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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신춘문예-희곡당선작] 별방/이양구

    [서울신문 신춘문예-희곡당선작] 별방/이양구

    등장인물 남자, 여자, 아들, 모(母), 부(父) 배경 단풍이 절정에 이른 가을, 오후, 외딴 산 속, 폐가, 마당 한가운데 튀어나온 바위 하나, 지붕과 마당·헛간에 낙엽 1 남자가 마당으로 들어온다. 고요히 폐가를 바라본다. 천천히 걸어가서 봉당에 앉는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여자와 아들이 들어온다. 여자 : 아이구 다리야… 이 먼 데를 오자고…. 남자 : …. 아들 : 평소에 운동 좀 하세요. 많이 걸어야 건강하대잖아요. 요샌 웰빙이라고 다들 일부러도 많이 걸어요.(다리를 주물러 주며) 미국에서도 저녁만 되면 파크에 조깅하러 나온 사람들 많아요. 세상이 아무리 살기 좋아지면 뭐해요, 내 몸이 건강해야지. 여자 : 우리 아들 미국 갔다 오더니 유식해졌네. 그래도 건강하자고 이 산골을 오니? 남자 : …. 아들 : 좋은데요… 아버진 여기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니신 거예요? 남자 : …. 여자 : 그 놈의 별방, 별방, 술만 먹으면 말 안 하디? 아들 : 별방… 아버지 회사 이름… 이 동네 이름에서 따오신 거예요? 남자 : …. 여자 : 뭐 좋은 기억이라고… 이 산 구석에서 살았던 기억을 잊고 싶지 않대나 뭐래나. 저래 뵈두 니 아버지가 감상적인 데가 있다. 아들 : 자기 뿌리를 잊지 않는 건 좋은 거죠. 전 미국에 가 있으니까 도리어 조국에 대해서 생각하게 돼요. 나를 있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요. 엄마는 어린 시절이 그립지 않으세요? 여자 :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이 뭐 그리울 게 있어. 그런 건 빨리 잊어버려야지. 먹고 살기도 바쁜데. 쓸 데 없는 생각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아들 : …아버지. 별방이 무슨 뜻이에요? 남자 : …. 아들 : 별… 방… 떨어져 있다는 뜻인가? 어쨌든 느낌이 좋아요. 왠지 별이 내려와 쉴 것 같은… 아랫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단풍 한 장 줍는다) …아버지. 아까부터 왜 그렇게 말이 없으세요? 무슨 걱정이라도…. 남자 : …조금 피곤해서. 여자 : 그렇게 한 번 와 보자더니. 와 봐야 뭐 있어. 그냥 폐가지. 근처에서 놀다 가자니까. 기어이 끌고 와서는… 다리만 아프지.…어머니도 어떻게 이런 데서 사셨을까…. 아들 : 할머니 할아버지 살아 계셨으면 같이 오고 좋았을 텐데…. 남자 : …. 여자, 뒤란으로 간다. 여자 : (소리) 웬 우물이래… 어머 대추 좀 봐. 아들, 뒤란으로 들어갔다 나온다. 손에는 대추 몇 알. 아들 : 이것 좀 드세요. 달아요. 남자 : …. 남자, 먹는다. 아들 : 달죠? 남자 : 그래…. 아들 : 어렸을 땐 많이 드셨겠네요. 남자 : 가을마다…. 여자, 나온다. 가방을 뒤진다. 아들 : 뭐 찾으세요? 여자 : …. 아들 : …놔두세요. 다람쥐들 먹게. 여자 : 두면 뭐해, 어차피 썩을 거. 아들 : 엄마…. 여자 : 시장 가서 사려고 해 봐. 얼마어친데. 여자, 두리번거리더니 막대기도 찾아서 뒤란으로 간다. 아들 : 엄마… 짐승 먹게 둬요…. 아들, 뒤란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남자 :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휴가 왔습니다. 아들이 미국 유학 갔다가 잠시 귀국해서요. 가족끼리 단풍 구경 왔습니다. 예… 우리가 고비 한 두 번 넘겼나요… 곧 결제하겠습니다. 아들 : 누구…? 남자 : 거래처. 결제해 달라고. 아들 : …요새 건설 경기 많이 안 좋다던데. 남자 : 밥걱정은 안한다. 아들 : …중견 건설회사 몇 개 무너졌다고. 남자 : 아버진 아직 괜찮아…. 아들 : …. 아들, 바위로. 바위를 발로 툭툭 찬다. 아들 : 마당 한가운데 바위라니… 흉물스럽게. 이거 왜 안 뽑았어요? 남자 : 생각보다 뿌리가 깊어. 아들 : 뽑아 봤어요? 남자 : 할아버지가. 너무 깊어서 다시 덮었대. 아들 : 어디… (뽑으려고 한다. 바위는 끄떡없다) 정말이네. 남자 : …. 아들, 바위에 걸터앉는다. 침묵 아들, 뭔가를 발견했다. 헛간 쪽으로 걸어간다. 동화책을 줍는다. 아들 : (툭툭 턴다) 동화책이에요… 전래동화.(넘겨본다) 아버지 건데요….5의 1 박상철…. 남자, 다가온다. 아들 : 기억나요? 남자 : …. 아들 : …. 남자 : …할아버지가 사다 주신 거야. 아들 : …. 남자 : …. 남자 봉당에 앉는다. 아들도 옆에 앉는다. 아들, 책을 읽는다. 뒤란에서 대추 터는 소리. 아들 : …밑줄이 있어요. 남자 : …. 아들 : (읽는다) 바위를 들추자 눈앞이 훤히 트이며 별세계가 펼쳐졌다… (뒤진다) 여기도 있어요. 눈을 떠보니 어느새 별세계에 와 있었다… 별세계… 별방… 별세계란 뜻이에요? 남자, 동화책을 받아서 넘겨본다. 아들, 바위로. 아들 : 어디, 다시 한 번. 힘을 준다. 꿈쩍 않는다. 남자가 온다. 아들 : 해보시게요? 남자, 바위로. 남자가 힘을 주려고 할 때 여자의 비명. 여자가 뛰어온다. 아들, 여자에게. 아들 : 왜요? 여자 : 쥐…. 아들 : 난 또…. 남자 : …. 여자 : 흰쥐였어…. 남자 : …. 아들 : 흰쥐가 이런 데? 남자 : …. 여자 : 여보. 남자 : …. 여자 : 뭐 해요? 아들 : 그게… 동화책. 여자 : 동화책? 아들 : 아버지가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에… 바위를 들추면… 남자가 바위를 힘껏 들춘다.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백색의 햇살. 차차 빛이 사라지며 시간과 공간이 응고된다. 남자 : (소리) 밤마다 꿈을 꿨어. 자고 있으면 누가 날 자꾸 깨워. 일어나 보면 흰쥐가 한 마리 서 있어.…따라가 보면 하얀 길이야. 사위는 캄캄한데 멀리서 불빛이 한 점 보여… 어릴 때 학교 갔다 늦게 올 때면 엄마가 처마 밑에 달아놓고 나를 기다리던 불빛 같아… 엄마가 있나 싶어 걸어가면 자꾸만 내가 녹아내려서… 더 걸을 수가 없었어… 내 가슴 한 복판에 얼음처럼 꽁꽁 얼어 있던 것이 자꾸만 녹아내려서…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어… 눈을 뜨면 나는 이 바위 앞에 와 있었어… 여기서 누가 날 부르는 것 같아서 오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어…. 남자, 쓰러진다. 암전 2 밤 같은 장소 남자가 바위 앞에 쓰러져 있다. 흰 옷을 입은 모가 방에서 나온다. 모 : …누구? 남자 : …. 모, 다가온다. 모 : …누구세요? 모, 깨운다. 남자, 정신을 차린다. 모 : …괜찮으세요? 남자 : 여보…? 모 : …. 남자 : 승우는…. 모 : …. 남자 : …우리 아들 못 보셨나요?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모 : 누구… 같이 오셨어요? 남자 : 예… 아들하고 아내하고…. 다들 어디 갔나요? 모 : 못 봤어요. 소리가 나서 나와 보니까… 이렇게…. 남자 : 소리가 나서…. 모 : 예… 큰 소리가 났어요…. 남자, 주위를 둘러본다. 남자 : 그럼… 여기 계셨단 말인가요? 모 : 예… 우리 집이니까…. 남자 : 우리집… 그럼 아직도 사람이… 분명히 폐가였는데…. 모 : 폐가였어요. 그런데 바깥양반이…. 남자, 주변을 돌며 찾는다. 남자 : (큰소리로) 여보… 승우야…. 모, 화급히 남자에게 다가가서 모 : 애기가… 남자 : …. 모 : 애기가 깨요…. 남자 : …. 모 : 방에 애기가 있어요. 남자, 방문을 열어본다. 남자 : …방금까지 여긴 아무도 없었는데…. 모 : (근심) 애기가… 남자 : 예…. 남자, 집밖으로. 돌아와서 뒤란으로 갔다가 다시 마당으로. 손에 대추 한 알. 대추알을 씹어본다. 남자 : 그대로야…. 남자, 돌로 간다. 뽑으려고 한다. 안 된다. 남자 : 이걸 들었는데… 이걸…. 다시 힘을 준다. 모 : 안 뽑혀요. 바깥양반도 뽑으려고 했다가… 뿌리가 너무 깊어서…. 남자 : …뿌리가 너무 깊어서…. 남자, 모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모 : …왜? 남자,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듯 헛간으로. 뒤란으로. 다시 돌아온다. 다시 한 번 모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봉당에 가서 쓰러지듯 앉는다. 남자, 고개를 숙인 채 긴 침묵. 모, 부엌으로 가서 냉수 한 그릇 떠 온다. 