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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고르비 쿠데타를 보고/한승조 고려대교수·정박(특별기고)

    ◎“볼셰비키노선 회귀는 시대착오”/소 국민은 이미 자유·개방맛을 아는데… 타스통신은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대통령직을 사임하였고 대통령의 권력은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이 승계했다고 지난 19일 제1보를 내보냈다.이것은 결코 정상적인 권력승계가 아니라 하나의 정변이라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명백하다. 앞으로 8인의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국정을 담당한다는데 그 면면을 보면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인하여 신변의 위협을 느껴온 구세대 공산당보수파가 군부,그리고 비밀경찰의 도움을 받아 쓸데없이 일으킨 작난인 것처럼 보인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에 전념해온 고르비정권의 중도하차는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온 일이었다.러시아혁명이 난지 74년,그동안에 저질렀던 이념적 오류와 정책적 과오,그리고 공산당독재의 적폐가 단시일내에 한사람의 지도자 힘으로 개혁될 것으로 기대할 수가 없다.고르비의 개혁노선은 공산당의 정치노선과 정반대되며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소련체제의 민주화,자본주의경제제도의 도입,대서방화해와 협력증진을 추진하려는 것이었다.70여년동안 안간힘을 다해 실시해오던 노선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는 개혁노선이므로 순탄하기를 기대할 수가 없는 일이다.도리어 서두르면 서둘수록 개혁노력에 대한 반동도 거세질 수 밖에 없었다. 고르바초프정권은 그동안 주요세력으로부터 정반대의 압력을 받아 왔다.첫째 소련공산당이 추구해왔던 이념이나 정책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고 개혁을 보다 근본적으로,그리고 하루바삐 추진하려는 개혁세력의 압력이다.그런데 오늘의 공산당조직은 개혁을 방해해온 직업관료층,노멘클라투라들에 의하여 장악되어 있으므로 그 조직을 가지고 개혁노선의 성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그러므로 공산당을 탈퇴하여 개혁적인 민주정당을 만든다음 선거를 통하여 집권해야겠다고 주장해 왔다.둘째는 소련공산당의 이념과 정책이 기본적으로 옳은 것이었지만 오늘에 와서 약간의 조정과 조완적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한다.그러나 소련체제의 붕괴나 변질을 초래하는 개혁은 용납할 수 없다는 보수파세력들의 반대압력이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초기에는 개혁주의세력과 손을 잡고 개혁을 추진하였다.그러나 실시하는 개혁마다 기대했던 성과보다는 예상하지 못했던 혼란과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고르비의 개혁의욕은 약화되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실제로 생필품부족·물가앙등·생산부진·실업의 증가로서 국민생활이 심각하게 위협받게 된데다가 연방공화국의 독립운동으로 소련의 체제와괴의 위협에 직면하였기 때문이다.또 무엇보다도 정권수호는 하고 볼 일이니 보수세력의 반발을 무마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그러다 보니 고르비는 개혁세력을 실망케하고 또 그들의 반발을 일으켜 양면협공의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르비개혁정책의 최고 두뇌이자 이론가인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가 공산당으로부터 출당을 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이것은 고르바초프가 발길질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야코블레프는 8월16일 공산당지도부내의 스탈린공산주의자들이 모두 개혁파대표들을 당에서 제거할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11월에 열릴 제26차 당대회에서는 고르바초프대통령까지 당에서 밀어낼 것이라고 경고하였다.이것도 보수파들의 거사를 앞당기게 한 요인일 것이다. 현재 수백대의 탱크가 크렘린궁 근처에 집결해 있고 수천명의 군중이 항의시위를 하고있다.옐친은 보수파들의 비상사태선포를 불법이라고 단정하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복귀를 요구하는 총파업및 시민불복종운동을 촉구하였다.소련의 군부와 비밀경찰의 힘만으로도 쿠테타는 얼마든지 일으킬 수가 있다.그러나 그들이 정권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1964년 소련의 보수적인 당관료와 군부·비밀경찰이 흐루시초프를 권좌에서 몰아낸 다음 20년동안 브레즈네프를 정점으로 하는 노멘클라투라의 지배체제도 묶어둘 수가 있었다.그러나 이런일이 오늘날 소련에서 되풀이될 것같지가 않다.그 이유는 개방사회와 자유의 맛을 본 소련시민이 60년대나 70년대의 권위순종적이며 무지몽매한 정치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오늘날 소련의 최대문제는 첫째 경제난이고 둘째 연방해체의 경향이고 세째 민주화의 과제이다.그런데 보수파가 집권해서 해결할 수 있는 과업이 하나도 없다. 첫째 소련의 경제난은 외국의 원조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인데 소련의 군부정권이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둘째 보수세력이 신연방조약을 없앤 다음에는 공화국의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무한정 국력을 마모하게 된다.셋째 소련을 가장 효과적으로 침체·멸망으로 몰고가는 요인이 공산당독재이다.그런데 그것을 유지하면서 누가 소련의 민주화를 인정해 주겠는가.또 소련이 다시 냉전정책으로 복귀한다고 해서 지금 지구상에서 소련을 무서워할 나라가 있을까.이런 부질없는 짓을 보수세력이 최후발악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이번 반고르비 쿠테타는 결국 소련의 민주·개혁세력을 내실있게 다져주고 반볼셰비키노선과 새 역사창조를 위한 대장정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것으로 나는 보고있다.
  • “소 새 권력의 핵” 8인비상위

    ◎전원 공산당 강경파… 초헌법적 권한행사 비상사태가 선포된 고르초프이후 시대 소련의 전권을 장악,새 소련의 위상을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될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일단 6개월간의 비상사태선포기간중에만 활동하게될 「한시적인」 기구로 돼있다. 이 위원회는 소련내의 모든 권력을 장악,새 연방조약 체결을 둘러싼 각 공화국들간의 대립과 같은 민족분규문제와 파탄에 빠진 소련경제의 회생을 위한 경제개혁의 계속적인 추진등 소련의 당면현안들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초헌법적」 기구로서 소련내의 새 질서형성과 국제사회에서의 소련의 위치설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 위원회가 정확히 어떤 기능을 하게될지는 한마디로 예측할 수 없지만 8명의 구성멤버 대부분이 공산당내의 강경보수주의자들이란 점은 앞으로 이 위원회가 떠맡을 기능을 점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크류치코프KGB의장,파블로프총리,야조프국방장관,푸고내무장관등 보수파 지도자의 이름이 들어있으며 이 위원회가 보수노선 회귀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기본적 성격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관계자도 3명이 끼어있다.이것은 이 위원회의 정치적 기반이 넓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주목되고 있다. 야조프국방장관,크류치코프KGB의장,푸고내무장관은 국내 치안세력을 대표하는 「세마리의 까마귀」로 불린다. 지난 1월 리투아니아공화국의 수도 빌니우스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에 대한 무력제압작전도 이들 3명의 합동 작품이었다고. 이와는 달리 주목되는 3명은 바클라노프국방회의부의장,스타로드브체프농민동맹의장,티자코프소련국영기업협회의장이다. 바클라노프는 군·산복합체의 대표이며 스타로드브체프는 국영농장및 집단농장의 이익을 대표한다. 이들은 모두 구체질해체 위기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3명을 비상사태위원회의 멤버에 가담시킨 이유로는 ▲권력기구 내부에서의 권력탈취,즉 「궁정쿠데타」라고 보여지는 것을 피하고▲신정권의 기반이 산업 농업 서비스업에 미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다는등의 계산이 있었던 것으로보여진다. □국가비상위 위원명단 ▲올레크바클라노프국방위제1부의장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 KGB의장 ▲발렌틴 파블로프 총리 ▲보리스 카를로비치 푸고 내무장관 ▲VA스타로드브체프농민동맹위원장 ▲AI 티자코프 국영기업협회장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 ▲겐나디 야나예프 부통령
  • M·L주의 포기한 개혁의 주역/고르비 집권에서 실각까지

