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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7) 계룡산과 신종교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7) 계룡산과 신종교들

    ●정감록, 대항 이데올로기, 신종교, 주체적 근대화운동은 함수관계 ‘정감록’과 나의 만남은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을 꺾기 위한 대항 이데올로기가 과연 존재했느냐 하는 화두에서 비롯됐다. 이 문제를 풀려고 나는 서양의 종교사, 중국의 태평천국, 백련교 등에 관한 책을 읽으며 암중모색을 하던 중 ‘정감록’, 대항 이데올로기, 신종교 그리고 주체적 근대화운동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믿게 됐다.“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 다양한 농촌운동을 전개한 천도교의 경우에서 보듯 신종교는 근대화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았다. 뭉뚱그려 말하면, 조선 후기 평민 지식인들이 생산·보급한 ‘정감록’은 동학·증산교 및 원불교 등 한국의 대표적인 신종교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들 신종교는 성리학에 대항한 새 이데올로기일 뿐만 아니라 근대화를 위한 대안의 구실도 할 만했다.19세기 말부터 이들 신종교는 민중의 입장에서 ‘제생의세’(생명을 살리고 병든 세상을 치료)와 ‘해원상생’(원한을 풀어 서로를 살림) 운동을 전개했다. 이것은 평민 지식인들이 주도한 운동이란 점에서 한국사상사의 큰 결실이었다. 그러나 이런 신종교들이 기성 이데올로기를 대체하기 전에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한국 사회는 조선 후기 평민 지식인들이 애써 창안한 대항 이데올로기를 외면한 채 기독교,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을 수입하는 처지가 됐다. 새 이데올로기를 도입한 사회세력들은 신종교를 일괄 매도하는 경향이 심했다. 그들은 신종교를 ‘유사종교’라든가 ‘사이비종교’라며 무시하고 억압했다. 비유컨대, 수입상품을 팔아먹으려고 토산품에 대해 흑색선전을 펴는 격이었다. 간혹 일부 신종교 단체들이 물의를 일으켰다 해도, 그것으로 신종교 전체를 매도해서 될 일인가. 참고로 말하면 일제시기 신종교 단체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오늘날의 기독교나 천주교보다 수십 배 신도 수가 많았다. 우리는 더 이상 냉혹한 비판자의 편향된 시각에서 신종교 단체들을 홀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수십년 전 수백만 민중의 지지를 받던 신종교는 ‘정감록’에서 영감을 얻었거나,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 그런 점 때문에 ‘정감록’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히 신종교를 말하게 되고, 신종교를 논의하면 당연히 정감록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다. 정감록이 신종교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부분은 ‘때가 되면 진인이 나와서 계룡산에 도읍한다.’는 대목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신종교마다 일치하지 않아 여러 형태로 구별된다. 나는 편의상 그 형태를 청림교형·보천교형·원불교형 등 3가지로 구분해 부르겠다. 이들의 차이점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정감록, 대항 이데올로기, 신종교 그리고 자주적 근대화운동의 상관관계라는 큰 주제에 접근하는 내 나름의 방법이다. ●전통적 정감록 신앙에 근접한 청림교형 신종교 단체들 가운데 조선 후기의 전통적인 정감록 신앙에 가장 가까운 형태를 띠는 것을 나는 청림교(靑林敎)형이라 한다. 엄밀히 말해, 청림교가 늘 그랬다는 뜻은 결코 아니며, 단지 1932년에 발생한 이른바 청림교 사건에서 드러난 그 교단의 모습에서 정감록 신앙의 원초적 형태를 재발견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자취 없이 사라진 청림교지만 본래 1920년 동학에서 갈라져 나올 때만 해도 그 세가 만만치 않았다. 교당이 만주와 지린에까지 세워져 한때 신도 수가 30만명을 오르내릴 정도였다. 청림교는 항일운동에도 열심이어서 일제가 눈엣가시처럼 여겼다고 하는데 마침 1932년 2월 말에 터진 청림교 사건이 결정적인 탄압의 구실이 됐다. 당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상상하던 정감록과 신종교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사건의 내용을 개관해 보자.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정감록’을 빙자해 ‘어리석은 백성’을 현혹하는 신종교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물론 언론에 밝혀진 사건의 상당 부분은 일제가 조작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봐야 한다. ●자하도 진인이 보내온 만병통치약 1932년 2월27일자 경성일보에 따르면 일본 경찰은 청림교주 태두섭을 비롯한 30명을 긴급체포했다. 전국 각지에서 농민들에게 금품을 갈취해 사복을 채운 혐의로 붙들려온 이 교단의 간부 11명에게는 결국 실형이 선고됐다. 청림교측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고 한다. “바야흐로 계룡산에 신국가 건설사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정감록’에 약속된 대로 곧 진인이 나와 국권을 손에 쥘 것이다. 진인은 이미 청림교 간부들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 단계에 있는데 남해 자하도라는 무인도에 숨어 있는 칠성관이 바로 정감록에 예언된 진인이다. 누구든지 청림교를 제대로 믿기만 하면 이 다음에 크게 벼슬한다. 몸에 병이 있는 사람도 아무 걱정하지 마라. 청림교에는 자하도에서 몰래 가져온 신약이 있다. 이 약만 복용하면 만병이 통치되고 불로장생한다.” 청림교에서 말한 자하도와 칠성관은 물론 가공의 섬, 가공의 인물이었다. 다만 ‘정감록’에 남해의 어느 섬에서 진인이 나와 계룡산에 도읍한다고 돼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서 많은 정감록 신봉자들은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고 본다. 청림교측은 진인의 실체를 칠성관으로 파악하고 있던 데다가 진인이 머무는 남해의 섬을 자하도로 정확히(?) 밝혔고, 또 그 진인과 이미 왕래를 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하는 바람에 그럴싸하게 들렸던 것이다. 또한 청림교측은 진인이 직접 조제했다는 선약(仙藥)을 시판하기도 했다.‘정감록’에는 진인이 약을 만든다는 말이 전혀 없다. 그렇긴 해도 사람들은 세상을 구하러 나올 진인이라면 그 정도 능력쯤이야 있을 법하다고 믿었다. 진인이란 용어가 본래 도교적인 데다 도교는 장생술(長生術)을 추구하므로 진인과 선약의 관계는 누구에게나 밀접해 보였을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미뤄 볼 때 불치병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청림교측이 파는 선약에 관심을 가진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만일 식민지 경찰의 수사 결과가 사실이었다면, 청림교 간부들은 이런 ‘황당한’ 거짓말로 ‘어리석은’ 농민들을 속여 사기행각을 거듭했던 셈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일제가 발표한 청림교 사건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 이 사건은 청림교를 탄압하기 위해 일어난 것이었고, 수사 과정에 혹독한 고문이 있었다. 따라서 사건에 관한 보도 가운데도 일경의 왜곡과 조작이 섞여 있을 수가 있다. ●정감록 신앙의 원초적 형태 어쨌거나 청림교 간부들의 언동에는 조선 후기에 널리 퍼져 있던 정감록 신앙의 원초적인 모습이 재발견된다. 계룡산 천도설의 주인공인 진인의 능력을 빌미로 신도를 끌어들이고 조직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방법 말이다. 비슷한 일이 18세기 정조 때도 있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진인이 해도에서 몰래 군대를 기르고 있다며 군인들이 입을 군복을 마련한다는 빌미로 금품을 거둔 사례가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해도에 있는 진인에게 물어 미래의 운세를 봐주겠다며 의뢰인에게서 복채를 챙기기도 했다. 묘향산 등지에 머무는 진인에게 부탁해 액막이를 하겠다며 제수용품조로 거금을 제공받은 이도 있었다. 청림교 사건에 투영된 신종교의 모습은 대강 이렇다. 이 단계의 신종교는 아직 기성 이데올로기에 대항할 만큼 뚜렷이 정제된 이념을 갖지 못했다. 그 단체의 수장은 스스로를 진인이나 새 세상을 건설할 주역으로 제시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정감록에 언급된 진인을 내세워 교단의 조직을 보강하고 운용자금을 거두는 정도다. 이들 신종교는 그저 ‘정감록’을 시세에 맞춰 풀이해 현세적 이익을 도모하는 정감록 신앙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일제시기 계룡산에 난립해 있던 신종교 단체는 대체로 그 수준이었다. 각지로부터 계룡산에 이주해온 정감록 신봉자들 중에는 일인교단(一人敎團)에 머문 경우도 많았다. 계룡산을 처음 찾았던 1980년대 후반에도 나는 이런 형태의 정감록 신자들을 많이 보았다. ●국가적 차원에서 천지개벽을 바라본 보천교형 그와 다른 차원에서 정감록의 계룡천도설을 수용한 신종교 단체들도 있었다. 정연한 교리체계를 갖추고 국가나 민족의 입장을 내세운 경우인데, 그 대표적인 사례로 나는 보천교(普天敎)를 손꼽는다. 지금은 그 존재가 희미해졌지만 일제시기 보천교는 위세당당한 신종교였다. 보천교는 1911년 증산교에서 독립됐다. 창립자는 차경석(車京石·본명은 輪洪)으로 그는 증산교와 동학의 교리를 녹여내 나름대로 새 세상을 준비했다. 인의(仁義)의 실천을 기본교리로 정했고 경천(敬天)·명덕(明德)·정륜(正倫)·애인(愛人)을 4대강령으로 삼아 상생(相生)·대동(大同)을 강조했다. 한데 이 신종교의 가장 큰 특색이라면 교주 차경석이 ‘정감록’을 적극 원용한 점이다. 그는 천지운도(天地運度·새 세상)를 열 사람은 자기뿐이라며 진인을 자처했다. 새날이 오면 한국은 세계 종주국가가 된다던 차경석의 주장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1920년대 말 보천교는 동아시아가 한세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일제의 대동아공영권에 동조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였지만, 보천교의 본래 모습은 그렇게 친일적인 것이 아니었다. 보천교 신도들은 일본 상품을 철저히 배격했고 토산품 자급자족운동을 했다.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끝난 뒤 허탈감에 빠져 있던 민중은 이런 보천교의 민족적인 성격에 호응해 교세가 급속히 팽창했다.1920년대 중반은 보천교의 전성기로 간부 수가 55만명을 헤아렸고 신도는 6백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곧이듣기는 어렵지만 1920년 당시 조선총독부가 조사한 기독교 신자 총수 32만 3574명과 비교해 볼 때 보천교의 교세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보천교는 기독교의 20배쯤 되는 신도 수를 자랑했던 것이다. 그들은 ‘정감록’을 인용해 대한독립이 임박했다고 주장했으므로 일제는 보천교의 일거수일투족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교세가 워낙 큰 데다 교주 차경석의 카리스마가 절대적이어서 감히 교단 해체를 명령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비유하면 당시 보천교는 구한말 동학이 누렸던 민중종교의 위상을 가졌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식민지 당국이 보천교의 활동을 방치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일설에 따르면 일경에 체포돼 곤욕을 치른 보천교 신도가 3만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는 보천교를 반국가적 ‘음모단체’로 규정해 놓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보천교의 ‘음모’는 대한독립을 목적으로 삼은 것이었고 그 핵심이 ‘정감록’의 계룡산 도읍설이었다.‘정감록’에 “계룡산의 돌이 하얗게 되고, 초포에 배가 다닐 때 세상일을 알 수 있다(鷄龍白石 草浦行舟 世事可知).”는 구절이 항상 문제였다.‘세상일을 알’ 거란 문구를 보천교측은 교주 차경석의 등극으로 풀이했다. 그런데 마침 1924년은 육십갑자가 새로 시작되는 갑자년이라 보천교 신도들은 그 해를 신국가 출범 시기로 보았다. 이른바 지상낙원인 후천세계(後天世界)가 시작될 갑자 원년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종교적 카리스마가 막강했던 차경석은 일반인들 사이에도 인기가 높아서 사람들은 동양을 지배할 권력자라는 의미로 그를 차천자(車天子)라고 불렀다 한다. 물론 비웃음을 담아 그렇게 부른 경우도 적지 않았을 테지만. 1929년 낙성된 보천교의 본부 건물 십일전(十一殿)은 보천교의 교세를 반영한다. 전북 정읍에 건립된 이 건물은 지붕을 덮은 기와가 황금빛을 뿜었으며, 경복궁 근정전보다 무려 2배나 컸다.1924년 등극설이 무위로 끝났기 때문에 보천교측에선 바로 그 십일전에서 기사년(己巳年·1929년) 기사월(己巳月) 기사일(己巳日)에 교주 차경석이 천자로 즉위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기(己)와 사(巳)는 글자의 생김이 서로 비슷한데, 두 글자는 10간과 12지의 중간으로 최상의 양기를 상징한다. 특히 뱀을 뜻하는 巳는 용(辰)과 더불어 성인(聖人) 즉 임금을 가리킨다. 따라서 “기사년 기사월 기사일”이라면 보통 임금이 아니라 전 세계를 뒤흔들 만큼 지도력이 강한 왕이 등장할 시점으로 해석된다. 이 소문으로 수백만 보천교도들은 대한독립의 임박을 믿었고, 그러자 식민지 당국자들은 행여 큰 소요라도 일어날까 봐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차경석은 왕이 되지 못한 채 1936년 병으로 죽었다. 조선총독부는 그 소식을 환영했고 보천교 분쇄공작에 나섰다. 졸지에 지도자를 잃은 보천교는 사분오열돼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차경석이 죽은 뒤에도 보천교 신도의 상당 수는 여전히 ‘정감록’의 계룡산 도읍설에 건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신왕조의 수도로 예언된 계룡산에는 후천개벽의 기운이 넘친다. 머지않아 계룡산 신도안에 도읍할 정진인은 차경석의 손자 정동영이 틀림없다.” 일부 신도들은 이런 말을 퍼뜨리며, 차경석의 어머니가 이웃의 정모라는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해 차경석을 낳았기 때문에, 그의 실제 성은 정씨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폈다. 1930년대 후반 총독부 관변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준이 쓴 조사보고서를 읽어 보면, 당시 차경석의 손자는 행방불명이 되고 없었다. 그 점에 대해 신도들의 설명은 달랐다.“차천자의 손자 정동영은 깊은 산속에 숨어 밤낮으로 심신을 수련하고 있다. 이제 정동영이 다시 나타난다. 새 세상에선 정동영을 받드는 사람들이 신양반이 돼 요직을 차지한다.” 성폭행설까지 조작해 자기네 교주의 성까지 바꾼 것은 억지스럽고, 교주가 ‘천자’에 즉위한다고 했던 점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천교의 주장엔 긍정적으로 평가될 부분이 있다. 그들은 정감록 신앙을 대한독립, 지상천국인 후천세계의 관념과 결부시킴으로써 일제에 저항할 원동력을 제공했고, 단순히 항간에 떠도는 예언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탈바꿈시켰다. 비록 엉성하긴 했지만 큰 변화였다. 한편 원불교에선 계룡산을 무엇으로 이해했는가 하는 문제는 따로 살펴보겠다.(푸른역사연구소장)
  • [KT&G 프로배구] 삼성 ‘힘겨운’ 원년 첫승

