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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냉전”… 변화하는 미 안보전략:상

    ◎「소 팽창 봉쇄」서 「지역안정 확보」로 전환/테러등 저강도전 대비,세계 경찰역은 계속/핵의존 탈피,기동력 갖춘 항모ㆍ경보병 역점 미국은 탈냉전시대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그들의 군사전략은 새로운 평화시대를 맞아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가. 서울신문 국제부 최두삼기자는 미국정부 초청으로 지난 6월중순부터 1개월간에 걸쳐 미국내 정부관리ㆍ학자ㆍ군부 및 의회지도자들을 두루 만나 변모하는 미국의 안보전략을 취재할 기회를 가졌다. 「변화하는 미국의 대외군사전략 목표」와 「동북아주둔 미국의 역할변화」로 나누어 2회에 걸쳐 연재한다. 고르바초프가 이끄는 소련의 의식전환과 갑작스런 동구공산블록의 몰락이란 역사적 대변혁기를 맞아 미국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 것이라는게 미국땅을 밟기 전까지 가졌던 기자의 선입견이었다. 워싱턴DC에 도착했을 당시만 해도 의회는 국방비 삭감에 열을 올리고 있었으며 일부 학자들은 군비축소로 생겨난 여유자금을 평화기부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까지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궁리하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탈냉전시대를 맞으면서 이제 「세계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은 막을 내렸는가. 이런 의문에 대해 미국의 군부지도자 학자 관리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지난 40여년간 미국의 군사전략 목표는 「소련세의 팽창을 봉쇄하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제3세계국가들을 중심으로 도처에서 일하고 있는 불안정 요인을 제어하는 「지역안정 확보」로 바뀌어야 하고 또 그렇게 바뀌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은 여전히 맡아야할 군사적 역할이 남아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제3세계가 주목표 이같은 군사전략 목표의 변화에 대해서는 미국내에서도 대표적인 진보주의 성향을 보여온 마이클 클레어교수(매사추세츠주 햄프셔대평화 및 세계안보연구소장)까지도 미국의 군사적 역할이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있었다. 클레어교수는 『냉전으로 인한 위기위식이 지난 40년간이나 지속됐으며 불과 몇달전에야 그같은 공포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말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증강되기 시작한 미국의 대규모 군사력은 그 자체가 비정상적이었음에도 오래 가다보니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미국이 상당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군부의 주장에 동조한다고 밝혔다. 매사추세츠대에서 항공우주학을 강의하고 있는 로드 밀레교수(현역공군장교)를 비롯한 국방부 관리들은 지금까지 소련이나 바르샤바조약국들이 주요 위협상대였으나 앞으로는 게릴라 테러 국경분쟁내전 마약전쟁 등 저강도의 분쟁이 꾸준히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미소군의 갑작스런 축소는 지역헤게모니쟁탈전을 유발할 가능성도 높다며 대폭적인 군축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점에서 클레어교수는 미국의 군사전략목표가 소련권으로부터 제3세계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군부지도자들은 앞으로 전개될 전쟁양상으로 ▲미군의 파나마침공에서 보여준바와 같이 사상자도 많지 않고 단기간에 끝나는 저급강도의 전쟁과 ▲이란­이라크전과 같은 중급강도의 전쟁을 들고 이들 저ㆍ중급전투를 위한 준비태세를 갖춰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전투태세는 기동력을 수반하는 항공모함이나 경보병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재래무기 소폭 감축 이렇게 되면 현재의 유럽주둔 미군 유지비에 비해 규모가 축소되긴 하겠지만 역시 적잖은 비용이 들게 분명하다. 아마도 전략핵전력의 경우 급격한 감축이 예상되지만 재래식 병력은 크게 줄어들지는 않다는 얘기다. 탈냉전시대에 들어 가장 두드러진 변화가 핵전력의 감축이라는데는 별다른 이의가 없는듯 했다. 이제 핵무기를 통한 헤게모니장악은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이용한 위협은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군수품의 지원ㆍ수출 등을 통한 헤게모니장악도 옛날얘기가 되고 있는듯 했다. 