    ◎85년 서기장 피선·90년 대통령으로/신사고로 세계냉전의 흐름을 바꿔 집권 6년5개월만에 실각된 고르바초프는 세계정세의 흐름을 냉전에서 데탕트로 바꿔놓은 장본인. 체르넨코가 서거함에 따라 러시아혁명(1917년) 이후에 출생한 최초의 소련지도자로서 지난 85년3월11일 54세의 나이로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된 고르바초프는 집권직후부터 「인간적인 사회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신사고외교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및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을 추진,사회주의혁명 70년의 낡은 유물들을 몰아내기 위한 일대운동을 전개했다.총성없는 「제2의 러시아혁명」을 시작한 것이다. 사유재산제를 도입하는 등 소련경제를 철저한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시키고 공산당 권력독점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는 등 국내에서의 엄청난 정치·경제적 변화를 주도했다. 국제적으로도 지난 88년 브레즈네프독트린을 폐기하고 동유럽개혁 불간섭을 선언,동구전역을 휩쓴 민주화물결의 불을 댕겼다.독일통일도 고르바초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지난달 모스크바 미소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전략무기감축협정에 조인하는 등 미소관계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에까지 화해의 대기운을 몰고온 것도 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거나 최소한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지난해 6월 노태우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한소수교를 맺고 지난 4월 방한했는가 하면 북한에 개방압력을 꾸준히 가하는 등 한반도의 해빙무드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있다. 이같은 국제무대에서의 빛나는 업적으로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는 격찬을 받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같은 급속한 개혁추진과정에서 정치·경제적 대혼란이 불가피하게 수반돼 인기가 곤두박질쳤다.식량위기 등 극심한 경제난에 따른 불만이 극에 달했다.지난달 런던에서 서방선진7개국 정상들과 회담을 갖는 등 서방세계로부터 대소경제지원을 얻어내기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국내에서는 오히려 구걸외교라는 비난을 사기도했다.발트3국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독립요구에 따른 연방해체위기로 골머리를 썩이면서 러시아공화국 등 9개공화국과 신연방조약 체결을 추진,20일 조인할 예정이었다. 급진개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있는 보수파와 더딘 개혁속도를 못마땅해하는 개혁파의 협공 속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자신에게 도전한 보수파의 거두 리가초프를 제거하는데 성공하는 등 위기를 맞을 때마다 번번이 승리를 이끌어내 간간이 나돌던 실각설을 비웃으며 정치의 마술사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60세로 지난 31년 남부 러시아의 프리볼노예에서 출생,모스크바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78년 농업담당서기로 당중앙위에 진출,80년 정치국원이 됐다.헌법을 개정,지난해 5월 임기5년의 대통령직에 선출돼 공산당서기장과 겸직하던중 1년 남짓만에 도중하차하는 불운의 주인공이 돼버렸으나 고르바초프라는 이름은 세계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고르바초프 연보 ▲31.3.2 러시아공 프리볼노예에서 출생 ▲50 모스크바대 법학과 입학 ▲52 공산당 청년조직(콤소몰)에 가입 ▲78 공산당 농업담당 서기 ▲80 정치국정위원 ▲85.3.11 공산당 서기장 ▲85.8 핵실험 일방중지 선언 ▲85.11 레이건과 제네바에서 제1차 정상회담 ▲86.10 레이캬비크에서 레이건과 2차 정상회담 ▲87.12 워싱턴 방문,INF 폐기협정서명 ▲88.9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 ▲89.5 북경방문,최고회의 의장 피선 ▲89.10 몰타정상회담,냉전종식선언 ▲90.3.15 5년임기의 초대대통령 취임 ▲90.5 워싱턴방문,미소정상회담,전략핵감축합의 ▲90.6 샌프란시스코한소정상회담 ▲90.10 한소수교 ▲90.10.15 노벨평화상 수상 ▲90.12 모스크바서 한소정상회담 ▲91.4.16 방일 ▲91.4.19 방한 ▲91.7.26 소련공산당 중앙위서 마르크스­레닌주의 포기,신강령안채택 ▲91.7.30∼31 모스크바서 미소정상회담,START(전략무기감축협정)조인
  • 대통령 대행 야나예프 담화

    나는 소련 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헌법과 각 법률을 유지하면서 91년8월19일부터 6개월동안 소련의 각 지역에 비상사태가 선포됐음을 알린다. 비상사태 기간 동안 소련의 모든 권력은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 이양되며 현재까지 채택된 모든 조치는 잠정적이다.이 조치들은 결코 국가 사회 전반에 걸친 심오한 개혁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소련 국민들과 전체 국제사회에 예견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내전의 위험성을 사전에 막고,소련을 경제파탄과 배고픔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한 절대적인 필요성에 따라 취해진 것이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국민 개개인의 안전과 그들의 재산에 대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이는 또한 소련의 여러 지역에서 사기 저하와 심리적 공포를 확산시키고 해체과정의 촉매역할을 해온 반헌법적이고 제어할 수도 없으며 범죄적인 군사 형태의 청산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소련 상황의 초기 안정화와 경제·사회 생활의 안정화,필요한 변화의 수행 및국가 전반에 걸친 발전의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취해진 것이다.국가비상사태 선포 이외의 어떤 다른 방법도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대결과 폭력의 확대를 가져다주고 국제적 안정의 관점에서도 위험한 긴장을 야기토록 할 뿐이다. 잠정 비상조치들로 기존의 모든 조약과 합의에 따라 소련이 약속한 모든 국제공약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선포한다. 소련은 우호·선린 및 평등·호혜·내정 불간섭등 그동안 일반적으로 인정돼온 원칙에 기초해 모든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할 준비가 돼 있다.우리는 또 현재 소련의 어려움은 일시적인 성격의 것이며 국제적인 안정을 공고히 하고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데 대한 소련의 기여는 아직도 상당히 크다고 확신하고 있다. 소련 지도부는 소련 국민들은 물론 각국 정부와 유엔이 이번 비상조치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1991년 8월 18일
  • 신데탕트·페레스트로이카 “위기”(크렘린 대지진:1)

    ◎“개혁혼란·경제난 타개”구실,보수파 반격/동서화해 조류 역류 위기… 세계가 긴장 동·서화해의 새로운 국제조류가 역류할 위기를 맞고 있다. 2차세계대전이후 세계사를 지배해온 냉전시대의 막을 내리게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실각하고,소련이 다시 강경보수화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으로 소련은 최대의 정치적위기를 맞았으며 국제정치무대의 주인공 중의 하나였던 고르바초프의 퇴장은 국제정치 기류를 크게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전세계를 놀라게 한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최근 절정에 이른 소련내의 개혁파와 보수파간의 갈등과 대립에서 보수파가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소련 공산당은 지난15일 고르바초프의 핵심 측근이며 개혁정책 입안자인 야코블레프를 축출,개혁파에 대한 대반격을 본격화했다. 소련군부도 군기관지 적성을 통해 『군내의 모든 공산당원들은 일치단결하여 당과 군을 방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혀 오랜 침묵을 깨고 자기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었다. 소련의 강경·보수파들은 지난 16일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공장의 공산당 활동금지조치를 적용하자 더 이상 개혁파에게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20일로 예정돼 있던 신연방조약체결 하루전날 고르바초프를 축출했다. 강경파 지도자들은 소련의 새로운 「탄생」을 저지한 것이다. 관영 타스통신은 소련은 새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 의해 통치될 것이며 의장은 겐나디 야나예프 부통령이 맡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권한은 소련 강경보수파의 상징인 군부와 KGB가 장악한 것으로 분석된다. 8명의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과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 KGB의장이 포함돼 있는 사실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위원회에는 또 발렌틴 파블로프 연방총리,보리스 푸고 내무장관등 강경파들로 구성돼 있어 소련이 다시 강경보수파의 통치시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동유럽의 대변혁을 가져오며 서방세계에서는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소련의 경제를 회복시키는데는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점진적인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시도해 왔다. 정통적인 공산주의 경제체제로는 소련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접목시키는 「실험」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고르바초프의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면도 없지않다. 소련의 경제성장은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때도 있었고 고질적인 식량난은 더욱 악화돼왔다. 더욱이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소연방체제의 「붕괴」를 가져왔다.리투아니아공화국등 발트해 3개공화국을 비롯,6개공화국이 신연방조약 가입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국가해체과정」을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혀,발트해 3개공화국 등이 주도하고 있는 소련내의 분리·독립움직임을 힘으로라도 저지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강경보수파들은 소연방이 해체되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분리독립을 추진하고 있는 발트해 3개공화국들의 독립의지도 매우 강하기 때문에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르바초프의 개혁으로 자유의 실체를 체험한 이들의 저항도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공화국 국민들 뿐만아니라 러시아공화국등 다른 소련인들의 반응도 주목된다. 옐친대통령의 급진개혁 깃발아래 개혁을 서두르는 러시아공화국 국민들도 개혁이 후퇴될 경우 반발이 예상된다.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물론 비상사태선포가 소련 각부문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의 길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개혁의 속도나 방법에 대해 보수파들이 큰 불만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소련의 개혁속도는 늦추어지지 않을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강경보수파들도 개혁은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식의 개혁이든 현재 소련이 안고 있는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소련 국내보다 오히려 세계사적인 측면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도 할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갈등과 대립의 시대를 마감하고 동서화해의 새시대를 개막시켰다. 고르바초프의「대변혁 드라마」는 유럽의 정치지도를 다시 그리게 만들었으며 지구촌 곳곳의 분쟁을 하나 하나 해결시켰었다. 그의 개혁정책은 냉전의 마지막 잔재로 남았던 한반도에도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한국은 소련과 국교정상화를 이루었으며 북한도 지금까지의 철저한 고립정책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한반도의 긴장완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이같이 세계를 무겁게 누르고 있던 냉전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화해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창출하는데 미국과 함께 주연역을 맡았었다. 그러나 세계사를 바꾸어 놓은 고르바초프의 「정치드라마」는 대단원의 막이 내리기도 전에 또다른 힘에 의해 중단됐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 강경보수파에 의해 중단된 것이다. 소련의 보수화는 미국을 주축으로한 서방세계를 긴장시킬 것이다. 미국은 고르바초프를 소련역사상 최초로 믿을만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를 체결하는 등 미소밀월시대를 맞았었다. 그러나 미소의 밀월시대는 일단 끝났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냉전의 시대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정치분석가들은 전망한다.소련도 「스탈린이나 브레즈네프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국제정치 역학관계는 미국의 대소대응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새로운 지도자들과 어떤 관계를 정립하느냐에 따라 국제정치의 성격도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시대의 화해의 새국제질서가 정착되기는 당분간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의 환한 웃음이 국제정치무대에서 사라지면서 국제정치가 난기류에 휩싸이고 있다.
  • 국제질서 파장과 크렘린의 진로/긴급대담

