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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건 지연 열애, 크루즈에서 촬영하며 연인 발전

    이동건 지연 열애, 크루즈에서 촬영하며 연인 발전

    4일 이동건의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두 사람이 영화를 통해 가까워졌으며 호감을 가지고 알아가는 단계”라며 이동건 지연 열애를 공식 인정했다. 지연 소속사 역시 “두 사람이 영화 ‘해후’에 함께 출연하며 한 달 정도 크루즈에서 촬영을 마쳤다”며 “촬영 당시 연기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등 사이가 가까워졌고 현재는 서로 호감을 가지고 알아가는 단계다”고 전했다. 이어 지연 소속사 측은 “두 사람에 대해 많은 분들께서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사진=웨이보 캡처, 더팩트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이동건 지연 열애 인정…13살차 무색한 달달한 스킨십

    이동건 지연 열애 인정…13살차 무색한 달달한 스킨십

    이동건 지연 열애 배우 이동건(35)과 걸그룹 티아라 멤버 지연(본명 박지연·22)이 열애 중이다. 4일 연예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동건과 지연은 2개월여 전부터 지난 5월 한중합작영화 ‘해후’를 촬영하면서 급속도로 사이가 가까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열애설은 이동건과 지연이 한 식당에서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 식사하고 있는 사진이 중국 SNS를 통해 퍼지면서 제기됐다. 사진에서 지연은 이동건의 손을 잡거나 그의 손등을 자신의 얼굴에 대는 등 애정표현을 하고 있다. 양측 소속사 역시 두 사람이 2개월째 열애 중인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한편 이동건과 지연은 현재 중국에서 ‘해후’를 촬영 중이다. 영화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인도양을 향하는 크루즈 선상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틱코미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동건 지연 열애 인정…사진 속 달달한 스킨십

    이동건 지연 열애 인정…사진 속 달달한 스킨십

    이동건 지연 열애 배우 이동건(35)과 걸그룹 티아라 멤버 지연(본명 박지연·22)이 열애 중이다. 4일 연예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동건과 지연은 2개월여 전부터 지난 5월 한중합작영화 ‘해후’를 촬영하면서 급속도로 사이가 가까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열애설은 이동건과 지연이 한 식당에서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 식사하고 있는 사진이 중국 SNS를 통해 퍼지면서 제기됐다. 사진에서 지연은 이동건의 손을 잡거나 그의 손등을 자신의 얼굴에 대는 등 애정표현을 하고 있다. 양측 소속사 역시 두 사람이 2개월째 열애 중인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한편 이동건과 지연은 현재 중국에서 ‘해후’를 촬영 중이다. 영화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인도양을 향하는 크루즈 선상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틱코미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동건 지연 열애, 배우-걸그룹 커플탄생 “크루즈에서 촬영하며 가까워져” 달달한 데이트

    이동건 지연 열애, 배우-걸그룹 커플탄생 “크루즈에서 촬영하며 가까워져” 달달한 데이트

    이동건 지연 열애 인정, 배우-걸그룹 커플탄생 “영화 찍으며 가까워져” 데이트 현장 사진보니 ‘이동건 지연 열애’ 배우 이동건과 걸그룹 티아라 멤버 지연이 열애를 공식 인정했다. 4일 티아라 멤버 지연 소속사 MBK 엔터테인먼트 측은 한 매체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지연이 이동건과 열애 중이다”고 이동건 지연 열애를 공식 인정했다. 지연 소속사 측은 “지연과 이동건이 최근 영화 ‘해후’에 출연하면서 가까워졌다. 현재는 이동건과 지연이 서로 호감을 가지고 알아가는 단계”라고 전했다. 이동건의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의 한 관계자 역시 “두 사람이 영화를 통해 가까워졌으며 호감을 가지고 알아가는 단계다”라며 이동건 지연 열애를 인정했다. 이동건 지연은 앞서 SNS를 통해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 퍼지면서 열애설에 휩싸인 바 있다. 해당 사진에는 이동건과 지연이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이 담겼다. 특히 사진 속 지연은 이동건의 손을 잡고 이동건의 손등을 얼굴에 대고 있어 열애설에 신빙성을 더했다. 두 사람은 지난 5월 한중합작영화 ‘해후’를 촬영하면서 인연을 맺었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 연인사이로 발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동건은 1980년 7월26일생으로 올해 36세이다. 걸그룹 티아라 지연은 1993년 6월7일생으로 올해 23세로 이동건과는 13세 차이가 난다. [다음은 지연 소속사 공식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티아라 지연의 소속사 MBK엔터테인먼트(대표이사 고건희)입니다. 오늘 보도된 열애설 관련하여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지연 씨와 이동건 씨는 최근 함께 한중 합작 영화 ‘해후’에 함께 출연하며 한 달 정도 크루즈에서 촬영을 마쳤습니다. 지연 씨와 이동건 씨는 촬영 당시 연기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등 사이가 가까워 졌고 현재는 서로 호감을 가지고 알아가는 단계입니다. 두 사람에 대해 많은 분들께서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웨이보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감동뉴스] ‘75년 해로’ 노부부 마주보며 같은 날 하늘나라로...

    [감동뉴스] ‘75년 해로’ 노부부 마주보며 같은 날 하늘나라로...

    75년 동안 해로한 노부부가 평소의 약속대로 서로 마주한 채 거의 같은 날 함께 저세상으로 떠나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고 미 현지 언론 언론들이 2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거주하는 알렉산더 토츠코(95)와 자넷 토츠코(94)는 지난 1940년 결혼식을 올린 이후 75년간 함께 부부로 해후했다. 사실 이들 커플은 1919년 같은 동네에서 태어난 이후 8살 때부터 만나 서로 친구로서 우정과 사랑을 꽃피웠으며 남편인 알렉산더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동안 이외에는 거의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었다고 자녀들은 밝혔다. 결혼 75주년 기념일이 되는 지난달 6월 29일을 앞두고 이들 부부는 죽어도 함께 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혀왔고 마침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고 자녀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했다. 지난달 15일, 남편인 알렉산더가 먼저 세상을 떠나려 하자 부인인 자넷은 자신의 팔은 뻗어 남편에게 팔배게를 해준 다음 알렉산더가 편히 숨을 거두자 "이제 당신이 원하는 데로 되었다"며 "나도 곧 당신을 따라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자녀들은 밝혔다. 이후 채 하루가 지나기 전에 자넷도 남편을 바라보며 마주한 채 편안히 저세상으로 떠나 이들은 서로의 약속을 지켰다. 이를 지켜본 요양원 간호사는 "이들 부부가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숨을 거둔다는 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이라고 밝혔다. 이들 부부의 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모는 일생 동안 마치 하나의 심장을 가진 것처럼 늘 일심동체를 이뤘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함께 화장되어 같이 공동묘지에 묻혔으며 장례식에 참석한 아들은 이들 부부가 "마치 서로 손을 잡고 함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고 장례식 당시의 심정을 말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사진= 75년을 해로하고 같은 날 함께 세상을 떠난 노부부 (현지 언론, KGTV 캡처)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한국 119구조대 고마워요”

