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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구효서, 새 창작집 ‘도라지꽃 누님’ 펴내

    소설가 구효서가 중·단편 11작품을 묶은 ‘도라지꽃 누님’(세계사)을 펴냈다.‘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이후 4년만이다. 그의 소설은 재미있는 것으로 정평이 있다.‘도라지꽃…’ 역시 이런 기대를 충족시킨다.예전 작품보다 쉽게 읽히면서 재미는 더한 것 같다. 구효서는 이 작품들을 쓰면서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고 한다.‘자식이 마음대로 안되고,골프가 마음대로 안되듯’ 소설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교만과 개성 따위로 미화되던 것들이 정작은 교만과 아집에 지나지 않았다고 술회하고 있다.이전에 보여주었던 ‘소설적 실험’들이 결국 작가 자신도 편치 않았고,독자들도 편케하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도라지꽃…’이 재미를 주는 진짜 이유는 그가 작가로서의본령을 비로소 자각한 뒤 썼다는 데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도라지꽃…’은 중·단편을 한데 모은 것이지만,읽다보면 등가적인 작품을 나열한 조곡(suite)이라기 보다는,개별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결국하나의통일된 구조를 갖고 있는 교향곡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북녘 어머니와의 해후를 위해 미친 듯 옛집를 지킬 나무를 구한다는 다소무거운 주제를 다룬 ‘나무 남자의 아내’는 1악장쯤이라고 할만 하다.이 작품에선 작가를 ‘주인공 아닌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진짜 주인공’들을관찰케하고,그들의 비밀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맡긴다.‘소설가 소설’이라는 용어를 회자시키는 이유일 것이다. “사랑한다”가 아니라 “아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남편을 거부하는 ‘그녀는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다’가 가볍게 읽히지만 내용마저 가볍지는 않은 2악장이라면,반신불수의 아내를 위해 10년 동안 생리대를 사며 아이를 기다리는 ‘포천에는 시지프스가 산다’는 3악장의 고뇌에 해당한다. 4악장은 ‘도라지꽃 누님’이다.‘눈밭같고,소금밭같이’ 만발한 도라지꽃은 누님의 자연회귀를 상징하기도 하지만,작가의 염원을 상징하기도 한다.‘도라지꽃…’을 새 창작집의 제목으로 삼은 것도 이 작품이 ‘환희의 송가’에 해당하기 때문은 아닐까. 서동철기자
  • 車복지, 장애 女동창생과 40년만의 해후

    “나 자신도 장애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습니다” 차흥봉(車興奉) 보건복지부 장관은 10일 기자들과 점심을 하는 자리에서 초등학교 여자 동창생과의 40여년 만의 만남을 소개하며 이같이 털어놓았다. 그는 얼마전 고향 방문때 초등학교시절 장애인이었던 여자 동창생이 인근마을에 산다는 소식을 듣고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소식을 접한여자 동창생은 차장관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고,두사람은 강산이 네번이나 변했을 지난 세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 차 장관은 최근 벌초하러 고향에 내려갔다가 키가 120㎝에 불과한 여자 동창생과 해우했다. 차장관은 그가 장애인으로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장 궁금했다고한다. 그러나 ‘난쟁이’ 동창과의 만남은 차장관의 우려와 편견을 여지없이깨뜨렸다. 그녀는 논과 밭에서 남의 일을 도와주며 열심히 살았다.20대 후반에는 미용기술을 배워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며 아낙네들의 머리손질을 해주며 많은 수입을 올렸다.이렇게 모은 돈으로 형편이 넉넉지 않은 조카 4명에게 학자금을 지원,대학까지 공부시켰다. 그녀는 헤어질 때 5만원 미만이니 공직자 선물금지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고추 한 포대를 선물할 만큼 늠름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차장관은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공무원 중에서 키가 가장 크다(183㎝)는 내가 ‘진짜’난쟁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특히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숨어있었음을 알고는 고개를 들기 어려울 만큼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임태순기자 stslim@
  • 육지 사는 해녀들 고향 제주 나들이

    전국 각지에 사는 제주 출신 해녀 35명이 제주도 초청으로 오는 14일부터 17일까지 고향 방문길에 나선다. 8일 도에 따르면 이들은 오래전에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지방으로 떠났다가그곳에 정착한 사람들로 대부분 50대 들이다.지역별로는 경북 13명,경남 8명,부산 6명,충남 3명,전남 3명,전북 2명 등이다. 이들은 제주에 머무는 3박4일동안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고향 친지들과해후의 정을 나누게 된다.도청을 방문해 제주도 발전상을 영상을 통해 확인한다. 도는 이들에게 왕복교통비와 체재비 일체를 지원하며 차량 제공과 안내에도 만전을 기할 계획이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변협, 대법원장 추천후보 명단 청와대에 전달

    대한변호사협회(회장 金昌國)는 지난 16일 사법평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확정한 차기 대법원장 추천후보 명단을 18일 오후 청와대에 전달했다. 대한변협 정상룡(鄭相龍) 사무총장은 이날 “변협 이사진이 청와대를 방문,추천후보 명단을 전달했다”면서 “다만 청와대측과의 사전 의견조율을 통해후보 명단과 숫자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변협은 사법평가위 회의에서 1차로 선정한 대법원장 후보 6명 중에서 3∼4명의 추천 후보를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록기자 myzodan@
  • ‘지방의원 후원회 금지’ 憲訴키로

    전국 시·도의회 운영위원장 협의회(회장 李容富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는 1일과 2일 이틀동안 전북도의회에서 제8차 회의를 갖는다. 운영위원장 협의회는 1일 열린 회의에서 국회의원과 달리 지방의원에 대해후원회 결성을 금지한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제5조)과 우편법 시행규칙(제85조 제1호) 등 2개의 법률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로 했다. 협의회는 또 오는 16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전국의 광역의원 69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 시·도의회 의원 합동 세미나를 열기로 합의했다. 이밖에 협의회는 전북 군산과 부안 앞바다에서 진행중인 새만금 종합개발사업의 방조제 공사가 오는 2003년까지 완공될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하는 등새만금사업의 강력한 추진을 정부에 촉구하는 결의문도 채택했다. 전주 조승진기자
  • 이산가족 6가족 50년만에 상봉

    지난 83년 온국민의 눈시울을 적셨던 TV의 이산가족 찾기 행사가 16년 만에재현돼 모두 여섯 가족의 남북이산가족이 50여년 만의 극적인 해후를 이뤘다. 이날 방송은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한 주민들이 남한의 가족을 찾는 사연을 집중적으로 소개,남한의 가족들과 만나도록 도왔다. KBS 1TV는 지난 17일 밤 ‘특별 생방송-남과 북 이산가족을 찾습니다’프로에서 한국전쟁 당시 가족과 남북으로 헤어진 지왈정(73)할머니 등 여섯 가족의 상봉을 주선했다.KBS는 오는 24일 밤 행사를 다시 갖는다. 이날 KBS에 나와 있던 지 할머니는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한 조카 지모(여)씨와 국제 영상전화로 연결되자 가족의 소식 등을 나누며 울먹였다.또 이한규(55),민병연(65),조익환(56)씨 등도 북한 가족의 생존 사실을 확인했다.우영구(59)씨는 북에 있는 조카가 보낸 편지를 통해 형님이 지난 88년에 숨졌음을 알고는 대성통곡했다. 아울러 북한을 방문해 가족을 만났던 재미동포들의 상봉장면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부터 위성중계됐다.심야방송이 진행되는 도중 국내외에서 전화가 빗발쳐 이산가족의 심정이 얼마나 애달픈가를 알 수 있었다. 이날 방송은 북한에서 편지를 보내온 사람들의 경우 이름과 나이 등 인적사항을 공개하지 않는 등 신변안전에 크게 신경을 썼다. 허남주기자 yukyung@
  • 悲運의 단종부부 소나무되어 만났다

