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핵무력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 재외동포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 선착순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 비상임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 산자락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04
  • [6·12 북미 정상회담]트럼프·김정은·文대통령 3자 ‘반전의 반전’… 세기의 만남 합작

    [6·12 북미 정상회담]트럼프·김정은·文대통령 3자 ‘반전의 반전’… 세기의 만남 합작

    미국과 북한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극적 반전의 반전을 거쳐 이뤄졌다. 지난해만 해도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고조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로 ‘핵단추’ 운운하며 일촉즉발의 날 선 기싸움을 벌였지만 12일 북·미 두 정상은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정상회담을 실현시켰다. 이날 정상회담은 파격적인 개성과 결단력을 지닌 ‘협상의 달인’ 트럼프 대통령과 핵무력 확보 자신감 속에서 경제개발을 목표로 삼은 야심 찬 북한의 젊은 지도자인 김 위원장, 그리고 절묘한 중재 외교를 벌인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삼자가 만들어 냈다. 이들은 극한 대결의 정점에서 상황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극적인 타협을 이뤄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16년 김 위원장을 ‘미치광이’ 같다고 말했지만, “젊은 나이의 김 위원장이 고모부 장성택과 막강한 장령들 등 정적을 제거했다는 것은 놀랍다”며 관심을 보였다. 그는 또 같은 해 5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북핵 문제를 놓고 김 위원장과 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6월에는 “김정은이 미국에 온다면 만나겠다”, “엄청난 돈을 들여 국빈 만찬을 여는 대신 회의실에서 햄버거를 먹으면서 회담하겠다”고 직접 대화에 의미를 두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한반도 정세와 북·미 관계는 커다란 풍파 속에서 순조롭지는 못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4차 핵실험을 단행한 뒤 수소탄 시험 성공을 주장했던 북한은 장거리 로켓인 광명성호를 쏘아올리며 벼랑끝 전략을 구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며 경고를 거듭했지만, 북한은 잇단 탄도미사일 실험을 강행하며 위기를 증폭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해 9월 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만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강도 높은 경고를 내놓았고,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불망나니, 깡패, 늙다리 미치광이로 비난하며 신랄한 비난과 경고를 주고받았다. 제재·압박 강화와 반발·대항이라는 악순환 속의 한반도 상황은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으로 돌파구를 열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김 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를 통해 화답했고,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고위급 접촉으로 연결되면서 대전환의 전기를 마련했다. 이어 지난 3월 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이 만들어 낸 ‘기회’를 트럼프 대통령이 놓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북·미 정상회담의 준비가 일사천리로 이뤄지게 됐다. 3월 9일 워싱턴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특사단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이 가능한 한 빨리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 한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는 내용과 함께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했다. 이후 북·미 대화의 불씨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비밀 방북으로 이어 나갔다. 그는 국무장관 지명자 신분으로 3월 31일~4월 1일 부활절 주말을 틈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특사로 방북해 김 위원장을 만났다. 이어 폼페이오 장관은 5월 9일 2차 방북에서 김 위원장과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된 세부 사항을 조율하고, 북한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3명과 함께 미국으로 귀환하면서 회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러나 비핵화 방안을 둘러싸고 북한이 일괄타결안에 반발하면서 회담은 결렬 위기를 맞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4일 깜짝 공개서한을 통해 적대적 분위기 속에서 회담을 할 수 없다며 북·미 정상회담의 전격 취소를 알렸다. 정상회담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북한이 태도를 급선회하면서 다시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소 서한 다음날인 25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 나갈 용의가 있다”고 자세를 낮췄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도 25일 트위터를 통해 “정상회담을 되살리는 것에 관해 북한과 매우 생산적인 대화를 하고 있다. 회담을 한다면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것”이라고 입장을 선회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대화 재개 여지에 문 대통령은 26일 극비에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4월 27일에 이어 남북 정상회담을 열고 김 위원장과 만나며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측면 지원했다. 이후 북·미는 판문점과 싱가포르, 뉴욕 등 여러 루트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활발한 조율에 나설 수 있었다. 특히 지난 1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워싱턴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을 예방해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은 우여곡절 끝에 안정권에 들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캐나다로 떠나기 전 백악관에서 “나는 (북·미 정상회담을) 내 평생 준비해 왔다”고 의욕을 보였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예우 보인 트럼프 vs 여유 보인 김정은

    예우 보인 트럼프 vs 여유 보인 김정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세기의 담판’에 돌발 상황은 없었다. 정상회담마다 튀는 행동으로 결례 논란을 낳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시종 배려했다. 이따금 김 위원장의 팔을 만졌지만 ‘툭툭’ 치는 느낌은 아니었고 악력을 과시하는 악명 높은 악수도 없었다.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에 나선 김 위원장도 자존과 여유로움을 잊지 않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신중하게 반응했다. 미국 민주당의 우려는 물론 매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핵화 대화에 뛰어든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회담 성패에 11월 중간선거를 비롯한 정치생명이 걸렸다. 김 위원장 또한 3대에 걸쳐 축적한 핵무력 포기를 전제로 체제 보장과 경제지원 등 ‘미래’ 담보받으려는 터라 성과가 절실했다. 양 정상 모두 ‘빈손’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많은 ‘베팅’을 했다는 얘기다. 양 정상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처음 함께 모습을 드러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상석’을 양보했다. 외교 의전상 두 사람이 앉거나 걸을 때 왼쪽이 ‘상석’이다. 통상 회담 개최국 정상이 오른쪽에 앉고 손님을 왼쪽에 앉게 하는 것이 관례다. 트럼프 대통령은 카펠라호텔 복도를 이동할 때와 단독회담을 할 때 김 위원장에게 왼쪽을 내줬다. 회담장에 들어설 때나 사진기자 앞에 포즈를 취할 때, 공동합의문에 서명할 때도 ‘상석’은 김 위원장의 몫이었다. ‘세기의 악수’를 나눈 뒤 단독 정상회담을 위해 이동할 때 김 위원장은 잠시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팔을 가볍게 터치하고 등에 손을 갖다대 손님을 안내하는 듯한 몸짓을 취했다.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 위원장이 모두발언을 마치자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특유의 ‘엄지 척’ 포즈를 취했다. 평소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하려는 열망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례적이다. 제3국인 싱가포르에서 열린 이번 회담은 ‘호스트’가 애매하지만 앞서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과 조 헤이긴 백악관 부비서실장의 의전실무협상에서 양측이 대등하게 보일 수 있도록 치밀하게 조율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공동합의문 서명식에서 “김 위원장과 특별한 유대관계가 형성됐다”고 강조했다. 또 “매우 재능 있는 사람이며 그의 나라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점도 알게 됐다”고도 말했다.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뒤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거론하며 김 위원장에 대한 평가를 거듭 확인하려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그(김 위원장)는 26세에 나라를 물려받고 통치했다. 강력하게 통치해야 했다”면서 “원래 인간성은 잘 모르겠지만, 26세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김 위원장의 리더십을 평가했다. 앞서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제외하면 첫 번째 서방 지도자와의 정상외교인 데다 낯선 싱가포르에서 열린 회담임에도 김 위원장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대면 때 잠시 경직됐지만, 이후에는 ‘은둔의 지도자’ 내지 ‘통제불능의 폭군’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자 맞은편에서 걸어 나오며 “나이스 투 미트 유 미스터 프레지던트”(Nice to Meet you, Mr. President)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을 스위스에서 보낸 유학파인 그가 첫 만남에서 어색함을 깨는 데 영어를 활용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공동합의문에 서명한 뒤 “이 자리를 위해 노력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다”며 칭찬에 약한 트럼프를 치켜세웠다. 상대가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서로 ‘늙다리 미치광이’ 등 저주를 퍼부었던 트럼프 대통령이란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환담이 진행되는 동안 김 위원장은 편안해 보였다. 왼쪽 팔꿈치를 의자에 걸치고 살짝 기울여 앉아 있는 자세에선 여유가 느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모두발언 뒤 통역을 전해 듣고는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언하는 동안에는 두 손을 깍지 껴서 배 위로 모아 쥐고 경청했다. 사실 김 위원장의 2박3일 싱가포르행에선 ‘정상국가 지도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전략적 포석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북한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사전에 공지한 채 평양을 비우고 정상외교에 나선 과감성, 중국이 제공한 항공편으로 싱가포르를 방문하는 실용적 면모를 드러냈다. 전날 밤 싱가포르 시내 초대형 식물원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서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교장관 등과 ‘셀카’를 찍고, 현지 시민의 환호 속에 마리나베이샌즈호텔을 방문하는 모습은 서방세계의 여느 젊은 지도자와 다를 바 없었다. 유학 시절 몸에 밴 개방성과 집권 7년차의 30대 지도자임에도 군부를 비롯한 북한 엘리트들을 휘어잡은 자신감이 맞물린 ‘완숙한 통치력’을 과시한 것이다. 서울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싱가포르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NPT 탈퇴·악의 축·핵 위기… 대결의 북미관계 마침표 찍나

