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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일본도 동의했다...‘명예총영사’되는 조선 도공의 후예

    [단독]일본도 동의했다...‘명예총영사’되는 조선 도공의 후예

    15대 심수관, 명예총영사 임명16일 임명장 받고 정식 활동다음달 6일 현판식도 진행심수관 “멋진 작품으로 보답”조선 도공의 후예인 15대 심수관(62)이 2019년 작고한 부친에 이어 ‘주가고시마 명예총영사’로 임명된다. 일본 도자기 명가 심수관 가문이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한일 관계 복원의 ‘작은 불씨’가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11일 외교부에 따르면 15대 심수관은 오는 16일 주후쿠오카 총영사관에서 명예총영사 임명장을 받고 민간 외교사절로 활동한다. 명예총영사는 외교부 장관이 임명하며, 임기 5년에 연임도 가능하다. 다음달 6일에는 일본 가고시마현의 심수관 공방에서 현판식도 진행된다. 가고시마 주지사도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1598년 정유재란 때 왜군에 끌려간 심당길의 15대손이다. 400여년간 도자기를 빚어 온 심수관 가문은 12대 때부터 자손들이 선대 업적을 기려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그의 부친(14대 심수관)은 1989년 한일 문화의 가교 역할을 한 공로로 한국 정부로부터 명예총영사 직함을 받았다. 심수관 공방으로 들어서는 정문 왼쪽에 ‘대한민국 명예총영사관’이라는 목재 간판이 세워진 배경이다. 그러나 2019년 부친이 별세하면서 명예총영사 간판을 떼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당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한일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한국 정부도 후속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후쿠오카 총영사가 새로 바뀌면서 15대 심수관을 명예총영사로 임명하는 절차가 추진됐고, 명예영사 정책심의위원회를 거쳐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조건은 일본 외무성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후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외무성을 설득했고, 지난달 9일 일본으로부터 동의를 얻었다. 15대 심수관은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명예총영사로 임명된 데 대해 “솔직히 놀랐다”면서 “일본에는 한국에 깊은 애정을 갖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이들 중에서 새로운 명예총영사가 뽑힐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심수관이라는 이름으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 일본인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많은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생각할 것”이라면서 “해협을 건넌 아득한 고향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동일본대지진 10주년을 맞아 전날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앞으로 위로 서한을 전달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최영삼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재난으로 큰 피해와 슬픔을 겪은 유가족, 그리고 일본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범고래를 피해 남극 관광객 보트에 뛰어든 젠투 펭귄

    범고래를 피해 남극 관광객 보트에 뛰어든 젠투 펭귄

    범고래를 피해 한참이나 수면 위로 뛰어오르며 도망치던 펭귄이 관광객 보트에 뛰어드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똑같은 노란색 방한복을 차려입은 남극 관광객들은 “고! 펭귄! 고! 펭귄!”을 외치며 자그마한 젠투 펭귄의 목숨을 건 사투를 응원했다. 젠투펭귄은 황제펭귄과 킹펭귄에 이어 세번째로 몸집이 큰 펭귄이지만 키는 50㎝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능이 뛰어난 바다 속 최고의 포식자 범고래는 젠투펭귄의 최대 천적이기도 하다. 범고래는 ‘킬러 고래’란 별명 답게 펭귄뿐 아니라 다른 상어와 고래도 잡아먹는다. 남극의 겔라쉐 해협에서 배를 타고 빙하를 감상하던 관광객 가운데 매튜와 안나 카르스텐은 한 무리의 범고래들과 추격전을 벌이는 펭귄 한 마리를 목격하게 된다. 관광객들은 범고래를 구경하던 중이었지만 갑자기 펭귄이 나타나 목숨을 건 추격전 끝에 사람이 탄 보트로 도망을 친다. 한번 보트로 점프를 시도한 펭귄은 미끄러져 실패했고, 두번째 점프 끝에 보트 안으로 착지하는데 성공한다. 자그마한 몸집의 펭귄을 응원하던 관광객들은 펭귄이 구조됐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펭귄에 이어 범고래가 보트에 뛰어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펭귄은 범고래 무리가 사라지자 다시 남극의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관광객들은 범고래가 펭귄을 잡아먹는 것이 생태계 흐름의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작은 생명체가 이날 하루만큼은 범고래로부터 안전하기를 바랐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中, ‘코로나 차단‘ 자신감 반영 “올해 6%이상 성장”

    中, ‘코로나 차단‘ 자신감 반영 “올해 6%이상 성장”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통제 자신감을 바탕으로 올해 6% 이상의 국내총생산(GDP) 성장 전망을 내놨다. 올해도 주요국 가운데 ‘경제성장률 1위’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또 홍콩 선거법을 개정해 직접 통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미국 등 서구세계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4차 연례회의 업무보고에서 이러한 계획을 밝혔다. 리 총리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 이상으로 잡았다. 경제 회복 상황을 고려하고 각 분야의 개혁과 혁신, 질적 성장을 추진하는 데 유리한 환경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 경제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중국의 올해 성장 전망치는 7~8% 정도다. 중국 정부가 ‘무리하지 않고 반드시 지킬 수 있다’고 자신하는 구간을 목표치로 제시했다. 중국은 2019년 성장률 전망치를 6∼6.5%로 설정했고 실제로 6.1%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감염병 사태 불확실성을 이유로 목표 수치를 내놓지 않았고 2.3%를 달성했다. 리 총리는 경제 정상화를 위해 재정 적자 목표치를 GDP의 3.2% 내외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적자 목표치가 3.6%였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부터 서서히 적자 폭을 줄여 재정 건정성을 높이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1조 위안(약 175조원) 규모로 조성됐던 바이러스 방역 관련 정부채도 올해에는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에 소비자 물가 3% 내외, 도시 실업률 5.5% 내외로 설정하고 일자리도 1100만개 이상 창출하기로 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중국 경제가 정상 궤도로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또 중국은 홍콩·대만과의 관계에 대한 원칙을 재확인하며 국제사회에 선을 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리 총리는 “홍콩·마카오에 대해서는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을, 대만에는 92합의(‘하나의 중국’ 원칙을 각자 해석)를 충실히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홍콩과 마카오의 장기 번영과 안정 유지를 위해 민생 증진과 경제 성장을 지원할 것“이라면서도 ”두 지역의 국가안보 수호를 위해 법 집행을 확실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외부 세력이 홍콩·마카오 문제에 간섭하는 것에 단호하게 맞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만에 대해서는 ”우리는 대만과 관련한 주요 원칙과 정책인 1992년 합의와 하나의 중국 원칙의 수호, 대만해협을 가로지르는 평화로운 발전, 중국과의 재통일 촉진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어떠한 분리주의자들의 행동에도 반대한다. 이를 단호히 저지하고자 높은 수준의 경계심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중국은 미국과의 군사적 긴장 분위기에도 올해 국방예산 증가율을 2년 연속 6%대로 낮춰 설정했다. 미국과 무리한 국방비 지출 경쟁을 벌이지 않겠다는 의도다. 이날 중국 정부는 “올해 국방예산을 전년 대비 6.8% 늘린 1조 3553억여 위안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중국 국방예산 증가율은 2015년 10.1%에서 2016년 7.6%로 내려온 뒤 7.0%(2017년), 8.1%(2018년), 7.5%(2019년)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여파가 컸던 지난해에는 6.6%였다. 중국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 이상’으로 제시한 만큼, 국방비 지출도 이에 맞춰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장예쑤이 전인대 대변인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국방비 지출이 전반적으로 국가 경제의 발전 수준과 조화를 이룬다”면서 ‘국방비 지출의 적절하고 안정적인 증가세 유지’를 언급했다. 미국과의 패권 경쟁은 장기전이고 지구전인 만큼 무리하게 ‘오버페이스’하지 않겠다는 속내가 읽힌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세상이 뭐라해도,뭐라 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섬