    대전 삼성블루팡스가 22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벌어진 프로배구 시즌 2차전에서 한국전력에 첫 세트를 빼앗기는 수모 끝에 3-1 진땀 역전승을 거두고 원년 첫 승을 신고했다. 천안 현대스카이워커스는 상무를 3-1로 제압하고 2연승을 달렸다. 삼성은 출발부터 좋지 않았다. 한전이 군에서 제대한 라이트 정평호의 오른쪽 강타로 초반 기선을 잡은 반면 삼성은 신선호의 속공이 먹힌 세번째 득점만에야 첫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이후 11점에 묶인 채 무려 연속 6실점을 허용한 삼성은 김상기의 ‘여우 토스’와 호흡을 척척 맞춘 이상현의 속공과 심연섭 정평호의 좌우 속사포에 밀려 속절없이 1세트를 내줬다. 그러나 삼성에는 ‘해결사’ 이형두가 버티고 있었다. 1세트 어깨를 조율하던 이형두는 2세트 초반부터 폭발적인 강타로 코트 왼쪽을 책임지더니 김세진의 백어택이 한전의 단신 세터 김상기에 막히는 아찔함 속에서도 알토란 같은 6점을 솎아내 팀 최고 득점(21점)을 예고했다. 삼성은 이형두의 강력한 오픈공격으로 한전의 발을 묶고, 장병철이 백어택으로 가세해 3세트에서 균형을 깬 뒤 4세트 장병철의 연속 서브포인트에 이은 박재한의 속공과 이형두의 블로킹으로 한전의 추격 의지를 꺾고 힘겨운 승부를 마무리했다. 팀 해체설 끝에 초청팀으로 참가한 ‘스파크 사단’ 한전은 투혼을 불사르며 ‘대어사냥’에 나섰지만 고비 때마다 저지른 범실(26개)에 땅을 쳤다. 현대는 ‘불사조’ 상무와의 경기에서 초반 방심으로 한 세트를 내줬지만 2세트 중반부터 장영기 후인정 좌우쌍포의 위력이 살아난 데 이어 3,4세트에서는 ‘겁없는 2년차’ 박철우의 오른쪽 불꽃 스파이크로 내리 3세트를 따내며 기분좋은 2승째를 올렸다. 대전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亞문화심포지엄’ 광주서 개막

