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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옴부즈맨 칼럼] 기획보도 관행·일반화 오류 탈피를/김경모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옴부즈맨 칼럼] 기획보도 관행·일반화 오류 탈피를/김경모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이제는 일종의 요식 행위처럼 비치기도 하지만 대체로 5월은 자녀와의 놀이동산 소풍에 선물 안기기나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는 풍경과 함께 시작된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며칠 사이로 5월 초에 자리하다 보니 자연스레 형성된 사회적 현상이다. 정부당국도 5월을 가정의 달로 삼아 사회적 의미 부여에 적극적인 편이다. 청와대부터 ‘어린이 모시기’에 발 벗고 나서고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하는 효자·효부 시상식이 여기저기서 꼬리를 문다. 이맘때면 언론 역시 우리 사회가 지향하고 전승하는 공동체적 가치를 인정주의 담론에 담아 기사화하기에 여념이 없다. 훈훈한 미담은 미담대로, 안타까운 사연은 사연대로. 언론이 아니면 결코 세간에 회자되지 않을 기막힌 이야기들도 가끔씩 소개된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언론이 그려 내는 ‘가정의 달’ 풍속도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있다. 최근 여러 해 동안은 부쩍 다문화가정의 5월 풍경이 빈번한 기사 소재였던 것 같다. 하지만 ‘소외받고 홀대받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라는 보도 틀(news frame)까지 크게 변한 것은 아니었다. 넓게 보면 서울신문도 우리 언론계의 이런 보도 관행에 동참하면서 5월 초순을 보내기는 마찬가지였다. 올해도 예년과 별 다름 없는 일상적 스케치를 훑어보며 가정의 달을 그냥 지나치는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지난주 수요일(13일)부터 연재를 시작한 ‘가족이 희망이다’ 기획물이 눈에 들어온다. 시의성 높은 사회적 주제를 심도 있고 발 빠르게 다루려는 민활한 기획 의도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모두 7차례에 걸쳐 실릴 기사의 주제와 순서에서도 고민한 흔적이 충분히 묻어난다. 아직 연재 중이므로 조금 이른 감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연재된 관련 기사에 대한 나름의 평가는 긍정과 부정 반반이다. 뉴스 보도물이 사회적 반향을 이끌고 독자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사회성원의 가치체계나 규범 또는 관습에 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기자들은 새로운 이야기라도 쉽게 이해되게끔 항상 독자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보도 틀을 잡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이번 기획연재가 시작부터 ‘인정주의 담론’의 보도 틀을 전제하고 관행적으로 차용한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게 된다. 감성만을 자극하는 너무 진부한 접근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물만 달랑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관련 주제를 담은 관련 부수 기사를 함께 다뤄 편집의 다양성을 보여줬다. 그렇지만 가족 해체상의 에피소드를 소개한 첫 두 번의 연작기사는 전하는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뉴스의 이야기가 탄탄하게 구성됐고 믿을 만하다는 설득력을 제공하기 위해 언론인들이 숫자와 통계를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매우 일상적인 일이며 관행적인 글쓰기 습관 가운데 하나다. 자칫 인정이나 감성에 호소하는 기사 분위기를 교정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통계자료를 인용하고 해석하는 데는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경제적 문제와 이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통계자료를 통해 가족 해체의 심각성을 제기한 의도<13일자 4면 기사>가 너무 지나친 나머지 모든 자료를 이 연관성에 맞춰 해석하고 있는 것은 오류에 가까울 수 있다. 집합적 수준에서 제시된 요보호 아동·비혈연가족·다문화가정 관련 통계수치가 모두 경제적 문제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 해체의 원인으로 꼽고 있는 가장 실직·청년 실업·노인 고령화 등도 그 개연성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다소 과도하게 일반화된 원인으로 꼽는 것 같다<14일자 3면>. 본래의 기획의도가 충실히 살아날 수 있도록 충분한 재검토와 방향 정리를 통해 가정의 달을 새롭게 조명하는 좋은 연재물이 나오길 희망해 본다. 김경모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 남성주의 등 보편·일반성을 강요하는 사회 유쾌한 뒤집기

    남성주의 등 보편·일반성을 강요하는 사회 유쾌한 뒤집기

    친구를 사귈 때 효과적인 방법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와 나의 공통점을 빨리 찾아내 대화로 연결해 나가는 것이다. 좋아하는 색깔이나 주로 사용하는 옷과 시계 등 브랜드, 즐겨 보는 TV드라마나 영화 장르, 작가, 여행지 등등 첫 만남에서 그같은 공통점을 찾기 어려우면 그와 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흐를 뿐이다. 이런 보편성과 일반성 등에 대해 질문, 반발, 거부, 끝내 전복하는 내용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영어 접두사 ‘트랜스(trans)’는 초월하거나 꿰뚫거나, 넘어서는 등을 뜻하는데, 이같은 내용을 주제로 현대작가 오인환이 7월19일까지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2, 3층에서 전시회를 연다. 작품은 영상, 설치, 사진 등 세 가지로 나뉘고, 작품 제목은 ‘우정의 물건’, ‘태극기 그리고 나’, ‘진짜 사나이’, ‘이름 프로젝트:이반파티’, ‘이름 프로젝트-당신을 찾습니다’, ‘Body-words Between Men’ ‘유실물 보관소’ 등이다. ●7월 19일까지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서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오 작가는 보편성과 소통이란 주제를 관통하는 사진작품 ‘우정의 물건’을 세 점 전시한다. 미국 유학시절인 2000년부터 시작한 작품으로 오 작가는 절친한 친구의 동의를 받아 친구의 집을 방문하고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뒤져서 작가와 친구가 공통으로 소유한 물건을 찾아내 다소곳하게 쌓아 놓고 각각의 집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 쌍의 사진은 그와 친구 간 소통의 고리이기도 하고, 소통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말이다. 우정이라는 차원에서 보편성·일반성은 소통의 개념이 된다. 이런 아름다운 개념이, 그러나 ‘다수의 방식’을 보편성·일반성이라고 지칭하는 순간 사회적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영상작업인 ‘진짜 사나이(Real Man)’는 한국 사회의 보편적 개념인 남성주의를 코믹하게 비판하고 있다. 무엇이 진짜 사나이인가. 노래는 군 입대를 하고, 나라 지키며,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들의 우정을 찬양한다. 군대 안 가고, 쇼핑과 쇼핑 속에서 맺어지는 남자들의 우정은 웃길까? 아무튼 4분의4박자의 이 행진곡을 오 작가는 완전히 변형시켰다. 3절이나 되는 가사도 해체해 가나다 순으로 배열해 버렸다. 곡은 처음에는 아주 느리고 소프트하게 전자 피아노로 연주하다가 나중에는 클럽 음악, 테크노 음악으로 바꿔 놓는다. 진짜 사나이를 비웃는 것이다. ‘태극기 그리고 나’에서는 보편성에 대한 전복의 수준을 더 높였다. 나라를 위해서는 목숨을 버리는 것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꼭 한번 시도해 봐도 좋겠다. 오 작가는 서울 여의도에서 가장 높은 게양대를 가진 태극기를 찾아냈다. 그리고 태극기 부분과 깃대를 2등분하는 등 3등분해서 그와 그의 친구들이 찍었다. 영상은 3부분으로 찍은 것을 다시 하나로 연결한다. 받침대 없이 두 손을 번쩍 들어서 만세 자세로 찍도록 했다. 1㎏ 남짓 하는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건강한 남자들도 10여분 버틸까 말까 한다. 1분, 3분, 5분, 시간이 흐르면서 촬영자는 육체적 고통을 이기지 못한다. 카메라가 흔들리고, 끙끙 앓듯이 커다란 신음소리를 낸다. 결국에 팔을 내리고 도로를 찍으면 영상은 암전에 들어간다. 국가 혹은 군대와 같은 집단은 이미지를 극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과장하고 사적인 것들을 배제하지만 오 작가는 그 안에 개인적인 흔적을 집어넣어서 보편성·일반성의 의미를 대해 반문하게 한다. ●“여성적 시각·동성애적 문화도 인정되길” 그는 보편성 일반성이 다수의 폭력으로 작동하거나 또는 남성성에 기초한 문화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비주류 문화로 몰아붙이는 상황을 거부하는 것이다. 다수결의 원칙은 사회를 운영하는 한 방식일 수 있지만, 그것이 극도로 지배적이거나 권력화할 경우 개인, 다양성 등과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소 일반적·상식적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억압한 적은 없는지 고민해볼 대목이다. 작가는 여성적 시각과 여성적 문화, 더 나아가 이반(異般)이라고 부르는 동성애적인 문화의 존재도 인정하길 바란다. 그는 작가 노트에서 “우리나라는 현대성에 대한 논의가 민주화나 시장경제 정착 등 정치·경제 영역에서만 이뤄지고 있지만, 문화적 영역에서의 현대성도 이제는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쯤에서 밝히자면 그는 오래전에 게이로 커밍아웃했다. 작품 ‘이름프로젝트-이반 파티’ 시리즈는 그의 정체성을 보여 준다. 2006년부터 게이 친구들과 연말파티를 하며 참석자들의 서명을 중첩해 써서 익명성을 보장해 주는 방식으로 제작한 포스터다. 사인 밑의 참석자 명단이 모두 지워져 있고, 그의 이름만 나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2002년 대안공간인 사루비아다방 전시 이후 7년 만의 개인전이다. 오랜만의 개인전인 만큼 관객은 나름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입장료 성인 3000원. (02)739-7067.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친박연대 “뭉쳐야 산다”

