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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노무팀 해체·경영진 감봉”

    KBS가 최근 물의를 빚은 ‘노조회의 도청 사건’과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노무팀 해체와 함께 정연주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 전체에 3개월 감봉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KBS는 25일 오후 ‘KBS 경영진 일동’ 명의로 보도자료를 내고 “국민의 방송이 되어야 할 KBS가 국민들에게 깊은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노무 담당 한 실무자에 의한 우발적 사고였지만, 결과적으로 KBS의 도덕성과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점에서 경영진의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전근대적인 노사관계의 상징인 노무팀을 해체하고, 경영진 3개월 감봉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고 덧붙였다.KBS는 또 도청사건의 진상조사를 위해 노사 공동의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고 조사 결과에 따라 관계자에 대한 중징계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KBS노조는 “예정대로 29일 오전 10시 정 사장에게 사퇴건의서를 전달할 계획”이라면서 “추후 회의를 통해 사측의 제안에 대한 노조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밝혔다. 앞서 노조는 정 사장이 이번 도청사건에 대한 법적ㆍ도덕적 책임을 지고 29일까지 자진 사퇴하지 않으면 전 조합원과 함께 정 사장 퇴진운동을 추진키로 결의했다. 한편 PD협회와 기자협회, 아나운서협회는 25일 성명을 내고 사측의 낙후된 노무시스템을 비난하면서도 “진상조사나 조합원의 충분한 의견 수렴 절차 없이 사건을 정사장의 거취와 직접 연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노조의 성급한 행동을 질타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부의 탄생/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부의 탄생/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개인이든, 국가든 현대사회에서 ‘부’(富)는 거의 ‘진리’에 가깝다. 잘라 말해서 나라의 목표는 부국(富國)이요, 개인의 목표는 부자(富者)라고 해도 크게 지나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부’의 정체를 아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특히 국가의 부는 개인의 부보다 여러 요인이 훨씬 복합적으로 작용해 축적되는 것이기에 더욱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남미와 남아시아 국가들은 왜 그렇게 가난을 벗지 못할까? 남유럽보다 북유럽 국가들이 잘 사는 원인은 무엇일까? 1500년대만 해도 가장 부유했던 이탈리아의 1인당 GDP가 최빈국의 1인당 GDP의 3배에 불과했는데 21세기엔 미국의 1인당 GDP가 최빈국의 15배에 달하는 이유는 무얼까? 비교적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던 나라들이 근대에 들어오면서 어떻게 부국과 빈국으로 극명하게 갈리게 됐을까? ●국부형성의 4요소는 재산권·과학적 합리주의·자본시장·빠른수송 ‘부의 탄생’(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김현구 옮김, 시아출판사 펴냄)이 밝히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주제들이다. 저자는 근대 이후 급격히 부가 축적된 나라들과 끝내 그 부를 향한 궤도에 이르지 못한 나라들에 대해 역사적·경제적으로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부를 쌓을 수 있는 요소를 도출해낸다. 그것은 바로 노동의 대가를 국가나 범죄자에게 몰수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재산권’, 기술적 진보의 바탕이 되는 과학적 합리주의, 재화와 서비스를 대량생산하기 위한 자본시장, 빠르고 효율적인 통신과 수송 등 네가지다. 이 요소들은 16세기 처음으로 네덜란드에서 동시에 나타났고, 영어권에선 1820년께 비로소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이것들이 지구상 다른 곳으로 확산돼 나갔다. 이 네가지 요소중 하나라도 빠지면 경제적 진보가 위태로워져 국부라는 테이블은 쓰러지고 말았다. 18세기 네덜란드는 영국의 해상봉쇄로 인해, 공산권에선 재산권 결여 때문에, 중동 국가들은 자본시장과 서구적 합리성 부재로 인해 이같은 사태가 발생했다. 더 비극적인 것은 아프리카의 경우 이 네가지 모두를 전혀 확보하지 못한 국가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몇 개의 나라들을 대표적으로 선별하여 부국과 빈국들이 생겨나는 과정을 탐구한다. 먼저 근대의 부가 어떻게 가장 먼저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두 나라에서 탄생했는지 검토한다. 네덜란드는 이미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3세기나 앞선 1500년에 잉글랜드나 이탈리아보다 1인당 GDP가 두배에 달할 정도로 부유했다. 이는 그로부터 3세기 후 잉글랜드에서 일어난 폭발적 성장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당시로선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대부분의 영국인들과 함께 부러워할 정도로 큰 것이었다. ●근대사회 富는 네덜란드·잉글랜드부터 출발 네덜란드는 1500년 이후 주변 나라들에 비해 주민들이 강건한 재산권을 누리고 있었으며,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의 도그마로부터 해방돼 종교로 인한 분열을 피할 수 있었고, 낮은 이자율과 강력한 투자자 보호 덕분에 자본시장이 활성화돼 있었던 것이다. 잉글랜드가 산업혁명 이후 급성장한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가장 민주적인 의회제도가 정착돼 있었고, 이는 금융시장을 안정·발전시켰다. 분업화에 따른 전문화도 상당히 진전돼 있었다. 이같은 상태에서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으로 촉발된 산업혁명은 성장의 불꽃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에서 움튼 번영은 곧 서유럽의 나머지 나라들과 동아시아로 확산되었다. 프랑스는 잉글랜드와의 근접성과 혁명 이후 개혁 덕택에 이웃을 가장 근접하게 추격했다. 앙시앙레짐 하의 비효율적 제도가 깨지면서 번영의 걸림돌이었던 통행세가 일소됐고, 소작농의 토지 소유권이 확인됨으로써 부의 씨앗이 뿌려졌던 것이다. 반면 16∼17세기 합스부르크 제국을 이루며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로 부상했던 스페인은 영국과는 정반대되는 재정적·제도적 구조에 의해 쇠퇴의 운명을 맞는다. 종교적 이유로 경제의 주력이었던 유대인과 무어인을 내쫓았고, 프랑스·잉글랜드·네덜란드와의 전쟁을 벌이며 국력을 소진했다. 중남미에 대한 무자비한 정복을 통해 금과 은 약탈로 구멍을 메워나갔으나, 금과 은이 고갈되자 스페인 사회는 산업 및 상업적 본능이 결핍된 상태를 드러냈다.16세기 스페인과 오늘의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사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재미있는 것은 식민지 나라들의 빈부의 엇갈림이다. 영국의 식민지로 출발한 미국과 캐나다는 영국이 이룩한 부의 네가지 요소를 그대로 옮겨다가 발전시켰고, 스페인이 정복했던 중남미의 국가들은 정복자의 구태적 제도를 답습함으로써 남미와 북미의 빈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말았다. ●英식민지 美·캐나다 부자로 …중남미는 정복자 스페인 구태 답습 우리나라와 인접한 일본이 부를 축적해 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했다. 임진왜란 이후 이어진 도쿠가와 막부체제는 재산권을 박탈하고, 효율적인 자본시장 발전을 가로막는 등 200여년간 경제 번영으로 가는 네가지 요소를 질식시켰다. 결국 유능한 일단의 사무라이들이 막부정권을 타도하고 메이지 정부를 세웠으며, 이후 개혁은 마치 면도날이 실크 천을 찢듯이 봉건적 일본을 해체시켰다. 번영을 위한 네가지 요인을 철저한 방식으로 도입함으로써 기적적인 경제번영을 이루어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 전쟁·문화·정치의 부침이 아니라 경제적 동인이라는 점이다. 역사적 시공간에서 경제적 번영이 일어나는 원인과 과정을 검토하다 보면, 몇년째 안개 속을 헤매는 우리 경제가 가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그 윤곽이나마 잡히지 않을까? 2만 5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서울교육청 조사 시늉만?