    “한국 119구조대 고마워요”

    리히터 규모 7.3에 이르는 강진이 강타한 지 87시간을 넘긴 1999년 9월 24일 오전 8시 30분쯤 대만 중서부 타이중(臺中)현 아파트 붕괴현장에선 “웨이(여보세요)”라는 목소리가 묵직한 잔해를 뚫고 희미하게 들려 왔다. 갈수록 움츠러드는 목소리에 낙담하던 한국 119구조대원들은 음향탐지기를 활용해 2시간여 만에 생존자 위치를 확인한 뒤 여진에 따른 재붕괴 위험 속에 시간당 40여㎝밖에 흙더미를 파내지 못하는 어려운 작업과 싸워야 했다. 결국 오후 5시 50분쯤 칠흑같이 어두운 지하실에서 길이 1m, 높이 30㎝ 콘크리트 틈에 누워 있던 장징훙(張景宏·당시 6세)군을 구출할 수 있었다. 9시간 20분에 걸친 사투 끝이었다. 119구조대의 활약은 대만 전역에 ‘기적’으로 생중계되며, 1992년 한·중 수교로 얼어붙었던 한·대만 관계를 녹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제 22세로 대만과학기술대 3학년에 다니는 장씨가 16일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를 방문했다. 17일에는 당시 구조작업에 참여했던 이창학 대원(소방령·현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근무)과 감격적인 해후를 한다. 오는 20일까지 4박 5일로 예정된 장씨의 이번 방문은 대만 저우다관 문화교육재단 협조로 이뤄졌다. 장씨를 후원하고 있는 재단 대표들은 배우 이영애(45)에게 제18회 ‘생명사랑상’을 시상하기 위해 방한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아들 못 낳은 죄” 딸 셋 살해후 자살 기도한 20대 엄마

    “아들 못 낳은 죄” 딸 셋 살해후 자살 기도한 20대 엄마

    낡은 남아선호사상이 끔찍한 살인극으로 이어져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해 고민하던 20대 여자가 살인극을 벌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구조됐다고 인도 익스페스 등이 최근 보도했다. 인도 뉴델리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의 주인공은 라드하 데비(27). 각각 8살과 3살, 8개월 된 딸을 둔 여자는 세 딸을 모두 살해하고 나무에 목을 맸다. 현장을 목격하고 달려간 사람들이 여자를 끌어내려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나무 아래엔 딸 셋의 시신이 누워있었다.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은 여자는 경찰에게 울먹이며 범행을 털어놨다. 딸만 셋을 낳은 여자는 평소 마음 고생이 심했다. 남아선호사상이 심한 인도에서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8개월 전 세 번째 딸을 낳으면서 여자는 우울증에 걸려 치료를 받기도 했다. 데비는 "행복한 적이 없었다. 아들을 낳지 못해 죄책감이 컸다"고 말했다. 여자는 딸들을 살해하기 전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범행계획을 알렸다. 깜짝 놀란 남편이 달려갔지만 이미 딸들은 살해된 후였다. 인도는 남아선호사상이 유난히 심한 국가다. 201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남자 1000명당 여자는 940명이었다. 6살 이하의 아이들만 추려 보면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보다 710만 명 많았다. 비정부기구(NGO) 액션에이드는 "인도에서 6살이 되기 전에 사망하는 아이가 매년 7000명에 달한다"며 "일부는 단순히 딸이라는 이유로 살해를 당한다"고 설명했다. 사진=IBN 라이브 캡처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화성 총기 사고, 범인 4명 살해후 스스로 목숨끊어 ‘대체 무슨 일?’

    화성 총기 사고, 범인 4명 살해후 스스로 목숨끊어 ‘대체 무슨 일?’

    27일 오전 9시 30분쯤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의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 “작은아버지가 (시)부모님을 총으로 쐈다”는 112신고가 접수됐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화성서부경찰서 남양파출소 소속 이강석 경감(소장)과 이모 순경이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출입문을 열고 진입을 시도했고, 이에 전모(75)씨가 사냥용 엽총을 발사해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때 이 경감이 전씨를 설득하려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재차 시도하다가 전씨가 쏜 총에 맞아 안쪽으로 쓰러져 결국 숨졌다. 화성 총기 사고로 이 경감을 포함, 전씨와 전씨의 형(86), 형수(84·여) 등 4명이 숨졌다. 노부부의 며느리는 2층에서 뛰어내려 탈출하는 과정에서 허리 등에 경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피의자인 전씨의 동생은 범행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YTN 뉴스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경제 블로그] 병사 상해보험 ‘제2 난임보험’ 되나

