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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 감추려 위장강도/10대 여인 둘 살해후 택시강도 자수

    서울 송파경찰서는 6일 강도혐의로 경북 김천소년교도소에 수감중인 김관병(19·경기 하남시 감일동)군에 대해 강도살인혐의를 추가적용,조사를 벌이고 있다. 김군은 지난해 9월27일 상오1시30분쯤 송파구 잠실3동 35 신천지하차도 앞길에서 김모씨(45·여·건강식품판매원·잠실동)에게 『여자가 늦게까지 집에 안가고 뭘 하느냐』고 욕설을 하며 시비를 걸어 이에 항의하는 김씨를 인근 아파트 잔디밭으로 끌고가 마구 때리고 성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군은 3개월 뒤인 같은 해 12월30일 하오7시40분쯤 잠실7동 아시아선수촌 아파트근처 공원에서 신모씨(55·여·중구 중림동 313)를 흉기로 온몸을 20여차례 찔러 숨지게 했다. 김군은 수사망이 좁혀들자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지난 1월30일 하오 8시30분쯤 오금동 S중학교 뒷길에서 택시기사 배모씨(47)를 흉기로 위협,금품을 빼앗은 뒤 2월11일 경찰에 자수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 웬 주례는?(송정숙 칼럼)

    처음으로 「주례」를 섰다.그랬더니 만나는 이마다 어쩐 일이냐고 인사다.입밖에 내서 말하는 사람보다 표정만 미묘해지는 사람이 더 많다.그 표정은 「별꼴이야,웬 주례는?」하는 것같기도 하다.더러는 여권신장의 일환쯤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유명인에 얹혀 「매스컴을 타려 했다」는 혐의도 갖는 것같다. 처음 조영남씨가 주례를 청해왔을 때는 다소 황당했다.그래서 첫마디에 『아이고 그걸 어떻게…』 서겠느냐며 얼굴을 돌렸다.그러다 다음 순간 이내 생각을 바꿨다.일생에 한번쯤 「이색경험 삼아」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하는 유혹을 느꼈고 그렇다면 「이번이 그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례란 주로 혼주가 정하게 마련이다.부모이게 마련인 혼주는 기성세대이므로 「여성주례」 같은 「이상한 짓」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그러니 기회 자체가 돌아오기 어렵다.또 주례란 주례를 서준 한쌍의 결혼생활의 성공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부담스러운 일이다.게다가 불난 호떡집 같은 결혼식장에서 혼자 근엄한 얼굴을 짓고 서서 지루하고 위선적인 주례사를 길게 늘어놓느라고 사람들 미움이나 사게 마련인 우리의 주례역할이 평소에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여자가 이 역할에서 제외되는 것이 서운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조영남씨가 청하는 주례역에서는 그런 것이 다 해결된 셈이다.주인공 자신이 파격적인 용기로 스스로 청해왔으며 10년이나 살던 부부이므로 새삼스럽게 책임질 것도 없을 것이다.게다가 결혼식도 자신의 전시회 개막을 위한 퍼포먼스삼아 한다니까 그 국적불명의 결혼의식과는 다를 것이다.그래서 청해온 지 이틀만에 적극적인 찬성을 해주었다. 그렇다면 조영남씨는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그때까지 서로 만난 적이 없다.다만 연전에 그에 대한 칼럼을 한편 쓴 적이 있다.거기에 그의 「이혼태도」에 대한 칭찬을 담은 적이 있었다.어느 TV에서 그가 자신의 이혼한 전부인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는 아주 담담하게 옛날 부인을 칭찬했다.그러면서 자신들의 가정이 깨지게 된 원인이 순전히 자신의 과오였음을 솔직하고 멈칫거림 없게 털어놓았다.그리고이혼 후 그가 가장 걱정스러웠던 일을 말했다.그것은 사랑하는 두 아들이 「아빠를 무시하고 안보려 하면 어쩌나」하는 일이었는데 너무나 다행스럽게 아이들은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그것은 전적으로 그 엄마인 전부인의 공이었음을 안다며 진정으로 고마워했다.그런 것을 칼럼에 담았었다. 이혼이란 결코 권장할 일은 못되지만 헤어진 아내나 자녀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괜찮은 이혼남」이라고 생각한다.저명인사 ㅅ씨는 혼외였던 여인에게 무리를 해가며 정식지위를 주었다.그리고는 그 기념으로 책을 내주고 축하해주면서 그때부터는 두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자녀「1남1녀」만을 공식화시키는 발언을 하고 다녔다.많은 사람이 전부인과 그 소생을 알고 있고 아버지의 작은댁 생활 때문에 그늘로 가려진 그 소생의 설움을 알고 있는 터라 그런 태도가 분노를 느끼게 했었다. 정치투사로 활약하던 어떤 작가의 경우도 있다.그가 해외에서의 어떤 정치적 사건에 개입된 뒤 그는 새로 만난 젊은 여인과 그 사이의 어린 아들만을은밀히 불러내어 화려한 해후를 했다.그에게는 이미 어려운 젊은 작가시절을 함께 하던 가족이 있었다.마감시간에 쫓긴 남편의 연재원고를 들고 진동한동 남의 전화 앞에서 원고를 대신 불러주던 그의 조강지처와 자녀들이다.그의 「화려하고 위대한 투사노릇」곁을 장식하고 있는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을 보노라면 이미 사춘기가 되었을 먼저 소생들의 다쳐졌을 마음이 안쓰럽게 기억되곤 했다. 그밖에도 그런 일은 많다.어른들의 위선과 증오 때문에 중간에서 오갈드는 자식들이 너무 안됐다.이혼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너무 흔해지는데 이혼에 대한 윤리나 미학 같은 것이 너무 빈곤한 것이다.그래서 쓴 글이다. 그는 방송에서 『내가 이런 말을 멋대로 지껄이고 다녀도 불평 없이 참아주는 내 사랑하는 새색씨가 고맙다』고도 말했다.그 말이 좋았다는 것도 글말미에 썼다.그 「새색씨」와의 사실혼 10년을 위한 주례라니 자격이 있지 않겠는가.「웬 주례는?」하고 떫은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더라도 이건 할만한 일이었다. 그날 주례는 고 월탄 박종화 선생이 사랑하는 제자의 결혼주례때면 해주시던 대로 고천문을 홍지에 붓글씨로 써서 읽어주었다.사람의 축복만으로는 그 완성이 불안한 인륜지대사가 혼인이므로 하늘의 힘까지 빌리기 위함이었다.그의 옛가정의 구성원과 그의 새가정이 모두 행복하기를,주례의 권능으로 오래오래 빌어줄 생각이다.
  • 길소뜸/분단의 비극적 현실 영상화(영화탄생 100년/감동의 명화)

    ◎이산가족 찾기서 착안… 국제영화제서 수상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85년 화천공사 제작)은 한국 현대사의 농축이다.필자는 북(함경남도)의 아버지,남(제주도)의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부산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자랐다.그래서 곧잘 나의 탄생은 분단의 산물이라고 말하곤 한다.성장기 나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명절이면 술타령과 꺼이꺼이 우시는 것이 우선적으로 떠오른다.그것이 한의 삭힘이라는 것을….북에 두고온 아내와 자식과의 재회는 물론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자책감과 좌절감을 이기기 위해 쓰디쓴 소주에만 의지했을 뿐이다.끝내 아버지는 간경화로 돌아가시며 단 한말씀,할아버지를 부르는게 아닌가. 평론가의 문턱에 들어설 즈음,그러니까 꼭 10년전 여름 대한극장 개봉때 관람한 「길소뜸」은 직업상의 이유로 반복해서 볼적마다 이러한 것들이 나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특히 변변치 못한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생면부지의 아들을 자신의 장남으로 입적시키기 위해 가족들과 회의를 하는 김동진(신성일 분)의 모습은분단후 모든 아버지 세대들에게 헤어나올 수 없는 운명의 고리로 짓누르는 아픔을 더해준다. 추억과 현실,역사와 오늘의 모습이란 무엇일까.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아무리 퍼내어도 풋풋한 추억이지만 세월이 훨씬 지나 변화된 모습으로 마주한 현실에서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33년만의 해후와 애타게 찾던 그 아들(한지일 분)이 눈앞에 있건만 본능의 직감을 거부하고 법의학에 의한 친자확인 결정도 애써 부인하고 돌아설 수 밖에 없는 민화영(김지미 분)의 현실이 야속한 드라마 작법같지만 이것이 곧 사실주의 미학에 입각한 객관적인 서술의 정직한 태도이다. 대체로 인간은 경우는 다르지만 하나의 인생 안에 두개의 세계를 간직하게 마련이다.동진은 1남2녀와 사려깊은 남편을 둔 화영의 다복한 형편에 비교할때 초라한 모습이다.그는 두개의 가정을 잊어본 적이 없다.현재의 가족인 아내와 다섯아들을 거느리고 달동네에 살면서 마음속에 간직한 또하나의 가정,즉 추억의 가정을 한번도 기억 밖으로 내몬적이 없다. 이처럼 분단이후 우리사회 내부에 내재하는 또 한번의 비극적 현실을 임권택 감독은 끔찍하리만치 엄격하게 통제된 카메라(정일성)의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다.영화 「길소뜸」의 원인은 TV이며 결과는 필름이다.83년 KBS­TV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에서 착안한 것이지만 TV보다 한층 더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였다.제36회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했으며 제22회 시카고영화제 「게츠 세계평화상」도 수상한 작품이다.
  • 「첨단」과 자연의 섭리/박건승 과학정보부(오늘의 눈)

