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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보기 더 편해진 영등포 시장

    서울 영등포구는 영등포 로터리 일대 6개 전통시장의 현대화사업을 마무리 짓고 상권 활성화에 나섰다. 4일 구에 따르면 노후화된 전통시장 시설을 개선하고 현대화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사업비 7억 1200만원을 투입해 공사를 진행해 왔다. 1970년대부터 조성된 삼구·로터리·남서울·제일·동남·영신상가 등 6개 시장은 노후화된 하수관과 도로, 비가림 시설 등 환경이 열악해 시설 개선을 요구하는 상인과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따라 구는 6개 시장을 잇는 318m 구간에 대해 비와 햇빛을 막을 수 있는 가림 시설 2200㎡를 설치했고, 도로 포장 공사도 진행했다. 또 노후된 하수관 174m에 대한 개량 공사도 마쳤다. 이 밖에 6개 시장과 인접해 있는 영등포 전통시장 입구의 메인 간판을 교체하고 주변 시설을 정비해 주민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쇼핑할 수 있도록 했다. 조길형 구청장은 “앞으로도 시설 현대화 사업을 비롯해 시장의 자생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전통시장 홍보관 운영, 상인대학 개설 등 경영 현대화 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위축된 시장 상권을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열린세상] 국가, 시장, 시민사회 그리고 나/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한국NGO학회장

    [열린세상] 국가, 시장, 시민사회 그리고 나/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한국NGO학회장

    국가가 모든 것을 다해줄 것 같은 신화가 깨진 것이 20년이 넘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국가 만능주의 사회의 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달빛을 받고 있던 국가주의 신화는 현실의 햇빛 아래 빛이 바랬다. 국가가 물러난 자리에 시장이 들어섰다. 1989년에서 2008년까지 20여년 동안 작은 국가와 탈규제의 논리가 지배했고, 국가는 비효율적이고 시장은 효율적이라는 이분법이 지배했다. 이 이분법 구조 속에서 ‘공기업 민영화’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한 정책으로 채택되었고, 국가의 규제는 질주하는 자동차를 가로막는 방해물로 여겨졌다. 규제 없는 질주의 결과는 2008년 금융위기로 그 파국의 일단을 드러내었다. 부분들의 최선의 이익 추구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될 것이라는 믿음과는 달리 규제 없는 부분들의 이익 추구는 그 책임과 부담의 정도가 눈덩이처럼 커져서 개별적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말았다. 국가 관료제의 규제도 아니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탈규제도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시행착오 끝에 확인할 수 있었다. 국가도 아니고 시장도 아닌 그 자리에 ‘사회, 시민사회’가 등장했다. 사회적 규제라는 용어도 만들어지고 심지어 사회적 자본, 사회적 기업이라는 말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 시대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미 제도권 용어다. 시민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예산안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도 특별한 자치단체만의 일이 아닌 것이 되었다. 한국사회에서 시민사회는 문제해결의 ‘미다스의 손’이었다. 정당이 문제가 되면 시민 참여로 문제해결의 가닥을 잡고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다루는 문제도 시민 참여 법정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방송 프로그램에도 보통사람이 참여하고 발언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시민이 직접 기자가 되는 언론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시민단체가 제안하는 입법안이 정부나 입법기관의 입법안을 앞서 나간다. 이미 우리사회에 깊이 들어온 시민사회라는 ‘해결사’에 대해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나의 정체성은 하나가 아니다. 국민으로서의 나, 생산자·소비자로서의 나, 시민으로서의 내가 있다. 국민으로서의 삶의 기준은 법이 정한다. 시장에서의 나는 이윤과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시민으로서의 나를 움직이는 동력은 무엇일까? 공공성이다. 칸트의 말에 따르면 이성의 공적 사용이 곧 공공성이다. 공공성은 헤게모니와 당파성 너머에 있다. 공공성은 당파성과 이해관계의 공리 저 너머에 있다고 했지만 공공성의 허울 아래 당파성을 추구하는 사례는 너무도 많다. 지난날 조선 시대 선비들이 인과 의라는 공공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내막으로는 당파성을 추구하는 이중성을 넘어서지 못하는 바람에 끝내 나라가 식민지로 몰락하는 비극까지 초래하였다. 당파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인간을 진정으로 인간답게 하는 인간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귀와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때로는 군왕의 권위에도 도전해야 하고, 나와 고락을 같이해 온 친구들과 이웃들의 부탁도 거절하면서, 나아가 전통과 관습, 내게 유혹의 손길을 내미는 이익의 달콤함도 거부할 줄 아는 진짜 용기가 필요하다. 프로메테우스와 시시포스의 신화도 여기서 탄생했을 것이다. 그들이 제우스에 도전하는 것 역시 추위와 어두움, 목마름에 고통 받는 인간에게 불과 물을 주고자 해서이지 불과 물을 독과점적으로 소유하여 돈 왕이 되거나 영웅이 되고자 해서가 아니었을 것이고,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시민단체의 일꾼들은 누가 선출한 것도 아니고, 자격시험을 거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여러 사람들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 이유는 그들이 공공성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공성을 잃는 순간 시민사회 일꾼들의 대표성은 더 이상 인정받지 못 할 것이고, 그들의 영향력 또한 잃게 될 것이다. 비정부기구(NGO)는 무엇이며, 시민사회는 무엇이고, 무엇이 수많은 이 땅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생업에 지장을 받으면서까지 시민운동에 참여케 하고 있는지를 새삼 생각해 본다.
  • 거대 문어 잡아먹는 ‘파이터 물개’ 포착

    이번에는 문어다. 최근 상어를 잡아먹는 물개를 공개해 화제가 된 사진작가 필 데이비슨(37)이 이번에는 물개가 문어를 ‘요리’하는 사진을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호주 멜버른 모닝턴 반도의 해상에서 촬영된 이 사진은 오스트레일리아 물개 암놈 한마리가 거대한 크기의 문어를 ‘사냥’하는 모습을 담고있다. 사진 속 물개의 저녁 식사가 된 문어는 ‘마오리 문어’(Maori octopus)로 다리를 쫙 펼치면 3m에 육박해 현지 주민들은 전설의 괴물인 ‘크라켄’(Kraken)이라고도 부른다. 데이비슨은 “다이빙 중 우연히 이같은 장면을 목격했다.” 면서 “도망치려는 문어와 다리 하나를 물고 수면 위로 끌어 당기는 물개의 사투가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데이비슨에 따르면 이날 물개는 문어의 다리 하나를 맛있게 뜯어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슨은 “햇빛도 잘 들어오고 문어가 먹물을 쏘지 않아 생생한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다.” 면서 “이같은 장면을 목격한 행운과 카메라 배터리가 다 된 저주가 교차했다.”며 웃었다. 한편 오스트렐리아 물개는 몸길이가 최대 3m, 무게는 315kg 달하며 평소 작은 물고기나 오징어, 게 등을 잡아먹고 산다.       인터넷뉴스팀 
  • 미란다 커 “기뻐 뛰어요!”…비키니 몸매 공개

    미란다 커 “기뻐 뛰어요!”…비키니 몸매 공개

    “기뻐 뛰어요!” 세계적인 톱모델 미란다 커(29)가 완벽한 비키니 몸매를 드러냈다.  미란다 커는 27일 사진 공유 애플리케이션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날 방문한 멕시코 휴양지 칸쿤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미란다 커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 눈부신 백사장을 배경으로 검은색 끈 비키니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 아이의 엄마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라는 게 사람들의 평이다. 그는 신이 난 아이처럼 하늘로 폴짝 뛰어오르고 있다. 그는 사진과 함께 “기뻐 뛰어요!”(Jump for Joy!)라며 자신의 기분을 전하기도 했다 그다음 장면에서 그는 끈 비키니와 오버사이즈드(큰 치수의) 선글라스, 그리고 챙이 넓은 밀집모자로 멋을 냈다. 햇빛에 알맞게 그을린 탄탄한 몸매는 섹시하면서도 건강미까지 넘쳐 보였다 한편 미란다 커는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영화 ‘반지의 제왕’으로 잘 알려진 올랜도 블룸과의 사이에 아들 플린을 두고 있다. 사진=미란다 커 인스타그램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깔깔깔]

    ●생각났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자동차 여행 중에 한 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먹고 나왔다. 한참 달리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깜짝 놀란 듯 소리를 질렀다. “선글라스를 식당에 두고 왔어요.” 할아버지가 짜증을 내면서 할머니를 나무라고는 다시 휴게소로 돌아왔다. 할머니가 휴게소에 내리려 하자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할아버지가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멈! 들어가는 김에 내 모자도 얼른 좀 집어 와!” ●난센스 퀴즈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신과 의사 2명은? 띵해. 핑해. ▶햇빛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욕은? 일광욕.
  • 이누이트족 포크 팝 가수 니비 닐슨의 무대

    이누이트족 포크 팝 가수 니비 닐슨의 무대

    9일 밤 12시 35분 음악성 있는 진짜 음악인들이 라이브 공연을 선사하는 EBS ‘스페이스 공감’에는 두 팀이 등장한다. 첫 번째 팀은 ‘니비 닐슨과 디어 칠드런’(Nive Nielsen & The Deer Children)이다. 포크 팝 싱어송라이터 니비 닐슨은 그린란드 수도 누크 출신으로 이누이트족이다. 지난해 발표한 데뷔작 ‘니비 싱스’(Nive Sings)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널리 알린 닐슨은 밴드까지 꾸려 사랑과 순록에 대해 노래한다. 그린란드의 날씨는 혹독하게 춥지만 동시에 언제나 따뜻한 햇빛이 넘친다. 그래서 닐슨이 우쿨렐레와 함께 들려주는 노래에는 시린 눈보라도 있지만, 약간은 몽환적이고 따뜻한 감성이 묻어난다. 데뷔작 발표 이래 각종 음악 전문 매체에서 ‘이달의 밴드’, ‘이달의 아티스트’, ‘올해의 싱어송라이터’ 등으로 뽑히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가수로 떠올랐다. 이 인기를 바탕으로 생애 첫 콘서트가 그린란드 전역에 생중계되는 영광까지 안았다. 지금도 이런저런 음악 잡지에서 2013년이 기대되는 가수로 계속 뽑히고 있다. 눈길 걷는 것을 즐기며, 카우보이 부츠를 좋아하는 닐슨과 함께 그린란드의 시린 공기를 느껴보는 무대다. 두 번째 팀은 독일 출신 세계적 드러머 클라우스 헤슬러다. 대중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드러머 세계에서 헤슬러는 굉장히 지명도가 높다. 모던 재즈계에서 유명한 짐 체이핀의 수제자로, 한번의 스냅으로 여러 번의 타점을 잡아내는 몰러 테크닉에다 정확한 박자 못지않게 생기 넘치는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드러머로 이름이 높다. 때문에 드러머스 컬렉티브(Drummer’s Collective) 등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여러 클리닉 지도와 함께 드럼 교본을 출판하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는 교육자이기도 하다. 피아니스트 남경윤, 베이시스트 서영도, 기타리스트 박주원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1.바람의 시인, 시대를 말하다(상) 고은