    대법원 확정 판결로 의원직을 잃은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가 15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마지막으로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를 주재했다. 서 대표는 회의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 대표의 구속 수감으로 앞으로는 이규택 전 의원이 ‘공동 대표’의 딱지를 떼고 단독으로 당을 이끈다. 이 대표는 회의에서 “서 대표 등은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하다.”면서 “서 대표의 자리는 그대로 비워두고 다시 이 자리에 돌아올 때까지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해 친박연대가 해체되거나 훼손 당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우리는 각별히 주의하고 하나로 똘똘 뭉쳐 서 대표의 뜻에 맞춰 정책정당의 면모를 갖춰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기 상임고문은 “우리 헌정사와 정당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보복 재판이었다.”면서 “죄 없는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영어의 몸으로 만들었지만 서 대표는 국민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 대표 쪽 관계자도 “친박연대는 그대로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박 연대가 독자 생존 의지를 밝힌 것은 나름대로 고민이 반영된 결과다. 당내 구심점인 서 대표를 잃은 데다 의석수도 비례대표 8개에서 5개로 줄어든 친박연대로서는 진로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비례대표가 개인적으로 당적을 바꾸면 현행법상 의원직을 내놓아야 한다. 한나라당에 흡수 합당되는 방법이 있지만, 재판 결과를 ‘정치 보복’으로 비난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가족이 희망이다] 가정16% “일·학업때문 별거”

    [가족이 희망이다] 가정16% “일·학업때문 별거”

    2009년 5월 한 초등학교. 눈이 깊고 피부가 갈색인 아이들이 눈에 띈다. 선생님이 가족관계에 대해 물어보면 “아빠는 집에 있고 엄마가 돈을 번다.”고 대답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부모가 이혼을 해 한쪽 부모와 사는 아이들도 많다. 30여년 전 “아빠가 돈 벌어오고 엄마는 살림한다.”고 대답하던 초등학교 교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남성가구주10%P↓ 여성은 6%P↑ 197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가족의 모습도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했다. 정부 주도로 국가 발전에 여념이 없던 1970년대엔 가족도 아버지를 정점으로 구성된 위계질서를 따랐다. 1980~90년대에는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면서 아버지의 권위는 점차 빛이 바랬고 가족은 수평적인 공동체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2000년대 들어 ‘기러기아빠’ ‘돌싱’(돌아온 싱글) 등 가족은 점차 다양한 모습으로 해체와 재구성을 거듭하고 있다. 1960~70년대 가정에서 아버지는 하늘이었다. 1975년 당시 남성 가구주의 비율은 87.2%였다. 2008년 현재 77.9%와 비교하면 10%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아버지를 정점으로 한 가족은 위계질서가 분명했다. 어머니는 가족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했다. 억척스럽게 일해서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는 드라마 ‘육남매’의 어머니는 전형적인 어머니상이었다. 조부모, 부모, 자녀로 이어지는 대가족은 점차 핵가족으로 변해갔다. 1962년 인구증가를 막기 위해 ‘둘만 낳아서 잘 기르자.’는 기치를 내세운 가족계획사업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이후 출산율은 감소세로 돌아섰다. 1975년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동안 평균 3.47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1978년에는 2.65명으로 떨어졌다. ●여성 사회참여율 40년새 28% 증가 1980~90년대는 풍요의 시대였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서자 가족도 변화의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집안 살림을 돌보던 여성들이 정장을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직장으로 뛰어들었다. 1970년 39.3%에 머물렀던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1980년 42.8%를 기록했고 1990년에는 47%에 이르렀다. 사회·경제적 지위를 확보한 여성들은 가부장제의 권위에 도전했다. 평균 시청률 59.6%였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1991년)는 보수적인 대발이 아버지(이순재분)와 신세대 며느리(하희라분)가 겪는 세대 갈등을 보여줬다. 1997년 몰아닥친 외환위기는 가족의 지형을 크게 흔들었다. 전 사회적으로 아버지 신드롬이 불었다. 고개 숙인 중년남성을 조명하는 소설이 쏟아졌다.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가 대표적이다. 황혼이혼 급증도 두드러진 사회현상이었다. 1988년 이혼한 여성 중 40대 이상은 15%에 그쳤지만 1998년에는 28%로 크게 늘었다. ●IMF이후 황혼이혼 급증 2000년대 이후 가족의 유형은 다양하게 분화됐다. 부부가 맞벌이하면서 자녀를 갖지 않는 ‘딩크족’(DINK·Double Income, No Kids)의 출현은 새로운 사회현상이었다. 교육문제로 자녀와 아내를 외국으로 떠나보낸 기러기족도 출현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분산가족 가구의 36.3%가 학업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다고 답했다. 농촌지역의 노총각들이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 온 동남아시아 여성과 혼인하면서 다문화 가정도 늘고 있다. 이혼한 뒤 활발한 사회활동을 전개하는 돌싱(돌아온 싱글의 준말),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남성이 증가한 것도 2000년대 들어 나타난 가족의 변화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천·신·정’이냐 ‘남·원·정’이냐… 정당개혁 반면교사