모 : 이거…. 남자, 모를 빤히 바라본다. 냉수를 받아서 마신다. 한동안 말이 없다. 남자 : 이 물 맛… 기억나요. 어떻게 잊겠어요…. 모 : …. 남자 : …흰쥐를 따라서 왔었어요…. 모 : …. 남자 : 밤마다… 여길 왔어요…. 모 : …. 남자 : 꿈을 꿨죠…. 모 : …. 남자 : 어쩌면 이것도 꿈일지도 모르죠…. 모 : …. 남자 : …믿지 못하시겠지만… 전 아주 먼 데서 왔어요…. 모 : 먼 곳… 어디? 남자 : …아주 먼 데요…. 모 : …. 남자, 모에게 그릇을 준다. 모 그릇을 가지고 부엌으로. 남자, 마당을 거닌다. 모가 나온다. 남자 : 아버지는… 아니, 바깥 분은요? 모 : …아직 산에요…. 남자 : 그러시겠죠… 오늘도 찬합에 술빵을 넣어서 가셨나요? 모 : 그걸 어떻게? 남자 : 달이 중천은 지나야 돌아오시겠죠…. 모 : …. 남자 : …당신은 상철일 재워놓고 처마밑에 앉아서 기다리셨을 테고…. 모 : 어떻게 우리 애 이름을? 남자 : …. 모 : …누구세요? 남자 : 절 보세요. 모 : …. 남자 : 자세히 보세요. 누굴 닮았는지…. 모, 남자에게 가까이.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모 : (떨림) 닮았어요… 아버님? 남자 : …그런가요? …아버지도 할아버지를 닮았을 테니까…. 모 : …. 남자 : …. 모 : 그렇지만 아버님은 돌아가셨어요… 형제도 없으시고…. 남자 : …. 모 : 누구세요? 남자, 마당을 걷는다. 남자 : …저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요. 이게 꿈이 아니라면… 아니, 꿈이라 해도… 당신이 지금 내 눈앞에 있고… 당신이 꾸는 꿈이든 내가 꾸는 꿈이든…. 모 : …. 남자 : …간절히 바랐어요. 꿈이어도 좋으니까… 꼭 한 번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요…. 남자, 모를 본다. 남자 : 늙으신 어머니 대신, 이렇게 젊은… 우리 어머니를 만나다니…. 모 : …. 남자 : …어릴 적 아버지가 사다 주신 동화책 속에나 나오는 얘기가… 애기 적 나를 키우는 어머니를 만나다니…. 남자, 바위로. 돌을 들추려고 한다.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남자, 다시 힘을 준다. 모, 남자에게 다가온다. 모 : …그러니까, 당신이 내 아들이란 말인가요? 남자 : …어머니께서 오십 년 넘게,…십년 전에 돌아가셨으니까… 사십 년 넘게 키운 아들이… (다시 돌에 힘을 준다) …이걸 들추고…. 남자, 안간힘을 쓰다가 넘어진다. 모 : …. 남자 : …. 모, 남자를 본다. 침묵 모 : …밤마다 같은 꿈을 꿨어요…. 남자 : …. 모 : …놀라서 잠을 깨면… 포대기에 싸둔 애기가 사라지고 없었어요… 문밖에서 애기 울음소리가 났어요…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애기가 먼 길 다녀온 사람처럼 지친 어깨로 서 있었어요….…얼굴이 늙어 있었어요…. 남자 : …. 모 : 늙은 애기가… 밤마다 찾아와서… 잘못했다고, 잘못했다고… 빌었어요…. 말도 못하는 우리 상철이가…. 남자 : …. 모 : …어떻게 이런 일이…. 침묵 모 : …그게 사실인가요? 남자 : …. 모 : …상철이가 빌었어요… 용서해 달라고…. 남자 : …. 모 : …돈이 필요했다고.…아니면 식구들 데리고 자기가 죽었을 거라고…. 남자 : …. 모 : …우리 상철이가…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끔찍한 짓을… 모, 손으로 입을 막는다. 모, 남자 옆에 쓰러지듯 앉는다. 침묵 모 : …애들은 몇이나 돼요? 남자 : …. 모 : …몇이나 돼요? 남자 : 하나…. 모 : …공부는 잘 해요? 남자 : …. 모 : …건강하고? 남자 : …. 침묵 모, 남자 쪽으로. 모 : …손 한 번만 잡아 봐도 돼요? 남자 : …. 모, 천천히 손을 내밀어 조심스럽게 손을 잡는다. 모 : …이상해요.…정말 내 아들인 것 같아요…. 모, 남자의 손을 더 따뜻하게 쓰다듬어 준다. 천천히 머리로, 어깨로. 남자, 벌떡 일어선다. 헛간으로. 도끼를 찾아서 쥔다. 남자, 방으로 뛴다. 모 : 안 돼! 남자, 문 앞에서 멈춘다. 모 : …그 애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겠어요…. 그 애를 죽이는 건 나를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남자 : …. 모 : (손을 내민다) …어서. 남자 : …. 모 : 이리…. 침묵 모 : 어서…. 남자, 도끼를 떨어뜨린다. 모, 남자에게 다가온다. 도끼를 들고 밖으로. 남자, 힘없이 주저앉는다. 모, 빈손으로 돌아온다. 침묵 모 : …진지는? 남자 : …. 모 : …들어가세요. 남자 : …. 모 : …시장하실 텐데…. 남자 : …. 모 : 어서…. 모, 부엌으로. 주루막을 둘러멘 부(父) 들어온다. 남자와 부, 마주본다. 모, 나온다. 세 사람, 그 자리에. 암전 3 방안 호롱불 켜져 있고 세 사람 밥상에 둘러앉아 있다. 한쪽에는 포대기에 덮여 잠든 애기. 부 : …잡수세요…. 남자 : …말씀을…. 부 : …. 모 : …. 남자 : 말씀을 낮추셔야…. 부 : 그래도 어떻게…. 남자 : …. 모, 젓가락으로 더덕을 집어서 남자에게. 모 : …이것 좀…. 남자 : 이 귀한 걸…. 남자, 더덕을 집어서 모에게. 다시 한 젓가락 집어서 부에게. 모 : …. 남자 : …내다 파시지…. 부 : 또 캐면 되니까…. 부, 한 젓가락 집어서 남자에게. 남자 : …돌아가면 매일 먹을 텐데…. 남자, 한 젓가락 집어서 모에게. 모 : …. 남자 : …이보다 더 좋은 것도 매일 먹으니까…. 모 : …. 남자 : …고기도 매일…. 모 : …. 모, 남자에게 한 젓가락. 남자 : …. 부 : 귀한 손님인데…. 모 : 어서…. 남자, 망설이다가 한 입 떠 넣는다. 남자 : …두 분도…. 부 : …. 모 : …. 남자 : 두 분이 드셔야 저도…. 부모 : …. 부모 각자 한 숟가락씩 뜬다. 모, 숟가락을 놓는다. 남자 :…. 모 : 입맛이…. 침묵 남자, 수저를 놓는다. 부, 밥상을 옆으로 치운다. 침묵 남자, 지갑을 꺼낸다. 지폐를 꺼낸다. 부모, 손사래. 남자 : 전… 돌아가면 또 있으니까…. 남자, 다시 건넨다. 실랑이. 부, 돈을 받는다. 돈을 들여다보다 방바닥에 내려놓는다. 남자 : …. 모, 남편 가까이 와서 돈을 내려다본다. 모 : …. 부 : …. 남자, 돈을 다시 지갑 속으로. 침묵 남자 : …정말 그리 가면 돌아갈 수 있을까요? 부 : …가보기는 해야지요…. 모 : 옛날에도 그 굴로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고…. 남자 : …. 부 : …온 뜻이 있으면 가는 뜻도 있을 테니…. 모 : …. 부, 일어선다. 부 : …한시라도 빨리…. 남자, 엉거주춤 일어선다. 모, 따라서 일어선다. 부 : 당신은…. 모, 애기 옆으로. 남자 : …어머니…. 남자, 절한다. 모, 어정쩡한 자세로 맞절. 남자, 일어선다. 남자 : 그럼…. 모 : …저기. 남자 : …. 모, 보따리를 내민다. 모 : 이걸…. 남자 : …. 모 : …승우를 만나면…. 남자 : …. 모, 남자의 손을 잡아준다. 모 : …다 잊고… 남자 : …. 모 : …우린 괜찮으니까…. 남자 : …. 모 : …승우를 생각해서…. 부와 남자 밖으로. 모, 마당으로 나와 둘이 사라진 쪽을 본다. 암전 4 같은 장소 황혼 여자와 아들 마당에. 남자, 집밖에서 들어온다. 보따리를 들었다. 여자 : 여보…. 아들 : 아버지. 남자 : …. 여자 : 어떻게 된 거예요? 남자 : …. 여자 : …당신 얼굴이… 머리에 웬 흰머리가? 남자 : …. 여자 : 그건 웬 보따리예요? 남자 : …. 여자, 보따리를 푼다. 더덕, 약초 등. 여자 : …이게 얼마어치야? 남자 : …. 여자 : 어떻게 된 거예요? 남자 : …어머니가…. 여자 : …. 남자 : 나… 당신한테 할 말이…. 아들 : …. 여자 : …. 남자 : …십년 전… 어머니 아버지 그 사고…. 여자 : 여보. 아들 : …. 남자 : 사실은…. 여자 : 여보! 아들 : …. 침묵 여자 : …너는 먼저 내려가. 아들 : …. 여자 : 어서. 아들 : 아버지. 하실 말씀이…. 여자 : 내려가라고. 아들 : …. 여자 : 아버지랑 내려갈 테니까. 아들, 밖으로. 남자 : …못 믿겠지만…. 여자 : 지나간 일이에요. 남자 : …. 여자 : 잊어요. 남자 : 당신…? 침묵 여자 :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어요…. 남자 : …. 여자 :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으니까…. 남자 : …. 여자 : 우리 여길 떠나요. 남자 : …. 여자 : …승우가 있잖아요. 남자 : …. 여자 : 먼저 내려가 있을 게요. 남자 : …. 여자, 보따리를 챙겨서 밖으로. 남자 그 자리에. 남자, 마당 한 가운데 튀어나온, 바위를 본다. 막
  • [서울신문 신춘문예-시당선작] 가벼운 산/이선애