    [명사가 걸어온 길] 1.바람의 시인, 시대를 말하다(상) 고은

    “프랑코가 곧 죽을 모양이다. 사르트르가 그자를 ‘라틴의 돼지’라고 부르고 그놈이 어서 죽기만 기다리노라고 말한 것이 통쾌하다. 거리의 사람들. 독재를 견디어내는 이 인내의 일상 체념과 방관의 일상이야말로 독재의 온상이다. 의병의 역사, 봉기의 역사가 있었으나 그것의 분출 자체가 타자 의존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저항보다 순응과 피동의 역사가 더 길다. 혁명, 영구혁명은 관념인가. 창조는 어떤 경우도 혁명적이지 않으면 창조가 아니다.” 1975년 11월 15일 고은(당시 42세)은 청소년기 이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써온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독재를 견디어내는 이 인내의 일상 체념과 방관의 일상이야말로 독재의 온상이다’는 대목에서는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1974년 11월 18일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로서 ‘문학인 101선언’을 주도했던 침묵을 깨야 한다는 결단이 느껴진다. ‘창조는 어떤 경우도 혁명적이지 않으면 창조가 아니다’에는 문학이 현실과 동떨어지면 안 된다는 철학이 강하게 배어 있다. 함박눈이 쏟아진 지난 연말 경기도 안성 자택에서 만난 고은은 책으로 벽을 쌓아 지은 고분 같은 서재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쪽 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서재는 어두운 듯하면서 환했다. 미닫이문을 터서 만든 10평 안팎의 장방형 서재는 시인에게 어머니 자궁 같은 안온함을 준다고 했다. 짙은 감색 셔츠에 같은 색 실크 머플러를 목에 두른 고은은 고요했다. 전설처럼 떠돌던 술에 전 낭만의 시인이나, 열정의 시인, 독재에 저항하는 시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팔순의 성찰하는 고은이 보였다. 어쩌면 이것이 본래의 고은일지도 모르겠다. 전쟁은 고흐를 열망한 내 소년기를 부쉈다 ‘한국의 고흐’가 되고 싶었던 17살 예술지상주의자였던 소년의 운명을 맨처음 뒤틀어 놓은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외삼촌 집에서 본 고흐의 화보집을 보며 꿈을 키우던 고은에게 한국전쟁은 감당할 수 없는 참극이었다. “좌익이 점령했을 때는 우익이 죽었고, 우익이 돌아오자 좌익이 죽었죠. 내 고향에서만도 이 죽음의 재앙이 세 번 되풀이됐다. 군인들이 와 시체를 파내서 옮기라고 했는데, 그 작업을 하고 나면 보름 동안 씻고 또 씻어도 시체 냄새가 몸에서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인간 하면 서로 죽이는 행위, 고향 하면 핏줄끼리도 이데올로기 때문에 싸우는 그런 것만 연상됐다. 죽음에 대해 아무 준비도 없던 10대 어린애가 그것을 만난 것이다. 소년 자체가 부서져버렸다.” 고아의 의식이 투철하다는 고은은 한국전쟁으로 조상과 끈이 끊겼다고 생각했다. 고향도 무섭고, 핏줄도 무서웠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피에 주려 있는가를 본 소년의 정신은 온전해지지 못했다. 정신착란으로 집을 뛰쳐나갔고, 자살도 여러 차례 시도했다. 전쟁통에 군산고를 중퇴했는데, 전쟁 중에 그는 모교인 군산북중학교 국어교사를 맡기도 했다. 하지만 견딜 수 없는 혐오들이 밀려오던 터에 1952년 출가를 했다. 1957년에 전등사 주지를 지냈고, 1958년 ‘불교신문’을 창간해 주필을 맡았던 그는 1962년 환속했다. 등단은 1958년, 26살 때다. 시인협회 조지훈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폐결핵’이 실렸다. 현대시인이 100명 정도에 불과하던 시절이라 그는 현대문학 2세대 정도되는데도 1세대로 평가받는다고 했다. 김동리, 오상순, 김수영 등과 어울리며 살았다. 유미주의자였던 그의 예술관과 삶의 방식을 전복시킨 것은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의 분신자살이었다. 잊어버린 과거가 된 전태일의 죽음이 술에 절어 나른했던 시인의 삶을 바꿔 놓았다. “지금은 서울 무교동에 현란한 고층건물들이 서 있는데, 당시에는 바라크였다. 낮은 건물뿐이었다. 통행금지 시절이었는데, 술을 마시고 돌아갈 수가 없으니 주모에게 사정하고 아첨해서 술집 탁자 같은 데서 자곤 했다. 그날도 아마 그런 날이었다. 먼동이 틀 무렵인데 신문 쪼가리들이 바람에 굴러다니더라. 묵은 신문이었는데, 사회면과 사설면에 ‘노동자 분신자살!’이라고 써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죽음이 워낙 육친화되어 있다 보니 죽음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떠지더라. 어, 이것 봐라! 일종의 죽음의 비교라고 할까. 그런데 이런 죽음이 있었던 것이다. 풀빵 10개로 점심을 때우고,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우이동 판잣집까지 버스비가 없어 한밤중까지 걸어가고, 그런 인간의 삶이 나오더라.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게 뭔가. 현실을 깨달았다. 거대한 착취와 비인간화, 허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다락방 지옥의 밀실 같은 곳에서 소녀들이 가혹한 노동을 하고, 폐결핵으로 피를 토하고.” 민주화 전위? 뒤늦게, 엉거주춤 서 있었다 현실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던 그를 두고 사람들이 ‘초개’라고 했는데, 그는 밀물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에 각성이 됐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1970년대 봉제공장의 노동현실을 설명하던 그는 다시 평온한 얼굴로 돌아와 “사람들은 내가 민주화 운동의 전위에 섰다고 하는데, 사실 뒤늦게 뒤꽁댕이를 따라다니면서 한 것이다. 뒤늦게 엉거주춤하게 거기에 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때 전태일의 죽음에 나만 충격받은 것이 아니다. 서울대 법대생들도 다 깨쳤다. 나중에 감옥에서 만난 조영래, 장기표, 걔네들도 다 깨쳤더라. 나는 지식인이랄 것도 없고 예술인이었는데 전태일의 죽음의 폭풍이 나까지 몰아세웠다. 그래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작가들도 뭔가 해야겠다. 그때 자기 몸을 던지는 행복이 생겼다.” 동료 작가들은 물론 선후배 작가들까지 뭉치도록 앞장서서 나갔다. ‘나를 빼고 몰래 하면 안 된다’는 작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설득하면 다소 보수적인 현대문학 1세대 선배들도 동참했단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회 대표간사가 된 배경이다. 당시 자유실천문인협회의 주장은 5가지였다. 구속자를 석방하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라, 자유민주주의 정신의 절차에 따른 새로운 헌법을 마련하라 등이었다. 당시 세종로에서 시위하고 그와 조해일, 윤흥길, 박태순 등 7명이 연행됐다. 고은의 본격적인 빵살이(감옥살이)는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부터 시작됐다. 1977년, 1979년이 자유실천문입협회 건이었다. 1980년에는 김대중내란음모죄에 연루됐다. 죽음이 목젖까지 찾아왔던 때다. 1988년 정부가 월북·납북작가 작품들을 해금하자, 고은은 더 나아가 한국작가회의와 함께 북한의 작가동맹 소속 작가들과 ‘남북작가회담’을 추진한다. 이것이 문제가 돼 1989년 다시 투옥됐다. 국가가 달아준 ’별’이 4개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될 때 그는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1987년)를 맡았다. 국가와의 갈등이 완화된 건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였다. 그의 나이 60세 때다. 1993년 처음으로 여권이 나왔다. 그전까지는 임시여권만 발급됐다. 시인 고은이 ‘세계의 시인 고은’이 된 시점도 그때부터다. 1970년부터 1993년까지 23년간 그는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의 각종 폐해를 해소하고,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거리의 시인’으로 살았다. 한국전쟁으로 상처받은 그는 이제 통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에게는 독특한 통일 이론이 있다. 다연방 통일제를 주장한다. 북한의 언어는 문화어(표준어)-평양중심의 언어로 통합된다. 남한은 표준어는 서울 종로에 사는 중산층의 언어다. 마포에서 쓰는 언어도 아니다. 그런데 표준이나 통합은 말살이다. 시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사투리, 지역어는 다 신성한데 다 말살되고 있다. 이것은 나쁜 단일화다. 그래서 나는 사투리와 지역어가 존중될 수 있도록 제주도, 경상도, 전라도, 함경도 등 20여개 연방으로 만들어서, 수상최고회의를 국가최고의사결정기구로 하는 남북한 통일된 국가를 꿈꾼다. 스위스, 말레이시아, 미합중국, 넓게 보면 중국도 다 연방 아니냐.” 그는 100년 안에 아시아에도 유럽연합(EU)과 같은 국가연합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구상이 한낱 백일몽에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올해로 80세인 고은의 삶은 파란만장하다는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태어나 식민지와 1945년 해방과 분단, 1948년 대한민국 건국, 1950년 한국전쟁, 1960년 4·19민주화혁명, 1961년 5·16군사쿠데타, 1979년 박정희 정권의 몰락, 1980년 서울의 봄과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10민주화운동, 1997년 외환위기와 극복까지. 롤러코스터보다 더 다이내믹한 인생이다. 침묵할 수 없던 시대, 그것은 선물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대는 조용할 수 없는 시대였지만, 남들보다 더 격렬하게 부딪치며 살아온 측면이 있다. 시대가 나에게 준 것도 있고, 내가 시대에 준 것도 있다. 이것이 맞물려서 심상치 않은, 비일상적인 삶의 연대기를 갖게 됐다”며 허허롭게 웃은 뒤 “사람들은 나를 ‘풍운아’라고도 부르지만, 돌아보면 시대가 나에게 준 선물과 같은 것이 많다”고 회고했다. 마지막으로 고은은 역사와 사회에 대한 고언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역사의 유산을 정리해본 적이 없다. 민족끼리 싸우는 삼국시대, 후삼국시대를 고스란히 복제하고 있다. 그런 바보 같은 땅이 어디 있나. 치유되지 않은 삶을 자손들에게 넘겨줘야 할 판이다. 피의 흔적을 닦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물론 당대의 정당성이 있겠지만, 이대로 가면 역사라고 할 수도 없다. 길들여져 있는 체제에 의해 쉽게 변경될 수 없는 관행, 제도가 있으니 현안을 다루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당대에 손가락질당하고, 역적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미래에 대한 불온한 꿈을 꾸고 확산해야 한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신화가 된 남자 만화로 만난다

    역사소설가 에드워드 베르는 “햇빛에 비추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비추면 신화가 된다”라고 말했다. 한 인간의 생애를 들여다볼 때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미처 인식하지 못한 많은 의미들이 내포돼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12년 전인 2001년 3월 21일, 인간 정주영은 너무나 많은 신화와 전설을 간직한 채, 또 대한민국 역사의 한 획을 긋고 사라졌다. 하여 딱히 어떤 인물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굳이 설명한다면 그가 남긴 어록 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나는 생명이 있는 한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 있고 건강한 한 나한테 시련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다. 낙관하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장애란 뛰어넘으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엎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 나가면 된다.” 소 한 마리 판 돈으로 굴지의 대기업 현대그룹을 일으킨 고(故) 정주영 회장이 남긴 말들에는 그의 철학과 기업가 정신이 오롯이 배어 있다. 때로는 소탈하면서도 때로는 강인한 신념을 엿보게 한다. 한국경제의 거목으로 우뚝 서기까지 그는 “나는 확고한 신념과 불굴의 노력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전에 입버릇처럼 말했다. 신간 ‘만화 정주영’(백무현 글·그림, 서울신문사 펴냄)은 정주영 회장의 철학과 일대기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정주영 회장과 관련된 책은 여러 권 출간된 적이 있으나 이례적으로 만평 작가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린 만화라 눈길을 끈다. 두 권짜리 ‘만화 정주영’은 제1권 ‘담대한 도전자’ 편에서 고향인 강원도 통천의 어린 시절을 시작으로 ‘신용으로 넘겨받은 쌀집’ ‘현대의 태동과 한국전쟁’ ‘박정희와 5·16’ ‘경부고속도로와 조선대국의 신화’ 등 인간적인 면모와 불굴의 의지,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 등을 흥미진진하게 버무리고 있다. 제2권 ‘민족의 이름으로’ 편에서는 20세기 최대 공사로 일컬어지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공사 수주의 막전 막후를 시작으로 시련기라고 할 수 있는 ‘10·26과 5·17’ ‘삼성과의 광고전쟁’ ‘기업통폐합’ ‘정치보복’, 그리고 ‘올림픽 유치’와 ‘통일 대통령의 꿈’ 등을 많은 자료와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눈으로 정주영을 보고자 했고, 국민의 눈으로, 언론인의 눈으로 관찰하고자 했다. 따라서 정주영의 일대기에 기대기보다 박정희, 김대중 등 역대 대통령들의 통치 사료는 물론 등장하는 인물들의 방대한 저작물들을 두루 섭렵해야만 했다”고 집필 과정을 설명한다. 소 판 돈을 훔쳐 집을 나온 소년, 28개 대기업을 키우고 거느렸던 재벌 총수, 전경련 회장, 전 세계 37대 부호, 세계 제1의 조선소를 지은 인물, 소떼 방북 드라마의 주인공, 대규모 간척사업, 한국 경제사를 새로 썼던 역사의 인물 등이라는 많은 수식어와 함께 8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한 편의 영화를 보듯 파노라마처럼 흥미롭게 펼쳐진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2013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젤리피시/조수경

