 스님의 조언을 따라가다 보면 잠시나마 열반의 세계에 다녀온 듯하다. 참가자들은 와선(누워서 하는 명상) 자세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숨을 고른 채 명상하며 속세의 번뇌를 씻어내는 시간을 가졌다. 20일 경북 문경 세계명상마을에서 햇살이 따뜻한 오후에 펼쳐진 평화로운 풍경이다. 국내 최초로 ‘국민 선방(禪房·참선방)’을 표방하는 세계명상마을이 20일 공식 개원했다. 세계명상마을은 2015년 전국선원수좌회의 고우·적명 스님 등 한국 대표 선승들이 건립에 뜻을 모은 뒤 7년 만에 결실을 본 것으로 조계종 종립선원인 봉암사에서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다. 8만 4000여㎡(약 2만 5410평) 부지에 명상관 2동과 수행자 숙소, 세미나실과 명상 카페 등을 갖춘 다목적 기능의 웰컴센터가 들어섰다.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은 이날 오후 열린 개원식에서 “참선 수양은 생사해탈을 득도하는 가장 궁극적인 방법”이라며 “간화선 수양이야말로 깨달음을 이루는 가장 뛰어난 수행 방법으로, 이러한 좋은 방법을 국제사회에 널리 전파하기 위해 세계명상마을을 건립했다. 많이 아끼고 이용해 달라”고 말했다. 이곳을 방문한 참가자들은 명상을 위해 휴대폰을 반납하게 된다. 참가자들은 화두를 들고 참선에 들어가 마음의 실재를 밝히는 한국 불교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을 중심으로 붓다의 수행법으로 알려져 호흡명상으로 불리는 초기 불교 수행법을 두루 단련할 수 있다. 좌선(앉아서 하는 명상), 행선(서서 하는 명상) 등 그때그때 맞게 방법도 다양하다.100명도 넘게 들어갈 정도로 널찍한 ‘중(中)선방’에서 열린 이날 명상에서도 각산 스님이 좌선의 기본 자세에 대해 참가자들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스님의 인도에 따라 두 줄로 앉은 참가자들이 서로 등을 지고 앉은 자세로 명상에 돌입했다. 참가자들은 익숙한 듯 낯선 자세로 차분히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는 말없이 명상마을 마당을 걷는 참가자들도 더러 보였다. 신청자가 몰리면서 뒤늦게 신청한 사람들은 순서가 다음으로 밀렸을 정도로 인기가 뜨거웠다. 3분의2를 차지한 여성 참가자들의 관심도 남달랐다. ‘국민 선방’을 내세운 만큼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수행에 참여할 수 있다. 각산 스님은 “국민 선방은 누구든 무료로 쉴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곳”이라며 “세계명상마을에 와서 단 5분만이라도 참선(參禪)에 참여하며 그 어떤 것이라도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행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은 매일 시간표에 따라 다양한 수행 기회를 갖는다. 어느 정도 참여할지는 자율에 맡긴다. 전국에서 선승으로 이름을 알려 온 승려 53명이 돌아가며 진행하는 수행 점검 시간에는 참가자들이 선승에게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다. 각산 스님은 “놀고먹더라도 수행 지도에 나선 선승들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깨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명상마을 개원을 기념해 이날 대원 스님을 시작으로 26일까지 ‘간화선 대법회’도 열린다. 또한 이곳에서 매년 ‘대한민국 청년희망 캠프’도 열릴 예정이다.
  • 굽이마다 절경이구나… 흑산도야, 잘 있었구나