    ‘아시아적 가치’ ‘동아시아 연대’ 등 동양권의 부상이 21세기의 화두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화시대, 아시아를 다시 생각한다’란 주제의 ‘아시아문화심포지엄’이 23일 광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개막했다. 대통령 직속의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가 기획하고 5·18기념재단이 주관하는 이번 심포지엄에선 종속이론의 주창자인 안드레이 군더 프랑크,‘치밀한 사유’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사카이 나오키 등 국내외 학자 59명이 참여해 3일 동안 심도있는 발표와 토론을 벌인다. 안드레이 군더 프랑크는 23일 기조연설에서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며, 아시아와 유럽은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몰락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키신저가 신봉하는 세계화는 전 세계 및 국내 수입 분배에 있어서의 불평등을 낳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으로의 엄청난 수출과 그로 인해 얻는 이익이 중국 등 아시아 각국의 권력층과 부유층으로 옮겨짐으로써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기봉(경기대) 교수는 “냉전시대에는 이데올로기적 분단상태에 있었던 동아시아가 하나의 정체성을 공유하기란 불가능했다.”며 “그러나 냉전 해체와 함께 동아시아가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중국이 소련을 대신해 미국에 대항하는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동아시아가 정체성을 획득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문화적 네트워크와 관련, 그는 “아시아 각국에서의 한류 현상은 과거의 중국-한국-일본(근대 이전), 일본-한국-중국(근대 이후)이란 문화적 위계를 벗어나는 대표적 사례”라며 “중국·일본인들이 한류에 열광하는 이유는 한국문화의 우수성 때문이라기보다는 한류를 통해 동아시아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의 코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에따라 한류를 하나의 문화상품이 아닌, 근대를 통해 상실된 문화적 동질감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것을 제시했다. 반면 사카이 나오키(코넬대) 교수는 “세계화에 저항하기 위해 민족적 연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세계화는 이미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있었다.”고 상반된 주장을 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미치는 미국 문화의 영향력을 결코 부정할 수는 없지만 세계화를 무조건 미국화로 보는 것은 지나친 단순논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화는 오히려 계속적으로 새로운 차이점을 만들어내고, 문화력 또한 분권 및 분산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쌍계사 대웅전 내년까지 보수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대웅전(보물 제500호)의 주요 구조물이 심하게 변형돼 해체보수가 불가피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재청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점검 결과 오랜 세월로 인해 대웅전의 기둥(사진 위)이 늘어지고 내려앉아 건물이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대들보(사진 아래)에 큰 틈이 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도가 심해 이른 시일 내에 해체보수가 필요하다는 연구소의 결론을 받아들여 올해부터 내년 12월까지 보수에 들어간다.”고 21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를 위해 문화재위원과 고건축전문가들로 ‘하동쌍계사보수 기술지도단’을 구성해 기술자문을 수시로 받기로 했다. 쌍계사는 신라 문성왕 2년(870) 진감국사 혜소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조선 인조 10년(1695)에 중건되고, 숙종 21년(1695)과 조선 영조 11년(1735)에 중수한 뒤 오늘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건축은 삶의 일부… 서울 매우 역동적”

    세계적인 해체주의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18일 서울에서 강연회를 가졌다. 자신이 설계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신사옥 ‘아이파크타워’ 준공을 기념해 내한한 자리였다. 리베스킨트는 “건축은 기술이나 이론이 아니라 삶의 일부”라며 자신의 건축 세계와 한국에서의 첫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박물관 등과 같은 문화적 건물을 주로 설계했던 그는 “문화적 건축물이든 상업적 건축물이든 모두 일상 생활의 일부이며 시민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됐다.”며 “내가 관심있는 것은 건축과 삶과의 관계다. 건축은 사람에게 공간적·시간적 측면에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삶의 가능성, 지식의 원천이 된다.”면서 자신의 건축 철학을 밝혔다. 이어 “사람들은 보통 건축 비용, 건축주, 자재 등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얘기해 주는 게 제대로 된 건축”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서울은 굉장히 흥분된, 역동적인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고 아이파크타워 역시 서울의 긴장, 조화, 역동성 등을 반영하고 있다.”고 작품을 설명했다. 이어 “아이파크타워의 직선은 기술을, 원은 변화하는 자연을 의미한다.”면서 “행인과 건물, 도시와 공간이 의미있는 대화를 하는 것을 대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리베스킨트는 미국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들어서는 프리덤타워를 설계했으며,30∼40여개 나라에서 굵직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아이파크타워 이후 한국에서 받은 제의는 없지만 요청이 있다면 기꺼이 응하겠다고 말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현대삼호중공업 코끼리씨름단 이연재 단주

