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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디컬 인사이드] 국민 절반이 ‘안경’…우리 아이 근시 왜 생겼을까

    [메디컬 인사이드] 국민 절반이 ‘안경’…우리 아이 근시 왜 생겼을까

    어릴 때부터 실내에서 주로 생활잠자기 전 TV·조명 반드시 끄고매일 충분한 햇빛 받으면 예방 가능 우리나라 국민 중에 안경을 착용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대한안경사협회가 만 19세 이상을 설문조사한 결과 54.6%(콘택트렌즈 포함)에 달했습니다. 안경 착용률은 1987년 조사에서 24.0%였습니다. 30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특히 근시 때문에 안경을 착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습니다. 왜 근시 환자가 급증했을까. 9일 전문가들에게 물었습니다. 김응수 건양대 의대 김안과병원 교수는 “환경적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실내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늘면서 근시가 급증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도시 초등학생과 농촌 지역 초등학생의 근시 비율을 조사해 보면 도시 지역에서 높게 나타납니다. 주말에도 계속되는 학원 생활과 실내 활동의 영향입니다. 최근 근시 발생률이 일부 주춤하는 경향도 있지만 청소년의 스마트폰 이용 시간이 급증하고 있어 여전히 환경적 위험이 높은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닙니다. 한때 청소년 근시 비율이 80%에 달한 싱가포르에서는 청소년의 야외 활동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근시의 주원인은 ‘실외활동 부족’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는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노력이 맞물려 취학 시기부터 학습량이 급격하게 늘어납니다. 빛이 눈에 도달하는 시간이 줄어 망막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분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안구 성장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성진 순천향대 서울병원 안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 결과를 보면 근시를 완전하게 예방하기 위해서는 최소 1만 룩스(빛의 밝기를 나타내는 단위)의 빛을 매일 쬐어야 한다고 돼 있다”며 “실내는 채광이 아무리 잘 돼도 500룩스에 그치기 때문에 근시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고 경고했습니다. 미국 안과학회 연구에서도 근시 어린이가 정상 시력이나 원시를 가진 어린이와 비교해 야외 활동 시간이 일주일 평균 3.7시간 적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야외 활동이 1시간 늘어날 때마다 근시 위험도가 2% 정도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지난해 교육부 조사에서 초·중·고 학생 시력 이상(나안시력 0.7 이하) 비율은 54.7%나 됐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은 26.7%였지만 고등학교 1학년은 71.4%로 크게 높아졌습니다. 김 교수는 “근시는 안구가 성장하는 20세까지 서서히 나타난다”며 “초등학교 때 근시가 없다가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생기는 사례도 있기 때문에 학년이 높아질수록 근시 비율이 급증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근시가 심해지면 어떻게 될까. 근시가 생기면 안구가 커지면서 앞뒤로 늘어납니다. 고무풍선을 불면 크기가 커지면서 두께는 얇아지는 형태와 같습니다. 이때 안압이 상승해 시신경이 눌리거나 혈액 공급에 문제가 생겨 시신경 기능 이상이 나타나는 ‘녹내장’ 위험이 높아집니다. 안구의 안쪽을 덮고 있는 얇고 투명한 신경조직인 ‘황반’이 손상돼 ‘근시성 황반변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교수는 “안구가 커지면 눈 속에 벽지처럼 발라져 있는 ‘망막’이라는 필름이 같이 늘어나게 돼 얇아진다”며 “이때 구멍이 생기면서 망막박리가 올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질병은 주로 중·고령자에게 많이 나타나지만 고도근시가 있으면 청년층에서도 생길 위험이 있습니다. 근시는 원래 유전적 영향이 강합니다. 유전적으로 취약한 아동에게는 미리 좋은 생활 습관을 지키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눈의 피로’에 주목합니다. 특히 야간에 충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김 교수는 “밤에 TV나 조명을 켜 놓고 자면 빛 자극이 계속돼 눈의 피로도가 높아진다”며 “이는 근시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닭을 이용해 실험한 결과 야간에도 오랜 시간 빛 자극을 받은 닭의 안구가 근시 환자처럼 앞뒤로 길어졌다고 합니다. 김 교수는 “조명이나 TV를 켜고 자는 습관은 눈 건강에 좋지 않다”며 “나도 잠을 잘 때는 가급적 안대를 하고 눈에 충분한 휴식을 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자주 이용하는 것도 눈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이동하면서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은 더 위험합니다. 흔들리는 화면을 보고 있으면 초점을 계속 바꿔야 하기 때문에 눈의 피로도가 급격히 높아집니다. ●전문가 “스마트폰보단 차라리 TV를 봐라” 김 교수는 “영상을 꼭 봐야 한다면 차라리 화면이 크고 고정된 TV를 보라고 한다”며 “걸어다니면서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게 전문의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집중해서 보면 안구건조증도 심해집니다.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한다면 인공눈물을 이용하거나 집 안의 습도를 조금 더 높여 주는 방법이 좋습니다. 가을이나 겨울에는 건조하기 때문에 습도에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아이의 눈 건강을 챙기기 위한 적당한 검진 시기는 ‘1·3·6’ 원칙을 따르면 됩니다. 김 교수는 “만 1세에는 사시나 백내장 등 선천성 질환을 감별할 수 있다”며 “만 3세는 근시나 원시, 약시가 심한지 구분하기 좋은 시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취학 전인 6세에 성인에 가까운 시력이 자리잡으면 또 한번 검사합니다. 이후에는 근시가 심할 경우 6개월, 그렇지 않으면 1년에 한번 정도 검사를 받으면 됩니다. 이 교수는 “눈을 심하게 깜빡거릴 때, 책이나 TV를 가까이 보거나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볼 때, 사시가 있는 것처럼 보일 때 눈 검진을 하면 된다”며 “근시가 있으면 6개월 간격으로 검사를 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습니다. 눈 건강을 위해 특별한 식품을 찾는 분들이 많은데 깨끗한 물과 노화 예방에 도움이 되는 채소나 과일, 영양성분이 골고루 들어 있는 잡곡 등의 식품을 골고루 드시면 됩니다. 김 교수는 “근시를 막는 식품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 없다”며 “그나마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해 노화를 예방하는 식품이 눈 건강에 좋다는 것이지 치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최근에는 약시 치료제인 ‘아트로핀 점안액’이 근시 진행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공확대로 인한 눈부심 증상이 생길 수 있고, 이상 반응이 나타날 수 있어 12세 미만 아동에게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드림렌즈’도 하루 6시간 이상 착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진행을 다소 늦출 뿐 완벽한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과신해서는 안 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모리사와, 한글디자이너 최정호 선생 서체 14종 복원 성공

    모리사와, 한글디자이너 최정호 선생 서체 14종 복원 성공

    대한민국 1세대 한글 디자이너 고(故) 최정호 선생(1916~1988)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시 및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정호 선생은 한글 명조체와 고딕체 원형을 만든 1세대 한글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이에 주식회사 모리사와는 5일 “최정호 선생이 개발한 서체를 디지털 복원했다”고 밝혔다. 복원된 그의 서체는 일반에게 공개 된다. 이번에 모리사와가 복원한 최정호 선생 한글 서체는 중명조, 태명조, 중고딕, 견출명조, 견출고딕 등 총 14종이다. 특히 이번에 복원된 서체는 "글자란 사상이나 뜻을 전달하는 도구. 읽는 사람이 피로감을 느끼지 않게 디자인 되어야 한다"는 최 선생의 글씨 철학이 투영된 서체여서 관심을 끈다. 1970년대 최정호 선생은 모리사와와 함께 사진 식자기에 사용 될 한글 서체를 개발했다. 하지만 1988년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그가 개발한 서체는 세간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으나, 이번에 모리사와가 서체를 디지털화 작업하면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선생의 서체가 다시 햇빛을 보게 됐다. 최정호 선생의 서체 복원 소식을 접한 현직 디자이너들은 "선생의 서체를 언젠가는 꼭 한번 사용해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그 날이 왔다"며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모리사와의 한국현지법인인 모리사와코리아는 오는 10월 5일 타입스퀘어를 통해 이번에 복원한 최정호 폰트 14종의 프로토타입을 일반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In&Out] 태백산국립공원 대규모 벌채 꼭 필요할까?/김준순 강원대 산림과학부 교수

    [In&Out] 태백산국립공원 대규모 벌채 꼭 필요할까?/김준순 강원대 산림과학부 교수

    태백산이 지난 8월 우리나라의 2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태백산국립공원 면적은 총 70.1㎢로 기존 도립공원과 비교해 4배 정도 커졌다. 하지만 국립공원 승격에 대한 기대감도 잠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태백산국립공원 면적의 11.7%(8.2㎢)에 대한 대규모 수종갱신(벌채)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일본 잎갈나무(낙엽송)가 이질감을 일으키기 때문에 토종 수종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면적(2.9㎢·윤중로 제방 안쪽)의 2.8배에 이르는 대규모 산림을 벌채하는 게 타당한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분명한 점은 태백산의 낙엽송이 도입수종이기 때문에 베어 내겠다는 게 무리라는 것이다. 낙엽송은 국내 도입(1914년) 100년을 넘겨 이미 국내 생태계에 토착화된 수종이다. 도입수종 제거는 기후·토양 등의 조건이 맞지 않아 정상적 생육에 실패하거나 생태계에 교란을 일으킬 때 선별적으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최초의 도입 목적에 맞게 잘 자라고 있고 국내 생태계에도 조화를 이룬 낙엽송은 제거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태백산국립공원 내 낙엽송은 대부분 1960∼1970년대 국토 녹화사업 시기 정부 주도로 적극 식재됐다. 당시에 심었던 낙엽송은 빠르고 곧게 자라는 우수한 형질 덕분에 국내 목재산업계에서 핵심자원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산림청에서도 주요 조림 수종으로 분류해 나무 심기를 권장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작은 나무 생장 저해 등을 이유로 벌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생태적으로 나무가 자라 그늘을 만들면 햇빛 차단으로 하층식생 생장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는 수종을 불문하고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게다가 낙엽송은 ‘낙엽’ 침엽수로서 다른 ‘상록’ 침엽수보다 햇빛 차단 시기가 짧아 하층식생에 주는 영향이 오히려 적다. 기후변화시대에 대비해 벌채해야 한다는 주장도 생각해 보자. 나무의 나이가 많으면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오래된 나무를 벌채해 어린 나무로 재조림하자는 논리다. 물론 타당성이 있다. 어린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많이 흡수할 수 있고, 벌채한 나무를 목재 건축이나 친환경 바이오매스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산림관리 핵심인 ‘국유림경영계획’(법정계획)에 따르면 태백산 낙엽송은 대부분 아직 벌채할 단계가 아니라 우량한 목재 자원으로 키우기 위해 숲가꾸기를 시행해야 할 단계에 있다. 그렇다면 태백산 낙엽송은 어떻게 관리돼야 할까. 지속가능한 산림자원 관리지침에서는 수종갱신을 하더라도 생태적·경관적 관점에서 ‘모두베기’ 대신 ‘솎아베기’를 권장하고 있다. 특히 해당 지역은 국유림경영계획상 원칙적으로 모두베기가 금지된 곳으로, 벌채가 필요한 경우에도 5㏊(0.05㎢) 미만의 소규모 벌채만 가능하다. 따라서 추후 벌채를 해야 할 단계에 도달하더라도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일방적인 벌채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립공원 관할 부처는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이지만 논란이 된 태백산 낙엽송 대부분은 산림청 관할 국유림으로 ‘국유림경영계획’에 따라 관리되는 게 맞다. 우리는 계층 및 집단 간의 이해 갈등을 줄이기 위한 협치가 강조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규모 벌채를 계획한다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환경부·산림청, 지역주민과 전문가 등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태백산에 대한 중장기 발전 방향에 대해 함께 지혜를 모으는, 한 템포 늦춘 행정을 기대해 본다.
  • [와우! 과학] 스티븐 호킹 박사는 왜 외계인을 두려워할까?