    굽이마다 절경이구나… 흑산도야, 잘 있었구나

    전남의 보물 같은 섬… 얼마 만이냐 지난 두 해 남짓, 섬에 들어가는 걸 꺼렸다. 물론 코로나19 때문이다. 옮는 것보다 옮길 것이 걱정됐다. 거리두기가 마침내 끝났다. 섬을 찾는 것에 대한 거리낌도 해소됐다. 이제 멀고 먼 섬으로 떠날 차례다. 너무 멀어 검게 보인다는 전남 신안의 흑산도, 붉은빛 감도는 기암들의 절창이 일품인 홍도를 묶어 돌아봤다. 흑산도는 육로 관광이 보편적이다. 이웃 섬 홍도가 해상 관광 위주인 것과 다소 다르다. 흑산도엔 25㎞ 남짓한 일주도로가 잘 닦여 있다. 1984년 착공해 우여곡절을 겪다 26년 만인 2010년에 완공됐다. 관광택시를 탈 경우 외부 세계와의 연결 고리인 예리항에서 진리, 사리 등 순으로 돌아보는 게 보편적이다. 물론 취향에 따라 반대 방향으로 돌 수도 있다. 다만 어느 방향으로 돌더라도 해넘이는 흑산도 최고 전망대인 상라봉에서 맞는 게 좋다.●청잣빛 바다·그림 같은 풍경 먼저 사리(沙里) 마을 쪽으로 간다. 주민들 표현으로는 모래미란 곳이다. 갯마을 풍광이 수려해 호사가들은 ‘흑산도의 소렌토’라고 부른다. 이탈리아 소렌토를 가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그곳이 모래미를 닮았다면 청잣빛 바다와 기암절벽, 노송 그리고 예쁜 집들이 산수화처럼 펼쳐져 있을 게 분명하다. 사리엔 흑산도를 대표하는 명소 ‘복성재’가 있다. 다산 정약용의 형이자 조선 최고의 자연과학자 중 한 명인 손암 정약전(1758~1816)이 신유박해(1801) 때 유배 생활을 하며 ‘현산어보’(玆山魚譜, 자산어보)를 집필했던 곳이다. 꽤 오래전 생면부지의 흑산도를 가슴 깊이 각인시킨 책을 만난 적이 있다. ‘현산어보를 찾아서’라는 책이었다. 고등학교 생물 교사였던 이태원이 ‘현산어보’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2002년부터 이듬해까지 내리 다섯 권이 간행됐다. 생물도감 같은 책이지만 어패류에 대한 해박한 설명과 정교한 생물들의 그림, 흑산도에 머물며 촬영한 사진 덕에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유배지서 ‘현산어보’ 지어낸 정약전 무엇보다 인상적인 장면은 정약전의 위대한 유산을 ‘자산어보’라 부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 대목이다. 그 이전에도 ‘현산어보’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왔지만 당시 이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玆山魚譜’의 독음이 재조명받는 계기가 됐다. 저자의 논리는 이렇다. “나는 흑산으로 유배되었는데 ‘흑산’이라는 이름이 컴컴하여 두려우니 가족들이 편지에서 번번이 ‘玆山’이라 하였다. ‘玆’ 역시 검다는 말이다.” 정약전이 ‘玆山魚譜’ 서문에 밝힌 내용이다. 여기서 ‘玆’은 ‘자’로도, ‘현’으로도 읽힌다. 한데 ‘지금’, ‘여기’ 등의 뜻일 때는 ‘자’로 읽지만 ‘검다’의 뜻일 때는 玄(검을 현)이 두 개 겹친 ‘현’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 한문학자들의 주장이다. 이태원은 여기에 하나를 덧붙인다. ‘유암총서’란 책에 “금년 겨울 현주(玄州)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라는 대목이 나온다. 글 말미에는 “현주서실(玄州書室)에서 글을 쓴다”며 글 쓴 장소도 밝혔다. 여기서 ‘현주’는 흑산도를 뜻한다. 책 제목에 나오는 ‘유암’은 저자 이강회의 호다. 이태원은 유암을 “다산의 제자인 이청의 친구이며, 다산과도 친밀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흑산도를 ‘玆山’이라 처음 표현한 이도 다산이고, 그의 제자 이청과도 친하게 지냈으니 유암이 흑산을 ‘현주’로 표현한 것은 다산이 흑산을 玆山이라 부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누리집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전남 강진 사람인 유암이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의 제자였다는 것이다. 이로 미뤄 본다면 유암이 스승의 발음에 따라 ‘玆山’을 ‘현산’이라 불렀을 개연성은 더 높아진다. 현재로선 ‘자산’인지, ‘현산’인지 특정하기 어렵다. 장삼이사는 그저 흑산도가 얼마나 먼 절해고도였으면 ‘검고 검다’는 표현을 썼을까 헤아려 보는 정도로 충분하지 싶다. 다만 코로나 시국에도 지난해 개봉을 감행했던 영화 ‘자산어보’는 독음을 ‘자산’으로 분명히 했다. 전문가에게 자문했다고는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상 많은 이에게 익숙한 이름을 제목으로 쓸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으리라 짐작된다.●유배자들 흔적 남겨놓은 문화공원 사실 영화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장창대’(변요한)란 인물이다. 정약전과 더불어 ‘현산어보’의 공동 저자나 다름없는 이다. 영화 ‘자산어보’가 보여 주려 했던 수평사회, 그러니까 양반과 평민이 공존하는 평등사회는 장창대가 있어야 완성된다. 한데 그의 흔적은 흑산도 어디서도 찾을 길이 없다. 정약전(설경구)의 이름만 남았을 뿐이다. 그게 못내 아쉽다. 이제라도 정약전 동상 옆에 장창대의 동상을 함께 세워 그를 기려 보면 어떨까 싶다. 복성재 아래는 유배문화공원이다. 1148년 고려 의종 때의 정수개부터 1898년의 뇌물수수 죄인 김홍륙에 이르기까지 흑산도로 유배된 수많은 이를 기억하는 조형물들이 조성돼 있다. 사리는 돌담(등록문화재)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 앞 해변에는 봄철 산란을 앞두고 숭어들이 파리떼처럼 몰려든다. 수백년 전 정약전도 이 장면을 보며 신기해했겠지. 멀고 먼 한양의 임금에게도 진상했다는 숭어 어란은 이런 천혜의 여건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상라봉 전망대는 흑산도 최고의 조망처다. 차로 쉽게 오를 수 있다. 특히 저물녘 풍경이 빼어나다. 멀리 홍도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이 장쾌하면서도 서정적이다. 열두 굽이 ‘용고개’를 휘돌아 오르는 맛도 일품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잎이라 했던가. 상라봉 일대를 뒤덮은 늙은 동백나무 잎들이 역광 아래 보석처럼 반짝이는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상라봉 정상의 봉수대까지 오르는 것도 좋겠다. 파란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한 배낭기미 해수욕장, 죄인을 감금했던 옥섬 등 사방이 툭 터진 흑산도 일대 전경과 마주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정상까지는 10분 정도 걸린다.●이미자, 46년 만에 흑산도 찾아 노래 전망대 한편엔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있다. ‘흑산도 아가씨’는 1966년 발표된 이미자의 노래다. 흑산도 예리항에 여객선이 닿을 때면 항구 전체에 이 노래가 울려 퍼질 정도로 흑산도를 대변하는 노래로 인식되고 있다. 한데 정작 섬 주민들의 가슴을 적셨던 이미자는 흑산도를 방문하지 않았다. 그러다 가까스로 2012년 그의 공연이 흑산도에서 열렸다. 노래가 발표된 지 무려 46년 만의 일이었다. 노래비 옆에 세운 이미자 핸드 프린팅은 공연 당시 조성한 것이다. 흑산도는 세계적인 ‘철새 휴게소’다. 동아시아와 대양주에 놓여진 ‘철새 고속도로’ 경로 중 한반도를 통과하는 철새들이 쉬어 가는 중간 기착지다. 국내에 기록된 560여종 가운데 400여종이 이 일대에서 관찰될 정도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정약전이 물고기가 아니라 새에 관심이 많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현산조보’를 유산으로 받았을지도 모른다. 철새 관련 시설도 들어섰다. 신안철새전시관은 진리에서 열두 굽이 도로 가기 전에 있다. 흑산도는 물론 전 세계 다양한 새의 표본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관 초입에선 법정스님 사진과 동박새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난데없는 법정의 출현에 얼떨떨하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법정의 출가 이야기 듣는 철새전시관 법정은 대학생이던 1952년에 친구들과 흑산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전시된 사진은 출가 전 ‘대학생 박재철’이 흑산도 진리의 모래톱에서 친구들과 찍은 것이다. 사진 속 ‘박재철’의 손엔 동박새가 든 새장이 들려 있다. 당시 흑산도 옆 다물도에 살던 친구가 법정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그런데 사진보다 후일담이 더 의미심장하다. 당시 동행했던 친구의 말을 빌리면 법정은 목포로 돌아가자마자 새장 속의 새를 풀어 줬다고 한다. 그리고 세 해 뒤 ‘청년 박재철’도 세속을 박차고 보다 넓은 정신세계를 향해 날아올랐다.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말이다. 그가 바로 ‘무소유’로 법명을 날린 법정스님이다. 철새전시관에서 모퉁이 하나 돌면 새공예박물관이다. 야외 전시장엔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쇼나 새 조각이 전시됐다. 생경한 나라의 작품들이 이채롭긴 하지만 실제 흑산도 권역에서 발견되는 우리 철새들을 모티브로 삼았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다.전시관 위에 있는 진리당은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공간이다. 당각시 전설이 깃든 각시당(처녀당), 해변 쪽의 용왕당 등으로 이뤄졌다. 각시당에서 용왕당까지 약 150m 구간에 성황림이 우거졌다. 귀신을 부른다는 초령목, 늙은 소나무, 신우대 등이 제법 깊은 숲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흑산도에는 볼만한 팽나무가 세 그루 있다. 흑산성당 옆의 팽나무 두 그루는 연리지다. 회색빛 둥치가 매우 독특하다. 무심사지 삼층석탑을 품고 선 팽나무도 있다. 이 나무는 수형도 좋지만 뿌리 부분을 봐야 한다. 뿌리가 옛 비석들을 휘감고 자라고 있다. 비석의 위치에 따라 둥치가 기묘하게 휘었는데 그 모습이 더 특이하다. 흑산성당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1958년 세워진 등록문화재다. 외형도 독특하고, 다양한 빛깔로 실내 곳곳을 비추는 스테인드글라스도 아름답다. 아울러 우리나라 형태의 지도바위, 유배 온 면암 최익현이 남긴 지장암 글귀 등의 볼거리들도 잊지 말고 찾아보는 게 좋겠다.●흑산도 찾았으면 홍도 함께 2박 3일 홍도는 흑산도의 연관 검색어 같은 곳이다. 관광객 대부분이 흑산도와 홍도를 묶어 2박 3일에 걸쳐 돌아본다. 이웃 섬이라고는 해도 흑산도에서 홍도까지는 쾌속선으로 30분을 더 달려야 한다.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이다. 흑산도의 여러 섬과 함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다. ‘천사(1004)섬’으로 알려진 신안의 섬 중에서도 늘 수위에 오를 만큼 빼어난 경치로 소문났다. 섬은 코로나가 엄습한 2년 동안 텅 비었었다. 관광객이 찾지 않아서다. 흑산도도 그랬지만 관광객 비중이 압도적인 홍도는 특히 충격이 컸다. 그와 관련한 애처로운 이야기 한 자락. 2020년 4월 초에 대구의 관광객이 홍도를 찾았다. 당시 대구는 코로나 확진자의 폭발적 증가로 정부가 선포한 ‘특별재난지역’이었다. 외지에서 대구로 가는 것도, 대구 사람들이 외지를 방문하는 것도 극도로 꺼릴 때였다. 소식을 접한 최성진(52) 홍도 1구 이장이 서둘러 여객선에 올랐다. 이들의 입도를 만류하기 위해서였다. 멀리 대구에서 온 관광객은 결국 홍도에 내리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비록 공포에 짓눌려 벌인 일이었다 해도, 자기 마을을 찾은 외지인을 돌려보낸 것에 대해 주민들의 심사가 편할 리 없었다. 사과 전화는 물론이고 미역, 멸치 등 홍도에서 나는 갯것들을 선별해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대구 관광객은 아직 홍도를 찾지 않았다고 한다. 홍도 관광 하면 대개 유람선 관광을 백미로 꼽는다. 홍도 바다는 기암괴석들의 전시장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홍도 볼거리의 으뜸이라는 1경 남문바위부터 무려 33경에 이르는 기암들과 마주할 수 있다. 안내원의 해학적인 설명을 들으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보면 2시간 남짓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유람선은 남문바위와 슬픈여바위에서 잠깐 정박한다. 기념사진을 찍으라는 취지다. 슬픈여바위엔 생선회를 파는 어선이 늘 대기하고 있다. 한 접시 3만원인데 경험 삼아 맛볼 만하다.●‘1년 탈 없이’ 염원 담은 깃대봉 365m 주민들의 삶을 엿보려면 역시 땅을 밟고 다녀야 한다. 덜 알려졌을 뿐 홍도 육로 관광도 해상 관광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홍도는 남북으로 7㎞ 정도 길쭉하게 뻗은 섬이다. 섬에 도로도, 차도 없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3륜차가 전부다. 섬 가운데에 깃대봉(365m)이 높이 솟아 걷기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짧은 코스로는 1구 바로 옆 죽항당산을 다녀올 만하다. 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당산이다. 전체 코스는 1㎞ 정도다. 죽항당산엔 동백나무가 많다. 300년은 족히 살았다는 노거수들이다. 산자락 좁은 길이 늙은 동백에서 떨어진 붉은 꽃들로 낭자하다. 당산 위엔 일출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지중해의 항구 마을을 보는 듯한 이국적인 풍경과 기암절벽들이 절경을 펼쳐 낸다. 좀더 걷고 싶다면 섬 산행을 즐길 수도 있다. 홍도 1구에서 깃대봉을 넘어 홍도 2구 마을까지 이어지는 4㎞ 남짓한 산길이다. 깃대봉 능선 아래로 목재 데크 산책로도 있다. 해안 절벽 사이로 난 길은 완만하게 능선을 타고 오르다 깃대봉으로 가는 등산로와 만난다. 여기서 문제 하나. 홍도 깃대봉의 높이는 얼마일까. 정상 표지석엔 365m, 네이버 지도엔 360.5m, 다음 지도엔 367.8m로 표기돼 있다. 제각각이다. 최 이장의 말에 힌트가 있다. 그는 주민들이 1년에 한 번은 꼭 깃대봉을 오른다고 했다. 일 년 365일 동안 탈 없이 지나게 해 달라는 바람을 담아 산행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주민들의 믿음을 기준으로 삼으면 365m가 정답인 셈이다. 홍도 2구는 1구보다 먼저 사람이 정착했다는 마을이다. 하지만 1구가 관광 중심지로 개발되면서 뒤처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세상 적막한 마을이 됐다. 마을 옆엔 수형이 빼어난 소나무들이 있다. 바람에 시달리며 자라느라 이리저리 굽고 휘었다. 이 모습이 독특해 소나무 작품으로 유명한 사진작가가 촬영을 위해 2구 마을에 머물기도 했단다. 조붓한 솔숲 길을 오르면 곧 홍도등대다. 1931년 처음 불을 밝힌 등대다. 섬 끝자락에 선 말간 등대의 모습이 아름답다. 등대가 굽어보고 있는 풍경도 빼어나다.●이장, 돌려보낸 관광객 찾아 대구행 홍도는 이름처럼 붉은빛 감도는 해안 절벽이 일품인 섬이다. 특히 저물녘 햇살을 받아 절벽이 붉게 물들 때가 진수다. 할 수만 있다면, 저물녘에 유람선을 타길 권한다. 홍도를 나오던 날 쾌속선에 홍도 1구 최 이장이 함께 탔다. 그가 가는 곳은 대구였다. 코로나 때 입도하지 못했던 관광객 집에 일이 생겨 위로차 찾아가는 길이란다. 그 미안해하는 마음과 애틋한 정이 보통이 아니다. 언젠가 대구 사람들이 홍도를 방문하는 날도 오겠지. 홍도 사람들은 아마 구석구석 극진하게 안내해 줄 것이다. 그때 그들이 함께 보고 나누는 풍경들은 얼마나 새롭고 아름다울까. ■ 여행수첩 -흑산도까지는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쾌속선으로 2시간, 홍도는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도초도를 경유해 가는데, 도초도 이후부터 파도가 높아지며 멀미를 하는 경우가 많다. -홍도 1구에서 2구까지는 여객선 시간에 맞춰 도선이 무료로 오간다. 하지만 2구 마을 주민이 없을 경우 운항하지 않는다. 마을 주민의 배를 이용할 경우 최소 4만원이다. 1구에서 깃대봉을 넘어 2구까지 걸어서 다녀오려면 3시간 이상은 족히 걸린다. -흑산도 SUV 관광택시는 4인 기준 6만원이다. 2시간 정도 섬 곳곳을 돈다. 일반적인 택시 기능도 한다. -두 섬 모두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이 있다. 비수기인 요즘은 여유가 있지만 성수기 때는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흑산도와 홍도는 5월이 지나야 겨울이 끝났다고 말할 정도로 일교차가 심하다. 다소 두툼한 옷을 챙겨 가는 게 좋다. -말린 홍어를 각종 양념과 버무려 내놓는 홍어무침이 별미다. 다만 양이 적어 다소 비싸다고 느낄 수도 있다. 생선회는 전부 자연산이다. 계절에 따라 종류도 바뀌는데, 수온이 찬 요즘은 우럭과 노래미를 맛볼 수 있다.
  • [김가경의 배회의 기술] 작업실 단상/작가

