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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독도의 날, 中 함정과 시위 벌인 러시아 군함 어제 동해 재진입

    오늘 독도의 날, 中 함정과 시위 벌인 러시아 군함 어제 동해 재진입

    중국 해군 함정과 함께 일본 열도를 돌면서 무력 시위를 펼친 러시아 해군 함정이 대한해협 동수도(일본 이름 쓰시마-對馬 해협)를 통과해 동해로 진입했다. 독도의 날인 25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방위성 통합막료감부(우리의 합동참모본부에 해당)는 러시아 해군 함정 다섯 척이 동중국해에서 쓰시마 해협을 거쳐 동해로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함정들은 지난 14일부터 사흘 동안 중국 해군 함정 다섯 척과 함께 동해에 접한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표트르대제 만 부근 해역에서 해상연합-2021 훈련을 진행했다. 두 나라 함정들은 연합훈련을 마친 뒤 지난 18일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와 혼슈(本州) 사이의 쓰가루(津輕) 해협을 거쳐 태평양으로 진출했다가 일본 열도의 오른쪽을 따라 남하하며 무력 시위를 펼쳤다. 그 뒤 일본 오스미(大隅) 해협을 거쳐 중국 군함과 함께 동중국해로 이동했던 러시아 군함 다섯 척이 23일 오전 11시쯤 나가사키(長崎)현 단조(男女) 군도의 남쪽 동중국해에서 이탈해 동해로 향하는 것이 확인됐다. 방위성은 24일 오전 10시쯤 쓰시마북동쪽 약 60㎞ 해상에서 러시아 함정 다섯 척 가운데 프리깃함에서 함재 헬기가 이륙과 착륙하는 것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동북아 군함 무력 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두 나라 해군이 우리 독도의 날을 겨냥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최근 빈번해진 중국해의 무력 시위에는 모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한편 독도의 날은 대한제국 고종이 1900년 10월 25일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제정한 것을 기념하고자 2000년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가 제정했다. 일본은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끊임없이 우기며 ‘다케시마(竹島)’라고 부르고 있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와 이제석광고연구소는 이날 이런 광고를 제작해 온라인에 배포했다. 반크와 이제석광고연구소는 윤봉길 의사가 태블릿PC를 손에 들고, 유엔 사이트 내 일본해 단독 표기 세계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UN 세계지도에 일본해가?’라는 제목의 홍보 포스터도 만들었다. 또 안중근 의사 사진과 함께 “독립운동은 못 했어도, 지도는 바로 쓸 수 있습니다”라는 글을 대형 트럭에 새길 수 있도록 아이디어도 제공했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이번 캠페인의 모델을 독립운동가들로 내세워 해외 사이트의 일본해, 다케시마 오류를 제보하고, 시정하는 것이 100년 전 우리 영토를 지킨 독립운동가와 같은 나라를 지키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엔은 세계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지리정보 사이트(www.un.org/geospatial) 내 지도에서 ‘일본해’(Sea of Japan)를 단독 표기하고 있고, CIA는 20년 넘게 ‘월드 팩트북’(World Factbook) 사이트에 독도를 다케시마로 왜곡해 알리고 있다. 구글이 서비스하는 149개 언어 가운데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아랍어 등 14개 사이트의 ‘지식 그래프’를 분석한 결과, 한국어를 제외한 13곳이 독도를 ‘리앙쿠르 록스’로 표기하고 있다. 리앙쿠르 록스는 1849년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쿠르호에서 유래한 것으로, 일본이 분쟁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국제사회에 퍼뜨리는 지명이다.
  • 바이든, “중국이 대만 공격 땐 미국이 방어” 입장 재확인

    바이든, “중국이 대만 공격 땐 미국이 방어” 입장 재확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미국이 나서서 방어할 것이란 입장을 다시 한번 밝혔다. 21일(현지시간) 볼티모어에서 열린 CNN 타운홀 미팅 행사에서다. 중국 정부의 군사적·정치적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며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때 방어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Yes)라며 “우리는 그렇게 할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바이든은 8월에도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무력 침략 시 대만에 군사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집단방위 조항인 상호방위조약의 5조를 거론한 뒤 “일본, 한국, 대만에도 마찬가지”라고 언급했다. 미국은 한국, 일본, 나토와는 상호방위조약을 맺어 무력 충돌시 군사 개입의 근거가 있지만 대만과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당시에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만, 중국에 대한 정책 변화를 시사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은 1954년 대만과도 군사 개입이 포함된 조약을 맺었지만, 이후 1979년 중국과 수교하고 대만과 단교하면서 이 약속이 사라졌다. 현재는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에 따라 대만에 자기방어 수단을 제공하고, 유사시 군사적으로 지원할 근거를 두고 있다.이때까지 미국 정부는 대만에 대한 군사개입과 관련해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며 중국의 군사행동을 억지해왔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가 커진다는 점을 들어 전통적인 입장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왔다. 이날도 바이든의 발언 이후 논란이 이어지자 백악관은 “정책 변화를 선언한 건 아니었다”며 선을 그었다.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는 대만관계법에 따라 계속해서 책무를 다하고 대만의 자기방어를 지원하며, 현상태를 바꾸는 어떠한 일방적 변화도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 총통실도 자국 입장은 이전과 같다며 압력에 굴복할 일도, 지원을 받아 성급하게 전진할 일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사비에르 장 총통실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대만은 자기방어 의지가 확고하다며 대만과의 굳건한 관계를 보여주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구체적 행동을 주목했다고 말했다. 이날 바이든은 또 국방력을 두고 제기되는 의문에 대해서도 명확히 밝혔다. 그는 “중국, 러시아, 세계 전부가 우리가 가장 강력한 군대라는 걸 안다”며 “중국과의 냉전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대만 문제는 순수한 내정”이라고 경고했다.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이며 외부 간섭을 용인할 수 없다”며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과 관련된 핵심 이익 문제에서 중국은 어떤 타협과 양보의 여지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을 향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엄수하라며 “대만 문제에서 언행을 신중히 하고, 미중관계와 대만해협 평화 안정에 손실을 가져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유럽 허리케인급 폭풍에 각지 정전 사태…사상자도 발생

    유럽 허리케인급 폭풍에 각지 정전 사태…사상자도 발생

    유럽 각지에서 지난 이틀에 걸쳐 허리케인급 폭풍이 몰아쳐 폴라드에서는 4명이 숨지고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 등에서도 큰 피해가 일어났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기상청이 ‘오로르’(Aurore)라고 명명한 폭풍은 20일 밤 프랑스 상공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통과했다. 최대 풍속이 시속 175㎞에 달하는 강풍을 동반해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오렌지 기상 경보가 내려졌다. 참고로 대서양의 2등급 허리케인은 시속 154~177㎞의 최대 지속 바람을 갖는다.프랑스에서는 25만 가구에서 정전 사태가 일어나 전기 기술자 4000여 명이 복구 작업에 동원됐다. 그중 4만 가구는 21일 밤까지도 정전 피해를 입었다. 브르타뉴 서부 지역에서는 갑작스러운 홍수로 주택 여러 채가 무너졌다. 또한 나무가 쓰러져 선로를 막는 철도 사고도 각지에서 몇백 건 보고된 것으로 전해졌다. 오로르는 그 후 독일로 이동했다. 독일에서는 ‘이그나츠’(Ignatz)로 불리며 시속 100㎞의 돌풍을 일으켰다. 독일 동부 지방에서는 작센주와 작센안할트주 그리고 튀링겐주를 중심으로 약 5만 가구가 정전됐다. 이웃나라 네덜란드에서는 소규모 토네이도가 다수 발생해 4명이 다친 것으로 보고됐다. 로테르담 인근 바렌드레흐트 마을에는 지붕이 파괴되고 정원 헛간이 부서졌으며 트램펄린이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네덜란드 국영방송 NOS는 각 공항에서는 폭풍 등의 이유로 항공편 몇십 편이 결항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번 폭풍으로 폴란드 서남부 돌노실롱스키에주에서는 네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승합차가 도로에서 쓰러져 1명이 숨지고 공사 중인 주택의 벽이 넘어지면서 건설업자 1명이 숨졌다. 나머지 2명은 주도 브로츠와프에서 승용차에 타고 있다가 쓰러진 나무에 깔려 숨졌다. 체코에서도 27만 가구가 정전 피해를 봤고 도로와 선로에는 쓰러진 나무로 교통이 마비됐다. 이에 대해 아큐웨더 기상학자 토니 자트먼은 “20일 폭풍이 영국해협 쪽으로 이동하면서 세력이 급격히 강해졌다”고 밝히면서 “빠른 강화는 프랑스 북부 전역에 걸쳐 폭풍의 남쪽 면에서 강하고 파괴적인 바람을 촉발했다”고 설명했다. 사진=AFP 연합뉴스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콜럼버스의 신대륙’ 바이킹이 먼저 발견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콜럼버스의 신대륙’ 바이킹이 먼저 발견