    [2013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젤리피시/조수경

    분홍빛 바다가 출렁인다. 수심이 가장 깊은 곳에 토막 난 엉덩이가 바짝 엎드려 있다. 둥근 엉덩이 사이로 크기와 모양이 서로 다른 페니스들이 서 있다. 페니스들은 물살이 지나갈 때마다 일제히 부드럽게 흔들린다. 한쪽에서는 실리콘 가슴이 유두를 꼿꼿하게 세운 채 먹잇감을 찾고 있다. 위험을 감지한 듯, 무지개빛깔 콘돔 무리가 빠르게 헤엄쳐 지나간다. 나는 눈을 감는다. 바다 깊은 곳까지 파고든 햇빛을 향해 고개를 든다. 눈꺼풀을 투과한 빛이 안구를 따스하게 감싼다. 빛은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 온몸에 뿌리내리고 있는 뼈마디를 녹인다. 몸이 점점 더 가벼워진다. 나는 분홍빛 바다를 부유한다. 나는 휠체어 바퀴를 탄력 있게 밀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휠체어를 미는 손에는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다. 방향을 틀 때마다 짧고 가느다란 두 다리가 하늘거렸다. 출입문이 열리며 사십대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의 얼굴 위로 분홍빛 조명이 물결처럼 흘러갔다. 나는 카운터 위에 달린 회전 조명등을 껐다. - 천천히 돌아보세요. 휠체어를 밀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는 나를 남자의 시선이 뒤쫓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의 시선이 진열대 쪽으로 튕겨 나갔다. 남자의 눈동자는 진열대에 놓인 성인 잡지와 DVD, 콘돔 상자와 딜도를 빠르게 훑으며 한 칸씩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줄리’ 앞에서 멈췄다. ‘줄리’는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었다. 그것은 유명한 포르노 여배우가 자신의 성기를 직접 본떠 만든 것이었다. 남자는 ‘줄리’의 우윳빛 허리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허리부터 허벅지까지, 토막 난 몸뚱이를 쓰다듬던 남자는 여배우의 그곳을 구석구석 살피며 촉감을 확인했다. 남자의 턱관절이 점점 느슨해지며 입이 벌어졌다. 모니터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앉아 있을 때도 남자는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삼 개월 할부로 몸값을 치르고, 남자는 토막 난 연인을 끌어안은 채 가게 밖으로 사라졌다. 비록 신체 일부분이긴 하지만 남자는 매일 밤 포르노 스타와 밀애를 즐기게 될 것이었다. 이곳에 있는 상품 중 완전한 것은 없었다. 모두 분절된 신체기구뿐이었다. 발기된 페니스를 본뜬 고가의 바이브레이터, 살짝 벌어진 여자의 성기, 둥글고 탐스러운 엉덩이, 가슴 사이에 질이 달린 기형적인 기구까지 온통 토막 난 몸뚱이뿐이었다. 토막 난 몸뚱이들은 나와 제법 어울렸다. 아이처럼 작은 몸에 달린 성숙한 여자의 젖가슴, 근육이 잘 발달된 짧은 팔,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붙어 있는 가늘고 휘어진 다리는 몸통을 중심으로 하나로 이어져 있으나 각각 떨어져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법했다. 내 몸뚱이는 버려진 재료를 모아다가 아무렇게나 조립해 만든 결과물 같기도 했다. 나는 가끔 가게 안에 분해된 채로 진열된 내 몸뚱이를 상상해 보곤 했다. 오후 두 시. 노인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노인의 손에는 쟁반이 들려 있었다. 나는 카운터 뒤쪽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노인은 방 안에 쟁반을 밀어 넣은 뒤 내 몸을 들어 올렸다. 가느다란 두 다리가 아무 의지도 없이 덜렁거렸다. 노인은 나를 방 안에 내려놓은 뒤 문지방에 걸터앉아 천천히 신발을 벗었다. - 오늘은 유난히 바빴어. 공영주차장 공사가 시작됐거든. 그쪽 인부들이 다 왔지 뭐야. 한동안 바쁘겠어. 노인은 안주인과 함께 1층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동네 이름을 따서 지은 평범한 상호에, 따로 메뉴도 없이 그날그날 안주인이 만든 국과 반찬을 내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일하는 공업사 사람들 대부분이 노인의 식당을 찾았다. 젊은 시절, 노인은 이 근방에서 기계 다루는 일을 했다. 안주인은 노인이 일하는 곳 근처에 세를 얻어 식당을 열었다. 공업사와 공구상가가 밀집된 지역이었다. 식당은 벌이가 꽤 괜찮았다. 노인은 일을 그만두고 식당에서 안주인을 거들거나 상가로 배달을 다니곤 했다. 세를 얻어 식당을 차린 노인 부부는 이제 식당이 딸린 3층짜리 건물의 주인이 되었다. 내가 노인의 건물 2층에 세를 얻어 산 것도 벌써 6년째 접어들었다. 노인은 내가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게끔 화장실을 개조해 주었다. 노인이 아니었다면 가게를 시작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었다. 끼니때가 되면 노인은 식당에서 밥과 반찬을 챙겨다 주었다. 때로는 나를 안고 식당에 내려가기도 했다. 한창 바쁘게 손님을 치르고 난 안주인까지 함께 둘러앉아 늦은 점심을 먹을 때면 ‘가족’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올랐다. 공업사 사람들은 노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밥알을 씹으며 노인 같은 사람이야말로 선행상을 받아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노인은 쑥스럽게 웃으며 “딸자식 같아서…”라고 겸손하게 말하곤 했다. -갈치조림이야. 손님상에 내려고 만든 건 아니고… 며느리가 보낸 걸 내가 몇 토막 졸여 달라고 했지. 방으로 들어온 노인이 쟁반을 덮고 있던 신문지를 걷어냈다. 매콤한 갈치조림 냄새가 침샘을 자극했다. 노인은 손으로 갈치 한 토막을 집어 들고 몸통 양 옆에 박혀 있는 가시를 빼냈다. -이렇게 가시를 미리 빼두면 먹기 좋지. 갈비처럼 손에 들고 뜯어 먹기도 좋고. 양념장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빨며 노인이 말했다. 나는 젓가락을 들고 갈치 살을 발라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갈치는 꽤 먹음직스러웠다. 발라낸 살을 입안에 넣자마자 연약한 살점이 부서졌다. 그제야 허기가 밀려왔다. 자작자작한 국물에 뜨거운 밥을 비벼 입에 넣고,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무를 베어 먹었다. 노인은 남은 갈치 토막을 집어 들고 가시를 제거한 뒤 살점을 발라내 밥 위에 얹어 주었다. 살점을 씹고, 국물을 삼키는 나를 보며 노인은 기름으로 번들번들해진 손가락을 자꾸만 빨았다.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는 밥그릇 가장자리에 들러붙은 밥알을 떼어 냈다. 손톱으로 접시에 말라붙어 있는 갈치 비늘을 긁어냈다. 손톱 사이로 은빛 비늘이 반짝였다. 나는 신문지로 빈 그릇을 덮었다. 노인은 쟁반을 방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나는 갈치 기름으로 얼룩진 신문지 귀퉁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손님이 올 거예요. -그래, 그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문지방에 걸터앉아 신발을 꿰신었다. -저녁 올려다 주마. 노인이 쟁반을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나는 방 한쪽에 쌓아 놓은 상자더미 쪽으로 기어갔다. 어제 들어온 상품 몇 개를 새로 진열해 놓을 생각이었다. 상자더미 옆에는 계단식으로 만든 나무받침대가 있었다. 노인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 나는 받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였다. 몸집이 큰 그는 사람들과 섞여 있어도 쉽게 눈에 띄었다. 식당에 내려가 밥을 먹을 때 그와 몇 번인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선한 눈을 갖고 있었다. 그는 마치 바다 속 포유류 같았다. 그가 맞은편에 위치한 자동차 공업사에서 일한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그리고 공업사 2층에 딸린, 내 방에서 마주 보이는 방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곧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받침대에 올라갈 때마다 창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작업을 마친 그는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툭툭 털어내고 동료들과 함께 공업사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맨 위에 올려져 있던 상자에서 ‘투 러버스’를 꺼냈다. 페니스 모형 두 개가 하나로 이어진 상품인데, 한쪽은 딱딱하고 다른 한쪽은 부드러운 질감을 하고 있는 기구였다. 이것은 마치 머리가 둘 달린 뱀처럼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튜브 걸’도 꺼냈다. 여체를 본뜬 비닐 튜브에 바람을 주입한 뒤, 성기 부분에 실리콘으로 제작한 질 모형을 끼워 넣고 사용하는 상품이었다. 모양이나 촉감은 ‘리얼 돌’에 못 미치지만 저렴한 가격이 ‘튜브 걸’의 장점이었다. 나는 두 개의 상품을 들고 가게로 나갔다. ‘투 러버스’를 딜도 옆에 나란히 진열해 놓은 뒤, 납작하게 눌린 ‘튜브 걸’의 몸에 숨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밋밋한 얼굴과 유두 없는 가슴이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흐느적거리던 비닐 다리에도 팽팽하게 공기가 차올랐다. 나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튜브 걸’의 다리를 벌리고 핑크빛 질을 끼워 넣은 뒤 무릎 위에 앉혔다. 공기처럼 가벼운 여인을 한 팔로 끌어안고 가게 중앙으로 휠체어를 밀었다. 나는 춤을 청하듯 정중하게 ‘튜브 걸’에게 손을 내밀었다. ‘튜브 걸’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동그란 원을 그리듯 휠체어를 밀었다. 멀어질 듯 밀착되고, 흐느끼듯 가라앉다 이내 경쾌하게 튀어 오르던 춤. 오래전 영화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흘러나왔던 연주곡을 흥얼거리며 나는 ‘튜브 걸’과 함께 가게 안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췄다.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춤추기를 멈췄다. -제법인데. P공업사 사장 최 씨였다. 최 씨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가게를 찾아왔다. 최 씨는 나에게서 ‘튜브 걸’을 빼앗아간 뒤, 춤을 추는 시늉을 했다. 나는 ‘튜브 걸’을 거칠게 낚아채 한쪽에 세워 두고 가게 문을 잠갔다. -이쪽으로 오세요. 최 씨가 나를 따라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알코올로 기구를 닦아 내는 동안 최 씨는 양말과 바지, 그리고 팬티를 차례로 벗었다. 나는 최 씨 쪽으로 기구를 밀었다. 무릎을 세운 채 다리를 한껏 벌리고 있는, 여자의 하반신을 본뜬 기구였다. 최 씨는 내가 건넨 윤활제를 자신의 성기에 발랐다. -거기 있어. 네가 보고 있으면 더 흥분이 되거든. 이곳에 찾아오는 남자들 대부분이 내게 자신들의 행위를 지켜봐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나에게 섹스를 요구한 사람은 없었다. 기구가 아닌 진짜 여자와의 섹스를 원했다면 그들은 다른 곳에 갔을 것이었다. 대신 그들은 내가 여자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했다. 나는 남자들이 기구 안에 사정을 할 때까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그들을 지켜보곤 했다. 때로는 기구에서 여자의 상반신이 자라나는 상상을 하거나, 기구처럼 남자들의 상반신이 사라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일을 마친 최 씨가 기구에서 몸을 빼냈다. 나는 전기주전자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커피 잔에 인스턴트커피를 쏟아부었다. 황갈색 커피 알갱이가 잔 위로 우박처럼 떨어졌다. 하얀 프림이 쏟아지며 커피 알갱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입자가 고운 프림은 카리브 해의 모래를 닮았다. 카리브 해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해파리가 산다고 했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 언젠가 TV에서 본 그 해파리의 이름을 천천히 발음해보았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는 성장과 퇴행을 무한히 반복한다고 했다.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 1cm도 안 되는 이 작은 해파리는 죽지 않고 끊임없이 번식하며 전 세계 바다로 퍼져 나가 생태계를 위협한다고 했다. 지구상에서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다 해도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는 태고로부터 멀고 먼 미래까지, 끝없이 헤엄쳐 갈 것이었다. 바다를 가득 메운 영생불사의 생명체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헤엄쳐 오는 환영. 나는 몸을 떨었다. 아주 오래전, 나는 해파리였다. 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흐물흐물한 두 다리는 내가 해파리의 삶을 살았다는 흔적기관으로 남아 있었다. 분출하는 법은 잊었지만, 여전히 분비되고 있는 독이 동맥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며 현기증이 일 때도 종종 있었다. 물이 끓었다. 나는 최 씨에게 커피를 건넸다. 뜨거운 커피를 후루룩 마시고 최 씨는 커피값을 기구 옆에 내려놓았다. 나는 해변에 누워 바다를 바라본다. 수평선 끝에 태양이 반쯤 걸려 있다. 태양은 바다 위로 황금빛 길을 만들고 있다. 황금빛 길을 따라 무언가 해변을 향해 헤엄쳐 오고 있다. 그것은 수면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헤엄쳐 온다. 물살이 점점 거세진다. 하지만 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해변에 가까워지면서 그것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검은 고래다. 고래와 나는 서로 마주 본다. 나는 고래의 등 위로 기어 올라간다. 고래의 등은 생각처럼 미끄럽지 않다. 그리고 따뜻하다. 나를 태우고 고래는 다시 바다로 헤엄친다. 내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고래는 수면 가까이에서 헤엄친다. 물살에 발등이 간지럽다. 낯설다. 나는 내 다리를 내려다본다. 길고 튼튼한 다리가 쭉 뻗어 있다. 나는 다리를 한껏 뻗어 물살을 가른다. 잠결에 쇠가 또 다른 쇠붙이 안으로 파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떴다. 철컥, 하고 가게 출입문이 열린 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다시 출입문이 슬며시 닫히는 소리, 쇠붙이가 돌아가며 문이 잠기는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로 허공을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는 귀가 예민해지는 법이었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방문이 천천히 열렸다. -벌써 잠이 든 게냐? 노인이었다.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방문을 등지고 돌아누웠다. -저녁상 봐왔다. 불을 켜지도 않은 채, 노인은 방 한쪽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저녁은 먹고 자야지. 노인은 문지방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었다. -갈치찌개다. 남은 갈치 넣고 끓였는데 맛이 아주 개운하다. 노인이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오며 말했다. 노인이 등 뒤에서 나를 끌어 안았다. 노인의 손이 티셔츠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노인의 피부는 차갑고 거칠었다. 노인은 내 가슴을 성급하게 움켜쥐었다. 노인은 내 등 뒤에 바싹 붙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물을 벗고 있는 커다란 곤충이 등 뒤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멀리,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간간이 쇠를 자르는 날카로운 소리도 들려왔다. 공업사에서는 종종 야간까지 작업을 하곤 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나는 어두운 방 안에 누워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쇠가 잘리는 소리는 비명소리 같았다. 그것이 쇠붙이에서 피 맛이 느껴지는 이유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불로 온몸을 꽁꽁 감싸고 누워 기계가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소리를 듣다 잠이 들곤 했다. 노인이 긴 숨을 토해냈다. 허물처럼 노인의 몸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았다. -입맛 없으면 뒀다가 아침에 데워 먹어라. 방문을 닫기 전, 노인이 말했다. 가게 문이 열리고 다시 닫힐 때까지 나는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노인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난 뒤, 나는 기구를 소독하듯 내 몸 구석구석을 닦아 냈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배고픈 아기마냥 희미하게 울다가도 이내 앙칼진 비명을 질러댔다. 안주인은 또 잠에서 깨어났을 것이었다. 그녀는 평소에 전화벨이 울려도 못 들을 만큼 깊은 잠에 빠지는 편인데,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리면 이상하게 잠에서 깨어난다며 투덜거리곤 했다.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다 보면 단순히 교미를 하고 있는 짐승이 아닌, 이제 막 성의 유희를 알게 된 계집 같다며 몸서리치기도 했다. 나는 노인이 두고 간 쟁반을 끌어당겼다. 밥공기를 거꾸로 들고 흔들었다. 차갑게 식은 밥덩이가 갈치찌개 위로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비닐봉지 안에 담은 뒤 나무받침대 맨 위까지 기어 올라갔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응시했다. 캄캄한 골목길에서 몸집이 작은 고양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비닐봉지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비린내를 맡은 고양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곧 생명을 잉태할 어미 고양이에게는 충분한 영양 공급이 필요할 것이었다. 전봇대 아래 둥그런 물체가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쓰레기더미일 것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맞은편, 그가 살고 있는 방을 바라봤다. 불이 꺼져 있었다. 창문은 밤하늘보다 더 어두운 빛깔을 하고 있어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낮에 본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자동차 보닛을 열고 부품을 교체하던 중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육중한 부품들을 그는 날렵한 동작으로 들어내고 또 갈아 끼웠다. 그의 손을 거치고 나면 자동차는 매끄러운 엔진 소리를 냈다. 그는 무엇이든 고칠 수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그는 내 몸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괴한 모양으로 붙어 있는 팔과 다리를 몸통에서 분해한 뒤 정상적인 팔과 다리를 다시 이어 붙이고 조립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 그의 집 창가에 커다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나는 재빨리 몸을 숨기며 받침대에서 기어 내려왔다. 안주인이 자꾸만 하품을 했다.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지난밤 잠을 설친 탓이었다. 