    [김가경의 배회의 기술] 작업실 단상/작가

    지하에 작업실이 생긴 이후, 그곳에서 글을 쓰기보다 대부분 엉뚱한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틈나는 대로 바닥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밖으로 난 계단 벽면에 페인트도 칠한다. 계단 사이사이 자라난 풀도 뽑고, 그러다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작업실로 불러들여 수다도 떤다. 해가 들지 않는 지하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이탈리아 아라리아 나무에 물을 주는 일도 거르지 않는다. 잎에 수시로 물을 뿌려 주라는 화원 주인의 말을 충실히 따르며 잘 키우기보다 죽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는 것이다. 자연의 햇살과 바람에 맡겨 둔 채 인색하게 물을 주고 있는 베란다의 화분을 떠올리면 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한 가지 근심은 천장에서 물이 새는 거다. 위층을 살펴보아도 누수지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물이 떨어지는 자리에 휴지통을 놓아 두었다. 바닥 한편, 생뚱맞은 위치에 휴지통을 놓아 둔 채 한 달이 지났다. 해가 들지 않아도 이탈리아 아라리아는 잘 자라고 있고, 반지하라 바깥과 닿아 있는 환기구를 통해 흐릿하게 새소리도 들린다. 하루에 고작 한두 번, 그것도 라디오를 꺼야 영접할 수 있는 소리. 지상에서 흔하게 들어 왔던 소리지만 여기서는 안팎으로 고요해야 들을 수 있다. 얼마 전에는 바람도 찾아냈다. 아라리아 잎이 가늘게 흔들리기에 살펴보니 어디에선가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작업실에 들른 그녀에게 새소리와 함께 바람도 들어온다고 흥분해 말하니 피식 웃고 만다. “쌤, 그게 그렇게 신나요?” 미세하게 이파리가 흔들릴 뿐인데도 그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날 그녀는 살이 오른 아라리아 잎에 끌려 새소리를 듣지 못하고 가 버렸다. 오랜 세월, 바람과 햇살과 새소리가 지천인 지상의 세계에서 살아온 터라, 장시간의 고요를 견디지 못해 작업실을 나와 계단을 올라가면 아래세계에서 느낀 아득한 흥분을 쉽게 잊고 만다. 그래도 잊히지 않는 것은 천장에서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였다. 어느 날 윌리를 닮은 한 사람이 작업실에 들렀다. 친분이 전혀 없는 그 사람과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물방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휴지통의 물을 비우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 화분을 하나 놓아도 좋겠어요.” 떨어지는 물을 보며 그 사람이 말했다. 이 나이에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도 그리 설렐까. 고백처럼 들려온 그 조언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집 앞 베란다에서 새싹을 틔우지 못하던 개나리재스민 화분을 들고 내려왔다. 그러고 시간이 좀 흘렀다. 지금 개나리재스민 줄기에 연두색 새싹이 한창 돋고 있다. 물받이로 받혀 놓은 작은 고무대야에 물이 떨어지면 깊은 우물소리도 들린다. 어쩌다 새소리도 들리고 바람도 인색하게 드는 그곳에서 나는 윌리를 닮은 그 사람과 친분을 쌓아 가고 있다.
  • [애니멀S]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고양이 흰둥이와 피오나