    [와우! 과학] 스티븐 호킹 박사는 왜 외계인을 두려워할까?

    지구 행성인이 외계인이나 외계문명과 접촉하려는 시도는 아주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한 적이 있는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또 같은 경고를 반복했다고 우주 전문 사이트 스페이스닷컴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유명한 천체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은 지능이 높은 외계인들이 약탈할 대상을 찾기 위해 우주를 돌아다니며 다른 문명을 약탈하고 그 행성을 식민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이미 2010년에도 경고한 바 있다. 그는 16세기 구대륙 유럽인들이 신대륙으로 건너와 한 잉카를 멸망시킨 만행 등을 보면 충분히 그럴 개연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호킹 박사는 이러한 주장을 큐리어시티 스트림의 한 다큐 프로에 나와 되풀이했다. 호킹 박사는 "어느 날 우리는 글리제 832c 같은 행성으로부터 어떤 신호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글리제 832c은 생명체가 생존 가능한 제2지구 후보로 꼽히고 있는 행성이다. 호킹박사는 "하지만 우리는 응답을 미루어야 한다. 선진문명과의 접촉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아메리카 신대륙의 사람들이 콜럼버스 일행을 만난 것만 봐도 분명하다. 그 결과가 아주 좋지 않았잖은가"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호킹의 우려에 대해 일부 천문학자들은 지나친 생각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지구인들은 이미 1900년 무렵부터 라디오와 TV전파를 우주로 쏘아보내고 있으므로, 만약 지구까지 올 수 있는 선진문명이 있다면 벌써 지구인의 존재를 잘 파악하고 있을 거라는 게 그들의 논리다. 또한 지구까지 올 수 있는 선진문명이라면 그들의 힘으로 어떤 것이든 해결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지구에서 약탈할 만한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 반대론자들이 생각이다. ​ 외계인 관련 대목은 이 다큐 프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26분짜리인 이 동영상 프로는 호킹이 'S. S. 호킹'이라는 CGI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누비는 광경을 보여주는 5개의 단락으로 이뤄져 있다. 호킹은 우주선을 타고 우주 탄생의 기원인 빅뱅을 목격하기도 하고,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무시무시한 블랙홀을 방문하기도 한다. 또한 제2지구인 글리제 832c 외계행성으로 여행하며, 우리 태양계에 있는 토성을 관광하기도 한다. 호킹이 탄 S. S. 호킹호의 마지막 종착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버라다. 호킹은 이곳을 "마치 내 집 같은 곳이야" 하면서 환호한다. "1974년,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잠시 일했지" 하고 호킹은 다큐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땐 정말 좋았어. 캐임브리지의 흐린 하늘 아래서 살다가 햇빛 환한 이곳에서 가족들과 행복했었지. 지구 곳곳을 다녀봤지만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어."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꿈의 빛’ 4세대 방사광가속기 시대, 우리 손으로 열었다