    세상이 뭐라해도,뭐라 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섬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섬을 꼽으라면 단연 부산 가덕도일 것이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대도시 부산에 매달린 부속섬 정도로만 여겨졌던 가덕도는 이제 국민 대다수가 어떤 관점에서든 관심을 갖는 공간이 됐다. 앞으로 가덕도엔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들어서게 될까. 예정대로라면 아마 섬의 원형이 바뀌는 수준의 변형이 불가피할 터다. 섬으로서 가덕도의 ‘수명’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여행지 리스트 저 밑에 있던 가덕도를 갑작스레 맨 위로 끌어올린 건 그 때문이다. 가덕도가 관광지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2010년부터다. 가덕대교가 놓이면서 부산 강서구와 경남 창원 용호동 등에서 가덕도로 진입하는 길이 열렸다. 인근 주민들이 차로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근교 섬이 된 것이다. 2013년 부산과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가 놓이면서는 그야말로 ‘전국구’ 여행지로 떠올랐다. 널리 알려진 가덕도 여정은 외양포 등의 역사 코스, 연대봉 트레킹 등 섬 산행, 벽화마을 출사 코스 등이다. 여기에 천성항, 두문마을 등 섬 서편의 드라이브 코스를 덧붙이면 여정은 더 완벽해진다.가덕도 남단부터 찾았다. 역사 유적이 많은 지역이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이처럼 남쪽에서 북쪽으로 훑으며 올라간다. ‘시간이 멈춘 마을’ 외양포 마을이 들머리다. 마을은 쇠락했다. 타의에 의해 시간이 멈춰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속사정이 안타깝다. 외양포는 일제강점기에 마을 전체가 ‘진해만 요새 사령부’ 병영이었다. 그 역사는 한일병탄 전인 1904년 러일전쟁까지 거슬러 오른다. 당시 일본은 외양포를 대한해협 일대의 군사거점으로 삼고 주민들을 강제 퇴거시켰다. 이후 패망 직전인 1945년까지 군 주둔지로 활용했다. 해방 후 주민들이 다시 들어와 일본군 막사, 창고 등을 개조해 살았다. 하지만 일대가 군사보호지역이어서 개발 행위가 엄격히 제한됐다. 이 탓에 주민들은 일본군이 남긴 목조 건물을 보수하며 살아야 했다. 상당수의 민가 구조가 100년 전 일제강점기 때에 멈춰진 건 바로 이 때문이다.마을의 대표적인 일제 잔재는 외양포 포진지다. 이른바 ‘사령부발상지지’라 불리는 곳. 대공포 2문을 설치했던 포좌 터 3곳, 탄약고 3동, 상황실 등이 있었던 엄폐진지 등으로 이뤄졌다. 마을 안쪽은 물론 주변 산자락에도 산악보루 등의 잔재가 그대로다. 대부분 외양포 마을에서 수백m 이내 거리여서 어렵지 않게 돌아볼 수 있다. 마을 아래 가덕도 등대와 동백군락도 명소로 꼽힌다. 다만 군부대에 미리 출입신청을 해야 둘러볼 수 있다. 외양포 위에 있는 새바지 마을에도 일제가 뚫어 놓은 동굴이 있다. 연합군 상륙에 대비해 만든 벙커다. 입구는 3개지만 안은 이리저리 얽혀 있다. 현재는 코로나로 봉쇄돼 내부를 볼 수 없다. 새바지에서 대항전망대를 지나면 지양곡 주차장이 나온다. 가덕도 최고봉인 연대봉(459m) 트레킹의 들머리 노릇을 하는 곳이다. 정상까지는 지양곡 주차장에서 한 시간 정도면 넉넉하게 닿는다.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전망이 트인다. 부산, 창원, 거제 등과 연결된 요충지로서의 가덕도를 제대로 실감할 수 있다.가덕도 서쪽으로는 전망처가 많다. 섬 내 다른 관광지에 비해 덜 알려졌을 뿐이다. 툭 터진 대해와 마주하고 있어 풍경이 시원하다. 해안도로를 따라 물오른 봄바다를 보는 것도 좋고, 거가대교와 부산 신항 등 랜드마크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양곡 주차장에서 산길을 내려오다 만나는 교차로에서 천성항 방면으로 가야 섬 서편을 둘러볼 수 있다. 가덕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사실 가덕대교에서 본 부산 신항이다. 세계 10위권 무역국가인 대한민국의 진면목을 ‘직관’하기에 이만 한 곳도 없지 싶다. 큰 항구 도시에 사는 이들에겐 일상일 수 있겠지만, 외지인의 눈엔 생경하고 거대하며 압도적인 풍경이다. 성냥갑만 한 컨테이너들이 레고 블록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고, 각국 무역항의 이름을 새긴 거대한 컨테이너선들이 수시로 오간다. 이들에 비하면 수십 개 컨테이너들을 매달고 달리는 화물열차는 과장 좀 보태 옛날 ‘줄줄이 사탕’처럼 작아 보인다. 거대한 신항 한 발짝 옆으로는 놀랄 만큼 한적한 어촌이 있다. 참 대단한 대비다. 이 모습은 눌차도에서 잘 보인다. 흔히 가덕도를 하나의 섬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눌차도와 가덕도 등 두 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왕복 2차로의 천가교와 동선방조제로 연결돼 있어 하나의 섬처럼 보일 뿐이다. 눌차도 항월마을 언덕에 서면 부산 신항과 가덕대교, 바다 위를 가득 메운 굴 양식장 등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눌차도 북쪽 끄트머리는 정거마을이다. 원래는 닻거리(혹은 닻걸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바람이 심해 닻을 내리고 쉬어 가던 곳이란 뜻이다. 이를 한문으로 쓰다 보니 정거(停巨)마을이 됐다. 이 마을 이름과 상응하는 지명이 마을 동쪽의 터질목이다. 바람이 심해 배가 곧잘 터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배들이 터질목으로 나가기 전,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던 곳이 닻거리였던 셈이다. 터질목 옆은 새바지다. 조업에 영향을 주는 샛바람(동풍)을 많이 받는 곳이란 뜻이다. 바람의 영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바닷가 마을의 숙명이 이름들에서 여실히 느껴진다. 새바지와 터질목 사이엔 동선방조제가 놓였다. 이제 아무리 샛바람이 불어도 최소한 ‘배가 터질 일’은 없을 듯하다.정거마을은 벽화로 많이 알려졌다. 마을 골목과 건물 외벽마다 마을의 특색을 표현한 아름다운 벽화로 장식됐다. 사진작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인증샷을 올리려는 이들이 주로 찾는다. 마을 앞엔 진우도라는 작은 모래섬이 있다. 풀등, 풀치 등으로 불리는 서해안 쪽 모래섬과 비슷한 형태다. 물 위에 뜬 모습이 참 이국적이다. 가덕도에서 다대포 등 부산 내륙 사이의 해역에는 진우도 외에 장자도 등의 무인도가 제법 많다. 연대봉에 오르면 이런 장쾌한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글 사진 부산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한반도 통일, 일본에겐 ‘비수’ 아닌 새 미래”

    “한반도 통일, 일본에겐 ‘비수’ 아닌 새 미래”

    日, 남북 통합 ‘위협’ 인식하지만유라시아 향해서 교류 확대 기회 햇볕정책이 한반도 평화의 해답김대중 前대통령에 대한 오마주 반일·혐한 넘어 국익에 협력해야도쿄 6자회담 땐 안보 영향력 확대제목 그대로 한반도 통일과 일본의 미래, 그 상관관계를 밝히고 있는 정치비평서다. 익히 봐 왔던 ‘한국과 일본의 전략적 동맹관계’ 따위의 해묵은 주제에 국한하지 않고 한반도 전체와 일본을 대비한 점이 돋보인다. 1990년대 이후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 위기와 갈등, 평화를 위한 여러 시도들을 조목조목 정리한 게 소설을 읽듯 흥미진진하다. 이런 분석 과정을 거쳐 저자가 도달한 결론은 한반도 분단 체제의 해체다. 책은 그 당위성을 설명하는 데 대부분을 할애한다. 저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옹호론자로 보인다. 저자 스스로 책 말미에 “이 책은 어떤 의미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오마주”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다시 경색될 조짐을 보이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햇볕정책’이 해답일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 논리가 흥미롭다. 저자의 지향점인 ‘미래’의 관점에서 보면 현 한반도 주변 정세는 여간 무의미한 게 아니다. 반일과 혐한만 무한반복되는 탓이다. 한때 한반도 주변에 형성됐던 평화 무드도 찾아올 때처럼 느닷없이 사라졌다. 경색의 원인이 밥 먹듯 말을 바꾸는 북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명확하고 일관된 정책 기조 없이 북한과 교섭한 한국과 미국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일본에도 지리적 편협성에서 벗어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요약하면 이렇다. 일본엔 휴전선을 ‘이익선’(利益線)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분단의 고착화가 자국에 더 이익이라는 뜻이다. ‘통일위협론’도 있다. 남북한이 함께 일본을 압박한다거나 통일 한반도가 중국과 밀착해 대한해협에 ‘새로운 휴전선’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다. 한반도를 활의 형상으로 보고 일본열도를 찌를 수도 있다는 ‘지정학적 비수’도 여전하다. 비약이 심해 보이지만 일본인들에겐 꽤 실질적인 문제인 듯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한반도의 통일은 일본의 위협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의 출현”이라며 “이제 일본이 ‘지리적인 무대 전환’을 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미국의 학자 켄트 콜더가 ‘슈퍼 대륙: 유라시아 통합의 지정학’을 통해 일본의 적극 관여를 조언했듯 유라시아를 향해 교통과 물류, 에너지와 인적 교류를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 구축을 통해 유라시아로의 확장을 꿈꾸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북한 및 미국과의 협상이 교착에 빠졌을 때 돌파구 역할을 하는 중요한 파트너”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아울러 두 나라는 공통의 과제를 안고 있다. 안전 보장에서는 미국과, 경제적인 면에서는 중국과 균형을 맞추며 국익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국이 협력을 강화해야 할 이유다. 저자는 북미 양국 간 협의 외에도 6자회담에 대한 희망을 곳곳에서 내비친다. 단 그 무대를 베이징만이 아닌 도쿄에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다. 일본의 안전보장 비용을 줄이고 영향력도 확대할 수 있어서다. 더 나아가 6자회담에 바탕한 다국 간 안전 프레임이 제도화된다면 이를 ‘동북아판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로 발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중국의 패권 확대 야욕을 다국적 안보의 틀 안에 가두고, 미중 간의 소모적인 대립도 억제할 수 있다고 봤다.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 [서해 5도를 다시 보다 6] 북한이 바라보는 서해 5도와 수역

