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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기 씨름연맹 총재 사퇴

    한국씨름연맹 김재기 총재가 사퇴했다. 씨름연맹은 김 총재가 지난 15일 열린 이사회에서 사퇴했고, 이홍기 사무총장이 직무대행을 맡게 됐다고 22일 밝혔다.1994년말부터 1997년까지 연맹 8,9대 총재를 맡았던 김 총재는 2004년 6월부터 연맹을 다시 이끌었으나 잇단 팀 해체로 어려움을 겪었고 최근에는 민속씨름대회를 함께 열던 대한씨름협회와 결별, 대회를 열지 못하는 어려움에 빠졌다. 연맹은 조만간 창단할 팀을 구했으나 기존 현대삼호중공업을 포함해 2팀으로는 대회 개최가 불가능해 추가로 창단할 팀을 찾고 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대우그룹 해체 불명예 죄송” 김우중 前회장 심경 피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회한(悔恨)의 심경’을 피력했다. 대우 출범 40주년을 맞아 22일 저녁 서울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전 대우그룹 임원들의 모임에서다. 형집행 정지 상태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김 전 회장을 대신해 장병주 전 ㈜대우 사장이 ‘대우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김 전 회장은 편지에서 그룹 해체에 대한 안타까움과 대우 임·직원들에 대한 미안함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는 “여러분과 자리를 함께 하고픈 마음이야 그지 없지만 그럴 수 없는 지금의 처지가 안타깝고 미안할 따름이다.”라고 서두를 꺼냈다. 김 전 회장은 “아무런 보답도 해드리지 못하고 미안한 심정만을 전해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면서 “대우의 영광을 지속하지 못하고 여러분께 불명예를 안겨드려 마음 속 깊이 죄송하다.”고 사죄의 뜻을 전했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오늘의 눈] 석가탑 중수기 공개하라/서동철 문화전문기자

    1966년 석가탑을 해체·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佛國寺无垢淨光塔重修記)가 갈수록 엉뚱한 추측을 양산하고 있다. 한두 쪽의 중수기가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비정상적으로 유출되면서 상상을 넘어서는 해석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유출된 중수기에 나오는 ‘탑파분퇴(塔坡分頹)’는 탑에 대한 초보적인 상식만 있다면 ‘부재를 하나씩 들어내 해체했다.’는 내용으로 풀이할 것이다. 그럼에도 ‘탑을 부수고 나눠서 무너뜨렸다.’는 해석까지 나왔다.‘석가탑이 고려시대에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비약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탑은 시간이 흐르면 일부 부재에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고 못 쓰게 된 부재를 교체하는 것을 포함하는 중수(重修)는 불가피하다. 석가탑이 고려시대에 중수된 것을 두고 다시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해석한다면 해체·보수가 이뤄진 1966년에도 다시 만들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석가탑과 다보탑, 감은사터 동·서탑은 지난해부터 단계적인 해체·보수가 이뤄지고 있다. 이 신라 석탑이 모두 21세기 작품이 된다는 뜻인가. 중수기를 공개하지 않는 중앙박물관의 고뇌를 모르지 않는다. 통설을 뒤엎는 내용이 들어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중수기에서 한국미술사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메가톤급 정보를 확인했기 때문에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고 수군거리고 있다. 중수기를 내돌린 것이 얼마나 철없는 짓이었는지, 박물관 내부 당사자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럴수록 중앙박물관은 중수기를 전면 공개해야 한다. 보존처리가 완벽하게 이뤄졌다면 내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미술사에서 다소 혼란스럽던 대목이 명쾌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미술사가 꼭 ‘후퇴’만 하라는 법도 없다. 다만 앞으로의 연구가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권위있는 ‘국립중앙박물관판 해석’을 먼저 내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당연히, 애정을 갖고 중수기를 포함한 묵서지편을 올바르게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모든 평범한 삶은 특별하다