    태풍 나리가 지나간 뒤, 아름드리 굴참나무 등산로를 막고 누워 있다. 오만상 찌푸리며 어두운 땅속을 누비던 뿌리 그만 하늘 향해 들려져 있다. 이젠 좀 웃어 보라며 햇살이 셔터를 누른다. 어정쩡한 포즈로 쓰러져 있는 나무는 바쁘다. 지하 단칸방 개미며 굼벵이 어린 식구들 불러 모아 한 됫박씩 햇살 들려 이주를 시킨다. 서어나무, 당단풍나무, 노각나무 사이로 기울어진 채 한 잎 두 잎 진창으로 꿈을 박고 있는 굴참나무 제 뼈를 깎고 피를 말려 숲을 짓기 시작한다. 생살이 찢겨 있는 굴참나무, 그에게서는 고통의 향기가 난다. 살가죽의 요철이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탁한 밥장수 할머니의 손등만 같다. 끝내 허리를 펴지 못하는 굴참나무가 세로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굴참나무가 쓰러진 것은 태풍 나리 때문이 아니다. 나무는 지금 저 스스로 살신성인하는 중이다, 하늘 가까이 뿌리를 심기 위해.
  • 19살 여승(女僧)얻어 7순(旬)에 득남(得男)하니

    19살 여승(女僧)얻어 7순(旬)에 득남(得男)하니

    71년 봄은 고목에 꽃이 피는 상서로운 해인지도 모를 일이다. 73살 4대독자 할아버지가 50살 아래의 23살된 꽃다운 처녀에게 장가들어 만월같은 아들을 본 것. 소백(小白)·태백(太白)산맥이 마주쳐 갈라지는 충북 풍기(豊基)군 풍기(豊基)면 금계(金鷄)동 험준한 산골짜기 동네에 찾아든 이 「얼씨구 지화자 경사났네」의 초특급(超特級) 희소식. 겨우 조상체면 세웠다며 “뭣보다 건강이 제일이죠” 『자, 이렇게 앉으면 되겠소? 잘좀 찍어 주구려. 이녀석 보게, 예쁘게 보여야지 사진이 잘 찍혀요. 그렇지, 옳지, 웃어야지…』 소문만 듣고 찾아간 기자는 이 천의무봉(天衣無縫)으로 천진난만(?)한 노인앞에 우선 기가 죽었다. 완강한 체구에 이글거리는 눈동자, 탄탄한 피부가 아직도 젊음(?)을 안고 있는 듯. 『쌀 한가마 쯤은 문제없이 들고 다닐 수 있지. 건강이 제일이요, 건강』 하면서 노인은 호탕하게 웃는다. 『성생활문제? 그것도 걱정않지. 1주일에 3번쯤은 저분에게(아내를 가리킴)가는데 「수명을 재촉하는 짓」이라고 단호히 거부해서 할 수 없이 1개월에 3번쯤 허락해주지. 자세하게 얘기해 드릴까?』하며 노인은 심술궂은 웃음. 이 세계적인 기록이라해도 좋을 정력적인 노인은 황해(黃海)도 백천(白天) 조(趙)씨 종직(宗直)옹(73). 종직옹보다 50살 아래인 부인 임자원(任子元)씨는 23살. 조노인은 이조(李朝)개국공신 조반옹의 18대손으로 현재 4대독자로서 1점혈육 아들을 기적적으로 보아 겨우 조상들에게 체면을 세우게 됐다. 『정감록(鄭監錄)에 보면 풍기면 금계동이 십승지지(十勝之地)가운데 하나로서 피난처로 가장 좋다고 돼있지. 이곳 갈미봉 밑에는 신라(新羅)시대 사고(史庫)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어. 고향 황해도 백천읍 북리에서 땅마지기깨나 짓던 팔자였는데 공산당놈들 등쌀에 월남하여 이곳에 오게 된거요. 물론 그땐 처 자식들 모두 있었지』 이곳 금계동에 정착한 뒤로 3년만에 아내가 죽고, 10년만에 아들이 죽어 버렸다. 딸 근화씨(29)만이 살아남아 현재 강원(江原)도 영월(寧越)에서 홍(洪)일성씨(34)와 단란히 살고있을 뿐 홀몸이 됐다.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며 유랑생활을 하던 조노인은 불문에 귀의 독실한 신자가 됐다. 현재의 아기를 본것은 지난 1월 23일 밤12시. 30여가구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금계동 부락민들은 밤잠을 자지못하고 손에 땀을 쥐며 조노인댁의 출산을 기다렸다. 임여인의 끈덕진 구애에 처음엔 놀린다고 꾸지람 『아들이다』 느닷없는 조노인의 고함소리가 터지자 모였던 부락민들은 『만세』를 연거푸 부르며 『얼씨구! 지화자』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쌀됫박과 미역더미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조노인 개인의 경사만이 아니라 그것은 온통 부락의 잔치였다. 동네 젊은 이들은 애초 조노인의 결혼을 두고 『아이를 낳는다』『못 낳는다』설왕설래하던 끝에 내기까지 건 일도 있었을 만큼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며 조노인은 그의 굳센 아래쪽 힘을 젊은이들이 부끄러울만큼 뽐내고 만 것이다. 도대체 「괴테」를 무색하게 한 이 희한한 결합은 어떻게 해서 시작됐는가를 들어보자. 지난 68년 봄. 풍기면사무소가 있는 영전사(靈田寺)에서였다. 초파일 행사를 앞두고 조노인은 조화(造花)를 만들고 있었다. 이 작업을 옆에서 거들어 주었던 여승이 당시 19살 임여인. 신도와 다른 스님들은 범상스럽게 이들의 작업을 보아 넘겼으나 이때 이들은 사랑의 신호를 피차 보내고 있었다. 먼저 신호를 발신(?)한건 임여인쪽. 『할아버지, 아들이 없어 쓸쓸하지 않아요? 다른 신도들은 부처님께 아들을 보게해달라고 비는데 할아버지도 한번 빌어보세요. 할아버지가 돌아 가시면 절손(絶孫)이 될거 아녜요?』 『글쎄 낸들 왜 섭섭하지 않겠나? 그러나 이젠 다 틀렸어. 내 나이가 69살. 무슨 힘으로 아들을 볼수 있으며 씨는 또 어디다 뿌리누?』『저는 세상에 태어났다가 하나의 씨도 뿌리지 못하고 저 세상엘 간다는건 너무나 허무하게 생각이 되어요. 파계의 생각인지 모르나 저는 꼭 씨를 뿌려놓고 가기를 결심했어요?』『그길이 좋을지도 모르겠군…나이가 아직도 한창이니까 차차 있노라면 좋은 젊은사람이 나타날게요』 부처님 앞에서 이들의 얘기는 강론아닌 속세의 얘기로 꽃을 피웠다. 첫닭이 울고 법당에는 여명을 알리는 새벽의 흰빛이 비칠 무렵, 여승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며 눈에는 광채가 번뜩였다. 『할아버지, 제가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드리겠어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상관하지 않겠어요. 아들을 낳으면 훌륭한 불제자를 만들겠어요. 부처님도 저의 파계를 용서하겠지요』 조노인은 어안이 벙벙해서 『늙은 이를 놀리느냐』고 꾸지람. 그러나 신도와 여승의 관계는 차차 사랑하는 연인들의 관계로 변하여 갔다. 그러기에는 임여인의 끈덕진 구애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놀라운 정력…환속 1개월만에 태기있어 이 별난 부부의 정사가 소문이 나면서 내용을 알길이 없는 사람들은 빈정거렸다. 임여인이 10일도 못살고 도망가리라는 것. 그러나 임여인은 13년동안 입었던 승복과 염주를 내던지고 지금의 금계동에 있는 조노인의 초가로 환속해 버렸다. 조노인 살림이라야 쓰러져가는 초가집 한간에 토끼궁둥이 같은 산전 3백평. 여기서 거둬 들이는 좁쌀과 구호곡(구호대상자임)으로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는 어려운 살림이었다. 그러나 「늦게 배운 도둑질이 밤새는줄 모른다」던가? 햇살이 두둥실 비치고난 뒤에도 한참 있다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기미로 미루어 아주 신혼살림 재미에 깨가 쏟아진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환속 1개월만에 태기가 있었던 것. 점점 배가 불러가는 임여인의 모습에 부락민들은 고개를 수그리게 됐다. 10개월 채우고 난 자식이 딸 인희(仁熙)양(3). 온 동네가 이 기막힌 출산에 떠들썩하니 잔치기분으로 들떴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월에는 아들을 보기에 이르렀다. 이 소문은 군내에 꼬리를 치고 퍼져 이 험한 산골짜기에 구경을 겸한 출산축하객들이 줄지어 미역과 쌀을 가져왔다. 부인 임여인의 과거도 기구하다. 6살되던 해 여름, 부모가 무슨 병인지 1개월 사이를 두고 모두 세상을 하직했다. 천애고아가 된 임여인, 즉 딱한 어린애를 거둬 먹이고 입히며 기른것이 주지스님. 주지 이운각(李雲覺)스님에게 천자부터 배우기 시작, 「초심」「발심」도 익히고 독경도 배웠다. 15살때 어엿한 여승이 된 그녀는 17살때 영전사로 다시 옮겨 오늘의 남편을 만났던것. 『금년안으로 냉수라도 떠놓고 혼례식을 거행해야지요. 그때도 꼭 오슈』하며 껄껄거리는 노인은 작명가에게 아들이름이나 짓게 해달라며 사주를 적어준다. 음력으로 경술(庚戌), 기해(己亥), 무신인자(戊申寅子)라는 것 -. <영주(榮州)=이태호(李泰浩)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4월 25일호 제4권 16호 통권 제 133호]
  • 25일만에 출항준비 태안 ‘연일호’선장 지연상씨

    25일만에 출항준비 태안 ‘연일호’선장 지연상씨

    충남 태안 천리포의 고기잡이배 선장인 지연상(66)씨는 1일 눈바람이 뺨을 때리는 매서운 추위 속에서 자신의 배에 올랐다. 기관실로 내려간 그는 언 손으로 녹슨 엔진을 헝겊으로 닦아냈다. 기름 유출사고가 지난달 7일에 났으니 25일 만이다. 지씨의 손길에는 칠십을 앞둔 40년 바다 생활의 회한도 묻어 나왔다. “고기잡이를 그만둘 수 있나. 죽으나 사나 뱃일로 먹고 살아야 하는디.” 이날 지씨는 출항 준비를 어느 정도 끝냈다. 그는 참으로 오랜만에 ‘만선(滿船)’의 꿈을 가슴에 담았다고 했다. 방제 작업이 막바지이고 서해안 수산물에 문제가 없다는 소식이 있어 눈이 그치면 곧 고기잡이배의 엔진 시동을 걸 참이다. 지씨는 보따리로 싸 뱃전에 쌓아 뒀던 그물을 풀어 추리고 두레박으로 바닷물을 퍼 갑판에 뿌려 배를 말끔히 청소했다. 기름오염 사고가 난 뒤 허둥지둥 막아뒀던 물칸(배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 바닷물이 드나들게 해 물고기를 살리는 창고)도 마개를 따낸 뒤 깨끗이 닦아냈다. ●“간자미철… 예전같으면 하루 100만원 수입” 지씨는 이곳에서 태어나 40년이 넘게 배를 부려온 베테랑 어부다. 그는 “전에는 바다에 나가면 물칸 2개에 고기를 꽉꽉 채워 돌아왔다.”고 기름오염 전의 풍요로웠던 고기잡이를 떠올렸다. 지금은 간자미 철이라고 했다.“앞바다가 간자미 밭인디….”라며 아쉬워도 했다. 사고 전에는 4.9t급 어선 ‘연일호’를 끌고가 겨울철 별미인 간자미를 하루 300∼400㎏씩 잡았다. 펄펄 뛰는 팔뚝만 한 우럭, 광어도 10∼30㎏씩 잡아 100만원은 거뜬히 벌어들였다. ●“봄까지 조업 못하면 수천만원 빚더미” 그의 말대로 천리포 앞바다는 ‘황금어장’이었다. 물고기가 많아 경기와 전라도의 배까지 이곳으로 몰렸다고 전했다. 그는 “내가 어릴 때는 시제상에 올랐던 민어, 준치도 흔했다.”고 회고했다. 농어나 조기는 지금도 부지기수로 잡힌다. 지난 가을에는 꽃게가 지천이었다. 하루 300만∼400만원은 족히 벌었다. 지씨는 “5년간 안 나던 꽃게가 올해부터 잡혔다.”며 “올가을에만 집집마다 1억∼2억원은 벌었다.”고 귀띔했다. 봄·여름에도 나가기만 하면 우럭은 물론 놀래미, 붕장어 등을 배에 가득 잡아 돌아오곤 했다. 식구미(그물값, 기름값, 식비 등 출항에 따른 비용 일체) 등 이것저것 빼면 그의 수입은 절반도 안 되지만 전기세와 전화료도 꿔서 내는 지금과 비교가 안 됐다. 지난 가을 빚을 겨우 갚은 지씨는 봄까지 조업을 못하면 선원 채용 및 장비 구입비, 고기를 잡아 파는 횟집 운영비 등으로 다시 수천만원의 빚을 져야 할 처지다. 지씨는 “천리포 앞이 대산항 입구여서 늘 조마조마했는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고 혀를 찼다. 어떤 때는 이곳에 유조선 30대가 정박했다. 유조선이 아무데나 닻을 놔 그물은 물론 통발과 주낙도 걸려 피해가 컸었다. ●“자원봉사자 없었다면 고향 떠났을 뻔” 지씨는 “자원봉사자들이 아니었으면 마을을 떠날 판이었을지도 몰라. 고기잡이를 다시 생각하게 한 것도 모두 그들 덕”이라고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노 어부의 얼굴엔 새해에 힘차게 솟아오른 햇살만큼 희망으로 부풀었다. 글 사진 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현장행정] 관악구, 서울대 주변 개발

    [현장행정] 관악구, 서울대 주변 개발

    ‘신림동 고시촌’이 환골탈태한다. 관악구는 26일 서울대 로스쿨 지정 및 시행에 앞서 신림동 고시촌 일대 18만 1032㎡를 특화도시로 조성하는 ‘서울대 주변지역 제1종 지구단위계획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민래 도시관리과장은 “지난 21일 구 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해 서울시 신청을 남겨두고 있다.”고 말했다. 고시촌 개발은 신림지구(신림본·1·5동)와 신림뉴타운(신림6·10동)으로 이어지는 신림동 개발 청사진 가운데 하나다. 특히 낙성대 교육문화의 거리와 서울대 대학촌, 신림9동의 ‘미림 생활권’을 묶어 교육·문화의 중심지로 조성한다는 복안이다. ●로스쿨 학원 전문가 만든다 고시촌 개발의 양대 축은 ‘특별계획구역 지정’과 ‘걷고 싶은 거리’ 조성이다. 먼저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되면 토지소유주가 별도의 세부 개발계획 절차를 거쳐 인허가 승인을 받아 건축이 진행된다. 특별계획구역은 3곳이 지정된다. 로스쿨 전문 학원과 문화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특별계획구역 2곳(6516㎡)과 주차장, 공원시설이 설치되는 특별계획구역 1곳(3073㎡)이다. 특별계획구역에는 다양한 인센티브가 부여된다. 용적률의 경우 현재 250%에서 공공 기여도에 따라 최대 400%까지 상향 조정된다. 건축물의 높이도 최대 50m까지 허용된다. 이 과장은 “고시촌의 걷고 싶은 거리 주변 건물의 경우 차고지 설치도 면제해 준다.”고 말했다. ●대학가 문화·고시촌 특성 접목 걷고 싶은 거리 조성은 고시촌의 특성을 살리고 대학가 문화를 접목하는 컨셉트로 이뤄진다. 주요 테마를 보면 ▲문(文·배움)-지식획득을 위한 배움과 문화교류의 공간 ▲학(學·익힘)-꿈을 향한 익힘과 휴식 정보교환의 공간 ▲상(商·나눔)-에너지 충전을 위한 나눔과 오락의 공간이다. 거리 규모는 신녹두거리와 고시원길, 동방길, 청소년3길로 이어지는 모두 750m가량이다. 신녹두거리에는 이벤트 광장을 중심으로 ‘목재 데크’(나무 길)가 설치된다. 고시원길은 정보교환 마당, 북카페, 야외 카페테리아 등이 들어선다. 청소년3길은 녹지가 풍부한 골목공원이, 동방길은 햇살광장이 만들어진다. 걷고 싶은 거리는 난잡하게 널려진 도로변 전선이 모두 지중화되고, 바닥은 특수 포장이 깔린다. 또 도로 시설물 정비와 문화 편의시설도 설치된다. 내년 초에 실시설계에 들어가 2009년까지 모두 41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조성한다. 이와 함께 내년 상반기 내에 신림동 고시촌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고시생과 지역 주민을 연결하는 ‘정보광장 포털사이트’를 구축한다. 사이트는 고시생 수험정보와 고시원·로스쿨전문학원 소개, 각종 공무원 시험정보, 생활정보 등을 담는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우리 호랑이를 찾아서( 임순남 글·정석호 그림, 마루벌 펴냄) 1994년부터 호랑이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호랑이 아저씨’ 임순남씨가 전국 곳곳을 누비며 사라져간 우리 호랑이를 찾아나섰다. 수묵화풍의 그림은 ‘무서운 호랑이’보다 ‘친근한 호랑이’를 탄생시켰다. 책 본문은 호랑이의 일반적 생태를, 페이지 하단의 짧은 문장은 지은이가 호랑이를 찾아 헤매는 과정을 묘사하는 ‘이원 구조’를 취했다.1만 2500원.●수학 영재를 꿈꾸는 마법의 인도수학 계산법칙(나카무라 아키라 지음, 정경남 감수, 인터윈 펴냄) 일반적인 구구단은 9단(‘9×9=81’)까지지만, 인도 구구단은 19단(‘19×19=361’)까지다. 초등학교 때부터 19단을 배우는 인도 학생들은 정보기술(IT) 강국답게 계산력이 탁월하다고들 한다. 인도식 계산법의 핵심인 ‘두 자리 암기법’을 설명한 어린이용 인도 수학 입문서.9500원.●우리와 안녕하려면(하이타니 겐지로 글·쓰보야 레이코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양철북 펴냄) 지난해 타계한 일본 아동문학가 하이타니 겐지로의 단편집.‘일본의 권정생’이라 할 만큼 작가는 전쟁과 가난,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아이들의 생명력을 무한히 신뢰했다. 재일동포의 설움을 그린 ‘물 이야기’, 일본 제국주의 흔적을 더듬은 ‘손’ 등 5편의 단편이 실렸다.2003년 출간된 ‘손과 눈과 소리와’의 개정판.●휠체어를 찾고 말겠어(고정욱 글·장선환 그림, 을파소 펴냄)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대운이는 어머니가 큰 돈을 들여 사준 휠체어를 잃어버리자 휠체어를 찾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체육인이자 방송인인 박대운씨가 휠체어에 의지해 달리는 법을 배우고, 초등학교 야구부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힘은 그의 의지’란 메시지를 담았다.9000원.●책가방을 버린 아이(김희석 글·김혜진 등 그림, 자유지성사 펴냄) 물리치료사로 18년 동안 뇌성마비 아이들을 치료해온 작가는 자신이 만난 아이들 이야기를 통해 뇌성마비 장애인들을 ‘불쌍하고 도와줘야 하는 존재’가 아닌 ‘나와 조금 다른 친구들’로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8500원.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11)전북 남원시 뱀사골 와운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11)전북 남원시 뱀사골 와운마을