    ‘꿈의 빛’ 4세대 방사광가속기 시대, 우리 손으로 열었다

    ‘1000조분의1초’ 미세구조 분석 맞춤형 신약·신소재 개발 등 활용 朴대통령 “인류의 미래 밝힐 것”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물질의 미세구조와 현상을 관측하게 될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29일 가동에 들어갔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다. 신약과 신소재, 청정에너지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도가 높은 거대 연구시설이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포스텍은 이날 오전 포스텍 부설 포항가속기연구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4세대 방사광가속기 준공식을 열었다.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킨 뒤 강력한 자기장을 지나게 하면 빛(방사광)이 방출되는데 이를 활용하는 장치가 방사광가속기다. 햇빛보다 100경(京)배 밝고 0.1나노미터(㎚) 파장의 X선 레이저를 발생시켜 펨토초(1000조분의1초) 단위로 물질의 미세구조와 변화를 관측할 수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 단백질이 세포막을 뚫고 들어가는 찰나와 물이 수소와 산소로 분해되는 순간까지 관찰할 수 있게 된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 구축을 주도한 포스텍은 1995년부터 운용한 3세대 방사광가속기보다 더 많은 전자를 만들어 내는 전자총을 자체 기술로 설계 제작했다. 포스텍은 지난 4월 14일 4세대 방사광가속기에 설치한 전자총 시운전을 시작해 이틀 만에 목표치인 6메가 전자볼트(MeV) 에너지를 가진 전자빔을 발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6MeV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1.5V 건전지 400만개가 내는 에너지와 맞먹는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하면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살아 있는 세포와 질병 단백질의 구조를 정확히 분석해 맞춤형 신약 개발이 가능해진다. 또 현재까지 구조가 완벽히 밝혀진 단백질은 전체의 5%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95%에 이르는 미지의 단백질 구조 연구가 이뤄진다면 치매, 당뇨, 유전자 질환은 물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기술 개발과 의약품복합체 연구에도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극자외선 레이저 광원(光原) 개발도 가능하기 때문에 데이터 저장과 처리능력이 한층 향상된 고집적 반도체 소자 개발도 가능해진다. 식물의 광합성은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이뤄지는데 이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해 인공광합성 연구도 할 수 있게 된다. 태양전지, 연료전지, 수소저장장치 같은 친환경 에너지 개발의 기술적 어려움을 뛰어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준공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광합성과 화학반응을 비롯해 그동안 인류가 풀지 못한 우주와 생명의 비밀을 푸는 열쇠이자 미래 신산업 선점에 필수적인 핵심 인프라”라며 “포항에서 만들어질 ‘꿈의 빛’이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는 물론 인류의 미래를 환히 밝힐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격려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나가 서울신문이랑 인연이 아주 깊지라. 대학교 1학년 때 문무대를 들어갔는데 서울신문에서 파란 눈 외국인 학생이 입소했다고 나를 대문짝만 허게 써줘붑디다. 그래서 나가 지금도 서울신문을 상당히 좋아허요.” 190㎝ 장신에 정말로 솥뚜껑만 한 손.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실린 전라도 사투리가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는 듯하다. 지난 9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실에서 만난 인요한(57)은 대뜸 벽에 걸린 붓글씨를 가리키며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地不如順天’(지불여순천). “기름지고 풍성한 땅은 순천만 한 곳이 없다”며 흥선대원군이 썼던 표현이다. 전라도 출신이라는 사실에 그렇게 자부심을 느끼고, 그렇게 소리높여 말하기로는 그만한 사람이 없을 성싶었다. 그는 기자를 만나서도 첫마디를 예의 “전라도 순천 촌놈 인요한입니다”로 시작했다. -“거짓으로 신고한 게 탄로 나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냥 추방당하는 걸로 끝날까, 혹시 남조선 첩자로 몰려 정치범 수용소 같은 데 끌려가는 건 아닐까.” 1997년 1월 21일 중국 선양을 떠나 북한으로 들어가는 기차 안. 창밖으로 보이는 하얗고 차가운 풍경처럼 내 마음도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남한에서 의사로 일한다고 하면 못 들어오게 할까 봐 선양 주재 북한대표부에 ‘미국 거주자’라고 허위 신고를 해 겨우 방북 허가를 받은 터였다. 한참을 달려 북·중 국경인 압록강에 다다르자 강둑에서 북한 아이들 네댓 명이 드럼통에 불을 지펴 놓고 앉아 까르륵거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의 시커먼 검댕도 지우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갑자기 왈칵 눈물이 솟았다. 순천에서 천둥벌거숭이로 지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고, 북한에도 남한과 똑같이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데서 솟구친 가슴 벅찬 느꺼움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 집안은 1959년 전북 전주에서 내가 태어나자마자 순천으로 터를 옮겼다. 내 이름이 한국어로 인요한, 영어로 존 린턴인데 사람들은 내 영어 이름 ‘존’을 따서 ‘짠이’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매곡동 일대를 내 집 마당처럼 휘젓고 다녔는데, ‘매곡동 짠이’라고 하면 모르는 동네 사람이 거의 없었다. 생김새가 다른 서양 아이여서도 그랬지만, 워낙 동네 구석구석을 망아지처럼 훑고 다녔기 때문이다. -나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가문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더욱 분명한 내 정체성은 전라도 사람이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순천 촌놈입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을 웃겨 보려고 일종의 개그를 하는 걸로 생각하는 이도 없지 않지만, 그건 나의 진정성을 전혀 모르는 탓이다. -둘째 형 스티븐 린턴(인세반)은 진외조부의 이름에서 딴 북한지원단체 유진벨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일성 주석을 세 차례나 만났으며 대북 의료 지원에 앞장서 왔다. 셋째 형 제임스 린턴(인야곱)은 건축가로서 다양한 형태로 북한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형제가 이렇게 북한 지원 활동을 하는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는데, 아버지가 이 땅에서 했던 활동을 보고 자연스럽게 그 일을 우리의 숙명으로 인식하게 됐다. -우리 집안과 한국과의 인연은 동학농민혁명 이듬해인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 유진 벨이 27세의 젊은 나이에 조선으로 파송됐는데, 이분이 나의 외증조할아버지다. 그는 조지아 공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첫 출근을 하러 기차를 타고 가다가 ‘이것은 나의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선교에 뛰어들었다. 벨 할아버지는 광주와 목포 지역을 중심으로 교회와 학교를 짓고 병원을 열었다. 그의 사위 윌리엄 린턴은 선교와 의료를 넘어 항일운동에도 뛰어들었다. 3·1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국제사회에 조선 독립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추방되기도 했다. 그분의 아들이자 나의 아버지인 휴 린턴도 부친의 뜻을 좇아 평생을 전라도 농촌과 도서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당시 심각했던 결핵 퇴치 운동으로 많은 생명을 구했다. -부모님의 가장 큰 고민은 우리들의 교육 문제였다. 형들은 순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 못했다. 아버지가 장로교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들어가 형들이 잠시 미국 학교에 다니게 됐는데, 그때 초등학교 3학년이던 형의 담임선생이 어머니를 불러 “이 댁 아이들의 영어 수준이 유치원생만도 못하다”고 한 데 충격을 받고서 한국에 돌아와 막내인 나는 학교에 보내지 않고 동료 선교사의 부인에게 일대일 개인지도를 받도록 했다. 그래서 나는 미국의 통신학교 교재를 이용해 영어, 수학, 사회 등을 배웠다. -열세 살 때인 1972년 9월 나는 커다란 가방 두 개를 들고 뜨거운 늦여름 햇빛을 받으며 대전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대전외국인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처음으로 고향을 떠난 것이다. 대전외국인학교는 당시 대전대(지금의 한남대) 뒤편에 있었다. 학교생활은 지겹기 짝이 없었다. 대전외국인학교는 아주 엄격하고 보수적인 기독교 학교였다. 아마 사관학교 생도들보다도 지켜야 할 규칙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매곡동 짠이’ 시절만 해도 ‘크면 엿장수가 돼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맛있는 엿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가위질로 박자를 맞추는 저 직업은 얼마나 멋진가.’ 염소를 매어 두려고 박아 놓은 꼬챙이들을 뽑아서 엿장수에게 몽땅 가져다주고 엄청난 양의 엿을 얻었다가 혼찌검이 난 적도 있었다. 그러다 생각이 바뀐 건 열 살 무렵이었다. 염소가 개에게 물려서 치료하는 과정을 고개를 받치고 지켜보는데, 당시 아버지 친구이자 내가 존경하던 장로 선생님께서 “불쌍하지? 염소도 이런데 돈도 없고 아픈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하겠니”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비로소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됐다. 좀 더 나이를 먹고는 어머니 로이스 린턴(인애자)의 결핵 퇴치 사업을 곁에서 지켜보며 마음을 완전히 굳혔다. 내 목표는 연세대 의과대학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조국인 미국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반쪽짜리밖에 되지 않는다”며 미국 대학에 들어갈 것을 권했다. 나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 진학했지만, 생활이 영 편치 않았다. 어서 빨리 공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일단 한번 지내 보기로 아버지와 약속했던 1년간의 미국 생활이 끝나고 나는 미련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1979년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등록했는데, 6개 레벨의 수업 중 나에게 맞는 단계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글쓰기는 형편없는데 말은 너무도 유창하게 하니 어느 수준에 맞춰야 할지를 정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1980년 연세대 의예과에 정원외 입학을 했다. 한국 나이로 스물두 살. 동기들보다 두어 살이 많았다. 나의 대학 입학은 한국의 신군부 독재와 함께 시작됐다. 대한민국은 기나긴 박정희 시대가 끝났지만, 새로운 독재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몇 달 전 10·26이 터졌을 때 한국이 민주화를 이룰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해 5월 친구와 함께 남해에 놀러 가는 중이었다. 버스가 광주 근처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한 청년이 차에 올라탔다. 청년은 “여러분,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선량한 사람들이, 아주 많은 사람이, 계엄군에게 죽었습니다. 이럴 수는 없는 겁니다. 여러분!” 그의 말은 두서가 없었지만 간절했다. 정든 고향 순천의 거리 역시 흉흉했다. ‘대체 무슨 일이 터진 거지?’ 조선대와 전남대에 다니던 친구들이 끔찍한 얘기를 들려줬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눈으로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광주에 갔다. 만약 검문에 걸리면 나는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이고, 한국인 친구는 나의 통역이라고 말하기로 했다. 광주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장례식장 같았다. 파괴된 도시, 분노로 일그러진 시민들의 얼굴. ‘왜? 그리고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나?’ 전남도청 앞 상무관에는 60구 정도의 시신이 안치돼 있었고 시신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수천 명 모여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확성기를 들고 “왜 내 아들이 국군의 총에 죽어야 했나요”라며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한 외신기자가 나를 보고는 통역을 요청했고 나는 흔쾌히 응했다. 이를 본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각국 기자들이 줄줄이 내게 통역을 부탁했다. 시민군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북으로 향해야 할 총부리가 남으로 향해 우리의 가족과 선량한 시민을 죽였다”며 분노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영어로 옮겼다. 또 외신기자들의 질문을 한국어로 전했다. 그 일 때문에 나는 신군부로부터 ‘권고추방’ 명령을 받았지만, 당시 문무대 입소를 자원하면서 간신히 추방을 면했다. -“요한아…빨리 순천으로 내려와야겠다…아버지께서…돌아가셨다.” 1984년 4월 어느 날 오후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나는 연세대 의대 본과 2학년이었다. ‘아버지가 위독하신 것도 아니고 돌아가셨다니.’ 아버지는 당시 짓고 있던 농촌 교회 건축에 쓰일 자재를 싣고 차를 몰고 오시는 길에 관광버스와 정면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관광버스 기사는 음주운전 상태였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부축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아버지는 의식을 되찾았다. 아버지는 계속 물을 찾았고 고통을 호소하며 진통제 주사를 놔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의사는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고 광주기독병원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당시 순천은 물론이고 서울의 몇 군데 큰 병원을 빼면 앰뷸런스가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울화통이 터졌다. 응급환자를 대하는 의료체계가 이렇게 엉성하다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8년이 흐른 1992년 나와 가족은 3200여만원을 밑천 삼아 ‘한국형 앰뷸런스’ 개발에 착수했다. 15인승 승합차를 광주에서 주문해 순천으로 옮겼다. 순천기독결핵재활원 앞에 차를 세워 놓고 목수와 용접공, 자동차 정비공을 불러 개조에 들어갔다. 환자를 눕힐 공간과 환자 머리맡에 의사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침대 밑과 천장에 응급장비를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일이 착착 진행돼 1주일 만에 개조된 앰뷸런스를 완성했다. 처음으로 한국형 앰뷸런스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병원보다는 소방서가 인명을 구조하는 데 우선이라는 판단에 소방서에 줬다. 올바로 활용하는 방법도 미국 텍사스에서 응급구조 일을 하고 있던 외삼촌에게 도움을 청해 가르쳤다. 순천소방서의 앰뷸런스는 활동 첫해 1000회의 출동 건수를 기록했고, 이 중 62건은 앰뷸런스가 없었더라면 사망했을 사람을 구조한 출동이었다. 나는 내가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기틀을 다지는 일에 미력이나마 보탬이 됐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1997년 1월의 첫 방북은 우연한 계기로 이뤄졌다. 1996년 어머니는 40년 의료봉사의 공을 인정받아 삼성문화재단이 주는 ‘호암상’을 수상했다. 어머니는 상금 5000만원의 용도를 ‘북한에 앰뷸런스 기증’으로 지정했다. 한국에서 직접 북한을 지원할 방법이 없어 선교단체인 유진벨재단의 이름으로 기증하기로 했고, 그 실무 작업을 위해 들어갔던 것이다. 얼마 후 유진벨재단에 북한 보건성의 통지문이 날아들었다. 결핵 퇴치 사업에 나서 달라는 요청이었다. 북한에서도 이미 1970년대 결핵 환자가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1995~1996년 잇따른 홍수 피해와 1997년 가뭄으로 다시 결핵이 확산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결핵환자요양소를 방문해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의약품을 분배하고, 검진차 사용 방법을 일일이 알려 주고 다녔다. -나는 4년 전 한국인으로 특별귀화를 했다. 어머니가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못하게 해서 ‘미국인’으로 살아왔지만, 2012년 정부에서 다른 나라 국적에 더해 ‘한국인’ 국적도 추가로 취득할 수 있도록 특별귀화제도를 만들었다.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온돌방 문화’의 부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온돌방에서 어른들께 지식을 배웠고, 도덕을 배웠고, 소통을 배웠다. 남과 북, 동과 서, 진보와 보수. 지금 한국은 너무 찢어져 있다. 어린 시절 순천에서 가족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온돌방 아랫목이 너무도 그립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구한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의 후손으로, 연세대 의과대학을 나와 현재 세브란스병원에서 국제진료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1997년부터 29차례에 걸쳐 방북, 결핵으로 고통받는 북한 사람들을 돌봤으며 1980년대 ‘한국형 응급차’를 개발하고 보급시켜 당시 낙후된 국내 응급구조 시스템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했다. 우리나라 의술의 국제화를 통해 ‘의료 한류’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공로들을 인정받아 지난해 6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총재에 임명됐다. 1895년 한국에 파송돼 광주 수피아여학교·숭일학교, 목포 정명학교·영흥학교, 광주기독병원 등을 설립한 호남 기독교의 아버지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 선교사가 그의 진외증조부(친할머니의 아버지)다. 스물두 살 나이에 한국에 와 48년 동안 의료와 교육 선교 활동을 벌인 윌리엄 린턴(인돈) 선교사가 할아버지, 군산에서 태어나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600개가 넘는 교회를 개척한 휴 린턴(인휴) 선교사가 아버지다. ▲1959년 전북 전주 출생 ▲대전외국인학교, 연세대 의학과, 고려대 의학 석·박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재단법인 순천기독결핵재활원 이사, 한국국제협력단(KOICA) 자문위원·전문위원, 제4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총재 ▲2005년 국민훈장 목련장, 2014년 홍조근정훈장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청계천변 녹회색 육중한 존재감… 1·2층 상가만 남고 사라진 터전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청계천변 녹회색 육중한 존재감… 1·2층 상가만 남고 사라진 터전