    [경제 블로그] 병사 상해보험 ‘제2 난임보험’ 되나

    “원래 보험이란 게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적정 보험료를 책정하는 건데 수치도 없이 이미 예산부터 배정해 놓으니 ‘입 막고 따라오라’는 얘기 아닙니까. 손해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상품인데 이렇게 되면 기존 정책성 보험 중 가입건수 제로인 ‘4대악 보험’이나 보험사들이 기피해 출시조차 안 된 ‘난임보험’꼴 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많아요.” 정부가 지난달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군 복무 중 뜻하지 않은 사고로 목숨을 잃은 병사에게 최대 1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며 병사 상해보험을 도입하겠다고 밝히자 나온 업계 반응입니다. 국방부가 “민간 보험사와 다음달 계약을 체결해 3월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한 데 따른 것이지요. 물론 새 ‘먹거리’가 될 수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내는 곳도 있긴 합니다. 연간 최대 44억원의 보험료 수익이 발생하게 되는 것은 물론 자동차보험 등 여타 다른 군보험 입찰 선정에서 유리해질 수 있다는 논리이지요. 하지만 적잖은 보험사들이 고개를 흔듭니다. 이전 ‘메리츠화재의 아픈 기억’ 때문입니다. 앞서 메리츠화재는 동양화재(옛 사명) 시절이던 2001년 군인보험을 단독 개발해 출시한 전력이 있습니다. 장교부터 일반 사병까지 상해후유장애와 질병사망에 5000만원을 지급했지요. 결과는 뼈아팠습니다. 일반 상해보험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가입은 저조했고, 손해율까지 치솟아 보험사가 “못하겠다”며 결국 ‘백기’를 들었습니다. 다른 대형 보험사 관계자도 난색입니다. 기존 군인 보험이 장교나 직업 군인을 대상으로 했던 만큼 사병을 포함한 과거 데이터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보험사 관계자는 “어느 선까지 담보가 되고, 어디까지 치료하고, 항목별로 어떻게 보상이 될 것인지 등을 정해야 하는데 이 보험 만든다고 국방부에서 정확한 총기 사고 등 관련 통계를 내줄 리도 만무하고 결론적으로 위험성이 큰 상품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또 다른 보험사 역시 “족구나 축구하다 다친 걸로 후유장해 신청을 하는 도덕적 해이(모럴 헤저드)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 데다 군대에서 다칠 일이 비일비재한데 군 밖에서 다친 것만 보상을 하도록 범위를 정하지 않으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털어놨습니다. 국방부는 지난해 발생한 각종 군대 내 사고로 국민 불안이 커지자 이런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상품을 만들라고 하니 이제는 보험사가 불안하다고 난리네요. 정부도, 보험사도 정말 군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천천히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영화 프리뷰] 가슴 깊이 묻어둔 가슴 먹먹한 사랑

    [영화 프리뷰] 가슴 깊이 묻어둔 가슴 먹먹한 사랑

    헤어지기 서운했다. 서로 바래다 준다며 그 집 앞과 버스 정류장을 오가기를 반복해야 했다. 이윽고 골목길은 어둑해지고 엉거주춤한 입맞춤에 가슴은 콩닥거렸다. 돌아선 뒤에는 그리움을 어쩌지 못해 전화기 붙잡고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제 마음을 드러내는 것도,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도 모두 서툴렀다. 청춘의 시절은 그랬다. 젊은 연인들은 헤어졌고, 많이 아팠다. 세월이 흘러 다 잊었다 싶었는데 불쑥불쑥 떠오른다. 첫사랑의 기억은 그렇게 시간을 이긴다. ‘쎄시봉’은 첫사랑을 담은 영화다. 가슴 깊숙이 품어뒀던 옛사랑의 기억과, 어떤 세월도 절멸시킬 수 없는 사랑의 지속성을 그리고 있다. 1970년대 서울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이 주된 공간이다. 영화는 윤형주, 송창식의 ‘트윈 폴리오’가 또 한 사람을 더해 ‘쎄시봉 트리오’로 활동할 뻔했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가공의 인물 오근태(정우)가 그 주인공이다. 젊은 시절의 윤형주(강하늘), 송창식(조복래), 이장희(진구), 조영남(김인권) 등이 청춘과 낭만, 순수한 열정의 모습을 선보인다. 민자영(한효주)은 이 모든 이들의 연인이자 오근태의 가슴 시린 사랑이다. 영화배우가 되는 민자영은 예나 지금이나 모든 젊음들이 통과의례처럼 겪어야 하는 첫사랑의 아픔과 애틋한 엇갈림의 대상이 된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웨딩 케이크’,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등 그 시절의 아련했던 음악이 곁들여짐은 당연하다. 특히 오근태가 이장희에게서 빌려와 민자영에게 자신이 만들었다며 들려주는 노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에는 풋사랑의 치기어린 고백과 헤어진 뒤 가슴 먹먹한 여운까지 들어 있다. 비오는 날 우산 속으로 뛰어든 이와 함께 걷는 짧지만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길, 환심을 사려 거짓으로 자기를 꾸며댔던 기억, 공중전화기 위에 동전을 쌓아 놓고 보고픈 마음 달래며 들었던 목소리만으로도 가슴 벅찼던 기억, 불뚝거리는 갈망으로 여관문 앞에서 머뭇거렸던 발길, 누군가를 믿는 법을 채 배우지 못해 쌓여만 가던 사소한 오해와 불신, 그리고 헤어진 뒤 오랫동안 아팠던 일 등까지 청춘이 사랑하며 겪는 일들이 모두 있다. ‘쎄시봉’은 첫사랑을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중년의 오근태(김윤석)는 더이상 노래 부르지 않는 회사원이 됐고,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다운 민자영(김희애)은 이혼했고 은막에서 물러나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의 우연한 해후에서 둘은 여전히 가슴속에 상대방이 들어 있음을, 조금도 늙지 않고 숨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그 애틋함을 섣불리 드러내지 않는다. 냉정한 듯 돌아선 뒤 오근태는 비행기 브리지에 털썩 주저앉아, 민자영은 게이트 바깥에서 숨 쉬어지지 않는 울음으로 오열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옛 사랑의 기억을 다시 가슴속 깊은 곳에 꼭꼭 묻어둘 뿐이다. ‘시라노 연애조작단’ 등 가슴 먹먹한 사랑을 그려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김현석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1970년대를 배경 삼은 지금 60대의 청춘 얘기지만 아픈 사랑의 기억을 품고 있는 이라면 세대를 뛰어넘어 누구든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기보다 시간의 흐름과 사랑의 지속성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 덕분이다. 옛사랑의 그림자는 아무리 또렷해도 부디 가슴속에만 드리워 놓기를. 지금 곁에 있는 그 사람은 어떤 기억보다 소중한 현재의 당신이니까. 새달 5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심사평] 현대 젊은이들의 상실감과 분노 설득력 있게 제시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심사평] 현대 젊은이들의 상실감과 분노 설득력 있게 제시해