    “‘천·신·정’이냐, ‘남·원·정’이냐.” 한 시대를 풍미한 이름이 정치권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지난 17대 국회 당시 쇄신의 주역이었던 민주당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과 한나라당의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 그들이다. 정치권이 새삼 이들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은 18대 국회에서 또다시 쇄신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소장파와 비주류가 주류나 기존 권력 구도에 과감히 맞서고 있는 점은 당시 상황과 비슷하다. 정치 전문가들은 “당내 쇄신에 성공하려면 ‘천·신·정’과 ‘남·원·정’의 한계와 성과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14일 “‘천·신·정’의 개혁 바람은, 제도화되지 못한 정당의 한계에 부딪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신·정’은 새천년민주당 시절이던 2000년 말부터 ‘권력 2인자’인 권노갑 최고위원의 2선 용퇴를 주장하며 정풍 운동을 벌였다. 2002년 대선에서 이들은 국민경선으로 선출된 노무현 후보가 당 안팎에서 흔들리자 온몸으로 그를 지켰다. 2003년 새 정치를 내건 창당 작업이 난관에 부딪히자 이들은 다시 선봉에서 정면 돌파했다. 위기 때마다 자신을 버리고 정치생명을 건 셈이다. 이들은 쇄신의 결과로 권력의 핵심에 진입했고, 소장파의 성공 모델로 불렸다. 하지만 쇄신을 주도한 ‘천·신·정’이 주류가 되자, 이들의 개인적인 정치 행보에 따라 당도 같이 흔들리는 모순이 드러났다. 정당의 제도화가 선행되지 않은, 사람 위주의 쇄신 작업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나라당의 ‘남·원·정’은 2002년 대선 패배 후 인적 쇄신을 요구하며 개혁의 전면에 등장했다. ‘60대 이상 용퇴론’, ‘5·6공 인사 청산론’을 들고 나온 이들의 쇄신 운동으로 17대 총선 당시 최병렬 대표를 비롯해 현역 의원 60여명이 물갈이됐다. 이들은 한때 당의 ‘미래’로 불렸지만, 갈수록 정치에만 매몰되고 정책에는 소홀했다. 요란한 구호는 있었지만 대안은 제시하지 못했다.‘천·신·정’과 달리 자신을 버리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2007년 대선 경선과 본선을 통해 각자의 길을 걸으며 ‘남·원·정’으로 대표되던 소장파는 사실상 해체됐다. 정치컨설팅업체 포스 커뮤니케이션의 이경헌 대표는 “‘남·원·정’은 자기 정치를 하기 시작한 게 잘못”이라면서 “당권투쟁에서 개혁과 쇄신의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기존 권력에 편입됐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이 ‘친이 대 친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이번에도 쇄신과 개혁 작업이 계파 이익에 매몰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각당 내부의 쇄신 작업이 ‘천·신·정’과 ‘남·원·정’ 모델 중 어느 쪽의 전철을 밟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제도의 쇄신과 자기 희생 없이는 정당 개혁도 요원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김지훈 허백윤기자 kjh@seoul.co.kr
  • 자아실현 욕구 커지며 가족 틀 약해져

    ■ 얻은 것과 잃은 것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온 한국 사회만큼이나 가족의 모습도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가족의 급격한 변화는 가족 구성원은 물론 사회에도 전반적으로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전문가들은 가족 고유의 전통적인 보호·양육 기능이 약화되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가족은 노인과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복지 공동체’ 성격이 강했다.”면서 “지금의 가족이 공동체 기능을 상실하면서 국가가 대신 사회복지 시스템을 작동시켜 약자를 끌어안고 있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스웨덴 등의 북유럽 국가는 높은 세 부담을 바탕으로 사회보험제도를 활성화시켜 성공적으로 가족을 대체했다. 반면 한국은 가족 구조가 너무 빨리 바뀌다 보니 문제는 한꺼번에 발생하고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 측면도 있다. 함 교수는 “복지제도가 충분하지 못하면 개별 가족의 부담이 커지고 소득격차에 따른 사회 불평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면서 “국가와 가정의 역할 분담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찾는 게 당면 과제”라고 강조했다. 반면 가족의 변화는 시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양상일 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가치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안호용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족의 붕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문제 가정은 옛날에도 있었다.”면서 “다만 과거의 가부장적 가족구조가 갈등을 숨기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혼율이 높다고 부정적으로 볼 수 없고 결혼을 일찍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옥라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통적인 가족은 개인의 성장을 위한 필수조건, 즉 자아실현의 발판이었다.”면서 “그러나 개인의 욕망이 다양해지면서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가족 구조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고 내다봤다. 조 교수는 “현대 가족은 개인이 필요에 따라 만들고 해체할 수 있는 개념이 됐다.”면서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부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가족이 희망이다] 구직실패 청년 가정 떠나 또 다른 가족 해체 불러

    [가족이 희망이다] 구직실패 청년 가정 떠나 또 다른 가족 해체 불러

    11년간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가족은 날로 피폐해졌다. 선진국이 복지 제도로 해결했을 많은 일들을 우리나라는 고스란히 가족들이 떠안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에게 몰린 과도한 짐은 가족 해체로 이어지기도 한다. 중년 가장들은 실직, 청년들은 구직 실패를 이유로 가정을 떠나고 노인들은 자녀에게 부담이 되기 싫다는 이유로 자살을 선택하는 게 현실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남성·여성 가장들의 실직은 가족 해체의 가장 큰 원인이다. 생활비를 충당하려고 빚을 지고 집을 파는 과정을 거치며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것이다. 현재 서울의 한 노숙인 쉼터에서 생활하는 최모(42)씨의 경우도 그렇다. 2007년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해고된 최씨는 불황 때문에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생활비를 갖다주지 못하니 아내와 싸움이 잦아졌고 결국 아내는 가출했다. 최씨는 7살 난 딸을 보육시설에 맡겨두고 공사장 일용직을 전전하게 됐다. 그나마 지난해부터는 공사장 일자리도 끊기면서 노숙을 시작했다. 갈수록 증가하는 청년 실업자도 가족 해체의 또다른 원인이 된다. 지난 3월 청년 실업자 수는 전체 실업자의 9.1%나 됐다. 청년 실업자들은 취업 준비기간도 늘어나 장기간 부모의 경제적 원조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부모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청년 실업자들은 집을 나와 아르바이트나 일용직 노동을 전전하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노숙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제 위기가 시작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2년 전부터 청년 노숙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남 교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사후대책이 아닌 예방적 형태로 고쳐야 한다.”면서 “현 제도는 중산층이나 서민층이 완전히 빈곤층으로 전락한 후에야 도와주고 행정적 조건도 까다로워 혜택을 받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1일 경남 김해에서 77세의 한 노인이 아파트 15층에서 투신했다. ‘자식들에게 병원비 부담을 지울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7년 자살한 65세 이상 노인은 3541명이었다. 이는 노인 10만명당 73명에 해당하는 수치다. 1998년 38명에 비해 9년 사이에 2배가량 늘었다. 고령화로 노인들의 수명은 길어지는데 이에 맞는 복지제도가 없다 보니 노인 부양은 전부 가족의 몫이 된다. 경제 위기까지 겹치면서 노인들은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강학중 한국가정연구소 소장은 “불황이 심해질수록 경제적 능력이 없는 노인들이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가족이 희망이다] 실직→빚→이혼 ‘사라진 울타리’

    [가족이 희망이다] 실직→빚→이혼 ‘사라진 울타리’

    “가족이 모여 앉아 저녁 밥을 먹는 일상이 그렇게 소중한지 미처 몰랐습니다.” 한 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A(39)씨는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그는 지난해 겨울부터 제조업 시장이 무너지면서 아내에게 월급을 거의 갖다주지 못했다. 제조업의 특성상 기본급보다는 초과근무 수당으로 밥벌이를 한다. 그런데 불황으로 초과 근무가 거의 없어지면서 월급이 100만원도 채 나오지 않았다. 생활비는 카드빚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는 “아내가 10년 전 결혼할 때만 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 희망이 없다며 절망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아내와 다툼이 부쩍 잦아진 A씨는 별거를 고민 중이다. 1998년 당시 외환위기와 지난해 몰아닥친 금융 위기는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놨다. 경제적 위기는 가족의 안녕을 위협하는 최대 요소로 떠올랐다. 생계를 책임진 남녀 가장들이 실업자 신세가 되면서 그들이 책임진 가족 구성원들도 동반 위기를 맞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GM대우, 쌍용자동차 등 최근 정리해고 바람이 불고 있는 제조업 분야 종사자들이다. 최근 2646명을 정리해고하기로 한 쌍용자동차 직원의 가족들은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우리 가족을 살려달라.”고 호소하며 길거리에 나섰다. 대책위 대표인 이정아씨는 “남편이 쌍용자동차에 입사한 날 첫 딸을 낳았다. 둘이 힘을 합쳐 살면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희망을 품은 지 10년도 안돼 법정관리니 정리해고 같은 말을 듣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자영업 종사자들 중에는 ‘부부 채무불이행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혼하는 경우도 있다. 과일 노점상을 운영하던 최모(48)씨는 2년 전 장사가 되지 않아 돌려쓰던 너댓 개의 카드가 정지되자 부인과 합의이혼을 했다. 부인까지 채무불이행자로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20대 초반인 아들은 아내가 키우고 있다. 최씨는 “돈이 없어서 파산 신청도 못하고 있다. 돈 때문에 채권추심회사 수십곳에서 빚독촉이 오니 죽고만 싶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금융위기로 인한 가족 해체가 이제 시작이라면 11년 전 외환위기로 파탄 난 가족들의 아픔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1998년 6월 금융감독위원회의 퇴출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충청은행 등 5개 은행 전 직원들이 그런 케이스다. 장준배 충청은행 재건동우회 회장은 “실직 후 빚더미에 오른 직원들은 재산을 부인 명의로 돌려놓고 서류상 이혼을 했는데 거의 실제로 이혼을 했다. 퇴출은 가정파탄을 알리는 경고음이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가장의 실직은 이혼뿐 아니라 가족들의 건강을 위협하기도 했다. 퇴출 은행원인 김모(47)씨는 현재 부인과 합의이혼을 고려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가족관계등록부에 자신의 이름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11년 전 해고를 당한 뒤 아동복 장사, 슈퍼마켓 운영 등 안해 본 일이 없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고단한 삶을 사는 동안 아내는 스트레스로 2004년 갑상선암에 걸렸다. 병에 걸린 아내와 대학교 2학년, 고등학교 1학년인 두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혼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김씨는 “가난하지만 그래도 자존심이 있다. 자식들에게 부모의 이혼이라는 상처는 절대로 주고 싶지 않은데 고민이 많다.”며 고개를 떨궜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가족이 희망이다] “가족 말만 들어도 가슴 아파요”