    서울 구도심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전체적으로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다. 도성 안의 물 또한 지형을 따라 대체로 서쪽에서 동쪽을 따라 흐른다. 그 중심을 이루는 것이 바로 지금의 청계천이다. 상하수도가 없던 시절에는 물의 흐름이 곧 사회적 위계였다. 수원지에 가까운 인왕산, 북악산 기슭에는 궁궐과 세도가들의 주거지가 들어섰다. 하류로 갈수록, 즉 물의 오염도가 높아지는 것에 비례해서 거주민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청계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이다. 문자 그대로는 ‘열린 하천’이지만 그 의미는 자연 하천이 아닌 ‘내를 파낸’ 하천이다. 경인 아라뱃길과 합류하는 굴포천의 또 다른 이름이 ‘판개울’인 것과 비슷하다. 도성의 젖줄이나 다름없어서 조선 시대부터 이 하천을 관리하는 것은 정부의 큰 관심사였다. 태종은 ‘개천도감’(開渠都監)이라는 전담 부서까지 마련할 정도였고, 조선 후기의 영조는 대대적인 준설 사업을 벌이고 호안 석축을 쌓아 구불구불하던 물길을 바로잡았다. 청계천(淸溪川)이라는, 상황의 묘사라기보다는 희망 사항에 불과한 이름이 붙은 것은 일제강점기다. 총독부의 사업으로 이 하천의 여러 지류가 복개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청계천 본류에 대한 다양한 복개 및 도로, 철도 계획까지 등장했다. 다만 실제로 실행에 옮겨진 것은 미미했다. 준설로도 청계천의 환경이 악화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1930년대 청계천 변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 바로 박태원의 ‘천변풍경’이다. 박태원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저자이며, 영화감독 봉준호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특히 ‘카메라 아이’(camera eye)로 일컬어지는 그의 소설 작법은 훗날의 명감독 외손자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는 것 같아 흥미롭다. 1절 ‘청계천 빨래터’에서 시작해 50절 ‘천변풍경’으로 끝나는 이 소설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필원이네, 칠성 어멈 등을 위시한 동네 아낙들은 청계천 변에서 빨래를 하며 온갖 잡담을 나누는가 하면 ‘신전집 주인의 장구 대가리 처남’은 물지게를 지고 천변에 나온다. 그러나 그 물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마시기는커녕 빨래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빨래터가 사실은 개천가의 샘물이 솟는 곳에 있었으며, 심지어 유료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 나머지 청계천의 물이 어떠했는지는 다음의 구절이 잘 말해 준다. ‘…그 불운한 중산모는 하필 고르디 골라, 새벽에 살얼음이 얼었다가 막 풀린 개천물 속에 빠졌다. 상판대기에 불에다 덴 자국이 있는 깍정이 놈이 다리 밑에서 뛰어나와 얼른 건졌으나, 시꺼먼 똥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코에다 갖다 대보지 않더라도 우선 냄새가 대단할 듯싶다….’ # 물길은 덮이고 찻길은 뚫리고 일제강점기인 1937년, 그리고 1955년에 무교동 인근 구간이 일부 복개된 것을 제외하면 저 ‘청계천 똥물’이 시민들의 시야에서 본격적으로 사라진 것은 개발시대에 들어서였다. 1958년부터 1977년의 기간 동안 광통교에서 시작해 중랑천 조금 못 미친 지점까지 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복개가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이와 거의 동시에 청계 고가도로가 놓이면서 청계천은 서울을 동서로 잇는 중요한 간선도로가 됐다. 그 물리적인 서쪽의 끝이 태평로였다면 동쪽 끝은 용두동 인근이었다. 하지만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의 저자인 손정목의 증언에 따르면 그 훨씬 너머 아차산 인근에 있던 ‘미군 위락 시설’ 워커힐 호텔이 청계천 고가도로의 궁극적인 목적지였다. 외화벌이 등을 목적으로 이미 1961년부터 추진돼 오던 국가적 사업이었다. 청계천이 복개되고 그 위에 고가도로가 놓이게 되면서 판잣집들이 즐비하던 천변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69년 세워진 삼일 아파트다. 7층 높이에 무려 24개동, 어마어마한 대규모 건물군이었다. 창신동과 숭인동, 그리고 청계천 맞은편의 황학동 일대를 가득 채운 빽빽한 빌딩의 숲이었다. 그 사이를 누비며 달리는 청계 고가도로, 그리고 마침 비슷한 시기인 1968~1971년 사이에 세워진 김중업의 삼일 빌딩과 함께 청계천 일대는 바야흐로 개발 시대 서울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아직 도시 구조상 한강이 사람들의 인식에 깊게 들어오기 전이었다. 청계천은 수도의 대동맥 같은 지위를 부여받았다. 복개된 상판 아래 저 어둠 속에는 도시의 온갖 오물을 담은 탁한 물이 여전히 흘러가고 있었지만, 그 위의 세상은 딴판이었다. 삼일 아파트는 흔히 청계천을 꽉 채우고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실상은 좀 달랐다. 총 24개 동 중 절반인 12개 동은 청계천 남쪽 황학동에 있었다. 그리고 북쪽의 나머지 12개 동도 6개동씩 두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창신동과 숭인동에 자리 잡았다. 이 두 그룹 사이는 민간 투자 부지로 그 길이가 무려 250m였다. 간단히 말해서 삼일 아파트는 청계천변 양쪽에 서로 멀리 떨어진 세 그룹으로 분산돼 지어졌던 것이다. 삼일 아파트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던 민간 투자 부지에 개발의 바람이 불면서 대형 건물 3개가 들어섰다. 그중 가장 동쪽에 있으면서 가장 큰 건물이 바로 현대건설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숭인 상가아파트다. 건축물 관리대장에 따르면 1979년 10월 22일 사용 승인을 받은 것으로 나오니 이 연재에서 다뤄 온 다른 건물들에 비해 건립 연대가 한참 늦다. 그 2년 전인 1977년 11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분양 사건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제 본격적으로 강남, 강북의 시대가 열리던 시점이었다. 이 건물이 지어지던 당시는 이미 청계천 복개 공사 및 청계천 고가도로 공사도 다 끝난 다음이었다. 삼일 아파트가 완공된 지는 무려 10년이 다 된 시점이었다. 다만 ‘숭인 상가아파트’로 검색되는 1970년대 초반 신문 기사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건립 연대에 대해서는 좀더 신중한 검증이 필요하다. # 숭인 상가아파트 두께 삼일 아파트 두 배 넘어 숭인 상가아파트는 중후장대한 건물이다. 길이가 81m에 달하며 지하 1층 지상 8층이다. 게다가 중복도형이라 건물의 두께가 이웃인 삼일 아파트에 비해 두 배가 넘는다. 그러다 보니 연면적은 무려 19920.99㎡에 달하고 246가구가 거주한다. 지금도 청계천 건너편에서 이 건물을 바라보면 그 존재감이 상당하다. 어지간한 광각 렌즈가 아니면 한 번에 잡히지도 않을 정도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최초의 아파트로 평가되는 충정 아파트를 연상케 하는 녹회색 타일(내지는 타일 위 도색)로 전면과 후면이 마감돼 있어 더욱 육중한 느낌이 든다. 3층까지는 점포와 사무실, 그 이상은 아파트로 돼 있어 주거와 상업의 복합 비율도 상당히 높다. 이 지역이 서울뿐 아니라 전국을 상대로 하는 거대한 동대문시장 권역인 탓이겠지만, 상가의 업종은 보일러, 금속, 배관, 피혁 등 주민들의 일상생활과는 무관하다. 그 점은 건물 인근의 신설동종합시장이나 동묘시장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워낙 다양한 시장이 주변에 많기 때문에 생필품 구입 등에 불편이 있을 상황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황학동 삼일 아파트가 있던 곳에 세워진 거대 주상복합 단지 안에 대형 할인 매장도 들어가 있다.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숭인 상가아파트는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아주 명확한 좌우 대칭의 구도를 갖고 있다. 좋게 말하면 질서정연하고 나쁘게 말하면 단조롭고 지루하다. 다만 발코니를 통해 저층부의 상가와 그 위의 공동주거 부분에 살짝 변화를 주려고 했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중복도 건물이라 당연히 주거 가구의 절반이 북향인데 이 역시 전면과 같은 디자인의 외관이다. 특이한 것은 주차장이다. 처음부터 제대로 계획된 듯한 넓은 주차장이 지하층에 있다. 자동차가 보급되고 있었던 당시의 시대상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이 정도 투자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법과 제도의 강제력이 필요하다. 우연이었을까. 건축물 관리대장상 사용 승인을 받은 1979년은 주차장법이 제정된 해이기도 했다. 옥상에 올라보면 이 일대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부분에서 청계천이 완만하게 꺾이기 때문에 시야가 더욱 넓게 느껴진다. 옥상에는 녹색 방수액이 칠해져 있고 빨래가 조금 널려 있으며 각종 장비가 놓여 있을 뿐 별다른 사용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우뚝우뚝 솟은 환기탑들이 마치 설치 예술 같은 느낌을 줄 뿐이다. # 새로운 ‘천변풍경’ 숭인 상가아파트 옥상에서 내려다본 청계천은 박태원이 ‘천변풍경’에서 묘사한, 그 똥물 흐르는 도시의 시궁창도 아니고, 고가도로 위로 자동차가 씽씽 달리던 개발시대의 그 모습도 아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청계천은 2003년 7월 1일부터 2005년 10월 1일까지 복개된 상판과 고가도로를 걷어 내면서 다시 햇빛을 보게 됐다. 전기 모터로 물을 순환하므로 더이상 자연하천이 아니고, 녹조 문제도 종종 일어나며, 무엇보다 졸속으로 무리하게 진행된 일이라 ‘복원’이라는 말을 붙일 수조차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수 관로가 별도로 설치돼 천연의 하수도 역할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났다. 그러나 소위 합류식 구조의 한계로 큰비가 오면 오수가 유입돼 겨우 만들어진 생태계는 해마다 문제를 일으킨다. 다만 평소에는 산책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고 각종 물고기, 심지어 새들도 많이 보인다. 이 주변은 현재 서울 시내에서 새로운 상가아파트가 가장 많이 지어지고 있는 곳의 하나이기도 하다. 청계천 일대는 주거와 상업의 복합지수가 높은 지역으로 계속 변신 중이다. 그 원조 격인 삼일 아파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아직 남아 있다. 청계천 맞은편의 황학동 쪽은 완전히 없어졌으나 창신동과 숭인동 쪽은 그렇지 않다. 다만 구조안전진단, 그리고 주민과 상인들 간의 갈등으로 인해 1, 2층의 상가만 남기고 그 위의 아파트는 완전히 철거돼 없어졌다. 박태원이 천변풍경을 1937년에 쓴 것을 감안하면 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재봉이와 창수, 그리고 이쁜이와 금순이는 중년의 나이가 됐을 때 삼일 아파트에 살면서 청계천이 복개되고 그 위에 고가도로가 놓이는 것을 바라보았을 수도 있다. 한때 삶의 터전이었던 청계천이 마치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어둠 속으로 유배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은 어떠했을까. 그러나 인간이 만드는 도시에 영원이란 없다. 그 청계천은 불과 30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때와는 또 다른 ‘천변풍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세상에 대한 인간의 온갖 욕망 또한 여전히 그 위에 떠내려간다.
  • 스티븐 호킹은 왜 외계인을 두려워할까?

    스티븐 호킹은 왜 외계인을 두려워할까?