    ◎모스크바 정변… 동북아엔 새 변수로/계획된 시나리오… 개혁은 지속전망/세계질서에 또 「불확실성시대」우려/국제무대 영향력행사 한계에 봉착/세계여론 무시 못해 서방과 경협은 계속될듯/군부집권땐 북한과 관계강화 예상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갑작스런 실각은 「신데탕트」로 함축되는 신국제질서의 대변화의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 전세계는 충격속에서 모스크바의 긴박한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사태는 특히 유엔동시가입을 계기로 한 남북한교류확대및 통일전망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단법인 평화연구소 김남식연구위원과 외교안보연구원 서병철교수와의 긴급좌담을 통해 이번 사태가 세계질서와 동북아역학구조및 남북한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진단해 본다. ▲김남식위원=고르바초프대통령에 대한 소련내 보수세력의 제동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소련은 85년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집권해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6년여만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이전까지의 기본노선을 전환해야 할 정도였습니다.사회주의와 상반되는 요소들이 강화되면서 연방국가가 지탱키 어려울 정도의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그러나 이같은 변화가 고르바초프가 원했던 개혁·개방노선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대부분 소련사람들은 아니다라고 얘기할 것입니다. 소련내부에서는 고르비의 개혁이 애당초 국민적 합의도출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소련사람들에게 불리한 상태로 간다는데 대해 불만이 팽패해 왔습니다.특히 소련정권이 수립된 이후의 기득권 세력에게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고르비는 개방과 개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다시피 추진해왔습니다.갈등속에서라도 합의과정을 거쳤더라면 괜찮았겠지요. ▲서병철교수=보도가 사실이라면 현 국제질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엄청난 사태라고 하겠습니다.우리가 가장 두려워했고 기피하려 했던 사태라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고르바초프는 동서긴장완화와 신데탕트의 산파역으로 전인류의 평화정착에 기여했습니다.그의 정책이 완전한 결실을 보기전에 이같은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세계질서를 또다시 「불확실의 상태」에 빠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고르비가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개혁·개방정책은 그 이전까지의 강경한 공산주의 이념과는 본질적으로 판이하게 달랐습니다.그만큼 저항세력도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특히 군부와 KGB는 강력한 억압정치를 통해 소련을 사실상의 초강대국으로 유지시켜 왔으나 그같은 위치마저 흔들리게 된 현실에 직면해서는 보이지 않는 반발을 보여왔습니다.그같은 반발이 이번에 표면화됐다고 하겠습니다.어쨌든 국제질서 뿐 아니라 동북아나 한반도에 대해서도 역학관계의 변화를 점치게 하는 큰 사건입니다. ▲김위원=그러나 보수세력이 주도해 이루어진 사건이라고 하더라도,또 누군가 정권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소련의 대외정책이 근본적인 궤도수정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집니다.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에 맞물려 일어난 동구사태등 탈냉전을 통한 평화질서의 큰 흐름은 거부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이제까지 소련의 개혁·개방정책은대서방 특히 미국과의 관계와 뒤엉켜 추진돼 왔기 때문에 보수세력이 아무리 못마땅하더라도 갑자기 변경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번 사태가 소연방의 존속에 대한 위기감과 불투명한 경제·사회발전 전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사태를 주도한 보수세력도 연방내의 정치적 안정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또 어떻게 하면 소연방을 지켜나가겠느냐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이점에서 고르바초프를 중심으로한 개혁파가 추진해 온 계획에도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서교수=동감입니다.소련의 개혁정책은 근본적으로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근본목적이 있었습니다.보수강경파가 정권을 장악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통해 국민적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가능성이 없습니다.따라서 고르바초프가 추진해 온 신사고에 의한 대서방협력및 경제개혁정책등은 설사 속도는 늦어질망정 그대로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소련국민들도 강경보수세력에 의한 중앙통제식 경제체제로의 회귀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위원=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종전까지 모든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이를 합리화시키는 이론제시를 선행했습니다.그러나 고르바초프는 군부등 극우 보수세력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개혁·개방에 대한 충분한 설득을 하지 못했습니다.이 과정에서 불만세력들은 무언중 조직화될 수 있었습니다.이번 사태가 신연방헌법 조인을 앞두고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동안 참고 참았던 세력들이 오래전부터 계획한 시나리오에 의해 일으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권력을 승계한 야나예프부통령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헌법상 절차에 따라 직책을 이어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보수세력들 특히 8인연방위원회는 당분간 내부혼란 극복에 주력할 것입니다.이 점에서 옐친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게도 손을 대지 못할 것으로 봅니다. ▲서교수=군부에 의한 쿠데타라고 하더라도 현재 소련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할 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련이 군비강화쪽에 주력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소련은 현재의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한 경비조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또 바르샤바조약기구마저 해체된 현상황에서 소련은 과거 브레즈네프독트린과 같은 방식으로 동구권국가들에 대해서도 간섭할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럴만한 힘도 없습니다.앞으로 소련은 국제정치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깊은 딜레머에 빠질 것입니다. ▲김위원=이번 사태를 맞고보니 남북한 유엔가입문제가 고르바초프 집권시에 실현된 것만은 무척 다행스럽다는 생각입니다. ▲서교수=그렇습니다.남북교류의 물꼬가 트인 점이라든지 소련과의 국교수립도 마찬가지입니다.아직도 소련내에서는 독일통일에 대해 불만여론이 많다지 않습니까. ▲김위원=동서냉전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이번 소련사태가 지금까지의 국제적 흐름을 근본적으로 역류시킬 수는 없다고 봅니다.다만 국제적 추세에 비해 평화정세로 바뀌는 상황이 굼뜬 캄보디아·한반도등 아시아지역에 이번 사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크게 주목됩니다. 우선 아시아의 집단안보체제를 통한 평화유지라는 소련측 입장이 고르바초프시대에 정립된 것이 아니라 브레즈네프시대에 마련된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 자체의 상황변화가 없는한 크게 변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중국과의 협력관계,특히 안보적 차원의 협력관계는 과거보다 깊숙이 연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같은 맥락에서 소련내 보수세력과 북한과의 관계는 일단 더 가까워질 것으로 보아야 하겠지요. 따라서 만약 소련내에 군부가 주도하는 정권이 들어선다면 혹은 군부가 배후조종하는 정권으로 바뀐다면 소련은 한국보다 북한과의 관계를 중시할 것이므로 남북관계나 아시아안보환경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리라 봅니다. ▲서교수=소련이 강경노선으로 선회할 경우 과거의 사회주의권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일단은 노력할 것으로 봅니다.그러나 대다수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이미 공산당 유일체제를 버렸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형태의 소련과의 주종관계는 재현되기 어려울 것입니다.특히 동유럽에서의 대소관계는 고르바초프시대에 방향전환한 그런 상태가 계속 지속될 전망입니다. 한반도문제로 국한해 본다면 북한은 그동안 소련의 신정치의 영향을 받아 총리회담 등을 통해 화해 제스처를 써온 것도 사실입니다.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계기로 북한은 지금보다 더 보수·강경입장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위원=대소수교를 비롯해 우리의 북방정책의 성공으로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한소관계의 발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터져나왔습니다.우리의 북방정책의 성공은 소련의 대한반도정책이라는 소련측의 요구와 일치됐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치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면 한반도 정책에도 일정한 변화가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서교수=소련내에서는 지금까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대해 반기를 들고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을 갖고 있는 군부를 중심으로 한 반대세력이 엄존한 것도 사실입니다만 소련이 제2·3류의 낙후국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5