    모든 평범한 삶은 특별하다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려 애를 쓸수록 문은 굳게 닫힙니다. 돌아서서 일에 파묻혔더니 문득 세상 밖에 나와 있습니다.” 심재명 엠케이픽처스 영화제작부문 총괄 사장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공병호: 국문학을 전공하셨는데, 영화 일을 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심재명: 중학교 때부터 영화를 꿈꿨어요. 당시만 해도 청소년들에게 롤 모델이 될 만한 영화제작자가 드물었고, 또 한국영화라면 왠지 극장에 가서 보기 부끄러웠던 때였지만, 그래도 막연히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선망이 있었어요. 아무 이유 없이 영화 보는 게 좋았던 거죠.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감상을 끼적이거나 감독의 이름을 외운다거나 하는, 요즘 말로 하면 마니아 단계에까지 이르렀어요. 그렇게 그냥 좋아하다 보니까 꿈이 이뤄지더라고요. 혼자 있기 좋아하는 말수 적은 소녀, 영화사 사장 되다 공병호: 말씀은 쉽게 하셔도 그렇게 간단치는 않았을 테고, 과정을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시죠. 심재명: 대학을 졸업하고 두 군데 영화사에서 4년 반 정도 기획과 홍보 일을 했습니다. 이후 잠시 프리랜서 생활을 하다가 나이 서른하나에 창업을 했죠. 공병호: 요즘 표현으로는 ‘벤처’네요. 창업 이후에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재능을 발견하셨나요. 심재명: 아니, 그런 거창한 표현보다는…. 저는 직장생활이 참 힘들었어요. 회사에 동년배는 드물고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았는데 그분들과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못했죠. 하도 신경을 써서 나중에는 위궤양에 시달리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독립을 하니까 싹 낫더라고요. 그때 아, 나는 생리적으로 조직에 맞지 않구나, 느꼈죠. 공병호: 자신의 길을 때맞춰 잘 수정해 오셨네요. 그나저나 그토록 좋아하는 영화 일을 하신 지 근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간의 시간들을 돌아보신다면…. 심재명: 모험정신이 넘치는 도전적 삶을 살았다, 뭐 이런 모범답안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으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수세적守勢的으로 살아요. 만약 이십대에 몸을 담았던 회사가 제게 더 많은 동기 부여를 했더라면 계속 그곳을 다녔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다행히 제 곁에 결단력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저는 영화사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구체화시키지 못했는데, 이른바 운동권 영화를 만드는 운동권 출신의 독립영화 감독이었던 제 남편(이은, 현 ‘엠케이픽처스’ 대표)이 저를 이끌었어요. 그렇게 1995년에 만든 ‘명필름’을 10년가량 운영하다가 주식회사 상장을 계획하게 되었고, 제작만으로는 너무 리스크가 크다,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배급과 투자를 겸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난 2004년 <강제규필름>과 합쳐 <엠케이픽처스>라는 상장사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10년도 안 돼 사라진 ‘21세기를 책임질 영화인’ 공병호: 일반인들은 영화 한 편의 제작 규모가 얼마나 될지 궁금해 합니다. 심재명: 편당 평균 제작 비용 30억, 마케팅 비용 20억 등 도합 50억 원 정도의 자금이 투입됩니다. 위험 부담이 크지만 그만큼 결실도 클 수 있으니 말 그대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high risk, high return’이죠. 공병호: 50억 프로젝트라, 중소기업 규모의 영화사로서는 말 그대로 엄청난 리스크네요. 심재명: 작년에 제작된 한국 영화가 총 108편인데, 그중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영화는 20편에 불과합니다. 이런 수치는 할리우드도 마찬가지라고 해요. 공병호: 올해는 몇 편 정도 제작을 하실 계획인가요. 심재명: 저희 회사 브랜드로 여섯 편쯤. 공병호: 작품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통상 제작기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심재명: 의외로 길어요. 아이템 발굴에서 극장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만나는 시점까지의 기간이 평균 2년쯤 되죠. 예를 들면 강제규 감독이 만든 <쉬리> 같은 영화는 시나리오 작업까지 포함해서 4년 이상이 걸린 거예요. 공병호: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입니다. 그 사이 소비자의 취향이 달라지지 않나요? 심재명: 영화는 정서적인 장르인 데다 더욱이 작품 수가 한정되어서 어느 정도의 여유는 있어요.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108편인데, 그게 너무 많다는 거예요. 전문가들은 한국의 영화산업 규모에서 인구 대비 적정 편수를 7, 80편 정도로 보고 있어요. 한 편 만들면 주목받기 쉬운 거죠. 최근의 통계를 참조하면 한국 영화 1년 관객이 1억 7천만 명 정도 된답니다.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가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까 앞으로 2억 명까지는 갈 것 같고, 치솟는 제작, 마케팅 비용만 합리적으로 조정하면 우리 영화산업은 낙관적이지 않나 생각해요. 물론 해외 시장에서 더 많은 성과를 올려야겠지만…. 공병호: 집에서 비디오, DVD 등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심재명: 그것을 이른바 ‘2차 윈도우’라고 부르는데요. 이웃 일본은 그 시장이 굉장히 커요. 그러나 우리는 요즘 와이드 배급이라고 해서 영화 한 편이 개봉 첫날 수백 개의 스크린에 동시에 걸리는 까닭에 상영 기간의 호흡이 굉장히 짧아졌어요. 예전에 <공동경비구역 JSA>가 6개월 만에 6백만 명이 들었는데 지금은 3, 4개월 만에 천만 명이 들거든요. <괴물> 같은 영화를 전 국민이 알고, 보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는 거지요. 공병호: 우리는 뭐든 참 급하군요. 심재명: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2차, 3차적 방법으로 보지를 않아요. 그렇게 비디오나 DVD 시장이 완전히 죽었고, 방송이나 케이블 판권도 기대만큼 금액이 상승하지 않으니까 개봉 첫 주에 승부하지 못하면 큰 손실을 보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어요. 이런 것들이 한국영화산업의 현안懸案이고요, 한류의 열기가 식어가면서 해외 시장에서 생각했던 것만큼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도 심각한 타격이지요…. 인간이 되기 전에 성공을 논하지 마라 공병호: 그간 영화계에서 많은 사람들의 부침을 지켜보셨을 겁니다. 저도 되돌아보면 재기발랄한 사람들이 의외로 중도에 넘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이는 왜 쓰러지는 걸까,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살피는 것이지요. 심 대표께서 목격한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어떤 것입니까? 심재명: 성공하는 분들은 무엇보다도 ‘인간’ 자체가 좋아요. 반대로,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눈앞의 이익을 쫓아 판단이 흐려지는 분들은 길게 가지 못하죠. 며칠 전 방을 정리하다가 1999년에 나온 한 영화 잡지를 다시 읽게 된 일이 있습니다. 그 안에 ‘21세기를 책임질 영화인 50인’이라는 설문조사가 실렸는데, 오늘 시점에서 그 면면을 살펴보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분들이 많더라고요. 채 10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공병호: 퇴보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 일이 그렇게 힘이 듭니다. 자, 그렇다면 좀 더 실질적으로, 과연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영화의 ‘키 석세스 팩트 Key Success Fact (성공요인)’는 무엇일까요. 심재명: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어요. 그중 첫 번째는 시나리오 즉, ‘이야기’입니다. 공병호: 결국은 컨텐츠라는 말씀이시군요. ‘이야기’를 판단하는 기준은. 심재명: 가장 먼저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인가’를 스스로 묻습니다. 그다음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할 것인가’를, 마지막으로는 ‘돈이 될 수 있는가’를 따져보죠. 공병호: 와, 제가 책을 쓰기 전에 고려하는 관점들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건 독자 여러분께 밑줄을 쳐서 보여줘야 합니다! 심재명: 두 번째 요인은 ‘탤런트talent’예요. 팀워크가 중요하지만, 그래도 우선 되는 것은 재능입니다. 공병호: 탤런트를 우리는 재능이라고 하지만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인재라는 뜻도 있어요. 그래서 인재 전쟁을 ‘워 포 탤런트War for Talent’라고 하죠. 그만큼 사람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갈수록 흥미진진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심재명: 영화는 굉장히 과학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터무니없이 비과학적이기도 해요. 그래서 ‘타이밍’이 중요해요.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제때를 찾아야 하지요. 공병호: 아주 좋습니다. 제대로 된 인터뷰라면, 뭔가 ‘프로페셔널’한 것을 끄집어내서 소개해줘야 해요. 심재명이라는 사람이 영화라는 업業을 저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테마가 있어야 해요. 오늘은 이 세 가지만 전해드려도 되는 거예요! ’해피엔딩’이 행복할 수 없는 까닭 공병호: 영화제작자에게 이런 질문을 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영화, 많이 보시지요? 심재명: 사나흘에 한 편, 1년에 100편 정도 될까요. 공병호: 좋아하는 장르는? 심재명: 결혼하기 전에는 굉장히 잔혹한 영화, 개성 강한 영화를 좋아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따뜻한 영화가 좋아지더라고요. 요즘 들어서는 구분 않고 다양한 영화를 봅니다. 이 분야의 종사자로서 잘 만든 영화는 칭찬하고, 그렇지 못한 영화는 한 쪽으로 골라내고…. 공병호: 조폭 스타일의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용감하지만 그건 또 질색이라서 항상 불만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크게 비난하지 못하는 것이 고객의 니즈needs 가 있으니까 그런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겠죠. 심재명: 저 역시 그런 영화를 싫어해요. 하지만 영화라는 것이 어둠 속에서 자기 혼자 스크린을 보는 거고, 그 안에는 보통 사람들의 일탈과 욕망을 담아야 하니까 불량식품 같은 요소도 들어 있어야죠. 폭력, 섹스 이런 것들은 동전의 양면같이 영화의 또 하나의 특징이에요. 공병호: 듣고 보니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드문 것 같습니다. 그것도 결국은 제작자의 취향을 따라가는 것이겠지요. 심재명: 사실이에요. 감독도 그렇지만 제작자들도 나름의 성향이 있지요. 저희는 남성 취향의 컨텐츠는 거의 없고요. 그보다는 발을 땅에 디딘 현실적 내용에 관심이 많다고 할 수 있어요. 공병호: 말초적인 자극에 지친 관객들을 위해 좋은 영화 한 편 추천해주세요. 심재명: 최근에 본 〈리틀 미스 썬샤인Little Miss Sunshine〉(2006)이 괜찮을 듯하네요. 미국에서 만든 아담한 가족영화인데 소외되고 뒤처진 인생을 따뜻한 시선으로 품어 안는 작품이에요. 공병호: ‘가족’이라, 그러고 보니 심 대표께서 요즘 가족영화에 대한 사업적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심재명: 극장들이 이제는 주거지역까지 파고들 만큼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잖아요. 영화관에 들르기가 그만큼 쉬워진 거죠. 가족 단위 관객들은, 저도 딸을 키우고 있지만, 주로 방학 때 할리우드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이나 교양물을 즐겨 봅니다. 이 점에 착안해서 이제쯤이면 우리 관객들도 우리가 만든 가족영화를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거예요. <안녕 형아>(2005), <아이스케키>(2006) 등이 그런 취지의 작품들인데, 앞의 것은 조금 성공했고 뒤의 것은 조금 실패했죠. 어쨌든 이런 과정에서 한국영화 컨텐츠의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공병호: <조용한 가족> <바람난 가족> <구미호 가족> 같은 연작물도 제작하셨지요. 가족에 대해서 할 말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심재명: 제가 가족주의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가족이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에서 내포하고 있는 특별한 의미를 주목注目하고 있을 뿐이에요. ‘우리’라는 말처럼 ‘가족’도 가끔은 강박으로 작용해서, 누가 무슨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문제의 원인을 ‘가족’에서 찾으려 하잖아요. 그리고 이들 영화는 앞서 말한 온 가족이 함께 보는 가족영화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아요. 저는, 예를 들어 가족을 다뤄도 어설픈 가족주의로 문제를 봉합하려는 태도를 혐오해요. 제가 얌전하게 보이고 또 실제로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기존의 체제와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반발심이 커요. 그런 의미에서 이들 작품들은 오히려 가족의 해체 같은 문제를 다루면서, 기존의 관념을 깨는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 거죠. 영화 같은 삶보다 삶을 꿈꾸는 영화가 좋다 공병호: 스스로는 자기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심재명: 10년 넘게 알고 지내는 분들이 저더러 너무 안 변한다고들 하더군요. 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칭찬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구보다도 시대 흐름에 민감해야 하고 좀 더 적극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할 텐데, 좀 아쉽죠. 삶을 대하는 태도도 비관적이고…. 이 일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매스컴에 오르내리게 되었지만, 그러나 저는 겉으로 드러난 사회적 이미지에 대한 환상이 없어요.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많은 여성 중에는 야심적인 전략가들도 계시죠. 물론 저는 ‘워커홀릭workaholic(일 중독자)이에요. 하지만 그런 분들하고는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어요. 공병호: 일에 파묻히겠다, 세평世評에 관심 두지 않겠다…. 심재명: 저를 힘센 페미니스트로 보는 분들이 있어요. 육아에 대한 책임도 남편과 평등하게 나누어 질 것 같다고 하는데, 그러나 사실은 그와 달라요. 아무리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주말에는 꼭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죠. 공병호: 오늘 답변이 제 예상을 많이 빗나갑니다. 얼핏 생각하면 도전과 변화를 추구하는 적극적 성격을 지니셨을 것 같은데, 의외로 내부지향적 측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얻고 싶은 답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도를 해보지요. 인생의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심재명: 성공해야겠다, 이런 생각 전혀 안 했어요. 얼마 전 딸아이가 앨빈 토플러를 얘기하면서 금융, 경제 이런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얘기하던데…. 이전에 다른 매체에서도 인터뷰를 하면 꼭 성공을 화제로 삼더라고요. ‘성공한 여자’가 어떻고 하는 것들…. 저는 스스로 성공했다는 생각은 한 적 없고요. 굳이 성공이라는 말과 연관을 시키자면 제가 몸을 담고 있는 일에서 발전을 이루는 일이겠지요. 지금도 가끔 제 능력의 한계와 위기의식을 느끼는데, 어느 시점에선가 현명하게 나 자신을 변화시키거나 운신의 폭을 달리하면서 여전히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그것도 또 하나의 성공한 인생이라고 보는 거지요. 공병호: 음, 이 답도 굉장히 소박하네요. 내가 반성을 좀 해야겠어요. 아무튼 심 대표께서 꿈꾸시는 또 다른 방식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심재명: 박사님도 늘 건승하세요. 공병호 어떻게 그렇게 많은, 좋은 글을 쓰십니까.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서 나온 그것들을,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잊어버렸습니다. 배를 타본 사람은 압니다. ‘이물’에 앉아 있으면 두 갈래로 물살이 갈라져 빠르게 ‘고물’ 쪽으로 달려갑니다. 화살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나간 일에는 아무런 기쁨이 없습니다. 실패하면 사람들로부터 잊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지만, 성공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재능이 있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나는 다작多作을 합니다. 밥 먹고, 글 쓰고, 책을 냅니다. 그것이 나의 일상입니다. 1960년 경남 충무 생. 고려대학교 경제학과(1983), 미국 라이스대학교 박사(1987).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2001~). 저서 <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 <10년 후, 한국> 등. 심재명 재테크요? 문외한이에요. 성격이요? 직관적이고 감성적이랄까, 지레짐작해서 일을 그르친다고 남편에게 늘 주의를 받아요. 화나는 일이요? 어떻게 하면 영화를 잘 만들까 고민하지 않고, 잘 살아남을까만 궁리하는 사람들을 볼때…. 어떻게 화를 내냐고요? 못 내요. 스트레스를 푸는 비법이요? 저는 비법이 없는 게 문제예요. 좌우명이요? 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말자. 성공이요? 그런 걸 꼭 생각해야 하나요? 저 참, 별로지요…. (아, 사람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기에 언어는 너무 가볍다. 침잠沈潛하지 못하고 부유浮游하는 나뭇잎처럼.) 1963년 서울 생. 동덕여대 국문과(1987), (주)명필름 창립(1995), 여성영화인모임 준비위원회 위원(2000), 추계예술대학교 문화산업대학원 겸임교수, (주)엠케이픽처스 이사. <조용한 가족, 1998> <해피엔드, 1998> <공동경비구역 JSA, 2000> <질투는 나의 힘, 2002> <바람난 가족, 2003> <그때 그사람들, 2004>.
  • [문화마당] 코드와 의사소통/코디 최 문화이론가·화가