    지구 행성인이 외계인이나 외계문명과 접촉하려는 시도는 아주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한 적이 있는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또 같은 경고를 반복했다고 우주 전문 사이트 스페이스닷컴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유명한 천체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은 지능이 높은 외계인들이 약탈할 대상을 찾기 위해 우주를 돌아다니며 다른 문명을 약탈하고 그 행성을 식민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이미 2010년에도 경고한 바 있다. 그는 16세기 구대륙 유럽인들이 신대륙으로 건너와 한 잉카를 멸망시킨 만행 등을 보면 충분히 그럴 개연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호킹 박사는 이러한 주장을 큐리어시티 스트림의 한 다큐 프로에 나와 되풀이했다. 호킹 박사는 "어느 날 우리는 글리제 832c 같은 행성으로부터 어떤 신호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글리제 832c은 생명체가 생존 가능한 제2지구 후보로 꼽히고 있는 행성이다. 호킹박사는 "하지만 우리는 응답을 미루어야 한다. 선진문명과의 접촉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아메리카 신대륙의 사람들이 콜럼버스 일행을 만난 것만 봐도 분명하다. 그 결과가 아주 좋지 않았잖은가"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호킹의 우려에 대해 일부 천문학자들은 지나친 생각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지구인들은 이미 1900년 무렵부터 라디오와 TV전파를 우주로 쏘아보내고 있으므로, 만약 지구까지 올 수 있는 선진문명이 있다면 벌써 지구인의 존재를 잘 파악하고 있을 거라는 게 그들의 논리다. 또한 지구까지 올 수 있는 선진문명이라면 그들의 힘으로 어떤 것이든 해결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지구에서 약탈할 만한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 반대론자들이 생각이다. ​ 외계인 관련 대목은 이 다큐 프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26분짜리인 이 동영상 프로는 호킹이 'S. S. 호킹'이라는 CGI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누비는 광경을 보여주는 5개의 단락으로 이뤄져 있다. 호킹은 우주선을 타고 우주 탄생의 기원인 빅뱅을 목격하기도 하고,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무시무시한 블랙홀을 방문하기도 한다. 또한 제2지구인 글리제 832c 외계행성으로 여행하며, 우리 태양계에 있는 토성을 관광하기도 한다. 호킹이 탄 S. S. 호킹호의 마지막 종착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버라다. 호킹은 이곳을 "마치 내 집 같은 곳이야" 하면서 환호한다. "1974년,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잠시 일했지" 하고 호킹은 다큐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땐 정말 좋았어. 캐임브리지의 흐린 하늘 아래서 살다가 햇빛 환한 이곳에서 가족들과 행복했었지. 지구 곳곳을 다녀봤지만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어."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스티븐 호킹은 왜 외계인을 두려워할까?​

    ​​스티븐 호킹은 왜 외계인을 두려워할까?​

    그가 직접 밝힌 외계인을 피해야 하는 이유 지구 행성인이 외계인이나 외계문명과 접촉하려는 시도는 아주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한 적이 있는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또 같은 경고를 반복했다고 우주 전문 사이트 스페이스닷컴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유명한 천체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은 지능이 높은 외계인들이 약탈할 대상을 찾기 위해 우주를 돌아다니며 다른 문명을 약탈하고 그 행성을 식민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이미 2010년에도 경고한 바 있다. 그는 16세기 구대륙 유럽인들이 신대륙으로 건너와 한 잉카를 멸망시킨 만행 등을 보면 충분히 그럴 개연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호킹 박사는 이러한 주장을 큐리어시티 스트림의 한 다큐 프로에 나와 되풀이했다. 호킹 박사는 "어느 날 우리는 글리제 832c 같은 행성으로부터 어떤 신호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글리제 832c은 생명체가 생존 가능한 제2지구 후보로 꼽히고 있는 행성이다. 호킹박사는 "하지만 우리는 응답을 미루어야 한다. 선진문명과의 접촉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아메리카 신대륙의 사람들이 콜럼버스 일행을 만난 것만 봐도 분명하다. 그 결과가 아주 좋지 않았잖은가"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호킹의 우려에 대해 일부 천문학자들은 지나친 생각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지구인들은 이미 1900년 무렵부터 라디오와 TV전파를 우주로 쏘아보내고 있으므로, 만약 지구까지 올 수 있는 선진문명이 있다면 벌써 지구인의 존재를 잘 파악하고 있을 거라는 게 그들의 논리다. 또한 지구까지 올 수 있는 선진문명이라면 그들의 힘으로 어떤 것이든 해결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지구에서 약탈할 만한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 반대론자들이 생각이다. 외계인 관련 대목은 이 다큐 프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26분짜리인 이 동영상 프로는 호킹이 'S. S. 호킹'이라는 CGI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누비는 광경을 보여주는 5개의 단락으로 이뤄져 있다. 호킹은 우주선을 타고 우주 탄생의 기원인 빅뱅을 목격하기도 하고,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무시무시한 블랙홀을 방문하기도 한다. 또한 제2지구인 글리제 832c 외계행성으로 여행하며, 우리 태양계에 있는 토성을 관광하기도 한다. 호킹이 탄 S. S. 호킹호의 마지막 종착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버라다. 호킹은 이곳을 "마치 내 집 같은 곳이야" 하면서 환호한다. "1974년,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잠시 일했지" 하고 호킹은 다큐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땐 정말 좋았어. 캐임브리지의 흐린 하늘 아래서 살다가 햇빛 환한 이곳에서 가족들과 행복했었지. 지구 곳곳을 다녀봤지만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어."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암이 걱정돼? ‘8가지’만 바꾸면 돼!

    암이 걱정돼? ‘8가지’만 바꾸면 돼!

    암은 잠재된 공포의 대상이자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현대인에게 실체적인 위협이 되는 질병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장암 세계 1위를 기록한 나라다. 통계청이 2013년 발표한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인 81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발병률은 36.9%에 이를 정도로 암은 흔한 병이 된 상태다. 건강 관련 전문매체인 '헬시스타'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암을 막을 수 있는 8가지 방법에 대해 소개했다. 실제 영국인 암 발병률을 40% 가량 떨어뜨린 사례가 있다면서 8가지 방법을 직접 실천해볼 것을 권유했다. 1. 몸무게를 적어도 4.5kg는 줄여라 비만은 흡연에 이어 암 발생의 두 번째 주요한 이유다. 스털링대 보건학 교수인 린다 볼드 박사는 "몸무게가 무거워지면 무거워지수록 암의 위험은 그만큼 높아진다"고 잘라 말할 정도다. 4.5kg(10파운드) 감량을 권하지만, 그 두 배인 9kg을 빼면 그만큼 암의 위험은 더 낮아진다는 설명이다. 2. 음주량을 제한하라 하룻밤 마시는 술은 한 잔으로 줄여라. 일주일 평균 14잔 이내로 음주량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물론 가능하다면 한 잔도 마시지 않는 것이 암 발생 가능성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다. 세계암연구기금(WCRF)은 한 번에 세 잔 이상의 술을 마시게 되면 위암 발병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그러면 한 번에 몰아쳐서 마시는 건 어떨까? 설령 1주 총음주량 14잔을 맞추더라도, 당연히 안된다. 3. 살아있는 유산균을 먹어라 장 건강은 암 발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플로스원' 저널은 쥐실험을 통해 살아있는 유산균을 공급, 건강한 박테리아를 기름으로써 쥐 몸속에서 암을 막을 수 있는 대사물질이 생성되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연구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섬유소가 풍부한 과일, 정제하지 않은 곡물 등을 생 요거트와 함께 먹는 것이 좋다는 권유다. 4. 아스피린을 섭취하라 영국암연구센터의 피터 존슨 박사는 "5년 동안 꾸준히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 만으로 대장암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면서 "이미 암에 걸린 사람들도 아스피린을 꾸준히 먹으면 전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암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아스피린 복용은 위궤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의사와 상담이 먼저 진행되어야할 필요는 있다. 5. 고기는 양념에 재워서 먹어라 붉은살코기가 대장암, 위암을 유발하는 요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특히 불에 직접 태운 고기의 경우 발암물질인 헤테로사이클릭 아민(HCAs)이 나와 암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 고기를 꼭 먹어야 한다면 직화구이 대신 삶거나 찐 수육을 먹거나, 아니면 로즈마리, 오레가노 등 허브를 넣은 양념에 고기를 재운 뒤 먹으면 발암물질 노출을 줄일 수 있다. 6. 식이섬유 섭취 하루에 다섯 종류의 곡물을 꾸준히 섭취하면 위암, 전립선암 등 14가지 종류의 암을 예방할 수 있다. 오트, 흑미, 통밀빵, 과일 등을 꾸준히 먹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다. 7. 선크림 잘 발라야 '봄볕에는 며느리 내고 가을볕에는 딸 낸다'는 속담이 있다. 며느리보다는 딸을 아끼는 미운 시어머니에 대한 얘기지만, 자외선의 위험성을 옛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 가을볕의 자외선 역시 만만치 않다. 햇빛 아래 나갈 때는 꼭 자외선차단지수(SPF) 30이상의 선크림을 바르는 게 좋다. 가능하면 피부 노출을 줄이는 게 최상이다. 피부 화상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악성흑색종과 같은 피부암을 막을 수 있다. 8. 하루에 30분씩 운동하라 운동 만한 보약이 어디 있겠나. 피터 존슨 박사에 따르면 하루 30분씩 운동하는 사람은 호르몬 수치가 개선되고, 유방암, 자궁암 등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진=ⓒ포토리아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건강을 부탁해] 암 걱정 잊게 해줄 8가지 방법

