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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손님,서울시민과 어울린다/북녘대표들 3박4일 어떻게 지내나

    ◎판문점서 영접… 호텔서 양측 상견례/두차례 영화구경… 워커힐 민속공연 참관/북,속기사 대동 청와대행 의미 둔 듯 정부는 남북 고위급회담 북한대표단의 입경을 하루 앞둔 3일 3박4일의 체류일정별로 모든 준비를 마무리짓고 최종예행까지 끝냈다. 또 청와대와 관련부처들은 북한대표단의 면담계획을 재점검하고 전략회의를 열어 이번 서울회담에 대비한 입장과 대응책을 논의하는 등 초읽기에 들어갔다. ▷체류첫날(4일)◁ ○…북한측 대표단이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시간은 정확히 상오 10시. 북한 대표단은 군사정전위 건물사이의 분계선을 걸어서 통과,우리측 지역으로 넘어온 뒤 「평화의 집」 앞에서 간단한 도착행사를 갖는다. 연형묵총리는 우리측 차석대표인 홍성철통일원장관을 비롯한 회담대표 6명(강영훈국무총리 제외)의 영접을 받고 악수를 교환한 뒤 우리측의 꽃다발 증정에 이어 연총리는 10분 정도의 도착성명을 한다. ○…북측 대표단은 호텔 정문앞에서 우리측 수석대표인 강총리의 영접을 받고 인사를 교환하며 남북 쌍방 회담대표간의 첫 상견례를 갖는다. 북한대표단은 호텔내에서 우리측 대표 일부와 비공식적인 점심식사를 한 뒤 휴식을 취할 예정. ○…북한대표단 90명은 하오 6시쯤 숙소를 출발,우리측 강총리가 남산기슭의 힐튼 호텔에서 하오 7시부터 베푸는 만찬에 참석한다. 호텔 지하1층 그랜드볼륨앞 「포이어」에서 칵테일 파티로 시작되는 이날 만찬 석상의 헤드테이블에는 쌍방 수석대표인 강ㆍ연총리가 중앙에,김상협 대한적십자총재,민관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김용식 국토통일고문회의장,최호중외무부장관,홍 통일원장관,북측의 차석대표인 김광진 인민무력부부부장 등 8명이 자리하게 된다. 또 만찬에는 통일원및 적십자사 관계자를 비롯,각 부처의 장ㆍ차관,언론계 인사,전경련 등 경제4단체의 장 등 3백20명이 초대된다. 만찬에는 프랑스식 7코스 요리가 나오며 백조가 깃을 펴고 「환영」이라고 쓰여진 남대문모양의 얼음장식이 분위기를 돋운다. 강총리는 이날 만찬이 끝날 때쯤 연총리에게 고급 청자화병을,나머지 회담대표들에게는 고급양복지,수행원들에게는 손목시계,기자들에게는 탁상시계를 선물할 예정. 북측 대표단들은 밤 9시쯤 만찬과 여흥을 끝내고 남산순환도로를 통해 서울의 야경을 구경하면서 무역회관으로 향한다. 이들은 무역회관에서 문화영화 한편을 관람한 뒤 숙소로 돌아갈 예정. ▷체류이틀째(5일)◁ ○…10시부터 시작되는 남북 총리회담 제1차 본회담은 강총리의 인사발언을 시작으로 공개로 진행된다. 이날 회담장에는 남북 쌍방의 회담대표 14명(각 7명씩),수행원 66명(각 33명),취재기자단 1백명(각 50명)등 1백80명과 쌍방의 의전및 기록요원 약간명이 참석한다. 연총리가 이어 인사발언을 하고 강총리와 연총리는 기조발언을 통해 총리회담에 임하는 쌍방의 기본입장을 피력한다. ○…북한 대표단은 낮 12시쯤 회의를 마치고 식사와 휴식을 취한 뒤 쉐라톤 워커힐호텔 가야금식당에서 민속공연을 관람한다. 북측은 우리측이 제시한 산업시찰 남산타워 방문등 관광일정은 모두 거부했으나 예술단 공연관람만은 유일하게 자신들이 요구했다. ○…연총리들은 하오 7시쯤 고건서울시장이호텔신라에서 베푸는 만찬에 참석,각계각층의 서울시민 대표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과거 적십자회담등의 전례로 보아 동창ㆍ친지 등과의 해후도 예상된다. 