    응모작 편수는 모두 206편, 올 한 해 이야기꾼들이 몸담고 있는 세계가 어이없는 사건사고들로 넘쳐났기 때문일까? 풍자극 틀을 취한 희곡들이 유독 많았다. 출구를 찾지 못하는 고립된 현실을 고발하는 목소리도 꽤 있었다. 연극이 시대의 거울이라는 듯 폭력이 난무하고 복수로 치달으며 욕망은 막장을 모방한다. 이 가운데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보려 하고, 우리 현재 모습들에 대한 성찰과 시선을 담아낸 작품을 우선 했다. 이태권의 ‘증명’은 범죄를 예방한다는 이유로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려는 고시원 관리인과 최소한의 개인적 공간마저 빼앗기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담은 블랙코미디이다. 직접적인 현실보다는 우리 사회의 단면들을 포착해서 은유하는 힘이 좋았지만, 감시카메라의 모니터에 등장해야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더 구축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다와의 ‘사월’은 아비의 폭력으로 단절된 모녀간의 해후와 상처의 순환을 드러낸다. 고통을 응시하는 진지한 언어감각이 돋보였으나, 익숙한 통속극적 접근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송경화의 ‘프라메이드(pla-maid)’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프라모델 도색작업으로 인생 반전을 꿈꾸는 젊은이와 우연히 배달된 인간형 로봇의 동거라는 단순한 설정을 통해 현대 젊은이들의 상실감과 분노를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인간성을 마모시키는 현실을 위트 있게 거론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일깨우려는 로봇의 끈질긴 시도가 여러 겹의 생각을 낳게 한다. 우리는 극적인 완성도 뿐 아니라, 동시대의 풍경을 압축적인 드라마로 형상화시킨 송경화의 ‘프라메이드(Pla-maid)’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관계의 변화와 발전을 담담하게 다루는 솜씨가 발군이고, 연출가, 배우 등 무대예술가 들과의 협업 방식에 따라 다른 맛, 다른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연극이 현실을 따라잡기 힘든 이 시대, 연극적인 진실을 탐사하는 작가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 아부지, 이만하면 저 잘 살았지예

    아부지, 이만하면 저 잘 살았지예

    한국전쟁 흥남부두 피란 행렬, 무너져 버린 독일 탄광 갱도, 총탄이 빗발치는 베트남 건설 현장, 억척스럽게 생활하며 지켜내야 하는 국제시장통 가게 ‘꽃분이네’, 피란 때 헤어진 아버지와 여동생을 찾기 위해 헤매던 여의도광장…. 아버지는 그곳에 있었다. 힘겨운 세월을 건너온 우리 시대의 아버지 세대가 발붙이고 있었던 상징적인 공간들이었다. 선장이 되고 싶었던 덕수(황정민 분)의 어릴 적 꿈은 가장의 책임감에 치여 언감생심 입 밖으로 꺼내지조차 못했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 화면에 삶 속으로, 시간 속으로 날아가는 나비의 가냘픈 날갯짓 같은 일장춘몽이었다. 그래도 늙은 덕수는 회고한다. “아버지, 이만하면 저 잘 살았지요”라고. 영화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이 시대를 허위허위 건너온 우리들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독일에 광부로 나갔다가 간호사로 파견 와 시체만 닦고 있던 영자(김윤진 분)를 만났지만 무너진 탄광에서 구사일생하고, 여동생 결혼 자금을 마련하려 베트남에서 기술노동자로 일한 뒤 총탄에 맞아 죽을 고비도 넘긴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언론시사회에 앞서 영화사 측이 일회용 휴지를 나눠준 것도 울지 않고는 못 배길 거라는 자신감이었을 터이다. ●정주영 회장·앙드레 김·이만기 보는 재미 쏠쏠 특히 1983년 서울 여의도광장을 삐뚤빼뚤한 글씨로 가득 메웠던 이산가족들의 간절한 울부짖음은 TV 자료 화면만 봐도 여전히 울컥하게 된다. 흥남부두에서 헤어졌던 아버지와 여동생 막순이를 애타게 찾던 덕수는 이 행사에서 미국으로 입양 가서 살고 있던 동생 막순이를 33년 만에 극적으로 해후한다. 봐도 봐도 눈물이 쏟아진다. 윤제균 감독이 2009년 ‘해운대’ 이후 5년 만에 연출을 맡았다. 청년 덕수, 어린 덕수, 노년 덕수의 50~60년에 걸친 시간을 마구 오가는데도 스크린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매끄럽다. 영화 컷과 신을 절묘하게 전환하며 시간과 공간을 창출한다. 영화 곳곳에는 현대사의 실제 인물들이 있다. 흥남 철수 때 미군 장성을 설득해 피란민들을 군함에 태웠다는 현봉학 박사를 비롯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디자이너 앙드레 김, 미래의 천하장사 소년 이만기, 베트남 전쟁터에서 “저 푸른 초원 위에”를 흥얼거리던 가수 남진 등이 덕수 또는 달구(오달수 분)와 시대를 공유하며 살아온 인물들이다. ●대통령·고위층의 부정부패는 어디에 하지만 묘하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요구하는 정서를 쭉 따라가다 보면 문득 불편해진다. 역사의 사건 중 무엇을 보느냐, 그 자체가 정치적 입장을 설명한다. 윤 감독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자식 세대와 아버지 세대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영화의 시선은 아버지 세대에 머물러 있다. 한국전쟁 때 국민을 내팽개친 뒤 한강대교를 폭파시키고 먼저 도망친 대통령에 대한 기억이나, 독일로 광부를 보내고 근대화 역군이라고 칭송하던 시절 고위층의 부정부패는 물론 법의 이름을 빌려 국가가 살인을 저지른 일 등으로 상징되는 추악함은 찾아볼 수 없다. ‘국제시장’ 속 베트남 군인들은 1980년대 냉전시대 람보 영화에서 그랬듯 자기네 인민들을 마구 학살할 정도로 잔혹하다. 반면 덕수를 비롯한 한국인은 베트남인들에게 따뜻한 온정과 연민의 손길을 건넨다. 마치 미군이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또한 덕수의 자식들은 행복에 겨운 삶을 살면서도 누구 덕에 이만큼이나 살게 됐는지도 모른 채, 아버지가 겪어 온 세월 속 노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랑은 대화가 안 된다”며 무시한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화면에 세련된 방식으로 기존 우익사관을 버무린 작품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평가받을지는 미지수다. 12월 17일 개봉. 12세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멕시코 실종 대학생 43명, 살해된 이유가 시장부인 연설때문? ‘충격’