    서울시 교육청은 서울 시내 중·고교 폭력서클의 실태를 자체 조사한 결과 31개 조직에 가담 학생은 21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23일 밝혔다. 이 가운데 153명이 속해 있는 24개 모임은 이미 해체됐으며 일진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는 3건으로 파악됐으나 역시 해체됐다고 밝혔다. 서클 유형별로는 폭행 또는 금품갈취를 한 경우는 9개로 여기에는 경찰에 피해자가 신고한 2건과 교사의 권유로 자진 신고한 1건이 포함돼 있다. 나머지 22개 조직,169명은 단순한 또래 집단으로 경미한 사건을 일으킨 학생들이다. 하지만 폭력서클의 수가 예상보다 너무 적고 학교간 연계 서클 존재 여부나 일진회의 실태는 파악하지 않아 ‘겉핥기식’ 조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진회 문제를 제기했던 전농중 정세영 교사는 “활동 중인 일진회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교육청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라면서 “학생·학부모를 대상으로 자진신고하도록 설득 중인 일진회원만 해도 100여명”이라고 말했다. 정 교사는 “각 학교의 형식적 실태 조사에 의존하는 관행이 그동안 학교 폭력을 키워 왔다.”면서 “최소한 지난 3년 동안 활동한 일진회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1)전국의 길지 (하)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1)전국의 길지 (하)

    ●호남의 길지 호남엔 여느 도 못지않게 길지가 많다며, 성질 급한 독자들은 내게 거세게 항의했다. 그런 줄 내가 왜 모르겠는가? 다만 ‘정감록’의 길지는 태백산과 소백산을 모태로 삼는 까닭에 그 두 산부터 설명을 시작해 점차 주변지역으로 확대시킨 것뿐이다. ‘남격암’에 가장 먼저 언급된 호남의 길지는 무주(茂朱) 덕유산(德裕山)이다. 덕유산 아래서도 무풍(舞豊) 북쪽에 있는 동굴 옆 음지가 으뜸이라 했다. 그곳은 어떠한 환난도 피할 수 있는 명당이라 한다.‘피장처’에선 약간 다른 곳을 지적해, 덕유산 남쪽의 원학동이야말로 숨어 살기 적당하다 했다. ●덕유산 부자마을 한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덕유산의 성격을 흙산이라 보았다. 지리산과 성질이 같은 것으로 본 것인데 남격암과 마찬가지로 산의 북쪽에 있는 무풍에 주목한다. 이중환은 바로 그 옆의 설천(雪川)도 길지로 간주한다. 그는 남사고가 무풍을 복지(福地)로 파악했던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는데 덕유산의 미덕을 이렇게 말한다.“무풍의 바깥쪽은 온 산이 비옥해 부자 마을이 많다. 이는 속리산 이북 지역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남사고는 내게 보낸 편지에서도 덕유산의 장점을 장황하게 설명했다.“과연 그렇다네. 실로 덕이 넉넉한 산이 덕유산이요, 풍요로움을 기꺼워하다 못해 저절로 춤이 나오는 곳이 무풍이라네. 우리나라 12대 명산 가운데 하나인 덕유산. 그 주산은 향적봉(香積峰·1614m)이요, 산세의 흐름이 유장해 무풍의 삼봉산(1254m)에서 흘러내린 용맥이 수령봉(933m), 대봉(1300m), 덕유평전 (1480m), 중봉(1594m), 무룡산(1492m) 삿갓봉(1410m), 남덕유(1508m)까지 무려 100리를 굽이쳐 흐르며 영호남을 갈랐다네. 충청, 경상, 전라 3도를 굽어보는 향적봉에 한번 올라보게. 가까이는 북으로 적상산을 발치에 두고 멀리 황악산과 계룡산을 바라보네. 서쪽을 둘러보게나. 운장산, 대둔산이 버티고 서있어. 남쪽은 어떠한가. 남덕유를 코앞에 걸어두었네. 지리산 반야봉도 가물거리네. 동쪽을 어찌 빠뜨릴쏜가. 저 멀리 가야산과 금오산이 보이지 않나? 향적봉 정상에서 흘러내린 옥 같은 샘물줄기가 한참을 흐르다가 구천동 33비경을 만들어 놓았도다. 요즘은 북사면에 무주 리조트가 있다지. 서남쪽의 칠연계곡도 큰 장관일세. 봄의 덕유산은 칠십 리 깊은 계곡에 붉은 철쭉꽃이 불타오르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이 온 산을 적시네.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꼬까옷을 입히지. 겨울이면 설화를 피운 고목이 고요한 은세계를 더욱 빛낸다네. 참 아름다운 곳이야! 길지란 대부분이 이렇게 아름답고 고즈넉하며 은근히 풍요로운 곳에 있기 마련이네.” 덕유산에 대한 남사고의 예찬은 끝없이 이어지지만, 나는 이쯤에서 줄이기로 했다. ‘남격암’은 호남의 명산 내장산(內臧山)도 길지로 손꼽는다. 이른바 호남 5대 명산의 하나라는 내장산은 가을 단풍 하나로만 전국에 유명하다. 이 산의 단풍은 30여종의 나무들이 토해낸 붉고 노란 빛깔이 어우러진 전원 교향악이다. 많은 사람들은 단풍에만 혹할 뿐이나 실은 난세를 피할 길지로서 이만한 곳이 무척 드물다. 임진왜란 때는 전주 사고(史庫)에 소장돼 있던 왕조실록이 내장산에 옮겨져 잠시 화를 피했다. 그 때 만일 내장산이 아니었더라면 오늘날 세계기록문화유산이기도 한 왕조실록은 한 줌의 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내장산은 과연 길지로다.‘피장처’는 내장산에서 별로 멀지 않은 담양 추월산도 숨을 만한 곳이라 추천한다. 추월산은 전남 담양군 용면과 전북 순창군 복흥면 사이에 걸쳐 있는데, 구한말 호남의병운동의 한 거점이었다. ●길지 변산에 웬 도둑 떼가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호남 굴지의 길지는 부안의 변산(邊山)이야.” 남사고는 그렇게 주장한다.“내 책 ‘남격암’을 살펴보게나. 부안엔 호암(壺岩)이 있고 그 아래 변산 동쪽은 몸을 숨기기에 정말 적합하구나라고 했지. 만일 제주도가 다른 나라 땅이 되고 말면 일은 그릇된다고 했어. 이는 왜 그런가? 제주에서 배를 타고 북상하면 전남 강진, 영광, 또는 전북 부안에 곧장 뱃길이 닿을 테니 위험할 수밖에. 어쨌거나 내 생각은 그래. 기왕 변산을 찾았다면 그 동쪽 계곡까지 들어가라. 하지만 그 산을 빠져나가지는 말라! 언제는 속리산 이북으로 가지 말랬다가 이젠 또 변산 동쪽을 벗어나지 말라고 하니, 자네들이 좀 헷갈리겠군. 내 말의 뜻은 그만큼 속리산 이남이 길하고 변산이 좋다는 말이야. 다른 뜻은 전혀 없다고!” 참 이상한 노릇이지만 좀 조사해본 결과 문학속의 변산은 도둑의 소굴이기도 했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을 보면 주인공 허생이 변산의 도둑 떼를 인솔해 무인도로 떠나간 걸로 돼 있다. 어떤 연구자는 이를 두고 영조 때 일어난 ‘무신난(戊申亂·1728년)’ 무렵 변산의 실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도 불리는 무신난의 주체는 남인(南人)·소론(少論)·소북(少北)의 연합세력이었다. 그들은 당시 집권층인 노론(老論)을 몰아내려고 난을 일으켰고 거기에 전국 각지의 도둑들·서얼·상민·천민들이 상당수가 가담했다. 호남 여러 고을의 빈농들과 변산의 도적들도 무리 가운데 끼어 있었다. 사실 그 당시 빈농은 자칫하면 유리걸식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살다 보면 자연히 도적 무리에 포섭되었다. 허생전에 나오는 변산의 도둑 떼는 허생의 영도 아래 각자 배우자와 소 한 마리씩을 이끌고 무인도로 들어간다. 그들은 그 곳에서 열심히 농사 지어 외국과 무역에 종사 하는 등 유족한 삶을 누린다. 변산 도둑들의 입장에서 볼 때 허생은 다름 아닌 ‘진인’이었다. 혹자는 허생이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않고 이상향으로 도둑들을 이끌고 숨었다며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현실에 순응하며 합법적인 개혁을 꿈꾸던 연암 박지원에게서 허생 이상의 주인공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요구가 아닐까? 그야 어쨌거나 허생전에 변산이 도둑의 소굴로 설정된 것은 실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변산은 골짜기가 깊고 사방으로 뻗어 있어 은신에 적합했다. 그렇기 때문에 변산이 길지로 손꼽혔다. 하지만 도둑 떼들이 이러한 자연 조건을 적극 이용한 결과, 조선 후기엔 그들의 요새로 둔갑하기도 했다. 남사고는 말하기를,“변산이 중요한 까닭은 그 산세에 국한된 것이 아니야. 좀더 깊은 연유가 있었지.”라며 매우 의미심장하게 운을 뗀다. 그러나 그에 관한 이야기는 별도의 기회를 마련해 경청하기로 한다 ●조계산의 ‘십팔공’ ‘남격암’은 전라도의 또 다른 길지로 조계산(曺溪山·887m)을 예로 든다. 