    가족이 붕괴되고 있다. 한때 가정의 정신적 버팀목이 됐던 가족관계가 극심한 경기불황과 생명경시 풍조 등과 맞물려 위기를 맞고 있다. 삶에 대한 가치관이 흔들리면서 자살 사이트가 기승을 부리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가족은 공동체가 사라진 사회에서 파편화된 우리를 따뜻하게 보듬어줄 유일한 안식처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서울신문은 ‘가족이 희망이다’ 라는 시리즈를 7회에 걸쳐 싣는다. 가족이 급속하게 해체되고 있는 현실을 짚어보고 절망 속에서 가족 사랑의 길을 찾아본다. 서울 가양동의 89m²(약 27평)가량 되는 단독주택에는 서로 다른 가정에서 온 7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다. 한때는 단란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아빠의 실직과 부모의 다툼 등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이 아이들은 그룹홈(공동생활가정)에서 생활한다. 가정의 달인 5월의 햇살은 이 아이들에게 결코 따뜻하지 않다. 아이들은 한결같이 “가족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아프다.”며 고개를 숙였다. ●부도난 아버지 가출… 뿔뿔이 아버지 김성환(50·가명)씨의 플라스틱 공장이 부도만 나지 않았어도 김희수(가명·16)양의 네 식구는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그룹홈에 들어온 김양은 꽤 유복한 집안의 막내딸이었다. 지난해 6월 아버지 김씨는 사업에 실패해 10억원이 넘는 빚을 졌다.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쓰러졌고 석달 뒤 집을 나갔다. 몸이 약한 어머니 박모(47)씨가 생계를 책임지게 됐다. 인쇄소에서 책 제본작업을 하며 벌어오는 80만원이 가족 수입의 전부였다. 빚쟁이들은 희수네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희수네는 아버지가 쓰러질 때까지만 해도 전세 3500만원짜리 단칸방에 살았지만 곧 월세 30만원짜리 방으로 쫓겨났다. 생활비가 없어 보증금을 까먹은 탓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어머니가 하던 인쇄소 일마저 끊겨 오도가도 못하게 됐다. 결국 가족은 헤어져야 했다. 지금 어머니는 친구 집에, 남동생(12)은 외할머니네 집에 있다. 희수는 지역아동센터 교사의 소개로 그룹홈에 왔다. 희수는 버려졌다는 충격으로 아직도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발달장애 2급인 이현우(가명·11)군은 태어난 지 두달 만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경기도 수원에 있는 한 보육원에서 자랐다. 2006년 3월 현우의 엄마(36)가 보육원에 와서 현우를 데려갔다. 엄마는 현우의 친아버지와 이혼한 뒤 동거남과 함께 서울에 살고 있었다. 동거남은 직업없이 집에서 빈둥대며 지냈고 엄마가 노래방과 유흥주점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수시로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동거남은 엄마가 집을 비우면 현우를 수시로 때렸다. ●두번 버림받은 11살 가슴엔 ‘피멍’ 견디다 못한 엄마는 이듬해 6월 현우를 또다시 공원에 버렸다. 한달 뒤 현우가 그룹홈에 왔을 때 현우의 온몸은 피멍투성이였고 영양실조까지 걸린 상태였다. 그룹홈 교사의 보살핌으로 신체적인 건강은 회복했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대로 남았다. 하지만 현우는 너무도 엄마 품을 그리워한다. 잠자리에 들 때면 그룹홈 교사 이모(27·여)씨를 끌어안고 좀처럼 놔주지 않는다. ●“위탁문의 매달 20% 늘어” 가족 해체의 최대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집계한 요(要) 보호아동 중 가정의 빈곤·실직·학대를 겪는 아이들은 2002년 4263명에서 지난해 6002명으로 늘어났다. 한 그룹홈 원장 A씨는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보호시설 등에 아이들 위탁을 원하는 부모들의 문의가 지난해 9월부터 매달 20%가량 늘고 있다.”고 전했다. 손승영 동덕여대 교수는 “쉼터와 보육시설 수만 무조건 늘리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면서 “경제 위기가 장기화될수록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을 감안해 현재 기능별로 분화된 쉼터 중 인원을 다 채우지 못한 곳은 일시 아동보호시설로 사용하는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달란 박성국기자 dallan@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朴,PK에 깜짝놀랄 액수 뿌렸다” “있는 사람들이 더한 경우” 멀쩡한 우리말 동화책 영어판 내기 盧 수십만달러 “추가 수수” “원래 포함된 것” ‘트와일라잇’ 속편 대본 쓰레기통에 ‘터미네이터 4편’ 청출어람 고대 총장 “건설대학 세웠으면” 박지성 “리버풀의 추격 즐기고 있다”
  • “돈 때문에” 이혼 12년만에 5배↑

