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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2)-4세 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2)-4세 경영

    지난 4일 경기도 광주 선영에서 가진 고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32주기는 침울했다고 한다. 생전에 인화와 우애를 가르치고, 강조했던 선친 앞에 얼굴 들기가 부끄러웠던 탓이다. 이날 가문에서 축출된 박용오 전 회장과 경원, 중원씨 등은 참석하지 않았다. ‘형제의 난’ 이후 두산가는 ‘언론 기피증’을 보이며, 숨을 죽이고 있다. 내부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하루빨리 이 악몽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눈치다. 또 검찰 수사 이후 몰아칠 ‘후폭풍’과 내부 동요를 막기 위한 단속도 눈에 띈다. 재계 최초로 경영에 참여하는 두산가 4세들이 이를 극복하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지 관심을 끈다. ●악몽 같았던 일주일 두산산업개발은 지난달 15일 ㈜두산 지분 280만주(12.8%)를 계열사와 박용곤 명예회장,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등 특수관계인에게 시간외거래를 통해 매각했다.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권 안정,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이유를 댔다. 경영권 분쟁을 대비하기 위한 ‘용곤(73)-용성(65)-용만(50)’ 3형제의 치밀한 정지작업이라는 사실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지난달 18일, 용성 회장은 용곤 명예회장의 지시로 대한상의 제주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서울로 올라왔다. 이어 두산그룹은 용성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추대하고, 용오(68) 현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난다고 밝혔다. 형제간 경영권 승계의 일환으로 두산가의 우애가 또 한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용곤 명예회장의 ‘연막’도 그럴듯했다.“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두산그룹의 회장으로 폭넓은 인맥과 신망을 얻는 용성 회장이 적임자”라고. 그러나 안으로는 이미 ‘용곤-용성-용만’ 3형제와 용오 전 회장 일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다. 우애 깊은 형제가 원수 사이라는 것은 사흘 후에 드러났다. 두산은 지난달 21일 용오 전 회장이 용성 회장 취임에 반발, 검찰과 모방송사에 그룹의 경영현황을 비방한 투서를 제출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이를 확인시켜 주듯 용오 전 회장은 이날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용성 회장의 그룹 회장 승계는 내가 용성 회장 등과 관련된 비리를 적발하자 나를 밀어낸 것으로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양측의 진실공방 게임은 이어 본격화됐다. 용곤 명예회장은 “그룹과 가족에 대한 반역 행위”라고 규정했으며, 용성 회장은 지난달 22일 “이번 사태는 두산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아니라 용오 전 회장의 두산산업개발 경영권 탈취 미수 사건”이라고 반박했다. ●승자 없는 ‘형제의 난’ 두산가 ‘형제의 난’은 다른 국내 재벌가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과 궤를 달리한다. 대부분 재산과 ‘대권’ 싸움이어서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구분됐지만, 이번 두산가 분쟁은 승자가 없는 오직 패자만 있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비리 의혹을 폭로한 용오 전 회장 일가는 마지막 ‘무기’를 던짐으로써 가문에서 축출이라는 비애를 맛봤다. 또 지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두산산업개발 경영권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그야말로 ‘동생들과 조카의 사법처리’ 빼고는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용오 전 회장의 부인 최금숙 여사가 지난해 암으로 죽고 나서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 용오 전 회장이 극단적 행동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용오 전 회장 부부는 미국에서 만나 연애 결혼해 부부 금실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용곤-용성-용만’ 3형제도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집안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형제간 우애와 집안 망신,109년 전통의 명예, 경영 차질 등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또 자칫 집단 사법처리 가능성도 있어 위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단지 용오 전 회장 일가를 가문과 그룹에서 축출한 것이 유일하게 얻은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얻기 위해 이같은 처참한 분쟁이 일어난 걸까. ●‘원’자 돌림 4세 9명 경영수업 ‘원’자 돌림의 4세 15명 가운데 두산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이는 총 9명이다. 이들 사이의 신경전도 예사롭지 않다. 두산 3세간 일어난 ‘형제의 난’도 사실상 4세들을 위한 ‘대리전’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두산측 설명은 이렇다.“당사자가 아닌 이상 누가 알겠나.(용오 전 회장)눈에 뭐가 씌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그러나 결과가 뻔한 싸움에서 용오 전 회장이 나선 것은 자식들을 위해 총대를 멘 부문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사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는가.” 4세간 역학 구도를 보면 용곤 명예회장의 장남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이 가장 앞선다.4세 가운데 유일하게 계열사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또 용성 회장의 장남 진원씨는 지난 5월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영관리 총괄 상무로 선임되면서 사실상 경영 전면에 나섰다. 두산 경영에 참여치 않는 박용현(62) 서울대 의대 교수의 장남 태원씨도 네오플럭스 상무로 일하며, 두산의 M&A(인수합병)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네오플럭스는 최근 삼성전자의 소형가전 자회사인 노비타를 인수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정원 부회장과 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가 5%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1999년 벤처투자로 대박을 터뜨리며 자신감이 넘쳐났던 용오 회장의 장남 경원씨는 두산가의 전통적인 경영 방식에 회의를 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2001년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큰 손해를 보기도 했던 경원씨는 2003년 전신전자를 인수, 아예 독자노선을 걸었다. 수년 전부터 ‘밖’으로만 돌았던 경원씨의 행보를 보면 이미 ‘정원-진원’을 비롯한 4촌 형제와 경원씨간의 대립 구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용오 전 회장이 지난해부터 두산산업개발을 탐낸 것도 결국 두산 지분이 4세대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두 아들만 소외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형제의 난’ 이후 용오 회장과 자제들이 경영에서 빠진 만큼 두산의 경영구도에서 용만 부회장과 장손인 정원 부회장의 ‘파워’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용성 회장은 사실상 그룹의 상징적인 존재로 활동하고, 내부 살림은 용만 부회장과 정원 부회장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용만 부회장이 용성 회장에 이어 두산의 향후 ‘대권’을 잡을지도 관심사다. 정원 부회장은 두산가가 장자 상속의 전통을 이어온 점을 감안하면 미래의 그룹 총수 1순위다. 그는 올 초 그룹 사장단 회의로부터 ‘2004 두산 경영대상’ 특별상을 받을 정도로 경영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용만 부회장의 4세 경영 과외도 ‘형제의 난’이 마무리되면 빨라질 전망이다. 용만 부회장은 현재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과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등 두산 4세들의 경영수업을 총괄 지휘하고 있다. 반면 가족간 우애는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가는 계속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을 원칙으로 가족경영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용오 전 회장 일가가 빠진 가족회의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최근 물밑에서 용곤 명예회장과 용오 전 회장간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박경원-서미경 부부 곤혹 두산가 장손인 박정원(4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은 공군 참모총장과 민자당 국회의원을 지낸 김인기 전 의원의 딸 소영(40)씨와 결혼했다. 부친인 박 명예회장과 김 전 의원은 경동고 선후배 사이로 동창회 모임에서 두 사람의 혼담이 오간 인연으로 맺어졌다는 후문이다. 김 전 의원은 포스데이타 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상민(15)양과 상수(11)군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녀 박혜원(42) ㈜두산 잡지BU 상무는 의사인 서경석(45)씨와 인연을 맺었다. 자녀는 주원(18)양과 장원(15)군으로 학생이다. 박지원(40)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평범한 집안 출신인 서지원(36)씨와 혼인했다. 아들 상우(11)군과 딸 상진(5)양이 있다. 두산가에서 요즘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는 이는 박경원(41) 전신전자 대표의 부인 서미경(39)씨로 보인다. 박 사장이 이번 ‘형제의 난’에 깊숙이 연관된 데다 연일 시끄러운 ‘X파일’ 사태도 친정과 적잖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경씨의 부친은 서상철 전 동자부장관.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고려대 교수로 있다가 전두환 정권 때 경제관료로 영입됐다. 안타깝게도 1983년 아웅산 테러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 ‘X파일’에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자금 전달자로 나오는 서상목 전 의원이 바로 미경씨의 숙부다. 장남 상호(16)군과 차남 상모(13)군을 두고 있다. 용오 전 회장의 차남인 박중원(37) 전 두산산업개발 상무는 평범한 집안 출신인 정윤주(37)씨와 백년가약을 맺고, 아들 상윤(6)군과 딸 상이(4)양이 있다. 용성 회장의 장남 박진원(37) 두산인프라코어 상무와 차남 박석원(34) 두산중공업 차장은 모두 평범한 가문의 딸들인 김선영(34)씨와 정현주(35)씨를 배필로 맞아들였다. 상효(6)-상인(2)과 상현(7)-상은(2) 등 각각 딸만 두고 있다. 