전남 승주군에 있는 이 산엔 고찰(古刹) 송광사(松廣寺)가 있어, 산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절에서 동북쪽으로 10여리를 올라가면 천자암(天子庵)이란 작은 암자가 있다. 이 암자의 오른편에 곱향나무 두 그루(천연기념물 제88호)가 우뚝하다. 높이가 12.5m, 가슴높이쯤에서 둘레가 3∼4m나 되는 거목인데, 나무에 얽힌 유래가 특이하다. 지금부터 800여년 전 이 절에 머물던 보조국사(普照國師)는 중국에 건너가 황후의 불치병을 고쳐준 다음 그 인연으로 왕자 하나를 제자삼아 데리고 돌아왔다고 한다. 천자암에 오른 그들은 나란히 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그것이 살아나 차츰 거목으로 자랐단다. 보조국사 일행의 도력도 만만치 않지만, 조계산의 지력도 여간 왕성하지 않은 모양이다. 워낙 명산에 자리잡은 까닭에 송광사의 “松”자는 길한 예언을 담고 있다. 그 글자를 해체하면 “십팔공(十八公)”이 돼,18명의 국사가 나온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조국사를 비롯해 모두 16명의 국사가 나왔다 한다. 앞으로 2명이 더 나오게 돼 있는데 그때가 되면 모든 중생에게 불법이 바로 전해져 용화세계의 평안을 누리게 된다고 한다. 이 전설에서 유추되듯, 조계산은 최고수준의 길지라 미륵세상의 도래를 약속하는 곳이 된다. 소백산에서 남서쪽으로 곧게 뻗어 내린 용맥이 서해바다를 눈앞에 두고 멈춰선 곳에 한 길지가 있다.‘남격암’이 말한 월출산(月出山)이 그곳이다. 전남 영암군과 강진군의 경계에 불쑥 솟아오른 월출산은 단순히 많은 큰 산의 하나가 아니다. 산 이름 그대로 달맞이하는 산이라서, 이 산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달 신앙의 대명사로 우뚝 솟았다. ●왜적도 못 들어온 팔령산 월출산에서 좀더 남으로 내려가면 한반도 남단의 길지 팔령산(八靈山)이 웅자를 드러낸다.‘남격암’은 이렇게 말했다.“우리나라의 지세를 논할 때 섬이 바라보이는 남쪽은 절대적으로 피할 일이다. 다만 한 예외가 있어 팔령산이 바로 좋은 산이다.” 남사고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소백산 줄기가 고흥반도 동쪽까지 내려오다 끝맺음을 한 것이 바로 이 팔령산이야. 정상의 봉우리가 모두 8개인 산이지. 팔영산(八影山)이라고도 부른다네. 예전엔 팔전산(八顚山), 팔형산(八兄山), 팔봉산(八峰山)으로도 불렸어.‘택리지’에서 이중환은 이 산이 마치 섬처럼 바다로 깊숙이 들어가 있다고 했어. 일찍이 내가 복이 있는 땅이라고 기술했다고도 썼어. 기특한 내 후배 이중환은 늘 중요한 지점에서 내 말을 곧잘 인용한단 말이야! 아는 대로 임진왜란 때는 왜선이 고흥반도를 타고 침입하려고 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어. 이게 다 팔령산의 지기(地氣)에 힘입은 거야. 고흥의 옛 문헌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겠지만 팔령산의 넷째 봉우리인 사자봉이 대단해. 마치 용이 바다를 향해 치닫는 형상이라고 할까. 사자봉의 혈(穴)은 국왕의 옥쇄인데 마지막 봉우리에서 그만 미완성으로 끝나 여간 아쉽지 않아. 일제시기 그 놈들이 조선의 맥을 끊어버리려고 팔봉에다 큰 쇠막대를 깊이 박았어. 그 놈들은 한국 사람들을 미신적이라고 비웃었지만, 그래도 뒤가 켕겼는지 갖은 못된 짓을 다했어. 이제 와선 멀쩡한 우리 땅 독도를 자기네 섬이라고 주장하지를 않나. 가소롭기 짝이 없어! 한데 말이야, 당시 그 놈들이 혈을 정확히 짚지 못하는 바람에 그 뒤 고흥선 진짜 장군이 나왔다고들 하지.” 팔령산이 명산이란 소문은 진작 전국에 널리 퍼졌다. 각지의 무당이 몰려와 무속신앙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고, 난리가 닥치면 산 속 깊이 은신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그치지 않았다. 삼십년 전엔 어느 사이비 종교단체가 이 산에 본거지를 두고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경기도의 길지 “나는 주로 속리산 이남인 하3도(충청, 경상, 전라)에서 길지를 찾았지. 속리산 이북인 중부지방엔 별다른 길지가 없다고 보는 편이야. 영산인 태백산에 가까운 강원도 남부지역에 한두 군데 있을까 말까. 그 외엔 사실 주목되는 곳이 하나도 없는 셈이야. 정감록에서도 말했을 걸. 오대산 이북은 몹시 흉하다고 말이야.” 그러나 ‘피장처’와 ‘두사총비결’엔 중부지방의 피난지가 다수 언급돼 있다. 우선 ‘피장처’에 따르면 양주 산내촌에서 북쪽으로 80리를 들어가면 길지가 있다 했다. 또한 양근 소설촌의 북쪽 40리쯤에서 좀더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가장 은밀한 곳에 숨은 길지가 있다고도 했다. 요새 설곡리(雪谷里)라 불리는 곳 말인데 고려 말 임제종(臨濟宗)을 개창한 명승 보우(普愚)가 설곡리에서 출생했다고 전해진다. 여주의 사전촌에선 장수와 정승이 나온다고 했고, 광주 율평 동쪽에 있는 동굴은 난리 때 여덟 성씨가 함께 숨어 살 곳이며 장차 56대 동안 장수와 정승이 출생할 곳이라고 했으니 굉장한 명당이다. 또한 ‘피장처’엔 이천 북면의 광복동, 가평의 대아, 도성 등도 피난할 만하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인천의 영종도 역시 복지라 했다. 오늘날은 국제비행장이 들어선 영종도는 고려 말부터 단 한번도 전쟁의 여파가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도 무사했다는 것이다. ●중국 지관 두사총이 손꼽은 길지 임진왜란 때 이여송을 따라 중국에서 왔다는 지관(地官) 두사총이 쓴 비결로 알려진 ‘두사총비결’에도 경기도의 길지가 두어 군데 언급된다. 그 중 하나는 화약산이다. 가평에서 363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나오는 산이 바로 그 산인데 부근엔 집다리골 휴양림도 있어 쉬어 갈 만하다. 그밖에 포천의 도성산도 길지로 말해진다. 도성산은 길가에 가까워 산세가 얕다는 평을 듣지만 전쟁의 기운이 미치지 않고 간사한 기운도 침범하지 못한다고 믿어진다. 고려가 망했을 때 어느 선비는 도성산 밑으로 들어가 시냇가에 대(竹)를 심고 충절을 맹세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그 선비가 지조를 온전히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도성산의 지기 덕분이라 한다. ‘두사총’은 강화의 마니산(467m)도 길지라 일컫는다. 인천시 강화군(江華郡) 화도면(華道面)에 있는 이 산은 강화섬에서 가장 높다. 마니산은 한반도 남쪽의 한라산, 북쪽의 백두산까지 거리가 똑같아 주목된다. 마니산은 마리산·머리산이라고도 불리는데, 마리란 머리를 뜻한다. 이 산은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이름이 그렇게 됐다. 마니산이 길지로서 특별한 위치를 주장하게 된 것은 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塹星壇·사적 제136호) 때문이다. 참성단은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지내기 위해 건립했다고 한다. 높이 5m의 자연석을 포개어 만든 이 단의 기단부는 원형이며 그 상단은 네모꼴이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이란 고대 동양인들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이 단이 축조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멀리 고려 때부터 국가가 제관을 파견해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고 전한다. ●황해도의 길지 북부지방엔 길지가 없다는 게 ‘정감록’의 근본 주장이다. 이와 달리 ‘피장처.’는 황해도 곡산의 명미촌을 길지라 한다. 좀더 정확히 말해 명미촌에서 서쪽으로 발길을 재촉해 희령과 잇닿은 경계 지점에 숨으면 어떤 난리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남격암’은 “수양산(首陽山·899m)은 백미(白眉)의 난을 당하면 물 마른 개울의 물고기처럼 되느니라.”라고 했다. 수양산이 좋긴 해도 눈썹 흰 사람이 난리를 일으키면 도리어 흉하다고 경계한 것이다. 수양산은 황해남도 벽성군(碧城郡)과 해주시(海州市)에 걸쳐 있다. 이 산은 남격암이 거론한 서북지방의 유일한 길지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떠나는 박세일 “한나라 재창당수준 거듭나라”