    [건강을 부탁해] 암 걱정 잊게 해줄 8가지 방법

    암은 잠재된 공포의 대상이자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현대인에게 실체적인 위협이 되는 질병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장암 세계 1위를 기록한 나라다. 통계청이 2013년 발표한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인 81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발병률은 36.9%에 이를 정도로 암은 흔한 병이 된 상태다. 건강 관련 전문매체인 '헬시스타'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암을 막을 수 있는 8가지 방법에 대해 소개했다. 실제 영국인 암 발병률을 40% 가량 떨어뜨린 사례가 있다면서 8가지 방법을 직접 실천해볼 것을 권유했다. 1. 몸무게 4.5kg를 줄여라 비만은 흡연에 이어 암 발생의 두 번째 주요한 이유다. 스털링대 보건학 교수인 린다 볼드 박사는 "몸무게가 무거워지면 무거워지수록 암의 위험은 그만큼 높아진다"고 잘라 말할 정도다. 4.5kg(10파운드) 감량을 권하지만, 그 두 배인 9kg을 빼면 그만큼 암의 위험은 더 낮아진다는 설명이다. 2. 음주량을 제한하라 하룻밤 마시는 술은 한 잔으로 줄여라. 일주일 평균 14잔 이내로 음주량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물론 가능하다면 한 잔도 마시지 않는 것이 암 발생 가능성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다. 세계암연구기금(WCRF)은 한 번에 세 잔 이상의 술을 마시게 되면 위암 발병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그러면 한 번에 몰아쳐서 마시는 건 어떨까? 설령 1주 총음주량 14잔을 맞추더라도, 당연히 안된다. 3. 살아있는 유산균을 먹어라 장 건강은 암 발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플로스원' 저널은 쥐실험을 통해 살아있는 유산균을 공급, 건강한 박테리아를 기름으로써 쥐 몸속에서 암을 막을 수 있는 대사물질이 생성되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연구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섬유소가 풍부한 과일, 정제하지 않은 곡물 등을 생 요거트와 함께 먹는 것이 좋다는 권유다. 4. 아스피린을 섭취하라 영국암연구센터의 피터 존슨 박사는 "5년 동안 꾸준히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 만으로 대장암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면서 "이미 암에 걸린 사람들도 아스피린을 꾸준히 먹으면 전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암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아스피린 복용은 위궤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의사와 상담이 먼저 진행되어야할 필요는 있다. 5. 고기는 양념에 재워서 먹어라 붉은살코기가 대장암, 위암을 유발하는 요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특히 불에 직접 태운 고기의 경우 발암물질인 헤테로사이클릭 아민(HCAs)이 나와 암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 고기를 꼭 먹어야 한다면 직화구이 대신 삶거나 찐 수육을 먹거나, 아니면 로즈마리, 오레가노 등 허브를 넣은 양념에 고기를 재운 뒤 먹으면 발암물질 노출을 줄일 수 있다. 6. 식이섬유 섭취 하루에 다섯 종류의 곡물을 꾸준히 섭취하면 위암, 전립선암 등 14가지 종류의 암을 예방할 수 있다. 오트, 흑미, 통밀빵, 과일 등을 꾸준히 먹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다. 7. 선크림 잘 발라야 '봄볕에는 며느리 내고 가을볕에는 딸 낸다'는 속담이 있다. 며느리보다는 딸을 아끼는 미운 시어머니에 대한 얘기지만, 자외선의 위험성을 옛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 가을볕의 자외선 역시 만만치 않다. 햇빛 아래 나갈 때는 꼭 자외선차단지수(SPF) 30이상의 선크림을 바르는 게 좋다. 가능하면 피부 노출을 줄이는 게 최상이다. 피부 화상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악성흑색종과 같은 피부암을 막을 수 있다. 8. 하루에 30분씩 운동하라 운동 만한 보약이 어디 있겠나. 피터 존슨 박사에 따르면 하루 30분씩 운동하는 사람은 호르몬 수치가 개선되고, 유방암, 자궁암 등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진=ⓒ포토리아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인어동상 뒤편의 ‘썩소’와 조소들/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인어동상 뒤편의 ‘썩소’와 조소들/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얼마 전 경남 거제의 지심도를 찾았을 때 일이다. 선착장에 내려서자마자 파란색의 청동 인어상이 외지인을 맞았다. 신기해서 그랬는지, 이 사람 저 사람 ‘인증샷’ 찍느라 동상 앞이 붐볐다. 하지만 그도 잠시,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서둘러 시선을 거둔 뒤 자리를 떴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억지춘향으로 세운 조형물에 금세 싫증이 난 거다. 이 장면에서 의구심이 생겼다. 왜 지심도에 인어동상을 세워야 했을까. 예부터 섬에 전해지던 인어 전설 하나 없는데 말이다. 뚜렷한 근거 없이 세워진 인어상을 본 관광객들 입가엔 하나둘 ‘썩소’와 조소가 피어올랐다. 당시 선착장 끝자락엔 자리그물이 세워져 있었다. 이름 그대로 자리돔을 잡는 그물이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비켜난 곳이어서 처음엔 관심이 뜸했지만, 한 주민이 그물을 손질하기 시작하자 여럿이 몰려들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이 모습을 지켜봤다. 이들이 몰려든 건 대략 두 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우선 제주에서나 보던 자리그물이 거제에 있다는 것이 희한했을 것이고, 둘째는 어떤 식으로 자리돔을 뜨나 궁금했을 것이다. 대개의 그물이 수면 아래 넓게 펼쳐져 물고기를 잡는 것과 달리 자리그물은 군집한 자리돔 무리의 위 혹은 아래에 순간적으로 펼쳐져 잡는다. 우산을 접었다 펴는 장면을 연상하면 좀 더 알기 쉽겠다. 그래서 자리돔의 경우 ‘잡는다’고 하지 않고 ‘뜬다’고 표현한다. 사람들이 자리그물 손질하는 이에게 호기심을 가졌던 건 이 같은 토속적인 풍경과 만나는 순간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번 상상해 보라. 근본 없는 인어동상 자리에 자리그물질하는 어부 조각상이 세워진 모습을, 혹은 자리그물 모양의 조형물 아래서 햇빛과 비를 피하는 당신을 말이다. 혹은 거제 출신 인물들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조각해 두거나, 거제 특산물인 멸치 찌는 장면을 형상화하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거제에만 있는 건 물론 아니다. 나라 안을 돌다 보면 이보다 더 쓴웃음 짓게 하는 풍경들을 만나는 일이 흔하다. 기자가 만일 나라의 세금을 집행하는 자리에 있다면 국적 불명의 조형물은 죄다 걷어치우고 향토색 짙은 조형물을 세우는 지자체에 국비를 아낌없이 나눠주겠다. 아름다운 풍경만이 여행의 전부는 아니다. 여행지 주변에 얽힌 이야기와 이를 다양한 형태로 꾸며 놓은 것들 또한 여정을 풍성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조악한 ‘포장’이다. 국내 여행객들의 의식은 꾸며진 관광지를 별생각 없이 둘러보고 가는 수준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영화 ‘서편제’ 촬영지였던 청산도 당리의 청보리밭 돌담 너머에 국적 불명의 ‘언덕 위의 하얀 집’을 세워 놓는다 해서 감동할 이는 이제 없다는 얘기다. 지심도에 인어동상을 세운 건 과유불급이었다. 차라리 없는 게 나았다. 조악하게 꾸며진 곳을 한 번은 찾아도, 두 번 찾지는 않는다. 관광시장에서 개별관광객(FIT)이 늘수록 이 같은 현상은 더욱 극대화될 게 분명하다. 개인이 제 돈 들여 제 집 꾸미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치자. 하지만 세금 들여 짝퉁 풍경 세우는 일만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angler@seoul.co.kr
  • [말빛 발견] 가지런하고 곱다는 말 ‘함초롬하다’

    ‘가을 물은 소 발자국에 고인 물도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가을에는 물이 아주 깨끗하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그런가 보다. 평소 더럽게 여기는 소의 발자국에 고인 물조차 먹을 수 있다고 비유한다. 더위가 물러가고 정말 살 것 같아서 그러지 않았을까. 맑고 서늘한 기운이 퍼져서 무엇을 해도 좋은 계절이다. 뿐만 아니라 물빛도 햇빛도 달빛도 더욱 곱게 다가온다. 꽃이나 풀잎들도 색다른 분위기를 낸다. 이럴 때 밋밋한 말이 나올 리 없다. ‘함초롬한 꽃’이라거나 ‘풀잎이 이슬에 함초롬하게 젖어 있다’고 표현하곤 한다. ‘함초롬하다’는 일상에서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곱고 예쁜 느낌을 주지만 말뜻이 선명하게 읽히진 않는다. 글자체 가운데도 ‘함초롬바탕’이나 ‘함초롬돋움’ 같은 것들이 있다. 그저 그런 글자체 이름이 아니었다. ‘함초롬하다’는 ‘젖거나 서려 있는 모습이 가지런하고 곱다’는 말이다. 어감도 뜻도 곱고 예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시인 정지용도 ‘향수’에서 ‘함초롬하다’를 썼다.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에서 보인다. 여기서 ‘함추름’은 ‘함초롬’의 방언이고 부사 형태다. 시인은 ‘함추름’이라는 말을 써서 차분하면서도 곱고 아늑한 풍경을 그렸다. ‘함초롬하다’가 주는 느낌은 가지런하다, 차분하다, 촉촉하다, 곱다 같은 것들이다. 비가 갠 뒤 사물이 그래 보일 때, 어여쁜 상대가 있을 때 쓸 만하다. 세상 풍경이 그럴 때도 있을 것이다. 이경우 어문팀장 wlee@seoul.co.kr
  • 하루평균 8시간 건강수면 팁 ‘향균효과 천연염색 이불’

    하루평균 8시간 건강수면 팁 ‘향균효과 천연염색 이불’

    2014년 기준 10세 이상 국내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59분으로, 하루의 1/3 가량을 침구와 함께 보내는 것이다. 때문에 쾌적한 침구와 잠자리는 삶의 질과도 큰 영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불이나 베개 커버 등 침구류에는 먼지가 쌓이거나 집먼지 진드기가 살기 쉬워 수시로 세탁을 해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아토피 피부염이나 비염, 알레르기 등을 예방하기 위해 침구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가운데 천연 염색 기술로 만든 침구가 쾌적한 잠자리는 물론이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천연염색침구는 햇빛이나 빨래, 마찰에 의해 변색 및 퇴색이 잘 되지 않으며, 향균 효과와 우수한 습도 조절 능력을 가지고 있다. 황토나 백토, 컬러 황토를 이용한 침구는 땀 흡수 능력이 뛰어나 언제나 뽀송뽀송한 느낌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원적외선 방출이나 향균, 해독, 전자파 흡수 등의 기능도 기대할 수 있다. 예단이불로도 인기를 얻고 있는 대나무 숯 침구는 음이온을 방출하여 공기를 정화해주고, 심신 안정 및 피부 보호에 도움이 된다. 박순서 침구의 박순서 대표는 21일 “건강한 잠자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천연염색침구에 대한 인기도 많아졌다”며 “천연염색침구를 구입할 때에는 안전한 재료로 천연 염색을 했는지, 원단과 솜의 품질은 어떠한지 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다이노+] ‘위장 능력’ 공룡 첫 발견…외모는 ‘귀염둥이’

    [다이노+] ‘위장 능력’ 공룡 첫 발견…외모는 ‘귀염둥이’