    많은 사람이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을 이탈리아 출신 스페인 탐험가 콜럼버스의 업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10월 12일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10월 두 번째 월요일을 ‘콜럼버스 데이’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콜럼버스 이후 많은 탐험가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했지만 모두 황금과 향신료의 땅 인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탐험가는 1497~1504년에 남아메리카 지역을 탐험하면서 자신과 콜럼버스가 발견한 곳은 아시아의 일부가 아닌 신대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덕분에 북미와 남미대륙은 그의 이름을 딴 ‘아메리카’로 불리게 됐습니다. 엄격하게 보자면 아메리카 첫 발견자이자 이주자는 약 3만년 전 빙하기 때 유라시아 동쪽 끝과 알래스카 사이의 베링해협을 걸어서 건너간 아시아인이라 할 것입니다. 유럽인 기준으로 보더라도 콜럼버스 이전에 대서양을 최초로 횡단해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정착한 이들은 8~11세기 바다를 주름잡았던 ‘바이킹’입니다. 바이킹들은 현재 캐나다 뉴펀들랜드 인근 지역에 상륙해 식민지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동위원소연구센터, 스헤르토헨보스 고고학·건축사연구소 연륜연대실험실, 국립문화유산국, 캐나다 국립공원국, 뉴펀들랜드 메모리얼대 고고학과, 지리학과, 독일 쿠르트 엥겔호른 고고표본연대연구센터 공동연구팀은 바이킹의 첫 정착지로 알려진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북쪽 ‘랑스 오 메도즈’ 유적지에서 중요한 발견을 합니다. 그곳에서 발굴된 나무공예품의 탄소연대측정을 통해 북미 지역에 바이킹이 살았던 시기를 처음으로 정확히 추정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이런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10월 21일자에 실렸습니다. 랑스 오 메도즈는 당시 원주민들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이었습니다. 연구팀은 발굴된 나무공예품들에서 원주민들이 사용하지 않는 금속도구를 사용한 흔적이 보였다는 점을 통해 바이킹의 정확한 거주 시기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분석에는 과거와는 다른 정밀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이 활용됐습니다. 탄소에는 화학적 특성은 같지만 원자량이 다른 동위원소 세 종류가 있습니다. 안정적인 C-12, C-13과 방사성붕괴를 하는 C-14가 그것입니다. 양성자로 구성된 우주선(cosmic ray·지구 밖에서 지구로 입사하는 방사선)이 대기와 충돌해 반응하면 중성자가 되고 중성자는 대기 중 N-14와 충돌·반응해 C-14가 만들어집니다. 시간에 따라 붕괴하는 성질을 가진 C-14와 안정적인 C-12, C-13의 비율로 붕괴 기간을 역산해 흘러간 시간을 알아내는 것이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입니다. 최근에는 기술의 발달 덕분에 극미량의 시료만으로도 연대 측정이 가능해졌습니다. 연구팀은 993년에 우주선이 극대화된 사건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대기 중 C-14의 양도 급증했다는 점을 기준 삼아 그동안 모호했던 바이킹의 아메리카 대륙 진출·점령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0년 전인 1021년이라는 것을 계산해 냈습니다. 이번 연구는 콜럼버스 이전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들 간 유전적, 병리학적 교류에 대한 연구의 실마리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과학을 이용하면 역사도 명확한 사실에 근거한 학문이 될 수 있음을 이번 연구가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 ‘돌아와요 부산항에’ 돌아왔다, 이름 바꿔 되살렸다, 국민가요

    ‘돌아와요 부산항에’ 돌아왔다, 이름 바꿔 되살렸다, 국민가요

    억세게도 운이 나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사람들은 점을 보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아예 이름까지 고치기도 한다. 대중가요에도 문패를 바꿔 달고서야 국민가요가 돼 대운이 터지는 노래가 생각 외로 많다. 이런 문패 바꿔 달기는 가요 초창기부터 있어 왔다. 남인수의 불멸의 히트곡 ‘애수의 소야곡’은 원래 ‘눈물의 해협’에서,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는 태원의 ‘너의 사랑’에서, ‘어차피 떠난 사람’은 이학춘의 ‘괴로워도 웃으며’에서, 그리고 필자가 작곡한 ‘텍사스 룸바’는 설운도의 ‘사나이 룸바’에서 문패를 바꾼 뒤 성공한 노래들이다.‘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엔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 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문패를 바꿔 국민가요가 된 곡으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빠질 수 없다. 아마도 이 노래가 없었다면 ‘국민 가수’ 조용필이 있었을까 할 만큼 대단한 인기였다. 1970년대 한국가요를 대표하는 이 곡은 외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후잔코오에 가에레’로 불리고 있고, 유럽에서는 팝오케스트라 폴 모리아 악단이 연주한 ‘플리즈 리턴 투 부산 포트’라는 제목으로 1970년대 말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대중가요를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한 바로 그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김해일이 노래한 ‘돌아와요 충무항에’에서 문패를 바꿔 단 노래다. 통영 출신 가수 김해일은 본명이 김성술로, ‘돌아와요 충무항에’는 1970년 유니버샬레코드가 발매한 음반의 B면 두 번째 트랙에 수록됐다.‘꽃피는 미륵산엔 봄이 왔건만/ 님 떠난 충무항은 갈매기만 슬피 우네/ 세병관 둥근 기둥 기대여 서서/ 목메어 불러 봐도 소리 없는 그 사람/ 돌아와요 충무항에 야속한 내 님아’ ‘돌아와요 충무항에’는 김해일이 24세에 직접 작사한 노랫말에 부산 출신 작곡가 황선우가 곡을 붙여 발표됐다. 그러나 김해일은 음반을 발표한 다음해인 1971년 12월, 서울 대연각 호텔에 투숙했다가 화재로 요절하고 말았다. 이후 작곡가 황선우는 이 노래를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개작해 조용필에게 줬다. 1972년 아세아레코드에서 발매된 조용필의 첫 독집 앨범에는 ‘꿈을 꾸리’와 ‘일하지 않으면 사랑도 않을래’가 타이틀곡으로 표기돼 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타이틀곡이 되지 못하고 B면 두 번째로 수록됐다. 그러나 이 곡은 1976년 ‘조용필과 그림자’의 앨범에 A면 두 번째로 다시 실린다. 이때는 조총련계 재일동포 모국방문 사업이 대대적으로 전개되던 때다. 당시 일본에는 징병, 징용, 종군위안부로 강제동원됐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귀환동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던 약 80만 동포들이 있었다. 그중 약 절반에 이르는 조총련계 동포들은 출신이 대부분 남한 지역이면서도 북한을 위한 선전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정부는 이들의 활동이 조국의 발전상을 잘 모르는 데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하여 1975년 추석을 기해 조총련계 동포 720여명의 첫 모국 방문이 이뤄졌다. TV로 생중계된 부산항과 김포공항은 이들의 가족 상봉으로 울음바다가 됐다. 이들의 성공적인 모국 방문은 국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듬해인 1976년 4월 한식 때까지 불과 6개월 사이에 무려 7000여명이 대한민국을 찾았다. 마침 이때는 전국에 음악다방이 대유행을 하고 있었다. 음악다방 DJ들은 부산항을 소재로 한 노래를 찾아 모국 방문 소식의 멘트를 붙여 방송하기 시작했다. 부산항을 소재로 만들어진 많은 노래 중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요청곡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이런 열기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졌고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대히트로 서라벌레코드사는 미리 음반 값을 받아 놓고 후에 제품을 찍어 보내는 입도선매를 해야 할 정도였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방송을 한 번도 타지 않고 순수하게 음악다방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히트한 노래로, 방송미디어를 통하지 않아도 히트곡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또한 트로트의 정형성을 파괴하는 한편 당시에는 그룹사운드라고 했던 보컬그룹에 의해 팝 요소를 융합한 편곡과 연주, 조용필의 독보적인 창법으로 한국 대중가요의 물길을 바꿔 놓는 대변혁을 이끌었다고 평가된다.최초 노랫말의 일부를 개사해 사연의 무대를 충무에서 부산으로 옮긴 뒤 처음 발표했을 때는 반응이 없다가 4년 후에야 대히트를 했다는 사실은 대중가요의 시대성을 대변한다. 1972년의 부산과 1976년의 부산은 국민적 관심에서 매우 다른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재일동포 모국 방문이라는 시대성과 음악다방의 유행, 창법과 음악의 변화 등이 망라된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결코 우연한 탄생이 아닌 필연적인 결과였음을 알게 된다. 데뷔 10년 만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게 된 조용필이었지만 1977년 대마초 파동으로 가요계 은퇴를 선언한다. 이 은둔 기간이 곧 제2의 ‘위대한 탄생’을 위한 칩거기가 된 셈이다. 조용필은 ‘조용필과 그림자’에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으로 호적까지 바꿔 드디어 한국 가요계의 신화로 자리매김했으니, 조용필에 관한 한 개명도 때로는 운을 바꾸는 ‘선기’(善氣)가 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작곡가·문학박사
  • 탱글 전어 상큼 유자… 입으로 담은 맛보석