    떠나는 박세일 “한나라 재창당수준 거듭나라”

    행정도시특별법 통과에 반발,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던 한나라당 박세일 의원이 23일 탈당계를 제출했다.(서울신문 21일자 보도 참조) 박 의원은 이날 박근혜 대표와 오찬 회동에서 박 대표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 탈당 의사를 밝힌 뒤 김무성 사무총장에게 탈당계를 제출했다. 김 사무총장은 “탈당계 접수는 보류하고,24일 오전 상임운영위에 보고한 뒤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탈당계가 공식 접수되면 비례대표 의원인 박 의원은 자동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이성구 전 서울시의회 의장이 의원직을 승계한다. 박 의원은 지난 14일 김원기 국회의장에게 제출한 뒤 의원직 사퇴서가 반려되자 의원직 사퇴를 위해 탈당 여부를 고심해왔다. 이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표가 귀국하면 탈당 의사를 전하겠다.”고 예고했었다. 박 의원은 탈당 심경을 담은 ‘선배 동료 의원과 당원 동지들께 드리는 글’에서 “정치적 이념이나 신념이 달라졌기 때문에 탈당하는 게 아니다.”고 전제, 정치 입문 배경, 행정도시법에 대한 소신 등을 거듭 밝혔다. 특히 “당 외연 확산을 위해 ‘발전적 해체’와 ‘재창당’할 정도로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당을 ▲전투적 자유주의자의 모임 ▲자유화 이념과 선진화 비전의 결사체 ▲선진화 정책과 자유화 전략의 공동체 거듭나야 할 것”이라며 당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박 의원은 지난해 3월 입당해 박 대표와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여의도연구소장과 정책위의장을 지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경제난 이혼> 자살> 범죄 순 증가

    LG경제연구원은 23일 ‘자살·이혼·범죄 그리고 경제’라는 보고서에서 국내 자살률과 이혼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중 최상위권이며 증가 속도도 가장 빠르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자살·이혼·범죄는 경기 침체기에 빨리 늘고 호황기에 둔화돼 경기변동과 관계가 크다.”면서 “사회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척도인 자살·이혼·범죄가 늘어난다는 것은 사회불안이 커진다는 것”라고 경고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소득이 줄고 실업이 늘어 파산, 부도 등이 자살·이혼·범죄를 택하도록 부추긴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률과의 관계는 이혼이 가장 밀접했고, 자살·범죄 순이었다. 지난 1991∼2003년 경제성장률에 대한 이혼증가율 계수는 -0.882, 자살 증가율 계수 -0.773, 범죄증가율 계수는 -0.378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특히 장기적인 생활고로 최근 들어 자살률이 10∼20대에서 중·장년층 이상으로 눈에 띄게 옮아가고 있다고 분석, 최근의 20대 모방 자살 증가와 함께 자살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음을 지적했다.2003년의 경우 80∼90년대와 달리 30∼40대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자살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가족해체 등 고령층에 대한 사회·경제적인 처우가 악화되는 가운데 중·장년층인 30∼40대가 노년층이 되는 가까운 미래에는 이들의 자살·이혼·범죄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보러갑시다]

    ■ 바이런 킴 작품전 5월8일까지 로댕갤러리(02)2259-7781.‘피부그림’,‘고려청자유약’ 시리즈, 풍경화 ‘일요일 그림’ 연작 등 모더니즘 계열의 추상회화. ■ 홍승욱 작품전 26일까지 서울갤러리 1실(02)2000-9737. 사실적인 붓터치를 기본으로 한 자연주의 경향의 작품.‘봄소식’‘분홍꿈’등 출품. ■ 유충희 회고전 29일까지 갤러리 서호(02)723-1864. 원로 여성화가의 동양화와 자수작품. ■ 박종숙 개인전 29일까지 인사아트센터(02)736-1020. 기억을 주제로 한 서정적 분위기의 유화. ■ 이희중 개인전 4월17일까지 사비나미술관(02)736-4371. 민화의 회화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 40여점. ■ 도윤희 개인전 4월9일까지 카이스갤러리(02)511-0668. 연필드로잉에 유화물감으로 색을 입힌 관조적 분위기의 작품. ■ 현대일본디자인전 4월10일까지 성곡미술관(02)737-7650. 일본인 특유의 감성과 시대적 변화상을 반영한 일본 현대 산업디자인 소개. ■ 스티브 바라캇 내한공연 31일·4월1일 오후 8시 이화여대 강당 1544-1555. ■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 ‘해설이 있는 뮤지컬 여행’ 29·30일 오후 7시30분 코엑스 오디토리움 1588-7890. ■ 스프링 콘서트 ‘향수’ 25일 오후 7시30분 건국대 새천년관(02)455-1896. ■ 윤혜선 & 윤혜림 듀오 콘서트 27일 오후 3시 금호아트홀(02)541-6234. ■ 아이 러브 유 6월19일까지 연강홀(02)501-7888. 한진섭 연출, 남경주 최정원 정성화 오나라 출연. 이 땅의 모든 커플들에게 바치는 뮤지컬. ■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27일까지 소극장축제(02)741-3934. 최은이 작·민준호 연출, 박민정 진선규 출연. 평강공주 이야기를 새롭게 각색한 아카펠라 뮤지컬. ■ 사랑은 비를 타고 무기한 인켈아트홀1관(02)764-7858. 김장섭 오만석 노현희 출연. 형제간의 화해를 그린 창작 뮤지컬. ■ 아가씨와 건달들 5월1일까지 정동 팝콘하우스(02)574-4012. 강대진 연출, 김장섭, 김선경, 김법래, 류정한, 김소현 출연. 대표적 흥행 뮤지컬 새 옷입고 돌아오다. ■ 넌센스 아멘 5월22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02)556-8556. 고선웅 연출, 김성기 서영주 김수용 출연. 유명 코믹 뮤지컬 ‘넌센스’의 남자 버전. ■ 난타 25일부터 4월10일까지 PMC대학로자유극장 1544-1555. 브로드웨이 난타 1주년 자축파티. ■ 의자들 25일부터 4월3일까지 대학로 학전블루(02)3673-1392. 양정웅 각색·연출, 정해균 김은희 장현석 출연. 현대 부조리극의 대명사, 이오네스크의 작품. ■ 모든 것을 가진 여자 27일까지 예술극장 나무와 물(02)745-0308. 박상현 작ㆍ연출, 정재은 김중기 문형주 출연.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여자 이야기. ■ 부부 쿨하게 살기 4월9일까지 국립극장 별오름극장(02)762-9190. 손기호 작·연출, 임학순 우미화 출연. 행복한 부부로 살기 위한 지침서. ■ 디 아더 사이드 4월3일까지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02)747-5161. 아리엘 돌프만 작·손진책 연출, 권성덕 김성녀 정호붕 출연. 경계에 선 사람들의 고통과 비극. ■ 관객모독 6월19일까지 창조콘서트홀(02)764-3076. 페터 한트케 작·기국서 연출, 전수환 윤상화 서은경 양동근 출연. 평생 동안 들을 욕을 먹어도 화가 나지 않는 이유. ■ 행복한 가족 30일부터 4월30일까지 블랙박스씨어터(02)747-1010. 민복기 작·박원상 연출, 민복기 정석용 윤복인 출연. 가족해체 시대에 짚어보는 가족의 의미. ■ 세상을 편력하는 두 기사 이야기 4월10일까지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02)760-4639. 베쓰야쿠 미노루 작·송선호 연출, 전무송 이호재 오길주 정동환 출연.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이는 노 기사들, 왜? ■ 주목-흐름을 눈여겨보다 24·25일 오후 7시30분,26일 오후 4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02)2280-4261. 국립무용단이 안성수, 김영희, 정은혜 등 중견 안무가를 초청해 한국 춤의 새로운 경향을 모색하는 시간. ■ 바람벽 24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02)2263-4680. 박재희·새암 무용단 20주년 기념공연. ■ 넬 콘서트 26일 오후 7시,27일 오후 6시 롤링홀 1544-1555. ■ 다이애나 크롤 내한공연 31일 오후 8시 서울 힐튼호텔 컨벤션센터(02)541-6234. ■ 심수봉 부천 콘서트 26일 오후 4시·7시30분 부천 시민회관 대공연장(032)657-3007. ■ 윤희정 콘서트 30일 오후 4·8시 문화일보홀(02)3701-5757. ■ 이적 콘서트 25일 오후 7시30분,26∼27일 오후 6시 백암아트홀 1544-1555. ■ 이정식과 웨이브·웅산 콘서트 30일 오후 7시30분 충무아트홀(02)2230-6622. ■ 유진박 콘서트 26일 오후 7시 의정부 예술의전당 대극장(031)828-5841. ■ 오현숙 강산제 판소리 심청가 29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02)580-3300. ■ 판도라의 날씨 상자 4월10일까지 동영아트홀 1588-7890. 날씨에 대한 과학 원리,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훈적인 내용. ■ 넌 특별하단다 5월8일까지 인켈아트홀2관(02)745-0308. 맥스 루카도의 세계적인 그림동화가 뮤지컬로.
  • [클릭 이슈] 고사위기 씨름계 ‘프로-아마 통합’ 논란