용만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는 최근 구자철 한성 회장의 딸 원희(26)씨와 결혼했다. 구 회장은 범 LG가(家)로 구태회 LS 명예회장의 4남이자, 구자홍 LS그룹 회장의 셋째 남동생이다. 박용훈(두산산업개발 부회장)-구선희(고 구철회씨의 4녀) 부부에 이은 두산가와 LG 구씨가의 두번째 사돈이다. ●두산의 역대 악재들 이번 ‘형제의 난’ 외에도 두산가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던 악재는 더러 있다. 대표적인 예가 두산중공업 노조원인 배달호씨 분신자살 사건과 낙동강 페놀 사태를 꼽을 수 있다. 2003년 배달호씨의 분신 자살은 두산가와 노조의 악연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용성 회장은 “결코 원칙을 저버릴 수 없다.”면서 “지금 당장 손실을 보더라도 불법 파업의 뿌리를 뽑겠다.”며 강경 대응을 천명했었다. 이는 노조의 극한 투쟁으로 이어졌고, 배씨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인화를 5대째 강조하는 두산가와 노조의 궁합이 맞지 않은 것도 꽤 아이러니하다. 두산가로서는 노사 합의만 되면 불법이 합법화되는 노조의 관행을 더 이상 둘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번 굳어진 노조와의 악연은 두산가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올 초 인수한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의 노조도 한동안 두산 인수를 격렬히 반대했다. 또 두산 계열사 노조는 이번 ‘형제의 난’과 관련해 그룹 회장직을 둘러싸고 형제들끼리 이전투구를 벌여 사회적 파장을 야기하고, 두산의 도덕성을 바닥에 추락시킨 책임을 지고 박용성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즉각 퇴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두산가가 다시 기억하기 싫은 사건으로 낙동강 페놀 사태가 있다. 여전히 반세기 최대의 환경오염 사건으로 꼽힌다.1991년 ‘맥주로 돈 번 회사가 먹는 물을 망쳐 놓다니….’라는 구호가 전국을 들끓게 했으며,2차 페놀 사건이 터지면서 당시 박용곤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났었다. 또 두산 불매운동으로 매출액이 급감했으며, 당시 환경처 장관과 차관이 경질된 초유의 사건이었다. ●숨은 그림자 박용욱 회장 ‘용’자 돌림 가운데 막내인 박용욱(45) 이생그룹 회장은 두산가에서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집안의 원칙을 가장 먼저 깨뜨리고 독자사업에 나섰을 뿐 아니라 ‘KS(경기고-서울대)’가 수두룩한 두산가에서 박 회장은 서울고-인하대를 나왔다. 또 그룹에서 경영수업을 받을 수 있었지만 박 회장은 대학생 시절부터 홀로 무역상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당시 부친으로부터 받은 지분을 종자돈으로 삼아 지난해 매출액 1000억원대의 소그룹으로 키웠다. 반면 용곤 명예회장의 사촌동생인 박용훈(63·박우병 전 고문의 장남) 부회장은 두산산업개발에 몸담고 있다. 박 부회장의 부인은 LG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인 구철회씨의 4녀 선희(61)씨다. 구철회씨는 1999년 LG화재를 갖고 LG에서 독립했다. 박 부회장은 두산식품 부사장을 거쳐 92년부터 두산건설(현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직을 맡고 있지만 비상근으로 실제 경영에는 참여치 않고 있다. ●‘두산호’ 이끄는 전문경영인 유병택(61) ㈜두산 부회장은 일명 ‘면도칼’로 불린다.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기민함이 탁월하고, 현장 경험이 많다.69년 동양맥주에 입사한 후 두산기계와 두산음료 등 그룹내 요직을 거쳤다. 강문창(62) 두산중공업 부회장은 68년 동양맥주로 입사한 이후 경리와 영업, 총무, 기획, 해외현장 등을 두루 거쳐 해박한 실무지식을 자랑한다. 제주에서 상고 야간을 나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수재형 경영인이다. 자신의 이력은 ‘두산 입사, 두산 퇴사’를 영광으로 생각하고 싶다는 두산맨이다. 건설업을 주력기업으로 만든 주인공이기고 하다.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재경(55) ㈜두산 전략본부 사장은 두산그룹 ‘10년 구조조정’의 숨은 공신이다. 전략기획통으로 통한다. 두산은 외환위기 이전인 1996년부터 일찌감치 구조조정에 착수해 한국3M과 한국코닥, 코카콜라, 한국네슬레, 두산씨그램 등 돈이 될 만한 회사는 가리지 않고 팔았다. 모기업인 동양맥주도 매각했다. 이런 ‘무차별 구조조정’을 주도한 인물이 박용만 부회장이고, 그를 보좌한 이가 이 사장이다. 철저한 시장 조사와 냉철한 판단력을 겸비했다는 평이다. 일 욕심 많기로 소문난 이 사장은 성격도 급하다.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북고 동기생이다. 김대중(57) 두산중공업 사장은 경북 안동 출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69년 동양맥주에 입사했다.㈜두산 주류BG와 ㈜두산 테크팩BG 사장을 거쳤다. 두주불사형으로 알려진 그는 주류업계의 ‘히트상품 제조기’로 불렸다. 청하, 설중매, 그린, 산 등 두산의 주류 히트상품은 그의 손을 거쳤다. 김 사장은 불도저 같은 업무 스타일로 유명하다. 노사 화합과 현장 경영을 토대로 그는 중공업분야에서 ‘신인’이라는 우려를 씻고, 굵직한 대형 프로젝트를 따내고 있다. 최승철(57) 두산인프라코어 사장은 77년 두산메카텍의 전신인 두산기계에 입사한 뒤 기계업종 외길을 걸어왔다. 김홍구(59) 두산산업개발 사장은 건설사 사장 가운데 흔치 않은 수주영업 전문가로 통한다.‘똑똑하지만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 두뇌회전이 빠른 명석한 사람’이라는 뜻에서 ‘똑게’로 불린다. golders@seoul.co.kr ■ 6형제가 좌장… 이사회보다 막강 두산가(家)의 가족회의는 좀 특별하다. 단순히 형제간 화합과 우의를 다지는 모임일 뿐 아니라 사실상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그룹의 중요 결정 사항은 가족 회의에서 정해진다. 이 때문에 ‘옥상옥’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가족회의는 평상시 한 달에 한 번씩 3대(3∼5세)가 모여 선친 박두병 초대 회장이 강조한 ‘가화만사성’을 되새기며, 인화와 우의를 다진다. 가족 중 그룹경영 참가 선수인 ‘박용곤-용오-용성-용만’뿐 아니라 박용현 서울대 의대 교수(전 서울대 병원장)와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 등 ‘용’자 돌림 6형제가 가족회의의 좌장들이다. 집안 대소사 등이 화젯거리로 등장하지만 경영이나 사업 얘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룹에 위기가 오거나 비상 사태, 중대한 경영 결정을 내릴 때 열리는 가족회의는 ‘숨겨진’ 비공식 최고 기관이다. 경영진에 대거 포진한 ‘원’자 돌림의 4세들도 이런 경우엔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표시한다. 이 때문에 각 계열사 이사회는 가족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추인하는 역할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두산 오너가가 고작 5%대의 지분으로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셈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지금까지 그룹 경영과 관련된 모든 중요한 결정은 가족회의에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형제의 난’ 기폭제도 사실상 가족회의에서다. 지난 5월 열린 가족회의에서 용곤 명예회장은 용오 회장 일가의 두산산업개발에 대한 M&A(인수합병) 시도 대가로 그룹 회장 교체를 언급했으며, 지난달 가족회의에서 용성 회장의 그룹 회장 추대와 용오 회장의 퇴진을 최종 결정했다. 당시 가족회의는 보안요원이 배치되는 등 살벌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회의의 경영 행위에 대해 “기업을 가족 소유물로 여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시민단체와 두산 노조 등은 “가족회의를 통해 그룹의 주요 경영사항을 결정하는 전근대적 족벌경영 체제가 두산그룹의 현주소”라며 기업을 족벌의 사유물로 여기는 이같은 그룹 체제는 즉각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4세들도 분기별로 한번씩 ‘패밀리 미팅’을 갖고 우애를 나눈다. 모임의 주관은 장자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이 맡고 있다. golders@seoul.co.kr ■ 두산가 4형제 경영스타일 ‘아름다운 형제’에서 한순간에 ‘돈 앞에 형제도 없는’ 처지로 추락한 ‘박용곤-용오-용성-용만’ 4형제의 성격과 스타일은 어떨까. ▲ 2000년 초 우애 깊은 형제였던 박용오(오른쪽) 전 회장과 박용성(왼쪽) 회장, 박용만 부회장 등 3형제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용곤 명예회장은 집안의 장자로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그러나 그의 수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용오 회장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그의 통제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묵한 성품으로 말이 거의 없다. 내부 회의에서도 말을 듣는 입장이지 먼저 ‘입’을 열지 않는다. 그래서 회사 임원들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그를 가장 어려워한다. 그는 또 게임의 룰을 중요시 여긴다. 용오 회장의 이번 행위에 대해 “가문에서 빼버리겠다.”고 강경 대응한 것도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집안의 원칙을 깬 데 대한 분노로 보인다. 그는 골프에서도 룰과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는 두번 다시 골프를 치지 않는다. 용오 전 회장은 어느 자리에서나 격의없는 대화와 만남을 좋아한다. 체면보다 실리를 챙기는 스타일이다.‘형제의 난’ 역시 이같은 그의 스타일과 무관치 않다. 그는 미식가이자 애주가로 통한다. 술을 통해 상대의 스타일이나 됨됨이를 파악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장 근로자들과도 곧잘 술자리를 갖고 어울린다. 그의 애주론은 이렇다.“술은 백년지기를 만나는 마음으로 즐겁게 마시면 오히려 호쾌해져 건강에 도움이 된다.” 용성 회장은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 정부와 재계, 사회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때마다 비유를 동원하는 그의 발언은 화제가 된다. 어느 사업이 좋다면 경쟁 업체를 무조건 따라서 투자하고 보는 풍토를 비판한 ’들쥐떼론’과 전통 산업은 외면하고 정보기술(IT) 등 첨단산업만 좇는 기업 풍토를 비튼 ‘첨단병론’ 등이 대표적이다. 또 소탈하면서도 집념과 추진력이 대단하다. 박 회장은 1995년 세계유도연맹회장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서울에 돌아갈 생각하지 말고 모두 창 밖에 뛰어내리자.”고 할 정도였다. 그는 사진과 음악을 좋아한다. 해외출장 때는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틈만 나면 사진을 찍는다. 또 클래식 마니아로 소장한 CD만 2만장이 넘는다. 용만 부회장은 꼼꼼히 따져 보고, 분석하는 일을 좋아한다.2002년 디스크 수술 이후 의사의 권유로 수영을 시작했을 때다. 강사의 수영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하고 분석했으며, 과도한 수영 연습으로 어깨 근육이 찢어지기까지 했다. 그는 또 재계의 인수합병(M&A) 전문가로 통한다. 냉철하고 전략적인 그의 성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는 “두산의 구조조정 10년 동안 15개 기업의 M&A를 진두지휘한 경험을 책으로 풀어내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운이 작용하는 ‘감(感)의 경영’을 싫어한다. 경영은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열린세상] 지역문제 극복하려면 차라리 합당을/이광호 진보정치 전 편집위원장