    애완동물처럼 귀여운 외모를 가진 신종공룡이 발견됐다. 최근 영국 브리스톨 대학 연구팀은 백악기인 1억 3300만 년~1억 2000만 년전 지금의 중국 북동부에서 살았던 신종 공룡을 발견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원시적 각룡인 ‘프시타코사우루스'(psittacosaurus)에 속하는 이 공룡(Chinese Psittacosaurus)은 약 152cm 길이로 크기가 작아 지금의 견종 래브라도 만하다. '앵무새 도마뱀'이라는 뜻을 가진 프시타코사우루스는 3개의 뿔을 가진 트리케라톱스의 조상뻘로 추정되며 그 의미처럼 주둥이가 새의 부리처럼 쭉 나온 것이 특징. 또한 열매나 나뭇잎을 먹고 살며 성격도 온순하다. 이번에 확인된 '중국 프시타코사우루스'의 가장 큰 특징은 '위장'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공룡 중에서는 최초로 발견된 이 공룡의 위장 능력은 역시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햇빛에 따라 몸의 윗 부분과 뒷다리가 어둡게 변해 마치 바닥처럼 평평하게 보인다. 연구팀은 이를 방어피음(防禦被陰·countershading)로 분석했다. 곧 몸체가 햇빛에 노출되면 어두운 색, 그늘진 부분은 밝은 색이 되는 현상으로 이는 포식자로부터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유용하다. 연구를 이끈 제이콥 빈터 박사는 "정말 정말 귀엽게 생긴 공룡"이라면서 "만약 멸종하지 않았다면 애완동물로 각광받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크기도 작고 전투력도 떨어져 많은 동물들의 먹잇감이 됐을 것"이라면서 "이같은 이유로 위장은 생존에 있어 필수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사진=TOPIC / SPLASH NEWS(www.topicimages.com)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1층은 시장 2층 주차장… 여왕벌 같은 Y자 아파트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1층은 시장 2층 주차장… 여왕벌 같은 Y자 아파트

    # 특이하면서도 합리적인 Y자형 평면 건축 평면의 형태와 관련해서 특이한 것의 하나가 Y자다. Y자 평면은 일단 만들기가 어렵고 그 안에서 방향을 쉽게 잃기 때문에 자주 시도되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례가 있다. 우선 서울 한복판의 유서 깊은 웨스틴 조선호텔(1970)이 그렇다. 사각형 건물 일색의 도심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특히 인근의 원구단 황궁우와 묘한 관계를 이룬다. 건축가 화이팅과 이광노가 설계한 서울대병원 본관(1978)은 심지어 Y자가 두 개 붙은 건물이다. 지금은 철거되고 없지만 본격적인 한국 아파트 시대를 여는 서막이었던 마포 아파트(1962)도 일자형과 Y자형 타워의 조합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유명한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도 알고 보면 Y자형 평면을 갖고 있다. Y자 평면은 종종 사람들의 불만을 산다. 서울대병원 본관의 경우 Y자 하나만으로도 그 안에서 방향을 잃기 쉬운데 심지어 두 개를 붙여 놓아 도대체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컬트적 온라인 백과사전인 나무위키는 병동 부분은 간호의 편의를 위한 직관적인 구조임을 인정하면서도 저층부에 대해서는 ‘완전히 던전’(지하 감옥)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건축가들은 왜 불만이 나올 것을 알면서도 Y자형 평면을 시도하는 것일까? 일단 구조적 안정성 때문이다. 특히 팔 3개의 길이, 그리고 벌어진 각도가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고층 건물의 경우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대한 안전성이 필수적인데 이 경우 Y자는 좋은 해답이다. 위에서 언급한 부르즈 칼리파가 그런 경우다. 또 다른 장점은 관찰의 용이성이다. Y자의 중심에 있으면 세 방향을 모두 볼 수 있다. 그래서 심지어 감옥의 평면으로도 합리성이 있고, 같은 이유에서 병원에도 잘 맞는다. 물론 원형이 가장 이 점에서 뛰어나지만 현실적으로는 Y자가 좋은 대안이 된다. 마지막으로 외기에 접하는 면을 늘려 주는 효과가 있다. 특히 채광이나 환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물에서 이것은 큰 장점이다. 서울대병원 본관의 설계자들이 공간적 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Y자 두 개를 붙이는 판단을 한 것에는 이런 생각의 흐름이 있었다. 어느 병실에서나 밖이 보이고 심지어 북향 병실에도 어느 정도 햇빛이 든다. 건축학 개론 같은 다소 장황한 설명이 됐지만, 사실은 매우 특이한 상가아파트 하나를 소개하기 위한 준비다. 재미 건축가 강승현씨의 서울대 석사 논문인 ‘1960-1970년대 서울 상가아파트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사례다. 영등포구 신길동 116-15에 있는 대신 아파트가 바로 그것이다. # 시장 위에 올라앉은 Y자형 아파트 신길동은 좀 애매한 동네다. 같은 영등포구인 여의도 샛강의 바로 남쪽이지만 정치와 금융의 중심지라는 성격은 전혀 나눠 받고 있지 않다. 또한 문래동이나 당산동 등 근대 공업 지역이 갖는 후기 산업사회적 특성과도 거리가 있다. 굳이 신길동의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군사 관련 시설들이 많고 이에 따라 군인 인구 비중도 높다는 것인데, 그나마 지금은 공군회관, 해군회관, 서울지방 병무청 정도만 남아 있다. 한강대교를 건너 노량진 학원가를 지나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한국 도시의 흔한, 그렇고 그런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군데군데 삐죽삐죽하게 올라선 고층 빌딩의 배경만 아니면 어디 지방 소도시의 중심지 같은 그런 분위기다. 큰길인 도산로를 건너 서서히 주택가로 들어서는 초입에 시장 지역이 있다. 두 개의 길이 도산로의 한복판을 향해 모이면서 만들어진 사다리꼴 블록이 중심을 이룬다. 이름하여 대신시장이다. 사다리꼴 대지 전체를 가득 매운 단층의 기단이 시장이고 지하에 창고가 있다. 항공사진으로 보면 거의 정확하게 좌우 대칭의 사다리꼴이다. 그 한쪽에 자동차가 오르내리는 램프가 있고 이를 따라 올라가면 시장의 옥상, 즉 2층 바닥에 주차장이 있다. 그 반대쪽에도 주차장이 있어서 좌우대칭을 이룬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역시 하늘에서 보면 완벽한 좌우 대칭의 Y자형 건물이 놓여 있다. 주차장을 들락거리는 자동차들 속에서 마치 일벌의 무리에 둘러싸인 여왕벌 같이 보인다. 특이하게도 외장이 붉은 벽돌이다. 콘크리트 외벽에 시멘트 미장을 하고 수성 페인트를 바르는 여타 아파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고급 아파트로 지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분명히 아파트지만 옥탑에는 희미한 글씨로 ‘대신시장’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즉 시장과 아파트가 완전히 결합된 건물이다. 통인시장과 효자아파트, 인왕시장과 원일아파트의 관계와도 또 다르다. 완벽한 수직적 체계를 갖춘 상가아파트, 아니 본격적인 시장아파트인 것이다. 1971년 2월 24일에 사용 승인을 받았다. 역시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의 산물이다. 건물 주변 지역도 모두 시장이다. 언뜻 생각하면 상당히 혼잡할 것 같지만 넓은 기단 위에 아파트를 올려놓았기 때문에 공동 주거와 시장, 그리고 거리 간에 적절한 심리적 여유가 존재한다. 주변 거리를 걷다 보면 위치와 시선에 따라 아파트가 보였다 안 보였다 하면서 지상 5층의 건물이 주는 중압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비교적 잘 정리된 1층 높이의 가게들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밖에서 보면 그냥 상가일 뿐이어서 그 안에 시장이 있는지도 알기 어렵다. 시장 입구의 간판도 작고 소박하다. 지역 주민을 상대로 하는, 고객 대부분이 단골인 상황이 이렇게 간판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다. 말하자면 실로 기하학의 향연이다. 상부의 아파트를 지지하는 기둥들이 저마다의 방향을 가지고 아름드리 나무처럼 서 있다. 마치 울창한 숲속에 들어간 것 같다. 시장 내의 통로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이고 가게는 모두 생긴 모습이 제각각이다. 자세히 보면 남북 방향으로 대체적인 축선을 잡고 이에 따라 여러 방향의 요소를 잘 정리해 최대한 혼란을 줄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 결과 실제 현장에서 여러 번 오가다 보면 나름의 질서가 느껴진다. 다만 한 가지 지적할 것이 있다. 물론 기존 건축물에 대한 이런저런 특례의 결과겠으나, 요즘의 복합건물이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스프링클러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아파트는 물론 수많은 상가아파트가 그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해 왔던 것은 이처럼 제반 법규의 미비, 관리의 소홀 등으로 화재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던 탓도 크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오르면 주차장, 그리고 아파트가 시작된다. 주거 부분의 바닥은 주차장이나 마당보다 높다. 가급적 주거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려는 의도다. 2층 바닥의 외부 공간은 모두 5개로 나눠져 있다. 그중 두 개가 동서쪽의 주차장이다. Y자의 두 팔 사이 남쪽에 비워져 있는 마당 하나, 그리고 두 팔의 끝부분에 각각 작은 삼각형 마당이 하나씩 있다. Y자가 사다리꼴의 각 변에 바짝 닿아 있기 때문에 이 5개의 마당은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각 영역별로 별도의 옥외 공간을 제공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추측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바닥의 레벨이 여러 번 변한다. 북쪽이 가장 낮고 남쪽이 높다. 자동차도 사람도 이 바닥의 경사를 의식하며 다녀야 한다. 지하에서도 이 상황은 반복된다. 그렇다고 건물이 경사진 대지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니다. 왜 그랬을까? 건물의 단면에 답이 있다. 대신 아파트는 스킵플로어 형식의 건물이다. Y자의 중심축에 해당하는 북쪽의 C동과 양팔에 해당하는 남쪽의 A, B동이 계단실을 중심으로 반 층씩 엇갈려 있다. 스킵플로어는 설계와 시공이 어렵기는 하나 일단 만들어 놓으면 건물 안에서 위아래로 다니기는 매우 좋은 방식이다. 그 결과 대신 아파트의 공동 주거 부분은 C동이 4개 층, A, B동이 3개 층이다. 이 건물의 도면을 들여다보면 신기한 것이 있다. 엘리베이터가 표기돼 있는 것이다. 건축적으로 매우 도전적인 상황이다. 스킵플로어 형식의 건물에서 엘리베이터 로비는 어느 쪽에 만들 것인가? 지금 같으면 양쪽으로 열리는 엘리베이터도 있으니 층마다 번갈아 가며 내리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 그런 제품은 없었을 것이다. 1970년대 초반에 지하층 포함해 전체 6개 층의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재 이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도면상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할 위치의 1층 시장 바닥에는 시멘트로 메꾼 흔적이 있을 뿐이다. 건물 경비원과 시장 상인들에게 문의하니 ‘원래 이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우선 도면과 실제 시공된 상황이 달랐다는 것인데,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원래 엘리베이터가 있었으나 후에 철거했다는 것이다. 건물의 나이를 감안하면 현재의 경비원이나 입주민도 그 사실을 모를 수 있다. 건물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감안할 때 만약 엘리베이터가 있었다면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경우다. 지하에 시장을 위한 창고가 있으므로 사람뿐 아니라 화물을 오르내리는데도 유용하게 쓰였을 것이다. # 실험과 도전의 정신 대신 아파트는 여러 가지 점에서 숙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건물이다. 1971년이면 와우 아파트가 붕괴된 바로 다음해다. 한국 사회가 여러 모로 기초적인 것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시절이다. 심지어 그때는 북한이 더 잘살았다. 대신 아파트도 허술함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1979년 3월 18일 그러니까 건물이 지어진 지 10년도 되기 전에 큰 화재로 신문지상을 장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신 아파트가 새로운 주거 유형을 시도했던 실험적 시도였다는 사실은 여전히 중요하다. 우선 비록 지금은 그 흔적을 볼 수 없으나 적어도 도면상으로 엘리베이터가 있었다는 것에 주목한다. 주거 가구의 단위 면적도 79㎡에서 135㎡로 지금 기준으로도 결코 작지 않았다. 게다가 외부는 붉은 벽돌로 한껏 치장을 했다. 주차장법이 제정되기 훨씬 이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여유 있는 주차장까지 완비됐다. 그리고 모든 가구의 적절한 채광과 환기를 위해 좀처럼 보기 드믄 Y자형 평면을 시도했다. 한마디로 어느 모로 보나 최첨단의 고급 아파트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건물이 시장 바로 위에 자리 잡았다니?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전원형 개발 방식인 단지형 아파트가 대세를 이룬 것을 보면 도시의 복합성에 대한 이해와 실천은 오히려 갈수록 더 퇴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도시에서 이 정도 수준의 시도를 하는 공동 주거는 언제 나올 것인가. 새로운 것을 기꺼이 시도하려는 실험과 도전의 정신은 그 당시가 지금보다 훨씬 강했다고 생각하니 이 글을 쓰면서도 가슴이 답답하다.
  • ‘강남역 묻지마 살인’ 피해자 어머니…“우리 딸 한 풀어달라” 눈물

