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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마을로 뛰어든 청년들] 청춘이 뭉쳤다 골목이 변했다 마을이 웃는다

    [커버스토리-마을로 뛰어든 청년들] 청춘이 뭉쳤다 골목이 변했다 마을이 웃는다

    산업화 이후 사실상 해체된 ‘마을’이란 관계망 안으로 뛰어드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이유는 제각각이다. 창작공간을 찾아 나서거나 공동체 복원을 꿈꾸는 이들은 물론 경쟁사회에서 만족할 만한 삶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혼자’라는 느낌을 위로받기 위해 나선 이들도 있다. 혹자는 이들을 ‘낙오자’ 또는 ‘돈키호테’로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은 많이 못 벌더라도 내가 뿌리내리는 공간에서 이웃들과 함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청년들의 용기는 이미 조용한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빌라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 담벼락을 수놓은 꽃 모양의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어른들 솜씨다. 맞은편 담벼락에도 벽화가 그려져 있다. 아이들이 그린 흔적이 역력했다. 20~30대 디자인 작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문화예술 창작 모임인 ‘일상예술창작센터’(이하 센터)의 어린이 벽화반에 참여한 아이들의 솜씨다. 최현정(33·여) 사무국장은 “(센터가 운영하는) 공방에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와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3년 5월 출범한 센터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가치를 표방한다. 센터는 ‘새끼’라는 이름(새끼줄을 꼬듯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작업한다는 뜻)의 공방에서 주민들을 위해 바느질, 그림, 목공예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강사로 마을 주민이 나서기도 한다. 신문자(33·여) 교육팀장은 “80대 중반에도 세련되고 젊은 감각의 패션을 뽐내는 할머니를 바느질반 선생님으로 초빙해 강의를 부탁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센터가 마을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한 계기는 무엇일까. 최씨는 “창작작업을 주민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문화활동에 대한 주민 욕구와 맞아떨어졌다”며 “마을시장을 열면 이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직접 쓰던 물건이나 만든 물건, 재배한 작물 등을 사고판다”고 덧붙였다. 동대문구 이문동의 ‘도꼬마리’는 1년여 전 청년 8명이 모여 만든 생활공동체의 이름이다. 도꼬마리의 창립 멤버이자 상근활동가 이선화씨는 “이문동에 사는 대학생, 대학원생, 회사원뿐만 아니라 40~50대 주민들도 회원으로 있다”며 “처음에 우리 활동을 보고 ‘새롭다’, ‘신선하다’는 호기심에 회원이 된 마을 주민들도 있다”고 말했다. 도꼬마리가 운영하는 카페는 때로 요리 공간, 공연장, 공부방으로 활용된다. 지난해 10월에는 ‘반찬모임’을 만들었다. 자녀들을 학교나 유치원에 보낸 어머니들이 매주 화요일 낮 시간에 모여 코다리조림, 겉절이, 파래무침 등의 맛깔난 반찬을 만든다. 이 밖에도 영화·다큐멘터리 상영회, 마을 토크콘서트, 수제비누 만들기 강좌, 세미나 등을 열어 주민들을 맞는다. 또 과거 ‘아나바다 운동’을 연상시키는 ‘되살림 물품’도 판매하고 있다. 주민들이 기증한 옷, 모자, 신발, 소품 등을 저렴한 가격에 되파는 사업이다. 이씨는 “마을이 안고 있는 문제를 발굴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도 도꼬마리가 마을과 공존하고 마을에 공헌하는 방법 중 하나”라며 “소비자 권리를 알리는 강연을 연 뒤로, 강연에 참석했던 주민 중 일부가 소비자 권리 알기 모임을 만들어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꼬마리는 반찬모임을 청년과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반찬가게’로 진화시키고, 그 판매수익으로 마을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까지 만들 계획이다. 성북구 정릉동에는 협동조합 ‘성북신나’가 있다. 지난해 2월 출범한 성북신나는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공존하는 마을을 목표로 문화·교육 관련 활동을 기획한다. 조합원 구성도 다양하다. 20~30대 청년들이 다수지만 문화예술 활동을 하거나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40~50대도 조합원 30여명 안에 포함돼 있다. 성북신나의 상근활동가인 오창민(26)씨는 “정릉동이 가진 고유한 지역 자원을 활용해 재개발·재건축 등을 하지 않고도 마을을 매력적인 공간으로 가꿀 수 있는 활동들을 고민하고 있다”며 “정릉동에 있는 사람, 공간, 이야기를 발굴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성북신나는 사양길을 걷고 있는 전통시장을 살려 보자는 취지에서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지난해 정릉동 재래시장인 정릉시장 상인들과 함께 정릉천에서 ‘개울장’이라는 이름의 마을장터를 열었다. 단순히 먹거리만 팔지 않고 인디밴드를 초청해 공연도 했고, 아이들이 이면지를 활용해 공책을 만들거나 요구르트병으로 악기를 만들어 보는 체험 행사도 열었다. 오씨는 “자동차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마을장터에 얼마든지 보고 즐길 거리가 많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성북신나는 주민들을 상대로 꽃꽂이 방법을 알려주는 특별 강좌를 진행하는가 하면 지난달에는 중·고교생을 위한 ‘동네 탐험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학생들이 성북구 동선동 탐방코스를 만들어 그동안 몰랐던 공간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체험형 프로그램이다. “정릉동은 북한산 국립공원하고도 가깝고, 한옥 가구도 많은 데다, 굿당이 밀집해 있어 ‘샤머니즘 박물관’과 같은 이색 장소도 있어요. 평소 학교, 학원, 집만 오가는 10대들에게 ‘정릉도 재미있는 게 많다’는 생각을 심어 주는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성북신나는 청년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또 다른 목표도 있다. 오씨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청년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며 “상근활동가가 외부에서 봤을 때는 직업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마을에서 (성북신나가) 하고 있는 여러 사업을 통해 활동가란 직업도 청년들의 지속 가능한 일자리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속적인 활동이 곧 지역 생태계에 기여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 사원으로 통하는 우사단길에서는 ‘청년장사꾼’을 비롯한 20~30대 청년 창업가들이 ‘우사단단’을 조직해 마을과 공존을 꾀하고 있다. 우사단길은 2003년 뉴타운 재개발 지역으로 묶인 뒤로 10년 넘게 재개발이 지체돼 침체에 빠져 있다. 미묘한 변화가 시작된 것은 2~3년 전 청년들이 게스트하우스, 카페, 작업실 등을 차리면서부터다. 우사단길 청년들은 마을을 살리는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태원 계단장’이라는 이름으로 벼룩시장을 열고 우사단길을 배경으로 마을 지도와 신문도 만들었다. 14일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소품, 잡화, 의류 등을 판매하는 총 40여개의 상점이 참여하는 야시장 ‘열정도(원효로 인쇄소 골목 동네를 살려 보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시작한 프로젝트 이름) 공장’ 행사를 앞두고 있다. 청년장사꾼의 오단(26) 활동가는 “마을에 먼저 자리를 잡은 주민들과 어떻게 공존할지에 대한 고민이 끊임없이 필요하다”며 “무언가를 할 때 첫 번째 기준은 ‘마을 사람들과 우리(활동가)가 즐거울 것’인지에 달려 있다. 다 같이 재미있게 놀자고 시작한 일이 누군가에게 희생을 요구하거나 힘든 노동이 되어 버린다면 지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세월호 자원봉사 활동 책 출간

    세월호 자원봉사 활동 책 출간

    세월호 사고 이후 주민들의 자원봉사 활동 상황을 담은 책이 12일 출간됐다. 전라남도 자원봉사센터가 펴낸 ‘팽목항 자원봉사 리포트-219일간의 잊을 수 없는 기록’에는 총 350페이지에 걸쳐 자원봉사의 전 과정이 기록돼 있다. 제1부에는 세월호 사고 당시의 진도체육관과 팽목항 모습, 자원봉사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활동 등이 사진으로 설명돼 있다. 제2부에는 재난 재해 현장 자원봉사센터의 운영 매뉴얼, 세월호 현장과 관련된 네트워크·간담회 내용이 수록돼 있다. 제3부에서는 세월호가 침몰한 4월 16일부터 범정부대책본부가 해체됐던 11월 20일까지의 참여 현황과 전남자원봉사센터에서 기록한 219일간의 일지가 상세히 열거돼 있다. 마지막 제4부에서는 자원봉사 언론 보도 내용과 봉사활동 수기, 자원봉사에 참여한 개인과 단체명단 등이 기재돼 있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해경 해체 후 中 어선 月 600척↑