    오래전 얘기이고, 누구나 다 아는 얘기부터 시작한다.1987년 양 김씨의 분열은 한국 민주주의 전개 과정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상흔은 너무 깊어서 많은 국민들의 내면에까지 깊숙이 패어 있다. 오래전 얘기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얘기다. 군부 독재 앞에서 하나가 됐던 민주화 세력이 지역으로 분열된 이후 90년 3당 합당은 그 상처를 종양 수준까지 진행되도록 만들었다. 이제 이 종양을 질병이 아니라 몸의 일부인 양 생각하는 쪽도 있다. 이런 한국 정치의 난치병에 정면으로 도전한 용감한 정치인이 한 명 있었다. 바보 노무현. 그가 대통령이 됐다. 임기 절반이 넘어서고 있는 가운데 그는 지역 문제 해결을 들고 나왔다. 연정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제안했다. 대통령 권력까지 내놓겠다며 비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 가운데 한 명이었던 시절 ‘노무현 문제의 해답은 민주노동당이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한 편 쓴 적이 있다. 제법 긴 그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한국정치 발전의 치명적 걸림돌인 지역 중심의 정당 구조를 해체시키는 것은 너무 중요해서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정치발전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바보처럼 도전하고 있는 노무현의 진정성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비극은 노무현은 자신이 제기하는 문제의 해답을 가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지역 분열 자체가 존재 조건인 보수적 지역정당 구조가 해체되지 않는 한 어떤 훌륭한 정치인도, 그가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가 계급정치, 정책정당 구도로 바뀌어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경쟁과 협력 구도가 구축될 때 비로소 한국 정치의 천형처럼 비치는 이 문제는 해결의 가닥을 잡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은 연정의 근거, 특히 대연정의 당위성을 지역 정치 해소에서 찾고 있다. 필자는 몇 가지 이유로 그것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더 나아가 그런 방식으로 성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 종양이 아직도 제거되지 않고 버티는 것은 그걸 유지하는 강력한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보다 강한 카운터 파워가 없으면 종양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힘은 노무현의 또 다른 이미지였던 서민 대통령으로서의 성공을 통해서 확보할 수 있었다. 서민은 대한민국 팔도에 가장 많이 있는 사람들이다. 지역변수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진 유일한 세력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현재 그 힘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 만약 지역문제를 가지고 난국을 돌파하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그것은 수순이 완전히 잘못된 바둑을 두고 있는 꼴이다. 다음으로는 그 방법 또한 잘못됐다는 점이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라는 방법론이 그렇다는 얘기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은 앞에서 언급한 맥락에서 보면 지역정치를 극복하는 길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노 대통령이 말하는 대연정은 사실상 합당으로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대통령이 고백했듯 주요 정책에서 별 차이가 없다면 그것이 바람직하기도 하다. 역설적이지만 전국적인 지지를 받는 보수정당 하나를 튼튼하게 만들어내는 게 지역문제 해결에는 훨씬 더 도움이 된다. 동시에 지역정치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민주노동당이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고, 다른 정당들도 ‘이론적’으로는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동의하고 있는 독일식 1인2표 정당명부제를 도입해야 한다. 노회찬 의원이 제안한 국민투표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특정 지역의 ‘말뚝’이 아니라 ‘정당’ 자체를 후보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광호 진보정치 전 편집위원장
  • [도청 파문] “2003년에도 휴대전화 도청 제보”

    ‘특검에서 국정조사 가능성까지’ 한나라당은 7일 김대중 정부의 국가정보원 불법도청을 둘러싼 공세 수위를 한껏 높였다. 공격 타깃은 주로 진상 규명 방식과 불법도청 폐기시점, 당시 국정원 실세 인사였던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강래 의원 등에 맞춰졌다. 조사방법과 관련, 한나라당은 이전의 특검조사 방침과 병행해서 국정조사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국정원 발표 첫날 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한나라당 전략위원장인 권영세 의원은 7일 “2003년 봄까지 휴대전화 도청이 실시됐다는 제보를 수없이 받았다.”며 “역대 정부는 늘 현 정권에서는 불법 도·감청이 없다고 하지만, 다음 정부가 되면 ‘지난 정부는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고 했다.”며 의혹을 떨치지 않았다. 사무총장을 지낸 김형오 의원과 이정현 부대변인 등은 국정조사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김 의원은 “여권의 대권 후계구도가 불안정한 시기는 도청의존도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통상적으로 해오던 도청을 중단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도청팀 해체를 비롯, 도청조직의 규모와 장비 등의 규명을 위해선 특검과는 별개로 국정조사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현 부대변인도 “불법도청을 부인하고 부실 수사를 해온 국정원과 검찰이 수사의 주체가 돼서는 안 된다.”며 “국정조사만이 유일하게 객관성이 담보되는 조사방법”이라고 했다. 특검수사를 당론으로 정해놓은 한나라당이 국정조사를 병행할지 여부는 8일 상임운영위에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한나라당은 문희상 의장 등 여권 인사의 개입 의혹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국정원의 현 기조실장이 2002년 3월까지 불법도청조직을 운영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음에도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이었던 문 의장이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니 쓴웃음만 나올 뿐”이라고 꼬집었다.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DJ정부도 4년간 도청

    DJ정부도 4년간 도청

    김영삼 정부는 물론 김대중 정부 때도 4년여 동안 불법 도·감청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기술적 가능 여부로 논란을 빚어온 휴대전화 도·감청도 1996년 1월부터 자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은 5일 서울 내곡동 청사에서 ‘옛 안기부 X파일 사건’과 관련해 이같은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미림팀’으로 불렸던 도청팀의 전·현직 직원 43명과 이들의 도청 실태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국민 사과 성명도 냈다. 두 전 정권 때의 휴대전화 등 도·감청이 사실로 밝혀지자 정·재계와 언론계 등 도·감청 대상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면서 ‘X파일’ 파문도 확산될 전망이다. 또 국정원은 불법 도·감청이 지난 2002년 3월 완전 중단됐으며, 청와대도 “참여정부에서는 불법 도청이 없다.”고 밝혔으나, 현재에도 이뤄지고 있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여전히 논란이 예상된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림팀은 김영삼 정부 초기인 1993년 7월 해체됐다가 1994년 6월 공운영 팀장 등 3명으로 다시 구성돼 1997년 11월까지 3년5개월간 활동했다. 이들은 여당 내부와 양김(김영삼·김대중)씨 측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등 주요 인사의 동향을 주로 도·감청했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이날 회견에서 “안기부의 도청 작업이 김영삼 정부 말기가 아닌 김대중 정부 들어서도 2002년 3월까지 실시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이후 신건 국정원장 재직 중에 도청 작업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휴대전화 도·감청과 관련해 그는 “기지국을 중심으로 반경 200m 이내와 도청 대상을 정점으로 120도 범위 내에서는 도·감청이 가능하다.”고 밝혀 처음으로 시인했다. 한편 국정원은 조사대상자 43명 가운데 전직 직원 18명, 현직 18명, 일반인 4명 등 40명에 대한 조사를 완료했으며 21명에 대해 출입국 규제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그러나 “천용택 전 원장을 직접 대면 조사하지는 못했다.”며 “천 전 원장은 전화 통화에서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개입 여부를 부인했다.”고 전했다. 김승규 국정원장은 이날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사과성명을 발표한 뒤 “검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으며 압수수색도 받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배석한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감청 중단 후 감청자료가 1개월 내 모두 소각됐으며 감청 자료를 인지할 수 있는 범위가 극소수에 불과해 그 여부는 지금 단계에서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02년 3월 이전 당시 노무현 후보를 비롯한 대선 후보들에 대한 감청 여부에 대해 “일부 불법감청이 있었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감청은 없었다.”고 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부시가 잠든 사이…파드왕 사망 모른채 업무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잠든 미국 대통령을 깨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난 8일 새벽 2시30분(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파드 국왕이 사망한 사실을 모르고 이날 아침 7시 집무실에 나타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미 언론은 과연 백악관 참모들이 잠자는 부시 대통령을 깨웠어야 했는가를 두고 논란을 벌였다. 현재 백악관에는 대통령이 잠든 사이 세계 각지에서 전해지는 중요한 소식들을 취합하는 ‘관측팀(Team of Watch Officers)’이 구성돼 있다. 중앙정보국과 군, 국무부 관리들로 구성된 관측팀은 하루 24시간 가동된다. 해외에서 미국인이 사망하는 등의 중요한 사건이 터지면 앤드루 카드 비서실장이나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에게 곧바로 보고되며, 두 사람은 잠자는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를 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다. 파드 국왕 사망의 경우 새벽에 부시 대통령을 깨워 보고하더라도 미국이 곧바로 취할 만한 비상 조치가 없었기 때문에 업무 시간까지 기다린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에 이같은 24시간 ‘상황실(Situation Room)’ 기능이 처음 설치된 것은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그전까지는 24시간 운영되는 ‘전쟁실(War Room)’만이 필요에 따라 설치됐다 해체되곤 했다. 다만 대통령을 어떤 상황에서 깨우느냐는 문제는 정권에 따라 변해 왔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운영하는 인터넷 매거진 슬레이트가 4일 전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2001년 스파이 정찰기가 중국에 비상착륙했을 때,2002년 예루살렘에서 대규모 자살 폭발 공격이 발생했을 때 잠자다 일어나 상황을 보고받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dawn@seoul.co.kr
  • [임영숙칼럼] 명달리 이야기