이어 이들은 무역회관에서 극영화인 아제아제바라아제를 관람한다. ▷체류사흘째(6일)◁ ○…남북쌍방은 전날의 「탐색전」에 이어 상오 10시부터 본격적인 2차회의를 비공개로 갖는다. 이날은 총리단독 회담,쟁점의제별 부문회담이 열려 상호 신뢰구축을 위한 일련의 조치에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는 회의이다. 회의를 마친 뒤 연총리의 종결발언과 강총리의 고위급회담은 사실상 종결된다. 북측 대표단은 삼원가든에서 불갈비로 점심을 한 뒤 중앙박물관을 관람한다. ○…노태우대통령은 이날 하오 4시 연총리등 북한대표단의 예방을 받고 남북 관계개선에 관한 소신을 피력하는 한편 김일성 북한주석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연총리에게 전달할 예정. 청와대를 예방할 북한측 인사는 연총리등 북한대표 7명과 림춘길총리책임보좌관,최봉춘총리보좌원 겸 연락관,그리고 수행원 겸 속기사 등 모두 10명이며 우리측 배석인사는 강총리등 우리측 회담 대표 7명과 노재봉비서실장 이현우경호실장 이수정공보수석비서 등 10명이다. 노대통령이 김일성주석에게 보낼 별도의 친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으나 만약 북한측이 김주석의 친서를 갖고 오거나 선물을 준비했을 경우 상응한 조치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체류나흘째(7일)◁ ○…북한대표단은 상오 9시 강총리의 환송을 받으며 호텔을 출발,입경때의 역코스를 거쳐 상오 11시쯤 판문점을 통해 평양으로 간다. ▷회담최종점검◁ ○…강영훈국무총리ㆍ홍성철통일원장관 등 우리측 대표단 7명은 3일 하오 5시 남북대화사무국에서 마지막 대책회의및 리허설을 가진 뒤 하오 6시35분쯤 회담장인 인터콘티넨탈호텔에 들러 준비상황을 점검. 강총리 등은 2층에 마련된 회담장과 대표단 휴게실,외신ㆍ내신ㆍ북한기자 프레스센터 등을 차례로 돌아보며 관계자들로부터 간단한 준비상황을 보고받고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 강총리는 이날 회담장에서 사진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홍장관ㆍ정호근합참의장ㆍ김종휘 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ㆍ임동원외교안보연구원장 등 우리측 대표단 4명과 함께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기도. 강총리는 이어 기자들을 둘러보며 『회담장소가 좋으니 이번 회담이 잘될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한 뒤 31층 레스토랑에서 관계자들과 함께 식사했다. ○…고위급회담 프레스센터가 인터콘티넨탈호텔 2층에 설치돼 3일 하오 문을 열었으며 오는 7일 하오 7시까지 24시간 운영될 예정. 이날 프레스센터 개소직후 김형기 남북대화사무국 공보관은 『북한의 입지를 어렵게 만들거나 자극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측의 기본입장이며 취재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해달라』고 북한측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견지해 달라고 여러차례 당부하면서 ▲북한측 인사와의 과도한 개별인터뷰시도 ▲음식얘기 등 시시콜콜한 신변잡사 ▲북측 대표단 차량추적 ▲추측보도 등을 자제해 주도록 부탁.