    지난해 해양경찰청 해체 발표 이후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이 매월 600여척씩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박남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인천 남동갑)이 해양수산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해 NLL 주변에 출몰한 중국 어선은 4만 6097척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3년 3만 9644척보다 16% 늘어난 수치다. 특히 해경 해체 발표 이후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서해 5도 지역에 출몰한 중국 어선은 2013년 같은 기간보다 월평균 600여척씩 늘어났다. 그러나 불법 조업 중국 어선이 크게 증가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단속 어선 수는 오히려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인천, 평택, 태안, 군산, 목포 등 서해에서 불법 조업하다 나포된 중국 어선은 모두 259척으로 2013년 413척에 비해 37% 줄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與 광주 서을 후보에 정승 식약처장 내정

    새누리당이 4·29 광주 서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에 정승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10일 내정했다. 정 처장은 오는 13일쯤 사표를 제출한 뒤 당에 공천을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동신고와 전남대를 졸업한 정 처장은 행정고시 출신의 정통 관료로 농림수산식품부 차관 등을 역임한 뒤 박근혜 대통령 대선 캠프에 합류했다. 여권 내에서는 드문 호남 인맥으로 꼽힌다. 당초 새누리당은 보선 자체가 통합진보당 해체에 따라 공석이 된 3곳에서 치러지는 만큼 큰 기대를 갖지 않았었다. 그러나 ‘야권 연대’가 이뤄졌던 19대 총선과 달리 이번 보선에서는 3곳 모두 ‘야권 분열’ 구도가 형성되면서 새누리당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파이브돌스 사실상 해체, 효영 트위터보니 “멤버들 아프지않고 잘 지내길”

    파이브돌스 사실상 해체, 효영 트위터보니 “멤버들 아프지않고 잘 지내길”

    파이브돌스 해체, “멤버들 아프지않길” 효영 트위터보니 ‘울컥’ ’파이브돌스 해체’ 그룹 파이브돌스가 사실상 해체했다. 10일 한 매체는 “파이브돌스 멤버 중 일부는 소속사 코어콘텐츠미디어와 전속 계약이 만료된 결별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에 파이브돌스 측은 “전속 계약이 남은 멤버들 일부는 새 걸그룹으로 출격한다”고 밝혔다. 멤버 중 혜원은 키이스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했으며 승희는 MBK엔터테인먼트가 개최하는 걸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브돌스 해체 소식이 전해진 후 효영은 10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파이브돌스 사랑해주셨던 여러분들 그동안 감사드렸어요. 우리 멤버분들도 아프지 않고 잘 지내길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파이브돌스는 지난 2011년 데뷔한 후 ‘짝 1호’, ‘사랑한다 안한다’, ‘이러쿵 저러쿵’ 등의 곡을 발표하며 활동한 걸그룹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파이브돌스 사실상 해체, 전속 계약 남은 멤버들 계획은?

    파이브돌스 사실상 해체, 전속 계약 남은 멤버들 계획은?

    10일 한 매체는 “파이브돌스 멤버 중 일부는 소속사 코어콘텐츠미디어와 전속 계약이 만료된 결별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에 파이브돌스 측은 “전속 계약이 남은 멤버들 일부는 새 걸그룹으로 출격한다”고 밝혔다. 멤버 중 혜원은 키이스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했으며 승희는 MBK엔터테인먼트가 개최하는 걸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돌아온 ‘러버덕’…흔들의자 ·감사품 등으로 재탄생

    돌아온 ‘러버덕’…흔들의자 ·감사품 등으로 재탄생

    산업폐기물로 버려질 위기에 처했던 대형 고무오리 ‘러버덕’이 재활용돼 다시 한번 사람들을 찾아간다. 롯데백화점은 10일부터 31일까지 영등포점 10층에 있는 롯데갤러리에서 러버덕 업사이클링 전시회를 진행한다고 9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러버덕의 주재료인 폴리비닐을 해체해 흔들의자, 감사품 등으로 제작하는 업사이클링(재활용품에 디자인을 더해 가치를 높인 것) 프로젝트다. 러버덕을 해체한 후 전시회에 활용하고 남은 재료는 한정판 감사품으로 재탄생해 다음달 구매 고객에게 선착순으로 증정될 예정이다. 세계적인 공공미술가 플로렌타인 호프만의 작품인 러버덕은 가로·세로 각각 16.5m, 높이 19.8m 크기로 만들어져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석촌호수에서 31일간 전시됐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친유럽과 친러의 공생… 핏빛 우크라, 분열은 숙명인가

    [글로벌 인사이트] 친유럽과 친러의 공생… 핏빛 우크라, 분열은 숙명인가

    #1 지난달 5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들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러시아 방문을 긴급 뉴스로 전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획기적인 행보로 평가받은 덕분이다. 같은 시각 CNN은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동부 도네츠크에서 또다시 충돌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 반군이 점령한 도네츠크 키로프 거리의 병원에 정부군이 쏜 우르간 미사일이 수차례 떨어져 환자 5명 이상이 숨지고 2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지난 1월 반군이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향해 로켓 공격을 퍼부어 민간인 30명이 숨진 데 따른 보복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2 지난 7일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은 분쟁을 종식하기 위해 동부지역에 배치된 중화기들을 50~100㎞ 후방으로 철수했다고 선언했다. 지난달 15일 자정을 기해 발효된 휴전 합의에 따른 조치였다. 독일, 프랑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정상이 17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마련한 휴전안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교전 당사자인 자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의 지도자들이 벨라루스 민스크에 도착해 추인하면서 효력을 얻었다. 오는 16일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크림반도가 주민투표로 러시아에 합병된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친러파인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축출되자 이에 반발한 크림반도의 러시아계 주민들은 97%란 찬성표를 던졌다. 한 달 뒤 정부군과 반군은 ‘지옥 같은’ 교전을 개시했다. 피비린내 나는 1년 내전의 서막은 이렇게 열렸다. 최근 휴전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의 앞날은 여전히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9월 민스크 평화협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데다,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가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타산지석의 교훈을 준다고 말한다.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지역색을 등에 업은 다양성이 분열을 초래한다는 교훈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세계 5대 군사대국이던 우크라이나는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통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주권과 영토를 보장받았다. 이런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겼다는 건 두 번째 교훈이다. 북한의 핵무기 협상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셈이다. 우크라이나는 동슬라브어로 ‘변경’(邊境)이란 뜻이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지정학적 요지에 남한의 6배 면적을 지닌 자원 대국이다. 13세기 몽골, 14세기 리투아니아, 17세기 이후에는 러시아의 침략을 받으며 제대로 된 민족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다. 중서부 지역은 수백년간 폴란드·리투아니아에 가까웠고 동남부는 친러시아 정서가 강했다. 러시아정교와 가톨릭,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가 공존해온 것도 이런 배경 탓이다. 1917년 제정러시아가 붕괴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연방(옛 소련)에 편입됐으나 수탈과 기근이 겹쳐 100만명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석탄, 철광석 등 지하자원이 풍부한 동부 지역에 러시아인들이 대거 이주하자 정서적 괴리감은 더욱 커졌다. 1991년 12월 옛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했으나 고난의 행보를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수많은 민족이 이동과 교역, 충돌과 통합을 반복하던 이곳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사태의 발단은 2013년 11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던 야누코비치가 러시아의 압력에 굴복해 협상을 중단하자 “러시아 치하로 돌아갈 수 없다”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의회의 탄핵을 받은 야누코비치는 이듬해 2월 러시아로 망명한다. 이른바 ‘우크라이나 혁명’이다. 기업가 출신의 친서방파 포로셴코가 집권했지만 이미 경제는 붕괴 직전에 내몰렸다. 동부지역의 친러계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우크라이나는 동서로 분열됐다. 야누코비치의 축출은 친유럽 진영에선 시민혁명으로, 친러 진영에선 쿠데타로 각기 다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애초부터 국가 정체성을 친유럽, 친러시아 등 어느 한쪽으로 단정 지을 수 없었음에도 독립 이후 정부가 바뀔 때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행태를 보여왔다. 1991년 독립 이후 크라우축, 쿠치마, 유셴코, 야누코비치, 현재의 포로셴코까지 정권은 예외 없이 친유럽과 친러시아를 오갔다.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의 분열을 숙명이라 표현했다. 민족 구성은 우크라이나계가 75%, 러시아계가 25%다. ‘유럽의 화약고’는 잠시 총성이 멎었을 뿐이다. 로이터통신은 향후 변수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라고 단정 지었다. 미국 입장에선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러시아는 서방 세력의 동진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이은주 기자의 컬처K] 통제 불능 연예인에 소속사는 웁니다