지금까지는 미소가 각기 자기네 블록내의 종속관계에 있는 국가들에게 무기를 공여,수출했으나 앞으로는 종속관계에서 동등한 관계로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을 배경으로 어느 정도 조정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역시 미소가 공동으로 중급국가들을 상대로 헤게모니장악을 노린다면 가능할지도 모르나 어느 한쪽 단독으로는 불가능하게 바뀌고 있다. ○중급국가 역할 커져 탈냉전시대의 또다른 특징은 과거 미소로부터 무기를 수입해오던 일부 중급국가들이 앞으로는 종전처럼 미소로부터 무기를 수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제3세계국가들에게 다른 무기들을 수출한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국가들로는 남북한이 꼽히고 있다. 이란­이라크전때 보여줬듯이 미소뿐 아니라 많은 중급국가들의 무기가 전쟁지역으로 흘러들어갔음을 이곳 군사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들 중급국가들의 역할이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쨋든 미국은 탈냉전시대를 맞아 의회를 중심으로 군비축소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그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이에 의회나 행정부는 장기적으로 미군의 25% 감축을 논의하고 있지만 제대로 실현될지는 의심스러워 보인다. 소련의 위협은 사라졌으나 국지적인 분쟁은 지속되거나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릴지도 모르며 이를 적절히 제어하는게 미국의 국익에 보탬이 된다고 믿는 학자나 관리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주리대(세인트루이스)의 국제정치학자 조웰 글라스만박사는 『물론 소련은 변했지만 미국의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그는 『과거에 미국은 한국이나 베트남에서 소련과 그 동맹국들의 팽창정책을 막기 위해 싸웠으나 이제는 달라졌다』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필리핀 니카라과 이라크 등 아직도 국지적인 불안요인이 많아서 미대외정책의 가장 큰 관심사가 지역안정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중동으로부터의 석유수송로 보호작전개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중동수송로 비중 커 미국은 세계 석유부존자원의 77%를 차지하고 세계 석유부존자원의 30%를 공급하는 페르시아만일대 산유국들의 석유수송이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의 방해로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가정을 해왔다. 특히 연간 2만1천대의 선박이 지나는 수에즈운하와 그에 못지않은 바브엘만데브해협,그리고 호르무즈해협 등에 친소정권이 많이 등장함에 따라 보다 큰 경계를 해온게 사실이었다. ○평화배당금 적을듯 이제 이들 수송로에 더 이상 공산세력의 위협은 사라지게 됐다. 그렇다고 서방세계의 젖줄이라 할수 있는 이곳 해상수송로 보호작전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게 미국정부의 분명한 입장인듯 했다. 중동의해상수송로 작전을 맡고 있는 플로리다주 탐파의 미중앙사령부는 휘하에 40만대군을 동원할 수 있으며 연간 15억달러를 들여 수송로 보호작전을 펴고 있다. 냉전이후시대(POST Cold War Era)에도 이곳의 지역적 불안정때문에 미군의 역할이 줄어들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과 같은 미국조야의 대응태세로 보아 군축에 따른 평화배당금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거나 아예 기대하기조차 어렵겠다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 남북문제 해결의 새 초석/노대통령 민족 대교류 제의에 부쳐(사설)