    [서해 5도를 다시 보다 6] 북한이 바라보는 서해 5도와 수역

    ‘내재적 접근’의 필요성 평화는 실리적 이해가 서로 얽혀 있지 않으면 모래 위의 성처럼 쉽게 무너져 내린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경제적 실리로 군사적 대결을 덮어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최근 서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행동은 그 이익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익이 있는 곳에는 경쟁이 따르기 마련이고, 나의 이익을 관철시키려면 상대방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대화와 협상을 위해서건, 백전불태(百戰不殆)를 위해서건 상대방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는 것은 중요하다. 불완전한 정전협정과 NLL 설치 정전협정은 적대행위와 무력충돌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체결되었다. 하지만 해상의 분계선은 지상과 달리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다. 서해의 경계는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道界)를 연장한 A-B 선으로만 그어졌다. 그마저 군사분계선이 아니라 섬들의 관할 기준을 나타내는 표시였을 뿐이다. 다만 서해 5도는 A-B 경계선 북쪽에 있었지만 유엔사 통제 아래 두기로 결정되었다. 북방한계선(NLL)은 유엔사 내부적으로 초계활동과 어민들의 진출 범위를 제한하여 무력충돌의 발생 가능성을 줄이고자 설치되었다. 서해 5도 주변 수역은 정전협정에 명시된 인접해면 존중 원칙에 따라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지만, 그것을 가상의 선으로 연결한 NLL은 사실 북한과 합의되거나 설정 직후 통보된 적이 없다. 실제 유엔사도 1990년대 이전까지 서해에서 충돌이 발생하면 인접해면을 침범했다고 문제 삼았지, NLL을 넘어 왔다고 항의하지 않았다. 공동어로 제안을 통한 체제 우위 과시 북한은 1955년 3월 내각 결정을 통해 12해리 영해를 선포하였다. 하지만 전쟁 직후 북한은 12해리 영해를 담보할 군사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그 사이 남한의 어민들은 해마다 5~6월이 되면 군 당국의 눈을 피해 북한 해역 깊숙이 들어가 조기를 잡았다. 북한은 어선들이 연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지만 진입하게 되면 나포하여 조사를 벌였다. 조사 과정에 어부라고 판단되면 평양 관광도 시켜주고 어선도 수리하여 돌려보냈다. 북한은 1958년부터 남한 어민들이 일정한 규칙을 지키면 어장을 개방하겠다는 제안도 하였다. 1967년까지 계속된 이 제안은 남한의 경제 수준보다 앞섰다는 체제 과시의 표현이기도 했다.해상경계선에 관한 문제제기 북한은 1973년 12월 군사정전위원회에서 해상경계선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하였다. 북한은 정전협정 어느 조항에도 “계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서해 5도에 출입하면 사전 승인을 받으라고 요구하였다. 북한이 해상경계선 문제를 제기한 것은 첫째, 북미간 직접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서였다. 1973년 11월 유엔에서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유엔군 사령관은 정전협정의 서명 주체이자 그 이행의 담보를 책임진 당사자였다. 북한은 유엔군 사령관이 사라지게 되면 정전협정이 개정되거나 평화협정으로 대체될 것을 기대하며 미국과 직접 대화를 시도했다. 북한은 서해 5도 수역이 불완전한 정전협정의 대표로 쟁점화하기 좋은 주제라고 판단한 것이다. 둘째, 중국을 겨냥한 측면도 있었다. 북한은 데탕트 시기 한반도 문제가 미중간 대화를 통해 결정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언커크 해체 문제와 관련하여 주한미군 주둔과 연계시켜 미국과 직접 대화하려는 북한의 의도와 달리 미국의 뜻대로 표결 없이 처리하는 것에 동의해 주었다. 그러자 북한은 과거 중국 어선들도 활동했던 서해5도 수역을 분쟁 지역화하고자 했다. 실제 북한은 1962년 중국과 국경조약을 체결하며 압록강 하구의 섬들에 대해서는 중국의 양보를 얻어냈지만, 영해에 관해서는 압록강 하구인 동경 124도 10분 6초의 기준선에 합의함으로써 손해를 떠안았다. 셋째, 1973년 12월 개막된 제3차 유엔해양법회의와도 관련이 있었다. 이 회의는 바다에 관한 국제사회의 규범을 제정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남북한은 분단 후 처음 유엔 무대에서 각자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했다. 즉 북한은 이 회의 개막 이틀 전에 서해 해상경계선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EEZ) 등의 설정에 있어 남한보다 우위에 서려 했다. 북한은 제3차 유엔해양법회의가 진행 중인 1977년 6월에 200해리 EEZ를, 8월에는 경계수역을 각각 선포하였다. 처음으로 논의된 NLL 문제 NLL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90년 시작된 남북고위급회담에서였다. 이 회담에서 불가침경계선 문제는 첨예한 쟁점 중 하나였다. 남한은 ‘영역’을 내세웠고 북한은 ‘선’을 주장했다. 각각의 강조점이 달랐던 이유는 NLL 때문이었다. 남한은 NLL이 이미 해상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이남의 ‘영역’을 강조한 반면, 북한은 NLL을 인정한 적이 없다며 새로운 경계선의 설정을 요구하였다. 결국 남북기본합의서 부속합의서에는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되었다. 남한은 NLL을 기준으로 한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에 방점을 둔 반면, 북한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는 점에 강조점을 두었다. 서해교전의 발발과 일방적 군사분계선의 선포 불완전한 합의는 1999년 6월 서해교전으로 이어졌다. 교전 당일 북한은 “당신 측이 멋대로 그어놓은 분계선을 인정한 적도, 통보받은 적도, 합의한 적도 없다”며 강력 반발했다. 한 달 뒤 북한은 충돌이 빚어진 것은 양측이 합의한 해상 군사분계선이 없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해상분계선 설정을 위한 회담에 나서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유엔사가 응하지 않자 1999년 9월 일방적으로 해상경계선을 선포하였다. 2000년 3월에는 후속 조치로 좌우 폭 1마일의 ‘통항질서’도 발표하였다. 북한이 선포한 해상분계선은 정전협정 상의 A-B선을 기점으로 황해도 강령반도 끝단인 등산곶과 경기도 굴업도 사이의 등거리 점, 황해도 웅도와 경기도 서격렬비도 사이의 등거리 점, 중국과의 반분 교차점을 연결한 선이었다. 북한은 이 선이 A-B 선을 기점으로 했기 때문에 정전협정에도 부합하고, 등거리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유엔해양법협약 정신에도 맞는 것이라고 하였다. 남북공동어로 구역을 둘러싼 입장 차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서해에서의 무력충돌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고자 했다. 2005년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에서 공동어로 문제를 공식 제의하였다. 김 위원장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서해에서의 긴장 완화 문제를 함께 협의하자고 제안하였다.수산협력 실무협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문제는 그것을 담보할 수 있는 군사적 조치였다. 북한은 장성급 회담에서 ① 무력충돌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해상분계선 확정 ② 공동어로 실현을 위한 군사적 대책 ③ 민간 선박의 해주항 직항 ④ 민간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를 안건으로 들고 나왔다. 그러면서 해상분계선 설정과 관련하여 남북이 기존의 모든 주장을 포기하고 통일 한반도의 영해 기선을 확정해 새로운 영해권을 내외에 선포하자고 주장하였다. 공동어로수역과 관련해서는 그 구역을 강화만 일대의 넓은 수역까지 포함하자고 제안하였다. 아울러 NLL 때문에 해주항으로 입항하는 민간 선박들이 백령도 서편으로 우회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며 제주해협 통과 문제와 함께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제주해협 통과 문제만 해운회담으로 이관되고 나머지는 모두 거부되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제안과 후속 회담의 답보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정상회담에서 서해 문제를 군사회담에서 논의하니 해결이 되지 않는다며 양 정상이 함께 풀어낼 것을 제안하였다. 노 대통령은 안보군사 지도 위에 평화경제 지도를 덮는 방식으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만들자고 역설하였다. 김정일 위원장도 노 대통령의 해주 특구 제안에 난색을 표하다가 점심 식사 후 전격 받아들였다. 그 결과 10·4 선언에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 선박의 해주 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이 명시되었다. 정상회담 직후 국방부장관과 인민무력부장 사이에 국방장관회담이 개최되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었을까, 양측은 공동어로구역의 기준점을 두고 팽팽히 맞섰다.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공동어로구역 설치를 위해 새롭게 해상경계선을 긋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NLL을 인정할테니 자신들의 해상경계선도 인정하라며 그 사이를 공동어로구역으로 삼자고 제안하였다. 반면 김장수 국방부 장관은 NLL을 기준으로 한 등면적 안을 제시하며 새로운 분계선의 설정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고 진행된 회담에서 남북은 공동어로구역의 기준점을 두고 논쟁하다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북한의 변화와 실리를 통한 평화 정착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은 2018년 판문점 선언을 통해 원론적인 차원에서 재확인되었다. 아울러 그해 가을 평양에서 체결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서 구체화 되었다. 이 합의서에는 북한이 그동안 인정하지 않았던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겠다는 조항이 포함되었다. 이 조항의 삽입은 10·4 선언 직후 공동어로구역의 기준점 설정 문제로 최종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교훈을 되새긴 성과였다. 아울러 이 조항이 삽입돼 대선 과정에 불거진 ‘NLL 포기 발언’ 시비도 불식시킬 수 있었다. 북한은 NLL을 인정하더라도 경제적 이해관계로 덮어버리면 자신들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합의서에는 “서해 남측 덕적도 이북으로부터 북측 초도 이남까지의 수역”을 군사연습 중지 구역으로 설정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은 과거 북한이 공동어로구역 범위를 협의하면서 강화만 일대까지 넓게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과 일맥상통한 것이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이 실리를 따져 본 뒤 제안을 받아들인 사실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판문점 선언과 평양 선언의 실무 책임자가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1990년대 남북고위급회담부터 10·4 선언 이후 장성급 회담까지 NLL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새로운 해상분계선 설정을 요구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가 실무 책임을 맡은 회담에서 NLL을 인정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이처럼 북한도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를 포착하여 서로의 이해관계를 얽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평화는 실리적 이해가 얽히지 않으면 모래 위의 성처럼 쉽게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갈등과 분쟁의 서해를 평화와 경제의 바다로 변화시키는 봄바람이 불어오길 바란다.
  • [다이노+] 2층버스 크기 두 배…우즈벡서 1억 년 전 거대 신종 공룡 발견