    탱글 전어 상큼 유자… 입으로 담은 맛보석

    가수 송창식은 노래 ‘고래사냥’에서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를 외쳤다. 동해는 바다를 뜻하지만 지명인 동해시도 있다. 안타깝게도 서해엔 서해시(군)가 없지만, 남해 바다에는 경남 남해군이 있다. 남해란 이름은 특별하다. 1980년대 생긴 지명인 동해시와 달리 신라 경덕왕 때부터 불린 이름이다. 남녘 바다를 지칭하는 이름처럼 영호남을 에워싼 남해 바다 중간에 떠 있는 섬이다. 지금이야 다리가 두 개나 놓여 육지와 연결됐지만 섬은 섬이다. 별칭은 보물섬이다. 보물이 많다. 마늘과 시금치(섬초), 유자, 죽방멸치 등 ‘먹는 보물’은 물론 아름다운 풍광의 ‘보는 보물’에다 문화재 등 ‘역사적 보물’까지, 진귀한 것들로 가득하다. 선선한 바람이 쪽빛 바다를 타고 불어 드는 가을에 보물섬을 다녀왔다. 동화를 연상케 할 만큼 신비로운 섬이지만, 외다리 존 실버 선장처럼 보물을 노리는 해적은 없다.●20년 전부터 조성된 남해 독일마을 ‘아우프비더젠’은 독일어로 또 만나자는 작별인사다. 필자는 고교 시절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다. ‘데어데스뎀덴 디데어데어디’ 하는 신라 향가 같은 관사와, 숨을 모았다 내쉬어야 제대로 나오는 이상한 발음의 전치사를 외우느라 무척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대부분 학교의 독일어 선생님 별명은 게슈타포(나치 비밀경찰)였다. 필자가 다니던 학교에도 게슈타포가 한 분 계셨다. 그분은 독일어가 얼마나 과학적이며 매력적인 언어인지 늘 강조하셨고, 그 때문에 학생들이 이 위대한 언어에 대한 불경을 저지르는 것을 용서치 않았다. 학력고사 20점에 해당하는 문제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고, 그에 대한 학습효과를 ‘단호한’ 교편(敎鞭)으로 ‘친히’ 점검하셨다. 졸업한 지 30년도 더 지난 지금, 필자가 수많은 독일어 주요 문법을 아직도 달달 외우는 이유다. 독일어의 추억이 대상포진처럼 문득 발진한 이유는 남해군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독일마을에 갔기 때문이다. 삼동면 물건리와 봉화리 일대 언덕의 약 9만㎡ 너른 부지에 위치한 독일마을은 조성한 지 올해로 딱 20년 됐다. 독일마을은 남해군이 독일 북부의 도시 노드프리슬란트와 1997년 자매결연을 맺으며 그 맹아가 텄다. 2001년 남해군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귀국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택지를 조성해 분양했다. 이에 관심을 가진 25가구 정도가 직접 독일로부터 건자재를 수입해 전통 독일식 가옥을 짓고 이주하며 마을의 역사가 시작됐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교포들이 거주하는 집보다 민박과 게스트하우스, 상점, 식당, 카페 등이 더 많다.하지만 일부러 꾸민 ‘독일 테마파크’가 아니라 오랜 세월 독일에서 살아온 교포들의 실생활이 이뤄지던 곳으로, 그 진정성과 세밀함이 매력 포인트다. 집안의 소품 모두 재현품이 아닌 독일의 것이다. 호박색 기와를 올린 독일식 건축물과 외벽 장식, 정원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꾸며낸 것이 아니다. 가난한 시절 이역만리 독일 땅으로 떠났던 이들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파독 광부 전시관과 파독 근로자 전시관을 따로 마련해 놓았다.주택가 진입로에는 독일 정통 수제 소시지와 햄, 족발 요리, 사우어크라우트 등을 판매하는 음식점과 샤퀴테리아(가공육 공방)가 있고 바다를 조망하는 카페 역시 독일식 인테리어로 갖춰 놓았다. 언덕배기에 양쪽으로 펼쳐지는 거리 풍경이 하도 이국적이면서도 현실감 있어 마치 독일 북부 항구도시에 와 있는 듯하다. 물론 식사와 함께 독일이 자랑하는 맥주도 곁들여 맛볼 수 있다.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며 테라스에 앉아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아무렴, 발트해보다는 남해가 낫다. 풍광도 좋다. 언덕 아래로 물건 방조어부림(防潮魚付林)과 바다가 펼쳐지고, 해안을 옆에 두고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물미해안도로도 있어 관광 코스를 짜기에도 딱이다. 천연기념물 제150호 방조어부림은 폭 30m에 길이 1500m에 이르는 해변의 숲이다. 바닷바람을 막는 방풍과 숲 그늘로 물고기를 꾀어내는 어부림 역할을 동시에 한다. 무려 400여년 전인 1640년쯤 조성했다고 하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1960년도 1인당 국민소득 79달러의 최빈국. 당시 한국은 가난했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없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룬 서독으로부터 차관을 받기 위해 ‘한독근로자채용협정’을 체결한다. 독일에서 기피업종으로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직종인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는 것이다. 이면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당시 한국 정부의 옹색한 국가신용등급 탓에 차관을 제공받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해외근로자의 임금을 담보로 서독 은행으로부터 지불보증을 받아 내려는 전략이었다. 1963년부터 시작된 파독 근로자는 1970년대 중후반까지 2만여명에 이르렀다. 광부가 8395명, 간호사(간호조무사 포함)는 1만 371명이 서독으로 떠났다. 1인당 월급으로 100달러가 넘게 지급됐으니 차곡차곡 외화가 쌓였다. 덕분에 한국 정부는 서독으로부터 약 7000만 달러의 차관 도입에 성공했다. 대한민국은 이 돈을 바탕으로 빈곤퇴치와 경제부흥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정말 ‘나라를 구한’ 열렬한 애국이었다. 파독 근로자들은 어려운 근무환경에 인종 차별을 견디며 특유의 뚝심과 근면으로 버텼다. “글뤽 아우프(무사하기를).” 고등학생 때 이 말을 배우지 않았던 것 같지만, 광부들이 아침저녁으로 이렇게 인사를 나눴다. 이것만 봐도 당시 갱 속의 위험한 근무여건을 알 수 있다. 간호사들은 환자들의 대소변을 받아 내며 밤낮을 지새웠다. 성공적으로 독일에 안착한 이들이 노년에 고국으로 돌아와 보금자리를 튼 곳이 바로 독일마을이다. 파독역사전시관에 이에 관한 상세한 자료가 남아 있다.●비단산 둘러싸고 도는 옥색바다 남해와 해남(전남)은 앞뒤 음절만 다른 게 아니라 이미지도 많이 다르다. 해남은 땅끝의 이미지로 왠지 육지 느낌이라면, 남해는 이상향 같은 심상을 준다. 남녘, 남촌, 남국 등 남(南) 자가 앞에 달려서 그럴 것이다. 아직 춥지는 않지만 그래도 10월, 풍(楓) 내려오는 가을 복판이다. 들판과 바다가 한창 무르익어 가고 있다. 남해대교와 노량대교를 차례로 건너면 붉은 황토와 노랗게 물들어 가는 황금들판, 옥색 바다가 한눈에 든다. 남해의 산과 들, 바다가 잘 짜 놓은 유화 팔레트처럼 조화롭게 펼쳐진다. 남해는 사실 산이다. 욕탕에 물을 빼듯 바닷물을 비운다면 뾰족한 산이 나올 텐데, 그 산들이 바로 남해도, 창선도, 우도 등 남해군이 품은 섬이다. 실제 국내 섬 중 가장 산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최고 786m(망운산) 등 기세 좋은 산들이 섬을 채운다. 왕이 되면 온 강토를 비단으로 두르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선 태조가 이름을 붙였다는 금산(錦山). 무려 해발 700m에 이른다. 태조처럼 뭔가를 이루기 위해 찾는 이들이 많은 전국 3대 기도 도량 보리암이 금산의 산마루에 있다. 관광객이야 좋은 풍경을 보러 오는 것이니 어쨌든 그 소원 하나는 들어준다. 산은 좋지만 경작할 농토는 모자랐다. 이렇다 할 장비도 없이 ‘수금푸’(삽의 사투리)와 호미로 일일이 산을 깎아 경작지를 개간해야 했다. 남해에는 가천면 다랑이논 같은 노동의 유산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10여층 높이의 계단 같은 논밭이 산허리로부터 바다를 향해 가파르게 떨어진다. 피땀 흘려 개간한 노동의 현장이지만 조형미만큼은 가히 예술적이다. 유려한 곡선(사실은 직선화할 수 없어 그랬을 테지만)이 가파른 층을 이루며 첩첩 오른다. 밑에서 보자면 하늘 계단이며 위에서 보면 곡면으로 구성한 몬드리안의 추상화다. 벼가 무르익으면 여기에 황금색이 입혀진다. 가을 다랑이논이 사진가에게 사랑받는 이유다.남해가 보물섬이란 설정에는 특유의 목가적 분위기도 한몫한다. 설천면 구두산에는 유럽 초원을 닮은 양떼목장과 양모리학교가 있다. 푸른 언덕에 양들이 뛰어놀고 있다. 시간 맞춰 가면 양몰이 개 보더콜리가 뛰어다니며 어린 양떼를 통제하는 진풍경도 관람할 수 있다.남해는 바다다.(아깐 산이라더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풍요롭고 비옥한 바다다. 이 바다에 봄이면 플래티넘처럼 반짝이는 멸치떼가 돌아오고, 가을이면 전어와 우럭 등 싱싱한 횟감과 전복, 소라 등 맛난 먹거리가 넘쳐난다. 관음포는 고현면 북쪽에 있는 포구다. 노량 바다를 바라보는 나지막한 언덕 아래 있다. 이락포(李落浦)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순신 장군이 서거한 곳이란 뜻이다. 1598년 음력 11월 19일, 충무공은 관음포에서 왜란의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 중 장렬히 전사했다. 충무공의 뜻을 기리는 이락사 등 유적과 영상관, 다양한 조형물과 기념물이 이곳에 있다. 그 이전인 고려 때는 인근 선원사(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다)에서 팔만대장경(국보 제32호)을 판각했다. 이래저래 호국성지인 곳이다. 상주은모래해변도 남해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포인트다. 저물어 가는 가을볕을 받아 윤슬과 더불어 반짝이는 은싸라기 같은 모래밭을 바라보면 과연 그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이 외에도 멸치떼가 지나는 지족해협과 죽방렴, 남해안 특유의 청자색 계열을 색색별로 눈에 담아 올 수 있다. 산이 높아 길도 한참 올라가는 탓에 눈부신 바다는 어느 곳엘 가도 따라다닌다. 코로나로 ‘바다 결핍’에 시달린다면 당장 남해를 찾아야 한다.●보물섬의 숨은 보물찾기 엘림 마리나 앤드 리조트는 독일 마을 아래 물건항에 위치한 요트 리조트다. 요트 정박장과 편의시설동, 테라스와 월풀욕조 등을 갖춘 숙박동으로 구성됐다. 럭셔리 요트와 제트 보트 등을 체험할 수 있다. 19~20세기 초에 제작된 빈티지 아날로그 오디오와 다양한 제조사의 중대형 바이크를 수십대 모아 둔 전시실도 갖췄다. 비 오는 날 등 야외 활동이 어려운 날에 찾아볼 만하다. 바닷가에 바로 접한 골든앵커 레스토랑에선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선보인다. 저녁 시간에는 새파란 하늘이 코발트 빛으로 저물어 가는 진풍경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 아난티 남해는 이미 유명한 곳. ‘물결’이 모티브로 녹아든 건물에 스위트룸 150개와 프라이빗 빌라 20개로 구성됐다. 리조트 조성 당시 5베이 구조를 채택해 어떤 객실에 묵어도 바다와 섬, 골프 코스를 볼 수 있다. 몇 년 전 힐튼 브랜드에서 아난티로 주인이 바뀌었다. ‘관광’보다는 ‘쉼’을 강조하며 콘셉트도 바꿨다. 어린이 섹션과 반려동물 동반, 서가 등 일상 속 ‘느림’을 표방하며 자연 속 휴식의 즐거움을 추구했다. 예술적 영감을 더한 굿즈와 식음료는 독특한 개성으로 채웠다. 아난티 남해는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지며 시너지를 낸다. 리조트 곳곳을 둘러보는 것 자체가 휴식이다. ●조선시대 여행작가 류의양 ‘남해문견록’ 남겨 독서의 계절에 남해에 왔는데 유배문학관을 빼놓기도 뭐하다. 남해는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하지만 남해 풍광을 가만 떠올려 보면, 형벌이 아니라 인센티브 휴가에 가깝다. 워케이션처럼 남해에 유배 와서 교육과 저술활동을 한 선비들이 많았다. 가시나무 울타리 밖으로 못 나오게 하는 위리안치를 제외하면 집을 짓고 서당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시를 쓰며 보냈다. 이때 유배문학이라는 독특한 장르가 탄생했다. 유배형이 있던 외국에도 공통된 현상이 있었다. 일본의 스가와라노 마치자네, 중국의 이백, 소동파, 백거이 등 당대 최고 시인들은 물론이며 서양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후 1815년 영국령 세인트헬레나섬으로 귀양을 가서 구술서 ‘세인트헬레나의 회상’을 남겼고 문호 빅토르 위고 역시 나폴레옹 3세에 의해 추방당한 후 영국 해협의 저지섬과 건지섬에서 살며 명작 ‘레미제라블’을 썼다. 러시아 푸시킨 역시 미하일로프 유배 생활 중 그 유명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썼다. 남해에는 ‘사친시’(思親詩)의 서포 김만중을 비롯해 이규보, 김굉필, 권근, 김정 등 수많은 문필가들이 유배 생활 중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 가운데 류의양(1718~미상)은 현대적 의미의 ‘여행작가’라 할 수 있다. 그림 같은 남해의 풍경과 생활상을 한글로 기록한 남해문견록을 남겼다. 류의양은 책에 풍경과 지리뿐 아니라 사투리 등 다양한 생활상까지 담아 국문학뿐 아니라 언어학에서도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가을날의 보물찾기. 보물섬 남해 땅에서 도전할 수 있다. 글 사진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 은빛 윤슬 금빛 들판… 눈으로 담은 가을 보석