    [클릭 이슈] 고사위기 씨름계 ‘프로-아마 통합’ 논란

    독도 문제로 동해가 불타오르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민속씨름 천하장사 출신 최홍만이 종합격투기대회 K-1에서 스모(일본 씨름) 출신 선수들을 잇달아 침몰시키며 우승을 차지했다. 흐뭇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최홍만의 K-1 진출과 관련,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던 씨름계도 내심 어깨가 으쓱할 만한 일. 그러나 현재 모래판 속사정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LG씨름단 해체 여파로 겪는 내홍에 더해 업친 데 덮친 격으로 프로-아마 통합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내부 갈등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프로-아마 통합 문제는 프로를 관장하는 한국씨름연맹이 침체된 씨름에 대한 관심을 촉발할 수 있는 묘안으로 내세운 대책 중의 하나. 한 때 8개 씨름단으로 호황을 유지하던 민속씨름은 LG씨름단의 해체로 프로팀은 2개만 남은 상태. 세 팀으로 대회를 꾸려갔을 때도 이미 단체전 의미가 퇴색됐고, 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같은 소속 선수가 격돌하는 등 흥미를 떨어뜨렸기 때문에 연맹은 아마추어인 지자체팀과 함께 정규대회를 치르는 방법을 최근 고사 위기를 돌파할 반전의 계기로 판단하고 있다. 설날대회처럼 프로 선수와 지자체 선수가 기량을 겨루는 일종의 오픈 대회를 정례화하자는 것이다. ●프로팀 2개, 지자체팀 14개 현재 남은 프로팀 2개에 울산동구청, 동작구청 등 지자체팀 14개가 더해지면 16개팀 체제로 개편되고, 선수도 30여명에서 130여명으로 크게 늘어난다. 이로 인해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닌’ 신선한 얼굴을 접한 팬들의 호응이 높아질 것이라는 계산. 또 두 팀이라면 자체 청백전식으로 운영되는 반쪽짜리 대회보다 박진감이 넘칠 수밖에 없는 점은 물론, 씨름의 명맥을 잇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TV 생중계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연맹의 설명. 연맹은 “이를 바탕으로 장차 지역 연고제로 발전시킨다면 과거 민속씨름의 영광을 되찾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신생팀 창단이 늦어지고 있는 만큼 프로-아마를 통합해 대회를 운영하는 게 차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맹의 생각이 모두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니다. 프로팀인 신창건설이나 현대삼호중공업은 격이 맞지 않는 지자체팀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거북하다는 입장. 씨름단 해체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금강급은 최소 1년, 백두급은 3∼4년 등 프로-아마 기량차가 커 승부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은 물론, 프로가 유명무실해지는 상황이 초·중·고등학교 등 전반적인 씨름 저변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게 씨름단측의 지적이다. 또 전 LG씨름단 소속 선수들이 팀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구제하는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통합 쪽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은 연맹이 해야 할 일의 순서에 어긋난다는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씨름단측은 “프로에서 아마로 돌아간 프로 스포츠의 전례가 없다.”면서 “아무리 좋은 방안이라고 할지라도 대회 운영과 직접 관련이 있는 씨름단과 공식적인 상의를 하지 않은 것은 도의에도 맞지 않다.”고 성토했다. 통합론의 또 다른 당사자인 지자체팀 사이에서도 아마추어는 들러리 역할만 한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한 지자체팀 감독은 “매일 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기에 선뜻 연맹의 방안에 찬성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면서 “서로 상이한 체급과 규칙을 조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연맹 총재 퇴진요구로 불똥 통합론자와 불가론자들은 의사 개진을 넘어 아예 한국씨름연맹 총재 자리를 놓고 힘겨루기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불가론자들은 지난해 6월 이호웅 총재가 물러난 뒤 민속씨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김재기 직무대행을 영입했지만,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채 LG해체 사태와 관련해서는 무관심으로 대응했고, 이후 신생팀 창단 추진 과정에서도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만큼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직무대행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직무정지 가처분신청 등 법적 소송을 준비하겠다는 후문도 있다. 이준희 신창건설 감독은 “김 직무대행이 오면서 대화는 커녕 독선적인 일처리로 일관, 각 단들의 불만이 폭발했다.”면서 “당초 약속이었던 신생팀 창단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만큼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더욱이 직무대행으로 올 당시 지난해 12월에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연맹 입장은 다르다.LG 해체는 기업 차원에서 결정됐기 때문에 연맹과는 무관하고, 정부를 통해 이를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반박한다. 또 신생팀 창단 노력도 게을리 한 게 아니라, 현재에도 추진 중이며 다만 경제 사정으로 여의치 않았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연맹은 “씨름단이 현 상황에 대한 대안은 내놓지도 않고, 연맹이 추진하는 일에 무조건 딴죽을 걸고 있다.”면서 “이는 위기의 씨름계를 나락으로 밀어내는 행위”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대한문 기둥밑동 부식 ‘중병’ 앓는다

    대한문 기둥밑동 부식 ‘중병’ 앓는다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大漢門)이 예정보다 1년 가까이 늦은 오는 12월에야 보수 공사가 끝난다. ●기둥 12개 모두 ‘신음’… 연말까지 ‘치료’ 문화재청은 “지난해 6월 공사를 시작할 때는 기와만 교체해서 6개월 만에 보수를 끝내려고 했지만 모든 기둥의 밑동이 부식된 게 새롭게 발견됐다.”면서 “관계 전문가의 자문 결과 기둥 밑동 교체작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어 올해 12월까지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18일 밝혔다. 대한문의 기둥은 모두 12개로 육송(陸松)으로 만들어졌다. 길이 7.9m의 고주는 2개, 나머지는 5.5m짜리 평주이다. 지름은 모두 54㎝ 정도이다. 기둥의 문제점은 대한문 해체 작업 도중 발견됐다. 대한문은 보수 공사에 착수할 당시 기와가 낡아 물이 새곤 했다. 이 바람에 오른쪽 하단 판벽과 중앙 문짝이 뒤틀리고 건물 전체가 왼쪽으로 기우는 문제점까지 발생했다. ●건축물 전체 왼쪽으로 기울어 이에 지붕 보수를 위해 대한문 전체를 다 분리시켜놓고 보니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의 밑동이 지붕에서 샌 물 때문에 대부분 썩어 있었다. 문화재청은 상태가 양호한 기둥의 가운데 이상 부분은 원래 목재를 활용할 계획이다. 옛것을 그대로 보전한다는 문화재 보호의 원래 취지를 살릴 뿐 아니라 과거의 육송이 요즘 것보다 재질이 좋기 때문이다. 대신 똑같은 종류의 최상급 소나무를 구해 밑동 부분만 교체할 예정이다. 또 기와는 새로 교체할 물량을 선별한 뒤, 원래 모습에 맞게 보충할 계획이다. 서까래와 도리 등 썩거나 부러진 부분도 완전히 교체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누수가 안 되는 것은 물론, 영구적으로 자연 훼손이 되지 않을 정도까지 완벽하게 복구 공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문은 지붕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춘 나무인 공포가 여러 개 있는 다포계(多包系) 건물에 해당한다. 원래 대안문(大安門)으로 불렸지만 지난 1906년 수리 뒤 고종의 명으로 이름이 바뀌었다.1968년 태평로 도로확장 때 덕수궁 담장이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1970년 원래 위치에서 약 22m 안쪽의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대한문 보수 공사에는 13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보수 공사로 대한문 대신 덕수궁 동북쪽의 소방문이 덕수궁의 임시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2008년까지 5년 계획으로 모두 300억원을 투입해 덕수궁 복원정비공사에 들어가면서 첫 단계로 대한문 보수공사에 착수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이라크 과도정부 구성 진통

    이라크 제헌의회가 미국의 침공 이후 근 2년만인 16일(현지시간) 역사적인 개원식을 가졌다. 지난 1월30일 총선 이후 7주째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날을 ‘희망의 순간’이라고 말했고,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이라크 정치과정에서 중요한 단계’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과도정부 구성에는 실패, 제헌의회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시아파 정권의 출범에 반발하는 저항세력들도 개원식장인 바그다드 시내의 ‘그린존’을 향해 박격포 공격을 가했다. 사상자가 발생하진 않았으나 과도정부가 구성돼도 이라크 내 치안확보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탈리아가 9월부터 철군할 뜻을 밝히는 등 미군 주도의 동맹관계에도 균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당초 개원 첫날로 예정된 대통령과 2명의 부통령 선출은 연기됐다. 이들로 대통령위원회를 구성해 총리를 지명하도록 했지만 실패, 과도정부 출범은 늦춰질 수밖에 없다. 총리로 유력한 이브라힘 알 자파리 다와당 대표는 “2주 내로 과도정부가 출범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향후 일정은 불투명하다. 총선에서 과반인 146석을 차지한 시아파 연합 ‘유나이티드이라크연맹(UIA)’과 77석을 차지한 쿠르드동맹은 과도정부 구성에는 잠정 합의했다. 대통령에는 쿠르드족 지도자 잘랄 탈라바니를 추대하고, 부통령은 시아파와 수니파에 1명씩 배정하기로 했다. 행정수반인 총리에는 자파리를, 국회의장에는 수니파 출신으로 합의했다. 문제는 원내 2당으로 부상한 쿠르드측과 시아파의 기싸움이다. 쿠르드측은 유전지대인 북부 키르쿠크를 포함, 쿠르드 자치구의 확대를 요구하지만 시아파는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새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종족간 영토분쟁 문제를 유보하자는 입장이다. 게다가 시아파는 쿠르드 민병대조직인 페시메르가를 해체, 이라크 보안군에 편입시키려 하지만 쿠르드측은 자치권 보장을 위해 반대하고 있다. 또 쿠르드측은 과도정부에 이슬람 정파의 입김 배제를 바라지만 시아파가 쉽게 응할리 없다. 과도정부에 수니파를 참여시키려는 계획도 수니파가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여 난항이 예상되는 가운데 저항세력의 공격은 거세지는 형편이다. 결국 미국은 영국과 함께 치안 공백에 더 큰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어 과도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이라크 치안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사설] 번갯불에 콩볶기식 학교폭력대책