    “돈 때문에” 이혼 12년만에 5배↑

    근년들어 이혼과 실직, 패륜 등의 가슴 아픈 일들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우리 사회가 건강성을 잃어가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칼로 찌르거나 동반자살하는 등 예전 같으면 생각하지도 못할 사건들이 자주 목격된다. 특히 가족의 울타리가 허물어지면서 청소년과 노인층이 급속하게 사회적 약자로 전락하고 있다. ●외환위기 후 이혼율 지속 증가 통계청이 집계한 1996~2008년 사유별 이혼 건수를 보면 가족의 해체 양상과 이유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혼의 주요 사유로 ‘경제 문제’가 늘고 있는 추세다. 1996년 2819건으로 전체 이혼사유의 3.5%에 불과했던 ‘경제 문제’는 지난해 1만 6565건으로 전체의 14.2%를 차지했다. 12년 만에 10.7%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이혼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은 경제적 문제와 이혼이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들어 이혼율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 11만 8000건이던 이혼 건수는 2000년 12만건, 2001년 13만 5000건, 2002년 14만 5300건, 2003년 16만 7100건까지 치솟았다. ●가족해체 최대 피해자는 자녀와 노인 어른이 아이를 보호하고 중년층이 장년층을 공경하는 전통적 가족 상(像)이 해체되면서 가장 피해를 입은 대상은 청소년과 노인층이다. 가족의 보호를 받아야 할 이들 계층이 보호를 받지 못하면 사회적 약자층으로 편입되고, 이는 사회적 불안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연도별로 집계한 보호가 필요한 아동현황을 보면 1998년 외환위기 당시 1만 800명이었던 요(要)보호아동은 2001년 1만 586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2004년 9393명, 2007년 8861명으로 줄어들었다가 지난해 9284명으로 늘어나 7년 만에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요보호 아동은 부모가 없거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보호자가 보호를 할 수 없는 아이를 말한다. 노인학대 건수도 늘어나 중앙노인보호 전문기관의 노인학대 신고접수 건수가 2006년 3996건, 2007년 4730건, 2008년 5254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과 남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대디가 늘어나는 것도 경제 위기로 이혼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따른 현상이다. 지난 1985년 59만 4000가구였던 한부모 가구는 2005년에만 104만 2000가구로 20년 동안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한부모 가구는 부모가 사별이나 이혼, 혹은 미혼인 경우에도 해당하는데 최근에는 이혼이나 미혼으로 인한 증가 추세가 두드러진다. 이혼·미혼으로 인한 한부모 가구 비율은 1990년 24.8%에서 2005년 51.9%로 증가한 반면 사별로 인한 한부모 가구 비율은 1990년 75.2%에서 2005년 48.1%로 감소했다. ●비혈연 가족·다문화 가정 급증 기존 혈연 중심의 가족상을 벗어난 가치관의 변화는 다양한 대안 가족을 등장시켰다.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975년 5명이었던 평균 가구원 수는 30년 후인 2005년 2.9명으로 줄어들었다. 전통적인 가족상으로 불려졌던 3세대 가족, 즉 조부모·부모·자녀로 이뤄진 가족은 1970년 전체 가구의 17.4%를 차지했지만 2005년에는 5.7%로 줄어들었다. 30년간에 3분의1 정도로 줄어든 셈이다. 반면 부부로만 이뤄진 1세대 가구는 증가 추세다. 1980년 8.3%에서 2005년에는 16.2%로 두배가량 늘어났다. 1인 가구도 1980년 4.8%에서 2005년 20%로 4배나 증가했다. 피가 섞이지 않은 ‘비혈연 가족’도 가족 연대 의식이 옅어지면서 생긴 또다른 사회 현상이다. 전체 가구의 구성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 정도지만 증가세는 빠른 편이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해 펴낸 ‘아동·청소년백서’에 따르면 2000년 15만 9231가구였던 비혈연 가구는 전체 가구의 1.1%를 차지한데 비해 2005년에는 22만 5946가구로 전체의 1.4%를 차지했다. 5년간 7만여가구가 늘어났다. 다문화 가정도 늘어나 1990년 4710건에 불과하던 국제결혼 건수가 2005년에는 4만 3121건으로 15년 동안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사설] 버려지는 아이는 늘고 국내 입양은 줄고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부모의 이혼·별거·실직이 늘어나면서 버려지거나 방치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보건복지가족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의 경우 시설이나 가정보호 조치가 취해진 요보호아동은 총 9284명으로 2007년보다 423명 늘어났다. 2001년 카드대란 이후 7년만에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다. 부모가 아이를 두고 떠나 버린 ‘유기아동’도 지난해 151명으로 2007년(37명)보다 4배 이상 늘었다. 집계된 것만 이 정도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티없이 자라야 할 어린이들에게마저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더없이 불행한 일이다. 버려진 아이들이 새 보금자리를 찾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국내 입양은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하다. 가정의 달에 한 가정에 한 명씩 입양하자는 취지로 5월11일을 입양의 날로 제정해 어제가 네번째였다. 하지만 입양의 날 제정 취지가 무색하게 국내 입양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경제난으로 입양을 계획했다가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국가적 경제위기 때마다 요보호 아동이 늘어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회안전망이 그만큼 허술하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가족 해체를 경험한 아이들이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면 성년이 되어서까지도 정신적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범죄자 등 사회 낙오자가 될 수도 있다. 어린이들이 버려지는 불상사가 없도록 정부는 빈곤층 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아울러 일시적인 요보호아동들을 위한 소규모 보호시설과 입양가정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것을 당부한다.
  • [발언대] 효행이 만복의 근원이다/홍원식 원광디지털대학교 초빙교수

    [발언대] 효행이 만복의 근원이다/홍원식 원광디지털대학교 초빙교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명심보감(明心寶鑑)상의 격언으로 동서고금을 통달하는 자연법적 진리라 해도 과언이 아닌 말이다.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 가정 해체의 위기 또한 가속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때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해체 위기의 가정을 위해 무언가를 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물론 제도적 시스템을 통해서 혜택이나 공적 구조를 해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최소한의 수준일 뿐 근본적 대책을 강구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경제 위기의 전선에 선 가정들 입장에서 가장 도움의 손길을 고대하는 금융권이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 정책을 당연한다는 듯이 일삼고 있다는 점이다. 시중은행들의 경우 예외 없이 경제위기에 처해 대출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는 가정이나 신용상태가 양호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대출 이율을 오히려 높이거나 아예 대출 자체를 거부하는 만행을 버젓이 자행하고 있다. 사회적 환경은 이처럼 위기의 가정에 냉정한 실상이다. 이러한 때에 살아남는 극한의 비결은 가정의 화목과 건강을 도모하는 길이다. 위기의 가정들이 살아나면 사회적 환경과 분위기 또한 살아난다. 이처럼 중요한 가정의 화목을 이루는 최대 비결은 ‘효행이 만복의 근원이다.’라는 확고한 인식과 실천이라 할 것이다. 경제위기 속에서도 효행은 짐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라는 분명한 믿음이 필요하다. 지극 정성 어린 효행이 있다면 하늘의 도움이 어찌 없겠는가! 백범은 소천을 앞둔 아버지를 살려 보겠다고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생피를 공양했고, ‘조국이 독립되기 전에 생일상을 받은 죄’로 나이 50에 어머니로부터 종아리를 맞았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백범 김구 주석이 세기를 넘어서 존경 받는 민족적 사표로 남아 있는 비결 중에 하나가 민족에 대한 끝없는 사랑에 앞선 ‘효행’에 있었던 것이다. 홍원식 원광디지털대학교 초빙교수
  • 침체된 한국 ROCK 구심점 되고파 백두산다시 우뚝 솟았다