투덜거리면서도 그녀는 손으로 열무를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노인이 두부조림을 반으로 잘라 내 밥 위에 얹어 주었다. -양념장이 간간하니 입맛이 돌 게다. 나는 노인이 얹어 준 두부를 입안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두부에 배어 있던 물기가 밥알 사이로 스며들었다. 노인은 배추김치를 손으로 찢어 밥 위에 올려 주고 코다리찜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주었다. 안주인이 열무를 집어 먹던 손을 앞치마에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을 먹으면서도 식당 출입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안주인의 오랜 습관이었다. 곧 식당 문을 밀고 남자 몇몇이 들어왔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 중에 그가 있었다. 빈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는 나와 마주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안주인이 부엌에 들어가 국을 데우는 동안, 노인은 밑반찬을 가져다 날랐다. 나는 밥알을 씹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는 코다리찜을 한입에 넣고 씹다가 입을 우물거리며 가시를 뱉어냈다. 그의 젓가락은 계란말이를 자주 집어 들었다. 그는 국그릇을 한 손으로 들고 후루룩 국물을 삼켰다. 콧등에 땀이 맺히자 손등으로 스윽 닦아냈다. 숟가락질 서너 번 만에 그는 밥 한 공기를 비웠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물로 입가심을 하던 그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노인이 맞은편 자리로 와 앉았다. -다 먹은 게냐? 노인이 물었다. 노인 뒤로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노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나를 안으려는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올려다 줄게요. 그가 노인에게 말했다. 노인 옆에 서자 그의 몸집은 더 커보였다. 노인은 그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그가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는 나를 안은 채로 식당 문을 열고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그의 새끼손가락이 내 가슴에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었다. 나는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콧날에서 인중으로, 인중에서 다시 윗입술로 이어지는 선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윗입술에 비해 아랫입술이 들어가 있고 아래턱이 짧아 그는 고집 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는 휠체어에 나를 내려놓았다. 그의 목덜미가 내 얼굴에 닿을 듯했다. 그는 후, 하고 숨을 짧게 내뱉었다. 그는 물건을 사러 온 손님처럼 가게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나는 휠체어를 밀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나를 돌아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뭐 좀 마실래요?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게 들어오라는 시늉을 하고 방문을 열었다. 방바닥에는 포장하려고 꺼내 놓은 상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인터넷 쇼핑몰 주문량이 나날이 늘고 있었다. 나는 상품들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그가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방에 들어온 그는 바지주머니에 손을 반쯤 찔러 넣고 머뭇거렸다. 방바닥에 앉아서 바라보니 그는 더욱 커 보였다. 엉거주춤하게 선 자세로 방안을 휘휘 둘러보던 그가 갑자기 창가로 걸어갔다. -내 방이 마주보이는군요.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는 정말 모르고 있었던 걸까. -저기가, 그가 손을 쭉 뻗으며 맞은편을 가리켰다. -내 방이거든요. 그가 천진하게 웃었다. 방바닥에 앉아 있는 나는 창문 너머 그의 집을 볼 수가 없었다. 그제야 눈치 챈 듯, 순식간에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창문 앞에 놓인 나무받침대를 흘끗 쳐다보고 내 옆에 와 앉았다. 나는 전기주전자 쪽으로 몸을 끌었다.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손을 짚은 곳까지 엉덩이를 끌어당겼다. 작고 가느다란 두 다리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꼬리처럼 흐물흐물 따라왔다. 그가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더 무거워졌다. 전기주전자에 물이 끓는 동안 그는 주문 목록을 집어 들고 천천히 훑어봤다. 상품명을 일일이 소리 내어 읽다가 그는 중간중간 주변을 돌아보며 해당 상품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름만으로는 도무지 어떤 상품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커피를 건네고 나서야 그는 주문 목록이 적힌 종이를 내려놓았다. 나는 바닥에 늘어놓은 상품들 중 딜도를 손에 쥐었다. 나는 익숙한 솜씨로 딜도를 포장해 상자에 넣었다. 사은품으로 지급하는 콘돔 두 개도 빠뜨리지 않았다. 상자를 테이프로 봉한 뒤 나는 ‘식스팩맨’을 끌어당겼다. 탄탄한 복근부터 허벅지까지 만들어놓은 것으로 ‘초콜릿 복근’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출시된 상품이었다. ‘식스팩맨’을 개발한 회사에서 상품을 광고할 때 내건 문구는 ‘지금은 여성 상위시대’라는 말이었다. 광고 문구를 읽을 때마다 나는 구시대의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나는 레즈비언 커플을 위한 기구를 포장했다. 벨트를 허리에 두르면 여자도 남자의 성기를 몸에 지닐 수 있었다. 내가 상품을 포장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그가 여자의 엉덩이를 본뜬 상품을 집어 들었다. 그는 내 손놀림을 곁눈질해가며 여자의 엉덩이를 포장했다. 엉덩이를 움켜쥐는 그의 손등 위로 핏줄이 일어섰다. 나는 페니스 모형을 말아 쥐었다. 불끈 튀어나온 핏줄까지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상품이었다. 그의 시선이 느껴져 손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나는 페니스를 더욱 세게 말아 쥐었다. 그는 포장한 엉덩이를 상자에 넣고, 이번에는 실리콘 가슴 모형을 끌어당겼다. 그의 커다란 손 안에 한쪽 가슴이 가득 찼다. 그의 시선이 내 가슴 쪽으로 옮겨 왔다. 순간, 아랫도리에 더운 피가 고여 들었다. 나는 실리콘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그의 손을 끌어다 내 가슴에 가져다댔다. 잠시 멈칫했던 그의 손이 이내 옷 속을 파고 들었다. 나는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두 개의 다리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옷 속을 파고든 그의 손이 몸의 굴곡을 따라 느리게 움직였다. 온기가 지나간 자리에 소름이 돋아났다. 가슴과 배꼽 위에 차례로 머물던 따스한 기운이 순간 사라졌다. 그가 치마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나는 그의 손을 다급하게 막았다. -일 끝내고, 나는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빛이 한창 쏟아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짧고 가느다란 다리가 여과 없이 보일 터였다. 다리를 보게 되면 햇볕에 말라죽은 강장동물의 사체라도 발견한 듯, 그의 눈은 경멸로 가득해질 것이었다. -밤에 다시 와줄래요? 그가 내게서 몸을 뗐다. 그는 몸의 열기를 빼내듯, 숨을 길게 내뱉고 일어났다. 포장이 끝난 상자 몇 개를 한쪽에 쌓아 두고 그는 방에서 나갔다. 오후 일곱 시. 나는 딜도를 크기별로 보기 좋게 정리했다. DVD를 진열해 놓은 선반을 손바닥으로 쓸어 보니 먼지가 묻어났다. 물티슈를 뽑아 선반에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 내친김에 다른 진열장에 쌓여 있는 먼지도 닦았다. 출입문 손잡이 부분은 늘 손님들의 지문으로 얼룩져 있었다. 나는 물티슈를 한 장 더 뽑아서 손잡이 부분을 닦았다. 휠체어를 뒤로 밀어 얼룩이 남은 곳이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봤다. 카운터 주변까지 정리를 마치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택배기사가 상자를 수거해 가고 난 뒤에 방안을 쓸고 걸레질까지 했지만, 나는 물티슈로 방바닥을 한 번 더 훔쳐 냈다. 가지런히 개어 놓은 이불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노인의 냄새가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불 귀퉁이에 향수를 살짝 뿌려두고 나서야 나는 안심했다. 욕실 문을 열고 쓰윽 훑어봤다. 거울도, 세면대도, 바닥도 모두 말끔했다. 세면대 옆에 걸어둔 수건이 낡아 보였다. 나는 서랍장을 열고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수건을 찾아 욕실에 새로 걸어 두었다. 그가 퇴근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카운터 서랍을 열고 화장품을 꺼냈다. 파우더 퍼프를 두드려 이마와 콧등의 기름기를 지웠다. 턱을 살며시 들고 마스카라를 덧발랐다. 손거울 안에 들어있는 여자의 얼굴이 제법 도도해 보였다. 나는 턱을 든 채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움직여 보기도 하고 입 꼬리를 올려 웃어 보기도 하다가 키스를 기다리는 여자처럼 입술에 긴장을 풀었다. 거울을 끌어당기고 살짝 벌어진 입술 안을 들여다보았다. 세상을 향해 처음 속살을 내보인 패류(貝類)처럼 나는 재빨리 입술을 닫았다.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카운터 서랍을 급히 닫고 미리 띄워 놓은 인터넷 쇼핑몰 창을 들여다보며 주문량을 확인했다. 문이 열리며 발자국 소리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제야 모니터 너머로 고개를 빼고 출입문 쪽을 바라봤다. 노인이었다. -문 닫고 내려가서 저녁 먹자. 일곱 시 사십 분. 평소대로라면 벌써 가게 문을 닫았을 시간이었다. -손님이 올 거예요. 나는 다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노인은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 출입문 밖으로 나갔다. 노인의 발자국 소리가 희미해지자 나는 가게에 불을 켜둔 채 방문을 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이미 어두웠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걸까. 나는 상체를 숙여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엉덩이를 끌어내렸다. 쿵, 소리가 났지만 이 정도 충격에는 이미 단련되어 있었다. 나는 어두운 방안을 기어갔다. 방바닥에 가로등 불빛이 창문 모양으로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나는 계단식으로 만들어 놓은 나무받침대를 한 칸씩 올라갔다. 팔 근육은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 더 굵고 튼튼했다. 창밖으로 그의 방 창문이 보였다. 불이 꺼져 있었다. 공업사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빠른 속도로 나무받침대를 내려왔다. 휠체어에 올라타고 카운터로 나갔다. 모니터에 인터넷 쇼핑몰 창을 띄워 놓은 채, 나는 가끔씩 출입문 쪽을 바라봤다. 배송해야 할 상품목록을 정리하고, 제조사에서 보낸 신상품 카탈로그를 살펴봤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어느덧 아홉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두운 방안을 기어 나무받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의 방 창문이 보였다.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창가에 바짝 붙어 그의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나무 책상이 보였고 침대 모서리가 보였다. 멀리서 자동차가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지나갔다. 소리는 점점 멀어지다 사라졌다. 침대 모서리 밖으로 하얀 다리가 튀어나왔다. 창틀에 가려져 다리의 일부만 보였지만 그의 것은 아니었다.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려 벽에 등을 기댔다. 나는 침을 삼켰다. 나는 다시 몸을 낮추고 창밖을 내다봤다. 하얀 다리 사이로 그의 커다란 몸뚱이가 보였다. 하얀 다리가 그의 허리를 감쌌다. 곧은 뼈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탄력 넘치는 근육. 근육이 움직이며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곡선. 관절의 거칠고도 부드러운 움직임. 실리콘도, 비닐 튜브도 아닌 살아 있는 다리. 만져 보고 싶었다. 나는 카운터 위에 달린 회전 조명등을 켰다. 꼿꼿이 서 있는 딜도와 납작하게 웅크리고 있는 엉덩이 위로 분홍빛이 내려앉았다. 휠체어를 밀고 가게 안을 둘러봤다. 나는 포르노 스타의 토막 난 몸뚱이 앞에서 멈췄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질을 가지고 있는 포르노 스타 옆에는 실리콘 가슴이 누워 있었다. 나는 계속 가게 안을 둘러봤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성인 잡지에서 종종 봤으나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았다. 나는 잡지를 집어 들고 휠체어를 밀었다. 나는 여자의 얼굴이 크게 인쇄된 면을 찾아 방바닥 한가운데에 잡지를 펼쳐 놓았다. 그 아래로 실리콘 가슴을 가져다 놓았다. 나는 다시 포르노 스타의 토막 난 은밀한 부위, 그리고 여자의 다리를 본뜬 쿠션을 차례로 가져다 놓았다. 나는 내가 창조해 낸 여자 옆에 나란히 누웠다. 카리브 해의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여자와 나는 백사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분홍빛 파도가 밀려와 여자와 내 몸을 적신다. 여자의 분절된 몸이 하나로 이어진다. 여자는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운다. 한 걸음씩 발을 내딛다 여자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전라의 아름다운 육신이 부드럽게 출렁인다. 여자는 춤을 추며 내게 다가온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 여자는 주문을 외우고 섬세한 손길로 내 다리를 쓰다듬는다. 숨을 불어넣은 ‘튜브 걸’처럼 가늘고 휘어진 두 다리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며 감각이 되살아난다. 탐스럽게 살이 오른 두 다리가 공중으로 뜨기 시작한다. 다리와 함께 내 몸도 붕 떠오른다. 내 몸은 분홍빛 바다 위를 떠다닌다. 따스한 물결이 몸을 부드럽게 감싼다. 투명한 몸에서 빛을 발하는 해파리들이 바다 깊은 곳에서 하나둘씩 떠올라 해면을 부유한다. 해파리들이 헤엄쳐와 내 몸을 핥듯이 뒤덮는다. 목을 감싸고 가슴 위로 미끄러지고 내 몸 안을 깊숙이 파고든다. 태양과 바다가 맞닿은 곳을 향해 나는 해파리들과 함께 헤엄친다. [당선소감] 연인이 세상 떠난 벼랑끝, 거짓말 같은 일이…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삼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쏟아졌고, 나의 연인은 세상을 떠났다. 감당이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이쪽이 아닌, 저쪽 세상을 바라보던 시간이었다. ‘나’도 잃고 ‘언어’도 잃은 시간이었다. 두려웠다. 벼랑 끝에서, 당선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달려가며 세상을 편리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느리게 걸으며 주변을 돌아보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 나는 후자 쪽을 꿈꾼다. 어릴 때부터 꿈은 하나였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언제나 명확했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삶의 사각지대였고, 나는 그것을 문장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제, 간신히 ‘입장권’을 받은 기분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임을 잘 알고 있다. 글. 그림. 여행. 세상 구경 실컷 하고, 아이들, 동물들과 사랑을 나누는 삶.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글’의 힘을, 나는 믿는다. 늦게 출발한 만큼 더 열심히 쓸 것이다. 제게 ‘숨’인 소중한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좌뇌를 물려주신 아빠, 우뇌를 물려주신 엄마, 가장 소중한 우리 가족, 사랑합니다. 등단하면 찾아뵙겠다며 지금껏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어요. 조해룡 교수님, 곧 찾아뵐게요. 대모님을 비롯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많은 분, 믿고 응원해 준 친구들, 특히 집 밖에 나가지 않는 나를 위해 식량과 각종 영양제를 배달해 준 재경양, 모두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던 모습 그대로, 내 안에 영원히 방부 보존되어 있을 당신, 그곳에서 늘 지켜봐 주세요. ■약력 ▲1980년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현재 SBS 라디오 작가 [심사평] 인간의 깊은 내부세계 들여다보는 문제작 서울신문 신춘문예는 전통적으로 좋은 작품, 좋은 작가를 새롭게 배출하는 자리로 알려져 왔다. 최근 이은선, 차현지, 김가경과 같은 재능 있는 작가들을 문단에 새로 내놓았고 이들은 이미 활발한 문단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 ‘힘센’ 서울신문 신춘문예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본심을 맡으면서 우리는 비상한 관심과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모두 열두 작품 정도. 생각보다 많은 예심 통과작은 심사위원들로 하여금 시간적으로도, 마음 씀씀이로도 쉽지 않은 일을 하도록 했다. 두 사람이 미리 배송해 받은 예심 통과작을 읽고 그 가운데 몇 편을 추려 꺼내 놓은 후보작은, 한 사람은 두 편, 다른 한 사람은 네 편. 공교롭게도 한 사람의 네 편 가운데 다른 사람의 두 편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 두 편의 제목은 조수경의 ‘젤리피시’와 이완의 ‘아빠의 네트워크’. 두 작품 모두 나무랄 데 없는 수작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아빠의 네트워크’는 아들의 시선으로 아버지의 세계를 조명한 독특한 작품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중 화자의 시각이나 생각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녹록지 않은 생활을 이어 가는 인물들 모두의 삶에 흐르는 생기나 활력은 이 소설의 작가가 성숙한 세계인식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수경의 ‘젤리피시’는 어떻게 보면 더 독특하면서도 문제적인 생각을 전달하는 것 같다. 성인용품 판매점에서 일하는 고독한 장애 여성의 시점을 취한 것은 이 작품을 쓴 사람이 세태와 시류를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유행감각의 소산이 아니다. 이 작가는 인간의 깊은 내부 세계를 들여다보는 안목을 갖추었다. 또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묘사 능력도 탁월했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조수경의 ‘젤리피시’를 당선작으로 올렸다. 문제작을 당선작으로 올린 것에 만족한다. 조수경에게 축하드리며 정진을 당부한다. 이완은 이것으로 낙심하지 말고 힘내시길.
  • 흐린 날도 태양광 전기 만드는 버스정류장