    [임영숙칼럼] 명달리 이야기

    새순이의 돌잔치 때 부녀회장이 말했습니다.“양씨는 모두 모여요!”새순이의 양 어머니, 양 이모, 양 고모 들이 함께 모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명달리의 부녀회원 모두가 기념 사진을 찍은 거지요. 지난해 새순이가 태어났을 때 마을전체가 기쁨에 들떴습니다. 명달리에 아기가 태어난 것은 7년만의 일이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새순이는 ‘마을 아이’가 됐습니다. 지난주 새순이의 아버지가 1주일 남짓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날, 가장 기뻐한 사람은 엉뚱하게도 마을 영농조합법인의 총무였습니다. 그의 아내가 몸이 불편한 새순이 엄마를 돕기 위해 새순이 집으로 가버려 그동안 홀아비 신세였답니다. 새순이의 아버지 유영민(37)씨는 서울대 산림자원학과를 졸업하고 환경운동을 하다가 5년전 이 마을에 들어왔습니다. 화전민 마을로 시작된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명달리가 생태산촌 시범마을로 탈바꿈을 시작하던 무렵부터 들락거리다가 아예 부인과 함께 이사를 한 것입니다. 그 사이 명달리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50여가구 150여명의 주민이 70가구 200명 가까이로 늘어났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도시보다 더욱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여느 농·산촌 마을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이곳 주민들은 우렁이 농법으로 농사를 짓습니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대신 우렁이를 논에 풀어 잡초를 갉아 먹게 하는 것입니다. 중미산 잣나무 숲속 계곡도 깨끗이 관리해 1급수에서만 사는 산천어가 노닐게 했습니다. 폐교된 초등학교 분교를 생태산촌환경교육센터로 리모델링해서 생태산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집집 마다 컴퓨터가 있고 마을정보센터도 있습니다. 그 사이 ‘생태산촌마을’(양평군) ‘정보화 시범마을’ ‘아름마을’(행자부) ‘자연생태 우수마을’(환경부) 등으로 선정되거나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무공해 쌀과 잣, 표고버섯, 한봉 꿀, 장뇌삼, 산나물 등을 앞다투어 사갑니다. 중병을 앓는 환자들이 장기 요양을 위해 찾아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웰빙 바람과 함께 명달리를 찾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구만 아니라 마을 소득도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명달리 사람들은 모두 일자리를 갖고 있습니다. 부녀회는 체험프로그램 참가자들을 위한 숙소 청소, 식사 준비 등으로 바쁘고 노인회는 계곡 청소와 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마을 공동소득은 영농법인이 관리하면서 주민들이 일한 만큼 돈을 지급합니다. 다른 마을과 달리 명달리의 영농법인에는 주민 대부분이 참여해 옛 고을의 향교처럼 마을 공동체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명달리가 탈바꿈하는 데 유영민씨는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주민들이 개발 대신 환경보호를 선택하고 마을 프로젝트를 만들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명달리의 오늘은 지역 주민과 행정기관, 전문가와 생명의 숲 등 민간단체가 함께 만든 것으로 유씨는 그 이질적인 요소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농·산촌 체험 프로그램, 농촌사랑 일사일촌(一社一村)운동, 그린 어메니티 운동이 활발하고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최근 농·산·어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이 해체위기의 지역공동체를 되살려 내 도시와 지역의 균형 발전,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게 하려면 새순이가 자라고 있는 명달리를 눈여겨 볼만 합니다. 논설고문 ysi@seoul.co.kr
  • 연기로 신화 재창조

    연기로 신화 재창조

    ‘노래여도 좋다, 아니라도 좋다.’ 1998년 ‘신화’가 1집 ‘해결사’를 들고 가요계에 데뷔했을 당시 ‘또 전형적인 아이돌 그룹이 나왔군!’하는 느낌이 들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앞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H.O.T’나 ‘젝스키스’가 5년을 넘기지 못하고 해체되고 말았지만,‘신화’는 벌써 8년째 전성기를 이어가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다. 서로 다른 일을 하다가도 다시 의기투합하는 과정을 이어가는 것은 서로에 대한 끈끈한 믿음 때문이 아닐까. 지난해 말 발표한 7집 ‘브랜드 뉴’의 활동은 이미 접었지만, 올해 본격적인 개별 활동에 들어간 이후 어디서든 ‘신화’를 볼 수 있다. 광고는 물론, 영화와 각종 드라마, 쇼프로그램까지 마치 홍길동이 분신술을 부리는 것 처럼, 연예계를 점령했다.5일에는 바쁜 일정을 쪼개 여름 팬 서비스 차원에서 싱글 ‘서머 스토리’를 발표한다. 이들의 진화를 살펴보고 있노라면 다시 합체, 정식 앨범을 들고 돌아올 내년 초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런 가운데 신혜성과 이민우는 최근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 보드게임 카페를 내기도 하고, 전진이 나오고 있는 ‘해변으로 가요’ OST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멤버들간에 돈독한 우애도 과시하고 있다. 너도 나도 연기에 뛰어드니 라이벌 의식은 들지 않을까.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멤버들의 적극적인 지원에 ‘해변으로 가요’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는 전진은 “각자 개성을 존중하고, 잘할 것으로 믿고 응원한다.”면서 “장점·단점은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평가보다는 장난 문자를 주고 받는 게 더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반전 드라마’ 앤디 시트콤 ‘논스톱4’에서 고시생 역할로 인기몰이를 했던 앤디는 SBS ‘일요일이 좋다’의 ‘반전 드라마’에 고정 출연하며 본격 연기자 활동을 예감케 하고 있다. 지난 6월부터 김동완의 바통을 받아 SBS ‘생방송 인기가요’MC를 꿰차고 매끄러운 진행 솜씨를 발휘하고 있는 중. 메인 보컬 신혜성 메인 보컬인 신혜성은 유일하게 음악만 고집하고 있는 편. 강타, 이지훈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S’로 활동하기도 했고, 지난 5월 솔로 1집 ‘오월지련’을 내놓고 열심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멤버들의 연기 겸업 성공이 이어지며 과연 신혜성이 언제 연기에 도전하게 될지도 팬들의 관심사가 됐다. ‘슬픔이여 안녕’ 김동완 올해 에릭의 뒤를 이어 김동완이 안방극장에 돌아왔다. 멤버 가운데 연기에 있어서는 가장 선배.2002년 드라마 ‘천국의 아이들’에 이어 지난해에는 영화 ‘돌려차기’에서 주연을 맡았다. 또 올 초 ‘떨리는 가슴’으로 호평을 받았고, 지난 6월부터 세 번째 드라마인 KBS 주말연속극 ‘슬픔이여 안녕’에 돌입했다. 출생의 비밀을 간직했지만,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속 깊은 청년 역할이다. 박선영과 알콩달콩 사랑을 만들어가고 있는 서글서글한 연기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신입사원’ 에릭 2003년 ‘나는 달린다’로 연기에 입문했던 에릭은 문정혁이라는 본명으로 지난해 ‘불새’에 이어 올해 ‘신입사원’을 통해 연타석 홈런을 쳤다.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과 인기상을 받으며 연기자로서 이미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현재 김윤진 신은경과 함께 일기에 씌어진 대로 일어나는 살인 사건 이야기를 담은 형사물 ‘6월의 일기’를 찍고 있다. 이르면 올 가을에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 봄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킬러로 깜짝 출연한 바 있는 그는 강력계 형사 동욱을 맡아 정식 스크린에 데뷔하게 된다. 강렬한 이미지를 위해 머리도 짧게 자른 에릭. 시원한 액션이 기대된다. ‘논스톱5’ 이민우 2003년 11월 이후 두 번째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는 이민우는 지난달 14일부터 MBC 시트콤 ‘논스톱5’에 합류했다. 친절한 바람둥이지만 항상 중요한 순간에 여자를 놓치는 실속 없는 역할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내고 있다. ‘해변으로 가요’ 전진 가장 최근에는 액션스타를 꿈꾸는 전진이 나섰다. 지난달 30일부터 방송되고 있는 SBS 주말 특별기획 ‘해변으로 가요’에서 이지적이고 냉철한 모습으로 변신했다. 신선하다는 시청자 반응이 올라오고 있다. 시트콤과 반전 드라마에 얼굴을 자주 비췄지만 드라마 도전은 지난해 ‘구미호외전’ 이후 두 번째.
  • 인기그룹 ‘쿨’ 공식 해체

    인기 혼성그룹 ‘쿨’의 멤버 이재훈 유리 김성수가 2일 서울리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해체를 선언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무엇이든 영원할 수 없지만 ‘쿨’이란 이름과 음악은 영원하길 바란다. 이번 해체는 마침표 아닌 쉼표”라면서 “앞으로 각자 활동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쿨’은 지난해 9집을 발표한 이후 불화설에 시달리며 일절 방송활동을 하지 않았고, 최근 10집을 발표했다. 연합
  • 174死 2生 두 행운의 전차 일대기