    [애니멀S]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고양이 흰둥이와 피오나

    어느 아파트 건물의 깊숙한 곳, 길고양이 흰둥이는 두 눈이 터진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고작 7개월 난 어린 고양이였던 흰둥이, 길 위에서 세상이 멀어져 가는 것을 느끼며 흰둥이는 그렇게 깊고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을 것입니다. 흰둥이의 두 눈은 적출을 피할 수 없었고 오랜 기간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길고양이 피오나는 어느 군부대 부지에서 임신과 출산을 발본하던 고양이였습니다. 선천적으로 눈이 좋지 않았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눈이 좋지 않은 새끼들을 출산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피오나의 두 눈도 검게 물들고, 한쪽 눈은 돌이킬 수 없도록 크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피오나는 구조 후 말기 녹내장으로 진단을 받고, 부풀어 오른 한쪽 눈을 적출해야 했습니다. 적출하지 않은 반대쪽 눈은 명암과 물체의 형태 정도만 구분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피오나에게 세상은 그저 흐릿한 잔상이 되었습니다. 각자의 사연으로 두 눈이 멀게 된 고양이 흰둥이와 피오나는 구조 동물들의 보금자리인 카라 더봄센터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둘은 성향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이 처음 만나던 날 멀찌감치 떨어져 서로의 인기척을 느끼며 얼마간 경계했습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냄새도 맡고 서로를 탐색하며 거리를 좁혀가던 흰둥이와 피오나는 지금은 둘도 없는 룸메이트 사이가 되었습니다. 둘은 더봄센터 C203 묘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수직운동을 위한 캣타워와 캣워커가 설치되어 있고, 큰 창을 통해 창 밖의 넓은 자연을 구경하고 따뜻한 햇살을 즐길 수 있는 공간입니다. 다른 고양이들이은 창을 통해 센터를 오가는 사람들이나 새들을 제법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곤 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흰둥이와 피오나는 유심히 창 밖으로 귀를 기울이며 소리를 듣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고양이는 수염을 통해 앞의 장애물을 파악하고 공간을 느끼는 등 앞이 보이지 않아도 감각을 통해 주변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천천히 공간을 탐색하고 공간에 적응하는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입니다. 흰둥이와 피오나도 익숙하게 캣타워를 오르고 서로 잡기 놀이도 하며 활발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서로 투닥거리기도 하고, 캣타워 꼭대기에 올라 여유롭게 햇살을 즐기기도 하고요. 공간의 구성이 바뀌거나 처음 접하는 새로운 장난감이 생기더라도 흰둥이와 피오나는 조금의 탐색을 마치면 금세 새로운 것에 적응하곤 합니다. 피오나에게 한참을 장난치다가 결국 한번 깨물린 후에야 차분해지는 흰둥이, 귀찮아 피하다가도 나른한 오후에는 함께 누워 꾹꾹이를 하는 피오나, 다정하게 마주 누운 두 고양이의 모습에 괜스레 미소 짓게 됩니다. 요즘 둘은 옆 묘사 고양이들과 교류하며 함께 놀거나 식빵을 굽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장애에 대한 편견은 인간의 것일 뿐, 고양이들 사이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쪽 눈이 없거나 두 쪽 눈 모두 상실한 고양이와 함께 사는 보호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장애묘이기에 다른 고양이에 비해 배려해 줄 필요는 있지만, 그게 함께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 흰둥이와 피오나 또한 장애에 대한 편견 없이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고 이해해줄 좋은 반려인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흰둥이와 피오나가 구조됐던 길 위에는 현재에도 위기의 순간에 서있는 생명들이 있습니다.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고, 질병과 외상으로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고, 학대와 로드킬의 위험이 도사리는 길고양이들의 삶, 우리와 함께 사는 길고양이들에게 따뜻한 온정을 베풀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할머니 듀오/김영진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할머니 듀오/김영진

    할머니 듀오/김영진 목욕탕에 다녀오시나, 할머니 두 분껍질 벗긴 삶은 계란마냥하얗고 말간 얼굴로서로 정담 나누시며 걷는다 동생, 이제 집에 가면 뭐 할랑가?뭐 하긴요, 시장에나 갈라요장에는 뭐 하러 갈라고 그란가?영감 팔러 갈라 그라요엥, 얼마에 팔라고 그란디?오천만 원만 주면 팔라고 그라요오메야, 팔릴랑가 모르것네그란디 그 돈 받으면 어디따 쓸라고?천만 원짜리 영감 있으면 바꿀라고 그라요목욕 바구니 나란히 든 두 분구부러진 등 위로 햇살이깔깔깔 빛난다 목욕 가방을 든 해맑은 얼굴의 두 할머니. 봄 길 걸어가며 얘기 나누신다. 집에 가면 뭐 할 건가? 목욕탕에서는 서로 등 밀어 주고 요구르트도 먹고 찐 달걀도 먹고 세상 사는 이야기 참 좋았을 터였다. 집은 목욕탕보다 더 심심한 곳일지 모른다. 영감 팔러 시장에 간다는 답이 따른다. 평생 애를 썩인 영감은 오늘도 할머니의 속을 썩였을 것이다. 얼마에 파는데? 5000만원. 동무 할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팔리면 뭐할 텐데? 1000만원짜리 영감 있으면 바꿀 거다. 대화 속에서 메주 뜨는 눅진한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할머니는 장에 가서 속을 썩인 영감이 좋아하는 국을 끓이기 위해 무와 쑥갓, 동태 몇 마리를 사실지도 모른다. 곽재구 시인
  • 차예련♥주상욱, 5살 딸 첫 공개 “인형미모”

    차예련♥주상욱, 5살 딸 첫 공개 “인형미모”

    배우 차예련이 딸 인아양의 모습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차예련은 최근 인스타그램을 통해 “봄 봄 봄”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속 차예련은 딸 인아 양과 함께 봄 햇살을 맞으며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친구처럼 다정하게 서로를 꼭 끌어안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모녀의 모습이 시선을 모은다. 특히 벌써 5세가 된 딸 인아 양의 폭풍 성장과 함께 배우인 엄마와 아빠를 골고루 닮은 ‘완성형 미모’가 감탄을 자아냈다. 한편 차예련은 2017년 배우 주상욱과 결혼해 슬하에 딸을 두고 있다. 현재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신상출시 편스토랑’에 출연하고 있다.
  • “남극에서 펭귄과 근무할 사람 모집합니다”

    “남극에서 펭귄과 근무할 사람 모집합니다”

    영국의 남극유산신탁(UK Antarctic Heritage Trust)이 최근 남극에 위치한 포트 록로이(Port Lockroy)에서 근무할 사람을 구하는 채용 공고를 게재했다. 남극유산신탁 측은 “펭귄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눈 덮인 산 위에는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우리와 함께 남극 대륙의 유산을 보호하고 소중한 환경을 보존하는 데 도움을 달라. 신청 마감은 이달 25일까지다”라고 알렸다. 선발된 인원들은 포트 록로이 우체국,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올해 11월부터 내년 3월까지 5개월간 근무하게 된다. 우체국, 박물관, 기념품 가게는 약 4~5명의 인원이 교대로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공간이 코로나 사태 이후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뿐만 아니라 펭귄과 다른 야생동물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해 보고서를 제출하는 조사 활동도 병행하게 된다. 영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도 지원이 가능하지만, 영국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 남극유산신탁 측은 따로 비자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포트 록로이에서 근무하게 되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이전에 근무했던 비키 잉글리스는 ‘평생에 한 번 있을 기회’라고 표현하면서도 “도착했을 때 (눈을 뚫고) 길을 만들어야 했다. 수세식 화장실도 없고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적인 사치품도 없다”고 CBC 라디오에 전했다.
  • MZ세대 구름인파 몰린 잠실 “벚꽃·벨리곰 보러 왔어요”

    MZ세대 구름인파 몰린 잠실 “벚꽃·벨리곰 보러 왔어요”