    멕시코 실종 대학생 43명, 살해된 이유가 시장부인 연설때문? ‘충격’

    멕시코 실종 대학생 43명이 갱단에 납치돼 살해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살해이유에 누리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7일 현지의 한 매체는 “지난 9월 멕시코 게레로주 이괄라시에서 시위를 벌이다 실종된 교육대학교 학생 43명이 갱단에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는 멕시코 검찰의 수사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갱단원들은 대학생들이 시골 교사의 임용 차별 철폐를 주장하고 기금 모금 시위를 벌이자, 경찰과 함께 불법진압에 참여해 6명을 숨지게 하고 43명을 끌고 갔다. 이들은 학생들을 총으로 쏴 살해후 시신에 기름을 뿌리고 밤새도록 불태웠다. 한편 이번 사건의 발단은 호세 루이스 아바르카 이괄라 시장이 자신이 참석한 모임에서 하기로 했던 부인의 연설이 학생 시위로 방해될까 봐 경찰에 진압을 지시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돼 충격을 더하고 있다. 사진=방송캡쳐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0년만에 다시 주인 찾은 ‘9.11테러 추모 팔찌’ 화제

    10년만에 다시 주인 찾은 ‘9.11테러 추모 팔찌’ 화제

    9.11테러 당시 숨진 소방관 남편을 추모하는 팔찌를 잃어버린 가족이 10년 만에 이를 우연히 발견한 한 시민에 의해 다시 팔찌를 되찾았다. 더구나 이 팔찌를 바닷가 백사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람이 같은 소방관 가족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고 미 현지 언론들이 7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뉴욕 롱아일랜드에 거주하는 조나던 오튼은 테러 당시 숨진 남편을 추모하는 팔찌를 아들에게 주었으나, 아들은 그만 이를 분실하고 말았다. 그 후 10년이 흐른 최근 같은 롱아일랜드에 거주하는 말린 큐인은 집과 인접해 있는 한 해변의 백사장을 걷다가 우연히 이 팔찌를 발견했다. 그녀는 “갑자기 한차례 파도가 빠져나간 다음 백사장을 보니 이 팔찌가 있었다”면서 “내 오빠도 올해 초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소방관이어서 이 팔찌를 보는 순간 소방관을 추모하는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큐인은 이 팔찌를 주인인 오튼에게 전달했고 이들은 지난 5일 극적인 해후를 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공교롭게도 숨진 두 소방관은 젊은 시절 같은 학교에 다녔으며 소방관으로 재직할 당시에도 같은 지역에 한 블록 건너 이웃으로 함께 거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팔찌를 전해 받은 오튼은 “우연한 일치가 아니라 파도가 팔찌를 다시 가져다준 것은 깊은 뜻이 있을 것 같다”며 “어쨌든 우리는 다시 함께 만나게 되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사진=10년 만에 돌아온 팔찌와 기쁨으로 포옹하는 소방관 가족 (현지 언론, WNBC 캡처)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9.11테러 당시 숨진 소방관 팔찌 10년 만에 돌아오다

    9.11테러 당시 숨진 소방관 팔찌 10년 만에 돌아오다

    9.11테러 당시 숨진 소방관 남편을 추모하는 팔찌를 잃어버린 가족이 10년 만에 이를 우연히 발견한 한 시민에 의해 다시 팔찌를 되찾았다. 더구나 이 팔찌를 바닷가 백사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람이 같은 소방관 가족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고 미 현지 언론들이 7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뉴욕 롱아일랜드에 거주하는 조나던 오튼은 테러 당시 숨진 남편을 추모하는 팔찌를 아들에게 주었으나, 아들은 그만 이를 분실하고 말았다. 그 후 10년이 흐른 최근 같은 롱아일랜드에 거주하는 말린 큐인은 집과 인접해 있는 한 해변의 백사장을 걷다가 우연히 이 팔찌를 발견했다. 그녀는 “갑자기 한차례 파도가 빠져나간 다음 백사장을 보니 이 팔찌가 있었다”면서 “내 오빠도 올해 초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소방관이어서 이 팔찌를 보는 순간 소방관을 추모하는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큐인은 이 팔찌를 주인인 오튼에게 전달했고 이들은 지난 5일 극적인 해후를 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공교롭게도 숨진 두 소방관은 젊은 시절 같은 학교에 다녔으며 소방관으로 재직할 당시에도 같은 지역에 한 블록 건너 이웃으로 함께 거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팔찌를 전해 받은 오튼은 “우연한 일치가 아니라 파도가 팔찌를 다시 가져다준 것은 깊은 뜻이 있을 것 같다”며 “어쨌든 우리는 다시 함께 만나게 되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사진=10년 만에 돌아온 팔찌와 기쁨으로 포옹하는 소방관 가족 (현지 언론, WNBC 캡처)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한양도성(상)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한양도성(상)