    [이은주 기자의 컬처K] 통제 불능 연예인에 소속사는 웁니다

    “아이돌 스타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벌여도 부모가 다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중2병’에 걸린 아이 같을 때가 있어요.” 유명 가요 기획사의 홍보팀에서 일했던 A씨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멤버들의 군 입대 등 개인사까지 해결하느라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지만 개인 비서처럼 대할 때는 굴욕감마저 느껴졌다. A씨는 “매니저가 음악 프로그램 방송이 있는 날 아침까지 술을 마신 멤버를 찾아 헤맸는데, 정작 본인은 미안한 기색조차 보이지도 않더라”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처럼 스타들의 돌발 행동에 속앓이를 하는 것은 비단 아이돌 가수 소속사뿐만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요즘엔 TV에 얼굴을 비추고 조금이라도 유명해지는 순간부터 태도가 변한다. 소속사에서 이들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하소연한다. 지난주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여배우 이태임의 욕설 논란. MBC ‘띠동갑내기 과외하기’ 촬영 도중 욕설을 한 그녀에게 누가 원인 제공을 했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공개적으로 욕설을 뱉은 행동 자체가 충격을 안겼다.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던 소속사는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보도자료를 내고 공개적으로 사과했고 본인도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설 연휴에 불거진 한류 스타 김현중의 혼전 임신 결혼설도 파문을 일으켰다. 그와 전 여자친구의 사생활이 인터넷에 까발려졌고 언론을 통해 진실 공방을 주고받으며 대중의 피로감을 높였다. 초기에 적극 대응하던 소속사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툭하면 가족을 앞세우거나 불만이 생기면 소송부터 제기하려는 통에 소속사들은 속으로 피멍이 든다. 킹콩엔터테인먼트의 이진성 대표는 “주로 본인의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본인이 스스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글을 올려 문제화시키는 사례도 많다”면서 “어떤 일을 해도 회사에서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연예인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속사의 규모를 떠나 요즘은 인터넷과 SNS 때문에 사건이 터졌다 하면 수습이 거의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에 오르면 수백 건의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 SNS에 자극적인 찌라시까지 유통돼 속수무책”이라면서 “설사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더라도 30분 내에 대처하지 못하면 여론을 돌이키기는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시한폭탄 같은 소속 스타의 동향을 미리미리 파악해 악성 루머에 대한 선제적 대처 방안을 마련해 놓기도 한다. 하지만 잘못된 자기 관리의 부메랑은 결국 본인에게 돌아간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지난 5일 항소심 공판을 진행한 배우 이병헌 협박 사건. 양측은 합의가 됐다며 법원에 선처를 호소하고 있지만 이들은 모두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병헌이 출연한 영화는 개봉일을 잡지 못한 채 기약 없이 대기 중이고, ‘협박녀’ 다희가 소속된 걸그룹 글램은 결국 해체됐다. erin@seoul.co.kr
  • 오바마 “인종 문제 여전… ‘셀마의 행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바마 “인종 문제 여전… ‘셀마의 행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행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지치지 않고 계속 달려야 합니다.” 7일 오후 2시 20분(현지시간) 미국 앨라배마주 셀마에 있는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부인 미셸 오바마와 두 딸과 함께 등장, 40여분에 걸친 연설을 시작했다. 분위기는 숙연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열띤 연설에 관중들은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는 50년 전인 1965년 3월 7일 마틴 루서 킹 목사 등이 흑인의 참정권을 요구하며 앨라배마주 셀마를 떠나 주 행정수도 몽고메리까지 행진하다가 경찰의 강제 진압에 의해 시위대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역사적 장소다. ‘피의 일요일’로 기록된 ‘셀마·몽고메리 행진’ 50주년 기념식에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 역사적 장소에 걸맞은 역사적 연설을 했다. 8년 전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이곳을 찾았던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피의 일요일로부터 50년이 지난 오늘, 우리의 행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가까워지고 있다”며 “우리는 (이 다리 위를) 걸었던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래서 우리도 걸을 수 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그날의 행진이 흑인뿐 아니라 라티노, 아시안, 게이 등 모든 미국인들에게 기회를 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법무부의 퍼거슨 보고서는 인종 문제에 대해 거의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은 거부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종 문제에 대한 역사가 여전히 우리에게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변화는 우리의 행동과 태도,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들에 달려 있음을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며 “(셀마 행진이 결국 흑인 참정권 허용으로 이어졌듯) 한 개인이 아닌 우리(We)가 함께 이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날 연설에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부를 비롯, 셀마 행진에 참가했다가 부상당했던 인권 운동가 출신 존 루이스(75) 하원의원 등 상·하원 의원 10여명이 참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이 끝난 뒤 가족들과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10여분간 행진하며 50년 전 현장을 직접 체험했다. 이런 가운데 위스콘신주 매디슨시에서 지난 6일 밤 19세 흑인 청년이 경찰과 격투를 벌이던 중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 지역 흑인 사회가 반발하고 나섰다. 현지 언론은 퍼거슨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7일 상습적인 흑인 차별 행태가 드러난 퍼거슨 경찰에 대해 “상황이 확실하게 바뀔 수 있도록 법무부의 모든 권한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퍼거슨 경찰 해체설도 나온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生’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生’