    광복 45년,건국 42년을 맞는 오는 8월15일을 전후한 5일동안 분단됐던 민족의 재결합이 일시나마 이루어질 수 있을까. 노태우대통령의 광복절 민족 대교류 선언은 광복에 이은 40여년 분단민족사에 최대의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번 선언은 88년 7·7선언과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입각한 구체적인 문제해결 의지로서 북한측의 상응조치 여하에 따라서는 분단극복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남북한이 분단의 장벽을 제거하고 체제와 이념의 차이를 극복하려면 먼저 대화와 교류가 쌓여야 한다. 남북한 주민 누구나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만나 이산의 한과 적대의 증오를 해소해야 한다. 민족 대교류 선언은 우리쪽부터 그렇게 하겠다는 의연한 결의이다. ○「한민족공동체」 의지의 확산 지난 88년 「7·7 특별선언」은 북한에 대한 기존의 기본인식과 정부의 통일외교정책 방향에 새로운 전환을 가져왔다. 그 선언으로써 북한은 더 이상 경쟁·대결·적대하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신뢰와 화해협력을 쌓아나가는 민족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되었다.북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경쟁과 대결의 남북한관계가 결국은 민족 스스로를 해치는 행위라는 자각과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7·7 선언정신에 입각한 지난해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보다 구체적으로 남북의 공존공영과 민족사회의 동질화,민족공동생활권의 형성을 지향했다. 민족 대교류 선언은 바로 그것을 위한 행동방안이라 해도 좋다. 8·15 광복의지를 바탕으로 민족 대교류가 이뤄진다면 그것은 다시 설날로,단오절로,추석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국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자 북으로」라고 절규하던 젊은이들의 함성도 잦아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족 대교류 선언은 분단극복의 장애요인을 완전히 제거하고 체제와 이념을 초월하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건너뛰어 이윽고 민족통합과 국토통일의 또 하나의 초석이 되게 되는 것이다. 광복절 민족 대교류 선언의지에는 북한측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개방,남북의 자유왕래 주장이 완전무결하게 발전적으로 함축되고 있다. 체제와 이념을 초월해서 분단극복의지를 극대화한다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남북 자유왕래의 장애요인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인적 교류에 있어 인원 지역상의 제한이 철폐되었고 그것은 다시 교류의 정례화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폐쇄빗장 풀고 개방해야 최근 우리가 국가전략및 남북한문제와 관련하여 한소 관계개선을 서두르고 있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한반도문제 해결의 길을 열고자 함에서이다. 이미 한소 정상회담이 이뤄졌고 오는 8월 모스크바에서는 양국의 각료급 공식회담이 열리게 돼 있다. 한소 관계개선에 있어서도 우리는 북한을 결코 배타적인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안팎의 여러가지 예민한 정세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소련은 여전히 맹방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소 관계개선에서 북한이 배척되고 제외돼서는 안되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문제 궁극적인 해결의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남북한이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쌍방 당사자끼리의 논의와 합의는 꾸준한 대화와 교류의 축적으로써만 가능하다. 대화가 문제해결의 이론이라면 교류는 민족간의 끊어졌던 맥을 다시 잇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북한은 이제 이 대화와 교류의 정례화와 구체화를 위해 상응한 조치를 보여야 한다. 남북한 상호교류에는 인적·물적 분야가 있다. 국제적인 화해조류와 남북한 현실변화의 추세에 비추어 상이한 체제와 이념이 더이상 문제되지 않는다면 남북교류에 있어 이제는 아무런 장애도 없다. 우리는 이미 7·7선언 후속조치의 하나로서 남북한간 물자교역개방조치를 발표한 바 있었다. 지난번 임시국회에서는 남북교류협력법안과 남북협력기금법안이 통과됐다. 북한은 이제 더이상 대화와 교류를 거부하고 회피할 명분이 없다. ○대화와 교류 축적의 길 80년대 중반에 들면서부터 우리는 실로 커다란 변화의 격랑속에 휩싸여왔다. 국제적으로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국제질서가 구축되고 있다. 그 세계사적 추세속에서 오로지 한반도만이 최후의 냉전지대로 남게 되었다. 그것은 7천만 민족의 수치이며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의 긍지와 자존심을 훼손당하는 일이다. 