    ●조선시대 도성 축조에 얽힌 두 가지 설화 1392년 조선 건국과 함께 도읍을 송악(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긴 태조 이성계는 “종묘는 조종(祖宗)을 봉안하여 효성과 공경을 높이는 것이요, 궁궐은 국가의 존엄성을 보이고 정령(政令)을 내는 것이며, 성곽은 안팎을 엄하게 하고 나라를 굳게 지키는 것으로, 이 세 가지는 모두 나라를 가진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다”라면서 종묘와 경복궁, 도성(都城)의 축조를 독려했다. 종묘·사직과 경복궁이 완성되자 한양의 얼개인 도성을 짓는 축조도감을 1395년 설치했다. 삼봉 정도전이 성 쌓을 자리를 정했는데 태조가 직접 둘러보았다. 여기에서 두 가지 흥미로운 스토리가 등장한다. 첫 번째는 서울이라는 지명의 유래이고, 두 번째는 성리학과 풍수학의 정면 대결이다. 서울이라는 지명의 탄생과 관련된 속설을 조선 후기 방랑 실학자 청화산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소개하고 있다. “성을 쌓으려고 했으나 둘레의 원근을 결정하지 못하던 중 어느 날 밤 큰 눈이 내렸다. 그런데 바깥쪽은 눈이 쌓이는데 안쪽은 곧 눈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태조가 이상하게 여겨 눈을 따라 성터를 정하도록 명했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의 성 모양이다”라는 기록이다. 나중에 눈이 녹은 지역이 도성 안이 됐다. 눈(雪)이 쌓여 생긴 울(울타리)이라고 하여 도성 안쪽을 ‘설울’이라고 불렀으며 그것이 ‘서울’로 전이됐다는 얘기다. 수도(首都)를 나타내는 유일한 순우리말 지명인 서울의 유래는 처용가의 첫 구절 ‘새벌’이 서라벌을 거쳐 서울로 변했다는 양주동의 풀이가 정설로 돼 있다. 새벌이 서울의 옛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우용은 삼한시대의 성스러운 곳 소도(蘇塗)의 ‘소’가 새벌의 ‘새’와 같으므로 서울은 ‘솟벌’이나 ‘솟울’에서 온 것으로 보았다. ‘솟은 벌’이나 ‘솟은 울’이 ‘신의 땅’이나 ‘신의 울’이며 한자로 번역하면 신시(神市)라는 주장이다. 김정호가 그린 서울 지도 ‘수선전도’에서 보듯 서울을 ‘으뜸가는 선’인 수선(首善)으로 표기한 것과 같은 이치라는 풀이다. 입으로만 전해진 서울이란 지명은 1896년 4월 7일 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 독립신문 창간호에서 처음 공식 표기됐다. 독립신문 한글판의 제호 아래 ‘조선 서울’이라고 표기하고 있고, 영문판에서는 ‘SEOUL KOREA’라고 발행지를 인쇄했다. 서울이 ‘서울특별시’가 된 유래는 희극적이다. 해방 후에도 서울은 여전히 경기도 경성부였다. 미 군정청은 1946년 ‘서울은 경기도 관할에서 독립, 자유독립시가 된다’라고 발표했다. 영어 원문에는 ‘Seoul established Independent City’(서울독립시의 설치)라고 기록됐다. 하지만 법령 번역을 맡은 군정청 한국인 직원이 서울독립시는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고민 끝에 ‘서울특별시’라고 고쳐 표기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또 한 가지는 정도전과 무학대사로 대표되는 유교와 불교의 한판 대결이다. 두 사람은 경복궁 명당이 앉을 자리를 정해 줄 주산(主山)을 백악(북악)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인왕산으로 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차천로는 ‘오산설림’에서 “무학은 ‘인왕산을 진산(주산)으로 삼고, 백악과 목멱산(남산)을 청룡과 백호로 삼으시오’라고 하였으나 정도전이 수용하지 않자 ‘내 말을 듣지 않으면 200년이 지나서 내 말을 생각할 것’이라 하였다”는 설화를 전했다. 무학의 예언은 맞아떨어졌다. 200년 후라는 것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뜻한다. 태조가 정도전의 손을 들어 주면서 주산은 백악으로 결정됐다. 무학은 굴하지 않고 도성을 쌓을 때 인왕산 선바위를 도성 안에 포함할 것을 제안했다. 선바위를 왕성 안에 집어넣어 불교의 중흥을 꾀하려는 몸부림이었으나 또다시 삼봉에 의해 바깥으로 밀려났다. 2전 2패를 당한 무학은 “불교가 망할 것”이라고 개탄했다. 얄궂은 운명인지 스님의 형상을 닮은 선바위 옆에는 일제강점기 남산에 조선 신궁을 짓느라 쫓겨난 국사당이 자리했다. 불교와 무속신앙이 500년이 지나고 나서 한자리에서 해후한 셈이다. 조선 개국의 설계자 정도전이 한양도성 건설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종묘와 사직 그리고 궁궐은 물론 관아와 시장의 터를 잡았고 도성 성곽의 윤곽도 결정했다. 서울을 5부(동·서·남·북·중부), 52개 방으로 나누고 경복궁을 비롯해 궁궐 전각의 명칭을 정하는 일도 모두 그의 생각대로 였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은 서울을 건설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유교 국가의 출범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신라 천 년과 고려 오백 년을 풍미한 불교와 풍수도참설은 시대의 도도한 흐름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한양도성’ 명명 4년… 안내판에 ‘서울성곽’ 한양도성이란 무엇인가. 한양도성은 조선시대 한성부, 한성, 한양, 서울을 나타내는 표상이었다. 한양도성이 곧 조선이었다. 