    명품 매장이 즐비한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북동쪽으로 지하철로 20분만 가면 가난한 거리가 나타난다. 파리 19, 20구의 빈민가다. 이곳은 연초에 파리 연쇄 테러를 저지른 이민 2세대인 쿠아치 형제가 살았던 곳으로 여전히 이민자들과의 갈등이 방치돼 있다.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의 거주지였던 파리 19, 20구는 이슬람교도들과 유대인, 흑인 등 이주 노동자들의 거주지였다. 현재는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으로 ‘벨빌’로 불린다. 이 벨빌 비송거리의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칠층’에 아랍인 소년 고아 모모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유대인 로자 아줌마가 함께 살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가난한 경계인들로 아랍인과 유대인, 어린아이와 늙은이, 고아와 창녀, 이주 노동자와 성소수자 등이다. 이들은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한 공간에 살고 있다. 작가는 이들을 극단적인 상황에 던져 놓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느냐? 사랑할 수 있느냐?”를 묻는다. 그에 대해 등장인물들은 인종, 나이, 성별을 초월한 사랑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경계인에 대한 에밀 아자르의 애정은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출신인 작가 자신의 삶과도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라는 이름으로 공쿠르문학상을 받은 작가이며 외교관이었으며 영화감독이었다. 그럼에도 여러 가명으로 작품을 발표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편견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자신만의 독특한 존재 방식으로 프랑스 문단의 편견을 한껏 조롱한 작가는 권총 자살 후에야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임을 밝힌다. 작가는 책 ‘인간의 문제’에 실린 장 다니엘과의 대담에서 “내 소설의 진정한 관심사는 인간의 존엄성이며 인간의 권리”라며 “인간적 여지는 내 책의 근본적인 조건”이라고 밝히고 있다. 유년 시절 어머니와 단둘이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이주해 성장한 로맹 가리에게 소외, 인권, 소수자, 불평등, 편견 등 인간이 처한 사회적 구속에 대한 문제는 중요한 화두였을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문제의식은 열네 살 모모와 창녀의 아이들을 돌보는 로자 아줌마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모모는 자신을 돌보던 로자 아줌마가 뇌혈증을 앓자 거꾸로 로자 아줌마를 돌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살고, 병들고, 늙고, 죽어 가는 삶은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모모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지혜를 주는 하밀 할아버지, 전직 복서였지만 지금은 여장 남자로 몸을 파는 롤라 아줌마, 비송거리의 유대인과 아랍인, 흑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카츠 선생님 등은 고아라도, 창녀라도, 성소수자라도, 종교와 인종, 세대가 다르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준다. 누구도 서로를 비난하지 않으며 외롭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기꺼이 보살핀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이들의 경계선은 해체돼 고아고 창녀고 이방인이 아니라 어느새 사랑할 줄 아는,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존엄한 인간’으로 남는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삶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모모는 훔친 푸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나는 녀석에게 멋진 삶을 선물해 주고 싶어졌다”며 “남에게 줘 버리기까지” 한다. 그 대가로 받은 돈을 하수구에 처넣고는 오히려 행복해한다. “엄마가 몸으로 벌어먹고 사는 여자라 해도 무조건 사랑했을 것”이고 “영웅 같은 것보다 그냥 아빠가 있어서 엄마를 잘 돌봐주는 뚜쟁이기를” 소망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아는 아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경찰과 포주가 되어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층 아파트에서 버려진 채 울고 있는 늙은 창녀가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 그들을 보살피고 평등하게 대해 줄 것이다”라며 소외받는 이들의 편에서 생각할 줄 안다. 모모가 “하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라면 무슨 약속이라도 했을 것이다. 아무리 늙었다 해도 행복이란 여전히 필요한 것이니까”라며 세상의 편견에 물들지 않는다. 늙고 병든 로자 아줌마를 보며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라며 우리의 마음이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가 늙고 추하고 다시는 정상적인 인간이 될 수 없었기에 이때처럼 로자 아줌마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죽음에 임박해 냄새가 나는 로자 아줌마에 대해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 혹시 내가 자기 때문에 구역질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그러면서 모모는 자연스러운 죽음을 선택하는 로자 아줌마를 위해 기꺼이 옆을 지킨다. 하밀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기 앞의 생’이라고 번역된 프랑스어 원제목(La vie devant soi)이 ‘여생’, 즉 ‘앞으로 남은 생’임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 읽힌다. 그래서 로자 아줌마가 죽은 후 이웃에게 구조된 모모는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하지만 이 집 아이들이 조르니 당분간은 함께 있고 싶다”며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한 애정을 보인다. 이 책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렸지만 삶을 살아내는 문제를 결코 음울하게 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전달한다. 극한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오히려 힘든 상황일수록 일상의 밑바닥에 고여 있는 초라한 삶에 침을 뱉을지라도 더 힘껏 생을 끌어안아야 하고, 그것이 사랑임을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아련한 슬픔에 희망이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밀 할아버지의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라는 말은 고통, 희망, 미움, 사랑 등이 섞여 있는 게 온전한 삶의 모습임을 역설하는 셈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행복지수 국가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34개 회원국 중에서 32위다.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지만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다. 돈과 지위로 인간 존엄을 해치는 사건이 회자되고 있고 세계 곳곳은 테러와 전쟁으로 어수선하다. 이럴 때일수록 간절히 필요한 게 ‘사람과 삶에 대한 무한하고 깊은 애정’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낭만일까. 누군가가 지금 힘들어한다면 이 책에서 펼쳐 놓은 생의 적나라한 모습을 마주하길 바란다. 모모의 독백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모모가 깨달은 삶의 의미와 진실에서 용기를 얻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생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는 책, 삶의 부박함에 받은 상처를 치유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의 맨 앞장에는 이런 제사가 있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쳐버린 거야.’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생의 참맛은 그런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걸.’” 그리고 책은 이렇게 끝난다. ‘그럼에도 사랑해야 한다.’ 신운선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읽어라 청춘’은 이번 주부터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을 테마로 월요일에 격주로 게재됩니다.
  • 김성근과 고양 원더스의 숨겨진 이야기 ‘파울볼’ 예고편

    김성근과 고양 원더스의 숨겨진 이야기 ‘파울볼’ 예고편

    “작별의 시간이 너무 빨리 왔다. 야구인으로서 선수들이 기회를 일찍 놓치는 것 같아 아쉽고 미안하다” 지난 2011년 9월 창단되어 지난해 해체된 고양 원더스의 김성근 감독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구단 해체 결정에 대해 이같이 밝힌바 있다. 90승 25무 61패, 27명 프로구단 입단. 3년이란 기간 동안 고양 원더스가 일궈낸 놀라운 성과다.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는 김 감독을 포함해 포기하지 않는 선수들의 근성과 피나는 노력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선수들의 아픔도 컸을 터. 프로야구 진출이라는 하나의 꿈을 향해 질주했던 이들의 실제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영화 ‘파울볼’로 만들어졌다. 냉혹한 훈련방식과 대비되는 김성근 감독의 뜨거운 면모, 그리고 고양 원더스 구단 해체를 둘러싼 의문 등이 스크린에 최초로 공개될 예정이어서 영화 팬들은 물론 야구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감동적인 스토리라인을 담은 예고편이 공개되어 눈길을 끈다. 예고편은 전직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 방출된 프로 선수들까지 야구를 꿈꾸는 이들에게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진 고양 원더스의 창단 과정으로 시작된다. 이에 김성근 감독은 “아이들을 봤을 때 너무나 부족함을 느꼈고, 막막했다는 표현이 제일 맞는 거 아닌가 싶어”라는 인터뷰는 당시 막막한 상황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이어 오합지졸 같던 원더스 선수들이 김성근 감독 지휘 아래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특히 기적의 문턱에서 팀의 해체를 맞이한 김성근 감독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은 선수들을 향한 그의 절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깊은 울림을 예고한다. 야구라는 꿈을 향해 달려온 ‘야신’(야구의 신) 김성근 감독과 그들을 따른 괴짜 선수들의 아름다운 도전을 담은 ‘파울볼’은 오는 4월 2일 스크린에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영상=오퍼스픽쳐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씨줄날줄] 석유 부국의 원전과 창조경제/구본영 논설고문

    며칠 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국이 스마트 원전 수주에 사실상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 기술로 중소형 원자로 2기를 열사의 땅에 짓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적 경기 불황 국면에서 박근혜 정부가 2조 2000억원 규모의 원전을 수출한다니 ‘제2의 중동붐’을 점화시켰다는 차원에서의 의미도 작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석유 부국 사우디의 행보다. 축적된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하는 역발상의 자세를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우디가 당장 뭐가 아쉬워 원전을 세우려 했겠는가. 어디든 시추공만 뚫으면 석유가 펑펑 쏟아지는 마당인데 말이다. 그런데도 사우디가 원전 건설에 팔을 걷어붙인 데는 더는 석유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는 절실함이 배어 있는 셈이다. 사실 사우디 정부의 이런 위기 의식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을 지낸 자키 야마니 전 석유장관은 “석기시대가 돌이 모자라서 끝난 게 아니다”라며 탈석유시대에 대한 대비를 입에 달고 다녔지 않는가. 물론 우리는 이번에 ‘원전 강국’의 위상을 재확인하긴 했다. 지난 정부에서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에 이어 현 정부가 전력 생산과 바닷물을 식수로 바꾸는 기능을 겸비한 스마트 원전으로 사우디 정부의 조달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성공하면서다. 하지만 모처럼 ‘세일즈 외교’에 개가를 올렸다고 우쭐하고만 있을 때도 아니다. 엊그제 북한이 섬뜩한 대남 메시지를 보내왔다. 대남 선동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전쟁이 나면 3일 만에 속전속결할 것이고 원전이 많은 남한은 폐허가 될 것”이라고 위협한 것이다. 다만 이는 짐짓 불안감을 조성해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둘러싼 남남 갈등을 부추기려는 심리전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되긴 한다. 그러나 북한의 위협은 차치하고 여하한 상황에서라도 원전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기술 혁신의 필요성은 차고 넘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도 천재지변이 도화선이었지만, 기술적 허점이 화를 키웠지 않는가. 더 나아가 지금이야말로 언젠가는 올지도 모를 ‘탈원전시대’에도 미리 대비할 때인 듯싶다. 적어도 ‘창조경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는 정부라면 말이다. 물론 현재로선 원전보다 더 경제적인 에너지원이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원전은 한 번 만들면 30∼60년밖에 쓸 수 없기에 폐로 문제는 이미 인류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우리의 경우 월성 1호기는 한 차례 수명 연장이 결정됐지만,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풍랑이 잔잔할 때는 돛을 고쳐야 한다는 격언이 있다. 원전해체기술연구센터 발족 등을 서둘러 원전 해체 시장도 선점하겠다는, 그야말로 창조적 발상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커버스토리-2015 프로야구 100배 즐기기] 잠실 - 홈런 구경 쉽지 않아요~