    요즘 교육당국이 내놓고 있는 학교폭력대책을 보면 원칙이 있기나 한지, 즉흥적 임기응변이나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믿음직스럽지 못한 데가 많다. 그제 교육부가 학교폭력 신고를 많이 하는 학교와 학교장들에게 표창 등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밝힌 것은 대표적 사례다. 아무리 실적이 중요하지만 포상을 미끼로 스승에게 제자를 신고하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설령 포상을 바라고 학생을 신고하는 교사가 있다 한들 제대로 된 교육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현장에서나 통하는 실적주의가 교육현장에까지 침투한 것 같아 개탄스럽다. 물론 교육부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신고창구는 설치했는데 학교와 교사들이 평점 걱정 때문에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니 실태파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우려됐을 것이다. 그러나 평점이 문제라면 평점제도를 손보면 될 일이다. 학생의 문제를 발견하고 선도한 교사에게 불이익을 주는 제도가 있다면 당장 뜯어고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고 학생을 신고한 교사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교육적 견지에서 잘못됐다. 교육현장에서 교사와 학생간 신뢰를 잃고나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처음 일진회 실태가 폭로됐을 때부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처음엔 실체를 부정하는 듯하더니 해체 계획을 밝히고 마침내 황당한 인센티브 제안까지 내놓았다. 교육부는 더이상 번갯불에 콩볶기식 대책을 쏟아내지 말라. 학교내 상담체계부터 시작해 근본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학교폭력은 일제소탕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학교의 신뢰회복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송두율 칼럼] 탈식민주의의 문화지평

    [송두율 칼럼] 탈식민주의의 문화지평

    올해 우리는 광복과 분단의 60주년을 맞고 있다. 이에 따라 특별히 한·일간에 예민한 사안들이 연달아 제기되고 있다. 독도영유권 문제는 물론, 일본식민지지배의 공과(功過)를 둘러싼 뜨거운 공방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승조 교수의 기고문의 내용은 과거에 대한 분석을 넘어 오늘의 문제와 곧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의 사회적 파장 또한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자생적 발전론’의 대립처럼, 주로 학술적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던 논쟁들이 이제는 “친북이 친일보다 나쁘다.”는 식의 직접적 표현을 빌려 오늘의 정치상황 평가에까지 연결되고 있다. 1945년의 광복은 냉전체제 속에 갇혀 일본식민지지배구조의 완전한 해체로 곧장 연결되지 못했다.1965년 한·일국교정상화는 이러한 구조의 재생산을 직접 뒷받침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문화분야에서는 정치나 경제분야보다 더 늦게 재생산 구조가 복원되었다. 이의 주된 이유는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문화가 지니는 특성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일간에 정치나 경제분야보다는 문화분야에서 아직도 상당한 저항과 거부감이 남아있다.‘교과서파동’이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욘사마 열풍’과 같은 현상도 나타나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은 그간 경제대국-기술대국-정치대국-군사대국-문화대국이라는 국가경영철학의 변화를 보여왔다. 문화대국의 건설이 장기적 과제라는 사실이 여기서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강대국보다는 차라리 높은 문화를 지닌 아름다운 나라를 건설하고 싶다는 김구선생의 바람은 이러한 일본의 국가경영철학에 대비될 수 있는, 그래서 분명히 값진 것이었지만 불행하게도 분단체제 속에서 실현될 수 없었다. 그동안 한·일간의 비대칭적 문화관계는 열등감과 우월감이 서로 교차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물론 한·일간에만 특별히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의 이론가 프란츠 파농(F Fanon)은 제3세계가 식민지시대와 단절하려고 하지만 이를 위해 동원하는 수단 역시 식민지시대의 유산이라는 자기모순을 지적한 적이 있다. 극일(克日)하기 위해서 먼저 지일(知日) 또는 친일(親日)해야 한다는 논리도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문화가 본래적이고 순수한 것이 아니라 이미 식민주의의 문화와 뒤섞인 하나의 ‘잡종’이라는 사실을 빨리 인정해야 한다고 파농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피부색깔에다가, 과거에는 오히려 일본에 높은 문화를 전해주기까지 했다는 민족적 자부심 때문에 우리는 그와 같은 논리를 선뜻 받아 들일 수 없게 되어 있다. 결코 쉽게 부정될 수 없는 민족정체성에 뿌리를 둔 문화적 담론을 우회(迂廻)하면서 잘못 설정된 비교수준에 근거한 ‘친북이 친일보다 나쁘다.’거나 ‘친일이 친북보다는 낫다.’는 주장은 먼저 식민주의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별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또 이같은 주장은 식민주의의 자기반성의 근본인 ‘기억의 문화’마저도 철저하게 희화(戱畵)하고 잊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잘못 설정된 그러한 비교수준은 지금까지 식민주의자들에 의하여 재단된 ‘문명-야만’, 또는 ‘좌익-우익’이라는 경계를 넘어 ‘창조적 제3’을 지향하고 있는 탈식민주의의 진지한 노력과 귀중한 성과도 아예 없었던 것처럼 여기는 무지도 드러내 보이고 있다. 탈식민주의적 문화공동체건설의 기본정신은 우선 여러 문화적 주체들이 자기 색깔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또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데에 있다.‘친일’과 ‘친북’이라는 잘못 설정된 양자택일의 막힌 사고체제로서는 남북이 탈식민주의의 노력 안에서 만날 수 없다. 또 이러한 만남을 기반으로 한 동북아의 새로운 문화적 지평을 여는 작업도 불가능하다.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 [사설] 교원평점 때문에 학교폭력 덮는다니

    중학 1학년 때 일진회에 가입한 딸을 갖은 노력 끝에 평범한 여고생으로 되돌린 김영희씨의 사연을 보면 분노부터 치솟는다.“믿는 마음으로 부탁을 드리려고” 찾아간 어머니에게 교장·학생지도교사·담임교사 등은 “외면하는 눈초리로”“단 1분도 들으려 하지 않고”“가정교육이 잘못됐으니”“무조건 전학 가라.”고 다그쳤다고 한다. 믿기 싫지만 이것이 학교폭력에 대한 일부 교사들의 처리 방식이다. 일진회 문제가 불거진 뒤 우리는 일진회를 해체시키고 가담 학생을 정상적인 학교생활로 되돌아오게 하는 데는 교사들의 노력이 필수적임을 여러차례 지적했다. 교내 폭력을 해결하는 책임이 궁극적으로 교사들에게 달렸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나 일진회에 대한 수사가 본격 진행되면서 우려한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경찰과 교육계 쪽에서는 일선학교가 여전히 폭력문제를 숨기는 데만 신경 쓴다는 불평·증언이 이어진다. 게다가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부 교사가 불량서클 학생들을 불러, 일진회는 없으니 자진신고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입단속했다는 말까지 들린다. 이처럼 교내폭력 사태를 은폐하는 데 급급한 까닭을, 교사들은 교원평가에서 감점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이유 있는 설명이지만 이는 어차피 부수적인 문제로 여겨진다. 폭력 행위를 방지하고 피해·가해학생을 제자리로 돌아오게끔 이끄는 일은 교육의 본질에 속하는 영역이다. 이를 묵인하고 방치하는 짓에는 어떠한 변명도 용인될 수 없다. 김영희씨의 딸이 되돌아온 데는 담임교사들의 노력이 가장 주효했다고 한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학교폭력 해결은 교사들에게 달려 있다.
  • “일진회, 조폭연계 여부 수사”