    174死 2生 두 행운의 전차 일대기

      이제 서울의 어린이들은「크레용」으로 전차를 그릴 수 없게 됐다. 학교에 가고 집에 돌아올 때 눈에 익던 전차는 70년 영욕(榮辱)을 실은 채 말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고철로 변해버리는 176대의 전차 중 단 2대만은 살아남아 어린이들 틈에서 여생을 즐기게 되었다. 이 행복한 두 칠순 할아버지 전차의 애환어린 일대기를 들어보면. 시민들과 함께 늙어온 몸, 고치고 고쳐 옛모습 잃고 행운의 두 할아버지는 230호와 452호. 문교부의 요청에 따라 230호는 창경원에, 452호는 남산 어린이놀이터에 남겨져 찾아오는 어린이들을 반기며『너희 아버지도 내가 타워다줬지』하고 긴 수염을 내리 쓸게 됐다. 도살장에 끌려온 소처럼「해머」로 두들겨 부셔지고 철(鐵)은 철대로 동(銅)은 동대로 갈기갈기 찢겨 고철로 팔려나가는 옛 동료들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두 할아버지는 그러나 옛 동료들을 대표해 살아남게 된 행운을 기뻐하며 지금 몸치장에 한창이다. 창경원에 남게 될 230호는 제작된 지 올해로 만 35년. 일제 때 일본서 만들어져 다음해 우리나라로 건너왔다. 운전대 오른쪽 위에 달린 자동전류차단기가 전류가「오버」되면『퍽!』하고 불꽃을 튀기며 꺼지던 모습은 전차를 타본 사람이면 한번쯤 구경했을 것이다. 이 전차는 직접 제어방식으로 되어있어 운전대 밑에 제어장치가 달려 있다. 가장 서울시민들의 눈에 익은 전차다. 당초 이 땅에 첫 선을 보였을 땐 반강제(半綱製)로서 차체는 나무로 되어 있었으나 58년에 철제(鐵製)옷으로 바꿔 입었다. 또 원래는「트롤리·폴」형으로 전차가 달리면 뒷 차장이 연방 줄을 잡아당겨 공중 전선에 맞춰 놓아야 했던 것이 62년부터 폐차 직전까지 우리 눈에 익은「뷰겔」형(거꾸로 매단 3각형형)으로 바뀌어 뒷 차장의 일손을 덜게 됐다. 트롤리·중간문 없어지고 2인용 좌석도 긴 의자로 이와 동시에 종래엔 문이 셋이던 것을 둘로 개조하고 좌석도 양쪽에 다 놓여있던 것을 한쪽으로만 몰아, 100인승으로 개조했다. 동시에 가운데 문을 맡던 차장은 폐문과 함께 퇴직해야 했고-. 어린이놀이터에 남겨질 452호는 미제(美製). 제작된 지도 40년이나 되는 장년. 그러나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수복 후인 54년. 미국에서 제작되어 한창 사용하다가 전차철거로 폐차 처분된 것을 ICA원조로 우리나라에 들여왔다. 당시 서울시민들은 차체가 좀 넓고 또 2인승 좌석이 나란히 놓여있는「새것」이라 해서 무척 즐겨 탔던 것. 또 종래의 전차가「롱·시트」였던데 비해 이 형은 소위「로맨스·시트」로 되어 두 사람이 나란히 앉게 되어 있었다. 역시 우리나라에 들어올 땐「트롤리」가 붙어 있었으나 62년부터 일제히「뷰겔」로 바뀌었고 시민의 사랑을 받던「로맨스·시트」도「롱·시트」로 바뀌었다. 이 형은 간접제어「시스팀」으로 되어 있어 제어장치가 운전대 아닌 차체 밑에 달려 있는 것이 특색. 새것이라 해체 면한 28대 사갈 만한 임자 없어 골치 멀리「펜실베이니아」의 어느 소읍(小邑)에서 배에 실려 이 땅에 왔다가 이제 같이 온 동료들을 잃고 혼자 남아 이국 어린이들 틈에 끼게 된 벽안(碧眼)의 노옹(老翁)- 그 회포는 어떠할까? 이 두 전차 외에도 해체를 면한 전차는 모두 28대. 이들은 일본「후지」사의 제품으로 63년에 8대, 67년에 20대가 도입되었었다. 이「후지」형은 차체 내의 조명이 모두 형광등으로 되어있으며 선풍기와 자체 난방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최신형. 들여온 지 얼마 안돼 폐차 처분하기가 억울해(?) 남겨두기로 결정을 했으나 사가는 사람이 없어 처리에 골치를 앓고 있다. 외국에선 관광지에 옮겨 숙소·식당으로도 쓰지만 서울시의 계획으론 관광용으로 교외지대에 내보낼 계획이었으나 이 계획이「트램·카」설치 계획으로 바뀌자 궤도문제로 교외운행도 불가능하게 되었다.(「트램·카」는「레일」이 하나뿐) 그래서 서울시 당국은 전차가 없는 대구시, 대전시 등에 구매를 종용했으나 두 도시선 모두 예산부족으로 난색을 보여 갈데올데 없이 동대문 차고에 처박혀 있는 따분한 신세다. 원래 이「후지」형의 도입가격은 8백만원. 서울시측이 각 시·도에 띄운 공문에 따르면 6백만원까지 값을 깎아주겠단다. 그래도 임자가 나서지 않아 주무당국인 서울시 운수사업부는 1억 6800만원짜리 이 전차 처리방안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고-. 가까운 일본의 경우 전차를 민간인이 사서 관광오락지에 부설, 숙소로 개조하거나 식당, 다방 등으로 바꿔 쓰고 있다.「호텔」아닌 전차속 하룻밤이 보다「로맨틱」한「무드」를 마련해 주기 때문.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 전차들을 사서「에어컨」과 난방시설을 모두 유효하게 쓰려면 한 대 6백만원의 전차값 말고도 부대시설인 전기·변압시설 등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 상업적으로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어느 약싹빠른 장사아치의 증언. 미국「샌프란시스코」시에선 전차 철거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시민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쳐 결국 철거에 실패. 오늘날「샌프란시스코」시의 명물로 전 미국에 알려져 있다. 샌프란시스코선 오히려 땡땡소리를 풍물시(風物詩) 삼아 그래서「러시·아워」가 되면 천천히 달리는 전차에 한 손을 잡고 매달린「샐러리·맨」의 못브이 영화나 우편엽서에 등장하고, 관광차「샌프란시스코」를 찾아오는 손님들은 으레 온가족이 함께 차를 타보곤 한다. 이젠 내년부턴 우리도「샌프란시스코」의 시민들처럼 창경원과 어린이놀이터를 찾아 정들었던 전차와 함께 흐뭇한 시간을 보내게 됐다. 어른들은 하릴없이 서있는 두 전차를 보고『좋았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어린이들은『신기한 폐품』속을 마음껏 뛰놀며…. [ 선데이서울 68년 12/15 제1권 제13호 ]
  • [CEO칼럼] ‘住託복합 아파트’로 가족 되찾자/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CEO칼럼] ‘住託복합 아파트’로 가족 되찾자/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세상이 변한 만큼 주거양식도 참 많이 변했다.30여년 전만 해도 서울의 아파트는 이촌동 일대와 반포가 고작이었다. 일찍 깬(?) 일부 시민만 아파트에 들어가 살았다. 시민 대다수는 층층 겹겹이 사는 아파트를 ‘닭장’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또 땅기운을 쐬지 못한다며 거부하기도 했다. 손바닥만한 마당이지만 담장 밑에 채송화라도 몇 그루 심고, 한 여름에는 수도꼭지를 틀어 시원한 물을 뒤집어쓰며 등목을 즐기는 집을 선호했던 것이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었다. 아침 출근과 등교시간 전 장독대와 연탄 저장창고 옆에 붙은 재래식 화장실에서 서로 먼저 볼 일을 보겠다는 식구들의 실랑이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러면서도 작은 집에서 3세대 6∼7명이 티격태격하면서 용케도 잘 살았다. 그러다가 분가가 시작되고 핵가족화가 급격히 번졌다. 집의 수요가 폭발했고, 아파트가 불가피하게 확산됐다. 아파트는 도시화의 대세가 됐고 또한 편리함에 주부들은 열광했다. 편리함을 맛 본 고객은 더욱 달콤한 편리함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아파트 단지에 별도로 있는 상가를 아예 아파트 동으로 끌어들였다. 이것이 주상(住商)복합아파트다. 강남의 주상복합아파트는 각종 시설과 고급 인테리어를 무기로 평당 3000만원을 넘나들며 인기리에 분양되고 있다. 한창 치솟는 부동산 열기가 건설회사나 주상복합아파트 분양자 모두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핵가족들이 편리하고 부유해진 만큼 ‘가족’들은 갈 곳이 막막해졌다. 얼마 전 80대 노인이 7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는 자주 “자식들한테 짐만 된다.”며 한탄을 했다고 한다. 노인 자살이 급증하는 것은 연금 등 사회 안전망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족 해체 현상으로 자녀들의 노인 봉양 역시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한국의 평균 수명 증가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국 중 최고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2년 한국 남성은 73.4세, 여성은 80.4세로 증가했다. 결혼은 하되 아이는 낳지 않겠다는 이른바 ‘딩크족’도 급증하고 있다. 출산포기는 육아부담 때문이다. 현재의 출산율은 1.17명으로 OECD국가 중 최저라고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2중의 충격이 한국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신혼부부 주택마련 모기지제 도입과 육아휴직제 등 연구에 부산을 떨고 있다. 노인문제와 출생육아는 눈앞에 닥친 과제다. 연금이나 양육비 지원과 같은 돈 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연금도 눈덩이처럼 커지는 부담을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양육비보조도 그렇다. 육아휴직제도 그만큼 노동력 공급을 저해한다. 따라서 주거와 상가라는 편리를 합친 주상복합아파트와 같은 발상으로 복지를 더해야 한다. 아파트에 탁아소와 병약한 노인을 맡기는 탁노소(託老所)가 함께 하는 ‘주탁(住託)복합아파트’가 나올 차례다. 이를 테면 지하실과 3∼4층까지는 상업공간과 함께 탁아소·탁노소를 의무적으로 짓도록 한다. 아이와 병노인은 집 가까이 맡기는 게 편하고 안심이다. 어린이 동산과 노인들의 오락과 건강 시스템을 보태는 것은 당연지사다. 탁아소와 탁노소가 많이 생기면 넘치는 청년실업자와 장년실업자의 고용창출에도 대단히 보탬이 된다. 여기에 지역사회와 교육기관의 자원봉사 시스템을 덧붙이면 금상첨화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는 일정시간 봉사토록 한다. 그래서 재정부담을 덜고 청소년들이 삶의 체험 현장에서 지혜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해주면 나라의 미래가 밝아진다. 돈과 편리성보다 ‘가족’을 되찾아야 한다.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 “정권 내놓는 한 있더라도 선거제도 꼭 고치고 싶다”