    NPT 탈퇴·악의 축·핵 위기… 대결의 북미관계 마침표 찍나

    북한과 미국 정상이 12일 싱가포르에서 첫 회담을 하기까지 양국은 한반도 문제를 두고 65년을 대치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체결 이후 첫 북·미 정상회담이 추진되면서 한반도에 봄기운이 완연했던 때도 있었지만 대결과 반목을 거듭한 시기가 더 많았다. 제네바 합의, 2007년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 등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종식할 숱한 합의가 이뤄졌으나 그때마다 번번이 북한과 미국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북핵 합의 교본’ 9·19 공동성명 만약 2000년 첫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됐다면 한반도는 지금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후 북핵 합의의 ‘교본’으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만 양국이 충실히 지켰더라도 한반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한반도의 운명을 놓고 세기의 담판을 벌이는 북·미가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북한은 1993년 5월 23일 이후 1998년 8월 31일까지 5년간 한 번도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지 않았다. 이 기간은 북·미 대화의 시기였다.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과 미국의 북한 핵시설 폭격 움직임으로 긴장이 고조되며 1차 핵위기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한반도는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당시 미국과 한국의 고위 당국자들은 교전 가능성을 어느 때보다 높게 봤다. 한반도의 전쟁 위기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막았다. 1994년 6월 북한을 방문한 카터는 김일성 주석을 만나 위기 국면을 협상 국면으로 전환했다. 카터가 평양에서 CNN 방송 회견을 할 때만 해도 백악관에서는 한반도에 대규모 증원 전력을 보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카터와 김일성 회담을 명분 삼아 분위기를 반전시키고자 했다. 당시 카터는 김일성과의 만남으로 전쟁 직전의 대치 국면이 해소되고 회담 국면이 열린 것을 일종의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한반도 전쟁 위기 막은 카터 전 대통령 며칠 뒤 카터의 말은 현실화됐다. 미국이 제시한 핵개발 동결안을 수락한다는 북측의 서면 확인을 받은 미국은 1994년 북한과 제네바 합의를 체결했다. 북한의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경수로를 지어 주고 완공 시 핵시설을 해체한다는 내용이었다.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 북한에 미국의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포함됐다. 북핵 문제를 막을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였다. 1998년 미국이 금창리 핵시설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이에 반발해 북한은 1998년 8월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렇지만 1년 뒤인 1999년 북·미 미사일 협상이 열리며 해결의 가닥을 잡았다. 1999년 5월 윌리엄 페리 당시 대북정책조정관의 방북, 2000년 10월 북한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방미와 같은 달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으로 북·미 정상회담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불가능해 보이던 북핵 문제 해결과 북·미 적대 관계 청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그러나 성사됐다면 한반도의 운명을 바꿨을 첫 북·미 정상회담은 그해 11월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으로 물거품이 됐다. 클린턴 집권 기간에 제네바 합의와 북·미 정상회담이란 두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미국 정치 지형의 변화로 북핵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2002년 1월 부시 당시 대통령은 연두 시정연설에서 이란,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2002년 7월 미국은 북·미 외무장관 회담에서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의혹을 제기했고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의 방북을 계기로 제네바 합의를 파기했다. 당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은 방북한 켈리에게 HEU 보유 사실을 시인하는 대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포기할 테니 불가침 약속과 체제안전 보장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켈리는 거부했다. 평양에서 돌아온 켈리는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협상을 더는 할 수 없다고 밝혔다. ●美 켈리 방북 이후 제네바 합의 파기 애초 부시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제네바 합의를 폐기하고 북한과의 협상을 파기하려고 작정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례로 2001년 3월 미국 워싱턴을 찾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부시 대통령은 “북한과의 모든 대화를 중단한다”고 잘라 말했다. 1차 북핵 위기를 봉합했던 모든 외교적 노력이 단번에 내동댕이쳐졌다. 2002년 말부터 2003년까지 북한은 핵실험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이 시기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북한이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강행하기 전에도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기회가 있었다. 2003년 8월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6자회담이란 다자협의체를 구성해 베이징에서 첫 논의를 시작했다. ●BDA 사태로 北 경제 제재 압박 2년 뒤인 2005년 9월에는 제4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9·19 공동성명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서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을 포기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NPT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복귀하고 1992년 남한과 맺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행하기로 했다.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은 9·19 공동성명에 서명하는 한편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 문제를 제기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9·19 공동성명 발표 직전 미 재무부는 북한 지도부 일부가 자금세탁용으로 BDA를 이용했으며 다른 불법 활동에도 연루돼 있다고 발표했다. BDA는 마카오에 본사를 둔 중국은행이다. 미국은 9·19 공동성명으로부터 즉각 거리를 뒀고, 일본은 납북자 문제를 들어 다른 5개국이 약속한 대북 에너지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급기야 북한은 2006년 첫 핵실험을 했다. 부시 행정부와 달리 오바마 행정부는 북·미 직접 대화를 모색하려고 했다. 2009년 1월 임기를 시작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미국은 적대감을 내려놓는 국가에 손을 내밀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해 8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했고 12월 스티븐 보즈워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김정일에게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2010년 1월 북한 외무성은 1953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대화를 제안했다. 2011년 4월에는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했다. 그해 7월 북·미는 뉴욕에서 고위급 대화를 열었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김정일의 사망으로 논의는 더 진전되지 못했다. ●北, 2012년 개정 헌법에 ‘핵보유국’ 명기 2012년 5월 북한은 개정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기하고 이듬해 제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정전협정 백지화도 선언했다. 2013년 4월 영변 5MW 원자로를 재가동했고 2016년 1월에는 4차 핵실험을 하고서 “첫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북한은 핵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 후 핵무력 완성을 공식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벼랑 끝으로 치닫던 북핵 위기를 막은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대표단을 초청해 대화의 계기를 만들고 4·27 남북 정상회담과 5·26 정상회담으로 북·미 정상회담의 발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12일 오전 북·미는 ‘세기의 담판’을 앞두고 있다. 미국의 대화 중단과 북한의 핵 보유로 점철된 역사에 비춰 볼 때 양국 정상이 가장 적극적 의지를 가지고 처음으로 머리를 맞대는 이번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씨줄날줄] 김정은의 눈물/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김정은의 눈물/임창용 논설위원

    정치인의 눈물만큼 해석이 엇갈리는 게 있을까. 눈물 한 방울로 국민 아픔을 덜어 주기도 하고, ‘악어의 눈물’이 돼 분노를 자아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적지 않은 정치인, 특히 대통령 같은 최고 지도자의 눈물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중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뉴욕사(史)’를 저술한 19세기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은 ‘눈물은 천만 단어의 말보다 강한 웅변’이라고까지 했을 정도다.적지 않은 지도자들이 ‘눈물 정치’를 한다. 의도적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결과는 정치로 수렴된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영화 ‘1987’을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고 해 화제가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0년 천안함 희생자 추모 연설에서 희생자 이름을 부르면서 눈물을 떨궜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4년 세월호 사고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눈 한번 깜빡하지 않는 ‘눈물 영상’을 내보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1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눈시울을 적시는 광고를 찍었다. 이 전 대통령은 ‘국밥집 영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눈물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희생자를 향한 진정한 슬픔, 서민 사랑, 불의에 대한 분노가 담긴 눈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단지 보이기 위한 가식의 눈물, 악어의 눈물일 수도 있다. 눈물의 진정성은 결국 주인공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그 후의 실천을 보고 판단하게 된다. 처음엔 진정성 있게 보였던 눈물이 위장으로 판명될 때도 적지 않다. 국밥집 눈물이 진정한 서민 사랑에서 나온 것인지, 세월호 희생자를 부르며 떨어뜨린 눈물이 정말 슬픔의 눈물이었는지는 국민이 더 잘 안다. 북한이 최근 비핵화 국면에서 말단 당 간부 교육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눈물 영상을 활용해 화제다. 선대에선 좀처럼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해변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서 있는 남성의 뺨에 눈물이 흐른다”고 묘사하고, “강성 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개혁이 잘 이뤄지지 않는 답답함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내용의 내레이션이 나온다고 소개했다. 기사가 사실이라면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정책의 대전환 국면에서 내부를 단속하는 주민 호소용으로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강조했던 ‘핵무력 완성’과 대치되는 외교정책에 대해 동요하지 말고 자신을 믿어 달라는 메시지를 ‘눈물’로 보내는 셈이다. 그 눈물에 김 위원장의 진정성이 담겼기를, 그리고 북한 주민들이 믿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허무하게 끝난 ‘조·올의 꿈’… 북·미 18년 만에 다시 꿈꾼다