    ◎「도끼만행」은 월남전뒤 “미 의지 시험용”/운명의 날 8·18… 4분만에 미군 2명 살해/참모회의중 일보… 스틸웰장군에 “귀환 급전”/북측 병사 30여명,「가지치기 현장」 포위… “의도적 도전” 내가 다시 한국에 근무하게 된것은 1976년 봄 소장으로 주한유엔군사령부의 참모장을 맡게 되면서였다.이 직책은 주한미군 참모장과 미8군 부사령관등을 겸하며 또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의 수석대표도 맡았다.나는 대장이 된 스틸웰사령관과 다시 만나게 된것이 기뻤다. 7월1일 아내 메리와 함께 김포공항에 도착,용산 유엔군사령부까지 가는 동안 놀랍게 발전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그러나 이도시의 불과 25마일 북방에 싸늘한 긴장이 감도는 DMZ(비무장지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때 한국은 평화롭다고만 할수 없었다. ○군 배치 공격형으로 그당시 판문점에는 긴장이 높아가고 있었다.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난후 김일성은 군대의 현대화 및 증강에 박차를 가했으며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부대배치를 방어형에서 공격형으로 전환시켜 놓고 있었다.이 사실의 발견은 당시 정보활동의 개가로 평가되고 있다.베트남이 붕괴되기 전까지는 CIA나 DIA(미국방정보처)의 사진분석가들이 인도차이나에만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북한관련 정찰사진이나 위성사진들이 제대로 분석되지 않은채 그대로 쌓여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남북한이 비슷한 군사력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된 70년도의 평가를 아직도 그대로 채택하고 있었다.미국은 그같은 정보판단하에 닉슨독트린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갑자기 7사단을 철수시켰으며 북한은 72년부터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러나 74년 민간 정보분석가들에 의해 북한이 엄청난 양의 철강과 콘크리트를 생산,불명확한 군사목적에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다음해부터 북한의 군사적 능력과 의도에 관한 조사가 국가안전국 특수조사팀의 일원인 베트남참전 보병장교 출신 민간인 존 암스트롱에 의해 행해졌다. 14개월간의 연구끝에 그는 북한의 군사력이 70년의 평가보다 80%이상 증강됐고 대부분이 DMZ 부근에 전진배치돼 있음을 밝혀냈다. 이같은 북한군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유엔군사령부는 76년말 김일성이 남침배치를 완료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이는 복잡한 국내문제와 외채압박등 경제난으로 전쟁도발은 어려울 것이라는 CIA보고와는 정반대 견해였다. 남침용 땅굴이 처음 발견된 것은 74년 11월로 그후 연달아 발견된 땅굴들은 북한의 침략의도를 보다 명백히 해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특히 내가 부임하기 수개월전부터 북한군은 한국군 순찰대에 사격을 가해오고 부비트랩을 설치하는등 DMZ에서의 도발을 한층 강화시켜오고 있었다.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에서도 북한경비병들의 도발 횟수가 늘고 있었다.우리정보기관들은 이를 지난 50년전쟁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침략을 위한 구실로 삼으려는 것으로 평가했다. ○“새 침략구실 노린듯” 북한군들이 저지른 대표적인 잔악한 도발이 부임후 두달이 채못돼 8월18일 아침 판문점에서 발생했다.JSA에서 북쪽을 연결하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까이에 높이12m 가량의 무성한 포플러가 있었는데 유엔군측 경비초소의 시야를 가려 가지를 칠 필요가 있었다.이날 북측에 사전통보를 하고 10명의 경비병과 도끼 사다리 톱등 작업도구를 든 5명의 작업단이 2.5t트럭을 타고 현장으로 들어갔다.아더 보니파스대위와 마크 바레트중위가 그들을 인솔했으며 한국군 김문환대위는 통역장교로 동행했다.적에 의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20명의 신속대응군이 JSA 바로 안쪽 제2경비초소 옆에 배치돼 있었다. 상오 10시30분 작업단은 두개의 사다리를 나무에 걸쳐놓고 작업을 시작했다.5분정도 지난후 북측트럭 한대가 오더니 장교2명과 사병9병이 내렸다. 인솔자 박철중위는 JSA에 오래 근무했으며 성질이 고약하기로 이름나 있었다.박철이 자꾸 작업을 간섭하더니 20분쯤 후에는 보니파스에게 작업중지를 요청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작업은 계속됐다.이어 북측 경비병 10명이 트럭을 타고 추가로 왔으며 근처 경비초소에서 6명이 더와 모두 30여명의 북측병사들이 작업장일대를 포위한 형상이 되자 박은 가지 하나라도 더자르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해 왔다. 보니파스가 작업계속의사를다시 명확히 하는 순간 박이 『죽여!』라고 외치며 보니파스를 세게 걷어차 수로로 쓰러뜨렸다.이것을 신호로 북측병사들은 주머니에서 쇠파이프와 곤봉등을 꺼냈으며 작업중이던 도끼도 빼앗아 주로 장교와 하사관을 공격했다.보니파스는 수로바닥에 쓰러진채 발길질과 쇠파이프를 피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그때 한 북측병사가 도끼로 그의 머리를 내려 찍자 그자리에서 바로 죽고 말았다.바레트중위는 공격을 피해 트럭쪽으로 뛰었으나 뒤따라온 6명의 북한병사들에 의해 역시 도끼와 쇠파이프등으로 두들겨 맞아 피투성이가 된채 쓰러졌다.신속대응군이 도착했을때는 북한군은 이미 돌아오지 않는 다리 건너편으로 달아난 후였다.정확히 4분동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신속 대응 군 힘못써 키티호크기지의 당직장교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은 것은 참모회의 중이었다.나는 우선 사령부 지하벙커에 있는 「월 룸」(전쟁지휘소)으로 갔다.그러나 사령관 스틸웰대장은 일본자위대의 초청으로 교토를 방문중이었고 부사령관 존 번 공군중장은 월례 연습비행을 위해 서해쪽으로 출격중이었다.리처드 스나이더주한미대사도 업무협의차 워싱턴에 가있었다.또 한미1군단사령관 존 쿠시맨중장은 의정부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유엔군사령부의 최고 선임자였다. 몇분후 보다 상세한 보고가 올라왔다.보니파스대위와 바레트중위가 살해당했고 수명의 경비병이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이것은 분명 우리가 예측하고 있던 공산당의 의도적 도발이 틀림없었다.나는 즉시 주한미공군사령관 돈 피트만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스틸웰장군 귀환을 위한 비행기 급파와 연습비행중인 번중장에게도 급거귀환 연락을 하도록 지시했다.그다음 의정부의 쿠시맨중장에게 판문점의 상황을 보고하고 전투준비태세를 위한 데프콘 등급을 의논했다. 데프콘은 가장 약한 상태인 5등급에서 1등급까지 있는데 한국에서는 보통때도 데프콘4 상태였다.그러나 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명백한 군사적 움직임이 수반돼야하기 때문에 적의 공격적인 대응을 예상해야했다.마침 스틸웰장군과 통화가 되어 그문제를 상의했다.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이번 사태에 대한우리의 대응은 보다 확고해야했다.분명히 북한측이 우리를 테스트하려 할것이기 때문이었다.또 그해는 선거의 해로 조지아주지사 지미 카터가 베트남전의 실패로 궁지에 몰린 제리 포드대통령에게 강력히 도전하고 있었다. 북한은 포드가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리라는 계산에서 도박을 걸어온 것이었다.앞으로 48시간내에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새로운 도발에 대해 전쟁을 개시하느냐,그대로 주저앉느냐를 선택해야 했다. 『좋소』 마침내 사령관의 대답이 떨어졌다.『당신이 펜타곤과 한국군측 그리고 우방국에 상세히 상황을 설명하시오. 정전위원회를 내일 열도록 요청하고 모든 부대는 데프콘3에 대비,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전부대원이 영내대기토록 하시오』 즉시 참모회의를 소집,우리의 대응계획인 OPLAN 작성에 바쁠때 서울의 미대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마침 이날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비동맹회의 기조연설에서 북한측대표 김정일이 이날 아침의 사건을 미군장교들의 인솔하에 저질러진 북한군에 대한 이유없는 공격이라고 설명하고 비동맹회의가 미국의 행위를 비난하는 동시에 유엔사령부의 해체와 한국으로부터 미군의 철수를 주장,쿠바의 열렬한 지지로 이 결의안이 통과됐다는 것이었다. 이날밤 김포공항에 도착한 스틸웰사령관에게 나는 세가지 대응책을 보고했다.
  • 마케도니아공도 독립 추진/유고,연방붕괴 가속화 될듯

    【베오그라드 AP AFP 연합】 세르비아를 포함한 유고슬라비아 3개 공화국이 새 연방 결성을 위한 움직임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마케도니아공화국 정부가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의 통과를 적극 추진,유고연방 해체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키로 글리고로프 마케도니아공화국 대통령은 이날 아드리아해 휴양지 오리드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공화국 주민들에게 오는 9월8일 공화국의 독립 여부를 묻기 위해 실시될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질 것을 촉구했다. 그는 마케도니아인들이 『유고내 주권국가들의 동맹체제 안에서 주권을 유지하고 독립돼 있는 마케도니아』를 위해 찬성 투표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마케도니아인들은 독립을 지지할 것으로 예상되며 결과가 이러한 예상대로 나온다면 마케도니아는 슬로베니아및 크로아티아공화국에 이어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이탈하는 3번째 공화국이 된다.
  • 옐친,공산당배제 조직 개편/러시아공 전행정기관 대상