    비가 오고 흐린 날에도 전기를 생산하는 버스 정류장이 생긴다. 서울시는 고층 건물 때문에 그늘이 많은 도심 정류장에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CIS(구리·인듐·셀레늄)계 박막태양전지’를 종로2가 삼일교 중앙버스정류장 지붕 2곳에 설치하고 실증 작업을 한다고 28일 밝혔다. CIS계 박막태양전지는 맑은 날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실리콘형 태양전지와 달리 도심 건물에 햇빛이 가려진 곳이나 연무·황사 등으로 흐린 날에도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독립형 태양광 발전 기술이다. 이 태양전지는 하루 최대 7㎾h(연평균 5㎾h)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이는 일반 가정에서 많이 쓰이는 20w짜리 형광등 1개를 350시간(약 15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기량이다.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되는 전기는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광고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발전량 모니터링 전광판 등에 사용한다. 정전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정류장에 설치된 의자형 배터리함에 일정량을 충전해 저장한다. 시는 앞으로 1년간 CIS계 박막태양전지의 발전량과 배터리 성능 등을 분석해 효과성이 뛰어난 것으로 확인되면 기술을 상용화하고 보급할 계획이다.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 137m ‘얼음 폭포’ 오르는 대담한 등산가 포착

    추운 겨울에 사람의 마음을 더욱 얼어붙게 만드는 아찔한 사진 한장이 공개됐다.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은 지난 23일자에 스위스의 한 거대 빙벽을 오르는 남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공개했다. 무려 137m에 이르는 이 빙벽은 폭포가 얼어 만들어진 것으로 볼펜쉬센 마을의 알 카이다 루트로 알려졌다.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빙벽 코스 중 하나로 알려진 이 얼음 폭포를 오른 사람은 이 마을에 사는 월터 헝거뷜러. 그는 과거 수차례 얼음 폭포를 오른 경험이 있으나 이번 만큼은 목숨을 걸만큼 위험한 등반이었다. 헝거뷜러는 “쇄빙과 얼음이 녹는 위험을 감수하며 등반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면서 “빙벽을 오르며 들리는 소리로 내가 안전한지 여부를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다시 이 빙벽을 오르고 싶었지만 이틀 후에는 햇빛에 녹아 사라졌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 그것이 인생 아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이 사진을 촬영한 라이너 에더는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 폭포가 있어 등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면서 “정말 장엄한 자연의 풍경 속에서 인간의 대담한 도전이 느껴졌다.”며 혀를 내둘렀다.   인터넷뉴스팀 
  • 시드니-타박타박 룰루랄라 Walking around Sydney