    허무하게 끝난 ‘조·올의 꿈’… 북·미 18년 만에 다시 꿈꾼다

    2000년 10월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군복을 입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가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을 방문했다. 북한 권력 서열 2위로 김 위원장의 최측근이자 군부를 대표하는 실력자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인민무력부 총정치국장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북한 고위급 인사가 미국 땅을 밟은 것이다.조명록은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예방하고 이튿날 북·미 관계 개선과 평화체제 구축 의지를 밝힌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했다. 뒤이어 같은 달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평양을 전격 방문해 김 위원장을 면담하고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전격 합의했다. 불가능해 보이던 북핵 문제 해결과 북·미 적대관계 청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성사됐다면 한반도의 운명을 바꿨을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은 같은 시기에 터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그해 11월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으로 물거품이 됐다. 그후 북한은 6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무력을 완성했고 지금에 와서야 다시 북·미 정상회담이 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18년 전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지금이야말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라는 얘기가 나온다. 조명록의 뒤를 이어 31일 북한 고위급 인사로는 18년 만에 미국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조명록과 올브라이트가 못 다 이룬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도정의 마지막 단계인 김영철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만남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18년 전 조명록의 방미가 이뤄진 때는 미국의 ‘페리 프로세스’ 발표로 북핵 위기가 누그러지고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선언에 이어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한반도 문제의 획기적 진전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 시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4·27 남북 정상회담과 5·26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한 것처럼, 당시에도 한국 정부의 활약이 빛났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의 대화 의지를 확인한 김대중(DJ) 당시 대통령은 회담 직후 황원탁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백악관에 급파해 클린턴에게 회담 결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미 관계를 개선하려면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반응은 좋았다. 7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아지역안보포럼을 계기로 북·미는 즉각 첫 외교장관 회담을 열어 김정일의 미국 특사 파견 문제를 협의했다. 김정일은 그로부터 석 달 뒤 특사 파견을 결정했다.샌프란시스코를 거쳐 10월 9일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도착한 조명록은 군복 차림으로 클린턴을 만나 김정일의 친서를 전달했다. ‘북한 인민과 군대가 안보에 아무런 위협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미국이 우려하는 안보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며 관계 정상화를 희망한다는 요지의 친서였다. 클린턴을 평양으로 초청한다는 김정일의 메시지도 전달했다. 이에 클린턴은 “먼저 사전 조율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며 올브라이트의 평양 방문을 제안했다. 이런 북·미 공감대를 바탕으로 올브라이트는 미국 고위층 인사로는 처음으로 2000년 10월 23일 오전 7시 평양 땅을 밟았다. 웬디 셔먼 대북정책조정관, 스탠리 로스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로버트 아인혼 비확산담당 차관보, 찰스 카트먼 한반도평화회담담당 대사, 잭 프리처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담당 국장 등 선발대 50여명과 기자단 57명 등 210여명이 수행했다. 올브라이트의 첫 일정은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이었다. 김정일 면담은 방북 둘째 날 있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첫날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올브라이트는 회고록에서 “도착 첫날 점심식사를 하던 중 오후에 예정된 모든 일정이 취소되고 김 위원장을 만나기로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올브라이트는 김정일에게 클린턴의 친서를 전달하고 3시간가량 회담했다. 그는 김정일에게 “북한 미사일과 관련한 만족스러운 합의 없이 내가 클린턴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권유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자 김정일은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며, 미사일 문제는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면서 “성실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다면 우리가 못 해낼 일은 없다”고 밝혔다.이 자리에서 김정일은 시리아와 이란에 미사일을 수출하는 것은 외화벌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회담 뒤 올브라이트는 김정일의 안내로 5·1경기장에서 열린 집단체조와 카드섹션 ‘아리랑 공연’을 관람했다. 당시 평양 군중의 일사불란하고 거대한 매스게임을 보고 놀라는 올브라이트의 표정은 큰 화제가 됐다. 공연 중간에 대포동 미사일 발사를 묘사하는 대목에서 김정일은 올브라이트에게 “저것은 우리의 처음 미사일 발사입니다만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북·미 관계 개선을 향한 복합적인 메시지가 담긴 말이었다. 북·미 회담은 시간문제로 여겨졌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공화당은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반대했다. 우파 전문가들도 북·미 정상회담을 반대했다. 올브라이트는 “그간 추진해 오던 미사일방어(MD) 계획을 클린턴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수포로 돌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고 회고했다. 임기 말의 클린턴은 정치적 반대를 물리칠 동력을 상실했다. 더 큰 문제는 중동 평화협상이었다. 12월이 다가오며 클린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문제를 매듭짓는 일에 매달려야 했다. 다급해진 미국은 김정일에게 회담 장소를 평양이 아닌 워싱턴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거부했다. 결국 클린턴은 북·미 회담을 포기하고 12월 21일 아침, 우리 정부에 “평양을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29일에는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벌어진 심각한 폭력 사태에 클린턴 대통령이 중재에 나서게 되면서 방북 일정을 잡기가 애매해졌다”며 평양 방문 포기를 공식 발표했다.훗날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회고록에서 “웬디 셔먼 대북정책조정관은 나에게 김 위원장의 ‘시간 개념 부족’을 탓했다. 만일 김정일이 조명록의 방미를 한 달만 앞당겼어도 역사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란 얘기였다”고 밝혔다. 새로 출범한 부시 행정부는 2001년 3월 워싱턴을 방문한 DJ에게 “대북한 정책 검토를 끝내기 전까지는 북한과 협상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첫 북·미 정상회담 추진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지만 18년 전과 지금은 다른 측면도 많다. 당시는 미국 정권 교체기였지만, 지금은 한·미의 대통령이 모두 임기 초반이다. 18년 전보다는 북·미 정상회담 합의를 지킬 ‘시간적 변수’가 유리한 셈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수평선 바라보며 “답답하다”며 눈물 흘린 김정은…왜?

    수평선 바라보며 “답답하다”며 눈물 흘린 김정은…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간부 대상 교육 영상에서 “개혁이 잘 안 돼 답답하다”며 눈물을 흘렸다는 보도가 나왔다.일본 아사히신문은 30일 “탈북한 노동당 전 간부가 북한 내 인물로부터 들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이 영상에서 김 위원장은 해변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다 눈물을 흘린다. 이 장면에서 “강성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며 왔는데 개혁이 잘되지 않는 답답함에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영상은 지난 4월 당의 지방조직 및 국영기업 등에서 일하는 간부들을 대상으로 상영됐다. 아사히는 “3대째 독재가 계속되고 있는 북한에서 최고지도자는 신에 가까운 존재”라며 “이런 인물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공개된 건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북한 당국이 이런 영상을 제작, 공개한 의도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핵 폐기 수용의 불가피성을 당과 주민들에게 호소하기 위해서라고 추정했다. ‘최고지도자가 개혁을 위해 눈물까지 흘리고 있으니 따를 수밖에 없다’는 여론을 조성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아사히는 “해당 영상이 3월 이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북한은 (비핵화에 관한) 물밑 협의를 진행 중이었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3월 말~4월 초 극비리에 방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지난달 20일 열린 노동당 제7차 3기 전원회의에서 핵무력·경제 병진 노선의 종결을 선언했다. 이후 지난 12일 핵실험장 폐기 일정을 발표했다. 폐기 행사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미회담 취소’를 통보했음에도 김 위원장은 곧바로 ‘회담 재개’ 의사를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 내 강경파의 반발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작업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의 대가로 체제보장 및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회담을 진두지휘하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30~31일 미국 뉴욕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나 회담 의제 관련 최종 조율에 나선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北 풍계리 폭파한 날… 트럼프, 북미회담 전격 취소