    [커버스토리-2015 프로야구 100배 즐기기] 잠실 - 홈런 구경 쉽지 않아요~

    잠실야구장에는 한국 프로야구 영광의 순간들이 새겨져 있다. 한강과 탄천을 끼고 있어 주변 경치도 아름다워 야구 경기와 함께 주변 나들이에 더없이 좋다. ●한강과 탄천 끼고 있는 LG·두산 홈구장… 주변 볼거리 가득 서울 송파구 잠실에 자리한 잠실구장은 LG와 두산의 홈구장이다. 그러나 관중 2만 500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없는 홈구장을 가진 팀끼리 한국시리즈(KS)에서 만나면 5차전부터 잠실에서 ‘중립경기’를 한다. 중립경기 규정은 2016년부터 폐지된다. 1984년 롯데와 삼성의 KS는 손에 꼽히는 명승부였다. 5, 6, 7차전이 잠실에서 열렸다. 롯데의 최동원과 라이벌 삼성의 김일융은 양보 없는 경기를 펼쳤다. 최동원은 1차전 4-0 완봉승, 2차전 3-2 완투승을 기록했다. 이어 6차전 구원 등판해 5이닝을 던져 6-1로 3승을 따냈다. 김일융은 3, 4, 5차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마지막 7차전의 주인공은 최동원이었다. 최동원은 7차전 6-4 완투승을 기록했다. 역대 KS에서 4승을 올린 투수는 최동원이 유일하다. 1993년 해태(현재 KIA)와 삼성의 KS의 주인공은 이종범이었다. 이종범은 잠실에서 열린 7차전에서 2개의 도루를 기록, KS 최다 도루 타이(7개) 및 최다 연속 도루(7개) 기록을 완성했다. 2004년 현대(현재 넥센)는 삼성과 3차례 무승부 끝에 9차전까지 가는 최장의 KS를 치렀다. 특히 굵은 빗줄기 속에서 치러진 마지막 9차전에서 현대는 8-7로 우승을 차지했다. 2008년 3월 해체한 현대의 마지막 우승이다. ● 홈~중앙펜스 길이 125m ‘최대’… 경기당 홈런 2개 미만 ‘타자들 무덤’ 잠실은 또 타자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홈에서 중앙 펜스까지 125m, 좌우 폭은 100m로 국내 야구장 가운데 최대 규모다. 어느 구장보다 장타가 나오기 어렵다. 2014시즌 잠실에서 총 128경기가 열렸고 총 152개의 홈런이 나왔다. 경기당 평균 1.18개다. 포항 등 각 팀의 제2 홈구장을 제외하고 경기당 홈런이 2개 미만인 구장은 잠실뿐이다. 지난 시즌 홈런왕 박병호조차 잠실에서는 3개의 홈런을 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처럼 악명 높은 잠실구장 첫 장외 홈런의 기록은 지난 1월 31일 은퇴한 김동주가 가지고 있다. 김동주는 2000년 5월 4일 롯데 에밀리아노 기론의 타구를 통타, 잠실구장 왼쪽 담장을 넘겨버렸다. 당시 타구가 떨어진 자리에는 기념비가 서 있다. 잠실구장은 서울올림픽 등 국제 경기를 앞두고 1980년 4월 17일 착공됐으며 1982년 7월 15일 개장했다. 같은 해 발족한 MBC(현재 LG)가 먼저 둥지를 틀었고, 1986년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한 OB(현재 두산)도 잠실구장을 안방으로 사용하게 됐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김명자 카이스트 초빙교수·前환경부 장관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김명자 카이스트 초빙교수·前환경부 장관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가 최근 2012년 설계수명이 끝난 월성 원전 1호기의 계속운전을 논란 끝에 결정했다. 하지만 환경단체와 원전 관련 전문가들은 월성 1호기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강화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성 기준에 미달한다며 국회 차원의 검증을 요구하고 있고, 일부 지역 주민들은 원안위 해체와 결정 철회를 촉구하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월성 1호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 시설과 원전 신규 건설 등 앞으로 맞닥뜨릴 현안들을 풀어 나가는 데 선례가 될 수 있어 추이가 주목된다. ‘원자력 딜레마’, ‘원자력 트릴레마’, ‘사용후핵연료 딜레마’ 등의 저자인 김명자(70·카이스트 초빙교수) 전 환경부 장관을 5일 만나 해법을 들어봤다. →원안위가 지난달 27일 설계수명이 끝난 월성 원전 1호기의 재가동을 결정했습니다. 원안위의 결정에 야당과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적지 않습니다. 원안위 결정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여러 요인이 얽혀 있어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결정하기까지 원안위가 기술적 검증을 하고, 민간검증단이 일반적 의견과 지역 수용성 등을 종합하고,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가 사전 검토를 하는 등 다중 단계를 거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결과 안전 운전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저해 요소는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인데, 그 판단에도 불구하고 안전을 둘러싼 반대와 쟁점이 해소되지 못한 채 표결로 결정이 나 아쉽습니다. →계속운전 신청 등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보십니까.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월성 1호기 설계수명 만료 2년 11개월 전인 2009년 12월 계속운전을 신청했으나, 후쿠시마 사고 등으로 가동 중단 2년이 넘도록 심사가 미뤄졌습니다. 한수원은 계속운전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2009년 4월부터 27개월간 압력관 교체 등 9000여건의 설비 교체와 개선에 5600억원을 들였다고 합니다. 절차상 앞뒤가 뒤바뀐 것이죠. 계속운전 기간으로 따지면 10년간 연장 허가를 신청하고도 이미 2년 반을 잃어버린 결과가 됐습니다. →원안위가 만장일치가 아니라 표결로, 그것도 일부 위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월성 1호기의 재가동을 결정한 것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 -원안위가 기본적으로 합의제 행정기관이라고 한다면 끝장토론을 해서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이미 상당히 지체된 상황에서 위원장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봤겠지요. 원안위의 논의 과정에서 반대 의견이 나오는 것 자체는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야 심층토론이 되니까요. 원자력은 특성상 원자력계와 비전문가 사이의 안전 인식에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원자력의 특성은 기술만이 아니라 사회적 수용성까지 확보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통합적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건 맞는데, 방법론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지요. 원자력계는 비전문가를 이해시키고 설득하느라 고심하겠지만, 원자력은 원래 가치가 개입되는 데다 신뢰가 기본이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원자력을 둘러싼 가치 갈등과 불신 속에서 우리 사회의 협상 능력이 크게 모자라다 보니 합의 도출이 어려운 것이라 봅니다. →환경단체와 일부 원자력 전문가들은 월성 1호기가 1991년 안전기준뿐 아니라 국제원자력기구가 제시한 국제 기준에도 부적합하다며 국회 차원의 검증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계속운전 여부를 판단하는 데 안전성 평가는 핵심이지요. 거기 들어가는 비용이 폐로의 경우보다 경제성이 크면 사업자가 계속운전 신청을 하는 것이 국제적 관행입니다. 월성 1호기의 안전 평가에서 가장 쟁점이 된 것은 이른바 ‘R7’(격납건물 설계요건)입니다. R7은 캐나다 규제기관(AECB)이 1991년 2월 발간한 규제 문서로, 1981년 1월 이후 건설 허가를 받은 원전에 적용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규제 당국은 월성 1호기는 1978년에 건설 허가를 받아 R7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자력안전법 시행령에 따라 계통·구조물·기기에 대해 최신 운전 경험과 연구결과 등을 반영한 기술 기준으로 평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 의견은 여전히 ‘심사과정에서 현행 안전기준이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어 일반 국민은 과연 안전한 것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됐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안전성 관점에서 두 주장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제3의 입장에서 쟁점을 최종 정리해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1월 20일 공포된 개정 원자력안전법 103조에 따른 주민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어떻게 보십니까. -원자력안전법 103조의 개정 취지는 계속운전 여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제도적으로 반영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월성 1호기는 개정 전인 2009년 12월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했으므로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규제 당국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강화된 규정대로 주민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법적 규정과 사회적 요구 사이의 괴리인데, 운영의 묘를 살리는 방안이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모든 논쟁과 갈등은 그간의 원자력 안전규제 행정에 대한 불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때 신뢰를 얻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절실합니다. →일부에서 국회 차원의 안전 검증을 촉구하고 원안위 결정 직후 야당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원안위의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이 있습니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의 요건과 절차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법적 절차의 결과에 대해 사적인 의견을 말씀드리는 것도 적절치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된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갈등이 재연되겠지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정치적 역량이 한 걸음이라도 진전되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안위 결정에 따라 한수원이 45일간 각종 안전 검사와 시설 정비를 마친 뒤 4월 말 재가동할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큰 과제는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안전성을 설득하는 것인데, 그러려면 무엇이 요구됩니까. -선진국이 얻은 교훈 중 하나는 지역 주민을 설득이나 교육의 대상으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재적 기술위험에 대한 불안에도 불구하고 전력 생산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삶의 터전 가까이에 받아들였으니 마음으로 통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신뢰 쌓기를 해야 하는데, 한 번 무너진 신뢰는 회복이 참 어렵습니다. 