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복지모델 마침표 찍나
높은 세금(소득세율 30∼55%)으로 질 높은 공공 서비스와 복지 혜택 제공,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체제와 자본주의 기업의 절묘한 결합, 중앙집중화된 임금 교섭, 피고용자의 30%가 공공 부문에 종사할 정도로 ‘큰 정부’ 지향….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조차 부러워해 온 스웨덴의 복지국가 모델이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65년간 집권해온 사회민주당(SDP) 주도의 중도좌파연합이 17일 총선에서 우파중도연합에 정권을 내줄지도 모르는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선거 판세는 어느 쪽 승리도 장담할 수 없는 박빙이다. 영국 BBC는 “스웨덴 모델의 미덕이 기로에 서있다.”고 지적했다.
●좌우파 엎치락 뒤치락 계속
지난주 여론조사에서 보수당, 자유당, 중도당, 기민당의 우파연합은 47.7% 지지율로 예란 페르손(57) 총리가 이끄는 좌파연합(46.7%)을 앞서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조금 앞서 실시된 조사에선 사민당, 녹색당, 좌파당의 좌파연합이 0.7%포인트 차로 우파를 앞선 것으로 집계됐다.
선거 막판에 자유당 운동원들이 SDP의 선거 전략이 들어있는 컴퓨터를 해킹한 사실이 들통나 자유당 당수가 사임하는 등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이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좌파연합의 실권 위기가 초래된 것은 높은 실업률 탓이다. 올해 전반기 실업률은 5.7%로 집계됐지만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종사하는 이들의 2.7%가 누락된 것이라고 BBC는 전했다. 야당은 실업률이 20%에 육박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매킨지 글로벌 연구소는 15% 수준이라고 짚었다.
여기에 에릭슨, 이케아, 볼보 등 뛰어난 글로벌 기업들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 나라 50대 기업 가운데 1970년 이후 창업한 것이 한 군데에 불과할 정도로 세금과 각종 규제 때문에 기업 활동이 위축됐다는 것이 선거 쟁점이 되고 있다.
24세 이하 청년들이 복지 시스템을 믿고 취업을 하지 않아 그 부담이 그대로 납세자에게 전가되고, 조직률이 80%나 되는 노동조합이 너무 쉽게 파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 노동 관련 법률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고 BBC는 덧붙였다.
●우파연합 승리해도 노선 보정(補正) 그칠 듯
따라서 우파연합의 기치는 당연하게도 ‘시장 개혁’으로 모이고 있다.370억크로네(약 4조 7500억원) 규모의 세금 감면안을 제시하고 과감한 민영화를 통해 기업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복지 모델의 근간이 위협받게 된다. 그러나 우파연합이 승리하더라도 영미식의 대폭 감세와 과감한 민영화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BBC는 전했다.
우파연합 스스로도 4년 전 총선에서 급진 개혁을 내걸다 표심을 잃은 기억 때문에 중도 성향을 강화하는 데 신경을 쏟고 있다. 즉 좌파적인 복지 모델의 근간은 유지하면서 정부와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식으로 유권자를 설득하고 있다. 이에 3기 연임을 노리는 페르손 총리는 250억크로네(2조 9500억원)의 재정지출 증가를 통해 실업보험금과 육아비, 의료비 보조를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인 프레드릭 카렌은 “유권자들은 세금을 그렇게 걱정하지는 않으며 다만 변화를 원하고 있다. 그 변화는 복지센터, 학교, 병원 등에서의 선택권을 넓혀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기업인은 “스칸디나비아에서 자유주의 혁명은 있을 수 없으며 영미식 개혁에 휩쓸릴 수도 없다. 다만 약간의 변화가 필요한데 많은 이들이 기업을 새로 시작하거나 일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