    [스포츠 라운지] 현대삼호중공업 코끼리씨름단 이연재 단주

    LG씨름단 해체 등으로 최대의 시련을 맞고 있는 민속씨름에 또 한 명의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그는 지난 9일 설날장사대회가 열린 서울 장충체육관을 찾아 장사들의 격돌을 손에 땀을 쥐며 지켜봤다. 평생을 ‘중공업 맨’으로 살아온 그에게 ‘씨름단 단주’라는 직함이 새로 생긴 것은 올해 초.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코끼리씨름단을 넘겨 받아 새출발 시킨 현대삼호중공업의 이연재(63)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 사장은 “씨름처럼 생동감 있는 스포츠도 없다.”면서 “한민족 고유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 한몫하겠다.”고 다짐한다. ●전라도 지역스포츠 활성화 위해 씨름단 이전 중학교 때 태권도를 잠시 배우기도 했지만 운동과는 인연이 멀었던 편이다. 요즘 들어서는 등산 등으로 건강을 다지는 정도. 그러나 많은 스포츠 종목 가운데 민속씨름대회를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지켜봤을 정도로 숨은 열성 팬이다. 코끼리씨름단이 울산을 떠나 전라도 영암에 위치한 현대삼호중공업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잠시 마음고생을 했다. 그동안 민속씨름 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던 현대가 LG씨름단 해체에 영향을 받아 모래판에서 떠나려는 신호가 아니냐는 오해를 부른 것. 이 사장은 “전라도 지역 스포츠 활성화와 기업 홍보를 위해 모기업인 현대중공업에 강력히 요청했던 일”이라면서 “씨름 중흥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면 붙였지, 이를 외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지난해 10억달러 매출을 달성, 세계 조선 부문 5위에 오를 정도의 건실한 기업. 하지만 국내 인지도는 떨어져 이를 끌어올리기 위해 씨름을 선택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명가 재건을 위해 연습장 헬스장 물리치료실 등을 완비한 240평 규모의 국내 최고 ‘씨름센터’를 갖춘 것은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프로씨름단 4~5개는 돼야 인기회복” 설날대회 마지막날 현대 소속 선수로서는 박영배가 16개월 만에 백두장사에 오르는 기쁨도 맛봤다. 선수들이 바깥 나들이를 할 때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환대하는 등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 뜨거워지고 있는 시점에서 더욱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암군에만 초·중·고·대학 등 아마추어 씨름단이 25개나 있지만 씨름의 인기가 높은 경상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기는 미지근하다. 현대삼호중공업 선수들의 활약은 전라도 지역 씨름 발전에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하다. 반면 프로씨름단이 2개밖에 남지 않은 민속씨름 상황은 더 없이 안타깝다. 적어도 4∼5개 팀은 유지돼야 옛 인기를 되찾을 것이라는 게 이 사장의 생각이다. ●“민속씨름 세계적 브랜드로 키워야” 그는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신생팀 창단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면서 “뜻있는 기업이 나서야겠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장기적으로는 일본의 스모처럼 씨름이 한국을 대표하는 고유 브랜드로 세계 속에 자리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연재 사장은 “씨름은 반드시 지켜야 할 전통인 만큼 이해타산을 떠나 모든 씨름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장기적인 발전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현대삼호중공업 코끼리씨름단은… ▲1983년 4월 현대중공업 실업팀으로 민속씨름 참가 ▲1985년 12월10일 현대중공업을 모기업으로 프로팀 창단 ▲2005년 1월1일 모기업을 현대삼호중공업으로 바꾸며 재창단 ▲역대 씨름단 최다 193회 우승(천하장사 10회, 백두장사 50회, 한라 장사 37회, 금강장사 23회 등) ▲현대씨름단 소속 역대 천하장사-이만기(5회) 김칠규(1회) 신봉 민 이태현(이상 2회) ▲역대 감독-권석조(83∼84년) 황경수(85∼95년) 박진태(96∼2001 년) 김칠규(2002년∼현재) ▲현 소속 선수 신봉민 이태현 하상록 박영배 권오식 이경환(이상 백두급)김용대 김종진 천홍준 문찬식 장윤호 채희관(이상 한라 급)장정일 김유황 김형규 허상훈 하성우(이상 금강급)
  • 한·일수교 40주년 ‘민족주의 정체성’ 심포지엄

    2005년은 여러 의미가 겹치는 해다. 한·일수교 40주년 광복 60주년 한일병합 100주년 등. 그러다 보니 올해에는 한국과 일본은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지어 왔는지를 밝히는 작업이 활발하다. 16일 한림대 한림과학원 한국학연구소 주최로 열린 ‘21세기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 심포지엄은 한국의 정체성을 다루는 한국학이 어떤 내용이어야 하는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기조발표에 나선 한림대 한영우 특임교수는 탈민족주의자들의 국사해체론을 반박했다. 그는 국사해체론의 뿌리를 일본 식민주의 역사가에서 찾은 뒤 “배타적·국수적 민족주의는 비판돼야 하지만 민족적 특수성을 거부하거나 민족의 실체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그 자체가 역사의 새로운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앞으로 한국학 연구의 초점은 “왕조의 장기지속성이 보여주는 사회통합력과 신뢰구조에 대한 이해”여야 하고 그 핵심에는 “선비정신이 있다.”고 정리했다. 그러나 한 특임교수의 주장이 마냥 환영받은 것만은 아니었다. 한국에만 집착해 스스로 국학으로 내려앉은 한국학의 시야를 동아시아로까지 틔워줘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한림대 사회학과 전상인 교수는 한국의 근대화를 설명하는 기존 주장을 재검토하면서 “학문을 하는데 일종의 ‘운동’ 정서를 버려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서구의 근대화 과정이 절대선도 아닌데 서구 근대화의 틀에 맞게 한국사를 끼워 맞추려는 조급증을 지적한 것이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에 몸담고 있는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는 더 신랄하게 기존 한국학을 비판했다. 그는 기존 한국사 연구가 무비판적으로 서양의 역사발전론인 ‘고대-중세-근대’ 구분을 인용하고 있다면서 ▲비교사의 관점 ▲동아시아사의 관점 ▲중국사에 대한 이해 등을 통한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전 교수와 미야지마 교수의 이런 비판을 거꾸로 일본에 투영한 심포지엄도 열렸다. 앞서 15일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와 BK21일본연구팀이 함께 주최한 ‘일본의 발명과 근대’ 심포지엄이다. 초점은 ‘일왕제의 위력’에 맞춰졌다. 근대 초입 대다수 사람들이 일왕이 누군지도 모르던 일본은 20세기 초반 절대적 일왕제가 성립했다. 일왕제 폐지를 내걸었던, 그래서 가장 이단적이었던 일본 공산당원 대부분이 전향했다는 사실에서 이는 잘 드러난다. 공산당 최고 이론가 사노 마사부는 전향 뒤 아예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일국사회주의 건설을 내세울 정도였다. 성균관대 정혜선 교수는 만주사변에 비판보다 열광을 보내는 일본 민중과의 괴리감 때문이었다고 해석했다. 이런 힘은 ‘일왕=일본역사=국가의 중심’이라는 도식에서 나온다. 이것은 아직도 연례행사 같은 ‘야스쿠니신사 참배’에서 잘 드러난다. 단순한 제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한양대 박규태 교수의 결론이다. 박 교수는 일본 근대화 초기 “신사는 종교가 아니”라던 ‘신사 비종교론’으로 근대국가의 정교분리 원칙을 피해나간 뒤 신사와 일왕제가 결합하면서 사실상 국가종교화됐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일본의 정체성을 둘러싼 이런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왜 민족주의적 정체성은 여전히 강한가. 경희대 허우성 교수는 아사바 미치아키의 ‘신체성’ 개념에서 그 답을 찾았다. 너무도 이기적이지만 자연스럽게 체화된 감정, 그것이 민족주의 정체성이다. 허 교수가 비판적 연구자들에게 “매국노로 비난받을 각오”를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18∼19일 한국일본학회 주최로 고려대에서 열리는 ‘한·일수교 40주년 기념세미나’는 일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목표로 삼았다. 기획특집으로 ‘일본역사교과서와 역사인식 문제’도 다룰 예정이어서 기억에 대한 논의까지 함께 벌어질 예정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2005설날장사씨름대회] 다윗 박영배 “으랏차차”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불가능하다고 느껴졌던 승부는 그러나 다윗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11일 2005설날장사씨름대회 마지막날 백두장사 결정전(3판 다선승제)이 열린 서울 장충체육관.‘무서운 아이’ 박영배(23·현대삼호중공업)와 ‘원조 골리앗’ 김영현(29·신창건설)이 맞붙었다. 유연한 허리를 바탕으로 대학시절 뿐 아니라 프로에서도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25)을 거푸 꺾어 ‘골리앗 킬러’라는 별명을 얻은 박영배였지만 김영현과의 역대 전적에서는 1승8패로 절대 열세였다. 키도 184㎝로 백두급 최단신. 김영현의 217㎝와는 무려 33㎝ 차이. 하지만 박영배는 첫 째판 시작과 동시에 과감하게 들배지기를 시도,3초 만에 김영현을 모래판에 뉘었다. 관중들의 함성이 체육관을 흔들었다. 이어 둘 째판. 첫판을 내준 골리앗 김영현은 작심한 듯 압도적인 신장으로 박영배를 내리눌렀다. 하지만 다윗의 허리는 꺾이지 않았고 단단히 균형을 잡았다. 끈질기게 버텨낸 결과는 무승부. 결국 1-0(1무)의 극적인 승리를 움켜쥐었다. 올해 프로데뷔 3년 차가 된 박영배는 이로써 생애 처음으로 민속씨름 꽃가마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박영배는 “프로 데뷔하기 직전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면서 “올해 더욱 열심히 훈련을 해 연말 천하장사에 도전장을 내는 것은 물론, 현대씨름단의 명가 재건에 앞장 서겠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백승일 8강서 계체패 백승일(29)과 최병두(21·현대삼호중공업)가 마주친 설날 백두장사 8강전. 지난해 말 LG씨름단의 해체로 무소속으로 출전한 백승일은 같은 처지의 염원준(29)이 16강전에서 실업팀 장성복(25·동작구청)에게 불의의 배지기를 당하며 탈락하는 바람에 고독한 싸움을 치러야 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함께 훈련한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다짐으로 안간힘을 다했지만 2분짜리 단판 경기는 결국 무승부.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에게 승리가 돌아갈 터. 먼저 최병두가 체중계에 올라갔다.144.8㎏을 가리켰다. 백승일은 145.5㎏. 불과 700g 차. 백승일의 계체패였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한국씨름연맹 측에 재계체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차경만 전 LG감독은 쓸쓸히 머리를 떨구고 돌아서는 왕년 천하장사의 등을 두드리며 달래야 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중국의 미래를 읽는다/서울신문 특별취재팀 지음