    ◎금명 대통령령 발동… 본격 착수 【도쿄 연합】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대통령은 자신의 통치가 골고루 미치도록 하기 위해 공화국 중앙집행기관과 대통령 직속기관을 전면 재편하는 대규모 행정조직개편계획을 마련,금명간 착수할 것이라고 일 교도통신이 11일 소 독립계 통신 인테르팍스를 인용,보도했다. 옐친대통령의 이같은 계획은 종전의 공산당 지배체제를 러시아의 중앙및 지방에서 정면해체,자신의 통치로써 대신하기 위한 것으로 공화국 각기관에서 공산당활동을 금지했던 대통령령의 후속 조치인 것으로 알려졌다. 옐친대통령은 10일 노동조합대표들과 회담에서 이같은 계획을 설명하고 『나를 독재적이라고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거기에 굽히지 않는 강인함을 지니고 싶다』며 강력한 결의를 밝혔다. 계획에 따르면 우선 중앙집행기관을 국가회의,각료회의,연방회의,안전보장회의등 4개 기관으로 재편한다. 국가회의는 각료를 제외한 고문등 15명으로 구성되며 연방회의는 지역에 관한 제반문제를 담당한다. 또 안전보장회의는 소 국방성이나 소KGB와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면서 환경보호와 공중위생문제도 취급한다. 옐친대통령은 『금명간 대통령령을 시달,러시아내의 자치공화국을 포함한 전지역에서 선거로 선출된 지도자가 관장하는 행정조직망을 편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 남북한 유엔가입 의미와 전망/긴급대담

    ◎“탈냉전”… 남북 「기능적 통합」 단계로/「경쟁속 협조관계」 구축… 교류 길 넓혀/정치중심 탈피,대유엔 「다변외교」 필요/대치속 평화체제 전환은 안보혼란 초래할 수도 8일 유엔 안보이가 남북한유엔가입권고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남북한 유엔가입을 위한 유엔내의 절차가 사실상 모두 마무리됐다.이제 오는 9월17일 제46차 유엔총회 개막당일 1백59개 회원국이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을 박수로 환영하는 요식절차만 남겨두게 된 셈이다.분단 46년사상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남북한의 유엔공존시대」를 맞아 79년 4월부터 81년 12월까지 주유엔대사를 지낸 윤석헌외교협회회장과 국제정치학자인 이용필서울대교수를 초청,남북한 유엔동시가입에 따른 남북관계발전 및 통일에의 영향,유엔시대의 외교과제,일·북한및 한·중수교등 동북아정세 변화에 미칠 파장등에 대해 들어봤다. ○17번만에 가입 성사 ▲윤석헌전주유엔대사=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은 탈냉전이라는 시대사적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지난49년1월 고창일당시외무장관서리가 처음으로 유엔가입신청을 한 이래 모두 16번이나 가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이것은 당시 국제적인 조류를 형성하고 있던 냉전체제로 인해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했거나 방해를 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동구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몇년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한소수교가 이뤄졌으며 한중및 일·북한수교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까.거기에다 미소양국 정상은 최근 8년씩 끌어오던 전략핵무기감축에 합의하는등 탈냉전의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용필교수=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됐던 미소 초강대국 중심의 양극체제가 점차 다극체제로 전화됐습니다. 그러나 동서 냉전체제가 고조되는 동안 민족과 국토의 분단 및 6·25라는 비극적 체험을 했습니다.이 과정에서 북한은 대남적화전술을 계속 시도했고 우리 국력도 60∼80년대에 걸쳐 급속히 신장한 것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 모든것들이 북한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했고 소련과의 수교,중국과의 관계개선 등 우리 북방정책의 큰 성과와 북한의 내적 갈등이 겹쳐 지난 5월 북한의 유엔가입신청이 이뤄지게 된 것 아닙니까. 이는 북한이 「하나의 조선정책」이라는 논리로 우리만의 유엔단독가입과 남북동시가입을 반대해오던 종전 태도를 바꿔 결국 동시가입을 결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물론 북한이 대남적화전략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유엔동시 가입으로 남북적대관계가 경쟁적 협조관계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겠죠. ▲윤 전대사=남북한유엔가입을 계기로 논의가 분분한 휴전협정의 평화체제로의 전환,한반도 핵문제,유엔사해체등은 고려되어야 할 요소들이 많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무엇보다도 북한이 유엔가입,핵안전협정 합의,남북대화재개등 일견 대남·대외정책을 바꾸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아직 대남적화노선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교수=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데 이론적·현실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우선 유엔동시가입으로 말미암아 휴전체제에서 이뤄진 유엔사의 위상 변화가 초래될 수 있겠지요.우리는 북측이 아직 적화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현재의 휴전체제를 항구적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이 점에 있어서 남북의 시각차는 대단히 큽니다. 우리 정부는 유엔에서 남북협력체제를 구축하는데 목표를 두고 한반도문제는 남북당사자간에 해결한다는 입장에서 유엔에는 상정하지 않는다는 방침입니다.이에 비해 북한은 유엔 정치군사 위원회에서 이 문제로 정치공세를 펼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됩니다. 휴전체제가 항구적 평화협정으로 대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엔사가 해체되거나 휴전체제에 혼란이 초래되면 우리 안보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겠지요. 우리는 남북이 상호 침략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보장의 틀위에서 불가침선언 채택을 고려해야 되겠습니다만 휴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이행은 자동적 절차가 아니라 남북의 경제력과 주변 강대국의 역학관계가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으므로 감상적 통일지상주의로 대응해선 곤란하겠습니다. ▲윤 전대사=우리가 유엔에 가입함으로써새로운 외교의 틀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옵서버로 유엔에 참석했을때 비정상적이고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 온 것도 사실입니다.그러나 이제 유엔의 정식 회원국이 됨에 따라 명실상부한 선진진입국으로서의 역할과 의무를 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입체외교 추진 시급 ▲이교수=유엔동시가입은 궁극적으로 무력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남북이 동시에 시인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따라서 유엔동시가입은 남북이 기능적 통합의 초기단계에 진입하는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우리가 유엔가입으로 생기는 특권과 더불어 경비부담등 의무를 충실히 시행하는 등 유엔활동을 신장해나갈 경우 통일을 앞당기는 배경조건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나아가 서방의 전통적 우방은 물론 소련·중국·동구권 및 비동맹국등과 유엔 안팎에서 입체적 외교를 추진할 경우 한반도의 긴장완화 나아가 세계평화에도 기여할 길이 트일 것입니다. ▲윤 전대사=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은 필연적으로 통일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수밖에 없을 것입니다.바로 이 점때문에 정부도 지난해부터 유엔가입을 본격 추진한 것 아닙니까.결국 중국·소련등을 통해 단일의석가입을 주장해온 북한지도부의 정책을 변경하도록 유도한 것이고요. 유엔가입이 분명히 통일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겠지만 우리는 이를 최대한 활용,통일의 시기를 앞당기도록 노력해야 하리라 봅니다.대화와 협력관계구축을 통해 공동체의식을 심어 나가야하고 또 북한에 대해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또 통일노력은 점진적으로 인내심을 갖고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차승인 촉진 계기 ▲이교수=남북유엔동시가입으로 당분간 경쟁관계는 유지되겠지만 기본적으로 평화공존및 실질적 교류의 길이 폭넓게 열린 것은 사실입니다.이는 최근 남북단일팀 구성과 우리 쌀 5천t 북한반출 등으로 벌써 가시화됐습니다. 이는 또 미·소·일·중 등 주변 강대국들의 남북교차승인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심각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의 협조를 얻고 국내정치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유엔가입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북한은 핵사찰수용입장을 표명함으로써 대외적 적응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유엔가입후에도 북측이 이면에서 하나의 조선정책을 추구할 우려도 있습니다만 궁극적으로는 그들도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윤 전대사=어쨌든 탈냉전이라는 국제적 「태풍」은 이제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에도 불기 시작했습니다.동북아의 탈냉전은 남·북한 관계의 실질적 변화,일·북한수교,한·중수교로 가시화될 것입니다. ▲이교수=결론적으로 말해 유엔동시가입은 일·북관계와 한·중관계 개선을 틀림없이 더욱 촉진시킬 것으로 기대됩니다. □윤석헌 전 주유엔대사 약력 ▲1922년생 ▲주프랑스대사 ▲외무차관 ▲외교협회회장(현) □이용필 서울대교수 약력 ▲1933년생 ▲미시카고대(정치학 박사) ▲한국정치경제학회장 ▲「한국정치이론」등 저서 다수 ◎“남북한 모두 회원국 자격 충분”/안보리 심사보고 요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유엔가입 신청에 대한 유엔가입심사위원회 심사결과 보고서 초안 1,안전보장이사회는 91년8월6일 2천9백98차 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유엔 회원국 가입신청을 검토했다.안보리 진행절차에 관한 임시규칙 59조와 반대제안이 없음에 따라 안보리의장은 이가입신청을 검토,보고하도록 유엔가입심사위원회에 회부했다. 2,유엔가입심사위원회는 91년8월6일 74차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가입신청을 검토한 결과 양국이 유엔회원국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안보리에 추천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3,따라서 유엔가입심사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결의안 초안을 채택해 줄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유엔안보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별도의 유엔가입신청을 검토해 1,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유엔회원국으로 받아들일 것을 유엔총회에 추천하며 2,대한민국을 유엔회원국으로 받아들일 것을 유엔총회에 추천한다. ◎“유엔 「보편성원칙」 뒷받침 확신”/안보리의장 성명 전문 유엔안보리는 북한과 한국의 유엔가입 신청을 검토한 결과 이를 받아들이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는 북한과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대륙 전체와 전세계를 위해서도 역사적인 경사라 할수 있다. 유엔총회에 내놓은 안보리의 권고가 유엔이 추구하는 보편성이라는 목표를 뒷받침해줄 것이란 점에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나는 유엔의 새 회원국으로서 두나라가 유엔이 효율적으로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유엔의 목적과 원칙을 존중할 것으로 확신한다.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또한 동북아지역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두나라의 쌍무관계에 있어서 신뢰구축 방안을 촉진하기 위한 호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두나라간의 공통된 여러 문제들을 검토하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통일에의 장애물을 극복해 나가는데 유용하고 적절한 무대를 마련해줄 것이다. 안보리의장으로서 모든 회원국을 대표해 북한과 남한에 이같은 축하의 말을 전할 수 있게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 남북 「평화협정」체결 제의/휴전협정과 대체