    식당가가 밀집돼 있는 반선에서 고도 약 600m의 와운까지는 약 3㎞. 평상시엔 배낭을 메고도 30분 남짓이면 충분하지만 폭설이 내린 날엔 1시간은 족히 걸어야 닿을 수 있다. 달달달, 눈길을 달리는 모터 소리가 들린다. 빨간 모자가 선명한 집배원의 오토바이다. 그가 가는 곳은 당연히 와운일 테고, 그 마을에 전해질 편지라곤 고작 청구서나 무의미한 인쇄물이 전부겠지만 편지를 전해 받는 마을 주민 모두 이 겨울 행복하길 바라본다. 와운에는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지정된 소나무(천년송) 한 그루가 마을의 수호신으로 숭앙 받고 있다. 푸른 가지 곁에 서면 서쪽 끝으로 정령치휴게소가 아득히 보이고, 가깝게는 이 나무에 기대어 사는 와운의 집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건물은 많고 다양하지만 가구 수는 겨우 10여집. 쓸쓸한 마을엔 눈을 쓸어내는 비질 소리와 낯선 손님을 향해 서럽게 짖어대는 개들뿐이다. 와운마을에 사시는 정민석 할아버지 댁 마루 안으로 한겨울 오후 햇살이 기분 좋게 쏟아지고 있었다. 가끔씩 창밖을 바라보며 마른 기침을 뱉는 정 할아버지는 여수·순천사건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고개를 내저으셨다. “마을 전체가 그때 소개(疏開) 당했어요. 아마 이 인근에선 와운이 첫 번째일거라. 아홉사리를 넘어온 군인들이 이 마을로 들어왔거든. 총 무서운 줄 모르던 동네 사람들이 많이 죽었지. 그나마 우리 가족은 일제 때 총의 위력을 보았던 아버지 덕분에 살았거든. 솜이불을 덮고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거나 나락 가마니를 쟁여서 그 뒤에 숨기도 했어요. 낮에는 군인, 밤에는 인민군 천지였지. 사상이 뭔지도 모르던 순진한 산골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군인들에 의해 몰살당한 일도 많아. 세 살 먹은 어린애부터 여든이 넘은 노인네까지 가리질 않았어.” 실제로 최근까지 뱀사골 곳곳엔 뼈가 ‘버글버글’ 했단다. 언젠가 바위 밑에서 나란히 죽어 누운 다섯 구의 시체를 발견한 적도 있다. 악몽 같은 고통은 여수·순천사건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이 작은 산골마을을 몹시도 괴롭혔다.정 할아버지는 아직도 ‘딱꿍총’을 기억한다. 여기서 ‘딱’하고 쏘면 저기로 총알이 ‘꿍’하고 날아갔다는 인민군의 무기다. 남원으로 쫓겨나간 주민들은 군인이 와운골을 수복한 후에야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공부는 고사하고 일만 하던 시절, 보리타작을 할 때면 찬물에 간장을 섞어 마시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 당시 장골의 하루 일당이 쌀 한 되였지만 그것도 형편이 좋을 때였지, 닷새 반을 일하고 겨우 밀가루 한 포대를 받아온 궁색한 살림이었다. 자유당 말기 때는 뱀사골 곳곳에 목재 사업이 번창했다. 명목은 후생사업이었지만 실상은 무법천지에 가까웠다. 벌목을 수시로 해댔으며 그 나무들은 철도 침목이나 숯 굽는 용도로 쓰였다. 한때는 60여가구가 살았고 초등학교 분교까지 들어설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4대째 와운에 살고 있지만 5남 1녀인 자녀 교육을 위해 꼬박 30년간 남원시내에서 살았다. 자녀들 모두 장성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혹여 도시에서의 오랜 세월로 돌아온 고향 살림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은데 할아버지의 대답은 단호하다.“좋지!” 젊은 시절 아픔과 슬픔을 동시에 안겨준 곳이지만 그래도 결국 뼈를 묻을 곳, 마음이 가장 푸근한 곳은 어김없이 고향 차지가 되나 보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 가는 길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함양분기점에서 남원 방향으로 가다가 지리산IC로 나간다. 대구나 광주 역시 88고속도로 지리산IC로 진입하면 편하고, 부산에서는 진주∼함양∼남원방향으로 온 다음 인월에서 뱀사골로 들어선다. 와운까지 차량 통행은 가능한데 눈이 많이 내렸다면 운행이 힘들다. 버스는 남원이나 함양으로 간 다음 인월을 거쳐 뱀사골로 갈 수 있다.
  • [Let’s Go]포항 구룡포 3味 여행

    [Let’s Go]포항 구룡포 3味 여행

    경북 포항의 구룡포는 겨울에 찾아야 제격이다.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수도했던 고찰 오어사 앞바다에서 아홉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곳. 바닷가 마을 어디서나 주렁주렁 매달려 익어가는 과메기와 만날 수 있다. 겨울철 꽁꽁 언 몸만큼 얼어붙은 입맛을 돋우기에 과메기만 한 것이 있을까.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것이 입맛. 기름기 많은 청어로 만든 것이라야 제맛이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집 많아 포실한 원양산 꽁치가 낫다는 이도 있다. 과메기는 김, 미역, 쪽파 등 거섶맛에 먹는다 했다. 긴긴 겨울밤을 보내기에 가족, 친구, 연인보다 좋은 ‘거섶’은 없을 터. 이들과 더불어 과메기를 먹고 즐긴다면 싸늘한 바닷가의 겨울밤이 정겹고 도타워지지 않겠는가. # 겨울의 맛이 익어간다 반도의 동쪽 끝자락 구룡포. 바닷가 마을 곳곳에 주렁주렁 매달린 과메기가 시린 겨울바람을 맞으며 살랑대고 있다. 한적한 마을 풍경을 뒤로하고 과메기 덕장 안으로 들어서면 불난 시장통처럼 분주한 모습과 마주한다. 꽁치의 머리와 내장을 떼어 낸 이른바 ‘배지기’를 만드는 광경이다. 한 편에서 꽁치의 배를 갈라 물에 헹구고 나면, 또 한 편에선 20마리를 한 두름으로 묶어 부지런히 밖에 내건다. 그늘지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다. 손질한 꽁치를 ‘대차’라는 틀에 걸던 김숙자(38)씨가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과메기 제조과정을 풀어냈다. “바닷물과 민물로 번갈아 헹궈야 기름이 엉기지 않아 맛이 좋지예. 꽁치 껍질은 벗기지 않는데, 나중에 먹을 때 벗겨야 불그스레해져 보기 좋고 꾸덕꾸덕하게 씹히는 맛도 살게 되는 기라예. 그래가 바닷바람에 3일 정도 말리면 맛있는 과메기가 된다 아입니꺼.” 과메기란 이름은 관목(貫目:물고기 눈을 끈으로 꿰어 여러마리를 묶는 것)에서 관메기-과메기로 변천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현지 주민들은 새끼줄을 꼬아 만들었다는 ‘꼬아메기’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예전엔 청어로 만들었지만, 청어들이 산란장이었던 영일만 인근에서 자취를 감춘 이후 말리기 쉽고 영양가가 높은 꽁치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최근엔 국내산 꽁치마저 어획량이 줄어 거의 일본 홋카이도 등 북태평양에서 잡아온 꽁치로 대신하고 있다. # 과메기 맛은 ‘팔할이 바람’ “사실 국내산 꽁치는 잘고 기름기가 적어 원양산보다 맛이 덜합니다. 어획량도 적고, 대부분 횟감용으로 팔려 나가죠. 잡은 꽁치를 손질하지 않고 그대로 말린 ‘통마리’가 맛으로는 더 윗길입니다. 말리는 과정에서 내장의 고소함이 살점에 배기 때문이지요. 값도 쌉니다. 배지기에 비해 좀 더 비릿하지만, 요즘엔 통으로 말린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병포리에서 바다목장 해원을 운영하고 있는 유동기 사장의 설명이다. 유 사장은 또 “통으로 말리는 과정은 황태 건조 과정과 비슷합니다. 보름에서 한달 정도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꾸덕꾸덕하게 익어 가죠.”라고 덧붙였다. 요즘처럼 맑고 건조한 데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 때가 통으로 말리기 딱 좋은 시기란 얘기다. 최근 들어 청어가 영일만 인근에서 조금씩이나마 모습을 비치고 있다고 한다. 서해바다가 검은 죽음의 띠와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마당에 그나마 동해바다는 생기를 회복하는 듯해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과메기 맛을 좌우하는 것은 차갑고 건조한 겨울바람. 코끝이 얼얼할 만큼 겨울이 매섭게 익어갈 때라야 과메기도 농익는다. 영일만을 지나며 습기를 머금었던 북서 계절풍이 구룡포 뒤쪽 산자락을 타고 넘으며 건조하고 차가워진다. 이 건조한 내륙풍이 과메기를 기름지게 말리고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은 맞춤하니 간을 배게 하는 것. 구룡포 과메기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맛이 좋은 이유다. 구룡포항은 울진 등과 더불어 대게잡이의 전진기지다.12월로 접어들면서 과메기와 대게를 찾아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에도 과메기 맛이 알려지면서 일본 관광객들의 발길도 잦아지고 있다. # 맛도, 영양도 만점 김 위에 물미역과 쪽파, 마늘 등을 가지런히 얹고, 초고추장 듬뿍 찍은 과메기를 더해 입에 넣기 좋을 만큼 한 쌈 만든다. 쌉싸래한 소주 한 잔 입안에 털어 넣고 기름기 자르르 흐르는 과메기 오물오물 씹는 맛이라니. 과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겨울 식도락의 정수라 할 만하다. 주당들이 과메기만 보면 반색을 하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실제 과메기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면 잘 취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숙취 해독 물질인 아스파라긴산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과메기가 요즘처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까지는 사실 맛보다 참살이(웰빙) 열풍에 힘입은 바 크다. 구룡포읍 등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칼슘은 쇠고기에 비해 5배나 많다. 밥이 주식인 한국인이 섭취해야 하는 필수아미노산 트레오닌, 리신 등도 상당량 함유하고 있고 성장기 어린이에게 필요한 아르기닌과 메티오닌도 많다. 노화와 체력 저하, 뇌 기능 쇠퇴 등을 막아주는 한편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영양소들이 듬뿍 들어 있다. 피부노화 방지에도 효과가 탁월하다는데, 미용에 많은 신경을 쓰는 여성들이 귀를 쫑긋 세울 대목이다. # 오징어와 멸치도 한창 바닷가 마을에 널려 있는 것은 과메기만이 아니다. 흰 속살 드러낸 채 겨울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오징어와 멸치도 바닷가 풍경을 그려내는데 톡톡히 한몫한다. 마치 ‘나도 예 있소!’라며 목청을 높이는 듯하다. 특히 수천마리 오징어가 시리도록 파란 바다와 어우러지는 광경은 겨울철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오징어는 10월 말∼1월이 제철. 햇살 가득한 해변에서 5일 정도 제 몸을 태워 쫄깃한 건오징어로 변신한다.20마리 한 축에 1만∼3만원선. 멸치의 경우 김장철을 앞두고 젓갈용으로 쓰이는 굵은 녀석들이 잡히는 것이 보통. 올겨울엔 조류와 수온 등의 영향으로 다소 늦어졌다. 소금 뿌린 멸치를 끓는 물에 2분 정도 삶은 다음, 햇볕에 꼬박 하루 동안 말린다.2㎏ 한 상자에 1만 2000원 선. 글 사진 포항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대구-포항고속도로→포항→31번 국도 구룡포 방면→925번 지방도→구룡포항(서울∼포항 336.5㎞) ▲ 먹거리 구룡포에서 영덕에 이르는 바닷가 식당 어디서든 과메기를 맛볼 수 있다.5마리 1만원선. 택배도 가능하다. 집집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배지기 15마리 1만 5000원, 통마리는 20마리 6000원쯤 받는다. 구룡포항 못미쳐 병포리에 위치한 바다목장 해원(054-276-2445)은 입맛과 손맛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집. 관광객들이 직접 낚시로 잡은 참돔, 감성돔 등을 즉석에서 회로 떠 준다. 바닷가 인접한 양식장에 풀어 놓은 고급 어종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기 무섭게 달려든다. 여성이나 어린이도 손쉽게 낚을 수 있다. 낚싯대는 무료 제공. 참돔 1마리 2만원, 감성돔 1만 5000원 선. ▲ 주변 명소 운제산 자락에 기대 선 오어사는 오어지란 저수지를 끼고 있어 풍광이 독특하다.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와 절 사이로 난 작은 길은 산책을 즐기기 그만. 한반도 지도에서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호미곶은 해맞이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상생의 손, 등대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다. 구룡포에서 호미곶으로 이어지는 20분간의 해안도로 드라이브도 빼놓을 수 없는 여행 코스다.
  • “힘들어도 꼭 찍어야죠”