모든 정보를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함께 대책을 마련하고 운영의 동반자로 만들고자 하는 자세가 기본이 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투명성과 민주성이 기본입니다. →10년 내에 원전 6기의 설계수명이 끝납니다. 그때마다 이번처럼 수명 연장 논란이 반복될 텐데,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청 절차가 개선되고, 안전기준 적용에 대한 원칙도 더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인허가를 신청할 때 안전성 평가보고서와 설비 투자계획을 함께 제출하고, 인허가 승인을 받은 후 설비투자를 하도록 하는 등 보완이 필요합니다. 인허가 신청 시점을 현재의 ‘설계수명 만료 5년 내지 2년 전까지’에서 미국(1995년부터 적용)처럼 5년으로 늘려야 할 것입니다. (2015년 3월 현재 세계적으로 가동 중인 439기 원전 중 30년 이상은 256기(54%), 40년 이상은 73기(17%)이고, 평균 운전 기간은 29년이다. 설계수명이 종료된 원자로 122기 중 폐로를 결정한 것은 7기다.) →원전 폐로 결정이 내려져도 문제라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법적·제도적 체계를 갖춰야겠지요. 원전 해체에 관한 기본 규정은 2015년 1월 원안법 개정으로 기초는 마련된 것 같습니다. 초기에는 기술적으로 국제 협력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체 기술력이 상당 수준이므로 중장기 계획에 의해 해체 관련 기술의 연구개발을 진행한다면 하지 못할 이유는 없겠지요. 그런데 원자력 계획은 워낙 장기적이라 정부가 바뀌고 공무원 순환보직 속에서 계속 미뤄지고 체계를 잡지 못하는 것이 근본적인 취약성입니다. 따라서 법적 체계를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원안위 위원 9명 가운데 5명을 정부가 추천하고, 나머지 4명은 여야가 각각 2명을 추천합니다. 위원들의 전문성과 관련, 4명만 원자력 전문가이고 나머지 5명은 변호가·의사 등 비전문가입니다. 그렇다 보니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현재의 구성 취지는 법률, 인문사회 등 여러 분야의 전문성이 반영된 균형 있는 안전 행정 구현을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예상대로 전문성을 어떻게 단기간에 확충하고 합의를 어떻게 도출할 것인지 등 과제를 남겼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여러 분야와 일반 국민의 시각이 반영돼 기술적 차원 이외에 사회적 차원까지 통합돼야 합니다. 그런 거버넌스 체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공론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원안위의 독립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급선무인데요. -원자력안전 규제 기관의 독립성을 비롯해 규제 체제 전반에 대해 종합 검토하는 국제적 시스템이 있습니다. IAEA 주관의 통합규제검토서비스(IRRS)인데, 수검 결과 한국은 ‘훌륭한 수준’으로 평가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국내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원안위의 최우선 과제는 신뢰를 얻는 일입니다. 나름 노력도 하고 지역 주민 참여도 일부 확대되고 있으나 갈 길은 멉니다. 원전 규제 기관이 지역 사회의 안전보다 사업자 편에 서 있다는 인식을 불식시켜야 합니다. 신뢰 쌓기는 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한 규제라는 믿음을 주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참여의 결과가 실제 원전 운영에 반영될 수 있어야겠지요. 또 월성 주변 지역 갑상선암 등 역학조사 후속 연구 결과를 비롯해 모든 정보가 공개돼야 할 것입니다. 기존의 원자력 정책은 진흥 중심으로 기술력 확보와 해외 수출 등의 성과가 있었으나, 원전 비리라는 오점으로 얼룩졌습니다. 오늘의 원자력 갈등은 그동안의 불신의 골로 인해 사회적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 원전 비중을 늘려 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줄여야 한다고 보십니까. -원전을 늘리고 줄이고를 말하기에 앞서 왜 줄이고 늘려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에너지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국가로서 원자력 기술 자립도는 격동적인 에너지 환경의 변화 속에서 쉽게 버릴 수 없는 자산입니다. 21세기 신에너지 체계가 구축될 때까지 안전 운영에 대한 신뢰를 얻어 원자력을 이용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더욱이 동북아 원자력 산업 클러스터를 전망할 때 기술 진보도 중요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설계수명이 끝난 원전의 계속운전 여부 못지않게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이 시급하고 지난합니다. 이 역시 투명성과 민주성을 바탕으로 지역 주민에게 신뢰를 줄 때 추진이 가능합니다. 신뢰는 원자력 리더십의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김균미 편집국 부국장 kmkim@seoul.co.kr ■헌정 사상 ‘최장수 여성장관’ 김명자 김명자 전 장관에게는 ‘헌정 사상 최장수 여성 장관’이라는 타이틀이 항상 따라다닌다. 김대중 정부에서 3년 8개월 동안 환경부 장관을 지내면서 봇물을 이뤘던 환경 관련 이슈들을 처리했다. 특히 10여년간 낙동강 상하류 지역 간의 난제였던 ‘3대강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낙동강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곽결호 당시 수질국장을 동행해 주민들과 소주를 나누며 대화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영남 지역 주민에게 특별법 제정을 전후해 각각 2만 3000통의 편지를 띄워 직접 소통에 나서기도 했다. 치밀함과 섬세함, 신중하면서도 강한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1990년대 들어서는 환경단체와 여성계, 관계 등에서 활동했다. 장관과 국회의원에 이어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도 여러 단체의 이사와 고문으로 현역 때 못지않게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고령화 시대에 웰다잉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호스피스 법안 제정과 재단 설립에 애정을 갖고 힘을 쏟고 있다. ▲1944년 서울 출생 ▲서울대 화학과 졸업,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박사 ▲숙명여대 교수, 명지대 석좌교수 ▲환경부 장관(1999.6~2003.2) ▲제17대 국회의원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현재 그리코리아21포럼 이사장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한미동맹의 큰 별’이 지다...전쟁고아의 아버지를 기리며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한미동맹의 큰 별’이 지다...전쟁고아의 아버지를 기리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호형호제하는 최측근 인사이자 ‘세준 아빠’로 알려질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마크 W. 리퍼트(Mark William Lippert) 주한 미국대사가 불의의 테러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이 보도된 뒤 미국 시민들은 우방국 수도 한복판에서 자국 대사가 정치적 테러를 당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미국인들의 충격과 착잡한 심경은 핵심 군사동맹국 가운데 하나인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그것도 대낮에 자국 대사를 향한 테러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과 더불어 사건 발생 불과 이틀 전 대한민국을 위해 반평생을 헌신했던 전쟁영웅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3일(현지시간) 오하이오 주 데이톤 시의 자택에서 향년 98세로 별세한 딘 헤스(Dean Elmer Hess) 미 공군 예비역 대령. 그는 한국공군 전투기 부대의 산파이자 1,000여 전쟁고아들의 아버지였으며, 무공과 더불어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휴머니즘을 잃지 않았던 참군인이었다. ▲한국공군의 산파(産婆)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전면 남침으로 전쟁이 벌어질 당시 대한민국 국군은 육·해·공군과 해병대라는 군대는 가지고 있었지만, 그 수준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특히 공군은 제대로 된 전투기 한 대 없이 훈련기와 경비행기 몇 대만을 연락기 겸 정찰기로 가지고 있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운용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공군은 밀려 내려오는 북한군에 맞서 처절하게 싸웠다. 2인승 훈련기를 타고 적진 상공까지 다가가서 창문을 열고 박격포탄과 수류탄을 던져 폭격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당시 한국공군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투기를 제공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국 공군을 공군답게 만들어주기 위한 군사고문단, 이른바 제6146부대가 창설됐다. 