    ◎「3통협정·불가침」 타결 전제/노 대통령,유엔총회 연설때 천명 정부는 남북고위급회담의 재개 및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을 계기로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3통협정·불가침선언이 일괄타결되고 북측의 대남혁명노선의 명시적 포기 등 한반도의 평화보장장치가 마련될 경우 주한유엔군사령부 해체와 현재의 휴전협정을 남북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를 북측과 협의한다는 입장을 노태우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공식 천명키로 했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남북한 유엔가입후 휴전체제의 항구적 평화체제로의 대체필요성이 증대되고 있으며 또한 남북간 평화상태유지의 관건이 남북관계의 정상화 및 안정화에 있다는 기본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정부는 이와관련,7일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 주재로 제3차 통일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이같은 정부입장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논의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이날 노대통령의 유엔연설과 관련,『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정부의 포괄적인 입장을 밝히게 될것』이라고 말하고 『남북한간의 모든 문제는 남북한 당사자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또 『남북간 평화협정의 실질적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필요할 경우 미·소·중등 주변 관계국들의 보장장치 마련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또 이날 회의에서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한지 20주년이 되는 오는 12일을 기해 ▲적십자회담의 조속한 재개 ▲이산가족의 올 추석고향방문실현 ▲70세이상 고령이산가족들의 자유왕래허용 등을 북한측에 공식 촉구키로 했다. 회의에서는 또 남북 TV·라디오방송의 완전개방을 목표로 쌍방이 수용할 수 있는 단계적 교류방안으로 남북한방송의 상호비방금지,TV방식전환을 위한 공동전환시설 설치 등을 북한에 제의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와함께 한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교류협력사업을 확대해 나가기 위해 남북 쌍방의 지식·문화·예술인등 1백명정도로 「민족문화공동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북한에 제의하기로 했다.
  • 급한 불 껐으나 「완전평화」까진 먼길/휴전선포 이후의 유고

    ◎적대감 여전… 재충돌 불씨 남겨 산발적인 유혈충돌이 거듭됐던 크로아티아공화국에서 7일부터 휴전이 발효됨에 따라 전면전으로 비화될 위험을 안고있던 유고슬라비아사태는 일단 급한 불을 끄고 진정국면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제까지 크로아티아가 전투를 벌인 상대는 비록 연방군의 지원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화국내 세르비아인일 뿐 연방군과의 싸움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번 휴전이 공화국독립을 향한 진일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연방군과의 전투를 거쳐 연방군의 철수라는 「승리」를 얻어낸 슬로베니아공화국의 경우와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또 교전당사자들간의 적대감이 한껏 고조돼있고 양측의 민병대가 해체되지 않은 상태인데다가 연방군마저 계속 크로아티아에 주둔할 예정이어서 앞으로 독립협상진전여하에 따라 재충돌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끝없는 전투를 계속할 것처럼 보이던 양측이 이처럼 선뜻 휴전에 합의한 이유는 각자가 나름대로 성과를 얻었고 더이상 싸움을 계속해서 득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것으로 보인다.크로아티아입장에서는 중재에 나선 EC사절단에게 평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세르비아라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성공했다.세르비아게릴라들도 자신들의 통제지역을 확장시켜놓은 상태다.연방군을 통해 공공연하게 세르비아게릴라들을 지원해온 세르비아공도 무력충돌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주변국들이 공화국 독립을 승인하는 불행한 결과를 자초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크로아티아에서의 유혈충돌이라는 샛길로 빠졌던 관심의 초점은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지난 6월25일 독립을 선언한 크로아티아 및 슬로베니아공과 연방정부간에 벌어질 독립협상의 귀추가 주목되는 것이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가 자발적으로 공화국 독립허용과 연방해체라는 합의를 도출해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유고의 주도권을 쥐어온 세르비아공 등은 공화국의 권한을 다소 강화해 느슨한 연방체제를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다.양공화국도 한때 느슨한 연방제 수용의사를 갖고있는 듯 했으나 독립선언 이후 연방군과의 충돌을 겪으면서 독립추구 외길노선을 걷고있다.세르비아공은 연방유지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경우 차선책으로 서북쪽에 치우쳐있고 규모도 작은 슬로베니아에 대해서만 독립을 허용하거나,그것마저 안된다면 크로아티아공내 60만 세르비아인들의 집단거주지역이라도 할양받겠다는 태도다.그러나 크로아티아는 영토의 일부도 빼앗길 수 없다는 자세다. 따라서 무력이나 거센 국제압력이 있기 전에는 정상적인 방법에 의한 문제해결은 지극히 어려운 현실이다.연방군에 의한 무력사용은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공화국 독립을 앞당겨주는 자충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한계를 안고있다. 연방군이 무력진압을 시도하지 않는 한 국제적인 압력이나 섣부른 독립승인도 기대하기 어렵다.유럽을 위시한 국제사회에서도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민족자결원칙과 국경불변경원칙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다. 결국 유고는 지난해초 독립을 선언했던 소련의 발트3국처럼 이변이 없는 한 독립협상을 지지부진한 개점휴업상태로 남겨놓을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 그리스내각 총사퇴/오늘 새 내각 발표/정부기능 대폭 강화키로

    【아테네 AFP 연합】 콘스탄틴 미초타키스총리 휘하의 그리스 내각이 7일 총사퇴했다. 그리스정부대변인은 이날 소집된 각의에서 내각해체가 결정됐다고 전하면서 신정부각료 명단이 8일중 발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정부 기능 강화를 위해 개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왔음을 대변인은 상기시켰다. 새정부는 인물 교체와 함께 통치구조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해졌다. 미초타키스총리 휘하의 「보수」내각은 지난 16개월간 그리스를 통치해왔다.
  • 잼버리 우정/고성 큰잔치(잼버리안테나)