    [다이노+] 2층버스 크기 두 배…우즈벡서 1억 년 전 거대 신종 공룡 발견

    약 1억 년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서식한 2층 버스 두 배 크기의 거대한 신종 공룡의 존재가 화석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러시아과학원 동물학연구소와 미국 스미스소니언연구소 국립자연사박물관 공동연구진은 우즈베키스탄 중부 키질쿰 사막 다르라쿠두크 지역에서 발굴한 꼬리 뼈 화석이 신종 용각류임을 알아냈다. 발굴 지명과 이 연구의 기여자로 2015년 사망한 지질학자 고(故) 크리스토퍼 킹 박사를 기리기 위해 다르라티타니스 킹기(이하 D. 킹기·Dzharatitanis kingi)라는 학명이 붙여진 이 공룡은 몸길이가 약 20m로 추정되는데 쥐라기 후기 북아메리카에서 서식한 몸길이 24~27m, 몸무게 10~20t의 거대 용각류인 디플로도쿠스와도 근연 관계에 있다.화석은 ‘공룡의 묘지’로도 불리는 키질쿰 사막의 비섹티 지층에서 발굴됐다. 이 지층에서 발굴된 화석은 대부분 분리돼 있지만, 종종 이번 꼬리 뼈처럼 보존 상태가 양호한 척추 동물의 화석이 발굴되기도 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D. 킹기는 용각류 특유의 긴 목에 작은 머리와 연필 자루처럼 생긴 뾰족한 이빨을 갖고 있어 높은 나무에 있는 나뭇잎까지 가지채 뜯어먹었고 거대한 뼈대는 기둥처럼 생긴 뚜꺼운 네 다리로 지탱했다. 이 공룡은 레바키사우루스과(rebbachisaurid)에 속하는 새로운 속이자 새로운 종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코끼리 14마리분과 맞먹는 몸무게를 지닌 레바키사우루스과 공룡은 지금까지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그리고 유럽 일대에서 발굴된 사례가 있지만, 이번처럼 아시아 지역에서 발굴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연구 주저자인 러시아 동물학연구소의 알렉산드르 아베리아노프 박사는 “이 종은 아시아에서 처음 보고된 레바키사우루스과 공룡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화석 기록 가운데 가장 최근의 것 중 하나”라면서 “이 종은 다른 모든 용각류처럼 초식을 했고 다른 여러 공룡과 함께 복잡한 환경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레바키사우루스과 공룡에 관한 모든 기록은 남아메리카 최남단에서 북동부 그리고 아프리카 북서부를 거쳐 유럽까지 뻗어 있는 좁은 이동 경로에서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아베리아노프 박사는 “레바키사우루스과는 주로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존재했기에 이번 발견은 흥미롭다. 아시아 최초의 레바키사우루스과인 D. 킹기의 발견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이 그룹의 분포는 동쪽으로 상당히 확장했다”면서 “이번 발견은 대륙들이 백악기 초기에도 여전히 이어져 있었다는 생각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D. 킹기는 백악기 말 아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 끝에 있는 테티스해(Tethys Ocean) 근처 해안 평야에서 살았다. 테티스해는 유럽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동남아시아 사이에 있는 거대하고 얕은 수역이었다. 이 종은 아마 유럽에서 중앙아시아로 뻗어나갔을 것이지만,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백악기 대부분의 기간 아시아는 투르가이 해협(Turgai Strait)이라고 불리는 물 줄기에 의해 유럽과 분리됐지만 두 대륙 사이에 육지로 연결된 곳은 존재했다. 이에 대해 아베리아노프 박사는 “레바키사우루스과는 투르가이 해협을 가로지르는 ‘육교’를 통해 유럽에서 아시아로 흩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D. 킹기의 시대에 살았던 다른 공룡 중에는 수각류인 ‘티무를렌지아’(Timurlengia)가 존재했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티렉스)의 조상으로 몸집이 작았던 이 육식 공룡은 같은 지역에서 5년 전 발견됐었다. 따라서 이들 포식자는 중앙아시아에서 D. 킹기와 같은 초식 공룡을 사냥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 공동저자로 티무를렌지아 연구에도 참여했던 미국 국립자연사박물관의 한스 수스 교수는 “티무를렌지아는 가늘고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민첩한 사냥꾼이었다”면서 “이 종은 아마 다양한 거대 초식 공룡을 사냥했을 것인데 특히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초기 오리부리 공룡이 주식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 최신호(2월 24일자)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25일 원코리아국제포럼, 바이든 정부 출범 후 첫 한반도 관련 국제회의

    25일 원코리아국제포럼, 바이든 정부 출범 후 첫 한반도 관련 국제회의

    빅터 차, 에드윈 퓰너, 로버트 갈루치, 김 영 등 한반도 전문가들이 25일 2021 원코리아 국제포럼에 참여한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출범한 뒤 처음으로 두 나라 정치권 인사, 씽크탱크 전문가, 시민사회 대표들이 화상으로 만난다. ‘새로운 미국 행정부와 한미동맹을 위한 선택’이라는 주제로 이날 오전 9시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호텔 아젤리아스 홀에서 온라인으로 개최되는데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와 달리 동맹 재건과 관여주의를 표방한 바이든 행정부와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지속하려는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정책적으로 협력해나갈지 심도있게 논의할 예정이다. 한미의원 라운드테이블에는 미국 연방하원 8선 의원인 G K 버터필드 원내 부총무(민주당), 영 김 연방하원의원(공화당), 조태용 국회의원(국민의힘),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이 발표자로 참여한다. 한반도통일정책포럼은 오전 10시부터 제니타운 스팀슨센터 38노스 부국장의 사회로 진행된다. 빅터 차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 이현승 북한 컨설턴트가 발표자로 함께 한다. 이날 포럼은 에드윈 퓰너 해리티지재단 창설자 겸 전 회장과 서인택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 공동상임의장의 폐회사로 마무리된다. 원코리아 국제포럼은 2016년부터 한반도 관련국의 정치, 씽크탱크, 학계, 시민사회 대표들이 참여해 한반도 평화통일을 최종 목표로 상정하고 안보와 비핵화, 경제번영 및 인권 등 한반도와 관련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국제포럼이다. 금번 포럼은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 글로벌피스재단, 원코리아재단(이사장 류재풍), 미주통일연대가 공동 주최하고 거붕그룹이 후원한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한인애국단 핵심 3인방 중 ‘여전사’… 윤봉길·이봉창 의거 숨은 조력