    비운의 임금 단종과 단종비 정순왕후가 생이별 543년만에 소나무로 해후했다. 강원도 영월문화원은 9일 경기도 남양주군에 있는 정순왕후의 사능(思陵)주변 소나무 2그루를 정령송(精靈松)으로 이름붙여 단종릉인 영월군의 장릉(莊陵)에 옮겨 심었다. 정령송이 심어진 곳은 장릉에서 훤히 보이는 언덕으로,단종은 사후 500년이 훨씬 지나서야 소나무를 통해 그리던 왕비를 만나게 됐다.단종은 세조에게왕위를 찬탈당한 뒤 세조 3년(1457년) 성삼문 등 집현전 학사들의 복위기도가 실패하자 17세의 나이로 영월 청령포에 유배됐다.꼭 543년 전의 일이다. 유배 4개월만에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단종은 숨을 거뒀으며 정순왕후도 서울 동대문밖의 청룡사 터에 지은 초가에서 영월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의세월을 보내다 중종 16년인 1521년 눈을 감았다.죽어서도 정순왕후의 혼백은 창경궁,종묘 영령전을 전전하다 영조때야 고향인 지금의 사능에 안장됐다. 영월문화원 관계자는 “정략에 휘말려 짧은 삶을 마감한 어린 왕과 왕비의혼백을 위로하자는 뜻에서 정령송을 옮겨 심게 됐다”고 말했다.
  • 재보선문제점

    과거 혼탁선거의 재판이라는 평가 속에서 재보선이 막을 내렸다.선거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불법·타락 양상이 심화되자 여야는 앞다투어 ‘공명선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급기야 정치권 일각에서는 ‘재보선무용론’까지 등장했다.여야는 선거가 끝난 뒤 대책을 마련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실현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흑색선전 선거가 달아오르면서 후보들은 ‘IMF사태를 초래한 장본인’ ‘무능공직자’ ‘호화판 주택을 소유한 철새’ 등을 운운하며 상대후보 비방에 열을 올렸다. 지난 25일 모 후보쪽은 상대후보의 병역기피 의혹을 제기하면서 “강박신경증이라는 정신병 때문에 전역했다”고 주장했고 상대후보는 “부인이 서울강남지역에 호화음식점을 차릴 정도로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이에 앞서 24일에는 시흥보선에 출하만 모 후보가 “상대후보는 서울부시장 시절 부정행정으로 해임촉구결의를 받았다”면서 “전직 무능공직자”라고원색적으로 비방하기도 했다. 특히 모 정당 연설회에서 한 의원이“우리후보가 시시하게 여자와 싸울 만한 분이냐”며 여성후보 비하발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중앙당 개입 이번 선거기간동안 여야는 총재를 비롯,주요 당직자와 소속의원들을 총동원했다.여야는 합의하에 이 기간동안 상임위활동을 계속하기로 했지만 의원들의 ‘선거전’ 투입으로 상임위는 전혀 열리지 못했다.어렵게 마련된 임시국회는 ‘개점휴업’상태가 됐고 국정운영에 큰 차질을 초래해후유증을 앓고 있다. 선거운동기간동안 李會昌총재를 비롯,한나라당 주요 당직자들은 선거지역을 10여차례 가까이 공식방문했다.부총재와 당 3역에게 담당 선거구를 할당하는 등 의정활동을 전혀 할 수 없도록 했다. 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과 자민련 朴泰俊총재 등 공동여권 지도부도거의 매일 선거구를 찾았다.선거구 각 동별로 담당 의원을 정하기도 했다. ▒고소고발 난무 선거가 치열해지면서 후보사이에 고소,맞고소의 악순환이되풀이됐다.여야가 검찰에 직접 고발한 건수는 국민회의 8건,한나라당 6건. 이외에 여야가 주장하는 상대후보 부정선거 사례는 수십건에 이른다.또 선관위가 자체 적발한 선거법위반도 수십건에 이르고 있고 이중 공식발표된 것만도 14건이다. 지난 27일 구로을 재선에서 한 후보가 ‘스카프 배포’ 혐의로 상대후보를검찰에 고발하자 이 후보는 사실무근이라며 맞고발하기도 했다. ▒관권·금권시비 국민회의는 “한나라당이 2만∼5만원 단위의 자금을 살포하며 음성적 두더지식 사조직을 중심으로 불법선거를 자행했다”면서 금권선거운동 의혹을 제기했다.이에 한나라당은 “서울시가 각 구청별로 시흥거주공무원주소록을 작성하는 등 관권선거의혹이 곳곳에서 나타났다”고 맞섰다.
  • [해외 저명인사가 본 ‘한국의 국난극복’] -후카가와 유키코