    언어는 인간의 문화적 현상 중에 대표적인 행동양식이다. 언어는 의사소통을 일으킴으로써 사회의 관계성 속에서 우리들 스스로를 존재하게 만든다. 또한 언어는 일정 행동양식의 의미를 재현하는 것이며, 재현된 의미는 결국에 특정한 코드(code)로 인식되어진다. 이것은 코드와 의사소통, 그리고 의미재현의 관계성을 얘기하는 것이다. 예컨대 1990년대 들어 강남을 배회하는 일부 사람들을 ‘오렌지족’ ‘야타족’ 등으로 표현했는데, 이것은 그들의 행동양식을 의사소통의 관점에서 코드로 재현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사회의 관계속에서 문화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을 하나의 구별된 코드로 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구별된 코드의 형태로서 일정문화를 확고한 위치에 서게끔 하는 것이다. 다른 예로서 70년대에 등장한 ‘기사식당’은 아마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일한 존재일 것이다. 초기에는 아무런 서술구가 붙지 않은 채 ‘기사식당’이라는 문구만을 사용하며 그 존재를 알렸다. 당시에 이 식당들은 노동자층을 대상으로 하며, 실비의 가정식을 제공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즉 이것은 ‘기사식당’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통해 일종의 문화적 코드를 만들어 내고, 노동자층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으로서 그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식당의 새로운 명칭을 시사하는 것 외에도 우리사회 속에서 기사계층의 집단이 형성되었다는 하나의 담론을 문화적 코드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기사식당’이 갖고 있는 기본 코드의 의미는 노동자층을 대상으로 실비의 가정식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지만, 결국 기사계급이라는 하나의 집단의식을 더욱 강력히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화적 코드가 만들어지면 다음 단계는 두가지의 발전과정이 나타난다. 하나는 그 코드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석과 추리를 거치며 새로운 의미로 이동하는 현상이다. 다른 하나는 코드자체의 명칭이 진보하는 것이다. 즉 ‘기사식당’이 갖고 있는 문화적 코드의 초기 의미(노동자층을 위한 실비의 가정식 식당)와 현상(기사계급의 집단의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나라의 사회적 현실 속에 기사를 거느리고 싶어하는 귀족 선호심리, 즉 지배계급과 귀족문화를 선호하는 사회적 풍조가 기사계급을 만들어냈으며, 그 행위로 말미암아 ‘기사식당’이 출현할 수 있다는 발전된 결과로 추론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담론적 해석의 사례를 들기 위해 택시 기사의 경우는 제외시키고 한정적 범위에서 담론적으로 접근해 보았다.) 더불어 ‘기사식당’과 같이 일반적으로 문화의 코드가 정립되면, 그 다음 단계는 코드 스스로 문화적 욕망을 갖게됨에 따라 문화적 권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한곳에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본 코드를 디코딩(decoding: 코드의 해체와 전이)하여 새로운 의미 부여를 시도하면서 이동하게 된다. 예컨대 ‘기사식당’이라는 이름 앞에 ‘팔도 기사식당’ 또는 ‘큰이모 기사식당’과 같은 새로운 이름으로 자기중심의 권위적 추가코드(sub-code)를 부가하여 ‘기사식당’ 이라는 코드보다 ‘팔도’ 또는 ‘큰이모’라는 추가코드를 더욱 부각시키는 것이다. 즉 그 의미의 중심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문화적 행위는 코드의 재현과 전이의 여행을 겪으면서 사회구조와 권력의 관계까지도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문화는 한 곳에 멈춰있을 수 없는 특성을 가졌고 끝없는 담론의 여행을 즐긴다. 우리는 이같은 문화의 코드와 문화적 전이를 날마다 경험하게 되며, 각기 다른 정체성들 사이에서 그 경계를 끊임없이 부수고 재창조한다. 코디 최 문화이론가 화가
  • 고려대, 단위별 합격권 수능점수공개 방침 반나절만에 철회소동

    고려대가 최근 3년간 모집 단위별 합격 안정권 점수를 공개하겠다고 밝힌 지 반나절 만에 철회했다. 고려대 입학관리처 관계자는 16일 “수학능력시험의 안정권 점수를 발표하기로 했던 기존의 방침을 바꿔 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앞서 고려대 박유성 입학처장은 이날 오전 언론에 “이르면 3월 말쯤 합격자 중 상위에서부터 75%에 해당하는 ‘합격 안정권’ 점수를 홈페이지에 공개해 수험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려대 관계자는 철회 배경과 관련해 “학교 입장에서는 학생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대학에 부담이 되고 교육부 정책과도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판단에 홈페이지 공개는 안 하는 걸로 정리했다.”면서도 “평균점수 등 진학지도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개별 고등학교에 제공하겠다는 계획은 여전히 변함없다.”고 말했다. 고려대가 이날 합격자 점수를 발표하겠다고 나서자 교육계 안팎에서는 비난이 쇄도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능 안정권 점수를 공개할지 여부는 대학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지 교육부가 간여할 문제는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점수가 공개되면 대학별 서열화가 심해질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교육계 안팎에서 많다.”고 말했다. 장은숙 참교육학부모회 부회장은 “고려대의 점수 공개에 대해 공교육 파괴를 가속화시키는 행위”라면서 “고려대가 점수 공개 외에도 수능 성적만으로 정시모집 정원의 50%까지 신입생을 뽑기로 하는 등 특목고 학생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정애순 전교조 대변인도 “고려대 점수 공개는 차등 내신제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이는 결국 고교 평준화 정책의 급속한 해체와 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사교육 광풍을 부채질할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고려대의 공개 철회에 대해 실망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영덕 대성학원 평가이사는 “학원에서도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까 배치표를 만들어 제공한 것”이라면서 “학교·학과간 서열화가 이미 고착화된 상황에서 점수 공개를 안 한다고 서열화가 방지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문영 강아연기자 2moon0@seoul.co.kr
  • [시론] 전작권 환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김경수 명지대 국제정치학 교수

    [시론] 전작권 환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김경수 명지대 국제정치학 교수

    한·미가 2012년 4월17일자로 한미연합사(CFC)의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 이양키로 합의한 지 20여일이 됐다. 이로써 그간 논란이 돼 온 ‘주권국가’ 시비가 사라졌다. 하지만 야당 등 우리 사회 일각에선 ‘안보공백’을 이유로 차기 정부가 환수시점을 재협상해야 하다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차제에 전작권 환수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 어떤 과제가 남아 있는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작권 환수는 한마디로 ‘비정상적’인 상태를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는 의미가 있다. 주권국가의 핵심인 군사작전권을 외국인 야전군사령관이 행사하는 비극적 현실은 어떠한 이유와 명분으로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해외주둔미군의 지위를 정하는 SOFA협정을 전세계 85개국과 맺고 있으나 한국처럼 주둔국의 야전군 총사령관까지 맡고 있는 경우는 없다. 이런 ‘비정상’이 초래된 배경에는 한·미연합사(CFC)가 있다. 한·미연합사는 1978년 카터 미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정책과 박정희 대통령의 독자 핵무기 개발계획 무산 등에 따른 한·미간 타협의 산물이다. 그러나 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주권국가의 핵심인 군사작전권을 외국군이 갖는 데 대한 비판이 비등하면서 94년 말 평시작전권이 한국군에 우선 이양됐다. 하지만 전작권은 아직까지 한·미연합사령관이 갖고 있다. 작전통제권을 ‘평시’와 ‘전시’로 나눈 것도 유례가 없다. 문민정부가 선거공약인 작통권 환수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전쟁수행 능력 미비를 이유로 내놓은 궁여지책이다. 당시 리스커시 한·미연합사령관도 “전시와 평시를 분리하면 전쟁을 제대로 준비하기 어렵다.”고 반대했으나 결국 정치적인 선택을 따랐다. 이는 이른바 6개항의 연합권한위임사항(CO DA)을 정해 평시에도 연합훈련, 정보관리, 작전계획작성 등의 주요 군사활동을 CFC사령관의 통제하에 둔 데서도 알 수 있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추가 미군감축 등 ‘안보공백’ 논란은 군사동맹조약의 기능과 성격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다. 원래 군사동맹은 체약국 간에 유사시에 와서 돕는다는 것이지 평시에 군대를 타국에 주둔시켜 방어한다는 개념이 아니다. 또 미국은 우리와 달리 전쟁선포권이 의회에 있고 미군의 해외파병권도 의회가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대한 방위공약이나 미군 감축은 행정협정인 CFC의 설치·해체 교환각서에 의해 구애받는 것이 아니다. 미군 해외파병의 요체는 미국의 국가이익이다. 다행히도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발흥으로 한국이 대북 관계에서 미국을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미국도 한국을 필요로 하게 됐다. 요컨대, 미국이 한국전 당시 30만명의 병력을 파병하고 월남전에 50만명 이상의 병력을 투입했던 것은 국제정치적인 요인이 컸던 것이지 동맹조약이나 파병약속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연합사 해체와 전작권 환수에 따른 보완책은 무엇일까?가장 현실적인 대응책은 유명무실화돼 있는 유엔군사령부(UNC)를 재정비, 강화하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후속 조약인 합의의사록에 한국군을 유엔군사령부의 작전통제 하에 둔다는 규정이 있고 상황에 따라 한·미간에 협의의 여지를 남겨 놓고 있기 때문에 UNC를 나토형 통합군 편제를 참고, 전시 지휘체계를 일원화하는 방안을 강구해 볼 필요가 있다. 김경수 명지대 국제정치학 교수
  • 우리당 의원 10명 ‘당해체’ 요구

    열린우리당의 통합신당 추진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문학진·정봉주 의원 등 10여명이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당 해체를 통한 통합신당 추진’을 요구할 예정이다. 정봉주 의원은 14일 “당 지도부에 통합을 촉구하는 취지”라면서 “탈당하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했다.
  • 美 원조 스텔스기 F-117 퇴역 비행