    침체된 한국 ROCK 구심점 되고파 백두산다시 우뚝 솟았다

    “이 나이에 다시 시작하는 우리를 보며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백두산이 다시 우뚝 솟았다. 백두산이 보컬 유현상(55), 기타 김도균(45), 베이스 김창식(54), 드럼 한춘근(55)의 원년 라인업으로 지난달 말 새 앨범 ‘리턴 오브 더 킹’(Return Of The King)을 내놨다. 국내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손꼽히는 김도균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랜 기간 각자 음악 여행을 떠났다가 백두산이라는 모함으로 돌아온 것이다. 백두산은 한국 록 르네상스로 불리는 1980년대에 주다스프리스트의 롭 핼포드에 견줄 수 있는 샤우팅 창법과 강력한 연주, 뜨거운 무대 매너를 앞세워 가장 깊은 발자국을 남긴 밴드. 1986년 가요스러운 록이었다고 자평하는 1집 ‘투 패스트! 투 라우드! 투 헤비!’(Too Fast! Too Loud! Too Heavy!)에 이어 이듬해 헤비메탈 사운드로 중무장한 걸작 ‘킹 오브 록앤롤’(King Of Rock’N Roll)을 내놓으며 밴드 이름처럼 ‘백두산’ 같은 존재가 됐다. 유현상이 밴드를 떠난 뒤 김도균과 김창식을 중심으로 3인조 밴드로 전환해 1992년 3집을 내놨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백두산은 지난해 봄부터 다시 뭉쳐 동두천 록 페스티벌, 롤링홀 단독 공연, 올해 들어 메탈 엑스타시, 아시안 메탈 페스티벌 등에서 기지개를 켜왔다. 상상마당 단독 공연을 이틀 앞둔 지난 7일 마포의 한 연습실에서 백두산을 만났다. 한춘근은 집안 사정으로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했다. 일주일에 3차례 정도 모여 3시간 정도 합주를 한다고 한다. 가훈이 ‘죽어도 록, 살아도 록’이라는 김창식은 “충분한 연습이 없으면 나이를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1980년대 활동은 강렬했지만 너무나 짧았다. 백두산은 왜 날개를 접게 됐을까. 유현상이 여고생 가수 이지연을 발굴해 톱스타로 키우는 과정에서 밴드와 소원해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김도균은 백두산의 음악을 수용하기에 당시 한국 사회가 너무 닫혀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해외 진출을 목표로 만들었던 2집은 대부분 영어 가사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국내에서는 음악이 너무 세다며 냉담한 반응도 많았는데 해외에서 오히려 반향이 있었다. 일본 록 전문 잡지 ‘번’(Burn)에서 한국 밴드가 경고를 날리고 있다며 백두산을 대서특필했다. 백두산 앨범은 미군 PX에서 잘 팔리기도 했다고 한다. 유현상은 김도균을 가리키며 농담을 던졌다. “사실 (해체의)주범은 이 친구예요. 이런 풍토, 이런 분위기에서 음악하기 힘들다고 영국으로 훌쩍 가버렸죠. 하하하.” 유현상이 1990년대 초반 트로트 가수로 변신하며 충격을 안겨줬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그는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와 결혼하며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영국으로 음악 유학을 갔던 김도균은 록과 국악을 접목시키는 데 심취했다. 요즘도 국악과의 협연 무대에 자주 나선다고 했다. 김창식은 지방에서 모텔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다. 하지만 새 음악을 접하기 위해 독일 등을 드나들었고,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한춘근은 음악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후배 양성에 힘을 썼다. 모두 음악과의 끈을 놓지 않고 지냈다는 이야기다. 다시 뭉치게 된 계기를 유현상은 “자연스럽게 때가 됐고, 우리를 필요로 하니까 우리가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록이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김창식은 “요즘 록이 너무 소외되는 등 음악적 불균형이 너무 심해요. 국내 록 밴드 가운데 맏형으로서 책임감을 느껴 나서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백두산에게 록이란 무엇일까. 유현상이 “제일 높게 멀리가는 소리”라고 짧게 정의하자, 김도균이 “파워죠. 록은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힘과 용기, 진취적인 마인드, 원동력 그 자체”라고 덧붙인다. 그래서일까. 정통 헤비메탈 사운드가 오롯한 새 앨범의 메시지도 실망없는, 절망없는, 살 만한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것. 백두산의 노래가 국민들에게 힘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현상은 “일제시대였으면 우리는 독립투사였을 것 같다.”고 웃는다. “지금은 시작에 불과해요. 앞으로 백두산은 더 높아지고 더 세질 겁니다. 한창 활동할 때 중고등학생이었던 팬들이 다시 모여 문화적 공감대를 이뤘으면 좋겠어요.”(유현상) “한국에 무엇이 있냐는 물음에 백두산이라는 밴드가 있다고 답할 수 있게 한국 음악의 자랑거리가 되겠습니다.”(김도균) “록은 영화를 능가할 수 있는 문화 상품이에요. 김연아가 피겨를, 박세리가 골프를 띄운 것처럼 우리가 잠자고 있는 록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습니다.”(김창식) 글·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씨줄날줄] 사우나 외교/노주석 논설위원

    1971년 4월10일 일본 나고야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미국 탁구선수단 일행이 중국 베이징을 전격 방문,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듬해 닉슨 대통령이 방중, ‘상하이성명’을 통해 양국의 적대관계를 청산했다. 무게 2.5g에 불과한 탁구공이 20년 넘게 막혀 있던 ‘죽(竹)의 장막’을 무너뜨렸다.그 유명한 ‘핑퐁외교’의 탄생이다.   정상외교, 다자간외교, 동맹외교, 중립외교 등 다양한 이름의 외교 종류가 있지만 딱딱한 용어일 뿐이다. 오히려 언론이 만들어낸 핑퐁외교처럼 특정형태로 나타나는 외교현상이 흥미를 자아낸다. 미국의 ‘달러외교’, 한국의 ‘북방외교’, 대만의 ‘탄성외교’ 등이 대표적이다.   옛 소련의 문화 아이콘으로 다차(개인별장)와 사우나, 보드카를 들 수 있다. 이 중 ‘다차외교’는 러시아의 전매특허이다. 1994년 옐친 대통령의 초대를 받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도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다차영접을 받았다. 미국 부시 전 대통령이 텍사스 클리퍼드 목장으로 가까운 정상을 초대한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사우나시설을 갖춘 호화판 다차는 극소수이고, 서민용 다차에는 사우나가 없다. 사우나는 우리의 룸살롱처럼 별개의 접객시설로 발전했다. 응접실과 사우나 독, 샤워시설, 여러 가지 형태의 욕조, 당구대와 가라오케, 침실 등이 겸비돼 있다. 1991년 옛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물론 독립국가연합 소속국 대부분이 사우나문화를 애용하고 있다. 남성세계의 모든 비즈니스가 이곳에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제 중앙아시아 방문길에 오른 이명박 대통령에게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종신 대통령이 대통령 별장에 마련된 전통 사우나에서 함께 목욕을 하자고 제의했다. 옛 종주국이던 푸틴 대통령 등 몇몇 정상에게만 행해졌던 최고수준의 의전이다. 카자흐스탄은 서유럽만 한 크기의 국토 면적과 세계 7위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자원대국이다. 두 정상이 발가벗고 허심탄회하게 ‘사우나외교’를 펼치는 모습이 상상만해도 흥겹다. 양국이 모두 윈윈하는 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서울광장] 청계천 하늘의 치마 저고리/김종면 논설위원

    [서울광장] 청계천 하늘의 치마 저고리/김종면 논설위원

    “자기만 알아먹는 예술이 무슨 예술이야. 그런 거 자기만 보면 되지 왜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보게 만드는 거야.” 청계천 길섶을 함께 걷던 동료가 느닷없이 내게 따지듯 물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치마 저고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지 않은가. 이 공공의 장소에서 야마리 없이 빨래를 말리고 있는 것은 아닐 터. 그러면 누가 어떤 컨셉트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필경 설치미술이라는 것이리라. 바람에 날리는 여인의 옷가지에서 상큼한 물빨래 냄새가 나지 않느냐고 농도 던졌지만 그는 시종 진지했다. 혹시 예술을 저주하는 건 아니었을까. 현대미술을 감상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고역인지 모른다. 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모르는 지독한 해체시와도 같은 현대미술. 그것을 이해하는 건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다. 마르셀 뒤샹이 ‘샘’이란 작품을 선보이면서 변기도 예술이 됐다.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한갓 슈퍼마켓의 비누상자를 당당한 예술작품 반열에 올렸다. 심지어 안드레 세라노의 ‘오줌 예수’ 같은 충격적인 작품조차 예술이란 이름으로 통용된다. 적절한 상황과 논리만 주어지면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이들은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런 판에 새삼스레 현대미술의 불가해함을 들먹이는 것은 생뚱맞다. 다만, 가장 편안해야 할 청계천이라는 만인의 휴식공간에 ‘불편한’ 작품들이 널려 있어 하는 얘기다. 돌이켜 보면 2006년 미국의 팝아트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의 설치작품 ‘스프링’이 청계천 입구에 들어설 때 얼마나 말이 많았나.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느니 외국작가가 맡는 건 문화사대주의니 말들 했지만 요는 이 거대한 다슬기 조형물이 과연 청계천의 상징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작가는 도자기와 한복, 보름달에서 착안했다며 한국적 정서를 강조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옛 청계천을 추억할 수 있는 좀더 애틋한 정서와 혼이 깃든 ‘우리식’ 조형물을 주문했다. 예술에 국경은 없지만 생경한 박래품이 주는 거리감이랄까 팝아트 특유의 장난스러움 같은 것이 싫었던 것이다. 이제 세월이 흘렀다. 사람들은 장승처럼 서 있는 저 무정한 다슬기에 정을 붙였을까. 청계천의 버들치는 뭍에 오른 다슬기와 한 식구가 되었을까. 오늘도 청계천에서는 새로운 작품이 전시되고 온갖 퍼포먼스가 진행된다. 사방팔방 열린 공간에서 펼쳐지는 것이니 공공의 미술이다. 그러면 공공미술다워야 한다. 실험적인 전위예술도 대중적인 팝아트도 좋지만 우리의 보편적 정서와 한 가닥 맥은 닿아 있어야 한다. 실험을 위한 실험 예술은 대안공간에서나 할 일이다. 언제부터 청계천이 하위문화의 배출구가 되었나. 벼와 피를 엄격히 가려내야 한다. 청계천은 있는 것 없는 것 다 내다 파는 만물상이 아니다. 청계천을 왜 다시 살려냈나. 그 복원의 의미를 살펴보면 청계천 미술이 지향할 바를 알 수 있다. 지금 청계천은 너무 뒤숭숭하다. 미술마저 거기에 가세하는 꼴이다. 청계천 미술은 좀더 자연스럽고 차분한 절제의 미학을 보여줘야 한다. 어수선한 난장을 거두고 쉴 만한 물가로 만들어야 한다.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잃지 않는 카오스모스의 예술이 청계천에 어울리는 이름 아닐까. 청계천을 걷는 선남선녀에게 미술이 위안을 주진 못할망정 짜증을 안겨줘서야 되겠는가. 지나가는 이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성숙한 청계천 미술을 기대해 본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누벨바그의 대모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