    학교 폭력조직인 ‘일진회’ 해체를 위한 경찰의 전방위 수사가 본격화됐다. 일선서별로 학교폭력 피해신고를 내사하는 한편 조직폭력배와의 연계 여부도 수사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13일 전국 일선서 형사계와 여성청소년계, 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를 동원해 경찰에 신고된 학교폭력 피해신고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허준영 경찰청장은 14일 학교폭력과 관련한 종합치안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경찰은 지난 4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운영되는 자진신고 기간에 접수된 구체적 제보에 대해 내사를 벌이고 지역별 일진연합에 대한 정보 수집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접수된 학교폭력 피해신고는 22건으로 관련 학생이 50여명에 이르고 있다. 지방 중소도시의 경우 일진회 소속 고교 2학년생 7명이 같은 학교 1학년생 10명을 집단 폭행했다는 구체적인 제보가 접수돼 해당 경찰서가 수사에 나선 상태다. 경찰청 관계자는 “학교 내 폭력조직이 피해 학생을 집단으로 폭행하거나 상습적으로 금품을 갈취한 경우, 여학생을 성폭행한 경우 등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철저하게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행법상 14세 미만의 청소년은 소년법에 따라 보호처분을 받지만 14세 이상 청소년이 범죄를 저지르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행, 협박, 공갈죄)이나 형법(강간죄)에 따라 처벌받는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도 각 지방청 사이버수사대의 가용인력을 총동원해 ‘사이버수사’를 벌이고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하마스 “팔레스타인 7월 총선 참여”

    팔레스타인 최대의 무장단체 하마스가 오는 7월17일 예정된 총선에 참여키로 결정했다. 총선 전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촌 해체와 병력 철수를 시작할 계획이라는 점과 맞물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관계의 긍정적 변화가 예상된다. 마무드 아바스 수반으로 대표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최대정파인 파타와 하마스의 대결로 정치권도 새롭게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하마스 지도자 무하마드 가잘은 12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 나블루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7월 서안과 가자지구, 동예루살렘에서 치러지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의회선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요구해온 하마스는 1993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팔레스타인의 자치권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합의한 오슬로 자치안을 거부했고, 자치안에 따라 수립된 자치정부도 인정하지 않았다.1996년 첫 총선을 비롯해 지난 1월 수반 선거에 참여치 않은 것도 ‘불법 정부가 실시한 선거’라는 이유에서였다. 총선 참여를 발표하면서 하마스 지도자 가잘이 “(2000년 9월) 2번째 인티파다(반 이스라엘 민중봉기)로 오슬로 자치안이 해체돼 선거 참여가 가능하다.”고 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뉴욕타임스는 “하마스의 이번 결정은 무장단체들에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중단과 선거 참여를 설득해온 아바스 수반의 승리이면서 동시에, 자치정부를 장악해온 파타의 최대 위기를 뜻한다.”고 13일 전했다. 아라파트와 같은 혁명 1세대가 이끌어온 파타는 부패와 권력다툼으로 민심을 잃어왔지만 젊은 세대가 요구한 개혁은 묵살되고 있다. 반면 하마스는 최근 치러진 자치단체장 선거에 후보를 내 파타에 압승하는 등 세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아랍계 위성방송 알자지라 인터넷판은 “하마스의 총선 참여는 독립국가 수립이라는 최종 목표를 위한 한시적인 정치권 진입”이라고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보도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사설] 일진회 제재와 선도 병행해야

    ‘일진회’의 충격적인 실태가 공개된 뒤 정부 당국에서 다양한 대책이 나오고 있다. 당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경찰은 일선 경찰서의 형사계·여성청소년계와 각 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를 총동원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전국 시·도 부교육감 회의에서 그동안 일선학교의 안이한 대처를 강하게 질책했다. 또 정보통신부는 학교폭력 관련 커뮤니티를 폐쇄하고 검색도 차단하기로 했다. 모두 필요한 조치들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최초의 충격에서 벗어나 일진회 문제에 관해 더욱 근원적인 대책을 함께 강구해야 한다. 일진회의 실상을 파악해 해체시키려면 경찰 수사는 불가피하다. 그렇더라도 여느 일제단속하듯이 마구잡이로 진행해서는 안 된다. 집단성폭행처럼 죄질이 나쁘거나, 외부 폭력조직과 연계한 사례 등 몇가지 기준을 제외하고는, 해당 학생을 학교로 되돌려 보낸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교육 당국과 일선 학교의 할 일은 더욱 중요하다. 먼저 일진회 실상 파악에는 적극 협력해야 한다. 아울러 대상 학생 개개인의 ‘가담’ 정도를 고려해 그에 따른 선도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일진회 가입 학생을 둔 가정도 아이를 포기하거나, 또는 과오를 부인하려고만 들지 말고 정상적인 학교생활로 복귀하도록 경찰·학교와 적극 협력해야 한다. 일진회 문제는 특정 분야에서 전담 처리해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사회 전반에 흐르는 폭력문화부터 정화해야 한다. 특히 교육일선에서 벌어지는 교사의 체벌, 가정에 존재하는 어린이 학대 등 일체의 폭력성이 사라질 때 일진회 존립의 기반 자체가 무너질 것이다.
  • [스포츠 라운지] 프로배구 실업초청팀 한국전력 공정배 감독

    [스포츠 라운지] 프로배구 실업초청팀 한국전력 공정배 감독

    프로배구 V-리그 구미대회가 한창이던 지난 3일. 코트에 작은 반란이 일어났다. 만년 꼴찌이자 유일한 아마팀인 한국전력이 겨울리그 8연패에 빛나는 남자배구 최강 삼성화재를 혼쭐내고 있던 것. 초반 두 세트를 무기력하게 내준 한전은 다 진 경기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역전승 일보직전까지 몰고갔다. 결과는 2-3패. 그러나 한전은 창단 10년을 맞는 삼성화재와의 대결에서 사상 처음으로 두 세트를 빼앗는 ‘쾌거’를 일궈냈다. 반란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틀 뒤에는 대한항공을 퍼펙트 세트스코어로 완파하며 당당히 ‘프로팀의 천적’으로 떠올랐고, 다른 팀 감독들로 하여금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근심을 자아내게 했다. 서른 줄 노병들의 투혼과 막내들의 오기가 한데 뭉쳐진 결과였다. 그러나 예전 모래알 같던 이들을 한데 끌어모으고 투지를 북돋운 주인공은 털털한 ‘맏형’이나 다름없는 공정배(43) 감독이었다. ●“갈 곳 없는 사람 다 모여라.” 그는 ‘마이너리티’다. 만년 꼴찌에다 초청팀이라는 옹색한 명찰을 달고 프로배구 코트에 뛰어든 국내 유일의 남자 실업팀 감독. 게다가 선수 시절 국가대표 태극마크는커녕 중뿔난 성적 하나 없는 사령탑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배구팀의 지휘봉을 8년이나 잡고 있다. 스스로를 ‘억세게 복도 많은 촌놈’이라고 깎아내리는 이유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흥부네 집’마냥 줄줄이 자신에게 매달려 있는, 친동생과도 같은 14명 선수들 때문이다.“이기는 경기보다 최선을 다하는 경기를 해 달라는 주문에 성실하게 답해주니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털어놓는다. 지난 1945년 국내 최초의 실업배구팀으로 출발한 한국전력은 공기업이라는 이유 때문에 다른 팀들처럼 ‘돈질’로 선수를 끌어모으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 선수 수급도 ‘이삭줍기’나 다름없다. 팀 해체나 방출 등으로 갈 곳 없는 선수들을 끌어모으는 것이 고작. 하지만 공 감독은 굴러다니던 진주들을 하나씩 모아 보석목걸이를 만들었다. 한 때 둥지를 잃었던 이병희 한대섭(이상 전 고려증권)과 김상기 강성민(이상 전 시청), 올시즌 직전 샐러리캡의 희생양으로 삼성화재를 떠난 정평호와 김철수 차승훈 등 플레잉코치들까지 엮어 일약 ‘도깨비팀’으로 변모시켰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고아원 원장’이다. ●“승리는 예스, 악역은 노” 진주 동명고 2학년 때 본격적으로 배구공을 만지기 시작한 공 감독은 ‘대기만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창원대를 거쳐 1984년 한전 입사 이후에도 그의 포지션은 따로 없었다. 이른바 빈 자리 메우기 전문.‘한전맨’으로서 20년 넘게 한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자존심이 그의 유일한 재산이다. 그러나 팀의 사령탑으로서 승리에 목마르기는 다른 감독들과 마찬가지. 그의 올시즌 목표는 소박하게도 4강 진입에 꼭 필요한 단 5승이다. 지난 5일 4연패 끝에 꿈 같은 첫 승을 올려 ‘시작이 반’임을 실감한 공 감독이지만 속은 개운치 않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악역’을 짊어졌기 때문.10일 대한항공 차주현 감독은 최근 성적 부진에 따른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전부터 퇴진설이 설왕설래했지만 5일 한전과의 경기 패배가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지난해 2월 V-투어 때에도 공 감독은 ‘장신군단’ LG화재를 꺾는 돌풍을 일으키며 당시 노진수(현 베이징시 남자대표팀) 감독 퇴진에 방아쇠 역할을 한 장본인이 돼버렸다. 그는 “승수는 쌓아야 하는데 또 악역을 맡게 될지 걱정”이라면서 “더 이상 한전이 상대팀 성적의 잣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글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걸어온 길 ●1962년 경남 진주 출생 ●고교 2년 때부터 배구 시작 ●186㎝,92㎏, 혈액형 A ●진주 남산초-반성중-동명고-창원대 ●부인 이희경(교사)씨와 1남1녀 ●1984∼92년 한국전력 선수 1993∼96년 〃 주무 1996∼98년 〃 코치 1998∼현재 〃 감독
  • 다양해진 시트콤 메뉴