  • 모국방문 7순 사할린교포 할머니(조약돌)

    ◎50년만에 남동생ㆍ조카와 극적상봉 ○…사할린동포 모국방문단의 일원으로 서울에 온 강한갑씨(76)가 27일 하오2시 마포구청장실에서 50년만에 남동생 강평순씨(74ㆍ강서구 화곡본동 1130의20)와 극적으로 상봉. 강할머니는 지난25일 호적등본을 갖고 마포구청을 방문,딸과 동생을 찾으려 했으나 컴퓨터 조회에 실패,이날 장조카의 주민등록사항을 확인해 장조카 강성옥씨와 전화통화에 성공,동생과의 해후가 이뤄진 것. 그러나 강할머니가 찾고있던 남동생 2,여동생 2명중 큰동생인 강할아버지만 생존,다른 가족은 모두 사망했으며 딸 윤인섭씨(일명 강정자)는 출가한 것으로 밝혀져 현재 호적을 추적중. 강할머니는 40년 여름 유복자로 태어난 딸과 함께 서울 마포에서 살다가 딸이 국민학교에 입학하자 돈을 벌어 자립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잡으면 데리러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혈혈단신으로 사할린으로 떠났었다. 강할머니는 그곳에서 재혼,2남3녀를 낳았지만 고향에 두고온 첫딸과 동생들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의 세월을 보내다가 이날 꿈에서도 생각지 못하던 동생을 만나게된 것. 이날 상봉을 주선한 이원택 마포구청장은 강할머니 남매에게 기념품을 전달하고 50년만에 해후를 한 이들과 이산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도.
  • 고교동창생들과 42년만의 해후/귀국 재소과학자 장학수박사

    ◎경복고시절 추억 더듬으며 얘기꽃 피워/“이젠 공산주의 아닌 나를 위해 살겠다” 16살의 어린 나이에 사회주의 체제를 동경,고국을 떠나 북한과 소련땅을 떠돌던 소년이 어느덧 머리가 희끗해져 42년만에 친구들과 감격적으로 해후했다. 22일 서울 중구 태평로1가 프레스센터 20층 멤버스클럽에서는 수리학전자측정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장학수박사(58ㆍ레닌그라드거주)가 월북전에 다녔던 서울 경복고 27회 동창들이 마련한 귀국환영만찬이 열렸다. 이 학교 동창회가 지난달 27일 장박사가 자신의 삶을 통해 사회주의이념에 대한 맹목적추종이 가져다준 허망함을 널리 알릴 자서전출간을 위해 문학사상사의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날 만남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당시 1학년 4반이었던 장박사의 담임 정연무씨(72ㆍ국어)와 2학년3반 담임교사 백사익씨(80ㆍ수학) 등 은사 4명과 동창생 30여명 등 40명이 참석해 장박사와 함께 회포를 나눴다. 항상 『꿈을 잃지 말라』고 강조하던 교무주임 홍두표교수(80),별명이 「열무김치」라고 불렀던 친구 정기성씨(정일학원 진학상담실장) 등…. 준비해둔 다과를 들며 한껏 흥을 돋우던 동창생들은 장박사가 인사말을 통해 『이제껏 생존만을 위해 살아왔으나 앞으로는 참다운 인생을 이끌고 싶다』고 말할때는 숙연한 분위기가 되기도 했다. 현재 소련에서 「환경보전연구 및 생산합동체」의 화학담당부총장을 맡고 있는 장박사는 오는 9월8일 일단 소련으로 돌아간뒤 소련인 부인 장니나씨(48),3남중 막내아들과 함께 다시 우리나라에 와 영구귀국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 김현희 서울의 혈육 상봉/외할아버지 4촌 일가와 해후