회고컨대 우리 민족은 조선말엽 세계정세의 흐름에적절히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국권을 상실하고 반세기간에 걸친 민족적 수난을 겪었다. 그러한 역사의 교훈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 민족이 세계적 흐름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내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민족 전체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다. 그 국제정세가 우리 민족에게 항상 유리하게만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유리한 국제정세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한다면 민족사의 발전에 커다란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동서독의 예에서 보듯이 지속적인 대화와 교류의 축적이야말로 남북문제 해결의 길이다. 진지한 대화와 핏줄이 교류하는 가운데에서는 과거의 한과 증오와 적대의식은 봄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옛 러시아 속담에 『어설픈 평화라도 좋은 싸움보다는 낫다』라는 말이 있다. 말을 바꾸면 최악의 대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는 일깨움일 것이다. 남북한은 이제 전쟁은 다시 말고 적대도 말아야 한다. 북한이 좋다면 오는 8월15일을 전후한 남북한 곳곳에서는 분단민족 재결합의 일대 축제가 펼쳐질 것이다. 특히 이산가족들의 그러한 기대와 희망을 북한은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 강원·전남에 호우 경보/태풍 오늘 아침 대한해협으로 빠져

    제주남쪽해상에서 북상중인 제7호 열대성 폭풍 로빈의 영향으로 11일 전국에 호우경보 및 주의보가 발표된 가운데 곳에 따라 1백㎜가 넘는 비가 내려 농경지 침수등의 피해를 냈다. 열대성 폭풍 로빈은 이날 하오 9시 현재 제주도 동쪽 80㎞ 해상에서 시속 22㎞의 속도로 북동진해 12일 상오 3시쯤부터 온대성 저기압으로 약화됐으며 상오 9시쯤 대한해협쪽으로 빠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 영향으로 11일 하오 강원 영서북부와 전남지방에는 예상강우량 1백50∼2백50㎜안팎의 호우경보가,충남북·제주 남해서부 해상에는 예상강우량 80∼1백50㎜의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중부지방에는 20∼40㎜,전남지방에는 60∼80㎜의 비가 내렸다. 중앙기상대는 이날 태풍통보를 통해 『중심기압 9백94mb인 열대성 폭풍 로빈이 12일 상오 3시쯤 온대성 저기압으로 바뀌어 세력이 약화된 채 12일 상오 9시에는 대마도 동쪽 1백㎞ 해상까지 진출,우리나라를 비껴 지나가겠다』고 밝히고 『이 영향으로 남부와 제주지방에는 최고 2백50㎜의 비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관련기사14면〉
  • 「대만­중국 투자토론회」북경서 개막/기업인 1천명 참가

    ◎상호 경제교류 가능성 타진/강택민도 참석,“통일 당기는 촉매”논평 【홍콩=우홍제특파원】 중국과 대만의 기업인 1천2백여명이 참가하는 「해협양안무역투자연구토론회」가 2일 북경 장성쉐라톤호텔에서 성대히 막을 올렸다고 3일 명보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양안 기업인들의 사상 최대 모임인 이 연토회가 4일까지 계속되며 강택민 당총서기ㆍ이붕총리 등이 개막식에 참석,상호 경제교류가 중국전체의 통일을 앞당기는 촉매역할이 될 것임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번 연토회에는 대만기업인 6백50여명이 참석했으며 중국측은 이들에게 대륙의 투자환경을 설명하고 23개성및 시대표들이 1천4백개 항목의 합작 투자가능 사업을 소개했다. 대만기업인들은 회의가 끝난뒤 대륙의 각 지방을 돌아보고 투자가능성을 타진할 계획이라고 명보가 밝혔다. 이 연토회의 보고자료에 따르면 지난 79∼89년 사이 중국본토와 대만 양안의 무역총액이 1백17억달러,연간 증가율은 무려 46.4%에 이르렀고 대만의 1천1백여개 기업이 같은 기간동안 대륙에 투자한 금액은 11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중국ㆍ대만 무역회의 새달 2일부터 개최/사상 최대규모

    【홍콩=우홍제특파원】 대만 상공업계 대표 6백50명과 대륙의 각 성ㆍ시대표 등 1천여명이 공동으로 참석하여 40년 분단사상 최대 규모의 회의가 될 「해협양안무역투자연구토론회」가 오는 7월2일부터 3일간 북경의 쉐라톤 장성호텔에서 개최된다고 26일 중국의 교포용 통신사인 중국 신문사가 보도했다. 중국과 대만간의 무역 및 투자확대를 위해 지난 89년 12월 홍콩에서 설립된 해협양안의 반공식기구인 해협양안 경제무역협조회가 주최하는 이번 연구토론회에는 중국 경제무역부 부부장(차관) 심각인과 국가계획위원회 부주임(차관) 감자옥 및 대만의 동오대학 경제학교수인 우덕배씨 등이 각각 나와 중국의 투자환경 및 무역촉진 문제에 관해 강연을 할 예정이다.