    “정권 내놓는 한 있더라도 선거제도 꼭 고치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은 29일 “대연정 제안을 귀담아 듣지 않고 거역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제가 원하는 것은 대연정보다는 선거제도 개혁”이라며 “선거제도 개혁을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안되니까 정권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선거제도는 꼭 고치고 싶다.”고 대연정의 취지를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은 소위 말하는 반대급부의 내용이고, 진정으로 제안한 것은 선거제도를 고치자는 것이며, 지역주의를 해소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당은 정권을 목표로 존재하고, 정권은 국정운영의 기회이고 또한 책임인 만큼 한나라당이 참여정부의 나라살림에 위기감을 갖고 있다면 국정을 운영할 기회가 있을 때 적극 환영해야 할 것”이라며 대연정 수용을 촉구했다. 노 대통령은 “선거제 개편에 집착하는 것은 분열주의, 지역구도를 해체하고 우리 정치를 한 단계 성숙한 정치로 업그레이드해 ‘정치 재건축’을 하자는 뜻”이라고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편방안에 대해 “지금 나와 있는 얘기들이 권역별 비례대표, 독일식 비례대표제가 있고, 필요하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말을 옛날에 한 적이 있는데 늘리더라도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정체성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합당과 연정은 아주 다른 것이고, 밀실에서 하는 게 아니라 국민 앞에 공개하고 토론을 거쳐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선거제도를 개편해도 지역구도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한편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과 이해찬 국무총리,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여권 수뇌부는 이날 저녁 총리 공관에서 ‘당·정·청 12인 회의’를 갖고 대연정 논의를 공론화하기 위해 대야 협상에 적극 나서는 등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은 다음달 12일 당의 최고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를 소집해 당내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IRA 무장투쟁 포기 선언

    IRA 무장투쟁 포기 선언

    지난 1969년 결성 이후 북아일랜드와 영국에서 1500명 이상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이 28일 무장투쟁 중단을 선언했다. IRA는 이날 성명을 발표하고 조직원들에게 무장해제 및 군사행동을 중단하도록 명령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무장투쟁 중단 선언이 조직 해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대신 정치활동을 통해 목적을 달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IRA 조직원은 500∼1000명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IRA는 성명에서 1997년 이후 자신들과 여러 불법단체들에 무장해제를 설득해온 캐나다 퇴역장성 출신 존 드 채스트랭을 비롯, 가톨릭과 신교 지도자들을 초청해 곧 있을 IRA의 비밀 병기고 해체 및 소각 작업을 지켜볼 수 있게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IRA는 지난 1998년 조지 미첼 미 상원의원 주도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2000년 5월까지 무장해제를 약속했지만 IRA의 대화 노선에 불만을 품은 급진파의 폭탄테러가 연이어 자행되는 등 합의 이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1년 5월에도 무장해제를 선언했지만 이행되지 않다가 2004년 11월 IRA의 정치기구인 신페인당 게리 애덤스 총재가 휴전을 선언하고 준군사활동 중단을 약속한 뒤 다시 평화 분위기를 이어갔다. 이번 무장해제 선언은 지난 4월 총선 유세에서 애덤스 총재가 “IRA는 이제 무장투쟁이 아닌 정치력으로 우리가 바라는 바를 얻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감지됐다. 신페인당이 총선에서 5석을 얻어 북아일랜드 제2당으로 부상한 것도 정치 투쟁을 통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 주었으며 때마침 터진 런던테러도 무장투쟁 중단 선언을 앞당긴 것으로 분석된다. 영국 정부는 IRA의 무장해제를 유도하기 위해 1993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신교도 지역 상점을 폭파, 어린이 2명을 포함해 민간인 9명을 숨지게 한 IRA 조직원 숀 켈리를 최근 석방한 바 있다. IRA의 성명 발표 직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IRA의 이번 결정은 형언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닌 것”이라고 환영했다. 그러나 북아일랜드에서 IRA와 갈등해온 신교측에서는 신페인당과 IRA를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강경 신교파인 민주연합당(DUP)의 그레고리 캠벨 당수는 “IRA는 과거 세 차례 이상 무장해제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6자회담, 求同存異의 지혜를/정종욱 아주대 교수·전 주중대사

    지난 26일 중국 베이징에서 속개된 6자회담에 대한 중간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미국 대표는 기조연설에서 김정일에게 체어맨이라는 존칭을 사용했다. 국방위원회의 위원장이라는 뜻이지만 3년 전에 사용했던 피그미(난쟁이)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일본도 납치자 문제를 정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북한 역시 한반도 비핵화가 회담의 총체적이고 총괄적 목표임을 강조함으로써 핵 프로그램의 근본적 폐기 의지를 확인했다. 회담의 목표에 대한 공동인식이 확인되었고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일단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이런 긍정적 평가와는 달리 앞으로 회담의 순항을 가로막는 악재들은 도처에 산재해 있다. 그런 악재 중의 하나가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주장이다. 북한의 정확한 의도는 시간이 좀더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한반도 전체를 비핵지대화로 만들자는 주장이라 해석할 수 있다. 얼핏 듣기에는 나쁠 게 없는 당연한 주장처럼 들린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가지 함정이 숨어 있다. 원칙적으로 비핵지대는 당사국들의 핵보유를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핵무기를 가진 제3국과의 군사적 제휴나 동맹관계도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의 비핵지대화 주장은 북한의 핵포기는 물론 남한에서도 핵무기가 없어야 할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의 핵우산도 철회되어야 함을 뜻한다. 실제 김계관 북한 수석대표의 기조연설에서 이런 주장이 제기되었던 것으로 보도되었다. 핵우산은 미국의 동맹전략에서 핵심적 요인이다. 안저스(ANZUS)동맹이 파기된 것도 바로 미국이 뉴질랜드에 대해 핵우산을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북한의 비핵지대화 주장은 궁극적으로는 한·미동맹을 파기하라는 요구로 해석할 수 있다. 만약 한·미동맹의 해체까지 가지는 않는다 해도 한반도 비핵지대 주장이 채택되면 그 검증제도를 만드는 것이 대단히 복잡해서 우선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결국 비핵지대화 주장은 북핵문제에 대한 초점을 흐리게 하는 물타기작전이자 지연작전의 함정이 될 수도 있다.1990년대 초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 때에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채택되지 않았던 적이 있다. 비핵지대화 주장 이외에도 미국이 제기한 북한의 인권문제나 북한이 주장한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의 무조건 철회 등 앞으로 회담의 순항을 방해할 악재들은 수두룩하다. 그래서 각국의 입장을 하나의 바구니에 담는 이른바 ‘말 대 말’의 합의를 이루어내는 일조차 지금으로서는 대단히 험난한 여정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아직은 회담의 장래에 대해 희망을 가져야 한다. 지금부터 회담의 장래를 비관하고 다른 대안을 추구할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번 회담마저 성과없이 끝나게 되면 그 뒤에 다가올 결과는 너무나 참담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려 할 것이고 북한은 북한대로 벼랑 끝으로 달려갈 것이다. 결국 한반도에는 다시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전쟁의 먹구름이 있어야 해 뜨는 밝은 날이 온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공허한 얘기일 뿐이다. 휼륭한 협상가에게는 적어도 두가지 능력이 요구된다고 한다. 첫째가 악재를 호재로 만드는 능력이고, 둘째가 인내심과 낙관적 사고이다.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의 말처럼 다른 것은 미루어 두고 같은 것을 먼저 찾아내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실용적 태도를 갖고 한술 한술 조금씩 먹다 보면 언젠가는 배가 불러질 수도(飯一口一口地吃) 있는 일이다. 아무리 시간이 걸리고 악재들이 수두룩하다 해도 지금으로서는 다른 길이 없다. 정종욱 아주대 교수·전 주중대사
  • 학교불량서클 4가지 유형

    학교불량서클 4가지 유형

    ‘친구형, 선·후배 위계형, 성인 연계형….’ 학교폭력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는 학교 불량서클의 유형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최근 몇 달 동안 실시한 현장 방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구분한 것이다. 지난 봄 학교폭력이 사회 문제로 번지면서 실시한 전면 조사다. 조사 대상은 생활지도 담당교사 800명과 학교폭력 경험 학생 800명 등 모두 1600명으로, 전문가들이 직접 면담조사했다. 교육부가 분류한 학교 폭력서클의 유형은 크게 4가지.‘친구형’은 ‘초보적인’ 수준이다. 친한 친구끼리 어울려 다니며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등 비교적 사소한 일탈행위를 하는 유형이다.‘선·후배 위계형’은 ‘친구형’이 한 단계 발달된 형태다. 활동은 ‘친구형’과 비슷하지만 가입·탈퇴의 절차가 있는 점이 다르다.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선배의 지정을 받아 가입하지만 탈퇴하려면 구타를 당하는 등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학교·지역 연계형’은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함께 활동하는 형태다.‘흑장미’‘TNT’ 등 서클 이름을 사용하고, 학교나 지역간 서클끼리 세력 경쟁이 대단하다. 이들은 서로 연합하거나 인터넷을 이용해 전국적으로 교류하기도 한다. 지난 2월 ‘일락’(일일락카페)을 여는 등 집단으로 활동하는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던 ‘일진회’도 이에 해당한다.‘성인 연계형’은 활동 범위가 성인으로 확대된 형태다. 어른 폭력조직원과 함께 어울리며 고급 술집을 다니고, 어른들의 하수인 역할을 한다. 한편 교육부가 이와는 별도로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 전국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450개교 1만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14.4%가 ‘(현재 다니고 있는)학교에 불량서클이 있다.’고 답했다. 피해를 당했을때 도움을 요청하는 대상으로는 부모가 32.8%, 친구나 선배 26.7% 등이었지만 선생님은 25.1%에 불과했다.26.5%는 아예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반면 불량서클을 없애기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하는 집단으로는 선생님이 29.9%로 가장 많았다. 선생님이나 학부모가 관심을 갖고 피해 학생을 도와줘야 한다는 응답도 42.9%로 나타났다. 학생들이 교사들의 관심을 가장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로 교사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교육부는 불량서클의 유형이 친구형에서 성인연계형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고 판단, 공청회 등을 거쳐 다음달 안에 불량서클 해체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김영윤 학교정책과장은 “불량서클에 대한 성공적인 지도사례를 조사한 결과 전문가 상담이나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 담임교사의 관심과 개별지도가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어제는 한 길 오늘은 딴 길] (2)유시민 vs 심재철