    “힘들어도 꼭 찍어야죠”

    사상 최저 투표율이 우려되는 17대 대통령 선거일을 하루 앞둔 18일. 많은 이들이 휴일(?)을 맞아 해외로, 교외로 여행계획을 짜느라 분주한 이날,1급 뇌병변 장애를 가진 정희선(28·여)씨는 생애 첫 투표권 행사를 위해 투표소까지 제대로 이동할 수 있을지를 걱정했다. 정씨의 집에서 투표소까지 휠체어를 밀고 동행해봤다.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1가 45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체험홈’. 정씨는 수동 휠체어 위에서 활짝 웃으며 기자를 맞았다.100일이 겨우 지날 무렵 뇌성마비가 찾아왔다. 사지가 오그라들거나 펴진 채로 접히지 않는 등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5세 때부터 보호시설에 맡겨진 뒤 30곳을 전전했다. 하지만 시설에선 투표는커녕 외출도 못하게 했다.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할 수 없었고,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26세가 돼서야 한 대학생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초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한 달 전 좀더 공부해서 검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인천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투표라는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시설에 있으면서 투표할 생각조차 못할 땐 ‘나도 멀쩡한 시민인데, 왜 정당한 권리조차 행사할 수 없을까.’란 자괴감이 들어 참담했어요.” 함께 문을 나섰다. 동소문동 투표장이 마련된 곳은 1㎞ 남짓한 거리에 있는 예닮교회. 차가 다니는 일방통행 도로라 아스팔트가 깔려 있다. 휠체어가 움직이긴 편하지만 투표소까진 과속 방지턱이 6개나 있었다. 길가엔 주차선만 많이 그려져 있을 뿐 인도는 겨우 200m 정도밖에 안 됐다. 그나마 턱이 높아 올라가기 힘들었다. 인도는 포기하고 차도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자동차들이 휠체어는 아랑곳없이 씽씽 내달리기만 했다. 장애로 인해 정씨의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라 과속 방지턱이나 인도로 올라가는 턱에선 자칫 휠체어가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급경사를 내려갈 땐 휠체어를 꽉 쥔 손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결국 비장애인들이 5분이면 걸을 거리를 휠체어를 밀어주는 사람이 있음에도 두 배가 훨씬 넘는 시간이 걸려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숙달되지 않은 사람이 휠체어를 밀면 자칫 넘어지기 쉬워요. 힘드시죠?” 정씨에겐 비밀투표가 보장되지 않는다. 선거날 동행해줄 도우미가 정씨가 원하는 사람을 찍을 뿐이다. 기표소는 일어설 수 있는 비장애인 중심으로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동이 힘든 중증장애인의 경우 거주지에서 투표할 수 있는 ‘거소투표’ 제도가 있지만 이 역시 장애인이 동사무소에 가서 신청해야 하고 장애가 있다는 걸 통·반장에게 확인까지 받아야 한다.“도우미들에게 일일이 부탁하기도 어렵고 제가 직접 움직이긴 더 힘들어요. 공무를 보시는 분들이 직접 찾아와 투표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7대 대선 유권자 가운데 4급 이상 장애인은 81만여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2.2%에 이른다.“정치가 아무리 혐오스러워도 투표하지 않고 비판만 하면 옳지 않아요. 저도 장애인 정책을 살펴보고 2명의 후보를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는데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장애인들의 주거권과 이동권을 제대로 보장해 줬으면 좋겠어요.” 정씨의 얼굴에 활짝 피어오른 미소가 겨울햇살에도 밝게 빛난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장애인에 교통편 제공 02-503-1790~1 장애인들의 투표를 돕는 제도는 두 가지가 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에겐 거주지에서 투표할 수 있게 하는 거소투표제도가 있다. 하지만 부재자투표 때 이뤄지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선 이미 신청이 끝났다. 장애인에게 왕복 교통편을 제공하는 장애인투표지원제도도 있다. 신청 마감은 18일이지만 선거일인 19일에도 해당 구·시·군 선관위로 신청하면 제도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문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종합안내센터 (02)503∼1790∼1.
  • [낚시사랑과 함께 월척樂漁] 충남 서천군 한산면 ‘축동지’

    수온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물색이 맑아져 붕어들의 활성도가 많이 떨어진다. 낮은 수심의 연안낚시가 쉽지만은 않은 때다. 예전 이맘때면 한해 낚시를 마감하는 납회를 끝으로 겨우내 낚시장비들은 깊은 잠에 빠져 화려하게 찾아올 봄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방한장비들이 발달하고 겨울철 민물낚시를 즐길 수 있는 낚시터들도 늘어나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대를 드리우는 열혈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저수온기만 되면 조황이 살아나 겨울철 낚시터로 확실하게 자리매김 하고 있는 충남 서천군 한산면 축동지. 사방이 나즈막한 산과 논으로 둘러진 평지형 저수지로,1930년대 제방이 축조되어 담수령이 70여년이나 되는 곳이다. 상류일대는 부들과 갈대가 군락을 이루고 중류권에는 뗏장과 버드나무가 포인트를 형성하고 있어 겨울철 낚시터로는 손색이 없는 곳이다. 축동지 관리인 최동열씨는 “5월 이후부터는 마름이 수면전역을 뒤덮어 낚시가 불가하며, 마름이 삭아 내리는 10월이 지나야 낚시가 가능한 곳으로 한겨울에도 결빙이 되지 않아 물낚시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스보일러와 화장실을 갖춘 수상좌대 10동을 수초속에 설치해 놓아 겨울철 밤낚시뿐 아니라 수초치기도 가능하다. 토종붕어만 서식하고 있어 특별한 찌맞춤이나 복잡한 채비를 하지 않아도 쉽게 붕어를 낚을 수 있다. 오전 낚시에 6치급 10여수를 낚았다는 대전꾼 김광호(50)씨는 뗏장수초를 넘겨 2.0∼3.0대 6대를 펼치고, 수심 1.5m정도 되는 곳에 지렁이 미끼만 사용한 외바늘 채비를 드리우고 있다. 겨울에만 이곳을 찾는다는 김씨는 “수초가 많아 포인트도 많고, 결빙이 되지 않아 매력적인 곳 ”이라며 “햇살만 좋다면 겨울철 조과치곤 많은 평균 15∼20여 수는 무난하게 낚을 수 있다.”고 전했다. 지렁이 미끼보다 떡밥에 씨알이 굵게 낚이지만 바람과 햇살의 영향에 따라 조과 차이가 있다. 밤낚시보다 기온이 오르는 낮낚시, 바람이 불어대는 오후보다 오전 조황이 좋은 편이다. 입어료 5000원, 수상좌대 5만원. 백반 5000원, 닭백숙과 닭도리탕 3만원.011)402-0805. #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서천나들목→서천 오거리→한산방향→길산교→광암삼거리→지현삼거리 직진→유산사거리 임천방향직진→단상교→1㎞직진→송산교회 표지판→좌회전→1.5㎞직진→축동지 김원기·붕어낚시 전문가
  • [부고]

    ●윤성욱(전 멕시코 대사관 공사)씨 별세 상진(아로마소프트 부사장)씨 부친상 유동구(LG화재)정규성(연세대 화학과 교수)김홍기(삼일회계법인 부대표)씨 빙부상 9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12일 오전 5시30분 (02)2650-2752●태성은(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장)씨 모친상 10일 경북 경주시 황성동 전문장례식장, 발인 12일 오전 8시 019-580-2256●정행교(전 서울시설공단 혁신본부장)씨 모친상 9일 서울적십자병원, 발인 12일 오전 5시 (02)2002-8979●김유열(김유열세무사사무소 대표)씨 별세 재승(나노산업개발 부장)재윤(사업)씨 부친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6시 (02)3010-2233●서창원(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씨 부친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6●이종훈(덕성여대 이사장)종영(KSI 대표)종락(동아전력 부사장)종대(중부지방국세청)종오(자영업)씨 모친상 권영호(세무사)강오식(자영업)이희관(한비론 대표)씨 빙모상 10일 전북 군산 금강장례식장, 발인 12일 오전 10시 (063)445-4188●장원익(동우건축 이사)진익(노량진 메가스터디학원 강사)씨 모친상 이창우(사업)김기혁(〃)씨 빙모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5시30분 (02)3010-2237●이규철(자영업)씨 부친상 이민웅(진로 상무)원웅(자영업)한웅(회사원)씨 조부상 10일 오산장례식장, 발인 12일 오전 8시 (031)372-2923●신관호(동국대 체육실장)씨 모친상 10일 순천 메디팜병원, 발인 12일 오전 9시 (061)744-4800●정진옥(현대드림투어 부장)씨 부친상 신민호(현대증권 신탁부장)씨 빙부상 10일 옥천 농협장례식장, 발인 12일 오전 8시30분 (043)731-6499●이춘재(사업)혁재(동아일보 뉴스디자인팀 차장)씨 부친상 김무용(사업)김승일(일석산업 대표)씨 빙부상 10일 부천장례식장, 발인 12일 오전 9시 (032)654-7184●이관영(한인건축 대표)재영(중국 거주)씨 부친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2)3010-2235●정진동(청주도시산업선교회 목사)씨 별세 10일 청주의료원, 발인 13일 016-463-4717●김승애(서울시 노원구 구의원)병묵(대흥중공업 부장)경애(아기햇살 유치원 교사)씨 부친상 명상호(삼성빌리지 차장)이화갑(덕창종합건설 과장)씨 빙부상 10일 서울원자력병원, 발인 12일 오전 6시 (02)970-1551
  • [길섶에서] 바람부는 아침/최태환 수석논설위원