  • 본토망명 7년만에 돌아온 대만가수/후덕건 전격 귀환… 속사정은

    ◎「6ㆍ4사태」이후 사회주의에 염증/천안문서 투쟁 주도… 한때 구속 지난 83년 6월 중국대륙으로 망명했던 대만의 가수겸 작곡가 후덕건(34)이 7년이 지난 20일 자의반 타의반에 의해 대만으로 송환돼 화제가 되고 있다. 후는 10년전 중화민족의 얼과 통일염원을 담은 「용의 후계자」란 노래로 크게 유명해진 뒤 당시 대만이 계엄령 아래 있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인 억압이 심하다는 이유로 홍콩을 거쳐 대륙으로 건너 갔던 것. 후는 중국대륙의 개방ㆍ개혁바람이 민주화를 촉진시키고 그의 예술창작활동도 크게 뒷받침해 줄 것으로 믿었으나 사회주의 제도에 점차 실망을 느끼다가 지난해 6ㆍ4사건때 천안문 광장에서 단식투쟁을 하던 중 체포,구속됐다. 그는 올해초 석방됐으나 지난 5월30일 동료 2명과 함께 북경주재 외신기자들과 회견을 갖고 그동안의 구금생활실태를 폭로할 계획을 세웠다가 다시 중국공안당국에 의해 지하조직과 연루돼 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당초 7년전에 후가 대만에서 망명해 왔을때 중국당국은 두손을 들어 환영해 마지 않았지만 이제는 골치거리 뿐인 그를 더이상 국내에 두고 싶지 않아서인지 『당신이 원하면 대만에 돌려 보내 주겠다』고 제의했으며 후도 이를 흔쾌히 받아 들였다는 것. 그는 대만해협에서 중국 선박으로부터 한 대만어선에 옮겨 실린뒤 이틀 후인 20일 하오 되돌아와 대북당국에 자수했으며 『왜 다시 돌아왔느냐』는 질문에 『말할 수 있는 것은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는 한마디 뿐』이라고만 대답했다. 한편 홍콩과 대만 언론들은 후의 행동이 대륙 대만 양안의 정국변화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논평하기도.
  • 전략핵감축·무역협정 서명

    【워싱턴 AP 로이터 연합】 미국과 소련은 2일 상오(이하 한국시간) 장거리 핵미사일 3분의1 감축을 골자로 하는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예비협정 및 무역협정을 비롯한 주요 현안들에 극적 합의,서명했다. 조비 부시 미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이틀간 모두 4차례로 나뉘어 열린 양국 공식정상회담을 마치면서 이같이 밝혔다. 두 정상은 START 예비협정 외에도 ▲화학무기생산금지및 폐기 ▲핵실험제한검증방법 개선 ▲핵에너지 평화적 이용 ▲미국의 대소 곡물 판매 및 ▲항공협정등에도 서명했다고 말했다. 또한 유럽배치 재래식 군사력(CFE) 감축협상의 연내 타결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미소 관계 강화를 상징하는 뜻에서 내년말까지 베링해협에 「국제공원」을 설치하기로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발표됐다. 부시는 정상회동에 이어 조인이 이뤄진 후 성명을 통해 『세계가 너무도 오래 기다렸다』고 지적하면서 『냉전은 종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르바초프도 이번 합의가 『(미소) 양국은 물론 전세계 모두에 중대한 의미를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강택민,대만경제인 첫 접견/양측 적십자사는 새달 회담

    【홍콩 연합】 중공 당총서기 강택민은 이등휘 대만총통(대통령)이 대륙과의 직접 접촉을 가능하도록 3불정책의 폐기 용의를 밝힌지 1주일만인 27일 대만경제계의 지도적 인물이며 해협 양안 상무협조회 대만측 회장인 장평소씨 일행을 접견,해협 쌍방간의 경제무역 확대와 투자증대를 촉구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강택민 당총서기가 대만을 대표하는 경제인들을 공식회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장평소 대만측 해협양안 상무협조회 회장 일행은 89년 12월 홍콩에서 중국의 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와 해협양안 상무협조회를 설립한 후 처음으로 정홍업 CCPIT회장의 초청으로 대륙방문길에 나섰다. 한편 중국적십자사와 대만적십자사 대표들도 6월중순 광주에서 회합을 갖고 지금까지 추진해온 이산가족찾기운동을 비롯,해협 쌍방간의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평화통일에 앞장서기로 했다.