    金大中대통령의 새 정부하에서 한국은 경제외교에 성공하였으며 거시적인측면에서 안정을 되찾아 금융부문의 구조조정도 비교적 신속하게 추진될 수있었다. 세계화 시장에서 한 나라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극히 애매한 시장감각과 이것을 좌우하는 정보 발신력,그리고 교섭력이라고 할 수 있다.한국은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경제협력을 이끌어내고 신용등급을 회복한데다 실천력있는 대통령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을 행운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미국 금융가의 대변인이라는 비판을 받은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의 국제수지개선과 외환 및 물가의 안정실적에 기대를 걸고 있다.한국의 금융개혁 속도는 거의 진척이 없는 일본의 금융개편과 비교해 대조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이는 정권교체로 기득권의 저항에 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남은 과제는 국내정치의 이해조정,착실한 구조조정,그리고 실물부문의 회복이다.사회정책을 도외시한 IMF의 극약처방은 중남미나 러시아에서 사회적인 분열을 야기했으며 다원화·민주화 과정에 있는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경제가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정치권,관료,재벌,중소기업,언론기관,노조,시민단체 등 다수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복잡한 갈등이 발생한다.경제면에서 긴장감이 풀리면서 지역감정마저 자극받게 된다면 국내정치는 더욱 혼란해질 것이다. 앞으로는 경기부양과 규모의 확대를 위해서 폭넓은 대화를 통한 합의의 형성을 강화해 나감과 동시에 합리성과 효율을 추구함으로써 경제문제가 정치화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개혁을 위해서 리더십이 중요하기는 하나 정부는 어디까지나 다원적 이해관계의 조정자이다.시장기능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정확한 정보로 무장한 파수꾼이기는 해도,플레이어는 아니다.외자유치에있어서 투기꾼이 원하는 것은 단기적인 기회창출이지만 기관투자가들이 바라는 것은 경제이론이 관철되는 안정적인 투자환경이다.정부는 양자를 구별해후자에 대응하는 것이 국내의 이해관계와 균형을 잡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거시적인 안정을 보다 결정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주요산업을 쥐고있는 5대 재벌의 구조조정을 간과할 수 없다.그러나 구조조정의 목적이 분명하지않다는 점이 우려된다.구조조정의 거시적인 목적은 과잉투자에 빠진 각 산업의 합리화이며,미시적인 목적은 5대 재벌의 재무개선과 금융기관의 채권구조 개선이다.빅딜은 될 수 있으면 양쪽 모두,적어도 어느 한쪽이라도 성과를거두지 않으면 안된다. 결국 한국의 구조조정의 본질은 관치금융에서 탈피하고,기업이 자유롭게 시장에 뛰어들어 실패하면 책임을 지고 퇴출되어 경영자가 교체되는 그러한 시장원리의 확립이다.금융기관에 대한 공적인 자금투입도 포함해서 5대 재벌의 구조조정이 경제전반에 걸쳐 어떻게 기여하고,시장원칙을 확립해 나가는지를 명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실물경제의 회복이 급선무다.실물부문의 수요창출이 없는 상황에서 외자가 계속 유입 된다면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거품이 생기게 되고,그것은 남북관계의 긴장 등 어떤 계기가 있으면 거품이 빠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 외자뿐만 아니라 한국 부유층의 자본마저도 유출될 경우 경기회복은 한층 더 어려워질 것이다.다행히 한국의 금융개혁은 그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아마도 한국은 금융개혁이 미봉책으로 끝나 경제재건에 실패함으로써경기가 극도로 악화된 일본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이다.금융규제 완화 후에는 건설투자 확대,중소기업의 수출이나 창업지원 등을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한편,재벌 기업에 대해 연결재무제표의 공개나 공정거래법의 강화 등 경영투명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 통일문학작품집 ‘그날이 오늘이라면’ 잔잔한 파문

    “…꽃 같은 이 강산 너무 슬펐다/쇠울짱 첩첩으로 가로막혀/그 무엇 때문에/그렇게도 미움과 반역의 세월이었던가…그리하여 아직 우리에게는/하나의 감격이 남아 있다/함부로 써버릴 수 없는 그것/그 감격의 날이 남아 있다” 고은 시인이 지난 91년 ‘남북합의서’ 채택에 부쳐 쓴 ‘그날이 오늘이라면’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이 시를 읽으면 1930년대 심훈이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을 갈구하며 쓴 시 ‘그날이 오면’이 떠오른다.그 해방이 ‘도둑처럼’ 왔듯,민족의 통일 또한 하얀 눈이 내리듯 그렇게 올지 모를 일이다. 한반도는 더이상 냉전의 섬에 머무를 수 없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분단체제의 관성에서 벗어나 진정한 민족의 화해와 통합을 위한 통일지향적인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최근 서점가에 선보인 ‘그날이 오늘이라면’(도서출판 청동거울,김재홍·홍용희 엮음)은 바로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통일문학 작품집이다. 분단문학이 전쟁의 비극성과 분단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중심 항목으로 삼는다면,통일문학은 반세기에 걸친 분단 역사가 낳은 이질성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데 초점을 맞춘다.이 작품집에 실린 시와 소설은 통일시대를 향한 문학적 도정을 정직하게 보여준다.수록작품은 남북의 작품 각각 11편·9편씩 모두 20편.소설집 ‘침묵의 성’을 낸 이원규의 ‘강물은 바람을 안고 운다’,북한 작가 림종상의 ‘쇠찌르레기’등 혈육의 정을다룬 8편의 단편과 박덕규의 ‘노루사냥’등 탈북자 소설 2편이 실렸다.또고은의 ‘그날이 오늘이라면’,북한 시인 전병구의 ‘떨어지는 감알’ 등 10편의 시는 분단극복과 통일의 염원을 절절히 노래한 작품이다. 이 가운데 림종상의 ‘쇠찌르레기’는 월남한 조류학자 원병오 박사가 북녘의 가족에게 새를 통해 교신을 보낸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액자소설의 형식을 띤 이 작품에서 쇠찌르레기는 이산의 아픔을 겪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해후의 다리를 놓아 주는 소품 구실을 한다.극적인 가족사가매개돼 문학적 긴장감을 느끼게 하지만 이 작품 역시 북한문학의 일정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주제의식을설명적으로 제시하고,주인공을 지나치게 전범화(典範化)하며,결말처리가 정형화돼 있다. 한편 북한의 통일 시편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체험적인 서사성이 가미돼 있으며,구체적인 형상력을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잡초 무성한 관산나루언덕/분계선이 가로 건너간 곳에/후두둑 후두둑/떨어지는 감알//…안타까워라 감나무야/분렬의 고통을 너도 당하니/언제면 주인을 다시 불러오랴/네 푸른 아지(兒枝)를 타고/즐거이 감을 딸 그날이 오랴”(‘떨어지는 감알’중)감나무에 얽힌 곡진한 추억을 통해 인위적으로 그어진 군사분계선의 비극상을 명징하게 드러내고 있다. 분단문학의 흐름은 90년대 들어서면서 통일문학으로 변모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분단 극복의 문학 나아가 통일문학은 이 시대 민족문학의 핵심 과제다.통일문학의 정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질적인 남북한 문학의 원형질을찾아내는 길트기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작가들로서는 이산과 상봉 등의 문제 뿐 아니라 북한의 실상과 통일정책까지도 문학적으로 아우르려는 보다 창의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 친일의 군상:18/명성왕후 시해 가담 禹範善(정직한 역사되찾기)