    지난 1991년 걸프전 당시 ‘컴퓨터 게임’을 연상시키는 21세기 전쟁의 모습을 보여준 F-117 전폭기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별명은 나이트 호크이지만 레이더 망에 잡히지 않는 특징으로 ‘스텔스(stealth)기’로 더 유명하다. 미 공군은 13일(현지시간) 스텔스기의 모(母)기지인 뉴멕시코주 홀러먼 기지에서 6대의 F-117 전폭기가 퇴역식을 마치고 네바다주의 넬리스 공군기지 북쪽 토노파 실험장으로 마지막 비행을 했다고 밝혔다. 지역방송 KDBC는 이날 ‘원조’ 스텔스기 퇴역식에는 스텔스를 비행했던 남녀 비행사와 지역 유지 500여명이 참석했다고 전했다. 참석자들은 공군의 전통대로 비행기 문에 자신들의 이름과 전투기의 노고를 기리는 인사말을 적었다. 네바다의 토노파 실험장은 미군 비밀프로그램에 의해 개발된 최신예 항공기가 실전배치에 앞서 보안을 유지하며 실험 비행을 실시하는 ‘항공기 인큐베이터’이자 비밀 프로그램 항공기의 ‘장례식장’. 공군은 토노파에 도착한 뒤 스텔스기의 날개를 해체해 엔진은 별도 보관할 것이라고 밝혔다.2009년 말까지 현재 운용 중인 F-117 전폭기 55대는 모두 퇴역되고 최신예 스텔스기인 F-22(일명 랩터)로 대체된다.1982년 미 공군에 처음 인도된 이후 스텔스기 비행사들은 동이 트기 전에 기지를 이륙, 며칠간 임무를 수행하고 어두워진 뒤 기지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 정도로 내부 기술과 외모·임무 등이 비밀이었고, 따라서 폐기과정도 비밀리에 진행된다는 게 공군의 설명이다. 록히드사가 1974년 개발을 시작, 첨단 미 군수산업의 상징이자 미국의 자존심으로 간주돼온 F-117 전폭기는 1990년 마지막으로 인도됐다.1989년 미군의 파나마 침공 때 처음 실전에 참가했고 1991년 걸프전에 모두 44대가 참전, 한 대의 손실도 없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속도가 느려 ‘비틀거리는 도깨비’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지난 1월 F-117 1개 비행대대가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RSOI) 참가를 위해 군산에 왔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발언대] 역사속으로 사라진 ‘러 혁명기념일’/박종효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 객원교수·역사학 박사

    사회주의이념 혁명을 최초로 성공시켜 노동자 농민의 천국을 이룩했다는 러시아의 ‘10월 혁명기념일’은 러시아의 구력(舊曆)으로 1917년 10월25일 레닌이 영도하던 공산당의 전 명칭인 사회민주노동당(볼셰비키)에 의해 노동자와 군인의 봉기로 성공한 날을 기념한 날이다. 러시아는 이후 오랜 기간 공산당 정권의 유지를 위해 외부와 단절하는 폐쇄정책을 시행하다 1980년대 말 폐쇄정책에 한계를 느낀 소련 최후의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개방이 되었다.1991년 외부세계에 눈을 뜬 인민의 저항을 견디지 못해 74년 동안 국가의 상징이었던 혁명으로 흘린 붉은 피와 노동자 농민의 낫과 망치가 그려진 국기를 내리고 15개 공화국은 각각 독립국가로 해체되고 말았다. 신생 러시아는 국호를 소비에트 사회주의연방공화국에서 러시아 연방으로 개명하고 매년 국제적으로 성대한 행사를 해오던 ‘10월 혁명기념일’을 1991년부터 ‘화해와 화합의 날’로 개칭하였다. 그러다가 2005년에는 10월 혁명이 발생한 11월7일을 국경일에서 슬그머니 빼버렸다. 그 대신 11월4일을 ‘인민화합의 날’이라는 새로운 국경일로 제정하였다.10월 혁명이 이념만을 앞세워 계층간에 분열과 숙청으로 극단적인 상호 증오심과 반목을 조성하고 획일적 집단주의와 폐쇄적 정책으로 인간의 창조적 정신과 자유를 말살해 왔다는 것이다. 이제는 반목과 증오심을 종식하고 신생 민주주의 국가건설에 다같이 화합하여 참여하자는 뜻에서 ‘인민화합의 날’로 제정하였다고 한다. 이와 함께 소련제국의 해체를 합의한 6월12일을 ‘독립의 날’이라고 선포하였다. 이제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은 국가 발전의 낙후와 이념 투쟁으로 많은 상처만 남겨놓고 한 시대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거꾸로 한국사회는 러시아에서 폐기 처분된 이념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원인과 목적이 무엇이든 극심한 국론의 분열과 반목은 국가 발전의 암이 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에서 시행한 ‘국민 화합의 날’을 교훈으로 삼으면 어떨까 싶다. 박종효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 객원교수·역사학 박사
  • [6者 ‘2·13 합의’ 한달] 비핵화 이행·北美관계 정상화 관건

    [6者 ‘2·13 합의’ 한달] 비핵화 이행·北美관계 정상화 관건

    북핵 6자회담 ‘2·13합의’ 이후 비핵화 이행과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다.2005년 ‘9·19공동성명’에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고 명시된 뒤 1년5개월여만에 구체적 추진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지난 1953년 유엔군과 북한, 중국이 체결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평화통일까지 내다보는 개념이다. 동북아 질서를 재편할 만큼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 밑그림과 추진 로드맵 등에 관련 당사국들이 합의하기까지 숱한 선결 과제가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남북이 주도적으로 해야” 통일연구원 허문영 평화기획실장은 12일 “한반도 평화체제는 한반도 평화의 회복과 유지는 물론, 나아가 통일을 지향하고 기여할 수 있는 체제”라면서 “민족자결 원칙과 당사자 해결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평화체제 최대 당사자인 남북이 주도권을 갖고 기존 남북기본합의서를 이행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함과 동시에 미·중 등은 보장국으로서 다자적 한반도 평화협정에 참여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허 실장은 설명했다. 통일연구원이 마련한 한반도 평화체제 로드맵(표)에 따르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단계별로 동시에 이행하면서 동북아와 남북이 각각 관계정상화 및 군축 등을 추진하는 방향이 제시됐다. 과거 남·북·미·중 4자회담이나 남북고위급접촉 등에서 남측은 선(先) 비핵화, 후(後) 평화협정 체결을 제시한 반면 북측은 미측의 안보 위협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화체제를 먼저 구축한 뒤 비핵화 등 신뢰구축에 나서자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최근 6자회담 이후 비핵화 과정이 시작된 상황에서 선후 개념보다는 단계와 수준을 종횡으로 결합한 병행안이 추진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평가된다.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큰 그림에는 당사국들간 이견이 없어 보이지만 각론에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향점은 같지만 국익에 따라 요구사항이 달라 목표 도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평화협정 이후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구체적 계획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먼저 비핵화의 순조로운 이행과 함께 북·미 관계정상화가 관건이다. 비핵화 초기단계 이행이 시작된 만큼 완전한 핵폐기가 이뤄져야 비로소 평화체제가 구축될 수 있는 것이다. 또 평화체제 논의시 한·미와 북·중이 가장 큰 이견을 보여온 주한미군 문제는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만 한·미는 평화협정 이후 평화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주한미군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남북 군사당국회담 실시, 서해 북방한계선(NLL) 재획정 문제, 국가보안법 문제 등도 남북이 풀어야 할 어려운 과제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동북아 평화·안보체제와 직접 연결되는 만큼 단순히 정전협정이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으로 바뀐다고 해서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처절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은 “종전선언이라는 중간단계를 거치면 한반도 냉전체제는 해체되지만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평화협정에 따른 관리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실장은 이어 “동북아의 기존 안보질서가 해체되면서 새로운 안보체제를 만드려면 시간이 걸리고, 그 기간 중 한반도는 평화통일의 기반을 닦거나 오히려 분단이 고착화되는 기로에 설 수 있다.”며 “동북아 질서재편 과정에서 한반도가 각축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대북정책과 한·미동맹 등이 흔들리지 않고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하프타임] 체육회, 인재육성재단 해체 위해 투쟁

    대한체육회는 최근 문화관광부가 설립한 ‘체육인재육성재단’ 해체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기로 했다. 체육회 ‘대책 소위원회’는 12일 올림픽파크텔에서 회의를 열어 재단 이사로 참여한 4명의 사퇴와 함께 재단의 즉각적인 해체, 정부 담당자와 책임자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기로 결의했다.
  • [6者 ‘2·13 합의’ 한달] 군축검증·주변국이해 얽혀 진통클듯

    차기정부 임기 안에 평화체제 전환의 극적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란 외교라인 일각의 낙관론과 달리 군과 안보전문가들의 시각은 조심스럽다. 평화체제는 근본적으로 ‘군사적’ 문제가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남북간의 정치적 신뢰가 쌓이더라도 실질적인 군사적 긴장완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핵 폐기와 재래식 군축은 별개 문제” 정전협정을 대신할 평화협정 역시 논의의 중심엔 군사적 이슈들이 자리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용역으로 평화협정문 시안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던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전경만 책임연구위원은 “50여개 조항 가운데 40개 이상이 군사적 사안”이라면서 “구조적·운용적 군비통제(군축)의 경우엔 상호 검증 등 복잡한 문제들이 걸려 있어 성과를 내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합참 관계자도 “재래식 무기 감축을 합의하려면 한반도 주변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서도 남북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면서 “다양한 국내·외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유엔사령부, 강화냐 해체냐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 가장 민감한 군사적 사안이 유엔군 사령부 존속문제다. 유엔사는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유엔 안보리 결의로 탄생,1953년 정전협정 체결 땐 참전 16개국을 대표해 유엔군 사령관이 서명함으로써 정전협정의 유지·관리를 책임지게 됐다. 따라서 정전협정을 대체해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유엔사는 창설목적을 달성하고 해체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유엔사의 미래에 대해서는 이해당사자마다 입장이 엇갈린다. 신속기동군으로의 전환을 노리는 주한미군으로선 한반도 방위에서 유엔사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정전체제와 북·미 적대관계의 상징인 유엔사의 즉각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지위문제와 관련,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도 ‘지역 안정자’ 역할을 위해 한반도에 주둔해야 한다는 한·미 입장에 대해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관심거리다.●“한·미 연합연습 조정 불가피” 한반도 전쟁억제와 군사대비태세 강화를 위해 한·미 양국이 매년 실시하는 연합전시증원(RSOI), 독수리(FE)연습과 을지포커스렌즈(UFL)연습 등도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다. 방어 목적의 연습이라는 한·미 당국의 공식적 해명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북침을 위한 전쟁연습이라며 반발해왔다. 국방부 관계자는 “평화체제 구축과 한·미 합동연습은 별개 문제”라면서도 “(쟁점화된다면) 훈련시기와 횟수, 규모 등은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는 있지 않겠냐.”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전제로 진행해온 군의 각종 전력증강 사업도 큰 폭의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한국체육 뿌리를 다지자] (9) 울산시