제6146부대장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 P-47 전투기를 몰며 독일공군을 상대로 맹활약을 펼쳤던 조종사가 임명됐다. 그가 바로 딘 헤스 소령이었다. 일명 ‘한판 승부(Bout one)'라고 명명된 한국공군 강화 프로그램은 간단했다. 대대급 부대인 제6146부대가 F-51 무스탕 전투기 10대를 가지고 한국으로 가서 한국공군 파일럿과 정비사를 교육시킨 뒤 전투기를 한국에 인계하는 것이었다. 사실 미 공군은 ‘바우트 원’대대에 별 기대가 없었다. 한국에 전투기를 제공해 주는 생색만 낼 수 있으면 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 부대에 별다른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전황이 악화되면서 전투기 한 대가 아쉬워지자 바우트 원 대대를 해체시키고 배속 전투기를 전량 제7공군으로 보내 전투 임무에 투입시키려고 했다. 대대장인 딘 헤스 소령은 “대대가 해체되면 대대원 전체가 육군에 입대해서 전선에서 적을 맞아 싸우겠다”며 상부의 지시에 항명으로 맞섰다. 전시 상관에 대한 항명과 명령 불복종은 총살감이지만, 헤스 소령이 목숨을 내놓고 항명한 덕분에 한국공군은 가까스로 최초의 전투기 대대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전투기가 부족하다는 상부의 압박이 들어올 때마다 교육 중인 한국군 조종사들과 함께 전투기를 타고 출격해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다. 훈련부대였음에도 불구하고 헤스 소령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무려 250회나 출격하며 각종 전투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미 공군 조종사들이 100회의 출격을 달성하면 일본이나 미국 등 후방으로 전출 보내주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그는 한국에 남았고 끝까지 대대를 지켰다.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군인으로서 부하들을 남겨두고 전선을 떠나지 않겠다는 그의 정신은 그가 탔던 전투기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당시 정비사였던 최원문 일등상사(전후 대령으로 예편)에게 “By faith, I fly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기체에 그려 달라”고 부탁했고, 최 일등상사는 “신념(信念)의 조인(鳥人)”이라는 글귀를 그의 전투기에 새겨 넣었는데, 이 문장은 훗날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의 기상을 상징하는 일종의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그가 지켜낸 전투기 대대에서 키워진 조종사와 정비사들은 훗날 한국공군의 기틀을 세운 주역들이 되었다. 말 그대로 전쟁 중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대한민국 공군이 진정한 공군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해준 산파 역할을 했던 것이다. ▲작전명 : 꼬마자동차 전쟁 중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한 헤스 중령은 당시 미 공군에서 군종목사로 임무를 수행하던 러셀 블레이즈델(Russel L. Blaisdell) 중령과 함께 각지에서 고아들을 돌보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 독일의 탁아소를 실수로 폭격한 뒤 충격을 받고 이후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것이 헤스 중령의 또 다른 직업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헤스 중령과 함께 고아들을 돌보던 블레이즈델 중령은 서울 시내에 작은 고아원을 차리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 시내를 돌며 고아들을 데려와 보살피기 시작했다. 미군 장교가 보살펴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고아원을 찾아온 아이들은 삽시간에 1,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보급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지만, 미군 장병들은 십시일반으로 자신들의 식량과 피복, 월급을 쪼개 고아원에 보내면서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1950년 그 혹독한 추위 속에서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 문제는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전황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시작됐다. 수십만 대군의 파상공세 앞에 전선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고, 중공군은 파죽지세로 서울 인근까지 당도했다. 이것이 1. 4 후퇴였다. 헤스 중령과 블레이즈델 중령은 아이들을 모아 일본으로 대피할 계획을 세웠지만 문제는 이동수단이었다. 그들은 미 공군 수뇌부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하지만 전황이 악화되어 단 1대의 항공기도 아쉬운 판국에 전쟁고아들을 실어 나를 비행기를 따로 편성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고, 미 공군과 UN군 수뇌부는 헤스 중령과 블레이즈델 중령의 간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더 이상 상부의 허가만 기다릴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들은 인맥을 총동원해 남는 비행기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당시 제5공군 작전참모였던 터너 로저스(Turner C. Rogers) 대령으로부터 주일미군에 여유 수송기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헤스 중령과 블레이즈델 중령은 주일미군사령부와 제5공군을 끈질기게 설득했고, 단 하루 사용하는 조건으로 C-47 수송기 15대를 얻어냈다. 문제는 수송기를 사용하기로 한 당일 아침 정해진 시각까지 무려 1,000여 명의 아이들을 이끌고 서울에서 김포까지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블레이즈델 중령이 수소문 끝에 인근에서 작업 중이던 미 해병대 트럭들을 발견했고, 그 트럭들을 세워 아이들을 태울 것을 명령했지만, 곧 수송대 부대장인 미 해병대 대령이 “전시에 임무 수행중인 차량을 임의로 징발하는 것은 반역”이라며 블레이즈델 중령 일행에게 권총을 뽑아 들었다. 중령 일행은 눈물로 호소를 거듭한 끝에 12대의 트럭을 얻어냈고, 비록 2시간가량 늦긴 했지만 김포 비행장까지 아이들을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헤스 중령은 적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 김포 비행장을 뜨려 하던 C-54 수송기들을 붙잡아 두고 있었고, 아이들이 비행장에 도착하자 트럭으로 달려가 정신없이 아이들을 안고 수송기에 태웠다. 헤스 중령은 훗날 회고록에서 “가장 마지막 차례의 아이가 수송기 안으로 들어오고 수송기 문이 닫히는 순간 내가 느꼈던 지극한 감사와 안도감은 내 평생 두 번 다시없을 것”이라고 소회했다. 헤스 중령과 블레이즈델 중령은 ‘꼬마 자동차 작전’ 직후 명령 불복종으로 소환되어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위기에 처했지만, 관련 내용이 미국 전역에 대서특필되면서 전쟁영웅으로 떠올랐고, 결국 징계 대신 훈장과 표창을 받고 대령까지 진급했다. ▲“한국이 통일되는 것을 볼 때까지 살고 싶다” 헤스 대령은 원래 목회자를 꿈꾸며 신학을 전공해 안수까지 받은 개신교 목사였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한국인 고아 소녀 한 명을 입양했다. 몸은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온 신경은 제주도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쏠려 있었고, 그 와중에 고아들이 머물고 있는 제주도 고아원 임대료를 낼 돈이 없어 아이들이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려 6만 달러의 거금이 필요했지만, 전쟁 기간 내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고아들을 보살폈던 그에게 그만한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6. 25 전쟁 당시의 경험, 특히 고아들을 구한 ‘꼬마 자동차 작전(Operation Kiddy Car)’에 대한 이야기를 급히 책으로 써냈고, 이 책이 대박을 터트리며 벌어들인 인세 수입을 모두 제주도로 보냈다. 그가 쓴 '전송가(Battle Hymn)'는 미국 사회를 감동시키며 영화로까지 제작됐고, 헤스 대령은 책 인세 수입과 영화 로열티까지 벌어들인 모든 돈을 고아들에게 쏟아 부었다. 그가 돌본 고아들은 아버지와 같이 자신들을 돌보아 준 헤스 대령에게 보답하기 위해 노력했고,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 종종 그를 찾아가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임종 직전까지 그의 곁은 입양해 온 한국인 딸이 지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구한 고아들 가운데 미국에 정착해 종종 인사를 오는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에게 종종 “한국이 통일되는 것을 볼 때까지 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마지막까지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며 살았다. 미국 주요 언론들이 헤스 대령의 별세 소식과 한국 사랑으로 채워진 그의 삶을 보도한지 불과 이틀 후에 ‘친한파’ 미국대사에 대한 테러 소식이 미국 주요 일간지 1면을 장식했다. 헤스 대령과 8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블레이즈델 대령은 천국에서 이 소식을 접하고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단독] “옹성 전돌이 삭아 가루 된 건 흥인지문서 처음 봐 충격적”