    ◎“어머니 보고 싶다”계속 흐느껴 KAL기 폭파범 김현희양(28)이 21일 상오9시30분쯤 서울 중구 장충동 이북5도청에서 외할아버지의 사촌동생(외재종조부)인 임관호씨(70ㆍ서울 관악구 남현동 이화연립) 등 외가친척들을 극적으로 만났다. 1천만 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의 주선으로 이날 임씨를 만난 김양은 『이북에 있는 외삼촌과 얼굴이 닮았다』며 임씨를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렀다. 김양은 임씨가 김양의 어머니인 임명식씨(56)와 외삼촌ㆍ이모들의 이름을 정확히 대자 외할아버지임을 알아보고 덥석 안겼다. 김양은 특히 임씨가 보관하고 있던 어머니 임씨의 개성 명성(구 호수돈)여자중학교 재학시절 사진을 보여주자 울먹이며 『이 사진을 엄마가 갖고 있는 것을 본적이 있다』면서 『엄마ㆍ아빠가 보고 싶다』고 흐느꼈다. 김양은 『남한에 친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북한 같으면 피해를 입을까봐 찾아올 생각도 못할텐데 큰 죄를 지은 저를 친척이라고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하며 앞으로 자주 찾아뵙고 싶다』고 말했다. 연보라색 바탕에 청색 줄무늬가 있는 투피스를 입고 머리를 묶은 단정한 모습으로 나온 김양은 임씨와 함께 나온 임씨의 누나 임명복씨(71) 등 친척 7명과 어머니의 얘기 등을 하며 만남의 기쁨을 나눈뒤 위원회가 준비한 금반지와 꽃다발을 선물로 받았다. 개성에서 김양의 어머니 등과 함께 살다 6ㆍ25때 남하했다는 임씨는 지난 88년 1월18일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수사결과 발표당시 김양의 어머니가 개성출신인데다 여자에게는 흔치않은 남자이름인 임명식이라는 보도를 보고 김양이 북한에 있는 사촌형 증호씨의 외손녀라고 직감했으나 그동안 망설여 오다 지난 4월12일 김씨가 특별사면되자 위원회측에 인척관계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해 이날 만나게 됐다.
  • 결혼반대에 비관/애인 살해후 자살

    8일 하오5시30분쯤 서울 성동구 옥수2동 284의2 태양다방입구 계단에서 문재호씨(25ㆍ사진관종업원ㆍ구로구 독산1동 1006의9)가 1년전부터 사귀어 오던 박영희씨(25ㆍ부동산중개소 경리사원ㆍ성동구 옥수2동)와 결혼하지 못하는 것을 비관,미리 준비해간 흉기로 박씨의 목과 옆구리등 3군데를 찔러 숨지게 하고 달아난뒤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반인륜적범죄 척결에 “극약처방”/흉악범 사형집행의 의미

    ◎가정파괴등 흉포화에 경종/80년이후 8차례 86명 처형 살인·강도살인·강도강간 등을 일삼아온 가정파괴범과 흉악범 9명에 대한 17일의 사형 집행은 인륜을 저버린 강력범죄는 반드시 단죄하겠다는 사법의지의 표현으로 볼수 있다. 다시말해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에 대해서는 결코 좌시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들에게 극형을 내림으로써 날로 흉포화해 가는 강력범죄에 대해 경종을 울린 것이다. 최근들어 부녀자폭행및 살해등 가정파괴범이 늘어나는 점을 감안,강력한 극약처방이 요구되던 터에 이와같은 단안이 내려진 것은 상당한 뜻을 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용서할 수 없는 가정파괴및 흉악범에 대해서는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하고 그에 따라 법원의 선고가 확정되면 어김없이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이들을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 시킨다는 법집행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은 최근들어 흉악범의 경우 10대 청소년들에게까지 사형을 구형하는 등 법의 적용을 엄격히 해 오고있다. 이와함께 법원도 『비록 10대라고는 하지만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폭행하는 행위는 등의 행위는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유로 극형을 선고하는 사례가 잦아졌다. 