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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UR STORY] 봄마중 가는 길은 행복하다

    [OUR STORY] 봄마중 가는 길은 행복하다

    봄이 멀지 않았다. 반가운 사람들이 나누는 인사가 겨울옷을 먼저 벗어냈다.“겨울이 매섭다.”던 사람들,“이제 겨울도 끝물”이라더니 며칠 새 “봄 다 됐네.”로 인사말을 바꾼다. 어느새 풍향을 달리한 바람에는 겨울의 혹독한 살풍경 대신 남녘의 살가운 햇볕이 얹혀 온다. 그 바람 끝에 얼굴을 디밀고 흠흠 꽃내음을 맡으려는 도시인들에게 봄은 반갑게 풋풋한 품을 연다. 남녘의 시인이 보낸 편지글 속에서도 물씬 봄의 향기가 묻어난다. 그의 매화예찬은 오롯하게 피어나는 홍매화의 서정이기도 하고, 시한을 힘겹게 넘어온 우리들의 월동기이기도 하다. 이 겨울 내내 저 매화를 기다려 왔습니다. 겨울이 유난히 추웠기에 그대와 나란히 서서 꽃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얼어서 터진 남루의 손등 감추지 않고, 그대의 손을 잡고 꽃 앞에 서고 싶었습니다.(중략)오늘 홍매화꽃 사태 속에서 그대는 나의 꽃이었습니다. 우리는 억겁 인연의 가지에서 만난 따뜻한 햇살과 꽃이었습니다. 나는 그대에게로 무너지는 햇살이었고, 그대는 나에게로만 피는 꽃이었습니다.’(정일근 시인의 ‘사람의 사랑도 꽃이 될 수 있으니’ 중에서) 그 시인의 오감을 일깨운 봄의 장대한 서사가 막 시작되려 한다. 봄, 그 현란한 ‘만화방창(萬化方暢)’의 조화 속에서 목숨이란 목숨은 모두 새 뼈를 얻고, 거기에 새 피와 살을 얹어 또 한 해를 준비할 것이다. 모두들 길가로 나서 어디에서 흘러들었는지도 모르는 익숙한 향기에 다시 취할 것이고, 나설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아련하게 추억할 것이다. 언젠가 이빨 시리게 맞았던 이른 봄날의 아릿한 바람과 그 바람에 실려온 아름다운 가슴앓이를. 문득, 꽃집에 다발로 실려와 놓인 남녘의 솜털 보드라운 버들개지의 벙그는 아퀴가 눈길을 끈다. 그 곁에 각시처럼 자리를 잡은 목련의 물오른 꽃망울이 수줍다 못해 부르르 제 몸을 떨고 있다. 화려한 봄 축제의 기억은 겨울이 길었던 사람들의 가슴에서 먼저 꽃망울을 터뜨린다. 봄이다. 남녘은 벌써 분주하다. 매화는 난분분하며 온 천지에 향기를 퍼뜨리고, 수더분한 산수유는 마을 어귀나 산발치에 아무렇게나 서서 겨울의 수묵에 샛노란 생명의 명도(明度)를 더한다. 아쉬운 무엇이 있어 더 머뭇거릴 것인가. 짧디나 짧은 봄, 그 봄으로 가자. 살 떨리게 반가운 꽃들을 찾아서.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남도로 떠나는 봄맞이 여행 우수를 지난 봄이 경칩을 향해 줄달음 치고 있다. 봄처녀들의 가슴이 까닭없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는 것도 이맘때. 겨울이 맥없이 꼬리를 감추는 모습에서 서운함도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오는 봄이 달갑지 않을 이유 또한 없다. 남도의 들녘에서는 벌써 꽃소식이 전해온다. 문득 엉뚱한 상상이 고개를 쳐든다. 꽃이 북상하는 속도는 얼마나 될까? 남도의 끝자락 해남에서 서울까지는 천리길, 400㎞정도 된다. 이곳에서 전해진 꽃소식이 10일 뒤면 서울에 가 닿는다니, 하루에 40㎞정도 가는 셈이다. 오는 봄을 맞으러 전라남도 무안과 함평 등을 다녀왔다. 세발낙지와 함평한우 등 먹거리와 은빛 숭어가 뛰노는 함평만 등 볼거리가 많아 봄맞이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글 사진 무안·함평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한우와 나비의 고장 함평 남도에 오면 가장 정감이 가는 것이 농가의 지붕. 팔작지붕이며 우진각 지붕 등 우리 고유의 지붕형태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집들이 꽤 많다. 멋들어지게 뻗어나간 처마를 보라. 마치 파란 봄하늘 속으로 훨훨 날아갈 것만 같지 않은가. 기능성만 강조하느라 멋없이 지붕 위를 싹뚝 잘라버린 양옥집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머리만큼은 서양 것에 양보하지 않겠다는 올곧은 자존심이 엿보인다. 점심 무렵 도착한 함평읍. 봄빛이 완연하다. 아직 겨울에 발목잡힌 도회지만 생각하고 걸쳐입은 두툼한 방한복이 여간 거추장스럽지 않다. 얇아진 옷만큼이나 오가는 주민들의 표정도 밝고 가볍다. 사실 함평은 이제껏 여행지로서는 특출나게 내세울 것이 없는 곳이었다. 함평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나비축제(www.hampyeong.jeonnam.kr). 우리나라에서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관광축제다. 올해는 5월 3∼8일까지 열린다. 나비 외에 유명한 것이 천지한우.‘전라도 소값을 좌우한다.’는 함평 우시장 덕분에 질좋은 한우고기를 싼값에 먹을 수 있다. 근동에서 음식솜씨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금송식당(061-324-5775)에 들어섰다. 생고기를 주문했더니 금방이라도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검붉은 한우고기가 쟁반 가득 담겨 나왔다. 주인 김정애(50)씨의 음식자랑이 거침없이 이어졌다.“소고기는 앞다리를 먹어야 하지라. 앞박살, 양지, 홍두깨, 아롱사태, 부채뼈 살 등 5가지 부위가 골고루 섞여 있응께 맘껏 드시쇼.” 생고기 1인분 1만 7000원, 생고기 비빔밥은 5000원을 받는다. # 감태향 가득한 돌머리 해안 달고 쫄깃한 한우 생고기로 허기를 채운 다음 돌머리(石頭)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 육지의 끝이 바위로 되어 있어 돌머리라 했다. 돌부리가 해수명당과 연결돼 있다 해서 광산 김씨들이 묏자리를 잡은 곳이기도 하다. 물오른 봄바다. 감태(甘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언제든 질리지 않는 해조류 특유의 비릿하고 상큼한 향기다. 함평만 너머로는 해제반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바닷물을 방조제 형태로 막아 만든 2700평의 수영장이 독특하다. 썰물 때도 해수욕을 즐길 수 있도록 노천 바다수영장을 만든 것. 수영장 둑이 높지 않아서 밀물 때 바닷물이 흘러들어와 자연스레 물갈이가 된다. 바닷물과 함께 들어온 물고기들도 썰물 때면 꼼짝없이 갇히게 될 터. 사람과 물고기들이 너나없이 한 곳에서 놀게 될 듯하다. # 펄떡거리는 숭어회 함평만과 해제반도 칠산 앞바다에서 잡아올린 숭어는 눈가에 황금색을 띠는 참숭어. 제철에다 자연산이다. 숭어껍질은 살짝 데쳐 소금장에 찍어먹는데, 꼬들꼬들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숭어회 역시 달고 쫀득하기 이를데 없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붉은색 살을 보면 침이 절로 괸다. 바닷물에 한번 씻어놓으면 살이 더욱 꼬들꼬들해진다. 회를 뜨고 남은 뼈로끓인 매운탕은 국물맛이 달고 시원하다. 조금 때는 숭어가 잡히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확인을 하는 것이 좋다. 돌머리관광횟집(061-322-9228) 주인장의 음식솜씨가 제법 알려져 있다. 숭어회 1접시에 3만원을 받는데, 싱싱한 자연산 석굴 등 해산물이 푸짐하게 곁들여진다. ■ 무안에서 즐기는 5색 진미 무안 들녘은 황토땅. 차라리 붉은 색에 가깝다. 황토 들판 옆으로 푸른 양파와 마늘밭, 그리고 파아란 하늘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먹거리 천국이기도 하다. 한번 나들이에 5가지 감칠 맛을 맛볼 수 있다 해서 ‘무안 5미(五味)’라는 이름이 따로 붙었다.짚불 삼겹살, 양파 한우, 도리포 숭어, 영산강 장어, 무안 낙지 등. 들과 바다에서, 그리고 강에서 ‘오색진미’를 맛볼 수 있다. 들에서 나는 별미로는 단연 돼지짚불구이. 목포에 홍어삼합이 있다면, 사창리에는 짚불삼겹살 삼합이 있다. 삼겹살과 양파김치, 기젓(갯벌 게로 만든 젓갈) 등이 어우러져 조화를 낸다. 암퇘지 삼겹살과 목살, 목등심 등을 볏짚을 이용해 1분정도 구워먹는데, 고기 속에 스며든 짚의 향긋한 냄새가 일품. 두암식당(061-452-3775)이 많이 알려져 있다. 삼겹살과 양파김치 원조를 자랑하는 곳. 김정순 할머니가 문을 연 이래 2대에 걸쳐 50년 동안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1인분 한 판에 6000원. 강에서 나는 음식으로는 명산리 장어구이가 첫손 꼽힌다. 영산강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장어마을이 형성돼 있다. 영산강 장어는 한때 바닥을 긁으면 그물 그득 잡힐 정도로 유명했다. 영산강 하구둑 축조 이후 장어가 크게 줄긴 했지만, 명산장어집(061-452-3379)은 3대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4미(1㎏ 4마리)에 4만원. 장어집 인근에는 동양 최대의 백련 서식지가 있다. 숭어와 더불어 바다에서 나는 먹거리로 세발낙지를 빼놓을 수 없다. 일에 지쳐 쓰러진 소에게 먹이면 벌떡 일어선다는 스태미나 식품. 주낙으로 건져 올리는 게 아니라 뻘에서 삽으로 파서 꺼낸다. 착 달라붙는 힘이 여간 아닌데다 맛 또한 일품이다. 무안 낙지는 통째로 먹어야 제맛이다. 특히 산낙지를 대소금에 비벼 잠시 기절시킨 다음 먹는 ‘기절낙지’는 별미 중 별미. 무안읍 공용터미널 뒤편에 기절낙지집들이 몰려 있다. 하남횟집(061-453-5805), 청계수산(061-453-5256) 등이 유명하다. 한 마리당 6000∼7000원. # 봄은 바다에서도 자란다 현경면 월두포구는 달머리(月頭)라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곳. 우리나라 최초의 갯벌 습지 보존지역인 함해만이 이곳 해운리에서 해제반도 만풍리까지 이어진다. 수령 300년 된 곰솔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서 있는 가운데, 오른편 갯벌엔 연둣빛 감태가 푸르름을 뽐내고, 왼쪽편엔 초록빛 바다가 바람에 넘실댄다. 땅과 바다, 그리고 하늘이 맞닿은 절묘한 풍경이다. 제 아무리 바람이 매섭고 파도가 거칠어도 밀려오는 봄기운을 막을 수는 없는 것. 붉은 생명력을 토해내는 황토밭과 푸른 바다 위로 봄빛이 찬란하다. ■ 기차타고 꽃마중 가요 ●섬진강 매화 청송여행사(www.114ktx.com)는 3월10일 오전 7시 30분 영등포역을 출발해 임실 청매실농원, 익산 등을 둘러보고 오후 10시 30분에 용산역으로 돌아오는 상품을 마련했다. 어른 4만 3000원, 어린이 4만원.1577-7788. 홍익여행사(www.7788tour.co.kr)는 매화향 가득한 섬진강과 남원 등을 둘러본다. 용산역 오전 7시 출발, 오후 10시 49분 도착.3월17,18일. 어른 4만 9000원, 어린이 4만 6000원.(02)717-1002. ●진해군항제 벚꽃 3월31일과 4월1,4,5,8일 등 총 6회 운행한다. 진해 해군사령부, 제왕산 등을 돌아본다. 서울역 오전 7시 10분 출발, 오후 10시 50분 도착. 어른 5만 5000원, 어린이 5만 3000원. 경인관광여행사(www.ktx7788.co.kr 032-343-7788),KTX관광레저(www.ktx21.com 1544-7786), 지구투어 네트워크(www.jigutour.co.kr 1566-3035), 홍익여행사 ●쌍계사 십리 벚꽃 남원 재래시장과 춘향테마파크, 하동 화개장터, 십리벚꽃길 등을 둘러보는 상품. 용산역 오전 7시 출발, 오후 10시 30분 도착.4월7,8일. 어른 3만 9000원, 어린이 3만 8000원. 홍익여행사. ●금오산 왕벚꽃 금오산 왕벚꽃과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등을 둘러본다. 서울역 오전 8시 출발, 오후 10시 도착.4월13일. 어른 4만 4000원, 어린이 4만 2000원.KTX관광레저. ●해인사 벚꽃 해인사와 홍류동 계곡의 벚꽃길을 돌아보는 상품. 서울역 오전 8시 출발, 오후 10시 10분 도착.4월13일. 어른 4만 6000원, 어린이 4만 3000원.KTX관광레저. ●환상의 섬 외도 꽃과 나무, 그리고 바다로 둘러싸인 섬 거제시 외도와 학동 몽돌해변, 바람의 언덕 등을 돌아보는 상품. 매주 금, 토요일 오후 10시 47분 영등포역을 출발해 다음날 오후 10시 6분 서울역으로 돌아온다. 어른 8만 9000원, 어린이 7만 5000원. 경인관광여행사. ●매화 축제와 오동도 동백 오후 10시30분 용산역을 출발, 광양 매화마을과 여수 오동도를 둘러보고 다음날 오후 10시 용산역으로 돌아온다.3월 17일. 어른 6만9000원, 어린이 6만5000원.KTX관광레저. ●섬진강 매화축제와 향일암 해돋이 여수 향일암 해돋이와 광양 매화축제 등을 둘러본다.3월23,24일. 서울역에서 오후 10시50분 출발해 다음날 오후 9시50분 돌아온다. 어른 6만 4000원, 어린이 5만 9000원.KTX관광레저. ■ 둘러볼 만한 곳 ●고막천교 궁궐이나 관청 등이 아닌 순수 민간지역의 다리로는 가장 오래된 곳.700여년 전인 고려 원종 15년(1274)에 세워졌다. 서민들이 애용하던 질그릇 같은 투박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보수공사를 해놓아 옛모습이 적잖이 사라진 것이 흠. 함평으로 향하는 2번국도변에 있어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함평군청 문화관광과(061)320-3733. ●자산서원 곤개 정재청(1529∼1590)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 함평군 엄다면 제동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남인과 서인의 정권교체가 이뤄질 때마다 설립과 철거가 반복되면서 정치적으로 주목받던 장소. 현재 이곳에 남아 있는 정재청의 문집 ‘우득록’은 호남사림의 인맥이나 동향 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 “죽기전 좋은 일 해 행복해요”