    [한국체육 뿌리를 다지자] (9) 울산시

    울산은 지난해 전국소년체전에서 금메달 24개를 획득해 10위를 했다.16개 시·도 가운데 가장 늦게 광역시로 승격된 것에 비춰보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울산시교육청은 울산이 학교 체육의 얇은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소년체전에서 중위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소수 정예 선수를 집중 육성하는 시교육청의 학교 운동부 육성 전략의 힘이 컸다고 분석한다. ●소년체전 금메달 절반이 체조·수영에서 울산시가 지난해 전국소년체전에서 획득한 전체 금메달 가운데 절반인 12개는 체조와 수영에서 나왔다. 체조가 8개, 수영이 4개다. 체조와 수영 종목은 초·중·고교 단계별로 연계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소질이 보이는 학생을 중심으로 선수를 발굴해 집중 지도한다. 지난해 소년체전 체조종목 남자초등부에서 금메달 4개를 따 4관왕이 된 양사초등 김진석(신정중 진학) 선수는 체조 꿈나무다. 신정중 김찬송(대현고 진학), 울산여중 김다은(3년) 선수도 지난해 소년체전에서 각각 남·여 중학부에서 2관왕을 차지한 기대주다. 울산여중 조현주 선수는 체조 국가대표 선수로 태능선수촌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수영 종목에서는 올해 부산체고로 진학하는 이희완(범서중 졸업) 선수가 뛰어난 기량을 갖춘 기대주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 선수와 겨뤄도 뒤지지 않았던 이군은 지난해 소년체전에서 평형 50m와 100m에서 금메달을 따 2관왕에 올랐다. 지난해 말 도하 아시안게임 사이클에서 금메달을 딴 강동진(울산시청 소속) 선수도 농소고(사이클부) 재학 때부터 각종 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며 일찌감치 재목감으로 꼽혔다. ●“운동선수 하기 싫어요” 울산시교육청은 각 학교마다 학교장 책임 아래 한 개 이상 운동부를 만들어 육성토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운동부를 창단해 운영하려고 해도 운동을 하겠다는 학생들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운동을 하다가 상급학교로 진학하면 그만두는 학생들도 많다. 이 때문에 자질있는 선수 발굴은 고사하고 운동부 인원수를 채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초·중·고 연계 육성도 어렵다. 일선학교 체육교사들은 출산율이 낮아지고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힘들고 성공 가능성이 낮은 운동선수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선수 부족으로 운동부 명맥 잇기에 급급하다고 한다. 울산시 교육청 평생교육체육과 이길배 장학사는 “학생들이 운동을 안하려고 할 뿐 아니라 부모들도 한두명뿐인 자녀에게 운동은 시키지 않으려 한다.”면서 “기초종목을 비롯한 학교 체육이 운동선수 절대 부족으로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운동선수를 구하지 못해 운동부가 해체되는 일도 생긴다. 중구의 한 초등학교 정구부는 선수를 확보하지 못해 2005년 말 해체됐다. 강남중학교도 여자하키부를 운영하다 선수가 없어 결국 2005년 팀을 해체했다. 탁구 남자 중·고와 핸드볼 남자 초·중·고등부 등도 선수가 없어 운동부를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대현중학교 안성택(46) 체육교사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운동에도 소질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거의 공부를 택하는 데다 운동을 시작했더라도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과정에서 결국 운동을 그만둔다.”고 말했다. 월봉초등 수영부를 지도하고 있는 박세진(여·울산시 수영연맹 이사) 코치는 “초등학교에서 수영 선수를 발굴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코치 월급 현실화해야 울산시교육청에 따르면 울산의 일선학교 운동부 코치들은 월 평균 12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다. 시교육청은 월급은 전국이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외에 각종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 단체종목은 200만원, 개인종목은 80만원의 격려금을 주는 것이 전부다. 시교육청측도 이같은 보수로 생계를 꾸리기에는 부족하다고 인정한다. 학교 체육교사들은 학교 운동부 코치의 보수를 최소한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수준으로 맞춰 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글 사진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울산여중 체조부 울산여중(교장 이상철) 체조부 기량은 전국 여중 체조부 가운데 상위권으로 꼽힌다. 해마다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 지난해 전국소년체전에서 단체종합과 2단 평행봉에서 금메달을 땄다. 선수는 1∼3학년에 걸쳐 모두 6명이다. 국가대표인 3학년 조현주 선수와 같은 학년 김다은 선수는 국내 정상급 기량으로 평가받는다. 울산여중 체조부는 올해로 창단 23년째다. 학교에서 1.5㎞쯤 떨어져 있는 울산초등학교 체육관을 지금까지 훈련장소로 쓰고 있다. 평일에는 수업을 마친 뒤 오후 2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연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일요일은 오전 연습, 여름·겨울 방학 때에는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연습을 한다. 국가대표 출신인 임군기(40)씨가 1996년부터 코치를 맡아 가르치고 있다. 임 코치는 “체조는 하루라도 연습을 하지 않으면 감각이 떨어지고 특히 여자선수들은 몸 형태가 금방 무너지기 때문에 일년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울산여중과 울산초등 2개 학교 체조부가 연습장소로 쓰는 울산초등 체육관은 일제시대 때 지어졌다. 몇 차례 개·보수를 했지만 낡아 창고나 다름없다. 냉·난방시설은 아예 없고 단열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선수들은 선풍기와 난로로 버텨야 하는 여름 더위와 겨울 추위가 연습보다 더 힘들다. 임 코치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한겨울에는 난로만으로는 운동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난방을 할 수 없어 체력훈련만 하고 기술연습은 못한다.”고 말했다. 연습기구도 대부분 오래됐다. 착지 연습을 할 때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시설은 낡아 쓸 수가 없다. 코치가 안전시설을 대신해 선수들을 받아준다. 마루 기구는 10년이 넘어 수명이 다됐지만 그대로 쓰고 있다. 교육청 형편상 3000여만원이나 되는 새 기구를 구입할 형편이 안되기 때문이다. 월평초등학교에 체조전용 최신 체육관이 있지만 울산 학교 체조부 전체가 사용하기에는 비좁다. 울산여중 체조부 연간 운영비는 2000여만원이다. 학교예산 1500만원에, 교육청에서 500여만원을 지원한다. 동문회나 기업 등 외부 지원은 한 푼도 없다. 울산여중 정금섭(41) 체육교사는 “2000만원을 갖고 선수 훈련복에서부터 대회 참가경비에 이르기까지 1년동안 체조부를 운영하기에는 많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체조선수는 체중이 늘지 않도록 음식섭취 등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식단도 단체로 짜 식사를 하는 것이 좋지만 예산 때문에 제대로 못한다. 운영비를 아끼기 위해 대회도 골라가며 참가한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꿈나무 가꾸기 기업 지원 ‘큰 힘’ 학교체육을 교육청 예산만으로 육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일선 학교와 교육청 체육 관계자들은 공통된 의견이다. 예산을 학교 체육에만 여유있게 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 등이 사회공헌사업의 하나로 여건이 열악한 학교 체육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보이면 유망한 체육 꿈나무 육성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울산지역에서는 한국동서발전㈜울산화력과 롯데재단이 학교 체육 육성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지원을 한다. 롯데재단은 롯데그룹에서 기금을 출연해 설립된 장학재단으로 신격호 회장의 고향인 울산을 비롯해 전국에 걸쳐 다양한 장학·복지사업을 한다. 울산화력과 롯데재단은 울산시교육청에 의뢰해 열악한 여건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학교 체육부를 선정, 운영비나 운동기구 구입비를 지원한다. 울산화력은 지난해부터 체육꿈나무 가꾸기 사업으로 학교체육 지원을 시작했다. 전국소년체전이 끝난 뒤 반천초 여자 배드민턴, 덕신초 여자 배구, 연암초 여자 농구, 송정초 남자 농구부 등 울산지역 4개 초등학교 체육부에 각 1000만원씩을 지원했다. 올해는 소년체전이 열리기 전에 같은 학교에 비슷한 금액을 지원할 예정이다. 2001년 창단된 덕신초 배구부는 지난해 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것을 비롯해 해마다 좋은 성적을 낸다. 연암초 여자 농구부도 창단 2년 만인 지난해 전국 소년체전에서 우승했다. 롯데재단은 성적이 우수한 울산지역 학교 운동부에 2000년부터 해마다 체육교재 구입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학성고와 언양중 카누부, 천곡중 사이클부에 장비구입비로 각 1000만원씩 모두 3000만원을 지원했다. 천곡중학교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강동진 선수의 출신학교다. 롯데재단은 또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는 울산지역 초·중·고 체육선수들에게 해마다 체육특기자 장학금도 준다. 지난해에는 15명에게 1인당 초등학교 20만원, 중학교 40만원, 고등학교 70만원 등 모두 650만원을 전달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최고 목판 인쇄물 다라니경 제작연대 논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인정받고 있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제작연대 논란에 휩싸였다. 익명을 요구한 문화재위원은 지난 8일 1024년 씌어진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重修記)’를 근거로 8세기 초반~중반이 아니라 고려시대에 제작됐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라는 주장을 폈다. 중수기에 “두루마리로 된 무구정광다라니경과 또 다른 무구정광다라니경을 넣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1966년 석가탑 해체·수리 과정에서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함께 110여장의 종이뭉치도 발견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묵서지편(墨書紙片)’으로 불리던 이 종이뭉치를 40년동안에 걸쳐 보존처리하고 최근 판독해 ▲중수기와 ▲보협인다라니경 ▲1038년 불국사서석타중수형지기 ▲보시명공중승소명기 등을 확인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내부검토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중수기의 일부내용을 외부로 유출해 연대를 무려 3세기나 끌어내리는 ‘자살골’을 자초한 중앙박물관은 “고려 제작설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김성구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9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는 측천무후자(字)가 빈번히 발견된다.”면서 “개인적으로는 통일신라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측천무후자란 당나라 고종의 황후 측천무후의 집권기(690∼704)에 만들어진 기존의 한자와는 다른 508자의 글자로 당대에만 사용됐다. 하지만 유물관리부 실무자인 김상태 학예연구관은 “석가탑이 고려시대에 중수됐다는 사실 말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통일신라시대 것인지, 고려시대 것인지 추측할 수 있는 새로운 근거는 없다.”면서 “몇년이 걸릴지 아직 장담할 수 없지만 판독 결과가 나오면 종합적인 조사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北·美해빙 무드’ 대선구도 지각변동 오나