    ◎명성왕후 시해·시신 소각 등 지휘/‘씨없는 수박’ 만든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부친/무관 출신… 친일 개화세력과 돈독한 관계 유지/일 공사 미우라에 포섭돼 을미사변때 병력 동원/사건후 일 망명… 1903년 일 지방도시서 피살 일본인 여류저술가 쓰노다 후사코(角田房子·84)씨는 지난 90년 ‘나의 조국(わが祖國)’이라는 책을 출간했다.얼핏 책 제목만 보면 본인의 자서전 같다.그러나 부제를 보면 남의 이야기를 쓴 책임을 알 수 있다.부제는 ‘우박사(禹博士)의 운명의 씨앗(種)’.부제에 나오는 한국인 성(姓)을 가진 ‘禹박사’는 과연 누구인가?흔히 ‘씨없는 수박’을 개발한 주인공으로 유명한 육종학자 우장춘(禹長春·1898∼1959) 박사가 바로 그 사람이다.쓰노다 여사가 우 박사의 이야기를 책으로 쓴 데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 1914년 도쿄에서 태어난 쓰노다 여사는 1960년대부터 집필활동을 시작한 이후 한동안 일본 군인들의 전기(傳記)를 주로 집필하였다.그러다가 80년대 들어서부터 한일관계사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 첫 작품이 87년에 출간된 ‘민비암살(閔妃暗殺)’이다.쓰노다 여사는 자료수집차 85년 한국을 방문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한 한국인 학생으로부터 민비(명성황후) 암살에 가담한 조선군 대대장 우범선(禹範善)이 우장춘 박사의 부친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쓰노다 여사로서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우 박사는 일본에서도 유명한 육종학자였던 데다 그동안 그런 얘기를 전혀 들어본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쓰노다 여사는 이후 3년간 한일 양국을 오가면서 우 박사의 흔적을 뒤지고 우 박사 유족들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나의 조국’은 이런 인연에서 탄생한 우 박사 집안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다. 1895년(을미년) 10월8일 새벽 5시30분경.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미명에 정체불명의 한 무리가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에 들이닥쳤다.일본군과 일본인 복장을 한 이 괴한들은 궁궐을 수비하고 있던 훈련대 연대장 洪啓薰 일행을 살해하고는 곧바로 근정전을 지나 건청궁(乾淸宮)으로 쳐들어갔다.이들은 국왕(고종)의 침전인 곤령전에 난입,난폭한 행동을 자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국왕은 옷이 찢겨지는 등 수모를 당하였다.또 왕세자는 일본군 장교복장을 한 폭도에게 상투를 잡힌 채 그가 휘두른 칼에 목을 맞고 쓰러졌으나 다행히 칼등을 맞아 목숨을 건졌다. ○시해후 시신능욕 만행도 이들중 한 무리는 인근 왕비의 침전인 옥호루(玉壺樓)로 내달렸다.궁내부 대신 李景稙이 길을 막고 나서자 폭도들은 이경직을 총으로 사살하고는 고종이 보는 앞에서 다시 칼로 무참히 베었다.이어 왕비 침전에서 여인들의 비명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울려퍼졌다.궁녀 3명과 왕비(민비,1897년 명성황후로 추존됨)의 비명소리였다.폭도들은 궁녀와 왕세자 李拓(순종의 본명)을 통해 피살된 자 중의 한 사람이 민비임을 확인하고는 민비의 시신를 홑이불에 싸서 인근 녹원(鹿園) 솔밭에서 석유불에 태워버렸다. 여기서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지않은 비화 한토막을 소개하면,폭도들은 민비를 시해한 후 민비의 시신을 능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다.일본인 사학자 야마베 겐타로(山邊健太郞·77년 작고)는 당시 구한국 정부의 고문으로 있던이시즈카(石塚英藏)가 사건 직후 본국으로 보낸 보고서 내용(‘…왕비를 끌어내 2∼3 군데 도상(刀傷)을 입히고 또한 발가벗겨 국부검사(局部檢査)를 했다…’)을 인용,“폭도들이 사체(死體)를 능욕했다”(‘日本の韓國倂合’·1966년 출간)고 폭로한 바 있다.이에 대해 崔文衡(한양대·사학과) 교수는 “시체에 대한 국부검사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능욕’이란 표현도 적당치 않다”며 “왕궁침입에 앞서 이미 술에 만취한 자들이 시간(屍姦,시체를 강간함)도 서슴치 않았다고 봐야한다”고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일국의 왕비가 괴한 무리들에게 살해당하고 그 시신이 능욕을 당한 것이 바로 ‘을미사변(乙未事變)’의 진상이다.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을미사변’은 비참하고 치욕적인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치욕스런 사건의 음모 단계에서부터 가담한 조선인이 한 명 있었다.바로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부친 우범선(禹範善·1857∼1903)이었다.당시 훈련대 제2대대장으로 있던 우범선은 주한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에게 포섭돼 이 사건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이 사건에서 그가 맡은 임무는 훈련대 병력동원.상황이 전개되자 당초 임무대로 훈련대 제2대대 병력을 차질없이 동원한 것은 물론이고 민비의 시신 ‘처리’도 맡았다.폭도들에 의해 시해된 후 불태워진 민비 시신의 타고 남은 재는 궁궐내 우물에 버려졌고 유해 일부는 우범선의 지시로 휘하의 尹錫禹가 땅에 묻어버렸다.증거인멸을 위해서였다. ○20세 되던 해 무과 급제 민비 시해에 적극 가담한 우범선은 어떤 인물인가.대한제국 시절에 군인으로 활동한 것은 분명하나 ‘대한제국관원이력서’나 ‘구한국 관보(官報)’ 등 공식자료에는 그의 출신·경력사항이 나와있지 않다.야사(野史) 몇 군데서 일부 확인될 뿐이다.‘풍운한말비사(風雲韓末秘史)’라는 책에 따르면 우범선이 (별기군의) 참령관(參領官)으로 근무할 당시 생도들이 그를 ‘자네’라고 불러 그가 반발했던 사실로 봐 출신성분은 그리 대단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송촌 池錫永이 尹雄烈에게 그를 추천하면서 ‘무위영(武衛營) 집사(執事) 우범선은 구세군교가(九世軍校家)에 병학(兵學)이 한숙(숙달됨)한 인물’이라고 평한 걸로 봐 무술에 능했음은 분명하다. 실지로 우범선은 무인(武人)집안 출신으로 20세가 되던 해(1876년) 무과에 급제하여 황해도 지방에서 근무하다가 별기군(別技軍)이 창설되자 여기에 참여했다.별기군은 일본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의 건의로 1881년 한국군의 군제(軍制)개혁의 일환으로 창설되었는데 그가 친일로 나선 첫 실마리는 이로부터 시작된다.여기서 그는 친일 개화세력들과 교류하면서 개화정책에 눈을 떠 개화파에 가담하였다.1894년 6월 일본군이 무력으로 경복궁을 침입,민씨 정권을 몰아내자 그는 개화파들의 천거로 군국기무처 의원이 돼 갑오(甲午)개혁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4월 친일정권에 의해 훈련대가 창설되자 그는 제2대대장에 보임됐다. 훈련대는 나중에 일제의 친일세력 확장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이무렵 민비는 러시아와 손잡고 친일세력 축출을 기도하고 있어 친일세력으로선 궁지에 몰린 입장이었다.일본은 국면전환을 위해 공사를 이노우에(井上馨)에서 육군중장 출신의 미우라로 교체하였다.미우라는 부임직후 ‘여우사냥’ 운운하면서 민비시해계획을 세우고는 당시 한국에서 암약하던 일본인 낭인(浪人)패거리들을 끌어 모았다.낭인 가운데는 친일신문 ‘한성신보(漢城新報)’ 사장 아다치 겐조(安達謙藏)와 시바 시로우(柴四郞)등 일본의 대표적 명문대 출신의 지성인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이들 중 더러는 나중에 각료·중의원 의원 등을 지냈다). 미우라는 이들 외에 조선인 협력자를 물색하던중 평소 친일성향을 가진데다 당시 민씨정권의 훈련대 해산계획에 불만을 품고있던 우범선을 포섭하는데 성공하였다.우범선은 미우라에게 “조선의 정치개선은 당우(黨羽)를 일소하지 않으면 어렵다”며 민비시해를 통한 친일정권 수립을 역설하였다.이어 훈련대 제1대대장 李斗璜(중추원 부찬의·전북 도장관 역임),제3대대장 李軫鎬(총독부 학무국장·중추원고문 역임) 등이 속속 포섭되자 미우라는 당초 계획날짜를 이틀 앞당겨 거사(?)를 결행하였다.결국 ‘을미사변’은 일본 공사관의 주도 아래 일본인 낭인무리와 조선인 친일군인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인 셈이다. ○일 여인과 결혼뒤 거처 옮겨 사건 후 우범선은 이두황 등과 함께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망명하였다.도쿄에서 망명생활 도중 사카이(酒井ナカ)라는 일본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한 그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1903년 구레시(吳市)로 거처를 옮겼다가 그 해말 자객 高永根에게 암살당하였다.그의 비명횡사는 일본으로 도망갈 때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현재 그의 묘는 살해된 구레시와 도쿄 두 군데 있다.도쿄 청산(靑山)묘지에 있는 묘는 일본인 후원자가 유골을 분골(分骨)하여 그의 사후 1년 뒤인 1904년에 만든 것이다. 우범선에게는 우장춘 이외에 유복자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차남은 명문 제1고등학교·동경(東京)제국대학 법과를 졸업,일본 유수의 회사에서 중역으로 근무하다가 지금은 은퇴하였다.그는 모계(母系) 집안에 입적돼 호적상으로는 완전한 일본인이 되었다.반면 우 박사는 6·25 와중에 귀국,일생을 조국의 농업발달을 위해 연구에 전념했다.우 박사로서는 그 길이 아버지의 과오를속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 해금강 삼일포(시조시인 李根培씨 답사기:4)