    “죽기 전에 좋은 일 한 번 하고 싶었어요. 너무 마음이 좋고 행복하네요.” 27일 자신의 전재산을 내놓고, 좁은 단칸방에 앉아 환한 웃음을 짓는 박영자(87·양천구 신정3동) 할머니의 얼굴은 봄 햇살보다 따뜻하다.박 할머니는 매월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 33만원에 노인수당 5만원을 받으며 소일거리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집 근처 복지관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전기나 가스 등은 쓸 일도 별로 없다. 이렇게 생활한 박 할머니가 80평생 만든 돈은 1000만원이다. 박 할머니는 이 돈을 좋은 일에 써달라며 신정3동사무소에 선뜻 내놓았다.“얼마 전에 혼자 살던 노인 한 분이 죽었어. 장례 치르자마자 전세금 가지고 주변사람들끼리 다툼이 난 거야. 나도 이제는 하루하루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차라리 좋은 일에 쓰자고 생각한 거지.” 가족이라고는 연락조차 되지 않는 조카뿐이라 혈혈단신이나 마찬가지인 박 할머니는 전재산을 현금으로 찾았다. 전세금 900만원은 장례를 치러줄 사람에게 주기 위해 남겨두고 손에 쥔 돈이 1000만원. 동사무소를 찾아 건넸다. 동사무소는 서울시 시회복지공동모금회에 연락했고, 할머니의 선행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경북 문경 출신인 박 할머니는 공무원 아버지를 둔 덕에 보통학교(초등학교)를 다니며 유복하게 살았다.6·25 전쟁이 터진 뒤 가세가 기울고, 스무살에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병에 걸려 죽자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갔다.경주로 건너가 15년 동안 남의 집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도와 주기도 했고, 서울로 올라와 허드렛일을 하며 생활해 왔다. 할머니의 사연을 들은 모금회 관계자는 박 할머니에게 “이 돈을 보태 더 좋은 집으로 가서 사시라.”고 권했다. 하지만 박 할머니는 “이 집에서 10년 이상 살았고, 지금 주인과 잘 지내고 있어 가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사를 가면 아플 것 같다.”며 거절했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화사한 봄빛을 집안 가득히

    화사한 봄빛을 집안 가득히

    입춘(立春)이 지난 지도 벌써 보름이다.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지만 한낮에는 문득문득 봄인가 싶을 정도로 햇살이 부드럽다. 우리 생활공간에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 겨우내 갇혀 있던 방과 거실에 남보다 일찍 새 봄을 초대해 보자. 봄맞이 단장의 기본은 구석구석 먼지를 털고, 샅샅이 쓸고, 빡빡 걸레질 하는 온가족 집안 대청소. 한발 더 나아가 가구나 전자제품의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든 게 그렇듯 지갑을 열면 더 밝고 다양한 봄빛을 집안에 불러올 수 있다. 거실분위기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게 커튼이다. 좀처럼 유행을 타지 않는 커튼은 무엇보다도 가구 색상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요즘 나오는 가구나 가전은 그 자체로서 색상과 디자인이 세련돼 커튼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무겁고 짙은 색상의 가구가 많다면 베이지색이나 어두운 계열의 차분한 분위기로, 밝은 원색 계열의 가구가 많다면 밝은 계열의 커튼이나 쿠션으로 조화시키는 것이 좋다. 거실의 가구는 최소화하는 추세다. 색상도 화려함보다는 화사하고 깔끔한 쪽으로 가고 있다. 소파는 낮으면서 넓은 것들이 대세다. 화분·도자기 인형 등 세련된 소품으로 분위기를 바꿔볼 수도 있다. 특히 화분은 초록빛에 생명감과 싱그러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소품이다. 화려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값은 비싸지만 ‘스와로브스키’ ‘하우스 오브 스칸디나비아’ 등의 크리스털 소품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열대 바다 속 느낌을 주는 장식품(스와로브스키·147만원), 시원한 느낌의 크리스털 화병(하우스 오브 스칸디나비아·40만∼60만원) 등이 있다. 방벽지를 바꾸면 큰 돈 안 들이고 방 안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다. 요즘은 벽면 전체를 화려한 벽지로 하기보다는 포인트를 정해 한쪽 면만 화려한 느낌으로 도배하는 게 유행이다. 그래야 더 깔끔하고 화사해 보인다는 것이다. 여러 색상이 쓰이면 산만한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한 가지 주 색조를 정해서 꾸며야 정돈된 느낌이 난다. 아이들 방의 벽지는 아이보리, 화이트, 핑크 등에서 더 과감해져 진한 색상들을 써 보자. 예를 들면 연한 핑크에서 진한 핑크로, 연한 블루에서 진한 블루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도자기 인형이나 탁상시계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좋다. 빨강·노랑·파랑 등 원색의 반투명 아크릴로 만들어진 소품들을 이용하면 화사한 분위기를 낼 수 있다. ■ 도움말 롯데백화점 도민수·홈플러스 정미화 바이어, 현대백화점 김미예 홈스타일리스트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길섶에서] 달동네 겨울밤/우득정 논설위원

    산비탈을 따라 닥지닥지 들어선 달동네는 겨울철이면 더 슬프게 느껴진다. 사람이 마주 오가기에도 좁게 보이는 골목을 사납게 휘감는 바람, 바람결에 쉴 새 없이 신음하는 쪽문, 연탄재와 빙판으로 얼룩진 가파른 언덕길…. 겨울철 달동네를 더욱 서럽게 만드는 풍경이다. 뒤엉킨 골목길은 하루해가 다하도록 한뼘의 햇살 조각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그곳의 고단한 삶은 더욱 침울한 무게를 더한다. 서울 강남의 어느 건물에 걸린 ‘달동네 겨울밤’ 사진. 온통 흰눈을 이고 있는 지붕 위로 전봇대에 매달린 백열등만 선연하다. 눈덮인 산골마을과도 같은 정감마저 느껴진다. 삐걱거리는 쪽문 소리도, 삶에 짓눌린 한숨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아침이면 빙판길로 바뀔 좁다란 골목마저 두툼한 솜이불을 깔아놓은 것처럼 포근하게만 보인다. 달동네를 이토록 따뜻한 평온이 깃든 곳으로 바꿔놓다니. 지나친 배반이다. 사진 건너편 언덕에서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있는 사진작가를 그려본다. 셔터를 누르는 그의 마음에 무엇이 떠올랐을까. 안도감일까, 위장된 평화에 대한 분노일까.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홍두식의 루어낚시 따라잡기]파로호 ‘빅 배스’ 낚시

    [홍두식의 루어낚시 따라잡기]파로호 ‘빅 배스’ 낚시

    유난히 따뜻한 겨울 날씨 덕에 결빙이 되지 않은 곳이 많아서 예년과 달리 ‘배스 낚시인들’의 출조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강원도 화천에 있는 파로호는 배스낚시보다 쏘가리 낚시터로 유명한 곳. 최하류의 구만리 선착장 주변에서는 야생 송어도 함께 노릴 수 있다. 보통 겨울에는 수심이 깊은 곳을 겨냥한 보트낚시만 가능했지만, 요즘엔 햇볕이 잘 들고 수온이 빨리 오르는 얕은 지역에서도 의외로 ‘빅 배스’들이 자주 출몰하고 있다. 물줄기는 크게 북한강과 양구쪽으로 나뉜다. 중류지역인 상무룡리와 월명리, 하류지역은 태산리 등이 배스낚시 포인트로 유명하다. 수온이 크게 떨어져 있는 아침보다는 오후 시간대를 공략하는 것이 효과적. 햇살이 다른 곳보다 일찍 비치고 지속적으로 내리쬐는 양지 바른 포인트를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따뜻한 물이 유입되는 골 안쪽, 급격하게 떨어지는 깊은 수심대와 연결돼 배스가 언제든지 대피할 수 있는 얕은 지형을 유심히 관찰한 다음 낚시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배스는 경계심을 많이 갖기 때문에 얕은 곳에 진입할 때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연안에 가까히 가기 전, 멀리서 캐스팅하는 것도 한 요령이다. 낮은 수온에서는 입질이 매우 약하다. 바닥을 아주 천천히 끌다 정지했을 때 조금이라도 툭∼ 하는 느낌이 있거나 약간 묵직하다 싶으면 후킹을 해주어야 한다. 미세한 입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손목과 낚싯대 끝에 신경을 집중해야만 한다. 바늘도 가능한 한 돌출된 훅을 써 주어야 유리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밑걸림과 채비 손실은 감수해야만 한다. 깊은 지역에서는 메탈지그나 스푼을 많이 사용하지만, 장애물이 많은 얕은 지역에서는 걸림이 심하기 때문에 웜 또는 정지 액션을 연출하는 하드 베이트가 적합하다. 화천호는 4∼5년전까지만 해도 배스낚시터로 각광받던 곳이었지만, 유해 어종 퇴치라는 명목하에 계속된 배스 수매로 인해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 있는 상태다. 루어낚시 동호인이 급격히 불어나는 추세에 비해 대상 어종이 자꾸 줄어드는 것을 보면 스포츠피싱의 대명사로 불리는 배스낚시터로의 활용에 대해 심도있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라팔라·에코기어 스탭
  • 화가 남궁문의 섬진강 자전거 하이킹