한편 사형제도는 「범죄의 사회로부터의 격리」라는 차원에서 상당한 찬성을 받고있기는 하나 사형폐지운동협의회(회장 이상혁변호사)등 일부 단체의 폐지운동에 직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형폐지론자들은 『사형을 집행하는 것만이 범죄예방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주장,『범죄를 저지르면 꼭 잡힌다는 의식을 심어줄 수 있도록 검경등 수사기관이 제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있다. 통상적으로 사형집행은 확정판결이 있고 나서 4개월안에 검찰총장이 법무부장관에게 사형집행명령을 내리도록 요청하고 법무부장관은 사형확정일로부터 6개월안에 집행명령을 내려 5일안에 집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강제규정」이 아닌 「훈시규정」이기 때문에 사형의 집행은 미뤄지기가 일쑤였다. 제6공화국 들어서는 지난해 8월 혜준양 유괴살해범 등 7명을 사형집행한데 이어 이번이 2번째 집행이다. 이로써 80년 이후에 사형이 집행된 사람은 지금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86명에 이르렀다. ◇사형집행자 죄명 및 범죄사실 ●최정호 나 이 24 죄 명 강도살인강도강간 범 죄 사 실 87년 포항에서 데이트남녀납치해 공범들과 여자를 6차례윤간,남자는 살해한 뒤 저수지에 유기하고 도피중 인질극을 벌이는등 강절도 30여회 ●강창구 나 이 33 죄 명 강간치상ㆍ살인등 범 죄 사 실 87년 충남 공주군 반포면 일대에서 이모여인등 부녀자6명을 강도,강간,살해 ●육근성 나 이 30 죄 명 강도살인 범 죄 사 실 87년 서울 동대문구 중화2동 김모여인집에 침입,딸을 살해한뒤 뒤이어 김여인도 살해하고 강도 ●어성갑 나 이 38 죄 명 살인ㆍ강간등 범 죄 사 실 88년 버스요금 삥땅행위가 적발되자 동료운전사 집에서 동료의 처를 강간,살해한뒤 두아들도 살해 ●박영국 나 이 26 죄 명 강도살인ㆍ시체모욕등 범 죄 사 실 83년 서울 영등포 모식당에 침입,주인부부를 살해한뒤 죽은여자를 강간 ●유자환 나 이 31 죄 명 강도살인 범 죄 사 실 86년 천안에서 돈이 많다고 소문난 김모여인집에 침입,김여인을 살해후 6세된 딸도 살해 ●천영훈 나 이 38 죄 명 살인ㆍ살인미수등 범 죄 사 실 87년 부산에서 이모부내외를 살해하고 하숙집주인ㆍ동네여인등을 칼로찔러 부상케함 ●이배진 나 이 57 죄 명 살인ㆍ살인미수등 범 죄 사 실 82년 김모변호사를 돈을 주지 않는다고 살해하고 말리는 사무장도 찔러 중상 ●권현집 나 이 41 죄 명 살인ㆍ사기등 범 죄 사 실 82년 사기당한 피해자가 고발하려하자 충남 연기군의 숲으로 유인,살해하고 땅에 버림
  • 40년만의 「전화상봉」30분/한필성씨,북의 노모와 감격의 통화

    ◎“오마니”ㆍ“필성아”외치곤 목메인 울음만/귀 어두운 어머니에“평양 갈께요”다짐 【삿포로(일본)=동계아시안게임 특별취재반】 『오마니』『필성아』 40년만에 처음으로 서로를 확인한 어머니와 아들은 목이메여 울음만 삼켰다. 살아 생전에 다시는 불러보지 못할줄 알았던 어머니를 부르는 아들의 음성은 기쁨과 회한으로 떨리기만 했다. 『네가 정말 필성이냐. 40년전 홀로 떠난 필성이가 틀림없느냐』 『예,오마니. 석선(아명)입니다』 14일 상오8시30분.일본 삿포로 뉴오타니 호텔. 40년전 16세 홍안의 소년으로 어머니 곁을 떠났던 한필성씨(56ㆍ경기도 파주군 문하면 동패리)가 평양에있는 어머니 최원화씨(85)와 극적으로 전화통화에 성공,비록 육성으로나마 감격적인 해후를 나누는 순간이었다. 『혼자 타향에 떨어져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필화가 갖고온 사진으로 어마니 모습을 뵙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지난8일 40년만에 처음 누이동생 한필화씨(48ㆍ북한 빙상연맹서기장)와 상봉한 한필성씨는 아직도 어린자식으로 생각하고 걱정부터 하는 노모의 목소리에 가슴이 찢어지는듯 했다. 