    北 풍계리 폭파한 날… 트럼프, 북미회담 전격 취소

    “北 분노·적대감 때문에 부적절” 핵실험장 갱도 3개 파괴 빛 바래 文, 한밤 NSC 상임위 긴급 소집 “유감… 정상간 직접 대화로 해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다음달 12일로 계획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백악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 앞으로 쓴 이런 내용의 공개서한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편지에서 “당신(김 위원장)과 만나길 고대했지만 최근 당신들이 밝힌 극도의 분노와 공공연한 적대감 때문에 애석하게도 현 시점에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준비해 온 회담을 갖는 게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며 “싱가포르 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당신은 당신의 핵 능력에 대해 말하지만 우리의 핵 능력은 매우 강력하고 막대해서 나는 그것이 결코 사용돼선 안 된다고 신께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향후 김 위원장의 태도 여하에 따라서는 회담을 가질 수도 있다는 뜻을 넌지시 내비쳤다. 그는 “언젠가 나는 당신을 만나기를 고대한다”면서 “만약 너무나도 중요한 이 정상회담에 대한 당신의 마음이 바뀐다면 주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를 보내 달라”고 했다. 이어 “회담이 불발된 것은 역사에 정말로 슬픈 순간”이라는 말로 편지를 맺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밤 12시부터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서훈 국정원장,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을 청와대 관저로 긴급 소집,1시간동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긴급회의를 가졌다. 문 대통령은 회의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된 6월 12일에 열리지 않게 된데 대해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이다”라고 밝힌 뒤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는 포기할수도,미룰수도 없는 역사적 과제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당사자들의 진심은 변하지 않았다”면서 “지금의 소통방식으로는 민감하고 어려운 외교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정상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북한은 이날 판문점 선언에서 명시한 ‘완전한 비핵화’의 첫걸음으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북부핵시험장)을 폭파해 폐기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실험장 폐기를 언급한 지 34일 만이다. 북한은 이날 핵무기연구소 성명을 통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핵무기연구소에서는 5월 24일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핵시험장을 완전히 폐기하는 의식을 진행하였다”고 밝혔다. 풍계리 현지 폐기 장면을 참관한 한국 기자단이 전화로 알려온 내용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에 풍계리 핵실험장의 4개 갱도 중 2번 갱도 및 관측소가 처음으로 폭파됐다. 오후 2시 17분에는 4번 갱도와 단야장(금속을 불에 달궈 작업하는 장소)을, 2시 45분에는 생활건물 본부 등 5개 건물을, 4시 2분에는 3번 갱도 및 관측소를 각각 폭파했다. 이어 4시 17분에 군 건물인 막사 2개동을 폭파하는 것으로 폐기 행사를 마쳤다. 1번 갱도는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때 방사능 오염으로 이미 폐쇄돼 이날은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2∼6차 핵실험은 2번 갱도에서 이뤄졌다. 3번과 4번 갱도는 향후 핵실험을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곳에서 지난해 9월까지 6번의 핵실험을 했고 2개월 후인 11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풍계리 외교부 공동취재단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완전한 비핵화’ 문 열다…北, 풍계리 갱도 3개 폭파

    ‘완전한 비핵화’ 문 열다…北, 풍계리 갱도 3개 폭파

    북한이 판문점 선언에서 명시한 ‘완전한 비핵화’의 첫 발걸음으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북부핵시험장)을 폭파해 폐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실험장 폐기를 언급한 지 34일 만이다. 북한이 핵실험장 폐기를 통해 비핵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비핵화 대화의 입구’로 언급했던 핵동결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2008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와 달리 미국의 보상 조치가 없는 선제적 폐기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북·미 정상회담’의 청신호인 셈이다. 북한은 24일 오전 11시에 풍계리 핵실험장의 4개 갱도 중 2번 갱도 및 관측소를 폭파했다. 오후 2시 17분에는 4번 갱도와 단야장을, 2시 45분에는 생활건물 본부 등 5개의 건물을, 4시 2분에는 3번 갱도 및 관측소를 각각 폭파했다. 4시 17분에 군 건물인 막사 2개동을 폭파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날 폐기 행사를 마쳤다.  1번 갱도는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때 방사능에 오염돼 이미 폐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2∼6차 핵실험은 2번 갱도에서 이뤄졌다. 3번과 4번 갱도는 향후 핵실험을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곳에서 2006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6번의 핵실험을 했고 2개월 후인 11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폭파가 순차적으로 진행된 것은 이미 6차례 핵실험으로 약해진 지반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또 북측이 시각적 효과를 노렸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CNN, 중앙(CC)TV, APTN 등 5개국(한국,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30명의 기자가 현장을 참관했다. 이들은 이날 풍계리를 출발해 25일 아침 6~7시 정도에 원산 갈마초대소 프레스센터에 도착한 뒤 세부 현장 취재 결과를 전 세계에 타전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첫 방미길에서 “핵동결은 대화의 입구이고 그 대화의 출구는 완전한 핵폐기와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풍계리 핵시설 폐기로 비핵화 대화의 입구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또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대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초기 조치로서 비핵화가 시작됐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청와대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한 뒤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첫 번째 조치임을 평가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최근 리비아식 모델 등 비핵화 방법론을 두고 북·미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북한이 해당 조치를 예정대로 진행했다는 데 의미를 뒀다. 장철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무엇보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긍정적 여건이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풍계리 외교부 공동취재단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北 마음 변하면? “폭파로 지반 약해져 다시 파도 핵실험 어렵다”

    北 마음 변하면? “폭파로 지반 약해져 다시 파도 핵실험 어렵다”

    함경북도 풍계리에 위치한 북한 유일의 핵실험장이 제1차 핵실험(2006년 10월 9일) 이후 11년 7개월여 만에 폐기된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12일 ‘5월 23∼25일 풍계리 핵 실험장을 갱도 폭파하는 방식으로 폐기하는 행사를 한다’고 밝혔다. 중국, 러시아, 미국, 영국, 한국 등 5개국 기자들이 참관한다. 완전한 비핵화의 첫 조치로 평가된다. 또 핵실험과 핵 고도화를 멈춤으로써 비핵화의 진정성을 전 세계에 알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갱도를 콘크리트로 막는 방식이 아니라 재가동 가능성을 봉쇄하는 폭파 방식을 택했다. 핵실험장 폐기로 인해 지표면을 통한 방사능 유출 및 오염 가능성은 낮지만 지하수를 통한 유출 가능성은 남아 있다. 생방송 중계 여부, 전문가 집단의 검증 여부 등은 미정이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대해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의미하는 것은. -북은 핵물질을 생산하고 추출한 뒤 핵탄두로 만들고 핵실험을 해 왔다. 이 중 가장 마지막 단계인 핵실험을 그만두겠다는 뜻이다. 특히 북한에서 핵실험장은 이곳이 유일하다. 따라서 6번의 핵실험으로 50~70kt급 핵폭탄을 개발한 북한의 핵고도화도 멈추게 된다. →북은 지난해 9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으니 더이상 핵실험은 필요 없지 않나. -북한이 원자탄(핵 분열)과 증폭핵분열탄(원자탄과 수소탄의 중간 단계)은 완성했지만 마지막 단계인 수소탄(핵 융합) 기술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게 통설이다. 다만 6차례의 핵실험 데이터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소탄 완성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파키스탄도 핵실험 6번 만에 핵무기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핵실험이 핵무기 개발에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한 방법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가 비핵화 진정성을 보이는 의미 있는 조치라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북한은 핵실험장 ‘폐쇄’가 아닌 ‘폐기’라고 발표했다. 모든 갱도를 폭파시킨 후 입구를 폐쇄하고 주변의 관련 시설을 모두 철수하는 것이다. 산 중턱에 있는 갱구를 통해 수평으로 들어가면 중심에 핵실험 장소가 있다. 이 핵실험 장소부터 갱도를 지나 갱구까지 차례로 다이너마이트를 놓은 뒤 안쪽부터 차례로 연쇄 폭파시킨다. 즉 산을 붕괴시키는 방식으로 핵실험장을 묻는 것이다. 그간 위성으로 관측된 갱구는 총 4개다. 다만 지난달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기존보다 큰 시험장이 2개 더 있고 이는 건재하다”고 밝혀 내부에 몇 개의 갱도가 있을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핵실험장 폭파로 방사능 유출 우려는. -핵실험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지반이 단단하고 차단벽도 구간마다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지표면을 통한 방사능 유출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다만 인근을 지나는 지하수를 모두 점검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환경오염 가능성 자체를 배제할 수는 없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6차 핵실험을 한 갱도는 (실험 당시 충격으로 붕괴돼) 이미 사용이 불가하니 입구 붕괴 및 폐쇄로만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역시 환경오염 가능성을 염두에 둔 언급이다. →북한이 나중에 마음을 바꿔 핵실험장을 재가동할 수는 없을까. -갱도를 콘크리트로 매설해 메우는 방식이라면 다시 콘크리트를 파내면 재가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폭파 방식은 다시 갱도를 복원한다 해도 이미 인근 지반이 약해진 상태여서 더이상 핵실험이 쉽지 않다. 북이 다른 핵실험 장소를 찾는다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핵실험이 가능하려면 화강암과 같이 강한 암반으로 둘러싸여 있어야 하고 주거 지역과도 격리돼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초대했는데 전문가는 초대하지 않았다. -우선 추후 전문가를 초청하거나 비공식 초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핵실험장 폐기가 이번 국면에서 첫 북핵 사찰 사례가 될 수 있어 관심이 높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미국 자체 점검단 중 한쪽만 참여할지 공동으로 방북할지도 관건이다. 하지만 북 입장에선 이런 점이 오히려 걸림돌이다. 선제적으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비핵화 검증 행사가 될 수 있다. 또 비핵화 협상을 앞두고 전문가에게 핵능력이 노출될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도 “전문가가 참여하면 사전 절차나 일이 복잡해져 시일이 늦춰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생방송 가능성은. -2008년 북이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를 6자회담 당사국 언론에 공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녹화방송으로 무게가 쏠린다. 북한은 지난 12일 “국제기자단을 위해 원산에 숙소를 보장하고 기자센터를 설치한다”며 “국제기자단 성원이 핵시험장 폐기 상황을 현지에서 취재·촬영한 다음 기자센터(원산)에서 통신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건을 보장하고 협조한다”라고 밝혔다. 풍계리와 원산은 직선거리로도 200㎞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실제 방송까지 꽤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또 북한이 오는 23~25일 중에 기상 상황을 보고 진행키로 해 핵실험장 폐기 일시도 아직 정확하지 않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열린세상] 김정은의 대중국 발언을 주시하는 이유/서상문 환동해미래연구원장