    한인애국단 핵심 3인방 중 ‘여전사’… 윤봉길·이봉창 의거 숨은 조력

    1919년 14살 나이에 평양 3·1운동 참여상하이 김구 찾아가 ‘밀정’ 처단 등 앞장윤봉길 의거 이후 김구와 이념 갈등 심화‘백범일지’에도 독립운동 전혀 언급 없어 김원봉 창건 조선의용군 ‘부녀대장’ 맡아6·25땐 인민군으로 참전해 남한서 외면이화림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독립운동가가 있다. 이화림은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함께 백범 김구 선생이 만든 한인애국단의 핵심 3인방 중 한 사람이었다. 두 의사를 도와 의거를 성공으로 이끈 이화림은 공식적으로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화림의 역할이 조역(助役)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상적으로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이화림은 님 웨일스의 ‘아리랑’ 주인공이자 동갑내기인 김산과 자주 비교된다. 1932년 4월 29일 아침 중국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 기념행사 겸 일본의 상하이 침공 승리 기념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봄 코트를 입은 남자와 양장 차림을 한 젊은 여인이 식장 입구에 나타났다. 도시락과 물통을 든 남자가 행사장 안으로 무사히 들어가는 것을 100m 떨어진 곳에서 확인한 여인은 골목으로 사라졌다. 남자는 윤봉길 의사였고 윤봉길이 삼엄한 검문검색을 통과하도록 도운 27세의 여성이 바로 이화림이었다. 기념식이 시작되자마자 요인들이 늘어선 단상으로 윤 의사가 던진 물병 폭탄으로 식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상하이 일본인 거류민단장과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가 즉사했다. 중장 노무라는 눈을 잃었다. 일본 패전 후 미주리함에서 일본 외무대신 자격으로 항복문서에 조인했던 시미게쓰 당시 주중 공사 등 수십명은 중상을 입었다.●윤봉길 의사 훙커우공원 검문검색 통과 도와 거사 직전 이화림은 세 살 적은 윤봉길과 김구 앞에서 애국단 단원으로서 선서를 했다. 원래 윤봉길과 이화림은 부부로 변장해 식장에 들어가기로 했었다. 두 사람은 사전답사를 하며 거사 지점까지 잡아 놓았다. 그러나 둘이 함께 움직이면 발각될 염려가 있다는 김구의 의견에 따라 윤 의사 혼자 거사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화림은 훗날 회고록에서 “추풍낙엽이 지듯이 일본놈들이 우수수 떨어졌다”고 썼다. 석 달 전 이화림은 이봉창 의사의 의거도 도왔다. 이봉창은 일왕을 폭탄으로 죽일 계획을 세웠는데 문제는 폭탄을 일본으로 몰래 갖고 갈 방법이었다. 김구와 이봉창, 이화림이 밤새 고민한 끝에 생각해 낸 방법이 이봉창의 속옷(훈도시)에 숨겨 가는 것이었다. 이봉창의 속옷에 비밀 주머니를 달아 준 이가 이화림이었다. 그 덕에 이봉창은 삼엄한 감시를 뚫고 대한해협을 건널 수 있었다. 이봉창이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화림은 오열했다.이화림은 1905년 1월 6일 평양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이춘실이며 두 오빠도 일찍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화림도 14세의 나이에 3·1운동에 참여하며 항일운동에 뜻을 두었다. 중학교를 거쳐 평양 유치원교원학교를 나와 유치원 교사로 잠시 일하며 조선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하던 이화림이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몸을 던진 것은 1930년이었다. 망명을 앞둔 막내딸 이화림에게 어머니는 눈물을 감추고 정몽주를 떠올리는 시를 선물로 주며 격려했다. “나는 죽을지언정 굴복하지 않고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리라. 비록 내가 죽을지라도 나의 영혼은 영원히 인간 세상에 존재할 것이다.” 상하이로 간 이화림은 김구가 만든 한인애국단에 가입해 김구와 함께 조선인 밀정을 죽이기도 했다. 그러고는 거사를 벌일 기회를 엿보았다. 두 의사의 의거 후 이화림은 김구를 떠났다. 테러가 아닌 조직적인 무장 투쟁만이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우파인 김구도 코뮤니스트인 이화림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화림은 김원봉이 이끌던 의열단의 추천으로 광저우 중산대학에 입학했다. 법대에 들어갔다가 몇 년 후 신분을 감추기 용이한 의대로 바꾸었다. 1935년 의열단을 포함한 좌익 계열의 조선민족혁명당이 결성됐고 윤세주의 연설에 감동한 이화림은 1937년 1월 민혁당에 가입했다. 1938년 10월 김원봉이 조선의용대(조선의용군)를 창건하자 이화림은 부녀대(부녀복무단) 부대장을 맡았다. 대장은 김원봉의 부인 박차정이었다. 조선의용군은 좌파 연합인 조선민족전선 산하의 한인 군사조직이었다. 조선의용군은 적을 상대로 한 선전 활동, 포로 신문 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전투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중국 국민당에 배속된 선전대여서 대원들은 국민당의 소극적인 항일 투쟁에 불만이 많았다. 그런 이유 등으로 조선의용군은 1939년 10월 화베이행을 결정한다. 의용군은 모택동의 팔로군 지휘 아래 타이항산맥에서 일본군과 싸웠다.●“이화림은 혁명에 충직했던 여류혁명가” 이화림은 일본군 바로 앞에서도 두려움이 없었고 적진 깊숙이 쳐들어가 선전과 삐라 살포에 앞장섰다. 체구는 작았지만 남자보다 용감했다. 중산대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진광화의 소개로 간부훈련반을 마친 이화림은 부녀대장이 됐다. 진광화는 타이항산맥 전투에서 윤세주와 함께 전사했다. 당돌한 이화림이 남자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조선의용군 출신 최후의 분대장이자 옌볜 작가였던 김학철의 책에 쓰여 있다. 이화림을 곁에서 지켜봤던 김학철은 이화림을 혁명에 충직했던 여전사이며 여류혁명가라고 평가했다. 중산대학 법대생 김창국과 결혼했다 이혼한 이화림은 이집중(본명 이종희)과 재혼했다. 이집중은 조선총독부의 밀정이며 김활란의 형부인 김달하를 중국에서 처단한 인물이다. 공산주의자라기보다 진보적 민족주의자였던 이집중은 화북행을 거부하고 김원봉과 함께 한국 광복군으로 편입됐다. 이런 이념적 차이 등이 원인이 돼 이화림은 또 이혼했다. 이후 이화림은 조선의용군 병원에서도 일했고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1월에는 혁명사업의 일환으로 의학 공부를 해야 한다는 명을 받아 중국의과대학에 들어갔다. 의대 재학 중에 종전이 됐고 이화림은 학업을 계속해 의대를 마쳤다. 중국에 있던 한인 항일운동가들이 광복 후 남북으로 갈라진 조국의 한 곳을 택해 귀국했지만 이화림은 중국에 남았다. 이화림은 옌볜의학원에서 근무하기도 했고 하얼빈에서 의사로 활동했다. 그럴 즈음 6·25가 터지자 조선인민군 제6군단 위생소 소장으로 참전했다. 그러나 폭격으로 부상을 당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선양의사학교 부교장, 중국 교통부 위생기술과 간부, 옌볜 조선족 자치주 위생국 부국장 등 주로 만주의 공공 의료 분야에서 조선족을 위해 일했다. 중국의 극좌 사회주의 운동인 문화혁명을 이화림도 피해 가지 못했다. 이화림은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고초를 겪었다. 마오쩌둥 사후 이화림은 명예를 회복했지만 건강이 악화됐다. 말년을 다롄에서 요양하던 이화림은 1999년 2월 10일 세상을 떠났다.●中 문화혁명 때 ‘반혁명분자’ 낙인찍혀 고초 이화림의 조선족 사랑은 지극했다. 검소하게 살며 모은 돈으로 조선족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거금을 기부했고 조선족 아동문학작가들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기도 했다. 임종 직전에도 자신의 전 재산 5만 위안을 다롄시 조선족학교에 기부했다. 김구는 이화림의 투쟁 정신은 높이 샀지만 그의 사상은 싫어했다. 이화림은 백범일지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념적 차이로 김구가 고의로 언급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화림에게는 인민군 간호장교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주홍글씨 같은 전력이 있어 남한에서는 철저히 외면받았다. 이화림 외에도 일본군과 싸우던 수많은 조선의용군 출신들이 인민군의 일원이 돼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인민군 보병부대원의 47%가 조선의용군 출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김일성은 권력투쟁을 일으켜 옌안파를 숙청했듯이 조선의용군을 내팽개쳤다. 조선의용군은 남북에서 모두 버림받은 것이다. 중국에서만 중국 옌볜작가협회가 ‘화림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는 등 이화림을 기리고 있다.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대한항공마저도…‘하늘 위 호텔’ 타고 무착륙 국제관광비행

    대한항공마저도…‘하늘 위 호텔’ 타고 무착륙 국제관광비행

    대한항공이 오는 27일 무착륙 국제관광비행 상품을 내놓는다고 19일 밝혔다. 앞서 아시아나항공 등 다른 항공사가 선보인 바 있는 관광상품으로 대한항공에선 처음이다. ‘하늘 위 호텔’이라고 불리는 항공기 ‘A380’에 탑승해 오전 10시 30분 인천공항을 출발해 강릉, 동해안, 부산, 대한해협, 제주 상공을 비행한 뒤 오후 1시에 다시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한 내국인만을 대상으로 판매한다. 비행 당일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의 무착륙 관광비행 전용 동선을 이용한다. 국제선 항공편과 같은 출입국 절차를 진행하므로 여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기내 취식 금지 지침에 따라 기내식, 음료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다. 기내면세품은 사전 구매만 가능하다. 퍼스트클래스 12석, 프레스티지클래스 47석, 이코노미클래스 164석 등 총 223석을 운영한다. 모든 탑승객을 대상으로 상위 클래스 체험이 가능한 어메니티와 KF94 마스크 3매, 손 세정제 등 세이프티 키트를 제공한다. 각 클래스별 대한항공 탑승 마일리지도 나온다. 퍼스트클래스와 프레스티지클래스 탑승객은 인천공항 제1터미널 대한항공 라운지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국내호텔 할인쿠폰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상품과 혜택 관련 자세한 내용은 여행사 ‘더현대트래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상품 판매는 25일 오후 1시까지 진행하지만 선착순 조기 마감될 수 있다. 대한항공은 다음달에도 6, 13, 27일 세 차례에 걸쳐 무착륙 관광비행 상품을 운영할 계획이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경적 울리자 살해협박” 도로서 차 막고 흉기 휘두른 60대