    [단독] “옹성 전돌이 삭아 가루 된 건 흥인지문서 처음 봐 충격적”

    보물 1호 흥인지문은 정밀 점검과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옹성 벽체엔 바깥쪽으로 벽이 부풀어 오르는 ‘배부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석재, 목재 등 여러 곳에 균열도 일어나고 있다. 일부 기둥은 갈라지고 목재와 목재 접합부는 틈이 벌어졌다. 흥인지문을 점검했던 박언곤 문화재특별점검단장은 “옹성의 전돌(전통 벽돌)이 삭을 대로 삭아 모래알처럼 부서진 건 처음 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국보 18호인 부석사 무량수전도 벽체 두 곳에서 배부름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둥은 파손됐고 추녀는 처졌다. 누수로 연목(서까래)과 추녀가 부식되기까지 했다. 문제는 보수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일본인들이 해체·보수하면서 철물로 나무를 묶어 놨기 때문이다. 대구·경북 지역 문화재특별점검반 팀장인 장석하(경일대 교수) 문화재위원은 “지금은 철물로 묶여 있어 부재들이 붙어 있지만 철물을 풀 때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며 “철물을 잘못 풀면 오래돼 삭은 나무들이 그대로 부서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중 하나로,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하다. 숭례문에 이어 두 번째로 국보로 지정된 목조건축물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13호)도 보존 상태가 심각하다. 좌측 기둥은 오래돼 조금씩 틀어지고 있다. 벽체에 균열이 일어나고 창호도 구조가 틀어져 변형됐다. 지붕 용마루 기둥머리 아랫부분도 변화가 진행 중이다. 광주·전남 지역 문화재특별점검반 팀장인 박강철(조선대 명예교수) 문화재위원은 “목구조는 서로 맞물려 있어 기둥 하나에서 ‘열화 현상’(금이 가고 목재 강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진행되면 전체적으로 변화가 일어난다”며 “목구조 보수는 작은 것일지라도 적기에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위사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맞배지붕의 주심포(柱心包) 건축물로 간결하고 단아한 건축으로 유명하다. 탑, 불상 등 외진 곳에 떨어진 석조 문화재는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경북 북부지역의 신라 양식을 대표하는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마애불이 조각된 암반의 표면 풍화에 따른 들뜸 현상으로 훼손이 심각하다. 암석의 내구성도 현저히 떨어져 절리면을 따라 풍화가 지속되면 원형 자체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등도 마찬가지다. 문화재청은 박근혜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따라 2013년 1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전국 문화재 특별 종합점검을 실시했다. 국가지정 문화재 1447건, 시·도지정 5305건 등 6752건이 대상이었다. 박물관 등에 보관된 문화재 641건은 별도로 조사가 진행됐다. 조사 결과 훼손도, 위험도, 관리 상태 등에 따라 A~F 6개 등급으로 분류했다. 별도의 보존 대책이 필요하지 않은 A~C등급은 5697건(77.1%)이었다. 정기·상시 모니터링이 필요한 D등급 183건(2.5%), 보수정비를 요하는 E등급 1413건(19.1%), 즉시 조치가 필요한 F등급 87건(1.2)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한 문화재는 1683건이었다. 문화재청은 D~F등급 중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경우 ▲석굴암 등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경우 ▲노후도·훼손도가 심각한 경우 등을 고려해 중점 관리대상 문화재 56건을 선정했다. 문화재청은 “지금까지와 달리 중점 관리대상에 선정된 문화재들은 정확한 데이터를 토대로 위험요소, 보존환경 등을 감안해 지속적으로 맞춤형 관리를 하게 된다”며 “국민들에게도 문화재별 관리 상황을 1년 단위로 공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점 관리대상 문화재 모니터링을 위해 올해 45억여원의 예산이 별도로 마련됐다. 지자체에 지원되거나 정기점검, 보수정비 기본 계획 수립 등에 쓰인다. 중점 관리대상으로 선정되지 않은 나머지 D~F등급 문화재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책정되는 보수정비 예산 중 우선적으로 예산을 배정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올해 시범 운영한 뒤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국립문화재연구소를 중심으로 지자체 지원 시스템도 구축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중점 관리대상 문화재 관리 주체는 지자체”라며 “문화재연구소에서 체계적인 문화재 관리 시스템을 만들고 가이드라인도 정해 시행할 것이어서 지자체는 가이드라인에 맞춰 관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단독] 세계유산 돈화문이 위태롭다

    [단독] 세계유산 돈화문이 위태롭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 돈화문(보물 383호)의 지붕이 내려앉고 있다. 또 흥인지문(동대문·보물 1호)은 옹성 벽체가 부풀어 오르는 ‘배부름 현상’이 급속히 진행돼 곳곳에서 균열이 가속화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전국 곳곳의 주요 문화재들 가운데 보존관리가 시급한 56건을 ‘중점관리 대상 문화재’로 지정했다고 4일 밝혔다. 돈화문, 흥인지문 등 우리나라 대표 문화재들의 훼손 심각성을 정부가 공식 인정해 집중 관리 대상으로 정한 것은 처음이다. 서울신문이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숭례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경주 첨성대,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등 국보 21건과 흥인지문, 창덕궁 돈화문, 강릉 오죽헌 등 보물 26건, 수원화성, 한양도성, 남한산성 등 사적 9건을 중점관리 대상 문화재로 지정해 특별관리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는 2013년 1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6개월간 진행한 문화재 특별점검의 결과이며 점검은 숭례문 부실 복구 논란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이뤄졌다. 중점관리 대상 문화재 선정 제도는 그런 개선 방안의 하나다. 문화재청은 “전국 문화재 전수조사를 거쳐 지난해 12월 훼손 및 노후 정도가 심각해 특별관리가 시급한 문화재 56건을 중점관리 대상으로 확정하고 후속 대책을 논의 중”이라면서 “경사기, 진동측정기 등의 과학 기기를 동원해 상시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정기적으로 일반에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이 문화재 전문위원과 함께 현장을 확인한 결과 창덕궁 돈화문의 기둥 침하 현상은 심각했다. 아래층 기둥들이 좌우 바깥 쪽으로 벌어지면서 지붕을 떠받치는 위층 기둥들이 가라앉고 있는 데다 위층의 목재들이 휘어지고 있었다. 한쪽 기둥은 밖으로 심하게 벌어져 와이어로 묶어 놨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비슷한 구조의 전남 여수 진남관의 경우 기둥 침하가 심해져 지난해 결국 해체 결정을 내렸다”고 우려했다. 이에 문화재청은 “기둥들이 어느 정도나 기울어야 해체한다는 기준은 따로 없다. 지난 2년간 해마다 기둥 기울기를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사용 후 핵연료 안전·원전 해체에 3146억 투입

    월성 원자력 발전소 1호기의 재가동 승인과 2년 뒤 설계수명이 종료되는 고리 원전 1호기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는 가운데 사용 후 핵연료의 안전관리와 원전 해체 기술개발에 올해 31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일 원자력 핵심기술 개발과 원자력 연구개발 사업에 지난해보다 7.7% 많은 3146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원자력기술개발 1420억원, 방사선기술개발 424억원, 중소형원자로(SMART) 안전성 강화 93억원, 수출용 신형연구로 개발·실증 547억원 등이다. 원자력기술개발사업에는 사용 후 핵연료 관리의 기술적 해결을 위해 사용 후 핵연료 건식재처리(파이로프로세싱) 기술과 연계한 소듐냉각고속로 개발 등 미래 원자력 핵심기술 개발이 추진된다. 또 국내 노후 원전의 폐로에 대비하고 해외 원전 해체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원전 제염·해체 핵심기술 개발도 중점 추진한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욱~하는 대한민국] 존속살해 美·英의 3~4배

    치밀어 오른 분노와 화가 극단으로 표출되는 ‘분노조절 장애’(간헐적 폭발장애)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세종과 경기 화성에서 잇따라 발생한 엽총난사 사건은 물론, 존비속 살해와 ‘묻지마 범죄’ 등은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분노조절 장애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방증이다. 전문가들은 급속한 가족 해체와 소통 부재에 따른 세대·계층 간 단절, 경쟁 및 결과 지향 사회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특히 가족을 대상으로 한 강력 범죄가 유독 도드라진다. 1일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정성국 박사(검시조사관)의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비속)살해 분석’ 논문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존속살해 사건은 381건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전체 살인사건에서 존속살해가 차지하는 비중은 5%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존속살해(60건)가 전체 살인사건(910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6%까지 치솟았다. 미국(2%)과 영국(1.5%) 등의 3~4배 수준이다. 같은 기간 비속살해도 230건 일어났다. 가해자(부모) 가운데 46%가량이 목숨을 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반자살’로 포장됐지만, 이 또한 살해일 뿐이다. 자식은 소유물이라는 비뚤어진 인식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서관모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깊어지면서 인간관계는 각박해지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개선될 것이란 희망도 옅어지고 있다”며 “이 같은 현상이 사회적 병리로 굳어지지 않도록 사회안전망 보완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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