    [열린세상] 김정은의 대중국 발언을 주시하는 이유/서상문 환동해미래연구원장

    “덩샤오핑의 개혁ㆍ개방의 길을 빨리 걸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지난달 방중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새로운 전략적 노선으로 나아가기로 결단했다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한 말이다. 방북한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에게도 중국의 경험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을 중국식 개혁ㆍ개방정책을 취하겠다는 의미로 들어도 될까. 남북 통일은 자본주의를 적대시하는 주체사상과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물과 기름 같은 이질적인 이념 문제가 해소돼야 가능한데, 갈 길이 먼 장도의 출발점에 선 지금 김정은 발언의 진정성과 속내가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행보로는 김 위원장이 새로운 역사를 쓰고자 하는 진정성이 읽힌다. 올해 신년사에서 그가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고, 지난 남북 정상회담 때 평화의집 방명록에도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라고 서명한 점도 그렇다. 이는 2016년 제7기 조선노동당대회 결정문에서 암시됐듯 이 갑작스런 임기응변은 아닌 듯하다. 북한이 처한 국내외 정세와 김정은의 언행으로 봐선 그는 베트남 모델이 아닌 일부 중국식 경제 시스템을 답습해 북한식 경제개혁 노선, 즉 주체사상을 구현한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중국의 개혁ㆍ개방 때와 유사한 행보를 걷고 있는 점이 그 근거의 하나다. 1978년 12월 통과된 중국 ‘제11계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공보’에는 경제관리체제와 경영관리방법의 ‘개혁’이 제시됐을 뿐 ‘개방’이라는 자구는 없었다. 개방 의지로 해석될 대목으로 자립갱생의 기초 위에 세계 각국과 평등하고 상호 이익을 얻는 경제협력을 적극 발전시키며, 세계 선진기술과 선진설비 채용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북한도 지난 4월 2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의 사회주의경제 건설노선 의정보고에서 김정은은 ‘개혁’과 ‘개방’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개혁ㆍ개방이라는 말이 없다고 해서 북한이 개혁ㆍ개방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덩샤오핑 등 중국의 새 지도부는 사회주의 개조의 기본이 완성되면 당 노선의 중점을 경제와 기술혁명에 두기로 한 마오쩌둥의 구상대로 국정 운영의 중심 과제를 정치 과다에서 벗어나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로 전환시켰다. 김정은도 2013년 3월 자신이 국정 목표로 제시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이 승리한 것으로 평가하고, 이 노선의 종료 선언과 동시에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노선으로 전환했다. 중국 개혁ㆍ개방 당시 사회주의 개조의 기초 완성처럼 김정은에게 노선 전환의 조건은 핵보유국이다. 이는 핵 보유가 “경제발전을 위한 대외적 조건”이라는 선대의 유훈과 일치한다. 또 개혁ㆍ개방 정책 전환 시 덩샤오핑이 그랬듯이 김정은도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의 강조와 함께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정보화, 과학화”의 실현과 국가 건설의 기초이며 국력을 결정할 과학과 교육을 강조했다. 과학은 1945년 이후 김일성이 남한의 기술자와 지식인을 데려오라고 지시한 바 있듯이 북한의 주요 과제이며, 교육은 고난의 행군과 핵개발에 올인함에 따라 무상교육 체제가 붕괴된 것을 염두에 둔 결의였다. 김정은의 중국 모델 선택은 미국 주도의 봉쇄에 직면해 외부 세계, 국제 체제와의 단절로 인한 고립이 더 지속될 경우 북한 내부의 억제된 분출 욕구가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다 무역의존도가 90%를 넘고 있는 중국이 아니면 미국 견제는 물론 미국을 대신해 핵포기 반대급부로 경제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은 중국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중국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주체사상과 자력자강을 고수하며, 민주집중제의 집단지도체제로 나아간 중국과 달리 김정은 개인 권력을 강화할 것이다. 트럼프, 문재인, 김정은 3자가 절묘하게 얽힌 시운에 즉응해 자의든, 타의든 어차피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중국을 뒷배로 해서 그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겠다는 게 김정은의 속내로 보인다.
  • [사설] 北 핵실험장 공개 폐쇄, 비핵화 의지 주목한다

    지난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실험장 폐쇄를 대외에 공개하기로 합의했던 사실이 이틀 늦게 공개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향후 북핵 검증 과정에서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한 일이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어제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4·27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북·미 회담 전인 5월 북부 핵실험장(풍계 핵실험장 추정) 폐쇄를 공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를 투명하게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초청할 것이라고 한다. 두 정상이 한국 시간보다 30분 늦은 북한의 표준시간을 서울의 표준시에 맞추겠다고 선언한 것 또한 남북 동질성 회복을 위한 상징적 조치이기에 적잖은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특히 핵실험장 폐쇄 공개에 주목하는 것은 북한이 비핵화의 구체적인 일정과 이행 계획을 판문점 선언 이후 처음 구체화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에는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빠졌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돼 왔다. 또 북한이 어차피 못 쓰게 된 것을 폐쇄하는 거 아니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 핵실험 시설보다 더 큰 실험장이 2개 더 있고, 이는 아주 건재하다는 걸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어떠한 의혹도 남기지 않겠다는 뜻으로 비핵화와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진정성을 보이기 위한 조치로도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북부 핵실험장 폐쇄 공개 방침에 대해 즉시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들의 구체적 초청 시점은 북측이 준비되는 대로 일정을 협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비핵화 로드맵이 한층 가속도가 붙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북한은 노동당 기관지와 대내외용 관영매체를 통해 이번 판문점 선언 전문을 그대로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만큼 ‘완전한 비핵화’를 소개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전문을 알린 것은 비핵화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이행 의지가 확고함을 보여 준 셈이다. 북핵 실험장 폐쇄 공개는 판문점 선언을 구체화하는 시작에 불과하다. 남한만이 아니라 북한도 판문점 선언의 신속하고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이행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에 핵폐기, 경제 번영과 함께 항구적 평화를 가져오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 비핵화 길잡이 文대통령, 트럼프에 ‘김정은 속내’ 전달