    “경적 울리자 살해협박” 도로서 차 막고 흉기 휘두른 60대

    도로에서 차량을 가로막은 뒤 운전자에게 흉기를 휘두른 6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전남 목포경찰서는 특수협박 혐의로 A(62)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18일 밝혔다. A씨는 전날 오전 8시 58분쯤 전남 목포시 상동 한 도로에서 주행 중이던 차량을 가로막은 뒤 사전에 준비한 흉기를 운전자 B씨에게 휘두르며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A씨는 아무런 이유 없이 차량 앞을 가로 막았고, B씨가 “비켜라”라며 경적을 울리자 흉기를 휘두르며 살해 협박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A씨를 구속하는 한편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클럽하우스 뭐길래? “中초대장 받는 강좌만 154만원”(종합)

    클럽하우스 뭐길래? “中초대장 받는 강좌만 154만원”(종합)

    “중국, ‘금지된 대화’ 접속차단 시간문제”대만·홍콩·신장 위구르 인권문제 토론 활발“中초대장 받는 강좌만 154만원”초대장 코드, 400위안(약 7만원)까지 거래 미국 오디오 전용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가 최근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당국이 곧 이에 대한 접속차단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클럽하우스가 대만과 홍콩, 신장 위구르 인권문제 등 중국 정부가 금기시하고 있는 주제에 관한 토론의 해방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에서 클럽하우스는 당연히 폐쇄될 것이며 이는 단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중국에서는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지난 1일 클럽하우스의 토론에 참여하는 등 화제가 되면서 이 앱 사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 클럽하우스는 가상사설망(VPN)을 통한 우회방식이 아니어도 접속이 가능했으며, 대만해협이나 위구르 소수민족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방에 수천명씩 모여들었다고 전했다. 동시에 순전히 중국중앙(CC)TV 메인뉴스인 신원롄보를 재방송하는 방도 개설돼, 중국 당국의 존재감도 클럽하우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SCMP는 클럽하우스의 인기에 대해 “민감한 정치 주제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희귀한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며 “같은 이유로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철저히 금지하는 주제에 대한 공개토론을 인내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SCMP는 “이미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등을 금지한 중국 당국이 클럽하우스를 얼마나 용인할 것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클럽하우스에 이를 주제로 한 방까지 개설됐다”고 전했다.초대장 받는 강좌만 154만원…중국에서 난리 난 클럽하우스 클럽하우스는 2020년 4월 출범한 소셜미디어로, 문자나 영상이 아닌 음성으로 대화하고 기존 가입자의 초대장을 받아야 가입할 수 있다. 클럽하우스는 지난해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의 전직 구글 개발자 폴 데이비슨과 로한세스가 개발했다. 애플 아이폰 버전만 베타 서비스 중으로 중국 애플 앱스토어에서는 다운로드를 받을 수 없다. 중국 네티즌들은 별도 해외 앱스토어 계정을 만들어 다운로드를 받아 사용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클럽하우스 이용자들은 정보통신·미디어·문화 연예·학술계·금융계 등 교육 수준이 높은 전문가 위주라고 전해졌다. 중국에서는 클럽하우스 가입에 필요한 기존 가입자의 초청 코드 얻는 법 등 사용 방법을 담은 동영상 강좌가 8888위안(154만원)에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에 올라왔다. 또 클럽하우스 ‘초대장 코드’가 알리바바의 전자상거래 사이트 타오바오에서 400위안(약 7만원)까지 거래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바이든 시대 대만 해상훈련, 미중 충돌 시험대 되나

    바이든 시대 대만 해상훈련, 미중 충돌 시험대 되나

    올해 들어 중국 군용기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30차례 넘게 진입하는 등 양안(중국과 대만) 간 긴장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가운데 미국의 정권 교체 직후 대만의 요청으로 이뤄지는 미·대만 해상 군사훈련이 양대 강국(G2)의 군사 충돌 위험을 시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만을 수호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 악화도 막아야 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딜레마가 ‘대만 군사훈련’(Taiwan war games)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일(현지시간) “대만 군사훈련이 미중 충돌 위험을 높이고 있다”며 “중국 군용기가 바이든 대통령 취임 뒤 3일 만에 대만해협 인근 미 항공모함 주변에서 미사일 발사 훈련을 했다. 이런 상황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려고 한다’는 오해를 키워 자칫 일촉즉발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전했다. 앞서 미 해군 이지스함 ‘존 매케인’은 지난 4일 중국의 반발에도 대만해협을 통과했다. 다음날에도 남중국해 파라셀제도(중국명 시사군도) 인근에서 ‘항행의 자유’를 행사했다. 최근 중국이 끊임없이 대만을 위협하자 이를 견제해 달라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이에 대해 중국군 남부전구의 톈쥔리 대변인은 “존 매케인함이 파라셀제도에 무단 난입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고조된 미중 갈등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뒤에도 ‘허니문’ 없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FT는 “지난 25년간 중국 인민해방군은 크게 성장해 일부 분야에서는 미국에 필적할 만한 세력이 됐다”면서 “그럼에도 중국의 대만 침공은 여전히 성공하기 힘든 군사작전”이라고 설명했다. 이 지역을 오가는 항공기와 선박이 너무 많아 오폭 사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은 항공기 격추나 선박 침몰이 자칫 세계대전급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다 보니 대만의 요청으로 이뤄지는 군사훈련이 결과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의지를 동시에 확인하는 가늠자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中 견제하는 美, 첫 쿼드 정상회담 추진… 블링컨 “인권 탄압 경고”

    中 견제하는 美, 첫 쿼드 정상회담 추진… 블링컨 “인권 탄압 경고”

    日언론 “美·日·호주·인도 화상회담 타진”정상회담 中압박 효과… 인도 동의 변수블링컨 “민주적 가치 지지” 첫 통화 설전양제츠 “홍콩·신장 외부 간섭 용납 못 해”미중 외교 수장급이 첫 통화에서 설전을 벌인 데 이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첫 ‘쿼드’ 정상회담을 화상으로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며 양국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민주주의 동맹을 구축해 압박하는 바이든식 가치 전쟁에 중국이 어떻게 맞설지가 관건인 상황이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은 7일 안보협의체인 쿼드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중국의 해양 진출에 관한 대응이 초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일본·호주·인도 등 4개국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실현을 위한 협력에 나설 거란 의미다. 지금까지 쿼드 외교장관 회의만 두 번 열렸기 때문에 정상회담 격상만으로도 중국 압박 효과는 클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비동맹국인 인도의 동의가 변수다. 하지만 이날 미 인도태평양사령부는 B1B 폭격기 1대가 지난 3일 인도 벵갈루루 기지에서 열린 ‘에어로 인디아’ 에어쇼에 참가했다고 전했다. 에어쇼임에도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가 75년 만에 인도에 착륙한 것은 대중 압박을 위해 미국·인도 간 관계가 밀착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전날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과의 첫 통화에서 “미국이 신장, 티베트, 홍콩을 포함해 인권과 민주적 가치를 계속 지지할 것임을 강조하고 버마(미얀마) 군사 쿠데타를 비판하는 국제사회에 중국도 동참할 것을 압박했다”고 국무부가 전했다. 또 동맹을 통해 “대만해협을 포함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중국에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쿼드의 격상이나 인권·민주적 가치 강조 모두 미국이 ‘민주주의 동맹 대 공산주의 중국’이라는 가치 전쟁의 구도로 대중 압박을 전개할 것임을 시사한다. 중국도 이날 중국중앙(CC)TV 등을 통해 이들의 통화 사실을 알리면서 양 정치국원의 강경 발언만 부각시켰다. 그는 “현재 중미 관계는 고비”라면서 “양국은 서로의 핵심 이익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만 문제는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으로 중국의 주권과 영토가 걸려 있다”며 “미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3대 연합 공보(대만 무기 판매 감축 등 골자)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또 “홍콩과 신장, 시짱(티베트) 이슈는 중국의 내정으로 외부 세력의 간섭을 용납하지 않는다”면서 “중국은 주권과 안전을 확고히 수호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보름이 지나 이뤄진 양국 외교 수장의 통화는 난타전으로 마무리됐지만, 정상 간 통화 일정을 조율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동맹 압박’ 시도에 중국도 반격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7일 “중국 해경국 선박이 영토 분쟁 중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인근 영해를 이틀 연속 침범했다”고 발표했다. 전날에도 해상보안청은 “중국 해경선이 자국 해경법 발효 뒤 처음으로 센카쿠열도 인근 영해를 침범했다”고 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주한미군 U-2S 고공정찰기 또 대만해협 출격