    은빛 윤슬 금빛 들판… 눈으로 담은 가을 보석

    가수 송창식은 노래 ‘고래사냥’에서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를 외쳤다. 동해는 바다를 뜻하지만 지명인 동해시도 있다. 안타깝게도 서해엔 서해시(군)가 없지만, 남해 바다에는 경남 남해군이 있다. 남해란 이름은 특별하다. 1980년대 생긴 지명인 동해시와 달리 신라 경덕왕 때부터 불린 이름이다. 남녘 바다를 지칭하는 이름처럼 영호남을 에워싼 남해 바다 중간에 떠 있는 섬이다. 지금이야 다리가 두 개나 놓여 육지와 연결됐지만 섬은 섬이다. 별칭은 보물섬이다. 보물이 많다. 마늘과 시금치(섬초), 유자, 죽방멸치 등 ‘먹는 보물’은 물론 아름다운 풍광의 ‘보는 보물’에다 문화재 등 ‘역사적 보물’까지, 진귀한 것들로 가득하다. 선선한 바람이 쪽빛 바다를 타고 불어 드는 가을에 보물섬을 다녀왔다. 동화를 연상케 할 만큼 신비로운 섬이지만, 외다리 존 실버 선장처럼 보물을 노리는 해적은 없다.●20년 전부터 조성된 남해 독일마을 ‘아우프비더젠’은 독일어로 또 만나자는 작별인사다. 필자는 고교 시절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다. ‘데어데스뎀덴 디데어데어디’ 하는 신라 향가 같은 관사와, 숨을 모았다 내쉬어야 제대로 나오는 이상한 발음의 전치사를 외우느라 무척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대부분 학교의 독일어 선생님 별명은 게슈타포(나치 비밀경찰)였다. 필자가 다니던 학교에도 게슈타포가 한 분 계셨다. 그분은 독일어가 얼마나 과학적이며 매력적인 언어인지 늘 강조하셨고, 그 때문에 학생들이 이 위대한 언어에 대한 불경을 저지르는 것을 용서치 않았다. 학력고사 20점에 해당하는 문제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고, 그에 대한 학습효과를 ‘단호한’ 교편(敎鞭)으로 ‘친히’ 점검하셨다. 졸업한 지 30년도 더 지난 지금, 필자가 수많은 독일어 주요 문법을 아직도 달달 외우는 이유다. 독일어의 추억이 대상포진처럼 문득 발진한 이유는 남해군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독일마을에 갔기 때문이다. 삼동면 물건리와 봉화리 일대 언덕의 약 9만㎡ 너른 부지에 위치한 독일마을은 조성한 지 올해로 딱 20년 됐다. 독일마을은 남해군이 독일 북부의 도시 노드프리슬란트와 1997년 자매결연을 맺으며 그 맹아가 텄다. 2001년 남해군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귀국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택지를 조성해 분양했다. 이에 관심을 가진 25가구 정도가 직접 독일로부터 건자재를 수입해 전통 독일식 가옥을 짓고 이주하며 마을의 역사가 시작됐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교포들이 거주하는 집보다 민박과 게스트하우스, 상점, 식당, 카페 등이 더 많다.하지만 일부러 꾸민 ‘독일 테마파크’가 아니라 오랜 세월 독일에서 살아온 교포들의 실생활이 이뤄지던 곳으로, 그 진정성과 세밀함이 매력 포인트다. 집안의 소품 모두 재현품이 아닌 독일의 것이다. 호박색 기와를 올린 독일식 건축물과 외벽 장식, 정원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꾸며낸 것이 아니다. 가난한 시절 이역만리 독일 땅으로 떠났던 이들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파독 광부 전시관과 파독 근로자 전시관을 따로 마련해 놓았다.주택가 진입로에는 독일 정통 수제 소시지와 햄, 족발 요리, 사우어크라우트 등을 판매하는 음식점과 샤퀴테리아(가공육 공방)가 있고 바다를 조망하는 카페 역시 독일식 인테리어로 갖춰 놓았다. 언덕배기에 양쪽으로 펼쳐지는 거리 풍경이 하도 이국적이면서도 현실감 있어 마치 독일 북부 항구도시에 와 있는 듯하다. 물론 식사와 함께 독일이 자랑하는 맥주도 곁들여 맛볼 수 있다.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며 테라스에 앉아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아무렴, 발트해보다는 남해가 낫다. 풍광도 좋다. 언덕 아래로 물건 방조어부림(防潮魚付林)과 바다가 펼쳐지고, 해안을 옆에 두고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물미해안도로도 있어 관광 코스를 짜기에도 딱이다. 천연기념물 제150호 방조어부림은 폭 30m에 길이 1500m에 이르는 해변의 숲이다. 바닷바람을 막는 방풍과 숲 그늘로 물고기를 꾀어내는 어부림 역할을 동시에 한다. 무려 400여년 전인 1640년쯤 조성했다고 하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1960년도 1인당 국민소득 79달러의 최빈국. 당시 한국은 가난했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없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룬 서독으로부터 차관을 받기 위해 ‘한독근로자채용협정’을 체결한다. 독일에서 기피업종으로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직종인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는 것이다. 이면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당시 한국 정부의 옹색한 국가신용등급 탓에 차관을 제공받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해외근로자의 임금을 담보로 서독 은행으로부터 지불보증을 받아 내려는 전략이었다. 1963년부터 시작된 파독 근로자는 1970년대 중후반까지 2만여명에 이르렀다. 광부가 8395명, 간호사(간호조무사 포함)는 1만 371명이 서독으로 떠났다. 1인당 월급으로 100달러가 넘게 지급됐으니 차곡차곡 외화가 쌓였다. 덕분에 한국 정부는 서독으로부터 약 7000만 달러의 차관 도입에 성공했다. 대한민국은 이 돈을 바탕으로 빈곤퇴치와 경제부흥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정말 ‘나라를 구한’ 열렬한 애국이었다. 파독 근로자들은 어려운 근무환경에 인종 차별을 견디며 특유의 뚝심과 근면으로 버텼다. “글뤽 아우프(무사하기를).” 고등학생 때 이 말을 배우지 않았던 것 같지만, 광부들이 아침저녁으로 이렇게 인사를 나눴다. 이것만 봐도 당시 갱 속의 위험한 근무여건을 알 수 있다. 간호사들은 환자들의 대소변을 받아 내며 밤낮을 지새웠다. 성공적으로 독일에 안착한 이들이 노년에 고국으로 돌아와 보금자리를 튼 곳이 바로 독일마을이다. 파독역사전시관에 이에 관한 상세한 자료가 남아 있다.●비단산 둘러싸고 도는 옥색바다 남해와 해남(전남)은 앞뒤 음절만 다른 게 아니라 이미지도 많이 다르다. 해남은 땅끝의 이미지로 왠지 육지 느낌이라면, 남해는 이상향 같은 심상을 준다. 남녘, 남촌, 남국 등 남(南) 자가 앞에 달려서 그럴 것이다. 아직 춥지는 않지만 그래도 10월, 풍(楓) 내려오는 가을 복판이다. 들판과 바다가 한창 무르익어 가고 있다. 남해대교와 노량대교를 차례로 건너면 붉은 황토와 노랗게 물들어 가는 황금들판, 옥색 바다가 한눈에 든다. 남해의 산과 들, 바다가 잘 짜 놓은 유화 팔레트처럼 조화롭게 펼쳐진다. 남해는 사실 산이다. 욕탕에 물을 빼듯 바닷물을 비운다면 뾰족한 산이 나올 텐데, 그 산들이 바로 남해도, 창선도, 우도 등 남해군이 품은 섬이다. 실제 국내 섬 중 가장 산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최고 786m(망운산) 등 기세 좋은 산들이 섬을 채운다. 왕이 되면 온 강토를 비단으로 두르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선 태조가 이름을 붙였다는 금산(錦山). 무려 해발 700m에 이른다. 태조처럼 뭔가를 이루기 위해 찾는 이들이 많은 전국 3대 기도 도량 보리암이 금산의 산마루에 있다. 관광객이야 좋은 풍경을 보러 오는 것이니 어쨌든 그 소원 하나는 들어준다. 산은 좋지만 경작할 농토는 모자랐다. 이렇다 할 장비도 없이 ‘수금푸’(삽의 사투리)와 호미로 일일이 산을 깎아 경작지를 개간해야 했다. 남해에는 가천면 다랑이논 같은 노동의 유산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10여층 높이의 계단 같은 논밭이 산허리로부터 바다를 향해 가파르게 떨어진다. 피땀 흘려 개간한 노동의 현장이지만 조형미만큼은 가히 예술적이다. 유려한 곡선(사실은 직선화할 수 없어 그랬을 테지만)이 가파른 층을 이루며 첩첩 오른다. 밑에서 보자면 하늘 계단이며 위에서 보면 곡면으로 구성한 몬드리안의 추상화다. 벼가 무르익으면 여기에 황금색이 입혀진다. 가을 다랑이논이 사진가에게 사랑받는 이유다.남해가 보물섬이란 설정에는 특유의 목가적 분위기도 한몫한다. 설천면 구두산에는 유럽 초원을 닮은 양떼목장과 양모리학교가 있다. 푸른 언덕에 양들이 뛰어놀고 있다. 시간 맞춰 가면 양몰이 개 보더콜리가 뛰어다니며 어린 양떼를 통제하는 진풍경도 관람할 수 있다.남해는 바다다.(아깐 산이라더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풍요롭고 비옥한 바다다. 이 바다에 봄이면 플래티넘처럼 반짝이는 멸치떼가 돌아오고, 가을이면 전어와 우럭 등 싱싱한 횟감과 전복, 소라 등 맛난 먹거리가 넘쳐난다. 관음포는 고현면 북쪽에 있는 포구다. 노량 바다를 바라보는 나지막한 언덕 아래 있다. 이락포(李落浦)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순신 장군이 서거한 곳이란 뜻이다. 1598년 음력 11월 19일, 충무공은 관음포에서 왜란의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 중 장렬히 전사했다. 충무공의 뜻을 기리는 이락사 등 유적과 영상관, 다양한 조형물과 기념물이 이곳에 있다. 그 이전인 고려 때는 인근 선원사(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다)에서 팔만대장경(국보 제32호)을 판각했다. 이래저래 호국성지인 곳이다. 상주은모래해변도 남해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포인트다. 저물어 가는 가을볕을 받아 윤슬과 더불어 반짝이는 은싸라기 같은 모래밭을 바라보면 과연 그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이 외에도 멸치떼가 지나는 지족해협과 죽방렴, 남해안 특유의 청자색 계열을 색색별로 눈에 담아 올 수 있다. 산이 높아 길도 한참 올라가는 탓에 눈부신 바다는 어느 곳엘 가도 따라다닌다. 코로나로 ‘바다 결핍’에 시달린다면 당장 남해를 찾아야 한다.●보물섬의 숨은 보물찾기 엘림 마리나 앤드 리조트는 독일 마을 아래 물건항에 위치한 요트 리조트다. 요트 정박장과 편의시설동, 테라스와 월풀욕조 등을 갖춘 숙박동으로 구성됐다. 럭셔리 요트와 제트 보트 등을 체험할 수 있다. 19~20세기 초에 제작된 빈티지 아날로그 오디오와 다양한 제조사의 중대형 바이크를 수십대 모아 둔 전시실도 갖췄다. 비 오는 날 등 야외 활동이 어려운 날에 찾아볼 만하다. 바닷가에 바로 접한 골든앵커 레스토랑에선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선보인다. 저녁 시간에는 새파란 하늘이 코발트 빛으로 저물어 가는 진풍경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 아난티 남해는 이미 유명한 곳. ‘물결’이 모티브로 녹아든 건물에 스위트룸 150개와 프라이빗 빌라 20개로 구성됐다. 리조트 조성 당시 5베이 구조를 채택해 어떤 객실에 묵어도 바다와 섬, 골프 코스를 볼 수 있다. 몇 년 전 힐튼 브랜드에서 아난티로 주인이 바뀌었다. ‘관광’보다는 ‘쉼’을 강조하며 콘셉트도 바꿨다. 어린이 섹션과 반려동물 동반, 서가 등 일상 속 ‘느림’을 표방하며 자연 속 휴식의 즐거움을 추구했다. 예술적 영감을 더한 굿즈와 식음료는 독특한 개성으로 채웠다. 아난티 남해는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지며 시너지를 낸다. 리조트 곳곳을 둘러보는 것 자체가 휴식이다. ●조선시대 여행작가 류의양 ‘남해문견록’ 남겨 독서의 계절에 남해에 왔는데 유배문학관을 빼놓기도 뭐하다. 남해는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하지만 남해 풍광을 가만 떠올려 보면, 형벌이 아니라 인센티브 휴가에 가깝다. 워케이션처럼 남해에 유배 와서 교육과 저술활동을 한 선비들이 많았다. 가시나무 울타리 밖으로 못 나오게 하는 위리안치를 제외하면 집을 짓고 서당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시를 쓰며 보냈다. 이때 유배문학이라는 독특한 장르가 탄생했다. 유배형이 있던 외국에도 공통된 현상이 있었다. 일본의 스가와라노 마치자네, 중국의 이백, 소동파, 백거이 등 당대 최고 시인들은 물론이며 서양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후 1815년 영국령 세인트헬레나섬으로 귀양을 가서 구술서 ‘세인트헬레나의 회상’을 남겼고 문호 빅토르 위고 역시 나폴레옹 3세에 의해 추방당한 후 영국 해협의 저지섬과 건지섬에서 살며 명작 ‘레미제라블’을 썼다. 러시아 푸시킨 역시 미하일로프 유배 생활 중 그 유명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썼다. 남해에는 ‘사친시’(思親詩)의 서포 김만중을 비롯해 이규보, 김굉필, 권근, 김정 등 수많은 문필가들이 유배 생활 중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 가운데 류의양(1718~미상)은 현대적 의미의 ‘여행작가’라 할 수 있다. 그림 같은 남해의 풍경과 생활상을 한글로 기록한 남해문견록을 남겼다. 류의양은 책에 풍경과 지리뿐 아니라 사투리 등 다양한 생활상까지 담아 국문학뿐 아니라 언어학에서도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가을날의 보물찾기. 보물섬 남해 땅에서 도전할 수 있다. 글 사진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 美·英·日 항모 훈련하자… 中, 대만에 군용기 149대 압박