더불어 수도, 수선, 도읍, 도성, 왕성, 황성, 궁성, 경조(京兆), 경도, 장안, 사대문 안의 통칭이기도 하다. 서울을 나타내는 모든 용어 중 가장 대표적이고 권위 있는 명칭이었다. 한양은 세계에서 가장 큰 수도 중 하나였다. 17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가 10만명, 영국 런던이 15만명이었을 때 한양 인구는 20만명에 육박했다. 규모로 보아도 현존하는 세계 수도의 성곽 중 서울을 둘러싼 성곽이 가장 크다. 그런데 현실은 딴판이다. 우리는 ‘한양도성=서울을 에워싼 18.672㎞의 성곽’이라고 범위를 좁혀 해석하고 있다. 내용물은 다 빼고 도성을 둘러싼 성곽만 내세우는 축소지향의 우를 범하고 있다. 한양도성은 조선 500년 내내 성곽으로 둘러싸인 한성부 전체를 지칭하는 당당한 국가권력의 표상이었다. 도성 밖 10리를 나타내는 성저십리(城底十里)와 구별하려는 의도에서 쓰인 사대문 안과 같은 권역을 나타내지만, 의미는 훨씬 공식적이고 권위적이었다. 성곽은 유일무이의 대도시인 한양도성 안을 관리, 운영할 목적에서 세워진 상징 벽이었다. 8개의 크고 작은 문인 흥인지문~광희문~숭례문~소의문(서소문)~돈의문~창의문(자하문)~숙정문~혜화문은 한양도성의 관문이었다. 상경(上京)과 낙향(落鄕)이 구분되는 시대의 경계선이었다. 궁궐을 에워싼 백악~낙타산(낙산)~목멱산~인왕산 등 내사산(內四山)을 잇는 도성은 외적 방어용이 아니라 왕권과 통치의 상징이었다. 외적의 침입과 방비, 농성을 위해 북한산성과 남한산성, 탕춘대성 등 산성을 따로 외곽에 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양도성과 서울성곽은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 서울성곽이라는 용어를 쓰려면 ‘서울성곽=조선시대의 옛 서울인 한양도성을 둘러싼 성곽’이라고 분명하게 정의해야 한다. 개발연대 몰지각한 권력자와 도시행정가들이 한양도성에서 성곽만 따로 떼 ‘서울성곽’이라고 멋대로 이름 붙인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도성 안 문화재와 유물은 마구잡이로 깔아뭉개면서 일제가 조선 정체성 지우기의 하나로 헐어버린 성곽은 잇는다는 앞뒤 맞지 않은 복원계획이 화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구자춘 서울시장이 1975년 ‘서울성곽 중장기 종합정비계획’을 세웠고, ‘서울성곽복원위원회’가 구성되면서 한양도성이라는 당당한 이름이 복권되지 못하고 서울성곽이라는 중성적 이름으로 둔갑한 것이다. 천박한 역사인식과 자가당착이 빚은 비극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문화재위원회가 2011년 사적 제10호 서울성곽의 명칭을 ‘서울 한양도성’으로 바꿨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눈이 어두워 서울성곽을 ‘서울 한양도성 성곽’이라고 분명히 밝히지 않고 서울 한양도성이라고 어정쩡하게 명명하는 과욕을 부려 또 다른 오해와 시비를 불러들였다. 차라리 서울성곽이라고 놔두는 편이 나았다. 우리는 도성을 둘러싼 성곽과 8개의 대·소문이 한 몸이란 사실을 가끔 잊곤 한다. 숭례문과 흥인지문이 국보 1호, 보물 1호인 줄은 알고 있지만, 이들 문이 한양도성의 출입문이라는 점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성곽을 상실한 숭례문과 흥인지문을 너무 오랫동안 보아 왔고, 출입이 통제된 숙정문과 차량통행에 방해된다며 철거해 버린 돈의문을 아예 보지 못한 탓이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한양도성은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됐고 정식 등재는 시간문제라고 한다. 송인호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장은 ‘한양도성의 유산가치와 진정성’이라는 논문에서 “서울성곽의 영어표기가 ‘Seoul Fortress’인데 반해 한양도성은 문화유산 등재 때 ‘Seoul City Wall’이라고 표기됐다”면서 “Fortress가 방어 요새로서의 역할만을 제한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City Wall은 역사도시의 도시성곽으로서 의미를 포괄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용어의 정의부터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한양도성을 둘러싼 전반적인 용어와 개념 정리를 주장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보다 더 시급한 일일 수도 있다. 서울성곽을 한양도성이라고 명칭을 바꾼 지 4년째를 맞지만 성곽 앞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여전히 서울성곽이라고 표기돼 있다. 한 번 머릿속에 박힌 용어나 명칭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식민시기 서울의 조상 산인 삼각산을 북한산이라고 엉뚱하게 이름 붙임으로써 정체성이 훼손된 것처럼 용어의 변질은 의미의 변질을 수반하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한양도성과 서울성곽을 헛갈리고 있다. 묵은 역사인식을 바꾸려면 안내판부터 제때 바꿨어야 했다. 정책을 수립하는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한양도성이라고 하는데 이를 운영하는 자치구는 서울성곽이라고 우기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길섶에서] 후한 대접/최광숙 논설위원