    우리나라 최초의 통신·방송위성인 무궁화호의 발사일을 본디 8월3일로 정한데는 나름대로의 연유가 있다. 3일은 음력으로 은하동녘의 견우와 직녀가 1년에 단 한차례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칠월칠석.견우와 직녀의 「해후」처럼 무궁화호와 우주의 첫 「조우」가 성공하길 간절히 바라는 겨레의 염원을 이날에 담았던 것이다. 그러나 「칠석날 만남」의 꿈은 뜻하지 않았던 폭군 허리케인에 발목을 잡혀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최대시속 1백60㎞의 강풍을 동반한 「방해꾼」앞에선 첨단과학기술의 결정체인 무궁화호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오히려 몸(위성체와 발사체)을 다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했다.한순간 모든 일이 허리케인에 압도당하고 만 것이다. 이는 무궁화호가 우주에서 나래를 펴기도 전에 겪은 첫 시련인 셈이다.이 시련은 단순한 「액땜」이 아니라 『더 큰 고난이 닥칠지 모르니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에 우주로 보내라』는 경고메시지일지도 모른다. 발사된 뒤 10년동안 구만리 장천에서 외로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무궁화호에 어떤 일이닥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루이틀 빨리 위성을 발사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 하늘에 쏘아올렸다고 해서 끝날 일도 아니다.첨단과학기술과 인간이 자연속에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자연의 질서를 어기지 않는데 있다.유비무환의 자세와 함께 자연의 섭리에 순응해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허리케인은 우리에게 뜻깊은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무궁화호가 지상 3만6천㎞의 정지궤도에서 맡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다시한번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아울러 우주공간에서 또 다른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원만히 대처할 수 있도록 추후 지상관제를 철저히 하라는 주문을 허리케인은 남기고 있다. 허리케인은 무궁화호에게는 당장의 시련이 되고 있지만 길게 보면 매우 고마운 존재인지도 모를 일이다.
  • 경주 삼화령/석조보살상(한국인의 얼굴:39)

    ◎신라아낙 떠올리는 수줍은 눈매/나지막한 코에 도톰한 아랫입술…/하관에 브로치 장식… 양팔엔 옷자락 “치렁치렁” 경북 경주시 남산에는 삼화령이라는 산마루가 있다.남산 북봉에 해당한다.그 삼화령에서 1925년 석조여래상 1구를 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 삼화령 서쪽 마을 민가에서 석조보살상 2구가 발견되어 역시 경주박물관으로 옮겨 봉안했다. 이들 석조불상이 경주 남산 삼화령 석조미륵삼존상이다.본디 자리를 같이했다가 흩어진 뒤 다시 박물관에서 만난 것이다.인연이 있어서 남산을 떠나서도 해후한 것일까.이들 삼존은 여래가 복판에 자리를 잡고 두 협시보살이 양쪽에 섰다.얼굴이 조금씩 달라도 어딘가 서로 닮아보이는 까닭은 본래 짝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본존의 키가 훨씬 커서 1.6m이고 두 협시는 키를 재기라도 하듯 1m 이쪽 저쪽이다. 삼화령 삼존상을 뜯어보노라면 너그러운 인간의 모습으로 와 닿는다.본존의 얼굴도 후덕스럽거니와 협시보살에서는 여성적 인상이 우러나온다.하기야 보살은 위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보리(보제)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면서 아직은 수행의 위치에 머무는 터라 인간적일 수밖에 없다.왼쪽 협시보살은 윤곽이 더욱 뚜렷하다.그래서 신라의 여인을 가까이 대하는 듯 한데,아주 소박한 얼굴을 했다. 이 협시보살의 얼굴은 둥글고 입과 코가 작다.코가 크지 않다는 것은 신라의 여느 얼굴일 수 있다.아랫 입술은 터질듯 도톰하여 턱에 그늘이 졌다.비록 색깔이 없을 지라도 앵두 같은 입술을 연상하는데 부족함이 없다.옆으로 길게 소복한 눈매는 반구형을 이루었다.그리고 수줍다 할 눈매와 꼭 다문 입가에 살짝 웃음을 담았다.삼화령에서 웃었던대로 국립경주박물관에 와서도 여전히 웃고있는 보살상.우리가 지금 만날 수 있는 신라인인 것이다. 보살은 화관을 썼다.여러 가닥의 선이 진 화관의 띠(관대)한 가운데에는 구름과 꽃으로 장식한 커다란 브로치를 붙였다.이렇듯 아름다운 화관의 띠는 보살을 더 어여쁜 모습으로 가꾸었다.양 어깨를 걸친 천의는 흘러내려와 가슴 아래와 다리 부분에 이르러 2단으로 U자를 이루면서 다시 양팔 위로 올라가 걸쳐졌다.양팔에 걸친 천의에게 한치라도 더 다가서서 여래를 모시려는 의도적인 자세다. 이 보살을 포함한 석존삼존상이 애초 자리를 잡았던 남산 삼화령의 돌부처 이야기는 「삼국유사」기록에 나온다.보덕왕 때 한 승려가 꿈에 현몽한 남산 풀섶에서 돌미륵부처를 찾아 삼화령에 안치하고,선덕여왕 13년(서기 644년)에 생의사라는 절을 세웠다는 대목이 그것이다.그래서 학계는 이들 석조삼존상을 7세기 중반의 생의사 돌부처로 추정하고 있다.
  • “마치 오누이”… 두초인 중환자실의 만남/극정생환 유양 가족·주변