    중국이 나흘 새 150대 가까운 군용기를 동원해 대만을 최대치로 압박했다. 필리핀해 등에서 미국과 영국 항공모함 3개 전단 등 6개국 해군이 합동훈련을 펼친 데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과 대만 모두 ‘전쟁도 불사한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이 더 커지고 있다. 5일 대만 중앙통신에 따르면 전날 중국 군용기 56대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으로 진입했다. 중국은 지난 1일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대만 ADIZ에 군용기를 보냈다. 건국 기념일인 국경절(1일)에 군용기 38대를 진입시켰고 다음날과 3일에도 각각 39대, 16대를 투입했다. 나흘간 모두 149대다. 일본 해상자위대 트위터 등에 따르면 미국·영국·일본·네덜란드·캐나다·뉴질랜드 등 6개국 해군은 지난 2~3일 필리핀해와 오키나와 남서부 해역에서 ‘자유로운 인도·태평양 실현’을 내걸고 합동훈련을 했다. 중국 매체 관찰자망은 영국의 최신예 항모 퀸 엘리자베스함과 일본 해상자위대의 준항모급 이세 호위함이 선두에 섰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중국군의 이번 움직임은 대만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영미일 연합 훈련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중국 본토 관련 사무를 총괄하는 대만 대륙위원회는 4일 “중국의 도발이 대만 해협의 안정을 훼손하고 지역 긴장을 고조시켰다. 침공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도 “대만에 대한 미국의 약속은 강력하다. 우리는 대만이 충분한 자위 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일 “미국의 도발은 중미 관계를 해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한다”고 했고,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도 “(중국의 움직임은) 집권당인 민주진보당 내 분리세력에 대한 심각한 경고”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우자오셰 대만 외교부장(장관)은 호주 ABC방송 인터뷰에서 “중국이 공격해 온다면 그들에게도 막대한 손해가 닥칠 것”이라며 항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 실종 신고된 터키 50대, 수색대에 가담했다가 “응, 날 찾는 거네”

    실종 신고된 터키 50대, 수색대에 가담했다가 “응, 날 찾는 거네”

    터키에서 행적이 묘연해 가족들이 실종 신고를 한 남성이 누군가를 찾는 수색대에 가담해 집 주변을 뒤지다 몇 시간 뒤에야 자신을 찾는 것임을 알게 됐다. 이스탄불 맞은 편, 보스포러스 해협 건너 부르사 지방에 사는 베이한 무틀루(50)인데 지난달 28일(이하 현지시간)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취해 숲에서 길을 잃었다. 그의 부인과 친구들은 귀가하지 않은 그가 실종됐다고 신고해 수색대가 꾸려졌다. 현지 NTV 보도에 따르면 집으로 돌아오던 그는 수색대가 주변을 뒤지는 것을 보고 함께 뒤졌다. 그런데 수색에 나선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하자 그는 “나 여기 있어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 수색대원의 전갈에 따르면 그는 “경관님들, 절 너무 심하게 처벌하지 말아주세요. 우리 아버지가 절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그를 집에까지 바래다줬는데 벌금을 물렸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영국 BBC는 같은 달 30일 전했다. 그런데 인터넷 매체 바이스에 따르면 이런 황당한 일이 처음도 아니다. 2012년 아이슬란드에서 실정된 아시아인 관광객이 그녀 자신을 찾는 수색대에 영문을 모르고 함께 하다 뒤늦게 자신을 찾는 것임을 깨달았다.
  • 내달 베를린서 제3회 ‘한반도 평화음악회’ 개최