    북, 영변 원자로 폐쇄…북·미 수교 공식 체결…김정일·부시 판문점에서 만나 평화협정 서명…. 이런 꿈같은 상상이 현실화된다면? 최근 급진전되고 있는 북·미간 해빙무드가 국내 대선구도에 지각변동을 불러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역대 대선의 결정적 변수들이 ‘국내산’이었던 반면 북·미 정상화는 국내 정파가 제어하기 힘든 외생(外生)변수란 점에서 특이하다. 또 궁극적으로 북·미수교와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질 경우 반세기 넘게 지속돼온 분단구조가 해체되는 엄청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측면에서 난해하다.정치권 관계자는 9일 “남북정상회담,FTA, 개헌 등을 둘러싼 논란은 북·미 정상화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부속 변수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변화는 얼핏 범여권에 유리해 보인다. 한나라당 일방 독주의 견고한 대선구조에 짓눌려 있는 쪽으로서는 이런 ‘변수’ 자체가 숨통을 트여줄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 순탄하게 선두권을 질주하고 있는 한나라당 입장에선 기존 구도를 뒤흔들 만한 변화가 달가울 리 없다는 관측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가 약간의 유불리에 그치지 않고 대선구도의 역전까지 불러올 수 있을까.‘북·미관계 개선의 가속도’라는 씨줄과 ‘후보의 비전’이라는 날줄이 상승작용해야 하는 만만찮은 과정이 요구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먼저 정치환경적으로는 북·미수교와 평화협정 체결로까지 귀결돼야 대선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치컨설턴트 김윤재 변호사는 “국민들로서는 2000년에 이미 남북정상회담이란 대형 이벤트를 ‘학습’했고 지금 전쟁위협을 실감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평화협정 체결과 같은 정도의 변화가 아니면 표심에 큰 영향을 주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격동하는 변화에 질질 끌려가지 않고 그것을 주도할 만한 후보들의 ‘콘텐츠’가 승패를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안보지형이 급변할 경우 국민들은 단순히 ‘경제’나 ‘반노’(反盧) 같은 기존 이슈에 만족하지 않고 평화체제 이후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를 선호할 것이란 관측이다. 정치컨설팅업체 폴컴의 윤경주 대표는 “북·미관계가 급진전될 경우 국민들은 분단체제의 대통령상이 아닌 통일체제의 대통령상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며 “특히 한나라당 후보들로서는 평화 플랜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말했다. 김윤재 변호사는 “여야를 막론하고 이런 변화를 정략적으로 접근한다면 국민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의 7일 “한나라당 집권시 남북전쟁 가능성” 발언이나, 한나라당 정형근 최고위원의 9일 “남한내 좌파세력이 남북정상회담 카드를 활용해 대선을 ‘평화 대 전쟁’ 구도로 몰고가려 한다.”는 주장 등은 국민의 외면을 부를 ‘시대착오의 전형’이라는 설명이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시론] 북·미 관계 새 봄은 오는가?/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시론] 북·미 관계 새 봄은 오는가?/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 합의 이후 북핵 해결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특히 북·미간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본격적인 양자회담이 눈길을 끈다.‘2·13합의’ 이행을 위한 워킹그룹회의의 일환이지만, 북·미간 뉴욕 실무회담에선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문제, 적성국 교역금지법에 의한 경제제재 해제,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포함한 북핵폐기 초기이행조치 등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다뤄야할 거의 모든 의제를 다뤘다. 김계관 부상과 힐 차관보는 이구동성으로 “회담분위기가 아주 좋았고, 건설적이고 진지했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인 2000년 10월 북·미 공동코뮈니케를 만들 때와 유사한 북·미관계 개선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미관계 개선 움직임이 빨라진 것은 북한이 핵실험이란 충격요법을 통해 미국을 자극했고, 미국도 대북정책 변화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양자회담 불가방침을 바꿔 지난 1월 베를린에서 북·미 양자접촉을 진행했고,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에서는 선 핵폐기 주장을 거둬들이고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수용해 북핵폐기의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잘못된 행동에 보상없다.’는 원칙도 후퇴해 금융제재 해제와 에너지 지원을 약속했다. 미국의 변화는 북한 핵실험 이후 한반도에 대한 현상유지정책에서 현상변경정책으로의 정책전환을 시사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할 수 없는 미국이 다급한 사정을 반영해서 핵을 포기할 경우 대북 적대시정책을 철회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임에 따라 북핵시설에 대한 ‘불능화’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미국의 변함없는 원칙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북핵폐기(CVID)다. 핵실험 이전 미국은 무시정책으로 일관하면서 김정일 정권교체,‘북한위협론’에 따른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 미·일동맹 강화 등에 주력했다. 하지만 핵실험 이후에는 핵확산 방지와 비핵화 실현을 위해서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 북핵 해결을 늦출 경우 핵 보유고는 늘어나고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부시 대통령의 한국전 종료선언 시사 발언 등을 통해 대북 적대시정책 전환을 시사하고 북한의 핵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전 종료선언을 들고 나온 것은 북한에 핵을 버릴 수 있는 명분을 줄 테니 ‘김일성 유훈’에 따라 비핵화를 실현하라는 것이다. 이번 실무회담에서 주목할 부분도 북·미가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메커니즘을 논의키로 합의함으로써 평화포럼 출범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중국이 1970년대 초 미·중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1978년 등소평 등장 이후 개혁개방을 본격화한 경험에 비춰볼 때 북·미 적대관계 해소는 북핵해결의 지름길이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 지난해 11월 부시 대통령이 한국전 종료선언을 할 수 있다는 용의표시에 미국의 ‘진정성’이 있다면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과 관련한 놀라운 진전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남북한과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이 3국 정상회담 또는 북·미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을 각각 열어 한국전을 종료하고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한다면 한반도 냉전구조는 급속도로 해체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북·미 뉴욕회담 결과] ‘적대→우호’ ‘불신→신뢰’ 물꼬 텄다