    화가 남궁문의 섬진강 자전거 하이킹

    남들처럼 승용차가 있기를 하나, 그렇다고 여기저기 비싼 교통비를 들여가며 여행할 돈이 있기를 하나…. 에이, 자전거라도 타고 떠나 볼까? 나의 ‘자전거 여행’은 그런 생각에서 시작됐다. 사실,‘여행’이란 개념도 없었다. 그저 운동 삼아 날마다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으로 자전거를 타던 나는, 여행을 떠난다는 거창한(?) 뜻도 없었다. 물론 그 전에도 그런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이 동네(서울 태릉 주변)를 벗어나 국도를 거쳐 나가는 일이 선뜻 내키지 않았고,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 때문에 겁도 많이 났다. 서울을 벗어난 장거리 여행을 떠나려면, 자전거의 성능도 문제였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지금 타는 자전거는, 한 친구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녹슬고 있다며 나에게 떠맡기듯 가져온 것인데다가, 특히 기어가 힘을 못 받아 오르막길에선 체인이 벗겨지는 소리가 틱, 칙! 들리면서 이따금 벗겨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지금 새로운 좋은 자전거를 구입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니, 일단 자전거포에 가서 점검을 하고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어차피 사이클 선수도 아닌데 굳이 속력을 낼 것도 없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달리다 보면 어디든 못 가겠는가 하는 배짱도 생겼다. 그리고 국도가 위험하다면, 그보다 좁은 마을 소로 등을 타고 다녀도 될 것이었다. 어디든 길은 길과 연결되었을 테니, 아무래도 내 스스로 몸을 조금 더 놀리면 고생이야 되겠지만, 그래도 못 갈 곳이 없을 것 같다는 용기도 생겼다. 그리고 또 하나, 잠자는 일이 걱정이었다. 무엇보다도 돈이 문제였다. 하루 나들이라면 모를까, 며칠씩 나가 있게 된다면 가난한 화가인 나에겐 그 숙박비만도 결코 무시 못할 테니…. 그러던 중 인터넷 카페를 돌아다니다가 얻은 정보, 찜질방에 가서 자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 때까지 찜질방에서 자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낯설기도 하고 또 그런 곳에 가서 잠을 잘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의문이었지만, 이미 힘들게 결정된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그런 다음 겁없이(?) 자전거로 떠났는데, 인터넷 카페에서 읽었던, 처음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던 한 네티즌의 표현대로, 나 역시 처음 떠났다가(2박 3일간) 돌아오면서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이때가 2005년 9월초였다. 그렇게 시작된 ‘자전거 나들이’는 이제, 우리나라의 많은 곳을 싸돌아다닌 정말 ‘전문 자전거 여행’이 되어버린 것이다. artistdaiary@hanmil.net # 한적한 861번 지방도로 빙판길 겨울 섬진강은 듣기만 해도 설렌다.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였다. 점심을 먹고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친구 K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요즘엔 그림도 잘 풀리지 않아서, 오늘 친구를 만나면 오랜만에 저녁을 같이 하면서 술이라도 한 잔 할 생각이었다. 그런 기대를 걸고, 한 시간 동안 세 번의 전화를 걸었는데도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짜증이 났다. 오늘은 친구를 만나지 말라는 건가? 그렇담, 오늘 오후엔 뭘 한다지? 그러다가 에이, 오늘 떠나 버릴까? 순간적으로 내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자전거는 지금, 전북 남원에 있다. 지난 번 자전거 여행은 남원에서 끝을 냈고, 거기 직장이 있는 친구 숙소에 자전거를 맡기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문득 남원에서 구례를 거쳐, 섬진강변을 따라 매화마을인 광양을 지나는 여정이 머릿속을 차지했다. 그래서 남원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이 눈 속에 어딜 가려느냐고 펄쩍 뛴다. 걱정하지 말아. 춥다고 못 떠난다면, 언제 떠나겠어? 곧바로 남원으로 향했다. 조금은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래야만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친구를 뒤로 하고 자전거를 끌고 친구 숙소를 나섰다. 쨍하게 햇살이 돋는 맑고 깨끗한 겨울 아침이었다. 그만큼 공기도 찼다. 도로에는 일부 눈이 녹은 곳도 있었지만 응달쪽엔 그저께 내린 눈이 남아 빙판길도 있었다. 모처럼 타는 겨울 자전거이기도 했거니와, 위험스러운 눈길로 가는 행로라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아야만 했다. 구례읍에서 나는 섬진강의 서쪽 길로 방향을 틀었다. 아무래도 섬진강을 경계로 하동으로 가는 동쪽 길(19번국도)엔 눈이 녹았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서쪽 길(861번 지방도)을 택한 것은 차량의 통행이 적어 한적할 것이고, 그만큼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가 있을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물론 섬진강을 끼고 양쪽엔 도로가 있고, 그 옆으론 상당히 높은 산들이 있기 때문에 서쪽은 빙판길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적한 길을 택했다. 예측이 맞아 서쪽 길은 군데군데 빙판길로 이어졌고 길을 달리면서 눈으로 보기에도 강 건너 하동 가는 길은 따스해 보여 평화로웠으나 차량 통행은 훨씬 많았다. # 응달길 바닥에서 꽈당! 그렇게 섬진강변을 따라 내려가는데 사진에라도 담고 싶은 지리산 풍경들을 자꾸만 지나치고 있었다. 경치 때문에 자주 멈춰 사진을 찍기에는 빙판길 자체가 매우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이 녹은 길에서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지리산 쪽 풍경을 감상하면서 또 응달을 만나면 정신을 집중해서 바닥에 온통 신경을 써야만 했다. 물론 몇 차례 자전거를 세우고 지리산 쪽 풍경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날씨가 춥긴 했지만 다행히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깨끗한 날씨이기도 해서, 한적한 겨울날을 즐기며 자전거를 달리는 맛도 썩 좋았다. 아무래도 겨울이라 응달을 지날 때는 코가 찡하도록 공기가 찼지만, 햇볕이 있는 곳을 지날 때는 아늑한 따사로움도 느껴졌다. 이게 바로 자전거 여행의 장점이기도 하다. 눈에 쌓인 풍경도 아름답겠지만, 이 길은 명산 ‘지리산’을 끼고 부드럽게 흐르는 ‘섬진강’도 함께 하기 때문에 철마다 다른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었다. 길은 빙판과 녹은 길로 반복되어 나타났다. 그런 모든 현상이 다 햇볕에 의한 것이라, 자전거로 달리면서도 태양의 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달렸을까. 사진을 찍느라, 그리고 아무래도 빙판길이라 씽씽 달릴 수가 없어서 생각보다 많은 거리를 지나온 건 아니었다. 그래도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자전거로 달리기에 그리 멀다고 볼 수만 없을 거리였다. 그 길을 만끽하며 가능하면 느긋하게 가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 응달 길로 접어들었는데, 어? 어, 어! 꽈당! 길바닥 한 가운데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아무 정신이 없었다. 반사적으로 길 양편을 살펴 보니, 다행히 다른 차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도, 아, 교통사고라는 게 이런 식으로 일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자전거가 미끄러지며 빙판길에 떨어지는 순간 짚었던 왼쪽 손목이 찡!하게 울려왔다. 자전거 바퀴에 꼬였던 다리를 풀고 겨우 일어서서 길 가에 자전거를 세우고 옷에 가득한 눈을 털어냈다. 아니, 이게 무슨 꼴이람. 만약에 누군가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봤다면?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일어나 한 쪽 다리를 절면서,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강변도로를 따라 내려갔다. # 나룻배 사라진 강에 아치형 ‘화개교´ 다시 양지쪽으로 나오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이제야 ‘휴’ 하는 한숨이 나왔다. 자전거를 이리저리 살펴 보니 별 이상은 없어 보였다. 다만, 땅에 떨어지며 짚었던 왼쪽 손목이 약간 시큰거리긴 했다. 쌓인 눈의 모습이 줄어드는 남쪽으로 향한 길을 타고 내려가는데, 저 멀리에 아치 형 구조물이 눈에 들어 왔다. 최근에 건설된 화개교였다. 강 건너에는 ‘화개 장터’가 있는 곳.10여 년 전에 그 곳에 갔을 땐, 저 다리는 없었고 강 건너까진 양 편에 매달아 놓은 밧줄을 잡고 다니는 나룻배가 오가던 정겹던 곳이었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 천천히 페달을 돌리며, 화개교를 지나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른 편으로 마을이 보이고 저 멀리 산 아래엔 아마득한 산촌 하나가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그 마을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핸들을 오른 쪽으로 꺾었다. 오르막길이다 보니, 얼마 가지 못해서 바로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올라야만 했다. # 씽씽 내려오는 길 싱겁고 짧기만 화개교 부근은 산과 물의 골이 깊어서인지 바람의 통로처럼 어디서 불어오는지 방향도 모를 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갑자기 춥다는 생각이 들어 모자를 뒤집어 썼다. 그렇게 두어 굽이를 돌며 오르다 보니, 하얀 눈에 쌓인 마을이 보였다. 조금 전에 길바닥에 넘어진 기억에, 그 마을에 오르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 길은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이었다. 자전거를 다시 돌렸다. 오르막길을 오르다 방향을 돌려 내려가는 건 순간이었다. 하기야, 자전거는 늘 이렇지. 힘들게 힘들게 오르막길을 오른 뒤, 씽씽 내려오는 시간은 왜 그리 싱겁고 짧기만 한지. 어쩌면 우리네 인생의 모습일지도 몰랐다.‘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고통을 동반한 힘든 노력을 해도, 그에 합당한(?) ‘행복’은 왜 이리 항상 짧게만 느껴지는지. 내리막길 찬바람에 얼굴이 얼얼했다. 문득,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웠다. 겨울에 혼자 떠나는 자전거 여행인데 그런 편안함을 찾아온 건 아니었지…. 그런데 왜 이렇게 남들이 말리는 여행을 죽자사자 하겠다며 나서는지 모르겠다. 글쎄, 나에게도 그 건 영원한 수수께끼다. 이런 여행은, 아니 내가 이미 해왔던 여행들은, 어쩌면 내 운명에 이미 기록돼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앞으로 할 여행도 이미 정해져 있는 건 아닐까? # 제멋대로 생긴 강기슭엔 살얼음만 길은 강을 따라가기 때문에 완만한 내리막이라서 힘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햇살이 따스해서, 봄길 같기도 했다.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평화롭게 보이는 섬진강도, 이 추위에는 얼음을 얼리지 않을 수 없나 보았다. 강가에는 군데군데 얼음이 얼어 있어서, 겨울의 을씨년스러움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도 저 비단결 같은 강물 양편에 넓고 좁은 제멋대로 생긴 모래사장을 끼고 있는 섬진강 풍경들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저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에 내려가 보리라. 차가 아닌 자전거 여행이기에 내키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것이니까. 유심히 길을 살피며 페달을 밟다가 강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보이는 곳을 발견하고는 자전거를 멈췄다. 그 통로 주변엔 매화나무로 보이는 나무들이 많았는데, 아직은 겨울눈을 빼꼼하게 내 놓고 있었다. 여기에 매화가 피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텐데…. 모래사장은 원시의 모습 같았다. 사람의 발자국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 건, 겨우 내내 추워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바람에 모래들이 날려서 사람들의 발자국을 지워 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나에겐 원시의 모습으로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흐르는 강물 때문에 하동 쪽 도로로 달리는 많은 차량들과도 격리된 상태여서, 어쩌면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모래밭으로 보였다. # 발자국까지 남겨놓기 아까운 모래사장 모래사장은 너무 곱고 깨끗해서, 내 발자국을 남겨 놓기도 조금은 죄스러운 기분이었다. 굳이 그렇다고 발자국이 안 남을 것도 아닌데, 까치발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모래사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금 도톰하게 올라 있는 모래 언덕에 앉아 보았다. 아무도 없는 호젓함이 나를 감쌌다. 이 세상엔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이른 오후의 햇살은 아직 따스했고, 살기마저 느끼도록 새파란 하늘 아래론 머지않아 다가올 봄을 실음직한 맑은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봄이 되면 이 강가엔 매화가 만발하리라. 그래, 매화가 필 때 다시 오리라. 다시 오고 말리라. 너무나 맑고 깨끗한 하늘과 바람이 있는 강변에서, 나는, 하모니카라도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 여행정보 주변 가볼 만한 곳=구례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산수유 축제, 하동 쌍계사, 평사리(‘토지’ 배경) 매화 축제, 광양 매화마을 매화축제. 먹거리로는 섬진강 재첩국, 섬진강 참게장, 참게 매운탕, 매실 장아찌 등이 유명하다. ▲그가 지나온 길 1983년 홍익대 미술대 서양화과 졸업,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학 회화과 박사과정 수료(93년), 멕시코 국립조형예술대학 벽화과정 수료(97년), 도보여행 ‘산티아고 가는 길 (2001년 여름 첫번 째)’‘산티아고 가는 길(2004년, 겨울 두번 째)’‘외출금지 전’(일민미술관) 외 개인전 8회, 주요저서=멕시코 벽화운동(2000·시공사), 아름다운 고행, 산티아고 가는 길(2002·예담)
  • 경동호텔 고객은 무조건 귀빈대우