    [어제는 한 길 오늘은 딴 길] (2)유시민 vs 심재철

    “역사는 과거를 보는 현재의 거울이다.”. 폴란드의 저명한 철학자 아담 샤프의 말이다. 이에 따르면 똑같은 과거의 사건이지만 ‘현재의 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이는 개인사에도 적용된다.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인 유시민 의원과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한때 공유했던 학생운동이라는 ‘한길’에 대한 평가도 두 사람이 비춰 보는 ‘현재의 창’에 따라 정반대로 엇갈릴 수도 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다리는 서슬퍼런 군부 독재시절인 78년 서울대 언더서클 ‘농촌법학회’(농법)였다. 당시 2학년이던 심 의원은 유 의원에 대해 “신입생 가운데 도드라졌다.”며 “토론을 하다 보면 논리가 명쾌하고 대화 기술도 뛰어나서 2학기에 서클 핵심멤버로 자리잡았다.”고 기억한다. ‘농법’에서 당시 학생운동의 통과의례였던 치열한 학습과 농촌활동(강원도 문막면) 등을 거쳤다. 이를 바탕으로 다진 사회변혁에 대한 열정을 학생운동에 투사했다. 그러다 80년 심 의원은 학생회 회장, 유 의원은 대의원회 의장을 맡으며 학도호국단체제를 해체하고 학생회를 부활시켰다. 두 사람은 당시의 ‘안개 정국´에서 반독재를 모토로 학생운동에 전념하다 80년 ‘서울의 봄´을 맞았고 10만여 학생의 집회를 이끌었다. 이른바 ‘서울역 회군’의 주역이었다. 유 의원은 ‘한길’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했다.“그저 같은 시기 같은 대학에 다녔다는 동일한 상황에서 같은 방식으로 고민하고 행동한 거죠.” 거듭 물었더니 “현재의 모습에 대한 실망 때문에 ‘아름다운 시절’ 기억의 편린을 일그러뜨리고 싶지 않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생물학적으로는 같은 심재철 선배이지만 사회학적으로는 다른 ‘심재철’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의원에게 심 의원은 ‘인식론적 단절’의 대상인 셈이다. 그만큼 심 의원의 ‘딴 길’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하다. 두 사람이 다른 길로 접어드는 계기의 하나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보인다. 당시 사건 관련자들이 모두 군 법정에서 군 검찰의 고문에 자백이라고 진술했지만 심 의원만은 자백 내용을 인정했다. 유 의원은 심 의원에게 “왜 그렇게 진술했냐? 관련자들에게 빌어라.”라고 말했다고 회고한다. 이후의 행보는 확연하게 달라진다. 심 의원은 MBC 기자로 활동하다가 1995년 신한국당(한나라당)에 입당,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선된다. 입당 전 독일에 유학하던 유 의원에게 자문하자 유 의원이 “왜 그런 당에 가려느냐?”며 말렸다고 한다. 한편 유 의원은 복학 뒤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연루, 옥살이를 한 뒤 88년 이해찬(현 국무총리) 의원의 보좌관 생활을 하다가 독일로 유학을 갔다. 보좌관 시절 창작과비평사에 중편소설 ‘달’을 발표하고 ‘거꾸로 읽는 세계사´ 등 자신의 세계관을 담은 책들을 출간했다. 유학을 다녀온 뒤 방송 토론프로그램 사회자 등으로 활동하다 개혁당 창당을 주도하며 16대 보궐선거에서 승리해 국회로 들어갔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고비에서 두 사람은 다른 길을 택했다. 현재 두 사람이 서로의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판이하다. 심 의원은 유 의원을 상대적으로 넉넉한 눈길로 바라본다.“뻔히 아는 입장이라 정치적 관점의 차이에 대해서 반박하고 싶지 않다. 다만 유 의원은 늘 남보다 한 걸음 더 내딛고 있다. 그의 생각이 옳고 주장에 공감도 하지만 정치판에서 아우르고 가려면 개량주의적 접근이 어쩔 수 없기에 지금보다 톤을 낮추고 반걸음만 앞서 갔으면 좋겠다.” 반면 유 의원이 심 의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을 보는 심정은 착잡하고 시쳇말로 꿀꿀하다. 여야 국회의원이 질적으로 다를 수는 없겠지만 왜 그렇게 사는지, 저렇게까지 살아야 되는지 싶다. 그래서 생의 아름다운 시절 가졌던 ‘심재철’의 모습과 지금 그의 모습은 내 뇌리에 단절돼 남아 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하프타임] 고교배구 동명고 18년만에 우승

    하종화 감독이 이끄는 진주 동명고가 26일 경남 남해체육관에서 벌어진 대한배구협회장컵 중고배구대회 남고부 결승에서 세터 김광국의 과감한 토스워크와 좌우쌍포 김동린 이지성의 맹활약에 힘입어 전통의 강호 경북사대부고를 3-0으로 완파하고 18년만에 전국대회 정상에 올랐다.
  • 北 “핵보유국 인정을” 美 “모든핵 폐기해야”

    |베이징 김수정 오일만특파원|북한과 미국은 26일 오후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4차 6자회담 두번째 양자 협의를 가졌다. 오후 3시부터 장장 3시간에 걸친 긴 협의였다. 양측은 앞서 열린 개막식 인사말에서 총론적으론 적극적·건설적인 자세를 보였으나 실제 협상단계에 들어서 팽팽한 대립각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27일 오전 9시 개막되는 전체회의 기조연설을 통해서도 초반 기싸움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측은 이날 협의에서 지난해 6월 미측이 제안한 안에 대해 거부 입장을 밝히면서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으며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 미측과 동시에 군축회담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핵보유국인 만큼 ‘동결’ 대 ‘보상’ 원칙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한내 존재한다는 미군의 핵시설도 제거돼야 하며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미측 역시 남한에는 미국의 핵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고농축 우라늄(HEU)프로그램이나 플루토늄 핵프로그램 등 모든 관련 프로그램이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핵폐기 결단을 내린 뒤 에너지 지원과 대북 안전보장을 논의할 수 있다는 3차 회담 때의 입장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공통점보다 이견이 두드러진 하루였다.”면서 “이는 시작으로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만큼 양측이 신축성을 발휘해 접점을 찾아갈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앞서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팡페이위엔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조선반도에서 핵전쟁의 위협을 없애고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당사자들의 확고한 정치적 의지와 전략적 결단이 요구된다.”면서 “우리 대표단은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확언하는 바”라고 밝혔다. 북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미국을 비록한 여러 대표단들도 그런 준비가 돼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미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도 “북한측이 핵프로그램을 영구히(Permanently), 완전하게(Fully), 검증가능하게(Verifiably)폐기하겠다고 결심하면 미국을 포함한 각측은 ‘말 대 말’,‘행동 대 행동’원칙에 따른 상응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하고 “우리는 북한의 안전 우려 및 에너지문제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crystal@seoul.co.kr
  • [X파일 파문] X파일 수사 대상은 누구

    검찰이 안기부 X파일 사건을 공안2부에 배당한 것은 불법 도청한 테이프와 녹취록의 유포 및 보도 경위에 수사 초점을 모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불법 수집증거의 부담이 큰 도청 내용에 대한 수사보다는 우선 공소시효 등이 남아 있는 유포 및 보도 경위 등에 수사력을 모으겠다는 뜻이다. 중점 수사 대상이자 옛 안기부의 특수도청팀인 ‘미림팀’의 전 팀장인 공운영(58)씨가 26일 자술서 형태로 유출 및 보도 경위 등을 밝혀 수사는 급물살을 탈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1994년부터 미림팀이 해체되는 98년까지 팀장을 맡았던 공씨는 98년 직권면직을 당하자 미림팀이 도청한 테이프 100∼200여개를 몰래 들고 나왔다. 이 가운데 이번에 공개된 테이프 등을 재미교포 박모씨에게 건넸고, 박씨는 99년쯤 삼성측에 6억원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에게도 녹취록을 건넸다고 밝혔다. 삼성의 제보로 국정원은 공씨가 갖고 있던 테이프들을 수거했지만 모두 회수되지 않았고 지난해 말∼올해 초 MBC측에 건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검찰 수사는 공씨와 A씨, 박씨, 그리고 전 안기부 직원 김기삼(41·미국 거주)씨에게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공씨와 A씨·김씨 등에 대해 유포 순간부터 7년의 공소시효가 시작되는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의 도청내용 누설금지 조항 위반에 따른 처벌과 역시 공소시효가 7년인 국정원직원법의 비밀엄수 조항 위반죄 등을 적용할 공산이 크다. 아울러 도청 테이프로 삼성에 돈을 요구한 부분은 공소시효가 7년인 공갈죄 또는 공갈미수죄도 성립될 수 있다. 안기부의 불법 도청 자체도 자연스럽게 규명될 전망이다. 불법 도청은 공소시효 7년이 지나 처벌은 불가능하지만 유포 경위를 조사하다 보면 도청 내역 등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유포 부분에 수사초점을 맞추는 것은 내용에 대한 수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문과 불법 도청 등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된 증거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독수독과(毒樹毒果)’ 이론에 따라 불법 도청 내용을 수사증거로 활용할 수는 없다. 따라서 수사의 성패는 대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혐의를 부인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검찰이 과연 다른 증거를 찾아내 혐의를 입증하느냐에 달려 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비운의 숭례문’ 어제와 오늘