  • “통신위성 90년대 중반 확보”/노대통령 밝혀

    【제주=이경형기자】 노태우대통령은 21일 상오 제주도 성산읍에서 열린 제주∼고흥간 해저광케이블 건설 준공식에 참석,『정부는 90년대 중반까지 통신ㆍ방송위성을 확보하고 국가기간전산망도 지속적으로 확충해 종합정보 통신망을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제 제주해협을 바다밑으로 연결한 이 공사가 준공됨으로써 우리나라의 광통신시대가 열리게 됐다』며 『앞으로도 육지와 주요 도서간에는 해저광케이블을 계속 건설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또 『정부는 그동안 독점체제를 유지해오던 각종 통신망 사업에 경쟁원리를 도입하고 민영화와 개방화등 다각적인 구조조정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특히 정보산업과 첨단산업의 육성과 기술개발을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해저광통신시대의 전개와 더불어 해양개발의 역할이 크게 기대되고 있다』면서 『정보시대에 슬기롭게 대처해 세계의 발전을 앞장서 이끄는 선진국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 대만 국민대회 대표단/6월 본토방문

    【대북 AFP 연합】 왕응걸 대만 국민대회 대의원은 16일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중국과 대만의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중국 인민대표대회 의원이며 중화전국대만동포연의회 회장인 임여온의 초청으로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왕대의원은 오는 6월 출발 예정인 30명의 대표단은 주로 국민대회 대의원들로 구성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대표단 일행은 중국 고위관리들과도 만날 계획이라고 덧 붙였다.
  • 노르웨이 여객선 북해 항해중 화재 참사

    ◎승객 75명 사망ㆍ70명 실종/선장 “방화범 소행” 주장 【오슬로 로이터 AFP 연합】 승객과 승무원 5백여명을 태운 카페리 여객선이 7일 노르웨이 남쪽 북해상에서 불길에 휩싸여 최소한 75명이 사망하고 70명 이상이 실종,최근 수년동안 일어난 해난사고중 최악의 참사를 기록했다. 한편 사고 선박인 스칸디나비안 스타호의 휴고 라르센 선장은 『이번 화재가 방화일 가능성이 99%』라고 주장했다. 스웨덴 해난 구조대의 한 대변인은 『최소한 75구의 시체가 배 위에서 발견됐으며 70명의 생사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실종자 중 일부는 구명정에 생존해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구조대는 앞서 승객과 승무원이 전원 구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덴마크 항구 프레드릭스하운항으로 항해하던 1만t급 스칸디나비안 스타호는 새벽 3시쯤(한국시간 상오10시) 오슬로 협만 어귀의 패르더 등대남쪽 30해리 지점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며 사고 직후 조난신호를 타전했었다. 이 선박은 원래 고텐베르에 있는 스웨덴 해운회사 스테나해운 소속이었으나 최근 미국의 시 이스케이프사에 팔렸으며 선적은 바하마로 등록돼 있다. 라르센 선장은 『사고가 나기 30여분전 배에서 소형 화재가 발생,승무원들이 곧바로 진화 했으나 다시 뱃머리에서 커다란 불길이 솟은 것으로 봐서 방화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대부분 노르웨이인인 승객 3백95명과 승무원 1백명등 4백95명중 약 3백40명이 배를 버리고 구명정에 옮겨 타기도 하고 또는 노르웨이ㆍ스웨덴ㆍ덴마크로부터 파견된 헬기들의 도움으로 인근의 다른 선박으로 구조됐다. 스웨덴의 한 예인선은 소방관들이 불길을 잡은 이 선박을 사고 현장에서 30㎞ 가량 떨어진 덴마크 해안으로 견인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 ▷대형 선박화재 사고일지◁ 【함부르크 DPA 연합】 세계 전역에서 20세기 후반 들어 발생한 대평 선박화재 사고를 살펴본다. ▲63년 12월=그리스선박 라코니아호 카나리아 제도 항진중 화재,1백31명 사망. ▲65년 11월=그리스선박 야무스 캐슬호 미플로리다주 동부해상서 화재,87명 사망. ▲83년 6월=소련선박 알렉산데르 수보르프호 볼가강 교량에 충돌,1백70여명 사망. ▲86년 8월=소련 화물선 피오트르 바시예프호ㆍ여객선 에드머럴 나히모프호 노보로시스크 부근 흑해상에서 충돌,3백98명 사망. ▲87년 3월=영국 해협 왕복선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호 벨기에 제브루게항 출항직후 전복,1백93명 사망. ▲87년 12월=필리핀 연안 여객선 도나 파즈호 마린두크섬 부근해상에서 유조선과 충돌,3천명이상 사망. 사망자 3천1백32명 ▲89년 9월=루마니아 여객선 모고소아야호 다뉴브강에서 예인선과 충돌,2백7명 사망.