    ◎네 신선이 맘껏 즐기던 놀이터/조물주 畵龍點睛으로 생긴듯 ●한발늦은 동해 일출 백두대간은 동해를 옆에 끼고 용틀임을 치다가 마침내 지상에서는 더불어 견줄 수 없는 대자연의 완성품인 금강산을 우뚝 세우더니 그 뿌리를 바다에 심어 해금강을 이루었다.산이 산에 머물지 않고 바다를 거느리려 내려온 것일까,동해 물빛이 해금강을 푸른 치마폭으로 감싸며 크고 작은 산을 하나씩 떠올린다. 해금강은 동해일출이 장관이라는데 우리가 다다른 때는 해가 중천에 떠서 해돋이를 넘겼지만 바다 밑까지 비추는 햇빛에 해만물상(海萬物相)이 물속과 물위에서 바로 서기도 하고 거꾸로 서기도 하며 오랜 세월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큰 바위마다 어김없이 이름을 하나씩 달고 나와서 촛대바위 고양이바위 누룩바위 동자바위 상좌바위 노승바위 사자바위 등등 행여 그런 이름들이 아니면 금강의 반열에서 퇴출당할까 싶은지 얼굴을 내밀고 갖가지 시늉을 한다. 동서남북의 방위를 알 길이 없더니 탁트인 시야의 저쪽 산이 하나 들어놓고 누군가가 ‘통일전망대다!’고 소리친다.나는 몇해 전 통일전망대에서 망원렌즈로 잡아당겨 찍은 해금강 사진을 보고 금강산을 외쳐 부르는 시를 쓴 일이 있다.그렇구나.육안으로도 건너다 보이고 카메라의 눈으로는 바로 앞에 있는 해금강을 그저 노래로만 부르다가 겨우 이제서야 오게 되었고 그것도 뱃길마저 멀리 둘러서 와야 했구나. ●꽃봉오리에 갇힌 이슬 하늘 위에도 산이 있는가하면 산 아래에도 하늘이 있다.삼일포(三日浦)는 본래는 주머니처럼 들어앉은 포구인데 바다를 막아서 호수가 되었고 하늘에서 영랑(永郞) 술랑(述郞) 남석행(南石行) 안상(安詳) 네 신선이 이 호수에 내려왔다가 너무 아름다워 그만 사흘쯤 지냈다고 하여 이름이 생긴 신선들의 놀이터다.그러나 최남선은 영랑 술랑 등은 신라 화랑의 수장들의 계급이고 보면 네 신선이 아닌 화랑이 낭도들을 데리고 사흘동안 뱃놀이를 했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호수 안에는 붉은 글씨로 ‘술랑도남석행(術郞徒南石行)’ 여섯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어 단서암(丹書岩)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지우고 남은 글자가 있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삼일포는 금강산 자락에 하늘 한 자락이 내려와 산의 목마름을 씻어주는 샘물이 되기도 하고 마치 용을 그리고 그 눈을 살리듯이 금강산을 짓고 난 다음 조물주의 붓이 마지막 완성의 필력을 휘두른 것 같다. 둘레 4.5㎞의 호수는 물빛도 물빛이려니와 연꽃바위,조선조의 시인 양사언(楊士彦)이 글공부를 했다는 봉래대,장군대 등이 바위와 소나무로 병풍을 치고 있어 장군대에서 내려다보면 삼일포는 큰 꽃잎 속에 숨어있는 별 같기도 하고 이슬방울 같기도 하다. 장군대를 돌아나오는데 ‘형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최인호였다. 사정이 있어 첫 배를 놓치고 봉래호를 타고 왔단다.그는 첫 산행이고 나는 마지막 날이었다.삼일포에서의 해후라니! 일찍이 상상이나 했던 일인가.그러고보면 최인호와 나는 신라때 여기서 놀다간 화랑쯤이었는지도 모르지.
  • 日軍 학병서 광복군까지(항일독립군 장정따라 6천리:上)