    누벨바그의 대모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

    “남자들에게 뭘 증명해 보일 필요는 없다. 그저 좋아하는 영화를 하면 된다.” 누벨바그의 대모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이 열린다. 서울 홍익대 인근 미디어극장 아이공이 개관 3주년을 기념해 특별히 준비했다. 오는 12일부터 31일까지다. 바르다는 1950년대 말 프랑스 영화계에서 새로운 경향을 주도했던 누벨바그 감독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다. 기존 영화 관습을 해체하는 한편 앞서 영화에서 대상과 타자에 그쳤던 여성을 영화의 중심에 갖다 놓으며 여성주의 영상언어를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바르다의 작품에서 여성은 남성의 관음증과 욕망 분출의 대상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가 된다. 1928년에 태어난 바르다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4), ‘5시에서 7시까지의 클레오’(1961), ‘행복’(1964),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1976), ‘방랑자’(1985) 등 장편 영화 5편과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시네바르다포토’(2004)가 준비됐다. 또 1957~2003년 사이에 만들었던 단편 14편이 두 가지 세션으로 묶여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 20일과 22, 30일에는 각각 ‘행복’, ‘방랑자’, ‘노래하는’에 대한 강연회도 곁들여진다. 상영 스케줄은 홈페이지(www.igong.org)를 참고하면 된다. 5000원. (02)337-2870.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8일 TV 하이라이트]

    ●추적 60분(KBS1 오후 10시) 실직, 사업의 실패 등 경제 위기를 겪은 후 가족의 곁을 떠나는 가장들이 늘고 있다. PC방, 만화방 등에서 잠자리를 해결하는 아버지들. 서로 등을 돌린 채 외면하는 부부와 그로 인해 상처 받는 아이들. 2009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경제위기속에 해체되고 있는 가족의 현실을 조명해 본다. ●유희열의 스케치북(KBS2 밤 12시15분) 유희열의 초·중·고 한 학년 선배이자, 고등학교 시절 유희열을 방송반으로 직접 영입한 베테랑 MC 신동엽을 초대해 이들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어 본다. 소녀시대의 ‘Gee’가 이런 느낌으로 바뀔 수도 있다. 유리상자가 고품격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편곡한 ‘Gee’를 선보인다. ●휴먼다큐멘터리 사랑 ‘풀빵엄마’(MBC 오후 10시55분) 두 아이 최은서, 최홍현을 위해 풀빵장사를 하는 싱글맘 최정미씨는 위암 말기 환자다. 항암치료로 피폐해진 몸을 이끌고 풀빵 반죽을 새벽부터 준비하고, 밤 9시까지 장사를 한다. 아이들을 위해 꼭 살아야만 한다는 풀빵엄마 최정미씨의 처절한 모성애를 만나 본다. ●있다! 없다?(SBS 오후 8시50분) 세상을 발칵 뒤집은 초특급 된장이 출현했다. 수상한 사진 한 장에 표시된 문구, ‘1억 된장’. 도무지 믿기지 않는 상식 밖의 가격. 1억짜리 된장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 본다. 최초로 공개되는 미다스의 손금들, 그 안에 숨겨진 깜짝 놀랄 비밀이 밝혀진다. 또 1m 거대 통닭의 비밀을 밝힌다. ●행복이 가득한 우리가족 특별요리(EBS 오후 8시20분) 신청자인 며느리가 쓴 편지를 요리연구가 김노다가 읽고, 시부모님을 위한 요리인 ‘오디갈비 수삼구이’를 박수홍과 함께 요리한다. 요리가 끝난 다음, 신청자인 며느리와 아이들, 시부모님을 함께 모셔 완성한 요리를 시식하면서 며느리의 사랑이 유별난 시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시네마 투데이(YTN 오후 8시35분) 지난달 30일 개막한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 소식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이명세 감독과 배우 조재현의 인터뷰 등이 방송된다. 개그맨 안상태가 최민식 주연의 영화 ‘취화선’과 ‘올드 보이’를 소개하고, 다음 주 개봉하는 유준상 주연의 영화 ‘로니를 찾아서’의 흥행 포인트를 분석해 본다.
  • 대구길 = 명품관광자원

    대구길 = 명품관광자원

    “1900년대 초 미국 선교사들의 사택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대구 근대화가 태동한 곳입니다. 대구읍성 해체 당시 선교사들이 성돌을 가져와 이 건물의 계단돌과 초석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난달 25일 오전 골목문화해설사가 동산선교사주택에 대한 역사를 설명하자 참가자들은 메모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날 동산선교사주택과 진골목 일대에서 열린 ‘도심문화탐방 골목투어’ 모습이다. 진골목은 긴골목의 대구식 표현으로 일제시대 부호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참가자 25명은 오전 10시부터 2시간여 동안 3㎞를 걸으며 골목관광을 했다. 이 골목투어는 대구 중구가 도심골목에 숨은 문화유적을 통해 대구 역사를 보여 주려는 프로그램. 지난해 5월 시작했으며 올해는 지난 3월 초에 처음 운영했다. 3월 125명, 4월 395명 등 모두 520명이 다녀갔다. 매주 둘째·넷째주 토요일과 셋째주 목요일 등 한달에 세차례 실시하는 것을 감안하면 반응이 폭발적이다. 지난 한해 동안 참가자 500명을 이미 초과했다. 골목투어 제1코스는 경상감영공원→향촌동→종로초교→삼성상회→달성공원, 제2코스는 동산선교사주택→3·1만세운동길→계산성당→이상화·서상돈고택→종로→진골목이다. 한국JC특우회 지부장들과 골목투어를 한 석왕기(54·한국JC특우회 회장) 변호사는 “대구 문화를 지부장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참가했다.”며 “다른 지역을 관광하는 것보다 더 의미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길’이 관광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대구시는 도심 골목길은 물론 팔공산과 낙동강, 금호강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문화, 자연·생태 환경이 집중적으로 모인 장소를 중심으로 걷는 길 만들기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치기로 했다. 우선 시는 골목투어와 같은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심 골목길을 체험로로 단장키로 했다. 대구는 근대 도심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도시로 꼽힌다. 이와 함께 지역 명산인 팔공산에 흩어져 있는 불교문화유산을 활용, 걷고 체험하는 문화 탐방길을 만들 예정이다. 갓바위를 관리하는 선본사에서부터 지장사→동화사→부인사→파계사를 잇는 20㎞의 팔공산 순례길이 핵심이다. 여기에다 방짜유기박물관→자연염색박물관→공산갤러리→송광매기념관을 연결하는 팔공산 문화길 조성도 검토하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과 팔공산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패한 뒤 후퇴한 길을 복원해 팔공산의 역사적 장소성도 알리기로 했다. 낙동강변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다니던 옛길을 되살리고 산책길, 유적답사길, 농촌체험길, 모험레포츠길, 자전거길 등을 조성한다. 낙동강 지류인 금호강변에는 안심습지와 팔공산을 잇는 생태 및 습지탐방로, 야생화단지, 조류 탐조시설, 생태문화공원, 연꽃생태 체험원 등을 만든다. 이밖에 시는 숨어 있는 아름다운 거리를 찾기 위해 7월 중순까지 구·군·시민의 추천을 받아 아름다운 거리 두곳을 선정할 계획이다. 길이가 50m 이상 되는 이미 조성된 골목이나 거리 가운데 전통·역사가 있는 거리나 문화가 살아 있는 거리, 간판이 아름다운 골목, 가로수가 예쁜 거리, 인도가 아름다운 거리 등 특징있는 거리나 골목이 대상이다. 시 관계자는 ”길은 삶의 채취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소중한 공간”이라면서 “세계육상대회가 열리는 2011년 전까지 도심 길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대구의 자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글쓰기는 테크닉이 아니라 삶의 실질적 정직 드러내기”