    시드니-타박타박 룰루랄라 Walking around Sydney

    SYDNEY 타박타박 룰루랄라 Walking around Sydney 걷는 여행은 정직하다. 순간순간을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 맡을 수 있다. 하나 더 볼 수 없을지는 몰라도 하나를 온전히 만날 수 있다. 시드니를 걸었다. 2, 3 겨울에도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본다이 비치는 환상의 절경을 담고 있는 코스탈 워크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4 코스탈 워크에는 헤매지 않고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요소요소에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Bondi Beach 남태평양을 따라 시드니의 바다를 걷다 시드니에 가면 누구나 오페라하우스를 보고 하버 브릿지를 찾는다. 이 두 명소에 가기 위해서는 기차나 버스, 페리를 타고 써큘라 키Circular Quay에서 내리면 된다. 써큘라 키는 세계 3대 미항에 꼽히는 시드니 여행의 시작이자 외곽으로 나가는 대중교통의 집결지이기도 하다. 시드니가 자랑하는 본다이 비치Bondi Beach로 가는 버스도 써큘라 키에서 출발한다. 시드니 도심에서 직선거리로 8km 가량 떨어져 있는 본다이 비치는 파란 바다를 가르는 역동적인 서퍼들과 일광욕을 즐기는 비키니 차림의 미녀들로 언제나 생기가 넘친다. 해변 주변으로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레스토랑, 쇼핑몰 등이 있어 저녁에도 흥겨운 분위기가 이어진다. 본다이를 즐기는 방법이야 취향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본다이 해변에서만 하루를 보낼 계획이 아니라면 해안선을 따라 도보여행 일정을 잡아 보자. 올망졸망한 제주올레와는 또 다른 바닷길을 만날 수 있다. 본다이 비치에서 시작해 남쪽 방향으로 해안 절벽을 따라 조성된 코스탈 워크Coastal Walk는 시드니의 바다를 만나는 최선의 방법이다. 클라이맥스에 다다를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일단 걷기 시작하면 이내 평생 잊지 못할 압도적인 풍광의 태평양과 손에 닿을 듯 지척에서 마주할 수 있다. 파란 하늘 아래 그보다 더 파란 바다. 탄성이 멈추질 않는다. 코스탈 워크는 본다이 비치를 시작으로 타마라마 비치Tamarama Beach, 브론테 비치Bronte Beach 등 크고 작은 비치를 거쳐 쿠지 비치Coogee Beach까지 이어진다. 해안절벽이라고는 하지만 길이 잘 놓여 있고 코스가 어렵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평일에도 운동을 하거나 개와 산책하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서 치안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중간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사진을 찍고 쉬엄쉬엄 걸어도 총 3시간이면 충분하고 코스 중간에서 나와도 된다. 시드니에서 소풍가기 좋은 맨리 버스가 아니고 페리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하는 맨리Manly에도 해안 워킹 코스가 만들어져 있다. 가장 손쉬운 코스는 페리가 도착하는 항구에서 두 블록 가량 맞은편에 있는 타운센터에서 셸리비치Shelly Beach까지 가는 코스로 왕복 30~40분이 소요된다. 관목 숲과 해변, 원주민 거주 지역 등을 통과해 스피릿 브릿지Spirit Bridges까지 가는 4시간 코스도 있다. 맨리는 페리까지 타고 바다를 건너가야 하니 오전에 일찍 가서 느긋하게 하루를 보내고 오는 것도 방법이다. 항구와 타운센터 주변으로 쇼핑몰이 형성돼 있으며 페리가 늦게까지 다닌다. 시간을 잘 맞추면 시드니로 돌아오는 페리에서 하버브릿지를 배경으로 근사한 석양을 감상할 수 있다. 맨리를 오고가는 페리는 서큘라 키 3번 부두에서 30분 간격으로 출발하고 30분 가량 소용된다. 왕복 14호주달러.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본다이 비치 도보여행 써큘라 키에서 333번 특급 버스를 타거나 380번 버스를 타면 된다. 380번 버스는 엘리자베스 스트리트에서도 탈 수 있다. 40분 정도 소요되며 요금은 편도 4.5호주달러(2012년 8월 기준)다. 기차를 타면 본다이 정션Bondi Junction에서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쿠지 비치에서 돌아올 때는 378번 버스가 서큘라 키까지 온다. ●Blue Mountain 5억년의 푸른 하늘을 걷다 남태평양의 파란 바다와는 또 다른 느낌의 푸른 세계도 있다. 시드니 주변에서 가장 유명한 블루 마운틴Blue Mountain에 오르면 5억년의 시간이 만든 절경을 만날 수 있다. 세계자연유산으로도 지정돼 있는 블루 마운틴에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지천이다. 유칼립투스 나뭇잎에서 나오는 수액이 햇빛에 증발하며 푸른 안개 같은 빛을 띠기 때문에 블루 마운틴이라 이름 붙은 이곳 또한 걷기 여행에 제격이다. 블루 마운틴의 블루는 아침 시간에 더 진가를 발휘한다. 블루 마운틴을 여행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데이투어 버스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다. 데이투어는 블루 마운틴까지의 왕복 교통편과 현지에서의 주요 포인트간 이동이 기본으로 포함되며 식사나 추가 일정 등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1인당 100달러 정도면 이용할 수 있다. 시간에 맞춰 움직이거나 모르는 여럿과 어울리는 것이 싫다면 기차를 타고 개인적으로 여행하면 된다. 시드니 센트럴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카툼바역Katoomba Railway Station에 내리면 역 앞에 셔틀 버스 개념의 익스플로러 버스나 트롤리 투어 정거장이 있다. 이도 싫다면 도보로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다. 블루 마운틴 여행은 대부분 에코 포인트Eco Point에서 시작한다. 버스를 타지 않고 걷기로 결정했다면 카툼바역 정면의 큰 길을 따라 곧장 걸어가면 되는데 도보로 30분이면 충분히 에코 포인트에 도착한다. 걷는 중간중간 시골 마을의 상점과 주택가를 기웃거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에코 포인트에 서면 마법으로 돌이 됐지만 기구한 사연으로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세 자매 봉Three Sisters’을 비롯해 블루 마운틴의 전체적인 윤곽을 포착할 수 있다. 1 블루 마운틴은 누가 뭐래도 걸어서 여행해야 그 멋을 만끽할 수 있다 2 수억년 세월을 견디며 밋밋해진 계곡이 평야처럼 펼쳐진다 3 블루 마운틴에 속한 제놀란 동굴 인근의 고풍스런 주택 4 절벽 트레킹을 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유칼립투스 나무 빼곡한 블루 마운틴 계곡 블루 마운틴을 제대로 만나는 절벽 트레킹 호주의 그랜드 캐년이라고도 불리는 블루 마운틴은 봉오리가 뚜렷한 우리네 산악지형과는 생김새부터 다르다. 긴긴 세월에 켜켜이 깎이고 다듬어져 밋밋해진 능선이 저 멀리까지 뭉게뭉게 펼쳐지며 가슴 탁 트이는 장관을 이룬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푸른 산이다. 사진보다 실물이 예쁜 사람처럼 블루 마운틴은 그 어떤 사진이나 글로도 실제의 감동을 전달하기가 어렵다. 에코 포인트에서는 길게는 3일에서 짧게는 2~3시간 정도까지 다양한 트레킹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에코 포인트 자체가 이미 고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절벽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이상 가파른 등산을 하지 않고도 비교적 평탄한 절벽 길을 걸을 수 있다. 당일 일정이라면 에코 포인트에서 시닉월드까지의 트레킹을 권할 만하다. 대략 1시간 정도의 트레킹은 블루 마운틴의 가파른 절벽을 따라 이어지며 코너를 돌 때마다 달라지는 블루 마운틴의 풍광을 만날 수 있다. 시닉월드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경사를 운행하는 관광열차로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는 시닉 ‘레일웨이’와 카툼바 폭포 옆 옛 폐광 지대 계곡에 조성해 놓은 ‘워크웨이’, 300m 높이의 블루 마운틴 협곡을 연결해 놓은 투명한 바닥의 케이블카 ‘스카이웨이’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특히, 마치 원시 정글 속에 산책로를 꾸며 놓은 듯한 워크웨이는 안전하고 편리하게 블루 마운틴의 속살을 만지는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travie info 블루 마운틴 도보여행 기차를 이용한 개별여행이라면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센트럴역에서는 평균 1시간에 한 대꼴로 출발하고 캄툼바역까지는 2시간 정도 소요된다. 탑승 게이트가 수시로 변경되니까 잘 확인할 것. 열차는 왕복 23달러. 블루 마운틴 익스플로러나 트롤리 티켓은 카툼바역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가격은 성인 1인당 25달러 전후.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Sydney City 느긋느긋 시드니의 심장을 걷다 호주는 큰 나라다. 시드니도 마찬가지. 호주의 행정 수도는 캔버라지만 관광객의 수도는 시드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 브릿지, 로얄 보타닉 가든과 하이드 파크를 품고 있는 시드니는 그 자체로도 걷기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대도시인 만큼 시드니 도보 여행은 어느 정도 지역을 나눠 접근하는 편이 좋다. 마침 주말에 시드니에 머문다면 록스 마켓Rocks Market으로 향하면 된다. 오페라 하우스 맞은편 하버 브릿지 끄트머리의 록스 광장에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장이 선다. 벼룩시장처럼 중고 물품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각종 수공예품이 주를 차지하고 한 편에는 먹거리 장터가 세워진다. 록스마켓을 둘러본 뒤에는 강철로 만든 하버 브릿지 횡단에 도전할 수 있다. 현지인들에게는 옷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하버 브릿지는 밀슨스 포인트Milsons Point까지 연결돼 있는데 인도가 마련돼 있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다. 오페라하우스에서 바라보는 하버 브릿지도 멋지지만 막상 다리에 올라 내려다보는 오페라하우스 또한 장관이다. 우리네 남산만큼은 아니지만 하버 브릿지에도 사랑의 징표로 걸어 놓은 자물쇠가 제법 있다. 하버 브릿지가 아니라 써큘라 키를 지나 오페라하우스로 갈 수도 있다. 언제나 관광객으로 넘치는 오페라하우스를 지나면 한결 한가로운 로얄 보타닉 가든이 기다리고 있다. 4,000여 종의 다양한 식물과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는 보타닉 가든은 오아시스가 따로 없다. 로얄 보타닉 가든 안에는 진귀한 19세기 가구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총독 관저가 있고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가이드 투어가 진행된다. 평일에는 가든투어까지만 허용된다. 보타닉 가든까지 갔다면 조금만 힘을 내 맥쿼리 부인의 의자Mrs. Macquarie’s Chair까지 욕심을 내보자. 총독의 부인이었던 맥쿼리 여사가 영국으로 출장 간 남편을 기다리며 이곳에서 종종 책을 읽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가보면 왜 그녀가 이곳까지 나와서 독서를 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곳까지 가는 해안 길도 환상적이고 오페라하우스와 하버 브릿지가 한데 어울려 있는 엽서 같은 사진을 찍기에도 그만이다. 대도시 이미지의 활기찬 시드니를 보고 싶다면 좀더 중심가로 나가면 된다. 맥쿼리 스트리트와 로얄 보타닉 가든이 만나는 자리에 있는 주립도서관은 공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욕심이 날 정도로 근사한 도서관이다. 높은 천장까지 책이 한 가득 쌓인 서고와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숨어 있던 학구열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길눈이 어둡거나 복잡한 다운타운을 헤매기 싫다면 중심 거리인 조지 스트리트를 따라 걸으면 된다. 록스 광장부터 시작되는 조지 스트리트를 걷다 보면 중간중간 마틴 플레이스처럼 유명한 쇼핑 구역이 나오고 타운홀 인근에는 시드니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퀸 빅토리아 빌딩QVB도 자리하고 있다. 19세기에 지어진 지하 2층, 지상 3층의 이 건물에는 골동품점과 부티크를 비롯해 고풍스런 카페 등이 빼곡하다.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딴 QVB는 꼭 쇼핑이 아니더라도 스테인드 글라스와 유리돔 등의 화려한 구경거리로 방문 가치가 있다. 천장에 매달린 시계탑에서는 매시 정각 귀여운 인형극이 열린다. 1 오페라하우스와 하버 브릿지. ‘맥쿼리 부인의 의자’에 가면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 2 세계에서 가장 넓은 목조 선착장 핑거 선착장Finger Wharf. 울루물루 선착장Woolloomooloo Wharf이라고도 하며 호텔과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 있다 3 현대적인 힐튼 시드니의 입구 4 가격대비 만족도 높은 챗 타이 레스토랑 글 김기남 기자 사진제공 호주관광청 www.australia.com ▶travie info 시드니 도보 여행 시드니의 중심 거리라고 할 수 있는 조지 스트리트와 엘리자베스 스트리트를 타원형으로 순환하는 555번 무료 셔틀 버스를 잘 이용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뚜벅이 도심 여행을 할 수 있다. 힐트 시드니 호텔 Hilton Sydney QVB를 마주하고 있는 힐튼 호텔은 시드니 이곳저곳을 여행하거나 쇼핑을 즐기기에 최적의 입지를 자랑한다. 힐튼 호텔만의 특급 서비스와 시설은 기본이고 공항 특급열차의 종점인 타운홀과 이어져 있고 스트랜드 아케이드Strand Arcade 등 유명 쇼핑몰이 지척이다. 555번 무료 셔틀 버스 정류장도 바로 호텔 앞에 위치한다. www1.hilton.com 챗 타이chat thai 시드니에서 최근 뜨고 있는 타이 레스토랑. 매콤한 음식이 생각날 때도 추천할만한 곳이다. 시드니에서는 나름 합리적인 가격에 수준급 태국 요리를 맛볼 수 있고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해산물 요리는 30호주달러 이하, 국수와 밥은 15호주달러 이하에서 고를 수 있다. 타이타운과 웨스트필드, 랜드위크, 맨리 항구 터미널 등에도 레스토랑이 있다. www.chatthai.com.au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2012 하반기 히트상품] 윈앤윈 ‘무아지경 힐링텐트’