    경동호텔 고객은 무조건 귀빈대우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20여년동안을 한결같이 손님들을 무조건 귀빈대접하는 호텔이 있어 인류가 달에 갔다온 20세기 후반기에도 계속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고색찬연한 전통속에서도 하루가 멀다고 날로 새로워지는 시대감각(時代感覺)에 알맞은 참신한 경영방침으로 최신형(最新型) 일류(一流)호텔에 못지않은 호텔의 명문 경동호텔(회현동(會賢洞) 1가 130 TEL (24) 3116~7)을 가본다. 경동호텔은 지금으로부터 20년전에 건립한것으로서 우리나라 민간호텔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5백만 시민이 우굴거리는 서울의 심장부에 우뚝 솟아 있는 남산(南山)이 인왕산쪽으로 줄기차게 뻗어내려가다가 끝인 가장자리-중구(中區) 회현동 입구(入口)에 자리잡고 있는 경동호텔은 그대로 우리나라 호텔의 산역사를 말해주듯 고색찬연하게 도사리고 있다. 하루가 멀다고 새로와지는 시대감각에 뒤질세라 경동호텔 특유의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살린 보다 진보된 경영과 저렴한 봉사로 고객을 맞는다. 「일하는 개미는 굶지않고」「흐르는 물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것」과 같이 경동호텔의 고객을 위한 간단(間斷)없는 노력은 언제나 일류호텔을 능가하는 승수파장(乘數波長)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고도의 관광교육을 받은 30여명의 종업원들이 베푸는 풍성한 친절은 누구나 경동호텔을 찾게 되면 「귀빈대우」를 충분히 해준다. 그래서 어떤 고풍(古風)스런 촌로(村老)는 이곳을 가리켜 가장 인사성있고 예절 바른 호텔이라고 격찬했지만! 더욱이 수도 서울의 명소 남산을 등에 업고 있어 풍치(風致)의 아름다움은 말할수 없고 고층건물의 처마밑을 지날때마다 그 거대한 건물의 도괴(倒壞)를 두려워하는 현대인의 노이로제가 이곳 경동호텔에서는 완전히 배제된다. 광난과 소요속에서 신경질적으로 충혈된 현대인의 피곤을 풀기에 알맞은 이곳 경동호텔은 한낮의 소란도 차라리 말짱 잊어버릴수가 있는 별천지라고 할수있다. 5월의 햇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한나절 어딘가 누구에게 다정한 대화라도 나누고 싶은 그런 충격을 안고 경동호텔은 찾은 취재기자의 촉각도 이곳에서는 편히 쉬고싶은 것도 오히려 당연할일! 호텔이라기 보다는 가정과 같이 아늑하고 마음의 고향과 같은 포근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이곳 경동호텔의 분위기는 서울이면서도 서울의 유배지처럼 시장속같은 혼잡과 번거로움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교통이 지극히 편리하고 남대문 시장이 지척에 있기때문에 굉장히 소란할 것이라는 선입감은 이곳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무산해버리고 서울 한복판에 이런 한적한 호텔이 있구나 하는 인식을 새롭게 해주기 때문에 한번 찾은 손님은 영락없이 단골손님이 되어버리곤 한단다. 오랜만에 다정한 친구와 만나 적조한 회포를 나누기에 알맞고 또 일확천금을 할수 있는 기막힌 사업이야기를 하기에도 손색이 없는 이곳 경동호텔은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 不如一見)으로 한번 찾아보지 못한 사람은 경동호텔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는 도저히 실감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월남에서 돌아온 개선용사들이나 일선장병은 여관비정도로 할인해주고 있으며 일반인에게도 절반에 가까운 요금으로 봉사해주고 있어 경동호텔은 현대의 소음속에서 피로에 지친 현대인의 조용한 「휴식의 광장」으로서의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곳이라고 할수 있다. [선데이서울 70년 5월 31일호 제3권 22호 통권 제 87호]
  • [사진특집] 첫마음, 첫걸음

    [사진특집] 첫마음, 첫걸음

    사진특집_ 첫마음, 첫걸음 사진_ 한영희 취재, 글_ 이만근, 강성봉, 정순화 기자 저 조그만 빛을 보기 위해 지구는 열네 시간의 산고를 견디었다. 인왕산 오전 6시 54분. 우수경 씨(27세)는 열 달 뱃속에 품었던 작은 생명체를 안아 든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머리맡 초음파 사진 속에서 꼬물거리던 ‘콩이(태명)’는 설탕 한 봉지만 한 무게로 예정보다 열흘 일찍 세상에 나왔다. 그녀도 여자에서 엄마로 새로 태어났다. 주둥이 모양이 제각각인 이유는, 저마다 부르고 싶은 노래가 다르기 때문이다. 1,200℃ 고열에서 한 번 더 굽고 나면 유약의 농도에 따라 다른 빛을 품게 된다. 남양주 도자골 달뫼. “공연을 보다가 엉덩이가 간질간질하다고 친구들과 떠들면 될까요?” “안 돼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고 과자를 먹으면 될까요?” “안 돼요~!” “갑자기 불이 꺼질 때가 있어요. 깜깜해지면 박수를 치는 거예요.” “네!” 처음 연극을 보러 나온 성신유치원 장난꾸러기들은 대답도 잘한다. “여러분, 토끼랑 거북이가 경주를 하면 누가 이길까요?” “다람쥐가 이겨요!” 열다섯 군데 회사에 원서를 넣었고, 악명 높은 1인 1시간 압박 면접을 통해 선발된 두산중공업 신입사원 정호영 씨(25세)의 입사 포부. “회사의 부품이 되기보다는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의 첫 출근은 2007년 1월 2일이다. “한 가닥도 남기지 않고 국물까지 싹싹 비우고 나가는 손님을 보면 흐뭇해요.” 마흔이 넘어 처음으로 자신의 가게를 차린 소담국수집 정기홍(46세), 최영민(43세) 부부는 먼지가 앉기 무섭게 새로 들인 테이블을 닦는다. 손님이 계산하고 나갈 때까지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초짜 사장이지만 최고의 국수집을 만들겠다는 꿈은 누구보다 야무지다. 마자렐로주부학교 한글반 열다섯 명 할머니들이 ‘한글 떼기’에 한창이다. 나이 육십에 가나다라를 배우기 시작한 이영수 할머니(62세)는 이제 버스 정류장 이름을 더듬거리며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손자가 넷인데, 나중에 편지 쓸라고!” 매일 보는 받아쓰기 시험이 어렵지만 할머니는 오늘도 아침 등굣길이 즐겁다. “오랜 수험 생활 마치고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아쉽지만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저 때문에 애쓰셨던 부모님 건강하셨으면 좋겠고요. 새로 시작하는 대학 생활에 재미난 일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 이런 바람은 좀 이르긴 하지만 건실하고 능력 있는 신랑도 만나게 해주세요.” 2007년 한성여고를 졸업하는 열아홉 혜미의 기도. 날씨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희망에 살짝 닿은 겨울 햇살이 어느 때보다 눈부신 가운데, 내일도 오늘처럼 포근한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월간<샘터>2007.1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1년만에 22집 앨범 혜은이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1년만에 22집 앨범 혜은이

    인생의 열정은 과연 섭씨 몇도일까. 사랑이 섞인다면 그 뜨거움은 간단치 않다. 굳게 닫힌, 아무리 차가운 가슴도 봄햇살에 눈녹듯 스르르 녹이겠지. 더욱이, 가슴 터질 듯한 열망의 사랑이라면 목숨까지 걸고도 남겠지. 열정이 없는 인생이야말로 생명력을 잃은 얼음조각과 다를 바 있을까. 열정을 찬란한 태양에 비교한다면 그 온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터. 문득 떠오른다.‘아야, 희망과 열정을 품으면 인생은 마술인 것이여.’ 지금부터 꼭 20년 전이다. 국민 작곡·작사가로 유명한 김희갑·양인자 부부는 자신들의 불같은 러브스토리를 담은 노래 ‘열정’을 만들었다.‘안개속에서 나는 울었어/외로워서 한참을 울었어∼’. 무려 3000여곡을 만든 이들 부부는 지금도 가장 ‘열정’을 좋아한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 혜은이(51) 또한 ‘열정’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게 됐다.1980년대 가요계를 평정한 원동력도 ‘열정´ 그대로였다. 그러던 1990년대초, 그야말로 ‘잘나가던’ 시절에 무슨 사연이 있기에 방송계와 가요무대를 훌쩍 떠나버렸다. 이후 나름대로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견디며 2002년 경기도 미사리 조정경기장 인근에서 ‘열정’이라는 카페를 차렸다. 그러자 소문을 듣고 전국의 팬들이 찾아왔다. 이심전심, 팬들의 열정이 한 군데 모아지고 정기적인 모임까지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5월부터 전국 순회 ‘열정 투어´ 2004년 봄, 팬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직접 작곡·작사가까지 섭외해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선물했다. 이는 ‘영원한 혜은이’를 향한 ‘열정의 발라드’였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혜은이는 ‘이제는 울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며 용기를 얻어 일어섰다. 신곡 3곡과 1979년도에 발표된 ‘제3한강교’를 리메이크해 ‘강해야 돼’라는 타이틀곡의 음반을 최근 제작하고 방송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것. 이는 1996년 ‘이 어둠에 서서 하늘을 보면’ 이후 11년만에 22번째 독집 앨범 출시와 함께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아울러 내친김에 오는 5월부터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하는 ‘혜은이 열정투어’에 나선다. 그동안 기다려온 팬들과 뜨거운 체온으로 현장에서 만날 예정이다. 한 여인으로, 어머니로 한동안 음지에서 살아왔던 왕년의 톱가수 혜은이. 금쪽같은 40대를 보내고 나이 쉰하나에 제2인생의 돛을 올려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혜은이를 만났다. 때마침 저녁 방송 스케줄 때문에 케이크와 커피로 미리 요기를 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 전성기 때보다 약간 살이 쪄 보였지만 얼굴은 여전히 동안(童顔)이었다. 게다가 짧은 머리에다 청바지 차림이어서 나이보다 10년은 더 젊게 보였다. 비결을 물었더니 “자주 웃어 주름살이 생길 법도 한데 살이 통통하게 올라서 그런가 봐요.”라며 호호 웃는다. 22번째 앨범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왔다. 혜은이는 2002년 3월 아침방송에 잠깐 출연했다가 ‘열정’이라는 카페를 차렸다는 얘기를 하게 된다. 이를 전해들은 팬들이 카페로 찾아오면서 팬카페가 생겨났다. 혜은이는 이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매년 2∼3차례씩 갖는 정기모임으로 발전했다. 그러던 2006년 봄 어느날, 팬들이 혜은이에게 찾아와 소중한 선물을 하나 선사했다.‘강해야 돼’‘여전히’‘난 네가 좋아’ 등 신곡 3곡이었다. 작곡은 평소 혜은이가 좋아하는 추가열·홍진영씨가 맡았다. 우울증 등으로 방황을 거듭하던 혜은이에겐 너무나 뜻밖의 선물이었다. 더욱 감동스러운 것은 열성팬 50여명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작곡비를 충당했다는 사실.30대 중반에서 50대까지 동참하는 열성팬들은 개인사업 등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라고 귀띔한다. “금액도 밝히지 않고….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에요. 너무 고맙기도 하고 눈물이 막 나올려고 했지요. 나태하게 지낸 제 자신한테 부끄러웠고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용기를 얻었고 막중한 책임도 느낍니다.” ●‘제3한강교´ 원래 가사 되살려 리메이크 음반제작에 들어가면서 혜은이는 ‘제3한강교’를 리메이크했다. 원래 ‘제3 한강교’ 발표 당시 가사 중 일부가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부분적으로 개사됐다.‘어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하고/우리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로 쓰여진 부분이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로 수정됐다. 또 ‘젊음은 갈 곳을 모른 채’라는 부분이 젊음을 우울하게 했다는 심의당국의 요구에 따라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으로 바뀌었다. 혜은이는 “지난 27년간 금지된 가사에 마음이 너무 걸렸다.”면서 “이제 잃어버린 가사를 되찾아 다시 부르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신곡 ‘여전히’는 애절한 발라드 풍으로 혜은이 특유의 고운 음색이 담겨 있다. 또 경쾌한 리듬의 ‘강해야 돼’와 탱고 리듬의 ‘난 네가 좋아’에서는 요즘 가요계에서 접하기 힘든 맑고 청아한 호소력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 10여년 동안 혜은이에겐 어떤 일이 있었을까.1990년 탤런트 김동현(현재 드라마 ‘대조영’에서 거란의 ‘가한’으로 출연 중)과 결혼했고 이듬해 아들을 낳게 된다. 불행하게도 남편이 영화제작자로 나섰다가 부도를 맞게 됐고 업친 데 덮친 격으로 믿었던 동료 가수가 맡겨둔 곗돈을 홀라당 날려버리고 말았다. 아이 키우랴 남편 부도 막아내랴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신곡을 내야 하는데’ 하면서도 다시 가수활동을 한다는 것이 엄두조차 나질 않았다. 그러던 2002년 2월 3년 계약으로 미사리에 카페를 마련했다. 하지만 열정이 되살아나지 않아서인지 하루하루 그럭저럭 꾸려나가는 꼴이었다.2003년 1월에는 집 가까운 곳에서 모시던 친어머니가 76세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한동안 의욕상실에 빠졌다. 그해 8월15일에는 자궁에 물혹이 생겼다는 진단으로 적출수술까지 받게 됐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다 수술로 이어지면서 상실감은 더욱 커졌다. “대인기피증까지 생겨나더군요. 가게도 안 나가고 계속 우울한 감정의 나락으로 빠져들었어요. 남편에게 괜히 짜증내고, 제 몸을 어떻게 추스를 수가 없더군요. 식구들도 안타까워했지요. 결국 남편과 아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회복될 무렵, 진심어린 팬들과 만나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 다행히 남편의 부도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그는 “미사리 카페를 운영하는 동안 솔직히 돈을 벌지는 못했어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 건 행운이었다.”고 의미 부여를 했다.10년이면 강산도 변하듯이 가요계도 그렇지 않겠느냐고 하자 “세상 흐름이나 가요계나 너무 인스턴트화되는 추세다.(가수들의)인기도 일회성이 많고 롱런이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강해야 돼… 세상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혜은이는 제주 출신. 어릴 적 쇼단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돌아다녔다. 대전의 호수돈여고를 졸업할 무렵인 1972년 집안형편이 어려워 업소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1975년 작곡가 길옥윤씨를 만나 ‘당신은 모르실거야’라는 타이틀곡으로 공식 데뷔했다. 이후 ‘제3한강교’‘진짜 진짜 좋아해’‘감수광’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1970∼80년대의 빅스타로 풍미했다. 현재 동료 가수들 중에는 이은하, 남궁옥분, 현숙 등과 친하게 지낸다.“노래방에 가면 ‘입영열차 안에서’ 등 젊은 가수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며 웃는다. 현재 남편과 아들, 세식구가 서울 방배동에 살면서 독실한 신앙생활(감리교 권사)과 어렵게 되찾은 웃음으로 새로운 열정의 온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신학기 고1년생이 되는 아들이 앨범이 나오자 “엄마, 노래 좋은데.”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모습에 더욱 용기를 얻었다. 요즘 침체 분위기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타이틀곡을 ‘강해야 돼’로 했단다.‘강해야 돼 울지마/세상이 우리를 또 속일지라도/안돼 안돼 여기서 포기할 순 없어’의 가사처럼. ■ 그가 걸어온 길 ▲1956년 제주시 출생(본명 김승주) ▲72년 대전 호수돈여고 3학년때 노래인생 시작. ▲75년 작곡가 길옥윤씨의 ‘당신은 모르실거야’ 음반으로 공식데뷔. ▲77년 MBC 주최 서울가요제 가수왕(당신만을 사랑해),KBS 10대 가수상,MBC예술대상. ▲78년 태평양가요제 2위 ▲79년 MBC 10대 가요제 최고인기가수상. ▲이후 ‘파란나라’‘열정’‘제3한강교’‘진짜 진짜 좋아해’‘감수광’‘울지 않아요’‘영원히 당신만을’‘새벽비’‘잊게 해주오’‘질투’ 등 히트곡만 수십곡 발표. ▲2007년 1월 22번째 독집 앨범 ‘강해야 돼’에 신곡 3곡 발표. km@seoul.co.kr
  • [홍두식의 루어낚시 따라잡기] 전남 고흥 해창만 배스낚시