    ◎“세계는 하나”… 화합의 열기 넘친다/대회 사상처음 성화 등장,신평벌 밝혀/텐트치기 서로 도와주며 단합을 과시/외국대원들 사진등 내걸어 풍물자랑/차기 주최국 네덜란드,“운영기법 배우기” 본부에 잦은 발걸음 ○…7일 외국대원들이 입영을 완료함에 따라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장인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벌은 참가대원들의 열기로 가득. 이날 외국대원의 입영은 한국다음으로 많은 2천7백19명의 대원이 참가하는 일본을 선두로 미국·호주등 57개국 1만1천여명이 입영을 완료. 등록을 마친 외국대원들은 자신의 분단에서 텐트를 치는등 분주한 모습을 보였으며 한국대원등 일찍 들어온 대원들이 이들의 일을 도와주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 「세계는 하나」라는 캐치플레이즈를 실감. ○스웨덴국왕 숙소 고심 ○…오는13일 한국을 방문하는 스웨덴의 구스타프국왕이 대회장안에 위치한 하일라콘도에 투숙할 예정. 구스타프국왕은 14일 이곳에 도착,16일까지 3일 밤을 이곳 콘도에서 보낼 계획인데 대회장안에 위치한 하일라 콘도가 인근의 다른콘도에 비해 시설이 빈약한 데다 큰 방도 없어 잼버리 관계자는 물론 정부 의전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당초 구스타프국왕의 숙소는 설악파크호텔로 정해졌으나 평생을 스카우트생활을 해오며 현재 세계스카우트지원재단 총재이기도한 구스타프국왕이 굳이 대회장안에 있는 콘도를 원해 숙소를 옮기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대회본부는 용평리조트에 있는 주방및 접대원들을 대거 콘도에 파견,영접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잼버리는 대부분 40명이 한 대원을 이루나 이날 1명의 대원만이 참가한 국가가 있어 눈길. 1명의 대원이 참가한 나라는 키리바티,마카오,솔로몬,아이슬랜드등 4개국. ○…역대 대회중 가장 많은 1백29개국 1만9천여명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는 깃발만도 5백68개가 게양. 대회장에 게양된 깃발은 참가국의 국기를 비롯,대회기·역대대회기 등이다. ○3개국어로 방송시작 ○…대원들의 소식을 전파로 전하게될 세계잼버리방송국(JBS)이 7일 상오11시30분 『여기는 세계잼버리방송국입니다』는 멘트를 시작으로 첫방송을 시작. KBS 기자재의 협조로 문을 연 JBS는 국어 영어 불어등 3개국어의 순서로 방송되며 세계잼버리운영에 관한 정보·음악·대원소식 등을 집중적으로 방송한다. ○…세계잼버리대회 사상 처음으로 등장하는 성화가 8일 점화돼 폐영일인 오는 15일까지 신평벌을 밝혀준다. 세계잼버리는 지난 1920년 영국 런던 올림피아 창립대회 이후 상징적인 나무조각 성화봉을 만들어 차기대회에 계속 인계해 왔으나 성화에 불을 붙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성화는 스탠드 중간지점에서 한국보이스카우트대원인 유창혁군(16·청원중)이 성화봉에 불을 붙인후 무대앞까지 1백50여m를 달려와 대기하고 있던 신재호군(16·노원중)과 안진순양(16·신사중)에게 전달한다. 신군과 안양은 다른 성화봉에 불씨를 옮겨 무대 바로 뒤쪽에 설치된 높이 1백70㎝의 원통 성화대에 점화하며 이와 동시에 스탠드 5군데에 설치돼 있는 보조성화대에도 불이 붙여진다. ○…고성잼버리에 이어 오는 95년 제18회 세계잼버리대회를 유치한 네덜란드대표들은 이번대회의 준비과정과 운영을 배우기 위해 분주. 네덜란드는 1백83명의 운영요원이 참가,고성잼버리의 모든것을 익히기 위해 한국운영요원들과 잦은 접촉을 갖기도. ○…잼버리관리동앞 제3영지에 설치될 잼버리상아탑 제작이 한창. 가로 5m85㎝,세로 1m80㎝,높이 3m60㎝의 규모로 세워질 이탑은 앞면에 잼버리 휘장과 세계는 하나라는 주제가 영문으로 새겨지며 뒷면에는 한글로 음각. 또 기단석 앞면에는 각 참가국에서 가져온 기념석이 붙여져 영구히 보존. ○소 체르노빌팀에 선물 ○…7일 하오 입영한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 피해 청소년 1백7명은 국내후원업체로부터 푸짐한 선물을 받고 연신 싱글벙글. 이들이 받은 선물은 T셔츠와 바지 과자 음료수 화장지 조깅화 기초화장품 등으로 배낭에 가득 넣고도 모자라 양손에 가득 들어야 할 정도. 단장인 지나이다 드라군키나 소련 아동기금 부이사장(40·여)은 『소련 스카우트연맹은 24년 창립돼 67년의 긴 역사를 갖고 있으나 스탈린시대 해체되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면서 『올해 부활돼 새롭게 출발하는 소련 스카우트대원들을많이 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 ○…각국 참가단은 야영장비 및 짐을 정리하는 등 바쁜 일손을 놀리는 한편으로 자국의 풍물과 스카우트활동을 알리는데 주력. 남동부 드론텐에서 95년 제18회 세계잼버리를 개최하는 네덜란드는 본부막사 앞에 세워진 3면으로 된 입간판에 「네덜란드는 당신을 95년 세계잼버리에 초대한다」는 구호아래 대형사진들을 전시. 이탈리아는 중앙연맹(AGESCI)산하 5개 지부의 문장을 본부막사앞에 내걸었는데 각 지부의 이름이 「마르코 폴로」「레오나르도」「시저」「미켈란젤로」등 역사적인 인물과 푸치니 작곡의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따온 것이 특징. 또 인도네시아는 93년 7월과 8월사이 이스트 자바 말랑에서 개최되는 지역봉사프로그램인 제1회 세계공동체 개발캠프에 외국 대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줄 것을 호소하는 포스터를 부착.
  • 러시아공 당세포 해체/옐친 대통령령/어제 공식 발효

    【도쿄 연합】 소련 러시아공화국 국가기관에서 공산당등의 정당활동을 금지한 옐친 대통령의 대통령영이 4일 발효됐다고 일 교도(공동)통신이 타스통신을 인용,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타스통신에 의하면 앞으로 보수파의 저항이 예상되는 이 대통령영이 어느정도 실효를 거둘 것인가는 알수 없지만 이날 당내에도 이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 가슴으로 체득하는 “세계는 하나”/서울선희학교 농아9명 잼버리참가

    ◎37개 과정활동중 20개이상 이수 목표/몸에 밴 「보호받기」 벗고 함께살기 익혀 『언어가 아니라 가슴으로 세계가 하나임을 확인할 겁니다』 오는 8일부터 9일간 설악선 자락에서 펼쳐지는 제17회 세계잼버리에 청각장애대원 9명이 참가,대회의 의미를 더욱 깊게 해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들은 한국보이스카우트 서울북부연맹산하 서울선희학교소속의 중등부대원 정상태(14) 김성태군(15)과 고등부대원 이복규(19) 양혜웅(18) 김관영(18) 송형준(19) 고용구(21) 고상만(20) 박종용군(17)등 9명. 이들 대원들은 지난해부터 스카우트 꿈의 축제인 세계잼버리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는 참가를 희망해왔으나 대부분이 영세민자녀인 이들의 형편으로는 1인당 25만원에 달하는 경비를 마련할수 없어 애태우다 지난 6월초에야 겨우 북부연맹의 지원약속으로 세계젊은이들과 호흡을 나눌 기회를 잡았다. 같은학교에만 49명이나 되는 대원들중 행운을 안은 이들은 그동안 갈고닦은 야영기능을 최대한 발휘,이번대회 37개과정활동중 최소한 20개이상씩을 이수해 일반대원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한편 가슴을 열고 지구촌젊은이들과 우정을 나누겠다고 다짐한다. 이들의 이같은 다부진 각오는 이번대회에서 자신들을 이끌 편춘우대장(41·서울선희학교 미술교사)을 중심으로 수년간 다져온 팀웍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13년 개교한 서울선희학교는 48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장애자스카우트대를 창설,6.25때는 교통·군수지원활동에 나서는등 빛나는 전통을 세워왔으나 70년대중반 해체되었다 87년 3월 편춘우대장이 이 학교에 부임하면서 재창설됐다. 이후 1주에 한번씩 한자리에 모여 협동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한 이들은 한해 4차례의 야영을 통해 몸으로 부딪치며 서로 마음의 벽을 헐었다. 맹목적인 보호에 익숙해져 베푸는 것을 모르던 대원들은 첫 야영에서 선생님에게는 누룽지만을 남겨주는등 각자 마음대로 행동해 극도의 이기심을 노출시켰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함께 살아가는것의 귀중함을 깨닫기 시작했고 솔선수범도 익히면서 일반대원들보다 한층 탄탄한 팀웍을 발휘했다. 모든 의사전달을 수화로 해야하는 평형감각에 장애를 느껴야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텐트치는 법,매듭법,취사,개척물제작,오리엔티어링등 스카우트기능에서 일반대원들보다 훨씬 뛰어난 기능을 발휘했다. 오는 4일 학교운동장에서 1박2일의 일정으로 이번대회에 대비한 마무리야영을 가진뒤 6일 현지로 떠나는 이들 대원들은 생애 처음으로 가장 넓은 곳에서,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 있다는 사실에 즐겁고 기쁘다고 말한다. 또 이번대회에는 일본등의 나라에서도 장애대원들이 참가한다는 소식에 더욱 들떠있다. 고난의 시간들을 헤쳐온 장애대원들이 설악산 자락에서 보여줄 모든몸짓들은 「세계는 하나」라는 잼버리정신을 가장 극명하게 확인시켜주는 드라마가 될것같다.
  • 투명한 정치를… (사설)