    ◎병상의 아버지 구출장면 보고 “만세”/유양찾기 헌신 오빠친구들도 환호성 ▷최명석과 해후◁ ○…『오빠』 『지환아』 『빨리 눈을 가린 수건을 벗고 얼굴을 봤으면 좋겠어요』 ○“빨리 얼굴 보고싶다” 온 국민을 기쁨에 들뜨게 한 기적의 생존자 최명석(20)군과 유지환(18)양이 이날 하오 강남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감격적인 해후. 병원측은 전국민의 관심 속에 기적적으로 구조된 두 젊은이가 똑같이 인간의 한계상황을 극복한 이 시대의 「초인」이라는 점을 높이 사 같은 병실에 입원하도록 조치. 건강을 회복한 최군은 『생존자가 더 있을 것같다는 나의 믿음이 실현돼 기쁘다』며 『지환이가 하루빨리 회복되길 바란다』고 기원. 유양도 『구조돼 무엇보다 기쁘다』며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해 명석이 오빠와 함께 지내고 싶다』고 엷은 웃음을 띠기도. ▷유양 가족◁ ○…4년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유양의 아버지 근창(52)씨가 입원해 있는 서울 수유5동 대한병원에는 유씨와 같은 병실의 환자,직원들이 모여 유양의 생환소식을 듣고 환호. ○TV서딸 실종알아 이 병원 320호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유씨는 딸의 실종사실을 새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이날 TV를 통해 딸의 사고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 유씨는 『TV에서 딸이름이 나올 때만해도 동명이인으로 생각했으나 주소와 나이 등이 똑같아 눈앞이 캄캄했다』면서 『다행히 딸이 건강한 모습으로 구조돼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유양의 오빠 세열(21·서일전문대 식품가공학과 2년 휴학)군은 『사고 전날 「힘들어서 직장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동생에게 무슨 일이든 끝까지 하라고 설득해 직장에 내보냈다』며 『동생이 구조되지 않았다면 평생에 한이 됐을 것』이라며 눈물. 세열씨는 『동생이 고1때 친구집 옥상에서 놀다가 떨어져 양쪽 다리에 철심을 박아 놓은 상태였다』고 전언. 한편 유양가족들은 그동안 산재보험료와 외가 및 아버지 친구의 도움으로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양의 어머니 정광임(48)씨는 이날 서울 강남성모병원 3층 중환자실 앞에서 이틀 전에 구조된 최명석(20)군의 부모와 만나 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을 교환. 최군의 아버지 봉열(51)씨가 정씨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정말 축하드립니다.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결과입니다』라고 축하하자 정씨는 『명석군이 구조될때 얼마나 부러워하고 기운을 냈는지 모릅니다』라고 대답. 정씨는 이어 『그들은 꽃봉오리같은 젊은이들인데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현장에서 기계음소리가 나면 기대가 커졌으나 소리가 멎으면 희망이 꺾였습니다』라며 『구조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라며 감격에 젖은 표정. 최씨가 『지환양 아버지가 병원에 누워 계신다고 들었는데…』라며 궁금해 하자 정씨는 『몸이 편찮으셔서 그동안 알리지 못했으나 지금쯤 소식을 듣고 오히려 놀라고 있을 것』이라며 안도.이들은 앞으로 집안끼리 서로 오가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자고 약속. ▷오빠친구◁ ○…기적적으로 구출된 유양 뒤에는 오빠 세열군 친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유군의 선덕고교 동기동창인 이들은 평소 친동생처럼 아끼던 유양이 실종됐다는소식을 전해들은 지난달 29일 밤 약속이나 한듯 만사 팽개치고 유군 집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최인성군(21·한양대 기계공학과 2년) 등 친구 5명은 2개조로 나눠 2명은 집을 지키고 나머지 3명은 유군과 함께 시내 병원들을 찾아다니며 사상자명단을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그러느라 몇날을 뜬 눈으로 새웠으나 유양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최군등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유류품이라도 찾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으나 접근이 어려워 실종신고만 했다. 친구들은 붕괴사고가 난지 5∼6일이 지날때까지만 해도 유양이 분명히 살아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실의에 빠진 어머니와 친구 세열이를 위로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불길한 예감에 빠졌다.그러다 지난 9일 최명석군이 극적으로 구출됐고 최군이 생환한데는 평소 쾌활하고 낙천적인 성격이 큰 몫을 했다는 보도를 보고 『누구못지 않게 명랑한 지환이도 분명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다시 갖게 됐다. 11일 하오 유양의 생환소식을 TV에서 들은 최군 등은 일제히 『지환이가 살았다.지환아고맙다』를 연발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병원◁ ○최군 일반병동으로 ○…서울 강남성모병원은 이날 하오 유지환양과 최명석군을 3층 중환자실에 나란히 두는 것은 두사람의 건강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최군을 일반병동으로 옮겼다. 병원관계자는 『최군은 12일 아침부터는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호전됐다』며 『안정을 위해 최군을 일반병동으로 옮겼다』고 밝혔다. ○…유양이 그동안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냉커피와 미숫가루,화채 등이라는 사실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자 각지에서 축하선물이 답지. 동서식품은 지난 9일 먼저 생환한 최명석군이 『콜라를 먹고 싶다』고 말하자 두산식품이 콜라 30박스를 전달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날 하오 유양에게 캔커피 30박스를 전달. 또 이날 하오 8시쯤에는 서울 잠실새마을시장에서 건강식품을 판매하고 있는 한상원(37)씨가 『TV를 보다가 유양이 미숫가루를 먹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고 선물로 주기 위해 가져왔다』며 미숫가루 1포대를 전달.
  • 김 대통령,일본인은사 가족 해후

    ◎“와타나베선생은 한인존중한 참스승/미래지향의 한·일관계 표본 삼고싶다” 김영삼 대통령은 25일 낮 모처럼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일본에서 온 「특별한 손님」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 청와대에 초대된 사람들은 김대통령의 통영중학 시절 일본인 교감이었던 은사 와타나베 다쓰미(도변손)선생의 장남 고야(공야·53·일본 사카이시 농수산과장)씨 일가 4명으로 부인 지히로(천심),여대생인 두딸 마유코(진유자)와 에미(혜실)양.지난 78년 작고한 와타나베 선생의 부인 히로미(광미)씨는 86세 고령으로 요양중이어서 함께 오지 못했다. 김 대통령은 오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두 따님은 정말 와타나베선생님을 그대로 빼어 닮았다』고 말하고 『해방된지 50년이 됐지만 지금도 동창생들이 모이면 와타나베 선생님 얘기를 많이 한다』고 소개했다.김 대통령은 이어 『와타나베 선생이 중풍으로 쓰러진뒤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친필 엽서를 보내왔었다』고 선생을 회고했다. 고야씨는 『대통령께서 아버님에 대해 깊은 마음을가지고 우리를 초청까지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감격의 인사를 했다. 김 대통령이 식민지 시절 은사를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당시 와타나베 교감의 한국인 학생들에 대한 태도가 진실해 많은 존경을 받았었기 때문.그는 특히 한국학생들을 멸시했던 기타지마 교장과 대조적이었다고 한다. 김 대통령이 통영중 3년생이던 시절 이 고약스런 기타지마교장과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밉살스런 일본인 교장의 이삿짐을 나르게 된 김영삼소년은 이삿짐 가운데 설탕부대에 조그만 구멍을 뚫어 당시에는 대단한 귀중품이던 설탕이 절반가량 길거리에 흘러버리게 했다.화가 난 기타지마교장은 와타나베교감에게 「범인 색출」과 「엄벌」을 지시했다.김소년은 자신이 했다고 스스로 밝혔지만 와타나베 교감은 이 한국인 학생의 심경을 헤아려 어떻게든 징계의 정도를 낮추며 감싸주려했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와타나베선생은 한국학생을 아꼈던 진정한 스승』이라고 회고하면서 『이런 인물을 미래지향의 한·일관계구축의 표본으로 삼고 싶다』고 피력한 바 있다. 한편 오찬이 끝난 뒤 김 대통령은 이들에게 손목시계를 선물했고 와타나베 선생의 초상화를 답례로 받았다. 김 대통령과 이들의 만남은 지난 4일 김 대통령이 한국주재 일본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와타나베 선생 유족들을 수소문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 귀순 북송교포 오수룡씨/재일 누이와 눈물의 상봉

    ◎서울 앰배서더호텔서/노신사·할머니 되어 이별의 33년 회상/“다시 헤어지지 말자” 손 맞잡고 다짐도 일본에서 북송선을 타고 북한에 들어가 살다가 지난달말 탈출한 북송교포와 재일교포 남매가 33년만에 만나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27일 하오2시 서울 중구 소피텔앰배서더호텔 로비에서는 북송교포 오수룡(61)씨 일가족 5명과 오씨의 누나 경자(63)씨,동생 삼룡(51)씨가 지난 세월만큼이나 변한 서로의 모습을 쳐다보며 한동안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다. 한창나이의 이들 오누이가 헤어지게 된 것은 오씨가 일본에서 북송선을 탄 지난 62년.그로부터 33년이 지난 지금 남매는 반백의 노신사와 할머니가 돼있었다. 오씨 일가족을 만나기 위해 일본에서 입국한 누나와 동생이 예정대로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먼저 와있던 오씨는 단번에 달려가 부둥켜안았다. 『형님,어디 계시다 이제 오셨어요』 『여기 오길 잘했다.이제 마음놓고 편히 살겠다』 『아버님은 9년전에,어머님은 7년전에 돌아가셨어』 서로의 안부인사를 끝내자 누나 경자씨는 처음보는 올케 김초미(54)씨를 얼싸안았고 올케는 시누이에게 『북한을 탈출한 게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동생 삼룡씨는 『언론을 통해 형님이 북한을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만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되뇌이다 조카 명선(31)씨의 인사를 받고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1시간남짓 극적인 해후를 마친 이들은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며 손을 꼭 쥐었다.
  • 경찰 컴퓨터 조회로 30년만에 남매 상봉