    주한미군 U-2S 고공정찰기 또 대만해협 출격

    주한미군에 배치된 U-2S(드래건 레이디) 고공정찰기가 또다시 대만해협 인근 상공까지 출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3일 항공기 추적사이트 ‘에어크래프트 스폿’(Aircraft Spots)에 따르면 전날 경기도 오산기지에서 출발한 U-2S가 대만해협 인근 동중국해 상공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주한미군 소속 U-2S가 미중 갈등 해역인 대만해협 인근 상공에 투입돼 언론이나 민간 항공기 추적 사이트에 노출된 것만 지난해 12월 이후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해 12월 10일 미중 간 군사적 긴장이 첨예한 남중국해와 대만 상공에서 위치가 식별된 적 있고, 지난달 25일에도 대만해협을 지나 남중국해까지 U-2S가 진입했다고 홍콩 언론이 보도했다. 주한미군 전력이 잇따라 대만해협으로 전개한 것을 두고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 의지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미국의 대중 압박 전초기지로 주한미군 기지가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 반발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미중 양국의 군용기 출격이 이어지는 등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U-2S는 최대 25㎞ 상공에서 7∼8시간가량 비행하면서 지상·해상 시설과 장비 움직임을 촬영하고 통신을 감청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 정찰기로 수집된 정보는 미 태평양공군사령부와 주한미군 한국전투작전정보센터(KCOIC), 한미연합분석통제본부(CACC) 등에 제공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씨줄날줄] 한일 해저터널/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한일 해저터널/이동구 수석논설위원

    덴마크와 독일은 몇 년 후 해저터널로 연결된다. 지난해 10월 두 나라를 잇는 발트해 해저터널 공사가 시작됐다. ‘파마른벨트 터널’로 명명된 이 터널이 2029년 완공되면 두 나라 국민은 기차와 자동차 여행이 가능하다. 10분이면 두 나라를 드나든다니 덴마크나 독일뿐 아니라 북유럽 국가들이 하나 된 유럽연합(EU)을 더 실감할 것이다. 총길이는 18㎞에 불과하지만 사업이 착공되기까지는 10여년이 걸렸다. 안전성과 환경영향평가, 재정 문제 등이 걸림돌이었으나 양국은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영·프 해저터널은 1995년 개통됐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1986년 서명한 건설협정에 따라 7년여 만에 완공됐다. 도버해협의 최단거리인 프랑스 칼레와 영국 포크스턴 사이의 해저 약 50㎞를 3개의 해저터널로 연결, 영국과 프랑스는 35분 거리로 가까워졌다. 파리와 런던을 3시간에 연결하는 고속전철 ‘유러스타’의 탄생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유럽 전체를 하나로 묶은 EU 탄생에도 해저터널은 큰 역할을 했다. 부산과 후쿠오카를 잇는 대한해협에 해저터널을 건설하자는 주장은 1917년 일본 군부가 처음 제기했다. 대륙 침탈을 위한 불순한 의도였으니 현실화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이후에도 일본에서는 여러 차례 적극적인 논의가 있었으나 한국에서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국내에서 대한해협 해저터널이 본격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 때.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5월 일본 국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해저터널의 필요성을 거론했고, 당시 일본 가이후 총리도 찬성의 뜻을 표명하면서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이후 김대중, 이명박 정부 때도 사업 추진이 거론됐으나 그때마다 찬반 논란만 키운 채 실행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양국 간의 과거사 문제와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걸림돌이 됐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이 또다시 대한해협 해저터널 건설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야권에서 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약으로 한일 해저터널 방안을 꺼내자 여권이 친일 프레임으로 공세를 퍼붓고 있다. 최근 불거진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 의혹을 ‘이적행위’ 등 좌익 프레임으로 공격한 야권에 대한 역공인 셈이다. 보궐선거가 끝나면 해저터널 논란은 조만간 또 사그라들 공산이 크다. 더구나 징용병과 위안부 보상, 독도 영유권 등 과거사 문제가 답보 상태에 있으니 해저터널이 현실화되기엔 하세월이다. 후손의 미래와 대륙의 평화를 위해 한일 양국이 해저터널에 합의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까. yidonggu@seoul.co.kr
  • 이란 “구금된 한국 선원 석방”

    이란 “구금된 한국 선원 석방”

    이란 정부가 환경오염을 이유로 한 달 가까이 억류한 한국 선박의 선원들을 풀어주기로 했다. 한국인 선원 4명을 비롯해 총 19명이 귀국길에 오른다. 다만 한국인 선장과 선박은 사법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현지에 남는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2일(현지시간)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페르시아만에서 환경오염을 일으킨 혐의로 억류한 한국 선원들이 인도주의적 조처에 따라 출국 허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날 세이에드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부 차관도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의 통화에서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이란 남부 반다르아바스항에 억류된 화학운반선 ‘한국케미’호에는 한국인 5명, 미얀마인 11명, 베트남인 2명, 인도네시아인 2명이 타고 있었다. 최 차관은 “선장과 선박도 조속히 억류에서 해제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이란 측에 요구했다. 이에 이란 측은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인 동안 한국인 선장에 대한 인도적 처우와 충분한 영사 조력을 보장하기로 했다. 앞서 이란 혁명수비대는 지난달 4일 호르무즈해협의 오만 인근 해역에서 해양을 오염시켰다는 이유로 한국 국적 선박을 억류했다. 최 차관이 70억 달러(약 7조 6000억원) 규모의 동결자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란을 방문하기로 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란은 “동결자금과 선박 억류는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국 정부도 ‘분리 대응’ 원칙을 세우고 이란 측에 조속한 선박 억류 해제를 요청하면서 29일 만에 성과를 내게 됐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선박 억류 한 달여만에...이란 “한국 선원 석방 허용”

    선박 억류 한 달여만에...이란 “한국 선원 석방 허용”

    지난달 4일 걸프해역에서 억류“인도주의적 조처에 따라 출국”70억불 동결자금 급물살 타나이란 외무부가 환경오염을 이유로 한 달여 동안 억류한 한국 선원들의 출국을 허용하기로 했다. 선박관리인력을 제외한 선원 모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2일(현지시간)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페르시아만(걸프 해역)에서 환경오염을 일으킨 혐의로 억류한 한국 선원들이 인도주의적 조처에 따라 출국 허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앞서 이란 사법부는 지난달 4일 혁명수비대를 동원, 해양을 오염시켰다는 이유로 걸프 해역 입구의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국적 화학운반선 한국케미호를 억류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한국 내 은행에 이란의 원유 수출 대금 70억 달러(약 7조 6000억원)가 동결돼 있는 상황에서 ‘선박 억류’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한국 정부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지난달 10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이란을 방문, 주요 인사들과의 면담을 통해 조속한 선박 억류 해제를 요청했다. 이란은 동결자금과 선박 억류는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최근 “한국에 동결된 이란 자산을 해결하면 선박 석방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면서 한국과의 관계 개선 여지를 남겼다. 한국 정부는 ‘스위스 인도적 교역채널’(SHTA)로의 자금 이전 방식을 통해 동결자금을 우선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정부가 제재 면제 승인을 하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中 군용기 시위에 美 정찰기 출격… 대만해협 긴장

    中 군용기 시위에 美 정찰기 출격… 대만해협 긴장

    중국이 새해 들어 하루를 빼고 대만의 방공식별구역(ADIZ)에 매일 군용기를 진입시킨 가운데 급기야 미군 정찰기도 이 해역에 동시 출격했다는 사실이 중국과 대만 언론에 1일 보도됐다. 앞서 중국이 대만해협으로의 군용기 출격은 미국을 향한 시위라는 점을 분명히 한 상태에서, 대만은 미국이 군사적으로 자국을 여전히 돕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대만해협을 둘러싼 긴장감이 어떤 단계까지 상승돼 있는지를 보여 준다. 대만 국방부는 지난달 31일 중국 전투기 등 군용기 6대가 남중국해 프라타스 군도 대만 방공식별구역 서남부에 진입했다고 발표하면서 미국 정찰기 1대도 그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중국의 ADIZ 내 군사활동을 지난해 9월 중순부터 거의 매일 발표한 대만이 미국 군용기의 활동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대만이 미국의 군사 활동을 인정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중국은 지난달 28일 우첸 중국 국방부 대변인을 통해 “‘대만 독립’은 곧 전쟁을 의미한다”고 경고 수위를 최고조로 높인 상태다. 이에 미국 국방부 존 커비 대변인은 “우리는 대만의 자기방어를 도울 의무가 있으며 이는 계속될 것”이라고 맞받았고, 미군 인도·태평양 사령부는 지난달 29일 “남중국해 지역에서 중국 해·공군을 빈틈없이 감시하고 있다”고 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9일 미국평화연구소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중국에 대가를 치르게 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지운 전문기자 jj@seoul.co.kr
  • 한·이란 가교 역할 맡은 천정배 “이란이 원하는 건 한국과 교역 재개”

    한·이란 가교 역할 맡은 천정배 “이란이 원하는 건 한국과 교역 재개”