    서울의 대표 ‘벚꽃 명소’로 꼽히는 잠실 석촌호수 공원에는 10일 아침부터 나들이객 발길이 이어졌다. 따사로운 봄 햇살이 반사되면서 호수가 반짝거렸고 산책로를 따라 만개한 벚꽃은 바람이 불면 흩날렸다. 친구들과 함께 석촌호수를 찾은 허다인(29)씨는 구름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겨우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허씨는 “코로나 이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다니는 걸 자제해 왔는데 여기 와 보니 이제는 코로나가 완전히 끝난 것 같다”면서 “사람이 붐빌까 봐 일부러 아침부터 일찍 준비해 왔는데 꽃보다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벚꽃 인파 중에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벚꽃 구경도 하고 ‘벨리곰’도 보러 왔다”면서 인증샷 남기기에 이곳만큼 좋은 곳이 없다며 입을 모았다.벨리곰은 석촌호수 인근 롯데월드타워 월드파크 잔디광장에 설치된 15m 높이의 거대한 분홍색 곰인형을 말한다. 젊은이에게 인기를 끌면서 ‘인증샷 성지’가 됐다. 인스타그램에 ‘벨리곰’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은 이날 기준 1만 5000개가량 올라왔다. 롯데홈쇼핑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9일까지 벨리곰을 보기 위해 몰린 인파는 140만명으로 추정됐다. 이날 방문객까지 포함하면 200만명에 가까울 것이라는 게 기획사 측 설명이다. 첫 번째 거대 조형물 전시 프로젝트인 ‘러버덕’(2014년)을 전시했을 때는 73만명의 시민이 몰렸다.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린 직장인 안나영(26)씨는 “8년 전 석촌호수 ‘러버덕 대란’ 때도 가고 싶었으나 수험생이라 실제로 못 봐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오게 돼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병무(42)씨는 유모차에 탄 다섯 살 딸아이, 아내와 함께 벨리곰 인증샷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이씨의 아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친구들이 올린 인증샷을 보고 남편에게 벨리곰을 보러 가자고 했다”면서 “가족과 함께 나와서 벚꽃도 보고 사진도 찍고 즐겁다”고 말했다.
  • 흐드러지게… 나만의 봄이 피었다

    흐드러지게… 나만의 봄이 피었다

    “꽃들은 햇살이고, 우리 영혼의 음식이자 치료제다.” ‘식물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의 식물학자 루서 버뱅크가 남긴 말이다. 코로나19의 길고 긴 터널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벌써 세 번째 봄을 맞았다. 몇 해 내리 영혼의 음식도, 치료제도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다. 남녘에 벚꽃이 한창이라지만, 코로나 탓에 유명 관광지는 방문할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봄 한정판 풍경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찾아봤다. 사람들과 덜 부딪치며 나만의 사연을 만들 벚꽃 루트를. 봄의 개울 위로 무지개다리가 놓였다. 황톳빛 다리 옆으로는 수양벚꽃이 가지를 늘어뜨렸다. 꼭 보석을 꿰어 만든 주렴을 보는 듯하다. 이른 아침 햇살이 줄기 하나를 비춘다. 반짝이는 꽃잎이 영롱하다. 이 장면을 거울 같은 시냇물이 그대로 비춰 낸다. 수양벚꽃과 맑은 영산천, 황톳빛 무지개 다리가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순간이다. 경남 창녕의 시골 마을인 영산면 동리는 해마다 봄이면 이 풍경 하나로 ‘스타급’ 여행지가 된다. ●무지개다리 위 인생사진 ‘영산 만년교’ 그림 같은 풍경을 갈무리한 다리의 이름은 영산 만년교(보물)다. 조선 후기의 홍예교 축조 기술을 보여 주는 유적이다. 정조(4년) 때인 1780년에 처음 건립됐다가 1892년 개축하면서 영원히 무너져 내리지 말라는 뜻을 담아 만년교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만년교 옆 비석에 이런 내용들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아치 형태로 쌓은 무지개다리는 영산천에 반사되며 둥근 원을 만든다. 제방 좌우로는 노란 개나리꽃과 수양벚꽃이 만개했다. 이만 한 배경에서라면 별다른 기교가 없더라도 누구나 ‘인생 사진’ 하나쯤은 건질 수 있지 싶다.만년교 옆엔 연지못이 있다. 불덩어리 형상이라는 마을 뒤 영축산의 화기를 누르고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만든 저수지다. 못의 형태가 벼루 모양이어서 ‘벼루 연(硯)’자를 써 연지라 불린다. 봄을 맞은 연못의 자태가 빼어나다. 연못 안에는 다섯 개의 섬이 떠 있다. 하늘에 뜬 다섯 별을 상징하는 인공섬이다. 선조들은 가장 큰 섬에 ‘항미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봄의 정취를 즐겼다. 큰 섬과 이웃 섬 사이엔 구름 같은 나무다리도 놓았다. 만년교처럼 연지못 주변에도 수양벚꽃이 많다. 분홍 벚꽃들이 늘어선 연못 주변을 자박자박 산책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다시 한번 밝히지만 연지못 안에 세운 정자의 이름은 ‘항미정’이다.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거의 모든 글들이 ‘향미정’이라 쓰는 통에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에서조차 ‘향미정’으로 검색하라고 권유할 정도다. 항미정(抗眉亭)은 물의 도시로 유명한 중국 항저우(杭州)의 미정(眉亭)에 빗댄 표현이다. ‘초승달을 닮은 눈썹’이라는 뜻의 아미(蛾眉)가 아름다운 여인을 뜻하는 것에서 보듯, 아름다운 연못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눈썹(眉)이란 단어를 썼을 것으로 보인다. 구름다리 초입의 ‘항미정 기문’에 이 같은 내용들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영산면은 창녕 속의 작은 유적지다. 영산고분군, 석빙고, 신씨고가 등 차분히 돌아볼 만한 유적들이 꽤 많다. ●선교사·왕벚나무 사연 품은 ‘대구대교구청’ 창녕 인근의 대구에도 사연 많은 벚나무가 있다. 중구 남산로의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안에 있는 왕벚나무다. 조선 말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선교활동을 벌인 프랑스의 에밀 타케(한국명 엄택기, 1873~1952) 신부가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나무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에밀 타케 신부는 우리 식물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에밀 타케의 선물’이란 책에 담긴 내용을 토대로 55년에 걸친 그의 한국 생활을 요약하면 이렇다.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인 그는 1898년 1월 한국에 들어와 부산, 진주 등에서 사목생활을 하다 1902년 제주로 발령받아 13년을 머문다. 제주도에서 식물채집 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그는 1908년 한라산 자락의 관음사 인근에 자생하던 왕벚나무(천연기념물)를 발견해 유럽, 미국 등 학계에 보고했다. 종전까지 ‘사쿠라’라며 일본의 나무로 여겼던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한국이란 사실을 처음 밝힌 것이다. 여태껏 수많은 제주 사람들을 먹여살린 ‘제주 밀감’(온주밀감)을 1911년 들여온 이도 그였고, 이제는 제주의 자랑이 된 구상나무가 고유 특산종이란 사실을 밝힌 이도 그였다. 그의 이름을 따 ‘타케티’라는 학명이 붙은 식물만 해도 한라부추 등 20여종에 달한다고 한다. 1922년엔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현 대구가톨릭대) 교수로 부임했다. 이후 1952년 선종해 천주교 대구대교구 남산동 성직자 묘지에 묻힐 때까지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대구대교구청 경내의 왕벚나무는 이 당시에 심은 것이다. 여러 해 동안 가슴에 담아 뒀던 왕벚나무를 마침내 직관하는 순간이다. 1930년대 심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는 뜻밖에 둥치가 그리 굵지 않다. 대신 늘씬하게 위로 뻗었다. 검은 나뭇가지 아래로는 수많은 벚꽃들이 매달렸다. 꽃잎은 흰색에 가깝다. 바로 앞 안익사(安益舍)의 낡고 거무튀튀한 기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대구대교구청 맞은편의 성바오로수녀원에도 에밀 타케 신부가 심은 왕벚나무가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직접 볼 수는 없었다.아, 앞산 해넘이전망대의 빨래터 공원도 잊지 말고 찾는 게 좋겠다. 주변을 밝히는 두 그루의 수양벚꽃 덕분에 이 빨래터는 봄이면 세상 둘도 없이 고혹적인 장소로 변한다. 아주 오래전엔 수많은 아낙들이 이곳에 모여 빨래를 했을 것이다. 수양벚꽃 늘어진 우물가에 다리를 드러내고 앉은 아낙들을 보며 딴생각을 품었을 남정네가 어디 한둘이었을까. 춘정 가득한 풍경을 보면서도 군자연한 남정네가 있다면 그는 분명 사람이 아니었을 거다.●고즈넉함으로 물든 청주 상당산성 무심천(無心川)이 도심을 관통하는 충북 청주에도 결코 무심할 수 없는 벚꽃 명소들이 있다. 인파가 몰리는 무심천변보다는 상당산성 쪽이 고즈넉하다. 산성 남문으로 오르는 길 양옆엔 벚나무 노거수들이 늘어서 있다. 오래된 성벽과 화사한 벚꽃이 잘 어울린다. 이 일대의 벚꽃은 다소 늦게 피어 오래가는 편이다. 다른 지역에서 벚꽃이 끝물일 때도 산성 주변은 흐드러진 경우가 많다. 산성 앞에는 너른 잔디광장이 있다. 가족 피크닉을 즐기기에 딱 좋다. 상당산성이 처음 축성된 것은 백제 때다. 당시엔 토성이었으나 이후 조선 숙종 때 현재의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산성 안쪽의 솔숲은 진달래의 영토다. 소나무 사이에 무성한 연분홍 꽃들과 만날 수 있다. 능수벚꽃이 절집과 어울린 풍경과 만나려면 우암산 자락의 대한불교조계종수도원으로 가야 한다. 대웅전, 미륵불 주변으로 능수벚꽃이 흐드러졌다.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화가의 시력/미술평론가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화가의 시력/미술평론가