    19세기 영국,20세기 미국에 이어 21세기는 중국의 시대가 되리라는 예상은 넘쳐난다.‘팍스 시니카(Pax Sinica)’가 유행하는 배경에는 엄청난 경제성장이 있다. 인구 13억의 시장에다 10%대를 넘나드는 성장률을 기록하는 단위 경제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국가이념인 사회주의와 무관하게 ‘유물론적’인 중국인의 특성은 성장세에 무서운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이 때문에 패권국을 자처하는 미국마저 중국을 제어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냉전 해체 뒤 중국이 소련을 대신할만도 한데 미국은 아랍권만 때리고 있다. 싼 노동력과 드넓은 시장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제대로 된 시장경제주의적 사고가 먹혀 들어간 덕분이다. 개성공단의 맥박이 뛰기 시작한 지금까지도 국가보안법이 우리나라를 수호할 것이라는 우리네 자칭 시장경제주의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고 큰 흐름은 막을 수 없다. 팍스 시니카니 패권국가니 하는 어려운 소리를 집어치우고서라도 우리네 눈치 빠른 무역상들은 이미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중국으로 자녀들을 보낸 지 오래다. 영업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무역업자들은 이미 중국의 부상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이런 와중에 염주영 수석부국장을 중심으로 10명으로 구성된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중국을 샅샅이 훑은 ‘중국의 미래를 읽는다.’(서울신문 특별취재팀 지음, 일빛 펴냄)가 출간됐다. 자칫 고만고만한 중국관련 서적류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아주대 정종욱 석좌교수 등 중국통 한국 학자들이 참가했고 중국 국가 이데올로기 생산기지인 사회과학원도 함께 작업했다. 리빈(李濱) 주한 중국대사의 추천사처럼 “중국에서 손꼽히는 연구기관이 한국언론사와의 공동기획에 참가한 것은 한국언론사상 초유의 일”이기도 하다. 3부로 구성된 책의 1부 ‘신중국의 해부’에서 지금 중국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 데 이어 2부 ‘팍스 시니카의 시대 오는가.’,3부 ‘윈윈 전략을 찾아라.’에서는 미래의 중국, 그리고 한·중관계를 다루고 있다. 중간 중간 들어있는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이나 관·학계 인사들의 인터뷰와 기고문을 통해 중국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물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고 사회과학원은 그런 중국의 대표적 싱크 탱크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관변적인 냄새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지난해 우리 사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동북공정도 사회과학원 주도로 이뤄진 작업이란 점만 비춰봐도 그렇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운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정책만 나왔다하면 좌우파 논쟁으로 치닫는 우리와 달리 국가발전이라는 이슈에 대해 관변적이든 어쨌든 역량을 한 데 모으려는 모습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심각한 부패와 빈부격차, 민주화 압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두려운 존재다.1만 3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하프타임] 모제욱 설날 한라장사 등극

    ‘변칙 씨름의 달인’ 모제욱(30)이 10일 열린 2005설날장사대회 한라장사 결정전에서 정상에 오르며 팀 해체의 설움을 날려버렸다. 준결승에서 재경기를 두번이나 벌이는 등 30분간의 혈투 끝에 ‘탱크’ 김용대(29·현대삼호중공업)에 계체승을 거두고 결승에 오른 모제욱은 이준우(25·신창건설)를 맞아 감각적인 밀어치기로 1-0(1무) 승리를 거뒀다. 모제욱은 전 소속팀(LG투자증권)의 해체로 이번 대회에는 고향 경남 진주를 팀명으로 내걸고 출전했다. 전날 열린 금강장사결정전에서는 김경덕(27·신창)이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 “중동 평화정착 적극 지원할것”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정부는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간의 회담이 중동 평화정착 과정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크게 반겼다. 그러나 과거에도 회담에 이어 테러와 보복공격이 반복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향후의 진행상황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애덤 어럴리 국무부 대변인은 8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역사적 정상회담의 당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이들의 대담한 지도력에 최고로 고무됐다.”면서 “중동의 평화로 가는 길에서 테러의 기반을 해체하기 위한 중요한 일보”라고 평가했다. 어럴리 대변인은 또 “미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이 계기를 계속 살려 두 개의 국가와 평화를 달성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어럴리 대변인은 그러나 휴전 합의의 지속 여부에 관한 질문에 “휴전은 휴전일 뿐이며, 깨질 수 있음을 알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극복해야 할 장애가 많이 있고 어려운 결정이 필요한 일도 많다.”고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중동의 민주화’를 2기 행정부 대외정책의 기축으로 삼고 있는 조지 부시 대통령도 아바스 수반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만나겠다며 적극적인 평화협상 지원 방침을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사망한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수반은 ‘테러리스트’로 간주, 회동을 거부했었다. 이와 함께 부시 행정부는 윌리엄 워드 중장을 평화 협상을 중재할 ‘안보조정관’으로 현지에 파견할 계획이며, 국정연설에서 밝힌 대로 3억 5000만달러의 팔레스타인 지원도 예정대로 진행할 방침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양측에 일괄 타결안을 제안하는 등 평화 협상의 조기 타결을 위해 발벗고 나설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중동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에드워드 워커 전 이집트 및 이스라엘 대사는 AP통신과의 회견에서 “미국의 역할은 양측이 서로 이야기를 하도록 돕는 것이지 협상의 중앙에 끼어드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과거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워런 크리스토퍼 전 국무장관 등이 줄기차게 협상을 중재했으나 결국은 무위로 그쳤던 사실을 부시 대통령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dawn@seoul.co.kr
  • [부고]