    ‘비운의 숭례문’ 어제와 오늘

    한양 도성 축조공사가 한창이던 1390년대 중반. 공사 현장시찰에 나선 태조 이성계는 흥인문(동대문) 축조 현장에서 따르던 신하들에게 이렇게 일렀다.“이곳은 강원도 중원과 동북면으로 통하는 요로인데, 방비가 허술해서야 되겠는가. 중국의 예를 본받아 옹성을 쌓도록 하라.” 서울 4대문 성곽이 생긴 배경을 엿볼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국보 제1호 숭례문. 우리가 흔히 남대문으로 아는 이 문루건물은 조선왕조의 허망한 몰락이 갖는 비운의 상징성을 아직도 고스란히 안고 있다. 고층 빌딩에 에워싸인 서울 도심지 남대문로 4가. 휘하에 거느릴 한 치의 성곽도 없이 마치 버려진 듯 서있는 국보 1호 숭례문의 몰골은 우리 문화재, 더 넓게는 역사와 문화를 보는 우리의 닫힌 시선과 몰지각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도 ‘비운’의 연장선상에 있다. 옛 성곽건축의 특성상 중앙에 홍예문을 낸 하부 석축구조에 상부는 다포양식의 목구조를 한 이 건축물은 1세기가 넘도록 계속된 차량 진동과 매연 등 공해물질에 고스란히 노출돼 하루가 다르게 퇴락을 거듭하고 있다. 문화재청의 조사 결과 석재는 심각하게 산화되어 있으며, 목재와 단청도 본래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났다. ●일제가 의도한 숭례문의 비애 이 숭례문의 비운은 일제의 침탈과 궤를 같이 한다. 을사늑약 3년 뒤인 1908년(순종 2년) 일제는 전차 통행로를 확보한다며 이곳의 성곽을 모두 헐어냈다. 도시계획의 개념조차 없었던 당시에 숭례문을 보호할 이렇다할 조치 하나 없이 조선왕조를 지탱한 성곽은 허망하게 헐려나갔고, 이곳의 석재는 아무나 가져다가 주춧돌이나 담장석으로 썼다. 이보다 앞선 1907년에는 일제의 군대해산령에 맞서 우리 군대와 일본군이 이곳에서 대치, 치열한 시가전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 조사 결과 숭례문 목재부에는 아직까지 당시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당시 일본군이 이 곳에서 우리 군대와 대치하던 중 기관총을 난사했으며, 그 격전으로 상당한 훼손을 입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제에 저걸 없애버려? 이후 상당 기간 숭례문은 ‘비보호’의 몰골로 방치됐다. 건물 중앙 홍예문 안으로는 전차가 지나다녔는데,‘전차가 이곳을 지날 때마다 문루가 심하게 흔들렸다.’는 당시의 기록까지 전하고 있다. 당시 왜인들 사이에서는 “차제에 숭례문을 헐자.”는 주장까지 나왔다.“쓸모없는 문루가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몰골도 흉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후 1934년까지 사실상 방치해 오다 그해 일제는 숭례문을 국보 1호(당시는 보물 1호)로 지정했다. 일본 문화재를 국보로 지정한 것과 달리 우리 문화재는 격을 낮춰 보물로 지정한 것도 그렇지만 숭례문을 국보 1호로 지정한 배경도 한마디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일제는 문화재의 가치 보다는 서울-경기-충청-호남 등 거리에 따라 문화재에 일련번호를 매겼고,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숭례문을 국보 1호로 지정한 것. 일본 도후쿠(東北)대 특별연구원인 오다 히데하루(太田秀春)는 국내 학술지에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카(小西行長) 등 왜군이 이 문을 지나 한양에 입성한 사실을 기념해 일제가 숭례문을 국보 1호로 지정했다.’는 요지의 논문을 게재하기도 했으나 그 진위는 가릴 길이 없다. ●이윽고 논란이 일다 이런 엉터리 지정은 두고두고 ‘국보 1호’의 정당성 논란을 빚는 근거가 됐다. 논란이 일자 지난 96년 문화재청(당시 문광부 소속 문화재관리국)은 ‘일제지정문화재 재평가위원회’를 구성,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의 명칭과 등급의 적정성을 심사하기도 했으나 숭례문에 대해서는 ‘상징성이 있으니 그대로 두자.’고 결론을 내렸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일련의 논의 과정 어디에서도 숭례문을 비롯한 4대문의 위용을 되살릴 성곽 복원이 거론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당시에도 문제제기는 있었다. 일부에서는 ‘국보1호의 상징성을 감안, 성곽도 없는 남대문보다는 한글 등 다른 문화재로 바꾸자.’고 제안했으나 ‘문화재에 애당초 서열은 없다.’는 논리에 밀려 사그라지고 말았다. 지난 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돼 정부가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나설 때에도 일제의 의도를 배제하고 자주적인 문화재관을 확인하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성곽 복원, 부끄럽지만 당장은…” 논란은 최근 서울시가 이 일대 교통체계를 바꿔 주변을 정비하면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서울시의 시도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국보 1호를 언제까지 이벤트의 대상으로만 봐야 하느냐?”며 “이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성곽을 복원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 물론 정부가 숭례문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숭례문 관리와 주변 성곽의 복원을 전제로 한 실측작업이 지난해 시작돼 현재 진행 중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주변 교통여건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이라면서도 “국보 1호라면서 정확한 도면 하나 갖지 못한 사실을 무척 부끄럽게 여기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는 반드시 복원해야 할 문화재 사업의 중요 과제”라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실측조사의 결과를 토대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겠지만, 주변의 개발 실태나 지반 여건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라며 “정부도 추후 성곽 복원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당장은 이보다 기존 건축물 보존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현장 조사 결과 숭례문은 지반 부동침하와 차량 진동, 매연 등의 영향으로 하부 석구조가 뒤틀리고 있으며 북쪽에서는 석재가 뭉터기로 떨어져 나가거나 부식이 심해 부서질 지경이다. 지난 88년 서울올림픽 때 새로 단장한 단청도 검게 그을려 국보 1호의 위신을 형편없이 구기고 있다. 현존하는 서울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이자 국가 지정문화재의 얼굴 격인 숭례문. 그 역사성과 상징성에 견줘 볼 때 지금의 참담한 몰골은 우리의 문화적 뿌리의식과 정체성마저 혼란스럽게 뒤흔들기에 족하다. 성곽을 거느리지 못한 성문의 비애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 것인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국보1호’ 숭례문 略史 숭례문은 조선 왕성인 한양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남쪽에 있다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있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398년(태조 7년)에 지었으며 지금 건물의 원형은 1447년(세종 29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지난 61∼63년 대대적인 해체·수리공사가 있었으며, 이 때 1479년(성종 10년)에도 크게 보수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숭례문은 돌을 쌓은 석축 중앙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만들고,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 크기로 지은 문루 건물이다. 포작은 ‘외삼출목칠포작 내이출목오포작(外三出目七包作 內二出目五包作)’ 형식을 가진 다포식이면서도 살미와 첨차의 구조가 강건하고 견실해 조선 초기의 특성을 잘 반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석축기단 윗면에는 전돌로 쌓은 여장(女墻)을 돌렸으며, 동서 양쪽에 협문을 두어 계단으로 오르내리게 했다. 기단 양측은 원래 성벽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1908년(순종 2년) 일제가 전차를 도입하면서 길을 내기 위해 헐어내면서 차츰 성곽이 멸실되고 말았다. 건물 내부의 아래층 바닥은 중앙 통로 부분을 제외하고는 흙바닥이며 위층은 널마루를 깔았다. 기둥은 굵직한 두리기둥이며, 우진각 겹처마 지붕의 사래 끝에는 토수(吐首)를 씌우고, 추녀마루에 잡상(雜像)과 용두를, 용마루 양끝에는 취두(鷲頭)를 올려 놓았다. ‘崇禮門’이라는 현판은 양녕대군이 썼다고 전한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美최대 산별노조연맹 와해위기

    미국 노동운동이 내리막길 속에 최대 노동단체인 산별노조 총연맹(AFL-CIO)의 내분으로 커다란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었다. AFL-CIO의 구성원인 일부 핵심 노조들이 현 위원장 퇴진과 개혁 등을 요구하며 이번주 열리는 연례총회 불참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노조들은 “과감한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탈퇴할 것”을 선언, 해체 위기마저 맞고 있다. AP통신은 25일 서비스노조 국제연맹(SEIU), 전미 트럭운전자조합(팀스터), 식품상업 연합노조(UFCW), 호텔·직물연합노조 등 4개 서비스·유통 노조가 ‘승리를 위한 개혁’이란 별도 조직을 구성하고 연례총회 불참을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들 4개 노조는 AFL-CIO 조합원의 3분의1가량을 차지한다.AFL-CIO에는 56개 노조,1300만명이 참가해 있다. 내분은 ‘신경제’를 이끌고 있는 이들 핵심 노조가 존 스위니 현 위원장의 사퇴와 개혁을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줄어드는 조합원과 기금, 조합과 조합원의 위상 추락 속에 현 지도부에 반감을 가진 세력들이 새로운 방향성 설정과 지도자를 요구하면서 내분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95년부터 스위니 위원장 취임 당시 6100만달러이던 조합기금은 절반 수준인 3100만달러로 급감했다. 현재 미국 노동자 가운데 조합원 비율은 12.5%. 이 숫자도 하락세로 노동계는 10%선의 붕괴마저 우려하고 있다.민간기업의 조합원 비율은 8%에도 못미친다. 지난 50년대 미국 노동자 3명 가운데 1명 꼴이던 조합원은 제조업의 해외 이전, 자동화, 정보기술(IT)산업 비중 증가 등 산업구조 변화 등으로 급감하면서 제조업 쪽에 기반을 둬 온 AFL-CIO와 미국의 노동운동의 쇠퇴를 부추기고 있다. 보수층에선 AFL-CIO의 분열이 노동운동의 다양화라고 환영하고 있지만 진보진영에선 노동운동이 기업과 정치인들에게 더욱 휘둘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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