    ◎독 이민 여동생­음식점 경영 오빠 해후 4살때 가족과 헤어져 고아원과 친척집 등을 전전하며 혼자 지내다 결혼직후 독일로 이민간 30대주부가 6일 경찰 컴퓨터조회로 30년만에 오빠와 해후해 화제. 86년 독일인과 결혼,현재 독일에서 살고 있는 오정미(34·요리강사)씨는 지난달 28일 관광차 입국했다가 서울 마포경찰서에 가족을 찾아달라고 부탁,이날 하오3시쯤 경찰서 민원실에서 오빠 오권택(36·음식점 경영·경기 오산시 청학동)씨를 다시 만났다. 오씨 남매는 너무 어렸을때 헤어져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처음에는 어색한 표정이었으나 『박석고개에서 살던 것 기억나느냐,둘째 이모가 겨울에 폐렴으로 죽었지』라는 말에 남매임을 확인,서로 부둥켜 안고 울음바다.
  • “설명없이 수술해후유증 생겨도/위급상황땐 의사책임 없다”/대법원

    후유증에 대한 설명 없이 수술을 해 환자에게 후유증이 생겼더라도 위급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수술을 했다면 의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박만호 대법관)는 22일 국립의료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은뒤 후유증을 얻은 권혜경씨(29·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의사는 수술후 예견되는 후유증을 알려 환자에게 수술 여부를 선택하도록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 설명없이 수술한 것은 잘못』이라면서도 『그러나 환자가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안될 위급한 상태였다면 위자료만 지급하면 될 뿐 노동력 상실로 인한 손해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
  • 약사가족 5명 변사/“신병비관” 가장이 넷 살해후 자살한듯/면목동

    9일 상오 11시30분쯤 서울 중랑구 면목2동 한신아파트 3동702호 최규섭씨(35·약사)집에서 최씨와 부인 이종희씨(35),아들 창호군(8),딸 희정양(7),장모 김덕래씨(74)등 일가족 5명이 숨져있는 것을 아파트 경비원 조복웅씨(56)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이씨와 김씨는 머리를 둔기로 맞은 흔적이 있었으며 창호군과 희정양은 각각 목을 졸린 흔적이 있었다. 경찰은 최씨집 식탁에 살충제와 신경안정제,양주 3병 등이 놓여 있었고 출입문이 이중으로 잠겨있는데다 다른 가족들에게서 타살흔적이 발견됨에 따라 최씨가 가족들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특히 최씨가 지난 6월부터 불면증과 신경쇠약증세로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고 부부싸움이 잦았으며 최근에는 함께 일하던 동료약사 박모씨(50)에게 『불면증때문에 못살겠다』고 말했었다는 주변의 말 등으로 미루어 최씨가 신세를 비관,이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있다.
  • 거꾸로 된 지도문제에 “어리둥절”/고사장 이모저모

    ◎55세응시생에 “감독관이냐” 해프닝도/맹인·약시 수험생엔 문제지 별도제작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과 관리위원 1백78명은 이날 「33일간의 연금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제4교시 외국어(영어)영역시험이 시작된 직후인 하오4시쯤 풀려나 가족들과 오랜만에 해후. 출제본부측은 그동안 이들이 기거한 충남 온양의 도고 파라다이스호텔 객실의 창문을 봉쇄하고 객실 5m주변에는 전자감응장치까지 설치,외부인이 접근하면 요란한 경보음이 울리도록 하는 등 보안유지에 고심했다는 후문. ○보안유지에 만전 본부측은 또 에어로빅등의 방법으로 입소자들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으며 저녁에는 각종 술과 안주를 들여보내 이들을 위로했다고. ○“동해가 지중해” ○…3교시 자연계 수리탐구영역 사회탐구부분 문제의 보기로 나온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지도는 남북이 거꾸로 돼있어 수험생들이 처음에 당황했다가 이내 위 아래가 뒤바뀐 사실을 알아내고 시험지를 거꾸로 돌려보며 문제를 풀기도. 출제자들은 동해가 동아시아의 「지중해」에 해당됨을 강조하기 위해 지도를 뒤집어 놓았는데 실제로 거꾸로 된 지도에는 지중해와 이탈리아반도·이베리아반도의 모습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김숙희교육부장관은 상오8시10분쯤 이태수 교육부대학정책실장및 김하준 국립교육평가원장등과 함께 서울15지구 5고사장인 종로구 청운동 경기상고를 방문,시험이 무사히 치러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 상오7시쯤 미국에서 입국,수능시험장에 곧바로 달려온 김장관은 임상재교장(63)으로부터 수험생입실현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수험생입실상태를 직접 점검. ○글자크기 3배로 ○…약시자수험생 56명과 맹인수험생 26명도 서울 여의도중학교와 맹인학교에 각각 마련된 특수시험장에 나와 그동안 어렵사리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 약시자들을 위해서는 문제지 글자크기가 3배로 확대된 시험지가,맹인들에게는 점자시험지가 배포됐다. ○…대구에서는 자전거 한대를 훔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던 우모군(18)등 고교생 2명이 법원의 영장기각으로 시험을 치를 수 있었으며 컴퓨터통신물을 통해 음란서적을 팔다 구속된 권모군(18)등 2명도 구속적부심이 받아들여져 무사히 시험에 응시. ○2교시부터 치러 ○…경기상고시험장에는 「늦깎이」 김모씨(29)가 시험시작 30분뒤인 상오9시30분쯤 도착,시험을 포기하려다 감독교사들의 설득으로 2교시부터 응시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직장에 다니며 주경야독으로 시험을 준비해온 김씨는 자신이 시험을 치러야할 경기상고를 경기여상으로 착각,잘못 가는 바람에 늦었는데 지각생은 해당시간 시험을 치를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입실이 안돼 시험을 포기하려 했으나 『일단 나머지 시험이라도 치르라』는 감독교사들의 설득으로 응시. ○시인 응시생 눈길 ○…충북 충주고시험장에는 55세의 만학도 홍학희씨(충주시 연수동 세원아파트 102동 206호)가 응시,처음 교실에 들어올 때는 나머지 수험생들이 감독관으로 잘못 알기도. 충주에서 양화점을 경영하고 있는 홍씨는 53세때인 92년 방송통신고에 입학,내년 2월 졸업예정으로 대학에 진학하면 시문학이나 신학을 전공할 예정. 홍씨는 92년 월간 문학공간의 신인상에뽑혀 문단에 등단,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원으로 활약중.
  • 「조창호소위」 재회앞둔 경기상고 23회 동창들

    ◎“고생 많이한 창호 우리가 돕자”/“언제 만나자” 사무실전화 빗발/총동문회선 환영식 준비 분주 이순을 훨씬 넘긴 경기상고 23회 동기동창생들은 요즘 설날을 앞둔 동심마냥 설렘으로 가득차 있다. 6·25사변때 포로가 되어 43년동안 북한에서 모진 고초를 겪다 탈출,꿈에 그리던 자유의 땅에 안긴 동기생 「조창호소위」를 만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TV와 신문을 통해 조씨가 동문임을 확인한 동기생들은 너나 할 것없이 「조창호동문돕기를 위한 모임」행사에 발벗고 나섰다. 『옛날 모습 그대로든데』,『아니야,고생을 너무 많이 한 것같아』,『학교다닐때 본 것같긴 한데 잘 모르겠어』,『우리가 열심히 도와줘야 해』 50년 당시 취업반(A반)과 진학반(B반)으로 나뉘어 졸업한 1백54명가운데 지금까지 서로 연락을 하며 지내는 동문은 70여명으로 「조창호탈출」뉴스가 보도된 뒤에는 동창회사무실로 동문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쳐 정신이 없을 정도다. 어느덧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꿈많던 10대 소년들이 머리카락이 하얀 6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지만 옛기억을 회상하면서 마냥 즐거운 모습이다. 경기상고 23회 졸업생들은 삼수회·등반회·서울대상록회·청송회(연세대동문모임)등 각기 다양한 모임을 통해 나름대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오고 있다.특히 삼수회는 셋째주 수요일에 만난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곳을 통하면 알고 싶은 동문들의 안부를 언제나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삼수회등 23회동문회의 작은 친목그룹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연락을 하며 조창호동창돕기운동에 나선 것이다. 동기생가운데 가장 친하게 지냈던 서순화씨가 처음으로 조씨와 25일 상봉했다. 조씨가 입원해 있던 서울 중앙병원을 방문,반갑게 해후한 서씨는 『「창호야」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에게 「나,순화야」라고 말하자 그때서야 내손을 붙잡고 놓을 생각을 않았다』며 감격의 순간을 되뇌었다. 『그냥 손을 꽉잡고 울기만 했어요.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도대체 이북억양때문에 알아 들을 수가 없었어요』 서씨는 혼자만 만나고 왔다고 동기생들로부터 야단을 들었다며 끈끈한 동기애를 자랑스러워 했다. 『동문회명부에는 그동안 행방불명으로 돼 있었어요.빨리 동기회명부도 고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여건도 만들어 줘야죠』 동기회 총무를 맡고 있는 정연덕씨(64·천보흥업 부사장)는 동기생들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는 만큼 빠른 시일내에 모두 함께 만나 서울시내 구경도 하고 옛날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총동창회 신우균사무국장(경기상고 22회)도 『총동창회차원에서 조창호동문환영식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동문들끼리의정을 더욱 두텁게 하는 기회로 삼겠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로마/카타콤베(아랍서 지중해까지:18)