    [2012 하반기 히트상품] 윈앤윈 ‘무아지경 힐링텐트’

    윈앤윈의 ‘무아지경 힐링텐트’는 설치와 해체가 간편한 1·2인용 레저용 텐트다. 가볍고 크기가 작아 산, 들, 집안, 사무실 등 언제 어디에서나 가지고 다니며 사용할 수 있다. 올레길이나 국토순례길, 오지여행, 하이킹, 낚시, 단체수련회 등에서 사용자들에게 특히 인기다. 제품은 3면이 모기장으로 처리돼 있어 벌레나 해충 침입을 막고 바람을 잘 통하게 한다. 외피를 덧대면 햇빛을 차단해 그늘막 텐트로도 사용할 수 있다. 기존 텐트가 폴대와 고정핀을 사용하는 데 비해 무아지경 힐링텐트는 하단 각 모서리 네 군데를 핀을 이용해 땅에 고정시키고 상단 양쪽 끝을 나무나 기둥 등에 끈으로 연결해 묶으면 쉽게 설치할 수 있다. 제품 디자인은 일본 ACUEB사와 협력해 만들었다. 옥션(www.auction.co.kr) 등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 중이다.
  • 자연은 어떻게 좀비를 만드는가

    자연은 어떻게 좀비를 만드는가

    중남미 코스타리카의 열대우림 속에 사는 거미 ‘아네로시무스’는 이상하고 변덕스러운 행동으로 유명하다. 애써 지은 거미줄을 버리고 전혀 다른 거미줄을 치기 시작하는데, 이 거미줄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 속에 살고 있는 기생 말벌을 위한 것이다. 말벌의 유충이 뱃속에서 부화하면 거미는 죽고, 유충들은 그 몸 속에서 거미줄의 보호를 받으면서 성충이 될 때까지 지낸다. 아네로시무스의 기괴한 행동은 스스로 의지가 아닌 몸 속 말벌에 의해 마치 ‘좀비’처럼 이뤄지는 것이다. ‘죽어도 죽지 못하는 존재’. 공포 영화의 기괴한 모습으로 알려져 있는 좀비는 자연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바이러스, 진균류, 원생동물, 벌, 촌충 등 수많은 생물이 기생을 통해 숙주의 뇌를 조종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국제저널 ‘실험생물학 저널’은 최신 호에서 주요 이슈로 ‘좀비 동물’을 다루며 “생물학계는 이제 기생동물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이 어떻게 다른 동물의 체내에 침입해 뇌를 장악하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를 밝혀내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감염된 거미는 말벌 유충 위한 거미줄 만들어 아네로시무스는 새로운 거미줄을 완벽하게 말벌 유충의 생활에 적합하도록 짓는다. 일반적인 거미줄은 얇고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도 동심원 형태의 규칙성을 갖지만 말벌용 거미줄은 비를 막을 수 있도록 특정 부분을 덧댄 것처럼 두껍게 만들어진다. 나중에 말벌 유충은 이 부분으로 기어가 비를 피하는 동시에 거미줄에 걸린 벌레를 통해 영양분을 쉽게 공급받을 수 있다. 이처럼 거미를 조종하기 위해 말벌은 독특한 단백질을 생산해 숲속 곳곳에 뿌린다. 이 단백질은 숲 속 어디에나 폭넓게 퍼져 있는 바큘로바이러스와 함께 작용해 거미를 감염시켜 번식을 위한 ‘좀비’로 만든다. 사람이 이 바이러스를 먹고 말벌의 좀비가 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바이러스는 거미와 집시나방 등 일부 곤충류에만 작용한다. 집시나방의 경우 나뭇잎 등에 묻어 있는 바큘로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바이러스는 집시나방의 세포를 파고 들어가 ‘높이 올라가라.’는 명령을 내린다. 집시나방이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죽으면 사체는 분해돼 아래쪽으로 뿌려지면서 확산되어 훨씬 더 많은 생물을 바큘로바이러스에 감염시킨다. 집시나방에게 이 같은 명령을 내리는 유전자가 ‘egt’다. egt는 보통 효소 형태로 벌레 내부에서 활성화돼 집시나방의 호르몬을 파괴함으로써 생식이나 탈피 등 일체 체내 활동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집시나방을 바이러스를 위해서 살아가는 ‘좀비’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데이비드 휴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교수는 “일반적인 집시나방은 밤에 나와 먹이를 구한 뒤 나무 아래쪽에 지어놓은 집에 숨는다.”면서 “하지만 egt의 영향을 받은 집시나방은 먹이를 구하는 활동 자체를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헤매다가 나무 꼭대기로 올라 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마치 환상을 보는 것처럼 먹고 또 먹는다.”고 덧붙였다. 숙주의 뇌 속 신경 전달물질 자체를 개조하는 기생동물들도 있다. 흡충(가시머리벌레)이 대표적이다. 흡충은 연못 등에 사는 ‘옆새우’에 기생한다. 옆새우는 일반적으로 진흙 속에서 사는데, 흡충에 감염되면 옆새우는 미친 듯이 헤엄을 쳐서 연못 가장자리의 나무줄기나 바위 위로 몸을 던진다. 나무줄기나 바위 위로 드러난 새우는 새의 먹이가 되고, 이를 통해 흡충은 자신의 후손을 광범위하게 퍼뜨릴 수 있게 된다. 사이먼 헬루이 웨슬리대 교수는 “가시머리벌레가 옆새우에 침입하면 새우의 면역시스템이 여기에 강력하게 저항하며 화학물질을 분비하게 된다.”면서 “가시머리벌레는 면역시스템과 싸우지 않고 최대한 빨리 새우의 뇌로 침입해 세로토닌이 과다 분비되도록 해 면역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킨다.”고 설명했다. 세로토닌은 뇌의 핵심 신경 전달물질이지만 과도하게 분비될 경우 시신경에 문제를 일으킨다. 진흙 속에서 사는 옆새우 신경에 문제가 생기면서 옆새우는 반대로 햇빛을 자신이 사는 암흑으로 인식하고 찾아 헤매게 돼 결국 물 밖으로 뛰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방법은 없어 과학자들은 실험실 수준에서 수백~수천개의 뉴런을 가진 무척추동물의 신경을 조종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사람을 비롯한 척추동물의 경우 수백만~수천만개의 뉴런을 갖고 있다. 특히 각각의 뉴런이 어떤 형태로 연관을 짓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조차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현 단계에서는 사람을 좀비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개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좀비와 같은 이상행동을 보이는 척추동물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원형세포 형태의 기생충에 감염된 경우다. 세포내에서 증식하는 기생세포인 톡소플라스마는 포유류와 조류에 널리 기생하는데 포식자로 숙주를 옮기는 특성이 있다. 흔히 고양이에서 톡소플라스마 감염이 많이 발견된다. 감염된 새나 쥐 같은 작은 포유류를 고양이가 잡아 먹는 먹이사슬을 통해서다. 톡스플라스마에 감염된 쥐는 고양이에 대한 선천적인 두려움을 상실해 더 쉽게 잡아 먹힌다. 이는 톡소플라스마가 숙주 몸 속에서 신경 전달물질인 도파민 생산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도파민이 과다분비된 숙주는 호기심이 더 많아지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된다. ●톡소플라스마 감염땐 정신분열증 유발도 톡소플라스마는 쥐 등 일부 수컷 동물에서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과다분비도 일으킨다. 테스토스테론이 과다분비된 수컷 동물은 암컷을 찾아 번식에 몰두하게 된다. 암컷도 또다른 숙주가 되는 것이다. 모두 기생동물들이 자신의 생존이나 번식을 위해 숙주를 조종하고 있는 사례들이다. 사람도 톡소플라스마의 영향을 받는다. 감염된 고양이를 만지거나 감염된 동물의 고기를 먹고 사람이 감염된 사례가 종종 보고된다. 일부 환자들은 성격이 변하거나,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는 등 톡소플라스마에 의해 뇌를 지배당하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기생동물에서 새로운 치료제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도파민이나 세르토닌을 과다분비시키는 기생동물의 방식은 인류가 개발해 온 각종 의약품과는 접근 자체가 다르다. 아다모 교수는 “일반적인 의약품은 한 종류의 분자나 유전자를 공략하도록 개발되지만 기생동물은 숙주를 치밀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점령한다.”면서 “이는 신약 개발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아주 신기하고도 놀라운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산과 바다, 그리고…” 마음조차 치유되는 일본 힐링여행