    아침 출근 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날 같이 점심을 한 지인이다. “만나서 반가웠다. 후한 대접을 해줘 고맙다”는 내용이다. 사실 따지면 그 지인이 훨씬 부자일 것이다. 하지만 몇 년 만의 해후에 오래전 현역에서 은퇴한 어르신이기에 점심 값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는 일부러 다음 날 감사 전화까지 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점심 한 끼를 ‘후한 대접’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내로라하는 위치에 있었던 그는 더 화려한 접대를 오랫동안 받아봤을 터. 그런데도 월급쟁이가 살 수 있는 가벼운 점심 한 끼를 그야말로 ‘후하게’ 받아들이니 오히려 내 쪽에서 고마웠다. 그의 말 한마디에 인품과 경륜이 느껴졌다. 70대 할아버지가 까마득한 후배한테 이런 행동 가짐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작은 행동들이 그를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가게 하지 않았을까. 남한테 신세를 지고도 고마운 줄 모르고, 미안한 일을 하고도 미안한 줄 모르고, 남들의 호의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화 한 통이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살아 있었구나”… 납북선원, 40년 만에 동생 안고 오열

    “살아 있었구나”… 납북선원, 40년 만에 동생 안고 오열

    “형님아….” 20일 오후 3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50대 중년 남성 두 명이 서로 얼굴을 만져 보고 뺨을 비벼보다 울음을 터트렸다.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까’ 했던 걱정은 친형을 눈앞에서 본 순간 하얗게 사라졌다. 42년 전 납북된 친형 박양수(58)씨를 만난 박양곤(52)씨는 ‘형님’, ‘형님’을 되뇌다 다시 말을 잇지 못하고 형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오열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는 납북 선원 2명이 포함돼 양곤씨 등 남측 가족과 상봉했다. 양수씨는 1972년 12월 28일 서해에서 조업하다 북한 경비정에 납치됐다. 당시 그를 비롯한 25명의 어부는 쌍끌이 어선인 오대양 61, 62호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이었다. 지난해 9월 함께 납북됐던 선원 전욱표(69)씨가 탈북하며 ‘오대양호 납북 사건’이 다시 여론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양수씨는 1972년 초등학교만 막 졸업하고 “고기잡이해서 돈을 벌어 가정을 돕겠다”며 나간 뒤 바다 밑으로 사라지듯이 북으로 납치돼 ‘생이별’했다. 양곤씨는 “무엇보다 (형님이) 건강하시니까 감사하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형의 납북 이후 가족들이 출국을 금지당하는 등의 설움이 모두 사라지는 듯했다. 이날 아들 박종원(17)군과 동행한 양곤씨는 형과 형수 리순녀(53)씨를 함께 만났다. 양곤씨는 형에게 돌아가신 부모님과 큰형의 묘소 사진, 고향 마을 풍경 사진을 보여 줬고 내복 등 의류와 생활필수품을 선물했다. 양수씨는 북쪽의 부인을 소개하며 “내가 당의 배려를 받고 이렇게 잘산다”고 준비해 온 봉투에서 꺼낸 가족사진을 보여 주기도 했다. 최선득(71)씨 가족과 상봉한 동생 최영철(61)씨는 1974년 2월 15일 백령도 인근에서 홍어잡이를 하다 북측의 함포 사격을 받은 뒤 납북됐다. 당시 동생 최씨가 타고 있던 수원 33호는 포격을 받고 침몰했고 함께 조업하던 수원 32호와 선원 14명이 함께 북으로 끌려갔다. 이후 동생의 행방은 2008년 납북자가족모임이 공개한 ‘납북 선원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형 선득씨는 “이제 우리 7남매가 모두 살아 있는 것을 알았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상봉한 전후 납북자는 박근혜 정부와 북한 김정은 체제 아래 처음으로 남쪽의 가족과 만난 사례다. 이번 상봉을 포함해 상봉 행사에서 남측 가족을 만난 납북자는 모두 18명에 불과하다. 납북자는 2000년 11월 제2차 이산가족 상봉부터 국군포로와 함께 특수이산가족 형태로 2∼3명씩 참여해 왔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누워서라도… 20일 만나러 갑니다

    누워서라도… 20일 만나러 갑니다

    2010년 10월 이후 중단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20일 3년 4개월 만에 열린다.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의 ‘첫 단추’로 규정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재개되며 남북이 다시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는 갈림길에 서게 됐다. 북측 가족을 만나는 1차 상봉(20~22일)에 참여하는 82명의 남측 상봉 신청자와 동반 가족 58명은 19일 강원 속초시 한화콘도에 집결했다. 이날 집결지는 이들 가족과 행사를 주관하는 대한적십자사 관계자 200여명 등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1차 상봉의 남측 최고령자는 96세 김성윤 할머니로 북한의 여동생 등을 만날 계획이다. 김 할머니와 같은 90대는 25명이고, 80대 41명, 70대 9명, 69세 이하 7명이다. 성별로는 남성이 57명, 여성이 25명이다. 북측 신청자가 남측 가족을 만나는 2차 상봉은 23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다. 2차 때는 북측 상봉 신청자 88명이 남측 가족 361명을 각각 만난다. 북측 상봉 신청자 가운데 90세 이상은 없고 80대가 82명, 70대가 6명이다. 1차 상봉에서 북쪽의 누나 김명자(68)씨를 만나는 김명복(66)씨는 이번 상봉에 10년 전 사망한 아버지의 유언장을 갖고 와 화제가 되고 있다. 김씨의 어머니는 1951년 1·4후퇴 때 큰딸 명자씨를 다른 가족에게 남겨 놓은 채 김씨와 두 살 어린 여동생만 데리고 남쪽으로 왔다. 전쟁 통에 헤어진 아버지와는 같은 해 인천에서 해후했다. 부부가 극적으로 다시 만난 기쁨이 북에 두고 온 첫째 딸을 잊게 할 수는 없었다. 김씨는 취재진에게 “아버지는 누나를 북에 남겨 두고 온 데 대해 평생 한을 갖고 계셨다”면서 “부부 싸움을 하며 ‘당신이 먼저 남쪽에 가는 바람에 내가 명자를 두고 왔다’는 어머니의 타박에 아버지의 괴로움은 더 컸다”고 회상했다. 북에 남겨 둔 가족들의 한자 이름과 생년월일까지 표기된 유언장에는 헤어진 사연과 함께 ‘통일되면 꼭 이북가족들 있는 곳을 탐색하여 상봉하도록 하여다오. 소원이다’라는 당부가 담겨 있다. 김섬경(91)씨는 감기에 걸려 응급 이동식 침대에 누워 이날 이산가족 상봉단에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북의 아들 김진천(66)씨와 딸 춘순(67)씨를 만나는 김씨는 전날 하루 일찍 속초에 도착했지만 갑자기 감기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동두천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다. 이날 상봉 등록에서도 김씨는 눈만 뜨고 있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이들 상봉 대상자는 북측 가족 178명을 만난다. 이날 오후 3시쯤 신원 확인과 건강검진 절차를 모두 마친 이들은 20일 오전 9시 강원 고성군의 동해안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현대아산이 운영하는 버스로 갈아타고 금강산호텔에 도착해 60여년을 기다린 가족들을 만난다. 20일은 단체 상봉과 환영 만찬, 21일엔 개별·단체 상봉과 공동 중식, 22일 작별 상봉이 각각 진행된다. 속초공동취재단·안석 기자 ccto@seoul.co.kr
  • 필리핀서 모친 살해후 장기 먹은 희대의 패륜범죄 발생

    필리핀서 모친 살해후 장기 먹은 희대의 패륜범죄 발생

    어머니를 살해하고 장기를 먹은 희대의 패륜범죄가 필리핀에서 일어났다. 4일(현지시간)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지난 달 29일 필리핀 민다니오섬 암파투안의 한 가족농장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후 그녀의 장기를 먹은 3형제에 대해 보도했다. 사건은 죽임을 당한 56살 무살라 에밀의 이웃이 그녀의 집에서 나오는 이상한 소리를 듣고 현지경찰에 신고하면서 밝혀졌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는 혈액의 흔적없이 살해됐으며, 장기의 여러 부분이 훼손된 상태로 발견됐다. 또 훼손된 일부 장기를 단테(35)·파로이(21)·이브라힘(18) 등 3형제가 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가족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형제들은 그 원인이 악령에 있다고 생각해온 것으로 드러나 이번 범죄가 종교의식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또 “삼형제는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약물남용에 의한 살인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삼형제에 대해 약물검사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남필리핀 이슬람계 토착 모로족이며, 현재 가족농장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암파투안은 2009년 필리핀 현직 주지사 가문이 선거에서 경쟁관계에 있던 58명을 무차별 학살한 지역으로 잘 알려져있다. 사진·영상=데일리메일/유튜브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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