    ◎臨泉 軍訓地서 ‘광복꿈’ 회상/銅山路 日 부대터에 中軍병영/연병장·단층막사 ‘옛 그대로’/끌려간 日 병영탈출 감행 뿌듯 한국 독립유공자협회 회원들이 조국 광복을 꿈꾸며 젊은 날 이역만리에서 피 흘렸던 중국땅을 찾았다.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韓光班) 출신 광복군 초급장교들로 흔히 광복군 마지막 세대로 분류된다. 일본군의 학병으로 끌려왔다가 탈출,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이 항일투쟁의 족적을 찾아 나선 것은 광복의 참뜻을 지금의 시대 정신으로 승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중국 중부 장쑤(江蘇)성 쉬저우(徐州)에서 쓰촨(四川)성의 충칭(重慶)까지 장장 6,000리길. 일본군 탈출부터 광복군 훈련장,항일 지하공작 거점 등 열하루간 동행했던 이들의 답사 행로를 3회에 나눠 소개한다. ‘마지막 독립군’들의 첫 현장 답사는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에서 시작됐다. 베이징(北京)서 814㎞. 기차로 8시간. 54년전에 거쳐온 길을 더듬기 위해 1시간 남짓한 비행기편도 마다했다. 1944년 2월초. 평양을 출발,기차에 강제로 실려 닿은 곳은 일본군과 중국군이 대치하던 최전방 쉬저우. 7월까지 쉬저우와 슈저우(宿州),푸양(阜陽)일대 전선에 배치됐던 이들은 그해 3월부터 7월까지 하나둘 일본병영을 탈출했다. “일본군이 되어 동포들의 가슴에 총을 겨누느니 차라리 탈출하다 죽기로 했다”고 50여년전 결의를 회상했다. “상당수는 우선 충칭에 있던 임시정부를 찾아가기로 했었습니다” 회고담은 이어졌다. 당시 쉬저우 주변에선 일본군이 밀집해 있었고 중국으로 끌려온 ‘조선학병’ 3,000여명의 대부분도 부근에 배치됐다. 때마침 텐진(天津)에서 시작된 진푸선(津浦線)철로가 쉬저우를 지나 상하이(上海),푸둥(浦東)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노 광복군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일본군은 철도와 주변을 점령,광대한 중국대륙을 ‘선’과 ‘점’으로 연결하는 전략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끌려갔던 학병들은 대부분 철도역 주변에 주둔해 있었단다. 밤을 틈타 3m가 넘는 철책을 넘었다. 짧게는 2∼3일에서 일주일이상을 풀잎이나 과일로 연명하며 낮에는 수수밭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들판을 달렸다. 대개는 중국 유격대와 조우했고 당당한 광복군이 되었다. 44년 6월 ‘宿縣부대’ 제4중대에서 탈출했던 金柔吉 부회장과 全履鎬 회원은 슈저우역에서 2㎞쯤 떨어진 곳을 찾아 헤맨끝에 당시의 탈출지점을 찾아냈다. 지금은 ‘宿縣 付小樓 村庄’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2∼3층의 주택들이 병영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에 앞서 5월에 같은 부대 보병중대에서 津浦線을 넘어 탈출했던 石根永 회원도 슈저우에서 50㎞ 떨어진 구쩐(固鎭)역부근에서 병영터를 찾아냈다. 일본군은 철도가 파괴되거나 공격받으면 주변의 중국인을 몰살시켜 보복했다고 악몽같은 50년전을 떠올렸다. 중국 유격대원이 생포되기라도 하면 총검술 연습의 표적으로 삼아 살해하기도 했단다고 치를 떨었다. 대부분의 병영들은 푯말하나 남지않고 촌락 등으로 바뀌는 등 사라졌지만 尹慶彬 회장과 金永錄 회원이 탈출했던 쉬저우시 통산로(銅山路)의 부대터는 지금도 ‘중국 인민해방군’ 주둔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부대안을 돌아본 尹慶彬 회장 등은 연병장앞의 3층 본부 건물,검은 벽돌과 돌로 지어진 단층 막사가 옛 그대로라며 회상에 젖었다. 높은 천정의 막사안에는 시멘트바닥에 철로 만든 2층 침대 10여개와 간단한 사물함이 눈에 띄었다. 張俊河 선생 등과 함께 尹회장 일행 4명이 44년 7월7일. 일본군의 이른바 ‘중국침략 기념일’로 경계가 느슨해 틈을 타 ‘취침전 15분의 자유시간’을 이용했다. 일본군을 벗어난 이들은 이틀밤을 앞만 보고 달리다 먼저 탈출해 중국 유격대에 와 있던 金俊燁(전 고대 총장)씨와 해후했다. “중국의 여러 유격대에 흩어져 있던 탈출자들은 린촨(臨泉)로 모였지요. 린촨에서 군사훈련을 받으며 광복의 꿈을 키워 대일항전의 장정(長征)을 시작했습니다” 노 독립군의 회고는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따라 어느새 50년전의 린촨에 닿고 있었다. ◎독립유공자협회/항일전 참가 175명이 결성… 현 회원 220명 한국독립유공자협회는 광복회와 함께 항일투쟁의 일선에 섰던 독립운동가들의 양대 산맥. 81년 독립운동가 175명에 의해 발족됐다. 초대회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趙擎韓 선생. 한국전력 사장을 지낸 朴英俊 회장에 이어 尹慶彬 회장이 3대 협회를 이끌고 있다. 회원은 220명. 광복회가 독립지사의 유가족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비해 항일투쟁을 벌였던 본인만이 가입할 수 있다. 회원 모두 건국훈장을 받았다. 일제말기 학병 등으로 중국전선에 끌려갔다가 탈출,광복군에 합류했던 독립운동의 마지막 세대가 협회의 주축. 金九 선생을 보좌,충칭(重慶) 임시정부서 일했던 마지막 생존자들이기도 하다. 대부분 70대후반에서 80대초반. 색이 바라가는 독립정신을 드높이기위한 연구,탐사 등 학술사업과 사회사업,독립운동 사적에 대한 복원운동을 벌여왔다.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80주년이 되는 내년 충칭시 광복군 총사령부건물 표지석 건립작업 등 후세에게 민족애국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중이다. ◎광복군/임정 정규군… 美와 對日 공동작전 활약 광복군이 정규군으로 발족한 것은 40년 9월. 무력으로 조국을 되찾겠다며 중국으로 온 젊은이와 일본군에 끌려왔다가 탈출한 학병이 주축이 됐다. 총사령관은 李靑天 장군이었고 참모장 李範奭 장군.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는 한편 지하활동 등 갖가지 군사활동을 감행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였다. 3개의 직할부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李範奭 장군이 지휘하는 2지대는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을 거점으로 일본군 전력을 교란시키는 활동에 주력했다. 최전방에서 일본군과 필사의 전투는 3지대의 몫. 안후이성 푸양에 본부를 두고 산둥성(山東省) 등 화북지역에서 지하공작 활동도 병행했다. 44년부터는 일본군에서 탈출한 학병들이 합류하면서 미국 첩보기구인 전략사무국(O.S.S)과 함께 일본군에 결정타를 가하기 위해 한반도침투 등 특수공작을 준비하기도 했다.해방직전 광복군은 700여명. 광복이 될 무렵에 중국에 거주하는 교포들로 30만여 군병력을 조직하는 계획에 착수하기도 했다. ◎임천사관학교/日軍 탈출한 한국인 광복군 간부 양성소 안후이성(安徽省) 린촨(臨泉)에 있던 ‘광복군 사관학교’. 더 정확히 말하면 44년 7월 린촨 중국 중앙군관학교 제10분교안에 설치됐던‘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일명 한광반(韓光班)’. 중국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군서 탈출한 한국인을 광복군 간부로 양성하던 곳이다. 44년 7월에 들어온 첫 입학생들은 48명. 33명은 대학졸업후 일본군으로 징병돼 중국전선까지 끌려왔다가 탈출한 학병. 15명은 조국광복을 꿈꾸며 중국으로 건너왔던 애국청년들. 5개월 과정을 마친뒤 白正甲 등 25명은 6,000리 길을 걸어서 쓰촨성(四川省)충칭(重慶)의 임시정부를 찾아가 광복군본류에 합류한다. 나머지 8명은 최전방 안후성에 남아 정보수집 등 대일투쟁을 벌인다. 25명중 尹慶彬은 임시정부 경위대장으로,鮮于鎭은 金九 선생비서로 白凡 선생을 최후까지 보좌하게 된다. 또 張俊河,金俊燁,金柔吉 등 일부는 한·미군사협력으로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으로 가 한반도진입을 위한 특수훈련을 받는다. 현재 한광반 첫 수료생 가운데 국내엔 11명이 생존해 있다.
  • 인생을 바꾼 DJ와의 만남/청와대 해외입양동포 다과회 눈물바다