    서울 강남역 근처 공용화장실에서 ‘묻지마’ 살인범 김모(34)씨에게 희생된 A씨(23·여)의 어머지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 딸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으로 눈물을 흘렸다. A씨의 어머니 B씨는 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유남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렇게….이렇게 보낼 줄은 몰랐습니다.혼자 얼마나 무서움에 떨었을지…”라고 말했다.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김씨를 보며 힘겹게 증언대에 선 B씨의 몸은 부들부들 떨렸다. 증인 선서를 읽어내려가는 목소리엔 울음이 섞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증인신문을 시작하며 검사는 사건 이후 B씨의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다. 평소 냉정함을 유지하던 검사의 목소리도 떨렸다. B씨는 “사건 이후 화장실에 혼자 가는 것도 무섭고, 집에서 칼을 만지는 것도 무섭다”고 말했다. 수면제 없이는 잠들기도 어렵고, 방에 누워 있으면 자꾸만 천장에 딸의 처참한 모습이 그려진다고 했다. B씨는 “우리는 바늘 한 번만 찔려도 아프다고 하는데…”라며 딸이 느꼈을 고통이 손으로, 온몸으로 전달되는 것 같다고 했다. B씨는 A씨가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의 성장 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갔다. “너무 빨리 철들지 말라”고 했지만, A씨는 일찍부터 철이 들어 초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했다고 한다. 그런 딸에게 B씨는 “아무것도 해준 것 없이 홀로 떠나게 해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B씨는 “우리 딸이 자기한테 뭐라고 말도 안 했고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그렇게 무자비하게 할 수 있느냐”라며 김씨에 대한 원망도 쏟아냈다. B씨는 “우리 딸을 저 세상에 보낸 가해자, 절대 용서해줄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해자가 햇빛을 보는 것도 그 사람에게는 배려가 되겠지요”라며 “저 사람을 엄벌에 처해 불쌍한 우리 딸의 한을 풀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B씨가 한 시간 가까이 증언대에 앉아있는 동안 김씨는 고개를 숙이거나 상체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버릇처럼 안경테를 만지던 손놀림은 더 잦아졌다. 다만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김씨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A씨의 오빠는 어머니의 증인신문이 끝나자마자 김씨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법정 내 소란을 수습하고 심리를 재개한 재판부는 이달 30일 공판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원순 “나라 구하는 길은 정권 교체” 강조

    박원순 “나라 구하는 길은 정권 교체” 강조

    “대선 출마는 고민 중” 말 아껴 국내 아니라 공식 선언은 부담 박원순 서울시장은 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인회 6층에서 가진 교민과의 ‘번개미팅’에서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것은 바로 정권 교체”라고 강조했지만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선 “고민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 등 잠룡들이 잇달아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했지만, 박 시장은 즉답을 피했다. 이는 국내가 아닌 미국에서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날 번개미팅은 5일 박 시장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 ‘형식과 의전을 벗어난 만남을 고민하다가 뉴욕 번개만남에 도전합니다’라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번개미팅에는 뉴욕 등에 거주하는 동포 40여명이 모였다. 박 시장은 “내년 우리 대통령선거가 아주 중요하다”면서 “한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지금 어지럽고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것은 바로 정권 교체”라고 강조했다. 또 “정권 교체를 넘어서 세대교체, 미래 교체 등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덧붙였다. 박 시장은 이날 오전에는 햇빛과 빗물 등을 끌어들여 지하 숲을 만드는 뉴욕의 ‘로라인’을 둘러봤다. ‘하이라인 파크’의 반대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는 대심도 터널 등 지하 공간 개발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던 박 시장의 정책적인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또 이미 하이라인 파크를 성공적으로 벤치마킹했다는 자신감 덕분에 서울시의 ‘로라인’ 프로젝트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박 시장은 “서울의 죽어 있는 지하 공간을 햇빛과 빗물로 녹색생명이 자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꾸미겠다”며 “서울시청에서 국세청 별관, 프레스센터를 거쳐 광화문에 이르는 지하 공간이나 여의도 벙커, 청량리 구역사 등이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날 방문에는 문석진 서대문구청장과 김성환 노원구청장, 김영배 성북구청장 등도 함께했다. 2012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인 뉴욕 ‘로라인’은 1948년 이후 방치된 옛 전차 터미널 지하 공간(4046㎡)을 세계 최초의 지하공원으로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지상도로를 확장하고 폐선한 전차 터미널을 뉴욕시와 시민들이 새로운 친환경적 도시 재생으로 바꿔 가고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로라인은 첨단장비를 이용해 태양광을 지하 20피트(6.1m) 깊이로 끌어들여 70종 이상, 3000가지가 넘는 식물과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지하 공간을 꾸미고 있다. 공사 비용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킥 스타터를 통해 미국항공우주국(NASA) 인공위성 엔지니어 출신인 제임스 램지와 3300명의 후원자가 100억원을 모았고 뉴욕시도 500억원을 보탰다. 박 시장은 “서울시도 민관 협동으로 로라인 같은 친환경 지하 공간 개발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뉴욕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사진 한 장에 담긴 반전

    사진 한 장에 담긴 반전

    수많은 물방울이 튀어 올라 햇빛에 반사되는 순간, 한 여성이 요염한 자태로 있는 사진이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5일 영국 매체 메트로에 따르면, 이는 지난달 30일 일본의 코스프레이어 사키 미야모토의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합니다. 하지만 배경이 된 물방울에 재미있는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그 비밀을 풀어줄 영상도 함께 공개됐습니다. 영상을 보면, 비키니를 입은 여성이 수영장 풀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여성 뒤에 서 있던 한 남성이 갑자기 풀장으로 몸을 날립니다. 그의 몸이 수면에 닿는 순간, 물방울이 튀어 오르며 아름다운 배경이 만들어집니다. 이처럼 흥미로운 반전이 담긴 사진은 공개 후 현재까지 7994회 리트윗 되었으며, 8648회 좋아요를 받으면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 지난달 홍콩의 한 사진작가가 공개한 사진 한 장이 비슷한 이유로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아래 영상으로 확인해 보시죠. 사진 영상=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서울에도 지하숲 들어선다…박원순 “프레스센터 거쳐 광화문 등이 대상”

    서울에도 지하숲 들어선다…박원순 “프레스센터 거쳐 광화문 등이 대상”

    서울시 지하에 태양광이 비추고 녹색식물이 자라는 친환경 공간이 들어설 전망이다. 이른바 뉴욕의 ‘로우라인’(Lowline)이다. ‘하이라인 파크’의 반대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는 대심도 터널 등 지하공간 개발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책적인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또 이미 하이라인 파크를 성공적으로 벤치마킹했다는 자신감에 따라 서울시의 로우라인 프로젝트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로우라인 랩(홍보관)을 둘러보면서 “서울의 죽어 있는 지하 공간을 햇빛과 빗물로 녹색생명이 자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꾸미겠다”면서 “서울시청에서 국세청별관, 프레스센터를 거쳐 광화문에 이르는 지하공간이나 여의도 벙커, 청량리 구역사 등이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날 방문에는 문석진 서대문구청장과 김성환 노원구청장, 김영배 성북구청장 등도 함께했다. 2012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인 뉴욕 로우라인은 1948년 이후 방치된 옛 전차 터미널 지하공간(4046㎡)를 세계 최초의 지하공원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지상 도로를 확장하고 폐선된 전차 터미널을 뉴욕시와 시민들이 새로운 친환경적 도시재생으로 바꿔가고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로우라인은 첨단장비로 태양광을 지하 20피트(6.1m) 깊이로 끌어들여 70종 이상, 3000가지가 넘는 식물과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지하공간을 꾸미고 있다. 공사 비용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Kick Starter)를 통해 나사(NASA) 인공위성 엔지니어 출신 제임스 램지(James Ramsey)와 3300명의 후원자가 100억원을 모았고 뉴욕시도 500억원을 보탰다. 팀 로우라인(Team Lowline) 대표 제임스 램지는 “미세먼지와 각종 환경문제로 몸살을 앓는 서울시도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지하에 햇빛과 빗물이 흐르고 녹색식물이 우거진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박 시장도 “서울시도 발광다이오드(LED)를 이용한 식물 정원과 서울시청사의 수직정원 등 실내 녹색공간 꾸미기에 나서고 있다”면서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로우라인 같은 지하 숲을 만들겠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하이라인에 이어 로우라인 대상지 물색에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로우라인과 같은 외국의 창의적 도시재생 사례를 적용할 수 있는 서울시내 대상지를 찾고 있다”면서 “국세청 별관 지하나 문화 공간으로 변신할 여의도 벙커, 구 청량리 역사 등 대상지에 타당성 검토 등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글·사진 뉴욕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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