이들 모자의 전화상봉은 필성ㆍ필화씨 남매 내외가 13일 삿포로의 뉴오타니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함께 머물고 있을때 평양에서 노모가 직접 국제전화를 걸어와 이루어졌다. 상오9시까지 30분간 계속된 이날 통화에서 필성씨는 어머니의 귀가 고령으로 잘 들리지 않아 큰소리로 말해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필성씨는 『이곳에서 잘살고 있으니 걱정마세요. 귀국하면 적십자사를 통해 고향방문을 신청해 하루 빨리 달려 가겠습니다』라고 흥분된 어조로 인사를 했으며 어머니 최씨는 안부를 묻는 아들의 질문에 『김일성수령님이 우리 가족들을 돌봐줘서 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필화씨는 오빠와 어머니의 통화를 눈시울을 붉히며 지켜본 뒤 『북한에 돌아가는 대로 오빠를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필성씨는 어머니 이외에도 8살위의 누나 필녀씨(64)와 두살아래 동생 필환씨(54) 조카 종국씨(27ㆍ필환씨의 아들) 등과 번갈아가며 통화를 했다. 노모 최원화씨가 살고 있는 평양의 집은 김일성대학체육교수로 있는 필화씨의 남편 임세준씨가 세대주로 되어 있는 아파트로 주소는 평양시 중구역 창광거리 연화2동 13반 13층 2호이며 전화번호는 평양 23672. 한필성씨 부부는 13일밤 어머니와의 통화를 시도했으나 어머니가 안계셔서 성사되지 못했으나 14일아침 뉴오타니호텔로 국제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해 노모가 평양­중국­삿포로라인을 이용해 전화를 걸어와 이루어 졌다. 한편 한필성씨 내외는 14일 하오1시15분 전일본항공편으로 삿포로를 출발,도쿄에서 이틀밤을 보낸뒤 17일 귀국할 예정이다. ◎“6일간의 만남 너무 짧아요/기약없는 이별 안타까움만”/필성ㆍ필화씨 남매 고별 기자회견 한필성ㆍ필화 남매는 14일 상오11시45분 삿포로 지토세공항 2층 대기실 아카시아룸에서 6일간의 극적상봉을 마치고 이별에 즈음한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이별소감과 앞으로의 일정 등을 밝혔다. ­오늘 아침 통화내용은. ▲필성=40년만에 북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했다. 어릴때처럼 「오마니」라고 불렀고 어머니의 목소리는 40년전과 마찬가지로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삿포로에서의 1주일은. ▲필성=삿포로는 동생을 만난 곳으로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이 평생 잊을 수 없는 곳이다. ▲필화=오빠의 사랑을 받으며 즐겁게 지냈다. 만나기전까지는 오빠의 따뜻한 정을 깊게 느끼지 못했으나 오빠를 만나고 보니 혈육은 헤어져 살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40년간 다른 체제에서 생활했는데. ▲필성=삿포로에 와보니 민단ㆍ조총련의 구분이 없더라. 가족얘기만 했다. ▲필화=40년만에 만나 알아보지 못할까 우려했으나 첫눈에 알아 보았다. 아무리 오래 떨어져 있어도 혈육은 혈육이다. 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심정은. ▲필성=그립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보니 더욱 어머니를 뵙고 싶다. ▲필호=만날때는 기쁘고 헤어질땐 쓰라리기만 하다. 이날 회견은 하오12시20분까지 35분간 계속되었고 한필성ㆍ필화 남매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지 못한채 6일간의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졌다.