    내달 베를린서 제3회 ‘한반도 평화음악회’ 개최

    오는 10월 1일 베를린 중심가에서 한반도 평화음악회가 열린다. 음악회가 열리는 빌헬름황제기념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부서진 채 보존되고 있어 평화의 상징으로 불리는 베를린의 관광명소다. 2019년을 시작으로 매년 독일 재통일 기념일주간에 열리고 있는 한반도 평화음악회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계속 개최되며 올해 3번째를 맞이하고 있다. 이날 연주를 하게 되는 22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지휘 이승원 교수)와 두 명의 성악가는 베를린에서 공부하고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인음악가들이다. 엘가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바이올린 솔로 천현지), 막스 브루흐의 ‘비올라를 위한 로망스’(비올라 솔로 이승원 교수), 데 쿠르티스의 ‘나를 잊지 말아요’(테너 이주혁), 구노의 ‘꿈속에 살고 싶어라’(소프라노 정한별), 레하르의 ‘입술은 침묵하고’(소프라노 정한별, 테너 이주혁),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 등이 연주된다. 최근 라이프치히 음대 비올라 교수로 임용된 이승원 교수가 이끄는 이 음악회는 한인연주자들의 뛰어난 음악적 역량으로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줄것으로 기대된다.이 음악회는 민주평통 유럽 중동 아시아 지역회의(부의장 김점배),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독일지역본부, 독한협회,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베를린지회, 한민족유럽연대, 코리아협의회, 김바이올린공방과 개인 후원자들의 후원으로 한독문화예술교류협회가 주최한다. 정선경 한독문화예술교류협회 대표는 “이 음악회가 공공외교의 일환으로 독일시민들에게 종전선언, 평화협정, 개성공단 재개 등 한반도 평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제사회에서 이를 지지, 협력관계로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기를 바란다”면서 “이번엔 포스터에 남한의 국화인 무궁화와 북의 국화인 목란을 악기와 형상화하여 한반도 평화를 표현하고자 했지만 언젠가 남북의 음악가가 함께하는 진정한 한반도 평화음악회를 기획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반도 평화음악회는 2021년 10월 1일 금요일 저녁 7시 반에 열린다. 음악회에서 모아진 기부금은 북한고아원 어린이돕기와 다음 자선음악회를 위해 쓰일 예정이다.
  • “나는 대만 독립 지지자 아니다”…中 출신 대만 대표 여배우의 절규

    “나는 대만 독립 지지자 아니다”…中 출신 대만 대표 여배우의 절규

    중국 출신의 여배우 쉬시디(徐熙第)가 자신에 대해 거듭 대만 독립 지지자가 아니라고 밝혔다. 중국에서는 일명 ‘샤오S’라는 예명으로 알려진 여배우 쉬 씨는 지난 15일 중국 SNS 웨이보를 통해 “(나는)대만 독립 지지자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밝혀 준 대만 국무국에게 감사드린다”면서 “(내가)대만 독립 지지자라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분들은 이제 그만 거짓 선동을 멈춰 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최근 대만 국무국 소속 주펑리안 대변인이 “최근 대만의 예술가들이 온라인 상에서 광범위하게 번지는 유언비어 탓에 발전을 저해당하고 있다”면서 “이는 해협 간 문화 교류를 방해하기 위해 일부에서 의도적으로 문제를 일으켰을 의혹이 매우 높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주 대변인은 이어 “대만 예술인들의 중국 본토에서의 예술활동을 공식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인 바 있다. 이 같은 발언은 다수의 대만 출신 연예인들이 중국 누리꾼들로부터 ‘하나의 중국’ 지지와 관련한 공격을 받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운 현실을 설명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중국 국영언론 관찰차망은 16일 여배우 쉬 씨의 개인 입장문과 대만 국무국 측의 발언 등을 대대적으로 보도해 사안을 키우는 양상이다. 실제로 관련 소식은 현지 다수의 언론을 통해 이날 기준 8만 건 이상 보도가 이어졌다. 또, 현지 누리꾼들은 대만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꼽히는 쉬 씨의 발언에 주목, 그의 개인 계정 관련 발언을 450만 건 이상의 리트윗 하는 등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8월, 쉬 씨는 올림픽에 출전한 대만 출신 선수들을 응원했다가 중국 누리꾼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결국 사과한 바 있다. 지난달 3일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대만 대표 배드민턴 선수 다이쯔잉의 사진과 함께 '졌지만 자랑스럽다'고 글을 올린 것이 누리꾼들의 비판의 대상이 됐던 상황이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쉬 씨가 응원했던 다이쯔잉 선수가 과거 대만 독립 지지자였다는 사실을 언급, 그를 응원한 것은 곧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어긴 것이라고 그를 비난했다. 논란이 일자 쉬 씨를 모델로 기용했던 중국 기업들은 잇따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면서 그와의 광고 계약을 종료했다. 총 4곳의 대기업으로부터 계약 종료를 전달받은 쉬 씨는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나는)대만 독립주의자가 아니다. 모두 건강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올림픽 대표 선수에 대한 개인적인 응원 메시지를 게재한 지 불과 2일 만의 사과문이었다. 그로부터 약 40여일 지난 후 쉬 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또 다시 '나는 중국인으로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중국 산둥성에서 출생한 본토 출신으로 산둥성에 깊은 정이 든 사람이다'는 등의 내용을 강조했던 바 있다.
  • 다행히 제주도 관통 피한 찬투… 내일까지 물폭탄 뿌리고 떠나

    다행히 제주도 관통 피한 찬투… 내일까지 물폭탄 뿌리고 떠나

    제14호 태풍 ‘찬투’는 한반도 주변 고기압 세력으로 인해 당초 예상과 달리제주도를 관통하지 않고 제주 남동쪽 해상으로 빠르게 지나갈 것으로 보인다. 강도도 다소 약해졌지만 제주를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리고 제주와 남해안, 경상 동해안에 매우 강한 바람이 불겠다. 기상청은 15일 ‘제14호 태풍 찬투 전망’과 관련한 예보 브리핑을 열고 “17일 아침 제주도에 근접한 뒤 이동속도가 빨라져 17일 밤 대한해협을 통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풍 찬투는 15일 기준 중심기압 980h㎩(헥토파스칼), 최대풍속 초속 29m, 강풍반경 280㎞의 강도 ‘중’급으로 다소 약화됐다. 태풍 찬투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시기는 제주는 16일 오후부터 17일 낮, 전라권은 17일 새벽부터 오후, 경상권은 17일 아침부터 밤이 될 것으로 기상청은 전망했다. 17일까지 예상 강수량은 제주 산지 많은 곳 400㎜ 이상, 제주 100~300㎜, 전남동부·경남권해안 30~80㎜(많은 곳 120㎜), 충청·남부지역·강원영동 10~60㎜ 등이다. 특히 14일까지 500㎜ 이상 비가 내린 제주 산지는 추가로 내리는 비까지 더하면 900㎜ 이상 매우 많은 비가 내리는 곳이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 文 대통령 만난 中 왕이 “각자 핵심이익·관심사 존중해야”

    文 대통령 만난 中 왕이 “각자 핵심이익·관심사 존중해야”

    외교장관회담에선 美의 ‘코로나19 중국책임론’ 우회적 비판한국을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15일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한중 양국이 “각자 핵심 이익과 주요 관심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밝혔다. 왕 부장은 “중국과 한국의 국가 상황이 다르기에 항상 각자의 발전 경로를 존중하고, 각각 핵심 이익과 주요 관심사를 존중하며, 민족·문화전통·국민감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는 설명했다. 왕 부장의 발언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고도화 되고 있는 미중갈등을 염두에 두고 나온 것으로 평가됐다. 미국이 서방과의 동맹을 복원, 중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흐름에 한국이 부응하지 않기를 바라는 속내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5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서 “양국 대통령은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문구가 담기며 한미 정상 간 공식문서에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가 최초로 언급된 점을 견제한 행보로도 읽힌다. 왕 부장은 또 양국 간 협력를 강조했다. 그는 “중한 양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으로 통하며, 경제적으로 보완적”이라면서 “호혜 혁명을 강화·심화해 양국 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전했다. 왕이 부장은 문 대통령에 앞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도 코로나19 기원과 관련해 중국책임론을 주장하는 바이든 행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중국 외교부 설명에 따르면 왕이 부장은 “공동예방과 통제를 위한 기구와 인원이 신속통로로 왕래하고, 방역과 백신 협력을 심화하자”며 코로나19 대응에 있아 협력을 강조한 뒤 “코로나19 기원을 정치화하고 도구화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했다.
  • 태풍 ‘찬투’ 17일까지 제주 산지 900mm 비 쏟아붓는다

    태풍 ‘찬투’ 17일까지 제주 산지 900mm 비 쏟아붓는다

    제14호 태풍 ‘찬투’는 강도 ‘중’의 태풍으로 다소 약화되고 한반도 주변 고기압의 영향으로 제주도를 관통하지 않고 제주 남동쪽 해상으로 빠르게 지나갈 것으로 보인다. 강도는 다소 약해졌지만 제주를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리고 제주도와 남해안, 경상동해안에 매우 강한 바람이 불겠다. 기상청은 15일 ‘14호 태풍 찬투 전망’ 관련 예보브리핑을 열고 “17일 아침 제주도에 근접한 뒤 이동속도가 빨라져 17일 밤 대한해협을 통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풍 찬투는 중국 상하이 부근을 지난 뒤인 15일 기준 중심기압 980h㎩(헥토파스칼), 최대풍속 초속 29m, 강풍반경 280㎞의 강도 ‘중’으로 다소 약화됐다. 태풍 찬투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시기는 제주도는 16일 오후부터 17일 낮, 전라권은 17일 새벽부터 오후, 경상권은 17일 아침부터 밤이 될 것으로 기상청은 전망했다. 17일까지 예상 강수량은 제주도 산지 많은 곳 400㎜ 이상, 제주도 100~300㎜, 전남동부, 경남권 해안 30~80㎜(많은 곳 120㎜), 충청권, 남부지방, 강원영동 10~60㎜, 경기남부, 강원영서남부 5~20㎜ 이다. 특히 제주 산지는 14일까지 500㎜ 이상 비가 내렸는데 추가적으로 내리는 비까지 더하면 900㎜ 이상 매우 많은 비가 내리는 곳이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기상청 중기예보(10일 전망)에 따르면 태풍 찬투의 영향으로 추석연휴를 지나 이달 말까지 까지 전국의 예상 아침 최저기온은 16~23도, 낮 최고기온은 24~29도로 평년보다 조금 낮은 분포를 보이겠다.
  • 나란히 위성에 찍힌 태풍 ‘꼰선’과 ‘찬투’…한반도 영향 주목