    ●오윤관(스포츠서울 편집부장)씨 조모상 5일 전남 영광종합병원, 발인 7일 오전 10시30분 (061)351-1621 ●김종국(전 한국은행 인사부장)종철(전 주택은행 지점장)종원(전 금호석유화학 부사장)씨 모친상 변용성(을지대학병원 치과과장)윤주일(재미 사업)씨 빙모상 6일 한양대병원, 발인 8일 오전 10시 (02)2290-9459 ●신현목(성균관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현양(삼성물산 건설부문 토목부장)현수(봉은중 교사)현임(대한약사회 약사)씨 모친상 이오봉(월간조선 사진부장)씨 빙모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010-2291 ●유덕윤(전 덕성화학 전무이사)씨 별세 진용(LG텔레콤 직원)씨 부친상 6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30분 (02)590-2660 ●정만기(약사)찬기(한전 KDN 차장)광용(연합뉴스 월간부 부장대우)씨 부친상 5일 부천 가톨릭성가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 (032)340-7307 ●강민구(문화일보 편집부 차장)씨 부친상 5일 서울대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2072-2032 ●하윤상(삼성SDS 대리)씨 부친상 종필(포스코 광양제철소 부관리직)종수(LG LNS 부장)씨 형님상 종숙(성신여대 과장)씨 오라버니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010-2264 ●권순호(세명자동차 대표)순일(한나라당 사무총장 보좌역)순우(대한제당연구소 선임연구원)씨 부친상 5일 경북 영천 중앙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54)338-4401 ●최현종(삼진FAN 대표)현생(현대모비스 차장)현태(대한전문건설협회 비계구조물해체공사업협의회 사무국장)씨 모친상 오평세(천안여고 교사)이공우(현대금속 대표)신민범(삼진상사 〃)씨 빙모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6시30분 (02)3010-2239 ●전상선(선오건설 상무)씨 모친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010-2254 ●엄순성(한국지구교역처 구매관)창기(영지기업 대표)씨 부친상 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7일 오전 9시30분 (02)3410-6915 ●강정일(대신강업 대표)씨 별세 강우성(대신강업 대리)영길(주식회사 씨아이 실장)씨 부친상 고현택(대신강업 부장)김상우(삼일회계법인 S.A)씨 빙부상 강영택(씨아이 대표)씨 형님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30분 (02)3010-2294 ●이구연(주식회사 새길로 대표)광연(한국청소년장애인총연합회 총재)무용(오연자원개발 대표)인연(울터두부마을 〃)씨 모친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010-2292 ●신덕균(캐나다 거주)창균(호주 〃·의사)철균(로열컨설팅 대표)씨 모친상 김부남(광진제약 대표)이기학(전 로커스디에스 고문)씨 빙모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10시 (02)3010-2236 ●한기웅(미국 거주·화공학박사)기호(주식회사 엘씨엠 대표)경숙(한경숙안과 원장)씨 모친상 이계용(산부인과 원장)씨 빙모상 5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30분 (02)590-2352 ●박귀하·일하(사업)형근(삼보컴퓨터 과장)창수(사업)씨 부친상 김영기(사업)정한주(고양 사랑의교회 목사)정윤용(현대자동차 과장)김용복(한솔화학 〃)씨 빙부상 6일 안산장례식장, 발인 12일 오전 9시30분 (031)438-4541 ●손희남(KTF 차세대연구소장)씨 부친상 5일 천안 순천향병원, 발인 7일 오전 9시 (041)578-1499 ●박동윤(충남도의회 의장)씨 상배 6일 충남 태안보건의료원, 발인 8일 오전 9시 (041)675-3523 ●박찬기(명지대 정외과 교수)씨 모친상 이은우(대거전자 전무)씨 빙모상 6일 대구 보광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53)527-1027 ●이상화(코콜스포츠 대표)미선(추계초등학교 교사)씨 부친상 6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9시30분 (02)3010-2265 ●임종수(저작권협회 평의원)씨 상배 지선(작곡가)지상(학생)씨 모친상 6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9시 (02)3410-6912 ●이종은(육군 대령)종묵(서울대 국문과 교수)종헌(UPI 지국장)씨 모친상 장문재 이상태씨 빙모상 6일 대구 파티마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53)959-4441
  • [하프타임] 민속씨름 이사들 이사회 보이콧

    LG 씨름단 해체 등의 사태를 겪은 한국씨름연맹이 김재기 총재에 대한 일부 이사들의 불신으로 또 한번 홍역을 치를 전망이다. 연맹은 3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임원 선임, 설날대회 예선 집행 등을 심의할 예정이었지만 김 총재의 직무대행 중지를 요구하는 정인길 신창건설씨름단 단장 등 이사 3명이 불참, 회의 자체가 무산됐다.
  • 헌재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

    헌재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영일 재판관)는 3일 호주제를 규정한 민법 778조와 781조 1항의 일부분,862조 일부 조항에 대해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의 다수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그동안 제기됐던 호주제 위헌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호주제를 폐지하는 민법개정안의 처리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가족제도가 헌법 제36조 제1항이 요구하는 개인의 존엄성과 양성평등에 반한다면 헌법 9조를 근거로 그 헌법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면서 “호주제는 호주 지위를 승계할 때 남성우월적인 서열을 매기고 혼인할 때 처가 일방적으로 편입돼 부부간의 수동적·종속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등 정당한 이유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다.”라고 위헌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 “경로효친, 가족화합 등의 전통과 미풍양속은 문화와 윤리의 측면에서 충분히 계승, 발전시킬 수 있다.”면서 “호주제는 사회의 분화에 따라 다변화된 오늘날 가족제도와 조화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합헌이라고 소수 의견을 낸 김영일, 권성 재판관은 “호주제는 우리 고유의 합리적인 관습으로 평등의 잣대로 전통을 재단해 전통 가족문화를 송두리째 해체해서는 안 된다.”면서 “호주제가 실질적 차별이 아닌 전통과 현실에 기초했고 호주제의 폐해를 완화하기 위해 임의분가, 호주승계권 포기 등의 제도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김효종 재판관은 “호주를 두고 있는 민법 제778조는 가족제도를 보장하기 위한 입법으로 헌법에 위배되지 않으나, 자녀나 처가 일방적으로 편입되는 제도는 위헌”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헌법 불합치는 법률조항이 위헌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법률이 개정될 때까지는 일정기간 효력을 인정하는 결정이다. 이번 결정에서도 호주제의 위헌성을 확인했지만 즉시 효력을 상실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호적 사무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 호적법이 개정될 때까지 호주제의 효력은 인정된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헌법재판소 호주제 위헌판결문 바로가기 ■ 호주제 폐지되면 헌법재판소가 호주제를 규정한 민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에 따라 호주제 폐지가 기정사실화됐다. 국회에 계류돼 있는 민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되는 것을 전제로 예상되는 주요 변화상을 짚어봤다. ●가족의 범위가 넓어진다 현행 민법은 가족 구성원을 ‘호주와 가족’으로 나눈다. 호주를 기준으로 배우자, 자녀, 자녀의 배우자를 가족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앞으로는 배우자와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는 물론 한 집에 살며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 며느리, 사위, 장인, 장모, 시아버지, 시어머니, 처남, 처제까지 모두 법적인 가족의 범위에 들어간다. ●어머니 성(姓)과 본(本)을 따를 수 있다 개정안은 혼인신고 때 부부가 협의해 자녀가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도록 했다. 경우에 따라 자녀가 어머니 성을 이어받을 수 있다. 하지만 부부간에 합의되지 않으면 자녀들은 아버지의 성을 따른다. 재혼한 여성이 데려온 아이에게 새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할 수도 있다. 또 앞으로 아내의 동의 없이는 남편이 다른 곳에서 낳은 아이를 가족구성원으로 올릴 수 없다. 아이 어머니의 동의도 필요하다. 현재는 친아버지로 확인만 되면 호적에 입적된다. ●양아버지 성(姓)으로 변경한다 성이 다른 아이를 부부합의로 입양했을 때 입양한 아이의 성과 본을 양아버지의 성과 본으로 바꾸고 친생자로 기재하는 친양자 제도가 도입된다. 친생자로 등록되면 양자라는 기록은 완전히 사라진다. 적용 대상은 결혼한 지 5년 이상된 부부가 7세 미만의 아이를 입양했을 때다. 국회는 혼인기간을 3년 이상으로 단축하고, 아이를 15세 미만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사설] 이젠 호주제폐지 입법 서둘러라