    바람이 분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마른 가지를 흔드는 까치의 비상이 화사하다. 인상파 화가 에드가 드가가 빛처럼 다가온다. 발레 작가다. 날아오를 듯한 발레리나를 많이 그렸다. 춤추는 여인들, 리허설 등에서 발레리나의 순간 동작과 예기치 않은 움직임을 포착했다. 그는 크로키를 하듯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생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이들 그림이 더욱 주목받는 건, 작가의 시선 때문이다. 사실 발레만큼 주인공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장르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그는 ‘들러리’ 발레리나를 즐겨 그렸다. 작가의 따듯한 시선과 감성이 가슴을 녹인다. 주목받지 못하지만, 완벽한 공연을 위해 혼신의 몸짓을 하는 들러리들의 숨결이 들리는 듯하다. 발레뿐일까. 우리가 이만큼 지탱하는 건, 드러나지 않은 주위의 도움 덕분이 아닌가. 또다른 주인공이 돋보인다면, 누군가가 기꺼이 들러리를 섰기 때문이 아닐까. 출근길에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깃발이 흔들린다. 드가의 작품이 흩날린다. 바람불어 좋은 아침이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8일 TV 하이라이트]

    ●콘서트 7080(KBS1 밤 12시30분) 오랜만에 ‘콘서트 7080’을 통해 다시 무대에 서는 김종서.‘플라스틱 신드롬’‘겨울비’‘아름다운 구속’등 히트곡들을 열창하는 이번 무대는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폭발적인 관객의 호응으로 뜨겁게 달궈졌다. 노래방 기계에 얽힌 에피소드와 홈쇼핑 예찬론 등 유쾌한 이야기들도 들어본다. ●드라마시티(KBS2 오후 11시35분) 반촌의 늙은 양아치 달구는 젊은 시절의 화려함은 오간 데 없이 비루한 인생으로 전락한 신세이다. 여기저기 싸움판에 따라 다니고 늘 얻어맞는 쪽은 달구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단골식당에서 일하는 미숙을 보고는 맘에 들어 그만의 방식으로 구애를 해보지만 미숙은 쉽게 맘을 열지 않는데…. ●겨울새(MBC 오후 9시40분) 영은과 도현이 사이 좋게 찍은 사진을 보게 된 경우는 영은에게 슬그머니 도현에 대해 묻는다. 도현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경우의 갑작스런 질문에 영은은 무슨 뜻이냐고 되물어본다. 한편 일하던 정순을 갑자기 쉬게 하던 경우 엄마는 살며시 영은의 침실로 들어가 서랍을 뒤지며 통장을 찾는다. ●조강지처 클럽(SBS 오후 10시15분) 원수는 지란이 보는 앞에서 화신에게 이혼을 투표로 결정하자고 한다. 기가 막힌 화신은 지란이 양보를 해달라고 매달리자 이혼은 절대 해줄 수 없다며 정신 차리고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한다. 기적이 복수와 이혼하고 재산까지 빼돌리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양순은 기적을 가만두지 않겠다며 병원으로 간다. ●스페이스 공감〈이상은의 ‘영원을 향한 여행’〉(EBS 오후 10시) 보헤미안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싱어 송 라이터 이상은이 13번째 앨범 ‘The 3rd Place’를 발표했다. 새 앨범의 수록곡들로 꾸며질 이번 무대를 통해, 이상은이 노래하는 유토피아적 메시지를 공유하며 마음의 휴식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생생웰빙테크(YTN 오전 7시25분) 우리나라 음식의 기본이자 조상들의 장수비법인 장.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밥상에서 결코 빠지지 않으며 전통의 맛을 내는 중요한 감초역할을 한다. 발효·숙성과정을 거쳐 완성된 전통 장에 함유된 각종 성분이 건강에 좋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웰빙 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SBS 오후 11시25분) 국과수의 감정을 근거로 강기훈씨가 대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던 사건을 재조사, 유서가 분신한 김기설씨 본인의 필적임을 밝힌다. 많은 간첩사건과 조작사건들이 재조명되길 기다리고 있는 시점에서 이 사건을 통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그런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걸어서 세계속으로(KBS1 오전 10시) 미국 샌타페이는 해발 2135m의 고원에 위치한 사막도시이다. 오래전 인디언들은 이 땅을 ‘햇살이 춤추는 땅’이라 불렀다. 도시적 감성에 길들여져 있던 백인 예술가들은 샌타페이의 원시적이고 이국적인 풍경에 큰 충격과 예술적 영감을 얻어 줄줄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 [사설] 참 스승상 실천한 이기용·송명근 교수

    말기 암환자였던 대학교수가 학기 마지막 수업을 마친 날, 사무실에서 세상을 떴다. 휴강 및 수술 권유를 받았지만 종강 뒤 수술을 받겠다며 강의를 강행했던 그다. 또 다른 의과대학 교수는 200억원이 넘는 재산을 공익사업에 쓰겠다는 서약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모처럼 한 줌의 햇살같은 소식이다. 스승없는 대학사회라는 자조가 넘친 지 오래다. 참 스승, 사랑의 실천의 표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성균관대 법대 이기용 교수. 그는 두 달전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항암·방사선 치료를 받은 뒤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견이 나왔지만, 학기를 끝내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50의 나이다. 그는 지식뿐 아니라 법학도의 덕목을 강조해온 진정한 스승이었다고 제자들은 회고하고 있다. 선거철을 맞아 대학가에는 대선후보 캠프를 기웃거리는 정치교수, 이른바 ‘폴리페서’들이 넘쳐난다. 유수 대학의 총장까지 뛰어들어 논란이 되지 않았던가. 이 교수의 제자 사랑이 더욱 돋보이고, 어떤 찬사도 아깝지 않은 이유다. 국내 심장수술의 최고 대가인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송명근 교수가 또 다른 주인공이다. 그는 5년전 이미 죽은 뒤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유언장을 썼다. 독자 개발한 심장판막 보조장치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 그는 “재산이 엄청 늘면서 다짐이 흔들릴까봐 사회공헌 약속을 공개했다.”고 했다. 그의 인간됨과 도량을 알 수 있다. 두 교수의 값진 사랑과 실천이 사회를 훈훈하게 하고, 또 다른 확산의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
  • 빠알간 해야, 온갖시름 안고가거라

    빠알간 해야, 온갖시름 안고가거라

    어느덧 2007년의 끝자락. 각 종 일정들로 빼곡했던 달력도 이제 한 장 남았다. 지난 시간을 반추하며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내야 할 때다. 올 1월 1일 오전 7시 26분 경상북도 독도에서 떠오른 2007년의 해는 31일 오후 5시37분 전라남도 흑산도의 바다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1년동안 동고동락했던 정해년의 붉은 해가 펼치는 마지막 빛의 축제에 아쉬움만 있는 것은 아닐 게다. 빈 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우는 가슴 벅찬 환희와 감동도 함께 한다. 송구영신의 의식을 치르기 적합한 장소들을 모았다. ●수도권 해넘이 명소 ▲유명산 설매재휴양림 해넘이의 붉은 기운이 스며든 억새꽃 너머로 유장하게 흘러가는 남한강의 자태가 퍽 인상적인 곳이다. 영화 ‘왕의 남자´를 본 사람이라면 중첩된 산봉우리들을 배경 삼아 너른 억새밭에 고고하게 서 있던 소나무를 기억할 듯. 산자락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 위로 지는 해가 일품이다. 영화에서야 멀리 도시 풍경까지 담을 수 없었겠지만, 실제로 보면 양평 등 도시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흘러가는 남한강 물줄기와 주변 산자락들이 감동적이라 할 만큼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트레킹삼아 천천히 걸어가면 입구부터 정상까지 1시간 남짓 걸린다. 사유지여서 출입에 제한이 따른다는 것이 흠. 설매재자연휴양림(031-774-6959)에 사전양해를 얻어 오를 수 있다. ▲수종사 경기 남양주시 운길산 수종사는 서울 근교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절집으로 꼽힌다. 뜰 아래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 풍광이 빼어나 조선의 문장가 서거정이 ‘해동 제일의 전망´이라고 상찬하기도 했다. 예로부터 약수가 맛있기로도 소문난 곳.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도 자주 찾아 차를 마셨다고 전해진다. 무료 다실인 삼정헌(三鼎軒)에서 향긋한 차를 즐기며 두물머리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맛이 각별하다. 운길산 아래서 수종사 주차장까지는 2㎞ 거리. 길이 좁고 가팔라 차를 두고 걸어 올라가는 사람도 많다.(031)576-8411. ▲강화도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여름철과 달리 한적하고 조용한 해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들이 많다. 서해안 3대 낙조로 꼽히는 ‘장화리 낙조´가 유명하다. 동막리에서 장화리로 이어지는 강화도 남단의 해안도로는 드라이브를 즐기며 낙조를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화도면 적석사는 개펄위로 떨어지는 붉은 노을이 인상적이다. 마니산 남쪽의 동막해변, 석모도의 보문사, 민머루 해수욕장 해넘이도 놓치기 아깝다. 강화군청 (032)932-5464. ▲기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인천시 용유도 을왕리해수욕장도 유명 낙조 포인트. 연말연시 일출, 일몰여행을 떠났다가 자칫 길거리에서 보낼 낭패를 당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경기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해안은 해질녘 항구로 들어오는 고깃배사이로 떨어지는 해넘이가 장관을 이룬다. 충북 충주시 동쪽 계명산 자락은 충주호를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곳. 충주호를 끼고 달리는 도로변이나 고갯마루 등에서도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tour.cj100.net, (043)850-5344. ●낙조감상 1번지 서해안 일몰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지만, 그럴싸한 배경과 어우러지며 운치있게 넘어가는 해넘이를 보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야 한다. 서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인 데다 섬이 많아 일몰명소가 흔하다. 특히 천혜의 절경을 곳곳에 품고 있는 전북 부안의 변산반도와 고창 등에는 낙조감상 포인트가 산재해 있다. ▲부안 변산반도의 절경은 30번 국도변에 모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100㎞에 달하는 해안도로는 동해안 7번 국도에 뒤지지 않는 드라이브 코스.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가다 차를 세우면 그곳이 일몰명소다. 서해 3대 낙조명소 중 하나인 채석강은 그중 첫손꼽히는 곳. 수만 권의 고서적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한 절벽 너머로 지는 해가 일품이다. 변산반도와 서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낙조대 일몰도 빼놓을 수 없는 장관. 붉은 기운이 추운 겨울 바다를 녹여버릴 듯하다. 내변산 자락의 월명암 뒤편으로 오른다. 상록해수욕장 앞 솔섬도 여행자의 눈길을 붙잡는 곳이다. 몸을 외로 꼰 솔섬의 소나무들과 먼바다로 가라앉는 해가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만든다. 부안군청 문화관광과 (063)580-4208. ▲고창 호사가들은 전북의 명찰 선운사 낙조대의 일몰을 ‘장엄한 붉은 융단´이라 표현하곤 한다.‘선운사 골짜기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지만, 동백꽃보다 붉은 꽃이 바다속으로 떨어지는 장엄한 광경이 아쉬움을 녹이고도 남을 듯하다. 황금빛 햇살이 아쉬움으로 속살거리며 붉게 물드는 구시포해수욕장과 수백년된 노송과 어우러진 동호해수욕장의 일몰도 숨막히게 아름답다. ▲기타 전남 진도군 세방리는 ‘세방낙조´로 불리며 오래전부터 이름을 떨치던 곳. 다도해 섬들이 점점이 이어지는 바다를 배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넘이가 한 폭의 그림이다. 나리-전두-인지-세방리-운림산방-고군회동까지 이어지는 1시간30분짜리 드라이브코스 곳곳에서 낙조를 볼 수 있다. 해남군 땅끝마을, 순천만 등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 충남권에서는 서천군 서면 마량리와 서산시 부석면 간월암, 꽃지해수욕장 등을 품고 있는 안면도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해돋이와 해넘이 동시에 ▲왜목마을(충남 당진) 서해의 대표적 일출과 일몰 감상지다. 지형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일출과 일몰, 월출까지도 볼 수 있다. 석문산 정상에 오르면 장고항 용무치와 화성시 국화도 사이에서 아침해가 떠오른다. 묵은 해는 당진군 석문면 대난지도와 소난지도 사이로 사라진다. ▲마량포구(충남 서천) 천연기념물 마량동백나무숲이 유명한 곳. 낙화하는 동백꽃을 보듯,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붉은 해가 일품이다. ▲해제반도 도리포(전남 무안) 고려말 청자를 빚던 도공들의 혼과 더불어 은빛 숭어가 노니는 도리포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해넘이와 해돋이 장소. 동쪽에 넓은 함평만을 끼고 있어 해돋이와 해넘이를 함께 볼 수 있다. ▲금산 보리암(경남 남해) 활짝 갠 날씨보다는 연무와 구름이 살짝 드리워진 하늘에 황금빛 태양이 물드는 모습이 아름답다. 금산 정상 부근의 보리암에서 바라보는 일출광경은 해와 바다 그리고 기암괴석이 한데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kao.re.kr)에 가고자 하는 지역의 일출 일몰 시간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글 사진 양평·부안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김석의 갯바위 통신] 전남 여수 금오열도 전갱이 낚시