    [북·미 뉴욕회담 결과] ‘적대→우호’ ‘불신→신뢰’ 물꼬 텄다

    |뉴욕 이도운특파원|6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끝난 북·미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회의는 두 나라의 관계를 ‘적대’에서 ‘우호’로,‘불신’에서 ‘신뢰’로 변화시키는 중대한 분수령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과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궁극적으로 수교를 이루기 위한 양국간의 현안을 포괄적으로 점검했다. 고농축우라늄(HEU) 핵 개발 프로그램 등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들을 안고 있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초기 이행조치 평가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2·13합의에 따라 미국측이 약속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및 적성국교역법에 따른 경제제재 해제를 우선적으로 요청했다. 북측은 “오는 4월에 발표될 미 국무부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부터 빼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미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테러지원국 삭제 등에 필요한 법적·정치적 절차를 설명하고 어쩔 수 없이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납치문제 해결이 없으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빼지 말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일본의 입장을 미국은 물론 북한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외교소식통은 설명했다. 미국측은 북한의 초기 이행조치, 즉 영변 핵 시설의 폐쇄 및 불능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 복귀 등에 대해 일단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영변의 5㎿ 원자로 등 5개 핵 시설뿐 아니라 북한이 건설 중이던 50㎿와 200㎿ 원자로도 모두 폐기하고, 이미 생산된 50㎏가량의 플루토늄을 이른 시일 내에 국제 감시하에 두고,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이 해소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합의 60일 이후 이뤄질 2단계 조치에까지 북·미 양국의 논의가 이뤄져 회담의 낙관적 전망을 가져 왔다. 그러나 2단계 조치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북측의 모든 핵 프로그램 신고가 6자회담 및 북·미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중요한 고비가 될 전망이다.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힐 차관보는 기자회견에서 “HEU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북측이 먼저 문제를 거론했다.”고 밝혀 관심을 끌었다. 또 힐 차관보는 양국의 전문가들이 기술적 문제를 협의하겠다고 밝혀 HEU 문제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문제에서 ‘기술적’ 문제로 변모시키고 있음을 엿보였다. 특히 김 부상이 이번 회의 직전에 열린 전미외교정책협의(NCAFP) 간담회에서 HEU 핵무기 프로그램의 존재를 부인하면서도 “해명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문제의 실마리가 풀려나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대로 북한은 우라늄 핵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에너지를 얻기 위한 초기단계의 실험이었다는 식으로 해명할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도 그같은 북한의 해명을 검증하기 위한 사찰을 추진하는 선에서 양해할 가능성이 있다. ●연락사무소 설치 힐 차관보는 이틀간의 회담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연락사무소 설치가 미·중간 수교과정에 성공적 케이스로 작용했지만 북한이 이런 중간단계를 원치 않고 있다.”고 밝혀 가능성이 적음을 시사했다. 북한은 별다른 실효성이 없는 연락사무소 설치 단계를 뛰어넘어 곧바로 외교관계를 복원하고 양국 공관 설치를 희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 고위인사의 방북 당초 평양에서 열릴 것으로 기대됐던 북·미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의 두 번째 회의 장소는 베이징으로 정해졌다. 따라서 힐 차관보의 방북도 추후로 미뤄지게 됐다. 힐 차관보는 김계관 부상이 일반적인 수준에서 자신의 방북을 거론했으나 구체적인 계획은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의 북·미 관계 진전 속도로 보면 힐 차관보뿐만 아니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북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dawn@seoul.co.kr ■ 힐 차관보 일문일답 |뉴욕 이도운특파원|미국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6일(현지시간)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이틀간의 실무회담을 마친 뒤 “매우 유익하고 포괄적인 논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는 “2·13 베이징 합의에 따라 60일 이내에 이행하기로 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낙관적인 기대를 갖게 됐다.”고 말해 상당한 논의 진전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다음은 힐 차관보와의 주요 일문일답. ▶회담 분위기는. -매우 긍정적이다. 우리는 강한 공감을 갖고 있고,2·13합의가 올바른 접근법이라는 것에 북한도 강한 공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60일 이행기간 이후 및 다음 단계 이후엔 더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단지 초기 60일뿐 아니라 핵시설 불능화라는 더욱 어려운 단계까지 어떻게 갈 것인지 의지를 보여줘 고무됐다. ▶북한이 핵무기 해체라는 전략적 결정을 할 것이란 확신를 갖게 됐는가. -우리는 다음 단계로 갈 의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 단계는 좋아 보인다.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도 제기했는가. -HEU가 존재하는 한 비핵화된 북한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이 문제에서 완벽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며 이 점을 매우 강조했다. ▶양국간 외교관계 회복에 관한 논의는 진전되고 있나. -외교관계 회복의 정치적이고 법적인 측면도 논의했다. 우리는 외교관계 회복을 추진하기로 했고 북한에 이 점을 재차 확인해 줬다. 완전한 비핵화를 북한측이 이행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외교관계 수립 전 연락사무소 개설 가능성 있나.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연락사무소는 중국과 했던 모델이며 미·중 관계에서 볼 때 매우 훌륭한 모델이었다. 북한과는 그런 점이 공유되지 않았다. 북한은 외교관계로 가고자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비핵화 문제와 연계돼 있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자금 일부가 해제되는 것인가. -재무부에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관해 내가 말할 입장에 있지 않다. 다만 이 문제를 30일 이내에 해결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앞으론 마카오 금융당국의 문제가 될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논의는 얼마나 해야 하나. -가능한 한 빠른 속도를 유지하고 싶다. 조속히 진행될수록 더욱 안정될 것이라고 믿는다. 북한에서 마지막 핵물질이 정확히 언제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없다. ▶6자회담이 이란 문제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나. -불행하게도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이 그 일을 나에게 하라고 하지 않았다. 북한은 여전히 플루토늄을 생산하고 있다.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핵무기는 북한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이란도 이 점을 중시하기 바란다. dawn@seoul.co.kr ■ 한반도에 봄은 오는가 6일(현지시간) 미 뉴욕에서 북·미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첫 단추를 꿰면서 과연 지구촌의 마지막 남은 냉전지대인 한반도에 봄이 도래할지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뉴욕 북·미 회담과 ‘유럽연합(EU) 트로이카’의 평양 방문 등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한반도 지각 변동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국내 정치적 논란속에 이해찬 전 총리도 7일 방북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 5∼6일 뉴욕에서 미측으로부터 깍듯한 대접을 받았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인 2000년 10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워싱턴을 방문한 조명록 차수가 미측의 환대를 받고, 이어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이후 북한측의 망설임과 강경 부시 행정부 등장으로 사라진 북·미 수교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꿈은 7년 뒤 다시 가능성을 보여주며 찾아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국의 전면 압박·제재라는 두 가지 상황은 미국과 북한에 쓰라린 경험으로 자리할 것”이라며 상황 진전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다. 2002년 10월 2차 핵위기 이후 중단됐던 EU와 북한의 대화도 물살을 타고 있다. 안드레아스 미하엘리스 독일 외무부 아태담당 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EU 트로이카 대표단이 평양과의 관계 정상화 논의 및 인권 문제 토론 등을 위해 6일 평양에 도착했다. 이들은 북한 인사들과 만나 ‘2·13합의’의 성실한 이행도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EU에 이어 호주도 조만간 북한에 외교부 대표단을 파견, 해제와 복원을 거듭했던 외교관계 정상화를 논의할 계획이다. 일련의 외교 이벤트 가운데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실무적이고도 강한 상징성을 갖는 것은 오는 13일 이틀간 일정으로 잡혀 있는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방북이다. 북한이 2002년 12월 영변에 주재하던 IAEA 사찰관을 추방한 이후,4년 만에 다시 국제사회의 사찰을 받아들이고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6일 북측과의 회담을 마친 뒤 “아직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봄이 쉽게, 곧바로 찾아올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복병들이 많기 때문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BDA 北 계좌 해제 안팎 2005년 북핵 9·19 공동성명 채택을 무위로 돌려놓은 뒤, 한반도 정세를 핵실험 정국으로 꽁꽁 묶어놓았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 문제가 마침내 종착역을 찾았다. 미국은 그동안 “BDA 문제는 법집행상의 문제로 6자회담과 별개”라는 완고한 원칙을 고수하다, 지난해 말 불법·합법 여부를 조사해 동결된 2400만달러 가운데 일부 계좌만 풀어주는 쪽으로 살짝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지난 5,6일 열린 뉴욕 북·미 관계정상화 회담을 계기로 북한측의 입장을 전폭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핵논의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BDA계좌의 전면 동결해제를 요구해 왔다. 미국은 BDA 계좌를 불법·합법이 아닌 ‘위험한(Risky)’ 또는 ‘덜 위험한(Less risky)’ 계좌로 분류하고 BDA측에 재량권을 넘겼다. 불법·합법 분류는 미 정부 정책의 신축적인 전환에 족쇄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 또 50여개,2400만달러 상당의 북한 계좌를 사실 동결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BDA은행이기 때문에 “은행이 알아서 한다.”는 점도 형식논리상 하자가 없다. 정부의 고위 소식통은 7일 “미국의 BDA 문제 해결은 그야말로 ‘정치적 결단’에 따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한반도 문제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있으며,BDA문제도 부시 대통령-라이스 국무장관-힐 차관보로 이어지는 외교라인의 정무적 판단이 재무부 입장을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북한의 불법 활동을 근절을 촉구하고 핵 문제 해결시 국제금융 체제에도 편입시켜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한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지난 2일 미 하원 외교위 북핵청문회에 출석,“재무부가 북한당국과 지난 해 12월과 1월 금융실무회의를 열었을 때 북한은 BDA계좌 소유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면서 북한측의 협력과 성의있는 자세를 미 의원들에게 소개했다. 이어 “국제금융기구들에 가입하기 위해 북한이 취해야 할 조치들을 조언했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 및 아시아개발은행(ADB) 가입 권고를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미 재무부는 2005년 9월 베이징 회담 직후 BDA은행을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 발표했고 고객들의 대량 인출 사태가 발생하자 BDA측은 북한측 계좌를 동결했다. 이에 북한은 강력 반발,11월 열린 6자회담에서부터 BDA문제 해결없이는 6자회담에 참가할 수 없다며 반발해 왔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김계관 시종 밝은 표정 |뉴욕 이도운특파원|그는 시종 밝은 표정을 지었다. 뉴욕 실무회담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사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6일(현지시간) “이번 회담에서 의견을 나눈 분위기는 아주 좋았고, 건설적이며 진지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숙소인 맨해튼 밀레니엄플라자 호텔에서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를 만나 조·미 현안을 논의하면서 조·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이러저러한 문제들도 의견을 나눴다.”면서 “앞으로 결과에 대해선 두고 보라. 지금 다 말하면 재미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평소 속내를 잘 드러내 보이지 않던 그의 모습과 비교하면 이번 회담이 만족스럽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김 부상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2시간여에 걸쳐 맨해튼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이틀째 실무회담을 가진 데 이어 자신의 숙소인 밀레니엄플라자호텔 인근 중국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미국측과 협상을 계속했다. 김 부상은 카운터 파트너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뿐 아니라 미 외교정책의 대부격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도 따로 만났다. 미 외교가의 반응이 뜨겁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dawn@seoul.co.kr ■ 북·미 공조 취재진 완벽히 따돌려 |뉴욕 이도운특파원|제1차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회담은 숨바꼭질의 연속이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방미 일정이 전혀 공개되지 않은 데다 취재진을 따돌리는 데도 매우 능숙했다. 김 부상은 회담 마지막날인 6일(현지시간)에는 아예 미국측 협상단과 긴밀한 공조체제까지 선보이며 취재진을 물먹이는 솜씨를 발휘했다. 김 부상은 이날 뉴욕 맨해튼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오전 회담을 마친 뒤 추격하던 취재진을 능숙하게 따돌렸다. 숙소 인근 중국식당에서 미국측과 오찬회동을 가졌지만 취재진은 회동 자체를 눈치채지 못했다. 뒤늦게 식당에 도착한 취재진은 빅터 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보좌관 등 미국 대표단을 보고서야 회담을 알아챘다. 그때까지도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행방은 묘연했다. 식당에서 나온 김 부상은 불과 10m도 안 되는 거리를 차로 이동한 뒤 차에서 내려 호텔로 방향을 잡았다. 이 사이 힐 차관보는 식당을 나와 다른 미 협상단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가 공조해 완벽하게 취재진을 따돌린 것이다. 김 부상의 경호를 맡은 국무부 외교경호실(DSS) 요원들은 신호등까지 무시하며 맨해튼 도심을 질주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dawn@seoul.co.kr
  • [해외파병 6년 명암] ‘맹목적 군사주의’ 대안 없나 (하)

    [해외파병 6년 명암] ‘맹목적 군사주의’ 대안 없나 (하)