    ◎기독교도 숨던 지하무덤… 미로수백㎞/「쿼바디스」의 아피아가도 주변에 산재… 땅굴 곳곳 교인들 수난 흔적 길 모퉁이에 있는 작은 가게를 구경하다 깜박 카메라를 놓고 나왔는데 두어 블록이나 걷고 있을때 『시뇨레! 시뇨레!』하면서 주인이 쫓아왔다.베네치아에서 만들어와 판다는 세라믹 액세서리들의 그 담백한 아름다움에 잠깐 정신을 놓았었던 것 같다.자리까지 비운 채 여기까지 유실물을 갖다주러 오다니 싶어 얼굴이 붉어진 것은 비단 그 가게주인이 예쁜 아가씨였던 때문만은 아니다.잊은 물건 으레 찾으러 들이닥치겠지 싶어 필자 같았으면 오불관언 그냥 버티고 앉아 있었을 것이다.아무 것도 아닌 이런 사소한 일이 실은 한 나라의 민도랄까 문화적 수준을 제풀에 측정케 만들고 절감케 한다.이탈리아 사람들은 너무 친절해서 모르는 것도 아는 척 곧잘 나서기 때문에 골탕을 먹는 수가 있다고도 하지만(하긴 필자도 그 때문에 엉뚱한 길을 헤맨 적이 한번 있기는 하다),이 아가씨의 친절은 여태까지도 쉬이 잊혀지지가 않는다.남의 얼굴에다 제 얼굴 디미는 간판들이나 판을 치는 대도시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미덕이요 소양이다.피곤한 신경으로 거리를 걷다보면 간판들의 그런 번잡스러움 같은 것까지가 그 나라의 수준을 금세 헤아리게 만든다. ○친절한 시민 인상적 소위 앞서간다는 나라들의 그것은 대체로 그저 눈에 뛸 정도의 글씨로 숨듯이 얌전한 반면 후진 나랄수록 그 요란함과 새치기는 극성스럽다.TV나 신문·잡지의 광고 역시 예외일 리가 없다.잠자리에 들기전 하다못해 잠깐이라도 TV를 켜는 새버릇이 이번 여행중에 붙은 것도 순전히 그 탓이었을 것이다.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책광고·상품광고 같은 것이 우리처럼 허풍스럽고 요란한 나라가 또 있을 것 같지 않아 겸연쩍고 창피했다.2등은 쓰레기처럼 잊혀지는 존재므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제1이어야 한다느니,「정복할 것이냐 당할 것이냐」하는 따위 히틀러의 발악이 무색할 지경의 광고까지 태연히 횡행하는 사회이니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로마 국립공원 뜰은 장식삼아 여기저기 놓인 세계 유명인사들의 대리석 흉상들로도유명한데 관광온 이쪽의 원로 하나가 이승만 대통령의 흉상도 있을지 모른다는 농담을 듣고 열심히 그것을 찾아다녔다는 얘기가 있다.결국 찾지 못하자 귀국해서는 그 얘기를 글로까지 썼다는 것이다.이런 얘기의 우스꽝스러움은 「유명인사」라는 그 개념상의 차질에 있다.독재를 했건 뭘 했건 유명하기만 하면 「문화적 인물」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이 원로는 착각을 한 것이다.인도의 간디수상도 신청을 했다가 거절을 당했는데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일까보냐는 개탄이 나올 법도 하다.이 얘기를 해준 것은 60년대에 이주해서 30여년째 로마에서 살고있는 H씨이다.문청(문청)시절 어울려 다니던 친구로 이번에는 10여년 만의 해후인데 불혹의 연치가 완연한데도 그 유머러스하고 직재적인 사고방식은 여일했다.그 무렵의 친구들이 모르는 새 모두 소원해졌는데도 이 H씨만은 예 그대로 와락 반가운 느낌부터 앞선 것도 그 탓이었을 것이다.끝내 로마에다 뼈를 묻을 작정이냐는 농담에,집과 차와 가재도구를 다 정리해 귀국해봤자 강남에서 몇달이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되레 역습이다.자녀들이 장성하자 사위만은 모국청년으로 골라야겠다 싶어 몇 차례나 기회를 만들었으나 돈 타령,땅타령,줄리어드다 하버드다 하고 외국유학 얘기만 나오다 대화가 끊겨 끝내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사돈될 사람들 간에도,당사자들 새에서도 대화가 그 모양으로 단절돼 내심으로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데이트 몇번하면 으레 제 소유물로 알고 자질이야 있건 없건 유학물 먹은 일이나 자랑삼으면서 연애 따로,결혼 따로를 당연한 듯이 생각하는 이쪽 젊은이들의 그런 사고방식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근교의 아파트단지 식당에서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모처럼 배불리 먹여주고 그녀가 차로 데겨간 곳은 카타콤베 앞이었다.로마에 와서 뭘 봤느냐는 물음에 실은 아무 것도 보고싶지 않았다는 필자의 동문서답이 마음에 걸려서 였을까.카타콤베는 옛 로마 서민들의 지하무덤이다.왜 아무 것도 보고싶지 않았느냐고 이번에는 그녀도 묻지 않았다.숙소에서 확인한 TV채널만도 20여개가 넘고 인근 지방의 유선방송까지 합하면 천여 채널이 넘는다는 각종 정보홍수에 에워싸여 살다보면 문명이니 문화적인 혜택이니 하고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그런 온갖 빤히 눈에 보이는 세계가 되레 지겨워질 나이에 그녀 역시 이르른 것같다.정부 각 기관과 문화관과 대기업의 본사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로마의 신시가지 에우르 구역을 도중에 거치면서 필자는 과천을 제풀에 연상하고 있었는데,카타콤베들은 그 너머 구아피아가도 인근에 흩어져 있었다. ○10만명 매장된 곳도 로마제국 때 닦여진 길이다.붉은 언덕과 짙은 색깔의 나무들이 갑자기 사방을 에워싸면서 차량마저 끊기다시피해 한적한 시골을 연상시키는 이 가도는 아닌게 아니라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속담을 역으로 연상시켰다.지금은 관광자원이 돼버린 옛 제국의 영화가 하층민들의 무덤까지도 그냥 버려두고 있지 않는 것이다.물론 이 무덤들이 특별히 유명해진 것은 박해를 받던 그 무렵 기독교도들의 지하 은신처요 포교활동의 근거지였다는 까닭이 더 크다.도망을 치던 베드로가 예수의 환영을 만나 저 유명한 대사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읊조리던 데가 아피아가도였고 그때 남은 예수의 발자국모형이 보존된 도미네 쿼 바디스교회가 이 인근에 있다.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쿼 바디스」나 「성의」 같은 것에도 물론 카타콤베가 나온다.지하 2·3층,어떤 것은 5층까지 파내려간 이 부근의 수십기 카타콤베들은 복잡한 미로와도 같아서 혼자서는 들어갈 수가 없고,10만여명이나 매장된 곳도 있으며,그 길이를 합하면 수백㎞에 이른다고 한다. 입구에서는 각국 언어별의 가이드들이 여남은명씩 되는 관광객들의 조를 짜고 있었다.어쩌다 네덜란드어 가이드를 무심코 따라들어가 설명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나 구태여 그런 것이 필요한 것같지도 않았다.사람 하나가 간신히 비집고 들어갈만한 흙벽의 좁다란 통로와 역시 흙으로 된 계단을 몇번이나 꼬부라지며 내려갔는지 알 수가 없다.가이드의 랜턴불빛에 기괴하고 참담한 낙서와 그림들이 홀연히 벽에서 나타나는가 하자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모를 샛길들이 곁으로 불쑥불쑥 들이닥치곤 했다. 이런지하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 돼버린다는 제풀의 상상은 기묘한 것이었다.나는 왜 여기 있는가,이번 여행은 뭐땜에 떠나왔는가 하는 따위 상투적인 의문들이 그제야 근거를 찾고 입지를 얻은 듯한 느낌이랄까,갑자기 천지가 막막했다.초기 기독교도들의 그것뿐 아니라 중세의 여러 종교적인 박해에도 이곳은 피난처가 됐던 모양으로 지상으로 올라오는 중간중간의 작은 방들에는 그 수난의 표상들과 기념물들이 흔적이나 조각들로 새겨지거나 놓여 있거나 했다.화살에 목이 꿰인 성 아무개,칼로 순교당한 누구 하는 식의 그런 전시물들 역시 숭엄한 분위기이기는 해도 청량한 느낌은 아니다.로마시내에는 4천여 승려들의 해골을 수백년에 걸쳐 모아놓은 해골사원이라는 으스스한 곳도 있지만,이런데를 특별히 찾는 사람들 역시 일반적인 심성의 그런 관광객들은 아닐 것도 같다. ○중세에도 피난처로 겨우 한시간 남짓이나 머물다 나온 지하에서 로마라는 한 도시의 허상을 통째로 별견한 듯한 느낌이었다고 하면 아마 과장일 것이다.사람사는 세상에는 으레 있게 마련인 그 말할 수 없이 구질구질한 거래와 아귀다툼들이 이를테면 로마라 해서 어떻게 이런 지하세계 같은데로 깨끗이 모두 매몰될 수가 있겠는가.필자가 카타콤베 속에서 저절로 떠올린 로마의 그 허상이란 것도 실은 숙소근처의 가게에서 사흘째 눈독을 들이고 있던 싸구려 골동품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우리 돈으로 2만여원쯤 되는 그 놋쇠물병은 연륜이랄 것도 쓸모도 별로 없어 보이는 얄팍한 물건 같았으나 이탈리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어떤 곡선형태라는 그 한가지 점만으로도 어딘가 정답고 신선하게 느껴져 값을 깎자느니 안된다느니 하고 며칠째 줄다리기를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도무지 무뚝뚝해 보이기만 하는 가게의 뚱보주인은 필자가 들를 때마다 『적당하고 좋은 값』이라면서 배짱을 부리고 있었다.이쪽 역시 기어이 에누리를 해서 그것을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집념에 들떠 있었다는 것도 아니다.구태여 따지기라도 한다면 한계가 빤한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눈곱 정도로나 허용된 소위 그 「자유」라는 명제나 「자유스럽고 싶다」는 감정을 두고 필자도,그도 사실은 줄다리기흉내를 즐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자유의 여신상(세계의 명소 걸작 건축감상:1)