    ◎88년 해외서 만난 입양 여학생 “운명에 굴복말라” 용기 심어줘/법률자문가 돼 10년만에 해후 23일 오후 청와대에서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金大中 대통령과 해외입양 동포들의 청와대 다과회 자리에서 가슴저린 해후가 있었다고 朴仙淑 청와대 부대변인이 전했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金대통령이 말문을 열었다.金대통령은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마음으로부터 미안하고 우리가 정말 잘못을 저질렀다”고 했다.그러면서 ‘네덜란드의 한 식당에서 만난 노부부가 한국인 장애입양자들에게 정성을 다해 음식을 떠먹이는 것을 보고 부끄러워 울어버렸다’는 지인(知人)의 얘기를 소개했다. 이어 지난 88년 2월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동포리셉션에서의 일화를 들춰냈다.기모노를 입은 한 여학생이 일어나 질문을 하기에 ‘일본 여학생이구나’했는데 “나는 한국에서 온 입양아다.당신 나라는 우리는 물론 지금도 아이들을 낯선 외국으로 팔고 있다.한국의 정치지도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하고 물었다고 했다. 그래서 느낀 대로 “부끄럽기짝이 없다.그러나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라”는 취지의 답을 했다고 회고했다.“그 여학생은 ‘20년 맺힌 응어리가 풀렸다’고 인사했고,몇년이 지난 후 기자가 되어 스웨덴을 방문중인 나를 인터뷰하러 찾아왔었다”고 털어놨다.그리고 “그 여학생이 지금 성공한 사람으로 이 자리에 왔다”고 소개했다.지금은 스웨덴에서 법률자문사로 일하는 리나 김경애씨(33)가 일어섰고,흐느낌 속에 박수가 터져나왔다.리나씨는 “민주주의 대표자로서 대통령을 다시 만나 정말 기쁘다.그때의 만남이 저를 바꿔놓았다”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한국전쟁때 미국으로 입양된 크리맨트 토머스(46)가 “과거는 과거이고 바꿀 수 있는 것도,또 바꾸고 싶은 것도 없다.과거에 대해서 후회도 없다”며 대통령이 미래로 향하는 문을 열어줘 고맙다고 했다.모두가 하고 싶었던 얘기였든지 다과회장은 삽시간에 ‘흐느낌의 개울’에서 ‘울음의 바다’로 변했다.金대통령도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우리말을 할 줄 아는 동포는 아무도 없었다.
  • 노숙자 살해후 ‘자신사망’ 위장/빚 독촉 시달린 40대 자살극

    서울경찰청 지하철수사대는 20일 거액의 빚을 갚을 수 없게 되자 술취한 노숙자를 야산으로 유인,불에 태운 뒤 자살한 것으로 위장한 玄在浩씨(40·상업·충북 충주시 교현1동)에 대해 살인 등 혐의로 구속했다. 玄씨는 지난 5월1일 밤 11시쯤 강원도 원주시 원주역의 의자에서 잠자던 30대 후반의 노숙자를 자신의 봉고승합차에 태워 충북 괴산군 감물면 오창리의 고추밭으로 데려가 소주를 먹여 정신을 잃게 한 후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玄씨는 범행 직후 상경,서울 광진구 자양동 J고시원에서 생활하면서 지난 8월 자양파출소 앞에서 술에 취해 잠이 든 정모씨(41)의 주민등록증과 현금 7만원,휴대폰을 훔친 것을 비롯,3차례에 걸쳐 68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치는 절도행각을 벌여왔다. 경찰은 지난 8월13일 지하철2호선 잠실역 현금인출기에서 정씨의 신용카드로 현금을 빼내려던 玄씨를 적발,절도미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후 풀어줬다가 신분증과 지문이 일치하지 않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지난 18일 검거했다.
  • 일선 형사가 쓴 連作詩 ‘형사의 노래’/大邱 경관들에 인기

    “형사는 고독한 성직자다/바울성당의 신부가 천상의 모후와 해후를 하듯, 형사는 가정을 버리고/외로운 길을 가야 하는 고독한 이방인이다” 대구 수성경찰서 형사계 朴基白 경사(47)가 일선 형사의 애환을 시(詩)로 읊은 ‘형사의 노래’다. 朴경사는 지난 76년 순경 공채로 경찰에 투신해 형사·수사 분야에서만 16년째 근무하고 있는 베테랑 형사. ‘형사의 노래’는 30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시로 朴경사는 오는 연말쯤 다른 습작시까지 모두 70여편을 묶어 한권의 시집으로 펴낼 작정이다. 朴경사는 “사건 현장에서 누구에게도 말못할 일을 겪고,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직업이 형사“라면서 “이 시로 일선 형사들이 격무 속에 다소 위안을 얻는다는 소식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형사의 노래’는 “형사는 진정한 사랑의 실천가/배고파 빵을 훔치는 소년을 위로하고/아픔을 같이하는 이 시대의 조그만 사랑의 나눔자리”라고 형사의 인간애를 강조하면서 “형사는 용감한 전사/뉘라서 은폐된 우리의 양심을 바로잡으리오”라는 형사 예찬론으로 끝맺고있다.
  • 사체 9具 발견/合參 北 잠수정 내부조사

    ◎공작조가 승조원 살해후 자살한듯 지난 22일 우리 영해에서 발견돼 동해항으로 예인된 북한 잠수정에서 총에 맞은 승조원과 공작원 9명의 사체가 발견됐다. 합동참모본부 丁永振 작전본부장은 26일 국방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해군 특수부대원들이 잠수정의 해치(水密門)를 산소용접기로 잘라내고 들어가 9명이 총상을 입고 숨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사망자 가운데 선실 뒷부분에서 발견된 4명은 머리에 총을 맞았으며 나머 지는 가슴 등을 총에 난사 당했다.이들은 회색 동내의에 반코트,잠바를 입고 있었다. 중앙합동신문조는 “북한 공작원들은 위급한 상황에서는 자폭하도록 교육 을 받고 있다”면서 “총상 흔적으로 미루어 탑승조들 사이에 자폭에 대한 의견 충돌이 생겨 공작조 4명이 승조원 5명을 사살한 뒤 머리에 권총을 쏴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군 당국은 “북한 특수공작요원이 대남 공작을 목적으로 침투하다 발견된 것이 확실하다”고 분석했다.정부는 이에 따라 잠수정 침투 문제를 다루기 위한 유엔사와 북한군의 장성급 회담 개최를 요구하기로 했다. 한편 잠수정은 레이더 추적을 피하기 위해 표면에 섬유를 씌어 놓은 상태 였으며 안에는 훼손 흔적이 없었고 물도 차 있지 않았다. 잠수정 내부에서는 RPG 대전차 로켓발사관 1정,AK 소총 2정,기관총 2정,체 코제 권총 2정,수류탄 2발 등의 화기가 발견됐다.항해일지도 나왔다.또 함교 부분 내부 해치와 외부 해치 사이에서 산소통 2세트와 미제 산소호흡기 6개 ,오리발 3세트,잠수복 신발 3세트,1.5ℓ들이 국산 음료수병 2개가 들어있는 배낭이 발견됐다.
  • 놀이공원 봄맞이 이색 이벤트