    “산과 바다, 그리고…” 마음조차 치유되는 일본 힐링여행

    도시 여행에 싫증을 느꼈거나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가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일본의 시즈오카현(縣)입니다. 특히 빼곡한 산 위로 푸른 녹차 밭이 펼쳐진 후지에다시(市)와 바다가 인접해 수산물이 발달한 야이즈시(市)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수많은 볼거리와 먹거리로 오감을 만족시켜 줄 것입니다. 산과 바다 그리고 물 좋은 온천에서 피로를 풀며 마음조차 치유되는 힐링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편집자주) ●산: 최고급 녹차 옥로차의 고향 시즈오카현은 일본 녹차 생산량의 거의 절반(45%)을 차지하는 일본 최대의 녹차 산지다. 이 중 오카베정(町)은 교토의 우지, 후쿠오카현의 야메와 함께 3대 녹차 생산지로 꼽힌다. 수년 전 후지에다시에 합병된 오카베정의 아사히나(朝比奈) 지역에 있는 교쿠로노 사토(옥로의 마을·玉露の里)은 일본 차 중에서도 최상급 녹차인 교쿠로(옥로)차로 유명하다. 교쿠로차는 찻잎을 따기 최소 2주 전 차밭 전체에 막을 쳐 햇빛을 차단함으로써 녹차의 깊은 맛을 더하고 떫은맛은 줄인다. 이후 건조 과정에서도 독특한 향을 내기 때문에 새로운 맛과 향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마을 내에는 전통 다실 효게츠테이(표월정·瓢月亭)이 있는데 일본식 다다미방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는 교쿠로차는 물론 찻잎을 비비지 않고 말려 가루로 낸 맛차(말차)를 맛볼 수 있다. 원하는 사람에게는 전통차 예법인 다도를 직접 알려주며 정좌가 잘 안 되는 이들을 위해서는 의자석이 준비된 홈 카페를 통해 편히 차를 즐길 수 있다. 입장료는 500엔(약 6400원)이며 여기에는 차와 녹차과자 값이 포함돼 있다. 전통차를 맛봤다면 현대적인 녹차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다. 창업 200여 년에 달하는 차 가공 공장인 신차엔(真茶園)은 일본 최고의 ‘차맛 맞추기 달인’ 마사히코 마츠다 대표가 직접 브랜딩한 차부터 최고급 맛차까지 직접 맛보고 구매할 수 있다. 특히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녹차과자는 선물로도 손색없다. 교쿠로차에 대해 더 관심이 있다면 직접 체험하고 숙박까지 해결할 수 있는 민숙을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마을에서는 네 가수가 민숙 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민숙은 일본의 여관인 료칸보다도 일반 가정에 머무는 홈스테이와 비슷하다. 이곳에서는 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차의 장인’ 오무라 씨가 직접 달여준 차를 맛볼 수 있다. 또한 40~50℃의 건조대 위에서 어린찻잎을 손으로 직접 비벼서 건조하는 테모미(手揉み)를 직접 체험하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테모미차를 기념품으로 가지고 갈 수 있다. 이들 민숙 중 가장 규모가 큰 가족 민숙 아사히나에서는 교쿠로 열매로 열쇠고리를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어느 민숙에 머물러도 1인당 1박 2일에 7000엔(약 9만원)이며 여기에는 체험료도 포함돼 있다. ●바다: 입에서 살살 녹는 참치 일본 다랑어(참치) 어획량의 약 50% 이상을 차지하는 스루가만의 야이즈시. 태평양 앞바다에 인접한 이 수산 도시는 다랑어, 가다랑어 등과 함께 벛꽃새우 등 수산물 자원이 풍부하다. 지역 내 야이즈항에서는 주로 원양에서 채취된 가다랑어와 다랑어가, 인근 고가와항에서는 근해에서 채취된 고등어와 전갱이 등이, 오이가와항에서는 치어와 잔 새우 등이 어획된다. 특히 이들 수산물이 집결되는 야이즈 수산물센터(사카나센터)에는 70개에 달하는 전문 점포가 입점하고 있다. 갓 잡아올린 신선한 어패류부터 수산 가공품, 초밥, 회 덮밥 등 생선을 이용한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어 야이즈시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손꼽힌다. 또한 현지에서는 정갈한 참치회가 일품인 마츠노 스시, 가다랑어나 가쓰오부시, 젓갈 등 수산 가공품이 잘 팔리는 누카야 사이토 상점 등이 유명하다. ●온천: 다양한 숙박시설 후지에다시와 야이즈시는 일본 에도시대부터 전통의 도시 교코와 도쿄(옛 에도)를 잇는 중요 도로인 토카이도(동해도·東海道)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몸에 좋은 약알칼리성 온천이 흔해 예로부터 숙박업이 발달했다. 오카베를 대표한 오하타고 카시바야(대형객주 카시바야)는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현재는 역사적인 가치를 알리기 위해 역사 자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120년 전통의 일본 전통 여관인 쵸세칸은 풍광이 아름다운 전통 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따라서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본관과 별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건물 곳곳에는 쇼와시대(1926~1989년)의 장인들의 기술과 정신,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곳에는 도쿠가와 막부(幕府)의 마지막 쇼균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즐긴 것으로 유명한 시다 온천이 있다. 해안도시 야이즈에는 스루가만과 함께 후지산이 보이는 호텔 암비아 쇼쿠카쿠가 유명하다. 이 같은 절경은 모든 객실과 노천탕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야이즈시의 온천 숙박시설인 미노야는 야이즈항의 평온한 일상을 맛볼 수 있는 휴식의 공간으로 손색없다. ●보너스: 술과 맛집 술과 맛집 또한 일본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특히 후지산의 맑은 물은 최상급의 술을 만드는 양조산업의 발달을 초래했다. 이 지역에서는 일본 전국 사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시다이즈미 양조장이 있다. 4대째 내려오고 있다는 유지로 모치즈키 씨가 운영하는 이 양조장의 사케는 독특한 향과 맛으로 지역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준마이다이긴조는 생산되기 무섭게 팔린다고 한다. 또한 야이즈시에는 일본의 유명 맥주인 삿포로의 시즈오카공장이 존재한다. 이곳에는 맥주 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소와 전문 스태프의 해설을 통해 맥주의 역사와 자료, 제조방법의 특징, 등을 알 수 있다. 특히 맥주를 더욱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맥주 따르는 비결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세미나를 듣기 위해선 사전에 예약을 해야하며 가격은 1인당 500엔이다. 끝으로 후지에다시에서는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일본의 선술집인 이자카야의 원조를 경험할 수 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이자카야는 매년 일본 전국 이자카야 그랑프리대회에 출전하고 있으며 이 중에는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메뉴인 삼겹살 꼬치를 선보이는 선술집도 있다. ●팁 ▲맛집 및 볼거리 후지에다시에는 일본의 전통 사찰요리인 정진요리를 맛볼 수 있는 수월암과 일본식 라면인 라멘으로 유명한 아사라면이 숨겨진 맛집으로 통한다. 또한 국내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단벌레를 이용해 장신구를 만드는 공방 체험도 가능. 야이즈시에는 3대째 대어(만선) 깃발을 제작하는 다카하시 염색점에서 전통 염색을 체험할 수 있다. ▲ 항공편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이 매일 한 차례씩 인천~시즈오카 직항편을 운항. 2시간 10분 소요. 도쿄에서는 신칸센과 JR 도카이도 본선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다. ▲대중교통 이용 시 주의사항 버스: 두 도시가 속한 시다 군(郡)은 뒷문으로 승차한다. 탑승 시 왼쪽 표를 뽑아 내릴 때 요금(버스 정면에 표시)과 함께 낸다. 이동거리가 길수록 요금이 올라간다. 잔돈은 나오지 않음으로 요금을 내기 전 환전이 필수다. 기본요금은 210엔(운영회사마다 다르다.) 택시: 뒷문은 자동으로 열리고 닫힌다. 시다지역은 정해진 곳 외에서는 승차할 수 없다. 택시 정류장이 없는 곳에서 택시를 이용하고 싶은 경우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시다지역 택시 기본요금은 630엔. ※보다 상세한 내용은 아시아나항공연합사(투어2000, 롯데관광, 노랑풍선, 레드켑투어, SK투어비스, 참좋은여행, 세계KRT, 롯데JTB)를 통해 상담받을 수 있다. 취재협조=후지에다시 관광협회, 야이즈시 관광협회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구글 안경 비켜”…스마트 콘택트렌즈 나온다

    “구글 안경 비켜”…스마트 콘택트렌즈 나온다

    앞으로는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SNS)나 기타 정보를 눈에 낀 콘택트렌즈를 통해서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벨기에 겐트대학의 허버트 드 스메트 교수팀이 콘택트렌즈 등에 사용할 수 있는 구면곡선 LCD 디스플레이를 개발했다. 기존의 일반 디스플레이는 렌즈처럼 둥글게 만들 수 없으므로 극도로 얇은 구면곡선의 기판을 제작해 극단적인 성형 공정을 견디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즉 사용자의 정상 시야에 문자와 이미지를 겹쳐서 표시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또 이 기술은 렌즈 표면 전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문자나 이미지를 더욱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아직 영화 스크린을 대신할 정도는 아니지만 구글이 개발 중인 스마트 안경처럼 휴대전화에 뜬 문자나 거리 안내판에 나타난 그림 등을 전송해 사람의 눈에서 직접 비출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한 연구진은 이 기술이 컬러 렌즈를 착용하지 않고 이 렌즈만으로 눈동자 색을 즉시 바꾸며 햇빛을 차단할 수 있는 선글라스의 역할까지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수년 안에 상용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사진=IMEC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할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12가지 방법(김인자 글, 윤문영 그림, 파랑새 펴냄) 주름진 얼굴과 손, 구부정한 허리, 가래 끓는 걸걸한 목소리…. 우리에게 할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군고구마를 함께 먹고,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그냥 꼭 안아드리고. 작가는 이름도 생김새도 다른 세상 할아버지들을 기쁘게 할 다양한 방법들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다. ‘오란씨’, ‘고래밥’ 등을 히트시킨 CF감독 출신 윤문영 화백이 그림을 덧입혔다. 1만 3000원. ●검은 점(왈리드 따히르 글·그림, 공지현 옮김, 여유당 펴냄) 어느 날 아침, 놀이터 한가운데에 떡 버티고 선 엄청나게 커다란 검은 점. 놀이터는 둘로 갈리고, 집에는 햇빛도 안 들어오고…. 아이들은 신기한 점이 뭘까 궁리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유성, 화가의 펜에서 떨어진 잉크라는 등 의견이 갈리지만 정작 검은 점을 없앨 방법은 찾지 못한다. 아이들의 엉뚱한 상상이 웃음을 자아낸다. 1만 2000원.
  • 남녀의 시선 차이 입증…실험 과정 살펴보니

    남녀의 시선 차이 입증…실험 과정 살펴보니

    무언가를 볼 때 남녀의 시선은 서로 다른 곳으로 향한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영국 브리스톨대학의 펠릭스 머서 모스(박사 과정)가 이끈 연구진이 남녀 52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실험을 시행한 결과, 주목하는 장소나 시선을 이동하는 범위가 남녀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고 지난달 30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플로스원을 통해 발표했다. 이번 실험에서 연구진은 영화와 다큐멘터리, 회화 등의 다양한 사진을 19~47세의 남녀 두 그룹(각 26명)에게 제시하고 그 시선을 기록했다. 실험에 사용된 이미지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인사이드 맨’, 다큐멘터리 ‘블루플래닛’ 의 한 장면과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햇빛 아래 사람들’(People in the Sun), 데이비드 보워스의 ‘삼미신’(Three Graces) 등이다. 시선은 1~5개소의 ‘핫스팟’에 모였는데 주로 사람의 얼굴 중 눈과 신체 일부로는 손 등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성은 남성보다 보는 영역이 좀 더 넓고 남성이 주시하는 위치보다 약간 아래쪽 얼굴과 이외의 부분에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머서 모스는 “이는 위험을 피하고 싶은 심리 상태가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는 서양 문화에서 상대를 응시하는 행위는 위협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여성은 상대방과 눈을 맞추는 행위가 무의식적으로 위험하다고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따라서 얼굴을 볼 때 남성보다 낮은 위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남녀의 시선에 관한 연구는 기존에도 여러 차례 진행됐다. 하지만 감정을 표현한 얼굴과 성적으로 도발하는 듯한 사진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이어 이번 연구에서는 일반적인 시각 자극에도 남녀 차이가 나타난다는 가설을 세웠고 이를 입증했다고 이들은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에 대해 영국 이스트앵글대학의 사회인지 연구가인 앤드루 베일리스는 앞으로의 추가 연구가 기대된다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다음 과제는 원인의 규명”이라고 말했다. 사진=플로스원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토성에 부는 지옥같은 ‘소용돌이 슈퍼폭풍’ 포착

    토성에 부는 지옥같은 ‘소용돌이 슈퍼폭풍’ 포착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릴듯한 무시무시한 소용돌이 슈퍼 폭풍이 토성에서 포착됐다. 지난 27일 토성에서 탐사 중인 카시니호는 지상 40만km 상공에서 생생한 모습의 소용돌이 슈퍼 폭풍을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토성의 북극 지방을 강타한 이 슈퍼폭풍은 1600km 크기로 1700km/h 속도 이상으로 부는 것으로 추정된다. NASA 관계자는 “몇년 전에도 이같은 장면이 목격된 바 있으나 당시에는 어두워 적외선 파장으로만 촬영됐다.” 면서 “이번에는 햇빛 덕분에 생생한 슈퍼 폭풍의 모습을 촬영하는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1997년 지구를 떠난 카시니호는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기구(ESA)가 공동으로 개발한 인류 최초의 토성 탐사선이다. 카시니호는 지난 2004년 무사히 토성궤도에 안착한 후 본격적으로 토성의 비밀을 벗겨내기 시작했으며 그간 토성 고리의 고해상도 사진과 위성 타이탄을 탐사하는 굵직한 성과를 올렸다.    사진=NASA 인터넷뉴스팀 
  • 임신 중 햇빛 받으면 태아의 ‘이것’ 발병률 감소

    임신 중인 여성이 햇빛을 받거나 비타민 D를 섭취하면 태아에게서도 다발성경화증(MS) 등의 질환에 관한 발병률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런던 퀸메리대학의 스리람 라마고팔란 박사팀이 15만 2000건의 출생월별 자료를 비교했다. 그 결과, 10~11월에 태어난 유아의 다발성경화증 발병이 5~10% 낮으며, 4~5월에 태어난 아이의 경우에는 5%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여성이 임신 기간 동안에 태양에 노출된 영향에 의한 것이라고 연구진은 보고 있다. 다발성경화증 등의 질환을 예방하는 비타민 D는 자외선을 받으면 그 생성이 촉진된다.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 다발성경화증 환자가 많은 것이 위도 효과로도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임신 중에도 충분한 태양광을 받는 것이 태아의 건강에 중요하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밖에도 비타민 D가 부족하면 당뇨병, 천식, 유아 심장병과도 관련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고 한다. 영국의 건강연구포럼은 햇빛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비타민 D의 영양제를 추천하고 있다. 라마고팔란 박사는 “1일 1000IU(국제단위)의 비타민 D 복용은 임산부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다발성경화증 등의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다발성경화증은 중추신경계의 탈수초성 질환(신경세포의 축삭을 둘러싸고 있는 절연물질인 수초가 탈락되는 질병) 중 가장 흔한 유형이다. 이 질환으로 수초가 벗겨져 탈락된다면 신경신호의 전도에 이상이 생기고 해당 신경세포가 죽게된다. 증상으로는 무감각이나 얼얼한 느낌, 화끈거림이 국소적으로 나타나며 신체의 일부가 마비되기도 한다. 또한 통증이 동반된 시력 저하나 시야 흐림 등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많이 재발하며 반복될수록 완전히 호전되지 않고 장애가 남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발병률이 낮은 편이지만 미국에서는 300만명 이상의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신경학-신경외과학-정신의학 저널’(Journal of Neurology, Neurosurgery and Psychiatry)‘에 실렸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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