    나란히 위성에 찍힌 태풍 ‘꼰선’과 ‘찬투’…한반도 영향 주목

    하루 간격으로 발생한 제13호 태풍 ‘꼰선’(CONSUN)과 제14호 태풍 ‘찬투’(CHANTHU)의 한반도 영향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6일 오후 3시쯤 필리핀 세부 동쪽 약 330㎞ 해상에서 발생한 꼰선은 마닐라 남동쪽 약 280㎞ 부근에 상륙했다가 8일 오전 다시 해상으로 빠져나올 전망이다. 이후 중국 잔장 방향으로의 이동이 예상된다. 7일 오전 9시 기준 중심기압 996h㎩(헥토파스칼), 최대풍속 초속 20m, 강풍반경 170㎞였던 꼰선이 10일 오전 중국 잔장 남동쪽 약 680㎞ 부근에 다다를 때쯤에는 최대풍속 초속 27m, 강풍반경 210㎞으로 발달해 있을 전망이다. 예상 경로대로라면 일단 꼰선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기상청은 관측하고 있다. 7일 오전 9시 괌 서북서쪽 약 920㎞ 부근 해상에서 발생한 제14호 태풍 ‘찬투’는 시속 18㎞ 속도로 서진 중이다. 7일 일본 기상위성 히마와리 8호에는 서태평양에서의 찬투 형성 과정이 포착됐다. 찬투 중심기압은 1000h㎩, 최대풍속 초속 18m, 강풍반경은 150㎞다.찬투는 오늘 밤 9시쯤 괌 서북서쪽 약 1030㎞ 부근 해상으로 이동한 뒤, 8일 오후 9시 필리핀 마닐라 동북동쪽 약 1210㎞ 부근 해상까지 북상할 전망이다. 10일 오전 9시에는 마닐라 북동쪽 약 700㎞ 부근 해상, 11일 오전 9시에는 대만 타이베이 남남동쪽 약 470㎞ 부근 해상까지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12일 오전 9시에는 타이베이 남쪽 약 380㎞ 해상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꼰선과 달리 찬투는 다음주쯤 대한해협에 북상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아직 정확한 진로는 예측할 수 없다. 한편 찬투는 캄보디아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꽃의 한 종류이며, 꼰선은 베트남에서 제출한 역사적인 지명이다.
  • ‘명량대첩’ 현장 짜릿하게 느껴보세요

    ‘명량대첩’ 현장 짜릿하게 느껴보세요

    “명량해전의 전설인 ‘울돌목 회오리 바다’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물리친 명량대첩 승전지인 전남 해남 우수영 울돌목의 회오리 바다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명소가 탄생했다. 5일 해남군에 따르면 지난 3일 스카이워크와 해상케이블카를 개통,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이 살아있는 우수영 관광지의 진면목을 선보이고 있다. 길이 110m의 울돌목 스카이워크는 울돌목의 거센 물살위를 직접 걸어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바다쪽으로 직선거리 32m까지 돌출되고, 바닥을 투명 유리로 만들어 스릴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유리바닥 아래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조류가 빠르다는 울돌목의 물살을 생생히 접할 수 있다. 총 길이 960m 울돌목 해협을 가로지르는 해상케이블카도 운행한다. 해남 우수영 관광지와 진도 녹진타워를 오가는 노선이다. 10인승 곤도라 26대가 투입된다. 울돌목해상케이블카에서 전액 민간투자로, 총 360억원을 투입해 조성했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의 대승을 거두었던 역사의 현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일품이다. 케이블카 13대는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 캐빈이어서 울돌목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짜릿하게 감상할 수 있다. 명량해상케이블카는 해남 승차장에서 출발해 진도 망금산 승차장에 정차한후 다시 해남으로 순환 운행하게 된다. 명현관 해남군수는 “스카이워크와 울돌목 해상케이블카는 거센 물살로 유명한 울돌목을 가로지르는 노선으로, 우수영의 새로운 관광수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면서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우수영권 관광개발사업과 맞물려 서남권 관광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 해나갈 수 있도록 운영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 “명랑의 전설 느끼러 오세요”…체험 명소 탄생

    “명랑의 전설 느끼러 오세요”…체험 명소 탄생

    “명량의 전설 ‘울돌목 회오리 바다’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물리친 명량대첩 승전지 해남 우수영 울돌목의 회오리 바다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명소가 탄생했다. 5일 해남군에 따르면 지난 3일 스카이워크와 해상케이블카를 개통,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이 살아있는 우수영 관광지의 진면목을 선보이고 있다. 총길이 110m의 울돌목 스카이워크는 울돌목의 거센 물살위를 직접 걸어볼 수 있도록 조성됐다. 바다쪽으로 직선거리 32m까지 돌출되고, 바닥을 투명 유리로 만들어 스릴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유리바닥 아래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조류가 빠르다는 울돌목의 물살을 생생히 접할 수 있다.총 길이 960m 울돌목 해협을 가로지르는 해상케이블카도 운행을 시작했다. 해남 우수영 관광지와 진도 녹진타워를 오가는 노선이다. 10인승 곤도라 26대가 투입된다. ㈜울돌목해상케이블카에서 전액 민간투자로, 총 360억원을 투입해 조성했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의 대승을 거두었던 역사의 현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일품이다. 케이블카 13대는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 캐빈이어서 울돌목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짜릿하게 감상할 수 있다. 명량해상케이블카는 해남 승차장에서 출발해 진도 망금산 승차장에 정차한후 다시 해남으로 순환 운행하게 된다. 군은 스카이워크와 케이블카의 조명시설과 야간 운행 등으로 빛의 관광을 통해 관광객들이 체류할 수 있는 명소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쌍둥이 다리로 유명한 진도대교와 울돌목의 환상적인 경관이 어우러진 야간관광의 새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명현관 군수는 “스카이워크와 울돌목 해상케이블카는 거센 물살로 유명한 울돌목을 가로지르는 노선으로 우수영의 새로운 관광수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며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우수영권 관광개발사업과 맞물려 서남권 관광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 해나갈 수 있도록 운영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 바다 건너 일본까지 헤엄쳐 가 망명 신청한 러시아인

    바다 건너 일본까지 헤엄쳐 가 망명 신청한 러시아인

    러시아인 한 명이 바다 건너 일본까지 헤엄쳐 가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20일 일본 교도통신은 홋카이도의 작은 어촌마을 시베쓰에서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는 러시아인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17일 러시아 사할린주에 딸린 쿠나시르섬에서 종적을 감춘 망명 신청자는 이즈메니 해협 건너 일본 홋카이도 시베쓰까지 20㎞ 이상을 헤엄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시베쓰 해안에서 발견된 그는 인근 경찰서로 연행돼 입국 경위를 조사받은 후 구금됐다. 영유권 분쟁 지역인 쿠나시르섬 주민이 일본에 망명을 신청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20일 주일러시아대사관은 “러시아인이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와 관련하여 주일러시아대사관과 삿포로주재러시아영사관이 일본 당국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언론도 속속 관련 소식을 전했다. 망명 신청자의 신원에 관한 보도도 잇따랐다. 모스크바타임스와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익명의 소식통 말을 인용해 “우드무르트공화국 수도 이젭스크 출신의 바스 페닉스 노카드(38)가 잠수복을 입고 홋카이도까지 24㎞를 헤엄쳐 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그가 바다를 건너기 전 해안까지 타고 이동한 오토바이를 팔아 돈을 송금해달라고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는 내용도 함께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노카드는 2011년 비자 규정 위반으로 일본에서 추방된 전력이 있는 자다. 태국과 발리에서도 문서 위조 혐의로 추방됐다.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극동 지역 이주 정책에 따라 무상으로 1헥타르(약 3000평)의 땅을 받고 쿠릴열도 쿠나시르섬으로 이주했다. 현지언론은 집에서 다수의 일본 포스터가 발견된 점과, 일본어 수업 수강 기록이 있는 점 등을 들어 그가 일본 문화에 심취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그러나 삿포로주재러시아영사관은 망명 신청자의 신원에 대한 언론 추정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사관 관계자는 “일본 당국이 망명 신청자의 신원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공식 확인 자체가 없었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은 23일 일단 “망명 신청자의 입국 경위를 확인한 뒤 관련 당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망명 신청자가 살던 쿠나시르는 러시아 캄차카 반도와 일본 홋카이도 사이에 위치한 쿠릴열도에서도 최남단에 있는 섬이다. 일본은 쿠나시르를 포함해 이투루프, 시코탄, 하보마이 군도 등 쿠릴열도 남단 4개 섬을 ‘북방영토’라 칭하며 러시아와 영유권 갈등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1855년 제정 러시아와 체결한 통상 및 국경에 관한 양자조약을 근거로 이 섬들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열도를 실효 지배 중인 러시아는 남쿠릴열도가 2차 대전 종전 후 전승국과 패전국 간 배상 문제를 규정한 국제법적 합의에 따라 합법적으로 러시아에 귀속됐다면서 반환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북한에 ‘평화의 쌀’ 53만t 보내자” 모금 운동…이인영 “인도적 협력”

    “북한에 ‘평화의 쌀’ 53만t 보내자” 모금 운동…이인영 “인도적 협력”