    요즘 갯바위를 나가 보면 여간 쌀쌀하지 않다. 햇살은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데 명색이 초겨울이라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체감온도는 뚝뚝 떨어져 한기를 느낄 정도다. 우습게도 요즘 남해안 여수권 금오열도 갯바위에서는 이런 추위 속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낚시를 하는 낚시인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요즘 한창 시즌인 감성돔 낚시를 하던 도중, 정작 돔낚시는 뒷전이고 갯바위에 떼지어 몰려 있는 전갱이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씨알도 흔히 알고 있는 한뼘 정도 크기의 잔챙이 전갱이가 아니다. 큰놈은 30㎝가 넘어설 정도. 큰 씨알의 전갱이들이 감성돔용 밑밥에 현혹돼 갯바위로 모여들기 때문에 낚시인들의 손들이 바빠진 것이다. 사실 잡어로 취급 받는 한뼘 크기의 전갱이들은 낚아서 집으로 가져가 봐야 나중에 손질 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하지만 굵은 씨알의 전갱이들은 같은 크기의 감성돔과도 바꾸지 않을 정도로 고급 어종에 속한다.30㎝가 넘어서는 전갱이들은 음식값 비싸다는 일식집에서도 단골 아니면 얼굴(?)보기 어려울 만큼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을 보면 그 맛이나 희소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요즘 여수권 금오도, 안도 일대에서 이런 굵은 씨알의 전갱이들이 갯바위 근처를 떼지어 몰려 다니다 낚시인들이 던져주는 밑밥만 보면 그 주위를 떠나지 않고 편하게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큰 전갱이들을 한두 시간만 집중적으로 땀흘리며 낚다 보면 20∼30ℓ 크기의 아이스박스가 모자랄 정도로 빈틈없이 채워진다. 이러니 한두 마리의 감성돔 조과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지금 여수권 갯바위 곳곳에서 돔낚시는 뒤로하고 전갱이 마릿수 낚시를 하는 이유다. 전갱이들이 갑자기 갯바위에서 물러나면 감성돔 낚시를 병행하기도 하니, 요즘 남해안 바다낚시터는 이래저래 즐거움의 연속이다. 채비는 별다를 게 없다. 감성돔낚시 채비 그대로 갯바위로 가면 된다. 전갱이들이 갯바위에 붙으면 감성돔 찌낚시 채비를 그대로 물고 늘어진다. 이때 채비에 사용하는 목줄만 절반 정도로 줄여서 낚시를 하면 된다. 미끼를 물고 늘어지는 전갱이들의 동작이 워낙 빠르기 때문에 목줄을 길게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신찌는 0∼2B사이 약간의 무게(10∼15g 내외)가 있는 것을 사용한다. 목줄은 1.5호 정도. 바늘은 감성돔 4호 정도가 무난하다. 바늘이 작으면 챔질 후 쉽게 벗겨질 수 있으므로 큰 것이 유리하다. 목줄은 2∼3m 정도. 바늘 30㎝위에 소형 좁쌀봉돌 하나 물리면 입질받기에 더 유리하다. 소형 좁쌀봉돌이 밑밥 속에서 수면으로 떨어지는 크릴보다 더 빨리 미끼를 가라앉히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는 미끼에 먼저 반응하는 전갱이들의 입질을 더 빨리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씨알의 고등어들도 간간이 함께 올라오기 때문에 목장갑이나 허름한 수건을 지참해야 낚인 전갱이를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다. 전갱이용 밑밥이나 미끼도 주로 크릴을 사용하기 때문에 감성돔 낚시의 준비물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가족과 함께 갯바위 낚시를 즐기려면 6.3∼7.2m 정도의 막장대를 사람 숫자대로 준비해 가면 된다. 여수포인트 24 출조점 011-9624-0049.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9)경남 하동군 화개면 화랑수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9)경남 하동군 화개면 화랑수마을

    화랑수(花浪水)란 이름은 범왕리 연동마을의 연꽃에서 유래한다. 연동의 연꽃들이 채 피기도 전에 늦장마라도 지면, 연꽃들이 굽이굽이 흘러 화랑수 앞 계곡에서 원을 그리며 꽃이랑을 이루었는데, 그 광경이 아름다워 ‘화랑수’라 했다는 것이다. 화랑수마을의 구름다리는 1970년대 새마을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됐다. 지금은 시멘트로 견고하게 만든 아치형 다리가 그 임무를 대신하지만 2002년 이전까지만 해도 아슬아슬 흔들다리가 화랑수와 도로변 마을을 연결하던 유일한 소통의 끈이었다. 화랑수 10여가구 중 몇몇 집들은 아직도 마루 밑에 장작을 쌓아두고 추위가 가실 때까지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가끔씩 고구마도 구워 먹고, 숯불 앞에 앉아 책도 읽고, 떠난 애인의 흔적을 태우기도 하며…. 뽀글뽀글 물이 끓으면 묵직한 가마솥 뚜껑을 열고 물을 퍼낸다. 세숫물로 쓰일 귀한 온수다. 시골에선 소리에 민감하다. 소리가 다양하고 명확하다. 화랑수의 바람 속엔 많은 소리들이 담겨 있다. 뜨문뜨문 처마 끝 풍경 소리, 보글보글 찻물 끓는 소리, 파란하늘 구름 흐르는 소리, 어두운 밤 별빛 떠나는 소리, 바람에 부닥치는 나뭇잎 소리, 간지러운 계곡물 소리, 삐그덕 낡은 문짝 우는 소리, 바람이 벅벅 창호지 긁는 소리, 집배원 아저씨의 오토바이 소리, 뒷집에서 낑낑대는 강아지 소리…. 지리산 어귀에선 뻐꾹뻐꾹 뻐꾸기,‘홀딱벗고’를 외쳐대는 검은등뻐꾸기, 휘휘~ 등골 오싹한 한밤중 검은지빠귀, 소쩍소쩍 구슬픈 소쩍새, 낮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산새소리로 잠잠할 겨를이 없다. 화개 대다수 집들이 그러하겠지만 화랑수의 봄은 여느 동네보다 바쁘다. 찻잎을 따는 일손이 부족해 도시 대처로 나가 있던 자녀들이 회귀하는 연어처럼 고향으로 돌아온다. 망태에 넣어온 찻잎에선 싱그러움이 묻어나고, 가마솥에 찻잎을 덖는 고소한 냄새가 담장을 넘나든다. 화개에선 소위 녹차가 흔하다. 티백은 최하품이라고 아예 쳐주지도 않는다. 집집마다 커피 내놓듯 이곳에선 차, 그것도 우전이니 세작이니, 도시에선 고가에 팔리는 잎차들을 일상처럼 마시며 생활한다. 허리가 휘도록 고단한 봄, 손톱 끝에 시커먼 찻물이 배고, 하루에도 수십 잔씩 차를 넘기며 맛보느라 쓰린 속, 그래도 차가 상품이 되어 판매될 땐 출가시키는 자식 보듯 흐뭇하게 떠나보내는 인자한 눈매들이다. 여름의 화랑수는 봄만큼 활기차다. 매실을 수확하고, 매실로 담근 술이나 원액을 담장 밑 장독 안에 소중히 모셔둔다. 섬진강 건너 광양에 이름값을 넘겨주긴 했지만 섬진강 매실의 원조는 하동! 화랑수도 예외는 아니어서 철 지난 차밭마다 초록의 단단한 매실이 주렁주렁 초여름 햇살에 반짝인다. 매실 수확이 끝나고, 장마마저 물러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화랑수 구름다리 밑은 도시에서 몰려든 피서 인파로 가득하다. 가슴까지 철렁대는 깊은 곳에서도 발가락 끝이 보이는 깨끗한 물. 자갈밭 위에 울퉁불퉁 텐트를 치고, 다리 밑 평상에 눕기도 하며, 도로는 주차장이 되고, 마을마다 민박집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분주한 곳. 여름 한철을 위해 집집마다 민박을 하지만 주인과 손님으로 매정히 그어진 경계선은 없다. 손님을 맞는 옛집들에선 정겨움이 넘쳐난다. 그에 비해 가을과 겨울은 조금 한적하다. 간간이 감이며 밤을 수확하는 집들과 통장 잔고처럼 장작을 쌓아 올린 집들만 늘어나는 계절. 시간은 소리 없이 흐르고, 다시 봄이 오면 마을은 기지개를 켜듯 새로운 1년을 준비할 것이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화개행 버스를 탄다. 구례를 거쳐 하동까지 가는 버스로 화개는 그 중간지점이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나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이용해 화개로 간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로 바로 진입한다. 화랑수는 화개에서 쌍계사 방향으로 약 7㎞ 떨어져 있다.
  • [대선후보 동행 25시] (5) 세상 바꾸려는 권영길

    [대선후보 동행 25시] (5) 세상 바꾸려는 권영길

    “비 오는 날, 흐린 날도 햇살처럼 웃기 위해 기호3번 권영길 세상을 바꾸자….” 회식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노래 ‘곤드레만드레’가 울려퍼지는 서울 명동거리. 지난 1일, 유난히 칼바람이 몰아치는 명동 유세현장에 선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목소리가 상기됐다. 대선가도에 뛰어든 지 세번째다. 이제 담담할 법도 한데 떨리는 마음은 여전하다고 한다. 도대체가 바뀐 것 하나 없는 세상 때문이란다. 권 후보는 “서민들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비정규직, 삼성 비자금 문제로 고통받는데 그 고통을 안겨준 부정부패 후보들이 선거전에 나설 자격이나 있느냐.”며 손을 치켜올린다. ●“서민지갑에 211만원 채워주겠다” 서민 지갑에 211만원을 채워주겠다는 다짐이 이어진다. 온 사회를 뒤흔들었던 대형 의제들과 싸우느라 정작 서민경제의 지킴이를 자처해 온 권 후보의 정책을 알리는 데 소홀했다는 자성이기도 하다. 매달 100만원씩 서민 가정의 소득을 올리고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등 사회복지를 통해 서민 지갑에서 111만원씩 절약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서민 경제의 친구, 권 후보의 첫번째 약속이다. ●성소수자 위한 ‘동반자 등록법´ 공약 성 소수자들과의 만남이 예정된 장소로 옮길 때 기자는 대선 삼수생의 소회를 물었다. 권 후보는 “많이 좋아졌다.”고 답했다. 무슨 소릴까,3%대 안팎의 지지율을 받는 후보가. 전국을 다니면서 절대적 지지층이 열성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고 한다. 권 후보는 “지난 2002년 배타적 지지를 결심하는 데 그쳤던 민주노총이 이번에는 아예 상황실을 만들어 권영길 승리를 지원하고 있다.”며 뿌듯해했다. 이른바 ‘8010’(80만 조합원이 10명씩 조직하기)운동이라고 소개한다. 전농과 전빈련도 2002년에는 배타적 지지조차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조직별로 지지를 결의하는 등 기층이 모여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낮은 지지율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분당(分黨)’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골 깊어진 내홍은 또 무엇이라 변명할 것인가. 권 후보는 “언론이 지지율의 신화에만 빠져서 그렇지.”라며 오히려 여유를 보인다. 동성 커플과 비혼 이성 동거인, 장애인 여성…. 흔히 성 소수자로 일컬어지는 이들이다. 권 후보는 이번에 ‘동반자 등록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독일의 파트너 등록법이나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법(PACS)처럼 동성이나 이성 동거커플에게 동반자 관계를 인정하는 법안이다.‘배우자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할 수도 없고, 조세혜택은 물론 재산상속도 받을 수 없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권 후보는 딸 이야기를 꺼냈다. 노동운동 지도자로 수배받던 시절, 자신은 명동성당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어 결혼식에도 못 가본 첫딸 이야기였다. 권 후보는 딸이 동성동본의 상대와 결혼하자 집안에서 의절을 하겠다던 아픈 기억을 털어놨다. 권 후보는 “정서적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안다. 민노당이 이분들을 껴안고 가지 못한다면 진보 정당이라는 이름을 떼야 한다.”며 어렵지만 끝까지 가겠다는 다짐을 한다. 차별과 금기를 깨는 사회, 권 후보의 두번째 약속이다. 젊은이들과의 대화를 위해 마지막 유세장소인 서울 을지로 한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권 후보는 잠겨버린 목소리 탓인지 연방 따뜻한 물을 찾았다. 행사장은 권 후보를 위한 춤과 노래로 가득찼다. 이내 힘을 낸 권 후보는 취업난과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묻는 젊은이들에게 “권영길이 대통령 돼야만 해결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전통으로의 초대’ 전주 한옥마을