    19세기 전반만 해도 화가들이 바깥에 나가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드물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실제 존재하는 풍경을 화폭에 담았으나 밖에서는 스케치 정도를 했을 뿐이다. 그림은 그것을 토대로 스튜디오에서 그렸다. 프랑스에서는 1830년대에 바르비종 화파가 밖에 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스튜디오 작업을 병행했다. 19세기 후반 들어 화가들은 스튜디오를 벗어나 야외로 쏟아져 나갔다. 인상주의는 ‘사생’과 떼어놓을 수 없다. 모네는 ‘현장에서 마무리’라는 원칙을 세우고 작업의 전 과정을 밖에서 진행했다. 사생을 통해 인상주의 화가들은 계속 변하는 빛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부산하고 활기찬 도시 생활을 미술의 소재로 만들었다. 르누아르는 튜브형 물감이 없었더라면 인상주의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는데 옳은 말이다. 치약처럼 짜서 쓰는 휴대용 물감의 발명은 화가들에게 야외 작업을 가능하게 해 준 기술적 토대였다. 그러나 눈부신 햇살 아래 장기간 그림을 그리는 것은 눈에 치명적이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시력 약화와 눈병으로 고생했다. 모네와 드가는 말년에 시력을 거의 상실했고, 카사트는 완전히 실명해 붓을 놓아야 했다. 피사로도 예순을 넘기고부터 안과 질환에 시달렸다. 의사가 준 약을 넣고 있지만 고름이 나오고 고통스럽다고 하소연하는 편지가 남아 있다. 카미유 피사로가 한때 점묘파에 가담했다가 인상주의로 회귀한 것은 점묘파의 리더인 조르주 쇠라와 의견이 맞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눈 상태 때문이기도 했다. 약해진 시력으로 주의력을 굉장히 집중해야 하는 점묘 기법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야외 작업을 할 수 없게 된 피사로는 파리, 루앙 등의 호텔 방에 묵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1900년 피사로는 시테섬 서쪽 끝에 있는 한 건물에 세를 들어 190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다. 이 그림은 아파트에서 보이는 풍경이다. 왼쪽 아래에 앙리 4세의 기마상이 있는 작은 공원인 베르갈랑광장 끄트머리가 있다. 앞쪽에 보이는 다리는 퐁데자르. 센강 오른쪽 기슭 저 멀리 루브르미술관이 보인다. 뽀얀 봄기운이 가득하다.
  • [이용한의 절묘(猫)한 순간들] 캣타워가 된 장독대/고양이 작가

    [이용한의 절묘(猫)한 순간들] 캣타워가 된 장독대/고양이 작가

    봄 햇살이 좋긴 한가 보다. 고양이들이 저마다 장독대에 올라가 한바탕 일광욕을 하고 까무룩 낮잠을 잔다. 가끔은 여남은 마리가 하나씩 장독을 차지한 채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데, 멀리서 이 광경을 보노라면 그야말로 장관이다. 고양이들이 툭하면 장독을 독차지하는 바람에 ‘다래나무집’(고양이 책의 주요 배경)에서는 어느 날부턴가 장독대를 ‘냥독대’로 부르게 됐다. 냥독대야말로 고양이들의 취향에 맞춤한 곳이다. 점프를 하면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적당한 높이에다 햇볕을 받으면 뜨끈하게 온돌 구실을 하는 소래기(장독 뚜껑)까지 그들만의 취향 저격인 것이다.녀석들은 이 자연친화적 캣타워에 올라 엉덩이 찜질을 하고 식빵(고양이가 발을 모으고 웅크려 있는 모습)까지 굽는다. 비가 내린 뒤에는 냥독대에 올라 물을 마시는 고양이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오목한 소래기에 고인 ‘감로수’를 녀석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겨울에도 고양이들은 눈이 녹기를 기다렸다가 이른바 납설수(臘雪水·눈 녹은 물)를 마시러 장독에 오르곤 한다. 고양이가 냥독대를 즐겨 찾는 이유 중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도 있다. 장독대 주변에는 자작나무와 벚나무, 감나무가 각각 한 그루씩 서 있다. 그리고 이 나무에는 수시로 새들이 날아와 찍찍꼬꼬 수다를 떤다. 그럼 또 고양이들은 나무에서 가까운 항아리로 한 마리씩 올라와 그림의 떡인 새를 향해 캬르르 캭캭, 채터링을 한다. 한번은 여덟 마리 고양이가 장독대 맨 앞줄에 일렬로 앉아 새 구경을 하는 장면을 본 적도 있다. 운 좋게 나는 이런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곤 했는데, 어떤 분은 이것이 믿기지 않는지 연출이거나 조작이라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고양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고양이가 ‘이렇게 일렬로 나란히 앉아 봐’ 한다고 순순히 협조할 녀석들이 아니란 걸 잘 알 것이다. 사실 고양이 사진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다. 고양이는 풍경처럼 정지해 있는 것도, 인물처럼 기다려 주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재주가 좋은 사진가도 고양이 앞에서는 재능을 보이기 어려운 법이다. 결국 냥독대 사진은 새와 나무가 연출한 것이며, 때마침 고양이가 거기 있었고, 우연히 그 옆에 있던 내가 셔터를 눌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찬란한 무지개/이유진 · 목단/이영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찬란한 무지개/이유진 · 목단/이영은

    물 위에 표류하는 이미지를 통해 타인에게 둘러싸여 살면서도 내면의 고립감을 느끼는 현대인의 정서를 담는다. 4월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본화랑. 목단/이영은 먼지 내린 옛집 뒷마루 앉아 겨울 햇살 비스듬히 메주콩을 가려낸다 보리밥 삶는 냄새 대나무 바구니 기둥에 걸린다 잔치상 한가운데 누구도 손대지 않는 맑고 가난한 동치미 한 그릇 엄마는 꽃이 되었을까 고사리 같은 그리움 지문으로 찍힌다 옛 마당 뜰 여느 해처럼 목단꽃 피어 엄마 냄새 맡는 오후가 지고 있다 목단꽃과 자운영 꽃은 함께 핀다. 보라색 꽃 무더기 사이를 걸어가며 내가 인간이기 이전을 생각하고 인간이 된 이후를 생각한다. 바람이 불면 보라색 꽃 무더기들이 해일처럼 달려든다. 꿈 같은 이 현실이 좋다. 인간이 된 이후 내가 꾼 꿈들을 더듬어 보는 시간이 부끄러운 것이다. 어디선가 보리밥 삶는 냄새가 나고 먹빛 소반 위에 맑은 동치미 한 그릇이 놓인다.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나도 이 세상도 없었을 것이다. 시도 사랑도 별도 눈물도 없었을 것이다. 봄날의 목단꽃밭 속에 사랑하는 세상이 있다. 파랑새가 날아가고 보랏빛 바람이 불고 지상의 소금이라고 믿는, 사랑이라고 믿는 시들이 태어난다. 곽재구 시인
  • 광명시, 안양천 지방정원 지정 및 조성계획수립 위한 공청회