    겨울철 배스낚시 여건은 좋지 못하다. 따뜻한 남쪽으로 장거리 출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생스럽게 먼곳을 찾아도 조황을 보장받지 못하는 계절이도 하다. 겨울철 천혜의 배스낚시터로 급부상하는 곳이 있다. 전남 고흥의 해창만수로. 간척 매립공사로 인해 생긴 수로 형태의 호수다. 3개의 배수갑문 사이로 바다와 접해 있어, 저수지나 내륙의 수로에 비해 염도가 높다. 그다지 춥지 않은 날씨와 염분 덕에 한 겨울에도 결빙이 잘 되지 않아 물낚시가 가능하다. 게다가 수로 전역을 촘촘하게 뒤덮은 갈대는 매복을 좋아하는 배스들의 천연 스트럭처가 되고 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끝없는 지류들과 그 속의 많은 배스들이 장거리 출조도 주저하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무성한 갈대들 탓에 도보로 진입할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라는 것이 단점. 이곳을 찾는 배서들은 땅콩보트나 고무보트를 이용할 것을 권한다. 겨울철에는 아침보다는 햇살이 퍼지는 낮 시간대에 더 기대를 걸어야 한다. 배스의 식욕은 수온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포인트 선정. 평균 수심이 2∼3m, 깊은 곳이라도 7∼8m정도이기 때문에, 밀집된 스쿨링 형태보다는 얕은 곳과 깊은 곳을 오가며 활발히 먹이 활동을 할 수 있는 수심대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채비는 지그헤드 1/16 온스에 2∼3인치 정도의 에코기어 버그엔츠 같은 수서곤충 타입의 웜을 끼워 사용하면 효과적이다. 채비가 물에 떨어지는 순간과 액션을 가하는 순간 입질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해창만 배스들의 특징 중 하나는 포인트 한곳에서 많은 수의 배스를 뽑아 낼 수 있다는 것. 한 마리를 뽑아낼 때 나는 소음을 주변에 숨어 있는 배스들이 먹이활동으로 착각하여 몰려드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한자리에서 20∼30마리를 낚을 수도 있다. 씨알은 주로 20∼25㎝.40㎝짜리도 간간이 잡힌다. 작년 12월 중순쯤엔 하루에 300마리 가까이 잡은 배스낚시인도 있다고 하니, 손을 덜 탄 배스를 찾아 먼 곳을 오가는 열정을 쏟을 만도 하다. 에코기어 프로스탭
  • [Health] 마음의 병

    [Health] 마음의 병

    글 김철환 인제대학원대학교,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우리 ‘마음’은 참으로 신비하다. 고요하다가도 이유 없이 요동치고, 일상의 항로를 잘 따라가다가도 때로는 인생을 걸만한 이유도 아닌데 항로를 이탈하여 헤맨다. 마음에 들면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요란을 떨다가도, 약간만 틀어지면 천 길 나락으로 떨어진다. 사랑한다면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햇살처럼 사랑을 쏟아 부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잔잔한 호수에 비친 달처럼 사과나무를 기르는 농부처럼 그리움에 젖어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중략- 그러나 진정 사랑한다면 좋고 나쁨 슬픔과 기쁨을 뛰어넘어 그대 모습 그대로를 가슴에 안고 홀로 황혼이 물든 언덕길을 올라갈 수 있어야 한다. 위의 시처럼 우리의 마음이 유연하고 깊고 어떤 경우라도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한다면 일시적인 선호나 기분에 좌우되지 않고 끝까지 믿어주고 지켜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심지가 굳지 못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동치는 마음이 몸에 병을 일으키는데 이것을 정신신체질환(psychosomatic disease)이라고 한다. 마음이 원인이 되어 병이 생기기도 하고 낫기도 하고 악화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울증, 불안증은 마음의 병이요. 두통, 소화장애, 신경성 식욕부진, 비만, 두드러기, 고혈압, 당뇨병, 천식, 소화기궤양, 궤양성 대장염 등은 마음이 몸에 병을 만든 정신신체질환이다. 왜 그럴까? 왜 마음이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키며 몸에 병까지 만들까? 그 이유는 마음은 몸과 연결되어 끊임없이 몸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는데 해결이 안 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스테로이드 호르몬, 에피네프린, 노어에피네프린 등의 분비가 과도하게 되면서 이 호르몬의 부정적인 작용이 커지게 된다. 그 부정적인 작용이 혈압 상승, 위점막 출혈, 면역 저하이고 결과적으로는 고혈압, 당뇨병, 소화성 궤양이 발생한다. 이유 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불안 중에는 사람들 앞에만 서면 불안한 경우도 있고, 길 가다가, 혹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꼭 죽을 것 같은 공황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다. 심한 충격을 받은 후 때로 밀려오는 불안과 고통에 시달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있고, 자식, 사업, 집단 단속 등 계속해서 확인하고 또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 못 사는 강박장애도 불안의 한 형태이다. 이런 불안은 정신과 의사의 도움없이 헤어나기 쉽지 않은데 우리 사회가 불안해질수록 환자도 많아지는 것이 안타깝다. 북핵 문제로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 편하지 못하고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여러 마음의 병과 정신신체질환이 더욱 늘어난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 변화가 심하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한국사회에 사는 한국인들의 스트레스 수준이 높은데 더 심해지고 있어서 걱정이다. 문제의 본질과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대책을 세울 수 없는 민초들이다. 우리가 나라 걱정, 미래의 걱정을 안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걱정하는 것의 90% 이상은 실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가 걱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변화되지도 않는다. 북핵 문제나 정치 문제는 우리가 관심을 갖고 토론하고 걱정할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만 무거워지고 힘이 빠지는 문제이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를 외면하자는 것은 아니고 주어진 의사 표현의 기회 때 하면 되고 또 혹시 어려운 때, 나를 필요로 할 때가 될 때 내 의무를 다하면 된다. 그러니 평소에는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과 이런 문제로 힘을 빼지 말고 나와 가족이 기쁠 수 있는 문제를 얘기하고 실제 그런 기회를 많이 갖기를 바란다. 즉, 서로 관심을 나누고, 같이 문화를, 자연을 즐기고, 운동하고, 사랑하고. 같이 삶의 아름다움을 나누는 가운데 불안도 떨치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아무쪼록 위기는 기회이니 하루 빨리 한민족의 평화공동체가 실현되어 우리 모두가 몸과 마음이 편하게 되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월간 <삶과꿈> 2006.12 구독문의:02-319-3791
  • [문화마당] 지악무성(至樂無聲)의 역설/한명희 예술원회원·이미시문화서원 좌장

    오랜만에 삼한사온의 리듬을 되찾더니 엄동의 한 복판인 소한(小寒) 또한 제 구실을 해내고 있다. 때마침 흰눈까지 천지를 뒤덮으니 내 우거(寓居)인 교외의 한적한 계곡마을은 온통 침묵의 해일 속에 침잠되고 말았다. 새해 벽두의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며 곰곰 살펴 보니, 한겨울 특유의 침묵을 조장하거나 충동질하는 원인자들은 영락없이 뜨락의 나목(裸木)들이었다. 물론 지난해 가을 샛노란 볏짚으로 이엉을 올린 마당가 원두막 추녀 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뽀얀 햇살을 받으며 떨구는 눈물방울에서도 무거운 겨울날의 침묵이 묻어나고, 때마침 중천의 명월이 온 누리를 천지백(天地白)으로 물들이는 교교한 겨울밤 삼경(三更)의 침묵 또한 여간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 단편적인 삽화들이 빚어내는 침묵의 무게는 울안에 총립(叢立)한 나목들이 빚어내는 깊고 넓은 침묵의 교향악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회양목, 향나무, 주목, 반송 등 검푸른 상록수들이 하얀 잔설을 이고 연출해 내는 청백대비의 시각적 침묵도 그러하거니와, 극명한 영욕의 성쇠랄까 그처럼 화사한 색채로 한철을 수놓던 진달래, 황철쭉, 백일홍, 불도화 등이 삭풍으로 바싹 마른 몇 줄기 가지로 그려내는 정적의 미세화는 여간 내밀하지가 않다. 그러나 역시 한 겨울 정적의 가없는 상념과 계시를 펼쳐 보이는 침묵의 교향곡 주선율은 아무래도 늠름하고 풍채 좋은 은행나무나 느티나무 같은 거목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이들 우람한 덩치의 나목들이 마치 동안거(冬安居)의 절간 같은 적료(寂廖)의 가락으로 탄주해 내는 ‘무언의 합주(無聲之樂)’는 창해수보다 깊고 곤륜산보다 중후하고 구만리 창공보다 드넓다. 장면을 바꿔, 저만큼 재 너머 서울의 하늘밑을 생각해 본다. 음향의 홍수다. 도처가 불협화의 소음들로 아비규환이다. 인간의 청각기능에 불원간 돌연변이 현상이 나타날 지경이다. 소리를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음식물 쓰레기는 소각장에라도 가지만, 한번 뱉어낸 소음들은 일파만파로 퍼져가며 사람의 가슴에, 날짐승 길짐승에, 돌부리 풀포기에, 달과 별들에 날아가 꽂히며 독이 되고 비수가 된다. 이같은 소음의 대열에서 음악 또한 열외가 아니다. 특히 가을철만 되면 갖가지 음악회로 홍수를 이룬다. 얼마나 가며롭고 아름다운 일일까마는,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많은 경우가 억지춘향으로 생경한 소음들을 뿜어내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음악이라는 추상의 베일 때문인지, 소리만 내면 음악이요 작품인양 호도하고 강변한다. 너무 인생을 알레그로로만 달리려 한다. 바삐 바삐 변죽만 울려대니 심금에 와닿는 음악이 나올리 없다. 뜸을 들이지 않으니 설익은 밥이 될 수밖에 없고, 외화(外華)의 거품만 좇다 보니 진수(眞髓)의 앙금이 고일리 없다. 그래서 확성의 기계음에 맞춰서 음악계가 춤추고, 난세지음(亂世之音)으로 사회가 요동치며, 망국지음(亡國之音)으로 나라가 위태롭다. 이쯤에서 우리는 잠시 선인들의 역설의 철학을 음미하며 음악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모색해볼 필요가 있겠다. 긴긴 겨울밤의 정적 속에서 왜 도연명이나 고려조의 이규보 같은 사람은 시흥이 도도해지면 차라리 줄을 끊어 줄 없는 무현금(無絃琴)을 탄주했으며, 노자 같은 현인이 왜 오색의 화려한 색채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의 영롱한 음향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한다고 했는지도 반추해봄이 어떨까한다. 플라토는 음악의 순기능을 인간의 열정을 ‘진정(calming)’시키는 것으로 보았고, 앞서의 노자는 진정으로 위대한 음악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으며(大音希聲), 장자의 경우는 가장 훌륭한 음악이란 소리가 없는 세계로 설정하며(至樂無聲) 그 최고의 단계에 하늘의 음악(天樂)을 상정하였다. 과연 저간의 우리네 음악환경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나목의 침묵 속에서 진지하게 길을 물어야겠다. 한명희 예술원회원·이미시문화서원 좌장
  • [이현세 만화경] 드디어 앙코르와트를 보다