    ◎명지대 4교수가 펼치는 공간미학의 새장/“여기가 신세계” 아메리카의 상징/횃불·독립선언서 든 높이 93.5m 청동상/3백개의 구리판 조립… 내부엔 계단 만들어 「왕관」까지 올라갈수 있어 한달이 넘도록 걸린 대서양을 건너는 항해에 사람들은 몹시 지쳐있었다.9월의 어느날 새벽,일찍 일어나 뱃전에 나섰던 사람들이 갑자기 환호성을 질렀다.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에 익숙해졌던 이들의 눈에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가을 새벽의 찬 기운을 피해 아직껏 선실 침대 속에서 꾸물거리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뛰어나와 소리를 친다.『미국 땅이 보인다! 이제 다 왔다!』『오 하나님,감사합니다!』 지금주터 1백년전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사람들을 실은 배는 느린 속도로,그러나 확실한 방향을 잡고 뉴욕만에 들어서기 시작한다.안개속으로 희미하게 녹색의 육지가 보인다.저 곳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자유와 번영의 미국땅이다. 뱃머리에 서 있던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저 앞에 환한 불이 보여요』 수평선 너머로 가물거리며 불빛 하나가 떠오른다.사람들은 고개를 빼들고 그 불빛을 바라본다.이탈리아 시실리섬 언덕 위 등대에도 저런 불이 있었다.밤새 고기를 잡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으레 보던 불빛이었다.새삼 영원히 떠나온 고향이 눈이 시리도록 그립다. ○불서 만들어 선물 멀리 보이던 불빛이 점점 커지더니 모양이 뚜렷해진다.바로 횃불 모양이다.그리고 횃불을 추켜 든 손과 팔뚝이 보이기 시작한다.조금 더 시간이 지나며 사방은 점차 밝아지는데,수평선 위로는 고전적으로 잘 생긴 거대한 여신의 머리가 떠오르고,이윽고 전체 모습이 보인다.오른 손에는 횃불을 추켜들고 왼 손에는 석판을 들고 우뚝 서 있는 청동색의 여인 조각상.바로 그 유명한 「자유의 여신상」이다.십계명이 적힌 석판을 들고 시내산을 내려오는 모세의 경건한 모습과 인류에게 불을 선사하는 프로메테우스의 결연한 모습으로,긴 항해에 지친 유럽의 이민자들에게 신세계 미국의 자유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뱃전 난간을 잡은 이탈리안(혹은 폴란드인·아일랜드인·스웨덴인일 수도 있다)이민자들의 손에 새삼 힘이 주어진다.뿌리뽑아 나선 삶에 대한 불안을 누르고 새롭고 자유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이들의 가슴 속에서 손끝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이렇듯 지난 1백년간 1천7백만명의 유럽으로부터의 이민자들에게 주어진 신세계 미국의 첫 인상은 자유를 상징하는 청동빛의 거대한 여신상과의 극적인 해후였던 것이다. 자유의 여신상이 이토록 미국적인 것이지만,사실은 이것이 프랑스가 미국 독립 1백주년을 축하하기 위해서 이 여신상을 미국에 선사한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실제로 이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에서 복권과 디너파티를 통해 모금된 자금으로 파리에서 제작된 후 뉴욕으로 옮겨진 것이다.그러나 이것의 받침대는 미국내의 자금으로 뉴욕에서 만들어졌다.요즈음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국제협력,국제분업의 고전적 모델이라 할까. 자유의 여신상의 제작자는 바르톨디라는 프랑스의 젊은 조각가였다.그는 1871년 뉴욕을 방문,뉴욕만 한가운데 위치한 조그만 섬을 발견하는데,그 위에서 횃불을 추켜든 채 우뚝 서있는 자유의 여신의 이미지를 머리 속에서 떠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파리로 돌아온 그는 1875년에 거대한 여신상을 디자인하기 시작한다(높이 93.5m 당시 세계 최고).그 재료와 구성방법으로는 철골구조 위에 두드려 얇게 편 구리판을 씌우는 방법을 채택했다.당시 널리 쓰이던 청동이나 석재를 사용한다면 비용도 비싸거니와 나중에 미국으로 가져가기에 너무 무겁기 때문이었다. ○석고로 먼저 제작 여신상 내부에서 구리판을 붙잡아 줄 철골구조의 설계는 당시 파리 에펠탑의 제작자로 잘 알려진 철골구조 설계 전문가인 에펠에게 부탁했다.에펠은 우선 받침대에 견고하게 고정될 철제 중심탑을 세우고 여기에 여신상의 대체적 윤곽을 이루는 철제 트러스를 연결한 후,마지막으로 탄력성 있는 쇠막대기를 써서 트러스와 구리판을 잇게 된다. 여신상은 모두 3백조각의 얇은 구리판으로 이루어져 있다(두께 2.4㎜).이 구리판의 제작과정이 무척 재미있다.우선 석고로 여신상의 모양을 실제 크기로 제작한다.다음으로 이 석고상 표면을 따라 석고상의 모양을 정확하게 복제하는 목재 틀을 만들어야 한다.그런 후 이 목재 틀을 떼어내서,틀 안쪽에 구리판을 대고 두드리면 원래 석고상의 표면 곡선을 그대로 지닌 구리판 조각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이 3백개의 구리판 조각들은 서로 조금씩 겹치게끔 되어 있었는데 이 겹치는 부분을 리벳으로 연결하기 위해서 였다. 여신상은 1885년에 제작이 완료되어 철골구조 따로 구리판 따로 모두 2백10개의 컨테이너 상자 속에 넣어진 채로 뉴욕에 도착한다.이것들의 조립에만도 1년이 걸려 마침내 1886년 제작을 시작한지 11년 만에,미국 독립 1백주년에서 10년이 늦게,자유의 여신상은 뉴욕만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되었다. 그로부터 1백여년이 흐른 오늘도 자유의 여신상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여신상 내부에는 중심기둥을 돌아올라가는 나선형의 계단이 있어 사람들이 여신상의 왕관까지 올라갈 수 있다.7개의 대륙과 대양(아시아·아메리카·유럽·아프리카·오스트레일리아·태평양·대서양)을 상징하는 대못이 있는 왕관은 25개의 창문이 있어 한번에 30명이 들어갈수 있는 전망대로 쓰이고 있다. ○왕관에 25개 창문 물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1백년 전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신천지를 찾아 온 유럽의 이민자들이 느꼈던 감동을 느낄 수는 없다.이들에게 있어서 자유의 여신상은 그저 『그 유명한 자유의 여신상에 가 봤다』라는 이야깃거리 구실을 줄 뿐이다.그렇지만 이들의 할아버지·할머니 중에는 이 자유의 여신상을 처음 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며,그 눈물로 말미암아 오늘의 젊은 관광객은 고급 카메라를 목에 건 채,선글라스에 울긋불긋한 남방셔츠에 헐렁한 반바지를 입고 자유의 여신상 계단을 한가로이 오르내릴 수 있는 것이리라. 미국의 심장부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영국에서 박해를 받던 청교도들을 실은 메이플라워호 이래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위대한 국가의 상징으로 남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자유의 횃불을 높이 들고 서 있다.한국의 심장부 서울에서 살아가는 우리들도 자유를 그린다.궁핍으로부터의 자유,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공해로부터의 자유… 우리가 삶에지쳐 낙심될 때 눈을 들어 쳐다보며 다시금 희망을 얻을 수 있는 「서울의 자유의 여신상」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 추석 앞두고 강도 잇따라/동료어머니 살해후 금품 털기도