    비핵화 길잡이 文대통령, 트럼프에 ‘김정은 속내’ 전달

    文, 북·미 정상회담 본격 중재 트럼프 “한·미 긴밀 공조 중요文대통령 전화 최우선 받겠다” 강경화, 폼페이오와 첫 통화 한·미 국방장관도 협력 논의지난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확인되면서 한·미 양국 정상 간 핫라인은 물론이고, 외교·군사·정보 당국 라인 등이 전면 가동되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장 시간(75분) 의견을 나눴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이 북·미 정상회담의 비핵화 담판에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본격적인 중재에 나선 것이다. 지난 28일 오후 9시 15분부터 1시간 15분간 진행된 통화에서 한·미 정상은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대체적으로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문 대통령과 길고 매우 좋은 대화를 나눴다. 상황이 매우 좋게 흘러가고 있다. 북한과의 대화 시점 및 장소가 정해지고 있다”고 알렸다. 장소는 2~3곳으로 압축되는 상황이다. 스위스, 싱가포르, 몽골 등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29일 “구체적 장소는 말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그동안 한·미 양 정상의 통화는 일반적으로 30~40분 수준이었고, 지난해 12월 1일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에 1시간가량 통화한 적이 있다. 이례적으로 길었던 이날 통화는 그만큼 내밀한 대화가 오갔다는 의미다. 또 남북 간 판문점 선언으로 절반의 성공을 거둔 한국 정부가 이번에는 굳건한 한·미 공조를 토대로 북·미 정상회담에서 나머지 절반의 성공을 거둬야 하는 상황을 반영한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전화를 언제라도 최우선적으로 받겠다. 한·미 간 긴밀한 공조가 매우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의 비핵화 담판에 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속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세히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을 못 박았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핵동결의 후속 조치로 5월 중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역사적 순간을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 및 언론인에게 공개하기로 약속했다. 따라서 비핵화 로드맵을 다룰 한·미 및 북·미 정상회담 등의 시간표도 앞당겨질 전망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5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 일정에 연동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북·미 정상회담이 6월에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북한과의 회담이 3~4주 이내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감안할 때, 5월 개최 가능성이 짙어졌다. 이에 따라 한·미 정상회담 일정도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 결과가 성공적이라는 것이 관련된 주요국 정상들의 공통된 평가”라면서 “회담 성과가 안 좋았다면 속도가 늦춰지겠지만 지금은 순항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고 밝혔다.외교안보 부처 공식라인도 남북 정상회담 이후 곧바로 움직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8일 중동 출장 중인 마이크 폼페이오 신임 미 국무장관과 첫 전화 통화를 했다. 이 자리에서 강 장관은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 확인 등 남북 정상회담의 주요 결과를 설명하고,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남북 정상이 허심탄회하고도 폭넓은 대화를 나눈 점이라고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 역시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가 고무적이라고 공감했다. 강 장관은 또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의 가교로 한·미 정상회담을 여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와 관련해 5월 초쯤 강 장관과 폼페이오 장관이 미국 워싱턴DC에서 첫 외교장관 회담을 가질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날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과 통화를 하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달성하는 외교적 해법에 진지하게 전념하기로 뜻을 모았다. 정경두 합참의장과 조지프 던퍼드 미 합참의장도 이날 저녁 전화통화에서 현재 한반도 안보 상황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군사적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각 부처 공식 라인의 움직임 속에 그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문 대통령의 손발로 움직여 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의 향후 움직임에도 이목이 쏠린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남·북·미의 입장을 조율하는 데도 안보수장 라인과 정보수장 라인이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며 “문 대통령의 올가을 평양 답방부터는 비핵화 로드맵의 실행 단계에 접어들기 때문에 각 부처 공식 라인도 전면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서울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풍계리 3·4번 갱도 ‘건재’…38노스 “완전 가동 가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공개하겠다’면서 기존보다 더 크고 건재한 갱도를 언급해 관심을 끈다. 북한의 핵실험은 지하에 갱도를 파고 그 안에서 하는데, 한·미 정부는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마다 번호를 붙여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왔다. ●1번 갱도 폐쇄·2번은 붕괴 추정 김 위원장이 언급한 두 개의 갱도는 풍계리 핵실험장의 3번, 4번 갱도로 추정된다. 북한은 이미 지난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라며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해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라는 내용의 결정서를 채택한 바 있다. 1번 갱도는 1차 핵실험으로 무너져 폐쇄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2번 갱도에 여러 개의 가지 갱도를 뚫어 핵실험을 계속한 것으로 한·미 정보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6차 핵실험 이후에는 2번 갱도도 지반이 약해져 붕괴 조짐이 포착됐다. 6차 핵실험 직후 잇달아 여진이 발생하면서 2번 갱도를 포함한 풍계리 핵실험장이 붕괴됐을 것으로 점쳐졌다. ●전문가 “北 핵무력 수준 가늠 기회” 그러나 정보 당국은 3번 갱도는 완성 단계로 언제든지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분석해 왔다. 4번 갱도는 북한이 6차 핵실험 이후 굴착한 시설인데 완성 여부는 그동안 불투명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인 38노스는 최근 풍계리 핵실험장의 2개 갱도에서는 여전히 핵실험이 가능하다며 핵실험장을 ‘완전 가동이 가능한 상태’로 평가했다. 북한이 다음달 중 풍계리 핵실험장을 공개한다면 북한의 핵무력 수준도 가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김정은 “국제사회 투명하게 공개”…핵실험장 폐쇄 생중계할 듯

    김정은 “국제사회 투명하게 공개”…핵실험장 폐쇄 생중계할 듯

    金 “난 美 향해 핵 쏠 사람 아냐” 비핵화 프로세스 진입 신호탄 ‘정치적 쇼’ 라는 의심 잠재우기 북미회담에 긍정적 영향 줄 듯5월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는 전 세계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진정성을 보여 주는 ‘빅이벤트’가 될 전망이다. 북한이 비핵화의 첫 단추를 끼웠음을 알리는 정치적 행위이자 상징적 조치이기 때문이다. 비핵화가 ‘동결-폐기’로 압축되는 프로세스에 이미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비핵화 논의가 본격화될 5월 말 6월 초 북·미 정상회담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2008년 영변 냉각탑 폭파 땐 녹화중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7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부 핵실험장 폐쇄를 5월 중 시행할 것이며, 이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고자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 언론인들을 조만간 북한으로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장면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북한은 2008년 6월 27일 비핵화 의지를 외부에 보여 주고자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해체할 때도 미국 CNN, 한국 MBC를 비롯해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북핵 6자회담의 다른 5개 참가국 방송·통신사를 초청했다. 당시 냉각탑 폭파 행사는 CNN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영변 현지에 위성 송출시설이 없어 불발됐다. 대신 이 장면은 폭파 수시간 뒤 전 세계에 녹화 중계됐다. 그러나 그간 위성 송출기술이 발전해 간단한 장비로도 생중계할 수 있어진 데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 세계에 과시하려면 생중계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어 이번에는 생중계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남북 간 합의로 한·미 언론인과 전문가를 언제 파견할 것인지 논의해야 하는데,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며 북·미 정상회담 전에 폐쇄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풍계리 이외 영변 핵시설에 대한 언급은 이뤄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일단은 이 내용”이라고 답했다. ●풍계리는 北 핵무력의 심장부 대북 제재 해제와 북·미 관계 정상화에 반대하는 미국 내 강경파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라도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같은 가시적 성과를 보여야 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나는 남쪽이나 태평양, 미국을 향해 핵을 쏠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공개하는 행위는 김 위원장 발언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보증수표가 될 것이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2008년 폭파된 영변 냉각탑과 달리 지난해 9월까지 핵실험을 한 북한 핵무력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다. 높이 20여m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인 영변 냉각탑은 폭파되기 2년 전인 2006년부터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폭파 당시에도 ‘용도폐기 된 빈 껍데기’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폐쇄는 다르다는 평가와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일부에서 못 쓰게 된 것을 폐쇄한다고 하는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 핵실험 시설보다 훨씬 큰 두 개의 갱도가 더 있고 이는 아주 건재하다”고 말한 것도 ‘정치적 쇼’라는 의심 어린 눈초리를 불식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측이 한국 언론을 비롯해 외부 언론에서 나오는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는 비핵화의 시작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선 핵 동결과 이미 생산한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핵 폐기, 미래의 핵을 폐기하기 위한 시설 폐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 등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정권 초기 靑 주도해 추동력 확보…비핵화·종전 넘어서 평화 다룬다