    호주제가 드디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어제 호주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시대흐름에 부합하는 판단으로서 환영한다. 호주제를 폐지하는 민법개정안의 처리를 미뤄왔던 정치권은 반성하기 바란다. 여야는 이미 합의한 2월 임시국회 호주제 폐지 처리는 물론 호적제를 대체할 새로운 신분등록제 입법도 서둘러야 한다. 세계적으로 예를 찾기 힘든 호주제는 진작 폐지됐어야 했다.1898년 일본 메이지민법을 따라 만든 제도로 2차대전 후 일본조차 양성평등에 어긋난다며 없앴다.1999년에는 유엔 인권위가 호주제폐지 권고를 했을 정도였으니 더이상 이를 고집하다가는 국제망신을 자초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부가 2003년 뒤늦게나마 호주제폐지 민법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으나 정치권이 이제까지 입법을 미뤄온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헌재 결정으로 더이상의 논란은 무의미해졌다. 관련 입법을 빨리 끝냄으로써 제도변화에 따른 혼란을 막아야 한다. 헌재는 혼선을 감안해 호적법개정 전까지 호주제 효력을 한시적으로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현재 호적 관련 규정을 두고 있는 법령은 261개에 이른다. 호주제폐지의 정신을 살려 미래지향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정부의 민법개정안은 법통과 후 2년 뒤 호주제폐지라는 경과규정을 두고 있는데 시행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법무부가 호적제 대안으로 제출한 ‘본인 기준 가족기록부안’도 개인정보 기재항목이 너무 많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1인1적부의 본 뜻에 맞게 수정되어야 한다. 호주제폐지는 민주적 가족문화의 정착을 넘어 모든 분야에서 평등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전기가 되어야 한다. 남녀차별 철폐뿐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 보호에도 눈길을 돌려야 한다. 급속한 가족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으나 선입견에서 비롯된 걱정이다. 여러 형태의 가족관계가 법내로 편입되면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캠페인에 정부와 정치권이 앞장서 보라.
  • 설날씨름 속전속결 승부

    LG씨름단 해체로 혹독한 겨울을 보냈던 민속씨름이 다시 기지개를 켠다. 오는 9일부터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2005년 첫 대회인 설날장사씨름대회가 막을 올리는 것. 금강·한라 통합장사와 백두장사전으로 이틀 동안 펼쳐졌던 이전 대회와는 달리, 사흘 동안 금강·한라·백두 등 3체급 장사전을 따로 치르게 된다. 일종의 오픈대회로 아마추어 장사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이번 설날대회에는 현대삼호중공업·신창건설 등 2개 프로씨름단과 구 LG씨름단,14개 지자체씨름팀 등에서 선발된 각 체급당 16명(프로 8, 지자체 8)의 장사들이 출전해 황소 트로피를 다툰다. 특히 공격 씨름을 유도하고, 경기 진행을 빠르게 하기 위해 경기 방식이 달라진 점이 눈길을 끈다.16강전과 8강전을 기존 3판 다선승제에서 단판 승부로 바꿨고, 결승전도 5판 다선승제에서 3판제로 축소했다. 자칫 지루한 승부의 연속으로 씨름 보는 재미를 반감시킬 소지를 없애고 박진감을 보태기 위한 것. 또 단판 승부는 프로 선수에 비해 체력과 기술, 경기 운영 면에서 처지는 실업 선수들에게 이변을 연출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팬들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구 LG씨름단 소속 선수들이 보여줄 ‘헝그리 투혼’의 결과도 관심이다. 현재 인수 기업을 찾으며 훈련을 병행하고 있는 구 LG씨름단에서는 ‘영원한 소년 장사’ 백승일을 포함,‘왕눈이’ 염원준(이상 백두급) 남동우 모제욱(이상 한라급) 이성원 최성남(이상 금강급) 등 6명이 다시 샅바를 맨다. 일단 연맹 소속으로 대회에 출전하게됐으나 팀 명칭을 상비군으로 하지 않고 백승일은 전남 순천, 염원준은 강원 평창 등 출신 지역의 이름을 달고 모래판에 나서게 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신연숙칼럼] ‘가족’ 해체를 생각한다

    [신연숙칼럼] ‘가족’ 해체를 생각한다

    호주제 폐지에 대비한 새로운 신분등록제도안으로 정부가 ‘본인을 기준으로 한 가족기록부’ 방식을 마련했다. 그동안 대안들로는 개인별로 편제하는 1인1적제, 부부와 미성년 자녀의 가족단위로 편제하는 가족부제와 함께 혼인 등 증명 목적에 따라 편제하는 목적부제, 주민등록과의 일원화 등이 제시돼 왔다. 정부가 최종적으로 본인기준 가족부제를 채택한 것은 ‘호주제 폐지의 취지와 양성평등 원칙을 구현’하면서 ‘신분공시 방식의 급격한 변화가 가족해체를 촉발할 수 있다는 국민정서를 반영’한 것이라 한다. 사실 정부가 작년 호주제 폐지방침을 결정한 후 잠정적으로 예시했던 호적제 대안과 올해 대법원이 공개한 혼합형 1인1적 가족부 편제 방안을 놓고 가장 두드러지게 일었던 비판이 가족해체 담론이었다. 기왕에 부모와 본인·배우자, 자녀의 3대가족 관계를 나타내면서 본인 형제자매의 인적사항은 왜 기록을 안 하는가, 결혼한 여성의 등록부에 시부모가 표시되지 않으니 이게 가족해체를 촉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까지 나왔다고 한다. 결국 이런 지적이 수용돼 정부의 최종안은 배우자 부모의 인적사항, 형제 자매의 인적사항까지 기재하게 되었고 부부와 미혼자녀는 원칙적으로 동일본적을 유지하도록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족’이란 과연 무엇이고 신분등록제도를 가족부제로 하기로 했다고 해서 ‘가족’해체는 완화될 것인가란 의문이 남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제도에 관계 없이 ‘가족’해체론자들이 말하는 ‘가족’은 이미 해체되었거나 해체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가족부제가 그리고 있는 가족은 3대 직계가족과 형제자매를 포함하고 있어 전통적인 대가족제 개념과 가깝다. 전국 가족조사결과에 따르면 3세대가 사는 대가족 가구는 전체 가구수의 5.9%에 불과하다. 이런 기준의 가족은 이미 대부분 ‘해체’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금 범위를 좁혀서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되는 핵가족 개념을 적용해도 추세는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핵가족은 남편은 직장에 나가 돈을 벌고 아내는 출산과 육아, 가사를 도맡는 성별분업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이혼율 증가와 맞벌이, 민주화에 따른 성역할 변화로 핵가족 역시도 ‘해체’ 과정에 있다. 전국 가구 중 부부·자녀로 구성된 가족은 51.2%에 머문다. 절반은 되지만 대다수는 아니다. 부부의 역할 면에서 봐도 변화는 확연하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2년 49.7%를 기록했다. 취업 여성 중 기혼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64.4%에 이른다. 남편은 벌고 아내는 가족을 돌보는 전통적 핵가족의 모습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는 우리 통계를 보나 서구 사례를 봐도 멈출 것 같지 않다. 따라서 결혼기피, 이혼율증가, 저출산, 빈곤, 청소년문제, 노인문제 등 사회문제를 염려한 나머지 전통적인 가족해체만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현명한 자세가 아니다. 가족부에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을 그려놓는 것은 정신적 위안이 될지언정, 가족을 재건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전통적 모델에 특혜적 지원을 한다고 해도 대세를 바꾸긴 어려울 것이다. 필요한 것은 늘어나는 맞벌이가구, 한부모가구, 미혼가구, 노인가구 등을 포함해 다양한 가족의 존재를 인정하고 각각의 상황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해 해결책을 찾는 일이다. 여성부가 곧 여성·가족부로 다시 태어난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정의 복구, 가정과 유사분위기를 이뤄냄으로써 가정을 받쳐 달라.”는 당부를 했다. 장하진 여성부 장관은 취임직후 성균관장을 방문하여 ‘시대가 바뀌었고 가족이 변화하고 있으니 새 가족문화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합의했다고 한다. 여성부의 새 가족 정책이 관념적 가족이 아닌 현실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실질적인 내용이 되어 나오길 기대한다. 수석논설위원 yshin@seoul.co.kr
  • 야와르대통령 수니파에 화해 촉구