    [이현세 만화경] 드디어 앙코르와트를 보다

    지난 11월24일부터 캄보디아의 시엠 리아프에서는 ‘신들의 도시 앙코르와트’와 ‘신라천년의 도시 경주’가 2006문화 엑스포를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때를 맞춰서 ‘고도 경주를 어떻게 보존 복원 발전시킬 것인가’를 연구하고 있는 ‘경주 고도 보존회’는 시엠 리아프를 방문했다. 나 역시 고도 보존회 멤버이고 회장인 이정락씨는 ‘천국의 신화 필화 사건’으로 6년 동안 법정투쟁을 할 때 그 재판을 승리로 이끌어 준 담당 변호사이자 고교 선배이다. 고도 경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선배님이 수장이다 보니 이래저래 앙코르와트 답사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시엠 리아프는 600㎞에 이르는 지역 내에 100개의 사원이 발견된 앙코르 왕국의 근거지로서 9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러 인구 150만명이 살았던 그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이다. 그 중에서도 수리야 바르만 2세(1113∼1150)의 시기에 건립된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지칭될 만큼 웅장하고 신비롭다. 내가 앙코르 왕국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40년 전 내 나이 13살 때 소년잡지 ‘새 소년’의 화보에서였다. 거대한 부처님 얼굴 석상을 크고 기괴한 팜나무의 뿌리가 파고들면서 칭칭 감고 있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정글속의 고대도시 앙코르와트’에 대한 기사가 그것이었다. 깊고 어두운 열대의 정글 속에 단 한구의 시체도 남기지 않고 어느 날 지도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고대 왕국의 도시이며 어느 때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자극적인 기사는 어린 내게 무한한 상상과 경이로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때 언젠가는 ‘꼭 한번 가고 싶다’라는 동경이 생겼다. 그 다음호 ‘새 소년’에서는 고우영 선생의 ‘정글 300 리’라는 만화가 실렸는데 재빠르게도 그 만화의 소재는 바로 앙코르와트였다. 세상에…! 앙코르와트를 배경으로 한 만화라니. 나는 쿵쿵거리는 가슴으로 그 만화에 매료되었다. 한국의 고고학 박사 부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앙코르 왕국의 유적을 답사하느라 길도 없는 밀림을 경비행기로 날던 중 기관고장으로 불시착한다. 겨우 혼자 살아난 어린소년이 정글속의 원숭이 소년을 만나 우정을 쌓아가며 모험을 하는 이야기였는데 눈빛이 사나운 새까만 원숭이 소년이 원숭이들과 함께 거대한 나무뿌리에 점령당한 고대 사원을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통속적인 이야기였지만 워낙 선생의 이야기 솜씨가 좋은 데다 내 동경이 워낙 컸던 탓에 오랫동안 내 영혼을 사로잡고 있었다. 나는 40년 만에 기어코 앙코르와트 앞에 서 있었고 내 눈앞에서 새까만 원숭이 소년이 수백의 원숭이 떼와 함께 눈부신 햇살 속의 사원 위로 춤을 추듯이 날아다녔다. 사원의 여러 겹 문 저 깊숙한 어둠속에서 흰 수염을 한 노인의 번쩍이는 지혜로운 눈빛까지…. 그것은 감동적인 만남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인간의 왕이 신의 딸을 배반했던 앙코르 왕국에 신은 세 가지 저주를 주었다. 그 첫 번째 저주는 앞으로 앙코르 왕국은 단 한명의 인간도 살 수 없는 완벽한 멸망을 하게 되리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멸망한 도시는 모든 세상사람들로부터 영원히 잊혀지게 될 것이며, 마지막으로 그 도시를 다시 찾아내는 자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저주다. 실제로 1868년 앙코르와트를 발견한 프랑스의 탐험가 앙리 무오는 이 저주를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그 다음해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그 오래된 동경에도 불구하고 신들의 도시 앙코르와트를 답사하는 내내 내 마음은 답답하고 불편했다.‘지자체 문화 이벤트 수출 1호’라는 요란한 홍보와 함께 40억원의 돈을 쓴 이번 행사에서 천년 고도 경주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고, 세계의 기술들이 모여 해체복원을 했다는 앙코르 왕국의 유적들은 가는 곳마다 복원이 잘못되어 사원 천장이 뻥뻥 뚫려있었고 시멘트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마치 일제 시대때 경주의 석굴암이 시멘트로 졸속 복원되어 지금까지 그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듯이 앙코르 왕국의 유적 또한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다. 이 졸속 복원의 에피소드 정점에는 일본의 기술자들이 복원을 끝낸 날 ‘만세정종’을 마시던 순간에 탑이 무너져 내려버린 기가 막힌 일화가 있다. 캄보디아는 16세기 이전에는 동남아시아의 최강국이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서 지금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최빈국 중 하나이고, 가장 위대한 조상에 가장 초라한 후손이 되어있다. 유적지마다 어린 꼬마들이 팔찌나 피리 등을 들고 서서 호객 행위를 하며 졸졸 꽁무니를 따라다닌다. 말리는 사람도 없고 아이들은 버스에 탈 때까지 지치지도 않는다. 새까맣고 큰 눈동자는 마주치면 물건을 사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맑고 선하다. 나이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키와 황토 흙을 뽀얗게 뒤집어쓴 맨발을 보면 괜히 히죽히죽 웃고 다니는 캄보디아의 운전기사에게 분노가 일어난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얼굴.40년도 더 전에 경주의 나와 꼬마들도 반월성의 깨진 기왓장이나 토우들을 들고 일본 관광객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단 돈 10원이 절실했던 그때의 우리들…. 애잔한 마음으로 이 아이들에게서 조잡한 물건이 아닌 사진집을 몇 권 샀다. 현대인의 눈으로 앙코르왕국의 유적을 보면 광인의 흔적이다. 수리야 바르만 2세는 평생을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해서 영토를 넓혔고 잡아온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그 땅에 신의 이름으로 끝없이 사원을 만들었다. 사원에 국고를 몽땅 낭비한 왕국은 힘이 약해졌고, 모든 업보가 증명하듯이 끌려온 노예들의 나라에 의해 왕국은 결국 멸망했다. 돌아오는 날 버스는 어느 금빛 사찰 뒷마당에 있는 작고 높은 유리탑 앞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탑 속에는 해골들이 가득 차 있었다. 1975년, 미국이 사주하고 크메르 루주군이 벌인 ‘3차 킬링필드’의 대학살극은 300여만명의 캄보디아인을 학살했다. 크메르 루주군의 지도자 폴 포트는 적어도 캄보디아의 역사를 40년은 뒷걸음치게 해 놓았고, 국민이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하면 그 결과가 어떤지 유리탑의 해골들은 증명하고 있었다. 이 탑은 그 당시 시엠 리아프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유골을 모아둔 탑이다. 수리야 바르만 2세는 수많은 노예들의 피로 위대한 앙코르 와트를 남겼고 폴포트는 자국민의 피로 세상에 영원히 남을 해골탑을 남겼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지평선 너머로 붉게 타는 노을이 보였다. 핏빛의 하늘만큼 캄보디아는 내게 전쟁과 피와 가난의 모습으로 남았다. 하지만 나는 유적지에서 본 크고 맑고 선하고 총명해 보였던 그 눈동자들을 더 크게 생각한다.40년 전, 내 어린 꼬마 친구들의 눈동자가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듯이 어차피 캄보디아의 미래는 그 아이들의 것이니까. 만화가
  • [심상덕의 서울야화] (26) 서울 ‘첫 유리’ 이야기

    감성과 이성을 반반씩 적당히 섞어 놓은 듯한 겨울날씨. 도시의 높은 건물들마다 햇살 받은 유리창들이 반짝반짝, 멀리서도 눈이 부실 때가 많습니다. 근데 이 ‘유리’말입니다. 기록에 보면 국내에서 첫 유리공장이 세워진 게 1902년에 완성된 ‘국립유리제조소’인 걸로 나타났더라고요. 그 당시만 해도 순수한 우리 기술로는 병유리조차 생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러시아 기술자의 협조를 받아 병유리를 생산했었다는 거죠. 그 뒤, 흔히 말하는 한일합방 이후 우리 서울의 서대문에 ‘경성초자제조소’가 들어섰고, 이 공장에선 병유리와 함께 램프를 생산했습니다. 그 후로 1938년까지 모두 24개의 유리 제조공장이 세워졌었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근대적인 시설의 유리공장이 세워진 것은 지난 1939년 영등포에 세워진 ‘동양 유리 공업 주식회사’였는데, 이 공장에선 주로 맥주병이 생산됐었거든요. 그렇다면 광복 이후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유리공장이 세워진 건 언제쯤이었을까요? 그게 바로 약 50년 전인 지난 1957년이었습니다. 당시 인천에서 문을 연 ‘인천 판유리 공장’말이죠. 여기서부터가 바로 우리나라 판유리 산업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근데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어린 시절 서울의 변두리에서 시뻘건 용광로에다가 유리물을 펄펄 끓여가면서 이만하게 긴 대롱 끝으로 끓는 유리물을 찍어가지고, 한쪽 끝 대롱에 입을 대고 힘을 잔뜩 줘가면서 ‘푸우우우~’ 이렇게 바람을 불어넣으면 저쪽 대롱 끝에 이만하게 유리병 모양이 만들어지곤 하던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식의 유리공장은 거의 남아 있지 않더라고요. 지난 세월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유리 제조에 관심이 높아지게 된 것은 석유램프를 사용하면서 바람불 때 램프불이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 유리로 만든 등피를 사용했었잖아요? 그때부터 가내 수공업 정도의 수준으로 석유 램프의 등피를 만드는 유리공장들이 여기저기 많았던 거죠. 근데 지금은 그 어떤 건물이든 하늘만큼 높은 건물도 그렇고 나지막한 건물도 그렇고, 전부다 유리창이잖아요. 건물 하나에 여기저기 유리창이 그렇게 많은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건물을 지을 때 지금과 같은 이런 ‘창유리’가 처음 등장한 게 언제쯤부터였느냐 이거죠? 그게 바로 1873년, 지금으로부터 130여년 전이었습니다.당시 서울의 종로에 있던 일본 공사관건물, 이 건물이 유리창을 끼운 최초의 건물이었던 겁니다. 그 뒤로 서울역 뒤쪽에 세워진 약현성당, 그리고 서울에서 가장 밝은 동네 명동성당에도 유리창이 끼워졌던 거죠. 반짝반짝 눈부신 유리창은 사람들 눈을 왕방울만하게 만든 일대사건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 [산이 좋아 산으로] 전남 광양 가야산