    미국 제재보다 지나친 조치에 실망감 키워이란, 차관 방문 한 달 내 건설적 제안 기대이란 행정부가 강경파 의회 압박 막고 있어스위스 채널 성사되면 ‘코로나 피해’ 큰 도움이란 진출 중소기업 3억불 미수금 확보 노력연초부터 ‘선박 억류’라는 악재를 만난 한국 정부는 이란을 설득하기 위해 실무 대표단을 보내 협상을 시도했지만 아직까지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란은 미국 제재로 인해 한국 내 은행에 묶여 있는 원유 수출 대금 70억 달러(약 7조 6000억원)부터 해결하라고 압박하는 상황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과 이란의 관계 개선 조짐이 보이지만 미국 제재가 완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선박 억류와 동결 자금 그리고 이란과의 관계 개선 등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한국 정부는 과연 이란에 만족스러운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6선 의원 출신 천정배(67) 한국이란협회 이사장을 만나 해법을 들어봤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한국이란협회에는 전직 대사, 교수, 법조인, 기업인 등 이란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지난 29일 서울신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천 이사장은 “이란이 원하는 건 한국과의 교역 재개”라면서 “이란은 동결자금을 풀어 경제난과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영훈 사무총장과 김혁 사무국장도 함께 참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란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2016년 여름, 둘째 딸(현직 외교관)을 보러 이란을 방문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휴가를 간 거지만 그 기회에 이란 인사들도 만났다.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가 타결된 후 한국 대통령도 방문한 직후여서 분위기는 지금과 달리 굉장히 좋았다. 이후 국회에서 한이란의원친선협회장을 맡아 이란 인사들과 교류했다. 이란은 중동의 제조업 ‘허브’다. 이란과의 관계 개선은 우리 국익을 위해 극히 중요하다.” -한국에 대한 이란의 감정이 예전과 다른 것 같다. “2016년 당시 이란은 한국에 큰 기대를 했다. 이란 국민들도 한국에 대한 호의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한류 드라마는 시청률이 90%를 넘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이란 핵합의에서 탈퇴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란은 한국에 ‘동결자금을 해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해결을 못 해줬다. 이란 국민 중 다수가 한국산 TV, 냉장고를 쓰는데 한국 제품의 공급 중단이 이란 국민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다른 국가들보다 더 심각했다.” -미국의 제재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 않나. “이란 사람들은 한국이 ‘지나치다’는 거다. 주한 이란대사관은 한국에서 은행 계좌를 못 연다. 이란 유학생도 마찬가지다. 계좌 개설조차 못하는 건 한국밖에 없을 거다. 다른 나라에 비해 동결자금 규모가 큰 것도 대이란 수출을 더 타이트하게 (규제)했던 것 아니냐는 생각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불만이 지난 2~3년 동안 누적돼 왔다.” -선박 억류가 길어지고 있다. 장기화에도 대비를 해야 하나.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외국의 상선을 억류한 사례는 드물지 않다. 대부분 석방까지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란 정부도 길게 끄는 건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 이란이 한국 선박에 음식을 제공하고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고, 장기화되면 인권 문제가 불거질 수 있을 뿐 아니라 화학 물질이 배 안에 실려 있어 사고가 날 우려도 있어 이란 측도 빨리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다.” -환경오염이 문제라면 증거를 제시해야 될텐데 늦어지고 있다. “이란 정부가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다만 이란 입장에서도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이란은 최고지도자를 정점으로 3부(행정·입법·사법부)가 상당한 수준으로 상호 독립돼 운용되고 있다. 이란 행정부가 사법부와 군의 억류에 개입할 여지가 제한적이란 사실도 이해해야 한다. 물론 환경오염 입증은 이란이 해야겠지만, 한국 선박 측에도 환경오염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증거 자료를 요청한 모양이다.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소명 자료를 제출하라고 한 게 아닐까 싶다.”-선박 억류 사건 초반에 우리 정부 대응에 대한 불만도 감지된다. “한국 정부는 일종의 프로토콜에 따라 신속히 대응했다고 본다. 다만 이란 입장에서 보면 선박 나포는 환경 오염 문제로 인한 사법권의 행사일 뿐인다. 그런데 한국이 군함(청해부대)을 파견하고 주한 이란대사를 공개적으로 초치했다. 초치 자체가 외교적으로 일종의 양국간 불편함을 드러낸 것인데 이란 입장에선 상당히 서운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더라.” -이란은 선박 억류와 동결자금은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분리 대응하는 게 맞나. “당연하다. 두 사안을 연결시키면 오히려 선원들 석방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신속하게 사법적 절차가 진행될 수 있도록 촉구하면서 동결자금 해법 모색에 나서야 한다. 제일 좋은 것은 당장 성과를 내는 거지만, 성과를 못내더라도 ‘한국이 진심 어린 노력을 하고 있구나’라는 태도를 이란에 보여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아무리 이란 사법부가 선박 억류를 했더라도 이란 내 여론이 조성되면, 예컨대 구형량을 낮춘다든가 하지 않겠나.” 인터뷰 당일, 이란 현지에선 모즈타바 졸누리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장의 말을 인용해 동결자금 해결은 선박 석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보도가 나왔다. 지난 27일 졸누리 위원장이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과 화상 회담에서 “한국이 이란의 동결된 자산을 신속히 돌려주면 억류 해제에 대한 사법부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앞서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지난 10~12일 이란을 방문했을 때도 졸루니 위원장과 면담을 한 바 있다. -동결자금은 미국 제재와 관련돼 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 이란이 원하는 안은 뭔가. “이란은 7조원 넘는 동결자금을 현금으로 요구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번 억류 사건 전부터 이란 측은 세 가지 정도를 지속적으로 제시해 왔던 것으로 안다. 우선 한국에서 공급 가능한 인도적 물품이 있으면 보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백신처럼 한국에서 공급을 할 수 없는 물품에 대해선 스위스 인도적 교역채널(SHTA) 방식 등을 활용해달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한국 정부가 별도의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한 뒤 정부와 은행의 보증 아래 대출을 받아 이란이 원하는 제품을 구입해 보내고, 나중에 동결자금으로 보전하는 방식이다.” 2019년 2월 이란 핵합의에 참여했던 영국, 프랑스, 독일도 미국의 제재를 피해 이란과 거래할 수 있는 특수목적법인(SPV)을 발족했다. 미국의 핵합의 탈퇴 뒤 이란을 붙잡아 두기 위한 방책이었다. ‘인스텍스’(INSTEX·무역거래 지원 수단)로 명명된 SPV는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뒀다. 미국의 제재 대상인 달러화 결제를 거치지 않고 이 법인의 중개로 이란산 원유·가스와 유럽산 물품을 교환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차용하자는 안이 ‘한국판 인스텍스’(K인스텍스)다. -정부는 일단 스위스 계좌를 이용한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는 분위기다. “인스텍스 방식은 실제 가동이 되지 않아 이란이 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 스위스 인도적 교역 채널은 인스텍스와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 스위스 정부의 지급 보증으로 이란에 절실한 의약품을 공급하는 방식이어서 미국 제재와도 거리가 멀다. (현재로선) 스위스 인도적 교역 채널 방식을 이용한다거나 이를 참고해 이란에 인도적 물품을 공급하는 방안이 실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국과 충분한 협의와 이해가 선행돼야 하지만 스위스 채널이 성사된다면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입은 이란에 충분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란도 스위스 채널을 통해 70억 달러를 전부 받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다.” -이란 내 상황을 보면 해결책을 빨리 마련해야 할 것 같다. “최종건 차관이 왔다 갔으니 한 달 내에는 한국 쪽에서 건설적인 제안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일단 이란에선 최 차관이 현지에 왔을 때 만나고 싶어 하는 주요 인사를 다 만날 수 있게 했다. 이란 입장에선 마지막 기회를 준 셈이다. 이란 행정부가 강경파 의회의 압박을 막고 있는 형국인데, 이번에 대안책을 제시 못하면 의회가 법적 대응 등 강경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설 전에는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미국을 빨리 설득하는 게 중요하겠다. “그렇다. 미국 정부와 조속한 협의를 통해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한다. 이번에 미국 승인(제재 면제)을 받으면 미국 정부가 이란에 유화적 제스처를 보내는 걸로 인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협의를 하고 있다는 걸 이란에 보여줄 필요도 있다. 이란을 생각하면 심정적인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선원들의 신속하고 안전한 석방이 최우선이 돼야 할 것이지만, 양국이 다시 직접 접촉하게 됐고 해묵은 과제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이며 한국의 주요 에너지 수입국가였다. 다만 2년 넘게 한국과 상당히 불편한 관계가 이어져 왔기 때문에 미국이 핵합의에 복귀를 하더라도 한국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아져서 기업들 진출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협회가 창구 역할을 맡아 재진출에 도움을 주려고 한다.” -이란에 진출한 중소기업만 2000개가 넘었다고 들었다. “이란 재진출을 애타게 기다리는 기업들이 많다. 국내 중소기업들도 미국 제재 이후 이란서 못 받은 돈이 3억 달러 정도 된다. 70억 달러에 비하면 작은 것 같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선 큰 돈이다. 800개 정도 기업이 미수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미수금 회수에 도움을 주려고 한다.” -일각에선 경제사절단을 파견해야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금 당장 경제사절단이 이란을 방문한다고 해도 교역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 협회는 선박 억류가 풀리고 동결자금 해법도 어느 정도 나오면 무역협회와 함께 이란 재진출 설명회를 해볼 생각이다. 한·이란 기업들 대상으로 ‘웨비나’(온라인 세미나)도 진행하려고 한다. 경제사절단 파견은 (미국 제제가 풀리는) 마지막 단계에서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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