    가지 알 야와르 이라크 임시정부 대통령은 1일 기자회견을 갖고 수니파 정당들에 화해를 촉구하며 이라크의 미래를 위해 정치협상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수니파 무슬림인 알 야와르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선 “승자도 패자도 없다.”며 새 정부에선 시아파가 총리, 수니파가 대통령, 쿠르드족이 국회의장 자리를 각각 맡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군 철수와 관련해서는 “지금과 같은 혼돈 상태에서 연합군 철수를 요청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이 안 된다.”면서도 “올 연말 쯤에는 연합군 중 일부가 철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야드 알라위 총리는 지난달 31일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오랜 전쟁 등으로 갈기갈기 찢겨진 조국을 재건하는 데 모든 이라크인이 힘을 보탤 것”을 호소했다. 한편 이라크 선거관리위원회가 1일 바그다드에서 1차 수작업 개표 결과를 80대의 컴퓨터로 2차 집계하기 시작한 가운데 당국의 보안정책 완화로 시리아, 요르단과 접한 국경이 다시 개방됐고 국제공항이 정상화됐다. 그러나 한국의 자이툰 부대가 주둔해 있는 북부 아르빌의 번화가에서 1일 주민 신고를 받고 폭탄을 해체하려던 이라크 경호원 2명이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사망했다. 또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이끄는 알카에다 이라크지부는 한 이슬람 웹사이트를 통해 “이라크 전역에 이슬람 깃발이 펄럭일 때까지 미국과 그 앞잡이들에 대한 성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병선기자 외신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强中國의 발전모델을 넘어/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기초교육원장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는가. 우리가 겪고 있는 세계화가 역설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세계화가 사람, 자본, 문화, 상품 등의 이동을 통해 국경을 무너뜨리고 있다면, 다른 한편으로 국가는 세계화의 와중에서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에 살아남기 위해 강력한 발전정책을 추구한다. 지구시대의 국가들은 부국(富國)과 민복(民福)에 관심이 많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 멀리 미국이나 프랑스를 보라. 이들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세계화를 적극 활용한다. 무역입국이나 군사입국과 같은 신(新)중상주의적 발전정책이 그것이다. 일반적 예측과 달리, 세계화로 인해 국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바뀐 것이 있다면, 국가의 무대가 자국 영토와 주민을 넘어 전지구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탈(脫)영토-신(新)기능 국가’의 출현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국가주도적 발전정책을 여전히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종래의 부국강병의 목표에 국리민복의 가치가 추가되어 있다. 한국의 국가는 국제협상의 타결, 수출무역의 확대, 성장동력의 형성, 하부구조의 건설, 사회갈등의 조정, 복지제도의 개선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압축발전을 통해 국제계층구조안에서 주변부의 위치를 벗어난 대표적 나라다. 그러나 1995년 일인당소득 1만달러 달성이후 10년이 지났지만 마의 2만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물론 여야 정당들에서 선진국 진입을 위한 국가전략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배경이다. 이중 두 가지 국가전략이 눈에 띈다. 하나는 강소국(强小國) 발전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소강국(小康國) 발전전략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제안한 강소국 발전모델은 수출주도의 산업. 금융구조를 통해 지구경제에 적극 참여하면서 노사정합의에 의해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키는 전략이다. 유럽의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스위스처럼 인구·국토는 작지만 빼어난 국제경쟁력을 갖춘 나라들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서울대의 김광웅 교수가 제시한 소강국 발전모델은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 이상으로 ‘여유있고 반듯한 사회’를 위한 환경-인성친화적 발전을 강조하는 전략이다. 과거 등소평이 소강에 대한 이상을 피력한 바 있지만, 현재 소강국의 경험적 준거가 될 만한 나라는 중국도 아니고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근래에 들어 청와대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강중국 발전전략도 흥미롭다. 한국은 국토는 작지만 인구가 많다는 점에서 유럽의 작은 나라 핀란드보다 오히려 큰 나라라 할 독일의 발전경험이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논지다. 세계시장에서 휴대전화와 같은 소수정예로 맞서기보다 전기, 전자, 자동차를 포함하는 다품종으로 승부를 걸자는 것이다. 정보통신과 생명공학뿐만 아니라 전통산업이라 할 제철, 기계, 섬유 등 제조업도 집중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가 강중국 발전전략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전후 비약적 경제부흥을 가져온 바탕으로서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장의 자율을 중시하되 적절히 규제하는 정부, 그 아래 자본과 노동을 포함하는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동반관계를 통해 자유와 연대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그 요체다. 그러므로 독일식 강중국 발전전략의 성공을 위해서는 적어도 강소국 발전전략의 노사정합의라는 ‘현실’과 소강국 발전전략의 환경-인성친화적 ‘이상’을 적극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럽의 다양한 발전경험을 배운다는 것은 결국 그에 대한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우리의 토양에 맞는 적실성 있는 발전전략을 개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단순한 선진국을 넘어 국제적으로 ‘선진국(善進國)’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기초교육원장
  • [의회]수도이전 반대 재점화

    [의회]수도이전 반대 재점화

    ‘수도이전 반대운동을 다시 한다.’ 서울시의회가 정부의 행정중심도시 계획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임동규 서울시의회 의장은 지난 27일 성명서를 내고 정부가 추진중인 행정중심도시 건설계획의 철회를 촉구했다. 임 의장은 성명서에서 헌재의 위헌결정 이후 불과 3개월만에 정부의 18개 부처 가운데 외교, 국방을 제외한 16개 부처를 충남 공주·연기로 옮기는 것은 사실상의 수도이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정부의 주요부처가 이전하면 서울은 급격히 공동화되어 수도로서의 제 기능을 잃고 국가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며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했다. 임 의장의 이 같은 성명서 발표는 서울시의회가 지난해 펼쳤던 수도이전반대운동의 재점화를 의미한다. 임 의장은 “1000만 서울시민을 대표하는 서울시의회는 지역이기주의가 아닌 진실로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행정도시안을 반대하는 것이다.”며 성명서 발표때 이미 종전보다 더욱더 강도높은 반대운동을 천명했다. 현재 서울시의회에는 수도이전반대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있다. 특별위원회는 그동안 수도이전문제가 헌재의 위헌판결로 종결된 것으로 판단하고 다음달 15일로 예정된 제153회 임시회에서 해체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서울시의회는 정부가 최근 발표한 행정중심도시안은 사실상 수도이전으로 판단, 또다시 반대운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다만 현재 서울시의회는 회기가 시작되지 않아 구체적인 반대운동 계획 등 반대의 수위는 정해진 게 없다. 그렇지만 수도이전반대특별위원회는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처럼 범시민운동을 전개하려면 이들이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해 1000만명 서명운동, 대규모 집회, 의원들의 삭발항의, 자치구별 반대집회 등 수도이전반대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 특히 이들은 창원, 수원, 인천 등 전국을 돌며 정부의 수도이전 정책의 부당성을 알리는 등 헌재의 위헌결정전까지 수도반대운동의 첨병역할을 다했다. 명영호 수도이전반대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좀더 지켜본 후 정부가 행정중심도시안을 고집한다면 반대운동을 다시 펼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도이전을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의 2라운드 격돌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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