    [산이 좋아 산으로] 전남 광양 가야산

    그 지명에서부터 따뜻함이 느껴지는 전라남도 광양(光陽)은 ‘밝은 햇살’이란 뜻의 ‘희양’을 거쳐 고려 태조 23년부터 오늘날까지 ‘볕이 잘 들고 환한’ 고장으로 제 소임을 다하고 있다.3월 초순이면 다압면 일대를 새하얗게 수놓는 절정의 매화 천국, 백계산 6000여 동백림 속 옥룡사터, 뼈를 이롭게 한다는 고로쇠 수액 채취의 원조 등등 남녘의 작은 도시는 새해가 되기 전부터 이미 봄 맞을 채비로 분주하다. 백운산과 호남기맥에 묻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정작 광양시 중심권역에 들어선 산은 호남정맥의 핏줄로 똘똘 뭉친 가야산(497.3m)이다. 시민들에겐 쉼터를, 바윗꾼들에겐 암벽등반 장소 제공을 척척 해내는 곳으로, 정상에 서면 광양만 및 여수 산업단지 일대와 지리산 주능선 조망이 가능하다. 산악인의 탐험정신을 자극할 등산로는 아니지만 가야산에도 제법 많은 산길이 열려 있다. 정상을 기준점으로 했을 때 금광블루빌에서 3.9㎞, 적벽 코스는 1.8㎞, 동백쉼터 코스 1.2㎞, 제2주차장에서 체육공원을 거치는 길은 4.1㎞, 가야터널∼장수약수터 코스는 2.1㎞이다. 하산시간을 넉넉히 잡아도 어디서든 4시간을 넘지 않는다. 가야산 초입에서 정상까지는 상당히 가파른 편이어서 백두산이나 한라산처럼 덩치가 큰 산을 오를 때 예행연습 장소로 쓰이곤 한다. 농담처럼 “가야산까지 한 번도 안 쉬고 올라갈 체력이면 전국 어느 산이든 가능”하다는 게 광양 산꾼들의 설명. 평일인데도 산행을 즐기는 사람이 많은데 집안일을 끝낸 주부는 물론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직원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정비가 잘 된 등산로 급경사엔 안전밧줄과 계단이 설치됐다. 제1주차장에서 적벽까지는 0.8㎞에 불과하지만 중간에 휴식이라도 취했다면 30분쯤 잡아야 한다. 철계단을 밟고 적벽에 올라서니 등 뒤에 두고 오르느라 미처 보지 못한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적벽 정상엔 1999년 캉첸중가(8586m) 등반 중 사망한 고 한도규 대원의 넋을 기린 케른이 있어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이곳에서 가야산 정상은 0.6㎞이지만 일단 적벽에서 내려와 암장 일대를 우회하는 코스를 택하는 게 좋다. 가야산 정상에서 0.47㎞를 내려서면 작은 가야산인데, 그냥 밋밋한 능선에 가까워 그 이름이 다소 무안할 정도다. 이곳부터 가야터널까진 1.13㎞이고 제2주차장은 1.93㎞ 떨어져 있다. 작은 가야산을 6분쯤 내려와 오른쪽 길로 방향을 튼다. 동백쉼터로 가는 길로 시민들을 위한 체육시설과 밝은 가로등까지 세워져 있다. 식수도 구할 수 있는데 산행 전 미리 물통을 채우고, 이곳에선 가볍게 목을 축이는 정도가 좋을 듯싶다. 마지막 숲을 나서자 처음 육교를 건너 마주했던 이정표가 반갑게 손을 내민다. 이정표 왼쪽 길로 산행을 시작해 오른쪽 길로 하산한 셈.GPS 기록을 보니 이리저리 걸었던 길이 고작 3.63㎞에 불과하다. 산행 시간은 충분한 휴식을 포함, 3시간 안쪽이다. # 여행 정보 광양만에 450만평 규모로 세워진 광양제철소 견학은 평일의 경우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가능하지만 주로 단체 관람에 한하며 약 1시간 30분쯤 걸린다. 가족 단위의 개인일 경우 일요일 오전 10시에만 가능하다. 견학 희망일 기준, 최소 3일 전까지 인터넷(www.posco.co.kr)으로 예약하면 신청인의 이메일 주소로 견학 가능 여부를 알려준다. 개인의 경우 견학 시간은 40분이다. 자세한 사항은 광양제철소 홍보팀(061-790-2442)으로 문의한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MOUNTAIN 기자)
  • 70년만에 파리 시내 누비는 ‘21세기 친환경 전차’

    70년만에 파리 시내 누비는 ‘21세기 친환경 전차’

    |파리 이종수특파원|센강엔 ‘바토 뮈슈’(유람선), 육로엔 전차 ‘트람웨(T3)’. 파리 시내에 16일 또 하나의 ‘명물’이 등장한다. 동쪽 13∼15구 7.9㎞ 구간에서 전차가 달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1937년 버스·지하철 등 다른 대중교통 수단에 밀려 사라진 전차가 부활한다.1992년,1997년 파리 외곽에 두 개의 전차 노선 T1,T2가 들어섰지만 파리 시내 운행은 70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12일 오전 9시 파리 15구에 있는 T3 본부. 방문증을 받고 기다리는데 두 기자의 입씨름이 벌어졌다.“교통 혼잡을 고려하지 않은 전시 행정의 전형이다. 나중에 어떻게 하려는지….”(한 잡지사 사진기자).“어차피 차량 통행량을 줄이자는 것 아녜요. 보르도를 보세요. 차츰 나아질 겁니다. 소음 방지와 환경 친화적이라는 장점을 무시하면 안 되죠.”(라디오프랑스 인터나쇼날 기자) ●잔디를 유영하듯 부드럽게 운행 두 사람의 논쟁은 전차에 대한 파리 시민들의 엇갈린 평가를 잘 보여준다. 결론 없는 논쟁을 중단하고 시승식 참가단은 T3 정비실로 향했다. 날렵한 몸매에 세련된 스타일의 전차가 반긴다. 동행한 파리교통공사(RATP) 프레드릭 뒤퓌 팀장은 “현재 17개 도시에 전차를 운행하고 있는데 차차 늘어날 것”이라며 “전차가 21세기 대중교통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한다. 다음은 관제실.6대의 모니터는 17개 정거장의 장면을 번갈아 포착하고 있다. 옆의 컴퓨터 모니터는 시험운행 중인 T3의 상태, 교통 상황 등을 다양한 그래픽으로 보여주고 있다. 10시에 종점인 퐁 뒤 가리글리아노에서 시범 운행에 나서는 전차에 올랐다. 길이 44m, 너비 2.65m의 육중한 ‘철선’은 뜻밖에 조용하게 출발한다. 노선에 깔아 놓은 잔디를 유영하듯 도심을 가로질러 간다. 부드럽고 매끄럽다. 바토뮈슈가 센강을 가로지르는 풍경이 연상된다. 아니 바토뮈슈의 ‘통통’거리는 엔진소리도 안들린다. ●“쾌적한 환경으로 삶의 질 업그레이드” 가능한 한 햇살을 많이 안으려는 듯 넓게 만든 창으로 바깥 풍경이 들어온다. 사람과 사람, 노선을 따라 심어놓은 나무들. 어둠 속에서 질주하는 지하철을 타고서는 맛볼 수 없는 생생한 장면이다. 내외부 디자인을 총괄 지휘한 일본 태생의 가미나가이 요 디자이너는 자부심이 어린 표정이다.“쾌적한 환경으로 시민들의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하고 파리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30분을 달렸을까. 종점인 포르드 디브리에 도착했다. 더 갈 수 없다. 그러나 2011년부터는 북쪽과 서쪽으로 연장 운행한다. 관광객은 T3로 파리를 둘러볼 수 있다. ●일각선 교통체증 유발 우려도 돌아오는 길에는 역방향 좌석에 앉아봤다. 평균 시속 20㎞여서 어지럼증은 없었다. 그러나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다. 좌회전 신호에 걸린 트럭이 레인을 막은 것. 경고음 뒤 급제동…. 출퇴근길 저렇게 얽히면 어떻게 될까? 충돌 위험은? 교통 체증을 해소하려고 구상한 전차가 체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기관사 엘리자 베타는 “차량이 밀려 레인을 가로막으면 조심해야 한다.”면서도 “신호 체계가 완벽해 사고 위험은 없다.”고 설명한다. 인근 주민들은 호의적이다. 언론은 러시아워에 얽힌 차량이 뿜는 매연과 소음에서 해방된다고 이들의 반응을 전한다. 전차는 이 지역을 운행하던 버스 PC1을 대체한다. 수송 승객수도 5만여명에서 두 배로 늘어난다. vielee@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30년 만에 재결합 남성듀오 ‘사월과 오월’(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30년 만에 재결합 남성듀오 ‘사월과 오월’(2)

    2005년 말,‘잃어가는 우리의 꿈을 위하여’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1970년대 포크음악사이트,‘바람새홈(windbird.pe.kr)’ 게시판에는 사월과 오월의 ‘사월’ 백순진씨가 새롭게 만들 곡의 가사를 공모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지난날에 대한 추억, 혹은 회상’, 또는 ‘중년이 느끼는 인생’ 같은 것을 테마로 한 노랫말을 7080세대들에게 직접 의뢰한 것. 이 작업에 참여한 노랫말 가운데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이정미)’,‘잠시라도 숨 고르고(둘숨날숨, 박석)’ ‘기약 없는 노래(최은영)’ 등은 어느덧 노래로 완성되어 소모임을 통해 발표회를 가졌고 또한 음반 제작이 이미 결정된 노래도 있다. 이렇듯 7080 가수 백순진씨와 김태풍씨는 무대에서뿐 아니라 창작 작업에까지 ‘7080’ 세대들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 마치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들 듯’, 이른바 ‘잃어가는 꿈의 세대들’인 중년들에게 추억과 향수, 그리고 그동안 잠시 접어두었던 열정을 새삼 일깨워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1975년, 이른바 ‘대마초 파동’과 함께 사월과 오월 역시 기타와 마이크를 접은 채 무대를 떠났다. 음악활동이 묶이면서 ‘오월’ 김태풍은 평소 꿈꾸던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오른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학을 전공한 뒤 시티은행에 입사, 다시 국내에 파견될 정도로 정통 은행가이자 경제통으로 변신했다.3년 전 귀국한 그는 현재 투자자문회사인 영창파트너스 대표로 M&A 컨설팅을 하고 있다. ‘사월’ 백순진 역시 이 참에 잠시 호흡을 고른 뒤 ‘오토(OTTO)프로덕션’을 설립, 본격적으로 신인발굴과 음반기획에 나섰다. 처음엔 작곡에 뜻을 두었으나 본격적으로 CM송 작업에 착수, 당시 유명 브랜드였던 콘티찐빵(노래 정수라), 반디캔디(노래 윤석화), 빙그레 밤초코(전영), 환타 등 100여 편의 CM송을 작곡했고 아울러 영주와 은주, 오정선, 박형철, 정용원 등을 발굴한 것을 비롯, 듀엣 ‘하야로비’에게 ‘사월과 오월’의 대를 잇게 했다. 사월과 오월의 4기인 ‘하야로비(김영민, 이지민)’에게 만들어준 ‘장미’ 등의 빅 히트로 프로덕션은 성공했지만 예기치 않은 부도를 맞아 ‘흑자도산’한 뒤 사업을 접고 뉴욕으로 건너가 부친 사업에 참여한다. 현재는 (주)노스웨스트항공 한국총대리점인 (주)샤프의 부회장으로 재임 중. 이렇듯 사업가로 제각각 성공한 이들이지만 수시로 ‘사월과 오월’이 되어 무대에 오른다. 여전히 캐주얼 차림에 통기타를 멘 채. 공식적으로 해체한 적이 없었던 만큼 재결합이라는 말 자체도 어색하다고 강조하며. 어느덧 창립 1주년을 맞는 팬 카페 ‘사오모(사월과 오월을 사랑하는 모임,http:/cafe.daum.net//4m5m)’는 어느덧 회원수가 457명에 이른다. 카페지기인 박훈종(49)씨 역시 1970년대 사월과 오월에 열광했던 팬으로 ‘사오모 팬클럽은 우리들의 젊은 시절이 그저 흘러간 시절만이 아닌 것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공간’임을 강조한다. 또한 ‘사월과 오월’ 공연장에서 만난 임윤경(50)씨는 10대 때부터 이들의 공연장에 거의 빠짐없이 찾았던 열성 포크팬.‘7080세대는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정체성을 위협받으며 위기를 맞는 세대’라며 ‘특히 우울증이 쉽게 잦아들 나이인 만큼 적극적으로 자아 찾기에 나서 삶의 의미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월과 오월 역시 이러한 팬들의 반응에 한껏 자극을 받았다. 그 감동은 새로운 창작에의 욕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스스로 열악한 환경에서 음악을 하던 시절, 그 ‘미완의 작업’에의 완성을 이제금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사월과 오월’의 대를 이을 젊은이들을 찾아 자신들의 꿈과 음악을 물려주고 싶다고 밝히는 이들의 얼굴에선 4월과 5월의 싱그러운 햇살만큼이나 생기가 가득했다. sachilo@empal.com
  • [이건호의 뷰티풀 샷] ‘히피풍’ 창조하기

    [이건호의 뷰티풀 샷] ‘히피풍’ 창조하기

    # 비틀스를 좋아하시는지 2005년 9월 패션지 VOGUE 화보켄셉트는 ‘히피풍’이었다.1960년대를 풍미한 위대한 그룹 비틀스, 그들과 여행을 떠나는 2명의 히피 여인들. 히피의 상징은 반전과 평화, 자유와 사랑이다.1960년대를 대표하는 히피와 비틀스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이미 가고 없는 비틀스 멤버들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 설사 부른다고 오지도 않겠지만…. 그래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그들의 등신대(사람 크기의 사진 모형물)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촬영장소는 햇볕을 피할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영종도의 한 황무지, 게다가 몇 년 만에 유난히도 무덥던 8월의 어느날이었다. 제작된 등신대는 파손의 우려 때문에 비지땀을 흘리며 현장에서 커팅되었고, 히피풍의 천들로 천막을 만든 후 촬영이 시작되었다. 모델이며 모든 스태프가 더위를 심하게 먹고 필자 또한 후유증으로 일주일여를 고생하였지만 결과만큼은 매우 낭만적이고 따뜻한 톤으로 촬영되었다. 촬영에 필요한 라이팅은 자연광의 오후 햇살. 때문에 어느 정도 해가 기운 늦은 시간에 시작할 수밖에 없어서 해가 긴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급했다. 따뜻하고 밝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배경이 밝아야 하므로 가급적 역광으로 촬영이 진행되었다. 덕분에 오후 햇살의 나른함이 긴 그림자와 더불어 만족스럽게 표현되었다. 후반 작업으로 약간의 노이즈와 함께 베이지 톤과 얼룩 등을 합성해서 빛이 바랜 듯한 최종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었다. 비틀스 멤버들의 가슴에 달려 있는 ‘거베라’란 꽃은 세트 스타일리스트의 아이디어였는데 하찮은 꽃 두 송이로 사진의 분위기를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때로는 이렇듯 스태프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순발력이 촬영에 큰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사진작가
  • [OUR STORY] 스키시즌, 가자! 설원으로