    “글쓰기는 테크닉이 아니라 삶의 실질적 정직 드러내기”

    시나 소설은 더이상 독자로서 읽는 대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높디높은 장벽이 허물어지며 누구나 직접 쓸 수 있는 것으로 바뀐 지 오래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여전히 자신을 고통의 극점으로 밀어넣는 행위다. 편지 한 줄, 일기 한 줄, 시어 하나, 소설의 첫 문장을 쓰고 고르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는 행위인 듯 고통스럽다. 많은 이들은 자신이 쓰고 싶고, 또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글을 쓰는 방법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글쓰기의 테크닉 측면으로 접근하기 일쑤다. 소설에서 요구하는 장르 규칙은 어떠하고, 첫 문장은 어떻게 구성하며, 기호는 어떻게 활용하며, 신춘문예가 선호하는 방식은 어떠하고…. 대중화된 글쓰기, 혹은 신춘문예 등단용 맞춤형 글쓰기에서 보여지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 중의 하나다. 소설가 이만교(42)가 이러한 글쓰기 공부 관행에 메스를 가했다. 2006년부터 만 3년 동안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진행한 글쓰기 강좌의 경험과 실제 강독하고 토론했던 사례를 바탕으로 한 글쓰기 공부책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그린비 펴냄)를 펴냈다. 그가 내내 강조하는 것은 ‘강렬하게 살맛 나게 하는 창조적 글쓰기 자체가 목적인 수업’이다. 이에 따라 수강생들이 제출한 작품을 보고 기술적으로 문법이나 구성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 전체를 놓고 감각하는 방법, 사유하는 방법, 상상하는 방법, 실천하는 방법까지를 함께 점검하는 작업을 가져왔다. 이만교 강의의 핵심 키워드는 ‘정직하기’다. 내 삶에 정직하기, 내 무의식(욕망)을 정직하게 표출하기, 그렇게 욕망을 드러낸 뒤 느낀 추악함과 고통스러운 쾌락, 부끄러움 등 느낌을 정직하게 쓰기 등이다. 이만교는 이것을 ‘도덕적 정직’이 아닌 ‘실질적 정직’이라고 규정한다. 1992년 문예중앙에서 시로, 1998년 문학동네에서 소설로 각각 등단한 이만교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나쁜 여자, 착한 남자’ 등을 내놓으며 촉망받는 젊은 작가의 맨 앞줄 즈음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다. 하지만 그는 “글쓰기가 무엇인지, 나는 왜 쓰려고 하는지 등 기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글쓰기 작업이 꽉 막혀 버린 시기를 가졌다.”면서 “당시 내가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진실은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쓰는지 나도 모른다.’는 사실뿐이었다.”고 말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에 대한 믿음으로 그렇게 시작됐지만 이제 이만‘교(敎)’로 통할 정도로 열광적인 환호와 뜨거운 지지자들을 낳기 시작했다. ‘글쓰기 공작소’는 그의 강의를 고스란히 활자로 옮겨놓았다고 보면 된다. 물론 이만교식 글쓰기 강의의 핵심적 특징 중 하나인 내 작품이 낱낱이 해체되는 낯뜨거운 ‘실질적 정직’의 합평 기회를 직접 가질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살아 있는 분석 사례를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기고] 자살 예방 대책 발 벗고 나서자/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기고] 자살 예방 대책 발 벗고 나서자/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요즘 자살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2004년 이후 OECD 국가 중 1위인 데다 그 수도 1만 2000명 수준으로 산업재해나 교통사고 사망자 수 7000명 수준보다 훨씬 많다. 특히 교통사고·산업재해 사고에 의한 사망자 수는 감소세인 데 비해 자살 사망자 수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자살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파산 등 경제적 문제와 이혼 및 배우자 사별 등으로 인한 충격과 사회적 고립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고, 정신적 허무와 황폐감 등으로 갑자기 목숨을 끊기도 한다. 정치적·이념적 자살 테러에 의한 죽음도 있다. 어떠한 경우든 잘못된 개인선택의 결과이지만 이런 선택을 낳게 한 경제·사회·문화적 요인에 대한 심각한 성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자살의 증가는 산업화·세계화와 관련이 있다. 비교적 안정된 농경사회와 달리 산업화는 불안정성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 도시화에 따른 가족의 해체는 물론 정규직의 감소로 직장의 안정성도 감소하고 있다. 과도한 경쟁체계 하에서 패자는 있게 마련이고 이때 자살의 원인이 되는 사회적 고립이 증가할 수 있다. 1998년 IMF 경제위기 시 자살률이 급속히 증가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소득분배의 편중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배 아픈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우리 속언은 절대적 빈곤이 해소돼도 상대적 빈곤이 사회갈등을 유발할 수 있음을 뜻한다. 또한 결과를 과정보다 중시함으로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이 와중에 생명경시 풍조가 자리잡고 있다. 삶의 질을 나타내는 여러 지표가 있지만 자살률은 한 나라의 행복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의 하나로 평가된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그 사회 사람들의 삶이 팍팍함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자살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고 사회적 책임을 방기해 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산업재해나 자동차 사고의 발생을 낮추기 위해 만반의 노력을 기울이고 사회적 비용의 지출을 아끼지 않아 왔지만 자살에 대해선 국가 차원의 대책이 미흡했다. 그나마 2008년 말 자살예방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범정부적 대처를 시작했지만 예산 등 실행을 뒷받침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 자살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사회경제적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선 긴 시간이 요구된다. 따라서 자살의 원인 자체를 감소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자살경로를 효과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자살을 감소시킬 수 있는 용이한 방안부터 찾아 대처하는 일이 시급하다. 최근 인터넷을 통해 만난 사람들끼리 이뤄지는 집단자살은 사이버범죄 차원에서 단속이 강화되면 어느 정도 차단이 가능하다. 또 유명 연예인의 자살로 늘어난 소위 ‘베르테르 효과’는 언론매체들이 선정적 보도를 자제하면 줄일 수 있다. 농약 등 자살을 쉽게 하는 위험요소도 노력 여하에 따라 감소시킬 수 있다. 또한 자살 위험이 높은 우울증 환자 등 정신질환자에 대해서도 관리 시스템 강화로 효과를 볼 수 있다. 사회문화적으로 생명중시 분위기 조성은 종교단체 등과 긴밀히 협력하고 유아기부터 체계적으로 교육하면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갈등 완화와 사회통합 강화가 필요하다. 아직도 높은 노인자살 등 생계형 자살은 소득 및 건강보장 정책이 강화되면 효과적으로 통제될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해 도입된 기초노령연금제와 장기요양보험제가 점차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보이나 보장률을 좀더 빠르게 높여 나가야 한다. 자살이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라는 인식 아래 경쟁체제에서 공존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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