    광명시, 안양천 지방정원 지정 및 조성계획수립 위한 공청회

    경기 광명시는 31일 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경기권역 4개 지자체 공동으로 안양천 지방정원 지정을 위해 추진한 ‘안양천 고도화 사업 기본계획 수립 용역’에 대한 주민공청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이번 주민공청회는 안양천 지방정원 지정 및 조성계획 수립에 대한 관계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됐다. 공청회에서 논의된 조성계획의 주요 내용은 안양천을 관리하는 경기권 4개 시가 안양천을 녹지, 여가, 문화공간이 공존하는 청류(green network), 교류(human network), 풍류(culture network), 화류(garden network), 연류(ring network)라는 주제로 나누어 각 시의 특성에 맞게 조성하는 것이다. 광명시 구간은 자연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만나 커뮤니티를 만드는 교류 공간으로 광명햇살 정원, 이야기 정원, 작은 정원, 놀이 정원, 지혜의 정원, 걷고 싶은 정원이 있는 6개 테마정원으로 조성하고, 안양시 구간은 도심과 하천을 녹색으로 연결하는 청류 공간으로 Wall 정원, 물의 정원, 고요한 정원, 건강 정원, 어울림 정원, 보라 정원의 6개 테마정원을 조성한다. 군포시 구간은 물길 따라 향기로 가득한 화류 공간으로 그라스 정원, 수변 정원, Wall 정원이 있는 3개 테마정원을, 의왕시는 안양천 발원지의 비워진 공간에 사람이 모이는 미래가치를 담은 풍류 공간으로 그라스 정원, 수직 정원, 소리 정원, 처음 정원의 4개 테마정원을 조성하는 계획안을 제시했다. 이날 주민공청회에서는 경기권 4개 시의 시장과 관계 전문가가 참석하여 열띤 토론을 거친 후 주민의견을 청취했다. 공청회에 참석하지 못한 시민들을 위해 광명시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방송도 진행됐다. 앞으로 경기권 4개 시는 안양천 지방정원 등록을 위해 주민공청회에서 수렴된 전문가와 시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올해 산림청에 안양천 지방정원 예정지 지정 승인을 신청하고 경기도에 지방정원 조성계획 승인을 받을 예정이다. 박승원 시장은 “안양천은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에게 최고의 방역쉼터였다“며 ”지방정원 조성계획을 잘 추진해서 안양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고 시민 친화형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 샤갈과 구사마·커푸어 함께 광화문서 새로운 ‘예술의 문’ 연다

    샤갈과 구사마·커푸어 함께 광화문서 새로운 ‘예술의 문’ 연다

    서울의 중심 광화문에 새로운 복합 예술 공간이 탄생한다. 이를 기념해 마르크 샤갈, 구사마 야요이, 애니시 커푸어 등 널리 알려진 근현대 미술작가들의 작품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호반문화재단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층에 아트스페이스 호화를 개관하고 30일부터 소장품 기획전 ‘액트 1 더 글리터 패스’(Act. 1 The Glitter Path)를 개최한다고 29일 밝혔다. 호화는 1985년 프레스센터 준공 때부터 2007년까지 서울신문이 22년간 운영한 서울갤러리의 맥을 잇는 공간이기도 하다. 앞서 재단은 2018년 경기 광명에 호반아트리움을 개관한 뒤 여러 전시를 개최하고, 젊은 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돕는 창작공간지원사업 등도 벌여 왔다. 이번에 서울에 새로 예술 공간을 열면서 국내외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참신한 청년 작가들을 발굴하는 등 ‘모두를 위한 예술’을 지향해 나갈 계획이다. 아침 햇살이 수면에 비치어 만들어진 반짝이는 잔물결의 길을 의미하는 호화 개관전에는 1970년대 이후 현대미술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작품 20여점이 전시된다. 김창열, 이우환, 이강소, 전광영, 김보희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국내 작가 9명뿐 아니라 샤갈, 구사마, 커푸어를 비롯해 앤서니 카로, 페르난도 보테로, 조지 콘도 등 해외 작가 7명의 작품까지 선보여 풍성하다. 작가가 많은 만큼 반인상주의,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신형상주의, 단색화, 사진조각 등 다양한 미술 사조도 엿볼 수 있다.‘아네모네의 연인’은 평생 예술을 통해 연인과의 사랑을 표현한 샤갈의 색깔을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의 말년인 1979년 작인데도 프랑스 남부 생폴드방스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연인이 서 있는 모습에서 젊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샤갈이 생전 “나의 영혼”이라고 말한 벨라가 신부로 재현돼 수십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사랑과 애정을 드러낸다.커푸어의 ‘거울’은 짙은 푸른색과 다홍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미술을 공부한 커푸어는 2012년 리움미술관 회고전, 2016년 국제갤러리 첫 개인전 등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작가다. 스테인리스스틸에 래커칠을 한 오목한 원반 형태의 조각은 사람이 기묘하게 비쳐 보이는 그의 작품의 전형성을 잘 보여 준다. 현대 미술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작가 중 한 명인 구사마의 ‘인피니티 네트’는 그의 시그니처 연작 중 하나다. 환각에서 탄생한 특유의 물방울 무늬가 거대한 그물망처럼 이어져 관객의 시선을 끌어당긴다.아트스페이스 호화 관계자는 “팬데믹 시대를 지나는 우리에게 위로와 미적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5월 8일까지.
  • 아이들이 물었다 “가족이란 뭘까”[어린이 책]

    아이들이 물었다 “가족이란 뭘까”[어린이 책]

    오늘의 햇살 윤슬 지음문학과 지성사/108쪽/1만 1000원 생명의 무게를 일깨우고 가족의 의미를 묻는 동화가 출간됐다. ‘어린이와 문학’ 추천으로 등단하고 제14회 웅진주니어문학상 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한 윤슬 작가의 첫 책 ‘오늘의 햇살’이다. 책에는 남들보다 일찍 상실과 부재를 경험한 아이들이 새끼 고라니, 열대어 베타, 늙은 고양이, 철없는 오리와 어우러져 성장해 가는 이야기가 담겼다. 비 오는 날 수로에 빠진 새끼 고라니를 구해 보살피는 소유·미유 자매와 엄마(‘안녕, 고라니’), 엄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후 엄마를 키워 낸 외할머니의 주름진 손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은하(‘작별 인사’), 마치 부모 자식처럼 서로 끔찍이 위하는 고양이와 오리를 보며 자꾸 심통을 부리는 진호(‘냥이와 오리’). 네 명의 아이는 곁에 있는 여리고 약한 동물을 보듬으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한다.미유는 고모가 엄마가 된 상황을 “난 엄마라고 불러. 고모가 우리 엄마 해 준댔어”라고 씩씩하게 대답하지만, 엄마를 잃어버린 고라니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 ‘정말 낳아 준 엄마가 필요한 걸까’, ‘진짜 엄마’란 뭘까 생각한다. 하지만 고모의 손길에 안정을 찾는 고라니의 모습을 보면서 언제나 망설임 없이 손을 잡아 주고 함께하는 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아이들에게 백점병이 걸린 열대어 베타를 버리듯 맡기고 간 어른이 있는가 하면, 베타를 살리기 위해 친구들과 고군분투하며 엄마 잃은 상실을 조금씩 치유하는 은하도 있다. 세 편의 연작 동화를 통해 작가는 ‘살아 있는 건 다 무게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족이 뭘까’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들을 토닥인다. “괜찮아, 모두 가족이야”라고.
  • 비장함 대신 환한 미소로… 조국 독립의 ‘영원한 쾌락’을 선택했다[김별아의 도시 기행문 서울을 걷는 시간]