    정권 초기 靑 주도해 추동력 확보…비핵화·종전 넘어서 평화 다룬다

    2000년 6월 15일 공동선언을 낭독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맞잡은 손을 높이 들었다.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3시간 14분간의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였다. 분단 이후 남북 수장의 첫 만남으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본 방향이 정립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도 2007년 10월 4일 같은 곳에서 정상선언을 알린 뒤 악수를 나눴다.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 남북 정상회담의 상시화, 경제협력(경협) 확대 등 구체적인 평화 정착 방안이 논의됐다.●평양 백화원 아닌 MDL서 첫 대면 27일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무대가 분단의 상징이던 판문점 평화의집으로 바뀌었다. 군사분계선(MDL)에서 처음 만나 두 손을 잡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 후 ‘판문점 평화선언’을 도출할지가 관건이다. 두 정상이 포옹을 나눈다면 남북의 공동 번영을 넘어 비핵화 낭보를 바라는 전 세계에 큰 선물이 된다. ‘2018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를 다룬다는 점에서 기존 회담의 맥을 잇지만 많은 부분에서 최초의 회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26일 “비핵화 논의, 한국이 주최하는 회담, 외교·국방장관이 포함된 문재인 대통령 공식수행단 등이 기존과 다른 점으로 본다”고 밝혔다. 우선 이번 정상회담의 비핵화 논의는 5~6월 중 열릴 북·미 정상회담의 길잡이가 된다. 지난 1월 9일 첫 고위급회담에서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비핵화 언급에 화를 냈다. 북한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갈 수 있는 민감한 주제가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핵심 의제로 다뤄지는 것이다. ●불신 깊은 북·미 사이 중재 외교 성과 또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의 제안으로 시작됐지만 한국이 실질적 의미에서 계획했고 중재했으며 주최한다. 한국은 이 자리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9월 또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에 평화의 손길을 내밀었다. 불신의 골이 깊었던 북·미를 중재해 회담 석상에 앉도록 설득했고, 외교 역량을 발휘해 꾸준히 주변국의 지지를 얻었다. 장소는 북한 평양에서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북측 최고지도자 중 처음으로 MDL을 넘는다. 이 과정에서 최초로 국군(육·해·공군)을 사열한다.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가 동행해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를 만난다면 역시 양측 퍼스트레이디의 첫 만남이다. 회담의 추동력도 보장될 것으로 보인다. 정권의 중·하반기에 열렸던 지난 회담과 달리 정권 초기에 개최되기 때문이다. 2000년 회담 때 통일부가 주축이 됐던 것과 달리 청와대가 직접 정상회담을 챙기는 방식도 추동력 마련에 유리하다. 또 2007년 노 전 대통령이 방북해 평화자동차 공장과 서해갑문 등을 시찰하는 등 경협 확대를 주요 의제로 다뤘지만 이번에는 경협이 배제된다. 국제사회의 제재 완화를 의미하는 경협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선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2000년 북한의 핵무기 수준은 플루토늄만 보유한 초기 개발 단계였다면, 2007년에는 고농축우라늄까지 보유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지난해에는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데다 미 본토까지 도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기존 정상회담이 남북 관계의 진전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미국의 대북 군사적 옵션 실행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교착 상태를 풀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남북, 사전에 상세히 의제 조율 의의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남북이 사전에 정상회담 의제를 상세히 조율한 것이나 남·북·미가 확실하게 동의한 뒤 정상회담을 연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며 “무엇보다 종전선언을 포함해 근본적으로 평화 의제를 다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전쟁 위기서 정상회담까지… 반전의 300일 ‘한반도 드라마’

    전쟁 위기서 정상회담까지… 반전의 300일 ‘한반도 드라마’

    文 ‘베를린 구상’에 北 냉담한 반응 北 ICBM 발사로 도발 수위 고조 작년 9월 핵실험 ‘레드라인’ 넘어 金 신년사 통해 평창 대표단 제안 올림픽 계기로 예술단 교류 물꼬 화해무드에 남북·북미회담 성사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52일 만인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마주 앉는다. 취임 1년을 앞두고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됐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말까지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증폭됐던 남북 관계는 올 2월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예술단 공연이 성사되고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추진되는 등 급반전했다.문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7년 남북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처음으로 대북 인도지원단체의 대북 접촉을 승인하는 등 북한에 손을 내밀었다.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밝혔던 문 대통령은 같은 해 7월 남북 관계 개선과 정상회담 필요성을 강조하고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제안하는 내용을 담은 ‘베를린 구상’을 발표했다. 하지만 북한의 반응은 냉담했다. 취임 4일 후인 5월 14일 신형 중장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던 북한은 ‘베를린 구상’ 발표 앞뒤로(7월 4일·2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며 도발 수위를 높였다. 정부는 사드 임시 배치, 독자적 대북 제재,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 협상 개시 등을 검토하는 등 사실상 유화책을 거둬들여야 했다. 같은 해 9월 3일 6차 핵실험 단행으로 북한은 사실상 ‘레드라인’을 넘었다. 북·미는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말폭탄’을 주고받았고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힘을 잃었다. 북한은 11월 말 미국 본토를 사정권으로 하는 새 ICBM인 ‘화성 15형’을 발사했고 김 위원장은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하지만 올해 1월 1일 평창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을 전격 제안한 김 위원장의 신년사와 함께 남북 관계는 다시 급변했다. 김 위원장은 “핵단추가 내 책상 위에 있다”면서도 “평창올림픽이 성과적으로 개최되길 바란다”,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 있다” 등 남북 관계의 전면 복원에 방점을 찍은 메시지를 전했다. 김 위원장의 의중을 꿰뚫은 정부는 하루 뒤 판문점 고위급 회담을 제안하며 이에 화답했다. 스포츠를 고리로 본격화된 화해 무드는 정상 간 회담 논의로 이어졌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방한한 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청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와 함께 방북을 요청했다. 한 달여 뒤인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특사단은 김 위원장을 만나 정상회담 개최를 논의했다. 정 실장은 하루 뒤인 6일 판문점 남측 구역인 평화의집에서 3차 남북 정상회담을 4월 말 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또 다른 반전은 5월 북·미 정상회담 성사였다. 정 실장으로부터 김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의사를 전달받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를 전격적으로 수용하며 4월에 이어 5월에도 매머드급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ICBM 시험발사 중단 방침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에 호응하듯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방침을 밝혔다. 이제 남북 정상은 27일 오전 9시 30분 군사분계선에서 기념비적인 첫 만남을 갖는다. 6·25 전쟁 이후 북한 지도자가 남한 땅을 처음 밟는 역사적 순간이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서울광장] 일본의 대담한 대북 외교를 기대하며/황성기 논설위원

    [서울광장] 일본의 대담한 대북 외교를 기대하며/황성기 논설위원

    비핵화 문을 힘차게 열 2018 남북 정상회담이 이틀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세계를 놀라게 할 결과가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장시간 회담을 거쳐 타전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남북 정상이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윤곽을 잡고 한 달 뒤쯤 북한과 미국이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할 것이다.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비핵화·평화 프로세스가 4·27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구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속전속결의 북핵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한반도 모델’로 교과서에 기록되기를 기대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전후한 남북 특사 교환 이후 3·27 북·중을 시작으로 4·18 미·일 등 정상 외교가 눈에 띈다. 5월 한·중·일, 6월 한·러 정상회담처럼 확정된 일정 외에도 북·중, 한·미 정상회담이 예상된다. 한반도와 주변국 정상이 몇 달 사이 자주 만나는 일은 21세기 들어 없던 일이다. 한반도 평화시대라는 전환기에 강대국들이 그들의 이해를 담아 개입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분주하다. 열강들의 한반도 개입이 역사의 트라우마처럼 다가오지만 이 땅이 다시는 전쟁의 길에 빠지지 않고, 민족의 경제공동체를 일구는 대장정을 하려면 이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약속을 받아냈다. 그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내정자의 4월 초 평양 방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6월 중 평양 답방 소식이 흘러나왔다. 요동치는 한반도 정세에 일본만 뒤처지는 느낌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위기감이 없는 듯 보인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한 회견에서 ‘재팬 패싱’을 묻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고 부정했다. 과연 그럴까. 아베 총리는 올해 초만 해도 일본 외교가 역사상 최고점에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역대 어느 총리보다도 많이 해외를 다니며 국익을 추구하는 ‘아베 외교’를 펼쳐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일어날 한반도의 지각변동은 예측을 못 하지 않았나 싶다. 일본 정부가 한반도 정세를 오독(誤讀)한 시점은 지난해 11월 북한의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봐야 한다. 그 선언을 김정은 정권의 ‘핵 담판’으로 읽었다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발표되기 전까지 ‘대화 없는 제재와 압박’을 외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오죽하면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영원히 평양행 차표를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을까. 비핵화 열차의 종착역은 북·미 수교이다. 그 열차에 오를지는 전적으로 일본 정부에 달렸다. 일본은 남북,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보고 대북 외교의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자세다. “하도 북한에 속아서” 돌다리도 몇 차례고 두들겨 보고 건너려는 신중함이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버스를 놓쳤다면 무리해서 올라타기보다 일시정차할 때 타면 된다’는 얘기들을 한다. 그런 신중한 태도를 탓할 수는 없다. 일본 정부는 ‘납치, 핵, 미사일 등의 제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 일·조(북·일) 국교정상화 실현’을 기본방침으로 하고 있다. 비핵화가 되더라도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일 수교는 어렵다는 얘기다.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납치 고백이 일본의 북한 때리기를 초래해 국교정상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경험이 있다.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북한은 납치에 관한 모든 것을 넘겨주고, 일본도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북·미의 비핵화 해결 방식으로 거론되는 ‘원샷’, ‘빅뱅’ 등의 대담한 타결이 북·일 관계에서도 필요한 까닭이다. 북한은 일본이 전후 처리를 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불행한 과거를 청산할’(2002년 북·일 평양선언) 책임, 일본에 있다.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에게 납치 문제를 제기해 달라는 아베 총리의 요청, 충분히 이해한다. 이제 스스로 대북 외교에 나서 비핵화 한반도와 협력하는 대국 일본의 역할을 할 때다. marry04@seoul.co.kr
  • [수요 에세이] 조선몽ㆍ중국몽/김영목 전 코이카 이사장