    3000억 모으기 위해 범국민 캠페인 실시“추석 전 10만t 대북 지원”…19일 발족식이인영 “北, 하반기 매우 중요…‘평화 뉴딜’ 제안”한미훈련에 김여정·김영철 잇단 비난 성명김영철 “엄청난 안보 위기 느끼게 해줄 것”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가 대북제재 속에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평화의 쌀’을 보내자며 쌀 50여만t 조성에 필요한 성금 3000억원 모으기 운동에 돌입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대북 인도적 지원의 진정성 있는 일관성을 강조하며 북한에 대선 정국에 들어가기 전인 하반기에 대화 재개에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주권자전국회의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등 10여 단체는 18일 ‘한반도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평화의 쌀 나누기 추진위원회’를 발족해 민간 차원의 대북 쌀 나눔 운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북한의 올해 쌀 부족분 53만 5000t을 오는 11월까지 북한에 지원하되, 이 가운데 10만t은 추석 전에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기금 3000억원은 범국민 캠페인을 통한 재계·노동계·시민사회계 성금 모금과 코리아 피스 펀드, 해외동포·해외인사의 참여 등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추진위는 19일 오전 서울 명동 한국YWCA연합회에서 발족식을 열 예정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이 85만 8000t이며 이 가운데 쌀 부족량은 53만 5000t이라고 추산했다.이인영 “인도적 협력 일관되게 추진” 이날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고려대에서 열린 ‘2021 한국정치세계학술대회’ 기조연설에서 “지속가능한 평화의 결실을 만드는 과정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올해 하반기가 매우 중요하다”며 북한에 조속한 대화 재개를 촉구했다. 이 장관은 정부의 정책 방향은 ‘진정성 있는 일관성’이란 점을 강조하며 “남북의 인도적 협력은 정치·군사·안보적 상황과 분리해 정치적 수요가 아니라 오로지 인도적 수요 따라 일관되게 추진하겠다”는 원칙도 거듭 확인했다. 또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뉴딜·그린뉴딜·휴먼뉴딜로 구성되는 한국판 뉴딜을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하는, 남북협력을 통한 평화경제 구상인 ‘평화뉴딜’을 제안한다”면서 “평화뉴딜을 추진하려면 남북이 현재의 교착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우리의 대선 정치 일정, 또 내년 하반기로 예정된 미국의 중간선거 등의 영향, 그리고 어쩌면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되는 등의 변수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 동력이 약화할 소지도 높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빠른 시일 내 남북 간 실질적 대화가 재개된다면 오는 9월 남북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 10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12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30주년,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남북협력 재개와 신뢰 구축의 중요한 계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김여정 “반드시 대가 치를 자멸적 행동”北 “우리 선의에 적대한 대가 알게 해야” 한편 북한은 하반기 한미연합훈련 사전연습이 시작된 지난 10일 오후부터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을 통한 통화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7일 남북이 통신연락선을 전격 복원한 지 2주 만이었다.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당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과 남조선군은 끝끝내 정세 불안정을 더욱 촉진시키는 합동군사연습을 개시했다”면서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자멸적인 행동”이라면서 “거듭되는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강행하는 미국과 남조선 측의 위험한 전쟁 연습은 반드시 스스로를 더욱 엄중한 안보 위협에 직면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도 한미연합훈련에 반발하는 담화를 내고 “잘못된 선택으로 하여 스스로가 얼마나 엄청난 안보 위기에 다가가고 있는가를 시시각각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라면서 “북남관계개선의 기회를 제손으로 날려 보내고 우리의 선의에 적대행위로 대답한 대가에 대하여 똑바로 알게 해주어야 한다”고 밝혔다.앞서 김 부부장은 지난해 6월 대북전단 살포가 이뤄진데 대해 탈북자와 한국 정부를 맹비난하며 한국의 혈세 180억원이 전액 투입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시켰다. 그는 남북정상이 맺은 남북 군사합의서를 파기할 것이라며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김 부부장은 당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삐라 살포 등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판문점 선언과 군사합의서 조항을 모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남조선 당국이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한다면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북남(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마나 한 북남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대북전단살포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무력 침공 시나리오까지… 中, 美 업은 대만 진짜 칠까

    무력 침공 시나리오까지… 中, 美 업은 대만 진짜 칠까

    최근 중국이 대만 인근 해상에서 군사 훈련을 감행하고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침입해 양안(중국과 대만)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자 외신들을 중심으로 ‘전쟁 가능성’이 대두된다. 16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문가 보고서를 인용해 “지금 (대만과 중국은) 전쟁 직전의 상황”이라며 “과거 장제스·마오쩌둥 시절보다 무력충돌 위험이 더 크다”고 우려했다. 중국에서는 대만과의 평화 통일을 설득하고자 내놨던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 논리가 홍콩 국가보안법 사태로 무너지자 ‘인민해방군 창군 100주년인 2027년까지 무력으로 합병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이 나온다. 대만도 중국의 무력침공에 대비해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며 무기 수입을 늘리고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참전해야 하는가’를 두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대만 문제가 동아시아 평화의 중요 변수가 되고 있다.●트럼프 집권 이후 증폭된 중국의 대만 위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누구라도 중국을 압박하면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고 경고한 지난달 1일. 중국선박공업그룹(CSSC)이 발간하는 월간지 함선지식은 ‘통일전쟁의 서막, 대(對)대만 연합 화력 공격 삼부곡’이라는 기사와 동영상을 올렸다. 잡지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만 공격 시나리오를 3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1단계는 ‘둥펑16’ 등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쏟아부어 공항과 레이더, 대공미사일 기지 등을 파괴하는 것이다. 2단계는 ‘잉지91’과 같은 순항미사일로 군사기지와 통신시설, 군함을 부순다. 3단계는 함포 사격으로 인민해방군 대만 상륙의 방해물을 제거한다. 매체는 “우리는 ‘대만의 독립 시도가 결국 막다른 길에 이를 뿐’이라는 점을 단호히 경고한다”고 끝을 맺었다. 이 기사는 해당 매체의 자의적 관점의 보도일 뿐 인민해방군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그럼에도 자국 언론을 체제 선동의 도구로 여기는 중국에서 이런 민감한 보도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과 대만에 대한 으름장이라는 해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중국군 공군이 대만 ADIZ에 대규모로 진입하고 항공모함 ‘랴오닝’이 대만을 순회하는 등 일련의 행보를 두고 “대만보다는 미국에 대한 무력시위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이제 ‘중국의 대만 침공’(china attack taiwan)은 구글만 검색해도 관련 기사가 수백건 쏟아질 만큼 개연성 있는 가설이 됐다. 대만해협 긴장이 이렇게 커진 것은 2017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중국 압박을 위해 ‘대만 카드’를 꺼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례를 깨고 차이잉원 대만 총통(대통령)의 취임 축하 전화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단교 이후 최고위급인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만을 찾았다. 올해 1월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과의 협력 수위를 더욱 높였다. 대만관계법 제정 기념일에 전직 미 의회 및 국무부·국방부 인사들의 대만 방문을 허가했다. 한미 정상회담과 미일 정상회담, 주요 7개국(G7)·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공동선언에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명시했다. 이때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이 훼손됐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 불사’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사실 중국과 대만의 군사력은 비교 자체가 무색할 만큼 차이가 크다. 대만의 대중 정책을 관장하는 대륙위원회의 전직 위원 알렉산더 황은 SCMP에 “중국군이 규모는 대만의 100배, 국방비는 25배 많다”며 “대만이 얼마나 많은 군사력을 확보해야 전략적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토로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미국 국방부가 지금까지 18차례나 워게임(전쟁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중국은 늘 대만을 월등한 전력 차로 압도했다”고 보도했다.●“中군사력, 대만 100배… 전투경험 美에 밀려” 그러나 대만의 뒤에는 ‘세계 최강’ 미국이 있다. 아직 중국이 미국과 일대일로 맞붙기는 무리다. 미 외교안보 전문지 더 디플로맷은 “중국 복무 군인 가운데 일부 나이 든 장군을 빼면 실제 전투 경험이 없다”며 “이는 중국군이 (실전 경험이 풍부한 미군에 비해) 현실적이고 복잡한 환경에서 훈련받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여기에는 정량적 계측이 불가능한 변수가 있다. 미국이 ‘민주주의 수호’라는 이름으로 자국 병사들의 희생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최근 미국은 20년간 이어 온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스스로 포기했다. 미군 2400여명이 숨지는 등 인적·물적 피해가 커지자 전쟁 피로감이 극에 달한 것이다. 군사력 열세에도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했다. 중국이 한국전쟁 때처럼 인민해방군 수십만명의 피해를 불사한다면 미국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 소식통은 “우리나라 같은 제3자가 볼 때 중국의 대만 침공이 무모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중국 내부에서는 ‘아편전쟁(1842년) 이후 외세에 의해 분열된 영토를 완전히 회복한다’는 상징성이 크다”며 “‘희생을 감내하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상당수”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중국의 대만 침공을 막아낼 수 있을까. 생각보다 쉽지 않아 보인다. 미 군사매체 디펜스뉴스는 미국이 전력화가 되지 않은 인공지능(AI) 탑재 전투 드론까지 모두 활용해야 중국의 공격을 간신히 격퇴할 수 있었다는 최근 워게임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베이징의 군사 전문가 저우천밍은 SCMP에 “인민해방군은 대만과의 전쟁에서 미 해군 진입을 막아낼 방법만 수십년을 연구했다”며 “중국의 항공모함들과 미사일들이 미 항모 전단이 대만해협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강력한 방패’를 구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만 해군학교 전 교관인 뤼리스도 “미군은 1991년 걸프전 때 이라크를 공격하고자 항공모함 6대를 전개했는데, 지금의 인민해방군은 당시 이라크군보다 강하다”며 “미 해·공군 전력의 80%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2019년 기준 미국의 중대형 항모가 11척임을 감안하면 최소 8~9척은 대만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미국의 명운을 걸고 맞서야 승부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디펜스뉴스는 이를 고대 그리스 고사인 ‘피로스왕의 승리’로 표현했다. 미국이 어렵게나마 이길 수 있겠지만 감당하기 힘든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속내가 담겨 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상처 뿐인 영광’이다.●“전쟁 땐 전방위 제재에 20여년 고난의 행군” 다만 전문가들은 중국과 대만 간 갈등 수위가 높아졌음에도 당장 전쟁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 우선 중국은 내년 2월에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치른다. 올림픽을 열면서 전쟁도 시작한다면 중국은 세계 역사 교과서에 길이 남을 오점을 각오해야 한다. 서구세계의 전방위 제재로 향후 20~30년간 ‘고난의 행군’도 예상된다. 더 디플로맷은 “전쟁이 발발하면 양안(중국과 대만) 모두 대량살상무기로 상대편 경제권을 파탄 낼 것”이라며 “인민해방군이 힘의 우위를 내세워 침공에 나서자고 해도 (경제 타격을 우려한) 시 주석 등 당 지도부가 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미국이 취할 전략적 선택도 따져 봐야 한다. 베이징에서 만난 군사 소식통은 “중국이 대만을 확보하면 미국은 이를 보복하고자 남중국해 내 중국 인공섬들을 폭파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라며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을 얻더라도 동남아 제해권을 뺏기게 돼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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