    ◎여회사원 성폭행후 돈강탈까지 추석을 앞두고 귀성비 및 유흥비 마련을 위한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10일 고향에 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심야에 가정집에 침입,10대 여자를 흉기로 찔러 상처를 입히고 금품을 빼앗은 이연균씨(29·무직·서울 영등포구 도림동 160의 45)를 강도상해 혐의로 긴급구속했다. 이씨는 10일 0시30분께 서울 관악구 봉천4동 김모양(19·간호보조사)의 자취방에 열린 부엌문을 통해 침입,부엌에 있던 길이 30㎝ 가량의 흉기로 김양의 왼쪽팔을 2차례 찔러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힌뒤 현금 3만5천원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이어 귀가한 김양의 친구 최모양(19)과 김양의 오빠(23·회사원)를 흉기로 위협,김양 오빠의 양손을 스타킹으로 묶어 놓고 최양을 성폭행하려다 인근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검거됐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이날 이병수씨(23)를 강도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씨는 3일 하오 1시쯤 중랑구 면목1동 안모씨(33)의 집에 찾아가 혼자 있던 안씨의 어머니 곽정인씨(68)의머리를 벽돌로 때려 숨지게 한 뒤 현금 5만6천원과 금반지등 28만원어치의 금품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안양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다 알게 된 안씨의 집에 범행전날 찾아가 잠을 잔뒤 다음날 안씨와 함께 나갔다가 혼자 되돌아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 「명성왕후 시해 칼」 발견/국제한국연 최서면원장,일 신사서

    ◎칼집에 “단칼에 늙은 여우 살해” 문구/낭인들 자백담긴 보고문도 찾아내 1895년 일제가 저지른 명성황후(민비)시해 만행때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칼과 범행에 동원된 일본인 낭인들의 자백이 담긴 일본재판소의 보고전문이 발견됐다. 국제한국연구원의 최서면원장(67)은 22일 『1895년10월8일 당시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삼포오루)의 지시를 받은 일본인 낭인중 한명인 후지가쓰 아키(등승현)가 명성황후를 건청궁(경복궁)에서 살해할때 사용한 칼을 일본 규슈(구주)에 있는 한 신사에서 발견했다』고 밝히고 칼의 사진을 공개했다. 당시 일본 제일의 칼 제작자 다다요시(충길)가 만든 이 칼은 길이 1m20㎝로 칼집에는 「일순 전광 나 노호」(한 칼에 늙은 여우를 살해했다)라는 문구와 함께 후지가쓰의 호인 「몽암」이 새겨져 있다. 최원장은 이날 『관련사료에 민비시해의 일본측 암호명이 「호수」로 나타난 점을 감안하면 칼집에 새겨진 「늙은 여우」는 민비를 지칭함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민비시해후 일본으로 돌아가 규슈지방의 한 신사에 이칼을 헌납한 후지가쓰는 공범들과 함께 히로시마재판소에서 조사를 받았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이후 절에서 잠시 은거하다 나온뒤 여학교를 세우는등 교육자로 활동하다 8·15해방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함께 민비시해사건에 가담한 일본 낭인들을 신문한 히로시마재판소의 구사노(초야)검사장이 당시 법무대신에게 보낸 1895년11월9일자 보고전문은 일본 국회도서관에 보관된 것으로 구로다 기요다카(흑전청륭·강화도조약체결당시 일본측 전권대사)관련 문서중에서 발견됐다. 특히 이 전문에는 『민비시해의 하수인을 찾던중 히라야마 이와히코(평산암언)등 13명이 「민비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는 내용이 실려있어 당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이들이 시해범인 것을 알고서도 일본 수사당국이 무혐의로 풀어주었고 또 정부수뇌부가 범행을 배후조종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또 전문에는 『후지가쓰등이 시해당시 명성황후처럼 보이는 여자가 많아 확인할 길이 없었다.이에 모두 옷을 벗긴뒤 유방을 살펴 명성황후 나이인 44세정도의 여자를칼로 베어 살해했으며 이를 저지하다 일본인 관리의 총을 맞고 쓰러진 궁내부대신 이경식을 다시 칼로 베었다』고 돼있어 당시의 무참한 살육상과 시해사건에는 낭인뿐아니라 일본인 관리들도 개입됐음을 입증하고 있다. 최원장은 이에대해 『내년으로 다가온 민비시해 1백주년을 맞아 지난달 자료수집차 일본을 방문,당시 시해때 동원된 낭인들의 후손으로부터 만행때 사용된 칼이 신사에 보관돼 있다는 말을 듣고 수소문끝에 칼과 관련자료를 발견했다』며 『지금까지는 민비시해때 일본인 부랑아들만 동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신문기자인 아다치겐조(안달겸장),교육자인 사사도모쿠사(좌좌우방)등 당시의 일본 지식인층과 외교관·군인등이 함께 저지른 극에 치달은 만행』이라고 말했다. 당시 일본 주한공사 미우라 고로는 독일·프랑스·러시아의 삼국간섭(1895년5월)이후 친러정책을 지향한 명성황후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낭인과 군대를 동원,같은해 10월8일 상오7시쯤 민비를 시해했다.
  • 정신착란 가정주부/딸 살해후 자살기도

    7일 상오 10시 30분쯤 서울 노원구 상계8동 주공아파트 1503동 1012호 이상걸씨(29·서울지방철도청 직원) 집 거실에서 이씨의 생후 백일된 딸 희정양이숨져있고 이씨의 부인 유환순씨(24)가 목욕탕에서 흉기로 왼손 손목을 그은채 쓰러져 있는 것을 이씨 친구의 부인 손모씨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유씨가 정신착란을 일으켜 딸을 목졸라 죽인뒤 자살을 기도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희정양의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위해 부검을 실시키로하는 한편 유씨의 정신감정을 의뢰키로 했다.
  • 한약상부부 피살/아들 단독범행 의문 너무 많다