  • 모든 이산가족에게 재회를(사설)

    40년만에 남매가 만났다. 나이많은 오라비에게 터울 많이 벌어진 누이동생은 딸처럼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그런 누이동생을,40년이나 세월을 지내고 만나야 한다는 것은 슬프고 한스런 일이다. 동기중의 장남인 큰오라버니는 믿음직한 집안의 기둥이다. 그 기둥이,쑥 뽑힌 듯이 「부재중」이다가 40년만에야 마주한 것은 서러운 기쁨이었을 것이다. 한필성씨와 필화씨 남매의 포옹은 6천만 한민족이 함께하는 포옹이었다. 오빠에게 「왜 이제사 왔느냐」고 통곡하며 외치는 누이동생의 원망은 두고온 피붙이들이 다함께 외치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노부모님의 안부를 물으며 불효의 죄로 가슴을 치는 오라버니의 한 또한 망향의 세월 수십년을 휴전선 근처에서 방황해온 천만 이산가족이 함께 삭혀오는 한이다. 그들이 만난 곳은 일본의 삿포로다. 그들은 이곳에서 19년 전에 만났을 수도 있었는데,그때 그들은 끝내 만나지 못했다.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있듯이,사랑스런 막내누이를 만나려고 허위단심 현해탄을 건너갔던 오라버니는 약속된 호텔에서 기다리다가끝내 와주지 못하는 누이동생을 애닯아하며 허탈하게 돌아섰었다. 그때 이야기가 나오자 필화씨는 『과거 이야기는 해서 뭘하겠는가…』고 쓸어덮으며 오늘의 만남만을 대견히 여기자고 했다고 한다. 그말도 옳다. 지나간 일을 들춰서 진하고 애틋한 혈육의 만남에 그림자를 드리울 것은 없다. 너무 단단하게 얼어서 이역의 짧은 햇볕 따위로 잠깐만에 녹일 수는 없었던 그 동한의 계절을 지금 다시 이야기할 것은 없다고 해두자. 마음만 먹으면 일본의 삿포로 정도가 아니라 소련이라도 만주로 불리던 중국이라도,마누라와 자식들을 대동하고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자유로움 속에서 사는 오라버니다. 북쪽에 두고온 가족들이 필화씨처럼 일본에 와줄 수 있다면 만나러 가고 싶은 사람은 남쪽에 숱하게 있다. 그렇게 만나서 부모님이랑 조상이며 이웃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날마다 간구하고 있다. 임종 때의 아버지께서 맏아들을 찾으셨다는 이야기와 『통일이 되어 너희들이 만나게 되면 내가 눈뜨고 다시 오마』고 하셨다는 전언은 우리를 목놓아 울고 싶게 한다.소년시절의 맏아들을 홀홀히 떠나 보내놓고 허전한 노년을 기다림 속에 살다가 마침내 눈을 감아야 했던 어버이의 절통한 한은,언젠가 그 자식을 만나게 될 때면 눈을 뜨고야 말겠다고 벼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부모 슬하를 떠나서 갖은 객지설움 겪어가며 성장하여 자식낳고 세대를 거느린,떠나올 때의 아버지 나이보다 더 먹은 초로가 된 아들로서는 가슴이 에어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런 오라버니로서는 가녀린 막내누이에게 맡겨진 채 아직 생존하신 노모를 생각하면 걸어서라도 달려가고 싶을 것이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만난 동기간은 행복한 소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사도 모르는 채 답답하고 아득한 기다림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가. 이런 많은 동포들을 만나게 해야 한다. 지난 시절 우리를 만나지 못하게 한 것이 무엇인지는 따지지 않아도 좋다. 죽어도 눈감을 수 없는 이 상처 깊은 「이산」들을 만나게 해야 한다. 아쉬운 대로 「고향방문」만이라도 성사시켜야 한다. 「삿포로의 남매」 해후가 비쳐주는 해빙의 작은기미에 커다란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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