  • 중국ㆍ대만기업인 1천명 경협회담/6월 북경서

    【홍콩 연합】 대만과 중국은 89년12월 홍콩에서 쌍방간의 무역확대및 이를 에워싼 분쟁조정기구로 「중화상무협조회」를 발족시킨데 이어 오는 6월 북경에서 대만기업인 5백여명과 중국의 무역기구대표 등 6백내지 7백명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이 기구의 제1차 총회를 갖고 해협 쌍방간의 경제협력강화문제를 본격 협의할 예정이다.
  • “15년 옥살이 죄수” 무죄로 판명(세계의 사회면)

    ◎영국경찰도 “고문수사”… 이미지 먹칠/폭탄테러 증거 조작,4명 범인으로 몰아/진범 잡고도 “쉬쉬”… 인권유린 거센 비판 경찰이 국민들로부터 크게 믿음을 얻고 있는 나라,일찍이 인신보호장정 등을 마련해 인권보호에 앞장서 온 나라 영국에서 15년전의 한 오심때문에 검ㆍ경은 물론 불문헌법구조에 이르기까지 인권보호를 위해 사법체제가 대폭 개정돼야 한다는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1974년 10월 런던에서 일어난 아일랜드공화군(IRA)폭탄테러사건의 범인으로 수감된 4명이 경찰의 거짓말과 증거조작 그리고 검찰의 조작지시로 15년간이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것으로 밝혀져 지난해 10월 석방됐다. 사건과 관련돼 수감중인 또 다른 7명 가운데 1명은 이미 옥사했고 아직도 6명은 항소심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1974년 10월5일. 런던 남서부의 길포드의 한 술집에서 폭탄이 폭발,5명이 즉사하고 50여명이 중화상을 입는 참극이 벌어졌다. 뒤에 밝혀졌지만 이 사건은 IRA와 직접 관련이 없는 북아일랜드 「행동조직(ASU)」이 영국본토에서일으키기로 작정한 폭탄테러의 시작이었다. 충격적인 사건에 여론은 비등했고 테러수사경험이 거의 없는 관할 서레이경찰서는 허둥지둥 수사에 나섰다. 4천여회의 진술,6천명 면접수사의 기록을 세웠으나 당시 술집내에서 데이트중인 남녀 2명의 신원은 밝혀내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11월 다시 버밍검에서 폭탄테러가 발생,21명이 죽고 1백62명이 부상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터졌다. 경찰에 대한 여론의 압력은 가중됐다. 서레이경찰은 용의자 가운데 하나인 폴 힐을 11월28일 런던시내 아일랜드인 거주지역에서 체포했다. 그의 집을 수색했으나 폭탄등 증거물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1주일 사이에 그는 차례로 「공범」 3명이 있다는 것을 「자백」했다. 3명은 그의 친구 제라드 콘론과 패트릭 암스트롱 그리고 암스트롱(24)의 여자 친구 캐롤 리처드슨(17)이었다. 콘론은 30일 북아일랜드에서 체포돼 런던으로 압송됐고 암스트롱과 캐롤은 런던에서 검거됐다. 암스트롱과 캐롤은 길포드사건 당시 데이트중인 남녀로 점찍혔다. 힐은 이미 「폭탄제조자」를 불었다. 그들은 콘론의 아버지 주세페와 미성년자인 조카 2명을 포함한 7명이었다. 이 과정에서 힐과 콘론 그리고 암스트롱은 경찰로부터 구타ㆍ살해위협ㆍ기합ㆍ오물먹이기ㆍ가족살해협박을 차례로 받아 경찰의 각본대로 「자백」했다. 경찰은 「자백」이 유일한 증거인 만큼 고문사실을 즉각 부인했다. 그들 4명과 7명은 75년 차례로 재판에 회부돼 무기징역 등의 중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폭탄테러는 계속 일어났다. 그리고 증거가 누적되면서 마침내 75년말에는 ASU멤버가 거의 체포됐다. 