    ‘전통으로의 초대’ 전주 한옥마을

    화창하게 갠 날 만경창파 푸른 물에 배 띄워 떠나가는 형국의 지세를 가졌다는 고을 전북 전주. 조선을 세운 임금의 관향(貫鄕)이기도 하다. 전주 한복판에 한옥마을(hanok.jeonju.go.kr)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시계추가 멈춰선 듯한 곳.1977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면서 급격한 현대화의 바람은 용케 피했지만, 그 때문에 도심 속 변두리로 전락하기도 했다. 주민들의 ‘민원 공장´이었던 곳이 이젠 근대 생활양식이 녹아 있는 도심 속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곳곳에 아직도 가을의 향기가 남아 있는 한옥마을을 다녀왔다. # 일본인 세력확장에 대한 반발로 형성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을 들머리 삼아 마을구경에 나섰다. 고색창연한 건물 주변에 흩뿌려진 낙엽들에서 떠나기 아쉬워하는 가을의 향기가 전해온다. 한옥마을은 1930년을 전후로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반발한 인사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면서 시작됐다. 이 지역 한옥군은 주변 일본 가옥들과 대조를 이루는 한편, 화산동 선교사촌 등 서구식 건물들과 어우러지며 기묘한 도시 풍경을 연출하게 됐다. 조선희 관광해설사는 “전통 암수기와가 얹혀진 지붕 아래 구들과 마루가 있고, 댓돌과 섬돌 등으로 터를 잡은 이곳 한옥들은 우리나라 근대 전통 주거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며 “도심 속에 녹아 있는 근대 생활문화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는 것이 다른 전통마을과 다른 변별적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옥 약 660채 사이사이에 120여채의 비한옥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지붕 한 번 고치는 데 양옥의 2∼3배가량 비용이 드는 등 한옥을 고수하는 데 고충이 따르는 것은 알지만, 한편으로 많은 아쉬움도 남는다. 대를 이어 300년 동안 살아온 집을 헐고 번듯한 2층 양옥에 ‘삼백년가 슈퍼´를 낸 모습을 보자니 한숨이 절로 난다. 한옥마을 뒤편 오목대는 태조 이성계가 새 나라의 꿈을 키운 곳이라 전해진다. 이성계가 전주 시내를 굽어보며 읊은 대풍가를 들은 정몽주가 그와 길을 달리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장소이기도 하다. 해설사 조씨에 따르면 전주의 요지였던 만큼 근대에 이르러 신사나 성당 등을 짓겠다는 시도가 적지 않았다. 그때마다 이를 물리친 것이 당시 관찰사였던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이었다고 한다. # 속속들이 살아 있는 한옥의 숨결 한옥마을의 장점 중 하나가 전통고택 체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것. 많은 한옥 중 가장 독특한 건물은 학인당(學忍堂)이다. 이름 뒤에 전(展)자나 당(堂) 자 등을 붙여 건물의 역할과 신분을 표시했던 전통에 비춰볼 때 왕이나 왕족의 공식활동 공간으로도 생각되지만, 사실 궁중 건축양식을 도입한 상류층 저택이다. 뛰어난 효자로 알려져 있는 인제(忍齊) 백낙중이 조선 말기에 지은 근대 한옥. 당시엔 99칸짜리 저택이었으나, 현재는 본채와 솟을대문 등 7동만 남아 있다. 해설사 조씨는 “호박 주춧돌과 유려한 서까래의 곡선 등에서 전통 궁궐양식이 살아 있음을 보게 되죠. 건물 전체가 복도로 연결된 것은 일본 건축양식, 화장실과 욕조 등이 건물 내 한 공간에 배치된 것은 서양식 건축기법을 차용한 것으로 생각됩니다.”라고 설명했다. 정문인 솟을대문은 잠겨진 채 옆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다소 안타깝다. 고택체험용으로 사용되는 방 문의 쇠문고리를 잡아 당기자 한지 특유의 향기가 오롯이 전해 왔다. 격자무늬 한지를 뚫고 들어온 햇살이 가득찬 툇마루를 삐걱대며 걷는 맛이 각별하다. 한 골목 건너 양사재(養士齋)는 이름 그대로 향교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의 기숙사로 이용된 곳이다. 당연히 방의 크기가 학인당 등에 비해 작다. 실내는 정갈하게 보전된 편. 아직도 아궁이에 불을 때 구들장을 덥히는 전통 난방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방금 전 유생이 앉았던 듯, 흑갈색으로 그을린 구들장에 온기가 남아 있다. 이 밖에 조선의 마지막 황손 이석씨가 거주하는 승광재와 풍남헌 등에서 전통고택체험을 할 수 있다. 최소 인원은 10인 이상.www.hanokmaeul.com이나 전화 063)287-6292 등을 통해 자세한 숙박정보를 얻을 수 있다. # 맛집, 찻집 등 즐비 식재전주(食在全州)라고 했다. 먹거리를 빼고 전주를 말하랴. 수량이 적어 ‘말라깽이 팔십 할머니 젖가슴만도 못한´ 전주천이지만, 팔십 할머니 품에 안긴 한옥마을 주변의 맛집만큼은 더없이 풍성하다. 감칠맛 나는 오모가리탕 집들이 늘어선 가리내길을 시작으로 서민들의 애환이 스민 자장면집 등 ‘골목길의 맛´ 가득한 향교로, 한정식 전문식당들이 많은 은행나무길 등이 씨줄날줄로 엮여 있다. 한옥마을은 현재 공사중이다. 전주시는 20억원을 들여 전통 솟대를 세우는 등 한옥마을 일대 8곳에 쌈지 공원을 만들기로 했다. 물레방아 등을 주제로 테마공원도 조성된다. 전선을 땅 아래로 묻는 지중화 공사도 한창이다. 골목마다 땅을 파헤쳐 놓아 어수선하고 불편하지만, 흙을 밟아 볼 기회가 거의 없는 도시인에겐 그마저도 고맙다. 공사 후엔 땅 위에 다소 거친 돌을 깔아 옛정취를 살릴 계획이라고 공사관계자는 전했다. 내년쯤이면 한결 깔끔하게 단장된 한옥마을을 보게 될 것 같다. 글 사진 전주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전주 한옥마을 #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전주 나들목→전주시청, 한옥마을 방면 직진→한옥마을. # 인근 관광명소 옛 전라감영 소재지였던 전주의 상징 풍남문(보물 제308호)과 전라감영의 권위와 명예를 상징하는 객사(보물 제538호), 로마네스크 주조에 비잔틴풍이 가미된 전동성당 등이 한옥마을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경남 하동군 악양면 상신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경남 하동군 악양면 상신마을

    경남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는 면소재지가 있는 중심지이자 하동에서도 가장 연대가 오래된 마을로 손꼽힌다. 하동군 자료에 따르면 기원전 5000년쯤 이미 마을이 형성됐고 삼한시대인 변한 때는 악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낙노국의 심장이었다. 이후 1633년 상촌, 성지촌, 성후촌으로 불렸고,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정서, 상신, 주암, 성덕을 합해 정서리가 되었다. 지금은 상신(새터말)과 정서로 크게 나뉜다. 마을 북서쪽의 형제봉∼신선대 능선은 섬진강 조망이 뛰어난 산행 코스로 특히 철쭉이 만개한 5월에 등산객이 집중적으로 몰리는데, 이 길은 19번 국도에서 시작해 해발 1116m의 형제봉을 지나 지리산 주능선 영신봉(세석대피소)으로 이어진다. 19번 국도에서 지리산 쪽으로 열린 2차선 아스팔트 도로변 한쪽에 ‘조씨 고가’라고 적힌 안내판이 있다. 조씨 고가는 1876년 개항으로 신문물이 쏟아져 들어올 때 조재희라는 사람이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부를 얻어 지은 집으로 완공까지 무려 17년이란 세월이 소요됐다고 한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사흘간 불에 탔으며 그 뒤 다시 지었다. 흔히 ‘조부잣집’으로 더 유명한 이 집의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들어서면 정서리 상신마을에 닿는다. 마을의 가장 끝 집, 그래서 지리산과 더 가깝게 살을 부빈 곳에 이제 막 귀농하여 터를 잡은 젊은 부부가 산다. 개띠 동갑내기 서교철·김형예 부부는 2003년 늦은 나이에 결혼, 이듬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지리산으로 내려왔다. 신출내기 부부의 산중 생활이 출발부터 쉬운 건 아니었다. 처음엔 아랫동네에서 다른 이의 집을 얻어 살았다. 금방이라도 천장이 내려앉을 듯한 낡은 집이었는데, 몇 번의 누전 사고 끝에 결국 화재로 모든 게 불타버렸다. 김형예씨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철렁하다. “다행히 젊은 부부가 열심히 산다고 주위 분들이 기특해 하셨어요. 집 뒤의 둥근 산을 이곳에선 꽃뫼산(화봉산)이라고 부르는데, 저를 꽃뫼새댁이라고 부르며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서씨 내외가 지금의 터에 집을 짓고 민박(작은영토,055-882-6263) 간판을 내건 건 1년이 조금 넘었다. 민박 외에도 솜씨 좋은 아내 김씨가 차와 효소를 만들고, 남편은 매실, 감, 밤 등 과실 농사에 주력한다. “차밭은 산 귀퉁이에 있어요. 비료도 퇴비도 없이 그저 풀과 같이 크는 차나뭅니다. 쑥차용 쑥도 농약 오염 때문에 논이나 밭두렁에선 절대 캐지 않습니다. 감잎차도 산속 똘감잎의 새순만 골라요. 먹는 사람이야 그런 정성을 알아줄 리 없지만 몸이 아픈 사람에겐 재료 선택 하나하나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이런 차라면 가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가격은 늘 김형예씨 마음 내키는 대로다. 투병 중인 사람이 오면 헐값에 주기도 하고, 여유가 되는 사람들이 오면 정당한 대가를 받고 팔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셈하는 것조차 잊었다는 그다. “황토집을 짓는 동안 3번이나 119에 실려갔어요. 기본 토대만 목수가 만들었지, 실질적인 집 짓기 작업은 저희 부부가 1년간 했거든요. 힘들이지 않고 얻는 게 어디 있나요? 지금은 코펠에 라면만 끓여도 호사라고 생각합니다.” ‘작은영토’의 좁은 채마밭 안으로 지리산 능선을 타고 온 초겨울 햇살이 그득히 쏟아지고 있었다. 주섬주섬 농기구를 손보는 서씨의 어깨 한쪽엔 푸른 꽃이 활짝 피었다.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이 부부의 지리산 희망꽃이다. # 교통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화개행 버스를 탄 후 화개에서 다시 악양행으로 바꿔 탄다. 경상권에서 올 경우엔 하동에서 하차해 악양으로 이동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진주에서 남해고속도로로 들어서 하동IC로 진입한다. 호남고속도로 전주IC나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이용해 악양으로 갈 수도 있다. 글·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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