    비장함 대신 환한 미소로… 조국 독립의 ‘영원한 쾌락’을 선택했다[김별아의 도시 기행문 서울을 걷는 시간]

    한 사내가 있었다. 잔인한 20세기가 시작되던 해 유달리 덥던 여름에 세상에 났다. 아버지는 소실을 둘씩이나 거느린 한량이었다. 어머니는 사랑을 잃고 의기소침한 여인이었다. 배다른 형제까지 6남 1녀, 아무도 병약한 둘째 아들을 귀애하지 않았다. 바람과 함께 컸다. 먼지덩이처럼 구르며 자랐다. 귀 얇은 아버지가 교활한 일본인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집안은 몰락했다.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았다. 열다섯 살에 몰씬한 단내를 좇아 일본과자점에 취직했다. 화과자와 찹쌀모찌는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뻤지만 가난한 점원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열일곱 살의 생일은 말라리아와 함께 왔다. 열병 끝에 관절염이 생겼다. 이후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뼈마디부터 저리고 아팠다. 짧은 생애가 삐걱거렸다.(졸저 ‘백범’ 중에서)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은 후대의 일이다. 민족 혹은 국가, 어떤 공동체가 역사의 인물을 기념하는 것은 과거보다 현재의 의미 때문이다. 냉소적으로 말하면 선양 사업은 잘난 자손의 가업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자손이 없거나 한미하면 같은 일을 하고도 역사의 어둠에 묻혀버리기 일쑤다. 고향의 지자체에서 자손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그조차 복불복이다.그래서 더 마음이 쓰였다. 우당 이회영 같은 명문거족 출신은 아니더라도 백범처럼 부모의 총애를 담뿍 받았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윤봉길처럼 고향의 뿌리와 월진회를 조직해 함께 활동한 동지들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복형제까지 더해 7남매 중의 둘째 아들, 용산에서도 일본 오사카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떠돌이, 안팎 어디서나 누구라도 그에게 특별한 시선을 주지 않았을 게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이 없으니 빚도 없었다. 그 고독한 바람의 사내 이봉창이 여기 있었다. ‘이봉창 집터: 독립운동가 이봉창(1901~1932)이 살던 집터이다. 이봉창은 1932년 1월 8일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명중시키지 못하였고, 그해 10월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하였다.’ 효창공원역 1번 출구 귀퉁이 화단에 더부살이했던 부정확한 표석은 철거됐고, 새로운 표석이 2018년 사용 승인된 용산KCC스위첸아파트 102동 3·4호 라인 현관 맞은편 화단에 자리잡았다. 이봉창 의사는 경성부 용산방 원정2정목(현 원효로2가)에서 태어나 경성부 금정(현 효창동) 118번지에서 열한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 살았다.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번지수가 불명확해진 탓인지 일부 인터넷 지도에는 집터와 생가터의 표기가 혼동돼 있다. ‘이봉창 집터’ 표석이 있는 102동 앞에서 후문으로 빠져나와 경사진 언덕길을 내려오면 ‘이봉창 역사울림관’이 있다. 거리로는 멀지 않은데 아파트 벽으로 막혀 있으니 아쉽다. 효창공원역 1번 출구에서 접근하면 역사울림관을 먼저 보고 표석을 찾는 동선이 자연스러울 듯하다. 역사울림관이 12시부터 13시까지 점심시간에 문을 닫는 걸 모르고 갔다가 1시간을 꼬박 밖에서 기다리게 됐다. 기념관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기에 그냥 돌아갈까 망설였다.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을 적은 패널과 사진, 기념품 몇 점을 전시한 재미없는 공간이 내가 기억하는 기념관의 전부였다. 그래도 2021년 10월에 개관했다니 뭐라도 다를까 궁금하고, 작은 뜰 앞 툇마루에 놓인 푹신한 방석이 마음에 들어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햇살은 따스하고 사위는 고즈넉하다. 거리를 향해 놓인 벤치에는 두 사람의 실루엣으로 조각이 앉아 있는데, 버튼을 누르니 녹음이 흘러나온다.“군은 무엇인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사건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제 나이가 31세입니다. 앞으로 다시 31년을 더 산다 해도 과거 반생에서 맛본 방랑 생활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에 무슨 취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인생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하여 우리 독립 사업에 헌신하고자 상해에 왔습니다.” 묻는 사람은 백범이고 답하는 사람은 이봉창이다. 쾌락을 말하는 이봉창의 말에는 허무가 묻어 있다. 허랑하고도 방탕하게, 분진으로 가득한 누항을 떠돈 자의 지독한 피로다. 이봉창의 모습은 전형적인 운동가의 그것이 아니었다. 조직은커녕 소개인이나 소개장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청사를 찾아와 일본인들이 부르는 ‘가정부’(假政府)라는 이름으로 임시정부를 찾았다. 일본말과 조선말을 섞어 쓰는가 하면 엔카를 멋들어지게 불러서 ‘일본영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오리 바람에 게다짝을 끌고 청사에 들어오려다 중국인 문지기에게 쫓겨나기까지 했다. 모두가 오해했다. 많은 이가 의심했다. 하지만 백정선이라는 가명을 쓰던 한 사람, 백범만은 그의 진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비장한 태도와 결기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마지막 자리를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의지는 굳건했다. 그는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 단순하고, 선명하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자유로운 이봉창만의 방식이 있었다. 백범의 매서운 눈빛을 어린아이처럼 맞받으며 반달눈으로 빙긋이 웃던 이봉창은 그렇게 한인애국단 1호 단원이 됐다.‘일을 맡기면 의심하지 않고, 의심하면 일을 맡기지 않는다!’ 백범의 원칙은 명확했다. 미주와 하와이, 멕시코와 쿠바에 사는 동포들이 보내준 피 같은 돈을 일체의 망설임 없이 이봉창에게 건넸다. 돈은 정직하지만 사람에 대한 믿음은 모험이다. 그러나 그만큼 의미 있는 모험이었다. 이봉창은 난생처음 진정한 믿음을 얻었다. “엊그제 선생께서 속주머니를 뒤집어 천여 원의 거액을 제게 주셨지요. 그 돈을 받고 돌아가서는 온밤을 잠들지 못하였습니다. 눈물이 절로 흐르더이다. 누더기 단벌 장삼에 굶기를 밥 먹듯 하는 형편을 뻔히 아는데, 대관절 저를 어떻게 믿고 이같이 큰돈을 털컥 맡기십니까? 프랑스 조계에서 한 걸음도 나서지 못하는 선생께서는 제가 이 돈을 가지고 달아나 마음대로 써버려도 찾으러 오지 못하실 테지요. 과연 영웅의 도량이로소이다! 제 평생에 누가 저를 이토록 믿어 주었겠습니까? 이토록 두터운 신임을 받은 것은 선생께 처음이요, 마지막입니다….”기다리길 잘했다. 두 칸짜리 한옥 크기의 이봉창 역사울림관은 평면적이고 지루하다는 기존 기념관에 대한 편견을 깬 작지만 새로운 공간이었다. 바닥에 그려진 발 모양에 맞춰 의사의 흉상을 마주 보고 서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겠다’는 선서문이 들린다. 한인애국단 단원이 돼 사진을 찍는 증강현실(AR) 체험과 1932년 1월 8일 일왕의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지는 현장에 함께하는 가상현실(VR) 체험(VR은 기술적 측면에서 조금 더 개선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을 할 수 있다. 이봉창 의거와 사형 집행, 해방 후 삼의사 묘역에 안장되기까지의 신문 기사들을 여닫이창을 화면 삼아 띄워 볼 수도 있다. 직접 가보지 못한다면 인터넷을 통한 3D 체험도 가능하다(https://my.matterport.com/show/?m=T9Wk7zuBySz). 오롯이 이봉창 의사를 기리는 공간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마음이 홀가분하다. 이제는 그 사내도 영원한 쾌락 속에서 편히 쉬리라. 바람 끝이 많이 따뜻해졌다. 바야흐로 봄인가 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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