    ◎서울랜드­로보캅·꿈돌이 21세기 로봇전/드림랜드­해양생물전·고브라춤 등 마련 로보캅과 마르린 몬로가 서울랜드에서 해후한다.드림랜드에서는 식인어쇼,코브라춤이 펼쳐진다.놀이공원업체들이 새봄을 맞아 이색 이벤트를 마련,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랜드는 개장 10주년을 맞아 지난 2일부터 오는 10월말까지 이벤트홀에서 21세기 로봇전을 개최한다.입구에서는 꿈돌이가 나와 ‘안녕하세요,참 예쁘네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에리도가도마뱀은 관람객이 다가가면 무서운 소리로 위협을 하고 로보캅도 어린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팔과 다리를 움직인다. 길이 1㎝,높이 1㎝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무슈’라는 로봇도 전시된다.미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마르린 몬로도 기타를 메고 나와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돌아오지 않는 강’을 부른다.또 백설공주와 난장이,운수를 점쳐주는 말하는 나무,마이크로 마우스코너 등도 있다.특히 이번 전시회는 종전과는 달리 관람객이 직접 조작해볼수 있는 코너를 마련,교육적 효과와 흥미를 높여줬다. 드림랜드는오는 9일부터 6월21일까지 살아있는 해양생물전을 개최한다.600여종 5천여마리의 해양생물이 250여개의 수조에 나뉘어 전시되는데 체험관에서는 어린이들이 불가사리,성게,새우,조개 등을 직접 만져볼수 있다. 공생공존관에서는 새우가 상어이빨을 청소해주며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볼수 있으며 관찰관에서는 바다속에서 진행되는 먹이 피라미드를 생생히 관찰할수 있다.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식인어 피라니아가 동물을 잡아먹는 식인어쇼와 곰치가 먹이를 먹는 곰치쇼가 하오 2시부터 열리며 매일 500명에게 선착순으로 관상어를 증정하는 행사도 마련됐다.4월 하순부터는 코브라쇼가 예정돼 있다.
  • 자살기도 아닌 충동성 자해인듯

    ◎장소·상처부위·자해후 소동 이해 힘들어/피의자 전락등서 비롯된 우발행동 추정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자해를 놓고 ‘자살기도’인지,단순한 ‘자해소동’인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치밀한 사전계산에 따른 의도적행위인지,아니면 우발적 행동인지도 불분명하다. 현재로서는 ‘충동에서 비롯된 자해소동’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듯하다.우선 권씨가 자해도구로 쓴 문구용 칼을 계획에 따라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권씨의 맏딸(32)은 “성경책 등 가방에 든 내용물을 챙겨 드렸고,검찰에 출두하기 직전까지 가방을 내가 들어 아버지가 칼을 넣을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권씨를 접견한 전창열변호사도 “가방바닥에 있는 칼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해장소가 검찰청 조사실이라는 점도 이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일련의 북풍수사에 반발,검찰수사에 흠집을 남기겠다는 ‘독한’ 의도였다면 몰라도,출두전에 구속이 기정사실화된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권씨가 자택등 외부장소를 배제하고 굳이 감시의 눈길이 많은 장소를 택할이유가 없기때문이다. 비록 3차례에 걸쳐 배를 그었고,이 가운데 4∼5㎝의 깊은 상처도 있지만 권씨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염두에 둔 것 같지도 않다.검찰 관계자는 “손목의 동맥이나 목 등 치명적 부위가 아니고,자해 이후 화장실 기물을 깨뜨리며 자해사실을 알렸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만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이라는 자리에서 보름여만에 피의자의 신분으로 돌변한 권씨의 전락이 자해행위의 한 원인이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북풍수사 새 국면­권씨 자해 전말

    ◎화장실서 칼날로 복부 3번 그어/20일 하오 9시­성경책 꺼내다 칼 확인 품에 감춘뒤 예배/21일 상오 4시­직원 1명 남자 화장실로 자해후 벽받으며 소동/상오 5시40분­20분 소란뒤 응급실 도착 긴급 수혈뒤 수술실로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20일 하오 3시45분쯤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청사 뒤편 출입구를 통해 11층 특별조사실(1145호)로 들어섰다.권씨는 이에 앞서 오제도 변호사등 변호인을 통해 서울지검에서 조사받을 수 있도록 검찰에 요청,서울지검 남부지청에서 진을 치고 있던 취재진을 따돌렸다.수사팀은 권씨가 조사실에 들어서자 양복 주머니를 뒤지고 샘소나이트 손가방을 열어 소지품을 확인했다.그러나 자진출두 형식이라 몸수색은 하지 않았다. 권씨는 조사에서 대선전 재미교포 윤홍준씨의 김대중후보 비방 기자회견을 지시하고 공작금 25만달러를 지불한 혐의에 대해 순순히 자백했다. 그러나 권씨는 동기부분과 정치권의 개입여부 등에 대해서는 함구,검사들과 한동안 입씨름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변호사는 이와 관련,“권씨가 ‘검사들의 대북관에 대해 심각한 괴리를 느꼈다’고 말했다”고 전해,조사 과정에서 격론이 벌어졌음을 추측케 했다.또한 권씨는 북풍공작 문서작성 경위 등에 대해서는 ‘국가 기밀’이라며 진술을 일체 거부했다. 수사진은 하오 9시쯤 장로인 권씨가 “예배를 보게 해달라”고 요청하자직원 1명만 남기고 옆방으로 옮겨갔다.이어 권씨가 성경책을 꺼내기 위해 가방을 열자 바닥에 있는 10㎝ 길이의 문구용 칼이 눈에 들어왔다.순간적으로 권씨는 칼을 품에 숨기고 10여분만에 예배를 마쳤다. 21일 상오 4시쯤 조사를 마무리진 수사팀이 권씨의 조서를 컴퓨터로 출력하기 위해 12층으로 올라갔다.조서 끝부분에 권씨의 서명을 받기만 하면 조사가 완료되는 것이다.조사실에 직원 1명과 40분간 시간을 보낸 권씨는 ‘모종의 결심’을 하고 화장실로 갔다. 이어 세면대 앞에서 품에 숨겨둔 칼날을 꺼내 복부를 3번 힘껏 그었다.머리로는 벽을 들이받고 변기의 물통 뚜껑을 세면대에 내리쳐 깨뜨리는 등 5분동안 소동을 피웠다.검찰직원이 화장실에 들어섰을 때 권씨는 이미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검찰이 강남성모병원에 앰블런스를 요청한 것은 상오 5시5분쯤.한 관계자는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소란을 피는 권씨를 제지하느라 20여분만에야 연락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검찰은 피가 흥건히 괸 화장실 바닥에서 문구용 칼날을 발견했다. 상오 5시40분쯤 권씨는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도착했다.피를 많이 흘려 혈압이 급속히 떨어진 권씨는 2차례 긴급수혈을 받은 뒤 상오 8시10분쯤 수술실로 옮겨져 1시간40여분에 걸친 수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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