이들은 법정에서 길포드사건 등의 진범임을 주장하면서 재판을 거부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길포드 4명을 구하려는 「교묘한 술책」으로 간주,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일련의 폭탄테러가 동일범소행이라는 폭탄전문가의 진술은 검찰지시에 의해 경찰기록에서 누락됐고 진범들의 진술은 일관성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묵살됐다. 77년 길포드사건 관련자들은 뒤늦게 ASU멤버들의 진술을 증거로 항소했지만 기각됐다. 세월은 흘렀다. 1980년 1월. 폭탄테러로 인해감정적 반응을 보이던 여론도 잠잠해 졌다. 이때 오래전부터 결핵으로 거의 활동을 못하던 콘론의 아버지 주세페가 병사했다. 그는 임종시 아들 콘론을 보자 산소호흡기를 떼내고는 『나는 무죄』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당시 병상을 둘러싼 경찰ㆍ교도관 등 어느 누구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한다. 주세페가 결핵으로 도저히 테러활동을 할 수 없었다고 확신하고 무죄증명작업을 벌이던 아일랜드카톨릭교회의 사라수녀는 무죄확신을 더욱 굳혔다. 사라수녀의 활동으로 영국의원들이 재조사를 촉구했다. 85년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서기장도 대처총리와의 회담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87년 영국 내무성은 마침내 재조사를 시작했고 89년 그들의 자백기록이 경찰각본의 사본으로서 자백이 유일한 증거인 사건에서 자백이 위조됐음이 드러났다. 이어서 폭탄전문가의견 조작,피고인측 반증의 일방적 묵살 사실도 드러났다. 89년 10월19일 비상항소심에서 「길포드의 4인」의 석방이 결정됐다. 영국정부는 힐에게 1만5천달러,나머지 3명에게는 7만5천달러를 배상했다. 아직도 「폭탄제조자」 6명은 석방을 고대하고 있지만 항소심은 열리지 않고 있다. 「여론재판」「무리한 수사」「엉터리 재판」이 남긴 충격은 크다. 크리스 물린 노동당의원은 『경찰은 75년 진범을 체포했을 때 이미 그들이 무죄임을 알았다』며 『잘못을 끝까지 덮기 위해 영국 사법절차의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모조리 왜곡됐다』고 개탄했다. 또 이 사건을 계기로 묵비권 보장등 개인인권의 명시적 보장을 위해 불문헌법체계의 수정과 공정한 재판을 위한 독립된 항소재판소 설치등 사법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조용히 제기되고 있다.
  • 대만,새달 3불정책 폐기/본토 직접투자도 허용

    【홍콩=우홍제 특파원】 대만당국은 오는 4월쯤 중국에 대해 지금까지 40년동안 적용해온 3불정책(담판ㆍ협상ㆍ접촉불허)의 폐기를 선언할 것이라고 10일 명보가 보도했다. 이와함께 대만당국은 중국의 복건ㆍ광동 2개성에 대한 자국기업인들의 직접투자를 허용할 방침인 것으로 이 신문은 전했다. 명보는 대만 당국이 정ㆍ부총통 선거가 끝난후인 4월쯤 이같은 방침을 천명하고 중국과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만당국은 3불정책폐기에 앞서 중국이 대만해협을 비전투지역으로 선포,무력침공위협을 완전 배제시키고 대만의 독자적인 국제활동을 보장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이 신문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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