    지난 2004년 국방부는 국회에 이라크 파병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연합작전과 원거리 해외파병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강군 육성과 군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한·미동맹 공고화’와 ‘국가 위상 제고’라는 정치·외교적 명분 외에 군의 특수한 조직논리가 해외파병의 주요 동기로 자리잡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軍 “파병 아니면 획득 못할 노하우 많아” 실제 2003년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던 당시 정부와 청와대에서는 외교라인의 ‘동맹파’와 김희상 청와대 안보보좌관 등 군 인사들이 파병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파병결정 과정을 지켜본 정부 소식통은 “한반도 전쟁에 대한 과도한 위기의식과 해외진출에 몸이 단 군의 공세적 압박이 청와대가 지지층 이반을 감수하면서까지 파병을 결정하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군은 해외파병의 ‘군사적 효과’로 한국군의 우수성을 해외에 전파하고, 연합작전 경험과 원정시 작전·전투근무지원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꼽는다. 해외가 아니면 습득하기 힘든 ‘노하우’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파병 논의 당시 일부 군 인사들은 “국내에서는 불가능한 전투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파병부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내부 경쟁이 치열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라크에 특전사를 보내는 쪽으로 입장이 기울자 해병대가 ‘광주 진압’이라는 특전사의 ‘원죄’까지 거론하며 정치권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를 벌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파병, 군축압력 회피용? 하지만 군이 파병에 적극적인 데는 ‘군사적’ 목적뿐 아니라 예산과 병력 등 조직의 ‘특수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란 지적도 만만찮다. 조직이 ‘자기보존’을 추구하는 것은 군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구의 보편적 속성이라는 얘기다. 이기호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냉전 해체 뒤 유럽에서도 군부는 군축 압력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해외파병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면서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경험하며 조직과 영향력을 키운 한국군도 사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 안팎에선 조직의 진급관리를 위해서라도 해외파병은 꾸준히 추진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돈다. 파병근무 경험이 있는 현역 영관장교는 “무관 등으로 제한됐던 해외근무 기회가 파병으로 확대되면서 ‘안 나가면 물 먹는다.’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고 귀띔했다. ●“파병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윤장호 하사의 사망을 계기로 학계와 시민사회 안팎에선 파병정책의 엄밀한 손익을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추상적인 ‘국익’이 됐든 군의 ‘특수이익’이 됐든 얻은 것이 있다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 속시원히 밝혀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군의 특수이익이 보편적인 국익을 압도하지 않았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네트워크 등 시민단체에서는 1990년대 후반 자위대의 평화유지활동(PKO) 참여 논쟁 당시 일본정부와 시민단체가 합의한 ‘PKO 가이드라인’ 같은 파병지침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한국체육 뿌리를 다지자] (8) 대구

    [한국체육 뿌리를 다지자] (8) 대구

    대구는 경북과 분리되기 전인 1980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체육의 중심지였다. 전국체육대회에서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다. 특히 1968년과 1970년에는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의 추억’을 갖고 있다. 또 몇 차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3위 안에 들었다. 그러나 직할시로 승격해 경북에서 떨어져 나온 이후 대구 체육은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1981년 전국체전에서 10위로 급추락했다. 상위권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유일하게 상위권에 든 것은 1992년 대구대회. 개최지 이점을 살려 3위를 한 것이 고작이었다. 지난해 경북 김천에서 열린 제87회 전국체전에서도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9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이 같은 성적을 낸 것은 학교체육 덕분이다. 지난해 전국체전 성적을 고등부만 놓고 보면 4위였다. 고등부 성적은 늘 상위권에 들었다. 초·중등부 성적도 고등부에 뒤지지 않았다.2001년 부산소년체전에서 3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 대진운이 지독히 나빴던 지난해 울산대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같이 대구의 학교체육이 성인체육에 비해 잘 나가는 것은 대구시교육청의 ‘엘리트 육성정책’ 때문이다. 대구시교육청은 동부, 서부, 남부, 달성 등 산하 4개 교육청별로 육상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이 대회에서 잠재력 있는 유망주를 발굴해 육상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 대구시교육청측의 설명이다. 연습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지역별로 나눠 한다.▲남구·달서구·달성군 지역 선수들은 400m 우레탄트랙시설을 갖춘 경북기계공고,▲중구·서구지역은 대구시민운동장 ▲북구 선수들은 대구체육고에서 각각 연습하고 있다. 지역별로 연습하는 것은 수영도 마찬가지다.▲남구, 달서구 선수들은 대구학생문화센터 수영장에서 ▲칠곡지역 유망주는 대구체육고에서 합동 연습을 한다. 대구시교육청 정창화 장학사(체육담당)는 “선수들이 지역별로 연습함으로써 시간과 교통비를 절약하는 것은 물론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교육청의 엘리트체육 육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기초나 비인기 종목을 꾸려나가는 학교나 선수에게 예산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2005년 40억 1100만원,2006년 42억 5785만원을 각각 지원했다. 올해는 43억 500만원을 편성해 놓았다. 투자는 결실로 이어졌다. 한 때 전국 고교야구를 주름잡았던 경북고가 대구시교육청의 지원으로 검도와 양궁 명문고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검도와 양궁부 창단을 권유하고 우수한 지도자 선임도 알선해 주는 등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이런 노력으로 경북고 검도부는 2006년 전국체전을 비롯해 대구대총장기, 춘계대회 등을 우승해 3관왕에 올랐다. 특히 국가대표 상비군을 전국 고교 중 처음으로 4명이나 배출했다. 또 양궁부도 신성우군이 2학년 때인 2005년 개인전 4관왕을 거두었고 지난해에는 세계주니어대회 국가대표로 출전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신군의 세계대회 출전으로 인한 공백에도 불구하고 경북고는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양궁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지난 2002년 창단한 경일중 역도부도 선수들이 운동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훈련장을 현대식으로 개조하고 휴게실을 만들어 주었다. 경일중은 창단 3년만인 2005년 소년체전에서 금·은·동 1개씩을 따는 것으로 지원에 보답했다. 도하 아시안게임 800m 동메달리스트 정유진양(대구 성서고 3학년)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집에서 가깝고 시설이 좋은 대구학생문화센터 수영장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결과 제87회 전국체육대회 여고수영 배영 100m와 200m에서 금메달을 획득, 대구 수영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시교육청은 앞으로 엘리트체육 정책을 업그레이드시킬 계획이다.‘소수학생에서 모든 학생을 위한 스포츠’,‘보는 스포츠에서 하는 스포츠’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 이를 위해 ‘1교 1기’ ‘1인 1운동’을 권장키로 했다. 또 학교 운동장에 우레탄을 까는 등 전천후 체육활동이 가능한 다목적 체육시설을 늘리는 사업을 펴나가기로 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전국 최강 경북공고 레슬링부 경북공고 레슬링부는 전국 고교 중 최강의 팀이다. 지난해 제24회 회장기 전국 레슬링대회에서 이상건(당시 3학년) 선수가 85㎏급 그레코로만형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 3명이 그레코로만형과 자유형에서 1위 자리에 올랐다. 또 2위와 3위 각각 2명 등 모두 7명이 입상권에 들었다. 지난해 김천 전국체육대회에도 3명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여기에다 이윤석(3학년) 선수는 세계주니어 파견 선발대회에서 1위를 차지해 세계대회에 출전했다. 1992년에는 정순원 선수가 제29회 자유형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난적들을 물리치고 고교선수로는 처음으로 동메달을 따는 등 선배들의 성적도 화려하다. 경북공고 레슬링부가 창단된 것은 1974년. 당시 경북공고는 대외적으로 명성을 떨쳤던 검도부와 배구부가 학교측의 사정으로 각각 해체된 상황이었다. 이 때 체육교사 김칠용 선생이 레슬링부 창단을 제의했고 학교측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창단은 했지만 선수 확보가 문제였다. 레슬링을 하는 대구지역 초·중학교가 없는 데다 비인기종목이라 지원자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일반 학생 중 체력이 좋은 20명을 선발해 선수단을 구성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반대가 극심했고 선수로 선발된 학생들도 고된 훈련을 견디다 못해 줄줄이 이탈했다. 여기에다 연습할 만한 장소도 구하기 힘들었고 레슬링부에 지원할 최소한의 예산마저 확보되지 않았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학교측과 교사들의 노력으로 창단 10년만에 전국대회에 여러차례 입상하면서 레슬링 명문고로 우뚝섰다. 이제는 같은 재단인 경구중학교가 레슬링 팀을 창단한 데다 전국 중학교에서 선수들이 앞다퉈 경북공고의 문을 두드리고 있어 선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번듯한 체육관도 지어 하루 5시간씩 연습을 하고 있다. 올해 국내대회 그랜드슬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국체전,KBS배, 대통령기, 문화관광부장관기 등 4개 대회를 모두 휩쓴다는 각오이다. 김오식(61) 감독은 “김리, 이윤석 등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아 올해 전국대회를 평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원로들 힘모아 향토 체육발전 지원” 대구스포츠맨클럽 이종주(74) 회장은 2일 “향토 체육발전을 위해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과 성을 다하는 체육지도자들을 격려하고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구스포츠맨클럽은 1963년에 창립된 대구지역 원로 체육인 모임. 친목과 단결을 통해 지역 체육을 발전시킨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체육인 모임이면서 회원 전원이 체육과 인연을 맺고 있어서 모임 운영이 활발하다. 하는 일도 다양하다. 지역 체육에 공이 많은 체육인을 선발, 매년 시상을 하고 격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김천전국체육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대구지역 학교체육지도자 80명을 시상했다. 또 중·고교 테니스대회를 개최, 우수선수를 발굴하고 있으며 중·장년층을 위한 테니스대회와 게이트볼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앞으로 성격이 유사한 경북 등 다른 지역 스포츠단체와 통합을 추진하고 회원 가입 문턱도 낮추는 등 영역을 넓혀나가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관선 대구시장을 지낸 이 회장은 공무원 재직 당시 전국을 호령했던 배드민턴 선수였다.“1960년대 나를 포함해 대구시청 배드민턴선수 5명이 전국 대회를 싹쓸이 우승했다.”고 회상했다. 이를 인연으로 스포츠맨클럽에 가입했다.1년만 맡기로 약속한 회장 직책도 올해로 10년째가 됐다. 이 회장은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이 되는 만큼 예산이 넉넉지 않아 모임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며 “하지만 지역 체육발전을 위해 원로 체육인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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