    ◎흉기 2개·혼자 90군데 난자 납득안가/박군 공범진술 일관… 제3범인 가능성 한약상 박순태씨부부 피살사건을 수사해온 서울 강남경찰서는 그동안 구속된 맏아들 한상씨(23)의 단독범행여부를 둘러싼 거듭된 번복진술로 미로속을 헤매다 31일 『공범이 있으면 죄가 가벼워질 것 같아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친구(이모씨)를 공범으로 지목했다』는 최종진술을 받아내고 이번 사건을 일단 마무리지었다. 경찰은 2일 현장검증을 마치면 3일쯤 박씨의 신병과 사건일체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경찰은 한상씨 검거이후 유력한 공범으로 지목해온 친구 이씨에 대해 압수수색을 통한 물증수집·거짓말탐지기조사·대질심문 등의 모든 방법을 동원,공범여부를 수사했지만 사건당일 알리바이가 확인될 뿐아니라 범행가담을 인정할 만한 물증확보에 실패해 이씨를 무혐의 처리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씨의 단독범행이라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의문점이 너무 많다는게 수사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우선 범행에 쓰인 흉기가 2개라는 사실과 피살부부의 온몸에서 발견된 90군데의 상처를 감식한 결과 모두 오른손잡이에 의한 것이라는 점등이 단독범으로 보기어려운 정황이다.또 ▲살해후 범행현장을 마무리짓지 않고 증거물들을 버리러 현장을 뜬 것은 범죄심리학상 도저히 가능성이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적 ▲한달전쯤 도둑이 든 점을 감안할때 문단속을 철저히 하리라는 상식에도 불구하고 사건당시 지하출입구가 열려 있었다는 점등도 아직 경찰이 충분히 해명치 못하고 있는 의문점이다. 이와함께 박씨가 당초 이씨를 범인으로 지목해 수사에 나선 경찰이 이씨의 알리바이를 확인,이를 집중추궁하는 과정에서도 계속해서 사건당시의 정황등을 일관성있게 구체적으로 진술한 점도 이씨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공범이 있을 가능성을 뒷받침해 주는 부분이다. 경찰은 박씨를 검거하기 전까지는 철저한 방증수사등 체계적인 준비를 해 자백을 이끌어냄으로써 수사상 일부 개가를 올렸다. 그러나 이씨의 경우 『지난달 국제전화를 통해 범행을 모의했다』『범행당시 갈색계통의 옷과 신발을 신고 있었다』라는 박씨의 허위진술을 사전에 검증하지도 않은채 성급하게 이씨를 연행,허탕을 친데 대해서는 경솔한 수사였다는 비난을 면키어렵게 됐다. 따라서 사건수사을 넘겨받은 검찰은 이같은 의문점에 대한 해소와 함께 공범등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내려야할 부담을 안게됐다.
  • 포커도박 빚지자 “패륜범행”/한약상부모 살해범

    ◎등산용칼·휘발유 사흘전 구입/범죄영화 본떠 살해후 방화/장례끝나자 인감도장 찾아 한약협회 서울시지부장 박순태씨부부 피살사건은 아들이 부모를 흉기로 무자비하게 난자,살해한 뒤 방화까지 한 반인륜적 패륜범죄로 밝혀져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범행동기및준비◁ 미국에서의 방탕한 생활로 지난 13일 귀국한 한상씨는 부모만 없으면 유산으로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를 살해한 뒤 불을 지르는 내용의 미국에서 본 범죄영화를 본떠 범행을 저지르기로 계획을 세운 한상씨는 16일 상오11시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2만원을 주고 범행에 쓸 등산용 칼을 구입했다.이어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철물점과 주유소에서 플라스틱통과 휘발유까지 산 뒤 범행을 실행할 날짜만을 기다렸다. 석가탄신일로 공휴일인 18일 강남구 삼성동 집에서 함께 사는 이모 조모씨(42)부부가 수안보온천으로 여행을 가 집에 다른 가족들이 없자 승용차트렁크에 준비해둔 등산용 칼을 자신의 지하 건넌방 침대밑에 숨겨두었다. ▷범행◁ 19일 0시10분쯤 부모 박씨부부가 모두 잠든 것을 확인한 한상씨는 옷을 모두 벗고 거실에 있던 침대시트로 몸을 감싼 뒤 두손에 등산용 칼과 부엌에 있던 과도를 들고 안방으로 건너갔다.이불을 덮고 누워 있던 어머니 조씨를 먼저 찌른 뒤 인기척에 놀라 잠에서 깨어 손으로 막는 아버지에게도 정신없이 흉기를 마구 휘두르다 장딴지를 물렸다. 이어 차고에 숨겨둔 휘발유를 방에 뿌리고 범행에 사용한 등산용 칼과 휘발유통,신고 있던 농구화 등을 차에 싣고 집에서 5백여m 떨어진 공터에 버린 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불을 질렀다. ▷경찰수사◁ 경찰은 ▲한상씨의 진술이 범행 뒤 계속 엇갈린 점 ▲가벼운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한상씨를 치료한 강남 시립병원 간호사 엄모씨(27·여)가 뒷머리와 얼굴에 상처가 없는데도 피가 묻어 있었다고 진술한 점 ▲오른쪽 종아리부분에 이빨에 물린 듯한 자국이 남아 있다는 점등으로 미뤄 한상씨를 용의자로 지목,수사를 펴오다 26일 범행당시 입었던 하의 운동복에서 숨진 박씨의 혈흔이 발견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추궁,범행일체를 자백받았다. 강남경찰서 도상길형사과장은 『사건당일 조카 이모군(12)을 집에 남겨두고 혼자서 불을 피해 도망나온 점이 우선 의심스러웠고 사건당시 한상군의 머리카락에 피가 묻어 있던 점으로 한상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집중수사를 벌인 결과 범행을 자백받았다』고 말했다. ▷범행후 행적◁ 불이 나는 것을 보고 이웃집에 도움을 요청한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이어 부모의 사체가 안치된 경찰병원에서 상주로서 조문객을 받고 장례식을 치르고 난 22일이후 경기도 하남시 큰아버지(52)집에 머물렀다. 그는 삼우제를 마친 23일 큰아버지에게 『한약방을 빨리 처분해야겠다』면서 『아버지 인감도장을 달라』고 요구,전혀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아 주변사람들이 이상한 낌새를 채게 했다. 큰아버지는 이때부터 한상씨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한상씨의 태도를 유심히 살펴본 뒤 25일 경찰에 의문점을 털어놓았다. 큰아버지는 전화를 통해 『진실은 꼭 밝혀야 한다』고 전제하고 병원치료때 본 한상씨 장딴지의 이빨자국등에 대해 소상히 밝혔다. ◎범인 일문일답/“호적 파가라” 심한 꾸중에 결심/수십차례 흉기난자 기억 안나 ­범행동기는. ▲평소 아버지로부터 돈을 많이 쓴다고 꾸지람을 받았고 일을 저지르기 3일전쯤에 『내 자식이 아니니 호적을 파가라.너는 어떤 일도 못할 놈이다』라는등 심하게 꾸지람을 해 범행을 저지를 마음을 먹었다. ­부모님을 수십차례나 찌른 이유는. ▲그때는 정신이 없었고 당시의 상황은 기억이 잘 안난다. ­흉기로 찌르고 난 뒤 불은 왜 질렀나. ▲미국에서 본 비슷한 내용의 영화를 본떠 강도로 가장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유학중 돈을 많이 쓴 까닭은. ▲부모가 생활비로 부쳐준 목돈을 도박하는 데 썼다.한국과 달리 도박이 자유로운 미국에서는 늘 도박의 유혹이 있었다.친구의 권유로 처음에는 재미삼아 집근처 도박장을 이용하다가 포커에 손을 대면서 5천달러를 잃었는데 이를 만회하려고 계속 도박을 하다 아버지가 보내온 1만8천달러를 다 잃게 돼 감당할 수 없었다. ­범행 뒤 무엇을 할 생각이었나. ▲아버지사업을 인수해 한국에서 사업을 할까 생각했지만 자신이 없었다.미국으로 건너갈 생각도 해보았다. ­지금 심정은. ▲별다른 생각 없이 갑작스런 충동에서 범행을 저지른 뒤 후회를 많이 했다.그동안 잠도 못자고 마음이 괴로웠다.불을 지르고 난 뒤에는 부모님을 구하고 싶었다.털어놓으니 속이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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