    [수요 에세이] 조선몽ㆍ중국몽/김영목 전 코이카 이사장

    오는 27일 남북 정상이 정전협정이 체결됐던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갖는다. 남북 정상 간 종전 선언이 발표된다면 북 비핵화, 평화체제, 남북 협력 등 한반도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굵직한 줄기들이 그려질 것이다. 북한은 지난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의 결정문에서 ‘‘핵무기 병기화’가 완결되고 검증됐기 때문에 핵실험과 중장거리 대륙간, 탄도탄 실험이 필요 없게 됐고, 북부 핵시험장도 자기 사명을 다했다’고 밝혔다. 또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에 힘입어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북한의 비핵화가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는 앞으로 드러날 것이다. 단 북한이 경제건설을 위해 주변국 및 국제사회와 긴밀한 연계를 하겠다고 의지를 밝힌 점이 주목된다. 1994년 미국과 북한이 타결한 제네바 합의(Agreed Framework)의 핵심은 북·미 관계 정상화와 1000MW 경수로(한국형 원자력 발전소) 2기의 건설 기간에 중유 50만t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한·미와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은 별개다. 약 70억 달러 이상 소요되는 사업이었지만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30억 달러 정도를 집행하고 철수됐다. 현재 북한이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하는 데 투입할 재원을 정확히 추정할 수 없지만, 당시 합의는 향후 북이 요구할 재원 규모를 추정하는 데 참고가 될 수 있다. 북한 정권이 도발과 위험을 중단하고 경제 건설에 주력하겠다는 노선을 설정한 데 나름 합리적인 꿈을 그렸길 바란다. 북한의 롤모델이 중국이라면, 중국은 전 세계 최빈국에서 명실상부 2대 초강대국이 됐다. 공산당 일당 지배체제지만, 2017년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62%이고 구매력평가기준(PPP)으로는 이미 미국을 넘어섰다는 것이 국제통화기금(IMF)의 평가다. 이 추세라면 2040년 GDP(PPP 기준)는 미국의 2배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몽’은 잘 알려져 있다. 연간 1000억 달러 이상을 일대일로에 투자하고 인공지능, 로봇, 블록체인, 빅데이터 등 제4차 산업혁명 및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세계 최대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알리바바, 텐센트가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술 거인으로 등장했다. 그간 미·중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누렸던 한국은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은 한반도 평화 구축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철폐, 바람직한 평화체제 구축, 대북 경제 보상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과거처럼 미국의 주도와 기여를 기대하기 힘들다. 계산을 앞세운 주변국들의 입장도 부담이 될 것이다. 특히 경제·기술 대국인 중국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북한이 중국을 벤치마킹해 전략적 대국으로 일어나는 ‘조선몽’을 그리고 있다면, 중국의 지도자들이 일관되게 지켜온 개혁ㆍ개방을 골자로 한 중국 궐기의 50년 전략을 숙고해야 한다. 막대한 개발재원이 힘든 과정을 통해 조성돼도, 투명하고 효율적인 거버넌스 체계가 없으면 공염불일 수 있다. 정치체제의 개혁은 경제건설과 동전의 양면이다. 일관된 개방과 보편적 국제사회의 룰을 준수하지 않으면 중국 및 베트남과 같은 잘사는 사회주의 건설은 불가능하다. 또 북한의 진정한 개혁이 있어야 남북 협력이 촉진되고, 북방으로 뻗어가는 한국몽도 가능해진다.
  • 풍계리서 6차례 핵실험… 핵탄두 10~20기 보유 추정

    풍계리서 6차례 핵실험… 핵탄두 10~20기 보유 추정

    인도·파키스탄도 6번만 실험 ICBM도 계기상으로 성공 분석 북한이 핵실험장 폐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을 선언함에 따라 그 의도와 배경 못지않게 북한이 폐기하겠다고 한 이른바 ‘북부 핵시험장’과 현재의 북한 핵·미사일 능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북한이 ‘북부 핵시험장’이라고 불러 온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은 북한 핵 개발의 상징적 장소다. 북한이 실시한 6차례의 핵실험이 모두 이곳에서 실시됐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해발 2205m의 만탑산 깊은 계곡에 조성돼 있다. 단단한 화강암 지역이어서 핵실험 이후 발생하는 각종 방사성 물질의 유출 가능성이 크지 않아 지하 핵실험을 위한 좋은 조건을 갖춘 장소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인도·파키스탄과 똑같이 6차례 핵실험 이후 추가적인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핵실험장을 없애고 ICBM 시험발사를 중단한다는 것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현재 수준에서 ‘동결’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북한은 지난해 말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10~20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방부가 지난해 펴낸 ‘2016 국방백서’에서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은 당시 50㎏을 넘어섰다. 핵탄두 하나당 4∼6㎏씩 10기 안팎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여기에 북한은 2010년 말 이후 연간 최대 40㎏(핵탄두 2기 제조 분량)의 고농축우라늄(HEU)을 생산할 수 있는 원심분리시설을 가동시켰다. 가동·중단을 반복했기 때문에 정확한 분량을 알 수 없지만 ‘상당량’을 확보한 것으로 군 정보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미사일은 이미 단·중·중장·장거리 ‘라인업’을 모두 갖춰 놨다. 여기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은밀성’까지 확대했다. 북한은 이미 3차례의 ICBM 시험발사를 마치고 계기상으로는 완성을 선언한 만큼 추가적인 시험발사도 필요하지 않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뉴스 분석] 핵보다 경제…비핵화 승부수 던진 김정은

    [뉴스 분석] 핵보다 경제…비핵화 승부수 던진 김정은

    선제적 핵동결 의지 대내외 표명 한반도 비핵화 논의 탄력받을 듯 56년 이어 온 병진노선 폐기 천명 김일성·김정일 전략 노선 뒤집어 靑 “진전”… 트럼프 “좋은 뉴스”‘한반도의 봄’이 성큼 다가왔다. 북한이 6차례 핵실험을 진행했던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경제건설 총력 집중’을 새 전략 노선으로 채택한 것은 오는 27일 2018 남북 정상회담과 뒤이을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내외적으로 비핵화 의지를 선명하게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미와의 연쇄 정상대화에 앞서 선제적으로 핵동결의 첫 단추를 끼움으로써 비핵화 논의가 탄력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청와대는 22일 이런 상황을 정상회담의 성과물로 반영하고자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한 최종점검회의를 열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예정에 없던 의제 관련 최종점검회의를 소집했고 정상회담 합의문(남측 안)을 포함해 (어제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 등) 아무래도 여러 가지 논의가 포괄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0일 김 위원장이 주재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결정서에 “주체107(2018)년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라며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 핵 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고 21일 보도했다. 북한이 언급한 ‘북부 핵시험장’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이다.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지난해 9월까지 6차례의 핵실험이 이뤄진 북핵의 상징적 공간이다. 앞서 지난달 5~6일 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으로 방북했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밝힌 5가지 합의사항 중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측은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와 비교하면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이라는 전제조건은 빠지고 핵실험 및 ICBM 시험발사 중지 시점을 특정했으며, 핵실험장 폐쇄를 추가한 전향적 조치로 평가된다. 김 위원장은 2013년 3월 채택됐던 핵 무력과 경제 건설의 ‘병진노선’과 관련해 “역사적 과업들이 빛나게 관철됐다”며 경제건설 총력 집중이 새로운 전략적 노선이라고 강조했다. 1962년 김일성 주석의 경제·국방 병진 노선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 노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경제·핵무력 병진까지 56년을 이어 온 ‘병진노선’의 공식 폐기를 안팎에 천명한 것을 뜻한다. 청와대는 “전 세계가 염원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라며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매우 긍정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트윗을 통해 “북한과 전 세계에 매우 좋은 뉴스이며 큰 진전으로 정상회담을 고대한다”고 환영했다. 한편 청와대는 전 세계 누구나 모바일을 통해 이번 정상회담의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경호·의전·보도 분야 3차 실무회담은 23일 판문점에서 열린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