    “골라보는 재미가 있네!” 요즘 안방극장 시트콤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느낌이다. 얼마전까지 만해도 한국 시트콤은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했다. ‘청춘’과 ‘홈’일변도의 단순한 소재, 아이디어 부족, 졸속 제작 등으로 내러티브는 드라마에, 캐릭터와 웃음은 개그 프로그램을 따라잡지 못해 시청자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다. 하지만 달라졌다. 시트콤이 질적으로 진화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것.KBS 일일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MBC 주간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SBS 주간 시트콤 ‘귀엽거나 미치거나’등 최근 전파를 탄 ‘뉴 시트콤’들은 저마다 독특한 소재와 장르를 도입하고, 드라마 형식도 과감히 시도하는 등 내용과 형식의 차별화를 꾀했다. 청춘 스타가 아닌 ‘내공’있는 연기파 배우들도 대거 수혈해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결과는 성공적. 특히 젊은 층만이 아닌 30∼40대 층도 시트콤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면서 세 시트콤들은 각각 10% 안팎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안녕, 프란체스카’는 시트콤 ‘두근두근 체인지’를 통해 외모 지상주의를 비꼬아 주목받은 노도철 프로듀서의 작품. 세상을 향해 내다꽂는 그만의 신랄한 ‘풍자와 해학’에 심혜진·이두일 등 연기자들의 호연이 덧씌워지면서 시트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부조리한 인간들의 피를 뽑아먹는 흡혈귀들간의 끈끈한 인간애를 통해 가족주의의 해체와 물질 만능주의를 조롱, 젊은층은 물론 중장년층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순풍 산부인과’등으로 한국 시트콤사에 한 획을 그은 김병욱 프로듀서가 만드는 ‘귀엽거나 미치거나’의 인기 비결은 ‘패러디’와 ‘블랙 코미디’. 재벌 2세나 신데렐라 등 우리나라 드라마 전체에 대한 ‘비틀기’를 시도한다. 거기에 ‘캐릭터 뒤집기’의 힘이 보태져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박경림과 소유진이 그동안 보여줬던 이미지를 180도 뒤집는 캐릭터로 전면에 나서며 젊은 시청자들의 함박 웃음을 이끌어낸다.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강점은 시트콤 답지 않은 시트콤이라는 데 있다. 최대한 ‘오버’하지 않으려 든다는 것. 주인공인 31살 ‘노처녀’들의 과장된 몸짓과 대사 등 ‘개인기’보다는 그들이 처한 상황과 그에 따른 심리묘사에 치중한다. 시트콤이 아닌 정극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 미국 시트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인물 구성을,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설정을 따와 한국적 ‘여성 시트콤’으로 재창조, 여성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이들 시트콤들의 경쟁속에 과연 한국 시트콤의 무너진 자존심이 어느 정도까지 회복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일진회 5월부터 해체작업

    일진회 5월부터 해체작업

    전국 초·중·고교의 폭력집단에 가담하고 있는 학생이 ‘일진회’를 비롯,40만명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서울J중학교의 한 교사는 일진회 회원이 전국적으로 40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한 바 있으나 스스로를 일진회로 부르거나, 피해학생들이 일진회로 여기는 보통의 폭력집단을 합쳐 이같은 숫자에 이르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또 공개 성행위 등 일진회의 퇴폐적인 단합대회가 존재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에 따라 경찰과 교육 당국은 일진회를 비롯한 학교 폭력 집단의 실태조사에 착수,5월부터 해체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10일 서울신문 취재팀이 일진회 출신 10대 소녀를 만나 인터뷰한 결과 실제 섹스머신과 노예팅이 일진회 단합대회에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진회에 가입한 정혜영(가명·14·중학 2년 중퇴)양은 이날 “지난해 초 강동구 일대 중학교 일진회 학생 60여명이 동대문구 어느 창고를 빌려 술을 마시며 ‘1일 록카페’를 열었다.”면서 “당시 남녀 커플 두팀이 공개 성행위인 섹스머신을 했고, 노예팅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강동지역 모 중학교에 다니다 지난해 중퇴한 정양은 “우리 학교에서 일진회는 남자가 60∼90명, 여자가 30∼50명 규모”라면서 “학교에서도 일진회의 실상을 잘 알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교장이 일진회의 학년별 ‘캡틴’ 몇 명을 불러 해체를 설득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일진회의 간부뿐 아니라 단순 가담자에 보통의 폭력 집단까지 합치면, 최대 40만명 정도가 연루된 것으로 추산했다. 경북대 이동진 사회학과 교수는 “일진회는 서울과 수도권에 편중되는 현상을 보이지만, 지방의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중·고교에는 거의 다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 2003년 12월 형사정책연구원 재직 당시 ‘청소년 폭력집단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를 냈다. 그는 “중학교의 경우 일진회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청소년 사이에 인식되고 있으며 교내 폭력이 일진회로 나타난다.”면서 “교내 폭력서클의 단순 가담자 등을 포함하면 40여만명이라는 규모가 나올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일진회는 중·고생들 사이에 폭력·또래 집단을 부르는 대명사로 쓰이고 있는 것이지 전국적이고 대규모의 폭력 집단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고 해명했다. 이렇듯 학교폭력에 관한 각종 연구보고서에서 지역별 일진회 숫자나 가담학생 등의 정확한 규모가 제시되지 않을 정도로 일진회 등 교내 폭력집단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책이 미흡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찰청은 오는 4월말까지 일진회 등 폭력집단 연루자를 대상으로 자진 신고를 설득하고, 구체적인 피해 사례와 실태, 규모 등을 파악한 뒤 5월부터 수사국을 중심으로 본격 해체작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사이버테러대응센터 등을 통해 포털이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학교별, 지역별 일진회 조직을 파악키로 했다. 이금형 여성청소년과장은 “4월까지 자진 신고하면, 일진회 등의 주도 멤버라 하더라도 최대한 관용을 베풀 것”이라면서 “하지만 5월부터는 사법처리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 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안동환 홍희경기자 sunstory@seoul.co.kr
  • [‘일진회’ 꿈이 없는 아이들] 문용린 청소년폭력예방 이사장

    [‘일진회’ 꿈이 없는 아이들] 문용린 청소년폭력예방 이사장

    “일진회는 우리 주위를 맴도는 신기루와 비슷합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사장 문용린 서울대 교수(전 교육부 장관)는 10일 일진회란 학생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로 실체를 발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폭력을 일삼는 학생들이 각 학교에서 스스로를 일진회 일원이라고 말하지만, 수사를 해보면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자기과시를 위한 거짓말이라는 설명이다. 문 이사장은 “임꺽정이 유명해지니까 도둑들이 모두 임꺽정 부하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일진회 실상을 증언한 중학교 교사도 청소년 폭력이 심해지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일진회란 허상이 실체화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이사장은 경찰이 일진회 단속에 나섰다 빈껍데기만 확인하면 오히려 청소년 폭력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을까 우려했다.“일진회란 상부조직은 없어도, 학교에 폭력은 분명 존재한다.”면서 “조직 해체보다 청소년 폭력을 뿌리뽑고 예방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를 위해 학교 폭력의 특징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교 폭력은 오랫동안 지속되지만 알아채기 어렵다고 했다. 처음에 가해 학생은 가벼운 폭력을 행사하며 돈을 요구한다. 피해 학생은 몇개월간 부모에게 거짓말로 돈을 타 건넨다. 한계에 도달하면 도둑질을 하거나 자살을 결심한다는 것이다. 이때까지 부모는 물론 교사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문 이사장은 “어른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피해를 알리지 않는다.”면서 “교사나 경찰에게 알려도 보복을 받지 않는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문 이사장은 “한 교사의 걱정처럼 일진회란 조직이 구체화되고, 청소년들이 폭력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면 일본의 야쿠자, 미국의 마피아 같은 조직이 우리나라에도 탄생할 것”이라면서 “교사·학부모·시민단체·경찰이 함께 청소년 폭력에 맞설 때”라고 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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