    요즘들어 여야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내분양상을 표출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모으고 또한편으로는 불안감을 유발시키고 있다.최근의 양상은 다분히 민자당 김영삼대표위원과 신민당 김대중총재등 「양금」의 대권구도에 뒤엉킨 혼?u이라 국민적 관심을 끌숭밖에 없다.또 사안들이 제대로 수습되지 않을 경우 정치불옴이 가중되고 이것이 경제·사회등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당연히 牧칠 것이다. 민자당의 경우 믿A斂窩? 김대표의 대권전략과 민정·공환계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지 않맞데서 오는 정략적 요인들이 최근의 불협화음으왁 나타나고 있다.이에 비해 악성이빈고 할수있는 신민당의 냄분은 김총재중심세온이 욀당통합을 외치는 당내계보 「정치발전연구회」의 견제 또맞 해체를 겨냥하여 그핵심인 조윤형국회부의장을 제명하려는 양상으로까지 믿전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모두 제도나 법,렷는 원칙과 명분의 문제에 투츙하기 보다는 지도적 인물중諱의 불투명한 운영때문에 오늘의 곤혹스런 상황이 전개되고 또 계속될조짐이다.이런 게임과도같은 양상이 장기간 계속될 경우 그 여파는 국가경왕과 국민생활에까지 막대한 지장을 줄수 있다. 이제 정치판을 좀더 투명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정치인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우선 여권의 경우 대통령제냐 내각제냐를 가름하는 개헌여부의 문제,선거구와 선거방법을 규정하는 선거법개정문제등 중요한 제도의 개정여부가 이왕 논의될 바에야 하루빨리 공식제기되고 충분한 논의속에 국민의 원하는 바에 따라 결론지어져야 투명정치에 도움이 되겠다. 그 결정과정에서 정치인 특히 지도자들은 사리와 집단이기주의의 집념을 되도록 억제하고 미래의 탄탄한 국가운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각오를 갖고 임해주기를 당부한다.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놓고 장소에 따라 하는 말이 다르거나 선문답과 같은 애매모호한 얘기만이 돌아다니는 풍토는 이제 지양되어야하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필요하다면 당당히 문제를 제기하고 소신을 밝혀야 할일이다. 물론 이일에는 야당의 동참이 필요하다.국가적으로 중대한 문제,특히 정치인 자신들의 문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야당의 의견은 중요하다.반드시 자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토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당의 체제와 기능이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그런점에서도 지지 국민을 실망시키는 치졸한 싸움은 하루라도 빨리 수습되어야 할것이다.각종선거에서의 공천관련 김품수수의 폭로와 이에 대응하는 강력한 징계라는 자해적 싸움은 당장 중지하는 것이 마땅하다.나아가 제1야당이라면 당내민주화와 야당통합으로 호남일변도라는 약점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배가되어야 할것이다. 최근의 국제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특히 한반도주변정세는 그토록 힘들어보이던 우리의 통일여건을 마련해주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통일과 번영의 호기를 지나친 대권욕이나 지역 이기주의 때문에 똑바로 보지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 “제명파동”… 신민호가 흔들린다/조윤형의원 징계결정 안팎

    ◎「금품수수 발설」이 감정싸움 비화/정발연의 반발 강도가 주목거리/김 총재 추인과정 남아 타협 가능성도 신민당의 주류측과 정치발전연구회(정발연)간에 「공천관련 금품수수설」을 둘러싸고 증폭되어온 내분은 급기야 주류측이 발설자인 조윤형국회부의장을 제명결의함으로써 당이 균열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아직 당기위 제명결의에 대한 당무회의와 의원총회의 최종결정절차가 남아있지만 조의원에 대한 가장 가혹한 처벌인 제명조치에 대해 정발연측이 『철회하지 않으면 공천비리를 부득이 밝히지 않을 수 없으며 제명이 확정될 경우 공동대응하겠다』고 즉각 반발하고 있어 제명확정여부에 따라 집단탈당사태까지 예견되고 있다. 주류측의 이같은 조의원제명결의 배경은 사안이 김대중총재주변에 대한 추잡한 잡음과 관련되어있다는 점과 이를 방치할 경우 14대총선전 또다시 당내 분란이 재연될 소지가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하고 있다. 또 그간 정발연소속의원을 접촉한 결과 전원이 행동통일을 할것 같지 않다는 판단에따라 단호한 조처를 통해정발연해체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볼수있다. 그러나 당기위의 제명결의가 곧 조의원의 출당을 의미하는것은 아니며 김총재의 재가및 당무회의추인과정과 조의원의 태도표명 여부에따라 징계의 강도가 수그러질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이같은 시각은 주류측이 조의원에 대해서는 서슬푸른 단죄의 칼을 휘둘렀으나 같은내용의 발언을 하고도 김총재와 당에 두차례 사과한 이형배의원에 대해서는 징계조치를 유보한데서도 짐작할수 있다. 또 제명결의추인을 위한 당무회의가 위원들의 지역구활동및 하기휴가등으로 2주일후에나 열릴수 있다는 점과 정발연측이 겉으로는 공동대응하겠다고 나섰지만 일단 징계취소를 요구하고 징계가 확정될 경우 집단탈당등 대응방안을 밝히겠다고 일보후퇴함으로써 정치적타협의 시간은 충분히 남아있는 셈이다. 특히 조의원제명결의가 나오기하루전 주류측의 김원기의원과 정발연의 정대철의원이 비공식접촉,양측의 이견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당기위의 결의이전에 조의원은 이미 제명결정을 통보받은 것으로 확인돼 「당기위의 제명결의→조의원의 해명사과→당무회의의 경감조치」등 일련의 정치적 절충 수순이 진행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날 제명조치로까지 비화된 조·이의원의 「김총재측근 금품수수발언」은 지난21일 서교호텔에서 열린 김총재와 정발연회원들과의 대화모임에서 발단됐다. 이모임에서 조의원이 김총재에게 「측근들의 전횡」을 지적하면서 그증거로 ▲남원지역 공천잡음 ▲수서사건 ▲롯데상가 분양사건 ▲이철용·이해찬의원 탈당사태를 거론했다.당시모임에서는 『한 집안식구들끼리 못할 얘기가 없겠지만 언론등 외부에는 발설하지 말자』는 선에서 마무리 됐었다. 그러나 다음날 「남원공천과 관련해 김총재측근이 금품을 수수했다」는 내용이 보도되고 발설자가 이형배의원(전국구·13대공천당시 남원지역공천탈락자)으로 알려지자 당지도부는 즉각 이의원을 당기위에 회부,진상을 조사토록하는 등 분란이 확대됐다.이과정에서 또 조의원이 공천대가로 조찬형씨가 건네준 수표(1천만원권 30장) 사본이 있다고 발설함으로써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내분사태로 번져 정발연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의원총회(26일)와 당기위(29일)에서 조의원 제명논의가 진행된 것이다. 조의원과 이의원 및 정발연관계자들이 밝히고 있는 공천잡음의 전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3대총선을 앞두고 남원지역에는 이지역 11대의원인 이형배씨와 검사출신인 조찬형씨가 공천경합을 벌였다.이씨는 김총재를 보좌해왔던 경력을 앞세우며 공천을 요구했고,조씨는 조윤형(당시 총재비서실장) 조승형씨(현 총재비서실장) 등 조씨 문중과 이들과의 친분을 지원삼아 공천경합을 했다. 조씨는 이 과정에서 대통령선거지원 헌금을 포함,김총재측근에게 모두 4억원이 넘는 돈을 건네주었다.그러나 조씨는 공천이 안될 조짐이 보이자 미리 준비했던 수표복사본과 고발장을 들고다니며 조윤형씨와 김총재주변인사들에게 압력을 가했다.이 때문에 최종공천발표 하루전날 열린 공천심사위에서 공천자가 이씨에서 조씨로 바뀌었고 그대신 이씨는 전국구(9번)로 옮겨앉았다. 이때 조씨가 3억원을 별도로 지원키로 하고 현찰대신 땅을 내놓았고 88년당시에는 수천만원에 불과하던 땅값이 올라 지난 광역의원선거때 3억원에 매각했다」 간헐적으로 흘러나왔던 이같은 공천잡음에 대해 김총재등 주류측은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이라고 발끈했다. 이같은 공방을 배경으로 진행됐던 당내파문은 조의원제명이라는 최악의 대치상태로 진행됐으며 정발연의 대응과 주류측의 제명절차진행에 따라 앞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 「정발연」해체 요구/노인 40여명 난동

    29일 낮12시쯤 서울 마포구 신민당 정치발전연구회 사무실에 「한마음 노인회」소속이라고 주장하는 노인 40여명이 난입,정발연해체와 조윤형국회부의장의 신민당탈당 등을 요구하며 사무실 문을 부수는등 1시간여동안 난동을 벌였다.
  • 미,한미연합사 통제기능 보강

    ◎지상군사령관 한국이관 따라/참모장 중장급으로 보임키로/미2사는 태평양사령부서 직접 관장 미국은 한미연합사령부 지상군구성군사령관을 92년말까지 한국군장성이 맡을경우 미보병2사단의 지휘권은 미태평양사령부가 직접행사,한국군의 지휘를 피하게 할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또 한미연합사령부의 지휘기능을 보강하기위해 현재 소장인 참모장을 중장으로 격상시켜 92년중 해체될 한미야전사령부 지휘관을 임명할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측의 이같은 구상은 주한미군감군계획과 한국방어의 한국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 한국군의 독주를 견제하고 한미연합사령관의 한미양국군에 대한 작전지휘통제권을 확고하게 행사하기 위한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군은 새로운 합동참모본부의 출범과 함께 국군의 육·해·공군의 연합작전능력을 높이기 위해 합동참모대책을 설립 각군의 준령급장교들의 연합작전능력을 높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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