    [OUR STORY] 스키시즌, 가자! 설원으로

    찬바람에 코끝이 시리고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철, 그럴듯한 ‘상상’에 한번 빠져보자. 겨울 햇살에 반짝이는 눈부신 하얀 설원, 빨간 스키복을 입고 멋진 폼으로 ‘무한질주’를 만끽하며 차가운 겨울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는 그런 멋진 ‘꿈’말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속의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다. 누가 뭐래도 겨울 스포츠의 꽃은 스키와 스노보드다. 지난 11월 중순부터 용평리조트를 시작으로 시즌을 시작한 강원권 스키장이 12월1일 모두 오픈한다. 특히 올해 새로 오픈하는 강원도 정선 하이원 스키장과 원주 오크밸리 스노파크에 스키어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또한 각 스키장마다 새로운 슬로프를 오픈하거나 확장해 2006∼2007년 시즌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새로 생기는 곳이 얼마나 좋은지, 기존의 스키장은 무엇이 변했는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찜질방서 먹고 자고 스키타요 #주머니가 가벼운 실속파는 여기로 스키 시즌에는 스키장 근처 민박집이 1박하는데 10만원을 넘게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올해는 스키장 내에 직접 찜질방을 운영, 실속파 스키어들을 유혹하고 있다. 홍천 비발디파크(www.vivaldipark.com)는 스키뿐 아니라 올해 7월 개장한 오션월드의 찜질방에서 숙박은 물론 한 겨울에 수영복을 입고 짜릿한 물놀이와 스파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명소다. 동시에 8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오션월드 찜질방은 실속파 젊은 스키어들의 ‘작업’공간이며 휴식공간이다. 파도풀, 슬라이더 등 물놀이 시설과 야외 노천탕 등도 이용할 수 있어 하루 종일 스키로 지친 몸을 달래기에 그만이다.용평스키장(www.yongpyong.co.kr) 또한 338실의 그린피아 콘도가 문을 열었고 드래곤 밸리 호텔 주차장 건너편에 찜질방이 곧 새롭게 문을 열 예정이어서 누구나 저렴하고 쉽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종합리조트로 거듭난다. #더 넓고 재미있게 올 시즌 각 스키장들은 슬로프의 폭을 넓힌 광폭 슬로프를 선보인다. 스노 보더와 스키어들이 많이 몰리는 중·하급 슬로프의 폭을 넓혀 보다 짜릿한 스피드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슬로프다. 또 다양한 묘기를 펼칠 수 있는 ‘펀박스’(레일, 점프대 등)를 보충해 보드를 타는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지난 시즌 폭 180m의 메가그린 슬로프를 열어 보더들의 입맛에 맞는 광폭 슬로프 시대를 연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스키장인 용평스키장은 올해 슬로프의 설질 향상을 위해 제설기 70대를 보강했다. 또한 이번 시즌부터 1.5㎞의 골드 파라다이스 슬로프를 밤에도 열어 슬로프 31면 중 13면을 야간에도 운영해 야간 스키어들의 다양한 입맛을 충족 시키기에 충분하다. 비발디파크도 300m가 넘는 초광폭 ‘레게슬로프’를 오픈하며 라이트 타워의 보강으로 보다 더욱 늘어난 야간 슬로프, 전문 DJ의 음악방송,8인승 고속 곤돌라 등을 도입했다. 또 오션월드의 찜질방을 이용한 다양한 패키지를 계획하고 있다.현대성우리조트(www.hdsungwoo.co.kr)는 올해 ‘델타플러스’라는 신규 슬로프를 오픈했다. 중급자용 슬로프로 무려 폭이 128m로 어른 50명이 동시에 팔을 벌리고 내려 올 수 있을 정도의 넓은 슬로프다. 기존의 펀파크도 2개의 라인으로 새롭게 구성해 재미를 더했다.양지파인스키밸리(www.pineresort.com)도 오렌지와 블루 슬로프를 중간을 합쳐 평균 150m, 최대 190m의 폭을 가진 초광폭 슬로프 ‘그린’을 추가했으며 3개의 코스를 새롭게 선보여 고르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또 무료 셔틀버스 운행, 심야 및 밤샘 스키운영, 새로운 재설장비 도입 등으로 수도권 스키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 최장의 길이의 실크로드 슬로프(6.1㎞)를 보유한 무주리조트(www.mujuresort.com)는 초보자를 위한 무빙워크 1기를 추가했으며 실크로드 중간에 있는 돌체 휴게소 자리를 옮기는 등 고객이 좀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각종 묘기를 익힐 수 있는 레일, 박스 등 16개의 기물을 설치한 보드파크도 돋보인다. 또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싶어하는 보더들을 위한 무료 강습이 실시된다. 초·중급기술은 물론 킥거와 기물타기 등 아주 고난도의 기술을 ‘한수’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수도권에서 멀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셔틀버스와 리프트, 식사, 강습 등 다양한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 패키지를 30% 할인된 저렴한 가격에 내놓았다. 휘닉스파크(www.pp.co.kr)는 다양한 놀이와 재미를 더한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 ‘키즈파크’를 선보였다. 눈썰매 튜브봅슬레이, 헬리튜브 등을 즐길 수 있는 익사이팅 존, 눈동산으로 남극의 이글루를 체험할 수 있는 익스피리언스 존, 눈썰매와 각종 캐릭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투게더 존으로 구성되어 아이들에게 인기 ‘짱’이다. 또 ‘금남’(禁男)의 셔틀버스를 운영한다.28인승 최고급 리무진 버스로 오전 7시(2대), 오전 9시(1대) 서울 삼성역에서 스키장으로 출발한다. 또 고난도였던 디지 슬로프의 경사를 기존 36도에서 26도로 대폭 낮춰 대중화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미리가본 신설 스키장 지난 11월 10일 용평스키장이 올 스키 시즌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곧 이어 휘닉스파크, 성우리조트가 문을 열었고 하이원, 오크밸리, 비발디파크 등 강원권 스키장이 12월1일 모두 오픈한다. 무주리조트와 양지파인스키밸리 등 경기권 스키장들은 다음주 주말 오픈을 목표로 준비가 한창이다. 올해 처음 문을 여는 정선의 하이원 스키장은 용평, 무주 다음으로 국내 3번째 규모의 슬로프를 자랑하고 있어 개장 전부터 많은 스키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정선 하이원-슬로프 21㎞ 국내 세번째 규모 강원도 정선의 하이원 스키장은 18면의 슬로프를 가지고 있는 대형 스키장이다. 슬로프 총연장이 21㎞로 용평 리조트(32㎞)와 무주 리조트(22㎞·실제 오픈하는 슬로프 길이) 다음 규모다. 베이스도 두 곳을 뒀고, 스키장 전체를 곤돌라 3기와 시간당 2400명을 실어나를 수 있는 고속 리프트가 5개 있어 보다 편리하게 스키를 즐길 수 있다. 또한 1∼2기의 무빙워크(컨베이어 벨트)가 초보자 슬로프에 설치됐던 것과 달리 11기의 무빙워크가 각 슬로프를 오가는 수단으로 설치됐다. 곤돌라에서 내리자마자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각 슬로프로 이동하는 편리한 스키장이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초보자 슬로프가 해발 1376m의 백운산 정상에서 펼쳐진다는 점이다. 보통 스키장의 정상은 최상급자 코스여서 초급자들은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하이원은 정상에서 4.2㎞, 폭 80m의 완만한 초보자 슬로프가 출발한다. 그래서 온 가족이 정상 휴게실에서 설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각자 실력에 맞는 슬로프를 선택할 수 있는 가족형 스키장이다. 또 정상에는 스키학교와 전망대 레스토랑이 위치해 있다. 전망대 레스토랑은 스스로 회전을 하기 때문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주위 경치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아울러 슬로프 사이에 주목군락지를 만들어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태백, 서울에서 너무 멀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 스키 열차가 12월 8일부터 매일 운행한다. 일반 새마을호를 개조한 특별 열차로 좌석이 넓고 편안하며 영화관, 카페, 노래방, 독서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있어 지루한지 모르고 스키장에 도착할 수 있다. 고한역에서 콘도나 스키장까지 무료 셔틀버스가 수시로 다니므로 교통체증이나 운전의 피곤함이 없는 편안하고 재미난 스키 여행이 된다.www.high1.co.kr ●원주 오크밸리-가족 스키어를 위한 다양한 캠프가동 강원도 원주의 오크밸리 스노파크는 초보자 2개, 중급자 5개, 상급자 2개 코스 등 총 9면의 슬로프를 가지고 있는 중형급 스키장이다. 슬로프 총 연장 길이 6.1㎞로 규모면에서는 지산리조트(11면 6.9㎞), 양지리조트(7면 5.2㎞), 강촌리조트(10면 6.8㎞)와 비슷한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스노파크가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설질이 보장되는 강원권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수도권에서 1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라는 데 있다. 또한 유럽풍 건축양식이 돋보이는 콘도에서 바라보는 울창한 참나무 숲과 백색의 슬로프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가족 스키어를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특히 어린이 스키캠프는 스키강습은 물론 영화·마술·볼링. 천문학과 디카까지 다양한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원어민 강사가 2대1로 진행하는 영어 강좌도 마련해 방학을 맞은 아이들의 체험학습장으로도 각광받을 전망이다. 또 스노파크는 첫 개장을 기념해 시즌 내내 다양한 이벤트를 연다.12월1일 슬로프 오픈 기념 무료 스키체험,15일에는 패션·마술·레이저쇼가 펼치는 그랜드 오픈 ‘회원의 밤’,16일은 성시경, 마야, 김동욱 등 인기가수들이 축하공연을 펼친다. 이밖에 알프스 페스티벌. 루미나리에 등 이국적인 공연과 다양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www.oakvalley.co.kr
  • [낚시사랑과 함께 월척 樂漁] 수초 빽빽한 웅덩이가 포인트

    [낚시사랑과 함께 월척 樂漁] 수초 빽빽한 웅덩이가 포인트

    만추를 보내며 찬서리가 내리고 새벽 기온은 영하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추위로 인해 밤낚시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조과도 떨어지는 시기다. 하지만 열혈조사는 이 시기를 대물붕어를 만날 수 있는 호기로 생각한다. 갈대가 마르고 부들대가 꺾이면 어김없이 수로로 발길을 돌리는데…. 수온이 낮아지면 붕어들이 열을 발생하는 수초속에 몸을 숨긴다는 것은 상식. 수초가 잘 발달된 수로를 공략하는 것이 초겨울 대낚시의 기본이다. 필자도 모처럼 아내와 함께 만추의 정취를 느끼며 출조길에 나섰다. 가뭄 때문인가. 청남수로는 수량이 많이 줄어 있고 생각하던 부들대에는 물이 없다. 물흐름이 없고 버드나무가 물속으로 드리워진 포인트에 채비를 드리울 생각으로 서리에 풀대가 꺾인 곳을 골라 아내와 나란히 앉아 낚싯대를 드리웠다. 잔뜩 흐린 데다 햇살마저 없어 가늘게 불어대는 바람에도 옷깃을 여며야 했다. 몇시간 동안 채비를 드리웠지만 찌는 전혀 미동도 없다. 채비를 정리해 수온상승이 잘 되는 작은 둠벙에서 수초낚시를 시도했다. 나지막한 산을 돌아 은행잎이 노란 융단처럼 깔려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부터 이곳에서 수초낚시를 즐겼다는 지인을 만났다. 월척급은 못돼도 제법 큼직한 붕어를 보여주며 양지쪽 포인트를 추천했다. 긴 수초대를 꺼내 대여섯마리의 지렁이를 바늘에 달아 수초속으로 밀어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초속에서 빨간 머리만 내밀고 있던 찌가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쉬∼익 챔질음과 동시에 묵직함이 손으로 전해지며 초릿대끝이 활처럼 휘어졌다. 수초속에서 끌려나온 것은 여덟치급 붕어. 검은 등에 누런 황금색을 칠해 놓은 듯한 체색에서 강인함을 느낄 수 있는 자연산 토종붕어였다. 올해도 가을은 저만치 물러나 있다. 곧 얼음이 얼어 붙고 산야는 하얀 눈속에 덮일 것이다. 만추의 정취 속에 수초낚시를 즐기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수초가 밀생한 수로나 둠벙 등이 올해 물낚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 찾아가는길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남공주 나들목→탄천→부여방향직진→청남대교로 금강을 건너면 좌측이 청남수로. 글 사진 공주 김원기 낚시사랑 편집부장(studoz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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